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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쟁이들의 서정, 반달 화폭에 소담하게 담았네

    글쟁이들의 서정, 반달 화폭에 소담하게 담았네

    ‘나에게 말을 몇 필 다오/올해의 첫 배가 갖고 싶소/아직 태어나지 않은 당신의 말 중/가장 순결한 말을/노한 말을/갈기 세운 말을 다오/여윈 말도 좋소’ 둥글둥글 순박한 글씨 옆으로 붉은 말들이 힘껏 땅을 박차 오른다. 지금은 이곳에 없는 두 예인, 박완서 작가가 쓰고 김점선 화가가 그린 서화선(書畵扇)이다. 반달 닮은 여백에 문인들의 서정이 사뿐 깃들었다. 김춘수·서정주·박두진·구상·조병화·김남조·김상옥 시인, 김동리·박경리·박완서·최인호 소설가 등 시대의 글쟁이들이 부채에 새긴 글과 그림을 모아 놓으니 또 하나의 예술품이 됐다. 오는 29일부터 6월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열리는 ‘서화선 명품전-작고 문인 중심’이다. 전시는 관장인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와 남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부채 컬렉션에서 태어났다. 40여년간 부부가 모은 부채는 300여점. 이어령 선생이 문인, 서예가, 화가 등 예술가들에게 선물로 받거나 부탁해 받은 것, 강 관장이 서영은 작가의 도움을 받아 전해 받은 것들이 어느새 이만큼 모였다. 문인들의 서화선을 중심으로 한 이번 전시에서는 이응로, 천경자 등 유명 작고 화가나 서예가들의 작품까지 90여점을 볼 수 있다. “1970년대 박종화 시인이 쓴 글씨 부채를 받고 너무 아름다워 그때부터 부채를 모으기 시작했다”는 강 관장은 “하나하나의 부채가 늘 우리에게는 기적이었다”고 말했다. “(부채 모으기가) 즐거운 축제가 되려면 그려 주는 분들이 기꺼이 동참해 줘야 하니 괜한 욕심을 부리거나 서둘러 모으려 하지도 않았죠. 특히 부채에는 대가 붙여져 있어 우툴두툴한 면에 그려야 하니 얼마나 악조건이겠어요. 최인호 작가도 내가 부탁하니까 겨우 해 줬지요. 글씨에 자신 없다고 거절한 문인들을 다그친 것도 용서를 빌고 싶네요. 하지만 이 하얀 반원형 공간은 그리는 사람마다 구도와 개성이 다르게 펼쳐지는 신묘한 화폭이지요. 많은 사람과 그 아름다움을 함께 즐기고 싶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김춘수 시인은 대나무처럼 곧게 뻗은 글씨체로 자신의 시 ‘모른다고 한다’를, 김남조 시인은 아이처럼 천진한 서체로 시 ‘선물’의 구절을 부채에 새겼다. 제주도와 보름달 아래 풍광을 각각 부채에 담아낸 김승옥, 최인호 작가의 작품은 그림 솜씨가 화가 못지않게 빼어나다. ‘석류나무집 이야기’를 썼던 한무숙 작가의 서화선에는 발간 석류 다섯 알이 가지에 소담스레 맺혀 있다. (02)379-3182.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말라리아 증가세 ‘감염 주의보’

    말라리아 증가세 ‘감염 주의보’

    지난해 말라리아 모기가 많이 증가하면서 국내 말라리아 환자가 다시 늘고 있다. 24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1970년대 후반 퇴치됐던 국내 말라리아는 1993년 재발해 2000년 정점을 찍은 후 환자 수가 2011년 826명, 2012년 542명, 2013년 445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2014년 들어 638명, 지난해는 잠정 699명까지 증가했다. 국내 말라리아 환자가 갑자기 늘기 시작한 2014~2015년 말라리아 매개 모기 개체 수도 크게 늘었다. 질병관리본부의 ‘말라리아 매개 모기 감시현황’ 자료를 보면 2014년 4~10월 채집된 말라리아 매개 모기 수는 291마리로, 전년도 98마리보다 무려 196.9% 증가했다. 2015년에 채집된 말라리아 모기는 417마리로, 2014년보다 43.3% 늘었다. 지난해 발생한 말라리아 환자는 인천·경기·강원 등 휴전선 접경지역 거주자(361명)와 해외여행객(71명), 군인(267명) 등이다. 특히 2014년 156명이던 군인 환자가 지난해 267명으로 늘었다. 해외여행객 환자는 2014년 80명에서 2015년 71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해외 유입보다는 국내 말라리아 모기 증가가 최근 다시 말라리아 환자가 증가세로 돌아선 데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매개 모기가 집중적으로 증가하면 환자 발생에 영향을 준다”며 “현재 국방부와 함께 원인을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대북 말라리아 방역 지원이 중단돼 북한 지역의 말라리아 모기가 남쪽으로 많이 유입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말라리아를 옮기는 중국얼룩날개모기는 대체로 중국에서 북한을 거쳐 유입된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말라리아는 모두 삼일열 말라리아로 오한, 발열, 구토, 구역, 설사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해외에서 유입되는 열대열 말라리아보다는 증상이 약하다. 우리나라 말라리아 위험 지역은 경기 파주·김포시, 인천 중구와 서구, 강원 춘천과 홍천 등 147곳이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1대1 결연’ 민간 참여 활발… 더 강력해진 동대문 복지

    [자치단체장 25시] ‘1대1 결연’ 민간 참여 활발… 더 강력해진 동대문 복지

    1970년 어느 추운 겨울날, 16살 소년은 상경한 동네 형 주소 하나만 들고 전라남도 나주에서 무작정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4남 1녀의 셋째인 그는 ‘농사를 지으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집을 나섰다. 공부가 하고 싶었다. 남들처럼 대학도 가고 싶었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가 낮에는 신문을 돌리고 저녁에는 신문보급소 한쪽에서 공부하며 고달픈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얄팍한 침낭에 의지한 채 추운 겨울을 몇 해 보냈다. 낮에 돈 벌고 저녁에 공부하는 청년이 혼자만은 아니었겠지만 추위와 배고픔, 외로움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고 했다. 1976년 어렵게 부산 동아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지만 1979년 부마항쟁의 주동자로 몰리면서 보안사 지하실에서 36일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다. 헌병대와 교도소를 거쳐 다시 사회로 나왔다. 덕분에 대학 졸업까지 12년이 걸렸다. 참담한 심정이었던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되었던 사람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1985년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협)의 선전부장으로 활동하면서 김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그러던 그에게 김 전 대통령이 ‘사인여천’(事人如天)이라는 휘호를 써주었다. 동대문과는 당시 최훈 국회의원을 도우면서 인연을 맺었다. 우여곡절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추위와 외로움에 떨던 신문팔이 소년이 ‘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는 사인여천의 뜻을 행하며 이제는 37만 서울 동대문 주민을 책임지는 지역 수장이 됐다. 민선 2기에 이어 5기와 6기를 이어가며 동대문 발전을 이끄는 유덕열 구청장이 그 사람이다. ●부마항쟁 소용돌이 속 12년 만에 대학 졸업 허기진 배를 수돗물로 채우고,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추위와 배고픔, 외로움의 고통을 알 수 있을까. 흙수저로 태어나서일까. 유 구청장은 구정의 방점을 ‘복지’에 찍었다. 그는 “창피한 일이지만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다. 이는 어렵고 힘든 이웃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내가 동대문구청장을 하는 동안은 춥고 외로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주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유 구청장은 민선 2기부터 1대1 희망결연 등 ‘동대문형 복지공동체 보듬누리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사실 자치구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이웃 모두를 돌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소외계층을 위해 민관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보듬누리 사업’은 구 직원들과 소외계층 간 결연을 민간으로까지 확대한 ‘희망의 1대1 결연’에 이웃의 복지를 주민 스스로 해결해 나가고자 꾸려진 ‘동(洞) 희망복지위원회’를 결합했다. 구 직원과 어려운 이웃을 연결한 ‘희망의 1대1 결연’만으로 복지사각 지대를 완전한 해소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14개 동별 희망복지위원회를 만들어 지역 자체적으로 각종 현안을 풀어가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30~80명 주민으로 구성된 희망복지위원회는 십시일반 자체 기금을 마련해 직접 어려운 이웃의 생활안정과 자립을 돕고 있다. 복지의 그물망이 촘촘해지고 사각지대가 줄었다. 이런 노력으로 보듬누리는 ‘2013 지방 3.0 공모사업’ 대한민국 대표 60개 사업에 선정됐을 뿐 아니라 ‘2012 서울시 희망온돌프로젝트 최우수상’, ‘제9회 대한민국 지방자치경영대전 복지서비스부문 최우수상’, ‘제1회 지방정부정책대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인정받았다. 유 구청장은 “다 같이 잘사는 동대문, 누구나 희망을 품고 사는 지역을 만드는 것이 나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성취도 평가 성적 향상… 교육투자 ‘결실’ 신자유주의 물결이 몰아치면서 우리 사회에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하고 있다. 한번 흙수저는 영원한 흙수저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유 구청장은 빈곤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공교육’ 정상화에서 찾고 있다. 그는 “올바른 교육만이 가정의 행복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이라면서 “지역 청소년들이 꿈과 희망을 품고 자신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최대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청소년을 위한 교육예산을 줄이지 않고 있다. 유 구청장은 “우리 구는 교육지원에 과감한 투자와 관심을 기울인 결과 학생 1인당 지원액이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강남구 다음으로 가장 많다”면서 “학생들의 학력 신장뿐 아니라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각종 방과 후 프로그램 등에 우선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동대문구가 속한 동부교육지원청이 서울시 11개 교육청 중에서 최하위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민선 5기 구청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유 구청장은 가장 먼저 교육경비 보조금 지원 범위를 8%에서 10%로 올릴 수 있도록 ‘교육경비 보조에 관한 조례’를 개정했다. 따라서 2010년 68억원이던 교육예산을 2011년에는 112억원으로 두 배가량 늘렸고, 2012년에는 123억원 등으로 점차 늘려갔다. 학생 1인당 지원액 기준으로 서울에서 강남구 다음까지 늘렸다. 그 투자의 결과로 동대문구가 속해 있는 동부교육지원청이 서울시 11개 교육지원청 중에서 3년 연속 우수 기관으로 선정되는 등 교육 으뜸도시로서의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무엇보다 학습성취도 평가 결과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줄고 보통학력 이상인 학생은 증가하는 등 학생들의 성적이 지속적으로 향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배우고 싶어도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원에 다닐 수 없는 지역 학생을 위해 지역 학원을 무료로 다닐 수 있도록 돕는 ‘희망드림 스터디 학습나눔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또 학습나눔사업으로 현재 23개 학원에서 70여명의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울러 구 교육비전센터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진로·학습상담 등 전문화된 교육 토털서비스를 제공하고, 동대문 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에서는 자유학기제 지원프로그램, 진로탐색과 체험프로그램, 진로동아리, 직업체험페스티벌 등 총 6개 분야 19개 진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역 청소년의 꿈과 희망을 키워주고 있다. ●약령시 한방메카 개발 땐 ‘K의학’ 한류 동력 유 구청장은 동대문의 미래 먹거리 만들기도 고민한다. 사실 복지와 교육도 지역 경제발전과 뗄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다. 그는 “2017년이면 청량리역사 주변 개발이 본궤도에 오르고 국내 한방재료의 메카 약령시와 바이오·의료 연구단지인 홍릉 주변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할 것”이라면서 “꿈꾸던 동대문이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속칭 청량리 588 주변에 1970년대 지어진 건물들이 사라지고 호텔과 공연장 등을 갖춘 42층 랜드마크 타워가, 인근 동부청과시장 부지에는 50~59층 4개 동, 1160가구의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는 등 대표적인 구도심이었던 동대문구가 변신할 예정이다. 또 오는 12월 한방 공방과 카페, 족욕 체험장 등 다양한 체험 공간 등으로 꾸민 한방진흥센터가 들어설 약령시도 국외관광객을 모으는 동대문의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유 구청장은 “케이팝, K푸드 등에 이어 한약과 침술, 뜸 등 ‘K의학’이 한류를 이어가는 힘이 될 것”이라면서 “한방진흥센터가 문을 열면 여행사와 관광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총력전을 펼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1만 3900가구가 들어서는 전농·답십리 재개발 사업은 입주와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 재개발 사업이 완료되면 ‘동대문=낙후지역’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유 구청장은 “45년 전 배고프고 외로웠던 신문팔이 소년의 꿈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면서 “동대문구를 지역주민과 함께 살기 좋은,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직장인을 위한 서바이벌 IT]](34) 인공지능, 세번째 봄이 왔다

    [직장인을 위한 서바이벌 IT]](34) 인공지능, 세번째 봄이 왔다

     딥러닝, 인공지능 부활의 신호탄  2012년, 인공지능의 부활을 알리는 두발의 신호탄이 터졌다. 그해 국제 영상 인식 대회(ILSVRC)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 대회의 목표는 이미지넷에 있는 십오만 장의 사진 중 자동차, 강아지 등 1000가지 종류의 물체를 컴퓨터로 찾아내는 것이었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보행자를 인식하거나 구글 포토에서 사진을 자동으로 분류할 때도 사용되는 이 기술은 오랫동안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2011년까지는 75%의 정확도가 최고 기록이었는데 일 년에 1~2%의 성능을 올리기도 쉽지 않았다. 기업들도 오랫동안 투자를 하며 기다렸지만 기대했던 성과가 나오지 않자 연구팀을 해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한 토론토 대학의 슈퍼비전팀이 경쟁자와 격차를 10% 이상 벌리며 85%의 정확도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참여한 멤버는 제프리 힌튼 교수와 학생 2명이 전부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3명 모두 영상 인식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었다. 학계와 IT 업계가 술렁거렸다. 기계가 학습을 한다는 “딥러닝(Deep Learning)”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해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었던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구글은 사람의 도움 없이 컴퓨터가 1000만 장의 사진 중에서 고양이 이미지를 찾아내는 데 성공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기계가 스스로 사물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획기적인 업적이었다. 여기에도 딥러닝이 사용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IT 업계에는 딥러닝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관련 스타트업의 인수가 이어지고 인재 확보와 기술 경쟁에 불이 붙었다. 2년 뒤 구글은 이미지넷의 영상 인식률을 93%까지 올렸다. 2015년 1월 중국의 바이두는 인식률을 94%로 향상시켰고 2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95%를 기록하면서 사람의 수준에 다다랐다. 딥러닝은 영상뿐만 아니라 음성 인식과 자동 번역의 성능도 한순간에 끌어올렸다. 딥러닝은 인간의 뇌를 모방한 인공신경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인공신경망은 인공지능의 한 축으로 알파고가 기보를 통해 바둑을 익히듯이 기계에게 학습을 시키는 한 방법이다. 이런 결과에 고무된 기업들은 다시 팀을 재정비하고 대가들을 찾아 나서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알파고로 인해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자 정부도 서둘러 대책을 내놓았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능정보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5년간 1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기업들을 끌어들이고 미래부 내에는 인공지능을 총괄할 전담팀까지 만들었다. 인공지능 불모지에 정부의 지원 소식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갑다. 그러나 R&D는 거창한 시작보다 거품이 꺼진 뒤 성공할 때까지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외수 선생이 주창하는 ‘존버 정신’이야말로 R&D의 중요한 덕목이라 하겠다. 60년 인공지능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딥러닝의 탄생 뒤에도 길고 긴 겨울(AI winter)을 힘겹게 살아온 노 교수의 공로가 숨어 있다. 딥러닝의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튼 교수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자.    딥러닝의 대부, 제프리 힌튼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제프리 힌튼 교수는 7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딥러닝을 전파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힌튼 교수는 뇌의 비밀을 알고 싶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의 신경망 분야를 선택해 박사 과정을 시작하였다. 당시는 인공지능의 거품이 꺼지고 한물간 분야로 취급받을 때였다. 1956년 존 매카시를 비롯한 당대 최고의 석학들은 다트머스대학에 모여 최초로 인공지능을 제안하고, 그 후 20년 동안 황금기를 누렸다. 학자들은 “20년 안에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기계가 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며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공지능은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풀 수 없다는 평가받으면서 기대는 실망으로 급변하였다. 모든 연구 지원이 끊어지고 인공지능은 첫 번째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 하필 그때 인공지능을 연구하겠다고 나섰으니 고생길이 시작된 셈이다. 1980년대 인공지능은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번에는 사람과 같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한가지 일이라도 잘하는 시스템을 만들기로 하였다. 법률이나 의료와 같이 특정 분야의 지식을 컴퓨터에 입력하여 실용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이 인기를 모았다. 그러자 인공신경망을 연구하던 동료들도 대부분 새로운 분야로 떠나버렸다. 1990년에 접어들면서 전문가 시스템도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새로 쏟아지는 지식을 매번 다시 학습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성과를 내기 위해 문제를 더 잘게 나누어 해결했지만 결국은 애초의 인공지능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두 번째 겨울을 맞이하였다. 2000년 초까지 살아남은 인공신경망 연구 그룹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토론토 대학의 제프리 힌튼, 몬트리올 대학의 요수아 벤지오, 뉴욕대의 얀 레쿤 교수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2004년 그들은 캐나다 고등연구원(CIFAR)의 지원으로 50만 달러의 소규모 펀딩을 받아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다. 힌튼 교수는 두 명의 박사과정 학생과 함께 인공신경망의 문제를 해결하며 연구에 매달렸다. 2006년 마침내 인공지능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딥러닝(Deep Learning)’ 논문을 완성하게 된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뒤 이 3명은 국제 영상 인식 대회(ILSVRC)에서 슈퍼비전이라는 팀으로 출전하여 딥러닝을 실제로 구현해 우승을 차지하며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다음해 힌튼 교수는 ‘DNN리서치’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하여 딥러닝 확산에 나섰다.  IT 최후의 격전지, 인공지능  딥러닝이 불을 댕긴 인공지능은 세 번째 봄을 맞이하고 있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먼저 학계에서 연구하던 분야에 기업이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물인터넷, 스마트카, 지능 로봇과 같은 스마트 제품의 등장으로 기업들도 인공지능이 절실하게 필요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빅데이터의 등장이다. SNS, 핀테크, 스마트 센서 등을 통해 생활 속에서 생성되는 빅데이터가 인공지능과 결합하면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세 번째는 강력한 컴퓨팅 파워의 확보다. 하드웨어의 혁신과 인터넷으로 연결된 클라우드의 발전으로 컴퓨터가 거의 제한이 없는 계산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인공지능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조사 업체 IDC는 인공지능 시장이 매년 50% 이상 증가하여 2019년에는 313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였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2025년 인공지능을 통한 지식노동 자동화의 파급 효과가 5조 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최근 이 분야에 대한 투자도 급격히 늘어났다. CB 인사이츠의 조사 결과, 2015년 인공지능 스타트업에 투자한 금액은 3억 달러로 2010년 1500만 달러의 20배에 이른다. 2012년 이후 실리콘 밸리에 생겨난 인공지능 업체만 해도 170개가 넘는다. 이렇게 상황이 바뀌자 글로벌 IT 기업들은 AI 관련 기업과 인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2013년 구글은 제프리 힌튼 교수를 모셔가기 위해 아예 DNN리서치를 인수하면서 모든 연구자를 함께 영입하였다. 다음해에는 영국의 인공지능 업체 딥마인드 테크놀로지를 4억 달러에 인수하였다. 이 회사의 CEO는 알파고를 개발한 데미스 하사비스였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가 “구글의 장기적 목표는 인공지능 회사가 되는 것이다”라는 보도를 할 정도이다. 페이스북은 뉴욕대의 얀 레쿤 교수를 영입하여 인공지능 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여기에 얼굴인식 소프트웨어 ‘딥페이스’를 개발한 페이스(Face.com)와 음성인식 스타트업 윗에이아이(Wit.ai)를 인수하여 전력을 강화하였다.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는 영화 ‘아이언 맨’에 등장하는 ‘자비스’와 같은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중국의 IT 대표기업인 바이두는 2014년 스탠퍼드 대학의 앤드류 응 교수를 영입하였다. 그는 구글의 ‘브레인 프로젝트’를 지휘하며 자동으로 고양이 이미지를 찾아낸 젊은 인공지능 대가이다. 바이두는 상하이와 실리콘 밸리에 AI 연구소를 설립해 무인 자동차, 음성인식, 영상인식 분야에 집중하면서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타나, 애플의 시리, 아마존의 알렉사와 같은 인공지능 비서 진영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IBM의 인공지능 왓슨은 퀴즈쇼를 넘어 이미 의료와 금융 분야의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IBM은 교육, 에너지, 건설, 보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왓슨 생태계’ 만들기에 나섰다. 글로벌 기업들은 인공지능을 IT 최후의 승부처로 여기고 있다. 인공지능은 영화 속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일초에 수십만 번씩 주식을 사고파는 로봇 트레이더가 증권가를 장악한 지는 이미 오래다. 이제는 고객의 자산까지도 인공지능 로보 어드바이저가 관리한다. 컴퓨터가 신문 기사를 쓰고 회계 장부를 정리하고 법원의 판례를 분석하는 일은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 소셜 로봇, 드론과 같은 스마트 기기도 모두 인공지능의 판단으로 움직인다. 우리의 경쟁자들은 이미 앞서가고 있다. 지금은 인공지능의 골든타임이다. 정부, 기업, 학계가 한데 뭉쳐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김지연 R&D경영연구소 소장 jyk9088@gmail.com  <지난 칼럼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List.php?section=kimjy_it
  • [오늘의 눈] 제2 중동붐, 마지막 기회일 수도/류지영 국제부 기자

    [오늘의 눈] 제2 중동붐, 마지막 기회일 수도/류지영 국제부 기자

    국제부 기자로 일하며 얻게 된 가장 큰 깨달음은 ‘지구에는 미국과 일본, 유럽, 중국만 있는 게 아니다’라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CNN과 BBC 등 서구 언론 위주로 외신을 접하다 보니 하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 살아왔다. 국제부에 와서 다양한 비(非)서구 매체들을 살펴보며 ‘다른 세상들’도 하나둘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동과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에 걸쳐 57개국·16억명으로 이뤄진 이슬람 문화권이 대표적이다. 세계 인구의 4분의1을 차지하는 이들의 영향력은 내가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크고 강력했다. 낙타를 끌고 사막 한가운데를 지나는 상인들의 모습이나 ‘이슬람국가’(IS)와 같은 테러 단체가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이들의 진면목을 알기 어렵다. 최근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가 풀리면서 이슬람 세계에도 경제 통합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조만간 국제 유가가 안정되면 터키(인구 8160만명)와 이란(8080만명), 이집트(8700만명)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소비 공동체가 생겨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연초 외국 방문을 피하는 불문율을 깨면서 1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를 방문한 것에는 이런 배경이 담겨 있다. 우리 정부도 할랄푸드(이슬람 식품) 단지를 육성하는 등 ‘제2 중동붐’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기회를 잡아야 우리에게 마지막일 수도 있는 경제 재도약 가능성이 열린다. 하지만 일부 종교 단체에서 “이슬람 산업을 유치하면 무슬림 100만명이 들어와 테러 위험 국가가 된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유포하며 중동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앞서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도 이슬람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특별법을 만들려다 교계의 반대로 무산됐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이슬람 문화권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세계 지도에 우리나라를 처음 그려 넣고 ‘코리아’라는 이름을 붙여 준 이들은 중동 상인들이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군주로 평가받는 세종도 그의 발명품 대부분을 이슬람 과학자들의 지식을 기반으로 만들었다. 1970년대 ‘오일 쇼크’로 국가 부도를 눈앞에 뒀을 때도 우리는 중동에 100만명이 넘는 건설인력을 파견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터키는 자신의 기원을 흉노와 돌궐로 보고 있어 우리를 고조선 시절부터 이어져 온 ‘형제의 나라’로 여긴다. 현재 번역 작업이 진행 중인 이란의 서사시 ‘쿠쉬나메’에는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와 신라가 사돈의 나라로 폭 넓게 교류해 왔다는 기록이 담겨 있다. 여기에 ‘대장금 열풍’으로 상징되는 한류까지 더해져 이슬람 문화권은 우리에게 큰 호감을 갖고 있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에 ‘개방성’은 생명이다. 하지만 종교계에서 “기독교의 ‘여호화’와 이슬람교의 ‘알라’는 서로 다른 신(神)”이라는 논리까지 내세우며 무슬림 배척에 나서고 있어 안타깝다. ‘악의 축’이라는 관점으로만 이슬람 공동체를 바라보려 한다면 우리에게 경제 재도약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superryu@seoul.co.kr
  • 에펠탑·모네 말고… 프랑스 시각예술의 오늘

    에펠탑·모네 말고… 프랑스 시각예술의 오늘

    한국과 프랑스의 국교 수립 130주년을 맞아 프랑스 시각예술의 현주소를 보여 주는 다양한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얼핏 보기에 난해하지만 독특하고 창조적이며 사회적 메시지와 철학적 깊이가 담긴 ‘프렌치 스타일’을 멀리까지 가지 않고도 감상할 수 있는 찬스다. ●국립현대미술관 ‘질 바비에’展 국립현대미술관은 프랑스 마르세유에 있는 복합문화예술공간 프리쉬라벨드메와 공동으로 조형예술가 질 바비에(51)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에코 시스템:질 바비에’전을 서울관에서 열고 있다. 남태평양의 바누아투공화국 태생으로 마르세유국립미술학교를 졸업한 그는 영국의 수학자 존 콘웨이가 고안한 ‘생명게임’에서 영감을 얻어 세포 증식의 개념을 작품에 도입했다. ‘생명게임’은 임의적으로 배열된 세포들이 기본 법칙에 의해 자동으로 생성·소멸하면서 삶과 죽음, 그리고 증식의 퍼즐을 만들어 낸다는 논리다.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에서 그는 변이와 증식으로 가득한 기이한 세계를 100여점의 드로잉과 설치 작품으로 보여 준다. 작가의 두상을 주물로 떠서 만든 분홍색 머리에 바나나가 박힌 ‘바나나가 박힌 머리’, 입에서 플라스틱 말풍선이 면 가닥처럼 뿜어져 나오는 ‘다변증’ 등은 자아와 정체성 탐구를 위해 자기 파괴와 생성을 시도한 것이다. 인간주사위 사전을 가로세로 각 2m의 종이에 옮겨 놓은 ‘백과사전’ 연작, 기억을 해체한 뒤 재구성한 ‘블랙 드로잉’ 연작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바비에는 “합리적이지 않은 것, 사회 통념에 반하는 것이 때로는 사람에게 더 큰 자유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나의 작품을 예술이라는 넓은 세계에 존재하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봐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7월 3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보이지 않는 가족’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과 일우스페이스에서는 프랑스의 문화 비평가이자 이론가인 롤랑 바르트(1915~1980)의 저서 ‘카메라 루시다’에 담긴 사진론에 기반을 둔 전시 ‘보이지 않는 가족’전이 열린다. 바르트는 파리에서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세계 순회전시 ‘인간가족’을 관람한 뒤 이 전시가 개인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인간가족’전은 세계 각국의 사진작가가 보내온 200만점의 사진 가운데 500여점을 골라 출생부터 사춘기를 거쳐 가족을 형성하는 모습을 연대기 순으로 펼쳐 놓은 것이었다. 바르트는 사진이 삶의 여정을 단순화하고 획일화하며 기독교적인 시각을 주입한다고 분석하고 1980년 저서 ‘카메라 루시다’를 통해 위인보다 약자, 집단보다는 개인, 서사적 역사보다는 사소한 순간에 초점을 맞추는 예술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5월 29일까지 열리는 전시에선 바르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워커 에번스, 윌리엄 클라인, 신디 셔먼, 제프 쿤스 등 1960~1970년대 이후 현대 사진가, 미술가 90명의 작품 200여점을 감상할 수 있다. 같은 기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도시괴담’전은 서울시립미술관의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파리의 실험적인 전시공간인 팔레드도쿄의 파비옹이 협업해 진행한 레지던시 교류 프로젝트 결과를 보여 준다. ●이응노미술관 뉴미디어 아트 프로젝트 대전시립 이응노미술관은 6월 26일까지 프랑스 2인조 작가 르네 쉴트라&마리아 바르텔레미를 초청해 이응노의 문자추상 작품과 실험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2016 이응노미술관 뉴미디어 아트 프로젝트-레티나:움직이는 이미지’전을 열고 있다. 파리와 툴루즈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두 사람은 광섬유, 영상, 컴퓨터 프로그래밍, 수학 등 과학 원리를 예술과 접목한 신작 ‘레티나’를 선보인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믹스, 마카롱을 부탁해

    믹스, 마카롱을 부탁해

    “다 끝났습니다. 이제 오븐에서 15분간 구워내면 완성입니다. 참 쉽죠?” 그 말 그대로였다. 지난 15일 서울 중구 동호로 CJ제일제당 본사 내 백설요리원에서 마카롱 반죽을 만들어 동그랗게 짜내기까지의 시간은 10여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누가 마카롱 만들기가 베이킹의 최고난도라고 했을까. 누구나 홈베이킹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시대다. 식품회사에서 생산한 ‘베이킹 믹스’가 이를 가능케 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베이킹 믹스 시장은 지난해 기준 300억원 규모다. CJ제일제당이 베이킹 믹스 시장의 57%,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오뚜기는 20%, 삼양사는 큐원 홈메이드라는 브랜드로 19%를 각각 맡고 있다. ●베이킹 최고 난이도 마카롱도 손쉽게 척척 국내 베이킹 믹스 시장을 연 것은 오뚜기다. 오뚜기는 1970년대 핫케이크, 도넛 가루를 출시하며 주목을 받았다. CJ제일제당은 1977년 핫케익믹스를 시작으로 다양한 간식용 베이킹 믹스 제품을 출시했고 현재 가장 다양한 28종의 제품을 선보였다. 삼양사는 1999년 큐원 홈메이드 머핀 믹스를 만들어 시장에 뛰어들었다. 국내 베이킹 믹스 시장의 2막을 연 것은 2000년대 중반 식품 위생에 대한 이슈가 불거지면서 집에서 직접 만드는 간식이 주목받았을 때다. 이때 오뚜기에서 초코·넛츠·쌀핫케이크 등의 신제품이 잇따라 출시됐다. 삼양사는 2005년 길거리 간식인 호떡을 홈베이킹 시장으로 끌어와 ‘찰호떡믹스’로 베이킹 믹스 시장의 영역을 확대했다. 최근 쿡방(요리 방송), 먹방(먹는 것을 보여주는 방송) 등의 열풍은 베이킹 믹스 시장의 3막을 열었다. 유명 셰프들이 방송에 나와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는 모습이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끌면서 집에서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이와 함께 홈베이킹도 주목받게 됐다. 핫케이크는 물론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생크림 케이크도 만들 수 있고 이제는 프랑스 고급 과자인 마카롱마저 쉽게 정복할 수 있게 됐다. ●공포의 머랭 치기 없이도 식감 쫀득 베이킹 믹스의 가장 큰 매력은 간편함 외에도 설명서대로 따라하면 실패 없는 홈베이킹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달콤 살벌한 맛짱’<서울신문 2015년 11월 30일자 19면>에서 마카롱을 만들기 위해 직접 재료를 계량해 만들어 본 기자가 두 과정을 비교해봤을 때 느낀 점이다. CJ제일제당 베이킹 믹스 담당 마케터인 이지혜 대리는 “재료들을 완벽하게 계량해 포장해놨기 때문에 포장을 뜯고 시키는 대로 섞고 시간 맞춰 구워내면 끝난다”면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베이킹 믹스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마카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필링을 덮는 마카롱의 겉면, 즉 마카롱 코크다. 코크를 씹었을 때 겉은 바삭하게 부서지고 속은 촉촉한 식감을 나타내려면 코크를 만들 때 필요한 ‘머랭’이 중요하다. 직접 계량해 만든 마카롱에는 118도로 끓인 설탕물을 흰자에 넣고 믹서반죽기를 사용해 머랭이 뿔처럼 올라올 때까지 섞고, 이 머랭이 꺼지지 않도록 머랭을 아몬드 가루 등과 섞어 원형으로 오븐 틀에 짜낼 때까지의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코크가 전혀 부풀지 않아 망치기 쉽다. ●누구나 따라할 수 있어 시장 쑥쑥 마카롱 믹스로 만들 때는 이런 걱정이 없다. 포장된 머랭 가루 봉지를 뜯어 물을 약간 넣은 뒤 믹서반죽기로 휘저어주면 금세 머랭이 완성되고 이 머랭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이 과정을 지도했던 허나은 셰프는 “마카롱 믹스 제품 박스 안에 반죽을 동그랗게 짜낼 수 있는 모양 틀도 있고 순서만 잘 지켜서 하면 실패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홈베이킹의 혁명을 만든 베이킹 믹스를 개발할 때는 요즘 유행하는 베이킹이 무엇인지와 함께 이를 디저트 전문점 등에서 사먹었을 때와 같은 품질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이정우 CJ제일제당 분 담당 부장은 “보통 베이킹 믹스를 개발할 때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는데 마카롱 믹스는 꼬박 1년이 걸릴 정도로 개발하는 데 공을 많이 들인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마카롱 특유의 조직감을 베이킹 믹스를 통해 만들었을 때도 그대로 살리는 점이 가장 어려웠다는 얘기다. 이 대리는 “인기 있는 베이커리류를 무조건 베이킹 믹스와 연결시키지는 않는다”면서 “빅데이터를 통해 외식 트랜드와 사람들의 홈베이킹 수요 등을 종합해 적절한 품목을 찾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인기가 많은 타르트류에 대한 베이킹 믹스 개발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타르트 틀은 베이킹 믹스로 만들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길 과일이나 호두 등의 필링을 신선하게 구현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설탕 줄이고 영양 따진 착한 믹스도 최근 정부가 ‘설탕과의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당 줄이기가 대세가 된 상황에서 베이킹 믹스 제품들은 일찌감치 영양을 따져 까다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CJ제일제당이 2013년 출시한 ‘영양균형 핫케익믹스’는 한국영양학회와 공동 개발해 만든 것으로 성인 기준 한 끼 식사에 필요한 모든 영양소를 적정량에 맞게 담아냈다. 또 2012년 출시한 ‘자일로스 찹쌀호떡믹스’는 기능성 설탕인 자일로스를 사용해 만들었다. 자일로스는 체내 설탕 흡수를 줄인 기능성 설탕이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전두환, 美에 호헌지지 요구했다가 퇴짜… 반기문, DJ 美망명 동향 수집해서 보고

    1984년 2월 2일 일본의 출판노동조합연합은 일본 역사교과서 검정 실태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며 일본 정부가 여전히 역사교과서에서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1982년에 정부가 일본에 이 문제에 대해 항의했으나 고쳐지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외무부에 보낸 친필 문서에서 역사교과서 시정 요구에 대해 “북괴가 조총련, 일본 좌익계 노조 및 지식인을 이용, 한·일 간 이간을 노리는 바 한국의 언론은 이에 편승하지 않도록 협조하시오”라고 썼다. ●DJ 귀국 싸고 韓·美 의견 차 이 같은 사실은 17일 외교부가 당시 외교문서들을 공개하며 밝혀졌다. 외교부는 이날 1985년을 전후해 생산된 외교문서 총 1602권, 25만여쪽을 공개했다.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에 따라 생산된 지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를 학자 등이 활용할 수 있도록 일반에 내놓은 것이다. 문서에 따르면 당시 미국에 있던 우리 외교관들은 워싱턴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보고했다. 당시 외무부 소속 참사관으로 하버드대에서 연수 중이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김 전 대통령의 동향을 수집하던 관련자 중 하나로 등장한다. 당시 그는 미국 학계·법조계 인사 130여명으로 구성된 ‘김대중 안전귀국 보장 운동’이란 단체가 김 전 대통령의 안전한 귀국을 요청하는 연명 서한을 전 전 대통령에게 보낼 것이라고 보고했다. 또 당시 우리 정부 당국자들이 미측 인사들과의 면담에서 김 전 대통령을 “교활하고 믿지 못할 인물”, “간교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北, 1970년대 무인기 도입에 관심 김 전 대통령의 귀국 문제를 둘러싸고는 한·미 간 견해차가 있었으며 이 때문에 전 전 대통령이 방미 계획 발표를 연기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1985년 2월 총선을 앞두고 귀국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한국 정부는 총선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그의 귀국을 선거 이후로 미루고자 했다. 이에 리처드 워커 당시 주한 미국대사와 노신영 안기부장이 만났으나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고 결국 미측에서 먼저 전 전 대통령의 방미 일정 발표 연기를 요청했다. 아울러 당시 전두환 정권이 대통령 간선제와 7년 단임제를 골자로 한 제5공화국 헌법에 대한 국내의 개헌 요구가 거세지자 미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 ‘호헌’(護憲·5공 헌법 수호) 공개 지지 표명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사실도 밝혀졌다. ●김일성, 소련 믿을 수 없고 中 안 믿어 북한 정보를 ‘전언’의 형태로 담은 문서도 여럿 공개됐다. 여기에는 북한이 이미 1970년대에 무인기 도입에 관심을 보였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1974년 11월 당시 주일 한국대사관 윤하정 공사는 일본 외무성 아주국장과의 면담에서 “북한이 일본으로부터 무인기 및 잠수장비 도입 움직임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일본 측은 “사실이라면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답했다. 북한 김일성 주석이 1980년 “소련은 믿을 수 없고 중공은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전언도 공개됐다. 당시 캄보디아의 한 인사는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만나 김 주석이 “남침할 의사가 없고 미국과 싸울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며 이 같은 발언을 전했다. 미측은 이를 다시 박쌍용 외무부 정무차관보와의 면담에서 공개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고든 정의 TECH+] 美정부도 ‘재사용’ 우주 발사체 XS-1 개발한다

    [고든 정의 TECH+] 美정부도 ‘재사용’ 우주 발사체 XS-1 개발한다

    최근 억만장자들의 우주를 향한 도전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세운 스페이스 X는 팔콘 9 R(Reusable) 1단을 바다에서 회수하는 데 성공했고, 아마존 CEO인 제프 베조스의 블루 오리진 역시 아직 궤도에 위성을 발사할 순 없지만, 프로토타입 우주 로켓을 재착륙 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기는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 가운데 하나인 폴 앨런 역시 스트라토런치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항공기 기반 우주 발사체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모두 하나로 수렴됩니다. 즉, 재활용이 가능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발사체를 만드는 것이죠. 값비싼 로켓을 한 번 쓰고 버렸기 때문에 우주 발사 비용은 매우 비쌀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경제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비행기나 자동차처럼 여러 번 재사용이 가능한 우주 발사체가 필요합니다. 사실 이들의 목표는 과거 미 항공우주국(NASA)과 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목표와 일치합니다. 유명한 NASA의 우주 왕복선 역시 일회용이 아니라 100회 이상 재사용이 가능한 우주 발사체를 목표로 개발된 것입니다. 하지만 1970년대 미국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개발 예산이 축소되었고, 우주 왕복선은 여러 차례 설계를 변경해 최종적으로는 거대한 연료 탱크를 한 번 쓰고 버리는 타협안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구조가 복잡해져 비용이 크게 상승했고 사고까지 나는 바람에 결국 퇴역하는 운명을 맞게 되었습니다. 사실 NASA는 10여 년 전 우주 왕복선을 대체하기 위해서 SSTO(단단식 궤도 발사체)라는 재사용 우주 발사체를 개발했으나 프로토타입 제작 도중 취소되어 시험 비행 한 번 못해보고 프로젝트가 종료됩니다. 이후 NASA는 아레스 I이라는 새로운 로켓을 이용해서 1단을 재사용하는 방식을 개발했습니다.(낙하산으로 바다에서 회수하는 방식) 그러나 한번 시험 발사가 성공한 후 당시 금융위기로 미국 정부의 재정 적자가 급격히 커지면서 역시 예산이 삭감되어 개발이 취소되는 비운을 겪습니다. 이렇듯 정부 주도하의 개발은 아무리 엔지니어들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다고 해도 예산권을 쥔 정부 관료와 의회에서 예산을 배정받지 못하거나 삭감되면 쉽게 취소되는 운명을 맞이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변덕(?)에 좌우되지 않는 스페이스 X 같은 민간 기업이 앞으로 우주 분야에서 혁신을 주도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DARPA는 다시 한 번 재사용 우주 발사체 개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전투기에서 소형 위성을 발사하는 계획은 잠정 보류지만, 비즈니스 제트기 만한 크기의 소형 발사체를 만드는 XS-1 프로젝트는 1단계를 넘어 실제 크기 프로토타입을 제작하는 2단계로 진행할 계획입니다. - 저렴한 재사용 우주 발사체 XS-1 XS-1은 과거 우주 왕복선의 소형화 버전으로 저렴한 위성 발사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위성 발사는 군사 목적으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죠. 동시에 적에 의해 GPS 및 정찰 위성이 파괴되었을 때 위성 시스템을 긴급 복구하기 위해서 재발사 시간이 매우 빨라야 한다는 것도 목표입니다. 현재 DARPA는 보잉, 노스럽 그루먼, 마스턴 우주 시스템의 3개 회사를 1차 대상자로 선정해 각각의 디자인을 경쟁시키고 있습니다. XS-1의 프로토타입은 음속의 10배까지 속도를 높인 다음 작은 로켓을 발사해 위성을 저지구궤도(LEO)에 올리는 2단 로켓 구성입니다. 1단에 해당하는 로켓은 항공기 구조로 재사용이 가능하며 위성을 발사하는 2단은 일회용입니다. XS-1의 1회 발사 비용은 500만 달러 이하로 저렴해야 하며 프로토타입에서 페이로드는 900~500파운드(408kg~80kg) 정도입니다. 그리고 10일 내로 10회라는 아주 빠른 재발사 시간을 지녀야 합니다.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이는 목표지만, XS-1은 이전의 우주 왕복선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주 왕복선은 화물 포함 100t에 달하는 거대한 우주선을 궤도에 올리기 위해서 엄청난 연료가 필요했습니다. 이는 100t에 달하는 우주선을 음속의 25배로 가속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반면 XS-1은 음속의 10배 정도라는 훨씬 쉬운 목표를 달성하고 다시 귀환하는 준궤도(sub orbital) 로켓입니다. 무인 로켓으로 사람이 타는 부분도 필요없고 연료도 훨씬 적게 실어도 문제없습니다. 그래서 비용이 낮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최종 성공 여부는 지켜봐야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비용을 초과하거나 기술적 어려움에 직면하면 취소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역시 정부 개발 사업이니까요. 솔직히 앞서 NASA가 계획했던 프로젝트 중 하나라도 성공했다면 머스크나 베조스 모두 우주 로켓 대신 다른 사업을 알아봐야 했을지 모릅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NASA의 실패 덕분에 이들의 성공이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그 실패는 앞서 말했듯이 관료제의 산물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일각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진정한 혁신은 이제 민간 주도로 진행되는 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XS-1이 실패한다면 이와 같은 주장은 더 설득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반면 XS-1이 성공한다면 재사용 발사체 개발 사업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기술력을 확보한 보잉이나 록히드 마틴같은 전통적 대기업이 이 분야에 끼어들어 민간 기업과 경쟁을 할지 모릅니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아직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지만,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던 저렴한 우주 발사체 개발이 민간과 정부의 투자로 다시 치열해지는 것 같습니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70년대 노동운동 산증인들의 회고

    70년대 노동운동 산증인들의 회고

    공장이 내게 말한 것들/황선금 지음/실천문학/360쪽/1만 2000원 원풍노조는 동일방직 노조, YH 노조 등과 함께 1970년대 우리 노동운동 역사를 상징하는 노조 중 하나다. 1963년 출범 이후 지난한 어용노조 정상화 투쟁을 거쳐 1972년 민주노조의 꿈을 이뤘으나 1982년 9·27 사태를 겪으며 강제 해체됐다. 노조 사무실은 폐쇄되고 지부장은 자루에 담겨 쓰레기장에 내버려졌으며 조합원들은 빨갱이로 몰려 쫓겨났다. 연행 200여명, 입원 80여명, 구류 28명, 구속 8명, 해고는 559명에 달했다. 역사는 뒤늦게 원풍노조의 활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했다. 이 책은 34년 전 원풍노조에서 활동했던 7명의 삶을 풀어놓고 있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가 공장에서 일하고, 노조 활동을 하고, 부당 해고를 당하고,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고 각자 위치에서 삶을 견뎌 내며 지금은 시립병원 요양보호사, 애견 미용사, 건강관리사, 문방구 주인, 음식점 사장 등으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이들은 입을 모아 원풍노조 시절을 그리워한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사람으로 존중받았던 시절이라는 것이다. 케케묵은 옛이야기가 여전히 유효한 것은 오늘날 절차적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이 있기까지 이들을 비롯한 노동자들이 제도에 의해 희생당하며 기여한 바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노조 출신으로, 7명의 구술을 정리한 저자는 “평범한 개인이 환경에 의해 어떻게 변화하고 시대 흐름에 어떻게 삶이 굴절돼 가는지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라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영욕의 시간 견딘 부평깡통시장… “인천 아닌 부산입니다”

    영욕의 시간 견딘 부평깡통시장… “인천 아닌 부산입니다”

    <사진1> 영화 ‘국제시장’의 ‘꽃분이네’ 가게 실제 촬영 장소. 이 곳은 현재 수많은 관광객들의 사진 세례만을(?) 받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나 진짜 힘들었거든예" 영화 ‘국제시장’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대사이다. 늙어버린 주인공(황정민 분)이 사진에 담긴 젊은 아버지에게 회한을 담아서 울먹이는 장면은 바로 ‘부산’이라는 항구 도시가 지닌 근대사(近代史)의 고단한 단면을 여지없이 잘 드러내주고 있다. 바로 이 ‘국제시장’을 길 하나 사이에 두고 영화 흥행의 덕을 단단히 보고 있는 시장이 바로 부산의 명물 ‘부평깡통시장’이다. 흔히들 ‘부평’이라고 말을 하면 대개는 ‘인천’을 떠 올리지만 기실 부산의 최초 근대 상설 시장의 명칭이 ‘부평깡통시장’(최초의 명칭은 부평정시장)인 것이다. 도시를 관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도시에서 길을 잃는 것이라고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1892~1940)은 말했다. 시장은 바로 ‘길을 잃어버려야’ 할 도시에서 ‘길을 잃어버려야’ 할 지점을 정확히 알려준다. 즉 시장은 관광지와 주거지의 장르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경계 지점인 것이다. 부평깡통시장은 이런 경계 지점에서 명확히 스스로의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부평깡통시장은 시장이라는 도심의 경치에서 어느덧 낯선 풍경으로, 낯선 풍경이 다시 익숙한 장면으로 관광객들에게 체화(體化) 되는 공간임은 분명하다. 부평깡통시장, 모양은 시장이지만 주제는 역사다. 100여년 세월의 궤적이 담긴 메시지를 분명히 담고 있음은 당연하다. 도시의 시장은 늘 여행객들에게는 제 1의 방문장소이다. 그러나 똑같은 시장이라도 어떤 역사 속에 담겨 있는가는 대단히 중요한 팩트이다. 특히 여행객에게는. 물론 꼭 시장이 그러한 역사의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한 발 짝을 물러설지라도 어쨌든 시장은 도심의 여타 관광지와는 확실히 질감과 무게감이 다르다. 바로 부산에서 가장 치밀한 세월의 풍경을 지닌 시장, ‘부평깡통시장’을 4월의 초입에 찾았다. 부평깡통시장은 역사가 뼛속까지 깊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초량동(현재 부산역 앞)에 위치한 일본인들의 거주지인 초량왜관이 부평동, 광복동, 남포동, 신창동 지역인 중구로 이전하였다. 이후 부산 중구는 일본인들의 대표적인 주거지가 되었고, 늘상 일본문화와 더불어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서양문화가 넘실되던 곳으로 변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신문물을 가장 처음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이 현재의 부평깡통시장 인근이었다. 1914년 부평정시장이 만들어질 당시만 해도 주로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점포들이 모여 있어 이미 그 당시에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는 관부연락선을 통해 일본의 문물들이 가장 먼저 발을 딛는 곳이기도 하였다. 그러다 해방 이후 부평정시장에서 자연스레 부평시장으로 명칭이 변하였지만 외국 물건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해방 전과 마찬가지로 부평시장으로 향하였다. 이후 1970년대 베트남 전쟁을 겪으면서 수많은 미군 물건들이 암거래 형태의 거래장소로 택한 곳도 이 곳 부평시장이었다. 유독 통조림 제품이 많은 미군 군수물자의 명칭에서 현재의 부평깡통시장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제 전자제품부터 양주, 담배, 화장품, 옷, 미군 군수물자, 전투식량(C-ration) 등 외제 중에서 구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전국최고의 명성을 누리게 되어 부평깡통시장은 80년대와 90년대에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외국제품의 수입이 자유로워지자 쇠락해가던 부평깡통시장은 그 화려한 암거래(?)의 명맥을 먹거리 상품으로 옮기게 되어 2013년 10월 전국 최초의 먹거리 중심의 야시장을 개장하여 다시금 예전의 이름값을 찾게 되었다. 현재 부평깡통시장은 평일 기준의 방문객이 3000여명이 넘으며, 주말에는 7000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방문하는 전국적인 규모의 시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부평깡통시장에서 원단 부자재를 판매하는 상인 이대훈(31)씨는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으로 인해 여행객들이 발길이 이어진다고 말을 하면서 환한 미소를 짓는다. 이렇듯 부평깡통시장은 분명 제 2의 도약기를 맞이함은 분명해 보였다. 막상 부평깡통시장을 방문해보면 이 곳은 도시의 빈틈없는 계획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역사의 고비 고비마다 고단한 도시민들의 생의 감각으로 버티어 온, 시장 어디를 보아도 확인할 수 있는 나름의 튼튼한 생명력은 보는 이의 가슴을 파고든다. 비록 지금은 유명 관광지로서의 형태는 변한 듯하지만 그럼에도 시장으로서 본질은 그대로여서 변화와 새로움, 그리고 시간을 넘나드는 세월의 기호(記號)가 시장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여행지로서의 시장은 어딘가 뜬금없이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장이라는 주제가 갖는, 고갈되지 않은 정직한 삶의 기반을 통해 여행객들은 스스로가 지닌 생활의 결을 여행지에서 볼 수도 있다. 부평깡통시장 상인들의 거친 손으로 만든 군더더기 없는, 매끈한, ‘부산’이라는 항구도시의 결을 이 곳에서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부평깡통시장에 대한 사소한 여행 일문일답> 1. 꼭 가봐야 할 곳인가?- 시간이 된다면, 혹은 재래시장을 좋아하는 분이시라면 한 번 정도는. 2. 누구와 함께?- 어머니와 함께 3. 교통편?- 부산 지하철1호선 :자갈치역 3번 출구 북쪽으로 200m / 버스: 1) 보수동책방골목 하차 : 40,81,135번 2) 부평시장 정류장 :8,11,96,103,126,1000번 3)김해공항리무진 : 남포동 하차 4. 인근 편의시설, 주차장?- 부평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그러나 시장 주변은 말 그대로 교통체증이 365일 일어나는 곳이어서 감수해야 한다. 5. 유명세에 비하여 실제 모습은?- 좀 유명한 시장 정도이다. 하늘에서 떨어질 만큼 놀랍지는 않다. 6. 관광지의 사람들의 친절도?- 하루 종일 수많은 관광객들을 상대해서인지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가진 고수들이다. 7. 전문성은?- 부산 최초 근대 상설시장. 짐작 가지 않나? 8. 관람시간과 입장료의 가성비?- 시장이다. 다만, 가게 안을 볼 때 어느 정도 구입할 마음을 갖고 가게에 들어가도록. 저녁 7시 이후가 볼 만하다. 9. 감탄하는 점?- 정말 먹거리 하나는 풍부하다. 특히 오뎅!! 무료 시식으로 한 끼 식사가 가능할 듯. 10. 아쉬운 점?- 다들 바쁘셔서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좀 더 친절했으면, 좀 더 잘 될 듯하다. 11. 운영진에게 한마디?- 백주부님(?)과 인연을 맺은 이후로 부평깡통시장은 새로운 역사를 맞이한 듯. 그 분에게 표창장을. 12. 여행 전 기대감과 후기?- 큰 기대를 가질 필요는 없다. 그냥 시장이다. 13. 추천하고픈 사람?- 어머니와 여행을 나온 자매들. 연애 1년차 이상의 연인들. 14. 비추하고픈 사람?- 아버지와 여행을 나온 형제들 15. 기타 / 특징 / 웹페이지.- 비빔당면, 유부전골,, 죽, 오뎅, 통닭, 떡복기, 돼지국밥 등등 먹거리 타운이다. 또한 저렴한 생활 수입물품의 전시장. (부평깡통시장 홈페이지 : http://www.bkmarket.co.kr/ ) 16. 쇼핑매력도- 일본산 생활 소품들은 최강이다. 특히 주방용품들. 17. 숙박편의성- 부산이다. 고민할 거리가 안 된다. 18. 인근 관광지 매력도- 바로 옆 국제시장, 자갈치 시장, 보수동 책방 골목. BIFF거리, 19. 꼭 봐야 할 것은- 다들 소소히 볼 만하다. 그 중에서 오뎅의 힘!! 바로 이 곳 부평깡통시장이다. 20. 총평- 무조건 위(胃)를 비우고 갈 것!! 처음부터 끝까지 먹거리 여행을 목적으로 한다면 만족할 듯.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열린세상] 합리적 중도가 뭉쳐서 극단을 물리쳐야/이형용 거버넌스센터 사장

    [열린세상] 합리적 중도가 뭉쳐서 극단을 물리쳐야/이형용 거버넌스센터 사장

    ‘2차 대전 후 140여개 신생 독립국 중 근대화를 완벽하게 성취한 유일한 성공 국가, 그 근대화의 도착성으로 파국적 전환기에 이른 나라.’ 3월 19일 거버넌스리더스 조찬 포럼에서 거버넌스센터 고문인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이 압축 설명한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근대화를 넘어 글로벌화·선진화·인간화를 목표로 성숙한 다원적 문명 국가로의 새로운 도약을 꾀해야 하건만 거대한 걸림돌들에 가로막혀 좀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깊습니다. 그 걸림돌 중의 걸림돌은 파당 중심의 권력 정치가 비전과 정책 중심의 시민생활 정치를 압도하는 현실입니다. 이 걸림돌을 받치는 굄돌 중의 굄돌이 이념 대결과 진영 논리를 빙자해 패거리 이익을 추구하는 사악한 극단들이 날뛰는 반합리한 행동들입니다. 그로 인해 21세기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열어 갈 비전과 그를 구현하기 위한 현실 정책을 둘러싼 합리적인 대화·토론·논쟁이 실종되고 질서 있는 선택과 상식적인 행동에 대한 기대는 무너지고 미래가 안 보이는 현실이 이 땅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적대적 공존 관계에 터 잡은 죽임의 정치를 질타합니다. 이 즈음에 합리적인 진보·보수를 자임하는 그룹은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먼저 두 가지 관점을 제안합니다. 첫째, 사회 세력 혁신을 위한 전략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합리적 중간의 경쟁 동맹 전략, 전략적 경쟁 동맹으로 극단을 주변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인식을 내포합니다. 우선 이념이건 가치이건 좌파와 우파 간에 하나 되는 통합은 가능하지도 않고, 국민 입장에서 바람직한 것도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선택의 권리, 최선을 고르는 즐거움이 보장돼야 합니다. 필요한 것은 통합이 아니라 경쟁, 더 치열해 더 생산적인 경쟁입니다. 경쟁을 하되 반합리한 극단의 저열한 야합을 무력화하기 위한 전략적 동맹의 관점과 입장, 나아가 행동을 확고히 하는 것, 즉 전략적 경쟁 동맹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민주사회에서 아무리 형편없는 이념 주장과 세력이라 하더라도 그 배제 또는 척결은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인식입니다. 미국 대선판의 트럼프가 산 증거입니다. 둘째,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손가락질과 욕질, 냉소질이 아니라 실제 압도적 역량으로 극단을 주변화해야 합니다. 주장이라는 점에서만 본다면 현실에서 극단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낡은 패러다임, 배제의 패러다임입니다. 극단을 극복하는 기본은 극단적 주장을 비난하는 데 있지 않고, 그 불구(不具)의 주장을 무력화하는, 나아가 그들 스스로 민망해할 만큼 무의미하게 만드는, 한 차원 상승한 진보·보수의 새로운 패러다임, 새로운 이념, 새로운 가치, 비전, 정책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창안하고 제시하는 것입니다. 20세기를 훌쩍 지나 21세기입니다. 진영 대결이 최고, 최선의 고려 사항이던 냉전시대가 가고 너나없이 포스트 자본주의의 절절한 도전, 한 예에 불과한 인공지능(AI) 알파고의 충격을 넘어 머지않은 후인류 시대를 예견하는 새로운 지구촌과 새로운 문명을 향한 치열한 모색을 피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는 1970년대, 1980년대 반독재 무용담과 관성으로 버티고 심지어 한때 운동해서 평생 먹고사는 사람들이 조자룡 헌 칼 쓰듯 진보를 움켜쥐고 있다는 냉소가 흘러서야 되겠습니까. 1960년대, 1970년대 참전의 기억, 안보 궐기대회 때 받은 분기로 평생 탱천하는 ‘어버이’급들이 녹슨 훈장 닦고 또 닦듯이 보수를 쥐고 흔든다는 장탄식이 나와서야 되겠습니까. 스스로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라 한다면 이익에 예민하고 싸움에 관한 한 몇 배 고수인 정치 사회의 반합리한 극단에 능동적으로 맞서 한편 목적 의식적인 전략적 동맹과 한편 치열한 생산적 경쟁을 통해 합리적 그룹 전체의 역량을 높여야 합니다. 더딜 것 같지만 그렇게 세련된 방식으로 속이 타고 마음 둘 데 없는 국민 대중의 지지를 받아 마침내 온전한 민주적 상식이 주류를 형성함으로써 극단을 주변화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마저도 향상의 길로 이끌어야 합니다. 그것이 현대 민주사회에서 진실로 국민을 위한 정치, 민중을 위한 사회운동의 기본자세와 도리입니다.
  • 산업의 심장 뛰게 하던 기술자들 경제위기 오자 ‘해고 1순위’로

    산업의 심장 뛰게 하던 기술자들 경제위기 오자 ‘해고 1순위’로

    엔지니어들의 한국사/한경희·게리 리 다우니 지음/김아림 옮김/휴머니스트/288쪽/1만 8000원 역사를 보는 관점과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엔지니어들의 한국사’는 정치와 경제의 관점이 아닌 엔지니어와 기술의 관점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서술했다. 책은 한국 엔지니어의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엔지니어들이 무엇을 위해 일해 왔으며, 오늘날 엔지니어들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그리고 한국 엔지니어에 대한 인식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돼 왔는지를 살핀다. 조선 후기부터 군사정권과 경제개발, 민주화 운동과 재벌의 성장,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와 21세기 탈추격 시대에 이르기까지 엔지니어들의 역사를 통해 치열했던 우리의 자화상을 만날 수 있다. 책의 정의에 따르면 엔지니어는 학사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고 기업과 연구기관에서 지식을 활용해 업무를 수행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하지만 실제 우리 사회에서 늘 이런 정의가 통용된 것은 아니었고 정부의 전략과 경제 상황에 따라 그 범주와 의미가 변모해 왔다. 우리 사회에서 엔지니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60~1970년대다. 박정희 정부는 기술인력을 분류해 경제개발을 위한 전략을 세웠고, 모든 기술인력은 국가가 주도하는 사업에 참여했다. (남성)엔지니어의 전성시대였다.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그들이 풀어야 할 기술적 문제들은 명확했다. 엔지니어들은 개발시대 산업 발전을 이끈 주역으로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았지만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1980년대 경제 주도권이 정부에서 대기업으로 넘어간 이후 기술자와 엔지니어들은 이질적인 집단으로 변화했고, 몸을 써서 일하는 활동으로는 사회 엘리트의 지위에 오르기 어려운 현실에 부딪혔다. 1997년 IMF 경제위기로 인한 기술인력의 대규모 실업 사태를 겪은 이후 엔지니어들 스스로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과거와 달리 일과 삶의 균형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개인의 흥미와 열망을 희생시키며 국가와 기업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고귀하게 여기는 태도를 가진 사람은 매우 드물다. 저자는 “한국에서 엔지니어의 등장과 변화는 근대산업국가로서 한국의 탄생 과정, 그리고 엔지니어로서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분투해 온 개인적·조직적 과정들을 함께 연결할 때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난다”며 “책은 엔지니어에 대한 연구이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옐런 “美경제 거품 없다…점진적 금리인상 적절”

    옐런 “美경제 거품 없다…점진적 금리인상 적절”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전·현직 의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글로벌 경제 현안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연준의 전·현직 의장 4명이 한자리에서 공개 토론을 하는 건 102년 연준 역사상 처음이다. 이들은 1970년대 두 자릿수 물가 상승과 1980~1990년대 주가 폭락,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파란만장한 미국 경제 역사를 직접 이끈 ‘증인’들이다. 이들의 재임 기간을 합치면 37년에 이른다. 재닛 옐런(69) 의장과 벤 버냉키(62)·앨런 그린스펀(90)·폴 볼커(88) 전 의장 등 4명은 7일(현지시간) 외국인 유학생들을 위한 기숙사인 뉴욕 인터내셔널 하우스에서 열린 ‘연준이 말하면 세계가 듣는다’ 토론회에 참석해 미국 및 글로벌 경제 상황과 연준 의장으로서의 경험을 밝혔다. 사회를 맡은 CNN 진행자 파리드 자카리아(52)가 옐런 의장에게 “미국 경제의 거품 붕괴 지적에 동의하느냐”고 묻자 그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옐런 의장은 “금융자산이 과대평가됐다는 신호를 찾아볼 수 없다. 미국 경제가 순항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최근 “우리는 경제와 금융 분야에서 거품 위에 앉아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한 반박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연준이 금리 인상을 단행해 세계경제가 요동친 것과 관련, “그때 금리를 올렸어야 했느냐”는 질문에는 “당시 미국 경제가 연준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지고 있었다”며 “(12월 금리 인상이) 실수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의회가 우리(연준)에게 부여한 완전고용이라는 목표에 다가가고 있어 지금의 점진적 금리 인상 기조가 적절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원격 화면을 통해 토론에 참여한 그린스펀 전 의장에게 “재임 기간(1987~2006) 동안 ‘경제의 신’으로 불렸던 소감이 어땠느냐”고 묻자 “매우 감사한 말이지만 우리(연준)의 경제 전망 능력에 분명 한계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이어 미국 경제의 최대 장애물로 ‘저성장’을 지적하면서도 “(성장률 제고를 위한) 재정 지출은 (연방정부의) 부채를 늘린다”고 답해 인위적 경기 부양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1979년부터 1987년까지 연준 의장직을 맡아 여론의 질타에도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 금리를 크게 올렸던 볼커 전 의장에게 소회를 묻자 그는 “(당시) 사람들이 우리 (연준 위원들)에게 스스로 목을 매라며 밧줄을 주기도 했다”고 농담을 섞어 말하기도 했다. 반대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례없는 양적완화 정책을 취했던 버냉키 전 의장(2006~2014년 재임)은 “금리를 다시 인상하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내가 (금리 인상 결정을) 할 필요가 없어 천만다행”이라고 답해 폭소를 자아냈다. 한편 시장 전문가 75%는 6월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가 인상될 것으로 전망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이날 전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중랑구 면목동 136번지 일대, ‘봉제·패션 특별지구’로 지정

    중랑구 면목동 136번지 일대, ‘봉제·패션 특별지구’로 지정

    서울 중랑구는 한때 ‘봉제 천국’이었다. 1970년대까지 활황을 누렸던 이곳은 1980년대 이후 인건비가 비싸지고 생산 공장이 중국·베트남 등으로 옮겨가면서 호시절이 끝났다. 그런 중랑이 부활의 계기를 마련했다. 구는 지난 6일 열린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에서 면목동 136번지 일대 29만 2000㎡가 ‘봉제·패션 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됐다고 8일 밝혔다. 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되면서 이 지역에 봉제·패션 업체를 운영하면 용적률, 건폐율, 건물 높이 등에 있어 완화된 규제를 적용받는다. 또 자금 융자 등의 혜택도 있다. 구는 봉제·패션 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개발진흥지구 안에 종합지원센터와 지식산업센터 등을 건립한다. 종합지원센터에서는 지역 업체의 규모, 작업 종목 등 특징을 모아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들기로 했다. 또, 일감을 맡기고 싶어하는 국내·외 구매자의 정보도 DB화한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고객을 찾지 못해 고생했던 영세 봉제업체들이 사업에 도움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중랑구에는 서울시 봉제업체 2만 2517곳 중 2470곳(11%)이 몰려 있어 25개 자치구 중 밀도가 가장 높다. 하지만 종사자 10인 미만의 영세업체가 전체 86%나 되고 대부분 하청받아 일하는 구조여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구는 지구단위계획 등을 세워 서울시 승인을 받을 계획이다. 나진구 중랑구청장은 “이번 지구 지정으로 봉제·패션산업이 지역 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 있도록 관련 사업들을 추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예술이 순수함을 잃었을 때/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세종로의 아침] 예술이 순수함을 잃었을 때/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지난달 24~26일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미술장터 ‘2016 아트바젤 홍콩’에는 세계 미술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유명 갤러리들이 대거 참여해 최고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35개국 239개의 프리미어급 갤러리들이 참여한 이번 페어에서는 특히 세계 굴지의 갤러리 부스에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하종현, 정창섭 등 한국 단색화 화가들의 작품이 내걸려 한국 현대미술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우환의 1970년대 후반 작품인 ‘선으로부터’와 ‘점으로부터’ 시리즈를 보는 심경은 무척 복잡했다. 수억원을 호가하는 거장의 작품 앞에서 감동을 받아야 마땅할 텐데 “이 그림 혹시 가짜 아닌가?” 하는 의구심부터 들었으니 말이다. 상당수의 위작이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첩보를 근거로 경찰이 지난해부터 수사를 벌이고 있고, 해외 유명 아트페어에서 위작인 듯한 그림이 판매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던 터라 몇 군데 화랑이 내건 이우환의 작품 앞에서 자연스레 발길이 머물렀다. 한 외국 갤러리에서 판매 중인 1979년 작 ‘선으로부터’를 요리조리 뜯어보다가 출처를 물었다. 작품의 이력서에 해당하는 프로브넌스에는 일본의 컬렉터에서 도쿄의 갤러리를 거쳐 유럽의 개인 컬렉터에게 팔린 작품이라고 적혀 있었다. 스위스 복원 전문가의 컨디션 리포트까지 첨부돼 있어 서류상으로는 완벽했다. 이런 서류를 보니 신뢰가 가기보다는 위작을 국제시장에서 ‘세탁’한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것만 같았다. 취재 결과 이 작품 뒷면에 적힌 일련번호 ‘7****2’는 2014년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던 1979년 작품 ‘점으로부터’와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1월 29일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120만 홍콩달러에 낙찰된 이우환 화백의 ‘선으로부터’가 같은 일련번호를 가진 다른 작품이 존재하는 것이 알려져 문제가 됐었다. 또다시 같은 일련번호를 가진 작품이 세계적인 아트페어에 나온 것은 왜일까.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를 나란히 내건 도쿄의 한 갤러리 주인은 꼬치꼬치 묻기 시작하자 “작가가 본 것 중에 가짜가 하나도 없었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왜 그런 소문이 도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럼에도 경찰의 압수품 감정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은 이번 아트페어에 나온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를 살펴본 뒤 “그림 그린 방식이나 색깔, 사인이 위작으로 판명된 것들과 너무 흡사한 것이 있다”고 했다. 미술관이나 슈퍼 컬렉터들을 주고객으로 하는 세계 굴지의 갤러리들이 ‘위작’을 판매하고 있다면 문제는 정말 심각해진다. 생존 작가의 위작 스캔들이 시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적 망신에 더해 겨우 불붙기 시작한 K아트의 부흥은 찬물을 뒤집어쓰게 된다. 작가의 단호함이 결과적으로 위작범들에게 날개를 달아 준 셈이 됐다. 작가는 강 건너 불 바라보듯이 가끔 화랑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고 역정을 내고 말 일이 아니다. 위기 의식을 갖고 지금이라도 지혜로운 행동을 해야 한다. 그래야 작가 자신도 살고, 한국 미술도 살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lotus@seoul.co.kr
  • 평생 양복 세 벌뿐이었던 ‘미원의 아버지’

    평생 양복 세 벌뿐이었던 ‘미원의 아버지’

    35세때 일본서 조미료 공법 배워… 1956년 ‘국민 조미료’ 미원 탄생 끝없는 연구·검소한 생활 존경받아 1955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무역업에 종사했던 35세의 사업가는 한국 식탁을 일본 조미료 ‘아지노모토’가 점령한 것을 보고 반감을 느꼈다. 순수 우리 기술로 조미료를 만들어 해외에 수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무역업을 접고 그 길로 일본으로 떠나 조미료 제조 공법을 익혔다. 1년여의 시간을 들여 연구한 끝에 그는 부산으로 돌아와 495㎡ 넓이의 우리나라 최초의 조미료 공장이자 대상그룹의 전신인 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여기서 한국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미원’이 만들어졌다. 지난 5일 만 96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미원의 아버지’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주 이야기다. 1920년 전북 정읍에서 농사를 짓던 부친 임종구씨와 모친 김순례씨 사이에서 5남 1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난 고인은 이리농림학교 졸업 후 고창군청 공무원을 지냈다. 1942년 전북도청 직원으로 근무하던 고 박하경씨와 백년가약을 맺었고 2남 1녀를 낳았다. 공무원에 이어 사업가와 식품연구가로 변신한 고인은 1956년 만든 미원을 바탕으로 대상그룹을 창립했다. 미원은 1960년대 초반 CJ제일제당의 미풍과 ‘조미료 전쟁’을 펼쳤다. 당시 미풍이 가격을 확 내리는 전략을 세웠다면 임 회장은 오히려 높은 품질에 따른 고가 전략으로 승기를 잡았다. 미원은 1970년대부터 인도네시아, 일본, 홍콩 등으로 수출됐다. 대상그룹은 이후 조미료 외에도 각종 장류와 냉동식품, 육가공식품 등을 만드는 종합식품기업으로 성장했다. 고인은 회장 재직 당시 조용히 자신의 공간에서 실험과 연구에만 몰두했다. 1987년 그룹 회장직을 장남인 임창욱 명예회장에게 물려주고 일선으로 물러난 이후에도 조용히 연구에만 신경 썼다. 고인은 특히 검소한 생활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지방 출장 시 5만원이 넘는 숙소에는 묵지 않았고 승용차보다는 전철을 더 많이 애용했다. 고인이 임원들에게 벤츠 승용차를 선물 받았지만 시승도 하지 않고 환불했다는 일화도 있다. ‘평생 통틀어 한 번에 양복 세 벌, 구두 두 켤레 이상을 소유했던 적이 없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대상그룹 본사가 1973년 준공 후 지금까지 한 번도 외관을 바꾸지 않은 것도 그의 검소함을 말해준다. 그는 자신에게 쓰는 것을 아꼈지만 1971년 사재를 출연해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등 부의 사회 환원에는 누구보다도 앞장섰다. 검소했던 고인의 유지에 따라 장례식도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러진다. 부고도 별도로 내지 않고 조문객과 화환도 받지 않는다. 유가족으로는 아들인 임창욱 대상 명예회장과 임성욱 세원그룹 회장, 딸 임경화씨와 사위 김종의 백광산업 회장, 손녀인 임세령 대상 전무와 임상민 상무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8일 오전 7시, 장지는 전북 정읍 선영이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여기는 남미] 석유보다 물이 귀한 베네수엘라…수돗물 대란

    [여기는 남미] 석유보다 물이 귀한 베네수엘라…수돗물 대란

    휘발유보다 물이 비싸다는 베네수엘라. 그래도 물이 귀한 줄 모르고 살던 베네수엘라 국민이 이젠 "휘발유보다 물이 귀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지독한 가뭄으로 물이 귀해지면서 수돗물 대란이 벌어지고 있는 탓이다. 인구 50만의 인기 관광지 마르가리타 섬에선 최근 들어 물을 구경하기 힘들어졌다. 혹독한 가뭄으로 저수지가 말라버리면서 수돗물 공급이 사실상 전면 중단됐기 때문이다. 마르가리타 섬에선 21일마다 한 차례씩 수돗물이 공급된다. 기본적인 생활을 꾸리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수돗물이 공급되지 않자 공공건물이나 물을 운반하는 탱크차는 '물도둑'의 표적이 되고 있다. 탱크차를 공격해 물을 훔친 적이 있다는 건설노무자 페드로 피렐라는 "물이 그야말로 금값"이라고 말했다. 가뭄으로 부족해진 건 물뿐 아니다. 전기가 끊기는 일 또한 다반사다. 수력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워낙 큰 탓이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선 최근 전력이 모자라 백화점이 폐점시간을 앞당겼다. 영화관도 오후 6시에 마지막 상영을 하곤 문을 닫는다. 생산시설도 제대로 돌리지 못해 직원들이 일찍 퇴근하는 공장이 부지기수다. 공립학교는 단축수업을 하고 학생들을 서둘러 귀가시키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생산되는 전기의 65%를 책임지고 있는 엘구리 수력발전소. 1970년대 완공된 이 발전소는 전기생산을 시작한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저수지 수위가 하루 15cm씩 낮아지면서 전기를 맘껏 생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전문가들은 "발전소 가동을 위협하는 위험수위까지 이제 고작 60cm가 남았다"며 위기감을 감추지 못한다. 정상적인 수력발전이 불가능해지면서 카라카스에선 "매일 8시간씩 전기가 끊길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재앙의 원인은 엘니뇨가 부른 가뭄이다. 중남미 언론은 "이상기후로 가뭄이 시작되면서 수력발전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가 최악의 에너지대란에 직면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정부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공공부처와 기관에 물과 전기를 아껴쓰라는 명령을 내리고 에너지절약 광고를 내는 게 전부다. 베네수엘라 야권은 "수돗물과 전기대란이 발생한 데는 자연적 원인도 있지만 무엇보다 문제는 부패"라며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에 비난을 퍼붓고 있다. 사진=우르헨테24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사이언스 톡톡] 식목일의 과학

    [사이언스 톡톡] 식목일의 과학

    안녕? 내 이름은 ‘피누스 덴시플로라’, 흔히들 소나무라고 부르지. 반가워. 다들 알다시피 난 겨울에도 푸른 빛을 유지하는 상록수야. 다 자라면 키 20~35m, 지름 1.8m 정도의 아름드리나무가 되지. 내가 사는 곳은 한국과 일본, 중국 북동부, 러시아 우수리강 일대야. 햇빛만 들면 어디서든 잘 자라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가 됐지. 실제로 우리나라 산림의 43% 가까이를 나와 잣나무 같은 침엽수들이 차지하고 있어.●10년간 우리나라 소나무숲 10%↓ 최근 10년간 우리나라 소나무 숲이 10% 가까이 사라졌다는 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을 거야.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때문에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소나무 재선충병이 계절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기승을 부리는 탓이야. 사라지는 만큼 많이 심어주면 될 텐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아. 내일은 우리 잔칫날인 ‘식목일’이야. 하지만 2005년부터 공휴일에서 빠지면서 나무 심기가 많이 줄어든 것 같아 안타까워. ●성종의 선농단농사가 식물일 기원 식목일은 1343년 조선 성종이 세자와 문무백관들을 데리고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직접 밭을 일구기 시작한 것과 1910년 순종이 ‘친경제’(親耕祭)를 열어 손수 나무를 심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래. 24절기 중 다섯 번째이자 ‘날이 풀리고 화창해지기 시작한다’는 청명·한식과 식목일이 겹치는 이유는 이때가 나무 심기 적합한 날씨였기 때문이라는군. ●온난화 탓 ‘적정 식목일 3월 17일’ 국립산림과학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평균 기온이 6.5도일 때가 나무 심기에 가장 적당하대. 미 군정청이 식목일을 공휴일로 정한 1946년만 해도 서울, 강릉, 광주, 대구, 부산, 제주 등 6개 도시의 식목일 평균 기온이 10도 이하로 나무 심기에 적당했지만 1970년대 말부터는 식목일 평균기온이 10도를 웃돌기 시작했다는 민간기상업체의 조사 결과를 얼마 전에 봤어. 서울의 경우 일평균기온이 나무 심기에 적절한 6.5도가 되는 때는 식목일보다 20일 가까이 이른 3월 17일쯤이래. 식목일을 앞당겨야 한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지? 지구 온난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녹지공간 확보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잖아. 관련해서 최근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하나 봤어. 영국 지속가능성 산림학·기후변화 연구센터의 키에런 도익 박사팀이 임학 분야 국제학술지 ‘도시임학 및 원예학’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이었는데, 도심의 자투리땅을 이용해 나무를 심거나 식물을 키우면 열섬현상은 물론 공기오염까지 줄일 수 있대. ●대형녹지보다 다수의 중소형 녹지 사실 그동안 런던 중심부에 있는 하이드파크(142만㎡) 같은 대규모 녹지가 도시 열섬현상을 줄이고 공기를 정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는 많았지만 0.2㏊(2000㎡)~12.1㏊(12만 1000㎡) 수준의 소형 또는 중형녹지의 효과에 대한 분석은 이번이 처음이라더군. 녹지공간이 넓은 것도 좋지만 도심 곳곳에 중소형 녹지가 많은 것이 대형 녹지공간이 덜렁 하나 있는 것보다 훨씬 낫대. 한국의 경우 본격적으로 산림이나 녹지를 가꾸고 보호한 것은 불과 30~40년밖에 안 되잖아. 푸른 산들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북유럽 같은 임업선진국에 비하면 산림이 빈약한 것은 사실이잖아. 예전 식목일 때처럼 멀리까지 나가서 나무를 심는 것보다는 살고 있는 곳 근처나 집 안에서 작은 나무를 키워 녹지를 만들어 보는 건 어때?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씨줄날줄] 열린사회와 퀴어 축제/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열린사회와 퀴어 축제/박홍환 논설위원

    뮤지컬과 영화로 대성공을 거둔 ‘레미제라블’의 삽입곡 ‘레드 앤드 블랙’은 후렴부의 색깔 규정에서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빨강-분노한 이들의 피, 검정-지나간 암흑시대/ 빨강-여명을 맞는 세상, 검정-결국 막 내리는 어두운 밤.” 우리 선조들은 청·백·적·흑·황을 이른바 오방(五方)색이라 하여 천지사방과 세상의 중심을 표현했다. 인류는 색깔에 의미를 부여해 희로애락, 만사를 담았다. 가슴 설레게 하는 분홍색과 무지개색에는 슬픈 사연이 숨겨져 있다. 이른바 핑크 트라이앵글과 레인보 깃발은 모두 동성애 인권운동의 상징이다. 분홍색 역삼각형인 핑크 트라이앵글은 원래 나치 독일이 수용소에서 동성애자를 식별하기 위한 코드로 사용했다. ‘저열인간’을 탄압하는 일종의 주홍글씨였던 셈이다.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색깔로 표현하지만 동성애 사회의 무지개 깃발에는 남색이 빠져 있다. 1970년대 미국에서 고안된 상징 깃발에는 분홍과 남색이 있었지만 당시 분홍은 상업용 도료가 시판되지 않아 제외했고, 남색은 최초의 동성애 커밍아웃 시의원이 저격당한 것을 계기로 사라졌다. 사라진 남색은 조화(調和)를 상징한다. 동성애를 벽안시하는 사회에 대한 항거로 볼 수 있다. 1969년 6월 28일 새벽 뉴욕 맨해튼의 게이바 스톤월에서 역사적인 동성애 인권운동의 계기가 만들어졌다. 동성애 사회에서는 스톤월 항쟁이라고 말한다. 이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경찰의 단속이 있었지만 동성애자들과 주변 군중들까지 똘똘 뭉쳐 저항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뉴욕에서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동성애자 퍼레이드가 펼쳐졌고, 그 물결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뉴욕의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 또는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프라이드 퍼레이드’, 호주 시드니의 ‘마디그라 퍼레이드’, 브라질 상파울루의 ‘파라다 게이’…. 명칭과 프로그램은 다르지만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떳떳이 세상에 나서는, 그래서 스스로 자긍심을 갖는 축제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부터 ‘퀴어(성소수자) 문화축제’라는 이름으로 매년 열리고 있다. 성 정체성에 관한 한 매우 보수적인 탓에 국내에서는 매년 퀴어축제 때마다 큰 논란이 벌어지곤 한다. 특히 지난해 처음으로 서울광장에서 행사가 진행되자 기독교단체를 중심으로 보수세력이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망사 스타킹 등 참여자들의 복장을 문제 삼기도 했다. 올해도 퀴어 문화축제 조직위는 서울광장 사용 신청을 냈다.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도 수용 의견을 밝혔다. 거리 퍼레이드도 진행될 예정이다. 이들을 마귀에 비유하는 반대 함성 또한 거셀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 성소수자 불용은 또 다른 색깔론이다. 우리 사회가 아직 미성숙하다는 방증이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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