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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일본론(다이지타오 지음, 박종현 옮김, 소화 펴냄) 일본의 봉건시대에 모든 토지는 번주에게 귀속됐고, 농민은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 없었으며 성을 갖지 못하고 칼을 차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는 3000년전 중국의 제도와 흡사한 것으로, 천황·구교·번주·무사로 구성되는 통치계급을 제외한 사람들에겐 완전한 인격이 인정되지 않았다. 중국 ‘천택보’ 기자를 지낸 저자는 이처럼 비교론적 관점에서 일본과 일본인의 특성을 살핀다.‘신권적 미신과 일본의 국체’‘존왕양이와 개국진취’‘이타가키 다이스케’ 등의 글이 실렸다.7200원. ●백색국가 건설사(박진빈 지음, 앨피 펴냄) 어느 시대건 화두는 개혁이다.19세기말∼20세기초 ‘젊은 제국’으로 세계사의 무대에 급부상한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흔히 ‘혁신주의’로 일컬어지는 이 시기 미국의 개혁정책 속엔 향후 미국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특징들이 모두 담겨 있다.‘백색국가’란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 당시 주요 행사장 중 하나였던 ‘백색도시’에서 가져온 말. 미 제국이 지향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표상한다. 미국 혁신주의의 빛과 그림자를 다룬 역사교양서.1만 3800원.●멸망하는 국가(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열대림 펴냄) 일본 닛케이BP사의 웹사이트에 연재된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의 미디어 소시오폴리틱스’ 중에서 의미있는 글들을 골라 묶었다.‘지(知)의 거인’으로 불리는 저자는 “정치가에게 야스쿠니 문제는 단지 ‘마음의 문제’인가?”라며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외교를 강하게 비판한다.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만든 호리에 다카후미의 라이브도어 사건, 천황 후계자를 둘러싼 여성 천황·모계 천황 용인 문제, 고이즈미의 아베 신조에 대한 총애의 역사 등을 다뤘다.1만 8000원.●삼라만상을 열치다(김풍기 지음, 푸르메 펴냄) 한시와 에세이의 접목을 시도한 책.24절기 자연의 운행을 담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한시 작품들을 골라 엮었다. 도연명, 구양수, 두보 등 중국의 시인들과 이달, 유방선, 이규보, 정약용 등 우리나라 문인들의 시편 80여 편이 실렸다. 책의 제목은 조선시대 문인 김구의 ‘문에 붙일 입춘 글귀를 쓰다(題立春帖戶)’의 한 구절을 번역한 것이다.1만 1000원.●매천야록(황현 지음, 허경진 옮김, 서해문집 펴냄) 구한말 3대 문장가 가운데 한 명인 매천 황현이 1864년(고종1년)부터 1910년(순종4년)까지 47년간의 역사를 비판적 관점에서 서술한 책. 그는 임금이건 충신이건 가리지 않고 엄격하게 비판해 ‘매천필하무완인(梅泉筆下無完人)’, 즉 매천의 붓 아래서는 온전한 사람이 없다는 말까지 낳았다.1910년 56세때 일제에 의해 끝내 나라가 강탈당하자 그는 자신이 국록을 먹은 적은 없지만 지식인으로서의 도덕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절명시 네 수와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1만 4500원.
  • ‘마르크스 평전’/자크 아탈리 지음

    역사는 결국 반복되는 것일까. 최근 중국과 일본의 발언권이 강화되면서, 동북아 정세를 19세기 구한말에 비유하는 주장이 한국에서 유행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광풍이 번져 나가면서, 이제는 아예 세계적인 차원에서 지금을 19세기에 비유하는 주장이 유행할 조짐이다. 동유럽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혁명’의 관점에서 레닌을 복권시키더니(서울신문 9월19일자), 이번에는 마르크스가 다시 불려 나왔다. 이번에는 프랑스의 석학이라 불리는 자크 아탈리가 ‘마르크스 평전’(이효숙 옮김, 예담 펴냄)을 냈다. 프랑스에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한다. 냉전부터, 아니 그 자신이 서른살이던 시절부터 마르크스는 이미 ‘악마’였다. 현실사회주의의 모든 악을 낳은 원흉이었다. 엄밀히 말해 이론과는 무관하다 할 수 있는 무능한 생활력 같은 것까지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아탈리는 전혀 다르게 얘기한다. 각 장의 제목이 이를 웅변한다. 헤겔과 나폴레옹의 영향 아래 ‘독일의 철학자’에서 ‘유럽의 혁명가’로, 그 뒤 불어닥친 반동의 물결 속에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인터내셔널의 스승’이자 ‘자본의 사상가’로 그리고 죽어서는 마침내 ‘세계의 정신’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아탈리가 보기에 마르크스는 “기독교로부터는 구원의 미래”를,“르네상스로부터는 이성”을,“프로이센으로부터는 철학”을,“프랑스로부터는 혁명”을,“영국으로부터는 민주주의, 경험주의와 정치경제학에 대한 열정”을 물려받아 “처음으로 세계를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총체로 파악한 사상가”였다. 유럽문명사의 저수지라는 얘기다. 지금은 쓸모없지 않으냐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그의 사상은 “자유교역과 세계화를 예찬”하고 “혁명은 오로지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자본주의를 극복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예견”했다는 점에서 전지구적 자본주의화가 추진되는 바로 지금, 가장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요즘 한국을 배회하고 있는 유령에 비유하자면 일종의 ‘마르크스의 재인식’에 해당하는 셈인데, 재인식 찬미론자들이 이런 재인식까지 환영할지는 미지수다.2만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루브르박물관 명화 ‘한국 나들이’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서양 미술사 거장들의 작품들이 한국 나들이에 나선다. 오는 24일부터 내년 3월18일까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16-19세기 서양 회화속의 풍경’이란 부제로 열리는 ‘루브르박물관전’이 그것. 한·프랑스 수교 12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이 함께 마련한 이번 전시엔 들라크루아 코로 앵그르 제리코 와토 부셰 푸생 밀레 터너 고야 등 서양미술사를 대표하는 51작가의 작품 70점이 전시된다.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 고야의 ‘마리 안느 데 발드슈타인 부인의 초상’ 등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을 비롯, 루이 15세가 가장 총애한 수석 궁중화가였던 부셰의 최대 역작 ‘목욕하고 나오는 다이아나’, 들라크루아의 대표작 ‘격노한 메데이아’, 푸생의 ‘성가족이 있는 풍경’, 터너의 ‘멀리 만이 보이는 강가 풍경’ 등 유명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전시를 주관한 ㈜지엔씨미디어측은 이번 전시가 양국 문화 교류 차원의 공익적 목적으로 이루어져 작품 대여료는 없지만 엄청난 규모의 보험가액과 포장 운송비 등 전시 총 비용이 37억∼4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를 감안해 항온항습 및 진동방지 장치를 갖춘 특수 박스에 작품을 담아 4대의 비행기에 나누어 운반하는 등 작품 운송에 각별한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이세섭 국립중앙박물관 교육문화교류단장은 “원화의 질감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도록 작품에 유리 칸막이를 설치하지 않는 돌출전시를 하는 등 루브르박물관의 전시환경을 그대로 옮겨 전시의 질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관람료는 일반 1만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6000원.2113-3470.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9개모델에 담을 콘텐츠들 짜내야

    9개모델에 담을 콘텐츠들 짜내야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를 위한 9개 기본모델이 확정됨에 따라 정책 추진이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하지만 확정된 모델 유형은 ‘참고’사항일 뿐 ‘모방’ 대상은 아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각 모델을 지역실정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이 마을을 바꾼다 19세기 초 게이샤들을 위한 찻집이 들어서기 시작한 뒤 지금은 전통가옥보존지구로 지정된 일본 가나자와의 찻집거리는 9개 모델 가운데 ‘전통형’에 가깝다. 우리나라에도 서울 북촌 한옥마을처럼 비슷한 유형의 지역이 있지만, 차이는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이소영 박사는 “찻집거리는 전통가옥이라는 외형만 보존한 것이 아니다. 기모노 제작과 같은 게이샤 문화, 금박공예 등 전통산업과 연계해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면서 “그러나 북촌 한옥마을은 전통적인 문화와 산업을 찾아내고 육성하려는 노력이 미흡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야마나히현 가와구치코는 후지산 주변 5개 화산호수 지역의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일본 관광객의 10%가 후지산을 찾고, 후지산 관광객의 48%는 가와구치코를 찾는다. 때문에 지방자치단체 재정의 절반 가까이가 관광 수입으로 충당되고 있다. 이 박사는 “이곳 특산물인 허브를 활용해 마을 전체를 테마공원화하는 차별화 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지역주민은 물론, 전문가 그룹이 참여해 실현 가능한 전략을 세운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덧붙였다. 또 중세시대에 형성된 역사도시이자 대학의 발상지인 이탈리아 볼로냐는 1985년 전통과 역사가 깃들어 있는 건물을 다른 용도로 바꿀 수 없도록 했다. 대신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새로운 소득원이 될 수 있는 축제와 같은 다양한 행사를 개발해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살기 좋은 지역, 무엇이 필요한가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시범지역으로 선정되면 주민들의 힘을 한 데 모으고 각종 문화행사의 구심점이 될 광장과 공원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이 이뤄진다.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소득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공동농장 등 소득기반시설, 주민들에게 체계적·전략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새마을금고와 같은 소규모 금융기관도 들어서게 된다. 또 마을의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어낼 교육·정보서비스 제공기관으로써 도서관 및 정보센터, 마을 전체의 공간배치와 건물형태 등을 조언할 디자인하우스, 주민들의 1차 응급진료기관이자 ‘홈닥터’ 역할을 할 보건진료소 등도 갖춰진다. 아울러 주민들의 여가생활 및 정보교류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는 커뮤니티센터나 문화센터, 알림센터 등도 뒷받침될 예정이다. 문영훈 행자부 살기좋은지역기획팀장은 “마을의 비전은 자연적, 사회경제적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주민들 스스로 ‘자치규약’ 등을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해 나가야 한다.”면서 “30개 시범지역들이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지역간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구축,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금욕실천 개신교 소수파

    17세기 메노파(派) 장로였던 야콥 암만의 가르침을 좇는 개신교내 소수종파. 프랑스·독일 등 유럽에 거주하다 19세기 미국으로 대거 이주, 지금은 미국 내 25개 주와 캐나다 온타리오 등에 약 18만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건이 벌어진 랭커스터에는 약 2만명이 거주중이다. 1980년대 해리슨 포드 주연의 영화 ‘위트니스’를 통해 독특한 생활방식이 소개되기도 했다. 성경원문에 충실한 금욕생활을 고수하고 검은색 계통의 옷에 독일계 방언을 사용하면서 농경생활을 한다. 특히 전기와 TV, 자동차 등 모든 물질문명을 거부하면서 자녀들에게는 8학년까지만 학교를 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법원도 아미시들에게는 종교 자유 차원에서 의무 교육을 강요하지 않도록 판결한 바 있다.
  • [Book Review] 카스피해 에너지 전쟁/이장규·이석호 지음

    ‘제2의 사우디아라비아’로 불리는 카자흐스탄은 지금 유전개발로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세계 7위의 추정매장량에 외국자본들이 앞다퉈 돈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아제르바이잔은 바야흐로 ‘불의 나라’에서 ‘관(管)의 나라’로 변신중이고, 투르크메니스탄은 전세계의 10%를 차지하는 천연가스 매장량과 엄청난 석유에서 나오는 돈으로 ‘공짜경제’를 구가하고 있다. 한때 중앙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했던 우즈베키스탄. 에너지 대국임에도 극심한 폐쇄정책으로 자신의 강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지만 잠재력은 여전하다.‘카스피해 연안국들의 맏형’ 터키는 어떤가.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해 카스피해 에너지 수송의 목줄을 꽉 쥐고 있다.‘팜 아일랜드’‘더 월드’‘스키 두바이’‘버즈 두바이’등 꿈 같은 일들이 현실로 이뤄지고 있는 곳,‘오일머니의 해방구’ 두바이는 한마디로 소비의 천국. 유럽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가교의 나라로 극적 실험이 한창인 ‘작은 고추’ 그루지야, 유럽과 러시아·중국의 전진기지로 성가를 높이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심장부 키르기스스탄도 저마다 목청을 높이고 있다. 엄청난 오일머니의 힘으로 신천지를 건설해 가고 있는 카스피해 연안국들. 세계 경제지도를 바꿔놓을 만한 이 자원부국들을 본격적으로 해부한 책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30년간 줄곧 경제현장을 취재해온 이장규 중앙일보시사미디어 대표와 이코노미스트 이석호 기자가 함께 쓴 ‘카스피해 에너지 전쟁’(올림 펴냄).21세기 자원전쟁의 중핵지대인 카스피해 연안 국가들을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해 생생한 에너지 전쟁의 상황을 기록했다.20세기 에너지 전쟁이 중동석유의 장악과 통제를 통해 이뤄졌다면,21세기 경제패권 전쟁은 카스피해를 둘러싼 중앙아시아가 승패의 관건이다.‘거대한 체스판’의 저자인 미국의 국제전략 전문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표현대로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된 이곳은 ‘유라시아의 발칸’이 되어가고 있다. 카스피해의 석유 매장량은 중동의 3분의1에 이른다. 너도나도 군침을 삼킬 만한 곳이다. 현재의 중동과는 달리 옛 소련의 해체와 함께 아직 이렇다 할 패권세력이 없어 경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일부 국가들이 친미, 친러로 기울고 있지만 대세는 ‘중립’이다. 잘만 하면 우리도 어엿한 산유국 대열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한국은 현재 컨소시엄 형태로 한국석유공사와 SK 등이 유전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곳의 중요성과 가능성에 비춰볼 때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라는 게 저자들의 진단이다. 카스피해 에너지 전쟁의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파이프라인이다. 바다라고는 하지만 사면이 육지로 둘러싸인 내해(內海)인 카스피해에서는 육상수송, 특히 파이프라인의 방향에 따라 힘의 균형이 좌우된다. 때문에 파이프라인 설치를 놓고 벌이는 강대국간의 힘겨루기는 ‘파이프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살벌하다.‘뉴 그레이트 게임’으로 불리는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이 대표적인 예다.19세기 러시아가 부동항을 찾아 인도양으로 나가는 길을 놓고 영국과 충돌한 ‘그레이트 게임’을 본떠 오늘날 석유와 가스의 운송루트를 둘러싼 러시아와 미국의 대립을 ‘뉴 그레이트 게임’이라 부른다.‘기름 먹는 하마’ 중국은 카자흐스탄의 아타수와 자국의 두산쯔를 연결하는 1000㎞의 파이프라인을 완공, 카스피해에 직통 빨대를 꽂았다. 카스피해에 해외시장과 자원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가 있다. 저자들은 지금이라도 ‘뉴 오일로드’에 힘껏 올라타라고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주춤하는 한국경제에 스프링보드를 마련하는 것이며 뒤처진 자원외교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이라는 게 책의 결론이다.1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이 한권의 책] 세상을 바꾼 법정/마이클 리프·미첼 콜드웰 지음

    1955년 미국에서 매카시 광풍이 몰아치던 시기 존 헨리 폴크는 라디오 DJ로서 공산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하지만 방송연예계에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블랙리스트’의 존재에 격분했고, 이에 대항하다가 그 자신도 모든 것을 잃게 된다. 폴크는 변호사를 구해 소송에 나섰고,6년간의 재판 끝에 결국 승소를 이끌어냈다. 재판은 공판중심주의에 의해 이루어졌고, 최종 판결은 배심원이 내렸다. 당시 이성이 마비된 사회분위기 속에서 이같은 판결이 내려질 수 있었던 것은 공판중심주의란 틀에서 변호인이 엄청난 세력을 등에 업은 원고측과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논쟁을 벌일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배심원들이 양심과 상식에 의거, 판결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꾼 법정’(마이클 리프·미첼 콜드웰 지음, 금태섭 옮김, 궁리 펴냄)은 미국사회에서 공판 중심주의와 배심제 하에서 이루어진 판결이 어떻게 세상을 바꿨는지 잘 보여주는 책이다.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둘러싼 안락사 논쟁, 매카시 광풍속의 언론자유 투쟁, 여성의 투표권 행사를 가져온 사건 등 세상에 변화를 가져온 8가지 판결들을 선별해서 그 최종 변론을 모아놓았다. 역사적 변화를 가져왔지만, 그 시초는 대부분 작고 일상적 사건이었다.1872년 여성운동가 수전 B 앤서니는 선거에서 투표했다는 죄로 경찰에 체포됐다. 여성 참정권이 인정되지 않던 당시, 수전은 여성 참정권을 부여하는 헌법개정안을 위해 싸웠고, 이는 재판으로 이어졌다. 앤서니 변호인은 법정에서 ‘피고인의 투표행위가 위법하다는 유일한 이유는 여성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참정권을 빼앗긴 사람은 노예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며 원고측과 뜨거운 공방을 벌였다. 수전은 결국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미국사회에서 여성의 권리와 지위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재판 50년 뒤 비로소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 1975년 벌어진 카렌 앤 퀸란의 안락사 논쟁은 지금도 유사한 상황에서 길잡이로 작용하는 사건이다. 친구 생일파티에 갔다가 쓰러져 식물인간이 된 카렌에 대해 가족은 ‘치료법을 주지 못하고 깨어날 가망성이 없는 사람의 생명을 억지로 연장시키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산소호흡기 떼기를 거부하는 주치의측과 법정 공방을 벌여 승소했다. 이 판결 이후 안락사를 희망하는 생전 유언과 생명유지장치를 거부하는 사전 지시가 가능해졌으며, 병원과 의료시설에 윤리위원회가 설치됐다. 책은 이밖에도 19세기 스페인 선박에서 선상반란을 일으킨 뒤 미국땅을 밟은 노예들을 둘러싼 재판에서 이들을 위한 변호인으로 나선 존 퀸시 애덤스 전 대통령이 탁월한 변론으로 승소를 이끌어내는 이야기,18세기 초 영국 식민지 시절 뉴욕에서 잡지를 발간해 무능력한 총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선 사람의 변호인으로 나서 무죄판결을 받아낸 해밀턴의 빼어난 변론 등이 소개된다. 현재 우리 법조계도 공판중심주의와 배심제가 화두다. 사법의 민주화로 일컬어지는 이러한 공개된 법정 중심의 재판이 이룩되면 전관예우, 유전무죄·무전유죄 같은 논란도 많이 줄어들지 모른다. 이 책이 보여주는 배심제에서 이루어진 판결과 변론 중심의 생생한 재판과정이 혁신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우리 사법체계에도 중요한 시금석이 되지 않을까.2만 5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책꽂이]

    ●핑거스미스(새러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열린책들 펴냄) 영국 웨일스 출신 여성작가가 쓴 레즈비언 역사소설. 소설의 제목인 핑거스미스(finger smith)는 소매치기를 뜻하는 19세기 영국의 속어. 소매치기들 틈에서 자란 주인공과 유산상속을 노리는 사기꾼 등의 모습을 통해 도덕적인 것으로 비쳐진 빅토리아 시대의 어두운 사회상을 고발한다. 찰스 디킨스 작 ‘올리버 트위스트’의 21세기판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평. 추리소설로는 드물게 부커상 후보에도 올랐다.1만 5000원.●케네디와 나(장 폴 뒤부아 지음, 함유선 옮김, 밝은세상 펴냄) ‘프랑스적인 삶’‘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 등으로 친숙한 프랑스 작가의 소설. 우스꽝스러운 일탈과 방항을 통해 무기력한 삶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프랑스 소설은 흔히 관념적이며 지적 유희에 매몰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만국 공통어인 유머를 능란하게 구사하는 이 작가의 작품은 그런 통념을 무색케 할 만큼 친근감을 준다. 제목의 ‘케네디’는 케네디 대통령이 아니라 케네디가 댈러스에서 암살당할 때 차고 있던 시계를 가리키는 말.9800원.●수레바퀴 길(울리 올베디 지음, 김인순 옮김, 조화로운 삶 펴냄) 독일 문단에서 명상 구도소설로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의 첫 소설. 만년설을 머리에 인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삼았다. 수레바퀴, 즉 불교를 의미하는 법륜(法輪)에 들어선 여주인공의 구도여행을 통해 인간 삶의 본질에 다가선다.‘모든 현상은 마음의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내면의 허공에서는 그 무엇도 두려울 게 없다’는 등의 메시지를 전한다.1만 5800원.●아우라지 가는 길(김원일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996년 초판이 나온지 10년만에 다시 펴낸 전면 개정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변 사람들에 의해 이리저리 쏠리면서도 늘 고향 아우라지를 그리워하는 자폐증 청년 마시우의 삶을 그렸다. 등단 이후 분단문학, 실존과 역사, 기억의 굴레, 이데올로기 등의 수식어가 관용구처럼 따라붙었던 작가의 작품경향과는 일정하게 구분되는 세태고발 소설. 작가는 “4할 가량 가지를 쳐냈으나 줄거리는 손보지 않았다.”고 밝힌다.1만원.
  • [유럽 정치의 지각변동] 左는 右로, 右는 左로…이념경계 넘나든다

    [유럽 정치의 지각변동] 左는 右로, 右는 左로…이념경계 넘나든다

    지난해 39세의 데이비드 캐머런을 새 당수로 선출한 영국 보수당은 당의 새 슬로건으로 ‘변화가 필요하다.’를 내걸었다. 반면 1997년 이후 4기에 걸친 연속집권을 노리는 노동당의 캐치프레이즈는 ‘연속성이 중요하다.’였다. 역사적으로 과거와의 급진적 단절을 추구한 진영이 좌파였고, 우파는 전통을 보존하고 변화를 조절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 왔음을 상기한다면 충격적인 반전이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신노동당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앤서니 기든스 교수의 말대로 “좌파는 보수화되고 우파는 급진화됨으로써” 견고하게만 여겨지던 좌·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셈이다. ●“좌파는 보수화, 우파는 급진화” 유럽의 정당정치에서 좌·우파의 경계파괴는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권자들의 ‘정치적 진자운동’에 의해 좌·우파의 정치적 부침이 반복된 나라들일수록 경제·복지정책에 있어 양측의 차별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좌파정당의 우경화’는 독일 사민당이 세계 최초로 의회 진출에 성공한 19세기말 이래 꾸준히 제기됐다. 복지국가 위기론이 대두되기 시작한 1970년대를 계기로 그 양상이 급진화됐고,1990년대 영국 노동당의 ‘제3의 길’과 독일 사민당의 ‘신중도 노선’에 이르러 수위는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최근의 ‘경계 파괴’는 좌파가 아닌 우파에 의해 주도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물론 집권을 노리는 정당이 유권자의 다수가 모여있는 ‘중간지대’로 정치적 무게중심을 이동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시각도 있다. 그러나 2000년 스페인을 필두로 최근 스웨덴, 영국 등 서유럽 우파정당들이 보여주고 있는 뚜렷한 ‘좌선회’는 이런 일반론의 차원을 넘어선다. ●가속화되는 우파의 탈주 주목할 만한 점은 환경·복지 등 좌파의 전유물로 간주되던 영역에서 우파의 ‘탈주’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스웨덴 등 좌파의 집권기간이 길었던 나라들에서 두드러진다. 좌파정부 주도아래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이 이해당사자들로부터 견고한 지지를 받고 있는 까닭에 우파가 집권해도 그 경계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세계화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상품·자본·금융에 이어 노동시장까지 국경없는 경쟁에 노출됨에 따라 그 ‘파괴적 부작용’들로부터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압력이 좌·우를 막론한 모든 정치세력에 가중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진단엔 세계화에 우호적인 영·미 언론들도 동의한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3월 프랑스 대도시를 휩쓴 최초고용계약(CPE) 반대시위를 두고 “지난해 유럽헌법 국민투표 부결에 이어 미국식 시장주의를 유럽에 이식하려는 시도가 거센 사회적 저항에 직면한 두번째 사례”라고 분석했다. ●목표는 ‘세계화의 인간화’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도 최근 유럽에서 강화되고 있는 경제적 보호주의가 “자본·노동시장의 개방압력이 유럽인들에겐 실업과 빈곤에 대한 잠재적 위험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고 진단했다.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의 진단도 다르지 않다. 그는 10일 영국 주간 옵서버와 인터뷰에서 “무역확대로 인한 이익을 고르게 나누기 위한 급진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세계화는 보호무역주의의 성난 파도에 휩쓸려 버릴 위험이 높다.”고 경고했다. 그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사회안전망 개선과 교육 투자 확대, 진보적 조세제도의 구축이다. 서유럽 우파에 의해 시도되는 ‘횡단의 정치’의 핵심 의제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정책 닮은꼴’ 좌·우 혼재시대로 |파리 이종수특파원|유럽의 정치 지형은 1990년대 동구권 붕괴와 유럽연합(EU) 출범 등으로 더욱 복잡해졌다. 이념적으로 워낙 다양한 스펙트럼인 데다 중도의 외연이 넓어 좌우의 양 극단을 제외하면 정책·정강 등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 좌파의 전성기는 1998년까지였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그해 9월 독일 총선에서 사회민주당(SPD)이 승리함으로써 당시 EU 15개국 가운데 13개국에서 좌파가 집권한 것이다. 그러나 2000년 3월 오스트리아 총선을 계기로 우경화 바람이 불었다. 특히 1년 뒤 9·11 테러를 전후해 치러진 8개국 선거에서 우파가 잇따라 집권하는 역풍이 몰아쳤다. 우파의 대약진은 2004년 3월 그리스에서의 승리로 절정에 이른다. 이번엔 15개국 가운데 12개국에서 우파가 집권했다. 유권자의 균형 심리가 작용한 듯, 이후 좌파의 반격이 시작됐다.2004년 3월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사회당·공산당·녹색당 등의 좌파연합이 50%를 득표하면서 약진했다. 이를 신호탄으로 같은 해 4월 스페인 총선에서는 좌파인 사회노동당이 우파인 국민당을 따돌리고 승리했다. 포르투갈 사회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45.3%의 득표율로 정권을 탈환했다. 같은 해 6월 불가리아 총선,9월 노르웨이 총선을 거쳐 올 6월 이탈리아 총선에서 ‘왼쪽의 힘’은 되풀이 됐다. 영국 노동당도 지난해 총선에서 의석은 줄었지만 재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우파의 버티기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해 2월 덴마크 총선에서 자유·보수당 등이 연합해 재집권에 성공했다. 독일도 중도우파인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 연정이 다수 의석을 확보,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탄생시켰다. 여기에 ‘좌파의 보루’로 여겨지던 스웨덴에서 프레드릭 라인펠트 당수가 이끄는 보수당 중심의 중도우파 연합이 승리함으로써 통합된 유럽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더욱 다변화됐다. vielee@seoul.co.kr
  • [Book Review] ‘불가피한 선택’ 가슴열고 보기

    남미나 팔레스타인에 대한 한국의 시각은 때때로 능멸에 가깝다. 사뭇 “쟤들은 안돼.”라는 투이다. 언제나 남미는 ‘포퓰리즘 때문에 망조난 사례’, 팔레스타인은 ‘극렬 테러리즘의 진앙지’이다. 처음부터 망조나려고 작정하거나 폭탄이나 던지면서 살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없다. 남미와 팔레스타인, 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민중의 호민관 차베스’(당대 펴냄)는 수십년간 남미를 취재해온 전 영국 가디언 기자 리처드 고트가 쓴 간결한 보고서다. 책 제목과, 가디언의 성향만 놓고 차베스에 바치는 ‘용비어천가’라고 지레짐작할 필요는 없다. 물론 차베스에 대한 노골적 지지를 숨기지는 않지만, 겨누는 지점은 차베스라는 인물 자체보다 그가 딛고 서 있는 남미와 베네수엘라의 과거다. 왜 차베스일 수밖에 없는가를 규명하는 방향이다. 그러다보니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끝낸 시몬 볼리바르(‘볼리비아’는 그를 기념하는 국가 이름이다.)부터 다루는 제3장 ‘19세기 혁명전통의 재발견’에서는 남미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맛볼 수 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목은 우리를 연상케 하는 6장 ‘반동의 물결’. 집권에는 동참했으나 기득권은 버릴 수 없었던 기존 노조와 진보 정파들, 민주적 선거를 거쳤다 해도 차베스 정권만은 인정할 수 없다며 끊임없이 쿠데타를 기획하는 백인보수기득권층, 혼혈과 인디오의 목소리를 철저히 묵살하고 부유한 백인들의 보수적 이익에만 맹종하는 국내·외 언론 등…. 또 70년대 국가개입형 경제개발을 주도했지만 80년대말 열렬한 신자유주의자로 ‘전향’한 페레스 전 대통령과 그 주변을 채운 미국 시카고학파 신자유주의 경제관료들애 대한 스케치도 남 얘기 같지 않다. 기자다운, 간결하고 건조한 묘사가 눈길을 끈다. 이에 반해 ‘팔레스타인의 눈물’(아시아 펴냄)은 팔레스타인 작가 9명이 쓴 11편의 짧은 산문을 모은, 풍부한 감성이 돋보이는 책이다. 최루성 드라마처럼 이런 저런사연을 절절하게 늘어놓는다는 애기가 아니다. 그냥 담담하게 ‘이슬람 전사’ 혹은 ‘조국에서 쫓겨난 유랑민’으로 살아온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는 형식인데 그게 읽는 사람 마음을 그만 불편하게 만든다. 일제시대 만주벌판에서 치러졌던 무장독립투쟁과 군부독재시절 이런저런 고문사건과 오버랩되어서다. 비슷한 경험 덕에 얼마든지 친해질 수 있을 법도 한데, 각 페이지 아랫부분마다 가득한 용어 해설은, 서로에 대한 관심 부족을 드러내는 것 같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라크전 취재작가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누볐던 소설가 오수연이 팔레스타인의 현대시인 자카리아 무하마드와 함께 편집했다. 부록으로 실린 홍미정 한국외대 교수의 ‘팔레스타인의 이해를 위하여’도 짧지만 중동사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고 있다. 출판사가 기획하고 있는 ‘문학으로 읽는 아시아의 문제’ 시리즈 첫 권이다. 핵심은 오수연 작가가 쓴 서문의 도입부다.“우리가 흔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라고 알고 있는 사태는 사실 분쟁이 아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막강 이스라엘 군대의 꾸준한 군사작전 대상은 고작해야 구식 총을 쏘는 민병대나 돌 던지는 소년들이며, 그보다는 그저 재수없는 민간인들이다.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자기 집에 앉아 있다가, 또는 길바닥에서 난데없이 폭탄이나 총알을 맞는 보통 사람들이다. 거기서 날마다 벌어지고 있는 일은 싸움이 아니라 학살이다.” 각각 1만 4000원,98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미디어 과잉의 사회 옳은가?

    뉴스는 현실의 거울인가, 구성된 현실인가. 똑같은 사건이 언론매체에 따라 전혀 다르게 요리되는 현상을 수도 없이 목격하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뉴스의 객관성 신화에 의문부호가 찍히기 시작한 것은 세계적으로는 60년대 후반부터. 토드 기틀린은 80년대 이후 ‘구성된 현실’로서 뉴스와 현실 사이의 심각한 불일치 현상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 온 진보적 사회학자들 중의 하나다. ‘무한미디어-미디어 독재와 일상의 종말’(남재일 옮김, 휴먼&북스 펴냄)은 사회학자 기틀린에서 문화비평가 기틀린으로의 변모를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미디어에 대한 단편적인 분석과 주장보다는 TV, 인터넷, 모바일, 광고 등 미디어의 총체성은 무엇이며 이들이 쏟아놓는 이미지와 사운드에 포위돼 있는 인간의 존재는 무엇인지가 이 책의 관심사다. 저자는 빠른 속도와 중지의 패턴, 경박한 경향, 선정성, 다음 것을 익히 예상할 수 있는 점 등 미디어의 ‘급류’에는 공통적인 구조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감각의 만족, 재미, 편리, 안락 뒤에 숨겨진 의존, 무기력, 기만 등과 연관된다. 미디어 콘텐츠는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있게 만들어졌으며, 순간적으로 흘러간다. 간혹 진지한 콘텐츠도 있긴 하지만 그것조차도 ‘1회용 감정’을 파는 행위일 뿐이다. 미디어는 심지어 미디어가 없다면 굳이 느끼지 않아도 되는 감정들을 인간에게 쏟아붓는다. 인간의 삶은 불필요한 것들로 포화상태가 되며 개인은 파편화되고 만다. 저자는 이러한 무제한적인 미디어의 기원을 화폐경제와 노동분업이 이뤄진 도시 산업사회에서 찾는다. 저자는 특히 생산과정의 지루함을 인공적 자극으로 풀었던 19세기 삶의 양식을 게오르크 지멜의 주지주의 개념을 빌려 풀어나간다. 또한 대중문화가 미국에서 만개하게 된 연유와 세계화의 공세도 분석하는데 이 과정에서 제시되는 지식과 통찰이 간단치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인간을 단지 미미한 존재로 보지 않고 미디어의 급류를 헤쳐나갈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팬, 비평가, 풍자가, 훼방꾼, 분리주의자, 폐지주의자 등의 전략을 하나하나 분석해 본 저자의 결론은 무제한적인 미디어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질서 자체를 논해야 한다는 것이다.‘기술적 진보의 심장부에서 거대한 노동분업을 그만둘 때만이 인간의 자유와 감각의 총체성을 찾을 수 있다.’는 저자의 선언은 너무 야심적인가. 1만 8000원.신연숙 문화담당 대기자 yshin@seoul.co.kr
  • 파리로 간 조선궁녀 환생하다

    흐릿한 실루엣으로만 기록에 남아 있던 한 여인이 매설가(賣說家) 김탁환(사진 오른쪽)의 손끝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지닌 역사적 인물로 환생했다. ‘리심’(전 3권·민음사)은 ‘불멸의 이순신’‘나, 황진이’ 등 작가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실존 인물에 픽션을 가미한 팩션 소설. 리심(혹은 리진)은 19세기말 조선 궁녀로 초대 프랑스 공사 빅토르 콜랭과 사랑에 빠져 1893년 최초로 파리로 건너간 인물이다. 아프리카 모로코와 일본 등을 거쳐 1896년 프랑스 공사로 부임한 콜랭을 따라 귀국한 리심은 궁중 무희로 복직한 뒤 금조각을 삼키고 자살했다. 리심에 관한 기록은 2대 프랑스 공사 이포르트 프랑뎅의 회고록 ‘한국에서’(1905)에 남아 있다. 김탁환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A4용지 한 장 반 정도에 불과한 이 기록을 토대로 장장 원고지 3000장 분량의 소설을 지어냈다.‘리심이 자신이 관찰한 놀라운 서양 문물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기록해두었다.’는 대목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가상의 여행기를 쓴 것이다.작가는 세심한 문헌 고증과 철저한 해외 현지답사를 원칙 삼아 손에 잡힐 듯 생생한 묘사로 리심의 실체를 하나하나 복원해냈다. 소설은 이국인과의 낭만적인 로맨스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 여인이 온몸으로 겪은 근대화의 의미에 관심을 기울이는 한편 최초의 금속활자인 ‘직지심경’을 비롯해 조선의 귀중한 유물들을 파리로 가져간 빅토르 콜랭의 행위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한다.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제작비 200억원 규모의 대작으로 2008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각 권 9500원.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Book Review] 신성의 상징에서 창작의 벗으로

    ‘인간은 연기를 마시는 동물’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하지만 분명한 건 인간이 수천년 동안 담배뿐 아니라 아편, 대마초, 코카인 등 뭔가 끊임없이 들이마셔 왔다는 사실이다. 고대 마야인들은 담배를 신의 화신으로까지 여겼다. 미국 일리노이대 의대 샌더 길먼 교수 등이 쓴 ‘흡연의 문화사’(이수영 옮김, 이마고 펴냄)는 고대 마야의 종교의식에서 미술과 오페라 속 흡연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흡연’을 문화사적 관점에서 꼼꼼하게 다룬 백과사전적인 성격의 책이다. 아즈텍 사람들은 담배를 생식과 출산의 여신 시우아코아틀의 화신으로 보았다. 그들은 이 여신의 몸이 담배로 이뤄졌다고 믿었다. 담배, 담배박(tobacco gourd), 담배쌈지는 다른 중앙아메리카 민족들 사이에서도 신성의 상징으로 통했다. 그들의 흡연 풍습은 신대륙을 발견한 유럽인들에 의해 유럽으로 확산됐다.16세기 영국에 들어온 담배는 처음엔 치료제로 소개됐지만 그 중독성 쾌락으로 인해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1604년 극렬한 흡연 비판자였던 제임스 1세가 담배세를 4000%나 인상했지만 ‘황홀하도록 편안한 느낌’을 주는 담배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등으로 담배문화를 퍼뜨렸다. 이들 지역에는 담배가 전해지기 이전에도 이미 다양한 흡연 관습이 존재했다. 아프리카에서는 남성들이 호전성을 기르는 주요 방편으로 대마초를 피웠으며, 인도에선 아유르베다 전통의학을 통해 3000년 전부터 흡연을 질병의 치료와 예방에 이용했다.16∼17세기경 기독교와 함께 담배를 받아들인 일본에서는 다도와 흡연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했다. 에도시대에 이르러 담배는 유흥가의 필수품이 됐다. 한편 중국에 전파된 담배는 남녀노소 모두를 사로잡았다. 한때 크게 유행한 아편이 도덕적·정치적으로 압박받을 때도 담배는 꾸준히 인기를 이어갔다. ‘창작의 벗’ 담배는 예술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예술가들의 담배 사랑은 가히 고질(痼疾)이라 할 만하다.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담배에 “완벽한 기쁨의 완벽한 형태”라는 극도의 찬사를 보냈다. 이 책은 예술작품 속의 흡연 이미지를 소상히 살핀다.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은 흡연을 가난한 이들의 오락으로 묘사했으며,20세기 입체파 화가들은 파이프에 몰입했다.19세기 오페라에서는 흡연 장면을 통해 남성의 폭력성과 질투, 관능적인 쾌락과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표현했다. 흡연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오페라를 들라면 단연 비제의 ‘카르멘’(1874년)이 꼽힌다. 세비야 여송연 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이 담배를 꼬나물고 서로 싸워대며 합창하는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흡연의 개념에는 담배뿐만 아니라 아편, 마리화나 같은 것을 피우는 것도 포함된다. 아편전쟁이 상징하듯, 아편은 근대 중국을 좀먹은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중국에 전략적으로 아편을 퍼뜨린 유럽도 물론 아편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영국 이스트엔드의 음침한 아편굴, 프랑스 몽마르트를 중심으로 예술가들 사이에 퍼진 아편 때문에 유럽은 심한 몸살을 앓았다. 한편 자메이카에서 단절된 아프리카 정신을 잇는 정체성 회복의 수단이었던 마리화나는 그래도 미국 뉴올리언스의 재즈문화를 살찌우는 데 일조한 ‘공’이 있다. 오늘날 담배는 옛 영광을 뒤로한 채 점점 공공의 적 신세로 전락해 가고 있다.‘흡연자의 천국’이라는 프랑스에서도 이제 공공장소에서는 흡연을 하기가 어렵게 됐다. 암과 담배의 합성어인 ‘캔서레트(cancerette, 암배)’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흡연무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3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니체의 지독한 사랑·절망 그리고 치유

    니체의 지독한 사랑·절망 그리고 치유

    “여자는 최량(最良)의 경우에도 한 마리 암소에 불과하다.”고 일갈한 극단적인 여성경시주의자 프리드리히 니체. 그러나 그것이 과연 니체의 진정한 여성관이라 할 수 있을까. 그가 정신병원에서 쓴 자서전 ‘나의 누이와 나’에서의 고백을 보면 그것은 니체의 진심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니체는 여성이야말로 진짜 구원의 여신임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나는 정녕코 나의 자랑스러운 고독을 애지중지해온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신의 죽음을 목격한 이 세계의 공포로부터 나를 구제해줄 여성의 사랑을 열렬히 갈구했다.” 이어 니체는 자신의 절대 고독에 대한 비탄과 떠나가버린 연인 루 살로메에 대한 그리움을 절망적으로 토로하고 있다. ●“아라비아 열풍보다 더 지독한 루 살로메” 심리치료의 세계적 권위자인 어빈 얄롬(스탠퍼드대 정신의학과 명예교수)이 쓴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임옥희 옮김, 리더스북 펴냄)는 한 여인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이 불러온 끔찍한 고통과 절망을 그린 강렬한 소설이다. 니체에게 있어 그 여인은 루 살로메다.1882년 니체는 루 살로메를 만나 두 번 청혼하지만 거절당한다. 훗날 니체는 루 살로메가 아라비아사막에서 불어오는 시로코 열풍보다도 더 지독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도대체 니체의 사랑은 얼마나 치명적인 것이었던가. 소설에는 니체 외에 네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프로이트의 스승이자 멘토로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제프 브로이어, 인간의 ‘무의식´을 처음 발견한 프로이트, 니체·릴케·프로이트 등 당대 최고의 지성들을 죄다 실연의 늪에 빠뜨린 팜므파탈 루 살로메, 페미니즘의 대모 베르타 파펜하임. 서구사상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이들은 각자 본래의 모습을 간직한 채 소설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소설은 브로이어가 루 살로메의 부탁으로 대화요법을 통해 니체의 ‘절망’을 치료하는 과정이 큰 뼈대를 이룬다. 자존심 강한 니체와 유명 의사 브로이어. 브로이어는 니체로 상징되는 철학을 정신분석하고, 니체는 브로이어로 상징되는 정신분석학을 철학화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심리적 공격과 이성적 방어를 되풀이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내면의 실체에 다가서며 자기 치유의 길을 찾는다. 니체의 눈물이 떨어지는 지점은 바로이쯤이 아닐까. ●대화 형식 통해 니체 핵심사상 건드려 소설은 두 사람의 대화 형식을 통해 니체의 핵심사상을 건드린다.“우리가 신을 창조했다가 지금은 우리 모두 합심해 신을 죽여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거룩한 것은 진실 자체가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입니다. 자기를 탐구하는 것보다 더 신성한 행위가 있습니까.” 독자들로서는 니체가 던진 수많은 실존적 질문들과 자연스레 마주하며 지적 스릴을 느낄 수 있다는 데 이 소설의 미덕이 있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인 팩션 소설이다. 팩션 장르의 소설은 실제 이야기에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가미돼 현장의 생생함과 상상의 즐거움을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특성을 지닌다.19세기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지적 상상력을 동원해 그린 이 소설은 그런 점에서 전혀 빠지지 않는다. 이 시대 최고의 지성소설.‘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는 1992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래 10여년 동안 장기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화제작으로, 현재 이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2007년 개봉 예정)가 미국에서 제작 중에 있다.1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월드이슈] 총성없는 영유권전쟁… 中·日등 외교전

    [월드이슈] 총성없는 영유권전쟁… 中·日등 외교전

    민족주의 열기 고조속에 자원확보 경쟁까지 겹쳐 아시아 국가들의 영토 분쟁 움직임이 수면 아래서 꿈틀대고 있다. 민족주의 색채를 더욱 노골화하고 있는 아시아의 두 거인 중국과 일본의 행보가 대표적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계기로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처럼 재깍거리고 있는 아시아 영토분쟁의 현황과 파장을 살펴보았다. 지난 7월13일 중국은 베트남, 타이완, 일본 등과 영토분쟁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의 남사(스플래틀리)군도와 서사(파라셀)군도 등에 대해 “잘못된 표기가 많다.”면서 일방적으로 중국의 영토임을 표시한 지도 418개를 만들어 각 웹사이트에 올렸다. 이에 대해 베트남 등 주변국들은 외교부 성명 등을 통해 중국을 비난하면서 관련 영토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중국과 베트남, 타이완, 필리핀 등이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남·동중국해의 해양 영토 분쟁은 잠재적인 ‘아시아의 화약고’로 불린다. 그만큼 강한 폭발력을 갖는다. 중국은 이 지역을 둘러싸고 1970,80년대 베트남, 필리핀 등과 무력충돌을 벌였고 그 후에도 항의 성명서 발표 등을 통한 치열한 외교전을 전개해 오고 있다. 중국, 베트남 등은 모두 경제건설을 위해 일단 소모적인 무력 충돌은 피하자는 태도다. 대신 지도와 자국 공식 웹사이트 등에 영토표기 등을 통한 외교전에 치중하고 있다. 외교무대에서의 힘겨루기와 명분쌓기가 쉬지 않고 진행되는 상황이다. ●육지에서 해양 분쟁으로 미국, 일본에 이은 세계 경제 초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정책 채택 이후 경제성장을 위한 ‘우호적인 주변환경’ 조성에 외교력을 집중해 왔다. 그 결과 러시아 및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 베트남·인도 등과 국경 획정에서 한 단계 진전을 거뒀다. 일단 ‘갈등과 이견은 덮어두고 협력가능한 부분을 확대해나가자.’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실용적인 외교를 실천해 온 덕분이다. 인도와의 국경분쟁 해결에서도 중국은 적극적인 자세다.1962년 국경분쟁으로 전쟁까지 치르며 40여년동안의 앙숙으로서 국경분쟁을 겪었던 인도에 중국은 서부 국경선에 대한 영토 양보 및 영토 교환을 제시하는 등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처럼 육지에서의 갈등요소는 줄여온 반면 경제적·정치적 성장은 중국의 ‘해양으로의 팽창’을 불러오고 있다. 경제적 동력으로 중국의 석유 수입이 소비량의 절반을 넘어서고 수출 의존도가 늘면서 해양 수송로 확보의 중요성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국방백서가 근년 들어 항공모함 건조의 필요성 등 연안 지역을 벗어나는 대양(大洋) 해군력의 육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게다가 배타적경제수역(EEZ)의 설정, 대륙붕 기점 논란, 각종 열도의 영유권 주장 등이 얽혀있는 해양영토와 관련해선 갈등 요소가 더 커지고 있다. 해양 영토 획정을 둘러싼 국제법적인 정의가 모호한데다 관례조차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아 논란과 갈등소지가 높다. 특히 남중국해 지역은 석유 및 천연가스가 가득 묻혀 있는 천연자원의 보고. 풍부한 어류 및 지하광물 등 해양 지하자원에 대한 이해관계가 크다. 중국 국토자원부가 지난 7월 중국 사상 최대 규모인 1000억㎥ 이상의 해저 천연가스전을 발견했다고 밝힌 지역도 남중국해 북부 지역이다. 게다가 전략적 수송로란 점에서 국가 생존이 걸려있는 문제로 보고 있다. 또 남중국해는 말라카해협과 연결돼 있어 이같은 전략적 민감성을 더한다. 말라카해협은 전세계 교역량의 40%, 일본·중국으로 가는 원유·천연가스 등 에너지자원의 80%가 통과하는 길목이다. 지난 7월 중국이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양 조사를 실시하고 시사군도 최남단에 해양구조기지를 신설한 것도 분쟁지역 장악에 대한 사전 포석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의 방위동맹을 공고화하면서 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것도 이 지역을 둘러싼 중국의 팽창을 막으려는 의도가 크다.”고 안인해 고려대 교수는 지적했다. 미·일 동맹을 근간으로 하는 힘의 균형을 부상하는 중국이 흔들어대고 있는 상황이다. ●공동개발의 함정 중국은 일부 분쟁지역에선 자원공동개발을 주장하고 있다. 이미 남사군도에선 베트남, 필리핀 등 분쟁국가들과 함께 석유·가스의 공동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을 배제한 채 일본에 일방적으로 한국 주권이 미치는 ‘한·일 공동 대륙붕’의 공동 개발을 제안했다. 중국은 한·일간 기존 협정의 효력을 부정하고 공동개발명분을 내세워 나름대로 해양 영토의 획정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도 중국과 해양 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란 지적이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日 센카쿠·쿠릴열도 등 ‘눈독’ 민족주의 자극 정치이용도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은 중국, 타이완, 러시아 등 주변국과 영토분쟁을 일으키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싸움닭’으로 불린다. 자원·영토 확보라는 측면이 강하기도 하지만 그 뒤에는 민족주의를 자극해 내정에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의 의도가 엿보인다. 특히 일본 총리로 확실시되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개인 홈페이지 초기화면에 ‘이 나라를 지키는 결의’라는 문구를 계속 게재, 공격적인 외교를 펼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자원·영토외교와 함께 민족·애국주의를 지지로 연결시키려 할 것으로 점쳐진다. 현재 일본의 영토분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이다. 8개 무인도를 둘러싼 분쟁으로 이 섬들은 일본 오키나와 서남쪽 약 400㎞, 중국대륙 동쪽 약 350㎞에 위치해 있다. 일본이 현재 실질적으로 관할하고 있으나 중국과 타이완은 역사적 근거를 대며 영유권을 주장한다. 아울러 1970년 이후 센카쿠 인근 해저에 막대한 양의 석유·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이 확인되면서 영유권 분쟁은 중국과 일본이 자원쟁탈을 하는 형태로 고착되기 시작됐다. 최근 중국이 인근 지역서 천연가스 개발을 서두르면서 일본이 공동조사를 제안하고, 중국이 거절하는 외교적 마찰이 반복되는 양상이다. 중국과 타이완 민간인의 상륙시도, 일본 우익단체의 등대 설치 시도로 시끄럽기도 했다. 일본과 중국은 또 태평양 공해상의 산호초인 오키노도리를 놓고도 마찰을 빚고 있다. 일본은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넓게 설정하기 위해 1988년 면적이 10㎡도 채 안 되는 이곳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설치하고, 최근엔 산호를 양식해 섬으로 만들겠다는 집요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곳이 바위일 뿐이라며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제법상 ‘섬’은 EEZ 설정의 근거가 되지만 ‘바위’는 그렇지 않아 양국 간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현재 중국과 일본이 국제 외교무대에서 펼치고 있는 동북아지역 패권 쟁탈전은 양국의 이런 해양영토 분쟁을 당분간 지속시킬 요인으로 분석된다. 일본은 러시아와도 북방 4개섬(러시아명 쿠릴열도) 분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 분쟁은 일본 홋카이도와 러시아 캄차카 반도를 잇는 20개 도서 가운데 최남단의 에토로후, 구나시리 2개 섬과 홋카이도 북쪽 하보마이, 시코탄 2개 섬을 둘러싼 양국의 영유권 분쟁이다. 북방 4개섬은 러시아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나 일본이 반환을 요구하며 분쟁 지역화시키고 있다.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이곳을 차지했지만 2차대전 패전으로 40년 만에 러시아에 되넘겨줬다. 북방 4개섬 역시 주변에 대규모 천연가스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수산자원도 풍부하기 때문에 일본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전략적으로 군사적 요충지란 점도 분쟁유발의 요인이다. 일본은 수시로 러시아를 자극, 영유권 분쟁을 야기하고 있다. 교과서에 4개 섬을 자국 영토라고 표기, 러시아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곤 한다. 일·러분쟁은 소강상태지만 일본 어선에 대한 러시아의 총격 사건이 발생하며 새삼 주목받았다. 지난 4일엔 일본무역진흥기구의 와타나베 오사무 이사장이 러시아 기자들과의 기자회견 때 “일·러간의 영토문제가 양국의 경제발전을 방해하면 안 된다.”고 말한 것을 러시아 언론이 ‘일본이 영유권을 양보’하겠다는 취지로 보도했다며 산케이신문이 13일 문제를 제기, 부각되기도 했다. 일본은 그동안 한국의 고유 영토인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 등 의도적으로 주변국과의 영유권 분쟁을 일으켜 동북아지역 국제질서를 어지럽혀 왔다.19세기 말 일본이 국제법 지식을 상대적으로 빨리 습득, 해양영토를 확장해가던 때의 팽창주의 정책과 거의 유사하다는 지적까지 나와 주목된다. 특히 지난해 초 집권 자민당과 제1야당인 민주당의 젊은 보수의원들이 센카쿠열도와 북방 4개섬, 독도 문제 등에 대응하기 위해 ‘나라의 영토를 지키는 의원연맹’을 꾸려 센카쿠열도 등에 시찰단을 파견하는 계획을 세웠던 것은 일본의 영토 야심이 일본사회에 뿌리깊은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taein@seoul.co.kr
  • [토요영화]

    [토요영화]

    ●혈의 누(채널CGV 오후10시) 사극, 그것도 추리물임에도 완성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고, 흥행에도 성공한 영화.19세기 조선시대, 제지업으로 먹고 사는 남해안의 외딴 섬 동화도가 배경이다. 어느날 정부에 바칠 종이가 실린 배가 불타고, 정부는 진상조사를 위해 수사관 이원규를 파견한다. 그러나 화재 사건도 해결하기 전에 잔혹한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이 터진다. 섬마을 사람들은 몇년 전 억울하게 죽었던 사람의 원한을 거론하며 크게 동요하기 시작한다. 합리적이고 냉철한 수사관 이원규마저 마을사람들의 동요에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혈의 누는 여러 면에서 곱씹어볼 만하다. 무엇보다 포인트는 고립된 공간에서의 집단적인 공포, 무리·군중의 공포를 어떻게 표현해낼 것인가하는 대목. 대종상 의상상을 받은 작품답게 어떤 개념이나 이미지가 어떻게 옷을 통해 표현되는지 재미있게 지켜볼 수 있다. 여기다 영화 내내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음울하게 깔리는 음악 등이 분위기를 돋운다. 다음으로는 19세기 말엽 조선시대의 풍속을 스케치하는 대목. 살인과 관련한 전문용어 같은 소소함에서 무너져가는 양반사회를 그리는 스케일까지 다양하게 엿볼 수 있다. 또 배우들을 보는 재미도 괜찮다. 코믹배우로 커리어를 쌓아왔던 차승원이 냉정한 수사관 역할을 맡아 정극 배우로 변신했다. 또 용의자로 차승원과 대결했던 10년차 조연 배우 박용우가 이 영화를 통해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마지막은 아무래도 동질성의 신화 속에 숨겨진 폭력성이다. 조그마한 섬에서 갇혀 지내오다시피 한 사람들은 이웃집 밥상에 숟가락이 몇개 있는지 다 알며 지낼 법도 하다. 그런 동네이기에 표면상으로 동질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지어야만 했던 표정에 지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말 못할 무언가를 품고 있다는 불온감, 그 풍경을 그려봐야 한다.2005년작,119분. ●애프터 선셋(MBC 밤12시55분) 세계 최고의 커플 보석도둑 맥스와 롤라는 마지막으로 한탕하고 초야에 파묻혀 산다. 이들을 잡아보는 게 소원인 FBI요원이 가만 있을 리 없다. 이들이 사는 곳까지 악착같이 찾아가 한번만 더 훔치라고 부추긴다. 편안한 생활이 지루해진 맥스는 롤라가 아무리 말려도 귀가 솔깃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데….007시리즈에 유머를 섞었다는 호평과 근사한 두 주연 피어스 브로스넌, 셀마 헤이엑을 빼면 볼 게 없다는 혹평을 동시에 받았다.2004년작,97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주일 미군기지를 가다] (하) 美·日 ‘국방공조’ 요충지 오키나와

    [주일 미군기지를 가다] (하) 美·日 ‘국방공조’ 요충지 오키나와

    |오키나와(일본) 김상연특파원|기자는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일까지 도쿄 인근과 오키나와에 위치한 주일 미군기지를 둘러보고 미·일동맹의 현주소를 체감했다. 그 소감을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사령관과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사령관으로 활약한 더글러스 맥아더와의 가상대화 형식으로 5일자에 이어 한차례 더 소개한다. ●맥아더 오키나와를 둘러본 소감이 궁금합니다. ●기자 나름대로 휴양지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전반적으로 낙후된 인상이었습니다. 섬 전체를 무차별적으로 점거하고 있는 군 기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주도보다 작은 섬에 미군기지가 36개나 산재하다니…. ●맥아더 오키나와는 태평양전쟁 말미에 미군이 격렬한 전투 끝에 점령한 뒤로 사실상 군기지 역할을 해왔죠. 실질적으로 주일 미군기지의 75%가 오키나와에 밀집해 있다지요. ●기자 전쟁 얘기를 하셨는데, 오키나와의 ‘평화기념공원’에 가서 당시 전투장면을 담은 흑백 동영상을 보면서 전쟁의 참상에 가슴이 저렸습니다. 특히 한국인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탑 앞에 서서 징용과 위안부 등으로 끌려와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불귀의 객이 된 분들의 가엾은 인생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맥아더 오키나와 전투는 미·일 사이에 벌어진 유일한 지상전이었죠. 미군 입장에선 결정적 승기를 잡기 위해 화력을 쏟아부었는데, 일본이 죽기 살기로 나오면서 희생자가 많아졌습니다. 미군 1만여명과 일본군 9만여명을 비롯해 민간인까지 합쳐 20만여명이나 희생됐어요. ●기자 정치지도자들의 오도(誤導)로 희생을 당하는 건 결국 애꿎은 민중입니다. 전쟁만한 악덕(惡德)이 있을까요. ●맥아더 냉정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전쟁을 혐오한 나머지 국방을 홀대하는 우를 결코 범해선 안 된다는 충고를 하고 싶군요. 문약(文弱)에 빠지면 결국 더 큰 참상을 부른다는 것을 역사는 입증하고 있습니다. 나는 숱한 전쟁을 치르면서 전쟁이란 인류가 헤어나올 수 없는 굴레라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그래서 플라톤은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보았노라.”라고 했는지 모릅니다. ●기자 …. ●맥아더 이거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았군요. 그래, 가데나 공군기지에 가봤습니까. ●기자 예. 정말 대단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공군기지라는 평판이 무색하지 않았습니다. 장장 1만피트에 달하는 광활한 활주로에 가공할 첨단 ‘항공 무기’들이 즐비했습니다. 사진으로만 봤던 E-3C공중조기경보통제기,RC-135정찰기,KC-135공중급유기,P-3C대잠초계기 등을 육안으로 접하니 실감이 안날 정도였습니다. 특히 첨단 F-15전투기 54대가 격납고에 나란히 진열돼 있는 장면은 보는 이의 기를 질리게 하더군요.‘지구상에 이런 미군을 감히 상대할 나라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발 이같은 가공할 무기들이 사용되는 사태가 닥치지 않았으면…. ●맥아더 어허~, 감상을 자제하라니까요. ●기자 가데나는 평소 120여대의 항공기가 상주하는데 전시에는 여기에 50% 이상 전력이 증강된다고 합니다. 일본 본토의 요코다 기지가 보급·수송의 허브기지라면 가데나는 전투기지의 허브인 셈입니다. 훨씬 무시무시하다는 얘기죠. 가데나는 위치상 도쿄보다 오히려 서울, 평양이 더 가깝습니다. 유사시 F-15로 서울까지 1시간도 안 걸린다고 합니다. ●맥아더 한국 입장에서는 든든하겠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전시작전통제권이 환수되더라도 미군과의 동맹을 공고히 한다면 감히 한국을 넘볼 나라는 없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맥아더 사실 가데나는 북한뿐 아니라 중국 견제용으로 활용되고 있을 겁니다. ●기자 군사전문가답습니다. 냉전 때만 해도 일본 본토 북부의 미사와 공군기지가 중요시됐는데, 그 대접을 지금은 오키나와가 받고 있습니다. ●맥아더 후텐마 기지도 가보셨나요. 그 용맹한 해병들…. ●기자 그렇습니다. 해병은 역시 해병이더군요. 시원시원하고 박력 있는 게….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자신들이 제일 먼저 한국 땅을 밟게 된다고 자부심이 대단하더군요.‘고속수송함’(HSV)을 타면 30시간 안에 한국에 도달할 수 있답니다. 하지만 이들 중 대다수인 8000여명이 2014년까지 미국령 괌으로 옮겨간다고 합니다. 인근 주민에 대한 성추행 범죄 등으로 더이상 여론의 원성을 버티기 힘든 상황이랍니다. ●맥아더 그 용맹무쌍한 해병들이 어쩌다가 그런 평가를…. ●기자 일본 정부는 미국과의 ‘찰떡 공조’를 공언하는지 몰라도 일본 국민들은 점차 목소리를 키우고 있습니다.2008년 요코스카 기지에 들어올 예정인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워싱턴’을 놓고도 반대 목소리가 있습니다.‘핵’은 안 된다는 것이지요. 미 해병대가 괌으로 이전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105억달러 가운데 60억달러를 일본측이 부담하는 데 대해서도 탐탁지 않은 기류가 감지됩니다. 미국 땅에 기지를 짓는데, 왜 일본이 돈을 내냐는 것이지요. ●맥아더 당연히 일본이 부담할 몫이지요. 장소만 달라질 뿐 괌 해병대의 주임무는 일본 방위이니까요. 미·일 안보조약 5조는 미국이 일본의 안전을 지켜주는 대신 일본은 땅과 시설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기자 막상 일본에 가서 보니 일본 정부가 내는 방위비 분담금이 실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본 외무성은 공식적으로 51%를 부담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75% 이상을 낸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로 미군에 헌신적인 인상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다행이지요. ●맥아더 한국과 일본은 다르지요. 일본은 패전국 아닙니까. ●기자 그렇죠. 그리고 일본은 종전후 일왕이 권력을 보존하기 위해 미군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것입니다. 그런 내막은 외면한 채, 한국내 일각에서 “일본은 미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데 한국은 뭣하고 있느냐.”고 지적하는 것은 진실을 호도하는 행태입니다. 한국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당당하게 임할 자격이 있습니다. ●맥아더 맞아요. 그때 일본 왕이 나한테 편지와 사람을 보내 애걸복걸했지요. 이제 와 내 입으로 그런 얘기를 하기는 뭣하지만…. 어쨌든 동맹 간의 작은 차이는 공동의 가치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기자 짓궂은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만약 한국과 일본이 싸우면 미국은 어느 편을 들까요. ●맥아더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는 식이군요. 하지만 정말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미국은 아마 일본 편에 설 것이라는 게 내 생각입니다. 일본은 19세기에 이미 아시아에서 가장 선진화된 나라이자 미국의 가치에 부합하는 동양 국가라는 이미지로 미국인에게 비쳐졌습니다. 태평양전쟁 끝무렵에 소련과의 점령지 경쟁에서 미국이 일본을 최우선적으로 ‘찜’해 놓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일본의 몸값을 높게 친 거죠. 직설적으로 말하면, 당시 한반도는 일본만큼 매력이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결국 미국은 능력 있고 매력 있는 나라를 친구로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한국 사람들이 사대주의적인 의존심을 버리고 자부심을 갖고 자신의 매력을 극대화하길 바랍니다. 그래야 미국 사람들한테 등뒤에서 무시당하지 않습니다. ●기자 충고 고맙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서 장군의 말씀을 꼭 전하겠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장군의 그 멋진 은퇴사를 직접 들려주실 수 있나요. ●맥아더 이거 참, 쑥스럽게…. 노장은 죽지 않습니다. 다만 사라질 뿐입니다. carlos@seoul.co.kr
  • 현대모비스 아름다운 ‘브나로드 운동’

    ‘브나로드 운동을 아십니까.’ 국내 최대의 자동차 부품 회사인 현대모비스가 현대판 브나로드 운동을 전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브나로드(v narod)란 ‘민중속으로’라는 뜻으로,19세기말 러시아에서 활발하게 펼쳐졌던 계몽운동이다. 현대모비스 임직원들은 전국 사업장과 가까운 사회복지시설과 자매결연을 맺고 매주 토요일이면 번갈아 봉사활동을 나간다. 고아원·양로원 등을 찾아 말벗이 돼 주고 화단 정리도 해준다. 토요 봉사활동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3년.3년 넘게 계속해오고 있다. 해외법인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 장쑤지역의 장쑤모비스 법인은 매달 한차례 이상 인근 고아원과 장애아 시설을 방문해 생필품 및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2004년에는 모비스 직원들이 ‘장쑤를 빛낸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동유럽의 슬로바키아 법인도 자연재해 때마다 성금을 걷고 고아원을 방문하는 등 브나로드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현대모비스가 한국공학한림원과 손잡고 지난해부터 실시하고 있는 ‘주니어 공학교실’도 인기다. 한달에 한번씩 사업장 인근 초등학생들을 경기도 용인의 기술연구소로 초대해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주는 프로그램으로,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고 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직원을 직접 강사로 선정해 ‘눈높이’를 맞춘 것도 주니어 공학교실의 인기 비결이다. 최근에는 입소문이 나면서 참여 요청이 쇄도해 천안·울산까지 교실 개최 범위를 넓혔다. 현대모비스측은 “고객들의 삶 속으로 파고드는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좋은 기업(Good Company)을 넘어 위대한 기업(Great Company)이 되겠다는 게 모비스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3)강역(江域)-자연상징(상)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3)강역(江域)-자연상징(상)

    한반도의 모양은 흔히 대륙으로 도약하려고 웅크린 호랑이에 비유된다. 이때 호랑이의 등뼈에 해당하는 것이 백두대간(白頭大幹)이다. 백두대간이란 용어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신경준의 저술로 알려진 ‘산경표(山經表)’에 처음 등장한다. 민족의 발상지 백두산 우리 조상들은 산을 이어지는 줄기로 파악하였는데, 우리 국토의 뿌리인 백두산에서 시작해 낭림·금강·설악산 등을 거쳐 태백산에 이른 뒤 다시 남서쪽으로 소백·속리·덕유산으로 이어져 지리산에서 멈춘 가장 크고 뚜렷한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 불렀다.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생명선이다. 한반도의 주요 강이 백두대간에서 시작되고, 대부분의 산이 백두대간으로 연결되어 생명의 통로가 된다. 또한 백두대간은 한민족의 문화와 역사의 저장고이다. 옛 사람들에게 백두대간은 신앙의 대상이자 수련의 장소였으며, 의식주에 필요한 물품을 구하고 고달픈 삶을 피할 수 있는 안식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백두대간은 가장 중요한 자연유산이며, 여가와 관광, 그리고 교육의 공간으로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백두대간의 시작인 백두산(白頭山)은 우리나라 산의 시조(始祖)이다. 백두산은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졌는데,‘조선왕조실록’에는 1597·1668·1702년에도 백두산에서 분화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백두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큰 산으로, 머리에는 천지(天池)라는 커다란 호수를 이고 있어 사람들이 외경심과 신비감을 가지기에 충분하였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백두산을 민족의 발상지로 여기고, 성산(聖山) 또는 영산(靈山)으로 신성시해 왔다. 백두산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에 걸쳐 있다. 그래서 백두산을 둘러싼 양국의 분쟁도 끊이지 않았는데, 최근 중국이 백두산을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록하고 상품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소식이 들려와 마음이 편치 않다. 백두대간에 속한 산 가운데 경치로는 금강산(金剛山)이 최고로 꼽힌다. 화강암이 오랜 세월 동안 풍화를 받아 만들어진 ‘일만 이천 봉’과 기암괴석, 그리고 맑은 계곡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금강산의 아름다움은 중국에까지 알려져 중국인들도 금강산을 직접 구경하는 것을 소원하였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도 금강산 구경을 평생의 소원으로 간직한 이가 적지 않았다. 이들은 금강산의 빼어난 경치뿐 아니라 곳곳에 산재한 문화유산을 답사하기 위해 산에 올랐다. 금강산은 사찰과 문화재, 전설을 많이 간직한 산으로도 유명하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금강산 여행이 오늘날의 해외여행보다 더 어려웠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기행문을 통해 간접 여행하는 ‘와유(臥遊)’가 유행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금강산은 남북화해의 상징이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은 아직 금강산의 절반인 외금강만 구경할 수 있는 반쪽 관광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더 좋아했고 그래서 더 많이 찾았던 내금강을 하루빨리 구경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며칠 전 광복절을 맞아 생각나는 강역으로 독도(獨島)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 국토의 동쪽 끝인 독도는 동해(東海) 한가운데 있는 섬이다. 독도는 행정구역 상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이며, 우편번호는 799-805이다.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독도는 하나의 섬이 아니라, 동도와 서도 2개의 큰 섬과 주위에 89개의 부속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독도(獨島)’라고 표기해 ‘외로운 섬’,‘홀로 섬’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돌섬’을 ‘독섬’으로 발음하면서 ‘독도’로 표기한 것이다.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사실은 다양한 자료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심지어 일본 측 자료에도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나, 일본은 계속해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강역과 관련된 민족문화상징으로 독도를 꼽은 것은 이러한 일본의 억지로부터 반드시 지켜야 할 우리 국토의 막내이기 때문이다. 일본자료에도 “한국땅” 독도 독도를 품고 있는 동해(東海)도 일본과 마찰을 빚고 있는 바다이다. 동해를 둘러싼 문제는 영역이 아닌 명칭 때문인데, 같은 바다를 두고 우리는 동해(East Sea), 일본은 일본해(Sea of Japan)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문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동해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기원전 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 시조 동명왕에 대한 기사에 동해라는 이름이 사용되어 약 2000년 전부터 동해라 부른 것이다. 이에 비해 일본은 ‘일본’이라는 나라 이름자체가 7세기부터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동해 명칭이 일본해에 비해 역사적으로 선행하는 만큼 동해는 동해로 불러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세계지도에서 동해 표기는 90% 이상이 일본해로 되어 있다. 국제사회에서 동해가 일본해가 아닌 동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족문화상징에 해양강역으로 동해가 선정된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지금까지 살펴본 우리 강역에 대한 정보를 조선시대 사람의 눈으로 집대성한 것이 김정호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이다. 이 지도는 한반도를 북에서 남까지 동서로 끊어 22폭으로 나누어 담았다. 이 22폭을 상하로 모두 이으면 가로 약 3.3m, 세로 약 6.7m의 거대한 대축척 전국지도가 만들어진다. 대동여지도는 한반도의 윤곽을 정확하게 그렸을 뿐 아니라 백두대간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산줄기와 물줄기를 상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도로망·역·창고·성곽 등 각종 인문지리 정보도 풍부하게 담고 있어 19세기 중엽 우리 국토의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한마디로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의 고지도 중 최고의 걸작으로, 우리 문화와 과학기술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문화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자연경관으로는 황토, 갯벌, 풍수 등 3가지가 선정되었다. 황토(黃土)는 한국인과 가장 친한 흙이다. 우리 조상들은 황토로 만든 집에서, 황토로 빚은 옹기에 저장한 음식을 먹으며 평생을 보냈다. 황토집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할 뿐 아니라 습도도 저절로 조절된다. 가을에 수확한 곡식을 종자로 쓰기 위해 황토벽에 걸어두면 이듬해 봄까지 온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시화·산업화의 바람 속에서 황토벽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시멘트벽에 걸린 종자는 겨울을 나는 동안 상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들어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황토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적당히 가열된 황토가 몸에 이로운 원적외선을 방출한다고 하여 ‘황토침대’,‘황토방’이 유행한다. 옛날 어른들이 온돌방에서 ‘지지고’ 나면 몸이 가뿐해진다고 한 것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자연경관 ‘황토·갯벌·풍수’ 황토는 바다의 적조 제거에도 한몫을 하며, 가축의 사료로도 쓰인다. 황토의 흡수력, 해독력을 이용한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사람과 가축의 질병을 치료하는 약으로도 황토를 사용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한하운의 시에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이라는 대목이 나오듯이, 우리나라 황토가 누런색이 아닌 붉은색을 띤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술용어로는 ‘적색토’라 불린다. 황토는 전국적으로 나타나지만, 특히 서해안의 해발 150m 이하의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에 넓게 분포한다. 갯벌은 바닷물이 드나들면서 운반해온 미세한 흙이 쌓인 해안의 평평한 땅을 말한다. 우리나라 서남해안에 발달한 갯벌은 그 규모에서 세계적이다. 우리는 과거 갯벌을 쓸모없거나 간척의 대상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갯벌은 일찍부터 ‘바다밭’이라 불린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갯벌에 자라는 각종 조개를 캐거나 어살을 설치해 물고기를 잡는 일은 서남해안 어민들의 가장 중요한 생계수단이었다. 우리가 갯벌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은 무분별한 대형 간척사업으로 갯벌이 많이 사라지고 나서부터이다. 갯벌은 어민들의 생활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며, 다양한 동식물이 자라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인 동시에, 각종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거대한 정화조’이다. 우리나라 갯벌은 국토면적의 2.5%를 차지하는데, 돈으로 따지면 연간 10조원에 가까운 경제적 가치를 가진다고 한다. 이와 같이 갯벌은 우리나라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천혜의 자원이다. 보존과 함께 지속가능한 이용도 필요할 것이다. 풍수(風水)는 선조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된 전통적 환경사상이다. 풍수는 그 이론들이 중국에서 비롯되었으나,8세기경 우리나라에 도입된 뒤, 우리 나름의 생각과 가치가 더해지게 되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풍수를 묘 자리나 보는 지술(地術)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풍수는 죽은 사람의 쉴 자리보다는 산 사람들의 살 자리를 찾는 일종의 입지론이다. 풍수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나라에서 수도에서부터 마을의 터 잡기까지, 그리고 도시와 마을의 공간배치와 구성 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 왔다. 따라서 우리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상징이 풍수인 것이다. 정치영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 게이샤 부활

    여권 신장과 서양식 접대문화의 유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일본의 전통 여성 접대부 게이샤가 인터넷을 통한 지원자 모집 등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가 24일 보도했다. 교토의 게이샤 이익단체인 오키니 재단에 따르면 19세기 중반 1000명에 달했던 이 지역 게이샤는 2차 세계대전 직전부터 줄기 시작해 1950년대 500여명으로 감소한 뒤 최근까지 심각한 구인난에 시달렸다.2004년엔 게이샤 수련생인 ‘마이코’만 58명 남았을 정도다. 하지만 몇몇 게이샤 하우스들이 웹사이트를 개설, 신참자들을 모집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일본 전역에서 게이샤가 되는 방법을 묻는 이메일과 전화가 폭주한 것이다. 현재 교토의 게이샤 하우스에는 80여명의 마이코가 성숙한 게이샤가 되기 위한 수련을 받고 있다. 오키니 재단의 오사무 이토는 “지원자가 업소 수요보다 너무 많아 대부분 돌려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게이샤 하우스 ‘이치’의 웹사이트는 짙은 화장을 한 어린 마이코의 사진과 함께 게이샤의 역사와 직업세계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마메란 이름을 가진 18세의 마이코가 자신의 일상을 묘사한 웹블로그도 인기다. 그러나 게이샤가 되려고 지원했다가도 혹독한 수련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탈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게이샤 수업에는 춤과 노래, 전통악기 연주, 화장술과 기모노 예절 등은 물론 최근에는 외국인들을 상대하기 위한 영어 회화까지 추가됐다.게다가 게이샤 하우스에서 동료 수련생과 한 방을 쓰며 다다미 바닥에서 생활하는 것이 서구식 주거와 생활방식에 익숙해진 요즘 일본 10대들에겐 고역이 아닐 수 없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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