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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끊이지 않는 지구촌 분쟁](8.끝)체첸 사태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위치한 북카프카스 지역이 21세기 지구촌의 화약고로 떠올랐다.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체첸군의 무력항쟁이 계속되고있고,매장량이 엄청난 카스피해 유전과 송유관을 둘러싼 연안국들의 힘겨루기와 크고 작은 민족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체첸과 지난 10년동안 두차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러시아군은병력수 및 화력면에서 월등한 우세에도 불구하고 1차 전쟁에서 패배한데 이어 11개월째에 접어든 2차 전쟁에서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체첸전은 특히 러시아와 체첸간의 독립전쟁 이상의 성격을 띤다.슬라브정교의러시아에 맞서 체첸 지역에 이슬람공화국을 수립하기 위한 성전(聖戰)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분쟁의 뿌리] 이슬람교도인 체첸인들의 대(對)러시아 독립투쟁 역사는 140년 가까이 된다.17세기부터 19세기까지는 페르시아제국과 오토만제국간 영토쟁탈전에,18∼19세기에는 제정러시아의 남진정책에 시달렸지만 지금까지 러시아의 통치를 거부하며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서슬퍼런 스탈린 정권때에도폭동을 일으켰을 만큼 반러 감정은 뿌리깊다. 1991년 옛소련이 해체되면서 이 지역의 그루지야와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이 독립했고 체첸도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하지만 러시아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체첸에는 질좋은 유전과 카스피해 유전과 유럽을 잇는 송유관이 지나고 있다는 경제적 이유와 인근 공화국으로 독립 움직임이 확산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1·2차 전쟁] 러시아군이 94년 전격적으로 체첸을 침공함으로써 1차 전쟁이발발했다. 러시아군은 체첸군의 끈질긴 저항에 밀려 2년1개월만에 철수,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지난해 8월 강경파인 샤밀 바사예프가 이끄는 체첸군이 이슬람공화국을 세우겠다며 인근 다게스탄공화국을 침공,이를 저지하기 위해 러시아군이 체첸을 침략하면서 4년만에 2차전쟁이 시작됐다.러시아군은 정규군과 국경경비대등 15만명의 병력과 막강한 화력을 투입,전면전을 감행했다. 올 2월1일 수도그로즈니를 점령했고 2월6일 ‘전쟁 종료’를 선언했다. 하지만 남부 산악지대로 밀려난 체첸군은 게릴라전으로 버티고 있다. 최근에는 자살폭탄공격을감행,러시아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전망]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 국민들 사이에 체첸전은 제2의 베트남또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비춰지고 있다.군사적으로 승리할 수 없을 바에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점차 힘을 받고 있다. 체첸전을 주도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국민과 군부의 지지를 얻어 집권했지만 지금은 계속되는 전쟁과 군부의 지나친 기대가 오히려 짐이 되고있다.매달 1억달러의 전비가 들고 8개월동안 2,000여명의 러시아 연방군 전사자를 낸 전쟁을 마냥 끌고만 갈수도 없다. 현재 러시아 정부와 체첸 임시정부간에는 종전협상이 진행중이다.하지만 러시아는 체첸이 항복하는 것만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체첸군은 마지막 한명까지 항쟁을 계속한다는 입장이어서협상전망은 밝지 않다. 김균미기자 kmkim@. *용맹하고 난폭한 체첸인들. 세계적 장수촌으로 유명한 카프카스 지역에는 80여개 소수민족이 모여살고있다.이중 러시아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치르고 있는 체첸인들은 용맹하고 난폭하기로 유명하다. 체첸자치공화국은 우리나라 경상북도 정도 크기에 인구는 고작 120만명에불과하다.영토의 대부분이 산악지대로 덮여있어 목축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사내아이들은 10세가 넘으면 아버지가 총과 칼을 주고 생존능력을 키워줄 정도라고 한다. 체첸인들의 반러 감정은 수백년동안 러시아와 터키 등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에 맞서 싸우면서 단련됐다.이들은 40년대와 70년대에도 옛소련 정권을 상대로 항쟁했고 스탈린은 이들을 아예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다.이슬람교도인 체첸인들은 슬라브정교를 믿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지하드(성전)로 생각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들의 저항은 실로 처절하기까지 하다.전쟁전 6.7%이던 출산율이 현재 7.4%로 높아졌다.14∼16세 소녀들의 조혼은 물론 일부다처제를 적극 권장하고있다.다산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자금원 역할을 했던 유전과 정유시설 대부분이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거의파괴됐다.따라서 체첸전을 성전으로 여기고 있는 전세계의 이슬람단체들은체첸에 무기구입과 용병고용을 위한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체첸은 연간 260만t의 원유 생산지이며 주요 정유시설의 소재지이다.체첸지역의 원유는 1932년 한때 러시아 전체 생산량의 10%이상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비중이 떨어졌다. 김균미기자. *체첸분쟁 일지. ●1944 스탈린,체첸인들 친나치세력으로 몰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1957 후루시초프,체첸인들 귀향 허용●1991.10 옛 소련 공군장군 출신 조하르 두다예프 체첸대통령에 당선●1991.11 체첸-잉구시공화국,러시아로부터 독립선언●1993.10 체첸,반정부군과의 내전 발발●1994.11 옐친,체첸 반군에 휴전 촉구●1994.12 러시아군,체첸 공격으로 1차 체첸전쟁 발발●1997.1 반군 지도자 아슬란 마스하도프 대통령에 당선●1997.5 러시아-체첸 평화협정 체결●1999.8 체첸반군,다게스탄 국경 침범해 이슬람공화국 선언●1999.9.30 러시아군,체첸 재침략으로 2차 전쟁 발발●1999.12.25 러시아군,수도 그로즈니전면 공격●2000.2 러시아군,그로즈니 장악.‘전쟁 종료’ 선언●2000.7 체첸반군,자살테러 감행.현재 종전협상 진행중
  • 남북 장관급회담/ 北대표단 청와대 예방 안팎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31일 오전 11시부터 청와대에서 전금진(全今鎭)단장 등 남북장관급회담 북측 대표단 일행을 접견했다.접견은 30분동안 진지하고 자유로운 가운데 진행됐다. ■대통령 접견 김대통령은 대기실에서 북측 대표단을 만나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이어 우리측 대표단이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접견실로 이동,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김대통령은 작은 것부터 차분하고 착실하게 실천되길 희망했다.“이번 합의를 우리 7,000만 국민이 환영하고 있으며,화합의 새 시대를 여는 데 도움이될 것으로 평가받을 것”이라며 ‘시작이 반’임을 역설했다.이어 “중요한것은 우리가 한민족이고 공동운명체라는 것”이라며 “이런 의식을 갖고 지금의 비정상적인 민족의 상황을 개선하도록 앞으로도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또 전단장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안녕하시냐”고 안부를 물은 뒤 지난방북때의 환영에 감사의 뜻을 전해줄 것을 부탁하는 등 김위원장과 간접대화를 나눴다.전단장은 “두 분이 마련한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뜻을합쳐예상보다 과할 정도로 훨씬 많은 합의를 이루었다”고 평가했다.그는 “서울방문을 통해 예전과 달리 시민들의 통일 열기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알게됐다”며 “이런 일을 장군님께 책임적으로 전달하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김대통령이 19세기말 우리 민족이 세계사의 조류에 낙오돼 오늘까지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역사를 설명하며 민족의 화해를 강조하자 전단장은“옳으신 얘기”라며 공감을 표시했다.또 “이번에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은 다음 평양회담에서 꼭 이뤄달라”고 당부하자 전단장은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전단장은 정상회담때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이 선물로 주고받은 진돗개와 풍산개를 언급하면서 “북한 주민들이 애지중지하는 가운데 진돗개가 잘크고 있다”고 말하자,김대통령도 “두 개는 민족단합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화답했다. 전단장 일행은 접견이 끝난뒤 청와대 앞뜰에서 풍산개를 살펴봤다. 이날 접견에는 전단장을 비롯한 북측 대표단 5명과 수행원 2명,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 등 우리측 대표 5명이 자리를 함께 했으며,북측 신문 및 방송 카메라 기자 등이 동행 취재했다. ■청와대 도착 이에 앞서 청와대 본관에 도착한 북측대표단을 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과 황원탁(黃源卓) 외교안보수석,박준영(朴晙瑩) 대변인이 입구에나와 맞이했다. 한편 청와대측은 이날 북측 대표단의 청와대 공식방문이 분단 55년동안 다섯번째라고 밝혔다. 양승현기자 yangbak@
  • 피터 홉커크 ‘실크로드의 악마들’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벽화 60점을 비롯해 조각,공예품 등 1,700여점의중앙아시아 유물이 보관돼 있다.일본인 소장가 오타니 고즈이의 손에서 옮겨온 것이다.이 유물들은 중앙아시아 타림분지에 있는 고대 오아시스 도시들에서 수집된 것으로 미란,호탄,쿠차,투르판,돈황 등 주요 유적지의 유물들이망라돼 있다.혹자는 이만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그러나 문제는 컬렉션이 아니라 중앙아시아에 대한 우리의 초라한 인식이다.아시아의 패자를 꿈꾼일본이 19세기 이래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연구해온 것과 퍽 대조적이다.다행히 최근들어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하지만 그 기반은 아직 허약하다. 마침 중앙아시아의 탐험의 역사를 생생하게 담은 책이 나와 관심을 모은다. 영국 ‘더 타임스’의 아시아 관련 전문기자 출신인 피터 홉커크가 쓴 다큐멘터리식 이야기 실크로드의 악마들(김영종 옮김·사계절 펴냄)이다. 실크로드는 중국의 장안과 로마의 콘스탄티노플을 이어주는 비단길.실크로드는 오늘날의 북경에서 시작해 난주,돈황을 거쳐 중앙아시아 5개국(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키르기스탄)과 카프가즈,이란 북부지역을 통과해 소아시아의 이스탄불과 유럽에 이른다.이 실크로드의 주변지역은 오리엔트와 스키타이,메소포타미아 등 인류의 문명이 발생한 곳이며 조로아스터교,마니교,불교,기독교,이슬람교 등 여러 종교가 태동한 지역으로 수많은 유적지가 남아 있다.불교문화 전성기인 8세기에 신라승 혜초는실크로드를 통해 인도를 다녀와 ‘왕오천축국전’을 썼고,당나라 현장도 이길로 서역을 다녀온 뒤 ‘대당서역기’를 남겼다.그러나 그 발자취는 오아시스 도시들이 모래바다 속에 묻힌 이래 긴 세월동안 신비에 싸여 있었다. 지금의 중국 신강 위구르 자치구에 속하는 고대 오아시스의 폐허 속에서 문명사에 획을 그을 유물들이 발견된 것은 20세기 초반에 이르러서다.20세기초반부터 1930년 중국이 유물반출에 대한 금지령을 내릴 때까지 약 30년동안 스웨덴,영국,독일,프랑스,미국,러시아 등 서양 열강과 일본의 탐험가들은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를 따라 오아시스 도시에 묻혀 있는 수많은 유물들을빼내갔다.저자가 책 제목으로 사용한 ‘악마들’이란 말은 바로 이 ‘고고학적인 도적질’과 무관하지 않다.이 책은 그 경로와 숨겨진 이야기들을 철저한 고증을 통해 밝혀낸다.특히 스웨덴의 스벤 헤딘,영국의 오렐 스타인,독일의 알베르트 폰 르콕,프랑스의 폴 펠리오,미국의 랭던 워너,그리고 일본의오타니 고즈이 등 유물발굴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여섯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유물들을 ‘톤 단위로’ 빼내간 탐험가들의 행위가 정당한 것인가 짐짓 진지하게 묻는다.그들의 행위는 ‘약탈’임이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유물을 그대로 뒀다면 원주민들과 이교도들에 의해 더 많이 훼손됐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저자는 서양 열강의 유물 약탈행위에 대해 판단을 유보함으로써 사실상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중국 정부가 30년 가까이 외국인들의 유물 밀반출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도 의문점이다.서구의 근대가 자랑하는 이른바 ‘공정성에 기반을둔 합리성’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되묻게 하는 대목이다. 김종면기자 jmkim@
  • 재일동포 소장 한국문화재 정부차원 유치 지원책 펴라

    재일동포가 소장한 한국문화재를 국내에 유치하는데 경제적 지원을 포함한국가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일본 효고현에 사는 두암 김용두옹(79)이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 57점의 귀중한 문화재를 추가로기능한 것이 계기가 됐다. 김옹이 이번에 기증한 문화재 가운데는 16세기 ‘석가삼존도’와 19세기 대표적 포도화가 최석환의 ‘묵포도병풍’,15세기 ‘분청사기조화모란문합’등 국내에서도 희귀한 유물이 대거 포함됐다.그는 지난 97년에도 지정문화재급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114점의 문화재를 기증했었다. 재일동포 소장 문화재가 관심사로 떠오르는 이유는 ▲수집가들이 고령에 접어들고 있는데다 ▲애써 수집한 문화재들을 한국이 아닌 일본에 기증하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문화재 수집에 적극적이었던 재일동포 1세대는 이미 대부분 70대를 넘어섰다.1세는 고국의 문화재에 애정을 갖고,수집에도 사명감을 가졌지만 2세 이후로 내려가면 화려했던 컬렉션도 흐지부지 되고마는 것이 보통이다.그나마 김용두옹의 아들태석씨가 아버지 이상으로 애정을 갖고 있는것은 다행한 일이다. 재일동포들이 문화재 컬렉션을 한국에 기증하기보다는 일본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박물관 등에 주어버리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은 더욱 우려할 만하다.몇 년 사이에 재일동포 A씨가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에,B씨가 오사카시립박물관에 각각 개인 소장 한국문화재를 기증했다.이들 박물관·미술관은 문화재를 기증받기 위해 수 년 전부터 소장자에게 접근하여 신뢰를 쌓았고,A씨에게는 소장품을 별도로 전시할 별관까지 지어주겠다고 약속해서 성사된 것으로알려진다.특히 두 곳 모두 문화재를 기증받은 것으로 발표했으나,실제로는상당한 액수의 댓가를 치렀다는 이야기는 알려진 비밀이라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도 김용두옹의 문화재를 기증받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중앙박물관이 처음 김옹과 접촉한 것은 1970년대였다고 한다.문화재 기증을 유도하기 위해 “한국에서 전시회를 한번 가지라”고 끊임없이 권고하여 결국 1990년대초에 중앙박물관에서 소장품 전시회를 가졌다.그가 두차례에 걸쳐 문화재를 기증한 것은 이런 노력의 결실이다.김옹의 기증유물은그의 뜻에 따라 고향 진주로 옮겨졌고,국립진주박물관은 80억원을 들여 그의 컬렉션만을 전시하는 별관을 짓고있다. 현재 1,000여점을 갖고 있는 김옹처럼 대규모 한국 문화재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재일동포 수집가는 10여명선인 것으로 중앙박물관은 파악하고 있다. 이내옥 진주박물관장은 “재일동포 수장가들과 접촉해보면 문화재를 한국에기증할 뜻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면서 “그럼에도 기증을 꺼리는 이유는 컬렉션의 내용이 알려졌을 때 일본 정부로 부터 엄청난 세금이 부과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관장은 “게다가 엄청난 문화재를 갖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재산의 전부인 사람이 상당수”라면서 “단순히 애국심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경제적인 부담을 느끼지않고 기증할 수 있는 여건을 국가적 차원에서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드라마로 보는 ‘오만과 편견’

    케이블채널 예술·영화TV(채널43)는 다음달 6일부터 매주 일요일 밤 11시영국의 여류작가 제인 오스틴의 원작소설을 각색한 6부작 드라마 ‘오만과편견’을 내보낸다. 이 드라마는 지난 96년 영국 BBC가 제작ㆍ방영해 당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그 뒤 미국,일본 등 전세계 45개국에서 방송됐다.캐나다의 반프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뉴욕 필름 텔레비전 페스티벌에서 은상을 수상하는 등작품성도 인정받았다. 별장을 사기 위해 시골 마을에 나타난 명문가 자제들과 마을 처녀들의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19세기 영국 사회의 풍습과 의상,음식 등을 꼼꼼히고증했다. 장택동기자 taecks@
  • [대한광장] 큰 민주주의 작은 민주주의

    누가 누구를 욕할 것인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폐업을 강행한 의사들을욕할 것인가,언론사를 습격한 퇴역군인들을 욕할 것인가,일상화된 노동조합의 파업을 욕할 것인가.아니면 여당의 날치기를 욕할 것인가.욕할 대상이 이렇게 많아서야 어떻게 이 땅에서 정을 붙이고 살아갈지 걱정스럽다. 최근 몇 년간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국민들이 불만을 참지 않는다는 사실이다.국민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힘을 이용해 불만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한다. 이 경우 옛날과 달리 공안기관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정부가 공권력 동원을 자제하는 편이다.공권력 동원이 자제되는 속에서 국민들의 불만이 쉽게 표출되니 사회적 혼란으로 비칠 수도 있다. 우리는 80년대 중반 이후 어려운 과정을 거쳐 민주화를 이루었다.이 민주화를 군사정권 퇴진과 연결시켜 탈군사화라 하기도 한다.지난 30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군부가 정치에서 퇴진하고 민간인에 의한 민주주의가 시작된것이다. 서구사회가 19세기 이후 봉건제 사회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면서 민주주의를 이룩했다면 우리를 포함한 제3세계 국가들은 2차대전 후 군사정권에서 민간정권으로 이행하면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있다.이것을 ‘큰 민주주의’라하자. 바로 이 관점에서 최근의 상황을 해석해야 한다. 군사정권은 작동과정에서수많은 악폐들을 양산했다.폭력의 일상적 동원,국민의 자유로운 정치적 참여를 비롯한 모든 활동의 금지,교육과 언론의 왜곡,의회정치의 실종 등 그 악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대신 군사정권 유지를 사명으로 하는 공안적 국가기관과 군사정권의 결정을일방적으로 집행하는 행정적 국가기관이 이 자리를 대체했다. 자유가 말살되고 정치가 실종되는 반면 행정만능주의가 활개를 치게 된 것이다.그 결과 군사정권은 자유가 존재하는 사회의 미세한 숨구멍까지 틀어막고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말살했다. 군사정권의 퇴진은 막혔던 자유의 숨구멍이 트이고 억압됐던 활동이 허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그 결과 모든 영역에서 자기 이익과 민주주의를 위한 욕구가 폭발적으로 분출된다.최근 증가하고 있는이익집단의 등장과 이익정치의 시작은 이런 점에서 새롭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라 군사정권에 의해 제약됐던 국민의 욕구와 권리가 분출되는 것일 뿐이다. 노동조합이나 이익집단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것,각급 학교의 현장에서 교육민주화의 열기가 솟구쳐 오르는 것,국민들이 행정개혁이나 정당민주화를요구하는 것,사회의 모든 조직에서 내부 민주주의가 활성화되는 것 등이 그것이다.이것을 ‘작은 민주주의’라 하자. 따라서 이 현상을 하등 불온시할 이유가 없다.이것은 억압됐던 국민의 권리가 회복되는 과정인 동시에 억눌렸던 사회가 역동성을 되찾아가는 과정이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큰 민주주의’에서 ‘작은 민주주의’로 민주주의가 확산되면서 사회적으로 정착되고 공고화돼 가는 지극히 자연스럽고긍정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문제는 이 과정이 안정된 민주주의로 안착될수 있도록 갈등과 진통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느냐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사정권 시절에 형성된 권위주의적 질서와 편향된 기득권구조를 폐기하고 대화와타협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민주적 질서를 창출해야 한다.이 시점에서 인내를 바탕으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민주적인 리더십이 요구된다.특히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일거에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상황에서 민주적 리더십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여당이 대화와 타협의 전당인 국회에서 명분없는 내용으로 날치기를 일삼는다면 민주적 리더십은커녕 민주주의의 앞날을 기대하기 어렵다. 날치기를 능사로 아는 여당이 어떻게 이익집단에게 파업과 폐업의 철회를 설득하겠는가. 정대화 상지대교수·
  • 앨프리드 W. 크로스비 ‘생태 제국주의’

    지금껏 우리가 세계사 교과서를 통해 파악해온 지배와 피지배의 역사는 어땠을까.정복자의 입장으로 기우뚱 ‘이해의 추’를 기울인 채,그들의 지배논리를 뒷받침해주는 상황설명쪽에만 열심히 귀를 세워오진 않았었나. 도서출판 지식의풍경이 펴낸 ‘생태 제국주의’는 역사이해의 그런 맹점을새삼 환기시켜주는 책이다.구대륙의 침입자들보다 더 큰 보폭으로 신대륙을섭렵해들어간 것은 구대륙산(産) 잡초나 질병들이었으며,따라서 유럽 제국주의의 역사는 ‘생태계 정복의 역사’라고 책은 단언한다. 미국 텍사스 주립대 미국학 교수인 지은이 앨프리드 W.크로스비는 이같은 논리를 펴기에 앞서 ‘네오 유럽’이라는 신조어부터 만들었다.유럽 본토에서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으면서도 유럽인이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있는 ‘지배공간’을 아우르는 말이다.주민의 혈통이 거의 전부가 유럽쪽인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멕시코 이북 아메리카 등지에 책의 관심은 집중돼있다. 유럽 제국주의의 성공에는 생물학적·생태학적 요소가 결정적으로 뒷받침돼있었다는 주장은 여러 대목에서 설득력을 확보해간다.무엇보다 기후문제.지리적으로 흩어져 있는 네오 유럽이 비슷한 위도에 걸쳐져 있다는 분석이 흥미롭다.네오 유럽의 최소 3분의 2가 북반구와 남반구의 온대지방에 속해있다는 것.구대륙인들의 지배이론이나 이념보다도 기후를 비롯한 생태계에의 친화·정복력이 식민지배의 선봉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19세기 초 뉴질랜드.구대륙에서 들어온 가축류의 확산을 가로막은 것은 부족한 풀이었다.백인 침입자들은 그들의 양을 방목키 위해 모국서 가져온 토끼풀을 심었고,꿀벌을 끊임없이 분봉시켜 잡초의 확산을 도왔다.토끼풀은 뉴질랜드를 제국주의에 편입시킨 수훈갑이었다. 이런 논리는 책의 전편에서 생태제국주의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내내 부상해있다.찰스 다윈이 ‘인간의 유래’(1871)에서 보여줬던 통찰력이 새삼 주목받는 건 그래서다.“문명화된 민족들과 야만족들이 만났을 때,치명적인 기후가 토착인종을 후원해주지 않으면 토착인의 투쟁은 아주 짧게 끝나고만다”6장 ‘범위내에 있지만 지배하지 못한 곳들’ 즈음에 이르면 책읽기의 호기심이 한층 더해진다.제국주의가 끝내 정복못한 땅도 있다는,생태제국주의의‘예외조항’을 인정하고 넘어가기 때문이다.구대륙과 기후가 비슷한 북회귀선 이북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즉 중국 한국 일본 등지에 백인 제국주의자들이 식민개척에 실패한 데는 ‘기후 그 이상의 배경’이 있었다.강력한 중앙정부,탄력적인 국가제도,문화적 자부심….그러나 정복에 실패한 결정적 이유는 그 아태 국가들이 구대륙과 같은 곡물과 가축,미생물 등을 갖고 이미 그생태계에 익숙해 있었던 데서 발견된다.이방인들의 발길에 묻어온 생태계가전혀 낯설지 않았던 것이다.또 제국주의 확산에는 구대륙이 퍼뜨린 질병의위력도 크게 한몫했다.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을 무기력하게 만든 건 유럽인들이 갖고 들어간 병원균,성병이었다. 책이 미국에서 처음 발간된 것은 14년전이다.그럼에도 여전히 현재성을 띠고 빛을 발하는 것은,위압적 제국주의의 속내를 뜯어보게 하는 내밀한 시각을제시하기 때문이다.콜럼버스 시대에서 500년이 지난 지금도제국주의 식민화 프로젝트는 소리소문없이 진행중일 것이므로.안효상 정범진 옮김. 황수정기자 sjh@
  • [외언내언] 尹潽善家

    서울 종로구 안국동 8-1번지.고 윤보선(尹潽善)대통령 사저,대지 1,411평에 건평 250평의 99칸 한옥은 안채,사랑채 그리고 그 부속건물들까지 조선조양반가옥의 풍모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130여년전 고종조(高宗朝) 세도가 여흥민씨 소유였다가 철종(哲宗)의 부마박영효(朴泳孝)를 거쳐 고 윤보선 대통령의 조부가 사들여 오늘에 이르렀다. 78년 서울시가 민속자료(27호)로 지정한 이 한옥은 영국 에든버러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윤보선 전대통령에 의해 가구에서부터 기왓장 하나에 이르기까지 전통의 숨결이 잘 보존돼 왔다.건축사적으로는 19세기 서울 북촌의전통 양반가옥이면서 보기 드물게 5대째 90여년을 사람이 살고 있는 문화재다. 윤보선 전대통령이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 이 한옥의 사랑채는 한국정치의 한 부분을 증언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해방 후 한국민주당 창당 산실이었으며 60년대에는 야당의 회의실이자 야당인들의 사랑방이었다. 5·16후계엄하에서 유진산(柳珍山)씨가 넝마주이로 변장해 이 집에 들어와 윤전대통령과 함께야당 재건의 밑그림을 그린 곳도 바로 이곳이다. 이래 저래 이 한옥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이 집에 살고 있는 윤상구(尹商求)씨 가족이 주인이라기보다는 관리인으로 이런 저런 불편을 감수하면서 힘겹게 유지하고 있는 것도 선대(先代)의 유산이자 시민 모두의 유산이라는 의무감 때문이리라. 그런데 최근 이 윤씨 가족에게 고민이 하나 생겼다.후원 담장과 잇대어 4층짜리 시멘트 건물이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후원과 안채를 훤히 내려다볼수 있도록 설계된 이 건물은 그러나 건축법상 하자는 없다고 한다.99년 5월규제개혁 차원에서 문화재 보호구역 경계로부터 100m 이내 건축물의 건축허가 사전 승인규정이 폐지됐기 때문이다.서울시에서 뒤늦게 문제를 인식하고건축주에게 2층만 건축하도록 종용하는 등 손을 쓰고 있으나 별무소득이라는것. 이 한옥의 대문 바로 앞에는 사랑채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꼴불견 건물이 하나 있다.알 만한 사람은 아는 얘기지만 3공화국의 정보정치를 상징하는건물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또 하나의 시멘트 건물이후원을 들여다 보면서올라간다.‘산수화에 자동차’ 같은 이 건물은 2000년대 관료들의 법형식주의의 증거물이 될 듯싶다. 金在晟 논설위원 jskim@
  • 신용카드 中 상륙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중국 대륙에도 신용카드 시대가 열린다.19세기 중반 프랑스가 신용대출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한지 150여년만에 중국에 상륙하는 것이다. 북경만보(北京晩報)는 7월1일부터 경제수준과 구매력이 높은 상하이(上海)시에서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신용카드 제도를 실시한다고 27일 보도했다.이에 따르면 상하이는 1,450만명의 시민들중 신원과 신용이 확실한 200만여명을 발급 대상자로 선정,신용카드제도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카드발급 대상자는 백화점 및 선불·현금카드 소지자 118만여명,은행과 신용거래 관계가 있는 시민 68만여명,기타 직업과 신용이 좋은 12만여명 등이다. 상하이시의 신용카드 발급 방법은 발급 대상자들이 7월1일 런민삐(人民幣)10위안(약 1,300원)을 은행에 예치하면 된다. 천징(陳靜) 중국인민은행 지사장은 “중국인민은행의 경우 중국의 300개 성(省)·시에서 신용카드 발급 준비를 하고 있어 올해안에 전국적인 신용카드전산망을 연결할 예정”이라며 “앞으로 3년내 중국도 본격적인 신용카드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khkim@
  • 학술 신간

    ◆조선역사 바로잡기(이상태 지음).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를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는 “조선 팔도를 돌고 백두산을 오른 것이 여러차례”이며 “억울한 죄명으로 죽음을 당했다”고 묘사한다.이어 “김정호의 피땀 어린 지도까지 압수하여 불사르고 말았다”고설명한다.과연 사실일까?국사편찬위원회 고중세사실장인 지은이는 아니라고 단언하며 사료에 근거해그 이유를 조목조목 밝힌다.그러면 왜 틀린 사실이 여지껏 교과서에 올라 있을까.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만든 ‘조선어독본’을 비판없이 그대로 이어왔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우리가 흔히 잘못 아는 조선시대 역사상식 30가지를 골라 이를 바로잡아준다.왜 역사를 바르게 알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동시에 읽는 재미까지도 쏠쏠한 교양역사서이다.가람기획 9,000원. ◆19세기 중국사회(신승하 등 지음). 오랜 세월 화이(華夷)사상에 젖어온 중국은 19세기 들어 외부세계로부터 큰충격을 받는다.1840년 아편전쟁에서 패하자 중국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이후 서양에 관한 인식을 바꿔 그 문명을수용하려고 애쓴다. 이 책은 3명의 학자가 쓴 논문 3편으로 구성됐다.첫 주제는,19세기 중국의변화를 불러온 서구의 충격이 중국인들의 가치관을 어떻게 굴절시키는지를다뤘다(신승하 고려대교수).두번째는 중국이 새 체제를 모색하고 실천하는과정과 이에 따른 사회상의 변화를 살폈다(유장근 경남대교수).셋째는 수구·개혁·혁명을 추구한 각 정치세력의 계층·사상·현실적 이해관계를 분석하고 이들과 외세와의 관계를 조명했다.신서원 1만2,000원.
  • 러시아 ‘천년의 예술’ 정수 한눈에

    러시아 역사와 문화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국내 최대 규모의 러시아 유물전이 열린다.화제의 전시는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KBS,롯데와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통신사가 공동주최하는 ‘러시아,천년의 삶과 예술’전. 한·러 수교 1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는 지난해 러시아를 방문한김대중 대통령에게 이타르타스 통신사측이 한국전을 제의해 이뤄졌다.미술작품을 비롯한 문화예술품 550여점이 선보인다.7월8일부터 9월30일까지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울전에 이어 광주(10월16일∼11월29일,국립광주박물관),대구(12월15일∼2001년 1월28일,국립대구박물관),부산(2001년 2월13일∼3월31일,부산시립미술관)에서 순회 전시된다.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은 에르미타쥬 국립박물관·트레차코프 국립미술관 등러시아 26개 미술관 및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것들로, 그중엔 국보급도 적지않다.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러시아 성상화(聖像畵,icon)와 로마노프왕조의유물.비잔틴 미술에 뿌리를 둔 성상화는 러시아가 세계미술사에 남긴 가장큰 업적 가운데 하나다.그러나 성상화는 19세기까지만 해도 동방정교를 신봉하는 나라에서조차 주목받지 못했다.성상화가 미술사적인 연구대상이 되고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다.마티스·칸딘스키·야블렌스키·샤갈·루오 등 많은 미술가들이 성상화로부터 자극받았다.이번 전시에는 ‘카잔의 성모’‘‘성모 우밀례니예’ 등 성상화가 출품된다.“러시아 이콘화야말로 진정으로 참된 민족미술”이라고 찬탄한 화가 마티스의 말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볼 수 있는 기회다. 러시아 역사는 황실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척박했던 민중의 삶과는 달리 황실은 중앙집권체제 속에서 유럽 어느 나라보다도 화려하고 우아한 문화를 일궈냈다.특히 17세기부터 러시아혁명기까지러시아를 통치해온 로마노프왕조(1613∼1917)의 유물은 러시아 황실의 영광을 그대로 보여준다.러시아 제국시대의 훈장인 성 안드레이 성상 훈장,러시아 황제의 옥좌와 보석류,은덮개 복음서 등 200점에 이르는 물품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20세기 러시아 아방가르드 회화도 비중있게 소개된다.아방가르드의 경향은 1912년 샤갈,말레비치,타틀린 등에게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혁명의 예술,예술의 혁명’을 주창한 아방가르드 운동은 10월혁명 이후 “거리는 우리들의 붓,광장은 우리들의 팔레트”라고 부르짖던 시인 마야코프스키에 의해 열기를 더해갔다.포스터는 물론 차체나 선박에 그림을 그려 넣은 선동열차,선동기선 등도 미술의 중요한 무대가 됐다.이번에 선보이는 아방가르드 작가의 작품으로는 말레비치의 ‘추수하는 여자’‘사모바르’‘블랙 스퀘어’,포포바의 ‘회화의 건축술’‘봄’ 등이 있다. 전시에서는 이밖에 19세기 후반 제물포항에 기항했던 러시아 함정 모형과 한·러 근대기 외교문서,베베르 공사의 조선(한국)정세보고서 등도 공개된다. 입장료는 성인 8,000원,중·고생 6,000원,초등생 4,00원.(02)759-7550. 김종면기자
  • 숨죽인 화약고 中東에 가다/ (상)레바논 접경 이스라엘 표정

    중동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시리아,레바논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유혈사태와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중동 평화협정을 이끌어낸 공로로 노벨 평화상 수상자까지 배출해냈지만 평화는 여전히 정착되지 못한 채 겉돌고있다.레바논주둔 이스라엘군이 22년만에 전격 철수하던 지난달 말 본사 남정호 프랑크푸르트 특파원이 이스라엘과 레바논,시리아 등지를 찾았다.중동분쟁의 배경과 쟁점,남특파원의 현지 르포를 3차례에 걸쳐 싣는다. [메툴라(이스라엘) 남정호특파원] 예루살렘에서 90번 국도를 따라 레바논과접경한 이스라엘 최북단 마을 메툴라로 북상하던 지난달 20일 하늘엔 짙은먹구름이 깔려 있었다.곧 닥칠 이스라엘군의 남부 레바논 지역 철군 후 다가올 북부 이스라엘 변경지역의 불안한 장래를 하늘마저 걱정하는 듯했다. 국경선 너머로부터 시도때도 없이 가해지던 헤즈볼라 게릴라들의 카추샤 포격과 총성은 사라졌다.그러나 접경지대 주민들 사이에 퍼져 있는 불안감은도처에서 느껴졌다.메툴라와 인근 휴양마을인 키리야트 쉬모나의 중간지역키부츠 등지에는 새로운 ‘임시 난민촌’이 형성돼 혼잡스러운 모습을 보였다.레바논 남부지역 민병대원 2,500여명과 그들의 일부 가족 등 6,000여명이이스라엘군의 철군 소식에 서둘러 도망쳐 나온 것이다.이들의 모습은 이스라엘군의 남부 레바논 철군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해 주고 있었다. 이스라엘 북부 레바논과의 접경지대에 사는 이스라엘 주민들중 상당수가 다른 곳으로 이주했으며 남은 사람들도 떠날 것을 심각히 고려하고 있다.이스라엘군의 급작스런 철군으로 어느날 갑자기 헤즈볼라 게릴라들과 철조망을사이에 두고 마주 대하게 됨에 따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주민들의 마음을억누르기 때문이다. 키리야트 쉬모나에서 휴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오고 있다는 예후다 샤비트씨(45)는 “이제는 이 마을이 관광 휴양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면서자신도 가족들과 함께 좀더 안전한 남쪽지방으로 이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부 유럽 지역에서 고국으로 이주해온 부모를 따라 이스라엘땅에 돌아와이곳이 제2의 고향이 되어 살아왔다는 메툴라 주민 에풀라 추로프씨는 “이제 새삼스레 접적(接敵)지역에 살게 됐다는 두려움이 생긴다”고 밝혔다.30년 이상을 살아온 메툴라는 사실상 자신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그가 이처럼장래에 대해 두려움을 내비치는 것은 이스라엘군의 레바논지역 철군이 이들에게 얼마만큼의 쇼크를 주고 있는지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처럼 메툴라나 키리야트 쉬모나 등 레바논 접경지대 주민들이 고향이나다름없는 정든 마을을 떠나려는 이유는 불안감 때문.지난 22년간 끊임없이무장공격을 감행해온 헤즈볼라 게릴라들이 “중동지역 최강인 이스라엘 군을레바논 영토에서 쫓아냈다”고 기고만장해 하는 마당에 언제 또다시 공격을감행해 올지 모른다는 걱정에 이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3∼24일 전격적으로 실시된 이스라엘군의 남부 레바논 철군으로 세계의 이목이 쏠렸던 메툴라는 인구 350여명의 이스라엘의 레바논 접경 최북단 정착(定着)촌이자 관광 휴양촌.레바논과 접경된 ‘굿 펜스’라는 검문소에 레바논 땅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마련돼있어 오랜 세월 관광객들이몰려들던 명소였고 남부지역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끓어 관광수입이 짭짤했던 부촌이었다.그러나 이제부터는 이스라엘 군당국이 신변 안전을 위해 이지역 출입을 통제할 방침이어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마을경제가 더욱 타격을받게 됐다. 지중해 연안의 레바논 접경지역 최북단 마을이자 관광 명소인 로쉬 하니크라와 모래사장,수영장으로 유명한 나하리야도 사정은 마찬가지.인근의 악지브 국립공원과 함께 로쉬 하니크라 해상 동굴은 연간 수만명의 관광객들을끌어모아왔던 관광명소.그러나 이제 적들이 코앞까지 다가오게 된 마당이라사정은 달라지고 있다. 지중해와 접해있는 로쉬 하니크라에서 레바논과 맞닿아 있는 국경지대의 899번 도로를 따라 북부지역의 키리야트 쉬모나로 향하던 중간중간에 들러본쉐툴라와 나투라라는 변경 마을도 사정은 마찬가지.이스라엘군의 레바논 남부지역 철군 이후 주민들의 불안감은 어느때보다 고조돼 있었다. 오랜 준비후에 이뤄진 철군이었지만 미국의 ‘사이공 철수’를 연상시켰던 ‘패주(敗走)’의 인상이 이스라엘 국민들 가슴에 깊이 심어졌다. 또 헤즈볼라 게릴라들에게 ‘짓밟힌 듯한’ 이스라엘의 자존심을 회복하는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할 것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따라서 레바논 남부지역에서의 이스라엘군의 철군과 맞바꾼 국경지대의 평화가 어떻게 이 지역 에서 정착되느냐는 세계가 지켜보는 ‘도박’이 됐다. jhn@. *이·팔 분쟁…50년간 전면전만 4차례. 구약성경에서 유대인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된 팔레스타인.하지만 이곳은 지구촌의 대표적인 화약고로서 젖과 꿀 대신 피로 물든 역사를 갖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과 반목은 과거 2,000년 동안 쌓인 역사적,정치적,종교적 배경에서 비롯됐다.이 기간동안 유대인과 아랍인은 4차례의 전면전과 수천번에 달하는 교전을 하면서 최근 50년래 1만5,000여명이 죽고 350만명의 난민이 발생해 서로에 대한 증오심은 깊어만 갔다. ■분쟁의 배경/ 유대인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팔레스타인에 정착,나라를 세웠으나 기원전 100년경 로마제국의 박해를받자 대부분 국외로 이주했다.그뒤부터 19세기 말까지 팔레스타인은 아랍인이 실질적인 주인이었다. 그러나 나라없는 설움이 뼈에 사무쳤던 유대인은 19세기 말 반유대주의가대두되자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뭉치기 시작했다.1917년 11월유대인의 국가건설을 지지하는 영국의 ‘밸푸어 선언’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그로부터 30년 뒤인 1948년 5월14일 유대인은벤 구리온을 초대 총리로 내세워 감격적인 독립선언과 함께 2,000년 동안의방랑생활을 끝내게 된다.반면 이때부터 팔레스타인인의 수난은 시작된다. 이스라엘은 국가 선포 다음날부터 시작된 1차 중동전쟁 등 4차례에 걸쳐 주변 아랍국과 전면전을 치러야 했으나 모두 이겨 당초보다 국토를 4배나 넓히는 성과를 얻었다.하지만 팔레스타인인은 1차 중동전쟁때 발생한 난민을 포함,모두 350만명이 삶의 터전을 잃고 주변 국가에서 떠돌이 신세로 지내야하는 등 이스라엘 건국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가 됐다. ■평화의 싹 / 이슬람 과격분자의 테러와 이스라엘의 보복공격이 되풀이되던팔레스타인에 평화의 싹이 트기 시작한 것은 93년 9월13일 양측이 팔레스타인 자치 확대에 대한 원칙에 합의하면서부터.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이에 힘입어 이듬해 7월1일 자치정부 수립을 공식 선언했다.96년 1월에는 아라파트가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이스라엘은 또 98년 11월 요르단강 서안내주둔군 일부를 철군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유혈사태/ 이스라엘과 PLO는 평화정착의 노력이 진전을 보일 때마다 강경파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야 했다.94년 2월 군복입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무차별 난사,95년 11월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의 암살,96년 3월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과격단체 하마스의 폭탄테러,99년1월 헤브론 총격전 등이 모두 평화의 악수를 나눈 직후에 나온 유혈사태였다. ■향후 전망/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미국의 중재로 지난 13일 평화협상을재개했으나 팔레스타인 죄수 석방 문제를 놓고 의견 차이를 보이다 14일에는급기야 협상을 일시 중단했다.또 하페즈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10일갑자기 사망,중동의 중심축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시리아로넘어가 팔레스타인 문제가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여러 걸림돌에도 불구,지난해 5월 당선된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차기이스라엘 대통령으로 거론되는 시몬 페레스 전 총리가 평화정착에의 의지가강해 향후 전망은 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중동분쟁 일지.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 독립 선언. ■〃 5월15일 1차 중동전쟁. ■1956년 10월 2차 중동전쟁.이스라엘,시나이반도 점령. ■1967년 6월 3차 중동전쟁.이스라엘,골란고원·요르단강 서안·가자지구·동예루살렘 점령. ■1973년 10월 4차 중동전쟁. ■1978년 9월 이집트-이스라엘 캠프 데이비드 협정 체결. ■1982년 4월 이스라엘,시나이반도 이집트에 반환. ■1987년 12월 팔레스타인 인티파타(봉기) 시작. ■1993년 9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오슬로 평화협정 체결.양측상호 승인. ■1994년 5월 이스라엘,요르단강 서안의 예리코시 팔레스타인경찰에 이양. ■1995년 11월 라빈 이스라엘 총리 암살. ■1996년 1월 아라파트 PLO의장,초대 대통령 당선. ■1998년 10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와이리버 평화협정 체결. ■1998년 11월 이스라엘,요르단강 서안내 주둔군 일부 철군. ■1999년 5월 에후드 바라크,이스라엘 총리로 당선. ■1999년 6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상회담 재개. ■2000년 1월 이스라엘-시리아 골란고원 반환 관련 평화협상 재개. ■〃 5월24일 이스라엘,남부 레바논에서 완전 철수.
  • [21세기 과학 대탐험](16) 기상조절

    인류는 기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의식주를 해결하고 문화를 창출하면서살아왔다.지구상에는 무더운 적도지역,추운 극지역,비가 많은 지역,건조한사막지역,고산지역 등 다양한 기후특성을 가진 지역들이 분포하고 있다.이들지역에 사는 인간들은 각기 그 지역의 기후에 적응하면서 그들 나름대로의문화를 형성해왔다.그만큼 기후는 인간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옛날에는 사람들이 날씨에 적응하면서 살아왔지만 지금은 기상예보를 통해서 미리날씨에 대비할 수 있게 됐다.기후변화에 대한 수많은 노력과 연구를 통해 기후를 예측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해 지기는 했지만 자연의 오묘한 조화를완벽하게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하다.특히 이상기상에 따른 기상재해를 완전하게 피하기는 어렵다.기후변화와 그 영향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은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공동으로 설립한 IPCC(기후변화에 관한정부간 협의회)의 종합 평가보고서를 통해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200년 동안 급속한 산업화로 사람들이 배출한 온실가스(이산화탄소,메탄,아산화질소,염화불화탄소 등)의 증가로 인해 지구온난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구평균 지표기온이 19세기 말 이후 0.3∼0.6℃ 정도 상승했으며 이로 인해 극지방의 빙하가 녹고 해수면 수위가 과거 100년 동안 10∼25㎝ 상승했다. 따라서 인간을 비롯한 생태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됐다.엘니뇨와 라리냐 등과 같은 현상과 더불어 세계 곳곳에서 막대한 인명과 재산의피해를 가져오는 기상재해가 속출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과학자들은 보고있다. 그러면 인류는 기상재해를 앉아서 당하기만 하는가?그렇지는 않다. 1992년 브라질 리오에서 154개국 정상급들이 참석한 모임에서 기후변화 협약을 맺고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 전개하기로 약속했다.수많은과학자들도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고 최상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므로 미래는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첨단 과학시대에 고품질의 기상서비스를 위해서는 일기예보 정확도 향상,산업에 이용될 수 있는 다양한 산업기상정보의 생산,그리고 이들 정보의 신속한 전달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그럼 우선 예보의 정확도 향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보자.날씨는 주로 공기의 흐름에 의해서 지배되며,이러한 공기의 흐름이 미래에 어떻게 변하는 지를 예측하는 것이 일기예보다.따라서 일기예보를 보다 정확하게 하기위해서는 세밀하고 정밀한 기상상태를 알아야 한다.시·공간의 4차원 관측을 위해서 기상위성,기상레이더,지상관측,부이(바다에 떠있는 기상관측 장비) 등을 조밀하게 설치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상위성은 지구대기를 24시간 감시하는 눈의 역할을 한다.태풍,허리케인등의 발생,발달,이동 및 소멸과정을 위성으로 추적할 수 있다.기상레이더는좁은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내리는 폭우를 잘 감시할 수 있으며,해상에서의기상상태는 부이를 통해서 관측되고 이들 자료는 위성을 통해서 수집된다. 일기예보의 발달과정은 컴퓨터의 역사와 같다고들 말한다.일기예보 모델은기능하면 많은 조건을 포함하는 것이 좋으나 조건이 많으면 많을수록 계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므로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이 조건에 대한 극단적인 예를 유명한 수학자 로렌쯔의 ‘나비효과’에서 볼 수 있다.중국북경에서 나비가 한번 날개 짓을 한 영향으로 다음 해 뉴욕에서 폭풍이 몰아칠 수있다는 이론이다.로렌쯔의 혼돈이론에 따르면 아무리 훌륭한 컴퓨터를 동원해도 날씨를 100% 정확하게 맞출 수는 없다. 그러면 아예 날씨를 바꿀 수는 없을까? 좋은 생각이지만 자연 현상인 날씨를 인위적으로 변경시키는 ‘기상조절’이 쉬운 일은 아니다.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러시아,중국,이스라엘등 과학 선진국에서 인공증우,안개소산,우박억제 등의 기상조절 기술을 꾸준히 개발해 왔다.이러한 기상조절은 우리 인간이 인위적으로 유리하게 날씨를바꾸는 것으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날씨에 대처하는 첨단 기술이다. 인공증우 기술은 구름층은 형성돼 있으나 대기 중에 응결핵 혹은 빙정핵이적어서 구름 방울이 빗방울로 자라지 못할 때 인위적으로 구름씨를 뿌려 특정지역에 비를 더 많이 내리게 하는 것으로 미국,러시아,중국 등에서는 많은실험을 통해서 가능성을 확인했다.세계기상기구 자료에 의하면 기상조절에관한 연구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는 나라는 총 27개국이다.러시아는 1932년세계 최초로 인공비연구소(IAR)를 설립해 지속적으로 기상조절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인공증우,안개소산,우박억제 등에 관한 기술이 상당량 축적된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개소산 기술은 공항이나 고속도로 등에서 안개로 인해 항공운항 및 차량통행에 지장이 있을 때 인위적으로 안개를 없애는 것으로 가장 실용화된 기상조절기술이다.앞으로 이 기술이 실용화되면 안개로 인한 항공기 결항과 고속도로의 교통사고 및 차량통행 제한은 사라질 것이다.현재 러시아는 이탈리아와 공동으로 안개소산 실험연구를 알프스산맥 부근의 고속도로에서 수행중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기상조절 기술은 태풍이나 허리케인 혹은 토네이도와 같은 악기상 현상이 나타났을 때 이것을 약화시켜서 없애 버리거나,이동방향을 피해가 미치지 않는 바다로 돌리는 기술들이 있다.조그마한 태풍 하나가 방출하는 에너지는 수소폭탄 100개를 합한 것보다 크다.때문에 이러한기술들은실용화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서 당분간은 경제성이 없어보이지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국제협력과 과학의 발달로 미래에는 필요한 기상정보를 손쉽게 받아볼 수 있고 기후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인위적으로 날씨를 바꾸는 기상조절 기술이 실용화 될 것이다. 남재철 기상연수소 해양연구실장. *기상분야의 국제협력. 기후현상의 특성 중 하나는 인위적으로 지구상에 그어놓은 국경을 완전히무시한다는 것.때문에 기상분야의 연구에는 국제협력체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인류를 기상재해로부터 구하기 위해 공동으로 추진되는 기상분야의 국제협력은 기술혁명과 과학의 발전에 의해 더욱 추진력을 얻고 있다. 미국 일본 호주 EU 등은 세계기상기구(WMO),유네스코의 정부간 해양학위원회(IOC) 등 관련기구와의 국제협력 아래 최신 해양관측·통신·정보처리 기술을 구사해 전 세계 해양의 상황을 실시간에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있다.이른바 고도 해양감시계획(ARGO)이다. 지구표면의 7할을 차지하는 해양은기후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관측·감시가 부족했다.ARGO 계획은 해양의 변화와 상황을 전 지구 규모에서 관측할 수있는 시스템을 구축,장기예보의 정확도를 2004년에는 70%까지 비약적으로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현재의 장기예보 정확도는 45% 정도다. 이 계획에 참가하는 국가들은 프로젝트에 따라 지난 4월 일제히 국제적인표준규격으로 만든 1m 길이의 관측기(ARGO플로트)를 수심 2,000m의 해저에투하했다.관측기는 해류에 흘러다니다 10∼14일 간격으로 수면에 떠올라 바다의 깊이에 따른 수온,염분량 등의 정보를 기상위성에 보낸다.정보송신을마친 관측기는 다시 해저로 들어가 정보측정을 한다.각국은 수집된 해저정보를 기초로 기압배치도와 비슷한 그림을 작성,실시간으로 해양의 상태를 분석한다. 관측기는 해수면뿐 아니라 해저의 정보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기후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해양순환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여기서 얻어진 해양관측 정보들이 축적되는 것과 동시에 해양데이터를 수집·해석·제공하는 시스템이 보완된다.참가국들의 연구기관들은 연구성과들을활용해 해양데이터 동영상화 기술을 향상시키고 해수온 예측모델 및 기후변동 예측모델을 고도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일본은 ARGO계획을 밀레니엄프로젝트의핵심과제로 선정했다.참가국들은 2005년까지 태평양 대서양 등에 3,000개의관측기를 자국 주변의 해역에 투하하게 된다.거의 모든 해양상황의 실시간파악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85년부터 10년간 전개된 열대해양 및 전 지구 대기 프로젝트(TOGA)가 계절및 기후예측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TOGA 프로젝트는 엘니뇨의 해수면 온도편차와 그로 인한 대기순환의 변화를 여러 계절 규모에서 연간 규모까지 예측할 수 있는 과학적 기초를 마련했다.ARGO 계획도 수개월에서 수년간의 날씨와 기후의 변화를 예측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함혜리기자 lotus@
  • [대한시론] 한국통일과 아시아의 돌파구

    최근에 있었던 강택민과 김정일의 회담,그리고 그간 경제위기,체첸사태 등으로 시달려 국제 문제에 관한 발언이 적었던 러시아 푸틴 대통령도 평양방문을 발표하면서 한반도 문제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새삼 오늘의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 역학의 구도가 조선왕조 말기와 유사함을 실감하며,‘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명제를 떠올린다. 역사 이래 유라시아 대륙은 민족 이동,침략,전쟁 등 소용돌이의 연속이었다.대륙의 동녘끝에 자리한 한국은 그 움직임에 민감하게 관련되어 왔으며,특히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쳐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동학운동(1894)으로 시작된 한민족의 비극은 청·일전쟁,일제강점으로 이어졌고,해방은 곧 6·25를 야기하였으며,분단상태는 20세기 말,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일편단심 중국에 사대를 일삼은 조선은 마치 미·일·중·러의야욕 앞에 속살을 드러낸 규방의 처녀처럼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지난 한세기동안 한국 캄보디아 베트남 중국 유고슬라비아 등은 한결같이 국민국가의 형성에 실패함으로써 비극적 체험을 겪었던 것이다. 요컨대 20세기는 국민국가를 재빨리 이룬 나라가 그렇지 못한 나라를 짓밟는 제국주의적인 갈등에서 막을 올렸고,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를 넘는 기간은 그때 입은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한 독립과 민주화를 향한 알력이었다. ‘동양은 한 사람만이 자유임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희랍 로마의 세계는 소수만이 자유임을 알고 게르만세계는 모두가 자유임을 알고 있다’라는 헤겔의 고전적인 명제가 있다.동양은 전제적인 체제로써 자유를 억압해 왔고 희랍,로마의 전통을 이어 받은 서양(게르만세계)에서는 민주적인 정치체제로써 자유를 표현함으로써 역사를 정체시키는 동양과 스스로를 보편화시킨 서양의 역사가 대비된다. 그러나 그간 민족적 비극을 겪어 온 여러 나라는 추상적인 ‘자유’의 개념보다는 부족,지역,종교적인 신념을 내세웠으며,나라를 앞세우는 시민의식을형성하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행사에 애쓰는 4강의 힘을 적절히이용하여 역사적인 남북통일의 첫걸음을 내디뎠으며,역사이래 처음으로 주변 국가를 설득,자주적으로 한국문제 해결의 기회를 포착함으로써,우리가 하나임을 자각하고 진정한 국민국가를 이룰 절호의 기회를 마련했다.통일은 곧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것이며,아시아의 중심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우선 북한에 대한 인프라의 정비차원에서 남북이 철도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지난 5년간 부산에서 일본을 잇는 해운항로는 7개에서 35개로 증가했다. 한민족의 영향력은 일본열도에서 유라시아대륙 깊숙이 파고들어 갈 것이며,또한 영종도국제공항은 태평양 연안국가와 유라시아대륙 전역을 연결하는 중심이 될 것이다. 주변국가의 엇갈리는 이해를 조장할 역학구도의 중심국가는 철저하게 평화공존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필연적으로 엄청난 한민족의 에너지가 발산될것이며,한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공동체(AU)구상도 현실성을 갖게 될 것이다. 특히 한·중·일 세 나라의 문화적 공통기반(유교,불교,한자)은 몬순지대라는 풍토조건과 오랜 농경의 체험,그리고 교육의 중시에 있으며 특히 종교에관한 세속적인 관용성에 있다.이 기반에서 한국이 서양의 근대문명을 충분히 소화하고 유연한 민족문화를 가진다면 AU는 EU보다 훨씬 능률적·정신적인공동체 의식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주변의 태평양 연안 국가들에 긴장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오히려 상호간의 공존 의식을 확산시킬 것이다. 역사는 무의미하게 되풀이되는 구도를 등장시키는 것은 아니다.마르크스는한 번의 좌절은 비극이지만 같은 이유로 발생한 좌절은 역사에서 아무 것도배우지 못한 어리석음이 연출한 희극이라고 했다.겉보기에는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역학의 구도가 100년 전과 다름없어 보인다.그러나 21세기 우리가 스스로 민족의 일체감을 이루어 간다면 국격(國格)을 다듬어 새로운 한민족의 위상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金 容 雲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 [발언대] 中의 휴대폰·합성수지 禁輸조치는 횡포

    우리정부는 최근 마늘수입(약 1,500만∼1,800만달러)이 크게 증가해 국내마늘농가가 큰 피해를 보게 됨에 따라 WTO에 근거해 국내산업 보호조치를 취했다.반면 중국정부는 일방적으로 한국산 휴대전화기 및 합성수지제품(약 5억달러)에 대해 무역보복조치를 취했다. 이는 오늘날 세계화,개방화시대를 살아가는 문명사회의 세계인이 나갈 방향이 아니다.19세기나 20세기 전반기와 같은 일방적,패권적 제국주의시대에나통용될 수 있는 너무 낡은 관점이다.미국도 WTO출범과 함께 일방무역주의를철회했다.미국의 통상법 301조는 WTO협정 범위 내에만 작동된다. 이제 모든 나라는 국제무역기준과 관행에 따라 무역 규제조치를 취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세계화,개방화시대에 합류할 수 없다.그런 나라는 지구촌시대에 외톨이가 될 것이다. 그러면 국제무역기준과 관행은 무엇인가?바로 95년 효력이 발생한 WTO협정이다.한국이 수입마늘에 취한 무역조치는 WTO협정의 ‘긴급수입제한조치협정(Agreement on Safeguards)’에 따른 것이다.이 협정은 ‘덤핑행위방지협정’,‘정부보조금지급제한협정’ 등과 함께 WTO가 추구하는 시장개방촉진을뒷받침하는 보완협정 중 하나에 속한다.이런 협정이 없다면 WTO의 개방화정책은 제대로 추구될 수 없다.세계화시대의 정부의 주요역할을 국제무역기준과 관행에 따라 공정무역질서를 확립하고,경제주체의 경제생활을 동일하게보호해주는 일이다. 중국이 취한 조치는 이 협정에 근거하지 않고 있다.이 협정 제8조 3항은 3년간은 무역상대국이 결코 무역보복조치를 취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중국은 즉시 보복조치를 취했다.제8조 1항 및 2항은 무역보복조치는 WTO로부터 인정받아야 하고,무역조치는 우선 동일분야에서 추구하고,점진적으로 다른 분야로 교차 보복토록 하고 있다. 중국은 이 정신에도 반한다.특히 한국은 92년 국교수립 이후 중국에 대해 WTO회원국에게 베푸는 모든 무역특혜를 그대로 부여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김형제[안산시 고잔동]
  • 록 뮤지컬 ‘렌트’ 한국판 탄생

    ‘최근 10년동안 만들어진 뮤지컬중 가장 박진감 넘치며 미국적인 작품’(뉴욕타임즈)‘미래로 향한 뮤지컬의 지향점’(버라이어티)‘뮤지컬의 분수령’(런던타임즈)전세계 유력 언론으로부터 격찬을 받으며 5년째 브로드웨이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뮤지컬 ‘렌트’가 국내에 상륙한다.‘갬블러’‘라이프’등 외국 히트뮤지컬을 주로 공연해온 신시뮤지컬컴퍼니는 예술의전당과 공동으로 오는7월5∼2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한국판 ‘렌트’를 공연한다. ‘렌트’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록뮤지컬.‘라보엠’에 등장하는 19세기 파리 뒷골목의 시인,철학자,화가 등은 ‘렌트’에서 1990년대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허름한 아파트에 세들어사는 작곡가,비디오 아티스트 등으로 탈바꿈하지만 열악한 환경을 딛고 진정한 예술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치열한 사랑과 열정이라는 주제만은 변함없다.작곡가 조나단 라슨이 작가 빌리 아론슨과 7년에 걸쳐 제작한 ‘렌트’는 96년1월 뉴욕 오프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막올린 뒤 그해 토니상4개부문,드라마부문 풀리처상 등 각종 상을 휩쓸면서 객석점유율 5년 연속 1위라는 흥행신화를 만들어냈다.브로드웨이 대작뮤지컬 제작비의 10%에 불과한 적은 돈을 들인 ‘렌트’의 성공비결은 다름아닌 ‘파격’에 있다. 에이즈,동성연애,마약중독 등 자본주의사회 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정면으로 무대위에 끌어들이는 한편 이를 90년대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중음악언어로 표현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형성한 것.중산층의 정서에 맞고 휴머니티를 강조하는 말랑말랑한 뮤지컬에 길들여져있던 관객들은 이 낯설고 도발적이면서 가슴밑바닥을 두드리는 묘한 매력의 ‘렌트’에 아낌없는 환호를 보냈다. 5만5,000달러의 저작료를 지불하고 판권을 계약한 신시는 오페라극장 규모에 맞춰 원작보다 훨씬 스케일있는 무대를 꾸민다.원래 ‘렌트’는 중극장용이어서 무대기법보다는 소도구로 아기자기한 재미를 제공하는데 반해 신시의‘렌트’는 2개의 회전무대를 이용해 장면을 전환하는 등 대극장의 부피감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재즈댄스,탱고 등 춤을대폭 보강하고,코러스도 미국‘렌트’보다 10여명 더 늘려 풍부한 앙상블을 자랑한다. 대사가 거의 없이 노래로만 진행되기 때문에 출연진 전원은 음악을 위주로한 까다로운 오디션을 거쳐 캐스팅됐다.남녀주인공인 로저와 미미역의 남경주,최정원을 비롯해 전수경 주원성 이희정 등 출연배우들은 공연내내 가스펠,리듬앤 블루스,하드록,그런지 펑크록,발라드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40여곡의 노래를 쉴새없이 불러야한다. 연출은 ‘조선제왕신위’로 올해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받은 윤우영이 맡았다.‘명성황후’‘겨울나그네’의 조연출로 뮤지컬 감각을 익힌 바있는 윤우영은 “동성애와 에이즈 등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실정에 맞게 손질했다”면서 “완성도 높은 음악과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우리 관객들에게도 감동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오는 20일까지 예약하는 관객은 표값의 20%를,처음 3일간은 프리뷰 공연으로 30%를 각각 할인해준다.(02)580-1300이순녀기자 coral@
  • [김삼웅 칼럼] 통합민족사 첫걸음될 정상회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오늘 (13일) 김대중대통령이 평양 방문길에오른다. 남북이 갈라진 지 55년만에 꿈같은 일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반세기가 넘는적대와 반목을 씻고 화해와 협력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치와 전략적 가치 때문에 외부세력의 지배권 경쟁이끊이지 않았다. 마치 유럽의 폴란드나 벨기에처럼 주변세력의 판도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되었다. 동북아시아 십자로의 중앙에 위치한 이유로 중·일·러 등 인접세력은 물론 그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미국·영국 등 역외(域外)세력들까지 전략적 요충으로 넘봤다. 외적의 한반도 침략은 오래고 줄기찼다. 기원전 2세기 중국 한나라의 고조선침략을 시발로 기원 7세기 수·당의 백제·고구려 침입,10세기 말과 11세기 거란족의 침입,13∼14세기 몽고족 침입,16세기 말 일본 침입,17세기 만주족 침입,19세기 말 일제 침입으로 이어졌다. 그때마다 끈질긴 민초들이 외적을 물리치면서 국권을 지켜냈다. 그러나 한말 일제침략으로 망국을 가져오고 해방후 미·소의 분할점령으로시작된 분단사가 오늘에 이른다. 주변 강대국들은 침략과 함께 분할책략도 서슴지 않았다. 단독지배가 어려울 때는 분할을 획책했다. 최초의 분단시도는 임진왜란을 도발한 도요토미히데요시다. 일본은 1594년 강화조건으로 명나라에 조선8도 분할론을 제기했다. 경상·전라·충청·경기도를 일본이 차지하고,서울·강원·황해·평안·함경도를조선에 반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후 일본은 한번도 침략과 분할점령의야욕을 접지 않았다. 청·일전쟁 직전 영국정부는 전쟁발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한반도 남부를일본이,북부를 청국이 지배하는 조선양분론을 주장했다. 이 제안은 양국이모두 거부하여 무산됐다. 한반도는 태평양전쟁 말기 하마터면 네쪽이 날 뻔했다. 미국 합참본부는 ‘JWPC 358-1’이란 한반도와 일본문제 기밀보고서에서 미·영·소·중의 한반도 공동점령을 시도했다. 미국은 서울·인천·부산,소련은 청진·나진·원산,영국은 군산·제주,중국은 평양을 각각 점령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전략은미국의 원폭투하로 일본이 예상보다 빨리 투항함으로써 작전계획이 대폭 수정되고 결국 미·소의 한반도 분할점령으로 마무리되었다. 주변 강국들은 한반도를 지배하거나 단독지배가 어려울땐 분할점령,그도 안되면 중립화를 제기했다. 1882년 일·청이 조선에서 패권장악을 경쟁할 때일본이 미·영·불·독 4개국 협정을 통한 한반도 중립화를 제기한 것이나,일본이 청국과 전쟁(청·일전쟁)을 하면서 조선중립화를 제의한 것은 모두전통적인 한·청관계를 끊고 자신들의 지배권을 강화하려는 속셈이었다. 한반도에 대한 주변 강국들의 이해관계가 치열하여 일본은 한반도를 ‘일본의 심장부를 노리는 비수’로,중국은 ‘중국의 머리를 치려는 망치’로,러시아는 ‘자국의 팽창에 분리될 수 없는 행동반경’으로,미국은 ‘극동의 전진기지’로 인식하면서 지배와 분할 또는 영향력 극대화를 노렸다. 이렇게 한민족의 운명은 토착세력보다 외부세력에 의해 형성되고 우리는 그 세력판도에서 ‘운명적’으로 살아왔다.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 확대하고자 주변 4강의 각축이 치열해지고 있다. 4강을 과거식의 침략주의·분할세력으로 도식화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또한 시대와 국제정세도 크게 바뀌었다. 문제는 우리민족의 주체적 역량이다. 1,300년이 넘는 통일민족국가로서 전통과 역사적 공동체의식에서 분단을 극복하려는 주체의식이 절실하다. 해방공간에서 이념싸움과 정파대결로 통일정부 수립의 기회를 놓친 것을 교훈삼아 인내와 예지로서 4강 외교력을 강화하고 내부적으로는 분리주의·냉전의식을 청산하면서 국제환경을 활용하는 지혜가 시급한 과제다. 많은 나라가 외세침입과 분단책동 그리고 분열과 통합과정을 겪었지만 한민족의 경우는 너무 심했다. 그만큼 교훈과 경험도 다양할 것이다. 오늘 출발하는 김대통령의 북행(北行)과 내일부터 열리는 ‘양김회담’을 남북이 잘활용하여 분단사에 종지부를 찍고 통합의 새 역사를 창조하는 계기로 삼아야한다. 정상회담이 그 시발점이 돼야 한다. 김삼웅 주필.
  • 사회·문화적 배경 따라 ‘섹스의 역사’달라진다

    집안의 성화에 못이겨 성직자가 된 젊은 귀족이 있었다.한적한 시골여관에머물게 된 이 젊은 수사는 뜻하지 않은 시험에 든다.여관집 외동딸의 장례식전날, 주인내외 대신 밤새 시체를 지켜줘야 했던 그는 그만 죽은 여자의 미모에 반해 시체를 범하고야 말았다.문제는 그 다음이다.죽은 줄 알았던 여자는 다시 깨어났고 수사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미국 역사학자 토머스 월터 라커가 쓴 ‘섹스의 역사’(원제 Making Sex·황금가지)는 첫장이 이렇게 열린다.‘무슨 엽기냐?’ 싶겠지만,책은 엽기와는하등 상관이 없는 성(性)과학의 고전임을 미리 귀띔해두고 넘어간다. 시체를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는 이 책에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섹스에 있어서의 남녀,정확히는 여자의 성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달리 해석돼왔는지를 보여주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다시 본론.이 이야기속 여성의 상태에 대해서는 18세기 이전과 이후의 해석이 판이했다.“여자는 성적 희열에 조금이라도 몸을 떨었을 것이다.해서,여자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수사가 몰랐을 리 없으며 여자 또한 죄를 피하기 위해 땅에 묻히기 직전까지 혼수상태를 위장했음에 틀림없다” 고대 이후 계몽주의 시대 이전까지 통했던 이 논리는 19세기로 들어서면서 전복됐다.“여자는 육체의 쾌락을 느끼지 않고도 임신할 수 있다.따라서 수사는 여자가 살아있다는 걸 끝까지 몰랐을 것이다” 쾌락없이는 어떤 생명체도 만들어질 수없다는 낡은 이론이 마침내 깨진 것이다. 책은 생물학적 성인 ‘섹스’와 사회학적 성인 ‘젠더(Gender)’의 관계에깊이 주목하고 있다.젠더와 섹스 모두 불변하는 자연현상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이해관계에 따라 재구성돼왔음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주장한다. 여성의 몸이 ‘불완전한 형태의 남성’쯤으로 간주돼온 역사가 얼마나 길었었는지 새삼 놀랍다.‘남성의 생식기를 몸안으로 밀어넣으면 곧 여성의 몸이된다’는 남근적 해부학 이론(여성의 성기는 남성의 불완전한 형태일 뿐이라는)을 제시한 고대로마 갈레누스식 사고방식이 뒤집어진 것 역시 18세기가 지나서였다. 중반을 넘기면서 책은 자연스럽게 여자의 성쪽으로무게중심을 옮긴다.사람들의 인식속에 두가지 성 모델이 확실히 잡아가는 역사를 돋을새김으로 보여준다.“여성의 존재인식은 과학발전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정치적 혁명에 따른 결과”라고 주장하는 지은이는 프랑스혁명 시절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재미난 대목도 많다.정자는 ‘능동적’이고 난자는 ‘수동적’이라는 도식은가차없이 깨진다. 여성의 자궁안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난자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정자들의 그림에 대해 의문부호를 찍어본 적이 있는가? 책은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난자는 정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서,수많은 정자들이 희생을 감수하고 달려들어야만 공략이 가능하다는…. 섹스의 역사는 사회·문화적 동인에 의해 간단없이 진화되고 있다는 결론이다.분명,섹스는 지금도 진화중이다.종족번식의 의미를 가졌던 성이 어느새사이버섹스로까지 변이돼 있는 오늘의 상황은 먼훗날 어떻게 해석될까.1만8,000원. 황수정기자 sjh@
  • 특별기고/ 맑은 마음으로 허심탄회해지시라

    모레,2000년 6월12일,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대표단과 취재단 일행이 대거 평양으로 들어간다.그렇게 2박 3일간의 북한 체류 일정이 시작된다. 남북 당국간에 이 합의가 이뤄진 뒤 지난 두어달 어간에,이 나라의 수많은논자들은 이번 이 회담의 거창한 뜻을 중언부언 강조한 바 있거니와,정작 이 날에 와 닿으니,그 수다한 말,말,말 너머의 본원적인 떨림,전율이 온 몸을휘감아 온다. 더러는 ‘언외(言外)’의 국면이라는 것이 있다.한두마디 말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어느 절대절명의 정지.말 몇마디나 글 몇줄이 일거에 싹수가 없게 떨어져버리는 국면.이번 남북 정상회담이야말로 바로 대표적으로 그런 정지요,국면이다. 1948년 대한민국이 선포되고,같은 해에 역시 인민공화국이 선포되면서 나라가 반 동강이 난 뒤,실로 처음으로 남북 두 정상이 마주 앉는 이 자리는,비단 지난 55년간의 피 어린 남북 분단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 이전, 19세기 말부터 이 나라 운세가 곤두박질 쳐 오다가 끝내는 35년간식민지로전락해 버렸던 저 망국의 비운까지, 지난 백년 어간의 이 나라 이민족의 갖은 환란과 굴욕을, 그리고 끝내는 제 땅에서 못 살고 이국 땅을 떠돌다가 유랑민으로 숨져갔던 선대들의 통한까지를 안 자락으로 깔고 있는 것이다. 남북 정상 두 분께서 만나는 그 현장을 우리 산 사람은 산 사람들대로 텔레비전 화면으로 볼 것이지만,이미 저승에 가서도 유한(遺恨)을 품은 채 삭이지 못하는 6·25전란시의 저 수다한 남북 양측 전사자들의 원혼과,그 이전에 나라를 잃고 이국 땅에서 비명에 간 저 수많은 우리 선대들도 선대들대로,한껏 눈을 부릅뜨고 두 정상이 만나는 저 광경을 뜨겁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그렇게 ‘망국’에서 ‘식민지’로,다시 ‘분단’으로,지난 백년을 악몽으로 얼룩지게 했던 우리 현대사는 한 맥락이었음이 이 자리서도 새삼스럽게 확인이 된다. 따라서 이 민족의 지난 현대사 백년의 그 깊은 질곡을 이 참에 끝장내고,이 민족이 명실상부하게 새롭게 일어서며 웅비(雄飛)해갈 수 있는 기본 터전을 마련해 보자는 웅대한 뜻이 이번 이회담에는 담겨 있다.두 정상께서는 어련하시겠지만,2박 3일 긴 체북(滯北) 일정을 지켜보게 될 우리 모두 이만한시야는 모름지기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거창한 뜻을 중언부언 강조하는 것이 이 자리에서는 조금 어색하고 가당치 않아 보이기도 한다.왜냐하면 남북 정상의 만남이 바로 코 끝에 와 닿은 이 마당에서는,그런 종류의 장중한 연설은 그 분들의 운신을 필요 이상으로 무겁게 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며칠 전의 모 기관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3.3%가 2차 정상회담도 열릴 것으로 벌써 전망들을 하고 있었으며,서울에서 열릴 경우 95.1%가 찬성한다고 하였고,특히 81.9%는 그럴 경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환영할 것이라고도 하고 있었다.환영할 것이라고…!! 아,어떤가.놀랍지 않은가.이 정도로까지 우리 남쪽 인심은 지난 2,3년 어간에 급변하고 있었던 것이다.98년 ‘현대’의 정주영옹이 소 1,000마리를 끌고 판문점을 넘어 입북(入北)할 때만 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기겁을 하게 놀랐었고,온 세계가그 그로테스크한 정경에 혀를 내둘렀었지 않은가.그리고작년 99년에는 서해상에서 남북 함정 간에 불을 뿜으며 투덕투덕 맞붙기도했었는데,이젠 북의 국방위원장이 서울로 오게 되면 환영할 것이라고들 하고 있으니,이거야말로 명실공히 격세지감이 아니고 무엇인가.우리 남북 관계는 비록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이런 정도로 급변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우리뿐만 아니라 북도 마찬가지였다.지난 2년 어간에 북도북대로 알게 모르게 엄청나게 변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오죽하면,김정일 총비서가 예고도 없이 비밀리에 베이징을 방문,중국 요인들을 만났을 것인가…!! 요컨대 결론은 간명할수록 좋다.무겁고 장중한 것일랑 일단 차후로 미루고,우선은 남북 정상 두 분께서는 진정으로 맑은 마음으로 허심탄회해지시라.그렇게 두 분부터 그 간에 50여년간 끊겼던 동족의 정분이 싸목싸목 되살아 오며,공히 가슴이 화릇하게 따뜻해지시라. 두 분이 같이 파안대소로 많이 많이 웃으시라.우리 모두 이번 두 정상의 ‘만남’에서는 그 이상으로 더 바라질랑말자.과욕을 부릴 것 없이,이번 ‘만남’에서는 이런 정도면 족하다.이거야말로 바로 남북간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발이 될 것일테니까…. 이호철 소설가·경원대 초빙교수
  • 佛 프랑크 장편소설 ‘보엠’

    시대를 막론하고 예술가에게는 한곳에 정박하는 속성이 없다.대상을 뾰족히정해놓은 것도 아니면서,끊임없이 뭔가를 찾아헤매는 이들이 그들이다.프랑스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단 프랑크의 장편소설 ‘보엠’(이끌리오)은이런 이해를 전제하고 읽으면 몰입하기가 훨씬 쉬운 책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프랑스 몽마르트르와 몽파르나스를 누빈 예술가들의 삶과,사랑과,작품세계.곧이곧대로 부제를 붙인다면 ‘예술가들의 보헤미안 생활’쯤 되지 않을까. 책은 현대예술의 산실 몽마르트르를 구석구석 훑으며 만화경같은 이야기를펼친다.그 안에는,보석같은 작품세계를 일구는 데 번뜩이는 광기와 기행(奇行)을 빼놓지 않았던 얼굴들이 들어있다.피카소,아폴리네르,자코브,모딜리아니,브라크,마티스,브르통…. 이 ‘고상한 말썽꾼들’은 당대에는 거개가 뒷골목이나 서성거리는 무명이었다.자유와 관용,예술적 언표가 넘실대는 무대 몽마르트르에서 소설은 피카소를 주인공으로 잡았다.열아홉살에 프랑스를 찾은 스페인 청년화가를 축삼아현대예술의 상징인물들이 얼기설기 그물망을 친다. 시인 막스 자코브는 피카소에게 맏형 노릇을 했다.‘청색시대’ 이후 그림이 팔리자 않아 의기소침한피카소를 위해 그는 창고직원으로 일하며 물감을 사다날랐다. 저 유명한 ‘알코올’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도 어느새 그들의 우정에 끼어든다.피카소의 화실은 모딜리아니,브라크 등 당대를 풍미한 화려한 이름들이 늘상 들락거린다. 상징주의,인상주의를 넘어 초현실주의까지 예술사조의 흐름을 연대기적으로보여주는 데서 책의 매력이 끝나냐 하면,그게 아니다.속살처럼 내밀해서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군침도는 예술가의 일화들이 촘촘하다.못말리는 질투심으로 연인 페르낭드를 가둬놓기까지 했던 피카소,영감을 얻으려 빵집 진열대위에다 오줌을 갈겼던 아폴리네르,복권사기극을 벌이던 조각가 마롤로…. ‘인물로 본 예술사’라 해도 좋을 만큼 거의 논픽션이다.예술사의 한 지점을 떼어내 이렇게까지 서정적으로 증언한 책은 흔치 않다.2·3권이 조만간나온다.박철화 옮김,값 1만원. 황수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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