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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정순 별세, 50년간 배우로 활동..향년 89세 ‘대표작품은?’

    황정순 별세, 50년간 배우로 활동..향년 89세 ‘대표작품은?’

    ‘황정순 별세’ 한국 영화계의 ‘영원한 어머니’ 황정순 씨가 별세했다. 향년 89세. 황정순 씨는 최근 요양병원에 머물다 폐렴이 악화돼 서울성모병원으로 옮기고 나서 17일 오후 9시45분 입원 중이던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1940년대 초부터 1980년대 말까지 약 50년간 배우로 활동했다. 해방과 한국전쟁, 전후 산업화를 거쳐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대 속에서 인내와 자애를 바탕으로 포근한 어머니상을 연기했다. 1925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난 고인은 15세 때인 1940년 동양극장에서 연극을 하다가 1941년 허영 감독의 ‘그대와 나’에 출연하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해방 이후 장황연 감독의 ‘청춘행로’(1949)에서 며느리 역할로 주목을 받았고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어머니 역할로 눈도장을 찍었다. 김수용 감독의 ‘혈맥’(1963)에서는 억척스러우면서도 인간미가 넘치는 어머니의 모습을 연기했고 강대진 감독의 ‘마부’(1961)에서는 가족을 따뜻하게 보듬는 새엄마 연기로 주목받았다. 유현목 감독의 ‘장마’(1979)에서는 분단의 상처를 지닌 어머니로, 김수용 감독의 ‘굴비’(1963)에선 어렵게 키운 자식에게 홀대당하는 어머니로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1967년부터 김희갑과 호흡을 맞춘 ‘팔도강산’ 시리즈도 수작으로 손꼽힌다. 고인은 생전 연극 200여편, 영화 430여편에 출연했다. 대표작으로는 ‘김약국의 딸들’ ‘화산댁’ ‘내일의 팔도강산’ ‘육체의 고백’ 등이 있다. 역대 대종상영화제 여우조연상 최다 수상자이자 제1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고인은 영화계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7년 신상옥 감독과 유현목 감독에 이어 세 번째로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황정순 별세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황정순 별세..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황정순 별세..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 같다”, “황정순 별세..큰 별이 지다”, “황정순 별세..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황정순 별세..한국 영화계의 어머니”등 반응을 보였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15~16세인데 하루 15시간 중노동… 일제, 혹시 도망칠까 봐 외출도 제한”

    “15~16세인데 하루 15시간 중노동… 일제, 혹시 도망칠까 봐 외출도 제한”

    “아침 6시에 점호 끝나면 나가서 식사하고, 7시에 작업 들어가요. 일이 끝나면 매일 3시간씩 또 잔업을 해요. 그러니까 한 10시에 끝나죠. 나는 만으로 한 15살 되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기숙사 생활하는 여자고 남자고, 외출을 제한해요. 외출이 아니라 도망가거든…혹사시키니까.”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서울 영등포 방직공장 지대에서 일했던 노동자와 기술자들의 삶을 담은 책이 나왔다.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는 구술자료집 ‘영등포 공장지대의 25시’를 발간했다고 16일 밝혔다. 위원회는 2009년부터 서울 시민들의 다양한 서울 체험과 기억을 채록·정리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이 여섯 번째 자료집이다. ‘어느 식민지 소년의 대일본방적 취직 이야기’(김영환)가 눈길을 끈다. 당시 수많은 면방직업 노동자들은 15~16세 어린 나이에 미숙련공이나 임시공으로 하루 15시간 노동을 했다고 한다. 반강제적으로 동원된 이들은 감시탑과 철망이 있는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영등포 선반 기술자의 이직과 삶’(전을원), ‘경성공업학교 학생의 기억과 추억’(민석기)에서도 탈출했다가 영등포 역전에서 붙잡힌 이야기, 늘 배고팠던 식사 이야기, 일본 군대에 징집돼 자살특공대원이 된 이야기 등 격변기를 견뎌내야 했던 사연들이 절절하다. 이 밖에도 ‘16세 소년, 임시공으로 경방에 들어가다’(노진수), ‘태창방직 노조위원장의 이야기 보따리’(이종수), ‘공장의 일상과 방직 기술 이야기’(양낙섭) 등 모두 6명의 목소리가 실려 있다. 자료집은 서울도서관 2층 북카페와 정부간행물센터를 통해서 구입하거나 위원회 홈페이지(historylib.seoul.go.kr)에서 전자책으로도 열람할 수 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가리봉·마장동의 감춰진 삶의 이야기를 찾아서…

    가리봉·마장동의 감춰진 삶의 이야기를 찾아서…

    1970년 7월 초순의 어느 날 밤 서울 가리봉동의 한 작은 마을. 이곳에 몰아닥친 경찰 수십명은 토착 농민 60여명을 입건하고 몸을 피한 200여명에 대해선 수배령을 내렸다. 사건의 발단은 땅의 소유권을 놓고 국가와 농민 사이에 벌어진 소송이다. 일제가 병참기지를 만든다며 서울과 경기 안양 일대의 광대한 농지를 수용했으나 가리봉동과 이웃한 구로동 일대 땅은 소유만 일본 육군성으로 바뀌었을 뿐 경작이 그대로 허용됐다. 해방 이후 국방부가 땅을 물려받았으나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5·16군사정변 직후 상황이 급변했다. 서울시는 청계천변 무허가 주택을 철거하면서 철거민과 영세민 수천명을 트럭에 실어 구로동 일대에 풀어놨다. “정부에서 살라고 했다”며 농지를 점거한 철거민과 유서 깊은 농촌인 가리봉동 토착민 사이에 알력이 발생했고, 토착민들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1968년 대법원은 토착민들에게 땅의 소유권을 인정해 줬다. 그러나 국가는 토착민을 토지를 가로챈 사기범으로 몰아 땅을 빼앗기에 이른다. 이것이 2008년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밝힌 ‘구로 농지 사건’의 전말이다. 주민 박준용(76)씨는 “검사가 종이쪽을 내밀면서 ‘이게 석방증인데 (땅을) 포기하면 보내주고 안 하면 감옥에서 죽어 나간다’고 하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최근 펴낸 ‘2013년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가리봉동’에는 이같이 생생한 기록이 담겨 있다. 440쪽에 이르는 방대한 기록에는 구로공단으로 잘 알려진 가리봉동의 역사와 경관 기록, 실측 자료 등이 실렸다. 1960년대 이후 산업경제사, 도시사, 노동사뿐 아니라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산업구조의 재편과 외국인 노동자 유입 등의 변화도 아우른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곳 사람들의 삶이다. “구로공단에 돈 벌러 왔다”던 이효순(84)씨는 이른바 ‘공돌이, 공순이’의 쉼터였던 ‘벌집’으로 자식 교육을 시켰다. 양평에서 태어나 15세에 해방을 맞은 그는 남편의 사업 부도 뒤 생계를 꾸리기 위해 가리봉동에서 ‘벌집 장사’를 시작했다. “2000년대부터 조선족이 몰려오면서 벌집은 크기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죠. 조선족들은 부동산을 통해 방을 구하지 않는 대신 방세와 세금은 제 날짜에 꼬박꼬박 냅디다.” 박물관은 이 밖에 마장동, 남대문시장 등 다른 명소들의 이야기도 함께 펴냈다. 해방 이후 우시장이 형성되고 시립도축장이 들어섰던 마장동에선 1974년 경매제 도입으로 자연스레 우시장이 자취를 감췄다. 1998년에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이어 도축장, 경매장이 폐쇄됐으나 축산물 시장은 세계 어느 곳에도 유례가 없는 단일 품목 최대 상권으로 성장했다. 책에는 그곳의 역사, 유통 과정, 시장 구조 등이 빼곡히 담겼다. 예컨대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소고기와 돼지고기 중 어느 쪽이 더 많이 팔릴까’란 궁금증에는 마릿수로는 돼지고기, 무게로 치면 비슷하다는 답이 나와 있다. 이곳에서 4대가 뿌리를 내린 고 김한길씨 가족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3대인 김영진씨는 “할아버지가 처음 마장동에 이사 왔을 때는 단 세 집밖에 없었다”고 전했고, 2대인 김용득씨는 “전부 미나리꽝인 마장동에서 아버지가 찰흙을 퍼내 공사장에 팔아 큰돈을 벌었다”고 회고했다. 일가는 간송 전형필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기도 했다. 1950년 10월 당시 돈으로 1만 1100원을 간송에게 소작료로 지급한 영수증도 갖고 있다. ‘고양이 뿔 빼놓고 다 있다’는 남대문시장은 재래시장부터 백화적심 다층 건물까지 공간 구조의 특성이 그대로 기록됐다. 동일상사를 운영하던 깡패 엄복만이 명동파의 분파를 형성하고 1950년대 남대문 일대를 장악했다는 사실도 적시돼 있다. 강홍빈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전통이) 사라질 위험에 처한 서울의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사회·지리·인류·건축학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삶의 모습과 역사를 기록하는 사업은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한국은행과 함께하는 톡톡 경제 콘서트] 한국은행의 신용정책

    [한국은행과 함께하는 톡톡 경제 콘서트] 한국은행의 신용정책

    신용정책은 민간 부문의 자금 흐름이나 배분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으로 금리 결정 등의 통화정책과 함께 중앙은행이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행하는 정책이다. 중앙은행은 금융 부문의 시장 실패나 금융위기 시 시장기능 저하 등으로 자금 배분이 왜곡되는 경우 이를 고치기 위해 신용정책을 쓴다. 예를 들면 중소기업의 신용위험이 커져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경우 중앙은행은 금융기관의 중소기업 대출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저리로 유동성을 공급한다. 과거 신용정책은 경제 발전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특정 부문에 자금을 공급하는 데 주로 활용되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경제 회복을 뒷받침하고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보완하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활용되기 시작했다. 최근 영란은행의 은행대출자금 지원제도, 일본은행의 대출지원기금제도, 유럽중앙은행(ECB)의 중소기업 대출 지원을 위한 적격담보 범위 확대 등이 좋은 사례다. 한국은행의 신용정책은 1960년대 이후 고도성장 기간 동안 경제 발전을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된 부문에 자금을 지원하는 정책금융의 형태로 시행됐다. 즉, 은행이 전략산업 등에 자금을 지원하면 한국은행은 그중 일부를 시중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은행에 대출해줬다. 1990년대 들어서는 금리 자유화와 금융시장 개방이 빠르게 진전되면서 시장 기능에 의한 간접 조절 방식의 통화관리를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1994년 3월 기존 정책금융을 축소·정비하고 유동성 조절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출제도를 전면 개편해 총액한도대출제도를 도입하였다. 총액한도대출제도는 은행이 한국은행으로부터 빌릴 수 있는 총 한도를 미리 정해 둔다는 데 의의가 있다. 제도 도입 이후 한국은행은 금융·경제 상황에 맞춰 총액대출한도 및 대출금리, 지원 부문 등을 신축적으로 조절해 왔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2001년 미국 9·11테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대내외 경제 충격이 발생했을 때 신용경색을 완화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적극 활용한 바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은행은 금융중개기능이 떨어지고 경기 부진이 심화되자 통화정책기조를 완화하는 한편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신용정책을 적극 활용했다. 지난해 4월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중소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술형창업지원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대출금리를 인하하는 등 총액한도대출제도를 전면 개편하였다. 이어 지난해 12월 중앙은행의 신용정책 기능의 재정립, 총액한도대출제도의 성격 변화 등에 맞춰 총액한도대출제도의 이름을 금융중개지원대출로 바꿨다. 총액한도대출이란 이름은 과거 통화량목표제하에서 통화량 관리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한국은행이 주도적으로 은행의 차입한도를 미리 정하겠다는 성격이 강조돼 있다. 그러나 금리 중심의 통화정책 운용체계가 되면서 이런 취지는 크게 약화됐다. 금융중개지원대출은 신용공급이 부족한 부문에 대해 은행의 금융중개 기능이 강화되도록 지원하는 중앙은행의 대출제도라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2월 현재 금융중개지원대출의 총 한도는 12조원이며 대출금리는 연 0.5~1.0%로 기준금리(2.5%)보다 낮다. 금융중개지원대출은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며 지원 대상에 따라 5개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지원 대상은 무역금융, 신용대출, 영세자영업자전환대출(바꿔드림론), 지방중소기업 및 기술형창업기업 등이다. 무역금융지원프로그램(한도 1조 5000억원)은 수출금융 지원을 위해 은행의 무역금융 취급 실적을 기준으로 운용된다. 신용대출지원프로그램(2조원)은 은행의 담보 위주 대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됐으며 신용대출 실적이 기준이다. 영세자영업자지원 프로그램(5000억원)은 취약계층의 금리부담을 완화하고 은행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2012년 9월 신설됐다. 은행의 영세자영업자전환대출 실적에 연계된다. 지방중소기업지원프로그램(4조 9000억원)은 한국은행 15개 지역본부에서 지방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운용하고 있다. 기술형창업지원프로그램(3조원)은 우수 기술을 보유한 창업 초기의 중소기업을 길러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과 고용창출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 도입됐다. 기업이 창업 초기 기술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사업화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 사업 실패로 이어지는 문제를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술형창업지원으로 지난해 12월 기준 총 6283억원의 대출자금이 지원됐다. 평균금리는 연 3.96%로 전체 중소기업대출금리(4.84%)보다 낮다. 주요 지원 대상은 특허권·실용신안권 보유기업이 47.6%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정부 및 정부공인기관 인증기술 보유기업(31.5%), 연구개발비가 매출액의 2%를 초과하는 기업(18.1%) 등이 지원받고 있다. 앞으로 한국은행은 금융중개지원대출을 신용정책의 주된 수단으로 활용할 계획으로 다음과 같은 기본 운영방향을 설정했다. 먼저 금융중개지원대출의 지원 대상은 종전 총액한도대출과 마찬가지로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은 정보의 비대칭성 등으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상대적으로 크고 경기 둔화나 금융위기 시 그 어려움이 가중되므로 중앙은행이 지원할 필요가 있다. 둘째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금리를 내리는 것보다는 신용공급 제약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의 자금가용성을 높이는 데 보다 중점을 두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은행들이 한국은행의 저리자금 지원을 바탕으로 신용위험을 부담하면서 자체 조달자금을 더해 신용공급이 부족한 부문에 자금공급을 확대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끝으로 한국은행은 금융·경제상황 변화에 따라 금융중개지원대출의 총 한도와 개별 프로그램을 신축적으로 조정해 통화정책을 보완하면서 금융의 경기 순응성을 완화하는 데도 기여할 계획이다. 내용 문의 lark3@seoul.co.kr [쏙쏙 경제용어] ■영세자영업자전환대출 신용등급이 낮고 소득이 적은 영세 자영업자의 금융비용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금리가 연 20% 이상인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의 고금리 대출을 금리가 10% 수준인 시중은행 대출로 바꿔 주는 제도다. 자산관리공사(캠코)와 시중은행 16개 기관에서 신청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시중은행의 지원 실적과 연계해 지원한다. 신용등급 5등급 이상이면 연소득 3000만원 이하, 신용등급 6등급 이하는 연소득 4500만원 이하여야 한다. 지난해 말까지 한은은 1460억원가량을 지원했다. 전환 전 연평균 30% 중반 수준이었던 대출금리는 10%대 수준으로 낮아졌다. ■정보비대칭성 경제 주체 간에 갖고 있는 정보가 같지 않아 정보 격차가 발생하는 현상이다. 시장에 정보비대칭성이 존재하면 정보를 더 많이 보유한 사람의 도덕적 해이 문제 혹은 정보가 부족한 사람의 역선택 문제가 발생해 시장에서 최적의 가격결정 및 자원 배분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된다.
  • 밸런타인데이 ‘사랑에 빠진 동물들’ 포착

    밸런타인데이 ‘사랑에 빠진 동물들’ 포착

    매년 2월 14일은 성 밸런타인데이(Saint Valentin’s Day)로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엇갈리지만 전 세계 공통적으로 남녀 간 사랑을 확인하는 기념일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이는 동물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 같다. 최근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밸런타인 데이를 맞아 ‘고양이와 쥐’, ‘앵무새와 개’ 등 평소에는 좀처럼 친할 것 같지 않은 동물들이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희귀 사진들을 공개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첫 번째 사진은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페르시안 고양이와 쥐의 모습이다. 흔히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처럼 쫓고 쫓기는 원수지간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진 속 고양이와 쥐의 모습은 다정함이 넘친다. 사진작가 J.M 라밧이 촬영했다. 두 번째 사진은 앵무새와 사랑에 빠진 골든 레트리버의 모습이다. 앵무새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입을 맞추려하는 강아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실 날카로운 부리에 상처를 입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사진작가 존 다니엘스의 작품이다. 세 번째 사진은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을 연상시키는 다정한 사자 부부의 모습이다. 아프리카 나마비아 에토샤국립공원에서 포착된 것으로 촬영자는 사진작가 칼 앙드레 테블랑셰다. 한편 밸런타인데이의 유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로마 가톨릭교회 성 밸런타인 주교가 군인들의 결혼을 금지하던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의 명령을 어기고 군인들의 혼배성사를 집전했다가 순교한 날인 2월 14일을 기념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서양에서 새들이 교미를 시작하는 날이 2월 14일이라고 믿어 유래했다는 것이다. 초콜릿을 주는 관습은 19세기 영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현재 ‘여성이 초콜릿을 좋아하는 남성에게 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라는 이미지는 1960년대 일본 모리나가 제과에서 시작된 캠페인에서 시작됐다. 이런 일본풍 밸런타인데이는 국내에도 전파돼 지금의 형태로 정착됐는데 ‘과도한 상술’이라는 비판도 많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Caters news agency/데일리메일 캡처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밸런타인데이에 연인된 ‘고양이·쥐’, ‘강아지·앵무새’ 포착

    밸런타인데이에 연인된 ‘고양이·쥐’, ‘강아지·앵무새’ 포착

    매년 2월 14일은 성 밸런타인데이(Saint Valentin’s Day)로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엇갈리지만 전 세계 공통적으로 남녀 간 사랑을 확인하는 기념일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이는 동물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 같다. 최근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밸런타인 데이를 맞아 ‘고양이와 쥐’, ‘앵무새와 개’ 등 평소에는 좀처럼 친할 것 같지 않은 동물들이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희귀 사진들을 공개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첫 번째 사진은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페르시안 고양이와 쥐의 모습이다. 흔히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처럼 쫓고 쫓기는 원수지간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진 속 고양이와 쥐의 모습은 다정함이 넘친다. 사진작가 J.M 라밧이 촬영했다. 두 번째 사진은 앵무새와 사랑에 빠진 골든 레트리버의 모습이다. 앵무새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입을 맞추려하는 강아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실 날카로운 부리에 상처를 입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사진작가 존 다니엘스의 작품이다. 한편 밸런타인데이의 유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로마 가톨릭교회 성 밸런타인 주교가 군인들의 결혼을 금지하던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의 명령을 어기고 군인들의 혼배성사를 집전했다가 순교한 날인 2월 14일을 기념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서양에서 새들이 교미를 시작하는 날이 2월 14일이라고 믿어 유래했다는 것이다. 초콜릿을 주는 관습은 19세기 영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현재 ‘여성이 초콜릿을 좋아하는 남성에게 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라는 이미지는 1960년대 일본 모리나가 제과에서 시작된 캠페인에서 시작됐다. 이런 일본풍 밸런타인데이는 국내에도 전파돼 지금의 형태로 정착됐는데 ‘과도한 상술’이라는 비판도 많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Caters news agency/데일리메일 캡처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한국디자이너들, ‘런던 패션위크’에서 ‘K-패션’ 알린다

    한국디자이너들, ‘런던 패션위크’에서 ‘K-패션’ 알린다

    한국의 중견 및 차세대 디자이너들이 세계적인 패션 행사인 ‘런던 패션위크’에 즈음해 영국 현지에서 한국의 패션 알리기에 나섰다. 주영한국문화원은 14~18일(현지시간) 런던 패션위크 무대에서 한국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패션 코리아’ 행사를 갖는다. 이 행사는 ‘2014 A/W 런던 패션위크’를 맞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한국 디자이너의 작품 전시를 돕기 위해 마련됐다. 런던 패션위크는 뉴욕·파리·밀라노와 함께 세계 4대 패션 박람회로 불린다. 14일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이정선·최유돈 디자이너가 서머셋 하우스에서 700여명의 패션 관계자를 대상으로 패션쇼를 갖는다. 두 디자이너는 런던 패션위크를 주관하는 브리티시 패션 카운슬가 콜렉션 쇼를 열 기회를 주는 ‘캣워크 디자이너’(개막무대 작가)에 선정됐다. 이정선은 비가 그친 숲속의 색채를 사용해 정신적인 안정을 강조한 콜렉션을 발표하고, 최유돈은 1960년대 모던 록밴드의 영감을 녹인 신작을 무대에 올린다. 서머싯 하우스에는 표지영과 허환 디자이너의 전시룸이 설치돼 바이어·판매처와의 거래 상담이 진행된다. 표지영은 프레젠테이션 쇼도 펼친다. 주영한국문화원은 또 다음 달 1일까지 일정으로 한국의 신예 디자이너 5명의 작품을 소개하는 ‘K-패션 오디세이’전도 진행 중이다. 표지영과 지지 지현 정, 박나래, 클로에 킴, 서혜인 등 한국 패션의 미래를 이끌 디자이너들이 각자 고유의 체험을 실험적 의상으로 풀어내 주목을 받고 있다. 지지 지현 정은 “어른들의 잃어버린 동심을 표현하기 위해 장난감 등을 활용해 한국의 옛 모습을 유머와 위트로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정기홍 기자 hong@seoul.co.kr
  • 대보름 환한 달빛에… 전통도 빛나는 날

    대보름 환한 달빛에… 전통도 빛나는 날

    예부터 한 해를 처음 시작하는 달인 정월은 그 해를 설계하고 1년 운세를 점쳐 보는 달이었다. 가장 큰 보름이라는 뜻의 정월 대보름엔 마을 수호신에게 사람들의 무병과 풍농을 기원하는 ‘동제’(洞祭)를 지냈다. 강동구가 대보름을 맞아 13일 오전 11시 천호1동 천일어린이공원에서 ‘벽동마을 거리제’를 연다. 과거 벽오동나무가 많아 벽동말(碧洞村)이라 불린 데서 유래했다. 마을을 지켜주는 동신(洞神)에게 제사를 올리는 데 이어 주민 전체가 참여하는 윷놀이 단체전과 제기차기 개인전 등이 잇따른다. 1960년대 초만 해도 동제를 대신해 벽동말과 인근 주민들이 모여 농악, 지신밟기 등 대보름놀이를 하며 마을의 번영을 기원했다. 급속한 도시화 등으로 마을 공동체 의식이 옅어지자 전통문화를 보존하자는 뜻을 모아 동제를 복원하고 벽동말과 거리제를 합쳐 2008년부터 축제를 열고 있다. 박영래 벽동마을거리보존위원장은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되살리고 서로 평안을 기원하는 화합의 장으로 큰 의미를 띤다”고 말했다. 15일 오후 3시 상일동 공동체텃밭에서 열리는 달집태우기 한마당에서도 쥐불놀이, 전통 연 만들기, 풍등 날리기, 짚풀 공예 등 체험 행사가 기다린다. 오색한지에 소원을 적어 달집에 매달고 태우는 행사는 오후 7시 시작한다. 구 브랜드인 친환경 도시농업을 홍보하고 생산물을 판매하는 파머스 마켓도 문을 연다. 도시텃밭과 상자텃밭 분양 신청도 받는다. 이해식 구청장은 “대보름 행사와 도시농업 등을 통해 마을 공동체 회복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셜리템플 사망, “자유여신상에 비견될 정도” 미국의 상징

    셜리템플 사망, “자유여신상에 비견될 정도” 미국의 상징

    ‘셜리템플 사망’ 11일(현지시간) 85세로 타계한 셜리 템플은 ‘과거의 스타’였지만 ‘현재의 스타’였다. 60년전 영화를 떠났지만 미국에서는 현재까지 어린이들의 인기 투표에서 1위 또는 2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인류애를 실천하며 노년을 보낸 오드리 햅번(1929~1993)과 같이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현재의 스타’였다. 실제 셜리 템플은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대해 3개의 시기가 있었다고 말하곤 했다. 배우로서, 어머니로서, 외교관으로서의 생활이다. 아역 배우로서 1930년대부터 1940년대 크게 활약했다. 대공황 시기의 아픔을 달래주는 청량제 같았다. 6세 때 이미 할리우드의 전설이 됐다. 7살 때 아카데미상 아역부문 특별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아카데미 역사상 최연소 수상자의 기록을 갖고 있다. 당시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코카코라와 자유여신상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다. ‘미국의 상징’으로 불렸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생일 때는 대통령의 무릎에 앉아 ‘happy birthday’를 불렀다. 이후 10대 아이돌 스타로 변모했다. 1950년 결혼한 뒤 영화계를 은퇴, 1960년대 초까지 1남 2녀를 낳아 자녀 교육에 전념하며 TV에 출연했다. 당시 셜리 템플의 결혼에 대해 언론은 “동화같은 결혼”이라며 축하했다. 1960년대 말부터는 기업 CEO를 비롯, 가나 대사, 주 체코슬로바키아 미국 대사 등을 지냈다. 셜리 템플은 근면과 성실, 온화함과 우아함을 갖춘 전설적인 배우이자 외교관으로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는 게 현지 언론들의 평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셜리템플 사망,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아역배우 ‘향년 85세’

    셜리템플 사망,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아역배우 ‘향년 85세’

    셜리템플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의 케이블뉴스 채널인 ‘CNN’은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 아역 연기로 큰 인기를 모으며 헐리우드의 대표 배우 중 하나로 각광받았던 셜리 템플이 향년 85세로 사망했다”고 12일(한국시간) 보도했다. 셜리 템플은 4살 때인 1932년 데뷔하자마자 귀여운 외모와 다재다능함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7살 때인 1935년에는 아역 부문 오스카상까지 거머쥐었다. 이후 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셜리 템플은 21살 때인 1950년 은퇴한 뒤 1960년대 말 정계로 진출해 국제연합(유엔) 미국대표와 가나, 체코슬로바키아 대사 등을 역임했다. CNN은 셜리 템플 사망에 대해 “셜리 템플하면 수백만이 일자리를 잃고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던 대공황 시절이 떠오르고 그때 그가 국민들에게 안겨다준 희망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고 애도했다. 셜리 템플은 생전 ‘리틀 미스 마커’, ‘컬리 톱’, ‘브라이트 아이즈’, ‘캡틴 재뉴어리’ 등의 영화에 아역배우로 등장, 아직도 잊지 못할 명장면들을 선사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25년 안에 ‘별그대’ 외계인 실제로 볼 수 있다”

    “25년 안에 ‘별그대’ 외계인 실제로 볼 수 있다”

    25년만 기다리면 ‘별에서 온 그대’를 실제로 볼 수 있다? 해외 과학자들이 고도의 지능을 가진 외계생명체를 25년 안에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외계문명탐사연구소(SETI Institute) 소속 과학자인 세스 쇼스타크는 최근 스탠포드대학에서 열린 2014 NASA 고등개념위원회 심포지움(NASA Institute for Advanced Concepts Symposium)에서 “현재 외계생명체가 발산하는 전자기파 신호를 탐색하고 있다”며 “지금과 같은 연구가 계속된다면 25년 내에 ‘ET’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어 “아마도 수 천 개가 넘는 별들을 검색해봐야 할 것”이라며 “우리가 찾는 별 5개 중 1개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별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론적으로 지구와 같은 별이 수 십 만개에 달하기 때문에 외계생명체를 찾을 수 있는 확률이 결코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바로 ‘돈’이다. SETI측은 외계생명체와 관련한 신호를 찾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막대한 자금을 받아왔지만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으며, 결국 미 연방의회는 1993년 SETI에 대한 지원을 대폭 줄였다. 이후 SETI는 자금의 대부분을 민간 기부를 통해 마련해 왔으며, 현재도 연구자금 사정이 원활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SETI 측이 25년 내에 외계생명체를 만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만큼, 연구에 진척을 보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포토리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60년대 올림픽 단일팀 주장에 4년 수감은 불법”… 5억 국가배상 판결

    1960년대 올림픽에 남북한 학생으로 구성된 단일팀을 출전시키자고 주장했다가 4년 넘게 옥살이를 한 정당인에게 국가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고법 민사1부(부장 정종관)는 북한의 선전 활동에 동조한 혐의로 기소돼 4년 넘게 옥살이를 한 고(故) 이석준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에서 원심처럼 “유족에게 5억 4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9일 밝혔다. 재판부는 “국가의 불법행위는 반인권적이고 중대했다”며 “이씨가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받아 4년 넘게 구금됐고 석방 뒤에도 상당 기간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았다”고 판시했다. 1927년생인 이씨는 1961년 5월 대구에서 열린 한 집회에서 남북 단일팀을 차기 올림픽에 출전시키자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하지만 이씨가 연설한 지 1주일 만에 5·16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씨는 ‘공산화를 위한 북한의 선전 활동에 동조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숭례문 논란 해명 위해 책 낸 것 아냐”

    “숭례문 논란 해명 위해 책 낸 것 아냐”

    “결코 숭례문 복구에 관한 논란을 해명하기 위해 책을 낸 것은 아닙니다. 현재 시점에서 문화재를 다시 되살리는 현장의 한계와 고민을 공유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던 겁니다. 숭례문 복원 공사에 부실 꼬리표를 붙인 주범은 ‘전통과의 단절’입니다.” 숭례문 복구를 현장에서 진두지휘했던 최종덕(55) 문화재청 전 문화재정책국장(전 숭례문복구단장)은 복구 현장의 증언을 담은 책 ‘숭례문 세우기’(돌베개)를 펴낸 취지를 5일 이렇게 설명했다. 숭례문 복구와 관련해 감사원의 감사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5년여에 걸친 숭례문복구단의 현장 기록을 책으로 출간한 그는 이날 오후 전격 직위 해제됐다. 앞서 오전 인터뷰에서 최 전 국장은 “(숭례문 복구는) 옛 건축물을 원래 모습과 방식으로 복원, 복구, 수리하는 방법 자체를 잊고 있었던 게 가장 큰 문제였다”고 고백했다. “(장인들이) 전통 기법으로 나무를 켤 줄 몰랐고,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돌을 깨고 다듬는 일은 더더구나 어려웠다”며 “전통 철물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사람조차 드물었다”고 말했다. 이어 “전통 기와와 현대 기와의 차이에도 무지했으며 단청의 경우 색은 물론 칠하고 난 뒤 방염법에 대해 고민해 본 경험조차 희미했다”고 덧붙였다. 숭례문 사태의 단초가 된 단청만 해도 국산 안료는 일본산 안료에 비해 오히려 우리 전통 단청과 괴리감이 컸다고 했다. 국내에선 1977년부터 전통 단청 재료를 포기하고 화학제품으로 이를 대신해 왔다. 결국 전문가들 사이에선 “국산이란 이유로 검증되지 않은 재료를 무리하게 사용할 수 없다”는 의견이 모였다. “예컨대 대장장이가 만든 철을 숭례문 현장의 대장간에 갖다줬더니 쇠가 갈라져 작업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울러 가공은 물론 현장 운반까지 옛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정조 때 편찬한 ‘화성성역의궤’의 거중기는 정조 이후 누구도 실물을 만들어 사용해 본 적이 없었죠. 결국 크레인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출간 의도는 숭례문 복구 현장에서 전통 철물 생산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부풀려지면서 왜곡됐다. 책에 실린 2011년 3월 서울 숭례문 현장 사무실 회동 내용 때문이다. 제철 분야 명장 이모씨의 제련 작업을 검증하는 회의에선 외부 전문가인 교수들이 이씨의 제련 기법이 전통 기법과 다르다고 지적했고, 결국 이씨가 고개를 떨궜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회의는 “제련 작업이 지지부진하다”는 복구단 직원의 보고에서 비롯됐다. 결국 숭례문 현장에서는 전통 철 생산을 포기하고 경복궁 관리사무소가 갖고 있던 경회루 수리 때(1998년) 나온 3t가량의 전통 철을 활용했다. 숭례문 복구에 사용된 못 등 31종, 3만 7000여개의 철물 가운데 상당수는 이렇게 회수된 전통 철로 대체됐다는 것이다. 최 전 국장은 “과거를 머금은 문화재를 현재의 관점에서 되살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다시 우리 앞에 선 숭례문은 현실의 조건 속에서 오래전 단절된 전통 기법을 되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문화재 복구는 퇴보해 왔어요. 1956년 최초로 수리한 강진 무위사 극락전부터 1980년대 창경궁, 1991년부터 2011년 사이의 경복궁 복원까지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어요. 1960년대 말 일본에서 흘러 들어온 목공, 석공 기계가 문화재 공사 현장에서 살금살금 우리 전통 연장을 몰아낸 탓입니다. 장인들은 물려받은 연장과 기법을 뒷전으로 감추고 편리함에 탐닉했죠.” 이후 1977년 옛 문화재관리국은 공식적으로 전통 단청을 폐기했고 1980년대 들어선 전통 기와가 자취를 감췄다. 공업규격인 KS를 적용하면서부터다. 그는 “숭례문 복구 과정에서 적지 않은 충돌과 반발 그리고 타협이 있었다”면서 “복구를 담당했던 책임자의 한 사람으로서 참담한 심정으로 요즘 현상을 지켜보고 있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비판받아 마땅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씨줄날줄] ‘은하철도999’와 제3의 만능세포/문소영 논설위원

    일본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의 시간적 배경은 먼 미래의 지구. 돈 많은 사람들은 영원한 삶을 살고 있다. 수명이 다한 장기를 값비싼 기계로 교체하는 덕분이다. 그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공짜로 기계 인간을 만들어준다는 안드로메다 행성행 ‘은하철도 999’에 탑승할 승차권을 얻고자 필사적이다. 기계 백작에게 엄마를 잃은 땅꼬마 철이도 마찬가지다. ‘눈보라’라는 뜻의 러시아 이름을 가진 8등신의 미인 메텔의 도움으로 어렵게 은하철도999에 탑승한 철이는 죽지 않는 기계 인간이 돼 기계 백작에게 복수하기 위해 우주 항해를 떠난다. 어린이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만화영화가 ‘유한한 인간의 삶을 영원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으니, 재미를 좇는 어린 뇌에 과부하가 걸리기도 했다. 1970년대 일본 TV시리즈였던 ‘은하철도 999’는 증기기관에 이어 자동차, 세탁기, 냉장고가 개발되고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를 탐사한 1960년대를 통과하며 기계의 능력에 환호하던 근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심장박동을 도와주는 제동기를 단 사람들도 있으니 ‘터미네이터’까지는 아니지만 기계로 인간의 몸을 대체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었겠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과학 발전은 인간수명을 연장하는 도구로 차가운 기계보다 더 좋은 대체재를 제시하고 있다.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의 물성을 훼손하지 않는 것들이다. 나중에 조작으로 밝혀졌지만 황우석 박사의 체세포 복제 방식이나 유도만능줄기세포(iPS), 또 최근 발견된 ‘제3의 만능세포(STAP·Stimulus-Triggered Acquisition of Pluripotency:자극야기성 다성능 획득)’ 등이다. 특히 ‘제3의 만능세포’는 초간단 조작으로 만들 수 있다. 일본 고베 소재 이화학연구소 여성 과학자 오보카타 하루코(30) 연구주임이 개발한 ‘STAP 세포’는 쥐의 비장에서 채취한 백혈구의 일종인 림프구를 홍차 정도의 약산성 용액에 30분 정도 담갔다가 배양했다. 수일 후 만들어진 만능세포는 근육, 신경, 피부, 내장 세포 등 어떤 세포로도 변한다는 것이다. 이는 피부세포에 바이러스를 이용해 유전자를 주입하는 유도만능줄기세포에 비해 효율적이다. 짧은 시간에 만들 수 있는 데다 암 발생 우려도 적다. 다만 이 만능세포는 현재 쥐 실험을 통해 입증된 것으로, 인간의 세포도 똑같은 만능세포를 만들 수 있을지는 연구 과제다. 지난 1월 30일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실려 알려진 이 연구논문이 철회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문희 집 공개… “이렇게 좋은 집 살줄이야” 감탄

    문희 집 공개… “이렇게 좋은 집 살줄이야” 감탄

    1960년대 최고의 미녀로 꼽혔던 배우 문희의 집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문희는 29일 방송된 SBS ‘좋은 아침’에는 배우 문희가 출연, 자신의 집과 가족들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문희의 집은 심플하고 넓은 내부와 밖이 훤히 보이는 커다란 통유리창과 함께, 곳곳에 배치된 고풍스러운 장식장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음악과 그릇에 애착을 보인 그녀는 오래 전부터 모아온 LP판을 공개하기도 했다. 19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를 이끌었던 문희는 여전히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해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했다. 이날 문희는 자신을 꼭 빼닮은 딸을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희, 故 장강재 회장 사이 큰딸 공개… ‘전성기 문희’ 못지 않은 미모

    문희, 故 장강재 회장 사이 큰딸 공개… ‘전성기 문희’ 못지 않은 미모

    문희, 故 장강재 회장 사이 큰딸 공개… ‘전성기 문희’ 못지 않은 미모 1960년대 최고의 미녀로 꼽혔던 배우 문희가 집과 고(故) 장강재 한국일보 회장 사이에서 낳은 첫째 딸을 방송을 통해 공개했다. 문희는 29일 방송된 SBS ‘좋은 아침’에 출연, 자신의 집과 가족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문희의 집은 심플하고 넓은 내부와 밖이 훤히 보이는 커다란 통유리창과 함께, 곳곳에 배치된 고풍스러운 장식장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음악과 그릇에 애착을 보인 그녀는 오래 전부터 모아온 LP판을 공개하기도 했다. 19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를 이끌었던 문희는 여전히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해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했다. 이날 문희는 자신을 꼭 빼닮은 첫째 딸을 장서정씨를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47년생인 문희는 18살이던 1965년 영화 ‘흑맥’으로 데뷔했다. 시원한 눈, 우수어린 분위기로 각종 멜로드라마의 여주인공 역을 독차지하던 문희는 남정임, 윤정희와 함께 ‘60년대 영화계 트로이카’로 불리며 이름을 날렸다. 배우 생활 1년만인 1966년에는 청룡영화상, 대종상에서 신인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문희는 1971년 고(故) 장강재 회장과 결혼하며 ‘미워도 다시 한 번’을 끝으로 은막을 떠났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는 문희는 현재 남편이 생전 설립한 장학재단인 ‘백상재단’에서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고] 美 포크음악의 거장·반전 운동가 피트 시거

    [부고] 美 포크음악의 거장·반전 운동가 피트 시거

    미국 포크 음악의 거장이자 인권·반전 운동가였던 피트 시거가 27일(현지시간) 94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포크를 다시 부흥시키는 데 앞장서면서 오랜 기간 생명권을 옹호하고 사회변혁을 촉구했던 시거가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시거는 1948년 결성된 4인조 포크밴드 ‘더 위버스’에서 활동하며 명성을 얻었고, 1950년대 미국 포크 음악을 부흥시키며 밥 딜런, 돈 매클레인, 브루스 스프링스턴 등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항상 미국의 진보에 관심이 많았다. 1940년대에는 노동운동을 위한 노래를 불렀고 1950년대에는 시민운동을 위해, 1960년대에는 베트남전 반대 운동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 1970년대 이후 시거는 환경과 반전운동에 몸담았다. 2011년에는 노구를 이끌고 뉴욕 ‘월가 점령’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시거는 1953년 한국을 찾아 ‘일제 강점과 분단의 아픔이 서린 노래’라며 ‘아리랑’을 직접 불렀다. 그는 2006년 세계 각국의 민요를 재해석한 앨범을 만들며 아리랑을 수록했다. 1919년 음악가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는 애초 언론인을 지망해 하버드대에 진학했지만 2년 만에 중퇴하고 음악에 빠져들었다. 1951년엔 공산주의자로 몰려 1960년대 후반까지 방송 출연 정지를 당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영화 多樂房] ‘인사이드 르윈’

    [영화 多樂房] ‘인사이드 르윈’

    1960년대의 한 선술집. 멋지게 노래를 끝내고 내려온 포크송 가수,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삭)에게 의문의 손님이 찾아온다. 정장을 입은 그는 가스등이 어슴푸레한 뒷골목에서 르윈을 흠씬 두들겨 패고 사라진다. 과연 그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다음 장면에서 영화는 아무런 설명 없이, 아침을 맞은 르윈의 일상을 파고든다. 천직을 지키기 위해 씨름하는 또 한 번의 1주일을. 방 한 칸도 얻을 능력이 없어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는 르윈은 한마디로 불운의 사나이다. 그는 코트도 없이 뉴욕의 시린 겨울을 누비며 음악으로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여기에 잠자리 신세를 진 골페인 교수의 집에서는 고양이가 따라나오고, 친구의 아내 진(캐리 멀리건)은 르윈의 아이를 임신했을지 모른다며 온갖 악담을 퍼붓는다. 그렇게 사방에서 그가 책임져야 할 것은 늘어나고, 그를 책임져 줄 것은 사라져 간다. 이런 상황에서도 뮤지션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그의 노력은 안쓰럽고 가련하다. 자신에게 늘 은혜를 베푸는 골페인 교수 부부와 그의 친구들 앞에서조차 편하게 노래 한 곡 불러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그의 모습은 분명 괴팍하고 무례하다. 하지만 그것은 르윈이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서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자존심이기에 쉽게 탓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인사이드 르윈’은 존재 자체만으로 영화팬들의 위로가 되어주는 코언 형제의 첫 번째 음악 영화다. 기본적으로 주옥같은 포크송들이 연주되는 매혹적 순간에 방점이 찍혀 있지만, 마치 그 선율에 기대어 오선지 위에 펼쳐지는 듯한 르윈의 1주일도 드라마틱하다. 르윈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스쳐가게 되는데, 저마다의 사정에 골몰해 있는 그들의 캐릭터는 한편으론 진지하고, 한편으론 익살맞다. 벼랑 끝까지 몰린 한 사나이를 보여주면서도 주변 인물들을 통해 대부분의 신에서 웃음을 선사하는 여유로운 호흡은 이미 칸영화제에서 여섯 번이나 수상한 바 있는 영화 고수들의 진가를 느끼게 한다. 영화 내내 음악을 감싸고 도는, 공들여 섬세하게 재현된 1960년대의 풍경도 향수(鄕愁)를 자극한다. 그 시절을 살아보지 못한 관객들까지도 그때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특별한 정취가 선술집과 뉴욕의 겨울 거리, 그리고 진의 낡은 아파트를 가득 채우면서 아득한 잔상을 남긴다. 영화는 마지막 신에서 원을 그리듯 첫 장면으로 돌아간다. 코언 형제는 여기서 르윈이 두들겨 맞게 된 이유를 밝힌다. 그것은 예술가를 자처하면서도 기분에 따라 같은 포크송 가수를 모욕하는 르윈의 찌질함에서 연유한 해프닝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이 더 궁금해할 그다음 이야기, 즉 르윈의 음악과 인생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는다. 다만 영화의 구조가 암시하는 것처럼, 르윈의 삶이 같은 궤도를 계속 순환할 것이라는 심증이 남는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희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그 시절의 르윈에게, 그리고 오늘날 숱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문을 두드리는 무명의 음악인들에게도. 윤성은 영화평론가
  • 엘리트들의 전쟁, 최악의 실수 이면은…

    엘리트들의 전쟁, 최악의 실수 이면은…

    최고의 인재들/데이비드 핼버스탬 지음/송정은·황지현 옮김/글항아리/1104쪽/4만 8000원 1961년 1월, 윤곽을 드러낸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행정부를 바라보며 가장 황홀했던 사람은 부통령인 린든 존슨이었다. 그는 첫 각료 모임에 참석한 뒤 멘토인 샘 레이번에게 “사람들이 한결같이 대단하고 명석하다”며 칭찬을 늘어놨다. 가장 똑똑한 사람으로는 머리에 스태컴(남성용 머릿기름)을 잔뜩 바른 젊은이를 꼽았다. 로버트 맥나마라였다. 샘은 답했다. “자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하지만 속속들이 알려면 그중 한 명에게 보안관 노릇을 시켜야 할 걸세.” 지성과 지혜의 차이를 꼬집은 말로, 추상적 기민함과 유창한 언변을 숙성된 지혜와 구분하라는 주문이었다. 불행히도 케네디 행정부의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기획한 베트남전쟁 이후에야 그런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케네디, 존슨, 맥나마라, 맥조지 번디, 딘 러스크, 웨스트모얼랜드…. ‘하버드 클럽’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두뇌들이 모였던 케네디의 드림팀은 어떻게 베트남전이란 최악의 실수를 범하게 됐을까. 전설적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저서 ‘최고의 인재들’은 복잡하게 얽힌 인적 네트워크와 심리 속으로 침투해 이를 설명한다. 500회 인터뷰와 2000여쪽 인터뷰 기록이 말해 주듯 방대한 취재를 거쳐 당시 엘리트들이 품었던 속내를 여과 없이 전한다. 예컨대 UC버클리대와 하버드 MBA 출신인 맥나마라는 전형적 미국 ‘동부주류파’였다. 1960년 포드자동차 사장에 등극한 뒤 이듬해 케네디 행정부 국방장관에 취임하는 파격을 이룬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자 제국을 이끈 경험이 전부였던 맥나마라는 펜타곤에 포드식 ‘비용 대 효과비’를 도입한다. 베트남에 대한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진력한 결과 1962년 그는 ‘베트남 최고의 작전 장교’로 불리기까지 했다. 맥나마라가 잘못을 인정한 것은 1960년대 말에 이르러서였다. 동부주류파로 불린 케네디 행정부의 엘리트들은 ‘세계 질서의 수호자’라는 오만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면에는 ‘매카시즘’의 광풍이 숨어 있었다. 의회가 매카시를 탄핵한 뒤 7년이 지나 케네디가 정권을 획득했지만, 자유주의 전통을 이어 온 민주당 지도자들조차 반공산주의를 외쳐야 표를 얻을 수 있었다. 저자는 “동부주류파들은 반식민주의를 표방하는 베트남 민족주의를 공산주의로 오도했고, 세계의 공산화를 막아야 한다는 ‘도미노 이론’에 빠져 있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케네디가 1960년 로스앤젤레스(LA)에서 민주당 후보로 지명된 직후 스티븐슨, 험프리, 볼스 등의 자유주의자들을 내팽개치고, 득표를 위해 강경한 반공주의자로 색깔을 바꾼 것과 당선 직후 동부주류파의 대부인 로버트 A 러벳 전 국방장관과 손잡은 것이 비극의 뿌리라고 지적한다. 부친인 조지프 케네디 또한 공화주의자인 헨리 루스 발행인과 협상을 벌여 대선 기간 ‘타임’ ‘포천’ ‘라이프’지가 아들에 대한 긍정적 기사를 쏟아 내도록 유도한다. 집권 후 반공주의 노선을 고수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케네디가 암살된 뒤 대통령직을 승계한 존슨마저도 ‘위대한 사회’ 건설에 대한 개인적 야망과 관료 세계의 경직성, 미국은 지지 않는다는 기만적 ‘낙관주의’에 휘말려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1972년 책 출간 직후 저자는 “우상을 숭배하는 집단에 돌을 던졌다”는 질타를 받았다. 암살을 통해 미국 사회에 전설로 자리 잡은 케네디의 신성불가침 영역에 도전한 탓이다. 그러나 책은 170만부 가까이 팔리며 베트남전쟁에 대한 미국인의 시각을 재정립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새달부터 남해군 독일마을에 가면 파독광부 작업도구 볼 수 있습니다

    새달부터 남해군 독일마을에 가면 파독광부 작업도구 볼 수 있습니다

    1960~1970년대 한국 광부들이 독일에 파견돼 석탄을 캐는 일을 하며 사용했던 작업도구들이 경남 남해군 삼동면 독일마을에 전시된다. 남해군은 23일 한국인 광부들이 돈을 벌기 위해 독일 탄광에서 작업할 때 사용했던 각종 도구와 관련 물품들이 최근 남해군 독일마을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지하 1000m 탄광에서 석탄을 캐는 데 사용한 착암기를 비롯해 도끼, 삽, 손전등, 헬멧, 일산화탄소 필터, 안전화, 막장 전화기 등 모두 22종류다. 군은 지난해 10월 독일마을 맥주축제 때 초청한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에게 독일 파견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 등이 사용했던 도구와 물품, 영상, 사진 등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독일대사관은 수소문 끝에 독일에 사는 탄광 유물 소장가로부터 이 물품들을 구입해 군에 기증했다. 군은 기증받은 석탄 채광 관련 물품을 독일마을 인근 7000여㎡에 29억원을 들여 짓는 독일문화체험센터에 전시할 계획이다. 경사진 지붕과 붉은색 기와 등 독일풍의 독일문화체험센터는 식당, 숙박동, 부속동, 전시관 등으로 이뤄지며 다음 달 완공 예정이다. 전시관에는 이 물품들과 함께 기록물, 영상물 등을 전시할 계획이다. 독일마을은 1960년대 독일에 간호사와 광부 등으로 파견됐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하기를 원하는 교포들을 위해 군이 독일풍 주택단지로 조성한 마을이다. 2001년 10만㎡ 부지에 조성돼 현재 34가구가 살며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남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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