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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 “유 댐 칭크”

    물론 그런 의도는 없었겠지만,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발표한 진화론은그의 학문적 업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인류의 오만과 편견을 확산시키는 불행한 결과를 불러들였다.누구나 알듯 진화론은 19세기 중엽 찰스 다윈이 생물계는 적자생존(適者生存)·약육강식(弱肉强食) 등의 방법으로 진화한다고 주장한 학설이다. 그러나 진화론이 발표될 당시 구미(歐美) 여러 나라들은 바야흐로 산업혁명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자본주의경제를 무르익혀서,터질 듯 팽창해진 국력을밖으로 뻗쳐나가던 때였다.영국 등 힘센 나라들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든자유방임적 경제주의와 식민지 강점(强占)의 경쟁적 제국주의가 서로 손을잡고 세기를 풍미했던 때 등장한 진화론은 이들 나라의 확장정책에 더 없이좋은 명분과 당위성을 제공했던 것이다.‘인간도 생물이니 약육강식은 당연하고 말고…’였다. 이와 함께 아리안,슬라브,앵글로색슨족(族)들은 저마다 환경에 잘 적응해서강한 자로 잘 살아가는 적자(適者)로서의 우위를 주장하며 흑인이나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론을 고착시켜 나갔던 것이다. 지난달 27일 아침 뉴욕 북서부 빙엄턴 뉴욕주립대 기숙사 앞에서 일어난 집단폭행사건은 이처럼 뿌리깊은 아시아계 인종차별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이날 레슬링부 백인학생들은 아무런 이유없이 존 리(19) 등 한인학생 4명에게 라이터 등을 집어던지며 “유 댐 칭크(You damn Chink·빌어먹을 중국놈)”라고 욕설을 퍼부었다.백인학생들은 항의하는 한인학생들에게 뭇매를가해 존 리군은 두개골이 깨지고 뇌출혈을 일으켰으며 다른 학생들도 타박상을 입은 것으로 보도됐다.칭크라는 말은 중국인을 경멸하는 것이지만 아시아계의 미국이민이 늘면서 일반적으로 아시아인을 심하게 욕하는 말로도 널리쓰인다는 것이다.이 사건이 최근 뒤늦게 알려지자 이 학교 아시아계 학생들은 계속 시위를 벌였고 주민들도 동조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은 인종차별국가의 오명을 씻어 없애야 한다.공존의식으로 용해돼야 한다.찰스 다윈도 생물계가 약육강식만이 아닌,상부상조에 의해 더불어 번창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후세학자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더욱이 미국은 여러 인종,여러 민족의 이민으로 우뚝선 나라다.얼마전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상원 청문회에서 미국 이민자들을 늘려야 고임금 인플레를 막고 경제가 산다고 주장했다.플로리다주의 경제가 언제나 활기를 잃지 않는 것도 쿠바난민들의 유입 때문인 것으로 이미 오래전경제학자 레스터 더로에 의해 분석됐다.왜곡된 다윈주의는 미국에서 사라져야 한다.더욱이 미국 백인 대부분은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할 기독교인들 아닌가. 禹弘濟 논설주간hjw@
  • [외언내언] 아! 봉정사

    지난해 5월 말 ‘봉정사의 앞뒤’라는 글을 이 지면에 쓴 후 거의 1년만에다시 봉정사 이야기를 하게 됐다.당시 지붕이 무너질 듯 내려앉은 봉정사 대웅전(보물 55호)과 비바람이 들이치는 처마밑에 방치된 극락전(국보 15호)벽화의 안타까운 모습을 전한 바 있는데,그 두달 후 시작된 해체수리 공사중 봉정사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 귀중한 문화재임이 밝혀진 것이다.그동안 조선 초기 건물로 추정돼 왔던 대웅전이 고려때 건축물로 밝혀졌고,그후불벽화 또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387.5㎝×380㎝) 오래된 것으로 드러났다.놀랍고 반가운 일이다. 지금까지 한국 최고(最古) 벽화로는 1476년(조선 성종7년) 조성된 전남 강진의 무위사 극락전(국보 13호) 후불벽화가 꼽혀왔다.그러나 봉정사 대웅전지붕속에서 1428년(조선 세종10년)에 미륵하생도를 그렸다는 기록과 1435년(세종17년) 대웅전을 중창했다는 묵서명(墨書銘)이 발견됐다.봉정사 대웅전후불벽화의 구도는 석가영산회상도의 특성을 보이고 있으나 고려 불화 양식을 지니고 있어 빠르게 보면 고려말 아니면 늦어도 조선 세종 시대의 그림인 것으로 추정된다.어느쪽이든 국보급 최고 벽화임은 분명하다. 대웅전 역시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건물로 여겨 온 같은 봉정사 경내의 극락전(1363년 중수기록이 있음) 보다 더 오래된 건물일 수 있다는 주장이 이번에 제기되고 있다.해체공사중 대웅전 안 불단이 1361년(고려 공민왕10년)조성됐다는 묵서명을 바탕으로 “사찰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이 극락전보다 늦게 건축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그러나 문화재청은 “대웅전의 다포계 건축양식은 극락전의 주심포계 양식보다 발전된 후대 양식이며 사찰의중심건물이 대웅전이 아닐 수도 있다”며 그같은 주장을 일축한다.건축양식과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극락전은 대웅전보다 100∼150년 앞선 1200년대 건물로 전문가들이 추정한다는 것이다.대웅전이 현존 최고 건물의 명예는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국보로 승격지정될 가능성은 높다. 한편 극락전 벽화는 적외선 TV카메라등을 이용해 조사한 결과 ‘다행히’고려 시대가 아닌 조선 후기 그림으로 밝혀졌다.19점의 벽체 가운데 15점에서 벽화가 발견됐는데 19세기 이후 그림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다행히’라는 표현을 쓴 것은 비바람 들이치는 처마밑에서 훼손된 벽화가 국보급이아니었다는 점에서다. 계획을 앞당겨 많은 예산을 투입해 봉정사 대웅전 해체보수 공사를 시작한문화재 당국의 용단에 박수를 보내며 독자 여러분께도 보수공사가 끝나는 내년쯤 경북 안동의 천등산 기슭에 자리잡은 봉정사로 꼭 나들이 다녀오시기를 권하고 싶다.불자(佛子)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곳에서는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다.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후 촬영장소로 간혹 이용되는 영산암도 그곳에 있다. 임영숙 논설위원
  • [기고] 이 땅에 보수주의가 있었는가

    인류의 역사란 자유의 성장과정이라고 헤겔이 말했지만 짧은 인생을 사는개인들에게 이런 선언은 진실인 것 같기도 하고 공허한 말씀에 불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왜냐하면 시간이 흘러도 역행하는 일이 인류사에서는 빈번히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게 보아 역시 헤겔의 말은 진리이며 이 진리는 19세기보다 20세기에,그리고 21세기를 맞아서는 더욱 확실하게 다가오고 있다.지난 2월에는 회교원리주의자로 20여년간 반(反)근대화에 나섰던 이란에서 개혁파가 의회 의석의 거의 80%를 차지했다.이어 이란은 개방과 대외 관계개선에 나서고 있다. 지난 18일의 대만 총통선거에서는 야당의 천수이볜(陳水扁) 후보가 승리해중국 정치사에서 혁명적 변화를 일으켰다.매스컴에서는 51년만의 정권교체라고 하지만 필자는 그 정도의 의미부여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역사상 진정한 민중의 의사와 힘에 의해 중국의 지도자가 바뀐 적이 있었던가.본토 중국의 공산당 지도자들은 비록 민중적 기초에 의해 선택을 받았다 하더라도 명(名)과 실(實)에 있어 완전히 선출된 지도자들은 아니다.공산당 엘리트 중에서 두각을 나타낸 자들이 고위직에 올라섰을 뿐인 것이다. 대만 역시 1920년대 장제스(蔣介石)의 등장 이후 국민당의 일당독재가 이어져 왔다.이제 필리핀 한국 인도네시아에 이어 대만까지 민주주의는 적어도외형상으로는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북한 본토중국 미얀마 등이 남아 있지만 21세기 전반기 이전 이들 나라도 불가항력적으로 자유의 넓은 길로 나가지 않을 수 없으리라.역시 장구한 세월로 보아 ‘역사는 자유의 성장과정’이다. 이제 우리 자신으로 시선을 옮겨보자.요즘 동남아시아지역이나 중국을 여행해 본 사람들은 절실히 느끼고 있겠지만 아시아 각국의 변화는 눈부실 정도이다.정치도 변하고 있지만 그것 이상으로 물질적 변화는 현란하다.1년이 다르게 느껴지는 중국을 보노라면 우리가 제자리 걸음을 한다면 이 거대한 대륙의 그늘에 싸여 우리 존재가 희미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지난 월초에는 태국을 20여년만에 방문했는데 당시의 초라하던 방콕공항은 김포공항보다도 현대화한것처럼 보였다.관광객이 1년에 700만명이나 된다고 하였고도로는 일본차를 수입하는 대가로 일본인들이 건설해 주어 넓고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우리는 알다시피 가까스로 IMF시대를 거의 극복했다.일단은 자축할만한 장거이다.그러나 우리가 아시아의 일반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고 곧 선진국진입을 기약한다면 지금과 같은 작태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자각해야겠다. 선진국이 되는 마지막 관문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도약을 의미한다.우리의 여러 분야 가운데 그래도 상대적으로 앞선 곳이 있다면 그것은 경제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경제도 정치가 혼란스럽고사회질서가 난잡하고 문화가 저질이면 고도성장이 어렵게 된다.즉 발목이 잡힌다는 것이다.특히 정치쪽은 직·간접으로 경제와 긴밀한 관계에 있어 정치의 능률화가 실현되지 않으면 경제는 결국 비틀거리게 되고,이것은 곧바로외국자본의 향배를 가름하게 된다. 우리가 진정 앞서 나가려면 정치의 선진화가 필수이며 이 선진화는 현재와같은 소위 개혁·보수의 구도로는 어림도 없다고 본다.마침 총선도 곧 실시되지만 이 나라에서 양당 구도가 바람직하다면 ‘개혁 대 보수’가 아닌 ‘개혁 대 보다 개혁’적인 양당 구도가 실현돼야 정치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될 것이다.대강 짐작하다시피 이 땅의 보수주의는 기득권층의 자기 보호막이다.진정 보수할만한 가치를 우리가 만든 적이 있었던가.그저 현상유지가 자기네에 유익하기에 보수주의라는 간판을 내세우고 있을 뿐이다.그래서 보수주의는 엄밀한 검증 위에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젊은층은 특히 이 점에 유의하길 바란다.‘정치는 그런 것’하며 무관심하면 정치권의 악취는 사라지지않을 것이며,그 악취는 젊은 세대가 당연히 오래 맡게 될 것이다. 이성주 사회평론가
  • [시베리아 대탐방](13)시베리아의 중심지 노보시비르스크

    시베리아의 중심지인 노보시비르스크.고려인(카레이스키)들은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부른다.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이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간난(艱難)과 신산(辛酸)의 세월을 이겨내고 제법 여유있는 생활을할 수 있도록 삶의 터전을 닦아 놓은 덕분이다. 노보시비르스크의 중심가에위치한 한국 음식점 오아시스는 고려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한다.이곳에 들어가면 건설업체 KPP를 경영하고 있는 김우광(金佑光) 사장(66) 등 고려인 1∼3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정봉용 고려인 문화관장(53)은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 1세대들은 기후와토양이 다른 이곳에 적응하기까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려운 삶을 살았다”며 “그러나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 현재 시베리아 지역에 살고 있는대부분의 고려인들은 러시아인들보다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노보시비르스크에 정착하기까지 고려인들의 강제 이주사는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죽음과의 처절한 싸움이었다.구한말(舊韓末) 오직 살아남겠다는 일념으로 연해주로,1937년 스탈린의 추방정책으로 다시 연해주에서 시베리아,중앙아시아로 쫓겨났던 고려인들의 유랑은 지난 1863년부터 시작됐다. 피폐한 한반도에서 굶주림을 못이겨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연해주로 간 초기 고려인들은 순탄하게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1919년 3·1운동 후 월경자가급격히 늘어나자 옛 소련 당국이 국경을 봉쇄했다. 당시에는 연해주 18만여명의 고려인들은 그리 넉넉한 생활을 영위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대로 만족하며 오순도순 모여 살고 있었다.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잡자마자 불행하게도 비극이 찾아왔다.스탈린이 연해주고려인들을 시베리아 등으로 강제 이주시킨 것은 1937년 9월9일. 1937년 8월21일 공산당 중앙위 서기 스탈린과 인민위원장 몰로토프가 서명한 ‘극비 문서 1428326’에서 비롯된 강제 이주의 표면적인 이유는 ‘일본과의 공모,또는 스파이 혐의’였다.그러나 실제로는 스탈린이 자행한 소수민족 말살정책의 하나였을 따름이다. 연해주 지방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들은 이날 느닷없이 날아든 소련당국의통지에 따라 블라디보스토크역으로하나둘 모여들었다.일부 가재도구만 챙긴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시베리아 열차속에 짐짝처럼 부려졌다.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고려인들의 앞날에는 척박한 시베리아의 황무지가 저승사자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37년은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해였습니다.할아버지는 19세기말 연해주에서 교사로 재직중이었습니다.그러나 일본말을 한다는 이유로 할아버지는 어디론가 끌려가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종적도 모르는 곳으로 강제 이주당했습니다” 고려인 1세인 이학로씨(가명·77)가 털어놓은 비극적인 삶의 고백이다.고려인들은 밀폐된 화물 열차에 태워져 3개월동안의 ‘죽음의 여정’을 거쳐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중앙아시아의 타슈켄트와 알마타 등으로 옮겨졌다. 강제이주 과정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노약자와 어린이 등 이주민들의 20%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노보시비르스크의 교회에 병든 몸을 의탁하고 있는 김 나제즈다씨(70·여)는 “영하 60도 가까이 내려가는 혹독한 겨울이 고려인들이 모여사는 야쿠트공화국에 몰려와 엄청난 추위와 참을 수 없는 굶주림,전염병으로 어린아이들이 죽어나갔다”며 “카마 마루스카(경찰차)가 돌며 도망치는 사람들을 잡아들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어느새 김씨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기후와 토양이 다른 데다 밥이 아닌 빵으로 연명하다 보니 많은 고려인들이영양실조에 걸렸고 위장병과 간장병에 시달렸다.그러나 약도 없었고 치료도제대로 받지 못했다. 김씨는 당시 가장 슬픈 기억중 하나가 쓰레기통을 뒤져버려진 감자껍질을 찾아 씹어 먹던 일이라며 그때 제대로 먹지 못해 생긴 병으로 지금까지 고생하며 거동이 불편하다고 전한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세계 2차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해에는 고려인들이 수확한 쌀 전량을 옛 소련 당국이 빼앗아 군대로 보내버린 일도 있었다.한번 잘 살아보려던 고려인들의 열망과 의욕은 또 한번 산산이 깨져버린 것이다. 고려인들은 이같은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다.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시베리아의 황무지를 개간해 벼농사를 짓고 각종 채소를 재배해 옛소련 당국을 놀라게 했다.고려인들은 특유의 부지런함과 높은 교육열로 거주제한 등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 시베리아를 옥토로 바꿔 생활의 터전을 마련했다. 하지만 당시 강제 이주를 체험한 고려인들에게는 아직도 그날이 가져다준생채기가 좀처럼 아물지 않고 있다.생존자들 대부분은 이제 60대 후반이나 70대의 고령자들로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가슴속에는 아직도 그때의 생채기가 자리잡고 있어 이들에게는 진정한 고향도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고려인들은 당시 이주가 불법이었다며 러시아 정부에 ‘고려인들의 명예회복’을 호소하고 있다.이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아 마음 편하게살고 싶어하는 것이다. 노보시비르스크(러시아) 김규환 특파원 khkim@. *강제이주 金나제즈다씨. “조국 한국의 품에 안겨 마음 편하게 남은 삶을 살아보는 게 나의 조그마한 소원입니다” 삶과 죽음 사이를 오고 간 1930년대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역사를 대변하는산증인 김 나제즈다씨(70·여)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조그마한 소원을 이루기위해 이름도 ‘나제즈다(소망이라는 뜻의 러시아어)’로 지었다. 김씨가 옛 소련 스탈린의 추방정책에 따라 강제 이주당해 시베리아로 떠돈60여년의 유랑생활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처절한 투쟁의 역사이다.러시아극동 우수리스크 인근 수후사에서 부모형제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던 1937년정치·사상범으로 몰려 아버지와 어머니,남동생과 함께 가장 추운 야쿠트공화국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당시 그곳에는 강제 이주돼온 고려인 100가구가 있었어요.그때 아무런 이유없이 아버지는 형무소로 끌려갔습니다.아버지는 형무소에서 얻은 지병으로 37년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먹을 것을 구해주기 위해 집을 나선뒤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그때 나이가 겨우 8살이었어요.나의 기억으로아버지 친구들은 당시 모두 총살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언니도 이때 영양실조로 사망했습니다” 고아가 된 김씨는 남동생과 함께 지금의 야쿠트공화국내 ‘알단고아원’에맡겨졌다.“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구인지 잘 기억할 수 없어요.나중에 들은얘기로는아버지가 독립군이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김씨의 고아원 생활은 순탄했다.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공부를 제법 잘하고모든 일에 앞장서 고아원 일을 도와줘 고아원 안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이 덕분에 고아원 원장의 도움으로 마가단 광산전문대학에도 진학하게 됐다. 광산전문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59년 마가단에서 만난 러시아인과 결혼해 남편의 고향인 노보시비르스크에 정착,두명의 아들을 낳으면서 행복한 삶을 누렸다. 하지만 달콤한 결혼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첫째 아들을 여의는 아픔을 겪었던 까닭이다.76년에는 남편과 사별하면서 생활마저 궁핍해졌다.엎친데 덮친 격으로 어릴 때의 고아원 시절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나이가 들어영양결핍 증세를 보이며 시력이 약화돼 지금은 실명 상태나 다름없다. “국가에서 연금으로 20달러를 받아요.도저히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그동안 지난(至難)한 칠십 평생을 살아온 그녀는 아직도 강제이주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외로운 마지막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노보시비르스크 김규환 특파원
  • 교향악단 연주실력 ‘점수’매긴다

    성의없이 연주하는 단체는 사절! 다음달 열리는 ‘2000 교향악 축제’에 참여하는 연주단체들은 법정에 서는듯한 긴장감을 맛봐야 할 것 같다.지난 89년부터 이 축제를 열어온 예술의전당이 ‘배심원’제도를 도입키로 했기 때문.낮은 평가를 받은 교향악단에게는 내년 축제에 참여하지 못하는 ‘중형’이 가해진다. 배심원에는 공정성을 유지하고자 ▲전문가▲기자 및 평론가▲PC통신 음악동호회▲일반관객 등 네 그룹을 고루 배정할 계획.교향악축제 운영위원이 주축이 된 전문가 그룹과 기자·평론가 그룹은 연주력과 연주개성 등 음악적인부분의 평가를,PC통신 동호회 및 일반관객 그룹은 전문가들이 놓치기 쉬운연주회 분위기와 매너,운영 등의 평가를 하게 된다. 이 제도를 도입한 데는 지역악단의 연주력 향상에 도움을 주면서,각 교향악단에게 저만의 색깔을 찾아주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평가 결과는 교향악단의개성과 개선점을 찾아내 어느 부분을 더 살리고 무엇을 보완할지를 가리는기초자료로 활용한다. 올해 교향악축제는 국내의 대표적인 지휘자와교향악단을 망라한 13개 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4월3일부터 17일까지 콘서트홀에서 열릴 예정.연주회 시각은 오후7시30분이다.이동호가 지휘하는 제주시향이 막을 열어,정치용의 서울시향이 피날레를 장식한다. 협연자로는 바이올린의 김남윤 강대식,비올라 오순화, 첼로 홍성은, 피아노 김용배 등 국내에서 활동하는 실력파들말고도,줄리엣 강과 레이첼 리처럼 해외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초청했다. 한편 예술의 전당측은 새 밀레니엄을 여는 해인만큼 각 교향악단의 주요 레퍼토리를 19세기 이후 작곡된 곡으로 한정했으며,창작곡을 되도록 한곡씩 연주하는 관례도 이어진다고 밝혔다.구체적인 연주일정은 별표와 같다. 서동철기자
  • 풍경화가 송필용 ‘개골옥류’전

    무등산 자락의 소쇄원 송강정 면앙정 명옥헌 등 조선조 가사문학의 산실인정자와 원림을 고집스레 그려온 풍경화가 송필용(43).그의 땅과 역사에 대한관심이 남도의 산하를 넘어 금강산으로까지 이어졌다.서울 소격동 아트스페이스서울과 관훈동 학고재에서 동시에 열리는 ‘송필용-개골옥류(皆骨玉流)’전은 바위산과 물색 표현에 초점을 맞춘 금강산 작품전이다. 옛 시인이나 화가들은 금강미의 으뜸을 수정이나 서릿발에 비유되는 바위 봉우리의 골산미와 암반을 흐르는 맑고 투명한 비취색 옥류의 금강수에서 발견했다.송필용의 작가적 눈길이 머무는 지점 또한 그곳이다.개골옥류의 이미지를 살려내기 위해 그는 금강산을 무려 네 차례나 찾았다. 금강산이 본격적으로 그려진 것은 고려말 불교 성지로 각광을 받으면서부터. 조선 후기 겸재 정선은 우리 자연을 우리 식으로 해석한 진경산수화를 그려냈고,김홍도의 ‘해산도’‘금강사군첩’등의 화풍은 19세기 전반까지 금강산 그림의 전범이 됐다. 진경산수화가 창조적 활력을 잃은 조선 말 이후에도 금강산그림은 안중식김은호 변관식 등 근·현대 작가들에게 재해석되며 실경산수의 전통을 이어갔다.요컨대 시대를 초월해 우리 민족의 역동적인 힘과 창작혼의 원천이 되어 온 것이다. 그런만큼 금강산 그림이 오늘날 주목받으려면 뭔가 독창적인 기풍이 담겨 있어야 한다. 송필용의 금강산은 어떤 모습인가.만물상 바위 숲을 부채살처럼 배치한 ‘천선대에서 본 만물상’은 겸재의 ‘단발령망금강’이나 ‘금강전도’식의 화법을 따른 것처럼 보인다.어두운 바탕색 위에 흰색을 덮고 칼로 긁어내는 식의 암봉 묘사 기법은 겸재의 수직준법을 연상케 한다. 송필용의 금강산 그림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게 있다면 조선조 분청사기의박지(剝地)기법을 응용한 대목일 것이다.그는 흰 물감을 덮고 물상의 형태를긁어내는 ‘박지화법’을 사용해 암반에 고인 비취색 금강수를 한층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이번에 선보인 ‘해금강’‘해금강문’등의 작품은 박지화법으로 해금강의 눈부신 풍광을 담아낸 득의작이라 할 만하다. 겸재나 단원 소정 등 옛 화가들이 금강산 탐승과사생을 통해 화경의 깊이를더했듯이 송필용 또한 금강산 그림을 통해 자신의 회화세계에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전시는 21일까지 .(02)720-1524. 김종면기자
  • 교황청 ‘기독교 역사적 과오’ 고해

    [로마 DPA 연합] 로마 교황청은 5일 기독교 2000년 역사를 통해 교회가 인류에게 저지른 각종 과오를 공식 인정하는 문건을 발표했다. ‘회상과 화해:교회의 과거범죄’라는 제목의 이 문건은 총 40쪽 분량으로십자군 원정,유태인 탄압,중세고문형,신대륙 원주민 학살 등을 기독교의 과오라고 고백하고 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2일 바티칸 미사에서 이를정식으로 공개할 예정이다.다음은 기독교의 과오 내용를 요약한 것이다. ■피로 점철된 십자군 원정 교황 우르반 2세의 칙령으로 1095년 시작된 십자군 원정은 ‘성지회복’이란 명분아래 유태인 및 회교도들을 무차별 학살했다.십자군 선발대는 7만 예루살렘인 학살,콘스탄티노플·베이루트 등 도시약탈 등으로 회교권에 기독교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을 심었다. ■유대인 박해 몇십년 전까지만도 교회는 반유태주의를 공공연히 표방해왔다.초기 기독교도들은 예수를 죽였다는 이유로 유태인을 저주했으며,십자군 원정기에는 교회가 유태인 탄압에 앞장섰다.교회의 가장 고통스런 과거는 나치의 유태인 대량학살(홀로코스트)에 침묵했다는 점.교황청은 98년에야 나치에대한 기독교의 저항이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마녀사냥 등 가혹한 형벌 신앙의 순수성을 수호한다는 명분하에 중세 교회는 각종 고문형을 자행했다.12세기 성로마제국의 프레데릭 2세가 화형을,교황 이노센스 4세는 고문의 사용을 승인했고 15세기 마녀 화형식은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교회의 고문형은 19세기나 돼서야 공식 폐지됐다. ■신대륙 무차별 학살 방조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이듬해인 1493년 교황알렉산더 6세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신대륙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고 선교등의 명분아래 이들의 정복활동을 옹호,방조했다.정복자들의 학살극으로 처음1,500명에 달하던 멕시코 원주민 수는 16세기 30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 [김삼웅 칼럼] 불복종운동과 헨리소로

    여러 해 전 미국 보스턴에 머물때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통나무집을 짓고살았던 월든 호반을 찾았다. 보스턴에서 서북쪽으로 30마일쯤 달리면 콩코드마을이 있고 여기서 몇 마일 더 가면 경관 좋은 월든 호반이 천고의 옛 모습을 자랑하듯 고요히 자리잡고 있다. 소로가 인적이 없는 이곳에 오두막집을 지은 것은 28세 되던 1845년의 일이다. 미국독립 100주년인 7월 4일을 기해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이 집은 폭이10피트, 길이 15피트, 8피트 기둥들로 지어졌다. 총 비용이 29달러(당시) 들었고 나머지는 모두 직접 노동으로 이루어졌다. 소로는 이 집에서 2년여 동안 자연생활을 하며 살았다. 개간한 땅에서 심은콩을 주식으로 하였으며, 월든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부식으로 먹었다. 이런식생활로 1년 식비가 9달러를 넘지 않았다. 이곳 생활에서 그는 사색을 깊이 했고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가 순수한 말과행위의 시인이 되었다. 내가 찾았을 때는 원형대로 복원한 통나무집은 풍상에 바래고 안내원이나관리인도 없었다. 그렇지만 소로가 살았던 흔적은 곳곳에배어 있었다. 하버드대학 출신으로 세속적 성공에 회의를 느낀 소로는 2년여의 짧은 ‘숲속의 생활’이지만, 그리고 하루동안의 감옥생활에 불과했지만 그는 적어도21세기 인류가 지향하는 두가지 사상적 조류를 남겼다. 20세기에도 ‘뜻있는’사람들에게 그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소로의 자유주의와 비폭력 불복종사상은 19세기 후반 영국 노동당의 이념적지표가 되고, 톨스토이가 비폭력주의를 내세우며 평화운동을 전개하게 되고, 간디의 인도독립운동의 지침이 되고,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 흑인해방운동으로 전개되고, 일본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절대반전운동·무교회주의의 원천이 되었다. 한국의 함석헌·김교신 등은 우치무라의 영향을 받았다. 소로의 사상은 21세기 인류가 지향하는 양대 사상적 조류로 이어진다. 자연주의와 시민운동이 그것이다. 그는 무척 자연을 사랑했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내가 마침내 죽음을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월든) 우리가 요즘에야 자연보호운동에 나서고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에 비하면 150여년 전 소로의 실천적 자연주의사상이 얼마나 앞선 것인가를 알게된다. 소로는 개인의 자유가 국가권력보다 더 높다고 생각하는 자유주의자다. 이같은 신념에서 미국의 멕시코 침략 전쟁과 노예제도에 반대하고 인두세의 납부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콩코드감옥에 갇히고 짧은 감옥살이지만 값진 경험으로 ‘시민의 불복종’을 쓴 계기가 되었다. “지배하는 것이 가장 적은정부가 최상의 정부”란 명구로부터 이 책의 서두는 시작된다. 에머슨이 감옥에 있는 소로에게 “너는 왜 그곳에 있는가?”하고 물었을 때 “당신은 왜 이곳에 있지 않습니까?”하고 되물었다는 이야기에는 묵시적인뜻이 함축된다. “누구라도 부당하게 감옥에 투옥하는 정부밑에서는 의인을위한 참된 장소는 감옥이다”란 경구에서 우리는 소로의 실천적 자유인의 모습을 찾게 된다. 최근 낙천·공천철회 운동과 이를 봉쇄한 선거법에 대해 총선연대가 불복종으로 맞선것은 실정법과 시민권(천부인권)의 숙명적 대립이라 할 수 있다. 시민불복종운동을 옹호하는 데 있어서 소로는 몇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부당한 법이 있다고 하자. 그때 우리는 이를 지키는데 만족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수정하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수정할때까지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즉시 그것을 어겨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나는 정의에 준할만큼 법에 대한 존경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옳다고 믿는유일한 의무는 언제든지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답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다수가 아니라 개인의 양심이다. 즉 우리는먼저 인간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연후에 국민이어야 한다”는 것이 소로의 명쾌한 해답이다.
  • 한족 출신 ‘메조틴트’ 작가 범민 ‘韻’ 작품전

    범민(37)은 한국에 유학중인 한족 출신 판화가다.메조틴트에 관한한 현대중국 판화작가로서 거의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중국 현대판화의 흐름,그리고메조틴트의 세계를 온전히 엿볼 수 있는 ‘범민 판화작품전’이 서울 관훈동 아트사이드넷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다.29일까지. ‘운(韻)’이라는 제목의 이 전시에는 대부분 메조틴트 기법을 이용한 작품들이 나와 있다.메조틴트는 동판화에서 사용하는 직각 제판기법의 일종.그제작과정은 적잖은 노동을 수반한다.먼저 동판 위에 로커(rocker)라는 톱니모양의 날을 가진 조각칼로 작은 구멍들을 낸다.판각할 때 생긴 거친 부분은스크레이퍼라는 끌로 제거하고 홈에 잉크를 부은 뒤 천으로 문지른다. 판면에 따라 바니시(수지를 휘발성 기름 또는 건성 기름에 용해한 것)를 사용해회색에서 백색까지 인쇄되도록 단계적으로 마무리한다.메조틴트는 판에 직접새긴다는 점에서 약물제제에 의한 부식작용을 이용하는 에칭이나 동판부식법과는 다르다. 범민의 작업에서 특이한 점은 컬러판을 모두 중국의 수인목판 형식으로찍는다는 것.컬러 메조틴트로 널리 알려진 작가 황규백의 판화와 방법론상으로다른 점이 바로 그것이다. 메조틴트는 19세기 들어 사진에 그 자리를 넘겨 준 채 퇴조,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국내에서 메조틴트 작업을 하는 판화작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홍익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하는 이 이방의 학생이 보여주는 메조틴트작품들은 여러가지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김종면기자
  • [21세기 문화프론트라인](7)퀴어문화

    *최초 전문잡지 '버디'편집장 한채윤씨. 지난 95년 연세대 사회학과 학생인 서동진씨(34·현재 대학원 박사과정)가국내 처음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커밍아웃(친지나 동료들에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알리는 행위)을 감행한 이래 ‘이성애 제도에서 소외된 성적 소수자’를 가리키는 퀴어운동이 양적 팽창을 이루었다. 21일 오후 신촌의 한 레즈비언바에서 만난 한채윤씨(29)는 직업적인 동성애이론가겸 실천가로 불려지길 원한다.“퀴어운동의 외연이 확대됐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성적 소수’임을 자각케 하고 동성애를 양지로 끌어낸 것이 지난 운동의 성과였다면 이제는 이를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정착시키는노력이 필요합니다.”부산에서 태어나 대학을 다니던 그녀는 성적 정체성을 깨닫고 부모를 제외한 형제와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그뒤 서울에 올라와 98년 2월 우리나라 최초의 동성애 전문잡지 ‘버디’(www.buddy79.com)를 창간하는 작업을 주도했고 편집장으로서 지금까지 16호를 발간했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상 버티기 어려운 일을 해낸 그로부터 퀴어문제의 오늘과 내일에 관해 들어보았다.사진촬영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인터뷰는 성사됐다. ●동성애자 동호회와 인터넷사이트가 100군데를 넘어서는 등 퀴어운동이 성장한 배경은. 익명성이 보장되고 정보가 쉽게 공유되는 사이버 공간이 확보된 점을 들 수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서씨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커밍아웃이다.평생 버림받고 고립된 생활을 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과감히 벗어남으로써 다른 이의용기를 북돋웠다는 점이 그렇다. ●성정치학은 무엇인가. ‘성은 곧 본능’이라는 고착된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오늘날 성개념의 상당부분이 정치적으로 조작됐다는 점을 폭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이는 산업혁명이후 노동력 재생산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동성애 문제에 국가권력이 개입하기 시작한 점에서도 알 수 있다.변태라는 개념이 19세기에 출현한 점도흥미롭다. ●한계는 없는가. 성정치학적인 접근은 답보상태다.현실적인 퀴어이론은 또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연세대 대학원을 나온 지식권력이,또 서울대·고려대 학생들이 커밍아웃을 하는 데 대해 한 수 접고 들어간다.그전까지는 변태라고 일축하면그만이었는데,지식인들이 커밍아웃을 하자 움찔한 상태이다.‘보수로 찍힐까 봐’말못하는 지식인들이 많다.마음에서 우러나서 퀴어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앞으로의 활동방향은. ‘버디’는 존재한다는 자체로 퀴어운동의 참호 구실을 한다.잡지와 인터넷홈페이지,연극,영화 등 매개체를 계속 늘려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여성단체 등과도 교류해 소외된 이들을 돕는 데 나설 것이다.예를 들어 퀴어와 전혀관계없는 일처럼 보이는 호주제 폐지와 같은 운동에도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노동운동에서도 퀴어는 좋은 운동요소가 될 수 있다. 다양한 성이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페미니즘 진영에도 도움이 된다.남성과 여성으로 나뉜 이분법적 대결구도를 타파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퀴어는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퀴어의 참뜻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동성에 관해선 잘 안다고 여기지만 그렇지 않다.자신이모르는 것을 정확히 인정해야 한다.동성애든 이성애든 객관화하고 논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성애도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사랑의 감정이 우선해야 하는데 아직도 많은이들은 퀴어를 섹스로 보는 측면이 있다.여성으로서 여성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하나의 축복으로 받아들인다. 그녀는 헤어지면서 “성은 고착된 개념이 아니다.성의 다양성 등을 더욱 진지하게 접근하고 논의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퀴어에는,우리가더 알아야 할 것들이 ‘발견’을 기다린 채 숨어 있다. 임병선기자 bsnim@. *퀴어란 '性的 소수집단이나 개인 지칭'. 퀴어(Queer)는 이성애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소외된 성적 소수집단이나 개인을 지칭하는 말.여기에는 동성애자·양성애자·성전환자 등이 포함된다.우리말로는 일반과 다르다는 뜻에서 이반(異般)이라고 부른다.일반이라는 단어를 패러디한 일종의 은어다.퀴어문화,퀴어 정체성,퀴어 정치학….그 폭넓은 쓰임새에서 보듯,퀴어는 이제 현대를 읽는 단서요 오늘을 말하는 화두다.퀴어는 동성애자뿐 아니라 양성애자와 성전환자도 포괄한다.하지만 퀴어논의는주로 동성애 문제에 집중된다. 한국의 동성애자 운동은 1994년 시작됐다.이 운동은 동성애를 단순한 성적취향의 문제가 아닌,성적 정체성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게이 모임인 ‘친구사이’,레즈비언 모임인 ‘끼리끼리’등이 탄생했으며,‘마음001’(서울대)‘컴 투게더’(연세대)‘사람과 사람’(고려대)등 대학가동성애 모임이 잇따라 생겨났다.이태원 등지의 ‘핑크 경제’도 한층 생기를 띠게 됐다. 그러나 이성애 중심의 주류문화에 도전하는 동성애자 문화가 곧바로 가시적인 대항문화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동성애는 여전히 금기의 대상이다.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드러내는 것,즉 ‘커밍아웃(Coming Out)을 감행하는 데는 적잖은 용기가 필요하다. 동성애는 더이상 퀴어의 사전적 의미대로 이상하고 수상쩍은 것이 아니다.90년대 중반들어 동성애라는 소재는 영화나 문학작품 등에서 곧잘 다뤄졌다.한 예로 박재호감독의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1995)은 국내에서 동성애를진지하게 다룬 첫 영화로 기억할 만하다.이영화는 동성애를 가족제도의 연장선상에서 봄으로써 동성애 담론의 수준을 한단계 높여줬다.‘차이의 시선,부정의 시선’이란 주제로 열린 98년의 제1회 서울 퀴어영화제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상영작 대부분이 매진되는 등 화제를 모았다.올해는 제2회 퀴어영화제가 열릴 예정이다.‘아이다호’‘카우걸 블루스’의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이반(異般)단체의 지원을 받아 영화를 찍었듯이,퀴어 시네마가 활성화하려면 동성애공동체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동성애를 다룬 최근 문학작품으로는 전경린의 단편 ‘다섯번째 질서와 여섯번째 질서 사이에 세워진 목조 마네킹 헥토르와 안드로마케’를 꼽을 수 있다.소설의 여주인공 금주는숨겨둔 애인이 동성애자임을 알고 당황한다.그는 결국 동성애를 이해하게 되지만 묘한 공허감만은 떨쳐버리지 못한다. 동성애자를 다룬 영화든 소설이든 그것이 퀴어문화의 이름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성의 정치학’을 구현해야 한다.그동안 우리 문예작품 속의 동성애는 정형화한 이미지로 재현되거나 두리뭉실하게묘사돼온 측면이 강하다.성적 소수집단의 이미지와 언어를 면밀하게 파악,퀴어문화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것이 긴요하다. 김종면기자 jmkim@.
  • [외언내언] 다뉴브강의 비극

    19세기를 장식하는 선율인 요한 슈트라우스의‘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은지금도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곡이다.왈츠의 경쾌한 선율은 햇살에부서지는 푸른 물결을 떠올리며 듣는 이로 하여금 삶의 기쁨과 마음의 평화를 가져준다.이 때문에 즐거운 연회에서‘도나우강’이 자주 연주되고 의학적으로는 우울증 심리치료에도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연구됐다. 영어로‘다뉴브’인 이 강은 남부 독일에서 시작해 체코·유고·불가리아등중부 유럽 8개국을 거쳐 흑해로 들어간다.라인강과 더불어 유럽의 문화와 풍요를 꽃피운 젖줄이다.32년 공사 끝에 92년 완공된 유럽대운하(RMD)는 라인·마인강과 연결돼 유럽 15개국의 물자교류를 촉진하는 교량 역활을 한다. 공사비의 25%가 강의 생태보존에 쓰인 환경친화적 강으로 꼽힌다. 그러나 얼마 전 외신은 루마니아의 한 금광에서 흘러나온 맹독성 폐수가 다뉴브강으로 흘러들어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주변 농경지가 시안화물에오염돼 죽음의 땅으로 변하고 있다고 전한다.슈트라우스가 빈의 다뉴브 강변을산책하며 작곡의 영감을 떠올렸던 아름답고 푸른 강물이 이웃나라 한 기업의 부주의로 한순간에 죽음의 강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제 환경은 한 집단이나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 지킬 수 없는 인류 공동의책임이 뒤따라야 하는 문제임을 실감시켰다.다뉴브강 오염은 유럽 대부분의국가가 이 강에 대한 공동이용협약을 맺고 국가 이익보다 공동의 번영을 위해 환경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간 예이다.다뉴브강을 원상 복구하려면 앞으로 몇십년은 걸린다니 말이다. 다뉴브강의 비극은 이제 먼 나라 일이 아니다.환경보존은 공동으로 노력하고 모두가 지킬 때 가능하다.환경은 많은 사람들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지만한 사람이라도 소홀히 한다면 지켜질 수 없는 취약성이 있다.우리 나라도 한강·낙동강 등 수계별로 상류의 토지 이용 규제,하류의 물 사용료 부과 등수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만 지역 이해가 엇갈려 백년하청(百年河淸)인 형편이다.낙동강 수질 개선에만 8조5,000억원이 필요하다니 개발 우선의 환경파괴가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알 수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최근 환경부 업무보고에서‘공기와 오존,바다의 오염은 국제협력이 필요한 만큼 러시아와 중국·일본과 협력해야 한다’며 환경문제의 국제협력 강화를 다짐했다.다뉴브강 오염을 두고 국제적 책임 공방이 뜨겁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환경문제는 예방이 최선이며 국제협력이필수적이다.우리의 금수강산도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중국의 협조 없이는 지킬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이기백 논설위원
  • ‘악마의 선물’ 감자의 역사이야기

    감자만큼 역사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끼친 식물이 또 있을까. 래리 주커먼이 쓴 ‘악마가 준 선물,감자이야기’(지호)는 감자가 세계인의 삶의 형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다각도로 탐색한다. 감자는 원래 안데스 산록의 잉카인들이 먹던 식량.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유럽 등 전 세계로 펴져 나갔다.처음에는 관상용과 최음제로 오인됐으며 나중에 식용임이 밝혀지자 ‘마귀를 섬기는 부족의 불경스런 땅속식물’로 배척받기도 했다. 저자는 감자가 넓게는 인구 증가와 산업혁명 등에 영향을 미쳤고,좁게는 토지의 이용과 가사(家事)에 변화를 가했다고 밝힌다. 영국에서는 손쉽게 쪄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혁명기 도시 노동자의 주식으로 자리잡았고 미국에서는 음식혁명을 일으키면서 포테이토칩시대를 열었다.역자 박영준씨는 우리나라의 경우 민란과 폭동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19세기초 감자가 들어오자 산으로 피신,화전에서 기른 감자로 연명했다고 말한다.값 1만3,000원. 정기홍기자
  • [기고] 문화의 시대

    새 천년을 맞은 지도 벌써 한달 하고도 반이 지났다.보내는 20세기와 맞이하는 21세기로 세상이 온통 축제무드에 싸이기도 했다.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의 축제 분위기를 CNN뉴스를 통해 세계로 전파하기도 했다.지구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임을 실감나게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이제 차분히 새 천년의 설계를 실천에 옮기는 일만이 남았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지난 20세기 마지막 한해 동안 귀에 못이 박힐정도로 많이 들어왔다.그렇다면 문화란 과연 무엇인지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문화란 인간집단이 생활하면서 이루어지는 모든 양식을 말한다.19세기 후반 영국의 유명 인류학자 타일러는 문화를 일컬어 “지식 신앙 도덕 법률 관습,그리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간에 의해 얻어진 모든 능력과 습성의 복합적 총체”라고 했다. 문화는 축적되고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또 변하는 속성이 있다.한 민족의 문화는 반드시 그 뿌리에서 생성되고 발전되는데 그 뿌리가 바로 문화유산이다.문화유산은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또 유일한 것으로 그민족의 얼이 그 속에 살아 숨쉰다.따라서 문화유산은 나와 우리를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자산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남북이 함께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데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해답을 문화유산에서 찾지 않으면 안된다.왜냐하면 문화유산은 우리민족 공동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새 천년 새해의 국정지표 가운데 남북협력 촉진이 포함되어 있다.이것은 범민족적 차원에서 모든 분야에 서로 협력하자는 의미일 것이다.이미 체육과공연예술 교류가 극히 일부나마 이루어졌고 나아가 경제 교류도 본격적으로이루어져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그러나 무엇보다도 학술 분야의 교류가시급하다.학술 교류 가운데서도 문화유산 분야의 교류가 우선되어야 한다.문화유산의 공동연구야말로 항상 말하는 민족동질성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기초이기 때문이며 또 이것이 확인되지 않으면 동일민족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계가 정보화되고 인터넷 공간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져 세계가 하나로 된다해도 경복궁이나 금강산을 뉴욕이나 다른 나라에 옮겨 놓을수는없는 것이다.이 말은 어느 민족이든 자연과 문화유산은 세계화와 무관한 것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를 묶어주고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만의 색깔인 것이다.사람이 아닌 자연과 문화유산,그리고 민족 고유의 문자만이 그민족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남북한은 각자의 방식대로 문화유산에 대한 조사나 연구를 진행하면서 각각 나름의 성과를 이루었다.그러나 이제 각자의 연구에서 공동의 연구로 전환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새 천년을 맞아 민족동질성 회복이라는 공동목표를 위해 하루빨리 문화유산의 공동조사연구를 서둘러야 하겠다. 무엇보다 먼저 현재 북한 땅에서 대규모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경수로 건설 지역이나 금강산지구는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 개발될 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공사에 앞서 남북한 공동으로 문화유산 조사가 있어야할 것이다.개발로 인한 문화유산의 파괴는 먼 훗날 후손들로부터 민족의 뿌리를 없앤 조상이라는 말을 듣게 할 것이다.개발이 조금은 늦어지더라도 반드시 공동조사가필요하다.그렇게 됨으로써 자연적으로 교류가 이루어질 것이다. 조유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 ‘자료로 보는 한국 근현대 100년사-국사(하)展’

    한국 근현대사의 자취를 시청각 자료로 살펴보는 색다른 전시회가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열린다.‘자료로 보는 한국 근현대 100년사-국사(하)전’.17일부터 4월12일까지 열리는 이 기획전에는 문학·음악·연극·영화·무용등 각 예술장르를 망라하는 시청각자료들이 두루 전시된다. 전시 제목은 고교 국정 국사교과서 상·하에서 따온 것.국사교과서에는 근대사회가 태동한 것을 1600년대로 본다.그러나 이번 ‘국사(하)전’은 추사 김정희가 고증학의 시대를 연 19세기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추사 시대를 근현대로 이행하는 전환점으로 삼은 데는 이유가 있다.추사의문하에는 진경문화를 이끌던 세가자제 보다는 한미한 양반이나 중인 이하 신분 출신들이 많았다.이들은 고증학 이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꿈꿨다.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서원을 철폐하고 성리학 이념을 부정하는 개혁정치를 펼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추사의 제자였기 때문이다. 97년 문민정부까지를 다루는 이번 전시의 특징은 전시자료 대부분이 원본 그대로라는 점.그런만큼 지난 시절의 역사를 보다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다.시각자료는 각 시기의 사건을 신문·잡지·포스터·그림별로 정리해 보여준다. TV와 라디오로 방송된 역사극이나 다큐멘터리 뉴스 드라마의 주요 장면도 시대별로 편집해 모니터로 방영할 예정.영화도 시기별로 나눠 상영한다. 신문의 경우 한국근대신문의 효시인 한성순보(1883년),최초의 일간지 매일신문(1898년),순한글일간지인 제국신문(1898년) 등의 창간호와 처음으로 컬러인쇄가 들어간 조양보(1906년) 등이 전시된다.문학작품으로는 1884년에 나온 ‘충효경집주합벽’과 딱지본 소설인 이해조의 ‘옥중화’(1913년) 남궁준의 ‘학의 성’(1914년) 신소설 ‘탄금대’(1923년) 이광수의 ‘사랑’ 등이 선보인다.미술작품과 달력,포스터 등도 눈길을 끌만 하다.추사 김정희,소치 허련,심전 안중식,춘곡 고희동,청구 이마동,석파 이하응,정월 나혜석 등의그림도판과 1871년에 나온 명시력 등 달력,그리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포스터인 ‘님자업는 나루배’(1932년) 등이 출품된다.음악으로는 ‘경부철도노래’(1908년)와 윤극영의 동요 ‘푸른 하늘 은하수’등이 소개돼 향수를자극한다.한편 가수 패티김 남진 양희은 이선희 이승철이 전시기간중 한차례씩 나와 노래와 함께 가요사 이야기를 들려준다.‘…국사(하)전’의 입장료는 일반 2,500원,학생 2,000원.(02)720-5114. 김종면기자
  • 佛 문학·연극에 나타난 ‘눈물의 역사’

    눈물은 왜 어떤 때는 찬양받고 어떤 땐 비난받을까. 유럽문화의 개화기인 18∼19세기 프랑스문학과 연극 등을 통해 눈물의 형태와 의미를 살펴본 책이 나왔다.프랑스 역사학자 안 뱅상 뷔포가 쓴 ‘눈물의역사’(동문선펴냄). ‘괴로워하는 여인을 보고 당신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기는 쉽지 않다.그러나 그녀가 느끼고 있는 것을 모두 얘기할 시간을 준다면 당신은 금방 눈물에 젖을 것이다’(장 자크 루소) 저자는 이처럼 계몽주의 철학자 루소,프랑스혁명이 낳은 웅변가 미라보,백과사전파의 선두주자 디드로와 달랑베르 등의 문학작품과 재판기록,연감,의학서적,일기 등을 엮어 눈물의 변천사를 서술한다. 책은 18세기와 19세기 전반,후반 등 시대를 셋으로 나누어 눈물을 분석한다.우선 18세기는 ‘눈물의 시대’였다.남자든 여자든 걸핏하면 남들 앞에서울었다.이런 유행은 1730년대에 최고조에 이르렀다.사람들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찬양받았고,눈물을 짜내는 최루희극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런 ‘눈물의 과잉’은 19세기 초반 변화를맞았다.기독교의 고뇌주의에 따른 자기억제와 낭만주의가 결합되면서 감상적인 눈물이 폄하되고감수성에서 우러나는 눈물이 높이 평가받게 됐다. 19세기 후반에는 눈물을 보는 시각이 더욱 엄격해졌다.남자의 눈물은 혐오의 대상이 됐다.여성의 눈물마저 불안과 동일시됐다.따라서 연극에서 멜로드라마가 퇴조하고 자기억제가 더욱 중시되게 됐다. 지난 86년 프랑스 리바주 출판사에서 역사총서 제1권으로 나온 것을 이자경한국외대 강사가 번역했다.값 1만8천원. 박재범기자
  • 현대 자본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시장과 경쟁 만능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사회주의가 거의 몰락하고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풍미하는 가운데 자본주의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영국의 18∼19세기를 돌아봄으로써 현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미리 점검하는데 시사점을 던지려는 국내 역사학계의 시도가두드러지고 있다.이를 반영한 책이 최근 나온 ‘다시 돌아본 자본의 시대’(이영석 지음 소나무 펴냄)와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에드워드 P 톰슨 지음 창작과비평사 펴냄)등이다. 우선 이영석 광주대 교수는 “현자본주의를 현상분석하는 것만으로는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문제의식 아래 영국 산업혁명기와 이 시대를 둘러싼 현대의 논쟁을 전한다.구체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발달,노동계급의 형성 등이 이뤄진 19세기의 영국상황을 총체적으로 분석,계량분석으로 나아가고 있는 현대의 수정주의적 관점을 비판한다.여기서 저자는 수치적으로 당시 GNP의 증가는 그다지 크지 않았더라도 삶의 양식,문화,지식인의 태도 등은 큰 변화를 맞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책에서 세계중심국가로 대두됐다가 주변세력으로 전락한 영국이 ‘왜 그렇게 됐는가’라고 묻는다.이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지난 80년대 벌어진 장기불황의 원인에 관한 논쟁을 정리한다.저자는 당시 영국의 지식인들은 불황의 원인을 2차산업혁명이 일어난 1870년대 이후의 영국경제상황에서찾으려 노력했고 이런 노력이 국민모두에게 영향을 끼쳐 마침내 대처리즘이탄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특히 미국학자가 제시해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기업가실패설’을 소개,우리의 지도층에게 나름대로 메시지를 전하려애쓴다.이 실패설은 “당시 기업가들이 지배층이던 지주(젠틀맨)의 생활상을 모방함으로써,근면 노력 창의 혁신 등 새로운 가치관을 생성하는 데 실패한 것이 영국의 몰락원인”이라고 주장한다.이 부분을 보면 최근 국내의 ‘신흥부유층’과 당시 영국기업가들이 어쩌면 그리도 비슷한지 하는 탄성이 일게 된다.값 1만3,000원. 지난 60년대,‘노동의 전진’이 크게 진행된 시기에 나온 톰슨(1924∼1993)의 책 역시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정보통신시대가 전개되는 현시점에서 의미가 깊다.비록 현재 유럽에서 노동계급이라는 말이 거의 사라질 정도가 됐지만,‘노동계급은 노동자에 의해 주체적으로 형성됐다’는 톰슨의 관점은 여전히 유용한 언급으로 보인다.사회에는 언제나 강자와 약자가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통신혁명시대에 사회적 약자의 괴로움을 덜어주기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책은 사회가 약자를 지원하고 보완함으로써 국가를 건강하게만드는 책임을 지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톰슨은 20세기 역사가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저자 250명중의 한명으로 꼽힌다.책은 나종일 서울대 명예교수와 유재건 부산대 교수,한정숙 서울대교수를 비롯한 서양사학자 6명이 10년을 투자해 공동번역했다.상·하 두권으로 번역분량이 1천2백여쪽이다.상·하 각각 3만원. 박재범기자 jaebum@
  • 종교다원화 시대 종교정책

    앞으로 우리 정부의 종교정책은 종교다원 현상의 확대가 지닌 사회적 의미를 인식한 뒤 결정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최근 한국문화정책개발원(원장 이종석)이 문화관광부의 용역으로 발표한 ‘해외각국의 종교현황과 제도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세기의 세계 종교다원 상황이 가장 실감나게 드러난 국가인 것으로 조사됐다. 종교다원현상이란 한나라 혹은 한 문화권 내에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것으로 19세기 특정지역이나 국가에 특정종교가 지배하거나 특정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종교만을 종교로 이해했던 상황에 반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자수에 있어서 국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종교가 없고,종교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종교도 없다.95년 인구조사에서 기독교(개신교·천주교)와 불교 등 두 종교가 전체인구의 49.8%,종교인구의 97.4%에달했지만 유교 인구가 조사되지 못했고 개신교와 천주교가 사실상 다른 종교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우리의 종교다원화 현상은 두드러진다고 볼수 있다. 따라서 보고서는 앞으로 정부가 더이상 종교를 통해 국민적 일체감이나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종교정책의 기조가 종교를 통한 사회통합이 아니라 종교로 인한 사회통합의 저해요인을 없애는 것이 돼야 한다는 의미이다. 다음으로는 종교에 대한 교육적 차원의 관심이 정책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올바른 종교생활과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여러 종교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이를 위해선 종교에 대한 교육이 가장 효과적이고 적절하다는 것이다.특히 종교가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세계의 여러 문화가 우리문화에서 더욱 빠르고 깊게 전이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할 때 객관적이고 공정한 종교교육이 강조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또 전통적인 종교를 고수하려는 세력에 대한 대책 마련을 주장하고 있다.기존 종교들의 보수적이고 회귀적인 운동은 민족주의나 인종주의,지역할거주의 등 다양한 정치적 이데올르기와 결합할 때 폭력적인 사태로 발전할수 있다는 것이다.이른바 이슬람 근본주의나 힌두교 원리주의자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정갑영(46) 연구실장은 “정교(政敎)의 분리가 국가와종교의 관계로 정착되고 있는 세계의 현실에서 종교 다원상황은 더욱 확대될것”이라며 “국민들의 올바른 종교생활을 위한 정부의 정책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아시아에 부는 영어 바람] 국가경쟁력 필수 ‘무기’

    이젠 아시아에서도 영어가 대세(大勢)인가.중국어 일본어가 주요 언어인 아시아에 영어가 빠른 속도로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미국에 이은 두번째 경제대국인 일본에서 공용어 대상이 될 정도로 영향력을 확대했다.우리나라도 영어 공용어 채택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미국 중심의 인터넷 이용자들의 급격한 증가와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의 영향이 가장 큰 요인.인터넷 인프라스트럭쳐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인 미국의 ‘잉크터미’와 일본의 NEC가 전세계 웹사이트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영어 강세의 조류를 읽을 수 있다. 전세계 웹사이트 495만여개에 올라있는 웹 문서(documents)는 10억개.이중영어로 된 것이 86.55%나 됐다.영어의 영향력 확산에 불을 지핀 셈이다.서방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영어는 필수불가결한 무기라는 인식의 확산도 한 몫하고 있다. 현재 모국어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아시아 인의 숫자는 3억5000만명.홍콩·싱가포르·필리핀 등에서는 이미 영어가 민족어에 앞서 제 1언어로 자리잡았다.정치·경제의 중요한 자리도‘영어계’가 장악해 가고 있다.동남아국가연합(ASEAN)의 공용어도 영어로 낙찰됐다. 세계 2위의 인구대국 인도조차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영어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다.인도는 힌두·벵골어 계통의 언어 16개와 영어를 공용어로 삼고있으나 인도 상류층을 중심으로 유력 언어가 됐다. 극단적인 아시아주의를 표방해온 말레이시아 역시 예외가 아니다.마하티르모하메드 총리가 국가발전을 위한 전략으로 영어를 배우느냐,말레이어를 고집해 경쟁에서 처지느냐의 기로에 서있다며 영어교육 활성화의 기치를 높힌것도 5년전의 일이다. 영국 식민통치때부터 사용해온 영어를 금기시하고 고유 말레이어만을 고집한 결과 국가 경제적 측면에서 많은 손해를 입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외국어로 진행되는 모든 종류의 교습행위를 금지,외국인 교사 채용을 원천봉쇄하고 있는 법을 고쳤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영어가 하나의 ‘패션’이다.대화 도중 영어를 섞어 쓰는 것을 지적능력과 성공의 척도로 간주되고 있다.영어교습소는 유례없는 호황을 맞고 있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에도 영어바람은 어김없이 불었다.베트남 정부는 각부처 차관을 포함한 고위급 관리들을 대상으로 국립행정과학원에 1년짜리 영어강좌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제재 철회이후 봇물처럼 밀려온 외국 기업인들을 상대로 더 많은 투자를 이끌어 내야 하는 베트남 관리들에게 영어숙달은 발등의 불이다. 캄보디아에서도 대학에서 “프랑스어 대신 영어를 제 1외국어로 채택해달라”는 시위를 벌일 정도로 영어는 그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물론 아시아의 맹주임을 자부해온 중국에서는 ‘영어제국주의’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다.중국의 인터넷 사용자는 99년말 900만명에 육박했고 영어실력 또한 아시아 국가중에선 출중하다. 그래도 두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인터넷 주소 등록 및 관리기구인 ‘중국인터넷정보센터’(CNNIC)는 인터넷 주소 등록은 영어대신 중국어로 하도록권장하고 있다. 박희준기자 pnb@ *싱가포르 성공사례 외국인들에게 아시아에서 가장 살기 편한 나라로 꼽히는싱가포르.잘 갖춰진 기간시설,편리한 숙박·교통망보다 더욱 매력적인 것이 어디가나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다는 점이다.운전기사나 식당 웨이트리스까지도 영어가 ‘확실히 되는’싱가포르는 정치,경제,언론에서 직장,동아리활동까지 공식적인사회활동이 모두 영어로 이뤄진다. 인구 70%이상이 중국계이며 기타 말레이,인도계 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가 대표적 영어권으로 자리잡은 데는 이 나라만의 특수한 역사를 빼놓을 수없다. 150여년 영국통치끝에 말레이령에서 독립한 싱가포르는 소수 말레이계 지배층이 다수 화교를 통치,부작용이 잇따르자 국가통합의 도구로 영어공용어 정책을 폈다.중국어,말레이어,타밀어 등 민족언어도 국어로 인정하면서 영어를 못하면 일정 지위 이상 오를 수 없도록 사회구조를 만들어 영어가 대세로자리잡도록 했다. 이러한 정책이 반발없이 먹힐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영어가 국가경쟁력으로 직결됐기 때문.서울만한 면적에 인구 400만에 불과한 이 도시국가가 서구 선진국의 아시아 전초기지가 되기까지 영어구사가 가능한 질좋은 노동력은 최대 매력포인트였고 이는 경제부강으로 이어졌다. 싱가포르의 경쟁력은 인터넷 시대에 더욱 돋보인다.현재 야후에 영어로 등록된 싱가포르 국적의 사이트는 한국의 2배,정부 홈페이지는 5배가 넘는다. 싱가포르에서는 이젠 국가경쟁력 제고의 관건으로 ‘싱글리쉬’(민족토속어 억양과 발음이 짬뽕된 영어) 탈피운동을 펼치고 있다.보다 세련된 영어구사가 목표가 되고 있는 셈이다. 번영의 과실에도 불구하고 영어가 싱가포르의 뿌리를 알게 모르게 좀먹고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일부 학자들은 이질적인 민족들을 영어가 묶어주기는 커녕 국가의 정체성을 더욱 흐려놓았다고 우려하기도 한다.소속감도 없이개인주의적인 싱가포르인들의 성향을 대표적 부작용으로 지적한다. 손정숙기자 jssohn@ *일본 실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민방의 한 TV 프로그램.미국인 진행자가 길거리의 일본인에게 간단한 상황을 영어로 대답할 것을 요구하면 한결같이 쩔쩔맨다.어쩔줄 몰라하며 엉뚱한 대답을 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즐거워한다.‘영어 벙어리’에 가까운 일본인의 자화상을 자조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상당수 일본인들은 영어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는다.도쿄의 외국인회사에 근무하는 후에키 다카코(笛木貴子·25·여)씨는 “세계 어디를 여행하더라도 일본말로 응대해주기 때문에 영어를 쓸 일이 없다”고 말했다. 25일 발표된 98∼99년 아시아 각국의 토플(TOEFL) 성적은 일본에 큰 충격이었다.97∼98년 북한과 함께 최하위로 추락했던 일본은 이번에 꼴찌를 면하고18위로 올라서는가 싶더니 북한(15위)에게 추월당했다. 상황이 이쯤되자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의 자문기관인 ‘21세기 일본의 구상’은 이달초 일본인의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 영어를 제2공용어로 채택하자는 보고서를 냈었다.그러나 영어의 공용어화가 실현될 지는 의문이다.19세기말 메이지(明治)유신때 문부상을 지낸 모리 아리노리(森有札)가 “일본어 대신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자”고 주장했는가 하면 1945년 패전 직후도 비슷한 주장이 나왔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일본인들의 영어실력이 세계에서 알아주는 바닥권인 이유는 간단하다.듣고말하는 훈련보다는 눈으로 보고 읽는 교육에 치중했기 때문이다.그런 점에서일본의 영어교육은 한국보다는 낙후돼있다. 공용어까지는 아니더라도 교육현장에서 실용외국어 학습에 비중을 두자는움직임과 시도가 최근 엿보인다.일본 문부성은 올 4월 새학기부터 국어시간을 대폭 줄이고 외국어 시간을 늘린다.이에 따라 초등학교에서도 영어를 가르칠 수 있게 됐다.중학교는 영어 등 외국어에 국어,사회,수학 등 주요과목과 동일한 한해 105∼140시간을 배정했다.파격적인 배정인 셈이다. 대학입시에 토플성적을 반영하자는 주장도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차기총리감으로 거론되고 있는 가토 고이치(加藤紘一)전 자민당간사장은 지난해 총재선거때 이를 공약으로 내세웠다.일본의 영어 바닥탈출은 이제 시작된 느낌이다. 황성기기자 marry01@
  • [金대통령 연두 기자회견] 일문일답 (2)

    ▲민간단체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는 영어 공용화 주장에 대한 정부 차원의입장을 밝혀달라. 인터넷 정보의 80% 이상이 영어로 돼있는 등 영어는 이제필수적이며 국제 공용어가 됐다. 정부도 초등학교부터 영어를 가르쳐 고교를 졸업하면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해왔다.영어뿐 아니라 다른 언어도 배우지 않으면 세계화 추세와 관련해 국제경쟁에서 배겨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영어 공용화문제는 더 신중히 검토해야 할 사안이며 아직 결정된바 없다. ▲중앙정부 권한의 지방 이양 등 지방자치 확대를 위한 복안과 자치경찰제의시행시기에 대해 밝혀달라. 지방자치 확대는 전 정치생활을 통해 그 실현을 위해 싸워왔고 이 문제로 90년 12일간 단식까지 한 사안이다.정부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한편으로는 세계화,다른 한편으로는 지방화가 진행되는 추세에서 지방자치는 전국 각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에 이양해왔고 지금도 1,400여개 권한 이양조치를 추진중이다. 지방교부금도 13.27%에서 큰 결심으로 15%로 올려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60억∼70억원의 수혜를 입도록 했다. ▲최근 탈북자 7명이 북한에 강제송환됐다.탈북자문제는 당사자 신상이 걸린 인권문제일 뿐만 아니라 외교문제이기도 하다.탈북자문제에 대한 생각은. 일부에서는 경제협력 등 대북 지원방안과 연계,북한에 강력 대응해야 한다는얘기도 있다.또 중국과 러시아의 한반도 햇볕정책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는지 말해달라. 국민의 정부 들어 2년간 탈북자 200여명이 조용히 들어왔다.이번에 잘못돼 매우 유감이다.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국제적 관계가 있어 밝힐 수는 없다.러시아와 중국의 한반도정책은 우리와 그들의 국익과 일치하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은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도 좋은 것이다.탈북자문제가 국익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고 중국 및 러시아와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일본과 북한이 빠르면 오는 3월부터 수교협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일본과 북한의 관계개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협상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북한에 대해 식량을 지원할 경우 한국 정부의 대응은 무엇인가.지난해처럼 한국 정부가 북한에 비료를 제공할 의사가 있는가. 일본은 대북 수교협상에 있어 한국과 사전에 충분한 의견교환을 나눴다.우리의 적극적 지지 속에 이뤄지고 있다.세계 모든 우방들이 북한과 접촉하는 것을 찬성한다. 다만 북한이 남북대화는 하지 않고 다른나라와만 대화해 한국을 고립시키려는 가당치 않은 계획은 용납할 수 없다.최근 북한과 수교한 이탈리아,수교를 추진중인 필리핀도 이에 공감하고 있다. 식량 지원은 일본이 결정할 문제이다.우리도 이의가 없다.금년에도 비료를 지원할 의사가 있다.남북한 협상을 통해 비료 지원이 이뤄지길 바란다. ▲대통령께서 최근 민주당 창당대회에서‘병역비리를 정부가 뿌리뽑고 있는중’이라고 말했다.또 반부패국민연대에서 정치인 21명을 포함해 200여명에 대한 병역비리 의혹을 청와대에 접수했고 청와대는 이를 검찰에 이첩했다.대통령께서 보고받은 병역비리의 규모와 과거 수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근절대책을 말해달라. 병역비리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국민의 신성한 의무인 병역의무를 기피하고서는 이 나라에서 명예롭게 살아갈 수 없다.절대로 용납돼서는 안될 것이다.국민의 정부 들어 병역비리를 철저하게 척결했고 많은 성과를 올렸다.그러나 아직도 미진한 점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이 문제에 대해 자세한 보고는 받지 못했다.이 문제는 대통령이 관여하지않고 검찰이 독자적으로 법에 의해 처리하도록 넘긴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검찰과 군 수사기관 등 여러 곳에서 병역비리를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철저하게 척결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입장을 밝힌다. ▲지금 대통령은 해외에서 오히려 인기가 높다.지금은 지지도가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이 4월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는지 말해달라. 내 지지도까지 걱정해줘 고맙다.어제 보고를 보니까 내 지지도가 조금 올라서 71%까지 됐다.정치적 지지도는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이다.그것이 내게는 큰 자극이 된다.내가 하는 일에 대한 반성과 격려가 된다.국민이 나를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항상 겸허하면서도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다. 4월 총선에 대해서는 우리가 매우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총선에서 반드시 성공을 해야 정치의 안정이 있고,안정이 있어야 우리가 필요한개혁을 추진할 수 있으며,개혁이 있고 정치안정이 있어야 남북대화도 잘된다. 안정 속의 개혁을 이뤄야 한다.개혁을 목표로 하지 않는 안정은 의미가 없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들은 정권 유지를 위해서 안정을 말했지만 국민의 정부는 국민들의 좀더 나은 생활,남북관계 발전,한반도 평화를 위해 안정을 필요로 한다.국민들의 현명한 판단이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법무장관에게‘선거활동 금지는 권위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4·19와 6·10항쟁도 당시 실정법에 저촉됐으나 역사적 정당성이 인정됐다’고 말했는데 이는 실정법 집행을 제대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오해를가져올 수도 있다. 나는 법무장관에게 법을 어기는 문제에 대해서 고발이 들어오면 취급하라고 말했다.다만 꼭 구속해서 하라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실정법을 어겨서 고발이 들어왔는데이를 취급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4·19와 6·10은 지나간 역사의 얘기로서 한 것이지 이 문제와 직결해서 한말이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우리나라처럼 정치인 이외의 선거 개입을 막는 나라가없다. 5·16 이전 자유당과 민주당때에도 그런 일이 없었다.사회가 국민적 참여를 막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그런 일반론적인 얘기를 했다.법무장관에게 실정법을 무시하라고 한 적 없다. ▲대통령의 올해 화두는 인터넷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어제 국무회의에서도 전자민주주와 전자정부를 강조했는데 구체적인 실현 계획은. 정부는 전자정부 실현을 위해 4대 사업을 2001년까지 완료할 계획이다.첫째,전 공무원의 E-메일화로 전자정부 인프라를 구축하고 둘째로는 민원처리를 온라인시스템화하겠다.이 두 가지는 금년에 완료한다. 중앙정부 및 지자체 데이터베이스화와 통합정보 데이터 구축은 내년까지 완료할 것이다.이를 적극 추진함으로써 사업의 능률화를 꾀하고 부패요소를 근원적으로 제거하는 일을 해나겠다. 이는 우리 경제 전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연말부터 여야 총재회담 얘기가 나왔으나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총재회담에 대한 전망은. 여야 총재회담에 대해 그동안 언제든지 하겠다고 수차 얘기했다.어려울 때일수록 만나서 얘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그러나 이것은 상대가 있다.합의가 돼야 회담이 이뤄질 수 있다. 총재회담뿐 아니라 언제든지 여야가 모든 것을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겠다. 정치의 자치능력을 키워 국민의 걱정을 줄이는 방향으로 여야관계를 구축하겠다. ▲탈북자 7명의 강제 북송과 관련,책임의 일부가 언론에 있다는 뉘앙스의 얘기를 한 적이 있다.지난해 옷로비사건 파동때도 마녀사냥식 보도라는 지적을 한 바 있다.언론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발목을 잡는 세력이라고 보는가.언론관을 말해 달라. 나는 언론에 노출된 것이 여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줬다는 얘기지 언론이 의도적으로 탈북자문제를 망치기 위해서 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도 탈북자를 돕기 위해 선의로 한 일이겠지만 결과는 오히려 문제가 있었다.또 언론뿐만 아니라 정부의대응이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반성하고 있다.그렇게 이해해 달라. ●맺는 말 우리 국민은 IMF사태를 국민의 힘에 의해 정부와 협력하여 해결한 위대한 국민이다.나는 오늘의 정치적 혼란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올바로 판단,극복해 줄 것으로 믿는다.대한민국이 세계 일류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살려나가야 한다.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적인 국가로서 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십분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안정이 절대적 요건이다.정치권이 크게 반성하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19세기 말 근대화의 물결을 외면하다 20세기 100년 동안 뒤처졌다. 이제 지식정보화 국가를 만들어 세계를 선도하고 대한민국을 빛나는 조국으로 만들어야 한다.앞으로 남은 3년 동안 총력을 다해 이 길로 헌신하겠다.우리 국민 모두가 국가목표를 향해 화합하고 협력해 자랑스러운 나라를 후손에게 남겨야겠다. 이도운기자 dawn@
  • [김상웅 칼럼] 정치개혁, 껍데기는 가라

    카나리아가 한밤중에 울고 있었다. 그 곁을 지나던 박쥐가 왜 낮에는 울지않고 한밤중에 우느냐고 물었다.카나리아는 자기가 밤에 울게 된 사연을 말했다.“낮에 울다가 그만 사람에게 잡혔어.그후부터 낮에 우는 것을 삼가게된 것이란다.”그 말을 듣고 박쥐가 비웃으면서 말했다.“그러나 이미 너는잡혀서 새장 속에 있지 않니?그것은 잡히기 전에 했어야지. ”이솝우화 한 토막이 요즘 정치권의 행보와 비슷하다.‘한반중에 우는 ’카나리아와 같은 정치권에 경실련에 이어 총선시민연대가 낙천대상자 명단을발표했다. 가히 정치권의 지각변동이라 하겠다.그동안 정치권은 큰 정치 생활정치 상생정치 등 그럴듯한 구호를 내걸면서 실제로는 나눠먹기,놀고먹기,뒤통수치기,세비올리기,개혁입법 변질시키기,기득권지키기 등 반개혁과 고비용, 부정비리로 얼룩졌다.정치불신이 정치혐오증으로 증폭되었다. 시민단체들의 정치개혁 요구는 국민의 뜻이고 시대정신이다.국민은 오래전부터 이대로는 안된다,바뀌어야 한다고 요구해왔지만 정치인들은 이를 묵살하고 외면했다.정치개혁이 안된 것은 순전히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기성정치인들의 욕심때문이다. 수많은 국민이 IMF체제에서 실업과 감봉과 저임금과 가족해체의 고통을 겪을 때 국회는 정쟁과 자신들의 잇속지키기에만 급급했다.그리고 마지막에 내놓은‘협상선거법’이란 기형아는 마침내 국민의 분노를 촉발시키고 말았다. 국민대표 기관인 국회가 자율적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여론에 밀려 정치개혁에 나선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국민의 분노가 극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개혁이다.개혁은 합법적 과정을 거치는 까닭에 더디고기득세력의 저항때문에 쉽지 않다. 그렇지만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때 나타나는 혁명은 모든 것을 뒤엎는다.따라서 개인은 물론 국가적으로 큰불행이다.자칫 반동세력에 기회를 주게 된다. 15대 국회는 어느 면에서 4·19후의 과도기 국회와 비슷한 위상이다.4월혁명을 맞아 지탄의 대상이었던 제4대국회는 내각제개헌을 하고 스스로 해산했다.15대 국회가 역사의식이 있었다면개혁에 앞장서거나 그럴 의지가 아니라면 해산하고 새 국회를 소집했어야 옳다. ‘명예혁명’을 통해 50년만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었는데 국회는 마치프랑스혁명기의 앙시앙 레짐처럼 구체제가 버티고 있으면서 개혁의 발목을잡고,지역감정을 부추기고, 계층갈등을 증폭시키면서 끝없는 정쟁으로 지새웠다.프랑스 정국은 혁명과 반혁명, 쿠데타와 왕정복고를 거듭하고,한국의내각제 의회(제5대국회)는 쿠데타의 반동기를 겪으면서 정치를 나락으로 빠뜨렸다.다행히 지금 우리 국민은 가장 온건한 방법으로 정치개혁을 요구한다. 정치권은 이 온건한 요구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된다. 4·19후 허정(許政)과도정부는‘혁명적 과업을 비혁명적 방법으로’란 구호를 내걸었지만,현국회는‘개혁과업을 혁명적 의지로’실천하는 진지함을 보여야 한다.아직도 파당적 이해나 기득권유지 차원에서 머뭇거리다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파고를 맞게 될지 모른다.“역사는 변해야 할때 변하지 않으면반드시 보복한다.”(헤롤드 라스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시민단체의 부적격 정치인명단 공개와 함께 50년 낡은 정치가 이제 자정과정을 겪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지금 정치개혁을 하지 못하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절대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치개혁이 성공할 수 있도록 정치권은 참회하는 모습으로 선거법은 물론 각종 개혁입법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개혁’의 개(改)는 자신(己)에게 하는 채찍 질, 혁(革)은 ‘거모생피(去毛生皮)’즉 털을 깎아 만든 겉가죽 끈으로서,자신을 채찍질하며 변화한다는 뜻한다.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한점 부끄럼이 없는 인물,자신에게 늘 채찍질하는 개혁인사를 골라야 한다.19세기 영국수상 글래드스턴은 “영국의 수상은 푸줏간 주인과 같아야 한다.푸줏간 주인의 성패는 칼질이다.쓸모없는 부위나 기름덩이는 대담하게 도려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이 참에 알갱이만 남기고 껍데기는 모두 날려버리자. 김상웅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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