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1945년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증상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1700원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물량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명량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899
  • 일제가 만든 서대문형무소, 첫 사형장 위치 어디였을까

    일제가 만든 서대문형무소, 첫 사형장 위치 어디였을까

    일제가 지은 서대문형무소의 첫 사형장 위치와 구조가 확인됐다. ‘1908~1945년 서대문형무소 사형 집행의 실제와 성격’을 쓴 이승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학예연구사는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경성감옥서 신축 전경 평면도’로 이를 추정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1908년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서대문형무소의 최초 사형장은 10옥사와 11옥사 중간에 있었다. 일제는 경성감옥을 세울 때부터 사형장을 배치했고 사형은 ‘감옥 안에서 비공개’로 한다는 원칙에 따라 가장 안쪽에 존재했다. 감옥과 이어진 문은 형무소 직원과 사형수가 이용했다. 바깥으로 난 문은 사형 집행이 끝난 뒤 시신을 옮기는 용도였을 것으로 추측했다. 첫 사형장 자리에는 현재 작은 연못이 있다. 사형장을 만들면서 시신을 수습하고자 파 놓은 지하 공간을 이용해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서대문형무소의 두 번째 사형장은 감옥 남서쪽에 지었으며 1987년까지 사용됐다. 이곳은 일제가 건립한 유일한 현존 사형장이다. 아울러 이 연구사는 일제강점기 통계 자료를 분석해 서대문형무소에서 1908∼1945년 사형당한 사람이 최소 493명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이는 일제가 집행한 전체 사형 건수의 36% 수준이다. 서대문형무소 사형 집행 인원은 연평균 12.9명이었지만 3·1운동 직전인 1909년에 77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 연구사는 “감옥 설립 초기에 의병 활동이 왕성했고 사법권을 확보한 일본이 엄격하게 처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논문은 서울역사편찬원 학술지 ‘서울과 역사’ 최신호에 실렸다.
  • 야스쿠니신사서 ‘V’ 사진 찍은 中 배우, 광고 다 끊기고 사실상 퇴출

    야스쿠니신사서 ‘V’ 사진 찍은 中 배우, 광고 다 끊기고 사실상 퇴출

    중국의 인기배우가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가 거센 비난에 직면해 출연했던 광고가 모두 끊기고 연예계에서 사실상 퇴출됐다. 올해 무협 판타지 드라마 ‘산허링’으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장저한(30)은 2018년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V’자를 취하고 찍은 사진이 지난 12일부터 뒤늦게 퍼지면서 인터넷에서 집중포화를 받았다.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에서 벌어진 내전과 일제가 일으킨 수많은 전쟁에서 숨진 246만 6000여명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이다. 이 가운데 90%에 가까운 213만 3000위는 일제가 ‘대동아전쟁’이라 부르는 태평양전쟁(1941년 12월~1945년 8월)과 연관돼 있으며, 특히 일제 패망 후 도쿄 전범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을 거쳐 교수형에 처해진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태평양전쟁을 이끌었던 A급 전범 14명이 야스쿠니 신사에 봉안돼 있다.장저한은 2019년 일본 노기 신사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한 사실도 이번 논란을 계기로 알려졌다. 노기 신사에 러일전쟁에서 일본 승리에 공헌한 노기 마레스케 장군이 봉안된 곳이라는 점이 부각되며 더 큰 비난 세례가 쏟아졌다. 장저한은 지난 13일 “무지했던 스스로가 부끄럽다. 그간의 부적절한 행동에 깊이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또 “나는 친일파가 아니고 중국인”이라고 해명했지만 파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나 장저한의 사진 속에 등장한 여성이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아내인 데비 수카르노로, 일본 태생의 반(反)중국 인사라는 점에서 비난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21세기경제보도 등에 따르면 장저한은 홍보 모델로 일해오던 25개 넘는 기업과의 계약이 하룻밤 사이 모두 끊겼다. 코카콜라와 덴마크 주얼리 브랜드 ‘판도라’, 중국 음료업체 ‘와하하’ 등이 일제히 장저한과의 상업적 협력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식품회사 ‘쉬푸지’는 “장저한이 중국인의 감정을 손상한 행위에 단호히 반대한다”면서 “민족 대의, 국가 이미지와 존엄이 침범당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장저한을 캐스팅해 영화 ‘웨이허팡바오두이(Formed Police Unit)’를 제작 중인 제작사도 그를 작품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내년 개봉을 목표로 하는 이 영화는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또 중국공연업협회는 15일 성명을 내고 회원사에 장저한에 대한 보이콧을 요구했다. 협회는 배우인 장저한이 최근 콘서트 등 공연 관련 활동도 했기 때문에 이번 일에 대해 주목했다고 설명하면서 “장저한의 행위는 매우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협회는 야스쿠니신사가 일본 군국주의 대외 침략전쟁의 상징이자 역사를 부정하고 전쟁을 미화하는 장소라면서, 장저한의 행위를 “민족 감정을 상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청소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아울러 “연예인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는 것은 기본적인 직업적 소양”이라면서 “무지는 변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 중국 매체는 “장저한이 ‘산허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지 6개월이 되지 않았지만 추락하는 데는 4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평했다. 앞서 인민일보는 지난 13일 장저한을 겨냥해 “막중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서 “민족의 대의에 대한 어떠한 도전도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중국중앙방송(CCTV)도 장저한이 역사의 상처를 건드리고 민족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면서, ‘모르고 한 일’이라고 간단히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 아베 전 日총리, 태평양전쟁 패전일 야스쿠니신사 참배

    아베 전 日총리, 태평양전쟁 패전일 야스쿠니신사 참배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일본의 태평양전쟁 종전일(패전일)인 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지난해 9월 퇴임 후 아베 전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확인된 것만 이번이 4번째다. 아베 전 총리는 퇴임 사흘 만인 지난해 9월 19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데 이어 같은 해 10월 19일(추계 예대제), 올해 4월 21일(춘계 예대제)에도 각각 참배했다.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야스쿠니신사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에서 벌어진 내전과 일제가 일으킨 수많은 전쟁에서 숨진 246만 6000여명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이다. 이 가운데 90%에 가까운 213만 3000위는 일제가 ‘대동아전쟁’이라 부르는 태평양전쟁(1941년 12월~1945년 8월)과 연관돼 있다. 특히 일제 패망 후 도쿄 전범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을 거쳐 교수형에 처해진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7명과 무기금고형을 선고받고 옥사한 조선 총독 출신 고이소 구니아키 등 태평양전쟁을 이끌었던 A급 전범 14명도 1978년 합사 의식을 거쳐 야스쿠니신사에 봉안돼 있다. 일본에도 우리나라의 국립현충원이나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와 같은 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이 있다. 정작 야스쿠니신사는 국가와 공식 관련 없는 민간 종교시설인데도 보수우익 세력과 이들의 지지를 받는 총리를 비롯한 내각 관료들이 야스쿠니신사를 국립묘지처럼 참배하고 있다. 이는 곧 A급 전범의 영령을 기리는 것과 다를 바 없기에 한국과 중국 등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로부터 피해를 입은 국가들은 일본의 보수우익이 침략전쟁의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으로 간주해 반발하는 것이다. 아베 전 총리는 제2차 집권을 시작한 다음해인 2013년 12월 26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뒤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강한 반발을 의식해 이후 재임 기간에는 야스쿠니신사의 봄·가을 큰 제사인 예대제와 8·15 패전일에 직접 참배하는 대신 공물을 봉납해왔다. 한편 올해 종전일 계기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스가 요시히데 내각의 현직 각료는 5명으로 늘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과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 이노우에 신지 엑스포담당상이 이날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앞서 13일에는 기시 노부오 방위상과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재생상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 [속보] 아베 전 日총리, 패전일 야스쿠니신사 참배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일본의 태평양전쟁 종전일(패전일)인 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과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야스쿠니신사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에서 벌어진 내전과 일제가 일으킨 수많은 전쟁에서 숨진 246만 6000여명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이다. 이 가운데 90%에 가까운 213만 3000위는 일제가 ‘대동아전쟁’이라 부른 태평양전쟁(1941년 12월~1945년 8월)과 연관돼 있다.
  • 文 “선조들, 해방 공간서 복수 대신 포용… 대화의 문 항상 열어둬”

    文 “선조들, 해방 공간서 복수 대신 포용… 대화의 문 항상 열어둬”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우리 정부는 양국 현안은 물론 코로나와 기후위기 등 세계가 직면한 위협에 공동대응하기 위한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바로잡아야 할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와 기준에 맞는 행동과 실천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옛 경성역사 자리인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처럼 한일 간 과거사와 미래지향적 관계를 분리대응하는 ‘투트랙’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한일 양국은 국교 정상화 이후 오랫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가치를 기반으로 분업과 협력을 통한 경제성장을 함께 이룰 수 있었으며 앞으로도 양국이 함께 가야 할 방향”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한일 양국이 지혜를 모아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나가며 이웃 나라다운 협력의 모범을 보여주게 되길 기대한다”고도 말했다. 지난달 도쿄올림픽 개회식을 계기로 한 한일정상회담이 끝내 무산되는 등 한일관계 경색 국면이 이어지고 있지만, 임기내 관계 개선의지를 재차 피력하는 동시에 ‘공존·성장’에 무게를 둔 메시지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우리에게는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강인한 ‘상생과 협력의 힘’이 있다”면서 “식민지배의 굴욕과 차별, 폭력과 착취를 겪고서도 우리 선조들은 해방 공간에서 일본인들에 대한 복수 대신 포용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해방 다음날인 1945년 8월 16일,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였던 민족의 지도자 안재홍(1891~1965) 선생의 대국민 방송 연설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은 “선생은 ‘패전한 일본과 해방된 한국이 동등하고 호혜적인 관계로 나아가자’고 제안했다”면서 “식민지 민족의 피해의식을 뛰어넘는 참으로 담대하고 포용적인 역사의식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해방으로 민족의식이 최고로 고양된 때였지만, 우리는 폐쇄적이거나 적대적인 민족주의로 흐르지 않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또 “아시아를 넘어 세계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3·1독립운동의 정신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해방된 국민들이 실천해 온 위대한 건국의 정신이며 대한민국은 한결같이 그 정신을 지켜왔다”고도 말했다.
  • [데스크 시각] 왜 대한민국 대통령이 ‘평양시장’을 임명하나/강국진 정책뉴스부 차장

    [데스크 시각] 왜 대한민국 대통령이 ‘평양시장’을 임명하나/강국진 정책뉴스부 차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오늘 오새훈을 서울시장으로, 이제명을 경기도지사로 임명했다고 조선중앙방송이 보도했다.” 이 보도를 접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십중팔구 극도로 분노하거나 가슴이 턱 막힐 만큼 어처구니없어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저것들이 아직도 적화통일 야욕을 못 버렸다’고 생각할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저러고도 제대로 된 나라인가’라며 혀를 끌끌 찰 것이다. 물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결의안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다. 오해는 하지 말자. 오새훈·이제명 얘기는 100% 허구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엄연한 국가인데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일이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선진국인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제부터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 황해도 등 5곳의 도지사를 임명한다. 물론 정식 임명장도 준다. 심지어 차관급이다. 이들 도지사 5명은 1억원이 넘는 연봉과 2000만원이 넘는 업무추진비를 포함해 차관급으로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의전을 누린다. 이북5도지사들로 구성된 이북5도위원회는 엄연한 행정안전부 산하 정부 조직이다. 이북5도위원회는 이북5도에 대한 정보 수집, ‘수복 시 실시할 제반 정책 연구’와 관련 단체 지원·관리 등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이런 게 실제로 이뤄질 턱이 없다. 이북5도지사는 차관급 의전을 받으며 하는 일 없이 소일하는 경로당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실 이북5도위원회가 조직 목표로 내세운 활동을 정말로 한다면 오히려 그게 더 문제 아닐까 싶다. 만약 중국 정부가 ‘국토 관념을 명확히 하고 언젠가는 기필코 달성하고야 말 실지 회복에 대한 통일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차관급 타이베이시장을 임명한다면 이해하고 납득할 외국인이 몇 명이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정작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70년 넘게 하고 있다. 북한이 유엔에 정식으로 항의하면 우리 정부는 뭐라고 변명할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까지도 최근 황해도지사와 함남도지사를 임명했다고 하니 창피한 노릇이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평양시장과 신의주시장, 원산시장도 임명한다. 1945년 해방 당시 이북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도지사, 시장, 군수, 거기다 읍면동장까지 임명한다. 그렇게 임명장을 받는 사람이 얼추 1000명가량 된다. 도지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명예 시장·군수는 도지사가 임명한다. 명예 시장·군수·읍면동장들은 임기 3년 동안 정부로부터 수십만원씩의 수당까지 받는다. 자격 조건은 이북에서 태어난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남쪽으로 넘어왔다고 해도 최소 68세다. 읍면동장을 채우기 힘들어지자 요즘은 ‘이북에서 태어난 사람의 자녀’에게도 자격을 부여한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금하는 ‘사회적 특수계급’을 행안부가 운영하고 있다. 이북5도위원회의 뿌리는 1949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이북5도지사를 임명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에는 실향민 원적 발급을 보증해 주는 등 정부 기능도 일부 수행했지만 법적 근거는 없었다. 1962년 이북5도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생기면서 법적 근거를 갖게 됐다. 1967년부터는 명예 시장·군수에게, 1970년부터는 명예 읍면동장에게도 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는 일 없고, 일을 해서도 안 되는 조직으로 70년 넘게 이어 왔다. 이북5도위원회 폐지는 평화통일을 원하는 사람, 작은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 공무원 숫자를 줄이고 싶어 하는 사람, 정부혁신을 강조하는 사람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문제다. 이북5도위원회 문을 닫아 주자. 이제는 없앨 때다.
  • 이번엔 소송시효 지났다고… 日 강제징용 유족, 또 패소

    이번엔 소송시효 지났다고… 日 강제징용 유족, 또 패소

    일제강점기에 일본 기업에 끌려가 노역에 시달린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이 패소한 건 지난 6월에 이어 두 번째다. 다만 6월 판결과 달리 법원은 재판 관할권이 우리 법원에 있다고 봤지만 해당 소송의 시효가 이미 2015년에 지났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단독 박성인 부장판사는 11일 강제징용 피해자 이모씨의 유족 5명이 미쓰비시 매터리얼(전 미쓰비시광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이씨는 생전에 1941~1945년 탄광에 강제 동원돼 피해를 봤다고 진술했고, 이를 바탕으로 유족이 2017년 2월 1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대법원이 2012년 5월 강제노동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소멸되지 않았고, 대한민국의 청구권만 포기된 것이라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판결은 2018년 10월에야 확정됐지만 원고들의 권리행사 장애 사유는 2012년 5월 대법원 판결로 해소됐다고 봐야 한다”며 “원고들이 2017년 2월 소송을 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간 안에 제기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계산하는 기준이 2018년 확정 판결이 아닌 2012년 파기환송 판결이 돼야 한다는 취지다.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은 피해자가 손해 또는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내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한다. 다만 재판부는 일본 기업에 의한 강제노역 사건을 심리할 관할권이 우리 법원에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불법행위 일부가 이뤄진 지역인 대한민국은 분쟁이 된 사안과 실질적 관련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난 6월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당시 재판부가 우리 법원에 재판 관할권이 없다며 각하 판결을 내린 것과 상반된다. 이 사건은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日 도쿄 불태워버린 美 폭격기 ‘B-29 슈퍼포트리스’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日 도쿄 불태워버린 美 폭격기 ‘B-29 슈퍼포트리스’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인 1945년 3월 9일 일본 도쿄. 밤늦은 시각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하늘에 미 육군 항공대 소속의 B-29 폭격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B-29 폭격기의 공습은 과거와 매우 달랐다. 고공으로 비행하던 B-29 폭격기들이 저공으로 날아들었고, 폭탄 대신 적의 표적물을 소각 파괴할 목적의 소이탄을 가득 싣고 있었다. 태평양의 사이판과 티니안섬에서 출격한 325대의 B-29 폭격기들 가운데 279대가 도쿄 상공에 등장했다. 3월 10일 자정 무렵 B-29 폭격기들의 폭탄창이 열리고, 38만 1300발의 M69 소이탄이 지상으로 투하된다. 도쿄 시내 8500여 곳에 소이탄이 떨어졌고 치명적인 화재가 연달아 발생했다. 여기에 바람까지 더해 화재는 대규모로 확산되었다. 폭풍처럼 불이 번지면서 화재진압 노력은 실패로 돌아간다. 무수한 인명이 화마에 사라졌고 당시 일본 경시청 발표에 따르면 사망자는 8만여 명에 달했다.또한 이재민은 100만여 명 그리고 피해주택은 26만여 채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하지만 전후 민간조사에 따르면 실제 사망자 수는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날 공습은 도쿄대공습의 시작에 불과했다. 도쿄대공습의 주역은 B-29 폭격기였다. B-29 폭격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만들어진 항공기 가운데 가장 큰 크기를 자랑했다. 유럽 전선에서 활약한 B-17, B-24와 달리 태평양 전선 특히 일본 본토를 공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B-29 폭격기를 개발할 당시 미 육군 항공대는 막대한 폭탄탑재량과 함께 4800km 이상의 항속거리를 요구했다. 1942년 9월 21일 첫 비행에 성공한 B-29 폭격기는 당시 미국이 만든 폭격기 가운데 유일하게 여압장치를 갖추었다. 여압장치란 높은 고도를 비행하는 항공기 내부의 기압을 조절해 주는 장치로 일반적으로 8천 피트 즉 고도 2.4km 상공의 기압을 기내 기압으로 유지하도록 해 준다. 유럽 전선에서 활약했던 B-17이나 B-24 폭격기의 경우 여압장치가 없어,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두꺼운 항공점퍼를 입어야 했고 산소호흡기도 착용해야 했다. 반면 여압장치가 있었던 B-29 폭격기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자체무장으로는 2연장 12.7mm M2 중기관총을 장착한 원격조종 포탑을 기체 네 곳에 설치했고, 기체 꼬리 부분에는 2연장 12.7mm M2 중기관총 혹은 20mm 기관포 1문이 장착했다. 막강한 자체무장과 많은 폭탄탑재량으로 B-29 폭격기는 슈퍼포트리스(Superfortress) 즉 하늘의 요새라는 별칭을 갖게 된다. 2200마력 공랭식 피스톤 엔진 4개를 장착한 B-29 폭격기는 최대 시속 575km로 비행할 수 있었고 최대 이륙 중량은 60여 톤(t)에 달했다. 항속거리는 최대 5230km에 달했지만, 폭탄 2.3톤을 탑재할 경우 고고도 비행 시 최대 2600km에 불과했다.이 때문에 미군은 B-29 폭격기의 일본 본토 공습을 위해 막대한 희생을 치르며 사이판과 괌 그리고 이오지마를 탈환해야만 했다. 1943년부터 1946년까지 3900여대가 만들어진 B-29 폭격기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제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 지었다. 이후 6.25 전쟁 때는 낙동강 전선에서 ‘융단폭격’ 즉 특정지역에 집중적으로 폭탄을 투하하는 대규모 폭격을 감행해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 경북, “뮤지컬 관람하면서 늦더위를 쫓아 보세요”

    경북, “뮤지컬 관람하면서 늦더위를 쫓아 보세요”

    “뮤지컬을 관람하면서 늦더위를 쫓아 보세요.” 경북 안동시는 11일부터 15일까지 매일 오후 8시부터 안동탈춤공연장에서 뮤지컬 이육사 시즌Ⅱ ‘51년의 독립전쟁- 석주에서 육사까지’를 공연한다고 10일 밝혔다. 이 뮤지컬은 1894년 갑오의병부터 1945년 광복까지 치열하게 이어진 안동 독립전쟁 51년 역사를 되돌아보고, 진정한 선비정신을 현대인들에게 전달하고자 기획됐다. 독립을 위해 투쟁한 안동인들의 역사를 감각적·서사적으로 구성한다. 또 다양한 영역에서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예술적 언어로 표현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수칙에 따라 관람객 인원은 회당 100명으로 제한된다. 또 오는 13~14일 경북도청 특설무대에 고려 건국 시기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왕의나라 ‘삼태사와 병산전투’를 올린다. 이어 19∼22일에는 안동민속촌 성곽 특설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고려 개국공신으로 당시 왕건을 도와 견훤을 막아 낸 공로로 ‘삼태사’ 칭호를 받은 김선평, 권행, 장정필과 함께한 고창(당시 안동) 백성들의 치열했던 삶을 재조명한 작품이다. 출연진 70여 명 중 절반가량이 지역 출신 연기자인 점도 눈길을 끈다. 2019년 공연에서는 미스터 트롯의 영탁이 왕건역으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고 올해는 문경 출신 트로트 가수 선경이 왕건역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에는 경북도청 신청사 개청 이래 처음으로 야외광장 특설무대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비디오 프로젝션 맵핑을 선보일 예정이어서 큰 기대를 모은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400명으로 인원을 제한한다.
  • 북한, 日올림픽 기미가요 제창에 “파렴치한 행위…나치즘 빼닮아”

    북한, 日올림픽 기미가요 제창에 “파렴치한 행위…나치즘 빼닮아”

    북한 선전매체는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일본의 정상급 가수가 ‘기미가요’를 부른 것을 두고 군국주의의 상징이라며 맹비난했다. 대외선전매체 통일의 메아리는 8일 ‘복수주의에 들뜬 일본이 갈 곳은’ 제목의 기사에서 “얼마 전 일본에서 열린 올림픽 경기대회 개막식장에서 군국주의 상징인 ‘기미가요’가 뻐젓이 제창되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언급했다. 지난달 23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선 일본 톱가수 미샤가 국가인 기미가요를 불렀다. 기미가요는 일왕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은 제국주의 시절 일본 국가로 1945년 2차 대전 패전 이후 폐지됐었으나, 일본 정부는 1999년 ‘국기·국가에 관한 법률’을 통해 이를 공식 국가로 법제화했다.북한 매체는 “일제 침략자들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나라들을 침략할 때 목이 터지게 불러대던 것”이라며 “그 저주스러운 기미가요가 평화와 친선을 기본 이념으로 하는 올림픽 경기대회의 개막식장에서 울렸다고 하니 세상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행태는 제2차 세계대전 전야에 세계 제패를 꿈꾸던 파쇼 도이칠란트(독일)가 베를린올림픽 경기대회에서 나치즘을 선동하던 것과 신통히도 빼닮았다”고 맹비난했다. 이어 “이러한 파렴치한 행위는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일본에 의해 앞으로 인류가 또다시 엄청난 재난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와 경계감을 가지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의 가사에는 ‘임의 치세는 천 대에 팔천 대에 작은 조약돌이 큰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라는 구절이 있다. 기미가요를 비판하는 이들은 가사의 ‘임’이 ‘일왕’을 의미하며 기미가요가 일왕의 치세가 영원히 이어지길 기원한다는 점에서 군국주의 일본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 美언론인, 동료기자 日편의점 예찬에 “방사능” 언급했다가 봉변

    美언론인, 동료기자 日편의점 예찬에 “방사능” 언급했다가 봉변

    미국 뉴욕타임스 소속 기자 한 명이 해외 취재진의 잇단 ‘일본 편의점 예찬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5일 허핑턴포스트 일본판은 뉴욕타임스 에디터 줄리아나 바르바사가 동료 기자의 편의점 샌드위치 극찬에 ‘방사능’을 언급했다가 뭇매를 맞았다고 전했다. 지난 2일 뉴욕타임스 스포츠전문기자 타릭 판자가 일본 편의점에서 산 샌드위치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그는 “동료 말이 맞았다. 로손 편의점의 간단한 달걀 샌드위치인데 전혀 다른 수준의 미식 경험을 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번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각국 대표팀 선수와 스태프, 심판, 취재진은 행사 기간 내내 숙소와 경기장만 오갈 수 있다. 일정한 권역 내에 모아두고 외부 위험 요소를 차단하는 이른바 ‘버블 방역’ 차원이다. 외출은 딱 15분만 허용되는데, 숙소 바로 인근의 편의점 정도만 갈 수 있다. 매일 똑같은 숙소 조식과 메인프레스센터(MPC) 식당 고정 메뉴에 질린 해외 취재진이 색다른 먹거리를 접할 수 있는 곳도 사실상 편의점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메인프레스센터 로비에 있는 로손 편의점은 새로운 먹거리를 체험하려는 각국 취재진으로 만원이다.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뉴욕타임스 기자 앤드루 케는 1일 기사를 통해 “편의점의 냉동 닭똥집이 내 삶을 구했다. 닭똥집을 해동해 한입 베어먹고 차가운 맥주 한 모금을 마신 그 순간, 평화가 찾아왔다”고 밝혔다. “일본의 편의점은 질이 뛰어나고, 다양하고,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다. 미국의 편의점과 비교해 얼마나 월등한지를 이루다 설명하기 어렵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CNN도 “숙소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많은 사람에게 일본의 24시간 편의점이 있다는 건 그나마 행운”이라며 “주장하건대 일본의 편의점은 세계 최고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음식과 음료를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해외 취재진의 편의점 예찬론이 이어지면서, 각종 논란으로 얼룩졌던 올림픽에도 오랜만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일본 누리꾼은 모처럼 전해진 해외 취재진의 호평에 반색했다. 하지만 미국 뉴욕타임스 소속 에디터 한 명이 방사능을 언급하면서 분위기는 급냉각됐다. 뉴욕타임스 에디터 줄리아나 바르바사는 2일 자사 기사 타릭 판자의 로손 편의점 달걀 샌드위치 예찬 트윗에 “그거 약간 방사성 같은데”라는 답글을 날렸다.파장은 컸다. 현지에서는 “일본인에게 상처가 되는 표현”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특히 ‘원폭의 날’ 76주년을 앞두고 미국 기자가 방사능을 언급한 건 매우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였던 1945년 8월 6일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을 끝내기 위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일본 누리꾼들은 “미국이 (감히) 방사성과 피폭을 운운하냐”, “곧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지 76년 되는 날이다. 미국 기자는 피폭국인 일본에 예의를 갖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논란이 일자 바르바사는 4일 트위터를 삭제했다. 허핑턴포스트 일본판에 따르면 “단어 선택에 문제가 있었다. 의도치 않게 다른 의미를 내포한 단어를 썼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분노는 쉬이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허핑턴포스트 일본판은 “바르바사가 소속된 뉴욕타임스 측에 코멘트를 요청했지만, 그녀가 트윗을 삭제하고 해명한 것만 지적했을 뿐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고 날을 세웠다. 한편 브라질에서 태어난 뉴욕타임스 에디터 바르바사는 이라크, 몰타, 리비아, 스페인, 프랑스, 미국을 오가며 생활하다 텍사스에서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으며, 2003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특파원으로 AP통신에 합류했다. 현재는 미국에 머물며 뉴욕타임스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담당 에디터로 근무 중이다.
  • 독일 기록적인 폭우 덮친 뒤 집에서 나치 유물이 ‘와르르’

    독일 기록적인 폭우 덮친 뒤 집에서 나치 유물이 ‘와르르’

    지난달 기록적인 폭우로 홍수가 덮쳤던 독일의 한 주택에서 파손된 벽 뒤에 숨겨져 있던 나치 시대 유물이 대량 발견됐다. 4일(현지시간) 영국 더타임스 등에 따르면 독일 서부도시 하겐에서 이모의 집을 치우던 역사 교사 세바스찬 유르트세벤은 폭우로 눅눅해진 석고보드 벽 뒤에서 갱도를 발견했다. 이 숨겨진 공간에서 히틀러의 초상화, 방독면, 고장난 권총, 나치 휘장 등 나치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유르트세벤은 현지 언론에 “소름이 돋았다. 홍수가 이렇게 엄청난 발견으로 이어질 줄 몰랐다”고 말했다.현지 언론에 따르면 해당 건물은 아돌프 히틀러가 이끌던 나치의 복지 담당기관인 인민복지기구(NSV)의 지역 본부로 쓰였으며, 당시 식량과 방독면 등을 배급하고 전시에 아동들을 시골로 대피시키는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발견된 유물 중에는 당시 이 지역 임산부 현황이나 식량 배급 등의 기록이 담긴 문서도 다수 포함됐다. 역사학자들은 1945년 4월 미군이 이 지역을 점령하기 전 나치 관련자들이 이 물건들을 건물 사이의 틈새에 급히 버리고 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유물을 발견한 유르트세벤은 물론 이 건물 소유주인 그의 이모 역시 벽 뒤에 숨겨져 있던 나치의 유물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가족들은 1960년대에 이 건물을 매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랠프 블랭크 하겐 기록보관소장은 1943년 당시 1700만명의 추종자를 거느렸던 NSV에 대한 원본 자료가 거의 없다면서 이번 사례가 보기 드문 발견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NSV는 적십자사나 교회 자선단체 등의 복지기구 대신 무료급식, 건강검진, 어린이 예방접종 등의 복지사업을 통해 나치의 이데올로기를 확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블랭크 소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발견”이라면서 “나치의 기관이 지역 사회에서 어떤 활동을 벌였는지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말했다.
  • 코로나 시대 혼자 달리고 같이 즐기는 ‘버츄얼 런’ 뜬다

    코로나 시대 혼자 달리고 같이 즐기는 ‘버츄얼 런’ 뜬다

    코로나19로 ‘비대면 마라톤’ 인기마라톤 참가할 때마다 후원·기부도 할 수 있어‘건강’도 챙기고 ‘의미’도 추구하는 버츄얼 런코로나19가 일상이 되면서 스포츠의 풍경도 달라졌다. 같은 장소에 모여 함께 달리던 마라톤만 하더라도 대면 행사는 취소하는 추세다. 대신 각자 편한 장소에서 뛰고 온라인 상에서 달리기 기록을 공유하며 연대감을 갖는 ‘버츄얼 런’이 각광받고 있다. 카카오의 사회공헌 플랫폼인 ‘카카오같이가치’는 광복 76주년을 맞아 8월 한 달 동안 ‘2021 버츄얼 815런’을 진행한다고 4일 밝혔다.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2021버츄얼815런 #2021잘될거야대한민국 #카카오같이가치)와 완주한 사진을 올리면 된다. 지난 1일부터 시작한 ‘815런’ 캠페인은 인스타그램 인증에 참여한 사람만 이날 오전 11시까지 1000명에 가까울 정도로 관심이 집중됐다. 캠페인을 함께 진행하는 가수 션과 축구선수 이영표, 배우 임시완 등도 많은 연예인들도 직접 달리고 인증 사진을 올렸다. 버츄얼 런은 달리는 사람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정해 일정 거리를 뛰는 비대면 마라톤이다. 여기에 GPS가 내장되어 있는 스마트 기계로 자신이 뛴 구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면서 ‘완주’를 인증하는 방식이다. 코로나19로 함께 달리지 못하는 물리적 환경을 뛰어 넘어 ‘각자 뛰고 함께 하는’ 점이 버츄얼 런의 특징이다. 또한 단순한 비대면 마라톤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기부에 동참할 수 있는 캠페인형 비대면 마라톤이 늘고 있다. 주최 측이 참여한 인원 수만큼 기부금을 적립하거나 개인의 참가비를 모금해 기부함으로써 참여자들이 뜻 깊은 의미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카카오가 후원하는 815런 캠페인은 참여자가 인스타그램에 인증한 건수마다 815원을 기부해 독립유공자 후손을 위한 집짓기로 활용할 예정이다. 마라톤 코스도 3.1㎞, 4.5㎞, 8.15㎞ 중 한 코스를 선택해 달리는 방식인데, 각 코스는 삼일절과 광복을 되찾은 해(1945년), 광복절의 의미를 담았다.개인이 운영하는 ‘런 포 아워 히어로즈’는 지난 2일부터 오는 15일까지 ‘제2회 그날의 용기 버츄얼런’을 진행하며 참가비 수익금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후원할 예정이다. 주최 측은 지난 5월에도 ‘119런 버츄얼 마라톤’을 기획해 참가 수익비를 암투병 중인 소방관에게 기부했다. ‘런 포 아워 히어로즈’ 운영자 장도희(24)씨는 “취미가 마라톤이었고, 소외계층에 대해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맞아 버츄얼 런을 기획하게 됐다”며 “저소득층 청소년 생리대 지원을 위한 버츄얼 런 캠페인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전국 10곳의 지역 아동센터에 실제로 자판기를 설치하고 아이들이 쓰는 걸 직접 보고 이 캠페인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 씨는 “마라톤은 참여하는 연령대도 다양하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과 의미있는 일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 버츄얼 런의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 독한 독일 검찰, 나치 수용소 간수였던 100세 노인 법정 세운다

    독한 독일 검찰, 나치 수용소 간수였던 100세 노인 법정 세운다

    100세 노인이 독일 법정에 선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 남성은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베를린 근처에 있던 작센하우젠 노동수용소의 간수로 일하며 3518명의 수용자 살해를 도운 혐의로 독일 검찰에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고 영국 BBC가 2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는 총살로나 독가스를 주입해 수용자 처형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독일 검찰은 이날 이 노인이 오는 10월 법정에 나설 만큼 정정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의료 검진을 받게 해 이 할아버지가 하루 2시간 30분씩 재판에 나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의료진의 판단을 얻어냈다고 현지 일간 벨트 암 손탁이 전날 맨처음 보도했다. 이 신문은 변호사 토마스 발터가 원고 측의 많은 이들이 “피고만큼이나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정의가 실현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은 일본과 달리 전후 청산에 매우 적극적이었지만 아직도 찾아내지 못한 수용소 간수 등 비교적 경미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이들까지 찾아내 재판을 받게 하고 있다. 이렇게 경미한 범죄까지 처벌할 수 있게 된 것은 2011년 욘 뎀자뉵이란 이름의 전직 간수를 대량 학살에 관한 ‘액세서리 이론’으로 기소해 유죄 판결을 이뤄냄으로써 가능했다. 적극적으로 사람을 구하고 인권을 돌보는 조치를 하지 않고 멍하니 바라본 사람도 처벌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뎀자뉵은 항소하다 세상을 떠났지만 그 판례는 남아 다른 이들을 엄벌하는 논리로 쓰였다. 그 전에는 대량학살에 직접 연루됐다는 명확한 증거가 제시돼야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문제의 수용소에는 1936년부터 종전 때까지 거의 20만명이 수용돼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한참 전부터 나치에 반대하는 이들이나 종교적으로 박해해야 할 이들을 수용했다. 나치 독일의 일급 비밀부대인 친위대(SS)가 직할 운영하던 수용소였다. 이 수용소를 개조한 박물관 측에 따르면 수만명이 이곳에서 굶주림과 질병, 강제노역, 인체실험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독일 검찰은 지금도 나치 학살을 방조한 이들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93세 전직 수용소 간수가 5000명 이상의 수용자 학살을 방조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 3월에는 96세 전직 간수가 재판을 받기에 몸이 성치 않다는 이유로 재판을 면하게 했다.
  • [씨줄날줄] 1945년 8월 6일/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1945년 8월 6일/임병선 논설위원

    사흘 뒤인 6일이면 일본 히로시마에 ‘검은 비’가 내린 지 76년이 된다. 1945년 그날 오전 8시 15분 미군의 B29 전폭기 ‘에볼라 게이’가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떨어뜨렸다. 43초 뒤 시마(島) 외과병원 상공에서 강한 섬광과 함께 폭발하는 순간 섭씨 100만도의 열선이 사방을 3000~4000도의 용광로로 바꿔 버렸다. 엄청난 후폭풍과 방사선, 잿빛 폭우가 뒤따라 히로시마 인구 35만명 가운데 7만 8000명이 즉사하고 5만명이 다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각종 후유증으로 24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징용·징병 조선인 7만명도 그 참화를 피하지 못했다. 그래도 일본 군부와 왕실이 항복하지 않고 버티자 미국은 사흘 뒤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 ‘팻맨’을 투하해 미쓰비시 철강 공장을 포함해 산업시설 30%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7만 4000명이 죽었고, 7만 5000명이 다치거나 실종됐다. 또 조선인 3만명이 피폭 피해를 입었다. 그제야 일본 군부는 천황제를 존속시키는 조건으로 항복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자 히로히토 일왕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마침 2020 도쿄올림픽이 열리고 있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싶어 하는 일본인들이 많다. 마쓰이 가즈미 히로시마시장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에게 “선수와 대회 관계자가 선수촌 등 각자가 있는 장소에서 묵도하는 등 마음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 제전에 참가하도록 호소해 달라”고 요구했다. 바흐 위원장이 지난달 히로시마 평화공원(※사진※)을 찾아 피폭 위령비에 헌화했으니 받아들일 만하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한발 나아가 6일 피폭 시간에 맞춰 대회 참가자들이 ‘침묵의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스스로 죄를 의식한 듯 ‘묵념’보다 더 중립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표현을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IOC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인권유린에 참화를 겪은 한국과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들이 예민하게 나올 것을 우려해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포기하지 않은 조직위는 8일 폐회식에서 희생자들을 언급하는 내용을 넣을 계획이라고 마이니치신문이 전했다. 수출규제 갈등에다 독도 표기 문제를 겪은 우리로선 일본이 피해자처럼 구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일본 유권자 1889명의 49%는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15일 패전일 추도식 도중 가해와 반성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반면 언급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47%에 그쳤다. 일본이 반성하지 않은 채 피폭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자는 것은 염치없다.
  • 日 톱가수 미샤, 도쿄올림픽 개막식서 ‘기미가요’ 부른다

    日 톱가수 미샤, 도쿄올림픽 개막식서 ‘기미가요’ 부른다

    일본 톱가수 미샤(MISIA)가 23일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기미가요(君が代)를 부른다. 23일 닛칸스포츠와 스포츠호치 등 현지 매체는 가수 미샤가 올림픽 개막식에서 기미가요를 부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1999년 데뷔한 미샤는 일본에서 여성 솔로 가수로는 처음으로 5대 돔 투어에 성공한 톱가수다. 기미가요는 일왕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은 제국주의 시절 일본 국가로, 욱일승천기와 함께 일본 제국주의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꼽힌다. 공식 국가이지만 일왕 숭배의 의미가 강하다는 이유에서 일본 내에서도 거부감을 느끼는 국민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미가요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폐지됐으나, 1999년 일본 정부가 국기·국가에 관한 법률을 통해 국가로 법제화했다.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총독부가 황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인에게 기미가요를 강제로 부르게 했으며, 오늘날 일본에서는 극우단체 회원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때 주로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 유네스코 “日, 조선인 군함도 강제노동의 역사 왜곡”

    유네스코 “日, 조선인 군함도 강제노동의 역사 왜곡”

    일제 강제징용의 상징 ‘군함도’를 2016년 세계문화유산에 억지로 등재시키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와 했던 약속을 어긴 일본을 유네스코(UNESCO)가 강하게 비판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태평양전쟁 중 군함도에 끌려온 한반도 출신 징용 피해자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며 일본의 세계유산 관리 방식에 유감을 표명하는 비판 결의문을 22일 채택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WHC는 결의문에서 군함도를 다룬 도쿄의 산업유산정보센터를 개선하라고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공식 명칭이 ‘하시마’인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항으로부터 남서쪽 18㎞ 해상에 있는 섬으로, 1943~1945년 500~800명의 조선인이 이곳에 끌려가 강제 노역을 했다. 이 가운데 122명이 질병, 탄광사고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WHC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공동조사단은 지난달 7∼9일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시찰한 내용을 담은 실사 보고서를 지난 12일 인터넷을 통해 공개했다. 이를 통해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왜곡했다고 밝혔다. 공동조사단은 “1940년대 한국인 등이 본인 의사에 반해 강제로 노역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조치가 불충분할 뿐 아니라 이 산업유산정보센터가 군함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강제노역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전시가 없는 등 희생자 추모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밝혔다. 비슷한 역사를 지닌 독일과 같은 국제 모범사례와 비교해 볼 때 조치가 미흡하고 한국 등 당사국들과의 지속적인 대화도 부족하다고 했다. 결의문은 일본이 2018년 6월 세계유산위에서 채택된 결정을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해서도 ‘강력한 유감’을 표하고 약속 이행을 거듭 촉구했다. 당시 결정에는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 노역이 이뤄진 사실과 일본 정부의 징용 정책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 [서울광장] 김원웅 광복회장께/김상연 논설위원

    [서울광장] 김원웅 광복회장께/김상연 논설위원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의 패색이 짙어졌을 때 미국은 일본 열도를, 소련은 만주를 각각 우선적으로 차지(점령)하고 싶어 했다. 한반도는 그다음 순위였다. 특히 미국은 소련이 일본 점령에 숟가락을 얹는 시나리오를 극도로 경계하며 대응 전략까지 수립했을 정도다. 반면 한반도에 대해서는 1943년 12월 카이로회담 이전에 이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연합국 공동의 신탁통치를 구상했다. 다른 이유도 많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당시 한반도가 미국에 그다지 매력적인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 미 전쟁성 민정국은 1945년 7월 6일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이익이 크지 않으므로 소수의 미군을 사용해 연합국에 의한 국제 신탁통치에 참여…”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작성했다. 반면 부동항 확보 등 영토적 욕심이 컸던 소련은 한반도에 친(親)소련 정권을 세워 공산화한다는 계산 아래 치밀하게 움직였다. 1944년 당시 야코프 말리크 주일 소련대사가 “소련의 최대 목적은 만주와 조선, 대마도, 쿠릴열도를 지배하에 두고 태평양으로 나가는 출구를 확보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썼을 정도다. 이런 역사를 알고 보면 김원웅 광복회장이 지난달 “소련은 스스로 해방군이라고 표방했고, 미군은 스스로 점령군이라고 밝혔다”며 미국을 비판한 발언은 위험하다. 단편적 역사적 사실을 들어 전체적인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의 발언에서 점령군은 침략군의 뉘앙스를 풍긴다. 또 소련이 야욕을 감춘 채 겉으로 해방군이라고 밝혔다고 해서 호평하는 것은 나쁜 사람이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과 같다. 소련의 참전은 한국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서라는 사실은 소련 붕괴 후 공개된 소련 정부 비밀문서 등을 통해 이미 확인됐고, 학계에서도 논쟁이 끝난 사안이다. 1945년 9월 7일 맥아더가 발표한 포고령이 한국인을 ‘개무시’했다고 한 광복회의 비판도 지나치다. 지금 눈높이로 보면 고압적이지만, 해방 직후의 상황은 간단치 않았다. 당시 미군은 일본과 필리핀에서의 전후 처리 때문에 종전 후 거의 한 달이 돼서야 한반도에 들어왔다. 그 틈에 좌익세력이 이미 정국을 주도하고 있었다. 미군정으로서는 공산화를 경계해 단호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다. 김 회장은 역대 광복회장 중 가장 직설적으로 친일을 비판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지나치다고 비판하는데, 그런 비판을 비판하고 싶다. 광복회장이 친일을 비판하지 않으면 누가 비판해야 하는가. 친일파의 후손들이 지금도 사회 곳곳의 힘있는 자리에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 상황에서 그 정도로 비판할 수 있는 건 보통의 용기로는 힘들다. 다만 반일 주장이 종북(從北)으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친일 비판의 순수성이 의심받고 이념 공세의 빌미를 준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친일세력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하지 못했다”고 해 논란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지사의 발언은 역사적 사실에 비춰 틀린 게 없다. 다만 점령군이란 표현이 비판적 문장에 들어가면 침략군의 뉘앙스를 풍긴다. 따라서 그냥 ‘미군정’이라고 표현했다면 완벽한 발언이었을 것이다. ‘개무시’라는 말은 지나치지만 해방 전후 미국이 우리를 무시했던 것은 사실이다. 1945년 9월 8일 인천으로 입국해 일본 총독부의 항복을 받은 존 하지 중장은 “조선인은 일본인과 똑같은 고양이”라고 폄훼했다. 미국이 그런 마인드였으니 한반도에 크게 애정이 없었고 편의상 38선을 그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에 너무 집착해 미국을 탓하는 것은 일견 구차하다. 우리 스스로 힘을 키우지 못한 책임을 면제하고 강대국에 기대려는 습성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종전(해방) 후 일본에 머물던 맥아더는 3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는다. 그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식에 참석해 이런 연설을 한다. 읽다 보면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온다. “인위적인 장벽이 여러분의 국토를 양분하고 있다. 이 장벽은 반드시 제거되지 않으면 안 되며, 반드시 제거될 것이다. 여러분이 자유로운 국가의 자유스러운 인간으로서 통일하는 것은 누구로부터도 저지돼서는 안 된다. 한국 국민은 명예를 존중한 조상의 혈통을 이어받은 만큼 분열을 일삼는 외래의 사상에 굴복해 그 신성한 대의를 저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씨줄날줄] ‘먹방’ 속 명란젓/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먹방’ 속 명란젓/서동철 논설위원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먹방 TV’를 보는 시간도 늘었다. 최근에는 일본의 포장마차에서 명란구이를 먹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초등학교 시절 명란젓은 나무로 짠 상자에 담고 일본풍이 뚜렷한 붉은색 포장지에 싸여 있었다. 일본 음식이라고 생각한 이유일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최근 펴낸 ‘민속학연구’를 들춰 보다가 명란젓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을 한꺼번에 풀어 주는 글을 발견했다. 정연학 학예연구관의 ‘동해의 명태잡이에 대한 한일 갈등과 명태문화의 확산’이라는 논문이다. 결론적으로 일본식 명란젓 멘타이코(明太子)는 광복 이후 한국에서 돌아간 일본인이 소금에 절이는 한국식 대신 자기네 기호에 맞게 조미액으로 짜지 않게 만들면서 재탄생한 음식이었다. 북어(北魚)의 유래도 보인다. 명태는 동해안 추운 지역에서 잡혀 이렇게 불렸다. 그런데 실학자로 농정 개혁가로도 유명한 서유구(1764~1845)는 ‘날것을 명태, 건조한 것을 북어라고 한다’고 했다. 명태와 북어의 개념이 19세기 초반에 이미 정리돼 있었다. 과거 일본에서 명태는 맛없는 생선의 대명사였단다. 그런데 1883년 ‘조일통상조약’으로 일본 어선이 조선 해역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엄청난 어획고를 올리기 시작하자 명태 부산물의 산업화에 들어갔다. 그렇게 홋카이도 어민들이 조선의 명란젓 만드는 방법을 배워 1911년에는 중국으로 수출을 시작했다. 1914년에는 멘타이코가 일본 신문에도 처음 등장한다. 일본에서는 명란의 역사를 3기로 구분한다고 한다. 제1기는 1905년 이른바 관부연락선이 다니면서 부산의 일본인 상점에서 만든 명란젓이 시모노세키를 중심으로 일본 전국에 확산되는 시기다. 제2기는 1945년 이후 홋카이도 상인과 시모노세키 상인이 경쟁적으로 새로운 명란 제조 기술을 개발한 시기, 제3기는 1978년 이후 명란이 일본 전통 식품으로 정착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일본의 대표 명란젓인 후쿠오카의 가라시멘타이코는 ‘매운 명태의 알’이라는 뜻으로 한국 영향을 받아 고춧가루를 넣고 가다랑어포, 청주, 맛술 등을 첨가한 저염도 젓갈이다. 이런 제조 방식의 명란젓은 한국에서도 지속적으로 만들어져 1970년대까지 중요한 대일 수출품의 하나였다. 1980년대 명란젓 수출이 중단된 것은 짐작처럼 동해안 명태의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1971년 ‘자원보호령’을 개정해 27㎝ 이하 명태 어획을 금지한 규정을 삭제해 2008년에는 공식 어획량이 ‘0’이 됐다. 인현왕후의 큰아버지 민정중(1628~1692)은 “300년 뒤에는 이 고기가 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 예언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 57년 전 ‘원자 보이’처럼… 희망 전할 최종 성화 주자 누구

    역대 올림픽이 그랬듯이 1년 미뤄져 개막하는 도쿄대회 성화 최종 주자도 마지막 순간에 베일을 벗을 전망이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 일본이 전후 부흥을 내세우며 아시아 처음으로 여름 올림픽을 개최한 1964년 도쿄올림픽 성화 점화자는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 피폭지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당시 19세의 사카이 요시노리였다. 와세다대 육상부원이었던 사카이는 올림픽에 출전할 기량은 부족했지만 태생 이력과 ‘전후 재건’을 기치로 한 첫 도쿄올림픽 콘셉트에 딱 들어맞았다. 높이 32m, 163개 계단을 오른 뒤 성화대에 불을 붙인 그를 외신들은 ‘원자 보이’라고 불렀다. 57년 만에 다시 도쿄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도 ‘부흥’이라는 관점에서 그때와 흡사하다. 이번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의 재건·부흥에다 코로나19 극복이라는 의미가 더해졌다. 따라서 자연재해와 감염병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번 올림픽 성화 점화자도 1964년의 사례를 원용할 수도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 중에서는 여자 레슬링의 요시다 사오리와 피겨 스케이팅의 하뉴 유즈루, 남자 유도의 노무라 다다히로 등이 성화 점화자의 주요 후보군이다. 요시다는 2012 런던 대회까지 여자 레슬링 55㎏급을 3연패하고 세계선수권을 13차례나 제패한 스타다. 하뉴도 2018 평창까지 남자 피겨 싱글을 2회 연속 우승한 일본 피겨의 상징이다. 일본의 유도 영웅 노무라는1996 애틀랜타부터 2004 아테네 대회까지 남자 60㎏급을 3회 연속 우승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