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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흰색 후드점퍼에 애교머리...‘2002년’ 김건희 여사 모습

    흰색 후드점퍼에 애교머리...‘2002년’ 김건희 여사 모습

    “김건희, 20년 전 아티스트였다”옛 사진 꺼낸 日 교수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20년 전 과거 사진이 공개됐다. 박유하 세종대 교수는 27일 페이스북에 김 여사에 대한 ‘쥴리’ 의혹을 언급하면서 “우연히 일본인 지인 페북에서 김건희 여사의 2002년 사진을 봤다”며 해당 지인의 페이스북 글과 김 여사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캡처해 공유했다. 김 여사의 사진은 일본 사진작가이자 도쿄예술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토키히로 사토가 올린 것이었다. 앞서 사토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 깜짝 놀랐던 이야기”라며 “2002년 하마다시 어린이 미술관이 애써주어 시모노세키-부산-서울까지 카메라 투어를 실시했다. 그때 동행하며 서포트해 준 한국인 아티스트 중에 김모 씨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그런데 그녀가 현재 대통령 부인이라는 정보가 들어왔다. 너무 놀랐다”고 적었다.사토 교수는 또 김 여사에 대해 “아티스트임에 틀림없었다”, “순수하고 전향적인 분이라고 생각했다”, “노력하는 분이었다. 아무튼 전 그렇게 느꼈다”고 전했다. 사토 교수가 공개한 과거사진에서 김 여사는 연두색 셔츠를 입고 위에 흰색 점퍼를 걸친 모습으로 사토 교수를 비롯한 일행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박유하 교수는 “그(김 여사)가 97년에 쥴리였다면 5년 후 이런 공간에서 이런 모습으로 보여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며 “이 뜻밖의 인연은 분명 젊은 김건희가 자기 일(미술)에 충실했기에 만들어진 인연이다. 이제 좀 그만하자. 부끄럽지 않나”라고 덧붙였다.한 달 만에 ‘외부활동’ 나선 김건희 여사 김 여사는 28일 한 달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윤 대통령과 김 여사는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차세대 이지스구축함 제 1번함인 정조대왕함(KDX-III Batch-II 제1번함) 진수식에 나란히 참석했다. 앞줄에 나란히 앉은 윤 대통령과 김 여사는 언베일링 세리모니로 정조대왕함이 모습을 드러내자 함께 박수를 보냈다. 진수식의 하이라이트인 진수선 절단은 김 여사가 맡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진수식에서 진수선을 절단하는 것은 아기의 탯줄을 끊는 것과 같이 새로운 배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군의 오랜 전통의식”이라며 “19세기 초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최초로 영국 군함의 진수식을 주관하면서부터 여성이 의식을 주관하는 전통이 수립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 여사는 윤 대통령 취임 후 역대 영부인 예방, 여당 중진 의원 부인 모임 등 활발한 외부활동에 나서다 지난달 나토 정상회의 동행 후 귀국한 이래 공개행보를 자제해왔다. 대통령실은 이날 외부 활동은 국가적 차원의 중요한 행사인 만큼 김 여사의 참석 자체에 대해선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등장 자체가 여론의 주목을 받아왔던 만큼 한달여만의 외부 행사 참석을 놓고 윤 대통령 국정지지율에 어떤 영향이 미칠 지 주목되고 있다.
  • [서울포토] 금도끼로 진수커팅하는 김건희 여사

    [서울포토] 금도끼로 진수커팅하는 김건희 여사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28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열린 정조대왕함 진수식에서 진수 도끼로 진수선을 자르고 있다. 진수선을 자르는 것은 아기의 탯줄을 끊는 것과 같이 새로운 배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으로 19세기 초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진수식을 주관한 이래 여성이 의식을 주관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 조선 궁중 문화재 ‘보록’ 마침내 영국서 고국 품으로

    조선 궁중 문화재 ‘보록’ 마침내 영국서 고국 품으로

    “우리 게이머들이 ‘우리가 같이 하는 일이지’ 하고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인기 온라인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를 서비스하는 라이엇게임즈의 후원으로 영국에서 환수한 유물 ‘보록’이 27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공개됐다. 보록은 왕과 왕비에게 존호(尊號), 시호(諡號) 등을 올리며 제작한 어보를 보관하던 외함이다. 환수한 보록은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되며 궁중 공예품의 발전 과정을 볼 수 있어 연구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록은 10년째 문화유산보호 및 지원 사업을 이어 오고 있는 라이엇게임즈의 기금으로 돌아온 여섯 번째 유물이다. 2014년 ‘석가삼존도’, 2018년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2019년 ‘척암선생문집 책판’, ‘백자이동궁명사각호’, ‘중화궁인’이 라이엇게임즈의 도움으로 환수됐다. 상당히 낯선 조합인 ‘외국계 게임 회사’의 ‘한국 문화유산 지원사업’은 구기향 사회환원사업 총괄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구 총괄은 “2011년 12월 한국에서 LoL을 서비스하면서 우리 회사다운 사회환원사업을 고민했다”며 “당시 구미호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 ‘아리’를 만들 때였는데 미국 본사에 아리의 한복에 대해 세세하게 조언하면서 딱 생각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놀이 문화를 만드는 회사의 문화유산 지원사업은 문화라는 틀 안에서 환상의 조합이 됐다. 시작은 했지만 진척이 쉽진 않았다. 여러 곳에 문의했지만 확실한 답을 주지 않았고 진의를 의심하기도 했다. 구 총괄이 문화재청 담당자를 만나 설득에 성공하면서 라이엇게임즈는 문화재청의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가 됐다. 문화재 환수뿐만 아니라 무형문화재 지원, 청소년 역사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누적 68억 7000만원을 지원했다. 환수가 필요하지만 도난 유출 등의 이유로 국고를 써도 될지 불분명할 때 라이엇게임즈의 기금을 쓴다. 이번에 환수한 보록은 영국의 한 갤러리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파악하고 라이엇게임즈에 지원을 요청하면서 돌아올 수 있었다. 구 총괄은 “코로나19로 해외 오프라인 경매도 줄고 출장도 힘들어지면서 언제 다시 인연이 될까 했는데 3년여 만에 만나게 돼서 뿌듯하다”며 웃었다. 라이엇게임즈의 지원사업은 게이머들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문화재 환수 소식에 젊은 게이머들은 “이게 내가 돈을 쓴 이유다”, “엄마 나 애국했어” 등의 반응을 남기며 뿌듯해한다. 고객들의 남다른 만족감은 다른 지역에 있는 라이엇게임즈들도 우수 사례로 연구할 정도다. 구 총괄은 “바르게 즐긴다면 게임은 즐거운 취미일 수 있는데, 게임을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있다”며 “‘게임 회사가 저런 일도 하네’라는 인식이 게이머 주변인들에게도 닿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우리 게임을 하고 계속해서 피드백을 주는 게 프로젝트를 이어 갈 수 있는 이유”라며 “문화유산 지원사업을 통해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알리고, 궁극적으로는 더 좋은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 LoL하는 당신이 애국자… 라이엇게임즈 6번째 환수 문화재 공개

    LoL하는 당신이 애국자… 라이엇게임즈 6번째 환수 문화재 공개

    “우리 게이머들이 ‘우리가 같이 하는 일이지’ 하고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인기 온라인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를 서비스하는 라이엇게임즈의 후원으로 영국에서 환수한 유물 ‘보록’이 27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공개됐다. 보록은 왕과 왕비에게 존호(尊號), 시호(諡號) 등을 올리며 제작한 어보를 보관하던 외함이다. 이번에 환수한 보록은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되며 궁중 공예품의 발전 과정을 볼 수 있어 연구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록은 10년째 문화유산보호 및 지원 사업을 이어 오고 있는 라이엇게임즈의 기금으로 돌아온 여섯 번째 유물이다. 2014년 ‘석가삼존도’, 2018년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2019년 ‘척암선생문집 책판’, ‘백자이동궁명사각호’, ‘중화궁인’이 라이엇게임즈의 도움으로 환수됐다. 상당히 낯선 조합인 ‘외국계 게임 회사’의 ‘한국 문화유산 지원사업’은 구기향 사회환원사업 총괄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구 총괄은 “2011년 12월 한국에서 LoL을 서비스하면서 우리 회사다운 사회환원사업을 고민했다”며 “당시 구미호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 ‘아리’를 만들 때였는데 미국 본사에 아리의 한복에 대해 세세하게 조언하면서 딱 생각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놀이 문화를 만드는 회사의 문화유산 지원사업은 문화라는 틀 안에서 환상의 조합이 됐다. 본사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막상 시작은 했지만 진척이 쉽진 않았다. 문화재청을 비롯해 관계기관 여러 곳에 문의했지만 확실한 답을 주지 않았고 진의를 의심하기도 했다. 구 총괄이 문화재청 담당자를 만나 설득에 성공하면서 라이엇게임즈는 문화재청의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가 됐다. 구 총괄은 “만나서 답이 없으면 거절하려고 하셨다고 하더라. 1시간 만남을 예정하고 오셨다가 2시간을 얘기하고 파트너가 됐다”고 웃었다. 문화재 환수뿐만 아니라 무형문화재 지원, 청소년 역사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누적 68억 7000만원을 지원했다. 환수가 필요하지만 도난 유출 등의 이유로 국고를 써도 될지 불분명할 때 라이엇게임즈의 기금을 쓴다. 이번에 환수한 보록은 영국의 한 갤러리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파악하고 라이엇게임즈에 지원을 요청하면서 돌아올 수 있었다. 구 총괄은 “코로나19로 해외 오프라인 경매도 줄고 출장도 힘들어지면서 언제 다시 인연이 될까 했는데 3년여 만에 만나게 돼서 뿌듯하다”며 웃었다.라이엇게임즈의 지원사업은 게이머들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문화재 환수 소식에 젊은 게이머들은 “이게 내가 돈을 쓴 이유다”, “엄마 나 애국했어” 등의 반응을 남기며 뿌듯해한다. 이날 보록 환수글에도 “이걸 위해 현질을 했다”, “내 돈이 헛되지 않았다”, “이 맛에 게임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고객들의 남다른 만족감은 다른 지역에 있는 라이엇게임즈들도 팬들의 반응을 공유하고 우수 사례로 연구할 정도다. 구 총괄은 “바르게 즐긴다면 게임은 어떤 것보다 즐거운 취미일 수 있는데, 게임을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있다”며 “‘게임 회사가 저런 일도 하네’라는 인식이 게이머 주변인들에게도 닿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우리 게임을 하고 계속해서 피드백을 주는 게 프로젝트를 이어 갈 수 있는 이유”라며 “문화유산 지원사업을 통해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알리고, 궁극적으로는 더 좋은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 고개 숙인 교황, 눈물 닦은 캐나다 원주민

    고개 숙인 교황, 눈물 닦은 캐나다 원주민

    “기독교인들이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악행에 대해 겸허히 용서를 구합니다.” 25일(현지시간) 캐나다 앨버타주(州)에 있는 매스쿼치스 공원의 연단에 오른 프란치스코 교황은 “슬픔과 분노, 수치심”을 힘주어 말했다. 캐나다 원주민 2000여명은 원주민 아동 수천명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숨죽인 채 연설을 지켜봤다. 노인들은 주름이 가득한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냈다. 교황청 소식을 전하는 바티칸뉴스와 미국 CNN 등에 따르면 이날 교황은 19세기부터 100여년간 자행된 캐나다 원주민 아동 학살과 학대에 대해 사과하는 ‘참회와 속죄의 순례’(penitential pilgrimage)의 일환으로 원주민 기숙학교 부지인 매스쿼치스 공원을 찾았다. 캐나다 정부는 19세기 후반부터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원주민들을 백인 사회에 동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원주민 기숙학교를 설립했다. 이들 학교는 대부분 가톨릭 교회가 위탁 운영했으며, 원주민 아동들을 부모와 떼어 놓은 채 언어 말살과 신체적·정신적 학대를 가했다. 총 15만명의 원주민 아동이 전국 139개 학교에 강제 수용됐으며 이곳에서 숨진 아동들은 암매장됐다. 지난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서스캐처원주 등의 학교 터에서 원주민 아동 유해가 1200구 넘게 발견되며 충격을 던졌다. 그간 캐나다 원주민 사회에서는 교황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교황은 “기숙학교에서 일어났던 파괴적인 경험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기독교인들이 권력의 식민지적인 사고방식을 지지한 것에 대해 깊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용서는 치유의 첫걸음일 뿐”이라면서 과거사를 조사하고 기숙학교 생존자들을 돕기 위한 “추가적인 조치”를 약속했다. 1970년대 초 기숙학교에 수용됐던 한 여성은 이날 현장을 찾아 “50년간 사과를 기다렸다”면서 “당시 기숙학교에 수용된 친구들이 트라우마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알코올중독 등에 시달렸다”고 안타까워했다.
  • [포착] “겸허히 용서 구합니다” 인디언 모자 쓴 교황…와병 중 속죄의 순례

    [포착] “겸허히 용서 구합니다” 인디언 모자 쓴 교황…와병 중 속죄의 순례

    “겸허히 용서를 구합니다.” 가톨릭교회 수장 프란치스코(86) 교황이 과거 교회가 저지른 악행에 대해 사과했다. AP통신은 교황이 100년 전 있었던 끔찍한 아동 학살을 사죄하기 위해 캐나다를 찾았다고 전했다. 교황은 25일(이하 현지시간) 캐나다 앨버타주(州) 매스쿼치스의 옛 기숙학교 부지를 방문해 “기독교인이 원주민들을 상대로 저지른 악에 대해 부끄러움을 가지고 겸허하게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자신의 사과가 “모든 원주민 공동체와 개인을 향한 것”이라며 지난 4월 바티칸에서 원주민 대표들에게 사과한 뒤에도 부끄러움이 계속 남아 있었다고 전했다. 교황은 “많은 기독교인이 원주민들을 탄압한 열강들의 식민화 사고방식을 지지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느낀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이어 “특히 당시 정부가 촉진한 문화 파괴 및 강제 동화 정책에 교회와 종교 공동체의 많은 구성원이 ‘무관심’으로 협력했다.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가톨릭 기숙학교의 악몽 “사제가 강간” 생존자의 증언지난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와 사스카치완주의 옛 원주민기숙학교 터 3곳에서 3~16세 사이 원주민 아동 유해 1200여구가 발견됐다. 모두 19세기 캐나다 정부가 인디언과 이누이트족 등 원주민 문화를 말살하고 백인·기독교 사회에 동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설립한 학교들이었다. 1881년~1996년까지 100여 년 동안 원주민 아동 15만명이 부모와 떨어져 전국 139개 기숙학교에 강제 수용됐다. 기숙학교 중 60% 이상은 가톨릭교회가 위탁 운영했다. 기숙학교 사제와 교직원은 원주민 아동에게 신체적, 정서적, 성적 학대를 가했다. 원주민 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문화 말살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숨진 아동은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고 암매장했다. 생존자 플로라(77)도 6살 때 ‘에르민스킨 인디언 기숙학교’(1895~1975)로 끌려갔다. 자녀의 기숙학교 입학을 거부하면 체포되던 때였기에 부모는 울며 겨자 먹기로 딸을 기숙학교로 보냈다.그곳에서 플로라는 이름 대신 ‘62번’이라는 번호를 부여받았고, 이후로 10년간 갖은 학대를 당했다. 24일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플로라는 “학교에선 원주민 언어인 크리(Cree)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농사와 집안일 등 강제노동에 우리를 동원했다”고 밝혔다. 또 허드렛일을 시키면서 먹을 것은 제대로 주지 않아 늘 배를 곯았다고 그는 회상했다. 플로라는 “소와 돼지, 닭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먹지 못했다. 사제와 수녀, 직원 차지였다”고 말했다. 학교 주변에 쳐놓은 전기 울타리 때문에 도망도 못 갔다고 그는 덧붙였다. 플로라는 사제의 성폭행에도 시달렸다.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된 플로라는 “너무 싫고 무서웠다. 밤만 되면 불안했다. 사제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고 속삭이듯 털어놨다. 이어 “그들은 어린 내 영혼을 죽였다”고 말했다. 16세 때 백인 가족 가정부로 일하면서 기숙학교에서 벗어났지만, 그곳에서의 상처는 그 후로 오랫동안 플로라를 괴롭혔다. 20대 초반 역시 기숙학교 생존자를 만나 결혼했으나 악몽 같은 기억이 부부를 괴롭혔고 결국 두 사람 다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다행히 플로라는 재활치료 후 술을 끊었지만 남편은 끊임없는 음주로 인한 간경화로 40세에 사망했다. 가톨릭교회의 외면기숙학교 생존자들은 2007년 원주민 단체 등의 도움을 받아 연방정부 및 교회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오랜 논란 끝에 캐나다 정부는 2008년 원주민 공동체에 공식 사과하고, 400억 캐나다달러(약 40조 6000억원) 규모의 배상을 했다. 이 ‘인디언 기숙학교 정착 협정’은 캐나다 역사상 가장 큰 집단 소송 합의로 기록됐다. 하지만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가톨릭교회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기숙사 운영에 동참했던 개신교회도 유감을 표했으나 가톨릭교회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원주민 공동체의 거듭된 사죄 요구에도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가톨릭 교계의 태도가 바뀐 건 지난해 원주민 아동 유해가 쏟아지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매우 고통스럽다”고 밝히면서부터다. 교황은 지난 4월 바티칸을 찾은 캐나다 원주민 대표단엔 “깊은 슬픔과 수치를 느낀다”며 공식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반드시 현장을 찾겠다고도 약속했다. 와병 중에도 약속 지킨 교황, 속죄의 순례그리고 교황은 그 약속을 지켰다. 만성 신경통으로 이달 초 콩고민주공화국과 남수단 방문을 취소했을 만큼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교황은 캐나다 방문을 강행했다. “캐나다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예정대로 가야만 한다”고 고집했다. 이탈리아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전용기에 탑승하기 전 캐나다 방문 목적을 묻는 취재진에게는 “참회와 속죄의 순례”라고 교황은 강조했다. 24일 오후 캐나다 앨버타주 공항에서 휠체어를 탄 채 항공기 리프트에 실려 나온 교황은 다음 날 원주민 아동 유해가 나온 앨버타주 마스크와시스에 있는 에르민스킨 인디언 기숙학교 터로 향했다. 거동이 불편해 앉고서는 것조차 수행원 부축을 받아야 했지만, 교황은 기숙학교 생존자와 원주민 지도자, 원로들 앞에서 사죄했다. 교황은 기숙학교 생존자인 원주민 추장 윌튼 리틀차일드가 건넨 전통 모자를 쓰고 추장과 다른 기숙학교 생존자 손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묘지가 형성된 기숙학교 터를 둘러보며 기도하고, 희생자들 이름이 적힌 붉은 천에도 입을 맞췄다. 앨버타주 주도 에드먼턴의 성심교회 예배당에 선 교황은 “기숙학교를 포함한 동화와 해방 정책이 이 땅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파괴적이었는지를 기억하는 일은 필요하다”며 “내가 이것을 인식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다. 또 “용서를 구하는 것이 사태의 끝이 아니다”라며 조치를 원하는 비판론자들에게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교황은 추가적인 조사가 이뤄지기를 희망하며, 생존자들이 치유와 화해를 위한 여정에 나설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교황 “많은 기독교인이 캐나다 원주민에 저지른 악 참회”

    교황 “많은 기독교인이 캐나다 원주민에 저지른 악 참회”

    프란치스코 교황이 25일(현지시간) 캐나다 앨버타주의 매스쿼치스를 찾아 가톨릭 교회가 저지른 죄악을 참회하고 고개 숙여 용서를 구했다. 이곳에는 가톨릭이 운영하는 원주민 기숙학교가 있었다. 지난해 5월부터 이곳을 비롯해 원주민 기숙학교가 있었던 세 곳에서 1200구 이상의 원주민 아동 유해가 발견돼 큰 충격을 안겼다. 이들 기숙학교는 19세기 초중반 캐나다 정부가 원주민들을 백인 사회에 동화시키기 위해 설립한 것으로 가톨릭 교회가 위탁 받아 운영했다.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떼어놓은 뒤 신체적·성적·정신적 학대를 가했다. 또 언어를 말살하고, 원주민들의 문화와 공동체를 파괴하는 무기로 기독교를 이용했다. 캐나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에 산재한 139개 기숙학교에 15만여명의 원주민 아동이 강제 수용된 것으로 추산된다. 교황은 “그토록 많은 기독교인이 원주민들을 상대로 저지른 악에 대해 겸허하게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발언이 “모든 원주민 공동체와 개인을 향한 것”이라며 지난 4월 바티칸에서 원주민 대표들에게 사과한 뒤에도 부끄러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많은 기독교인이 원주민들을 탄압한 열강들의 식민화 사고방식을 지지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느낀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교회와 종교 공동체의 많은 구성원이 무관심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당시 정부가 밀어붙인 문화적 파괴와 강요된 동화 정책에 협조한 방식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교황은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현장을 찾는 일이 과거의 상처를 덧나게 할 위험이 있겠지만 이를 기억하는 일은 올바른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숙학교를 포함한 동화와 해방 정책이 이 땅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파괴적이었는지 기억하는 일은 필요하다”며 “내가 이것을 인식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감사한다”고도 털어놓았다. 이어 종종 선교의 열정으로 자행된 이런 유린이 재앙적인 실수였다고 평가하면서 이런 행동이 사람과 그들의 문화, 가치를 침식했다고 지적했다. 기숙학교에서 인권 유린을 겪은 생존자들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점도 돌아볼 대목이다. 지난 세기 중반까지도 버젓이 이런 악행이 저질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교황은 “용서를 구하는 것이 사태의 끝이 아니다”며 교회의 추가 조치를 바라는 비판론자들과 전적으로 같은 생각이란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추가적인 조사가 이뤄지기를 희망하며, 생존자들이 치유와 화해를 위한 여정에 나설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약속했다.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상추와 쌈밥/전 국립고궁박물관장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상추와 쌈밥/전 국립고궁박물관장

    은퇴 후 조그만 텃밭에 상추며 고추, 들깨, 쑥갓, 취나물, 호박 등을 심어 먹는 재미는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갓 따온 상추에 고기를 싸 한입 먹을 때 아삭아삭 씹히는 맛은 싱그러운 자연의 맛 그 자체다. 하지만 폭염과 이른 장마로 자고 나면 치솟는 채소 가격 때문에 그 흔한 상추가 ‘금추’가 된 지 오래다. 음식점에서 상추를 더 달라 하기가 미안할 정도다. 쌈이란 무엇을 싼다는 뜻이다. 푸성귀에 밥과 양념장을 얹어 싸서 먹는 쌈밥은 우리만의 독특한 음식 문화다. 특히 쌈은 향과 씹는 맛, 혀에 닿는 촉감 등이 좋아 별미로 즐겨 먹었다. 상추는 청채라 부르고, 날로 먹는다 해 생채라 했는데, 고려시대 토속어로는 ‘부루’, 한자어로는 와거(??)라 했다. 우리는 언제부터 상추를 먹기 시작했을까. 그 역사는 고려시대로 올라간다. 상추를 생채 음식으로 먹었다는 기록이 1236년쯤 간행된 ‘향약구급방’에 전한다. 문인 이규보(1168∼1241)는 처가살이를 하다가 말년에 채마밭을 일구며 전원생활을 했다. 그는 오이·가지·무·파·아욱·박 등 여섯 가지 채소를 직접 심고 길러 먹는 즐거움을 ‘가포육영’(家圃六詠ㆍ집안 채마밭 여섯 노래)이란 시로 ‘동국이상국집’에 남겼는데, 요즈음의 텃밭을 보는 것 같다. 실학자 한치윤도 ‘해동역사’에서 청대 문헌 ‘천록여식’을 인용해 고려 상추는 품질이 좋아 천금을 줘야 구할 수 있을 만큼 값이 비싸다는 의미로 ‘천금채’라고 했다. 고려 때는 원나라로 간 공녀들이 고국을 그리워하며 상추를 재배해 쌈으로 먹었는데, 일명 고려양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하기도 했다. 원나라 유학자인 마단림(1254~1323)의 ‘문헌통고’에 의하면 “고려 사람들은 생채로 밥을 싸 먹는다”고 했다. 또 원나라 중기 양윤부는 ‘원궁사’의 난언잡영에서 “해당화는 꽃이 붉어 좋고 살구는 누레서 보기 좋구나. 더 좋은 것은 고려의 상추로서 마고의 향기보다 그윽하구려”라는 시를 읊고, 고려 사람들은 날채소에 밥을 싸서 먹는다고 했다.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상추와 쌈밥은 취식법으로 널리 퍼졌다.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소채 가운데 잎이 큰 것은 모두 쌈을 싸서 먹는데, 상추쌈을 제일로 친다고 했다. 다산 정약용이 해남으로 귀양 가서 집으로 보낸 편지를 보면 ‘여기는 반찬이라고는 별로 없어서 상추에 그냥 밥을 싸 먹는다’고 한탄했다. 조선 헌종 때 정학유의 ‘농가월령가’에 나오는 “아기어멈 방아 찧어 들바라지 점심하소. 보리밥 파찬국에 고추장 상치쌈을 식구들 헤아리니 넉넉히 준비하소”라는 5월의 시는 흔히 시골에서 들일하다 보리밥에 상추나 풋고추, 푸성귀 등을 따다 고추장, 된장 찍어 한입 가득 싸 먹는 들밥을 연상시킨다. 19세기 말의 요리책 ‘시의전서’에서의 상추쌈·곰취쌈은 나물을 그대로 쓴 것이다. 조선 후기 문신 서명응은 ‘고사십이집Ⅰ’에서 곰취쌈·깻잎쌈은 잎을 삶거나 쪄서 먹는다고 했다. 쌈을 싸 먹을 때 입이 터지도록 벌리는 것이 보기 흉했던지 실학자 이덕무(1741~1793)는 상추쌈 먹을 때 각별히 조심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염치없는 사람을 두고 속담에 “눈칫밥 먹는 주제에 상추쌈까지 먹는다”고 했으며, 입을 크게 벌려 쌈을 먹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조선시대 요리책에서도 밝히고 있다. 상추쌈은 왕실에서도 즐겨 먹었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숙종 때 대왕대비인 장렬왕후의 수라상에 상추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실수로 상추에 담뱃잎이 섞였는데, 담당자를 엄중하게 처벌토록 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상추쌈은 왕실을 비롯해 일반인들까지 모두 즐겨 먹는 국민 음식이었다.
  • 리투아니아가 화물 운송 막지 않기로 한 칼리닌그라드는 어떤 곳?

    리투아니아가 화물 운송 막지 않기로 한 칼리닌그라드는 어떤 곳?

    리투아니아가 러시아의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에로의 철도 화물 운송을 더 이상 막지 않기로 했다. 유럽 지도를 보면 칼리닌그라드는 아주 특이한 러시아 땅이다. 본토와 직접 연결돼 있지 않다. 북쪽과 동쪽은 리투아니아에, 남쪽은 폴란드에 꽉 막혀 있다. 두 나라 모두 유럽연합(EU) 회원국이다. 러시아를 편드는 벨라루스는 직접 국경을 맞대지 않고 ‘수왈키 갭’이란 것을 통해 잇닿아 있다. 옛 이름은 쾨니히스베르크, ‘왕의 산’이란 뜻으로 1255년부터 도시가 형성됐다. 1724년 이마누엘 칸트가 이 도시에서 태어나 평생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도시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19세기 동프로이센과 러시아에 철도망이 개통되면서 곡물·씨앗·아마·대마 등 러시아의 작물을 수출하는 기지로 번성했다. 해군 및 육군의 1급 요새로 성장했다. 1차 세계대전 때는 러시아의 포위 공격을 이겨냈으나 2차 세계대전 때는 적군의 포위 공격에 완전히 파괴됐다. 포츠담회의 결과로 소련에 양도됐다. 북해를 접해 일년 내내 얼어붙지 않는 항만을 러시아에 제공하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EU의 러시아 제재 이행 차원에서 지난달 18일부터 러시아가 리투아니아 철로를 통해 칼리닌그라드로 화물을 운송하는 것을 막았다. 칼리닌그라드로의 화물 운송을 리투아니아 육로와 철로에 의존하는 러시아는 철도 운송길이 막히자 거세게 항의하며 리투아니아에 보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러시아 당국은 철도 운송 차단 조치가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화물 운송 절반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투아니아는 15% 정도만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유럽의 개방과 하나됨을 지향하는 유럽 통합의 정신을 정면으로 짓밟는다는 반론이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100만명이나 되는 칼리닌그라드 주민들의 고통을 가중시켜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유도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도화선에 불을 지펴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지난주 EU는 리투아니아를 경유해 칼리닌그라드로 향하는 화물 제재는 도로에만 적용되는 까닭에 러시아가 리투아니아 철로를 이용해 칼리닌그라드에 시멘트, 목재, 술 등을 실은 화물을 운송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침을 발표한 데 따라 리투아니아가 더 이상 철로 화물 운송을 막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만타스 두바우스카스 리투아니아 국영철도 화물 운송회사 대변인은 “오늘 일부 화물이 운송될 수 있다”며 고객들에게 운송 재개를 알렸다고 러시아 국영 RIA 통신은 전했다. 타스 통신은 칼리닌그라드 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시멘트를 실은 화물열차 60대가 곧 칼리닌그라드로 향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 [씨줄날줄] 왕도의 복원/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왕도의 복원/박홍환 논설위원

    조선 7대 임금인 세조는 거처를 법궁(法宮)인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 후원에 연못을 파고 전각을 세워 휴식과 놀이, 재충전의 공간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 동궐로 불린 창덕궁과 창경궁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와 끊김 없이 연결돼 있었으니 임금들은 산책하듯 북신문을 거쳐 종묘를 오가며 선대의 업적을 항시 잊지 않았을 것이다. 그 길은 임금의 길, 다시 말해 왕도(王道)와 다름없었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연결돼 있던 창덕궁·창경궁과 종묘는 하지만 일제가 1932년 종묘관통도로(현 율곡로)를 개설하면서 끊어졌다. 이로써 창덕궁·창경궁을 거쳐 종묘로 이어지는 북한산 주맥이 끊겼으니 명산 봉우리마다 쇠말뚝을 박아 민족 정기를 끊으려 했다는 일제의 음모설이 여기까지 미쳤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일제는 창경궁을 놀이공원으로 격하시켰으니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일제가 갈라놓은 창덕궁·창경궁과 종묘가 90년 만에 다시 연결됐다. 공사 착수 12년 만이다. 율곡로를 터널로 만들어 지하화하고 그 위에 8000㎡의 녹지를 조성했고, 북신문도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 다분히 왕도의 복원이라고 할 만한데 단순히 왕의 길을 복원했다는 의미를 넘어서길 기대한다. 동양문화권에서 왕도는 임금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뜻한다. 유가에서는 인과 덕, 의를 근본으로 삼아 천하를 다스리는 도리라고 했다. 힘으로 다스리는 패도와는 상반된 개념이다. 그런 왕도를 복원해 백성들에게 되돌려 준다면 그런 태평성대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영국 런던 서부 첼시와 풀럼 지역에는 진짜 왕의 길, 즉 킹스로드가 있다. 17세기 중엽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아일랜드를 다스린 찰스 2세의 개인 도로로 이용됐고, 19세기 중엽까지도 영국 왕실 일가에게만 열려 있던 길이라고 한다. 이후 민간에 개방된 왕의 길에는 문화계 인사들이 몰려들었고, 지금은 각종 문화와 패션의 거리로 바뀌었다. 90년 만에 연결된 창덕궁·창경궁과 종묘. 단순한 연결에 그치지 않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휴식과 재충전을 할 수 있는 길이 하루속히 열리기를 고대한다.
  • PTSD·신경불안… ‘비정상’ 낙인 해체한 전쟁의 역설

    PTSD·신경불안… ‘비정상’ 낙인 해체한 전쟁의 역설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주인공을 통해 장애는 극복할 대상이 아닌 인간을 구성하는 한 요소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레이디 가가나 마이클 펠프스 같은 유명인도 각각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나 주의력결핍장애(ADHD)를 공개하는 데 비해 한국 사회에선 여전히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낙인과 혐오가 가득하다.정신 보건을 연구하는 미국 문화인류학자 로이 리처드 그린커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정상은 없다’를 통해 사회 통념상 ‘비정상’인 사람들에게 문화가 어떻게 낙인을 찍어 왔고 낙인을 없애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 왔는지를 추적한다.실제 자폐증 딸을 키운 경험이 있는 저자는 자본주의와 전쟁, 의료화의 세 측면에서 정신 질환과 장애에 대한 낙인의 역학을 탐구한다.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성이 없다는 것은 질병으로 여겨졌고 여성은 출산만 하는 동물적 본성에 더 가까운 존재였다. 이런 시각은 인종주의와 결합해 사라 바트만이라는 19세기 남부 아프리카 여성은 영국 런던에서 알몸으로 대중들 앞에 전시됐다. 당시 흑인 여성은 유럽인과 종이 다른 원시적 인체 구조일 뿐이었다. 우생학자는 조현병을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집단의 성생활, 결혼과 출산 규제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했고, 생물학자는 유색인종을 원시적이라고 비하하는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했다. 켈로그의 ‘콘플레이크’(시리얼)는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이 성욕을 억제한다는 생각에 따라 20세기 초 정신 질환으로 여겼던 수음(자위행위)을 줄이기 위한 발명품이었다.저자는 ‘군진 정신의학’을 통해 전쟁이 정신적 문제에 대한 낙인과 수치심을 줄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베트남전쟁을 통해 PTSD가 조명받았는데, PTSD는 개인의 고유한 성격보다 환경적 스트레스에 원인을 돌림으로써 정신병 환자라는 낙인을 희석시키는 역할을 했다. 6·25전쟁 때는 심리 치료의 핵심인 대화 요법이 일상화됐다. 많은 정신보건학자들은 정신 질환을 뇌의 장애로 이해하고, 뇌를 치료함으로써 낙인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신 질환을 당뇨나 심장병처럼 분류하려는 시도에 저자는 반대한다. 복잡한 유전적 특징은 정신 질환 원인의 일면일 뿐이며, 임박한 정신 질환을 예측할 수 있는 검사는 없다. 인간의 뇌는 다른 장기와 달리 쉽게 해부할 수도 없다. 저자는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사람을 그의 뇌로 환원하는 것은 누군가를 그 사람의 유전자나 인종, 종교, 성별, 성적 지향으로 환원하는 것만큼이나 단순하고 비인간적이라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저자가 2006~2011년 한국에서 진행한 자폐증 연구도 흥미롭다. 한국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자폐증으로 진단받길 거부하고 유전과 연관성이 적은 ‘반응성 애착장애’(RAD) 진단을 받으려는 경향이 있다. 자식이 자폐아로 낙인찍힐 경우 혈통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여겨져 다른 자식의 혼사에도 악영향을 줄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항정신병약의 개발로 많은 환자가 시설을 떠나 통원치료를 할 수 있게 함으로써 불안과 정신병을 줄였고, 일본에서 2002년 정신분열증을 ‘통합실조증’으로 바꿔 불러 치료 가능한 질환으로 인식하게 된 변화에 주목한다. 생생한 사례와 명쾌한 해설을 따라가다 보면, 정신 질환에 새겨진 낙인을 해체하는 일은 결국 우리의 몫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 한복 입은 멋진 당신, 어엿한 국가 문화재

    한복 입은 멋진 당신, 어엿한 국가 문화재

    앞으로는 한복을 입는 문화 자체가 국가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20일 “‘한복생활’을 신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한복생활은 바지·저고리 또는 치마·저고리로 된 한복을 지어 입고 예절·격식·형식이 필요한 의례·관습·놀이 등에 맞춰 향유하는 문화를 뜻한다. 쉽게 말해 일상에서 한복을 입고 뭔가를 하는 그 자체다. 지난 3월 ‘한복입기’라는 명칭으로 지정 예고됐지만 무형유산으로서 한복의 특성 및 관련 문화를 포괄할 필요가 있는 점, 한복을 향유하는 문화가 포괄적으로 고려돼야 하는 점 등의 이유로 ‘한복생활’이 명칭이 됐다. 한복생활은 명절뿐만 아니라 돌잔치, 결혼식, 제례 등의 행사를 통해서도 꾸준히 행해지고 있다. ‘설빔’, ‘추석빔’처럼 명절에 새로 한복을 지어 입으며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 한복생활은 단순히 한복을 입는 것을 넘어 생활과 의식 등과 결부되는 중요한 무형 자산이다. 19세기 말 서양식 의복이 도입되면서 의생활에도 변화가 생겼지만 여전히 의례별로 예를 갖추는 차원에서 한복을 입는 근간이 유지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한복생활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한반도 내에서 전승되고 있다는 점, 고구려 고분 벽화 등 관련 유물과 기록이 확인되는 점, 전방위적으로 학술연구가 왕성하고 앞으로도 연구자료로서 가능성이 큰 점 등을 고려할 때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있다”고 전했다. 다만 한복생활은 국민이 보편적으로 향유하는 문화라는 점에서 특정 보유자와 보유 단체는 인정하지 않고 공동체 종목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전통문화가 후세에 전승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갈 예정이다.
  • ‘한복공정’ 논란 끝낼까… ‘한복생활’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한복공정’ 논란 끝낼까… ‘한복생활’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개회식 당시 한복을 입은 중국 출연진의 등장은 ‘한복공정’ 논란으로 번졌다. 우리 고유의 전통 의상인 한복을 마치 중국 전통 의상인 것처럼 전 세계에 소개한 장면은 많은 한국인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한복공정’을 둘러싼 논란을 정리할 수 있게 앞으로는 한복을 입고 생활하는 것이 국가무형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20일 “‘한복생활’을 신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한복생활은 바지·저고리 또는 치마·저고리로 된 한복을 지어 입고 예절·격식·형식이 필요한 의례·관습·놀이 등에 맞춰 향유하는 문화를 뜻한다. 쉽게 말해 일상에서 한복을 입고 뭔가를 하는 그 자체로 볼 수 있다. 지난 3월 ‘한복입기’라는 명칭으로 지정 예고됐지만 무형유산으로서 한복의 특성 및 관련 문화를 포괄할 필요가 있는 점, 한복을 향유하는 문화가 포괄적으로 고려돼야 하는 점 등의 이유로 한복생활이 최종 명칭이 됐다.평창올림픽 공연에 등장했던 것을 비롯해 한복을 입고 생활하는 문화는 명절뿐만 아니라 돌잔치, 결혼식, 제례 등의 행사를 통해서도 꾸준히 행해지고 있다. ‘설빔’, ‘추석빔’처럼 명절에 새로 한복을 지어 입으며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기도 했다. 19세기 말 서양식 의복이 도입되면서 의생활에도 변화가 생겼지만 여전히 의례별로 예를 갖추는 차원에서 한복을 입는 근간이 유지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한복생활은 단순히 한복을 입는 것을 넘어 생활과 의식 등과 결부되는 중요한 무형 자산이다.  문화재청은 “한복생활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한반도 내에서 전승되고 있다는 점, 고구려 고분 벽화 등 관련 유물과 기록이 확인되는 점, 전방위적으로 학술연구가 왕성하고 앞으로도 연구자료로서 가능성이 큰 점 등을 고려할 때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있다”고 전했다. 다만 한복생활은 전 국민이 보편적으로 향유하는 문화라는 점에서 특정 보유자와 보유 단체는 인정하지 않고 공동체 종목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전통문화가 후세에 전승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갈 예정이다.
  • 고민정 1인 시위에 박민영 “누가 보면 공채로 대변인 된 줄”

    고민정 1인 시위에 박민영 “누가 보면 공채로 대변인 된 줄”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사적 채용’ 논란 사과를 촉구하며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것 관련해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누가 보면 고민정 의원께서 공채로 청와대 대변인 되신 줄 알겠다”고 비꼬았다. 박 대변인은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 의원의 1인 시위 관련 글을 공유하며 이같이 비판했다. 이어 “‘대통령의 숨결’ 타령하며 대통령과의 사적 친분이나 과시하시던 분이 사적 채용을 문제 삼는 건 대체 무슨 자기 부정 말이냐”며 “참 보기 딱하다”고 일침했다. 박 대변인의 이같은 글은 고 의원 역시 문재인 정부 때 공채를 통해 청와대 대변인이 된 것이 아닌 만큼 대통령실의 사적 채용 논란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 의원은 전날 오전 8시부터 약 1시간 동안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대통령,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고 의원은 사과와 함께 인사 책임자인 대통령 비서실장, 인사·총무비서관의 경질도 요구했다. 고 의원은 “잇따른 사적 채용과 지인 찬스 논란 등으로 정부 인사 기준과 검증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데도 대통령실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면서 “대통령 순방에 민간인 수행 논란을 자초한 당사자인 인사비서관과 대통령 친인척과 지인 등 사적 채용을 허용한 총무비서관, 모든 논란의 최종 결재권자인 비서실장의 책임을 물어 경질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고 의원은 매일 오전 8시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1인 시위’를 지속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윤 대통령의 친인척, 지인 등이 대통령실에 근무하는 것 등을 두고 사적 채용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날 윤 대통령의 검찰 시절 측근 인사로 알려진 주기환 전 광주시장 후보의 아들 주모씨가 대통령실에 근무 중인 것으로 추가로 알려지면서 야권 등에서는 ‘사적 채용’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윤 대통령이 검찰 재직 당시 인연이 있는 주 전 후보의 아들 주씨는 대통령실에 6급 직원으로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 적극 반박…“정권교체에 공헌 인정”강승규 수석 “대통령실은 엽관제” 대통령실은 적극 반박에 나섰다. 강인선 대변인은 전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에서 주모씨의 대통령실 근무에 대해 “주씨는 일정기획팀 일원으로 대선 당일까지 근무한 정권 교체에 공헌한 대선 캠프의 핵심 청년 인재”라고 설명했다. 또 “주씨는 8달 넘는 시기 동안 일정팀의 막내로 근무했고 살인적인 업무를 훌륭히 소화했다”며 “마땅히 노력과 능력을 인정받아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합류했고 대통령실에도 정식 채용됐다”고 강조했다. 강 대변인은 “대선 기간 내내 묵묵히 일한 실무자들에게 정당한 기회를 주는 것이 공정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대통령실 채용 과정에 대해 일방적이고 무차별적으로 의혹을 제기한다면 국민께서는 어쩌면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표했다.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도 20일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대통령실은 공개 채용 제도가 아니고 비공개 채용 제도, 소위 말하는 ‘엽관제’다. 비공개 채용이 공적 절차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라고 사적 채용 논란 진화에 나섰다. ‘엽관제’란 19세기 유럽에서 정권을 잡은 개인이나 정당이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직을 분배하던 정치적 관행이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나 후보가 선거 운동원, 혹은 적극적인 활동으로 승리의 공신이 된 이들을 관직에 임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강 수석은 현재 논란이 불거진 이들이 “검증과 여러 가지 자질, 능력 등을 평가한 뒤에 채용됐다”며 “측근 지인 등을 비밀리에 채용한 것처럼 프레임을 씌워 보도하고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 “대통령실 채용은 ‘엽관제’…사적 채용 프레임 부적절”

    “대통령실 채용은 ‘엽관제’…사적 채용 프레임 부적절”

    윤석열 대통령실의 ‘사적 채용’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인이 채용됐다는 것을 사적 채용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20일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대통령실은 공개 채용 제도가 아니고 비공개 채용 제도, 소위 말하는 엽관제”라며 “비공개 채용이 공적 절차를 통해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엽관제’란 19세기 유럽에서 정권을 잡은 개인이나 정당이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직을 분배하던 정치적 관행이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나 후보가 선거 운동원, 혹은 적극적인 활동으로 승리의 공신이 된 이들을 관직에 임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강 수석은 현재 논란이 불거진 이들이 “검증과 여러 가지 자질, 능력 등을 평가한 뒤에 채용됐다”며 “측근 지인 등을 비밀리에 채용한 것처럼 프레임을 씌워 보도하고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항변했다. 그는 ‘사적 채용에 대한 비판은 공채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아니라 사적인 인연이 있는 사람을 채용한 것에 대한 것’이라는 진행자의 말에 “대통령실 구성원칙인 엽관제에 의해서 캠프 등에 참여했고 적극적인 지지자들 그중에서 능력 등이 인정된 분들”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강릉시 선관위원의 아들인 우모씨가 대통령실 행정요원으로 채용된 데에는 “아버지가 선관위원이었다는 것과 우 행정관이 윤석열 대통령 선거캠프에 참여한 것과는 전혀 이해충돌이 없다”고 했다. 우씨가 아버지의 회사에서 ‘감사’로 일해 겸직 문제가 불거진 데에는 “검증 과정에서 다시 낙마해 채용이 되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에 두 달 정도 겸직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며 “완전 채용이 되면 그 때 정리를 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극우 유튜버 안정권씨의 누나 안모씨가 채용된 데에 대해서도 “검증에서 적절히 다루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의 검증시스템에 대한 다소 약간의 틈이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다소 우파 지향적인 것을 이해충돌로 다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선거 캠프 때 함께 일한 동지들…정당한 기회주는 것이 공정” 현재 대통령실은 채용 논란이 된 이들은 모두 윤 대통령의 경선 캠프 때부터 일했으며 함께 선거를 치렀기 때문에 사적채용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윤 대통령 역시 “열심히 한께 선거운동을 해온 동지”라고 강조했다. 강 수석은 논란이 된 인물들에 대해 ‘선거 캠프에 합류해서 공식적으로 업무를 부여받아서 일을 했는데 이 과정이 어떻게 되는 건지를 좀 알고 싶다’는 질문에 “선거 캠프를 처음에 대통령 선거캠프든 지방자치단체장 캠프든 선거캠프가 성공을 할지 여부는 굉장히 불확실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거캠프라는 것은 상당 기간 적게는 6개월에서 많게는 1년에서 2년 기간 동안 자원봉사자로 운영되는 되는데 이런 좋은 인재들이 처음부터 1년이든 6개월이든 무보수로 자원봉사로 일하는 그런 요원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그렇기 때문에 선거캠프에 많은 분들이 후보라든지 또는 거기에 처음에 참여한 저 같은 경우의 지인들이 참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도 전날 “대선 기간 묵묵히 일한 실무자들에게 정당한 기회를 주는 것이 공정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런데 요즘 이런 방식으로 대선 캠프에서 희생, 봉사하고 일을 같이 했던 실무자들이 대통령실에서 일하는 것을 ‘사적 채용’이라고 하는, 이전엔 전혀 들어본 적 없는 그런 틀로 호도하는 것은 대선 승리를 위해 헌신한 청년에 대한 역차별이라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강 대변인은 “대선 과정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기존 경력만 가지고 채용한다면 오히려 그게 불공정할지도 모르겠다”며 “돌아보면 역대 모든 대통령실은 대통령과 함께 선거를 한 사람들이 주축이 돼 꾸려왔고 과거 어떤 정부에서도 선거때 묵묵히 일한 청년 실무자를 상대로 사적채용이란 무차별적인 공격을 한 사례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특혜라기보다 선거캠프나 인수위 등에서 노력한 것에 대한 평가이고 대선 캠페인이 국정철학으로 이어지기 위한 필수조건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납’의 시대/우석대 명예교수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납’의 시대/우석대 명예교수

    의회주의의 발상지 영국의 정치 수준은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형편없었다. 영국 상류층의 타락상은 전설적이었다. 조지 3세의 장남인 웨일스(나중에 조지 4세) 왕세자는 동침한 여자가 7000명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희대의 색마였다. 그의 천문학적 도박 빚은 의원 친구들이 국고에서 갚아 줬다. 정치인들 사이에는 알코올 중독이 만연했다. 영국 정치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인물은 ‘영국의 양심’ 윌리엄 윌버포스(1759~1833)였다. 21살에 정치에 입문한 윌버포스의 첫 번째 목표는 도덕 개혁이었다. 그는 하수종말처리장 수준의 정치판을 1급 상수원 수준으로 정화했다. 영리한 전략으로 고위 공직자의 과도한 음주, 음란행위 등 비도덕적인 행동을 적발 및 고발할 수 있는 법령을 선포토록 유도했다. 도덕성을 강조한 빅토리아 시대(1837~1901)의 시대정신은 이렇게 탄생했다. 윌버포스가 추구한 또 다른 목표는 노예제 폐지였다. 인기 없는 투쟁이었다. 해양 강국 영국은 아프리카 흑인의 북미 대륙 수송에서 핵심 역할을 했고, 노예무역은 국가 수입의 3분의1을 차지했다. 노예무역은 오늘날 미국의 방위산업만큼이나 영국 경제에서 중요한 비중을 점했다. 노예제 지지 세력은 모든 반대 목소리를 매국(賣國)으로 몰아 침묵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정치인은 고위직에 오를 희망을 접어야 했다. 개인적 야망을 초월한 목표와 의미를 추구하는 인물이 나와야 했다. 그러면서도 여론 주도층의 호의를 얻을 만큼 진정성과 설득력이 있어야 했다. 두 차례나 암살 위기를 넘긴 윌버포스가 적임자였다. 1833년 7월 26일은 승리의 날이었다. 의회는 대영 제국의 모든 노예를 1년 안에 해방하라는 법령을 선포했다. 병상에서 이 소식을 들은 윌버포스는 기뻤다. 그는 사흘 뒤인 7월 29일 새벽 3시 운명했다. 윌버포스 덕분에 영국은 미국보다 30년 앞서 노예제를 폐지했다. 윌버포스는 영국 정치를 ‘납’에서 ‘금’으로 바꿨다. 비로소 정치가 존경받을 만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확립됐다. 대통령의 품격 없는 태도와 언어, 공사(公私) 분별없는 배우자, 인사 혼란 등 먹구름이 가득하다. 리더십이 무너진 ‘납’의 시대다.
  • [2030 세대]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

    [2030 세대]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

    1963년, 서베를린 사람들은 불안했다. 통일 전 독일 지도를 보면 서베를린은 동독 한가운데 떠 있는 섬과 같았다. 소련의 흐루쇼프는 이곳을 장벽으로 둘러싸 서방으로의 이동을 통제하려 했다. 탈동독자들을 막기 위해서였다. 같은 해 6월, 존 F 케네디는 (후에 길이 남을 그의 손꼽히는 연설을 위해) 베를린에 도착한다. 미국 대통령의 약속을 기대하며 모인 서베를린 사람들은 40만명에 달했다. “아직도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국가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 베를린에 와서 보십시오.” 서베를린은 자유의 상징이고 서방의 운명은 서베를린과 함께한다고 케네디는 확신한 것이었다. 관중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진다. 그의 연설이 이어진다. “2000년 전, 최고로 자랑스러운 말은 ‘나는 로마시민이다’였습니다. 오늘날, 자유세계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말은 ‘나는 베를린 사람이다’입니다.” 이히 빈 아인 베를리너!(ich bin ein Berliner!) 이 말을 굳이 독일어로 하기 위해 영어식 발음을 적어 놓은 케네디의 메모가 남아 있다. 케네디는 아내 재클린과 달리 언어에는 별 소질이 없었다. ‘나는 로마 시민이다’라는 말은 기원전 1세기 로마 최고의 웅변가 키케로의 연설에 처음 등장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이 말 한마디면 법적 보호가 보장됐다.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성경을 좀 아는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로마 시민’의 덕을 봤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성난 유대인들에게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이라고 밝힌다. 그의 몸을 묶었던 사슬이 풀리고, 심문하려 했던 군인들은 물러났다. 19세기에는 ‘로마 시민’ 정신을 영국이 이어받았다. 돈 파시피코는 아테네에 살던 유대인이었다. 어느 날 유대인을 혐오하던 폭도들이 파시피코의 집을 약탈하고 불태운다. 경찰은 보고만 있다. 파시피코는 결국 영국 정부에 보호를 요청한다. 왜? 그는 1784년 영국령인 지브롤터에서 태어난 영국 시민이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의 자국민을 지키기 위한 대응은 단호했다. 영국 왕립 해군 함대가 아테네의 피레우스 항구를 봉쇄하고 아테네를 폭격할 듯이 대포를 겨눴다. 당시 영국 외무장관 (후에 수상이 된) 파머스턴 경이 의회에서 열변했다. “로마인이 모욕으로부터 자유로웠듯이, 영국 시민은 그가 세계 어느 땅에 있든지 영국이 지켜보는 매서운 눈빛과 강한 팔로 그를 불의와 폭거에서 보호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신뢰가 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아테네는 파시피코에게 4000파운드를 보상하기로 한다. 문서가 손실된 탓에 결국 150파운드만 줬지만…. ‘파시피코 사건’은 한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100년 동안 영국 외교정책의 방향을 제시했다. 나의 몸값은 나를 낳아 준 부모가 가장 잘 알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 시민이다.
  • [김동률의 아포리즘] 좋은 울타리가 좋은 이웃을 만든다/서강대 교수(매체경영)

    [김동률의 아포리즘] 좋은 울타리가 좋은 이웃을 만든다/서강대 교수(매체경영)

    “머리 뒤에 돼지 꼬리를 달고 다니는 바보”는 19세기 서양인들이 중국인을 비하한 표현이다(샤오젠성, 2022). 열강의 침입이 극에 달했던 시절 중국은 오랫동안 서양인들의 조롱거리에 불과했다. 동아시아의 병자쯤으로 천대받았다. 그런 중국을 다시 보게 된 것은 경제발전 이후, 즉 근래의 일이다. 실제로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은 크게 변했다. 국력이 날로 강해졌고 통신, 에너지 등등 국가 인프라는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섰다. 생활수준도 많이 향상됐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지금의 중국을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한때는 ‘베이징 컨센서스’라는 찬사와 함께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던 중국을 지금은 19세기 그 시절의 중국으로 치환해 보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에 대해 회의와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경제발전이 민주화와 인권 신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힘을 바탕으로 한 패권주의는 중국에 대한 기대를 접게 만들었다. 중국식 성장 모델 또한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공산당 고위층과 정부 관리들의 부패는 규모 면에서 세계인들을 경악하게 한다. 불공정, 양극화, 도덕적 해이는 사회문제로 비화된 지 오래다. 오늘날 중국의 경제력은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고, 그에 비례해 ‘국뽕’ 수준의 정신세계 또한 세계인을 놀라게 하고 있다. 중국, 중국인들의 행태는 상상 밖이다. 그래서 잠시 경이의 눈으로 바라봤던 중국을 푸틴의 러시아와 더불어 세계의 골칫덩이 정도로 인식하게 된다. 중국의 행태는 경제발전이 곧바로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 강화로 이어지는 게 아니며, 사회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올바른 정치제도가 뒷받침될 때만 국가는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는 예가 된다. ‘짱깨주의’란 말을 두고 말들이 많다. ‘짱깨주의 탄생’의 저자가 만든 신조어다. 그는 ‘짱깨주의’란 “미국이 구축한 신식민주의적 세계 질서에 포박된 한국의 보수세력이 중국의 부상으로 흔들리는 미국 중심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중국 없는 세계’를 주술처럼 꿈꾸며 끊임없이 중국을 악마화하고 있는 현상과 그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또 “언론이 짱깨주의 기획의 최일선을 담당한다”면서 “이들이 ‘나쁜 중국’ 프레임을 만들고 가짜뉴스를 양산하는데, 대중이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결과 한국인의 머릿속에 그려진 중국은 현실엔 없는 ‘가공의 중국’”이라는 것이다. 가당치 않은 주장이다. 저자는 이 같은 프레임에 보통 한국인들이 놀아난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그가 오늘날 한국인들의 지적 수준을 너무 낮춰 보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덧붙여 어느 보수세력, 어느 한국 언론이 그런 기획을 하는지 밝혀 줬으면 좋겠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지구촌 대부분이 중국을 부정적으로 본다. 저명 조사기관 퓨리서치에 따르면 미국·독일 등 19개 주요국가 국민들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80%를 훌쩍 넘는다. 반중 정서가 극에 달한 것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처럼 지극히 자의적인 친중국 책을 버젓이 추천했다. 하기야 그는 2017년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두고 ‘민주적 리더십’ 운운하며 극찬한 사람이다. 반인권적 철권강압통치를 두고 민주적 리더십이라니, 세상이 웃을 일이다. 좋은 울타리가 좋은 이웃을 만든다. 울타리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라면 언젠가 이웃과의 관계에 금이 가게 된다. 같은 이치로 이웃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확고한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끌려가는 관계에서는 좋은 이웃이 되기 어렵다. 명확한 울타리가 있어야 좋은 이웃이 된다(Good fences make good neighbors).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구절이다.
  • 동트는 새벽같은 K클래식의 힘 느껴봐요

    동트는 새벽같은 K클래식의 힘 느껴봐요

    “프랑스 오케스트라 음악은 거칠지 않고 투명한 듯한 파스텔톤이면서 소리들이 서로 스며드는 느낌이에요. 경계가 확실하지 않고 모호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드뷔시·라벨·포레 등 대표적 작곡가들이 인상주의 화풍이 유행하던 19세기에 활동하던 분들이라서 더욱 그런 것 같아요.” 젊은 한국 음악가들이 해외 콩쿠르에서 잇달아 우승하면서 K클래식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지만, 해외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는 다양한 연주자들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2018년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프랑스 3대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임명돼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37)이 그렇다. 이런 그가 해외에서 만난 동료와의 인연을 담아 프랑스 작곡가 에르네스트 쇼송과 그의 벨기에 친구 외젠 이자이의 작품을 갖고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아티스트 라운지’ 공연을 펼친다. 최근 전화로 만난 박지윤은 “관객들이 현실 세계를 떠나 꿈과 환상이 가득한 작곡가들의 세계를 엿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지윤은 이번 공연에서 러시아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시콥스키, 바이올리니스트 이은주·피예나, 비올리스트 김규리, 첼리스트 배지혜와 함께 이자이 바이올린 소나타 5번, 쇼송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시곡’ 및 ‘바이올린·피아노와 현악 4중주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한다. 이은주, 피예나, 라시콥스키는 프랑스에서 만났다. 김규리와 배지혜는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다. 박지윤은 다음달 20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첼리스트 이정란, 피아니스트 이효주와 프랑스 유학 시절 결성한 ‘트리오 제이드’ 팀의 공연을 선보인다. 쇼송의 두 작품은 쇼송이 이자이에게 헌정한 곡으로 박지윤이 프랑스에서 추억을 쌓은 동료와의 우정을 기념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박지윤은 “이자이 소나타 5번은 동이 트는 새벽녘을 연상케 한다”며 “쇼송의 ‘바이올린·피아노와 현악 4중주를 위한 협주곡’은 쇼송이 꾸는 꿈과 현실 세계를 엿볼 수 있는데, 피아노 소나타와 콰르텟의 실내악 느낌을 모두 갖춰 그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4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박지윤은 14세 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2004년 티보 바가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최연소 1위를 차지했다. 20년 가까운 프랑스 생활 때문에 언어로 인한 불편함은 없지만, 라디오 프랑스에서 수습 기간을 마쳤을 때 부담이 컸다고 한다. 오케스트라 악장은 오케스트라의 앞줄에 앉아 지휘자와 단원 사이를 조율하고 지휘자의 의도를 잘 파악해 명확하게 전달하는 역할로 리더십과 책임감, 연주 실력을 모두 갖춰야 해서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에서는 나이에 따른 서열 의식이 확고하지 않아 단원들이 저를 친구같이 다정하게 맞아 주었다”며 “제가 어리다고 나이 많은 단원들의 불편한 시선을 받은 적이 없고, 저도 경험 많은 선배들을 존중해 친구처럼 다정한 분위기”라고 했다. 클래식 연주자는 대개 솔리스트를 꿈꾼다. 그럼에도 그는 “오케스트라는 레퍼토리가 방대하고, 지휘자와 같이 작업하는 데서 배우는 것이 많다”며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제가 한창 해외 콩쿠르에 참여했던 10여년 전 프랑스에서는 한국 음악가라고 하면 콩쿠르에만 집착하고 다른 음악 활동에는 관심이 없다는 선입견을 가진 분들이 많았는데, 이제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들이 늘고, 한국 문화도 많이 알려지면서 한국인에 대한 호감이 커진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으로 해외에서 살아가기가 예전보다 수월해졌지요.”
  • “새벽빛과 꿈·환상 가득한 선율…프랑스에서의 소중한 인연 담아 펼쳐요”

    “새벽빛과 꿈·환상 가득한 선율…프랑스에서의 소중한 인연 담아 펼쳐요”

    “프랑스 오케스트라 음악은 거칠지 않고 투명한 듯한 파스텔톤이면서 소리들이 서로 스며드는 느낌이에요. 경계가 확실하지 않고 모호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드뷔시·라벨·포레 등 대표적 작곡가들이 인상주의 화풍이 유행하던 19세기에 활동하던 분들이라서 더욱 그런 것 같아요.” 젊은 한국 음악가들이 해외 콩쿠르에서 잇달아 우승하면서 K클래식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지만, 해외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는 다양한 연주자들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2018년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프랑스 3대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임명돼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37)이 그렇다. 이런 그가 해외에서 만난 동료와의 인연을 담아 프랑스 작곡가 에르네스트 쇼송과 그의 벨기에 친구 외젠 이자이의 작품을 갖고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아티스트 라운지’ 공연을 펼친다. 최근 전화로 만난 박지윤은 “관객들이 현실 세계를 떠나 꿈과 환상이 가득한 작곡가들의 세계를 엿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지윤은 이번 공연에서 러시아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시콥스키, 바이올리니스트 이은주·피예나, 비올리스트 김규리, 첼리스트 배지혜와 함께 이자이 바이올린 소나타 5번, 쇼송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시곡’ 및 ‘바이올린·피아노와 현악 4중주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한다. 이은주, 피예나, 라시콥스키는 프랑스에서 만났다. 김규리와 배지혜는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다. 박지윤은 다음달 20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첼리스트 이정란, 피아니스트 이효주와 프랑스 유학 시절 결성한 ‘트리오 제이드’ 팀의 공연을 선보인다. 쇼송의 두 작품은 쇼송이 이자이에게 헌정한 곡으로 박지윤이 프랑스에서 추억을 쌓은 동료와의 우정을 기념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박지윤은 “이자이 소나타 5번은 동이 트는 새벽녘을 연상케 한다”며 “쇼송의 ‘바이올린·피아노와 현악 4중주를 위한 협주곡’은 쇼송이 꾸는 꿈과 현실 세계를 엿볼 수 있는데, 피아노 소나타와 콰르텟의 실내악 느낌을 모두 갖춰 그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4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박지윤은 14세 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2004년 티보 바가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최연소 1위를 차지했다. 20년 가까운 프랑스 생활 때문에 언어로 인한 불편함은 없지만, 라디오 프랑스에서 수습 기간을 마쳤을 때 부담이 컸다고 한다. 오케스트라 악장은 오케스트라의 앞줄에 앉아 지휘자와 단원 사이를 조율하고 지휘자의 의도를 잘 파악해 명확하게 전달하는 역할로 리더십과 책임감, 연주 실력을 모두 갖춰야 해서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에서는 나이에 따른 서열 의식이 확고하지 않아 단원들이 저를 친구같이 다정하게 맞아 주었다”며 “제가 어리다고 나이 많은 단원들의 불편한 시선을 받은 적이 없고, 저도 경험 많은 선배들을 존중해 친구처럼 다정한 분위기”라고 했다. 클래식 연주자는 대개 솔리스트를 꿈꾼다. 그럼에도 그는 “오케스트라는 레퍼토리가 방대하고, 지휘자와 같이 작업하는 데서 배우는 것이 많다”며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제가 한창 해외 콩쿠르에 참여했던 10여년 전 프랑스에서는 한국 음악가라고 하면 콩쿠르에만 집착하고 다른 음악 활동에는 관심이 없다는 선입견을 가진 분들이 많았는데, 이제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들이 늘고, 한국 문화도 많이 알려지면서 한국인에 대한 호감이 커진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으로 해외에서 살아가기가 예전보다 수월해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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