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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은 호수”

    ◎1886년 영인이 쓴 「장백산­만주기행」에 묘사/삿갓쓰고 한가로이 낚시하는 조선인 모습 그려/백두산 정상 관목지대는 “에덴의 동산”으로 표현/문도이주 조선인의 생활상 등 상세히 기술 만주 간도지역에 이주한 우리 민족의 삶과 민족성을 상세히 묘사한 가운데 민족이 우러러보는 성산 백두산을 기록한 19세기 후반의 자료가 발견됐다.서울대 도서관에서 송기호교수(한국사)가 찾아낸 이 자료는 18 88년 롱맨출판사가 영국 런던에서 간행한 「장백산­만주 기행」(The Long White Mountain).특히 이 책속의 백두산 천지 풍경은 가장 오래된 백두산 실사 컬러스케치로 추정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영령인도제국의 봄베이 사무소에 근무하던 영국인 공무원 H E M 제임스.그는 2년간 휴가를 얻어 중국여행을 계획하던중 우연히 같은 생각을 갖고 있던 영국왕립근위대의 F E 영허즈밴드 중위를 만나 함께 1886년 3월부터 2년동안 요령성 길림성 흑용강성등 중국 동북부 3성과 러시아의 연해주지방을 여행했다.그 과정에서 그는 백두산을 등정,천지의 신비로움을 감탄했으며 도중에 만난 조선인 이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5백쪽에 달하는 여행기에 상세히 기록했다.특히 동행했던 영허즈밴드는 그림에 솜씨가 있어 많은 삽화를 그렸는데 그 가운데 백두산 천지와 낚시하는 조선인의 모습은 눈길을 끈다. 제임스 일행이 인도의 캘커타항을 떠난것은 1886년3월19일.말레이시아의 페낭과 싱가포르를 거쳐 홍콩에 도착한뒤 바로 광동 상해 북경 천진을 거쳐 요령성의 잉커우(영구)항에 도착했다.그곳에서 준비를 완료,만주여행에 돌입한 것은 2개월후인 5월19일 이었다. 그들이 만주지방을 택한 이유는 남부나 동부보다 기후가 좋고,비옥한 땅에 자원이 풍부하고,인구가 적은데 비해 개발이 거의 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특히 장백산맥 일대에는 호랑이·곰·사슴등 산짐승이 풍부하여 사냥의 천국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요령성의 수도인 목단(오늘날의 심양)을 거쳐 길림성으로 들어온 그들이 조선인을 만난 것은 압록강 부근에 다다라서 이다.압록강의 굽이굽이 완만한 흐름과 풍광은 그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제임스는 개척민으로서의 조선인들의 삶을 정확히 살피고 있다.『상당수의 조선인들이 강을 건너와 살고 있었으며 낚시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크리스천이 많았는데 그들은 1882년 로스라는 선교사가 조선어로 번역한 성경책을 지녔으며 자신들의 교회를 갖고 있었다. 특히 그들은 만주식 집을 자신들에게 편리하도록 개량했다』고 기록했다. 그는 또 조선인들이 농업노동자로 많이 와있는 한 마을의 규약중 조선인들에게는 낚시를 금한다는 내용을 소개했다.이는 낚시의 풍류를 즐기다 보면 농사일이 뒷전이 될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석을 덧붙였다.그는 등산 도중 많은 지명들이 조선어로 돼있었다면서 그 산을 조선인들은 백두산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도 들추어냈다. 천지에 다다를수록 그들이 느끼는 외경감은 더 컸다는 제임스는 정상의 관목지대에 올라서는 「에덴의 동산」을 옮겨온듯 하다고 찬탄했다.정상에서 천지를 대했을때의 감격은 「이 세상에서 가장 투명하고 아름다운 호수」라고 표현하면서 그잔잔함은 마치 스위스의 레만호수같다고 표현했다.그들은 중국인들이 「바다의 눈」이라고 부른다는 천지에서 1주일을 머물면서 각종 조사와 더불어 비경을 즐긴 것으로 돼있다. 이어서 그들은 치치하르와 훈춘을 거쳐 연해주의 노보­키예프스키지방을 여행,그곳에서도 많은 조선인을 만났으며 러시아인들이 조선인들의 근면성과 학덕을 칭찬하고 있다는 사실도 기술했다.이 여행기는 이렇게 연해주를 끝으로 다시 역순으로 남하,상해에 돌아오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 영 리얼리즘화가 시커트/유럽서 회고전 잇따라 열려

    ◎“영 모더니즘운동 대부” 평가/실험정신 탁월… 「에드워드8세」가 대표작 19세기말 영국의 화풍을 유럽대륙에 소개하는데 큰몫을 한 리얼리즘 화가 월터 리처드 시커트(1860∼1942)만큼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된 예술인도 드물 것이다.시커트는 20세기 개막과 동시에 S­F 고어,해럴드 길맨등 영국의 젊은 모더니스트들에게 활기를 북돋웠을 뿐아니라 루시안 프로이드·프랭크 아우에르바흐 등과 같은 조형예술 작가,심지어는 철학가 프랜시스 베이컨에게 까지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었다. 요즈음 런던의 왕립예술 아카데미에 이어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시커트의 회고전은 그의 복잡다단한 내면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1887년에 그린 그의 대표작 「우스꽝스런 사자」는 섬세하고 솔직담백한 필치로 당시의 연예계 스타를 잘 묘사한 걸작으로 꼽힌다(사자 또는 맘모스라는 말은 하얀 넥타이를 매고 무대에서 노래에 곁들여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대중가수를 일컫는다).특히 무대에 선 가수의 불룩한 연미복과 배경을 이루는 호수의 묘사는 C 마네의 그림을 연상시켜 주고있다. 어찌 보면 다소 따분한듯한 시커트의 초기 작품세계는 1907년 그가 한 살인사건을 목격하고 돌변한다.어느날 런던의 하숙집 근처에서 목이 잘린 금발 창녀의 변사체가 발견된 것이다.이 살인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이듬해부터 침대에 드러누운 나부와 정장차림을 한 신사를 등장시킨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거칠고 어두운 이미지를 담은 일련의 그림들은 한결같이 무겁고 불길해 보인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가 죽은지 20년이되자 창녀 살인사건의 진범이 시커트 자신일것이라는 소문이 나온 것이다. 1880∼1930년 사이에 활발히 진행된 미술분야의 뛰어난 모더니스트 운동가들이 그러하듯 종래와 다른 엉뚱한 발상을 한 시커트도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을 듣고있다.이같은 새로운 시대흐름에 대한 그의 실험정신은 아무래도 그의 성장과정에서 찾아야 할 것같다. 시커트는 덴마크출신 아버지와 영국계의 어머니 사이에 뮌헨에서 태어났다.그런 탓으로 독일어와 프랑스어에도 능통했다. 청년시절 J M 휘슬러 밑에서 작품활동을 했고 83년엔 휘슬러의 소개로 E 드가와 만나 드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그의 초기 화풍은 신인상파적인데 드가는 물론 모네,H T 로트렉 등 프랑스 화가의 착상을 도입하기는 했으나 예술의 바탕은 영국풍을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화상을 연상케하는 「아브라함의 하인」(1929년),막장에서 올라오자마자 아내와 열렬히 입맞춤하는 「광부」(1935년)등 그의 후기 작품에선 마치 사진을 찍어놓은 듯한 사실주의적인 경향을 보이고있다.특히 털모자를 들고 리무진 승용차에서 내리는 「에드워드8세」(1936년)의 묘사는 사실주의의 극치를 이룬다는 찬사를 받기도한다.
  • 잠수함/역사속 바뀌어온 모습을 좇는다(배:27)

    ◎18세기말 미 독립전쟁때 실전에 사용/대전시 신출귀몰… 54년 첫 핵잠함 진수 인간은 고대부터 물 속에서 자유자재로 활동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 왔으며 그 결과 오늘날에는 원자력 잠수함까지 보유하게 되었다. 수중항해를 처음으로 생각한 것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으며 16 20년에 네덜란드의 코르넬리우스 판 드레벨이 만든 목제 잠수어선은 잠수함의 선구자로 지칭된다.잠수선이 어느 정도 구체적인 형태를 갖게 된 것은 18세기 말엽이었다.특히 1775년에 미국의 부슈넬은 영국 프리깃 이글호의 밑에 구멍을 뚫고 시한폭탄을 설치하기 위해 거북호(American Turtle)를 건조하였다.이 잠수정은 선체의 외관이 거북등 두개를 엎어 맞춘 모습을 띠고 내부에 물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탱크를 보유하고 있었는데,미국독립전쟁때 실전에 사용한 최초의 잠수함이라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군용으로 적합한 잠수선은 19세기 말엽에 등장하였다.18 99년에 프랑스 해군의 기술자 로뵈프는 2백t급의 나발호를,그리고 미국의 J P 홀랜드는 70t급의 홀랜드호를건조하였다. 1차대전중에는 독일이 가장 활발하게 잠수함을 이용하였다.이때 건조된 U보트도 대개 소형잠수함이 주종을 이루었지만,그중에는 배수량 1천1백42t,길이 83.5m,폭 7.5m,수상속력 17.5노트,수중속력 7노트,어뢰발사관 6개의 제원을 가진 대형잠수함도 있었다. 2차대전시 독일은 5백17t급의 U7형 잠수함을 건조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1천6백t의 배수량과 85m의 길이,어뢰발사관 18대,항속거리 1만1천1백50마일,승조원 5대의 제원과 스노켈 장치까지 갖춘 U21같은 대형잠수함도 건조하였다. 잠수함의 역사에 결코 지울 수 없는 획을 그은 때는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이 건조되기 시작한 1952년 7월14일이었다.미 해군의 리커버 대령을 단장으로 한 기술진은 노틸러스호를 설계하기 시작하여 1954년에 진수하고 1955년에 준공하였던 것이다. 잠수함은 양차대전때 상선들의 킬러였을 뿐만 아니라 수상함들에도 괴로움을 주었다.전파탐지기가 개발되지 않은 시기에 잠수함은 야간에 떠도 발견되지 않아 신출귀몰한 활약을 하였다.비록 위성까지 사용하는오늘날에도 원자력 잠수함은 깊은 심도로 잠수,항해하여 위치노출이 거의 안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륙 깊숙이 위치한 적의 심장부를 미사일로 공격할 수 있는 이점을 갖고 있다.그러나 국지전은 물론 연안 가까운 해역에서는 여전히 재래식 잠수함은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각국 해군의 주요 함정으로 사용되고 있다.
  • 세계무역전쟁,생존전략 가다듬자(사설)

    미 클린턴 정부출범이후 세계무역환경이 한층 더 악화되고 있다.미정부는 수입철강제품에 예비덤핑판정을 한데 이어 EC(유럽공동체)의 정부조달정책에 대해서도 보복조치를 곧 취할 것으로 외신이 전하고 있다. 미 새행정부가 통상압력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이 사상 처음으로 중국산 합금철에 대해 반덤핑관세를 부과,동시 다발적인 무역전쟁의 불길한 조짐이 보이고 있다.부시정부가 말로 통상압력을 넣었다면 클린턴정부는 행동으로 나타내고 있어 무역전쟁의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무역보복 조치는 상대국의 대응보복을 유발,마침내는 파괴적인 무역전쟁이나 보조금지급 전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이른바 미 새행정부의 공격적인 일방주의(aggressive unilateralism)가 전 세계에 무역전쟁을 유발시킬지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무역전쟁은 냉전보다 더 위험하다.19세기말 선진국간 경제마찰이 1차 세계대전을 유발했고 1929년 대공황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선진국들의 수입제한조치(수입쿼터)가 2차대전을 발발시킨바 있다.만약에 미 새행정부가 현재와 같은 공격적인 일방주의를 밀고 나갈 경우 무역대전이 불가피해진다. 가공할만한 무역대전은 미국경제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따라서 미국이 반덤핑조치를 자제해 주기 바란다.미국은 반덤핑조치를 지나치게 남발하고 있다. 몇해전까지 만해도 자국시장가격이하로 미국에 수출하는 상품에 대해 반덤핑관세를 부과했다.그러나 현재는 미국생산 업체에 손상 위협을 주는 상품에 대해서까지 반덤핑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국이 반덤핑여부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그것은 분명히 GATT(무역 및 관세에 관한 일반협정)의 자유무역주의 정신에 위배되는 일이다.그래서 미국이 무역보복조치를 자제해 줄것을 거듭 촉구하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무역분쟁을 쌍무적 차원이 아닌 다자간협상을 통해 해결해야한다.그 처방은 우루과이 라운드협상(UR)을 조기에 타결하는 것이다.UR협상이 타결될때까지 선진국들이 관세및 비관세장벽을 이용한 보복조치를 최대한 자제해야 무역대전을 예방할 수 있다. 세계무역전쟁은 또한 우리의 생존과도 직결된다.우리는 그 생존전략을 가다듬어야 한다.미국의 철강제품에 대한 예비덤핑조치로 한국 역시 피해를 입고 있다.우리는 미 신행정부의 통상전략변화에 대한 대응전략을 강화해야 할것이다.클린턴 정부의 강도높은 통상압력에 대비해 대외차별적 관행을 개선하고 UR협상에도 적극 참여해야 하겠다.
  • 21세기 한국의 문을 여는 “이어령과의 대화”:12

    ◎부채의 원리/인간과 도구·기계와의 관계 변화/로봇과 구도여행하는 삼장법사/상호 대립·단절… 균열속에 따로 존재/서구/쥘 부채처럼 사용자 마음따라 변화/동양/친화 바탕 새 도구관 한국서 나와야/이불·요는 필요에 따라 펴고 개키고/서양침대는 사람 일어나도 그대로/한국이이 자동차를 발명했더라면/주차장 공간 필요없게 연구했을것 □황규호문화부장=이 대담이 처음 시작되었을때 선생님께서는 「에너지에서 정보」로 산업사회의 가치체계가 달라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그리고 21세기는 그동안 서양문명이 구축한 두꺼운 벽이 무너지는 자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에너지와 벽은 어떤 면에서 상관성을 갖고 있는지요. ○인력·축력 1% 불과 ■이어령 전문화부장관=19세기 중반까지 인간이 사용한 전 에너지의 94%가 인간과 가축의 근력에서 나오는 에너지였다고 합니다.그런데 1백년이 조금 지난 오늘날에는 그것이 불과 1%도 안된다고 합니다.놀랍지 않습니까.산업화의 기점은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의 발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것은 국민학교 학생들도 아는 상식이지요.근력이 증기의 힘,전기의 힘,그리고 이제는 원자력의 힘으로,에너지원의 새로운 개발이야말로 오늘의 산업화시대를 만들어낸 바로 그 심장이요 손발이라고 할 것입니다. □자연에너지가 인공적인 에너지로 바뀌어 갔다는 것이지요.지금도 자동차를 몇마력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산업화 이전의 에너지를 대표하였던 것은 말의 힘이었지요.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마는…. ■그래요.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요.그런데 조금 파고 들어가면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들이 드러나게 되지요.말의 힘이 증기기관의 힘으로 바뀌어간 그 과정을 살펴보면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된 문명의 그 숙명적 의미를 피부로 느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산업혁명을 낳은 당시의 영국사회 특히 런던의 그 도시환경 말씀이신가요. ■16세기중반에서 17세기에 이르면 런던과 같은 대도시의 연료와 목량업의 발전으로 영국의 산림자원은 황폐해지기 시작합니다.수풀의 죽음속에서 서서히 농경 문명이 막을 내리게 되는 상징적인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지요.심각한 열 에너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나타나게 된 것이 바로 석탄이었는데 이 검은 돌과 탄광이야말로 산업문명을 낳은 아버지라고 할 것입니다. □『석탄 백탄 타는데』라는 개화기때의 우리나라 노랫가락이 생각나는군요. ■문제는 석탄을 연료로 썼다는 자체가 산업화를 이룩했다는 것은 아닙니다.첫째 이 석탄을 캐려면 탄광의 배수문제를 해결해야 되는데 결국 거기에서 발명된 것이 바로 배수펌프이고 후일 와트의 회전식 증기기관으로 맥을 잇게 되는 뉴커먼 기압기관의 탄생입니다. □산업혁명을 낳은 아버지가 석탄이라면 그 어머니는 동력기의 발명이라는 말씀이군요. ■뿐만이 아닙니다.산에서 캔 석탄을 도시로 수송하려다 보니 이번에는 말이 자꾸 증가하기 시작합니다.말이 증가되면 그 사료를 증산해야 하고 이렇게 말 사료가 늘어가면 결국 사람의 식량이 달리게 됩니다.더이상 말을 늘릴 수 없는 한계상황에 부딪치고 만것입니다. ○채털리부인 숲향기 □알겠습니다.그 극한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와트가발명한 인공의 동력의존이라는 말씀이시지요. ■그렇지요.말의 힘을 대신할 인공동력의 발명,기차가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석탄을 때서 석탄을 운반하는 이상한 현상이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웃음).숲이 죽고 말이 죽고 그대신 태어난 것이 동력기관과 기계들이었지요.탄광과 공장,로렌스의 소설을 보면 숲의 죽음과 산업문명의 탄생이 아주 선명하게 그려지지요.그의 문학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바로 이 상실한 숲의 재생이라고 할 것입니다.그가 그리는 섹스라는 것도 이 남벌된 숲의 한 풍경에 지나지 않아요.왜 그 유명한 채털리부인의 사랑이 있지 않습니까.그 정사장면의 묘사를 보면 그가 그리려는 섹스와 숲이 얼마나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지 잘 알 수가 있습니다.채털리부인의 온 몸에서는 숲의 향내가 나고 성불능에 걸린 그 남편의 몸에서는 검은 연기와 불꽃을 토해내는 공장 굴뚝의 석탄 냄새가 나지요.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산업문명이 어떤 것인지 오관을 통해서 직접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석탄냄새,지하의 탄광과 광부들,그리고연기를 내뿜고 달리는 철마­초기 산업문명의 이 풍경이야말로 근대인이 뽑은 운명의 카드였지요. □그런데 21세기를 앞두고 있는 우리는 그와는 다른 또하나의 「운명의 카드」를 손에 들고 있다는 것이군요. ■우리 손에 들린 그 새로운 운명의 카드에는 어떤 그림들이 보일까요.우선 동력기에 의해 돌아가던 거대한 기계들이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로 변한 모습이 보입니다.전자시계를 비롯한 전자제품들,전화,반도체를 이용한 컴퓨터와 모든 정보기기와 관련된 것들은 19세기때의 기계식 제품과는 달리 아주 작은 동력으로 돌아갑니다.강전의 시대에서 약전의 시대로 말입니다.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덜쓰는가?정보기기가 아니더라도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제품일수록 이 지상에서는 공룡처럼 자취를 감춰가는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후기 산업사회는 전세계가 오일쇼크를 경험하고 난 그 뒤부터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에너지」에서 「정보」로 그 힘의 비중이 바뀌어 간다는 말은 에너지에서 전파로,기계에서 전자로 그 패러다임이 변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기계가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로 바뀌면서 모든 산업주의의 패러다임도 변화되었다는 말씀이시군요.동력기는 반도체로,에너지는 전파로,강전은 약전으로 중심개념이 옮겨간다.그래서 도구에 대한 개념도 달라진다…. ■그렇습니다.기계는 동력기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들이라 인간과 다른 자기독자의 심장을 갖고 있지요.인간과 기계는 대립적이거나 단절적입니다.인간과 기계의 이같은 관계를 극단화시킨 것이 그 유명한 프랑켄슈타인입니다.작품이 아니라 실제로 기계와 인간이 힘을 겨루는 이야기는 유럽 미국등지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서양사람들은 인간과 인간사이 만이 아니라 도구와 인간사이에도 두꺼운 벽을 가지고 있었지요.이러한 벽때문에 인간은 자연과 도구를 객체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인간따로 기계따로 제각기 따로 노는 균열이 생겨난 것입니다. ○마음따라 수시 변용 □한국의 경우는 어떻지요.인간과 도구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기계의 관계말입니다.더 적대감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서양사람과 한국사람 넓게는 동아시아 사람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지난번에 병풍이야기를 하였지만 그 쓰는 도구를 보면 분명히 알수가 있습니다.부채를 보십시다.서양이나 동양이나 부채를 사용한 것은 다 같습니다.그런데 일본과 한국인은 접는 부채를 발명하였고 애용했습니다.전주의 합죽선은 지금도 그 맥을 이어오고 있지 않습니까.보통 부채와 달리 왜 우리는 접는 부채를 많이 사용하였을까요.부채 역시 사람이 쓸때에는 펴고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접어 둡니다.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과 태도에 의해서 도구도 수시로 변하는 것이지요. □사람과 도구가 대화를 한다는 것이군요. ■서양부채는 사용할 때에나 그렇지 않을 때에나 똑같습니다.그러나 접부채는 쓰지 않을 때에는 작게 접혀서 옷소매나 주머니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부채만이 아니지요.이불과 요를 보세요.잠잘 때에는 펴고 일어나면 개키지 않습니까.이불과 요는 그 주인인 인간과 함께 행동하지요.그런데 서양침대는 어때요.사람이 자고 일어나도 꼼짝도 안합니다(웃음).24시간 자리를 차지하고 드러누워 있는 거예요.어디 침대만 그래요.집집마다 양옥을 짓고 응접실에 소파를 들여놓고 삽니다마는 그 의자라는 것은 사람이 앉아 있는 시간보다는 제가 혼자서 죽치고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응접실은 결국 사람보다 의자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그러나 한옥 사랑방을 보십시오.의자 대신 방석이 있는데 손님이 오면 내왔다가 돌아가면 방석을 넣어둡니다.사람이 앉을 때만 존재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라집니다.인간과 도구는 일체가 되어 함께 호흡하지요.서양식탁은 세끼 밥먹기 위해서만 있는데 밤낮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먹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그러나 우리 밥상은 어디 그래요.먹을 때에는 나오고 먹고나면 들어갑니다(웃음). □먼저 시간에 말씀하신 한국의 보자기와 서양 가방의 차이와 같군요. ■자동차는 서양사람이 만든 물건 가운데 대표적인 최악의 발명품으로 사람이 탈때나 내릴 때나 변함이 없어요.한국인이 만들었더라면 전주 합죽선처럼 내리면 척 접혀져 작아지거나 벌떡 일어서거나(웃음)무슨 변화가 있도록 디자인 되었을 것입니다.빈차가 잠자고 있는 주차장 공간을 볼때마다 과학기술이 발달했다고 자부하고 있는 현대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됩니다.농담이 아니라 사실 근대에 들어서 동양인의 독창적인 발명품으로 유일하게 손꼽히는 인력거를 보더라도 손님이 내려 비었을 때에는 세워놓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습니까.가마도 다 해체할 수 있도록 되어 있구요. □근대 기계를 수용하는 데 있어서도 그런가요. ■일렉트로닉스는 합죽선과 가까운 도구인 것입니다.전자제품은 인간과 일체형으로 되어 있지요.그것들은 몸에 휴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안테나를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도록 된 라디오 카세트처럼 쓸때와 쓰지 않을 때에 따라 달라집니다.인간과 대화를 하고 있지요.컴퓨터의 변화를 보세요.이젠 노트북 컴퓨터에서 펌(손바닥)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인체에 밀착하도록 발전되어가고 있지요.인간과 함께 하는 마치 인체의 일부처럼 붙어다니는 기계 그것이 전자제품들의 특성입니다. □무선전화니 휴대폰도 다 그렇구요. ■기계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면서도 그 결과는 인간을 해치고 대결하고 파멸시키는 프랑켄 슈타인이 되었지만 앞으로의 그것은 좋은 동반자로서 같이 호흡하고 대화하는 커뮤니케이션 파트너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기계는 생산하는 도구,공장의 기계로 대표되었던 그런 도구가 아니라 방안에서 인간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도구로 변신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도구와 인간이 일체가 되는 그런 정신을 우리는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어서 미래의 기계에 대한,도구에 대한 새로운 철학은 한국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도구론이 말입니다.삼장법사가 손오공과 저팔계를 데리고 경전을 구하러 가는 그 여행처럼 앞으로 우리는 로봇이었던 컴퓨터였던 그런 반려자를 데리고 복지의 땅 행복과 번영의 인간문명의 경전을 받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호칭에도 인격부여 □실제로 그런 현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지요. ■가령 접부채를 만들어낸 일본의 예를 들어보면 그들이 어떻게 로봇왕국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요.전세계의 공장에서 일하는 로봇의 80∼90%는 일본것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급속도로 로봇이 인간과 함께 공장에서 일하게 되는 것은 로봇에 대한 거부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마치 인간처럼 기계와 친숙하게 벗하면서 일을 한다는 것이지요.아침에는 로봇과 함께 라디오체조를 하기도 하고 인기가수나 연예인 이름을 따다 로봇에 붙여 놓고 부릅니다.『고장났다』고 하지 않고 『병에 걸렸다.몸이 불편한가 보다』라고 말한다는 겁니다.서양에서는 로봇을 인간의 대립물로 보기 때문에 노조에서는 물론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으로 적대감을 갖는 경우가 많지요.도구와 친화력을 갖는 전통문화를 갖고 있는 사회에서 로봇이나 전자제품은 보다 잘 수용되고 발전해 갈 가능성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기계의 개념이 바뀌어지는 데서 21세기의 문이 열린다.산업사회와는 다른 새로운 도구관이 탄생되어야 한다.이 가능성이 우리에게 많다.대체로 이러한 논법에서 산업문명 뒤에 오는 미래의 역사를 전망해 주셨습니다.다음에 계속하지요.
  •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캠페인(한국정신의 원류를 찾는다:4)

    ◎문화창조/외래문화 소화해 독자영역 개척/인간의 가치와 규범,내면세계에 바탕/유교문화 기반으로 자본주의도 발전 우리 한국인들은 지난 30년간 한국의 산업화를 향하여 불철주야 근면과 인내의 대로를 달렸다.그리하여 우리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였다.그리고 이제 우리는 적어도 멀리는 전통적인 농본주의 경제체제를,가깝게는 6·25동란이 몰아온 전쟁의 폐허를 벗어나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물질적인 풍요속에 자리하게 되었다.이것은 우리 한민족에 있어서 역사적인 위업이라고 하여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 ○한국민족사의 위업 그러나 이와같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형성은 동시에 현대한국사회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말하자면 현대 한국사회는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하여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이룩하였으나 오늘의 상황에서 변화된 사회에 대한 계획적인 프로그램이 강구되지 않는한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전통문화의 제약을 받지않는 역설적인 국면에 처하게 될 것이다. 확실히 현대한국사회에서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형성은 하나의 사회발전이요 우리 한민족의 문화창조이다.역사적으로 한민족의 문화발전·문화창조는 내생과 외래와의 상호작용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고 있다.그러나 여기서 특기할만한 것은 이와같은 내생과 외래의 상호작용의 과정을 거치면서 외래문화를 우리의 것으로 소화해서 독자적인 문화영역을 개척하여 발전시켰다는 것이다.바로 여기에 한국인의 독특한 문화창조의 능력이 입증되는 것이다.한국의 불교문화가 그렇고,한국의 유교문화가 그렇다.오늘날 우리 한민족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형성 또한 예외가 아니다.현대 한국에서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형성은 우리 한민족의 새로운 문화발전·문화창조의 시동인 것이다. ○문화창조능력 독특 그러나 역사적으로 우리 한민족의 문화발전·문화창조라고 할때 이 새로운 시동은 전통적인 문화발전·문화창조와는 매우 대조적인 문화영역을 개척해가고 있다.우리 한민족은 전통적으로 인간의 정신세계·내면세계를 개척하는데 탁월한 문화적 능력을 발휘했다.그리하여 인간의가치와 규범을 인간의 내면세계에 바탕을 두는 경향이 강하였다.문화가 역사적으로 형성된 인간의 외면적·내면적 생활의 여러 양식의 대계라고 한다면 우리 한민족은 인간의 내면적 생활의 여러 양식의 문제에 보다 힘을 기울였다.이것은 한국의 특이한 문화적 성격이다.바로 이러한 문화적 성격과 관련하여 우리 한민족은 전통적으로 현실의 세계를 그것 자체로서 통제하는 체제의 논이가 발달하지 못하였다.이는 사회적 기술의 빈곤을 의미한다.19세기중엽 한국근대사의 변혁기에 적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여 근대 국가건설에 실패하고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것도 자성해 보면 이와 같은 한민족의 문화적 성격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와 대비해서 오늘날 우리 한민족의 문화발전·문화창조는 현실의 세계를 그것 자체로서 통제하는 새로운 사회체제를 구축하는데 경주하고 있다.경제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정치·사회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바로 그것이다.우리의 전통문화속에도 체제의 논리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우리 전통문화가운데 유일하게 유교문화는 현실세계에 대한 독자적인 이론체계를 가지고 있었다.그러나 조선시대의 유교문화는 주로 내면적인 도덕주의에 치우친 나머지 체제이론의 발전이 빈약하였다.조선시대에 실학사상가들이 이러한 내면적인 도덕주의에 대하여 유교의 체제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경세치용과 이용후생,즉 제도개혁과 경제안정의 이론을 편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에서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내생과 외래,즉 문화적 전통으로서의 유교사상·실학사상의 정신적 기반위에 정부주도의 경제전략과 경제정책,높은 교육수준의 노동력의 공급,외국의 경제협력과 원조,민간경제력의 향상,기술도입이 지속적으로 추진됨으로써 개화하게 된 것이다. ○경제체제의 전환기 근대 자본주의는 합리적 노동조직위에 구축된 합리적 경영에 의해 행해지는 자본 증식의 메커니즘이다.따라서 자본주의의 형성발전에 있어서는 주어진 객관적인 여러 조건들과 함께 자본증식의 메커니즘을 추진하는 주체적 정신적 계기가 있어야 한다.서양의 경우에는 그것이 프로테스탄티즘의 정신이었다고 한다.한국의 경우에는 전통적인 유교문화가 주체적 정신적 동인이 되고 있다.유교문화의 높은 교육열,개인적인 입신출세,가족주의의 기본 윤리로서의 효도와 가주의 평안과 번영등이 바로 그것이다.원래 유교문화에서는 이들 요소들은 원리적으로 엄격히 도덕적 실천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그러나 한국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형성에 있어서는 이들 요소들이 순수히 도덕적 실천의 영역을 벗어나서 정부주도의 경제전략과 경제정책등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형성을 위한 계획적인 프로그램과 접합함으로써 그 역동화(dynamism)의 주체적 정신적 동인이 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두가지 점에서 전환기를 맞고 있다.첫째는,이제 한국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지난 30년간 자본증식의 메커니즘을 추진해온 주체적 정신적 계기들이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크게 변모하고 있다는 것이다.그것은 동시에 우리 한민족의 전통적인 문화적 정체성의 퇴색이기도 하다.둘째로는,이제 한국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그것이 비록 유교라는 전통문화의 기반위에서 형성되었으나 더이상 전통문화의 정치·사회적 기술이라든가 도덕적인 가치·규범으로서는 통제할 수 없는 새로운 사회영역에 도달해 있다는 것이다. ○사회구조 급변 상황 이러한 의식적·사회적 변동은 변화된 사회에 적합적인 정치·사회적 통합의 메커니즘의 창출과 이를 발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정치·사회적 기술의 개발을 요청하고 있다.이제 우리는 오늘의 이 시점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기반으로 하여 첫째로 전통문화와 민주주의와의 훌륭한 결합을 통한 우리 한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의 확립과 정체성의 정치·사회적 편성을 추진해 가야하며,둘째로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법·제도 공공성 참여 토론 비판 합의 저항 설득 관용등 정치·사회적 기술을 보다 적극적으로 발전시켜가야한다. 이렇게 할때 우리는 지난날 우리 선조들이 이룩한 불교문화·유교문화의 개화처럼 21세기의 한민족의 빛나는 문화발전·문화창조를 열어가게 될 것이다. □박충석 ▲1936년 황해 장연출생 ▲연세대정외과 졸업 ▲일본 동경대 대학원(법학·정치학연구과) 법학박사 ▲단국대 교수 ▲현재 이화여대 교수 ▲저서 「한국정치사상사」 「조선조의 정치사상」 「일본정치론」 등 다수
  • 베를린 새단장/28개 박물관 대대적 정비

    ◎동·서분할 문화재 “교통정리”/파손유적 복원… 소장품 분류,재배치 계획 통일독일의 수도가 될 베를린이 요즘 대대적인 문화재 재정비 사업으로 분주하다.도시의 분단과 함께 동서로 분할됐던 각종 문화유적과 예술품들을 복원하고 재배치하기 위한 방대한 사업이 통일도시 베를린의 면모를 일신하려는 국가 및 시당국의 계획아래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베를린시내에는 폐허로 방치되다시피한 것들을 포함해 모두 28개의 공공박물관이 있다.이들 박물관은 각종 예술품을 뒤죽박죽으로 소장하고 옛장벽을 경계로 거의 반반씩 나뉘어 있다. 베를신시는 이들 소장품을 분야·시대·지역별로 분류해 각 박물관에 재배치할 계획아래 총비용 15억마르크(약 7천6백억원)의 이 문화대역사를 문화재관리단체인 프러시아 문화재단에 맡겼다. 이 재단의 문화재 재정비작업은 우선 과거 동베를린지역의 박물관들을 복원하고 소장품들을 깔끔하게 손질하는 것부터 시작된다.따라서 동부지역에서는 황폐화된 박물관밀집지구 「박물관섬」을 중심으로 신축·보수공사가 한창진행되고 있다.2차대전때 파괴돼 터만 남은 노이에박물관은 복원신축공사가 진행되고 있꼬 50년대에 내부계단을 설치해 원래모습을 상실한 알테박물가는 이를 헐어내는 보수공사가 벌어지고 있다.이밖에 보데박물관·페르가몬박물관·국립미술관 등 다른 박물관들도 외부단장과 내부현대화작업으로 부산하다. 서부지역의 박물관·미술관 밀집지구인 포츠담광장 근처 「문화포럼」에 새로 두개의 박물관이 들어서고 있다.이곳에는 이미 미술관 하나가 완공됐다. 프러시아재단은 이같은 시설공사가 완료되면 회화·조각품 등 방대한 양의 문화재를 정해진 박물관에 재배치하기위한 교통정리를 할 계획이다.이 계획에는 이웃박물관끼리의 작품이동,동서사이의 이동뿐만 아니라 벨기에 근처의 국경도시 달렘으로부터 조각품들을 운반해오는 작업도 포함돼있다.따라서 조만간 독일에서는 각종 보물의 대이동이 벌어질 전망이다. 이 계획이 완성되면 관람객들은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부부의 초상화를 보기위해 두개의 박물관을 찾을 필요가 없어지고 이집트의 유물들도한 장소에서 모두 살펴볼 수 있다.또 관심분야에 따라 국내 조각품들은 보데박물관에서,19세기 회화작품은 박물관섬의 국립미술관에서 관람할 수 있으면 같은 20세0기 회화라 하더라도 그것이 전반기작품이냐 후반기작품이냐에 따라 다른 박물관을 찾아야 한다. 물론 통일의 후유증인 경제난을 겪고있는 상황에서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독일국민들의 불만도 없지는 않다.그러나 루브르와 오르세박물간을 갖고있는 파리의 경우를 들어가며 지난세기 프리드리히 빌헬름4세가 베를린을 유럽문화의 중심지로 건설하려했던 꿈을 이루자는 문화게의 호소는 이같은 불만들을 잘 해소시키고 있다.
  • 뉴욕서 마티스전/새벽부터 인파/세계각국 수집 3백90점 눈길

    맨해턴의 겨울은 유난히 음산하고 춥다. 끝없이 널려있는 마천루들이 햇볕을 차단하는데다 빌딩풍이 몰아쳐 체감온도는 실제보다 언제나 5∼6도 낮게 마련이다.이런 추위속에서도 요즈음 맨해턴 53가 현대미술관 앞에는 꼭두새벽부터 연일 수백명씩의 인파가 몰리고 있다. ○하루 7천명 관람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앙리 마티스 회고전」의 입장권을 사려는 사람들이다.입장권의 대부분은 예매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예매를 못한 사람들을 위해 하루 5백장씩 현장판매를 하고 있는데 아침10시부터 파는 표를 사기 위해 새벽7시만 되면 벌써 수백명이 줄을 서곤 한다. 아파트 추첨권도 아닌 한장의 미술전람회 관람권을 사기 위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있을까.하나의 뮤지컬이 10년을 넘겨 장기공연을 하고….뉴욕은 분명히 예술의 요람이라 할 수 있다. 지난 9월24일 시작된 앙리 마티스전은 본래 새해 1월12일 끝내기로 돼 있었으나 관람희망자들의 성화로 1주일을 연장했으나 그것도 연장발표 다음날 4만5천장의 예매권이 다 팔려버렸다. 현대미술관측은 현재까지 하루평균 7천4백명이 마티스전을 관람했다고 밝히고 이 회고전 기간동안 관람객 총수는 88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관람권은 12달러50센트(한화 약1만원). ○최초 공개 작품도 앙리 마티스는 잘 알려진대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초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을 풍미했던 야수파의 거장. 이번 전시회가 특별히 미술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그 규모와 완벽한 준비 때문.프랑스 러시아등 세계 각지에서 정선된 작품이 모두 3백90점에 이른다.마티스전으로 사상 최대의 규모일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유명한 화가의 회고전으로도 규모와 내용면에서 공히 단연 최고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러시아에서 온 28점이 이번 전시회의 백미.유명한 「헤르미타주 컬렉션」인 이들 작품은 그동안 서방세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들이며 그 가운데서도 7점은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들이다. ○미술애호가 찬사 현대미술관은 이번 마티스전을 위해 전시실 2개층을 모두 할애하고 있다.3백90점의 전시를 위해이렇게 방대한 공간을 쓰고 있는 것은 붐빌 관람객을 미리 예상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곳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는 프랑스 북부도시 릴 박물관의 진귀한 유화그림들이 첫 해외나들이 전시회를 열고 있어 역시 미술애호가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이곳에 전시된 스페인출신 프란시스코 고야의 「젊은 여인들」과 「노파들」등의 작품은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이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고야의 다른 회화들을 능가한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이 전람회 또한 진열대를 만들고 전시 공간을 넓혀야 할 정도로 걸작품들의 양이 방대하다.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드라크로아의 「알제리 여인」,쿠르베의 「오르낭에서의 저녁식사후」와 「에마우스의 제자들」등을 꼽을 수 있다.이들 작품은 새해 1월17일 뉴욕전시회를 마치고 런던·도쿄 등지로 오는 94년까지 순회하게 된다.이는 2년뒤에 마무리되는 릴박물관의 확장공사에 드는 비용을 보충하고 문화의 도시 릴을 해외에 널리 알려 관광수입을 올리려는 뜻에서이다.
  • 영화관련서적 출간 붐/입문서·감상론·에세이 등 70여종

    ◎“쉽고 재미”… 영화팬 증가추세 겨냥 영화애호가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들을 겨냥한 영화관련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 선보이고 있는 영화도서는 전문이론서에서부터 개론서,감독론,영화감상론,유명영화인들의 에세이류및 명화 안내서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추세.특히 아마추어 영화팬들을 위해 쉽고 재미있게 엮은 책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 가운데 입문서와 개론서로는 올바른 영화 감상법을 소개하는 「영화보기와 영화읽기)(제3문학사),19세기 후반에서부터 80년대초까지 영화의 역사를 서술한 「세계영화사」(이론과 실천),영화제작용어 감상법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전분야를 서술한 「필름아트」(아리랑 글방).그리고 「영화의 이해」(현암사)가 있다. 초현실주의에서부터 지하영화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영화조류를 설명한 「전위영화의 이해」(예니),할리우드 영화의 이데올르기와 영화산업을 다룬 「할리우드」(제3문학사),미국 홍콩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영화의 흐름을 조망한 「영화는 지금 혁명중」(영웅)도 서점가를 장식하고 있다. 명화감상을 위한 안내서로는 「스크린 인생론」(교보문고)」,「세계영화명작」(아름 출판사)등이 나와 있다. 유명감독 및 배우들의 작품과 생애를 집중 조명한 책들과 이들이 직접 쓴 자서전류 등도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이탈리아 감독 베르나도 베르톨루치의 영화세계를 다룬 「베르톨루치,중요한 장면들」(예건사)과 프랑스의 거장 장뤼크고다르를 다룬 「장뤼크고다르」(예니)는 그중 대표적인 책자.그밖에 프랑스 누벨바그에서부터 이탈리아의 뉴 이탈리안 시네마에 이르기까지 현대 세계영화를 주름잡고 있는 감독들을 소개한 「뉴시네마 감독론」(한국문연)과 구소련 감독 에이젠쉬체인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 「이미지의 모험」(열린책들)도 나와 있다. 한편 「도서출판 1895」는 세계 명감독들의 영화인생들을 조명한 「시네아트 전집」을 펴낸다는 계획아래 그 첫번째 작품으로 스티븐 스필버그를 다룬 단행본을 펴낸데 이어 스탠리 큐브릭,구로자와 아키라,프란시스코 코폴라 등에 대해서도 단행본을 낼 계획이다.한국감독을 소개한책자로는 사회고발성 짙은 영화를 주로 제작했던 유현목감독을 다룬 「닫힌 현실 열린 영화」(제3문학사)와 정지영감독등 현역감독 9명이 촬영야사 및 한국영화 제작 현실에 관해 쓴 에세이를 묶은 「컷 다시합시다」가 있다. 이밖에 「채클린 자서전」(명문당)과 마릴런 먼로의 사랑을 다룬 「마릴린 먼로」(명문당)을 비롯,약 70여종의 영화 관련책자들이 서점에 나와 있다. 비디오세대들이 영상문화뿐만 아니라 출판문화의 상당부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만큼 앞으로도 이들 계층을 겨냥한 감각적인 편집의 영화관련 책자들이 계속 나올 전망이다.
  • 하버드대서 한국도자기전

    ◎전 주한외교관 헨더슨 소장품… 1백50점 공개 「그레고리 헨더슨 한국도자기전」이 12일 미국의 하버드대학 미술관에서 개막됐다. 새해 3월28일까지 계속될 이번 한국도자기전은 우리의 미술품이 세계적인 학문의 요람인 하버드에서 일반에게 널리공개 된다는 것은 큰 뜻을 지닌다.나아가 이 전시회를 계기로 93년 봄학기부터 「한국미술사」(도자기사)가 이 대학의 공식 학과목으로 개설된다는 점 또한 대단한 일이다. 「헨더슨전」이란 미국인 그레고리 헨더슨이 일생동안 수집한 한국의 도자기 1백50여점을 전시하는 것으로 일부는 헨더슨이 작고한 89년이후 그의 부인 마리아 헨더슨이 하버드에 기증한 것이며 나머지는 하버드대학이 유족으로부터 직접 사들여 모은 것들이다. 헨더슨 콜렉션은 일본의 아다카(안택)콜렉션과 함께 외국인이 모은 우리도자기 콜렉션으로는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이다.아다카가 고려청자를 중심으로 국보급이 허다한 명품만을 모은 것으로 유명하다면 헨더슨 콜렉션은 1세기쯤 삼한시대 토기에서부터 19세기말 조선조 분청사기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자기역사를 일목요연하게 훑어볼수 있도록 시대별로 수집했다는 점에서 유명하다. 새학기부터 하버드에서 한국미술사를 강의하게 될 로버트 D 마우리교수는 『헨더슨 콜렉션은 한국밖에서는 가장 방대하고 학문적으로 가장 중요한 수집품들』이라고 평가한다. 하버드대 출신으로 학생시절부터 아시아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헨더슨도 외교관이 돼 48년부터 50년까지와 58년부터 63년까지 두차례에 걸쳐 한국에서 근무하면서 우리도자기를 집중적으로 수집해온 인물.
  • 세밑 화랑가 3가지 이색전 눈길

    ◎프랑스 사진의 어제와 오늘전/압구정동­유토피아/디스토피아전/이시대,우리의 건축전/19C이후 독특한 사진미학 소개/「프랑스」/TV 등 대중매체 활용 문명비판/「압구정」/건축의 문화적 한계성극복 탐색/「이시대」 평소 접하기 힘든 색다른 전시회 3가지가 연말 화랑가를 장식,문화애호가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프랑스 사진의 어제와 오늘전」(12∼30일),갤러리아미술관의 「압구정동­유토피아/디스토피아전」(12∼30일),동숭동 인공갤러리에서 열리는 「이 시대,우리의 건축전」(12∼24일). 순수미술에서 소외돼있는 사진과 건축,그리고 한가지 장르를 꼬집기 힘든 여러 장르를 혼합전으로 구성한 이들 세 전시는 상업성이 앞선 화랑문화에 염증난 관객들에게는 청량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프랑스문화원이 공동 주최한 「프랑스 사진의 어제와 오늘전」은 세계사진사의 초기인 19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의 초상화 풍경 누드 의상 삽화 및 건축사진 등을 망라했다.마네에서 보들레르에 이르는유명예술가와 명사들의 모습을 필름에 담은 최초의 사진가 펠릭스 나다르의 작품부터 70년대 파리의 컬러사진에 이르기까지 사진작가 13명의 작품 2백20점이 소개되고 있다. 작가들은 피카소와 막스 에른스트,이브 몽탕이나 에디트 피아프와 같은 화려한 연예계의 스타들을 독특한 사진미학으로 화면위에 생생하게 떠올렸다.또 파리의 옛모습,히피축제,대중오락의 장면들이 즐겁게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이 전시는 시대변천에 따라 흑백에서 천연색으로 변화돼가는 빛과 색의 절묘한 관계,그리고 한 문명의 이기가 어떻게 사람과 기계의 눈을 결합해 오묘한 영상을 낳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서울 압구정동거리 중심부에 있는 갤러리아미술관에서 열린 「압구정동­유토피아/디스토피아전」은 흔히 「욕망의 해방구」로 불리는 압구정동의 문화풍속도를 조명하고 있다.화가 사진작가 건축가 평론가 시인 비디오아티스트 디자이너등 여러분야 예술인들이 함께 준비한 이 행사는 새로운 개념의 다장르의 문화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형태를 취했다. 흥미위주의 시각이나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주목돼온 압구정동문화를 본격적 문화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자리로 다양한 방식의 전시작 1백여점이 소개되고 있다.김복진 김환영 박불똥 서숙진 신지철등 화가와 건축가 정기용,디자이너 박혜준등 12명이 출품한 이 작품들은 대부분 TV와 광고등의 대중매체를 메시지 전달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압구정동문화를 문명비판적 시각에서 조망하고 있는 이들은 물질로서의 미술품이나 권위와 신화에 의존하는 미술개념을 철저히 거부한다.이들은 곧 일반대중의 문화적 욕구가 상업적 이미지와 일반대중 매체로 채워지고 있음을 압구정동의 문화해부를 통해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동숭동의 분위기있는 전시공간인 인공갤러리를 장식하고 있는 「이 시대,우리의 건축전」은 국내 건축인들의 모임인 「4·3그룹」의 회원전이다.지난90년 결성된 「4·3그룹」은 3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14명의 건축가들이 20세기 마지막 10년의 한국현대건축을 주목하기 위해 모인 젊고 건강한 건축인그룹.출신학교와 지역에 대한 편견이나 구분없이 우리시대의 문화와 건축,사회상황에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시도하기위해 모인 이들은 매달 세미나를 갖고 토론으로 건축의 문화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탐색해 왔다.그룹결성이후 회원들의 첫 작품발표 자리가 되는 이번 전시는 「한국의 건축가가 규방의 건축에서 벗어나 현대건축의 그 어떤 문제를 독자적으로 해석」한 중요한 기점으로 삼겠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 유해산소론/전세계적 연구 활발/질병·노화과정 설명

    ◎서울대 국제학회서 학자 13명 논문발표/인체 에너지생성때 생긴 산소화합물/제거되지않으면 암·성인병 발생요인 사람이 늙고 병들어 죽는 매커니즘을 설명해주는 최신이론 「유해산소병인론」에 대한 연구가 국내외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인체의 질병유발요인을 밝혀주는 유해산소론은 19세기말 세균감염론,20세기중반의 이상면역반응설에 이어 지난 70년대 중반에 새롭게 등장,암을 포한한 성인병은 물론 죽음에 이르는 노화까지 설명해주는 이론으로 밝혀지면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한국노화학회와 한국독성학회 주최로 최근 서울대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는 한국·미국·일본등 6개국 13명의 학자들이 참가,유해산소에 관한 최신역구결과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유해산소란 인체내의 산소가 물로 환원되는 에너지대사과정에서 산소가 필요한만큼의 수솔흘 얻지 못해서 생기는 산소화합물. 이 화합물은 반응성이 매우 강해서 제거되지 않으면 결국 인체에 손상을 주게 된는데 에너지를 생성하는 한 항상 수반되는 반응이다. 이날 독일 뒤셀도르프대학의 시즈교수는 유해산소가 인체안에서뿐만 아니라 외적요이늬즉 각종 약물,화합물 방사선 및 환 관경오염물질등에 의해서도 발생,유전자의 손상을 가져온다고 밝혔다.따라서 산소를 사용하는 우리 인체는 불가피하게 늘 내적,외적으로 유해산소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 미국 텍사스대학의 소할교수는 『생체는 산소를 이용할 때 반드시 유해산소를 생성하기 때문에 산소소비가 많은 동물일수록 수명이 짧다』면서 운동량을 늘리거나 체온을 높여 산소소비를 증대시킨 결과 동물수명이 훨씬 단축되었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소할교수는 또 『나이가 들수록 유해산소량은 늘어난다』며 이를 제거하고 수명을 연장하는데 항산화제를 투여해 효과를 거뒀다고 주장했다. 한편 유해산소는 심근경색 뇌졸중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이 메커니즘에 대해 미국 캘리포니아 스크립연구소의 베이비어박사는 세균에 감염됐을 때 혈액내 백혈구가 활성화되어 유해산소를 생성,조직파괴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 암·에이즈 퇴치하고 나면(박갑천칼럼)

    「비과학적」이라는 단정(단정)만큼 비과학적인 말도 없다는 말들을 한다.사람의 지혜가 미처 미치지 못한 대목을 이르면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가령,비행기가 나오기 전의 사람들은 쇠붙이가 엄청난 짐을 싣고 하늘을 난다는 말을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그렇게 비과학적일수도 있는 과학을 지나치게 믿으면서 사고의 날개를 펴기도 하는 것이 사람들이다.하지만 그게 인지(인지)의 범위 안이고 보면 스스로 변수를 내포한다고 할 것이다. 지난달 말께 일본의 과학기술정책 연구소가 향후 30년의 신기술 개발 예측조사결과를 발표한바 있다.우주·의료·에너지등 16개 분야 1천1백49 과제에 대한 것이었다.그에 의할 때 2006년에는 에이즈 치료법이 확립되고 2015년에는 암세포를 정상화시키는 치료가 일반화한다는 것이다.그 결과로서의 「건강한 미래」를 내다보고도 있다. 오늘의 사람들은 인류가 암과 에이즈만 물리치고 나면 질병의 공포에서는 해방될 것이라고 흔히 생각한다.과연 그런 것일까.그렇다면 암과 에이즈만 놓고 생각해보자.에이즈가 문제화한 것은 얼마 되지 않고 그 이전에는 암만이 문제였다.그러다가 에이즈가 가세한 것인데 최근에는 또 다른 별종 에이즈가 발견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기까지 하다.질병은 계속 「탄생」하고 있지 않은가. 이와 관련하여 그동안 인류에게 공포를 안겼던 질병들을 잠깐 되돌아보면­14세기의 나병,15세기의 파상풍·페스트,16세기의 매독,17∼18세기의 티푸스·두창(두창),19세기의 성홍열·결핵 따위이다.물론 이러한 질병들을 극복했다곤 해도 아주 스러진 건 아니다.우리나라 전염병 예방법 2조에 그 대부분이 들어있을 정도로.그러나 주목해야 할점은 시대의 흐름 따라 새로운 질병들이 위세를 떨쳐온다는 사실이다.암도 고대 이집트·그리스 시대에 이미 알려져 히포크라테스 저서에 카르키노스라는 이름으로 나온다.그때는 성하지 못했던 질환이 20세기 들어 고개를 쳐든 것은 생활양식·식생활 등의 변천과 관련된다고 말하여 지는 터이다. 그렇다 할때 암·에이즈 퇴치이후에도 새로운 공포의 질환은 나타날 수 있다.아니,어쩌면 더 가공스런 것일지 모른다.의약과 질병은 상승작용을 하면서 차츰 표독스러워져 오는 게 아닌가.암유발의 원인이 된다는 전자파병이 언제 더 심각한 것으로 변모할 것인지 알수 없다.파괴 돼가고 있는 남극 오존층이 어떤 옰을 내릴지를 누가 알랴.무엇보다도 섭리(섭이)의 영위 앞에 오만해져 있는 인류의 모든 행태는 스스로 공포의 질환을 잉태하고 있다고도 할 일이다. 『…생장(생장)하는 것이 있고 생장하는 것을 생장하게 하는 것이 있다.형체를 지닌 것이 있고 형체 지닌 것을 형체 지니도록 하는 것이 있다.…』(열자:천서편).감관(감관)에 와닿지 않는 그 「힘」을 두려워할줄 알아야겠다.
  • 생일아침에(외언내언)

    『…왜 내가 셰익스피어의 생일을 축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죠?난 나 자신의 생일도 잊고 지내는 사람인데 말입니다…』 1906년 독설가 버나드 쇼가 엘렌 테리한테 쓴 편지 속에 있는 말이다.엘렌 테리는 19세기 말 영국이 낳은 명여배우.쇼와는 친숙한 사이로 편지를 많이 주고받고 있다.이 편지의 글투에서는 셰익스피어라고 하면 죽고 못사는 영국 사람들에 대한 반감도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의식이나 형식에 매이기 싫어하는 쇼의 품성도 엿보인다. 쇼 같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곧잘 자기 생일을 잊는다.세상의 남편들 가운데는 자기 아내 생일을 기억 못한 「죄」로 바가지 긁힌 사례 또한 적지 않고. 하지만 자기의 생일을 잊지 않는 것이 곧 효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나에게 이승의 삶을 있게 한 생일이 아닌가.이날 섭리의 뜻을 헤아리고 부모의 공덕을 기릴줄 알아야 한다.그래서 우리의 한 시인(송희철)은 노래하지 않았는가.­『얼마나 고마운가/한장의 보자기에/목숨 하나 담아준 것이/저 미물에도/다만하나만을/고루 간직하게 하고/풀이슬 작은 방울에도 많은 뜻 헤아리게 하여…』(「생일에」)하고.모든 탄생에는 다 그 나름의 뜻이 서려 있는 법이다. 오늘이 서울신문의 생일.1945년 조국이 광복되던 해 뜻깊은 고고지성을 울렸으니 마흔일곱 살로 초로에 접어들려는 연륜이다.사람이라면 백발이 희끗거릴 무렵.그것은 갖은 신산고초를 헤쳐나온 표징이기도 하다.날마다의 역사를 기록해온 서울신문의 역정에 어느 하루인들 안온한 날이 있었던가.뛰고 외치고 겨루고 앞장서고.이 사회의 밀알이고자 거울이고자 목탁이고자 불밝히며 자강불식했던 발자취는 피와 땀으로 얼룩져 있다. 서울신문이 태어난,태어나야 했던 뜻을 한번 더 곱새기는 생일날 아침.열과 성이 넘치는 지면 꾸릴 결의를 엄숙하게 다진다.
  • 창덕궁/왕조의 숨결 심처 곳곳에/내전 전각들엔 왕가의 위엄서려

    ◎지형맞게 조경… 비원자연미 일품/옥류천일대 출입통제… 관람시간도 시간별 제한 모처럼 바람 쐬러 시내 바깥에 나갔다가 교통체증에 기분전환은 고사하고 울화만 뻗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울 시내 안에도 기분전환의 바람을 속에 품고있는 장소가 많다.고궁탐방은 구태의연해 보이지만 고궁 문턱을 넘어서면 생각이 차츰 달라진다.비원이 뒤에 들어앉아 있는 창덕궁은 시외나들이의 차선책으로 찾았던 마음을 열렬한 경배자의 그것으로 바꿔놓는다.조선왕조는 사라졌지만 오백년동안 가꿔지고 가다듬어졌던 왕궁의 바람은 매혹의 마력을 안고 있다. 고궁의 매력은 역사적 배경에서 먼저 솟아난다.창덕궁은 잇대어 자리한 창경궁과 함께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궐로 불려졌다.태종 초년에 창건되었으나 초기의 임금들은 대부분 경복궁에서 정사를 보아 이궁에 머물렀다.그러나 성종과 연산군은 주로 이곳에서 지냈으며 임진왜란으로 정궁인 경복궁은 물론 창덕·창경궁이 모두 불타버린 뒤 1609년(광해군1)창덕궁이 가장 먼저 복구,중건돼 경복궁이 1867년(고종4) 중건되기 까지 2백50년 넘게 조선왕조의 법궁 자리에 있었다.여기서 인조반정,장희빈,사도세자 뒤주참사 등의 사건이 일어났다. 경복궁이 일사불란한 직선 구도의 위용을 펼치는 데 반해 창덕궁은 곡선의 은밀함이 천천히 깊어지는 형세이다.같은 구중궁궐이라도 창덕궁에선 나선형의 심처로 이끌려가는 기분이다.그리고 창덕궁의 구중심처는 왕의 침전인 평지의 내전이 아니라 표고 90m미만의 동산에 조성된 10만평의 후원인 비원이다. 창덕궁은 근 15만평에 이르러 5대궁궐중 제일 넓지만 지세가 굴곡지고 경관 또한 한결같지 않아 탐방객들을 늘 깨어있게 한다. 이런 취향에 맞게 창덕궁은 정문인 돈화문이 한가운데에 있지않고 남서쪽 모퉁이에 나있다.정전인 인정전과 내전일곽인 희정당 대조전 등의 초입은 일제시대인 1912년 일반에 공개되면서 많은 변형과 훼손이 가해진 곳이다.그러나 돈화문은 광해군,선정전은 인조,인정전(국보 225호)은 순조 때 각각 재건돼 오늘에 이른다.내전 건물들은 19 17년 화재이후 다시 지었고 19세기 때의 3분의1규모에도 미치지 못한다.그러나 전각과 전각이 원래의 특징인 복도구조로 쭉 연결된 외관은 답답한 가운데서도 왕의 처소다운 위엄을 느낄 수 있다. 건물군 뒷쪽에 계단형식으로 정원을 꾸민 화계가 나타나면서 비원이 열린다.비원은 부용지,연경당,반도지,옥류천부근 등 대충 4구역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가장 깊숙한 곳인 옥류천 부근은 출입금지되어 있다.창덕궁의 건물들이 인위적인 대칭구성에서 벗어나 지형조건에 맞추어 자유로운 구도 속에 놓여 있듯이 비원도 여기저기를 손질해 인공적으로 꾸민 게 아니라 동산의 자연미를 살려 드넓고 다양한 풍치의 정원을 일으켜 세웠다.관상수를 부러 가져다 심지 않았고 나무에 전지를 하지 않았으며 따로 꽃밭도 만들지 않았다.인조 때부터 세워진 28개동의 누정이 1백여종의 나무 사이사이에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다. ▷길잡이◁ 창덕궁·비원은 3년동안 일반에 폐쇄된 뒤 79년부터 안내원의 인솔하에 제한관람하게 되어있다.9시부터 1시간단위로 하오4시까지 입장하며 이와따로 외국어안내가 중간중간 있다.비원까지의 주관람로는 2.2㎞로 1시간 10분이 소요된다.입장료 1천8백원(어린이 9백원).
  • 나폴레옹 격파 영 기함/배(역사속 바꿔어온 모습을 좇는다:18)

    ◎폭 16m,함포 100문 탑재한 나무범선/해전후 퇴역… 포츠머스항에 영구보존 대륙탐험시대만 해도 후진국이었던 영국을 대영제국으로 발돋움하게 한 요인 중에서 1805년 10월25일에 일어난 트라팔가해전 승리를 빼놓을 수 없다.특히 당시 지휘관 넬슨(1758∼1805)은 국가적인 영웅으로 될만큼 중요한 사건이었다. 넬슨은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나 신체가 허약하였는데도 불구하고 12세에 해군에 입대,20세에 대령이 되었다.그는 지중해에서 근무할 때 만난 유부녀 해밀턴 부인과의 관계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으며 또한 1794년 코르시카전투에서 오른쪽 눈을,그후 테네리프호와의 야간전투에서 오른팔을 각각 잃었다.그는 해군에서 스캔들 많은 병약자로 낙인찍혔던 것이다. 나폴레옹이 유럽 대륙을 정복한 뒤 영국을 넘보면서 봉쇄작전을 펼치자 영국은 유럽 각지에 함대를 파견하여 나폴레옹을 견제하기 위해 넬슨을 재등용하였다.우유부단한 함대사령관이 이끄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연합함대(33척)를 트라팔가곶 앞바다에서 발견하자 넬슨은 27척의 함선으로 이에맞서서 전투를 하였다. 이 해전에서 넬슨은 영국 함대의 낡은 전투교범을 무시하고 새로운 전술을 사용하기 위해 부하들을 훈련시켰으며,함포와 기동력이 열세할 뿐 아니라 소심하기까지 한 연합함대가 개전 초기에 뿔뿔이 흩어지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혼전 속에서 적함대의 선두를 중앙과 후미에서 분리시킨 후 집중공격하여 대승하였다. 넬슨은 3시간의 격전 끝에 연합함대의 함선 5척을 격침하고 17척을 포획하였으며 7천명의 병력을 전사시키고 사령관을 포로로 잡기도 하였는데,반면에 그는 1천6백명의 부하를 잃었다.그 자신은 전투 직전에 『영국은 각자 자신의 의무를 다하길 원하고 있다』고 부하들을 격려하였지만,프랑스의 르두타블호에서 날아온 저격탄에 맞아 『나는 나의 의무를 다하였다』고 말한 뒤 곧 전사하였다. 넬슨이 탄 기함 빅토리호는 나무로 만든 범선으로서 폭 16m,용골 길이 46m,적재량 2천1백62t,함포 1백문의 제원을 가진 3층 갑판선이었다.이 함선은 트라팔가 해전에서 항해불능의 정도로 피해를 입고서 퇴역하였는데,오늘날 이승리를 기념하자는 여론덕분에 포츠머스항에 영구보존되어 있다. 영국은 트라팔가 해전에서 넬슨과 빅토리호의 활약때문에 제해권을 장악하여 후에 영국군을 유럽 대륙에 상륙할 수 있게 하였으며,그 결과 나폴레옹을 패배시켰다.19세기 대영제국의 형성기반은 바다와 해군을 통하여 다져졌으며,그 영광을 넬슨의 동상과 빅토리호가 말해주고 있다.
  • 세계무역대전 우리도 이겨내야(사설)

    미국의 대유럽공동체(EC)무역보복조치는 무역전쟁을 예고하는 불길한 징조이다.미국이 EC의 포도주및 농산물에 대해 2백%의 보복관세를 부과하자 EC측도 미국의 농산물에 대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태세이다. 미국의 대EC 보복조치는 보호주의 성향이 강한 클린턴 민주당정부의 출범에 앞서 취해졌고 이를 유발시킨 원인이 우루과이라운드협상(UR)과 관련된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갖게 한다.보호주의 무역장벽 제거를 위한 다자간협상이 오히려 보복조치를 야기했다는 점에서 세계언론들이 이를 「무역대전」의 예고로 보고 있는 것같다. 클린턴 정부 출범에 앞선 미공화당 정부의 이번 대EC 보복관세는 미국의 대외통상 정책을 한층더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다.내년부터 회복되리라는 미국 경제내지 세계경제의 회복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이다.무역보복은 국제무역을 축소균형으로 유도하고 그로인해 선진국등 세계 각국에 경기둔화를 야기시키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의 보복에 맞서 EC가 같은 대응에 나서게 되면 보호무역주의를 자유무역주의로 유도하기위해 추진중인 UR협상의 타결은 어렵게 된다.그렇지 않아도 클린턴정부는 UR협상에 미온적일 것이라는 예측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미국의 무역보복은 세계 유수 언론들이 우려하고 있듯이 가공할만한 무역대전의 전조가 될 개연성마저 있다.19세기말 선진국간 경제마찰이 제1차 세계대전을 유발했고 19 29년 세계 대공황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선진국들의 수입제한조치(수입쿼터)가 2차대전을 야기시켰던 사실을 상기케 한다. 무역대전은 냉전보다 더 위험하다.따라서 미국과 EC는 이번조치가 UR협상과 관련돼 있다는 점에 유의하여 한걸음씩 양보,쟁점인 오일 시드의 감산에 합의하는등 조치시한이 12월5일까지 원만한 타결점을 모색하기 바란다. 또한 선진국들은 무역분쟁을 쌍무적차원이 아닌 다자간협상을 통해 수습하겠다는 자세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그 유일한 처방은 UR협상의 조기타결이다.그때까지 선진국들은 관세및 비관세 장벽을 이용한 보복조치를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세계 무역대전은 우리에게도 전쟁이다.우리도 이겨내야 한다.따라서 미측 통상전략변화에 대한 대응전략이 강화되어야 하다.특히 거세질 통상압력에 대비해 대외차별적 관행을 개선하고 UR협상에 차여하는등 정부·민간업계 모두가 능동적인 통상전략 체제를 갖춰나가야 할 것이다.
  • 피카소의 20대/이미 “거친 붓질”

    ◎입체파몰립 초창기 걸작품 한자리에/파리 그랑팔레화랑 전시… 조각 2점 눈길 프랑스 파리에 있는 그랑 팔레의 국립 갤러리는 오는 연말까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걸작품들가운데 20대 청년시절에 그린 1백50점의 회화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전시,미술애호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이번 특별전시회에는 피카소의 생애를 더듬어볼수 있는 몇몇 그의 조각품들까지 나와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않고 있다. 이 피카소 작품전시회와 때맞춰 프랑스의 권위있는 시사주간지 르 포엥은 최신호에서 「피카소­정물화를 괴롭히는 사람」이라는 제하의 장문의 기사를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고 있다. 1907년 봄,피카소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그렸을때 사람들은 그의 정신상태를 의심했을만큼 놀랐다.미술사의 한 혁명으로 불리는 큐비즘(입체주의)의 탄생을 알리는 이 그림은 파리에서 피카소가 발견한 새로운 조형언어의 하나였다.지금으로부터 85년전 입이 뒤틀리고 팔이 잘린 이 기괴한 형태의 여인들은 19세기를 갓 벗어난 사람들에겐 야만적이고난폭한 충격일수 밖에 없었다. 『가장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물이 나의 사상을 담는 그릇이다』­이 명언은 그의 작품세계의 출발점이 되고있다. 이번에 출품된 그의 출세작 「라 데세르트」를 비롯,그의 초기작품들은 그당시 여느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국화·달리아·꽃병·냄비·물병과 기타·만돌린등 악기류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러나 1900년 파리에서 창작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작품내용은 사뭇 달라진다.그림의 테마로는 하층계급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상과 고독감이 두드러졌다. 그후 몽마르트르에 정주함과 동시에 그의 작품에는 과거의 스페인 예술,특히 카탈로니아 지방의 중세조각에 많은 영감을 받는 한편으로 E 그레코·고야 등이 지닌 독특한 단순화와 엄격성이 가미되어 갔다.테마로는 곡예사들을 묘사하는 일이 많아졌으나 그가 그린 어릿광대나 곡예사는 무대 위의 모습이 아니라 그 생활의 이면을 파헤친 애수 그것이었다. 1905년 무렵에는 G 아폴리네르와 H 마티스와 사귀게된다.그러나 작풍은 P 세잔의 형체관을 살려나가 점점단순화되었고,1907년 영원히 기념할 명작 「아비뇽의 아가씨들」에 이르러 형태분석이 비로소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G 브라크와 함께 큐비즘운동을 전개,1909년에는 분석적 큐비즘,12년에는 종합적 큐비즘시대를 열고 25년께 갓 태어난 초현실주의에 매료될때까지 피카소는 큐비즘의 꽃을 활짝 피웠다.이 무렵에 이르러 그는 이미 20세기 회화의 최대 거장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큐비즘의 작가들은 물체를 마치 외과의사가 시체를 해부하듯 기하학적 형태로 해체해서 보았고,그것들을 본대로 종합했다.그 위에 피카소는 그가 관찰 현대도시에서의 삶의 황량함·추악함·무자비함을 거친 붓질로 표현했다. 큐비즘,즉 입체주의는 현대과학처럼 사물 겉모습의 진실성을 수학적인 관계와 질서로 묘사한 것이다.아무런 감정표출없이 나무·널빤지처럼 그려진 여인들,즉 여러지점에서 동시에 바라본 「눈」이 종합된 시점의 복수화는 실제상황에선 불가능하지만 「감각적이기보다는 두뇌적인」입체파의 대상파악의 방법이었다. 이번에 전시된 「맥주컵」(1909)·「페르노술(주)과 유리잔」(1912)등에선 분석적 방법이,「술집 테이블과 기타」(1913)·「만돌린과 기타」등은 종합적 큐비즘의 기법이 동원된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피카소의 초창기 회화 말고도 그랑 팔레의 전시관에서는 그의 예술적 발자취를 고찰할수 있는 「유리컵과 작은 술잔」,「압생트의 유리컵」등의 조각품들이 시선을 끌고있다.1914년에 제작된 두 작품은 작은 판자 조각들과 청동의 도금을 사용하는등 재료를 달리했지만 큐비즘이란 원리에 충실하고 있다.
  • “한·소와 국교… 국경문제 관심 가질때”(저자와의 대화)

    ◎「한국국경사연구」 펴낸 영토문제연구모임 토문회 양태진회장/1758년 백두산 정계비 건립 당시 기록 토대/광복후 북한과 중·소간 국경협약문도 수록 『올해는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진지 2백80년이 되는 해입니다.그리고 단절됐던 중소와의 외교가 수립된 의미있는 해이기도 합니다.그래서 우리나라 북방지역의 국경,영토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정책적 대응이 보다 절실한 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총무처 정부기록문서관리소 기록관리과장직함으로 영토문제연구학자들의 모임인 토문회를 이끌고 있는 양태진회장(53)이 30년에 걸쳐 천착한 국경·영토연구총서시리즈의 완결판「한국국경사연구」를 최근 펴냈다.이 책은 그동안 국내에서는 방치되다시피한 북방국경문제를 「한국변경사연구」(1989),「한국영토사연구」(1991)등 일련의 저작활동과 함께 끝맺음하는 저자 집념의 산물로 평가되고 있다. 『국경사연구는 백두산정계비건립에 참가했던 인사들의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상황을 생생하게 기술한 정계비건립과정을 담았어요.또 토문강을 경계로한 설책에 관해 사실적으로 고증함으로써 동위토문에 대한 한중간 해석상의 차이를 해소하는 자료를 제공하는데 의미를두고 싶습니다』 저자는 특히 두만강하류의 국경 경계표인 토자비가 2번이나 옮겨 세워져 북방영토와 국경상의 손실,민족적 굴욕을가져왔다는 지금까지 국내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공개했다. 또 1800년말부터 청조가 간도지역거주민을 정책적으로 축출해 왔음을 알려주는 비시라는 공고문을 일본의 간도외교관계문서더미를 뒤진끝에 찾아 수록하는 개가를 올렸다.저자는 이에 머물지 않고 현지인들의 국경의식고조와 정계비문 해석및 국경선 설정에 따른 감계담판당시 청측의 억지 논리에 대해 현지답사와 「북여요선」등 역사적 사실을바탕으로 대응하고 있다.이밖에도 광복이후 베일에 가려졌던 북한과 중소간의 국경관할문제관한 협약문,국경침범사건사례등 귀중한 사료도 실었다. 『영토사연구분야에서 가장 중요시하는것이 관천사료입니다.따라서 조선왕조실록 동문휘고 통문관지 증보문헌비고등 각종 관찬문서의 국경,영토관련사항을 발췌,정리 수록함으로써 사료의 정확성과객관화를 기했습니다』 그는 이번 「한국국경사연구」발간과 함께 이를 뒷받침하는 「1902년 변계호적안」과 「근세북방국경관련사료초록집」등 2권도 새로 묶어 펴냈다.국제법상 영유권분쟁에 있어 거주민의 수효와 이들의 의사가 상당한 작용을 한다는 점에 눈을 돌렸다.이렇게 열악한 조건속에서도 만주지역에 뿌리를 내린 조선족 변계이주민 5천여명의 호적을 정리 수록하는것은 중요한 일.왜냐하면 영토사연구에 매우 의미심장한 인적상황자료가 된다는 생각에서 이 일에 전념을 쏟았다. 『우리의 북방국경 영토문제는 1백년동안이나 사실상 방치 돼온 셈입니다.최근에야 비로소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당사국들과 국교를 맺었지만 이로인한 이해와 갈등은 점증될 것으로 예견할 수가 있죠』 저자는 특히 중국이 최근 새로운 영해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고 소련도 시베리아지역및 두만강하구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시했다.이는 18∼19세기에 밀어 닥쳤던 한반도와의 국경,영토분쟁이 과거의 일만은 아니라는 견해때문이다.
  • 21세기로 가는 길(정근모 과학평론)

    ◎과학기술 투자는 미래를 보장한다/경제활동의 기본변수·선진화의 지름길 재인식을 과학기술이 국가경쟁력제고와 사회발전에 중요하다는 것은 누누이 강조되고 있다.어려운 재정형편에서도 국가가 과학기술예산을 늘리고 기업이 기술개발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미래를 대비한 슬기로운 투자라 하겠다.21세기의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면 과학기술에 투자하고 과학기술능력을 길러야 한다.이러한 주장에는 학계뿐만 아니라 정부·기업·사회 모두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고 이는 미래를 중비하자는 긍정적이요 진취적인 발상이 틀림없겠다. ○사회적 공감대 형성 우리가 한마디로 말하는 「과학기술」은 당초 「과학」과 「기술」이라는 독립개념들이었다.고대문명에서부터 기술은 인간의 생활을 이롭게 하고 인간의 능력을 증폭케 하는 수단으로서 발달되어 왔다.기술은 기능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여기에 인간이 고안해 낸 도구와 방법이 복합발전되면서 문명은 급속히 기술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당초의 기술은 과학적인 이론 없이도 창안되었고 많은 경우시행착오 속에서 인간의 지혜로움에 의하여 고안,발명되었다 하겠다.반면 과학은 학문으로서 인식되었으며 사람들은 과학자로 인정받기 전에 우선 학자의 신분으로 과학을 공부해야 했던 것이다.또 사물을 관찰하고 귀납과 추리로서 새로운 원리를 발견함으로써 과학의 기초가 이루어졌다.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오늘날의 과학기술문명이전에는 과학과 기술이 별도로 발전되어 왔다고 해도 지나친말은 아니다. 현대과학기술문명의 싹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실사적인 관찰과 독자적인 이론의 가치관을 도입한 16세기 문예부흥에서 찾아 볼 수 있다.문예부흥에서 시작된 인식론의 전환은 지성의 시대인 17세기에 들어와 결정적 인과론의 확립과 더불어 과학적 사고에서 물리적 자연관을 크게 발전시켰다. 18세기의 혁명적인 화학개발과 19세기의 기계혁명으로 시작된 산업혁명은 인류역사상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그 영향은 아직도 증폭되어가고 있다. ○「과」·「기」는 동일개념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기술이 과학적으로 설명되기 시작하였으며 과학과기술은 「과힉기술」로서의 발전과정을 밟게 된다는 것이다.과학적으로 설명된 기술은 체계적으로 개선될 수 있었으며 이에따라 기능으로서의 기술은 지적인 내용이 중요한 기술에 의해 압도되기 시작한 것이다.기술이 연구활동의 대상이 되었고 학문적인 뒷받침을 받게 된 기술발전은 획기적인 도약이 가능해진 것이다.과학기술은 과학과 기술로 양분된 개념이라기보다는 연계된 하나의 개념으로서 그 의미가 커지게 된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과학은 새로운 경지를 열기 시작하였다.전자기학및 양자역학의 발전과 상대성원리와 불확정성원리의 발견은 확률론적 인과론을 학문적으로 정립케 했을 뿐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원자세계와 우주세계를 동시에 탐색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여 과학기술세계의 획기적인 영역확대를 가져온 것이다.더 나아가 질량과 에너지의 동등성 발견은 원자력의 실용가능성을 예시해 주었고 심층적인 물성구조의 구체적인 이해는 전자혁명,소재혁명을 유도했던 것이다.20세기는 과학기술문명의 발전을 본격화하였으며 우리는 문자 그대로 과학기술사회에 살게 된 것이다. 사회활동의 기본요소로서 과학기술의 역할은 극대화되고 있다.1950년대만 하더라도 경제활동에 있어서 과학기술은 자본과 자원 및 노동에 이어 잉여인자(ResidualFactor)에 불과했었다.60년대와 70년대를 지내면서 과학기술은 잉여인자가 아니라 경제활동의 기본변수로서 뚜렷하게 작용하기 시작했고 경제활동에 있어서 과학기술의 공헌도는 80년대엔 80%에 이르렀던 것이다.일부 첨단산업에선 과학기술의 역할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과학기술 자체가 산업이라는 개념이 성립되고 있다. 과거에 볼 수 있었던 기술선도 과학적 설명이 아니라 「과학선도 기술개발」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이같은 기술개발에 의한 새로운 산업의 창출이 산업발전의 주종을 이루게 되었다.이제 우리는 신기술개발에 의한 첨단산업들을 과학산업으로 부르게 됐으며 과학산업은 바로 두뇌산업인 것이다.과학산업의 부가가치는 월등할 뿐만 아니라 재래산업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제고시키기 때문에 모든 선진국들은 과학선도 신기술개발과 신기술개발에 의한 첨단과학산업개발에 인력과 재원을 투입하는 것이다.과학기술의 국가자원 투입률은 바로 미래국력의 척도가 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새 세기국력의 척도 21세기의 과학기술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속에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미래학자들은 모두 21세기 과학기술의 발전형태와 파급효과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21세기 과학기술을 향하여 도전할 때에 우리는 의례적인 방법론과 총괄적인 의욕만이 아니라 역사적인 흐름을 인식하고 구체적인 과학기술발전특성의 분석에 따른 전문적인 대응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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