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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LB] “에런 지금 뛴다면 홈런 766개”

    ‘에런이 본즈와 같은 시대에 뛰었다면 홈런 몇개를 쳤을까.’ 거포 배리 본즈(43·샌프란시스코)가 미국프로야구 통산 최다 홈런 신기록을 눈앞에 둔 가운데 행크 에런의 기록을 야구 환경이 전혀 다른 본즈가 뛰어온 시기에 대입한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끈다. 미국 스포츠전문 채널 ESPN 인터넷판은 6일 에런의 기록(755개)을 본즈가 활약한 1980년대 중반 이후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에런이 적어도 766개의 홈런을 때렸을 것으로 내다봤다. ESPN은 시뮬레이션 기록 전문 통계회사인 ‘이매진 스포츠’의 자료를 근거로 했다. 변수는 경기 수 증가, 투고타저·타고투저 등 시대 흐름, 구장 크기 변화 등이었다.에런은 1954년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해 23년 동안 활약했고, 본즈는 1986년 프로에 데뷔해 현재 22년째 뛰고 있다. 1961년부터 경기 수가 팀당 154경기에서 162경기로 늘었기 때문에 에런은 데뷔 이후 7년 동안 본즈보다 경기수가 적었다. 이를 시뮬레이션하면 에런의 타석은 1만 3940개에서 1만 4327개로 늘게 된다. 에런은 또 투고타저를 보였던 1960년대에 더 많은 홈런을 때렸다. 타고투저가 완연했던 1980∼1990년 이를 반영했더니 에런의 한 시즌 홈런은 최소 1개에서 최대 11개까지 늘기도 했다. 특히 에런이 한 시즌 개인 최다 홈런(47개)을 날렸던 1971년은 본즈가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73개)을 세운 2001년과 시점이 겹친다. 에런이 이 때 뛰었다면 55개의 홈런을 쳤을 것으로 분석됐다. ESPN은 그러나 본즈가 에런을 뛰어넘는 홈런 신기록을 세우리라는 점에 대해선 부정하지 않았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A매치 1호골 주인공은?

    대한축구협회가 자료를 찾지 못해 오래도록 빈 칸으로 남겨놓았던 1940∼1960년대 국가대표팀 경기의 득점자와 출전 선수 명단을 찾아 나섰다. 축구협회는 5일 “첫 A매치를 비롯해 동남아에서 치러졌던 대표팀의 일부 경기는 결과만 남아 있을 뿐 득점자와 출전 선수 등 다른 기록은 죄다 사라져버려 아쉬움이 있었다.”면서 “최근 동남아를 직접 방문해 잃어버린 역사를 찾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협회는 ‘역사 찾기 프로젝트’에 예산 1000만원을 들여 1940∼1960년대 한국이 주로 경기를 벌였던 홍콩,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인도를 찾아가 각국 축구협회와 국립도서관에 남아 있는 자료, 신문 등 사료를 샅샅이 찾아보기로 했다. 첫 기착지 홍콩에서 이미 ‘보물’을 건졌다. 협회의 의뢰를 받아 3일 홍콩에 도착한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 한국 담당자 윤형진(28)씨는 홍콩 국립도서관에 보관된 옛날 신문에서 한국이 1948년 7월6일 홍콩과 치렀던 사상 첫 A매치의 득점자 이름을 찾아내는 성과를 거뒀다. 그동안 이 경기는 5-1로 이겼다는 기록만 남아 있을 뿐 누가 골을 넣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번 조사에서 2005년 작고한 고(故) 정남식씨가 4골을, 대표팀 감독을 지냈던 고(故) 정국진씨가 1골을 넣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아쉽게도 득점 시간이 남아 있지 않아 누가 한국 축구 첫 A매치 첫 골의 주인공인지는 알 수 없었다. 둘 중 1명이 한국의 역사적인 첫 골을 터뜨렸다는 사실은 확인한 셈. 협회는 “각국 협회에 협조 공문을 보냈지만 응답이 없어 직접 찾아 나서게 됐다. 동남아를 먼저 조사한 뒤 내년에는 중동에서 치러졌던 경기 자료를 찾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연합뉴스
  • 이중섭·박수근 작품 2800점 ‘짝퉁’ 결론

    이중섭·박수근 화백 미공개 작품 2800여점의 진위 판정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는 한국고서연구회 간부 김용수(69)씨가 소장한 이·박 화백의 작품 2827점(이중섭 1067점, 박수근 1760점)에 대해 지난 4월 감정단으로부터 ‘위작’이라는 판정을 받은 데 이어 최근 제3의 전문기관에 재검증을 맡겨둔 상태라고 3일 밝혔다. 검찰은 재검증에서도 ‘위작’ 판정이 내려지면 위작품 유통 경로 등을 쫓는 등 본격수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위작 논란은 2005년 3월 이 화백의 아들 이태성씨가 서울옥션에 이 화백의 작품이라며 8점을 경매에 내놓은 데 이어 김씨도 28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이를 모두 위작으로 판정한 데서 비롯됐다. 이에 대해 이씨는 협회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표본검사한 56점이 전부 위작이라는 판정을 받은 데 이어 지난 1월 명지대 최명윤 교수와 박 화백의 아들 박성남씨 등 10여명으로 구성된 감정단에게 전수감정을 맡겨,4월20일 역시 위작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감정단은 물감을 성분 분석한 결과 작가들 사후인 1960년대 말쯤 개발된 산화티타늄 계통의 ‘펄’ 물감 안료가 검출됐다는 점을 위작의 유력한 근거로 꼽았다. 또 담뱃갑 속지로 쓰이는 은지에 그림을 자주 그렸던 이 화백이 대부분 ‘럭키스트라이커’라는 담배의 은지를 사용한 반면 김씨 등이 소장한 작품은 다른 성분을 갖고 있는 점, 작품에 새겨진 서명을 초정밀 촬영한 결과 가짜 서명을 만든 흔적이 드러났다는 점 등을 들어 위작 판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같은 감정결과에 대해 김씨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감정협회에 관여하는 화랑들의 농간이다.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유화의 가치를 깎이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면서 “두 화백은 생활이 어려워 캠퍼스와 오일물감을 살 돈이 없었는데 화랑들이 보유한 작품이 대부분 유화여서 진위논란에 휩싸일까봐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고 반박했다. 홍성규 이경원기자 cool@seoul.co.kr
  • 아파트단지 들어선다

    난곡의 ‘마지막 무허가촌’이 아파트단지(조감도)로 바뀐다. 관악구는 신림7동 산94 일대의 신림 7-1 주거환경개선지구가 건축허가를 통과했다고 2일 밝혔다. 이달 아파트 착공에 들어가면 2009년 9월 완공된다. 난곡지역은 1960년대부터 형성된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 무허가촌.20년 전부터 불량주택 개선을 추진하다가 1999년 처음 주거환경개선지구로 지정됐다. 당초 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지정돼 4층 이하, 용적률 150% 이하의 건물만 지을 수 있었지만 지난 2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고 7층 높이에 용적률 200% 이하 규모로 주거시설을 지을 수 있다. 모두 3883㎡ 규모에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의 주상복합 건물 2개동이 들어선다. 근린생활시설과 아파트 38가구가 입주한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우리지역 명물] 도봉구 방학동 은행나무

    [우리지역 명물] 도봉구 방학동 은행나무

    도봉구 방학동 신동아 아파트단지 안에는 주민들이 영물로 떠받드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수령 869년으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시 보호수 1호다. 높이 25m, 둘레 10.7m의 거목이 아파트 단지 안에 우뚝 서 가지와 잎을 부채꼴로 펼치고 있다.100m쯤 북서쪽에는 묻힌 지 494년이 지난 비운의 왕 연산군 묘가 있다. 근처에 파평 윤씨 일가가 600여년 전부터 먹었다는 ‘원당샘’이 있다. 가뭄에 마르지 않고 겨울에도 얼지 않아 은행나무의 수맥을 이룬다. 은행나무는 가지가 아래로 처지는 1.2m 길이의 하지(下枝)를 지녀 예부터 나무에 빌면 아들을 낳게 해주는 신령수로 통한다. 나라에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가지에 불이 붙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직전에도 갑자기 불이 났다고 한다.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해가 바뀌면 나무에 제사를 지내오다 1960년대 정부 방침 때문에 제사를 그만 두었다가 10여년 전부터 다시 정월대보름이면 경로잔치를 겸한 축원 행사를 연다. 그러나 영험한 나무에 시련이 닥쳤다.1990년대 주변에 아파트 대단지와 빌라촌이 들어서면서 생육에 지장을 받았다. 처진 나뭇가지에 지지대를 세우고 병충해 부위를 도려내는 수술을 4차례나 받았다. 도봉구는 주민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나뭇가지를 가로막던 빌라 2동(12가구)을 매입하고 철거를 마쳤다. 이어 은행나무 주변에 정자마당을 꾸미고 연산군 묘를 포함한 일대를 근린공원으로 꾸밀 계획이다. 하지만 서울시의 예산지원이 관건이다. 도봉구 관계자는 “주민들은 은행나무 공원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데, 구청만의 힘으론 버거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피해 90%까지 보상”

    “농민들이 정부의 무상지원제도에 익숙해 있다 보니 가입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풍수해보험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소방방재청 이희춘(51) 재해보험팀장은 “현재로선 한계가 많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1960년대부터 자연 재해가 발생하면 생계구호 차원에서 정부에서 지원을 해 왔는데, 오랜 세월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 있다 보니 보험 가입을 꺼린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이 팀장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재해보상제도를 보험제도로 바꾸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당분간 보험과 무상지원제도를 병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실제로 보험에 가입해서 혜택을 보는 사례가 많다.”면서 “이러한 사실들이 알려지면 자연스럽게 보험가입자가 늘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다. 이 팀장은 또 정부의 지원금이 계속 줄고 있기 때문에 점차 보험제도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3년 동안 사유재산 피해지원을 위해 연간 3172억원을 사용했는데, 재정손실을 줄이기 위해 제도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보험 가입을 쉽게 하고, 보상대상도 넓히는 등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팀장은 또 피해지원제도로 보상을 받으면 주택과 비닐하우스, 축사 등은 30∼35%밖에 보상을 받지 못하지만 보험이 적용되면 피해액의 90%까지 보상받을 수 있다며 보험가입을 권했다. 특히 국가는 소규모 파손에 대해서는 보상을 해주지 않지만 보험은 이것 역시 보상해 주는 것도 장점이라고 강조했다.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식민지근대화론 지나치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 책세상)출간 후 기세를 올려온 ‘식민지근대화론’에 역사학자들이 반격하고 나섰다. 전면전이라기보다는 각개전투에 가깝다. 역사학계의 시각은 이미 ‘식민지수탈론-식민지근대화론’ ‘민족-반민족’의 대결 구도를 벗어나 다양한 입장들로 분화되고 있다. 반면 식민지근대화론에는 복잡다기한 역사적 해석을 지나치게 ‘민족주의 대 탈민족주의’의 대립으로 몰아간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민족주의 사학에 대한 식민지근대화론의 비판(이분법적 평가에 따른 사실 왜곡)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는 양상이다. 한국이 일제 식민지배 하에서 근대화됐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은 현재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의 ‘대 민족주의 사상투쟁’의 이론적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론을 정립한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뉴라이트재단 이사장)가 사상투쟁의 좌장이고,‘재인식’의 주요 필자인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낙성대연구소 소장)가 최전선에서 전투에 임하고 있다. 이 교수는 뉴라이트재단 기관지 ‘시대정신’ 올 여름호에서 식민지근대화론적 시각으로 소설가 조정래를 공격하는가 하면, 지난 5월엔 ‘재인식’의 해설판인 ‘대한민국 이야기’를 출간해 ‘식민지수탈론’을 거듭 비판했다.●허수열 “지속성장은 60년대 이후 현상” 식민지근대화론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다소 관망적 입장을 취하던 기존 역사학계가 최근 몇몇 학자들 중심으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논박의 일차 대상은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최대 이론적 무기인 ‘객관적 근거’다. 허수열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는 지난달 초 출간된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한울)에서 자신의 실증적 연구를 토대로 일제시대에 1인당 GDP가 성장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의 주장을 반박한다. 1인당 GDP의 지속적 성장은 1960년대 이후의 현상이란 것이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숙명여대 명예교수)도 최근 펴낸 ‘한국 근현대 역사학의 흐름(푸른역사)에서 “수치와 통계의 마력은 자기를 객관화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을 때 제국주의를 미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경고했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교수(한국사)는 ‘원형과 변용’(서울대출판부)에서 한국의 경제발전이 일제식민정책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식민지시대의 경험과 유산뿐 아니라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 ▲1950년대 동아시아 개발국가들의 경제개발 움직임 ▲미국의 원조정책 ▲한국인의 교육열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식민지근대화론이 배타적 민족주의에 의한 사실 왜곡을 경계하는 것 이상으로, 식민지근대화론 자체가 민족주의 역사학계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재단이란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승렬 연세대 교수(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는 13일 열린 ‘계간 역사비평 창간 2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민족주의 역사학도 하나로 범주화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데, 무조건 민족주의라고 폄훼하는 것은 자신의 이론을 세우기 위해 역사학계를 왜곡하는 것”이란 요지의 논문을 발표했다.●이만열 “능동적 발전의지만큼은 주목” 식민지근대화론이 일제 수탈 속에서도 한국인의 능동적 경제발전 의지에 주목한 것만큼은 긍정 평가하고 적극적으로 토론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만열 교수는 “식민지근대화론이 제기한 문제를 한국 역사학계가 진지하게 토론의 장으로 이끌어갈 때 한국 근현대사는 더욱 풍부한 결실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씨줄날줄] 메가박스/육철수 논설위원

    1960년대 시골에서 자란 세대는 가설극장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여름날, 트럭에 대형 스피커를 달고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동민 여러분….”이라는 가두 홍보방송을 시작하면 영화에 대한 기대감에 어린 마음은 설레었다. 당시만 해도 읍소재지에 극장이 하나 있을까 말까 하던 시절이었기에 가설극장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네 귀퉁이에 기다란 장대를 꽂고 광목 천막을 휙 둘러치면 훌륭한 극장이 완성됐다. 필름은 얼마나 돌렸는지 긁힌 자국투성이였고, 그 때문에 화면 속엔 늘 비가 내렸다. 상영중 필름이 끊어지기 일쑤였지만, 밤하늘 별빛 아래서 본 영화들은 지금도 희미한 잔영으로 다가온다. 모두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가설극장은 그렇게 가뭄의 단비처럼 시골 사람들에게 ‘문화’와 ‘예술’을 심어주곤 했다. 지금이야 어딜 가나 극장이 있고, 마음만 먹으면 영화를 볼 수 있어 가설극장은 이제 전설이 됐다. 그랬는데,10여년 전 국내에 처음 등장한 멀티플렉스(복합영화관)는 제법 근대식이던 극장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 옛날 가설극장을 떠올리면 말그대로 천지개벽이다. 여러 개의 상영관을 갖춘 극장의 주변에 쇼핑·레저·음식시설을 겸비했으니 여간 편리한 게 아니다.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영화 관객이 해마다 수백만명씩 폭증한 것은 실로 영화산업의 환골탈태라 일컬을 만하다. 2000년 5월, 서울 강남 코엑스에 문을 연 메가박스가 외국자본에 팔렸다는 소식이다. 멀티플렉스로 관객을 모으고, 한국 영화의 든든한 배급망 역할을 했던 점을 생각하면 무척 아쉽다. 메가박스의 모(母)회사인 ㈜미디어플렉스는 “소프트웨어(콘텐츠) 다양화를 위해 하드웨어(영화관)를 매각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영화산업과는 무관한 외국의 은행자본이 사들였다는 게 영 개운치 않다. 미디어플렉스가 당분간 위탁경영을 맡는다지만, 호주자본 뒤에 도사린 실체가 궁금하다. 그 배후가 할리우드 영화의 직배사라면, 스크린쿼터 축소와 대작 기근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영화엔 치명타다. 팔고 안 팔고는 회사측 마음이겠지만, 거대 자본에 우리 국민의 ‘문화’와 ‘예술’마저 휘둘릴까 걱정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중계석]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지역발전

    국토 균형발전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국가 정책의 화두다. 공공기관 이전을 통해 인구를 분산하고 지역간 고른 발전을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국토연구원이 18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주최한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지역발전에 관한 국제 세미나’에서 나온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 “정부자산 재배치 등 명확한 전략세워야”/닐 마셜 英 뉴캐슬대 교수 영국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주기적으로 공공부문 위치를 재검토해 왔다. 특히 영국은 1960년대의 ‘플레밍 정책’에 따라 런던의 높은 임대료 및 인건비 증가에 따른 비용 절감을 주된 목표로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 결과 40여년동안 6만 9000여개의 공직이 런던에서 다른 지역으로 분산됐다.1976년 18만 1000명이던 런던의 공직자 수가 2002년에는 8만 7000여명으로 줄었다. 이전 지역은 런던에서 160∼480㎞ 떨어진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위 공직자의 런던 집중이 계속되고 있었다. 런던 공직자의 18%, 이 가운데 고위 공직자가 67%를 차지했다. 스코틀랜드 및 웨일스 행정업무를 제외하면 이 수치는 74%로 높아진다. 이후 영국은 2004년 런던이 2만개가량의 공공부문 이전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미국의 9·11 테러 이후 수도가 아닌 곳에 정부 기능을 분산하거나 비상 사무실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반대도 만만찮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찬성하는 쪽은 수도의 경우 사무실 임대료나 임금이 비싸기 때문에 수도의 공공부문 이전으로 운용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정부 운영상 이익은 장기적 측면인 반면 이전에 따른 혼란과 재정 비용은 단기적이다. 반대쪽인 노동조합은 강제적인 직원 해고나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이전 프로그램을 거부한다. 영국의 사례에서처럼 공공부문 이전에 성공하려면 관련 단체가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실행해야 한다. 정부자산 및 공직자 재배치 등 전략과 목표도 분명해야 한다. ■ “연구·교육기능 재배치 新산업군 조성”/에다가와 마유미 日 국토교통성 정책조정관 일본 쓰쿠바(筑波) 과학도시는 도쿄에서 북동쪽으로 60㎞, 도쿄 신공항에서 40㎞ 떨어져 있다.1963년 9월 일본 내각의 과학도시 조성 결정으로 탄생했다. 도쿄에 집중된 인구 분산, 연구 및 교육기능 중심의 쾌적한 전원도시 개발이 목표였다. 정부는 80년까지 연구소 및 대학의 이전과 설립을 계획대로 추진·완료했다. 현재 쓰쿠바 과학도시는 20만명이 사는 일본 최대 연구개발 중심도시다.300여개의 공공 및 민간 연구소와 기업들이 입주했다. 연구원 수는 1만 9000여명이다. 이중 박사학위 소지자는 5000명에 이른다. 2001년 4월 정부는 국립연구소들을 독립행정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쓰쿠바의 국립연구소와 민간연구소의 슈퍼컴퓨터를 서로 연결, 민·관연구소간 협력과 교류의 폭을 넓혔다.2004년부터는 국립대학도 독립기관으로 바꿨다. 그 결과 연구비 및 인력관리에 대한 재량권이 확대됐다. 쓰쿠바 연구단지에서 성공한 벤처기업은 지금까지 140개에 이른다. 과학기술의 중심지에서 새로운 산업의 발상지로 거듭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에 힘입어 일본 전역에 신(新) 산업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있다. 쓰쿠바는 발전의 속도를 더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쓰쿠바와 도쿄의 아키하바라역을 잇는 쓰쿠바 익스프레스가 개통됐다. 쓰쿠바에서 도쿄까지 4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지난해 기준으로 하루평균 승객은 19만 5000명에 이른다. 통근자뿐만 아니라 연구개발자를 찾는 사람들이 이용한다. 쓰쿠바 건설은 도시개발공사가 맡았다.
  • [문화마당] 지위지향형 사회의 업보/허동현 경희대 교양학부장·사학

    가짜학위 파문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신정아 교수 사건을 보자니, 한국사회의 작동 역학을 꿰뚫어 본 라이샤워(E O Reischauer)의 혜안이 아직 빛을 발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쓴웃음이 절로 난다. 그는 전통시대에 일본은 신분 상승이 불가능한 사회구조 안에서 자기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목표지향형 사회’였기에 자력으로 근대를 이룰 수 있었지만, 과거제도가 상징하듯,‘지위지향형 사회’였던 한국은 그럴 수 없었다고 우리의 슬픈 역사를 꼬집는다. 수백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음식점이 즐비한 일본에서는 명문대를 나오고도 가업을 잇는 이들이 화젯거리도 되지 못한다. 하나 대를 잇는 맛집이 가물에 콩 나듯 드문 것이 우리의 현주소이니, 근대 이행기 한국과 일본의 패인과 승인을 두 나라 사회의 특수 속성에서 찾은 그의 탁견에 고개가 절로 끄떡여진다. 대학 입시철 전국의 사찰과 교회마다 자녀들의 대학 합격을 비는 모성 깃든 천배의 기원행렬과 수능기도가 이어지는 것을 보면 아직 한국은 지위지향형 사회가 분명하다. 대구 팔공산 갓바위 부처에 축원의 발길이 줄을 잇는 까닭이 부처님이 쓰고 있는 갓이 지위를 보장하는 징표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그럴싸하게 들리니 말이다. “한국의 여러 조직들은 조직 자체나 조직원들이 중심축을 향해 상승하는 흐름에 참여하려고 하는 아메바적 성격을 갖고 있다.…모든 가치는 중앙권력에 속했다. 권력기반도, 안정성도, 야심을 만족시킬 수 있는 대체 수단도 없이 권력을 향한 경쟁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났다. 이 사회는 높이 솟은 원추형 소용돌이라는 특유의 형태를 만들어냈다.”(‘소용돌이의 한국정치’) 오늘 우리의 사회상을 중앙권력을 향해 모든 성원이 휘몰아쳐 달려드는 ‘소용돌이 구조’로 꼬집은 헨더슨(G Henderson)의 지적은 더 아프다. 몇해 전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 분의 정년퇴임이 항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동료들이 국회의원으로, 장관으로, 총리로 중앙권력을 향한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 버려 광복 후 정년을 채운 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코미디언 이주일, 탤런트 최불암, 가수 최희준, 앵커 한선교, 벤처 기업인 이찬진.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국회의원이 답이다. 사실 우리 국회는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을 빨아들여 마셔버리는 소용돌이치는 중앙권력의 블랙홀이나 진배없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일본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주인공 쇼타의 꿈은 소박하다. 최고의 초밥 요리사가 되어 가업을 잇는 것이다. 일본의 교수사회도 중앙권력으로 진출하기를 꿈꾸지 않는다. 우리보다 앞서 1871년에 천민을 해방했다지만, 아직 일본 사회는 300만명을 헤아리는 차별받는 천민 집단이 실제로 존재한다. 여전히 일본은 신분제 사회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양반은 더 이상 귀족의 명칭이 아닌 제3인칭 대명사일 뿐이다. 시각을 달리하면 누구나 양반이 된 다원적 시민사회를 일구어 낸 우리 사회의 숨은 발전 동력은 지위를 향한 모든 이들의 경쟁일 수도 있다.1960년대 대학은 상아탑이 아니라 우골탑으로 불린 적이 있었다. 전통시대 지위 상승의 사닥다리였던 장원급제의 교지는 모두가 양반이 된 광복 이후 대학 졸업장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OECD 가입국 중 최고의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오늘 한국 사회에서 중앙권력으로의 진입을 위한 보증수표는 이제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졸업장뿐이다. 가짜학위 소동은 지위지향형 사회에서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소극(笑劇)이다. 조기유학이 줄을 잇고 영어능력이 취직의 절대 잣대가 된 오늘 우리 사회의 자화상은 여전히 슬프다. 어찌 보면 신정아 사태는 능력보다 학벌을 좇는 소용돌이에 쏠려 들어가는 우리 모두를 소스라쳐 일깨우는 정문일침일 수도 있지 않을까. 허동현 경희대 교양학부장·사학
  • [서울신문 창간103주년] 문화키워드

    [서울신문 창간103주년] 문화키워드

    ■ 신문 연재소설로 본 시대상 신문 연재소설에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심과 열망과 한숨이 배어 있다. 이것은 대중과 호흡을 함께해 나가는 신문이 그들의 이목을 끌고 그들을 지면에 이끌어 들이고자 만들어 내는 현상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문 연재소설을 써나가는 주체란 단순히 작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신문과 독자, 그리고 그들과 함께 당대를 만들어 나가는 사회 그 자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저 멀리 ‘대한매일신보’가 숨쉬던 구한말에서 애달픈 식민지 시대, 해방공간, 한국전쟁, 긴 독재체제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주 긴 목록의 신문 연재소설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한국인들이 무엇을 알고 싶어 했고 무엇에 아파했으며 무엇을 원했는지 보여준다. 신문 연재소설은 우리에게 당대의 문화적 코드가 무엇이었는지 알려준다. 신문 연재소설을 통해 당대의 문화키워드를 살펴본다. 구한말의 문화적 키워드는 단연 나라 지키기에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 애국계몽을 표방한 신문 ‘대한매일신보’에는 ‘소경과 안즘방이 문답’(1905.11.17∼12.3),‘거부오해’(1906.2.20∼3.7) 같은 작품들이 연재되었다. 이 과도기적 ‘소설’들에는 어떻게 기울어가는 나라를 개혁할 것인가, 외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복합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1910년대의 지식인들은 국권을 침탈당한 비극적 분위기 속에서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는 길을 여전히 유학과 교육과 계몽에서 찾았다. 문단으로 보면 이때는 이광수와 최남선의 시대였다. 이광수의 ‘무정’(‘매일신보’,1917.1.1∼6.14)은 경성학교 영어교사인 이형식과 기생 영채의 사랑의 엇갈림을 그리면서 그들,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을 새로운 학문을 위한 유학에서 찾았다. 여기서 이광수는 과학이라는 새로운 구호를 제창했다. 1920년대는 3·1운동의 좌절이 가져다 준 절망적 분위기 속에서 고독한 자아의 구원을 열망하는 흐름과 절망을 대신할 새로운 사회적 희망을 추구하는 흐름으로 나뉘었다. 어머니를 잃고 오빠와 함께 살아가는 혜숙의 가련한 운명을 그린 나도향의 ‘환희’(‘동아일보’,1922.11.21∼1923.3.21)는 전자의 흐름을,3·1운동의 좌절을 배경으로 순영과 봉구의 사랑과 죽음, 기약을 그린 이광수의 ‘재생’은 후자의 흐름을 대변한다. 1930년대는 어두운 현실에 대한 인식과 식민지 근대의 성숙 과정에서 배태된 대중문화, 그리고 여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때였다. 한 예로 염상섭의 ‘삼대’(‘조선일보’,1931.1.1∼9.17)는 타락한 윗세대와 사회주의 운동이 풍미한 복잡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삶의 균형을 고민하는 새로운 세대의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1940년 8월10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폐간되자 신문 연재소설의 현장은 다시 ‘매일신보’로 넘겨졌다. 이태준, 채만식, 박태원, 이효석 같은 대작가들은 가혹한 천황제 파시즘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체제의 강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고민과 문제의식을 그들의 소설들에 각인시켰다. 예를 들어 이효석의 ‘창공’(‘매일신보’,1940.1.25∼7.28)은 천일마라는 주인공이 만주 하얼빈에서 만난 러시아 여성 나아자와 결혼하여 함께 조선의 문화를 공유해 나가는 이야기를 통해 천황제 파시즘의 대동아주의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냈다.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발발에 이르기까지 잠시 침체한 양상을 보였던 신문 연재소설이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된 것은 1950년대였다. 대중의 폭발적인 반향을 얻으면서 논쟁에까지 휩쓸려 이른바 낙양의 지가를 올린 정비석의 ‘자유부인’(‘서울신문’,1954.1.1∼8.9)은 대학의 국문학 교수 장태연과 그 부인 오선영의 뒤얽힌 생활상을 통해 당대의 문화 풍속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자 한국사회는 군사독재 체제, 산업화, 타락과 부패라는 복합적인 문제들에 봉착하게 된다. 손창섭의 장편소설들, 예컨대 ‘이성연구’(‘서울신문’,1965.12.1∼1966.12.30)나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동아일보’,1966.2.8∼10.31) 같은 작품들은 대도시화한 서울을 배경으로 간척사업, 공공사업 등과 같은 당대적 사건들을 다루면서 물신주의가 팽배한 1960년대 사회의 기묘한 위선, 타락, 무질서, 음모를 그려나갔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민중이 사회적 관심사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군사독재와 산업화 속에서 짓눌린 민중에 대한 관심은 수많은 문제작들을 낳았던바 신문 연재소설에서 이것은 대하소설이라는 문제적인 양식과 접맥된다.‘서울신문’에 1979년 6월부터 1983년 2월까지 약 4년에 가깝게 연재된 김주영의 ‘객주’는 보부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조선 후기 역사적 상황과 생생한 민중생활 양상을 풍부하게 재현한 문제작이다.‘한국일보’에 1974년부터 1984년까지 10년씩이나 연재된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도 단 몇 줄의 역사기록밖에 없는 인물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민중의 애환과 바람을 그린 작품이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이어지는 역사적 격변의 시대에 신문 연재소설의 주된 테마를 이룬 것은 한국현대사에 대한 관심이었다.1983년부터 잡지에 연재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태백산맥’에 이어 1998년부터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조정래의 대하소설 ‘한강’은 파란으로 점철된 한국현대사에 연속성을 부여하려 한 작가적 신념의 소산이다. 여러 곳에 나뉘어 연재되면서 1994년에 완간된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할 거작이다. 2000년대에는 민주주의가 사회적 원리로 정착해 나가는 대신에 자본주의의 물질적 독점력이 새로운 문제로 부각된다. 고도로 국가화·독점화한 자본주의가 과거의 정치적 독재를 대신하여 새로운 권력적 힘을 발휘하는 시대가 바로 2000년대다. 경제적 갈등, 반목과 생존 경쟁, 물신주의가 이처럼 일상을 확고히 지배한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여기에 민주주의가 낳은 정신적 타락 및 비속화·비소화한 시민들의 삶은 새롭고 숭고한 정신적 가치를 찾아 헤맨다. ‘서울신문’에 2004년 1월5일부터 최근까지 장기간 연재됐던 최인호의 ‘유림’은 그러한 숭고에 대한 열망이 투영된 소설이라고 하겠다.‘상도’에서 ‘유림’에 이르는 최인호의 집필과정은 시대의 추이를 예민하게 감지할 줄 아는 능력의 존재를 시사한다. 이렇듯 신문 연재소설은 한국사회 및 대중의 관심사와 그 문화적 추이를 깊이 있게 받아들이고 촉진한 시대의 바로미터와 같은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방민호(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 서울신문 연재소설 소개 ▶ 소경과 안즘방이 문답 1905년 11월17일부터 12월3일까지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된 개화기 신소설로 신문에 실린 최초의 소설 형태의 글이다. 개화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진 복술가 소경과 망건장수 앉은뱅이의 대화가 전개되는 문답체로 자주적 국권 의식을 강조하는 작품이다. ▶ 무정 1917년 1월부터 6월까지 이광수가 매일신보에 연재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이다. 한국 현대 문학의 출발점이 된 작품으로 근대문명에 대한 동경과 신교육 사상, 자유연애 찬양, 남녀 평등 사상 등을 주제로 내세우면서 대중계몽 역할을 꾀해 독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근현대문학 사상 가장 많이 읽혀지고 연구되어온 이광수의 대표작이다. ▶ 자유부인 1954년 1월부터 8월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된 작품으로 한국 신문 연재 소설 사상 최고의 화제를 낳았다. 성윤리에 대한 논란을 비롯, 갖가지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정비석의 화제작. 대학교수 부인 오선영의 ‘일탈’를 통해 6·25전쟁 직후 만연한 퇴폐적인 사회 풍조와 전쟁 미망인들의 취업상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 객주 1979년 6월6일부터 1983년 2월29일까지 서울신문에 1465회 연재돼 역사소설의 새 지평을 연 작가 김주영의 역작.3부작으로 구성됐으며 조선 후기 보부상과 노비, 관료, 농민들의 갈등과 유착을 다루며 당시 사회의 변동상을 그려냈다.19세기 말의 풍속을 구체적으로 재현했으며 평민층의 입말을 잘 살려내 사실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 유림 1977년 서울신문에 소설 ‘파란 꽃’을 첫 연재한 최인호가 2004년 1월5일부터 2006년 12월30일까지 연재한 장편소설. 유교가 흘러온 2500년의 역사를 조망한 작품으로 왕도국가를 세우려다 실패한 조광조와 이상국가를 꿈꿨던 공자, 성리학을 발전시킨 퇴계 이황 등 유학자들의 삶을 엮었다.‘유림’은 유교와 유학자들을 소설로 형상화해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프론티어 5인이 말하는 미래 문화키워드 서울신문은 창간 103주년을 맞아 문화계 인사들로부터 미래 사회의 문화를 이끌 화두가 무엇인지 들어봤다. 문학·영화·방송·음악·미술 방면의 전문가 5명은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면서도 명징한 키워드로 향후 문화에 대한 전망을 제시했다. ‘예술가 사회’‘글로벌’‘탈경계’‘다양화’‘탈장르’ 등으로 요약되는 이 문화 핵심어들은 저마다 고유한 속성을 지니면서도 의미있는 공통분모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진지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 “장르파괴 가속화” 최완규 ‘주몽’ 드라마 작가 “앞으로는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드라마 연출자가 영화 감독을 맡거나 영화제작사가 드라마를 제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이렇다할 성공 사례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제작인력의 양분화가 점차 미미해지고 두 장르간 벽을 허무는 사례들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국민 드라마 ‘주몽’의 최완규(43) 작가는 미래 방송계의 키워드를 이처럼 ‘탈경계’란 말로 압축해 표현했다.‘종합병원’‘허준’‘올인’ 등 사극과 현대물을 오가며 인상깊은 작품들을 남겨온 그는 현재 그 자신도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 미드(미국 드라마) 열풍이 불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국 사람들도 새삼스럽게 미드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할리우드의 우수한 영화 제작인력과 기획력이 드라마로 대거 투입된 결과로 볼 수 있어요. 우리도 이같은 탈경계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드라마 제작환경은 아직까지 그리 여의치 않다. 최 작가는 “현재 방송사·외주제작사들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십중팔구는 제작비를 맞추지 못해 적자를 떠안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드라마는 한류 열풍을 등에 업고 규모를 급속도로 키워 왔지만, 그 수혜가 몇몇 연기자와 작가들에게 집중되는 등 문제점도 함께 키워 왔다.”고 덧붙였다. 최 작가는 “‘CSI’나 ‘프리즌 브레이크’는 작가 한명의 머리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작품”이라며 “무엇보다 사전제작을 염두에 둔 시리즈물이 일반화돼야 하며, 밀도 높은 작품을 위한 집단창작시스템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권고도 잊지 않았다. 시청률이나 해외 마케팅에 신경쓰기 앞서 ‘질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시청자들이 먼저 알아 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프로·아마 벽 무너져” 김영하 소설가 “미래는 모두가 예술가가 되는 세상입니다.‘예술가 사회’라 하면 어떨까요?” 소설가 김영하(39)는 20세기 후반, 자본가가 된 우리 모두는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예술가가 될 거라 장담했다. “요즘 삼청동에 가보면 사진기자들이 쓸 만한 장비를 들고 수백명이 순례를 하고 있어요. 모든 예술의 진입장벽이 낮아진 거죠.” 그는 프로가 좋은 작품을 만들고 아마추어가 ‘후진’ 작품을 만들 것이라는 경계는 무너질 것으로 내다봤다.“문학이야말로 아마추어가 하는 겁니다. 뭐든 쓸 수 있죠. 랭보와 카뮈도 아마추어였어요. 문학사는 아마추어가 쓴 엄청난 작품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하는 ‘개인’도 미래의 문화 키워드로 꼽았다. 사람들간에 공통적인 경험이 줄어들고 다른 처지에서 세상과 직면하기 때문이다. 그는 1950년대,60년대 문학과 같은 트렌드는 사라지고 작가 개인의 문체 특성이 한층 심화될 것으로 전망한다.“문학도 이제 개인의 내면과 경험을 제출하는 방식입니다. 김영하 다르고, 박민규 다르죠. 공통분모를 찾는 건 부질없는 노력입니다. 서구 비평가들이 하듯 한 작가에 천착하게 되고 작가는 우주의 별처럼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장편소설 대망론을 믿으면서도 최근 출판사와 일부 언론에서 일고 있는 ‘장사 논리’는 경계했다.“문학을 해외시장에 수출하기 위해, 일본 문학에 대응하기 위해 장편소설을 내라는 건 박정희 시대의 논리죠. 요즘 일부 언론에서 만든 문학상이나 출판사들은 새로운 네이밍을 통해 작가들에게 대중소설이라는 수요를 창출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건 독자들이 원하는 거죠. 잘 된 장편은 독자를 일주일간 기쁘게 해줍니다.” 김영하는 ‘예술가 사회’에선 모두가 행복해질 거라고 내다봤다.“미래에 나쁜 일만 생길 거라 보는 문화적 비관주의는 언제나 실패해왔습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영어제작으로 월드마켓 공략” 이승재 LJ필름 대표 “향후 한국영화 산업을 지배할 키워드는 ‘글로벌’이다.” 이승재(43) LJ필름 대표는 “지난 15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온 한국영화 산업은 현재 한계점에 다다랐다.”면서 “이제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인력, 유통 등 성장을 담보하는 제반 여건이 다 갖춰진 한국영화 내수시장은 더이상 ‘파이’를 늘릴 수 없는 상태라는 것. 그는 비용 대비 수익률이 마이너스 30∼40%에 달하는 현 시점에서 대안은 해외시장 개척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영화를 잘 만들어 수출하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우리의 문화를 영어로 제작해 알리는 방식이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이나 아프리카 영화인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제작해 알렸듯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는 ‘괴물’을 예로 들면서 아무리 훌륭한 콘텐츠라도 자국 언어로 제작되면 ‘월드 마켓’에서 뛰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전망을 대변하듯 올들어 충무로에서는 해외 합작이 심심찮게 추진되고 있다. 나우필름이 미국 영화사 VOX3과 손잡고 만든 첫번째 합작영화 ‘두번째 사랑’이 얼마 전 한국 관객과 만났고, LJ필름 또한 ‘프린세스 줄리아’를 한·미합작으로 제작한다. 영화는 조선의 마지막 황태손이었던 이구와 그의 미국인 부인 줄리아 멀록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와호장룡’ 등을 제작한 미국 유니버셜 포커스와 손잡은 이 영화는 현재 시나리오 마무리 단계에 있다. 이 대표는 “미국에서 2억달러를 벌어들인 그리스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처럼 한국적인 소재이면서도 다같이 공감할 수 있는 ‘크로스컬처 아이템’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대가보다 다수 결집 창작 증가” 김현철 작곡가 겸 가수 가수 김현철(39)은 미래 대중음악의 키워드로 ‘다양화’를 제시했다. 그것은 또한 21세기와 이전의 대중음악을 구분짓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2000년 가까이 전해져 내려온 음악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쯤 전입니다. 대중에게 대량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음반이란 형태의 ‘디바이스(도구)’가 등장한 덕분이죠. 현재도 CD를 거쳐 MP3 등으로 더욱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고요. 이런 다양한 형태의 도구들이 급격한 음악시장의 변화를 가져왔고,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튈지는 아무도 쉽게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21세기 대중음악의 트렌드는 소수의 대가가 아니라 다양한 뮤지션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특징. 방송과 몇몇 가요제가 가수 등용문의 전부였던 예전과 달리 UCC 등을 통해 누구라도 쉽게 가수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대중이 음악을 접하는 도구 또한 공중파 방송 일변도에서 모바일, 케이블 음악방송, 인터넷 음악전문 사이트 등으로 다양하게 재편되고 있다. “음악을 전달하고 수용하는 도구의 확대는 음악가들에게 더욱 다양한 음악을 생산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장르의 융합단계는 이미 넘어섰습니다. 이제 모바일에 적합한 음원은 물론, 데커레이션 음악(장난감에 사용되는 음악)까지도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다양성이 양질의 음악 생산까지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공연문화가 활성화되면서 ‘공연 브랜드’가 많이 등장하게 될 겁니다. 또한 음악가와 다양한 ‘디바이스’를 연결해주는 기획·프로모션 부문에 현재보다 한층 진보된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하게 될 겁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표현도구 다양화” 정연두 최연소 ‘올해의 작가’ “한국 현대미술의 미래는 밝고 발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동안 작품의 질에 비해 저평가돼 왔죠.” 회화, 조각 등으로 경계를 나누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한 현대미술.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독특한 접근방식을 보여주는 작가 정연두(38) 역시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들다.‘탈장르’로 규정되는 현대미술의 흐름을 그는 멀티 플레이어적인 작업으로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95년부터 매년 뽑는 ‘올해의 작가’에 30대로는 처음 선정된 정연두는 현대미술의 변화와 흐름을 잘 보여주고 대처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무형에 의해 지배되는 유형’처럼 현대 미술에서 장르의 경계를 만드는 것 자체가 우습다.”며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확실한 세계가 있다면 어떤 표현매체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 역시 대학에서는 조소를 전공했지만 요즘 주로 사용하는 표현방식은 사진과 비디오다. 정연두는 앞으로 그처럼 작품활동만 하는 한국의 전업작가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전업작가 한 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한 작가를 공부하고, 응원하는 팬이자 컬렉터가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금은 대한민국 인구의 겨우 1%가 컬렉터지만, 그 수가 늘어나면 전업작가 시스템도 더욱 탄탄해질 것으로 보인다. 작가들은 일회성이 아닌 꾸준한 작업태도를 견지할 수 있고, 컬렉터층도 극소수의 부유층이 아닌 개미군단으로 넓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103주년] 한강 뱃길 100리

    [서울신문 창간103주년] 한강 뱃길 100리

    “1분 후 갑문이 열리면 경인운하에서 한강에 들어섭니다. 유속이 달라 배가 잠시 출렁일 수 있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해외 동포인 서한강씨는 배를 타고 서울로 가자는 아홉살 아들 녀석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하며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카페리에 몸을 실었다. 경인운하를 따라 40여분이 지나자 넓은 한강 하구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이 2022년 7월16일이니 이민생활 15년 만에 다시 보는 서울이다. 경인운하 개통 후 열린 인천공항과 서울간 뱃길은 모두 1시간 10분가량 걸린다.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도심으로 들어오는 것보다 시간은 조금 더 걸리지만 볼거리가 많아 여행객에겐 인기다. 익숙하다고 생각한 한강의 모습이 생경하다. 강 주변은 거대한 녹색 띠를 두른 듯하다.15년 전 8m에 달하던 회색 시멘트 경사면이 사라지고 수초와 야생화가 자리를 잡고 있다. 덕분에 갑판 위까지 풀내음이 전해온다. ●3000t급 유람선 타고 서울 나들이 ‘부∼앙’. 경적과 함께 상하이에서 중국 관광객을 태우고 들어오는 3000t급 유람선이 모습을 보인다. 총 길이만 110m, 한번에 900명까지 탈 수 있는 이 배는 평균 수심 4m인 한강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배다. 한강에서 이렇게 큰 배를 보리라곤 기대하지 못했다. 승객은 금요일 밤 상하이를 출발해 서울에서 관광과 쇼핑을 즐긴 뒤 월요일 새벽에 돌아가는 젊은 중국인 ‘밤 도깨비’ 여행객들이 대부분이다. 서씨가 한국을 떠나기 전인 2006년 한 해 89만 7000명선에 머물던 중국 관광객 수는 15년 만에 무려 200만명까지 늘어났단다. 한강르네상스가 관광 기적을 일궈낸 것이란 평이다. 김포공항 인근인 서울 강서구 마곡지역을 지나니 안내방송이 나왔다. ●‘동양의 베네치아´ 마곡워터프런트 “오른쪽이 ‘동양의 베네치아’ 마곡 워터 프런트입니다. 고급 카페들과 연구시설, 다양한 주거단지가 있는 곳이죠. 한강엔 마리나(요트 계류장)가 3곳이 있는데 이곳이 4만㎡로 가장 큽니다.” 안내방송을 듣기라도 한 듯 70m 너비의 인공 물길 사이로 개인 요트들이 미끄러지듯 빠져나온다. 안내요원은 한강을 출발해 서해로 세일링과 바다낚시를 즐기러 나가는 배라고 설명했다. 유유히 바다로 향하는 요트의 행렬이 미국 보스턴의 찰스강을 보는 듯하다. 여의도 주변에 이르자 닻으로 물 위에 고정시킨 인공 섬들이 눈에 들어왔다. 물위를 걷듯 수면 위에 자리잡은 인공섬으로 들어가면 수상 정원이 펼쳐지는데 야외 조각작품과 놀이터, 수상카페 등이 있다. 이상하게도 새로 지어진 한강 주변 아파트들은 강을 향해 사선 모양으로 듬성듬성 자리를 잡았다. 전체적인 조망권을 고려하고 바람길도 열어주도록 주변 건축 허가가 강화됐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한강변 풍경에 감탄하는 사이 어느덧 배는 한강의 중심인 여의도 방향으로 향했다. 여의도와 노들섬, 용산으로 이어지는 세 지역은 한눈에 보기에도 한강을 대표하는 중심부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문화와 예술, 엔터테인먼트, 교통, 금융, 국제업무 지역으로 자리잡은 세 지역만으로도 어지간한 도심 구성이 가능할 정도다. 여의도 공원과 용산 선착장 그리고 노들섬 사이엔 전에 보지 못한 가느다란 다리가 생겼다. 모노레일이다. ●한강변 접근 쉽게 강북로 지하로 강변북로를 달리던 차량들이 갑자기 사라졌다가는 한참 뒤 나타난다. 시민들이 한강변을 오가기 쉽도록 강변북로를 지하화 한 것이다. 이런 작업은 올림픽대로에서도 진행됐다. 바로 여의도 선착장에 내렸다.‘SEOUL INTERNATIONAL PORT’(서울국제항)란 낮선 간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서울이 항구도시로 변했단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여의도에서 인터넷으로 예약해 둔 뮤지컬 티켓을 받기 위해 모노레일을 타고 노들섬으로 들어갔다. 노들섬 오페라하우스에선 12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유작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Ⅱ’의 공연이 한창이다. 영국 웨스트엔드와 동시공연 중인 이 작품은 뮤지컬의 거장이 노들섬 오페라 하우스 건립을 기념해 브로드웨이 대신 한국공연을 택한 작품이다. 극장 앞에는 표를 구하려는 외국인이 줄을 서 있다. 용산에 새로 생긴 120층짜리 호텔에 짐을 풀었다. 석양이 드리워지는 한강의 야경은 ‘낮’보다 아름답다. 첫날부터 서울에 취한 듯하다. 떠날 발걸음이 더 무거워질 것만 같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8대 워터프런트타운 개발 서울시가 이달 초 발표한 ‘한강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은 지금까지 단순히 보는데 그쳤던 한강을 즐기는 한강, 함께하는 한강으로 되돌리기 위한 중장기 계획이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한강 주변 8대 거점을 워터 프런트 타운(Waterfront town·수변도시)으로 개발하겠다는 것과 한강을 통한 주 운하를 열겠다는 것이다. ●용산 등 8곳 수변도시로 변신 마곡·상암·당인리·여의도·용산·흑석·행당·잠실 지구 등 한강변 8곳을 수변도시로 개발한다. 이 가운데 336만㎡ 규모의 마곡지구에는 한강물을 끌어들여 수로를 조성하고 수변에 컨벤션센터, 상업·문화·주거·연구시설 등 다양한 복합 시설물이 들어선다.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는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면서 강변북로를 지하화해 그 위로 공원과 보행 통로를 낸다. 한강물을 끌어들여 배가 지날 수 있는 뱃길을 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잠실은 서울의료원 이전과 잠실운동장 리노베이션, 강변북로 지하화를 통해 수변도시로 탈바꿈한다. 특히 코엑스∼서울의료원∼종합운동장∼한강을 잇는 보행 네트워크가 갖춰진다. 한국토지개발공사가 도시개발사업을 진행하는 7만 2000㎡ 규모의 행당지구는 한강 본류와 지천을 잇는 광역적 수상이용 기지로 육성한다. 흑석지구는 뉴타운과 연계해 수변문화공간을 조성한다. 이전 예정인 흑석 빗물펌프장 상부에 공원을 조성하고, 수상지원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다. 인근의 흑석뉴타운도 확대하기로 했다. 지금부터 60여년 전까지만 해도 한강에는 배가 다녔다. 하지만 1943년 청평댐 건설로 상류 뱃길이 끊어졌고, 하류는 한국전쟁이 끝나던 1953년부터 군사적인 이유 등으로 중단됐다. 이런 뱃길이 다시 이어져 국내 각 항구는 물론 중국으로도 이어진다. 이를 위해 용산과 여의도에 한강∼황해 뱃길을 여는 국제광역터미널을 건설한다. 또 잠실과 김포 신곡 수중보에 갑문을 설치하고, 정부가 추진 중인 경인운하와 연계하는 방안도 강구 중이다. ●한강 경관이 달라진다 건물이 제멋대로 들어선 한강변에 대한 종합적인 관리방안을 수립해 지어지는 건물은 수변공간과의 조화를 이루도록 할 계획이다. 콘크리트로 된 한강 호안을 단계적으로 자연형으로 바꾼다. 오세훈 시장 임기 내인 2010년까지 전체 62㎞ 가운데 18㎞를 마무리짓는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최종협 한강사업본부장 “자연성 회복 숨쉬는 한강으로” 서울시가 야심차게 내놓은 ‘한강 르네상스’의 기획과 구상, 현실화 과정에는 올 1월7일 출범한 한강사업본부의 역할이 컸다.6개월간 거대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해 온 최종협 한강사업본부장에게 한강르네상스에 대해 들어봤다. ▶한강 르네상스 사업에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자연성 회복이다. 시멘트 인공 호안을 중심으로 치수기능에 중점을 두었던 한강을 생태가 숨을 쉬는 곳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목표다.1986년 완성된 한강 계획이 치수에 치중했다면 이젠 한강을 자연 친화적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또 수중보에 갇혀 호수로 전락한 한강을 강으로 이용하자는 것이다. 경인운하 등의 개발과 맞물려 뱃길을 열면 서울이 항구도시로 변화할 수 있다. ▶개발이 안정세로 들어선 부동산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여의도, 용산, 난지, 뚝섬 등 한강르네상스 주요 중심지는 이미 여타의 요인에 의해 부동산 값이 움직인 곳들이다. 한강르네상스로 다시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고 본다. ▶충분한 준비 과정이 있었나. -그간 학계와 시정개발연구원에서 한강개발에 관한 연구들이 꾸준히 준비해 왔다. 수상교통부터 환경문제까지 심도깊은 논의를 진행했고 전문가부터 일반인까지 각계를 아우르는 자문위원회를 구성, 다각도의 자문도 받았다. 한강르네상스 안이 단기간에 나온 것은 결코 아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서울서 쾌속여객선 타고 中간다 서울과 중국을 잇는 ‘한강 뱃길 재개통’은 언제 실현될까. 연구는 한창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는 시정개발연구원의 연구 용역안이 나오는대로 건설교통부, 환경부, 국방부, 인천시, 경기도 등과 본격적으로 협의하기로 했다. 이는 반세기 동안 끊어진 한강의 운송 기능을 되살리려는 역사적인 작업이다. ●단둥 등 3개 항로 ‘구상´ 18일 서울시 한강사업기획단에 따르면 한강 뱃길은 임진강을 끼고 강화도 북쪽을 돌아 교동도를 거쳐 중국으로 향하는 항로와 신곡 수중보에서 굴포천을 지나는 이른바 ‘경인운하’를 거쳐 강화도 남쪽으로 황해에 진입하는 항로가 있다. 아울러 경인운하를 빠져 나와 막바로 남중국해 방향으로 가는 항로도 개발을 염두해 두고 있다. 우리나라 해역을 벗어난 항로는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중국 웨이하이(威海)부터 단둥(丹東), 칭다오(靑島), 상하이(上海)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길이 300∼500㎞ 구간이다. 서울시는 서울∼중국 항로를 운항할 배로 크기 3000t급 안팎의 여객수송선으로서 45노트(시속 81㎞) 이상의 속도를 기준으로 삼았다. 이 정도 속도이면 현재 인천에서 중국을 오가는 여객선의 두배 속력이다. 따라서 편도 4∼7시간이면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인천국제공항에서 산둥반도 최동쪽 항인 웨이하이까지 비행기로 45분쯤 걸린다. 항공료는 대체로 편도 15만원 안팎이다. 따라서 서울∼중국 여객수송선의 운임은 3만∼4만원에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터미널은 지난 3일의 서울시 발표대로 용산과 여의도를 우선 광역터미널로 정했다. ●준설·수중보 갑문 확장이 관건 시정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서울∼중국 뱃길을 잇는 공사 중 가장 큰 것은 한강 바닥 준설과 신곡 수중보의 갑문을 확장하는 공사다. 강 바닥에는 남북 분단 이후 배가 다니지 않고, 신곡 수중보의 갑문이 잠정 폐쇄된 뒤 모래가 많이 싸여 있다. 수로의 강폭은 현재 정도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큰 배가 다니려면 수심이 한강 본류(신곡∼잠실 수중보)는 4.0m 이상 필요하고 지류도 2.8∼3.0m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 신곡 수중보는 한강과 임진강 등의 수면 높이를 맞추는데 꼭 필요한 시설이다. 예를 들면 용산이나 여의도에서 배를 타고 황해로 나갈 때 신곡 수중보 앞에서 한강 하류의 낮은 높이를 상류의 높이와 맞춰야 한다. 빠른 시간 안에 물 높이를 맞추려면 수문의 용량이 지금보다 훨씬 커야 한다. 서울시는 준설과 수중보 개량에 약 500억∼7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한강의 동쪽에 있는 잠실 수중보의 확장은 우선 급하지 않다. 큰 배가 한강다리 밑을 통과하는데 반포대교 서쪽의 다리도 큰 걸림돌이 아니다. 동작대교, 한강대교 등은 현재 규모로도 배가 통과할 수 있다. 정부가 준설작업을 시작하면 서울시는 이에 맞춰 수중보 개량 작업을 하면 착공 4년안에 모든 공사를 끝낼 수 있다. 정부가 언제 준설을 결심하느냐에 재개통 시점이 달린 셈이다. ●서울·인천 등 이해관계 조율 중 한강 뱃길 재개 사업은 서울시와 인천시, 경기도, 정부도 원한다. 경인운하는 현 정부를 포함해 역대 많은 대통령들도 한번쯤 경제성을 검토했던 사업이다. 경인운하 사업이 마침 서울시의 한강르네상스 사업과 맞물려 있어 이해 관계를 조율하고 있는 중이다. 환경단체와 국방부 등의 반대를 설득하는 게 난제로 보인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한강 개발 난제 ‘한강변의 경관을 개선하고, 곳곳에 친환경 수변도시를 만든다. 서해 뱃길을 만들어 서울을 국제항구도시로 재탄생시킨다.’ 서울시의 ‘한강르네상스 마스터 플랜’의 큰 그림이다. 계획만 보면 더이상 좋을 수 없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문제점이 예상된다. 환경 파괴와 개발에 따른 침수 피해, 남북 관계, 사업 연속성 등이 바로 그것이다. 환경론자들은 뱃길을 내기 위해 바닥을 준설하면 하천의 생태가 파괴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중랑천과 탄천까지 준설하면 환경생태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환경연합 초록정책국 한숙영 간사는 “개발의 시각이 한강을 경제·사회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자원으로 보는 데에만 쏠려 있는 것이 문제”라면서 “특히 한강 하구는 멸종 위기종의 서식이 보고되는 등 우수한 생태계가 유지되는데 이곳을 준설하고, 선박을 운항하면 우리나라 환경생태가 손실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환경시장을 자임하는 오세훈 시장은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한강 활용을 극대화할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강조하지만 환경론자들은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80%가 넘는 콘크리트 호안(둑의 침식을 막는 시설물)을 단계적으로 걷어내고 수생식물과 자갈 등을 활용, 자연형 호안으로 바꾼다는 구상도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이도훈 경희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한강에 뱃길을 내려면 기술·경제·환경·안전상의 타당성을 먼저 따져봐야 한다.”고 전제한 뒤 “환경을 따진다면 자연형 호안이 바람직하지만 치수 안전성을 놓고 보면 콘트리트 호안이 더 우수하다.”고 말했다. 예산 확보와 사업 연속성도 약점이다.2010년까지 단기·소규모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은 6726억원에 이른다. 나머지는 서해 뱃길을 준설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임진강 하구 모래를 팔아 개발 비용으로 충당하거나 민간자본을 유치한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모든 사업이 맞물려 있어 하나라도 삐걱거리면 계획은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한강과 임진강 하루 접경지역을 열어 중국으로 통하는 뱃길을 내 서울을 항구도시로 만든다는 구상은 남북관계가 변수다. 중앙정부, 북한의 판단에 따라 사업이 좌우되는 점은 한강 뱃길 사업이 구상 단계에서 그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한강의 어제와 오늘 새우젓으로 유명했던 마포나루. 밤섬은 배 만드는 마을로 통했다. 광나루와 양화나루터에 펼쳐진 은빛 백사장과 뚝섬 버드나무 숲은 1945년 해방 전후로 보던 한강의 모습이었다. 한강 뱃길을 따라 곡물과 소금, 젓갈류, 뗄감 등을 실어나르던 황포돛단배도 흔했다. 한국전쟁 시절 한강은 피란민의 삶과 죽음을 가르기도 했다. 사람과 더불어 호흡하던 한강이었다. 그런 한강이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관상용’으로 전락했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뱃길은 1970년대 팔당댐 건설로 끊겼다. 밤섬 주민들은 쫓겨났다. 옛 나루터 자리에는 다리가 들어섰다. 1960년대 말 1차 한강개발은 한강과 시민 사이에 둑을 만들어 소통을 단절시켰다.1980년대 2차 한강개발은 회색 콘크리트로 한강을 도배질했다. 또 한강 수질을 개선하기 위한 환경 관련 규제들도 한강과 시민을 멀어지게 했다. 개발은 한강둔치 주변 곳곳에 ‘아파트 숲’을 세웠다. 또 강남쪽으로 올림픽도로를, 강북쪽으로는 강변북로를 새로 뚫었다.60년대 한강철교와 한강대교, 양화대교, 한남대교 등 4개에 불과했던 한강 다리는 1970년 마포대교를 시작으로 무려 10여개가 더 세워졌다. 그나마 잠실과 여의도 등 둔치 주변에 조성된 시민공원들이 소통의 숨통을 트이게 했다. 1990∼2000년대는 한강 난개발의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한강을 시민 곁으로 돌려놓는 작업이었다. 최근 서울시가 내놓은 ‘한강 르네상스’ 사업도 한강 복원을 위한 개발이 중심이다. 복원은 한강의 물류 기능 회복에 맞춰져 있다.‘한강의 물길’이 도심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과거 서울의 교통로로서 큰 역할을 맡았던 한강이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올까.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영혼의 땅’ 과테말라서 길을 찾다

    ‘영혼의 땅’ 과테말라서 길을 찾다

    한 시대를 풍미한 혁명가도 이토록 적요(寂寥)한 호수 앞에서 세상사 부질없다는 생각을 했음에 틀림없다. 혁명가의 가슴 속 끓고 있던 마그마는 8만 5000년 전 화산 붕괴로 생겨난 칼데라 호수가 펼쳐놓은 갖가지 파노라마에 얽혀들어 급격히 식어들었을 것이다.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1928∼67)가 혁명의 꿈을 접을까 생각했다는 그 호수,‘멋진 신세계’의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1894∼1963)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고 격찬한 아티틀란 호수를 다녀왔다. |글 사진 파나하첼(과테말라) 임병선특파원|과테말라시티에서 북동진, 이곳 아티틀란 호수의 관문 격인 파나하첼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굽이굽이 고갯길은 아찔하기까지 했고 뜬금없는 교통 정체로 멈춰서 있다보면 치킨버스(마을버스쯤 되는데 그야말로 ‘닭장차’)들의 매연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과테말라시티에서 150㎞ 떨어졌지만 왕복 4차로 확장이 한창이어서 3시간 넘게 걸렸다. ●모든 것이 아늑한 아티틀란 호수 그러나 긴 여정의 피로는 파나하첼 언덕에서 급한 내리막으로 조심조심 내려오면서 아찔한 황홀감으로 바뀌었다. 멀리 볼칸 톨리만과 볼칸 산페드로가 화산 활동으로 방금 뿜어져 나온 것 같은 구름떼들을 얹고 있었고 유려한 산자락을 따라 푸른빛의 호수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나중에 배를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돌 때 볼칸 톨리만 뒤에 숨어 있던 볼칸 아티틀란이 조용히 손을 흔들어댔다. 둘레만 150㎞에 이르는 호수 주위 산자락에 12개 인디오 마을이 듬성듬성 박혀 있다. 어느 곳이나 배를 대면 자그마한 마야족 어린이들과 그보다 크지 않은 키에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여인네들이 태피스트리(직물) 등을 잔뜩 둘러메고 다가온다. 이들의 해맑은 미소와 재잘거림에 시간을 맡겨본다. 어느 골목, 꾸리고 강한 내음이 풍겨오면 마리화나를 떠올려 봄직하다. 이곳은 1960년대 이후 전세계 히피족들이 값싼 위안을 얻기 위해 몰려든 도피처. 핍진한 세상 시름을 한 모금의 연기에 날려버리는 이들은 20달러에 담배 한 갑 정도의 마리화나를 얻는다. 그러고보니 파나하첼의 레스토랑들에 넋을 잃고 앉아 있던 초로의 히피들 얼굴이 떠오른다. 여기 구름은 하늘에 떠있는 게 아니라 해발 3000m대의 화산 자락에 둘러처져 있다. 구름이 가까운 곳, 어쩌면 마리화나족들의 위안과 혁명가의 투기(投棄) 모두 저 구름과 호수에서 연유하는지 모른다. ●식민과 참사의 고통 아로새기며 빛나는 안티과 과테말라 시티에서 동남쪽으로 달리면 금방이라도 용암과 마그마를 토해낼 것 같은 볼칸 데 아구아(물의 화산)의 위용과 마주친다. 그 아랫녘 조용히 깃든 안티구아는 스페인의 300년 식민통치 수도였던 곳.1776년 이 화산 폭발로 도시는 순식간에 잿더미에 묻혔다. 볼칸 드 아구아의 건너편을 오르면 십자가 언덕이 나온다. 격자 무늬로 들어선 새 시가지에서 뿜어나오는 파스텔톤 색조가 200년 전의 참사와 교차돼 더욱 빛난다. 사람의 문명은 끈질긴 것. 로마시대 포장도로처럼 돌을 깐 골목을 기웃거리면 여기저기 당시의 흔적들이 카메라를 유혹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도시는 갖가지 박물관, 카푸치나스 수도원, 라틴댄스 교습소, 아틀리에, 옥(玉)공장, 스페인풍 호텔, 화산 폭발때 무너진 라 메르세드 교회 등등으로 200년의 시공간이 뒤섞인다. 이밖에 일본 작가 이시다 유스케가 “가보기 전엔 죽지 마라.”고 다소 극단적으로 추천한 티칼의 마야유적을 보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후회될 것이다. bsnim@seoul.co.kr ●과테말라 Tips 관광 명소마다 값싸고 수준 높은 스페인 어학원들이 즐비하다. 하루 5시간씩 5일 수업에 7일간 재워주고 세끼 먹여주며 250달러(약 23만원) 정도 받는다. 아티틀란 호수나 안티과에 일주일씩 머무르며 스페인어를 익혀 남미 각국으로 흩어지는 배낭족들이 늘고 있다. 직항이 없어 대부분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미국 항공사를 이용, 과테말라시티로 들어간다. 도로도 좋지 않고 무장강도를 만날 수도 있어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패키지 상품을 권장한다. 과테말라시티 투어(3시간)에 22달러, 안티과 투어(4시간)에 30달러, 마야족 재래시장으로 유명한 치치카스테낭고와 아티틀란 호수를 돌아보는 투어(점심 제공,11시간)에 40달러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다. 치안이 안 좋은 것은 분명하지만 해가 진 뒤 거리에 나가지 않고 현금이 많은 비즈니스맨처럼 꾸미고 돌아다니지만 않으면 문제될 게 없다. ‘과테코리아(www.guatekorea.com)’에서 1986년부터 이민이 시작돼 벌써 1만명을 넘긴 교민, 유학생들로부터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 심보르스카 시선집 출간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시선집 ‘끝과 시작’(문학과지성사)과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의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만엔원년의 풋볼’(웅진지식하우스)이 나란히 나왔다. 심보르스카는 실존 철학과 접목한 시와 간결하고 적확한 표현으로 잘 알려진 폴란드의 대표시인. 이번 시선집은 1945년 초기작부터 2005년 최신작까지 170편의 시를 한데 묶은 것이다.오에 겐자부로의 1967년작인 ‘만엔원년의 풋볼’은 귀향한 형제가 떠올리는 1860년의 농민봉기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미·일안보조약 이후 1960년대의 상처와 치유를 그린 작품이다.
  • [닥터 ‘이지’의 발칙한 치아 얘기] 임플란트 바로 알기

    임플란트(Implant) 열풍이 거세다. 치아가 빠진 곳의 턱뼈에 티타늄으로 만든 인공 치근(치아 뿌리)을 심고, 그 위에 인공치아를 만들어 고정시키는 치료를 말한다. 이 임플란트가 실제 임상에서 사용된 것은 1960년대부터이다. 그때부터 40년 이상 사용되면서 효능과 안전성이 검증된 치아복원술이다. 그런 임플란트 시술 과정을 살펴보자. 우선, 전신의 건강 및 구강 상태를 검진한 자료를 근거로 치료계획을 세운다. 이어 티타늄으로 만들어 치아의 뿌리 역할을 할 나사 모양의 인공 치근을 잇몸뼈 안에 심는다. 이렇게 심어진 인공 치근이 주변의 뼈와 융합, 단단하게 고정되면 여기에 정교하게 만든 인공 치아를 꼽는다. 치료 기간이 길었던 종래의 임플란트와 달리 최근에는 치료 기간을 단축시킨 ‘즉시 임플란트’, 수술 당일 임플란트 보철까지 시술하는 ‘1-day 임플란트’가 각광을 받고 있다. 임플란트는 잇몸뼈에 심기 때문에 생체 친화성이 좋고 치조골과 잘 결합되는 티타늄, 지르코늄, 니오비움, 하늄 등을 이용하나 강도 및 치조골과의 결합 능력 등을 고려할 때 티타늄 임플란트가 가장 안정적이다. 이 티타늄 임플란트는 오랜 기간 실험을 거쳐 인체에 안전한 재료임이 밝혀져 정형외과나 신경외과 영역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금속재료이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임플란트의 표면을 특수처리, 뼈와의 결합력을 높이는 방법까지 개발되어 임플란트 성공률을 한층 높일 수 있게 되었다. 시술 비용도 상대적으로 비싸고, 치료 기간도 긴 임플란트가 훼손된 치아 복원술로 각광을 받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브리지나 틀니에 비해 임플란트가 갖는 이점이 그만큼 확실하기 때문이다. 먼저, 정상적인 자연치를 일부러 깎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 꼽힌다. 지금까지는 보통 1∼2개의 치아를 잃었을 경우 인접한 치아를 삭제하여 브리지라는 보철 치료를 했다.그러나 일단 치아를 삭제하면 2차적으로 오는 충치 때문에 5∼10년마다 기존 보철물을 뜯어내고 다시 제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신경치료도 받아야 했다. 이에 비해 임플란트는 한번 시술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틀니와 달리 자연 치아처럼 이물감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또 틀니는 음식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때가 많지만 임플란트는 음식 맛을 왜곡시키지도 않는다. 자연 치아와 다름없이 씹기가 가능하며, 틀니처럼 잇몸을 손상하지 않는다. 틀니와 달리 턱뼈의 골흡수를 막아 건강한 턱뼈를 유지해 주는 것도 매력적인 장점이다. 이런 점 때문에 임플란트를 선호하지만 임플란트보다 훨씬 좋은 치아는 역시 자연치아라는 점을 잊지 말자.이지영(치의학 박사·강남이지치과 원장·www.egy.co.kr)
  • 전통음식 글로벌 전략 “멋있게”

    “맛있는 전통음식에서 멋있는 전통음식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조리법을 표준화하여 산업화가 가능하도록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주최로 4일 서울 필동 한국의 집에서 열린 ‘한국음식 세계화를 위한 심포지엄’에서 내려진 결론이다. 미각과 시각을 동시에 자극해 외국인들에게 인기높은 비빔밥은 어떤 전통음식도 반드시 벤치마킹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됐다. 이날 심포지엄은 전통음식이 음식 자체의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식단과 음식량 등 서비스 문화가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전통음식은 재료나 요리방법에서 세계 어느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데도, 고객의 기호에 맞는 문화상품으로서 식단구성에 대한 고민은 소홀했다.”고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도 무조건 많은 음식을 내놓는 보릿고개 시절의 음식문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제발표에 나선 김수진 푸드앤컬처코리아 원장은 “음식의 완성도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가 100%라면 입으로 느끼는 비중은 30%에 불과하고 시각적 즐거움과 식당 분위기 등이 70%를 차지한다.”면서 맛이 아닌 눈으로 먹는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전통음식을 세계화하는 데는 국가대표 조리사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되, 보는 것만으로도 오감을 자극할 수 있도록 하는 푸드스타일링이 실과 바늘처럼 함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재춘 한국음식업중앙회 사무총장은 “일본이 1960년대부터 정부주도로 일본음식의 세계화를 추진했고, 태국도 총리 주도로 2001년부터 음식 세계화 프로젝트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우리는 국가 차원이 아니라 몇몇 부처가 산발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이 실정”이라고 실망감을 표시했다. 그는 민관 공동으로 ‘한식 세계화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하여 한식의 개념을 정립하고 집중 육성할 한식의 품목을 선정하여 체계적인 지원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홍렬 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은 “전통음식에 담긴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유지하면서 국·내외 다양한 입맛을 가진 사람들의 기호에 맞는 식단을 개발하기 위해 심포지엄을 마련했다.”면서 “전통음식을 현대적으로 개선하여 기내식 비빔밥처럼 단품식단으로 브랜드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성수동 공장지대 도심형 신도시로

    준공업지역으로 인쇄공장 등이 밀집해 있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일대가 도심형 신도시로 탈바꿈한다. 성동구는 4일 성수동을 2015년까지 유통물류 중심의 ‘직주(職住) 근접형’ 도심 신도시로 개발하기 위해 대한주택공사와 ‘드림시티 성동, 성수신도시’ 추진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성수동(4.36㎢) 준공업지역은 공장 재배치 등을 통해 첨단산업단지로 조성하고 한강변 주거지역은 한강르네상스와 연계해 명품 주거단지로 만들 계획이다. 2만 2800㎡ 규모의 삼표레미콘 부지에는 서울의 대표적 랜드마크 시설을 건립해 한강변의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뚝섬역세권 일대는 초고층 주거문화복합타운을 조성한다. 뚝섬 주변지역은 주상복합건물의 건립을 유도하고, 송정동 주거지역은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편 1960년대부터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성수동 준공업지역에는 지금도 2700여개의 공장이 남아 있다.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美 선생님은 3D 직종?

    미국에서 수십만명의 베이비붐 세대 여교사의 집단퇴직과 교사자격 기준 강화, 낮은 급여에 따라 ‘교사 부족 사태’가 전국적으로 심각한 지경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24일(현지시간) 30만명 가까운 초·중·고 교사인력이 부족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미국에서는 3백만명의 공립학교 교사 중 4분의3 이상이 여성이다. 그런데 고학력 여성들이 늘어나며 직업 선택의 폭이 넓어지자 여성들이 교사보다 대우가 더 좋은 직업들을 찾아 떠났다. 이에 따라 1960년대 이후 대학 졸업후 교사가 되려는 여성 비율은 현저하게 감소했다.2004년 메릴랜드 대학 연구에 따르면 1964년에서 2000년까지 여성 대학졸업자 수는 3배로 뛰었지만 교사가 된 졸업생 비율은 같은 기간 동안 50%에서 15%로 급감했다. 특히 성적이 상위권인 여성의 교직 진출이 줄어들었다. 또 교사 요건을 강화하는 정책 시행으로 재능있는 교사지원자들은 더더욱 부족한 실정이다.30여년 전만 해도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교사가 돼서 영어, 수학 등 여러 과목을 가르칠 수 있었지만 이제 그런 ‘두루뭉술한 교사’가 설 자리는 없어졌다. 반면 석사학위를 받은 33년차 교사의 연봉은 8만 5000달러(약 7900만원)에 불과해 상대적으로 ‘박봉’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전국수학교사협회는 28만여명의 교사 부족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오는 2015년까지 급여 수준을 경쟁력있게 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워싱턴포스트는 또 젊은 교사들의 높은 이직률도 우려했다.2006년 교육정책지역센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새로 부임하는 교사들의 약 3분의1이 3년 안에 교단을 떠났다.5년이 지나면 사직률은 50%에 이른다. 교육과 미국 미래에 관한 국가위원회는 새로운 교사 충원 및 훈련 비용에 1년에 약 70억달러가 소요된다고 밝혔다. 전미교사연맹의 레이첼 패터슨은 위기 타개를 위해서 “교육계는 신임 교사들을 지원하기 위한 혁신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토요영화]

    ●금발 소녀의 사랑(EBS 오후11시)밀로스 포먼 감독이 1965년 체코에서 제작한 코미디 영화 ‘금발 소녀의 사랑’은 1965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작품이다. ‘금발 소녀의 사랑’은 액자구조로 되어 있다. 주인공 안둘라(하나 브레초바)가 친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조다. 중소도시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는 금발머리 안둘라는 프라하에서 온 피아니스트 밀다(블라디미르 푸촐트)를 만난다. 하룻밤을 보내며 사랑을 느낀 안둘라는 밀다와 헤어진 후에도 그를 잊지 못한다.친구들이 사내들을 만나 어울릴 때도 끝내 함께하지 않을 만큼 개방적이지 못하지만, 밀다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직접 그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러나 그녀를 본 밀다는 당황하기만 하는데…. 용기를 내어 찾아간 그의 집에서 안둘라는 그저 이방인일 뿐이다. 영화의 전반부가 무도장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희극적으로 그려냈다면, 안둘라가 밀다를 찾아 프라하로 향하는 후반부는 무정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느껴진다. 이처럼 서로 다른 계급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모습은 1960년대 체코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던 ‘프라하의 봄’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우회적으로 담아낸 것이기도 하다. 또한 희극적 분위기 속에서도 비인간적 사회의 모습을 포착하는 것은 밀로스 포먼의 또다른 걸작 ‘소방수의 무도회’에 이어지는 것이다. 다른 체코 영화들처럼 ‘금발 소녀의 사랑’도 카메라 워크나 편집 스타일이 화려하지는 않다. 다만 인물들의 뒤를 쫓으며 내면을 담아낸 것은 프랑스 누벨바그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그리고 시네마 베리테의 여러 특징을 결합한 양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망명 감독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밀로스 포먼은 1960년대 체코 누벨바그를 이끌었던 천재 감독이었다. 유대계인 그는 8살 때 나치 수용소에서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서 자랐다. 그의 전 작품을 관통하는 세상과 체제에 대한 냉소주의는 이런 성장과정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1968년 소련의 침공 이후 ‘소방수의 무도회’가 체코에서 상영이 금지되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아마데우스(1984)’,‘래리 플린트(1996)’등 수작을 남겼다.75분.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봉천역 무허가촌 아파트로

    관악구 봉천역 주변에 빼곡하게 들어선 40년 된 무허가촌이 아파트 단지로 바뀐다. 관악구는 봉천8동 1522의1 불량주택 단지 5018㎡(1518평)를 주건환경개선지구로 지정, 올 하반기에 정비한다고 18일 밝혔다. 이 지역은 1999년에 주거환경개선지구로 지정된 데 이어 2002년 개선계획이 수립됐다. 지난달에는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서 건축 계획 심의를 통과했다. 사업 추진위원회는 이달 말에 건축허가를 신청, 하반기에 공사에 돌입할 계획이다. 낡은 주택을 철거하고 10층 아파트 6개동,107가구를 건설할 예정이다. 도시관리과 김병곤씨는 “1960년대 후반부터 이주 주민들이 봉천역 주변에 정착, 무허가 불량주택을 짓고 살았다.”면서 “20년 전부터 재건축을 바라는 주민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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