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19세기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다이빙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변준형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3세 체제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최상목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269
  •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나눔의 힘 시민의 쉼’ 기부의 씨앗… 불모지에 피운 예술꽃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나눔의 힘 시민의 쉼’ 기부의 씨앗… 불모지에 피운 예술꽃

    20세기 초까지 예술의 중심 무대였던 유럽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황량해졌다.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예술가들을 두 팔 벌려 맞아들인 곳이 미국이었다. 자본이 원활하게 흐르고, 모더니즘 정신이 깃든 20세기 초의 뉴욕은 멋진 신세계였다. 부유한 사업가들은 유럽에서 망명 온 예술가들의 후원자가 됐고 그들 작품의 컬렉터가 됐다.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속속 문을 열었고, 뉴욕은 단번에 자타 공인 현대미술의 메카가 됐다. 그 화려한 명성대로 도시의 곳곳에서 세계적인 미술관들을 만날 수 있는 뉴욕으로 예술 산책을 떠나 보자.뉴욕에는 다른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과거와 현재, 예술과 자연, 기계와 인간이 극적으로 조화를 이룬 데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센트럴파크의 동쪽을 따라 길게 나 있는 5번 애비뉴의 ‘뮤지엄 마일’을 따라가 보면 뉴욕이 과연 자연과 예술의 도시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5번 애비뉴의 80번 스트리트에서 84번 스트리트까지 4개의 블록을 차지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그 백미다. #150년의 세월… 5만여평에 300만점 전시 약칭으로 ‘더 메트’(The MET)라고 불리는 이 미술관의 사명은 ‘기원전 8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물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권과 시대를 망라하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예술적 위업을 나타내는 작품을 수집하는 것’이다. 고대의 근동,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의 조각품부터 중세 미술, 근대 유럽의 회화, 동시대의 현대미술, 다양한 장식미술과 의상 등 장르와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광범위한 소장품을 지닌 이곳은 규모나 소장품의 내용 면에서 미국이 자랑하는 백과사전식 종합미술관이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런던의 영국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르미타시박물관, 베를린의 박물관섬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미술관이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유럽에 비해 너무나 빈약한 예술적 토양에서 소박하게 시작했으나 15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미술관 건물과 소장품이 지속적으로 성장해 5만 7500평의 면적에 300만점에 이르는 경이적인 규모가 됐다. 방대한 소장품을 연구하고 관리하기 위한 학예부서만도 17개 부서로 나뉘어 있으며 1800여명의 풀타임 직원과 9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일하고 있다.#민간 주도… 백과사전식 종합미술관 탄생 더욱 놀라운 것은 이처럼 커다란 미술관이 정부의 지원 없이 시작돼 운영된다는 점이다. 유럽의 미술관과 박물관들은 군주의 후원과 왕조의 유산을 기반으로 출발해 국가의 지원을 받지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순수하게 민간 주도로 만들어졌고 시민들의 기부와 기증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시작은 미미했다. 파리에 머물고 있던 변호사 존 제이는 1866년 7월 4일 지인들과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는 모임에서 독자적인 박물관의 설립을 제안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뜻에 동참하기로 맹세했고 그로부터 4년 후인 1870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탄생했다. 1880년 현재의 위치인 센트럴파크에 캘버트 복스와 제이컵 레이 몰드가 지은 신고딕 양식의 간소한 미술관 건물이 개관했다. 여전히 소장품은 유럽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비해 너무 초라했다. 메트의 소장품 컬렉션은 1872년 철도사업가 존 테일러에 의해 작품이 기증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유럽의 박물관과 같은 소장품을, 그것도 진품을 구입하기엔 턱없이 예산이 부족해 세계적 걸작의 복제품과 석고 모형을 수집하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1902년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뉴저지주 패터슨에서 기관차 제조업을 하는 사업가 제이컵 S 로저스가 미술품 구입비로 500만 달러를 기부한 덕분에 메트로폴리탄은 수많은 진품 걸작을 구입하며 미술시장의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한다. 메트로폴리탄이 자랑하는 피터르 브뤼헐의 ‘추수하는 농부들’, 빈센트 반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 폼페이 벽화와 중동의 유물 등 많은 걸작은 ‘로저스 기금’으로 구입한 것이다. 당시 혁신적이었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공공미술관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가치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했다. 1913년에는 벤저민 올트먼이 뒤러의 ‘성 안나와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예수’를 비롯한 1000여점의 수집품을 유증했다. 1929년에는 호러스 해브마이어가 엘 그레코의 ‘톨레도 풍경’ 외에 드가, 마네, 세잔 등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대거 기증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개인 컬렉션 중 하나인 로버트 리먼 컬렉션은 1967년 유증됐다. 중세부터 모더니즘에 이르는 2600점의 작품 가운데 시모네 마르티니의 ‘성모자상’, 한스 멤링의 ‘수태고지’, 엘 그레코의 ‘학자 성 제롬’, 르누아르의 ‘피아노 앞의 두 소녀’ 같은 걸작들이 로버트 리먼 윙에 전시돼 있다. 20세기 초 걸작품 구입에 매진했던 수집가들의 통 큰 기부 덕분에 메트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했고 기부 전통은 수세대에 걸쳐 계승되고 있다.#건물의 확장… 센트럴파크와 어울림 무게 외형의 변화도 드라마틱하게 진행됐다. 메트가 세계적인 규모의 박물관·미술관으로 성장한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이는 1904년 관장으로 부임한 J P 모건(1837~1913)이었다. JP모건의 설립자이자 전설적 금융가인 그는 당대 유명한 예술품 컬렉터이자 예술 후원자였다. J P 모건은 관장에 부임하면서 대대적인 증축 작업에 들어갔다.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인 에콜드보자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제1호 유학파 건축가 리처드 모리스 헌트에게 증축 작업을 맡겼다. 5번가에서 바라보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 정면은 리처드 모리스 헌트의 설계로 지어졌다. 이어 북쪽 날개 부분과 남쪽 날개가 찰스 매킴과 미드, 화이트의 설계로 각각 19011년과 1913년 완공됐다. 현재의 미술관 정문 파사드와 입구는 1926년 완성됐다. 1954년 대규모 개축으로 근대적 스타일의 전시장을 완비했다. 센트럴파크 내의 건물 증축은 미술관 개관 100주년을 맞은 1970년 케빈 로시에 의해 새롭게 단장됐다. 아일랜드 출신의 건축가 로시는 감상자들이 느끼는 박물관 피로증의 해소에 초점을 맞췄다. 1층 북쪽 끝부분을 유리로 만들어 센트럴파크의 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 박물관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로시는 헌트의 건물 앞에 기다란 계단광장을 만들어 진정한 박물관 거리를 조성했다. #한국실 등 동서고금 넘나드는 수많은 공간 계단을 올라 메인 출입구로 들어가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로비가 나온다. 미국은 모든 게 다 크다고 하는데 미술관도 예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로비는 세 개의 정사각형 평면에 세 개의 돔 천장을 갖추고 있는데 건물을 설계한 리처드 모리스 헌트의 아들인 리처드 하울랜드 헌트가 내장을 맡았다고 한다. 긴 로비의 왼쪽으로 가면 그리스·로마관, 오른쪽은 이집트관, 정면 계단으로 오르면 유럽 회화관으로 인도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복도를 통해 다른 건물의 수많은 전시실로 연결된다. 15~19세기 대가들의 작품을 포함하고 있는 소묘와 판화 컬렉션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 옆으로 유럽 회화 작품들이 시기별로 구분돼 전시돼 있다. 미국 회화관에서는 유명한 에마누엘 로이체의 ‘델라웨어강을 건너는 워싱턴’과 존 싱어 사전트의 ‘마담X’를 볼 수 있다. 2층과 3층에는 고대 근동, 아랍, 터키, 이란, 중앙아시아 및 후기 남아시아 미술이 전시돼 있고 그 반대편에서 아시아 미술을 볼 수 있어 시공을 넘나들며 세계 일주하는 기분으로 감상이 가능하다. 한국실에는 귀한 고려불화 수월관음보살상과 조선시대 달항아리도 있다. 소장품이 너무 많아서 한 번 방문으로 모두 감상하는 것은 무리다. 시간을 잘 배분해서 꼭 보고 싶은 작품을 찾아가 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미술관 안내지도를 보면 가장 빠른 시간에 메트를 관람하고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과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루트를 붉은 점선으로 표시해 놓았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파리 사로잡은 두 광대의 실화…‘쇼콜라’ 예고편

    파리 사로잡은 두 광대의 실화…‘쇼콜라’ 예고편

    프랑스 최초의 흑인 광대 이야기를 그린 영화 ‘쇼콜라’ 메인 예고편이 공개됐다. ‘쇼콜라’는 19세기 말 프랑스, 최초의 흑인 광대 ‘쇼콜라’와 진정한 예술을 꿈꾼 백인 광대 ‘푸티트’의 눈부신 열정과 드라마틱한 삶을 그린 감동 실화다. 공개된 예고편에는 두 광대의 첫 만남과 콤비가 되는 과정에 이어 무대 위에서 함께 멋지게 서커스를 펼치는 모습이 담겨 있다. 흑인 광대 ‘쇼콜라’에게 “우린 한 몸이야!”라고 말하는 백인 광대 ‘푸티트’의 대사는 시대적 편견과 피부색을 뛰어넘은 우정을 예고한다. 또 파리 누보 서커스로 진출한 두 콤비가 선보이는 열정적인 무대가 시선을 모은다. 하지만 “이제 푸티트 들러리는 안 할 겁니다”라고 갑작스럽게 선언을 하는 흑인 광대 ‘쇼콜라’의 대사는 이후 벌어질 이들의 갈등을 예고한다. “모두가 꿈꾼 최고의 무대, 그 뒤에 감춰진 이야기”라는 문구와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의 찬사는 영화의 완성도를 기대케 한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센세이션 했던 예술가 콤비의 실화를 그린 ‘쇼콜라’는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출신의 감독 로쉬디 젬이 연출을 맡아 무대 안과 밖의 치열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극중 ‘쇼콜라’는 전 세계 흥행 신드롬을 일으킨 감동 실화 ‘언터처블: 1%의 우정’을 통해 프랑스 국민배우로 떠오른 오마 사이가 맡았다. 또 찰리 채플린의 외손자이자 ‘프랑스의 아카데미’라 불리는 세자르영화제 신인남우상에 지목된 제임스 티에레가 ‘푸티트’ 역을 맡아 열연했다. 배급사 판씨네마 측은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 속 주인공, 검은 피부를 가진 프랑스 최초의 광대 쇼콜라와 그의 파트너 푸티트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영화 ‘쇼콜라’는 19세기 말 파리를 들썩이게 한 두 남자의 운명 같은 만남과 기적의 무대를 고스란히 재연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쇼콜라’는 3월 9일 개봉 예정이다. 12세 관람가. 119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알쏭달쏭+] 밸런타인데이가 불법인 나라는 어디?

    [알쏭달쏭+] 밸런타인데이가 불법인 나라는 어디?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밸런타인데이가 코앞이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세계 각국이 밸런타인데이를 보내는 다양한 방식을 소개했다. 2월 14일로 ‘지정’된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한국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포함한 선물을 건네며 마음을 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밸런타인데이에는 여성이 남성에게, 3월 14일 화이트데이에는 남성이 여성에게 사탕과 선물 등을 건넨다. 유럽은 어떨까. 영국은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남녀 구별없이 자신의 연인에게 혹은 특별한 상대에게 선물을 건넨다. 밸런타인데이에 ‘굳이’ 초콜릿을 건네는 풍습은 19세기 영국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일본의 한 제과업체가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광고를 시작하면서 밸런타인데이는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 독일 밸런타인데이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돼지’가 등장한다. 독일에서 돼지는 행운과 열정의 상징이기 때문에, 밸런타인데이 카드와 선물상자에 돼지가 그려져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종종 여기에 또 다른 행운의 상징인 네잎크로버가 함께 그려져 있기도 한다.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는 2월 14일을 밸런타인데이가 아닌 ‘친구의 날’(Friend’s Day)로 정했다. 연인관계가 아니더라도 꽃이 그려진 카드 등을 건네며 여러 사람과 친목을 다지기도 한다. 카카오 원산지 중 하나인 아프리카 가나는 이 날을 ‘초콜릿의 날’로 정해 다양한 마케팅을 펼친다. 필리핀에서는 밸런타인데이 전후로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이 많은데,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해 결혼관련 업체나 기관이 다양한 지원을 내놓기 때문이다. 중동에서는 비교적 상반적인 분위기가 존재한다. 이라크에서는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공원에서 데이트를 즐기거나 연인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밸런타인데이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암시장에서는 ‘고백용’ 붉은 장미를 몰래 판매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포토리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연인의 말 한마디에… 일흔다섯 ‘길의 왕’ 다시 걸었소

    연인의 말 한마디에… 일흔다섯 ‘길의 왕’ 다시 걸었소

    나는 걷는다 끝. 베르나르 올리비에·베네딕트 플라테 지음/이재형 옮김/효형출판/312쪽/1만 3000원‘길의 왕’이라 불리는 프랑스의 도보여행가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사실상) 마지막 여정을 담은 책이다. 베르나르는 실크로드 도보 여행기 ‘나는 걷는다’로 세계적인 걷기 열풍을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 중 하나다. 그는 2012년 어느 봄날 “내가 해야 할 일을 다했으니 이제는 다른 사람들 차례”라고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됐을 때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때 저자의 나이 75세였다. 그의 말처럼 “소파에 푹 파묻혀야 할 나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안 떠나는가. 영원한 휴식을 취하게 될 날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데 왜 피곤하다는 핑계를 댄단 말인가. 그는 꼬박 10년 전에 1만 2000㎞를 걸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따라 4년 동안 혼자 걸었다. 그 결과물이 ‘나는 걷는다’ 3부작이다. 당시 그는 자신의 여정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연인인 베네딕트 플라테의 생각은 달랐다. 베네딕트는 왜 프랑스 리옹에서 터키까지 구간을 남겨 두느냐고 물었다. 리옹이 19세기 후반 견직 공업의 중심지였던 것을 떠올리면 나름 논리적인 지적이었다. 두 도시 간 거리는 3000㎞ 정도. 새책 ‘나는 걷는다 끝.’은 이 여정의 기록이다. 저자의 말처럼 “실크로드 여행의 부족했던 한 구간이자 완결판”이다. 출발을 결심한 저자에게 고민이 생긴다. 자신의 연인과 함께 떠나야 할 것인가. 지금껏 그는 혼자 걸었다. 함께 걷자는 여러 제안이 있었지만 그는 여태 혼자 고독하게 걸을 수 있는 권리를 적극 옹호해 왔다. 하지만 연인의 꿈을 막을 수는 없었다. 비(非)결혼 동거 부부들을 위한 시민연대계약(PACS)을 맺었던 노년의 커플은 결국 함께 떠나기로 결정한다. 앞서 베르나르와 1만 2000㎞의 여정을 함께했던 짐수레 율리시스와 함께. 둘은 2013년 8~9월에 리옹에서 이탈리아 베로나까지 900㎞를 걸었고, 2014년 7~10월에는 베로나에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코소보,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그리스를 거쳐 이스탄불까지 2000㎞를 걸었다. 첫 번째 여정은 베르나르의 글만 기록됐고, 두 번째 여정부터는 베네딕트도 함께 글을 썼다. “칼로리를 완전히 불태우”고 “무릎에 격렬한 통증”을 느낄 만큼 극심한 피로를 이겨 낸 둘의 경험담이 듬뿍 담겼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권력·재산·위신, 셋 중 하나만 가져야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권력·재산·위신, 셋 중 하나만 가져야

    삼권분립(三權分立)은 근대국가의 특징이다. 역사상 근대는 솥(鼎)의 다리처럼 권력이 3개로 나누어지는 데서 시작한다. 단순히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져서 각기 독립적 기능(function)을 하면서 전체적으로는 하나로 작동하는 ‘응집된 전체’(cohesive whole)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사고를 했을까. 동양에서는 권력은 나누어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늘에 해가 둘이 아니듯이’가 그 상징적 표현이며 사고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아직도 ‘근대’가 아니다.그러나 이 근대를 연 서양인들은 법을 만드는 권한, 법을 시행하는 권한, 법에 따라 재판하는 권한―국가 권력을 이 세 가지로 나눠 본 것이다. 국가기구도 이 세 가지 나눔에 맞춰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로 분리했다. 그 막강한 국가 권력이며 국가기구를 이 세 가지로 분립한 것이야말로 정치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3권 분립이 이뤄짐으로써 비로소 권력에 대한 견제가 가능했다. 견제 없는 권력은 예외 없이 절대 권력이 된다. 이 절대 권력을 3권 분립이 막는 것이다. 그만큼 3권 분립은 ‘엄청난’ 사상적 혁명이고, 제도적 발전이고, 그리고 ‘엄청난’ 인권적 성취다. 소위 말하는 동양적 전제주의(oriental despotism)는 이 분립 사고가 되지 않는 데서 시작되고 지속됐다. 권력은 한 곳에 모이면 절대화(絶對化)한다. 절대화는 ‘맞설 상대’가 없는 것이고, ‘반대’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오로지 나, 내 말, 내 의견, 내 지시, 내 명령만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은 묘한 존재여서 아무도 나를 제약(制約)하지 않으면 나는 자의적(恣意的)이 되고 방자(放恣)해진다. 그리고 사악(邪惡)해진다. 이렇게 사악해진 나에게 그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칼이 주어진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 억압과 횡포, 그리고 절대적으로 부패해 버린다. 그 절대 권력은 국민의 편에서 ‘절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권력을 향해 아무리 절규해도 국민의 편에 서 주지 않는다. 마침내 봉기해서 그 ‘절대권력’을 무너뜨리면 또 다른 ‘절대권력’이 다가온다. 해변을 때리는 파도처럼 물러갔다가 다시 오고, 그리고 그 모습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우리나 중국인들이 전통적으로 국가 권력을 부정적으로 본 이유도 거기에 있다. 국가는 으레 국민들을 ‘속박하는’ 것 그리고 ‘기만하는’ 것, 힘으로 뭐든 빼앗아 가기만 하는 것, 덕이라고는 아무것도 베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하의 주인은 백성인데 군주라는 큰 도적이 나타나서 나라를 훔쳤다’고 생각하는 사상가도 많이 나왔다. 국가 권력에 대한 이 같은 부정적 사고, 부정적 인식, 부정적 가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3권 분립이 헌법으로 명문화되고 민주화로 학습되고 있는 지금도 권력에 대한 견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절대 권력적인 성향이 빈번히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 3ps가 소수에 집중되면 절대 불평등 3권 분립은 국가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꼭 같이 중요하다. 국가라는 권력기구에서만 3권 분립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생활세계에서도 꼭 같이 필요하다. 사회는 등급화(等級化)된 세계다. 흔히 말하는 대로 높고 낮은 층으로 차별화된 사람들의 모임체다. 어느 사회든 반드시 위층이 있고 아래층이 있고 또 그 사이에 중간층이 있다. 각 층도 또 상중하가 있어 사람들이 속해 있는 층은 잘게 나누면 수도 없이 많다. 문제는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등급화된 세계 그 차별화된 층에 위치하게 하는가이다. 옛말에 개시동인(皆是同人)이라 해서 사람들은 모두 똑같다. 그런데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사람은 높은 층에, 어떤 사람은 낮은 층에 속하게 하는가. 그것은 사회적 희소가치의 불평등한 배분 때문이다. 어떤 사회든 누구나 열망하고 추구하는 사회적 희소가치는 앞 회(回)에서 이미 열거한 대로 세 가지가 있다. 권력(power)과 재산(property), 위신(prestige)이 그것이다. 앞에 모두 ‘p’ 자가 있어 서구 사회학자들은 이를 ‘3ps’라 한다 했다. 이 세 가지 모두를 다 가지고 있으면 말할 것도 없이 가장 높은 층이다. 상중에서도 상층이다. 그중 2개는 물론 한 개만 가지고 있어도 상층에 속한다. 어느 것도 갖고 있지 않으면 하층이고, 중간 정도라도 갖고 있으면 중층이 된다. 중요한 것은 권력기구의 3권 분립처럼 사회에서도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갖는 것이다. 정치인처럼 권력 가진 사람은 재산을 노려서는 안 된다. 기업인처럼 재산 가진 사람은 권력을 탐하지 말아야 한다. 학자, 교육자, 언론인, 예술인, 체육인처럼 높은 위신, 명예와 존경을 받는 사람들은 권력이나 재산, 그 어느 것도 추구해선 안 된다. 이것이 사회적 3권 분립이다. 국가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면 절대 권력이 되듯이 사회도 이 3가지 희소가치가 소수 사람들이나 소수 집단에 집중되면 ‘절대 불평등’이 된다. 절대 권력하에서 살 수 없듯이 절대 불평등하에서도 살 수 없다. 절대 권력이 국가를 붕괴시키듯이 절대 불평등도 사회를 붕괴시킨다. # 정치나 기업 경영에 뛰어들려면 교수직 내놔야 그중에서도 더 강조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권력 가진 사람보다, 재산 가진 사람보다 명예와 존경을 받는, 위신 가진 사람이 사회적 3권 분립에 더 철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2가지다. 하나는 위신 가진 사람의 이름이 권력이나 재산 가진 사람의 그것보다 훨씬 추하게 나쁘게 더럽혀진다는 것이다. 자손들이 얼굴을 들 수 없도록 썩은 냄새가 악취를 풍긴다는 것이다. 예부터 최고의 악취는 ‘썩은 먹물 냄새’라 했다. 실제 자연 상태에서도 먹물 썩은 냄새가 그 어떤 냄새보다 지독하다. 위신은 먹물이나 진배없다. 오직 위신 하나만 가져도 최고의 가치를 누리는 것이 된다. 둘째로 위신은 권력·재산과 달리 제2의 생명이다. 권력과 재산이 아무리 중요한 희소가치라 해도 생명은 아니다. 생명처럼 중히 여겨도 생명과 맞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위신은, 특히 명예는 생명과도 맞바꾼다.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 롱펠로는 ‘명성은 제2의 생명, 영생의 기틀’(A good fame is a second life and the groundwork of eternal existence)이라고 읊었다. 사람에게는 2개의 생명이 있다. 하나는 생물학적 생명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학적 생명이다. 생물학적 생명은 유한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영원히 끝나게 돼 있다. 그러나 사회학적 생명은 유기체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갖는 명예이고 명성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기억되고 기록돼서 인구에 널리널리 회자되는 것이다. 그 사람은 이미 지상의 사람이 아님에도 그 이름은 지상에 살아 있는 사람 이상으로 살아 있다. 물론 그 이름이 명성이 아닌 오명(汚名)으로 기억되는 것도 많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사회학적 생명은 명예와 존경으로 칭송되고 추앙되는 가치 있는 이름이다. 그러려면 누구보다 위신 가진 사람이 수범을 보여 사회적 3권 분립의 전위에 서야 한다. 그럼에도 오늘날 대학을 보면 너무 실망스럽다. 대학교수는 위신의 한 축(軸)이다. 그 희소가치를 점유한 채 권력이며 재산이라는 희소가치를 중복적으로 추구하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책 창안 능력이며,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지며 능력이 남달라서 현실 정치나 기업 경영에 얼마든지 뛰어들 수 있다. 그것을 폄하하거나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 해도 지식인으로 스승으로 올바른 평가를 받으려면 교수직을 흔쾌히 내놓아야 한다. 희소가치의 중첩적 점유는 본인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 해만 있고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회에는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교수가 될 수 있는 자격 가진 사람이 너무 많다. 그 사람들을 나의 겸직 때문에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이 사회적 3권 분립에 가장 충실한 것이다. 이 3권 분립에 가장 철저한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도덕적 의무감을 가장 엄격히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이 많을수록 사회 불평등 지수는 떨어지고, 사회 갈등도 그만큼 줄어든다. 사회는 그만큼 온기가 돌고 사람들은 화합한다. 그중에서도 위신 가진 사람들의 3권 분립 행위가 핵심이다. 연세대 명예교수
  •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교육 농단과 유배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교육 농단과 유배

    1703년(숙종 29) 과거시험에 부정이 발각되자 관련자 11명 전원이 유배형을 받고 이 가운데 5명이 제주도에 유배된다. 과거는 조선시대 최고의 인재를 선발하는 시험 방식이었다. 그래서 이 시험에 부정이 없도록 하기 위해 조정에서는 무진 신경을 썼다.그러나 아무리 해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시험관이 뇌물을 받고 채점을 유리하게 해 주는 폐해가 자주 일어났다. 시험관과 응시자가 공모한다면 그 과거시험의 부정행위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과거 합격이 일생의 숙원 사업이었기 때문에 일생을 건 부정행위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1677년(숙종 3) 실시된 초시에 합격한 사람이 2차로 치르는 회시가 취소된다. 이유는 10여명의 부정행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결국 시험을 취소하는 파방(罷榜)이 결정된다. 당시 드러난 부정행위는 다른 사람이 응시자의 답안지 글씨만 대필해 주는 차서(借書)와 다른 사람이 응시자의 답안 내용을 작성해 주는 차술(借述)로 시험 답안을 조작하는 것이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대리 시험이다. 1818년(순조 18) 이영하는 가장 빈번한 과거 부정행위 8가지를 지적했다. 남의 글을 빌려 쓰는 차술차작(借述借作) 행위, 책을 시험장에 가지고 들어가는 수종협책(隨從挾冊) 행위, 시험장에 아무나 들어가는 입문유린(入門蹂躪) 행위, 답안지를 바꾸는 정권분답(呈券紛遝) 행위, 시험장 밖에서 답안을 작성하는 외장서입(外場書入) 행위, 문제지를 사전에 유출하는 혁제공행(赫蹄公行) 행위, 시험관리 요원을 바꾸어 출입하게 하는 이졸환면출입(吏卒換面出入) 행위, 답안지를 조작해 대리 시험을 보는 자축자의환롱(字軸恣意幻弄) 행위 등이 그것이다. 부정행위가 이처럼 8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의영고(義盈庫)라고 콧구멍 속에 커닝 페이퍼를 숨기는 몬도가네식 행위도 빈번했으니 그 정도를 실감할 수 있다. 오죽했으면 실학자 이익은 과거시험장에서 글을 짓는 사람이 응시자의 10분의1도 되지 않는다고까지 했겠는가. 그래서 부정행위를 하다가 발각이 되면 중국 같은 경우는 부정행위 관련자들을 사형에 처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조선에서는 장기간 시험 자격을 박탈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곤장을 치고 징역이나 유배를 보냈다. 그러나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부정행위는 국가의 기강이 흔들릴 때 많이 발생했다. 강경한 방법으로 과거시험의 기율을 지켜 왔던 중국도 19세기 말이 되면서 국가 기강이 해이해짐에 따라 시험장에 부패한 공기가 넘치게 된다.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말기 고종 때 과거시험 부정행위로 많은 사람이 제주도에 유배된 경우가 그 단적인 예다. 어느 때나 부패와 부정이 번식하면 공동체는 붕괴하기 마련이다. 특히 인재 선발 시험의 부정행위야말로 그 붕괴를 앞당겼다. 중국도, 조선도 그랬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국정 농단 사태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무엇보다 교육 농단으로 빚어진 교육 부정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국가청렴도가 세계 176개국 중 52위를 기록했다. 2015년 37위에서 15계단 떨어진 것이고, 1995년 부패인식지수 조사 이래 가장 큰 폭으로 추락한 것이다. 이러다가 공동체 붕괴마저 걱정해야 할 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교육 부정행위만은 막아야 한다.
  • 밸런타인데이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 어디?

    밸런타인데이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 어디?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밸런타인데이가 약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세계 각국이 밸런타인데이를 보내는 다양한 방식을 소개했다. 2월 14일로 ‘지정’된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한국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포함한 선물을 건네며 마음을 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밸런타인데이에는 여성이 남성에게, 3월 14일 화이트데이에는 남성이 여성에게 사탕과 선물 등을 건넨다. 유럽은 어떨까. 영국은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남녀 구별없이 자신의 연인에게 혹은 특별한 상대에게 선물을 건넨다. 밸런타인데이에 ‘굳이’ 초콜릿을 건네는 풍습은 19세기 영국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일본의 한 제과업체가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광고를 시작하면서 밸런타인데이는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 독일 밸런타인데이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돼지’가 등장한다. 독일에서 돼지는 행운과 열정의 상징이기 때문에, 밸런타인데이 카드와 선물상자에 돼지가 그려져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종종 여기에 또 다른 행운의 상징인 네잎크로버가 함께 그려져 있기도 한다.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는 2월 14일을 밸런타인데이가 아닌 ‘친구의 날’(Friend’s Day)로 정했다. 연인관계가 아니더라도 꽃이 그려진 카드 등을 건네며 여러 사람과 친목을 다지기도 한다. 카카오 원산지 중 하나인 아프리카 가나는 이 날을 ‘초콜릿의 날’로 정해 다양한 마케팅을 펼친다. 필리핀에서는 밸런타인데이 전후로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이 많은데,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해 결혼관련 업체나 기관이 다양한 지원을 내놓기 때문이다. 중동에서는 비교적 상반적인 분위기가 존재한다. 이라크에서는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공원에서 데이트를 즐기거나 연인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밸런타인데이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암시장에서는 ‘고백용’ 붉은 장미를 몰래 판매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포토리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가슴은 먼저 즐겁기를 원하지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가슴은 먼저 즐겁기를 원하지

    평생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마을을 떠나지 않은 시인이 있다. 결혼도 하지 않았다. 56세에 자신의 집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이렇다 할 연애사건도 없었다. 친구도 거의 없었다. 부모와 형제들을 제외하고 그녀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하고만, 직접 대면하지 않고 편지로만 교류했다. 살아서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박힌 한 권의 시집도 출간하지 않았다. 살아서 그녀가 발표한 시는 10편도 되지 않는다. 그녀가 죽은 뒤 여동생이 언니의 방에서 잉크로 쓰인 종이 더미들을, 1800여편에 이르는 시들을 발견했다. 그녀가 죽고 4년 뒤에 첫 시집이 발간됐고, 그녀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은 에밀리 디킨슨(1830~1886). 19세기 미국이 낳은 가장 독창적인 시인, 유럽과 영국의 시풍을 모방하지 않고 처음으로 미국적인 목소리가 뚜렷한 시를 쓴 여성 시인이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비평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암허스트의 자택에 갇혀 아주 단순하게 살다 갔지만, 그녀의 시는 녹록지 않다. 내 나이 삼십세 즈음에 우리말로 번역된 디킨슨의 시집을 읽었는데, 세상을 보는 시각이 아주 독특하고 조용하면서도 의표를 찌르는 표현이 많았다. 지금 다시 읽으니 내 가슴을 치는 시 한 편을 소개하련다.* 가슴은 먼저 즐겁기를-원하지 그리고-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그리고 아픔을 완화시키는- 저 하찮은 진통제들을- 그리고-잠들기를- 그리고-심판관의 뜻이라면 마침내 죽을 자유를- The heart asks pleasure-first And then-Excuse from pain- And then-those little Anodynes That deaden suffering- And then-to go to sleep- And then-if it should be The will of its Inquisitor The liberty to die- *디킨슨은 자신의 시에 제목조차 달지 않았다. 자신을 시인으로 생각했는지도 의문이다. 그녀가 죽은 뒤 시집을 엮으며 첫 행을 제목으로 삼았다. ‘가슴은 먼저 즐겁기를-원하지’에서 눈에 띄는 가장 큰 특징은 문장부호이다. 대시(dash) 기호 ‘-’를 많이 사용했다. 한 행에 하나, 혹은 두 개의 대시가 붙은 행도 있다. 그녀가 손으로 쓴 초고에는 길이도 방향도 제각각인 대시가 (때로 수평이 아니라 수직 방향의 대시도 섞여 있다) 거의 모든 시에 나타난다. 당시의 다른 시인들에게는 볼 수 없는 그녀만의 독특한 표기이다. 마치 말하다 잠시 숨을 고르듯이, 혹은 길게 강조하듯이 ‘-’를 그었다. 요즘 인터넷에 뜨는 디킨슨의 시들을 보면 대시를 쉼표나 현대영어에서 자주 쓰는 ‘세미콜론’(;)으로 대치한 경우가 많다. 오리지널 텍스트를 함부로 변형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첫 행을 우리말로 번역하며 ‘-’를 어디에 칠지 고민했다. 이리저리 고민하다 원문에 충실해 ‘pleasure’ 뒤에 붙였다. 가슴은 먼저 즐겁기를-원하지.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시는 디킨슨이 서른 살 즈음에 강렬한 고통과 절망을 겪은 뒤에 쓰인 것 같다. 인간은 모두 즐겁기를 원하지만- 살면서 우리는 고통과 질병을 피할 수 없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아픔을 완화시키는 진통제가 필요한 시기에 시를 쓰며 그녀는 아픔을 견디었으리. 저 하찮은 진통제에 문학과 예술도 포함되리라. 디킨슨의 시어들은 어렵지 않다. 한두 단어를 제외하고는 사전을 찾을 필요가 없다. 시어는 쉽지만 외우기는 쉽지 않다. 디킨슨은 압운을 즐기지 않아, 위 시에도 완벽한 각운은 없지만 “And then-”을 행의 맨 앞에 네 번이나 반복해 일종의 두운 효과를 내고 있다.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그리고’의 뒤가 점점 파국을 향해 치달아 고통과 진통제를 지나 영원히 잠드는 죽음에 이름을 알 수 있다. 죽을 자유는 곧 영원히 잠들 자유다.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 ‘진통제 Anodynes’와 종교심판관을 뜻하는 단어 ‘Inquisitor’가 대문자인 것에 나는 주목했다. 그만큼 중요한 단어라 강조한 것인데 ‘Inquisitor’는 중세에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이단을 처형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다.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마녀사냥과 고문을 자행해 무고한 사람들이 많이 희생됐다. ‘심판관의 뜻이라면’이라는 문구에서 내가 읽은 것은 시인의 지극한 신앙심이다. 디킨슨이 태어나 자란 메사추세츠의 암허스트는 예로부터 청교도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교조적이고 보수적인 뉴잉글랜드 지역의 분위기는 디킨슨의 시에 그대로 녹아 있다. 오십 평생 집을 떠나지 않고 부모와 함께 살며 청교도적 가치관을 신봉했던 영원한 처녀, 에밀리 디킨슨. 그러나 그녀도 사랑을 모르지 않아, 아래의 시처럼 짧지만 여운이 깊은 소품을 남겼다. * 사랑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 우리가 사랑에 대해 아는 모든 것; 이거면 충분하지, 그 사랑을 우리는 자기 그릇만큼밖에 담지 못하지. THAT Love is all there is, Is all we know of Love; It is enough, the freight should be Proportioned to the groove. * 나보고 에밀리 디킨슨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시인인지도 모르고 죽은 여자. 평생 이사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시인. 내가 아는 시인들은, 예술가들은 대개 같은 장소에 오래 살지 않는다. 보통사람들도 태어나 죽기까지 적어도 네댓 번은 사는 장소를 바꾸지 않나. 대부분의 작가들은 호기심이 많아 여행도 좋아하는데, 디킨슨은 정말 별종이다. 가구처럼 자기 집에 붙박여 산 진짜 이유가 뭘까? 그녀는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자신의 방을 떠나기 싫어서…하긴 나도 이제는 집을 떠나기 싫다. 작지만 하나뿐인 내 방이 제일로 편안하다.
  • [씨줄날줄] 서해 불법 고래 포획/이동구 논설위원

    [씨줄날줄] 서해 불법 고래 포획/이동구 논설위원

    울산, 포항 등지의 동해안 바닷가에서는 고래 고기를 맛볼 수 있다. 울산의 장생포항 주변에서는 고래 고기 전문판매점들이 성업 중이다. 고래 고기의 12가지 특별한 맛을 잊지 못하는 미식가들이 여전히 이곳을 즐겨 찾는다. 고래 고기를 맛볼 수 있는 것은 순전히 고래의 실수(?)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다른 어류를 잡기 위해 쳐 놓은 그물망에 갇혀 숨진 고래들만 유통할 수 있다. 어부는 고래가 그물에 걸려 죽었을 때만 일반 생선처럼 거래할 수 있다. 물론 어부의 고의에 의한 포획이 아니라는 것을 검찰이 인증해 준 후에야 판매할 수 있다. 동해안에서 자주 잡히는 몸집이 비교적 작은(200㎏ 미만) 돌고래도 마리당 평균 1000만원 안팎으로 거래된다. 간혹 덩치가 훨씬 큰 밍크고래(6~7t)가 걸려들면 어부는 1억원에 가까운 거액을 거머쥘 수도 있다. 동해안 일대에서만 연간 500마리 가까운 고래가 그물에 잡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뱃사람들은 고래를 ‘바다의 로또’라 부르며, 자신의 그물에 고래가 갇히는 사고가 자주 일어나길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고래를 잡고 싶은 욕망은 동서고금이 비슷하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에는 선사시대인들의 고래 잡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암각화가 사냥과 어로의 풍요를 비는 주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당시 주민들이 고래가 잡히길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요즘은 축제(울산고래축제)나 고래 떼를 직접 찾는 관광 프로그램 등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미국의 매사추세츠주는 19세기 포경산업의 중심지로 유명했다. 국립생태원 자료에 따르면 향유고래는 값비싼 향료를 얻을 수 있어 포경산업이 육지의 골드러시와 비교되기도 했다. 고래기름은 윤활유로, 등잔불을 밝히는 기름으로도 사용돼 엄청난 부를 안겨 줬다. 우리에게 백경이란 영화로 잘 알려진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이 19세기 위대한 미국 소설로 불리는 배경에는 고래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잘 보여 줬기 때문이다. 국제협약에 따라 1986년 이후 고래 포획이 금지됐지만 일본은 연구 목적이란 핑계로 여전히 남극 등지에서 한 해 수백 마리를 잡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호주의 고래보호구역에서 고래를 불법 포획하다 적발돼 국제적인 망신을 사기도 했다. 고래 불법 포획은 우리 해역에서도 은밀히 발생하고 있다. 고래 불법 포획에는 벌금(3000만원 이하)과 무거운 형사처벌(3년 이하 징역)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인간의 욕심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엔 불법 포획 어선이 동해에서 서해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고 하니 단속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몇 해 전 남방큰돌고래 태산이와 복순이를 제주 앞바다로 돌려보낸 온 국민의 마음을 다시 기억해 줬으면 한다. 이동구 논설위원 yidonggu@seoul.co.kr
  • 서울 옛 국세청 별관 터 내년 광장·박물관 조성

    내년 서울 덕수궁 인근 옛 국세청 별관 부지와 대한성공회 앞마당에 우리나라 근대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는 시민광장이 조성된다. 시민광장 조성은 서울시가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잔재였던 옛 국세청 별관 건물을 철거하고 역사적 가치를 회복해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세종대로 일대 역사문화 특화 공간 조성 사업’ 하나로 추진된다. 시민광장 아래 지하엔 서울의 도시·건축 발전 과정과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서울도시건축박물관’이 생긴다. 시민광장은 지하 보행로로 서울도서관, 시민청, 시청역 등과 이어진다. 시는 시민광장과 서울시의회 앞마당, 인근 보도 바닥재를 통일해 하나의 열린 시민광장으로 만들 계획이다. 시의회 앞 지하보도 출입구는 통합광장 내로 이전해 보행 환경도 개선한다. 서울시와 대한성공회는 시민광장 조성에 공감, 2015년 5월 옛 국세청 별관과 대한성공회 신관을 동시에 철거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근상 대한성공회주교는 25일 시민광장 조성과 관련해 서울시청에서 협약을 체결한다. 서울시는 “19세기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근대 한국 역사를 간직한 덕수궁·정동 일대를 역사문화 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씨줄날줄] 美 대통령의 손편지/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美 대통령의 손편지/최광숙 논설위원

    미국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는 성조기가 놓여 있고 그 앞에 유서 깊은 책상이 하나 있다. 바로 레졸루트 책상이다. 이 책상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러더퍼드 헤이스 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선물이다. 북극에서 난파된 영국 해군 레졸루트호를 미국이 찾아 돌려주자 감사의 뜻으로 이 배의 목재를 이용해 만든 책상이다. 그 후 이 책상은 백악관 여러 장소에 놓였다. 이 책상을 대통령 집무실에 처음 갖다놓은 이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부인 재키다. 케네디가 집무실에서 한창 일할 때 그의 어린 딸과 아들이 아버지의 책상 밑에 숨어 있곤 했는데 바로 그 책상이 레졸루트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등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들이 사용한 이 책상은 백악관 집무실을 지킨 미국 역사의 산증인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편지 한 통을 노란 봉투에 담아 이 레졸투트 책상 위에 남겼다고 한다. 이는 퇴임하는 대통령이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에게 성공을 기원하고 개인적 조언을 담은 편지를 남기는 전통에 따른 것이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하면서 가장 먼저 마주한 서류가 바로 오바마의 편지가 되는 셈이다. 오바마도 8년 전 백악관에 첫발을 디딜 때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직접 써서 남긴 손편지를 읽었다. 부시는 편지에서 “인생에 환상적인 장이 시작될 것”이라고 축하하면서 “힘든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비판이 계속되고 ‘친구들’은 실망을 시킬 것”이라며 대통령직 수행의 난관을 예고했다. 그는 그래도 “당신에게는 사랑하는 가족과 나를 포함해 당신을 성원하는 국가가 있다”고 격려했다. 부시 전 대통령 역시 전임자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부시의 아버지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은 자신의 연임을 좌절시킨 클린턴에게 “아주 힘든 시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평가들이 당신을 좌절시키거나 진로에서 벗어나도록 두지 말라”고 조언하며 “당신과 가족의 성공을 빌겠다”고 편지를 썼다. 이 편지는 트럼프가 대선 기간에 대선 패배 때 불복할 수도 있다고 시사한 뒤 공개돼 ‘패자의 품격’으로 새삼 화제가 됐다. 하지만 선거 기간에 막말을 일삼던 트럼프는 자신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부부를 향해 “너무나 존경한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며 기립박수를 유도하는 승자의 여유를 보였다. 선거 때는 치열하게 싸워도 선거가 끝나면 상대 후보를 인정하는 것이 미국이다. 대선이 끝나면 정치 보복과 전임 대통령 업적 훼손을 새 대통령의 임무로 여기는 듯한 우리 정치 현실과 비교하면 부럽지 않을 수 없다. 국가를 위해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성공을 비는 성숙한 모습이 바로 민주주의 아닐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열받은 2016년 지구… 평균 온도 3년째 경신

    2016년은 기상관측 사상 가장 뜨거운 해였다고 미국 양대 과학 기구인 국립해양대기청(NOAA)과 항공우주국(NASA)이 발표했다. AP통신 등은 18일(현지시간) 두 기구가 따로 추적 집계한 연구 결과 등을 인용해 지난해 전 세계 육지와 바다의 평균 온도가 섭씨 14.83도(화씨 58.69도)로 20세기 평균치인 13.88도(57도)보다 0.95도(1.69도) 높았다고 밝혔다. 이는 NOAA 계측을 시작한 1880년 이래 최고 온도다. NASA도 지난해 지구 평균 기온이 2015년보다 섭씨 0.12도 상승했다며 역대 최고였다고 분석했다. NASA의 기록으로는 2001년 이래 지구는 17번 중 16번이나 최고 온도 기록을 경신했다. 20일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지구온난화를 ‘거짓’으로 규정했지만 이로써 지구온난화가 실제로 벌어지는 현상임이 증명됐다. NASA의 기후학자인 개빈 슈밋은 “지구 기온 상승의 80~90%는 장기적인 경향이며 10% 정도가 엘니뇨(적도해수온상승)와 같은 자연적인 가변성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기적인 경향’이란 인간이 만들어 낸 기후변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석유, 천연가스, 석탄 소비에 따른 온실가스 효과가 지구온난화로 직결됐다는 의미다. NASA는 특히 19세기 말과 비교해 지구가 섭씨 1.1도 이상 더워졌다며 기온 상승을 섭씨 1.5도 미만으로 묶으려던 인류의 노력이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뉴요커, 자연을 걷는다

    뉴요커, 자연을 걷는다

    도시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공원은 우리 몸의 허파처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천루의 도시 미국 뉴욕에서는 그 의미가 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다. 센트럴파크를 비롯해 크고 작은 공원들은 뉴욕의 도시 풍경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많은 공원들 가운데서도 도심에 조성된 공중 정원인 하이라인 파크는 철거 위기에 놓인 고가 철로를 도심 속 자연공간으로 바꾼 성공적인 도심재생사업이라는 의미가 특별한 데다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가득한 첼시 지역과 맞물려 있어 뉴요커들뿐 아니라 뉴욕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오는 4월 말 개장을 앞둔 서울역 앞 고가공원의 롤모델이기도 한 뉴욕의 랜드마크 하이라인을 찾아 성공 요인을 짚어봤다. [성공한 뉴욕 도심재생사업①] 하이라인 파크 ●폐기된 고가 철로가 도심 속 공원으로 맨해튼은 차로를 기준으로 구획된 도시다. 세로로 난 대로인 ‘애비뉴’와 가로로 난 길 ‘스트리트’가 바둑판처럼 짜여져 있고 대각선으로 브로드웨이가 지나가면서 교차점에 광장들이 조성돼 있다. 남서부 지역을 인공위성 사진으로 보면 3개의 선착장과 허드슨 강변을 따라 만들어진 웨스트사이드 고속도로가 눈에 띈다. 그 오른쪽으로 애비뉴와 스트리트가 교차하고 사이사이에 건물들이 빼곡하다. 큰 대로에서 한 블록 뒤로 길도 아니고 대로도 아닌 녹색의 라인이 보인다. 지면으로부터 9m에 총길이 2.4㎞(1.45마일)에 이르는 공중의 그린웨이가 바로 하이라인이다. 눈이 내린 다음날 아침 하이라인을 찾았다. 뉴욕을 가로로 관통하고 퀸즈, 플러싱 지역과 연결해 주는 7번선의 서쪽 종점(34번가 허드슨 야즈역)에서 도보로 7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하이라인 북측 입구를 향했다. 허드슨 야즈 재개발 지역에서 고층 건물들이 공사가 한창이었다. 쨍하게 갠 맑은 날,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청초한 빛을 발하고 맑은 공기가 코끝을 아리게 한다. 한겨울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이라인에는 아침부터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줄을 이었다. 도심에 공중에 뜬 공원이라니!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하이라인의 역사는 19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50년쯤부터 맨해튼 서쪽 10번가에 철도가 다녔는데 교차로에서 워낙 사고가 빈번해 ‘죽음의 길’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급기야 1929년 당시 공사 비용 1억 5000만 달러(지금으로 환산하면 20억 달러)를 들여 바닥의 철도를 고가화하는 공사가 시작돼 1934년 완성됐고, 하이라인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고가 철로는 도축장이 있던 미트패킹 지역의 겐즈볼트가에서 시작해 북쪽으로는 34번가의 허드슨 야즈에서 끝나고, 그 중심이 첼시 지역이었다. 자동차가 운송수단으로 보편화되면서 철도는 1980년을 마지막으로 운행이 중단되고 도시의 애물단지 신세가 됐다. 1990년대 첼시 지역이 인기를 모으기 시작하자 개발업자들은 뉴욕시와 함께 용도 폐기된 철로를 철거하고 지역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수립하고 주민 동의를 구하기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사람의 운명도 그렇지만 하이라인의 운명도 참 얄궂어서 공청회에 참석했던 조슈아 데이비드와 로버트 하먼드라는 두 젊은이가 하이라인을 철거 대신 재생하자고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첼시 지역으로 이주해 온 예술가들과 함께 ‘하이라인의 친구들’이라는 비영리단체를 결성했다. 사진작가 조 스턴팰트는 폐철로의 풍경과 그곳에서 자라는 야생화와 식물을 카메라에 담아 발표했다. 2002년 부임한 블룸버그 시장이 하이라인 보존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면서 예술가들의 꿈과 같았던 하이라인 공원화 프로젝트는 구체적으로 실현 단계에 접어들었다. ●공중에 뜬 야생화 밭, 예술이 꽃피다 시민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뉴욕 도시계획국장 어맨다 브랜던이 건축가 딜러 스코피디오를 하이라인의 재생건축가로 선임하면서 본격적인 재생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스코피디오의 구상은 ‘떠 있는 야생화 밭’이었다. 그는 하이라인의 구역별로 자라난 야생화를 관찰했다. 태양이 많이 비치는 곳, 바람이 많이 부는 곳, 그늘진 곳 등 다른 환경조건에 따라 자라난 야생화와 초본류를 그대로 유지하는 선에서 공원을 재단장했다. 조경디자인은 피에트 우돌프가 맡았다. 한쪽 철로는 그대로 살리고 다른 방향 철로는 걷기 좋도록 콘크리트, 폐석 등으로 높여 채웠다. 현재 하이라인에는 다년생 식물, 관목, 넝쿨류, 나무 등 350종 이상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2006년 착공한 하이라인 파크는 남쪽 갠스볼트가에서 20번가에 이르는 구간이 2009년 6월 공개됐고, 20~30번 구간이 2011년 6월, 마지막 30~34번가 구간이 2014년 9월 완공됐다. 2015년엔 남쪽 끝자락에 휘트니미술관 신관이 개관하면서 하이라인은 명실공히 뉴욕 문화예술의 메카로 각광받게 됐다. 겨울이라 야생화를 볼 수는 없어 아쉬움이 있었지만 길 양옆으로 잔가지에 눈이 쌓여 있고 새들이 노래를 불러 주니 도심에서 전원의 정취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이라인은 10번 애비뉴를 따라서 여러 개의 스트리트를 남북으로 관통하기 때문에 좋은 전망대 역할을 한다. 나름 긴 길인데도 하이라인 양쪽으로 보이는 허스든강과 뉴욕의 풍광을 보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와 여름날 누워서 일광욕할 수 있는 나무 침대들이 곳곳에 놓여 있고, 특히 재미있는 예술작품들이 간간이 놓여 있어 즐거움을 선사한다. 30여개의 공공예술 작품들은 ‘하이라인 아트’ 프로젝트에 따라 예술가들이 장소의 특성을 살려 제작하고 설치한 것이다. ●서울역 고가공원화 사업의 롤모델로 하이라인에서 열심히 작품사진을 찍고 있던 사진작가 토미 민츠는 “눈이 쌓인 하이라인을 촬영하기 위해 일부러 나왔다”면서 “뉴욕 같은 도시에서 자연을 그대로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데 하이라인은 정말 소중한 장소”라고 말했다. 서울역 고가공원화 사업이 마무리 단계라는 얘기에 관심을 보인 그는 “하이라인은 시민들이 발의해 조성된 공원이고, 시의 부분 지원을 받지만 뉴욕 시민과 첼시 지역민들이 합심해 자치적으로 운영되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이라인은 ‘하이라인의 친구들’과 뉴욕시의 긴밀한 협력하에 유지 관리되고 있고 예산의 98%가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로 충당되고 있다. 봄이 오고 여름이 되면 이곳에는 풀이 우거지고 꽃이 필 것이다. 거리의 예술가들이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고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이 불을 밝힐 것이다. 그런 좋은 계절에 다시 하이라인을 찾고 싶다. 글 사진 뉴욕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성공한 뉴욕 도심재생사업②] 첼시마켓 뉴욕에서 가장 뜨는 지역은 단연 맨해튼 남서쪽의 첼시다. 오래된 붉은색 벽돌건물과 새로운 디자인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있고, 최첨단의 예술과 패션이 있다. 젊은이들과 낭만이 넘치는 곳이 첼시다. 연간 300만명이 방문하고 20억 달러의 경제효과를 창출하는 지역이 된 첼시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도축업이 활발해 ‘미트패킹 디스트릭트’라고도 불리며 낡은 공장 건물과 창고, 콘크리트 아파트, 철길이 뒤섞인 서민적인 지역이었다. 사람들이 꺼려하던 첼시가 멋쟁이들로 가득하고, 찾고 싶은 곳으로 유명해진 것은 1990년대였다. 소호에 위치한 갤러리들이 치솟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첼시 지역의 옛 공장이나 창고건물을 리모델링해 하나둘씩 이전해 왔다. 첼시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젊은이들과 관광객이 찾아왔다. 1990년대 말 첼시는 200여개에 달하는 갤러리가 밀집한 예술의 메카로 탈바꿈했다. 닷컴 붐을 타고 구글 뉴욕 본사를 비롯해 정보기술(IT) 벤처들이 둥지를 틀었다. 그런 첼시를 더욱 유명하게 한 것은 옛 과자공장을 리모델링한 첼시마켓의 오픈과 하이라인 파크의 개장이다. 19세기 말 세워진 나비스코(내셔널비스킷컴퍼니)의 공장으로 1913년부터 검은색 샌드위치 과자 ‘오레오’ 쿠키를 생산하던 공장은 1997년 온갖 맛집과 상점들이 입점한 독특한 분위기의 뉴욕 스타일 빈티지 식품 쇼핑몰로 변신했다. 옛 공장을 허물어 버리지 않고 예전의 모습을 가능한 한 많이 살린 실내는 첫눈에는 어두컴컴하고 번잡해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 보면 놀라운 세상이다. 에이미스, 다비도비치, 사라베스 등 유명한 제빵·제과점을 비롯해 유럽, 인도, 아프리카에서 온 이국적인 식재료를 파는 곳, 각종 향신료를 파는 곳, 서점, 요리용품을 파는 곳 등 식품과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이 있다. 잘나가는 뉴요커들은 첼시마켓을 찾아 이국적인 향신료부터 빵, 쿠키, 생면, 꽃 등을 사고 랍스터 플레이스에서 랍스터와 굴 등을 먹거나 비욘드 스시에서 초밥을 먹는다. 이곳에는 한국식 라면과 비빔밥을 파는 먹바도 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지는 곳이다. →가는 방법 : A, C, E, L호선에서 도보로 5~7분 거리에 있다. 10번 애비뉴로 나와 애플스토어를 지나 오른쪽으로 한 블록 지나면 빈티지스타일의 여성의류점 안트로폴로지가 있는 첼시마켓 입구다. 첼시마켓 주변으로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과 멋진 상점들이 즐비하다.
  • 세상이 날 부정한다 해도 당차게 말하는 용기 내요

    세상이 날 부정한다 해도 당차게 말하는 용기 내요

    4년 전 ‘여신님이 보고 계셔’ 제작 호평 열악한 환경 속 신념의 여인 얘기 담아 한정석 “가치있는 말 전달 고민 녹였죠” 이선영 “의미 있는 얘기 재미있게 풀어” “살아온 날들과 사랑한 이들이 너무나 소중한 사람 지금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더 중요한 사람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내가 나라는 이유로 지워지고 내가 나라는 이유로 사라지는 티없이 맑은 시대에 새까만 얼룩을 남겨 나를 지키는 사람.”(‘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좋게 좋게 넘기려다 누구누구 눈치보다 아예 포기했던 말들 그 누구도 묻지 않아 나조차도 생각 못한 오직 나를 위한 말들 거기 그 자리에서 지금 그 모습으로 당신의 얘기를 들려줘요.”(‘당신의 얘기를 들려줘요’) 2013년 창작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이하 여신님)로 평단과 대중을 사로잡은 한정석(34) 작가·이선영(34) 작곡가 콤비가 4년 만에 내놓은 신작 ‘레드북’(22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의 대표적 넘버에는 두 사람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신님’ 이후 ‘카인과 아벨’을 작업하던 중 우란문화재단의 제안으로 “셋째인 ‘레드북’을 먼저 출산했다”는 이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끝내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여인의 이야기를 젊은 창작자답게 가볍고 유쾌하게 풀었다. “전작 ‘여신님’에서 주로 ‘보다’라는 의미에 주목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말하다’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췄어요. 다른 사람의 시선과 기준에 나를 맞추지 말고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말하라고 전하고 싶었거든요.”(이선영) “여자가 남자의 부속물로 취급받던 극도로 보수적인 시대에서 아무리 세상이 나를 부정한다고 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겠다’고 외치는 솔직하고 당찬 안나를 통해 말할 줄 아는 용기를 강조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에게 가치가 있는 말을 전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제 바람과 여성 예술가로서의 역할을 고민하는 선영씨의 고민도 녹아 있죠.”(한정석) 한 작가의 말처럼 극 중 안나는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편견에 맞서 “나는 슬퍼질 때마다 야한 상상을 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한다. 그러던 그녀는 여성문학회 ‘로렐라이 언덕’이 펴낸 잡지 ‘레드북’에 파격적인 소설을 실어 거센 비난을 받는다. 블랙리스트, 검열 등이 문화예술계의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요즘, 그래서 금지된 책을 상징하는 ‘레드북’이라는 제목은 꽤 도발적으로 들린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공연 시점이 맞물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실제로 극 중 한 평론가로부터 미움을 산 이후 안나가 본의 아니게 핍박을 받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소신을 지키는 그녀를 통해 신념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관객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해요. 사실 ‘레드북’은 도색 소설, 무서운 책 등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기에 관객들이 의미를 한정 짓지 않고 나름의 해석을 찾았으면 좋겠어요.”(한정석) 시대가 공감하는 인물을 통해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관객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는 젊은 창작자들의 그다음 목표는 뭘까. “무엇보다 현재로선 ‘레드북 재공연 확정’이지요.(웃음) 사실 큰 목표지만 재공연을 하게 된다면 처음에 저희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더 충분하게 전달하고 싶어요.”(한정석) “의미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자는 게 저희 원래 목표였어요. 앞으로도 관객분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데 알고 보니 몸에도 좋은 유기농 음식이었네’라고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이선영)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주의 문화 레시피] 클래식

    [이주의 문화 레시피] 클래식

    ●2017 빈소년합창단 신년음악회 1969년부터 지금까지 스물일곱 차례 한국을 찾아 170회 이상의 공연을 성황리에 치렀던 세계 최고의 소년 합창단이 ‘스마일’을 주제로 아름다운 성가곡과 영화 음악, 신년을 위한 왈츠와 폴카, 그리고 다양한 월드 뮤직을 선보인다. 21일 오후 8시, 22일 오후 5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만~10만원. 1577-5266. ●빈 슈트라우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 2004년을 시작으로 이번이 여덟 번째 내한인 SFOV의 신년음악회. ‘봄의 소리’,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등 네 곡의 왈츠에 맞춰 발레 댄서 4명이 19세기 빈의 무도회 풍경을 서울에서 재현한다. 19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만 5000~12만원. (02)599-5743.
  • ‘고양이 집사’들을 위한 인류 속 고양이 문화사

    ‘고양이 집사’들을 위한 인류 속 고양이 문화사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진중권 지음/천년의 상상/336쪽/1만 8000원 진보 논객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이번엔 고양이 집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2013년 비 오는 어느 날 반려묘 루비를 만난 뒤 일명 ‘진 집사’로 거듭난 그는 역사와 미술, 문학, 철학 등을 넘나들며 고양이 문화사를 아우른다. 루비는 그가 평소 존경하는 철학자 루트비히 요제프 요한 비트겐슈타인에서 따왔다. 루비는 이를 부르기 편하라고 줄인 것이다. 그는 “고독한 학문의 길에 루비는 유일한 친구이자 영혼의 동반자”라고 고백한다. 책은 인류가 고양이를 기르기 시작한 역사부터 파헤친다. 고대 이집트 문화에서는 존재하던 고양이가 성서에서 자취를 감춘 이유, 장화 신은 고양이에 얽힌 이야기, 고양이가 19세기 유럽 시인들의 소울 메이트가 된 사연 등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아울러 우리나라에 고양이가 전해진 경로에 대해서도 밝힌다. 국내에서는 조선시대 전기 문신 서거정의 시에서 고양이 이름이 처음 문헌에 등장했으며 광해군 때는 고양이 시체를 이용한 흑사물에 관한 기록도 있다. 또한 이익의 ‘성호사설’에서 조선 최고의 애묘가로 언급된 19대 임금 숙종이 노란 털의 고양이를 좋아해 금손(孫)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손수 수라상에 오른 고기를 먹였다는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그는 이 책에서 낡은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고 고양이중심주의를 확립하자고 주장한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인정하지 말자는 주장이 아니라 차이가 차별, 즉 동물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저자는 “고양이는 동물 중에서 가장 철학적인 동물”이라면서 “이기적으로 보이나 누구보다 이타적이며, 사회 안에 살면서도 완전히 동화되지 않는 고양이성을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추리소설 주연 수사기법 현실에선 과학수사 됐다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추리소설 주연 수사기법 현실에선 과학수사 됐다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영국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명탐정 셜록 홈스로 등장하는 영드(영국드라마) ‘셜록’의 네 번째 시즌이 새해 첫날 시작됐습니다.영드 ‘셜록’도 원작처럼 주인공 탐정의 천재성에 많이 기대고 있기는 하지만 다양한 최신 정보기술(IT)과 과학을 이용해 수사하는 장면이 군데군데 등장합니다. ●‘혈액분석법’ 소설 자극받아 현실로 코넌 도일의 작품에도 당시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한 수사기법이 등장합니다. 사실 1887년 ‘주홍색 연구’라는 작품으로 홈스가 세상에 나타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과학과 범죄 수사는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기껏해야 당시 최첨단 수사법인 ‘지문’을 활용하는 정도만 알려졌을 뿐이지요. 그렇지만 홈스를 통해 과학기술이 실제 사건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알게 된 것입니다. ‘주홍색 연구’에는 사람의 혈액을 분리해 내는 ‘혈액 동정법’에 관한 대목이 나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범죄 현장에서 나오는 혈흔이 사람의 것인지 동물의 것인지의 구분은 맨눈으로 하거나 묽은 암모니아수를 이용해 겨우 알아내는 수준이었습니다. 현재처럼 사람의 것인지 아닌지, 혈액형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는커녕 동물의 피를 사람의 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고도 합니다. 이후 화학자와 의학자들이 100만분의1g 정도의 작은 핏방울까지도 분리해 낼 수 있는 혈액 동정법을 개발한 것도 ‘주홍색 연구’에 자극을 받았던 덕분이라고 합니다. 도로시 세이어스가 만들어 낸 귀족 탐정 피터 윔지 경이나 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애거사 크리스티가 만들어 낸 에르퀼 푸아로, 미스 마플 같은 탐정들도 당시 일반인들은 접하기 어려운 과학적 발견과 독물학 지식을 소설 속에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1907년 영국의 의사이자 소설가인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은 요즘 CSI 요원들처럼 작은 현장분석 가방을 들고 다니는 손다이크 박사를 창조하기도 했습니다. 당시는 물론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손다이크 박사처럼 분석세트를 들고 다니며 범죄 현장을 조사한다는 것은 경찰들에게도 그저 소설 속 상상으로만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미국의 과학수사 전문가 콜린 에번스는 “홈스의 등장 이후 많은 추리소설 주인공이 소설 속에서 다양한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범죄와 수사의 역사를 바꿨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CSI 현장 가방도 소설에서 먼저 등장 최근 과학기술은 가장 고전적인 지문을 이용한 수사법까지도 진화시키고 있습니다. 영국 셰필드대 연구진은 지문에서 미세한 화학입자를 분석해 지문 주인이 무엇을 먹었고 생활 습관이 어떤지를 알아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또 사건 현장의 공기를 분석해 현장에 있던 사람의 숫자는 물론 사용하는 화장품이나 향수가 무엇인지까지 알아낼 수 있는 기술도 등장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해 범죄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기술까지 연구되고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뛰는’ 범죄자 위에 ‘나는’ 과학기술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습니다. edmondy@seoul.co.kr
  • 유럽이 얼었다…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영하 41도 ‘꽁꽁’

    유럽이 얼었다…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영하 41도 ‘꽁꽁’

    북극의 찬 공기가 유럽 전역에 영향을 미치면서 유럽 전역에서 기록적 한파가 이어지고 있다. 한때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에서는 영하 41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독일 동부 작센주는 전날 최저 기온이 영하 31.4도까지 내려갔다. 함부르크에서는 눈비로 미끄러운 길에서 넘어져 다친 행인들의 구급차 호출이 두 시간 동안 50여 차례나 있었다. 러시아에도 이날 새벽 모스크바의 기온이 영하 27도까지 내려갔고, 모스크바 인근 코스트로마주에선 한때 기온이 영하 41도까지 떨어졌다. 모스크바주와 인근 벨고로드주에선 4단계 혹한 위험 경보 가운데 최악 직전 3단계인 ‘오렌지색 경보’가 내려졌다. 구력(율리우스력)에 따른 러시아 성탄절인 7일 새벽엔 모스크바의 기온이 29.9도까지 떨어져 이번 세기 들어 최저 성탄절 혹한을 기록했다.2000년 이후 성탄절 최저 기온 기록은 2003년의 영하 26도였다. 19세기 후반 기상 관측 시작 이래 모스크바 성탄절 최저 기온 기록은 1891년 세워진 영하 34.8도였다. 러시아 기상청은 올 겨울이 120년 만에 가장 추운 겨울이라고 밝혔다. 프랑스에서는 독일과 국경을 접한 지역의 기온이 영하 13도까지 내려가 일부 도시는 노숙인들을 위해 체육관을 개방하기도 했다. 체코 프라하에서는 노숙인 한 명이 다리 아래서 추위로 숨지는 등 3명이 사망했고,20년 만에 한파가 몰아닥친 이탈리아에서도 노숙인 등 7명이 추위로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네덜란드에서도 눈길 교통사고가 수백 건 일어나 1명이 숨지고 수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철도 교통도 거의 마비 상태가 됐다. 헝가리는 북부 지역이 영하 23도까지 내려가면서 5년 만에 가장 심한 추위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만인산과 지방 권력/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만인산과 지방 권력/서동철 논설위원

    과거 지방 수령의 권한은 왕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니 수령의 성정이 고을 백성들의 ‘삶의 질’을 좌우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수령에 대한 백성의 평가는 떠나간 다음에야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선정(善政)을 베풀었던 수령의 임기가 다하면 백성들은 너나없이 섭섭함을 표시하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새로 부임할 수령이 악정(惡政)으로 소문난 자라면 아쉬움은 더욱 컸을 것이다. 조선시대 관청 주변이라면 지금도 비석이 줄지어 세워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송덕비(頌德碑)나 선정비(善政碑),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유애비(遺愛碑)라는 머리글을 이고 있다면 수령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물론 실제로 선정을 베풀었던 수령에 대한 아쉬움을 담은 비석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포악한 수령일수록 크고 화려한 송덕비를 요구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궁핍한 고을에서는 선정비를 세우느라 백성이 더욱 고통받는 아이러니도 속출했다. 떠나가는 수령을 칭송하는 수단은 송덕비에 그치지 않았다. 만인산(萬人傘)과 만인병(萬人屛)도 있었다. 수령은 행차할 때 일종의 양산을 썼는데, 햇볕을 가리는 도구이자 수령의 존재를 상징하는 역할을 했다. 19세기 후반에는 임기를 마치는 수령에게 재임 중 공덕과 백성의 이름을 양산에 수놓아 전하는 풍습이 생겼다. 많으면 수천명의 이름을 수놓았다. 양산 대신 병풍에 새기면 만인병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1878~1879년 초산부사를 지낸 이만기의 만인산을 소장하고 있다. 선정을 베푼 내용과 2091명 백성의 이름을 촘촘히 수놓았다. 강원도 금성현령을 지낸 이만윤의 만인산(1890)과 교동부사를 역임한 전세진의 만인산(1890)도 국립춘천박물관과 홍성 홍주성역사관에 남아 있다. 전세진 만인산에는 100명 남짓 이름이 수놓아져 있다. 만인산도 송덕비처럼 선정의 결과일 수도, 악정의 결과일 수도 있다. 1896년 고종실록에는 희천군수 경광국을 고발하는 상소문이 실려 있다. ‘남의 재물을 약탈하여 욕심을 채우는 것을 능사로 여긴다’며 죄상을 나열하고는 ‘2000금을 포학하게 거두어 만인산을 억지로 수놓게 하니 원망하는 소리가 길에 가득 찼다. 이런 무리가 벼슬자리에 오래 앉아 있으면 고을이 없어지고 말 것’이라고 한탄했다. 울산박물관이 역사관과 산업사관을 새로 꾸몄다. 특히 언양현감을 지낸 윤병관의 만인산(1887)이 눈길을 끈다. 지난해 기증받아 보존 처리하고 일부는 복원했다. 후손은 서울에 살고 있으면서도 만인산의 고향인 울산의 박물관에 유품을 돌려보냈다니 그 문화적 안목에 경의를 표한다. 희귀하면서도 흥미로운 유물인 만큼 중요한 볼거리의 하나로 떠오를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라면 더더욱 만인산을 둘러보면서 진정으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In&Out] 한국무역의 재흥과 세계화 4.0/문희철 충남대 교수·한국무역학회장

    [In&Out] 한국무역의 재흥과 세계화 4.0/문희철 충남대 교수·한국무역학회장

    해마다 이맘때쯤 나오는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전망을 종합하면 올해 한국 경제의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올해 세계경제는 선진국의 경기회복세 지속과 신흥국 경제의 반등으로 전년의 2.9%보다 높은 3.4% 성장할 전망이다. 그러나 우리는 탄핵정국 등 정치리스크가 조기에 해소되지 않으면 내수불황의 심화로 경제성장률이 2.3% 내외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눈을 돌려 그동안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견인해 온 무역에 초점을 맞춰 보자.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연간 수출액은 전년보다 5.9% 감소한 4955억 달러, 수입액은 7.1% 줄어든 4057억 달러다. 2011년 첫 달성 이후 4년간 이어오던 무역수지 1조 달러 달성도 2년 연속 무산됐다. 올해는 세계 경기가 개선되고 주력 품목 수요가 호전되면서 연간 수출이 2.9% 증가한 5100억 달러, 연간 수입은 7.2% 늘어난 4350억 달러로 전망된다. 무역수지 1조 달러 달성이 또 어렵다는 이런 전망조차 G2(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과 이로 인한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 브렉시트의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투자 및 소비 침체 등으로 달성이 미지수다. 한국 무역, 나아가 한국 경제는 어디서 활로를 찾아야 할 것인가? 필자는 올해 한국 무역이 다시 1조 달러의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서는 세계경제를 좌우할 3개의 키워드에 주목하고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글로벌 신보호무역주의 확산이다. 개도국이 자국의 유치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관세 중심의 보호무역주의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신보호무역주의는 선진국과 개도국 구분 없이 온갖 무역구제 조치를 총동원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진흙탕처럼 어두운 보호주의’로 불리기도 한다. 신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선 전 세계 52개국에 걸쳐 기발효 중인 15건의 자유무역협정(FTA) 활용률을 높이고 현재 진행 중인 FTA들도 조기에 타결할 필요가 있다. 또 러시아, 브라질, 인도, AEC 등 상대적으로 경기회복세가 빠른 신흥국 시장을 적극 공략해야 한다. 둘째,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본격화이다 인공지능(AI), ICBM(IoT, Cloud, Big Data, Mobile) 등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들은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인 한국이 새로운 수출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혁신적인 중소·중견기업들이 글로벌가치사슬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셋째, 디지털 무역(digital trade) 또는 CBEC(Cross-Border e-Commerce) 시장의 팽창이다. 매킨지에 따르면 세계 전자상거래 시장은 2014년 1조 3000억 달러로 이미 한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에 육박한 데 이어 2019년에는 3조 4000억 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른 구글, 유튜브, 알리바바 등 디지털 플랫폼의 확산은 생산자의 거래 비용감소, 소비자 선택권 확대 등 글로벌 시장의 효율화로 사용자 참여를 확대 견인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형 디지털플랫폼과 이에 필요한 전문인력 양성이 시급히 요구된다. 결론적으로 글로벌 신보호무역주의의 확산, 제4차 산업혁명의 본격화, 디지털무역의 확산 등 위협과 기회요인이 병존하고 있는 2017년 세계경제 여건하에서 한국 경제가 최소한 세계평균치 이상의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선 한국 무역의 재흥밖에는 답이 없다. 이를 위한 차기 정부의 슬로건 내지 정책 과제로 ‘세계화 4.0’(Globalization 4.0)을 추천한다. ‘세계화 4.0’의 기치하에 국가, 기업, 국민이 합심해 노력한다면 머지않은 시일 내에 세계무역 4강도 결코 실현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리라 믿는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