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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 펍 체인 그린 킹과 런던로이즈 보험 “노예로 부 쌓은 것 사과”

    英 펍 체인 그린 킹과 런던로이즈 보험 “노예로 부 쌓은 것 사과”

    영국 선술집(펍) 체인 그린 킹과 보험시장 런던로이즈가 과거 노예무역으로 재산을 모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린 킹 창업자들은 카리브 해에 수많은 식민 농장을 거느리고 있었고, 1688년 해양 보험을 전문으로 창업한 런던로이즈는 노예선 보험을 비롯해 대서양 횡단 무역으로 부를 축적했다. 두 회사 모두 사과와 함께 흑인 및 소수인종(BAME) 그룹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일간 텔레그래프의 보도를 인용해 BBC가 보도했다. 런던로이즈는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 역사의 몇몇 측면들이 있다. 특히 우리는 18세기와 19세기 노예무역에 있어 로이즈 시장이 저지른 역할에 대해 유감스러운 대목이 있다. 우리뿐만 아니라 영국 역사에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시기이기도 했으며 우리는 이 시기에 과거에 일어났던 정당화하기 어려운 잘못들을 비난받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BAME 그룹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을 껴안기 위한 조직과 자선단체들에 대한 금융 지원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아울러 BME의 재능을 조직 안에서 극대화할 수 있도록 수많은 캠페인을 이미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그린 킹은 1799년 벤저민 그린이 창업했는데 종잣돈은 높은 수익을 창출한 플랜테이션 농업에서 나왔다. 벤저민의 아들 에드워드는 1836년 양조장을 장악한 뒤 지방 양조장과 합병한 뒤 1887년 그린 킹이란 이름을 붙였다. 1833년 노예제 폐지 이후 영국 정부는 노예들을 잃어 재정적 손실을 본 수천명에게 금전으로 보상했는데 벤저민도 혜택을 봤다. 지금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에 보관된 데이터베이스에 당시 수혜자 명단이 남아 있다. 그린 킹의 닉 맥켄지 최고경영자(CEO)는 “우리 창업자 가운데 한 명이 노예제로 이득을 챙겼고 1800년대 노예제 폐지에 반대했다는 것은 용서 받기 어려운 일이다. 역사의 한 대목이지만 우리는 이제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펍 체인은 앞으로 “BAME 공동체가 이익을 볼 수 있고 기업활동의 인종 다양성을 높이는 쪽으로 상당한 투자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英 옥스퍼드대도 남아공 총독 지낸 세실 로즈 동상 “철거 논의”

    英 옥스퍼드대도 남아공 총독 지낸 세실 로즈 동상 “철거 논의”

    영국 옥스퍼드대 오리엘 칼리지 이사회가 19세기 남아프리카공화국 총독을 지냈던 세실 로즈의 동상을 철거하라고 권고했다. 이 대학의 로즈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요구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대학 측은 줄곧 이를 거부해왔는데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제국주의 청산 시위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17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교직원으로 구성된 오리엘 칼리지 이사회는 성명을 내고 “로즈의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밝혔다. 이사회는 나아가 “투표를 통해 로즈 동상에 대해 논의하는 독립 조사위원회를 설립하기로 했다”면서 동상을 철거하길 바란다는 이사회의 의견을 적은 팻말을 그의 동상에 설치해놓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단 로즈 동상은 조사위원회가 논의를 마치는 연말까지 철거되지 않고 그냥 두기로 했다. 이사회는 조사위원회가 학술·교육·법·정치·언론 전문가들로 구성될 것이라며 앞으로 흑인과 소수민족 출신 학생 및 교직원에 대한 접근 개선 방안을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21세기의 다양화 요구에 맞게 과거를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겠다고 덧붙였다. 세실 로즈는 19세기 말 빅토리아 시대에 케이프 식민지(현재 남아공)의 총독을 지내면서 영국의 아프리카 식민지화에 앞장섰다. 당시 금광·다이아몬드광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그는 모교인 오리엘 칼리지에 장학재단을 설립했고, 이 재단을 통해 지난 100년 동안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그 동안 로즈 동상을 치워야 한다는 주장이 늘어나면 일부 동문이 기부금 철회 의사를 표시했지만 대학 측은 동상 철거에 반대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사회가 나서 로즈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제국주의나 식민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의 동상을 철거하거나 훼손하려는 움직임은 세계 곳곳에서 눈에 띄고 있다. 이달 초 영국 브리스틀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는 17세기 노예무역상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을 끌어내려 강물에 내던졌다. 미국 미네소타, 보스턴 등에서도 시위대가 유럽에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알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동상을 끌어 내리거나 훼손했다. 또 지난 14일 호주에서는 오세아니아 대륙 토착 원주민을 학살하고 식민 통치한 영국인 제임스 쿡 선장의 동상이 스프레이 페인트로 훼손된 채 발견되기도 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가깝고도 먼 이웃… 그때는 通하였구나

    가깝고도 먼 이웃… 그때는 通하였구나

    일본 가고시마현 중급무사 ‘야스다 요시타카’ 조선 표류 후부터 복귀까지 6개월간의 기록 보름 넘게 바다를 표류하던 일본인은 가까스로 조선에 다다른다. 조선인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 터라 종이에 한자를 써 보이며 교류를 이어간다. 이들 기억에 남은 조선과 조선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신간 ‘조선표류일기´는 일본 가고시마현 지역의 중급 무사 야스다 요시타카가 19세기 초반 조선에 표류된 뒤 일본으로 돌아가기까지 6개월간의 기록이다. 원본은 모두 7권. 한국어판은 이를 1권으로 묶었다.야스다 일행 25명은 1819년 6월 14일 관선을 타고 주변 섬을 순찰하고 돌아오다 태풍을 만난다. 배가 부서지고 안쪽으로 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빗물을 받아 마시다 선원들이 설사병에 걸리는 등 보름 넘는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충남 서천 마량진 인근의 비인 지역에 다다른다. 조선 통역관이 왔지만, 말이 통하질 않았다. 그나마 공통분모는 한자. 야스다는 한자로 조선인들과 필담을 나눴다. 꼼꼼한 성격 덕분에 기록이 거의 온전히 남았다. 책에는 표류한 이들에게 당시 조선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상세하게 담겼다. 발을 들인 외국인들은 조선의 허락 없이 배에서 내릴 수 없었다.다만 조선 정부는 이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곡식을 비롯해 육류와 생선 등 음식을 챙겼다. 야스다는 이런 과정을 꼬박 기록했다. 국법에 따라 선박 내부의 물품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신경전을 벌이고, 일본인을 처음 본 조선인들과 소소한 갈등 등이 이어진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비인의 태수 윤영규와 야스다 사이의 우정이다. 야스다는 무사였지만 글 솜씨가 아주 빼어났다. 능숙하게 한시를 짓고, 심지어 조선 관인들의 시를 평하고 글자를 고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할 정도였다. 서른 살의 야스다와 쉰 살의 윤영규는 여러 차례 술을 나눠 마시고, 시를 지으며 풍류를 즐긴다. 서로의 나라에 관한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선물을 교환하기도 한다. 조선 관인과 표류된 일본인이지만, 한 달 넘게 만나면서 정이 든 이들은 이별할 때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아쉬워한다. 윤영규는 “작별을 앞두니 서글퍼 작별의 말 한마디 생각나지 않는다”며 아쉬움을 건네고, 야스다는 “존공께서도 영원히 오래도록 평안하시라”고 답한다. 조선인들이 야스다에게 그림을 그려 달라 청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나올 정도로 야스다는 그림에도 특출났다. 조선에 머물면서 당시 조선인을 비롯해 여러 기물과 항해 경로, 배가 머문 포구와 조선의 생활상 등 37장이 책에 들어 있다. 머리를 깎는 일본인 입장에서는 조선인의 상투가 기이하게 보였을 터. 갓이나 망건 등 자신이 만난 관인들의 의관을 비롯해 일본인의 배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려서 곤장을 맞는 조선인의 모습까지, 그림들은 당시 풍습을 잘 보여준다. 수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서진 배를 두고 야스다 일행은 조선의 배를 타고 일본에 다다른다. 비인을 떠나 일본으로 향하는 후반에는 병에 걸려 전반처럼 자세한 기록을 남기지 못해 아쉽다. 기록 위주로 쓴 책을 번역한 터라 다소 딱딱한 부분도 있다. 소설만큼 사건이 다이내믹하지 않아 다소 단조롭게도 느껴진다. 그러나 표류한 일본 무사가 19세기 초반 조선인들과 우정을 나누며 당시를 생생하게 쓰고 그려낸 책은 사료로서 가치도 있고 표류기 자체로도 소소한 재미를 준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박미산 지음, 채문사 펴냄) 54세에 문단에 데뷔한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인천에서 살던 어린 시절, 서울로 시집와 겪은 육아와 간병, 늦깎이 공부의 경험 등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겼다. ‘가시를 품고 이십대를 보냈다/(중략)/아버지는 내가 찌른 가시를 가슴에 꽂고 계셨다/다른 행성으로 갈 때까지’(‘간섭의 궤도’ 일부)처럼 일상에서 길어올린 기억들이 폐부를 찌른다. 120쪽. 9000원.시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소진광 지음, 박영사 펴냄) 새마을운동에 대한 재평가를 꾀한 저작. 2년간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을 지낸 소진광 가천대 교수는 새마을운동을 신화로 포장하거나, 정치상황에 대한 인식도구로만 보는 관점에 모두 반대한다. 그는 새마을운동이 주민들의 주도권과 주인의식을 촉발해 마을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고, 이것이 타국과의 차별성이라고 말한다. 489쪽. 3만 4000원.협력의 역설(애덤 카헤인 지음, 정지현 옮김, 메디치미디어 펴냄)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인 갈등 전문가가 집약한 협력 노하우. 콜롬비아 내전 등 25년간 치열한 갈등의 현장에 있었던 저자는 전통적인 협력 방식 대신 ‘스트레치 협력’을 제안한다. 모든 사람의 입장이 가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가 문제에 일조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192쪽. 1만 3000원.여기 우리가 있다(백재중 지음, 건강미디어협동조합 펴냄) 우리나라 정신장애인 수난의 역사와 현실을 기술했다. 선진국들의 경우 지역사회 정신보건이 확고하게 자리잡았지만 한국에선 여전히 정신병원이나 요양시설에 장기 입원한 경우가 많다. 내과 의사인 저자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각성과 지역사회의 연대로 국가의 반성을 촉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176쪽. 1만 5000원.철학 vs 실천(강신주 지음, 오월의봄 펴냄) 모두 5권으로 기획된 ‘강신주의 역사철학·정치철학 강의’ 시리즈의 제1권. 1871년 파리코뮌과 1894년 동학농민군의 집강소가 품었던 자유로운 공동체 정신을 보여준다. 정치철학의 경우 전적으로 마르크스에 할당, 기원전 3000년 이래 거의 처음으로 노동계급이 지배관계를 극복하려고 했던 19세기를 조명했다. 848쪽. 3만 8000원.존엄성 수업(차병직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인권 변호사가 말하는 인간 존엄성. 전래동화부터 현대 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 작품들 속에 숨어 있는 생명권, 평등권, 행복추구권, 동물권, 성소수자 권리, 표현과 신체의 자유를 언급하며 자유와 권리에 관한 논의를 확장했다. 456쪽. 1만 6500원.
  • 괴산 ‘유기농 3.0 시대’… 안전한 농산물로, 건강한 미래로

    괴산 ‘유기농 3.0 시대’… 안전한 농산물로, 건강한 미래로

    “안전한 먹거리, 유기농의 모든 게 2022년 괴산에 모입니다.” 충북도가 유기농산업 선점을 위해 2015 괴산 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에 이어 또 한번 굵직한 이벤트를 추진한다고 11일 밝혔다. 2022년 9월 30일부터 10월 16일까지 17일간 괴산군 괴산읍 동진천 일원에서 열리는 ‘2022 괴산 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다. 행사 주제는 ‘유기농이 여는 건강한 세상’이다. 81만 2185㎡ 규모의 행사장은 유기농 3.0 괴산산업 주제 및 전시관, 아시아지방정부유기농협의회(ALGOA) 국제협력관, 유기식품 선언관, 유기농자재산업관, 유기농 펫케어 산업관, 유기농 헬스케어 산업관 등 총 6개 전시관으로 꾸며진다. 주제전시관은 행사 이후 유기농 국제단체 사무국, 유기농종합문화센터, 유기농행사 장소 등으로 활용될 예정이다.엑스포 기간 체험행사도 풍부하다. 유기농을 테마로 한 체험놀이학교, 진로체험학교, 농사체험장, 생태교육장, 곤충체험학교, 우리과수품종 전시, 야외유기농특별전시관, 유기농전통놀이마당 등 9개의 체험전시관이 운영된다. 국내·국제학술대회, 유기농 먹거리촌, 유기농직거래장터 등도 마련된다. 도는 관람객 72만명 유치와 국내 319개와 해외 100개 등 총 419개 기업의 참여를 목표로 잡았다. 총사업비는 190억원이다. 세계유기농업운동연맹(IFOAM)은 엑스포 공동 개최자로 나선다. 전 세계 116개국 850여 단체가 가입한 세계 최대 규모 유기농단체다. 1972년 프랑스에서 창립됐으며 독일 본에 본부가 있다. 유기농 기준 설정, 정보 제공 및 기술 보급, 국제 인증 기준, 인증기관 지정 등의 역할을 한다. 도는 유기농에 적극 나서는 다른 지자체들의 참여도 유도할 계획이다. 괴산과 청주를 잇는 도시 농촌 간 유기농 발전을 위한 연계행사를 추진하고 영남권 유기농 단지를 조성하는 경북 청도군의 특산물 홍보관을 행사장에 마련할 예정이다. 도내 11개 시군이 참여하는 친환경농특산물 한마당행사와 충북 유기농시티투어도 진행하기로 했다. 성공 개최를 위해 도는 지난달 28일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한국유기농업학회 등 국내 친환경농업단체 7곳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들은 엑스포의 국제행사 승인과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힘을 보태기로 했다. 국비를 10억원 이상 지원받기 위해서는 기획재정부가 국제행사로 승인해야 한다. 심사는 다음달 말 진행된다. 도는 국제행사로 인정받아 국비 57억원을 끌어올 계획이다. 2015년 엑스포는 재도전 끝에 국제행사로 승인돼 국비 46억원을 지원받았다.도가 두 번째 엑스포를 기획한 것은 2015년 행사의 성과를 이어 가기 위해서다. 유기농의 미래 가치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2015년 엑스포는 24일 동안 108만명이 다녀갔고 264개 국내외 기업이 참여했다. 엑스포 개최 이후 도내에는 유기농 산업단지 2곳이 조성됐다. 개최지 괴산군은 ALGOA를 창립해 해마다 아시아유기농지도자교육, 세계 유기농청년포럼, 정상회의 등을 열고 있다. 이 협의회에는 18개국 230개 단체가 참여한다. 유기농 3.0 괴산 선언을 계승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2015년 엑스포 폐막식 때 IFOAM이 발표한 이 선언은 6개 항으로 이뤄졌다. 유기농민을 양성하고 모범 사례를 발굴·적용하며 전반적인 생산성과 품질을 향상하는 ‘혁신의 문화’, ‘모범 사례를 향한 지속적인 발전’, ‘투명하고 다양한 방식의 유기농 진정성 보장’, ‘농업 현장에서부터 최종 농산물까지 총체적 역량 강화’, ‘진정한 가치와 공정 가격’ 등이 핵심 내용이다. 1.0은 유기농 태동기인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를, 2.0은 유기농 표준화가 이뤄진 1970년대를, 3.0은 유기농운동의 미래를 의미한다. 김성식 농정국장은 “2015년 엑스포는 유기농 홍보와 유기농 1차산업 전시가 중심이었다면 2022년 엑스포는 유기농과 4차산업의 연계에 중점을 둘 예정”이라며 “괴산지역 유기농산업 클러스터 조성과 한국유기농산업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도가 2022년에 행사를 여는 것은 나름 이유가 있다. 2022년은 국내 최대 생협인 아이쿱이 주도하는 괴산 자연드림파크의 모든 시설이 준공된다. 친환경농산물의 생산, 소비, 유통과 외식, 체험시설이 모인 자연드림파크에는 40여개 업체가 입주할 예정이다. 이미 친환경 음식만들기 체험공방, 유기농 식당, 영화관, 한의원 등이 운영되고 있다. IFOAM은 2022년에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엑스포 기간에 기념행사가 열린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에스카르고, 프랑스 요리의 아이콘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에스카르고, 프랑스 요리의 아이콘

    항상 의아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요리 중에 언제나 달팽이 요리가 언급된다는 사실 말이다. 전 세계 미식의 중심지이자 먹는 일을 예술에 가까운 경지까지 격상시킨 나라가 아니었던가. 다른 문화권에서 조롱을 받기도 한 달팽이 요리 에스카르고는 어째서 프랑스를 상징하는 요리가 된 걸까.‘달팽이 요리의 나라 프랑스’라는 말은 찬사와 경멸을 함께 품는다. 하찮기 그지없는 달팽이조차 고급 요리의 재료로 격상시킨 찬란한 프랑스 음식 문화이거나, 식재료로서 딱히 가치가 없는데도 맛있다고 먹는 식탐의 끝이다. 특히 영국인들에게 달팽이 요리는 오랜 앙숙이었던 프랑스인을 경멸하기에 좋은 소재였다. 19세기엔 서로를 향해 ‘달팽이조차 먹는 탐욕스러운 프랑스인’, ‘영국음식이라곤 구운 소고기(로스트비프)뿐’이라고 조롱했다. 사실 프랑스인만 달팽이를 먹는 건 아니다. 인근 스페인과 그리스, 모로코뿐만 아니라 심지어 프랑스와 가까이에 있는 영국 남부에서도 달팽이를 먹는 문화가 있다. 고대 미식의 중심지였던 로마에서 달팽이 요리는 극소수만 즐기는 고급요리였다. 중세에는 육식을 금하는 사순절 시기 육류를 대체하는 단백질원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16세기 프랑스 왕 앙리 2세가 달팽이 요리를 특히 즐겨 먹었다고 전해질 만큼 궁정요리로도 사랑받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약 300년 동안 요리책에서 달팽이 요리는 자취를 감춘다. 물론 요리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과거 요리책에 담긴 음식은 궁정이나 귀족들이 먹는 고급요리에 한했다. 상류층들이 갑자기 먹지 않았다면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이미 유행이 지나서 고루해졌거나, 하류층에서 유행했을 가능성이다. 고급요리 역사에 달팽이 요리가 다시 등장하게 된 건 19세기 초에 이르러서다.1814년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대단한 미식가였던 탈레랑은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를 위한 저녁 만찬을 당대 최고의 셰프였던 앙토냉 카렘에게 맡겼다. 일설에 따르면 카렘은 부르고뉴산 달팽이를 이용한 요리를 내놓았고 러시아 황제가 맛본 요리를 먹어보려는 미식가들의 열망과 요리사들의 열정에 힘입어 이 요리는 금세 파리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1859년 영국의 한 저술가는 “파리 시내에만 달팽이 요리를 파는 레스토랑이 쉰 곳이 넘는다”는 기록을 남겼다. 프랑스 요리의 전성기와 함께 유명해진 달팽이 요리는 유럽 미식계에서 고급 프랑스 요리를 상징하는 아이콘과도 같았다. 이제 요리사들이 할 일은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었다. 더이상 새로운 걸 만들지 못할 때 꺼내들 건 과거의 재해석이다. 당시 달팽이 요리뿐만 아니라 개구리 다리 요리 등 다양한 옛 음식 유산의 재해석이 이루어졌다. 모든 유행이 그러하듯 달팽이 요리는 다시 ‘촌스러운’ 요리로 전락했다가 198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다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그렇다면 달팽이는 어떤 맛이기에 이토록 사랑받아 왔던 것일까. 비슷한 유명세를 가진 푸아그라나 캐비어와 달리 달팽이 자체는 딱히 폭발적인 어떤 맛을 갖고 있진 않다. 우리가 흔히 먹는 소라나 골뱅이의 느낌 정도랄까. 이들은 생물학적으로도 큰 차이가 없다. 제대로 조리하지 않으면 고무같이 질겨진다. 프랑스인들은 가볍게 데치거나 오랫동안 푹 익혀 부드러운 상태로 요리한다. 달팽이 자체가 가진 맛보다는 소스에 힘을 주는데 잘 조리해 소스와 육질의 균형이 맞으면 감탄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모든 프랑스 사람들이 달팽이를 즐겨 먹을 거 같지만 그렇진 않다. 주로 달팽이를 요리해 먹는 곳은 알자스, 부르고뉴로 대표되는 프랑스 동부와 남부 지방이다. 알자스에서는 지역을 대표하는 리슬링 와인을 넣은 버터 소스를, 프로방스에서는 토마토 소스를 주로 곁들인다. 가장 유명한 건 카렘이 만들었던 부르고뉴 지방 스타일이다. 달팽이를 꺼내 삶은 후 다시 껍질에 넣고 버터와 파슬리 소스를 얹어 살짝 구워낸다. 고소한 버터와 상큼한 허브향, 부드러운 달팽이 육질이 꽤 매력적이다. 에스카르고에 산뜻한 로제와인이나 향이 좋은 부르고뉴 와인과 곁들이면 식전에 입맛을 한껏 돋우는 에피타이저로 제격이다. 카렘의 달팽이 요리가 인기를 끌기 불과 5년 전 약사이자 미식가였던 샤를 루이스 카데 드가시쿠는 자신의 책에 “어떻게 우리가 달팽이같이 구역질 나고 저열한 걸 먹을 수 있겠느냐”고 썼다. 그는 죽기 전까지 달팽이 요리를 먹지 않았을까. 혹 맛보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새삼 궁금해진다.
  • 태안 신진도서 조선시대 수군 군적부 발견

    태안 신진도서 조선시대 수군 군적부 발견

    옛 수군 주둔지 빈집 벽지서 주민이 발견 충남 태안군 신진도에 있는 오래된 가옥 벽지에서 조선 후기 수군(水軍)의 명단이 적힌 군적부가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태안의 옛 수군 주둔지인 안흥진성 인근 신진도의 빈집에서 군역의 의무가 있는 장정 명단과 특징을 기록한 문서가 벽지로 사용된 것을 주민이 발견해 신고했다고 4일 밝혔다. 군적부는 19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안흥진 소속 60여명의 군역 의무자를 전투 군인인 수군과 보조적 역할을 하는 병역 의무자인 보인(保人)으로 나눠 이름, 주소, 출생 연도, 나이, 신장을 부친의 이름과 함께 적었다. 수군 출신지는 모두 당진현(현 당진시)으로, 당진 현감의 직인과 자필 서명이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16세기 이후 수군 편성 체계를 확인할 수 있는 문서”라면서 “주특기가 적혀 있는 다른 군적부와 달리 수군과 보인만 기록돼 있어 징발보다는 18~19세기 군역 부과 방식인 군포를 거두기 위한 것이 주목적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군적부가 발견된 집 상량문에 청나라 도광제(1820~1850)의 연호인 ‘도광 23년’이라는 명문이 적혀 있어 건축연대는 1843년으로 추정된다. 한쪽 방에서는 수군 주둔 마을의 풍경과 일상을 표현한 한시 3편도 두루마리 형태로 발견됐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이경우의 언파만파] 코로나19 이후의 언어생활

    [이경우의 언파만파] 코로나19 이후의 언어생활

    에드워드 사피어는 19세기 미국의 언어학자였다. 벤저민 리 워프는 사피어에게 언어학을 배운 제자였다. 두 사람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언어를 연구하면서 하나의 생각을 갖게 된다. 인간은 언어가 가리키는 대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부족마다 다른 언어 체계가 다른 가치관과 세상을 만든다고 판단한다. 이른바 사피어워프 가설이고 언어결정론이다. 이 가설처럼 언어가 사고방식을 결정한다는 데까지 가는 건 지나쳤다. 하지만 언어가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건 사실이다. 영화 ‘컨택트’(2017)에는 사피어워프 가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한다. 알 듯 모를 듯한 영화의 전개는 이 가설을 염두에 두어야 제대로 들어온다. 영화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같은데, 이것은 지구에 도착한 외계인의 언어 체계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지구에 온 외계인의 언어는 처음과 끝이 없었다. 표기는 둥그렇게 했고 문자는 표의문자였다. 인간의 언어 체계와 완전히 달랐다. 인간의 언어가 ‘우리는 신문을 읽었다’처럼 일직선 형태로 나열되는 데 반해 외계인의 언어는 원형이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시간순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언어를 안다는 건 곧 미래까지도 아는 것이었다. 주인공인 언어학자 루이스 뱅크스는 외계인이 지구에 온 목적을 알아내라는 임무를 받는다. 원제가 ‘어라이벌’(Arrival·도착)인 영화에서 세계 각국은 외계인의 ‘침공’에 커다란 혼란에 빠진다. 외계인을 공격하기 직전까지 이른다. 어렵게 외계인의 언어를 익힌 뱅크스는 그들과 소통한다. 외계인이 온 목적은 ‘무기’를 주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말하는 무기는 ‘언어’였다. 언어는 분열과 전쟁을 낳기도 하지만, 화해와 연대를 이룰 수 있는 도구이자 무기이기도 했다. 그들은 무려 3000년 뒤에 도움을 받으려고 ‘연대’의 언어를 건넨다. 코로나19 이후의 언어도 ‘연대’였다. 비대면으로 대표되는 사회가 지향하고 원하는 언어는 ‘소통’과 ‘개방’과 ‘연대’였다. 분열과 경쟁으로 치닫게 하는 언어에서 벗어나자고 한다. 이것은 자본을 앞쪽과 중심에 두지 말자는 것이기도 하다. ‘산업 역군’이니 ‘인적 자본’이니 하는 말들은 인간을 한낱 자본으로 치부해 버리는 언어였다. 봉사를 하나의 스펙으로 둔갑시키는 것도 자본이었다. 비연대의 언어는 대학도 ‘주요 대학’을 만들었고, 순위를 매겼다. 분열을 낳는 서열 중심의 언어도 더이상 말하지 말자고 한다. 분열과 고립은 흥하는 길이 아니었다. 개방과 연대가 사는 길이다. wlee@seoul.co.kr
  • “윤미향 마녀사냥은 한-미-일 삼각동맹 걸림돌이라”

    “윤미향 마녀사냥은 한-미-일 삼각동맹 걸림돌이라”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가 윤미향 국회의원에 대한 의혹 제기를 ‘마녀사냥’이라 규정하면서 그 이유를 한국-미국-일본 관계의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현재 정의기억연대 사태의 본질은 피해자(위안부 할머니)-지원자(윤미향 의원) 사이 갈등보다는 보수 언론들이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겨냥한 집중포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일차적”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와 지원자 사이의 갈등은 19세기 초반 미국에서 흑인 해방론자였던 백인과 흑인 사이의 갈등에서도 볼 수 있듯 매우 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또 윤 의원에 대해 제기된 의혹도 수사 중인 의혹으로 범죄 사실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정의연의 활동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의 미래 지향적인 관계에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보수언론들이 정의연의 사조직화를 문제삼고 있지만, 보수언론 역시 한 족벌 가문의 후손 집단으로 이뤄진 사조직이라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위안부의 인권 회복 운동 그 자체는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의 장애물에 불과하다”며 “지금 피해자와 지원자 사이의 노골화된 갈등 국면을 이용해서, 보수언론은 장애물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피해자와 지원자의 소통 부족 등과 같은 정의연의 문제는 지적해야 하지만 마녀 사냥을 당하는 운동가를 응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정의연의 운동은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의 전시 성폭력을 문제 삼은, 기본적으로 반전평화를 위한 운동이었다”며 “이 운동의 미숙함이 있었다 해도 그 기여부터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게 우선이며 그 공격자들의 진짜 의도부터 정확히 관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새콤달콤향긋’ 토마토, 엄청난 쓸모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새콤달콤향긋’ 토마토, 엄청난 쓸모

    편리한 시대다. 근처 어느 마트를 가더라도 식재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손가락 몇 번으로 문 앞까지 식재료를 배달해 준다. 주방 한편에 내용물보다 더 큰 부피의 택배 상자가 쌓이는 걸 보면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지만, 약간의 죄책감은 이내 뒤따라오는 편리함에 뒤덮인다.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다. 음식을 편하게 접할 수 있는 대가로 우리가 잃은 건 혹시 없을까.사시사철 접할 수 있는 식재료 중 대표적인 게 토마토다. 원래 토마토는 여름이 시작되기 전부터 가을 초까지가 제철이다. 남미 안데스가 원산지인 토마토는 햇빛을 좋아해 일조량이 많고 기온이 높아야 농사가 잘된다. 신대륙에서 토마토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유럽에선 스페인과 프랑스, 이탈리아 세 나라의 남쪽에서 자라는 토마토를 제일로 친다. 우리가 감귤 하면 제주도를 떠올리듯 이탈리아에서 가장 맛있는 토마토가 자라는 곳은 남쪽의 시칠리아섬이다. 시칠리아 중에서도 최남단 파키노에서 생산되는 방울토마토가 맛 좋기로 유명하다. 처음 시칠리아에서 맛본 파키노산 방울토마토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대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얼마나 달콤하냐 묻는다. 토마토를 과일로 본다면 틀린 질문은 아니다. 하지만 토마토의 진정한 미덕은 단맛에만 있지 않다는 걸 그때 경험했다. 좋은 토마토란 단맛과 신맛이 적절히 균형을 이뤄야 하고, 거기에 중요한 건 향이라는 사실이다.우리가 먹는 토마토는 대개 향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미미하다.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편리함을 얻은 대신 토마토가 가진 싱그러운 향을 잃었다. 농사는 당연히 땅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과일과 채소는 영양분이 들어 있는 양액을 통해 재배하는 수경재배가 대세다. 관리가 편하고 일정 수준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관능적인 관점에서 보면 좋은 토양에서 재배된 토마토보다 맛과 향이 덜하다. 그렇다고 땅에서 키운 게 마냥 좋다고는 할 수 없다. 토질이 좋지 않으면 되레 수경재배보다 못할 수 있다. 향의 차이는 수확 방식과 유통기간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는다. 소비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시중 대부분의 토마토는 유통상 편의를 위해 미처 다 익기 전에 딴다. 완전히 성숙한 토마토가 100%라고 한다면 미성숙 토마토가 수확되는 시점은 대략 70~80% 사이다. 미성숙 토마토는 가지에서 떨어져 나와도 시간이 지나면 붉게 변한다. 보기엔 먹음직스럽게 새빨갛지만 맛과 향은 완전히 성숙한 후 딴 토마토와 큰 차이를 보인다. 갓 딴 토마토는 풋풋한 풀 내음이 특징이다. 완전히 성숙한 토마토는 단맛과 신맛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향도 풋내 가득하다. 완숙 토마토라고 해도 수확 시기를 확인하는 건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토마토의 풍미는 서서히 그 강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맛 좋은 토마토만큼 주방에서 쓸모 많은 식재료가 또 없다. 냉장고에 과일과 채소가 없어도 토마토가 있다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 실제로 토마토는 과일이냐 채소냐 논란이 있는 유일한 식재료이기도 하다. 식물학적 분류보다는 용도에 따라 쓸모를 구분하는 편이 머리가 덜 아플 수 있다. 토마토가 유럽에서 처음 건너올 땐 독이 있는 걸로 오해받아 식재료로 사용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토마토가 가진 단맛과 신맛, 그리고 감칠맛을 내는 특성으로 인해 소스에 들어가는 조미료의 일종처럼 사용되다가 19세기나 돼서야 샐러드처럼 생으로 먹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토마토는 껍질과 과육, 그리고 젤리처럼 생긴 즙으로 구성된다. 몇몇 조리법을 보면 데쳐서 껍질을 제거하고 즙은 따로 모아 버린 후 과육만 쓰는 걸 추천하는데,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이렇게 하는 건 단지 입안에서 걸리적거리는 느낌 없이 달큼한 과육만 요리에 쓰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토마토 향 대부분은 껍질에서, 고유의 상큼한 산미는 즙에서 나온다. 향이 좋은 토마토라면 껍질은 굳이 벗길 필요는 없다. 벗긴 껍질은 따로 오븐에서 말리거나 튀겨 토마토 파우더, 장식용 가니시로 쓰면 좋다. 새콤달콤한 즙을 모아 드레싱에 뿌리면 토마토 과육 없이도 토마토 향이 나는 샐러드를 만들 수 있다. 토마토의 향으로 맛을 구분하는 시대가 온다면 그다음에 오는 건 다양성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토마토는 2만종이 넘지만 한국에서는 고작해야 예닐곱 가지를 접할 수 있다. 강원 영월에서 유기농법으로 완숙 토마토를 생산하는 그래도팜에서는 15종의 에어룸 토마토를 올해 처음 수확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양한 품종의 완전히 숙성한 토마토를 맛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 너무 가까워, 잊고 있던 일상…너무 소박해 품고 싶은 여유

    너무 가까워, 잊고 있던 일상…너무 소박해 품고 싶은 여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니 돌아온 것처럼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슈퍼마켓에 들어갈 땐 마스크를 써야 하고, 레스토랑에선 테이블마다 1.5m의 간격을 두고 앉아야 하지만 사람들은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표정이다. 길거리도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사람들로 생기가 돈다. 클럽은 실내에서 춤을 출 수는 없지만 밖에서 술을 마시는 조건으로 문을 열기 시작했다. 펍이지 그게 무슨 클럽이냐고 혀를 찰 노릇인데, 세계 최강의 하드코어신을 자랑하는 베를린 클럽보다 더 하드코어한 시대를 겪고 있다 보니 젊은이들도 문 여는 게 어디냐며 일단 반기는 것 같다. 곧 예전처럼 춤출 날이 오겠지 기대하면서. 하지만 과연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이미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방식으로 살게 될 거고 여행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당장 장거리 여행은 꿈도 못 꾸게 됐다. 예전 같으면 벌써 비행기 티켓을 알아봤을 유럽의 도시들과 휴가지도 휴대전화에 저장된 옛날 사진으로 ‘랜선여행’을 떠날 뿐이다. 대신 비행기를 안 타도 되는 여행이 늘고 있다. 가깝고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국내 여행이 더욱 각광받을 것이다. 그건 독일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를 통제할 수만 있다면 여름휴가를 자국뿐 아니라 인접한 나라인 오스트리아, 프랑스, 폴란드 등에서도 보내는 게 가능할 거라고 보도됐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통제 가능한’ 조건에 한해서다. 불안이 가시지 않는 한 사람들은 집에서 멀리 떠나지 않을 것이다. ●한 편의 동화 같은 프로이센 여왕의 궁전 공원 공원밖에 못 가는 두 달을 보내는 동안 갑갑함이 한계치에 다다랐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고 차를 타고 마냥 달리고 싶었다. 다행히 레스토랑까지 다시 오픈한다는 완화된 규제 소식을 듣고 어느 화창한 일요일 아침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다. 베를린에는 호수가 많으니까 가까운 한 시간 거리의 호숫가로 갈까 하다가 조금 더 멀지만 지난여름에 간 적이 있는 뮈리츠 호수로 방향을 잡았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가는 남자친구를 따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호수 인근의 도시에서 저녁을 먹었다. 가는 길에 더 들를 만한 데도 찾아봤다. 공원은 오픈 시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니 노이슈트렐리츠 궁전 공원에도 가 보기로 했다. 프랑스 베르사유 가든풍의 공원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도심에서 벗어날수록 드넓은 초록 들판과 연둣빛 나무 길이 펼쳐졌다. 양떼구름과 뭉게구름이 번갈아 가며 펼쳐지는 하늘을 보니 그제야 외국에 산다는 게 실감 나기도 했다.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 궁전 공원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언덕 위에 보이는 새하얀 석조 건물부터 갔다. 프로이센 시대의 여왕 루이제를 기념하는 사원이었다. 사실 공원 전체가 그녀를 위한 공간이었다. 사원으로 올라가는 언덕에는 민들레 홀씨가 가득했다. 보송보송한 털송이처럼 풀밭 가득 하얗게 핀 민들레 홀씨가 그 자체로 동화 같았다. 프로이센 여왕이었던 루이제의 사원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그녀가 메클렌부르크주의 슈트렐리츠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사원은 작고 소박했지만, 네 개의 견고한 기둥과 대리석 건축은 굳건하고 경건해 보였다. 공원은 1733년 바로크 정원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계속 재설계되고 확장되면서 영국식 정원 양식도 결합됐다. 하지만 공원에 도착해 느낀 것은 프랑스 정원이 가지고 있는 바로크풍의 분위기였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봤던 기하학적 형태와 시각적 구도가 이 공원에도 있었다. 계단식 정원 위에 있는 분수대에서 공원 끝의 둥근 정자 같은 ‘리프팅 템플’까지, 대칭 구조를 이룬 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키를 훌쩍 넘기는 잘 다듬어진 미로의 정원을 거닐 땐 귀족이 된 기분도 들었다. 알고 보니 이 공원은 계속 복원을 거쳐 지난해 8월 공식 오픈을 한 상태였다. 거대한 드레이크의 꽃병과 성 입구의 니오베 조각상, 정원의 기도하는 소년, 하얀 석관 등은 오리지널은 아니지만 정성스럽게 복원됐고, 프랑스 정원마다 갖고 있는 오렌지 정원이 이곳에도 있었다.무엇보다 금방 얼굴이 탈 것 같은 쨍쨍한 햇살과 더위가 좋았다. 코로나바이러스도 금방 태워 버릴 것 같은 따가운 햇살이었다. 아름다운 공원은 적막했다. 아무도 없었다. 동네 어르신 같은 노부부만 벤치에 앉아 있을 뿐. “지금 속도로 가는 데마다 사진을 찍다간 여기서 하루가 다 가고 말겠어.” 좀처럼 서두르는 일이 없는 남자친구가 웬일로 나를 재촉했다.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벌써 배가 고파지고 있었다. 우선 뮈리츠 호수 인근에서 가장 큰 도시인 바렌으로 가기로 했다. 슈퍼마켓에라도 들러 먹을 것을 사기로 했다.이번엔 노란 꽃의 들판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유채꽃이었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들판은 유채꽃밭이 아니라 유채 평야였다. 제주도에서 보던 유채꽃밭과는 차원이 다른, 이렇게 광대한 유채 평야를 본 적이 없었다.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5월 초 베를린에서 북쪽으로 달리던 길엔 유채꽃이 가득했다.●독일의 다른 주, 바렌으로 넘어가다 30분 정도를 더 달려 바렌에 도착했다. 바렌은 뮈리츠 호수 인근에 있는 세 도시 중 가장 큰 곳이다. 가장 크다고는 하지만 규모 자체는 도시라고 부르기에 민망할 만큼 소박한 마을 느낌이다. 선착장 앞으로는 적당히 큰 유람선과 요트들이 정박해 있고, 현대식으로 지어진 빌라와 오래된 건물들이 적절히 섞여 있다. 항구 쪽에 다다르니 낯이 익었다. 작년 여름에 저녁을 먹었던 레스토랑이 어디쯤이었던가, 언덕 위를 올려다봤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텅텅 빈 채 운행을 멈춘 유람선들. 항구 주변으로 사람도 많았는데, 지금은 반도 안 돼 보였다. 선착장 앞 건물들을 지나 구시가지 언덕으로 들어섰다. 언덕 위는 항구 쪽과 분위기가 확 다르다. 100년은 더 뒤로 돌아간 듯한 오래된 집과 박석길이 잇대어 있다. 마을 광장에 들어섰는데, 사람들이 레스토랑의 야외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음식까지 들고 나와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여기는 벌써 레스토랑이 문을 연 건가? 아직 열면 안 되지 않나? 우리도 그냥 여기서 간단히 먹을까?” 의아해하면서도 배가 너무 고픈지라 사람들이 음식을 들고 나오던 베트남 레스토랑을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여기서? 밖에 앉아서 먹자고? 아직 먹으면 안 될 텐데….” 걱정스러운 얼굴로 남자친구가 바렌이 속해 있는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의 규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안 되는데 왜 사람들이 앉아서 먹겠어? 되니까 먹는 거겠지. 아님 음식을 사서 공원에 가서 먹을래?” 볶음밥을 먹고 있는 야외의 사람들을 쳐다보며 내가 다시 물었다. “젠장. 우리 여기 오면 안 되는 거였어. 이 주에 관광객은 아직 들어오지 말라고 돼 있네…. 우리 걸리면 벌금 내야 되는 거야.” 남자친구가 당황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베를린이 있는 브란덴부르크주를 벗어나 다른 주에 온 것이었다. 그냥 작년에 왔던 것만 생각하고 온 터라 내게는 아예 다른 주의 개념도 없었다. 주마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른 규정이 조금씩 달랐고, 이곳은 베를린과 달리 어제부터 레스토랑이 문을 열 수 있었던 것. 하지만 관광객은 내일부터(!) 들어올 수 있다고 돼 있었다. 레스토랑에 앉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여기에 온 것 자체가 문제였다. “우리 먹다가 걸리면 벌금은 반반씩 내기다.” 이미 시킨 음식을 가져다 먹다가 그가 대뜸 벌금 얘기를 꺼냈다.(벌금은 500유로, 약 68만원이다) “오케이, 알았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면서도 속으론 생각했다. ‘역시 독일놈….’ 처음엔 꽤 긴장한 듯했지만 남자친구도 곧 평정심을 되찾고 우리는 무심하게 앉아 영혼 없이 싼 베트남 국수를 먹었다. 좀더 맛있는 집을 찾아볼 수도 있었지만 돌아다니는 게 더 불안하게 된지라 빨리 먹고 이 도시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됐다. 우리가 몰고 온 차는 베를린에서 렌트해 온 차라서 눈에 확 띄고 번호판도 다르다는 걸. “이미 경찰들이 우리 차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우리는 웃으며 딱지를 떼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경찰들을 상상했다. 하지만 우리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니 정상참작을 부탁해 보자고 하면서.●장크트마리엔 교회 꼭대기의 선물같은 풍경 바렌에서 가장 높이 보이는 건 교회의 첨탑이다. 지난번에 왔을 때도 그 교회에 잠시 들러 보고 싶었다. 내려오는 길에 잠깐 교회에 들렀다. 장크트마리엔 교회. 안에서 트럼펫 소리가 흘러나왔다. 밖에는 ‘오픈 처치’(Open Church)란 간판이 있었다. 토요일이었지만 일반에 개방하는 날인 듯했다. 예배당은 소박했다. 굵고 투박한 나무로 만든 예수상만 고요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무런 장식도 없고 그 흔한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함도 없는 교회였다. “들어가도 되나요?” “그럼요. 둘러보세요. 관심 있으시면 첨탑 꼭대기에도 올라갈 수 있어요. 거기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요.” 트럼펫을 연습하던 여인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다만 계단이 많아요. 176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돼요. 그렇다고 세지는 말고요.” 1인당 1유로씩 내고 우리는 기꺼이 첨탑으로 올라갔다. 숨이 차오를 때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으로 바뀌고 시간 맞춰 울리는 커다란 종들이 보였다.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올라가니 네 군데로 창문이 난 꼭대기의 방이 나왔다. 그곳에서 바렌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동서남북을 향해 창이 나 있고, 방향마다 다른 전망이 우릴 반겼다. 뜻밖의 횡재를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창밖으론 전형적인 유럽의 도시 풍경이 펼쳐졌다. 그 풍경을 보다가 잊고 있던 여행의 도시들도 떠올랐다. 스위스의 생갈렌, 슬로베니아 피란의 언덕, 브라티슬라바의 성 꼭대기에서 보던 같은 색의 지붕과 집들이 여기에도 있었다. 갑자기 다른 나라로, 멀리 여행 온 기분이 들었다. 여행엔 항상 이런 의외의 순간이 있어 즐겁다. 덤으로 선물을 받은 느낌.다시 계단을 내려올 땐 좀더 자세히 종들을 내려다봤다. 네 개 정도 달려 있는 줄 알았는데 크고 작은 종이 16개나 매달려 있었다. “이렇게 내려가고 있을 때 갑자기 종이 울리면 귀먹을지도 몰라!” 종이 몇 개나 있는지 세고 있는데 그때 정말로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옆에서 터진 종소리에 비명도 못 지를 만큼 놀라서 귀를 틀어막고 허겁지겁 내려왔다. 멜로디까지 더해지면 고막이 터질지도 모를 일이었다.●호숫가 옆 데이지꽃·물망초에 뺏긴 마음 땡땡땡땡땡. 종은 다섯 번만 울리고 멈췄다. 교회에 있던 여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뮈리츠 호숫가로 돌아왔다. 독일에서 가장 큰 호수는 보덴호이지만 오스트리아와 스위스까지 걸쳐 있기 때문에 독일 안에 있는 호수로만 따지면 뮈리츠 호수가 가장 크다. 수로를 이용해 함부르크나 베를린까지 갈 수 있고, 호수 인근엔 같은 이름의 국립공원도 있다. 뮈리츠의 호숫가에는 데이지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독일에선 이 꽃으로 사랑을 확인해 본다고 했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이 조그만 꽃잎을 한 장씩 떼어 내면서 맞춰 보던 사랑. 하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건 하얀 데이지꽃 사이에 피어 있던 아주 작고 연한 보라색의 꽃들이었다. 하늘색과 보라색의 오묘한 경계를 이루는 그 빛이 너무 고와 시들 줄 알면서도 꺾어 왔다. 2시간이 넘게 걸리는 바람에 꽃은 진짜 죽은 것 같았는데, 설탕을 조금 넣은 물에 3시간 정도 넣어 두었더니 세상에, 거짓말처럼 살아났다. 타임랩스로 찍은 영상에 그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연보라색 꽃의 이름은 나중에 찾아보니 물망초였다. 나를 잊지 말아요. 그 애절한 마음이 계속해서 꽃을 피운다. 2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여행작가 dongmi01@gmail.com
  • 200년 전 점토로 만든 담배 파이프 발견…현지 고고학자 “성배”

    200년 전 점토로 만든 담배 파이프 발견…현지 고고학자 “성배”

    호주 태즈메이니아섬에서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태즈메이니아 주머니 늑대(이하 태즈메이니아 늑대)가 그려진 점토파이프가 한 수집가에게 발견됐다. 점토로 된 이 담배 파이프는 적어도 190~200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흰색 점토를 초벌구이한 이 파이프는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아 현지 고고학자들을 흥분시켰고, 이들에게 이번 발견은 성배와 같은 것이라고 ABC 뉴스 등 현지매체가 최근 보도했다. 현지 민간 고고학 조사기관 서던 아키알러지(Southern Archaeology)의 수석 고고학자 대런 와턴은 ABC 라디오 호바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는 매우 흥미로운 발견이다. 얼마나 신나는지 나 자신을 억제하기 어렵다”면서 “이 파이프는 태즈메이니아 고고학계에서는 성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점토파이프는 일반적인 담배가 등장하기 전에 쓰이던 파이프 담배의 일종으로, 주형을 통해 대량으로 생산됐고 사용한 뒤 버리는 일회용이었다. 이 중 대부분은 영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에서 제작돼 식민지로 수출됐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이 파이프는 강 유역의 진흙을 사용해 현지인이 직접 만든 수제품이다. 이에 대해 와턴은 “흔히 볼 수 없는 특성이 있다. 태즈메이니아 현지인들은 아마 자신들이 쓰기 위해 만들었을 것”이라면서 “어쩌면 재소자가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 파이프는 태즈메이니아섬 론서스턴 인근 병 폐기장에서 발견됐다. 함께 있던 병들에는 1830년대에 제작됐다는 날짜가 표기돼 있어 이 파이프 역시 최소 19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이 파이프를 발견한 사람은 아마추어 병 수집가로, 그는 2016년 론서스턴 인근 사유지 구덩이 밑바닥에서 두 개의 큰 병 사이에 끼어 있던 이 파이프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는 자신이 수집하는 병이 아니기에 경매에 내놓기로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매에서 이 파이프를 낙찰받은 사람은 국제 태즈메이니아늑대 표본 데이터베이스(International Thylacine Specimen Database)의 스티븐 슬레이솔름 박사다. 이후 이 파이프를 누가 어디서 만들었는지를 두고 고고학계와 학계에서는 소문이 자자했다. 특히 이 파이프의 연통 부분에는 특징적인 줄무늬 덕분에 태즈메이니아 호랑이라고도 불리는 태즈메이니아늑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에 대해 슬레이솔름 박사는 “이는 19세기 유럽에서 틀로 대량으로 만든 물건들과 상당히 다른 데 다소 소박한 무늬는 현지에서 직접 만들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파이프에 그려진 태즈메이니아늑대의 그림은 극히 초기 작품 중 하나라고 해도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또한 이 파이프의 담뱃대 부분에는 이른바 쿠카부라로 불리는 웃는물총새가 그려져 있다. 이 대형 호주 새는 1902년까지 태즈메이니아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제시된 가설은 이 파이프를 제작한 사람이 호주 본토에서 지낸 적이 있고 그 후 태즈메이니아로 건너갔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가설은 그려져 있는 새가 웃는물총새가 아니라 태즈메이니아 섬 고유의 물총새이거나 일반적인 새라는 것이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곧 국제 고고학 저널(archaeology journal)에 실릴 예정이다. 사진=대런 와턴 제공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서양인에겐 김홍도보다 김준근

    서양인에겐 김홍도보다 김준근

    그림 1500점 중 1000여점 해외로 獨로텐바움 소장 79점 등 고국에조선 최고의 풍속화가로는 단원 김홍도(1745~?)나 혜원 신윤복(1758~?)을 따를 이가 없다. 하지만 서양인을 사로잡은 풍속화가를 꼽자면 이들보다 한 세기 후예인 기산 김준근이 앞선다. 기산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부산의 초량과 원산, 인천 등 개항장에서 활동했던 화가다. 생업, 의식주, 놀이, 의례, 형벌까지 모든 분야의 풍속을 망라한 그의 그림은 조선에 드나들던 외교관과 선교사, 학자 등에게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기산이 남긴 그림 1500여점 가운데 1000여점이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등 해외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이유다. 우리나라 첫 번역 문학서 ‘텬로력뎡’(천로역정)의 삽화를 그린 것으로 알려졌을 뿐 생몰년을 비롯한 구체적 행적이나 초상화 한 점 남아 있지 않은 베일 속 인물이기도 하다.기산 풍속화는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필치로 일상과 풍습을 스냅사진 찍듯 기록했다. 햇빛 가리개를 얹은 점포에서 상인과 손님이 흥정하고, 한쪽에선 우시장이 열리는 오일장 풍경은 활기가 넘친다. 주리 틀고 곤장 치는 형벌 그림에선 혹독함까지 전해진다. 그림 상단에 ‘시쟝’(시장), ‘시집가고’, ‘갈이쟝이 목혀파는 모양’(갈이장이 목혜파는 모양)’ 등 주제나 소재를 소개하는 간단한 글귀를 적었는데, 조선 풍속을 알고 싶어 하는 외국인 수요에 맞춘 ‘수출화’의 목적에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 단원이나 혜원의 풍속화에 담긴 해학과 풍자를 기산 그림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까닭이기도 하다. 독일에서 전시회를 가진 한국 최초의 국제화가이자 원조 한류화가인 기산 풍속화의 진면목을 보여 주는 전시가 마련됐다. 지난 20일 개막한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기산 풍속화에서 민속을 찾다’는 독일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옛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이 소장한 79점과 국립민속박물관이 지난해 구입한 28점 등 총 150여점을 선보인다. 로텐바움박물관 소장품은 제물포 세창양행 설립자이자 외교관이던 에두아르트 마이어가 수집한 61점과 민족학자 단첼이 모은 18점으로 구성됐다. 이 박물관이 소장한 기산 풍속화 전부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126년 만이다. 코로나19 여파로 국내 반입에 차질이 우려됐지만 로텐바움박물관이 호송관 없이 그림만 항공 운송하도록 배려해 예정대로 전시회를 진행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전시장에는 다양한 민속품들과 사진 엽서, 영상 자료 200여점이 함께 배치돼 조선 말기 서민들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전시는 오는 10월 5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126년 전 ‘원조 한류화가’…이렇게 서양인 사로잡았네

    126년 전 ‘원조 한류화가’…이렇게 서양인 사로잡았네

    조선 최고의 풍속화가로는 단원 김홍도(1745~?)나 혜원 신윤복(1758~?)을 따를 이가 없다. 하지만 서양인을 사로잡은 풍속화가를 꼽자면 이들보다 한 세기 후예인 기산 김준근이 앞선다. 기산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부산의 초량과 원산, 인천 등 개항장에서 활동했던 화가다. 생업, 의식주, 놀이, 의례, 형벌까지 모든 분야의 풍속을 망라한 그의 그림은 조선에 드나들던 외교관과 선교사, 학자 등에게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기산이 남긴 그림 1500여점 가운데 1000여점이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등 해외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이유다. 우리나라 첫 번역 문학서 ‘텬로력뎡’(천로역정)의 삽화를 그린 것으로 알려졌을 뿐 생몰년을 비롯한 구체적 행적이나 초상화 한 점 남아 있지 않은 베일 속 인물이기도 하다. 기산 풍속화는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필치로 일상과 풍습을 스냅사진 찍듯 기록했다. 햇빛 가리개를 얹은 점포에서 상인과 손님이 흥정하고, 한쪽에선 우시장이 열리는 오일장 풍경은 활기가 넘친다. 주리 틀고 곤장 치는 형벌 그림에선 혹독함까지 전해진다.그림 상단에 ‘시쟝’(시장), ‘시집가고’, ‘갈이쟝이 목혀파는 모양’(갈이장이 목혜파는 모양)’ 등 주제나 소재를 소개하는 간단한 글귀를 적었는데, 조선 풍속을 알고 싶어 하는 외국인 수요에 맞춘 ‘수출화’의 목적에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 단원이나 혜원의 풍속화에 담긴 해학과 풍자를 기산 그림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까닭이기도 하다. 독일에서 전시회를 가진 한국 최초의 국제화가이자 원조 한류화가인 기산 풍속화의 진면목을 보여 주는 전시가 마련됐다. 지난 20일 개막한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기산 풍속화에서 민속을 찾다’는 독일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옛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이 소장한 79점과 국립민속박물관이 지난해 구입한 28점 등 총 150여점을 선보인다.로텐바움박물관 소장품은 제물포 세창양행 설립자이자 외교관이던 에두아르트 마이어가 수집한 61점과 민족학자 단첼이 모은 18점으로 구성됐다. 마이어는 1894년 함부르크에서 전시회를 열어 기산 풍속화를 소개한 뒤 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박물관이 소장한 기산 풍속화 전부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126년 만이다. 코로나19 여파로 국내 반입에 차질이 우려됐지만 로텐바움박물관이 호송관 없이 그림만 항공 운송하도록 배려해 예정대로 전시회를 진행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전시장에는 종경도, 거북점구 등 기산 풍속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민속품들과 사진 엽서, 영상 자료 200여점이 함께 배치돼 관람객이 조선 말기 서민들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전시는 오는 10월 5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태즈메이니아 호랑이’ 아시나요?…마지막 모습 담은 희귀 영상 공개

    ‘태즈메이니아 호랑이’ 아시나요?…마지막 모습 담은 희귀 영상 공개

    지난 1936년 9월 7일 저녁. 호주 남동쪽의 섬 태즈메이니아 호바트 동물원에서 살던 지구 상의 단 한마리 남아있던 동물이 세상을 떠났다. 이 날이 멸종일로 기록된 이 동물의 이름은 태즈메이니아 호랑이(Tasmanian tiger) 또는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다. 지난 19일(현지시간) CNN 등 해외 주요언론은 마지막 태즈메이니아 호랑이의 생전 모습을 담은 희귀 필름이 21초 분량의 동영상으로 공개됐다고 보도했다. 호주 국립영화음향 기록보관소(NFSA)가 이날 언론에 공개한 이 영상은 벤자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태즈메이니아 호랑이의 모습을 담고있다. 영상 속에는 그간 오래된 흑백 사진으로만 봐왔던 태즈메이니아 호랑이의 실제 움직임이 담겨있는데 우리 안에서 서성이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슬픔 감정도 자아낸다. 이 영상은 지난 1935년 여행기 제작을 위해 촬영된 것으로 이듬해 벤자민은 태즈메이니아 호랑이 종으로서는 마지막을 알리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NFSA의 큐레이터인 사이먼 스미스는 "태즈메이니아 호랑이 영상의 희소성 때문에 1초마다 움직이는 이미지 자체도 매우 소중하다"면서 "이번에 새롭게 디지털화된 이 영상을 공유할 수 있게돼 너무나 흥분된다"고 밝혔다. 한편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탓에 멸종된 태즈메이니아 호랑이는 400만 년 전 출현해 호주 전역에 서식했다. 흥미로운 점은 태즈메이니아 호랑이가 캥거루처럼 주머니에서 새끼를 키우는 유대류(有袋類)라는 사실이다. 호랑이라는 무서운 이름이 붙은 것은 허리에 호랑이같은 줄무늬가 있기 때문이다. 이후 태즈메이니아섬으로 이주한 태즈메이니아 호랑이는 이곳을 터전으로 삼아 번성했으나 비극의 시작은 인간이 나타나면서 시작됐다. 19세기 서구인들이 이 섬에 상륙하면서 양을 키우기 시작하자 이를 잡아먹을 수 있는 육식동물인 태즈메이니아 호랑이가 표적이 됐다. 결국 인간들은 닥치는 대로 태즈메이니아 호랑이를 사냥하기 시작했고 곧 씨가 말랐다. 이렇게 비운의 태즈메이니아 호랑이는 지구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 이제는 오래된 흑백 영상으로만 그 존재를 보게됐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126년 만에 고국에 온 ‘기산 풍속화’

    126년 만에 고국에 온 ‘기산 풍속화’

    19일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기산 풍속화에서 민속을 찾다’ 언론 공개회에서 한 관계자가 그림을 살펴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19세기 말에 활동한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의 그림과 두부판, 씨아 등 민속자료 등 340여점을 소개한다. 특히 독일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MARKK) 측이 소장하고 있던 기산 풍속화 79점이 한국을 떠난 지 126년 만에 돌아와 한국 관람객을 만난다. 연합뉴스
  • [이해영의 쿠이 보노] ‘빠’, 인포데믹 그리고 군중심리

    [이해영의 쿠이 보노] ‘빠’, 인포데믹 그리고 군중심리

    21세기 한국 사회 대표 현상 가운데 하나를 들라면 ‘빠’를 들어도 좋겠다. 성찰 없는 몰입과 맹목적 추종 정도로 정의해 보자. 지금의 코로나19 사태에는 ‘인포데믹’이란 말이 유행이다. 코로나 못지않게 지구적으로 대유행인 ‘가짜뉴스’와 무관하지 않을 게다. 그렇다면 이 ‘빠’ 현상은 언제, 어디서, 왜 생기는 걸까. 또 마찬가지로 인포데믹 즉 정보감염병은 어떻게 만들어져서 대유행으로 되는가. 프랑스의 의사이자 사회학자, 심리학자인 귀스타브 르봉의 ‘군중심리’, 1895년 나왔으니 이미 백 년이 훨씬 지난 책이다. 수많은 나라 말로 옮겨졌고 이미 우리말로도 몇 종의 역서가 있다. 이 사회심리학의 고전은 그다지 길지도 않아, 장차 내 수업을 들을 학생들에겐 열 번씩 손으로 베껴 쓰게 하고 싶을 정도다. 풀(foule)이란 프랑스어를 ‘군중’으로 번역했는데 영어로는 크라우드(crowd)로 쓰고, ‘대중’이나 ‘집단’이라 해도 뜻에 큰 차이는 없다. 사실 이 책에서 말하는 군중현상은 비단 19세기의 것만은 아니다. 이미 16세기 사상가 마키아벨리에게서도 군중의 속성과 행태에 대한 매우 상세하고 탁월한 관찰기는 존재한다. 하지만 르봉은 마키아벨리가 멈춘 그곳에서 시작, ‘심리학’이라는 근대학문의 방법론에 기대 군중현상을 더욱 체계적으로 또 예리하기 짝이 없는 메스를 든 집도의처럼 해부하고 있다. 고립된 개인이 군중으로 조직화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특성을 보이는데, 즉 소속 구성원 모두의 감정과 사고가 ‘동일한 방향’을 향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군중심리의 핵심이다. 고립 상태에서 개인의 지적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일단 군중에 속하게 되면 그 능력은 사라지고 집단적 정신상태를 형성하게 된다. 설사 아인슈타인이라 해도 군중 속에서는 그저 저자의 갑남을녀와 다를 바 없다. 그 바탕에는 ‘집단무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집단적 정신은 특성이 있다. 첫째, 군중을 형성한 개인은 익명성을 엄폐물 삼고 수적으로 무소불위의 힘을 얻었다고 생각함으로써 개인일 때 눌려 있던 본능이 등장한다. 둘째, 군중 속에서 개인의 감정과 행위는 ‘최면’ 상태처럼 아주 쉽게 ‘감염’된다. 셋째, 감염의 결과 군중은 리더 또는 조직자의 ‘암시’에 순종하고 자신의 본래 생각이나 감정과는 전혀 다른 행동성향을 보인다. 군중은 그래서 이 최초 암시자가 소환한 ‘이미지’에 따라 이미지화(imagination)하고 이를 고정시켜 내면화한 다음 행동에 옮긴다. “군중은 논리적으로 추론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일체 비판정신을 발휘할 수가 없다는 말을, 즉 진실과 오류를 구분할 수 없으며 그 어떤 것에도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말을 굳이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군중은 오로지 자신에게 강요된 판단만 받아들일 뿐 토론을 통해 내려진 판단은 절대 수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군중은 이성적으로 추론하지 않고, 토론이나 반론을 허용하지 않으며, 군중에게 던져진 암시는 삶의 모든 영역에 침투해 즉각 행동화하며, 암시된 이미지와 결부된 이상을 위해 언제든 스스로를 희생할 준비가 돼 있다. 그래서 이 집단무의식과 결합된 집단 감정은 ‘종교적’ 형태를 갖게 되는데 대부분 광신과 의견이 다른 집단에 대한 철저한 배제와 비관용을 동반한다. 군중이 바라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감동이다. 이는 ‘확언, 반복, 감염’을 통해 전개된다. “어떤 확언이 충분히 반복되어 일체감이 형성되면 사람들이 여론의 흐름이라고 부르는 것이 만들어지고, 강력한 감염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사상과 감정, 정서, 신념은 군중 사이에서 세균만큼이나 강력한 감염력을 발휘한다. 군중을 이룬 인간들도 모든 감정이 순식간에 감염된다.” 집단무의식, 여기에 바탕한 군중심리가 촉발한 집단행동은 어떤 때는 폭동을, 어떤 때는 자기희생을 수반한 혁명을 불러오기도 한다. 20세기는 군중의 시대로 21세기 진실 이후(post-truth)를 예비하고 있었다. 각종 ‘빠’의 시대, 몰이성과 비합리의 정신적 폭력이 판치는 시대, 군중심리에 맞서 계몽이성의 회복을 주장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감정은 이성을 상대로 줄기차게 벌여 온 투쟁에서 단 한 번도 굴복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해서 코로나 사태에서 손씻기하듯 좋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 정신위생에 힘써 면역력을 키우고, ‘빠’나 가짜뉴스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 인포데믹의 대유행을 막는 것이 우선 각자도생의 첫걸음 아닌가 한다.
  • 입자물리학의 거대 현미경 세상 물질의 근본을 밝히다

    입자물리학의 거대 현미경 세상 물질의 근본을 밝히다

    1964년 美물리학자 겔먼 ‘쿼크 이론’ 제시 우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 찾아나서 가속기 종류는 가속 방식·입자 따라 구분 재료공학·의학·생물학 등 활용처도 달라 국내선 방사광·양성자·중이온가속기 운용지난주 차세대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최종 입지로 충북 청주 오창 지역이 선정됐다. 신청 지역들은 유치를 위한 총력전을 벌이는 등 과열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방사광가속기를 포함한 입자가속기는 만들어지기만 하면 어려운 지역경제를 단숨에 살릴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입자가속기는 물리학자와 화학자가 품고 있는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는 무엇일까”라는 기본적 궁금증을 풀기 위한 거대한 실험 장비다. 19세기 러시아 화학자 멘델레예프가 주기율표를 완성하면서 세상 모든 물질은 주기율표상 원자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이해됐다. 20세기 들어 원자는 핵과 전자로 이뤄져 있으며 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양성자, 중성자, 전자가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1964년 미국 물리학자 머리 겔먼이 ‘쿼크 이론’을 제시하면서 물질 구성 기본 입자는 더 작아졌다. 쿼크의 존재를 증명하고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를 찾기 위해 입자물리학자들이 사용하는 거대한 현미경이 바로 ‘입자가속기’다. 입자가속기는 전자기장을 이용해 전자, 양성자, 이온 등 전하를 갖는 입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킨 뒤 물질과 충돌시키는 장치다. 가속된 입자가 원자핵과 부딪치면 핵이 깨져 양성자나 중성자가 튀어나오거나 여러 개의 원자핵으로 분열되기도 하고 새로운 소립자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기초연구뿐만 아니라 생물학, 의학, 재료공학 등에도 입자가속기가 쓰이면서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입자가속기는 가속 방식에 따라 선형과 원형으로 나뉘고 가속 입자의 종류에 따라서 전자가속기, 방사광가속기, 양성자가속기, 중이온가속기, 중입자가속기로 구분된다. 선형가속기는 다시 저에너지 선형가속기와 고에너지 선형가속기로 구별된다. 저에너지 선형가속기는 가속시키려는 입자를 고전압에 한 번에 통과시켜 단숨에 가속시키는 방식이며, 고에너지 선형가속기는 입자를 비교적 낮은 전압에 반복적으로 통과시켜 높은 에너지를 얻도록 해 가속시키는 방식이다. 선형가속기는 원형가속기에 비해 균일하고 강한 입자빔을 얻을 수 있고 직선 형태이기 때문에 입자가 위치를 바꿀 때 나타나는 미세한 제동에 의한 에너지 손실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가속시키려는 입자 크기가 클수록 가속기가 길어져야 하기 때문에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는 단점이 있다. 원형가속기는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입자를 나선(사이클로트론)이나 원(베타트론, 싱크로트론)을 그리며 가속되도록 한 장치다. 포항에서 운용되고 있는 3세대, 4세대 가속기와 오창에 만들어질 가속기는 방사광가속기다. 방사광가속기는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된 전자가 강력한 자기장을 지날 때 방출되는 빛(방사광)을 활용하는 장치로 기초과학뿐만 아니라 연료전지 같은 첨단재료 기술, 세포 영상획득기술, 단백질 구조분석 등에 활용된다.한국원자력연구원이 경주에서 운용하고 있는 양성자가속기는 수소 원자에서 분리한 양성자를 가속시켜 표적에 충돌시킨 뒤 나타나는 표적의 변화와 충돌로 만들어지는 2차 입자인 중성자, 뮤온 등을 연구할 때 주로 쓰이지만 나노, 재료과학 등을 연구할 때도 쓰인다. 중이온가속기는 양성자 가속기와 비슷한 원리이지만 수소보다 무거운 탄소, 칼슘, 우라늄 같은 입자를 충돌시켜 핵반응을 일으켜 나타나는 현상을 연구하는 데 활용된다. 특히 다양한 희귀 동위원소를 만들어 우주 핵반응, 극한 핵물질 등 기초과학 연구에 주로 쓰이는데 기초과학연구원(IBS)이 2021년 대전에 구축할 예정인 ‘라온’이 중이온가속기다. 중입자가속기는 이산화탄소 가스에서 추출한 탄소이온을 가속시켜 인체를 쉽게 통과할 수 있는 중입자빔을 만드는 데 쓰인다. 이를 통해 암 치료나 DNA 손상 회복 메커니즘, 우주 방사선에 의한 인체 영향 등 주로 의학 연구에 활용된다. 국내에서는 부산 기장에 2023년을 목표로 구축 중이다. 과학자들은 “입자가속기는 지역이나 정치인들의 생각처럼 만들어 놓기만 하면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산업이 활성화되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라며 “구축 이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로드맵을 세우지 못하면 비싼 실험 장비를 만들어 놓고 놀리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시론] 준비 없는 미래는 없다/이배용 영산대 석좌교수

    [시론] 준비 없는 미래는 없다/이배용 영산대 석좌교수

    신록이 무르익어 가는 계절의 여왕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부부의날 등 인연의 달이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가족을 예외로 치면 그래도 학창 시절에 맺은 인연들이 인생에서 가장 오래가고 큰 울타리가 된다. 그런데 요즈음 코로나19 여파로 학교가 문을 닫았다. 어릴 적 공부에 꾀가 나면 공휴일만 세기도 한 철부지 시절이 있었지만, 그것도 가끔이지 온라인으로만 교육을 받는다니까 무언지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교과서가 있다고 선생님의 역할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듯이 교육에서 소통의 가장 중요한 수단은 스승과 제자가, 그리고 친구들과 학교라는 한 공간에서 서로 만나고 눈을 마주치면서 따뜻한 교감을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기본이 돼야 한다. 지식도 중요하지만 인성교육이 함께 시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간이 영리하고 지능적이라 해도 이번에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속수무책으로 우왕좌왕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제 근본을 다시 다져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앞으로만 내닫고 성취 위주로만 경쟁사회에서 이기려다 보니 그동안 놓친 것이 너무 많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고 변해도, 예기치 못한 사태가 닥쳐와도 역사에서 교훈을 찾으면 미래를 뚫고 나가는 항심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에 겸허해야 한다. 그래야 통찰력이 생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역사적인 메시지가 있다. 첫째, 지나치고 무리하면 화를 자초한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어디까지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인지 놓칠 때가 있다. 역사는 시작과 결말을 함께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시작이 아무리 거창해도 초라하게 끝나는 결말과 시작은 작더라도 화려한 결실을 맺는 현상을 수없이 볼 수 있다. 그래서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 한 것이다. 둘째, 좋은 능력도 좋은 인연으로 얽힐 때 자기 인생에도, 또 역사에도 기여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능력이 있어도 악연으로 얽힐 때 자기도 망치고 역사도 그르치는 일이 허다하다. 특히 지도자는 사람 볼 줄 아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 셋째, 어려운 시절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절대 절망하지 않는 도전과 희망의 정신을 일궈 가야 한다. 우리 역사 속에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사명과 긍정심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겨왔던 경험이 많다. 준비 없는 미래는 없다. 조선왕조가 여러 우여곡절은 있어도 세계 왕조 역사상 유일하게 500년을 이어 온 배경에는 나름대로 충효정신, 박애정신, 도덕사상이 있었다. 동의보감도 박애정신 속에서 임진왜란 때 만들어진 것이다.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곳도 설립 초부터 정신문화와 자연의 질서를 조화시킨 성리학 유산의 진정성이 계승돼 온 것을 세계가 인정하고 지지한 것이다. 또한 이 귀중한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만들려는 10년 전부터의 준비가 있었기에 등재의 쾌거를 이룬 것이다. 그런데 19세기로 들어서면서 리더십의 부재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문명사적 대전환의 시기에 대처력이 전무했다. 새롭게 해양시대가 열림을 전혀 간파하지 못했다. 돌아가는 세계 정세를 모르면 존립할 수 있는 전략과 지혜를 모두 놓치게 된다. 이러한 국가 존망의 위기 속에서도 한 가지 희망은 교육의 힘이었다. 개화기 선교사들과 민족지도자들이 자발적으로 학교를 세워 애국심을 고취하고 구국운동에 앞장설 인재를 키우는 교육을 중심에 두었다. 1909년까지 선교사와 민족지도자들이 세운 사립학교가 3000개 가까이 된다. 이러한 교육의 열정이 일제의 압박 속에서도 독립투사를 만들어 낸 준비된 미래이다. 역사 속에서 애국심과 나라를 지키는 자긍심을 배웠기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도 구국에 앞장서는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임은 틀림없다. 아울러 부단한 교육현장의 혁신을 통해 새로운 창의성을 갖춘 지식기반 사회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매사에 균형감각과 조화의 지혜를 가지고 하드웨어 시대에서 소프트웨어 시대로 진행해 온 과정을 살펴보고 앞으로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배려하고, 나누고, 포용할 줄 아는 하트웨어(heartware)를 보다 더 부각시켜야 인재 양성의 본연의 정신이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AI)도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 영혼, 정신문화를 바로 세워야 할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 2014년 아일랜드, 바이러스 감염 없이 공포만 대유행

    2014년 아일랜드, 바이러스 감염 없이 공포만 대유행

    “대체 코로나19는 언제 끝나는 걸까?” 요즘 전 세계인이 기다리는 건 코로나19의 ‘끝’이다. 그런데 전염병의 종식은 두 가지로 정의된다. 하나는 환자와 사망자 수가 곤두박질 치는 의학적 종식이며, 나머지는 감염 공포가 사그라드는 사회적 종식이다. 10일(현지시간) 역사에서 창궐했던 전염병들이 어떻게 종말을 맞았는지를 비교한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학사학자인 제러미 그린 박사는 요즘 우리가 원하는 ‘끝’이 후자인 사회적 종식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공황에서 벗어나 질병과 함께 사는 데 익숙해지는 때를 갈망한다는 얘기다. 하버드대 역사학자 앨런 브랜트 역시 “현재 경제 재개방을 둘러싼 논쟁에서 보듯, 코로나19 종식에 관한 많은 질문의 답은 의료와 공중보건 수치가 아니라 사회정치 과정을 통해 나온다”고 주장했다. 흑사병, 치료 가능하나 여전히 공포천연두는 의학적·사회적 모두 종식독감 매년 수십만 죽어도 공포 없어코로나 의학종식 전 사회종식 올 듯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왕립 외과의대의 수전 머레이 박사는 2014년 지방 병원에서 바이러스 없는 공포의 전염을 목격했다. 당시는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발생해 1만 1000명이 숨진 몇 달 뒤였지만, 아일랜드에선 단 한 건의 발병도 없었다. 하지만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머레이는 “흑인은 버스나 기차에서 다른 승객의 곁눈질을 받았다”면서 “기침이라도 한 번 하면 사람들이 황급히 멀어졌다”고 말했다. 더블린 병원 직원들은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라는 경고만으로 두려움에 떨었으며, 보호장비 부족을 걱정했다. 급기야 에볼라 환자가 발생한 나라 출신 청년이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간호사들은 숨고 의사들은 병원을 그만두겠다고까지 말했다. 머레이는 암의 급속한 진행으로 병원에 실려온 그를 혼자 치료했다. 청년은 에볼라 음성 판정을 받고 한 시간 뒤 사망했다. 머레이 박사는 “만일 우리가 두려움과 무지에 맞설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단 한 건의 감염이 없어도 두려움만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 끔찍한 해를 가할 수 있다”면서 “특히 공포의 전염은 인종, 특권, 언어와 관련된 복잡한 문제가 엮일 때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전염병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매우 어렵다. ‘흑사병’이라 불리는 선페스트의 경우 지난 2000년간 여러 차례 발생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6세기, 14세기, 19세기 말~20세기 초엔 대유행으로 엄청난 인구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특히 1331년 중국에서 시작된 유행은 내전과 맞물려 중국 인구 절반을 죽게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게다가 교역로를 따라 유럽, 북아프리카, 중동으로 이동해 1347~1351년 사이 유럽 인구 3분의 1을 없앴다. 1855년 중국에서 다시 발병한 흑사병은 인도에서 1200만명 이상을 죽게 했다. 감염 매개였던 쥐를 잡아 죽이고 마을 하나를 불태워도 억제하지 못했던 각각의 흑사병이 어떤 이유로 소멸했는지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제는 페스트를 항생제로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발병 사례 하나만 나와도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과거 대유행과 달리 질병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감염에 대한 공포는 막지 못하는 셈이다. 의학적 종말을 맞은 전염병 중엔 천연두가 있다. 평생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해주는 효과적인 백신이 있으며, 동물 숙주가 없어 인간의 질병만 제거하면 완전히 사라진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에 의학적 의미의 종식이 가능했다. 또 매우 특이한 증상이 피부에 나타나 감염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격리와 접촉 추적이 가능하다. 천연두는 3000년 동안 전 세계를 휩쓸었다. 병에 걸리면 발진으로 열이 난 뒤 고름으로 가득한 반점이 생기고 흉터가 남았다. 엄청난 고통을 겪은 뒤 10명 중 3명이 숨졌다. 1633년엔 미국 원주민 사이에 퍼져 동북부 모든 원주민 공동체가 파괴됐다. 하버드대 역사학자 데이비드 S. 존스 박사는 “천연두가 매사추세츠에 영어 정착을 촉진시켰다”고 말했다. 하지만 1977년 소말리아의 병원 요리사 알리 마우 말린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자연적인 감염자가 보고되지 않았다.사회적으로만 종식된 전염병은 독감(인플루엔자)이다. 1918년 발생한 독감은 전 세계 5000만~1억명을 죽게 했다. 하지만 세계를 휩쓴 무서운 기세는 사라졌고 대신 매년 비교적 양성적인 독감의 변종으로 진화해 돌아오고 있다. 물론 당시 맹위에 비해서 양성적이라는 것이지 결코 만만치 않다. 1968년 홍콩에서 일어난 독감은 미국 10만명을 포함해 전세계 100만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독감은 여전히 계절성으로 유행하며 수십만명이 목숨을 잃지만 사람들은 커다란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학자들은 코로나19가 의학적 종식보다 사회적 종식을 먼저 맞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 제약에 지친 사람들이 늘어나고, 경제에 대한 악영향도 심화되면 백신이나 치료약이 발견되기 전에 대유행 종식을 선언하라는 사회적 압력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미국 일부 주에선 시기상조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용실, 네일샵, 체육관 등 영업을 허용하며 제한을 해제했다. 예일대 역사학자 나오미 로저스는 “공중보건 공무원들은 의학적 종식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대중은 사회적 종말을 바라본다”면서 “누가 종식을 선언하게 될지도, 어떤 의미에서 ‘아직 끝이 아니라’고 반박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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