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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선묘조제재경수연도’중 조찬소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선묘조제재경수연도’중 조찬소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거(李·1532∼1608)는 지금의 서울시 부시장 격인 한성우윤으로 있던 선조 37년(1604년) 11월12일 72세의 나이로 형조참판에 발탁됩니다. 그러나 사관(史官)은 이 인사가 마뜩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 날짜의 ‘조선왕조실록’에는 ‘이거는 사람됨이 용렬하고 나이도 노쇠한데 101세의 편모가 있으므로 이 벼슬에 제수되었다.’고 편치 않은 심기가 담겨있습니다. 실제로 이거가 참판에 오르는 데는 어머니 채씨의 존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선조는 이거의 노모 이야기를 두해전 승정원으로부터 듣고는 매우 기뻐했다고 하지요.7년동안에 걸친 임진왜란의 참혹함 속에서도 이거의 어머니가 백수(白壽)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나라에 좋은 징조라고 여겼습니다. 선조는 채씨를 기쁘게 하려고 어머니를 잘 모신 효자 아들 이거를 형조참판에 임명한 데 이어 이거의 아버지에게는 이조참판을 추증하여 채씨를 정부인(貞夫人)으로 높였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진흥군 강신 등 13명은 ‘어르신을 받드는 이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을 봉로계(奉老契)를 만들게 되지요. 이들도 모두 편모를 모시고 있었는데, 특히 강신과 공조판서 윤돈, 여흥군 민중남, 병조참지 윤수민, 장악원 첨정 권형의 어머니는 모두 팔순을 넘은 고령이었습니다. ●모두 5폭… 중신 부모 장수축하연 그려 이들이 채씨 정부인과 자신들의 노모를 모시고 장수를 축하하는 잔치를 열기로 했다는 소식에 선조는 적극적으로 지원하라는 분부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왜란의 뒤끝이라 환갑잔치 말고는 풍악을 금지한다는 하교가 있었지요. 예조는 ‘이들의 모친이 모두 죽음에 임박한 연세로서 날을 받아 함께 모여 한 집에서 즐겁게 노는 것이 크게 아름다운 일’이라고 선조에게 건의하여 풍악을 울려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선조 38년(1605년) 4월9일 삼청동에 있는 예조의 부속건물에서 큰 잔치가 벌어지게 되지요. ‘선묘조제재경수연도(宣廟朝諸宰慶壽宴圖)’는 이날 잔치의 모습을 다섯 폭으로 나누어 그린 기록화입니다.‘선조 시대 여러 재상이 참여하여 펼친 경로잔치 그림’쯤으로 풀이할 수 있겠지요.▲손님을 맞는 대문 안팎의 정경에서부터 ▲음식을 만드는 임시 부엌 ▲계원들이 회동하는 광경 ▲대부인에게 예를 올리는 모습 ▲주인공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연회 장면을 담았지요. 이런 종류의 기록화는 대개 참여한 사람의 숫자만큼 그려서 나누어 갖곤 했습니다. 경수연도도 최소한 13권이 만들어졌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그런데 과거에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기록화가 훼손되거나 없어지면 모사본을 만들었습니다. 또 집안의 대소종가에서도 모사하여 갖고 있는 게 보통이었지요. 현재 세 가지 ‘선묘조제재경수연도’가 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전통음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 이 가운데 홍익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이 원본 격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고려대박물관이 갖고 있는 것은 18∼19세기, 국립문화재연구소 것은 19세기에 다시 모사한 것이지요.‘남씨 집안에 내려오는 귀중한 문서’라는 뜻을 가진 ‘남씨전가경완(南氏傳家敬翫)’이라는 표제의 두루마리에 담긴 고려대박물관 소장본은 의령 남씨 집안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봉로계의 일원으로 의령 남씨인 당시 형조참판 남이신의 후손이 물려받았을 것입니다. 이 경수연도에서 조찬소(造饌所) 또는 숙설소(熟設所)라고 불리는 야외의 임시 부엌을 묘사한 두번째 그림이 특히 전통음식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하지요. 일반적으로 풍속화나 기록화에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나 부엌의 모습은 잘 등장하지 않는데, 이 그림에서는 음식을 만드는 장소와 사람, 접대하는 장면까지 자세히 묘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엌 장면뿐만 아니라 다른 네 폭의 그림에서도 음식의 종류나 가짓수, 독상차림, 상의 형태나 그 위에 굄새로 담아진 모습 등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마르크스 구명운동/구본영 논설위원

    “한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칼 마르크스는 1847년 ‘공산당 선언’의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이 구절이 그의 사후에도 유효하리라곤 그 자신도 몰랐을 게다. 그의 이론은 현실에선 ‘성공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했지만, 아직도 지구촌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으므로…. 마르크스는 독특한 가정법에 따라 자본주의 경제의 붕괴와 공산주의 사회의 도래를 확신했다.1867년에 출간된 자본론에는 그의 이런 신념이 포괄적 사상체계로 집약돼 있다. 그러나 그의 치명적 오류는 자본주의 체제의 자정능력을 무시한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도 노동 현장의 요구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시정될 것이란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그가 살았던 19세기에 이미 영국·독일에서 사회보장법이 통과됐는 데도 말이다. 그는 유복한 유대계 독일인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평생 가난의 굴레를 못 벗어났다.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직을 얻으려 노력했지만, 그의 과격한 정치선전 활동이 끝내 결격사유가 됐다. 그래서 그의 사후 동서를 막론하고 그를 연구하는 게 생업인 교수들이 양산된 사실은 퍽 역설적이다. 서울대 경제학부 대학원생들이 그제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하는 교수를 채용해 달라는 대자보를 붙였다.33명의 경제학부 교수 가운데 유일하게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김수행 교수가 이달말 정년퇴임하기 때문이란다. 김 교수는 국내서 처음으로 자본론을 완역했다. 그가 퇴임하면 석·박사 과정의 관련 전공 지도를 할 교수가 없게 된다. 학생들의 호소가 가슴에 와닿는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런던 교외 마르크스 묘비에 적힌 구절이다. 그러나 그가 꿈꾸던 공산혁명은 일어나지 않았고,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실험도 실패로 끝났다. 그의 이론도 현실 경제에서 설명력을 상당부분 상실하면서 폴 새뮤얼슨 등의 신고전파 종합이 주류 경제이론으로 자리잡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르크스 경제학의 명맥은 이어져 학문의 다양성은 확보돼야 한다. 시장경제가 쇄신을 통해 건강성을 확보하는 데도 사회주의 경제이론이 안티테제의 역할을 하지 않았던가.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희귀 동전 300개 무려 ‘100억원’에 낙찰

    최근 미국에서 한 동전 수집가가 내놓은 희귀 동전들이 무려 1070만 달러(한화 약 101억원)에 낙찰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롱 비치(Long Beach)에서 열린 동전 경매장에서 우주선부품제조업자인 월터 제이 후삭(Walter J. Husak·65)은 자신의 수집품 중 300개의 동전을 내놓았다. 후삭이 내놓은 동전들은 18~19세기에 미국에서 사용되었던 것들로 조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대부분. 동전들 중 특히 18세기 당시 발행된 2개의 동전은 63만 2500달러(한화 약 6억원)에 낙찰돼 최고가를 기록했다. 아울러 지난 1793년 당시 2주간 발행되다가 동전에 새겨진 인물의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폐가 중지된 희귀 동전도 애호가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이날 경매를 주관한 헤리티지 옥션 갤러리(Heritage Auction Galleries)의 대표 그렉 로한(Greg Rohan)은 “동전 수집가들을 위한 최대의 경매였다.”며 “이번 경매는 동전 수집가들에게 있어서는 일생 일대의 기회였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경매가 이루어지는 동안 온라인이나 전화를 통해서도 문의하는 사람들도 많았다.”며 “후삭이 내놓은 동전들은 다양하고 희귀할 뿐만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한편 후삭의 아내인 패트리샤(Patrica)는 “남편은 희귀 동전이라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갈 만큼 광적인 동전 수집가”라며 “경매장에서 동전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자 남편의 숨이 가빠왔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책꽂이]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임혜지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독일에서 활동 중인 고건축 전문가가 쓴 건축 에세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독일 뮌헨의 집과 주변 건축물, 독일 남서부 칼스루에의 오래된 주택 등 건축에 대한 따뜻한 학자적 시선이 담겼다.1만 5000원.●대한민국 머니 임팩트(윤광원 지음, 비전코리아 펴냄) 한국금융 60년 역사를 되짚었다. 지금까지의 한국금융사는 금융·기업·정치권력의 제 살 파먹기식 공존관계인 ‘네거티브 머니 임팩트’가 초래한 정경유착과 관치금융, 재벌 탄생과 붕괴, 금융위기의 연속이었다고 진단한다.2만 5000원.●윈난에 가봐야 하는 20가지 이유(탕하이정 지음, 박승미 옮김, 터치아트 펴냄) 전 세계 배낭족에게 최고의 여행지로 떠오른 윈난(雲南)의 매력포인트를 망라했다.26개 소수민족 등 윈난 곳곳의 이야기와 풍경을 꼼꼼한 글과 천연색 사진으로 전해준다.1만 2000원.●현대미술의 심장 뉴욕미술(이주헌 지음, 학고재 펴냄) 현대미술의 메카 뉴욕에서 꼭 들러볼 미술관, 꼭 봐야 할 걸작들을 골랐다. 뉴욕현대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등 뉴욕의 ‘빅5’ 미술관의 놓치면 안 될 걸작 100여점이 소개됐다.1만 6500원.●유학, 우리 삶의 철학(필립 아이반호 지음, 신정근 옮김, 동아시아 펴냄) 세계적 동양학자 필립 아이반호는 2500년 유학사를 `개성 분투의 역사´라 규정했다. 공자, 맹자, 순자, 주희 등 유학사의 대표 학자 7명을 조명함으로써 유학이 원형반복의 역사가 아님을 주장한다.1만 5000원.●그로테스크로 읽는 일본문화(김종덕 등 지음, 책세상 펴냄) ‘그로테스크’한 원형을 추출함으로써 일본문화를 새롭게 조명했다. 언령신앙, 모노노케, 노(能), 가부키 등에서부터 오늘날의 애니메이션과 영화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학제를 넘나드는 문화분석 글 10편이 묶였다.1만 5000원.●카페를 사랑한 그들(크리스토프 르페뷔르 지음, 강주헌 옮김, 효형출판 펴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를 ‘놀이 공간’으로 여겼던 19세기 프랑스의 풍경을 옮겼다. 카페를 사랑했던 예술가와 프랑스 대문호의 유명작품들을 이끌어냈다.1만 3000원.●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했는가(버트런드 러셀 지음, 김경숙 옮김, 푸른숲 펴냄) 무비판적 열정과 맹신주의에 빠져 합리적 사고가 마비된 현대에 울리는 버트런드 러셀의 경종. 사회의 부속품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당연하다고 여겨온 모든 것들을 의심하는 회의주의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1만 3000원.●런던 미술 수업(최선희 지음, 아트북스 펴냄) 저자는 영국 런던에서 6년여간 경매회사, 갤러리 등에 몸담으며 현지 미술계 속성을 체득한 큐레이터. 경험담 속에 경매사, 화랑, 미술관, 작가 등 런던 미술계 상황이 생생히 녹아 있다.1만 7000원.●즐기고 계신가요?(로저 하우스덴 지음, 박미애 옮김, 북스코프 펴냄) 쾌락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눈앞의 인생을 생산적으로 즐기라고 제안한다. 남들이 보기에 쓸데없는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하며, 때론 어리석음과 무지 속에 즐거움과 고독을 맛보는 것도 삶의 가치라고 귀띔한다.9500원.●여성 노동 가족(루이스 틸리 등 지음, 김영 등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노동하는 여성, 노동계급 여성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여성노동사 연구에 초석이 된 ‘고전’. 노동을 여성 해방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마르크시스트 페미니즘에 의문을 제기하며, 임노동 자체가 여성의 지위 향상을 담보하진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1만 8000원.●홍사장의 책읽기(홍재화 지음, 굿인포메이션 펴냄) ‘세상이 덜 무서워진다.’‘분노가 줄어든다.’‘상상력이 늘어난다.’ 인생의 자산인 책읽기가 생활 속에서 어떤 효용이 있는지를 조목조목 짚었다.1만원.
  • [신경림 누항 나들이] 영어만이 경쟁력인가

    [신경림 누항 나들이] 영어만이 경쟁력인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2010년부터 모든 영어수업은 영어로 진행하며 영어 이외의 과목도 영어로 하는 영어몰입교육은 올해부터 농어촌 고교에서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가, 여론이 나쁘니까 영어 몰입교육 계획을 발표한 적이 없다고 슬그머니 발뺌을 했다. 그러면서도 고교만 나와도 영어로 말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에 소요되는 사교육비를 없애겠다는 영어 공교육 강화에 대한 의욕을 보이면서, 청계천을 복구했듯 밀어붙이겠다고 천명했다. 청계천도 처음에는 반대여론이 많았지만 결국에는 전국민적 지지를 받게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영어에 의한 영어수업-영어몰입 교육, 그 다음에는 영어의 공용화로 수순은 이어지리라. 영어 사용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발상이지만, 정말로 영어만이 경쟁력이고 영어만이 국력일까. 일본에서도 19세기 말 영어나 그 밖의 서구어를 공용어로 사용해야만 일류국가가 될 수 있다는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의견이 있었으니, 정조 때의 실학자 박제가(朴齊家)의 ‘북학의(北學議 )’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우리나라는 지역적으로 중국과 가깝고 성음(聲音)이 대략 같으니, 온 나라 사람이 본국 말을 버린다 해도 불가할 것이 없다. 그러한 뒤에라야 오랑캐라는 말을 면할 것이며, 동쪽 수천리 땅이 스스로 하나의 주(周), 한(漢), 당(唐), 송(宋)의 풍속으로 될 것이니 어찌 크게 쾌한 일이 아닌가.”(한어편·漢語篇) 삶의 질이나 학문의 수준이 선진 중국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이런 말을 했겠지만, 이런 주장이 국민의 동의를 얻어 현실화됐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말은 물론 민족도 지금의 만주족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언어에 그 민족의 혼이 담겨 있다는 따위의 고리타분한 말을 반복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제 나라 말을 괄시하고 남의 나라 말에 매달리는 민족 치고 빛나는 역사를 만든 일이 세계사에는 없다. 또 우리가 가진 가장 큰 문제가 우리가 영어를 영어 사용국 사람들처럼 못하는 데서 찾는다는 것도 제대로 된 진단이 되지 못한다. 우리가 더 잘 살기 위해서는 영어를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가 우리보다 더 잘 살아야 하고 영어몰입 교육을 하지 않는 프랑스나 독일이 학문적 후진국이어야 맞겠지만, 그런 말은 들어본 일이 없다. 영어몰입 교육은 영어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체능 과목부터 시작하겠다는 계획이었겠지만, 종국에는 국어, 국사도 몰입교육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국어, 국사를 외국의 국어, 국사로 배우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좀 과장하여 몰입교육이 대학의 불문학, 독문학, 러시아문학으로까지 확대되어 발자크, 괴테, 톨스토이를 영어로 강의한다고 생각해보자. 이것은 아예 희극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영어요 영어가 안 통하는 나라가 없는 세상에서, 영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외국어를 하나 하는 것은 그 나라 문화와 친숙해지는 것을 뜻하니, 영어를 하는 것은 곧 세계에서 가장 큰 문화를 하나 더 가지고 사는 것이 된다. 그러나 영어는 수단일 뿐 목적일 수는 없다. 영어를 통하여 얻고자 하는 것이 있는 것이지 영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영어는 경쟁력을 가지기 위한 수단이지 경쟁력 그 자체는 아니라는 뜻이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군대도 면제시켜주고 영어교육과정을 이수하기만 하면 교사 자격증이 없어도 영어교사로 채용한다는 둥 인수위가 남발하는 설익은 영어 만능주의적 발상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신뢰에 적잖이 금이 가게 만든다. 시인
  • [글로벌 시대] 세계화 시대의 외교 담론/위성락 중앙대 겸임교수·외교부 대사

    [글로벌 시대] 세계화 시대의 외교 담론/위성락 중앙대 겸임교수·외교부 대사

    나라마다 대외적인 이슈를 인식하고 담론하는 나름의 프로세스가 있다. 문제를 파악하고 대응 방향을 끌어내는 사회 전반의 논의 과정을 말하는데, 민주국가의 경우 정치권·관료·언론·학계·시민단체 등이 주 참여자가 된다. 이 프로세스의 우열은 그 나라의 외교정책에 반영되며 국가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세계화 시대에는 그 정도가 더하고, 우리와 같은 비서구권 국가에 더 절실한 문제다. 비서구권에게 대외문제는 19세기 서구에 의해 부과된 생소한 경험인 데다 그나마 외국어로 던져지는 난해한 이슈이므로 사회 전체의 대응에 따라 나라의 흥망성쇠가 갈린다. 일본이 대체로 이 문제를 잘 다뤄 번영의 길을 열었다. 반면 우리는 구한말 이래 겪은 국권 상실과 분단, 전쟁, 냉전 등 일련의 고난이 모두 대외문제에서 비롯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흠이 많은 대응체계를 갖고 있다. 역사는 한국인에게 유전인자에까지 외교적 소양을 각인하라는 교훈을 주었으나 우리는 그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물론 어느 나라나 대외 이슈를 처음 인식할 때 고유의 시각에 따른 다소의 굴절은 있다. 내부 담론 과정에서 국내의 정치적 고려가 가미되는 일도 항상 있다. 정상 오차로 인정할 수 있는 범위라는 말이다. 문제는 굴절과 고려가 지나쳐 논의가 궤도를 이탈한다는 데 있다. 이탈의 배경에는 몇 가지 동인이 관찰된다. 이념 과잉이 눈을 가릴 때도 있고, 국내 정치적 필요가 상황을 압도하기도 한다. 개인의 공명심이 사실을 비틀 때도 있다. 언어와 문화에 대한 부족한 이해가 초래하는 오독도 있다. 한편 특유의 감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세계 읽기는 변수라기보다 차라리 상수다. 앞서 말한 동인들이 한꺼번에 작동하고 참여자들이 다투어 오차 위에 오차를 보태는 쏠림 현상도 특징이다. 이렇다 보니 하나의 국제이슈를 두고 한국만이 특이한 논의를 하는 별천지로 남게 되는 일도 생긴다. 일례로 북핵 문제에 관한 페리 보고서를 들어보자. 페리 구상은 한국에서만 우리의 햇볕정책과 동일한 접근으로 해석되었다. 페리는 1998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야당의 비판을 더 이상 못 견디게 된 클린턴이 고육지책으로 기용한 특검과 같은 존재였다. 자연히 그는 당시 한국과 미국의 기존 접근방법을 멀리하고 공화당의 강경주장 중 일부를 차용했다. 결국 그는 더 많은 주고받기식 협상안과 이 안이 통하지 않을 시 추진할 강압적 대응을 배합한 구상을 제시한다. 좌우정렬을 해보자면 좌로부터 햇볕정책-클린턴 접근-페리 접근-공화당 매파 주장의 순인데도 당시 한국여론은 페리 접근을 환영했다. 햇볕정책을 비판해온 공화당과 함께. 흥미로운 일은 북한은 이러한 사정을 판별하였다는 것이다. 북한은 페리 제안을 거부했다. 종래보다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점을 알아차린 것이다. 북한의 프로세스도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우선 사안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이 시작일 것이다. 우리식 인식과 담론이 갖는 문제점에 대한 사회 전반의 경각심이 높아질 때 참여자의 행동은 절제되고 오차는 줄어들 것이다. 다음으로는 오차 발생시 이를 교정하는 기능을 키워야 한다. 이 부분은 전문가 집단에 기대할 수 있다. 이들이 파수꾼과 교정자가 되어 궤도 복원 기능을 맡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가 집단의 양식과 프로페셔널리즘을 진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 프로세스에 참여하는 각계의 인적 역량을 높이는 노력을 들고 싶다. 언어와 대외문제에 식견이 높은 인력이 개발·충원될 때 오독의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다. 한 나라의 대외문제 대응능력은 그 나라의 지적 역량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21세기의 한국은 더 나은 담론 구조를 가질 때가 됐다. 세계화 시대에 부응할 대외정책을 위해 각계의 관심이 주어지기를 소망한다. 위성락 중앙대 겸임교수·외교부 대사
  • 설 연휴 미술관은 열려있다

    넉넉히 닷새간이나 이어지는 황금의 설 연휴에 미술관은 열려 있다. 북새통 귀성길에 오를 일 없이 서울에 머무르는 가족들에겐 맞춤한 전시들이 많다. 시립미술관의 ‘불멸의 화가-반 고흐 전’을 아직도 못 봤다면 서둘러 온가족이 걸음해 봄직하다.‘자화상’‘아이리스’ 등 고흐의 시기별 특징에 따라 60여점의 대표작이 나와 있다. 시립미술관에서 함께 열리고 있는 ‘문자와 미술’전,‘천경자 상설전’까지 욕심내서 모두 챙겨 보는 게 좋겠다.1577-2933. 아예 하루 날을 잡아 ‘미술관 순례’를 하는 건 어떨까. 시립미술관을 찾았다면 고궁 나들이 삼아 가까운 덕수궁미술관으로 발길을 옮겨 보자. 전후 한국화단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최영림과 그의 일본 유학시절 스승 무나카타 시코의 대표작을 선보이는 대형전시가 최근 문을 열었다.6일과 8일엔 한복만 입으면 ‘공짜’로 들어갈 수 있다. 설날 당일은 모두에게 무료개방된다.(02)2022-0600.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도 막내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러시아 국민화가 일리야 레핀 등 19세기 리얼리즘 거장들의 세계를 이번 연휴엔 꼭 한번 만나 볼 일이다.(02)525-3321.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에는 국내외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현대회화를 전망하는 ‘그림의 대면(對面)’전을 열고 있다. 동양화, 서양화로 회화를 양분하는 한국현대회화의 제도적 문제점을 고민해 보는 자리이다. 설날 하루만 문을 닫는다.(02)425-1077. 아이들 미술공부로도 그만일 대형 전시는 수도권에도 있다. 고양시 일산의 경기 고양문화재단 아람미술관에서는 모딜리아니 전시가 열리고 있다.‘열정, 천재를 그리다’전에는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물론 그의 연인이었던 잔 에뷔테른의 작품까지 모두 150여점이 나왔다.1577-7766. 교과서에서 만나는 유명한 거장의 그림들은 분당에도 있다. 성남문화재단에서는 유럽현대미술 100년을 조망한다.‘유럽현대미술의 위대한 유산-피카소에서 미로, 샤갈, 현대회화의 거장들’전이 근 두달여 계속되고 있다. 파블로 피카소, 피에르 보나르, 호안 미로, 장 드뷔페 등 현대미술 거장의 작품 125점을 만날 수 있다.(031)721-7780.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밤의로의 여행/연진희·채세진 옮김

    밤의로의 여행/연진희·채세진 옮김

    우리의 일부다. 어떤 이에게는 불안과 고독의 시간이다. 또 어떤 이에게는 노동에서 해방된 자유의 시간이자 관능적 쾌락과 여흥의 시간이다. 하루의 걱정을 밀쳐둘 수 있는 시간이며,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사리는 미개척지인지도 모른다. 이건 ‘밤’이다. 캐나다의 시인이자 에세이 작가인 크리스토프 듀드니의 밤에 관한 단상이다. 그가 쓴 ‘밤으로의 여행’(연진희·채세진 옮김, 예원미디어 펴냄)은 드물게 만나는 ‘밤의 인류문화사’이다. 인류역사를 통해 문학으로, 그림으로 끝없이 노래됐으면서도 밤 그 자체에 의미를 둔 시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낮의 그림자, 낮과 낮 사이에 끼인 어둠의 시간. 하루 24시간의 중심축을 떠받치며 엄존함에도 밤은 개념적 적자(嫡子)로 대접받지 못했다. ●밤의 기원에 대한 신화·과학적 정의도 밤의 모든 것을 파악한 백과전서를 선언한 책은, 그 언어적 유래로 운을 떼는 치밀함을 보인다. 숱한 단어들이 변천의 역사를 겪어왔어도 영어의 ‘night’만큼은 모양을 바꾼 적 없는 은근한 세를 부려왔다. 밤을 여성으로 인격화하며 찬미한 수많은 시인들의 작품을 소개하기도 한다. 밤의 기원에 대한 신화·과학적 정의가 빠지지 않음은 물론이다. 낮을 준비하는 관념적 인식의 대상이던 밤이, 신비함으로 무장한 상상과 창조의 시간으로 실체적 가치를 얻어가는 과정에는 정보가 풍성하다. 밤의 시간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다양한 주제의 지적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일몰에서부터 다음날 일출까지 밤의 12시간을 한 시간 단위로 쪼개 모두 12개의 주제가 다른 장(章)으로 책을 꾸몄다. 예컨대 고즈넉이 아름다운 ‘밤의 자연’을 짚는 3장에서는 19세기 미국의 박물학자이자 작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전면에 등장시킨다. 저 유명한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 홀로 지내며 소로가 밤낚시를 즐겼던 여름밤 풍경은 그대로 밤의 찬사이다. 소로가 저서 ‘월든’에 쓴 그림같은 기록의 일부가 인용됐다. ●순서없이 펼쳐 읽어도 무리없어 낭만적 고찰에만 그치지 않는다. 밤을 “광학적 사막”(빛이 사하라의 물만큼이나 희소한 공간)이라 규정하고, 밤 사냥에서 최고의 입지를 얻는 야행성 동물들에게는 어둠이 오히려 빛이 되는 역설을 일깨운다. 야간투시경을 가진 연쇄살인범이 활약하는 영화 ‘양들의 침묵’, 안구가 유난히 발달해 먹이를 보려면 머리를 돌려야 하는 안경원숭이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지식정보들이 종횡무진 지면을 활강한다. 순서없이 마음 가는 대로 펼쳐 읽어도 무리없는 건 그 덕분이다. 천문학·일몰·북극광·오로라 등 자연현상, 생물학, 생리학, 병리학, 의학, 예술, 과학기술, 신화, 어원학 등 다방면에서 밤의 지표들을 뒤져냈다. 우주가 캄캄한 이유에서부터 부엉이와 박쥐가 어둠 속에서 먹이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기술, 저녁 노을의 녹색섬광과 청색섬광의 정체, 도시의 야광이 암에 영향을 미칠지의 여부, 심지어는 코르티잔 나이트클럽 풍속에까지 관심의 촉수가 닿았다. ●잠과 꿈, 해몽과 불면증 이야기도 밤과 필연적 관계를 나눈 잠과 꿈, 해몽과 불면증 이야기는 특히 흥미롭다. 마을 주민이 통째로 불면증을 앓는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간의 고독’, 프로이트와 융의 학설을 인용하거나 때로는 저자가 수면연구소를 직접 찾아가 현장성을 부각시켰다. 고질적 불면증 환자였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비롯해 마르셀 프루스트, 샬롯 브론테, 버지니아 울프, 마크 트웨인 등 자신들의 복잡한 내면을 작품에 투영시킨 ‘올빼미 작가족’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글감이다. 저자의 광범한 지적 스펙트럼에 힘입어 밤은 복권돼 간다.500쪽이나 되는 긴 ‘탐구서’를 쉼없이 채워낸 작가의 오지랖과 재담이 무엇보다 놀랍다. 뒤집어, 방대한 지식정보들을 백화점 식으로 나열한 글쓰기에서 깊이읽기의 아쉬움을 느낄 독자도 있을 듯하다.1만 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추재기이/조수삼 지음

    ‘‘내 나무’는 나무를 파는 사람이다. 그는 나무를 팔면서 “나무 사시오!” 하지 않고,“내 나무!”라고만 했다.…나무를 사려는 사람이 없어 틈이 나면 길가에 앉아 품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바로 고본(古本) 경서(經書)였다.’ 이 사람은 몰락한 양반층의 지식인인 듯하다. 그래서 차마 다른 장사꾼들처럼 “나무 사시오!”라고 존대하지 못하고,“내 나무!”라고 하대함으로써 양반 선비의 마지막 체면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추재기이(秋齋紀異·조수삼 지음, 허경진 옮김, 서해문집 펴냄)’는 조선 후기 기이한 언행으로 장안에 이야깃거리가 되었던 인물 71명을 소개한 ‘저잣거리 열전’이라고 할 수 있다. 추재 조수삼(1762∼1849)은 화가로 유명한 조희룡이 ‘호산외기(壺山外記)’에 실은 ‘조수삼전’에서 그의 복 열두 가지를 들면서, 여덟 번째 복으로 담론을 들었을 만큼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고 한다. ‘내 나무’에서 보듯 ‘추재기이’에는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돈이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조선의 거리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생생하다.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이상하고 신비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전기(傳奇)를 읽어주는 늙은이를 그린 ‘전기수(傳奇)’의 주인공은 ‘숙향전’,‘심청전’,‘설인귀전’ 등을 외워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초하루는 (청계천의)첫째 다리, 초이틀에는 둘째다리에 앉고, 초사흘에는 이현(梨峴·청계천 4가 배오개다리 일대), 초나흘에는 교동 어귀, 초닷새에는 대사동 어귀, 초엿새에는 종루 앞에 앉는 식이었다. 그는 가장 재미있는 대목에 이르면 잠시 입을 다물었는데, 이때 사람들은 다투어 돈을 던졌다고 한다. 이를 요전법(邀錢法)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원숭이를 구경시켜 빌어먹는 거지와 거리에 앉아 소리를 하여 먹고 사는 장님 악사, 팔뚝만 한 검은돌을 맨주먹으로 깨는 차력사, 안경알을 가는 절름발이 노인 등 조선 후기의 거리 풍경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95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울대 교수 “대운하 반대” 집단행동

    서울대 교수 80명이 실명으로 한반도 대운하 건설 반대 모임을 발족하고 공동 행동에 나섰다. 서울대 교수들이 특정 정책을 놓고 이처럼 대규모 집단 행동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등 교수 80명은 31일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서울대 교수 모임’을 발족하고 명단을 공개했다. 이 교수는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대운하 비판 글을 실어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등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들은 첫 집단행동으로 이날 법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교수와 학생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반도 대운하,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이 교수와 함께 김상종(자연대 생명과학부)·김정욱(환경대학원)·송영배(인문대 철학과) 교수가 공동대표를 맡았다.임현진 사회대학장, 조국 법대 교수, 박찬욱 정치학과 교수, 김정희 미대 교수 등 대부분의 단과대 교수들이 포함됐다. 이들은 이날 대운하 건설 반대 서명운동을 시작했다.최영찬 농생대 교수는 “2월까지 서명운동을 진행한 뒤 건설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할 계획”이라면서 “교수들의 호응이 예상보다 커 진보·보수 성향을 떠나 광범위하게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교수와 학생 말고도 건설업체 관계자 등이 참석해 토론회장 복도까지 꽉 채웠다. 경제, 건설, 환경, 문화 부문 전문가들로 구성된 발표자들은 강도 높은 대운하 건설 비판을 쏟아냈다. 첫 번째 토론자로 나선 홍종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찬성측이 비용 계산에서 유지관리비를 의도적으로 빼고 골재 판매비를 늘리고 산업 파급효과까지 포함시켜 비용 편익 비율을 부풀렸다.”고 주장했다.그는 “경부운하는 19세기형 수송체계로 서울∼부산 거리를 6시간에서 72시간으로 지체시켜 100년 전 뉴딜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곽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홍수 위험과 수질 오염은 엄연한 사실인데 이를 왜곡하고 정치적 논리로 몰아붙이고 있다. 공학적 논의가 상실됐다.”면서 “서울에서 부산간 교량 120개 중 80개는 교체해야 하는데 잘못된 자료로 홍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김정욱 환경대학원 교수는 “미 플로리다 운하처럼 자연 질서를 파괴해 강을 직선으로 만들고 웅덩이로 만들면 수중 생물이 죽고 홍수 범람을 일으킬 것”이라면서 “국토는 대통령의 소유가 아니다. 운하 건설은 국운 쇠퇴의 길이다.”라고 비판했다.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까치까치 설날, 나들이 어디로 갈까

    까치까치 설날, 나들이 어디로 갈까

    ‘까치까치 설날’이 코 앞으로 다가 왔다. 이번 설 연휴는 샌드위치 데이 등을 포함하면 최대 9일까지 이어질 전망이다.‘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소중한 시간이다. 놀이공원과 스키 리조트들이 준비한 설 이벤트 상차림이 푸짐하다. 할인 행사도 풍성해 미리 준비해 가면 알뜰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고향 인근의 민속마을을 찾아 옛 정취를 느껴 보는 것도 좋겠다. 1. 활동파 당신에겐 놀이동산서 ‘나 잡아봐라’ 에버랜드(www.everland.com)는 설 연휴 동안 부채춤 등이 삽입된 신규 민속 퍼레이드 ‘둥둥 희망한마당’과 오고무·모듬북 등을 활용한 퓨전 뮤지컬 ‘코리아 판타지’를 공개한다. 소고치기·비석치기 등의 민속놀이 체험 공간도 마련해 놓았다.2월1∼10일 쥐띠 생이거나, 이름에 ‘복’자가 들어간 고객은 에버랜드 이용권이 50% 할인된다. 만 55세 이상 어르신은 무료 입장. 주한 외국인들도 2월6∼10일 2만 3000원에 입장할 수 있다. 롯데월드(www.lotteworld.com) 가든스테이지에서는 7,8일 ‘김중자 민속 예술단’ 공연과 인기가수 콘서트 등이 열리고,7∼9일 퍼레이드 코스에서는 남사당패의 ‘길놀이 행사’가 펼쳐진다. 어드벤처 매직트리 앞에서는 ‘권원태의 전통 민속 줄타기’ 행사가 열린다.1∼10일 설 특별 가족권(3인권 7만 5000원,4인권 9만 5000원)도 발매한다. 한복 입은 고객은 7일 민속박물관 입장이 무료다. 서울랜드(www.seoulland.co.kr)는 쥐돌이 캐릭터의 ‘신년 하례’와 풍물놀이패 ‘광풍련’ 초청공연 등을 마련했다. 금복(金福) 터뜨리기, 토너먼트 윷놀이 등 참여이벤트와 민속놀이 체험마당도 준비했다. 쥐띠 입장객은 자유이용권 50% 할인.LG텔레콤, 비씨카드 회원도 특별할인된다. 홈페이지에서 30% 할인된 설 연휴 특별 자유이용권도 판매한다. 63시티(www.63.co.kr)는 6∼10일 ‘행복한 설맞이 대잔치’를 연다.63스카이덱에서 ‘무료 운세풀이’,63씨월드에서 ‘수중 세배 이벤트’ 등이 열린다. 외국인 50% 할인. 타이거월드(www.tigerworld.co.kr)에서 수중 이벤트와 스파, 스키, 눈썰매 등을 동시에 즐겨도 좋겠다. 설 연휴 동안 가족수영대회 등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워터파크는 쥐띠 고객 50% 할인.6∼8일 선착순 50명에게 사은품도 마련했다. 2. 내내 스키만 탄다고? 리조트에 이벤트 넘쳐~ 하이원리조트(www.high1.co.kr)는 6,7일 밸리, 마운틴 콘도와 하이원호텔 등에서 토정비결 및 휘호 써주기 행사를 연다. 강원랜드호텔 테라스에서는 오후 3,5시 떡메치기 등 민속놀이 서바이벌 대회도 준비했다. 종목별 우승자에게 리프트권을 제공한다.7,8일 강원랜드 호텔에서는 무병장수를 기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 완판 공연, 민속 대동제도 벌어진다. 휘닉스파크(www.pp.co.kr)는 설날 오전 10시 온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합동 차례식을 무료로 진행한다. 합동 신위를 모신 차례상에 가족별로 절을 하고 술도 올릴 수 있다. 행사 후에는 차례 음식을 나눠먹고 떡메로 즉석에서 찰떡을 만드는 행사도 진행된다. 오크밸리(www.oakvalley.co.kr) 빌리지센터 앞 야외광장에서는 6∼8일 고누, 손지게 등의 민속 이벤트와 가래떡 빨리 썰기 대회 등 다양한 먹거리 행사가 진행된다. 주간 리프트권, 스키복 등 푸짐한 경품도 준비됐다. 쥐띠 해를 맞아 햄스터로 경주를 하는 이색 행사도 곁들여진다. 한화리조트(www.hanwharesort.co.kr)는 전국 12개 리조트별로 설날 이벤트를 준비했다. 설악은 시네라마에서 중국 소림무술 공연, 워터피아에서 가족 수영대회, 워터서바이벌 게임 등이 펼쳐진다.X-box 게임기와 워터피아 이용권 등 경품도 마련됐다. 대천 머드세라피 50% 할인, 양평 퓨전 떡국만들기, 경주 가족영화 상영 등 이벤트도 준비했다. 대명리조트(www.daemyungresort.com)도 6∼8일 설악, 경주 등 리조트 별로 다양한 설날 행사를 마련했다. 떡 썰기, 투호놀이 등 민속놀이와 영화 상영, 아쿠아 이벤트 등으로 꾸며졌다. 비발디 파크에서는 7∼8일 피에로 마술공연과 요가, 오션 걸스 공연 등 오션월드 이벤트 등이 열린다. 3.전통에 취하고 싶다면 고향집 근처 민속촌 직행 강원권 고성군 죽왕면의 왕곡 민속마을은 19세기 전후 북방식 전통 한옥이 밀집된 곳. 지리적인 영향으로 6·25전쟁 당시 한 번도 폭격을 당하지 않아 예전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033)680-3641. 횡성군 청일면의 강원민속촌은 강원도만의 옛 모습과 생활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 선사시대유적 등 10만여 점의 민속품이 함께 전시돼 있다.340-2606. 정선군 동면 백전마을은 화전민들의 산간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거대한 물레방아가 색다른 볼거리다.591-8822. 충청권 충남 아산시 송암면 외암리 민속마을은 500여 년 전 형성된 예안 이씨 집성촌이다.80여 가구 모두가 소중한 문화재나 다름없을 만큼 옛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041)540-2468. 충북 제천시 청풍 문화재단지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놓인 43점의 문화재가 옮겨져 만들어진 문화재 마을이다. 충주호가 한눈에 들어오는 한벽루 전망이 일품.043)647-7003. 경상권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은 조선 유교문화의 정수가 그대로 살아 있는 곳. 사대부 전통가옥에서 최하층민의 흙벽 초가집까지 130여 호의 집이 모여 있다.054)854-3669.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에는 150여 채의 고풍스러운 가옥과 정자, 강학당 등 조선시대 전통 가옥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5백년 전 조선 초기 여강 이씨와 월성 손씨가 모여 살면서 형성됐다.762-4213.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마을은 예로부터 명성이 자자했던 양반 마을이다. 특히 마을 돌담은 폐쇄적으로 보일 만큼 높아 이 지역 사대부계층의 특징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 전라권 전남 장성군 금곡마을 영화촌은 영화 ‘태백산맥’ 등을 통해 친숙해졌다. 한적한 시골 정취에 저절로 취하는 곳. 인근에 홍길동 생가 등 볼거리도 많다.061)390-7221. 전남 장흥군 관산읍 방촌문화마을은 장흥 위씨가 6백 년간 살아온 집성촌이다. 전통한옥은 물론,300여 개의 고인돌 등 선사유물이 색다른 볼거리.860-0528. 전남 순천시 낙안면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호남의 대표적인 민속마을. 실제 주민이 거주하는 초가집에서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749-3347. 제주권 제주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민속마을은 제주만의 독특한 풍물을 간직하고 있는 곳. 가옥마다 관광객들이 직접 머무르면서 제주 주민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다.064)787-1179.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진가신 감독의 ‘명장’ 리뷰

    진가신 감독의 ‘명장’ 리뷰

    ‘명장’(원제:投名狀)의 색조는 어둡고 거칠다. 흑바람 이는 대륙의 살육전,15만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된 대군의 육중한 발자국 소리는 우리가 전쟁영화에서 기대하는 그대로다. 그러나 영화는 전쟁의 스펙터클이 아닌, 세 남자의 운명과 회한을 그린다. 이 영화가 ‘첨밀밀’(1996)의 진가신 감독 작품이라는 걸 알면, 기존 중국 블록버스터의 관습을 따라가지 않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19세기 중반, 태평천국의 난으로 중국은 14년간의 긴 내전에 돌입한다.7000만명의 사람이 전쟁과 굶주림으로 죽고만다. 청나라 장군 방청운(이연걸)은 싸움에 대패하고 혼자 시체더미에서 기어나온다. 그는 도적단의 우두머리 조이호(류덕화), 칼잡이 강오양(금성무)을 만나 오양의 목숨을 살려준 것을 계기로 이들의 마을에 머물게 된다. 가난해도 피붙이가 있는 마을은 군량을 압수하러 온 괴군의 습격을 받고, 방청운은 이호와 오양에게 정부 군에 입대할 것을 권한다. 이들은 믿음을 담보하기 위해 피로써 의형제를 맺는다. 셋은 서성과 쑤저우, 난징을 탈환하는 세번의 전투로 부와 명예를 얻게 된다. 그러나 애초부터 무게중심은 각자 다르다. 방청운은 권력과 명예에, 조이호는 가족과 형제애, 강오양은 신의에 방점을 찍는다. 방청운과 조이호의 극명한 대비는 감독이 중시하는 가치를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방청운이 무고한 여자를 강간한 부하들의 목을 치려 하자, 조이호는 내 형제를 건드리지 말라고 맞선다. 쑤저우 탈환을 이룬 조이호는 적장에게 병사들을 사면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지키려 하지만, 방청운은 몰살을 명한다. 오양마저 방청운의 뜻을 따르며 셋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균열로 접어든다.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이호에게 방청운은 “난징 탈환을 끝으로 평화만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극 초반, 방청운이 꿈꾸는 세상은 이상적인 곳이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군인이 민간인을 폭행하고, 당사자가 그 폭행을 당연시 여기지 않는 곳. 남자든 여자든 자유롭게 하는 것. 그게 그가 전쟁을 하는 이유였다. 그러나 대의를 위해 사의를 희생시켰던 방청운은 결과적으로 개인의 사랑과 야욕을 위해 맹세도 어기는 역설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는 셋의 영웅담을 다룬 경극이 등장한다. 이를 보다 웃음이 울음으로 번지는 조이호의 얼굴에는 한낱 과장된 경극으로 남고 만 관계와 인간에 대한 통한이 서려 있다. 영화는 전투 장면과 황량한 인간 내면을 사실적인 질감으로 그렸다. 그러나 극 중 하괴와 조이호의 부인 연생의 역할이 셋의 와해에 어떻게 치명적인 단초가 됐는지, 응집력 있는 이야기 전개와 설명력은 부족하다.31일 개봉.18세 이상 관람가.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사모아의 청소년/ 마거릿 미드 지음

    사모아의 청소년/ 마거릿 미드 지음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이념은 사실 학문 보편의 이상과도 같다. 단군의 얼굴에서 백성을 향한 너른 자비심과 민족통합의 강고한 국가논리가 교차하듯, 인간 삶을 개선하려는 학문적 열정은 언제나 두 얼굴의 야누스였다. 인류학만큼 상이한 표정을 지닌 학문도 드물다. 다층적·복합적 인간 이해에 귀중한 단서를 제공해온 반면, 제국의 목적에 복무하는 정치적 도구가 되기도 했다. 문명의 시선으로 비문명을 재단하거나, 비문명을 도구삼아 문명을 비판하는 역할을 모두 인류학이 감당해 왔다. 때론 뜨거운 인류애의 전진캠프가, 때론 침략 전쟁의 이론적 첨병이 됐다. 어느 쪽이건 인류학은 늘 첨예한 논쟁을 몰고 다녔다. ●사모아 섬서 청소년들의 삶 관찰 기록 인류학적 열정으로 인간 삶을 개선코자 했던 대표적인 학자는 미국의 마거릿 미드(1901∼78)다. 미드는 “인간에 관한 지식이 세계에 생명력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것, 거기에 희망이 있음을 안다.”고 설파하며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미드의 신념을 대변한 ‘사모아의 청소년’(박자영 옮김, 한길사 펴냄)이 번역돼 나왔다.1928년 미국에서 출간된 후 인류학사에 큰 획을 그었던 책인 만큼 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사모아의 청소년’은 미국 문화인류학의 한 흐름인 문화와 인성간의 관계 연구에서 중요한 초기저술로 꼽힌다. 미국인들의 육아 및 아동교육 방식을 바꾸는 데도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위상에 걸맞게 미드의 책은 무수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출간 직후는 물론 그의 사후까지 논쟁은 이어졌다. 책은 미드가 미국령인 남태평양 사모아 섬에서 청소년기 소녀들의 성장과정을 관찰해 미국 소녀들의 성장과정과 비교 연구한 내용이다. 논쟁은 인간을 바라보는 근본적 시각차에서 빚어졌다. 당시는 우생학적 사회진화론이 팽배해 있던 시기였다.19세기와 20세기 초 인류학의 주요 관점이기도 했던 사회진화론은 지역 및 대륙간 문화의 차이를 인종집단 간 생물학적 차이에서 찾았다. 나치가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전쟁으로 입증하려 한 것이나, 일본이 ‘내선일체’란 이름으로 한국인의 상대적 열등성을 강조한 것도 같은 시각에 뿌리를 뒀다. 행동주의 이론의 대표 논자였던 프란츠 보아스는 이를 맹렬히 반박했고, 보아스의 23살 제자 미드는 반박의 근거를 찾아 사모아로 떠났다. ●美서 본성 vs 양육 논쟁 불러일으켜 현지 조사를 마친 미드는 사모아 청소년들이 미국 청소년들에게서 나타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미국과 대비되는 사모아의 목가적이고 자유로운 거주양식, 느긋한 육아관습 및 성에 대한 개방적 태도, 갈등과 질투 및 폭력이 없는 관계 등에 원인이 있다고 봤다. 미국 청소년들의 정서적 방황과 반항적 태도는 청소년기란 시기 자체가 아닌 청소년들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조건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미드의 결론은 유명한 ‘본성(nature) 대 양육(nurture)’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미드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미드 자신은 세계 인류학계의 스타가 됐다. 미드 사후, 책의 연구자료 및 결론의 엄밀성을 놓고 또다시 검증 논쟁이 벌어졌고, 논쟁을 제기한 뉴질랜드 인류학자(데릭 프리먼)의 주장에 대한 재검증 논란이 일면서 미드의 인류학은 논쟁이란 형식을 빌려 거듭 호명됐다. 미드는 인류학이 소수 엘리트들의 학문이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그는 끊임 없이 인류학의 대중화를 고민했고, 대중에게 유익한 연구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이후 미드가 여성권익과 육아, 성도덕, 인종관계, 약물남용, 인구조절, 환경오염, 기아문제 등에 적극 개입한 것도 이 같은 신념에서 비롯됐다. 2차 대전 막바지, 미드는 패전국 독일의 재교육 미밀 프로젝트 입안에 참여했다.‘전쟁과 인류학의 불안한 동거’는 미국이 이라크전쟁에 투입한 인류학자 조직 ‘인간 분야 시스템’(Human Terrain System. 미군의 현지문화 이해 전략의 일환으로 고안)으로 현재화되고 있다. 미드의 신념까지 포획했던 인류학의 굴곡된 역사는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는 셈이다.2만 3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한국영화계 위기는 과도기일 뿐”

    “한국영화계 위기는 과도기일 뿐”

    ‘첨밀밀’ 등의 영화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홍콩의 천커신(陳可辛) 감독이 새 영화 ‘명장’(31일 국내 개봉) 홍보차 한국에 왔다.‘명장’은 19세기 청나라 말, 태평천국의 난을 배경으로 한 작품. 국내 팬들에게는 여성적이고 섬세한 감수성을 자극하는 영화세계로 친숙한 천 감독이 처음으로 도전하는 전쟁 액션영화다. 22일 기자들과 만난 천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홍콩의 세계적인 배우 리롄제(李連杰), 류더화(劉德華), 진청우(金城武) 등과 함께 작업해 화제를 모았다.“남성 톱스타 세 명이 동시에 출연하다보니 어느 한 명에 치우치거나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어려웠어요. 다들 쟁쟁한 스타들이다보니 서로간의 신경전이나 자존심 싸움도 만만치 않았죠.” “저의 경우 젊었을 때는 ‘분노’라는 감정이 별로 없었는데, 나이가 들고 배반당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분노를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죠. 사회현상을 바라보면서도 점점 불만이 많이 생겼고요. 감독은 늘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 감독은 방한 회수만도 수십차례에 달하는 ‘한국통’답게 현재 한국 영화의 위기에 대해서도 나름의 진단을 내놓았다. “한국영화의 위기는 어떤 산업이든 부흥 단계를 넘어서면 필연적으로 겪는 쇠퇴기 혹은 과도기라고 할 수 있어요. 어떤 산업분야든 과열되면 새로운 자금이 쏟아져 들어오고 프로가 아닌 사람들이 뛰어들어 질적 하락을 가져옵니다. 하지만 한국영화계가 당면한 위기는 일시적인 과도기로 분명히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신경림 누항 나들이] 산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길

    [신경림 누항 나들이] 산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길

    지난가을 육로로 개성을 거쳐 평양을 가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산에 나무가 없다는 점이었다. 이미 여러 해 전 중국에 가서 압록강이나 두만강 너머로 북한의 헐벗은 산을 보았고 금강산을 가면서 평양에서 묘향산을 오가면서 산이 극도로 황폐해 있다는 사실을 알기는 했지만, 실제로 북한의 속살 깊이 들어와 그 사실을 확인할 때는 은근히 화가 나기도 했다. 식량 증산을 위해서 높은 산까지 계단식 밭으로 개간하다 보니 산사태가 나고, 달리 연료가 없어 마구잡이로 나무를 베어 때면서 더욱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 되었다는 것인데, 도대체 그동안 북한 당국은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3년 전 금강산에서 세계시인대회가 열렸을 때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동석했던 일본 시인이 남북의 산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휴전선 부근의 산을 가리키면서 저것이야말로 남북의 현실이 여과없이 표현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북한과는 달리 남쪽 산은 나무로 빼곡 들어 차 있어, 가령 조상의 산소를 산속에 썼다면 한두 해만 걸렀다가는 찾아가기가 힘들 지경이다. 온통 잡목이어서 경제성이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지만, 일단 산림녹화에 성공한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30년 전만 해도 북한처럼은 아니겠지만 우리 산도 헐벗은 산의 대명사였다. 그때 일본을 다녀오던 사람은 거의 같은 말을 했다.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일본의 울창한 숲을 보다가 우리 헐벗은 산을 대하면 한없이 슬퍼진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우리와 일본의 차이가 없다. 그동안의 극성스러운 산림보호정책과 연료 혁명이 주효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한 가지 잘못된 집단기억이 있다. 일본의 침략이 있기 전에는 우리 산림이 울창했는데 강제 병합 후 그들의 남벌로 황폐해졌다는 기억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사실과는 다른 것 같다. 예컨대 19세기 말 한국을 네 차례나 여행한 영국의 이사벨라 비숍은 기행문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부산에 첫발을 딛는 느낌을 “부산의 갈색 땅을 드러낸 산들은 여름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2월로서는 황량하여 가까이하기가 어려운 느낌을 주었다.”고 쓰고 있으며, 서울 근교의 모습도 “경관은 푸른 데가 적고 단조롭다. 과수와 비실비실한 소나무 외에는 나무가 없다.”고 묘사하고 있다. 또독립문이 들어 있는 옛날 사진을 보면 인왕산이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다. 나무 외에는 연료가 없으니 남벌이 성행했을 것이고 화전을 효과적으로 방지하지 못해 산이 황폐해졌던 모양이다. 어쩌면 오늘 우리는 적어도 몇 백 년 사이에는 가장 울창하고 아름다운 산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우리가 유사 이래 가장 번영을 누리며 자유롭게 살게 되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한데 요즘 우리 산들, 특히 도시 근교의 산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자꾸 산으로 파고 들어오는 개발이 가장 큰 범인이겠으나, 등산객이나 유산객들도 만만치 않은 산의 훼손자다. 지난해부터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입산료를 폐지하면서 산 인구가 두 배 세 배로 늘어, 가령 북한산의 경우 한해 동안 산을 찾은 사람이 10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단체에서는 한 달에 세 번 산에 오르던 사람은 두 번으로, 두 번은 한 번으로 줄이자는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을 정도다. 산에 오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산은 오르는 사람뿐 아니라 오르지 않는 사람에게도 즐길 권리가 있다. 여기서 이런 것을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예컨대 북한산을 두고 생각할 때 산을 오르지 않고도 즐길 수 있게끔 산을 일주할 수 있는 환(環)도로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다. 노약자를 배려한다는 점에 있어서도 이는 뜻없는 일이 아닐 것이다. 대운하 같은 거대한 계획에 묻혀 우리들의 작은 삶의 결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신경림 시인
  • [책꽂이]

    ●탐라문견록, 바다 밖의 넓은 세상(정운경 지음, 정민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18세기 우연히 제주에 머물렀던 지식인 정운경이 낯선 땅 제주의 문화와 그곳 사람들의 삶을 관찰한 기록. 바다 밖의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돌아온 표류민들의 기록을 특히 주목할 만하다.1만 3000원.●사랑에 빠진 세계사(치우커핑 지음, 유수경 옮김, 두리미디어 펴냄) 한 시대를 풍미한 역사적 인물과 예술가들의 사랑, 고대에서 근·현대까지 세계 각국의 사랑과 성 풍속을 에피소드별로 모았다.1만 2000원.●조선이 버린 여인들(손경희 지음, 글항아리 펴냄)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세종에서 성종까지의 기록에 등장한 하층민 여성 33인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왕비, 후궁, 기생이 아니라 가려져 있던 조선사회 하층민 여성 이야기란 점이 새롭다.1만 3000원.●천 개의 얼굴 천 개의 영혼(일리야 레핀 외 지음, 이현숙 옮김, 써네스트 펴냄) 19세기 러시아 회화의 거장 일리야 레핀의 걸작 100여편에 대한 해설. 작가의 생애, 창작활동, 예술관을 담았다.2만원.●차티스트 운동, 좌절한 혁명에서 실현된 역사로(김택현 지음, 책세상 펴냄) 선거법 개정 운동으로 인식되고 있는 차티스트 운동의 역사적 진행과정과 배경을 조명했다. 대표적 차티스트 지도자인 퍼거스 오코너, 윌리엄 러벳의 활동도 되짚었다.1만 2000원.●보헤미안의 파리(에릭 메이슬 지음, 노지양 옮김, 북노마드 펴냄) 예술의 도시 파리를 단순한 관광지로서가 아닌, 창조적 작업을 하는 장소로 활용하라고 제안하는 여행기. 파리의 어디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 창조적일지 친절히 귀띔한다.1만 2000원.●그래도 희망입니다(문규현 글, 홍성담 그림, 현암사 펴냄) 문규현 신부가 이해와 용서, 사랑을 주제로 쓴 25편의 짧은 글 모음. 홍성담 화백이 글에 걸맞은 따뜻한 그림을 그렸다.8500원.●문화재청 사람들의 문화유산 이야기(강신태 등 지음, 눌와 펴냄) 현직 문화재청 직원 23명이 알려지지 않은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들을 엮었다. 업무나 개성에 따라 문화재를 바라보는 현장의 시각들도 다양하다.1만 5000원.●마음 사전(김소연 지음, 마음산책 펴냄)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과 연관된 낱말 300여개로 복잡한 감정의 실체를 더듬었다. 행복과 기쁨은 어떻게 다를까. 시인이 간추린 다양한 마음의 빛깔들에 무릎을 치게 된다.1만 2000원.●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이유진 지음, 이매진 펴냄) 태양광, 풍력, 바이오가스, 유채기름 등으로 에너지 자립을 실현해가는 국내외 현장들을 방문했다. 녹색연합 에너지·기후변화 팀장인 저자가 석유고갈 시대의 대안을 모색했다.1만원.
  • 제주 반닫이, 강원도 소나무 썼다

    제주 반닫이, 강원도 소나무 썼다

    나무는 왕성하게 자란 해는 나이테가 넓고, 기후 변화로 환경이 나빠지면 성장도 느려져서 나이테가 좁아진다. 이렇듯 환경의 변화가 기록으로 남는 나이테의 특성에 착안하여 목재의 연대를 측정하는 방법이 연륜연대법(dendrochronology)이다. 방사성탄소(C14)연대법의 목재 측정오차가 최고 ±100년에 이르는 반면 연륜연대법은 1년 단위까지 연대를 측정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90년 이후 살아있는 고목과 고건축물의 목재를 지속적으로 조사하여 서기 1200년부터 800년동안에 걸친 연륜연대기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해 놓았다. ●연대와 목재의 산지도 밝혀 박원규 충북대 산림과학부 교수와 김요정 충북대 농업과학기술연구소 연륜연구센터 연구권, 김삼대자 전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장은 이 연륜연대기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대표적인 고가구인 반닫이의 연대를 측정했다. 박 교수팀은 국립민속박물관과 덕성여대박물관, 온양민속박물관, 상명대박물관, 충남대박물관, 숙명여대박물관이 소장한 반닫이 17점의 나이테를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여 정확한 연대뿐 아니라 목재의 산지도 밝혀낼 수 있었다. 조사 대상 반닫이는 일부라도 소나무가 쓰인 것으로 한정되었는데, 연륜연대기 데이터베이스가 현재는 소나무 것만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원규 교수팀의 연구 내용은 국립민속박물관이 발간하는 계간 학술지 ‘민속학연구’의 최근호인 제21호에 실렸다. 연구에서 덕성여대박물관이 소장한 경기지역 주석장식 반닫이는 ‘1688∼1801년’이라는 절대연도가 부여되었다.1801년 직후에 벌채된 나무를 사용했다는 뜻이다. 이번에 조사된 반닫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하지만 주석장식은 1900년대 이후 것으로 추정되었다. 두드려 만든 단조가 아니라 쇠를 판형으로 만든 뒤 오려내는 판조였기 때문이다. 판조는 1870년 이후 수입되어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받닫이는 1800년 초에 제작된 것이며,1900년 초에 장식을 교체하는 대규모 수리가 있었던 것으로 새롭게 결론지을 수 있었다. 이 반닫이는 그동안 1870년 이후 양식으로 분류되어 왔다. ●19세기 원거리 목재수송 방증 특기할 만한 것은 상명대박물관이 소장한 제주도 반닫이였다. 뒷널에서 채취한 나이테는 101개로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여 보니 강릉객사문의 연대기로 ‘1782∼1882년’의 절대연도가 부여되었다. 강릉객사문에 쓰여진 것과 같은 강원도 일대의 목재로 제주도 양식의 반닫이가 제작되었다는 뜻이다. 제주도의 식생은 저지대는 난대림이어서 주로 활엽수가 자라고, 고지대는 전나무류인 구상나무가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큰 재목을 쉽게 구할 수 없어 다른 지역에서 수급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병사들의 훈련을 목적으로 세워진 제주시의 관덕정도 소나무 목재가 대부분 강원도 지역의 연륜패턴을 보여주고 있다고 연구팀은 덧붙였다. 제주뿐만 아니라,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영광지역의 전라도 반닫이도 강릉객사문의 연대기인 절대연대 ‘1775∼1871년’이 주어졌다. 연구팀은 “가구용 목재는 질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원거리라도 부피가 크지 않은 것은 운송하여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특히 가까운 곳의 목재자원이 고갈됨에 따라 19세기에 접어들면 원거리 목재운송이 활발해지고,19세기 말에는 상업적 목재거래가 보편화되었다.”고 설명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소피아 로렌과의 짧은 만남, 파바로티와의 긴 이별

    소피아 로렌과의 짧은 만남, 파바로티와의 긴 이별

    2007년은 세기의 테너 파바로티가 71세를 일기로 타계함으로써 우리와 이제 긴 이별을 고하였다. 그리고 소피아 로렌이 72세의 미모로 세계적 명성을 가진 피렐리 달력(www.pirellical.com)에 기네스북이 인정하는 최고령 미인 모델로 등장하여 우리 눈을 즐겁게 하였다. 이 뉴스를 들으며 떠오른 추억과 상념이다. 얘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폴란드 바르샤바 행 비행기 탑승객 대합실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나 같은 비행기로 날면서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슈퍼스타 소피아 로렌이다. 그녀는 당시 이미 환갑이 넘은 나이인데도 놀랍게도 늘씬한 옛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소피아 로렌이시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내가 말을 건네자, 그녀는 엷은 미소로 답례를 하였다. “나는 현재 폴란드에 주재하면서 현지법인 사장을 하는 한국의 비즈니스맨입니다. 저는 기회가 될 때마다 당신의 영화를 보았어요. 그리고 언젠가 한번은 직접 당신을 만날 날이 있으면 하고 살아 왔어요.” 옆에 집사람이 같이 있어 그 이상 오버할 수는 없었다. 내가 열렬 팬임을 강조하자 그녀는 “저도 폴란드에 행사가 있어 갑니다만 무슨 영화를 봤습니까?”하고 되물어 왔었다. 내가 하녀(La donna del Fiume), 엘시드(El Cid), 해바라기(Girasoli), 흑란(The Black Orchid), 두 여인(La Ciociara) 등을 읊어대자 그제야 그녀의 표정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1959년의 <흑란>으로 베니스 영화제 최우수 여우상을, 1961년의 <두 여인>으로 아카데미상과 칸느영화제 여우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녀는 지금까지 90여 편의 영화에 주연을 맡았다. 그녀는 미혼모, 위안부, 생활력이 강한 가정부인, 러시아 백작부인, 아랍계 여인, 레지스탕스 스파이, 로마황제의 공주, 스페인 귀부인, 미국인 미망인, 술집 여인, 그리스 해변의 해녀, 성폭력피해자 등등 다양한 역을 해내었다. 나의 청춘 소피아 로렌, 그녀의 맘보로 포 강은 푸르다 돌이켜 보면 소피아 로렌에 흠뻑 빠진 것은 내 나이 15세의 사춘기에 마주친 그녀의 출세작 <하녀>(河女, Woman of the River)의 스틸 한 장이었다. 하녀는 <강의 여인>으로 풀어서 말할 수 있는데 그 당시 그녀는 1미터 74센티의 키에 38-24-38의 몸매에 21세의 싱싱한 나이로 일약 세계적 관능 미인으로 뜨게 되었다. 이 영화를 접하고서 그녀는 나의 연상의 연인화되었다. 나는 바로 줄리안 듀비비에 감독의 명작 <나의 청춘 마리안느>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몸부림치며 환상의 여인 마리안느에 빠져드는 사춘기 청년 뱅상(Vincent Loringer)이 된 것이다. 맘보 리듬을 타고 폭발한 야성적인 에로티시즘 영화에서 소피아 로렌은 그의 젊음을 마음껏 발산하였다. 이 영화의 무대인 강은 바로 이탈리아의 포 강이다. 처음에는 포 강 하구의 델타 지역에 있는 뱀장어 통조림 공장의 여직공인 자유분방한 젊은 여성으로, 그리고 후반부에는 바람둥이 어부로서 밀수꾼인 남주인공에 버림받고 사탕수수밭의 일군으로 벗어부친 미혼모로서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특히 마을 댄스파티에서 ‘맘보 바캉’이라는 주제가의 선율 속에 치맛자락을 바람결에 들어 올리며 늘씬한 다리를 뽐내는 육감적인 신은 뭇 사나이들을 뇌쇄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사실 그녀는 이 주제가 맘보 바캉을 직접 부른 음반을 내기도 하였다. ‘라라라 라라라라 맘보 맘보, 맘보 바캉.’ 그리하여 이 경쾌한 노래로 우리에게 긍정적인 삶을 일깨워줬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포 강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긴 강으로서 전장 652km로 낙동강 길이보다 30%가량 길고 그 유역 면적은 71,000km²로서 북부 이탈리아의 생활과 문화를 지배하는 중요한 강이다. 코티안 알프스의 몬비소에서 발원하여 베니스 근처의 아드리아 해로 유입되는 강이다. 5개의 하구 델타 유역에는 수백 개의 지류와 운하가 거미줄 같이 얽혀 있다. 이 강은 예사로운 강이 아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포 강 유역을 무대로 로케한 이탈리아 대표적 명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9세기 말 지주계급과 농부들의 갈등 속에서 시들어 가는 근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린 라투아다 감독의 <포 강의 물방앗간> (The Mill on the Po), 쫓기는 범인이 숨어든 농장에서 쌀 농사꾼인 풍만한 여인(실바나 망가노 분)과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데산티스 감독의 <쓴 쌀>(苦米:Bitter Rice), 명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단편영화 <포 강의 사람들>(Gente Del Po)이 그 것이다. 파바로티의 노래와 함께 포 강은 오늘도 흐른다. 그런데 이 강은 최근에 반갑지 않은 문제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 강물의 수질 분석 결과 하루에 2만7천명의 젊은이가 투약할 정도의 코카인 마약 성분이 계속 추출되었으며 그 양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체의 대소변을 통하여 흘러나왔을 것이니 이탈리아 젊은이의 타락상을 보는 것 같다. 또 하나의 문제는 금년(2007년) 5월에 강줄기의 여기저기에서 바닥이 들어나도록 물이 부족해 졌다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200년만의 겨울 난동을 겪었고 알프스에 눈이 제대로 오지 않은 결과이다. 인간이 저지른 탄산가스 분출에 따른 업보이다. 이 강의 광활한 유역에는 산업과 문화면에서 유명한 도시들이 포진해 있다. 토리노, 밀라노, 베로나, 모데나 등이 그것이다. 특히 모데나는 바로 20세기 말 최고의 테너였던 파바로티의 고향이며 2007년 9월 6일 그가 숨을 거둔 자택이 있는 곳이다. 그는 1935년 모데나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그의 가족은 가난했다. 아버지 페르난도는 빵을 굽는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담배 공장에서 일했는데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출세 후 파바로티는 2005년 9월 12일 영국 BBC 인터뷰에서 오케스트라 총보는 거의 읽을 수 없으나 피아노 파트의 반주용 악보라면 읽을 수 있다고 고백하였다. 학위 위조사건으로 떠들썩한 한국과 달리 그는 이렇다 할 정규대학교육을 받지 않고도 인간은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그는 보험 외판사원도 했다. 1961년 고향의 극장에서 라보엠의 로돌포 역으로 오페라에 뒤 늦게 데뷔했다. 그런데 출세 후에 더욱 빛을 발한 것은 혼자서 돈을 세면서 호의호식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자선공연을 통하여 뜨거운 인류애를 보여줌으로써 성공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회에 보답해야 하는지를 보여 줬다는 점이다. 그는 고향 모데나에서 각각 보스니아와 이라크 고아와 아프간 난민, 그리고 코소보 난민 등을 위하여 해마다 자선공연을 열었다. 이렇게 해서 적어도 1천 3백만 달러의 모금을 해서 유엔에 협조하였다. 아프간을 돕는다고 몰려가서 돕기는커녕 탈레반 테러범에게 인질이 되어 외신에 의하면 수백만 달러에서 수천만 달러로 추정되는 거액의 몸값을 인질범에게 넘겨주고도 귀중한 인명 피해를 보면서 국제사회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눈총만 키우고 돌아온 우리네 현실에 비해 파바로티에게 배울 점이 많다. 뒤에서 순교운운하면서 이를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데는 더욱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값진 순교를 하려면 뒤에서 남을 시키지 말고 본인들이 가서 몸소 순교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2001년 서울에서 파바로티의 공연을 보면서 소피아 로렌이 생각나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바람둥이에게 버림받은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나폴리 빈민가에서 자라나 고등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어려운 여건을 딛고 일어서서 15살 때부터 영화계에 몸을 던져 드디어 슈퍼스타가 되고 오늘날에는 여러 사회활동을 하는 소피아 로렌과는 인생역정에서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할 것이다. 포 강의 젖 줄기가 있었기에 이탈리아가 낳은 예술문화계의 남녀 톱스타 즉 소피아 로렌과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있을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 더 있다. 포강의 상류에 있는 토리노는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로 피아트본사가 있고 2006년 동계올림픽이 치러진 곳이다. 소피아 로렌은 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기를 봉송하는 영광스런 역을 해내었다. 이 개막식에서 파바로티는 생애 마지막 공연이 된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불러 오랜 기립 박수를 받았다. 결국 이 두 슈퍼스타의 출세는 포 강에서 시작되고 포 강가에서 완성된 느낌이다. 포 강의 쿠르즈 십 ‘리버 클라우드’ 호를 타면 9일 동안 이들 도시의 상당 부분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삶과 꿈, 마이 웨이 지금도 나는 비디오로 떠서 소장한 그녀의 영화 <하녀>에서 그녀의 맘보 바캉을 때때로 감상하며 젊은 날의 아린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고 있노라면 소피아 로렌 그녀가 남긴 다음과 같은 어록이 생각난다. “사람들은 그저 어떤 것을 원한다고 하지요. 그러면서도 그걸 이뤄낼 힘인 절제로 단련하는 데는 게을리 하지요. 사람들이 약한 겁니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정말 지독히 원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Many people think they want things, but they don’t really have the strength, the discipline. They are weak. I believe that you get what you want if you want it badly enough.) 글 최정호 한양대 겸임교수, 경영학박사, <CEO여 문화코드를 읽어라>의 저자 월간 <삶과꿈> 2007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새영화] ‘스위니 토드’

    [새영화] ‘스위니 토드’

    톱니바퀴를 타고 흐르는 진득한 주홍빛 피. 국수가락처럼 갈아져 나오는 인육.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핏물과 함께 익어가는 파이. ‘스위니 토드: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Sweeney Todd·17일 개봉)는 이미지만 봐도 팀 버튼 영화다.‘배트맨’‘가위손’‘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 기괴하고 비틀린 캐릭터와 이야기로 블랙유머에 대한 재능을 쌓아올린 감독이 또 한번 조니 뎁과 만나 뮤지컬 영화를 세공했다. 19세기 런던. 산업혁명의 기세가 드높던 이 잿빛 도시에서는 ‘있는 자’들이 ‘없는 자’들의 고혈을 쥐어짜며 부와 명예를 누린다. 아름다운 아내, 딸과 행복해 하던 이발사 스위니 토드(조니 뎁)는 아내를 뺏으려는 터핀 판사(앨런 릭맨)의 음모로 15년 세월을 감옥에서 저당잡힌다.15년 뒤 스위니 토드로 돌아온 그는 파이가게의 러빗 부인(헬레나 본햄 카터)과 핏빛 계약을 맺는다. 이발소를 찾아온 손님들은 이후 행적을 알 수 없고, 고기가 부족해 런던에서 최고로 맛없던 파이는 런던 최고의 파이가 된다. 아랫집 여자와 윗집 남자의 ‘독창적이고 비상한’ 거래를 알아채는 도시민들은 아무도 없다. 비정하고 무관심한 사람들은 걸신처럼 인육을 먹어대고 스위니 토드는 잃어버진 행복과 가족을 피로 앙갚음할 날만 고대하고 있다. ‘스위니 토드’는 지난해 국내에서도 라이선스 뮤지컬로 초연돼 수작으로 박수받았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전설로 불리는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은 이 작품으로 1979년 초연 당시 8개의 토니상을 수상했다.19세기 런던에서 일어난 160여명의 살인사건을 실화로 한 극은 사회와 인간의 모순을 통렬하게 풍자한다. 당초 팀 버튼과 조니 뎁의 환상콤비가 이 뮤지컬을 영화로 만든다는 소식은 영화팬과 공연팬, 모두에게 기대를 품게 했다. 뮤지컬이 멀리서 날카롭게 찔렀다면 영화는 정면에서 대놓고 찌른다. 타고난 스타일리스트, 이야기꾼이라는 칭송을 받는 팀 버튼은 이번만큼은 이야기의 부담을 던 것 같다. 영화는 한마디로 ‘뮤지컬의 재구성’이다. 원작의 탄탄함 덕분에 영화의 스타일이 더 풍성하게 살아났다. 독창적 영상을 빚어내는 재주는 이번에도 빛났다. 감독은 색깔을 죄 덜어내고 바랜 듯한 흑백영화의 질감을 배경에 깔았다. 조니 뎁의 핏발선 눈과 얼어붙은 듯 차가운 피부는 사랑을 잃고 삶의 생기마저 말라버린 이발사의 운명을 은유했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갈라진 거울로 비쳐지는 스위니 토드와 러빗 부인의 이지러진 얼굴은 증오와 광기, 갈망의 간절함을 대변한다. 그러나 상상력과 재기가 기대만큼은 아닌 듯하다. 조니 뎁의 노래가, 무대를 울리는 라이브 뮤지컬의 파장을 따라가기엔 부족하다. 복수에 눈이 멀어 사랑을 알아보지 못한 지독한 아이러니. 꿈보다 증오가 목적이 돼버린 인간의 비애를 부각시킨 결말이 쇳소리처럼 몸서리치게 한다.18세 이상 관람가.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열린세상] 집단기억으로 남은 슬픈 역사/ 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열린세상] 집단기억으로 남은 슬픈 역사/ 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우리가 역사를 말할라면, 으레 거창한 사건을 들추게 마련이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겪은 삶의 이야기를 역사로 보는 견해도 없지는 않다. 이를 테면 필부필부(匹夫匹婦)가 경험한 생활상의 한 매듭이 곧 역사라는 시각이다. 이 평범한 사연의 역사가 한군데로 쏠리는 어떤 계기를 만나면, 대단한 사건으로 비약할 수 있다. 이 같은 역사의 이벤트에는 반드시 대중의 집단기억이 뒤따른다고 한다. 지난 세밑 일본대사관 앞에서 2007년 한해의 수요집회를 마감한 일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생이 우리네 집단기억에 각인된 현대사의 한 줄기일 것이다.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스스로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껄끄러운 과거를 솔직히 고백하면서, 이 문제는 모든 이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반인륜적 범죄에 희생되어 꽃다운 청춘을 빼앗긴 위안부 할머니들이 1992년부터 몰려들기 시작한 수요집회는 집단기억의 슬픈 역사를 더욱 깊이 각인하기에 이른다. 그동안 수요집회를 함께해 온 할머니들 가운데 열세 분은 세상을 떠난 터라, 세밑 집회에서는 13개의 촛불을 밝혔다고 한다. 이날 촛불을 지킨 이는 고작 네 분이었지만, 지난해는 제2차 세계대전 끝자락까지 피압박 민중의 여성들을 성노예로 삼은 일본군의 범죄 실상 얼마만큼을 세계인 양심에 호소한 성과를 거두었다. 지난해 7월30일 일본의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공식 시인 및 사과를 촉구한 미 하원의 결의안 채택이 그것이다. 이어 캐나다와 유럽연합(EU) 의회에서도 일본 정부의 사죄를 다그치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미국은 지난해 여름 노예무역 폐지 200주년을 기리고자 아프리카로부터 흑인노예를 실어나른 ‘아미스타드’호와 똑같이 생긴 범선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의 항로 2만 5000㎞를 따라가는 항해에 나선 이 배가 노예무역의 잘못을 참회하기 위해 마련한 여러 행사에 참가한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 소식은 미 하원이 위안부 강제동원에 따른 일본의 사죄를 촉구한 결의문 채택에 앞서 전을 벌인 토론회에서, 일본의 전쟁 범죄가 마치 19세기 아프리카 노예 사냥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한 어떤 의원의 발언 내용을 다룬 기사와 맞물려 사뭇 감동으로 다가왔다.‘아미스타드’는 노예무역의 거점이던 대서양 연안의 여러 항구를 아직도 순방 중이어서, 참회 여정이 길기는 긴 모양이다. 그러나 현해탄 건너 가까운 일본에서는 사죄의 배를 띄울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앞에서 좀처럼 속내를 이르집지 않는 경제대국의 속성 때문일까.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활동한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지론을 빌리면, 기억은 모두 가짜라고 한다. 기억은 붙박이 정보창고가 아니라, 기억할 때마다 바뀐다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큰 일이다. 우리가 집단기억의 역사로 회자하는 할머니들의 삶을 마냥 보장할 수 없거니와, 이들에게 시선을 주었던 여러 사람들의 기억도 차츰 변화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렇다. 일본은 이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이제 건국 60주년, 대한민국도 조금은 노회한 경지에 접어들었다. 이같은 연륜을 축적한 국가가 지녀야 할 경략이 진정 없단 말인가. 할머니들이 오랜 세월을 두고 그토록 절규한 일본의 사죄를 받아낼 길을 여태 찾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 행여 어떤 중대한 사안마다 과거 청산이라는 명분만을 앞세워 죽은 이들의 역사에 매달린 동안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닐는지…. 이 땅의 공동체 울타리 안에서 사는 사람들끼리 등을 돌리지 않고, 서로 오순도순 지내는 세월을 올해부터라도 맞고 싶다. 일제 질곡의 고통을 짊어진 채 가엾게 살아온 위안부 할머니들의 건강을 비는 마음 간절하다. 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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