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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은 살아 있는 예술”

    “음악은 살아 있는 예술”

    기교와 서정. 피아니스트에게 요구되는 두 성질은 흔히 대척점에 놓인 것으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정상급의 피아니스트라면 둘 중 어느 하나라도 포기할 수 없다. 오는 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한국 관객과 만나는 러시아 태생의 미국 피아니스트 키릴 게르스타인(46)은 정상급의 연주자가 발휘할 수 있는 기교가 무엇인지, 또 피아노로 전달할 수 있는 감정의 한계가 어디인지 들려줄 예정이다. 21일 게르스타인을 서면으로 만났다. “낭만주의적 상상력의 두 가지 유형을 나란히 배치했다. 프란츠 리스트는 표제음악과 문학적 연상을 대표하고, 요하네스 브람스는 절대음악을 구현한다. 이는 19세기 후반을 지배했던 중요한 논쟁이었다. 리스트·바그너 진영과 브람스의 대립으로 자주 표현되곤 했다. 관객이 이를 단순한 대비가 아니라 통합된 경험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리스트의 ‘세 개의 페트라르카의 소네트’와 ‘단테를 읽고: 소나타 풍의 환상곡’을 통해 커다란 스케일과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여준다. 반면 브람스의 피아노곡 ‘스케르초’, ‘피아노 소나타 3번’에서는 서정성과 중후함을 아울러 담아낸다. 음악에 하나의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듯 게르스타인도 한 가지 면모만 가지고 있는 연주자가 아니다. 심지어 클래식뿐만 아니라 재즈의 언어도 품었다. 그래서일까. 게르스타인은 2023년 바흐트랙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으로 두 개의 언어를 동시에 배웠다. 하나는 악보에 쓰인 전통, 다른 하나는 즉흥의 전통이다. 재즈는 음악이 단순히 종이에 찍힌 검은 음표 이상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즉흥 연주는 음악을 단순히 재현하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느끼게 해준다. 이것이 클래식을 연주하는 방식에도 스며들길 바란다.” 게르스타인을 보면 ‘경계가 없는’ 연주자로 보인다. 피아니스트뿐만 아니라 큐레이터, 교육자로도 활동한다. 장르에서도 마찬가지다. 앞서 재즈 외에도 현대음악, 카바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아우르며 음악 자체의 외연을 확장코자 힘쓴다. 음악을 조금이라도 들어본 사람은 안다. 고전음악과 현대음악이, 재즈와 클래식과 카바레가 얼마나 다른지. 하지만 이런 ‘다름’은 게르스타인의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음악은 여전히 살아 있는 예술이다. 토마스 아데스(현대음악 작곡가)의 음악에 접근할 때나 로베르트 슈만(낭만주의 작곡가)의 음악을 대할 때나 본질적으로 다르게 접근하지 않는다.”
  • 노원구 ‘인상파, 찬란한 순간들’ 전시 개막

    노원구 ‘인상파, 찬란한 순간들’ 전시 개막

    서울 노원구 노원문화예술회관 노원아트뮤지엄의 ‘인상파, 찬란한 순간들: 모네, 르누아르, 반 고흐 그리고 세잔’이 지난 18일 개막했다. 19일 노원구에 따르면,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전날 개막식 행사에 참석해 개막을 축하했다. 이번 전시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모네, 르누아르, 세잔 등 거장 11인의 대표작을 원화를 만날 수 있는 자리로, 회화 21점을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으는 작품은 빈센트 반 고흐의 ‘밀밭의 양귀비’다. 그간 고흐의 여러 작품이 국내 관객을 만났으나, ‘밀밭의 양귀비’는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녹색 밀밭의 전경 위로 붉은 양귀비가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독특한 구도와 강렬한 몰입감을 전한다. 이날 개막식에는 오승록 구청장을 비롯해 시·구의원, 이스라엘박물관 리앗 바루흐 수석대표, 전시 협력기관 관계자, 지역 문화예술단체 및 주민 등 60여명이 참석했다. 전시는 내년 5월 31일까지 운영된다.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로 매주 월요일과 신정(1월 1일), 설 당일(2월 17일)은 휴관한다. 설 연휴 기간 중 2월 16일과 2월 18일은 정상 운영한다. 오승록 구청장은 “문화는 모든 시민을 위한 보편적 약속이라는 신념으로 문화도시 노원 만들기에 매진해 왔다”며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고흐 작품을 비롯해 이번 전시를 통해 연말 문화예술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 돌아온 ‘여인의 초상’ 서울 첫 공개…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展 개막

    돌아온 ‘여인의 초상’ 서울 첫 공개…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展 개막

    내년 3월 22일까지 관람객 만나리치오디 수집 작품 70여점 전시인물화·풍경화 등 13개 섹션 구성 “주세페 리치오디는 미술관의 대표작이 바다 건너 서울에서 전시가 열릴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의 컬렉션이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내 한국 관람객에게 감동을 전할 준비가 됐습니다.”(루치아 피니 리치오디 현대미술관장) ‘기적 같은 귀환’으로 화제가 됐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여인의 초상’이 귀환 후 처음으로 국경을 넘어 다시 한번 기적을 일으킨다. 19일부터 내년 3월 22일까지 서울 강남구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리는 ‘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 이탈리아 리치오디 현대미술관 컬렉션’ 전시를 통해서다. 이번 전시는 서울신문과 이탈리아 피아첸차시 리치오디 현대미술관, 마이아트뮤지엄이 공동으로 기획한 특별전으로 ‘여인의 초상’이 도난 후 22년 만에 극적으로 회수된 뒤 처음으로 해외에서 공개되는 기념비적인 전시다. 개막에 앞서 18일 진행된 오프닝에는 루치아 피니 리치오디 미술관장, 카티아 타라스코니 피아첸차 시장, 에리카 스파샤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 부원장, 안드레아 페라라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 담당관 등 이탈리아 측 관계자와 이태근 마이아트뮤지엄 관장, 안미현 서울신문 상무, 한준규 상무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서울 전시에서는 피아첸차 출신의 귀족이자 수집가였던 주세페 리치오디가 수집한 대표작 70여점을 선보인다. 안토니오 만치니, 도메니코 모렐리, 페데리코 잔도메네기 등 이탈리아 근대미술의 거장들이 선보인 인물화, 풍경화, 장르화를 통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변화한 예술 양식과 사조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전시는 인물, 풍경, 장르화 등 총 13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각 섹션은 근대 이탈리아의 현실과 풍경을 응시한 예술가들의 시선을 주제별로 풀어낸다. 특히 전시의 중심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클림트의 ‘여인의 초상’이 자리한다. 이 작품은 1996년 엑스선 분석을 통해 클림트의 유일한 ‘이중 초상화’임이 밝혀진 바 있다. 1912년 독일에서 전시됐던 클림트의 작품 ‘백피쉬’는 전시 후 행방을 알 수 없었는데, ‘여인의 초상’이 바로 이 작품의 검은 모자를 지우고 덧칠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작품은 또 1997년 도난당했다가 22년이 지난 2019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기적처럼 미술관 외벽의 감춰진 공간에서 발견,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리며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전시의 또 다른 매력은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 피아첸차부터 남부 카프리, 나폴리까지 여행하는 기분으로 작품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아펜니노와 그 사람들’ 섹션에서는 이탈리아반도를 종단하는 1200㎞의 긴 산맥의 거친 자연과 이와 더불어 사는 목동과 농부의 삶을 만날 수 있으며 ‘베네치아와 시적 화가들’ 섹션에서는 안개와 물빛, 꿈과 우수가 어우러진 베네치아의 감수성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 해설 프로그램을 맡은 정우철 도슨트는 “클림트의 ‘여인의 초상’이 제일 유명하지만, 여태까지 우리에게 생소했던 이탈리아 19~20세기 화가들과 화풍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며 “귀족이 아닌 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 美 올해의 단어 ‘SLOP’… AI로 만든 쓰레기 콘텐츠

    미국의 사전 출판사 메리엄웹스터가 올해의 단어로 저품질 디지털 콘텐츠를 뜻하는 ‘슬롭’(slop)을 선정했다. 16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메리엄웹스터는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대량으로 생산한 질 낮은 디지털 콘텐츠라는 의미”라며 이렇게 밝혔다. AI로 쓴 조잡한 책, 소셜미디어(SNS)에 넘쳐나는 황당한 영상,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 뉴스 등이 예로 꼽혔다. 메리엄웹스터는 사람들이 슬롭을 짜증스러워하면서도 열광적으로 소비했다고 평했다. 원래 슬롭이라는 단어는 18세기에 ‘부드러운 진흙’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다가 19세기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뜻하게 됐고 이후 ‘쓰레기’나 ‘가치 없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고 메리엄웹스터는 설명했다.
  • “제자리 있을때 가장 빛난다” 일본인 수집가, 문화유산 41점 충남에 무상 기증

    “제자리 있을때 가장 빛난다” 일본인 수집가, 문화유산 41점 충남에 무상 기증

    충남역사문화연구원(원장 장기승)은 일본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에 거주하는 일본인 수집가 미야타 이즈미(宮田伊津美)로부터 한국 문화유산 41점을 무상 기증받았다고 17일 밝혔다. 전 이와쿠니역사자료관장인 미야타는 평소 한국 문화에 애정을 지녀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문화유산은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빛난다”는 가치관에 따라 이번 기증을 결심했다. 기증처를 알아보던 미야타는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사무총장 곽창용) 일본사무소를 통해 소장품 기증 의사를 밝혔다. 재단은 유물의 성격, 활용 가치 등을 고려해 충남역사문화연구원으로의 유물 기증을 성사시켰다. 이번에 기증된 유물은 조선 후기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회화·서예·도자·공예·고문서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유산으로 구성됐다. 미야타는 이들 유물이 대부분 19세기 말 조선으로 건너와 일본 공사관의 호위무관으로 활동한 히가시 이와오(東巖) 소장품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전했다. 미야타는 이번 기증과 관련해 지난 16일 충남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기증·기탁자의 날’ 행사에 초청돼 직접 특별 강연을 진행하며 기증 결정의 배경과 소장품의 의미를 밝혔다. 충남도와 연구원은 미야타에게 각각 도지사 표창장과 감사패를 전달했다. 장기승 원장은 “국내외 협력을 통해 국외소재 문화유산의 귀환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기증 유물을 전시·교육 콘텐츠로 적극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 2년만에 돌아온 창작발레 ‘클라라 슈만’… 연말에 만나는 ‘세기의 로맨스’

    2년만에 돌아온 창작발레 ‘클라라 슈만’… 연말에 만나는 ‘세기의 로맨스’

    - 12월 26일과 27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2023년 초연 이후 2년만- 19세기 낭만주의 대표하는 음악가 ‘클라라 슈만’의 삶과 내면을 담은 창작발레 우리나라 대표 발레 부부인 제임스전과 김인희의 창작발레 ‘클라라 슈만’이 오는 26일과 27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2년만에 다시 선보인다. 클라라 슈만‘은 19세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핵심 음악가인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부인 클라라 슈만, 그의 제자 요하네스 브람스의 삶과 예술세계를 소재로 한 창작발레다. 2023년 제임스전 안무로 처음 공연됐을 때 호평을 받아 그해 대한민국발레축제에 초청되는가 하면 언론사 문화대상 무용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바 있다. 이번 공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5 공연예술 창작산실 2차 제작 지원작으로 선정되면서 성사됐다. 한국 창작발레의 거장 제임스전이 안무를, 김인희 발레STP협동조합 이사장이 예술감독을 맡았고 아트플레이와 아르코·대학로 예술극장이 공동 제작했다. 김인희 예술감독은 “2백여 년 전 이역만리에서 삶의 풍랑을 헤쳐 나간 클라라 슈만의 삶과 열정이 힘겨운 오늘날을 살아내는 모든 분께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무가인 제임스전은 “이번 재공연은 초연 당시 아쉬웠던 부분을 보강해 완성도를 한층 높였다”고 밝혔다. 발레 무용수이자 부부인 김인희와 제임스전은 1995년 민간 직업 발레단인 서울발레시어터를 설립해 한국 창작 발레의 꽃을 피우는 한편 발레 후학들을 양성해 왔다.
  • 작은 언덕에서 시작된 큰 변화

    작은 언덕에서 시작된 큰 변화

    ●인상파의 대부, 피사로 카미유 피사로(1830-1903)는 카리브해 버진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전통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한 피사로는 25세에 파리로 이주해 쿠르베와 코로로부터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눈을 키웠다. 특히 그는 바르비종파의 일원인 코로에게서 풍경화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온화하고 따뜻한 성품을 지닌 피사로는 동료나 후배 화가들에게 격려하고 방향을 제시해 준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8번 개최된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모두 전시한 유일한 인물이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그는 인상주의 전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며 ‘인상주의의 대부’로 불린다. 피사로는 1866년부터 1870년 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떠나기 전까지 이 마을에서 수년을 보냈다. 그는 1872년부터 1884년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퐁투아즈는 피사로에게 단순한 작업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전쟁이 끝나 돌아왔을 때, 그가 남겨둔 1500여 점이 군인들의 발 매트로 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절망과 분노에 휩싸였다. 그중엔 인상주의 태동기를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이 작품들이 손상되지 않았다면 인상주의 역사는 새로 쓰였을 것이다. ●소박한 풍경 속 진실을 담다 ‘퐁투아즈의 에르미타주 언덕’은 구불구불한 언덕길과 소박한 동네가 어우러진 일상의 장면이다. 여기에는 신화 속 인물이나 역사적 영웅 없이,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담겨 있다. 피사로는 이 평범한 공간에서 빛이 스치며 만들어내는 찰나를 포착했고, 그 사이에서 현대적 풍경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작품은 아직 인상주의 특유의 붓놀림이 완전히 자리 잡기 전의 양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연광에 대한 감각, 화면을 구성하는 색과 질감의 대비는 이미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농부와 정원, 길과 집이 이루는 장면은 목가적 안온함과 함께 빛과 어둠의 교차가 드러나는 실험의 장이 된다. 피사로는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과감히 그 벽을 깨뜨렸다. ●빛나는 일상은 예술이 된다 이 작품이 그려진 1860년대 후반은 프랑스 미술계가 살롱 중심의 아카데믹한 회화에 갇혀 있던 시기였다. 피사로는 당대 거장의 영향에서 출발했지만, 이 퐁투아즈 풍경에서는 점차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풍경화처럼 명확한 윤곽선과 고정된 색채 대신, 자연광이 순간적으로 만들어내는 색채와 분위기를 포착하는 데 집중했다. 활기찬 붓 터치는 나무의 질감과 햇빛에 반짝이는 풀잎을 생생하게 재현하며, 이는 훗날 인상주의 특유의 ‘시시각각 변하는 대기의 빛’을 포착한 기법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벽에 걸린 이 캔버스는 관람객에게 낮게 속삭인다. “당신이 무심히 지나쳐버린 현재 속에 미래의 예술이 숨어 있다.” 19세기 프랑스 교외의 한적한 길에서 피어난 빛의 실험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평범한 하루가 위대한 역사로 전환되는 순간, 그 중심에는 언제나 내가 있음을 피사로가 말해준다.
  • 작은 언덕에서 시작된 큰 변화 [으른들의 미술사]

    작은 언덕에서 시작된 큰 변화 [으른들의 미술사]

    ●인상파의 대부, 피사로 카미유 피사로(1830-1903)는 카리브해 버진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전통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한 피사로는 25세에 파리로 이주해 쿠르베와 코로로부터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눈을 키웠다. 특히 그는 바르비종파의 일원인 코로에게서 풍경화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온화하고 따뜻한 성품을 지닌 피사로는 동료나 후배 화가들에게 격려하고 방향을 제시해 준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8번 개최된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모두 전시한 유일한 인물이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그는 인상주의 전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며 ‘인상주의의 대부’로 불린다. 피사로는 1866년부터 1870년 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떠나기 전까지 이 마을에서 수년을 보냈다. 그는 1872년부터 1884년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퐁투아즈는 피사로에게 단순한 작업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전쟁이 끝나 돌아왔을 때, 그가 남겨둔 1500여 점이 군인들의 발 매트로 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절망과 분노에 휩싸였다. 그중엔 인상주의 태동기를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이 작품들이 손상되지 않았다면 인상주의 역사는 새로 쓰였을 것이다. ●소박한 풍경 속 진실을 담다 ‘퐁투아즈의 에르미타주 언덕’은 구불구불한 언덕길과 소박한 동네가 어우러진 일상의 장면이다. 여기에는 신화 속 인물이나 역사적 영웅 없이,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담겨 있다. 피사로는 이 평범한 공간에서 빛이 스치며 만들어내는 찰나를 포착했고, 그 사이에서 현대적 풍경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작품은 아직 인상주의 특유의 붓놀림이 완전히 자리 잡기 전의 양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연광에 대한 감각, 화면을 구성하는 색과 질감의 대비는 이미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농부와 정원, 길과 집이 이루는 장면은 목가적 안온함과 함께 빛과 어둠의 교차가 드러나는 실험의 장이 된다. 피사로는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과감히 그 벽을 깨뜨렸다. ●빛나는 일상은 예술이 된다 이 작품이 그려진 1860년대 후반은 프랑스 미술계가 살롱 중심의 아카데믹한 회화에 갇혀 있던 시기였다. 피사로는 당대 거장의 영향에서 출발했지만, 이 퐁투아즈 풍경에서는 점차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풍경화처럼 명확한 윤곽선과 고정된 색채 대신, 자연광이 순간적으로 만들어내는 색채와 분위기를 포착하는 데 집중했다. 활기찬 붓 터치는 나무의 질감과 햇빛에 반짝이는 풀잎을 생생하게 재현하며, 이는 훗날 인상주의 특유의 ‘시시각각 변하는 대기의 빛’을 포착한 기법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벽에 걸린 이 캔버스는 관람객에게 낮게 속삭인다. “당신이 무심히 지나쳐버린 현재 속에 미래의 예술이 숨어 있다.” 19세기 프랑스 교외의 한적한 길에서 피어난 빛의 실험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평범한 하루가 위대한 역사로 전환되는 순간, 그 중심에는 언제나 내가 있음을 피사로가 말해준다.
  • 뮤지컬·합창단·콘서트·송연음악회… 울산, 연말 공연 ‘풍성’

    뮤지컬·합창단·콘서트·송연음악회… 울산, 연말 공연 ‘풍성’

    연말을 맞아 울산에서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 울산시립교향악단은 오는 19일 오후 7시 30분 울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송연음악회 ‘당신을 위한 음악 선물’을 공연한다고 13일 밝혔다. ‘당신을 위한 음악 선물’은 춘천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인 송유진 지휘자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활동 중인 세계적인 카운터테너 정시만의 협연으로 진행된다. 헨델, 비발디, 비제, 로시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아름다운 선율로 소중한 인연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연말연시 분위기를 풍성하게 한다. 오는 18일 오후 7시 30분 울산 북구 문화예술회관 공연장에서는 ‘파리나무 십자가 소년합창단’의 송년특별기획공연이 열린다. 파리나무 십자가 소년합창단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징글벨’, ‘할렐루야’, ‘온세상에 기쁨’ 등을 공연한다. 인기 뮤지컬 ‘레드북’은 오는 25~27일 동구 HD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펼쳐진다.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19세기 런던을 배경으로 시대의 편견을 넘어 서로를 통해 제1의 나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해와 존중의 의미를 전한다. ‘안나’역에 옥주현, 아이비, 민경아, ‘브라운’역에 송원근, 지현우, 김성식 등이 총출동한다. 또 스탠딩 에그 콘서트는 크리스마스 이브인 오는 24일 오후 7시 30분 중구문화의전당 함월홀에서 열린다. 2010년 데뷔한 스탠딩 에그는 어쿠스틱 발라드를 기반으로 포크, 락, R&B 등 다양한 장르를 자신들의 음악에 녹여내며 다채로운 음악 세계를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오래된 노래’, ‘사랑한다는 말’, ‘숲’ ‘친구에서 연인’ 등을 공연한다. 재즈보컬리스트 ‘웅산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이브 콘서트’도 오는 24일 오후 7시30분 울주문화예술회관 그린나래홀에서 열친다. 스페셜 게스트로 한국 최고의 색소포니스트 이정식이 출연한다.
  • [씨줄날줄] 공연장의 ‘휴대전화 테러’

    [씨줄날줄] 공연장의 ‘휴대전화 테러’

    클래식 음악 공연장이 처음부터 엄숙했던 건 아니다. 17세기 초 대중을 상대로 한 클래식 공연장이 유럽에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관객들의 자연스러운 소음 정도는 허용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초 베토벤 시대를 거치면서 조용한 몰두가 대세가 됐다. 베토벤 이전에는 음악의 ‘선율’을 즐겼다면, 이후로는 ‘메시지’에 집중하는 추세로 변했기 때문이다.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이나 5번 ‘운명’을 떠올려 보라. 하지만 처음 클래식 공연장에 가는 관객들은 음악가의 거창한 운명보다는 옴짝달싹 못 하는 자신의 운명에 우선 포획된다. 헛기침 한 번도 눈치볼 정도로 에티켓에 온통 신경을 쓰다 보면 에너지는 방전되고 만다. 그런데 에티켓에 겨우 적응하기 시작하면, 이번엔 다른 관객의 무례함이 새로운 스트레스로 등장한다. 특히 ‘스마트폰 테러’는 스티브 잡스까지 증오하게 만든다. 어둠 속에서 한창 연주가 진행 중일 때 앞의 관객이 휴대전화를 여는 순간 지옥문도 함께 열린다. 그 스트레스로 ‘관크’(觀+critical)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다른 관객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라는 뜻이다. 지난 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에서 최악의 관크가 벌어져 논란이 일고 있다. 협연하던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피아노 협주곡 독주를 하고 있을 때 한 관객의 휴대전화에서 30여초간 유튜브 영상이 재생되며 큰 소음이 발생한 것이다. 티켓 한 장에 최고 45만원을 지불한 관객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문제는 관크를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2001년 예술의전당 측이 휴대전화 전파 차단기를 설치했다가 전파법 위반 소지로 2년 만에 철거했다. 진정한 해법은 관객이 연주자의 입장에 서 보는 것일 수 있다. 그 길고 어려운 곡을 라이브로 연주하면서 단 한 번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연주자의 스트레스는 얼마나 클까. 그런 생각을 하면 자세를 고쳐 앉게 된다.
  • 여성적 서사의 깊은 울림… ‘오만과 편견’을 깨다

    여성적 서사의 깊은 울림… ‘오만과 편견’을 깨다

    오스틴의 대표작 모은 ‘디 에센셜…’여성 작가는 안 된다는 관념 깨뜨려언니에게 보낸 편지엔 글쓰기 희열그녀가 영감 받은 8명 숨은 女작가‘제인 오스틴의 책장’ 통해 엿보기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이 진리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워낙 굳게 자리 잡고 있는 까닭에 이웃에 이런 남자가 이사 오면 그의 감정이나 생각을 모르더라도 다들 그를 자기네 딸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기게 마련이다.”(‘오만과 편견’ 첫 문장)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게 괴상하게 느껴지던 시절, 그러니까 ‘여성작가’라는 말이 무척이나 생소하고 어색했던 시절 영국에서 소설가로 활동했던 제인 오스틴(1775~1817)은 ‘어둠 속 홀로 반짝이는 빛’이었다. 오는 16일이면 오스틴이 태어난 지 꼭 250년이 된다. 여성이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작가로서 이름을 밝히는 게 당당해진 오늘날을 오스틴이 본다면 어떤 기분을 느낄까. 수많은 ‘여성적 글쓰기’가 가능해진 현재도 오스틴의 문장은 여전한 울림을 준다. 하나도 낡지 않은 채, 고전으로 머무르고 있다. 전체 840쪽짜리 두툼한 책 ‘디 에센셜 제인 오스틴’(민음사)은 오스틴 문학의 정수를 모았다. 오스틴의 대표작이자 그에게 불멸의 명성을 안긴 ‘오만과 편견’을 비롯해 단편 ‘레이디 수전’, 1790~1817년 사이 오스틴이 썼던 편지들이 수록됐다.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남동생이 누나의 조언 때문에 사랑에 빠지지 않는 성공 사례는 없잖아.”(‘레이디 수전’ 부분) ‘레이디 수전’은 매우 흥미로운 단편이다. 오스틴의 소설 가운데 유일하게 도덕적 결함을 지닌 여성 주인공을 앞세웠다. 오스틴의 작품 대부분 ‘나쁜’ 역할은 남자의 몫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나쁜 남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착한 여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작품은 오스틴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작가 사후 54년이 지난 1871년이 돼서야 출간됐다. 다채로운 작가로서 오스틴의 면모는 상당히 뒤늦게 알려진 셈. 주인공 수전은 새로운 남편감을 찾는 동시에 자기의 딸도 부유한 남성에게 결혼시키려는 계략을 꾸민다. 오직 인물의 편지로만 이야기가 이어지는 서간체 형식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소설이다. “언니, 나 런던에서 내 사랑스러운 자식을 받았어!” 오스틴이 언니 커샌드라에게 1813년 1월 29일 금요일에 보낸 편지다. 여기서 ‘사랑스러운 자식’은 그 유명한 ‘오만과 편견’을 의미한다. 이날은 ‘오만과 편견’의 초판본이 나와 작가에게 도착한 날로 오스틴은 이를 무척 기뻐하며 언니에게 편지를 보냈다. 출산의 기쁨에 빗댄 표현에서 오스틴의 애정과 자부심이 물씬 느껴진다. 그러나 당시 오스틴은 이 기쁨과 영광을 ‘제대로’ 누릴 수는 없었다. 19세기 영국에서는 여성이 작품을 출간할 때 정식 이름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토머스 에저턴 출판사에서 나온 오스틴의 첫 책 ‘이성과 감성’(1810)의 작가 이름은 ‘어느 숙녀’(By a Lady)였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오만과 편견’(1813)의 작가명은 ‘이성과 감성의 저자’였다. 글을 쓰는 사람은 안다. 글은 내 자식이자 분신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기가 쓴 글에 자기 이름을 쓰지 못했던 오스틴의 심경은 어땠을까. 편지만 보면 일단 슬픔은 안중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슬픔을 넘어선 희열이 있었기에. 오스틴은 생전 수많은 편지를 쓰고 또 썼다. 하지만 상당수는 언니 커샌드라가 동생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불에 태워 버렸다고 한다. 지금은 160통 정도가 남아있다. 편지를 보면 오스틴은 아주 재기발랄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의 소설에서도 묻어나듯. 좋은 작가는 좋은 책을 읽는 사람이기도 하다.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제인 오스틴의 책장’은 희귀서 수집가인 저자 리베카 롬니가 추적한 ‘오스틴의 탐독서 목록’이다. 영국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작가’로 칭송받는 오스틴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 앞서거나 혹은 동시대의 수많은 작가의 글을 읽고 거기서 영향을 받았다. 오스틴은 물론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존 밀턴, 대니얼 디포 등 영문학의 고전을 섭렵했다. 하지만 이 책은 오스틴이 소중히 읽고 영감을 받았던 여성작가들, 지금 우리에겐 낯선 이름을 소개하고 있어 이채롭다. 프랜시스 버니(1752~1840), 앤 래드클리프(1764~1823), 샬럿 레녹스(1729?~ 1804) 해나 모어(1745~1833), 샬럿 스미스(1749~1806), 엘리자베스 인치볼드(1753~1821), 헤스터 린치 스레일 피오치(1741~1821), 마리아 에지워스(1768~1849)까지 총 8명이다. 저자 롬니는 오늘날 거의 잊힌, 이 8명의 ‘숨은 작가’들이 어떻게 오스틴이라는 ‘문학적 아이콘’을 구성하고 있는지 집요하게 추적한다. 레녹스의 ‘여자 돈키호테’(1752)라는 작품에 대해 오스틴은 언니에게 쓴 편지에서 “내게는 이 책이 크나큰 즐거움이야. 다시 읽어도 처음 읽었을 때 못지않게 재미있어”라며 상찬했다. 하지만 레녹스와 이 작품은 왜 오늘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것일까. 레녹스가 생전 셰익스피어를 비판했고 이 때문에 영국 기성문단을 장악하고 있던 남성들로부터 미움을 산 게 이유였다고 한다. 문학성이 영광을 보장하지 않는다. 어떤 위대함은 순전히 운과 감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 인요한 “희생 없이 변화 없다” 의원직 사퇴… 이소희 비례 승계

    인요한 “희생 없이 변화 없다” 의원직 사퇴… 이소희 비례 승계

    인요한 국민의힘 의원이 10일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지도부의 만류에도 인 의원은 “희생 없이는 변화도 없다”며 사의를 거두지 않았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 국민의힘에서 나온 ‘의원직 사퇴 1호’다. 인 의원은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저는 헌법기관이자 국민의 봉사자로서 오늘 저의 거취에 대해 숙고 끝에 내린 결단을 말씀드린다”며 “지난 1년 반 동안 의정 활동을 마무리하고 국회의원직을 떠나 본업에 돌아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연세대 의대 교수이던 인 의원은 2023년 10월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을 맡아 정계에 본격 입문했다. 이날 인 의원은 “오직 진영 논리만을 따라가는 정치 행보가 국민을 힘들게 하고 국가 발전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며 “흑백 논리와 진영 논리는 벗어나야 국민 통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 “윤석열 정부의 계엄 이후 지난 1년간 이어지고 있는 불행한 일들은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극복해야 할 일”이라며 “희생 없이는 변화가 없다. ‘저 자신부터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본업에 복귀하여 국민 통합과 국가 발전에 기여를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인 의원은 기자회견에 앞서 장동혁 대표와 송언석 원내대표에게 사퇴 의사를 밝혔고, 지도부가 만류했으나 뜻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송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의원님의 뜻이 워낙 확고했다”며 “대단히 안타깝지만 의원님의 고뇌 어린 결단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인 의원이 이날 ‘사퇴의 변’에 계엄과 극단 정치에 대한 반성을 담았으나 국민의힘의 추가 인적 혁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인 의원은 혁신위원장 시절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관계자)과 다선 의원들을 직접 찾아가 당 혁신을 위한 용퇴를 압박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한민국 ‘특별귀화 1호’인 인 의원은 19세기 미국에서 건너온 ‘선교의 아버지’ 유진 벨의 외증손자다. 인 의원의 사퇴에 따라 다음 순번인 이소희 전 세종시의원이 의원직을 승계할 예정이다.
  • 인요한 “희생 없이 변화 없다” 의원직 사퇴…계엄 이후 국민의힘 첫 사퇴

    인요한 “희생 없이 변화 없다” 의원직 사퇴…계엄 이후 국민의힘 첫 사퇴

    인요한 국민의힘 의원이 10일 전격적으로 의원직을 사퇴했다. 22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인 의원은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의 만류에도 “저는 1년 반 동안의 의정활동을 마무리하고 국회의원직을 떠나 본업에 돌아가기를 희망한다”며 의원직을 사퇴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 국민의힘에서 의원직을 내려놓은 첫 사례다. 인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소통관 긴급 기자회견에서 “헌법기관이자 국민의 봉사자로서 제 거취에 대한 숙고 끝에 내린 결단을 말씀드리겠다”며 사퇴를 선언했다. 인 의원은 “오직 진영 논리만을 따라가는 정치 행보가 국민을 힘들게 하고 국가 발전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며 “흑백논리와 진영논리를 벗어나야지만 국민 통합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인 의원은 “윤석열 정부의 계엄 이후 지난 1년간 이어지고 있는 불행한 일들은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극복해야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희생 없이는 변화가 없다”며 “저 자신부터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본업에 복귀해 국가 통합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신동욱 최고위원 등이 인 의원의 사퇴를 만류하고자 회견장을 찾았으나 인 의원은 전격적으로 의원직을 내려놨다. 비례대표 정당명부 순번에 따라 인 의원의 의원직은 이소희 전 세종시의원이 이어받게 된다.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이던 인 의원은 지난 2023년 10월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을 맡았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 패배로 휘청이던 국민의힘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혁신 메스’를 들고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관계자)과 다선 의원들을 직접 찾아가 용퇴를 압박했다. 그러나 고(故) 장제원 전 의원 외에는 당사자들이 이를 거부해 혁신 수술은 미완성으로 끝났다. 22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순번 8번을 받아 여의도에 입성했고, 지난해 7·23 전당대회에서 당선돼 ‘한동훈 지도부’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호남 태생이자 첫 귀화자 출신으로 자신을 ‘순천 촌놈’이라고 소개하는 인 의원은 19세기 미국에서 건너온 ‘선교의 아버지’ 유진 벨의 외증손자다. 유진 벨은 호남 지역에서 활동하며 여러 학교와 광주 최초의 병원인 제중병원 설립에 힘을 보탠 인물이다. 인 의원의 본명은 ‘존 린턴’으로 귀화와 함께 자신의 성을 ‘린턴’의 린을 두음법칙에 따라 ‘인’으로 정했다. 정치권 인연은 2012년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의 국민통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시작됐다.
  • 엎친 데 덮친 루브르 박물관… 누수로 고대도서 400권 손상

    엎친 데 덮친 루브르 박물관… 누수로 고대도서 400권 손상

    약 두 달 전 대낮에 도난사고를 당했던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이번에는 누수 사고로 수백 점의 작품이 훼손됐다. 프랑시 스탱보크 루브르 부관리자는 7일(현지시간) “지난달 26일 누수로 인해 주로 서적을 포함한 300~400점의 작품이 피해를 입었다”면서 “현재 정확한 피해 규모를 집계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피해 도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만들어진 이집트학 저널과 과학 기록물들로, 학자들이 참고하는 사료지만, 이보다 귀중한 서적들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젖은 책들은 건조된 뒤 제본소로 보내져 복원 작업을 거친 뒤 서가에 다시 돌아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루브르 박물관 측은 이번 누수 사고가 배관 노후화로 인한 것이라며 내부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고는 난방 및 환기 시스템의 밸브가 실수로 열리면서 책이 보관된 건물 천장을 통해 물이 스며들며 발생했다. 스탱보크 부관리자는 “완전히 쓸모없어진 난방 및 환기 시스템이 수개월간 가동 중단된 상태였다”면서 “내년 9월부터 교체될 예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누수 사고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는 루브르 박물관은 두 달만에 세번째 사고를 겪게 됐다. 지난달 17일부터는 내부 안전문제로 그리스 항아리를 전시하는 캄파나 갤러리가 폐쇄됐다. 이에 앞서 지난 10월 19일에는 네명의 강도가 8800만 유로(약 1400억원) 상당의 보석을 훔쳐 달아나면서 심각한 보안 허점을 드러냈다. 현지에선 루브르 박물관이 작품 구매에 과도한 지출을 하며 건물 유지보수와 리모델링 등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루브르는 내년부터 비유럽연합(EU) 방문객을 대상으로 입장료를 현 22유로에서 32유로로 인상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늘어난 수익을 박물관 노후 시설을 개선하는 데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 스타링크, 한국서 사업판 벌여놓고 ‘독도’는 삭제…“리앙쿠르 암초”

    스타링크, 한국서 사업판 벌여놓고 ‘독도’는 삭제…“리앙쿠르 암초”

    미국 스페이스X의 저궤도 위성통신 서비스 ‘스타링크’가 지난 4일 한국에 공식 상륙했지만, 서비스 가능 지역을 표시하는 ‘가용성 지도’(Availability Map)에서는 여전히 독도가 표기되지 않고 있다. 앞서 스타링크는 2022년 10월 한국을 커밍 순(coming soon) 국가로 분류하며 제주도는 물론 독도, 울릉도, 백령도, 연평도, 대청도 등 주요 도서를 한국 영토로 명시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무렵 지도상 한국 영토에서 돌연 독도를 삭제한 뒤, 한국에서 공식 서비스를 개시한 현재까지 동일한 지도를 방치하고 있다. 7일 지도 검색창에 ‘독도’를 입력하면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라는 주소명과 함께 ‘리앙쿠르 암초’가 연관 검색어로 노출된다. ‘Dokdo’를 입력해도 주소명만 ‘Dokdo-ri, 울릉읍 울릉군’으로 표기될 뿐 마찬가지로 ‘리앙쿠르 암초’라는 검색어가 추천된다. 특히 ‘리앙쿠르 암초’를 선택하면 실제 독도 위치로 이동해, 사실상 독도를 해당 명칭으로 병기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리앙쿠르 암초는 19세기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일본이 독도를 분쟁 지역화하기 위해 주로 사용한다. 독도는 역사적·지리적 근거가 충분하고 한국이 명백히 실효 지배 중인 영토인 만큼,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스타링크가 이 명칭을 노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비슷한 논란은 구글 지도에서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한국에서 접속할 경우 ‘독도’로 표기되지만, 일본에서는 ‘다케시마’로 표시된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구글 지도를 켜면 독도가 ‘리앙쿠르 암초’로 표기되는 사례도 확인된다. 올해 3월에는 일부 동남아시아 항공사 기내 좌석 스크린 지도에서도 독도가 ‘리앙쿠르 암초’로 표시돼 논란이 일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스타링크 사례에 대해 “지도에서 독도 위치 자체가 사라진 것은 명백히 문제”라며 “검색 결과에 ‘리앙쿠르 암초’가 함께 노출되는 것도 부적절한 만큼, 공식 항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스타링크는 2023년 한국 법인을 설립한 뒤 기간통신사업자 등록과 장비 적합성 인증을 마쳤으며, 올해 국경 간 공급 협정 승인 등을 거쳐 서비스 개시를 준비해왔다.
  • 산이 빚은 절경에 속세를 털어내다

    산이 빚은 절경에 속세를 털어내다

    험산 너머 평야와 바다벽지서 풍요가 느껴져하구로산 삼나무 숲엔천연기념물 500여 그루가모수족관도 가 볼 만해파리떼 유영이 장관만추 끝자락 보내면서모가미강서 뱃놀이도일본 야마가타현 두 번째 이야기, 쓰루오카시다. 야마가타시에 이어 야마가타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그래봐야 작은 소도시다. 그런데 희한하기도 하지. 일본의 벽지이면서도 못 먹고 못 산다는, ‘가련형’이란 느낌은 주지 않는다. 아마 험산 너머로 광활한 평야와 풍요로운 바다를 숨겨 놓은 덕이지 싶다. 첫 번째 목적지는 ‘일본 갈 결심’을 굳히도록 이끈 하구로산(羽黑山) 고주노토(五重塔)다. 이어 일본 토속 신앙 슈겐도의 본산인 산진고사이덴(三神合祭殿), 세계 최대 해파리 전시장인 가모수족관 등 쓰루오카 구석구석을 돌아볼 참이다. 몇 해 전, 한 외국 방송에서 본 기억 속 영상이다. 오층 목탑 위로 눈발이 날리고 있다. 단청은 없지만 그렇다고 수수한 것도 아니다. 날카롭게 솟은 처마 위로 하늘거리는 눈, 사위를 둘러싼 검푸른 삼나무 숲, 어딘가 일본스러운 탐미적이고 관능적인 느낌이었다. 요즘 흥행을 이어가는 일본 영화 ‘국보’의 여장남자 ‘온나가타’의 손사위를 닮았달까. ‘광클’ 끝에 찾아낸 하구로산의 고주노토. 지금 그 목탑을 보기 위해 ‘일본의 강원도’라는 야마가타의 산자락을 넘어가는 중이다. 야마가타현이 속한 도호쿠(東北) 지방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홋카이도 바로 아래, 그러니까 혼슈 동북쪽 끄트머리 6개 현 중 하나다. 도호쿠엔 무려 500㎞에 달하는 오우(奧羽)산맥이 뻗어있다. 여기에 일본인들이 신성시하는 데와산잔(出羽三山)이 있다. 갓산(月山)과 유도노산(湯殿山), 그리고 하구로산으로 이뤄졌다. 일본 전통 토속 신앙인 신도에서 갓산은 전세, 유도노산은 내세, 하구로산은 현세를 관장하는 신이 머무는 곳이다. 일본의 다른 지역처럼 신도와 불교가 합쳐지는 신불습합(神佛習合)이 강했지만 19세기 들어 메이지 유신 이후 신불분리(神佛分離) 등을 거쳐 현재의 형태에 이른다. 불교 건물이 명백한데도 신사라 불리는 건 이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데와산잔을 도는 걸 ‘환생 여행’이라 부른다. ‘서쪽은 이세(일본 최고 권위의 신사) 참배, 동쪽은 오쿠(데와산잔) 참배’라며 평생에 한 번은 참배해야 할 장소로 꼽는다. 특히 토속 산악신앙과 도교, 불교 등이 혼합된 슈겐도(修験道) 신도에겐 성지 중의 성지다. 하구로산 참배길은 들머리인 즈이신몬(隨神門)에서 하구로산 정상 언저리의 산진고사이덴까지 약 1.7㎞다. 관광객의 경우 고주노토까지만 돌아보고 이후 2446개나 되는 계단은 건너뛰는 게 보통이다. 산진고사이덴까지 차로 갈 수 있어서다. 즈이신몬에서 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삼나무숲은 ‘미슐랭 그린가이드 재팬’에서 별 3개 ‘만점’을 받은 곳이다. 수령 350년~500년을 헤아리는 삼나무 500여 그루가 늘어서 있다. 한 그루 한 그루가 일본 천연기념물이다. 이 삼나무 숲 한 가운데에 할아버지 삼나무 ‘지지스기’(爺杉)가 있다. 1000년 넘게 살아왔다는 신목이다. 나무 둘레만 8.5m가 넘는다. 지지스기 너머로 고주노토가 보인다. 937년에 처음 세워졌고, 1372년(1608년이란 주장도 있다) 개축해 현재에 이른다. ‘당연히’ 일본의 국보이고, 수없이 많은 일본 오층탑 중에서도 ‘3대 오층탑’으로 꼽힌다. 우리 목조 건축 양식인 결구법처럼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세워 올린 자태가 장엄하다. 높이는 29m. 이 지역 특산인 감나무를 건축자재로 썼다. 내부 중심엔 거대한 심주석(心柱石)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지진에도 끄떡없이 탑의 중심을 잡아준다. 일본인들이 기를 쓰고 눈 덮인 고주노토를 보러 오는 이유가 헤아려진다. 고주노토 뒤로 산진고사이덴에 이르는 2446개의 돌계단이 펼쳐진다. 산진고사이덴은 데와산잔의 삼신을 함께 모신 전각이다. 2.1m 두께의 초가지붕과 옻칠로 장식된 내부가 장관이다. 세 산신이 가장 낮은 하구로산(414m)에 모인 까닭이 현실적이다. 눈 때문이다. 야마가타는 겨울이면 4m까지 눈이 쌓인다. 고도 1984m의 갓산, 1504m의 유도노산은 겨울에 출입 불가다. 민가와 가깝고, 한겨울에도 눈이 그나마 덜 쌓이는 하구로산이 신들의 모임 장소가 된 이유다. 하구로산은 이 덕에 겨울에도 폐쇄되지 않는다. 바다 쪽에선 가모(加茂)수족관이 가볼 만하다. 세계 최대 해파리 전문 수족관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곳이다. 미슐랭 그린 가이드에서도 별 1개를 받았다. 해파리 하나로 승부를 보겠다는 시골 도시의 자신감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내부 전시도 알차다. 천천히 유영하는 60여 종의 진귀한 해파리들이 인증샷을 부른다. 수족관의 꽃은 ‘해파리 드림 시어터’란 거대한 원형 수조다. 지름 5m의 수조 안에 1만 마리가 넘는 해파리가 유영하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다. 해파리 라면, 해파리 아이스크림 등 음식도 맛볼 수 있다. 쓰루오카 시내 관광은 쓰루오카 공원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에도막부 시절 쓰루오카성이 있던 곳을 공원으로 꾸몄다. 쓰루오카성은 일본 내 다른 성과 달리 천수각이 없다. 이유를 물으니 전쟁, 권력 투쟁과 거리가 멀었으니 유사시에 대비한 천수각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이쯤에서 메이지 유신 이전 야마가타가 속했던 ‘쇼나이번’의 역사를 살펴보자. 12세기 가마쿠라 막부(幕府)부터 일본이 다시 통일되는 16세기까지, 일본도는 권력을 세우고 백성을 지배하는 수단이었다. 한데 야마가타 일대를 다스린 쇼나이번 번주(다이묘)는 독특했다. 사무라이들에게 일본도 대신 낚싯대를 들게 했다. 쇼나이 8대 번주 사카이 다다아키는 7m가 넘는 긴 낚싯대를 만들었는데, 당시로선 획기적인 발명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낚싯대를 만드는 장인이 남아 있다. 쇼나이번의 사무라이들은 산과 들을 지나 해안까지 긴 낚싯대를 메고 절도 있게 이동해야 했다. 바다에 도착하면 칼싸움 대신 낚시로 고기를 얼마나 낚았는지 따져 ‘쇼부’(승부)를 봤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심신을 단련했다. 쇼나이번이 정치 중심지였던 에도(도쿄)와 교토의 권력 투쟁을 외면하고 그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온 배경엔 이런 사연이 깔려있다. 그렇다고 쇼나이번 사람들이 무른 것만은 아니다. 사무라이 시대가 사실상 끝장난 계기가 됐던 보신전쟁 때, 에도막부 편에 선 쇼나이번은 신식 장비로 무장한 정부군에 맞서 일본도를 들고 끝까지 싸웠다. 지금도 ‘황혼의 사무라이’(2007) 같은 시대물 영화가 쓰루오카 일대를 즐겨 촬영지로 삼는다. 공원 옆에는 치도(致道) 박물관이 있다. 마지막 쇼나이 번주였던 사카이 가문이 기증한 저택을 박물관으로 개조해 1950년에 설립됐다. 입장료가 1000엔이라 무척 비싼 편이지만, 볼거리 풍성하다. 눈의 고장 야마가타를 엿볼 수 있는 산악지역의 다층 민가, 최초의 현대식 건물인 옛 쓰루오카 경찰서, 일본식 전통 정원, 낚싯대와 어선 등 국가 중요민속문화재 5350점과 만날 수 있다. 이제 모가미강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한다. 도자와무라(戸沢村)의 고라이칸(고려관, 高麗館)을 찾아가는 길이다. 모가미강은 야마가타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단풍 뱃놀이로 입소문 난 강이다. 날이 추워지면 고타츠(일본식 난방기구)를 배 안에 들여 ‘고타츠 보트’로 운영하기도 한다. 유장하게 흐르는 강과 만추의 산자락이 어우러진 풍경이 인상적이다. 도자와무라는 일본에서 가장 먼저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을 벌였던 곳이다. 1990년대 이후, 이 일대에 한국에서 건너온 신부가 많이 정착한 건 이 때문이다. 일본에선 새색시를 하나요메(花嫁)라고 부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2007년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야마가타에 한국인 ‘하나요메’가 몰려든 건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초다. 먹고 사는 것이 그리 급하지 않은 시절이었을 텐데, 한국 여성이 대거 일본에 진출한 것이 다소 의외다. 당시 인구 6500명 정도의 시골에 수십 명의 한국 여성이 쏟아져 들어온 건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국 ‘하나요메’ 대부분은 여러 어려움을 딛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다. 지금도 김치 등의 식품업, 료칸 같은 숙박업을 경영하는 한국 ‘하나요메’들이 간혹 우리 언론에 소개되곤 한다. 이들의 구심점 구실을 하는 공간이 고라이칸이다. 1997년 조성됐다. 한국인의 시선으로는 부족한 면이 많지만 그래도 ‘이 구역’에선 제법 명소 소리 듣는 관광지다. 물산관, 식문화관, 놀이마당, 정원 등으로 구성됐다. 휴게소에 소규모 테마파크의 기능이 결합한 곳이라고 보면 틀림없겠다. [여행수첩] -‘일본 100대 명폭’ 중 하나인 모가미강의 시라이토 폭포는 123m 높이의 물줄기와 붉은 도리이가 인상적이다. 강 반대쪽의 ‘시라이토 폭포 드라이브인’이라는 휴게소에서 봐야 한다. -하구로산 등산로 인근에 고려에서 건너온 스님이 세웠다는 교쿠센지(玉泉寺)가 있다. 봄에 매화 등 수많은 꽃이 만개해 ‘꽃의 절’이라 불린다. 일본 국가 지정 명승정원이다. -하구로산 들머리의 ‘이데와 문화기념관’에선 야마부시(슈겐도 수행자) 지팡이, 겨울 부츠 등을 유료로 빌려준다. 야마부시의 역사와 유물도 살펴볼 수 있다. 소라고둥 나팔을 멘 지도자 ‘쇼분’을 따라 하구로산 참배길을 걷는 야마부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야마가타는 설국(雪國)으로 유명한 니가타현 못지않게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다. 봄이 시작되는 4월까지 문을 닫는 관광지가 무척 많다. 가모수족관도 그중 하나. 내부 리모델링을 거쳐 내년 4월 개장 예정이다.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왜 나무에 겨울옷이 필요할까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왜 나무에 겨울옷이 필요할까

    어릴 적 우리집 마당 한켠에는 장미가 있었다. 오월이면 새빨간 꽃을 피우던 장미. 11월이 되면 아빠는 어디선가 볏짚을 한가득 가져와 가지만 남은 나무 주변을 감싸 주었다. 며칠 전 길을 걷다 볏짚 옷을 입은 배롱나무를 보고 어릴 적 장미 생각이 났다. 대학교 4학년이던 시절 수목원에서 현장 실습을 하며 나는 나무에 겨울옷을 입히는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지 알게 되었다. 볏짚이 나무를 꽉 조여서는 안 되고, 너무 헐거워 눈과 얼음에 볏짚이 쉬이 손상되어서도 안 된다. 단단하면서도 적당히 둘러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철사나 스테이플러로 고정해서도 안 된다. 겨우내 나무에 입힌 옷이 무사한지 모니터링하고, 봄이 오면 다시 옷을 벗겨 주어야 했다. 그때 내가 옷을 입혀 준 나무는 배롱나무, 단풍나무, 장미 정도였다. 지금도 길가 가로수와 아파트 화단, 공원 등지에 있는 어떤 나무는 옷을 입고 또 어떤 나무는 옷을 입지 않는다. 우리는 왜 특정 나무에만 겨울옷을 입히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겨울나무에 옷이 왜 필요한지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산과 들에 살던 나무는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의 길가, 정원, 화단 등으로 옮겨 왔다. 겨울옷은 나무가 낯선 환경에 적응하도록 돕는 일종의 장치다. 겨울옷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나무 보호대는 18세기 미국 초기 정착민들에 의해 발전했다. 당시엔 야생동물의 위협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치거나 나무줄기를 천연 재료로 감쌌으나, 19세기 들어 도시화되며 더욱 효과적인 수목 보호가 요구되었고 이에 따라 미국 전역의 도시와 마을에서 나무 보호대가 보편화되었다. 겨울 가로수의 볏짚 옷을 본 사람들은 ‘나무도 사람처럼 추위를 타나 보지’ 정도로 생각하지만, 나무에 겨울옷이 필요한 이유는 훨씬 다양하다. 겨울옷은 겨울 한파에 나무껍질이 갈라지거나 깨지는 것을 막고, 폭설과 얼음에 의해 가지가 휘거나 부러지는 것을 방지한다. 건조한 겨울바람은 식물의 수분 손실을 유발해 심하면 식물을 죽이기도 하는데, 겨울옷은 나무의 수분 손실이나 탈수를 최소화한다. 겨울에는 식량이 부족해 굶주린 동물들이 많다. 이들로부터 보호하는 일 또한 겨울옷의 역할이다. 동물 중엔 나무껍질을 씹어 먹는 종도, 나무를 뚫고 나무 내부나 땅속까지 파고들어오는 작은 곤충도 있다. 우리가 겨울 내내 눈길과 언 땅에 뿌리는 염화칼슘 역시 나무의 생장에 치명적이다. 나무 밑동까지 제대로 피복한 겨울옷은 염화칼슘에 의한 나무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또한 겨울 햇빛은 나무줄기를 손상시킬 수 있다. 겨울철 고광도 햇빛은 수피를 따뜻하게 만든다. 그리고 수피의 온기는 세포 활동을 자극한다. 해가 지고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 물관부·체관부 등의 조직이 파괴되고, 수피가 갈라지거나 변색돼 죽은 조직을 드러낸다. 이를 ‘일광화상’이라 부른다. 겨울 햇빛만이 나무에 위험한 것은 아니다. 서리로 인해 나무줄기에 균열이 생기고 뿌리가 손상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어린 나무는 서리, 햇빛, 건조 등 겨울철 환경에 무척 취약하기 때문에 종을 가리지 않고 겨울옷을 입혀 주는 것이 좋다. 물론 모든 나무가 겨울철 피해에 취약한 것은 아니다. 모든 나무에 옷을 입힐 수도 없다. 우리나라 중북부의 조경수 중 수피가 얇아 겨울옷이 필요한 종으로는 배롱나무, 단풍나무, 사과나무, 자작나무, 장미, 물푸레나무 등이 있다. 몇 해 전 나는 조금 특별한 겨울옷을 입은 나무들을 보았다. 근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동네 벚나무 몇 그루에 귀여운 뜨개옷을 입혀 준 것이다. 최근 전국적으로 나무에 뜨개옷을 입히는 활동이 늘고 있는데, 이는 겨울옷 본연의 기능을 기대하기보다는 겨울철 휑해진 도시 경관을 아름답게 하는 심미적 효과와 가로수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목적에서 기획되는 경우가 많다. 겨울옷을 입혀 줄 때엔 나무 밑동부터 시작해 최소한 첫 번째 큰 가지까지 피복하며, 햇빛을 흡수하는 검은색 소재는 피하는 것이 좋다. 나무를 감싸는 소재로 우리나라에서는 천연 재료인 볏짚이, 외국에서는 삼베와 폴리프로필렌 원단이 주로 사용되는데 이 소재들은 모두 통기성과 내구성이 뛰어나며 구하기 쉽고 가격도 저렴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무에 옷을 입힌다는 것은 언젠간 옷을 벗겨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원예가들은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겨울옷을 나무에 입히는 것으로 한 해의 작업을 마무리하고, 이듬해 봄이 되면 나무의 겨울옷을 벗기며 한 해를 시작한다. 우리가 도시의 나무에 들이는 반복된 수고와 비용, 연구, 원예 지식 같은 것은 나무가 원하는 것이라기보다 자생지에서 살고 있던 나무를 우리 곁에 데리고 온 ‘대가’에 가깝다. 나무가 원하는 것과 우리가 나무를 데려온 대가. 이 둘은 같은 말 같지만 완전히 다르다. 야생의 배롱나무에는 겨울옷이 필요하지 않지만, 도시의 배롱나무에는 겨울옷이 필요한 것처럼. 도시의 나무에 볏짚을 입히고 벗기는 일, 나무를 돌보는 일이 시혜나 적선이 아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소영 식물세밀화가
  • AI 시대 ‘공자왈 맹자왈’ 대신 ‘묵자왈’ 해야 하는 이유

    AI 시대 ‘공자왈 맹자왈’ 대신 ‘묵자왈’ 해야 하는 이유

    묵가는 춘추전국시대 유가, 도가, 법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제자백가 4대 학파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기원전 400년대 말 활동했던 묵자가 창시한 묵가는 조건 없이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겸애’와 전쟁은 공격이 아닌 방어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비공’ 등을 주장했다. 유가와 경쟁했던 묵가는 진시황의 통일 이후 갑자기 사라졌다. 2500년 전에 등장해 주목받다 사라진 묵가를 현대 인공지능(AI) 시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정재현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묵경에 대한 철학적 이해’(아카넷)에서 묵가의 사상을 논리학, 윤리학, 과학의 범주로 나눠 살펴봤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과학 측면이다. 묵가는 공자와 맹자로 대표되는 유가로부터 오랫동안 비판의 대상이 됐다. 특히 유가는 겸애설을 이단적인 것으로 배척했다. 그러다 보니, 유학을 국가사상으로 받들었던 조선에서도 묵가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렇지만, 서구 근대문명이 유입되기 시작한 19세기부터 묵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묵가의 ‘비공’ 때문이었다. 묵자를 따르던 이들 중에는 기본적으로 성곽 축성, 군사 무기, 수레 등 다양한 기물을 만드는 기술자가 많았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이들은 투박하지만 기하학과 역학, 광학 같은 물리학 등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지녔다. 서양 과학처럼 인과론적 사유에 바탕을 둔 과학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던 묵가는 고대 중국의 대표적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오행론 같은 상관적·유기체적 세계관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정 교수는 “한마디로 묵가의 입장은 형이상학에 대한 과학의 도전”이라고 해석했다. 법가의 비조(鼻祖) 한비자는 묵자를 일컬어 ‘세상에서 가장 두드러진 학문’이라고 평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중 가장 박식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덕무도 “묵가는 국가와 백성을 위해 지혜를 활용해 다양한 기계 장치를 만들고 허례허식을 타파한 것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했다. 현대 과학의 핵심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현재 이론이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묵가 역시 이런 사상적 배경을 갖고 있다. 정 교수는 “묵가는 모든 갈등은 주어진 현상 속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현상의 이면에 있는 그 본질의 차이 때문에 생긴다는 점을 꿰뚫어 봤다”며 “그들은 늘 사물을 하나의 측면만 보고 절대시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많은 사람이 고대 동아시아 세계에는 과학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묵가는 과학적 성취와 철학을 결합한 독특한 사상 체계를 만들었다고 정 교수는 강조했다. 그래서 묵가는 AI로 대변되는 기술 중심 시대이자, 철학 없는 과학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보다 특별하게 다가온다.
  • ‘말은 넘치지만, 마음은 숨는 시대’ 다시 만난 뮤지컬 <레드북>

    ‘말은 넘치지만, 마음은 숨는 시대’ 다시 만난 뮤지컬 <레드북>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다시 막이 오른 뮤지컬 <레드북>은 보기 전과 보고 난 뒤의 인상이 확연히 달라지는 작품이다. 유쾌함 속에 숨은 질문이 극장을 나서는 순간 또렷해진다. “왜 지금, 이 이야기가 다시 무대에 올랐을까?”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여성이 ‘표현’조차 제한받던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 시대를 그대로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메시지를 던진다. SNS, 댓글, 다양한 플랫폼에서 말은 넘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반응은 빠르고, 해석은 과하고, 오해는 순식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침묵을 선택한다. <레드북>이 지금 관객에게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이야기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풍경을 정밀하게 비춘다. “말해도 될까?”— 19세기와 2020년대의 자연스러운 겹침 주인공 안나는 사회가 허용한 경계를 벗어난 글을 쓴다.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소설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문제’로 간주된다. 정해진 분위기, 말해도 되는 범위,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만들어진 틀. 이 장면들은 자연스럽게 2020년대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표현의 창구는 늘었지만, 표현의 부담은 더 커졌다. 한 문장이 논란이 되고, 맥락보다 ‘반응’이 먼저 따라붙는 시대다. <레드북>은 이 오래된 이야기를 통해 지금 우리가 겪는 불편한 현실을 정확히 비춘다. 화려함보다 ‘용기’가 극을 이끄는 작품 <레드북>의 무대는 과장되지 않는다. 하지만 장면 전환의 리듬과 음악의 흐름은 정확하다. 안나의 선택과 흔들림, 그리고 다시 펜을 드는 순간들이 작게 울리면서도 길게 남는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이유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단단한 질문 하나를 남긴다. “너는 너의 이야기를 하고 있니?”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목소리가 아니라, 자신에게 솔직해지기 위해 필요한 말. 이 작품은 그 작은 용기의 가치를 보여준다. “지금 필요한 건 잘난 말이 아니라 ‘내 목소리’였다” 지금 우리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레드북>의 귀환은 단순한 인기작의 재연이 아니다. 이 작품은 관객에게 분명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언제부터 내 이야기를 삼키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조용히 알려준다. 누군가의 말, 누군가의 기록, 그리고 끝내 꺾이지 않은 한 사람의 목소리가 시대를 움직여 왔다는 사실을. 뮤지컬 <레드북>은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마음속에 아주 단순한 질문을 남긴다. “나는 내 마음을 말하고 있나?” 수많은 말 사이에서 정작 ‘내 말’은 줄어들기 쉬운 시대. <레드북>은 잊고 있던 그 목소리를 다시 꺼내 보게 한다. 그래서 이 오래된 이야기는 지금 다시 무대 위에 오를 이유가 충분하다.
  • ‘말은 넘치지만, 마음은 숨는 시대’ 다시 만난 뮤지컬 <레드북> [여니의 시선]

    ‘말은 넘치지만, 마음은 숨는 시대’ 다시 만난 뮤지컬 <레드북> [여니의 시선]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다시 막이 오른 뮤지컬 <레드북>은 보기 전과 보고 난 뒤의 인상이 확연히 달라지는 작품이다. 유쾌함 속에 숨은 질문이 극장을 나서는 순간 또렷해진다. “왜 지금, 이 이야기가 다시 무대에 올랐을까?”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여성이 ‘표현’조차 제한받던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 시대를 그대로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메시지를 던진다. SNS, 댓글, 다양한 플랫폼에서 말은 넘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반응은 빠르고, 해석은 과하고, 오해는 순식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침묵을 선택한다. <레드북>이 지금 관객에게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이야기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풍경을 정밀하게 비춘다. “말해도 될까?”— 19세기와 2020년대의 자연스러운 겹침 주인공 안나는 사회가 허용한 경계를 벗어난 글을 쓴다.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소설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문제’로 간주된다. 정해진 분위기, 말해도 되는 범위,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만들어진 틀. 이 장면들은 자연스럽게 2020년대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표현의 창구는 늘었지만, 표현의 부담은 더 커졌다. 한 문장이 논란이 되고, 맥락보다 ‘반응’이 먼저 따라붙는 시대다. <레드북>은 이 오래된 이야기를 통해 지금 우리가 겪는 불편한 현실을 정확히 비춘다. 화려함보다 ‘용기’가 극을 이끄는 작품 <레드북>의 무대는 과장되지 않는다. 하지만 장면 전환의 리듬과 음악의 흐름은 정확하다. 안나의 선택과 흔들림, 그리고 다시 펜을 드는 순간들이 작게 울리면서도 길게 남는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이유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단단한 질문 하나를 남긴다. “너는 너의 이야기를 하고 있니?”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목소리가 아니라, 자신에게 솔직해지기 위해 필요한 말. 이 작품은 그 작은 용기의 가치를 보여준다. “지금 필요한 건 잘난 말이 아니라 ‘내 목소리’였다” 지금 우리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레드북>의 귀환은 단순한 인기작의 재연이 아니다. 이 작품은 관객에게 분명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언제부터 내 이야기를 삼키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조용히 알려준다. 누군가의 말, 누군가의 기록, 그리고 끝내 꺾이지 않은 한 사람의 목소리가 시대를 움직여 왔다는 사실을. 뮤지컬 <레드북>은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마음속에 아주 단순한 질문을 남긴다. “나는 내 마음을 말하고 있나?” 수많은 말 사이에서 정작 ‘내 말’은 줄어들기 쉬운 시대. <레드북>은 잊고 있던 그 목소리를 다시 꺼내 보게 한다. 그래서 이 오래된 이야기는 지금 다시 무대 위에 오를 이유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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