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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금숙의 만화경] 나를 지키며 가족을 사랑하는 법

    [김금숙의 만화경] 나를 지키며 가족을 사랑하는 법

    J는 파리 유학 시절 알게 된 친구다. 열 살이 넘어 프랑스 남부에 입양됐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어느 날 치즈와 베이컨을 아침으로 먹어야 했다. 음식을 남김없이 먹지 않으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게 했던 새 부모님은 사회봉사 차원에서 그를 입양했다.어릴 적 한국에서 J의 생활은 부유했다. 아빠는 1970년대 파리 유학파였다. 하지만 사고로 돌아가시고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 엄마가 사업을 시작했고 친할머니가 그를 돌봤다. 남편 없이 대한민국에서 자식을 책임지기가 버거웠을까. 프랑스라면 좋은 교육환경에서 잘 자라리라. 유학 보내는 마음으로 아들을 보냈다고 낳은 엄마는 생각했었단다. 20대 초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파리의 한 건물 꼭대기층에 살고 있었다. 세 평도 안 되는 그의 방에 나와 친구 한 명을 초대했다. 우리는 그런 방을 하녀방이라고 불렀다. 집주인들은 작은 다락을 대충 수리해서 세를 놓았다. 보증인도 없는 우리의 형편을 이용해 월세를 터무니없이 요구했고, 그나마 그런 방이라도 얻을 수 있음에 감지덕지했다. 만일 어둠의 신이 우리의 젊음과 부유함을 흥정했다면 당장 그러자고 했을 것이다. 그 공간에서 J는 우리가 불편할까봐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을 썼고, 나는 그가 조금이라도 나의 눈빛이나 언행에 상처를 입을까봐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민낯을 보여 주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을 터다. 유학 초기 시절 친하다고 믿었던 친구는 없이 사는 내 모습에 혐오하는 눈빛으로 나에게서 멀어졌다. 그로 인해 상처를 입었고 진정성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억울해하며 고독하고 추운 겨울을 오랫동안 견뎌야 했다. J가 부엌도 없는 방에서 스파게티를 해주었을 때 마음으로 울었다. 꿈이 있었나 싶을 만큼 앞이 보이지 않던 암담한 현실이었지만 비둘기가 행인의 머리 위에 똥 싸는 모습만 봐도 자지러지게 웃던 젊은 날들이었다.J는 결국 생활고로 전공인 색소폰을 포기하고 유명한 클래식 악단에 공연 기획자로 취직했다. 몇 년 후 입양인에게 가족을 찾아 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가족과도 상봉했다. 당시 그는 하녀방을 떠나 부엌과 화장실, 거실과 방 하나 있는 집을 얻어 살았다. 여자 친구도 있었다. 파리, 그의 집에서 여럿이 모여 가족을 되찾는 영상을 보았다. 할머니와 재회하는 모습은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 온다. 할머니는 그의 한국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그도 할머니를 부르며 작고 왜소해진 그녀를 향해 달렸다. 다른 말은 기억 못 해도 할머니라는 단어는 기억하고 있었다. 꽤 자라서 입양이 되었기에 한국말을 쓰고 읽을 줄 알았으나 입양된 이후 모든 것을 지워야 했다. 당시 지방 도시에서 한국인을 만날 기회는 거의 없었고 만나도 피했을 것이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음식이, 문화가 다른 곳에서 적응하려 모든 것을 지우고 새로 입력하는 끔찍하고 아픈 생존의 노력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할머니를 다시 만났을 때 얼마나 모국어로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하지만 다른 한국말은 기억해 내지 못했다. J는 현재 파리 근교에 있는 정원이 있는 예쁜 집에서 두 아이와 부인과 살고 있다. 한국 엄마를 보기 위해 서울에 온 그가 우리 집에 들렀다. 저녁을 먹으며 그는 길러 준 부모는 더는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 J의 사람됨을 알기에 결심까지 많은 고민과 고뇌가 있었으리라 추측한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함과 깊은 상처가 있었으리라. 만화책 한 권이 생각난다. 벨기에로 입양된 자신의 이야기를 한 전정식 작가의 ‘피부색=꿀색’이다.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왔는데, 개인적으로는 애니메이션이 더 감동적이었다. 때론 멀리 도망가고 싶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도 또 그리운 것이 가족이다. ‘가족인데 뭐 어때?’ 하며 아무 때나 어디서나 맘대로 그의 삶을 침범하는 것은 나의 이기주의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1인 가족과 더이상 부모, 형제조차 찾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곧 대한민국의 큰 명절 추석이다. 바로 앞에 펼쳐진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응시하며 묻는다. 나를 지키며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 [글로벌 인사이트] 검은 악마를 보았다…교황청은 눈감았다

    [글로벌 인사이트] 검은 악마를 보았다…교황청은 눈감았다

    ‘사제복을 입은 ‘짐승들’이 어린 영혼들을 사냥하는 동안 교회 권력은 이를 은폐하고 침묵을 강요했다.’세계 각지에서 가톨릭 사제들의 오랜, 그리고 은밀한 성 학대 행위 사건의 실체는 이 한 줄의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해 미국 가톨릭주교회의(USCCB) 보고서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16년 5월까지 미국에서 성추행을 저지른 사제는 최소 6721명이다. 이는 같은 기간 미국 교회에서 근무한 전체 사제 11만 6690명의 5.8%다. 사제 100명 중 6명꼴로 성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피해자는 1만 8565명으로 집계됐다. 두 얼굴의 사제들은 저항할 힘이 없는 아이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캐나다, 필리핀, 벨기에, 프랑스,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영국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사제들의 성범죄 전모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가톨릭 사제들의 성 학대는 1985년 길버트 고드 신부 사건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고드 신부는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 1974~1983년 어린이 37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혐의를 인정하고 20년형을 선고받았다. 2002년 미 보스턴 대교구 소속 사제들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나기 전까지 성추문은 일부 사제들의 일탈 행위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미국 유력지인 일간 보스턴글로브를 통해 알려진 이 사건은 할리우드 영화로도 제작됐다. 2002년 보스턴에서 사제 235명이 1940년부터 60년간 1000명 이상의 어린이를 성적으로 학대한 사실이 드러났고, 일그러진 집단적 이상 행동의 배경에는 교회가 도사리고 있었다. 교회가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세상은 거대한 충격을 받았다. 지난달에는 미 펜실베이니아주 성추문이 불거졌다. 펜실베이니아주 검찰 조사 결과 앨런타운, 피츠버그 등 6개 교구 사제 300여명이 1940년대부터 최근까지 70여년에 걸쳐 1000명 이상의 어린이를 성폭행하거나 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교구들이 사건을 해결하기보다는 숨기기에 급급했다는 점은 보스턴 사건과 동일했다.가톨릭 교회는 가해자들을 응징하고 피해자들을 치유하기보다는 사건 자체를 무마하는 데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은 것으로 드러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CNN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교회의 성 학대를 추적하는 미국의 비영리 단체 ‘비숍 어카운터빌리티’를 인용해 교회와 보험회사가 사제의 성 학대 소송 등으로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지출한 금액은 미국에서만 약 38억 달러(약 4조 2541억원)에 이른다고 전했다. 각국 의회 등에 로비를 한 정황도 있다. 사제들의 성 학대는 미국 내 가톨릭 교회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2009년 아일랜드 정부는 성당, 수도원 학교 등지에서 발생한 아동 성추행을 망라한 ‘머피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975년부터 30년간 1만 5000건의 범행이 보고됐다. 아일랜드 정부는 “성 학대·강간·폭력은 아일랜드 가톨릭 기숙학교와 고아원에서 70여년간 만연해 있던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칠레 검찰은 1960년 이후 아동 178명을 포함한 총 266명에게 성적 학대를 하거나 은폐한 혐의로 사제와 신도 등 158명을 수사 중이다. AP통신 등은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성년자 성추행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크리스티안 프렉트 주교의 성직을 박탈했다고 전했다. 프렉트 신부는 1970년대 아구스토 피노체트 전 독재정권에 저항해 인권단체를 이끈 인물이어서 칠레 내에서도 파문이 커지고 있다. 2012년 교회의 성 학대 사실을 조사하는 독립 기구 ‘왕립 조사위원회’를 발족한 호주에서는 1980~2015년 호주 어린이 4444명이 사제 및 남녀 수사, 교회 관계자들에게 성추행과 성적 학대 피해를 입었다. 가해자 2000여명 가운데 572명이 사제다. 이는 호주 사제의 7%에 해당된다. 일부 교구에서는 사제의 15%가 아동 성 학대를 저질렀다는 충격적 보고도 있었다. 현재 호주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측근인 조지 펠 추기경의 아동 성 학대 재판이 진행 중이다. 펠 추기경은 성폭행 1건을 포함해 최소 3건의 성범죄 혐의를 받는다. 독일주교회에서도 사제 1670명이 1946~2014년 성폭행을 포함해 최소 3766건의 성추행을 저질렀다. 피해자 대부분이 남성이었으며 13세 이하가 절반을 넘었다. 6건은 성폭행이었다. 이쯤 되면 가톨릭 교회 내에서 성 학대는 거의 일상적인 범죄 수준이다. 그럼에도 바티칸 교황청은 이를 은폐하고 수수방관했다. 소탈하고 가식 없는 행보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 온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 의혹에 연루돼 리더십에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었다. 지난달 26일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부터 시어도어 매캐릭 전 미 추기경의 성범죄를 알았으며, 이를 모른 척했다고 폭로했다. 매캐릭 전 추기경은 50여년 전 10대 소년과 어린 사제를 성 학대했다는 혐의를 받고 지난 7월 사임했다. 바티칸 등 교회 지도부는 사제들의 범죄를 어떻게 숨겼을까. 미 온라인매체 쿼츠는 펜실베이니아주 성 학대 당시 교회가 ‘7단계 법칙’에 따라 은폐했다고 분석했다. 펜실베이니아주 일부 교구들은 “성폭행 또는 강간 등 직접적 단어 대신 ‘부적절한 접촉’ 또는 ‘경계 문제’ 등의 용어를 사용할 것”, “가해 사제를 전보조치할 때는 신자들에게 직접적 원인을 알리지 말고 ‘병가’ 등의 이유로 설명할 것”, “성폭행 사제에게 주택, 생활비를 지원할 것”, “사제의 포식(성 학대) 사실이 신도들에게 밝혀졌을 때에도 그를 면직하지 말고 그가 아동 성 학대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지역으로 전보할 것” 등 7개의 구체적 지침에 따라 움직였다. 교회가 은폐에 총력을 기울이는 동안 피해자들의 영혼은 부서졌다. 짐 부치는 여덟 살 때 미 메릴랜드주 클린턴의 성요한 성당에서 사제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학대는 4년간 이어졌다. 그는 ABC뉴스에 “그때는 그것이 내 잘못인 줄로만 알았다. 나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미워했다. 그러나 내게 그런 짓을 한 것은 한 남자였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부치는 한때 약물 중독에 빠졌고 강도 등 혐의로 복역했다. 교회 신도들도 깊은 상처를 받았다. 최근 워싱턴포스트(WP)는 2015년 미 여론조사 기업 퓨리서치의 연구를 인용해 “가톨릭 신앙을 잃은 27%가 그 이유로 사제 성 학대 추문을 꼽았다. 개신교로 개종한 가톨릭 신도 21%도 같은 이유로 가톨릭을 등졌다”고 보도했다.호주의 비영리 연구전문매체 ‘더 컨버세이션’은 사제의 성 학대 및 은폐 원인으로 교회의 보수성, 계층 구조, 책임 회피, 로비 등 4가지를 꼽았다. 더 컨버세이션에 따르면 교회는 일선 사제의 비행에 대한 책임이 교구를 포함해 가톨릭 전반으로 확대되는 것을 두려워해 은폐에 나선다. 또 평신도·사제·고위 성직자로 엄격하게 구분되는 계층 구조가 상위 계층에게 ‘절대적 순종’이라는 무기를 준다. 이 무기는 상위 계층이 하위 계층을 학대하는 데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때로 교회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라면서 사제 개인의 문제로 돌린다. 뉴저지주의 존 밤브릭 신부는 최근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열다섯 살 때 사제에게 반복적으로 성 학대를 당했다. 학대를 당한 지 11년 뒤 가해 사제를 뉴욕 대교구에 고발했다. 한 주교는 ‘한여름 밤의 로맨스’라며 나의 아픔을 무시했다. 주위 사람들은 나를 비난했다”고 폭로했다. 밤브릭 신부는 주교 등 교회 권력 선출 과정에 일반 신도가 참여해야 하며, 주교 임명 시 자질을 엄격히 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씨줄날줄] 성매매 자활지원금/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성매매 자활지원금/박현갑 논설위원

    “성매매는 대한민국에서 불법인데 왜 체포는 못할망정 지원을 해주나요?” “성매매를 하지 않고 정직하게 열심히 아르바이트해서 학자금, 대출한 빚 갚고 생활비 버는 학생들은 무엇이 되는 것입니까?” “이럴 돈 있으면 군대에서 사고로 다치거나 죽은 사람한테 보상해 주세요.”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인천 미추홀구의 성매매 종사자의 자활지원금 조례 시행을 반대하는 목소리들이다. 수십여 건의 청원은 한결같이 조례 폐기를 외친다. 전국 단위로 시행되는 법이 아닌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려는 자치법규 시행에 대한 논란치고는 매우 뜨겁다. 논란이 된 자치법규는 인천 미추홀구에서 17일부터 시행하는 성매매 피해자 등의 자활지원 조례 시행규칙이다. 관내 집창촌인 ‘옐로하우스’의 성매매 종사자로서 탈성매매확약서·자활계획서를 제출한 경우 심사를 거쳐 내년부터 1인당 연간 2260만원을 1년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월 100만원 이내의 생계비, 700만원 안팎의 주거지원비, 월 30만원 이내의 직업훈련비 등이다. 지원받았다가 다시 성매매를 한 사실이 확인되면 즉시 회수한다. 구는 2022년까지 연간 10명씩 4년간 40명에게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미추홀구에 따르면 성매매 자활지원 조례는 대구, 전주, 아산시도 시행 중이며 서울 성북구도 조례 제정을 마쳤다. 옐로하우스는 1970년대 미군 부대에서 노락색 페인트를 얻어다가 벽을 칠한 데서 유래한다. 현재 70곳 정도 있다. 이곳은 700여 가구의 주상복합아파트로 바뀔 예정이다. 조례를 발의한 이안호 미추홀구의원은 지원 반대 목소리에 대해 “처음부터 성매매에 종사한 사람은 없다. 가정폭력 등으로 가출하는 등 여러 요인이 있다”면서 “성과와 효율성만 따질 게 아니라 취약계층 지원에 대한 가치성을 따져야 한다. 상담을 거쳐 정밀하게 지원 대상을 정한다. 젊은 사람일수록 벗어나고 싶어 한다”고 덧붙였다. 2004년 9월 성매매특별법 제정으로 성매매는 단속하지만 키스방, 대화방 등 변형된 오프라인상 성매매와 모바일 채팅앱 등 온라인을 통한 음성적 성매매는 더 기승을 부리는 실정이다. 이른바 풍선효과인데 단속도 쉽지 않다. 미추홀구는 다시 성매매 활동을 하면 지원금을 회수한다지만, 방세 보증금 이외에는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하다. 성매매 재유입 방지가 입법 취지라면 특정 공간 중심의 지원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성매매 종사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게 맞다. 궁극적으로는 현장 단속도 해야겠지만 매춘 강요나 알선 등 산업화된 ‘성 시장’의 불법성 요인부터 해결하는 게 더 필요하지 않나.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돼지우리’ 같았던 삼등열차/손성진 논설고문

    [그때의 사회면] ‘돼지우리’ 같았던 삼등열차/손성진 논설고문

    담배만큼 열차 이름의 변천사도 복잡하다. 1974년까지는 운행 구간과 등급에 따라 별도의 열차 이름을 붙였다. 가령 서울~부산 구간 특급열차는 ‘맹호호’, 서울~광주는 ‘백마호’, 서울~목포는 ‘태극호’였다. 1977년부터 1983년까지는 운행 구간과 상관없이 등급만으로 ‘새마을호, 우등, 특급, 보급, 보통’으로 구분했다가 ‘새마을호, 무궁화호, 통일호, 비둘기호’(1984~2004)로 바뀌었다.“삼등 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고래사냥’이란 가요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가사에 나오는 삼등열차는 운행 구간에 있는 모든 역에 정차하는 완행열차(비둘기호)를 가리킨다. 1980년대 이후에는 완행열차도 좋아졌지만 1970년대 이전에는 엉금엉금 기어가는 속도는 둘째치고 시설이 형편없었다. 냉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승객들은 여름, 겨울이면 땀을 뻘뻘 흘리거나 오돌오돌 떨며 열차를 타고 가야 했다. 창문도 깨어진 채로 운행해 승객들의 원성을 샀다. 모든 것이 부족한 시절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열차 안의 유리창이 깨어진 것만 해도 서른 개가 넘고 의자 90%가량이 찢어져 솜이나 지푸라기가 볼품 사납게 꾸역꾸역 내밀었고 … 돼지우리인지 분간을 못 할 지경이다.”(경향신문 1958년 11월 21일자) ‘고색창연한 증기기관차’가 끌었던 완행열차가 연착을 밥 먹듯이 해도 “이유는 왜 묻느냐”고 되레 쏘아붙이는 등 역무원들의 태도는 승객들을 무시하며 고압적이었다. 공안원이 있건 없건 콩나물시루 같은 객차 안에는 소매치기, 잡상인, 야바위꾼, 심지어 강도까지 설쳐 거액을 도난당하거나 잃기 일쑤였다(동아일보 1966년 8월 16일자). 차량이 노후한 탓에 충돌, 추돌 사고보다 더 황당한 사고도 있었다. 전라선 오르막길을 운행하던 열차의 기관차와 객차 사이의 연결기가 파손돼 승객을 태운 객차가 7.7㎞나 후진해 두개 역을 거꾸로 돌아간 사고다(경향신문 1962년 12월 11일). 그런데 1960년대까지 특급열차 객실은 일등, 이등, 삼등칸으로 구분돼 있었다. 삼등칸은 1969년에 대부분 없어졌다. 폐지 직전 서울~부산 삼등칸 요금은 925원으로 이등칸의 절반이었다. 삼등칸은 완행 객차를 이어 붙인 것으로 말끔한 일·이등칸과 내부 시설이 달랐다. 심지어 비가 새는 객차도 있었다. 1963년 1월 서울발 부산행 삼등칸 승객들은 객차 스팀 고장으로 밤새 벌벌 떨다 못해 이등칸으로 옮겨 가서 승무원들에게 격렬하게 항의했다(동아일보 1963년 1월 22일자). 느리고 지저분했던 완행열차 비둘기호도 2000년 11월 운행을 멈추었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열린세상] 북한 ‘경제 우선 신정책’ 노선의 성공 조건/박두복 국립외교원 명예교수

    [열린세상] 북한 ‘경제 우선 신정책’ 노선의 성공 조건/박두복 국립외교원 명예교수

    지난 4월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경제 우선의 신정책’ 노선이 채택됐고, 이번 9·9절에서도 경제가 국가 정책의 중심 과제임이 확인됐다. 이러한 신정책 노선은 풍부한 지하자원과 높은 교육 수준, 양질의 노동력 그리고 유리한 지정학적 위치 등 북한이 갖는 유리한 조건들과 성공적으로 결합한다면 경제의 고도성장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북한의 신노선이 고도의 경제성장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개의 전제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미국과의 적대관계 청산을 통한 평화로운 주변 환경을 확보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북한이 추구하는 개혁이 사회주의 틀 내에서의 제한적 개혁이 아니라 체제 이행적인 근본개혁이 돼야 한다. 1970년대 말 중국이 과감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주변에 적대세력이나 위협이 근본적으로 해소된 평화로운 주변 환경의 확립에 있었다. 중국은 1970년대 말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이루었고, 소련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해 북방으로부터의 위협까지 전면 해소했다. 베트남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개혁개방 정책도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평화로운 주변 환경을 확보했기에 가능했다. 북한 역시 경제 우선의 신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미국과의 적대관계 청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과의 적대관계 청산으로 한반도의 냉전 체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자신의 극단적인 고립 상태에서 탈피할 수 있을 때 경제발전을 위한 과감한 개혁개방 정책의 추진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북·미 간 적대관계의 근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핵문제에 대한 발상의 전환과 이를 통한 미국과의 적대관계 청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경제 우선의 신노선이 고도경제발전의 성과로 연결되려면 그동안 생산성 증대를 속박해 왔던 사회주의 경제 요소들을 과감히 버리고 시장 등 자본주의 경제 요소를 적극 도입하는 체제 이행적 개혁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 구소련과 동구에서 시도됐던 사회주의 내에서의 개혁은 모두 실패했고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 일부 보수적 개혁세력들이 추구했던 ‘조롱(鳥籠)경제’(새장 안의 개혁)도 개혁개방의 큰 흐름 속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중국과 베트남의 성공은 양국 모두 사회주의 정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자본주의 경제로의 체제 이행을 추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경제 재건에 강력한 의지를 보여 왔다. 핵·경제 병진노선도 경제발전을 궁극적 목표로 한 정책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제발전을 위한 근본적 개혁 논리나 청사진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그동안 포전담당제, 기업의 자율권과 차등임금제 등 경제 활성화를 위한 일부 경제관리 방식의 개혁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은 사회주의 틀 내에서의 개혁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사유제와 시장 메커니즘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체제 전환적 개혁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제 우선 신노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생산성 증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비사회주의 요소, 즉 자본주의 경제 방식의 도입을 정당화·합법화할 수 있는 이론적·이념적 논리를 확립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 그들 사회주의 발전 단계를 저급한 단계로 규정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발전 단계를 높게 평가하면 할수록 비사회주의 요소의 도입 공간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과거 중국은 그들의 사회주의 발전 단계를 초급 단계로 규정했고 베트남도 사회주의 발전 단계를 초급 단계의 시작 단계로 더욱 낮게 규정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주의 발전 단계에 대한 북한의 평가는 앞으로 북한의 개혁 의지를 평가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북한이 사회주의 발전 단계를 저급한 것으로 규정한다면 경제의 효율성과 생산성 증대를 위해 절실한 자본주의 경제 방식의 과감한 도입이 가능하다. 이는 결국 경제 우선의 신노선이 성공하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다.
  • 60년간 2000배 늘어난 우주쓰레기

    60년간 2000배 늘어난 우주쓰레기

    초속 8㎞로 돌면서 통신위성 등 위협 자동파괴·대기권 소각·그물 수거 연구 군사위성 비공개… 우주교통관리 골치# 올 초 중국의 실험용 우주정거장 ‘톈궁 1호’가 지구에 추락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세계 각국은 비상이 걸렸다.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대부분이 소멸되겠지만 만에 하나 작은 조각이라도 인구밀집지역에 추락하는 경우 심각한 피해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톈궁 1호’의 잔재는 남태평양 해상에 떨어져 아무런 피해는 없었다. # 유럽우주국(ESA)에서 2010년 환경 감시 및 연구 목적으로 발사한 크라이오샛2(CryoSat2)는 지난 7월 2일 임무 고도인 700㎞ 상공을 돌고 있었다. 그런데 지상관제국에서 위성을 향해 작은 우주 파편조각이 날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긴급 강제 조종 모드로 바꿔 가까스로 충돌을 피했다. 1억 4000만 유로(약 1829억원)가 투입된 위성이 무용지물이 될 뻔한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인공위성 95% 수명 다해 ‘좀비’ 전락 1957년 10월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1호’가 발사된 이후 수많은 위성이 우주로 올라가면서 토성의 고리처럼 지구 주변을 떠다니고 있다. 그런데 현재 지구 주변을 돌고 있는 위성 중 약 95%는 수명이 다해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 ‘좀비’ 위성이다. 여기에 로켓 잔해, 위성에서 떨어져 나간 페인트 조각, 나사, 심지어 우주비행사가 우주 유영 중에 놓친 공구까지 수많은 우주쓰레기가 지구를 둘러싸고 있다.이런 우주쓰레기들은 지구 궤도를 초속 8㎞라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돌고 있다. 운동하는 물체의 에너지는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에 1㎝ 이하의 작은 조각이라도 정상 작동하는 인공위성과 충돌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최신호에서는 민간 우주기업이 증가하면서 지구 주변을 도는 우주쓰레기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우주공학자들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는 분석 리포트를 발표했다. ESA가 지난 5월 발표한 ‘우주환경 연간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1957년 이후 우주 물체는 1970년대 2000개, 2000년대 7500개, 2017년 현재는 2만여개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전 세계적으로 400개 이상의 위성이 발사됐다. 이는 2000년대와 비교했을 때 4배 이상 증가한 숫자다. ●부딪치면 파편 생겨 기하급수적 증가 미국 퍼듀대 항공우주공학과 캐럴린 프루에 교수는 “각종 우주물체가 지구 궤도를 가득 채우면서 우주공학자들은 이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잠재적 충돌 위험성은 점점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루에 교수는 “문제는 우주쓰레기와 부딪친 위성들이 파괴되면서 수많은 파편들을 또 만들어 내기 때문에 우주쓰레기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이에 우주공학자들은 고열을 이용해 우주쓰레기를 태우거나 압축하는 방안, 위성이 수명이 다 되면 완전 분해에 가깝게 자체 파괴되도록 하는 방법, 우주쓰레기 수거용 위성을 발사해 거대한 그물로 수거하는 방안들을 연구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상에서 우주쓰레기에 레이저를 발사해 경로를 바꾼 뒤 지구로 떨어지도록 해 대기권에서 태워버리는 방법도 구상되고 있지만 당장 현실화되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또 다른 우주공학자들은 우주공간에 떠다니는 우주물체들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새로운 위성을 우주쓰레기와 다른 궤도에 올리는 ‘우주교통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텍사스 오스틴대 모리바 자 교수는 “우주쓰레기로 인한 위협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각국 정부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발사된 위성들의 정보까지 모두 포함시켜야 하는데 이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는 것이 우주교통관리 시스템 도입에 걸림돌”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쉽게 문 열지 않던 수도원·미술관…한양도성 품은 마을처럼 환대하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쉽게 문 열지 않던 수도원·미술관…한양도성 품은 마을처럼 환대하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7회 성북(북정마을 가는 길) 편이 지난 8일 성황리에 진행됐다. 매주 월요일 0시에 시작되는 치열한 예약전쟁을 뚫은 예약자 30명과 대기자 10명 등 모두 40명이 이날 10시 정각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에 모였다. ‘노쇼’에 대비, 대기자를 뒀지만 무단결석자가 사라지면서 예약자와 대기자 구분 없이 정원이 40명으로 늘어난 지 오래다. 걷기 좋은 날씨, 더할 나위 없는 코스에 대한 기대감이 참석자들을 들뜨게 했다.베테랑 해설자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가 안내한 이날 코스는 한양도성 혜화동전시안내센터를 출발, 성북동 국시집~최순우 옛집~마전터 표지석~북정마을~성북동 비둘기 소공원~만해의 심우장~이종석 별장~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옛 본원 및 복자사랑 피정의집~이태준의 수연산방~쌍다리식당~간송미술관의 순서로 이어졌다. 어느 곳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역사와 사연의 손때가 묻은 곳이다. 성북동의 명소이지만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옛 본원과 성당이 이날 처음으로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에 공개됐다. 한국인이 창설한 최초의 수도원인 두 곳 모두 서울미래유산이다. 일행을 안내한 신부님의 입에서 “최초 공개”, “첫 방문”이란 말이 반복됐다. 또 매년 5월과 10월 두 차례만 일반인의 방문을 허용하는 간송미술관도 답사단이 보화각과 간송 흉상을 직접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설문에 응한 23명의 참가자는 “평소 가고 싶었던 곳, 가려운 등을 콕 집어 긁어주는 코스”, “2시간 30분도 짧은 듯”, “새록새록 앎이 즐겁다”, “신부님의 해설 감동, 해설자의 해설 만족”이라는 호평을 소감으로 남겼다.조선시대 혜화문 성곽 안과 밖은 딴 세상이었다. 성곽 안 동촌은 사대부를 중심으로 동인들이 살던 양반마을이었지만 성곽 밖은 찢어지게 가난한 자내(字內) 산골이었다. 자내마을은 성곽을 지을 때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하늘 천(天)에서 조상할 조(弔)까지 97개의 글자 구간으로 나눠 축조한 구간을 말한다. 자내마을은 지명이 없이 구간의 이름이 주소 역할을 했다. 지금도 이 구간 성곽의 안은 종로구, 바깥은 성북구 성북동과 동소문동으로 행정구역이 갈린다.해방 이후 서울의 행정구역은 종로구와 중구 등 옛 도심에 접한 지역은 사대문을 중심으로 남대문구, 서대문구, 동대문구라고 이름을 붙였고, 나머지 성저십리(성 밖 십리)마을은 도성의 동쪽과 북쪽이라는 뜻에서 성동구와 성북구로 정했다. 성북구는 말 그대로 성 밖 북쪽 마을이다. 한양도성은 성안과 성 밖 주민의 신분을 구분 짓는 엄격한 경계였다. 성곽이 해체되고, 삶의 공간이 확대되면서 성은 분리와 경계의 대상에서 삶의 질과 경관의 대상으로 변했다. 근현대 변혁의 물결 속에서 옛것이 사라져버린 성 안보다 오히려 성 밖이 각광받는 세상이 됐다. 성 안은 아파트와 빌딩이 점령했지만, 성 밖은 숲과 한옥과 골목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시인 김지하는 ‘오적’에서 성북동을 재벌, 국회의원, 장·차관, 장성, 고급공무원이 사는 도둑촌으로 지목했지만 덕분에 성북동은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지 못하는 품격 있는 동네로 남았다. 성북동의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조선시대 선잠단이 성북동의 정체성이다. 선잠단은 양잠(養蠶)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 신성한 공간이다. 농업과 잠업은 중세 사회의 두 축이었다. ‘남경여직’(男耕女織)이라고 해 남자는 논밭을 갈고, 여자는 베를 짜는 게 본분이라고 여겼다. 권농은 왕이, 권잠은 왕비가 직접 주관했다. 사람이 살지 않은 혜화문 밖 마을의 최초 이주자는 숙정문과 혜화문을 지키는 군인가족들이었다. 농사 대신에 시전에서 판매하는 포목을 잿물에 빨아서 삶아 말리는 일(마전)을 하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으로 먹고살았다. 겨울철에는 메주를 담가서(훈조) 시전에 납품했다. 둘 다 군인과 가족들을 위한 영조의 생계조치이자 특혜였다. 지금의 성북초등학교는 빨랫감을 말리는 장소였고 북정마을은 메주를 쑤는 동네였다. 빨래골, 북적골이라는 지명이 전해졌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성곽마을 북정마을이 북적골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일제강점기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는 식민지의 수도 경성이 꼴 보기 싫어서 등을 지고 사는 사람들의 본거지였다. 만해 한용운을 중심으로 독립운동가들이 깃들고, 이태준과 박태원에 이어 청록파(조지훈·박두진·박목월) 시인의 청록집이 만들어진 문화예술인촌이었다. 한국전쟁 후 피란민과 월남민들이 도성을 따라 판잣집, 토막집을 지었고 1970년대 이후에는 고급주택이 들어섰다. 도성 밖 북쪽 성벽에 기댄 채 북향을 하고 사는 남쪽마을은 서민들이, 구준봉 아래 양지바른 언덕에 남향을 하고 사는 북쪽마을은 부자들이 자리를 잡았다. 성북동의 새 정체성을 만든 사람은 간송 전형필과 혜곡 최순우이다. 간송은 만석꾼 문화재 수장가요, 혜곡은 국립박물관 학예사 출신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 의해 북으로 고스란히 넘어갈 위기에 처한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을 지킨 혜곡에게 간송이 큰절을 올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회자되지만 정작 두 사람의 인과 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이충렬이 쓴 ‘간송 전형필’과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라는 두 권의 책을 종합해 보면 간신히 의문이 풀린다. 두 사람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불과 두 달여 전인 1950년 4월 16일 수장가와 학예사로 처음 인사를 나눴다. 흔히 ‘천학매병’이라고 알려진 ‘청자상감운학매병’을 간송이 국보특별전시회에 출품하자 같은 해 4월 30일자 서울신문에 혜곡이 ‘역사에 빛나는 도자기’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게 계기였다. 간송이 만남을 청했으나 이때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얼마 후 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은 보화각(간송미술관)의 문화재를 평양으로 옮길 사람으로 혜곡과 소전 손재형을 지목했다, 혜곡과 소전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뒤집힐 때까지 목숨을 걸고 포장을 늦춰 문화재의 북송을 막았다. 이후 간송은 혜곡을 아우이자 애제자로 대했고 혜곡은 간송을 큰형님이자 스승으로 존경했다고 한다. 최순우는 간송이 감사의 마음으로 혜곡에게 선물한 필명이다. 혜곡의 집안 항렬자인 순박할 순(淳)에 간송 집안 아들항렬 돌림자인 비 우(雨)자를 합해 순우(淳雨)라는 필명을 만들어 준 것이다. 처음에는 최희순이라는 본명과 병행해서 사용하다가 1950년대 후반부터는 최순우란 이름을 본명처럼 썼다. 간송은 스승 위창 오세창에게서 물려받은 문화재 감식안과 필생의 안목을 혜곡에게 낱낱이 전수했다. 위창과 간송이 고졸 출신의 혜곡을 한국미의 순례자에 오르게 했다. 스물네 살 때 조선의 거부 40인에 들 정도로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은 뒤 위창으로부터 받은 ‘문화보국’의 기치를 마음에 심은 간송이 왜 하필 성북동에 최초의 사설박물관을 지었을까. 간송 또한 만해처럼 식민지의 수도 경성을 등지고, 일제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고자 했다. 1938년 4년여의 공사 끝에 최초의 조선인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한 박물관이 완공되자 위창은 ‘빛나는 보배를 모아 두는 집’이라는 뜻에서 미술관 건물을 보화각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박물관의 본래 이름은 북단장(北壇莊)이었다. 1934년 수장고로 사용할 건물이 먼저 완성되자 위창은 북단장이라는 당호를 붙였다. 일제가 사직단과 합친다며 선잠단을 해체하자 사람들이 박물관 터를 ‘북쪽에 있는 선잠단’이라는 뜻에서 북단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현대의 성북동을 이루는 근대의 간송미술관은 결국 중세 선잠단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송파(백제의 꿈) ●일시 : 9월 15일(토) 오전 10시~낮 12시 ●집결 장소 :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 6번 출구 앞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글로벌 인사이트] 살인적 집값 상승에… 맥도날드·차에서 잠드는 ‘억대 연봉 난민’

    [글로벌 인사이트] 살인적 집값 상승에… 맥도날드·차에서 잠드는 ‘억대 연봉 난민’

    “집을 살 수 없다고? ‘지구 종말론’을 탓하라.”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크리스 브라이언트는 최근 이런 제목의 칼럼으로 선진국 가운데 처음 외국인의 주택 매매를 법적으로 금지한 뉴질랜드 정부에 찬성하는 목소리를 냈다. 살인적인 집값 상승에 거리로 내몰리는 국민을 위해 다소 극단적일지라도 뉴질랜드 정부가 자구책을 내놨다는 평가다.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뉴질랜드 전체 인구 450만여명의 1%에 해당하는 약 4만명이 홈리스(노숙자)로 추산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0.2% 내외)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FT는 뉴질랜드의 집값이 지난 10년여 새 57% 상승했으며, 특히 오클랜드는 상승폭이 90%에 달했다고 집계했다. 국경을 초월한 부동산 투기가 과열되면서 정작 국민들은 자동차, 텐트, 창고, 거리로 나앉는 신세가 됐다. 특히 뉴질랜드는 전 세계 부자들에게 핵전쟁, 생물학전, 상위 1% 부자를 향한 혁명 등으로 인한 이른바 ‘둠스데이’(지구 종말의 날)를 대비한 피난처로 여겨지면서 집값이 하락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참모이자 인터넷 결제 서비스 페이팔의 공동창업자인 피터 틸이 2011년 비밀리에 뉴질랜드 시민권을 취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외국 투기자본이 집값을 끌어올려 젊은 키위(뉴질랜드인)들이 집을 살 수 없게 됐다”며 외국인 주택 매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한 한편, 노숙자 주거시설을 지을 목적으로 1억 뉴질랜드 달러(약 756억원)를 투입했다. ● 실리콘밸리 일자리 29%↑… 주택은 4% 늘어 살인적인 집값 상승에 ‘주거 적신호’가 켜진 나라는 뉴질랜드만이 아니다. 10일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올해 1분기 또는 지난해 4분기 기준 ‘글로벌 실질 주택가격 지수’는 160.1로 2000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금융위기 직전 정점을 찍었던 2008년 1분기의 159.0을 추월했다. 국가별로 보면 63개국 가운데 48개국(76%)에서 최근 1년간 실질 주택가격이 오른 것이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워싱턴주 시애틀, 뉴욕의 집값이 폭등하고 있다. 중화권에서는 홍콩과 중국 선전, 상하이 등 역시 대도시를 중심으로 집값이 치솟고 있다. 영국 런던, 캐나다 밴쿠버 등에서도 투기자본에 의한 집값 상승이 이어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억대 연봉을 받고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차에서 노숙하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 미 연방정부는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어리어’에서 4인 가족 기준 소득 11만 7400달러(약 1억 3000만원) 이하를 저소득층으로 분류한다. 막대한 주거비 부담 때문이다. 치솟는 수요에 비해 경직된 주택 공급이 비극을 불렀다. 컨설팅사 맥킨지의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캘리포니아 일대에는 주민 1000명이 유입될 때 신규 주택 공급은 325가구에 불과했다. 반면 1973년부터 2010년까지 27년간 샌프란시스코 주민들의 실질 소득은 2배로 증가했다. 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도시의 풍경은 별로 변한 것 없이 갈수록 퇴락해 가는데 집값만 미친 듯이 오르는 상황이다. 292개 회원사를 둔 조직인 실리콘밸리리더십그룹(SVLG)의 칼 가디노 회장은 “지금의 주택·교통난이 지속한다면 얼마 안 있어 ‘실리콘밸리 엑소더스’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SVLG는 2010년부터 2016년까지 7년 동안 정보기술(IT) 기업의 집중으로 실리콘밸리 지역의 일자리는 29%나 증가했지만 이들이 머물 주택 공급은 겨우 4% 증가하는 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아마존의 도시’이자 ‘스타벅스의 고향’으로 불리는 시애틀은 지난 4년간 뉴욕 집값을 뛰어넘었다. 시애틀 시의회는 노숙자 복지 기금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지난 5월 인두세 부과 법안을 꺼냈으나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이 이에 맞서 도심에 짓고 있던 17층짜리 오피스빌딩 건설 계획을 중단하는 등 역풍을 맞아 백지화됐다. 이 법안은 영업이익 2000만 달러가 넘는 기업에 직원 1명당 275달러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골자였다. 시애틀에서만 4만 5000여명을 고용해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아 온 아마존이 타깃이었다. ●‘맥난민’ 5년새 6배 급증… 57%가 직장인 중국 광둥성 선전시도 비슷한 요인으로 신음하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의 흔한 시골 중 한 곳이던 선전은 덩샤오핑 개방정책의 일환으로 1980년 경제특구로 지정되면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화웨이, 인터넷서비스 전문업체인 텐센트, 배터리·전기차 제조업체인 BYD 등이 들어서 있다. 기업의 성장과 함께 인구가 집중되면서 임대료가 치솟았다. 글로벌 부동산시장 분석업체 넘베오에 따르면 2018년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은 초인플레이션을 겪는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를 제외하면 세계 1위는 홍콩이고 베이징이 2위, 상하이가 3위이며 선전은 그 뒤를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집값 폭등으로 새로운 풍속이 생겨났다. 홍콩에서는 집 대신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날드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을 일컬어 ‘맥난민’이라 부른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국제청년회의소(JCI)가 지난 6~7월 홍콩 시내에 산재한 110개 맥도날드 매장을 조사한 결과 맥난민의 수는 334명에 달해 2013년에 비해 6배로 급증했다고 조명했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 중 57%가 멀쩡한 직업을 가진 직장인이라는 점이다. 천문학적인 집값 부담이 그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홍콩 중산층 아파트 가격은 평(3.3㎡)당 1억원을 넘어서 내 집 마련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시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영국 런던 리젠트 운하에 정박된 보트에서는 일명 ‘보트족’이 모여 산다. 폭등한 월세를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주거용 선박에서 수상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런던의 주택 평균 거래가는 9억원대인데 비해 보트는 3000만원 정도면 구할 수 있다. 보트에서 생활하는 영국인은 3만명에 이른다. 집값은 지난해 영국 노동자들이 평균적으로 벌 수 있는 연간 소득의 8배로 폭등했다. 이는 영국에서 집값과 연소득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97년 이래 최고 수준이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의 집값은 1997년부터 2016년까지 259%나 폭등했다. 이 기간 연소득은 68% 오르는 데 그쳤다. 영국 왕립경제학회는 “외국인의 투자가 없었다면 2014년 영국 평균 집값은 실제보다 19% 낮았을 것”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내기도 했다. ●호주·홍콩, 빈집에 세금 부과 추진 전 세계가 집값 폭등으로 신음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갈 곳 잃은 시중 유동자금이 부동산에 몰리고 있는 탓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는 금리를 낮추고 역사상 유례없는 돈 풀기에 나섰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기준 금리를 0.25%까지 낮춰 기업과 가계에 대한 대출을 대폭 늘렸고 민간이 가진 미 국채를 사들여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당시 시중에 풀린 수조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 액수의 유동자금이 투자처를 찾던 끝에 각국의 부동산 시장을 과열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현상이 일부 도시 지역에 집중돼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오를 만한 곳에만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른 각국의 대응도 이어지고 있다. 외국인의 주택 구입 금지 법안을 의결한 뉴질랜드 의회를 비롯해 호주는 외국인이 주택을 사들인 경우 6개월 이상 빈집으로 두면 처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홍콩 정부도 ‘빈집세’ 카드를 꺼내들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전했다. 주택 개발업자가 분양한 아파트가 1년 이상 팔리지 않고 빈집으로 남아 있으면 임대료의 두 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세금으로 매긴다는 방침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김균미의 세계는 지금] “꼭꼭 숨어라…NYT 익명 기고자 찾을 수 있을까”

    [김균미의 세계는 지금] “꼭꼭 숨어라…NYT 익명 기고자 찾을 수 있을까”

    미국 워싱턴 정가와 언론계가 발칵 뒤집혔다. 5일자(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의 오피니언면에 실린 익명의 트럼프 행정부 고위관리가 쓴 칼럼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극히 드문 일이어서 언론계와 미 정가에서 일고 있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나는 트럼프 행정부 내 저항 세력의 일부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익명의 기고자는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난맥상을 폭로하고 “충동적이고 적대적이며 비효율적”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을 저지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도덕관념의 부재”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집권 초기에는 대통령이 직무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의회 표결을 통해 물러나게 하는 수정헌법 25조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다고 밝혀 충격을 줬다. 그는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나라에 대한 임무인데, 대통령은 계속 나라에 해로운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다”면서 “행정부 안에는 나라를 (대통령보다) 더 우선순위에 놓는 사람들의 조용한 저항이 존재한다”고 말했다.뉴욕타임스의 익명 칼럼에 트럼프 대통령이 대로한 것은 당연하다. 언론과의 인터뷰는 물론 트위터를 통해 쉴새 없이 격한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트럼프는 익명의 고위 정부관료의 기고문에 대해 “반역”이라는 표현을 쓰고, 뉴욕타임스에 국가 안보를 위협한 기고자의 신원을 당장 밝히라고 요구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물론 공화당 관계자들은 익명이라는 보호막 뒤에 숨지 말고 당장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속도 내는 색출작업…‘용의자’ 12명으로 좁혀졌나 익명의 기고자를 찾아내기 위한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기고문의 내용과 문체, 단어 등에 대한 정밀 분석을 마쳤다. 칼럼에 외교 안보에 대한 언급이 많아 백악관의 국가안보 담당 부서나 국무부, 국방부에 근무하는 고위 관리이거나 법무부 관계자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얼마 전 타계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에 대한 언급이 길게 돼 있고,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추도사에서 거론했던 단어가 등장한다는 점을 들어 매케인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인사일 가능성까지 제기되기는 등 추측이 난무한다. 서로에서 손가락질하며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지자 장관들과 주요 정부 관료들이 공개적으로 “나는 아니다”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7일 현재 부통령과 국무, 국방장관 등 25명이 방송에 출연하거나 성명서를 통해 자신은 무관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을 다짐하고 있다.“거짓말 탐지기라도 동원해 기고자 색출해야” 익명의 기고자를 색출하기 위해 거짓말 탐지기를 동원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고 한다. 트럼프 지지자인 공화당의 랜드 폴 상원의원은 백악관과 행정부의 고위 관리직을 상대로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대통령의 자문 중 일부도 같은 주장을 했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그런가 하면 고위 관료들에게 법적 효력을 갖는 진술서에 서명하도록 하는 방안도 거론됐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외부 자문의 말을 인용해 백악관이 ‘용의자’를 12명으로 압축했다고도 전했다.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하든, 결백을 주장하는 진술서에 서명하도록 하든, 그 어느 쪽도 해결책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불신과 실망만 키울 뿐이다. 트럼프, 언론에 대한 공격 수위 더욱 거세질 것 뉴욕타임스에 실린 익명의 칼럼은 여러 면에서 극히 이례적이다. 먼저 뉴욕타임스의 결단이다. 익명의 칼럼을 오피니언면에 실은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고자의 안전과 직결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실어왔다. 뉴욕타임스의 오피니언 담당 편집책임자인 제임스 다오는 “지난주 어떤 사람을 통해 칼럼을 건네 받았다”면서 내부 논의 과정에서 기고자의 신원과 내용의 중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게재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익명의 기고자 신원은 극소수만 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 내부와 언론계에서는 칼럼 내용이 새로울 게 하나도 없는데 굳이 이렇게 큰 위험부담을 감수할 필요까지 있었느냐는 비판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에 비판적인 언론들에 ‘국민의 적’,‘가짜뉴스’ 프레임을 씌워 공격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언론과 비판세력에 대한 공격 강도를 더욱 강화할 것이 훤하기 때문이다. 또 언론, 특히 트럼프에 비판적인 언론들의 취재여건은 더욱 열악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는 11일 시판되는 밥 우드워드의 책 ‘공포:트럼프의 백악관‘을 포함해 이미 출간된 트럼프 관련 책들과 언론 보도들에 실명과 익명의 관료들 인터뷰가 반영돼 있지만, 이번처럼 현직 고위관료가 직접 트럼프 백악관과 행정부 내부 이야기를 폭로한 것은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많다.트럼프의 통치 스타일 변화는…‘글쎄’ 다음은 미 공직사회에 미칠 파장이다. 이번 사건이 과연 백악관과 미 행정부 관료들이 일하는 방식과 사고에 변화를 가져올지, 궁극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미국의 정치전문가들은 백악관 측근들과 행정부 고위 관료들에 대한 트럼프의 불신과 의혹이 커질 것으로 우려한다. 주위에 믿을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딸과 사위 등 직계가족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지고 정통 관료들과 전문가들의 ‘말발’이 더 먹히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익명의 고위관료가 기대했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견제가 오히려 어려워질 수 있다. 익명 기고의 역효과랄까. 중간선거에 미칠 영향도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안팎의 계속되는 공격으로 골수 지지층의 결집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바람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 만큼 트럼프가 핵심 지지층뿐 아니라 중도 성향의 표까지 결집해 하원의 다수당 지위를 지켜낼 수 있느냐이다. 1970년대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볼 수 없었던 미국 정치 드라마가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어떻게 전개될지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김균미 대기자 kmkim@seoul.co.kr
  • 70년대 할리우드 섹스 심벌 버트 레이놀즈 82세 일기로 타계

    70년대 할리우드 섹스 심벌 버트 레이놀즈 82세 일기로 타계

    1970년대 미국 박스오피스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할리우드 스타 버트 레이놀즈가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매체들은 6일(이하 현지시간) 그가 플로리다주의 주피터 메디컬센터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아들 퀸턴 등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2010년 심장 바이패스 수술을 받았다. 고인과 마찬가지로 운동 선수에서 영화배우로 전업해 성공한 뒤 캘리포니아주 지사까지 지낸 아널드 슈워제너거는 “나의 영웅이었으며 늘 앞서가는 인물이었다. 늘 날 일깨웠으며 위대한 유머 감각을 지녔다. 투나잇 쇼 클립을 한 번 보라.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이라고 추모했다. 폿볼 선수로 잘나가 플로리다주립대에 장학금을 받고 들어갈 정도였다. 무릎을 다쳐 운동을 접고 연극 ‘Outward Bound’에 출연하며 연기에 발을 들였다. 이 작품으로 1956년 플로리다주 드라마상을 수상했다. 1972년 영화 ‘서바이얼 게임(원제 딜리버런스)’에 출연해 이름을 날린 고인은 1977년 ‘스모키 밴딧’에 거친 트럭 운전사로 출연하며 절정에 이르렀다. 당시 이 영화보다 많은 관객을 끈 작품은 ‘스타워즈’ 뿐이었다. 고인은 ‘캐넌볼 런’ 등이 흥행하며 할리우드의 섹스 심벌로 떠올랐다. 1980년대 들어 그의 연기는 별볼일 없어졌고 레스토랑들과 플로리다의 풋볼 팀에 대한 투자가 실패하며 벌어놓은 돈을 다 까먹었다. 1997년 은막으로 돌아와 ‘부기 나이츠’에서 포르노영화 감독을 연기해 다시 큰 인기를 누렸고 아카데미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사실 그는 오스카 후보로 세 차례나 지명됐으나 수상의 영예를 누리지 못했다. 두 차례 결혼했는데 1963년 영국 배우 주디 카르네와 결혼한 지 2년 만에 낭비벽이 있고 불성실하다는 이유로 이혼당했다. 얼마 안 있어 1100만 달러의 빚 때문에 파산 선고를 받아 골든글러브상 등 숱한 트로피들을 팔아야만 했다. 1988년 미국 여배우 로니 앤더슨과 재혼했지만 1993년 파경을 맞았다. 잡지 배너티 페어의 네드 제먼 기자가 “다르게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묻자 “돈도 더 쓰고 더 즐겼을 것”이라고 답한 일화가 유명하다. 또 007이나 ‘스타워즈’의 주인공인 한 솔로 역할을 제안받았으나 거절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죽기 전까지 퀸턴 타란티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가 출연하는 ‘원스 어폰 어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연기를 펼쳤다. 이 영화는 1969년 영화 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집에 침입해 부인 샤론 테이트 등 5명을 끔찍하게 살해한 할리우드 히피 찰스 맨슨의 얘기를 다루는데 내년 7월 개봉된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사설] 병역특례제, 폐지 포함 전면 재검토하라

    기찬수 병무청장이 엊그제 병역특례제도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 42명의 병역 면제에 형평성 논란이 일자 제도 자체를 손보겠다는 것이다. 예체능 병역특례제는 우리나라가 약소국이던 1970년대 국위선양 선수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도입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병역특례에 대한 폐지 검토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현재 올림픽 1~3위, 아시안게임 1위, 국제예술경연대회 2위 이상, 국내예술경연대회 1위 입상자들은 공익근무요원 특례가 주어져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만 받으면 병역의무를 면제받는다. 대부분 젊은이가 예외 없이 21개월간 군 복무를 한다는 점에서 엄청난 특혜다. 이번에 일부 프로야구 선수들이 경찰 야구단과 상무팀 입단 기회까지 포기하면서 병역 면제를 노리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져 공정성 논란이 더 커졌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일반 젊은이와의 공정성 문제뿐만 아니라 방탄소년단(BTS)이나 비보이 등 대중문화 분야 국위 선양자와의 형평성 논쟁이 뜨겁다. 국방부는 병역특례를 포함한 대체복무와 전환복무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한다. 예체능계 특례는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면 대체복무가 아니라 완전 면제 혜택이다. 이공계나 의대·로스쿨 출신들이 산업기능요원이나 공중보건의, 공익법무관으로 대체복무한다. 그동안 정부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병역 논란이 불거지면 땜질 처방으로 특례를 유지해 왔다. 체육계 일각에선 성적에 따라 마일리지를 많이 쌓은 선수에게 혜택을 주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공정성·형평성 논란을 불식할 근본 해법은 못 된다. 공론화 과정을 거쳐 병역특례제 폐지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 위도 파시 복원해 어업문화 재조명 해야

    우리나라 3대 파시(波市) 중의 하나였던 전북 부안군 위도 파시를 복원해 해양관광과 남북협력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북연구원은 2일 ‘바다의 황금시대, 위도 파시의 재현 의미와 추진방향’이라는 이슈브리핑을 통해 위도 파시의 재현과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인 관심을 주문했다. 위도파시는 황금어장인 칠산어장에서 잡아올리는 조기등 각종 수산물이 거래되는 중심지로 활황을 누렸다. 조선 전기부터 1970년대 초까지 형성됐다. 실제로 위도 파시는 탁지지(度支志)에 언급될 정도로 매우 큰 조기 시장이 형성됐다.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는 군사적 요충지로 위도진이 설치된 기록도 있다. 그러나 어장이 쇠락하면서 인구가 크게 줄고 어획량도 급감했다. 1960년대 최고 5000여명에 이르던 인구는 1200여명으로 줄었다. 위도 파시의 중심지인 파장금마을은 현재 소수만이 거주하고 있다. 건물도 대부분 역사의 흔적만 간직한 채 방치된 상태다. 전북연구원은 이같은 위도 파시의 쇠락은 역사적 가치의 복원·재현, 어업문화의 재조명 등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파시로 형성된 위도 고유의 섬 문화와 얽힌 이야기를 복원하는 작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위도는 전북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변산반도에서 서쪽으로 15㎞ 떨어져 있는 섬으로 5개의 유인도와 10여개의 무인도로 구성돼있다. 애초 전남 영광군에 속해 있다가 행정구역 개편으로 1963년 부안군에 편입됐다. 이동기 전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위도를 중심으로 한 ‘서해 파시 해양문화권’을 설정해 서해안 해양관광 루트를 조성하고 남북한 수산협력을 위한 ‘서해 남북 해상 파시’ 추진도 고려할 때”라고 말했다. 한편 파시는 해상에서 열리는 생선시장으로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기록돼 있다. 위도는 흑산도, 연평도와 함께 국내 3대 파시로 유명하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길섶에서] 과일간식/문소영 논설실장

    과자를 잘 안 먹는다. 어릴 때 가난해서 공산품인 과자는 비싸서 못 먹고 값싼 과일만 먹어서, 다 자란 뒤에 과일은 좋아하고 과자를 안 좋아하게 됐다는 나 나름대로 합리적인 설명을 했더니 세 살 아래 여동생이 고개를 갸웃했다. “언니! 우리 과일 자주 못 먹었거든.” “사과는 박스째 들여놓지 않았어.” “아니. 우리 집도 과일이 귀했거든.” “사과나 귤은 자주 먹은 기억인데.” “어린 시절 기억은 왜곡될 수 있어.” 심리학자인 여동생이 이렇게 일축했다. 인류학자 루이스 부부가 한 멕시코 가족을 통해 빈곤의 문제를 거론한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기술한 ‘산체스네 아이들’에서 5명의 가족 구성원이 그랬듯이 동생과 나의 기억도 이렇게 일치하지 않았다. 1970년대 과자가 비쌌던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과일이 싸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오랜 기억과 최근 대화를 데려온 이유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과일간식제’ 법안을 통과해서다. 올해 초등 돌봄학교 24만명의 어린이는 과일간식을 먹는다. 차차 유치원과 초등학교 전체로 확대한단다. 과수원을 하는 과일농가에는 안정적인 수요가 생기니 좋고 엄마가 바빠 과일섭취가 적은 아이들은 국내산 자연산 당분과 섬유질을 먹으니 좋은 일이다. 문소영 논설실장 symun@seoul.co.kr
  • 임창제, 이수영 불화설 해명 “어니언스 해체의 진짜 이유는..”

    임창제, 이수영 불화설 해명 “어니언스 해체의 진짜 이유는..”

    가수 임창제가 어니언스 해체로 인해 불거진 이수영과의 불화설에 대해 입을 열었다. 30일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는 1970년대 전 국민에게 포크송 열풍을 불러 일으켰던 그룹 어니언스 임창제 근황이 공개됐다. 임창제는 이수영과 함께 어니언스로 호흡한지 1년 반 만에 돌연 해체, 당시의 팬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이에 임창제는 “노래를 혼자서 하다 보니 섬뜩하다. ‘이때 누가 나와야 하는데 어디갔어? 아 어디갔지’ 그런 착각을 했다. 한 2년동안 허전함을 느끼더라”고 해체 후 심경을 전했다. 어니언스 해체 후 불거진 이수영과의 불화설에 대해서는 “인기가 폭발적으로 오르니 그런 표현을 한 것 같다”며 “첫째는 둘이 음악하면서 한 번도 언성 높인 적이 없다. 다툰 적이 없었다. 이수영의 개인사정에 의해 헤어진거지 다른 건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임창제는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한 번도 얘기한 적 없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며 “어니언스는 그런 팀이었다”고 덧붙였다. 남성 듀오 어니언스는 1972년 TBC 신인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어 1973년 데뷔 앨범 중 ‘작은 새’를 히트시켰으며 연이어 ‘편지’, ‘저 별과 달을’ 등의 곡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글로벌 In&Out] 중국 ‘90허우 세대‘의 편리주의 소비관/저우위보 인민망 한국지사 대표

    [글로벌 In&Out] 중국 ‘90허우 세대‘의 편리주의 소비관/저우위보 인민망 한국지사 대표

    중국에서는 연대를 나타내는 숫자 뒤에 접미사 허우(後)를 붙여 한 세대를 가리킨다. 예를 들면 70허우는 1970년대에 태어난 사람을 말하며 90허우는 1990년대에 태어난 사람을 지칭한다. 이 중 특히 90허우는 중국에서 무시할 수 없는 신생 소비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이들 90허우는 대부분 소비를 즐겨 하며 상당한 부채를 지닌 것이 특징이다. 중국판 페이스북인 위챗에 올라와 있는 90허우에 관한 게시물 제목을 보면 ‘27세인 나에게는 저축이 없다’, ‘월급 2만 위안(약 340만원)을 받지만 20위안짜리 도시락도 못 사 먹는다’ 등등이 쉽게 보인다. 이들 게시물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초라한’ 90허우 삶의 실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수상한’ 점도 갖고 있다. 3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막대한 경제적, 가정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점이 예전 세대와 확연히 다르다. 예컨대 돈을 모으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고 부채를 많이 지니고 있어도 초조하지 않으며 직장을 그만두는 데도 한 치의 망설임이 없다. 이들 90허우의 소비 심리를 보면 가장 핵심이 되는 키워드는 편리에 대한 추구이다. “콜택시 서비스가 있는데 왜 굳이 버스를 타야 하는가? 당연히 가장 편한 방법을 택해야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편리와 시간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한 창업 8년차 남성 사장의 말이 대표적이다. 한편 90허우 여성의 생각은 어떠한가? 취학 전 아이를 키우는 한 90허우 엄마는 “결혼하기 전 거의 밥한 적 없다. 결혼 후 장을 한 달 정도 봤지만, 너무 번거롭다고 생각했다. 나중엔 채소를 곧바로 집으로 배달해 주는 쇼핑 방식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가끔 할인 이벤트도 있으니 정말 편리하다. 운송비를 좀더 내더라도 편하게 사는 것이 좋다”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2017년 ‘90허우 소비 추세 데이터 분석’이란 보고서가 발표되어 화제를 모았다. 쇼핑채널을 놓고 보면 90허우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은 ‘서비스를 눈앞으로 배송해 주는 것’으로 나왔다. 쇼핑할 때마다 편리를 추구하다 보면 당연히 조금씩 웃돈을 주게 되는데 한 달이면 그 돈의 액수가 만만치 않게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이들 90허우는 돈을 저축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90허우들은 위 세대 사람들로부터 근검절약의 미덕이 없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하지만 과연 이 비판은 타당한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왜 알리페이를 만들었을까? 디디, 우버 등 콜자동차 서비스가 왜 중국에서 성행하게 되었을까? 답은 편리하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O2O 비즈니스 모델이 이 시대에 막대한 편리를 가져왔기에 인터넷시대에 성장기를 보낸 90허우들은 이미 돈을 써 가며 시간을 절약하는 소비패턴에 익숙해져 버렸다. 인간의 삶이 갈수록 편리해지고 또 편리해져야 하는 것은 하나의 거역할 수 없는 추세가 되었다. 그래서 돈이 쉽게 모이지 않는 것은 꼭 90허우들의 타락을 의미하지 않으며 이 시대에 더욱 좋은 생활 품질을 원하는 소비자의 심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중국의 할머니는 50년 동안 저축한 끝에 임종 전 아파트 한 채를 구입했지만, 미국 할머니는 집을 산 후 임종 전까지 2억원 대출금을 다 상환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의미심장하다. 90허우 세대의 소비관을 비판하기 전에 그들의 인생 계획과 재무 설계, 자기 투자와 내면 성장 욕구에 대해 파악하고 필요한 지도를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 美·獨 등 법원서 訴 각하… 시위자 개별 책임만 물어

    해외 선진국에서도 국가가 집회·시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법원에서 각하된다. 책임을 묻더라도 시위자의 행위를 개별적으로 판단한다. 시위대의 목소리를 차단하려는 ‘전략적 봉쇄 소송’을 인정하거나 시위자의 행위를 공동 불법 행위로 책임을 물으면 집회·시위의 자유가 위축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28일 이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에서는 경찰 등이 제기하는 ‘전략적 봉쇄 소송’을 법원이 조기 각하하는 방식으로 적절히 견제한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에서는 ‘그론데 판결’ 이후 민사법상 책임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국가가 제기한 민사 소송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독일에서 1984년 연방대법원의 ‘그론데 판결’ 이후 국가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기준이 마련됐다고 소개했다. 1970년대 니더작센주 그론데 지역에서 원자력발전소 건립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고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했다. 니더작센주와 경찰은 시위대에 23만 마르크(당시 환율로 1억 4000만원) 규모의 포괄적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단순히 기본권 행사 과정 중에 일어난 행위, 특히 경찰의 물리력 행사에 소극적으로 저항하거나 경찰의 위법한 행위에 적극적으로 반발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행위는 손배 청구 대상이 될 수 없다”면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폭력이 발생했는가는 반드시 구체적으로 입증돼야 한다”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2003년 3월 미국 시카고에서 있었던 이라크전 참전 반대 집회와 관련한 법원 판결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1만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했고 체포된 313명은 소송을 당했다. 시카고시와 경찰은 시위자들이 도로 교통을 방해하고 공해를 발생시켰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경우 책임을 부과할 인과관계를 구체적으로 따져야 한다”며 기각했다. 이 교수는 “우리도 사법부도 전략적 봉쇄 소송이라는 판단이 들면 일정 수준에서 이를 차단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손배 소송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개별 행위자들의 행위를 따로 보도록 하는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교통지옥/손성진 논설고문

    [그때의 사회면] 교통지옥/손성진 논설고문

    인구 증가 속도에 비해 도로망과 교통수단 확충은 더디기만 해 1960~70년대의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 교통 상황은 엉망진창이었다. “요즈음 서울 시내 러시아워의 교통은 아비규환의 생지옥을 이루고 있다. 특히 전차는 바늘 하나 들어갈 틈바구니 없이 승객이 짐짝처럼 쌓이고….”(동아일보 1961년 10월 17일자) 기사에서 보듯 ‘교통지옥’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당시 300만 서울 시민에게 대중교통 수단은 버스 800여대와 전차 200대가 전부였다. 도로 사정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버스는 툭하면 고장 나 운행 중에도 멈춰 서곤 했다. 정류장마다 버스를 타려는 승객이 수십 명씩 장사진을 치고 있고, 버스가 도착하면 서로 먼저 타려고 밀치며 아우성을 쳤다. 출근 시간에 쫓긴 승객들은 버스를 먼저 타려고 필사적인 경쟁을 벌였고, 때로는 떼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버스는 정류장에 아예 정차하지 않고 통과하기도 했고, 승객들은 지각을 밥 먹듯이 했다. 외무부 공무원 13명이 한날 아침에 지각해 장관이 사표를 종용한 해프닝도 있었다(동아일보 1966년 3월 9일자). 퇴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난장판 속에서 여성들이나 어린 학생들은 몸싸움에서 밀려나 버스를 대여섯 대씩 보내기 일쑤였다(경향신문 1962년 4월 7일자). 정원을 초과한 탑승은 늘 있었다. 초만원 버스는 유리창이 깨지고 브레이크 파열로 고갯길에서 전복 사고를 내기도 했다. 전차도 정원은 120명이었는데 보통 300명이 넘게 탔고, 그러다 보니 전차문이 터져 열리는 바람에 승객이 중상을 입는 사고도 잇따랐다. 사고를 우려한 당국은 정원 초과를 단속했는데 이는 수송난을 더 부채질했다. 남자 차장을 그때 여자로 바꾼 것은 그런 교통지옥에서 손님들에게 고함을 지르고 때론 폭력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 차장도 시간이 지나며 남자처럼 우악스러워졌다. 교통부 장관이나 서울시장은 러시아워에 직접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타고 교통지옥을 체험하면서 해소 방안을 고민했지만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려웠다. 공무원과 학생의 출근과 등교 시간에 시차를 둬 교통 인구를 분산시켜 보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서울 인구는 10여년 만에 두 배로 늘어 1970년대 초에 600만명을 넘어섰다. 1966년 부임한 김현옥 서울시장은 버스를 대폭 증차하고 도로교통망을 크게 확충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를 따라잡기 어려웠다. 교통난 해소에 다소나마 숨통을 트기까지는 1974년 개통된 지하철 시대를 기다려야 했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월요 정책마당] 핀테크 혁신은 새로운 금융의 기회/권대영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기획단장

    [월요 정책마당] 핀테크 혁신은 새로운 금융의 기회/권대영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기획단장

    전 세계 금융산업에 ‘핀테크’(금융+기술)라는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정보기술(IT) 발달과 스마트폰 확산으로 핀테크 기업들이 송금, 지급결제 등 핵심적인 금융 영역까지 진출하여 성공 사례를 만들고 있다. 페이팔은 전자상거래 지급결제로 시작해 지금은 예금, 송금, 자산관리 등 종합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회사로 성장했다. 알리바바는 모바일 결제서비스 알리페이를 통해 현금으로 거래하던 중국을 세계에서 가장 큰 모바일 결제시장으로 변화시켰다.기술 발전에 따른 금융 분야 혁신은 새로운 얘기는 아니며, 그동안 꾸준히 진행돼 왔다. 1970년대 도입된 ATM은 은행 업무의 개념을 바꿨다. 인터넷뱅킹은 이미 1990년대 이후 활성화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핀테크 혁신이 전 세계적으로 특별히 부각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연방준비제도 보고서는 최근 나타나는 핀테크 혁신은 기존의 혁신과 깊이에 있어 근원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P2P, 인공지능, 빅데이터, 머신러닝, 블록체인 등은 이전까지의 조금 더 편리한 서비스를 넘어 금융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혁신이라는 것이다. 핀테크 혁신은 낡고 보수적인 금융을 넘어 효과적이고 편리한 자금중개를 제공하고, 독자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새로운 금융의 동력이다. 또 기존 금융시스템과 국제금융질서에 대대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중대한 기회다. 우리나라는 수준 높은 IT 능력을 갖고 있다. 금융 소비자들은 혁신적 서비스에 대해 수용도가 높다. 핀테크 혁신에 강점이 있는 만큼 금융시스템 발전과 국제금융질서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핀테크가 안정적인 성장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정부는 다각적인 노력을 추진할 것이다. 첫째 혁신적인 핀테크 기업들이 원활히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신기술, 신산업에 대해서는 일단 해 보고 차후에 보완하는 대담한 접근이 필요하다. 혁신적인 금융서비스에 대해 일정 범위 내에서 규제를 면제 또는 완화하여 실제 금융시장에서 사업성과 혁신성을 직접 테스트해 볼 수 있다면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들이 활성화될 수 있다. 이미 영국, 스위스, 호주 등에서는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해 혁신기업에 제한적인 인가 및 규제 특례를 부여하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금융혁신지원특별법’ 제정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할 이유이다. 둘째 핀테크에 적합하지 않은 금융 규제들을 합리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핀테크 핵심 요소인 정보 활용에 대한 규제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수준이다. 이러한 규제 장벽이 인터넷전문은행의 성장이나 빅데이터를 활용한 다양한 금융서비스 출연을 제약하고 있다. 금융 질서와 안정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관련 법 개정 등을 통해 규제를 정비해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핀테크 혁신의 성공 사례의 적용 가능성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선진 각국의 핀테크 지원 체계 및 사례를 파악하고 공조하기 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폭넓게 구축해 나가야 한다. 또 지역 생태계인 마포혁신타운을 핀테크, 블록체인의 메카로 만들어 늘 시장과 가까이에서 대화하며 혁신 과제들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전화가 처음 발명된 1870년대 영국 우정국은 이미 전보시스템이 활성화돼 있어 전화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역사의 소명을 놓쳤다”고 하는 후대의 냉정한 평가가 핀테크 혁신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명확하다. 기존 방식에 안주하는 것은 곧 다가올 새로운 금융질서에서 뒤처지는 것이고, 금융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다.
  • “성 불평등 해소”로 출발한 페미니즘…수세대 거치며 분화

    “성 불평등 해소”로 출발한 페미니즘…수세대 거치며 분화

    ‘남성과 동일한 권리’ 주장하던 1세대 노동·민주화운동하며 70년대 새 국면 80년대에 성차별·성폭력 등 철폐 외쳐 성폭력특별법·호주제 폐지 등 큰 성과서울 시내 한 백화점 3층 여성복 매장 여자 화장실 변기 위 천장에서 몰래카메라가 발견됐다. 여기서 유출된 비디오테이프가 동남아 섹스숍에서 팔린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백화점을 이용해 온 여성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성단체와 소비자단체들의 거센 항의에 백화점은 공식사과했다. 어제의 몰카 범죄 뉴스가 아니다. 1997년 당시 신촌 그레이스 백화점에서 발생한 일이다. 여자 화장실 천장 구멍에 설치된 3㎜ 크기의 특수렌즈를 통해 백화점 방재실 직원들이 화장실 안을 지켜봤다. 불법 촬영의 수법, 대상, 장소 등이 요즘 범죄와 판박이다. ●각자 피켓 들고 참여… 美 급진주의와 닮아 2018년 한국 여성들이 겪는 성폭력은 20여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반면 현실을 바꾸기 위해 거리로 나온 여성들의 모습은 다소 낯설다. 1997년 백화점 앞에서 성명을 발표한 건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기존 여성단체였다. 올여름 혜화역의 ‘불법 촬영 편파 수사 항의 시위’ 주인공은 불특정 다수의 여성이다. 지난 4일 광화문에서 열린 4차 시위에 참가한 40대 김모씨는 “집회에 시민 단체나 정당의 깃발이 없어 어색했다”고 했다. 20대 초반 여성은 “여성 집회에 운동권 깃발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했다. 각자 만든 피켓과 붉은 드레스코드만이 동질성의 징표였다. 생물학적 여성만 참가할 수 있고 익숙한 구호 대신 온라인의 미러링(여성 혐오를 거울처럼 뒤집어 남성 혐오로 돌려주는 방식) 단어가 터져나왔다.20년간 못 봤던 여성들의 등장에 한국 사회는 놀라고 있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고정된 조직도 없이 여성집회를 끌어 온 이들. 일각에서는 이들을 급진적 여성주의자(Radical Feminist)라 부른다. 1960년대 미국 급진주의와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에서 시작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프랑스의 68혁명을 계기로 탄생했다. 미국, 유럽, 남미까지 전쟁, 관료주의,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구호가 거리를 뒤덮은 시기, 여성들도 여성 억압 문제를 제기하면서 가부장제에 대항했다. 19세기 제1세대 페미니즘이 참정권 획득과 같은 정치 제도 개선에 노력했다면 제2세대 페미니즘인 이들은 보다 일상적인 문제에 집중했다. 낙태 결정권, 포르노 반대 등을 이슈화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공론장으로 끌어냈다. 1968년에는 미스아메리카 반대 시위도 일어났다. 브래지어처럼 여성의 몸을 옥죄는 것들을 쓰레기통에 던지며 성 상품화를 비판했다. 지난 6월 한국 페이스북 사옥 앞 상의 탈의시위, 탈코르셋 유행, 1999년 시작된 한국에서의 안티미스코리아대회와 겹쳐지는 장면이다. 1세대에서 2세대로의 변화는 페미니즘 역사를 관통하는 주제인 차이와 평등을 함축한다. 페미니즘 역사는 이 두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진화해 왔다. 1세대는 남성과 동일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여성과 남성은 똑같은 이성적 인간”이라며 평등의 언어를 내세웠다. 그러나 투표권만으로는 여성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 여성의 경험을 드러내는 언어가 필요했다. 몸의 경험, 개인의 일로 치부됐던 성폭력, 가정폭력이 구조적 문제임을 강조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자매애는 강하다”는 유명한 구호도 등장했다. ●1987년 21개 단체 모여 ‘여성단체연합’ 결성 서구의 반권위주의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1960년대 한국은 권위주의 시대였다. 탄압받던 여성 운동은 1970년대 여성노동자 운동과 뒤이은 민주화 운동 속에 새 국면을 맞았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라는 정체성이 드러났고, 동일방직, YH무역 등 젊은 여성 노동자가 밀집된 제조업에서 노조 설립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당시 운동은 성차별 철폐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지만 여성 노동자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여성운동은 1980년대 전면에 등장했다. 1970년대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경험한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한 시기다. 이들은 ‘여성은 정치에 무지하다’는 편견을 깼다. 1983년 6월 여성평우회 창립을 계기로 여성의 전화, 또 하나의 문화, 교회여성운동단체 등이 여성 의제를 이끌었다. 결혼 퇴직, 임금 차별 등 노동현장의 성차별, 성폭력, 성매매 철폐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25세 여성조기정년철폐운동, 부천서 성고문대책위 등을 함께한 21개 여성단체는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을 결성했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고 1999년엔 군 가산점 위헌 결정을 이끌어냈다. 2005년에는 호주제가 폐지됐다. 가족법 개정을 추진한 지 약 50년 만이었다.●LGBT 등 소수자 주체… 영 페미니스트 나와 이전 30년간 여성계가 굵직한 제도 성과를 거뒀다면 민주화 이후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페미니즘의 주제들이 빛을 봤다. 성소수자(LGBT), 여성장애인, 이주여성 등 소수자 주체들이 드러났다. 2000년대 중반까지 문화운동에 두각을 나타낸 젊은 페미니스트인 ‘영(young) 페미니스트’ 도 등장했다. 이들은 몸, 섹슈얼리티, 환경 등 새로운 문제를 꺼내고 월경페스티벌 등 축제를 통해 일상 속 주제를 풀어냈다. 2015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10년간 페미니즘은 대중과 다소 멀어져 있었다. 이 단절을 끝낸 여성들은 20대 ‘영영(young young) 페미니스트’ 들이다.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고 학교와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일베 등 여성 혐오를 학습한 남성들과 공존한 세대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안전 문제에 눈을 떴다. 이전 세대보다 미러링에 익숙하고 안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최근 자유·급진·상호교차 등 그룹 다양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일각에선 이들을 4세대 페미니스트라고 부른다”면서 “SNS를 기반으로 한 활동, 몰카나 여성 대상 범죄 등 안전 이슈에 적극 나선다는 차별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페미니즘은 단일한 것으로 규정할 수도 없고, 우리나라 페미니즘도 여러 세대가 섞여 있다”고 분석한다. 최근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급진주의, 상호교차 페미니즘 등 여러 정신이 공존하며 다양한 그룹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성들의 이합집산도 유동적이다. 워마드의 성체 훼손 논란이나 난민 혐오에 대해 기존 여성계는 반대 의사를 보이며 선을 그었지만 ‘몰카 편파 수사’,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행 무죄 판결 비판에는 같은 목소리를 낸다. 영영 페미니스트도 단일한 집단으로 재단하기 어렵다. 지난 18일 여성단체가 주최한 시위에 20대 여성들이 다수 참여하기도 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영미권에서만 보던 다양한 페미니스트 논쟁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것이 페미니즘을 더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여름을 달군 페미니즘의 열기는 당분간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년 전의 몰카 범죄가 반복되듯 성차별은 한순간에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여성들을 또 광장으로 소환할 것이기 때문이다. 낙태죄 폐지, 불법 촬영 수사 등 현안도 뜨겁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주체가 등장할지 광장으로 시선이 쏠린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4세대 페미니스트 기로는 세월호…몰카 등 ‘안전 이슈’에 눈뜨다

    4세대 페미니스트 기로는 세월호…몰카 등 ‘안전 이슈’에 눈뜨다

    ‘남성과 동일한 권리’ 주장하던 1세대 노동·민주화운동하며 70년대 새 국면 80년대에 성차별·성폭력 등 철폐 외쳐 성폭력특별법·호주제 폐지 등 큰 성과서울 시내 한 백화점 3층 여성복 매장 여자 화장실 변기 위 천장에서 몰래카메라가 발견됐다. 여기서 유출된 비디오테이프가 동남아 섹스숍에서 팔린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백화점을 이용해 온 여성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성단체와 소비자단체들의 거센 항의에 백화점은 공식사과했다. 어제의 몰카 범죄 뉴스가 아니다. 1997년 당시 신촌 그레이스 백화점에서 발생한 일이다. 여자 화장실 천장 구멍에 설치된 3㎜ 크기의 특수렌즈를 통해 백화점 방재실 직원들이 화장실 안을 지켜봤다. 불법 촬영의 수법, 대상, 장소 등이 요즘 범죄와 판박이다. ●각자 피켓 들고 참여… 美 급진주의와 닮아 2018년 한국 여성들이 겪는 성폭력은 20여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반면 현실을 바꾸기 위해 거리로 나온 여성들의 모습은 다소 낯설다. 1997년 백화점 앞에서 성명을 발표한 건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기존 여성단체였다. 올여름 혜화역의 ‘불법 촬영 편파 수사 항의 시위’ 주인공은 불특정 다수의 여성이다. 지난 4일 광화문에서 열린 4차 시위에 참가한 40대 김모씨는 “집회에 시민 단체나 정당의 깃발이 없어 어색했다”고 했다. 20대 초반 여성은 “여성 집회에 운동권 깃발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했다. 각자 만든 피켓과 붉은 드레스코드만이 동질성의 징표였다. 생물학적 여성만 참가할 수 있고 익숙한 구호 대신 온라인의 미러링(여성 혐오를 거울처럼 뒤집어 남성 혐오로 돌려주는 방식) 단어가 터져나왔다.20년간 못 봤던 여성들의 등장에 한국 사회는 놀라고 있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고정된 조직도 없이 여성집회를 끌어 온 이들. 일각에서는 이들을 급진적 여성주의자(Radical Feminist)라 부른다. 1960년대 미국 급진주의와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에서 시작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프랑스의 68혁명을 계기로 탄생했다. 미국, 유럽, 남미까지 전쟁, 관료주의,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구호가 거리를 뒤덮은 시기, 여성들도 여성 억압 문제를 제기하면서 가부장제에 대항했다. 19세기 제1세대 페미니즘이 참정권 획득과 같은 정치 제도 개선에 노력했다면 제2세대 페미니즘인 이들은 보다 일상적인 문제에 집중했다. 낙태 결정권, 포르노 반대 등을 이슈화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공론장으로 끌어냈다. 1968년에는 미스아메리카 반대 시위도 일어났다. 브래지어처럼 여성의 몸을 옥죄는 것들을 쓰레기통에 던지며 성 상품화를 비판했다. 지난 6월 한국 페이스북 사옥 앞 상의 탈의시위, 탈코르셋 유행, 1999년 시작된 한국에서의 안티미스코리아대회와 겹쳐지는 장면이다. 1세대에서 2세대로의 변화는 페미니즘 역사를 관통하는 주제인 차이와 평등을 함축한다. 페미니즘 역사는 이 두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진화해 왔다. 1세대는 남성과 동일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여성과 남성은 똑같은 이성적 인간”이라며 평등의 언어를 내세웠다. 그러나 투표권만으로는 여성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 여성의 경험을 드러내는 언어가 필요했다. 몸의 경험, 개인의 일로 치부됐던 성폭력, 가정폭력이 구조적 문제임을 강조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자매애는 강하다”는 유명한 구호도 등장했다.●1987년 21개 단체 모여 ‘여성단체연합’ 결성 서구의 반권위주의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1960년대 한국은 권위주의 시대였다. 탄압받던 여성 운동은 1970년대 여성노동자 운동과 뒤이은 민주화 운동 속에 새 국면을 맞았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라는 정체성이 드러났고, 동일방직, YH무역 등 젊은 여성 노동자가 밀집된 제조업에서 노조 설립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당시 운동은 성차별 철폐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지만 여성 노동자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여성운동은 1980년대 전면에 등장했다. 1970년대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경험한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한 시기다. 이들은 ‘여성은 정치에 무지하다’는 편견을 깼다. 1983년 6월 여성평우회 창립을 계기로 여성의 전화, 또 하나의 문화, 교회여성운동단체 등이 여성 의제를 이끌었다. 결혼 퇴직, 임금 차별 등 노동현장의 성차별, 성폭력, 성매매 철폐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25세 여성조기정년철폐운동, 부천서 성고문대책위 등을 함께한 21개 여성단체는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을 결성했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고 1999년엔 군 가산점 위헌 결정을 이끌어냈다. 2005년에는 호주제가 폐지됐다. 가족법 개정을 추진한 지 약 50년 만이었다. ●LGBT 등 소수자 주체… 영 페미니스트 나와 이전 30년간 여성계가 굵직한 제도 성과를 거뒀다면 민주화 이후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페미니즘의 주제들이 빛을 봤다. 성소수자(LGBT), 여성장애인, 이주여성 등 소수자 주체들이 드러났다. 2000년대 중반까지 문화운동에 두각을 나타낸 젊은 페미니스트인 ‘영(young) 페미니스트’ 도 등장했다. 이들은 몸, 섹슈얼리티, 환경 등 새로운 문제를 꺼내고 월경페스티벌 등 축제를 통해 일상 속 주제를 풀어냈다. 2015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10년간 페미니즘은 대중과 다소 멀어져 있었다. 이 단절을 끝낸 여성들은 20대 ‘영영(young young) 페미니스트’ 들이다.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고 학교와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일베 등 여성 혐오를 학습한 남성들과 공존한 세대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안전 문제에 눈을 떴다. 이전 세대보다 미러링에 익숙하고 안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최근 자유·급진·상호교차 등 그룹 다양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일각에선 이들을 4세대 페미니스트라고 부른다”면서 “SNS를 기반으로 한 활동, 몰카나 여성 대상 범죄 등 안전 이슈에 적극 나선다는 차별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페미니즘은 단일한 것으로 규정할 수도 없고, 우리나라 페미니즘도 여러 세대가 섞여 있다”고 분석한다. 최근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급진주의, 상호교차 페미니즘 등 여러 정신이 공존하며 다양한 그룹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성들의 이합집산도 유동적이다. 워마드의 성체 훼손 논란이나 난민 혐오에 대해 기존 여성계는 반대 의사를 보이며 선을 그었지만 ‘몰카 편파 수사’,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행 무죄 판결 비판에는 같은 목소리를 낸다. 영영 페미니스트도 단일한 집단으로 재단하기 어렵다. 지난 18일 여성단체가 주최한 시위에 20대 여성들이 다수 참여하기도 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영미권에서만 보던 다양한 페미니스트 논쟁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것이 페미니즘을 더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여름을 달군 페미니즘의 열기는 당분간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년 전의 몰카 범죄가 반복되듯 성차별은 한순간에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여성들을 또 광장으로 소환할 것이기 때문이다. 낙태죄 폐지, 불법 촬영 수사 등 현안도 뜨겁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주체가 등장할지 광장으로 시선이 쏠린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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