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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인공지능 시대의 투표/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열린세상] 인공지능 시대의 투표/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2주가 지났지만 아직 당선인이 공식 확정되지 않았다. 바이든 후보가 과반의 대통령 선거인단을 확보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투표 부정을 주장하며 패배를 부인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많은 유권자가 우편투표를 선택했는데, 투표용지 도착이 늦어진 지역의 개표가 정치적 쟁점이다. 투표 종료 2주가 넘어도 승자를 확정 짓지 못하는 미국의 선거시스템이 의아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아슬아슬한 상황이 폭력적 대결로 비화되지 않는 것이 미국 민주주의의 힘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2000년 대선 때 부시와 고어의 초박빙 승부 결과가 한 달 이상을 끈 뒤에 결국 연방대법원 판결로 마무리된 걸 떠올리면 좀더 지켜봐야 한다. 사실 4년 전인 2016년 대선 당시 러시아의 투표 시스템 개입 의혹이 제기되면서 미국의 이번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투표기계의 보안을 기했다. 2000년 대선 당시 논란이 된 펀치 카드 투표기계는 집계를 자동화할 수 있다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사라졌고 대신 해킹을 할 수 없는 종이와 펜으로 대체됐다. 장애인 유권자를 위해 도입됐지만 그 후 비장애인 시민도 사용하게 된 터치 스크린 컴퓨터를 일부 주에서 채택했지만 검증 가능한 종이(paper trail)를 인쇄하도록 했다. 물론 투표용지 추적 시스템이나 우편투표 용지를 스캔해 집계하는 기계 등은 여전히 사용 중이지만, ‘종이 투표용지’가 핵심 요소이다. 주마다 투표를 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런 차이점조차도 중앙집중화된 방식보다 보안에 더 유리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미국은 자동 집계가 가능한 다양한 투표 기계를 사용해 왔지만 결국 돌고 돌아 종이 용지를 핵심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터넷이 세상 모든 곳을 연결하고 디지털 기술이 모든 만남을 비대면으로도 가능하게 만들고 있지만, 정치적 대표를 결정하는 기술로는 수천 년 된 종이만 한 것이 없다. 복잡한 알고리즘이 순식간에 복잡한 계산을 해내고 블록체인과 같은 첨단기술이 그 어떤 해킹 시도도 막아 낸다고 주장하지만,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고 확인할 수 있는 종이 투표용지를 대신하지 못한다. 디지털 신호로 저장해도 될 일을 굳이 종이에 인쇄하고, 디지털로 전송해 집계하면 몇 시간 만에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일을 두고도 우편 봉투에 담아 옮기고 눈으로 서명을 확인하고 기계와 인간의 손으로 용지를 하나씩 세며 며칠을 기다린다. 개표와 집계가 이렇게 번거로운데도 종이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만든 정치제도는 효율성과 편리성을 최우선적 가치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거의 모든 국가의 정치제도는 비효율성에 기초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공정성과 투명성을 위해 비효율성을 용인하는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온라인 투표 시스템이 이미 개발됐지만 도입되지 않는 것은 기술적 미진함도 일부 있겠지만, 무엇보다 시민 개개인의 투표가 투표수로 집계되는 과정을 종이 용지의 집계만큼 이해하기 쉽고 투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유권자들과 이해당사자들이 원하는 명백하고 분명한 검증 가능성을 아무리 뛰어난 첨단기술도 종이만큼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역사가 보여 주듯이 종이 투표용지를 사용하는 투표 또한 투표함 절도나 바꿔치기 등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종이 투표는 투명성, 명백함과 쉬운 검증 가능성을 제공한다. 투표기계의 정확성은 공정성과는 다르다. 기계의 효율성과 객관성이 시민들이 기대하는 공정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회적 지향들을 한데 합치는 과정인 민주적 대의 시스템은 이번과 같은 논란이 있더라도 시민의 선택이 투명하게 반영된다고 쉽게 인지할 수 있는 단순하고 오래된 기술을 선택한다. 기술은 목표로 하는 가치에 적합하게 사용돼야 한다. 곳곳에서 도입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객관성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적용하는 대상에서 우리가 효율성을 뛰어넘는 가치를 추구한다면 이를 거부할 수 있다. ‘비효율적인’ 논쟁을 회피할 수 있다는 이유로 도입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판단을 우리가 따르지 않아도 반과학적이라거나 맹목적이라고 비판받지 않는 이유이다.
  • ‘조선 과학기술의 정수’ 앙부일구 1점 美서 귀환

    ‘조선 과학기술의 정수’ 앙부일구 1점 美서 귀환

    조선시대 과학기술의 정수인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 1점이 미국에서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지난 6월 미국의 한 경매에서 매입해 8월에 들여온 앙부일구를 17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했다. 이와 유사한 크기와 재질의 앙부일구는 국내에 7점이 있으며, 이 중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2점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앙부일구는 ‘하늘을 우러러보는(仰·앙) 가마솥(釜·부) 모양에 비치는 해 그림자(日晷·일구)로 때를 아는 시계’라는 뜻으로, 백성을 살피는 애민 정신을 담아 만든 조선 최초의 공중(公衆) 시계다. 세종대왕이 처음 만들어 백성들이 오가는 종묘와 혜정교(현 종로1가)에 설치한 이후 조선 말까지 제작됐다. 이번에 환수된 앙부일구는 해시계가 설치됐던 한양의 북극 고도(위도)가 표시돼 있어 1713년 이후부터 19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름 24.1㎝, 높이 11.7㎝, 약 4.5㎏의 무게를 지닌 금속제 유물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이 앙부일구가 언제, 어떻게 해외로 반출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골동품상에서 한 개인이 구입해 소장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앙부일구는 국립고궁박물관이 관리하며, 18일부터 오는 12월 20일까지 박물관 내 과학문화실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포토] 조선 과학기술의 정수, 해시계 ‘앙부일구’ 귀환

    [포토] 조선 과학기술의 정수, 해시계 ‘앙부일구’ 귀환

    문화재청은 지난 상반기 미국의 한 경매에 출품된 조선 시대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지난 6월 매입했다고 17일 밝혔다. 앙부일구는 하늘을 우러러 보는(앙) 가마솥(부) 모양에 비치는 해 그림자(일구)로 ‘때를 아는 시계’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조선 시대 과학 문화의 발전상과 통치자의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이번에 환수된 앙부일구는 18세기에서 19세기 초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지름 24.1㎝, 높이 11.7㎝, 약 4.5㎏의 무게를 지닌 금속제 유물이다. 2020.11.17 문화재청 제공
  • 조선시대 해시계 앙부일구 경매로 미국서 환수

    조선시대 해시계 앙부일구 경매로 미국서 환수

    조선시대의 천문과학기술을 반영한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 1점이 미국에서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지난 6월 미국의 한 경매에서 매입해 8월에 들여온 앙부일구를 17일 오후 2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한다. 이와 유사한 크기와 재질의 앙부일구는 국내에 7점이 있으며, 이중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2점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앙부일구는 ‘하늘을 우러러 보는(仰·앙) 가마솥(釜·부) 모양에 비치는 해 그림자(日晷·일귀)로 때를 아는 시계‘ 라는 뜻으로, 백성을 살피는 애민 정신을 담아 만든 조선 최초의 공중(公衆) 시계다. 세종대왕이 처음 만들어 백성들이 오가는 종묘와 혜정교(현 종로1가)에 설치한 이후 조선 말까지 제작됐다. 현대 시각체계와 비교했을 때도 거의 오차가 나지 않으며, 일몰시간과 방향 등을 알 수 있는 체계적이고 정밀한 과학기기다. 이번에 환수된 앙부일구는 18세기에서 19세기 초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지름 24.1㎝, 높이 11.7㎝, 약 4.5㎏의 무게를 지닌 금속제 유물이다. 정확한 시간과 계절을 측정할 수 있는 우수한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밀한 주조기법과 섬세한 은입사 기법, 다리의 용과 거북머리 등 뛰어난 장식요소를 볼 때 숙련된 장인이 만든 수준높은 예술작품이란 평가다. 문화재청은 지난 1월 이 유물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 면밀한 조사와 검토, 국내 소장 유물들과의 과학적 비교분석 등을 진행했다. 코로나19로 인해 3월부터 6월까지 수차례 경매가 취소되고 연기되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8월 마침내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앙부일구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돼 자격루, 혼천의 등 다른 과학 문화재들과 함께 연구와 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계획이다. 우선 18일부터 12월 20일까지 박물관 내 과학문화실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금요칼럼] 코로나19와 집단기억력/황두진 건축가

    [금요칼럼] 코로나19와 집단기억력/황두진 건축가

    분야를 막론하고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흐른다. 소위 ‘뉴노멀’은 어느덧 ‘노멀’이 돼 사람들은 거기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자체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확진자 증가 추세는 여전하지만 사망자 비율은 그렇지 않고, 게다가 백신 개발 관련 뉴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근본적으로 확 변할 것 같지는 않다는 낙관적인 생각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항상 모험이다. 코로나19처럼 기본적으로 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비전문가가 상식과 추측으로 접근하는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래서 때로 역사를 돌아보게 된다. 적어도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의 방식이나 태도에 대한 교훈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집단 기억력에 대한 의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인 1918년에 발생했던 ‘스페인 독감’은 이런 점에서 참고가 된다. 유행했던 기간은 불과 1년 남짓. 그러나 그 피해는 엄청나서 어떤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50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어서 ‘무오년 독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백범 김구 선생도 상하이에서 감염됐다. 당시 한반도 인구 1670만 명 중 742만명이 독감에 걸렸고 14만명이 사망했다고 하니 현재까지의 추세로만 보면 코로나19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존재였던 셈이다. 그런데 스페인 독감은 그 이전에 인류가 경험했던 대역병, 이를테면 중세의 흑사병 등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과학의 발전이었다. 도저히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어마어마한 공포에 시달리며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경험, 혹은 주술과 신앙으로만 대처해야 했던 중세와는 달랐다. 박테리아는 1676년 네덜란드의 레이우엔훅에 의해 그 존재가 알려졌고, 바이러스가 발견된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최초의 백신인 천연두 백신도 이미 18세기 말에 개발됐다. 스페인 독감 당시의 기록을 읽어 보면 당시의 대처는 요즘과 원리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격리는 중세부터 시행된 것이기는 했지만 그 필요성이 무엇인지 더욱 명확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구글에 들어가 당시의 사진을 검색해 보면 알 수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 없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유럽에서 극동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그전과는 사뭇 다른 방식과 태도로 대역병에 대처했던 것이다. 코로나19가 처음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마스크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길고 지루하게 이어졌다. 비용, 효과, 간편성 등의 종합적 관점에서 마스크는 그때나 지금이나 매우 효과적인 전염병 대처 수단이다. 결국 논쟁은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는 것으로 일단락됐지만, 방역 초기의 그 귀중한 시간을 조금 더 단축할 수는 없었을까? 심지어 질병관리청조차 올해 3월 초까지도 ‘일반인 마스크 착용은 불필요’라고 발표했다. 마스크 무용론, 제한적 효과설, 심지어 아예 대놓고 마스크 착용에 반대하는 주장이 등장한 것도 100년 전과 다르지 않다. 즉 모두 역사에 기록돼 있던 일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작동하고 있는 부분은 분명히 있고, 그 덕분에 100년 전과는 사뭇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집단기억력이 종종 효과적으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만약 코로나19가 현재 상황 이상으로 확대되지 않고 종식된다면,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우리 모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을 잊고 말 것은 아닌지, 그러다가 다른 역병이 발생하면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것인지.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노벨 문학상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노벨 문학상

    문학 하면 우리는 으레 시와 소설을 떠올린다. 당연히 노벨 문학상도 시인, 소설가에게만 수여하는 것인 줄로 알기 일쑤다. 토마스 만(1929), 헤르만 헤세(1946), 오에 겐자부로(1994) 등이 얼른 떠오른다. 2020년 수상자 루이즈 글릭도 미국 시인이다. 2016년 수상자인 밥 딜런은 그의 ‘노래’가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일부 ‘전문 문학인’들이 ‘가수’의 노벨상 수상에 반발하기도 했지만, 서양 문학의 원조 호메로스 역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노래 부른 가수였으니, 반대한 사람들만 협량해 보일 뿐이다. 사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중에는 ‘전문 문학인’ 아닌 인물이 여럿 있다. 예를 들면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상(1953)을 받았는데, 이 작품은 물론 역사 저술이다. 독일 역사가 테오도어 몸젠은 ‘로마사’(1902)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이 또한 역사 저술로 분류된다. 어디 역사뿐일까. 독일 관념론 철학자 루돌프 오이켄(1908),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1927),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1950)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노벨 문학상의 선정 범주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영어권 학자 171명이 참여해 집필한 전 18권, 1만 1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케임브리지 영문학사’(1907~1921)에는 셰익스피어, 존 밀턴과 나란히 에드워드 기번(역사학자), 토머스 홉스, 존 로크, 데이비드 흄, 벤담과 공리주의자들(철학자), 에드먼드 버크(정치학자), 애덤 스미스(경제학자) 등에게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시와 소설만이 문학이 아니란 의미다. 정치학, 철학, 경제학의 위대한 저술도 인류에게 감동을 주는 문학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아마도 이게 글로벌스탠더드일 것이다. ‘한국 문학사’에도 이런 광폭 행보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학’의 범주가 너무 협소한 건 아닐까. 우리의 협소함이 문학에 국한된 것일까. “의자에 앉아 글귀나 짓는 시인은 대단한 시는 결코 짓지 못할 것입니다. 생각건대 진정한 시인의 내면에는 정치가, 사상가, 입법자, 철학자의 자질이 잠재해 있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역사가, 사상가인 토머스 칼라일의 ‘시인’에 대한 정의다. 문학에 대한 놀라운 찬사다. 이 찬사에 걸맞게 문학의 꽃은 더 위대하게 피어나야겠다. 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 [정승민의 막론하고] 두 개의 미국

    [정승민의 막론하고] 두 개의 미국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것이 ‘명백한 운명’이라고 자부해 왔던 나라가 미국이다. 하지만 작금의 대선을 보면 고개를 숙여야 할 것 같다.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승리 연설을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가 조작됐다며 불복하고 있다. 신성한 민의를 도둑질당할 만큼 자질과 능력이 없다는 고해성사인 것인가. 게다가 지지자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언행은 무책임하다. 반대파까지 포용해야 할 정치인이 적대와 증오를 부추기는 것은 곤란하다. 무엇보다 근거나 물증 없이 내뱉는 막가파식 주장은 공동체를 무너뜨리기 때문에 극히 우려스럽다. 그럼에도 주목할 것은 트럼프의 득표력이다. 당선인 바이든과 나란히 미국 선거 사상 처음 7000만표의 벽을 깼다. 집계가 끝나지 않았지만 득표율 차이도 근소하다. 미국 사회는 홍해가 갈라지듯 절반으로 나뉘었다. 정치적 양극화가 고착됐다는 분석이 일반적이지만 트럼프 이전부터 사실 미국은 두 개였다. 정치학자 강상중과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는 공통적으로 미국 사회 내부의 해소하기 어려운 대립 구조에 주목한다. 지역적으로는 남부와 북부, 해안과 내륙이 다투는 구도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남부와 내륙은 대체로 야만과 폭력의 이미지다. 뉴욕의 ‘위대한 개츠비’와 달리 텍사스 카우보이는 주먹이 먼저고 여성을 차별하는 마초다. 록과 컨트리음악이 겨루고 금융과 유전이 맞선다. 마천루와 옥수수밭은 지금도 평행선을 긋고 있다. 19세기 남북전쟁의 후유증이 아닌가 싶지만 뿌리는 한층 깊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건너온 청교도 후예들은 전쟁을 통해 나라를 만들었다. 영국군과 동족상잔을 치른 것이다. 피로 세운 나라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강력한 중앙정부가 필요하다는 해밀턴주의자와 지방분권을 주장하는 제퍼슨주의자들은 처음부터 각을 세웠다. 인간관의 차이도 크다. 크고 힘센 정부에서 국민은 통치 대상이다. 반면 독립을 쟁취한 시민에게는 자치가 최우선이다. 중도적 입장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갈등 확산을 경고했지만 나중에 내전으로 비화됐다. 두 개의 미국엔 지역뿐만 아니라 대중과 엘리트의 반목도 겹쳐 있다. 특히 동부의 기득권 세력을 경멸하던 앤드루 잭슨의 백악관 입성이 분기점이 됐다. 대통령이 된 ‘촌뜨기’ 잭슨은 권력자, 언론, 지성인과 척을 졌지만 대중은 열광했다. 이때부터 미국 대중은 주기적으로 엘리트 집단에 격렬한 반감을 표출해 왔다. 이 때문에 기성 정치의 때가 덜 묻은 것처럼 보이는 인물에게 마그마처럼 뜨거운 지지를 보내곤 한다. 1992년 대선에서 백만장자 로스 페로가 선전한 것이나 2016년 선거 당시 트럼프의 역전극이 펼쳐진 것은 대중의 에너지가 분출된 덕이다. 1950년대 초 무명의 초선 의원 조지프 매카시가 ‘대통령급’으로 급부상한 것도 엘리트 관료에게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전문가와 지식인에 대한 적대감은 요즘 절정에 달한 듯하다. 백악관의 정략적 코로나 정책에 버텨 온 앤서니 파우치 전염병연구소장을 효수해야 한다는 반문명적 선동까지 나오니 갈 데까지 간 듯하다. 이러다가 건국 초기부터 내연해 온 이분법적 모순이 활화산처럼 폭발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미국은 두 개이기 때문에 생산적이다. 남부와 북부, 민주당과 공화당, 대중과 엘리트의 긴장과 갈등이 국가적 생존 능력을 키워 왔다. 양대 세력 간에 빚어지는 혼란에서 질서를 창출하는 파워가 나오기 때문에 다양한 혁신과 창조가 가능한 것이다. 한때는 소련에 패배하고 일본이 추월한다고 했다. 지금도 중국이 앞지른다고 하지만 여전히 미국이 건재한 까닭이다. 이번 대선으로 미국 민주주의의 민낯이 드러났다고도 하지만 글쎄다. 거의 반분된 사회가 봉합되려면 패배한 쪽의 살풀이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지 않을까. ‘분열된 집은 바로 설 수 없다’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유훈이 몸에 밴 미국의 복원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 [근대광고 엿보기] 최초의 고무신 회사 대륙고무

    [근대광고 엿보기] 최초의 고무신 회사 대륙고무

    고무는 일본어 ‘ゴム’(gomu)를 차용한 말이다. ‘고무구쓰’(ゴムぐつ)라는 일본식 고무신은 19세기 말 국내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한국식 고무신이 등장하기 전인 1910년대까지 일부 계층에서 일본식 고무신을 신은 것으로 추정된다. 고무구쓰와 우산 절도범을 붙잡았다는 기사가 있다(매일신보 1916년 7월 16일자). 제목이 ‘고무신과 우산’인 것을 보면 1910년대부터 고무신이라는 말이 일반화돼 사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호모화’(護謨靴)라고도 불렸던 일본식 고무신은 원래 구두 모양으로 바닥창만 고무였다. 그런 고무신을 지금처럼 남자용은 앞이 넓적한 초혜(草鞋·짚신), 여자용은 코가 뾰족한 당혜(唐鞋·가죽신) 모양으로 바꿔 만들어 먼저 대박을 터뜨린 이는 이병두라는 사람이었다. 일본식 고무신을 팔러 다니던 그는 일본으로 가서 고무 배합 기술과 제조 공정을 배우고 귀국했다. 비슷한 시기인 1919년 8월 1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1가에 우리나라 최초의 고무신 공장이 세워졌는데 광고 속의 대륙고무다. 주식회사 형태로 대륙고무를 설립한 사람은 구한말 외부대신과 법부대신을 지낸 이하영이었다. 친미·친러파여서 을사오적에 포함되지 않은 그는 한일병합 후 중추원 고문을 맡아 일제에 협력한 인물이다. 많은 이들이 고무신 사업에 회의적이었지만 이하영은 박영효, 윤치호, 박중양 등 재력가들을 대주주로 영입한 뒤 공장을 설립해 고무신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함남 원산, 경남 동래와 기장, 평남 평양 등지에도 공장을 추가로 설립하는 등 사업을 키웠다. 대륙고무는 1922년 ‘대장군’이라는 상표명을 붙인 고무신을 출시했다. 1922년 9월 21일자 광고에는 ‘대륙고무가 고무신을 출매함에 있어 이왕께서 이용하심에 황감함을 비롯하여…’라는 구절이 있다. 순종 임금도 고무신을 신었다는 뜻이다. 대륙고무는 고무공도 생산했다. 이하영의 고무신이 히트를 치자 반도고무, 중앙상공, 한성고무, 원산의 조선고무, 평양의 정창고무 등이 잇따라 설립됐다. 1937년에는 전국에 고무신 제조업체가 86개나 있었고 연간 생산량이 3119만 켤레에 이르렀다. 광복 전에는 서울고무의 ‘거북선’, 중앙상공의 ‘별표’, 천일고무의 ‘天자표’ 고무신이 가장 인기 있었다. 대륙고무는 원효로에서 중림동 155 일대로 옮겨졌다. 1936년 서울에 고무공장이 25곳 있었는데 8개가 중림동에 있었다고 한다. 중림동은 우리나라 고무공업의 중심지였던 셈이다. 대륙고무 자리에는 2000년대까지도 신발을 만드는 공장이 있었다. 지금은 중림종합사회복지관이 들어서 있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2030 세대] 주택문제의 해결, 교통에서 답을 찾자/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2030 세대] 주택문제의 해결, 교통에서 답을 찾자/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19세기 말 유럽은 사회, 경제, 기술, 정치적으로 유례없이 번성했다 하여 벨 에포크 시대, 즉 ‘아름다운 시절’로 표현된다. 하지만 당시 일상을 살아가는 도심 노동자 가족의 삶은 참혹하기 짝이 없었다. 도시계획가 피터 홀의 ‘내일의 도시’에는 당시 영국 런던을 묘사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썩어서 악취가 나는 한 방에서 두 가족이 거주하며, 천연두를 비롯한 각종 전염병에 노출돼 살아가는 일반 시민들의 삶이 묘사된다. 전염병의 발생 원인을 찾는 역학조사가 그즈음 런던에서 시작됐으니, 예상 가능한 풍경이다. 당시 런던에서 이런 삶을 살아가는 빈곤층의 비율은 30~40%였으며, 이는 다른 유럽의 대도시, 그리고 뉴욕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런 고밀화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일자리 인근에 살며 걸어서 출퇴근할 수밖에 없었던 물리적 제약 때문이었다. 다행히 20세기 들어서 이러한 문제는 급격히 해결됐는데, 그 실마리는 교통이었다. 20세기 초반 철도와 도로 등 교통망이 급격히 발달해 도심 외곽에 살더라도 일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확장된 도시들의 예가 도쿄 23구, 파리 20구 등이다. 서울의 역사도 이와 유사하다. 조선시대 한양도성에 불과했던 서울의 면적은 20세기 중반 인접 5개 군 일부를 편입하며 약 5배에 가까운 면적 확장이 이루어졌다. 확장된 면적을 커버하기 위해 서울시는 강변도로와 한강다리를 짓기 시작했고, 지하철과 외곽순환도로 등을 만들며 교통혁신을 이끌어냈다.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서로 한양도성 내에서 살고자 분투했을 것이며, 주거의 질은 벨 에포크 시절 노동자 가족의 삶과 같이 참혹했을 것이다. 안타까운 부분은 그런 ‘20세기 교통의 혁신’이 현재 거의 자취를 감춰 가고 있다는 점이다. 강변도로, 남산터널, 지하철 건설, 한강교량 등 교통인프라는 대부분 20세기 중후반에 만들어지고 21세기에 이르러서는 이렇다 할 신규 교통인프라가 존재하지 않는다. 있더라도 1969년 한남대교는 3년 만에 준공됐는데, 2020년 월드컵대교는 11년이 지나 준공될 예정이니, 오히려 퇴보하는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강남은 고인물과 같이 수십년째 가장 선호되는 주거지며, 주거지역의 층위는 딱히 변화될 여지가 안 보인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서 조금 더 창의적인 사고로 서울 및 수도권의 대중교통 인프라 구축을 고민해 봐야 한다. 간선급행버스체계(BRT)망 구축, 대중교통 복합환승센터 구축, 경전철망 확대다. 한국의 대도시는 여전히 더 많은 교통인프라가 필요하다. 예산이 부족하다면 차량대수규제(COE)나 혼잡통행료(ERP) 정책 등으로 대중교통망 구축 예산을 마련한 싱가포르의 사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조금 더 혁신적인 생각으로 지속가능한 교통망을 만들며 확장해 나가는 우리나라 도시들이 더 많이 등장했으면 한다.
  • AI부터 종교까지… ‘코스모스’ 칼 세이건의 빛나는 사유

    AI부터 종교까지… ‘코스모스’ 칼 세이건의 빛나는 사유

    천문학에 관심이 적은 이라도 ‘코스모스’ 정도는 들어봤을 터. 1980년 출간한 책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이를 기반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는 전 세계 60개국에 방영됐다. 퓰리처상을 받은 1978년작 ‘에덴의 용’, 영화로 만들어진 1985년 소설 ‘콘택트’까지, 칼 에드워드 세이건은 타계 이후에도 여전히 과학계의 대명사 중 하나다. ‘브로카의 뇌’는 1974년부터 1979년까지 그가 각종 과학잡지와 대중잡지에 낸 에세이를 모았다. 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유사 과학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 그의 롤모델 아인슈타인 평전, 태양계 행성 탐사와 인공지능 로봇의 전망, 종교에 대한 성찰 등 5부에 걸쳐 모두 25개의 글을 실었다. 1986년 지학사는 과학총서 ‘부로카의 두뇌’에 14개 글을 추려냈다. 이번엔 완역본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폴 브로카는 19세기 중반 의학과 인류학 발전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외과 의사이자 신경학자로, 그의 뇌는 프랑스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그로부터 시작한 표제작 ‘브로카의 뇌’부터 그의 에세이는 지하에서 우주까지, 고대부터 미래까지를 넘나들며 그의 빛나는 사유를 보여준다. 과학을 소재로 했지만 사물과 우주, 인간의 근원을 찾아간 인문학 서적에 가깝다고 하겠다. 글을 읽다 보면 과학적 사고 방식은 어떻게 시작한 것일지 궁금해진다. 강연을 마친 뒤 ‘신을 믿으십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쓴 ‘주일예배’ 편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무한히 오래된 우주와 무한히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신은 똑같이 난해한 불가사의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답을 찾아가는 인간의 호기심이라고 강조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자신의 기원에 놓인 불가사의 때문에 이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430쪽)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펜 하나로 현실과 맞서다

    펜 하나로 현실과 맞서다

    1991년 한국에 번역 출간돼 지금은 절판된 잭 런던의 소설 ‘마틴 에덴’(1909)을 기억하는 독자는 많지 않을 것 같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여러 육체노동을 전전하며 청년이 된 마틴 에덴이다. 어느 날 그는 두 가지 대상에 매혹된다. 하나는 사람, 다른 하나는 꿈이다. 둘 다 성취하기 쉽지 않다. 마틴이 반한 사람은 그와 처지가 상반된 상류 계급 여성이다. 그녀는 경제적 자산이 풍족하고 문화적 교양도 풍부하다. 두 사람의 조건이 꼭 맞아야 사랑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의 조건이 너무 다르면 사랑을 이루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 이것이 사람에게 매혹되었으므로 그가 해결해야 하는 첫 번째 과제다. 마틴이 품은 꿈은 그동안 그가 살았던 삶과는 전혀 관련 없는 낯선 직업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다름 아니라 그는 소설가가 되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자기의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혼란스러운 감정을 세밀하게 언어화하는 기쁨을 알았기 때문이다.어휘가 빈곤하고 문법은 엉망이지만 마틴은 습작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소설가가 될 수 있을지, 된다고 해도 그 길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것이 꿈에 매혹되었으므로 그가 해결해야 하는 두 번째 과제다. 마틴이 두 개의 과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는지, 결말은 무엇인지 여기에서 밝힐 수는 없다. 그래도 힌트 하나를 언급할 수는 있겠지. ‘마틴 에덴’이 잭 런던의 반(半)자전 소설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 과제의 결과는 이토록 명백하다. 이를 동명의 영화로 만든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은 원작의 19세기 후반 미국 배경을 20세기 중반 이탈리아로 옮겼다. 배경만 달라진 게 아니다. 전개와 결론도 바꿨다. 그는 원작을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세련되게 번안해, 소설과 비슷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영화로서의 독특성을 갖는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런 한에서 봉준호 감독이 공식 지면을 통해 영화 ‘마틴 에덴’을 극찬하고 마르첼로를 향후 행보가 기대되는 차세대 감독으로 선정한 이유도 납득이 된다. 또한 분명한 건 그가 본인만의 입지를 구축하려는 대담한 시도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르첼로는 시에서 쓰이는 객관적 상관물(인물의 정서를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빗대어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영화에 도입했다. 그는 ‘마틴 에덴’과는 관계없는 실제 과거 필름들의 장면을 편집해 넣어 인물의 심경을 드러내는 기법으로 활용한다. 예컨대 마틴이 누나와 대화를 나누며 옛날을 회상할 때, 소녀와 소년이 손을 맞잡고 흥겹게 춤을 추는 화면을 짧게 보여 주는 식이다. 그의 의식 흐름에 따라 관객은 현실과 허구가 겹쳐진 이중의 영화적 시간을 체험한다. 잭 런던 소설을 마르첼로는 영화 내용보다 형식으로 주제화했다. 참신한 스타일리얼리스트의 솜씨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 칼럼니스트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서낭당나무와 돌장승/장재민 · 고용/니르거라즈 라이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서낭당나무와 돌장승/장재민 · 고용/니르거라즈 라이

    고용/니르거라즈 라이 나는 어느 회사의 직원입니다우리 사장님은 이 도시에서 수많은굶주림과 결핍의 신입니다 어느 날 사장님께 말했지요사장님 당신은 내 굶주림의 신이시며내 삶은 당신의 은덕입니다그래서 생일을 특별하게 보내고 싶어요휴가를 주세요 사장님이 말씀하셨어요내 덕분에 너는 오래 살 거야이번에는 일이 많다내년에 생일을 잘 보내도록 해라나는 네라고 말했어요 어느 날 다시 사장님께 부탁을 했지요사장님 당신은 굶주림의 신이십니다 당신의 자비로 집을 꾸며 주세요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저에게 휴가를 주세요 사장님이 말씀하셨어요좋은 날들은 또 올 거야이번에는 일이 많다다른 길일에 결혼하도록 해라나는 다시 네라고 말했어요 하루는 삶에 너무도 지쳐서내가 말했어요사장님 당신은 내 굶주림과 결핍을 해결해 주셨어요당신에게 감사드려요이번에는 나를 죽게 해 주세요 사장님이 말씀하셨어요알았어 오늘은 일이 너무 많으니그 일들을 모두 끝내도록 해라그리고 내일 죽으렴! 이주 노동자의 삶을 다룬 이 시 읽을수록 부끄럽다. 불과 사오십 년 전 한국인들 또한 사우디로 이라크로 리비아로 서독의 광산 노동자로 팔려 나갔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하와이나 멕시코의 사탕수수밭으로 팔려 나가기도 했다. 지난 시기의 한국인들이 그러했듯 이주 노동자들 또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나선 선구자들이기도 하다. 그들을 만나면 손을 잡고 “감사해요” 따뜻한 한마디를 하자. 우리의 지난날에 대한 예의이기도 할 것이다. 곽재구 시인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인도에서 한국까지, 카레의 기구한 운명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인도에서 한국까지, 카레의 기구한 운명

    누구에게나 고향은 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고향은 태어나고 자란 곳만 의미하지 않는다.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장소도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 멀리, 한국 밖에서 고향의 향수를 느끼는 곳이 있다. 바로 인도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지만, 인도와 유전적인 연관성은 딱히 없다. 20대 시절 배낭과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호기롭게 인도 대륙을 종횡무진했던 추억이 있을 뿐이다.이제는 시간이 꽤 흘러 북으로는 카슈미르, 남으로는 케랄라까지 유유자적했던 그때의 기억은 희미하다. 생각하지 않으면 잊힌다는 말처럼 그동안 유럽을 오가는 동안 오랫동안 인도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인도가 내게 찾아왔다. 정확하게는 수년 만에 찾은 인도 음식점에서 맡은 인도 음식의 향기가 고이 자고 있던 기억을 세차게 흔들어 깨웠다. 그 순간만큼은 식당 의자에 앉아 있던 건 서른 중반의 내가 아닌 온몸으로 인도를 맛보고 있던 이십대의 나였다. 인도를 다녀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늘 물어본다. 인도 카레는 뭔가 다르냐고. 카레의 고향이 인도인 것은 맞다. 하지만 카레라는 음식은 인도에서 찾아볼 수 없다.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인도에 카레처럼 생긴 걸쭉한 수프나 소스 같은 음식은 있어도 카레로 부르지 않는다. 인도 현지에서는 카레 대신 ‘마살라’란 말을 쓴다. 마살라는 인도 요리에 두루 사용하는 으깬 향신료 혼합물이다. 마살라가 들어간 요리는 치킨 티카 마살라, 팔라크 파니르, 알루 고비, 빈달루 등 각각 고유의 이름을 갖고 있다. 카레는 단지 외국인들이 마살라가 들어간 인도 요리를 편의상 일컫는 말일 뿐이다. 카레 하면 떠오르는 샛노란 색깔의 소스에 덩어리진 채소와 고기가 어우러진 이미지는 사실 인도 카레와 큰 괴리가 있다. 우리나라의 카레는 적어도 세 나라를 거쳐 들어와 변형된 음식이다. 시작은 물론 인도다. 영국은 19세기부터 인도를 식민 지배하면서 본격적으로 수탈을 시작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영국인들이 인도에서 생활하거나 다녀가면서 자연스레 영국에선 인도풍 음식이 유행했다. 그중 채소와 고기를 덩어리째 넣고 익힌 유럽식 스튜와 인도의 마살라가 결합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유사한 형태의 카레가 탄생했다.인도의 화려한 향신료 믹스는 밋밋하고 자극이라곤 짠맛뿐인 영국 음식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사람들은 자극적이고 이국적인 맛에 매료됐고, 영국식 인도 요리인 카레는 국민 요리로 자리잡게 된다. 워낙 인기가 많다 보니 영국 해군의 식단에도 카레가 있었다. 19세기 당시 영국 해군은 세계 최강이었고, 서양의 제도를 본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려는 일본에 영국 해군은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일본에 주둔하던 영국 해군이 카레를 매주 먹는 것을 본 일본 해군도 이를 따라 하기 시작했고, 주식인 쌀과 카레 소스를 더해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매주 보급했다. 영국인들이 카레 맛에 금방 반한 것처럼 일본인들도 카레의 독특한 맛에 매료됐고,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에 처음 상륙했다. 초기에는 카레 파우더를 이용해 조리법이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고급 음식이었지만, 손쉽게 카레를 만들 수 있는 고체형 카레가 등장하면서 점차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카레가 진정한 한국의 국민 요리로 자리잡게 된 건 레토르트 형태의 ‘3분 카레’ 제품이 등장하면서부터다. 한국의 카레는 초기에는 일본 음식과 유사했지만 점차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됐다. 강황의 영양성분을 강조하면서 노란색을 강조한 황금빛이 카레의 이미지로 굳어졌다.음식은 국경을 넘고 인종과 문화가 뒤섞이면서 다양한 형태로 재창조된다. 인도에서 출발한 마살라 요리는 카레가 돼 영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을 거쳐 오면서 수많은 변형을 낳았다. 한식이 전 세계에 퍼지고 현지화하면서 변형되는 것처럼. 한 인도 식당 사장은 한국의 카레를 맛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고는 진짜 인도의 맛을 보여 주기 위해 식당을 열었다고 한다. 굳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정통 인도식 카레, 일본식 카레, 엄마표 한솥 카레 등 유형별로 취향대로 고르고 맛볼 수 있는 시대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바몬드 카레’는 일본에서 유행한 건강법에서 비롯됐다는 사실. 미국 버몬트주의 특산물인 사과와 꿀을 이용한 ‘버몬트 건강법’이 일본에서 잠시 인기를 끌면서 카레에도 사과와 꿀을 넣어 탄생했다. 당연히 미국엔 버몬트 카레가 없다. 버몬트주를 일본식으로 발음해 만든 ‘바몬드 카레’의 고향은, 미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병충해가 만든 색깔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병충해가 만든 색깔

    유럽의 10월은 포도 수확의 계절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살던 아를의 농부들도 바쁘다. 아낙들은 바구니에 포도를 따 모으고, 밭 가운데에는 포도를 운반해 갈 마차가 서 있다. 론강을 따라 아득히 펼쳐진 들판 끝으로 태양이 가라앉고 있다. 붉은색과 노란색의 대비가 강렬하고 아름답다. 그런데 포도나무는 이렇게 붉지 않다. 수확기에도 잎이 녹색이라야 정상이다. 화가가 색을 왜곡했을까? 아니다. 19세기 말 진딧물의 일종인 필록세라가 유럽의 포도밭을 덮쳤다. 20년 가까이 계속된 병충해로 수확량은 심각하게 감소했다. 이 공백을 남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르헨티나, 칠레 등지에서 생산된 포도주가 메웠다. 포도주를 증류한 브랜디도 품귀현상을 빚으면서 스카치위스키가 대체재로 떠올랐다. 병충해는 주류 시장의 지형을 변화시켰고 덤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탄생시켰다. 고흐는 900여점의 유화를 그렸는데 살았을 때 팔린 것은 이 그림 단 하나였다. 산 사람은 벨기에 화가 안나 보슈. 안나의 남동생 외젠도 화가였고 고흐와 친구 사이였다. 이 남매는 부유한 사업가 아버지 덕택에 여유 있게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1890년 고흐는 외젠의 권유로 브뤼셀에서 열린 ‘20인전’에 참가했다. 여기서 안나는 이 그림을 400프랑에 샀다. 일류 화가들 그림이 1만~3만 프랑을 호가한 데 비하면 형편없는 헐값이었지만, 무명인 고흐로서는 잘 받은 것이었다. 안나는 고흐가 동생 친구고 사정이 어려운 걸 잘 알고 있어서 후하게 값을 치렀다. 1895년부터 인상주의 그림값이 치솟았다. 안나는 1906년 파리의 한 화랑에 그림을 내놓았다. 그림은 1만 프랑에 러시아 사업가 시추킨의 손에 들어갔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그의 저택과 수집품은 몰수됐다. 시추킨은 파리에서 우울하게 여생을 마쳤다. 혁명 정부는 시추킨의 저택을 미술관으로 만들어 대중에게 공개했다. 1948년 스탈린은 건물이 너무 부르주아적이라는 이유로 미술관을 폐쇄하고, 수집품은 모스크바의 푸시킨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슈 미술관으로 분산시켰다. ‘붉은 포도밭’은 푸시킨 미술관으로 이관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술평론가
  • [최만진의 도시탐구] 테스형! 한국 아파트가 왜 이래?

    [최만진의 도시탐구] 테스형! 한국 아파트가 왜 이래?

    아파트값을 잡아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자 정부는 혼신의 힘을 쏟는 듯하다. 한데 최근 몇 년간 많은 정책을 내놓았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도리어 가격이 더 요동치면서 연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정부의 부총리까지 최근에 발표한 ‘부동산 임대차 3법’의 희생양이 되면서 우습고도 슬픈 현실에 직면하기도 했다. ‘아파트먼트’라는 영어 단어를 ‘아파트’라고 줄여서 부르는 공동주택은 우리나라에서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는 전형적인 도시 주거 형태다. 서양에서는 이미 로마 시대에 ‘인슐라’라고 부르는 주거와 상가의 복합 형태로 된 약 5층 높이의 공동주택이 유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제국이 쇠퇴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러한 형태의 집합주택이 다시 등장한 것은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던 19세기다. 당시에는 농촌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수없이 몰려갔다. 도시는 짧은 시간 안에 인구가 급속도로 늘게 됐고 과밀화되는 현상을 겪게 됐다. 이렇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려드는 사람들을 위한 주택난 해결이 가장 긴급한 도시 과제로 떠올랐다. 아파트가 문제의 해결사로 등장한 것은 여러 가지 장점 때문이다. 우선 단독주택에 비해 좁은 땅에 많은 가구를 지을 수 있다. 특히 승강기의 발명은 거의 무한정 높이의 건축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또한 상하수도, 전기, 가스 공급 등의 설비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점도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많은 가구가 다닥다닥 붙어 살다 보니 집이 닭장 같아 보이고 사생활 보호가 잘 되지 않는다. 익명의 불특정 다수가 살다 보니 이웃과의 소통이 단절돼 공동체 형성이 되지도 않는다. 심지어 바로 아래, 윗집과 옆집 사람과의 교제도 거의 없어 이웃 간의 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약 10년 전 덴마크 코펜하겐에는 ‘8하우스’라는 아파트가 하나 들어섰다. 특이한 것은 이름 그대로 ‘8’자 형태를 가진 것이다. 이러한 배치로 얻은 두 개의 중정은 주민이 소통하는 핵심 공간 역할을 한다. 채광과 바람에 대응해 건물이 높낮이를 달리하면서 생긴 녹화 언덕도 있어 흥미롭고도 긴장감 넘치는 경관을 보여 주기도 한다. 더 기발한 것은 맨 아래층에서 제일 높은 10층까지 골목길과 자전거길이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 전체가 마치 작은 동네 같은 느낌을 주어 이웃과 친근하게 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거기에다 각 가구 앞의 골목길에 각자의 작은 화단이 설치돼 있어 도시 속의 전원도 즐길 수 있다. 사실 정말로 특이한 것은 우리나라의 공동주택이다. 양질의 아파트를 고안해 즐거운 삶을 영위할 생각은 뒷전이고 연일 아파트 가격 논쟁에만 매달려 있는 듯하다. 모두가 공동주택을 돈으로만 보면서 주택 공급 문제를 한탄하고 정부만 나무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제는 정말 주택을 삶의 터전으로 생각하는 소박한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요즘 내가 소크라테스에게 묻고 싶은 말. “테스형! 우리 아파트가 왜 이래?”
  • [이재갑의 감염병 이야기] 그레이트 배링턴 선언과 존 스노 서한 사이에서

    [이재갑의 감염병 이야기] 그레이트 배링턴 선언과 존 스노 서한 사이에서

    7월부터 확진자가 줄어들기 시작한 스웨덴 상황을 보고 집단면역 실험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냐는 일부 국내 보도가 있었다. 더불어 우리나라도 스웨덴처럼 집단면역을 따랐어야 한다는 논란이 있었다. 사실 스웨덴은 코로나19 초기에 집단면역을 고려하긴 했지만 1차 유행 초반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자 곧 방향을 전환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록다운과 같은 강한 억제정책을 실시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의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정책은 꾸준히 추진했다. 그럼에도 7월까지 확진자는 9만여명, 사망자도 6000명이 넘게 발생했다. 스웨덴은 7~8월에 일시적인 소강상태가 왔을 때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했지만 9월 이후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2차 유행에 직면해 있다. 7~8월의 환자 감소는 집단면역 때문이 아니었다는 게 분명해졌다. 최근 미국에서도 감염병 전문가 일부가 그레이트 배링턴 선언을 발표하고 백악관에서 이 선언을 진지하게 고민하겠다고 하면서 집단면역 논쟁이 벌어졌다. 치명률이 높은 60대 이상 고위험군은 철저히 보호하는 한편 60대 미만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해 일상생활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 코로나19의 유행을 용인하면서 점진적으로 집단면역을 달성하자는 내용이다. 이에 반발하는 감염병 전문가들은 최근 19세기 영국 런던에서 발생한 콜레라가 오염된 식수 때문이라는 걸 밝혀냈던 존 스노의 이름을 딴 존 스노 서한을 발표했다. 젊고 활동적인 사람들이 지역사회 유행을 촉발하며, 이는 곧 고령층 고위험군에 감염을 전파해 인명 피해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고위험군을 완벽히 격리하는 건 불가능하고 면역 유지 기간도 불분명하기 때문에 집단면역에 대한 환상을 반박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원칙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할까. 우리나라는 그동안 선제적인 방역정책과 전 국민의 자발적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을 통해 전국적인 봉쇄 없이 유행을 최소화하면서 지금까지 버텨 오고 있다. 지난 6월 유엔이 펴낸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보고서에서도 방역과 경제의 균형을 통해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가장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한 국가로 한국을 지목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로 인한 중대한 시험대에 놓여 있다. 선제적이고 효과적인 방역정책, 국민들의 자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가 앞으로도 유효한 전략이라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여기에 더해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고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도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지켜 가야 하는 게 중요한 과제가 됐다. 취약계층의 피해와 국민의 피로도, 코로나 블루로 불리는 정신건강상의 문제 역시 정부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가야 한다.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몇 년, 아니 수십 년 뒤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 둘이서 21가지 캐릭터 연기…편견 깨진다, 점점 빠져든다

    둘이서 21가지 캐릭터 연기…편견 깨진다, 점점 빠져든다

    150분 가득 채운 2인… 성별·신분·나이 넘나든 매력적 무대캐스팅보드에 적힌 배역명은 A1, A2. 무대엔 남녀 배우 1명씩 단 두 명만 선다. 막이 오르자마자 시작되는 두 배우의 대사는 150분간 끊임이 없다. 극이 이어질수록 “저걸 어떻게 다 외우지?”라는 원초적인 궁금증만 더 커질 뿐, 극의 서사와 연기에 대한 허전함이 느껴질 새가 없다. 서울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에서 공연 중인 연극 ‘오만과 편견’ 무대는 이렇게 꽉 차 있다. 이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만 무려 21명. 19세기 영국 중상류층 베넷가의 총명하고 당돌한 둘째 딸 엘리자베스 베넷(리지)을 비롯한 다섯 딸들과 리지와 우여곡절 끝에 사랑에 빠지는 다아시와 그의 친구 빙리 등 배역이 빈틈없이 등장한다. 무대 이동도 없고 인터미션을 제외하곤 배우들은 한 번도 무대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캐릭터를 구현하는 것은 다양한 소품과 매력적인 배우들의 연기다. 남자 배우가 입고 있던 롱코트의 단추를 꽉 채우면 여성의 드레스가 되면서 베넷가 첫째 딸 제인으로, 여자 배우가 옷자락을 뒤로 확 제치면 그 시대의 남성복이 돼 ‘미스터 빙리’로 변신한다. 손수건을 잡아 흔드는 ‘미시즈 베넷’, 파이프 담배를 무는 ‘미스터 베넷’ 등 소품을 제대로 쓰면서 캐릭터를 금새 바꾼다.부채, 악보, 지팡이, 안경 등 작은 소품들이 보물찾기 하듯 곳곳에서 나와 캐릭터를 만드는 게 큰 재미가 된다. 영화와 드라마로 숱하게 만들어졌던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속 장면들을 이토록 집중하며 본 일이 있을까 싶도록 무대 위 두 명의 배우에게만 시선이 간다. 돈이 있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는 것이 여자의 가장 큰 숙제이자 행복인 양 속물처럼 구는 미시즈 베넷의 호들갑이 흰 손수건 하나로 극대화됐고, 그에 굴하지 않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 리지의 시간은 당차고 똑부러지는 목소리 하나로 감동을 준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순발력 있게 목소리 톤을 바꾸며 매력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들에게 감탄을 보낼 수밖에. 단출한 무대와 의상이 배우를 향한 자신감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특히 성별과 신분, 나이를 모두 다양하게 넘나들며 21가지 캐릭터를 완성해 내는 두 배우가 수많은 편견들을 지워 주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지난해 국내 초연으로 호평을 받은 작품은 이번에도 연극 ‘렁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뮤지컬 ’키다리아저씨’와 ‘여신님이 보고 계셔’ 등으로 특유의 감성을 선보인 박소영 연출이 맡아 섬세함을 더했다. 무엇보다 그 많은 대사를 소화하며 시시각각 감칠맛 나는 연기를 선보인 A1 역을 맡은 김지현·정운선·백은혜, A2 홍우진·이동하·신성민·이형훈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우주를 보다] 목성 하늘 위를 날다…탐사선 주노, 근접비행 영상 공개

    [우주를 보다] 목성 하늘 위를 날다…탐사선 주노, 근접비행 영상 공개

    미 항공우주국(NASA)의 탐사선 주노(Juno)가 목성을 근접비행하는 놀라운 영상이 공개됐다. 최근 NASA는 마치 SF영화에서나 볼법한 주노의 목성 탐사 모습을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 이 영상은 지난 6월 2일 이루어진 주노의 27번째 근접비행(Fly by·플라이바이)을 담은 것으로 실제로는 여러 이미지를 합쳐 만든 것이다.영상을 보면 대기에 물감을 풀어놓은듯 목성 특유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며 상징인 거대한 대적점(大赤點)도 잘 보인다. 지난 1830년 처음 관측된 대적점은 목성의 대기현상으로 발생한 일종의 폭풍으로 지금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19세기 대적점은 지구보다 2~3배 크기로 측정됐으나 현재는 약 1만5800㎞까지 줄어든 상황으로 그래도 지구 하나 쯤은 쏙 들어갈 크기다. 27번째 근접비행 당시 주노는 목성의 상층부 구름을 기준으로 불과 3400㎞ 떨어진 거리를 비행했는데 강력한 중력의 영향으로 그 속도는 무려 시속 20만9000㎞에 달했다.한편 지난 2011년 8월에 장도에 올라 2016년 7월 목성 궤도에 진입한 주노는 거대한 가스 행성인 목성에 관해 수많은 데이터를 보내고 있다. 주노의 목표는 거대 가스 행성의 구조와 조성, 자기장과 중력장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으로 이는 목성의 생성과 그 진화, 더 나아가 태양계의 생성 비밀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로 쓰이게 된다. 주노는 현재 목성을 긴 타원형 궤도를 돌고 있다. 목성에 최근접하는 주기는 지구 시간으로 약 53.5일로, 이 근접비행 때 주요 데이터를 수집하게 된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그 섬엔 예술이 숨쉰다… 이곳선 시간도 쉬어간다

    그 섬엔 예술이 숨쉰다… 이곳선 시간도 쉬어간다

    기온이 뚝 떨어졌다. 아침저녁 기온이 10도 안팎. 흐리고 비 오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의 11월 같은 날씨가 시작됐고, 이런 베를린의 가을을 겸허히 받아들일 때가 됐다. 불평해 봤자 바뀌는 것 없이 잿빛 하늘은 더욱 약을 올릴 테니 말이다. 이런 날씨에 머물기 좋은 곳은 역시나 ‘방구석’이겠지만, 그보다 더 좋은 곳이 있다. 바로 박물관과 갤러리다. 따뜻한 실내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예술을 즐기고, 박물관에 딸린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다 보면 이 느닷없는 추위에도 조금은 너그러워진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 ‘박물관의 섬’으로 향했다. 지난해부터 가려고 했던 새로운 갤러리에 가기 위해서.●‘박물관의 섬’의 새 지도, 제임스 시몬 갤러리 그곳은 지난해 7월 새로 문을 연 제임스 시몬 갤러리다. 영국 건축가이지만 독일에서 유독 사랑받는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만들어 더 화제를 모았다. 베를린에 사는 입장이 아니었다면 벌써 가 봤겠지만,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간다. 제임스 시몬 갤러리는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 명소 ‘박물관의 섬’ 안에 있다. 베를린의 내로라하는 박물관 다섯 개가 섬처럼 이루어진 이곳에 제임스 시몬 갤러리가 문을 열면서 이제 ‘박물관의 섬’은 다섯이 아닌 여섯 곳의 예술 공간으로 확장됐다. 이 새로운 갤러리는 가는 길부터 인상적이다. 구박물관의 멋진 열주를 따라 걷다 보면 신박물관의 열주로 이어지고, 어느새 제임스 시몬의 간결하고 모던한 열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열주는 갤러리 건물 전체에 중요한 건축 요소로 쓰이고 있다. 제임스 시몬 갤러리로 들어가는 입구는 두 군데다. 긴 기둥을 따라 들어가는 1층의 입구와 탁 트인 계단을 올라가면 2층 입구가 나온다. 코로나19 상황 이전에는 두 곳을 모두 개방했으나 지금은 1층 입구로만 관람객을 받는다. 비가 오는 토요일이었는데도 1층 입구에 사람들의 줄이 길었다. 줄을 설까 하다가 우리는 갤러리 카페에서 일단 커피 한 잔을 마시기로 했다. 줄을 서지 않고 온라인으로 표를 살 심산이었다. 사실 내가 사려고 한 티켓은 박물관 연간 회원권이었다. 1년 동안 베를린의 박물관과 갤러리의 모든 전시를 볼 수 있는 회원권인데, 특별전과 상설전을 모두 볼 수 있는 100유로(약 14만원)짜리 회원권과 상설 전시만 볼 수 있는 50유로짜리 회원권이 있다. 여기에 관람객이 별로 없는 오전이나 오후 특정 시간에만 상설 전시를 보는 베이직 회원권도 있는데, 이건 가격이 25유로밖에 안 한다. 박물관 한번 들어가는 데 입장료가 보통 12유로인 점을 생각하면 베이직 회원권은 정말 거저나 다름없다. 우리가 걸어온 박물관의 열주처럼 길고 좁고 높은 카페 안에서 느긋하게 비 내리는 풍경을 내다보았다. 날이 좋다면 슈프레 강가를 마주한 테라스 자리도 멋질 것이다. 마침 제임스 시몬 갤러리에서 시작한 ‘게르만 부족’ 전시는 흥미가 전혀 안 당기는 것이어서 베이직 회원권을 사는 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우리는 이 티켓으로 신박물관만 둘러봐도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제임스 시몬 갤러리는 자체의 전시 공간도 있지만 박물관 섬의 대표적인 페르가몬 박물관과 신박물관으로 이어지는 입구 역할도 한다. 카페가 있는 2층 공간의 리셉션 안쪽으로 돌아가면 페르가몬 박물관으로, 0층(우리의 1층) 로비에서 지하로 내려가면 신박물관으로 가는 입구가 나온다. 티켓은 입구에서만 확인하므로 갤러리 내에서 티켓 없이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 제법 되지만, 지금은 사람을 제한해야 하는 상황이라 막아 뒀다. 높은 천장과 간결한 선의 건축, 그리고 긴 조명으로 이루어진 갤러리의 공간을 사람 없이 둘러보는 건 특권처럼 여겨졌다. 이제 이 공간을 거쳐 신박물관으로 들어가 이집트의 유물을 영접하러 갈 것이다.늦은 오후에 간다면, 길어지는 해의 그림자를 담는 제임스 시몬 갤러리의 외관은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된다. 신박물관과 붙어서 둥글고 길게 이어지는 갤러리의 외관 기둥은 총 226개로 돼 있다. 하얗게 빛나는 현대식 열주는 갤러리의 외관을 이루는 동시에 안과 밖의 중간 역할도 충실히 하고 있다. 열주 사이의 공간들로 빛이 차고 흐르는 움직임을 따라가는 건 또 다른 감상 포인트를 준다.●‘박물관의 섬’ 필수 코스, 신박물관·페르가몬 제임스 시몬 갤러리의 지하 1층을 통하면 신박물관으로 들어간다. 먼저 벽돌로 만든 동굴 같은 지하 전시실이 나오고, 이곳을 지나면 신전 같은 공간과 마주한다. 어두운 공간은 지상층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밝아진다. 신고전 양식이 돋보이는 신박물관은 2차 세계대전 중 심하게 훼손되고 동베를린 시절에는 수십년 동안 방치됐다. 통일 후 ‘박물관의 섬’을 복원하려는 정부 계획에 따라 전체 마스터플랜이 세워지고, 당시에도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신박물관의 복원을 맡아 지난 2009년에 개관했다. 신박물관은 오픈 당시 메르켈 총리로부터 ‘유럽 문화사에 길이 남을 건축물’이란 찬사를 받았다. 남아 있는 공간들을 최대한 보존하고 복원할 수 없는 부분은 비워 냄으로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절묘하게 완성한 그의 건축 철학이 빛을 발한 작품이었다. 실제로 신박물관의 중앙 통로 같은 거대한 계단에 이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모던한 천장과 포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기둥과 벽, 웅장한 대리석 계단이 어우러진 통로에서 신박물관의 웅장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신박물관의 최대 매력은 의심할 여지 없이 이집트 여왕, 네페르티티의 흉상에 쏠리고 있지만, 다양한 조각과 파피루스 문자 등의 광범위한 이집트 유물 컬렉션이 신박물관의 힘이다. ‘박물관의 섬’에 있는 다섯 박물관을 도장깨기하듯 다 가 봐도 좋겠지만, 그중에서도 우선을 꼽으라면 신박물관과 페르가몬 박물관이다. 페르가몬은 박물관의 섬에서 가장 늦게 건립됐음에도 최대의 박물관으로 꼽히는 곳이다. 이곳에선 기원전 160여년경부터 만들어진 제우스 신전의 제단을 마주할 수 있다. 고대도시 페라가몬(현재의 터키)에서 실제 발굴한 이 제우스 대제단은 헬레니즘 건축의 최고 걸작품으로 칭송받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2023년까지 공사 중이라 볼 수가 없다. 공사를 시작하기 몇 년 전 운 좋게 제우스의 대제단을 본 적이 있다. 그래도 공사가 끝나면 1순위로 다시 가고 싶다. ●건축부터 남다른 베를린의 현대미술관 ‘박물관의 섬’이 고대와 중세 예술작품의 보고라면 베를린의 현대 미술은 어디에 모여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미술관과 작은 갤러리들이 물론 많이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특별한 두 곳을 소개한다. 바로 베를린에서 가장 인기 있는 현대미술관인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와 함부르거 반호프 뮤지엄이다. 두 곳 모두 건축부터 남다르다. 전쟁 이후 다시 태어났다는 공통점도 있다. 개인적으로도 두 곳을 베를린에서 먼저 가 봐야 할 곳으로 꼽는다.늘 획기적인 전시로 주목받는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는 네오 르네상스 건축 양식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미술관이다. 바우하우스의 창시자인 발터 그로피우스의 큰아버지, 마틴 그로피우스가 1881년에 설계한 곳으로, 처음엔 공예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전쟁으로 크게 훼손됐던 건물을 대대적으로 재건해 1981년 미술관으로 재개관했다.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과 모자이크 장식이 무엇보다 아름답지만, 고풍스런 분위기의 아트리움과 메인 홀에 이르면 그 매력은 더 배가된다. 거대한 중정의 모양으로 둘러싼 1층 메인홀에서는 내로라하는 현대작가들의 대규모 설치 예술 작업이 많이 열렸다. 2층에는 각기 다른 전시실로 또다시 공간이 나누어지는데, 2층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또 다른 각도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대규모 설치예술로 유명한 올라퍼 엘리아슨과 중국의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 한국 작가 이불 등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들이 이곳에서 전시를 열었다. 매번 깜짝 놀랄 만한 전시를 선보여 갈 때마다 설레는 곳이다. ●철도역 개조한 함부르거 반호프 미술관 미테에 자리한 함부르거 반호프는 순백색의 외관부터 우아하다. 하지만 실체는 1884년 이후 버려진 철도역을 개조한 미술관이다. 1906년엔 교통건축박물관으로 이용됐고, 1996년에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유일하게 보존된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쓰고 있어 미술관 이름도 그대로 함부르거 반호프가 됐다. 커다란 전시 홀에는 철도역 때 쓰던 19세기식 창문이 그대로 있고 레일 바퀴의 흔적도 남아 있다. 전시를 감상할 때, 이 큰 아치형의 창문들로 들어오는 채광이 멋진 조명이 돼 준다. 이 뮤지엄에선 신국립미술관이 다루는 시기 이후, 즉 20세기 후반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앤디 워홀이나 안셀름 키퍼 같은 현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플럭서스의 창시자인 요제프 보이스에 관한 방대한 컬렉션도 상설로 전시한다. 기획전시를 통해서는 실험적인 현대예술 작품을 선보여 매번 가도 새롭다. 날이 어두워진 뒤에는 신비롭고 시린 푸른 빛으로 박물관 외관이 둘러싸인다. 이 푸른 빛은 미니멀리스트 예술가인 댄 플래빈의 설치작품으로, 작가는 오로지 형광등을 이용한 반복적인 구성을 통해 실제 공간을 완성한다. 형광등의 빛과 색의 조화만으로도 풍요로운 아름다움이 만들어진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밤에 함부르거 반호프 미술관 근처를 지나게 된다면 하얀 건물 외관이 푸른 야광 빛으로 비치며 만들어 내는 신비로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베를린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갤러리 베를린에는 약 170개의 박물관과 300여개의 갤러리가 있다. 상업적인 갤러리들이 몰려 있는 유명 갤러리 거리도 많고 이름도 미처 모르는, 숨어 있는 갤러리도 수두룩하다. 베를린의 수많은 상업 갤러리 중에서도 독보적인 곳이 있다. 잠룽 보로스와 쾨니히 갤러리다.잠룽 보로스는 독일의 저명한 예술품 컬렉터인 크리스티안 보로스가 그의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개인 갤러리로, 컬렉터들 사이에서는 이미 명성이 자자하다. 히틀러 시대에 지어진 벙커를 개조했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방공호로, 독일 분단 후에는 군사 감옥으로, 통일 후인 1990년대에는 테크노클럽으로 쓰였던 역사가 흥미롭다. 벙커를 개조하는 데에만 5년이 넘게 걸렸고 1800t의 콘크리트를 걷어낸 곳에 조각, 사진, 설치예술 등의 현대 예술 작품을 채워 두었다. 3000㎡ 규모의 공간에는 데미안 허스트, 올라퍼 엘리아슨, 볼프강 틸만스 등 한자리에 모으기 어려운 쟁쟁한 현대작가들의 120여점 작품을 5층에 걸쳐 전시하고 있다.또한 벙커 꼭대기에는 보로스 부부의 펜트하우스를 만들어 벙커 전체를 전시 공간이자 보금자리로 삼고 있다. 금·토·일요일에만 문을 여는 이 갤러리는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을 해야 하고 가이드의 동행 아래 그룹투어로만 진행된다. 사진은 찍을 수 없지만 그래서 전시와 설명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최근 베르크하인 클럽에서 열리는 전시 프로그램 ‘스튜디오 베를린’도 이 보로스재단에서 기획, 선보이는 것으로 이미 매진 상황을 이어 가고 있다.2년 전에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쾨니히 갤러리는 베를린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갤러리 중 하나다. 39세의 젊은 아트딜러 요한 쾨니히가 이끄는 갤러리는 2015년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에 있는 장트 아그네스 건물로 자리를 옮기면서 더 입소문을 탔다. 장트 아그네스는 과거 가톨릭 교회 건물로, 1960년대 브루탈리즘(우아한 미를 추구하는 서구 건축에 반하는 야수적이고 거친 건축 사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건물은 단조롭고 정사각형 기둥 모양의 거대한 콘크리트 탑을 가지고 있으며, 거친 콘크리트 탑 위에 다시 하얀 벽돌의 탑이 얹혀 있는 형상이다. 콘크리트 탑 아래 거대한 금속 문을 밀고 들어가면 인포메이션 데스크와 사무실 같은 공간이 나온다.●시간을 들여 볼수록 조금씩 더 이해할 수 있는 곳 쾨니히 갤러리는 교회의 가장 넓은 공간인 예배당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메인 전시 공간에 발을 디디면 높고 가득한 공간감에 그저 놀라게 된다. 직사각형의 높고 육중한 전시실은 공간 그 자체로 작품 같다는 인상을 주는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전시 또한 매우 독특하다. 국제적으로 떠오르는 39명의 예술가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설치 작품에서 조각, 회화, 사운드까지 매우 생소하면서도 창의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베를린을 거점으로 참가하는 세계 주요 아트페어마다 매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쾨니히 갤러리의 전시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지만 그렇다고 한 바퀴 휙 돌아보고 나올 만큼 가벼운 공간도, 전시도 아니다. 시간을 들여 볼수록 조금씩 더 이해할 수 있고, 비로소 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갤러리에 들어선다면, 늘 시간을 갖고 여유 있게 보면 좋겠다. 여행작가 dongmi01@gmail.com
  • 사슴 두 마리 시드니 근교 거리 돌아다녀 주민들 어리둥절

    사슴 두 마리 시드니 근교 거리 돌아다녀 주민들 어리둥절

    사슴 두 마리가 6일 해돋이 무렵에 호주 시드니의 근교 마을 도로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녀 주민들이 많이 놀랐다. 구조대원들이 긴급 출동해 한 마리를 몰아 생포하는 데 성공했지만 다른 한 마리는 달아났다. 전문가들은 아직도 이 사슴들이 반려 동물로 키우다 달아난 것인지, 아니면 야생인지 판명하지 못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아울러 이들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도 파악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뉴사우스웨일즈 경찰 등은 두 마리가 아난데일과 레이치하르트, 발맹 등 시드니 서쪽 근교 마을들을 배회하고 있으며 경찰이 쫓고 있는 한 마리의 상태가 아주 나쁜 것으로 보여 걱정된다고 했다. 사슴은 호주의 초원 지대나 수풀 속에서 심심찮게 눈에 띄지만 실은 19세기 유럽에서 전해진 뒤 유해한 동물처럼 여겨져왔다. 한 경찰 관계자는 “야생인지 아닌지, 왜 굳이 도시로 들어오려 했는지, 잠깐이라도 먹을 것을 구하긴 한 것인지, 누군가 키우던 것이 달아난 것이라면 어떻게 배를 채우고 다니는지 알 길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소셜미디어에는 놀란 주민들의 목격담이 쏟아지고 있다. 한 주민은 페이스북 커뮤니티 란에 글을 올려 “아침에 반려견과 산책하는데 매켄지 스트리트를 따라 사슴들이 달려 오는 것을 봤다. 내가 꾸며낸 얘기가 아닌 것이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다른 산책객과 부딪힐 뻔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다르시 번 시장은 “놀라 자빠질 일은 아니지만 아주 희한한 일인 것은 맞다. 2020년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는데, 10월에 (루돌프 사슴코의 친구이자 여덟 마리 중의 하나인) 댄서와 프랜서가 벌써 왔구나”라고 익살스럽게 받았다. 올해 초에도 시드니 근교 사람들은 수의과 병원을 탈출한 개코원숭이 세 마리가 거리를 휩쓸고 다니는 것을 보고 기겁했다. 당국은 나중에 한 마리가 정관 절제술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다른 두 마리와 함께 달아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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