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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차례 대선 출마한 아웃사이더 억만장자 로스 페로 89세로 영면

    두 차례 대선 출마한 아웃사이더 억만장자 로스 페로 89세로 영면

    1990년대 두 차례나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아웃사이더 억만장자’ 로스 페로가 89세를 일기로 세상과 작별했다. 페롯의 가족은 9일(현지시간) 성명을 발표해 “혁신적인 기업인이자 사랑하는 남편, 형제, 아버지, 할아버지인 로스 페로가 댈러스 집에서 가족이 임종한 가운데 이날 아침 영면했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 초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다. 마크 펜스 부통령은 “위대한 미국인, 진정한 애국자, 우리 군대를 지속적으로 응원한 사람이었다”고 추모했다. 페로가 재산을 모으면서도 불우한 재향군인들을 돕고 해외에서 억류된 미국인 인질들의 몸값을 보탰던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라고 영국 BBC가 전했다. 고인이 대선에서 맞붙었던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의 아들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고인을 “기업가 정신과 미국인의 자긍심을 극대화한 강한 애국자”라며 안타까워했다. 텍사스주 출신인 그는 1962년 컴퓨터 데이터 회사를 차릴 정도로 앞서가는 기업인이었다. 1992년 대선에 처음 출마해 균형 재정과 인재들의 해외 유출을 막겠다고 공약을 내걸어 삼자 구도에서는 늘 20%대 지지율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6300만 달러의 선거 비용 모두를 자신이 댔다. 같은 해 6월 한때 클린턴과 부시를 앞지를 정도로 기세가 대단했지만 결국 11월 투표에서 3위로 끝났다. 두 거대 정당 소속이 아니면서 이렇듯 높은 인기를 누린 대선 후보는 그 전에는 없었으며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현직이었던 조지 HW 부시 공화당 후보를 누르는 데 공헌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4년 뒤에는 자신의 정당 개혁당을 창당해 다시 대선에 도전했지만 인기는 예전만 못했고, TV 토론에도 초청되지 못했으며 결국 8%의 유권자 마음을 얻는 데 그쳤다. 앤서니 주커 BBC 기자는 무소속 후보로 1992년 대선에 출마한 것은 언젠가 터질 선거혁명의 취약한 지점을 노출시켰으며 양대 정당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었다고 분석했다. 투박한 텍사스 억양으로 포퓰리즘, 작은 정부, 반무역, 반글로벌을 외치던 그의 주장이나 대선 출마 선언을 토크쇼를 통해 하는 등 연예와 정치의 간극을 좁힌 점 등은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의 그것과도 닮은 구석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대공황이던 1930년에 태어난 페로는 무척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IBM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서른두 살이던 1962년 일렉트로닉 데이터 시스템(EDS)을 창업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1988년 페롯 시스템이란 회사를 차렸는데 2009년 델 컴퓨터가 39억 달러에 인수했다. 고집이 무척 센 것으로 유명했고 엄격한 복장 규정으로 악명을 떨쳤다. 직원들은 모두 흰 셔츠에 넥타이를 매게 했고 수염은 기르지 못하게 했다.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두 직원이 감옥에 갇히자 자신이 돈을 대 특공대를 투입시켜 구출한 일로 책을 썼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에는 베트남 전쟁 이후 포로로 붙잡힌 미국인 병사 수백명을 그대로 두어선 안된다며 구출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기고] 에너지빈곤층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조용성 에너지경제연구원장

    [기고] 에너지빈곤층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조용성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에너지 빈곤’이라는 개념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석유위기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부터다. 영국에서는 겨울철 폐렴으로 인한 고령층의 인명 피해가 크게 증가하면서 에너지 빈곤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발생한 단전가구 여중생의 촛불화재 사망사건으로 에너지 빈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이를 계기로 저소득층의 에너지 복지를 향상하기 위한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처음에는 주로 적절한 난방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에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해 폭염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겨울철 난방서비스뿐만 아니라 여름철 냉방서비스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에너지시민연대가 2018년 조사한 여름철 에너지빈곤층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521가구 가운데 약 69%가 노인가구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더위를 식히기 위한 수단으로 선풍기를 주요 냉방시설로 사용하고 있는 가구가 81%에 달했다. 또한 폭염으로 인한 어지러움 혹은 두통을 경험한 응답자도 58%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폭염이 발생했을 때 에너지빈곤층에 대한 적절한 냉방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냉방용 전기제품 사용으로 전기요금이 올라가는 것을 대비해 저소득층 가구에 대해 여름철 전기요금 할인 폭을 확대해 주고 있다. 올해부터는 냉방용 ‘에너지바우처’를 추가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요금을 할인해 주고 비용을 지원해 주는 것만으로는 냉방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된다고 보기 어렵다. 이를 보완하려면 정부는 저소득 가구의 주거환경에 적합한 절전형 냉방기기 보급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에너지 이용효율 개선 사업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단열이나 창호 공사, 고효율기기 보급 등과 같이 에너지 사용환경을 개선해 에너지 절감을 유도하는 사업으로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정책으로 판단된다. 여름철 더위를 대비해 에너지 취약계층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지속적인 관심과 실질적인 에너지 복지정책이 시행되길 기대한다.
  • 이집트 반환 호소도 아랑곳 않고 투탕카멘 두상 70억원에 경매

    이집트 반환 호소도 아랑곳 않고 투탕카멘 두상 70억원에 경매

    이집트 정부의 간절한 호소에도 아랑곳 않고 3000년 된 소년왕 투탕카멘이 런던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597만 달러(약 70억원)에 팔렸다. 이집트 외교부는 4일(현지시간) 경매를 앞두고 문제의 두상이 1970년대 한 사원에서 누군가 훔쳐간 것으로 보인다며 경매를 진행하면 안되며 이집트에 반환해야 한다고 압력을 가했지만 소용 없었다. 당초 예상했던 낙찰가는 400만 달러 이상이었지만 28.5㎝ 크기의 두상은 훨씬 더 높은 가격에 낙찰됐다고 AFP 통신이 밝혔다. 이집트 파라오 가운데 가장 표정이 잘 표현된 것으로 유명한 두상은 눈을 감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어 내면의 평화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2016년 고대 유물 전문 레산드로 콜렉션이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300만 달러에 구입했는데 이번에 거의 곱절 가까운 액수에 팔아넘겼다. 이집트인들이 이날 경매가 진행되는 건물 밖에서 이집트 국기와 플래카드 “밀수 유물 거래를 중단하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펼쳐 든 채 시위를 벌였다. 마그다 사크르(50)는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것은 가정에서 보관해선 안된다. 박물관에 있어야 한다”면서 “이건 역사이며 가장 유명한 왕들 가운데 한 명”이라고 강조했다. 이집트 고대유물부는 다음 주 한발 더 나아간 대응 조치를 찾기 위해 특별 회의를 소집했다. 성명을 통해 “이집트 정부는 이 나라를 불법적으로 떠난 고대 유물을 환수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집트 고대유물부 장관을 지낸 자히 하와스는 카이로에서 통신과 전화 인터뷰를 갖고 문제의 유물이 룩소르 북쪽 카르낙 사원 단지에서 1970년대 절도됐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집트 외교부는 영국 외무부와 유엔 산하 유네스코 등에게도 경매를 중단하고 반환할 수 있도록 개입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개입하려면 이 유물을 구입한 사람이 정당하게 취득했다는 주장의 허점이 말끔히 드러나야만 가능하다고 통신은 전했다. 크리스티는 또 3년 전 투탕카멘 두상이 경매됐을 때도 널리 알려지고 공개 전시됐는데도 이집트 정부가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던 점을 근거로 경매를 진행하는 데 아무런 결격 사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역대 소유주 연대표를 공개하며 경매 진행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연대표에는 레잔드로 컬렉션이 1985년 독일의 거래상 하인츠 헤르처로부터 두상을 취득했다고 기록됐으며, 그전에는 오스트리아 거래상 요제프 메시나가 1973∼74년 독일의 빌헬름 폰 투른 운트 탁시스 왕자로부터 사들였다고 돼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김초엽 작가의 과학을 펼치다] 세계의 숨겨진 절반, 미생물

    [김초엽 작가의 과학을 펼치다] 세계의 숨겨진 절반, 미생물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지구의 지배적인 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의 불빛들이 반짝인다. 태생적으로 적응 가능한 환경을 벗어나 극지와 사막까지 모두 진출한 종은 인간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은 다른 종을 탐구하고 지배하고 때로는 착취하는 유일한 최상위 포식자인 것만 같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는 지구의 지배자일까? 부부 과학자 데이비드 몽고메리와 앤 비클레가 함께 집필한 ‘발밑의 미생물 몸속의 미생물’은 조용하면서 강력하게 지구를 지배하는 ‘세계의 숨겨진 절반’을 이야기한다. 미생물은 지구 전역에 퍼져 있으며, 우리의 발 아래 토양을 몽땅 차지한다. 심지어 섭씨 400도의 심해 열수공에도, 원자력발전소의 냉각수에도, 구름 속 물방울과 남극대륙 빙판 수백 미터 아래에도 산다. 생명의 기원을 되짚어 가는 여정에서 미생물은 핵심 주인공이다. 수십억년 전 급변하는 지구 환경에서 미생물은 놀라운 번식 속도와 생명력으로 살아남았고, 광합성을 하는 세균이 진화하면서 동물이 살 수 있는 산소가 풍부한 대기를 만들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곳에 미생물이 있지만 오랜 시간 미생물은 인간의 관심 영역 밖에 있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대상을 판단하는 데에 익숙하지만, 미생물의 다양성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미생물이 이용하고 생산하는 화합물들에 기반하기 때문일 것이다. 네덜란드의 포목상 주인이었던 레이우엔훅은 배율 높은 현미경을 만들며 처음으로 미생물의 놀라운 미시 세계를 발견했다. 100년 후, 파스퇴르는 미생물 생태를 연구했고 미생물의 자연발생설을 뒤집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 칼 우즈가 리보솜 RNA의 특정 염기서열을 이용한 획기적인 분류법을 발견하고 유전자 염기서열의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비로소 미생물 세계의 일부가 우리의 눈앞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직 우리는 미생물 생태계의 극히 일부만을 안다. 지구 환경을 지배하는 미생물은 우리의 삶에도 강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미생물은 때로 질병의 원인이 되지만, 그보다 많은 미생물들이 ‘인간의 편’이다. 인간 몸속 미생물이 건강과 면역체계에 미치는 이로운 영향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미생물 세계의 복잡하고 다채로운 비밀이 천천히 하나씩 풀리고 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들은 보이지 않는 곳, 숨겨진 곳,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 ‘파라오 저주’로 유명한 투탕카멘 두상… 경매에 나와

    ‘파라오 저주’로 유명한 투탕카멘 두상… 경매에 나와

    이집트 정부 “훔쳐간 것… 경매 중지하라”크리스티 “장물 아냐”… 소유자 연대기 출판이집트 정부는 3일(현지시간) 세계적 경매회사인 크리스티에 3000년 전의 ‘소년왕’ 투탕카멘 두상의 경매 중지를 요청했다. 투탕카멘은 이집트 제18왕조의 12대 왕으로 18세에 요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매는 4일 열린다. 이집트 정부는 이 흉상은 1970년대에 고대 이집트 유적지로부터 아무도 도난당한 것이고 밝혔으나 크리스티는 이를 부정했다고 BBC가 보도했다. BC 1336년 전후에 파라오가 된 투탕카멘은 9살이었다. 투탕카멘의 왕릉은 수천년이 흐른 1922년 발굴되었다. 당시 소년왕이 재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엄청난 관심과 흥미를 일으켰다. 당시 투탕카멘 무덤의 입구에는 ‘잠자는 왕을 방해하는 자에게는 죽음의 날개가 스치리라’라는 경고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파라오의 저주’로 알려졌다. 발굴과 관련 고고학자 22명 가운데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전한다.이번에 경매에 붙여지는 것은 젊은 투탕카멘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28cm의 갈색 수정 두상이다. 크리스티가 공개한 사진을 보면 얼굴은 미소를 머금고, 입술은 두텁고, 귀와 코의 일부는 뭉개져 있다. 이집트 외무장관은 투탕카멘 두상은 1970년대 초 이집트 카르나크 신진에서 훔쳐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크리스티 측은 법적인 우려로 한 번도 경매에 나서지 못했다며 최근 50년간 유물 소유자의 연대기를 발행했다. 이에 따르면 두상은 1970년에 독일 왕자가 소유한 것으로 돼 있지만 당시 이집트에서 유럽으로 어떻게 넘어갔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고 BBC가 전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울릉도 인구 1만명 붕괴 3년째 지속…인구늘리기 비상

    울릉도 인구 1만명 붕괴 3년째 지속…인구늘리기 비상

    울릉도 인구가 3년째 1만명을 밑돌면서 인구늘리기에 비상이다. 3일 경북 울릉군에 따르면 지난 6월말 기준 섬의 주민등록인구는 9802명이다. 2017년 인구 1만명 선이 무너져 9975명을 기록한 이후 3년째 다시 173명이 감소한 것이다. 이 같은 군의 인구는 지방자치법상 읍(邑) 설치기준(2만 이상)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울릉군은 1개읍 2개면으로 구성돼 있다. 1882년 12월 ‘울릉도 개척령’ 발령 이후 가장 많은 인구를 기록한 1970년대 2만 9000여명에 비해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군은 올해부터 출산장려금을 대폭 늘리는 등 인구늘리기를 시도하고 있으나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군은 지난해까지 첫째 자녀 340만원, 둘째 자녀 580만원, 셋째 이상 자녀 820만원을 지급하던 것을 올해 1월부터 첫째 자녀 680만원, 둘째 자녀 1160만원, 셋째 이상 자녀 2600만원으로 확대했다. 또 출산장려금 분할 지급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렸다. 군은 앞으로 전입 주민에 대한 상수요금과 각종 관광시설 이용료를 감면해 주는 등 추가 인센티브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울릉주민들은 울릉군이 적극적인 인구 증가책을 펴지 않으면 머지않이 섬은 공무원과 월급자들만 남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주민들은 “울릉군의 인구늘리기가 헛구호에 그치고 있다”면서 “관광객 유치 확대도 중요하지만 섬 존립의 근간인 인구 증대를 위해 군정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울릉군 관계자는 “주민들의 뭍 이주에다 학생들도 진학을 이유로 섬을 계속 떠나는 등으로 ‘심리적 저지선’인 1만 명이 무너졌다”면서 “하지만 지난해 말 섬 일주도로가 개통된 데 이어 울릉공항 건설 등 각종 예정된 사업들을 차질없이 추진해 인구를 늘리겠다”고 말했다. 한편 전국 243개 지자체 가운데 울릉군 다음으로 인구가 적은 경북 영양군의 지난 6월 말 주민등록인구는 1만 7139명이다. 영양군은 2005년 말 인구 2만명선이 붕괴된 이후 인구늘리기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2025년까지 인구 2만명 회복을 목표로 잡았다. 울릉·영양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궁지 몰린 바이든…‘흑백 통합 스쿨버스’ 반대 이어 성소수자 비하까지

    궁지 몰린 바이든…‘흑백 통합 스쿨버스’ 반대 이어 성소수자 비하까지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한 민주당 후보로 꼽히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계속해서 자신을 궁지로 내몰고 있다. 폭스뉴스는 30일(현지시간) 바이든 전 부통령이 전날 시애틀에서 열린 기금 모금 행사에서 “5년 전만 해도 기업가들이 게이 웨이터를 조롱하는 일이 받아들여졌다”고 말해 관객들의 야유를 받았다고 전했다. 관객들은 “시애틀은 아니다”라고 외치며 바이든의 주장에 반기를 든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에 참석했던 홍보 활동가이자 동성애자인 로저 나이후스는 “2014년에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적인 발언이 이곳 시애틀에서 묵인됐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바이든은 이 자리에서 동성애 혐오 발언을 한 가상의 ‘기업가’는 미국 사회에 다시는 초대받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이며, 자신이 부통령 시절 동성결혼을 얼마나 지지했었는지를 설명했다. 폭스뉴스는 바이든이 민주당 지지자들의 마음을 얻고자 내뱉는 말들이 하나같이 논란을 낳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바이든은 2012년 후드티를 입고 있다 총에 맞은 10대 흑인 소년 트레이본 마르틴에 대해 “후드를 입고 있던 그 소년은 폭력배가 아니라 차기 계관시인일 수 있었다”는 발언으로 여론을 뭇매를 맞았었다. 코리 부커 민주당 상원의원은 바이든의 이 발언에 대해 트위터에 “이건 후드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이건 후드를 입은 소년을 바라보는 우리의 문화에 관한 문제”라면서 “우리의 후보자(바이든)는 인종에 대해 보다 건설적인 방향의 발언을 할 필요가 있다”고 일침을 놨다. 지난달 27일 진행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TV토론회에서는 검사 출신이자 흑인인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이 바이든의 과거 전적을 끄집어내며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 냈다. 해리스 의원은 바이든 전 부통령이 1970년대 미 교육부의 흑백 학생 통합정책의 일환인 스쿨버스 통학에 반대한 전력을 들며 “개인적으로 큰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미대선 여론 전문사이트인 파이브서티에이트가 26~27일 이틀간의 경선 토론 전후 벌인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의 지지율은 토론 전 41.5%에서 토론 후 31.5%로 10%포인트 하락했다. 해리스의 지지율은 7.9%에서 16.6%로 껑충 뛰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캘리포니아 ‘작은 소녀’의 반란...민주 해리스, 경선 토론 후 ‘주목’

    캘리포니아 ‘작은 소녀’의 반란...민주 해리스, 경선 토론 후 ‘주목’

    ‘여자 오바마’로 불리는 커멀라 해리스(54)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이 28~29일 진행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 이후 24시간 동안 약 200만 달러(약 23억원)의 후원금을 받았다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0명씩 두팀으로 나눠 진행된 토론회에서 해리스 의원은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 상위그룹이 포함된 이틀째 토론회에 속해 있었다. 해리스 의원의 ‘바이든 공격’은 이날 토론회에서 단연 돋보였다. 그는 백인과 흑인 학생들이 함께 스쿨버스를 타게 하는 1970년대 인종통합정책인 ‘버싱’에 반대했던 바이든 전 부통령의 전력을 거론하며 “그때 캘리포니아에서 좀 더 나은 학교에 가려고 버스에 타려던 작은 소녀가 바로 나였다”고 말했다. 자신의 개인사를 통해 유권자들의 공감을 얻겠다는 그의 전략은 잘 맞아떨어졌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나는 인종주의자가 아니다”라며 말을 얼버무렸고, 이같은 장면은 그대로 TV에 중계됐다.토론이 끝나고 하루 동안 해리스 의원에 후원금을 낸 이들은 6만 3277명으로, 이 가운데 60%는 새로운 후원자들이었고 1인당 평균 후원액은 30달러였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그는 토론회 후 자신의 소셜미디어서비스에 한 흑인 소녀의 사진을 올리며 “캘리포니아에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니던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 소녀가 바로 저입니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외신은 해리스 의원이 같은 여성인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과 흑인인 코리 부커 상원의원 등 이미지가 겹치는 후보들을 피하는 대신 선두 주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흑인 혼혈로 변호사와 검사를 지낸 법조인 출신인 해리스 의원은 이같은 배경 때문에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는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미 민주당 TV토론 이틀째 승자는 ‘흑인 여성’ 후보 카말라 해리스

    미 민주당 TV토론 이틀째 승자는 ‘흑인 여성’ 후보 카말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의 2020년 대선 후보를 뽑는 첫 TV토론 이틀째인 27일(현지시간)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 뒤를 추격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맞대결이 펼쳐질 것으로 예측됐으나 이날 토론의 진정한 승자는 카말라 해리스(54·여) 상원의원이었다고 CNN 등 미 외신은 보도했다. 최대 격전지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26일에 이어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TV토론에는 무작위 추첨으로 배치된 10명의 주자가 참여해 불꽃튀는 공방을 벌였다. 지지율 1위인 바이든 전 부통령과 샌더스 의원을 비롯한 여론 조사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후보 대다수가 대선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기 위해 2시간 동안 치열한 접전을 펼친 가운데 해리스 의원의 존재감이 부각됐다는 평가다. 여론 조사상 중상위권으로 분류되는 해리스 의원은 바이든 전 부통령의 ‘인종차별’ 의혹을 제기하며 공격해 주목을 받았다. 해리스 의원은 바이든 전 부통령이 상원의원 시절 공화당의 인종차별주의 상원의원들과 함께 일했다고 지적하면서 과거 개인적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바이든 전 부통령을 겨냥해 “나는 당신이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믿지 않는다”고 운을 뗀 뒤 1970년대 교육부가 추진한 흑백 인종 통합 교육 및 이를 위한 스쿨버스 운행을 막기 위해 바이든이 노력했으며, 이는 캘리포니아에서 버스로 통학하던 한 어린 소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고 말했다. 해리스 의원은 “(당시) 한 소녀는 스쿨버스를 타고 매일 학교에 다녔다. 그리고 그 어린 소녀는 바로 나였다”고 말했다. 해리스 의원은 또 가장 진보적 성향을 보이는 샌더스 의원을 향해 정책의 실효성을 지적했다. ‘트럼프 때리기’도 이어졌다. 해리스 의원은 기후변화 문제를 언급하며 “국가 안보에 가장 큰 위협은 트럼프”라며 “그는 과학을 부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리스 의원은 북한을 거론하며“핵 무기에 관해서는 진정한 위협” 이라며 “그(트럼프)가 하는 것은 사진 촬영을 위해 독재자 김정은을 껴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당초 ‘양강’(兩强)의 맞대결로 기대를 모은 바이든 전 부통령과 샌더스 의원은 부자 감세 폐지’와 ‘부장·중산층 증세’로 정면 충돌했다. 민주당 내에서 상대적으로 중도 성향으로 꼽히는 바이든 전 부통령과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 상원의원 간의 이념 대결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는 월스트리트(뉴욕시에 있는 금융·증권 거래 중심지)가 미국을 건설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평범한 중산층이 미국을 건설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우리를 끔찍한 상황에 놓이게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우리는 끔찍한 소득 불평등을 겪고 있다”면서 “나는 도널드 트럼프의 부자를 위한 감세 정책을 없애는 일에 착수할 것”이라고 중산층에 대한 구애에 나섰다. 이에 맞서 샌더스 의원은 ‘확실한 왼쪽’을 택했다. 그는 자신의 ‘모두를 위한 의료보험’ 플랜을 위해 부유층뿐 아니라 중산층에 대해서도 세금을 인상하겠다며 증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샌더스 의원은 “그렇다.그들은 세금은 더 지불하게 되겠지만 건강 보험에서는 혜택과 비교하면 덜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병적인 거짓말쟁이이자 인종주의자”라고 저격했다. ‘바이든 대세론’을 허물어뜨리기 위한 후발주자들의 견제 움직임도 돋보였다. 에릭 스왈웰 하원의원은 ‘구세대는 신세대에게 횃불을 넘겨야 한다’는 바이든 전 부통령의 10년 전 발언을 환기시키며, 세대교체론을 내세워 고령이라는 바이든 전 부통령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및 국경 정책에 대해서는 모든 후보가 반대했으며 의료보험, 총기 규제 등에 대해서도 후보들이 대체로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이날 토론에는 피트 부티지지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 마이클 베닛 상원의원, 작가 메리앤 윌리엄슨, 키어스틴 질리브랜드 상원의원, 전직 기업인 앤드루 양, 존 히켄루퍼 전 콜로라도 주지사 등이 참여했다. 이번 TV토론으로 경선 레이스의 첫 테이프를 끊은 민주당 후보들은 다음달 30∼31일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CNN이 중계하는 2차 TV토론을 이어간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태양광을 건축자재로 만들어 재생에너지 산업 선도”

    “태양광을 건축자재로 만들어 재생에너지 산업 선도”

    “태양광사업은 땅, 물, 건물에서 가능합니다. 땅은 영농형 태양광, 물은 수상태양광, 건축물에는 저희가 선도하는 건물 일체형 태양광이 대세입니다” 국내 건물 일체형 태양광사업의 블루오션을 개척하고 있는 비제이파워의 김용식 대표. 그는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은 ‘사람’을 위한 것이고 에너지는 ‘안보’이기에 국가가 주도해야 한다”고 거침없이 주장한다. 태양광산업 활성화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는 물론, 미세먼지 없는 도시 에너지공급을 위해 국가는 이를 반드시 책임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에너지는 소비 절감과 소비자 생산이 중요하기에 산업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는 것 또한 국가의 몫이라 한다. “에너지절약 건축물인 패시브 하우스에 대한 기준이 북한에는 있는데 한국에는 없다는 말을 독일에 출장 갔을 때 들었다”며 이제 한국도 도시재생사업으로 태양광의 신시장이 활짝 열리길 기대한다. 비제이파워의 건물 외장재 태양광은 태양광과 건축자재의 융합산업으로 현재는 물론, 미래시장을 개척하는 선도적 역할이 기대된다. 태양광을 중심으로 한 융합산업은 농경지, 수상, 양식장 태양광은 물론, 도로의 차음판 태양광, 광고판 태양광, 태양광 예술작품(조형물) 등은 김용식 대표의 창의성과 선견지명 능력을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경영철학인 ‘홍익’을 실천하여 전 직원이 주인인 회사를 만들고자 하는 애국 애족 애민의 리더이다. 과거 김 대표가 직원들과 함께 시행했던 ´전 직원 스톡옵션´이나 ‘10% 급여나눔운동’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특히, 후자는 자율적 참여로 급여의 10%를 모아 참여한 직원들이 N분의 1로 나누는 것으로 3년 만에 100% 참여했다고 한다. 사훈인 ‘감사하라’를 실천하는 그에게서 21세기 기업문화와 태양광 융합산업의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편집자 주→20년 동안 사업을 하시면서 리먼 외환위기도 겪으셨고 지금은 태양광산업의 암흑기라고 하는데요. -저는 고향집의 4평짜리 점포에서 1999년 비제이시스템 상호로 창업을 하여 2000년에 한밭대학교 창업보육센터로 회사를 이전했습니다. 그때 개발한 신제품이 상용화에 성공하여 2001년에는 대전 본사보다 규모가 큰 판매법인을 서울에 오픈하였습니다. 2002년 유사한 아이템을 개발한 회사와 M&A하였는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그동안 이루었던 모든 것을 잃고 감당할 수 없는 채무까지 안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이 시기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기억합니다. 많은 지인의 응원을 자본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던 고향집으로 다시 돌아가 2003년에 맨손으로 다시 창업한 회사가 바로 비제이파워입니다. 2003년 비제이파워를 설립하여 열심히 일해 매출을 늘리고 성장하여 2008년에 이전 회사채무 100%를 상환하였습니다. 그러나 2008년 리먼 외환위기에 태양광시장이 침체되기 시작하면서 어려움을 겪었으나 2009년부터 해외 태양광사업의 수주가 늘고 매출이 증가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지금 국내 태양광산업이 장기불황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으나, 비제이파워는 정부의 지원사업과 타 회사와 차별화된 독자적 핵심기술로 이 시기를 극복하고 밝은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산업계 전반이 어려울 때, 올해 3월에 한국태양광산업협회 감사로 취임하셨는데요. -밝음을 좋아하고 태양광에 많은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의 오랜 시간 태양광산업에 종사한 경험이 한국태양광산업과 협회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2010년 대한민국창업대전에 이어 2016년 한국신재생에너지 부분에서 대통령상을 2번째 수상하셨는데요.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 각지에 전기가 없거나 부족한 곳에 태양광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많은 프로젝트를 경험했습니다. 특히, 필리핀의 코브라도라는 100여 가구가 거주하는 작은 섬에 15㎾ 디젤발전기로 전기가 공급되고 있었습니다. 발전원가가 높아 정부가 전기보조금을 지원해도 주민들은 약 700원/◇의 높은 전기요금을 지불했고, 그것도 하루 6시간 제한적으로 전기를 공급받았습니다. 아시아개발은행과 산업자원부의 지원으로 태양광 30㎾를 설치해 섬 주민들에게 24시간 약 350원/◇로 전기를 공급해 주민생활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된 성공적인 프로젝트로 평가되어 대통령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해외사업으로 회사 운영에 도움이 되고,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이기에 보람도 있고, 큰 상도 받으니 기뻤습니다. 더욱 열심히 하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해외에 진출을 많이 하셨는데요. -경제성 높은 에너지자립형 태양광시장은 작은 규모의 태양광발전소로 전기를 생산하여 마을에 전기를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필리핀, 몽골, 에티오피아, 카자흐스탄 등의 지역에 가장 많이 시공했고 캄보디아와 베트남에는 태양광충전소를 시공했습니다. 캄보디아의 경우, 60㎾ 태양광을 설치해 100개를 동시에 충전할 수 있는 충전장치를 통해 주민들은 축전지를 하루 충전으로 일주일을 사용합니다. 방글라데시에는 태양광으로 펌프모터에 전기를 공급해 물을 끌어 올리는 태양광펌핑시스템을 시공했고 르완다에는 통신 중계기용 태양광을 시공했고, 갈라파고스섬에는 기저부하 사용을 위한 디젤발전소 계통연계 1.5㎽ 태양광을 시공하는 등 다양한 사업경험을 하였습니다. →대북사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북한은 전기가 절실히 필요한 우리 민족임에도 자유로이 갈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에 코이카, 에너지공단, 수출입은행을 통하여 대북 태양광사업을 하고자 했습니다. 이에 2011년 북경에 한중합작법인을 설립하여 향후 대북사업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였고, 2014년부터는 전기산업통일연구협의회에 위원으로 참석해 남북 전기규격통일과 더불어 시급한 북한 민생용 전력공급을 위해 먼저 태양광 보급 시범사업을 하자는 제안도 하였습니다. 대북제재가 풀리고 태양광 시스템 구성 물품이 전략물자 품목에서 자유로워지면 남북화합 및 교류에 태양광이 큰 쓰임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건물 일체형 태양광사업’은 태양광과 건축자재와의 융합산업으로 보이는데요. -1970년대 일본을 중심으로 태양광 상업화에 성공한 이래 태양전지의 가격이 과거 40년간 300배, 최근 10년만 해도 15배 이상 폭락했습니다. 태양광 소재 가격이 하락하면 태양광의 활용도가 더욱 커지게 됩니다. 태양광이 건축자재의 소재로 사용되어 모든 건축물에 태양광이 적용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2009년 건물일체형 태양광모듈 생산 공장을 만들었습니다. 발상을 전환해서 건축물에 들어가는 태양광모듈이 아닌 전기 생산기능을 가진 건축자재를 개발하기 시작하여 2010년부터 생산을 시작해 꾸준한 연구와 제품 상용화를 하였습니다. 태양광과 건축자재가 융합된 새로운 형태의 건물외장재입니다. 기존 건축외장재와는 기능과 용도가 달라 경쟁관계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건축물의 에너지 절약계획이 강화되고 녹색건축물조성법 등 친환경에너지를 의무화하는 건축물 관련 법규의 강화와 함께 급속한 태양전지 소재 가격의 하락으로 일반외장재 대비 가격경쟁력이 크게 향상되어 일정 기간 후에는 관련 제품의 시장이 크게 팽창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제품의 경쟁력은 무엇인가요. -기존 건물일체형 태양광은 짙은 청색의 일률적인 색상과 전기배선이 보이는 태양광패널 형태로 제작되어 건축물 적용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상용화한 신제품은 태양전지가 보이지 않는 수려한 디자인제품으로, 수요자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색상구현이 가능하여 전기 생산기능을 갖춘 고급외장재로 모든 건축물에 폭넓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시장에 유사제품이 있지만 상용화 기술 측면과 경제성 측면에서 우리 제품이 비교우위에 있습니다. →최근 3년 동안 매출신장세가 가파른데 그 비결은. -오랜 시간 꾸준히 준비한 국내외 사업개발들이 실행되고, 개발하여 상용화된 제품의 판매로 매출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매출신장세는 매년 300% 이상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기존 사업개발의 실행과 개발제품의 상용화 확대를 위해 운전자금 확보가 필요하여 작년에 신주발행으로 일부 자금을 조달하였고, 2019년 규모 있는 협력회사와 개발제품의 판매 협력체계 구축 등으로 운전자금 확보가 진행 중입니다. 이를 통해 신제품의 원활한 양산체계를 갖춰 제품의 매출을 크게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국내 시공실적에 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16년간 다양한 종류의 많은 국내 실적 중에 몇 가지 소개하면 모니터링 사업은 대구 신재생에너지 통합모니터링, 진해 에너지환경과학공원 통합 모니터링, 주택보급사업용 통합모니터링 등이 있습니다. 태양광 주택보급사업은 2005년부터 약 1500가구, 태양광 건물보급사업은 약 100개소를 시공하였으며 대표적으로 잠실롯데타워,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이 있습니다. 그 외 태양광발전소는 자사 보유 태양광발전소 2개소와 약 20여개 태양광발전소의 시공 사업실적이 있습니다. →2025년까지 정부의 제로에너지빌딩 의무화정책 추진이 사업기회가 될 듯합니다.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재생에너지 3020 정책 제안으로 건물태양광 적용사업 및 태양광과 건축산업의 융합산업으로서의 태양광산업 육성정책을 건의하였습니다. 산업자원부에 건축자재 형태의 태양광산업의 육성정책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건의하여, 2019년부터 건물 외벽 태양광 우선지원 정책과 건물 외벽에 태양광 설치 시 시설비의 70%를 정부에서 무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발표되는 등 제로에너지빌딩 의무화에 맞추어 건물외벽용 태양광 적용시장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규정하는 RE100 캠페인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유럽에서는 2020년부터 신축되는 모든 건물을 준 제로에너지빌딩으로 만들자는 ZEBRA2020 정책으로 건축물에 태양광 적용시장이 급속도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들은 오래전부터 점차적으로 추진되어온 정책으로, 비제이파워는 건축자재로서의 태양광 미래시장을 대비해 오랜 시간 꾸준한 연구개발을 통해 제품 상용화를 준비해 왔습니다. 지금부터는 준비된 제품과 양산체계를 갖춘 생산공장을 통하여 시장을 선점하고 세계시장에서 선도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합니다. →5G 시대를 맞아 특별히 준비하시는 사업은. -컴퓨터산업이 산업용 컴퓨터 시대에서 퍼스널 컴퓨터 시대를 거처 휴대용 컴퓨터 시대로 진화해 갔듯이 태양광산업도 산업용 태양광 시대에서 퍼스널 태양광 시대를 거쳐 휴대용 태양광 시대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현재는 산업용 태양광 시대와 퍼스널 태양광 시대 진화의 과도기 시기이며, 비제이파워는 5G 시대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공급을 위한 퍼스널 태양광 관련 제품의 연구개발을 차분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병식 객원기자 kbs@seoul.co.kr 1965년 대전 출생 학력 1983년 2월 남대전고등학교 졸업 1990년 2월 한밭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주요경력 2019년 3월∼현재 한국태양광산업협회 감사 2017년 4월∼5월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 위원 2014년 11월∼현재 전기산업통일연구협의회 위원 2013년 11월∼현재 한국태양광발전학회 평의원 2011년 1월∼2018년 12월 한국태양에너지학회 이사 2003년 10월∼현재 비제이파워 대표이사 수상경력 2010년 6월 대한민국창업대전 대통령상 2016년 11월 한국신재생에너지대상 대통령상 2019년 3월 한국태양광발전학회 GPVC 특별상
  • [시론] 애국자에게 ‘다신공’을 허하라/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시론] 애국자에게 ‘다신공’을 허하라/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인구 감소 시대가 눈앞에 닥쳤다. 인구 감소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진 이유는 신생아 출생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 연간 100만명을 넘겼던 신생아 수는 줄고 또 줄어 2017년 40만명의 벽이 무너졌고, 지난해에는 32만 6900명으로 더욱 감소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에는 20만명대로 내려갈지 모른다는 걱정이 크다. 인구 감소 시대는 이제 현실이다. 그 직격탄은 지방이 먼저 맞게 될 것이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은 국가의 위기다. 왜 지금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주저하는지 깊이 헤아리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언제부턴가 결혼을 앞둔 청년과 신혼부부들을 만나면 출산을 꺼리는 이유를 묻곤 한다. 아이를 낳겠다는 젊은이들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출산을 원치 않는다고 답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교육이다. 아이를 낳아 대학 입학 때까지 경쟁에 뒤처지지 않도록 학원에 보내려면 부부가 맞벌이해서 번 돈까지 다 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암울해진다고 한다. 교육이, 특히 사교육이 출산 기피의 첫 번째 원인이다. 두 번째로 꼽는 게 집 걱정이다. 치솟는 집값을 보면 내 집 마련의 엄두가 나지 않는단다. 서울 강남에 내 집을 갖는 꿈은 감히 꿀 수도 없고 직장에서 먼 곳에 전월세로 집을 마련해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것도 너무 힘든 일이라고 답한다. 개인의 힘으로 대안을 마련하기에 한계가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제안한다. 애국자들에게 ‘다신공’을 허하라. ‘다신공’은 ‘다자녀 연계형 신혼부부 공공임대주택’의 줄임말이다. 왜 애국자인가? 인구가 급속히 줄고 있는 국가적 위기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신혼부부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들인 까닭이다. 그러하니 모든 신혼부부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는 것은 어떨까. 즉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에 기본 5년은 무조건 보장해 주고, 자녀를 출산하면 자녀수에 비례해 그 기간을 연장해 주는 것이다. 또 자녀 한 명당 10년씩 공공임대주택 거주 기간을 연장해 줄 수 있다. 서른 살에 결혼해 네 아이를 낳아 키운 나 같은 사람에게 일흔 살까지 40년 동안 집 걱정을 덜어 준다면 아주 고마운 일이 될 것 같다. 아이 낳기를 잘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젊은이들이 출산을 망설이게 하는 큰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신공’을 어떻게 마련해 주면 좋을까. 과거 개발시대에 해왔던 신개발, 재개발 같은 대규모 단지 개발 방식은 이제 한계가 있다. 땅은 유한한데 언제까지고 갈아엎는 방식을 되풀이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작게 고치고 채우는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답이 있다. 다세대, 다가구 주택을 국가나 지방정부 또는 공기업이 매입해 ‘공동체주택’의 형태로 리모델링해서 제공하는 것이다. 건물 곳곳에 입주자들이 함께 쓰는 육아 공간과 공유 공간을 풍부하게 배치한다면 매력적인 집이 될 것이다. 원도심의 빈집과 빈 가게들을 사거나 빌려 신혼부부들이 살기 편하게 고쳐 제공해도 좋겠다. 어르신들 내외분만 살고 있는 대형 아파트의 일부를 신혼부부들을 위한 주택으로 고치면 노소 세대가 서로의 결핍을 채워 주며 불편 없이 함께 사는 ‘땅콩 아파트’가 곳곳에 등장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길은 아주 많을 것이다. 찾기만 한다면. 충청남도가 애국자를 위한 ‘다신공’을 가장 먼저 실천에 옮기고 있다. 지난 5월 초 양승조 지사는 결혼한 지 7년 이내 신혼부부와 청년들을 위한 ‘충남형 더 행복한 주택사업’을 발표했다. 월세 15만원 이하로 신혼부부들에게 주택을 제공하되 자녀를 한 명 낳으면 임대료를 절반으로 낮추고, 두 명 낳으면 100% 감면해 주겠다는 내용이다. 기본 6년을 보장하고 자녀를 출생하면 10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첫 사업 대상지는 아산 월천지구다. 국비와 도비 등 2330억원을 투입해 2022년까지 1000호를 우선 공급하고 향후 5000호까지 확대할 예정이란다. 애국자를 위한 ‘다신공’을 가장 먼저 시행하겠다니 반갑고 기쁘다. 부디 좋은 결실을 거둬 전국으로 확대되길 바란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 1000호 가운데 900호를 건설형 임대주택으로 공급하고 나머지 100호를 미분양 아파트나 주택을 매입해서 공급한다는 점이다. 새로 짓는 것은 최대한 줄이고 비어 있는 자산들을 우선적으로 활용한다면 더없이 좋은 정책이 될 것이다. 그래도 응원한다, 충남형 더 행복한 주택사업을. 대한민국이여, 애국자에게 다신공을 허하라.
  • [그때의 사회면] 삼복더위에 밍크코트를…/손성진 논설고문

    [그때의 사회면] 삼복더위에 밍크코트를…/손성진 논설고문

    국제선 비행기가 도착하면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외국에서 온갖 물건을 사들고 들어오는 승객들 때문이었다.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 전기청소기, 녹음기, 전축, 전기밥솥, 석유난로 등 큰 가전제품부터 옷가지, 화장품까지 다양했다. 심지어 대형 소파도 갖고 들어왔다. 세금을 물지 않을 것 같아 삼복더위에 밍크코트를 걸치고 들어오는 여인들도 있었다. 1970년대 초 김포공항 풍경이다. 백화점도 차릴 만한 물건들을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정치인, 경제인, 공무원, 학자 등 식자층과 부유층이었다. ‘엑스포 70’ 시찰차 일본에 다녀온 어떤 사람은 무려 보따리 28개를 들고 왔다고 한다(경향신문 1971년 1월 18일자). 해외여행 자유화의 문이 열린 1980년대 중반부터는 일반인들의 본격적인 싹쓸이 쇼핑이 시작됐다. 해외에 나간 주부들의 손에는 일제 밥솥이 꼭 한두 개씩 들려 있었다. “한국 주부들이 시모노세키에서 일본 상품을 산더미처럼 사 갔다.” 일본에서 쇼핑한 물건을 두 손에 다 못 들어 발로 밀고 들어온 한국 주부들의 실태를 꼬집은 일본 아사히신문 사회면 1단짜리 기사다. 더욱이 그 장본인들이 소비자보호운동을 한다는 여성 지도층이어서 국내에서 난리가 났다(경향신문 1984년 1월 19일자). 이 쇼핑 관광 사건은 국무회의에서 논란이 되고 당시 상공부 대책회의 석상에도 올랐다. 그러나 상공부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국산 밥통(사실은 밥을 짓는 밥솥)도 기능상 아무런 손색이 없다. 여인네들의 망국병이며 치유 불능의 고질병이다.” 관계와 재계는 국산품 애용을 외치며 여성들을 비난했다. 그러자 주부클럽연합회 회의실에서 공무원들과 업계를 성토했다. 밥솥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서 식구들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이려는 여성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여론에 밀려 국립공업시험원은 국산과 일제 밥솥을 완전히 분해해 놓고 성능을 비교했다. 그랬더니 확실히 국산이 뒤떨어져서 정부는 업계에 압력을 넣어 품질을 크게 개선한 국산 밥솥을 개발했다. 그 이후 밥솥 쇼핑은 크게 줄었다. 국산품 과보호가 산업 발전에 역행한다는 점을 보여 준 사례였다. 그러나 1989년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로 여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일제 밥솥 싹쓸이 쇼핑은 1990년대 초까지 계속됐다. 1990년 아시안게임 관람차 중국 베이징을 찾은 한국 관광객들이 우황청심환, 편자환, 웅담, 녹용 등을 싹쓸이하는 바람에 약국 물건이 동나기도 했다. 이를 본 중국인들은 “한국에 환자가 얼마나 많기에 그러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 김해 낙동강변에서 제2회 불암장어문화축제 29~30일

    김해 낙동강변에서 제2회 불암장어문화축제 29~30일

    경남 김해시는 21일 낙동강변 특미인 민물장어를 소재로 한 ‘제2회 불암장어문화축제’가 오는 29~30일 불암동행정복지센터 일원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불암장어문화축제는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축제 제전위원회가 지역 특미인 불암장어를 널리 알리고 주민 화합을 위해 개최하는 먹거리 축제다.김해시와 한국공항공사에서 지원하는 공항소음피해지역 주민지원사업비를 활용해 축제를 개최한다. 서낙동강변에 인접해 1970년대 부터 민물고기로 유명한 불암동 일대에는 현재 민물장어 먹거리촌이 형성돼 있다. 축제기간 이틀동안 ‘장어잡기 체험’과 저렴한 가격으로 맛있는 장어요리를 맛볼 수 있는 ‘장어음식 한마당’을 비롯해 ‘카누타기’, ‘꽃부케 만들기’, ‘아트마켓’, ‘농산물 판매장터’, ‘청소년 벼룩시장’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시민이 참여하는 노래자랑과 초청가수 공연, 거리공연 등 다채로운 공연과 경품 행사도 마련된다. 김말선 축제 제전위원장은 “지역 명물인 불암장어를 소재로 다양한 문화행사를 접목해 불암장어문화축제가 지역의 특색 있는 김해 대표 축제로 발전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전쟁 한가운데 선 이경, 서울서 ‘남북 이데올로기’ 잉태를 보다

    전쟁 한가운데 선 이경, 서울서 ‘남북 이데올로기’ 잉태를 보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8회 서울의 문학2(박완서의 나목)’ 편이 지난 15일 중구 회현동과 명동 그리고 충무로에서 종로 일대까지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회현역 7번 출구에 집결한 참가자들은 소설 속 여주인공 이경이 근무하던 옛 미군 PX(옛 미쓰코시백화점, 신세계백화점)와 한국은행 앞 분수광장(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을 거쳐 명동 유네스코 회관 11층 옥상정원에 올라 명동거리를 한눈에 내려다봤다. 명동성당~영락교회~고당 조만식선생 기념관~옛 수도극장(옛 스카라극장, 아시아미디어타워)~이순신 생가터를 지나 종묘 어귀 종로성당 앞에서 여정을 마무리했다. 해설을 맡은 박정아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소설 속 문학현장 얘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줬다.1970년에 발표된 박완서의 소설 ‘나목’은 한국전쟁 와중인 1951년부터 1953년까지 격동과 비극의 도시 서울을 그린 문제작이다. 소설가 박완서를 세상에 알린 데뷔작이고, 자전적 성장소설이자 연애소설이기도 하다. 그러나 본질은 한국전쟁의 참화를 겪는 서울과 서울사람들을 얘기하는 전쟁소설이다. 두 번의 피난과 두 번의 복귀는 서울의 정체성을 통째 바꿔 버렸다. 상호 적대적 체제 선택이라는 숙명을 안겼고, 부역과 전향이라는 천형을 새겼다.작가는 개성에서 태어났지만 8살에 서울로 올라와 매동초등학교를 다녔고 숙명여고에 입학했으며 서울 문리대에 합격, 6월 20일 입학식을 치른 지 며칠 뒤 전쟁을 맞았다. 실제 미8군 PX에서 근무했으며 피난을 가지 못하고 인민공화국 치하를 생생하게 체험했다. 그러나 소설처럼 주인공은 서울토박이도 아니고, 북촌 재동에 살지도 않았다. 폭사한 오빠의 죽음도 사실과 다른 소설적 장치에 불과했다. 소설은 그렇게 리얼리티와 허구를 절묘하게 버무렸다. 박완서의 전쟁체험은 이후 ‘엄마의 말뚝’(1982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년),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년)에서 한 꺼풀씩 허울을 벗는다. 제목이 다른 4개 작품은 사실상 1개의 연작소설인 셈이다. 작가는 ‘나목’에서 시작한 전쟁체험을 ‘말뚝’에서 구체화했다. ‘싱아’가 수줍은 자화상이라면 ‘그 산’은 민낯이다. 작가는 “아무튼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1970년 봄 어느 날 단골 미용실에 가서 내 차례를 기다리며 뒤적이던 ‘여성동아’에서 여류 장편소설 모집이란 공고를 보고 갑자기 가슴이 두근대며 소설을 쓰고 싶어졌던 것이다”고 ‘중년 여인의 허기증’이라는 산문에서 창작 동기를 밝혔다. 그러나 정작 ‘소설을 쓰고 싶어졌던’ 이유는 따로 있었던 듯하다. “S회관 화랑은 3층이었다. …나는 미처 화랑을 들어서기도 전에 입구를 통해 한 그루의 커다란 나목을 보았다. …나무 옆을 두 여인이, 아이를 업은 한 여인은 서성대고 짐을 인 한 여인은 총총히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라는 대목이 소설에 나온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의 분신인 여주인공 이경이 남편 장태수와 덕수궁 은행나무 아래서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한 독백이었다. 결혼은 장태수와 했지만 마음은 화가 옥희도에게 있었다. 여기서 S회관이란 지금의 남대문로 5길 37, 39 일대에 있었던 중앙공보관 건물 내 화랑을 말한다. 중앙공보관은 국정홍보를 담당하던 당시 공보실 건물로 나목의 모티브가 된 ‘박수근 유작전’이 1965년 열린 곳이다. 작 중 옥희도의 모델이 된 화가 박수근은 회고전을 준비하던 중 타계하면서 첫 개인전이 유작전이 됐다. 나목은 박수근이 1962년에 그린 ‘나무와 두 여인’이다. 박수근의 유작전을 본 박완서는 나목을 집필했다. 북창동 전주회관 뒤편 옛 중앙공보관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이경과 옥희도가 데이트를 즐겼던 명동은 옛 남촌 명례방이다. 우리는 명동 하면 일제강점기 메이지마치(명치정)와 혼마치(본정)를 떠올리지만 명동에 외국인의 DNA가 처음 새겨진 것은 1882년 임오군란 이후다. 훈련대장 이경하의 명동 집(주한 중국대사관)을 접수한 청나라는 이곳에 영사관 격인 상무공서와 상공회의소 격인 중화회관을 세운 뒤 자체 치안관서를 운영하면서 조선의 주인행세를 했다. 1894년 청일전쟁 패배 이전 3000명이 넘는 중국인이 조선의 상권을 쥐락펴락하다 일본인에 의해 쫓겨났다. 1945년 일제가 패망, 1948년 중화민국 대사관과 한성화교소학교가 들어서면서 청요리집, 중국과자집, 생활용품점, 환전소, 여행사, 약재상 등이 들어섰다. 1970년 서울거주 전체 외국인 1만여명 중 80%가 중국인이었다. 1966년 존슨 미국 대통령 방한을 계기로 서울도심재개발사업이 시작되면서 화교들은 서울 한복판 차이나타운에서 내쫓겼다. 서울은 차이나타운이 없는 유일한 대도시가 됐다.한국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서울 사람의 운명은 한강을 건넌 사람과 건너지 못한 사람으로 엇갈렸다. 이른바 도강파(渡江派)와 잔류파의 역경이다. 박완서의 소설 또한 서울을 떠난 사람과, 서울에 남은 사람의 얘기다. 이때의 기억이 1970년대 이후 한강 이남 즉 강남개발과 강남 부동산 불패 신화를 탄생시켰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겪은 한강도하의 악몽이 준 심리적 안정감이다. 사람들이 직접 체험한 한국전쟁의 실체는 피난이다. 피난은 전쟁의 참화를 모면하는 방법이기도 했지만 상호적대적인 사상과 체제에 대한 선택이기도 했다. 두 번의 피난(1950년 6월 28일, 1951년 1월 4일)과 두 번의 복귀(1950년 9월 28일, 1951년 3월 15일) 과정에서 서울은 기원전 도시생성 이후 최대의 수난을 겪었다. 불과 10개월 사이 각각 90일과 60일에 걸쳐 발생한 일대 사건이었다. 도합 150일 동안 남과 북, 우익과 좌익,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국군과 인민군이 서울을 번갈아 점령했다. 이는 장차 서울이라는 지역과 서울에 사는 사람의 정체성을 변화시켰다. 처음 전쟁이 발발했을 때 사람들은 도시의 함락과 수복을 자신과는 무관한 권력과 이념의 다툼으로 인지했지만 전쟁 과정을 통해 서울은 이데올로기의 불꽃이 번쩍이는 비극적 도시가 된다. 1950년 6월 28일 제1차 함락 이후 피난을 못 가거나 안 간 잔류시민들은 인민공화국 치하에서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1950년 9월 28일 1차 수복으로 서울을 떠났던 피난민이 다시 돌아오면서 도강파는 ‘반공 시민’의 지위를 보장받은 반면 잔류파는 적 치하에서의 결백을 증명해야 했고, 반대의 경우 보복을 각오해야 했다. 부역과 전향이 반복됐다. 서울은 1차 인공 치하 90일간 벌어진 일로 배신과 보복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1·4 후퇴로 우려하던 2차 서울점령이 현실화하자 서울은 텅 비었다. 1949년 140만명이 살던 대도시가 노인과 환자 그리고 그를 돌보는 극소수 가족만 남고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렸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서울을 떠났다. 인민군이 가할 억압과 국군에게 당할 고초를 피하고자 했다. 이는 1951년 3월 15일 재수복으로 실현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혼돈의 정체성이 이 과정에서 잉태됐다. 박완서의 나목 연작은 이 시기 서울과 서울 사람들에 대한 증언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문희일·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9회 3·1운동 표석을 찾아서 일시 및 집결장소: 6월 22일(토) 오전 10시 종각역 4번 출구 보신각 앞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남진, 나훈아 피습사건 전말 공개 ‘충격과 공포’

    남진, 나훈아 피습사건 전말 공개 ‘충격과 공포’

    남진이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나훈아 피습사건의 전말에 대해 밝힌다. 19일 방송되는 MBC ‘라디오스타’에는 트로트 가수 남진과 윤수현, 래퍼 스윙스와 코드쿤스트가 출연한다. 스페셜 MC로는 쇼리가 함께한다. 남진은 “나는 트로트의 황제가 아니다”라고 운을 뗀다. ‘황제’라는 말을 들으면 화를 낸다는 것. 올해로 데뷔 55주년을 맞으며 어딜가나 ‘트로트의 황제’라고 일컬어지는 그가 무슨 이유로 화를 내는 것인지 방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남진은 나훈아 피습사건의 전말에 대해 털어놓는다. 1970년대 연예계를 뒤흔든 이 사건은 당시 라이벌 구도였던 남진이 배후라는 소문까지 나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바. 그는 이 사건의 뒷이야기를 전하며 모두를 충격과 공포에 빠트린다. 남진은 헌정 앨범 발매 소식을 전한다. 데뷔 55주년을 맞아 남진을 위해 후배들이 헌정 앨범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 그는 막강한 후배들의 라인업을 자랑하며 뿌듯함을 드러낸다. 팬들의 파격적인 응원도 공개한다. ‘오빠 부대’의 창시자인 그는 당시 팬들 때문에 눈앞에서 별까지 반짝거렸다고 고백한다. 다사다난했던 인생사를 언급한다. 무대 감전사고부터 조폭 칼부림 사건, 월남전 파병까지 녹록지 않은 세월을 짐작케 하는 에피소드를 방출한다. 이를 듣던 모두가 그에게 감탄과 존경을 표한다. 남진은 트로트 비법과 행사 필살기까지 공개하며 후배들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반백 년 넘게 트로트를 하며 살아온 그가 밝힌 비법은 무엇인지 궁금증이 커지는 가운데, 예상치 못한 행사 필살기까지 선보여 모두가 웃음을 자아낸다. 한편, MBC ‘라디오스타’는 19일 오후 11시 5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유정훈의 간 맞추기] 뒤에 서기

    [유정훈의 간 맞추기] 뒤에 서기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원제: On the Basis of Sex)을 봤다. 법률가로서 여성 차별 철폐를 위해 싸워 왔고 실제로 세상을 바꾼 변호사, 미국의 두 번째 여성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에 관한 영화다. 긴즈버그 대법관이 1970년대 변호사 시절, 처음으로 성별에 근거한 법적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소송을 맡았던 실화에 기초했다. 이 영화를 두 번째 보는데도 불구하고 울컥했던 부분, 마음 깊이 새겨두고 싶은 대사가 무척 많았다. 대법관으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지금은 ‘페미니즘의 아이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긴즈버그 대법관에 대해서는 딱히 보탤 말이 없다. 오늘은 조연 마틴 긴즈버그 얘기다. 루스와 마틴은 코넬대 학부에서 만나 결혼했는데, 긴즈버그 대법관은 데이트 상대 가운데 여성인 자기가 뇌를 가지고 있다고 알아본 유일한 남성이 바로 남편 마틴이라 회고했다. 두 사람은 함께 하버드 로스쿨에 다닐 때부터 각자 법률가로서 원하는 경력을 쌓아가고 서로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하버드 로스쿨에 여성이 입학한 지 불과 6년, 500여명의 재학생 중 여성은 단 9명이던 시절이다. 뉴욕 로펌에 취직한 마틴을 따라 긴즈버그 가족은 뉴욕으로 이사했고, 루스는 하버드가 아닌 컬럼비아에서 로스쿨을 마쳤다. 처음에는 마틴의 경력이 앞서갔고, 반대로 루스는 직장을 구하기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여성인권 변호사로 루스가 업적을 쌓아 가며, 두 사람의 역할은 바뀌었다. 1980년 루스가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지명되자, 마틴은 아내를 따라 직장을 뉴욕에서 DC에 있는 조지타운 로스쿨로 옮겼다. 마틴은 루스가 자기보다 뛰어난 법률가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신혼 시절 마틴이 요리를 더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영화에도 그런 장면이 여럿 나온다. 그의 말이다. “루스는 나에게 요리에 관한 조언을 하지 않고, 나는 루스에게 법에 관한 조언을 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같은 전문 분야를 가진 배우자가 상대방의 역할과 업적을 이보다 멋지게 인정하는 방법이 있을까 싶다. 단순히 루스가 연방대법관에 올랐기 때문이 아니다. 마틴은 세법 분야에서 인정받는 실무가이자 교수였다. 긴즈버그 대법관이 시대를 바꾼 인권변호사로 그리고 법관으로 경력을 쌓아 가면서, 마틴은 자연스럽게 위치를 바꾸어 늘 그녀의 뒤에 서서 걸었다. 마틴은 그건 희생이 아니라 가족이라고 말했다. 시대를 앞선 인격이다. 여성이 자기보다 앞서가는 것은 고사하고, 여성을 같은 눈높이의 동료로 인정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경우가 아직 많다. ‘내조’는 당연하나 ‘외조’는 찾아보기 어렵고, ‘경력 단절’은 늘 여성의 몫이지 남성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여성의 뒤에 서는 것이 별일이 아니어야 한다. 마틴 같은 삶 또한 예외가 아니어야 한다. 지금은 그저 매일의 날씨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기후 자체가 변하고 있다. 영화를 보시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안다.
  • 포천 적시는 단비, 양수발전소

    원전 1기 발전용량의 70%인 750㎿급 양수발전소 건설이 확정된 경기 포천시 이동면 지역 경제에 화색이 돈다. 18일 경기도에 따르면 이동면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인구가 2만명에 달했으나 현재 7000명도 안 된다. 백운계곡·이동갈비촌·막걸리 등으로 유명하지만, 인구가 도시로 빠져나가면서 침체에 허덕인다. 이런 가운데 건설비용이 1조원에 이르고 연평균 고용유발효과가 1140명으로 예상되는 양수발전소 건립은 단비와도 같다는 것이다. 양수발전은 소형 댐 2개를 산 위와 아래에 건설한 뒤 전기 사용량이 적은 밤 시간대에 상류 댐으로 물을 끌어올렸다가 낮 시간대 하류 댐으로 흘려보내 전기를 생산하는 수력발전 방식이다. 지난 14일 한국수력원자력이 사업지로 선정한 이동면 도평리 일대는 전형적인 산악 지역이다. 주민 절반 이상이 60세 이상인 데다 캠핑장·펜션업 이외 큰 수익원이 없다. 수력원자력 측은 토지보상비, 공사비 등으로 약 7000억원이 지역에서 소비될 것으로 추정한다. 총생산유발효과는 약 1조 7000억원(연간 2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건설 기간이 10년을 넘어 직원 등 인구 유입이 예상된다. 반경 5㎞ 이내에 60년 동안 650억원이 주민지원사업비로 지급돼 각종 기반시설도 확충된다. 박윤국 포천시장은 “양수발전소 유치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실제로 3조원 이상에 이르고 일자리도 1000개 이상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송유관 98%·통신구 91%·철도 45% 20년 넘어 국민 안전 ‘위협’

    송유관 98%·통신구 91%·철도 45% 20년 넘어 국민 안전 ‘위협’

    정부가 18일 ‘지속 가능한 기반시설 안전 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한 이유는 준공 20년이 넘은 노후 시설들이 전국 지상과 지하 곳곳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어서다. 경제발전계획에 따라 1970년대에 집중 건설된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은 약 40년이 지나면서 급격한 노후화가 진행 중이다. 노후 시설을 제대로 교체·정비하지 않으면 지난해 11월과 12월에 연달아 발생한 KT 서울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와 경기 고양시 백석역 열수송관 파열 등 대형 사고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지하시설물에 중점을 두고 노후 기반시설에 대한 안전 강화를 적극 추진하라”고 당부한 이유다. 이후 정부가 부처별 긴급 점검과 국가안전대진단을 거쳐 5개월 만에 대책을 내놨지만 좀 더 발 빠르게 대응했다면 최근 인천에서 발생한 ‘붉은 수돗물’ 사태를 예방할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 기반시설의 노후화는 심각하다. 지하시설물의 경우 통신구 37%와 하수관로 23%, 상수관로 12% 등이 만든 지 30년이 지났다. 방재시설은 저수지의 96%, 댐 45%가 30년 이상이다. 국민 생명과 직결된 교통시설도 30년 이상 된 시설이 철도는 37%, 항만 23%, 도로는 12%나 된다. 20년 이상 기준으로 따지면 송유관 98%, 통신구 91%, 하수관로 40%, 상수관로 35%, 가스관 35%, 전력구 34%, 저수지 98%, 댐 62%, 항만 47%, 철도 45%, 도로 37% 등으로 노후화 비율이 치솟는다. 그래서 사고도 자주 발생한다. 지난 5년(2014∼2018년) 가스관에서 35건, 열수송관에서 46건, 송유관에서 2건의 공급 중단 또는 누수 사고가 일어났다. 지방 상수도의 누수율은 10%에 이르고 하수관 손상에 따른 ‘땅 꺼짐’(싱크홀) 현상도 지난해에만 140건이나 됐다. 각 SOC 안전관리의 법률과 주체가 달라 체계적인 관리가 어려운 점도 시설 노후화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로·철도·항만 등 중대형 SOC와 상수도(급·배수관 제외), 공동구는 시설물안전관리특별법에 따라 국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이 담당한다. 반면 상수도 급·배수관과 하수도, 가스·송유·열수송관 등은 개별법으로 관리된다. 통신구(KT)와 소매 도시가스 등 여러 지하시설물은 100% 민간에서 책임진다. 정부는 긴급 보수·보강과 함께 여러 부처에 산재된 시설관리 체계를 손질하기로 했다. 내년 1월 기반시설관리법이 시행되는데 맞춰 통신구와 송유관 등 주요 민간시설을 포함한 15개 시설을 하위법령을 통해 관리대상으로 지정하고, 이들에 대한 중장기 기본계획과 관리계획, 시설별 최소 유지관리 공통기준을 만들 계획이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미국 ‘철도왕’ 5대손 글로리아 밴더빌트 별세

    미국 ‘철도왕’ 5대손 글로리아 밴더빌트 별세

    19세기 후반 미국의 ‘철도왕’으로 불린 당대 최고 부호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의 5대손인 글로리아 밴더빌트가 이달 초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하다 17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의 자택에서 숨졌다. 95세.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글로리아는 젊은 시절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인사이자 패션 디자이너 겸 예술가로 이름을 떨쳤다. CNN방송의 간판 앵커인 앤더슨 쿠퍼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쿠퍼는 이날 오전 방송에서 “인생을 사랑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살았던 비범한 여성이었다”고 직접 부음을 전했다. 1924년 뉴욕에서 태어난 글로리아는 프랑스에서 자라다 두 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죽음으로 400만 달러(약 47억 4000만원)의 유산을 상속받으며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1934년 글로리아의 양육권을 둘러싼 모친과 고모의 법정 다툼이 이어지자 미 언론은 그녀에 대해 ‘가여운 부자 소녀’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디자이너 진(청바지) 브랜드를 설립했다. NYT는 “데님을 위해 그녀가 한 일은 가장 잊혀지지 않을 유산”이라고 추모했다. 개인적으로는 굴곡진 삶을 살았다. 사교계 유명 인사였던 글로리아는 가수 프랭크 시내트라, 영화 ‘대부’의 말런 브랜도 등 당대 스타들과 각종 염문을 뿌렸다. 그녀가 네 번째 결혼으로 낳은 첫째 아들 카터 쿠퍼는 일시적 정신착란으로 투신했으며 형의 비극적인 자살을 지켜본 앤더슨 쿠퍼는 거액의 유산을 거부하고 방송계에 입문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씨줄날줄] 삼성의 위기론과 희망/이동구 논설위원

    [씨줄날줄] 삼성의 위기론과 희망/이동구 논설위원

    위기(危機)란 사전적으로 위험과 기회가 교차한다는 의미다. ‘위기’란 개인이나 단체, 사회나 국가 등이 현재의 자원과 능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거나 예상될 때를 말한다. 일상에서 위기, 위기상황, 위기상태라는 말을 혼용하는 이유는 위기를 흔하게 접하기 때문일 것이다. 위기라는 단어가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분야는 경제와 안보 쪽이다. 안보 위기는 남북 분단이라는 우리의 특수성 때문에 국내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인 반면, 경제 위기는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사용하는 경제·시사용어일 것이다. 인류는 1930년 세계 대공황, 2008년 금융위기, 1970년대 1·2차 오일쇼크, 1987년 블랙먼데이 등 수도 없이 많은 표현들로 경제 위기를 설명하고 대처해 왔다. 어느 한 시점에서 시작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살아 있는 한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는 현상이 경제 위기일 것이다. ‘위기 경제학´의 저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경제학 교수도 “경제 위기란 몇 가지 요인에 의해 우연히 나타나는 사건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수없이 반복돼 온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현재 우리의 경제가 위기 국면에 있다, 아니다”라는 논쟁이 뜨거웠다. 언론과 야당은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며 위기론을 주장해 온 반면,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위기로 표현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반박했다. 열흘 전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의 “경제 하방 위험이 커졌다”는 발언이 반전의 시작이다. 이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여당에서도 경제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직원들에게 위기론을 거듭 거론해 주목된다. 그는 “10년 뒤를 장담할 수 없다. 새롭게 창업한다는 각오로 도전해야 한다”며 사장단에 사실상 비상경영을 주문했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와 정보기술(IT) 분야를 대표하는 기업체 수장의 ‘위기론’은 무게감이 남다르다. 한국 경제가 위기라는 말과도 맥이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의 위기론에서는 희망도 느껴진다. 선대 회장들이 위기론을 거론할 때마다 엄청난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은 2010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박람회 전시장에서 “10년 후 구멍가게가 될 수도 있다”고 걱정했지만,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할아버지 이병철 회장 역시 1983년 3월 “첨단산업으로 변신하지 않으면 삼성그룹은 물론 나라의 장래까지 암담해질 것”이라는 위기론을 펼쳤지만, 삼성전자는 지금껏 국가 경제의 큰 버팀목이 됐다. 이번 위기론도 삼성전자와 국가경제에 새로운 기회로 작동되길 기대한다. yidongg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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