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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면산내셔널트러스트 송정숙 이사장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보존 가치가 높은 자연자원이나 문화자산을 가려 훼손을 막고 관리 활동을 펴는 시민환경운동이다.회원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증여,자원봉사가 이 운동의 원동력이다. 국내에서는 10여년전 광주 ‘무등산공유화운동’이 시발이다.현재 해남 당두리 철새 도래지 등에서 이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지난해에는 서초구 우면산 개발에 반대하는 인근 주민들이 트러스트를 조직, 벌써 9000여명의 환경파수꾼을 모았다.재단법인 우면산내셔널트러스트 이사장인 송정숙 전 보건사회부 장관을 만났다. ●개발에 숨통조이는 시민의 허파 지난 1983년 정릉에서 서초동으로 거주지를 옮긴 송씨는 지금까지 21년째 이곳에 살고 있다.서초동이 말하자면 제2의 고향인 셈이다.벌판이던 우면산 일대는 강남 개발의 붐을 타고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뤘다.그러나 개발의 불도저는 하루가 다르게 자연을 마구잡이로 밀어냈다. “지난 2000년 지정된 개발행위 허가제한지역은 내년 8월 6일까지만 적용이 됩니다.더 이상 우면산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됐죠.지난해에는 토지 소유주들이 아파트나 주유소를 지으려고 허가신청까지 냈습니다.” 법이라는 산소호흡기를 걷어내면 우면산은 곧 생명력을 잃는다.토지를 이용해 최대 이문을 남기려는 개발업자들에게 환경보호는 헛구호일 뿐이다.지난 2002년 난개발을 우려한 주민들이 부랴부랴 한 데 모였다.이들은 매입을 통해 우면산을 보호하자는 데 동의하고 지난해 6월 창립 총회를 가졌고 법인 등록까지 마쳤다.그러나 현실적으로 155만평에 이르는 방대한 녹지를 매입할 수는 없었다.‘개발 1순위 지역’을 우선적으로 사들이기로 했다.서초동 산 56의3인 예술의전당∼서초동 산51의1인 서울시교육원입구까지 총면적 2만 9600㎡(약 8954평)인 사유지 34필지와 국·공유지 3필지가 우면산트러스트의 매입 1차 대상지이다.이 지역은 현재 농지와 임야지역으로 자연녹지,등산로,약수터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우면산파수꾼 9000여명 모여 “법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면 거대 자본에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대신 집단민원 같은 시민운동을 펴야 합니다.천문학적인 매입 비용 탓에 우면산 일대를 모두 사들일 수는 없고 먼저 주요 지점만 집중적으로 사들일 계획입니다.” 1차 매입 대상지 가운데 남부 순환대로변 1000여평을 우선 협상 대상지로 꼽았다.공원에 출입하는 요충지로 먼저 이곳을 확보하면 상징적인 효과까지 의미가 크다.일단 여기에 드는 비용을 공시지가의 두배 선인 30억원으로 책정하고 모금에 나섰다.지난해 6월20일부터 시작된 모금액은 가파르게 쌓여 현재 8억 8000여만원에 이르렀다.여기에 서초구가 기부하는 10억원까지 합하면 목표금액에서 11억여원이 모자란다.기부액을 약정한 사람들만도 9000명에 이르렀다.1계좌당 1만원. “2002년 말 구청을 중심으로 우면산 보호 모임이 생겨 처음부터 참여했습니다.창립멤버 30여명 가운데 임시의장을 맡다가 정식 재단이 세워지자 이사장으로 선출됐죠.” ●내가 사는 곳… 불평만 할 수 없었다 구청에서 환경운동에 나서는 것이 선거법에 저촉됐기 때문에 최근에는 사실상 휴면상태에 있었다.선거도 끝난 만큼 다시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다.우면산 트러스트에는 김기수 전 검찰총장,코리아나화장품 유상옥 회장,고승덕 변호사,가수 김창완,영화배우 고은정씨 등이 참가하고 있다.재단법인의 회원은 법인의 구성으로 토지 공동 소유주가 된다.법적으로 녹지로 지킨다는 전제 하에 토지주인이 되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교육적으로 상당히 좋아요.트러스트 시민운동은 불편사항이란 욕구불만을 쏟아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은 돈이지만 자신의 힘으로 투자해서 책임도 지고 수고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송씨는 언론인 출신이다.서울시내 여기자를 다 꼽아봐도 20명이 안 되던 시절인 지난 1961년부터 취재현장을 누볐다. “당시에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별로 없었습니다.시험을 쳐서 갈 수 있는 직업이 은행원,기자,선생님 등이 고작이었죠.하지만 한 번도 그 일이 지겹다거나 후회한 적은 없었습니다.” 일부 편견이 존재하지만 기자란 직업이 여성에게 잘 맞는다고도 했다.언론사가 보수적인 분위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차별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개인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공정하다고 말했다. ●女기자서 女장관까지 ‘남다른 길’ 보건사회부 장관은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있다 제의를 받았다.여성 특유의 감성,맛깔스러운 어휘 선택과 분석력이 돋보였던 그의 칼럼은 이미 언론계에 정평이 나 있었다.뭔가 새로운 일을 해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흔쾌히 받아들였다.장관 재직 당시 약사법 때문에 많이 휘둘린 것이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장관은 차분하게 앉아서 정책을 구상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고 땅에 발을 붙일 새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털어 놓았다.서울과 과천을 오가며 승용차 안에서 업무를 보기 일쑤였다. “재직기간이 좀 길었으면 기획도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아쉬웠죠.우리 사회는 항상 격동상태에 있어서 입안,집행,결정하는 사람이 정착하기가 쉽지 않아요.” 요즘에는 외부 원고를 소일거리 삼아 가끔 쓰면서 지내고 있단다.하나뿐인 아들은 현재 미국에서 비교언어학을 공부하고 있다. “손주가 둘 있는데 그애들 이름으로도 트러스트 계좌를 만들어야겠어요.멀리 떨어져 사는 할머니가 해 줄 수 있는 좋은 선물인 것 같아요.”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내셔널트러스트란 영국은 19세기 후반 산업혁명의 여파로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프랑스의 석학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맨체스터를 방문하고 난 뒤 “더러운 하수구에서 전세계를 비옥하게 만드는 땀의 강물이 흘러 나오지만 인간은 문명의 기적을 이룩한 여기서 야만인이 됐다.”고 토로했다.이에 변호사 로버트 헌터는 “사유지라서 산림을 보호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보호할 대상을 소유하겠다.”면서 내셔널트러스트협회를 만들었다. 영국에서 처음 출발한 이 운동은 점차 스코틀랜드,호주,아일랜드,미국,일본 등으로 퍼졌다.1907년 영국에서는 내셔널트러스트법도 만들어졌다.현재 영국 국민의 5%인 300만명이 회원이며 국토의 1.5%,해안선은 17%를 소유하고 있다. ■ 송정숙 이사장 프로필 ▲1936년 10월28일 대전 출생 ▲1957년 이화여자대학교 국문학과 2년 수료 ▲1960년 건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3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졸업 ▲1962∼1970년 한국일보 기자 ▲1972년 서울신문 문화부장 ▲1980∼1993년 서울신문 논설위원 ▲1993년 신영연구기금 이사장 ▲1993년 보건사회부 장관 ▲1993∼1998년 서울신문 고문 ▲2003년∼현재 우면산내셔널트러스트 이사장 ˝
  • [이경기의 스크린1인치] 오마이달링 클레멘타인

    ‘동굴이나 골짜기로 광맥(鑛脈)을 찾아 다니는 한 사나이에게 클레멘타인이라는 딸이 있었네.그녀는 매일 아침 9시 물가로 오리를 데리고 갔는데,어느날 돌에 걸려 넘어져 그만 거품이 이는 수렁에 빠졌네.루비와 같은 입술에 물거품이 천천히 흘렀네.그러나 나는 헤엄을 칠 줄 몰라 사랑스러운 클레멘타인을 살려 내지 못했네’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은 한 중년 남자의 애처로운 사연을 담은 ‘클레멘타인’(Clementine)의 노랫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네.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으로 개사돼 애창된 ‘클레멘타인’은 19세기부터 작자 미상으로 전래된 미국 민요로 기록되고 있다. 특히 1849년 광활한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수많은 금광이 발견되자 일확천금을 노린 서부 사나이들이 이 지역으로 밀려 들어와 흔히 ‘골드 러시’를 이룬 시기부터 서민들의 애창곡으로 환대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팝계에서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히트시킨 빙 크로스비가 1941년 취입해 정식 음반으로 수록되게 된다.이 노래는 남편이 2차 대전에 참전한 뒤 후방에 홀로 남겨진 부인이 일상 생활에서 여러 힘겨운 사건과 부딪히게 된다는 존 크롬웰 감독,제니퍼 존스 주연의 ‘당신이 떠나간 뒤’(Since You Went Away·1944년)의 주제곡으로 쓰이면서 심금을 울려 주는 멜로 드라마의 삽입곡으로 자주 이용됐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클레멘타인’이 지구촌 히트곡으로 부상하게 된 계기는 존 포드 감독의 서부극 ‘마이 달링 클레멘타인’(My Darling Clementine·1946년)이다.보안관 와이어트 어프(헨리 폰다)가 마을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당 클랜턴(존 아일랜드) 일당을 힘겹게 퇴치한다는 내용이다.이 영화에서 멋쟁이 보안관 어프가 머리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나타나면 딸 클레멘타인(캐시 다운스)이 ‘아빠 마치 사막에 홀로 피어 있는 꽃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 같아’라는 말을 건네는 장면에서 이 곡이 흘러나와 부녀지간의 혈육의 정을 부추겨 주는 역할을 한다. ‘마이 달링 클레멘타인’은 심금을 울려 주는 주제곡외에 극의 무대와 등장 인물의 활약상을 부각 시켜 후에 버트 랭카스터 주연의 ‘OK 목장의 결투’(Gunfight at the O.K.Corral·1957년) ‘툼스톤’(Tombstone·1993년),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와이어트 어프’(Wyatt Earp·1994년) 등의 후속작이 연속 공개돼 서부극의 번성을 촉발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인정 받고 있다.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시카고 선-타임스에 연재한 ‘미국 걸작 영화 100’ 가운데 ‘OK 목장의 결투’ 평을 통해 주제곡 클레멘타인은 황량한 OK 목장을 무대로 전개되는 총잡이들의 건조한 결투 장면을 동정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겨 주는 매우 효과적인 역할을 했다고 진단했다. 빙 크로스비에 이어 1958년에는 조지 해밀튼 4세가 취입해 빌보드 싱글 차트 톱 10에 진입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위버스,미치 밀러 합창단의 노래도 대중들의 환대를 받는 등 여러 가수가 리바이벌 했다. 클레멘타인은 지난주부터 공개된 김두영 감독,이동준·스티븐 시걸 주연의 국산 영화 ‘클레멘타인’에서 태권도 세계 챔피언 경기에서 판정으로 우승을 놓친 체육인이 홀로 딸을 키우면서 겪는 애환을 위로해 주는 배경곡으로 흘러 나와 음악 애호가들의 귀를 쫑긋거리게 만들고 있다.˝
  • [2004서울 범죄리포트-④서울치안,이제 이렇게] “공식 통계·분석자료 활용 정부차원 치안대책 시급”

    서울시내 31개 경찰서 관내에서 발생한 중요범죄들을 대상으로 한 통계분석 결과는 일선 경찰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대단히 유익한 정보이다.제한된 공식통계를 분석한 것이라 다소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관할구역별 인구·사회학적,경제적 특성이 반영된 범죄발생빈도와 유형이 어느 정도 밝혀짐으로써 치안정책수립에 적절하게 활용될 것으로 본다. 범죄문제에 대해 사회통계적 분석 기법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반 유럽에서였다.벨기에의 퀘틀레(Adolphe Quetelet)라는 범죄학자가 대표적이다.당시의 사회적 통계는 인구밀도,성별,종교 및 부(富)의 분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고 한다.인구·사회학적 요인들이 범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것이다. 오늘날 선진 각국에서는 치안수요에 부응한 경찰력 배분을 위한 기초자료로서 공식범죄통계 작성 및 암수범죄(hidden crime) 파악에 많은 재원을 투자하고 있으며,그 결과를 치안행정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경찰실무부서에서 작성·보관된 기초자료조차 학자들에게 거의 제공되지 않고 있으며,접근하기도 어렵다.경찰청이 수년전 의욕적으로 도입한 범죄분석예측시스템(COMPSTAT)이라는 프로그램도 실무에서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200만건 정도의 일반형법 및 특별법 위반 범죄가 발생하고 있으며,이들 중 전과자의 비율이 절반을 넘고 있다.더욱 놀라운 것은 살인·강도·강간·방화 등 심각한 범죄유형의 경우 4범 이상의 전과자 비율이 무려 25%라는 점이다.미국·독일·영국·프랑스 등에 비해서는 양호한 상태라고 하지만,일본이나 캐나다에 비해서는 심각한 수준이다. 요즘 선진국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실업 등 경제문제,치안문제,환경문제 순이다.선진국에서는 ‘법과 질서(Law and Order)의 회복’이 선거공약과 정책이슈로 채택된 지 오래다.특히 프랑스는 현재 범죄와의 전쟁을 수행중이며,치안력을 강화하기 위해 엄청난 재원을 경찰에 투자하고 있다.강력한 형사정책적 수단까지 동원한다.범죄문제에 관한한 ‘Zero-Tolerance(더 이상의 인내는 없다.)’라는 단어가 익숙하게 여겨지고 있다. 범죄문제를 공식적,1차적으로 처리하는 형사사법기관은 다름아닌 경찰이다.그러다 보니 심각한 범죄들이 빈번하게 발생해 범죄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면,경찰에 대한 불신이 가장 먼저 제기된다.하지만 치안문제에 경찰력만으로 대처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이혼 등 가족관계 해체,폭력·음란물,부적절한 인터넷사용,실업과 신용불량,교통사고,청소년비행 등 범죄발생 요인들을 대상으로 범정부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경찰은 자율방범활동을 독려하고 방범프로그램 개발과 교육에 관심을 갖는 한편 지역사회와 상호 협력을 통해 경미한 무질서를 비롯한 범죄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발생된 범죄를 신속·공정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수사의 과학화와 전문화를 도모하는 가운데 피해자 보호대책도 강구해야 한다.치안문제는 경찰과 개별 시민의 방범활동 수준으로 대처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정책의제로 채택하여 범정부적이고 종합적·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노력이 시급하다.˝
  • [반론] 가족 규정 이분법적 사고 버려야/송혜림 울산대 가정복지 교수

    서울신문 5월20일자 ‘열린 세상’에 임옥희 여성이론문화연구소 공동대표의 “두 얼굴의 ‘건강가족법’”이라는 글이 기고되었다.이 글은,보건복지부가 제정한 ‘건강가족법’에 따르면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가족만이 정상가족이며 건강가족이라는 점,한부모가족·독신가구·동성가족 등은 병든 가족이 되어 버린다는 점,이혼하려는 사람은 건강가정사의 이혼삼담을 반드시 거치도록 되어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비판했다. 먼저 지난 2월 의원입법으로 제정된 법은 ‘건강가족법’이 아니라 ‘건강가정기본법’이다.이 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이름에서 내용에 이르기까지 많은 오해를 해 왔다.내용에 관한 근본적인 오해는,건강가정은 바로 아들·딸 낳아 기르는 정상가족이라는 것이다.그래서 건강가족이라는 발상은 건강하지 못한 가족(한부모가족·독신가구·동성가족 등)을 병든 가족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하지만,법 그 어디에서도 ‘정상가족’운운하며 특정한 형태의 가족을 명시한 바 없다.오히려 그러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특정 유형의 가정을 건강하지 못한 가족으로 규정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하고 있을 뿐이다.또 법에서는 혼인과 출산을 의무로 규정하지 않는다.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자는 것일 뿐이다.그리고 이혼상담과 관련된 건강가정기본법의 취지는,이혼 예방을 위해 이혼전 상담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등 이혼조정을 내실화함과 동시에,이혼할 가족에게 자녀양육·재산·정서 등의 문제에 도움을 주는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오해하는 바와 같이 이혼상담을 의무화한 것이 아니다. 아마도 법의 내용을 왜곡하는 이러한 오해는 건강가정기본법이 양성평등에 위배된다는 편견에서 비롯되는 것 같은데,사실 이 법은 민주적이고 양성 평등한 가족관계 증진 조항 등을 법 전반에 걸쳐 강조해 양성평등이 기본이념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그런데 이런 말이 다 무슨 소용 있으랴.근본적으로 우리 모두 양성 평등의 길로 가야 하는 이 때,불평등과 여성에 대한 착취와 억압으로 가득찬 ‘가족’ 또는 ‘가정’을 거론한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구시대적이며,그 글에서 지적하듯 19세기적으로 보이는 모양인데…. 그러나 ‘건강가정’의 구현은 여성발전기본법의 기본이념 중 하나이며,여성부 제1차 기본계획의 성과와 심화발전 과제에서도 건강한 가정의 구현이 비중있게 다루어져,양성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동안 왜 그토록 건강가정을 폄하했는가를 이해하기가 참으로 힘들다. 나는 이 사회가 느리지만 평등에 익숙해지는 데,양성평등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의 기여가 크다고 믿는다.그리고 건강가정기본법에서 양성평등이 중요한 이념인 한 나는 그들과 함께 갈 수 있다고 또한 믿는다.그러나 가정은 양성평등이라는 관점 하나만으로 접근하기에는 다른 요소들을 많이 갖고 있다.가족·가정은 남녀관계뿐 아니라 일상적인 의식주생활과 자원관리,세대 간 관계,부모됨,여가,공동체 생활문화,교육,양육,경제,소비,개인-가족-사회로 이어지는 생활의 경험,시민의식,일과의 조화 등 복합적인 내용을 담은 연속적 생활세계이며 문화이다.그래서 평등과 민주성,평화,복지,안정,삶의 질,균형,자율성과 같은 이념의 조화 속에 ‘건강성’을 이해해야 건강가정을 제대로 그려낼 수 있다. 오해와 편견을 버리고 법이 지향하는 바,양성평등,세대간 존중,생활의 균형,사회적 지향성을 조화시키는 건강한 가정을 위해 함께 일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송혜림 울산대 가정복지 교수˝
  • [열린세상] 두 얼굴의 ‘건강가족법’/임옥희 여성이론문화연구소 공동대표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건강이다.건강중독증에 빠진 것처럼 절박하다.건강해야만 불확실하고 위험한 사회를 버텨낼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확산된 결과다.건강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할 것 같은 태세다.2교대 근무를 하는 사람까지 ‘아침형 인간’이 되려고 안간힘이다.비만 탈출을 위한 ‘살과의 전쟁’은 국민된 의무(?)이다.주변환경이 아무리 스트레스를 주더라도 스트레스 또한 받지 말아야 한다.스트레스는 발암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이제 건강은 전적으로 개인의 노력여하에 달린 것처럼 보인다. 특히 가정은 스트레스 주는 노동환경으로부터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다.불안과 위기의식이 팽배할수록 가정은 따스함과 편안함을 주는 공간으로 미화된다.가정이 일차적으로 가족 구성원의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데 토를 달 사람은 거의 없다. 건강부재의 시대에 건강산업은 넘쳐난다.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한 산업들은 자신들이 제공해야 할 사회적 건강비용마저 개인들에게 전가시켜버린다. 이런 판국이니 소위 국민의 건강을 담당하는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염려는 오죽했으랴? 국민의 건강지수는 가족에 달려 있다는 일념으로 보건복지부는 ‘건강가족법’이라는 것을 제정했다. 가족의 정통성과 안정을 지켜주는 것으로 주장해왔던 호주제가 엄존하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의 이혼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2위를 차지한다.‘건강가족법’은 이혼을 예방하고 출산을 장려한다는 취지로 제정되었다.충동적인 이혼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이혼에 앞서 ‘건강가정사’로부터 반드시 이혼상담을 거치도록 이 법안은 규정하고 있다.건강가정사란 ‘대학 이상,또는 이와 동등 이상의 학교에서 사회복지학,가정학,여성학 등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관련 교과목을 이수하고 졸업한 자’로서 ‘가정문제의 예방 상담 및 치료’를 담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이혼율 증가,출산율 저하,가족 해체 등이 ‘건강가정사’의 조언이 없어서 초래된 현상은 아니다.이미 이혼조정상담관 제도도 있다. 건강가족이라는 발상은 건강하지 못한 가족,즉 한부모 가족,독신가구,동성가족 등을 병든 가족으로 만들어버린다는 문제점이 있다.19세기적이다.게다가 가족의 건강이라는 것이 개인의 도덕성과 윤리적인 결단에 호소한다고 해결될 문제이던가. ‘건강가족법’ 제8조 1항은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이 법 조항에 따르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키울 때라야만 ‘정상적인 가족’이 된다.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거나,결혼했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들은 건강하지 못한 여성이 된다.건강가족법은 혼인과 출산을 의무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다.탈근대를 살아가면서도 유교적인 가족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이 법안은 탈근대 사회에서 중세를 강요하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결혼은 ‘취집’(취직+시집)이라는 말이 무색해지고 있다.결혼 그 자체도 ‘비정규직’화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이런 마당에 건강가족법은 지자체 차원의 가족상담센터를 설치하여 이혼에 앞서 상담을 받도록 함으로써 이혼율을 낮추겠다는 국가의 의도를 노골화한다. 또한 이 법안은 NGO 영역을 포함하여 값싼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정부의 의도와 대학 특정 학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 제정된 것이라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는 판이다. 하지만 여성의 일자리 창출이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특정 여성집단의 밥그릇을 위해 무수히 많은 여성들에게 상담이라는 명목의 또 다른 족쇄를 채워서야 되겠는가.이혼전 상담의무제는 철회되어야 한다. 임옥희 여성이론문화연구소 공동대표˝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0)草衣 선사의 꿈(上)

    풀옷을 이은 수행자 초의(草衣) 장의순(張意恂,1786~1866).그는 조선 후기 조선의 불교문화를 상징하는 참 스승이었다.또한 불교문화에서 비롯된 차살림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침체와 변질을 겪어 온 조선의 차문화를 새롭게 정립하여 물림한 한국 차살림의 완성자다. ●초의는 우리 차문화 완성한 선승 그가 완성한 차살림은 절집 승려만을 위한 것도,조선 양반 사대부들의 한가한 멋을 위한 것도,궁중이나 왕실 혹은 부자들의 호사를 위한 것도 아니다.초의가 생애 대부분을 보낸 19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조선의 운명이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려는 듯 위기감이 높아지던 시기였다.시대의 위기는 조선사회를 대표하는 지식인들과 권력층,세도가들이 만들어 냈는데,이들 대부분이 중화사대주의자들로서 스스로 중국 문화의 아류로 자처했다. 중화사대주의자들의 성리학 세계관은 화이론적(華夷論的) 세계관이었다.세계는 화(華)와 이(夷)로 갈라서고,‘화’만이 문화와 가치이며,‘이’는 문화도 가치도 없는 야만으로 규정했다.화는 세계의 지리적 중심이기도 한 중화(中華)로서 중국 민족의 배타적 독점물이라 단정지었다.그리하여 조선은 중국의 축소판,모조,근사치로서의 소화(小華)라고 여겼다.중화사대주의자인 조선의 성리학자,유생들은 중국에 대해서는 한없는 열등의식을 가졌지만 서양에 대해서는 근거없이 심한 우월의식을 지니고 있었다.이같은 열등과 우월의 이중구조적 세계관 속에서 서양 세력을 배척하는 것을 조선 지성인의 사명감으로 여기게 된 시대였다.초의는 생애 대부분을 이러한 시대에 대한 고뇌와 번민,그에 대한 극복과 희망의 제시를 위해 보냈다. 조선의 주된 이념인 성리학이 사변철학으로 타락하고,제도 문란과 권력의 부패로 국가의 근본인 서민들의 삶이 도탄에 빠져 있을 때,초의는 엉뚱하게도 차농사 짓는 일과 차 만들기,차 마시는 이야기를 그 시대의 화두로 삼았다.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상이며 과연 누가 공감했을지 의아스럽기도 하다. ●병든시대 희망 제시하려 고뇌 초의는 차(茶)가 음식과 더불어 인간의 운명과 역사를 바꾸는 힘의 시원임을 깨달았다.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믿음이었기 때문에 그의 말과 행동은 그대로가 진리로 받아들여졌다.정신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이용되어 온 방법들 중에서 음식과 차가 가장 널리 쓰여온 것은 인류의 오랜 경험이기도 했다.초의는 차라는 물건으로 술에 절어버린 조선 후기의 병들고 타락한 시대를 구원하고자 한 구도자였다. 19세기의 승려는 천민으로 분류되었다.조선의 이름난 사찰은 일년 내내 경향 각지에서 유람오는 양반,사대부,세도가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던 시대였다.그들은 조용한 여행자들이 아니었다.언제나 그 지역 현감이나 절 주지에게 그들의 행차 사실을 미리 알렸다.절 아래 마을까지 사인교나 남여(藍輿),나귀 등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라는 뜻이다.승려들은 이 명령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승려들이 고관대작이나 그들 식구를 등에 업고 오르내리기도 했다.어쩌다 실수하는 날이면 능멸과 매질을 피할 수 없었으니 노예나 다름이 없었다. 절에 놀러오면서 승려들이 메는 사인교를 탔던 양반 사대부들은 허랑방탕한 조선 후기 사회와 함께 비틀거리던 중화사대론자들이었다.그들은 차를 마시지 않았거니와 차를 알지도 못했다.다만 술을 알고 취해 살았을 뿐이다.차례(茶禮)라는 설,추석 명절에 조차도 차가 아닌 술로 조상제사를 모셨을 만큼 술에 빠져 살았다.국가의 원천이자 기둥인 농사꾼들은 무거운 부역과 세금,끈질긴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데도 양반사대부들은 술에 취해 살면서 중국 섬기기에 나라의 뼈가 휘었다.농민이 땀 흘려 가꾼 곡식으로 빚은 술을 마시면서 농민의 시름과 수난은 외면했다. 뿌리가 땅에 닿지 않는 관념의 잎만 무성한 성리학의 미몽을 좆는 위선에 차고 무능한 지식인들,젊어서는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늙어서는 강산을 더럽히는 세도가들 앞에 초의가 말없이 제시한 것이 차였다.술 대신 차를,독선과 아집 대신 나눔과 양보를,핍박과 죽임 대신 함께 사는 지혜를 제시한 것이다. 차는 은혜를 알게 하는 가르침이며,새로운 시대를 위해서는 새로운 꿈이 필요했다.초의가 새롭게 꾼 꿈이 ‘동다문화(東茶文化)’로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정신의 집이었다.그의 ‘동다송(東茶頌)’은 단순히 중국 차문화와 역사에 관한 서른 한 마디 노래로 편술된 책이 아니라,‘東茶’ 즉 우리나라의 차를 칭송하기 위한 것이었다. ●술대신 차·독선대신 지혜 전파 서른 한 마디 노래 중에 우리나라 차의 빛깔,향기,맛의 우수성이 결코 중국차에 못지 않다는 매우 짧은 한 구절이 숨어 있다.초의가 전혀 새롭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중국 차문화 얘기를 늘어놓다가 슬쩍 우리나라 차의 우수성을 간략하게 끼워 넣은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조선 역사 전체를 통틀어 놓고 보아도 조선의 것이 중국보다 우수하다고 자신있게 말한 경우는 많지 않다.아니 거의 없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모든 것은 오로지 중국에서 근원하고,의지해왔으며,중국으로부터 떨어져서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다고 믿어 온 중화사대주의자들은 감히 조선의 것이 중국 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아무리 조선의 것이 중국 것보다 우수한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사실대로 말하고 책으로 엮어낸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 위험이라고 여겼다.중국의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초의라는 한 승려가 우리나라의 차가 중국 차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을 글로 적은 것이다.짧은 이 한 문장이 지닌 뜻은 참으로 위대하다.멀리 신라가 당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동족인 백제를 멸망시킨 그 바보짓 이후 1200여년이 지나는 동안 신라,고려,조선은 한결같이 중국 우월론자들에 의하여 좌우되어 왔다. 다만 조선의 세종임금이 중국 문자가 아닌 조선의 문자를 만들어 널리 쓰고자 했었다.그러나 한문 망령에 덮어 씌인 중화사대론자들은 한글을 암클, 즉 여자들이나 쓰는 글이니 언문(諺文)이라 깎아내렸었다.모든 것을 중국에다 의지했다.심지어 삼국사기(三國史記)라는 역사책은 우리나라 고유의 차문화를 아예 없애버린 위에 통일신라 시대인 828년에 당나라로부터 차 종자를 가져다 왕의 명령으로 지리산에 심은 것을 우리나라 차의 기원이라고 적기까지 했다. ●‘동다승’ 저술 우리차 우수성 알려 중국의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 고려 스스로가 무릎을 꿇고 역사 사실을 왜곡하여 중국의 무릎 아래로 기어든 수치이자 씻을 수 없는 모욕이다. 이렇듯 1200여년 동안 계속된 비굴한 태도를 처음으로 고쳐 잡은 것이 초의의 글귀였다.그것도 중국 문화의 자존심이자 세계 속의 자긍심인 차에 대하여 중국차보다 우리나라 차가 우수하다고 말한 것은 정치적 고려에서가 아닌 사실을 바탕으로 한 초의의 민족문화론이었다. 2004년 5월,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의 많은 차인들은 조선의 중화사대론을 계승한 적자임을 긍지로 여기면서 중국 차문화를 선전하는 전도사로서 활보하고 있다.어찌 부끄럽지 않은가? 140여년 전 민족문화의 선각자 초의스님의 동다문화 앞에서 어찌 고개 들고 활보할 수 있는가? 부끄러워하라.또 부끄러워하라. ˝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0)草衣 선사의 꿈(上)

    풀옷을 이은 수행자 초의(草衣) 장의순(張意恂,1786~1866).그는 조선 후기 조선의 불교문화를 상징하는 참 스승이었다.또한 불교문화에서 비롯된 차살림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침체와 변질을 겪어 온 조선의 차문화를 새롭게 정립하여 물림한 한국 차살림의 완성자다. ●초의는 우리 차문화 완성한 선승 그가 완성한 차살림은 절집 승려만을 위한 것도,조선 양반 사대부들의 한가한 멋을 위한 것도,궁중이나 왕실 혹은 부자들의 호사를 위한 것도 아니다.초의가 생애 대부분을 보낸 19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조선의 운명이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려는 듯 위기감이 높아지던 시기였다.시대의 위기는 조선사회를 대표하는 지식인들과 권력층,세도가들이 만들어 냈는데,이들 대부분이 중화사대주의자들로서 스스로 중국 문화의 아류로 자처했다. 중화사대주의자들의 성리학 세계관은 화이론적(華夷論的) 세계관이었다.세계는 화(華)와 이(夷)로 갈라서고,‘화’만이 문화와 가치이며,‘이’는 문화도 가치도 없는 야만으로 규정했다.화는 세계의 지리적 중심이기도 한 중화(中華)로서 중국 민족의 배타적 독점물이라 단정지었다.그리하여 조선은 중국의 축소판,모조,근사치로서의 소화(小華)라고 여겼다.중화사대주의자인 조선의 성리학자,유생들은 중국에 대해서는 한없는 열등의식을 가졌지만 서양에 대해서는 근거없이 심한 우월의식을 지니고 있었다.이같은 열등과 우월의 이중구조적 세계관 속에서 서양 세력을 배척하는 것을 조선 지성인의 사명감으로 여기게 된 시대였다.초의는 생애 대부분을 이러한 시대에 대한 고뇌와 번민,그에 대한 극복과 희망의 제시를 위해 보냈다. 조선의 주된 이념인 성리학이 사변철학으로 타락하고,제도 문란과 권력의 부패로 국가의 근본인 서민들의 삶이 도탄에 빠져 있을 때,초의는 엉뚱하게도 차농사 짓는 일과 차 만들기,차 마시는 이야기를 그 시대의 화두로 삼았다.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상이며 과연 누가 공감했을지 의아스럽기도 하다. ●병든시대 희망 제시하려 고뇌 초의는 차(茶)가 음식과 더불어 인간의 운명과 역사를 바꾸는 힘의 시원임을 깨달았다.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믿음이었기 때문에 그의 말과 행동은 그대로가 진리로 받아들여졌다.정신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이용되어 온 방법들 중에서 음식과 차가 가장 널리 쓰여온 것은 인류의 오랜 경험이기도 했다.초의는 차라는 물건으로 술에 절어버린 조선 후기의 병들고 타락한 시대를 구원하고자 한 구도자였다. 19세기의 승려는 천민으로 분류되었다.조선의 이름난 사찰은 일년 내내 경향 각지에서 유람오는 양반,사대부,세도가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던 시대였다.그들은 조용한 여행자들이 아니었다.언제나 그 지역 현감이나 절 주지에게 그들의 행차 사실을 미리 알렸다.절 아래 마을까지 사인교나 남여(藍輿),나귀 등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라는 뜻이다.승려들은 이 명령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승려들이 고관대작이나 그들 식구를 등에 업고 오르내리기도 했다.어쩌다 실수하는 날이면 능멸과 매질을 피할 수 없었으니 노예나 다름이 없었다. 절에 놀러오면서 승려들이 메는 사인교를 탔던 양반 사대부들은 허랑방탕한 조선 후기 사회와 함께 비틀거리던 중화사대론자들이었다.그들은 차를 마시지 않았거니와 차를 알지도 못했다.다만 술을 알고 취해 살았을 뿐이다.차례(茶禮)라는 설,추석 명절에 조차도 차가 아닌 술로 조상제사를 모셨을 만큼 술에 빠져 살았다.국가의 원천이자 기둥인 농사꾼들은 무거운 부역과 세금,끈질긴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데도 양반사대부들은 술에 취해 살면서 중국 섬기기에 나라의 뼈가 휘었다.농민이 땀 흘려 가꾼 곡식으로 빚은 술을 마시면서 농민의 시름과 수난은 외면했다. 뿌리가 땅에 닿지 않는 관념의 잎만 무성한 성리학의 미몽을 좆는 위선에 차고 무능한 지식인들,젊어서는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늙어서는 강산을 더럽히는 세도가들 앞에 초의가 말없이 제시한 것이 차였다.술 대신 차를,독선과 아집 대신 나눔과 양보를,핍박과 죽임 대신 함께 사는 지혜를 제시한 것이다. 차는 은혜를 알게 하는 가르침이며,새로운 시대를 위해서는 새로운 꿈이 필요했다.초의가 새롭게 꾼 꿈이 ‘동다문화(東茶文化)’로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정신의 집이었다.그의 ‘동다송(東茶頌)’은 단순히 중국 차문화와 역사에 관한 서른 한 마디 노래로 편술된 책이 아니라,‘東茶’ 즉 우리나라의 차를 칭송하기 위한 것이었다. ●술대신 차·독선대신 지혜 전파 서른 한 마디 노래 중에 우리나라 차의 빛깔,향기,맛의 우수성이 결코 중국차에 못지 않다는 매우 짧은 한 구절이 숨어 있다.초의가 전혀 새롭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중국 차문화 얘기를 늘어놓다가 슬쩍 우리나라 차의 우수성을 간략하게 끼워 넣은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조선 역사 전체를 통틀어 놓고 보아도 조선의 것이 중국보다 우수하다고 자신있게 말한 경우는 많지 않다.아니 거의 없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모든 것은 오로지 중국에서 근원하고,의지해왔으며,중국으로부터 떨어져서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다고 믿어 온 중화사대주의자들은 감히 조선의 것이 중국 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아무리 조선의 것이 중국 것보다 우수한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사실대로 말하고 책으로 엮어낸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 위험이라고 여겼다.중국의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초의라는 한 승려가 우리나라의 차가 중국 차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을 글로 적은 것이다.짧은 이 한 문장이 지닌 뜻은 참으로 위대하다.멀리 신라가 당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동족인 백제를 멸망시킨 그 바보짓 이후 1200여년이 지나는 동안 신라,고려,조선은 한결같이 중국 우월론자들에 의하여 좌우되어 왔다. 다만 조선의 세종임금이 중국 문자가 아닌 조선의 문자를 만들어 널리 쓰고자 했었다.그러나 한문 망령에 덮어 씌인 중화사대론자들은 한글을 암클, 즉 여자들이나 쓰는 글이니 언문(諺文)이라 깎아내렸었다.모든 것을 중국에다 의지했다.심지어 삼국사기(三國史記)라는 역사책은 우리나라 고유의 차문화를 아예 없애버린 위에 통일신라 시대인 828년에 당나라로부터 차 종자를 가져다 왕의 명령으로 지리산에 심은 것을 우리나라 차의 기원이라고 적기까지 했다. ●‘동다승’ 저술 우리차 우수성 알려 중국의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 고려 스스로가 무릎을 꿇고 역사 사실을 왜곡하여 중국의 무릎 아래로 기어든 수치이자 씻을 수 없는 모욕이다. 이렇듯 1200여년 동안 계속된 비굴한 태도를 처음으로 고쳐 잡은 것이 초의의 글귀였다.그것도 중국 문화의 자존심이자 세계 속의 자긍심인 차에 대하여 중국차보다 우리나라 차가 우수하다고 말한 것은 정치적 고려에서가 아닌 사실을 바탕으로 한 초의의 민족문화론이었다. 2004년 5월,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의 많은 차인들은 조선의 중화사대론을 계승한 적자임을 긍지로 여기면서 중국 차문화를 선전하는 전도사로서 활보하고 있다.어찌 부끄럽지 않은가? 140여년 전 민족문화의 선각자 초의스님의 동다문화 앞에서 어찌 고개 들고 활보할 수 있는가? 부끄러워하라.또 부끄러워하라.
  • 40년 ‘무등산 지킴이’ 박선홍씨

    무등산은 광주의 상징이다.도심 근처에 해발 1187m 높이로 솟아 웅대함이 돋보인다.그러면서 정상 가까이에 발달한 원기둥 모양의 절리(節理)의 절경이 어머니 품처럼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광주 사람들에게 무등산은 이 고장의 역사이자 기념비다.백제 땐 무진악(武珍岳),고려 때 서석산(瑞石山)이라고 불렸다.북쪽은 나주평야,남쪽은 남령산지의 경계에 있다.버스 토큰 하나로 산자락에 내려 등산을 즐기고 지인들과 만나 담소하는 휴식처다.그래서 주말 휴일이면 시민들로 북적이는 살아 있는 산이다. ●민둥산을 울창한 숲으로 바꾼 광주토박이 이런 무등산도 6·25전란을 거치면서 황폐화의 위기를 거쳤다.나무를 땔감으로 쓰던 70년대 이전까지 벌거숭이 민둥산이었다.멧돼지와 고라니가 뛰놀고 산새가 지저귀는 울창한 숲으로 바뀐 지는 최근이다.153과 897종의 식물이 분포한다.이 가운데 465종은 약료작물로 알려져 있다. 오늘의 무등산이 제 모습을 찾게 된 뒤안에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베어 있다.그럼에도 한 사람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은 주저없어 박선홍(79)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공동의장을 추천한다.그는 ‘무등산 지킴이’‘무등산 박사’‘광주토박이’등으로 통한다.무등산과 함께 해온 광주의 산증인이기도 하다.“모든 시민의 사랑으로 무등산의 자연생태계가 복원됐습니다.지금은 야생동물이 인근 농작물에 피해를 줄 정도이니 ‘상전벽해’가 아니겠습니까.”.박의장은 모든 공을 시민에게 돌린다. 그가 무등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청소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충장로 5가에서 태어난 그는 1940년대 초까지 천연 원시림의 모습을 보고 자랐다.그러나 일제의 세계2차 대전 도발과 전쟁물자 고갈에 따른 연료난으로 산림 남벌이 시작되면서 옛 모습을 잃어갔다.해방후 광주시청 공무원으로 잠시 재직하다가 1952년 광주상공회의소로 자리를 옮겼다.그는 같은해 보이스카우트 ‘무등소년대’ 대장으로 무등산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는다. ●산악회 창설·책발간 등 무등산 보호 앞장 이어 55년 이 지역 최초의 산악회인 ‘전남산악회’를 조직하고,69년엔 ‘전남 산악연맹’ 창설을 주도했다.“개구쟁이 시절 노닐던 산자락이 무차별 벌채로 망가져가는 것을 그대로 볼 수만 없었다.”는 그는 산악인을 중심으로 무등산 보호에 나서기로 맘 먹는다.매일 산을 누비벼 자생 동·식물을 관찰하고 사찰,문화재 등을 조사했다.관련 자료가 될 것 같으면 무엇이든 주워 모았다.유래나 전설을 담은 자연물에 대해서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물었다.무등산에 대해 무언가 알아야 ‘보호’라는 명분을 내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당시만해도 ‘무등산 보호’를 시민운동으로 이끌어낼 만한 토대가 마련되지 않았다. 그는 이를 토대로 1976년 ‘무등산’이란 507쪽짜리 책을 펴냈다.무등산의 유래와 전설·경관 등을 망라했다.“풀 한 포기 돌 한조각에도 생명이 있음을 느겼다.”는 박씨는 “내 삶을 부려 놓을 때까지 살아 움직이는 무등산에 대한 기록을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현재 6번째 개정 증보판을 내 놓았다.소설가 송기숙(전남대 명예교수)씨는 “폐허가 된 절터를 찾아 하나 하나 유래와 전설을 밝히고 유려한 필치로 구수하게 이야기를 펼쳐간다.”며 “이 책은 그의 해박한 지식과 철저한 고증이 담긴 향토문화의 큰 수확”이라고 평가했다.무등산이 70년대 산업화 이후엔 벌채가 아닌 개발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등산객이 아무데서나 밥을 짓고 쓰레기를 마구 버렸다.산중에서 고성방가와 술주정까지 벌어졌다.그는 자연보호운동을 시작할 때라고 판단했다.1989년 지역 산악단체와 YMCA,흥사단 등 12개 단체가 참여,‘무등산 보호 결의대회’와 ‘오물수거 캠페인’이 열렸다.그는 이를 계기로 같은해 봄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를 창설했다.거창한 구호 보다는 ▲쓰레기 버리지 말기 ▲취사 삼가기 ▲세제류 안쓰기 등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지금은 800여개 단체가 가맹한 대표적 시민단체로 성장했다.협의회는 최근 모 업체가 무등산 자락에 추진중인 ‘온천개발’을 백지화하도록 유도했다.시민들의 호응도 급속히 확산됐다. 그는 2001년 ‘무등산 공유화 재단’을 설립하고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이 펼치고 있는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에 뛰어들었다.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해 무등산의 사유지를 사들여 영구 보존하는 운동이다.시민과 지역 기업들의 협조로 지금까지 무등산 자락 사유지 7만 5000여평을 사들였다. ●내셔널트러스트 운동 등 공감대 확산 노력 그는 또 지방으로서는 처음으로 지난 86년 ‘민학회’를 창설했다.고향의 발자취를 더듬고 자기 정체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19세기말 개화기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광주의 향토자료와 역사를 집대성한 ‘광주 1백년’이란 3권짜리 책도 펴냈다.“좋은 자연환경 속에서 정신이 건강한 후세들이 태어날 것이라 믿습니다.무등산 보호도 결국은 삶의 터전을 풍요롭게 가꾸자는 실천운동이지요.”단 한 번도 고향을 떠나보지 않았고,이 곳에서 숨쉬고 부대끼며 80평생을 살아온 그의 얼굴에는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짙게 배어 있었다. 글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그가 걸어온길 ▲ 1952년 광주상공회의소 사무국장,보이스카우트 ‘무등소년대’대장 ▲ 55년 이 지역 최초 산악회인 ‘전남산악회’ 조직 ▲ 69년 전남산악연맹 창설 ▲ 89년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창설 ▲ 94년 조선대 이사장 ▲ 99년 광주전남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창설,초대회장 ▲ 2000년 제1회 대한민국 산악대상 산악환경상 수상 ▲ 2001년 무등산 공유화 재단 설립 ˝
  • [박기철의 플레이볼] 감독의 선택

    2004년 한국프로야구는 시즌 전의 예상과는 달리 현재 치열한 순위싸움 중이다.이런 박빙의 순위 경쟁을 하게 되면 가장 피가 마르는 사람은 감독이다. 야구는 단체 경기이면서도 가장 세밀하게 개인 기록을 집계한다.따라서 팀 성적이 좋지 않아도 개인 기록만 좋으면 혼자 웃을 수 있다.코치도 자신이 담당한 선수들의 기록만 좋으면 흐뭇한 심정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다.왕년에 홈런 타자로 명성을 날린 모 선수는 팀이 큰 점수 차로 지고 있어도 자신이 홈런을 날리면 주위의 눈치를 안 보고 너무 기뻐하다가 눈총을 받기도 했다.결국 그 선수는 은퇴 후에 아무도 지도자로 불러주지 않았고 철 없던 행동을 후회하고 있다. 팀 성적이 나쁜데 선수가 대기록을 이어가고 있으면 감독은 선택의 폭이 제한된다.특히 연속 경기와 관련된 기록은 더욱 고민스럽다.연속 경기 출장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선수는 아무리 성적이 나빠도 한번은 출전을 시켜줘야 한다.타자가 연속 경기 안타 기록을 세우고 있으면 아무리 천적 투수가 나와도 대타를 내보내지 못한다.투수가 연승 기록을 이어가면 아무리 난타를 당해도 최소한 동점을 허용하기까지는 기다려 주어야 한다. 심지어 상대 선수가 신기록에 도전하고 있는데 고의 4구로 내 보내면 여론의 빗발치는 질타를 듣는 스포츠가 야구다.다른 스포츠에서 이런 고민을 하는 지도자는 없다.야구 감독만 영어로 ‘Coach’가 아니라 ‘Manager’로 번역되는 이유이기도 하다.기술만 지도하는 게 아니라 경영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실제로 메이저리그 초창기인 19세기 후반의 감독은 대부분 구단주를 겸했다.프로야구의 재정 규모가 놀랄 만큼 커진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감독은 구단주에게 고용되는 신분으로 변했지만 감독에게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성적이 좋지 않으면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게 된 것이다.이런 고민을 안 해도 됐던 유일한 사람은 필라델피아의 감독이었던 코니 맥.그는 구단주를 겸했던 덕에 짤릴 걱정은 없었다. 1901년부터 무려 50년간을 말뚝 감독으로 지내며 3776승을 올린 역대 최다승 감독이 됐다.하지만 패전은 승보다 더 많은 4025경기나 됐다.감독을 다른 사람에게 시켰다면 연봉은 더 들었겠지만 승도 더 많아지지 않았을까? 10-0으로 이기고 있는 경기의 7회쯤 되면 감독은 선발 투수를 아끼기 위해 구원 투수를 넣어야 하는지,아니면 구원 투수를 아끼기 위해 완투를 시켜야 하는지 고민한다.선발 투수에게 완봉승이나 노히트 경기의 영예를 주는 것은 다음 문제다.감독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다.감독을 비난하기보다는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면 야구가 더 재미있다. 스포츠투아이 상무이사 tycobb@sports2i.com˝
  • [씨줄날줄] 돌아온 카페/신연숙 논설위원

    “인터넷 상에서 카페는 보통명사나 관용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특정업체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카페’란 이름의 사용을 놓고 인터넷 포털사이트끼리 벌인 다툼에 대해 법원이 내린 판결 요지다.1심 판결에 불과하지만 이로써 인터넷 상에서 ‘카페’란 이름은 당분간 널리 쓰여질 수 있게 됐다. 커뮤니케이션 역사에서 ‘카페’는 대화의 장소,하버마스 식으로 말하면 ‘공론장(公論場)’을 의미한다.17세기말 프랑스에 처음 생긴 ‘카페’는 터키에서 온 ‘검은 음료’의 그윽한 향기를 즐기기 위한 곳이었다.그러나 카페는 곧 ‘대화’를 매개로 한 예술적,정치적,오락적 장소로 발전해 갔다.특히 계몽주의시대를 만난 카페는 온갖 사상이 자유롭게 부딪치며 진리를 찾아 가는 토론의 공간으로서 각광받는다. 그러나 공론장으로서 카페는 역사적인 부침도 겪었다.결정적인 타격은 19세기말,대중신문이라는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이었다.대중신문은 공론의 방식도 획기적으로 바꿨다.커피를 놓고 얼굴을 마주보며 행하던 대인적(對人的)커뮤니케이션에서 비대면적(非對面的)커뮤니케이션으로,카페를 드나드는 사상가나 엘리트층 위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대중의 커뮤니케이션으로 형태가 변화해간 것이다.소유형태 등에 따른 대중언론의 편향성,일방성 등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약점은 우리가 모두 아는 바와 같다.카페는 이제 토론장이라기보다는 문화적 공간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카페는 죽지 않았다.오히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성장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포털 사이트들의 커뮤니티 카페는 하나의 이슈를 놓고 하루만에 수만명의 토론자들을 끌어모으는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떠올랐다.9·11사건 하나에 개설된 카페만도 수십개,최근엔 독도영유권논란,탄핵문제 카페가 위력을 발휘했다. 공론장으로서 인터넷 카페는 사실성,공정성,명예훼손 등 문제점도 많다.이번 소송에서 보이는 것처럼 상업성과의 결합도 문제점이다.그러나 기존 매체의 비대면성,접근제한성,시간성의 문제를 일시에 극복한 새 매체로서의 파워는 주목 대상이다.이번 소송의 최종 결과 여부를 떠나 사회현상으로서 생환한 ‘카페’현상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신연숙 논설위원 yshin@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7) 한국의 찻그릇 - 유태근의 검은 빛깔 찻사발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7) 한국의 찻그릇 - 유태근의 검은 빛깔 찻사발

    경북 문경시 호계면 별암리 산 6번지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야 닿는 문경대학 도자기공예과 유태근 교수 연구실은,그의 주된 연구분야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매우 특이한 형태와 색깔의 그릇들로 가득차 있다.문경이 우리나라 도자 역사에서 민간요의 대표적인 곳으로 알려져 온 것처럼 이 지역에서 조사 발굴된 옛 그릇들의 파편과 가마터 흔적을 짐작하게 하는 자료들도 연구실 군데군데 쌓여 있다. ●박해 피해온 천주교인들 문경서 ‘가마노동’ 문경 그릇이 지닌 맛은 순수한 흙과 유약 그리고 불과 바람이 만든 것 외에,19세기 중반이후부터 시작된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가 남긴 종교적 고난사와 그 고난을 비폭력으로 극복하고 종교적 구원에 다다르려는 기도와 시련의 아픈 역사도 느껴진다.전해 오는 바로는 조선 정부의 천주교 박해를 피해 문경 산록으로 숨어든 교인들은 그 곳에서 그릇을 빚고 굽는 사기장들이 운영하는 가마의 노동자로 신분을 위장하여 살아남으려고 시도했었다. 사기장들은 그들 스스로가 천민처럼 소외당하고 살아가는 슬픔의 주인공들이어서 목숨을 건지려고 도망쳐 온 교인들을 제 살붙이같이 쓸어 안아 주었다.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쓸어 안아 주는 문경의 인심이 생겨난 한 까닭이기도 하다.교인들은 머슴이 되기도 하여 오래 머물기도 하지만 잠시 머물다가 떠나기도 했다. 지게에다 그릇 몇 점을 얹어 짊어지고 교인들 집을 찾아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막대기를 이용하여 땅바닥에 십자가를 슬쩍슬쩍 그으면 이를 알아보는 교인들은 얼른 전달해 줄 말이나 물건을 전하기도 했었다.문경 지방에서 만든 그릇은 그래서 다른 지역 그릇보다 인간의 체취가 진하게 풍기고,그만큼 그 사회상이 짙게 투영된 그릇들로 알려져 온다. 유태근의 연구실에서 눈길을 끄는 몇 가지 그릇들 중에서 검은 색깔이 짙게 드러난 일련의 작품들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문:이 그릇의 용도가 궁금하군요. 유:찻그릇입니다. 문:검은 색깔을 입은 찻그릇이라….흔히 흑도라고도 부르는 종류의 하나인가요? 유: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만,제가 시도하고 있는 것은 고려 시대의 흑도 종류나 두만강 유역의 고구려 시대 흑도와는 다른 분야라고 해야 옳습니다. 문: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유:저의 경우에는 신라,가야 토기의 순수성에 감명 받아 시도하고 있거든요. ●인간체취·사회상 투영된 문경찻그릇 문:이 작품들을 만들게 된 동기라고 봐도 될까요? 유:엄밀하게 말하자면 직접접인 동기는 아닙니다.직접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1년 경기도 여주에서 열렸던 세계도자기엑스포에서 세계 여러 지역 원주민들이 직접 그들 고유의 토기를 제작하는 모습을 보고서였습니다. 그 때 저의 관심을 끈 것은 파푸아뉴기니아 원주민들의 토기 제작 광경이었지요.그들 나라에서 가져 온 흙으로 그릇을 성형하여 굽는데 그 과정이 퍽 이채롭더군요.그릇을 노천에 쌓아 놓고 그릇 주위에다 장작이나 연료를 쌓아서 불을 질렀거든요.우리가 말하는 노천가마하고도 전혀 다른 형식이었는데,어찌보면 일본의 전통 그릇인 라쿠(樂)를 제작하는 방법과 유사했습니다.그릇이 굽혀지더군요.색깔은 검정색이었는데,화도(火度)가 낮은 편이어서 물이 스며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그릇들의 색깔이나 질감이 어쩌면 그렇게도 초기의 김해토기들과 흡사했는지 깜짝 놀랐거든요.그릇의 양감(量感)이 매우 빈약하고 얇은데다 가볍고 차가운 느낌이었지요. 문:가야와 신라 토기가 지닌 순수성이란 표현과 관련이 있습니까? 유:그렇습니다.순수성이란 말보다는 그릇에서 순결한 느낌을 받는다는 표현이 옳을 것입니다.복잡한 생각없이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어쩌면 원시신앙이나 종교적 열정일지도 모르지요. ●도자기엑스포 관람이 흑도 제작 계기로 문:그 원주민들의 그릇 굽는 방식에 관한 얘기는 불교의 초기 율장 중 하나인 사분율(四分律)에 나오는 기록과 매우 닮았군요.부처님이 옹기장이한테 진흙으로 발우 만드는 법을 설명하는 대목을 보면 그릇을 만들어 화로 안에 넣고 뚜껑을 덮은 후 그 주위에다 여러 가지의 마른 장작들을 쌓아 놓고 불을 지펴서 굽는 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그런 방식은 고대 인도 지방은 물론 동남아시아 전 지역에 널리 보급되었고,아직도 그런 방식이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일본인들이 17세기 무렵 이후 그들 특유의 라쿠그릇 만드는 법도 이런 식과 관련이 있거든요.혹 유교수는 일본의 라쿠 제작 방법을 알고 계신가요? 유:예,일본에서 도자기를 공부했거든요. 문:어디서 공부하셨습니까? 유:미야기 교육 대학 미술과에서 도자기를 전공한 다음,나고야 아이치 예술 대학에서 전통파트로 대학원을 마쳤습니다.그러다보니 일본 도자기의 특성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그런 연후에 가야와 신라 토기에 대한 나름의 미학적 접근도 가능했거든요.라쿠제작 기법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파푸아 뉴기니아 원주민들의 토기 제작을 보게 되자 일본의 라쿠,가야와 신라의 토기들이 하나의 어떤 궤적을 이루면서 연상되기 시작하더군요.그런 경험을 토대로 이 흑색 찻그릇을 창안해가고 있습니다. 문:제작 방법을 소개해 줄 수 있을까요? 유:그럼요.먼저 흙은 장석질 사토와 황토에다 산청토를 섞습니다.성형을 마치면 잘 말려서 임시로 제작한 통 속에다 넣지요.그리고는 그릇 주위에다 연료를 쌓습니다.연료가 타면서 그 열기에 그릇의 유리질화가 진행됨과 동시에 연료가 타면서 생기는 연기를 그릇에 스며들게 하는 시도를 합니다. 인체에 좋은 효과를 주는 것으로 알려진 쑥,갖가지 한약재들을 태워서 연(煙)을 먹이지요.그을음을 먹인다고 표현하는데,이것이 일종의 유약이기도 하지요.현대적 재료를 이용하여 인체에 유익한 기능성 찻그릇을 연구하게 된 것입니다. 문:화도가 불충분할텐데요. 유:그렇습니다.아무래도 정통 가마에 비해 열의 온도가 덜 오르기 때문에 잘 해야 1100도 정도가 최고 온도지요.그러니 유리질이 덜 이루어져서 물이 스며나올 수밖에 없지요. ●“전통성·기능성 어우러진 찻그릇 만들것” 문:그럼 어떤 해결책을 개발했습니까? 유:온전한 찻그릇이 되어 생활에 사용하도록 하기 위하여 연구를 했습니다.먼저 그릇의 안쪽에만 옻칠을 시도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오더군요.옻칠을 배웠지요.여러 번 시도하다 보니 썩 괜찮은 찻그릇이 되겠다 싶었지요. 그 다음엔 일본의 라쿠다완이나 중국 송나라 때 귀족들이 사용하던 화려한 찻잔에서 힌트를 얻어 금박지를 입혀봤습니다.찻그릇 바깥은 짙은 검정인데 안쪽은 붉은 옻칠색이나 황금색의 밝고 화려한 표면이 나타나더군요.일본 라쿠차완의 장점을 응용하여 한국의 새로운 찻그릇을 만들고,가야토기라는 전통성 위에 현대 사회의 속도감과 기능성을 가미시킨 그릇으로 변화시켜가고 싶습니다. 문:좋은 찻그릇은 그 시대의 표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현대 한국사회의 삶을 응시하면서 찻사발을 창안하려는 숨은 의지가 느껴집니다. 유태근(39세) 교수는 대학 동문인 아내 김수희(35세),외아들 청우(7세)와 함께 여러 해 째 병석에 계신 부친의 마음을 위안해드릴 수 있는 찻사발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그의 부친이 만족해 하는 그릇이라면 세상 사람들에게도 작은 위안이 되리라 본다고 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7) 한국의 찻그릇 - 유태근의 검은 빛깔 찻사발

    경북 문경시 호계면 별암리 산 6번지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야 닿는 문경대학 도자기공예과 유태근 교수 연구실은,그의 주된 연구분야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매우 특이한 형태와 색깔의 그릇들로 가득차 있다.문경이 우리나라 도자 역사에서 민간요의 대표적인 곳으로 알려져 온 것처럼 이 지역에서 조사 발굴된 옛 그릇들의 파편과 가마터 흔적을 짐작하게 하는 자료들도 연구실 군데군데 쌓여 있다. ●박해 피해온 천주교인들 문경서 ‘가마노동’ 문경 그릇이 지닌 맛은 순수한 흙과 유약 그리고 불과 바람이 만든 것 외에,19세기 중반이후부터 시작된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가 남긴 종교적 고난사와 그 고난을 비폭력으로 극복하고 종교적 구원에 다다르려는 기도와 시련의 아픈 역사도 느껴진다.전해 오는 바로는 조선 정부의 천주교 박해를 피해 문경 산록으로 숨어든 교인들은 그 곳에서 그릇을 빚고 굽는 사기장들이 운영하는 가마의 노동자로 신분을 위장하여 살아남으려고 시도했었다. 사기장들은 그들 스스로가 천민처럼 소외당하고 살아가는 슬픔의 주인공들이어서 목숨을 건지려고 도망쳐 온 교인들을 제 살붙이같이 쓸어 안아 주었다.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쓸어 안아 주는 문경의 인심이 생겨난 한 까닭이기도 하다.교인들은 머슴이 되기도 하여 오래 머물기도 하지만 잠시 머물다가 떠나기도 했다. 지게에다 그릇 몇 점을 얹어 짊어지고 교인들 집을 찾아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막대기를 이용하여 땅바닥에 십자가를 슬쩍슬쩍 그으면 이를 알아보는 교인들은 얼른 전달해 줄 말이나 물건을 전하기도 했었다.문경 지방에서 만든 그릇은 그래서 다른 지역 그릇보다 인간의 체취가 진하게 풍기고,그만큼 그 사회상이 짙게 투영된 그릇들로 알려져 온다. 유태근의 연구실에서 눈길을 끄는 몇 가지 그릇들 중에서 검은 색깔이 짙게 드러난 일련의 작품들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문:이 그릇의 용도가 궁금하군요. 유:찻그릇입니다. 문:검은 색깔을 입은 찻그릇이라….흔히 흑도라고도 부르는 종류의 하나인가요? 유: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만,제가 시도하고 있는 것은 고려 시대의 흑도 종류나 두만강 유역의 고구려 시대 흑도와는 다른 분야라고 해야 옳습니다. 문: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유:저의 경우에는 신라,가야 토기의 순수성에 감명 받아 시도하고 있거든요. ●인간체취·사회상 투영된 문경찻그릇 문:이 작품들을 만들게 된 동기라고 봐도 될까요? 유:엄밀하게 말하자면 직접접인 동기는 아닙니다.직접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1년 경기도 여주에서 열렸던 세계도자기엑스포에서 세계 여러 지역 원주민들이 직접 그들 고유의 토기를 제작하는 모습을 보고서였습니다. 그 때 저의 관심을 끈 것은 파푸아뉴기니아 원주민들의 토기 제작 광경이었지요.그들 나라에서 가져 온 흙으로 그릇을 성형하여 굽는데 그 과정이 퍽 이채롭더군요.그릇을 노천에 쌓아 놓고 그릇 주위에다 장작이나 연료를 쌓아서 불을 질렀거든요.우리가 말하는 노천가마하고도 전혀 다른 형식이었는데,어찌보면 일본의 전통 그릇인 라쿠(樂)를 제작하는 방법과 유사했습니다.그릇이 굽혀지더군요.색깔은 검정색이었는데,화도(火度)가 낮은 편이어서 물이 스며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그릇들의 색깔이나 질감이 어쩌면 그렇게도 초기의 김해토기들과 흡사했는지 깜짝 놀랐거든요.그릇의 양감(量感)이 매우 빈약하고 얇은데다 가볍고 차가운 느낌이었지요. 문:가야와 신라 토기가 지닌 순수성이란 표현과 관련이 있습니까? 유:그렇습니다.순수성이란 말보다는 그릇에서 순결한 느낌을 받는다는 표현이 옳을 것입니다.복잡한 생각없이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어쩌면 원시신앙이나 종교적 열정일지도 모르지요. ●도자기엑스포 관람이 흑도 제작 계기로 문:그 원주민들의 그릇 굽는 방식에 관한 얘기는 불교의 초기 율장 중 하나인 사분율(四分律)에 나오는 기록과 매우 닮았군요.부처님이 옹기장이한테 진흙으로 발우 만드는 법을 설명하는 대목을 보면 그릇을 만들어 화로 안에 넣고 뚜껑을 덮은 후 그 주위에다 여러 가지의 마른 장작들을 쌓아 놓고 불을 지펴서 굽는 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그런 방식은 고대 인도 지방은 물론 동남아시아 전 지역에 널리 보급되었고,아직도 그런 방식이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일본인들이 17세기 무렵 이후 그들 특유의 라쿠그릇 만드는 법도 이런 식과 관련이 있거든요.혹 유교수는 일본의 라쿠 제작 방법을 알고 계신가요? 유:예,일본에서 도자기를 공부했거든요. 문:어디서 공부하셨습니까? 유:미야기 교육 대학 미술과에서 도자기를 전공한 다음,나고야 아이치 예술 대학에서 전통파트로 대학원을 마쳤습니다.그러다보니 일본 도자기의 특성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그런 연후에 가야와 신라 토기에 대한 나름의 미학적 접근도 가능했거든요.라쿠제작 기법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파푸아 뉴기니아 원주민들의 토기 제작을 보게 되자 일본의 라쿠,가야와 신라의 토기들이 하나의 어떤 궤적을 이루면서 연상되기 시작하더군요.그런 경험을 토대로 이 흑색 찻그릇을 창안해가고 있습니다. 문:제작 방법을 소개해 줄 수 있을까요? 유:그럼요.먼저 흙은 장석질 사토와 황토에다 산청토를 섞습니다.성형을 마치면 잘 말려서 임시로 제작한 통 속에다 넣지요.그리고는 그릇 주위에다 연료를 쌓습니다.연료가 타면서 그 열기에 그릇의 유리질화가 진행됨과 동시에 연료가 타면서 생기는 연기를 그릇에 스며들게 하는 시도를 합니다. 인체에 좋은 효과를 주는 것으로 알려진 쑥,갖가지 한약재들을 태워서 연(煙)을 먹이지요.그을음을 먹인다고 표현하는데,이것이 일종의 유약이기도 하지요.현대적 재료를 이용하여 인체에 유익한 기능성 찻그릇을 연구하게 된 것입니다. 문:화도가 불충분할텐데요. 유:그렇습니다.아무래도 정통 가마에 비해 열의 온도가 덜 오르기 때문에 잘 해야 1100도 정도가 최고 온도지요.그러니 유리질이 덜 이루어져서 물이 스며나올 수밖에 없지요. ●“전통성·기능성 어우러진 찻그릇 만들것” 문:그럼 어떤 해결책을 개발했습니까? 유:온전한 찻그릇이 되어 생활에 사용하도록 하기 위하여 연구를 했습니다.먼저 그릇의 안쪽에만 옻칠을 시도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오더군요.옻칠을 배웠지요.여러 번 시도하다 보니 썩 괜찮은 찻그릇이 되겠다 싶었지요. 그 다음엔 일본의 라쿠다완이나 중국 송나라 때 귀족들이 사용하던 화려한 찻잔에서 힌트를 얻어 금박지를 입혀봤습니다.찻그릇 바깥은 짙은 검정인데 안쪽은 붉은 옻칠색이나 황금색의 밝고 화려한 표면이 나타나더군요.일본 라쿠차완의 장점을 응용하여 한국의 새로운 찻그릇을 만들고,가야토기라는 전통성 위에 현대 사회의 속도감과 기능성을 가미시킨 그릇으로 변화시켜가고 싶습니다. 문:좋은 찻그릇은 그 시대의 표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현대 한국사회의 삶을 응시하면서 찻사발을 창안하려는 숨은 의지가 느껴집니다. 유태근(39세) 교수는 대학 동문인 아내 김수희(35세),외아들 청우(7세)와 함께 여러 해 째 병석에 계신 부친의 마음을 위안해드릴 수 있는 찻사발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그의 부친이 만족해 하는 그릇이라면 세상 사람들에게도 작은 위안이 되리라 본다고 했다.˝
  • 사다리 걷어차기/장하준 지음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경제발전을 도모하던 시기엔 보호관세와 정부보조금을 통해 산업을 발전시켜 놓고 정작 지금에 와선 후진국들에 자유무역을 채택하고 보조금을 철폐하라고 강요한다.과거 자신들은 여성,빈민,저학력자,유색인종에 대해선 투표권조차 주지 않았으면서 지금은 후진국들에 민주주의가 자리잡지 못하면 경제가 발전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경제학) 교수는 자신의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원제 ‘Kicking away the Ladder’,형성백 옮김,부키 펴냄)에서 후진국 및 개발도상국을 위한 선진국의 경제처방을 정면으로 반박한다.보호무역주의를 바탕으로 성장한 선진국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세계화를 강조하는 태도는 자신이 밟고 올라온 사다리를 스스로 걷어차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2002년 영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지난해 제도경제학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뮈르달상’을 받은 화제작이다. 저자는 먼저 무역·투자자유화 논리에 숨어 있는 선진국의 이기주의적 의도를 고발한다.특히 영국의 성장신화 속에 감춰진 은밀한 역사를 파헤친다.저자에 따르면 ‘자유무역국가 영국’의 이미지는 완전히 허구다.영국은 중세 이후 13∼14세기까지만 해도 유럽 대륙의 여러 나라보다 경제력이 떨어졌다.그런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대대적인 유치산업 보호정책을 펼쳤다.당시 영국의 주력 산업은 양의 원모와 ‘짧은 옷감(short cloth)’이라 불린 모직 옷감을 수출하는 것이었다.에드워드 3세 시절의 ‘국산품애용운동’ 이래 영국의 모직업은 꾸준히 발전해 엘리자베스1세 시대엔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영국의 산업혁명은 바로 이같은 모직업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식민지 국가들은 말편자의 못도 만들지 못하게 하라.”는 영국 정치가 대(大) 피트의 말은 영국이 얼마나 철저하게 보호주의정책을 펼쳤는가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영국은 19세기 경제 최강국의 자리에 오르자 자유무역의 장점을 역설하고 나섰다.저자는 영국의 곡물법 폐지 등 일련의 조치를 농업상품 및 원자재 시장을 확장함으로써 유럽대륙의 산업화를 저지하려는 ‘자유무역 제국주의’적 행위라고 비판한다.이런 위선적 행태는 물론 영국에만 특유한 게 아니었다.‘근대 보호주의의 모국이자 철옹성’으로 불린 미국은 발명품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등의 절차적 수단을 통해 외국인의 특허권을 인정하지 않았다.미국 역시 선진국 대열에 오르자 영국과 마찬가지로 자유무역을 옹호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처럼 자기 편한대로 왔다갔다하는 ‘박쥐외교’를 비판한다.나아가 선진국들이 내세우는 ‘글로벌 스탠더드’도 금과옥조로 여기지 않는다.우리와 비슷한 단계에서 선진국들이 어떤 정책과 제도를 썼는지를 살펴보고 현재의 여건에 맞는 정책과 제도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1만 2000원. 김종면기자˝
  • [새영화] 더 블루스:소울 오브 맨

    쿠바 음악에서 블루스로. 지난 1999년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으로 쿠바 음악의 진수를 스크린에 담아 흥겨운 감동을 안겨준 빔 벤더스 감독의 음악 여행이 이번엔 블루스 탐사로 향했다.그의 열정이 담긴 작품은 14일 개봉하는 ‘더 블루스:소울 오브 맨(The Soul of A Man)’. 블루스는 19세기 후반 미국 남부 흑인들이 신분이 해방된 뒤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생활고로 인한 고난과 일상의 절망감을 읊은 노래.“그들의 노래는 내게 세계를 의미했다.”는 벤더스 감독의 ‘블루스 찬가’는 블라인드 윌리 존슨(크리스 토머스 킹),스킵 제임스(케이스 B 브라운),J B 르누아르 등 블루스 세 거장의 삶과 노래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스크린 속으로 불러온다. 1977년 우주탐사선 보이저호가 발사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탐사선 속에는 50개국 언어로 된 메시지와 다양한 소리들,음악 등이 담겨 있다.그 중 하나가 블라인드 윌리 존슨의 노래 ‘다크 워스 더 나이트’.이후 영화는 20년대 블루스 음악의 선구자인 블라인드 윌리 존슨의 내레이션을 따라 흘러간다. 벤더스 감독은 세 뮤지션이 활동한 시대를 꼼꼼하게 재현하기 위해 연출 화면과 기록 영상을 적절하게 섞었다. 특히 세 뮤지션의 주옥 같은 노래가 흑백과 컬러로 넘나들면서 변주되는 모습은 매력 덩어리다.당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바로 이어 그 노래를 ‘고전’처럼 여기는 현대의 가수들이 리메이크해 부르는 장면이 뒤따르면서 세월을 초월한 블루스의 감동이 울려 퍼진다. 스킵 제임스의 ‘I’m so glad’와 그것을 편곡한 벡의 연주,J B 르누아르의 ‘라운드 앤드 라운드(Round & Round)’와 보니 레이트의 노래를 비교하며 듣는 맛이 어떨지 생각해 보라.특히 카산드라 윌슨이 ‘슬로 다운(Slow Down)’을 부를 때 그를 지켜보는 J B 르누아르의 얼굴을 오버랩시킨 장면은 인상적이다. 뮤직 다큐 형식이라고 해서 음악을 모르는 이들이 지루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할 필요는 없다.벤더스 감독은 첫 음반을 낸 뒤 자신이 ‘블루스의 전설’이 된 줄도 모르고 사라졌던 스킵 제임스가 30년 뒤인 1964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등장한 장면을 포착하는 등 극적인 반전을 통해 단선적 흐름에 파격을 준다.지난해 칸 영화제 특별상영작품. 이종수기자 vielee@˝
  • 사회지도층 ‘자살 신드롬’

    ‘명예를 지키기 위한 극단의 선택인가,조직을 살리기 위한 희생인가.’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박태영(63) 전남지사가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사회지도층 인사가 자살한 것은 올 들어서만 4번째다.앞서 지난 1일에는 김인곤 광주대 이사장이,지난달 11일에는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또 2월4일에는 안상영 부산시장이 각각 자기 손으로 생을 마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사회지도층의 자살이 잇따르는 이유가 비리 혐의로 인한 자존심 상실과 자기 비하,조직내 다른 구성원을 살려야 한다는 강박관념 등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했다.그러면서도 지도층 인사의 자살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은 생명 중시 가치관을 파괴하고 또 다른 자살을 부를 수 있다며 경계했다. 29일 낮 12시48분쯤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반포대교 남단에서 북쪽으로 450m 지점에서 박태영 전남지사가 한강에 투신했다.함께 있던 운전기사의 신고를 받은 용산경찰서 남부지구대 소속 순찰차와 경비정이 곧바로 출동해 박 지사를 구조,인근 한남동 순천향병원으로 옮겼으나 그는 낮 12시55분쯤 숨졌다. 박 지사는 2000∼2001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초대 이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인사·납품 비리에 관련된 혐의로 서울 남부지검에서 사흘째 조사를 받아 왔다. ●자존심에 상처…굴욕보다는 죽음을 선택 사회지도층의 연쇄 자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이들은 하나같이 명예와 자존심,타인의 존경을 ‘자산’으로 삼아 살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살연구전문가인 유수현 숭실대 사회사업학과 교수는 지도층 인사의 자살에 관해 “상실감과 절망을 참을 수 없어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일 수 있다.”면서 “또 조직 속에서 한 사람이 희생하고 다른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이은철 연세로뎀 정신과 의사는 “비리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으면 에너지가 없어지면서 삶에 대한 목표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시대적·심리적 공통점 최근 잇따라 목숨을 끊은 지도층 인사들은 모두 1960∼1980년대 어려웠던 시절에 무언가 일궈낸 사람들이다.표창원 경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이들이 고생과 노력의 결과나 대가를 누려야 할 시점에 비리 혐의로 사회의 비난에 직면하게 된 것이 큰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베르테르 이펙트’ 우려 사회지도층의 자살은 갑남을녀의 그것과는 사회적 파장이 분명히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출세한 지도층 인사를 이상형으로 여기고 존경하는 많은 사람이 이상형의 자살로 허탈감이나 정신적 충격에 빠질 수 있다. 하상훈 생명의 전화 자살예방센터 원장은 “지난해 8월 정몽헌 회장이 자살한 뒤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도 죽는데 나같은 사람은 자살해도 된다.’는 식의 상담 전화가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이는 유명인이 죽은 다음 동조자살하는 현상을 일컫는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베르테르 효과’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이 로테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이 책을 읽은 19세기 유럽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살자가 급증한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유영규 김효섭기자 whoami@seoul.co.kr ˝
  • 베지테리안, 세상을 들다/쓰루다 시즈카 지음

    채식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그것은 지성인의 새로운 삶의 양식,말하자면 음식에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것이다.일본의 채식문화연구가인 쓰루다 시즈카가 쓴 ‘베지테리안,세상을 들다’(손성애 옮김,모색 펴냄)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한마디로 베지테리안(vegetarian),즉 채식주의자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육식문화는 차별과 불평등을 조장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굶주리게 만드는 ‘악’이다.그런 관점에서 베지테리안이었던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의 책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미식가의 종말은 거지다.어리석은 해설가가 좋은 책을 망치듯 신은 악마처럼 요리사에게 고기를 줬다.가난한 자는 위(胃)를 위해 먹을 것을 구하고 부자는 먹을 것을 위해 위(胃)를 구한다.” 육식문화는 반(反)페미니즘 문화인가.인류가 고기를 먹게 된 역사를 살펴보면 육식의 과정에서 남성우월과 여성차별이 있었음은 분명하다.레스토랑이 나타나고 미식가가 등장하기 시작한 18∼19세기 프랑스 파리에선 ‘식도락’이란 이름의 육식이 자주 행해졌다.하지만 그것은 문학가,의사,변호사,성직자 등 특권계급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미식과 육식의 주류문화에서 여성들은 늘 배제됐다.일본에서도 고기를 먹는 사람은 주로 남성들이었다.메이지 중반까지 육식은 여성과 무관한 일이었다.그러나 책의 초점은 이같은 육식문화의 횡포를 지적하기보다는 ‘시대의 선구자’로서의 베지테리안들의 삶을 조명하는 데 있다.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윤회전생을 믿고 육식을 금한 대표적인 인물이다.피타고라스는 그 금기를 지킨 300명의 ‘형제단’ 제자들과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 빵과 꿀,야채와 과일만을 먹으며 지냈다.피타고라스의 윤회사상은 플라톤을 비롯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존 밀턴,퍼시 비시 셸리,레오 톨스토이,헨리 데이비드 소로,미야자와 겐지 등에게 영향을 미쳐 베지테리안의 길을 걷게 했다.저자는 이런 베지테리아니즘과 페미니즘이 행복하게 결합한 대표적인 예로 존 레넌을 든다.한때 ‘여성은 세계의 노예’란 노래를 불러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던 레넌은 훗날 자타가 공인하는 ‘남자주부’가 됐다. 월드워치연구소의 레스터 브라운 소장은 “21세기는 인구증가에 의한 ‘기아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곡식소비를 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특히 중요한 것이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이다.책은 브론슨 올코트 등 미국의 초절주의자들이 시도한 ‘프루트랜즈(Fruitlands)’ 같은 베지테리안 공동체의 이상과 좌절도 하나의 참고사례로 소개한다.1만 1000원. 김종면기자˝
  • [열린세상] “새로 당선된 선량들에게”/이종수 연세대 행정학 교수

    선거 이튿날 아침에 실릴 칼럼을 선거 날 점심 때까지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선거결과가 공표될 시점에 나올 칼럼을 선거결과도 모르는 상태에서 쓰는 것이다.온통 관심은 선거결과에 쏠려있는데,그 결과도 모르면서 결과가 나올 시점에 게재될 원고를 쓰는 것이 여간 고역스러운 일은 아니다.필시 모든 신문들은 선거결과의 권력공학적 의미와 향후의 전망으로 가득 찰 것이고,이따금 투표장의 풍경을 스케치하는 기사로 메워질 것이다. 당선을 자축하는 웃음소리로 사방이 가득할 시점에,필자는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싶다.국회의원이란 무엇인가? 오늘 당선이 확정된 299명은 어떤 국회의원이어야 하는가? 새롭게 선출된 국회의원들의 당선을 축하하면서,향후 4년간 어떤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는지를 필자는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다. 첫째는,섬겨야 한다는 부탁을 하고 싶다.우리는 흔히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공직자를 공복(公僕)이라 부른다.심부름꾼으로서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서양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옛날 왕을 받드는 신하(royal servant) 노릇을 하던 공직자들은 19세기 후반 들어 정당(政黨)의 주구(party servant) 노릇을 한 적이 있다.그 후 20세기에 들어와 주권재민의 원리가 실현되면서,공직자들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public servant)가 되었다. 국회의원 역시 국민에 대한 봉사자이다.군림하려 하고 국민의 이익에 봉사하려 하지 않는다면,더 이상 국회의원이라 하기 어렵다.국민의 공복으로서 사업하는 사람,농사짓는 사람,학문 하는 사람,문화예술 하는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 섬기는 일이 고단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그것이 고단한 일이기 때문에,4년이라는 임기를 마친 다음에는 지치는 것이 정상이다.지치지 않는다면,그것은 비정상이다.100m를 달린 다음에는 쓰러지는 것이 정상이다.섬기는 마음이 고갈되었다고 스스로 생각될 때,그 때는 옷을 벗어야 한다. 둘째는,책을 읽어야 한다.책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자신이 맡은 직무에 대한 전문성을 얻고,지식과 정보를 획득하게 된다.책이나 보고서를 읽을 생각도 않고,대정부 질의서 작성조차 보좌관의 머리를 빌리려 하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스스로 책을 읽어 전문성을 심화시키고,일을 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바란다.도서관에서 책과 자료를 찾고,열심히 읽는 국회의원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진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동시에 진지함과 원칙으로 회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국회의원이 처리해야 하는 정부의 정책결정은 다양한 이해관계의 충돌과 불확실성,직간접적 로비와 회유로 뒤섞이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음으로써 진지함과 원칙을 지속적으로 확인해야,중심을 잃지 않고 실족하지 않게 된다.아무리 권력과 돈이 많아 얼굴이 휘번들거려도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얼굴이 추해보이는 법이다. 셋째는,자전거를 타라.마음의 자전거를 타라.영국이나 독일의 국회의원들을 떠올릴 때,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인상은 자전거를 타는 그들의 모습이었다.우리가 ‘자전거’로써 마음의 망막에 떠올리는 것은 검소한 모습으로 삶의 현장을 누비는 국회의원의 모습이다. 이제 우리의 국회의원도 권력보다는 기능중심의 사고를 해 줄 것을 국민들이 강력히 기대하고 있다.대권만을 지향하며,여의도에서만 이루어지는 정치는 지금까지 식상할 만큼 보아왔다.생각해보면,국회의원이 되자마자 권력의 노예가 되어,누구나 대권을 겨냥하는 것은 허망한 짓이다.나아가 그것은 불행을 초래하고 만다.승자는 한 명일 뿐,나머지는 모두 패자가 되는 게임이다.아니,패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나이 60이 되면 대부분 감옥행으로 정치인생을 마무리짓고 만다.감옥에 가지 않더라도,부패와 뇌물로 얼룩져 은퇴를 하고,바깥출입조차 자유롭지 않은 인생을 보내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역설적으로 보자면,권력보다는 기능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자신의 소명에 충실하는 의원들에게 대권의 길도 열리고,미래도 보장될 것이다.이제 우리 국민들도 그런 의원을 분별해 낼 정도의 눈은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새롭게 당선된 299명의 선량들이 권력보다는 기능중심의 소명의식을 갖게 되고,그래서 한국사회가 더욱 살맛나는 사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 교수˝
  • 록펠러가의 사람들/피터콜리어·데이비드 호로 지음

    ●100년간 미국 뒤흔든 재벌 록펠러가문 아버지는 더러운 돈을 벌어들였고,아들은 돈으로 왕조를 이룩했다.‘형제들’은 돈으로 미국을 지배했고,‘사촌들’은 돈이 싫다며 가문의 이름을 거부했다.4대 100년간에 걸쳐 미국을 좌지우지한 재벌 록펠러가,그들은 과연 누구인가.‘록펠러가(家)의 사람들’(피터 콜리어ㆍ데이비드 호로위츠 지음,함규진 옮김,씨앗을 뿌리는 사람 펴냄)은 세계 최고의 재벌가로 한 세기를 풍미한 ‘록펠러 왕조’의 흥망성쇠를 다룬 책이다. ●1대, 정유업 투자… 검은 돈 불려 ‘록펠러 제국’의 건설자 존 데이비드슨 록펠러 1세.고등학교 시절 늘 우울하고 엄숙해 ‘집사님’으로 통했던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조그만 위탁판매 회사에 경리직원으로 들어갔다.종교적인 신성함을 느끼게 할 만큼 일에 몰두했던 록펠러가 막대한 재산을 모으게 된 것은 정유업에 투자하면서부터다.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재산을 불렸다.리베이트와 뇌물 증여 등의 편법으로 석유산업의 동맥인 철도를 장악하고 스탠더드 오일을 설립해 전국의 대형 정유회사들을 하나씩 인수했다.기업합동의 원조인 스탠더드 트러스트를 출범시켜 전성기엔 미국 전체 석유 공급량의 95%까지 주무르는 ‘완전’ 독점을 실현했다.이 석유부호는 만년에 들어선 “내 재산은 인류의 복지를 위해 쓰라고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며 록펠러 의학연구소와 록펠러 재단을 세우는 등 자선 사업가로 변신하기도 했다.하지만 ‘검은 돈’의 오명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2대, 자선사업으로 인맥 구축 록펠러 1세의 외아들 존 데이비드슨 록펠러 2세는 가업을 이을 황태자로 기대를 모았지만 심약한 성격으로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 살아야 했다.그는 주식투자에 실패하고 온갖 구설수에 오르다 일찌감치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자선사업에 몰두했다. 록펠러 2세는 이후 정·재계 및 문화계의 유력인사로 자리잡고 가문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힘썼다.록펠러 재단을 중심으로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베르사유 궁전 같은 문화유적을 복원했고,옐로스톤 등 각지의 명승지를 국립공원으로 조성했으며,제3세계의 위생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그가 이룩한 거대한 인적 네트워크는 록펠로 가문이 명실상부한 ‘왕조’를 이루는데 결정적인 힘이 됐다. ●3대, 정·재·학계서 왕성한 활동 록펠러 2세의 다섯 아들,이른바 ‘형제들’로 불린 록펠러 3대는 정·재계와 학계에 뛰어들어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그러나 이들의 승승장구는 재산의 낭비와 집안의 분열 등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특히 욕망의 화신인 둘째 넬슨 올드리치 록펠러는 정계에 뛰어들어 가문의 재산을 탕진했으며,대중에게 록펠러가에 대한 나쁜 인식을 심어줬다.넬슨은 ‘백악관’ 을 목표로 가문의 역량을 총동원했다.닉슨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되는 데 맞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공화당이야말로 록펠러가의 부속기관 아닙니까.록펠러 재단과 록펠러 대학처럼 말입니다.” ●4대, 대부분 정신병원 드나들어 록펠러 4대는 21명에 이른다.이 ‘사촌들’의 삶은 각양각색이다.이들은 거의 모두 정신과 병원을 들락거렸다.세계 최고의 부잣집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가문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려 애썼다.저널리스트 출신인 저자들은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록펠러 왕조는 이들 증손자 대에 와서 종말을 맞게 됐다고 말한다.록펠러 1세와 2세가 ‘개같이’ 벌어들인 엄청난 재산을 록펠러 3대가 ‘정승처럼’ 써버렸고 록펠러 4대에 와선 ‘개도 싫고 정승도 싫다.’며 각자의 길로 뿔뿔이 흩어진 형국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비스마르크와 함께 록펠러를 ‘현대를 만든 사람’으로 꼽았다.그만큼 록펠러가의 그림자는 넓고 짙다.이 책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말에 걸친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와 미국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록펠러 관련 책들은 록펠러가가 미화되거나 부정적인 예단에 의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그랜트 시걸의 ‘세계 최고의 부자 록펠러’는 록펠러 1세를 위대한 신앙인이자 자선가,사업가로만 묘사한다.또 히로세 다카시의 ‘억만장자는 할리우드를 죽인다.’는 모건가와 록펠러가가 전세계를 주무르는 암흑의 군주라는 전형적인 음모이론에 입각한 책이다.이에 비해 ‘록펠러가(家)의 사람들’은 록펠러가의 흥망사를 비교적 불편부당한 관점에서 다룬다.우리말 번역본으로 900쪽이 넘는 대작이다.3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책꽂이]

    ●젊은 대지를 위하여(현기영 지음,화남 펴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으로 재직 중인 작가의 에세이집.80년대부터 자신의 소시민성과 맞서 고민한 의식의 흐름을 38편의 글에 담았다.뜨겁던 시대정신을 돌아보고 오늘의 지혜를 얻자고 역설한다.9000원. ●1920년대 초기 시의 이념과 미학(조영복 지음,소명출판 펴냄) ‘창조’‘폐허’‘백조’등 동인지 시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단순히 서구 문예사조의 모방이 아니라 초기 아나키즘의 영향 아래 혁명적 이념과 근대 문예의 미학적 이념이 동시에 나타난다고 설명한다.1만 7000원. ●프로페셔널(이원호 지음,은행나무 펴냄) 스포츠서울에 연재된 소설.조직세계에 몸담았다가 죽은 형의 죽음에 얽힌 의혹을 파헤치는 특전사 중사의 이야기.인간들의 권력·야망욕과 암흑가의 냉혹한 생존 경쟁 등을 그린다.모두 3권,각권 8500원. ●사이키 멘탈(홍재규 지음,열매출판사 펴냄) 베스트셀러 ‘야인’의 작가가 낸 장편. 한 여학생이 지키지 못한 약속을 모티프로 다양한 인간이 물고 물리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었다. 모두 3권,각권 8500원. ●체호프와 그의 시대(A P 추다코프 지음,강명수 옮김,소명출판 펴냄) 체호프의 모든 작품을 대상으로 예술세계를 본격 분석한 연구서.푸슈킨,톨스토이·고골·투르게네프 등 ‘러시아 황금기 문학’이라 불리는 19세기 작가들과의 비교를 통해 체호프 문학의 독창성을 드러낸다.2만원. ●궁지(위스망스 지음,손경애 옮김,문학과지성사 펴냄) 세기말의 우울함을 탁월하게 그린 프랑스 소설가의 중단편집.부르주아 계급의 추악함과 탐욕을 드러낸 표제작과 자전적 소설 ‘등짐’ 등에서 당대의 시대 정신을 민감하게 포착한다.6000원. ●왕이 되고 싶은 사나이(루디야드 키플링 지음,김정우 옮김,함께읽는책 펴냄) ‘정글북’을 지은 작가의 작품으로 국내 첫 번역1800년대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에서 왕이 되고픈 욕망에 사로잡힌 두 떠돌이 젊은이의 삶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냉소적으로 형상화.7500원.˝
  • 실제 영웅 그린 ‘네드 켈리’ 19세기 호주판 로빈후드

    16일 개봉하는 ‘네드 켈리(Ned Kelly)’는 몇가지 사항만 양해한다면 들여다볼 만한 점이 많은 영화다.우선,이름만으로도 엄청난 관객몰이를 기대할 수 있는 스타 캐스팅이 아니라는 점.그리고 영국의 식민지배에 있던 19세기 후반의 호주를 배경으로,실존했던 의적의 삶을 그린 일대기 영화라는 점.진지한 맛은 있으되 사방팔방으로 가지를 뻗는 풍부한 영화적 상상력을 기대한다면 실화 영웅담에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호주 동부의 시골마을.아일랜드계 청년 네드 켈리(히스 레저)는 식민지배국인 영국 경찰들과 마찰을 일으켜 투옥됐다가 풀려났다.고향집으로 돌아왔지만 경찰들과는 여전히 팽팽한 신경전을 벌인다.그런 가운데 경찰의 모함으로 네드는 살인미수 누명을 쓰고 그의 어머니가 대신 감옥에 끌려간다.그의 결백을 증명해줄 사람은 살인이 나던 시각에 몰래 사랑을 나눈 영국인 귀족부인 줄리아(나오미 와츠)뿐.그러나 가정을 지키려는 줄리아가 나서주지 않자 네드는 범죄자 가족으로 내몰린 동생들과 함께 도주한다. 네드와 줄리아의 비밀스러운 로맨스를 빼면 영화는 영국경찰과 네드 일행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으로 이어진다.‘호주판 로빈 후드’라 불릴 만한 네드는 실제로 은행을 털어 농민들에게 나눠주는 등 의적생활을 하다 25세의 꽃다운 나이에 교수형을 당했다.교수형에 처해지기까지 네드의 5년간의 행적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기대 이상의 스펙터클 화면을 선사한다.철갑옷을 입은 네드 형제들이 장총을 들고 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 등은 서사액션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뜻밖의 보너스가 될 수 있을 듯하다.수려한 자연경관,장중하면서도 애상 넘치는 배경음악이 일대기 드라마의 묘미를 돋운다. 황수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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