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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한웅의 의공학 이야기] 유전자 수술 시대

    [임한웅의 의공학 이야기] 유전자 수술 시대

    A, C, G, T. 이것은 일종의 암호다. DNA가 전하는 신호다. 서로 짝을 이뤄 이중으로 배열된 이 암호에는 생명이 스스로를 복제하고 생화학반응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가 들어 있다. DNA 염기에는 4가지 종류가 있으며 아데닌(A), 시토신(C), 구아닌(G) 그리고 티아민(T)이 그것이다. 이 염기 배열이 만드는 신호로 방대한 양의 유전정보가 전해진다. 20세기 중반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과 같은 과학자들의 경쟁적 연구로 DNA의 나선형 구조가 밝혀진 이래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염기서열에 대한 분자구조적, 생화학적 연구의 길이 활짝 열렸다. 생명의 비밀이 어떤 정보 안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정보인 유전자 염기서열이 생물의 종을 막론하고 서로 호환한다는 것은 커다란 발견이었다. 이런 DNA를 자르거나 잇고 전달할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그 대답을 찾아냈다. DNA를 이어 주는 ‘중합효소’, DNA를 잘라 주는 ‘분해효소’가 발견됐고 특정 염기서열 조각을 만드는 ‘제한효소’도 밝혀냈다. 1970년대에 유전자의 재조합에 성공했고 유전자를 복제하는 ‘클로닝기법’이 나왔다. 최근에는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 혁명’이 생명공학계의 뜨거운 화두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생명과학자들에게는 혁명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위력적인 기술이다. ‘유전자 마법지팡이’라고도 불린다. ‘유전자 가위’는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이 붙인 이름인데, 이 효소 기능을 매우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유전자 가위 기술 중 3세대는 ‘크리스퍼’다. 크리스퍼는 세균에서 유래한 ‘Cas9’라는 단백질에 RNA를 붙여 만든 유전자 가위다. 이전 세대 유전자 가위보다 건당 비용이 30달러 정도로 싸고 빠르며 오류가 적어 비약적인 성과를 보였다. 유전자 가위로 암과 같은 질병을 정복할 수 있을까. 이제는 여러 길이 보인다. 지난해 8월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인간 배아에서 ‘비후성심근증’과 같은 유전질환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도려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 연구는 김 유전체교정연구단장과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미국 보건과학대 교수가 주도했다. 사이언스지에 따르면 지난해 말 미국 국립보건원(NIH) 자문위원회는 암 환자를 치료하는 데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적용하는 펜실베이니아대 연구팀의 제안을 승인했다. 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 연구에는 생명윤리 문제가 뒤따른다. 현재 국내에서는 관련 연구가 금지돼 있기 때문에 국내 연구진은 해외 연구팀과 공동연구를 통해서만 실험을 진행할 수 있다. 연구 속도를 규제와 법률이 따라잡는 것은 어렵다. 연구 성과와 효용에 맞춰 규제에 변화를 주는 방식은 자칫 국제적 경쟁력 약화와 개발동기 저하라는 된서리를 맞기 십상이다. 모처럼 얻을 수 있었던 원천기술의 선점에서 밀려난다면 그것이 주는 영향은 길고 강력할 것이다. 과거 사람의 몸에 칼을 대는 수술이 윤리적, 학문적으로 의문의 대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시험관 아기나 정자 보관도 초기에는 윤리적 문제로 찬반이 엇갈렸던 기술이었다. 과학문명은 과학자들의 순수한 열망, 더 나은 삶을 원하는 인간의 소망이라는 세포들이 이루고 있는 거대한 생명체다. 과학문명 발전은 이 생명체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보이기도 한다. 보편적 정서에 따라 유전자 재조합 기술 적용에 대한 규제는 하더라도 기초 연구는 할 수 있도록 합법화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안전한 길일 수 있다.
  • [최만진의 도시탐구] 불쏘시개 나라 대한민국

    [최만진의 도시탐구] 불쏘시개 나라 대한민국

    서기 64년에 발생한 로마의 화재는 역사의 숱한 뒷이야기를 남겼다. 소문이기는 하나 폭군 네로 황제가 방화를 하고 리라를 켜면서 화염과 불꽃을 노래했다고 한다. 당시 화재로 200만명이 집을 잃었고 로마시의 3분의2가 잿더미로 변했다고 한다. 네로는 그 원인으로 기독교인들을 지목했고 사자에게 던지는 등의 처참한 박해를 가했다. 이처럼 화재는 큰 시련과 도전을 던져 주는 재해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최근의 제천 화재는 우리에게 또 한번의 좌절을 안겨 주었다. 이는 그 무엇보다도 화재나 건축물의 규모에 비해 인명 피해가 컸기 때문이다. 또한 드라이비트 건축물의 위험성이 누누이 지적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의한 대형 화재를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드라이비트는 건물 외벽을 단열하고 마감하는 가장 흔한 건축 자재다. 구조는 단열 스티로폼, 충격 보강 및 균열 방지를 위한 유리섬유, 마감재로 이루어진다. 이는 원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 독일에서 빠른 도시 재건을 위해 개발된 시공 시스템이다. 단열성이 뛰어나면서도 저렴하고 손쉽게 시공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 공법은 전 유럽으로 전파됐고, 1970년대에는 미국으로도 수출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좋은 점 많은 드라이비트의 취약점은 바로 화재에 있다. 특히 단열 스티로폼이 거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2010년 해운대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는 이를 실감하게 한다. 당시 4층에서 번진 불길이 스티로폼을 타고 38층 높이의 꼭대기까지 번지는 데는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2015년에도 동일 공법을 사용한 의정부의 한 10층 아파트가 순식간에 전소돼 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를 계기로 현재는 6층 이상의 건축물에서는 난연 및 불연성 외장재를 사용하는 것을 건축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제천 화재 건물은 이 법이 시행되기 바로 직전에 지어져 이를 피해 나갔다. 스티로폼의 또 하나 문제는 화학재료에서 나오는 유독가스다. 불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으로 수분 안에 사람을 질식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실제로 이번 제천 화재의 여성 목욕탕의 많은 희생자들은 이와 같은 건축자재가 내뿜는 유독가스에 중독돼 사망했다. 외장재와 내장재에 난연 혹은 불연 처리가 돼 있었다면 대부분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런데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드라이비트를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품 옷과 장식 그리고 자동차를 사는 데는 많은 돈을 투자하고 열을 올리면서도 집을 짓는 데는 매우 인색한 편이다. 특히 상가 등의 분양 목적을 위한 건축물을 짓는 데는 최소 투자로 최대한의 이익을 얻으려고 저렴한 시공 방법만을 찾는 데 혈안이 되기가 일수다. 필자에게 집을 짓기 위해 자문하러 온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돈이 부족하다고 한다. 하지만 진짜 돈이 없는 사람들은 땅도 건물 지을 돈도 없다. 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앞둔 우리는 이제 건축물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건물이 수익과 소득 창출 그리고 재산 증식의 중요한 수단인 것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건축물은 우리 모두가 일하고 자고 쉬고 살아가는 기본적인 정주 공간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불난 집들을 TV에서 보면서 네로처럼 탄식할 것이 아니라 내 집 내 건물부터 안전하게 지어야 한다. 이를 간과할 때 우리는 로마의 화재와 같은 큰 재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신해철, 택시운전사 그리고 1987… 80년대에 바침

    신해철, 택시운전사 그리고 1987… 80년대에 바침

    “박 대통령께서는 총탄을 맞으신 직후 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에 의해서 급거 군서울병원에 이송되었으나, 병원에 도착하시기 직전에 운명하신 것으로 원장의 진단이 내려졌습니다.”2014년 10월 의료사고로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가수 고(故) 신해철씨가 1996년 내놓은 노래 ‘70년대에 바침’은 박정희 전 대통령 피격 사망 소식을 전하는 당시 정부 발표 내용으로 시작된다. ● 한발의 총성으로 막 내린 1970년대,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 서울 궁정동 안전가옥에서 가수 심수봉과 여대생 등을 불러 술자리를 즐기던 중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탄에 맞고 숨을 거뒀다. 김재규는 이후 법정에서 “민주화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나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저격한 것이다”라고 외쳤다.당시 11살이던 신해철은 훗날 노래를 통해 이렇게 회상했다.“한발의 총성으로 그가 사라져간 그날 이후로 70년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지. 수많은 사연과 할 말은 남긴 채. 남겨진 사람들은 수많은 가슴마다에 하나씩 꿈을 꾸었지. 숨겨왔던 오랜 꿈을.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가...” 신씨의 회상처럼 박정희 군사정권의 몰락으로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민주화를 향한 기대감이 더욱 커져갔다. 그러나 이 노래는 이렇게 끝난다. “친애하는 민주정의당 동지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를 빛내주신 각계 귀빈 여러분. 새역사, 새시대, 새정치를 개척해 나가자는 당원 동지 여러분들의 부름을 받고 나는 오늘 심심한 사유와 무거운 책임감을 함께 느끼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한 정당의 총재라는 위치, 그리고 대통령 후보자라는 위치가 얼마나...”국민들은 민주화를 꿈꿨지만 그 결과는 신군부 전두환 정권 등장이었다.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일으켜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은 자신이 대통령에 오르기 위해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다. 그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를 발동하고, 이튿날인 18일 민주화운동이 들끓었던 광주에 계엄군과 공수특전여단을 투입해 국민을 향한 잔혹한 학살까지 자행했다. ● 전두환과 1980년 5월 광주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은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 보다는 영화를 통해 국민에게 널리 알려졌다. 1987년 단편 ‘칸트씨의 발표회’를 시작으로 이후 ‘꽃잎’ ‘박하사탕’ ‘화려한 휴가’ ‘26년’ 등 영화인들은 저마다의 관점과 방식으로 정권의 폭압성과 민중의 저항을 그렸다. 영화 관객, 더 넓게는 국민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영화는 단연 2017년 8월 개봉한 ‘택시운전사’가 꼽힌다.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이 큰돈을 벌기 위해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1980년 5월 광주로 향했다가 그곳에서 벌어지는 국가의 폭압과 학살을 목격하는 내용을 담은 이 영화는 극장에서만 누적 관객 1218만명 이상을 기록하며 역대 국내 개봉 영화 관객수 9위에 올랐다. 이 영화는 ‘광주 5·18’이라는 시대적 배경 외에도 상당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독일 제1공영방송 ARD 소속 일본 도쿄 특파원이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는 1980년 5월 19일 오전 ‘계엄령이 내려진 광주에서 시민과 계엄군 충돌’이라는 짤막한 내용의 일본 언론보도를 보고 당일 오후 서울로 향했다.서울에 도착한 힌츠페터는 이튿날인 20일 오전 자신이 묵었던 호텔의 택시를 타고 광주로 향했다. 영화 속 ‘만섭’은 이후 실존인물 김사복으로 확인됐다. 김사복씨의 도움으로 광주 현지 취재에 성공한 힌츠페터 기자는 이를 바탕으로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 광주의 참혹한 진실을 세계에 고발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진실은 한국에만 알려지지 않았고, 당시 한국에서는 국가의 감시를 피해 대학가와 성당 등에서만 힌츠페터의 다큐멘터리가 비밀스럽게 상영됐다. 부산에서는 1987년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이 영상이 상영됐는데, 당시 이를 주도한 인물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다. ● ‘탁’ 치니 ‘억’하고 죽어야만 했던 1987년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관람하면서 정치권의 화두로도 떠오른 영화 ‘1987’ 속 대사다. 이 영화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부터 이한열 열사 사망까지 실제 1987년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았다. 1987년 1월 13일 밤 12시 무렵.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은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들에게 연행됐다. 당시 민주화운동으로 수배 중이던 박종철의 선배 박종운을 잡기 위해서였다.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간 박종철은 경찰의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에도 선배 박종운에 대해 진술하지 않고 저항하다 의식을 잃었고 14일 오전 11시 45분쯤 중앙대 용산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경찰은 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으나 중앙일보 기자가 검찰을 통해 ‘서울대생 사망 사건’의 단서를 포착했고, 15일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에 16일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은 기자회견에서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했고, 박종철군의 친구 소재를 묻던 중 책상을 ‘탁’ 치니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했다”라고 발표했다. 경찰은 사망 당일 밤 고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박종철의 시신을 화장하려 했으나 이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최환 검사는 부검을 지시하며 ‘사체보존명령’을 내렸다. 현재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인 최 변호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딱 보는 순간 ‘이건 고문이다’는 직감이 왔다”라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김승훈 신부는 그해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모미사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전모를 폭로했다.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 등 대공간부 3명이 이 사건을 축소·조작했고, 고문 가담 경관은 2명이 아닌 5명이라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를 계기로 전국에서 ‘고문 살인 규탄 및 전두환 정권 퇴진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부산에서는 노무현·문재인 당시 변호사가 이끄는 부산 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 6월 항쟁을 이끌었고, 서울에서는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광장과 거리로 뛰쳐나왔다.6월 9일 서울 연세대에서는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던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한 학생이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이던 이한열이다. 이한열은 한 달 가까이 사경을 헤매다 7월 5일 숨을 거뒀다. 당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진 이한열이 부축당한 채 피 흘리는 사진은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리며 전두환 정권의 폭압성을 세계에 고발했다.전 국민의 거센 저항에 부딪힌 군부정권은 결국 6월 29일 백기를 들었다.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는 이날 국민이 요구한 민주화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6·29 선언에 따라 1987년 12월 16일 직선제 대선이 이뤄지면서 길었던 군사정권 시대가 저물고 민주화가 오는 듯 했으나, 당시 대선에서 민주화 세력의 두 거목 김영삼·김대중 후보가 각각 출마하며 여당 후보인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36.6%라는 역대 대선 최저 득표율로 당선됐다. ‘실질적 민주화’ 역시 5년 뒤로 유예됐다.● 다시 나라다운 나라를 말하다 대한민국은 19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형식적·실질적 민주 국가로 거듭났으나 이후 경제성장과 실용주의를 앞세운 이명박 정부, 과거 박정희 향수와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에 힘입어 탄생한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민주주의의 근간까지 훼손됐다. 결국 헌법까지 유린하며 국정을 흔들었던 박근혜 대통령은 사상 처음으로 탄핵된 뒤 구속됐고, 국민들은 ‘촛불혁명’을 통해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2018년 국민들은 다시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옳았었고, 무엇이 틀렸었는지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까. 모두 지난 후에는 누구나 말하긴 쉽지만 그때는 그렇게 쉽지는 않았지.”신해철씨는 노래에서 1970년대를 ‘옳고 틀림을 말할 수 없었던 시대’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48년이 지난 대한민국의 대답은 무엇일까. 70~80년대 독재권력과 맞서 싸웠던, 이제는 국가 최고 통수권자가 된 문재인 대통령의 대답은 이렇다.“6월 항쟁, 또 그 앞에 아주 엄혹했던 민주화 투쟁의 시기에 민주화 운동하는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말이, 독재권력 이게 힘들었지만 못지않게 부모님들이나 주변 친지들이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느냐’, 그런 말이었다. 지금도 ‘정권 바뀌었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게 있느냐’ 그렇게들 이야기하시는 분도 있다. 이 영화(1987)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사람이 좋다’ 故 김영애, 66년이라는 짧지만 빛났던 인생 재조명

    ‘사람이 좋다’ 故 김영애, 66년이라는 짧지만 빛났던 인생 재조명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 배우 故 김영애의 연기 인생을 재조명한다.14일 방송되는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배우 故 김영애 편으로 꾸며진다. 故 김영애의 빛났던 66년 인생과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은 아들 이민우 씨의 이야기가 시청자를 만난다. ● 별이 지다, 국민배우 故 김영애의 66년 1970년대 트로이카 타이틀을 거머쥐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국민배우 故 김영애. ‘민비’, ‘형제의 강’, ‘로열패밀리’, ‘변호인’ 등 100편이 넘는 드라마, 70편에 가까운 영화에서 대중의 심금을 울렸던 그녀가 지난해 4월, 67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배우 생활 46년의 여정을 국민과 함께한 김영애, 빛나고 치열했던 그녀의 인생을 되돌아본다. ● 故 김영애 씨 아들 이민우, 미국 생활 포기하고 달려올 수밖에 없었던 사연 이민우가 엄마 김영애와 오롯이 함께 보낼 수 있었던 시간은 2년 반뿐. 김영애가 생계를 책임지느라 바쁘게 일을 했던 탓에 어린 시절 모자의 추억은 거의 없다. 사춘기 시절, 김영애와의 갈등으로 쫓겨나듯 파리로 떠난 이민우. 떨어져있던 시간이 아이러니하게 둘 사이의 틈을 메웠다. 미국으로 건너가 일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사는 미래를 꿈꿨다는 그. 영주권을 받기 직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췌장암 재발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엄마 김영애의 전화였다. 그는 미국에서의 생활을 2주 만에 접고 한걸음에 달려와 어머니가 눈을 감은 마지막 날까지 함께 했다. ● 눈감는 순간까지 연기 투혼을 보인 천생배우 故 김영애 200편에 가까운 작품들에서 때로는 순수한 소녀로, 사려 깊은 아내로, 억척스러운 엄마로 배우 김영애는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2012년, 췌장암 판정을 받았을 때에도 그녀는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맡은 역할을 다하기 위해 복대로 배를 싸매고 연기에 임했다. 당시 갈비뼈가 부러지는 고통에도 힘든 내색 없이 작품에 임했다고 한다. 아픔에도 연기하는 어머니를 앞장서서 말렸다는 아들 이민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작품을 하지 않으면 고통스럽다며 눈을 감는 순간까지 열연을 펼쳤다. ● 이민우, 어머니 김영애에게 미처 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 2017년의 마지막 밤, 이민우는 어머니를 추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이민우는 어머니와 절친한 친구들을 초대해 살아생전 어머니께 만들어드렸던 음식들을 대접했다. 그는 어머니 친구들이 전하는 아들에 대한 김영애의 진심을 듣고 눈물을 쏟았다. 마음을 표현하는데 서툴러서 모자. 아들 이민우는 어머니와 함께한 2년 반 짧은 시간에 미처 다 전하지 못한 진심을 용기 내 고백한다. 故 김영애의 66년 인생과 아들 이민우의 어머니를 향한 고백은 14일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진=MBC 김혜민 기자 khm@seoul.co.kr
  • 여행길에서 만난 예술…미술관 품은 인천공항

    여행길에서 만난 예술…미술관 품은 인천공항

    높이 18.5m의 거대한 모빌이 다채로운 푸른빛으로 생동하며 시선을 압도한다. 중력과 공기의 흐름에 따라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다양한 형태의 구(球)들이 미지의 장소로 떠날 여행자들에게 설렘을 불어넣는 듯하다.떠남과 당도,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는 공항.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수직으로 광활하게 뻗은 정적인 공간을 미세한 움직임으로 끊임없이 변주하는 이 작품은 프랑스 대표작가 자비에 베이앙의 ‘그레이트 모빌’(거대한 모빌)이다. 오는 18일 문을 열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에 들어서자마자 여행객들은 이 작품과 마주하게 된다. 이제 제2여객터미널을 찾을 여행객들은 이렇게 만남의 장소를 정할지도 모르겠다. “그 커다란 파란 모빌 앞에서 만나.” 공항을 오가는 이들에게 하나의 랜드마크가 되는 것. 베이앙의 바람이기도 하다. “공항은 여행자로서의 설렘과 흥분으로 예술 작품을 경험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국내 작가 지니 서의 말이 제2여객터미널에서 그대로 실현됐다. 설치 미술, 미디어 아트, 조각 등 국내외 작가 작품 18점을 품은 ‘아트포트’로 꾸며졌기 때문이다.●베이앙 “시적인 경험 주고 싶어” 김혜진 인천공항 여객서비스팀 과장은 “공항은 여행객들이 3~5시간은 머물러야 하는 곳인데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는 한정돼 있어 2010년 이후 세계적인 공항들이 미디어 아트, 설치 미술 등을 경쟁적으로 도입하며 공항을 문화복합공간으로 만드는 추세”라며 “지난해 10월 제4터미널을 연 싱가포르 창이공항이나 미국 LA공항, 네덜란드 스키폴공항 등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공항 개관에 앞서 11일 한국을 찾은 베이앙은 “내가 어릴 적 1960~1970년대만 해도 여행은 낭만, 호기심, 두려움이 공존하는 매혹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너무도 흔한 것이 되어버린 여행에 내 작품을 통해 시적인 경험을 안겨주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운영작가이기도 한 그는 2000년대부터 현대미술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켜 왔다. 사람의 신체나 동물을 감각적이고 압축적인 다면체로 빚어내는 조각이 유명하나 모빌, 판화, 회화, 영상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든다. 전 세계 다양한 기관과 공공장소에 작품이 설치돼 있지만 그의 작품이 공항에 설치되는 건 인천공항이 처음이다. 출국장을 지나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면 여행객들의 주요 동선 곳곳마다 작품들과 마주할 수 있다. 면세점, 식당, 카페들이 즐비하게 채워진 탑승 게이트 지역에 늘어선 19개의 아트 파빌리온(독립 구조물)에는 지니 서의 ‘윙스 오브 비전’이 펼쳐진다. 구름의 다채로운 변주와 색채 변화를 통해 동편에는 신선하고 따사로운 아침 하늘을, 서편에는 저녁노을의 매혹적인 빛을 담아낸 작품으로 하늘로 향하는 여정을 기꺼이 기다리게 한다. ●지니 서·율리어스 포프 등 참여 순식간에 수만 개의 물방울들이 폭포수처럼 떨어지며 전 세계 9개 언어의 단어들을 나타내고 사라지는 독일 미디어 아트 작가 율리어스 포프의 작품 ‘빗. 폴’의 물 글씨는 수하물 수취구역에서 지루함과 기대감, 약간의 두려움으로 기다릴 여행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긴다. 실시간으로 전 세계 주요 뉴스 사이트와 연결된 통계 알고리즘 프로그램을 통해 실시간 주요 검색어를 드러내는 만큼 이 찰나의 언어들은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소비하는 정보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한다. 광화문, 구 서울역사, 독립문 등 서울의 역사를 상징하는 주요 건물을 다양한 색채의 철제 부조로 드러낸 김병주의 작품은 서울에 대한 첫인상을 아로새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분권광장] 진정한 지방분권을 위해 스스로 역량 키워야/이재영 전남도지사 권한대행

    [분권광장] 진정한 지방분권을 위해 스스로 역량 키워야/이재영 전남도지사 권한대행

    지난해, 촛불이 타올랐다. 국정농단에 대한 뜨거운 분노였고, 적폐를 청산하자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촛불혁명으로 새 정부가 출범했고, 국민은 자신감을 키웠다. 지방분권 개헌을 원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지방분권에 대한 의견을 모으고 있는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우리의 지방자치는 어느 만큼 와 있는지 되돌아보았으면 싶다. 앨빈 토플러는 지방분권에 대해 “미래의 정치 질서이지만 적과 동지가 분명하지 않은, 전선이 따로 없는 힘겨운 전쟁”이라고 말했다. 분명 필요하지만 실현되기까지 길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그 점에서 대한민국 지방자치는 아직 ‘전쟁 중’이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하고 사반세기가 넘었지만 갈 길이 멀다. 지자체의 인사, 조직, 재정권한이 제한되어 있고 재정자립도 역시 열악하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많은 기초자치단체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 또한 지방자치 발전에 걸림돌이다. 지방분권 개헌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이때, 정작 지방자치는 길을 헤매고 있다. 안정적이고 실질적인 지방자치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기반 구축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지만 그중에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 시스템 구축, 지방재정 강화와 책임성 확보, 지방공무원의 역량 강화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진정한 지방자치 실현을 위한 길은 가까이에 있다. 주민, 공무원 등 지방자치 주체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일본에 좋은 예가 있다. 규슈 지방 유후인이라는 마을의 주민들 이야기다. 이곳 주민들은 1970년대 거대한 골프장으로 바뀔 운명에 놓였던 마을을 힘을 모아 지켜 냈다. 이후에도 주민들은 ‘내일의 유후인을 생각하는 모임’을 통해 마을 가꾸기에 적극 나섰다. 마을 대표 길을 아름답게 만들고, 상가 간판도 예술작품처럼 꾸몄다. 문 닫는 골프장이 늘고 있는 요즘, 유후인은 일본 젊은이가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마을이다. 한국에도 주민 중심 단체들은 있다. 자치단체 읍면동의 주민자치위원회는 주민이 직접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장으로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다만, 활동 영역이 제한적이다. 행정을 이끈다기보다 부족한 부분을 돕는 정도이다. 진정한 지방자치를 위해서는 이런 단체들의 권한을 지금부터 조금씩 늘려 역량을 스스로 키우도록 해야 한다. 나중에 큰 권한을 받았을 때 혼란이 없도록 지금부터 연습하는 것이다. 지방분권으로 지방의 권한과 자율성을 늘리는 만큼 그에 걸맞은 재정능력과 그에 따른 책임도 강화해야 한다. 지방정부가 실질적으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지역별 불균형과 재정 편향성에 대한 조정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 재정과 행정 관련 정보를 투명하고 상세하게 공개해 주민의 정책참여가 활성화될 수 있어야 한다. 공무원도 마찬가지로 역량을 키워야 한다. 지방분권이 되면 공무원의 업무와 재량권이 늘어나는 만큼 직무능력과 전문성이 요구된다. 바른 공직관을 지닌 유능한 인재를 뽑는 채용 시스템을 만들고 직군과 직렬별로 전문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근무 연차에 따른 맞춤형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주민이 마을 발전을 위한 의견을 내놓았을 때 공무원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열린 행정이 필요하다. 주민과 행정 사이에 벽을 허무는 것이다. 지방분권은 개헌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을 이끌고 나갈 주체의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 주민과 행정이 꾸준히 역량을 키우면서 지방분권을 방해하는 잘못된 문화들을 뿌리 뽑아 나가야 한다. 바로 그 자리에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가 싹을 틔울 것이다.
  • 올 서점가 ‘주옥같은 작품 ’ 쏟아진다

    올 서점가 ‘주옥같은 작품 ’ 쏟아진다

    윤흥길·박민규·은희경·하성란·조남주…중견·여성·스타작가 신작 잇따라 선보여줄리언 반스 등 외국작가도 새 작품 출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문학계에는 풍성한 한 상이 차려진다. 굵직한 자취를 남긴 원로·중견 작가들이 오랜만에 신작으로 독자들을 만나는가 하면 지난해 돋보였던 여성 작가들의 활약이 올해도 이어진다. 믿고 보는 외국 작가들의 작품도 대거 대기 중이다.우선 원로·중견 작가들이 오랜만에 신작을 내며 문학계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는 올해 등단 50년을 맞은 윤흥길 작가다. 올 하반기 20년 만에 발표하는 5권짜리 대하 장편소설 ‘문신’(문학동네)에서 일제 말기 한반도를 배경으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야기꾼 성석제도 4년 만에 장편소설 ‘왕은 안녕하시다’(문학동네)를 상반기에 선보인다.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연재한 작품으로 조선 숙종조를 배경으로 우연히 왕과 의형제를 맺게 된 주인공이 시대의 격랑 속에서 왕을 지키기 위해 종횡무진하는 모험담을 특유의 입담으로 펼쳐 낸다. 윤대녕 작가는 ‘도자기 박물관’(2013) 이후 오랜만에 새 소설집을 펴낸다. 이승우 작가는 하반기에 산문집 ‘작가일기’(은행나무)로 독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독자들에게 꾸준하게 사랑받는 스타 작가들의 작품도 반갑다. 한동안 뜸했던 박민규 작가는 위즈덤하우스의 웹소설·웹툰 플랫폼인 ‘저스툰’에서 오는 3월부터 연재하는 ‘코끼리’를 가을쯤 단행본으로 묶어 낸다. 1970년대 지방도시 노름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장르적 성격의 장편소설이다. 입담 좋은 이기호 작가는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한정희와 나’를 비롯한 7편을 묶은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문학동네)를 상반기에 출간한다. 지난해 문학계를 강타한 여성 작가들의 목소리는 올해도 두드러질 전망이다. 은희경 작가는 ‘태연한 인생’(2012) 이후 6년 만에 장편소설 ‘빛의 과거’(문학과지성사)를 하반기에 낼 예정이다. 계간 문학과사회에 연재 중인 작품으로 1970년대 여자대학교 기숙사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8년 만에 장편소설을 내는 하성란 작가는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알게 된 인간의 비밀을 담은 ‘정오의 그림자’(은행나무)를 비롯해 창비의 네이버 블로그 ‘창문’에 연재한 ‘여덟 번째 아이’, 2010년 웹진 문지에 연재한 ‘여우 여자’(문학과지성사)를 줄줄이 펴낸다. 지난해 ‘82년생 김지영’으로 신드롬을 몰고 다닌 조남주 작가는 올해 선보이는 소설집(제목 미정·다산북스)에서 10대부터 70대 여성들의 삶을 다룬다. ‘너무 한낮의 연애’,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등 소설집으로 젊은 독자들로부터 주목받은 김금희 작가는 상반기에 첫 장편 소설 ‘경애의 마음’(창비)을,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로 7만 5000부라는 판매 부수를 올리며 화제를 모은 최은영 작가는 하반기에 두 번째 소설집을 선보인다.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외국 작가들의 작품도 서점에 진열된다. 서늘한 통찰력과 지적인 위트로 유명한 영국 문학의 제왕 줄리언 반스의 적나라한 연애소설 ‘단 하나의 이야기’(가제·다산북스)가 출간된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문학 세계로 주목받는 폴 오스터의 작품 중 가장 분량이 긴 소설이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작품 ‘4 3 2 1’(열린책들)도 하반기에 출간이 예정돼 있다. 주인공 아이작 퍼거슨의 동시적이고 독립적인 4개의 삶을 다룬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최고의 소설로 꼽아 화제가 된 소설 ‘운명과 분노’의 작가 로런 그로프의 2012년 작품인 ‘아르카디아’(문학동네)도 독자들을 만난다. 1970년대 히피 문화가 득세하던 시절 뜻 맞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대안공동체 ‘아르카디아’에서 자란 ‘비트’라는 남자의 40년간의 삶을 좇는다. 2016년 별세한 움베르토 에코의 유작 ‘제0호’(열린책들)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열린책들), 오르한 파무크의 ‘빨간 머리의 여인’(민음사)도 줄줄이 출간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통일 후 회수 가능… 英, 40년 넘은 北 부채 탕감 취소”

    영국 정부가 40년 넘은 북한의 빚을 탕감해 주려다 남북한이 통일된 뒤 한국 정부로부터 대신 받게 될 것을 기대하고 이를 취소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VOA가 단독 입수한 영국 수출금융청(UKEF) 자료에 따르면 UKEF는 2013년 5월 북한에 빌려준 586만 4356파운드의 회수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 냈다. 이는 1970년대 북한에 빌려준 뒤 40여년간 받지 못한 비용으로, 현재 가치로는 793만 달러(약 84억 5000만원) 정도다. 그러나 오랫동안 북한이 부채 상환 노력을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포기하기로 했다. 영국 철강업체인 GKN사는 1972년 북한의 석유화학단지 프로젝트에 786만 파운드를 투자했고 북한 측은 당시 총액의 20%와 반년치 할부금만을 상환한 뒤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다. 영국 정부는 2001년 북한에 대사관을 설치한 뒤 본격적인 부채 상환 협상에 나섰으나 북한 조선무역은행은 부채를 상환할 자금이 없다고 거부해 왔다. UKEF의 부채 탕감 결정이 한 달 뒤에 돌연 취소된 것은 남북한 통일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폴 래드퍼드 UKEF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당시 나이절 스미스 재무국장에게 “북한이 부채를 상환할 가능성은 현재는 적어 보이지만 북한과 같이 버림받은 국가가 지속되기는 한계가 있다”면서 “남북한이 평화롭게 통일된다면 부채 전액을 회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했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 부채 전문가인 하미드 장게네 미국 와이드너대 교수는 이날 VOA와의 인터뷰에서 “독일 통일 당시 서독이 동독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물려받았던 사례가 있다”면서 남북한도 같은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외에 스웨덴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체코, 핀란드, 루마니아 등도 북한으로부터 30년 넘게 빚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부채 총액은 10억 달러(약 1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이상열의 메디컬 IT] 휴대용 혈당측정기의 신뢰성

    [이상열의 메디컬 IT] 휴대용 혈당측정기의 신뢰성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의대 학생들과 디지털 헬스케어를 주제로 소통한 내용에 대해 소개했다. 이들은 디지털 헬스케어와 관련해 몇 가지 중요한 의문을 갖고 있었다. 이번 칼럼에서는 학생들의 여러 의문점 중 두 번째로 ‘디지털 헬스케어 장비의 신뢰성’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당뇨병 환자가 필자의 외래 진료실을 방문해 꺼내는 여러 질문 중에서 ‘자가 혈당 측정계’의 정확도와 관련한 내용이 많다. 일상생활에서 자가 혈당 측정계를 이용해 측정한 값은 때로 상당한 편차를 보이는데 환자들은 과연 이 값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매우 궁금해한다. 지금은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장비이지만 사실 자가 혈당 측정계는 출시 초기인 1970년대만 하더라도 첨단 기술이 집약된 최고급 기기였다. 만일 이 장비가 최근 소개됐다면 요즘 말로 아마 ‘최고로 핫한 디지털 헬스케어 장비’라는 호칭을 얻었을 것이다. 첫 출시 후 50년이 돼 가는 현재 이 휴대용 혈당측정기의 정확성은 어느 정도일까. 핵심 기술이 충분히 안정화돼 있으므로 다양한 혈당측정기에서 측정한 값은 큰 편차 없이 거의 일정하지 않을까. 그런데 의외로 그렇지 않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에서 발행한 ‘개인용 혈당측정 시스템 표준 시험방법 가이드라인’에 우리나라 자가 혈당 측정계의 정확성에 대한 허용 범위가 명시돼 있다. 이 규정은 국제 규정을 따른 것이다. 여기서 자가 혈당 측정계의 측정 오차는 포도당 농도 100㎎/㎗ 미만에서 ±15㎎/㎗, 포도당 농도 100㎎/㎗ 이상에서 ±15% 이내로 정해져 있다. 만일 환자의 혈당이 200㎎/㎗로 측정됐다면 이 환자의 실제 혈장 포도당 농도는 170~230㎎/㎗ 사이라는 것이다. 아마 독자들이 예상보다 큰 편차에 많이 놀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편차는 최근 널리 보급된 웨어러블 장비에서도 관찰되는 현상이다.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보급된 장비인 ‘활동량 측정계’의 측정 기술은 제조사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제조사의 기술은 지적재산권으로 보호받기 때문에 기기별 측정 기술의 원리와 정확성에 대해 외부에 명확히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관련 분야 연구자들은 시판 중인 주요 활동량 측정계의 제조사별 정확성을 검증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연구에서 상용화된 활동량 측정계 대부분이 제조사와 무관하게 비교적 높은 정확성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된다. 건강한 개인의 일상을 기록, 관리하는 데 큰 무리가 없는 수준의 정확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유명 제조사의 활동량 측정계라도 측정 조건에 따라 20~30% 내외로 제법 큰 오차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 정도의 오차는 결코 작지 않아 고혈압, 당뇨병, 비만 등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들의 임상 경과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 발표된 한 연구에서 걸음 수, 걸은 거리 등 관련 기술이 안정돼 있고 상대적으로 많은 사용자가 활용하는 지표의 측정 오차는 제조사가 다르더라도 장비 간 편차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에너지 소비량, 수면 등 측정이 까다롭고 각 기기별 비교 평가가 어려운 생체 지표는 아직 상당한 편차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향후 좀더 정확하고 정밀한 디지털 헬스케어 장비들이 출시돼 많은 사람들의 건강과 안녕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 “쓸쓸한 사람 한 명이라도 있다면 소설가는 소설 쓰기 멈춰선 안 돼”

    “쓸쓸한 사람 한 명이라도 있다면 소설가는 소설 쓰기 멈춰선 안 돼”

    “지금의 저에게 소설 쓰기는 ‘마음의 구조’를 탐색하는 작업입니다. 작품 속 등장인물인 공사장 잡부 영택과 그의 아내이자 식당 급식조리원 순희의 마음을 들여다본 이유 역시 마음이라는 게 어디에서 나오는지 왜 지금 이런 마음인지를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소설가는 소설 쓰기를 멈추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가 더는 비참한 곳이 아니게 될 때까지 소설가의 운명을 앞으로도 기꺼이 감당하겠습니다.”노동자 부부의 삶을 통해 폭력의 기원을 더듬는 손홍규(43) 작가의 중편소설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가 제42회 이상문학상 대상작으로 뽑혔다. 8일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손 작가는 “소설가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증명하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의 분노, 증오, 슬픔, 기쁨, 고통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를 들여다보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런 이유로 내 소설을 읽은 이들은 나와 더불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물어야 했다”면서 이번 수상 소식이 “혼자 아파하지 말라, 혼자 무서워하지 말라, 아프고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 여기에도 있다”는 대답이 되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소설을 집필할 때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오늘까지 여성 노동의 역사를 다룬 ‘나, 여성 노동자2’(그린비)와 직업환경의학 의사들이 산업재해와 직업성 질환에 대해 밝힌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나름북스)을 참고했다. 파업의 현장과 그 현장을 단속하는 용역업체 사람들이 노동자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한 내용이 작품 속에 서술되어 있지만 그것 자체가 부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와중에서도 인간적인 가치를 지켜 나가려고 하는 인물들의 내면에 집중했다. 심사위원인 권영민 문학사상 편집주간은 “기존의 리얼리즘 소설이 정면에서 비리의 현실이나 폭력의 현장을 치열하고 냉혹하게 비판했다면 이 소설은 오히려 폭력적인 장면을 단편적으로 언급한다”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 문제가 다른 방법이 아닌 인간의 가치에 대한 확인을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는 작가의 신념이 드러난 작품”이라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심사위원회는 지난해 주요 문예지에 발표된 중·단편소설들 가운데 수상작을 가려냈다. 우수작 후보에 오른 11편 가운데 구병모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방현희 ‘내 마지막 공랭식 포르쉐’, 정지아 ‘존재의 증명’, 정찬 ‘새의 시선’, 조해진 ‘파종하는 밤’이 우수작으로 선정됐다. 대상 상금은 3500만원, 우수작 상금은 300만원이다. 수상작품집은 오는 19일 발간되며 시상식은 11월에 열린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장석주·박연준 지음, 난다 펴냄) 다독가 부부인 장석주·박연준 시인이 지난해 상반기 매일 쓴 책 일기. 편집자 강윤정·카페꼼마 대표 장으뜸 부부, 예스24 김유리 MD와 매일경제 김슬기 기자, 의사이자 에세이스트인 남궁인, 책방무사를 운영하는 뮤지션 요조 등 여러 다독가들의 일상에 스민 책을 엿볼 수 있는 시리즈 ‘읽어본다’ 1차본이 함께 펴 나왔다.여학생·우리는 적당히 가까워(배소현 외 5명 지음, 제철소 펴냄) ‘여학생’은 삶의 한가운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주인공으로 성장해 나가는 십대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우리는 적당히 가까워’는 청소년의 성과 연애, 자존감, 죽음 등을 다룬 청소년희곡집이다. 312쪽. 1만 3000원. 변방의 사운드(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기획, 신현준·이기웅 엮음, 채륜 펴냄) 아시아 11개국의 20세기 후반 팝 음악의 궤적을 각 지역의 현지인 혹은 전문가인 필자들이 써낸 아시아 대중음악의 통사. 456쪽. 2만 9000원. 차별 감정의 철학(나카지마 요시미치 지음, 김희은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우리는 왜 끊임없이 타인을 차별하고 혐오하는지, 선하고 의로운 보통의 사람들이 주고받는 폭력을 성찰한다. 208쪽. 1만 2000원. 여성, 산문 살롱(김진희·송경란 지음, 소명출판 펴냄) 천경자·박경리·강신재 등 1950~1970년대 펴 나온 국내 여성 작가 10명의 수필에서 이들의 예술세계와 여성으로서의 의식이 현재와 어떻게 조응하는지 살펴본다. 275쪽. 1만 3000원. 그래픽 노블 사랑 수업- 17가지 별난 사랑 이야기(토니노 베나퀴스타 지음, 자크 드 루스탈 그림, 이나무 옮김, 이숲 펴냄) 쇼윈도 부부의 내밀한 비밀, 나쁜 남자의 지순한 순애보, 동성애자 부부의 입양아 사랑 등 저마다 다른 사랑의 풍경들이 정교한 서사와 의외의 반전으로 빛난다. 248쪽. 1만 4000원.
  • “올림픽 갑니다, 봉사하러”…꿈 되찾은 스키 개척자

    “올림픽 갑니다, 봉사하러”…꿈 되찾은 스키 개척자

    4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리 용평스키장. 고태복(67)씨가 슬로프를 쏜살같이 미끄러져 내려왔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웬만한 10~20대보다 힘찬 동작이었다. 무슨 할아버지가 이렇게 스키를 잘 타냐 싶겠지만 이력을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고씨는 네 살 때 스키를 시작해 중학교 3학년에 벌써 태극마크를 달며 활약한 ‘스키 1세대’다. 1968년 전국남녀학생스키대회 활강·회전·대회전 3관왕, 1970년 전국스키선수권대회 활강·대회전 2관왕, 1972년 전국동계체육대회 회전 우승을 비롯해 1960~1970년대 국내 대회를 휩쓸었다. ‘선수 시절 몇 번이나 우승했냐’는 질문에 “너무 많아서 정확히 알 수가 없다”고 말할 정도다.국내 정상급 선수였지만 올림픽과는 얄궂게도 인연이 없었다. 고교 2학년이던 1968 그르노블(프랑스)동계올림픽 땐 어리다는 이유로 선배들에게 밀렸고 1972 삿포로동계올림픽을 앞두고는 해병대에 입대하면서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했다. 고씨는 올림픽 무대에 나서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 스키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2018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단에 지원했다. 자신이 사무총장으로 있는 원로스키인회 회원 10여명과 함께 내달 8~19일 열리는 올림픽 스키점프 경기에서 선수들의 왁싱 작업 등을 돕게 된다. 고씨는 “1972년 당시엔 어린 마음에 군대에 가는 게 급했다. 빨리 제대해 재력을 튼튼하게 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 터에 올림픽을 포기했다. 짧은 소견이었을지도 모르겠다”며 “아쉬움이 짙지만 이래저래 올림픽에 못 나간 게 내 운명이라 생각해 왔다. 그러던 중 내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마지막 동계올림픽인 평창 대회에 기회가 닿아 함께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감개무량하다”며 “봉사활동으로 미력이나마 스키 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개폐회식장이 위치해 있는 ‘올림픽 고장’ 대관령면 횡계리가 고향이라 이번 올림픽이 더욱 뜻깊다. 1975년 국내 최초로 리프트를 비롯한 현대식 시설을 갖춘 용평스키장이 생기기 전에는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에서 운동을 했는데 올림픽을 계기로 평창과 강릉 지역의 상전벽해를 실감하기 때문이다. 좋은 시설이 완비돼 있어 아직 열악한 국내 스키 저변도 점차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고씨는 “어릴 적 아버지가 만들어 준 스키를 타고 5리(약 2㎞)를 이동해 학교에 가곤 했다. 그냥 타면 눈이 스키에 들러붙기 때문에 양초를 녹여서 스키 밑바닥을 코팅했다”며 “스키장에 리프트가 없어 정상까지 한 시간이나 걸어 1~2분 만에 스키를 타고 내려오며 훈련했다. 요즘엔 천지개벽한 터라 놀랍다”고 말했다. 스키 대선배로서 조언을 부탁하자 “후배들이 체격도 크고 체력도 좋다. 올림픽을 통해 좋은 슬로프가 생겼으니 앞으로 10년 내 실력자들이 쏟아질 것이다. 좋은 체력을 가진 선수들을 뽑아 어려서부터 스키 선진국에 유학을 보내면 앞으로 세계적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며 웃었다. 글 사진 평창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믿고 보는 송강호·슈퍼 히어로 총출동… ‘천만클럽’ 주인공은?

    믿고 보는 송강호·슈퍼 히어로 총출동… ‘천만클럽’ 주인공은?

    지난해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는 한국 영화 486편, 외화 1260편 모두 합쳐 1746편에 달한다. 부가 판권 시장을 노리고 형식적으로 개봉하는 작품이나 초저예산으로 최소 규모 개봉하는 작품을 빼더라도 수백 편이다. 최근에는 주당 12~15편이 개봉하고 있다. 이러한 경쟁 속에 영화와 관객 사이의 접촉면을 늘리며 작품의 개봉 수명을 늘리는 몫은 홍보마케팅의 역할이다. 그 최전선에 있는 10명에게 2018년 기대작을 5편씩 추천받아 주요 작품을 추렸다.송강호가 출연하는 작품이 기대작으로 꼽히지 않은 적이 없었다. 최근 5년간은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다. 올해는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과의 만남이 주목된다. 범죄 드라마 ‘마약왕’(★★★★★★★)이다. 197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밀수업자에서 마약계 최고 실력자가 되는 실존 인물 이두삼을 모티브로 했다. ‘관상’에서 송강호의 동생으로 호흡을 맞췄던 조정석이 이번에는 이두삼을 쫓는 검사를 연기한다. 배두나, 이성민, 김대명, 이희준, 김소진, 조우진 등 출연진 면면 또한 화려하다. 마블에 DC까지 가세하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공습도 나날이 뜨거워지고 있다. 매달 1~2편씩은 국내 극장가에 걸린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단연 최고 기대작이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전편인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서울 촬영 등에 힘입어 1000만 관객을 돌파하기도 했다. 그동안 쿠키 영상으로만 모습을 드러냈던 우주 최강의 악당 타노스가 본격 등장하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도 총출동한다. 한발 앞서 개봉하는 ‘블랙팬서’(★★)도 관심을 모은다. 마블 최초로 흑인 슈퍼 히어로가 단독 주연인 작품이다. 광안대교를 비롯해 부산에서 촬영된 자동차 추격 등 액션 장면이 담겨 있어 한국 영화 팬들의 관심이 쏠려 있다. ‘신과 함께: 죄와 벌’의 대성공으로 올여름 개봉할 ‘신과 함께2’(★★★★)도 기대를 한껏 받고 있다. ‘반지의 제왕’ 3부작처럼 연작을 동시 촬영한 국내 첫 사례다. 1편이 원작 웹툰 중 저승편을 중심으로 신화편을 양념으로 입혔다면, 2편은 이승편과 신화편이 바탕이다. 1편에 등장했던 고물 줍는 할아버지와 손주가 2편에서 저승삼차사를 맞닥뜨리며 이야기의 축이 된다. 원작에서는 집과 관련한 다양한 신이 등장하는데, 영화에서는 집을 지키는 성주신이 맹활약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캐릭터는 ‘마블리’ 마동석이 맡았고, 1편 쿠키 영상에 깜짝 등장하며 관객들의 기대를 더욱 부풀렸다. 세계가 인정한 거장 이창동 감독은 ‘버닝’(★★★)으로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인 ‘시’ 이후 8년 만에 영화감독으로 복귀한다. 해외 영화제에서 진작부터 주목하고 있는 작품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온 세 청춘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을 각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아인과 스티븐 연, 전종서가 주연을 맡았다. 장르 영화의 대가 김지운 감독이 ‘밀정’ 이후 2년 만에 신작을 선보인다. ‘인랑’(★★)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오시이 마모루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작품이 원작인 SF 액션 영화로, 강동원·정우성·한효주가 주연이다. 남북 관련 영화도 계속 이어진다. 그중 윤종빈 감독의 복귀작인 ‘공작’(★★★)이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 1990년대 중반 북한 핵개발을 둘러싼 남북한의 첩보전을 다룬다. 김병우 감독이 판문점 지하 벙커 회담장에서 펼쳐지는 전투 액션을 다룬 ‘PMC’(★★)를 통해 ‘더 테러 라이브’ 이후 5년 만에 하정우와 재회한다. ‘스윙 키즈’(★★)는 6·25전쟁 중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무대로 탭댄스에 빠진 북한 병사를 그린다. ‘과속 스캔들’, ‘써니’ 강형철 감독의 작품으로 엑소 도경수의 단독 주연이다. 이 밖에 연상호 감독의 한국형 히어로물 ‘염력’, 1500년 전 당태종의 침략을 물리친 고구려 양만춘 장군의 전투를 재현한 ‘안시성’, 김주혁의 유작 중 하나인 ‘독전’, 소지섭·손예진 주연의 휴먼 멜로 ‘지금 만나러 갑니다’(이상 ★★)가 복수 추천됐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도움 주신 분들 호호호비치 이채현 대표, 올댓시네마 김태주 실장, 퍼스트룩 신보영 실장, 영화인 박주석 실장, 앤드크레딧 박혜영 실장, 딜라이트 양영희 과장(이상 홍보마케팅사), CJ엔터테인먼트 윤인호 팀장, 롯데엔터테인먼트 강동영 팀장, 쇼박스 최근하 팀장, NEW 양지혜 팀장(이상 투자·배급사)
  • [말빛 발견] 와이프/이경우 어문팀장

    [말빛 발견] 와이프/이경우 어문팀장

    1970년대 후반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한 남편이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친구는 외국인이었다. 남편은 자기 부인을 어떻게 가리킬지 고민스러웠다. ‘아내’, ‘집사람’, ‘마누라’…? 모두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고민 끝에 ‘와이프’라고 적었다.외국인 친구는 편지를 읽다가 ‘와이프’에서 멈췄다. 당시 한국 사람들에게 흔히 듣던 말이 아니었다. 낯선 듯했지만 새로웠다. 한국 젊은이들이 생활에서 뭔가를 발견해 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남편은 곤란한 점이 있어서 영어를 빌렸다고 했다. 지금이면 ‘와이프’를 ‘영어’라고 하지 않았겠지만, 그때는 영어였다. 외래어 대신 우리말을 쓰자는 캠페인이 계속됐고, 캠페인 참여자들은 ‘와이프’ 대신 ‘아내’를 응원했다. 그렇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대중이 바라는 욕구와 의식을 이전의 말들은 받쳐 주지 못했다. 뜻이 바랬다지만, ‘아내’는 본래 ‘안에 있는 사람’을 뜻했다. ‘집사람’은 드러난 의미대로여서 낡았고 적절치 않았다. ‘처’는 지나간 시절의 말 같고 갑갑함을 주었다. ‘마누라’는 애초 뜻은 고상했으나, 막된 말이 돼 버렸다. 일부러 쓰는 상황을 빼고는 어려웠다. 이전의 쓰임새와 다른 말이 필요했다. ‘와이프’가 ‘아내’와 ‘처’ 같은 말들이 주는 곤란함들을 덜어 줬다. 호칭의 발견은 소통의 가치를 높이는 발걸음이다. 지금도 도처에서 새로운 호칭을 요구한다. wlee@seoul.co.kr
  • 퇴색한 자본의 공간… 예술이 움텄다

    퇴색한 자본의 공간… 예술이 움텄다

    “프로젝트 기획을 위해 작가들이 모여서 마시는 커피 값보다도 월세가 쌌어요. 당시 3.4평(11.2㎡) 점포가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0만원이었죠. 뇌리에 딱 스치는 게 있었죠.” 2014년 12월 서울 종로 세운상가 가동 ‘바열 4층 21호’에 작가와 아트디렉터 9명이 1인당 5만원씩 회비를 거둬 둥지를 튼 ‘스페이스 바 421’은 그렇게 탄생했다. 스페이스 바는 영국 현대 미술을 부흥시킨 ‘yBa’(young British artists)를 꿈꾸며 기존의 미술적 전통에 도발하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독립적인 예술가 집단이다.  국내외 미디어 아트의 주목을 받는 작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인간의 욕망이 투사된 사물들을 분쇄하는 연작으로 유명한 신기운(영남대 교수) 작가와 송요비 아트디렉터, ‘커넥티드 시티’라는 독특한 프로젝트로 주목받는 임도원(스페이스 바 대표) 작가, 3D 프린팅의 히어로 하석준 작가, 공공 예술 전문가인 김현정(신구대 겸임교수) 작가, 트랜스아트의 김희선(영남대 교수) 작가와 류지영 작가, 작가 장터 ‘스꽛성수’ 기획자인 곽혜영 아트디렉터, 프로젝트 ‘씨앗돌멩이’를 창안한 우리 작가까지 모두 9명이다.  “예술가들에게는 적대적인 공간이었다”는 신 작가 표현대로 세운상가는 개발독재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라는 타이틀에 “세(世)계의 운(運)이 모인다는 자기현시적이고 개발시대다운 이름의 건물”(건축가 황두진)을 지어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바친 불도저 시장 김현옥의 욕망, 국내 독보적인 근현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지만 ‘서울의 도시구조를 망친 흉물’이라는 오명이 중첩된 공간이 세운상가다. 권력과 자본이 결탁한 환상이 시공간 속에 망령처럼 배회하는 유적이자 현재는 도시 재생 사업의 핵심 축이다. 세운상가는 하나의 건물이 아니다. 종로에서 청계천을 지나 퇴계로까지 걸쳐 있는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 PJ호텔(옛 풍전호텔), 인현상가(옛 신성상가), 진양상가, 현대상가(철거)까지 8개 건물을 아울러 부른 게 ‘세운’ 상가다. 예술이 이 모든 건물과 그에 얽혀 있는 골목들 안에 움트고 있다. 한때 흥청망청했다가 퇴색한 자본의 공간 속에 침투한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변화하는지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스페이스 바는 흥미로운 단서가 된다.  송요비 아트디렉터는 이곳에서 욕망을 체감했다고 말한다. “1970년대 월세가 65만원이었다고 들었어요. 당시 어마어마한 월세를 부담할 정도로 최고의 상권이었죠. 우리 같은 예술가들이 자리를 펼 공간이 아니었지만 슬럼화되면서 예술이 다시 흘러 들어오게 된 거예요.”  스페이스 바(반짝반짝 세운상가 미래예술연구소 겸업)는 세운상가에 입주한 첫 예술가 집단이다.  입주 초기에는 어르신들인 원입주민들과의 갈등이나 오해도 적지 않았다. “처음에는 상인회로부터 ‘시끄럽게 하지 마라’라는 경고도 많이 받았어요. 서울시에서 채택된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도 가동 중정에서 열기로 했다가 상인들의 반대로 무산되고, 작가들도 많이 위축됐었죠.”(신기운 작가)  스페이스 바 작가들이 3년 동안 연 전시회만 25차례다. 개인전이나 단체전을 세운상가에서 열고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서울시의 ‘다시-세운’ 프로젝트에 동참해 상가 내 ‘한글시계’와 ‘디지털 프린팅’ 작품 등 다양한 설치 작품을 통해 예술적 기운을 불어넣었다. 김현정 작가는 지난해(2017년) 12월 31일 진양상가를 떠받치는 6개의 기둥을 한국의 희귀식물 137종의 색상으로 래핑한 공공예술 ‘플라워 스펙트럼’을 선보였다. 김희선 작가는 진양상가 3층 외벽을 ‘미지의 풍경’이라는 제목의 미디어 파사드 작품으로 시선을 모았다. 우리 작가는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세운상가와 을지로 철공골목에 돌멩이 모양의 오브제에 담긴 씨앗으로 생태계를 만드는 프로젝트로 화제가 됐다.  변화는 북적거리면서 왔다. 예술 기획집단 개방회로, 1인 갤러리 빠빠빠탐구소, ‘200/20’(독립서점), ‘300/20’(창작품 판매점), 1인 방송국, 스타트업 등 창작자와 기획자, 창업가까지 스페이스 바 이후 둥지를 튼 이들은 현재 100여명에 달한다.  공간은 새로운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길 잃은 소녀(반)를 찾아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도시를 탐험하게 되는 독특한 미디어 아트 작품인 ‘커넥티드 시티 프로젝트 반’은 임도원 작가가 미로 같은 세운상가 내부와 을지로 골목들에서 착안한 것이다. 오는 2월 세운상가에서 업그레드 버전이 발표될 예정인 이 작품은 2018년 영국 브리스톨의 도시 기반 아트 프로젝트인 워터셰드 초청작으로 선정됐다. 김희선 작가는 “이제는 상인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본다”며 “젊은 친구들이 또 어떤 재미난 일을 벌이나 하고 전시회도 오고, 진행 중인 작업에 대한 조언을 하는 등 대화의 장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서울의 대표적인 전자상가(라고 말하는 동시에 80년대 야동 성지가 됐던)로 불리던 이곳은 탱크나 미사일도 거뜬히 만들 수 있는 기술 장인들(현재는 ‘메이커스’로도 부른다)이 모여 있다. 마치 영화 ‘리얼 스틸’에 등장했던 로봇들의 묘지를 떠올리게 한다. 미디어 아트 작가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재료들을 다 구할 수 있고, 첨단 콘셉트에 대해서도 장인들과 협업할 수 있는 전무후무한 곳’이라는 헌사를 바치는 이유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 작가가 한국에 올 때마다 부품 수리를 의뢰했던 기술 장인은 여전히 현업으로 상가에서 일한다. 최근에는 상가 내 ‘수리협동조합’이 입주한 예술가와 장인의 협업을 중계한다. 임도원 작가는 “작가와 장인이 희한하게도 이곳에서 만나 서로에 대해 타고난 메이커스라는 동질감마저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세운상가는 구시대의 도시 유적에서 벗어나 서울의 오프라인 예술 플랫폼으로 변신 중이다. 그건 동시대 예술가들이 그 공간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게다. 글·사진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신한카드 ‘디지털 기업’ 변신

    70년대생 24명 부서장 발탁 신한카드가 ‘디지털 기업’으로의 변신을 위해 대규모 조직 개편과 인사를 했다. 1970년대생을 부서장으로 대거 발탁하고 로봇 자동화 조직을 신설했다. 신한카드는 1~2년차 부장들을 본부장으로 승진시켜 1970년대생 중심으로 젊은 인재 24명을 부서장으로 발탁했다고 1일 밝혔다. 조직 개편을 통해서는 모바일,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관련 부서를 플랫폼 사업 그룹으로 통합했다. 신한카드는 “연간 취급액 14조원 규모의 신한카드 내 별도의 디지털 기업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카드사 최초로 로봇 자동화 조직(RPA)도 신설했다. RPA는 신용카드 서류 접수, 대출, 상담 등 반복적인 업무를 사람이 아닌 소프트웨어에 맡기는 것이다. 이와 함께 2개 영업부문을 영업추진그룹으로 통합하고 12개 팀을 폐지하는 등 ‘조직 슬림화’도 실행했다.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은 “2018년 국내 금융시장은 디지털 방식이 아날로그를 추월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역시 복부인? 아파트 3채 이상 소유자는 여성이 더 많아

    역시 복부인? 아파트 3채 이상 소유자는 여성이 더 많아

    아파트를 3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으로 나타났다. 1~2채 보유자는 남성이 더 많은 상황과 대비된다.3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성별 아파트 소유 현황을 보면 남성은 462만 6641명(55%), 여성은 377만 9162명(45%)이다. 아파트를 1~2채 소유한 사람은 남성이 여성보다 많았다. 남성 1채 소유자는 424만 2326명(55.5%), 2채 소유자는 33만 5015명(52.2%)으로 여성보다 각각 83만 5000명, 2만 8607명 더 많았다. 그러나 3채부터는 성비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여성 소유자는 3채 4만 632명(56.6%), 4채 1만 1261명(60.0%), 5채 5109명(60.1%) 등으로 남성을 웃돌았다. 이런 특성은 통계청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4년 이후 지속되고 있다. 소유자가 여성이 많은 현상은 유독 아파트에서만 빚어지고 있다. 단독주택 등을 포함한 전체 주택 소유자는 모든 구간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많다. 함영진 부동산 114리서치센터장은 “3채 이상 소유자는 1970년대 이후 집값이 급등할 때 시세 차익을 목적으로 장기 보유했거나 부동산으로 자산을 불린 경험이 있는 이른바 ‘복부인’이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면서 “여자가 남자보다 더 오래 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우리나라 노년층은 노후 안전망으로 아파트를 꼽는 경향이 있다”면서 “남편이 사망한 뒤 아파트 소유권이 여성에게 넘어가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종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새해 인터뷰| 해외 전문가들이 본 2018] “4차혁명·고령화 파고 넘으려면 비관적 자세로 접근하라”

    [새해 인터뷰| 해외 전문가들이 본 2018] “4차혁명·고령화 파고 넘으려면 비관적 자세로 접근하라”

    2018년 각국에 닥칠 4차 산업혁명의 파고와 세계화에 대한 반동, 고령화·소자화(핵가족화)의 충격 등은 어떻게 넘어야 할까. 일본은행 부총재를 지낸 니시무라 기요히코 도쿄대 명예교수 겸 현 국립정책연구대학원대학(GRIPS) 교수는 “역설적이지만 비관적인 자세로 접근하라”고 조언했다.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입장을 갖기 위해 현실의 심각성을 직시하고, 실천가능한 현실적인 자세로 미래를 바라볼 것”을 주문했다. 니시무라 교수를 2017년 세밑 도쿄 GRIPS 연구실에서 만나 일본의 상황과 대응, 한국의 선택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 같은 혁명적인 변화들이 일본에는 고령화라는 맥락과 겹쳐져서 덮쳐 왔다. 이 문제들과 관련, ‘블루오션’인 중국에 비해 ‘레드오션’인 일본은 대응과 적응이 뒤처지고 있다. 여기서 블루오션은 중국은 선택 폭이 넓다는 뜻이며, 반면 일본은 많은 제약 속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노령화 문제는 한·일에 심각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중국은 이 분야에서 한·일을 앞서 갈 가능성이 크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양극화 심화와 일자리 격감, 이어질 사회적 불안도 우려된다. 앞으로 25년 정도 후에 우리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사회와 직면할 것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변동이 시작되는 과도기 속에 들어서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생산성 하락 등도 예상된다. →고령화의 영향이 그렇게 심각한가. -1970년대 일본 정부와 정책결정자들의 고민 중 하나는 인구 과잉 문제였다. 브라질이민을 정책적으로 장려·추진하던 때도 그 시절이었다. 격세지감이지만, 고령화 문제는 수가 감소하는 젊은 세대가, 증가하는 나이 든 노인 세대들을 부양해 가는 문제로 귀결된다. 당장 연금 및 의료 문제 등이 발등의 불이다. 미국은 노령화가 심하지 않지만, 의료보장비 및 정부지출이 폭등한다고 할 정도로 가파르게 늘고 있다. 필요한 비용과 정부 지출을 줄여 나가야 하는데 매우 쉽지 않은 도전이다. 왜냐하면 정치 엘리트들은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기는 하지만 주요한 결정은 내리지 않고 미루기만 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위험을 짊어지길 꺼려서다. 일본은 1990년대 이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를 시작할 수 있었지만, 그냥 20~25년을 흘려보냈다. 피할 수 없는 심각한 도전임을 인식하고 대응했어야 했다. →변화의 격랑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나. -역설적이지만,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비관적인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입장을 갖기 위해 현실의 심각성을 직시하고, 실천가능한 현실적이고 보수적인 자세로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한 젊은이들의 유례없이 비관적인 태도는 현실이 뭔가 잘못됐음을 알리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젊은 세대는 늙어 가는 부모와 자라나는 아이들을 동시에 부양해야 할 책무 속에서 힘들어한다. 미국에서는 아이를 기르거나 노인을 부양하는 세대와 가정에 대해서는 세금을 감면하고, 낸 세금도 돌려준다. 전반적으로 재분배 정책에 대해서도 더 신경을 쓰고 확대해 나가면서 젊은 세대들에 대한 배려와 분배에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한다. 세대 간 부담 나누기가 필요하다. 기성세대가 더 부담해야 한다. →이런 혁명적인 변화와 도전에 대한 한국의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신기술과 저성장, 고령화의 충격은 상상 외로 커질 수 있다. 부동산 문제를 예로 들자면, 한국의 부동산은 노령화의 충격에 취약한 구조이다. 경제성장률이 그 충격의 강도를 완화하거나, 가속화시킬지를 결정할 것이다. 한국의 정치시스템이 요동치고 급변하는 전 세계적인 정치경제적 구조 변화를 따라가고, 적응을 위해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에 달렸다. 뼈를 깎는 결정을 다음 정권에 미루지 않고 짊어질 수 있는 정치적 책임과 결단이 관건이다. →한국이 좀더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젊은 세대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40세에 직장에서 덜컥 밀려난다는 불안감을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갖고 있다면, 경제적 주체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기 어렵다. 성장은 필요하지만 젊은 세대의 희생에 기반해서 이뤄지는 그런 성장이 얼마나 지속가능하겠는가. 성장을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미래를 낙관하게 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경제적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근무시간 단축 및 유연근무제 등 일하는 방식의 개선 등을 통한 사회경제적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한국이 일본 같은 전철(장기불황)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젊은 세대에 기회를 많이 주고, 희망을 줘야 한다. 젊은이들이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도 매우 의미가 있고 중요하다. →양적 완화 등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나. -아베노믹스도 그동안의 정치엘리트들의 정책처럼 중요한 결정을 계속 미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부정적이다. 여러 측면에서 왜곡된 형태가 보인다. 근로자 실질임금이 오르지 않고,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했다고 선언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경기 하락을 멈추게 하고 노동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추구하는 한국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어떠한가. -성장과 분배가 상충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분배는 잘 설계해서 근로 의욕과 소비력을 높이는 등 잠재성장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장은 정책을 통해 이끌고 나갈 수 있다. 다만 한국도 성장률 둔화, 고령화 등 사회경제적 구조가 일본을 뒤쫓고 있다. 한국은 일본같이 잃어버린 20년을 불러온 (수요 및 투자 부족 등으로 인한)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면, 일본보다 훨씬 더 급격하게 나빠질 수도 있다. 일본은 그나마 축적된 국부(國富)가 있어서 그것을 먹어 가면서 버텼다. 한국은 그 정도 축적된 것이 없으니, 더 급격하게 경제가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2018년 새해 세계 경제를 전망한다면. -지난해부터 시작된 미국의 금융완화 정책의 출구전략, 정상화 정책의 영향과 파급효과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은 금리 등 금융정책에 한층 더 유의해야 한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미국이 조금씩 금리를 올려 나가는 과정에서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다. 가계부채의 규모와 부담이 다른 나라보다 큰 한국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수 있다. 중국은 늘고 있는 막대한 지방정부의 부채로 인한 금융 불안이 불거질 취약성이 크다. 시진핑 정부는 2016년부터 금융자산의 해외유출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강화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하고는 있다. 중국의 금융 불안이나 충격이 발생하면, 중국에 투자한 외국기업 및 개인들이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중국은 거대한 지구촌 자원 수입국이자, 생산 체인의 근간을 이룬다. 시진핑 정권이 정치 위기로 번지지 않는다는 확신만 선다면, 지방정부의 부채로 인한 중국발 금융 위기를 용인할 수도 있다. →미국의 출구 전략이 본격화되면서, 세계적인 금융 불안과 최악의 경우 금융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지적인가. -이런 문제를 지금 제기한다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그렇게 지구촌 개별 국가 및 지구촌의 금융시스템이 취약하지 않다”는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나 역시 “지금은 취약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매우 쉽게 취약해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2018년은 국제적인 인플레의 재발이나 중국 지방부채 문제 등의 취약성과 관련된 문제가 어느 지점에서 큰 파란으로 번질 수 있다. 일시적인 파란으로 끝날지, 크게 번지며 쓰나미가 될지는 그 나라의 상황과 정책 결정자들의 대응 여하 등에 따라서 크게 다를 것이다. 세계화의 진전으로 한 나라의 문제가 다른 나라에도 긴밀하게 영향을 주는 시대여서 걱정스럽다. 글 사진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니시무라 기요히코 교수는일본의 대표적인 경제학자로 꼽힌다. 이론 경제학과 경제 통계학을 바탕으로 거시경제학의 미시적 기초에 관한 이론 연구부터 가격 형성 메커니즘 분석 등으로 현실 경제에 폭넓은 영향을 끼쳐 왔다.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고 모교인 도쿄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일본은행 정책위원회 심의위원, 일본은행 부총재(2008~2013년) 등을 역임했고, 현재 정부통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 아파트 3채 이상 소유자는 여성 많아...‘복부인’?

    아파트 3채 이상 소유자는 여성 많아...‘복부인’?

    국내에서 아파트를 3채 이상 소유한 사람들 중 여성의 비율이 유독 많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한국인들이 아파트를 노후 대책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고 여성의 수명이 길기 때문이라는 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3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기준 주택 소유물 건수별 아파트 소유 현황’을 성별로 구분해 보면 남성은 462만 6641명(55%), 여성은 377만 9162명(45%)이었다. 아파트 1∼2채 소유자도 남성이 여성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 1채 소유자는 424만 2326명(55.5%), 2채 소유자는 33만 5015명(52.2%)으로 여성보다 각각 83만 5000여명, 2만 8607명 많았다. 하지만 3채부터는 성비 역전현상이 발생했다. 여성 소유자는 3채 4만 632명(56.6%), 4채 1만 1261명(60.0%), 5채 5109명(60.1%)으로 남성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6채 이상의 경우도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6채 2733명(58.3%), 7채 1523(57.1%), 8채 1015명(56.9%), 9채 667명(55.4%), 10채 574명(55.0%), 10채 이상 2518명(51.3%)을 기록했다. 4∼5채를 소유한 여성의 비율은 매우 높았는데 이 같은 비율은 2014년부터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특히 3채 소유자의 남녀 차이는 매년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채 소유자는 2012년 여성이 4646명 더 많았고, 2013년에는 5257명, 2014년 6641명, 2015년 8131명, 지난해 9477명으로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이 같은 현상은 유독 아파트 소유자에게서만 나타나 전문가들은 다양한 분석을 내놨다. 함영진 부동산 114 리서치센터장은 ”가부장적인 유교문화로 1∼2채 소유자는 남성이 많다는 점을 설명할 수 있다“며 ”그 이상 소유는 1970년대 이후 집값이 급등할 때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장기보유했거나 부동산 성공 경험칙이 있는 이른바 ‘복부인’이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우리나라 노년층은 노후의 사적 복지나 안전망으로 아파트를 꼽는 경향이 있다“며 ”남편이 사망한 뒤 아파트가 여성에게 넘어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AI가 아냐, 거대 기업이 문제야

    AI가 아냐, 거대 기업이 문제야

    특이점의 신화/장가브리엘 가나시아 지음/이두영 옮김/글항아리/200쪽/1만 5000원 지난해 3월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인공지능의 위력을 단단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알파고에 패한 이세돌이 “이세돌이 진 것이니 인류의 패배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인간을 능가할지도 모를 인공지능의 출현에 막연한 불안감을 느꼈다.로봇이 스스로 학습해 주체적으로 행동하며 인간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지도 모른다는 설정은 그동안 ‘터미네이터’, ‘A.I.’, ‘엑스 마키나’ 등 영화에서 많이 소비되던 주제다. 실제 과학계도 인공지능의 잠재된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이 책의 서두에는 2014년 5월 우주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낸 성명을 소개한다. 호킹 박사는 기술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발전하고 제어 불능 수준까지 이르러 인류를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경고했고, 전 세계 쟁쟁한 과학자들도 이에 동조해 서명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인공지능을 연구해 온 저자는 과학자들이 이처럼 예언자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특이점’이라는 것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시점을 가리키는 표현인데, 제목이 말해 주듯 현재 거론되고 있는 특이점에 대한 각종 기대와 우려는 과학적 근거 없는 ‘신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특이점 신화 뒤에는 거대한 기업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 기업들은 정보기술(IT)의 개발을 주도하면서도 그 기술이 인류를 파멸로 내몰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교묘한 전략을 사용하는데, 이에 대해 저자는 “방화범인 동시에 소방관인 형국”이라고 꼬집는다. 대표적인 IT 기업인 구글은 기술이 인간사회의 규범과 선의 기준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국제적인 윤리헌장을 제정하는 윤리위원회의 설립을 약속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인터넷에 게시된 정보의 삭제를 요구하는 개인의 요청을 계속 무시하고 있다. 특히 이들 기업은 개인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된 국가를 대신해 정보보안이나 금융거래 서비스를 주도하며 개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걱정하거나 감시해야 할 대상은 기계 자체가 아니라 기계에 목적성과 규칙을 정하는 기업들이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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