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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스호수서 이틀 새 ‘괴생명체’ 2마리 발견

    네스호의 유명한 괴물 ‘네시’에게 숨겨진 자식이 있다는 충격적인 주장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23일 스코틀랜드 일간지 스코티시 선에 따르면 현지 인버네스에 있는 네스 호수에서 괴물 네시와 그의 새끼로 추정되는 괴생명체가 포착됐다. 에어셔 어빈에 사는 아마추어 사진가 윌리엄 잡스(62)는 최근 네스호에서 괴생명체의 모습을 어렵사리 자신의 카메라에 담아냈다. 그는 자신이 촬영한 괴생명체를 네시의 새끼라고 주장하며 “네스호를 탐사하는 동안 서로 다른 몸집의 두 괴생명체를 봤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을 따르면 잡스는 지난 42년간 네스호를 방문하고 있지만 지금껏 이런 괴생명체와 마주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목격으로 그는 이곳에 한 마리 이상의 호수 괴물이 존재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잡스는 당시 상황에 대해 “첫 번째 괴생명체는 포트오거스터스 부지 반대편 부근에서 목격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 놀라운 사진을 얻은 뒤, 기대감에 그다음 날 다시 네스호를 찾았었다고 밝혔다. 잡스는 “물 튀는 소리를 들었으며 물속에는 커다란 검은 생명체가 있었다.”면서 “전날 목격한 녀석보다 훨씬 큰 동물이었다. 확실히 물개나 물범은 아니었다. 꿈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스스로 꼬집어 봤다. 아주 멋진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네스호 괴물의 공식 팬클럽 회원인 게리 캠벨은 “1930년대 최초로 찍힌 네시의 모습에 흥분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이 사진은 환상적이지만 단지 네시에게 가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 뿐”이라면서 “그녀(네시)는 꽤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고맙게도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모던뽀이’의 경성역이 되살아났다

    ‘모던뽀이’의 경성역이 되살아났다

    1930년대 어느 날 서울 거리를 쏘다니던 ‘구보씨’의 발걸음은 문득 경성역 3등 대합실까지 미친다. 그곳에서 지게꾼, 유랑민, 노파 등 고독하고 쓸쓸한 이들을 조우한다. 예쁜 여자와 함께 있는 중학 시절 열등생 친구를 만나 강렬한 질투심도 느낀다. 소설가 박태원(1910~1986)의 눈에 비친 일제강점기 시절 경성역(서울역의 옛 이름)은 물질에 대한 욕망과 함께 물질로부터 소외된 비루함이 북적거리며 공존하는 곳이었다. 서울역은 ‘구보씨의 일일’에 묘사됐듯, 식민지 자본주의의 중심 공간으로 민족사의 아픔을 묵묵히 떠안았다. 1925년 9월 처음 세워질 때 한껏 차려입은 모던뽀이와 모던걸들이 전차를 타고 지나며 감탄해 마지않았던 그 서울역이 복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역사(驛舍) 기능은 2004년 새로 지어진 신역사에 물려주고 2009년 7월부터 복원공사에 돌입,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공사비만 200억원이 들었다. ‘문화역서울 284’(사적 284호)로 이름 붙여진 복원 역사는 다음 달 9일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문화재로서 가치를 회복함은 물론 전시·음악회·패션쇼 등이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앞으로 기차역사 본연의 기능도 갖출 예정이다. 개관에 앞서 14일 언론에 공개된 막바지 공사현장은 어수선했다. 중앙홀에는 천장 스테인드글라스 및 지붕 돔 공사를 하느라 비계가 설치돼 있고 1, 2등 대합실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고향을 등지고 밤봇짐으로 상경한 이들이 중앙홀에 발을 내디디며 느꼈을 막막함과, 작은 성취에 기뻐하며 금의환향하는 이들이 3등 대합실에 앉아 들떴을 심장박동이 느껴지는 듯했다. 복원 공사를 담당한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벽돌, 철근·콘크리트, 석조, 목조 네 가지 구조를 한꺼번에 사용한 르네상스풍 원형 건축물 복원에 주력했다.”면서 “한국전쟁 때 파괴된 돔 아래쪽 스테인드글라스도 재설치한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한반도 평화 체제가 정착되면 이곳은 대륙 철도와 연결되는 시발점이자 종착역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조광호 인천가톨릭대 교수의 작품으로 시민들의 협력과 연대, 평화시대를 상징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국내 최대 반딧불이 서식지 제주서 발견

    국내에서 가장 많은 개체의 반딧불이가 한꺼번에 활동하고 있는 모습이 제주도 서귀포시 한남시험림에서 확인됐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산림연구소 권진오 박사팀은 “지난 6월 30일 오후 8시쯤 운문산반딧불이 수만 마리가 한남시험림 곳곳에서 발광하며 비행하는 모습을 관찰했다.”고 11일 밝혔다. 운문산반딧불이 서식지로 알려진 전북 무주에서 조사를 벌였던 전문가도 현장을 보고 국내에서 가장 많은 반딧불이 개체 수가 활동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권 박사는 “반딧불이는 활동 범위가 수십 m밖에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한남시험림이 국내 최대의 반딧불이 서식지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우량이 다른 지역보다 많은 데다, 달팽이류 등 먹이가 풍부하고 생태가 잘 보존돼 서식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췄다. 크기가 8∼10㎜인 운문산반딧불이는 유충기를 땅속에서 지내고 나서 성충이 되면 6월 초~7월 말까지 활동한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반딧불이는 운문산반딧불이, 애반딧불이, 늦반딧불이, 파파리반딧불이 등 4종. 이 가운데 경북 청도군 운문산에서 처음 발견돼 이름 붙여진 운문산반딧불이는 강한 점멸성 발광으로 국내 반딧불이 가운데 발광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제주 서귀포의 해발 250∼300m에 있는 한남시험림(면적 1200㏊)엔 1930년대 심은 삼나무 전시림을 비롯해 440여종의 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英옥스퍼드서 미켈란젤로작 추정 그림 발견

    英옥스퍼드서 미켈란젤로작 추정 그림 발견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영국 옥스퍼드대학 기숙사에서 발견돼 관심을 끌고 있다. 11일(현지시간) 영국 BBC 뉴스에 따르면 미켈란젤로의 잃어버린 그림이 옥스퍼드대학 기숙사에 걸려있다는 이탈리아 미술 전문가의 주장이 나왔다. 기숙사 캠피온 홀에 벽에 걸려 있는 이 그림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묘사한 것으로 그동안 미켈란젤로와 동시대를 산 화가 마르첼로 베누스티의 작품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저명한 미술학자 안토니오 포르셀리노는 “적외선 기술로 그 명작의 진정한 ‘창조자’를 밝혀냈다.”면서 “이 걸작과 베누스티의 작품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포르셀리노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인 모세 등 수많은 걸작의 복원에 참여하고 있는 미술 전문가다. 해당 기숙사의 사감 브랜던 캘러한 신부는 “그 그림은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지만 기숙사에 있기에는 너무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서 “단순히 우리 벽에 걸려 있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포르셀리노는 자신의 저서 ‘더 로스트 미켈란젤로스’를 통해 “아무도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그림에 덧칠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이 그림은 1930년대 소더비 경매에서 캠피온 홀 측이 구매했던 것으로, 현재 안전한 보관을 위해 대학 내 애슈몰린 박물관으로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BBC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오바마 ‘트위트정담’ 1회는…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노변정담’을 고안해낸 이후 8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대통령들의 대국민 소통 방식은 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노변정담은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지만 어디까지나 대통령이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그동안 주례 라디오 연설만 해오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국민과 대화한 것은 역사적 전환점이라 할 만하다. 오바마는 최초로 트위터로 국민과 쌍방향 소통을 시작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게 된 것이다. 트위터 타운홀미팅은 이날 오후 2시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트위터 공동 창업자인 잭 도시의 사회로 1시간가량 진행됐다. 오바마는 시작 무렵 자신의 컴퓨터 자판을 직접 두드리며 “실시간으로 트위터를 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역사를 만들었다.”고 농담조로 말했다. 1주일 전부터 이날 정오까지 6000여 건의 질문이 트위터에 쇄도했고 백악관 팀은 이 가운데 24개를 선별했다. 잭 도시가 화면으로 올라오는 트위터 질문을 읽으면 오바마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트위트 정담’은 진행됐다. 질문은 일자리와 예산, 세금, 교육, 이민 등의 주제를 망라했고, 오바마는 특유의 달변으로 답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컴퓨터 대신 입으로 답변을 하면서 140자를 넘으면 안 되는 트위터 규칙을 위반했다. 이에 백악관 실무진이 트위터에 답변을 올릴 때는 140자 이내로 줄여야 했다. 분위기는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의장의 트위터 글이 등장했을 때 절정에 달했다. 베이너는 “우리를 더욱 심각한 빚더미에 앉게 한 지출이 행해졌지만, 일자리는 어디에 있느냐.”고 꼬집었다. 이에 오바마는 웃으면서 “약간 편향된 질문”이라고 응수한 뒤 “지금은 아무도 만족은 못하지만 경제가 실질적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고 답했다. PBS방송은 “오늘은 우리의 총사령관이 트위터 총사령관이 된 날”이라며 트위터가 주요한 정치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고 했다. 그러나 질문 선정 과정이 사실상 사전 검열 기능을 해 진정한 쌍방향 소통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탈락한 트위터 질문 중에는 “사랑스러운 미셸(대통령 부인)의 팔을 내가 가질 수 없겠느냐.”라는 저질 질문도 있었지만, 동성애 결혼 허용 여부과 같은 민감하면서 중요한 질문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청춘을 ‘플레이’하다

    청춘을 ‘플레이’하다

    2009년 1월 음악영화 ‘원스’로 유명해진 프로젝트 밴드 ‘스웰시즌’의 내한공연이 열린 서울 세종문화회관. 로비에서 버스킹(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관객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공연)을 펼친 무명 밴드가 ‘스웰시즌’의 글렌 핸서드 눈에 띄어 즉흥적으로 특별출연자로 무대에 올랐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 현실이 된 것. 그리고 그 얘기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무명 밴드의 영화 같은 첫 무대까지의 이야기 3인조 모던록 밴드 ‘메이트’의 결성 이전부터 데뷔까지를 담은 음악영화 ‘플레이’(23일 개봉)는 그렇게 시작됐다. 2009년 10월쯤 제작사의 제안을 받은 남다정(31) 감독은 연습실과 공연장으로 멤버들을 쫓아다니며 시나리오를 세공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청춘들이 속을 다 내보이기엔 길지 않은 시간. 6개월 만에 나온 첫 시나리오는 그들의 얘기를 온전히 담지 못해 폐기했다. 1년이 지나고 비로소 시나리오가 완성됐다. 영화에 극적 사건이나 아찔한 반전은 없다. 주인공들은 청춘의 동의어처럼 박제화된 패기나 열정과도 거리가 멀다. 사랑도, 인간관계도 미숙한 탓에 끊임없이 머뭇거린다. 모든 걸 설명하지도 않는다. 여백을 채우는 건 그들의 음악이다. 남 감독과 두 주연배우 정준일(28·건반 보컬), 이현재(23·드럼)를 지난 13일 서울 계동의 카페에서 만났다. 또 다른 멤버 임헌일(28·기타 보컬)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다. 이 영화로 장편 데뷔를 한 남 감독은 “영화사 제안을 받기 1주일 전에 한 TV프로그램에서 이들을 처음 봤다. 언젠가 음악영화를 한 편 하고 싶었던 데다 또래의 고민을 담을 수 있어 더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졸업한 남 감독은 3년간 시나리오를 쓰고 공모에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자신의 삶과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숱한 밤을 지새운 ‘메이트’의 고민이 다르지 않다고 느낀 것. 처음 영화 얘기를 들었을 때 정작 ‘메이트’는 시큰둥했다. 정준일은 “처음에는 동의를 안 했다. 무명시절을 딛고 앨범을 막 냈던 터라 음악에 충실하고 싶었다. 뭔가를 얻으면 다른 일은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현재 역시 “우리 같은 신인 밴드를 영화로 만들어 뭐 하느냐는 생각도 들었고 다음 앨범을 준비하느라 바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 즈음은 ‘좋아서 만든 영화’(2009),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이야기’(2010), ‘조금만 더 가까이’(2010) 등 인디음악 뮤지션을 내세운 영화가 쏟아져 나오던 때였다. 정준일은 “보통 음악영화라면서도 음악은 곁가지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공감하기 어렵다.”면서 “가난한 밴드 지망생들이 배를 곯고 밴드를 결성하고, 구성원들이 갈등을 겪다 결국 성공한다는 식의 판에 박은 기승전결은 피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비전문 배우와 신인감독의 조합이라 우여곡절도 많았다. 정준일은 “내가 첫 촬영이었는데 전혀 준비를 안 했다. 의상 정도만 준비했다.”면서 “뭣 모르고 과도하게 설정하면 영화에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아찔한 반전·극적인 기승전결은 없어 가장 열심히 준비한 이는 임헌일이라는 게 감독과 동료들의 증언이다. 이현재는 “헌일이 형은 상대 여배우(정은채)와 호흡을 맞추는 장면을 집중적으로 준비했다.”면서 “상대가 전문 배우라고 해도 너무 밀리면 자존심이 상하니까 그랬던 것 같다.”고 대변했다. 임헌일은 유일하게 수줍은 키스신을 찍은 ‘배우’다. 막상 완성품을 보고난 뒤에는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모양이다. 남 감독은 “되게 부끄럽다. 발가벗고 무대 위에 혼자 선 느낌”이라면서도 “이 친구들의 모습을 오롯이 담은 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정준일은 “재밌었고 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도 “내 연기를 보면 왜 저것밖에 못했을까 싶기도 하다.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현재는 “지금은 어색하고 창피하지만 영화를 생각하면 언제든 초심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거의 2년을 아옹다옹(?)했으니 정도 든 눈치다. 남 감독이 “언니(영화평론가 남다은)가 영화를 보더니 ‘니가 그렇게 낭만적인 사람인지 몰랐다’고 하더라.”라고 말하자, 내내 말을 아끼던 시니컬한 이미지의 정준일이 치고 들어왔다. “쓱 보면 감독님 외모가 미녀는 아니고, 시크한 프랑스 여자 같은데 술 마시면 낭만적이고 소녀 같은 면도 있다.” 남 감독은 “쉽게 친해지는 성격들은 아닌데 지금 보면 흐뭇하다.”며 ‘수습’에 나섰다. 인생의 출발점에 선 것은 남 감독이나 ‘메이트’나 마찬가지일 터. 남 감독은 “1930년대 신여성의 치명적 사랑을 다룬 본격 치정영화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라면서 “나중에 결혼하면 힘들 테니까 지금 찍어야 한다.”며 웃었다. 정준일은 “‘메이트’의 음악에서 록의 색깔을 덜어낸 솔로 앨범이 늦어도 가을에는 나올 것 같다.”면서 “내 음악을 제일 잘 아는 (이)소라 누나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앨범 나오고 공연 몇 번 하다가 연말쯤 군대에 가야 한다. 더는 연기가 안 된다.”고 덧붙였다. 조각 같은 외모(미국인 할아버지를 둔 혼혈 3세)로 데뷔 전부터 모델 생활을 병행했던 이현재는 “재즈 세션도 하고 모델도 좀 할 것 같다.”면서 “연기는, (잠시 생각하더니) 내가 할 수 있는 캐릭터란 게 뻔하지 않겠나.”라며 고개를 젓는다. 멤버들의 군 복무로 3년쯤은 ‘메이트’ 활동이 어렵다. 팬들은 이후가 궁금할 법하다. 정준일은 “연인관계도 그런데 하물며 밴드 멤버끼리 영원을 약속하는 건 의미가 없다.”면서 “팀을 유지하려고 음악을 하는 게 아니고 음악을 위해 팀이 존재한다. 열정이 있다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재도 “각자 영역을 터치하지는 않는다. 메이트로는 언제든 뭉칠 수 있다.”고 거들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온통 깨지고 뒤틀린 매춘 주부의 삶

    온통 깨지고 뒤틀린 매춘 주부의 삶

    소설 ‘환영’의 분홍색 표지 속 여성은 성장(盛裝)한 채 하이힐을 매만지며 문밖으로 나선다. 하지만 그녀를 ‘환영’하는 것은 끔찍한 현실이다. 김이설(36)의 신작 ‘환영’(자음과모음 펴냄)은 책 마지막 문장인 ‘다시 시작이었다.’란 일곱 글자에서 시작된 소설이다. 그 시작이란 간암으로 죽은 아버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번번이 낙방하고 다리 불구가 된 남편, 두 돌이 되어가도 걷지 못하는 아기 때문에 몸을 팔아야 하는 현실의 반복일 뿐이다.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이설은 ‘나쁜 피’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등을 통해 극한에 몰린 사람들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다. 작가는 “장동건의 아들이나 김희선의 딸처럼 가진 것이 많고 예쁜 사람을 다룬 소설은 삶을 반추하게끔 하기 어렵다.”며 “다 알지만 숨기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환영’의 주인공은 가진 것이 몸밖에 없어 물가의 백숙집 별채에서 몸을 파는 여성 윤영이다. 윤영의 매춘을 알선하는 이는 백숙집 왕 사장이다. 1930년대 식민지 현실을 다룬 김동인의 소설 ‘감자’에서 여주인공 복녀의 몸을 사고 끝내 복녀를 죽인 왕 서방을 떠올리며 왕씨란 성을 붙였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요즘 화제인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는 역시 1930년대 소설인 김유정의 ‘동백꽃’을 통해 남녀의 사랑을 꽃과 감자로 그려냈다. 이에 비해 김이설의 ‘환영’ 속 윤영은 80여년이 지나도 복녀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지독한 현실을 전전한다. 유독 여성의 인생에 관심이 많다는 작가는 “소설이란 세상이 살 만한 것인가, 나는 잘사는 것인가 하고 자문하고자 읽는 것”이라며 “그래서 생을 놓지 않는 숙명적인 인물의 이야기를 쓴다.”고 설명했다. 등단할 당시 소비 지향적인 문화를 다룬 소설이 많아 오히려 현실에 가까이 가는 작업에 집중했다고 덧붙였다. 소설 속 현실은 지독하지만 책 자체가 풍기는 분위기는 절절하거나 퀴퀴하지 않다. 짧고 건조한 문장을 선호한다는 작가는 결코 감정을 강요하거나 자극하지 않는다. 작가는 큰 아이를 가졌을 때, 노숙을 하는 소녀가 몸을 파는 이야기인 첫 소설 ‘열세 살’을 썼다. 작가의 아이는 이제 일곱 살이 되어 엄마가 쓴 소설의 파지를 가지고 논다고 한다. 김이설은 “10년쯤 지나면 아이에게 엄마가 쓴 소설을 읽어보라고 할 생각인데 그때도 아마 소설 속 끔찍한 현실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늙어가는 대한민국] “아기 울음소리 30여년째 뚝!… 57세가 우리 동네 막내”

    [늙어가는 대한민국] “아기 울음소리 30여년째 뚝!… 57세가 우리 동네 막내”

    지난 3일 오전 팔공산이 올려다보이는 경북 군위군 산성면 운산리. ‘늙은 군위’ 중에도 더 고령화된 마을이다. 한창 모내기철인데도 마을이 적막하다. 논에는 물론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마을에는 사람이 사는 집보다 빈집이 더 많다고 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100여 가구가 대대로 벼농사를 지었던 이곳에 지금은 겨우 45가구의 주민 55명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마저도 남편이나 아내와 사별한 뒤 혼자 사는 가구가 절반을 넘는다. 70대 이상 노인이 주민의 93%인 51명이나 된다. 주민들이 “젊은이”라고 부르는 50대와 60대는 2명씩, 달랑 4명뿐이다. 1930년대에 8남매 집안의 맏며느리로 이곳에 시집왔다는 박정생(85) 할머니는 “남편과 함께 5남매를 낳아 한때는 20명에 가까운 4대가 한가족을 이뤘지만 지금은 남편(87)과 단둘이서 살고 있다.”면서 “자식들은 물론 조카들도 모두 도시로 떠났다.”고 했다. 마을은 대구 등 인근 대도시에 개발 바람이 불면서 급속히 쇠잔해졌다. 집집마다 자식들을 도시로 유학 보내거나 공장에 취직시켰다. 가난을 대물림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에서다. 나이든 노인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등지면서 마을은 비어 갔다. 동네에 남은 노인들이 힘든 농사일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했고 빈집과 논밭이 묵어났다. 이병무(60) 이장은 “마을 농사는 나이가 어린 임철순(57)·이우환(58)씨가 품삯을 받고 도맡아 짓다시피 하고 있다.”면서 “그마저도 일손이 많이 가는 동네 밭 10만여㎡는 그대로 버려진 지 오래”라며 한숨지었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아기 울음소리도 끓긴 지 이미 오래다. 이돈식(79) 노인회장은 “동네에서 아기 출산은 30여년 전에 멈췄다.”면서 “그러니 인근에 산부인과 병원이 있을 리 없다.”고 했다. 마을을 지키고 있는 노인들은 대부분이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지만 병원에 간다는 것은 엄두조차 못 낸다. 버스를 타고 30~50㎞ 떨어진 읍소재지나 영천, 대구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던 마을 구판장은 20여년 전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 이장은 “동네가 이 모양인데 무슨 꿈과 희망이 있겠어.”라며 “아마 10년 후쯤에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개탄했다. 반면 같은 날 울산 북구의 현대자동차 공장 정문 앞에서는 자전거와 오토바이, 승용차를 탄 근로자들이 물결을 이루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인근 효문공단과 매곡산업단지 등도 출근길 근로자로 북새통을 이뤘다. 근로자 김석현(38·북구 명촌동)씨는 “하이킹 복장에 자전거로 출근해 회사에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근무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1만여명 등 수만명의 직장인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북구의 아침은 어느 지역보다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1997년 7월 신설된 북구는 산업 기반의 지속적인 성장세를 바탕으로 당시 인구 10만 1067명에서 지금은 17만여명으로 늘었다. 덕분에 북구의 생산 연령 인구는 전체 인구의 72%까지 늘어났다. 반면 고령 인구는 계속 줄면서 5.3%에 불과하다. 자동차와 금속기계, 기계부품 등 국가 기간산업의 공장 933곳이 ‘젊은 북구’를 주도하고 있다. 글 사진 군위 김상화·울산 박정훈기자 shkim@seoul.co.kr
  • [독자의 소리] 윤석중 선생 고향 논란을 보며/윤석중 선생 장남 태원·차남 원

    올해는 아동문학가인 저희 아버지 윤석중(1911~2003) 선생이 탄생 100주년을 맞은 해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의 ‘고향 논란’이 불거져 유족들이 심적 고통을 겪고 있다. 2008년 간행된 노경수 박사(단국대)의 논문 등을 보면 ‘(윤 선생은) 부모님과 함께 살던 서산을 등지게 되었고 그 아픔 때문에 서산과 연계되는 것을 싫어하였다.’라고 돼 있다. 지역 언론도 “윤석중이 서울 출생이지만 1930년대부터 50년대 초반까지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에 살았고, 서울로 이주하고 나서도 서산을 그리워한 작품을 많이 썼다.”라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서산에 사신 적이 없다. 1934년 12월 할아버지가 서산 타향살이를 시작하였을 때, 아버지는 24세 청년으로 이미 서울 문단에서 명성이 높았다. 석 달 후에는 어머니와 결혼하셨고, 서울에 계속 거주하였다. 따라서 서산은 아버지의 고향이 아니다. ‘정신적 고향’도 될 수 없다. 아버지가 평생 고향을 감춘 채 살아온 것처럼 비쳐 유감이다. 윤석중 선생 장남 태원·차남 원
  •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15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이라는 시간의 흐름. 찬란했던 르네상스의 중심지 이탈리아 피렌체와 일제 강점기 아시아의 소국(小國) 조선이라는 공간과 위상의 차이. 이 시대를 살았던 두 명의 사람이 있었다. ‘위대한 메디치’로 불리며 이탈리아, 아니 중세 유럽을 통틀어 가장 화려했던 가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로렌조 메디치(오른쪽·1449~1492)와 자국의 역사책에조차 등장하지 않는 간송(澗松) 전형필(왼쪽·1906~1962). 겉으로 보이는 배경으로는 너무나 다르지만 이들에겐 엄청난 ‘돈’과 예술을 알아보는 ‘혜안’(慧眼)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공통점은 각각 피렌체 우피치미술관과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형태로 오늘날 우리에게 ‘인류의 유산’을 향유할 기회를 남겼다. 만약 그들이 막대한 재산을 흥청망청 쓰는 데만 골몰했다면, 또는 재산을 늘리는 데만 관심을 가졌다면 중세미술사와 한국미술사는 다시 쓰여져야 했을지도 모른다.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 주의 주인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으로 꼽히는 로렌조 메디치와 전형필이다. 막대한 재산을 문화유산에 아낌없이 쏟아부은 이들의 노력이 어떻게 시작됐으며,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그 결과로 우리는 어떤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서양미술사에만 관심을 갖다가 지난주 간송미술관을 다녀온 후 한국미술의 전통과 매력에 흠뻑 빠진 직장인 윤정은(33·여)씨가 궁금한 점을 모아 인터뷰에 나섰다. →<윤정은> 두 사람 모두 젊은 나이에 상상을 초월하는 재산을 물려받았다. 도대체 어떤 가문이었고 재산 규모는 얼마나 됐나. -메디치 내 증조할아버지인 토스카나 대공(大公) 코지모는 피렌체인들 사이에서 ‘국부’라는 명예로운 호칭으로 불렸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은행업을 통해 그야말로 돈을 긁어모으다시피 했다. 가문의 수장이 됐을 때 내 나이 고작 20세였다. 당시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 특히 우리 가문은 직물산업의 핵심이었던 ‘백반’(양모 세척제)을 움직였고 메디치 은행의 주요 고객은 유럽 각국의 왕실과 교회였다. 당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갖고 있었는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냥 피렌체가 메디치였고, 피렌체의 모든 것은 메디치 가문의 재산이었다고 이해하면 된다. -전형필 일제 강점기에 와세다대 법대를 다니던 중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서울 일대는 물론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를 지나면서 우리 집안 땅을 밟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만석꾼 집안이었다. 미곡상을 했는데 내가 24세에 물려받은 논은 4만 마지기(800만평)에 달했다. 1년에 소작농으로부터 쌀 2만 가마니(1만석)를 거둬들였는데, 이를 당시 기와집 값으로 환산하면 150채 정도였다. 현재 서울 아파트 가격으로 환산하면 매년 450억원이 들어왔다는 얘기다. 논을 몽땅 판다고 가정하면 6000억원 정도였는데, 이건 그냥 단순한 수치 환산이고 당시 논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훨씬 더 가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1년에 나만큼 버는 조선인은 43명에 불과했다. →<윤정은> 역사적으로 많은 재산이나 권력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흥청망청 쓰다 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한국의 재벌 집안만 봐도 그런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실패하지 않았고, 젊은 나이에도 큰 실수를 하지 않았다. -메디치 할아버지 코지모의 영향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피렌체에는 당대 최고의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모여 있었고, 난 그들과 토론하는 법을 배웠다. 10대 때부터 이미 유럽 각국에서 피렌체를 대표하는 외교관 역할을 수행한 덕에 외국어에도 능통했다. 로마어에 비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리스어까지 능통하게 구사했을 정도였으니. 내 신분은 공식적으로는 돈이 많은 시민이었지만 피렌체 안팎에서 피렌체를 대표하는 인물로 인식됐고, 그렇게 살았다. 물론 금욕적인 삶을 지향하지는 않았다. 난 바람둥이였고, 수많은 애인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권력자에게는 그런 게 큰 흠이 되지 않았다. -전형필 난 원래 경성에서 대학을 다니며 조선어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변호사가 될 것을 강권하셨고, 그 덕분에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만든 법을 연구한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가업인 장사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무엇보다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해도 부모의 상을 당한 상황에서 본인이 즐기는 데 그것을 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윤정은> 두 사람 모두 예술을 사랑했는데 특히 수집(蒐集)에 관심이 많았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메디치 ‘위대한 로렌조’라는 호칭과 달리 난 콤플렉스가 많았다. 심한 주걱턱이었고, 아랫입술이 윗입술을 덮었다. 코도 낮았고 목소리는 거칠었다. 하지만 난 비올라와 류트(당시의 현악기), 승마술, 매사냥까지 섭렵했고 유려한 글솜씨로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예술에 대한 조예는 못난 겉모습을 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특히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은 예술가를 지원해 그들의 작품이 자신을 찬양하도록 했는데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난 할아버지나 아버지, 다른 귀족들과는 좀 달랐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일 이외에 고대 미술품을 수집하고 동양의 예술품에도 관심이 많았다. -전형필 일제 강점기라는 당시 사회상에서 난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무엇보다 휘문고보 시절 은사였던 고희동(1886~1965·서양화가) 선생과 3·1 만세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었던 위창 오세창(1864~1953·서예가) 선생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두 분은 내가 어릴 때부터 책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내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고 선생은 나에게 “글을 읽으면서 학문을 닦는 선비가 아니라, 조선의 문화를 지키는 선비가 되라.”는 조언을 해 주셨다. 그 결과 나는 왜놈들 손으로 넘어가는 우리 서화와 전적을 지키는 선비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위창 선생은 나에게 ‘간송’이라는 호를 주셨고, 내 수집활동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어떤 작품을 모아야 하는지, 어떤 눈을 갖춰야 진품을 구분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말이다. →<윤정은> 돈으로 물건을 수집하는 것은 사실 취미로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재산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는데, 다른 목적은 없었나. -메디치 (웃음) 난 상인이었지만 정치인이기도 했다. 정치인에게 100% 순수한 호의라는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1482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밀라노에 보내고 1488년 안토니오 다 산갈로를 나폴리에 보냈다. 그 공국들에 내가 후원하던 예술가를 보내는 게 좋은 작품을 선물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호의를 베풀면서 실은 정치를 한 거였다. 솔직히 내가 예술가를 후원한 돈은 대부분 내가 피렌체의 공직을 겸하면서 공금으로 썼다. 내 재산은 오로지 내 수집품을 모으는 데 집중적으로 썼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에 대한 환상이 좀 깨지지는 않았나. -전형필 왜 수집에 나섰느냐고 위창 선생이 물었을 때 난 “서화 전적과 골동은 조선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조선이 언젠가 독립될 것이란 믿음이 없었는데도 수집을 계속했을지는 나도 자신이 없지만, 난 반드시 독립될 것으로 믿었다. 1933년 성북동에 터를 구해 미술관을 지은 것도 독립이 됐을 때 후손들에게 우리 문화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팔려 갔던 고려석탑을 다시 사 오면서 난 한번 유출된 문화재가 고국으로 돌아오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해방된 후에는 이전처럼 문화재를 수집하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일제에 더 이상 빼앗길 염려가 없어진 후에는 조선 사람이 모은 것은 모두 조선 것이기에 해방 후에는 문화재를 찾아오는 일에만 전념했다. →<윤정은> 소장품들에 대해 묻겠다. 두 사람의 노력은 우피치와 간송 미술관으로 남았지만 두 사람 모두 박물관의 개관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메디치 우피치는 영어로 하면 ‘오피스’(사무실)를 뜻한다. 그곳은 내 증조부 코지모의 집무실이다. 물론 내가 가장 주목받기는 하지만 우피치 수집품은 우리 가문 전체의 공이다. 14~16세기 르네상스 화가부터 17~18세기 바로크와 로코코에 이르기까지 소장 규모 자체는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다. 조토의 ‘성모자’, 다빈치의 ‘수태고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등 도록으로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우피치를 박물관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 이후로 200여년이 지난 후 메디치가 최후의 후손이었던 안나 마리아 루드비카가 가장 큰 공을 세웠다. 그녀는 모든 재산을 토스카나 공국에 기증하면서 단 하나의 조건만을 남겼다. “전 세계 사람들 모두가 피렌체에서 메디치가의 보물을 볼 수 있도록 어느 것도 피렌체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전형필 간송미술관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청자운학문매병’ 등 12점의 국보와 10점의 보물이 있다. 1937년에는 영국 변호사 개스비에게서 청자 20점을 40만원에 사기도 했다. 당시 서울 기와집 400채 값이었다. 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가격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 가치는 후손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고, 그것이 원래 내가 수집을 시작한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잡스러운 그림을 그린다고 폄하됐던 겸재 정선(1676~1759)을 화성(畫聖)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을 내 최대의 성과로 생각한다. 그럼 내가 묻겠다. 지금 간송미술관에서 당신은 어떤 기분을 느끼나. →윤정은 당대 최고의 좋은 자재로 지었다는 미술관이지만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1930년대의 근대식 2층 건물과 창틀에는 현대미술관처럼 멋진 조명도 없고 첨단 잠금장치도 없다. 화장실 냄새도 코를 찌른다. 아이들이 유리에 온갖 손자국을 내며 코를 박고 보는 모습은 유럽 미술관의 풍경과 너무나 달랐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들을 전시하지 않아서 좋았고, 온전히 우리 것이라는 것이 더 좋았다. 내가 보고 있는 전시품이 엄청난 가치가 있다는 생각보다는 조상의 것이라는 사실이 먼저 느껴졌다. 바티칸이나 루브르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친구들에게 꼭 말해 주고 싶다. 간송미술관에 가면 간송이라는 사람과 그가 남긴 뜻이 마음으로 전해진다고 말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그래픽 이혜선기자 okong@seoul.co.kr ■ 참고서적 간송 전형필/이충렬/김영사 조선의 그림수집가들/손영옥/글항아리 간송 선생님이 다시 찾은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최완수·한상남/샘터 조용헌의 명문가/조용헌/랜덤하우스코리아 메디치 머니/팀 팍스·황소연 옮김/청림출판 메디치‘의 음모/피터 왓슨·김미형 옮김/들녘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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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WHAT] 소설 속 영국인 주인공 폴 웨스트 “파리서 1년 살아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의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유전학의 창시자 수도사 멘델의 고백… “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 식민지 조선의 강요된 ‘명랑화 운동’

    대략 2년 전쯤의 일이다. 소래섭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는 1930년대 작가인 박태원과 김기림의 작품 속에 ‘명랑’(明朗)이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 교수는 이후 일제강점기 신문과 잡지를 탐색해 ‘명랑’의 문화사적 의미 변화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명랑’의 끝자락에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암울한 현실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유쾌하고 활발하다.’는 뜻의 평범한 단어 하나에 놀라운 역사적 역설이 숨겨져 있었던 것.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명랑이란 단어에 주목해 우울한 근대를 읽어낸다. 총독부와 근대 자본주의가 강요한 명랑의 홍수 속에서 1930년대는 웃음이 넘쳐난 시대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대다수 지식인과 예술가, 학생, 노동자들은 우울에 젖어갔다. 저자는 일제가 당시 조선에선 잘 쓰이지 않던 ‘명랑’이란 단어를 의도적으로 앞세우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총독부가 벌인 ‘대경성 명랑화 프로젝트’가 단적인 예다. 경성이 급속하게 팽창하면서 보건 위생과 치안 등 여러 문제점을 드러내자, 총독부는 이를 바로잡겠다며 도시 명랑화 정책을 펴기 시작한다. 하지만 실제 목적은 체제에 저항하는 세력을 억압하고 체제순응형 인간을 양성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경성에 ‘명랑’이란 감정이 이식되기 시작했다. 학교는 ‘언행일치의 명랑한 인격’을 양성하라는 지침에 따라 ‘모범 인간’ 양성에 나섰고, 주류 언론들은 퇴폐적이고 저속한 유행가 대신 명랑한 유행가를 현상 공모하기도 했다. 산책 즐기는 남자를 부축해주는 ‘스틱 걸’과 당구장에서 손님과 함께 게임을 하는 ‘빌리어드 걸’, 주유소의 ‘가솔린 걸’ 등 화려한 용모와 미소로 명랑을 꽃피우는 온갖 ‘걸’들이 출현한 것도 이 시기였다. 이러한 ‘강요된 명랑’의 잔재는 ‘명랑화 운동’이나 ‘사회 명랑화 캠페인’ 등을 통해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저자는 1990년대 이후 ‘명랑화’라는 말은 자취를 감췄지만 자신의 감정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순응만을 강요하는 명랑화는 ‘행복화’나 ‘쿨’ 등의 레토릭으로 대체된 채 여전히 살아있다고 꼬집는다. 88만원 세대의 ‘쿨’ 또한 1930년대 ‘명랑 가면’의 21세기 버전에 불과하다는 것. 저자는 만화 명랑소녀 캔디를 통해 ‘외로워도 슬퍼도’식 명랑화로부터 벗어나라고 충고한다. “진정한 명랑이란 자신의 진실한 감정과 대면하고 슬픔까지 껴안을 수 있을 때만 찾아오는 것이니, 바늘로 허벅지 찔러가며 쿨한 척 애쓰지 말고 자기 감정의 주인이 되라.”고 말이다. 1만 38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영화프리뷰- ‘플라워즈’

    -영화프리뷰- ‘플라워즈’

    일과 사랑, 결혼과 출산. 시대와 환경은 변해도 여성들의 고민은 달라지지 않는 것일까. 영화 ‘플라워즈’는 3대에 걸친 6명의 여주인공을 통해 여성들이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삶의 전환점을 돋보기처럼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영화다. 100년의 시간 동안 과거와 현재를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하면서 각 세대를 대표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뒤쫓는 재미가 쏠쏠하다. 각기 다른 여섯 여자의 인생이 시공을 초월한 하나의 이야기처럼 얽혀 있어 지루하지 않고 깊은 울림을 준다. 영화는 1930년대 벚꽃이 휘날리는 봄을 배경으로 흑백영화 속 린(아오이 유)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라났지만,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린은 집에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남자와의 결혼을 강요하자 결혼식 당일 예복을 차려입은 채 집을 뛰쳐나간다. 시간이 흐른 뒤 1960~70년대. 린이 낳은 세 명의 딸은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사랑을 인생의 최고 가치에 두고 내조에 전념하던 가오루(다케우치 유코)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남편과 사별한다.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미도리(다나카 레나)는 갑작스러운 연인의 프러포즈를 받고 일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에 빠진다. 남편·딸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던 셋째 딸 사토(나카마 유키에)는 둘째를 출산할 경우 생명이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고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리고 2000년대. 사토가 목숨과 맞바꾼 두 딸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페이지 터너(악보 넘겨주는 사람)에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에 괴로워하는 가나(스즈키 교카)와 엄마의 삶을 대신해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게이(히로스에 료코)는 요즘 현대 여성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의 묘미는 결혼, 이별, 자아, 출산, 미래, 엄마 등 6개의 소재를 통해 ‘여자의 일생’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이야기한다는 데 있다. 데뷔작 ‘태양의 노래’에서 흥행에 성공한 고이즈미 노리히로 감독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을 잃지 않으면서도 일본 영화 특유의 여백과 감수성을 살렸다. 시공간의 시점을 달리하며 6명의 인생과 사랑을 자연스러운 교차 편집을 통해 묘사한 영화적 기술도 뛰어나다. 20대에서 40대까지 일본을 대표하는 6명의 여배우들을 한꺼번에 만나 볼 수 있다는 것도 영화의 장점. 다만 운명에 순응하고 수동적으로 그려진 여성상이 다소 진부하고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오는 19일 개봉.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서울광장] 시장실패 정부실패/오병남 논설실장

    [서울광장] 시장실패 정부실패/오병남 논설실장

    정부는 시장 실패(market failure)를 말하고, 시장은 정부 실패(government failure)를 우려한다. 정부의 시장 개입과 시장의 반발이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고 있다.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를 내세우며 고환율 정책 등으로 기업, 특히 대기업을 지원했는데 정작 대기업은 돈을 쌓아놓고 오히려 빚까지 얻어 몸집만 불렸다고 불만이다. 물가 불안을 감수하면서 수출을 지원하고, 출자총액 제한을 풀고, 법인세도 내렸지만 기대했던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소극적이어서 부의 불균형(양극화)만 심화됐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이후 시장 실패를 근거로 한 정부의 시장 개입은 본격화됐다. 친서민-공정사회-동반성장에 이은 이익공유제, 공적 연기금 주주권 적극 행사 등 일련의 움직임은 ‘큰 정부’를 지향하는 듯한 신호를 주기에 충분했다. 기름값과 통신비 인하를 겨냥한 기업 옥죄기도 같은 흐름이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인식이 19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시장은 과연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일까. 정부의 집요한 압박으로 내려간 기름값이 이내 되돌아 가고, 부동산경기 활성화 대책이 부실 건설업체의 퇴출만 더디게 한 데서 보듯 우리 경제의 여건이나 규모를 감안할 때 정부의 직접적인 시장 개입은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 역사적으로도 시장 실패를 바로잡겠다는 정부의 개입은 정부 실패를 낳은 경우가 적지 않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다. 시장은 이기적이다. 도덕과 규범이 아니라 이윤을 좇는다. 그래서 늘 옳은 것만은 아니다. 자원과 소득 분배의 왜곡 등 이른바 시장 실패가 나타나기도 한다. 때문에 정부가 시장이 착한 기능을 하도록 개입하는 것이 정당성을 갖는다. 1930년대 대공황과 독·과점 강화, 1973·78년 1·2차 오일쇼크 등은 시장 실패의 대표적 사례다. 재정 확대를 통한 대공황 탈출(뉴딜정책)에 성공한 이후 정부의 시장 개입은 확대된다. 하지만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은 정부의 몸집을 불리고 규제만 양산한 채 효율성의 하락을 부르기 일쑤였다. 이른바 정부 실패인 셈이다. 우리나라처럼 정부의 입김이 센 나라에서는 정부 실패가 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시장 실패를 바로잡겠다며 시장을 계획한 사회주의·공산주의가 비효율의 덫에 걸려 몰락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일종의 정부 실패인 셈이다. 4·27재·보선에서 여당이 참패함으로써 여권의 위기감은 더 커졌다. 내년 총선과 대선 등을 염두에 둔 정치논리가 시장에 끼어들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 셈이다. 하지만 정부든 기업이든 월경(越境)의 유혹을 떨쳐내는 것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정부는 법과 제도에 따라 경제주체들의 자율을 보장하되 공동선을 위협하는 이기적 선택을 ‘심판’하는 역할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 시장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게임의 룰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규제를 만들기보다는 과감히 풀어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는 게 옳은 길이다. 우리나라의 기업환경은 2010년 183개국 중 16위를 차지했지만, 창업·재산권 등록 등에서는 여전히 국제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의 투자는 누가 강요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기업, 특히 대기업은 지난 50여년간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누린 온갖 혜택을 깊이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마치 모든 것을 자신들의 노력만으로 이룬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감당하기 어려운 저항을 부를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양극화로 사회가 위험해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서민을 위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는 쓴소리와 호소는 그래서 매우 유효하다. 사회적 책임과 기업가 정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시장 실패도 정부 실패도 선진국 문턱에 선 대한민국이 비켜가야 할 일들이다. obnbkt@seoul.co.kr
  • GDP 계속 오르는데 삶은 왜 더 팍팍할까

    최근 한국은행은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4분기보다 1.4% 늘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 성장한 수치다. 반도체와 전자부품, 자동차 등의 수출 호조에 힘입어 GDP가 늘었다고 한은은 분석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의 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질까. 왠지 속고 있는 기분이다. GDP 등 각종 통계수치는 상승하는데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지니 말이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미국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프랑스 경제분석연구소장 등 세계 석학들이 이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GDP는 틀렸다’(조지프 스티글리츠·아마르티아 센·장 폴 피투시 지음, 박형준 옮김, 동녘 펴냄)이다. ‘국민행복을 높이는 새로운 지수를 찾아서’라는 부제에서 보듯 지금의 경제성장 측정방식은 ‘목적을 잃은 수단’에 불과하다며 이제는 ‘행복 GDP’를 측정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GDP는 1930년대 국민소득 계정을 확장하면서 만들어진 지표로, 오랜 시간 세계 각국의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데 활용돼 왔지만 세계 경제를 뒤흔든 위기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곁들인다. 그러니 이제는 경제적 지속성과 환경적 지속성 개념을 포괄하는 새로운 계량 방식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라는 것이다. 이 같은 판단 아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2008년 2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아마르티아 센, 장 폴 피투시 등의 학자들에게 세계적인 석학들로 구성된 위원회 설립을 요청했다. 이렇게 해서 구성된 것이 ‘경제 실적과 사회 진보의 계측을 위한 위원회’였으며 이듬해 사르코지가 주최한 경제학 토론회에서 연구결과가 담긴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책은 이 보고서를 토대로 하고 있다. 저자들은 계량 시스템의 중심을 경제적 생산에서 사람들의 행복으로 이동시켜야 한다고 전제한 뒤, 행복의 측정은 ‘지속가능성’이라는 맥락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생산보다는 소득과 소비에 주목해야 하며, 가계의 입장을 좀더 강조하고 재산을 얘기할 때 소득과 소비를 함께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 소득, 소비, 재산의 분배를 좀 더 부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책이 관련 논의의 종착점이 아닌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인다. 1만 3000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영화프리뷰] ‘워터 포 엘리펀트’

    1930년대 미국 대공황기. 아이비리그 명문대 수의학과 졸업을 앞둔 제이컵(로버트 패틴슨)은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하루아침에 인생이 뒤바뀐다. 모든 것을 잃고 충격을 받은 그는 정처 없이 일자리를 찾으러 다니다 벤지니 서커스단의 기차를 타게 된다. 서커스단에서 수의사로 일하게 된 그는 순회공연을 다니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제이컵은 서커스단 최고의 스타이자 단장의 아름다운 아내 말레나(리즈 위더스푼)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제이컵과 말레나는 서커스단의 새로운 흥행 보증수표로 떠오른 코끼리를 함께 돌보고 훈련시키면서 호감을 느끼지만, 서커스단의 폭군으로 군림하는 단장 어거스트(크리스토프 왈츠)가 이들의 관계를 눈치채고 둘 사이를 떼어 놓으려고 한다. ‘워터 포 엘리펀트’는 대공황 당시 최대 호황을 누렸던 서커스단을 배경으로 한 영화지만, 주인공들의 애정 관계에 얽힌 스토리가 더 중심을 이루는 영화다. 블록버스터 영화 ‘나는 전설이다’에서 뛰어난 시각 효과에 서사적인 스토리를 결합시켜 호평을 받았던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은 이번에도 서커스라는 화려한 쇼에 서사적인 로맨스를 덧입히려고 했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강렬하거나 웅장한 느낌은 덜하다. 백발노인이 된 제이컵이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고전적인 시대 배경만큼이나 주인공들의 삼각 관계도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광폭한 남편의 학대를 피해 금지된 사랑을 나누는 제이컵과 말레나의 감정선이 섬세하고 애절하게 표현되지 않아 감정 이입이 어렵고 오히려 동물에게 호된 매질을 서슴지 않는 어거스트의 잔인함에만 시선이 쏠리는 불균형을 낳았다.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전 세계 소녀팬들을 사로잡은 로버트 패틴슨은 성숙한 캐릭터에 도전했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격정적인 로맨스를 표현하기에는 아직 내공이 부족해 보인다. 단, 동물을 좋아하거나 1930년대 미국 서커스단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관객이라면 초대형 천막 안에서 사자, 호랑이 같은 맹수들이 부리는 묘기에 눈길이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분량이나 스케일이 작아 영화 ‘시카고’나 ‘물랭루즈’처럼 화려하고 관능적인 볼거리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미국에서 280만부를 판매한 세라 그루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15세 관람가. 5월 4일 개봉.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주말 영화]

    ●왕이 되려던 사나이(EBS 토요일 밤 11시) 인도에 주둔했던 영국군 출신의 피치(마이클 케인)와 대니얼(숀 코너리)은 절도와 총기밀수 등 사기행각을 벌이다 추방당하게 된다. 피치는 과거에 키플링(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시계를 훔쳤다가 알게 된 사이다. 키플링은 기회의 땅으로 가서 통치자가 되겠다는 피치와 대니얼에게 알렉산더 대왕이 그곳을 정복했었고 록산느라는 아내까지 있었다고 이야기해준다. 그러면서 프리메이슨 문양의 목걸이를 선물로 준다. 그렇게 무기와 술을 챙겨 길을 나선 두 사람은 혹독한 기후와 눈사태를 이겨낸 후 꿈에 그리던 카피리스탄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구루족 출신의 보병 빌리 피시를 통역자로 쓰게 된 두 사람은 군사들을 정비해나간다. 마침내 전쟁이 시작되고 날아오는 화살이 가슴에 박히지만 대니얼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이에 원주민들은 그가 ‘시칸더’ 즉 알렉산더 대왕의 아들이 신으로 내려왔다고 믿게 된다. ●라스트 프로포즈(OBS 일요일 밤 11시 50분) 명석한 두뇌에 뛰어난 외모의 샘(유덕화)은 홍콩 최고의 백만장자 사업가다. 모든 것을 가진 그이지만 세번의 이혼이 말해주듯 사랑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샘은 사업차 방문한 마카오에서 가난하지만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당찬 매력의 클럽 댄서 밀란(서기)을 만나 첫 눈에 반한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달콤한 사랑을 키워간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도 잠시. 이들의 교제 사실이 알려지자 홍콩 사교계는 발칵 뒤집힌다. 밀란이 상류층 여자로서의 덕목을 배우는 동안 샘 주변의 사람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결국 샘은 주위 사람들의 강요에 못 이겨 혼전 계약서를 내밀고 상처받은 밀란은 샘을 떠나고 만다. 그렇게 샘은 사업과 사랑 사이에서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데…. ●신의 손(KBS1 토요일 밤 12시 55분) 1930년대 흑백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대. 미국 내슈빌의 밴더빌트 대학 연구소에서 청소 등 잡일을 하던 흑인 청년 비비언 토머스는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탁월한 손재주와 의사를 꿈꾸는 열정으로 저명한 백인 외과의사인 블레이럭 박사의 조교가 된다. 그후, 박사를 따라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으로 옮겨간 비비언은 블레이럭의 주요 의학 연구와 수술에 점점 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 간다. 유색인종은 뒷문으로 출입하고 화장실도 백인과 따로 써야 했던 시대에 백인 의사와 흑인 조교는 끊임없이 언쟁하고 갈등하면서도 평생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가 된다. 극심한 논란 속에 치사율 백퍼센트였던 청색증 아기 환자의 심장을 세계 최초로 수술해 성공하면서 마침내 신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심장 수술의 길을 열게 된다.
  • ‘토르: 천둥의 신’ 美 앞서 28일 국내 개봉

    ‘토르: 천둥의 신’ 美 앞서 28일 국내 개봉

    미국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물의 요람으로 자리 잡은 마블엔터테인먼트가 ‘신상’을 내놓았다. 미국(새달 6일 개봉)보다 한발 앞서 오는 28일 국내서 뚜껑을 여는 ‘토르: 천둥의 신’이다. 게임이나 신화에 관심이 없다면 낯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토르는 “히어로 사상 가장 힘이 센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던 마블코믹스의 스탠 리(89) 명예회장이 가장 아끼는 만화 캐릭터이다. 스탠 리가 대중문화 장르로 끌어오기 전에도 그는 유명인사였다. 목요일(Thursday)은 토르(thor)의 날이란 의미. 고대 북유럽(게르만족) 신화에서는 천둥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해머(묠니르)를 휘둘러 거인족과 맞서 싸우는 등 탁월한 전투력을 뽐내지만, 단순하고 우직해 외려 살가운 존재다. 다만 신들의 영역을 그린 터라 영화로 만들 엄두는 쉽게 내지 못했다. ●셰익스피어의 터치… 인간보다 인간다운 신 ‘헨리 5세’(1989)와 ‘헛소동‘(1993) ‘햄릿’(1996)을 연출한 영국 왕립연극아카데미 출신의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케네스 브래너 감독은 불멸의 신 토르를 뻔한 액션영화 주인공으로 만들지 않았다. ①자만심에 빠져 사고를 친다→②아버지(오딘)의 노여움을 사 인간세계(미스가르드)로 쫓겨난다→③개과천선해 왕국을 구한다는 식의 전개는 그리스 희곡과 닮은 꼴이다. 때문에 다른 무결점 슈퍼 히어로보다 더 인간적일지도 모른다. 브래너 감독은 “왕이 될 자질이 부족한 토르가 모든 것을 잃은 후 자아를 찾아 영웅이 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고 설명했다. ‘토르’는 제법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다. 서사구조를 지닌 신화에 바탕을 둔 데다 정극에 도가 튼 브래너가 매만진 덕에 슈퍼히어로물의 고질병인 ‘엉성한 드라마’를 극복했다. ‘아바타’ 이후 모처럼 3차원(3D) 영상의 장점을 제대로 살렸다. 신의 세계인 아스가르드 왕국은 눈부신 황금빛으로, 거인들의 왕국 요툰하임은 차갑고 버려진 땅으로 묘사된다. 풍경의 입체적인 완성도는 물론, 타이슨의 경기를 보는 듯한 투박하고 묵직한 액션 장면의 쾌감도 괜찮다. ●마블코믹스 vs DC코믹스: 숙명의 라이벌 토르 같은 슈퍼 히어로의 고향은 역시 미국이다. 1930년대부터 꾸준히 히어로를 창조했다. 창사 70주년을 넘긴 DC코믹스와 마블코믹스가 쌍두마차 격이다. 1935년 출범한 DC코믹스의 스타는 슈퍼맨·배트맨·원더우먼·아쿠아맨·플래시·그린랜턴이 있다. 반면 1939년 만들어진 마블코믹스에는 스파이더맨·헐크·아이언맨·엑스맨·데어데블·블레이드·판타스틱 Ⅳ가 대표 주자다. 두 회사의 캐릭터는 확연히 구분된다. DC의 영웅들은 대체로 잘 빠진 근육질(혹은 S라인) 몸매에 민망한 쫄쫄이를 즐겨 입는다. 슈퍼 히어로의 기본 유니폼으로 자리 잡아 수많은 패러디의 대상이 됐다. 행동도 지극히 ‘미국스럽다’. 악의 무리를 때려잡는 ‘세계경찰 미국’의 상징인 슈퍼맨이 냉전시대를 관통한 캐릭터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DC코믹스의 예외적 존재인 배트맨이 오늘날의 입체적 캐릭터로 변한 것은 그래픽노블(만화소설)의 대가인 ‘씬시티’의 프랭크 밀러나 ‘왓치맨’의 앨런 무어가 가세한 1980년대 이후다. 반면 후발주자 마블은 어두운 과거를 품고 끊임없이 정체성을 고민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내세웠다. 실험 부작용 등으로 생긴 자신의 능력을 짐으로 여기고 벗어나려 몸부림친다. 돌연변이(엑스맨)나 괴물(헐크), 왕따 고교생(스파이더맨), 반인-반흡혈귀(블레이드)에 유니폼도 제각각이다. 마블 왕조를 건설한 스탠 리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로 요즘 소비자들에게 확실히 ‘먹히고’ 있다. 마블의 예외는 재벌이자 천재과학자 겸 슈퍼 히어로인 아이언맨 정도다. 2000년대 들어서는 마블의 캐릭터들이 영화시장에서 DC를 압도했다. 아이언맨과 엑스맨 시리즈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렸다. DC 작품 가운데 성공한 것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히스 레저(조커 역)의 도움을 받은 ‘다크나이트’(배트맨 시리즈) 한편뿐이다. ●‘토르’에도 숨겨진 영상…자막 끝날때까지 버텨라 2000년대 초반까지 히어로 캐릭터를 빌려준 대가를 챙기던 마블은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제작·투자에 나섰다. 덕분에 기업가치를 잔뜩 키워 2009년 40억 달러를 받고 디즈니에 회사를 넘겼다. 아직까지는 디즈니 그룹 내에서도 독자 영역을 인정받는 마블의 야망은 제작비만 6억 달러가 드는 초대형 블록버스터 ‘어벤저스’로 정점을 찍을 전망이다.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헐크와 아이언맨, 토르, 캡틴아메리카를 한 작품에서 보여주자는 것. 골수팬들 사이에서는 청룽의 NG 모음 만큼이나 유명해진 마블의 숨겨진 영상(영화가 끝난 뒤 1분 안팎의 영상)을 통해 조금씩 흘리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2008년 ‘아이언맨’의 끝장면에는 ‘아이언맨 2’에 본격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 총괄 조직 ‘쉴드’의 닉 퓨리(사뮤엘 잭슨) 국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같은 해 ‘인크레더블 헐크’에서는 헐크(에드워드 노튼)를 탄생시킨 선더볼트 장군 앞에 ‘아이언맨’ 주인공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나왔다. 지난해 ‘아이언맨 2’는 지구에 떨어진 정체 불명의 해머(망치)로 끝이 난다. 알고 보니 ‘토르’의 주무기(묠니르)였던 것. ‘토르’는 한발 더 나간다. 그러니 영화가 끝난 뒤에도 서둘러 일어서지 말고 끝까지 버틸 일이다. ‘캡틴아메리카’는 미국색을 빼기 위해 제목을 ‘퍼스트 어벤저’로 바꿔 7월쯤 개봉할 예정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아름다운 간이역 마을 구경오세요

    아름다운 간이역 마을 구경오세요

    193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함으로써 누리꾼들로부터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선정된 경북 군위군 산성면 화본역 일대가 관광상품으로 부활한다. 군위군은 16일 화본역 인근의 옛 산성중학교를 리모델링해 1960, 70년대의 생활상 등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 추억의 학교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를 개관한다. 추억의 학교에는 40~50여년 전의 시골학교 교실을 비롯해 이발소, 사진관, 소리사, 만화방, 문방구, 구멍가게, 연탄가게 등이 그대로 재현됐다. 부모와 자녀가 도자기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체험장도 함께 마련됐다. 군은 또 이날 오후 2시 화본마을을 ‘그림이 있는 삼국유사’ ‘추억을 간직한 마을’로 특화시키기 위해 마련한 ‘삼국유사 벽화 그리기’ 공모전 시상식도 연다. 공모전에는 사전 공모를 거쳐 선정된 전국 22개팀이 참가해 현재 마을의 주택 및 담장 벽면 22곳에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이야기 소재를 독창적인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공모전은 일연 스님이 화본마을 인근 고로면 화북리 천년고찰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인 점이 감안됐다. 상금은 최우수작 200만원 등 총 650만원. 3시부터는 추억의 학교에서 한국시인협회가 주관하는 ‘찾아가는 시 축제’ 행사가 마련된다. 박수현·김언정·허윤정 등 시인 9명의 시낭송에 이어 음악공연, 시를 사랑하는 마을 지정패 및 서명 시집 전달 순으로 진행된다. 이곳에는 이근청 시인협회장을 비롯한 시인 50여명과 주민, 관광객 등 2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시인협회는 지난해부터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시 낭송회를 갖는 ‘길 위의 시인들’이라는 행사를 갖고 있으며, 올들어서는 이번 행사가 처음이다. 장욱 군위군수는 “기차와 멀어진 화본역이 관광객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각종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면서 “옛 정취와 낭만, 추억이 어우러진 화본역을 관광 명품 간이역으로 만들 작정”이라고 말했다. 군위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숨은 쉼터 곳곳에 문화향기 가득

    숨은 쉼터 곳곳에 문화향기 가득

    서울시가 6일 시청 방문객들을 위해 주변의 멋진 문화휴식공간 5곳을 추천했다.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이용, 가볍게 산책하며 즐길 수 있는 명소인 데다 시청과 1~5분거리에 위치해 가족나들이 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열린 학습공간 영어 카페 ‘파인트리’ 시는 시청 서소문별관에 자리한 ‘파인트리’를 지난 1일부터 영어학습공간으로 개방했다. 바로 옆에 우뚝 선 소나무에서 이름을 땄다. 개관 3주년을 맞아 어린이, 대학생, 직장인들을 위한 영어학습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 한가한 오전 시간대에는 원어민 선생님이 인근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원어민과 함께하는 영어체험교실도 선보이며 대학생 스터디그룹이 학습공간으로 카페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도 한다. 그동안 평일에만 문을 열었던 카페는 미술관과 덕수궁을 찾는 시민들을 위해 토요일에도 개방하고 있다. 파인트리 앞 다산소공원에선 매월 첫째·셋째주 수요일 정오에 이국적인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연이 펼쳐진다. 글로벌 시대에 다문화 체험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6일 에콰도르 공연단이 안데스 음악을 선사했으며 20일엔 러시안포크뮤직, 다음 달 4일엔 몽골 공연단의 전통 악기연주회가 기다리고 있다. ●미술도서·카페 어우러진 시립미술관 시립미술관은 베르나르 브네(1961~2011)-페인팅전을 14일까지 준비했다. 조각, 퍼포먼스, 사진, 영화, 음악, 무용 등 매체와 장르를 넘나들며 전방위적인 창작활동을 펼친 프랑스 출신 브네의 전 작업세계를 아우르는 회화 작품으로 구성된 회고전이다. 국내화단의 대표작가인 천경자 화백이 1990년대 후반까지 제작한 작품 93점을 미술관에 기증한 것을 기념하고자 ‘천경자의 혼’이 담긴 30점을 선별해 전시한다. 미술관을 찾는 시민들의 즐거움은 이뿐이 아니다. 2층 자료실에선 국내외 각종 미술관련 단행본, 잡지, 도록, 영상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다. 3층 카페는 눈이 즐거운 관람객들과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다. ●김소월을 만나는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미술관 주차장 입구로 발길을 돌리면 525살 된 향나무와 언뜻 봐도 오랜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1885년 미국인 선교사 헨리 게르하트 아펜젤러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이다. 동쪽엔 역사박물관이 자리잡았다. 1930년대 교실을 재현한 공간은 물론, 이승만·주시경·나도향·김소월 등 우리 근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배재인들을 만날 수 있다. 또 배재창립 125주년 기념 기획전 ‘졸업앨범:배재학당의 125년 이야기’도 볼 만하다. 벚꽃이 만개하는 이달 중순부터는 바로 옆 배재공원에 앉아 벚꽃향에 취해도 좋다. ●고딕풍 붉은 벽돌이 멋진 정동제일교회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한국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교회 건축물인 정동제일교회와 만난다. 1895년 9월 착공, 이듬해 헌당식(獻堂式)을 거행하고 1897년 10월 준공된 고딕풍의 붉은 벽돌 건축물인데 1977년 사적 제256호로 지정됐다. 교회 내부는 평천장(平天障)에 별다른 장식 없이 간결하고 소박하며 기단은 석조(石造)이고 남쪽 모퉁이에 종탑을 세웠다. 아치 모양의 창문을 낸 고딕 양식의 교회당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기엔 제격이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아동문학가 윤석중 고향 논란 법정으로 비화 조짐까지… 왜

    아동문학가 윤석중 고향 논란 법정으로 비화 조짐까지… 왜

    ‘어린이날 노래’ 작사가이자 ‘퐁당퐁당’, ‘낮에 나온 반달’ 등 동시로 유명한 아동문학가 윤석중(1911~2003년)이 때아닌 ‘고향’ 논란에 휩싸였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인다. 논란은 윤석중의 삶과 작품 세계를 조명한 책에서 불거졌다. 노경수 한서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는 지난해 말 펴낸 ‘동심의 근원을 찾아서-윤석중 연구’에서 윤석중 작품에 빈번히 등장하는 ‘고향’의 정서는 충남 서산 지역에 기반한다고 주장했다. 2008년 자신의 단국대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심화시킨 결과물이다. 윤석중은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주로 활동했다. 하지만 두살 때 어머니를 여읜 뒤 외조모 밑에서 잠시 크기도 했고, 젊은 시절 부친이 거주하던 서산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기도 했다. ‘고향’의 사전적 의미는 ①태어나서 자란 곳 ②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③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다. 보기에 따라 윤석중의 ‘고향’은 서울도, 서산도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노 교수는 “시골과 고향을 노래한 윤석중 작품을 살펴보면 그의 고향은 서산을 가리키며, 서산은 향수의 공간과도 같다.”고 말한다. 그 예로 ‘서울 사는 아이야/ 시골 왜 왔니?/시골 바람 맑은 바람/쐬고 싶어 왔단다’(‘서울 사는 아이야’ 중) 또는 ‘시골 사는 아이들은/몇 갑절 저보다 큰/나뭇짐도 잘 지고’(‘시골 사는 아이’ 중) 등의 시구를 든다. 하지만 유족들은 이에 거세게 반발한다. 윤석중의 장남 태원(미국 거주)씨는 “아버지는 일본 도쿄 유학 생활을 제외하고 80여년 동안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활동했다.”면서 “(아버지의) 정신적 고향이 서산이라거나 향수에 관련된 많은 작품이 서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주장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법정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다. 이에 대해 문단은 아동문학계에서 차지해 온 윤석중의 독보적 위치를 감안할 때 ‘고향’ 논란은 이해가 가지만 법정 공방까지는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그 이면에는 윤석중의 아픈 개인사가 있다. 윤석중의 부친 윤덕병(1885~?)은 일제강점기에 조선공산당 소속으로 항일운동을 펼쳤다. 세 차례나 투옥됐던 민족주의계열 좌익 지식인이었던 것. 1930년대 초 윤덕병은 사회 활동을 접고 사별했던 전처(윤석중의 모친)가 남겨준 땅이자 윤석중의 외가인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 46번지’로 내려와 은거하다 한국전쟁 때 좌우익 대립 속에서 처형된 것으로 전해진다. 유족들은 아직까지 윤덕병의 유골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노 교수는 “윤석중의 작품 이면에는 좌익계열이었던 부친을 한국전쟁 때 잃은 뒤 동심주의, 낙천주의를 지향할 수밖에 없는 개인적 체험, 반공주의와 연좌제가 서슬 퍼렇던 시대적 배경이 있다.”면서 “서울에서 태어나고 주로 활동했을지라도 고향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외조모와 부친이 있었던 서산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중 전기를 썼던 신현득(78) 새싹회 전 이사장은 “할아버지로 인한 불편한 기억 때문에 유족들이 아버지 윤석중과 할아버지 윤덕병, 그리고 서산과의 인연이 새삼 거론되는 것 자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면서 “그러나 (노 교수의 책이) 윤석중에 대한 일각의 일방적 비판을 바로잡으려 노력한 대목 등은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윤석중에게는 ‘거목’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일제 치하 현실에 순응하려는 동심주의와 그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낙천주의를 앞세워 아이들의 정서를 박제화시켰다는 비판도 따라다녔다. 노 교수는 “겉으로 드러난 윤석중의 작품 세계는 동심주의적 정서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초기 작품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강한 민족주의적인 색채와 일제 수탈에 대한 저항 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조선아들행진곡’에서는 ‘피도 조선 뼈도 조선/이 피 이 뼈는/살아 조선 죽어 조선/네 것이라네’라고 노래하고 있다. 또한 1929년에 쓰인 ‘허수아비야’는 ‘허수아비야…/ 여기 쌓였던 곡식을/누가 다 날라 가디?/…/넌 다 알 텐데/왜 말이 없니?/넌 다 알 텐데 왜 말이 없니?’라며 일제에 의해 수탈당하는 농민들의 현실을 상징과 비유로 묘사하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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