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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갈등 한·중·일 ‘연합’ 가능할까

    ‘동아시아’가 화두다. 세계적인 블록화의 바람에 유럽연합을 부러워하면서도 막상 ‘동아시아연합’을 들추면 대부분 “가능할까?”라고 반문한다. 과거를 두고 한·중·일 3국이 치열한 기억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현대에는 미·중간 갈등과 북핵문제가 미묘하게 겹쳐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시아의 단합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해 대답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과거 기억을 더듬고 있다. 먼저 20명의 학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주최로 지난 20일 열린 ‘근대전환기의 동아시아 삼국과 한국’ 학술회의는 일제시대를 중심으로 세밀하게 파고 들고 있다. 개화기 러시아인이나 중국인이 쓴 조선여행기나 조선총독부 치안관계자의 육성녹음, 개화기에 각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잡지 등을 분석해 한·중·일 3국이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 추적했다. 이에 앞서 지난 16∼17일 15명의 연구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연세대 국학연구원 주최로 열린 ‘동아시아 지역구도:역사의 연속과 단절’ 학술회의에서는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좀 더 시야를 넓혀 동아시아 관계를 조명했다. 우선 ‘명·청(중)-조선(한)-막부(일)’시대 조공·책봉체제의 재해석이다. 이전의 ‘정치적인 상하관계’에서 ‘경제적인 유인’으로 해석의 초점이 이동했다.18세기까지 세계최고의 부를 자랑했던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경제체제가 형성됐었다는 다소 파격적인 근거와 함께다. 또 조공·책봉체제는 정권안정을 위한 왕조끼리의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20세기 전반 동아시아에 끼치는 영향력은 중국에서 유럽으로, 다시 미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이었다. 여기서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하며 동아시아지역의 이익을 요구하고 나선 일본과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일본의 패전 뒤였던 20세기 후반은 역설적이게도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이 사실상 부활한다. 이는 전세계적인 냉전과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전쟁에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세계경찰 미국은 일본에 역할분담을 요구했다. 이는 미국의 재정부담 증가와 급성장한 일본이 1차적 원인이었고 길게는 일본이 시장논리에 따라 중국에 근접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영·일동맹과 미·일간 태프트-가츠라조약의 부활이라고까지 볼 수 있는 셈이다. 일본학의 권위자 하버드대 앨버트 크레이그 교수가 최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청 강연에서 일본을 ▲선진국 가운데 GNP대비 가장 최저의 군사예산을 가진 평화로운 나라 ▲일본이 다시 호전적 국가가 될 가능성은 0이라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강대국에 빌붙는 사대,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균세, 스스로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자강. 세가지 갈림길은 결국 개별 국가를 중심으로 본다는 점에서 19세기적인 사고라는 비판이다. 결국 동아시아의 상호작용, 협력의 제도화 노력, 민간연대나 운동 등을 통한 발전 등이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日역사교과서 왜곡 실체와 해법은] (하) ‘열린’ 서술로 합의해야

    [日역사교과서 왜곡 실체와 해법은] (하) ‘열린’ 서술로 합의해야

    역사학자 크로체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궁극적으로 “모든 역사는 현대사”일 수밖에 없다. 크로체가 ‘국민국가’의 전성시대였던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의 인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겸손함’으로도,‘냉소’로도 읽힐 수 있는 말이다. 교과서 왜곡을 둘러싼 일본 우익의 문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관점에만 그치지 않고 사건의 ‘존재 여부’까지 손대려 한다는 점이다. 누구나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왜곡했다는 데 분개한다. 그러나 어디가 어떻게 왜곡됐느냐고 물으면 말문이 턱하니 막히기 일쑤다.2001년 파문을 일으켰던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후쇼사(扶桑社)교과서를 펴봐도 눈에 딱 띄는 구석을 찾기란 쉽지 않다. 교과서이다 보니 서술이 간결하고 세련됐기 때문이다. 내년 검정에 제출될 후쇼사 교과서는 2001년의 경험을 되살려 더욱 정교하게 꾸며질 것으로 보인다. 아예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소재는 빠뜨릴 가능성이 높다. 이미 새역모는 “옛 적국의 ‘선전’에서 자유롭다.”고 자신들의 교과서를 자랑한다. 또 “대동아전쟁은 (아시아)여러 나라의 독립을 촉진했다는 명료한 인과관계도 공평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2001년 새역모 교과서에서 논란이 된 부분 가운데 대표적인 것 10가지를 뽑았다. 앞의 것은 새역모 교과서의 서술, 뒤의 것은 우리 정부의 수정 요구안이다. 근대사 부분에서 유치한 지정학과 저질스러운 인종주의를 확인할 수 있다. ●임나일본부설 -4세기 후반 야마토 조정이 조선으로 출병한 뒤 반도 남부 임나를 차지. 고구려가 남하정책을 폈으나 일본군의 저항으로 실패. -신라의 요청으로 고구려가 일본을 격퇴했고 일본군이 계속 주둔한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 ●임진왜란 -히데요시가 중국의 명(明)뿐 아니라 인도까지 정복하고자 출병했으나 명과의 평화교섭을 위해 철수. -‘침략’을 출병으로, 침략원인을 명 정복과 히데요시 개인의 망상으로만 기술. ●조선통신사 -조선과 국교를 다시 연 뒤 막부의 장군이 바뀔 때마다 조선에서는 통신사파견. -일본의 국교정상화 노력이 빠졌고 통신사의 파견 목적과 초빙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음. ●강화도사건 -강화도에서 조선과 일본이 교전했고 청(淸)이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에 일본과의 교섭을 허가. -조선의 발포를 유도한 계획적인 군사작전이었다는 사실 등 도발의 주체·목적·경위 등을 은폐.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 -종교집단에 의한 농민폭동으로 서울까지 압박했다고 서술. 또 청일전쟁은 중국이 일본을 가상적국으로 삼은 것이 원인인 것처럼 서술. -반봉건·반외세운동을 단순 폭동으로 기록. 청일전쟁에 대한 일본의 고의성 은폐. ●러·일전쟁 -러시아의 위협을 강조해 일본의 안전 차원에서 전쟁이 발발한 것으로 묘사. 결과에 대해서도 유색인종국인 일본이 백인제국인 러시아에 승리했다고 서술. -스스로 도발한 전쟁을 안전상 위협으로 미화하고 인종간 전쟁으로 오도.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보장받았다면서 유색인종의 승리였기에 피억압민족에 희망을 줬다고 모순되게 서술. ●한국강제병합 -병합은 일본에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었지만 서구제국들의 찬성으로 합법적으로 이뤄졌음. -침략행위를 은폐하고 합법적인 것처럼 기술. 병합 반대 의견이 극소수인 것처럼 서술. ●한반도위협설 -한반도는 대륙에서 일본을 향해 불쑥 솟은 팔뚝이자 흉기이고 배후지가 없는 일본은 자국방위에 고민했다고 서술. -위협설 강조로 청·일, 러·일전쟁 등을 자위권 발동으로 묘사하고 한국의 식민지화를 합리화. ●관동대지진 -대지진 뒤 조직된 자경단이 유언비어 때문에 조선인·중국인·사회주의자들 수천명을 학살. -관헌(군경)에 의한 학살사실 은폐. 주된 피해자는 조선인이었다는 사실 축소. ●군대위안부 -고의로 누락. -반인륜적 전쟁범죄로 규정된 군대위안부 문제를 고의로 누락하고 정부 관여사실도 은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우리 역사서술 방향은 우리의 역사서술 역시 개방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유신정권의 탄생과 함께 만들어진 ‘국정교과서’를 없애야 한다는 비판이다. 한국식 민주주의를 모토로 내걸었던 유신체제는 그야말로 국사교과서에 ‘한민족의 역사’가 담겨야 한다고 봤다. 이 때문에 서울대 이영훈 교수는 74년 국정교과서제가 채택된 뒤부터 우리나라 역사교과서가 너무 경직됐다고 지적한다. 특히 일제시대 관련 기술은 거의 무비판적으로, 관성적으로 ‘우리는 순진무구한 피해자, 일제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게 악랄한 가해자’라는 공식을 확대 재생산해 왔다고 꼬집는다. 아직도 그 영향 때문에 우리 역사교과서에서 문장의 주어로 ‘우리 민족’이란 표현이 많이 쓰이고 있다.“너희는 민족적 자존심을 높이기 위해 역사교과서를 쓰면서 우리는 왜 안 되느냐.”는 일본의 반발도 여기서 나온다. 이 문제가 불거지자 우리도 근현대사부분에 한정해서 검인정제를 도입하는 타협책을 선택했다. 성공회대 권혁태 교수는 “다양한 역사서술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우리부터 국정교과서제를 폐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양국 정치권 움직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응하기 위한 한·일 양국 정치권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유기홍 의원은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의원 모임’을 결성했다. 연말까지 약 100여명의 의원들이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1월쯤 일본측과 심포지엄 등을 개최, 공감대를 마련한 뒤 역사교과서 검정이 이뤄지는 3∼5월에 적극적으로 활동한다는 계획이다. 조직만 비대해질 경우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10인 위원회’ 형식으로 대의원단을 구성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도 ‘한·일 평화연대’를 조직했다. 일본 민주당 의원 70여명, 한국측 여야 의원 30여명이 참가한 이 조직은 지난 18∼19일 창립대회를 열었다. 참가한 일본 의원들은 야스쿠니 신사참배로 상징되는 일본의 군국주의 흐름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각 주제에 대해 분과위원회를 구성해 함께 공부하고 토론해서 결론을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각 분과에는 근현대사 학자들도 포함되어 있어 교과서왜곡 문제를 포함한 과거사문제도 다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 의원측은 장기적으로 한·일평화연대를 ‘아시아평화연대’로까지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일본 민주당은 일본내 활동에도 열심이다. 민주당 오카자키 도미코 참의원, 이시게 게이코 중의원은 한·일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14일 청와대를 방문해 한·일과거사 문제를 거론했다. 민주당에서는 또 ‘국회도서관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국회도서관 내에 강제동원 등 일제시대 피해와 관련된 사료를 수집하는 위원회를 설치하자는 법률안이다. 기본적인 사료를 모은다는 중립적인 접근법을 사용한 덕분에 자민당에서 공산당까지 90여명의 의원들로부터 지지를 끌어냈다. 내년에는 당 차원에서 ‘전후처리 프로젝트팀’을 별도로 구성할 예정이다. 그러나 일본 정치인들이 역사교과서 문제를 전면에서 다루기는 어려울 전망.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우경화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별도 조직보다는 한·일의원연맹이라는 기존 조직을 활용하자는 소극적인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의원연맹 아래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소위원회를 두자는 방안이다. 의원들의 이런 활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알 수 없다. 정치인은 아무래도 국내사정에 영향을 받는다. 거기에다 우리의 경우 여야간 다툼이 치열해지면 모임 자체가 흐지부지될 수도 있다.4대 개혁법안이나 이철우 의원 사건처럼 첨예한 정치적 사건이 불거지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또 실제 단결해서 한목소리를 낸다 해도 궁극적으로 역사 문제는 정치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 일본 총리가 100번 사과하는 것보다 학자들의 공동연구를 통해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한 가지라도 더 남겨두는 것이 더 의미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 결의를 통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나 재계 등 민간 차원에서의 지원이 확보돼야 한다. 이는 정부가 역사교과서 왜곡에 직접적으로 개입한다는 부담감을 덜어준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지원이 거의 없다. 여기에서 굴곡많은 우리현대사 문제가 다시 부각된다. 근현대사를 심도깊게 연구하는 사람일수록 우리 현대사에 비판적인 학자가 많다. 이러다보니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최근 친일인명사전편찬사업을 지원하는 예산안에 대해 한나라당이 반대한 것이 좋은 예다. 편찬사업을 주도하는 역사문제연구소가 대표적인 ‘反 박정희 단체’라는 점이 문제가 된 것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日 역사교과서 왜곡 실체와 해법은] (중) 역사왜곡, 누가 주도하나

    [日 역사교과서 왜곡 실체와 해법은] (중) 역사왜곡, 누가 주도하나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힘은 그들 주장의 논리성이나 합리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 역사는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에게 자부심을 주느냐 못 주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정·재계는 물론 언론계 등에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일본 우익의 뒷받침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 政·財·言 ‘새역모’ 전방위 지원 한때 1만명의 회원을 자랑했던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은 최근 회원수가 줄고 있다. 해마다 200∼300명씩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새역모 주장의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뜻일까. 그것보다는 무관심이 늘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는 지적이다. 반면 정·재계에 흩어져 있는 ‘새역모’의 배후 지지 세력들은 우익을 중심으로 해마다 성장을 거듭해 왔다. 일반 대중의 무관심에다 집요한 우익의 결집까지 더해지면 결정적인 기회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다 2001년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새역모는 더욱 집요해지고 있다. 새역모는 단순한 연구모임이나 단체가 아니다. 역사문제를 다루는 우익 모임으로는 자유주의사관연구회, 일본교육연구소, 역사교과서시정을 요구하는 모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조직이 바로 새역모다. 자유주의사관연구회의 회원 대부분은 새역모 회원이다. 자유주의사관연구회는 일본교육연구소와 연결돼 있다. 일본교육연구소의 핵심인물은 전 자민당 중의원 에토 세이이치(衛藤晟一)다. 그는 자민당 역사검토위원회, 밝은일본국회의원연맹,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모임 등 우익 국회의원 단체들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이 중앙에서 활동하는 단체라면 실제 교육현장에서 뛰는 조직도 있다.2000년 결성된 ‘교과서개선협의회(개선협)’가 대표적이다. 문화청 장관 출신 미우라 슈몬(三浦朱門)이 관여한 이 조직은 각 지역단체와 연계해 교육위원회에 새역모 교과서를 쓰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이들은 역사서술에서 주변국의 이해를 고려하겠다며 1982년에 교과서 검정기준으로 삽입된 ‘근린제국조항’을 빼라는 등의 요구를 55만명의 서명과 함께 문부과학성에 제출했다. 뿐만 아니라 새역모는 정·재계에 광범위한 응원조직을 갖추고 있다. 미요시 도루(三好達) 전 최고재판장관이 97년 결성한 ‘일본회의’가 대표적이다. 평화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일본회의’의 주요인물 가운데는 모모시마 유조(桃鳥有三) 일본청년회의소 대표, 이나바 고사쿠(稻葉興作) 일본상공회의소 회장 등이 눈에 띈다. 일본회의와 연결된 국회의원 간담회 멤버로는 현재 경제산업상인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자민당 간사장 대리 아베 신조(安倍晋三) 등 유력 정치인들을 포함,240여명의 의원이 가입해 있다. 일본회의는 그 아래 헌법연구회·정책연구회·국제위원회 등을 두고 있는데 이 모임들에는 새역모 멤버들이 대거 참가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마루베니, 도쿄미쓰비시공업, 후지쓰, 미쓰비시 종합연구소 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100여개 이상의 기업이나 기업 관련단체가 새역모를 후원하고 있다. 언론계에는 대표적인 극우신문 산케이를 비롯해 새역모 교과서를 출판하는 후소샤(扶桑社)를 계열사로 둔 요미우리신문도 새역모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종교계의 ‘원시복음·그리스도의 막사’라는 천황주의 단체도 지원세력. 이들의 전방위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새역모는 자체 구성 멤버도 탄탄하다. 한일합방은 한국인이 원했다고 주장하는 평론가 니시오 간지(西尾幹二)가 명예회장으로 있다. 다쿠쇼쿠대 교수인 후지오카 노부카쓰(藤岡信勝)·우에하라 다카시(上原卓) 같은 학계인사는 물론 우치다 사토시(內田智)·다카이케 가쓰히코(高池勝彦) 변호사 같은 법조인,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엔도 고이치(遠藤浩一)·이치다 히로미(市田ひろみ) 등 다양한 인물들로 구성돼 있다. 일본 우익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역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다. 공식적으로는 어느 단체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매스컴에서 떠들썩하게 취급하는 그의 발언은 일본 우익의 심중을 대변한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도쿄도가 내년 4월 개교할 첫 도립 중고일관교인 하쿠오(白鷗)고교 부속중학교에 새역모 교과서를 쓰기로 지난 8월 결정했다는 점이다.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을 합친 ‘중고일관교’라는 개념 자체가 일제시대 명문학교 교육과정에서 따온 데다 왜곡교과서까지 채택한 것이다. 반면 일본 우익의 이런 전방위 공세에 대항할 시민사회단체들의 힘은 차츰 약화되고 있다.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양미강 상임공동운영위원장은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아 조직의 활력이 떨어지는 데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가 이슈로 부상하면서 일본 우익이 시민단체에 붙인 ‘친북적’이라는 딱지가 장애물이 됐다.”고 전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민족·국가 초월성 집착 韓우익, 日우익 ‘닮은꼴’ 사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보다 더 큰 문제는 일본 우익의 자유주의사관 논리에 대한 우리의 반박논리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외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우익식 논리에 푹 젖어 있는 게 현실이다. 공주대 지수걸 교수는 “일본 우익의 특징은 국가·민족의 초월성이나 신성성에 대한 집착”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유구한 민족을 강조하는 우리도 일본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일본사’를 공부하는 데 반해 우리는 ‘국사’를 공부한다는 점도 시사적이다. 지 교수는 특히 대한민국 수도는 서울이어야 한다는 식의 역사정통론적인 시각은 더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우익도 한국역사교과서의 이런 부분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며 반격하고 있다. 여기에다 우리에게는 색깔론도 걸림돌이다. 지난 5월 금성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가 친북·반미라는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의 주장이 대표적이다.‘반공적이다’‘천박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금성출판사 교과서를 ‘민중사관’이라 몰아세우는 한국 우익들의 논리는 자학사관을 코민테른사관이라 비난하는 일본 우익과 다를 바 없었다. 현 집권세력을 수구좌파로 규정하는 자유주의연대는 아예 창립선언문에 자학사관을 버리자는 일본 우익식 주장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특히 자유의 한계와 책임에 대한 논의를 무조건 좌파라고 몰아붙이는 우리네 우익과 주변국들의 역사교과서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해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하는 일본 우익은 닮았다. 재미있는 점은 문제가 된 금성교과서의 대표 집필자였던 한국교원대 김한종 교수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를 심층적으로 파고든 연구자였다는 사실이다. 일본 우익과 한국의 반공·우익이 묘하게 만나는 한 단면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日우익 자유주의 사관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에 집약된 일본 우익의 역사인식은 ‘자유주의 사관’이라 칭해진다.‘수정주의’라는 용어도 쓰지만 단순히 ‘고친다’는 의미로만 비춰질 수 있어 자유주의라는 말을 쓴다. 이는 기존 역사서술이 좌파적 시각에서 비롯된 ‘자학사관(自虐史觀)’이라는 비판에서 출발하는 것과도 관련 있다. 91년부터 자학사관을 비판하고 나선 새역모의 핵(核) 도쿄대 후지오카 노부카쓰(藤岡信勝) 교수는 자유주의 사관을 ‘사관(史觀)의 자유주의’로 정의하고 있다. 역사를 보는 데는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고, 이 다양한 관점을 억누르지 말고 공개적으로 토론해 보자는 논리다. 언뜻 19세기식의 낭만적 자유주의의 색채가 묻어나는 이런 주장은 역사서술에 대한 ‘책임’을 굳이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녹아 있다. 기존 사관에 대해서는 마르크시즘, 다시 말해 소련의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서술됐다는 ‘빨간칠’도 빼놓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자학사관은 ‘코민테른사관’이라고도 불린다. 후지오카 교수는 ‘오욕의 근현대사’라는 글에서 자유주의 사관의 핵심 테마로 5가지를 제시했다.▲메이지유신(明治維新)은 위대한 민족주의 혁명이다 ▲일본의 근대화는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근대화다 ▲러시아의 위협이 없었다면 군사대국화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대동아 전쟁은 전략적인 선택의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에 대해 무조건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은 서구제국의 침략에 대한 방어막이었고 동아시아 국가들의 근대화에 도움을 줬다는 대동아공영권의 또 다른 표현이다. 후지오카식 주장은 관점의 자유에서 ‘사실에 대한 자유’라는 반역사학적인 단계로까지 확대된다. 난징대학살이나 강제동원,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그 시대 전쟁 중에 흔히 있었던 일로 일본만 지나치게 가혹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불만 섞인 투덜거림에서 아예 ‘그런 사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거짓 주장으로까지 발전한다. 이는 곧 역사교과서에서 관련 서술을 빼야 한다는 논리로 옮아간다. 올해 1월 일본 우익을 분노케 했던 대입시험 문제가 단적인 예다. 세계사 문제에서 정답으로 2차대전기간 동안 일본에 의한 강제연행이 있었다는 문항이 제시된 것. 우익세력은 문제 자체를 아예 무효화하자고 요구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공연리뷰] 안톤 체호프의 ‘세자매’

    [공연리뷰] 안톤 체호프의 ‘세자매’

    삶은 견디는 것. 지금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더욱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지난 17일부터 설치극장 정미소에 등장한 ‘세자매’, 올가·마샤·이리나가 가르쳐주는 생존법이다.‘세자매’는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4대 희곡 중 하나. 그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 펼쳐진 ‘4대 장막전’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지방 소도시 여단장이었던 아버지를 여의고 남겨진 세 자매. 몰락하는 집안의 희망을 오빠 안드레이에게서 찾지만 실망할 뿐이다. 도박에 빠져 인생을 망가뜨린 그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조끼를 입고 무대를 어슬렁거린다. 집안의 주도권을 장악한 것은 새언니 나타샤.19세기 말 제정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 속에는 당시 시대상이 잘 녹아들어 있다. 올케와 시누이와의 관계에서 당시 지배계급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탈출구를 찾아 헤매는 세자매의 모습은 현대인의 그 것과 다르지 않다. 권태롭기만 한 둘째 마샤는 불륜에서 ‘힘’을 얻고 막내 이리나는 고향이자 이상향 모스크바로 가기 위해 열정 없는 사랑을 택한다. 도시에서 군대가 떠나가면서 세 자매는 자신들의 몰락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사랑도 떠나가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한다. 그러나 좌절할 수만은 없다. 고난을 견뎌내면 그 의미를 알 날이 오겠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이를 악물듯 자매들은 부둥켜 안고 서로 버텨 내자고 다짐한다. 멀리서 울리는 군대 행진곡에 맞춰 씩씩하게 발을 구르는 그녀들을 보노라면 어느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삶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었다고 생각할 즈음, 늙은 군의관의 마지막 한마디가 일순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피곤하다.” 그는 ‘인생이 어디로 왔다 어디로 가는지 알려고 하지 마라. 피곤한 짓이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4막으로 구성된 ‘세자매’는 2시간45분에 달하는 긴 호흡을 요한다. 갈등 관계가 확연히 드러나는 3막부터 관객들을 강하게 빨아들인다. 입이 덜 풀린 듯 배우들의 매끄럽지 못한 대사 처리가 종종 작품에의 몰입을 방해하지만, 정원중·조민기·김정난·이호성·류태호 등 TV와 영화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무대에서 보는 맛이 쏠쏠하다. 마샤로 분해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김정난의 연기가 돋보인다. 내년 1월2일까지.(02)741-3934.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책꽂이]

    |유아·아동| ●날마다 날마다 놀라운 일들이 생겨요(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이경혜 옮김, 문지어린이 펴냄) 만물이 자연의 섭리에 따라 날마다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이치를 알려주는 그림책. 색대비가 강렬한 그림이 화려하다.6세까지.9000원. ●엄마 옆에 꼬옥 붙어잤어요(이지호 엮음, 웅진닷컴 펴냄) 아이들의 꾸밈없는 생각이 드러난 동시 20편. 시적 운율을 부담없이 맛볼 수 있으며, 천진한 배경그림이 동심을 붙든다.6세 이상.9800원. ●처음 친구 집에서 자는 날(버나드 와버 지음, 김영선 옮김, 보림 펴냄) 난생처음 다른 집에서 자야 하는 아이의 심리는 어떨까. 아끼는 물건에 대한 애착과 낯선 곳에 대한 불안심리가 잘 묘사됐다.6세∼초등2년.6500원. |초등·청소년| ●청소년을 위한 철학이야기(제레미 휘트 지음, 조광제 옮김, 미래M&B 펴냄)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에서부터 현대의 푸코까지. 위대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그림을 곁들여 설명한다. 철학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줄 듯. 초등고학년 이상.1만 5000원. ●카라반 이야기(빌헬름 하우프 지음, 박민수 옮김, 비룡소 펴냄) 지은이는 19세기 독일의 민중동화 작가. 아라비아 상인들(카라반)의 모험담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회비판 정신에 눈뜨게 된다. 초등5년 이상.1만원. ●손수건 위의 꽃밭(아와 나오코 지음, 양미화 옮김, 문학동네어린이 펴냄) 소인가족이 사는 신비한 술병을 갖게 된 우체부 요시오 부부 이야기. 비밀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공들을 보며 ‘이성과 절제의 미덕’을 생각하게 되는 팬터지 동화. 초등5∼6년.7800원. |실용| ●인디언 기우제(고영건 지음, 정신세계원 펴냄)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인디언 기우제 정신’으로 성공을 일군 15인의 삶.1만 2000원. ●공병호의 성공제안-기록하는 리더가 되라!(공병호 지음, 이한 펴냄) 기록하는 습관이 학습과 지식 습득으로 이어짐을 강조하면서 쓴 기록의 다양한 노하우.9500원. ●주머니 속의 행복 초콜릿(카렌 스캘프 라이너멘 지음, 이순영 옮김, 글로세움 펴냄) 결혼생활, 자녀양육 등의 고단함에 지친 여성들에게 일러주는, 일상의 작은 것들에서 행복의 열쇠를 발견하는 14가지 방법.9800원. ●세무사와 나만 아는 절세법(김근호 지음, 국일 증권경제연구소 펴냄) 하나은행 세무부교수로 재직중인 세무사가 부자들의 자산관리를 조언한 경험을 살려 정리한 절세 비결.1만 3500원. ●‘나’만의 재능을 발견하는 방법(나카타니 아키히로 지음, 이선희 옮김, 창해 펴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성공할 수 있는 나만의 재능 찾기. 젊은이들을 위한 처세학.8000원.
  • [씨줄날줄] 브나로드 운동/이기동 논설위원

    모스크바국제공항의 정식이름은 세르메체보국제공항. 세계 유수 여행사들이 서비스, 청결, 안전 등 모든 면에서 ‘최악의 국제공항’으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지만 그 이름만은 러시아 역사상 최고의 한량, 세르메체프백작을 딴 것이다. 모스크바 교외에 위치한 그의 저택은 일명 작은 베르사유궁이라고 불리는데, 지금도 18세기 러시아귀족들의 영화를 엿보는데 손색없는 화려함을 자랑한다. 저택 안내판에는 그가 거느린 농노가 20만명에 달했다고 하니 당시 농노제의 위세를 짐작케 한다. 백작인 그가 농노의 딸을 정식 아내로 맞아들였다는 기록은 그가 탐욕의 화신처럼 돼있는 다른 러시아지주들과는 자못 다른 유의 귀족이었음을 은근히 내비친다. 혁명 뒤 볼셰비키들이 모스크바국제공항에 그의 이름을 붙인 것도 그가 신분, 계급을 넘어 러시아인들의 존경을 받았음을 짐작케 한다. 1917년 볼셰비키혁명 때까지 제정 러시아는 철저한 농노국가였다. 따라서 19세기 러시아의 지식인들이 농민계몽을 혁명의 첫 단계로 삼고 ‘브나로드(V Narod·민중속으로)’운동을 시작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볼셰비키혁명의 성공도 사실은 브나로드운동에 힘입어 황제 차르와 대지주의 권위를 우습게 보기 시작한 계몽된 농민들 때문에 가능했던 셈이다. 일제하 이 땅의 젊은 지식인들이 브나로드운동에 눈돌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1934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심훈의 ‘상록수’는 이광수의 ‘흙’과 함께 계몽형 브나로드 소설의 대표작이다. 다만 한국판 브나로드의 주인공들은 공산혁명가가 아니라, 농민계몽으로 식민시대의 질곡을 헤쳐보려던 젊은 남녀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적 또한 대지주가 아니라, 갖은 교활한 꾀로 이들을 괴롭히던 주재소 일본 순사들이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석연변호사가 주도하는 헌법포럼이 헌법 브나로드운동을 주창해 화제다. 급진세력의 개혁독점을 배격하고, 헌법정신이 국민의 구체적 삶에 파고들도록 만들겠다는 결의다. 일반국민 뿐아니라, 행정수도이전 위헌판결 이후 헌법재판소 때리기에 나섰던 여권 일각의 급진세력 또한 이들의 계몽대상이다. 어지러운 세상, 사실 헌법보다 더 좋은 나침반이 또 있겠는가. 반개혁, 반노(反盧)라고 성급하게 매도하기보다는 헌법바로세우기 운동쯤으로 받아들이며 어디로 가는지 지켜볼 일이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seoul.co.kr
  • 찬란한 ‘서양미술 400년’

    찬란한 ‘서양미술 400년’

    1793년 프랑스혁명의 세 거두 가운데 한 사람인 장 폴 마라는 고질인 피부병 때문에 반신욕을 하며 집무를 보던 중 반대파의 자객에 의해 암살당한다. 마라의 동지이자 나폴레옹 황제의 수석화가였던 자크 루이 다비드는 이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마라의 죽음’이라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3개월 만에 완성한다. 암살자가 들고 온 편지, 피묻은 칼이 당시 상황을 재연하듯 화면에 그대로 놓여 있는 ‘기록화’ 같은 작품이다. 자객의 단검에 살해된 마라의 시신은 실제로는 선혈이 낭자한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다비드는 마라의 죽음을 마치 격무에 시달리다가 잠이 든 ‘시민의 일꾼’ 같은 모습으로 이상화했다. 엄격한 형식미를 추구한 다비드의 신고전주의 양식이 그대로 녹아 있는 이 그림이 10여 개월의 복원과정을 거쳐 새 단장한 모습으로 한국을 찾는다. 21일부터 내년 4월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양미술 400년전-푸생에서 마티스까지’가 바로 화제의 전시다. 소개되는 화가는 다비드, 푸생, 부셰, 앵그르, 들라크루아, 쿠르베, 코로, 모네, 시슬레, 피사로, 르누아르, 고갱, 마티스, 뒤피, 피카소, 들로네 등 88명. 미술애호가라면 한번쯤 그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유명 작가들이다. 프랑스 랭스미술관에서 70여점을 대여받은 것을 비롯,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릴, 말로, 몽펠리에, 피카르디 미술관, 트루아 역사박물관 등에서 모두 119점의 작품을 빌려 왔다. 전시는 시대별로 서양 미술 400년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17세기 절대왕정을 배경으로 한 장중하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과 국립 미술아카데미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고전주의 양식,18세기 귀족사회가 낳은 장식적인 로코코 양식, 산업기술의 발달로 근대화되기 시작한 19세기의 사조들인 낭만주의, 신고전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와 20세기 야수파, 큐비즘 등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초대형 전시인 만큼 전시작 중에는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 적지 않다. 마티스가 친필 글씨를 새겨 랭스미술관에 기증한 ‘재즈’ 판화집, 엽서 한 장 크기인 1호도 채 되지 않는 작품이지만 여인의 코발트빛 옷과 장밋빛 혈색이 생생하게 묘사된 르누아르의 유화 ‘대본낭독’ 등이 공개된다. 특히 ‘대본 낭독’은 워낙 크기가 작아 도난 위험이 커 한번도 해외에서 전시된 적이 없는 작품이지만 특수액자를 제작해 이번에 처음 선보이게 됐다. 고대의 여러 조각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부분만을 조합해 완벽한 아름다움을 구현한 앵그르의 두 작품 ‘샘’과 ‘물 속에서 태어난 비너스’도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원본 작품들이다. 이밖에 근대회화의 시조인 푸생의 ‘두 발을 적시고 있는 여인과 풍경’, 뒤프레누아의 ‘리코메드 왕의 딸들 사이에 숨어 있다가 율리시스에게 들킨 아킬레스’, 사실주의 대가 쿠르베의 ‘협로’, 인상파 화가인 모네의 ‘벨 일의 바위’, 피사로의 ‘루브르’, 고갱의 ‘건초 말리는 사람’, 뒤피의 ‘마리-크리스틴 카지노’, 고갱의 판화 ‘테 아릴 바이네(왕가의 여인)’ 등도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다. 입장료 일반 1만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6000원.(02)2113-3477.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광고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마정미 지음

    “광고라고 하는 것은 비유컨대 기계와 같이 증기의 힘을 입어 저절로 돌아가는 것이니 (중략)증기라는 것은 물이 끓어 김이 오르면 (중략)화륜거도 그 김 운동으로 몇만리 육지를 운동하여 다니는 것이오. 또 아무리 큰 기계라도 모두 이 김 운동으로 돌아가는 법이니 광고도 또한 범백 사업의 증기와 일체라.”(독립신문 1899년 6월2일자 4면) 광고는 흔히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린다.‘꽃’은 화려하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광고가 갓 도입된 19세기 말, 우리는 광고를 꽃 대신 ‘증기’에 비유했다. 광고의 ‘힘’과 ‘찰나적 속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꽃에 대한 비유보다 더 탁월해 보인다. ●독립신문 광고를 ‘증기’에 비유 그 시대 사람들은 근대화 물결 앞에 당황하기만 했던 게 아니라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광고가 무엇인지 이미 짚어내고 있었던 셈이다. ‘광고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마정미 지음, 개마고원 펴냄)는 광고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유통되어 왔는지 꼼꼼하게 담아내고 있다. 각종 기록 자료와 책 곳곳에 이리저리 배치된 당시의 광고 사진은 책을 풍성하게 해준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지만 소재가 시대의 성감대라는 광고여서인지 가벼운 교양서로도 손색이 없다. 기성세대라면 “맞아 맞아….”라며 고개를 끄덕거릴 만하고 광고에 얽힌 뒷얘기는 젊은 세대도 관심을 보일 만하다. 책은 ‘근대의 새벽’ ‘보릿고래를 넘어’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사회’라는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9세기 말에서 광복 때까지를 다룬 ‘근대의 새벽’을 보면 그 당시가 지금과 별 다를 바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근대 문물을 재빨리 받아들인 젊은이들에게 붙던 ‘모던(modern)’이 ‘모단(毛斷·짧은 머리)’이나 ‘못된’으로 변하는 과정은 신세대 담론이 결국 오렌지족으로 비하되는 과정과 닮아 있다. 광복부터 박정희 정권 붕괴까지를 다룬 ‘보릿고개를 넘어’는 상반된 두 가지 조류가 섞여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에서는 ‘잘 살아보세.’로 요약되는 광고가, 다른 광고에서는 억압적 정치상황에 따른 ‘울분’과 ‘자포자기’의 심정이 묻어나온다. ●보릿고개시대 ‘잘살아보세’ 유행 컬러텔레비전이 등장한 전두환 정권부터 현재까지를 설명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사회’는 자본주의가 본궤도에 올라 본격적으로 소비문제가 부상하는 때를 다루고 있다. 매체가 문화를 주도하고 젊음과 일상성이 과도하게 넘쳐 흐르는 광경이 펼쳐진다. 이 책은 그러나 ‘한국사회문화사로 읽는 광고’라고 책 이름을 바꾸는 것이 더 어울려 보인다.‘일제 수탈-군부개발독재-포스트모던’이라는 공식을 각 장 첫머리에 제시해버려 자칫 도식적으로 보일 위험도 있다.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씨줄날줄] 동북아 잠수함전/이목희 논설위원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이 쓴 ‘해저 2만리’라는 공상소설이 있다. 네모 선장이 잠수함 ‘노틸러스’를 타고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선박들을 공격하는 내용이다.1954년 미국이 최초로 원자력잠수함을 만들어 ‘노틸러스’라고 명명했다. 한번의 연료공급으로 지구를 세바퀴반이나 돌 수 있는 ‘괴물’이 탄생한 것이다. 원자력잠수함은 핵미사일을 탑재, 엄청난 파괴력을 갖춤으로써 현대전에서 가장 돋보이는 무기체계가 됐다. 이른바 전략원자력잠수함(SSBN)이다. 바다 깊숙이 은신해 있다가 세계 각지를 향해 대륙간탄도탄을 날릴 수 있다. 현재 원자력잠수함 보유국은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다섯 나라. 한국은 재래식 잠수함 9척을 갖고 있다. 원자력잠수함 추진 중장기 계획을 짜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나 확인을 해주지 않는다. 북한은 숫자로는 세계 4위 규모인 44척의 재래식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지만, 공격력은 떨어진다. 일본은 21척의 성능이 뛰어난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원자력잠수함은 없다. 결국 동북아 심해에서 ‘대양(大洋)작전’이 가능한 나라는 미·중·러시아다. 냉전시대에는 미국과 소련의 동북아 바다속 패권다툼이 치열했다. 최근 들어서는 중국이 타이완의 독립움직임에 대비해 무력사용 불사를 외치면서 잠수함전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건조중인 것까지 포함,8척의 원자력잠수함과 58척의 재래식 잠수함을 갖고 있다. 지난 7월에는 미국 본토까지 도달하는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실험에 성공했다.2010년까지 레이더에 안 잡히는 스텔스형 원자력잠수함 20척을 운용하려 하고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중국 원자력잠수함이 지난 10월 중순 칭다오를 출발해 미군기지가 있는 괌 주변을 잠행했다는 것이다. 일본 영해까지 침범했으며,1개월간 미국 원자력잠수함이 추적활동을 벌였다. 자극받은 미국도 동북아 잠수함 전력 증강에 착수했다. 미·중·일간 잠수함 신경전은 한국에 남의 일이 아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에 조만간 군사적 도전장을 낼 능력을 갖춘 나라로는 중국이 꼽힌다. 주한미군의 광역군화가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타이완해협을 놓고 미·중이 격돌하면 한반도정세도 격랑에 휩싸인다. 군사·외교적으로 다각적 대비가 필요하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다리품 팔아도 아깝지 않은 ‘남도 맛’

    다리품 팔아도 아깝지 않은 ‘남도 맛’

    남도음식은 혀끝에 착착 감긴다. 빼어난 풍광과 훈훈한 인심의 남도 문화가 승화된 것이 바로 남도의 음식이다. 그래서 다리품을 팔아도 아깝지 않다.‘맛있는’ 일탈을 꿈꾼다면 남도로 가라. ‘남도 푸디스트’ 유명의(46) 동신대 교수는 “남도 음식은 요리 전문가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내 가족을 위해 만든다는 게 소문이 나면서 자연스럽게 상업화한 것이라 고유의 맛이 지켜진다.”고 평했다. 그와 함께 남도의 인심과 풍광이 빚어낸 맛의 문화를 만끽하자. ■ 니가 남도맛을 알아? ●두번 놀라는 남도 한정식 유 교수와 처음 찾은 곳은 나주시 남내동의 한정식집 사랑채(333-0116). 남도 음식 입문 필수 코스라는 조언에 따라 밀양 박씨 7대 종손가 ‘박경중 가옥’(전남도 지방문화재 153호)의 사랑채인 한정식집으로 향했다. 앉자마자 고풍스러운 가옥에 어울리는 30여가지의 음식이 한상 가득했다. 이 집의 비법인 한방 양념과 파인애플로 단맛을 낸 돼지숯불구이가 주메뉴. 조기구이와 된장찌개, 갓김치, 굴전, 콩잎, 청매실장아찌,3년 묵은 김치 등 매콤새콤한 음식들이 입맛을 사로잡았다. 맛도 맛이지만 6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또 한번 놀랐다. 디저트는 눈요기. 개인 전통가옥으로는 남도지방에서 제일 규모가 큰 박경중가옥을 둘러보는 것. 건축학도의 필수 탐방 코스다. 남도음식 명가로 선정된 완도군 군내리 대도한정식(553-5029)과 대한민국의 3대 한정식이라는 평가를 받는 강진군 남성리의 해태식당(434-2486)도 추천 명소. 대도한정식은 전복·성게·멍게·자리돔·키조개 등의 젓갈류를 포함해 40∼50가지의 해산물 한정식(4인 10만원)이 나온다. 해태식당은 계절에 따라 음식(2만원)이 달라지는데 겨울에는 시원한 매생이국을 맛볼 수 있다. ●겨울에 좋은 보양식 남도 음식에 감탄하기는 아직 일렀다. 겨울 보양식으로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 낙지골목이 숨어있다. 독천은 영산강 하구둑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세발낙지 최고의 산지로 이름을 날렸던 곳. 낙지는 ‘쟁기질하다 쓰러진 소도 낙지 한 마리를 솔잎에 싸서 먹이면 벌떡 일어난다.’는 속언처럼 쇠한 기력을 회복시키는 최고의 보양식. 30여곳의 낙지집 가운데 원조격인 제일식당(472-3729)을 찾았다.“남자들의 스태미나와 여자들의 피부미용에 그만이랑께….”라며 너스레를 떠는 유갑현 사장의 입담만큼이나 낙지구이와 전골이 상위에 푸짐하게 올랐다. 기름을 제거한 갈비와 낙지를 함께 넣은 갈낙탕(1인분 1만 2000원)과 낙지구이(10마리에 4만원)가 주메뉴. 세발낙지에 10여가지 양념으로 군 낙지구이를 초장에 찍은 뒤 한입에 베어물자 낙지 특유의 담백함이 입속을 휘감았다.30여년의 전통을 지닌 인근의 독천식당(472-4222)도 낙지연포탕과 갈낙탕에 반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집이다. 대나무로 유명한 담양의 대표적인 먹을거리인 대나무 요리는 깔끔한 보양식. 담양군 월산면 용흥리 한상근 대나무통밥집(382-1999)에서만 맛볼 수 있는 죽계탕(3만 5000원)과 대통밥(8000원)은 최고의 보양식. 주인 한상근씨가 운영하는 3만여평의 대밭에서 기른 토종닭과 댓조각을 함께 삶았다. 물대신 대나무 수액을 이용한 것도 이 집의 특징. 구례군 화엄사 입구에 있는 지리산 대통밥(783-0997)도 유명하다. 이밖에 화순군 동면 천덕리 달맞이 흑두부(372-8465)에는 건강에 좋다는 검은콩을 재래식 두부제조법으로 만든 흑두부(4000원)와 보쌈(1만 5000원)이 기다린다. 화순군 화순읍 삼천리 약산 흑염소가든(373-9292)은 남자의 양기를 보충해 주고 여자의 허약함을 채워주는 흑염소 전골(2만원)과 샤부샤부(1만 3000원)를 먹을 수 있다. ●남도 인심이 또다른 별미 남도 지역의 별미도 다양하다. 갖가지 음식에는 수십년간 가풍으로 전해오는 특유의 제조 노하우가 숨어있기 때문이라는 게 유교수의 설명이다. 나주시 금남동 남평식당(334-4682)은 40여년동안 오로지 곰탕만을 만들어 왔다.‘나주를 방문해 곰탕을 먹지 못했다면 나주의 반쪽만 본 것’이라는 말처럼 구수한 국물이 찬 바람에 굳어진 몸을 사르르 녹였다. 산지에서 직접 잡은 한우의 양지, 사태, 등심 부위만 골라 이른 새벽부터 끓인 국물의 곰탕(5000원)과 수육(2만원)이 주 메뉴다. 해물탕으론 대한민국 최고라고 자부하는 해남군 해남읍 평동리 용궁해물탕(536-2860)도 꼭 들러봐야 할 곳. 수십년간 시장에서 해산물을 판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해물탕(5∼6인용 5만원)은 매콤한 국물이 살살 녹아내린다. 청정바다인 해남앞바다에서 갓 잡은 해산물 30여가지와 최고급 양념이 자랑. 목포시 용당1동 금메달(272-2697)은 스무가지 맛을 숨기고 있는 흑산홍어요리의 본가.20년째 목포를 대표하는 집으로 홍어삼합(13만원)과 홍어회(12만원)가 주메뉴다. 흑산 홍어를 구할 수 없을 때는 문을 닫는 만큼 전화예약을 해야 헛걸음하지 않는다. ■ 맛집주변 가볼만한곳 음식을 먹은 뒤 소화를 시킬 겸 돌아볼 곳도 풍부하다.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음식점 주변의 포구나 공원을 거닐거나 박물관을 돌아봐도 남도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나주에서는 박경중 가옥과 동신대 카메라 박물관이 숨은 명소다. 박경중 가옥은 19세기말 우리 민가의 형태가 가장 잘 보존되고 있는 전통가옥. 가옥의 규모는 7칸반으로 개인가옥으로는 남도지방에서 제일 크고, 남도 초가삼간도 잘 보존돼 있다. 현재 밀양박씨 청재공파 8대손인 박경준 전 나주시 문화원장이 거주하면서 관리하고 있다. 동신대학 내에 있는 ‘카메라 박물관’(330-8542)은 사진작가와 카메라수집가인 고 이경모 선생이 자신의 수집품을 기증하면서 만들어진 국내 최대의 카메라 테마박물관이다. 초기 카메라부터 특수카메라까지 1500여점이 전시돼 있다. 담양에서는 2500여점의 세계 각국의 죽물공예품이 전시된 한국대나무박물관(381-4111)과 대나무 숲을 둘러보면 된다. 강진군 마량면 마량리의 작은 포구도 겨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바다를 끼고 내려가는 길은 승용차로 드라이브를 하기에 좋다. 포구의 위판장에서 펼쳐지는 경매 현장도 아이들에게는 산 교육이 된다. 가족단위의 숙박은 대규모 온천탕을 갖춘 영암의 월출산온천관광호텔(473-6311)이나 화순의 화순금호리조텔(370-5000) 등이 좋으며, 온천단지 인근에도 숙박시설은 많다. 자세한 문의는 전남도청 관광진흥과(607-3333), 관광정보센터(607-4458), 관광협회(222-0242). 남도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그림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만난다

    그림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만난다

    요즘 서점의 신간코너에 가면 ‘그림책’이 부쩍 눈에 많이 띈다. 미술작품에 그럴 듯한 이야기를 버무린 단행본들이다. 고전명화에 신화를 섞은 것, 현대작품에 에세이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것, 화가의 삶과 그림 이야기 등등. 전통적 필자였던 미술평론가나 미술사가는 물론이고, 작가 스스로 또는 큐레이터들까지 앞다퉈 글쟁이로 데뷔 중이다. 추측컨대 큐레이터는 나름대로 자신이 쌓아온 흔적과 성과에 대한 정리의 욕구 때문에, 화가들은 작품 이면에 숨은 치열함의 흔적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이 책들은 대체로 쉽게 읽히는 것들이어서 예술에 대한 독자들의 지적 허영심 혹은 갈증을 채워주기에 안성맞춤이다. 이번 주엔 특히 각각 특색이 뚜렷한 단행본 3권이 출간됐다. 근대 200년 우리 화가들의 이야기를 묶은 ‘畵傳(화전)’,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를 서양의 고전명화와 버무린 ‘로망스’, 명화(名畵)란 널리 알려진 그림이 아니라 울적한 가을날 따뜻한 위로가 되는 그런 그림이라고 주장하는 한 젊은 큐레이터의 ‘사랑한다면 그림을 보여줘’가 바로 그것이다. 지은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풀어내며 그림속으로 들어가는지, 화가들의 삶과 예술정신의 내면을 어떻게 넘나드는지 보기만 해도 제법 흥미롭다. (최열 지음, 청년사 펴냄,2만 4000원)은 미술사가인 지은이의 말대로 ‘그림을 통해 찾아 헤맸던’ 화가들의 이야기다. 지은이는 ‘만나기로 작정했지만 이미 세상을 떠나버렸기에 문득 그들이 남겨둔 그림 속으로 걸어들어가 그들을 만났다.’고 했다. 한데 그들이 살아 있지 않기에 오히려 텅빈 마음 같아 그들의 빈터에서 편안히 만났고, 그 때마다 글을 썼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만난 그들은 누군가. 바로 19세기 묵장의 영수로 불리는 조희룡에서 격정의 시대정신을 보여준 이응노까지 200여년에 걸쳐 각기 독특한 스펙트럼을 보여준 화가 28명이다. 그 안엔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인연을 보여준 김정희외 허련, 휘황한 천재의 빛을 남긴 김수철, 단아함과 충실함에 깃든 정열의 소유자 윤희순, 우주의 질서에 도전한 유영국, 아름다운 감옥의 죄수를 연상케하는 김환기,20세기 신화의 탄생 박생광이 포함된다. 지은이는 추사 김정희와 제자 소치 허련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추사 자신은 난초 그림과 서예에 집중했으므로 회화 창작의 욕망을 구현해줄 누군가 필요했고, 그가 바로 소치였다. 소치는 김정희가 꿈꾸던 세계를 현실에 형상화했고, 이후 남도 산수화의 종장이요 문인산수화풍을 조선에 아로새긴 거장으로 우뚝 섰다.‘세한도’‘산수도’ 등 그의 거칠고도 깔끔한 화폭들은 당대에 이미 절정의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었으며, 이같은 허련에 대해 조희룡은 “그림을 통해 시에 들어가고, 시를 통해 선에 들어갔다.”고 평가했다.’시종일관 거친 듯하면서 세밀하게, 군더더기 하나 없이 지은이는 당대의 붓장이 28명의 삶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촘촘히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명옥 지음, 시공사 펴냄,1만 4000원)는 중세때 그야말로 ‘전설적인 세기의 사랑’ 이야기를 남긴 4쌍의 가슴저린 로맨스를 뼈대로 한다. 평소 ‘연애의 정수는 로망스임을 의심치 않았다.’는 지은이는 “요즘들어 신파조로 폄하하며 왕따시킨 로망스를 제자리로 복권시킬 필요가 있다.”고 집필 동기를 밝힌다. 미술관장인 그는 먼저 단테의 ‘신곡’에서 로망스의 모티브를 찾는다. 단테가 지옥의 제2원에서 연인 사이인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를 만나고, 이들의 애절한 사연에 충격을 받고 혼절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두 연인이 한 소설속 남녀 주인공의 달콤한 입맞춤에 자극을 받아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입술을 찾고, 지옥까지 함께하는 영원한 연인관계로 빠져드는 이야기를 당대의 거장들이 표현한 그림에 버무린다. 또 아더왕에게 충정을 맹세한 기사 랜슬롯과 아더왕의 부인 귀네비어의 불같은 사랑,‘사랑의 묘약’을 마시고 서로에게 매혹당하나 끝내 둘 다 세상을 떠난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가 뒤를 잇는다. 마지막엔 다시 단테로 돌아간다. 단테는 스탕달의 이른바 ‘사랑의 결정작용’을 통해 오염된 영혼을 정화시키고,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는 베아트리체를 얻어 사랑의 완결을 이룬다는 이야기다. (공주형 지음, 학고재 펴냄,1만 5000원)에선 풋풋한 삶의 이야기를 다양한 그림을 통해 이야기한다. 다섯살과 여덟달 짜리 아이를 둔 젊은 주부 큐레이터인 지은이는 때로 왜 내 삶은 밀레의 ‘만종’이 전하는 진정한 평화를 하락받지 못할까, 나는 왜 베르메르의 ‘레이스 뜨는 여자’가 갖고 있는 숭고한 여유를 건너뛰어야 하는 것일까 의아해 한다. 하지만 절망하는 실직자와 그 옆을 지켜주는 한 남자가 등장하는 박수근의 ‘실직’은 엄마이자 아내, 딸이자 며느리인 그에게 상생의 지혜를 일깨워주었고, 김상유의 ‘세심정(洗心亭)’은 삶의 속도에 치여 사는 지은이에게 차 한 잔의 여유를 권했으며, 반복되는 일상의 우울을 하늘 높이 날려보낼 수 있었던 것은 샤갈의 ‘파란 풍경속의 연인’ 덕분이었다고 고마워한다. 어떤 그림이 있어 그 그림이 나에게 오늘 저녁 퇴근길에 동행이 되고, 그 그림 앞에서 가쁜 호흡을 고를 수 있다면 그게 명화가 아니겠느냐며 그는 독자들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마치 지은이가 그의 아이들에게 설명하듯 쉽고 다정하게 풀어가는 그림 이야기, 그리고 그림을 보는 눈이 더없이 따사롭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학문에 녹아든 세계화·정보화

    학문에 녹아든 세계화·정보화

    “산 끊기고 물 다하여 길 없는 줄 했더니(山窮水盡疑無路), 버들가지 그윽하고 꽃 밝은 또 한 마을 나오네(柳花明又一村)” (본문 63쪽) 귀 따갑도록 들어왔던 ‘세계화, 정보화의 시대 21세기’. 하지만 정작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대형 얼개그림이 나왔다.‘책으로 읽는 21세기’가 그 주인공이다. 철학, 역사학, 사회학에서 시작해 여성학과 NGO학을 거쳐 영화·광고·애니메이션학까지. 누구랄 것도 없이 쟁쟁한 소장학자 59명이 각 학문분과와 주요 저서에 대한 평가를 각각 19개,76개씩 썼다. 그렇다고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버들가지 그윽하고 꽃 밝은 마을’을 기쁘게 산책하면 된다. 너와 나를 나누어 갈등빚고 대립한 끝에 ‘산 끊기고 물 다 했던’ 것 같던 20세기적 우울함을 떨쳐버리고…. 지난해 4월부터 작업을 시작해 책을 출간한 도서출판 ‘길’ 이승우 기획실장의 말처럼 이 책은 “세계화와 정보화가 어떻게 각 학문 분야에 녹아들었는지”를 다룬다. 중요한 것은 그런 시대 변화를 떠안으면서도 유행에 밀려 가지않는 중심잡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학문 분야가 섞이고 결합해야 한다. 20세기 인류학이 문화의 특수성을 긍정하는 데 치중했다면 21세기 인류학은 이제 외부와의 관계를 다뤄야 한다. 세계화·정보화의 영향으로 종속성의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도 있다. 실증주의에 파묻혀 있던 지리학은 축소된 공간의 구조변화에 맞춰 인간주의, 구조주의 사회이론을 접목시키고 있다.NGO학은 연대의 의미를 되새긴다. 전세계적 통합에 맞춰 개별 정부와의 전략적 동맹과 NGO들의 세계적 연대를 고민해야 한다. 역사학은 정치사에서 사회사로, 그리고 다시 생활사로 넘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회학, 지리학, 인류학 등 연결된 여러 학문들의 연구법이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다. 정치경제학은 안보중심의 비교정치론에서 벗어나고 있다. 경제적인 결합이 세계화인데다 냉전까지 붕괴했으니 아무래도 안보는 이제 뒷전이다. 체제 자체에 대한 연구보다 체제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전략적인 선택을 따져야 한다. 한편 환경과학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재앙을 경고만 할 게 아니라 공동의 대책을 논의하는 학문으로 바뀌어야 한다. 총정리판이라 그런지 읽는 내내 숨고르기가 만만찮다. 또 한 편의 글이 200자 원고지 50장 분량쯤이다 보니 평소 관심있었던 주제에는 갈증이, 잘 몰랐던 주제에는 갑갑증이 인다. 원래 안내역이었으니 길잡이를 탓할 바는 아니다. 한 주제가 끝날 때마다 저자와 더 읽을 책을 소개해주는 친절함에 고마워해야 할 듯하다. 그러나 ‘세계화와 정보화’가 역사상 최근래에만 있었다는 전제가 깨진다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기술발달은 여러 가능성을 만들 뿐 구체적인 방향은 제도와 정책,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권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몇몇 경제학자들은 아예 증기선과 전보가 고작이었던 19세기말이 경제적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지금보다 더 세계화되어 있었다는 실증연구자료를 내놓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우일촌(又一村)을 지나면 또 다시 산 끊기고 물 다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3만 3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장롱문화재 250점 광주 나들이

    광주·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국의 개인 소장 문화재를 선보이는 ‘개인소장 문화재특별전’이 1일부터 15일까지 광주국립박물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2003년도 국무총리실의 ‘비지정 개인 소장 문화재의 공개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이미 지난 2003년부터 서울·부산·대구·대전에서 열렸던 특별전에 이어 5번째다. 전남·광주 지역과 전국의 개인 소장자들이 출품한 회화와 조각, 공예, 고문서, 민속품 등 250여점을 선보인다. 특히 이 지역 출신 소치 허련의 산수도와 김홍도의 산수인물도, 조선시대의 백자달항아리, 고려시대의 명품인 청자퇴화연당초문주자 등이 눈길을 끌 것으로 보인다. 소치(小癡)는 조선 후기에 남종화풍의 뿌리를 내린 추사파의 대표적 화가로, 추사 김정희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중국 원나라 말기의 4대가에 속하는 예찬과 황공망의 화풍을 소화해 산수화에서 자신의 회화세계를 이루었다. 이번에 선보이는 ‘산수도’는 그의 대표작이다. 단원의 산수인물도는 뾰족뾰족한 먼 산과 뒷산의 죽림이 배경을 이루고, 그 앞의 와옥에 선비가 와상에 앉아있는 가운데 앞마당에선 동자가 차를 달이는 정경을 담고 있다. 바위와 산수의 주름은 담원이 즐겨 쓰는 준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청자퇴화연당초문주자(靑磁堆花蓮唐草紋注子)는 능숙한 조각 솜씨와 우아한 빛깔을 보여주는 고려시대의 명품 청자로, 특히 목줄기의 흑백 상감 줄무늬 장식이 돋보인다.1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백자 달항아리는 보기만 해도 둥글고 환한 한국인의 전통적 심성을 보는 듯해 미소를 자아내는 작품이다. 유약에서 비쳐나오는 유백(乳白)의 온화함과 몸체에 흐르는 유려한 곡선, 넉넉하고 포용력 있는 형태에서 조선 백자의 정수로 꼽힌다. 이밖에도 삼국시대의 ‘금동미륵반가사유상’, 청화어문병을 비롯한 조선 초기의 분청사기류,19세기에 제작된 궤인 ‘강화반닫이’, 조선 전기의 화가 이암의 매 그림인 ‘가응도’ 등이 눈여겨볼 만하다. 전시기간중 10일부터 12일까지 3일동안에는 시·도민들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를 갖고 오면 제작 시기와 특징, 문화재로서의 가치, 학술적 가치 등을 평가해주고 감정의견서도 교부해준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 ‘로댕·부르델·마이욜展’

    오귀스트 로댕, 앙트완 부르델, 아리스티드 마이욜. 서구의 근대조각을 이끈 대표적인 작가들이다.‘근대조각의 바이블’이라 할 이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가 겨울방학을 맞아 마련한 ‘근대조각 3인-로댕·부르델·마이욜’전. 전시는 내년 2월6일까지 이어진다. 로댕은 서구 조각이 구태의연한 전통에 빠져 불모상태에 이른 19세기 후반, 근대 조각의 새로운 가치를 제시한 작가다. 그는 아카데미풍의 이상화된 미의식을 거부하고 인간의 내적 진실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물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서 벗어나 조각에 생명과 감정을 불어넣은 것. 이 거장의 뒤를 이은 작가가 바로 동시대 인물인 부르델과 마이욜이다. 로댕의 작업실 조수로 일하면서 로댕을 사사한 부르델은 로댕의 혁신성을 계승하는 한편 조각에서의 건축적 양식에 주목했다. 부르델은 특히 베토벤에서 헤라클레스에 이르기까지 남성 영웅상을 많이 만들었다. 고갱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마이욜은 섬세한 태피스트리 작업으로 눈을 해친 뒤 조각으로 방향을 튼 작가. 여인의 나상(裸像) 하나만을 집요하게 추구한 점이 특이하다. 이번 전시에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지옥의 문’ 등 로댕 작품 17점과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 등 부르델의 작품 6점,‘드뷔시를 위한 기념비’등 마이욜의 작품 5점이 나와 있다.(02)2014-6552.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존 엘리엇 가디너 내한공연

    진정한 클래식 팬이라면 12월을 흥분으로 맞을 것 같다. 영국이 낳은 정격(正格)연주의 거장 존 엘리엇 가디너(61)가 새달 11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한다. 그의 내한무대는 지난 96년 이후 8년 만이다. 정격연주란 철저한 고증을 통해 작곡 당시의 악기와 연주 등을 원전(原典) 그대로 재현하는 것. 현대적 연주와 대비되는 스타일로,2차대전 이후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이번 내한길에도 가디너가 지휘하는 몬테베르디 합창단과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가 동행한다.96년 첫 내한무대에서 바흐의 ‘b단조 미사’로 정격연주의 진수를 선보였던 주인공들이다. 올해 무대에서는 36세에 요절한 영국의 천재 작곡가 헨리 퍼셀의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아스’, 퍼셀 사후에 헌정된 템페스트 중 ‘서곡’과 ‘넵튠의 가면’을 정격연주할 예정이다. 15세에 지휘를 시작한 가디너가 자신의 분신과 같은 몬테 베르디 합창단을 창단한 것은 케임브리지대학에 재학 중이던 1964년. 고음악에 대한 관심이 각별했던 가디너는 몬테 베르디의 ‘성모 마리아의 저녁기도’를 원전 방식으로 연주하기 위해 합창단을 만들었다. 이후 1968년 몬테 베르디 오케스트라를 따로 결성했고,1978년에는 이를 기반으로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를 창단했다. 지난 40여년간 세계 전역을 누빈 그의 오케스트라는 음악에 따라 타이틀을 바꾸기도 한다.19세기 이후의 음악을 연주할 때는 ‘혁명과 낭만 오케스트라’로 명칭을 바꾼다. 250여종의 음반을 발표했을 만큼 레퍼토리도 폭넓다. 몬테베르디, 쉬츠, 퍼셀, 라모 등 바로크 작품은 물론이고 르네상스 시대의 조스캥, 빅토리아, 모랄레스에서부터 슈베르트, 베르디, 브람스 등 낭만주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디도와 아이네아스’에서는 메조 소프라노 레나타 포쿠픽(디도)과 바리톤 벤 데이비스(아이네아스)가 노래한다. 이밖에 소프라노 캐서린 퓨즈, 메조 소프라노 클레어 윌킨슨, 테너 앤드루 부셔, 바리톤 마이클 번디.(02)780-6400.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기고] ‘고유가 시대’ 목재는 풍부한 연료자원/윤영균 산림청 산림자원국장

    국제유가가 50달러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고유가는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 대한석유협회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달러 상승하면 휘발유 소비자가격은 ℓ당 12원 오르고, 두바이산 유가가 45달러를 넘으면 휘발유 가격이 ℓ당 1500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는 유가가 10% 오르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15% 감소하고 소비자물가는 0.25% 오르며 경상수지 흑자도 30억 달러가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제 눈앞에 닥친 고유가 시대. 우리도 40∼60년 후면 고갈될 석유나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를 대신할 친환경 바이오에너지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 바이오에너지란 생물자원을 이용해 차량용이나 난방용으로 활용하는 것을 뜻한다. 즉 목재와 볏짚 등 농산부산물과 같은 생물체(Biomass)를 태워서 열 에너지로 쓰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나무장작을 난방과 취사용으로 써 왔었다. 그 결과 과다한 벌채로 말미암아 산림이 황폐했던 경험도 갖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21세기 첨단과학시대에 와서 19세기처럼 나무를 때자는 주장을 하니까 좀 의아하게 생각할 듯싶다. 또 나무를 때면 시커먼 연기가 나와서 가뜩이나 오염된 우리의 공기를 더 더럽힐 것이라는 선입견도 갖는다. 사실은 정반대이다. 나무는 석유나 석탄 등 화석연료에 비해 태울 때 탄산가스와 아황산가스 등 환경오염물질을 훨씬 덜 배출하는 환경친화적이면서 재생 가능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이용가능한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전 국토의 65%를 차지하는 산림자원을 바이오매스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 산림은 그동안 황폐한 산지를 녹화하는 데 주력해 세계적으로도 짧은 기간에 녹화에 성공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30년생 이하의 어린나무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목재로써의 가치는 매우 낮아 좋은 숲으로 가꾸기 위한 숲가꾸기 사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숲가꾸기 사업에서 생산되는 나무는 대부분 간벌재나 작은 나뭇가지이기 때문에 가구나 건축재로 쓸 수가 없어 산에 방치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조사결과에 따른면 숲가꾸기 작업후 숲속에 버려지는 간벌재가 연간 15만 6000㎥(5t 트럭으로 3만대분)에 달하고 본격적인 숲가꾸기가 실행되면 연간 50만㎥, 돈으로 환산하면 300억원에 달하는 폐목재가 산에 버려질 것이라 한다. 이처럼 산에 버려지는 솎아낸 나무가 바로 바이오매스 자원이다. 시민환경단체 대표들과 스위스·오스트리아 산촌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곳은 이미 오래전부터 산림바이오매스, 즉 목질계 에너지가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바이오매스협회(ABA) 보고에 따르면 전체 에너지의 11%가 나무와 같은 바이오에너지로 충당되고 2020년까지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50%까지 늘릴 계획이다. 얼마전 우리의 한 공군부대에서도 고유가 시대에 대비해 유류난로를 나무난로로 대체하고 ‘1부대 1산 갖기 운동’을 벌여 야산에서 가지치기와 썩은 나무 제거작업을 하면서 폐목을 비축, 산도 가꾸고 기름도 아끼고 있다. 그러나 아직 대부분의 경우는 농촌이나 도시할 것 없이 모두 기름에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유가 시대, 풍부한 간벌재는 에너지의 97%를 수입하는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이다. 이제 바이오매스 생산량이 우수한 수종을 개발하고 목재의 고형압축연료 및 액체연료 생산, 기름과 같이 쓸 수 있는 연료개발, 나무·기름겸용 보일러 개발 등 종합적인 대책을 모색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윤영균 산림청 산림자원국장
  • [책꽂이]

    ●베를린에서 18년 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어수갑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1989년 임수경 방북사건의 배후 인물로 지목돼 공개수배되면서 10여년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베를린을 떠돌며 살았던 어수갑씨의 산문집.1만 2000원. ●패권인가 생존인가(노암 촘스키 지음, 황의방·오성환 옮김, 까치 펴냄) 지은이는 미국의 대표적 진보학자이자 반전운동가로, 미국의 세계정책,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패권정책과 그 전략에 대해 비판적 시각으로 집중 조명하고 있다.1만 5000원. ●미식예찬(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 지음, 홍서연 옮김, 르네상스 펴냄) 19세기 초의 음식에 대한 담론을 과학적, 철학적, 역사적으로 전개했다. 미각과 미식법, 음식에 관한 일화, 식생활사는 물론 음식에 관계된 고대의 문헌까지 언급하고 있다.2만 5000원. ●고전 읽기의 즐거움(정약용·박지원·강희맹 외 지음, 신승운·박소동 외 옮김, 솔 펴냄) 강희맹, 이이, 박지원, 이익, 정약용, 정철 등 고려 이규보로부터 조선 후기 이상적에 이르기까지 41가(家) 47편의 명문을 쉬운 문체로 풀어썼다.8800원.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1,2(시와키 고타로 지음, 이혁재 옮김, 재인 펴냄) 논픽션 작가인 지은이가 인도 델리에서 영국 런던까지 장장 2만여㎞가 넘는 길을 버스로 여행한 대정정을 담았다. 각권 9800원. ●비어즐리 또는 세기말의 풍경(박창석 지음, 한길아트 펴냄) 19세기 영국의 화려했던 빅토리아 시대 말기 예술계 한 편을 장식했던 삽화가 비어즐리의 삽화 및 그 이야기. 비어즐리는 오스카와일드의 희곡 ‘살로메’, 대중 문예지 ‘옐로북’ 등에 삽화를 그렸다.1만 5000원. ●고유명사들의 공동체(김정환 지음, 삼인) ‘르레상스적 교양을 지닌 예술가’로 일컬어지는 시인 김정환의 예술 산문집. 일반 교양서부터 동화와 만화, 문학, 음악, 미술, 공연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9800원 ●윤평중 사회평론집(윤평중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흑백논리의 늪에서 부유하는 한국사회에 대한 한 철학자의 예리한 성찰을 담았다. 진보와 보수, 송두율과 한국 민주주의, 정치에 중독된 사회, 열린 민족주의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논쟁과 담론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보여준다.1만 3000원. ●로마황제(크리스 스카레 지음, 윤미경 옮김),로마공화정(필립 마티작 지음, 박기영 옮김)‘로마황제’는 로마를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제국으로 건설한 80여명의 로마 황제들의 삶과 업적을 통해 로마 제정사를 개괄한 책.‘로마공화정’은 천년 로마제국을 움직이는 중추이자, 현대 민주주의의 뿌리인 로마공화정 이야기다. 각권 2만 8000원, 갑인공방 펴냄.
  • 스캔들의 역사/루스 웨스트하이머 등 지음

    스캔들의 역사/루스 웨스트하이머 등 지음

    1970년대 초 미 국무성에 근무하던 키신저는 아름다운 여성들과 잦은 회합을 가졌다. 강한 영국식 억양에 당당한 풍채를 지닌 중년 외교관이었던 그는 질 세인트 존이나 말로 토머스 같은 신인 여배우들과의 부적절한 만남에 대해 해명을 요구받자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권력은 최고의 최음제다.” 물론 이를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남자가 지닌 권력이 최음제 역할을 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성 권력자는 남성 권력자와는 현저히 다른 경험을 해왔기 때문이다. 선박왕 오나시스의 부(富)의 권력은 그에게 재클린이란 매력적인 여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반면,‘처녀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정치적 권력은 그녀가 적당한 파트너를 찾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됐다.“남자들은 실질적인 권력을 지닌 여자들을 경멸한다.”고 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의 말은 그런 점에서 정당한 지적인지도 모른다. ‘스캔들의 역사’(루스 웨스트하이머 등 지음, 김대웅 옮김, 이마고 펴냄)는 이처럼 복잡다단하고 역동적인 권력과 섹스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역사적으로 볼 때 권력을 지닌 남성들은 늘 주위에 많은 여성들을 거느림으로써 자신을 과시해왔다. 이런 현상이 제도화된 전형적인 형태가 바로 하렘(harem, 이슬람 사회에서 부인이 거처하는 방)이다. 책은 오직 남편의 성적 만족을 위해 존재하는 처첩들의 집단이라는 하렘의 이미지는 서양인들의 몰이해와 환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한다. 하렘은 오히려 ‘수녀원’과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이다. 하렘은 남성들의 권력 전시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유능한 여성 정치인 양성소 구실도 했다.20여년이나 오스만제국을 통치한 쾨셈 술탄은 하렘이 배출한 대표적인 여성 통치자다. 이같은 일부다처제는 오랫동안 남성 팬터지의 원천이 돼왔다. 이슬람문화권에서는 어떤 남자도 성적 파트너를 여럿 갖는 데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일처제가 공식화된 오늘날 사정은 다르다. 책은 그 대안의 하나로 자기보다 훨씬 젊고 매력적인 여성과 결혼하는 이른바 ‘전리품 아내(trophy wife)’현상을 다룬다. 전리품 아내란 말은 1989년 ‘포천’지에서 “유력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 조강지처를 버리고 자신보다 젊고 아름답고 세련된 ‘전리품 아내’를 배우자로 선택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만일 여자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 세상의 모든 돈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것”이라고 한 오나시스가 재클린과 결혼한 것이야말로 ‘전리품 아내’ 현상의 상징적인 예다. 이 책에서는 더이상 새롭지 않은 이 현상을 지도급 인사들의 ‘자기탐닉 문화’의 한 단면으로 간주한다. ‘섹스를 위한 권력’이 있다면 ‘권력을 위한 섹스’도 있다. 여성이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섹스를 이용해온 전통은 유서가 꽤 깊다. 구약성서 ‘룻기’는 가장 오래된 사례 가운데 하나다. 룻은 죽은 남편의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모압에 살던 과부. 그들은 너무 가난해 들에서 수확하고 남은 곡식을 주워먹으며 연명할 정도였다. 결국 룻은 나오미의 강요에 의해 나오미의 돈많은 친척 보아즈의 발 앞에 자신을 던지고 만다. 현대 들어 가장 극적인 사례는 에바 페론이다. 아르헨티나 팜파스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그녀는 섹스 파트너들의 도움을 받아 배우로 성공했고, 페론 대령과 만나 마침내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당 현종의 애첩 양귀비나 프랑스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도 이와 비슷한 범주에 속한다. 미국 사람들은 대통령의 사생활에 유난히 관심이 많다. 대중매체 또한 이에 영합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이 책은 뿌리 깊은 미국 대통령들의 스캔들 역사를 다룬다.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평등을 외치며 노예를 소유했고, 흑인과 백인의 결혼을 비난하면서도 자신의 흑인노예였던 샐리 헤밍스를 정부로 삼아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보여줬다.19세기 후반 아일랜드 민족자치운동의 기수 찰스 스튜어트 파넬은 유부녀 캐서린 오셰이에 빠져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재촉했고 결국 몰락했다. 사랑과 권력의 제로섬 게임을 벌인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밖에 클레오파트라에 얽힌 팜므 파탈의 신화와 오해, 대영제국을 일군 엘리자베스 1세의 ‘처녀성의 정치’, 금기의 벽 앞에 무릎 꿇은 게이 정치가 등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준다.1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지금 공연계는 장르파괴중

    지금 공연계는 장르파괴중

    겨울을 알리는 무대의 전령,‘호두까기인형’이 찾아왔다.‘호두까기인형’하면 누구나 발레를 떠올리기 마련. 올해도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서울 발레시어터 등 3개 발레단이 앞다투어 작품을 내놓는다. 발레리나들의 행진이 펼쳐지는 한켠에서 국산 뮤지컬 ‘호두까기인형’이 첫발을 내딛는다.E T A 호프만의 원작 동화 ‘호두까기인형’은 지난 5월 영국 안무가 매튜 본이 댄스 뮤지컬로 만든 것까지 합하면 올 한해 가장 많이 변주된 단골 소재가 아닌가 싶다. 이렇듯 한 작품이 여러 장르에서 ‘재활용’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베르디의 오페라로 유명한 ‘아이다’도 작곡가 팀 라이스와 가수 엘튼 존에 의해 디즈니식 가족 뮤지컬로 탈바꿈중이다. 내년 한국 상연을 앞두고 있다. 영화계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뮤지컬 황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대표작 ‘오페라의 유령’이 새달 스크린에서 부활하고, 스웨덴 출신의 걸출한 뮤지션 아바의 명곡들을 엮어 만든 뮤지컬로, 세계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맘마미아’도 곧 영화로 만날 수 있다. 물론 아무 작품이나 재활용되는 건 아니다. 탄탄한 작품성으로 경기 불황 등 외적 조건과 상관없이 꾸준하게 먹히는 고전 또는 히트작들만이 그 영예를 얻을 수 있다. 웬만큼 해서는 원작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는 우려도 있지만, 창작의 위험성을 손쉽게 극복할 수 있다는 유혹을 떨칠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한 뮤지컬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수입해서 팔아먹을 브로드웨이산 뮤지컬이 바닥난 상황에서 익숙한 재료들을 갖다 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기존 흥행작들의 유명세에 기대는 이런 현상은 창작의 싹을 잘라버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전의 또 다른 묘미를 맛볼 수 있는 즐거운 기회를 선사하기도 한다. ■ 우유부단한 왕자… ‘호두까기인형’ 살짝 비틀어졌네 새달 11일부터 26일까지 서울교육문화회관 대극장에 올려질 가족뮤지컬 ‘호두까기인형’은 완전히 새로운 내용과 감각으로 다가간다.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고전으로 유명한 이 작품의 변주를 위해 국내 3대 공연기획사인 악어컴퍼니, 오디뮤지컬컴퍼니,PMC프로덕션이 의기투합했다. 원작과 그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에선 생쥐대왕을 물리친 주인공 소녀 마리와 호두까기인형이 소매 속으로 들어가 신비한 나라를 여행하다가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이 났다. 뮤지컬은 소매 속 여행 부분에 ‘확대경’을 들이댔다. 즉 호두까기왕자가 왕위를 수여받기 위해 왕국을 찾아 여정을 떠나는 내용이 뮤지컬 2막을 채우고 있는 것.‘말탄기사’와 같이 원작에 없는 인물이 여럿 등장하고, 호두까기인형, 마리, 드로셀마이어 등 주인공들의 캐릭터나 관계도 원작과 다르게 비틀었다. 원작에서 용맹스러운 왕자였던 호두까기인형은 뮤지컬에서는 겁 많고 우유부단한 인물로 나온다. 마리는 이런 호두까기인형을 이끌어 진정한 남자로 만드는 강인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연극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를 통해 동화적 상상력을 한껏 과시했던 박승걸씨가 극작과 연출을 맡았다. 박씨는 “뮤지컬 ‘호두까기인형’은 여행과 모험을 통해 성숙하고 사랑을 깨닫는 한 편의 성장 러브스토리로 그려질 것”이라면서 “꿈과 환상이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성장시키는 데 현실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가족뮤지컬이지만 주인공들의 러브스토리에 초점을 맞춰 성인 관객들까지 겨냥했다. 현대무용, 발레, 재즈가 녹아든 자유롭고 기발한 춤사위가 무대 위에서 펼쳐지며 이에 맞춰 26곡의 노래도 새롭게 창작됐다. 발레에 밀리지 않는 볼거리와 이야기를 듣는 재미까지 충족시킬 것으로 보인다. 작곡 이경재, 공동극작·안무 조성주. 서영주, 김선동, 오진영, 김태한, 최인경 등 출연.5만원∼3만원.(02)764-8760.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국립발레단·유니버설발레단·서울발레시어터 3色 ‘호두까기…‘ 12월21∼2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은 러시아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볼쇼이발레단 버전. 러시아에서 직접 제작한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와, 전막에 걸쳐 역동적이고 짜임새있게 배치된 안무가 특징이다. 인형 대신 어린이 무용수가 호두까기인형으로 출연해 깜찍한 춤을 선사한다.(02)587-6181. 유니버설발레단은 12월21일부터 2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키로프발레단 버전의 ‘호두까기인형’을 공연한다. 섬세한 여성미와 아기자기한 작품구성이 매력. 오디션으로 선발한 어린이 50여명이 펼치는 앙증맞은 춤솜씨도 볼거리다. 러시아, 스페인, 중국 등 세계 각국의 화려한 민속춤과 아름다운 눈송이 요정들의 군무는 낭만적인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제격이다.1588-7890. 서울발레시어터의 ‘호두까기인형’은 발레단 상임 안무가인 제임스 전이 차이코프스키의 음악만 그대로 두고 장소와 배경, 줄거리를 모두 바꿔 한국적으로 재창조한 작품. 고아원에 사는 남매가 꿈속에서 부모님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는 내용의 모던발레다.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를 무대에 등장시키고, 안무에도 변화를 주는 등 지난해에 비해 볼거리를 보강했다.12월23∼25일 과천시민회관 대극장.(02)3442-2633.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 영화로 만나봐 최근 영화계에서도 인기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영화로 제작하는 바람이 일고 있다. 지난해 뮤지컬 ‘시카고’가 캐서린 제타 존스·르네 젤위거 주연, 롭 마셜 감독의 뮤지컬 영화로 선보여 큰 성공을 거뒀다. 아카데미상을 휩쓰는 등 흥행과 비평 모두를 만족시키며 뮤지컬 영화의 붐을 예고했다. 지난 추석 연휴 때는 비제의 오페라로 유명한 ‘카르멘’을 스페인의 비센테 아란다 감독이 영화로 선보여 국내에 개봉했다. 원작의 비극적인 드라마를 살리되 감각적이고 화려한 영상으로 승부하는 작품이었다. 새달에는 뮤지컬의 황제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작곡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초호화 블록버스터 영화로 재탄생시킨 영화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흥행 영화 감독인 조엘 슈마허가 메가폰을 잡아 19세기 오페라 하우스의 웅장하고도 화려한 무대를 그대로 재현해냈다. 원작 소설을 토대로 영화화된 적은 여러번 있지만 1986년에 초연된 뮤지컬의 인기에 힘을 입어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웨덴 그룹 아바의 노랫말을 엮어 만든 뮤지컬 ‘맘마미아’도 곧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올해 초 국내에서 공연돼 선풍적 인기를 끌기도 했던 작품으로, 영화에서는 ‘러브 액츄얼리’의 키이라 나이틀리와 니콜 키드먼,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이 출연진 물망에 올라 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박기철의 플레이볼] 야구 국제화 바람

    2006년 야구 월드컵과 한국·일본·타이완 등 아시아 3개국 리그의 우승팀끼리 겨루는 대회 창설 등 최근 야구의 국제화 바람이 거세다. 야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 국제화가 가장 미진하다.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것도 늦었다. 하지만 이미 19세기에 메이저리그는 야구의 세계화를 시도했었다. 1888년 시카고 화이트 스타킹스의 구단주이며 미국 최대의 스포츠 재벌이던 앨버트 스폴딩은 자신의 팀을 이끌고 세계 원정을 감행했다. 하와이를 거쳐 호주·스리랑카·이집트·이탈리아·프랑스·영국을 도는 기나 긴 여정이었다.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를 백스톱으로 삼아 경기를 하는 이벤트까지 열었다. 예나 지금이나 스포츠의 국제화를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이다. 스폴딩은 1878년 야구용품회사를 설립해 내셔널리그의 공인구를 공급하는 등 미국 야구용품 시장을 독점해 거부가 된다. 그는 야구가 세계화되면 세계 굴지의 재벌이 될 수 있다는 야망 아래 자신의 팀을 이끌고 2년여간 세계일주 경기를 벌인 것. 꿈 자체는 야무졌지만 다른 구단주들의 비협조로 스폴딩의 계획은 잊혀지고 만다. 다른 구단주 입장에서는 돈이 잘 벌리는 미국 리그를 희생하면서까지 세계화를 추진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지금까지 야구의 국제화가 지지부진했던 것도 그래 봤자 자국의 리그보다 돈벌이가 더 잘되는 대회가 되리라는 보장이 없었던 탓이다. 특히 메이저리그와 일본의 입장이 그랬다. 한국·멕시코·타이완 등은 세계대회가 열리면 자국 야구의 붐 조성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작게는 아시아대회, 크게는 야구 월드컵을 부르짖었으나 최강 리그인 미국과 일본의 대답은 항상 ‘마이동풍’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일본과 한국은 우수 선수들의 빅리그 진출로 인기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메이저리그도 사정은 다급하다. 선수 노조와 구단주 간의 오랜 갈등으로 예전 같은 ‘스포츠 지존’의 자리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더구나 팬의 평균 나이는 계속 올라간다. 젊은 팬들은 컴퓨터나 새롭게 생겨나는 극한 스포츠에 몰린다. 또 부자 구단과 가난한 구단 사이의 수입 격차가 10대1을 넘기 직전이다. 한국에서는 이 차이가 2대1을 넘지 않는다. 이런 구단간의 불균형은 시즌을 시작하기도 전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팀과 탈락할 팀이 가려지게 만든다. 이런 문제들의 탈출구는 새로운 시장개척뿐이다. 메이저리그나 일본이 그동안 쇠귀에 경 읽기식으로 버티다 세계화에 앞장서게 된 배경이다. 당초 월드컵을 내년 봄에 열려던 계획은 미국의 일방적인 독주에 일본이 제동을 걸면서 무산됐다. 결국 한국·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여 2006년 개최가 합의된 사실에서 보듯 세계 대회를 열어 준다는 데에만 감지덕지할 이유는 없다. 이제는 정당한 권리를 누리면서 참가해야 할 때다. ‘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tycobb@sports2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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