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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지/예르진­스타니슬로 공저(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경제는 정부·시장 주도권 싸움터”/“국가통제 고비용·저효율성 노출/최근 20년새 시장원리 위력/대공황·전쟁 등 위기땐 상황 역전” 【워싱턴=김재영 특파원】 나라 경제의 모든 것이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정부는 손을 놓아야 하는가.그래도 국가 경제인 만큼 정부의 지휘와 관여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학술적인 톤이 강한 이런 질문이 ‘IMF 시대’를 맞아 한국에서도 어느 때보다 폭넓게 제기되고 있다.한국 및 동남아의 금융위기는 기업과 은행이 수지타산의 경제 및 시장 원칙에 따라 돈을 빌리고 빌려주었다기 보다,정부의 힘을 업거나 정부의 눈치를 짐작해 금융거래를 한 ‘벌’이라는 해석이 강하다.문제의 아시아 국가들은 금융 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정부의 관여가 지나쳐 시장 원칙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다고 서방 선진국 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일단 아시아 경제는 정경유착의 부패,관의 권위주의적 개입과 같은 문제가 심하다고 치자.그러면 이런 문제점이 없는 국가에서 정부는 경제를 완전히 시장에 방임하고 있는가.한국 사람들이 자주 들을 수 밖에 없게 된 IMF 개혁 프로그램에는 시장원리라는 말이 많이 등장한다.그래서 잘못된 관치경제의 폐해가 없는 선진국에선 시장원리라는 거대한 자동기계에 의해 국가경제 전체가 돌아가고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으려니 싶다.그러나 이는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다니엘 예르진과 조셉 스타니슬로가 공동 저술한 ‘고지’는 ‘근대사회를 개조하고 있는 정부 대시장의 전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이들에 따르면 20세기들어 선진국을 포함해 모든 나라에서 시장과 정부는 경제운용의 주도권을 놓고 간단없는 쟁탈전을 벌여왔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선진국이라 해서 시장원리의 메커니즘이 지휘권을 완전히 차지했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물론 20세기 후반부터 시장화가 주도적 추세이긴 하지만 선진국 경제에서 조차 현재와 같은 시장의 대 정부 우위는 최근 20여년 사이의 현상이라고 이들은 말한다.21세기를 앞두고 시장이 국가경제 전체를 잘 내려다볼 수 있는 고지에 보다 근접한 것은 사실이나 점령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고지’는 러시아 레닌의 말이다.1922년 신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시장 기능을 일부 허용하는 데 대한 반발이 생기자 레닌은 경제의 핵심요소는 국가가 통제한다고 발표하고 이때의 경제 핵심요소를 고지로 표현했다.국가경제를 지휘하기에 유리한 고지를 국가가 장악한다는 것인데 이는 영국 노동당의 정책,인도식 사회주의 경제체제 등을 거쳐 세계 여러 곳으로 퍼져나갔다.이 용어가 실제 사용되든 되지 않든,이 고지 경제의 목적은 국가경제의 전략적 부문 즉 주요 산업 및 기업에 대해 정부통제를 확고히 하는 것이다.이같은 혼합경제는 흔히 개도국의 전유물로만 여기기 쉬우나 이 책의 저자들은 소유권으로서가 아니라 경제 규제로써 정부가 고지를 통제하고 있는 미국도 ‘규제 자본주의’란 형식으로 혼합경제에 속한다고 말한다. 한때 국가통제의 추세는 거스릴 수 없는 대세로 여겨졌었다.미 대공황 이후의 뉴딜정책 기간과 2차대전 직후가 특히 그러했다.70년대 초반에도 선진국에서 시장 메커니즘을 완전히 질식시키지 않은 가운데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혼합경제는 확장을 계속했다.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임금 및 물가 통제안을 관철시키고자 애썼다.그러나 90년대 이후 정부는 뒤로 물러서고 있다.전세계적인 현상이다.소련과 중국에서 공산주의 경제체제가 실패했을뿐 아니라 서방의 정부들도 통제권과 책임을 벗어던지는 중이다.국가가 떠맡은 일이 너무 방대하고 떠맡을려는 야심 또한 지나쳐,경제의 심판관이 아니라 주장 노릇을 하려는 데서 ‘정부의 실패’가 속출한 것이다. 통제의 비용이 너무 많고 효율성에 대한 환멸이 생겨 정부는 너도나도 민영화에 나서고 있다.정부의 방매가 역사상 최대치에 이른다.옛 소련,동유럽,중국 뿐 아니라 서유럽,아시아,라틴 아메리카,아프리카 그리고 미국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미국은 연방,주,지역 정부들이 전통적인 활동들을 시장에 넘기고 있으며 지난 60년동안 일상생활의 모든 곳에 영향을 끼치던 규제들을 폐기하고 있다.정부가 종언을 고하기 시작했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정부가 벌이는 일들,경제에서 책임지고 있는 사항들은 확실하게 줄어드는 중이다.전 세계로 보아 정부는 예전보다 분명히 덜 계획하고,덜 보유하고,규제를 덜한다.대신 시장의 영역과 경계선이 확장일로를 치닫고 있다. 정부가 국가경제를 지휘하기 좋은 고지로부터 물러나는 현상을 저자들은 20세기와 21세기의 구분선이라고 말한다.저자 중 예르진은 이름있는 경제평론가로서 ‘상:석유,돈,그리고 권력’이란 베스트셀러로 퓰리처 상을 받았으며 스타니슬로는 예르진이 소장으로 있는 캠브리지 에너지연구소의 사무국장이다.그러나 저자들은 언뜻 명약관화해 보이는 이같은 정부에 대한 시장의 승리가 21세기에도 계속될 것이라고는 확신하지 못한다.한 세기전에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30,40년 동안 시장경제 위주의 자유방임주의가 풍미했다가 대공황을 당한 후 정부에 고지를 빼앗겼었다. 21세기에 어느 쪽이 더 우세할 것인가에 대한 통찰력은 부족하지만 457쪽에 걸쳐 20세기 시장과 정부간의 주도권 쟁탈 및 후반부의 시장화 추세에 대해서 아주 상세하고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평이다. 원제:The CommandingHeights.시몬&슈스터 출판사.457쪽. 23.40달러.
  • 교황 “정치범 등 사면을”/쿠바 방문 이틀째

    ◎카스트로와 비공개 회담 【아바나 AFP 연합】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쿠바 방문 이틀째인 22일 저녁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역사적인 회담을 가졌다. 교황은 이날 상오 산타클라라에서 미사를 집전한뒤 회담장소인 아바나의 혁명궁전에 도착,카스트로와 45분 동안 비공개 회담을 가졌다. 호아킨 나바로 발스 교황청대변인은 교황이 카스트로와 회담에서 죄수들에 대한 사면을 요청했으며,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교황청 관리가 쿠바당국에 탄원요청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발스대변인은 그러나 교황의 사면요청이 정치범들의 사면을 뜻하는지 여부 등 이날 회담의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관측통들은 카스트로는 이 회담에서 미국의 대쿠바 금수조치 해제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며 그밖에 사회정의,낙태,인권문제도 논의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회담을 마친뒤 카스트로에게 예수의 모자이크상을,카스트로는 쿠바독립의 영웅이자 19세기 가톨릭 성직자인 호세 바렐라의 전기를 각각 선물했다.교황은 이에앞서 쿠바 고위관리들의 인사를 받고 묵주 등 성물을 선물로 나누어 주기도 했다. 한편 교황은 회담에 앞서 집전한 산타클라라 미사에서 낙태허용 등 쿠바 정부의 정책들을 비판하면서 개선을 촉구했다.
  • 자연보호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미국의 대통령 문화:9)

    ◎도약의 20세기 연 ‘공익의 조정자’/트러스트 해체 등 대기업 부당행위에 철퇴/포츠머스 조약 중재… 미 최초의 노벨상 수상/역사·자연·여행·정책관련 등 저서 38권 남겨 【메도라(미 노스다코타주)=나윤도 특파원】 ‘컬러드(colored canyon) 캐년’.미중부 대평원 북단 노스다코타주의 서쪽끝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잡은 시어도어 루즈벨트 국립공원 초입에 위치한 이 거대한 골짜기는 이름 그대로 형형색색의 띠를 두른 바위산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신비의 조화를 이룬다. 남북 다코타주의 남북을 가로질러 흐르는 미주리강의 지류인 리틀미주리강을 따라 색동 바위의 군무를 연상케 하는 비경이 루즈벨트 컨트리가 된 내역은 이 공원의 입구에 해당하는 인구 100명의 소읍 메도라에 들어서면 이내 알 수 있다. 루즈벨트가 3년간 머무르던 ‘말티즈크로스’통나무집 앞에 세워진 그의 기념관에는 자연보호 대통령인 그의 생활에 관한 자료들과 함께 미국의 자연보호역사가 다양하게 전시돼 있어 다코타의 황량한 벌판을 달려온 여행객들에 컬러드 캐년의장관과 함께 위대한 대통령과의 만남이라는 기쁨을 선사해 주고 있다. 미 26대 태통령으로 미 역사상 도약의 시대인 20세기를 연 그는 저술가,언론인,등산가,카우보이,전쟁영웅,노벨 첫 수상자 등 미 대통령 가운데 가장 많은 타이들을 보존하고 있을만큼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그같은 루즈벨트의 업적에 대한 설명이 다코타에서 시작하는 것은 젊은 시절 이곳에서의 경험이 그의 정치철학이던 ‘공익정신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뉴욕 맨해튼 출신인 루즈벨트는 1884년 2월14일 발렌타인데이에 23세의 젊은 부인 앨리스와 부친을 한날 병으로 잃은 슬픔을 이기기 위해 컬러드 캐년으로 훌쩍 떠나 왔다.이곳 목장에서 카우보이 생활을 하며 갖게 된 자연의 애착과 그것들이 방치된 채 손상돼가는 안타까움이 후에 그가 대통령이 된 후 국립공원 시스템을 창안하게 했다는 것이다.이는 오늘날 미국이 많은 자연을 원형대로 보존할 수 있었고 또 엄청난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 큰 업적으로 꼽힌다. 그의 공익정신이 유명해진 원인은 취임후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대기업 조정정책 때문이었다.남북전쟁이후 급격한 산업발전은 미국의 경제를 과거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팽창시켰고 문명기기의 발달로 국민생활을 몰라보게 바꿔놓았지만 그 발전의 뒤안길에 만연돼 가는 각종 병폐는 미국 사회를 엄청난 불평등의 사회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특히 당시 가장 크게 대두된 문제는 대기업들의 횡포였다.철도 철강 석유 등 분야에서 통합과 독점을 통해 경제권을 장악한 기업인들은 정치인들과 언론까지 돈의 힘으로 매수,자신들에 유리하게 이끄는 등 국민 전체의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민주주의를 심각한 위협에 빠지게 했던 것이다. 따라서 19세기말 20세기초 미국내에는 사회 도처에 만연된 부정부패 일소와 진정한 민주사회로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지고 있었다.루즈벨트의 공익정신은 이같은 시대적 요구와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 당시 부통령으로 있다가 1901년 9월14일 대통령의 암살로 예기치 않게 대통령이 된 그는 “연방정부는 어떤 특별한 세력의 대변자가 아니다.바로 공익의 조정자가 돼야만 한다.또한 대통령은 바로 이같은 조정자의 중심인물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강조,대기업 병폐의 치유에 대통령이 직접 개입할 것을 천명했다. 루즈벨트의 정책 핵심은 대기업들의 부당행위를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그 결과를 국민들에게 공개할 수 있는 힘을 정부가 갖도록 하는 것으로,우선 악명높은 몇몇 기업의 통합을 해체시키는데 주력했다. 그 첫대상은 철도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하고 있던 북부증권회사였다.당시 미 최대의 금융가 J.P 모건과 철도업자 제임스 힐이 공동으로 만든 막강한 파워를 가진 이 회사에 대해 손을 댄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다.그러나 루즈벨트는 과감하게 법무부에 이 회사에 대한 셔먼 트러스트 금지법위반 여부 조사를 명령했다.모건과 힐이 이에 강력히 반발했으나 루즈벨트는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결국 2년후 대법원의 판결로 해산명령이 내려지게 됐다.그는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트러스트 해체에 나섰으며 반발하는 기업인들에게 “만일 대기업들이 정부가 불법이라고 간주한 무엇인가를 행해 왔다면나는 그것을 끝까지 척결해 버릴 것이다”,“부패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부패기업들에도 칼이 필요하다”는 등 강경입장을 고수했다. 또한 노동문제에 있어서도 그동안 노사분규시 일방적으로 고용주 편을 드는 것으로 돼 있던 정부의 입장을 노동자의 입장도 동동하게 고려하는 방향으로 바꿨다. 이같은 그의 온건하면서도 단호한 태도는 과격한 변화를 반대하는 대다수의 미국인들을 만족시켰으며 1904년 압도적 지지로 재선 대통령이 되었다. 루즈벨트는 대외적으로 미국의 위상을 제고,국제사회의 지도국으로 부상케 했다.파나마를 콜롬비아에서 분리독립시키고 파나마 운하를 완성시킨 것은 중요한 그의 업적의 하나로 지적되며 1905년에는 러·일 전쟁 당시 양국 대표를 뉴햄프셔의 포츠머스로 불러 평화조약을 중재하기도 했다.이같은 그의 국제평화 노력은 이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돼 미국에 첫 노벨상 수여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1858년 뉴욕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하버드에서 수학한 루즈벨트는 24세때 뉴욕주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진출,뉴욕경찰국장,해군부 차관보를 역임했다.또 1898년 미·스페인 전쟁 발발시에는 의용기병대 대장으로 참전,산 후안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전쟁영웅의 칭호를 받기도 했다. 그후 뉴욕주지사에 당선됐으며 1900년 선거에서 매킨리 공화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출마,부통령이 된 후 8개월 만에 42세의 나이로 미국 사상 최연소 대통령에 취임했다.그는 21세때 첫 저서인 ‘1812년 해전’을 발간한 이래 역사,자연,여행,정책관련책 등 38권을 펴내 미 대통령 중 가장 많은 저서를 남겼다.또 대통령 퇴임후 10년간 ‘The Out look’이라는 잡지의 편집자 등 언론인 생활도 하고 아프리카 사냥여행,브라질,정글 탐험을 했으며 새로운 정당을 결성,정치적 재기를 꿈꾸기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도을 하다가 1919년 60세의 나이로 롱 아일랜드의 자택에서 생을 마쳤다. 라이딩스의 대통령 랭킹에 따르면 는 종합순위 5위를 나타내 2위를 기록한 제 32대 프랭클린 루즈벨트(12촌간)와 함께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고 있다. ◎수잔 사르나 루즈벨트박물관 큐레이터/백악관 역사상 첫 흑인 초청/애칭 딴 ‘테디 베어’ 곰인형 인기/미국 이상적 남편·아버지의 전형 【오이스터베이(미 뉴욕주)=나윤도 특파원】 루즈벨트 대통령의 사적지인 사가모어 힐은 뉴욕 롱아일랜드 오이스터베이 언덕에 위치해 있으며 사저와 박물관,당시 농장건물 등이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다.이곳 박물의 수잔 사르나 큐레이터는 “아직까지 그가 대통령같다”며 설명에 들어갔다. ­루즈벨트가 높이 평가되는 이유는. ▲남북전쟁 이후 19세기말 30여년 대통령들이 지나치게 무능했고 기업들에 매수되다시피해 땅에 떨어졌던 대통령직의 권위를 되살렸기 때문이다.그리고 부통령에서 승계한 대통령의 경우 그때까지는 대부분 잔여임기만 때우는 식이었는데 그는 그같은 관행을 종식시켰다. ­그가 애칭으로 많이 불리는 이유. ▲미 역사상 가장 젊은 대통령이었고 또 최초의 현대적 대통령으로 친밀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그래서 TR이라는 이니셜도 처음으로 사용됐다.또 애칭 테디(Teddy)가 광범위하게 불렸으며 그를 딴‘테디 베어’라는 곰인형은 지금까지도 어린이들에게 유명하다. ­루즈벨트의 가족관계는. ▲첫 부인 앨리스와 1녀,소꿉친구로 두번째 부인이 된 에디트와 4남 1녀를 두었다.무척 자상한 성격으로 미국의 이상적 남편,이상적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특히 전투기 조종사이던 막내아들이 1918년 프랑스 공중전에서 전사해 슬픔을 안겨 주었으며 그후 큰 아들이 노르만디 상륙작전에서 전사,1,2차 대전에 아들 하나씩을 잃은 아버지가 됐다. ­그의 성품은 어떠했는가. ▲상당히 개방적이고 진보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대통령 취임직후 백악관 첫 손님으로 흑인 지도자였던 부커 워싱턴을 초청했던 것은 유명하다.백악관 역사상 첫 흑인 초청을 놓고 남부 정치가들로부터 반감을 사 고전하기도 했다.그는 사냥 등산 등 야외생활을 좋아하면서도 틈만 있으면 책을 읽었으며 6천여권의 장서를 남겼다.
  • 도스토예프스키/탄생 175주년 생애 재조명

    ◎모스크바서 미공개 자료 등 1천여점 전시/러 전역서 수집·발굴… 일기·낙서 첫 공개/악에 집착하는 기인 행적 한자리서 감상 【모스크바=유민 특파원】 ‘악을 다루는 천재’ 표드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의 생애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전시회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가 최근 모스크바에서 막이 올라 문학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탄생 1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이번 전시회는 러시아 전역에 흩어져 있는 그에 관한 자료가 모스크바 페트로브카거리 국립문학박물관 한 곳에 모여져 일목요연하게 전시된다는데 의미가 크다.더욱이 상당부분 자료가 처음 공개되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 새롭게 발굴된 일기와 각종 낙서 등은 생전에 그가 ‘악’에 집착하는 기인에 가까운 행적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어 세계 문학연구가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도스토예프스키는 어떤 세계에서 살고 있었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줄 수도 있다는 것이 이번 전시회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시물은 부인이었던 안나 그리고리예브나가 문학박물관에 기증한 것이 주류를 이룬다.모두 5개의 방으로 꾸며져 있는 전시실은 방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읽던 당시 문학작품 및 서적류,초고들,개인휴대품,가족과 친인척 사진,그의 생애와 관련된 사진과 그림 등 1천여점이 꽉 들어차 있다. 제1전시실의 전시물로 보아 그는 젊은 시절 작품으로 ‘오딧세이’‘돈키호테’를,작가로는 괴테나 월터 스코트의 작품들을 즐겨 읽은 것으로 보인다.이와 관련된 서적류가 많기 때문이다. 한때 스코트 작품에 나오는 카드놀이에도 심취된 것으로도 여겨진다.성경에 나오는 신의 형벌보다 더 무서운 악의 인간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애지중지하던 은제 뱀장식물도 관람인들의 눈길을 끈다.하필 ‘왜 뱀인가’라는 의문도 관람인들의 뇌리에 끊이지 않는다. 페테르부르그주에 산재해 있던 원고들도 모두 한데 모아졌다.초기 활동무대인 페테르부르그 사저에 있던 ‘죄와 벌’‘카라마조프 형제’‘백치’의 초고,작품활동과 관련된 각종 낙서 메모도 모스크바로 가져 왔다.그가 등장인물의성격을 정하기 위해 직접 그린 것으로 보이는 각종 인물소묘도 전시물로 나와 있다.‘죄와 벌’초고에는 뚱뚱하고 추한 두상이 전면에 나온다. 19세기 후반 도스토예프스키가 유럽 각 지역을 여행한 기록과 사진도 한 관람실을 만든다.바덴바덴,드레스덴,베니스,플로렌스,로마 등을 두루 여행한 그는 여행목적이 ‘간질’로 알려진 그의 질병치료를 위해서였다는 것도 이번 자료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이번에 전시된 그의 초상화들도 모두 공통점이 있다.사진·그림작가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눈매에서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즉 깊은 사색에 잠긴듯하면서도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불같은 격정이 담겨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있다.사실 ‘가장 인간적인 특성을 지닌 인간’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전시회의 의미라면 의미라는 평이다.
  • 일본 경제의 저력/일 가라쓰 하지메 저(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제조업이 일 성장의 디딤돌” 역설/최근 “일본식 경제모델 허상론” 주장에 반론/“한국 등 동남아 위기 당사국서 원인 찾아야” 【도쿄=강석진 특파원】 아시아는 어디로 가는가.일본은 빠른 시일안에 경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또 어디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하는가.최근 들어 일본이 이룩한 경제 발전 모델에 대한 심각한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일본 모델은 이제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어지고 말았다는 주장은 80년대 일본 예찬론과는 크게 대비된다.구미로부터는 일본 관료체제,기업의 불투명성 등이 늘 지적되고 있다.다른 개발도상국들에게 일본이 걸어온 성장의 길은 더 이상 교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반론도 제기된다.일본식 모델이 효용을 잃었다기 보다는 한국과 동남아 각국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최근의 위기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일본 경제수준이 현재의 동남아 수준이었을 때 일본은 승승장구했으며 위기의 원인은 기본적으로 개별 국가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본 모델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은 앞으로일본이 걸어가야 할 길을 탐색하는데도 반영된다.요즘 일본 서점가에 쏟아져 나오는 ‘일본 경제·사회의 가야 할 길’에 관한 상당수의 책들은 지금까지의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그리고 있다.정보화 사회,유통혁명,금융개혁(빅뱅)은 즐겨 등장하는 단어들이고 흔히 발상의 전환이 촉구되곤 한다. 그러나 ‘일본 경제의 저력’저자인 가라쓰 하지메(당진일)는 이러한 신주류 사고와는 거리를 두고 일본이 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그는 지금까지 일본이 걸어온 길은 성공적이었으며 앞으로 가야 할 길도 거기에 있다고 단언한다.‘물건만들기의 지혜가 미래를 연다’는 이 책의 부제에서처럼 그 길은 물건을,소비자들의 욕구를 잘 파악해 일본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을 한 발 앞서 잘 만들어 내는 지혜를 발휘하는 데 있다고 본다. 가라쓰는 한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나던 1919년 만주에서 태어났다.도쿄대 공학부를 거쳐 일본전신전화공사,마쓰시타통신공업 등을 거쳤다.일본 경제부흥의 주역 세대에 속한다.그는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는 풍부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활발한 경제평론 활동을 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국내총생산 5백조엔(96년)을 넘은 일본 경제의 원점은 기술력이다.일본 경제의 규모는 영국 프랑스 독일의 경제를 합한 것보다 크다.그 원동력은 물건을 생산하는 것에서 나오는 부가가치이며 이를 실현한 것이 일본의 기술이다.파멸에 처한 일본 금융시장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미국의 경제에 대항하는 것도 기술력을 갈고 닦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구체적으로는 일본이 아니고서는 공급할 수 없는 부가가치 높은 제품을 하나씩 늘려나가는 길 뿐이다. 그는 일본이 창조성이 부족하며 일렬 횡대의 문제있는 사회라는 주장을 강력히 거부한다.기업은 내일 살아남기 위해 오늘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술개발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것이다. 그는 또 일본이 자동차와 같은 가공조립형 제조업 못지 않게 소재산업에서도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고 강조한다.일부 논자들이 하이테크,고부가가치산업,경단박소형 산업의 육성을 주장하면서 중후장대 형제조업은 과거의 것인듯 말하지만 소재산업 등 자본재 산업이야말로 하이테크 산업이며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말한다.그는 원천기술이 발휘되는 소재산업은 시장규모가 작기 때문에 한번 시장을 제패하면 다른 경쟁자의 진입이 어려운 장점이 있다면서 이러한 기술이 천연자원이 부족한 일본의 인공자원이라고 강조한다.그는 극단적으로 말해,중후장대산업을 무시하고 ‘경제가소프트화한다,서비스화한다,물건을 만드는 것은 과거의 일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장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또 제조업을 ‘굴뚝산업’이라면서 마치 제조업을 19세기의 유물로 비유하는 것은 일종의 ‘언론공해’라고까지 비판한다.오히려 미래 사회는 점점 더 기술을 누가 장악하는가가 주요해지는 ‘테크노 헤게모니’시대가 된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최근 하이테크 산업이라고 각광을 받고 있는 리듐 전지의 스테인레스 스틸 케이스가 사실은 기름 라이터 제조기술에서 왔으며 탄소 60면체는 굴뚝에 쌓인 그을음에서 발견된 사실,고압처리로 식품의 박테리아를 제거하는 기술은 고베제철소에서 개발한 사례 등 여러가지 사례를 들어가면서 일본의 미래는 ‘물건 만들기(물づくり)’에 달려 있음을 누누이 강조한다. 그는 앞으로 일본을 지탱해 갈 기술을 ▲물질에 관한 새로운 기술 ▲정보관계 기술 ▲생명에 관한 기술 ▲에너지 관련 기술 ▲공간의 개발 등 다섯가지로 크게 구별한다.이러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는 한 일본 경제는 아무런 염려도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미국 기업은 수익성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우수한 기술을 가진 기업도 일시적으로 수익이 나빠지면 처분되고 만다고 말한다.일본은 이에 반해 현재 수익성이 나빠도 해당분야의 기술을 끝까지 개발해 나가는 ‘가족 기업’이라고 말한다.이것이 일본의 강점이므로 기업을 미국처럼 수익성만으로 판단하지 말도록 권한다.그는 또 일본도 미국처럼 정보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성급한 이야기로,일본경제는 미국과 달라 뭐라고 해도 물건 만들기의 나라라고 거듭 강조한다.일종의 일본식 성장 모델,일본식 경영에 대한 예찬론이다. 가라쓰의 주장은현재 붐을 이루고 있는 일본의 개혁론,미래학 등과는 궤를 달리한다.물건을 잘 만드는 종래의 강점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이러한 주장은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약점이 무엇인가를 더듬어 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원제 ‘일본경제の 저력’.니혼케이자이신문사(일본경제신문사).259쪽.1천600엔.
  •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CD/낭만적 선율에 깃든 허무

    단순·선연하고 낭만적인선율,하지만 취한듯 탐미적인 전개,넓은 초원을 빠짐없이 누비듯 살뜰하고 다채로운 앙상블,그러나 바벨탑처럼 거대하게 부풀어오르는 시야.폭풍우처럼 몰아치다가도 돌아보면 한순간 텅비어버리는 허무….구스타프 말러는 이런 삶의 이율배반이 길항하는 곳에서 피어난 한 이름이다.그의 음악엔 19세기말의 퇴폐적 허무와 현대음악의 징후가 동시에 퍼덕이고 있다. 말러의 교향곡이 어렵다는 선입견은 워낙 곡이 긴 탓도 있지만 이처럼 세기말 혼재된 삶의 고뇌를 그의 음악이 그대로 투영했던 까닭이 더 크다.말러의 교향곡 가운데 짧은 편인 1번과 중기 진입을 알리는 5번을 실은 두장짜리 CD가 나왔다.BMG 듀오 시리즈의 하나.제임스 레바인이 런던 심포니(1번)·필라델피아(5번)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 태양계 소행성은 ‘황금의 별’

    ◎금 등 업청난 양의 고가광물 매장 추정/미 탐사선 발사 추진… 우주광업시대 예고 【워싱턴 AP 연합】 19세기 미국 서부를 휩쓸었던 ‘골드 러시’가 21세기에는 우주의 소행성들에 불어닥칠 것으로 보인다.이들 소행성들에는 엄청난 값어치의 철·금·백금 등 광물이 깊숙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학계와업계는 머지 않아 지구의 태양 공전궤도에 널려 있을 약 400개의 소행성들을 향해 광물개발 우주선을 대량으로 발사할지 모른다. 우주공학자들은 지구 상공 최소 100㎞ 고도까지 승객을 싣고 갔다가 이들을 안전하게 지구로 귀환시킬 수 있는 상업우주선을 설계,이를 1천만달러에 기업체에 인도할 계획이다.이 계획의 사업권을 따내려는 영국 기업인 데이빗 애시퍼드는 “약 10년 후면 우주관광이 시작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이러한 구상에 대한 사람들의 비웃음은 그칠 것”이라고 장담했다. 콜로라도주 스팀보트 스프링스의 제임스 벤슨씨도 야심적인 우주사업을 꿈꾸고 있다.그가 운영하는 스페이스 데브사는 99년말까지 5천만달러 미만의 예산으로한 소행성에 무인우주선을 발사할 계획이다.이 우주선은 사기를 꽂고 소행성 표면에 내려 ‘영유권’을 주장하고 ‘우주정복시대’의 개막을 알린다는 것이다. 컴퓨터 전문가이기도 한 벤슨 사장(52)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지와의 인터뷰에서 우주광물에 대한 자료를 원하는 거액의 시장에 진출할 뜻을 밝히면서 21세기 중반에 가면 우주광물탐사사업이 붐을 이룰 것으로 내다봤다.
  • IMF와 역사 되씹기/송일 외국어대 교수·경영학(시론)

    ○예측불능시대의 해법 찾기 무인년 새해는 대란의 해이며,개혁을 향해 몸부림치는 빅뱅의 해이다.외환대란 금융대란 물가대란 부도대란 실업대란 등 전대미문의 국란시대가 전개되고 있다.한편 외환,금융,주식시장에 빅뱅 도미노가 국가경제 전반에 걸쳐 경천동지의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개혁의 바람은 이 위기가 선진국으로 가는 천로역정이라는 희망도 예고되고 있다. 한국이 국제사회로 편입하는 과정은 항상 외세의 개입에 따른 타율적이고 강압적이라는 부끄러운 특징을 수반에 왔다.국제통화기금(IMF)대란도 따지고 보면 외세에 의한 세계화의 빅뱅이다.IMF 구제금융의 발단이 된 외환위기는 결과적 현상에 불과하며 화근의 본질은 한국경제가 국제수준의 규범과 관행에 맞는 경쟁체질로 미리 거듭나지 못한데 있다. 앞으로 고통분담은 세계화로의 엑소더스를 위해 국민 정부 기업이 다함께 참여할 지옥훈련인 것이다. 최근 한국사람치고 나름대로의 IMF신드롬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필자가 겪는 IMF 신드롬은 오늘의 딜레머를 구한말 비운과 좌절의역사에 조명해 보는 ‘역사되씹기’이다.왜 이렇게 어리석은 역사를 후렴처럼 반복하는지 되씹으면 씹을수록 뒷맛이 쓰다.역사속에서 예측불능시대의 해법을 찾아 방황하며 반성하고 또 자성할 뿐이다. 최초의 근대조약인 강화도 조약(1876년),조미수호조약(1882년),갑오개혁(1885년) 그리고 을사조약(1904년)에 이르기까지 개방과 개혁의 역사는 우리의 국운과 장래를 놓고 외세가 갑론을박하는 타율과 굴절로 얼룩져 있다.1세기가 지난 오늘도 개발연대의 자만과 구각,악습과 시대적 오류를 우리 힘으로 털어버리지 못한 죄과를 IMF 문전에서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조선말 통상을 요구해 온 미국의 제너럴 셔먼호를 격침하고 쇄국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전국에 세운 대원군의 척화비와,외국인이 한국기업을 소유하는 것을 찬성하는 한국인이 겨우 4%에 불과하다는 지난 연말 어느 외국기관의 보고서는 과연 무엇이 다를까.1세기 동안 변한 것이 없다. 이처럼 우리민족이 국제물정에 등을 돌려온 탓으로 개방과 관련된 협상은 늘 선택과 저항의 여지가 없는피동과 압박의 역사의 반복이다.강화도 앞바다에 군함을 도열시킨 구로다(흑전청융)의 무력적 위압에 의한 강화도 조약이나,지난 연말 벼랑끝 위기에 몰려 무조건적으로 수용한 IMF 협상 사이에는 우리가 자초한 강박과 궁박의 차이 외에는 없다. 이처럼 강압적이고 수동적인 개방화의 이면은 불평등과 굴욕이며 내적인 준비없이 골육지책으로 이루어진 문호개방은 당시 제국주의 열강의 경제침탈의 발판이 되고 말았다.19세기 말 열강과 체결한 각종 통상조약의 불평등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일본이 구한말 당시 1년예산에 맞먹는 1천300원의 차관을 공여하며 제멋대로 1할의 수수료를 떼어도 우리는 말 한마디 못했다.특히 일본이 파견한 재정고문 메가다(목하전종태랑)는 화폐정리를 통해 금융을 장악하고 일본 금융제도를 조선에 연장,실시함으로써 가격기구에 의한 경제침략의 첨병역할을 십분 발휘했다. ○국채보상운동과 금모으기 이번에 세계은행(IBRD)과 IMF에서 제공한 차관조건은 이들 기관 50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불공정 사례(사상 최고의 이자율과 최초의 전후수수료 징수 등)를 남겼다.또한 신용등급의 추락으로 사상 최악의 위기에 몰린 한국의 외채연장을 놓고 끝없이 벌어지는 외국금융기관의 탐욕이나,바닥으로 추락한 주가와 천정부지로 치솟은 환율 덕으로 코카콜라주식의 10분의 1이면 한국의 상장주식을 송두리째 장악할 수 있다는 언론보도는 우리의 방만과 실책을 다시한번 뼈아프게 만들 뿐이다. 한편 일제의 예속적 차관에 저항하여 남자들은 담배를 끊어 푼돈을 모으고 부녀자는 가락지와 비녀까지 내놓아 모금하던 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을 연상시키는 ‘금모으기 운동’이나 국산품 애용운동,그리고 60·70년대의 수출드라이브 역사는 반복해도 좋다고 흐뭇해하는 것도 잠시다.혹시 이것이 IMF 조건이나 심기를 또 어떻게 건드릴까 싶어 필자의 역사되씹기 신드롬은 바람잘 날이 없다. ○지원효과 극대화 노력 절실 분명한 것은 공존공영의 지구촌 자본주의 시대에 IMF는 점령군이 아닌 지원군이란 사실이다.그러나 IMF 개혁이 갑오개혁과 다르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은 지난날 못다가졌던 선견지명으로 우리가 자주적으로 창출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IMF 조건의 원론은 최단시일내에 가시적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추락한 국가신인도를 조속히 회복하는 것이 국가존립의 필요조건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충분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IMF 프로그램의 각론을 한국의 현실에 부합하게 도출할 수 있는 정부의 지혜와 협상 여백의 확보가 필요하다.피지원국의 풍토나 사정의 이해없이 일률적으로 처방된 IMF의 단칼 수술방식에 탄력성과 융통성을 제공해 지원효과를 극대화하는 작업은 세계 11대 경제대국인 한국의 조기회복을 염원하는 IMF목표와 우리의 목표와 정확히 합치하는 접점이기 때문이다.
  • ‘한국 근대미술의 역사’/미술평론가 최열씨 최근 출간

    ◎통설과 상식 향한 반기/“근대미술 기점은 19세기 중엽” 주장/일제시대 미술 새로운 시각서 다뤄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전반에 이르는 근대미술의 태동기는 한국미술사에서 더없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미술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문헌자료의 절대적인 부족과 고증의 불확실성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암흑시대’로 남아있다. 한국 근대미술을 한수 접어보려는 식민사관에 물든 미술계 일각의 비뚤어진 시각과 학계의 무관심,연구역량의 부재 등이 이같은 지적 야만상태를 초래한 것이다. 최근 출간된 미술평론가 최열씨(42·가나미술연구소 기획실장)의 ‘한국근대미술의 역사’(열화당)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1800∼1945년의 한국 근대미술사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기존의 한국 근대사 관련 연구서들은 작품론이나 작가론들이 주류를 이뤘다. 그것들은 대부분 문헌자료에 대한 기초조사가 빈약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만큼 주관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5년동안에 걸친방대한 자료조사와 철저한 문헌비판을 통해 ‘주관성의 오류’ 내지 ‘일반화의 오류’를 줄이는 데 무엇보다 역점을 뒀다. 이 책은 우리 근대미술의 기점을 19세기 중엽으로 잡는다. 이것은 1910년대 일본을 통한 서양회화의 이식을 근대의 기점으로 내세우는 기존의 관점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19세기와 20세기를 봉건의 미망과 근대의 환영에 빠져 중국과 서구 베끼기를 각각 되풀이하던 시대로 보는 단순논리나,근대를 서구의 수용으로 단순화시키는 단선적인 방법론과는 차원을 달리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지은이는 19세기의 철학자 최한기가 내세웠던 활동운화와,그보다 한세대 앞선 박지원이 즐겨 썼던 법고창신,그리고 두 사람 모두 꾀했던 실사구시의 정신을 바람직한 미술사관으로 제시한다. 이것이야말로 19세기 중엽 신감각파를 이끈 서화계의 거두 조희룡이나,20세기초 근대미술사학의 꽃을 피운 오세창과 고유섭,20세기 전반기를 가장 힘겹고 뜨겁게 살다간 미술가 김복진과 윤희순 등의 예술정신과도 맥을 같이하는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책은 기존의 통설 또는 상식에 과감하게 반기를든다. 하나의 예로 일제시대 조선인 미술가들의 최대 연합단체인 서화협회의 주도인물은 고희동이 아니라 개화자강론자인 오세창으로부터 안중식, 이도영으로 이어지는 세력이라는 것. 일본은 서구 근대주의 미술을 조선에 옮겨오는 ‘문화의 거름종이’와 같은 역할을 했다. 이 책에서는 ‘친일미술’을 ‘전시체제미술’이란 항목으로 다루는 한편 식민지 미술가로서의 글쓰기의 정황도 낱낱이 살핀다. 특히 많은 미술인들이 창씨개명에 나서는 일제하 현실에서 가장 활발한 미술 문필활동을 펼쳤던 윤희순에 대해 소상히 다룬다. 윤우인·윤고산 등의 필명을 사용했던 윤희순은 당대의 현실에 맞서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대사일번의 심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예술의 순수성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전란시기에 처해 위대한 예술가들은 평화시대보다 더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는 글도 발표했다. 그가 위대한 예술가로 내세운 인물은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원말사대가와 팔대산인,석도등이다. 지은이는 이러한 윤희순의 담론을 순수성을 잃은 전쟁화를 짐짓 비켜가기 위한 의도로 풀이한다.
  • 까레스키 식품의 확산(중앙아시아를 가다:12)

    ◎유목민족의 식탁 점령한 김치/“입맛을 산뜻하게 하는 별미”/양고기·양젖 위주 식사에 적합/신강성­카즈흐­티베트까지 ‘침투’/우루무치 교포 절반이 김치장수 그 끝 없이 멀고 먼 서역에도,어디를 가나 우리 교포들이 살고 있다.그들은 한국의 음식을 먹고 전통식생활에서도 전통을 지킨다.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유학온 카자흐스탄 학생이 밥을 물말아 먹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던 기억이 생생하다.그 학생은 고려인인 자기 할머니도 늘 그렇게 잡수신다고 했다.그들의 식생활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은 물론 김치다.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도시 큰 바자에 가면 의례히 고려인 까레스키 여인들이 김치와 고사리를 비롯한 각종 나물과 샐러드를 판다.이들은 본래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로브스크 지역의 원동에 살던 사람들이다.그러다 1937년 스탈린이 강제로 이주시켜 중앙아시아 곳곳에 고루 퍼져 살게 되었다. 그래서 중앙아시아에서 김치는 까레스키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공산권에 여행이 가능해지던 80년대 말부터 이러한 소식을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터이다. ○88년 봉급자의 20배 수입 그런데 이번에 신강성의 수도인 우루무치에 가서 김치가 지닌 경제적 잠재력에 크게 놀랐다.1986년 중국에서 자영업을 허용하기 전까지 우루무치의 조선족은 불과 20호 정도밖에 없었다고 한다.우루무치의 조선족은 자영업을 허용한 이후 늘어났다.심양에서 처음으로 김치장사에 나섰던 한 아주머니가 하루아침에 큰 거부가 되었다는 소문이 나고 부터다.중국의 동북삼성에 사는 조선족들은 우리의 전통식생활을 잘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김치장사는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자영업이다.그런 점을 고려한 조선족들이 김치장수로 나서 옛날 서역이라 불렀던 신강성까지 왔다. 제일 먼저 우루무치에 온 사람들은 88년과 89년경에는 하루 중국돈으로 약 200원 이상을 벌었다.월수입도 6천원정도나 되었다. 월봉급이 많아야 500원이었던 시절 당시의 수익은 월급의 10내지 20배에 달하는 거금이었다.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90년에는 약 100세대의 김치장수가 우루무치로 몰려들어 조선족이 모두 120세대로 늘어났다.그러나 100여 세대 김치장수가 우루무치시에 있는 네개의 바자에 모여들었기 때문에 각 세대의 수입이 급속히 줄었다.그래서 그들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전업을 하든가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지금도 100세대 가운데 약 50여 세대가 김치장사를 하고 있다.월 1천여원 이상의 수익을 쉽게 올린다.이 정도면 중국에서 괜찮은 수입인데도 그들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다.우루무치를 떠나 세계의 지붕 티베트 라사까지 진출했다.조선족 김치장수들의 생활태도는 참으로 놀랍도록 도전적이다.지금도 김치가 지닌 확실한 상품성을 딛고 일어서서 기적을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신강성에 우리민족이 처음으로 들어간 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19세기 중엽 이전에 중국에 이주한 한국인들은 거의 중국에 동화되었기 때문이다.오늘의 조선족들은 그 이후에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거나 또는 일제의 수탈에 못 이겨 떠난 사람들의 후예다.그 가운데는 1959년 신강성 해방군 자격으로 현지에 주둔하다가 제대하고 주저앉은 사람도 있다.1960년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파견되어 의사와 병원장으로 근무하다가 몇년 전에 정년퇴직한 원로 의사 한분도 신강성에 자리잡았다. 조선족 의사는 처음으로 우루무치에 올 때,난주에서 트럭을 타고 왔는데,17일이나 걸렸다고 한다.그 때 나이 21세의 총각이었다.우루무치 초행길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가 물었더니 “다시는 못 돌아갈 것같았다”는 이야기를 했다.그 길에는 김치장사를 하기 위하여 멀리 만주에서 온 조선족 네명이 동행했다는 것이다.어떤 이는 이런 말을 되뇌었다.“집 떠난 사람들이니까 선생님의 그 말을 알지,집 떠나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모를 거야”라고…,모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입에 밴 음식 기름기 제거 신강성에는 위글족 이외에 몽골과 카자흐족 등 많은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다.모두 양고기를 주식으로 하고 낭이라 불리우는 빵을 먹는 민족이다.이러한 식생활은 신강성을 포함한 전 스텝 지역,다시 말해서 투르크와 몽골의 모든 지역이 같다.스텝의 유목민족들은 말이나 양젖으로 치즈와 요구르트는 물론이고,술까지 빚어서 먹는다.이런 점은 곤륜산맥과 에베레스트 산맥으로 연결되는 고원 티베트에서도 마찬가지다.한마디로,유목민들은 양고기와 우유만을 먹고 마시며 살아간다. 유목민족들이 왜 김치를 사먹느냐고 물어보았다.우루무치의 조선족들은 “김치가 산뜻하기 때문”이라고 하나같이 자랑스럽게 말한다.고기와 우유,그리고 치즈만을 먹고 사는 유목민들이 순식물성 발효식품이기도 한 산뜻하고 시원한 김치맛을 한번 보고나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치즈나 마유주도 발효식품이다.하지만 이들 낙농식품은 우유기름 맛을 그대로 담아 입에 밴 육식의 기름끼를 가셔주지는 못한다.그러나 무배추와 파마늘과 고추가루와 생강 등 온갖 양념을 고루 삭혀 발효한 김치는 입맛을 산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시원한 맛은 정신까지 맑게 해준다.김치에는 고추 매운 맛의 톡 쏘는 자극과 파마늘의 짜릿하고 알딸한 뒷맛,무배추의 살에 양념들이 배여서 숙성될 때 나오는 산뜻한 신맛이 모두 어울렸다. ○개방정책 타고 번져 김치는 어느 육류와도 잘 들어맞는다.미국 카우보이들이 즐기던티본 스테이크와 가장 갈 어울리는 식품은 뭐니 뭐니 해도 김치다.한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미국인들의 주장이 그러하다.다만 김치는 가벼운 음식에는 그 양념 맛이 너무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육식만 하는 유목민족에게는 안성마춤의 별미인 것이다. 세계의 오지 타클라마칸 사막과 티베트 고원지대에까지 밀어닥친 개방정책은 시장경제를 열었다.김치도 그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다.김치는 오래지 않아 유목민들 식생활의 총아가 될 수 있다.김치 없이는 못사는 한국교포들이 도전적으로 김치를 팔고 있는 한은 그럴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 인간의 무의식 해부/‘프로이트전집’ 완간

    칼 마르크스와 더불어 20세기 사상사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 19세기 말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심리치료방법인 정신분석을 처음 도입,20세기 현대사상계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온 그의 사상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프로이트 전집’(전20권)이 완간됐다. 도서출판 열린책들이 지난 96년 정신분석학 정립 100주년을 기념해 펴내기 시작한 프로이트 전집이 최근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을 끝으로 2년만에 마무리 된 것. 독일 피셔 출판사의 프로이트 전집과 지금까지 나온 프로이트 전집 가운데 가장 권위있는 것으로 알려진 제임스 스트라치편집의 ‘표준판 프로이트 전집’을 저본으로 했다. 이성을 강조한 서구의 합리주의 정신은 인간 내면에 감추어진 꿈의 영역혹은 무의식의 영역을 오랫동안 무시해 왔다. 특히 지적 쇼비니즘이 강한 프랑스의 경우,정신분석 이론의 도입과정은 ‘100년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데올로기의 퇴조현상과 맞물려 사회적 환경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개인의 심리나 그 무의식의 영역에 대한 관심으로 옮아가고 있다. 이번에 완간된 프로이트 전집은 정신분석에 관한현대의 이론보다는 그 근원적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프로이트의 원텍스트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층 주목된다. 이번 ‘프로이트 전집’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꿈의 해석’‘정신분석강의’‘히스테리 연구’ 등의 논문과 ‘늑대인간’이나 ‘꼬마 한스와 도라’같은 증례모음집,당대의 세계정세에 관한 견해를 밝힌 에세이 등이 실렸다. 한편 이 전집을 통해 독자들은 탁월한 산문가로서의 프로이트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사실 그의 저서 하나하나는 곧바로 훌륭한 문학작품이다. 한 예로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은 일종의 문학비평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문학비평가 해롤드 블룸은 그의 저서 ‘서구의 정전’에서 “프로이트는 작가이고 정신분석은 문학이다”라고 했다. 나아가 블룸은 프로이트를 괴테,셰익스피어,호머,단테,조이스 등과 함께 후세에 길이 남을 28명의 문학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 불 문화재 CD롬 제작 활발

    ◎루브르박·에펠탑 등 수록… 문화수출 박차 프랑스에서는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문화의 상품화’가 한창이다.따라서 안방에 앉아서 루브르박물관을 구석구석까지 돌아보거나 에펠탑에 올라 파리시내를 내려다보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그림이나 골동품들의 진수를 한 눈에 느낄 수 있게 됐다. CD롬에 문화와 문화재를 담는 멀티미디어 문화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 멀티미디어시대에 둔감한 프랑스지만 이른바 문화 CD롬 제작은 이미 상당부분 활성화가 됐다. 관계당국도 지금까지 문화의 상품화는 와서 보는 관광산업으로 일원화되어 있었지만 멀티미디어를 이용함에 따라 문화를 직접세계 곳곳에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고 보고 이는 멀티미디어산업의 활성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CD롬이 ‘퐁피두 문화센터 컬렉션’.퐁피두 센터와 앵포그람 멀티미디어가 공동제작한 이 CD롬은 사실상 영상 퐁피두센터다. 건물 자체도 하나의 예술인 퐁피두센터의 모습은 물론이고 퐁피두센터에 소장중인 4만여점의 작품을 모두 담았다.파리의 상징인 에펠탑 CD롬도 이미 제작되어 판매중이다. 아르테,파테 앵테르악티브, A2W에 의해 공동제작된 이 CD롬은 웅장하고 화려한 에펠탑의 모습과 함께 에펠탑을 타고 올라가며 높이마다 다르게 보이는 파리 시내의 전경을 가상현실로 꾸며 에펠탑에 오르지 않고도 그이상의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관광객들에게도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또 에펠탑 주변의 산책도 가능하게 해준다.에펠탑의 역사와 일화,에펠탑과 파리와의 관계 등 에펠탑에 관한 모든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꾸며져 있다. 루브르박물관도 이미 CD롬으로 옮겨 담아놓았다.루브르 박물관은 몽파르나스 멀티미디어와 기존의 ‘루브르와 궁전’을 보완한 새 CD롬이 올해초 선보일 예정이다.‘루브르,소장품과 궁전’이라는 새 이름처럼 기존에 담겨 있던 40여점의 명화 외에 B.C.4∼19세기 사이의 골동품 조각 예술 오브제 등 60여점의 유명작품을 추가로 담을 계획이다. 종전의 것보다 보다 진품의 진수를 더욱 느낄 수 있게 작품 색감도 더욱 향상시키고 음향 효과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게 루브르박물관 관계자의 설명이다.누구든지 쉽고 풍부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검색 기능도 보완하기로 했다. 이밖에 오르세 미술관,베르사이유궁전 등 그밖의 유명 박물관이나 기념물 관리당국들도 앞다투어 각자 갖고 있는 문화재의 특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CD롬 제작에 나서고 있다.
  • 사진 영상의 해(외언내언)

    사진이 발명됐을 때 프랑스 화가 폴 들라로쉬는 “오늘부터 회화는 죽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스케치 대신 사진을 이용하는 화가들이 있지만 1839년 루이 다게르가 사진을 발명한 이후 초기 사진가들은 대부분 화가 출신이었다. 따라서 19세기 사진에 대한 최상의 찬사는 “그림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진의 회화에 대한 이같은 종속성은 격렬한 비난을 초래하기도 했다. 시인 보들레르는 “사진공업은 모든 가짜 화가와 재능이 없거나 게을러서 업적 하나 완성시키지 못한 화가들의 피란처”라고 쏘아 붙였다. 20세기에 들어서부터 사진은 회화적 규범에서 벗어나 독자적 미학을 정립하기 시작한다. 소형카메라의 개발과함께 사실의 기록과 전달에 치중하는 보도사진의 전성시대가 1936년 창간된 라이프지와 더불어 열린다. 카르티에브레송,유진 스미드,로버트 카파,에리히 잘로몬등은 그 대표적인 작가. 이들에 의해 사회적,공적,외향적 특성을 지닌 다큐멘터리 사진이 꽃 핀다. 1960년대 이후 사진영상은 개인적,심리적,내향적 경향으로 바뀌면서 화면의조형성,외형적 아름다움은 사라진다. 구도와 빛,때로는 초점마저 맞지 않는,종전의 인식으로 보면 실패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사진이 ‘해방된 영상’으로 등장한다. 즉 과거의 사진이 생동하는 현실의 평면적 번역이 었다면 현대예술사진은 현실의 입체적,감각적 표현을 보여준다. 사진이 예술인가 아닌가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돼왔지만 이제는 예술로서 확고한 인정을 받고 있다. 사진을 발명한 나라 프랑스는 1860년부터 사진작품을 국립미술관에 제출하는 것을 의무화했다.미국에서는 메트로폴리탄 등 주요미술관과 대학미술관이 사진의 오리지널 프린트를 수집한다. 유명한 사진작가의 오리지널 프린트는 10만달러 이상 호가하기도 한다. 올해는 문화체육부가 정한 ‘사진영상의 해’다. 사진박물관 건립 등 각종기념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한국사진작가협회에 가입된 회원이 3천500여명에 이르지만 우리 문화예술중 가장 변방에 놓인 사진예술이 올해를 계기로 크게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 지식·정보사회로 급속 전환/세기변화 역사적 의미와 특성

    ◎기술혁신 가속화 인력구조 대개편/생태계보존·복지등이 최대 가치로 역사는 찾는 이의 것이고 미래는 준비하는 이의 것이다. 21세기를 불과 몇년 앞둔 현 시점에서 우리는 지난 세기들을 거시적으로 되돌아 봄으로써 많은 시사를 얻을 수 있다. 인류의 과거 역사에 대한 진단을 통해 문명사적인 법칙을 찾아내고 나아가 21세기를 예측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계 역사학자인 펠리프 페르난데스­아메스토는 지난1천년간의 세계문명의 주도권은 중국에서 서서히 서쪽으로 이동해 지중해와 유럽,대서양을 거쳐 태평양으로 옮겨갔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과거 1천년의 세계사를 전체적으로 살펴볼 때 서양의 융성과 유럽문명의 지배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지난 11∼15세기 사이의 4대 문명권의 세계사적 특성을 살펴보면 중국은 위기와 생존,이슬람 세계는 전반적인 개조,서방 기독교국가들은 점진적인 자각과 단속적인 성장,동방 기독교국가들은 빛의 상실과 소생의 시기임을 알 수있다. 또 16세기부터는 유럽의 팽창에 따라 점차적으로 조성된‘대서양 문명’이 엄청난 잠재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첫 300년 동안에는 극도로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19세기와 20세기 초는 집단이주와 무역 및 군사동맹을 통해 재확립된 ‘대서양의 단일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면 21세기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까. 21세기 미래사회의 모습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21세기 미래사회의 변화를 지식·정보사회의 측면에서 다루는 공통점을 지닌다. 지식·정보사회의 개념을 처음으로 논한 사람은 미국의 경제학자 마크럽(F.Machlup)이다. 그는 지식사회는 지식산업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라고 보았다. 요컨대 21세기 미래사회의 특징으로는 △지식·정보사회로의 급속한 이행으로 인한 급격한 기술혁신 △인력구조 전환의 가속화 △개방화 △다원화 사회로의 이행 등이 꼽힌다. 세기의 전환기를 맞아 세계통합 추진전략 또한 가속도를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1980년대 말 냉전체제가 종식되고 1995년 WTO체제가 출범함에 따라 세계경제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바탕으로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앞으로 세계경제는 기존의 각종 경제통합체가 지역적 확대과정을 거치면서 미주경제권,유럽경제권,동북아경제권 등 3개 권역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21세기에는 경제적 풍요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삶의 질 문제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지구생태계의 파괴와 이로 인한 인류문명의 멸망을 걱정하는 생태학적관념이나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감을 강조하는 복지의 관념 등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기에 이른 것이다. 최근 인구학자들이 그동안의 통계위주의 인구동향분석에서 탈피,삶의 질 문제로 논의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 칸트와 미학/한국칸트학회 엮음(화제의 책)

    ◎칸트철학의 ‘판단력 비판’ 의미 고찰 독일의 철학자 헤르만 코헨이 적절히 지적했듯이 칸트 미학에 대한 논의는 늘 독일 정신사의 중심부를 이뤄 왔으며, 근대를 체계적으로 완성하고 현대의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됐다. 칸트야말로 17∼18세기의 다양한 사상을 한 데로모은 거대한 호수였다. 그로부터 19세기와 20세기의 사상적 물줄기가 흘러나 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 책은 칸트 미학의 주요 문제들을 그의 3대 비판서 가운데 하나인 ‘판단력비판’을 중심으로 살핀다. 미학은 18세기 독일 철학자 바움가르텐이 ‘감성적 인식의 학문’으로 규정함으로써 그 이름을 얻었다. 그것은 칸트에 이르러 예술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학문영역으로 굳건히 자리잡음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현재의 예술이론의 상호 영향관계를 살펴보면 칸트의 미학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그 중요성을 잃지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들뢰즈 데리다 리오타르 아도르노 하이데거 가다머 등 현대 사상가들의 미학사상은 칸트 미학을 재해석하고 비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칸트의 예술이론은 현대 미학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판단력비판’은 형이상학 및 인식론을 다룬‘순수이성비판’과 윤리학을 논한 ‘실천이성비판’을 매개,칸트철학을 건축술적으로 구성해 놓은 것이다. 때문에 ‘판단력비판’은 칸트 비판철학의 전체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저술이다. 이 책에서는 칸트의 전 철학체계와의 연관속에서 본 ‘판단력비판’의 의미,칸트미학에 있어서의 미와 숭고의 문제,칸트미학과 낭만주의 철학과의 관계,칸트미학과 포스트모더니즘 등을 주요 주제로 다뤘다. 미적 자율성의 확립으로서의 칸트미학,칸트의 반성적 판단력과 현대철학 등 10편의 논문이 실렸다. 민음사 1만5천원.
  • 미 수집가들 타자기 모으기 붐

    ◎워드프로세서 등장에 골동품으로 진가 높아져/19세기 독·미산 수동 인기… 인터넷 통해 정보 공유 쉽게 지우고 입력하는 워드 프로세서가 등장한지 오래.70년대 이전 시대극의 소품으로나 등장하는 타자기가 최근 미국 수집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골동품으로써 진가를 발휘하게 된 것이다. “물론 컴퓨터는 첨단 지능을 갖고 있지요.하지만 타자기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습니다”.샌프란시스코의 타자기 수집가인 조 프란체스카씨(시인·31)가 밝히는 타자기 예찬론이다.그녀는 타자기에 고유의 인격이 있다고까지 말한다. ‘수동’을 사랑하는 이 타자기 수집가들은 그러나 아이로니칼하게도 세계 각지의 타자기들을 사들이고 타자기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인터넷 웹사이트와 전자메일(E­Mail)이라는 최첨단 컴퓨터소프트웨어를 이용한다. 이들은 홈페이지를 개설,자신들이 타자기 수집가가 된 사연,소장한 진귀 타자기 소개,원하는 기종에 대한 광고 등을 상세히 싣는다.또 이달의 타자기 코너를 마련하는 등 이벤트도 마련하고 있다. 타자기수리공으로 일하던 20여년전,먼지 묻은 올리버5번 타자기를 발견한뒤 타자기의 은근한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는 허브 퍼밀리언씨는 “타자기는 수집품으로써,또 실내의 고상한 장식품으로써 더할 나위없는 가치를 지닌다”고 말한다. 수집가들이 자랑하는 골동품 타자기는 1870년 상업용으로는 세계 최초로 개발됐다는 덴마크산 타자기에서 부터 1896년 독일산 ‘세이드’,1940년대 생산된 미국의 ‘로열’,‘올리버’‘뉴프랭클린’ 등으로 다양하다. 수집가들은 타자기를 모으고,이를 자랑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타자기가 전성하던 시기의 사회풍속도와 사진,그림들을 싣는 갤러리 코너를 마련해 놓고 접속자들을 유혹하는 수집가도 있다. 타자기와 관련,전자 메일을 띄워놓은 동호인은 미국 유럽 등 5개 대륙에 100여명.호기심이 있거나 가입을 원하는 사람은 리치 신코타씨나 척 딜트씨를 통해 안내를 받는데 메일의 주소는 Chuck101@erols.com이다.
  • “한국 신용등급 낮춘건 잘못”/영 파이낸셜 타임스

    ◎무디스사 정확한 평가없이 결정/인니·태 수준 격하는 아시아 버리는 행위 【브뤼셀·베를린 연합】 한국의 신용등급을 인도네시아·태국 수준으로 급격히 낮춘 국제신용평가사들의 조치는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파이낸셜 타임스지가 23일 국제 금융관계자들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무디스사가 22일 한국 채권의 신용등급을 인도네시아·태국 등과 함께 정크본드(저급채권)수준으로 떨어뜨린데 대한 분석기사에서 국제금융시장의 이같은 반응을 전했다. ANZ투자은행의 시장조사책임자인 제롬 부스씨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인도네시아나 태국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은 도대체 말이 안되며 이제 아시아를 버린 것이 아니냐는 인상을 준다”고 말했다. 피치­IBCA의 국가신용등급평가 책임자인 크리스토퍼 휸도 “한국을 경제위기에 있는 다른 아시아 일부 국가와 같은 등급으로 놓는 것은 한국 경제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싱가포르의 글로벌 애싯 매니지먼트사 간부인 케빈 콜글래지어는 “신용평가회사들이 평가를 급격히 바꾸는 바람에 (금융)시장에서 신용평가사들의 신뢰도에 대한 우려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세계은행(IBRD)의 한 고위 관계자는 동남아의 금융·외환위기가 과도기적 현상으로 이 지역이 수년내에 정상 성장궤도에 복귀할 것으로 전망했다고 독일의 쥐트도이체 차이퉁지가 23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제임스 울펜슨 세계은행 총재의 동남아담당 고문인 울리히 카르텔리리씨는 중기적으로 볼 때 아시아의 ‘호랑이 국가들’이 이번 위기를 통해 더욱 강해질 수도 있다고 전망하면서 이번 위기는 “19세기 유럽·북미의 산업화에 비견되는 과도기적 적응과정”이라고 평가했다. 독일 도이체방크 감독회 이사를 지냈던 카르텔리리 고문은 “몇년만 지나면 이들 국가가 전보다 훨씬 강화된 구조를 갖고 성장을 지속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송구영신의 전령사 ‘박쥐’/슈트라우스의 대표적 오페레타

    ◎30일∼내년 1월4일 예술의 전당 지난해 세밑의 화제작 ‘박쥐’가 올해도 ‘떴다’.오는 30일부터 98년 1월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라 송년 단골공연으로 자리를 굳힌다. ‘박쥐’는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의 대표적 오페레타.레시타티보를 대사로 대체,미간을 찌푸려 모으지 않고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작은 오페라다. 송구영신의 전령사로 ‘간택’된 데는 뮤지컬같이 편한 이런 형식 덕이 크다.그러면서도 음악적 완성도가 처지지 않는다.줄거리도 유쾌하고 코믹하지만 속엔 쿡 쏘는 독침이 숨어있다. 배경은 19세기 비엔나.사치스런 무도회장을 중심으로 로잘린데,아이젠슈타인,팔케,아델레 등 문란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흥청망청 거품소비를 풍자한다.아이젠슈타인 역에 테너 안형열·이현,로잘린데 소프라노 나경혜·전효신,아델레 소프라노 윤이나·이효진,팔케 바리톤 박홍우·유현승씨 등 더블캐스팅으로 전력이 작년보다 배가됐다. 무대의 감초는 ‘카메오’(유명 연예인들의 단역출연).울랄라 노래의 개그맨 김의환,드라마‘별은 내가슴에’의 탤런트 조미령 등이 프로쉬·이다 역으로 등장한다.2막 무도회 극중쇼의 개그그룹 컬트트리플,색스폰 연주자 이정식 등 공연도 볼거리. 번역·각색에 조성진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연출 브루노 베르거,‘명성황후’의 박상현,반주 호스트 부흐홀츠 지휘의 부천필 등도 알짜 실력파들이다.
  • 지구상의 유민들/미 로빈 코언 교수(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다민족 국가 유민 발생 역사적 고찰/희생자·문화·제국주의 ‘디아스포라’ 설명/국제평화 위협 요인·민족갈등 원인 분석 【워싱턴〓나윤도 특파원】 오늘날 지구상에는 200여개의 국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서로 언어와 관습,종교,가치 등이 다른 ‘민족’(nation­peoples)의 수는 2천이 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이들 민족들은 한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사는 경우보다는 여러 민족이 모여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사는 경우가 많다. 이같은 다민족 국가들 가운데는 미국과 같이 구성 민족들끼리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공존공영하는 국가도 있지만 상당수는 민족간의 반목과 질시로 갈등,심지어는 내란(civil war)의 고통을 겪고 있다.특히 이같은 민족간의 갈등은 냉전시대 이데올로기 대립을 대체하는 새로운 국제평화의 위협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로드 아일랜드 워윅(Warwick)대학의 사회학 교수인 로빈 코언 박사는 ‘지구상의 유민들’(Global Diasporas)이라는 최근 저서에서 다민족 국가의 기원이 된 유민 발생의 역사적 고찰과그로 인해 오늘날 야기되는 많은 문제 등에 관한 명철한 분석을 시도했다.그리고 세계 대표적 유민들의 생성원인을 ▲희생자 ▲노동력 ▲제국주의 ▲무역 ▲홈랜드 ▲문화 디아스포라 등으로 나눠 설명했다. 그는 먼저 유민을 가리키는 ‘디아스포라’라는 말의 의미를 분석했다.‘디아스포라’는 그리스어로 씨뿌리다,혹은 분산이라는 뜻의 ‘speiro’와 위(over)라는 뜻의 전치사인 ‘dia’의 합성어.인간에게 적용시켰을 때 고대그리스인들의 사고로는 이주(migration),식민화(colonization)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나 유민의 설움을 뼈아프게 겪은 유태인이나 아프리카인,팔레스타인인,아르메니아인 등에게는 강압에 의한 것,비참하고 잔혹한 것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고 설명했다. 원래 디아스포라는 팔레스타인 외곽에 살던 유대적 종교관과 생활습관을 유지하던 유대인 혹은 그 거주지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였으나 요즘은 유민을 가리키는 보통명사화 됐다는 것이다.결국 디아스포라의 의미는 자의든 타의든 여러가지 이유에 의하여 자신들의 고향땅을 떠나 낯선땅에서 자신들의 언어,관습,종교,가치관 등을 펴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는 고향에 대한 충성심과 감정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그래서 디아스포라 집단의 구성원은 과거 이주 역사와의 피할 수 없는 연계를 인정하고 비슷한 배경을가진 다른 민족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들 디아스포라 집단은 오늘날 불완전하고 폭력적 성향이 강해 국가 분리운동을 일으킨다거나 내란 등을 야기시켜 국가의 안보는 물론 세계평화까지 위협하는 존재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이다.그 이유로 저자는 심지어 자유민주주의가 정착된 국가에서도 이민자들이 그들을 받아준 국가에 대한 정치적 충성이나,문화,언어에 있어 동질화되어야 한다는 과거의 가정들이 더이상 통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오늘날은 더욱이 옛 이주민에 난민,망명자 등이 가세돼 새로운 국가의 환경을 따르기 보다는 주로 홈 국가의 환경에 지배되어 활동함으로써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것이다. 코언 박사는 먼저 제1장에서 디아스포라의 고전적 개념을 유대인의 유민사적 전통을 통해 설명했다.기원전 8세기 앗시리아의 침공으로 인한 이스라엘왕국의 멸망,바빌로니아에 의한 유대왕국의 멸망 등에서 비롯됐으며 어느 지역에서든 강인한 유대인의 자생력은 반유대의 풍조를 생성케 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2장은 ‘희생자’디아스포라로 노예무역으로 엄청난 희생을 입은 서부 및 동부 아프리카인과 19세기말과 20세기초 터키인에 의해 대학살당한 아르메니아인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3장에서는 ‘노동력’과 ‘제국주의’ 디아스포라를 설명한다.19세기말 세계적으로 1백40만에 달하던 계약노동자는 대부분 인도인으로 이들은 인도양과 카리브해로 이주해 정착하게 됐으며 오늘날 각 국가마다 상당히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또 제국주의 디아스포라는 영국 등의 식민정책과 중상주의에 따라 자국민의 이동이 발생한 것을 말한다. 4장에서는 ‘무역’디아스포라로 무역을 위해 각국으로 퍼져나간 것을 말하며 주로 중국인 상인들의 동남아 진출과 레바논인들의 아랍,남미 등의 진출을 예로 들었다.5장은‘홈랜드’디아스포라로 홈랜드의 상실로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인도 시크인과 유대인의 해외 확산을 설명했다.또 6장에서는 ‘문화’이디아스포라로 영국,프랑스,네델란드 등 식민종주국들의 문화적 동경에서 떠난 카리브해 도서국가 사람들을 지적했다. 7장에서는 세계화와 디아스포라의 관계를 설명하고 국제경제의 발달로 세계의 국경이 허물어지면서 디아스포라 현상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그러나 8장 결론부분에서는 이같은 디아스포라 현상의 증가가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부정적 견해와 평등한 세계사회의 건설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견해 두가지를 새로운 문제제기로 제시했다. 원제 Global Diasporas.워싱턴대 출판부.240쪽.19·95달러.
  • 예술과 경제의 상관관계는?/김문환 교수 ‘문화경제론’ 펴내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원장으로 재직중인 김문환 교수(서울대 미학과)가 예술과 경제의 상호관계를 본격적으로 고찰한 연구서 ‘문화경제론’(서울대출판부)을 내놓았다. 국제경쟁력 강화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현실에서 문화와 경제의 연대가 시대적 요청임을 밝히고 있는 이 책은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한 문화경제학의 문제들을 깊이있게 다루고 있어 주목된다.문화경제학이라는 말이 학술용어로 정착된 것은 1960년대 이후부터.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이미 영국에서는 예술이 경제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됐다.이 책에서는 문화경제학의 역사적인 전개과정을 중요개념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한편,일종의 전사로서 존 러스킨·윌리엄 모리스·존 케인즈 등의 사상을 문화경제학의 관점에서 조명한다. 지은이는 문화상품을 “문화산업에 의해 생산된 산물”로 규정한다.문화산업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반성능력을 둔화시킨다는 이유로 1940년대 비판이론을 대표하는 호르크하이머나 아도르노에 의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여겨졌지만 오늘에 와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게그의 설명.또 문화상품의 범위에 대해서는 유네스코가 대체로 동의하는 10개의 범주를 관심대상으로 삼을만하다고 말한다.도서·신문 잡지·음반·라디오·텔레비전·영화·새로운 시청각 제품과 서비스·사진·미술작품 복제·광고 등이 그것이다.지은이는 끝으로 우리가 흔히 쓰는 ‘문화의 경제적 효과’라는 말은 보다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그것은 종종 문화에 대한 공공지출을 경제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잘못 사용되곤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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