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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멸의 명연주가들/이덕희 지음

    베토벤·모차르트 등 세계적인 작곡가들의 일과 삶에 대해서는 그동안 꾸준히 회자돼왔지만 그들과 실력을 견줄 만한 악기 연주가들의 삶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불멸의 명연주가들’(이덕희 지음, 가람기획 펴냄)은 토스카니니·리스트·파가니니·카루소 등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 연주가 13명의 독특한 삶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지난 1998년 출간된 ‘짧은 갈채, 긴 험로’의 증보판으로, 연주가들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는 물론, 그들의 열정이 담긴 풍부한 사진이 눈길을 끈다. ‘비르투오조’(19세기 이후 음악가, 특히 악기 연주가들을 배타적으로 지칭한 용어)의 데뷔시절과 이들에 대한 시선, 신인시절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또 연주 뒤에 숨어 있는 에피소드, 진실, 사랑, 그리고 음악을 향한 무한한 애정 등이 솔직하게 그려진다. 무자비한 완벽주의자로서 타협이나 양보란 없었던 말러, 술 취한 것처럼 꿈같은 연주를 펼쳤던 토스카니니, 최고의 ‘쇼맨’ 스토코프스키, 뛰어난 연주로 베토벤의 키스를 받은 리스트,3살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청중들을 열광시켰던 하이페츠,‘황금의 목소리’ 카루소 등 천재적인 음악가들의 어린 시절과 방황기, 성공 이후 모습 등을 그들의 내면적인 모습과 함께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1만 3000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0) 예언에 관한 일화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0) 예언에 관한 일화

    ‘정감록’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리 해도 끝이 없다. 주제를 40개 정도로 나눠 일년 가까이 연재를 해왔지만 손길이 미치지 못한 부분이 아직도 많다. 우선 생각나는 것이 예언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들이다. 그 중엔 그냥 버려두기 아까운 것이 꽤 많아 몇 가지를 간추려 보았다. 특히 암울했던 일제시대엔 독립을 향한 민중의 염원이 간절해서인지 각종 예언과 관련된 일화가 많았다. 또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동학과 관련된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예언에서 찾은 조선독립의 희망 1920년대에는 천도교가 예언과 관련해 많은 일화를 남겼다. 천도교는 동학의 후신이라 이상세계의 실현에 대한 믿음이 유달리 강했다. 당시 교단 지도부는 재정에 충실을 기하려고 성미(誠米) 적립운동을 펼쳤는데, 성미운동에서도 예언이 등장했다. 대강 이런 식이었다. 천도교 신도는 성심을 다한다는 의미에서 끼니 때마다 가족 수만큼 쌀 한 숟가락씩을 모아 교단에 바쳐야 된다고 했다. 하늘은 성미가 많고 적음에 따라 신도들의 성심을 상중하로 판단해 장부에 기재하므로, 성심이 깊으면 복을 많이 받지만 적거나 없으면 벌을 받는다고 가르쳤다. 교단에 따르면, 교조 최제우는 동학이 창건된 지 61주년째 되는 1920년 한국에 갱생한다 했다. 세상에 다시 내려온 최제우는 오만 년 무극대도(無極大道)를 펼쳐 전세계를 통일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제연맹을 대신해 세계정부를 세운다 했다. 이것은 정말 믿기 어려운 예언이었다. 기독교의 재림예수이야기를 방불케 한다. 천도교 신도들은 교단의 가르침을 성심껏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했다. 그들 각자가 바치는 정성은 하늘을 감복시켜, 성미를 많이 바친 이는 새 세상에서 고위관직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본인은 물론, 자손들까지도 무한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르침은 통했다.1920년경 천도교 측이 거둔 성미 수입은 당시 화폐로 수십만 원이나 되었다. 참고로, 일제말기 초등학교 교원의 초임은 45원에 불과했다. 천도교의 성미운동을 식민지 당국은 사기적인 약탈행위로 간주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 성미는 물론 천도교단의 운영자금으로 사용되었으나, 그 상당부분은 독립운동과 계몽운동에 투입되었다.1919년의 3·1운동 때도 천도교 측은 운동자금의 대부분을 부담했다. 그 뒤에도 천도교 측은 ‘개벽’과 같이 선진적인 계몽잡지를 발간했고 농촌운동을 일으켰다. 기꺼이 성미를 적립했던 신도들도 마음속으로 조선독립을 꿈꾸고 있었다. 심지어 천도교의 곁가지인 무극대도교나 상제교 측도 그러했다. 무극대도교는 일제의 보안법을 자주 위반한 것으로 유명했다. 상제교도 교주 김연국이 상제로부터 홍서(紅書)를 받았다고 주장해 관심을 끌었다. 또 다른 일파인 수운교도 교조 최제우를 부처의 후신으로 보았다. 이들 교단은 여러 예언을 동원해 곧 지상천국이 실현된다고 주장했다. 지상천국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독립을 기본전제로 했다. 일제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런 신종교에 입교하게 된 동기는 ‘감언이설´을 믿었기 때문이다. 실상 그것은 단순한 감언이설이 아니었다.“이 교단”은 혁명 즉, 정권창출에 성공할 것이고 따라서 새로운 정치지도자를 배출하게 되며,“이 교”에 입교해 신앙 활동을 잘 하면 생활이 안정되고 새로운 정치지배세력의 일원이 된다는 확신이 뚜렷했다. 이미 언급한 천도교 등 여러 신종교들을 비롯해 보천교, 금강도 및 청림교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역시 기존 예언서인 ‘정감록’을 중시했고, 거기에 자기네 나름으로 새 예언을 덧붙였다. 심지어 전혀 이름조차 없는 소규모 단체들도 ‘정감록’에 기대어 독립을 점쳤다.1931년 3월31일,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경찰서 고등계는 경북 상주와 문경 등지에 사는 평범한 남녀 주민 4명을 보안법 위반자로 검거했다. 당시 40∼50대 나이로 장년층에 속했던 이들은 조선독립을 목표로 비밀결사를 조직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들은 ‘정감록’의 한 구절,“땅값이 똥값이 되며 천 마리 말이 소가죽을 입는다.(土價如糞 馬千牛服)”라는 대목을 장차 반드시 일어날 미래의 현실로 받아들였다. 그들의 해석은 특이했다. 장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10년간 지속된다고 보았고, 결과적으로 일본은 멸망하고 조선독립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 된다 했다. 우연한 일이지만 이 예언은 거의 들어맞았다.1939년 제2차대전이 터졌고, 전쟁은 장기화되었다. 일본은 연합국 측에 패전해 무조건 항복했으며, 마침내 한국은 해방되었다. 그런 주장을 펼치던 사람들은 ‘정감록’ 예언을 따라 십승지를 찾아갔다. 그들은 경북 상주군 화북면 중대리에 있는 우복동에 주목했다. 거기 피난처를 정한 다음, 그들은 조선독립을 위해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1928년 5월, 우복동에서 결사를 맺고 사찰을 지어 승려로 가장했다. 이웃한 지역사회에서는 그들의 취지에 공감해 사찰건립기금을 낸 사람이 20명가량이나 되었다. 우복동의 ‘선민’들은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갈 진인 정씨의 출현을 기다리며, 그 때 긴요하게 쓰일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종교 교육활동에 몰두했다 한다. 사실 19세기 이후 한국에는 수많은 예언이 난무했다. 그 중엔 ‘정감록’에 전혀 나오지 않는 예언도 많았다.1933년 8월21일, 충청북도 영동 출신의 박모라는 사람은 그동안 누구도 풀이하지 못한 예언시를 독자적으로 해석했다. 그 일부가 우연히도 사실로 입증되었다. 문제의 예언시는 첫 구절이 이러했다.“봄날 나무에서 원숭이가 우니 귀신도 알지 못한다.”(猿啼春樹鬼不知)는 것이다. 박 도사는 여기 나오는 원숭이(猿)를 임신년 즉 1932년으로 간주했고, 그 해 3월 만주국이 창건될 것을 예견한 시라고 주장했다. 시의 둘째 구절은 “비바람이 치는 날 닭이 울 때”(一天風雨鷄鳴時)라 했다. 박 씨는 닭이 울 때(鷄鳴時)를 계유년(1933)으로 상정했다. 그 해에 만주국의 주권을 둘러싸고 국제회의가 열린다고 예견했다. 회의에서 일본이 만주를 불법 점령한 사실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며, 그 결과 일본은 국제연맹을 탈퇴하는 사태가 벌어진다고 내다보았다. 엄밀한 의미로, 이것은 틀린 해석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긴 흐름에서 볼 때, 만주국의 성립은 장차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리란 예고편이었다. 그 전쟁이 확대되어 마침내 1939년, 세계 제2차대전으로 번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박씨의 예언 풀이는 제법 타당한 점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예언시의 마지막 부분은 “만국이 진을 이루고 개가 울 때” (萬國成陳犬吠時)란 구절이었다. 박씨는 이 구절에 대해,“개가 울 때”(犬吠時)는 갑술년(1934)이며 만주 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세계전쟁이 유발되고 악성 전염병이 유행한다는 뜻이라 했다. 그러나 그 말대로 1934년에 무슨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식민지 시대 말기에는 일본의 패망을 예언한 대본교(大本敎) 같은 신종교도 있었다. 그 교주 왕인은 1945년에 “국체변혁”(國體變革), 즉 일본이 망한다는 예언을 내놓았다. 그의 위험한 발언이 나오기가 무섭게 식민지 당국은 대본교의 교당을 헐어버렸다. 왕인 등 교단 지도부도 몽땅 체포했다. 본래 왕인이란 사람은 농부였다. 그런데 예언능력이 탁월해 신종교의 교주가 된 것이다. 그는 교당의 터를 잡을 때 여기를 파면 반석같이 큰 바위가 나오리라 예언했다. 과연 그 말 대로였다. 세상 사람들은 왕인이 땅속까지 꿰뚫어보고 일제의 패망을 예견할 만큼 형안을 가졌으면서도, 자기 교당이 허물어질 줄은 미처 내다보지 못했다며 비웃었다. 중요한 사실은 평범한 개인이든, 크고 작은 신종교 단체든 일제시기 내내 많은 한국인들이 늘 조선독립을 점쳤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예언은 대부분 ‘정감록’을 토대로 했다.‘정감록’은 민중의 희망이었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동학과 정감록-최제우, 동학정신에 정감록 ‘弓弓乙乙’ 담아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는 ‘정감록’에 대해 미묘한 태도를 보였다. 동학경전을 읽어보면 그는 정감록을 믿는 것 같으면서 부정하고, 부정하는 듯하면서도 믿는 것 같다. 그가 “기이한 동국 참서”, 즉 ‘정감록’을 손에 쥐고 들려준 가르침을 좀 풀어보면 이렇다. 과거 임진왜란 때는 이재송송(利在松松 이여송 형제가 도움이 됐다)이라 하였고, 가산 정주 서적(西賊 홍경래 난)때는 이재가가(利在家家 가만히 집에 있는 것이 좋았다)라고 ‘정감록’ 등에 기록돼 있지. 다 맞는 말이었네. 그런 선례를 본받아 우리의 미래도 한번 설계해 보세. 앞으로 세상을 제대로 살려면 ‘정감록’에 나오는 구절이네만 이재궁궁(利在弓弓 궁궁이 유리하다)을 알아내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봐야 하네. 매관매직을 일삼는 세도가들도 그 마음은 오직 궁궁에 있는 듯하고, 돈 많은 부자들도 궁궁만 찾고 있네. 거지들도 궁궁, 풍수에 미친 사람들도 궁궁촌을 찾아 더러 깊은 산중으로 들어간다네. 더러는 서학(西學 천주교)에 입교해 그것이 궁궁인 줄로 믿고들 있지. 세상 사람들이 옳거니 그르거니 따지는 것이 몽땅 궁궁에 관한 것뿐이네. 그러나 제 몸을 닦고, 집안일을 바로 다스리지 않은 사람이 강산을 찾아가면 뭐하나. 경박한 세상 사람들 같으니! 다들 이익이 송송(松松)이니 가가(家家)에 있다고 한 말뜻은 겨우 알아낸 듯하지만 정작 궁궁이 무엇인줄은 전혀 모르고 있군. 최제우는 자신이 발견해낸 종교적 진리가 바로 궁궁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자신의 가르침을 “무극대도”라 불렀고, 앞으로 5만년간의 태평시절이 온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감록’에 적힌 궁궁을을(弓弓乙乙)이란 구절에 모든 진리가 압축돼 있다고 생각했다. 이 구절에 입각해 그는 궁을부(弓乙符)를 만들었다. 이 부적을 몸에 붙이면 상처가 생기지 않고, 이것을 불살라 먹으면 만병이 사라진다고 최제우는 가르쳤다. 그러다 고종1년(1864)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동학의 인기는 더욱 높아져, 그가 죽은 지 30년이 되던 갑오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전봉준이 이끈 동학군들의 깃발에는 ‘오만년수운대의´(五萬年水雲大義)란 글귀가 높이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수운, 즉 최제우가 설파한 5만년 이상세계의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요컨대 궁을을 이 세상에서 실현하겠단 것이었다. 고종30년(1894)에 시작된 동학농민운동을 전후해 민간에 여러가지 노래가 유행했다. 단순한 노랫가락이 아니라 요참(謠讖), 즉 노래형태를 빈 예언이었다. 더러는 일제시대까지도 남아 인구에 회자되었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간다.(甲午歲 甲午歲 乙未 乙未 丙申되면 못 간다)” 기왕 일을 벌이려거든 갑오년(1894)에 서울까지 밀고 올라가서 일을 마무리지어야지, 그렇지 않고 우물쭈물하다 을미년이나 병신년까지 지연되면 실패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이 예언 노래는 갑오 동학농민운동 당시 김개남 등 급진파 측에서 퍼뜨렸을 가능성이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운동이 실패로 끝난 다음, 뒤늦은 후회를 예언의 형태로 담아냈다고 추측해볼 수도 있다. 동학농민군이 서둘러 서울로 진격하지 못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남원 방면을 공략하다 뜻밖의 거센 저항에 부딪힌 사실과 관련이 있다. 운봉 아전 박봉양이 이끈 반항세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박씨의 저항은 요참에도 담겨 있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아랫녘 새야, 윗녘 새야, 전주 고부 녹두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하루박(하눌타리), 후-여!” 전라도 고부 출신 녹두장군 전봉준은 ‘하루박´으로 표현되는 박봉양에게 밀린다는 말이다. 참시에서 저항세력을 하눌타리 또는 하루살이에 불과한 박씨라고 일컬은 점은 재미있다. 이런 비유로 볼 때 노래를 만든 이나 부른 이는 농민군 편이었다. 노랫말에 보이는 “후-여”는 새 쫓을 때 내는 소리다. 녹두새 전봉준에게 미리 경고해 농민군이 남원쪽으로 움직이지 말게 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느껴진다. 알다시피 동학농민군은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에 패배했다. 이로써 운동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전봉준과 김개남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수많은 농민군들이 가혹한 처벌을 받은 것도 물론이다. 이런 동학농민군들의 비원을 담은 노래는 한둘이 아니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사 울고 간다.”란 노래였다. 전봉준을 녹두꽃에 비유해 그의 죽음이 곧 민중의 비극이란 것이다. 그밖에 “솔잎과 댓잎이 파르라니 봄인 줄 알고 찾아 왔는데, 흰눈이 펄펄 흩날리니 송죽이 나를 속였었구나.”란 노래도 널리 유행했다. 솔잎과 댓잎만 보고 겨울을 봄으로 착각했다는 가사는, 농학농민군이 시세판단을 잘못해 너무 일찍 군대를 일으켰다는 비판을 담고 있다. 농민군의 준비부족을 한탄한 것이다. 이들 가요는 내용을 가지고 보면 농민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 그 편에서 만들어 부른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그러나 노래를 채집한 이은상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일제시대 민중은 이 노래들을 후일담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모든 노래가 운동이 발생하기 전에 유행한 예언이었다고 믿었다. 민중은 동학농민운동의 최고지도자 전봉준에게 특별한 예지력이 있다고도 생각했다.1894년 음력 4월경 전라감사 김문현은 농민군을 조기에 진압하기 위해 전봉준을 암살하려고 했다. 그는 자객 2명을 밀파했다. 자객들은 담배장사로 변장해 전봉준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신분이 탄로되어 붙들리고 말았다. 전봉준은 점술에 밝았기 때문이다. 점괘를 던져본 그는 자객이 온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고 한다. 믿고 따를 지도자라면 당연히 예언능력이 있어야 된다고 민중은 생각했다. 요즘도 연말이 되면 국가기관이나 공신력을 자랑하는 주요연구소에선 다음해의 경제성장을 전망하곤 한다. 이런 예언, 예시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필수조건인 모양이다.
  • “박정희 극복은 행복한 과제”英國史 논문발표 이영석교수

    “박정희요? 극복할 대상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영국 산업혁명 연구자로 알려진 소장학자 광주대 외국어학부 이영석 교수는 최근 영국사학회에서 19세기 영국사 연구동향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서 이 교수는 정작 영국 사학계에서는 ‘산업혁명 찬양’과 ‘제국주의 비난’에서 벗어나고 있다면서, 일본과 한국 역시 크게 봐서 이런 틀을 따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식민지근대화론이나 박정희긍정론과도 맞닿아 있는 논리 가운데 하나이자, 동시에 국사학계에 대한 서양사학자들의 비판론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 교수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혁명이 아니라는 주장인데. -영국 연구자들 스스로 영국이 근대화의 모델이라는 논리를 버리고 있다. 그런데 근대화에 뒤진 국가일수록 이런 주장을 못 받아들인다. 근대화 콤플렉스 때문이다. 또 사학자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관점에서 역사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있다. 압축성장을 해온 우리는 영국을 혁명이나 단절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려 들지만, 지금 침체된 영국은 자신들의 역사를 점진적 변화와 연속성으로 보려는 측면이 있다. ▶식민지근대화론의 뿌리로 알려진 일본 경제사학계 논의를 한국이 시차를 두고 따라가고 있다는 지적이 흥미롭다. -근대화 콤플렉스가 있다는 점에서 비슷할 수밖에 없다. 일본 경제사학계의 관심은 일본이 왜 패망했느냐였다. 그런 측면에서 해답은 일본의 근대화가 왜곡됐다는 것이고, 왜곡 원인을 찾으려니 어떤 모델이 필요했고, 그 모델이 바로 영국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영국의 근대화 과정이나 자본주의 이행과정 연구는 외려 일본에서 훨씬 발달했다. 그 뒤 일본경제가 성장하니까 일본 연구자들은 산업사회의 부작용에 대한 연구로 넘어갔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우리도 경제성장에 따라 시차를 두고 일본측 논의를 따라가고 있다. ▶일본 경제사학계는 식민지근대화론의 뿌리라는 점에서 한국에서는 눈총받고 있다. -역사가들은 시대상황 아래 역사를 본다. 연구 자체의 재미도 있지만 교훈을 얻고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나도 산업화세대다보니 산업화 문제에 관심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선진국의 사례에 주목하게 됐다. 일본의 관심이 옮아갔듯, 한국 역시 좀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수록 관심과 시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식민지근대화론에 이은 박정희긍정론에 대해서는. -그게 시각의 차이다. 국사학계는 역사를 단절적으로 파악하려 든다. 일제시대는 파탄이었고 박정희시대는 착취였다고 보는 시각이다. 이에 반해 식민지근대화론과 박정희긍정론은 기본적으로 역사를 연속적으로 보려는 입장이다. 물론 서울대 이영훈 교수처럼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합리화하는 것은 너무 나아간 측면이 있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부정적인 유산은 있었지만, 그 부정적 유산도 결국 우리 것일 수밖에 없고, 동시에 그 유산을 극복해나가는 과정 또한 지금 우리의 역사 아니겠나. ▶통합적으로 역사를 바라봐야 한다는 설명인가.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는 것이 바로 역사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부정적인 유산이라는 도전이 있기에 지금 우리가 도전해야 할 과제가 있는 것이다. 서구 사회의 정체는 극복할 대상이 없어져서이기도 하다. 역사에서 결단코 비약은 없다. 한국처럼 압축성장을 한 사례를 찾아보면 19세기 스웨덴쯤이나 비교할까 말까하는 정도고 아예 비교대상 자체가 없을 정도다. 그런 성장을 했다면 여러 문제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문제점과 어떻게 싸워나갈 것이냐가 지금의 문제다. 한류열풍이나 IT산업 등도 그런 측면이 있다. ▶아무래도 강력한 민족주의 감정이 걸림돌인데. -뭐라 해도 제국주의 지배를 받았던 입장에서는 잘못의 모든 원인은 제국주의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민주화진영도 엇비슷하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차츰 순화되어갈 것으로 본다. 서구에서도 예전에 열광했었던 주제다. ▶너무 상대주의적인 태도 아닌지. -역사가들끼리 회의주의나 상대주의 아니냐는 얘기가 있긴 하다. 그러나 그 시대 사람들이 가장 관심있고 열망을 느끼는 주제를 역사학이 다루는 것은 어쩔 수 없고, 그래서 더욱 의미있기도 하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부산~오사카 ‘팬스타 크루즈’

    부산~오사카 ‘팬스타 크루즈’

    20세기 초, 호화여객선 타이타닉에 오른 잭과 로즈는 선상에서 운명의 상대를 찾았고,‘사의 찬미’를 부른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은 현해탄에서 사랑을 이루었다. 비록 그들 사랑의 끝은 비극이었지만…. 21세기초. 우리는 대한해협을 오가는 선상에서 사랑을 이룬다. 사랑만으로 뭉친 진실로 행복한 사랑을. 부산 연안여객터미널에 정박한 ‘팬스타 드림호’ 로비에는 은은한 관현악 선율이 울려퍼진다. 일본 오사카를 향해 가는 200여명의 여행객이 몰려 로비는 번잡했지만, 우리에게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다. # 떠나자, 타이타닉 연인처럼 부산과 일본 오사카를 오가는 2만 2000t급의 페리선인 팬스타 드림호는 지난해 12월부터 부산 연안 크루즈 상품을 선보이며 대표적인 국내 크루즈서비스로 손꼽혔다. 이 여세를 몰아 최근 부산과 오사카를 잇는 ‘팬스타 크루즈 페리 서비스’를 시작했다. 크루즈 여행객 정원은 40명.200여명의 일반 여행객과 다른 차별화된 서비스를 받는 크루즈 여행객은 선택받은 이들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일반실과 구분된 별도의 ‘크루즈 존’ 객실에 들어섰다. 크루즈 여행객의 방은 별도의 욕실을 갖춘 트윈베드룸이다. 여객·화물 운반 전용 페리선을 그대로 사용해 시설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커다란 창문 너머로 넘실대는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오후 4시를 조금 넘어 승객을 실은 팬스타 드림호가 파도를 가르며 바다를 향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드넓은 바다로 나간다. # 환상의 검은 바다 갑판 위에 올랐다. 바람에 희미하게 바다냄새가 섞여있다. 오륙도를 지나면서부터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진한 주황색에서부터 짙은 파란색까지, 변화무쌍한 색상의 노을이 하늘을 덮었다. 선상에서 보는 아름다운 낙조가 사라질까 갑판 위에선 10여명의 남녀들이 셔터를 누르느라 분주하다. 바다가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한 뒤 다시 갑판으로 올랐다. 바다를 향한 나무 의자에 앉아 무슨 말인가를 속삭이는 연인, 선상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한 사람들에게는 겨울 바다 한가운데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지 않은가보다. 온통 검은 바다를 비추는 달 아래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 있을 수 있으니 몸도 마음도 더욱 근거리일 테지. 밤 9시쯤, 크루즈 여행객을 위한 이벤트가 펼쳐졌다. 우크라이나 출신 공연단이 펼치는 다양한 퍼포먼스다. 분위기있는 관현악 연주 뒤에 현란하고 관능적인 댄서들의 춤사위, 고양이 복장을 한 여인의 아슬아슬한 아크로바틱, 피에로 분장을 한 남녀의 흥겨운 저글링, 귀여운 마술사의 진지한 마술쇼 등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공연이 끝난 밤 10시쯤 배는 일본 시모노세키로 진입했다. 여기서부터는 파도가 조금씩 잦아든다. 규슈와 혼슈를 잇는 거대한 관문대교, 총연장 12.3㎞의 세계에서 두번째로 긴 세토대교를 지나 아카시대교(2㎞)를 거치면 일본 오사카항에 도착한다. 글 일본 오사카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4시간 30분 오사카의 낭만 맛보기 아침식사를 끝내고 아카시대교를 거쳐 오사카항에 들어갔다. 이 크루즈 여행에서 오사카에 머무르는 시간은 4시간30분 정도다.9만원을 추가하면 13종류의 온천탕이 있는 ‘야마토노유 온천’과 ‘오사카성’에 들르는 일정에 참가할 수 있다. 야마토노유 온천(www.yamatonoyu.co.jp)은 지하 800m에서 끌어올린 천연온천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노천온천과 온천물에 비초탄(숯의 종류)을 섞은 음이온수 욕탕, 혈액순환을 돕는 바이블 욕탕, 강력한 물살이 옆구리 엉덩이 허벅지에 분사되는 셰이프업 욕탕 등 다양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점심식사 후에는 16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완성한 오사카성에 들른다. 몇번의 소실과 재건을 거쳐 제 모습을 찾은 천수각과 묘한 조화를 이루는 주변의 최신식 건물들, 꽃놀이 명소답게 우거진 나무와 6만㎡의 잔디공원 등 볼거리가 많다. 길지 않은 오사카 일정을 뒤로 하고 다시 오사카항에 들러 배에 올랐다. 오후 5시. 이제 다시 부산으로 향한다. 새벽에 지나느라 놓쳤던 세토대교나 멋진 웅장한 야경을 만들어내는 관문대교는 부산으로 향하는 선상에서 볼 수 있다. 돌아가는 길에는 전날 설렘으로 미처 즐기지못했던 배 안의 편의시설을 이용해도 좋다. 와인을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고 통유리로 된 선상카페에서 차나 맥주를 즐길 수 있다. 면세점은 규모가 작지만 다양한 술과 간단한 선물도 살 수 있다. 오사카 짧고 굵게 즐기기 짜여진 일정 외에 다른 방법으로 짧은 시간동안 일본 오사카를 즐기고 싶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 젊음의 거리, 신사이바시 오사카 최대의 번화가인 신사이바시는 오사카항에서 지하철로 약 30분 거리에 있다. 미도스지 거리 서쪽에 있는 ‘산카쿠 공원’을 중심으로 헌옷을 파는 가게, 잡화점, 갤러리 등이 몰려있는, 서울의 압구정에 비교된다. 여기서 ‘요트바시’ 거리까지 걸치는 일대는 ‘아메리카무라’로 묶어 오사카의 특이한 유행을 느낄 수 있다. 지하털 미도스지선·나가호리 트루미료쿠지선에서 신사이바시역에 하차하면 된다.# 과거와 현재가 있는 우메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연상시키는 고층 건물 우메다 스카이 빌딩과 웨스틴호텔을 중심으로 한 우메다는 오사카 경제의 중심지이다. 이 건물 지하에는 19세기 말 일본의 오사카를 재현한 음식점 거리 ‘다키미 고우지’가 있다. 한큐 엔터테인먼트 파크에서 우메다의 명소로 꼽히는 헥프파이브 대관람차를 타고 오사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낮보다는 야경이 더 좋다.JR 오사카역이나 한큐·한신전철, 지하철 미도스지선의 우메다역에서 내리면 된다. # 온천 대신 쇼핑 기존 일정의 야마토노유 온천 대신 근처 대형 쇼핑센터 ‘지시마 가든 몰’에 가보는 것도 좋다. 생활용품점, 서점, 식품점 등이 거대한 규모로 자리잡고 있다. 일본의 국민브랜드로 불리는 ‘유니클로’ 매장과 다양한 슈즈 브랜드를 만날 수 있는 잡화점, 화장품점 등이 특히 눈에 띈다. # 일정은 어떻게 매주 일·화·목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승선 절차가 시작된다. 첫날 오후 4시 운항→7시 저녁식사+와인서비스→9시 공연→둘째날 오전 8시 아침식사→10시 하선→11시∼오후 3시 일본 오사카 관광+점심식사→3시30분 승선→7시 저녁식사→9시 공연→셋째날 오전 8시 아침식사→10시 하선. 기상상태에 따라 조금씩 시간이 달라진다. 크루즈 이용요금(왕복)은 29만 9000원부터 139만원까지 4가지 등급으로 나뉘어져있다. 보통 성인이 이용할 수 있는 딜럭스 스위트는 42만 9000원(1인·터미널 이용료 및 세금 별도). 선내 석식·조식 각 2회, 이벤트 관람, 와인 서비스, 운항 체험 등을 무료로 제공한다. 문의 ㈜팬스타라인닷컴 서울 (02)775-6811, 부산 (051)462-5482,www.panstarline.com # 일본이 부담스럽다면 부산연안 크루즈도 2박3일 코스가 부담스럽다면 17시간의 비교적 짧은 시간의 크루즈를 이용해도 좋다. 매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일요일 오전 9시까지 부산 해안선을 따라 운항하는 코스다. 부산 연안여객터미널을 출발해 태종대를 거쳐 낙조 관람의 명소로 꼽히는 몰운대에서 일몰을 감상한다. 해운대의 야경을 보며 저녁식사를 한 뒤 색소폰 연주, 벨리댄스, 통기타 라이브 등 다양한 공연을 즐긴다. 머리 위에서 터지는 불꽃쇼도 펼쳐진다. 정상운임은 객실에 따라 1인당 9만 1000원부터 27만 5000원까지다.
  • [씨줄날줄] 시위 선진국

    우리는 시위문화가 일천해 군중집회가 과격해진다는 얘기가 통설처럼 떠돈다. 그러나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합리적 시위문화가 축적되어 있었다. 양반·선비들은 상소(上疏)·구언(求言)·순문(詢問)·직계(直啓)라는 통로를 통해 임금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일반민중을 위한 언로도 다양했다. 왕이나 지방관리의 행차길에 뛰어들어 직소하는 규혼(叫昏). 대궐앞에 엎드려 호소하는 복합(伏閤). 집단으로 관청에 몰려가 청원하는 등장(等狀). 특히 원통한 일이 있을 때 왕이 거동하는 길가에서 꽹과리나 징을 치는 격쟁(擊錚)은 계몽군주 정조가 장려했던 제도였다. 이들 제도가 활발히 작동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지만 평화시위 정신은 연면히 내려왔다고 볼 수 있다. 근대적 의미의 시위는 19세기말 독립자강운동에서 시작됐다. 일제 치하의 3·1운동은 한국 민족주의를 세계에 알리는 시위였다. 독립·반외세 시위를 거쳐 정부 수립 후에는 자유·반독재 시위가 활발했다. 독립운동이나 민주화투쟁은 온건할 수 없었다. 목숨을 건 항쟁에서 준법을 요구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1990년대부터 민주화가 이뤄졌다. 시위목적이 평등·반독점쪽으로 옮아갔으나 양상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위대와 진압경찰 양쪽 모두 변화에 약했다. 최근 농민시위에서 과격시위와 과잉진압 논란이 일었고, 시위농민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있었다.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린 홍콩에서 한국의 반(反)세계화 시위대가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다. 삼보일배, 바다 시위, 오리걸음 시위를 선보였고 주변청소와 함께 빼앗은 경찰 방패를 돌려줌으로써 “조직되어 있고,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지언론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60% 이상이 한국 시위대를 호평했다. 근래 프랑스와 호주의 종교·인종 분규에서 보면 선진국 시위양태를 반드시 모범으로 보기 어렵다. 축제하듯 비폭력 원칙을 지키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방법에서 한국이 선도국이 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홍콩에서 한국 시위문화가 한단계 높아질 가능성을 본 것은 기분좋은 일이다.WTO각료회의는 18일 끝난다. 폐막일 시위대 자살설이 나오기도 한다. 시위 참가자들은 막바지까지 준비한 행동강령을 지켜 참사가 없도록 해야 한다.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책꽂이]

    ●역사가 기억을 말하다(전진성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1980년대 이래 국제 역사학계의 주요한 흐름이자 방법론으로 결국 역사학의 전환을 이끌어낸 신문화사 연구로 이어져오고 있는 ‘기억문화’의 이론과 실제를 소개한다.2만 3000원.●우리말에 대한 예의(이진원 지음, 서해문집 펴냄)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저지르는 우리말의 오용과 오류의 사례들을 바로잡고, 잘못된 말글살이에 대한 따끔한 비판과 함께 이를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지 방안들을 제시한다.1만 1900원.●철학, 역사를 만나다(안광복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플라톤의 이상 국가와 ‘제자백가의 시대’로 불리던 춘추전국시대부터 프랑스 혁명과 마르크스 시대를 거쳐 비트겐슈타인의 ‘그림이론’에 이르기까지,2000여년에 걸친 철학의 주요 장면을 세계사와 함께 읽어나간다.9800원.●소리의 자본주의(요시미 야 지음, 송태욱 옮김, 이매진 펴냄)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축음기, 전화, 라디오로 대표되는 음향미디어가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수용되는 과정을 다양한 집단, 계급, 젠더 사이의 다툼 속에서 살펴본다 . 1만 8000원.●우리는 지금 빙하기에 살고 있다(더그 맥두걸 지음, 조혜진 옮김, 말글빛냄 펴냄) 45억년에 달하는 지구역사에서 빙하기가 언제, 몇번이나 뒤덮었고, 지구의 생명과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고 멸종시켰는지, 빙하기는 인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본다.1만 7000원.●대교약졸-마치 서툰 것처럼 보이는 중국문화(박석 지음, 들녘 펴냄)‘‘도덕경’에 나오는 ‘큰 솜씨는 마치 서툰 것처럼 보인다.’는 뜻의 대교약졸의 관점에서 상고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중국 문화사를 살펴보고, 현대 자본주의 문제점을 찾아 제시한다.2만 1000원.●인디고 서원, 내 청춘의 오아시스(아람샘과 인디고 아이들 지음, 궁리 펴냄) 16년간 부산에서 독서토론 교실인 ‘아람샘 소행성 612호’를 운영하면서 아이들의 문화공간인 ‘인디고 아이들’과 ‘인디고 서점’을 운영해온 허아람씨와 아이들의 책 읽기 이야기를 담았다.1만 8000원.●전복적 스피노자(안토니오 네그리 지음, 이기웅 옮김, 그린비 펴냄) 과거 ‘범신론’에만 주목했던 스피노자 연구에서 벗어나 그의 인식론·존재론·정치철학 모두에 주목하는 ‘스피노자 르네상스’ 관점에서 스피노자 철학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현재의 문제로 끌어들인다.1만 4900원.●성경과 코란(오아힘 그닐카 지음, 오희천 옮김, 중심 펴냄) 모두 구약성서에 뿌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상반되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의 유사성과 차이를 보여줌으로써 서로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1만 5000원.
  • [책꽂이]

    ●멀리서 오는 것들(오정국 지음, 세계사 펴냄)198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의 네번째 시집. 현실과 이상향 사이에서 ‘존재론적 결핍’을 노래했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운명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눈물겨운 흔적들을 담았다. 서울신문 기자, 문화일보 문화부장을 거쳐 현재 한서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6000원.●앙드레 지드, 도스토예프스키를 말하다(앙드레 지드 지음, 강민정 옮김, 고려문화사 펴냄)‘좁은 문’‘지상의 양식’ 등의 명저를 남긴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지드가 도스토예프스키 탄생 100주년을 맞아 비유 콜롱비에 극장에서 행한 여섯 번의 강연을 묶은 책. 지드가 경외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인간적 면모와 사상적 위대함을 엿볼 수 있다.9500원.●화담명월(최학 지음, 나남출판 펴냄)화담 서경덕과 기생 황진이의 진솔한 사랑을 그린 역사소설. 조선시대 기(氣)철학의 완성자인 화담의 생전 이야기와 제자 서기와 화담의 둘째부인이 풀어놓는 이야기 등 두개의 다른 시간대로 소설을 끌어간다.8500원.●그늘에 대하여(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고운기 옮김, 눌와 펴냄)일본 현대문학에서 탐미주의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다니자키의 산문집.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수필 ‘그늘에 대하여’를 비롯해 남녀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담은 ‘연애와 색정’, 화장실 문학인 ‘뒷간’ 등 6편을 묶었다.1만 2000원.●다음 생에(마르크 레비 지음, 조용희 옮김, 문학동네 펴냄)19세기 러시아 화가 블라디미르 라드스킨의 유작으로 추정되는 명화 ‘붉은 옷을 입은 젊은 여인’에 얽힌 사연을 중심으로 치열한 암투와 가슴아픈 러브스토리가 펼쳐진다. 프랑스에서 ‘다빈치 코드’를 제치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9500원.●최후의 템플 기사단(레이먼드 커리 지음, 한은경 옮김, 김영사 펴냄)13세기말 예루살렘의 템플기사단은 적들에게 성지를 빼앗길 위험에 처하자 종단의 보물을 들고 항해를 떠난다. 바티칸의 비밀을 둘러싼 역사스릴러. 전 2권, 각 권 8900원.
  • 니들이 ‘크리스마스캐럴’을 알아?

    니들이 ‘크리스마스캐럴’을 알아?

    발레 ‘호두까기인형’과 더불어 이맘때 가장 사랑받는 공연중 하나가 찰스 디킨스 원작의 뮤지컬 ‘크리스마스캐럴’이다. 올해는 서울예술단의 ‘크리스마스캐롤’과 탤런트 신구가 출연하는 ‘크리스마스캐럴’이 맞대결을 벌인다.서울예술단의 ‘크리스마스캐럴’(17∼19일 광양백운아트홀,23∼30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은 2003·2004년에 이은 세번째 무대로,19세기 런던을 완벽하게 재현한 무대세트와 체코 작곡가 데니악 바르탁의 아름다운 선율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스쿠루지역에 송용태와 박석용이 번갈아 출연하고, 시각장애1급인 윤선혜양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팀’역으로 무대에 선다.(02)523-0984. 탤런트 신구의 첫 뮤지컬 출연작인 신구의 ‘크리스마스캐럴’은 우리 귀에 익숙한 캐럴 송을 활용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마당놀이 형식이다. 매직쇼와 코미디를 가미해 온가족을 위한 무대로 만들었다.(02)3448-2285.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씨줄날줄] 볼리바르 혁명/이목희 논설위원

    19세기 초 남미대륙에는 스페인 식민통치에 대항하는 두 영웅이 있었다. 북쪽으로부터 스페인 군대를 격파하고 내려온 시몬 볼리바르와 남쪽에서 치고 올라온 산 마르틴.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를 독립시켰고, 산 마르틴은 아르헨티나·칠레·파라과이를 해방시켰다. 두 영웅은 과야킬이란 곳에서 운명의 만남을 갖는다. 독립쟁취란 궁극 목표는 같았으나 각론에서 두 사람의 견해는 갈렸다. 산 마르틴은 스페인과 협상을 통해 희생자를 줄이려 했고, 군주제를 선호했다. 볼리바르는 더 급진적이었다. 계몽사상에 심취한 그는 공화제 도입을 주장했다. 볼리바르는 특히 라틴아메리카의 통합을 희망했다. 먼저 독립한 미국이 연방제를 통해 북미대륙을 묶고 있는데, 남미가 갈라지면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논지를 폈다. 산 마르틴은 볼리바르에게 남미 독립전쟁의 주도권을 내주고 깨끗이 물러선다. 그러나 볼리바르의 남미 통합론 역시 실패로 끝난다. 미국과 유럽의 방해와 독립세력의 분열 때문이었다. 남미통합을 주장하는 우고 차베스가 1999년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볼리바르의 꿈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차베스는 국호까지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으로 바꿨다. 차베스는 반대파의 공세와 미국의 공작으로 여러 차례 축출위기에 몰렸으나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지난 4일 실시된 총선에서 압승, 사실상 1당체제를 구축했다. 앞으로 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을 노릴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차베스의 주장은 남미가 단결해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21세기형 사회주의 모델’을 내세우기도 한다. 브라질을 비롯, 남미 곳곳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그들은 실용적 신자유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 볼리바르와 산 마르틴의 투쟁방법 차이가 재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 밀착해 실익을 챙기려는 멕시코, 거리를 두되 신자유주의를 일정부분 수용한 브라질·아르헨티나, 반미·반신자유주의 기치를 강화하는 베네수엘라. 누가 국민을 배부르게 할 수 있을까. 차베스도 유가가 올라 국민경제가 좋았을 때 지지율이 높았고, 경제가 나빠지면 정치위기를 맞곤 했다. 차베스가 볼리바르의 유업을 이어갈지, 국제 돈키호테로 끝날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무슨영화볼까]

    ■ 나의 결혼원정기 장 르/등급 드라마/12세 감독/배우 황병국/정재영·수애·유준상 줄거리 38세 시골 노총각, 신부감 찾으려고 우즈베키스탄 가다. 20자평 정재영의 무시무시한(?) 연기력, 수애와 유준상의 기막힌 호흡. 오락성 ○ 작품성 △ ■ 저스트 라이크 헤븐 장 르/등급 로맨틱 코미디/15세 감독/배우 마이크 S. 워터스/리즈 위더스푼·마크 러팔로 줄거리 여자의 영혼과 사랑에 빠진 남자, 그 눈물겨운 사랑쟁취기. 20자평 샌프란시스코 야경만으로도 본전 생각은 안 나겠지만, 해피엔딩의 빤한 결말은 글쎄… 오락성 ○ 작품성 △ ■ 6월의 일기 장 르/등급 스릴러/15세 감독/배우 임경수/신은경·문정혁·김윤진 줄거리 학원 연쇄살인의 진실을 파헤치는 남녀 짝패 형사의 이야기. 20자평 ‘왕따’소재를 스릴러 장르로 끌어안은 참신한 시도, 신은경의 완숙미 풍기는 연기력. 오락성 △ 작품성 △ ■ 해리포터와 불의 잔 장 르/등급 팬터지/12세 감독/배우 마이크 뉴웰/다니엘 래드클리프·엠마 왓슨 줄거리 ‘불의 잔’ 지목을 받은 해리 포터가 트리위저드 대회에 출전, 악의 축 볼드모트와 대결. 20자평 새 감독, 새 스토리, 강해진 스케일과 화려한 비주얼, 한층 업그레이드된 재미요소들. 오락성 ○ 작품성 ○ ■ 광식이 동생 광태 장 르/등급 코믹·멜로/15세 감독/배우 김현석/김주혁·봉태규·이요원·김아중 줄거리 ‘소심남’ 광식과 ‘작업맨’ 동생 광태의 극과극 사랑방정식. 20자평 핑크빛 환상이 아닌 현실적 캐릭터·상황전개에 공감이 절로. 오락성 ○ 작품성 △ ■ 그림형제 장 르/등급 액션 팬터지/15세 감독/배우 테리 길리암/맷 데이먼·모니카 벨루치 줄거리 19세기 독일 동화작가 그림형제의 젊은 시절 이야기. 20자평 스타 감독과 배우 등 훌륭한 재료와 양념들로 왜 맛깔난 요리가 안 나오는 거야? 오락성 ○ 작품성 △ ■ 미스터 소크라테스 장 르/등급 액션/18세 감독/배우 최진원/김래원·강신일·이종혁 줄거리 한 청년이 조폭의 필요에 의해 강력계 형사로 경찰에 위장 잠입하며 벌이는 에피소드. 20자평 ‘꼴통’ 형사 구동혁의 캐릭터, 스토리 전개과정에 흡인력. 풍성한 에피소드 오락성 ○ 작품성 △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7) 정치적 예언의 집대성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7) 정치적 예언의 집대성 ‘정감록’

    한국에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정치적 예언이 있었다. 그것은 주제에 따라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풍수설에 입각해 새 왕조가 일어난다는 내용이 있었는가 하면, 미륵불이 지상에 내려와 이상세계가 열린다는 예언도 있었다.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 서로 교대할 거라는 주장도 있었다. 다종다양한 예언이 역사상 한꺼번에 존재한 적은 오히려 드물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씩 나타나기도 하였고, 서로 다른 종류의 예언이 혼합되기도 했다. 역사상 존재한 한국의 정치적 예언서는 실개천들에 비유된다.‘정감록’은 그 냇물들이 한데 모여들어 이뤄낸 호수라고 볼 수 있다.18세기 전반, 조선 영조 때 역사의 무대 위로 처음으로 등장한 ‘정감록’은 지난 200∼300년 동안 더욱 내용이 풍부해졌다. 이제 ‘정감록’은 민간에 유행하는 예언서를 모두 일컫는 일반명사가 되어 있다. ‘정감록’의 핵심은 정감과 이심 및 이연 등 3인의 대화다. 이를 ‘감결’이라고도 하는데 이본이 많다. 길이가 가장 짧은 한글 본은 약 2430자, 가장 긴 한문본은 6030여자나 된다.‘정감록’에는 ‘감결’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예언서가 속해 있다.‘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秘記)’,‘화악노정기(華岳路程記)’,‘구궁변수법(九宮變數法)’,‘동국역대본궁음양결(東國歷代本宮陰陽訣)’,‘무학비결(無學秘訣)’,‘도선비결(道詵秘訣)’,‘남사고비결(南師古秘訣)’,‘징비기(徵秘記)’,‘토정가장비결(土亭家藏秘訣)’,‘경주이선생가장결(慶州李先生家藏訣)’,‘삼도봉시(三道峰詩)’,‘옥룡자기(玉龍子記)’ 등이 그것이다. ‘정감록’이 예언서의 집성이 되는 이유는 말 그대로 한국 역사상 등장했던 모든 예언서가 그 이름 아래 묶였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진짜 이유는 여러 예언서에서 탐지되는 중요한 특징이 모두 ‘정감록’에 살아있어서다. ●삼국통일 무렵 예언이 문자로 처음 기록돼 삼국시대 초기에는 예언서라고 일컬을 만한 것이 아직 하나도 없었다. 문자로 기록된 예언서가 출현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쳤다. 처음에는 성스러운 왕의 탄생을 알리는 신기한 전설이 있었을 따름이다.‘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탄생설화를 비롯해 신라의 탈해왕과 김알지, 가야의 김수로왕의 등극을 알리는 설화가 나온다. 이처럼 위인의 탄생을 예감하게 하는 자연현상이나 태몽 등은 고대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에는 물론이고, 서양 고대의 문헌에도 보인다. 이웃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대 한국인들은 이상한 동물의 출현과 예외적인 천문현상 및 자연계의 이변을 정치적 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삼국사기’ 등에는 이에 관한 기록이 수백 군데나 있다. 고대 한국에는 국가의 위기를 미리 알려주는 자명고 같은 물건이 있었다고도 한다. 신라에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란 신기한 피리도 있어, 불기만 하면 적군이 저절로 물러나고 질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정치적 예언이 문자로 처음 기록된 것은 삼국시대 말인 7세기 후반이다.“백제는 달 바퀴와(月輪)와 같고 신라는 초승달(月新)과 같다.” 백제는 망하고 신라는 흥하리란 정치적 예언인데, 이런 내용이 거북 등에 적힌 채 백제의 왕궁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 짤막한 문장은 한국 최초의 정치적 예언서였다. 이것이 발견되고 얼마 안 돼서 이번엔 고구려의 멸망을 예고하는 ‘고려비기’가 발견되었다. 요컨대 신라의 삼국통일을 전후해 정치적 예언이 문자로 정착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구두로만 전해오던 예언이 글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것은 외래문자인 한자가 통치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최초의 예언서는 길이가 극히 짧고 시적이었으며 비유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신라말 최치원이 썼다고 하는 예언서 역시 그랬다. 그는 “계림은 누런 이파리요 곡령(송악)은 푸른 소나무”라는 시구를 고려 태조에게 보냈다고 하는데, 비유법이 눈길을 끈다. 이와 같은 특징이 10세기 초 철원에서 나온 ‘고경참’에서도 재차 확인된다. 140여자로 구성된 ‘고경참’은 왕건이 궁예를 꺾고 개성에 새 나라를 세우게 된다고 했다. 고려는 12대 360년간 유지된다고 예언되었다. 이 예언서는 단군신화나 주몽설화를 연상시키는 대목도 없지 않다. 그러나 왕건 같은 ‘성인’이 결국 최종적인 승자가 되리라고 예언한 점에서 ‘정감록’의 원형이다. 고려의 국운을 처음부터 끝까지 개관한 점에서도 ‘정감록’의 선구가 된다. ●풍수지리설 고려시대에 접어들어 풍수지리설이 유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의 장래를 예언한 글이 많이 등장했다. 풍수설은 ‘정감록’의 경우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는다. 미래의 수도를 계룡산, 가야산, 전주 및 개성으로 예언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풍수설에 기초한 것이다. 아울러 십승지설을 비롯해 전국의 길지를 따져본 것도 풍수설의 영향이다. 풍수설을 대표하는 고려의 예언서로는 도선(道詵·827∼898)의 저술로 알려진 몇 가지가 있다. 아울러 ‘신지비사(神誌秘詞)’라고 하는 것이 또 있다.‘신지비사’는 고조선의 예언가 신지가 저술했다고 하는데, 후대에 조작된 것이 틀림없다. 도선의 저술이라고 알려진 예언서들도 위작일 가능성이 결코 적지 않다. 두말할 나위 없이 도선은 풍수설의 대가였다. 다만 고려태조와 가까운 사이였음을 직접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렵다. 태조와 긴밀했던 것은 그의 제자 경보(慶甫·868∼948)였고, 그로 인해 역사책에는 도선과 고려 왕실의 관계가 과장되었다. 11세기 중엽, 고려 문종 때부터 이른바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이 널리 유행했다. 땅 기운은 일정하지 않아 때로 약해지나 적절한 방법을 쓰면 다시 회복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 이론을 토대로 수도 이전 논의가 활발했다. 처음에는 평양이 길지로 각광을 받았지만,13세기 고종 때부터 한양이 길지로 떠올랐다.14세기에는 한양천도가 기정사실로 취급될 정도였다. 결국 고려를 멸망시킨 이성계는 한양을 새 수도로 삼았다. 한양 천도론은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그 당시 천도론을 이끈 예언서는 도선의 저술이라 하는 ‘도선비기(道詵秘記)’,‘송악명당기(松岳明堂記)’,‘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 등이었다. 앞서 말한 ‘신지비사’는 논쟁에서 보조기능을 담당하였다. 아직 예언서 형태로 자리매김된 것은 아니나 7세기 후반 고구려에서도 풍수설이 위력을 발휘한 적이 있다. 당나라가 파견한 도사(道士)들이 풍수설을 이용해 고구려의 국운을 연장시키겠다며 소란을 피웠다. 도사들은 평양에 새로 성을 쌓거나 바위를 부숨으로써 고구려의 국운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고구려에 수입된 풍수설은 점차 부동의 위치를 확립했고, 도선과 그 제자들의 손을 거쳐 고려 이후 줄곧 예언서의 중심 사상이 되었다.‘정감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천 후천설 고려 때는 점성술에 입각한 예언서도 유행했다. 고려 인종이 즐겨 인용한 ‘고현유훈(古賢遺訓)’을 이같은 예로 들 수 있다. 거기에는 머지않아 역사의 새 출발이 가능하다고 했다.‘정감록’에 암시된 선천과 후천의 교대설은 그 싹이 바로 ‘고현유훈’에 있었다.‘고현’이란 옛날의 현인 즉, 과거의 뛰어난 예언가다. 여기서 말하는 ‘고현’은 특히 천문과 역법에 밝았던 사람이다. 책에는 이렇게 주장돼 있다 한다.“천지가 생긴 지 수만 년이 지나면 동지(冬至)가 갑자일이 되는 때를 만나리라. 그때가 되면 해와 달 그리고 (수 화 목 금 토) 다섯별이 모두 정북(正北)에 모여들 것이다. 이를 상원(上元)으로 삼고, 이 날로 달력의 기원을 삼아야 된다. 이때 천지가 열리고 성인(聖人)의 도가 행해질 것이다.” 당시 인종은 묘청과 백수한 등 예언전문가들에게 정치를 전적으로 의지하다시피 했다. 왕은 묘청의 권유로 ‘고현유훈’을 읽어 보았음 직한데 특정한 날이 되면 역사의 무대가 새로 펼쳐져 이상정치가 가능하리란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물론 터무니없는 망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천체의 운행을 인간사회의 변화에 직결시킨 점에서 동양 고대의 우주관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런 관념은 19세기말까지도 민간에 널리 통했다. ‘고현유훈’의 기초가 되는 점성술은 운수설과 결합되기도 한다. 그 결과, 한국역사에는 아홉 번에 걸쳐 새 왕조가 등장한다는 취지가 담긴 예언서도 나왔다. 조선 초기 식자층이 읽은 ‘구변진단지도(九變震檀之圖)’가 그런 식의 책이다.‘정감록’에도 역대 왕조의 운수가 밝혀져 있고, 계룡산시대 이후의 도읍지가 예언돼 있다. 그와 동시에, 머지않아 선천이 끝나고 후천 이상세계가 펼쳐지리라는 꿈이 깃들어 있다. ●미륵하생설 선천 후천설을 불교적인 입장에서 편 것이 미륵하생설(彌勒下生說)이다. 미륵이 이 세상에 내려와 이상세계를 연다는 믿음이 한국에는 널리 유행했다. 스스로를 미륵의 화신으로 간주한 사람도 여럿이었다. 이미 죽은 지 천년도 더 된 궁예를 일부 지방에서는 여전히 미륵불로 믿는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 포천시 구읍리 반월성터에 있는 궁예 미륵상이나 경기도 안성시의 국사봉에도 궁예 미륵은 민간의 신앙 대상이다. 고려 말에 경상도 고성 출신 이금은 스스로 미륵이라 주장했다. 그는 다가올 미륵 세상의 모습을,“내가 조화를 부리면 풀에서 파란 꽃이 피며 나무에 곡식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씨앗을 뿌려서 두 번 거두게 되리라.”고 묘사하였다. 수고를 들이지 않고서도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고 예언한 점에서 그의 설명은 ‘미륵하생경’의 내용과 일치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금을 따랐다 한다. 이금을 추종하는 신앙 집단은 우선 규모가 컸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부 고위관리들까지 신도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국가의 탄압을 받아 이금 일파가 송두리째 제거되었다. 그 뒤에도 자칭 미륵불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고려 우왕 때 개성에서 미륵불을 일컫는 승려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진짜 미륵불로 믿고 쌀과 베를 앞다퉈 바쳤다. 사노(私奴) 무적도 미륵불의 화신이라 주장하다 관헌에 체포되어 목숨을 잃었다. 14세기 후반 고려는 거듭된 왜구의 침입과 정치 불안정으로 인해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 때문에 말세 의식이 만연해, 어서 미륵불이 내려와 이상세계를 펼치기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자칭 미륵이 속속 등장했다.17세기 후반 조선 숙종 때 승려 여환은 미륵을 자처하며 무리를 모아 조선왕조를 전복시키려 했다. 사전준비가 미흡했던 탓에 그의 무모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여환은 추종자 11명과 함께 사형을 당했다. 여환이 사라진 뒤에도 미륵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영조39년(1763) 10월2일자 ‘실록’을 보더라도,“지난번 황해도에서 미륵불이라고 일컫는 자가 있었기에 어사(御史)를 보내 법으로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다.19세기 말 증산교를 창립한 강일순(姜一淳·1871∼1909)은 자신을 천자 미륵이라고 일컬었다. 임종 때 그는 말하기를,“나는 미륵이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 미륵불을 보라.”고까지 했다. 자칭 미륵불들은 다들 그 나름으로 예언을 일삼았는데, 강일순은 다가올 미륵세상을 이렇게 설명하였다.“세상 사람이 하늘에 올라가고 밤과 낮이 막힘없이 환하게 통하고 100가지 곡식을 오래도록 거두어들이고 만 가지 과일이 굵고 크며 풍성한 음식이 저절로 생기고 아름다운 옷이 스스로 이른다.” 이러한 견해는 ‘미륵하생경’과 대체로 일치한다. 미륵이 세상에 내려오기를 바라고 믿는 미륵하생신앙은 고대 중국과 티베트를 비롯해 동양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한국인들은 금강산을 법기도량(法起道場)으로 믿어, 내세불인 미륵불이 반드시 한국에 출현하리라는 기대가 컸다. 예부터 예언서나 도참(圖讖) 또는 노래를 빌려 이 점이 늘 강조됐다. 자연히 ‘정감록’에도 미륵신앙이 깊이 스며들어 불법이 다시 부흥하리라는 예언을 낳았다. ●정성진인 또는 해도진인설 조선후기 예언서에서 미륵은 진인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때로 진인은 미륵세상을 맞이할 세속군주 전륜성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승려 여환 사건 때도 이미 ‘정성인(鄭聖人)’이 등장한다.18세기부터는 각종 반란이나 대규모 민란 때마다 ‘진인(眞人)’이 거의 늘 등장했다. 이지서의 괘서 사건에서도 그랬고,19세기 초 서북인의 차별에 항거해 들고 일어선 홍경래의 난 때도 진인이 언급됐다. 진인은 ‘정감록’에도 큰 발자국을 남겼다. 새 세상을 열 미래의 왕이 다름 아닌 ‘정성진인(鄭姓眞人)’이거나 ‘해도진인(海島眞人)’이었다. 그 성씨가 정이고, 그가 세상에 나오기 전 섬에 숨어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정감록’을 가탁한 민중운동은 갈수록 증가했다. 심지어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여러 민란이나 그때 창궐했던 화적들은 “이재궁궁(利在弓弓·이로움이 궁궁에 있다)”을 구호삼아 외치는 형편이었다. 도적의 우두머리도 진인을 자처하였다. 진인의 시대가 열리고 보니, 그의 사주(四柱)까지 조작되었다. 진인은 기사년 무진월 기사일 무진시에 태어난다. 그의 사주는 뱀이 변하여 용(龍)이 되는 것이라 크게 길하다 했다. ●‘정감록’의 질적 변화 조선후기부터 ‘정감록’에 약속된 새 날의 도래를 믿고 많은 사람들은 고향을 등졌다. 그들은 곧 진인이 섬에서 나와 계룡산에 천도할 줄로 철석같이 믿고 가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정감록’ 신앙의 영향 아래 여러 신종교가 출범했다. 동학, 증산교 및 원불교가 그 대표적인 것이지만 개중에는 민중의 금전과 노동력을 갈취하려는 사교 집단도 비일비재했다. 사교 집단은 ‘정감록’을 빙자해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일부 신종교에서는 ‘정감록’ 해석에 차원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정성진인이 오기만 기다리며 계룡산에 들어가 아무 일도 안 하고 지내는 ‘정감록’ 신앙을 혹독하게 비판했다.“계룡산에 정씨 왕이 난다는 것은 닭이 울면 날이 새고 바른 법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원불교의 개조(開祖) 소태산 대종사의 말이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정성진인은 실상 정법(正法)일 뿐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소태산은 앞서 도적들이 되뇌던 ‘정감록’의 한 구절 “이재궁궁”에 대해서도 색다른 의견을 내놓는다.“세상에는 구구한 해석이 많이 있으나 글자 그대로 궁궁은 무극(無極) 곧 일원(一圓)이 되고 을을은 태극이 되나니 도덕의 본원을 밝힘이라. 이러한 원만한 도덕을 실천하여 남과 다투지 않고 살면 이로운 것이 많다는 뜻이다.” 한국 역사상 숱하게 많았던 예언서들이 ‘정감록’ 호수에 이르기까지 그 길은 거칠고 아득했다.‘정감록’이 도달한 종점엔 천만다행으로 살벌한 투쟁이 아닌 상생(相生)이 웃으며 우리를 기다린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무슨영화 볼까]

    ■ 미스터 소크라테스 장르/등급 액션/18세 감독/배우 최진원/김래원·강신일·이종혁 줄거리 한 청년이 조폭의 필요에 의해 강력계 형사로 경찰에 위장 잠입하며 벌이는 에피소드. 20자평 스토리 전개의 흡인력에서나 에피소드의 풍부함이 돋보여. 오락성 ○ 작품성 △ ■ 도쿄타워 장르/등급 멜로/18세 감독/배우 미나모토 다카시/오카다 준이치·마쓰모토 준 줄거리 스물한살의 대학생과 마흔한살 유부녀의 금지된, 그러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20자평 감각적인 너무나 감각적인 화면. 지나친 기교의 감수성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수도. 오락성 △ 작품성 △ ■ 그림형제 장르/등급 액션·팬터지/15세 감독/배우 테리 길리암/맷 데이먼·모니카 벨루치 줄거리 19세기 독일 동화작가 그림형제의 젊은 시절 이야기. 20자평 스타 감독과 배우 등 훌륭한 재료와 양념이건만 왜 맛깔난 요리가 안 나오는 거야? 오락성 ○ 작품성 △ ■ 광식이 동생 광태 장르/등급 코믹·멜로/15세 감독/배우 김현석/김주혁·봉태규·이요원·김아중 줄거리 ‘소심남’ 광식과 ‘작업맨’ 동생 광태의 극과극 사랑방정식. 20자평 핑크빛 환상이 아닌 현실적 캐릭터·상황전개에 공감이 절로. 오락성 ○ 작품성△ ■ 나의 결혼원정기 장르/등급 드라마/12세 감독/배우 황병국/정재영·수애·유준상 줄거리 38세 시골 노총각, 신부감 찾으려고 우즈베키스탄 가다. 20자평 정재영의 무시무시한(?) 연기력, 수애와 유준상의 기막힌 호흡. 오락성 ○ 작품성 △ ■ 레알 장르/등급 드라마/전체 감독/배우 보르하 만소/베컴·제시카 볼·호나우두 줄거리 레알 마드리드 구단의 역사적 경기 하이라이트, 스타플레이어들의 경기장 밖 이야기. 20자평 눈이 핑글핑글 돌게 화려한 출연진, 정신없이 산만한 구성. 오락성 △ 작품성 △ ■ 이터널 선샤인 장르/등급 드라마/15세 감독/배우 미셸 공드리/짐 캐리·케이트 윈즐릿 줄거리 헤어진 연인에 대한 기억을 컴퓨터로 삭제하는 과정에서 찾는 참사랑의 의미. 20자평 헤어진 연인에 대한 기억을 컴퓨터로 삭제하는 과정에서 찾는 참사랑의 의미. 오락성 △ 작품성 ○
  • 돌아온 해리포터 스케일이 커졌다

    돌아온 해리포터 스케일이 커졌다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세 친구가 돌아왔다. 네번째 ‘해리 포터’ 시리즈인 ‘해리 포터와 불의 잔’(Harry Potter And The Goblet Of Fire, 제작·배급 워너브러더스)이 영화로 만들어져 새달 1일 국내 개봉된다. 이번 작품은 ‘불의 잔’의 지목을 받은 해리 포터가 세 개의 마법 명문 학교가 벌이는 트리위저드 대회에 출전, 부활한 악의 축 볼드모트와 대결하게 되는 이야기. 새로운 감독과 스토리, 훨씬 웅장해진 스케일과 화려한 비주얼, 강력해진 서스펜스와 액션, 게다가 풋풋한 로맨스 등 차별화된 상상력으로 전편들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재미를 선사한다. 마이크 뉴웰 감독과 ‘헤르미온느’ 역의 에마 왓슨, 해리 포터의 첫사랑 ‘초 챙’ 역의 케이티 렁 등 주요 출연진은 개봉에 앞서 18일 오후 일본 도쿄 인터내셔널 포럼과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회견장에는 한국·일본·홍콩 등 600여명의 아시아 취재진들이 대거 몰려 영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이번 작품속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훌쩍 커버린 주인공들의 모습. 성숙미가 물씬 풍기는, 몸에 착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고 등장해 시선을 모은 에마 왓슨은 “10살에 1편을 시작으로 현재 15살이 됐다.”면서 “신체적 변화뿐 아니라 많은 체험과 폭 넓은 인간관계 등 영화 찍는 과정 속에서 정신적으로도 부쩍 성장했다.”며 미소지었다. 다른 영화 촬영 관계로 참석지 못한 ‘해리 포터’ 다니엘 레드클리프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저를 비롯한 친구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여성과의 데이트 등 이성관계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모습이 처음으로 영화 속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영화와 함께 성장하며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많을 것 같다.”고 운을 떼자 에마 왓슨이 고개를 끄덕인다.“또래들처럼 학교 생활도 못하고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줄었죠. 하지만 재능 있는 배우·감독 등 제작진을 만나고, 수많은 팬과도 호흡할 수 있어 계산해보면 훨씬 얻은게 많아요.(웃음)” 극중 해리 포터가 겪는 성장통만큼이나 영화도 변화를 겪었다. 스토리 얼개는 훨씬 더 복잡해졌고,3편보다 1000만달러나 많은 미화 1억4000만달러(약 1400억원)가 제작비로 들어가는 등 규모도 커졌다. 특히 아기자기한 에피소드 대신 마법대회라는 굵직한 사건이 이야기 전개의 중심축.5000여명의 지원자 가운데 뽑힌 중국계 여배우 케이티 렁을 비롯해 영국·프랑스·불가리아 출신 등 신선한 마스크도 즐비하다. 그 때문일까, 전작의 밝은 파스텔 톤도 어두운 색채의 다소 음울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마이크 뉴웰 감독에게 “전편과의 규모 차이와 차별성, 특히 평소 연출 스타일과 다른 팬터지물인데 촬영중 어려운 점이 없었냐?”고 묻자, 그의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이 영화는 팬터지물이 아니라 리얼리티 영화예요. 대안적인 세계지만, 팬터지가 아니고 또다른 현실의 세계지요. 마법보다는 인간적 요소를 더 많이 담으려 했어요.” 수십만 좌석이 수직으로 배치된 초대형 원형 축구장, 살아 움직이는 미로 숲 등 기발한 상상력이 영화 내내 시신경을 자극한다. 특히 ‘암흑의 호수’에 등장하는 기와 지붕을 지닌 구조물 등 동양풍을 느끼게 하는 비주얼들도 이색적이다. 뉴웰 감독은 “영화속 배경인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영국 등 유럽이 동양에 대한 동경심이 컸던 상황을 비주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 도쿄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日행정구역 통합 학산시 현장탐방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日행정구역 통합 학산시 현장탐방

    일본 고이즈미 정부의 주요 개혁과제인 시(市)·정(町)·촌(村) 합병작업인 ‘헤이세이(일본의 연호) 대합병’이 진행 중이다.1999년 3232개이던 기초자치단체는 내년 3월 1821개로 대폭 줄어든다. 총무성은 대통합의 잘잘못을 내년 3월까지 검증, 합병 후의 문제점을 줄여가겠다는 구상이다. 합병 작업이 진행중인 이시가와현 학산(白山)시를 찾았다. |학산(이시가와현) 이춘규특파원|도쿄 서북쪽, 동해안 연안의 이시가와현 학산시는 지난 2월 1시,2정,5촌이 합병해 탄생했다. 이시가와현 최대의 면적에 인구는 11만명이 됐다. 합병 뒤 선거를 통해 새 통합시장이 탄생했고, 각 시·정·촌 의회는 해산, 시 의회로 통합됐다. 격변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는 셈이다. ●변화의 칼바람 맞은 상층부 합병에 따른 변화는 격렬하다. 우선 8개 자치단체장 중 시라미네 촌장 등 7명은 자리를 잃고, 맛토 시장이었던 통합 학산시 카도 미쓰오(74) 시장만이 기초단체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부단체장도 8명에서 1명으로 줄었고, 교육장과 회계·재정담당자도 역시 8명에서 1명으로 축소됐다고 기타노 고이치 학산시 총무부장이 설명했다. 지역사회 상층부 32명 중 28명이 대통합으로 인해 졸지에 자리를 잃은 것이다. 지역유지들인 의회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시·정·촌 의회 8곳의 의원들은 합해서 100명 정도였다. 카도 시장은 “숫자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의견도 있었다.”면서도 “그러나 단체장, 부단체장 등이 크게 줄었는데 안줄일 수 없다고 판단,35명으로 대폭 줄였다.”고 설명했다. ●대통합의 바람은 이제 시작일 뿐 하지만 군살빼기는 시작일 뿐이다. 시의회 의원 정수는 차기 선거 때 28명으로 준다. 이처럼 인건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상층부만 줄여도 예산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시관계자들의 설명이다. 8개 시·정·촌 소속 직원들은 한개 시의 직원이 됐지만 아직까지 1040명의 정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카도 시장은 “10년에 걸쳐서 직원을 200명(20%) 정도 줄이겠다. 인위적인 조기퇴직보다는 채용 인원을 3분의 1, 혹은 5분의 1로 해서 줄이겠다.”고 밝혔다. ●새로운 학산시, 자력갱생 목표 일본 정부는 합병 작업이 지지부진하자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들었다. 재정적인 압박과 지원을 병행한 것이다. 덩치를 줄이는 자치단체는 중앙정부가 재정 지원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깍겠다고 선언, 대부분이 통합대열에 끼었다. 학산시도 마찬가지다. 학산시는 8개 시·정·촌이 기존의 이름을 모두 버리고 일본의 3대 명산 중 하나인 학산 자락에 위치한 점을 살려,‘학산시’로 태어났다. 지명도를 높여 관광과 공업, 농업으로 자립하겠다는 의지였다. 학산시도 통합에 따라 중앙정부에서 10년간 450억엔(약 4000억원)의 특별지원을 받을 자격이 생겼다. 그 중에서도 70%는 중앙정부의 직접 지원금이다. 하지만 카도 시장은 “중앙정부 지원은 빚일 뿐이다. 따라서 100억엔 정도만 지원받으려 한다.”고 말했다. ●학산의 관광자원·특산물 알린다 학산시는 우선 명산 학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 수입을 늘릴 예정이다.8개 자치단체에 흩어졌던 축제, 고산식물 등 관광자원을 모아 시너지효과를 노린다. 학산 브랜드의 각종 상품들을 개발, 판매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학산시내 5개의 니혼슈(청주) 회사들은 ‘학산’을 특허 형식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학산이란 상표로 청주 등을 생산, 판매하며 280년,16대째 이어온 고보리주조사 고보리 히로야스 기획실장은 “최고의 청주 생산을 위해 최고의 쌀과 물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학산이란 청주로 고향도 알리고, 세수 증대에도 기여하려는 것이다. 학산 청주는 도쿄, 홋카이도, 가고시마 등 일본 전역에서 유명하고 해외로 수출도 되고 있다. 학산시를 흐르는 테도리가 천은 매년 10월말부터 11월말까지 연어낚시꾼들로 붐빈다.1978년부터 이시가와수산종합센터가 매년 2∼3월 600만∼800만 마리의 연어 치어를 방류, 매년 1만∼2만 마리의 팔뚝만한 연어들이 모천으로 회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1920년대부터 학산에서는 대규모 산사태가 빈발, 이후 첨단의 사방(砂防) 기술을 발달시켰다. 이런 기술은 한국과 타이완, 중국 등지로 전수되는 중이라고 한다. 일제 식민지 시절 학산에서는 사방공사에 동원된 수많은 조선인들이 100㎏ 전후의 바윗덩어리를 나르다 희생된 어두운 역사도 있다. taein@seoul.co.kr ■ 행정구역개편 이렇게 |학산(이시가와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대규모 행정제도개편은 이번이 세번째다.19세기말 메이지정부가 시·정·촌제를 도입하며 농촌위주의 봉건적 행정체계가 사라졌다. 전후 1953년부터 3년간은 역시 시·정·촌 합병인 ‘쇼와대합병’이 이뤄졌고, 이번 합병이 세번째다.47개의 광역단체 수를 대폭 줄여 도·주제(道州制)를 실시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번 대합병의 가장 큰 목적은 악화일로의 재정난 타개다. 시대 흐름에 맞게 통합, 재정지출을 최소화한다는 취지다.50여년 된 현행 제도는 교통망 발달에 따른 생활권광역화에 적합지 않다는 점도 이유다. 이농현상에 따른 농촌·산간지역의 인구 감소도 행정비효율을 초래했다며 통합을 재촉했다. 앞으로 중앙정부는 통합 지자체의 예산과 공무원 수 삭감을 유도하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합병은 지자체 의회의 결의와 주민투표 등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재정적 유인책이 컸고, 일부 강제성도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지방자치를 보장한 헌법에 반한다는 비판도 있고, 환상이란 우려도 있다. 대합병에 따른 명암도 엇갈린다. 새로운 통합자치단체 신청사 등 대규모 공공시설공사가 많아 합병특수가 있다. 주민의식조사, 신도시건설 계획 등 컨설팅업체도 분주하다. 반면 서리를 맞는 곳도 적지 않다. 이미 기초단체장, 부단체장, 교육장 등 많은 지역유지들이 자리를 잃었다. 전국의 정·촌을 회원으로 해 정·촌의 요구를 정부에 전달해 온 ‘전국 정·촌회’도 회원수가 격감, 회비수입이 줄며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전국의 정·촌수는 2003년 4월 2513개였지만 7일 현재는 1395개이다. 대합병이 완료되는 내년 3월말에는 1045개로 줄어들 전망이다. taein@seoul.co.kr ■ 학산시 술도가 오쿠무라부부 |학산(이시가와현) 이춘규특파원|우리나라의 막걸리와 흡사한 도부로쿠(탁주)가 고이즈미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 덕분에 대중주로 부활하고 있다. 여관 ‘시시쿠소’ 주인 오쿠무라 에이지 부부도 대합병과 규제완화 등 개혁 바람의 한복판에서 ‘도부로쿠 특구’를 앞세워 새로운 학산시 알리기에 발벗고 나섰다. ▶도부로쿠 특구는 무엇인가.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술도가에서만 제조하던 도부로쿠를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일반시민도 만들 수 있게 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시작했다. ▶조건은 무엇인가. -숙박시설을 갖춘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고, 자신의 집에서 쌀을 생산해야 한다. 면적 제한은 없다. 냉장보관숙성 시설 등 생산설비도 자격요건이다. 주세법의 제약이 남아 있다. ▶왜 이 동네에 특구가 허가났나. -이 곳은 술이나 미소(일본식 된장), 간장, 미네랄 등 공업이 번성했다. 이런 전통에 따라서 도부로쿠 특구도 허가가 난 것으로 보인다.6주간 연수도 필요했다. ▶학산은 왜 술이 유명한가. -기온의 연·일교차가 크기 때문이다. 청주나 도부로쿠를 발효시키려면 온도 조건이 매우 중요하다. ▶정부나 이시가와현의 지원은 없나. -비품을 시에서 구입한 걸 빌려쓰고 있다. 생산공정도 지원해주고 있다. ▶맛이 궁금하다. -청주와는 전혀 다르다. 알코올 도수는 청주와 비슷하지만 마시기가 쉽다. ▶외부에서 온 손님에게도 파는가. -고객이 와서 사갈 수는 있다. 그러나 내가 직접 들고 가 팔 수는 없다. 숙박손님이 사서 들고 갈 수도 있지만, 택배로 부칠 수는 없다. taein@seoul.co.kr
  • [주말에 뭘 보러갈까]

    연극 ■ 늙은 창녀의 노래 18~12월31일 우림청담시어터.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양희경의 1인극. 꽃다운 스무살 나이에 창녀촌에 흘러들어 20년 세월을 외로운 이들을 가슴에 품으며 살아온 늙은 창녀의 가슴 시린 인생이야기. 송기원 작·위성신 연출.(02)569-0696. ■ 여행 27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친구 장례식장에서 겪게 되는 하룻밤의 여행을 그린 세밀한 일상극. 윤영선 작·이성열 연출, 장성익 이해성 출연.(02)744-7304. ■ 시라노 드 베르쥬락 27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19세기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낭만 희극. 김철리 연출, 최규하 이안나 출연.(02)580-1300. ■ 배꼽아래 이상 무 20일까지 상명아트홀1관. 연극으로 보는 남성질환의 증상과 치료법. 박새봄 작·최성신 연출. 남문철 백지원 출연.(02)762-9190. 뮤지컬 ■ 피핀 18일~내년 1월 15일 충무아트홀 대극장. 브로드웨이의 전설적인 안무가 밥 포시가 만든 1970년대 대표 흥행작. 밥 포시 특유의 관능적인 춤과 아름다운 음악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토니상 연출상, 안무상 등 5개부문 수상작. 서재경 최성원 임춘길 출연.(02)501-7888. ■ 비밀의 정원 12월31일까지 백암아트홀 역대 뮤지컬 명곡들과 명장면들에 새로운 스토리를 입혔다. 남경주 연출, 최정원 출연.(02)501-7888. ■ 헤드윅 무기한 라이브극장. 동독 출신 트랜스젠더 가수의 성 정체성 고민을 강렬한 콘서트 형식으로 풀어낸 록 뮤지컬. 이지나 연출, 송용진 김다현 엄기준 서문탁 출연.1588-7890. ■ 아이 러브 유 무기한 연강홀. 사랑에 관한 스무개의 에피소드를 엮은 로맨틱 뮤지컬. 한진섭 연출, 남경주 이정화 오나라 정상훈 출연.(02)501-7888. ■ 넌센스 잼보리 무기한 충무아트홀소극장. 네명의 수녀님과 한명의 신부님이 펼치는 기상천외한 코믹극. 현경석 연출, 이태원 전수경 출연.(02)766-8551. 미술 ■ 데이비드 아담슨과 그의 친구들 1월 22일까지 성곡미술관. 세계 최고의 디지털 사진인화가인 데이비드 아담슨이 짐 다인, 척 클로스, 로버트 라우센버그, 프랑수아 마리 베니에 등 최고의 거장들과 손잡고 찍은 사진 작품 52점이 선보인다. 사진 인화도 예술임을 확인하는 자리. 내년 1월22일까지.(02)737-7650 ■ 풍수특별전 성신여대 박물관의 소장품과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전통 풍수사상과 접목시킨 전시회. 하늘, 바람, 물, 땅 등을 주제로 조선시대 앙부일구,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전의 목판인쇄본 등이 공개된다. 내년 1월18일까지 서울 성신여대 박물관.(02)920-7715. ■ 중국현대미술특별전 중국의 역량있는 신세대 작가들 25명의 작품을 통해 중국 현대 미술의 흐름을 알아 볼 수 있는 전시. 회화·조소·설치 작품 120점이 전시된다. 다음달 5일까지.(02)542-3004. ■ 건축제 생활의 터전이자 한 나라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인 건축에 대한 참된 의미를 되새기는 전시.23∼27일 서울 코엑스 태평양홀. (02)2016-7121. 클래식 ■ 강동석과 골든앙상블 23,24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을 비롯해 한동일(피아노), 양성원(첼로), 박재홍(바이올린), 김상진(비올라) 등 세계적인 기량의 5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골든 앙상블’의 무대. 브람스의 ‘피아노 5중주’외에도 베토벤 ‘클라리넷 트리오’,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듀오’ 등 다양한 실내악 연주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공연.(02)1588-7890. ■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페레타 시어터 오케스트라 공연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543-1601. ■ 서울시립교향악단 가을 특별 기획 공연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3700-6300. ■ 매튜 발리 첼로 독주회 18일 서울 금호아트홀. (02)6303-1919. ■ 최한원 바이올린 독주회 20일 서울 영산아트홀. (02)586-0945. 어린이 ■ 피아노와 플룻으로 만든 그림연극 27일까지 나루아트센터 소극장. 피아노와 플루트 연주로 구성된 작은 라이브 음악회와 연극이 어우러진 가족극.(02)2235-5730.
  • 그림형제의 숨은 우화찾기 ‘그림형제-마르바덴 숲의 전설’

    그림형제의 숨은 우화찾기 ‘그림형제-마르바덴 숲의 전설’

    17일 개봉하는 영화 ‘그림형제 : 마르바덴 숲의 전설’(The Brothers Grimm)은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헨젤과 그레텔’ 같은 주옥같은 작품을 쓴 19세기 독일 유명 동화 작가 빌헬름 그림과 야코프 그림 형제의 젊은 시절을 팬터지로 풀어낸 작품. 실존 인물을 현실이 아닌 허구적 상상력으로 재창조하고, 동화속 캐릭터를 모티프로 잡아 이야기로 엮어가는 번득이는 재치가 돋보인다. 지원군도 빵빵하다.‘12 몽키즈’,‘피셔 킹’등을 통해 최고의 비주얼리스트 감독으로 평가받는 테리 길리엄이 메가폰을 잡았고, 맷 데이먼(제이크 역)과 히스 레저(윌 역)등 스타 배우가 포진해 무게를 더했다. 여기에 무엇이든 재현해내는 할리우드의 기술이 든든히 뒤를 받친다. 하지만 영화는 훌륭한 재료와 양념들을 갖고도 맛깔난 요리로 버무려내지 못한다. 스펙터클하고 스케일 큰 비주얼은 눈요기하기엔 모자람이 없지만, 다소 지루하고 때로 억지스러운 스토리 전개는 팬터지 특유의 맛을 떨어뜨린다. 영화는 무한한 상상력을 보여주지만, 환상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방향성을 잃고 제자리를 맴돌뿐이다. 그림 형제는 19세기 프랑스가 독일을 지배하던 시절, 시골마을을 떠돌며 사기 행각을 벌이며 돈을 버는 ‘사기꾼 퇴마사’로 그려진다. 가짜 괴물을 퇴치하고 명성을 얻지만, 결국 프랑스 군에 위해 발각돼 처형될 위기에 처한다. 형제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정부의 요구에 따라 아이들이 연이어 없어지는 마법의 숲 ‘마르바덴’으로 보내진다. 이제 형제는 ‘진짜’ 마법을 부리는 전설의 ‘거울여왕’과 맞서 싸워야 한다. 과연 마법을 풀고 아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스크린위에 넘쳐나는 무한한 창조력이 객석으로 온전히 전달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지만,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키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 헨젤과 그레텔, 라푼젤의 긴 머리, 개구리 왕자 등 동화속 주인공을 찾아내는 재미는 쏠쏠하다.15세이상 관람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5)조선 정조 北道 원수 주형채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5)조선 정조 北道 원수 주형채

    정조9년(1785) 봄이었다. 그 무렵 서울에서는 천주교인 수십 명이 오늘날의 명동천주교회를 결성했고, 그것이 문제가 돼 이른바 을사박해가 일어났다. 마침 전국적인 지하조직망을 가진 것으로 조사된 또 한 번의 ‘정감록’ 사건까지 발생해 세상인심이 뒤숭숭했다. 결국 정감록 사건의 주모자 몇은 사형을 받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주형채(朱炯采)라는 평민지식인이 끼어 있었다. 당시 심문 기록에는 주형채에 관한 단편적인 정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실로 구슬을 꿰듯 주워 모아보면 주형채의 일생은 역사상 이름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조선후기의 허다한 평민지식인 또는 술사들의 삶을 대변한다. 더욱이 그들은 체제에 저항한 일부 양반들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했다. 그런 점에서 주형채의 삶은 더욱 관심을 끈다. ●주형채의 ‘범죄행위’ 정감록 사건의 또 다른 주범인 문양해는 동지 주형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함경도 영흥이 고향인데 향악선생(香嶽 속명은 김정 또는 김호)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흉악한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편지에 쓰인 흉악한 구절을 문양해는 자기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며, 예를 든다.“하늘이 내리는 재앙과 시국의 변천이 이와 같으니 이제 진인(眞人)이 마땅히 나와야 할 것이고, 우리들은 사람들을 모아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을 반정(反正)을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향악선생은 이 편지를 상자 속에 깊이 감추어 두었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언젠가 향악선생이 외출한 틈을 타서 평소 호기심이 많았던 문양해는 몰래 편지를 꺼내 보았다고 했다. 문제의 편지가 지리산에 도착한 것은 아마 사건 발생 한 해 전인 정조8년 정월로 짐작되는데, 주형채가 하필 왜 그 시점에 이런 편지를 보내왔는지 문양해는 까닭을 모르겠다고 했다. 주형채가 향악선생과 교제를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이었다. 적어도 사건 발생 15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했다. 주형채는 얼굴 생김이 괴상하고 못났지만 눈빛이 날카롭게 번쩍여 사람을 쏘아보듯 하였다. 주형채와 향악선생 사이에는 오랫동안 편지가 오갔다. 지리산에서 함경도 영흥까지는 근 2000리나 되는 먼 길인데도 서로 소식을 전했던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 편지 심부름을 한 이는 혜준 스님이었다. 혜준은 오래 전 함경도의 어느 사찰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는 주형채와 친해졌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 뒤로도 함경도를 자주 왕래하였다. 사건 당시 혜준은 경상도 하동에 있는 영원사에 몸을 담고 있었다. 향악과 ‘괴이한’ 편지를 주고받은 것 외에도 주형채는 여러 차례 불온 문서를 조작했다고 한다. 그는 “멀리 귀양가는 노래”를 지어 조정의 잘못을 비난하고 민심을 선동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주형채는 아니라고 끝까지 부정했다. 그 노래는 충신이 멀리 귀양 갈 때 지은 시라고 누군가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그저 베껴두었을 뿐, 다른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발뺌이 용이하지 않았다. 주형채는 장차 자기가 왕이 되겠다는 주장을 동지들 앞에서 서슴없이 했던 것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함경도의 평민지식인 주형채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불순세력’과 연합해 조선왕조의 전복을 꾀했다.‘정감록’ 사건을 종결짓는 마지막 확정 판결의 일절은 이랬다.“이율, 양형, 문양해, 홍복영 등 여러 역적들이 반역을 음모해 여러 도에서 거사를 도모하면서 주형채를 북도의 원수로 정하였다. 그들이 서로 왕복하며 주도면밀하게 반역죄를 꾸민 사실은 여러 죄수들의 심문과정에서 샅샅이 드러났다. 대역부도(大逆不道)한 죄인들을 군율에 의거하여 한강 모래밭에서 효시(梟示)하라.”(실록, 정조 9년 3월22일 신미) ●천문과 점술의 대가 주형채 정감록 사건에서 “북도 원수”로 거론된 주형채에게는 사실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그의 이웃사람들은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아리송한 일이 생기면 주형채를 찾아갔다. 주형채의 집은 함경도와 평안도 두 도가 만나는 접경지대에 있어 양도의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주형채는 이를 테면 ‘만물박사’였으며, 여러모로 평민들의 교사역할을 담당했다. 정감록 사건이 발생하기 일년 전인 정조8년 12월 초7일부터 사흘 동안 별자리에 이상이 있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주형채에게 물어왔다. 당시 주형채가 관찰한 바로는 위성(危星), 실성(室星), 벽성(壁星) 앞에 20여 개의 별이 벽을 쌓고 늘어섰었다. 그 가운데 붉은 기운이 있어 상서롭지 못했다. 특히 여러 별 가운데서도 장군성(將軍星)과 태백성(太白星)이 서로 사흘 동안 싸우다 1도(度) 거리로 멀어졌다. 그 때 태백성이 어깨로 장군성을 부딪쳐 여러 번 이겼다 졌다 했는데, 이 모든 것이 흉한 조짐이었다. 주형채는 이같은 현상이 조선이나 중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므로, 해로울 일이 조금도 없다고 주민들을 달랬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난리를 염려해 피란을 고려하고 있었지만 자기가 만류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조정의 심문관들은 주형채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관리들이 보기에 주형채는 민심을 선동해 피란행렬을 조장한 혐의가 짙었다. 실제로 그 무렵 함경도에는 남쪽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정감록’에 예언된 십승지가 모두 남쪽에 있는 관계로, 북도 사람들은 여차하면 남쪽으로 옮길 태세였다. 그들의 상당수는 이미 십승지를 찾아 이동을 시작했다. 주형채와 같은 평민지식인들은 이주운동에 음양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러나 주형채는 관리들의 문제제기를 부정했다.“저는 주민들을 타일렀습니다.‘현명한 임금이 다스리는 시대에 어찌 피란가는 일이 있겠는가´ 라고 말입니다.” 평민 주형채는 본래 고향 사람 장진익에게서 글을 배웠다. 그의 스승은 사건 당시 이미 사망한 지 오래 되어 화를 면했다. 유교의 기본 경전은 물론이고 천문과 점술까지 통달한 주형채는 향악선생과 같은 도사는 물론이고 점술인들과도 친한 사이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주형채는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철저히 함구했다. 모진 고문에도 불구하고,“제게는 제자나 동문생도 전혀 없었으며, 도사나 점술인은 원래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주형채는 의리가 무척 강했던 사람이며, 의지가 대단했다. 그러나 사건을 수사한 조정의 입장에서 보면, 주형채는 대단한 악질이었다.“주형채는 본래 흉악하고 요사스러운 놈으로 천문 역법과 점술, 둔갑술 등 갖은 술수를 써서 백성들을 속이고 인심을 선동하는 것을 일삼았다. 몰래 역적이 될 마음을 먹고 밤낮으로 기회를 엿보았으며, 스스로 ‘대장’이라 떠들기도 하고, 혹은 ‘도원수’라고 칭했다. 더러는 10만의 군사를 모을 수 있다고 했고, 혹은 영흥(永興)의 군사용 창고를 접수하겠다고 하였다. 심지어는 제가 세울 나라의 국호를 제(齊)나라라고까지 했다. 놈은 마음속으로 이것도 작다고 생각했던지 중국 황제를 만나 추천을 받아 자기가 임금이 될 거라고 했다. 또한 꿈의 해몽을 빙자해 신하로서는 감히 꺼낼 수도 없는 말을 멋대로 지껄인 편지가 남아 있다. 지극히 흉악한 죄상이 지금까지 압수된 문서 중에 이미 역력히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은 자기 죄를 한마디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것이 조정의 판단이었다. 평민지식인 주형채의 생각으로는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 때의 부정 불의한 세상이요, 조정이었다. 자기와 자기 동료들은 아무런 죄도 없었다. 따라서 썩어빠진 관리들이나 임금 앞에서 죄를 인정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살점이 떨어지는 혹독한 고문을 묵묵히 견디면서 주형채는 단 한마디도 잘못을 빌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사태의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다. ●주형채가 지하조직에 편입된 계기 ‘정감록’ 역모사건의 소용돌이에 주형채가 휩쓸리게 된 것은 물론 그가 지하조직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그가 지하조직에 가입하게 된 데는 몇 가지 계기가 있었다. 첫째, 주형채는 이 사건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 문양해 일가와 인연이 깊었다. 문양해의 삼촌 문광도는 함경도 문천에서 잠시 감목관(監牧官 목장업무를 담당하는 관리)을 지낸 적이 있었다. 그 때 그곳을 여행하던 주형채가 천문에 관한 일로 문광도와 토론을 벌였고, 이를 계기로 여러 문씨들을 사귀게 되었다. 문씨 일가는 충청도 공주의 평민으로 학식이 뛰어났다. 그들은 홍국영의 가까운 친족 홍낙순이 충청감사가 되었을 때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홍 감사가 충청도 감영(監營)에 계실 때 많은 은혜를 입었고, 감사께서 저희 집에 찾아오셔서 만났습니다.” 문양해의 아버지의 진술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평민 문광도 역시 홍낙순의 후원으로 감목관 벼슬을 얻은 게 틀림없다. 주형채는 이런 문광도와 서로 기맥이 통하게 됨으로써 장차 문양해 및 홍복영(홍낙순의 아들)과 뜻을 같이 하게 되었다. 둘째, 정감록 사건의 또 다른 주역 양형과도 깊이 사귀게 되었다는 점이다. 주형채의 사촌 주형로는 이미 양형을 알고 지냈다. 주형로(일명 주형일)는 사건 당시 충청도 단양에 머물고 있었다. 양형은 주형로를 통해 주형채란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자기 친척 문광도에게서 주형채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전해 듣게 되자 호기심이 발동했다. 양형과 주형채는 서로 연락해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사이는 곧 절친한 관계로 발전했다. 양형은 서울 입동에 사는 중인이었다. 낮은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글재주가 출중했던 그는 서울의 양반 홍복영 및 이율과도 매우 친한 사이였다. 정조 초년, 홍복영은 충청감사로 임명된 아버지 홍낙순을 따라 공주에 내려가 있었다. 그 때 의약에 관한 일로 홍낙순은 고민을 하던 중 양형이 의술에 밝다는 소문을 듣고 불러 상의한 적이 있었다. 양형의 처방이 적중했던지 의술을 매개로 그들은 서로 친해졌다. 홍낙순 일가가 서울로 돌아온 뒤 양형과 홍씨들은 더욱 가까워졌다. 홍복영은 양형의 살림이 어려울 때 도와주기도 했다. 그들은 때때로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나중에 함께 공모해 하동에 지하조직의 거점을 마련했다. 양형과 가까워진 주형채 역시 이 조직에 포섭된 것은 물론이었다. 셋째, 주형채와 홍복영은 끝까지 그 점을 부인했지만, 주형채는 여러 해 전부터 홍복영 일가와 알고 지냈다고 봐야 한다. 홍복영의 삼촌 홍낙빈은 주형채와 친밀해 편지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정조 5년(1781) 세도정치가 홍국영이 실각하자 가까운 친척 홍낙빈도 함경도 갑산으로 유배되었다. 그 때부터 주형채는 홍씨 일가와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그들은 다들 왕조의 전복을 꾀하였다. 위에서 살핀 몇 가지 경로를 통해 주형채는 ‘정감록’ 사건의 주역들과 마음을 합친 것으로 생각된다. 주형채와 양형, 문양해, 홍복영 등이 지하조직을 형성해 나간 과정을 살펴보면 뜻밖에도 두 가지 사실이 부각된다. 하나는 18세기 조선사회에서 중인 또는 평민 지식인들이 끊임없이 지리적으로 이동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주형채처럼 고향을 지키고 사는 경우에도 자주 이웃 지방을 여행해 사교범위를 확장하고 있었다. 둘째, 평민 또는 중인 지식인들은 계층을 뛰어넘어 양반들을 사귀는 데 열심이었고, 양반들 역시 여러 가지 이유로 하층지식인들과 접촉하였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양반들은 같은 신분층에 속하는 식자들만 사귀었을 것으로 짐작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완전히 달랐다. 양반과 평민지식인들은 그것이 비록 평교(平交 평등한 교제)는 아니었다 해도 인생의 다양한 국면에서 서로 만났던 것이다. ●주형채가 속한 전국규모의 지하조직 주형채는 조직의 상층부를 상당히 잘 알고 있었으나 하부구조를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대다수의 조직원들은 지하조직의 일부를 알고 있었을 뿐이다. 이 조직의 전모를 파악하고 있던 지도층 인사는 문양해 정도였다. 문양해는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지하조직의 얼개를 비교적 자세히 설명한 적이 있다. 북도의 원수는 주형채였지만 그 밑에 여러 명의 두목이 활동했다. 함경도 안변에는 조상호와 유덕휘가, 그리고 강원도 통천에는 유경일이 대도독(大都督)이라 불렸다. 고성의 칠송정에 사는 권생만 역시 대도독으로 통했다. 그들은 일단 유사시 지역사령관으로 능력을 발휘할 참이었다. 이들 가운데서도 특히 유경일과 권생만은 지리산의 향악선생과 가끔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문양해는 사건 발생 2년 전에 그들이 향악선생에게 편지를 보낸 사실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밖에 황해도 봉산에 있는 이형윤과 황주에 사는 정몽로도 해서지방의 괴수로 손꼽혔다. 고위간부는 아니었지만 평안도 곽산에 살던 박필현도 이 조직의 일원이었다. 주형채 등의 명단은 지리산 거점에 보관 돼 있던 두루마리에 모두 적혀 있었다 한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서울 사는 양반들도 이 지하조직에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앞에서도 이름이 언급된 이율과 홍복영이었다. 진사 이율은 한양 이현에 살았는데 홍씨 일문에 보낸 편지에서,“이 세상을 보지 아니 할 때는 언제입니까? 제 뜻을 온 세상에 널리 펴지 못하게 된다면, 한탄한들 무엇 하겠습니까?”라며 반역의 뜻을 비쳤다. 서소문 밖에 살던 진사 정래정과 정래익도 지리산의 향악선생에게 편지를 보내 조정을 비방하였다.“우리가 비록 재주가 없고 불민하지만 거사하는 날에는 조영흥(趙永興 이름은 미상)이나 주공(朱公 주형채)의 부하가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여기서 보듯 주형채는 조직 내에서 상당한 실력자로 인식되었다. 물론 지하조직을 총괄한 이는 향악선생이었고, 그를 측근에서 보좌한 이가 문양해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향악선생이 끝내 체포되지 않은 가운데 이 사건은 종결된다. 어쩌면 향악선생이란 인물 자체가 허구였을 수가 있다. 문양해가 가공의 향악선생 노릇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문양해야말로 실은 지하조직의 괴수였던 셈이다. 문양해는 문장에 능한 미혼의 노총각으로 비승비속의 도사였다. 지하조직에서는 충청도출신 인사들의 참여도가 높은 편이었다. 특히 공주지방 사람들이 많이 포함돼 있었으며, 내포지방의 양반들도 여러 명이 관여했다. 조직의 실질적인 우두머리 문양해 일족이 공주 출신이었던 데다, 조직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한 홍복영의 아버지 홍낙순이 충청감사를 역임한 것과 관련이 있다. 예컨대 공주 효포 출신의 권우는 지하조직에 적극 가담했다. 그는 향악선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선생님의 재간은 천고에 뛰어납니다. 제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마땅히 보내서 글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훗날 거사할 기일을 정확히 알려주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이밖에 공주의 상대장리에 사는 진규도 향악선생과 함께 흉악한 묘책과 비밀스러운 계책을 짰다고 한다. 공주 유구역의 홍정유, 한산의 정탁 3형제, 태안의 조수정과 조수인 형제, 역시 태안에 사는 가명정(賈命正) 등도 조직에 합류했다. 당진의 조두진, 서홍기, 한제만, 대흥의 이인치도 관련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전라 경상 양도의 참여도는 무척 낮았다. 전라도 광양의 오성겸과 이춘홍이 군비 조달에 기여하기로 내정되어 있었을 뿐이다. 특히 경상도 쪽은 조직원이 아예 전무했다. 그것은 이 지하조직이 노론 출신의 홍국영 잔당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남인의 세력근거지인 경상도 인사들은 이 조직을 외면했던 것이다. 국가전복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가졌으면서도 이 조직은 다분히 종교적인 색채가 짙었다. 하필 그 거점을 지리산에 둔 것은 안전은 물론 신비스러운 성격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이 조직의 실체는 문양해의 진술을 통해 어느 정도 밝혀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비밀스러운 조직이었던 만큼, 그리고 심문과정에서 마지못해 털어 놓은 이야기란 점에서 불충분한 점이 적지 않다. ●동학의 원조 지하조직에 가담한 사람은 다양했다. 이율과 홍복영 등 실세한 양반이 한 축을 이뤘다면, 지하조직의 운영을 직접 담당한 실질적인 주도층은 중인 이하의 평민지식인들이었다. 주형채, 양형 및 문양해가 바로 그들이었다. 이 사건은 이미 18세기 후반에 정치 종교적인 성격을 띤 전국규모의 민중운동이 준비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실례다. 이런 운동 경험은 지속적으로 축적되어갔다. 그 결과,19세기 말 동학이 대두하자 각지의 농민은 순식간에 동학의 기치 아래 모여들어 거대조직을 만들어냈다. 빗방울이 바로 바다에 이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인 빗물은 어디엔가 웅덩이를 이룬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주말에 뭘 보러갈까]

    어린이 ■ 하마가 난다 13일까지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 하늘을 나는 꿈을 이룬 라이트 형제와 조선시대 발명가 정평구의 이야기.(02)382-5477. 클래식■ 요요마 첼로 독주회 1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50대에 들어간 첼리스트의 거장 요요마의 원숙미를 느낄 수 있는 콘서트.‘첼로의 성서’라 불리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3,5,6번을 연주할 예정. (02)543-1601. ■ 청소년 음악회 19일 성남문화재단 콘서트홀(031)729-5615. ■ KBS 제581회 정기연주회 10일 KBS홀,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781-2246. ■ 안지윤 바이올린 독주회 14일 금호아트홀(02)587-5961. ■ 이재은 첼로 독주회 12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트홀(02)586-0945. 미술■ 신동권전 24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갤러리 더 스페이스. 그의 풍경화는 다분히 신화적이다. 오로라를 거느린 둥근 해와 달이 나무와 함께 공중에 장엄하게 펴져 있는 모습에서 일상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는다. 그의 독특한 색채원근법으로 인해 해와 달 등의 모티브가 동일한 평면에 놓이면서도 공간감을 준다.(02)514-2226. ■ 프로망제전 프랑스 신구상주의 대표적인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 당대의 사회·정치적인 면을 주제로 작업을 하는 그는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반전 메시지 등을 담은 작품 등을 선보인다.(02)2188-6063. ■ 아시아큐비즘전 한·중·일 등 아시아 11개 국가에서 큐비즘(입체주의)이 어떻게 수용됐는지를 비교·감상할 수 있다. 서구가 정물을 다룬 반면 아시아에서는 가족과 자연을 주제로 다소 서정성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년 1월30일까지.(02)2022-0613. ■ 우영자전 순수함과 자비로움이 자연 풍경속에 담겼다. 극단적인 명도대비, 선명한 명암대비가 밝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14∼20일 서울 광화문 서울갤러리.(02)2000-9736. ■ 박경호전 추상표현주의를 버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화폭에 담았다. 비탈길에 활짝 핀 배꽃, 구름 등이 향수를 자아낸다.14일까지. 서울 광화문 서울갤러리.(02)2000-9736. ■ 애족 보석전시회 보석 디자이너 장현숙·홍성민이 쥬얼버튼에서 애족으로 이름을 바꾸어 선보이는 첫번째 전시회.19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검정 애족.(02)3216-1583.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11~13일 경희대 평화의 전당. 미혼여성으로만 구성된 일본 여성가극단 ‘다카라즈카’의 내한공연. 순정만화의 대표작 ‘베르사유의 장미’와 ‘소울 오브 시바’등 2편을 선보인다.(02)2113-6856. ■ 디아볼로 13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캐나다 ‘태양의 서커스’에 영감을 준 연출가 자크 하임의 아크로바틱 서커스극.(031)729-5615. ■ 나비의 현기증 13일까지 극장 용. 연극, 무용, 아크로바트가 결합된 종합예술로 벨기에 서커스극단 페리아 뮤지카의 아시아 초연작.1544-5955. ■ 헤드윅 무기한 라이브극장. 동독 출신 트랜스젠더 가수의 성 정체성 고민을 강렬한 콘서트 형식으로 풀어낸 록 뮤지컬. 이지나 연출, 송용진 김다현 엄기준 서문탁 출연.1588-7890. ■ 아이 러브 유 무기한 연강홀. 사랑에 관한 스무개의 에피소드를 엮은 로맨틱 뮤지컬. 한진섭 연출, 남경주 이정화 오나라 정상훈 출연.(02)501-7888. 연극 ■ 시라노 드 베르쥬락 27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19세기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낭만 희극. 기형적으로 큰 코때문에 연인을 멀리서 바라보는 시인 검객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 김철리 연출, 최규하 이안나 출연.(02)580-1300. ■ 굿킬 10∼27일 블랙박스시어터. 킬러 지망생의 청부살인교육원 수련기. 차근호 작·김정훈 연출, 선욱현 최명숙 출연.(02)762-0010. ■ 갈매기 30일까지 정동극장. 지루하고 어려운 체호프 대신 쉽고 재밌는 체호프를 표방한 새로운 해석의 무대. 전훈 연출, 송옥숙 남명렬 김호정 출연.(02)751-1500. ■ 고양이늪 13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광기와 집착에 사로잡혀 파멸로 치닫는 여인의 이야기. 마리나 카 작·한태숙 연출, 서이숙 지현준 공호석 출연.(02)744-7304.
  • 19세기 도로망에 21세기형 아파트?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 삼성래미안3차 아파트 주변은 ‘출근길 정체구간’으로 악명이 높다. 사당로를 거쳐 강남으로 가려는 차량과 관악로나 현충로를 통해 영등포·시내로 향하는 차량들이 모두 한 곳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서울시내 재개발·재건축 지역에서 간선도로에 주변교통이 몰리는 경우가 72.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주거지역의 교통흐름을 모아서 간선도로에 연결해주는 ‘집산도로’를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재건축·재개발 도로 불합리”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이광훈 선임연구위원이 9일 작성한 ‘주택 고밀화에 대응한 서울시 주택시가지 도로체계 정비방안’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1개 간선도로에 주변 진·출입구가 모두 몰리는 집산연결형, 단독직결형 도로 등이 전체의 72.7%를 차지해 도로망이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성북구 돈암동·정릉2동, 동대문구 답십리 2·4동, 중구 신당 3·4동 등 시내 재개발·재건축 집약지역 22곳의 도로 정비수준을 점검한 조사에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아파트 단지 진·출입구가 국지도로(골목길)나 집산도로에서 보조간선도로를 거쳐 간선도로로 이어져 이상적인 도로체계를 갖춘 곳은 전체의 24.9%에 불과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단독주택 중심의 노후 주택지가 중·고층 아파트로 재건축되면서 각 택지의 접근성을 위해 확보된 폭 4∼6m의 국지도로 기능이 없어졌다.”면서 “특히 민간 개발업자에 도로문제를 전적으로 맡겨 도로망이 체계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집산도로 규모도 둘쑥날쑥 보고서는 단지내 도로에서 발생하는 교통을 모아 간선도로나 지구내 쇼핑센터, 학교 등으로 유도하는 폭 12∼25m의 ‘집산도로’를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미 정비된 집산도로의 경우에도 주변의 가구수와 무관하게 설치된 것이 문제로 꼽혔다. 집산도로 연장은 ▲3000가구 이하는 1㎞ ▲3000∼6000가구는 1.7㎞ ▲6000∼9000가구는 1.7㎞ ▲9000가구 초과는 1.9㎞ 등 가구수와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도로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서는 시와 정부에서 재건축·재개발단지 도로 설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이같은 아이디어를 내년도 서울시 도로정비기본계획 수립시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불의 기억/박병규 옮김

    다른 지역도 그렇지만 남미 역사서는 특히 지나치게 특정 인물 중심으로 서술된 것이 많다. 볼리바르와 산 마르틴 같은 독립 영웅에서부터 로사스와 피노체트와 같은 독재자들, 콜럼버스, 코르테르, 피사로 같은 정복자들이 항상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에 반해 남미의 ‘행동하는 지성’으로 불리는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서술한 책 ‘불의 기억’(박병규 옮김, 따님 펴냄)은 연표 속 공식역사에서 지워진 하위 주체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정복자들의 총칼에 짓눌려 버린 원주민들의 삶과 투쟁을 쫓아가고, 독립 영웅들이 내건 대의와 위세에 가려진 민중의 염원을 되살려 낸다. 또 독재자들의 억압 아래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라틴아메리카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고대사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시기를 다룬 1권 ‘탄생’,18∼19세기 식민지 굴레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담은 2권 ‘얼굴과 가면’, 군사독재정권이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국가를 짓눌렀던 20세기 이야기를 담은 3권 ‘바람의 세기’ 등 총 세 권. 연대기 형식을 취하되 여느 역사책과는 달리 독립적인 짧은 이야기들을 이어붙이는 방식을 택했다. 추상과 압축을 통한 문학적 상상력으로 역사의 미묘한 숨결을 포착함으로써 단조롭기 쉬운 역사 서술을 맛깔스럽게 포장했다. 각권 1만 7000∼1만 8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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