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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In&Out] 한일, 2021년 신냉전에 경쟁적 협력을/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

    [글로벌 In&Out] 한일, 2021년 신냉전에 경쟁적 협력을/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

    한국과 일본의 대조적인 코로나19 대응이 새해에도 지속되고 있다. 정부 주도로 유전자증폭검사(PCR)를 실시하고 확진자를 가려내려 애쓰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여전히 검사를 민간에 맡기고 희망해도 모두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위기 속에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지지율이 동반하락하고 있어 강제동원 갈등의 대담한 타협을 더욱 어렵게 한다. 한일관계사를 다시 한번 돌아보자. 우선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의 역사에서 일본이 안보를 내세우며 한국을 식민지배했지만 한국의 자율적 발전 가능성을 빼앗았다는 사실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게다가 서양 열강의 군사적 위협이라는 공통 과제에 직면해 ‘한일이 경쟁적으로 협력한다’는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일본의 일방적 한국 지배로 귀결된 것은 한국 입장에서 보면 도의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배신일 수밖에 없다. 20세기 후반의 한일관계는 어떨까. 일본은 한국에서 일본으로 강제 이전된 경제적 가치의 원상회복을 위해 5억 달러를 제공함으로써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한다’는 청구권협정을 맺어 한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설령 한국 내 일제 피해자들이 불완전하고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합의는 존중돼야 한다. 또한 분단 상황에서 한국이 열세였던 북한과의 체제경쟁을 우위로 전환하는 데에도 일본의 일정한 역할이 있었다. 일본 사회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의 역사를 너무 망각하고 있다. 반대로 한국 사회는 20세기 후반의 역사를 제대로 평가하려 하지 않는다. 두 시기의 역사를 균형 있게 다루는 것이 한일 쌍방에 필요하다. 한일이 직면한 강제동원 판결을 둘러싼 갈등의 배경에는 이처럼 균형을 잃은 양국의 역사 시각이 깔려 있다. 한일이 종래의 비대칭에서 대칭적 관계로 바뀐 현 상황에서도 그러한 영향이 엿보인다. 한국의 지속적 발전과 민주화에 따라 한일이 대칭적 관계로 변하면 양쪽 모두 경쟁의식이 높아지고 과거사 비중이 커져 타협이 더욱 어려워진다.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구냉전 해체가 미흡한 채 맞은 미중 대립이라는 신냉전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한일의 최대 과제다. 그러나 신냉전에 대응하면서 과거사 대립에 빠져있을 여유는 없다. 그런데 한국은 구냉전 해체에만 관심이 있고 신냉전은 외면하는 눈치다. 역으로 일본은 신냉전 대응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런 차이가 외교를 둘러싼 한일 간의 대립에도 나타난다. 남북 분단체제 극복에는 미중뿐 아니라 일본의 협력도 필요하다. 그보다 한국의 대북정책과 가장 거리가 가까운 쪽은 미중이 아니라 일본이다. 일본 또한 신냉전을 받아들이고 그 제약하에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포기할 게 아니라, 불이익을 최소화하는 상황을 한국과 함께 만들어 가야만 양국이 공통 이익을 얻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일 외교는 오히려 경쟁적이지만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한일은 앞으로 경쟁이 심해질 것이다. 신냉전이란 공통 과제에 관해 협력이냐 대립이냐, 어느 선택이 더 효과적인지 지켜보면서 학습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협력이란 선택지의 중요성이 점점 커질 것으로 본다. 이러한 ‘경쟁적 협력’을 바탕으로 한일관계를 재정립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구상 속에서 현재의 한일 대립을 바라본다면 지금의 사상 최악이라는 한일관계를 타개할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균형 잡힌 역사인식과 그에 기초한 ‘선의의 경쟁’, 그리고 ‘경쟁적 협력’에 한일 모두 눈을 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일은 미중 대립의 격화 속에서 오도 가도 못할 상황에 갇힐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 최악의 시나리오만은 피했으면 한다.
  • ‘달콤한 인생’ 다시 볼까

    ‘달콤한 인생’ 다시 볼까

    예술영화 전용관 아트나인이 월례 기획전 ‘영화관주의! 2021년 다시, 영화관’을 시작한다. 첫 기획으로 이탈리아 영화 황금기였던 1960~1980년대 대표작 4편을 이달 매주 1편씩 상영한다. 우선 5일에는 이탈리아 영화를 전 세계에 알린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달콤한 인생’(1960)으로 문을 연다. 삼류 신문사에서 가십 기사를 쓰는 마르셀로는 클럽을 전전하며 술과 여자로 인생을 보내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절친한 친구 스타이너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실의에 빠진다. 삶의 가치와 의미에 관해 회의를 품는 주인공을 잘 묘사해 제13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사실적인 현실에서 몽상적인 세계까지 다양한 영상 언어로 구사한 감독의 영화들은 돌체앤가바나를 비롯한 수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12일에는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의 ‘해바라기’(1970)를 상영한다. 12일 동안의 짧은 신혼 생활 후 안토니오는 입영 통지를 받고 시베리아 전선으로 떠난다. 안토니오의 전사 통지를 받은 아내 조반나가 러시아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이탈리아 대표 배우 소피아 로렌이 조반나 역을 맡아 해바라기처럼 한 남자를 그리워하는 여인의 절절함을 훌륭하게 연기해 세계적인 배우로 떠올랐다. 19일에는 19세기 후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귀족의 속물주의와 배신을 다룬 영화 ‘순수한 사람들’(1976)이 관객을 찾는다. 유부남 툴리오는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와 놀아나고, 그의 부인은 젊은 소설가와 정을 통한다. 삶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이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소설 ‘무고한 존재’를 영화화했다. 26일에는 이탈리아 모더니즘의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여성의 정체’(1982)를 상영한다. 이혼한 영화감독 니콜로가 여배우를 찾다가 고혹적인 여인 마비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으로, 제35회 칸국제영화제 35주년 특별기념상을 받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호주 국가 가사 ‘젊은’을 ‘하나’로 바꿀 뿐인데 높아지는 국격

    호주 국가 가사 ‘젊은’을 ‘하나’로 바꿀 뿐인데 높아지는 국격

    호주 연방정부가 오랜 원주민 역사를 반영하기 위해 국가(國歌) 가사 가운데 오직 한 단어 ‘젊은’(young)을 ‘하나 된’(one)으로 바꾼다. 호주를 ‘젊은’ 나라라고 표현하면 수만년 전부터 존재한 원주민들의 역사를 부정하게 된다는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스콧 모리슨 호주 연방총리가 새해부터 국가 ‘어드밴스 오스트레일리아 페어’의 가사 2절 중 ‘젊고 자유로운’(young and free) 대목을 ‘하나 되고 자유로운’(one and free)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밝혔다고 영국 BBC가 1일 전했다. 모리슨 총리는 “호주는 상대적으로 젊은 나라지만 이 땅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의 이야기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면서 “국가의 가사는 이를 적절하게 반영해야 마땅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젊은’을 ‘하나 된’으로 바꾼다고 손해 볼 것은 전혀 없다”면서 “오히려 호주가 거쳐온 지난 역사를 긍정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기본적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모리슨 총리는 “이번 개사를 통해 호주는 지구 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다문화·이민 국가라는 점을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국가 개사는 지난해 11월 글래디스 베레지클리언 뉴사우스웨일스(NSW)주 총리의 제안을 다른 주 및 연방 정부가 받아들여 이뤄졌다. 베레지클리언 NSW주 총리는 “호주를 ‘젊은’ 나라라고 하면 백인이 정착하기 전 수만 년간 계속된 원주민 역사를 부정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면서 “단어 하나를 바꿔 국민 통합에 기여할 수 있으니 지도자로서 참 감사한 일”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원주민 출신 린다 버니 연방의원은 “모든 국민이 6만 5000년의 원주민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환영의 뜻을 표했다. 호주에 유럽인들이 이주해온 것은 18세기의 일이다. 그 전에 호주 대륙에는 300개 이상의 ‘조상’들이 각각의 언어를 구사하는 원주민 집단들이 사이좋게 살고 있었다. 이들을 통칭해 ‘퍼스트 네이션스’라고 한다. 종전 가사 ‘젊은’은 이런 자랑스러운 문화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라고 베레지클리언 총리는 지적했다. 이 나라 국가는 19세기 중반 스코틀랜드 태생 작곡가 피터 도즈 맥코믹이 쓴 ‘어드밴스 오스트레일리아 페어’로 영국 국가 ‘하나님, 여왕 폐하를 지켜 주소서’(God Save the Queen)를 대신해 1984년 채택됐다. 그런데 비공식 국가가 있었다. 척박한 황무지를 개척한 조상들의 애환을 담은 ‘Waltzing Matilda’란 노래다. 10달러 지폐에 초상이 들어갈 정도로 국민 시인 대접을 받았던 밴조 패터슨(1864~1941년)이 쓴 시로 흥겨우면서도 애절한 가사를 담고 있다. 노래 제목은 봇짐을 들고 길을 나선다는 뜻이다. 호주로 이주한 독일인들이 흥얼거리던 노래가 국가 대접을 받은 것이었다. 사실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힘을 합쳐 만든 나라가 호주인데 1901~1978년 정부 차원에서 유색인종 이민제한정책, 곧 백호주의(White Australia Policy)를 채택하는 바람에 스스로 건국 이념을 부정한 셈이었다. 원주민 애보리진을 극심하게 탄압한 것은 물론이었다.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는 2008년에야 이뤄졌다. 사실 이번 가사 개사가 애보리진을 적극적으로 껴안는 행동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텐데 과연 그런 방향으로 호주 정부와 사회가 나아갈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다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국경 장벽을 높이고 이민자나 난민들을 대놓고 차별하는 여느 나라들의 흐름과 달리 용기 있는 행동에 나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야당 지도자인 앤서니 알바네즈는 이 나라가 “퍼스트 네이션스 사람들이 일군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과 함께 함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호주는 정치나 문화 행사에 원주민 역사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지난달 호주 국가대표 럭비팀 선수들은 처음으로 지금의 시드니 땅에 살았던 에오라 네이션(부족) 언어로 국가를 제창해 눈길을 끌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사설] ‘원주민 역사 반영’해 국가 가사 바꾼 호주의 용감한 결정

    새해 벽두 호주에서 의미있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호주 연방정부가 2021년부터 국가(國歌)의 가사를 바꿔부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1984년 호주 국가로 채택된 ‘어드밴스 오스트레일리아 페어’는 스코틀랜드 작곡가 피터 도즈 맥코믹이 19세기 중반 작곡했다. 그 국가 2절의 ‘젊고 자유로운’(young and free)이라는 대목을 ‘하나 되고 자유로운’(one and free)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호주는 상대적으로 젊은 나라지만, 오래전부터 살아온 원주민의 역사를 국가에 반영해 화합을 도모해야 마땅하다는 문제의식에서 국가 가사 변경이 추진됐다고 한다. 한때 호주는 백호주의로 악명이 높았다. 백호주의란 1901년 영국계 이민자와 중국계 이민자 사이에 일자리 경쟁이 벌어지자 호주 정부 차원에서 1978년까지 지속한 유색인종 이민제한 정책을 말한다. 애보리진 원주민에 대한 탄압은 더욱 혹독했다. 백인들은 이민 초기 애보리진 원주민 학살도 모자라 동화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애보리진 어린이들을 백인가정에 강제입양시켰다. 그 결과 40만명인 애보리진은 호주 인구의 2%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수민족으로 전락했다. 국가 가사를 바꾸려면 당연히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영국계 주민의 상당수는 여전히 백호주의적 성향을 버리지 않았다. 애보리진의 역사를 국가에 담기까지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애보리진 육상선수 캐시 프리먼이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성화 최종 주장으로 나섰을 때 ‘애보리진 탄압에 비난여론을 희석시키기 위한 제스처’라는 비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호주는 원주민의 인권을 배려하고 국민 화합을 도모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이번의 국가 가사변경으로 실증했다. 호주 국민의 용기있는 결정은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것이 적지 않다. 한국에는 2019년 말 현재 외국인 거주자가 252만명 남짓하다. 인구 전체의 4.9%이다. 지난해 말에는 외국인 인구가 다문화 사회 기준인 5%를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사회가 이주노동자 및 결혼이민자에게 가하는 차별와 혐오는 심각하다. 과연 과거 백호주의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나. 호주의 사례처럼 국가의 가사를 바꿀만큼 이주 및 결혼 이민자를 배려할 마음가짐이 있는지 한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저 하늘 높이 날아올라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저 하늘 높이 날아올라

    올 초 중국에서 맨 처음 코로나가 감지됐을 때 이것이 전 세계로 퍼지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코로나가 봄에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을 때도 여름 정도 지나면 수그러들겠거니 생각했다.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다시 겨울이 됐지만, 코로나는 잠잠해지기는커녕 더욱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전염병은 인명을 앗아가고 경제를 망가뜨리고 문명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인류의 자부심을 산산조각으로 만들었다. 과거에는 전쟁, 전염병 등으로 도시가 폐쇄되고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는 일이 더 흔했다. 요즘은 인터넷이 있어서 멀리 있는 사람과 안부를 주고받고 강의와 회의도 하지만 전신, 전화도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했을까? 전신, 전화는 19세기 말에야 등장했다. 영국의 사업가 폴 로이터는 1850년 주가를 파악하는 데 비둘기를 이용했다. 마흔다섯 마리의 통신용 비둘기는 기차보다 빨리 브뤼셀과 아헨을 오가며 주가를 전달했다. 성서에도 대홍수를 견딘 노아가 물이 빠졌는지 알아보려고 방주 밖으로 비둘기를 날리는 얘기가 나오지만, 비둘기를 조직적으로 통신에 이용한 사람은 로이터가 처음이었다. 로이터는 이 성공을 바탕으로 1865년 로이터 통신회사를 설립했다. 1859년 마이크로 사진이 발명되면서 비둘기는 더 많은 정보를 운반할 수 있었다. 프랑스 사람 르네 다그롱이 발명한 마이크로 사진은 보불전쟁으로 파리가 포위됐을 때 구실을 톡톡히 했다. 투르에 있던 임시정부는 전단을 마이크로 사진으로 축소해 비둘기의 다리에 매달았다. 비둘기는 프로이센군이 훈련한 매의 공격을 뚫고 파리로 돌아가 소식을 전했다. 배고픔, 두려움과 싸우던 파리 시민들은 큰 용기를 얻었다. 포위된 파리에 남아 있던 마네가 남프랑스로 피란 간 아내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었던 것도 비둘기 덕분이었다. 1870년 11월 마네는 아내에게 “여기는 말고기 말고는 먹을 게 없구려”라고 하소연하는 편지를 썼다. 피뷔 드 샤반은 파리 시민에게 자유와 희망의 상징이었던 비둘기를 화폭에 담았다. 원경에 성벽으로 둘러쳐진 파리 시내가 보인다. 검은 옷의 여인은 안고 있는 비둘기를 맹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팔을 뻗고 있다. 미술평론가
  • 온라인 콘텐츠로 꽉꽉… 우수 대학 박물관 5곳 선정

    온라인 콘텐츠로 꽉꽉… 우수 대학 박물관 5곳 선정

    문화체육관광부는 사단법인 한국대학박물관협회와 함께 부산대·대구대·이화여대·경북대·서울여대 박물관을 올해 우수 대학박물관으로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부산대 박물관은 다른 대학박물관과 활발한 협력 전시를 열어 연합전 부문 우수 박물관에 뽑혔다. 목포대 박물관과 특별전 ‘조개와 사람의 시간, 패총에 묻다’, 동아대 석당박물관과는 ‘처음 열어보는 고고학의 흔적’을 함께 개최했다. 전시 부문에서는 영주 순흥 벽화 무덤을 주제로 해 고대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특별전과 비대면 교육·특강을 진행한 대구대 중앙박물관과 ‘19세기 조선의 풍경’ 특별전을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연 이화여대 박물관이 선정됐다. 경북대 박물관은 문화재 보존과학 관련 체험 행사 ‘보존과 보호, 뮤지엄 파수꾼’ 프로그램을, 서울여대 박물관은 온라인 실시간 강연인 ‘조선왕릉 태릉·강릉 이야기’를 운영해 교육 부문 우수 박물관이 됐다. 문체부 측은 “코로나19 확산으로 대학박물관이 정상적인 운영을 하기 어려웠지만,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전환해 추진하거나 실감형 콘텐츠를 도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한 곳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윤희숙 “유시민 부동산 발언 헨리 조지가 들으면 놀랄것”

    윤희숙 “유시민 부동산 발언 헨리 조지가 들으면 놀랄것”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27일 “더는 땅을 사고팔면서 부자가 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발언을 비판했다. 윤 의원은 유 이사장의 발언에 대해 “부동산으로 부자되려는 생각이 통하지 않도록 정책을 잘 만들어야 한다”고 충고하면서 “정반대 정책만 내놓으면서 시장을 이겨먹으려 들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유 이사장이 소개한 19세기 사상가 헨리 조지에 대해 “참여정부가 이미 헨리 조지를 소환해 종합부동산세(종부세)라는 우리나라만의 기묘한 세금을 만들었지만, 부동산 가격은 기록적으로 상승시키는 실패를 초래한 바 있다”고 비판했다. 조지는 산업화 과정에서 땅값이 급격히 상승한 미국 캘리포니아를 경험한 뒤, 토지처럼 공급이 고정된 생산요소를 소유한 것만으로 독점수익을 과하게 얻지 않도록 토지로 인한 수익을 환수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윤 의원은 “국내의 조지론자들이 자꾸 중요한 부분을 누락시키는 바람에 그간 많은 혼선이 있어왔다”면서 “헨리 조지는 인간의 노력이 들어간 건물 등 토지의 가치를 올리는 활동에는 세금을 매기면 안된다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윤 의원에 따르면 헨리 조지는 가치를 창출하는 경제활동에는 세금을 매기면 안된다는 사상을 가졌고, 토지를 제외한 모든 세금은 철폐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도심에 주택을 공급하는 기능을 하는 재건축, 재개발의 초과이익환수가 재건축이나 재개발 자체를 억제할 정도라면 이는 헨리 조지의 사상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면서 “헨리 조지 이름을 끌어다쓰면서 땅과 건축물 모두를 싸잡아 수익을 모두 환수해야 한다는 우리나라의 조지론자들을 헨리 조지가 만난다면 아마 크게 놀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의원은 “저도 집거래로 큰 수익이 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그만큼 가격이 급하게 오른다는 것이니, 내집마련 꿈을 가진 많은 이들을 좌절시킨다”고 덧붙였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유시민 “땅으로 부자된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세상 오길”

    유시민 “땅으로 부자된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세상 오길”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25일 “강력하고도 혁신적이고 상상할 수 없는 부동산 정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유 이사장은 이날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 시즌3’에서 새해 소망을 묻는 말에 “더는 땅을 사고팔면서 부자가 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날 방송은 헨리 조지의 책 ‘진보와 빈곤’을 주제로 진행됐는데, 유 이사장은 19세기 토지보유세를 주장했던 헨리 조지에 대해 “사회악 근절을 위해 토지 단일세를 주장했던 사람으로 부동산을 투기의 수단으로 이용해 엄청난 부동산값 폭등이 일어나려 해 정부가 규제할 때 주류 언론에서는 정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그를 소환한다”고 했다. 유 이사장은 헨리 조지의 토지 개념, 부동산 버블을 설명하면서 “(부동산 가격 상승은) 요즘 일이다. 뉴욕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부동산값이 올해 엄청나게 올랐지만, 미국·영국·독일 모두 난리”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지금 수십 가지의 정책을 투입하지만, 부동산값 진정이 안 되고 있다”며 “헨리 조지가 제안한 토지 단일세의 취지를 우리나라의 조건에 맞게 실행할 방안을 연구하자”고 제안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유시민 “새해 소망? 상상할 수 없는 부동산 정책 나왔으면…”

    유시민 “새해 소망? 상상할 수 없는 부동산 정책 나왔으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현재 부동산 시장과 관련해 “강력하고도 혁신적이고 상상할 수 없는 부동산 정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25일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에서 자신의 새해 소망을 묻는 말에 “더이상 ‘땅 사고팔아 부자 돼야지’ 하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유 이사장은 채널 출연 복귀 과정에서 정치비평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이날 유 이사장의 유튜브는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책 ‘진보와 빈곤’을 주제로 진행됐다. 유 이사장은 헨리 조지에 대해 “사회악 근절을 위해 토지 단일세를 주장했던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부동산을 투기의 수단으로 이용해 엄청난 부동산값 폭등이 일어나려 해서 정부가 규제할 때 주류 언론에서는 정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그를 소환한다”고 주장했다. 헨리 조지는 19세기 미국의 정치경제학자다. 토지가치세를 주장한 인물로, 모든 사람이 토지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지공주의’(Geoism·지오이즘)의 토대를 마련했다. 유 이사장은 이날 유튜브에서 ‘부동산 버블’을 설명하며 부동산 가격 상승이 “요즘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뉴욕에도 지금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부동산값이 금년도 엄청나게 올랐지만, 미국, 영국, 독일 다 난리”라고 말했다. 이어 유 이사장은 “(정부가) 지금 수십 가지의 정책을 투입하지만, 부동산값 진정이 안 되고 있다”고 평가하며 “헨리 조지가 제안한 토지 단일세의 취지와 이를 우리나라의 조건에 맞게 실행할 방안에 대해 연구하자”고 제안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다큐의 기술(김옥영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40년간 다큐멘터리 작가와 제작자로 현장을 지킨 저자가 다큐멘터리에 대해 쓴 첫 입문서. 다큐멘터리는 ‘내가 본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한 문장으로 새로 정의된다. 자신의 관점과 스타일을 만들어 가려는 다큐 창작자는 물론 일반 독자에게도 본질적 안내서가 된다. 423쪽. 1만 8000원.클라우제비츠와의 마주침(김만수 지음, 갈무리 펴냄) 19세기 프로이센 전쟁 이론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쓴 ‘전쟁론’은 명실상부한 군사학의 최고 고전이다. 이 책은 지난 60년간 한국 사회에서 전쟁론이 어떻게 잘못 이해됐는가를 담았다.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하는 정치의 계속’이라는 명제는 정치를 계속하려면 전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740쪽. 3만 9000원.감염병 시대, 도시 변화의 방향을 묻다(강명훈 외 18명 지음, 서울연구원 펴냄) 코로나19로 제기되는 도시 변화와 각종 사회 의제를 분석하고 변화의 방향을 제시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오히려 다른 사람의 건강이 나의 건강에 직결된다는 인식을 주면서 공동체주의의 실용성을 확인하게 해 줬다는 분석을 담고 있다. 432쪽. 1만 5000원.남극에서 대한민국까지(김태훈 지음, 푸른향기 펴냄) 사진작가인 저자가 아내와 함께 남극 탐험을 한 뒤 배로 귀국하던 도중 코로나19 확산으로 선실에 갇혔다가 극적으로 귀국하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체험기다. 위기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다양한 군상과 악몽, 에고이즘과 휴머니즘이 공존하는 실화를 담았다. 276쪽. 1만 5000원.시장의 속성(레이 피스먼·티머시 설리번 지음, 김홍식 옮김, 부키 펴냄) 시장은 어떻게 탄생하고 진화하며 우리의 후생을 좌우하는가. 시장 설계의 역사와 2차 세계대전 이래 시장이 밟아 온 길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학자들이 시장을 어떻게 연구하고 정교하게 다듬었는지, 아마존·구글·애플 등이 어떻게 시장을 선도하는지 생생한 사례를 통해 보여 준다. 352쪽. 2만원.계속되는 이야기(세스 노터봄 지음, 김영중 옮김, 문학동네 펴냄) 네덜란드의 대표 작가이자 유럽 문단의 거장 세스 노터봄의 걸작 소설. 죽음의 예감 속에서 회상의 여행을 시작한 한 남자의 끝없이 계속되는 이야기를 보여 준다. 인간이라면 필연적으로 맞게 되는 주제 ‘죽음’을 두고 독자의 오감을 자극한다. 160쪽. 1만 3000원.
  • [근대광고 엿보기] 관제(官製) 연탄

    [근대광고 엿보기] 관제(官製) 연탄

    “평양 석탄과 일본 석탄을 많이 무역하여 서울 용산 제물포에 지점을 벌이고 큰 장사를 하는데(…) 올에는 일본 석탄이 작년보다 비싼 고로 미리 주문하면 싸게 살 터이요 평양 무연탄도 풍범선으로 많이 실어다가 파니 누구든지 겨울에 쓸 석탄을 미리 와서 주문하시면 상등 석탄을 싸게 살 터이니 속히 와서 주문하시오.”(독립신문 1897년 9월 11일자) 석탄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19세기 말로 추정된다. 위 광고에 나오듯이 일본에서 수입하기도 했고 1896년 무렵 평양 근처에서 처음으로 채굴했다고 한다. 조선 왕실의 재산을 관리하는 내장원이라는 관청이 기비레라는 프랑스 기술자와 매년 3000원(元)을 주고 평양 무연탄 3000t을 채굴하는 5년짜리 계약을 체결했다는 기사가 있다(황성신문 1903년 9월 12일자). 매년 3000t이라면 그때도 석탄 사용량이 상당히 많았다는 말이 된다. 광해관리공단에 따르면 당시에는 석탄(무연탄)을 가공하지 않고 가정이나 대장간에서 그대로 불을 붙여 썼고 화물선 연료 등 동력원으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일제는 평양 탄광(사동 탄광) 채굴권을 조선 정부에서 빼앗은 뒤 평양광업소를 설치해 캐 낸 석탄을 주로 일본 해군 연료로 사용했다. 이후 1923년에는 조선총독부가 지질 조사를 시작해 1936년 강원도 태백 지역(현 장성광업소)에서 처음 탄광을 열었다. 19세기 말 일본 규슈 지방 모지시에서 주먹만 한 석탄에 구멍을 내 목탄 대신 사용한 것을 연탄의 효시로 본다. 구멍이 뚫린 모양이 연꽃 열매를 닮아 ‘연꽃 연탄’ 또는 ‘통풍탄’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1907년 일본에서 연탄 제조기가 발명돼 본격적으로 연탄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는 평양광업소가 제조한 관제(官製) 연탄이 서울과 평양 등 대도시에 처음 보급됐다. 위 광고에 나오는 관제 연탄은 일본식 연탄과 다른 벽돌 모양의 무연탄에 구멍을 두세 개 낸 2공탄, 3공탄 형태였다. 주로 일본인 가정에서 사용했고 일부 한국인 가정도 연탄을 연료로 썼다고 한다. 광고에는 ‘평양 해군 연료창 제품’이라고 명시했다. 또 ‘신속 배달’ 한다고 하면서 ‘하명차제(下命次第·명을 내리면 순서대로) 즉시 배달함’이라고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데 이는 일본인을 상대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1930년대에는 부산에서 일본인이 경영하는 삼국상회가 9공탄을 만들었지만, 이 또한 일본인 가정이나 산업용이었다. 광복 후 1947년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최초의 연탄 제조업체인 대성산업공사가 출범함으로써 우리 국민도 비로소 연탄의 혜택을 보게 됐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펜·총·빛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펜·총·빛

    펜의 오남용은 비극을 초래한다. 이 그림은 1914년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언론인 피살 사건을 소재로 한 것이다. 깃털 모자를 쓴 부인이 검은 프록코트를 입은 남자를 저격하고 있다. 화가는 신문 1면에 실린 삽화에서 구도를 따왔고, 인물 주위를 오색 동심원으로 둘러싸 총격에 따른 빛과 소리가 퍼져나가는 현상을 시각화했다. 피해자는 보수 신문 ‘르피가로’의 편집장 가스통 칼메트이고, 범인은 재무부 장관 조제프 카요의 부인 앙리에트였다. 부인은 사무실 앞에서 편집장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간 뒤 토시 속에 숨겨 온 연발 피스톨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네 발이 맞았고 칼메트는 여섯 시간 뒤 사망했다. 사건의 발단은 ‘르피가로’가 진보적 정치가 카요에 대한 악의적 비방을 계속했기 때문이었다. 카요는 군 복무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자는 국가주의 정책에 반대하고, 중산층의 이익에 반하는 소득세를 도입하려고 해 우익세력의 눈엣가시가 됐다. ‘르피가로’는 카요를 공격했을 뿐 아니라 앙리에트와 결혼 전 주고받은 연애편지를 공개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부당한 기사에 분개한 사람들이 기자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일이 잦았다. 결투는 법으로 금지돼 있었으나 양측이 은밀히 만나 벌이는 일을 막을 순 없었다. 대개 경상을 입히는 것으로 끝났지만, 때로는 치명적 사고로 이어지기도 했다. 1836년 ‘라프레스’의 발행인 에밀 드 지라르댕은 동료 신문기자의 사타구니를 총으로 쏴 죽였고, 1862년에는 ‘르스포르’의 편집자가 한 공작의 칼에 찔려 죽었다. 결투는 신문을 광고해 주는 효과도 있었지만, 위험이 뒤따랐기 때문에 일부 신문사는 사내에 펜싱 연습실을 설치했다. 앙리에트 사건은 국가주의와 계층을 둘러싼 사회적 대립과 이를 부추기고 편드는 언론의 문제를 보여 준다. 저격범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20세기 초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던 여성의 문제로 읽을 수도 있다. 부인은 체포돼 재판을 받았으나 ‘감정에 휩쓸리기 쉬운’, 다시 말해 심신이 미약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방면됐으니 아이러니하다. 미술평론가
  • [이은경의 유레카] 랜드마크에는 스토리가 필요하다

    [이은경의 유레카] 랜드마크에는 스토리가 필요하다

    초고층 건물의 시대다. 서울에는 높이 500m가 넘는 ‘타워’가 있고, 또 하나가 건설 중이다. 전북 전주에서는 높이 400m 타워 건축 계획을 놓고 공론화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모두 해당 지역의 ‘랜드마크’를 표방한다. 높은 건물은 어디서나 보이므로 위치 표시라는 원래 뜻의 랜드마크가 분명하다. 오늘날 랜드마크는 상징성, 대표성을 가진 구조물을 가리키는데 압도적으로 높다고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까?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1889년 이 탑이 완공되자 사람들은 처음 보는 높이에 압도됐고 열광했다. 300m라는 높이는 랜드마크 에펠탑의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사람들에게 에펠탑은 파리의 낭만, 예술, 추억과 함께하는 스토리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방문객들은 이 스토리를 계속 재생하고 다른 이들과 나눈다. 그래서 파리에 가 본 적 없는 사람에게도 에펠탑은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에펠탑의 설계자 알렉상드르 귀스타브 에펠은 이 탑 건축 당시 철골구조물 엔지니어로 유명했다. 그가 엔지니어가 된 1850년대 유럽에서는 철도 건설이 한창이었다. 철로를 깔기 위해 큰 강이나 절벽을 잇는 거대한 다리 공사가 계속됐다. 토목 현장은 에펠에게 일터이자 학교였다. 그런 에펠에게 프랑스 국력과 기술력을 내보일 프랑스 혁명 100주년 만국박람회의 기념 건축물로서 철탑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당시 철탑 건축은 첨단기술이었다. 앞서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에서는 주철 기둥에 벽과 천장을 유리로 만든 첨단 건축물 ‘수정궁’이 건축됐다. 수정궁은 길이 563m, 폭이 124m나 되는 넓은 구조물이었다. 대조적으로 에펠은 세계 최고 높이를 택했다. 이 높이는 오직 철골 구조로만 가능했다.에펠탑은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은 20년짜리 임시 구조물이었다. 그래서 안전과 기능이 강조됐고 외관을 다듬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 장식성이 강한 파리 시내의 석조 건물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흉물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에펠탑은 20년 후에도 살아남았다. 탑에서 사람들은 높이가 주는 엄청난 전망을 경험했다. 이 경험은 오로지 파리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에 시민들은 탑의 해체를 반대했다. 곧이어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에펠탑은 통신 시설로서의 새로운 쓸모가 생겼다. 이후 수십 년간 에펠탑은 전망대이자 통신탑 기능을 하고 있다. 랜드마크로서 에펠탑은 예술의 도시 파리를 상징한다. 전망대, 통신탑에 낭만, 아름다움 같은 감성과 예술성이 더해진 것이다. 먼저 에펠탑의 입지는 이 탑에 예술성을 준다. 만국박람회 이후 보존된 드넓은 광장은 탑의 높이에 걸맞은 열린 공간이다. 방문객은 이 광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사진을 찍고, 충분한 거리에서 눈앞을 가리는 방해물 없이 탑 전체를 작품처럼 감상할 수 있다. 이 시간은 에펠탑과 함께 기억된다. 19세기 말부터 엽서 열풍이 불었을 때 에펠탑 그림엽서와 사진엽서가 제작됐고, 에펠탑은 엽서의 사연과 함께 기억됐다. 1985년에는 조명을 시작해 에펠탑은 밤의 낭만에도 포함됐다. 엔지니어 에펠의 도전, 프랑스의 산업혁명과 민족주의, 해체 위기, 기능성, 더해진 문화와 예술 감성. 이 모든 것이 에펠탑이라는 하나의 매혹적인 스토리를 구성한다. 우리의 마천루 또는 특징 있는 건축물들은 이러한 스토리 경험을 주는가? 그렇지 않다면 마천루는 그냥 높은 구조물일 뿐이다.
  • [장동석 평론가의 뉴스 품은 책] 불완전하지만 믿을 만한 인류 역량의 결과물, 백신

    [장동석 평론가의 뉴스 품은 책] 불완전하지만 믿을 만한 인류 역량의 결과물, 백신

    6가지 백신이 세계사를 바꾸었다/김서형 지음/살림/266쪽/1만 6000원 인류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영국이 세계 최초로 백신 접종에 들어간 가운데,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해당 백신에 대한 데이터가 긴급승인 지침에 부합하며 안전성이 양호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2020년 벽두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사태가 2020년을 마무리하며 극복을 위한 디딤돌을 놓은 셈이다. 김서형 러시아 빅히스토리 유라시아센터 연구교수는 책을 통해 인류사를 바꾼 여섯 가지 백신과 그것이 이뤄 낸 역사를 조명한다. 천연두, 광견병, 결핵, 소아마비, 홍역, MMR(홍역·볼거리·풍진 혼합백신) 백신이다. 천연두는 현생 인류 탄생과 함께 기승을 부렸는데, 2세기 중후반 로마제국에 창궐해 무려 500만명 이상이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갈레노스 역병’이다. 16세기 아즈텍과 잉카 문명의 멸망 원인 중 하나도 천연두였다는 사실도 잘 알려졌다. 1790년대 후반 에드워드 제너가 종두법을 발견하고 널리 전파했지만, 19세기 초까지도 미국 사회에서 천연두는 ‘신의 형벌’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백신 접종은 그 형벌을 피하는 일이기 때문에 신의 의지에 반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 국민은 물론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도 천연두 예방접종 혈청을 맞도록 강권했다. 저자는 그래서 토머스 제퍼슨을 ‘천연두 대통령’으로 불러도 손색없다고 강조한다. 한때 ‘불주사’로 불렸던 결핵예방백신(BCG)은 로베르트 코흐와 알베르 칼메트의 집요한 연구 덕이다. 코흐는 1882년 결핵균을 처음 발견했고, 그에 관한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다. 틀린 부분도 있지만, 결핵 관련 연구를 촉발했고 결국 1921년 알베르 칼메트 등이 BCG를 발명한다. 전 세계 인구 중 20만명 이상이 결핵균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점에서 BCG는 보건의 중요성을 넘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저자는 현대 사회의 백신 논란도 피해 가지 않는다. 백신은 완벽한 치료제도 아니며 부작용도 있다. 그래서 저자는 전염병의 역사를 훑으며 이를 이기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백신이 태어났음을 강조한다. 백신이 한 사회, 넓게 보면 인류의 역량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여러 백신은 나름 믿을 만한 것이 아닐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이 서둘러 낮고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 고루 접종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한다.
  • 한중일 3국 다시 읽다…동아시아를 새로 쓰다

    한중일 3국 다시 읽다…동아시아를 새로 쓰다

    한중일 비교 통사/미야지마 히로시 지음/박은영 옮김/너머북스/404쪽/2만 5000원 유례없는 지배 영역을 구축한 몽골제국에 그늘이 점차 드리우고, 1368년 명이 결국 원을 교체한다. 원의 멸망 즈음 고려는 반원파의 영향력이 세졌고, 이성계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는다. 일본에서는 가마쿠라 막부가 원의 침입을 두 번이나 막아 냈지만, 대규모 군사 동원으로 불만이 팽배했다. 무로마치 막부가 가마쿠라 막부를 교체하고 들어서는데, 공교롭게도 조선 왕조와 마찬가지로 1392년이다. 중국의 정권 교체는 한반도는 물론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한국사만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좀더 높은 곳에서 보면 잘 보일 때가 있다. 미야지마 히로시 도쿄대·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신간 ‘한중일 비교 통사´에서 한중일 3국의 역사 비교로 동아시아의 올바른 역사상을 모색한다. 2002년 도쿄대 교수를 박차고 성균관대로 건너온 저자는 이 분야 유일무이한 거두로 유명하다. 책 서문에 “동아시아 3국 중에서 연구의 축적이 가장 방대한 일본과 중국 두 나라를 비교하면 그 차이가 컸다. 그런데 일본과 중국 사이에 한국을 두고 보면 중일 간 비교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을 깨닫는 일이 종종 있다”고 했는데, 일본인 역사가인 그가 왜 중국사, 한국사 연구에 몰두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저자는 전작 ‘나의 한국사 공부´(너머북스·2013)에서 삼국의 통사로 근세의 생동을 짚어 냈다. 중국의 집약적 도작에 따른 생산성 극대화와 인구의 급격한 증가, 그리고 유교를 중심으로 하는 당시 정치 체제 변화를 짚은 ‘동아시아 소농사회론’은 이번 책에서 좀더 넓어지고 깊어졌다. 책은 1부 ‘통사’와 2부 ‘주제사’로 구성했다. 14~19세기 전반을 다룬 통사에서는 과거·관료제와 사대부, 주자학 탄생이 불가분으로 연결된 ‘정치 이노베이션´을 제기한다. 14세기 원의 붕괴와 명청 교체에 걸친 동아시아 변화의 핵심에 주희의 주자학이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의 본래의 평등성을 전제로 하면서 공부를 통해 이를 깨치고 계급, 그리고 사회질서를 잡으려는 주자학은 당시 세계사적으로 가장 선진적인 이론 체계였다는 것이다. 한국은 중국 모델을 수용하면서도 한국만의 독자적 양상을 띠고 전개했지만, 일본은 무사 중심의 막번 체제로 정치 이노베이션이 18세기 들어서야 시작됐다.통사에서 도출한 핵심 주제를 엮은 2부에서는 서양에 치우친 동아시아 연구사를 비판하고, 경제 혁명과 집약적 농업의 성립, 그리고 국가의 토지 파악 방식 변화 등을 설명한다. 특히 서양의 시각에서 동아시아를 바라보며 경시하는 유럽중심주의가 얼마나 많은 해를 끼치고 있는지를 역설한 부분이 곱씹어 볼 만하다. 국내사 연구에선 지나치게 애국을 호소하는 천박함, 혹은 서양과 일본의 시각에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불쾌감이 양존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나아가 서양의 시각에서 역사를 보며 탈아시아에 안간힘을 쓰는 일본, 세계로 향하는 중국의 의도적인 역사 왜곡 등도 생각해 볼 문제다. 그런 점에서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자명하다. 한중일 역사를 함께 살피고 세계사와 비교하면서 동아시아의 진짜 정체성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통사를 통해 그동안 편향된 역사 연구관을 걷어 낸다는 점 하나로도 책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초 하나의 반짝임과 캘린더 속 달달함… 크리스마스의 위로

    초 하나의 반짝임과 캘린더 속 달달함… 크리스마스의 위로

    크리스마스 마켓 아쉬움 녹일 추억의 따스함… 천사들의 마법‘베를린에 살자’고 온 것이 지난해 12월이다. 베를린에서 남자친구를 만난 지 6개월 만에, 같이 살아 보자고 베를린으로 왔다. 이제 곧 1년. 두려움보다는 설렘을 더 많이 싸 가지고 왔던 지난겨울. 12월의 베를린은 반짝이는 조명이 가득하고, 여기저기 크리스마스 마켓이 많이 열려 아름다웠다. 오후 4시만 되면 해가 지는 이 암흑의 겨울에 12월은 그나마 위안이 되는 달이었달까. 하지만 올해는 그마저도 즐기기 어렵게 됐다. 젠다르멘마크트와 컬투어 브루어리 등 유명 광장에서 열리던 큰 크리스마스 마켓은 대부분 취소됐고, 연말 브란덴부르크문까지 행진하는 뉴 이어스 이브(새해 전야) 파티도 열리지 않는다. 11월 한 달 동안만 하기로 했던 록다운 기간도 12월 20일까지 연장됐다. “그럴 줄 알았어.” 사람들은 이제, 그러려니 받아들인다.●일요일마다 하나씩 켜지는 촛불 ‘어드벤트크란츠’ 그래도 숍들은 반짝인다. 이미 11월 초부터 분주했다. 아니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독일은 여름이 끝남과 동시에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것 같기도 하다. 10월부터 크리스마스 장식과 초를 팔고 꽃집은 크리스마스 화분인 포인세티아와 ‘어드벤트크란츠’로 가득하다. ‘어드벤트크란츠’란 녹색의 화환에 네 개의 초를 꽂아 둔 크리스마스 장식이다. 대림절(예수 성탄 대축일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성탄 전 4주간) 동안 집 안에 켜 둔다. 크리스마스 4주 전 일요일 초 하나에 불을 붙이고 3주 전 일요일에는 두 개, 2주 전에는 세 개, 그리고 크리스마스 바로 전 일요일에는 네 개 모두에 불을 켠다. 초의 길이가 다 다른 건 4주 전 일요일부터 하나씩 켜기 때문이다. 마지막 일요일에 초 네 개의 길이가 다 같아진다. 독일에선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화환을 산다. 전나무잎으로 만든 초록색 화환과 네 개의 초 장식은 완성품 형태로 꽃집과 슈퍼마켓에서 팔기도 하고 나무 화관과 장식품을 따로 사서 직접 만들 수도 있다. 전통적인 화환의 장식에는 네 개의 빨간 초와 솔방울, 시나몬 스틱, 말린 과일 등이 쓰인다. 꽃집에서도 이런 형태의 화환을 가장 많이 판다. 하지만 파란색이나 터키시블루, 금색의 장식 볼, 반짝이는 은색이나 금색 초 등으로 좀더 모던하고 시크한 느낌의 어드벤트크란츠를 살 수도 있다. 누구나 취향에 맞게 사거나 만들면 될 일이다. 대림절의 첫 일요일이던 지난 주말 직접 만든 어드벤트크란츠의 초 하나를 밝혔다. 남자친구는 초록과 빨강의 가장 전통적인 색으로 만들길 원했다. “빨간 초 안의 색은 하얀 색이면 좋겠다”고 한 건 어릴 때 매년 켜던 어드벤트크란츠의 초가 딱 그렇게 생겨서다. 시나몬 스틱은 향이 좋고 실제 먹을 수 있는 걸로 샀고, 솔방울은 집 근처 공원에서 주워 붙이자고 했다. 손가락에 금가루를 덕지덕지 붙여 가며 완성한 우리의 첫 번째 어드벤트크란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하루가 다르게 초가 줄어든다. 이러다간 두 번째 일요일이 되기도 전에 초가 바닥날 판이다.(물론 새로 사다 끼우면 된다.)●12월 매일 하나씩 열어 보는 재미 ‘어드벤트 캘린더’ 어른들이 어드벤트크란츠를 꾸밀 때 아이들은 어드벤트 캘린더를 목 빠지게 기다린다. 1부터 24까지 숫자가 순서 없이 적혀 있는 이 달력은 숫자의 칸마다 크고 작은 초콜릿이 들어 있다. 아이들은 12월 1일이 되면 이 달력의 첫 번째 숫자 1을 찾아 작은 문을 열고 초콜릿을 꺼내 먹는다. 이렇게 매일 숫자 하나씩을 열어 24일이 될 때까지 초콜릿을 꺼내먹는다. 숫자 중 24는 예수 탄생일 전날이고, 달력의 마지막 숫자이기도 해서 이 날짜에 가장 크고 좋은 초콜릿이 들어 있다. 어드벤트 캘린더는 아이들을 위한 사탕과 초콜릿이 주를 이루지만 요즘은 화장품과 향수, 명품 브랜드들도 자체 캘린더를 만든다. 베를린에서는 초콜릿 브랜드마다 앞다퉈 이 달력 상품을 만들고 슈퍼마켓에도 커다랗게 별도 코너가 생길 정도여서 다양한 어드벤트 캘린더를 살 수 있다. 요즘엔 한국에서도 이 어드벤트 캘린더가 인기라 독일에서 구매 대행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들었다. 몇몇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아닌 게 아니라 댓글이 600개씩 달려 있어 놀랐다.어드벤트 캘린더는 19세기와 20세기 독일의 루터교인들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숫자가 적힌 작은 천 주머니나 작은 구멍이 난 나무 상자 등을 주로 이용했고 독일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유럽 전역으로 전파됐다. 한 독일 친구는 자신이 어렸을 때 받았던 양말 모양의 어드벤트 캘린더 주머니를 아들에게 물려줘 이제는 그의 아들이 해마다 그 달력 주머니를 이용한다고 했다. 그가 보여 준 사진 속에는 대를 이어 걸려 있는 어드벤트 캘린더가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직접 만든, 40년도 더 된, 작고 오래된 24개 양말 주머니가 세월을 거슬러 앙증맞게 걸려 있었다.●크리스마스 마켓 취소됐지만 예정대로라면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토텐존탁(죽은 자들의 일요일), 그러니까 대림절 전주 일요일인 11월 20일부터 열렸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인형과 초, 모자, 머플러 등의 각종 상품을 만들어 파는 상인들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한데 어울리는 따스한 시장. 작년에 베를린에 오자마자 달려간 곳도 젠다르멘마크트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이었다. 그곳에서 겨울이면 빠질 수 없는 글뤼바인(포도주에 향신료를 더해 따뜻하게 데운 술)을 후후 불어 마시다가 엄청 키가 큰 두 명의 천사를 만났다. 장대를 신고 있는 천사는 조그만 가짜 발가락을 내밀며 성큼성큼 걸어 다녔다. 사람들은 그 천사들 아래에서 입맞춤을 하고 천사가 전해 주는 메시지를 들었다. “천사가 들고 있는 저 겨우살이 가지 아래서 키스를 하면 사랑이 오래간다는 전설이 있대. 겨우살이의 끈끈한 열매가 연인들의 사랑을 더 끈끈하고 오래도록 이어 준다는데?”●천사들이 내민 겨우살이잎에 입맞춤… 연인들의 사랑 이어 줄 전설의 마법 천사들이 내민 겨우살이잎 아래에서 우리도 입을 맞췄다. 한 천사가 “(남자를) 절대 놓치지 말라”며 파란 구슬을 우리 손에 꼭 쥐여 주었다. 밤에 서로 마주 보고 깨물어 먹으라고 했다. 구슬 안에 들어 있는 건 초콜릿이었다. 거창한 계획도 없이 독일에 온 내게 왠지 좋은 징조 같아 믿고 싶었다. 올해는 또 어떤 모습을 한 천사들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베를린에서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마켓은 가 볼 수 없게 됐다.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조용한 크리스마스 시즌을 보내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일주일씩 갔던 남자친구의 부모님 댁에도 가지 않기로 했다. 우리네 설날만큼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는 크리스마스 시기에 괜한 바이러스만 옮기고 오지 않을까 우려돼 내린 결정이었다. 남자친구의 아버지가 하루 종일 요리하던 칠면조 구이도,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당근 수프와 티라미수도 올해는 맛볼 수 없게 됐다. 생각해 보니 남자친구는 올해 한 번도 부모님을 뵙지 못했다. 여름에 잠깐 한국에 다녀온 나보다도, 그래서 잠깐이나마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온 나보다도 더 오래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다.올겨울엔 우리끼리 포이어창엔볼레를 여러 번 만들기로 했다. 뭉근하게 끓인 글뤼바인에 설탕을 얹고 럼을 부은 후 불을 붙여 마시는 술. 크리스마스와 새해에 특별히 만들어 먹는 이 따뜻한 와인을 자주 만들어 베를린에 남겨진 친구들과 나눠 먹기로. 그렇게 서로의 외로운 크리스마스를 따뜻하게 위로해 주기로. 이동미 여행작가 dongmi01@gmail.com
  • 코로나에 흔들리는 서방세계… 이제 그만 환상에서 깨어나라

    코로나에 흔들리는 서방세계… 이제 그만 환상에서 깨어나라

    계속 궁금했다. 왜 책 제목이 ‘웨이크업 콜’(우리 식으로는 모닝콜)일까. 이유는 하나다. “서구여, 이제 일어나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코로나19를 웨이크업 콜 삼아 서방 세계가 깨어날 시간이라는 것이다. 이 주문은 책의 맨 끝자락에 나온다. 책은 이처럼 국가 대항전 성격을 띠게 된 코로나19 전쟁의 중간 성적표를 먼저 짚고, 이를 토대로 서방 세계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코로나19가 처음 불거졌을 때만 해도 이 문제가 ‘중국의 체르노빌’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는 견해들이 우세했다. 하지만 중국은 비교적 잘 대처했다. 책이 제시한 수치로 보면 중국 사망자는 100만명당 3명이다. 한국(7명), 일본(5명)보다 낫다. 저자의 표현대로 “중국의 불확실성”을 감안해 이 숫자를 100배 늘린다 해도 벨기에(850명), 영국(650명), 미국(400명)보다 훨씬 잘 대처했다.물론 바이러스 전쟁의 승패를 말하기는 이르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 팬데믹 이후 도래할 긴축 경제 등 또 한 번의 승부가 남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저자는 “아시아의 뛰어난 성적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수십 년에 걸친 변화의 결과”라고 단정한다. 바이러스 전쟁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서방 세계가 승부를 뒤집기에 역부족인 그 무엇이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한 저자의 판단을 요약하면 결국 서방 세계는 ‘벌거벗은 황제’였다. 서구에선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좋고 가장 효율적이며 가장 발전된 사회라는 오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허리케인처럼 등장한 코로나19가 서구 사회의 지붕을 통째 걷어 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서구 사회가 얼마나 황폐해졌는지, 아시아 국가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한참 뒤에야 드러났을지 모른다.책은 서구 정부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일곱 가지로 정리했다. 민간 부문과 비교해 시대에 뒤처진 정부, 교육과 주택의 사례에서 보듯 민간 영역에 지나치게 개입하려는 오지랖 정부, 복잡한 절차와 규정이 얽힌 불투명 정부, 정부를 생계 수단으로 여기는 공공 부문 노동조합 등 이익집단에 발목 잡힌 정부, 남용된 연금제도에 허덕대는 노인복지 정부, 인재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지 못하는 인재 없는 정부, 그리고 좋은 정치인이 충분하지 않아 발생하는 지도자 없는 정부다. 서구의 지리멸렬은 중국에 좋은 기회가 됐다. 저자들이 우려하는 것도 사실 서구 정부들의 비참한 실패보다 중국의 상대적 성공이다. 이는 명나라 이후 500년 동안 잠자던 중국이 다시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책은 곳곳에서 한국 등을 성공 사례로 꼽고 있다. 아마 중국의 대척점에서, 국민들의 삶을 덜 억압하고도 전쟁의 승기를 잡아 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서방 세계가 가야 할 방향은 자명하다. ‘일곱 문제’의 반대쪽이다. 저자들은 ‘빌 링컨’(19세기 윌리엄 글래드스턴 영국 총리와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합친 것)이란 가상의 지도자를 내세워 서구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국가가 ‘전쟁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삶을 감시할 수 있지만 이는 조건부여야 한다며, 자유민주주의만이 해답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복원 마친 미국 데이턴미술관 소장 대형 금박 병풍 ‘해학반도도’ 공개

    복원 마친 미국 데이턴미술관 소장 대형 금박 병풍 ‘해학반도도’ 공개

    조선 말 왕실에서 유행했던 궁중 회화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 가운데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미술관의 소장품이 국내에서 1년 4개월 간 복원작업을 마치고 일반에 공개된다. 국립고궁박물관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특별전 ‘해학반도도, 다시 날아오른 학’을 4일부터 내년 1월 10일까지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연다고 3일 밝혔다. 해학반도도는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도(十長生圖)의 주요 소재인 학과 바다에 3000년마다 한 번씩 열매를 맺는다는 복숭아 나무를 더해 영원한 삶에 대한 염원을 담은 그림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조선 궁중에서 왕세자의 혼례 등 다양한 행사를 위해 여러 점 제작됐다. 이번에 공개되는 ‘해학반도도’는 배경에 금박을 사용한 매우 희귀한 작품으로, 그림 크기가 가로 720.5㎝, 세로 210㎝에 이른다. 현재 남아 있는 10여 점의 ‘해학반도도’ 가운데 가장 크다. 앞서 지난 2007년 미국 호놀룰루아카데미미술관이 소장한 ‘해학반도도’ 금박 병풍이 국내에서 보존처리 후 돌아간 적이 있다. 데이턴미술관의 ‘해학반도도’는 미국인 찰스 크로스 굿리치가 1920년대 구입했고, 그의 사후인 1941년 조카가 미술관에 기증했다. 굿리치가 이 그림을 어디에서 입수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미술관은 조선 회화에서 잘 사용하지 않은 금박 장식때문에 일본과 중국 그림으로 인식하고 있다가 2017년 이도 미사토 일본 교토공예섬유대학 교수와 김수진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연구원의 현지 조사 이후 한국 작품으로 분류했다.조사 당시 작품은 금박이 떨어져 나가거나 얼룩졌고, 균열이 생겨 갈라지는 등 훼손 상태가 심각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해 6월 데이턴미술관과 보존처리를 위한 업무협약을 하고, 7월에 그림을 국내로 들여왔다. 본래 12폭이었으나 미국으로 반출되는 과정에서 여섯 개의 패널 형태로 변형됐던 것을 이번에 다시 12폭으로 복원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해학반도도’를 별도 공간에 두고, 영상 자료를 통해 병풍의 세부와 보존처리 과정을 살펴볼 수 있게 전시를 구성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소장기관 관계자, 한국과 일본의 회화 전문가, 보존처리 담당 전문가 등의 해설을 담은 영상을 오는 25일까지 재단 유튜브 계정에 순차적으로 공개한다. 작품은 전시 후 미국으로 돌아간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013년부터 총 8개국 23개 기관을 대상으로 43건의 국외 문화재 보존·복원과 활용 사업을 지원해왔다. 국립고궁박물관은 2015년부터 보존처리를 마친 우리 문화재가 국외로 돌아가기에 앞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화보 아닌 일상복…‘19세기 패션’으로 사는 우크라이나 여성의 이유

    화보 아닌 일상복…‘19세기 패션’으로 사는 우크라이나 여성의 이유

    영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의상을 입은 젊은 여인을 길에서 만난다면 어떨까. 아마 영화나 화보 촬영장에서 빠져나온 배우나 모델 정도로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 실제로 19세기 의상을 재현해 일상복으로 입고 있는 주인공이 있다. 우크라이나에 사는 밀라 포보로즈뉴크(Povoroznyuk)는 SNS에서 ‘your_sunny_flowers’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올린 사진은 마치 과거를 테마로 한 화보를 보는 듯 19세기 유럽의 패션으로 즐비하다. 포보로즈뉴크는 매일 빈티지 드레스와 코르셋, 블라우스와 모자를 쓰고 여기에 걸맞은 액세서리를 고른다. 헤어스타일 역시 의상과 어우러지는 19세기 스타일을 고수한다. 그가 이렇게 옛 패션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12년 전 역사 재건 운동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중세부터 18, 19세기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페스티벌을 위한 옷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매일 이러한 의상을 입으며 생활하고 있다.포보로즈뉴크는 온라인 미디어 보어드판다와의 인터뷰를 통해 온라인과 오래된 잡지 등을 통해 옷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고 전하며 “8년 전에 만든 파란 가을 코트가 처음 입은 19세기 스타일의 옷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패션으로는 빅토리아 시대를 좋아하지만 역사적으로 에드워드 7세 시대를 좋아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 시대 여성들의 참정권 운동을 통해 여성이 권리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며 “많은 여성들이 이 시대의 여성들에게 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보로즈뉴크의 패션을 별나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서는 “두려움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기에는 시간은 너무 짧다”고 일축했다. 덧붙여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 필요가 있다”며 자신의 패션에 대한 소신을 드러냈다.강경민 콘텐츠 에디터 maryann425@seoul.co.kr
  • [성태윤의 경제 인사이트] 관료 역할 넘어설 재정준칙 필요해

    [성태윤의 경제 인사이트] 관료 역할 넘어설 재정준칙 필요해

    세계 대부분 국가는 국가부채 증가에 대한 한도를 정하거나 재정수지 적자의 폭을 제한하는 형식 또는 정부지출 규모 자체를 일정하게 관리하는 방식 등 재정을 제어하는 각종 준칙을 설정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국가는 단일 준칙이 아니라 몇 개의 규칙을 결합하는 형태로 일종의 복수 재정준칙을 적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재정 건전성 관리를 최우선 목표로 하는 경우는 국가부채 한도를 설정하거나 재정수지를 균형으로 관리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생각되지만 이 방식은 정부 규모의 무분별한 확대를 제어하는 측면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 경우는 직접 지출 자체를 통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따라서 자신의 목표하는 바에 실질적으로 부합되는 재정준칙을 제대로 정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재정준칙이 논의되는 가장 큰 이유는 국가부채 급증에 따른 건전성 우려지만, 우리나라는 그동안 명시적인 재정준칙이 없음에도 재정 건전성이 상당히 잘 유지된 국가 가운데 하나다. 역설적으로 재정 건전성 문제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명시적인 재정준칙의 필요성 제기가 약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는 재정수지 악화와 국가부채 급증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 ‘준칙이 없이도 그동안 상대적으로 잘 통제되던 재정이 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동안의 방식으로 한계가 있다면 향후 이를 어떻게 관리할지?’ 논의가 불가피하다.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에서 발견되는, 특히 수치에 기반한 준칙 명시는 없었지만, 행정부와 입법부가 연간 예산 편성과정을 통해 상호 견제하는 방식으로 실질적으로 재정을 관리했다. 또한, 1년 단위 예산편성 방식이 지니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중기재정계획을 수립해 왔는데, 국가재정법 제7조 ‘정부는 재정운용의 효율화와 건전화를 위해 매년 해당 회계연도부터 5회계연도 이상의 기간에 대한 재정운용계획을 수립하여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여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중장기 관점에서 재정계획을 행정부가 수립해 온 것이다. 또한, 방만한 개별 재정사업의 무분별한 확대를 제어하도록 1999년 이래 예비타당성조사를 실시해 총사업비와 재정지원이 일정 규모 이상인 사업에 대해서는 정책적ㆍ경제적 타당성을 조사했다. 이러한 체계 내에서 행정 관료조직이 암묵적이지만 실효적으로 예산을 통제하는 방식이 비교적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즉, 관료조직의 암묵적인 예산 통제가 명시적으로 수치가 제시된 재정준칙 기능을 사실상 수행하며 재정 건전성을 유지했다는 뜻이다. 관료제의 본질적인 의미를 제시한 19세기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근대 관료제의 중요한 요소로 ‘계산 가능한 규칙’이라는 개념에 기반한 객관적인 전문가로서의 특성을 지적했었는데, 특히 예산 분야를 중심으로 경제관료들을 통해 이러한 개념이 실효적인 재정준칙으로 발현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는 코로나19 사태와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경기 대응을 위해 일시적으로 재정수요가 확대되는 부분이 있고, 또한 고령화 등으로 사회 전반에서 구조적인 복지 수요 역시 증가하면서 재정 확대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재원 조달 방안은 마련되지 않았고 여기에 정치적인 이해에 따라 경제적인 타당성과 실질적인 효과를 확인하기 어려운 예산 수요까지 폭증하며 재정 건전성이 위협받고 있다. 정치적인 이해에 따라 예산이 폭증하며 재정 문제가 생기는 현상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전문성을 갖춘 행정 관료의 ‘계산 가능한 규칙’에 따라 예산이 통제되었다면 이제는 정치적인 의사결정이 예산 과정을 압도하며 전문 관료의 역할을 통한 재정 관리가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재정지출을 증가시키자는 요청은 누구나 쉽게 이야기하지만 이를 위해 세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굳이 아무도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까지 그 역할을 전문적인 관료조직이 실효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정치적인 이해가 예산편성과 세금의 결정 과정을 압도하면서 관료의 암묵적인 사명감을 넘어서는 명시적인 재정준칙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되고 있다. 그래도 지금은 적절히 예산과 지출을 제어하면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단계지만, 현재의 부채 증가 속도가 계속되면 준칙이 존재해도 의미 없는 시대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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