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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국사건 1호 변호사’ 한승헌 재심 끝에 42년만에 반공법 ‘무죄’

    ‘시국사건 1호 변호사’ 한승헌 재심 끝에 42년만에 반공법 ‘무죄’

    이른바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고 김규남(1929∼1972) 전 의원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한승헌(83) 변호사가 재심을 통해 4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 변호사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시국사건 첫 변호를 맡아 ‘시국사건 1호 변호사’로 불리는 인권 변호사다.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부장 이헌숙)는 과거 박정희 정부 시절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한 변호사의 재심에서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이 유죄 근거로 본 한 변호사의 진술조서는 변호인 조력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작성해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한 변호사의 글 어디에서도 반공법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조서나 다른 모든 증거를 살펴봐도 공소사실을 인정할 아무런 내용이 없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한 변호사는 자신의 글에서 사형 집행을 당하는 사람을 애도했을 뿐 반공법을 폐지하라는 내용을 담지 않았고 암시하지도 않았다”면서 “북한의 선전에 동조한 글이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유럽 간첩단 사건’은 196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대표적 공안조작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1967년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김씨는 1969년 5월 1일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에 불법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김씨는 도쿄대 대학원 유학 시절 알게 된 박노수씨를 따라 유럽으로 건너가 동베를린·평양 등에서 박씨와 함께 이적 활동을 벌인 혐의로 기소됐다. 1969년 11월 1심은 대부분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박씨와 김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1970년 3월 열린 2심과 7월 열린 상고심에서도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 결과로 1972년 7월 김씨와 박씨에 대한 사형이 각각 집행됐다. 한 변호사는 1972년 9월호 ‘여성동아’에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처형된 김씨를 애도하는 ‘어떤 조사(弔辭)’라는 글을 발표하고, 1974년 12월 자신의 저서인 ‘위장시대의 증언’에 이 글을 넣어 반국가단체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 동조했다는 혐의(반공법 위반)로 구속기소됐다. 당시 1심은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고, 2심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했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한 변호사는 집행유예로 풀려날 때까지 9개월 동안 구치소에 수감됐으며 8년 동안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박씨와 김씨 등이 중앙정보우의 불법 연행과 강압적인 협박·고문·가혹행위 등으로 허위자백했다는 조사 결과를 2009년 발표했다. 이에 김씨의 유족들은 재심을 신청했다. 재심을 받아들인 서울고법은 2013년 10월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도 “원심이 무죄를 선고한 것은 정당하다”면서 2015년 2월 원심을 확정했다. 한 변호사도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한 변호사는 동백림 간첩단 사건, 김지하 시인의 ’오적‘ 필화사건 등을 변론하는 등의 활동으로 ‘시국사건 1호 변호사’로 불린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는 공범으로 몰려 투옥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8∼1999년 감사원장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을 역임했다. 문재인 대통령 대선 후보 시절에는 문 후보 선거 캠프의 통합정부자문위원단장으로도 활동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서울형 도시재생 공공 디벨로퍼가 이끈다] 장미꽃 만발한 묵2동… 외국인 몰리는 해방촌

    서울시가 2014년 이후 ‘근린형 도시재생’ 사업지로 택한 14곳은 모두 나름의 이야깃거리가 있는 지역들이다. 사업지의 주민들은 지역 자원을 활용해 마을을 특색 있는 공간으로 꾸며 가고 있다. 2015년 근린재생 시범사업지역으로 선정된 성동구 성수동은 수백 개의 수제화 공장과 카페, 공방, 주거지 등이 아울러진 이색적인 동네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부터 생긴 수제화 산업의 역사가 깊다. 주민 모임인 ‘성수도시재생주민협의체’와 성동구는 ‘수제화 1번지’로서 정체성을 살려 마을 구성원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도시재생 전략을 추진 중이다. 우선 소공인의 수제화 판매를 돕기 위해 지역 내 수제화 공동판매장을 열었다. 또 아직 흔적이 남아 있는 옛 기동차(1930~1960년대 운행했던 전차의 일종)길과 수제화 부속품 가게가 몰린 연무장길을 꾸며 수제화 판매 등이 이뤄지는 이색 공간으로 조성한다. 지하철 성수역사 안에는 수제화 관련 교육·체험과 판매 등이 가능한 복합 시설을 만든다. 구 관계자는 “추억을 찾아 관광객들이 성수동을 찾으면 지역 내 공방, 카페 등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산 아래 첫 마을’인 용산구 해방촌도 2015년 도시재생 선도 지역으로 선정됐다. 이곳은 아기자기한 카페와 공방, 책방, 낡은 주택, 재래시장(신흥시장) 등이 한데 어우러져 외국인 등이 많이 찾는 ‘핫플레이스’다. 1960~70년대에는 니트 공장이 몰려 있기도 했다. 해방촌 주민들은 신흥시장을 새로 단장해 아트마켓으로 만들고 경리단길~해방촌 테마가로~108계단~신흥시장~남산으로 연결되는 역사문화탐방로도 만든다. 또 ‘녹색마을’을 테마로 해방촌의 자투리땅과 골목길 등에 녹지도 조성한다. 지난해 2단계 도시재생사업지로 선정된 곳 중에는 묵2동 ‘장미마을’이 눈에 띈다. 매년 5월 서울 대표 봄축제인 ‘서울장미축제’가 열리는 이 마을 주민들은 1년 내 장미를 테마로 마을을 꾸며 볼 생각을 하다가 재생사업에 뛰어들었다. 각 가정의 베란다 창문 선반과 담장 등에 장미를 전시하고 중랑천 주변에 카페거리를 조성해 관광객을 모은다는 전략이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새영화> 밤의 대통령으로 불린 쌍둥이 갱스터…‘레전드 갱스터’ 예고편

    <새영화> 밤의 대통령으로 불린 쌍둥이 갱스터…‘레전드 갱스터’ 예고편

    영화 ‘레전드 갱스터: 크레이스 형제’ 메인 예고편이 공개됐다. ‘레전드 갱스터: 크레이스 형제’는 1960년대 영국을 지배한 역사상 가장 악명 높았던 어둠의 대통령 쌍둥이 형제가 ‘전설의 갱스터’가 되는 과정을 그린 범죄 액션 영화다. 레지 크레이와 로니 크레이는 쌍둥이 형제로 복싱 유망주에서 갱스터로 전향해 런던의 밤을 지배했다. 레지 크레이는 차분하고 치밀한 리더쉽을 발휘했으며 로니 크레이는 다혈질에 공격적인 성향이었다. 난폭함과 잔혹성, 무자비한 폭력성은 형제의 공통점이었다. 크레이스 형제는 60년대 런던의 지하세계를 주먹과 폭력으로 접수한 뒤 경찰, 법원 및 의회를 매수해 절대 권력을 누렸다. 쌍둥이 형제는 악명을 떨친 삶을 산 뒤, ‘전설의 갱스터’로 불리고 있다. 공개된 예고편을 통해 쌍둥이 형제의 암흑가 진출과 장악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복서에서 갱스터로 전향한 뒤 단박에 런던의 암흑가를 장악한 이들은 과연 어떤 위기를 맞게 될지 궁금케 한다. 한때 영국 밤의 대통령으로 불린 형제의 범죄 실화를 그린 액션 영화 ‘레전드 갱스터: 크레이스 형제’는 오는 6월 22일 개봉 예정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110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뻥 뚫린 저고도 방공망…낙후된 무기 체계 개념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뻥 뚫린 저고도 방공망…낙후된 무기 체계 개념

    한국의 저고도 방공망 수준은 80~90년대 기술 수준에 머물러 있다. 북한이 90년대부터 다양한 형태의 무인기를 개발해 무기화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은 2000년대 이후에도 ‘적 5대 위협’이라며 저고도 공중 위협 요소로 철 지난 AN-2 타령만 하고 있었다. 1990년대 이후 군사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에 따라 저고도 공중 위협의 유형이 소형 무인기와 순항 미사일 등으로까지 확대되었고, 주요 선진국들은 이러한 위협 양상에 맞춰 저고도 방공 무기들을 발전시켜 나갔지만, 한국군은 여기서 한참 뒤쳐졌다. 가령, 2000년대 이후 육군에 배치가 시작된 천마나 비호, 그리고 최근에 배치가 시작된 비호 복합과 같은 방공 무기들은 해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20~30년 이상 뒤쳐진 개념의 무기체계다.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주요 선진국의 대공방어체계는 소형 무인기와 순항 미사일은 물론 로켓탄과 포탄까지 탐지하고 요격할 수 있는 C-RAM(Counter Rocket Artillery and Mortar)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고, 최근에는 탄도 미사일 요격 능력까지 갖춘 저고도 방공체계까지도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군은 이러한 최신 발전 동향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2000년대 초반 배치된 천마 지대공 미사일은 프랑스에서 1980년대 후반에 개발된 크로탈(Crotale) 미사일의 개념과 기술을 받아들여 개발되었고, 1990년대 후반부터 배치된 비호 자주대공포는 1960년대 유행했던 개념의 무기체계다. 최근 이 비호의 성능 개량을 위해 신궁 휴대용 대공 미사일을 결합한 비호 복합의 배치가 시작되었는데, 이러한 무기는 미국과 이스라엘, 러시아 등지에서 80~90년대 등장했다가 교전거리 부족 등의 이유로 현재는 도태되고 있는 낙후된 개념의 무기다. 즉, 한국군이 21세기에 대당 100억 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배치하고 있는 저고도 방공체계는 해외 무기 시장에서 20~30년 전에 유행했던 낙후된 개념의 무기체계로 당시 주된 저고도 공중 위협이었던 헬기나 AN-2와 같은 대상에게만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뿐, 현대 전장의 주요 위협인 무인기나 순항 미사일에는 대응이 거의 불가능한 장비다. 아직도 갈 길은 첩첩산중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군 당국자들이 주요 선진국들의 최신 실전 교훈과 군사과학기술 발전 동향을 적극적으로 공부하지 않는 문제와 더불어 한국군 특유의 더딘 의사결정구조, 그리고 무리한 국산화 요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군의 고위 의사결정권자들과 실무자들은 해외 선진국들의 최신 무기체계 발전 동향에 대해 대단히 둔감한 편이다. 대신 북한이 어떤 신무기를 개발해 위협을 가하면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무기체계 소요를 제기하는 식으로 업무를 처리한다. 명백한 ‘위협’이 존재해야 소요제기에 대한 타당성 검토 통과가 용이하기 때문에 미래 위협에 대비한 무기체계 소요 제기가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위협이 존재해서 무기체계 소요가 결정되더라도 이러한 무기를 곧바로 손에 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예산 편성 과정에서 우선순위를 놓고 각 군과 부서별로 치열한 다툼을 거쳐야 하고, 여기서 살아남더라도 해당 무기를 해외에서 수입할 것인지, 국내 개발할 것인지 여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단에 적게는 수개월에서 많게는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실제로 해군의 해상작전헬기 2차 도입 사업의 경우 국외 도입과 국내 개발 여부를 판단하는 데만 3년이 걸렸다. 무기 획득이 국내 개발로 결정되면 개념연구에 1~2년, 사업자 선정에 1~2년, 체계 개발에 적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기술 부족으로 인해 개발이 지연되어 전력화 일정에 문제가 생기는 사례는 전차나 복합소총, 미사일과 어뢰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종종 발생했다. 이렇다보니 처음 소요를 제기했을 때는 비교적 최신 무기로 인정을 받을만한 무기체계였음에도 막상 배치가 시작될 무렵에는 전장 환경에 맞지 않는 뒤떨어진 무기가 되는 경우가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앞서 지적했던 천마나 비호와 같은 방공 무기도 그렇고, 차세대 경공격 헬기(LAH)나 소총 등이 그러한 사례다. 이번 무인기 사건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저고도 방공망의 사례만 해도 그렇다. 북한이 무인기 개발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이미 10년도 전의 일이다. 그런데 군은 지난 2014년 북한 무인기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이에 대한 이렇다 할 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야 저고도 방공망 강화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지만, 외국산 레이더 도입 대신 국산 레이더 개발을 고집했고, 지난 3년간 군의 저고도 방공망 전력은 거의 개선된 것이 없었다. 무인기에 대한 탐지 능력을 개선했다는 국산 차기 국지방공레이더는 2018년부터 2024년까지 매년 6~8대 정도가 군에 납품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 레이더가 실제로 소형 무인기를 효과적으로 탐지할 수 있는지 검증된 것이 없고, 개발 지연이나 결함 없이 전력화 일정대로 순탄하게 배치가 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즉, 당분간 대한민국의 저고도 방공망에는 계속 구멍이 뚫려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14년 북한 무인기 사건 직후 저고도 방공망 개선을 위해 해외에서 고성능 레이더를 즉각 도입했더라면 이번 무인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유럽과 이스라엘에는 소형 무인기는 물론 RC 항공기 수준의 작은 표적까지도 정확히 탐지하고 식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전에서 검증까지 마친 고성능 레이더들이 다수 개발되어 있다. 그러나 2014년 무인기 사건 이후 이스라엘을 방문해 신형 레이더를 살펴본 한국정부 관계자들은 장비 가격만 물어보고 별 반응 없이 돌아갔다고 한다. 외국에서 고성능 레이더가 도입되면 국내 개발 중인 신형 레이더 사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산 레이더의 개발과 배치가 완료되더라도 북한의 무인기 위협을 완벽히 차단할 수는 없을 것이며, 우리 군이 신형 레이더를 개발해 배치하는 10여 년의 시간 동안 북한은 또다시 새로운 위협을 개발해 한국군 방공망에 구멍을 내기 위한 방법을 찾을 것이다. 이것이 수십 년째 북한보다 수십 배 이상의 국방예산을 쏟아 부으면서도 북한의 위협에 항상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국방개혁은 바로 이러한 의식구조를 개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일우 군사 전문 칼럼니스트(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자치단체장 25시] 안양川 → 생태川 → 힐링川… 마침표 없는 ‘안양 부흥 사업’

    [자치단체장 25시] 안양川 → 생태川 → 힐링川… 마침표 없는 ‘안양 부흥 사업’

    맑은 물이 도심 한가운데를 굽이쳐 흐르는 안양천은 경기 안양의 자존심이자 상징이다. ‘안양천 명소화 사업’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기념하는 음악회가 지난달 쌍개울 문화광장에서 열렸다. 1980~90년대 수질 오염이 극심했던 안양천 제방에 자생식물을 심고 물의 흐름을 개선해 자연형 생태하천으로 복원했다. 자전거도로·산책로를 조성하고 쉼터를 만들어 시민들이 도심 속에서 자연을 만끽하며 마음껏 걷고 달릴 수 있는 최고의 힐링 공간이 됐다. 안양의 자존심을 되살려 새로운 부흥을 이끌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5대 핵심전략 사업 중 하나다.●어릴 때 쌍개울서 멱 감던 안양 토박이 어린 소년 시절 쌍개울에서 멱 감고, 콩 서리 하던 이필운(62) 안양시장. 그는 1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온 가족이 식사하며 담소할 수 있는 야영장을 안양천에 만들기 위한 구상을 하고 있다”며 아직 명소화 사업을 멈추지 않고 있다. “안양시가 산업화시대 중심지였던 그때는 희망과 미래가 있는 도시였습니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안양은 쇠퇴하는 도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안양의 현 상황을 ‘저수지 둑에 생긴 틈’으로 인식하는 민선 6기 이 시장은 “이 틈을 막아 새로운 도약을 해야 한다”며 안양 부흥의 의지를 내비쳤다. 1960년대부터 공장 연기가 하늘을 뒤덮던 안양은 2차산업의 급격한 성장으로 1970~80년대 수도권 남부의 대표적인 산업도시로 성장했다. 2004년까지만 해도 지방자치 경쟁력에서 전국 2위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잘나가던 도시였다. 그러나 굴뚝산업이 하나둘 떠나고 혁신도시로 공공기관 등이 이전함에 따라 인구 감소와 재정악화, 원도심 침체 등을 겪으며 쇠퇴하고 있다. “바로 눈에 띄지는 않지만 조금씩 쇠퇴해 가다 어느 순간 갑자기 도시는 황폐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 시장은 현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위한 전환점을 만들어야 했다. 많은 고심과 준비 끝에 지난해 2월 ‘제2 안양 부흥 비전’을 선포했다. 희망찬 비전도시, 따뜻한 인문도시, 힘 있는 경제도시, 여유로운 힐링도시를 목표로 특성화된 권역별 발전계획 수립, 사람 중심의 인문도시 조성, 안양천 명소화 사업 추진 등 5대 핵심 전략 사업을 내세웠다.●“경제·인문도시 조성이 중요한 핵심” 이 시장은 “힘 있는 경제도시와 인문도시 조성은 안양 부흥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며 “물질적 풍요뿐만 아니라 정신적 가치도 자못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2월 인문도시 조성을 위한 전담 조직과 조례를 만들었다. 대학과 교육지원청, 종교단체 등 11개 기관과 인문도시 사업을 위한 공동 협약을 체결해 여러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시장이 ‘안양 부흥’에 애착을 갖는 것은 안양 토박이로 고향에 대한 사랑과 지역민에 대한 봉사라는 소명 때문이다. 경찰공무원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고등학교 때 공무원이 되겠다는 결심을 한 이 시장은 “대학 입학 때도 공무원시험에 도움이 되는 학과(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선택했다”며 “어려운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공직 생활을 하겠다는 생각에 늘 공직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했다”고 밝혔다. ‘준비된 공무원’ 이 시장은 안양 부흥을 이끌기까지 정치적 위기와 좌절이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부시장으로 재직 중 2007년 안양시장 재보궐 선거에 갑작스레 출마, 당선돼 민선 4기 후반부를 이끌며 행정가에서 정치인으로 무난하게 자리잡은 이 시장. 차기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100층의 초고층 복합건물 건립 계획이 호화청사 논란에 휩싸였다. 이 시장은 “시민의 재산인 시청사 부지를 시민들에게 돌려주려는 계획”이었다며 호화청사로 치부된 당시 상황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초고층 복합건물 신축계획 무산과 민선 5기 시장선거 패배는 이 시장에게 4년간 자기 성찰과 숙고의 시간이 됐다. 그는 “시련과 좌절이 정치적 자산이 돼 현 안양 부흥을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고 담담하게 말했다.●원도심 개발 등 권역별 발전 진행 ‘착착’ 현재 안양 곳곳에 원도심 개발 등 권역별 발전과 맞춤형 도시 재생을 위한 여러 사업이 진행 중이다. 대표적 원도심인 만안구 박달동 일원 342만㎡에 실리콘밸리를 조성하는 것은 이 시장이 특히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대규모 도시개발사업의 하나다. 첨단산업단지와 친환경 주거단지가 들어서는 실리콘밸리를 조성, 4차 산업혁명의 선도 지역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총 12조 7000억원의 민간투자와 16만 5000명의 고용효과가 기대된다. 만안·동안구의 균형 발전을 이끌 개발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시는 1293억원을 들여 매입한 만안구의 옛 농림축산검역본부 5만 6309㎡를 행정·문화·비즈니스의 중심축으로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냉천지구(11만 9680㎡·안양5동) 주거환경개선 사업도 지난달 25일 경기도의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해 14년 만에 첫발을 내딛게 됐다. 노후된 단독·다가구 주택이 밀집한 1700여 가구의 냉천지구는 2019년 상반기 착공해 2022년 1900여 가구의 새 주거단지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오랫동안 이 시장이 전력을 쏟고 있는 안양시민의 숙원인 안양교도소 부지 문제도 2030년 안양도시계획이 최종 확정돼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안양교도소 부지는 지식산업과 문화여가, 주거 등 복합용지로 변경돼 개발 사업이 본격 추진될 계획이다. 청년 실업이 사회문제로 고착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 시장은 청년 창업자와 구직자를 위한 사업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시는 안양창조경제융합센터에 청년 창업을 지원할 청년 공간 에이큐브(A-cube)를 열었다. 우수한 창업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데 필요한 기술, 투자 등을 뒷받침하는 청년 창업의 인큐베이터이자 요람이다. 올 하반기 시는 예비 창업자와 창업 초기 기업이 일정 기간 안정적으로 사업할 수 있도록 롯데시네마 일번가 쇼핑몰 587㎡의 공간에 만안청년창업공간도 조성할 계획이다. 청년 구직자들이 다음달부터 시 산하기관 5곳에서 6개월간 직장 체험을 할 수 있는 사업도 추진한다.●전국 최초 ‘민간어린이집 준공영화’도 전국 최초 ‘민간어린이집 준공영화’도 이 시장이 내세우는 사업 중 하나다.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민간과 국공립 간 보육 환경 격차를 해소해 어린이집 선택권을 확대했다. 시는 민간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3~5세 어린이 부모들이 부담했던 차액보육료를 전액 지원하고 있다. 주변의 불우 이웃을 발굴해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안양형 복지모델’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시는 올해 하반기부터 전화 한 통으로 복지제도 안내에서 전문적 심층 상담까지 원스톱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복지전담콜센터를 운영한다. 우편집배원, 가스검침원 등 발굴단이 네트워크를 구성해 어려운 이웃 발굴에도 나선다. ●새달 50개국 참여 ‘세계태권도 한마당’ 다음달이면 세계 태권도인의 눈과 귀가 안양으로 향한다. 50여개국에서 5000여명의 태권도인이 참여하는 ‘2017 세계태권도 한마당’이 다음달 29일 안양체육관에서 열린다. 품세, 격파, 호신출, 태권체조를 선보이는 지구촌 태권도 축제이자 무예경연이다. 이 시장은 이번 대회를 통해 안양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도시 브랜드 파워를 키워 안양 부흥을 꾀하겠다는 계획이다. 항상 맑은 미소로 진솔한 마음을 전하는 이 시장은 소통을 통해 차근차근 안양 부흥의 해법을 찾아가고 있다. ‘찾아가는 진심토크’로 대변되는 ‘원탁토론회’, ‘열린시장실’, ‘새모람데이’, ‘초심의 하루’, ‘경제투어’ 등 다양한 소통 방식을 구사한다. 이 시장은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소통 없는 정책은 언제라도 지역민으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며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길섶에서] 도전/오일만 논설위원

    언젠가 임권택 영화감독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TV에서 1960년대에 제작된 내 영화가 나왔는데 끝날 무렵에야 내 작품인 것을 알았다. 부끄러웠다. 감독 데뷔 초기 10년간 50여편의 작품을 보면 지금도 괴롭고 잊고 싶다.” 18살에 가출해 군화 장사로 연명하던 그는 순전히 ‘먹고살기 위해’ 영화판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주린 배를 움켜쥔 그에게 작품성은 사치였고 충무로 제작자들이 원하는 돈벌이 영화에 골몰했다. 국제 영화제를 휩쓸며 한국 자존심을 세운 80대 노감독의 ‘고해 성사’가 충격으로 다가온 이유다. 이런 ‘임권택’을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만든 것은 열정과 도전이었다. 60년대 너도나도 미국 영화 베끼기에 나설 때 그는 한국적 정서를 생각했다. 돈 되는 할리우드 아류작을 포기하고,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곰삭은 설렁탕’ 같은 작품을 꿈꿨다. 초기 실패를 거듭했지만 오랜 세월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영상 기법들을 실험했다. ‘잡초’, ‘서편제’, ‘취화선’ 등 세상을 놀라게 한 걸작들이 이렇게 탄생했다.
  • [그때의 사회면] 아파트 소사(小史)/손성진 논설실장

    [그때의 사회면] 아파트 소사(小史)/손성진 논설실장

    1956년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3층짜리 아파트가 지어졌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욕실과 양변기가 설치됐다. 온돌 아궁이가 있었다. 1958년 서울 종암동에 아파트의 모양새를 갖춘 ‘종암아파트’가 건립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준공식에 참석할 만큼 화젯거리였다. 최초의 대규모 단지형 아파트는 1964년 11월 완공된 ‘마포 아파트’다. Y자형 6층 건물로 10개동이었다. 당시로서는 첨단시설인 샤워 시설, 수세식 좌변기, 어린이 놀이터, 쓰레기처분장을 갖췄다. 영화촬영 장소로도 인기를 얻었다. 연탄보일러를 썼기 때문에 입주하자마자 일가족이 연탄가스에 중독되는 사고가 일어났다.서울 인구가 급증하면서 주택 사정은 말할 수 없이 나빠 시민아파트 건설은 절실한 과제였다. 김현옥 전 서울시장은 무허가 건물 9만채를 철거하고 1969년부터 3년간 총 2000동의 시민아파트를 지을 계획을 세웠다. 1969년 5월 15일 하루에만 16곳에서 기공식이 열릴 정도로 동시다발로 아파트를 지었다. 시민아파트는 모두 산 중턱에 지어졌다. 1호 시민아파트인 금화아파트는 높이가 203m나 되는 금화산 위에 들어섰다. 김 전 시장은 “높은 데 지어야 청와대에서 잘 보일 것 아니냐”고 했다고 한다. 급히 짓느라 지질 검사도 하지 않았으니 부실 공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참사는 1970년 4월 8일 일어났다. 마포 와우아파트가 폭삭 무너져 33명이 죽고 40여명이 다친 참극이 발생한 것이다. 1960년대 말부터 고급 아파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1968년 서울 한남동에 건립된 힐탑 아파트는 11층짜리로 최초의 고층아파트였다. 주한 외국인용으로 건설된 이 아파트는 중앙난방을 처음 채택했다. 1971년 주차장과 공원, 쇼핑센터 등을 갖춘 1583가구의 대단지인 여의도 시범아파트의 뒤를 이어 동부이촌동 한강맨션아파트(1970)가 선보였다. 강남 개발 초기인 1971년에 논현동 공무원 아파트가 지어졌는데 입주민들은 생활이 불편하고 외롭다며 강북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나 반포 1단지 아파트(1974), 잠실고층아파트(1977), 반포 2·3단지 아파트(1978) 등이 본격적으로 들어서면서 강남은 서서히 ‘아파트 천국’이 되었다. 분양시장도 과열되어 갔다. 1970년대 초에는 프리미엄이 등장했다. 반포 1단지 아파트의 경우 분양가 560만원인 33평형에 프리미엄이 150만~180만원이 붙었다. 아파트 투기 바람은 1978년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 사건’을 낳기에 이르렀다. 서울 강남의 노른자위인 압구정동에 지어진 이 아파트를 정계와 언론계 인사 등 190여명이 은밀하게 특혜 분양받아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다. 사진은 1972년 5월 서울 개봉동 임대아파트 추첨 현장에 아침부터 3000여명의 입주신청자들이 모여 혼잡한 모습. 손성진 논설실장
  • 브렉시트發 ‘아일랜드 통일론’…100년 만에 현실화되나

    브렉시트發 ‘아일랜드 통일론’…100년 만에 현실화되나

    ●맥기니스의 사망… 재조명된 ‘통일 아일랜드’ 지난 3월 23일 수천명의 아일랜드인들이 촛불을 들고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로 향했다. 전날 밤 66세의 나이로 고향 데리에서 사망한 마틴 맥기니스 전 북아일랜드 공동정부 부수반을 추모하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세인트 콜롬비아 교회에서 열린 맥기니스 전 부수반의 장례식은 아일랜드 공영방송 RTE로 생중계됐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를 비롯한 아일랜드·영국의 정·재계 인사뿐만 아니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참석해 국제적으로도 주목받았다. 맥기니스 전 부수반의 장례식이 특별했던 것은 그가 평생 아일랜드의 통일을 위해 싸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북아일랜드는 독립국인 남쪽의 아일랜드공화국과 달리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함께 영연방을 구성하는 4개 지역 가운데 하나다.인구 181만명에 면적은 1만 4130㎢로 우리나라 경상북도보다 작다. 그러나 1922년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종교 갈등으로 남북으로 갈라진 이후 이곳에서 통일과 독립을 목적으로 수많은 내전이 일어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다. 맥기니스 전 부수반도 10대 후반이었던 1960년대 말부터 무장투쟁 단체인 아일랜드공화국군(IRA)에 들어가 북아일랜드 통일·독립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IRA의 사령관으로 과격한 투쟁을 이끌던 그는 1990년대 들어 총을 내려놓고 IRA 무장해제를 중재하는 협상가로 변신, 30년간 지속돼 온 유혈투쟁을 종식시켰다. 당시 복잡한 북아일랜드 정치세력 간 대타협을 성사시킨 그는 1998년, 평화협정을 이끌어 내면서 영국으로부터 자치정부 지위도 확보했다. 20세기 아일랜드 분쟁의 상징적인 인물이자 통일을 주창해 온 대표적인 정치인이었던 그가 세상을 떠나자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평생 조국의 통일을 꿈꾸던 그는 떠났지만 (그의)통일에 대한 염원은 함께 묻히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영국과 유럽연합(EU) 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을 앞두고 ‘아일랜드 통일’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된 현 상황을 빗댄 표현이었다.●브렉시트로 되살아나는 아일랜드 국경 ‘분단국가’ 아일랜드가 100여년 만에 ‘통일’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통일 논쟁이 본격화된 것은 오는 19일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협상을 앞두고 북아일랜드가 마주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부터다. 대표적인 것이 국경 문제다. 현재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간에는 국경 통제와 세관 검사 없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영국이 EU를 떠나게 되면 북아일랜드가 EU 회원국과 유일하게 국경을 맞댄 영국령 지역이 되고, 더이상 양쪽 간 자유로운 이동이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국경 문제는 브렉시트 이후 북아일랜드에 심각한 경제적 타격이 될 전망이다. 현재 영국에서 생산되는 상품의 50% 미만이 EU 국가로 수출되는 반면, 북아일랜드의 전체 수출량의 약 60% 이상은 EU 국가로 보내지며 이 중 절반 이상은 아일랜드로 수출된다. 북아일랜드 주민들은 브렉시트가 현실화된 이후 남북 간 국경 통제가 되살아날 뿐만 아니라 EU와의 협상에 따른 관세까지 물어야 하는 신세에 놓이게 된 것이다. 또 북아일랜드 농업은 EU에서 지급하는 농업 보조 수당에 영국보다 훨씬 더 의존하고 있다. 브렉시트로 EU 시장 접근이 어려워지면 아일랜드와의 교역 비중이 절대적인 북아일랜드 경제는 최악의 경우 붕괴될 수도 있다. 현재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는 모두 양국 간 관세가 부과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FT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하드 브렉시트’가 진행된다면, 아일랜드의 국경 문제도 심각해질 것”이라면서 “이는 30년 전 폭력과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아일랜드 분리 독립 투쟁 시절의 삼엄했던 국경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상기시킨다”고 지적했다. 아이리시타임스는 “북아일랜드는 영국의 다른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EU, 특히 아일랜드와의 관계가 경제적으로 상당히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브렉시트 이후 4개 지역 중 가장 큰 경제적 손실을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아일랜드 주민 56% “EU 잔류해야” 이러한 경제적 손실은 북아일랜드가 처음부터 브렉시트에 반대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실시된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북아일랜드 주민 중 56%는 EU 잔류를 원했다. 그러나 총투표 결과가 북아일랜드 주민들의 의견과는 달리 브렉시트 찬성으로 결정되자 통일에 대한 북아일랜드 주민들의 여론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2일 실시된 북아일랜드 조기총선에서 ‘친영파’인 민주연합당(DUP)은 10석이나 잃으며 통일을 주장하는 신페인당에 겨우 1석 차이로 제1당을 유지했다. 미셸 오닐 신페인당 대표는 즉각 “브렉시트는 재앙”이라면서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통합을 묻는 주민투표를 최대한 빨리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자치정부 수반인 DUP의 알린 포스터 제1장관은 “주민투표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지만 선거에서 참패해 힘이 약해졌다. 최근 영국 제2야당인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이 지난 8일 치러진 조기총선 공약으로 EU 내 스코틀랜드 지위 보호와 제2의 독립 주민투표 실시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북아일랜드 민심이 또 한 번 요동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일랜드공화국에서도 통일 담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통일아일랜드당과 더불어 공화국의 양대 정당 중 하나이자 제1야당인 공화당(피어너 팔)의 마이클 마틴 대표는 최근 “스코틀랜드의 독립 움직임과 북아일랜드 헌법의 불확실성 등을 놓고 봤을 때 브렉시트는 아일랜드 통일에 대한 북아일랜드 내부의 견해를 크게 바꿀 수 있으며 ‘통일 아일랜드’의 추진력을 창출할 수 있다”고 통일에 대해 낙관하는 발언을 했다. 공화당은 현재 통일 청사진을 제시할 백서를 제작 중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아일랜드공화국 주민들의 60%는 브렉시트 이후 통일을 지지한다고 밝혔다고 FT는 전했다. ●오랜 갈등 ‘벽’ 뛰어넘을 수 있을까 물론 100년 만의 통일이 현실화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영국과 북아일랜드가 1998년 맺은 ‘굿프라이데이 협정’에?따르면 북아일랜드 자치정부는 주민들이 원할 경우?국민투표를?통해 아일랜드와의 통합을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투표는 영국 정부의 승인이 있어야 치러질 수 있다. 메이 총리는 스코틀랜드 독립과 더불어 아일랜드 통일을 위한 주민투표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유혈투쟁은 사라졌지만, 북아일랜드에서 종교로 인한 정치적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도 통일의 발목을 잡고 있다. 북아일랜드에선 여전히 영국과의 연합을 지지하는 개신교도들과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지지하는 가톨릭교도들의 거주 지역이 구분될 만큼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는 과거 잉글랜드가 팽창해 아일랜드가 복속되자, 개신교인들이 대거 이주해 이 지역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가 우여곡절 끝에 독립을 쟁취했어도 개신교도 수가 많은 북쪽에서 영국 잔류를 원하며 반독립운동이 일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랜 갈등 탓에 통일에 반대해 온 주민들의 견해가 바뀌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EU 협정에 따라 아일랜드 통일에 대한 급격한 상황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블린대 정치학과 아이댄 리건 교수는 “브렉시트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조차 않았을 아일랜드 통일에 관한 담론을 다시 재점화시켰다”며 “‘사건’들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부고] 한국 첫 장편 애니 ‘홍길동’ 신동헌 감독 별세

    [부고] 한국 첫 장편 애니 ‘홍길동’ 신동헌 감독 별세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대부 신동헌 감독이 6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90세.고인은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의 산증인이다. 1967년 국내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인 ‘홍길동’과 이듬해 그 속편 격인 ‘호피와 차돌바위’를 만들어 한국 극장판 애니메이션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당시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 선(先) 녹음 기법으로 인물의 소리와 동작을 일치시키는 자연스러운 연출로 큰 호응을 얻었다. 1995년에는 현대적인 감각의 ‘돌아온 홍길동’을 만들기도 했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인 고인은 서울대 건축학과 재학 중 아르바이트로 초상화를 그리다가 ‘코주부’로 유명한 만화가 김용환을 만나 만화계에 입문했다. 데뷔작은 1947년 ‘스티브의 모험’이다. 서울신문에 ‘너털주사’를 연재하는 등 여러 일간지를 통해 시사 만화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에는 프러덕션을 만들어 친동생인 신동우(1936~94) 화백이 어린이 일간지에 연재한 ‘풍운아 홍길동’을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옮겼다. 유족으로는 경섭(애니메이션 사업)·인섭(전 광고제작자)·양섭(영화학자) 3남이 있다. 장례는 한국애니메이션예술인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9일 오전 7시, 장지는 대전공원묘원. (02)2258-5940.
  • 부산 사람 살살 녹이는 ‘食食한 녀석’… 고갈비 뜯으러 오이소

    부산 사람 살살 녹이는 ‘食食한 녀석’… 고갈비 뜯으러 오이소

    “추억의 고갈비 드시러 오세요.” 부산에는 돼지국밥, 밀면, 꼼장어 구이, 고갈비 등 독특한 음식이 여럿 있다. 이 가운데 고등어구이를 지칭하는 ‘고갈비’는 요즘 젊은 세대와 외지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들릴지 모른다. 고갈비는 단순한 고등어구이가 아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힘들고 어려웠던 서민들은 물론 식자층과 대학생이 당시 암울했던 시절의 울분을 막걸리 한 잔과 함께 토해내던 추억과 애환을 고스란히 담은 음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먹거리가 풍성해지면서 사라져 갔던 고갈비가 최근 부산 서구 충무동골목시장에 ‘고갈비(고등어)거리’가 생기면서 ‘추억의 맛’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갓 지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 한 숟가락에 노릇노릇하게 구운 여린 고등어구이 속살 한 점은 여름철 잃어버린 입맛을 살리기에 충분하다. 또 술안주와 궁합이 잘 맞아 그저 그만이다.바다를 낀 대부분 지역이 그러하듯 부산도 생선문화가 발달했다. 고등어는 기름기가 많아 생선회보다는 생선구이나 찌개 등으로 많이 먹었다. 불과 40여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앞바다는 지금과는 달리 많은 것을 내줬다. 지금은 ‘금갈치’로 불리는 갈치와 국내에서 사라진 명태를 비롯해 고등어, 꽁치 등은 흔하디 흔한 생선이어서 서민들의 밥상을 풍성하게 했다. 특히 농어목 고등엇과의 연안성 물고기인 고등어는 대표적인 등푸른생선으로 당시 한번 잡힐 때 대량으로 잡히는 데다 값이 싸고 맛이 좋아 서민들에게 인기 있는 어종이었다. 최근에는 어획량이 줄어들어 노르웨이산 등 수입도 많이 되고 있다. 부산 공동어시장에서는 현재 국내산 고등어의 84%가 거래되고 있다.●고갈비라 부르게 된 說…說…說 부산사람은 고등어구이를 다른 말로 ‘고갈비’라 부른다. 고갈비라는 이름은 퍽 회화적이다. 마치 돼지갈비를 뜯을 때처럼 묵직함이 느껴진다. 고갈비라는 이름을 언제 누가 붙였는지 정확하지는 않다. 여러 가지 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1960년대 돈이 궁하던 서민과 대학생들이 저렴한 안주인 고등어구이를 즐겨 먹었고, 고등어에 기름기가 많아 구울 때 연기가 많이 나는 게 ‘마치 돼지갈비를 굽는 것을 연상하게 한다’ 해서 고갈비라고 불렀다는 설이 유력하다. 또 고등어를 갈비처럼 구워서 먹는다고 해서 붙여졌다고도 하고, 고갈비집 주인들은 주로 학생들이 먹는다고 해서 한자인 ‘높을 고(高)’ 자를 붙여 고갈비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육고기를 뜯는 느낌이라도 느껴 보려고 누군가 고등어구이를 고갈비로 불렀을 것이다.고갈비에는 지금의 장년층에게는 30~40년 전의 추억이 오롯이 담겨 있다. 즐거워서, 괴로워서. 슬퍼서, 힘들어서 소주잔을 기울일 때 실과 바늘처럼 빼놓을 수 없는 안줏거리가 바로 고갈비였다. 1960~80년대 고등어가 흔하던 시절 고갈비는 가성비가 뛰어나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과 젊은이에게는 밥반찬과 술안주로 인기가 높았다.  홍완준(66)씨는 “돈도 없고 먹거리가 귀하던 시절 소갈비나 돼지갈비는 아니지만, 그래도 갈비를 뜯었다는 기분을 낼 수 있는 음식이 바로 고갈비였다”며 “지금도 고등어구이를 먹을 때면 그때의 추억이 또렷하게 떠오른다”고 입맛을 다셨다.●연탄불 석쇠에 노릇노릇… 추억도 노릇노릇  부산 중구 광복동 ABC마트(옛 미화당백화점) 뒤편 골목길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12개의 고갈비 전문 식당이 앞다퉈 손님을 맞아 ‘고갈비 골목’으로 불렸다. 이후 1990년대부터 하나둘 문을 닫고 지금은 ‘고갈비 할매집’과 ‘남마담’ 두 곳만이 남아 겨우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당시 이들 고갈비식당에서는 자갈치시장에서 막 들여온 고등어에 소금간을 하고 숙성을 한 다음 석쇠를 연탄불에 올려서 바싹하게 구워 손님상에 내놨다. 요즘에는 연탄 대신 가스불이, 석쇠 대신 철판으로 바뀌었다.  해 질 녘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삼삼오오, 끼리끼리 이곳에 찾아들었다. 10여평 남짓한 가게에 좁은 탁상 대여섯 개가 전부이지만 이곳에는 낭만이 있고 나름 멋이 있었다. 연탄불 석쇠에서 기름이 뚝뚝 떨어지며 노릇노릇 굽힌 고갈비가 한 접시 올라오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젓가락이 살점에 내리꽂혔다.  소주 한 잔 입에 털어놓고 한 젓가락 집어 간장에 찍어 입에 넣으면 고소하고 입에 착 달라붙는 그 맛은 일품이었다. 수십여년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생각하면 입에 군침이 가득 돈다고 한다. 냉동고등어와는 그 맛이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고등어에는 불포화지방산인 EPA와 DHA가 풍부해 두뇌 발달에 좋고, 오메가3 지방산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동맥경화와 같은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 노화 예방과 원기 회복에도 효과가 있다.  자갈치 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하는 윤재웅(61)씨는 “주머니가 가벼운 젋은이들에게는 출출한 배를 채우고 술안주로 고갈비만 한 게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파전 골목, 꼬등어 캐릭터 달고 고갈비 거리로  비록 같은 장소는 아니지만 최근 서구 충무동골목시장에 고갈비 특성화거리가 조성돼 반가움을 전해 주고 있다. ‘충무동골목시장 고갈비거리’ 입구에 들어서면 고갈비골목임을 알리는 대형 입간판과 부산시 시어(市魚)인 ‘꼬등어’ 캐릭터가 반긴다. 200여m 정도 걸어가면 골목시장 사거리가 나온다. 이곳 오른쪽이 고갈비 거리이다. 원래 ‘파전골목’이었으나 서구청 등의 도움으로 고갈비골목으로 변신했다. 현재 10개 업소 가운데 7곳에서 고갈비를 메뉴에 적어 놓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금강고갈비 주인 최옥화(69)씨는 “원래 파전과 각종 생선구이를 팔았는데 고갈비특화거리로 조성되면서 고갈비를 대표음식으로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매일 새벽 길 건너 충무동 새벽시장에서 싱싱한 국산고등어를 가져와 굽기 때문에 살이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뛰어나다”며 “최근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들의 발길이 점차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이곳 식당 주인들은 지난 2월 22일 고갈비거리 선포식을 열고 영업에 들어가 현재 성업 중이다. 요즘에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저녁이면 발 디딜 틈이 없다. 중간치 크기 고갈비 한 마리의 가격은 7000원으로 비교적 저렴해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에게도 큰 부담이 없다.  충무동골목시장은 지난해 중소기업청의 ‘골목형시장 육성사업’ 대상지로 뽑혔다. 정동하 서구 국장은 “국내 고등어의 대부분을 유통하는 부산공동어시장이 지역에 위치한 데 착안해 이곳에다 고갈비특화거리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서구는 5억 2000여만원을 들여 고갈비거리의 특성에 맞게 기존 건물의 파사드와 간판을 모두 철거·정비하는 등 새 단장을 했다. 가게 앞쪽에는 테이블과 의자, 파라솔을 설치해 노천카페와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또 독자적인 상징 디자인을 담았다. 한때 인기 먹거리였던 ‘고갈비’를 재탄생시킨다는 의미를 담은 캘리그래피 ‘그때 그 시절’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부산을 대표하는 마스코트로 선정한 ‘꼬등어’ 캐릭터를 접목해 만들었다. 서구는 상징 디자인을 골목시장 입구 안내판과 아치, 점포의 전면과 간판, 각종 집기류와 물품 등에 사용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충무골목시장 상인회 권용달(69) 회장은 “고갈비거리가 활성화되면서 침체됐던 골목상권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반겼다.  서구는 매년 10월 송도해수욕장 일원에서 고등어축제를 열고 고등어선어회, 고갈비 등 고등어를 재료로 한 다양한 요리와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올해로 10회를 맞는 부산고등어축제는 서구 개청 60주년을 맞아 오는 10월 18일부터 22일까지, 예년보다 이틀 늘어난 5일간 송도해수욕장과 부산공동어시장 일원에서 성대하게 개최된다.  박극제 서구청장은 “고등어를 활용한 다양한 레시피와 공동기획상품 개발, 고갈비 요리경진대회 등 축제를 통해 관광객들이 찾을 수 있는 특색 있는 시장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버스 차장과 삥땅/손성진 논설실장

    [그때의 사회면] 버스 차장과 삥땅/손성진 논설실장

    버스 차장, 즉 안내양이 있던 시절에 요금을 빼돌리는 행위를 뜻하던 은어 ‘삥땅’이 국정농단 사건에서 다시 등장했다. 이 말은 화투에서 나왔다고 한다. ‘삥’은 1, ‘땅’은 두 장이 똑같다는 뜻이니 곧 1땅(땡)으로 작은 이득을 뜻한다. 차장의 ‘장’은 한자로 ‘長’이 아니라 ‘掌’인데 ‘맡다’는 의미다.군사정권이 들어선 1961년부터 버스 차장은 남성에서 대부분 여성으로 교체됐다. 차장이 여성스럽고 존중하는 느낌을 주는 안내양으로 바뀐 것은 고속도로가 놓인 뒤 고속버스 차장을 안내양이라고 부른 데서 영향을 받은 듯하다. 가난에 찌들어서 무슨 일이든 몸이 바스러지도록 하지 않을 수 없었던 1960, 70년대 젊은 여성들이 선택한 직업이 안내양이었다. 안내양들의 생활은 어떤 직업보다도 고달팠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종점과 종점을 일고여덟 번은 돌아야 했다. 적은 임금 탓이 컸겠지만 ‘견물생심’이라고 현금을 만지는 안내양들의 ‘삥땅’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1960년대 말부터였다. ‘삥땅’을 막으려고 차주들은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종점에 도착하면 돈을 숨겼는지 확인하려고 감독들은 높이 1m의 줄을 쳐 놓고 뛰어넘을 것을 강요했다. 또 안내양들의 몸을 샅샅이 수색했다. 알몸 조사 같은 비인간적인 인권 침해도 더러 있었다. 한 달에도 대여섯 번씩 몸을 수색당하는 수모를 견디다 못한 안내양이 자살을 기도하는 사건도 생겼다. 속칭 ‘암행’이라고 불렸던 감시원이 버스에 탑승하기도 했다. 일부 안내양들이 삥땅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월급보다 많은 요금을 빼돌리고 그 돈으로 계를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삥땅은 어쩌면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운전사와 안내양이 짜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감독들에게 상납도 했다. 1970년 4월 28일 서울 YMCA 대강당에서는 ‘버스 여차장의 삥땅에 관한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다. 당시 안내양의 한 달 월급은 1만원가량 됐으나 식비를 떼고 나면 당시 월급으로도 매우 적은 4000원 정도 받았다. 삥땅으로 한 달에 2만원을 빼돌리는 일도 있었으니 사업주로서도 손실이 컸다. 삥땅 문제가 커지자 서울에서는 1977년 12월 1일 버스 토큰제를 시행했다. 그러나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암거래돼 현금으로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 토큰 60만개를 1년 동안 빼내 판 안내양 20명이 적발되기도 했다. 승하차 문을 따로 만들어 요금을 선불로 받는 자율버스제도가 도입된 것은 1982년 무렵이다. 안내양이 필요 없어진 것이다. 안내양은 그 뒤에도 일부 명맥을 유지해 왔지만 마지막으로 없어진 것은 김포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운행하던 김포교통 소속 안내양 38명이 사표를 낸 1989년 4월이었다. 사진은 1963년 11월 27일 서울 어느 버스 정류장 풍경.
  • [주말 영화]

    ■가을의 전설(EBS1 토요일 밤 10시 55분) 지금은 영화계 거물이 된 브래드 피트가 ‘제2의 로버트 레드퍼드’라는 별명을 얻었던 초창기 주연작이다. 어린 시절 곰 사냥에서 목숨을 잃을 뻔하지만 이를 계기로 야성을 일깨운 트리스탄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렸다. 트리스탄은 사랑하는 막내동생을 1차 세계대전 전쟁터에서 잃고 돌아온 뒤 동생의 연인과 사랑을 나누게 되지만 동생에 대한 죄책감과 가슴에 움튼 야성 때문에 방랑의 길을 택하게 된다. 삼형제의 아버지로 앤서니 홉킨스가, 맏형으로 에이단 퀸이, 막내로 헨리 토머스가 함께한다. 영어 제목 ‘Legend of The Fall’에서 Fall은 가을이 아닌 몰락과 추락을 의미하는데 국내 개봉 당시 ‘가을’로 오역됐다고 한다. 장대한 서사물을 곧잘 연출하는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작품이다. 최근에는 ‘잭 리처: 네버 고 백’을 만들었다. 1994년작. ■헬프(EBS1 일요일 오후 1시 55분) 지난해 숨막히는 미스터리 스릴러 ‘걸 온 더 트레인’을 선보였던 테이트 테일러 감독의 출세작이다. 남성 감독임에도 여성 이야기를 자주 다루는 게 특징. 이 작품은 아카데미 4개 부문 후보에 올라 옥타비아 스펜서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인종차별이 여전했던 1960년대 미국 남부 미시시피주를 배경으로 작가를 꿈꾸는 신출내기 기자이자 백인 여성인 스키터(에마 스톤)가 부당한 처우를 받던 흑인 가정부들을 인터뷰해 그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내는 과정을 그렸다. 2011년작.
  • 경매 나온 세계서 가장 작은 차 ‘필 트라이덴트’ 의 가격은?

    경매 나온 세계서 가장 작은 차 ‘필 트라이덴트’ 의 가격은?

    1960년대 애니메이션 ‘제트선’(Jetsons)의 에어로카(aerocar)와 유사한 ‘필 트라이덴트’(Peel Trident)가 경매에 나올 예정이다. 31일(현지시간) 영국 매체 ‘더 선’은 1963년 애니메이션 ‘제트선’의 첫 번째 에피소드가 끝난 2년 뒤인 1965년에 생산된 ‘필 트라이덴트’에 대해 보도했다. ‘필 트라이덴트’은 영국의 필 엔지니어링(Peel Engineering)사가 만든 길이 185cm, 폭 99cm, 무게 59.8kg, 49cc, 4.2마력 엔진의 세계에서 가장 작은 마이크로카다. 최고 시속 61km까지 달릴 수 있으며 에어로카처럼 유리 버블돔의 형태를 지녀 운전자는 타고 내릴 때 유리 버블돔을 들어 올려야 하며 후진은 할 수 없다. ‘필 트라이덴트’모델은 제작 당시 단지 45대 만이 생산됐다. 매년 모나코에서 열리는 클래식카 경매 업체 ‘알엠 소더비’(RM Sothebys)의 제이크 아우어바흐(Jake Auerbach)는 “심지어 몇 백만 불짜리 차가 자신에 차고에 주차돼 있어도 모든 것을 가진 사람에게 마이크로카는 새롭고 신기한 물건을 대표한다”며 “(필 트라이덴트는) 거의 어디든 보관 가능하게 크기가 작고 수집할 만큼 특별한 물건이며 우수한 대화 토픽이 보장될 것”이라고 전했다. ‘알엠 소더비’에 나올 ‘필 트라이덴트’의 경매 시작가는 8만 파운드(한화 1억 1460만 원)로 알려졌다. 사진·영상= RM Sothebys, Moviestore Collection / Jalopnik youtube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북촌, 시간의 향기… 도시는 기억으로 산다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북촌, 시간의 향기… 도시는 기억으로 산다

    서울신문이 지난 27일부터 매주 토요일 서울시 및 서울도시문화연구원 등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를 시작했다. 미래유산이란 아직 문화재로 등록되진 않았지만 미래 세대에 물려줄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서울 근현대 문화유산이다. 총 25회에 걸쳐 진행되는 투어는 서울미래유산 사이트에 접수한 30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426개의 미래보물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참가자들은 역사책에서는 읽을 수 없지만 100년 후에는 역사책에 기록될 미래가치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족적을 남기게 된다. 첫 테마는 ‘사방팔방’(四方八方)이다. 서울의 사대문 안을 사방으로, 사대문 밖을 팔방으로 각각 구분해 13회로 구성했으며 첫 회는 그중에서도 북촌 일대를 둘러봤다. 3일은 동촌, 10일은 서촌을 찾아간다. 참가신청은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kr) 사이트에서 한다. 매주 월요일 오전 9시부터 당회차 신청을 선착순으로 받는다. 무료다.‘서울미래유산-2017 그랜드투어’의 첫 회는 북촌이다. ‘북촌에 부는 변화의 바람’이라는 주제를 통해 서울의 과거와 미래가 어떻게 교차하는지 들여다봤다.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들이 모여 ‘드림 소사이어티’를 꿈꾸는 나들이다. 답사단은 지난 27일 오전 10시 집결지인 정독도서관을 출발해 김옥균 집터와 조선어학회 터를 거쳐 북촌 한옥밀집지역을 돈 뒤 만해 한용운의 유심사 터를 찾았다. 인촌 김성수 가옥과 중앙고등학교를 둘러보고 개화파 박규수의 집터였던 헌법재판소에서 ‘짧지만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2시간여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답사단의 발길이 닿은 모두 9곳의 코스 중 서울미래유산은 북촌한옥밀집지역과 김성수 가옥, 헌법재판소 등 3곳이고 사적(중앙고)과 등록문화재(정독도서관)가 2곳이며 나머지 4곳은 옛터이다. 오래된 도시, 서울의 심장부 북촌의 정체성을 실감케 한다.●호모나랜스들 모여 2시간 짧고 긴 여정 그렇다면 북촌은 어떤 곳인가. 서울을 알아야 북촌을 알고, 북촌을 알아야 북촌에서 부는 바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라고 읊었지만 서울은 2000년 기원전의 도시, 600년 도읍지의 기억이 별반 없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통에 불타고 약탈당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강제로 민족 자산을 말살당했고 한국전쟁 때 파괴됐다. 1960년대 이후 무지막지한 개발 광풍을 타고 또 한번 뭉개졌다. 역사의 향기는 흩어졌다. 한강 이남으로 영역을 확대한 서울은 사실상 한국전쟁 이후 재건된 신생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역사도시라고 하기엔 씁쓸한 서울 서울의 재건은 성공적일까. 서울은 역동적인 현대적 도시로 발전했지만 역사도시라고 자평하기엔 머쓱하다. 솔직하게 말해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은 꽤 혼란스럽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처럼 강북 구도심을 올드타운으로 남겨두고 강남 뉴타운을 만들지 못한 게 패착이다. 발상의 전환도 없었고, 한국전쟁 이후 광적인 서울집중이 오래된 것들은 걷어내고, 나머지는 땅속에 묻는 데 정당성의 논리를 제공했다.북촌의 기원은 조선시대 한성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성부는 ‘경조 5부’라고 하여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부 등 5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눠 다스렸는데 오늘날의 자치구라고 보면 된다. 경복궁과 사대문을 축으로 해서 구분하면 북부는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이고 동부는 창덕궁과 흥인지문 사이, 서부는 경복궁에서 돈의문 사이, 남부는 숭례문에서 청계천 사이 어림이다. 중부는 청계천을 중심으로 양쪽에 형성됐다. 5부가 곧 5촌이다.청계천을 경계로 북쪽은 권문세가와 현역 벼슬아치, 그들을 모시는 아전 및 겸인 족속의 주거지였다. 청계천부터 남산 아래까지인 남촌에는 지체 낮은 관리나 퇴락한 양반, 무반들이 모여 살았다. 다동·무교동·수표동·입정동·주교동·관수동 등 중촌에는 의관, 역관, 율사, 화원, 시전상인, 군인군속이 살았다. 황현은 매천야록(1864~1887년 기록)에서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고 부르며 노론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고 하는데 소론 이하 삼색(소론, 남인, 북인)이 섞여 살았다”고 기록했고 황성신문 1900년 10월 9일자에는 “북촌 사람들의 말투는 매우 부드럽고 조심스러우며, 남촌 사람들의 말투는 빠르다”고 말씨에 따라 지역별 기질을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다. 서울은 신분과 지위, 직업에 따라 사는 곳이 달랐다. 거주 지역에 신분과 지위, 직업의 정보가 새겨져 지역색을 형성했다. 지역색이 차별의식과 적대감, 사색당파로 이어졌다. 서울의 심장부인 북촌은 왜, 어떻게 달라졌을까. 북촌은 주거지로서 최상의 입지적 조건 때문에 조선 중기까지 왕족과 벼슬아치들이 모여 사는 집단거주지였으며 후기 들어 안동 김씨와 여흥 민씨 같은 세도가와 경화사족들이 똬리를 틀었다. 한말에는 교육과 의료의 중심지로 개화사상과 갑신정변의 발상지였으며 이후 신분 상승을 위해 상경한 신흥 지방부호와 지주, 사회지도층이 몰려들어 삼일운동을 비롯한 민족운동의 진앙지가 되었다. 그러나 외세에 의존하면서 기층 민중과는 유리된 기득권 세력의 개혁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뚜렷했다. ●그래도 서울의 심장부 북촌은… 북촌에서 잉태, 발화한 삼일운동이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북촌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300만 신도를 자랑하던 천도교가 경운동 중앙대교당을 중심으로 1920~1930년대 민족운동을 주도했고 일제 패망이후 몽양 여운형의 계동 집과 건국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다양한 정치실험이 시도됐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헌법재판소는 개화파 박규수와 홍영식의 집이었으며 제중원을 거쳐 경기여고와 창덕여고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해방 직후 당시 경기여고 강당에서 여운형과 박헌영이 전국인민대표자대회를 열어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이 선포된 곳이기도 하다. 역사는 돌고 돈다지만 북촌만큼 역사가 켜켜이 겹치는 곳도 흔치 않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3·1운동 알린 테일러 집 ‘딜쿠샤’ 문화재 된다

    3·1운동 알린 테일러 집 ‘딜쿠샤’ 문화재 된다

    3·1 운동과 제암리 사건 등을 세계에 알린 미국 AP통신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1875∼1948)가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세운 ‘딜쿠샤’가 등록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테일러가 1923년에 지어 1942년 일제의 협박으로 추방될 때까지 20여년간 살았던 건물 딜쿠샤를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고 29일 밝혔다. 힌디어로 ‘이상향’, ‘희망의 궁전’을 뜻하는 딜쿠샤는 붉은 벽돌로 지은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서양식 저택(연면적 624㎡)이다.딜쿠샤는 테일러가 죽은 뒤 한동안 비어 있었다가 한국전쟁이 끝난 뒤 피란민들이 모여 사는 쉼터가 됐다. 1960년대 국유화된 뒤에도 지난해까지 10여 가구가 살았으나 현재는 무단 점유 문제가 거의 해결된 상태다. 문화재청은 2016년 2월 기획재정부, 서울시, 종로구와 함께 딜쿠샤를 원형대로 복원하고 2019년 전면 개방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문화재청은 이날 경기도청사 구관, 경기도지사 구 관사, 김 골룸바와 아녜스 자매(석고상)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경기도청사 구관과 경기도지사 구 관사는 1963년 경기도청을 서울에서 수원으로 이전하면서 지었던 건물이다. 김 골룸바와 아녜스 자매(석고상)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김효임(골룸바)·김효주(아녜스)의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한국 현대 조각의 1세대 작가인 김세중의 1950년대 대표작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식모 학대

    [그때의 사회면] 식모 학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웬만한 부잣집에는 식모와 식모 방을 따로 두고 있었다. 70년대 초에 서울 사람의 31%가 식모를 두고 있었다는 조사가 있다. 당시 서울 시내의 식모 수는 무려 24만 6000명으로 추산된다는 연구도 있다. 1960년대 중반에 식모의 월급은 400~500원가량, 중등교사의 초임은 3500원 정도, 쌀 한 가마니 값은 2500원쯤 됐다. 그러니까 식모 월급은 일반적인 직장인의 10분의 1 수준으로 박했다. 침식을 제공한다는 점 때문에 적은 월급을 주고 값싼 노동력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밑바닥 인생 ‘식모살이’는 배운 것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성한 손발밖에 없는 여성들이 선택했다. 사연도 구구절절했다. 학대를 받아 집을 뛰쳐나온 여성, 남편에게 버림받은 오갈 데 없는 여성. 보릿고개를 넘기기 어려워 무단가출한 농촌 소녀. 식모는 노비제도가 사라진 뒤에 새로 생겨난 신종 노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모살이는 고되고 비참했다. 주인들로부터 욕설을 듣거나 구타를 당하기 일쑤였고 월급을 제때 받지도 못했다. 휴일도 거의 없었고 밥도 주인 식구들과 같이 먹지 못했다. 신세를 비관한 식모들의 자살 사건도 잇따라 심심찮게 신문 지상의 한 귀퉁이를 차지했다. 식모의 인권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식모를 가정에 두지 말자는 식모 폐지론도 나왔다. 식모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일도 더러 있었다. 범죄는 멸시하고 학대하는 사회에 대한 반항과 보복 심리가 원인이었다. 주인집 귀중품을 훔쳐 달아나다 절도죄로 처벌받거나 주인집 아이를 유괴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화난 주인들은 식모를 잡아다가 감금해놓고 두들겨 패거나 굶기고 심지어는 불로 지지는 사형(私刑)을 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주인집에 함께 기거하다 보니 주인이나 그 아들로부터 능욕을 당하는 사건도 흔했다. 성폭력을 당한 식모들이 가는 길은 결국 윤락업소나 호스티스 등 유흥업소 종사자 같은 밑바닥 생활이었다. 영화화된 조선작의 소설 ‘영자의 전성시대’는 영자가 시골에서 올라와 식모를 하다 주인집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안내양을 거쳐 창녀로 전락하는 과정을 그렸다. 그 시절 서울역 앞에는 영자와 같은 운명에 빠질 수도 있는 시골 소녀들이 보따리를 들고 방황하고 있었다. 식모가 점차 줄어든 것은 산업화로 여성들의 일자리가 많이 생겨서다. 아파트 중심의 주거 구조 변화와 핵가족화도 식모의 필요성을 감소시켰다. 적은 가족이 생활하도록 설계된 현대식 아파트는 식모 방을 따로 만들지 않았다. 식모라는 명칭은 1985년 12월 당시 총무처의 ‘한국직업명칭개선안’에 따라 가정부로 바뀌었다. 사진은 식모 학대 기사가 실린 1965년 10월 29일자 경향신문.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이주의 문화 레시피]

    [이주의 문화 레시피]

    전시●‘알렉스 카츠 : 스몰페인팅’전 1960년대 이후 대표적인 현대회화 작가로 꼽히는 알렉스 카츠가 인물, 풍경, 꽃을 주제로 2000년대에 작업한 작은 회화작품들을 선보인다. 6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북촌로 PIBI갤러리. (02)6263-2004. ●류단화 개인전 중국 징더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류단화 작가의 개인전. 징더전의 전통적 도자 방식과 수공예로 유약을 덧입히는 기술을 활용해 불에 탄 재의 형태를 종이처럼 얇고 날카로운 재질로 묘사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6월 16일까지. 서울 중구 금산갤러리. (02)3789-6317. 대중음악 ●홀린 소극장 콘서트 감성 모던록 밴드 홀린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지난해 말 정규 2집을 선보인 홀린은 리더 겸 보컬 정준혁이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도맡아 중심을 잡고 있는 가운데 일부 멤버가 바뀌는 등 5인조에서 4인조 체제로 전환했다. 6월 2일 오후 8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마리아칼라스홀, 3만원. (02)558-4588.●해리빅버튼 정규 2집 ‘맨 오브 스피릿’ 발매 기념공연 하드록 밴드 해리빅버튼이 5년 만에 정규 앨범을 선보이며 펼치는 단독 공연이다. 빈티지와 모던한 사운드를 오가는 정규 2집에는 사회적 이슈들을 간과하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취지의 노래 등을 담았다. 6월 2일 오후 8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롤링홀. (02)325-6071. 뮤지컬·연극●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미국 소설가 진 웹스터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존 그리어 고아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제루샤 애벗’과 고아원 밖의 넓은 세상을 꿈꾸는 제루샤의 대학 공부를 후원하며 그녀의 성장을 돕는 ‘제르비스 펜들턴’의 애틋한 사랑을 다룬다. 7월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4만 4000~6만 6000원. (02)744-4033. ●연극 ‘작전명:C가 왔다’ 시민단체 ‘손잡고’와 극단 몽씨어터가 함께 제작한 작품으로 노조 파괴 노무법인으로 악명 높았던 ‘창조컨설팅’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C컨설팅’과 이곳에 노조 파괴를 의뢰하는 기업이 몰래 벌이는 부조리한 상황을 우스꽝스럽지만 진지하게 그린다. 6월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연우소극장. 1만 5000~2만원. 070-4233-7609. 클래식·국악●호로비츠를 위하여 전설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1903~1989)의 음악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기회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등을 피아니스트 이대욱, 조재혁, 알렉산더 신추크가 각각 연주한다. 6월 3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4만~8만원. (02)2658-3546. ●모던 국악 기행-경기편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각 지역의 대표적인 전통음악과 지역 음악의 특성을 토대로 창작한 현대음악을 함께 소개하는 연주회. 경기 지역 전통음악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경기 시나위’와 ‘경기 대풍류’가 연주된다. 6월 2일 오후 8시.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만~3만원. (02)2280-4114.
  • 바람·새소리 녹아든 맑은 추상의 울림

    바람·새소리 녹아든 맑은 추상의 울림

    지난 반세기 동안 은은한 단색조의 추상화 외길을 걸어 온 서양화가 서승원(75) 화백의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노화랑에서 열리고 있다.지난해 대구와 캐나다에서 10년 만에 개인전을 가진 바 있는 작가는 올해 일본 도쿄에 이어 서울에서도 그동안의 작업 결과물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2000년대 이후 작업해 온 신작을 중심으로 하되 1970년대와 80년대의 작품도 2층 전시실에 걸어 ‘동시성’을 주제로 펼쳐진 작품의 변화 양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서 화백은 홍익대 재학 시절인 1962년 창립된 ‘오리진’에 참여한 이래 지금까지 추상회화를 고수해 왔다. 색채의 과잉과 감정의 폭발이 두드러졌던 선배 세대와 달리 그는 일체의 이미지를 기본적인 어휘로 통합시키며 도시적이면서도 정갈한 화면을 펼쳐 보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동시성’을 주제로 자기만의 조형세계를 갖춘 그는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네모꼴과 색채로 이뤄진 차가운 기하학적 추상을 발표했다. 직선과 날카로운 모서리들이 부드러운 색감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의 틀을 과감하게 깨고 변신의 몸부림으로 시도한 최근의 작품들에 눈길이 간다. 네모들은 경계를 찾기 어렵게 부드러운 형상으로 색채 속으로 녹아들었다. 색감은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파스텔톤이다. 작가가 어린 시절 경험한 한국 창호지에 비친 푸른 달빛의 시정, 온화한 저녁 노을, 조선 백자에서 보여지는 우윳빛 등의 색감이다. 그가 산사에서 오감으로 받아들인 바람 소리와 새소리가 화면에 녹아들어 부드러운 색면으로 거듭난 듯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난 일을 회상하는 작가 자신의 내면을 보듯 사색적이고 성찰적인 작품들이다. “달빛이 드리운 창호지 문이나 집안 곳곳에 놓인 도자기를 보면서 색감에 대해 영감을 받았고 다락방 문풍지에 해마다 바꿔 걸어 주던 민화를 보고 따라 그리면서 놀았다. 항상 우리 얼, 우리 정신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반세기가 지나도 제목은 여전히 ‘동시성’이다. 동시성이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시에 보여 주고 자신의 생각과 형태와 색채와 시간과 공간을 한 화면에 동시에 구성한다는 의미가 있다. 전시는 오는 6월 10일까지.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전설의 록밴드 ‘올먼 브러더스’의 동생 그렉 70세를 일기로 영면

    전설의 록밴드 ‘올먼 브러더스’의 동생 그렉 70세를 일기로 영면

    미국 록그룹 레전드 중 하나인 ‘올먼 브러더스’의 리더인 그렉 올먼이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27일(이하 현지시간) 조지아주 사반나의 자택에서 영면했다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다섯 자녀를 둔 그의 사인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1999년 C형 간염에 감염돼 이듬해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1970년대 결혼 생활을 했던 팝스타 체어는 트위터에 둘이 함께 찍힌 사진을 올려놓고는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는” 슬픔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는 한 살 위의 형 듀웨인과 함께 1960년대 말 밴드를 결성했다. 전성기 때 밴드는 라디오방송에 곧잘 출연했고 록역사에 남을 앨범들을 많이 남겼다. 리드 싱어이자 키보디스트였던 그는 ‘Whipping Post’ ‘It’s Not My Cross to Bear’ ‘Midnight Rider’ 등 수많은 히트곡을 작곡했지만 밴드의 가장 유명한 노래는 1973년 작 ‘Jessica’로 ‘Top Gear’의 타이틀 음악으로 사용됐다. 초기 앨범 세 장이 연거푸 히트하면서 스타덤에 올랐지만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로 여겨지던 형 듀웨인이 25세이던 1971년 모터사이클 사고로 요절하면서 밴드의 비극이 시작됐다. 1년 남짓 뒤 베이시스트 베리 오클리마저 모터사이클 사고로 듀웨인의 뒤를 따랐다. 우울증에 빠진 고인은 이때부터 약물에 탐닉해 1970년대를 헤로인 중독자로 지냈다. 고인은 1995년 로큰롤 명예의전당에 입회했지만 2012년 출간한 회고록 ‘My Cross to Bear’를 통해 당시 입회식에도 술을 잔뜩 마신 채 참석했다고 털어놓은 일이 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주말 영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EBS1 토요일 밤 10시 55분)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세일즈맨’의 이란 거장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작품이다. 파르하디 감독은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이민 정책에 반발해 시상식을 보이콧했다. 원제가 ‘지난날’(the past)인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는 별거 중인 부부가 이혼 소송을 마무리 짓기 위해 4년 만에 다시 만나 두 딸과, 아내의 약혼자, 그리고 약혼자의 아들 사이에서 겪게 되는 어색한 상황을 담았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구성 방식이 관객의 시선을 잡는다. 파르하디 감독은 ‘어바웃 엘리’(2009)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시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로 미국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는 등 만드는 작품마다 국제 영화제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13년작. ●캐치 미 이프 유 캔(EBS1 일요일 오후 1시 55분) 1960년대 실존했던 미국의 천재 사기꾼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하고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톰 행크스, 크리스토퍼 월큰, 마틴 쉰 등 쟁쟁한 배우들이 뭉쳐 제작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스무 살이 되기 전 미 연방수사국(FBI)의 최연소 지명 수배자가 됐다가 이후 금융사기 예방과 문서 보안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변신한 애버그네일의 극적인 인생과 기발한 사기 행각에 스필버그 특유의 가족의 회복, 가족의 유대감 등이 녹아든 작품이다. 2002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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