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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긍정 마인드/문소영 논설위원

    ‘만인의 연인’이었던 비틀스의 멤버 존 레넌을 가로챘다고 해서 ‘동양의 마녀’라는 욕을 먹은 오노 요코는 당대의 젊고 유망한 전위 예술가였다. 1959년부터 뉴욕의 전위 예술가 그룹인 ‘플럭서스’와 함께 활동했다. 그런데 유부남이던 레넌과의 ‘세기의 연애’를 벌이며 떠들썩해진 탓에 행위 예술가로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1969년 결혼하기 전까지 존 레넌과 3년에 걸쳐 화려한 연애사를 쌓았던 그 시작은 그녀의 작품이었다. 1966년 영국 런던의 전시장에 들른 레넌은 우연히 사다리가 천장에 연결된 작품에 끌려 올라갔다. 기대에 쌓인 그가 컴컴한 천장에서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YES”였다. 1960년대 서양은 주류 문화에 대해 대안으로 사회운동이 벌어졌는데 반사회적·반정부적인 히피문화나 록문화, 반전운동 등이 하위문화로 유행이었다. 반항적인 기운들이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상황에서, “안돼”(NO)가 아니라 “그래”(YES)였다. 20대에는 분노가 추진력이었다. 나이를 먹으니 분노는 폭발적이지만 지속성이 떨어져 세상을 변화시킬 도구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알루미늄 냄비가 아니라 무쇠솥이어야 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열린세상] 중국 ‘신창타이’ 농업정책을 보며/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중국 ‘신창타이’ 농업정책을 보며/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올해 초 중국에서는 농업 관련 주가 유망주로 평가되면서 잠시 증권가를 달궜다. 이유는 3농(농업·농촌·농민) 정책이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이 연초에 발표하는 정책교서(중앙 1호 문건)의 주제가 된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발표된 문건은 알려진 대로였고 3농 정책은 2004년 이후 12년 연속 중앙 1호 문건 주제가 됐다. 중국에서 농정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올해에는 식량안보 확보와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신창타이(新常態) 시대 농업 정책이다. 신창타이는 중국 경제가 개혁개방 이래 누렸던 고도성장 대신 이제 직면하게 된 중저속 성장이라는 새로운 상태를 말하는데 중국식 뉴노멀이다. 신창타이를 선언한 중국은 지금 전반적 국가 개조를 주창하고 있다. 거기에 3농 정책 개혁이 중심 위치를 차지한 것이다. 1958년부터 1960년대 초 사이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 실패에 따른 대규모 기아사태 이래 곡물 증산은 중국 농정의 중심이었고, 곡물 자급률 95% 유지는 불변의 정책 목표로 자리잡았다. 그 결과 양적 증산 정책은 성공했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지난달 국무원은 최근 11년 연속 곡물 풍작과 함께 현재 식량안보는 사상 최대로 양호한 상황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러한 양적 성과는 과다한 화학재 투입, 환경·수질·토양오염, 농업자원 고갈 등 심각한 문제를 함께 불러왔다. 이런 배경에서 우량농지 개발 보전을 통한 식량안보 확보와 자원·환경·생태 친화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이라는 신창타이 농업 정책을 내세웠다. 지난달 국무원은 리커창 총리 주재로 지속 가능한 농업개발 계획을 채택했다. 환경생태 기준 강화를 통해 2019년까지 농약과 화학비료 투입의 연평균 증가율을 1% 이하로 억제하고 2020년부터는 동결한다는 것이다. 지난 35년간 화학비료 사용 증가율이 연 5%대인 것을 고려하면 야심적 목표다. 자원·환경·생태 친화 질적 성장으로의 정책 전환을 강조한다. 중국 농업의 약점인 안전성 문제를 동시에 겨냥하는 정책이다. 정책 전환은 국내 농업생산 조정을 수반할 것이다. 따라서 중단기적으로 새로운 식량안보 전략을 유추하게 한다. 최근 농업부 일각에서는 85%를 곡물 목표자급률 안으로 제시한다. 농업자원 여건을 고려할 때 최대 곡물 생산 가능량은 6억 5000만t이지만 실제 국내 생산은 6억 1000만t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러 정황을 볼 때 곡물의 해외시장 의존도를 높일 게 분명하다. 중국은 이미 민간·국영기업을 앞세워 세계 농업자원과 해외 대규모 농업회사를 사들이는 전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국제 곡물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클 것이고 한국과 같은 곡물 수입국은 주목할 수밖에 없다. 중국 농정 전환은 현재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구상은 농업 잠재력은 크지만 기반이 취약한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동유럽 국가를 포함한다. 인프라 투자를 통해 새로운 세계 곡물 공급기지가 될 수 있는 지역들이다. 미국과 주요2개국(G2)으로서 경쟁하는 중국은 식량 수급에서 미국보다 절대적 열세다. 엄청난 양의 곡물 수입을 미국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미국 곡물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대체 곡물기지 개발이 절실하다. 물론 이 구상이 성공한다면 다른 곡물 수입국에도 수급완화 효과를 일부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현은 장기적 과제다. 적어도 중단기적으로는 중국의 정책 변화가 국제 곡물시장을 긴장시킬 것이다. 세계 최대 식량 취약국의 하나인 한국도 긴장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해외 농업개발, 국제곡물 유통망 구축 등을 국정 과제로 선정하고 시도했지만 한계에 부닥치고 있다. 이런 하드웨어적 기반 구축이 당장 어려우면 소프트웨어적 곡물 확보 역량을 우선 키워야 한다. 복잡한 국제 곡물시장에서 구매 역량을 강화하고 위험관리 능력을 키워야 한다. 국제 선물시장의 합리적 활용이 그 하나다. 거기에서는 구매 전략과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력 양성을 통해 중국과 같은 대규모 국가 정책의 변화에 따른 위험을 부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특히 국내 곡물 실수요자들의 국제 선물시장에 대한 인식 전환과 활용이 시급히 요구된다. 이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유도가 필요하다.
  • 이런 대통령 또 어디 없나요

    이런 대통령 또 어디 없나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미겔 앙헬 캄포도니코 지음/송병선 옮김/21세기북스/400쪽/1만 6000원 28년 된 낡은 자동차를 끌며 월급의 90%를 기부하는 대통령. 노숙자에게 대통령궁을 내주고,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지만 ‘철학자’로 불리는 대통령.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현자’라고 칭송받는 대통령. 2009년부터 2015년 3월까지 재임한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에 관한 수식어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는 검소하고 친근한 카리스마로 새로운 지도자상을 보여 준 무히카의 일대기와 주요한 발언들을 담고 있다. 1999년 우루과이에서 초판이 출간된 뒤 무히카의 정치 인생과 궤를 함께하며 꾸준히 사랑받아 온 장기 베스트셀러다. 폭탄이 난무하고 유혈사태의 굉음이 끊이지 않는 혼란스러운 우루과이 정국에서 태어난 무히카는 1960년대 군사독재에 맞서는 게릴라 조직 투파마로스의 리더로 활동하다 1970년대 13년간 독방서의 수감생활을 거쳐 민중참여운동가로 거듭났다. 하원의원, 상원의원, 농축수산부장관을 지낸 후 2009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무히카는 재임기간 중 우루과이 사회의 불평등을 줄이고, 경제를 성장시켰으며 스스로 검소하고 나누는 삶을 실천했다. 무히카는 65%의 높은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직을 마친 후 상원의원으로 돌아와 몬테비데오 외곽의 허름한 농가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며 아내이자 정치적 동반자인 루시아 여사와 살고 있다. 책에는 힘과 용기를 주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천 번을 넘어질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용기를 내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 특별한 것은 그 내용을 우리가 채워 나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정치에서 첫 번째로 요구되는 것은 지적인 정직성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사회는 이 점을 인식해야 하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전쟁통에도 엄마에게 전하고 싶었던 그 말

    전쟁통에도 엄마에게 전하고 싶었던 그 말

    편지에는 당대 사람들의 눅진한 삶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한 나라의 왕이건 시골의 아낙이건 마찬가지다. 직접 얼굴을 보지 못하는 이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혹은 차마 말로 전하지 못하는 고마움을 담는다. 국립한글박물관은 21일 ‘한글 편지, 시대를 읽다’를 주제로 기획특별전을 시작했다. 현존하는 한글 편지 중 가장 오래된 안정 나씨 나신걸(1461~1524)의 편지부터 1990년대 이후 종이편지를 밀어내고 대세가 된 전자우편,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통 수단, 교감의 방법을 소개한다. 편지 속에는 과거와 현재의 시대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나신걸의 편지는 1490년 전후로 추정된다. 그가 영안도(함경도) 경성에 군관으로 가면서 고향 회덕에 들르지 못하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며, 국경의 북방 추위를 버텨 낼 옷과 양식을 보내 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하고 있다. 학도병 신분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숨진 서울 동성중 3학년 이우근의 품속에서 발견된 편지는 어머니에게 쓰여졌다. 귀청을 찢을 듯한 총성이 오가는 속에서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다. 또 반대로 전쟁터에 자식을 보낸 뒤 애타는 어머니의 걱정을 담은 편지는 수신지 우체국까지만 도달했을 뿐 자식의 손에 쥐어지지 못했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고스란히 증명한다. 권이종 한국교원대 명예교수는 1960년대 독일에 광부로 간 뒤 독일 양어머니의 도움으로 공부를 시작해 교수까지 될 수 있었다. 당시 친구와 주고받았던 편지, 엽서, 사진 등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삶도 들어 있다. 또한 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인 박율랴씨가 타슈켄트의 세종학당 교사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도 있다. 서양화가 김환기(1913~1974)가 1955년 아내에게 보낸 그림 편지에선 질박한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오는 6월 7일까지 전시된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잘 나가는 뮤지컬,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

    잘 나가는 뮤지컬,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

    ’캣츠’ 인간이 아닌 고양이가 되기 위한 배우들의 고군분투 “무대 위에서 배우가 몸이 편하다면 고양이가 아니라 인간이 돼 있는 거다. 시종일관 불편해야 고양이가 돼 있는 거다.” 30년 넘게 뮤지컬 ‘캣츠’(5월 10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연출과 안무를 맡아 온 조앤 로빈슨(65)이 말한 ‘캣츠’의 철칙이다. 배우들은 도도한 자세부터 유연한 움직임, 때론 모여 있고 때론 경계하는 습성까지 고양이 그 자체다. 사람의 몸으로 고양이를 그려 내는 마법이 가능한 건 ‘캣츠’가 30년 동안 이어 온 전통인 ‘고양이 되기’ 훈련 덕분이다. 이처럼 특별한 뮤지컬은 특별한 훈련을 거쳐 완성된다. 무대 위에서 보여지는 건 춤과 노래, 연기지만, 배우들은 무대 뒤에서 보이지 않는 훈련에 구슬땀을 흘린다. ‘캣츠’의 배우들은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기 1주일 전, 고양이의 움직임을 익히는 훈련부터 시작한다. 자신의 몸을 핥는 ‘그루밍’,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착지하기, 몸을 쭉 뻗기 등 고양이의 모든 움직임을 몸에 배게 한다. ‘캣츠’의 상주 안무가인 에마 델메니코는 “고양이는 유연한 동물이라 인간이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동작이 많아, 다른 작품들보다 스트레칭을 길게 한다”고 말했다. 그 다음엔 배우들이 각자의 캐릭터에 맞춰 움직이기, 각자 꼬리를 받아 자신의 캐릭터에 맞게 꾸미기 등의 과제를 수행한다. ‘극장 고양이’ 거스는 극장과 관련된 소품을 달고 ‘인기남 고양이’ 럼 텀 터거는 화려한 장식으로 꾸미는 식이다. 본격적인 연습을 하는 동안에도 매일 연습 시작 전 1시간 정도 ‘즉흥 흉내내기’ 시간을 갖는다. 무리를 지어 있다가 놀라서 흩어지기, 먹이를 두고 싸우기 등 고양이처럼 움직이고 행동한다. 또 배우들이 저마다 맡은 캐릭터의 기반이 되는 3가지 형용사를 받고 이를 연기로 표현하는 과제도 거친다. 에마 델메니코는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움직임과 감정을 개발해 나가고, 이를 ‘캣츠’의 스토리와 음악, 안무에 맞게 표현한다”면서 “이 과정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배우가 ‘고양이 되기’ 작업을 완료하는 순간은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로기수’ “현란한 기술보다 진정성” …탭탠스 안무 위해 4~6개월 맹훈련 안무에 탭댄스가 가미되는 경우 배우들은 4~6개월 동안 발이 부서지도록 탭댄스를 연마한다. 탭댄스를 배우며 꿈을 찾아가는 북한군 포로 소년의 이야기인 창작뮤지컬 ‘로기수’(5월 31일까지 서울 DCF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를 준비하며 배우들은 4개월 동안 탭댄스를 배웠다. ‘로기수’에서 중요한 건 “현란한 기술을 구사하는 것보다 진정성을 전달하는 것”(신선호 안무감독)이었다. 제식훈련의 리듬감과 군화의 굽 소리를 탭댄스에 담아내기 위해 배우들은 기본적인 동작을 정확히 구사해 정교한 소리를 내는 데 주력했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탭댄스 실력은 ‘중상’ 정도의 수준이라는 게 신 감독의 평가다. ’드림걸즈’ 드럼에 맞춰 리듬감 찾기 ‘원스’ 배우들 스스로 화음 맞추기 노래도 훈련으로 완성한다. 뮤지컬 ‘드림걸즈’(5월 25일까지 서울 샤롯데씨어터)는 1960년대 미국을 풍미한 알앤비와 소울, 재즈 등의 음악이 170분 내내 넘실댄다. 그러나 배우들에게 알앤비와 소울 창법보다 더 중시된 건 리듬감이었다. 원미솔 음악감독은 “‘드림걸즈’에서는 노래를 우렁차게 부르는 것보다 리듬에 맞춰 다채롭고 맛있게 부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연습 기간 동안 드럼과 퍼커션 리듬을 타며 노래를 ‘맛깔나게’ 부르는 훈련을 거쳤다. 리듬감 있는 단어를 가사에 넣어 부르고, 리듬에 맞춰 발음을 길게 늘리거나 이어 붙이는 식으로 노래를 연습했다. 지난달 막을 내린 뮤지컬 ‘원스’는 배우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액터 뮤지션 뮤지컬’이다. 음악감독의 개입 없이 배우들이 음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원스’만의 독특한 훈련 방식이다. 일반적인 뮤지컬 넘버는 음악감독이 배우들에게 각자의 음역대를 지시하지만, ‘원스’의 넘버는 배우들이 스스로 화음을 맞춰 가며 완성했다. 또 지휘자 없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음악을 시작하고 전개해 가는 연습에 공을 들였다. 이 모든 훈련은 “배우들이 음악의 본질을 스스로 찾아 나가는 과정”(김문정 음악감독)이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 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삼양그룹] ‘만인의 양식’ 식품서 바이오까지… 글로벌 100년 기업 꿈꾼다

    [재계 인맥 대해부 (4부) 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삼양그룹] ‘만인의 양식’ 식품서 바이오까지… 글로벌 100년 기업 꿈꾼다

    삼양그룹은 ‘100년 기업’을 불과 9년 앞둔 전통의 식품·화학·의약바이오 소재 기업이다. 일반 소비자들에겐 ‘큐원설탕’(옛 삼양설탕)으로 더욱 친숙하지만 삼양은 국내 주요 식품·화학·의약바이오 등 대기업에 원재료를 공급하고 있어 기업 간 거래(B2B) 분야의 강자로 유명하다. 올해로 출범 91주년을 맞는 삼양그룹은 신소재 고부가가치사업 분야를 강화하며 향후 보다 공격적인 경영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호남 거부의 후예인 고 김연수 삼양그룹 창업주는 1924년 삼양의 모태인 삼수사(三水社)를 설립했다. 국내 최초의 기업형 농장으로 간척사업도 병행했다. 사업이 날로 확대되던 1931년 ‘만인의 양식’이란 의미로 ‘물 수’(水) 대신 ‘기를 양’(養)을 넣어 상호를 삼양사(三養社)로 바꿨다. 1939년 만주에 한국 기업 최초의 해외 생산법인인 남만방적도 건설했다. 1945년 해방으로 만주방적사업은 철수했고, 농지개혁으로 농장과 사업장을 잃었다. 김 창업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국내 최대 민영 염전을 개척해 새 출발의 기틀을 다졌다. 그는 6·25전쟁 이후인 1955년 울산 제당공장을 준공한 뒤 이듬해 삼양사를 본격 출범시켰다. 당시 수익성이 더 컸던 해리염전(현 삼양염업사)은 장남 상준, 차남 상협, 넷째 상돈에게 물려줬다. 자신이 직접 경영한 삼양사는 3남과 5남이 이어 가도록 했다. 3남은 고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 5남은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이다. 김상홍 명예회장은 와세다대 출신으로 34세의 나이에 삼양사 사장으로 입사해 창업주를 도와 삼양사를 함께 키워 갔다. 1950년대 창업주가 제당사업을 할 때 창업주인 부친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식품 회사의 틀을 함께 일궜다. 동생인 5남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과 함께 부친을 도와 1960년대 화학섬유산업, 1980년대 석유화학산업, 1990년대 의약바이오 산업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사세를 키워 나갔다. 1996년 김상하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넘겨주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뒤 2010년 세상을 떠났다. 1955년 울산 제당공장의 준공으로 시작된 식품사업은 1984년 선일포도당을 인수한 뒤 오늘날 그룹의 주력 중 하나인 삼양제넥스로 커졌다. 1988년엔 제분사업, 2004년엔 가공유지사업 등을 아우르는 식품소재 기업으로 발전해 국내 음료, 제과, 면 등 식품 완제품 업체에 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김상홍 명예회장은 당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등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있을 때 부회장(1983~1993년)으로 활동하며 재계를 이끌기도 했다. 지금은 장남인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이 전경련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인 김상하 회장은 1988년부터 12년간 최장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했다. 삼양그룹은 2011년 말 기업 투명성을 높이고 기업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주력이던 삼양사는 삼양홀딩스와 삼양사, 삼양바이오팜 등 3개 회사로 분할했다. 지주회사 격인 삼양홀딩스는 투자, 무역, 임대사업 등을 맡고 있는데 오너 대주주들이 삼양홀딩스 주식을 보유하는 식으로 그룹을 소유하고 있다. 식품 등을 담당하는 그룹의 주력 기업인 삼양사는 지난 3년간 이어진 사업 부문 재편을 통해 올해를 기점으로 향후 큰 폭의 이익 개선이 기대된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다만 석유화학산업의 경기 하락으로 그룹의 또 다른 축인 화학 쪽이 저조해 그룹 전체 매출이 2011년 이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페트병 등의 원료로 사용되는 테레프탈산(TPA) 등을 만드는 삼남석유화학은 2014년까지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으며, 화학 쪽 신소재사업을 담당하는 삼양이노켐은 자본 잠식 상태에 빠져 있다. 그러나 삼양그룹은 선대가 그랬듯 위기를 기회로 삼아 글로벌 연구·개발(R&D) 혁신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공격적인 경영에 힘을 쏟고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옥수수를 이용해 친환경 소재인 ‘바이오 플라스틱’을 개발했다. 이 소재는 인체에 무해한 친환경적인 생활 속 플라스틱 재료로 어린이용 장난감 등 다양한 곳에 쓰인다. 미래형 경량화 자동차 소재인 엔지니어링 플라스틱도 개발 중이다. 바이오사업 분야에서는 자체 기술력으로 만든 수술용 봉합사가 세계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부진했던 석유화학 분야는 수출선을 기존 중국에서 유럽, 중동 등으로 다변화해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내년 상반기에는 판교 R&D센터가 문을 연다. 분산돼 있는 기존 R&D 부문을 한곳으로 모아 R&D 시너지를 강화한다는 복안이다. 삼양의 3세대 리더인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2015년은 삼양이 미래 성장 기반을 준비하는 또 다른 전환점이다. 우리만의 차별화된 강점을 바탕으로 그룹의 성장을 이끌 고부가가치사업을 발굴해야 한다”며 도약을 다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현장 행정] 55년 전 민주화 염원 강북서 다시 꽃핀다

    [현장 행정] 55년 전 민주화 염원 강북서 다시 꽃핀다

    “대한민국 민주 발전을 이룬 4·19혁명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합니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13일 서울시청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오는 18·19일에 4·19혁명 국민문화제를 연다고 밝혔다. 그는 “4·19혁명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에 비해 그 의미가 제대로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면서 “문화제를 통해 역사를 바로 보고 그날을 경험하며 최대한 많은 이가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4·19혁명은 1960년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개표를 조작하자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며 학생들이 중심이 돼 일으킨 혁명이다. 이로 인해 12년 이승만 정권이 막을 내렸다. 2013년부터 개최한 문화제는 올해 학술토론회가 강화된 것이 특징이다. 오는 18일 오후 3시 수유동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4·19혁명과 세계사적 의의’라는 주제로 열리며 이동희 한국학연구원 교수의 진행으로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오제연 규장각 선임 연구원, 연규홍 한신대 신학대학원장 등이 참여한다. 또 구는 학술자료집을 영어로 발간해 세계의 주요 대학과 도서관에 보급하고,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할 계획이다. 축제의 중심은 18일 오후 7시 강북구청 사거리에서 열리는 전야제다. 희생영령을 위한 진혼무 공연, 시낭송 등과 함께 윤도현밴드, 양희은, 장미여관, 로맨틱펀치, 트랜스픽션 등이 출연하는 록 페스티벌이 2시간 동안 펼쳐진다. 메인 행사장이 설치되는 강북구청 사거리에서 광산사거리까지 600m 구간은 18일 오전 1시부터 19일 오전 3시까지 차량 운행이 전면 통제된다. 이 외 18일에는 헌혈릴레이, 태극기 아트페스티벌, 4·19 영상물 상영 및 전시, 현장 참배, 1960년대 거리재현 퍼레이드, 풍물패 공연 등이 열린다. 또 19일에는 산악인 엄홍길 대장과 함께하는 순례길 트레킹, 4·19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 4·19 희생영령 추모 소귀골 음악회 등이 이어진다. 박 구청장은 “국민문화제를 통해 4·19혁명을 잊고 있었던 기성세대와 사건 자체가 생소한 젊은 세대에 그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충분히 전달되기를 바란다”며 “1960년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타올랐던 뜨거운 열정과 함성을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문화제에 많은 참여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단독] 향교·서원·고택 되살려 ‘문화 상품’ 만든다

    [단독] 향교·서원·고택 되살려 ‘문화 상품’ 만든다

    “사람이 살아야 고택(古宅)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한국고택문화재소유자협의회 회장인 강릉선교장 이강백(67) 관장은 13일 이렇게 말하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선교장은 강원 강릉시 경포대 쪽으로 4㎞쯤 떨어진 곳에 들어선 고택이다. 조선 영조 때인 1703년 효령대군의 11세손인 이내번이 족제비 떼를 쫓다가 우연히 명당 자리를 발견해 집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도 후손들이 살고 있다. 한국 민가로는 처음으로 국가지정 문화재로 선정됐다. 1960년대만 해도 300여칸을 자랑하는 대저택이었는데, 현재 150여칸만 남았다. 이 관장은 “1992년부터 서별당, 외별당, 곳간채 등 공간을 복원하고 갖가지 시설을 만들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며 “한옥숙박 체험객 등 관광객 연인원 30만명에 11억여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선교장은 둘레길 등 조경사업을 벌이고 도서관과 쉼터를 건립하는 등 편의시설을 조성하는 한편, 수익의 80%를 문화행사 유치 및 협의회 운영비에 재투자 중이다. 이 관장은 “한옥의 특성상 방치하면 급속하게 훼손돼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기 어렵다”며 “무엇보다 거주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게 가장 좋다”고 강조했다. 이날 경북 경주시 서악서원에서는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과 이 관장, 문화체육관광부·문화재청·경북도 관계자, 원주향교·명재고택 종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향교·서원·고택 주민 품으로, 대청마루 정담(情談)’이 열렸다. 정부는 건축자산을 제대로 활용하는 사업에 지난해 25억원, 올해 41억 7000만원을 비롯해 2019년까지 34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대상은 향교문화재 230곳, 서원문화재 169곳, 고택문화재 166곳을 합쳐 565곳이다. 1단계로 올해까지 공모사업 확정과 함께 교육 등 기본계획을 마치고 2016~2017년 특화 프로그램 개발을 거쳐 지역별 자립형 문화상품을 정착시킨다는 게 줄거리다. 문화재청은 지난해만 향교·서원 활용을 통해 인쇄·식음료 등 업종에서 1만 2000여명의 고용유발과 972억원의 경제파급 효과를 얻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경주 정담에서 원주향교는 매주 월·목요일 사서삼경 강의와 인문학 특강, 서예교실, 전통생활예절 체험으로 특화했다고 우수사례로 발표했다. 서악서원은 텃밭 가꾸기, 문화재 지킴이 양성 등으로 일자리와 새 소득원을 창출했다고 밝혔다. 동국대에서 문화재 살피미 동아리를 꾸리고 있는 김민서(22·학생) 대표는 “많은 문화재급 건축물을 관찰한 결과 늘어나는 관광객만큼 보존·관리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며 “온라인 시대를 맞아 홈페이지를 통한 이미지도 중요하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자 대부분은 향교·서원·고택 개방에 따르는 당부를 빼놓지 않았다. “세계에 고유한 우리나라 전통가옥에서 우선 우리나라 사람들부터 예절을 지키는 등 사전교육에 애써야 합니다.” 경주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씨줄날줄] 대부업체/문소영 논설위원

    대부업자는 쉽게 말해 사채업자들이었다. 대부업 관련 법이 2002년 8월 제정되기 전까지 말이다. 대부업은 제도권 금융이 아니므로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의 관리감독 대상이 아니다. 결국 ‘금융을 모르는’ 지방정부에 등록한 뒤 영업한다. 대부업법은 서민들의 사채시장 이용이 급증하고 대부업자들의 불법행위가 사회적 문제로 확산하자 서민 보호 차원에서 제정했다. 연 1000%대의 천문학적 수준의 이자율뿐만 아니라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들을 인신매매도 했다. ‘신체포기 각서’가 근거였다. 불법 추심으로 자살자도 나왔다. 사채시장 양성화 시도에도 비인륜적인 행위를 일삼는 사채업자들을 한꺼번에 정화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2007년 6월 이자제한법이 부활했다. 애초 이자제한법은 1962년 이자가 연 4할(40.0%)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한 대통령령이었다. 1960년대 자금 사정이나 사채시장을 고려하면 유명무실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정부가 약탈적 금융을 제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40%의 법정 최고이자율은 1983년 12월 시행령 개정으로 연간 25%로 낮아졌다. 외환위기로 1997년 말에 다시 40%로 올라갔다. 외환위기를 틈타 국내 금융시장을 간섭하던 국제통화기금(IMF)이 “이자율 상한이 자금의 흐름을 왜곡한다”고 권고하자 정부는 1998년 1월 이자제한법을 폐기했다. 법정 최고이자율은 9년여 뒤에 부활해 대부업체를 포함해 모든 이자를 40% 미만으로 받도록 대통령령으로 정했다. 이때 중요한 점은 사례금, 할인금 등 명칭과 관계없이 대부와 관련해 대부업자가 받은 것을 모두 이자로 간주하기로 한 것이다. 더 나아가 대부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경우는 이자제한법의 적용을 받아 1년에 30% 이상의 이자율을 받지 못하도록 억제했다. 이 부활한 이자제한법으로 ‘등록’ 대부업자가 받는 최고 이자율은 종전의 연 66%에서 연 49%로 낮아졌고, 현재는 40% 미만이다. 이런 이자율 제한에도 한국에 진출한 일본계 대부업체들은 고수익을 내고 잘나가고 있다. ‘러시앤캐시’로 잘 알려진 아프로금융그룹는 자산 2조원의 ‘공룡’으로 산와머니, KJI 등 3개사 등과 함께 한국 대부업 시장의 42.2%를 점유하고 있다. 일본계 대부업체는 SBI저축은행, OSB저축은행, 친애저축은행, OK저축은행, JT저축은행도 소유했다. 제도권 금융으로도 진입한 것이다. 한국계 대부업체인 웰컴론은 업계 3위지만 시장 점유율 7% 미만으로 왜소하다. 과거 은행들은 일본계 대부업체는 금리가 0%대인 자금을 조달해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해명 겸 변명을 했는데, 한국의 기준금리도 1.75%이다. 대부업도 전주가 튼튼해야 경쟁할 수 있다. 말로만 서민경제 안정이 아니라 주택담보대출로 ‘거대한 전당포’로 전락한 시중은행들이 고수익의 서민금융시장을 위해 제대로 투자해 볼 만하지 않겠나.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해방자 예수(혼 소브리노 지음, 김근수 옮김, 메디치 펴냄) 해방신학은 1960년대 라틴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시작된 기독교 신학운동이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정의롭지 못한 정치·경제·사회적 조건으로부터의 해방이란 측면에서 이해하고 실천을 강조한다. 이 책은 예수회 가톨릭 사제인 혼 소브리노가 해방신학의 관점에서 본 예수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스도론을 대표하는 책 두 권 중 1부에 해당하며 예수 죽음까지 역사의 예수를 조직신학 관점에서 해석했다. 신앙 속 그리스도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눈으로 본 역사 속 예수를 소개한 게 특징. 특히 부활은 단순히 행복한 결말로 이해할 수 없으며 예수 생애의 논리적 완성으로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활은 예수를 높이는 사건에 그치지 않고 예수의 삶이 옮았음을 확인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책을 번역한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은 엘살바도르 UCA 대학에서 소브리노의 강의를 들은 제자. “가난한 사람을 잊지 말라”는 스승의 말에 충실하게 스페인어 원본을 번역했다. 580쪽. 2만 3000원. 어른을 일깨우는 아이들의 위대한 질문(제마 엘윈 해리스 엮음, 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 어릴 적 한 번쯤 가졌었고 어른들에게 질문했을 법한 의문을 어른 입장에서 되새기게 만드는 책. 프리랜서 편집자인 저자가 아들과 조카들로부터 받은 질문공세에 착안했다. ‘이럴 때 전문가들은 어떻게 대답할까’라는 생각 끝에 초·중학교 학생 수천 명에게 가장 궁금한 것을 물어 세계적 권위의 전문가들에게 보냈고 돌아온 답들을 엮었다. ‘케이크는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딸꾹질은 왜 하나’처럼 간단하지만 사실은 간단치 않은 질문들이 충실한 답변으로 풀어진다. 옥스퍼드대 교수인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와 메사추세츠공과대 명예교수인 언어학자 놈 촘스키를 비롯해 철인 7종 경기 유럽챔피언 제시카 에니스, 24년간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밴드 ‘펄프’의 대표 멤버였던 자비스 코커 등 120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아이들의 반짝이는 질문과 그에 대한 어른들의 따뜻한 답변의 만남이 신선하다. 376쪽. 1만 4800원. 뒤르켐을 위하여(에드워드 티리아키언 지음, 손준모 옮김, 고려대출판부 펴냄)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을 평생 연구해 온 미국 듀크대 명예교수의 역저. 루이 알튀세르의 ‘마르크스를 위하여’(1965), 브라이언 터너의 ‘베버를 위하여’(1981)에 이어 사회학 창시자 세 명에 대한 현대적 소개를 갈무리한 삼부작의 완결로 평가된다. 산업화와 프랑스 제3공화정의 격동기를 넘으면서 고전 ‘사회분업론’‘자살론’ 등을 남긴 뒤르켐이 살아 있다면 지금의 정치·경제·문화·종교적 사안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할까? 그 관점에서 9·11 사태를 통해 뒤르켐이 제시한 사회적 연대 개념이 어떻게 지구적 연대 개념으로 확장 적용될 수 있는 지를 다룬다. 현대의 성 해방 추세를 뒤르켐의 아노미 개념을 통해 포착하며 양성 평등이 근대성의 부수현상이 아닌 핵심 사안임을 규명하기도 한다. 학문적인 뒤르켐에 머물지 않고 사회변혁과 평화를 위해 행동하는 지식인의 인간적 면모 부각이 눈에 띈다. 576쪽. 3만 6000원. 스웨덴에서 협동조합을 배우다(아너스 오르네 지음, 이수경 옮김, 그물코 펴냄) 전 세계에서 가장 발달했다는 스웨덴 협동조합 운동을 다뤘다. 스웨덴에서는 협동조합 운동이 복지사회를 위한 사회개혁 운동의 큰 축이었다. 모든 협동조합이 가입했던 스웨덴생협연합회는 한때 스웨덴 식료품시장의 50%까지 점유했다. 따라서 하나의 연합조직이 어떻게 협동조합 운동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모델로 주목받는다. 저자는 1920∼193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던 스웨덴생협연합회의 사무총장으로 일했던 인물. 협동조합 운동 실천가이자 사회민주주의 이론가로 유명한 그는 큰 사회문제였던 독점기업 횡포와, 이를 뒷받침한 맨체스터 자유주의를 비판하며 협동조합이 정부보다 업무 수행에 훨씬 더 유리한 체제라고 본다. 대의제와 교육을 통해 자주적인 조합원들이 연대의식을 갖고 협동조합을 운영해야 하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공유해야 진정한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갖는다고 강조한다. 208쪽.1만 4000원.
  • [영화 多樂房] ‘질투’

    [영화 多樂房] ‘질투’

    낭만의 도시 파리, 사랑에 빠진 가난한 연극 단원, 예민하고 변덕스러운 여배우, 그리고 ‘질투’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까지, 한 편의 이야기가 금방 떠오를 것 같은 멋진 조합이다. 1960년대부터 활동해 온 프랑스의 대표적 시네아스트 필리프 가렐은 자신이 어렸을 적 경험했던 일들을 고혹한 흑백 영상으로 재현하면서 독보적인 우아함을 드러낸다.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찬란했던 연인들의 시간은 파편화돼 곳곳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반복되는 서정적 피아노 선율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감수성을 한껏 고조시킨다. 특히 장 루이 오버트의 음악은 ‘질투’라는 감정 이전에 놓인 사랑과 실연의 정서를 동시에 끌어올리는데,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공존하는 이 두 가지 상반된 사건은 놀랍게도 서로 많이 닮아 있다. 사랑의 고통, 실연의 아름다움이 독창적 형식 안에 아련하게 교차하는 작품이다. ‘루이’는 아내(클로틸드)와 딸(샤를로트)에게 이별을 고하고 ‘클로디아’와 동거를 시작한다. 좁고 초라한 루이의 집 안에서도 두 사람은 새로 시작한 여느 연인들과 마찬가지로 서로를 보듬고 장난을 치며 행복해한다. 그러나 사랑에 푹 빠져 별다른 결핍을 느끼지 못하는 루이와 달리 오랫동안 무대에 서지 못한 클로디아는 행복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면서 점차 날카로워져 간다. 샤를로트가 엄마에게 던지는 대사처럼, 이들의 관계도 “누가 더 사랑했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은 물론 ‘누가 더 많이’와 ‘누가 더 오래’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질문이다. 클로디아의 변심은 루이의 집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달라지는 데서 확실하게 표현된다. “여기 있을 때가 좋아”라고 말하던 그녀는 이제 “이 집에서 더는 못 살겠어. 더럽고 침울해”라며 훌쩍인다. 자존감이 낮아진 클로디아의 불만은 가난이라는 현실과 애인의 경제적 무능으로 향하고, 무명배우인 루이로서는 그녀의 욕망을 채워 줄 수 없다. 결국 클로디아는 순애보가 얹어진 낡은 집 대신 자신을 포장하고 안정시켜 줄 수 있는 넓은 공간을 선택한다. 이러한 선택도 영원한 기쁨을 보장해 주지 않을 것이 명백하지만, 영화는 이제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둔다. 클로틸드의 실연으로 시작해 루이의 실연으로 끝내는 구조가 사랑과 이별의 연쇄 작용을 보여 주는 데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완벽하게 절제된 이 영화가 홍조를 띠는 것은 샤를로트의 역할 덕분이다. 첫 장면에서 열쇠 구멍으로 부모님의 이별을 훔쳐본 그녀는 이후에도 계속 삼각관계-부모님과 클로디아-의 관찰자이자 매개로서 활약한다. 아빠의 애인과 스스럼없이 친해지고,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을 엄마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보고하는 그녀의 천진함을 통해 어른들의 감정은 더욱 섬세하게 전달된다.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가 끝까지 고상함을 유지하는 이유는 인물들이 질투라는 감정을 타인에게 분출하지 않고 자신 안에서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혼자 바느질을 하는 루이의 아내처럼 고요하기도 하고, 과격한 방식을 택하는 루이처럼 다소 요란하기도 하지만 어떤 것도 경망스럽거나 천박하지 않다. 아름답고, 슬프고, 여운이 긴 작품이다. 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 “벌집 봤다!”...축구공2개 크기·90㎏ ‘세계 최대 벌집’ 발견

    “벌집 봤다!”...축구공2개 크기·90㎏ ‘세계 최대 벌집’ 발견

    호주의 한 12세 소년이 세계기록에 등재될 만큼 거대한 규모의 말벌집을 찾아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호주 ABC뉴스 등 현지언론이 4일 보도했다. 요한 워딩험이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호주 카룰라 지역의 한 숲에서 유럽말벌(european wasp)의 움직임을 쫓던 중 거대한 규모의 말벌집을 찾는데 성공했다. 이 벌집은 생긴지 2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된다. 약 10만 마리의 벌들이 이 하나의 벌집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보이며 무게는 90㎏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유럽말벌집 중 최대 규모라고 전문가들은 밝혔다. 퀸 빅토리아 박물관의 명예 연구원인 시몬 펀은 “만들어진지 1년 정도 된 벌집은 보통 축구공 크기 정도다. 하지만 이 벌집은 축구공 2개 이상의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유럽말벌의 벌집은 겨울을 나지 못한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비교적 따뜻하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져서 2년 내내 벌집이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워딩험은 평소 벌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해 왔으며, 이번 발견 역시 벌의 수면시간은 밤을 틈타 조사에 나섰다가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딩험이 찾아낸 거대한 벌집은 이틀에 걸쳐 4명의 성인이 숲 밖으로 이동시켰다. 이는 곧장 호주 론서스턴에 위치한 퀸 빅토리아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유럽말벌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40년대이며, 뉴질랜드에서 최초로 발견된 이후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걸쳐 호주에서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유럽말벌은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며 동시에 파리나 모충 등을 잡아먹으며 생존한다. 일반적으로 사과나 배, 포도 등의 작물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농장에서 특히 주의하는 곤충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이 유럽말벌집은 퀸 빅토리아 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무게 90㎏ ‘세계 최대 벌집’ 찾은 12세 소년

    무게 90㎏ ‘세계 최대 벌집’ 찾은 12세 소년

    호주의 한 12세 소년이 세계기록에 등재될 만큼 거대한 규모의 말벌집을 찾아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호주 ABC뉴스 등 현지언론이 4일 보도했다. 요한 워딩험이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호주 카룰라 지역의 한 숲에서 유럽말벌(european wasp)의 움직임을 쫓던 중 거대한 규모의 말벌집을 찾는데 성공했다. 이 벌집은 생긴지 2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된다. 약 10만 마리의 벌들이 이 하나의 벌집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보이며 무게는 90㎏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유럽말벌집 중 최대 규모라고 전문가들은 밝혔다. 퀸 빅토리아 박물관의 명예 연구원인 시몬 펀은 “만들어진지 1년 정도 된 벌집은 보통 축구공 크기 정도다. 하지만 이 벌집은 축구공 2개 이상의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유럽말벌의 벌집은 겨울을 나지 못한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비교적 따뜻하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져서 2년 내내 벌집이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워딩험은 평소 벌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해 왔으며, 이번 발견 역시 벌의 수면시간은 밤을 틈타 조사에 나섰다가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딩험이 찾아낸 거대한 벌집은 이틀에 걸쳐 4명의 성인이 숲 밖으로 이동시켰다. 이는 곧장 호주 론서스턴에 위치한 퀸 빅토리아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유럽말벌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40년대이며, 뉴질랜드에서 최초로 발견된 이후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걸쳐 호주에서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유럽말벌은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며 동시에 파리나 모충 등을 잡아먹으며 생존한다. 일반적으로 사과나 배, 포도 등의 작물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농장에서 특히 주의하는 곤충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이 유럽말벌집은 퀸 빅토리아 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생명의 窓] 냉동 난자/송기원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

    [생명의 窓] 냉동 난자/송기원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

    과학 잡지가 아닌 젊은 여성들이 즐겨 보는 유명한 패션 잡지인 ‘보그’지의 지난 2월호에 나의 눈을 확 잡아끄는 기사가 실렸다. ‘임신 휴지기’나 ‘임신 잠시 멈춤’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프레그넌트 포즈’(Pregnant Pause)란 제목의 냉동 난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많은 커리어를 가진 여성들이 원하는 파트너를 만나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여건이 될 때까지 미래의 임신을 위해 난자를 냉동하는 시술이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는 내용이다. 심지어 외국의 몇몇 기업에서는 이 난자 적출 및 냉동 시술 비용을 여직원에 대한 특전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여성의 난자의 질은 30대가 지나면서 급속히 떨어지고 특히 30대 후반 이후에는 난자의 유전정보에 결함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이 커져 다운증후군 등 유전질환의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가임 능력이 좋고 유전적 결함 가능성이 없는 난자가 만들어지는 젊었을 때 호르몬을 주사하여 원래 한 달에 하나씩 만들어지는 성숙한 난자를 여러 개 만들어지도록 한 다음 적출 후 냉동 보관하여 젊었을 때의 ‘가임력을 보존’하겠다는 이야기다. 냉동시켰던 난자는 원할 때 해동하여 시험관 아기로 수정시켜 태어나게 할 수 있고 현재는 그 성공률이 7~9%로 보고되어 있다. 호르몬에 의한 난자의 성숙 유도 및 적출은 이미 안정성이 입증되어 모든 시험관 아기 시술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므로 과학적인 내용만을 놓고 언뜻 생각하면 여성에게 출산의 선택권을 높여 주는 시술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방법이다. 외국에서는 이 냉동 난자 시술이 보험처럼 판매되고 있고 1960년대 보급되기 시작했던 피임약처럼 여성에게 선택권을 제공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냉동 난자 시술이 우리 사회에서 아직 공론화된 적이 없기에 나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냉동 난자 시술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판단하기에 이 시술은 결혼 시기가 점점 늦어지고 경제적 이유로 출산율이 저조하나 여전히 혈통을 중시하는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에서 매우 유행할 가능성이 높은 시술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시험관 아기 출생 비율이 매우 높고 기술적으로도 우위에 있기에 냉동 난자 시술이 이미 시도되었을 수도 있고 곧 냉동 난자 서비스와 관련된 기업이 생길 수 있는 기술적 토대가 마련돼 있기도 하다. 이미 우리는 인공 수정된 배아를 냉동했다가 원할 때 착상하여 아기를 낳고 심지어 외국에서는 냉동 배아를 입양하기도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인류가 이미 시험관 아기 등의 기술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의 탄생인 생식을 계획 및 제어 가능하게 만든 것이 현실인 이상, 그런 추세의 연장선상에서 냉동 난자를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기사를 읽으며 나는 마음이 매우 불편하다. 냉동 난자 시술은 여성이 아이를 낳고 출산하는 고귀한 일이 사회에서의 경쟁력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인식되는 세상에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다시 확인시키기 때문이다. 또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가임 능력이 매우 중요하고 이것은 보험 형태인 냉동 난자라는 기술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연장되어야만 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미 늦었지만 할 수만 있다면 생명의 출생이 인간이 계획하고 제어해야 하는 일이 아닌 삼신할머니가 점지해 주신다고 믿었던 생명을 선물로 받아들이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 벚꽃만 담기엔 아쉽더라

    벚꽃만 담기엔 아쉽더라

    옛 진해(경남 창원)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건물들은 하나같이 역사가 100년을 헤아린다. 여기엔 까닭이 있다. 진해는 1908년 창원부에 통합된 뒤 일제강점기인 1912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때 이름도 웅천현에서 진해로 바뀌었다. 진해우체국, 일제 해군병원장 관사 등 현재 진해의 명소로 꼽히는 건축물들은 대부분 이때 세워진 것들이다. 벚나무는 다소 다르다. 일제가 도시를 만들 때 심은 왕벚은 광복 뒤 대부분 베어졌다. 그러다 왕벚의 원산지가 제주도라는 게 밝혀지면서 1976년부터 다시 심기 시작했다. 현재 수량은 대략 39만 그루에 이른다. 4월의 창원은 단연 벚꽃이 ‘갑’이다. 한데 꽃놀이도 좋지만, 벚꽃 아래 잠든 근대사도 살펴 보는 건 어떨까. 진해 구도심의 ‘팔거리’는 ‘과거로 난 창’이다. 잔디가 심어진 원형의 공간을 중심으로 찻길 여덟 개가 방사형으로 뻗어 나간다. 현지에선 흔히 ‘중원로터리’라고 부른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로터리가 위(북원로터리)와 아래(남원로터리)에 하나씩 더 있다. 자세히 보면 ‘팔거리’는 일본 군기인 욱일기(旭日旗)를 닮았다. 태양 주위로 16개의 햇살이 퍼지는 문양이 일반적이지만, 8개나 12개 등으로 그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일제가 이 일대를 인위적으로 조성했다는 설이 생겼다. 여기에 여좌천이 덧대지며 설은 사실처럼 굳어진다. 여좌천은 곧다. 일직선이다. 원래 이리 굽고 저리 휘며 흘러가던 것을 일제가 다림질하듯 쫙 펴놨다. 이게 깃대다. 여좌천과 팔거리를 합치면 깃대 끝자락에서 욱일기가 휘날리는 모습이 완성된다. 팔거리 뒤편의 제황산 진해탑에 올라 보면 이 설이 상당히 그럴싸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진해탑이 있는 제황산 공원은 풍경 전망대다. ‘1년 계단’으로 부르는 365개의 계단이나,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내린다. 편도 2000원. 진해탑 현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다고 한다. 설은 설을 낳는다. 1952년, 북원로터리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졌다. 주민들은 이 충무공 동상을 통해 일제의 기운을 누르겠다는 뜻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남원로터리에 세워진 김구 선생의 친필 시비도 이와 비슷하다. 이 모두가 ‘소설’이 아니라면, 우리는 여태 일제와 치열하게 격돌하고 있는 셈이다. 팔거리 일대엔 근대문화유산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른바 ‘뾰족집’이라고 불리는 중국풍의 팔각누각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지어졌다. 이 누각의 건너편에는 1956년 문을 연 중국집 ‘원해루’가 있다. 화교 1세대가 운영하는 집이다. 대만의 장제스 총통이 다녀갔고, 영화 ‘장군의 아들’의 촬영장소로 쓰였을 만큼 명소다. 원해루에서 여좌천 방향으로 두 블록 위에는 1955년 문을 연 ‘흑백다방’이 있다. 지금은 다방 영업은 하지 않고, 연주회 등을 여는 ‘문화공간’으로 변했다. 로터리 건너편엔 진해우체국이 남아 있다. 1912년 세워져 2000년까지 우편 업무를 취급하던 러시아식 건물이다. 같은 해에 지어진 일제 해군병원장 관사(현 선학곰탕)와 일제 장옥(長屋·나가야)거리 등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옛 마산 쪽에선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마을을 가볼 만하다. 성호동 달동네의 452m 골목길을 벽화로 다듬었다. 좁디좁은 골목이지만 어디서나 마산항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오션 뷰’다. 벽화마을 아래엔 옛 임항선(臨港線) 철길이 남아 있다. 진해구 소사동으로 넘어가면 시인 김달진의 생가와 문학관을 만난다. 생가 뒤편은 ‘김씨박물관’이다. ‘고물 수집가’를 자처하는 김현철(61)씨가 사비를 털어 조성한 공간이다. 이 골목, 참 희한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1960, 70년대 언저리로 되돌아간 듯한 풍경이다. 골목에 들면 ‘예술사진관’ ‘부산 라듸오’ 등 옛 간판을 내건 낡은 건물이 이방인의 시선을 붙든다. ‘예술사진관’엔 빛 바랜 사진들과 고물 카메라 등이, ‘부산 라듸오’에는 옛 라디오들이 진열돼 있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구식 영화포스터가 나붙은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김씨박물관’이다. ‘박물관’이라고 하기엔 다소 옹색한 규모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생산된 온갖 ‘고물’들이 어지러이 전시돼 있다. 골목 건너는 ‘꽁트’라는 이름의 커피숍이다. 옛 가수들의 낡은 레코드판을 보며 쉬어가기 맞춤하다. 집 뜨락에는 옛 만화방도 있다. 창원해양공원은 창원의 새 랜드마크로 떠오르는 곳이다. 작은 섬 음지도에 연륙교를 놓고, 테마파크로 조성했다. 소박한 명동포구와 바벨탑처럼 치솟은 136m짜리 솔라타워가 SF영화 같은 풍경을 펼쳐낸다. 솔라타워에 오르면 사방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전망대 바닥 일부엔 투명유리를 깔아 모골이 송연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했다. 바닷속 생태계를 전시한 해양생물테마파크, 퇴역함(강원함)을 활용한 군함전시관 등 주변 볼거리도 쏠쏠하다. 해양공원 뒤는 우도다. 보행자 전용 보도교를 통해 해양공원과 연결돼 있다. 바다 위를 자박자박 걷는 맛이 각별하다. 우도는 작다. 30분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해양공원 옆 동섬은 초등학교 축구장만 한 크기의 무인도다. 썰물 때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진해 군항제는 10일까지 옛 진해 곳곳에서 열린다. 행사 기간 동안 여좌천과 안민고개, 중원로터리 등 벚꽃 명소에서 차량 전면통제와 부분 통제가 반복된다. 홈페이지(gunhang.changwon.go.kr)에서 미리 확인하고 가야 낭패를 피할 수 있다. 군항제 기간엔 진해해군기지사령부와 해군사관학교 등이 문을 활짝 연다. 누구라도 들어가 아름드리 벚나무들을 감상할 수 있으니 방문지 목록 가장 윗줄에 올려 두길 권한다. 글 사진 창원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가자면 중부내륙고속도로 내서분기점까지 간 뒤, 남해고속도로 제1지선으로 갈아타고 서마산 나들목으로 나와 진해 방면으로 좌회전, 어린교 오거리에서 다시 좌회전해 2번 국도를 타고 가면 진해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동마산 나들목으로 나와도 된다. KTX는 창원역, 창원중앙역, 마산역에서 각각 선다. →맛집 : 마산합포구 오동동에 길 하나 사이로 ‘아귀찜거리’와 복 요리집들이 늘어선 ‘복거리’가 조성돼 있다. 아귀찜은 1960년대 오동동에서 갯장어식당을 하던 ‘혹부리할머니’가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옛날우정아구찜(223-3740), 오동동진짜초가집원조아구찜(246-0427), 마산아구찜(222-8916) 등이 이름났다. 복거리엔 전문 복요리집만 20개 정도 몰려 있다. 남성식당(246-1856), 고성복집(221-5848), 광포복집(242-3308) 등이 알려졌다. 애주가라면 ‘통술거리’를 찾아도 좋겠다. 통술은 싱싱하고 푸짐한 각종 해물 안주가 한 상 통째 나오는 술상을 말한다.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맛있는 안주들이 계속 나온다. 안주와 맥주 3병이 기본. 업소마다 다르지만 보통 4만원쯤 받는다. 1970년대엔 오동동과 합성동 골목이 주류였지만 지금은 신마산 쪽에 통술거리가 생겨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수림(223-1569), 강림식당(245-2710), 석민통술(243-5155) 등이 알려졌다. 남성동 수협 어판장 일대엔 장어거리가 조성돼 있다. 운치 있는 마산항 야경은 보너스다. 장어국수도 별미다. 마산장어구이(242-0992), 신포장어(221-3630), 합포장어구이(224-5206) 등이 이름났다. 부림시장 먹자골목은 6.25떡볶이, 비빔당면 등을 저렴한 가격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창동사거리 인근에 있다. 콩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만든 ‘진해콩’은 100년을 이어온 과자다. 진해가 막 조성되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벚꽃빵은 벚꽃 진액을 섞어 만든 빵이다. 한 입 베어 물면 희미한 벚꽃 향이 입 안에 맴돈다. →잘 곳 : 호텔 사보이(247-4455)는 한국관광공사의 호텔 체인인 베니키아 가맹점이다. 가족들이 묵어도 좋을 만큼 깔끔하고 저렴하다. 7만~10만원 선. 팔용산 가기 전 마산 수출자유지역공단 근처에 있다. 온천욕을 겸하고 싶다면 마금산 근처 북면온천 단지를 찾으면 된다. 다만 관광지가 몰린 마산합포구 등과 떨어져 있어 오가는 데 시간이 적잖이 소요될 수 있다. 시내에선 돝섬유람선터미널 주변에 깔끔한 모텔이 많다.
  • [단독] 교황 문화재 복원 세계적 명성 日화지 대신 한국 한지 쓴다

    [단독] 교황 문화재 복원 세계적 명성 日화지 대신 한국 한지 쓴다

    문화재 복원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던 일본 화지(和紙)를 제치고 한국의 한지를 이용한 문화재 복원 사업이 처음으로 이탈리아에서 실시된다고 외교부가 2일 밝혔다. ●바티칸 접견실에서 외빈 맞을 때 사용 복원 사업은 오는 27일부터 이탈리아 밀라노 인근 베르가모에 있는 교황 요한 23세 박물관에 소장된 희귀 지구본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교황 요한 23세는 인자한 성품으로 1963년 교황으로는 처음으로 타임지 표지 모델이 됐다. 2000년 성인으로 추대됐다. 지구본은 그가 교황 재임 시절 바티칸 접견실에 두고 외빈 접견 때마다 활용하던 애장품으로 둘레가 4m가 넘는다. 1960년대 가톨릭 수도회인 신언회가 교황 요한 23세에게 선물한 것으로, 분단 이전 한반도 모습이 담겨 있다. 또 당시 세계 가톨릭 교구 분포도가 상세히 표시돼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문화재 복원 전문가 넬라 포치가 주도하는 이번 사업은 일본이 장악하고 있는 문화재 복원 종이 시장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유럽의 문화재 복원에 사용되는 종이는 일본의 화지가 장악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한지를 활용한 공공외교 강화를 모색한 외교부는 한지의 내구성이 화지보다 뛰어나다는 점을 전문가를 중심으로 설득해 성과를 거뒀다. 실제로 한지의 경우 내구성이 8000년에 달하는 반면 화지는 3000년 정도인 것으로 이탈리아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또 화지에 비해 원본 종이와 잘 맞고 누렇게 번지는 현상이 적다는 장점이 있는 데다 가격 경쟁력도 뛰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화지에 비해 황색 번짐 현상 적고 가격도 싸 시장 규모만도 연간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문화재 복원 종이 시장에 한지가 처음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향후 본격적인 진출이 이뤄지면 연간 200만~300만 유로의 수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외교부는 기대했다. 외교부는 사상 첫 한지의 문화재 복원을 계기로 이탈리아 외에 문화유산이 많은 영국과 스페인, 프랑스 등에도 한지 진출을 꾀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는 다음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문화재 복원용 종이 관련 국제대회에서 한지에 대한 발표가 이뤄진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국내 한지 기업이 이탈리아 최대 문화재 복원용품 기업과 한지 수출 계약을 최초로 체결하기도 했다. 장재복 주밀라노 총영사는 “일본이 독점한 문화재 복원 종이 시장에 한지가 처음으로 자리잡게 된 것에 의미가 있다”면서 “다만 우리 한지 제조 기업이 일본에 비해 너무 적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원유빈 인턴기자 jwyb12@seoul.co.kr
  • [新국토기행] 울산 울주

    [新국토기행] 울산 울주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울산 간절곶. 울산 울주는 선사시대의 숨결을 간직한 반구대 암각화를 비롯해 영남알프스, 외고산 옹기마을, 등억온천, 스포츠파크, 온산국가산업단지 등 문화유적·산·바다·산업이 공존하는 곳이다. 고래 신화부터 첨단 요트까지 접할 수 있는 울주는 산악등반과 해양 레포츠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관광지다. 언양·봉계 한우 불고기와 싱싱한 활어회가 전국 미식가의 입맛을 유혹하는 울산 울주. 볼거리 ●세계 최고 신석기시대 문화유산 ‘반구대 암각화’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는 신석기시대의 사냥과 어로 등 생활상을 바위에 새긴 그림이다. 세계 최고의 신석기시대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아 1995년 6월 23일 국보로 지정됐다. 댐이 만들어진 이후 평소 수면 아래 잠겨 있지만, 물이 마르면 모습을 드러낸다. 바위 면에는 고래·개·늑대·호랑이·사슴·멧돼지·곰·토끼·여우·거북·물고기·사람 등의 형상과 고래잡이 모습, 배와 어부의 모습, 사냥하는 광경 등이 새겨져 있다. 당시 반구대 지역은 사냥과 어로의 풍요를 빌고, 그들에 대한 위령을 기원하는 주술과 제의를 하던 성스러운 장소로 추정된다. 반구대 암각화는 신석기시대 만들어졌다는 설과 청동기시대 작품이란 설 등이 있다. 암각화는 표현 양식과 내용 등을 고려할 때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 인류 최초의 포경(고래잡이) 유적으로 평가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암각화로 가는 길목이나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트레킹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빼어난 절경 때문에 드라마 ‘메이퀸’이 촬영되기도 했다. 반구대 암각화와 인근 천전리 각석의 실물 모형을 전시한 암각화 박물관도 들어서 시민과 관광객을 맞고 있다. 인근의 천전리 각석도 볼만하다. 청동기시대 조각인 마름모조각, 중첩동그라미, 우렁무늬, 물결무늬 등 기하학적 문양을 만날 수 있다. 천전리 일대에서는 200여개의 공룡발자국 화석도 발견됐다. ●수십만명 발길 붙잡는 산악관광 1번지 ‘영남알프스’ 영남알프스는 신불산, 가지산, 운문산, 천황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7개의 봉우리로 연결된 산악지역이다. 신불산 억새평원과 별빛야영장 등을 찾는 관광객들이 해마다 수십만명에 이른다. KTX 개통 이후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하늘, 억새, 운무, 전망, 경관 등을 테마로 한 5개 코스로 개발된 억새길은 전국 최고의 트레킹 코스다. 특히 하늘억새길(29.7㎞)은 고산평원에 형성된 은빛 억새, 기암괴석, 희귀 동식물 습지구역, 고산지 철쭉군락 등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등산객들의 피로를 씻어 주는 파래소 폭포는 영남알프스의 오아시스로 통한다. 15m 높이에서 떨어지는 시원한 폭포수와 하얀 물보라, 산 그림자 등이 일품이다. 소의 둘레가 100m나 돼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해발 1068m의 간월산에서 발원해 등억리를 지나는 작괘천. 울산 12경의 하나로 사시사철 맑고 깨끗한 물을 쉼 없이 뿜어낸다. 넓은 면적의 바위가 오랜 세월의 물살에 깎여 움푹 파인 형상이 마치 술잔을 걸어 둔 것과 같다(酌掛)고 해 작괘천으로 불린다. 고려 충신 정몽주의 글 읽던 자리도 있다. 인근에는 수온 29~33도의 알칼리성 중조천인 등억온천(22만평)이 있다. 온천수는 마실 수 있는 광천수로서도 손색이 없고, 피부염과 신경통, 소화기 질환, 기관지염, 고혈압, 피부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에는 등억온천지구와 신불산 정상을 연결하는 케이블카(로프웨이) 설치사업도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울산시는 스위스, 중국, 뉴질랜드, 일본 등과도 산악관광 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석남사’ 등 신라 시대 유적지 숨결 석남사는 신라 헌덕왕 16년(824년) 도의국사가 창건했다. 1957년 비구니 인홍 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이후 현재에 이르렀다. 비구니들을 위한 수도장, 대웅전, 극락전 등 30여동의 건물로 이뤄졌고, 대한 불교 조계종 산하 80여개의 선원 중 문경 봉암사와 더불어 종립 특별 선원으로 알려졌다. 석남사는 한겨울 눈이 내려 사찰을 하얗게 만들 때 가지산과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울산 시민들에게는 늘 열려 있는 휴식처 역할을 한다. 또 치산서원지는 신라 충신 박제상과 그의 부인을 기리기 위한 사당 터였다. 박제상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후예로 내물왕 8년(363) 양주 충효동에서 태어났다. 박제상은 눌지왕 즉위 후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 있던 두 왕제를 구출하려고 먼저 고구려에 가 있던 복호를 구출해 귀국시켰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미사흔도 구출했다. 박제상의 부인은 두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일본으로 간 남편을 기다리다 죽었다고 알려졌다. 부인의 몸은 돌로 변해 망부석이 되고, 영혼이 새가 돼 날아가 숨은 곳을 은을암이라 부른다. ●전국 최고·최초 일출 명소 ‘간절곶’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일출 명소 간절곶. 매년 해맞이 행사를 비롯해 연간 수십만명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과 동해안의 아름다운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2006년 12월 높이 5m, 무게 7t 규모로 세워진 소망우체통은 간절곶 명물로 자리를 잡았다. 소망우체통은 관광객이 내부에 비치된 엽서를 작성하면 이를 수취인에게 보낼 수 있어 한 해의 소망 메시지를 기록하는 등 매력적인 추억을 함께 전할 수 있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 간절곶에는 2010년 10월 방영한 드라마 ‘욕망의 불꽃’과 2012년 8월 방영한 ‘메이퀸’의 드라마 세트가 있다. 현재 드라마 세트장은 2012년 7월부터 레스토랑과 포토스튜디오로 사용되고 있다. 인근에는 울산해양박물관과 서생포왜성, 간절곶해올제(특산품 판매장), 진하해수욕장 등이 있다. 진하해수욕장은 물이 맑고 깨끗해 해마다 피서객들이 몰려든다. 요트와 윈드서핑, 바나나보트 등 다양한 해양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해수욕장 옆에는 거북등 모양의 작은 섬 명선도가 있다. 2~4월에는 명선도 바닷길이 열려 일명 ‘모세의 기적’도 체험할 수 있다. 체험·먹거리 ●요트 등 해양 레포츠·스포츠 요람 백사장이 넓은 진하해수욕장 일대는 해양 스포츠·레포츠의 요람으로 불린다. 진하해수욕장은 파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1㎞ 구간(너비 40m)에 달하는 넓은 백사장이 조성됐다. 맑고 깨끗한 수질에 바람도 불어 윈드서핑, 요트, 바나나보트, 카이트서핑, 제트스키 등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전국해양스포츠제전을 비롯해 진하 국제프로윈드서핑선수협의회(PWA) 세계윈드서핑대회, 세계여자비치발리볼대회, 바다핀수영대회, 해양스포츠체험교실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다. 해수욕장 인근에는 간절곶 스포츠파크가 조성돼 인기다. 주경기장은 천연 잔디 축구장 1개(7140㎡)와 400m 8레인, 투포환, 투해머, 투원반, 멀리·세단뛰기, 장대높이뛰기 등 육상경기를 치를 수 있는 종합운동장이다. 본부석 좌우와 맞은편에는 총 3000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스탠드가 설치돼 각종 규모의 체육대회와 주민 단합대회 등을 개최하기에 적합하다. ●살아 숨 쉬는 그릇 ‘옹기’ 외고산 옹기마을은 국내 최대의 민속 옹기마을이다. 외고산(고산리) 일대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30여 가구가 근근이 살아가는 어려운 마을이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인근 부산으로 몰려든 피난민들이 옹기를 사용하면서 옹기 수요도 점차 늘어났다. 이 시기 옹기를 배우려는 사람과 각지의 도공들이 몰려와 마을은 급속히 성장했다. 이때 외고산 옹기는 남창역을 통해 서울 수도권으로 보내지거나 미국 등 해외에도 많이 수출됐다. 마을이 번창하자 1970년대 고산리에서 외고산으로 분동해 주민 수도 200여 가구가 넘었다. 그 후 산업화로 플라스틱 용기가 생기면서 옹기 수요는 점차 줄어들었다. 이 마을 창시자인 허덕만(옹기장인)씨가 작고한 뒤 제자들이 공장을 일으켜 현재 한국 최고의 옹기마을을 만들었다. ●육즙 풍부한 언양 한우불고기 언양 한우불고기는 60년 전통을 자랑한다. 언양 한우불고기는 일반 양념 불고기(일명 육수 불고기)와 달리 양념을 조금만 사용해 고기 고유의 맛을 최대한 살린 게 특징이다. 언양 특산물인 소고기를 얇게 썰어 양념한 뒤 석쇠에 구워 먹는다. 일반 양념 불고기와 달리 양념 맛이 적은 반면, 특유의 육질과 고소함이 느껴진다. 얇게 썰어 양념한 고기는 불판에 굽지 않고 석쇠에 바로 굽는다. 이런 점으로 보면 얇게 저며 잔칼질로 자근자근 연하게 다진 뒤 양념에 재워 굽는 너비아니에서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언양 한우불고기는 칼로 저미는 대신 얇게 썬 뒤 최소의 양념만을 사용해 고기 자체의 맛을 살린다. 그러려면 질 좋은 고기를 사용해야 한다. 언양은 예부터 한우로 유명한 곳이다. 울산의 젖줄인 태화강 상류의 깨끗한 물이 있고 풍부하고 드넓은 초지가 많아 소를 키우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이런 영향으로 언양에는 큰 우시장이 생겨났고 도축장과 푸줏간도 들어섰다. 언양 한우불고기가 유명해진 것은 1960년대부터다. 1960년대 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했던 근로자들이 언양의 고기 맛을 알리면서 전국적으로 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한우불고기가 유명해지자 고깃집이 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속속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금 언양읍 불고기특구(불고기단지)에는 30여개의 전문 음식점이 있다. ●산채비빔밥과 싱싱한 활어 영남알프스 일대는 신불산과 가지산에서 직접 캔 나물들로 만든 산채비빔밥이 유명하다. 시금치, 콩나물, 고사리, 도라지, 버섯, 애호박 등 각종 나물에 고추장을 넣어 만든 영양만점의 음식이다. 나물 아래에 참기름을 따로 뿌려 비빔밥의 고소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또 동해의 깊은 수심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을 그 자리에서 먹는 활어회 맛은 일품이다. 겨울부터 초봄까지 대게도 많이 잡혀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서생면 간절곶 일대는 가족과 연인들의 맛 여행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자연산 활어회는 다른 곳에서 흔하게 접할 수 없는 풍경이다. 간절곶 일대는 믿고 먹어도 좋을 맛집이 많다. 어민들이 직접 잡아 내놓은 자연산 활어회는 씹는 맛이 일품이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코오롱그룹] 싸고 질긴 나일론 1963년 첫 생산… 한국 섬유역사 산증인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코오롱그룹] 싸고 질긴 나일론 1963년 첫 생산… 한국 섬유역사 산증인

    코오롱그룹의 역사는 대한민국 섬유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4년 12월 고 이동찬 명예회장이 설립한 개명상사는 당시 생소한 나일론사를 국내에 처음으로 들여왔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나일론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터라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양말은 물론 의류까지 나일론의 수요가 확대되면서 사업이 번창했다. 코오롱(KOLON) 이름도 코리아+나일론(Korea+Nylon)의 합성어다. 한국 기업 최초의 영어 사명으로 ‘KORLON’으로 표기하다 1968년 ‘KOLON’으로 변경됐다. 고 이원만 창업주와 고 이동찬 명예회장은 1957년 4월 12일 한국 최초의 나일론 제조회사인 한국나이롱주식회사(현 코오롱인더스트리㈜)를 설립했다. 스트레치 나일론 생산쯤은 우리 손으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과감히 도전장을 던진다는 각오로 설립한 회사다. 같은 해 11월 스트레치 나일론 공장 건립의 첫 삽을 떴고 이듬해인 1958년 10월 총건평 1500평의 공장을 준공했다. 싸고 질긴 합성섬유를 접한 소비자들은 말 그대로 열광했다. 그 덕분에 1963년에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생산한 일일 생산 2.5t 규모의 나일론원사제조 공장은 4년 만인 1967년 4배가 성장해 하루 10t의 나일론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도약했다. 초기 코오롱의 전성기이기도 하다. 1960년대 섬유제품의 수출은 주로 수입된 섬유를 가공해 수출하는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코오롱은 섬유산업을 수출산업으로 만들기 위해선 저렴한 가격에 원사를 확보하는 일이 필수라고 생각해 폴리에스터 원사 생산에 돌입했다. 결국 코오롱은 이를 기반으로 1973년 타이어코드 사업에도 진출했다. 등산이라는 개념조차 모호했던 1970년대, 코오롱상사는 코오롱스포츠 브랜드를 출시해 등산의류와 용품 등을 선보였다. 창립 20주년을 맞으면서 코오롱은 또 한번의 도전을 시작했다. 기존 섬유사업 외 필름, 비디오테이프, 메디컬사업 등 비섬유부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1988년에는 정보기술(IT) 소재필름을, 1991년에는 냉동·냉장식품 포장에 사용되는 나일론 필름을 국내 최초로 생산했다. 연산 1000만권 규모의 비디오테이프 공장을 준공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코오롱은 1993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머리카락 굵기의 1000~1만분의1에 불과한 초극세사를 이용하는 첨단 섬유소재 샤무드를 생산했다. 2002년에는 액정표시장치용 광학산 필름과 프리즘 필름을, 2005년에는 국내 최초로 강철보다 강한 섬유 헤라크론(아라미드) 양산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코오롱의 포트폴리오는 첨단부품과 소재산업 중심으로 재편됐다. 계열사 간 합병과 사업부문의 분할도 진행했다. 모기업인 ㈜코오롱을 중심으로 2007년 코오롱유화㈜의 합병, 2008년 원사사업부문 물적 분할, 지난해 8월 FnC코오롱㈜와의 합병법인을 출범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코오롱그룹은 또 2009년 12월 31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코오롱은 또 한번 변신 중이다. 화학섬유 제조와 건설, 무역에 주력하던 사업 영역을 하이테크 산업 및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으로 확대하고 있다. 바이오 신약과 웨어러블 기술이 대표적 사례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세계 최초 퇴행성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인 ‘티슈진-C’를 국내에서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며, 미국에서도 임상 3상을 준비하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유기태양전지 제조 분야에 주력한다. 유기태양전지는 유기물 기반으로 제작된 태양전지로 기존 무기태양전지에 비해 가볍고 유연하며 형태 및 색상 구현이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태양전지는 실외가 아닌 실내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의류, 포장지, 벽지, 소형 전자기기 등 사용 범위도 다양하다. 코오롱글로텍㈜은 국내 최초로 섬유에 전자회로를 인쇄해 전류를 흐르게 한 전자섬유를 상용화했다. 히텍스(HeaTex)란 이름의 섬유는 전류 및 정보를 전송할 수 있다. 전류가 흐를 수 없다고 인식됐던 섬유에 전류를 흐르게 함으로써 웨어러블 컴퓨터의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전기로 열을 내는 아웃도어 의류에 적용 중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13년 수소연료전지 차량의 핵심 부품인 연료전지용 수분제어장치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성과는 연구에 대한 투자가 바탕이 됐다. 코오롱은 미래신수종 산업 발굴과 인재 육성을 위해 2011년 8월 대전 카이스트(KAIST) 내에 ‘코오롱-KAIST 라이프스타일 이노베이션 센터’를 열었다. 아울러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약 2464억원을 투자해 그룹 차원의 연구·개발(R&D)센터인 ‘미래기술원’도 신규 건립할 계획이다. 2017년 8월 완공 예정인 이 시설은 향후 100년을 책임질 기업의 싱크탱크이기도 하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박문각 남부 고시학원과 함께하는 실전강좌] (3)한국사

    [박문각 남부 고시학원과 함께하는 실전강좌] (3)한국사

    서울신문은 가장 많은 수험생이 응시하는 7, 9급 국가직 및 지방직 공무원시험에 대비해 국어·영어·한국사 등 시험 필수과목에 대한 실전강좌 시리즈를 새롭게 마련했다. 공무원시험 전문학원인 박문각 남부고시학원 강사들의 도움을 받아 과목별 주요 문제와 해설을 싣는다. 한국사는 과거 7차 교과과정 범위 안에서 출제되고 있다. 시기별로는 전근대사 70%, 근·현대사 30%의 비중으로, 분야별로는 정치 50%, 경제·사회 30%, 문화 20%의 비중으로 출제되고 있다. 우선 최근 공무원시험에서 어떻게 출제되는지 파악해 공부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1960년대 전반 남북한에서 각기 조사 발굴되어 한국사에서 구석기 시대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 유적들을 바르게 짝지은 것은? (2014년 국가직 9급) <남한> <북한> ①제주 빌레못 유적,상원 검은모루 유적 ②공주 석장리 유적,웅기 굴포리 유적 ③단양 상시리 유적,덕천 승리산 유적 ④연천 전곡리 유적,평양 만달리 유적 (정답) ② (해설) 선사시대 및 국가 형성, 구석기 유적지 파악 공주 석장리 유적은 1964년에, 웅기 굴포리 유적은 1963년에 발굴됐다. 2014년 많은 수험생이 당황했던 문제였다. 2014년이 공주 석장리 발견 50년이 되는 해로 시기적으로 주목되는 점이 있었던 점을 고려해야 하는 문제다. 공무원시험에서 선사시대와 관련해 이러한 유형의 문제는 자주 출제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사 시대를 공부할 때는 발견연대까지 파악하면서 공부할 필요는 없다. (문제)(가), (나) 시대의 사회상과 유적이 바르게 연결된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2014년 국가직 7급) (가) 동물의 뼈나 뿔로 만든 뼈 도구와 뗀석기를 가지고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생활하였다. (나) 고인돌이 만들어지고 계급이 형성되는 한편 군장국가가 등장하였다. <보기> ㄱ. (가) - 동굴 유적지로 덕천 승리산, 제천 점말, 청원 두루봉이 있다. ㄴ. (나) - 금속을 다루는 전문 장인이 나타나고 사유 재산제도가 발달하였다. ㄷ. (가) - 반달 돌칼과 구멍 뚫린 돌자귀를 만들어 농경에 활용하였다. ㄹ. (나) - 서울 암사동과 황해도 봉산 지탑리가 주요 유적지이다. ① ㄱ, ㄴ ② ㄱ, ㄷ ③ ㄴ, ㄹ ④ ㄷ, ㄹ (정답)① (해설)선사시대 특징 이해 공무원시험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선사(先史)는 역사 이전의 시대, 즉 문자 이전의 시대로 이 시기를 물어보는 문제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의 주요 유적과 유물을 물어보는 식으로 출제된다. 이 단원을 공부할 때는 각 시대의 주요 특징과 주요 유적, 유물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 구석기, (나) 청동기 ㄷ - 청동기, ㄹ- 서울 암사동과 황해도 봉산 지탑리는 신석기 유적지. (문제)(나)는 (가)의 결과이자, (다)의 원인이 되었다. (나)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2014년 사회복지직) (가)위만 왕조는 철기 문화를 기반으로 자신의 세력을 점차 확대하였다. (나) (다)한 무제의 대규모 무력 침략을 받아 마침내 왕검성이 함락되었다. ① 부왕, 준왕과 같은 강력한 왕이 등장하여 왕위를 세습하였다. ② 위만은 준왕의 신임을 얻어 서쪽 변경을 수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③ 고조선은 요령 지방을 중심으로 성장하여 점차 한반도까지 발전하였다. ④ 고조선은 중국 대륙과 한반도 남부의 직접 교역을 막아 중계무역의 이익을 독점하였다. (정답)④ (해설)고조선 및 초기 국가, 위만 조선 발전과정 이해 (가) 위만 조선 건립(기원전 194) (다) 고조선 멸망(기원전 104) ① ② ③은 (가) 이전의 상황이다. 선우빈 박문각 남부고시학원 강사
  • [곽태헌 칼럼] 이젠 운 좋은 ‘586세대’가 양보해야 한다

    [곽태헌 칼럼] 이젠 운 좋은 ‘586세대’가 양보해야 한다

    1990년대 들어 ‘386세대’라는 조어(造語)가 나왔다. 30대, 대학 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을 종합한 게 ‘386세대’다. 어원(語源)은 당시 성능이 좋았던 386급 컴퓨터다. 종전의 286급 컴퓨터에 비해 기능이 훨씬 뛰어났던 386급 컴퓨터와 같은 자랑할 만한 좋은 별칭이다. ‘386세대’가 제대로 업그레이드됐는지를 논할 생각은 없다. 세월이 지나면서 30대가 40대가 되고, 50대가 됐다. ‘486세대’를 거쳐 ‘586세대’가 되면서 요즘에는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86세대’로도 불린다. 기자도 여기에 포함되지만, 이 세대는 운이 참 좋다. 입시 지옥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쉽게 들어갔다. 1980년 7월30일 전두환 정권은 느닷없이 과외와 본고사를 없애고, 예비고사와 내신성적으로만 대학에 들어가는 내용의 ‘교육개혁안’을 내놓았다. 당시 모든 언론이 찍소리를 할 수 없었던 군사정권이었으니 가능했다. 대학 정원도 늘리고 여기에 덧붙여 졸업정원제라고 해서 30%를 더 뽑게 했다. 대학에 들어와서 데모하지 말고, 공부를 하도록 하려는 꼼수가 깔려 있었지만 어쨌든 입학의 문은 활짝 열린 셈이다. 1981학년도 4년제 대학 입학정원은 18만 7050명으로 전년보다 7만 350명 늘어났다. 졸업정원제 첫해인 그해에는 원서접수에 제한이 없어 허수(虛數) 지원이 많았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치러진 면접에는 한 곳만 선택해야 했으니, 서울대 법대를 비롯해 곳곳이 미달이었다. 1984년에는 30%를 더 뽑을 수 있도록 된 것을 대학 자율로 하도록 바뀌었고, 1988년에는 졸업정원제는 완전 폐지됐다. ‘86세대’는 직장도 골라서 갔다. 전두환 정권 시절의 3저(달러·유가·금리) 호황을 타고 이들이 졸업할 1980년대 말에는 취업도 쉬운 편이었다. 요즘 웬만한 기업의 경쟁률은 100대1이 넘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1980년대 말, 상경계 출신들은 투자금융·종합금융·리스·증권·투자신탁 등 당시 잘나가는 금융회사를 골라서 가기 바빴다. 상경계 출신들은 요즘 인기가 있는 시중은행은 안중에도 없었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져 여기저기서 구조조정을 했지만 입사 경력 10년을 넘지 않았던 ‘86세대’들은 이 위기도 비교적 수월하게 넘어갔다. 보통 기업에서는 고참 위주로 구조조정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운 좋은 ‘86세대’는 국회의원들의 도움까지 받았다. 재작년 국회 본회의에서는 직원이 300명 이상인 기업의 경우 2016년부터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내용의 법을 통과시켰다. 고비마다, 외부의 도움을 받으며 넘어가니,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다. 기업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보통 55~58세가 정년이던 곳에서는 1958~61년생도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이제는 ‘86세대’를 비롯한 기성세대들이 사랑하는 우리의 아들과 딸을 위해 양보할 때가 됐다. 요즘 20대는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이다, 과외다 하면서 힘들게 살아왔다. 부모 세대보다 입시를 위한 공부는 더 많이 힘들게 했지만,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훨씬 어려워졌다. 어렵게 들어간 학교를 졸업해도 갈 곳은 없다. 지난 2월 청년(15~29세) 실업률은 11.1%로 1999년 7월 이후 최고치였다. 취업하는 게 본인과 가족에 가장 큰 축복인 상황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일자리를 늘리는 것과는 정반대인 주문을 해왔다. 배당을 늘리라고 압박하고, 임금을 올리라고 압박한 게 최 부총리다. 배당을 늘리고 임금을 올리면 기업의 여윳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배당 압박을 할 게 아니라, 고용 압박을 해야 한다. 임금을 올리라고 할 게 아니라, 임금을 동결해서라도 채용을 늘리라고 압박하는 게 맞다. 정책에는 우선순위가 있는 법이다 정치권, 정부, 재벌을 믿을 수 없다면 기성세대들이라도 나서야 한다.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이고, 임금동결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희망을 잃어가는, 꿈을 잃어가고 있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해 기성세대가 양보해야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으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단군 이래 최고라는 지금 누리고 있는 물질적인 풍요를 우리의 아들, 딸이 더이상 누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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