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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눈] 마카오 되찾은 中國의 행보

    마카오가 442년 만에 중국의 품으로 돌아가던 19일 마카오 전역에는 하루종일 쌀쌀한 강풍이 몰아쳤다.하지만 주권반환식장은 열기로 가득찼다. 포르투갈 국기가 내려지고 중국의 오성홍기가 게양되자 식장 내외,인근 프레스센터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중국 대표단의표정에는 19세기 서구 열강에 빼앗겼던 영토를 모두 되찾았다는 감격과 자부심이 어린듯했다. 마카오는 인구 43만명, 넓이는 서울시 마포구 정도다. 수출·입 합쳐 연간 40억달러 정도로 중국 연안 공업도시에 비하면 보잘 것없다. 하지만 중국지도부에게 마카오는 마카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마카오의반환은 바로 타이완에 대한 경고와 시위의 메시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장쩌민(江澤民)주석은 덩샤오핑(鄧小平)이 주창한 1국2체제가 홍콩과 마카오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만큼 남은 ‘국가통일’의 중대임무 수행에도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남은 임무란 바로 타이완의 통일을 가리킨다. “달 밝은 밤에 거울같은 바닷가”로 시작하는 장주석의 연설은 50년후까지 내다보는 중국의 미래 청사진과 같았다. 마카오가 50년간 1국 2체제하에 고도 자치를 누리고 있는 만큼 투자에 관심있는 국가는 얼마든지 오라고 외치는 것이다.동시에 중국은 타이완을 이 방식에 따라 반드시 통일한다는 ‘의지’와 외세개입을 단호히 거절하는 굳건함을 과시했다. 타이완에는 통일하겠다는 메시지와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도 했다.그러나 장주석은 442년 만에 땅을 되찾으면서도 ‘과거사 청산’ 등을 한마디도 거론하지 않았다. 흔히 중국인들의 특징을 말하는 ‘만만디’는 경제에 관한 한 찾아볼 수 없다.정책수립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만만디의 일면이 보이지만 ‘실행’은전광석화 같다. 이제 중국은 미래를 보고 나아간다.타이완은 어차피 통일될 테니 걱정하지않는다는 태도다.50년쯤 여유를 주겠다고 말한다.그 다음은 어디일까.30억아시아 시장,나아가 전세계 시장을 중국상품으로 평정하겠다는 꿈은 당연히가지고 있을 것같다. [마카오에서 박희준 국제팀기자]
  • 산타클로스의 유래

    크리스마스 이브에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가져다 준다는 산타클로스.그산타클로스는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우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산타클로스라는 말은 서기 270년 소아시아 지방 리키아의 파타라시 출신 세인트(聖) 니콜라스에서 비롯됐다.자선심이 많았던 성 니콜라스 대주교(大主敎)는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풀었는데그의 자선행위에서 지금의 산타클로스 이야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가톨릭에서 성인으로 숭배하는 그의 라틴어 이름은 상투스 니콜라우스.아메리카 신대륙에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은 그를 ‘산테 클라스’로 불렀는데 이 발음이 그대로 미국어화했고 19세기 크리스마스가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착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건네주는 할아버지상이 형성됐다. 이와 달리 터키 지중해 연안 미라에 살던 세인트 니콜라스의 선행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세인트 니콜라스는 노예로 팔리게 된 한 소녀를 구한 선행으로 아이들의 수호성도로 불리게 됐고 그를 기념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관습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북유럽엔 두마리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탄채 굴뚝 속으로 들어오는 전설이 있고 미국에선 선물을 갖고오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요즘의 산타클로스는 이 두가지 전설이 합해진 것이다.산타의 모습도 늙은 난쟁이,동굴에 사는 거인 등 나라마다 달랐으나 지금처럼 빨간 코트와 긴장화에 흰 수염,발그스레한 볼을 한 모습은 1931년 미국의 일러스트레이터 해돈 선드블롬이 코카콜라 광고를 위해 그린 그림에서 탄생한 것이다. 김성호기자
  • [대한광장] 천년기 전환의 의미

    올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연말이 되면 언제나 그러했듯이 이번 세밑에도 마음이 부산하긴 마찬가지지만,올해를 보내는 심정은 더욱 착잡하다.1999라는 수가 주는 묘한 긴박감과 ‘밀레니엄’의 특수를 보려는 장삿속의 들뜬 분위기를 넘어서 2000년으로의 전환이 갖는 의미를 새겨보는 것도 세모를보내는 하나의 방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999년에는 십진법의 세 차원이 중첩되어 있다.그것은 1990년대 10년의 마지막 해이며,20세기의 끝이자 아울러 2천년기의 1,000년을 마감한다.바꿔 말하면,2000년은 새로운 천년기와 21세기의 시작이자 2000년대 10년의 첫 출발점이다.1,000년은 고사하고 100년이란 시간단위도 한 개인의 차원을 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세 가지 시간지속은 역사에 깊숙이 작용하여 우리의 삶을규정하고 우리의 선택을 제약한다.세 시간대의 교착이 마치 구조처럼 우리를압박하는 것이다. 지난 천년 동안에 일어나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무엇일까?사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그 안에 들어있다.왜냐하면‘세기’나 ‘천년기’ 운운하는 것이 이미 유럽의 시간관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말하며,이는 유럽이 세계적인 차원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결과이기 때문이다.15세기 이전에만 해도 지중해 세계의 한 변방에 불과하던 유럽이 놀랍게도 3세기에 불과한 짧은 기간에 여러 문명을 능가하고 끝내 19세기에 들어서는 그것들을 복속시키는,역사상 최초로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를 구축한 것이야말로 최대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이 유럽의 열강에 의해 주도되었던 까닭에 19세기 후반 이후의 우리의 역사는 고난과 모색의 역사일 수밖에 없었다.중국과 같이 고도의 문명과엄청난 생산력을 지녔던 거대 제국도 국민국가를 기본단위로 하는 유럽적 세계질서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유럽의,그것도 ‘아류’의 손아귀에 떨어진 우리의 운명이야 오죽했으랴.분단의 현실 밑바닥에는 역사의 주체가 되지 못했던 우리의 어두운 과거가 놓여있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회복한 것이 20세기 중엽의 일이었으니,우리는 ‘세계’의 20세기를 압축적이고 훨씬 가혹하게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혁명,전쟁,민족해방,공산주의,냉전,파시즘,군사독재,미국의 패권,신좌파,산업화,도시화,문맹의 퇴치,농민의 소멸,계급형성,민주화,시민운동,노동운동,우주시대,대중소비사회,여성해방,정보통신혁명과 가상공간,자연파괴,유전자복제,전위예술의 소멸과 포스트모더니즘 등 20세기의 모든 것을 두 세대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견뎌내야 했다. 전근대,근대,탈근대가 한반도라는 좁은 공간에서 한꺼번에 몸부림을 치고비동시적인 것들이 동시에 아우성을 질러대는 질주의 시대였다.과거를 청산하기도 전에 미래가 현재가 되고 전통과 화해를 이룩하기도 전에 현재는 과거가 되었다.이 엄청난 역사의 중량을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망각한 채 빨아들였던 우리는 분명 평범한 존재들은 아니었다.‘빨리빨리’라는‘조국건설의 국시’ 이면에는 한문과 일어와 영어에 적응하느라 간과 쓸개를 버려야 했던 무수한 ‘꺼삐딴 리’가 존재했던 것이다. 지난 10년은 여러 가지 점에서 21세기의 서막을 이룬다.역사가들은 흔히 ‘동구혁명’과 소련의 해체로 ‘짧은 20세기’를 끝났다고 본다.이 10년은 ‘세기말’에 걸맞은 징후를 드러냈다.많은 이들이 ‘역사의 종말’ ‘자연의종말’ ‘과학의 종말’ ‘이데올로기의 종언’ ‘국민국가의 소멸’ ‘노동의 종말’ ‘자본의 한계’ 등을 선언했지만,누구도 다가올 시대가 무엇이될는지 선뜻 제시하지 못한다.미래가 예측 불가능하기보다는 전망이 부재한데서 빚어진 결과다. 진보의 허구,혁명의 신화,거대담론의 해체,‘제3의 길’의 부재 속에서 자본주의는 이제 최후의 승자가 된 듯하다.그것은 이제 소비에트 공산주의,사회민주주의,민족해방운동의 견제가 사라지면서 ‘원초적 본능’을 유감없이발휘하고 있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가입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로 전락한 우리는 그것으로부터의 탈출을 외치지만 그 끝이 무엇인지 알지못한다.뜨겁게 달아오른 주식시장의 뒤에는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돈 이외에는 아무런 확실성을 느끼지 못하는 세기말의 군상이 몰려있다. 이렇듯 밀레니엄이 바뀌고 21세기가 다가오건만,서양의 2천년기,미국의 20세기,방향상실의 세기말이 우리의 1999년에 드리운 그림자는 길고 짙기만 하다.다가올 새 시대가 설마 우리의 20세기만큼이나 모질고 험악할까마는,우리는 세기의 교차로에서 기약없는 ‘새 밀레니엄’의 환상에 빠지지 않도록 역사의식을 곧추세워야 할 것이다. 崔甲壽 서울대교수 서양사
  • [21세기 여성시대] (10)문화계

    20세기 과학문명의 놀라운 발전과 함께 인간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풍요롭게 이끌어온 힘은 바로 문화의 힘이다. 이같은 문화계에서 여성 위상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여타 분야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20세기들어 권리가 크게 신장된 데 힘입어 여성 특유의 섬세한 필치,뛰어난 감수성 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장(場)이 제공된 덕분이다.이들 20세기 문화계 여성들의 회고를 통해 21세기 여성시대를 진단한다. 20세기들어 세계 문단에서 여성의 위상을 확인시킨 이는 미국의 버지니아울프(1882∼1941).그녀는 ‘세월’을 통해 시간의 느낌과 역사적 시간에 대한 등장인물의 자각 현상을 전달하려는 시도와 함께 소설 형식에 파격미를더했다.영국 출신 아가사 크리스티(1891∼1976)는 노처녀 미스 마플을 통해사건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며 짜릿한 전율감을 느끼게 하면서 추리소설 부문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어린 소녀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안네의 일기를 통해 독일 나치치하의 강제수용소 참상을 고발한 안네 프랑크(1929∼45),특권층인 백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면서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를전 세계에 고발한 나딘 고디머(76) 등도 20세기 문단을 뒤흔드는 기폭제가됐다. 은막에서도 마찬가지.안개 자욱한 런던의 워털루 다리를 무대로 펼쳐지는‘애수’의 비비안 리(1913∼67)는 타라 농장에 우뚝 선 열정의 화신 ‘스칼렛 오하라’로 생생히 기억되고 있다.오드리 헵번(1929∼93)은 ‘로마의 휴일’에서 세기의 스타로 떠오르며 가냘프고 우아한 귀족스러운 자태로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현대판 신데렐라인 그레이스 켈리(1929∼82)는 무명 배우에서 ‘하이 눈’,‘다이알 M을 돌려라’,‘갈채’ 등에서 열연함으로써 월드스타로 발돋움한뒤 모나코 왕비가 돼 영화같은 인생을 살았다.잉그리드 버그만(1915∼82)은헤밍웨이 원작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로 스타덤에 올라 ‘카사블랑카’,‘가스등’ 등을 통해 팬들의 영원한 연인이 됐다. 20세기 최고의 섹스심벌 마릴린 먼로(1926∼62)는 숱한 스캔들을 뿌렸지만‘7년만의 외출’ 등을 통해 스캔들보다는 연기와 춤,노래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음을 보여줬다.수정처럼 맑은 목소리와 매끈한 미모로 우리들에게 널리알려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스타 줄리 앤드류스(64), ‘남편을 8번이나 갈아치운’ 20세기 최고의 미인 엘리자베스 테일러(66),‘원초적 본능’에서 얼음 송곳으로 남자의 심장을 찌르며 전세계 남성팬들을 열광시켰던섹시한 악녀 샤론 스톤 (42) 등도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대중음악계 역시 쥐락펴락하고 있다.재즈계의 전설로 불리는 빌리 홀리데이(1915∼90)는 선천적으로 작은 목소리를 특유의 감성적인 집중력을 불어넣어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독특한 발성,드라마틱한 창법,날카로운 집중력으로 당시 가장 인기 있고 사랑받은 재즈 보컬리스트였다. 빌리 홀리데이 이후 한동안 침체상태에 빠지기도 했으나 90년대에 들어서며여성 팝가수들이 세계 팝계를 이끌고 있다. ‘미국 팝계의 히로인’ 머라이어 캐리(28),‘팝무대의 퍼스트레이디’ 휘트니 휴스턴(35),‘검은 진주’로불리는 마이클 잭슨의 동생 재닛 잭슨(32) 3인방이 바로 그들. 비디오시대를맞아 가창력 뿐 아니라 탁월한 비디오적 외모를 갖춰 팬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90년대 후반에는 특유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선보이고 있는 캐나다 출신의셀린 디옹(31)이 급부상했다.세기말 팝계의 최고 여왕은 단연 로린 힐(24)이다.디바붐과 힙합을 앞세워 지난해 첫 솔로 앨범 ‘미스 에듀케이션 오브 로린 힐’을 발표한 이후 롤링스톤 뮤직상 등 상이란 상은 거의 다 휩쓸고 있다.‘섹스의 여왕’‘섹스 심벌’‘섹스의 여신’으로 불리며 LP음반·영화·광고모델 등을 통해 무려 1,500억원 이상을 벌어들여 연예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꼽히는 가수겸 배우 마돈나(41) 등을 제외하고는 팝계를 논할수 없다. 김규환기자 khkim@ *20세기 여성지위 변화는 '혁명적' 서양 중세신학자들은 “여성은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폈다. 그런가 하면 15세기 교회는 성모 마리아가 귀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임신을 했으므로, 여성은 공적 장소에서 귀를 가려야 한다는 포고를내렸다. 물론 그 비슷한 시기에 노르망의 여성들은 윌리엄 정복왕에게 군에 끌려간남편들을 가정으로 되돌려보내 아내들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달라는 건의를올리기도 했지만 18세기 이전까지 여성은 남성의 ‘종속물‘이었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지난 5월 16일자에 ‘밀레니엄 여성’이란 제목의 전권 특집에서 과거 여성의 위치를 이렇게 정의했다.그러면서도 지난 1000년간여성의 사회적 지위변화는 ‘지난 1000년 역사상 가장 심오한 혁명’으로 꼽았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본격적인 여성혁명은 19세기 이후에야 이뤄어지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대부분의 학자들도 산업혁명이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여성의 역할을 어머니에서 사회적 인물로 확대하는 계기가됐다고 보고 있다.그러나 정치.경제.사회 등 전분야에 여성들이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후반의 일이다.1960년대 들어서서야 고급전문직에 대한 여성진출이 크게 늘어난 대목에서도 잘 확인된다. 최근 미국을 보면 대학졸업생의 60%가 여성들이 차지하기에 이르렀다.또 여성들이 기업의 3분의 1을 소유하고 있으며 맞벌이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보다더 많은 수입을 올리는 경우도 전체의 거의 4분의 1이나 된다. 21세기가 여성의 시대라는 의미는 이같은 현실 참여의 수적 증가나 역사의유추를 통한 평면적인 전망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시대적 필요와 요청이라는 지적이다. 서로 무기를 갖고 한 공간에서 전쟁을 하던 시대에는 남성이 유리했지만 첨단 지식과 정보에 기반하여 새로운 형태의 전쟁을 하는 시대에는 양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걸프전 당시 여성 병사가 미사일을 조정했던 사실이나 요즘 사회적으로 두드러진 남성의 여성화 경향도 같은 맥락이며,이와 관련해 가족제도에도 상당한 변화가 에측되고 있다. 물론 걸림돌은 있다.아직도 세계 많은 여성들이 가족이 선택한 남자와 결혼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또는 음란한 행동을 한 의심이 간다는 이유만으로남자 친척들에게 살해당하고 있다. 동유럽 여성들의 지위는 공산주의의 붕괴이후 오히려 더 낮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부 학자들은 미국에서도 여성들이 아직 완벽한 평등을 누리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밀레니엄 북’의 공저자 게일 콜린스는 여성들이 남성들과 똑같이 기업체의 관리자가 될 기회를 누리는 것은 2270년경에야 가능할 것이며 의회에서남녀 의원의 비율이 같아지는 것은 2500년이나 되어야 이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때가 오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것 같다는 전망이다.여성들은 우선 무력 사용을 싫어하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호의적이기 때문이다. 김병헌기자 bh123@
  • [외언내언] 장군의 조건

    세계 2차대전 당시 ‘사막의 여우’로 불린 독일의 로멜장군을 격파한 몽고메리원수는 그의 자서전 ‘전쟁의 역사’에서 “지휘자는 적장의 근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또 그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며 그의 막사 안에 항상 로멜의 최근 사진을 걸어 두었다고 했다.몽고메리나 로멜이나 두 사람 모두 모범적인 장군들로 평소 체력관리에 남다른 정성을 쏟은 것으로 전해진다. 로멜은 사막이라는 악조건하에서 전투 후 부관들이 아무리 권해도 야식을입에 대지 않았으며 대전 말기 연합군에게 쫓기면서도 체력 관리에 조금도소홀함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군이 되려면 지덕체(智德體)를 골고루 갖추는 것이 기본조건이며 현대에이르러서는 배 나온 장군은 군복을 벗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군기가가장 엄하기로 유명한 미국 해군은 19세기 중반부터 해군 장병들이 지켜야할 군기(軍紀)로‘청결’과 ‘품위’,그리고 ‘날렵한 몸매’를 규정해 그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특히 함상근무자의 정확한 취침시간 준수와 과식금지를 엄격히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어기면 징벌이 가해지는 것도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몸집이 크고 뚱뚱한 군인을 힘의 상징으로 여기던 시절도 있었다.고대 로마의 군인이자 정치가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런 군인들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굶주림과 고통에 견딜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어,비만하고기골이 장대한 사람이 아니면 군인으로 뽑지 않았다고 한다.오늘날엔 어느나라고 뚱뚱하고 배가 나오면 행동이 둔해 환영받지 못한다.따라서 어느 나라든 군인들에 대한 정기적인 비만도 측정을 하고 있으며 비만의 주요 원인이 과식과 운동부족이라는 관점에서 군인들의 적정한 1일 운동량과 칼로리량을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군 체력검정 제도를 내년부터 장성까지 확대해 합격기준에 미달하면 별을 달수 없게 됐다.이제 뚱뚱한 장교나 배 나온 장교는 장군이 될 수 없게 된 것이다.군에서처럼 계급이 엄격한 조직에서 장군은 지덕체를 골고루 갖춘 최고의 지휘관으로 모든 장교들이 동경하는 최상의 목표이다.하지만 앞으로는 뚱뚱한 장교는 심사의 문턱에도 들어갈 수 없게 됐다. 장군의 대열에 오르려면 보통 50대가 되며 이 연령층은 체력이 한창 줄어드는 때다.국방부가 마련한 50대 연령층의 종목별 합격기준치는 윗몸일으키기22회,팔굽혀펴기 14회,1.5㎞달리기 8분40초이다.미군의 기준치에 버금가는수준이다.현대전이 과거의 전투와 다르지만 지휘관이 날렵해야 그 군대도 날렵하다는 것은 과거와 다름없다.장군들에 대한 체력검정 실시로 막강한 국군이 되기를 기대한다. 李基伯 논설위원 kbl@
  • 한영우 서울대교수 등 3인 ‘우리 옛지도와‘ 공저

    역사가 문화를 시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면 지리와 지도는 그 문화를 공간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특히 지도는 지형과 유형문화재를 총체적으로,그리고 회화기법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시각 자료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 이런 의미에서 선조들의 지리관과 우주관,나아가 위정자의 통치철학이 깃들어 있는 옛지도를 접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서울대 규장각 관장을 역임한한영우 서울대교수 등 3명의 지도 전문가가 쓴 ‘우리 옛지도와 그 아름다움’(효형출판)은 우리의 옛지도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한영우 교수는 서울대 규장각 등에 소장된 옛지도의 자료를 통해 삼국시대에서부터 19세기 ‘대동여지도’와 대원군 때의 지도에 이르기까지 옛지도의 발달과정을 거시적으로 개관한다.지도의 변천과정과 역사적 배경을 다루면서 이에 투영된 선인들의 세계관과 사회적 동인(動因)을 알려준다. 특히 책은 올 상반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정상기의 ‘동국대전도(東國大全圖·일명 조선전도)를 자세하게 다룬다.‘한국본여지도’편에서는 국보급 고도서(古圖書)인 ‘한국여지도’의 제작 경위와 지도의 특징 등을 설명한다. 서울대 안휘준 교수는 옛지도에서 나타난 회화적 특성에 주목한다.지도 제작에 참여한 화원(畵員)들의 시각과 기법을 소개하고,이것이 한국 회화사의흐름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가를 고찰하고 있다. 그는 도면식 지도에 그려진 바다의 수파묘(水波描)는 18세기에 푸른색으로바뀌게 되고 색채의 화려함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밝힌다. 또 회화식 지도의 회화는 산수화의 시대적 변천과 맥을 같이 하며,조선중기의 절파계 화풍 및 조선후기의 진경산수화풍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청운대 배우성교수는 옛지도에서 엿볼 수 있는 조상들의 국토와 세계에 대한 인식을 검토한다.독특한 세계지도인 천하도(天下圖)의 실체를 밝히면서이는 중화(中華)중심의 세계관을 반영한다고 설명한다. 한 교수는 “옛지도는 도형으로 된 현대 지도에서는 전혀 맛볼 수 없는 색다른 묘미가 곳곳에서 스며 있다”면서 “우리 옛지도는 특히 다른 나라의것에 비해 예술적일뿐 아니라 제작기술의 우수성 또한 입증되고 있다”고 말했다.값 2만원. 한편 효형출판사는 규장각과 함께 옛지도를 소재로 한 2000년도 달력 ‘우리 옛지도의 아름다움’도 발행했다. 정기홍기자 hong@
  • [마카오 20일 반환] 의미·전망

    오는 20일 0시를 기해 마카오(澳門·아오먼)의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된다.지난 1557년 포르투갈 상인이 청나라에서 마카오를 조차한 이후 442년만이다. 중국은 지난 97년 7월 영국으로부터 홍콩의 주권을 반환받은 이후 서구 열강에 빼앗긴 마지막 영토 마카오를 돌려받음으로써 통일의 기반을 닦는 동시에 새 세기에 진입하는 역사적인 거보를 내딛게 됐다.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확히 12월 19일 자정 직전 개최될반환식에서 포르투갈령 마카오의 마지막 총독 바스코 비에이라(59)는 마카오 특별행정구(MSAR)초대 행정장관 당선자 에드먼드 호에게 주권을 넘기게 된다.이 순간 홍콩과 마찬가지로 마카오는 향후 50년간 1국가 2체제(一國兩制)와 고도자치라는 새로운 실험에 들어간다. 중국에 있어 마카오 특별행정구(MSAR)의 탄생은 타이완의 흡수통일 문제,그리고 포르투갈이 회원국으로 있는 유럽연합(EU)과의 관계 개선 등 국제정치면에서,그리고 자국의 경제,사회,문화적인 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가장 커다란 의미는 19세기 서구 열강에유린당한 치욕적인 식민지 역사의청산.대만 영토를 통일하고 새 천년 세계 중심축에 나서려는 중국은 ‘새 천년 시작 10일 전 주권 회복’에 대해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다음은 경제.주장강(珠江)과 시장강(西江)사이의 삼각주에 위치,대표적 공업지역인 광둥(廣東)성을 서방세계와 연결하고 있는 마카오의 지리적위치는중국에 엄청난 경제적인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홍콩이 광둥성 물류·수송의 동쪽 거점이라면 마카오는 서쪽 거점이라고 할 수있다.특히 최근 광둥성 서부에 전자산업이 발달,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해결해야할 난제도 만만치 않다.마카오의 번영 자체가 카지노 사업을 기반으로 한 데다 트라이어드(三合派)등 이에 기생하는 조직 폭력배들의본거지가 마카오로 조직 범죄가 만연해있기 때문이다.마카오에서 외국기업의 안정된 경제활동과 체제를 보장할 수 있는 치안유지에 어느 정도 성공하느냐가 마카오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 87년 반환 협정 체결이후 포르투갈과 중국은 93년마카오 특별행정법기본법을 제정,연착륙과정을 거침으로써 정치적인 면에서는 어느정도 순항이 기대된다.그러나 행정경험이 전무한 초대 행정장관을 비롯,공무원 사회의전반적인 행정 능력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특별행정구의 공무원은 7개부처에 1만7,000여명.반환 후 행정공백을 우려,80년대 초반부터 공무원의 현지인화 작업을 추진해온 마카오 정부는 93년부터 본격적으로 공무원 교체작업에 나서 95%의 공무원을 현지인으로 교체했다.그러나 문제는 너무 젊은 층이 대거 행정직에 기용됐다는 점이다. 포르투갈인과 현지 마카오인 사이 각 분야에 걸쳐 교량역할을 해온 1만여혼혈 매카니즈에 대한 향후 처리 문제도 향후 남은 과제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반환 동시 中해방군 1,000명 현지 주둔 마카오 주권반환과 동시에 현지에 주둔할 중국 군대 조직은 중앙군사위 소속 해방군 부대 1,000여명. 사령관은 홍콩 주둔군 사령관에 비해 직급이 한 단계 낮은 류아오쥔(劉奧軍) 소장(한국의 준장격)으로 지난달 하순 100여명의 선발대가 이미 마카오에진입했다. 주둔군 구성의 주축은 육군.일부 해·공군 병력이 보강된 형태다.장갑차,89식(式) 5.8㎜ 기관총 등 경무기(육군)와 헬기 1∼2대 (공군),고속 순찰정1척(해군) 등을 갖추게 된다. *마카오 특구 초대 행정장관 에드먼드 호마카오의 중국 주권 귀속과 함께 마카오 특별행정구를 이끌어 갈 초대 행정장관 에드먼드 호(44)는 홍콩의 둥젠화(董健華)초대 행정장관과 마찬가지로중국 정부의 각별한 신임을 얻고 있는 대표적인 친 중국파. 홍콩의 둥젠화장관이 97년 중국 중앙 정부로부터 홍콩이 그동안 누려온 정치적 자유 등 민주제도를 유지시키는 이념적인 ‘부담’에서 출발했다면 호장관은 마카오의 ‘치안개선및 경제활성화’라는 경제적인 부담을 안고 집무를 시작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지난 5월15일 ‘199인 선거위원회’투표에서 마카오 은행감사인 스탠리 아우(區宗傑·58)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당선된 그는 취임사에서도 조직폭력배 천국인 마카오의 범죄를 퇴치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문제는국가재정의 60%를 담당하면서 마카오 주민 42만명 가운데 10만여명을 먹여살리고 있는 카지노 산업과 그에 연계된 폭력마피아단을 어떻게 휘두르는지의여부다. 호장관은 마카오의 대표적인 명문가 출신으로 성공한 은행가.이점에서 마카오 주민들의 신임속에 직무를 수행한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특히 그의 아버지 호 인(何賢)은 중·일 전쟁중 마카오내 몇안되는 전설적인 항일유격 영웅이었다.타이펑(大豊)은행 그룹을 이끌면서 지난 83년 사망할때까지 30여년간마카오 지도층으로 활동했다. 중국 정부의 호 집안에 대한 신임도 대단해 지난 84년 다이풍 은행이 경영위기를 맞았을때 차이나 뱅크의 자금으로 위기를 넘기게 도와줬을 정도다. 호 장관 역시 중국 중앙정부에 대해 절대적인 충성파다.지난 9월30일 중국공산혁명 50주년 기념에 맞춰 밝힌 메시지에서 “마카오 주민들의 보금자리는 모국(중국)의 안전한 보호로만 지켜질 수 있으며 모국의 마카오 주권 회복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우리의 땅에서 사는 의미를 되찾은 것이다”고 말했다. 캐나다에서 요크대를 졸업한 그는 회계사로,자동차·시멘트 회사의 사장·회장으로 일했다.또 정치활동도 활발히 해 중국 국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인‘전인대(全人大)상무위원’을 연임중이며 정치협상회의(政協)위원,마카오특구 주비위 부주임등도 역임했다. 마카오에서는 입법회(의회)부의장을 11년째,마카오 은행협회장도 14년째 맡고 있다.그의 이같은 활동에도 불구,실제 행정수행 경험이 전혀 없다는 점이마카오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김수정기자] *새천년에도 세계 식민지 60여곳 마카오의 중국 반환으로 아시아의 식민지 역사는 끝이 난다.하지만 새천년에도 종주국의 지배를 받는 속령들이 60곳이나 존재한다.미국 영국 프랑스등 과거 제국주의 국가 8개국이 18∼20세기 초에 걸친 확장정책의 과실들을속령이나 자치령의 형태로 유지,직·간접적인 통치를 하고 있다. 가장 많은 식민지를 갖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다.남미 기아나와 남태평양의폴리네시아·뉴칼레도니아 등 16곳이다.영국은 대서양의 버뮤다·케이만 군도,영국 해협의 챠넬 아일랜드 등 15곳이다.미국은 카리브해의 버진 군도,태평양의 괌·사모아·북마리아나,카리브해의 푸에르토리코 등 14곳,덴마크는그린란드 등 2곳,노르웨이는 3곳,네덜란드는 카리브해의 안틸레스 등 2곳을갖고 있다.호주와 뉴질랜드도 각각 6곳과 3곳에서 식민통치를 하고 있다. 유엔은 산하에 ‘탈식민지 이행 특별위원회’를 두고 새천년이 되기전에 현존 식민지들을 모두 해방시키기 위한 방안을 찾았지만 식민지 주민의 반대와 강대국들의 무관심으로 공허한 목소리만 내고 말았다.많은 나라들이 모험을 건 ‘독립’보다는 선진국의 그늘에서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는 ‘잔류’를희망하고 있다.종주국들도 국방·외교 등 일부 권한을 제외하고는 광범한 자치를 인정하고 있다.
  • [데스크시각] IMF체제 2년과 뉴라운드

    지난 94년 말,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타결이 임박하자 정부는 쌀 개방을막기 위해 경제기획원과 재무 농림 등 5개 부처 차관보로 대표단을 황급히구성,제네바 현지로 보냈다.이어 농림수산부장관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도 현지로 날아갔다. 그러나 쌀 개방은 우리로서는 저지하기 어려운 대세였다.농민단체 대표들도현지에서 극렬 시위를 통해 쌀개방을 반대했지만 대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쌀 개방이 확정된 뒤 “절대로 쌀개방만은 막겠다”고 선거에서 공약했던 김영삼(金泳三) 당시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뉴라운드 협상이 시작된 미국 시애틀에서는 막바지 UR협상 때를 방불케 하는 극렬시위가 잇따르고 있다.각국의 농민과 학생은 물론 환경보호론자,노조,여권신장론자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모인 것은UR때와 비슷하다. 다른 것은 UR가 막바지에 시끄러웠던 반면 시애틀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담은 초기부터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이해당사국 관계자들의 집중적인 저항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3일,우리는 나라를 온통 충격과 좌절로 몰아넣었던 국제통화기금(IMF)체제2주년을 맞았다.꼭 2년 전인 97년12월3일.당시 임창렬(林昌烈)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미셸 캉드쉬 IMF총재와 만나 우리나라가 IMF로부터 긴급 자금지원을 받는 협상안에 최종 서명을 했다. 그때 어떤 우리 언론들은 “대한민국이 경제적 신탁통치에 들어갔다”면서이날을 ‘경제국치일’로 규정하는 등 흥분했던 일들이 생생하다.그로부터 2년,우리는 의외로 차분하게 이날을 맞고 있다.각종 경제지표들이 외환위기를완전히 극복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고, 도심지 유흥가가 IMF사태 전만큼 흥청거리는 것을 보면 IMF를 떠올리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뉴라운드와 IMF체제-. 이는 비록 다른 사안이지만 내용을 따져보면 동전의앞뒷면이나 같은 성격이다. 세계경제의 글로벌화,개방화 추세는 여전하며,국가경제를 뒷받침하는 요소로서 금융의 중요성은 대단하다. 세기말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지나온 100년을 되돌아보고 다가오는 새 100년을 내다보게 된다.기록을 보면 이런 노력들은 19세기 말에도 있었고,18세기나 17세기,또 그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있었다.우리나라도 100년 전인 19세기 말 조선왕조 때,국민적 에너지를 결집하지 못해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고만 뼈아픈 좌절이 있었고 다시는 이런 실책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국민적 각오를 다지고 있다. 새 천년이 한달도 채 남지 않은 1999년 12월, 우리 국민들은 희망찬 21세기를 염원하고 있지만 우리 경제에는 아직 어둡고 비관적인 변수들이 적지않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거시지표가 나타내는 IMF체제에 대한 좋은 평가와는달리 아직까지도 외채문제와 금융불안,빈부격차의 확대, 고용구조의 불안,외국기업의 국내잠식 등 언제라도 우리 경제를 좌초시킬 수 있는 함정들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IMF사태는 실제로 20세기 우리 경제사에서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해도 틀리지 않는다.5년전 UR의 실패는 국제화·개방화가 대세였던 세계경제의 흐름을잘 읽지 못한 탓이었다. 지금 시애틀에서의 뉴라운드 협상은 막 새로운 세계경제 질서를 구축하려는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IMF체제를 거울 삼아 2000년대 새 경제조류를 정확히 읽고 대비하는 자세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우리나라가 100년 전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기에는 힘에서 밀렸지만 21세기에는 꼭 국력결집을 통해 세계 일류국가로 발돋움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鄭鍾錫 경제과학팀장 elton@]
  • [21세기 여성시대] (9)법조인

    미국 스탠퍼드 법대 ‘미 여성 법조사(史)프로젝트팀’이 최근 내놓은 연표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한 1993년에 특별히 많은 란을 할애하고 있다. 일류 변호사 출신인 힐러리 클린턴 여사의 백악관 입성,재닛 르노의 미 최초 여성 법무장관 입각,여성 및 소수민족 권리향상에 진력해온 미 법조계의진보주의 여판사 루스 긴스버거의 대법관 임명 등등….지난 1870년 미 최초의 여성 판사가 탄생한지 120여년 만에 여성 법조인들의 고위직 진출이 러시를 이루는 현상에 대해 미 사회가 부여하는 의미는 남달랐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후반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호주,영국,캐나다에서 활동한 여성법조인들의 전기에는 변호사·판사 등 법조계내 직종과 함께 여성참정권자,인권운동가 라는 명함이 함께 따라 붙는다.20세기 중반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의 여성법조인들도 마찬가지다. 미 일리노이주의 경우 1873∼1901년 사이 100여명의 여성 법조인이 활동했다.이들의 노력으로 청소년 법정이 생겨났고 여성의 권리와 직조공장에서의여성및 아동 노동의 권리가최초로 주창되기도 했다. 이들의 활동은 국경을 넘어선다.특히 선진국과 개도국간 여성법조인들의 교류로 아프리카 등 개도국의 여성권리및 인권을 신장시키는 역할을 주도하고있다.선진국 개발도상국 후진국을 망라,56개국 3500여명 회원으로 구성된 국제여성 판사협회(IAWJ)와 국제여성법조인 연맹(FIDA)등이 대표적이다.그리고 여성의 권리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이슬람권 여성들의 인권향상을 목적으로설립된 카마라흐(KAMARAH·이슬람 여성 법조인 협회)도 유명하다. 우리시대 법조경력과 사회활동을 자신의 삶으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사람은세계 여성운동계의 ‘대모’ 벨라 압죽(98년 사망·미국)여사.변호사 출신으로 하원의원을 거쳐 세계 여성환경개발기구(WEDO)회장으로 일했다.여성운동사의 굵직한 매듭을 맺어온 인물이다. 90년대 들어 두드러진 특징은 국제정치 무대에서 벌어지는 반인륜적 범죄척결에 여성 법조인들이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국제 유고 전범재판소(ICTY)의 전현직 수석검사가 모두 여성이다.르완다 전범 기소와 유고문제를 병행한캐나다 출신의 루이스 아버(52),지난해 그 후임으로 수석검사에 오른 스위스의 칼라 델 폰테(52)등이다.이들은 수십명의 남성 검사들을 거느리며 거침없는 수사로 명성을 높이고 있다.재판소 부소장인 플로렌스 뭄바(51)도 잠비아 여성법조계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과 몇몇 개도국 여성 법조인들의 고위직 진출도 특징적이다.지난달 4일 캐나다는 캐나다 사상 처음으로 베벌리 맥래클린(56)을대법원장에 임명했다.유고전범 재판소의 루이스 아버 전 수석 검사는 대법관으로 활동중이다. 최근 중국과의 세계 무역기구(WTO)협상을 타결시킨 주역인 미 무역통상대표부(USTR)의 샬린 바셰프스키 대표도 변호사 출신이다.워싱턴 카톨릭 법대를졸업,스탭포&존슨 로 펌에서 국제무역정책 관련 법으로 명성을 닦은 뒤 96년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발탁됐다. 지난 81년 레이건 대통령 시절 미 사법사상 최초로 여성 대법관에 임명된샌드라 오커너(69)도 미 여성법조사에 획을 긋는 인물이다.또 그녀의 출신주인 아리조나주에선 제닛 나폴리타노가 올해초검찰총장에 선출돼 제인 헐 주지사 등과 함께 여성파워를 주도하고 있다. 오커너에 이어 두번째 여성 대법관이 된 긴스버그는 내년 렌퀴스트 대법원장의 후임으로도 거론되고 있다.미국과 영국의 퍼스트 레이디가 법조인이라는 사실도 이채롭다.예일법대 출신인 힐러리는 클린턴이 아칸소 주지사로 재직하는 12년동안에도 변호사로 활동했다.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부인인 체리 부스(45)도 변호사다. 국제무대에서의 여성법조인들의 헌신 및 연대활동,고위직 진출은 21세기에도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한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유고 국제전범재판소 유고 국제전범재판소(ICTY)는 여성 율사(律士)들의 눈부신 활약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일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세계적 법조인으로 인정받는 이곳에서 여성들은 남성을 능가하는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며 ‘우먼파워’를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지난 8월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이 ICTY 소장(수석검사)으로 지명,15개 상임이사국의 만장일치로 임명이 결정된 스위스 출신의 율사 칼라 델 폰테(52). 85년 스위스 지방검사 시절,이탈리아 마피아단의 범죄를 파고들어 명성을날린 폰테는 94년 스위스 최초의 여성 연방검사로 발탁된 뒤 유럽 조직폭력범죄와 마약밀매,불법무기거래 등을 파헤치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최근엔 라울 살리나스 전 콜롬비아 대통령의 동생을 돈세탁혐의로 조사하고 러시아 조직범죄를 조사하는 등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거침없고 두려움을 모르는 성격 덕분에 ‘십자군 전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판사들이 대부분이었던 역대 소장과는 달리 검사 출신으로서 전범 수사 및 재판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유고전범과 관련,전범재판소에 기소된 사건은 65건 30여명으로 모두 ‘인종청소’ 혐의로 구금돼있다. 폰테의 전임자였던 루이스 아버(52)도 캐나다 출신의 법조인.96년 10월부터 3년간 수사팀을 이끌면서 현직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을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했고,보스니아 내전당시의 세르비아공화국 대통령,유고연방군 총사령관 등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기도 했다.“인류성을 말살한 무자비한 전범 용의자에 대해서는 어떤 자비도,사면도 있을 수 없다”는게 그녀의 확고한 소신이다. 몬트리올 출생인 아버는 민권과 형법 전문가로,요크대에서 법학을 가르치다 87년 온타리오주 지방법원 판사로 임명됐다.인권운동에서도 이름을 날려 캐나다 민권자유연합 부의장을 거친 그녀는 현재 캐나다 대법관으로 복귀,명성을 날리고 있다. 전범재판소에서 활약하는 현직 판사로는 잠비아 출신의 플로렌스 뭄바(51)를 꼽을 수 있다.73년 초급법원 판사로 법조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녀는 승승장구,24년만인 97년 대법관에 임명되는 등 잠비아 여성법조인으로선 가장 화려한 이력을 지닌 맹렬여성. 그녀는 여성 및 인권운동에도 관심을 기울여 여성평의회 잠비아 대표를 지냈는가 하면 95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조직된 ‘아프리카 인권재판소 설립을 위한 전문가위원회’에 핵심멤버로 참가하기도 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특별기고] 신문의 위기와 국가의 위기

    천재적인 사상가 발터 벤야민은 19세기 프랑스의 신문이 변모해 간 모습을‘신문 부패의 역사’라고 단정지었다. 프랑스의 신문은 애초 정쟁과 정치적 선전을 위한 수단으로서 등장한 것이었다.가격도 서민들이 사서 보기에는 너무나 값비싼 것이어서 한 장을 사서여럿이 돌아가며 봐야 했다. 그러다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프랑스의 신문은 세 가지 새로운 요소를 도입,혁신을 꾀하기에 이르렀다.광고란을 설치해서 크게 수입을 올릴 수 있었고연재 소설로 다수의 독자를 얻게 되었다.거리의 소문이나 극장 뒷골목 이야기 등 흥미를 끄는 정보도 싣기도 했다.내용이야 어찌됐든 이렇게 해서 신문값은 반 이하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신문의 발전 속에 벤야민은 신문 부패가 깃들고 그것이 점점 성장해 가는 것을 보고 몸서리쳤다.그래서 그는 이것에 대항하려는 듯 ‘새로운 천사’라는 잡지를 내려고 했으나 가난한 그에게 한낱 꿈으로 사라질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탄생을 보지 못한 이 잡지에 대한 예고만이 남아있어서 그가 뜻한바가 우리에게 대한 경고처럼 들려온다.벤야민은 ‘새로운 천사’의 창간을 알리는 글에서 ‘시대정신’을 증언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다.신문은 새로운 척하면서 피상적인 것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것을 일삼지만 이 잡지는 그 밑에깔린 현실을 밝혀내겠으며 가차없이 단호하게 발언하고,필요하다면 독자 대중을 도외시하기까지 하겠다고 공언했다.1921년의 일이었다. 이런 벤야민의 싸움은 다가올 무서운 시대를 바라보는 고뇌에 가득찬 몸부림이었다.정말 그의 예견대로 구체적으로 무서운 사태가 일어났다.신문이 다만 거리의 소문이나 뒷골목 이야기로 대중의 흥미를 끌면서 광고란으로 그수입을 더해 갈 때 독재정권을 꿈꾸는 자들은 그 영향력에 주목한 결과 나치하에서 독재권력과 신문이 밀착,대중을 선동하는 시대가 나타났다. 이런 유럽의 경우를 오늘 우리도 냉철하게 검토해 보고 지금 우리의 신문은 어디까지 와 있는지,시선을 자기비판에 돌려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우리 신문은 발전의 길을 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또는 벤야민이 비판한 것처럼 ‘신문 부패의 역사’라는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돌이켜 봐야 한다. 원래 우리의 신문은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싸우기 위한 수단으로 출발한 신문이 아니었다.‘독립신문’도 ‘대한매일 신보’도 열강의 위협 속에서 꺼져가는 등불처럼 허덕이는 조국을 지키려고 한 것이었다.일제하의 신문들은3·1운동 후 국민계몽 운동의 기치 아래서 나라의 자주 독립을 비원으로 삼은 구국언론이었다. 우리 신문들이 시대를 향한 목탁으로서 더욱 그 뜻을 밝히고 현대적이고 인류적인 가치추구를 위한 예리한 비판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광고수입으로치부를 꿈꾸고 정치적 싸움이나 거리의 소문 등 부질없는 이야기로 신문의성공을 꿈꾸는 자리까지 온 것은 아닌가.우리 신문들이 지금 밤낮 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온갖 스캔들을 들추어내서 신문 지면을 가득 채우고 대중의 인기를 얻어 더욱 번창하고 권력을 누리자는 것인가. 벤야민처럼 고뇌하면서 잡지 ‘새로운 천사’같은 언론을 꿈꾸는 지식인들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그러나 벤야민의 경우처럼 그것은 잉태됐을 뿐 출생의기쁜 날을 기약할 수 없는 것 같아 보인다.그것이야말로 신문의 위기이고 나라의 위기가 아니겠는가고 지금 많은 사람들은 우려하고 있다. [池明觀 한림대 한림과학원 일본학연구소장]
  • [20세기 문명기행] (9) 성의 평등화

    남성에게 예속된,남성과 관련해서만 설명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인식돼온 여성,그 여성들이 이제는 세계 곳곳에서 변화를 주도하는 주요집단으로 떠올랐다.불과 한세대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최근에는 21세기를 ‘여성의 시대’‘양성평등 사회’라며 여성들을 부추긴다.남성 우월주의를 감추려는 ‘교묘한 거짓말’로 볼 수도 있지만,새로운세기에는 여성이 실제로 각 분야에서 조연 아닌 주역을 차지할 가능성을 인정하는 표현이다. 20세기 초 여성운동의 목표는 투표권 획득이었다.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투표권을 행사해 정치적으로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 것을 여권신장의 지름길로 여겼다.70년대에 이르러 회교권을 제외한 100여국에서 여성이 선거권을 얻었으나,문제는 그것이 경제적·사회적 평등을 의미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성취업 기회는 꾸준히 증가했으나 비서·점원 같은 하급 서비스직과 단순사무직종에 머물렀고 임금은 남성의 절반에 불과했다.이 무렵 진보세력인 학생운동이나 민권운동내에서도 성차별과 성역할 분리가 존재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여성운동 제2기는 60년대 들어 시작된다.여성운동가들은 기득권의 동등한 배분을 주장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사회의 가치체계 모두를 문제 삼았다.기존의 남성중심의 운동에서 분리하여 독자적인 여성조직 결성을 선언했고 그 결과 미국 여성운동의 어머니라 불리는 베티 프리던의 주도로 66년 전국여성기구(NOW)가 탄생했다. 지역이나 국가별로 이뤄지던 여성문제는 70년대 중반 국제무대에 등장했다.75년 유엔이 향후 10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선포하면서부터였다. 이 행사의 일환으로 75년 6월 멕시코에서 첫 세계여성대회가 열렸다.전세계여성대표가 한자리에 모여 여성문제를 논의한 최초의 자리였다. 대회에서 채택한 행동강령은 강제성을 갖지 못했지만 이행여부를 유엔에 보고해야 했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법 제정근거가 됐다.게다가 세계적인 규모에서 여성지위 향상 노력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국제연대를 통한 여성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제3세계 국가들은 여성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선진국과의 차이를발견하고 제3세계 여성만의 국제적인 조직을 결성하기도 했다.이후 여성대회는 85년 나이로비,95년 북경 대회로 이어지면서 여성의 단결과 결집력을 국제사회에서 과시하였다. 한국도 85년 나이로비 행동강령에 맞춰 남녀고용평등법을 제정하고 불평등한 가족법을 개정했다.또 북경여성대회 이후 여성발전기본법,가정폭력특별법,남녀차별금지법,여성기업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등 법적인 면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2000년 6월에는 뉴욕에서 북경대회 행동강령 이행여부를 점검하는 대회가 열린다.그리고 미국의 최대 여성단체인 NOW도 내년 가을 120국 1,633 단체가참여하는 ‘2000년 세계여성행진’행사를 개최할 계획이어서 21세기 벽두부터 국제연대를 통한 여성운동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여성해방운동은 20세기 가장 성공한 시민운동으로 평가된다.투표권조차 없던 20세기 초와 비교하면 교육·법·경제적인 측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의식면에서는 여전히 불평등이 남아 있으며 서구와 제3세계 여성간의 차이,엘리트 여성과 대중 여성간의 격차 또한 해결해야 할과제이다. 강선임기자 sunnyk@ **한국의 여성운동사 한국여성들이 주체적 의식을 갖고 여성권리를 주장한 것은 19세기 말부터이지만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이 이뤄진 것은 1970년대 들어서다. 일제강점기의 여성운동은 초기에 민족주의 성격이 담긴 구국운동으로,말기에는 사회주의운동으로 표출되었다.해방 초기 여성조직은 관변단체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70년대 들어서면서 급격한 산업화·도시화와 권위주의적 독재체제가강화하면서 민주사회를 건설하려는 지식인 여성들과 여성노동자들에 의해 여성운동은 조금씩 새 면모를 갖추어 갔다. 가정법률상담소,YWCA,한국여성유권자연맹,한국여성단체협의회 등은 가족법개정운동과 기생관광 반대운동을 벌였고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조건 개선과 여성노동자에게 특수한 조건들을 반영하기 위한 투쟁에 나섰다. 이 시기 축적된 투쟁력을 바탕으로 80년대이후 여성운동은 운동이념,조직,실천에서 한단계 발전을 이루었다.83년 젊은 지식인 여성을중심으로 새 이념을 가진 여성평우회,여성의 전화,민주화운동청년연합 여성부 등의 단체가 조직되었다. 87년에는 21가지 여성단체가 모인 한국여성단체연합이 결성되었고 이후 한국여성노동자회와 한국여성민우회가 설립되었으며,전국적으로 지역여성단체가속속 등장했다. 그러면서 여성운동 참여계층이 다양해지고 영역도 통일·공해추방·교육·탁아·학술·문화·종교운동으로 확대됐다. 여성단체들은 여성문제 해결이라는 고유의 과제말고도 사회변혁운동에 참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으며 여성의 정치세력화 문제가 중요하게 인식되어여성 정치참여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90년대 여성운동의 관심은 권위주의 정권의 타도에서 가부장제·법·관행·의식 등의 개혁으로 변화했다. 89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을 시작으로 가족법 개정,성폭력 특별법,여성발전기본법,가정폭력방지법,99년 남녀차별금지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법적인 측면에서 불평등이 점차 줄어들었다. 80년대 이후 시작된 여성문화 운동도 매우 활발해졌으며 사랑과 성,연애,결혼,가족에 관한 기존 담론을 비판하고 페미니즘 문화를 세우려는 노력들이시작되었다. 90년대 후반 여성운동은 의식변화에 중점을 뒀다.틀에 박힌 양식이 아니라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주제로 방향이 바뀌면서 운동주체들도 화가,작가,영화평론가,행위예술가 등 다양해졌다.이들은 집단이 아니라 소그룹 또는 개인별로 여성운동을 펼친다.크게 뭉쳐 영향력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일을 하는 형태로 의식이 바뀌고 있다. [강선임기자]
  • [외언내언] 新 황화론

    황화론(黃禍論)의 생명력은 참으로 끈질기다.황화론은 본시 19세기말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가 주창한 황인종 경계론. 당시 일본의 국력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국제적 발언권이 커지자 일본이 유럽 열강의 아시아 지배에 방해가 된다고 본 그의 황색인종 억압론이다.그런데 이 말이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 경계론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며칠전 미국의 조지 부시 텍사스주 지사가 중국은 미국의 경쟁자이지 동반자가 아니라면서 한국 일본 등 아시아지역 민주국가들과 동맹관계를 강화해중국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년 미국의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큰 부시 지사의 이 말은 미국내에서조차 논란이 많다.중국을 미국의 경쟁자로 보는 근거가 우선 모호하다. 중국이 최근 수년간 연 9%대의 놀랄만한 경제성장률을 보이고는 있으나 1인당 국민 소득은 아직도 800달러 선에 머물러 있다.중국의 개인당 국내총생산(GDP)수준은 라트비아와 자메이카 사이에 끼인 세계 65위다.이제 겨우 먹을것 문제를 해결한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지난 21일 무인 우주선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지난 8월에는미국을 사정권 안에 넣을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동풍 31’ 발사 실험도 했다. 300만의 군대에 핵도 보유하고 있다.그러나 중국의 이런 기술이나 군사력이얼마나 취약한가를 미국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더구나 미국의 군사력과 비교해서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 중국은 옛소련같이 미국과 맞설 수 있는 국제적 수준의 이념적 리더십도 가지고 있지 않다.90년대 초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의 대미(對美)정책 지침이 될 16가지 원칙이란 것을 발표했다.이를 토대로 중국은 미국과의갈등을 피하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 왔고 중국의 이런 정책 방향은 쉽게 바뀔것 같지도 않다. 중국은 인구,국토,문화적 우월성으로 해서 쉽게 세계의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중국은 이런 인식을 배경으로 은근히 국제적 거물연해온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중국은 전통적으로 침략적인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미국이 근거도 없이 중국을 적대시하면 중국은 실제로 세계의 위협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그리고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을 위해 봉쇄정책에협조하리라고 보는것도 국제정치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는 것이지만,만에 일 그렇게 된다면 동북아는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될것이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황화론의 연장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부시의 중국관은 한마디로 위험천만하다. 林春雄 논설위원limcw@
  • [사설] 대통령이 나선‘교육발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23일 서울에서 열린 전국교육자 결의대회에 참석,“앞으로 우리 미래가 걸린 교육발전을 위해 직접 나서서 챙기겠다”고 밝혔다.아울러 내년부터 폐지될 예정이던 교육세를 그대로 유지하고,교육예산이정부예산 증가율보다 2∼3%포인트 이상 늘어나도록 하며,공무원 연금법이 개정되더라도 교원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교원의 보수와 근무여건 개선,전문성 신장 방안등에 대한 대책도 밝혔다. 교육발전을 위한 대통령의 이같은 의지 표명이 최근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교육위기 상황을 해결하는 돌파구가 되기를 우리는 기대한다.교육의 위기 상황은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들이 21세기 학생들을 가르친다”거나 “학교는 있어도 진정한 교육은 없고,선생은 있어도 가르치는 의욕은 없으며,학생은 있어도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없다”는 말이 떠돌만큼 총체적이다.‘교실붕괴’ 현상속에서 학생들은 교사를 존경하지 않고 교사는 교단을 떠나고 있다.게다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교육예산이 크게 줄어 교육여건은 더욱 나빠졌다. 대통령의 약속대로 교육세가 현행대로 유지되고 교육예산 증가율이 늘어나면 당장 내년도부터 교육예산이 1조9,000억원 증가해 국민총생산(GNP) 대비교육재정이 4.56%로 올해(4.3%)보다 늘어난다.교육재정의 안정적 확보는 교육 부실화를 막는 기본전제라는 점에서 매우 시급한 일이다.이 문제 해결을위한 의지표명과 함께 대통령이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추진해온 교육개혁과정에서 교육계가 겪은 고통과 갈등에 관심을 표명한 것도 주목된다. 정년단축,촌지 및 학생체벌 금지,수행평가 실시,새로운 교육방식의 습득 및 적용등 개혁의 과정에서 교직자의 자존심과 명예,그리고 교권이 침해되고업무가 가중되고 교원 사기가 저하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던 것에 대해 대통령은 “정부는 좀 더 세심하고 충정 어린 배려가 필요하지 않았는가 생각하면서 교직자 여러분에게 본의 아니게 고통과 슬픔을 준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고 말했다.교직사회의 전환기적 고통에 대한 대통령의 위로는 교사들이 아픈 마음을 훌훌 털고 일어서서 우리 교육을 다시 일으키길 바라는 간곡한 마음으로 읽힌다.교육개혁은 만난(萬難)을 무릅쓰고라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국가적 과업이다.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에 맞추어 교육의 기본틀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교육계도 이제 섭섭한 마음과 피해의식을 털어내고 공교육을 살려내는 데 힘을합해야 할 것이다.정부도 지난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약속한 교육재정의 GNP6% 확보를 달성하고 미래를 위한 투자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
  • [독자의 소리] 日서 돌솥비빔밥 모방한 음식 인기라니

    일본에서 한국식 돌솥비빔밥이 인기다.도쿄에선 작년부터 거리에 500엔대의 돌솥비빔밥이 나타났다.그동안 1,00엔대의 돌솥비빔밥에 비하면 정말 일반화됐다.돌솥비빔밥은 뜨겁게 데워진 돌솥의 ‘칙’하는 소리와 향,밥 위의다양한 야채가 건강식이라는 이미지도 강하다.돌솥비빔밥을 모방해 돌솥과카레를 이용한 제품을 개발한 레스토랑도 있고 어떤 초밥점에서는 돌솥을 이용한 덮밥도 개발하여 인기를 끌고 있다.일본인다운 섬세함으로 비빔밥의 유래에 대해 분석을 하고,19세기말 요리책을 들먹이고,비비는 것 자체도 정신적으로 상당한 스트레스 해소가 될 수있다는 분석까지 내놓을 정도다.‘비빔빠’(비빔밥의 일본식 발음)에 관심갖는 일본인들을 보며,김치에 이어 비빔밥으로 일본과 경쟁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조태민[resmin@netsgo.com]
  • 국회본회의 이모저모

    국회가 정쟁(政爭)의 볼모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22일 본회의에서 여당은 한나라당에 정치공세 중단을 촉구했지만 일부 야당의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날 본회의에서 김기재(金杞載)행자부장관의 해임건의안 표결은 10여분만에 마무리되는 등 종전 다른 해임안 처리때보다 긴장감이 떨어졌다. 소속 의원 132명 가운데 125명이 표결한 한나라당은 ‘가(可)’표가 119표에 그쳐 최소한 6명이 반란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됐다.반면 공동여당은 160명 중 국민회의 2명,자민련 9명 등 11명이 표결에 불참했는데도 ‘부(否)’표가 157표에 이르는 등 성과를 올렸다고 자평했다. ■본회의 5분발언에서도 여야간 정치공방은 재연됐다. 한나라당 이신범(李信範)의원은 “국가정보원이 자체 교육관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입찰자격이 없는 충남 소재 대아건설에 공사를 넘겼다”며 김종필(金鍾泌)총리의 압력설을 제기했다. 그러자 국민회의 장영달(張永達)의원은 “야당이 근거없는 괴문서나 설(說)로 국정을 농단하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과거 민주화운동 당시 우리 당의 은혜를 입은 이신범 의원은 더이상 배은망덕한 얘기를 하지 말라”고 몰아세웠다.장의원은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을 겨냥,“언론문건 국정조사와 검찰조사에 떳떳이 나서 진실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 자민련 김범명(金範明)의원도 한나라당 이의원의 발언을 문제삼아 “면책특권을 악용,본회의장에만 서면 유언비어식 정치를 감행한다”고 비난했다. 총리실측도 “이신범 의원의 발언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사과후 속기록 삭제를 않으면 명예훼손 고발 등 법적 대응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경원(徐敬元)전의원 밀입북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한나라당 김기춘(金淇春)의원은 신상발언을 통해 “검찰이 이번 재조사에서 방향을 설정해 놓고‘조작된 사건’인 것처럼 다시 조작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거나 정치 탄압 또는 보복으로 비치게 한다면 검찰은 존재가치를 영영 잃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야간 입씨름이 계속되자 일부 여당의원은 근시안적인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정쟁을 중단할 것을 제의했다.국민회의 김병태(金秉泰)의원은 “일시적으로 판단을 잘못한 19세기말에 이어 20세기말 우리 판단이 또다시 잘못될 때후손이 당할 고난을 생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자민련 조영재(趙永載)의원은 “여당은 금도(襟度)의 정치를,야당은 건전한 대안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박찬구기자 ckpark@
  • 덕수궁미술관서 전시회

    ‘한국근대미술:공예-근대를 보는 눈’전이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인 덕수궁미술관에서 내년 1월30일까지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97년부터 한국근대사의 정립을 통해 근대미술에 대한 평가와 이해를 새롭게 하기 위한 ‘근대를 보는 눈’전을 유화,수묵채색화,조소 순으로 개최해 왔다.이러한 순차전시 기획의 최종편인 이번 전시는근대공예의 출발과 전개과정,현대공예로 전환하는 과정을 살펴본다.19세기말에서 시작,공예와 디자인이 분리되는 시점인 60년대 중반까지 제작된 작품을 대상으로 했으며 4기로 나눠 전시했다. ‘공예’라는 용어는 1881년 작성된 문서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1908년 ‘이왕직미술품제작소’ 설립과 함께 산업활동보다는 미술문화의 한 분야로 바뀌어 졌다.이번 전시에서는 이곳에서 제작된 도자,금속기,칠기,자수 등의 공예품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며 관련 도안작품들을 최초로 선보인다. 1928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동경예대 도안과를 졸업한 임숙재의 예술적 공예의 도안도 이번에 전시된다. 1930년대부터 공예가들은자신의 이름을 걸고 작품을 출품했으며 전통(전승)공예와 현대공예라는 개념이 분리되기 시작했다.50년대 들어 창의적 형태와 형식미를 향한 실험적 시도와 작가들의 개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한층 두드러지며 현대공예로 향한 발판을 마련했다.공예품의 산업화와 함께 60년대 중반 공예와 디자인이 독자 영역을 갖기에 이르렀다. 이번 전시는 30여명의 작가 작품 200여점을 선보인다.새로이 발굴된 작품도 있으며 특히 외래문화와 전통문화가 혼재된 뎐을 보여주기 위해 전시장에 20세기 초 기생방을 재현했다.(02)779-5310.
  • [지구촌 밀레니엄 준비] 스웨덴

    실용성을 미덕으로 삼고 허장성세를 모르는 스웨덴 사람들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는 행사로 들떠있지는 않다.대신 이 시대적 전환기를 미래사회에서의 민주주의,인간의 평등,부의 분배,환경문제에 대한 토론과 연구의 기회로 삼고있다. 이런 연구와 토론을 활성시키기 위하여 스웨덴 정부는 98년 4월 새천년위원회를 구성했다.내무장관을 위원장으로 정부,경계·문화·과학계,민간단체 등 각계인사 15명이 참여하고 있다.사회 각분야 27개 기관과 파트너십을 맺고유기적 협조체제를 갖추고 있다.자연과 에너지,지식,문화유산,세계화,언어,민주주의 등 15개의 테마를 선정했다. 27개 기관 중 북유럽 박물관은 각 지방 박물관과 협력,‘미래에 대한 신념’이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지난 9월 학교,기업,지방정부,각종 단체 들의 미래 프로젝트가 전국 30개 박물관에 동시 전시되었다.역사상 미래에대한 비전이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지,그 비전이 현재와 어떻게 조화되어 왔는지 보여줌으로써 미래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형성하도록 돕자는 취지다.청소년 문제담당청은 ‘비전 2000’이란 주제로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젊은이들의 비전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27개의 프로젝트가 금년과 내년에 걸쳐 수행되고 토론의 결과는 2000년 4월 보고서로 작성,정부에 제출된다.과거에 이룩된 소중한 가치들 중에서 최고의 것만을 가지고 새로운 밀레니엄으로 진입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복지제도의 지속적 발전도 밀레니엄의 화두다.요란 페르손 총리는 최근 시정연설에서 “우리는 화합의 정신으로 발전과 평등을 결합할 수 있었다.발전이 평등의 전제조건이며 또한 평등이 발전의 원동력임을 이해한다”고 선언했다.복지 선도국으로서 스웨덴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다짐이다. 스웨덴 사람들은 복지국가의 길을 교육을 통한 노하우와 전문성,그리고 지식정보기술(IT)에서 찾고있다. 스웨덴의 의무교육은 1842년부터 시작됐다.조기 의무교육은 19세기말 스웨덴 산업화의 기초를 다지고 1930년대 스웨덴 복지국가를 확립하는 기반이 되었다. 스웨덴은 지식정보기술의 선도국으로 2000년대에 진입하고자 한다.스웨덴국민의 컴퓨터 사용은 세계 최고수준이다.거의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서 컴퓨터를 사용한다.스웨덴 회사들은 IT제품의 사용,개발,생산에서 세계의 선도자 위치를 점하고 있다.97년 스웨덴의 연구개발(R&D) 투자는 GDP(국내총생산)의 3.9%로 세계에서 가장 높으며 3분의 1이상이 IT사업에 집중돼 있다. 전국을 정보기간망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민간기업과 함께 광역 IT 인프라투자를 추진하고 있다.21세기 스웨덴의 국가 경쟁력을 더욱 높이게 될 것이다.이를 위해 2000년도 IT법안을 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새천년을 준비하는 스웨덴을 지켜보면서 스웨덴의 역사학자 스벤-에릭 리에드만의 저서 ‘연대론’의 결어를 인용하고자 한다.“체념은 위험하다.의심하지 않는 낙관주의는 마찬가지로 위험하다.이는 20세기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이다.그러나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우리는 역동적인 기회와 희망을 발견한다.”/손명현 주스웨덴대사
  • 연극계에도 거센‘性담론’바람

    영화 ‘거짓말’에서 탤런트 서갑숙의 성체험 에세이까지,올 한해 우리 사회를 강타한 성담론이 연극계로도 번지고 있다.20일부터 문예회관 대극장에서공연되는 극단 미학의 ‘뽕’(차범석 극본,정일성 연출)과 12일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무대에 오르는 우리극장의 ‘룰루’(프랑크 베데킨트 작,김종성연출)는,속칭 대학로 뒷골목의 ‘벗는 연극’과 달리 성을 진지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두 작품은 각각 1920년대 한국 하층민(뽕)과 19세기말 독일 상류사회(룰루)를 배경으로 성을 통해 본 다양한 인간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뽕’은 극단 미학의 대표 겸 연출가인 정일성씨가 우리의 정서와 전통을되살리려는 의도로 만든 ‘스토리 시어터(이야기 극장)’의 첫 작품.사실주의 작가 나도향의 단편소설로,배우 이미숙이 주연한 영화 등 스크린으로는여러차례 옮겨졌지만 연극무대에 오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투전에 눈이 멀어 밖으로 나도는 무능한 남편을 둔 안협집은 빼어난 외모로뭇사내들을 유혹한다.몸주고 돈버는 일에 재미를 붙인 안협집은 남편이 돌아오면 노름밑천을 주어 내보내기까지 하는데….영화 ‘뽕’이 워낙 ‘야한 작품’으로 소문난 탓에 어떻게 무대위에 형상화될지가 관심거리다.정일성씨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성을 생명력있게 묘사한 원작의 분위기를 최대한살릴 것”이라며 ‘품격있는 에로티시즘’을 자신했다. 동시통역사,영화배우,MC로 활약중인 지적인 외모의 배유정이 안협집으로 변신하고,연극배우 겸 탤런트 김명수가 남편역을 연기한다.무대장치는 가급적배제하고,배우의 연기에 집중한 새로운 형식의 연극으로 꾸며진다.28일까지. (02)745-9884. 19세기말 독일 표현주의 작가 프랑크 베데킨트의 희곡 ‘룰루’는 몸파는 여인 룰루의 입을 빌어 ‘여성성’과 ‘성의 해방’을 주장한다.적나라한 성묘사로 발표되자마자 판금됐던 이 작품은 지난 89년에야 해금됐으며,이후 독일·프랑스 등에서 오페라·무용 등으로 재창작됐다.10년전 원작의 일부분을초연했던 우리극장은 이번에 전체 4시간분량의 극을 절반으로 압축해 무대에 올린다. 12세때 양아버지 쉬고르에 의해 ‘거리의 여인’이 된 룰루는 쉐엔 박사를만나 상류사회에 발을 디딘다.쉐엔 박사는 룰루를 나이많은 골박사에게 시집보내고,룰루는 여유로운 생활에 만족하지만 곧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슈바르츠와 사랑에 빠지는 등 통제되지 않은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극중 룰루가 만나는 남자들은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취급하거나,명예·권력욕의 상징으로 여기는 등 이 시대 남성상을 대변한다. 연출자 김종성씨는 “인간의 욕망과 거짓된 도덕관 등을 보여줄 것”이라고말했다.등장인물들의 동물적 속성을 묘사하기 위해 프롤로그 20여분간 진행되는 동춘서커스의 묘기도 볼거리이다.20일까지.(02)2234-0586이순녀기자 coral@
  • [20세기 문명기행] 6. 사회주의의 도전과 실패

    80년대 후반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동유럽의 자유화 바람이 불어닥칠 때 ‘인간의 얼굴을 한 공산주의’가 일컬어진 바 있다.이는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일당독재,경제적으로는 계획·통제방식의 경제정책을 골자로 한 종래의 ‘이론공산주의’에서 인간의 창조력과 생산성을 가미한 ‘수정공산주의’로의 변화모색을 지칭한 것이었다.그러나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말처럼 공산주의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20세기 초엽에 등장해 20세기 말에 종말을 고한 공산주의.소련이 사회주의이념을 국가의 통치원칙과 경제운용방식으로 채택한 것은 1917년 볼셰비키혁명에 성공한 데 힘입은 것이며 동구권 등 다른 공산국가들은 2차대전 이후사회주의 이념을 따랐다.승전국의 하나였던 소련은 전리품으로 할당받은 동유럽 국가들에서 해방군으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며 공산주의를 심는 데 성공하였다. 이같은 현상은 2차대전 기간중 독일점령군에 저항,독립을 쟁취했던 유고슬라비아와 내전을 통해 공산화한 중국을 제외하고는 동유럽 모든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따라서 동유럽 국가들의 공산화는 국민들의 희망과는 별개로 외세에 의하여 불가항력적으로 채택된 것이다. 소련공산당의 붕괴 이후 이 지역에서 몰아친 민주화 추세는 반소(反蘇)사상에서 기인한 것인 동시에 공산화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순리였다고 할 수 있다. 전세계 공산국가들의 원조인 소련의 붕괴는 1987년 11월 볼셰비키혁명 70주년 기념연설에서 고르바초프가 “소련공산당은 동맹국의 정책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이는 소련과 여타 공산주의 위성국간의 수평적인 관계를 거론한 것으로,이듬해 12월 유엔총회에서 그가 “공산주의 국가들이 각자 자기나라의 사정에 맞는 노선을 채택할 수 있다”고 언급한데서 거듭 확인되었다.결국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은 동유럽 동맹국들이 다당제와 시장경제를 채택하도록 길을 열어준 셈이었다.이같은 노력의 중심에 섰던 고르바초프는 서방진영에서는 긴장완화의 산파로,동유럽에서는 개혁의 물꼬를 터준 공로자로 찬사를 받았다. 공산주의 사상의 이론적근거를 제공한 독일의 철학자 칼 마르크스는 ‘역사적 유물론’을 통하여 사회주의·공산주의 등장을 역사의 법칙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실현을 위해 정당(공산당)이 국가 위에 군림하는 정치체제와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채택한 계획·통제방식의 경제체제는 국가가 국민을 책임지고 돌보아준다는 긍정적인 주장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한 모델’임이 역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다시말해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의 공산주의는 ‘인간의 얼굴을 한 공산주의’라기보다는 인간의 얼굴,인간의 체온이 배제된 한낱 ‘공산주의운동’에불과했다는 설명이 된다.따라서 과거 1세기에 걸친 공산주의는 이론과 현실간의 괴리속에서 ‘인류의 재앙’이었다는 혹평까지도 나오고 있다.동유럽을 비롯해 아프리카,아시아 지역 등에 건설됐던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들이소련의 붕괴와 함께 동반퇴진 또는 복수정당제 도입 등의 노선수정으로 ‘변신’을 꾀한 것이 이같은 평가를 뒷받침하고 있다. 소련공산당의 몰락은 세계사적으로도 한 획을 그은 일대사건으로 기록되고있다.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은 지난 한 세기동안 세계인류의 절반을 혁명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으며 이를 둘러싼 논쟁도 끊이지 않았다.마르크스사상의 토대는 19세기 중반 그가 파리에서 어렵게 생활하던 시절에 형성된 것으로 당시 유럽은 초기자본주의의 모순이 극대화된 시기였다. 당시 노동자들은 비참한 생활에 허덕이고 있었고 자유로운 사상에 대한 탄압은 날로 가중돼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던 시기였다.48년 그는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바로 그것이다’로 시작하는 ‘공산당선언’을 발표,역사의 전면에 나섰다. 런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 있는 마르크스의 무덤에는 요즘도 방문객이 줄을 잇고 있다.이는 소련공산당의 몰락이 곧 ‘이데올로기로서의 마르크스주의의 몰락’으로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을 의미한다.마르크스주의는 아직도 중국,쿠바 등의 국가에서는 국가이념으로,반체제세력이나 게릴라단체에서는 혁명이념으로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사회주의 붕괴… 분단국 통일 촉매제로 남북 예멘,동서독,베트남-.서로 이데올로기가 달라 분단상태에 있다 하나가 된 나라들이다.예멘과 독일은 사회주의의 붕괴,베트남은 사회주의체제 구축으로 끝이 나 대조적인 양상을 보이긴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국가들에선 모두 사회주의가 기반을 잃었거나 자본주의의 물결이 힘차게 일고 있다. 남북 예멘과 동·서독의 통일은 사회주의의 붕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예멘의 경우 사회주의 국가인 남예멘과 정통회교국 북예멘이 서로 깊은불신의 골에 빠져 있었다.72년 9월과 79년 2월,두 차례나 전쟁을 치렀을 정도다.그러나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던 남예멘은 구 소련이 붕괴한 뒤 원조중단에 부닥쳐 결국 북예멘에 통일을 제의하고 나섰다.이후 72년 11월 26일 트리폴리에서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가진 뒤 18년만인 90년 마침내 23년간의 분단상황에 종지부를 찍었다. 45년 8월 연합국에 통치권을 이양,분단됐던 동서독의 통일과정 역시 사회주의 붕괴와 분리될 수 없다.구 소련의 강력한 통제를 받아온 동독은 사회주의의 맏형격인 소련의 와해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물론 독일 통일은 데탕트에 편승해 상호주의에 따른 동서왕복,경제교류,여행자유 등쌍방향 협상의 산물이었음을 무시할 수 없다.그러나 직접적인 계기는 사회주의의 몰락이었고 독일 통일은 다른 동유럽 국가들의 탈공산화와 민주화에 촉진제로 작용했다. 베트남은 무력을 사용해 일단 사회주의체제로 통일을 이루어냈다.그러나 지금 베트남은 공산권국가중 어느 곳 보다도 서방의 투자 등 시장경제가 활기를 띠고 있다.월남과 월맹 분단체제 속의 경직된 모습은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이같은 시대적인 상황에서 아직까지도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분단 형태로 남아있는 유일한 나라인 남북한은 어떤가. 남북한의 분단은 미소 대립의 산물이란 점에서 독일과 비슷하다.여기에 3년간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러 상호 불신이 극심하다.어쨌든 북한은 지금 경제난으로 인해 체제에 상당한 변화를 맞고 있다.따라서 중앙계획경제 체제의이완은 불가피하다.자본주의 시장경제 논리가 이미 북한을 파고들었고 남북간의 교류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굳이 예멘 독일 베트남 등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역사의 시계추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보이고 있다. 김성호기자 kimus@
  • 불교신문 한국불교 1000년 10대 사건 선정

    지난 1,000년동안 한국 불교사에 굵은 획을 그은 사건 10건을 꼽으면 어떤것이 있을까. 불교신문은 최근 새 천년을 앞두고 ‘한국불교 1,000년 10대사건’을 발표했다.이 10대 사건은 도법 실상사 주지,종림 고려대장경연구소장,목정배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장 등 불교사 관계 전문가 11명이 공동작업을 벌여 선정한 것.10대 사건을 요약한다. ■구산선문의 완성 신라 헌덕왕 13년(821년) 당나라에서 선종의 법맥을 이어받아 귀국한 도의국사가 가지산문을 연 이래 실상산문(홍척),동리산문(혜철),봉암산문(긍양) 등이 생겨난다.이후 구산선문은 선종이 한국불교의 종지종통으로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고려대장경 조조(肇造) 고려 현종 2년(1011년) 거란병이 송도를 침공하자나주로 피난한 임금이 국력을 모아 대장경판을 새겼다. ■정혜(定慧)·백련결사(白蓮結社) 운동 고려불교가 개경의 귀족 중심으로흐르면서 타락하기 시작하자 지눌은 1190년 정혜결사,요세는 1216년 백련결사를 만들어 도반들과 수선(修禪)에 힘썼다. ■임제종(臨濟宗) 법통 전래 1346년 원나라로 건너간 보우국사는 임제종18대법손인 석옥 청공을 만나 법맥을 전수받고 돌아온다.보우국사는 한국불교 선맥의 시조로 꼽힌다. ■제종(諸宗) 통폐합과 억불(抑佛)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개국공신들은 고려말 이래 계속돼온 배불운동을 새 왕조의 정책으로 삼고자 노력했다. ■불경언해(佛經諺解) 사업 억불책으로 빈사상태에 놓였던 불교는 세조 대에이르러 불경의 한글번역을 통해 다시 생기를 찾았다. ■임진왜란 승병활동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서산대사와 그의 제자 유정·영규 등이 각지에서 승병을 이끌고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초의·백파 선 논쟁 19세기 초 초의와 백파는 선 수행의 종류를 둘러싸고논쟁을 벌였는데 양측 제자와 당대의 석학들이 가세해 근대 한국불교 최대의논쟁으로 비화됐다. ■도성 출입금지 해제 1895년 조정은 조선 초부터 유지돼온 승려의 도성 출입금지령을 해제해 이때부터 한국불교는 산승(山僧)시대를 지나 근대불교로변모하는 계기를 맞았다. ■불교 정화(淨化)운동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유시를 계기로 촉발된 비구-대처승 간 분쟁으로 태고종에서는 법난(法難)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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