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1970년대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사무처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책임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임신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구직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796
  • 산후 태반 먹으면 좋다?…과학적 근거 無 - 연구

    산후 태반 먹으면 좋다?…과학적 근거 無 - 연구

    출산한 뒤 태반을 먹는 것이 우울증을 예방하고 산후 통증을 줄이며 기력을 회복시켜줄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진이 지금까지 발표된 연구논문 총 10건을 검토한 결과, 태반 섭취가 산후 생활을 이롭게 하는 것과의 상관관계는 입증되지 않았으며 지금까지 부작용에 관한 연구도 진행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태반을 섭취하면 산후 우울증을 예방하고 산후 통증을 감소시키는 것은 물론 기력 회복, 모유 분비 촉진, 체내 철분 보급 등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알려졌다. 이런 효과는 최근 리얼리티쇼 출연 등으로 알려진 미국 리얼리티 스타 코트니 카다시안이 적극 지지하면서 유행처럼 번졌다. 이에 대해 공동저자인 크리스탈 클라크 노스웨스턴의대 조교수(정신의학·행동과학)는 “혜택을 봤다고 느낀 여성들의 주관적인 보고가 다수 전해지고 있지만, 태반 섭취의 효과와 위험성을 조사한 체계적인 연구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는다”며 “쥐를 이용한 연구결과를 인간에 대한 효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태반은 임신 시 태아에게 영양을 공급하고 태아의 혈액에서 노폐물을 제거하기 위해 자궁 내에 형성되는 기관이다. 고양이 등 포유류 대부분이 출산 후 태반을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북미 여성들 사이에서 태반 섭취가 이뤄졌는지에 관한 최초의 문서 기록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클라크 교수는 “몇 년간 유행이 급격히 확대하고 있다”면서 “사람들은 과학과 의사와의 상담에 따라 이런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라 일부 언론 보도나 블로그, 웹 사이트 등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미국 의학전문지 ‘여성 정신 건강 기록’(Archives of Women ‘s Mental Health)에 게재됐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말기암도 치료? 획기적 ‘면역요법 항암제’ 나와

    말기암도 치료? 획기적 ‘면역요법 항암제’ 나와

    -영국, 사용 허가...유럽 각국 승인 대기중 항암치료의 새 장을 열어줄 치료제가 공개됐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들이 최근 보도했다. ‘미국암학회’(ASCO)는 최근 시카고에서 열린 ASCO 연례 컨퍼런스에서 이 같은 성과를 발표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번 치료제는 '화학요법 이후 항암치료계의 최대 발견'이다. ‘면역요법’ (Immunotherapy) 이라 일컫는 이 치료법은 인간 면역체계가 암 세포를 인식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본래 인간 면역체계는 각종 종양에 맞서 싸우도록 되어있다. 그렇지만 암과 같은 악성 종양은 ‘위험하지 않은’ 조직으로 위장한 채 증식을 계속한다. 면역요법은 면역계가 이러한 위장에 속지 않고 암을 인식해 공격하게 해준다는 것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면역세포의 일종인 T세포는 센서 역할을 하는 단백질 PD-1과 경보기 역할을 하는 단백질 B7.1을 통해 비정상 세포를 찾아내고 공격한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T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지 않는 이유를 연구했다. 그리고 최근 암 세포 표면에서 발견되는 단백질 PD-L1이 PD-1 및 B7.1에 융합하여 그 기능을 마비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면역요법 치료제는 PD-L1의 융합 작용을 막아 T세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게 해준다. 치료제는 이필리무밥(ipilimumab)과 니볼류맙(nivolumab) 2종으로 동일한 작용을 하며, 병행하여 사용했을 때 치료 확률이 커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치료는 몇 주에 한 번 꼴로 치료제를 소량 투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1년 총 치료비는 1억 7000만 원 정도다. 영국의 경우 보건의료당국 승인을 받았고 유럽 각지에서는 사용 승인 대기 중이다. -"화학요법 대신해 '표준 암 치료법' 될 것" 이 요법은 폐암, 피부암 등 가장 치명적인 암 질병에 효과가 있으며 그 외에도 치료가 극도로 어렵다고 알려진 신장암 방광암 두경부암 등에도 효과를 보였다. 영국 피부암 환자 95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치료에서는 60%에 달하는 환자의 종양이 크게 축소되거나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호전되었다. “사실상 정상적인 삶을 되찾은 것”이라고 치료를 지켜본 의사는 전했다. 전문가들은 기타 암 질환의 경우에도 적어도 절반 이상 환자에게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치료법으로 목숨을 구한 전직 여교수의 사례도 알려졌다. 영국 여성 비키 브라운은 2006년 피부암을 진단받고 2013년에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으나 같은 해 8월 임상치료에 참가해 불과 몇 주일 만에 완치되었다. 그녀는 “기적의 치료제 같았다”며 당시 소감을 밝혔다. 연구진은 이 치료법을 가능한 한 빠르게 확대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발진이나 메스꺼움, 피로감 등의 부작용이 있지만 그 정도는 화학요법보다 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화학요법은 보편적인 항암 치료법이 아니었다. 극도의 피로, 구토와 탈모를 유발하며 각종 감염에 취약하게 만드는 까닭에 현재도 많은 환자들이 화학치료를 중도 포기하곤 한다. 미국 예일 암센터 로이 허스트 교수는 “향후 5년 이내에 면역요법이 화학요법을 대신해 표준 암 치료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며 “거대한 발견이다, 항암치료의 패러다임 전환이 찾아왔다”고 전했다. 사진=데일리메일 캡쳐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그 옛날...그 만화...참 재미있었는데...” 박기정 만화가 소장 만화 100권 기증

    “그 옛날...그 만화...참 재미있었는데...” 박기정 만화가 소장 만화 100권 기증

    경기도 부천시 산하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5일 만화 ‘도전자’를 그린 박기정 화백으로부터 소장 만화 단행본 100권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박 화백이 기증한 단행본은 ‘폭탄아’, ‘도전자’, ‘레슬러’, ‘황토바람’ 등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출간된 작품으로 시중에서 찾기 어려운 자료다. 사진: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제공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세계 3대 작물 ‘밀’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세계 3대 작물 ‘밀’

    밀은 벼, 옥수수와 더불어 세계 3대 작물 중 하나다.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1만 5000년 전부터 재배된 곡식이다. 원산지는 코카서스 남부인 아르메니아로 추정된다. 밀은 비교적 건조하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아 세계 126개국에서 재배가 되고 있다. 밀은 세계 곡물 생산량의 30% 수준이다. 밀의 최대 생산국은 중국으로 인도, 러시아, 미국, 프랑스 등이 주요 생산국이다. 서양의 주식인 밀은 기원전 100년쯤 중국에서 한반도로 전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밀 유적지는 평안남도 대동군 미림지다. 그 후 경북 경주시의 반월성지에서 개화된 밀알이, 충남 부여읍의 백제 군량고에서는 불에 탄 밀이 발견됐다. 과거에는 밀 생산량이 많지 않아 밀가루 음식은 궁중에서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았다. 고려도경에는 ‘고려엔 밀이 적어 화북지방에서 수입하고 밀가루 값이 매우 비싸 잔치 때 먹는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국수가 서민 음식으로 바뀌었고, 희고 긴 모양 때문에 결혼식 등에서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통했다. ●식생활 서구화… 국민 1인당 연간 34㎏ 소비 밀은 가공을 통해 빵과 국수, 과자, 케이크 등의 주 재료로 활용된다. 국내에서는 식생활의 서구화로 국민 1인당 연간 34㎏을 소비한다. 쌀 다음으로 많은 소비가 이뤄지는 곡식이다. 국내에서도 1970년대 15%의 자급률을 유지하다가 그 후 값싼 밀 수입정책으로 국내 밀 생산 기반이 무너졌다. 1990년대에는 1% 이하까지 하락해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통밀가루는 밀알 전체를 갈아서 만든 것으로 식이섬유와 미네랄, 비타민 등이 다량 함유돼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인정한 건강기능성 식품의 10대 트렌드에 통곡류가 들어간다. 실제 미국과 유럽에서는 최근 백밀가루 대신 통밀가루 제품이 대세 식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동의보감에는 밀과 밀가루를 각각 소맥(小麥)과 면(麵)으로 적고 있다. 소맥은 발열, 이뇨작용, 간 기능 개선 등에 효능이 있고, 면은 소화, 위장, 원기 회복 등에 도움을 준다. 최근에는 밀의 추출물이 알츠하이머병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고 기억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다. 통밀에는 항산화작용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토코페놀’ 함량이 백밀가루보다 3∼5배 높다. 포만감을 줘 다이어트 효과가 있는 식이섬유도 12∼15% 함유돼 있다. 그 외에 폴리페놀, 옥타코사놀, 아라비노자일란 등과 같은 유용 성분이 들어 있어 의약품 소재로도 활용되고 있다. 밀은 주로 가루를 만들어 이용됐다. 다른 곡물에 비해 가공 능력이 뛰어나 다양한 식품 제조가 가능하다. 밀에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등이 84%를 차지하고 있지만 밀가루에 함유된 단백질 중 글루텐의 양과 질에 의해 가공성이 결정된다. 빵, 국수, 과자, 케이크 등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엔 식량 이외에 주정용과 사료로도 사용되고 있다. 빵은 서양에서 식량 전체를 의미할 만큼 일반적인 음식이다. 빵은 밀가루를 반죽할 때 효모를 첨가해 오븐에 구운 것으로, 음식을 부패하지 않게 장기간 보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기원전 3000년쯤 바빌로니아에서 술을 만들다가 제빵법을 발견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2000년쯤에는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효모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빵으로는 영국의 머핀, 프랑스의 바게트, 오스트리아의 베이글, 이집트의 피타, 인도의 난, 중국의 꽃빵 등이 있다. 밀이 부족한 북유럽과 러시아에서는 호밀가루를 이용해 흑빵을 제조하기도 한다. ●국내 빵·면 시장규모 20조원대 달해 우리나라에서 빵은 이제 간식거리에서 한 끼의 식사용으로 대접받고 있다. 초창기에는 제과점 등 자영업 형태로 유지되던 경영 형태가 최근엔 대기업이 참여하는 프랜차이즈로 바뀌고 있다. 국내 빵 시장 규모는 10조원대를 웃돌고 있다. 국수는 중국이 기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이 저렴하고 조리하기 편리해 급속히 보급된 가공 식품이다. 동양에서는 희고 긴 모양 때문에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례 음식으로 사용됐다. 송나라 때 이슬람을 거쳐 유럽으로 전파된 국수는 이탈리아의 대표 음식인 파스타 요리로 바뀌었다. 일본에서는 1958년 ‘치킨라멘’이라는 인스턴트 라면이 개발되면서 여전히 서민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국내에서도 면 요리의 인기가 높아 국수 시장이 커지고 있다. 국내 식용 밀 소비량의 70%를 차지하며 10조원대의 시장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국내 라면은 1963년 ‘치킨라면’으로 시작해 지금은 4개의 대형 가공업체에서 250여종을 생산하고 있다. 국민 1인당 연간 70여개를 먹어 총 24억개를 소비하고 있다. 과자는 비스킷, 쿠키, 크래커 등 다양하다. 빵보다 역사가 오래됐다. 우리 식생활에서는 주로 간식 형태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기원전 6000∼4000년쯤 중동의 이란 평원에서 야생 밀을 물로 반죽했던 음식이 과자의 기원으로 알려졌다. 비스킷은 주로 밀가루, 설탕, 지방을 이용해 구운 제품이다. 수분 함량이 4% 미만으로 유통 기한이 긴 특징이 있다. 쿠키의 수분 함량은 5% 이하로 과자 크기가 작고 장기간 보존이 가능하다. 또 여러 모양으로 만들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와플은 틀에 구운 다음 버터를 바르고 시럽을 뿌려 먹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케이크는 기념일이나 즐거운 일에는 꼭 준비해야 할 만큼 우리 문화와도 친숙해진 서양 음식이다. 케이크는 밀가루 반죽과 꿀, 계란, 기름, 버터, 치즈 등을 첨가해 만든다. 이집트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로마 시대에 빵과 케이크로 나뉘었다. 우리나라의 전통주는 술을 빚을 때 밀누룩을 발효제로 사용해 독특한 맛과 향을 낸다. 밀 껍질째 빻아 물로 반죽하고, 메주처럼 덩어리를 지어 띄운 ‘막누룩’을 이용해 술을 빚는다. 조선시대 농서인 ‘사시찬요초’에는 “보리 10되, 밀가루 2되를 녹두즙, 여뀌와 반죽해 떡처럼 만들어 바람이 통하는 곳에 걸어 말려 누룩을 만든다”고 기록돼 있다. 밀을 주 원료로 사용해 맥주, 보드카, 위스키 등도 만들어진다. 러시아의 대표주 보드카는 밀을 원료로 하며, 맥주를 증류해 만드는 위스키 중 그레인 위스키(Grain whisky)는 밀이나 옥수수로 제조된다. 밀로 만든 맥주에는 벨기에산 밀맥주가 있다. 국내에서는 제주도에서 생산된 밀과 청정수를 이용해 만든 밀맥주가 깔끔하고 단맛이 난다. 벼농사가 끝난 겨울철 들녘에 밀을 재배하면 환경 보전, 경관 개선과 함께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 우선 겨울철에 밀을 재배하면 공기 정화와 경관 개선 등의 효과가 있다. 산비탈 등 경사지에 밀을 재배하면 토양 유실과 하류의 흙탕물 발생을 막을 수 있다. 국산 밀은 재배할 때 겨울철을 지나가기 때문에 병해충 발생이 적어 친환경 재배가 가능하다. ●먹거리 넘어 체험관광자원으로 활용 밀은 최근 먹거리뿐 아니라 볼거리와 체험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해마다 2월 말 들뜬 뿌리를 밟아줘 밀 생육을 좋게 해주는 ‘밀밭 밟기’와 5월 말 아직 익지 않은 밀을 베어 구워 먹는 ‘밀사리’ 전통이 이제는 재배단지를 중심으로 축제와 체험행사로 바뀌고 있다. 농촌 경제와 로컬 푸드 활성화 등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토종 밀인 ‘앉은뱅이밀’은 세계의 기아를 구제한 녹색 혁명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앉은뱅이밀은 멕시코 재래종과 교잡돼 많은 수확이 가능한 ‘소노라64’ 품종을 탄생시켰다. 소노라 64는 멕시코의 밀 생산을 3배 증가시켰고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기아 문제를 해결했다. 강천식 농촌진흥청 작물육종과 농학박사 ■문의 golders@seoul.co.kr
  • [新국토기행] 인천시

    [新국토기행] 인천시

    인천시는 지난달 송도국제도시에서 교육 분야 세계 최대 회의인 ‘세계교육포럼’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도시브랜드 가치를 확실히 높였다. 이 포럼에는 각국 정상급과 국제기구 수장들이 대거 참석해 국제도시로서의 인천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됐다. 국제사회가 실행해야 할 교육방향을 담은 선언문에 ‘인천’이란 도시 이름이 명기됨으로써 인천을 홍보하는 효과도 얻었다. 환송 만찬에서는 호박고구마 등 인천 향토음식이 등장했고, 건배주로는 강화섬쌀로 빚은 전통술이 제공됐다. 수도권의 변방으로 취급됐던 인천이 ‘동북아 허브’, ‘대한민국의 미래’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말이 과장된 수사로 들리지만은 않는다. 인천은 도시와 농어촌 기능이 복합됐을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레저 요소를 갖춘 신도시들이 들어서 도시 자체가 볼거리다. ■볼거리 ●비즈니스 관광 거점 송도국제도시 바다를 매립해 만든 간척지 특징상 모두 평지다. 블록 위주 개발로 골목길이 없으며 공원, 도로 등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쾌적하고 넓게 조성돼 있다. 녹지율이 무려 40%에 달한다. 곳곳에 공원이 있어 ‘공원 천국’으로 불리지만 압권은 센트럴파크다. 이 공원은 국제업무단지와 주거단지 가운데 도시의 열섬현상을 막고 빗물을 효율적으로 재활용하기 위해 최신 공법으로 조성됐다. 국내 최초로 해수를 끌어와 만든 길이 1.8㎞, 최대 폭 110m에 이르는 인공수로에는 공원을 순환하는 수상택시가 운행된다. ‘산책공원’, ‘테라스정원’, ‘초지원’ 등 5개의 테마로 구성돼 회색빌딩이 밀집된 도시 분위기를 녹색도시로 탈바꿈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쇼핑·먹거리타운인 커넬워크는 이국적 분위기를 맛보려는 젊은이들이 즐겨 찾아 평일에도 북적인다. 송도국제도시는 숙박이 문제로 대두됐으나 쉐라톤, 홀리데이인, 오크우드프리미어 등 6개의 호텔이 들어서면서 해결됐다. 송도는 마이스(MiCE) 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포상관광(Incentive travel), 컨벤션(Conventions), 전시(Exhibition) 등 비즈니스관광을 통틀어 일컫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마이스 중심도시로서의 위상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송도컨벤시아 2단계 확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인근 지역 주민까지 찾는 쉼터, 인천대공원 인천시에서 가장 큰 공원인 인천대공원(293만㎡)은 규모의 방대함과 입지 때문에 경기 부천, 시흥 주민들도 즐겨 찾는다. 관모산(162m) 자락에 걸쳐 있으며 주위가 개발제한구역이라 도심 속에서 농촌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92과 332종 6550포기의 식물을 보유한 식물원, 1만 300그루의 다양한 장미가 심어진 장미원, 58종 231마리가 있는 어린이동물원, 23만㎡의 수목원, 환경미래관, 궁도장, 조각원, 야외음악당, 산림욕장, 사계절썰매장 등 다양한 시설이 있다. 군부대로 통하는 도로 건너편에 소래산이 있어 등산을 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적한 도로의 갓길은 조깅,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도록 포장돼 있다. 인천대공원과 소래산 사이에는 농사체험장도 곳곳에 있어 일대는 종합 휴식공간이라 할 수 있다. ●때묻지 않은 섬마을 삼형제 신도·시도·모도 섬이 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신도·시도·모도는 이런 인식을 허문다. 육지화된 영종도 삼목항에서 배를 타면 10분 거리다. 따라서 1시간 간격으로 운항하는 배 시간만 맞추면 서울에서 차량으로 1시간∼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다. 영종도에 개발 붐이 거세게 일 때에도 무풍지대였던 곳으로, 여전히 갯벌 위로 기러기가 날아다니는 한가한 섬마을이다. 일단 신도로 가면 시도, 모도는 연도교로 이어지기에 하나의 섬으로 봐도 무방하다. 유명한 관광지는 없지만 그게 오히려 매력이다. 섬과 섬을 편하게 오가며 때묻지 않은 정취를 만끽할 수 있어 가족과 함께 찾기에 안성맞춤이다. 30㎞가량 굽이돌며 해변과 야산을 넘나드는 쪽길을 따라 3개 섬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새롭게 단장한 원조 볼거리 월미도 ‘문화의 거리’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사람들이 경인전철을 타고 인천에 오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월미도였다. 하지만 수도권에 다양한 볼거리가 생겨나면서 월미도는 한물간 곳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썩어도 준치’다. 이러한 평가를 견인하는 것은 월미도에 만들어진 문화의 거리다. 인천시는 횟집과 포장마차만 즐비하던 이곳의 가게들을 정비하고 길이 770m, 폭 20m, 면적 1만 5400㎡의 문화의 거리를 조성했다. 이곳에서는 음악, 무용, 마당극, 행위예술, 풍물놀이, 작은영화제, 전통무예,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가 정기·부정기적으로 펼쳐짐으로써 명실상부한 문화의 거리로 정착됐다. 공연 참가자 가운데 전문 예술인 외에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아마추어 동호인들도 많다. 공연과 관련 없이 시민들이 이곳에 와 트럼펫을 불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문화의 거리 옆에 늘어선 횟집과 카페들은 ‘식후경’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100년 넘은 화교역사의 근원지 인천차이나타운 인천역 건너편에 자리잡은 우리나라 최초의 차이나타운으로 화교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나라는 한국을 돕는다는 핑계로 3000여명의 군대를 파견했다. 이때 군인들의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40여명의 중국 상인이 함께 들어왔는데 이들이 한국 화교의 시초다. 화교들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세 자루의 칼이었다고 한다. 음식점에서 사용하는 육도(肉刀), 양복점에서 쓰는 전도(剪刀), 이발소 면도칼인 체도(剃刀)를 가리킨다. 화교들이 주로 이들 업종에 종사하면서 부를 축적했음을 상징한다. 인천차이나타운에는 중국 음식과 토산품, 의상, 제과 등을 파는 상점들이 혼재해 있다. ‘외식의 왕’ 짜장면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중국 요릿집인 ‘공화춘’은 1912년쯤 인천항에서 막일을 하는 중국 산둥성(山東省) 출신 노동자인 쿠리(苦力)들이 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도록 볶은 춘장에 국수를 비빈 짜장면을 개발했다. 수타 짜장면은 종업원들이 손수레로 바닷가로 가져갔는데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공화춘의 성공에 힘입어 화교들이 중화루·동홍루 등을 줄줄이 열면서 인천은 청요리의 본산이 됐다. 지금도 26곳의 중국음식점이 저마다 특색을 자랑하며 영업 중이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먹거리 ●연락골 ‘추어마을’… 취향에 맞게 주문할 수 있어요 인천 남동구 운연동 연락골은 주로 논농사를 짓는 평범한 농촌이었다. 그런데 논에 미꾸라지가 많이 잡히면서 마을 주민들이 추어탕을 즐겨 만들어 먹었다. 인근 주민들에게도 이곳 추어탕 맛이 알려졌다. 어느새 마을에 추어탕 전문 음식점이 하나둘 생기더니 지금은 아예 추어마을로 불릴 정도가 됐다. 이곳은 손님 취향에 맞게 추어탕을 주문할 수 있다. 대체로 남자들은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은 추어탕을, 여성과 노인은 추어를 갈아서 끓인 추어탕을 선호한다. 추어탕에는 미꾸라지 특유의 비린내와 흙내를 없애기 위해 산초, 들깨가루, 부추가 필수적으로 들어가며 따끈따끈한 돌솥밥이 함께 나온다. 반찬은 도라지무침, 열무무침, 고추장아찌 등 다른 곳에 비해 특이하고 다양하다. 추어탕을 먹고 나면 솥째 담긴 누룽지가 나온다. 미꾸라지 튀김도 먹을 만하다.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 어마어마한 양 사리도 무한 리필 요즘 냉면 한 그릇 먹고 ‘배부르게 먹었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거의 없다. 냉면으로 배가 부르고 입맛을 챙기고 주머니 걱정도 덜어주는 곳이 ‘세숫대야 냉면’으로 불리는 동구 화평동 냉면골목이다. 이곳은 1980년대 초반에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세숫대야처럼 큰 그릇은 아니었지만 가격이 쌌다. 냉면이 고급 음식처럼 여겨지던 시절에 가격으로 승부한 것이다. 라면 한 그릇이 300원 안팎이었는데 화평동 냉면은 500원이었다. 싼 냉면을 찾는 사람들 덕에 냉면집은 계속 생겨났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크기의 세숫대야 냉면이 등장한 것은 1990년대다. 한 끼 식사로는 왠지 부족한 듯 느껴지는 냉면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세숫대야’라는 다소 과장된 표현의 냉면이 선을 보였다. 직접 가보면 알겠지만 정말 크다. 그래도 모자라 추가로 냉면사리를 원하면 무한정 공짜로 제공된다. ●동인천 ‘삼치거리’… 50년된 맛 막걸리와 세트판매 인기 이곳의 뿌리는 ‘인하의 집’이다. 생긴 지 50년이 됐다. 지금의 삼치거리 뒷골목에서 문을 열어 가정집 방에서 손님을 받았다. 손님이 많을 때는 마당에 식탁이 될 만한 것으로 상을 만들었다. 이름처럼 인하대 학생들이 단골이었다. 처음부터 삼치구이가 대세를 이룬 건 아니었다. 각종 생선구이를 만들었는데 그중에서도 삼치구이가 유독 인기를 끌었다. 삼치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음식점이 잇따라 생겨났고, 덩달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손님들은 원조만 고집하지 않고 각자 기호에 맞는 집을 찾아가 단골이 됐다. 삼치구이에는 막걸리가 제격이어서 이 거리의 세트 메뉴처럼 인식된다. 삼치는 굽는 방식에 따라, 삼치를 찍어 먹는 소스에 따라 맛이 다르다. 가게마다 서로 최고라고 자부한다. ●연안부두 ‘밴댕이회무침’… 제맛 느끼려면 7월 초까지는 맛봐야 연안부두 입구에 있는 3층짜리 해양센터에는 식당이 빼곡히 들어 서 있다. 다양한 해산물을 팔지만 밴댕이회무침이 주력이어서 ‘밴댕이건물’로 불린다. 온갖 양념에 버무린 밴댕이회무침은 매콤한 맛이 일품이다. 밴댕이는 5월 말부터 7월 초까지가 제철이다. 산란기에 접어들기 전 살이 바짝 올라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최고조에 오를 때다. 밴댕이는 가을 생선인 전어와 유사하게 어부들이 바다에 발을 설치하여 잡는다. 밴댕이는 성질이 몹시 급해 그물에 걸리면 제 분을 못 이겨 금방 죽어버린다. 그래서 ‘밴댕이 소갈머리 같다’는 말이 나왔지만, 먹어볼수록 깊은 맛을 느끼게 된다. 등에 은빛이 나고 윤기가 흐르는 밴댕이를 최상품으로 치는데 살이 연해 회무침으로 먹기 좋다. 회무침을 밥에 비벼 회덮밥으로 먹기도 한다. ●용현동 ‘물텀벙이거리’… 아구의 또 다른 이름 인천에서는 아구를 ‘물텀벙이’라고 부른다. 예전에 인천의 어부들은 큰 머리에 배만 불룩하고 살이 없는 아구가 그물에 걸리면 재수가 없다고 해서 다시 물에 ‘텀벙’ 소리 나게 던져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도 하역 노동자들이 모이는 남구 용현동 포장마차에서는 인기가 있었다. 싼 데다 시원한 국물 맛이 소주 한 잔 마시기에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값싼 술국에 불과했던 물텀벙이는 1970년대부터 인천의 별미로 떠올랐다. 용현동에 아구탕·아구찜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음식점이 늘어나면서 물텀벙이거리로 불리게 됐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혁명적 ‘면역요법 항암제’ 공개...美학회 “화학요법후 최대 발견”

    혁명적 ‘면역요법 항암제’ 공개...美학회 “화학요법후 최대 발견”

    -미국암학회 "화학요법 이후 최대 발견" 항암치료의 새 장을 열어줄 치료제가 공개됐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들이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암학회’(ASCO)는 최근 시카고에서 열린 ASCO 연례 컨퍼런스에서 이 같은 성과를 발표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번 치료제는 '화학요법 이후 항암치료계의 최대 발견'이다. ‘면역요법’ (Immunotherapy) 이라 일컫는 이 치료법은 인간 면역체계가 암 세포를 인식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본래 인간 면역체계는 각종 종양에 맞서 싸우도록 되어있다. 그렇지만 암과 같은 악성 종양은 ‘위험하지 않은’ 조직으로 위장한 채 증식을 계속한다. 면역요법은 면역계가 이러한 위장에 속지 않고 암을 인식해 공격하게 해준다는 것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면역세포의 일종인 T세포는 센서 역할을 하는 단백질 PD-1과 경보기 역할을 하는 단백질 B7.1을 통해 비정상 세포를 찾아내고 공격한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T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지 않는 이유를 연구했다. 그리고 최근 암 세포 표면에서 발견되는 단백질 PD-L1이 PD-1 및 B7.1에 융합하여 그 기능을 마비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면역요법 치료제는 PD-L1의 융합 작용을 막아 T세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게 해준다. 치료제는 이필리무밥(ipilimumab)과 니볼류맙(nivolumab) 2종으로 동일한 작용을 하며, 병행하여 사용했을 때 치료 확률이 커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치료는 몇 주에 한 번 꼴로 치료제를 소량 투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1년 총 치료비는 1억 7000만 원 정도다. 영국의 경우 보건의료당국 승인을 받았고 유럽 각지에서는 사용 승인 대기 중이다. -'위장'한 암세포 찾아서 공격 이 요법은 폐암, 피부암 등 가장 치명적인 암 질병에 효과가 있으며 그 외에도 치료가 극도로 어렵다고 알려진 신장암 방광암 두경부암 등에도 효과를 보였다. 영국 피부암 환자 95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치료에서는 60%에 달하는 환자의 종양이 크게 축소되거나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호전되었다. “사실상 정상적인 삶을 되찾은 것”이라고 치료를 지켜본 의사는 전했다. 전문가들은 기타 암 질환의 경우에도 적어도 절반 이상 환자에게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치료법으로 목숨을 구한 전직 여교수의 사례도 알려졌다. 영국 여성 비키 브라운은 2006년 피부암을 진단받고 2013년에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으나 같은 해 8월 임상치료에 참가해 불과 몇 주일 만에 완치되었다. 그녀는 “기적의 치료제 같았다”며 당시 소감을 밝혔다. 연구진은 이 치료법을 가능한 한 빠르게 확대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발진이나 메스꺼움, 피로감 등의 부작용이 있지만 그 정도는 화학요법보다 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화학요법은 보편적인 항암 치료법이 아니었다. 극도의 피로, 구토와 탈모를 유발하며 각종 감염에 취약하게 만드는 까닭에 현재도 많은 환자들이 화학치료를 중도 포기하곤 한다. 미국 예일 암센터 로이 허스트 교수는 “향후 5년 이내에 면역요법이 화학요법을 대신해 표준 암 치료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며 “거대한 발견이다, 항암치료의 패러다임 전환이 찾아왔다”고 전했다. 사진=ⓒ포토리아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피터팬 증후군, 언제까지나 어른아이..이유 알고보니?

    피터팬 증후군, 언제까지나 어른아이..이유 알고보니?

    ‘피터팬 증후군’ 피터팬 증후군이란 성년이 되어서도 어른들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른아이’ 같은 성인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임상심리학자 D. 카일리 박사가 만든 용어로 미국에서는 1970년대에 이미 ‘어른아이’가 다수 나타난 바 있다. 피터팬 증후군은 전사춘기에서 청년기에 이르는 각 발달 단계에 따라 기본 증상을 차례로 나타난다. 초등학생에서 중학교 저학년 정도의 전사춘기 단계에서는 언제까지나 어린아이로 있고 싶은 마음에 책임 있는 행동을 기피하는 ‘무책임’ 증세가 나타난다. 중학생 정도의 전사춘기 단계에서는 겉으로는 명랑하게 행동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어른 되기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 ‘불안’ 단계가 나타난다. 여기에 ‘무책임’ 증세가 겹치면 자신은 본래 게으름뱅이라거나, 틀려먹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중학교 고학년에서 고등학생 정도의 중사춘기에는 따돌림을 당할까봐 두려워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으거나 집단에 끼어들려고 하는 ‘고독’ 단계가 나타난다. 유행에 특히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고등학교 고학년에서 대학생에 이르는 사춘기 후기에는 성 역할 갈등을 겪게 된다. 예컨대 남학생의 경우, 남성다움을 획득하고자 열망하면서도 여성으로부터 모성을 갈구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획기적 ‘면역요법 항암제’ 공개...”암치료 새 장 열렸다”

    획기적 ‘면역요법 항암제’ 공개...”암치료 새 장 열렸다”

    -미국암학회 "화학요법 이후 최대 발견" 항암치료의 새 장을 열어줄 치료제가 공개됐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들이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암학회’(ASCO)는 최근 시카고에서 열린 ASCO 연례 컨퍼런스에서 이 같은 성과를 발표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번 치료제는 '화학요법 이후 항암치료계의 최대 발견'이다. ‘면역요법’ (Immunotherapy) 이라 일컫는 이 치료법은 인간 면역체계가 암 세포를 인식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본래 인간 면역체계는 각종 종양에 맞서 싸우도록 되어있다. 그렇지만 암과 같은 악성 종양은 ‘위험하지 않은’ 조직으로 위장한 채 증식을 계속한다. 면역요법은 면역계가 이러한 위장에 속지 않고 암을 인식해 공격하게 해준다는 것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면역세포의 일종인 T세포는 센서 역할을 하는 단백질 PD-1과 경보기 역할을 하는 단백질 B7.1을 통해 비정상 세포를 찾아내고 공격한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T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지 않는 이유를 연구했다. 그리고 최근 암 세포 표면에서 발견되는 단백질 PD-L1이 PD-1 및 B7.1에 융합하여 그 기능을 마비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면역요법 치료제는 PD-L1의 융합 작용을 막아 T세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게 해준다. 치료제는 이필리무밥(ipilimumab)과 니볼류맙(nivolumab) 2종으로 동일한 작용을 하며, 병행하여 사용했을 때 치료 확률이 커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치료는 몇 주에 한 번 꼴로 치료제를 소량 투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1년 총 치료비는 1억 7000만 원 정도다. 영국의 경우 보건의료당국 승인을 받았고 유럽 각지에서는 사용 승인 대기 중이다. -'위장'한 암세포 찾아서 공격 이 요법은 폐암, 피부암 등 가장 치명적인 암 질병에 효과가 있으며 그 외에도 치료가 극도로 어렵다고 알려진 신장암 방광암 두경부암 등에도 효과를 보였다. 영국 피부암 환자 95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치료에서는 60%에 달하는 환자의 종양이 크게 축소되거나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호전되었다. “사실상 정상적인 삶을 되찾은 것”이라고 치료를 지켜본 의사는 전했다. 전문가들은 기타 암 질환의 경우에도 적어도 절반 이상 환자에게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치료법으로 목숨을 구한 전직 여교수의 사례도 알려졌다. 영국 여성 비키 브라운은 2006년 피부암을 진단받고 2013년에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으나 같은 해 8월 임상치료에 참가해 불과 몇 주일 만에 완치되었다. 그녀는 “기적의 치료제 같았다”며 당시 소감을 밝혔다. 연구진은 이 치료법을 가능한 한 빠르게 확대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발진이나 메스꺼움, 피로감 등의 부작용이 있지만 그 정도는 화학요법보다 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화학요법은 보편적인 항암 치료법이 아니었다. 극도의 피로, 구토와 탈모를 유발하며 각종 감염에 취약하게 만드는 까닭에 현재도 많은 환자들이 화학치료를 중도 포기하곤 한다. 미국 예일 암센터 로이 허스트 교수는 “향후 5년 이내에 면역요법이 화학요법을 대신해 표준 암 치료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며 “거대한 발견이다, 항암치료의 패러다임 전환이 찾아왔다”고 전했다. 사진=ⓒ포토리아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콘택트렌즈, 눈에 치명적 박테리아 전이

    콘택트렌즈, 눈에 치명적 박테리아 전이

    라식·라섹수술보다 부담이 적고 가격도 저렴해지면서 콘택트렌즈를 사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콘택트렌즈가 박테리아를 전이하는 매개체 역할을 해 눈에 심각한 위험을 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 최근 미국 뉴욕대학 랑곤 메디컬센터(NYU Langone Medical Center) 연구진은 콘택트렌즈를 착용하는 과정에서 피부의 박테리아가 눈에 전이돼 심각한 안구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콘택트렌즈 사용자 9명과 비사용자 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두 그룹 모두의 안구 표면 또는 결막에서 다양한 종류의 박테리아가 번식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콘택트렌즈를 착용한 그룹에서는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메틸로박터, 락토바실루스(젖산간균), 아시네토박터(포도당 비발효균 중 하나), 슈도모나스 등의 박테리아가 3배 이상 많이 발견됐으며, 이들 박테리아는 눈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하거나 염증 등 다양한 안구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이끈 뉴욕대학 랑곤 메디컬센터의 마리아 글로리아 도밍게즈-벨로 박사는 “이번 연구를 통해 콘택트렌즈 등 눈 위에 이물질을 씌우는 것이 안구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하게 알게 됐다”면서 “콘택트렌즈 사용자가 비사용자에 비해 안구질환이 잦은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콘택트렌즈 사용자 대부분이 손가락으로 렌즈를 집고 이를 눈에 넣는데, 이 과정에서 손가락이나 손, 얼굴 피부에 있던 박테리아가 렌즈를 통해 안구로 전염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깨끗하지 않은 손으로 렌즈를 집거나, 손으로 집은 렌즈를 안구 표면에 씌우는 과정에서 눈을 압박할 수 있으며 이러한 상황들이 안구의 면역시스템을 자극하고 박테리아가 눈으로 들어가거나 번식하게 하는데 주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함께 연구를 이끈 잭 도딕 박사 역시 “콘택트렌즈가 보급된 1970년대 이후 각막궤양이 유행하기 시작했다”면서 “눈꺼풀과 손의 위생을 철저하게 해야 안구질환의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 미생물학회 연례 학회 (annual meeting of the American Society for Microbiology)에서 발표됐다. 사진=포토리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정병석의 경제산책] 강한 국가의 조건

    [정병석의 경제산책] 강한 국가의 조건

    나라 경제가 발전하려면 강한 국가를 가져야 한다. 강한 국가를 어떻게 건설할까. 우리는 ‘작은 정부론’에 너무 경도되어 마치 정부 조직을 축소하고 정부의 역할과 권한을 줄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갑자기 강한 국가를 주장하면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는 느낌을 줄지도 모르겠다. 국제정치학계의 석학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강한 국가의 조건’이라는 저서에서 강한 국가와 작은 정부가 양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한 국가는 국가의 역량이 강한 것을 의미하지 국가가 이것저것 개입하려고 정부 기능을 분별없이 확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핵심적인 기능, 즉 안보,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사회질서 유지 등을 국가의 핵심 기능으로 정해 놓고 이것만은 강력한 권위를 동원하여 보장하는 것이다. 누구도 국가의 권능을 무시하지 못하게 하고 이익집단, 지역, 계층 간의 갈등에 대해서 국가가 조정하면 그대로 수용하도록 권위를 갖는 것이 강한 국가의 조건이다. 후쿠야마는 미국은 국가의 기능이 넓지 않으면서도 국가의 역량은 매우 강한 반면, 구소련은 국가의 기능은 매우 넓은 반면 국가의 역량은 상대적으로 약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1980년대까지 국가의 기능이 넓고 국가의 역량도 상대적으로 강한 나라였으나 2000년대를 지나며 국가의 역량이 약화된 나라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일본 경제가 성장하며 중추적 역할을 하였던 관료제가 약화되고 사회적 이익 집단에 휘둘리게 되면서 사회갈등을 국가가 적절하게 조정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국가의 역량 자체가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국가의 역량을 강화하려면 법치주의를 구현하되 국가의 핵심적인 법 제도가 확실하게 실행되도록 해야 한다. 국가 기능을 무리하게 확대하기보다는 핵심적인 기능에 집중하되 법 원칙을 철저하게 확립하는 것이 국가의 역량을 강화하는 길이다. 미국에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 치안질서 유지, 재난관리 등 국가의 핵심 역량이 강력히 시행된다. 법 집행은 예외 없이 엄정하게 시행된다. 한국은 강한 국가인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잘 지켜 준다는 확신이 서는가. 이익집단 간에 갈등이 있을 때 국가의 권능으로 신속히 조정하는가. 불행히도 그렇다고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는 국가의 역량 강화라는 측면에 별 관심을 두지 못했다. 국가 역량의 강화를 마치 국가 기능의 확대로 생각하는 정치가, 행정관료가 아직도 많은 것 같다. 위기관리와 질서유지 등 핵심 국가기능도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데 시장에 맡겨야 할 영역에까지 국가의 조직과 기능을 확대하는 의원 입법을 양산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정권출범 때마다 규제개혁을 외치지만 결과적으로는 규제의 질과 양이 모두 증가했다. 사회 이익집단 간의 이해를 제대로 조정하지 못해 국가의 역량이 약화된다는 점은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과제이다. 세월호 대책, 연금개혁, 무상복지 등 국가적 과제에 관한 갈등이 증폭되고 각종 시위로 시민 생활이 침해되어도 제대로 조정하는 국가의 역량은 보이지 않는다. 후쿠야마의 좌표로 평가하면 한국의 국가 기능은 1970년대보다 더 확대된 반면 국가의 역량은 훨씬 약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절박한 과제는 강한 한국을 만드는 것이다. 기본으로 돌아가 국가의 법 제도를 재점검하여 핵심적인 것은 철저히 확립하고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주변적인 기능을 대폭 정비해야 한다. 국민의 역량을 믿고 국가는 게임의 기본규칙만 규정하고 나머지는 민간에 맡겨야 한다. 경제의 지속 성장과 고용창출, 복지확충 등을 위해 법질서가 바로 서게 하고 이익집단 간의 갈등은 국민 대의를 앞세워 조정해야 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인들이 자기를 선출해 준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이익집단의 무리한 요구나 반대를 설득하고 조정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로 이런 일을 하겠다고 국민의 지지를 호소했고 그래서 선출된 사람들이다. 정치인들이 눈앞의 표만 쫓아 이익집단을 편드는 데 앞장서지 말고 국가의 역량을 강화하여 강한 한국을 만드는 데 앞장서기를 기대한다.
  • 피터팬 증후군, 언제까지나 어른아이 ‘남존여비지향’ 이유 깜짝

    피터팬 증후군, 언제까지나 어른아이 ‘남존여비지향’ 이유 깜짝

    ‘피터팬 증후군’ 피터팬 증후군이란 성년이 되어서도 어른들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른아이’ 같은 성인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임상심리학자 D. 카일리 박사가 만든 용어로 미국에서는 1970년대에 이미 ‘어른아이’가 다수 나타난 바 있다. 피터팬 증후군은 전사춘기에서 청년기에 이르는 각 발달 단계에 따라 기본 증상을 차례로 나타난다. 초등학생에서 중학교 저학년 정도의 전사춘기 단계에서는 언제까지나 어린아이로 있고 싶은 마음에 책임 있는 행동을 기피하는 ‘무책임’ 증세가 나타난다. 중학생 정도의 전사춘기 단계에서는 겉으로는 명랑하게 행동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어른 되기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 ‘불안’ 단계가 나타난다. 여기에 ‘무책임’ 증세가 겹치면 자신은 본래 게으름뱅이라거나, 틀려먹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중학교 고학년에서 고등학생 정도의 중사춘기에는 따돌림을 당할까봐 두려워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으거나 집단에 끼어들려고 하는 ‘고독’ 단계가 나타난다. 유행에 특히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고등학교 고학년에서 대학생에 이르는 사춘기 후기에는 성 역할 갈등을 겪게 된다. 예컨대 남학생의 경우, 남성다움을 획득하고자 열망하면서도 여성으로부터 모성을 갈구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반면 사회인 피터팬 증후군 환자는, 특히 남자의 경우 ‘남존여비지향’으로 나타난다. 여성에 대해 겉으로는 이해도 높은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면서도 실제로는 여성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 사회적 무기력증에 빠지기도 한다. 피터팬 증후군, 피터팬 증후군, 피터팬 증후군, 피터팬 증후군, 피터팬 증후군, 피터팬 증후군 사진 = 서울신문DB (피터팬 증후군-위 기사와 관련 없음)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포토] 朴대통령, 자동차 안에서 ‘빼꼼’

    [포토] 朴대통령, 자동차 안에서 ‘빼꼼’

    박근혜 대통령은 29일 무인이동체 기술과 관련, “제대로 된 전략을 마련해서 국가적 역량을 집중한다면 선도업체를 따라잡을 수 있는 만큼 국가적 차원의 통합적 산업발전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무인이동체 및 엔지니어링산업 발전전략 보고회’ 및 ‘제22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이고, 또 세계 7위의 무인기 기술력을 보유한 나라이다.또한 세계 최고 수준의 ICT 역량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무인 이동체 기술에 필요한 기반은 어느 나라 못지않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 대통령은 세계의 무인이동체 활용 및 발전 현황을 소개한 뒤 “이런 추세로 간다면 조만간 전 산업과 사회 분야에서 신상품 신시장, 융합 신산업을 창출하는 빅뱅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세계 각국 정부들도 이 분야에서 앞서가기 위해 기술개발과 제도개선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데 우리도 무인이동체 산업발전에 박차를 가해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현재가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이 현재를 만든다’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무인 이동체 기술에도 그 말이 딱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아울러 정부의 ‘공공구매’를 통한 초기시장 활성화를 주문하면서 “첨단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처음에는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혼자 일어서기가 힘들기 때문에 정부에서 뒷받침을 해줘야 된다”면서 “싼 것만 찾지 말고 ‘이 기술은 정말 싹수가 있다’, ‘이건 키워줘야 되겠다’ 하는 관점에서 실력 있는 기업이 밀려나지 않고 클 수 있게 하는 것도 정부의 공공구매에서 역할”이라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이와 함께 엔지니어링 산업과 관련, “탁월한 시공능력을 갖춘 한국기업들이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와 같은 세계적인 건설프로젝트를 수주하고도 전체 수익의 평균 76%는 기획력과 경험 기술력을 갖춘 해외업체들이 차지하는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우리 기업들이 수익성이 낮은 레드오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루속히 엔지니어링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도 있듯이 지금이라도 엔지니어링 산업을 창의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면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1970년대 중동 붐이 우리 부모님 세대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였다면 이제 기획, 설계부터 시공까지 일괄 수주하는 글로벌 엔지니어링으로 최고의 부가가치를 얻어내는 제2의 중동 붐을 일으켜야 하겠다”고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회의에 앞서 항공우주연구원이 세계 두번째로 개발한 수직이착륙 ‘틸트로터(TR100) 무인기인와 현대자동차가 만든 자율중행자동차, 중소·중견기업이 개발한 무인항공기 등의 시연을 지켜봤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무기 과학자/박홍환 논설위원

    1964년 10월 16일 오후 3시, 중국 서부 고비사막에 거대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이윽고 시커먼 버섯구름이 하늘을 뒤덮자 현장을 지휘하던 인민해방군 제2포병 사령관 장아이핑(張愛萍)은 기계식 전화기를 돌려 베이징의 마오쩌둥(毛澤東)에게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이 소식을 전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이례적으로 호외를 찍어 만천하에 성공 소식을 알린 중국의 첫 번째 원자폭탄 실험이다. 이로써 중국은 미국, 옛 소련, 영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 다섯 번째 핵보유국이 됐다. 핵실험은 찰나였지만 과정은 지난했다. 마오는 이른바 ‘양탄일성’(兩彈一星·원자폭탄, 수소폭탄, 인공위성) 자체 개발의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1955년 미국에서 스파이 혐의를 받던 물리학자 첸쉐썬(錢學森·1911~2009)을 비롯한 100여명의 재미 과학기술 인력을 스파이 교환 형식으로 데려왔다. 이들은 앞서 귀국한 주광야(朱光亞·1924~2011) 등과 함께 마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양탄일성 개발에 돌입했다. 첫 번째 핵실험 3년 후인 1967년 수소폭탄을 개발했고 다시 3년 후인 1970년에는 제1호 인공위성 ‘둥팡훙(東方弘) 1호’를 쏘아올렸다. 마오를 비롯한 중국 지도부는 양탄일성 개발 관련 과학자들을 죽을 때까지 극진하게 예우했다. 첸쉐썬과 주광야의 장례식에는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국가주석 등 지도부가 총출동해 머리를 조아리기도 했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오른 오늘의 중국을 만든 당사자들이라는 묵시적 표현이다. 중국은 요즘도 양탄일성 개발에 일조한 원로 과학자들이나 위성요격체계 등 첨단무기 개발에 혁혁한 공을 세운 과학자들에게 국가 최고 과학기술상을 수여하는 등 무기과학자들을 예우하고 있다. 무기과학자 예우는 북한도 중국 못지않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최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수중발사 시험에 참여한 과학자들을 불러 치하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과학자 수백명과 김정은의 기념촬영 사진도 내보냈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은 “탄도탄 수중발사 기술을 완성하게 된 것은 김일성 김정일 조선의 존엄과 위용을 만방에 떨친 또 하나의 역사적 사변”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김정은은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등을 직접 지휘하며 현장의 과학자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자주 선보이곤 했다. 북한 핵개발의 주역인 전병호 군수담당 비서가 지난해 7월 사망하자 김정은은 국가장의위원회를 구성, 스스로 위원장을 맡아 국장(國葬)으로 성대하게 그를 떠나보내기도 했다. 우리에게도 ‘무기개발=애국’으로 평가받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창설해 해외의 과학기술 인력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머릿속에 저명한 무기 과학자 이름은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열린세상] 교육개혁 형평과 효율 조화 이뤄야/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열린세상] 교육개혁 형평과 효율 조화 이뤄야/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작금 진행되고 있는 교육개혁에 대하여 한마디 해야겠다. 대학을 평생직장으로 여기고 살아온 사람이지만 그동안 교육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가급적 교육 정책이나 개혁에 대해서는 아는 체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행 중인 대학 구조개혁은 본말이 전도되고 개악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난 수십 년간 실패를 거듭했음에도 또다시 같은 원칙과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돌이켜보면 교육개혁은 단 한번도 교육의 근본인 올바르고 능력 있는 인재 양성 위주로 추진된 적이 없다. 1970년대 초·중반 중·고등학교 입시 폐지는 과중한 입시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추진했고, 1980년대 초 졸업정원제는 대학 문턱을 낮춰 쉽게 들어가게 하면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에서 비롯됐다. 이후 대부분의 개혁은 입시제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노무현 정부의 ‘이해찬 세대’에서 보듯이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지금까지의 교육개혁은 우수한 교육 환경과 적절한 경쟁 속에서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 있고 훌륭한 인성을 가진 인재를 양성한다는 근본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단속과 금지는 비용과 불신만 증가시켰을 뿐 사교육은 늘기만 했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을 만들자니 대학의 수도 크게 증가했다. 인터넷 강의를 통해 누구나 고급 과외를 공짜로 받을 수 있게 만든 것은 가히 혁명적이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공부라는 것이 조건을 갖추어 준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 스스로 의지가 높아야 가능하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입시 부담 완화를 지향했던 교육정책은 급격한 출산율 저하라는 복병을 만났다. 사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입학생 수의 급감은 오래전부터 예견됐지만 대학 자율에 의한 정원 감축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다른 대안은 시장 자율에 맡기는 것인데, 이 경우 전국의 대학이 경쟁력에 따라 학생을 확보하게 될 것이니 하위 대학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문제야말로 정부가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원칙을 세우고 엄중한 기준을 적용해 예외 없이 집행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했는가. 정권교체와 함께 늘 교육개혁은 오락가락했다. 교육이 백년대계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지만 유독 대한민국에서는 오년소계로 변모했다. 이로 인한 폐해는 심각하다. 교수들은 사회적 수요와 관계없이 자신의 분야 정원을 줄이지 못하겠다고 아우성친다. 졸업생들은 또 어떤가. 자신의 전공 분야 신입생이 줄어드는 것을 마치 대가 끊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기업들은 대학들이 애프터서비스도 없는 불량품만 양산한다고 푸념이다. 인문학 분야는 대학이 취업사관학교냐고 부르짖는다. 졸업생의 4% 미만만이 전공 분야에 취업되고 있는 예·체능 계열도 입학 정원을 줄이는 데 부정적이긴 마찬가지다. 지역 대학은 수도권 대학과 동일한 기준에서 구조개혁이 이루어지면 안 된다고 한다. 이 모든 주장을 완화하는 방안으로 교육부는 결국 또다시 형평성을 위주로 한 구조개혁을 채택했고 그 결과는 하향평준화일 것이 뻔하다. 현재 진행 중인 교육부의 구조개혁은 기본 방향부터 수정돼야 한다. 형평성과 효율성은 대학의 구조조정에서 둘 다 놓칠 수 없는 가치다. 거기에 따뜻한 인성을 갖춘 졸업생을 양성해야 하는 것도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현 상황에서 필수적 요건이다. 그렇다면 현재 교육부가 가지고 있는 대학 교육의 최소 기준을 먼저 엄정히 적용해 교수대 학생 비율을 지키게 하고 재단 전입금을 명확히 지키도록 하자. 그리고 교원의 연구 역량이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대학을 먼저 퇴출시키자. 그렇게 해서 일단 대학으로서 최소한의 교육환경과 여건을 갖춘 학교들을 대상으로 지역균형을 고려한 구조조정을 단행하자. 구조개혁은 기본적 여건을 갖춘 대학들이 자신의 특성을 파악해 국내는 물론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을 통한 지원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분명한 것은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과 따뜻한 인성을 고루 갖춘 인재를 양성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 [포토 다큐] 빙수열전

    [포토 다큐] 빙수열전

    푹푹 찌는 한여름이 오려면 아직 멀었건만, 한낮 햇볕이 여름 흉내를 내며 내리쬐자 빙수라는 놈이 재빠르게 디저트 시장에 얼굴을 내민다. 바야흐로 ‘여름 대표 디저트’ 빙수 시대의 막이 올랐다. 크고 작은 베이커리와 카페에서는 찬 커피 음료 대신 빙수를 주력 상품으로 내놓고 있다. 각종 제철 과일은 물론 색다른 재료를 이용해 맛과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빙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빙수 열풍의 선두주자는 ‘설빙’이다. ‘코리안 디저트’를 표방하며 인절미를 응용한 빙수를 선보인 설빙은 2013년 4월 부산에서 1호점을 낸 뒤 현재 전국에 490여 매장의 문을 열었다. 이후 설빙을 표방한 다양한 빙수 디저트 가게가 우후죽순 생겨나기도 했다. 특급 호텔에서는 고가의 빙수를 선보인다. 국내 최고가 빙수는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의 ‘돔페리뇽 빙수’로 가격이 무려 8만원에 달한다. 생딸기 빙수에 솜사탕을 올리고 식용 장미잎과 금가루 등을 사용한다. 럭셔리 샴페인 ‘돔페리뇽 2004’ 한 잔을 부어 마무리한다. 이렇게 빙수들이 나날이 변모 진화하고 있는 가운데도 여전히 1970년대 옛 모습 그대로인 곳이 있다. 부산 중구 남포동 국제시장에 있는 팥빙수 골목이 바로 그곳이다. 좁다란 골목에 7개의 리어카(노점)가 나란히 장사를 하고 있다. 수가 줄고 몇몇 주인이 바뀌기도 했지만 파란색 기계식 빙삭기를 돌려 직접 얼음을 갈아 만드는 방법만큼은 여전히 고수한다. 얼굴 크기만 한 사각 얼음을 빙삭기에 끼우고 손잡이를 돌려 간 얼음은 요즘 대세인 곱디고운 빙질에 비하면 거칠기 짝이 없지만 오히려 아삭아삭 씹는 즐거움과 함께 머리가 띵할 정도의 짜릿한 시원함을 선사한다. 재료도 옛날 그대로다. 집에서 손수 끓여 온 팥과 프루츠 통조림, 그리고 사과잼과 연유가 전부다. “섞지 말고 그냥 무라(먹어라).” 팥빙수 아지매 말처럼 아빠 숟가락으로 한입 크게 떠 먹으면 팥 본연의 맛과 단순하지만 달콤한 그 맛에 어릴 적 추억에 잠기게 된다. 시장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이곳의 매력이다. 맛있게 먹으라는 말보다 부족하면 말하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빙수 그릇이 반쯤 줄면 아지매는 “더 무라!”며 자연스럽게 얼음과 팥을 더해 준다.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연유를 더 많이 주고, 팥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프루츠를 빼며, 팥을 못 먹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따로 그릇에 프루츠 빙수만을 담아 주기도 하는 손님 맞춤형 레시피도 이곳의 특징이다. 통금 시간이 있던 70년대부터 장사를 시작해 이곳에서 청춘을 다 바쳤다는 정여화(72)씨. “그땐 빙수가 500원이었는데 지금은 3500원이 됐다 아이가. 주변 상가 점포도 다 바꼈데이. 토박이는 우리 리어카뿐인 기라.” 정씨는 소문 듣고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지만 단골손님들이 나이 들어 아들딸 데리고 와서 함께 먹을 때면 덩달아 행복하고 뿌듯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해운대 백사장, 회춘했네

    해운대 백사장, 회춘했네

    ‘해운대가 또 다른 몸짓으로 유혹한다.’ 올여름 국내 최대 휴양지인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을 찾는 관광객과 피서객들은 달라진 해운대에 놀랄 것이다. 먼저 크게 넓어진 백사장에 놀라고, 그로 인해 탁 트인 시야로 들어오는 해운대의 진면목에 두 번 놀라게 된다. 새로 만들어진 스포츠존, 생존 수영장 등과 함께 한결 멋지고 여유로운 추억을 쌓는다면 또다시 해운대를 찾는 자신에게 한 번 더 놀랄 것이다. ●63빌딩 채울 수 있는 모래 62만㎥ 붓고 제방 작업 진행 해운대해수욕장은 그동안 7, 8월 성수기 때는 하루 수십만명의 피서객이 찾아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뤘지만 좁은 백사장 탓에 젊음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비치발리볼, 모래찜질 등을 즐기기엔 답답함이 많았다. 하지만 올해는 이런 단점들이 말끔히 해소된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은 3년여간의 대대적인 복원 사업으로 백사장 폭이 배로 늘어나는 등 명실상부한 옛 모습을 되찾았다. 6월 1일 조기 개장을 앞두고 있지만 이른 더위 때문인지 벌써 많은 사람이 해수욕장을 찾고 있다. 일요일인 지난 17일 오후 찾아간 해운대 백사장은 한눈에 봐도 지난해보다 확연히 넓어졌다. 널찍한 모래벌판과 넘실대는 검푸른 바다가 어우러져 탁 트인 상쾌함을 줬다. 조선비치호텔 쪽 백사장에는 오는 29일부터 열리는 모래축제에 사용될 집채만 한 모래더미들이 군데군데 쌓여 있고, 연인들은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변을 거닐었다. 또 거리의 악사들은 길 가는 나그네의 발길을 잠시 멈추게 했다. 따가운 햇볕에 아랑곳하지 않고 웃통을 벗어젖힌 청소년들의 공놀이, 시원하게 바다를 질주하는 제트스키는 성하의 계절이 성큼 다가온 것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친구들과 함께 바닷바람을 쐬러 오랜만에 해운대를 찾았다는 안기향(49)씨는 “2년 전 여름에 왔을 때만 해도 백사장 폭이 많이 좁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 보니 몰라보게 넓어져 깜짝 놀랐다”며 반가워했다. 해운대해수욕장은 울창한 송림, 넓고 깨끗한 백사장과 망망대해가 있고 풍광이 수려해 신라의 석학인 최치원이 동백섬의 넓은 바위 위에 ‘海雲臺’라고 기록해 놓았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난개발로 인해 해운대해수욕장의 백사장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2007년에는 백사장 폭이 42.5m로 줄어들었고 면적도 6만 2129㎡로 축소됐다. 여름철 이곳을 찾은 피서객들은 좁은 백사장과 파라솔 때문에 해운대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백사장이 옛 모습을 찾게 된 것은 2013년 11월부터 시작된 부산지방해양수산청의 ‘해운대해수욕장 연안정비사업’ 덕택이다. 오는 2017년 2월 완공 예정으로 총사업비 436억원이 투입된다. 올해로 육지와 바다에 모래를 붓는 양빈 작업 등 사실상 주요 사업은 대부분 완료됐다. 모래 유실을 막기 위한 제방 작업 등 일부 작업만 남아 있다. 모래는 서해 공해상에서 공수해 왔다. 2년여간 백사장 복원에 동원된 모래는 62만㎥. 15t 화물차 5만 9000대 분량이다. 모래로 63빌딩을 채울 수 있는 양이다. ●개장 50주년 맞아 슈퍼 콘서트 등 이벤트도 풍성 복원 사업 전 6만 9368㎡이던 백사장 전체 넓이는 14만 6006㎡로 2배 이상 넓어졌다. 미포 입구 쪽 해변에 모래가 꾸준히 쌓이면서 전체 백사장 길이도 1460m에서 1500m로 40m가량 늘어났다. 부산해양수산청은 앞으로 수중의 모래경사도를 완만하게 유지하는 과정에서 백사장의 폭이 축소되더라도 해수욕장의 최적 조건인 70m 정도는 유지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로 개장 50주년을 맞는 해운대해수욕장의 풍경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자동차 폐타이어를 이용한 고무 튜브는 산뜻한 오렌지색으로, 피서객들이 직접 가져온 우산 등을 꽂아 만든 그늘막은 이제 형형색색의 파라솔이 대신하고 있다. 해운대구는 올해 해수욕장 공식 개장 50주년을 맞아 다양한 편의시설과 알찬 이벤트를 마련했다. ‘다닥다닥’ 붙어 있어 답답함을 줬던 파라솔 숲이 한층 여유로워진다. 파라솔 개수는 지난해와 같은 6000개를 설치하지만 넓어진 백사장 덕에 파라솔의 간격을 1m 정도로 유지한다. 종전에는 20~30㎝에 불과해 바다 조망이 사실상 어려웠다. 피서객이 더 쾌적하고 편안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해운대 모래축제’(5월 29일~6월 1일), 60여명의 훌라 댄서가 공연하는 ‘하와이안 페스티벌’(6월 5~6일), 한류스타를 초청한 기념 ‘슈퍼 콘서트’ 등도 준비돼 있다. 모래축제 기간에는 부산을 찾는 중국 관광객을 위해 ‘차이나존’을 운영하고 중국 애니메이션 모래조각과 함께 한류뷰티 체험 공간도 마련된다. 수심이 얕은 미포 쪽 백사장은 ‘키즈존(어린이 물놀이 공간)’으로 운영한다. 또 키즈존 옆에선 ‘생존수영 교육장’도 운영된다. 백선기 해운대 구청장은 “올해 개장 50주년을 맞아 다양한 편의시설과 알찬 이벤트를 마련해 관광객들에게 제대로 된 해운대의 추억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활어회·곰장어·복국 등 여행객 입맛도 유혹 해운대해수욕장 인근에는 여행객들의 입맛을 돋우는 먹을거리와 눈을 즐겁게 하는 볼거리도 널려 있다. 해운대 앞 대로를 따라 5분 정도만 걸어 나오면 왼편의 한 골목을 자치하고 있는 재래시장이 발길을 막는다. 규모는 작지만 ‘부산스러운’ 시장의 느낌이 오롯이 살아 있다. 부산의 대표적 음식 중 하나인 곰장어와 어묵, 칼국수, 돼지국밥집 등 다양한 먹거리가 관광객의 눈길과 입맛을 사로잡는다. 해운대와 함께 영원히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맛들이 피서객들의 추억 속에 스며든다. 미포 방면에는 자연산 횟집과 복국집이 즐비하다. 자연산 횟집은 대부분 작은 어선의 선장들이 이른 새벽 해운대 앞바다에서 잡은 활어와 해산물 등을 내놓는다. 초고추장을 비롯한 양념류는 따로 계산된다. 고급 횟집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단골손님들이 많이 찾는다. 해운대해수욕장 입구에서 걸어서 20여분쯤 가면 달맞이길이 나온다. 해운대를 찾는 사람이면 한번쯤 들러 보는 곳이다. 달맞이고개 언덕 위에 있는 해월정은 카페 등이 모여 있는 길목에 위치해 찾아오는 사람도, 아는 사람도 많다. 2005년 APEC 개최 기념으로 세운 해마루도 있다. 언덕 꼭대기에 자리해 탁 트인 바다를 원 없이 감상할 수 있다. 인근 산 쪽에는 김성종 추리문학관도 있다. 부산의 해안관문인 오륙도는 물론 날이 맑으면 대마도도 보인다. 길을 따라 대형 커피전문점들이 들어서 있어 다양한 맛의 커피도 즐길 수 있다. 으리으리한 고층빌딩과 잘 짜여진 도시의 면모를 갖춘 해운대는 사시사철 언제나 생동감이 넘친다. 세계 어느 휴양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해운대해수욕장의 변신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예외란 시대의 모순을 드러내는 탐침봉

    예외란 시대의 모순을 드러내는 탐침봉

    예외/강상중 등 9인 지음/문학과지성사/324쪽/1만5000원 이충형 경희대 철학과 교수가 내놓은 문제다. ‘이번 겨울 독감A가 유행할 확률은 90%, 독감B가 유행할 확률은 10%다. 두 독감 모두 치사율은 100%다. 두 백신을 모두 맞으면 부작용으로 사망하게 되니 하나만 맞아야 한다. 당신은 독감A의 백신을 맞을 것인가, 독감B의 백신을 맞을 것인가.’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독감A의 백신을 맞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합리적인 선택을 했는데, 10% 확률로 독감B가 유행하고 말았다면? 인류는 절멸이다. 그때 예외적으로, 사실은 비합리적으로, 독감B 백신을 맞은 이들이 있다면 그를 통해 인류는 지속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삶은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기 일쑤다. 세상은 규칙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인류의 진화와 과학기술의 발전과정을 돌아보면 예외적인 선택에서 비롯된 일들이 허다하다. 공자와 예수, 부처는 법과 제도 등 당대의 사회질서에 순응했던 이들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규칙에 맞서고 기존의 가치를 전복하며 새로운 예외의 영역을 개척했던 이들이었다. 예외가 보여준 긍정적 기능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떨까. 4년 전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 지난해 세월호 참사 등을 예외적인 사건일 뿐이라며 근본적 변화와 대책 마련 등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예외’가 오히려 보편성, 일반성의 존립 근거를 공고히 하기 위해, 그것들을 옹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극 활용된 대표적 사례들이다. 예외(例外). 책은 ‘경계와 일탈에 관한 아홉 개의 사유’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 김기창 고려대 법학대학원 교수, 김항 연세대 HK교수,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등 9명의 필진이 ‘예외’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놓고 과학, 역사, 정치, 사회, 철학 등 각자가 익숙한 창을 통해 세월호, 유신체제, 통합진보당 해산 사태, 지역주의 문제, 돌연변이, 양성인 존재,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역사 속에서 탐구한 결과는 큰 흐름에서 볼 때 예외는 시대의 모순을 드러내는 탐침봉이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김항 교수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73)이 전쟁, 내전, 소요사태 등 체제를 위협하는 긴급 상황에서 비롯된 법률 개념으로 제시한 ‘예외상태’를 들며 1970년대의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를 설명했다. 깊고 다양한 접근을 통해 내린 결론은 예외를 막을 수도 없지만 예외를 잊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예외’의 개념과 사유를 주체적으로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유승준 인터뷰 “군대 가겠다” 긴급 여론조사 결과보니

    유승준 인터뷰 “군대 가겠다” 긴급 여론조사 결과보니

    유승준 인터뷰 유승준 인터뷰 “군대 가겠다” 긴급 여론조사 “입국허용 반대 66.2%” 병역 기피 논란으로 입국금지된 가수 겸 배우 유승준(39)이 19일 인터넷방송에 출연해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군대를 가겠다”며 “어떤 방법으로도 아이들과 함께 떳떳하게 한국땅을 밟고 싶다”고 밝혔다. 유승준은 이날 밤 10시30분 영화제작자 신현원 감독이 진행하는 아프리카TV(afreeca.com/shinpro) 생방송에 출연해 병역기피 논란으로 국내 무대에서 퇴출된 심정을 밝혔다. 유승준의 인터뷰는 감독이 질문하면 유승준이 답변하는 방식으로 1시간 10분동안 진행됐다. 방송에 앞서 무릎을 꿇고 흐느낀 유승준은 “제 어눌한 말솜씨 때문에 제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없을 거 같아 무릎을 꿇었다”며 “이 자리는 제 심경 고백도 아니고, 변명의 자리도 아니고, 여러분께 제 잘못을 사죄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줄곧 울먹이는 목소리로 13년 만에 방송에 출연한 계기를 설명했다. 유승준은 “솔직히 용기가 안 났고 제 마음을 전할 수 있을만한 마음의 준비가 안 됐었다”며 “또 작년까지는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잘못은 제가 해놓고 마치 제가 억울한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이 저의 잘못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우치고 이 자리에 나오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돈 때문에 심경고백에 나섰다는 소문을 강력하게 부정하며 “중국 진출 5년 만에 영화 14편을 찍고 60부 드라마에 출연했다”면서 “절대로 돈 때문에 여기에 나온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유승준은 자신이 현재까지 입국금지 명단에 올라가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도 표했다. 그는 “지금도 입국 금지 명단에 제 이름이 있어 한국땅을 밟을 수 없다”면서 ”제가 알기에는 사상범 아니면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정치범과 입국금지 명단에 이름에 올라와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7월에는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귀화해 군대에 가겠다는 뜻을 한국 측에 전달했지만 나이 제한으로 무산됐다고 덧붙였다. 유승준은 이제라도 군대를 가 한국 국적을 회복하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를 재차 밝혔다. 법무부와 병무청이 그러한 제안을 해오면 망설임 없이 받아들일 의향이 있다며 “어떤 방법으로라도 한국 땅을 꼭 밟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제가 내린 결정이 이렇게 큰 물의를 일으킬 지 몰랐다”며 “제 아이뿐만 아니라 저를 위해 군대를 가 아이들과 떳떳하게 한국 땅을 밟고 싶다”고 흐느꼈다. 하지만 병무청은 13년 전과 달라질 건 없다는 입장이다. 병무청 관계자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논할 가치도 없다. 다시 얘기할 필요도 없는 사항이다”면서 “스티브유(유승준)가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미국시민권을 획득했는데 우리 법률상 국적을 회복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 국적법 제9조에 따르면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 사람은 국적회복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긴급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약 3명 중 2명은 병역 기피 논란으로 입국금지된 가수 유승준(39)의 입국을 허용하는 데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19일 전국 19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유승준 입국 허용에 대해 ‘반대한다’는 의견이 66.2%로 집계됐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입국 허용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24.8%였으며, 9.0%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성별로는 남성이 찬성 24.4%, 반대 71.0%, 여성이 찬성 25.1%, 반대 61.4%로, 남성의 반대 비율이 더 높았다. 반대 비율을 연령대별로 보면 20대(찬성 21.6%, 반대 76.4%)에서 가장 많았고, 이어 60대 이상(70.2%), 50대(69.0%), 40대(63.5%), 30대(52.3%) 순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이며, 응답률은 5.6%다. 다음은 유승준과의 일문일답이다. -- 만 38세가 군대에 갈 수 있는 최대 연령이다. 이제 만 39살이 돼 무엇인가를 밝힌다는 것에 의구심이 든다. 이 타이밍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제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비난, 질타의 말씀이 많아서 솔직히 복귀하는 게 자신 없었다.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서 13년간 한국을 거의 안 보고 살았다. 그래야 살 거 같았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아이들이 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제 문제로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제 마음도 평온하지 못한 게 옳지 못하다고 생각해 작년 7월 시민권을 포기하고 귀화해서 군대를 가고 싶다고 한국에 연락했다. 그게 만 38살이었다. 당시 청룽(成龍) 영화를 찍고 있었는데 청룽에게 지금 군대를 가겠다고 하니 저보고 대뜸 결정 잘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만 38세까지 군대에 갈 수 있는 건 1980년 이후 태어난 사람에게만 적용되더라. 저처럼 1970년대생들은 만 36세가 징집 최대연령이라고 해서 그 계획은 무산됐다. -- 처음부터 군대 갈 생각이 있었나. ▲ 저는 군대에 대해 전혀 거부반응이 없다. 어릴 때부터 건강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좋아했고 아버지도 군대에 가야된다고 말씀하셨다. 어릴 때부터 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가려고 했다. -- 신체검사에서 4급을 받았다. 허리문제였나. ▲ 제가 5집 활동하고 조용필 선배님 곡 리메이크 할 때였다. 뮤직비디오 촬영하다가 무대에서 떨어져서 허리를 다쳤다. 병원에 가서 CT 촬영하니 디스크가 문제라고 했다. 지금 수술해야 한다고 했지만 겁이 나 수술을 안 받았다. 그때부터 병역기피 기사가 나더라. 저는 ‘허리를 다쳤는데 병역기피 기사가 왜 날까’하고 의아했다. 아버지가 인생에서 건강이 최고라고 설득하셔서 결국 수술받았다. -- 당시 해병대 홍보대사를 한 건 사실인가. ▲ 사실이 아니다. 금연 홍보대사 외에는 다른 홍보대사를 한 기억이 없다. -- 해병대에 자진입대한다고 기사도 났었다. ▲ 당시 집 앞에서 기자 한 분이 ‘체격도 좋은데 해병대 가도 되겠네’라고 하셔서 ‘그렇죠’라고 대답한 것이 다음 날 1면에 기사화됐다. -- 2002년 입대 앞두고 미국 시민권 취득을 위해 일본 공연을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 전혀 아니다. 시민권 관련 인터뷰가 원래 2001년 10월경에 있었다. 아버지가 인터뷰를 하고 시민권을 취득하라 하셨지만 저는 국민과 약속한 상태였기 때문에 끝까지 안 간다고 했다. 그런데 9·11 테러 사건 이후 시민권 한번 거부하면 다시 재발급이 어려워졌다. 일본 공연 갈 때 절묘하게 시민권 인터뷰가 또 잡혔다. 저는 전혀 마음의 흔들림 없이 군대에 간다고 했지만 아버지가 인터뷰 거절하면 너는 한국 국적 되고, 우리는 미국 국적 되니 만나기 어려워진다고 하시더라. 군대 가기 전에 얼굴만 보고 가라고 하셔서 일본 공연 후 미국에 가게 됐다.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돌아오는 계획이었다. -- 그런데 시민권을 취득한 이유는 무엇인가. ▲ 부모님 설득이 가장 컸다. 가족들이 다 미국에 있고, 기반도 미국에서 잡았는데 네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때 저는 앨범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6, 7집을 계약을 37억 원에 했고, 제가 일을 안 하면 회사도 문을 닫아야 했다. 제가 군대에 가는 것조차 이기적일 수 있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더라. 이건 제 개인적인 문제고 부모님을 탓하는 게 아니다. 제 사인 한 장에 수십억이 오가는 상황에서 저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 그때 결정을 되돌아보니 어떤가. ▲ 참 교만했고, 정신이 없었던 거 같다. 부족하고, 그런 걸 감당할만한 성숙함이 없었다. 제 나이 스물다섯 때였다. -- 미국에서 시민권 취득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며 무슨 생각을 했나. ▲ 왜 군대 가려다 심경에 변화가 왔는지 밝히려고 63빌딩에서 기자회견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지 전혀 몰랐다. -- 공항 도착 후 어떤 상황이었나. ▲ 비행기에서 내리니 기자들이 게이트 앞까지 나와 기다리더라. 저에게 시민권 왜 취득했는지 반말로 다그치며 물어봤다. 출입국 관리하는 데까지 갔는데 어떤 분이 영어로 ‘문제가 됐으니 돌아가라’고 말했다. 법에 근거해 입국금지라고 하더라. -- 입국금지 소식을 듣고 어떤 기분이었나. ▲ 당황스러웠다. 다른 나라에 온 거 같았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던지 입국금지 된 거 알면서 지금의 아내인 여자친구에게 전화해 쉰다고, 일을 안 한다고 좋아했다. -- 미국에 가서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간다고 느꼈나. ▲ 한참을 모르다가 제가 찍은 방송이 ‘불방’되면서 제가 생각했던 거보다 상황이 멀리 간다는 걸 알게 됐다. -- 한국에서는 ‘거짓말쟁이’, ‘매국노’, ‘배신자’라는 비난이 끊이질 않는다. ▲ 한국 쪽을 거의 안 봤다. 그래야 살 거 같았다. 누군가가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와 저를 미국으로 도망간 계집애라고 하더라. 근데 시청자들이 그걸 보고 같이 웃는 걸 가족들과 함께 봤다. 그 이후로 아무것도 안 봤다. -- 대한민국 국민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 ▲ 시간이 오래 지나 이렇게 사죄 말씀을 드려 죄송하다. 일찍 나와서 용서를 구해야 했다. 용기가 없어 나오지 못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다시금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 유승준이란 이름을 다시 회복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고 크게 실망하셨던 부분 사죄드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무능력한’ 할리데이비슨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무능력한’ 할리데이비슨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1960년대까지 전 세계 오토바이 시장을 장악한 제품은 미국의 할리 데이비슨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값싸고 성능 좋은 일본산 오토바이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할리 데이비슨은 ‘몰기 힘든’(Hardly Drivable) ‘무능력한’(Hardly Ableson) 등의 냉소적 별명으로 바꿔 불렸다. 경영진은 과감한 처방전을 내놓았다. 사람을 자르고 생산공정을 단순화시켰다. 비용을 아껴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상황은 더 꼬였다. 매출, 시장점유율, 수익성 모두가 나빠졌다.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김경원 디큐브시티 대표는 “전략을 잘못 짰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잘라 말했다. 왜 제품이 소비자에게 외면받는지를 생각했어야 하는데 일반 기업 경영에 흔히 적용되는 비용 절감 해법을 들이밀었다는 것이다. 1981년 회사를 사들인 새 경영진은 이 점에 주목했다. 오늘날 할리 데이비슨이 일본 오토바이 대공세를 견뎌내고 ‘수집품’으로까지 대접받으며 살아남은 비결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재직 시절 미국 골드만삭스와 유가 논쟁을 벌여 유명해진 김 사장은 “우리 기업의 상당수는 이제 선진 기업의 팔로어(추종자)가 아니라 글로벌 리더”라며 “과거처럼 잔잔한 바다가 아닌 폭풍우와 암초가 버티고 있는 바다에서 항로를 직접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면 “항해 지도, 즉 경영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 기업들은 기획 역량이 취약하다는 게 김 사장의 진단이다. 그가 최근 ‘전쟁에서 경영전략을 배우다’(21세기북스 펴냄)라는 기업경영 전략서를 내놓은 이유다. 지금도 현장에서 뛰는 전략가(Strategist)이자 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인 김 사장은 “전략이 영어로 스트래티지(Strategy)인데 고대 그리스의 장군(Strategos) 어원이 여기에서 시작됐다”며 “군대를 이끄는 지혜나 책략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전략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유승준 심경 고백 “군대 가겠다” 대국민 여론조사 “입국허용 반대 66.2%”

    유승준 심경 고백 “군대 가겠다” 대국민 여론조사 “입국허용 반대 66.2%”

    유승준 심경 고백 유승준 심경 고백 “군대 가겠다” 대국민 여론조사 “입국허용 반대 66.2%” 병역 기피 논란으로 입국금지된 가수 겸 배우 유승준(39)이 19일 인터넷방송에 출연해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군대를 가겠다”며 “어떤 방법으로도 아이들과 함께 떳떳하게 한국땅을 밟고 싶다”고 밝혔다. 유승준은 이날 밤 10시30분 영화제작자 신현원 감독이 진행하는 아프리카TV(afreeca.com/shinpro) 생방송에 출연해 병역기피 논란으로 국내 무대에서 퇴출된 심정을 밝혔다. 유승준의 인터뷰는 감독이 질문하면 유승준이 답변하는 방식으로 1시간 10분동안 진행됐다. 방송에 앞서 무릎을 꿇고 흐느낀 유승준은 “제 어눌한 말솜씨 때문에 제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없을 거 같아 무릎을 꿇었다”며 “이 자리는 제 심경 고백도 아니고, 변명의 자리도 아니고, 여러분께 제 잘못을 사죄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줄곧 울먹이는 목소리로 13년 만에 방송에 출연한 계기를 설명했다. 유승준은 “솔직히 용기가 안 났고 제 마음을 전할 수 있을만한 마음의 준비가 안 됐었다”며 “또 작년까지는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잘못은 제가 해놓고 마치 제가 억울한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이 저의 잘못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우치고 이 자리에 나오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돈 때문에 심경고백에 나섰다는 소문을 강력하게 부정하며 “중국 진출 5년 만에 영화 14편을 찍고 60부 드라마에 출연했다”면서 “절대로 돈 때문에 여기에 나온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유승준은 자신이 현재까지 입국금지 명단에 올라가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도 표했다. 그는 “지금도 입국 금지 명단에 제 이름이 있어 한국땅을 밟을 수 없다”면서 ”제가 알기에는 사상범 아니면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정치범과 입국금지 명단에 이름에 올라와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7월에는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귀화해 군대에 가겠다는 뜻을 한국 측에 전달했지만 나이 제한으로 무산됐다고 덧붙였다. 유승준은 이제라도 군대를 가 한국 국적을 회복하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를 재차 밝혔다. 법무부와 병무청이 그러한 제안을 해오면 망설임 없이 받아들일 의향이 있다며 “어떤 방법으로라도 한국 땅을 꼭 밟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제가 내린 결정이 이렇게 큰 물의를 일으킬 지 몰랐다”며 “제 아이뿐만 아니라 저를 위해 군대를 가 아이들과 떳떳하게 한국 땅을 밟고 싶다”고 흐느꼈다. 하지만 병무청은 13년 전과 달라질 건 없다는 입장이다. 병무청 관계자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논할 가치도 없다. 다시 얘기할 필요도 없는 사항이다”면서 “스티브유(유승준)가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미국시민권을 획득했는데 우리 법률상 국적을 회복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 국적법 제9조에 따르면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 사람은 국적회복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긴급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약 3명 중 2명은 병역 기피 논란으로 입국금지된 가수 유승준(39)의 입국을 허용하는 데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19일 전국 19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유승준 입국 허용에 대해 ‘반대한다’는 의견이 66.2%로 집계됐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입국 허용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24.8%였으며, 9.0%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성별로는 남성이 찬성 24.4%, 반대 71.0%, 여성이 찬성 25.1%, 반대 61.4%로, 남성의 반대 비율이 더 높았다. 반대 비율을 연령대별로 보면 20대(찬성 21.6%, 반대 76.4%)에서 가장 많았고, 이어 60대 이상(70.2%), 50대(69.0%), 40대(63.5%), 30대(52.3%) 순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이며, 응답률은 5.6%다. 다음은 유승준과의 일문일답이다. -- 만 38세가 군대에 갈 수 있는 최대 연령이다. 이제 만 39살이 돼 무엇인가를 밝힌다는 것에 의구심이 든다. 이 타이밍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제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비난, 질타의 말씀이 많아서 솔직히 복귀하는 게 자신 없었다.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서 13년간 한국을 거의 안 보고 살았다. 그래야 살 거 같았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아이들이 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제 문제로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제 마음도 평온하지 못한 게 옳지 못하다고 생각해 작년 7월 시민권을 포기하고 귀화해서 군대를 가고 싶다고 한국에 연락했다. 그게 만 38살이었다. 당시 청룽(成龍) 영화를 찍고 있었는데 청룽에게 지금 군대를 가겠다고 하니 저보고 대뜸 결정 잘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만 38세까지 군대에 갈 수 있는 건 1980년 이후 태어난 사람에게만 적용되더라. 저처럼 1970년대생들은 만 36세가 징집 최대연령이라고 해서 그 계획은 무산됐다. -- 처음부터 군대 갈 생각이 있었나. ▲ 저는 군대에 대해 전혀 거부반응이 없다. 어릴 때부터 건강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좋아했고 아버지도 군대에 가야된다고 말씀하셨다. 어릴 때부터 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가려고 했다. -- 신체검사에서 4급을 받았다. 허리문제였나. ▲ 제가 5집 활동하고 조용필 선배님 곡 리메이크 할 때였다. 뮤직비디오 촬영하다가 무대에서 떨어져서 허리를 다쳤다. 병원에 가서 CT 촬영하니 디스크가 문제라고 했다. 지금 수술해야 한다고 했지만 겁이 나 수술을 안 받았다. 그때부터 병역기피 기사가 나더라. 저는 ‘허리를 다쳤는데 병역기피 기사가 왜 날까’하고 의아했다. 아버지가 인생에서 건강이 최고라고 설득하셔서 결국 수술받았다. -- 당시 해병대 홍보대사를 한 건 사실인가. ▲ 사실이 아니다. 금연 홍보대사 외에는 다른 홍보대사를 한 기억이 없다. -- 해병대에 자진입대한다고 기사도 났었다. ▲ 당시 집 앞에서 기자 한 분이 ‘체격도 좋은데 해병대 가도 되겠네’라고 하셔서 ‘그렇죠’라고 대답한 것이 다음 날 1면에 기사화됐다. -- 2002년 입대 앞두고 미국 시민권 취득을 위해 일본 공연을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 전혀 아니다. 시민권 관련 인터뷰가 원래 2001년 10월경에 있었다. 아버지가 인터뷰를 하고 시민권을 취득하라 하셨지만 저는 국민과 약속한 상태였기 때문에 끝까지 안 간다고 했다. 그런데 9·11 테러 사건 이후 시민권 한번 거부하면 다시 재발급이 어려워졌다. 일본 공연 갈 때 절묘하게 시민권 인터뷰가 또 잡혔다. 저는 전혀 마음의 흔들림 없이 군대에 간다고 했지만 아버지가 인터뷰 거절하면 너는 한국 국적 되고, 우리는 미국 국적 되니 만나기 어려워진다고 하시더라. 군대 가기 전에 얼굴만 보고 가라고 하셔서 일본 공연 후 미국에 가게 됐다.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돌아오는 계획이었다. -- 그런데 시민권을 취득한 이유는 무엇인가. ▲ 부모님 설득이 가장 컸다. 가족들이 다 미국에 있고, 기반도 미국에서 잡았는데 네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때 저는 앨범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6, 7집을 계약을 37억 원에 했고, 제가 일을 안 하면 회사도 문을 닫아야 했다. 제가 군대에 가는 것조차 이기적일 수 있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더라. 이건 제 개인적인 문제고 부모님을 탓하는 게 아니다. 제 사인 한 장에 수십억이 오가는 상황에서 저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 그때 결정을 되돌아보니 어떤가. ▲ 참 교만했고, 정신이 없었던 거 같다. 부족하고, 그런 걸 감당할만한 성숙함이 없었다. 제 나이 스물다섯 때였다. -- 미국에서 시민권 취득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며 무슨 생각을 했나. ▲ 왜 군대 가려다 심경에 변화가 왔는지 밝히려고 63빌딩에서 기자회견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지 전혀 몰랐다. -- 공항 도착 후 어떤 상황이었나. ▲ 비행기에서 내리니 기자들이 게이트 앞까지 나와 기다리더라. 저에게 시민권 왜 취득했는지 반말로 다그치며 물어봤다. 출입국 관리하는 데까지 갔는데 어떤 분이 영어로 ‘문제가 됐으니 돌아가라’고 말했다. 법에 근거해 입국금지라고 하더라. -- 입국금지 소식을 듣고 어떤 기분이었나. ▲ 당황스러웠다. 다른 나라에 온 거 같았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던지 입국금지 된 거 알면서 지금의 아내인 여자친구에게 전화해 쉰다고, 일을 안 한다고 좋아했다. -- 미국에 가서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간다고 느꼈나. ▲ 한참을 모르다가 제가 찍은 방송이 ‘불방’되면서 제가 생각했던 거보다 상황이 멀리 간다는 걸 알게 됐다. -- 한국에서는 ‘거짓말쟁이’, ‘매국노’, ‘배신자’라는 비난이 끊이질 않는다. ▲ 한국 쪽을 거의 안 봤다. 그래야 살 거 같았다. 누군가가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와 저를 미국으로 도망간 계집애라고 하더라. 근데 시청자들이 그걸 보고 같이 웃는 걸 가족들과 함께 봤다. 그 이후로 아무것도 안 봤다. -- 대한민국 국민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 ▲ 시간이 오래 지나 이렇게 사죄 말씀을 드려 죄송하다. 일찍 나와서 용서를 구해야 했다. 용기가 없어 나오지 못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다시금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 유승준이란 이름을 다시 회복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고 크게 실망하셨던 부분 사죄드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