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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민경제 한파…무직가구 비율 16%로 사상 최고

     서민경제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경기침체와 고용사정 악화로 가구주가 직장이 없는 무직가구의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16%를 돌파했고 물가 상승 및 소비심리 악화로 엥겔계수는 2004년 이후 4년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들어오는 돈은 넉넉치 않은 가운데 대출금리는 고공 비행을 거듭하면서 이자부담이 가중되고 있고 그동안 억제돼왔던 공공요금도 택시요금 등을 필두로 들썩이고 있어 서민의 어려운 가계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무직가구 비율 16% 돌파…사상 최고  경기침체가 가속화하면서 올해 3분기 전국가구(2인 이상) 중 가구주가 뚜렷한 직업을 갖고 있지 않은 무직(無職)가구의 비율은 16.13%로 전년 같은 기간(15.57%)에 비해 0.56%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고용사정이 그나마 나은 3분기 기준으로는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무직가구의 비율은 2003년 13.61%,2004년 13.74%,2005년 14.16%,2006년 14.69%,2007년 15.57%로 계속 상승해오다 올해 3분기에는 마침내 16%를 넘어섰다.  1인 가구가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총 가구수(7월1일 기준)가 지난해 1641만 7000가구,올해 1667만 3000 가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직가구의 수는 대략 지난해 3분기 255만 6000 가구에서 올해 3분기 268만 9000 가구로 1년새 13만 3000 가구 가량 증가한 셈이다.  2003년과 비교하면 210만 5000 가구에서 255만 6000 가구로 5년 새 약 45만 1000 가구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무직가구는 가구주가 직업이 없어 직접적으로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을 얻을 수 없는 상태이므로 배우자나 가구원이 생계에 보탬을 주거나 정부로부터의 공적인 보조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3분기 도시가구(2인 이상)의 무직가구 비율도 15.29%에 이르면서 역시 3분기 기준으로는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88년 이후 최고를 나타냈다.  이처럼 무직가구의 비율이 계속 높아지는 것은 경기침체로 고용사정이 악화되고 있는데다 급속한 고령화,여성의 사회활동 증대라는 사회경제적 요인이 맞물려 나타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3분기 고용률은 올해 61.8%로 지난해 62.1%에 비해 0.3%포인트 하락한 반면 비경제활동인구는 같은 기간 28만 9000명 증가했다.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고용률이 계속 60%대에서 정체 상태를 보이는 사이 구직을 단념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무직가구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특히 올해 하반기 들어 경기가 나빠진 점이 무직가구 비율 상승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먹고살기 힘들다’…엥겔계수 4년만에 상승  소득 정체,물가 상승 등으로 소비가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3분기 전국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 중 식료품비의 비중(엥겔계수)은 26.7%로 지난해 같은 기간(26.11%)에 비해 0.59%포인트 높아졌다.  엥겔계수(Engel‘s coefficient)는 19세기 독일의 통계학자 엥겔이 발견한 법칙으로 가계의 총지출액에서 차지하는 식료품비의 비중을 가리킨다.  식료품은 필수품이기 때문에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일정수준을 소비해야 되므로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엥겔계수는 하락하고 생활형편이 나빠지면 올라간다.  3분기 기준 전국가구의 엥겔계수는 2003년 27.98%에서 2004년 28.81%로 상승한 뒤 2005년 27.27%,2006년 26.27%,2007년 26.11%로 3년 연속 하락하다가 올해 들어 상승세로 돌아섰다.  소득 5분위별로 엥겔계수를 살펴보면 2분위를 제외한 모든 계층에서 엥겔계수가 상승했다.  3분기 기준 소득 하위 20%인 1분위의 엥겔계수는 31.40%로 지난해 동기(30.93%)에 비해 0.47%포인트 상승했고 3분위(27.40%→28.21%),4분위(26.09%→26.60%),5분위(22.65%→23.53%)의 엥겔계수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다만 2분위의 엥겔계수는 지난해 3분기 29.05%에서 올해 3분기 28.49%로 소폭 낮아졌다.  엥겔계수가 상승세로 돌아선 것은 소득이 정체된 가운데 물가가 오르면서 가계가 소비를 줄였지만 필수품인 식료품비는 더 이상 줄이기 힘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3분기 전국가구의 소비지출을 항목별로 보면 가구가사(8.3%),주거비(5.9%),보건의료(5.5%),식료품(5.3%) 등 꼭 써야하는 의식주 관련 지출은 늘어난 반면 교양오락(-7.3%),의류신발(-1.5%),통신비(-1.8%) 등 문화생활이나 비 필수지출은 감소세를 나타냈다.  통계청 관계자는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고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면서 가계가 식료품 등 필수지출 외에는 소비를 줄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출이자 부담 점차 가중  실질소득이 정체되는 가운데 대출금리는 높은 수준에 머무르면서 서민들의 이자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3분기 중 전국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346만 5000 원으로 작년 3분기보다 5.5% 증가했지만 물가 상승을 감안한 실질 기준으로는 증가율 0%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대출금리는 꾸준히 올라 서민들의 생계를 더욱 위협하고 있다.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예금은행의 대출 평균금리(신규 취급액 기준)는 연 7.79%로 전월보다 0.35%포인트 급등했다.이는 2001년 6월의 7.89% 이후 최고치다.  올해 들어 예금은행의 대출 평균금리는 3월 6.90%,4월 6.91%,5월 6.96%,6월 7.02%,7월 7.12%,8월 7.31% 등으로 계속 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대출이자 등이 포함되는 기타 비소비지출은 3분기 기준 가구당 월 평균 18만4천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7.2% 증가했다.  가계가 쓸 수 있는 소득으로 금융부채를 갚는 능력을 나타내는 ’개인가처분소득대비 금융부채 비율‘도 올해 6월 말 기준 1.53배로 2007년 말 1.48배에 비해 크게 상승했다.  가계부채에 따른 이자부담도 늘어나 가계 가처분소득 대한 이자지급 비율은 작년 말 9.4%에서 올해 6월 말 9.8%로 상승했다.  소득에서 대출이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가처분소득보다 금융부채 증가 속도가 더 빠르다는 의미다.  최근 들어 정부 당국의 노력으로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내려가고 이는 곧 주택담보대출금리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대출금리는 높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또 은행들의 대출태도가 보수적인 방향으로 기울면서 신규대출은 물론이고 기존 대출에 대한 만기 연장도 어려워지는 등 가계를 더욱 옥죄고 있다.    ●공공요금도 속속 인상  최근 들어 그동안 인상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묶어뒀던 공공요금 역시 줄줄이 오르고 있다.  이들 공공요금은 소비를 줄이기 어려운 필수재라는 점에서 해당 품목의 지출 증가로 직결되며 여타 품목의 2차적인 가격 상승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우선 이달 들어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이 인상됐다.  전기요금은 평균 4.5%,가스요금은 7.3% 각각 올랐다.다만 주택용(심야포함)과 일반용 갑(소규모 자영업),중소기업(산업용 갑),농사용 등 4개 전기요금은 동결됐다.  올 4월에 오른 연탄값도 이번 겨울부터 서민생활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정부는 연탄 소비자 가격(공장도 가격+배달료)을 서울시 평지 기준으로 장당 337원에서 403.25원으로 19.6% 올렸다.  택시요금도 공공요금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부산시는 지난달부터 3년만에 택시요금을 20.5%(중형 기준) 인상했다.  울산시와 대전시도 20% 가량 택시 요금을 인상했으며 이는 조만간 여타 시도 지자체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경유가와 인건비 인상을 반영해 2006년 8월 이후 동결됐던 고속버스 및 시외버스 요금도 내년 2월까지 두차례에 걸쳐 각각 평균 12.1%,9.7% 오를 예정이다.  고속버스,시외버스(직행·일반) 운임은 이미 지난달 중순 각각 6.1%,4.2% 인상됐으며 나머지 인상분은 내년 2월에 오른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더 폴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더 폴

     한 남자가 오래 전에 본 불가리아 영화 ‘요호호’에 반해 리메이크를 결심했다.자신의 꿈이 세상으로부터 별 관심을 못 얻자,그는 뮤직비디오와 광고 연출로 벌어들인 재산을 쏟아붓는다.20여개 국가를 돌며 영화를 촬영하는 데 꼬박 6년이 걸렸고,개봉을 위해 다시 2년의 세월이 흘렀다.타셈 싱의 ‘더 폴’이 관객과 만나기 전에 걸어온 눈물겨운 과정은 그렇다.  나무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진 소녀는 같은 병원에 입원한 남자와 우연히 만난다.전직 스턴트맨인 그는 무슨 속셈인지 소녀를 붙들고 다섯 남자의 영웅담을 들려준다.‘더 폴’은 모험과 환상이 어느 순간 현실과 조우하면서 벌어지는 영화다.영화의 압도적인 비주얼을 두고 혹자는 공허한 이미지와 허술한 이야기의 결합이라는 푸념을 늘어놓는데,고작 영화 두 편을 연출한 뮤직비디오 출신 감독이니 억울해도 감내할 수밖에 없다.  ‘더 폴’의 대담한 영상을 제대로 읽으려면 세심한 감상이 요구된다.‘더 폴’은 사치스러운 영상물이기 이전에 영화의 눈,입과 귀,손발에 관한 작품이기 때문이다.영화의 대부분 장면은 컴퓨터그래픽(CG)의 도움 없이 자연과 인간의 위대한 창조물을 펼쳐 보인다.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피사체를 전부 현실에서 건져냈다는 사실은 관객을 영화의 시작점으로 데려간다.19세기 사람이 스크린으로 본 첫 번째 경이로운 이미지는 역으로 들어서는 기차였다.‘더 폴’은 카메라,즉 영화의 눈이 맡은 역할을 곰곰 생각한 결과물이다.  이야기하는 남자와 듣는 소녀는 영화의 생산자와 소비자 관계의 메타포다.나름의 욕심을 채우려는 연출자와 흥미로운 이야기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관객이 연상되는 두 사람은 이야기하기와 영화 만들기의 원초적 형태를 재현하면서 영화의 눈과 귀를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더 폴’은 연기하는 자-영화의 손발에 대해 이야기한다.영웅들이 모두 떨어져 죽는 끝에서,영화는 수많은 배우와 스턴트맨의 낙하 연기를 파노라마로 보여준다(떨어지는 연기를 하다 반신불수가 된 로이의 사연도 들어 있다).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왜 배우들은 낙하를 시도하며,왜 감독은 영화를 만들며,왜 관객은 극장에 들어서며,왜 카메라는 세상을 담는 것일까.그 대답이 바로 ‘더 폴’의 주제다.1920년대가 배경인 ‘더 폴’은,그러니까 영화의 새벽과 아침에 바치는 헌사인 셈이다(원제 ‘The Fall’,12월4일 개봉). 영화평론가
  • 암울한 기운 ‘고딕’ 왜 심취하나

    암울한 기운 ‘고딕’ 왜 심취하나

    창백한 얼굴에 시커먼 눈매와 입술,악마 조형물과 낭자한 피,흡혈귀와 살인광…. 고딕(Gothic)의 대표적 이미지이다.이런 고딕은 암울하고 자극적이다.기괴하고 혐오스러우면서도 시선의 전율을 느끼게 한다.지독히 본능적이고 날것 그대로라 비난받지만 현대 문화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 TV시리즈 ‘미녀와 뱀파이어’의 주인공이 십대 소녀의 이상형이 되고,지난 여름 한국을 찾은 마릴린 맨슨-비록 정통 고딕이 아니라는 비판도 받고 있지만-이 기괴한 의상과 퍼포먼스에도 세계 록의 대부로 우뚝 서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크컬처’(캐서린 스푸너 지음,곽재은 옮김,사문난적 펴냄)는 고딕의 역사를 되짚어 가면서 문학,영화,음악,패션,미술,광고 등으로 퍼진 고딕의 미학을 탐구한다. 고딕의 역사는 5세기 로마 문명을 몰락시킨 북유럽 민족 ‘고스’에서 출발한다.로마 문명이 이룩한 업적을 무력으로 뒤엎어 야만인,미개인의 뜻도 갖는다.실상 고스에서 고딕을 떠올리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성의 전복,일반적인 가치관에서 본 위대한 문명을 유린한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한다.  17세기 영국에서는 중세 교회의 건축양식을 묘사하는 수단으로서 뾰족한 아치,과장된 형태,괴물 모양의 홈통 주둥이,길고 뻣뻣한 인물형상 등으로 표현된다.18세기는 정치적 자유와 진보주의의 전통으로,19세기는 호러문화의 기반이 된 소설과 건축,회화로 드러난다.  시대마다 계속되는 ‘고딕복고운동’으로 변화와 굴절을 거치며 현대로 온 고딕은 말끔히 포장돼 예술적 창작의 영감을 일으키는 원천으로 자리잡기에 이른다.  장황한 고딕의 역사에 이어 책은 고딕을 대표하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이해를 돕는다.비로소 저자가 말하는,시대를 관통하며 유지되는 개념 이상의 ‘어떤 것’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는 시점이다.  ‘가위손’,‘크리스마스 악몽’ 등 다소 혐오스러운 캐릭터를 내세우며 흥미를 던지는 영화감독 팀 버튼을 비롯해 더글러스 고든,제이크와 다이노스 체프먼 형제 등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예술가들을 조명한다.가장 널리 알려진 괴물을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주검을 대중 앞에 전시한 ‘인체의 신비 전’으로 현대판 프랑켄슈타인으로 불리는 군터 폰 하겐스 박사도 거론된다.지난 100년간 세계적으로 무려 3000여편의 영화로 제작된 드라큘라,수지 앤 더 밴시즈와 시스터스 오브 머시 등 고딕을 기반으로 한 음악밴드,알렉산더 매퀸과 장 폴 고티에와 같은 고급 취향의 디자이너,가짜 피로 범벅된 핼러윈 축제용 장난감까지 두루 살피며 현대 고딕문화의 면면을 들춘다.  지은이는 책 전반에 걸쳐 포착한 고딕의 미학은 공포와 유머,위로와 위반,그로테스크한 자아와 탈물질성,마니아에 가까운 컬트적 매력과 대중의 인기 등 대립적인 것들을 이어주는 ‘모순’이라고 말한다.대립의 매개로서 고딕이야말로 현대의 다양한 문화적 경향을 포착해 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패셔닝 고딕 보디스’(Fashioning Gothic Bo dies,2004)를 비롯한 다양한 고딕 관련 저서를 낸 지은이는 이 책에서 고딕의 심층적인 의미를 발굴하고 고딕적 감수성을 탁월하게 연구해 냈다.1만 3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히말라야 무당 트레이닝복 입고 굿 한다?

    히말라야 무당 트레이닝복 입고 굿 한다?

    인천공항에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까지 비행기로 꼬박 6시간30분,다시 1시간의 비행,여기에 버스로 2~3시간을 더 덜컹거려야 간신히 히말라야의 언저리다.   이렇게 머나먼 네팔을 서울 한복판에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왔다.서울 삼청동의 실크로드박물관과 소격동의 티베트박물관을 운영하는 신영수 관장이 26일 인사동 갤러리 ‘떼’에서 ‘히말라얀,그 원색의 풍경’을 주제로 기획전을 연다.무복(巫服)과 무구(巫具) 등 히말라야의 샤머니즘 관련 문물 50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요즘은 현지의 무당들조차 제대로 된 무복과 무구가 없어 트레이닝복을 입고 굿을 할 정도라니 그 진귀함은 말이 필요없다.무당이 제의를 치를 때 쓰던 사람 뼈로 만든 가면,원숭이의 두개골로 만든 술잔,독수리 발,야크 꼬리,호랑이 뼈,운석을 녹여 만든 부적 등 각종 무구들이 눈길을 잡아 끈다.기원전 5세기 무렵부터 19세기까지 쓰여졌던 것들이다.  15년 동안 실크로드와 히말라야 지역의 유물을 중점 수집하고 있는 신 관장은 이미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청주박물관 등에 4700여점의 자료를 기증했다.국립중앙박물관에는 신 관장의 상설 전시장까지 마련돼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장장식 학예연구관은 “무속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개인이 이처럼 체계적이고 집중적으로 수집 연구 활동을 해왔다는 사실이 경이”라면서 “우리나라는 물론 현지에서도 볼 수 없는 진귀한 무속 자료들은 특히 비교연구학 측면에서 학술적 가치가 아주 높다.”고 말했다.장 연구관은 “유물 하나 하나에 대한 학술적 접근이 가능하도록 공동 연구가 이뤄지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독보적인 자료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신 관장이지만 고충도 크다.일년이면 서너 차례씩 티베트나 네팔을 찾으며 수집 활동을 계속하기에 경제적 어려움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신 관장은 “박물관만 갖고는 운영이 쉽지 않고 창고에만 쌓아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실크로드와 차마고도,샤머니즘 등 주제를 정해 전시 비즈니스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31일까지,관람시간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7시까지.관람료는 5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열린세상] 다음 세대를 생각하라!/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

    [열린세상] 다음 세대를 생각하라!/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

    ‘영국은 길을 잃었습니다.’.훗날 철의 여인으로 불리게 되는 마거릿 대처의 위대한 여정은 이 말로 시작됐다.1979년 그는 이 단순하고 강렬한 슬로건으로 야당이던 보수당을 승리로 인도했고 18년 장기집권의 시대를 열었다.그는 위기에 빠진 영국을 구할 책임과 능력이 자기에게 있다고 굳게 믿었으며,실제로 만성적 재정적자와 노사분규로 상징되는 ‘영국병’을 강력한 리더십으로 치유했다.  지금 대한민국도 길을 잃었다.인류의 생태 위기,세계의 경제 위기,한반도의 불확실성 증대,거기다가 시시각각 다가오는 국내의 여러 가지 위기의 징후들. 어떤 이들은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큰 위기가 오고 있다고 하며,어떤 이들은 위기이지만 감당할 정도라 하며,또 어떤 이들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 한다.위기인지 아닌지를 갖고 싸우는 판에 이 위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지를 논할 리 만무하다. 우리가 어디서 길을 잃었는지는 모르지만 누구 때문인지는 안다.걱정 말고 따라오라며 맨 앞에 서서 지도자인 체하는 정치인은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오른쪽으로 가야 하네,왼쪽으로 가야 하네, 곧장 가야 하네 사사건건 싸움질이다.아무리 뛰어난 홈런 타자도 감을 잃으면 바운드 볼에도 방망이가 나간다.한국 정치가 꼭 그 꼴이다.인정하고,대화하고,타협하고,통합하는 방법을 잊었다.불신과 분열,분노와 증오만 남았다.  그러나 정말로 가슴 아프고 슬픈 것은 한국 정치가 ‘꿈’을 잃은 것이다.최고의 정치가는 국민들에게 꿈을 준다.케네디,클린턴,오바마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공화당으로부터 정권을 뺏어 온 40대의 민주당 대통령이라는 것과,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감동적으로 전달한 지도자라는 것이다.그들의 연설은 언제나 꿈으로 가득차 있다.미국의 꿈,선조의 꿈,서민의 꿈,이민자의 꿈,유색인종의 꿈,한마디로 말하면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한없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19세기 미국의 학자인 제임스 클라크는 ‘정략가는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말을 남겼다.한국 정치인들은 어떤가? 자기들끼리 모인 데서도 “정치인들의 꿈이야 다시 한 번 더 하는 거지.”라고 하는 판에 다음 세대를 걱정하는 정치가가 몇이나 될까? 원래 꿈은 비주류의 것이지 기득권의 것이 아니다.기득권을 누리는 자들이 어찌 다음 세대에게 꿈을 주는 위대한 정치가가 될 수 있겠는가? 꿈을 말하지 않는 정치에 위대함이 어찌 깃들까?  위대한 지도자들의 연설에는 ‘우리 아이들에게는’,‘다음 세대에는’,‘오늘 태어난 아이들은’,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라는 표현이 넘쳐 난다.그런 면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은 위대한 연설의 모범이다.미국의 44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버락 오바마가 쓴 책의 제목이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과 ‘담대한 희망’인 것은 그가 어떤 정치를 꿈꾸는지 잘 보여 준다.그를 일거에 스타로 만든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의 연설 주제는 ‘미국은 하나’지만 그 날도 그는 ‘내 할아버지의 아들을 위한 담대한 꿈’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의 연두교서에는 ‘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에 사는 우리 세대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고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을 했느냐고 물을 때, 우리는 서슴지 않고 조국 근대화의 신앙을 갖고 일하고 또 일하고 일했다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그리하여 먼 훗날 소가 밭을 가는 오늘의 이 현실을 아득한 옛날의 전설이 되게 합시다.’라는 문장들이 담겨 있었다.  ‘다음 세대를 위한 꿈’의 메시지보다 더 나은 선거 전략은 없다.우리도 위대한 정치가의 위대한 연설을 듣고 싶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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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크 독트린(나오미 클라인 지음,김소희 옮김,살림Biz펴냄) 저널리스트인 지은이는 현대 자본주의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재난 자본주의’가 부상했다고 말한다.지은이는 현재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위기의 본질과 작동 기제는 쇼크라고 말한다.즉 이라크전쟁,9·11테러,톈안먼사태,소련의 붕괴,아시아 금융위기 등 각종 위기가 발생하면 대중들은 방향 감각을 잃고,이 틈을 타 정부는 대중이 전혀 반기지 않는 경제적 쇼크요법을 밀어붙이게 된다.2만 8000원.   ●로마제국의 최후의 100년(피더 히더 지음,이순호 옮김,뿌리와 이파리 펴냄) 로마는 도시이자 제국의 이념이었고,미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가 국가 경영의 시스템으로 로마의 정치사회 시스템을 알게 모르게 차용해 쓰고 있는,현재도 살아있는 정치시스템이다.그런 로마제국의 문명이 어떻게 야만에 압도됐는지 상세히 보여준다.서로마제국이 거둔 성과를 고찰하며 제국이 지닌 저력과 한계를 분석했다.3만 4000원. ●히틀러의 과학자들(존 콘웰 지음,김형근 옮김,크리에디트 펴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세계 과학의 중심이었던 독일의 과학자들이 히틀러 치하에서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보여준다.냉전이 붕괴됐다고 하지만 전 세계가 상호 확증 파괴 전략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3차 대전이 발발한다면 나치의 인종위생학과 같은 비극이 벌어지지 않을까라고 지은이는 질문한다.2만 9000원. ●아토피 희망보고서(김정진 지음,동아일보사 펴냄) 지은이는 10년 동안 1만명의 아토피 환자를 치료한 한의사.아토피란 면역 불균형으로 생기는 만성 염증성 질환으로,밤에 가려움증을 수반하는 것이 주 증상이다.아토피는 언제든지 재발가능하기 때문에 완치는 어렵지만,증상을 완화할 수는 있다.SK케미칼과 협력해 ‘아토파인’이란 치료제를 내놓기까지의 과정이 담겼다.1만 4000원.  ●조선 왕비열전(임중웅 지음,선영사 펴냄) 조선의 건국에서 멸망까지 500년 동안 이 땅을 다스렸던 27명의 왕을 중심으로 41명의 정실 왕비와 수많은 후궁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영상처럼 선명하게 펼쳐보여 준다.최상의 행운과 부귀영화를 거머쥔 왕비이지만 이면은 형극의 길이고 눈물로 점철된 한많은 자리였다.가문을 위한 제물이 되거나,외척 발호의 발판이 되기도 했던 영욕의 일대기다.1만 3000원.   ●인간조종법(로베르 뱅상 줄,장 레옹 보부아 지음,임희근 옮김,궁리 펴냄) 거들떠보지도 않을 가정용 백과사전은 왜 사나.보험설계사의 보험가입신청서에 왜 서명할까.이런 행위는 사람들의 설득에 내가 넘어간 것이다.상대방은 커뮤니케이션을 잘한 것이고,나는 불필요한 물건을 샀으니 커뮤니케이션에서 실패한 것이다.사회심리학자인 저자들이 은밀히 보여주는 조종과 소통의 ABC.1만 5000원.
  • 사실묘사 탁월 조선후기 초상화 서양의 광락기계 이용해 그렸다

    사실묘사 탁월 조선후기 초상화 서양의 광락기계 이용해 그렸다

    조선시대는 ‘초상화의 시대’였다.왕의 초상인 어진을 비롯해 고위 관료의 초상화가 넘쳐났다.현존하는 어진은 2점에 불과하지만,사대부의 초상화는 1000점 이상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의 초상화는 ‘터럭 하나라도 닮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라는 관념으로 사실 묘사의 진실성을 가장 큰 미덕으로 삼았다.초상화를 외모를 닮게 그릴 뿐만 아니라 대상인물의 정신까지 묘사한다고 해서 ‘전신사조(傳神寫照)’라고 했다.너무 사실적이라서 검은 반점,마마자국,피부가 하얗게 변하는 백반증 등 주인공 얼굴의 약점까지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조선시대 초상화를 자료로 피부병 관련 질병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될 정도였다.중국과 일본은 우리처럼 사실적인 예가 거의 없었다. 1392년 개국부터 ‘사실의 진실성’에 입각해 꾸준히 그려왔던 초상화는 17~18세기 작지만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난다.평면적으로 처리되던 얼굴과 옷에서 두드러진 입체화법이 나타나고,바닥처리에서 투시도법이 나타난 것이다.서양화의 영향이다.  미술사학자인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이같은 서양화적 기법이 조선 초상화에 등장하게 된 것을 ‘카메라 옵스쿠라(어둠 상자)’가 중국을 거쳐 조선에 도입된 덕분이라고 설명한다.그는 이런 내용을 담은 ‘옛 화가들은 우리 얼굴을 어떻게 그렸나’(생각의 나무 펴냄)를 최근 펴냈다. 이 교수는 “500년 동안 그린 초상화를 일괄해보면 정조시절인 1780년을 전후로 변화의 폭이 컸는데,전신의 사실묘사 기량이 한 단계 발전한 것은 1780년에서 1800년 사이”라고 말한다.즉 사실묘사 기량이 한단계 발전한 데는 이 광학기기의 사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사실묘사에 탁월한 김홍도와 이명기의 작품이 이 시기에 해당한다.  카메라 옵스쿠라는 카메라가 발명되기 직전의 광학기계다.이 교수는 다산 정약용이 자신의 저서 ‘여유당전서’에서 “이기양이 칠실파려안,즉 카메라 옵스쿠라로 초상화를 그렸다.”고 증언했다고 고증했다.이 밖에도 조선후기의 학자인 이규경 최한기 박규수 등도 카메라 옵스쿠라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는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이 광학기기는 조선후기의 화가뿐 아니라 유럽의 화가들도 16~19세기 원근법과 입체감을 묘사하기 위해 이 기기를 사용한 것으로 짐작된다고 한다.  이 교수는 “특히 정약용이 카메라 옵스쿠라를 실험하고 그것으로 초상화를 제작했던 증거를 구체적으로 남긴 것은 세계 과학사나 회화사에도 소중한 기록”이라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올 노벨문학상 르 클레지오·송기정 교수 대담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올 노벨문학상 르 클레지오·송기정 교수 대담

    ‘욘사마’,‘대장금’으로 아시아 전역을 뜨겁게 달궜던 한류. 한류는 배용준이나 이영애 등 특정 배우와 잘 짜여진 한두 편의 드라마로 이뤄진 ‘찻잔 속의 태풍’에 만족해야 하는가. 수많은 문화학자들의 우려처럼 고작 200년에 불과한 역사를 가진 미국 문화의 침투에 반만년 동안 쌓아온 우리 문화가 속절없이 종속되어야 했던 그 불행을 그대로 답습해야 하는가. 서울신문은 이화여대 인문학부 송기정(51) 교수의 주선으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한국을 가장 잘 아는 지성’으로 꼽히는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와 이메일·전화 인터뷰를 갖고 한국 문화의 현주소와 장단점, 그리고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한국 문화가 종속을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시각을 갖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 봤다. 송기정 교수가 사회자 겸 대담자로 나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르 클레지오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가진 것은 노벨상 수상이 결정된 이후 최초다. 르 클레지오는 “어느 특정 문화의 우수성을 고집하기보다는 자신의 문화가 다른 문화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게 될지를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면서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문화는 어떤 종류의 문화에도 굴종되지 않을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에서 한국 문화의 위상은 어떤가 송기정 교수(이하 송기정) 세계 10위권의 경제력만큼이나 한국의 위상은 급변해 왔다.1980년대 초반 프랑스에 처음 유학갔을 때만 해도 아무도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사람들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유럽은 물론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남미의 오지를 가도 모두가 한국을 알고 있다. 특히 삼성,LG, 현대로 대표되는 하드파워 이외에 소프트파워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부쩍 신장된 느낌이다. 대표적으로 한류(韓流)를 꼽을 수 있다. 한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르 클레지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과 가끔 활동하는 미국에서도 영화 등을 통해 한국 문화는 여러 경로로 접할 수 있으며, 일부 계층에서는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한국문화가 아시아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는 한국의 문화가 각국 문화에 여러 가지로 영향을 미치려는 바람직한 현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같은 현상은 과거 전 세계를 군사는 물론 경제·문화적으로 획일화하려고 했던 제국주의적인 움직임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한류는 두 가지 이상의 이문화간 상호관계성(interculturality)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송기정 역사적으로 보면 아시아 문화는 유럽에서 시대별로 큰 조류를 형성할 정도로 관심의 대상이 돼 왔다.18세기에는 중국의 사상들이 유럽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고,19세기에 유럽은 일본에 사실상 미쳤다고 할 정도로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고흐나 모네 같은 화가들은 일본문화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스타일을 확립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유럽인들은 지금도 일본을 굉장히 문화적 수준이 높고 잘사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문화가 유럽을 비롯한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것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르 클레지오 한국문화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서 설명할 수 있다. 미술을 비롯한 예술과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음식문화에 있어서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전통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반면 영화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와 건축물에 있어서는 어느 나라 못지않은 현대적 개념이 퍼져 있다. 두 문화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문학이다. 실제로 한국의 문학작품 중에는 일본의 한국점령과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이 유난히 많은데 이는 한국의 전통과 현대를 가르는 기준에서 이 두 사건이 어떤 형태로든 중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가능한가 송기정 문화를 이루는 근간이 되는 문학에 대해 얘기해 보자. 문학의 세계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언어다. 영어권이나 프랑스어권의 경우에는 이같은 문제를 못 느낄 수 있지만 작가가 쓰는 대로 읽히는 것과 번역을 통해 다시 가공돼야 하는 경우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같은 문제는 요즘의 젊은 번역가들이 체계적으로 공부해 한국 문학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점차 나아질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한국의 번역가가 아무리 잘 하더라도 프랑스나 영어권에서 그 문화를 정확히 이해해 ‘번역의 묘’를 조절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만큼 철저한 공동작업이 돼야 한다.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어떤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지. 르 클레지오 한국문학을 많이 접해 본 사람으로서 한국문학이 세계 시장에서 소외받고 있는 현실은 분명히 잘못됐다고 단언할 수 있다. 작가들이 번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외국 비평가들을 대상으로 한 접근 방법도 찾아야 한다. 내가 구상했던 방향은 한국 문학의 확산과 번역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을 정립하도록 도운 다음 정기적이고 친밀한 한·프랑스 문학교류를 이루는 것이었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한국시인과 소설가를 지속적으로 초빙해 대학에서 여러 강의를 맡겨야 한다. 이는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프랑스에 분명히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송기정 평소 한국 문학을 많이 읽고 즐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읽어본 작품 중에 특히 좋아하는 것들이 있는가. 르 클레지오 세대 차이의 영향 때문인지 개인적으로 이승우 같은 작가의 작품에 친숙함을 느낀다. 그러나 한국 문학계의 젊은 조류, 예컨대 현실주의나 유머감, 과거 전쟁세대들과의 일정한 거리감 유지 등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송기정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해 보자. 프랑스 등 문화가 발전한 것으로 평가받는 나라들은 예외없이 읽기와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많은 분야의 책을 읽도록 유도하다 보니 논리적인 사고와 창의적인 사고가 동시에 만들어지는 것 같다. 대중문화의 확산에서는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지만 과학과 인문학을 망라해 가장 많은 신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은 여전히 유럽이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한국은 한글을 읽고 쓰는 데 대해 너무 소홀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르 클레지오 한글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모든 글자를 읽을 수 있고 쓰기도 한다. 전 세계를 돌아다녀 본 사람으로서 한글은 정말 대단히 과학적인 언어이자 한국만의 문화를 담고 있다. 한국어의 ‘정’ 같은 표현은 어떤 프랑스어로도 100% 완벽한 번역이 불가능하다. 한국에서 영어 공용화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 언어는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가장 큰 가치다. 또 그 나라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치나 영향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보편적 가치이기도 하다. ●한국 문화가 지켜야 할 가치는 어떤 것인가 송기정 프랑스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대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 프랑스 문화에서 배울 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 르 클레지오 프랑스와 한국은 국제관계나 경제적 힘, 그 규모에 있어 동등한 수준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두 나라가 공통적으로 크기에 비해 강력한 문화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문화의 침투는 두 나라 모두 겪고 있는 현상인데,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이웃의 거대 문화권인 중국, 일본의 영향력을 배제할 필요가 있다. 송기정 전 세계적인 문화의 융합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인 것 같다. 자국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 못지않게 타문화를 수용하는 것도 중요하고, 문화를 수출하는 것 또한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 이 세 가지를 조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르 클레지오 세 가지는 결코 각기 다른 부분이 아니다. 이종간 문화의 융합은 인류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다른 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고립되거나 외국의 문화를 순화시켜 받아들이기 위한 장벽을 설치하는 노력은 아무 의미가 없는 짓이다. 문화는 물과 같아서 늘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선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문화를 자유롭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새로 들어온 문화에 정복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데, 한국은 당연히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한국 문화가 외국 문화와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펼칠지 기대된다. 정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르 클레지오는 누구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68)는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가장 위대한 작가’로 불린다.1940년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나 니스 대학을 졸업했다. 유년시절을 아프리카에서 보냈고 멕시코, 미국 등지를 끊임없이 돌며 경험을 쌓아 세계 각국의 문화에 대해 폭넓은 조예를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에 대해 “인간성 탐구, 관능적 환희, 시적 모험, 새로운 출발의 작가”라는 평가를 내렸다. 대표작으로 ‘사랑하는 대지´,‘도피의 서´,‘전쟁´,‘거인들´,‘사막´,‘조서´ 등이 유명하다.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이화여대 통역대학원 초빙교수를 맡아 강의를 진행했다. ●주요연보 ▲1940년 4월13일 프랑스 니스 출생 ▲1960년 니스 대학 졸업 ▲1963년 첫 소설 ‘조서(調書·Le Proces-verbal)´로 르노도 상 수상 ▲1964년 앙리 미쇼 연구로 프랑스 엑상프로방스대 석사 학위 취득 ▲1980년 ‘사막´ 발표.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수여하는 폴 모랑상 수상 ▲1994년 ‘리르’誌 선정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 선정 ▲2001년 한불 작가 교류 행사로 한국 방문 ▲2002년 미국 뉴멕시코대 불문학과 미술사 교수 ▲2007~2008년 한국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초빙교수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데스크시각] 서울, 가을 그리고 아파트/손성진 미래기획부장

    [데스크시각] 서울, 가을 그리고 아파트/손성진 미래기획부장

    도망치듯 가을은 스쳐 지나간다. 제대로 볼 새도 없이 단풍은 벌써 떨어져 길바닥에 뒹군다. 가을 거리는 마지막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서울시가 정한 단풍·낙엽거리 72곳 중 한 곳이었다. 시내에, 그것도 아주 가까이 이런 곳이 있구나 하며 걸었다. 새삼 서울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려는 순간, 무엇이 가로막았다. 재개발 현장이었다. 인공 구조물이 없다면 서울은 각국의 수도 중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도시다.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이 도심을 병풍 치듯 싸고 그 안에 이름처럼 맑은 청계천이 흐른다. 청계천에 더해 홍제천, 불광천, 탄천, 안양천을 보듬은 한강은 굽이치며 황해로 향한다. 서울에 대해 ‘동국여지승람’은 ‘북쪽에 화산(華山·북악산)으로 진산을 삼았으니 용이 내리고 범이 쭈그려 앉은 형세가 있고 남쪽은 한강으로 띠를 둘러 형세가 동방의 제일’이라고 적고 있다. 1394년 이성계가 천도하고 나서 500년간 서울은 절경을 간직했다.19세기 말 서울에 처음 발을 디딘 서양인들은 고즈넉한 풍취에 빠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 했다. 하지만 다음 100년 동안 서울은 그 이름을 잃었다. 무자비한 삽질 때문이었다. 전후 파괴를 복구하고 주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기 위해 집단주택을 대량으로 건설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전국의 주택 가운데 아파트의 비율은 55%를 넘었다. 서울 강남구 대치1동은 97%가 아파트다. 정권은 강남에 아파트를 집중 건설함으로써 중산층을 결집시켰고 교육과 비즈니스의 중심도 옮겨갔다. 아파트는 주거문화의 척도, 동시에 부의 척도가 되었다. 프랑스의 발레리 줄레조는 한국의 유별난 아파트 선호 현상을 권위주의와 연결지어 해석하고 있다. 봉급생활자들이 경제 발전에 헌신하도록 국가가 가격이 통제된 아파트를 대량 공급해 그들의 정치적 지지를 얻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파트는 수십년간 정치적 방편으로 이용되었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 200만가구 건설, 신도시·뉴타운 개발을 외쳐댔다. 저렴한 집을 갈구하는 국민들은 그들의 구호에 이끌려 갔다. 이렇게 해서 판잣집 대신 이제는 아파트가 서울을 뒤덮고 있다. 아파트에 가려 서울의 산들은 있는지 없는지 뵈지 않는다. 강변을 따라 늘어선 성냥갑 같은 아파트들은 한강의 풍치를 망치고 있다. 빈땅에 대단지 아파트를 짓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재개발에 의한 파괴다. 권위주의가 조성한 아파트에 대한 집념은 재개발에 대한 집착을 낳았다. 재개발은 경제적 신분 변화의 수단이 되었다. 정답던 동네는 무자비한 철거반의 망치에 폐허로 변하고 있다. 멀쩡한 물건을 헌신짝 버리듯 건물도 좀 낡았다는 이유만으로 밀어버리는 게 습성처럼 되었다. 감나무가 서 있는 마당 딸린 집이며, 정감 넘치는 골목길 담벼락들이 폐자재 하치장에 처박힌다. 역사와 생활의 흔적들은 죄다 불도저에 휩쓸려 버려진다. 재개발은 재산권을 보장하기 위해 부정될 수는 없다. 그러나 개발 이전에 보존을 먼저 고민해 봐야 한다. 가회동 한옥마을처럼 옛 모습을 간직한 동네를 전통마을로 지정해 관리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물론 적지 않은 돈이 들 것이다. 하찮은 것이라도 지키려 애썼기에 유럽의 도시들은 수백년 전의 모습 그대로다. 고색창연한 파리의 주택에는 한때 그곳을 삶터로 삼았던 소설가나 유명인의 이름이 붙어 있다. 오래된 건물들을 뭉개버리고 고층아파트를 지었다면 나폴리는 세계적 미항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곳곳에서 옛집들이 헐리고 아파트가 삐죽삐죽 솟아오르고 있는 서울의 하늘은 어둡기만 하다. 되돌리기는 불가능하기에 더욱…. 손성진 미래기획부장 sonsj@seoul.co.kr
  • 임란전후 소실 경복궁 건물터 발굴

    경복궁에서 조선 태조시대 처음 궁궐을 세울 때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2개의 대형 건물터가 발견됐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동랑과 서랑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이전 조선 전기 경복궁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8일 서울 세종로 경복궁 광화문권역 발굴현장에서 현장 설명회를 열고 동랑 및 서랑 터와 함께 광화문에서 동십자각을 잇는 궁궐의 담장( 宮牆·궁장)과 고종 때 지은 용성문과 협생문의 기초도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동랑과 서랑은 각각 정면 12칸, 측면 3칸에 세로 50m, 가로 11.2m의 동서 대칭구조로 되어 있는 대형건물이다. 초석과 기단 등 건물의 기초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는 상태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6년(1434년) 기록에 ‘홍례문(흥례문의 옛 이름) 밖 동, 서랑을 의정부, 육조, 명사(名司)가 분합하여 팔직방과 대조(待朝)하는 처소로 정한다.’고 적혀 있어 용도를 짐작하게 한다. 조사단은 “이 터에서는 조선 전기에 사용된 분청사기편과 죽절(竹節)굽 백자편이 나왔을 뿐 18~19세기에 유행한 청화백자편이 출토되지 않았다.”면서 “조선 전기에 만들어졌다가 임진왜란(1592~1598년)을 전후해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조선 전기 경복궁 외곽 건물터 발굴...

    경복궁에서 조선 태조시대 처음 궁궐을 세울 때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2개의 대형 건물터가 발견됐다.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동랑과 서랑으로 추정되며,임진왜란 이전 조선 전기 경복궁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8일 서울 세종로 경복궁 광화문권역 발굴현장에서 현장 설명회를 열고 동랑 및 서랑 터와 함께 광화문에서 동십자각을 잇는 궁궐의 담장( 宮牆·궁장)과 고종 때 지은 용성문과 협생문의 기초도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동랑과 서랑은 각각 정면 12칸,측면 3칸에 세로 50m,가로 11.2m의 동서로 대칭구조로 되어 있는 대형건물이다.초석과 기단 등 건물의 기초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는 상태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6년(1434년) 기록에 ‘홍례문(흥례문의 옛 이름) 밖 동,서랑을 의정부,육조,명사(名司)가 분합하여 팔직방과 대조(待朝)하는 처소로 정한다.’고 적혀있어 용도를 짐작케한다. 조사단은 “이 터에서는 조선 전기에 사용된 분청사기편과 죽절(竹節)굽 백자편이 나왔을 뿐 18~19세기에 유행한 청화백자편이 출토되지 않았다.”면서 “조선 전기에 만들어졌다가 임진왜란(1592~1598년)을 전후해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맹식 조사단장은 “이번 발굴 조사에서 용성문,협생문,광화문 동편 궁장 등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고종 때 지어진 용성문과 협생문이 있던 자리에 동랑과 서랑으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있었다는 것은 경복궁이 고종시대 중건된 이후보다 태조시대 초창 당시 좀 더 화려하고 규모도 컸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글 / 서울신문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VJ bowwow@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열린세상] 만인사제주의와 한국의 개신교 문화/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열린세상] 만인사제주의와 한국의 개신교 문화/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유학생 시절 한 미국인 교회에서 목격한 일화다. 주일예배가 끝난 후 교인들은 교회정원에 조촐하게 마련된 다과를 들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연신 쾌활하게 떠들던 한 중년남자에게 마침 나이 지긋한 담임목사가 다가왔다. 이 남자는 마치 오랜 친구를 대하듯 ‘헤이 존(Hey John)’하면서 목사의 어깨를 다른 한 손으로 감싸 안았다. 목사 역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 남자와 한 동안 어깨동무를 한 채 교인들과 어울렸다. 이 광경은 필자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공개된 장소에서 목사의 이름을 존칭 없이 부르고 장난치듯 신체적 접촉을 나누는 모습은 생경함을 넘어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권위에 가득 찬 근엄한 이미지의 성직자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31일은 종교개혁 491주년이었다. 면벌부 판매를 비판하는 마르틴 루터의 ‘95개조’로 촉발된 종교개혁운동은 천오백년 동안 단일체제를 유지해 온 기독교 세계를 양분하였고 나아가 새로운 종교적 패러다임을 창출하였다. 당시 개혁가들이 가톨릭교회와 결별하면서 제시한 대안은 이신칭의론(以信稱義論)이다. 구원은 사제가 집전하는 성사참여를 비롯한 선행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는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이 교리는 개혁의 대의명분이었고 오늘날까지 전 세계의 모든 프로테스탄트 종파가 신봉하는 으뜸의 원리다. 이신칭의론은 만인사제주의라는 또 하나의 중차대한 교리를 낳았다. 구원은 성직자의 도움 없이 개인의 독자적 믿음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므로 모든 인간은 이제 스스로 자신의 사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 만인사제주의는 결국 성직자와 평신도는 절대자 앞에서 영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는 기독교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혁명적 변화였다. 19세기말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전래된 한국의 개신교는 유례없는 기세로 성장해 왔다. 붉은 십자가가 서울 장안의 밤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고, 수 만 명의 신도를 뽐내는 화려한 초대형 교회가 즐비하며, 위험을 아랑곳 않는 강렬한 선교의 열기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오지와 변방에까지 뿜어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외적 성장에 골몰해 왔던 이 땅의 개신교가 프로테스탄티즘 본연의 정신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의 개신교 문화 속에 만인사제주의는 그야말로 낯선 이념으로 전락하였다. 한국의 개신교에서 성직자는 군림하고 있고, 이러한 양상은 다양하게 표출된다. 자신의 기도를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는 목회자를 손쉽게 발견할 수 있고, 엄연히 실정법을 위반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직자는 세속의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시대착오적 발상과 집단적 이기주의가 일각에 도도히 흐르고 있다. 담임목사와 당회장 직은 그 흔한 재임용 절차도 없이 정년이 보장되는 것이 관례고, 많은 성직자들은 세금에 있어서 아직도 특별계급이다. ‘주의 종’에 대한 비판은 주제 넘는 태도로 간주되며, 그래서 이제는 고물이 된 권위주의가 교회에서는 여전히 건재하다. 요컨대 한국의 개신교 문화는 성직자와 평신도를 전혀 다른 부류로 구별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혁하고자 했던 대상을 오히려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으니 만인사제주의를 천명한 종교개혁의 취지가 이 땅에서는 그저 무색할 따름이다. 한국 개신교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실종된 정신을 이제 온전히 되살려야 할 당사자는 가르치는 입장에 서있는 목회자들 자신이다. 기득권에 안주하지 말고 신학대학에서 배운 바를 교회문화 속에 안착시키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담임목사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 어깨에 팔을 걸치던 장면이 종교개혁 기념일을 맞이하여 자꾸 떠오른다. 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 경계 허문 고대~근대 中·日 문화체험기

    ‘동아시아 역사속의 여행(전2권)’(김선민 외 지음, 산처럼 펴냄)은 고대부터 근대까지 동아시아를 무대로 펼쳐졌던 다양한 형태의 ‘여행’에 초점을 맞춰 역사를 재구성한 책이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동아시아연구실이 2004년부터 2년간 추진한 프로젝트인 ‘동아시아의 공간체험과 타자인식-여행, 정보, 네트워크의 문화사’의 결과물을 2권에 나눠 실었다. 저자들은 고대 중국 사마천의 남방여행부터 당대(唐代) 문인들의 만유(漫遊)적 여행, 일본 에도시대의 여행환경, 메이지 관료의 유럽여행 등을 통해 동아시아 여행사의 궤적을 쫓는다. 흥미로운 점은 여행을 “경계를 넘어 타자와 대면하고 타자인식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문화적 공간체험”이란 광의의 개념으로 파악해 경계 넘기, 정보와 교류, 네트워크, 정체성의 네 가지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것이다. 1부 ‘경계 넘기’에 수록된 김종섭 서울시립대 교수의 ‘당대 문인여행의 의미와 경계인식’은 당말 문인들 사이에 새로운 세계로서 서역 여행이 유행하고, 이를 통해 당과 이역(異域)을 구분짓는 경계의식을 갖게 됐다고 분석한다. 2부 ‘정보·교류’에 실린 방광석 고려대 교수의 ‘메이지 관료의 유럽 지식순례’는 19세기 말 일본에서 서구 문물 수용 차원에서 이뤄진 메이지 유신 관료들의 잇따른 유럽행을 조명한다. 박경석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3부 ‘네트워크’에 실린 ‘민국시 상하이 우성여행단과 레저여행’에서 1930년대 상하이에 등장한 여행전문단체들 가운데 중·상류층 시민들의 주목을 받았던 ‘우성여행단’의 사례를 통해 내셔널리즘에 경도되지 않은 중상류층의 일상을 살피는 한편 여행을 산업네트워크적 측면에서 분석한다. 사마천의 타자인식을 조명하면서 그의 여행을 “변방을 알기 위한 여행이라기보다는 자기를 확신하기 위한 여행”이라고 규정한 김유철 연세대 교수의 ‘사마천의 남방여행과 천하인식’은 4부 ‘정체성’에 실렸다.1·2권에 수록된 글은 총 21편이다. 연구를 이끈 임성모 교수는 서문에서 “이번에 출간된 2권의 책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적 여행에 집중했다.”며 “현재 편집작업 중인 3권에는 한국 등의 여행 경험을 담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각권 2만 8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사실과 언론의 책임/남재일 세명대 교수

    [옴부즈맨 칼럼] 사실과 언론의 책임/남재일 세명대 교수

    언론의 사회적 역할은 주로 민주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논의된다.‘언론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는가?’란 질문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언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언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가장 낙관적 견해는 사실의 공표는 그 자체로 민주적 의사결정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즉 정확한 사실만 고지되면 공론장의 토의과정을 거쳐 민주적 의사결정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낙관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자유주의 사상에 기초해 있다. 밀턴과 밀의 자유주의는 ‘사상의 자유 시장은 언제나 진리를 향한다’는 것이 요체다. 하지만 사실의 공표자체로는 부족하다는 비관론도 만만찮다.‘월든’의 저자인 헨리 소로는 19세기 중반에 이미 “신문의 조각기사들 중에서 진정으로 알아야 할 것은 거의 없다.”고 불평했다. 소로의 후예들은 신문의 조각 기사들은 파편적인 사실만을 전달해줄 뿐 현실의 전체상을 전해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오늘날 ‘의견저널리즘’으로 명명된 해석적 저널리즘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부류들이다. 기자들은 사실의 강조에서 의견의 수용으로 조금씩 이동해 왔다. 자유주의 사상이 태동하던 당시처럼 모든 정보가 통제되던 시절에는 사실의 공표자체가 의미가 있지만,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에는 사실의 공표자체로 민주주의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경험적 인식을 공유해 왔기 때문이다. 언론이 사실의 전달자가 아니라 사실의 해석자로 나서게 되면 해석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란 부담이 생긴다. 책임은 부담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언론에 해석자를 요구하고 여기에 부응할 수밖에 없다면 ‘해석과 책임’에 대한 적극적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의 전달자를 주장하면서 편법으로 주장을 녹여 넣는 어정쩡한 태도는 앞으로 경쟁력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금융위기 관련 기사를 신문별로 비교해 봤다. 금융시장이 추락할 때는 ‘패닉’,‘공황’ 등의 표현이 난무했다.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협정이 체결된 지난달 31일자에는 하루아침에 금융위기가 다 사라진 것처럼 흥분하는 기사들이 수두룩하다. 금융위기 같은 사안은 언론보도의 자기암시적 효과가 크다. 언론의 과장이 현실을 악화시키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에 충실하려면 사실에 감정을 덧씌워 기사가치를 구성하는 선정성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배경에 대한 종합적 분석을 통해 시장의 감정을 진정시키려는 방침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서울신문은 대체로 침착성을 유지했다.1면 머리기사로 해설기사를 2회 편집한 것, 통화스와프 협정에 대한 관료들의 공치사를 비판한 작지만 알찬 기사 등이 흥분을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되는 기사들 같다. 하지만 31일자 통화스와프 협정체결 과정을 다룬 “역시 우리 만수” 기사는 ‘배경설명과 평가’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만수 한 건 했다’는 띄워주기 기사처럼 보인다. 관료가 당연해 해야 하는 일의 과정을 극화해서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언론의 ‘사회적 책임’의 관점에서 보면 30일자 “여풍 거세지고 경찰대 출신 약진” 기사도 아쉬움이 남는다.‘사시 2차 합격자 분석’이란 타이틀이 붙었지만 분석의 틀은 합격자 출신대학별 서열과 여성의 비율이 전부다. 출신대학별 서열화는 정보라기보다는 대학별 서열에 대한 통념의 확인이다. 여성비율의 증가에 대한 세간의 호들갑도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한 남성사회의 우려의 목소리가 깔려 있지 않은지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타성적인 프레임에 대해 정치적 타당성을 질문해 보는 것이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남재일 세명대 교수
  • [책꽂이]

    ●현대물리가 날 미치게 해!(프랭클린 포터 등 지음, 김영태 옮김, 한승 펴냄) 19세기 말과 20세기 현대물리학과 관련한 250여개의 수수께끼 풀이. 영화와 TV가 물리학을 어떻게 오락적으로 활용하는지도 짚었다.1만 3000원.●아트 오브 페인팅(나데즈 라네리 다장 지음, 김연실 옮김, 다빈치 펴냄) 그림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여정, 예술가의 고뇌 등 미술작품 감상의 기초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을 제시.3만 8000원. ●한국지리 이야기(권동희 지음, 한울 펴냄) 지형학을 연구한 저자가 한반도의 암석 구성, 해안 지형, 생물 분포, 한국인의 지리 인식 등 다양한 지리학 지식을 전한다.1만 5000원.●투명성의 시대(워런 베니스 등 지음, 배인섭 옮김, 엘도라도 펴냄) 미래의 승자로 남기 위해 개인과 기업이 갖출 최고미덕은 투명성이라고 주장. 진실을 공개하는 방법에도 노하우가 있다고 귀띔.1만 1000원. ●베트남 근현대사(최병욱 지음, 창비 펴냄) 베트남의 근현대 역사를 살피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과 베트남의 향후 관계에 대해서도 전망했다.18세기 말 베트남 통일과정에서 그 나라 특유의 근대성이 발견된다고 주장.1만 5000원.●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 서서(최순우 지음, 학고재 펴냄) 1994년 초판된 책의 흑백도판을 천연색으로 바꿔 재출간했다. 추사 김정희, 허련에 대한 저자의 글도 보충했다.1만 9800원.●라틴아메리카 역사 다이제스트 100(이강혁 지음, 가람기획 펴냄)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이뤄온 100가지 사건을 간추려 그에 대해 자세히 해설한 역사교양서. 남미 33개국의 질곡의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1만 5000원.●베델의 집 사람들(베델의집 사람들 지음, 송태욱 옮김, 궁리 펴냄) 1984년 일본에 세워진 정신장애인들의 공동체 ‘베델의 집’이 지금까지 어떻게 운영돼 왔는지 기록했다. 삶을 긍정하고, 인간관계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1만 3000원.●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사라 밀스 지음, 임경규 옮김, 앨피 펴냄) 탈구조주의자, 반마르크스주의자, 반역사가, 비판이론가, 무정부주의자 등 숱한 수식어를 가진 미셸 푸코의 사유를 다각도로 짚었다.1만 2500원.●서울의 레스토랑 2009(클라이닉스 펴냄) 국내 최초의 레스토랑 평가서 블루리본 서베이의 2009년판. 서울시내 1190개의 레스토랑이 사진과 함께 소개됐다.1만 8000원.●전쟁기획자들(서영교 지음, 글항아리 펴냄) 고대사와 전쟁사를 전공한 저자가 동서양 역사속 격전지 33곳을 조명하며 ‘전쟁’이 어떻게 ‘시장’을 만들어 냈는지 추적했다.1만 5000원.
  • [정윤수의 오버 헤드킥] 돌아온 마라도나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으로 디에고 마라도나가 내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디에고 마라도나! 이렇게 옮겨 적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월드 스타이다. 특히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마라도나는 ‘살아 있는 신’이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마라도나교’를 만들어 그의 형상을 딴 신물을 만들어 기도를 하고 찬송을 한다. 우리에게는 마라도나가 현역 시절에는 잘 뛰었을지 몰라도 체중 조절도 못하고 약물 과다 복용으로 입원도 하고 관중석에 앉아서 신경질적으로 팔이나 휘두르는 성질 급한 중년 사내로 인식되고 있지만,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마라도나는 그저 잘 뛰는 축구 선수 이상의 존재이다. 70~80년대 아르헨티나는 여러모로 힘겨운 사정이었다. 수십년 동안 군부 독재가 억압해왔고 경제 사정은 형편없었다.1978년에 월드컵을 개최해서 우승까지 했지만 편파 판정 시비와 심판 매수설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네덜란드의 대스타 요한 크루이프는 ‘독재 국가에서 공을 찰 수 없다.’며 대회 참가를 거부했다.80년대 초반에는 아르헨티나 축구가 곤두박질쳤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축구협회는 체격 조건이 좋은 장신 선수 중심으로 유럽 축구를 지향했다.19세기 말에 독일에서 수많은 이민자가 들어왔기 때문에 유럽식 장신 축구를 할 만한 선수층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크고 작은 대회에서 연전연패를 할 뿐이었다. 독재 정치와 가난한 경제 사정만으로도 힘겨운데 대표팀 축구마저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당시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진실로 벅차고 즐거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 16살의 어린 소년이 대표팀에 발탁되어 경천동지할 사건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라도나가 바로 그 소년이다.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주류 사회를 형성한 독일계 이민자들이 아니라 기나긴 세월 동안 아르헨티나 역사를 살아온 원주민 혈통의 작고 다부진 체격이었다. 그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유전자 속에 내재된 축구의 열정으로 공을 찼다.168㎝의 마라도나는 전세계 축구팬들을 십수년 동안 열광시켰다. 그는 당시까지 유효했던 축구의 모든 조직력과 전술의 개념을 다 파괴해버렸다. 그는 축구라는 모든 요소를 가열하면 결국 `개인기´라는 최소 단위가 남는다는 것을 입증했던 위대한 선수다. 그가 대표팀 감독이 되어 세계 무대에 복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이다. 만약 뉴욕 증시에 ‘세계 축구’라는 종목이 있다면 오늘 당장 상종가를 쳤을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걱정한다. 그는 개성이 강한 ‘위대한’ 선수일 뿐 뛰어난 지도자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작은 희망을 걸어보고 싶다. 선수는 이러해야 하고, 지도자는 저러해야 하며, 협회는 또 그러해야 한다는 식의 제도와 관습이 있다. 마라도나는 그런 제도와 관습을 16살 때부터 부정하면서 컸다. 그는 축구 제도에 길들여지지 않은 유일한 야생마였다. 그는 결코 ‘착한’ 선수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이 점이 또한 그의 위대성을 말해준다. 그런 본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감독’ 마라도나가 되길 바란다. 거대한 구조에 길들여지는 게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현대 사회에서 마라도나가 ‘뛰어난’ 선수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나아가는 것은 진실로 아름다운 광경이다. 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 ‘해방공간의 아나키스트’ 펴낸 이문창옹

    ‘해방공간의 아나키스트’ 펴낸 이문창옹

    1945년 8·15해방의 기쁨도 잠시, 그해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의 신탁통치 결정은 열여덟 청년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좌와 우로 나뉘어 날 선 대립을 벌이는 정치 현실에 절망한 청년은 순수한 혁명적 민족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제3의 노선을 찾아 헤맸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접한 ‘무명회’는 청년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는 계기가 됐다. 한국 아나키스트들의 총집결체인 ‘자유사회건설자연맹’과 민족진영 사이의 연락창구 노릇을 하던 ‘무명회’를 통해 청년은 아나키즘에 눈뜨고, 아나키스트로서의 삶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당시 서울 종로구 예관동 24번지 유정렬 선생의 집에 머물며 이을규, 이정규, 김지강 등 선배 아나키스트들의 심부름을 도맡아 했던 열혈 청년은 어느덧 팔순 노인이 됐다. 한국 2세대 아나키스트의 마지막 주자인 이문창(81) 국민문화연구소 명예회장이다. 그가 지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해방 이후 한국 아나키즘운동의 현장을 조명한 저서 ‘해방 공간의 아나키스트’(이학사)를 펴냈다.1970년대 출간된 ‘한국아나키즘운동사’는 해방 전의 활동까지만 소개돼 있어 해방 후의 아나키즘에 대한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기록은 이 책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2세대 아나키스트의 마지막 주자 “3·1운동을 전후해 항일 독립운동을 펼친 단재 신채호, 우당 이회영 선생 같은 아나키스트들이 1세대라면, 해방 후 조선민족공동체의 운명을 고민했던 아나키스트들은 2세대에 해당합니다. 그때 혁명을 함께 고민했던 선배와 동료들은 모두 저 세상으로 떠나고, 이제 나만 남게 됐는데 더 늦기 전에 역사를 기록해야겠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책에는 1947년 임정봉대운동과 혁명거사를 계획했던 한국혁명위원회의 활동과 6·25 당시 북한군 점령하의 서울에서 벌인 레지스탕스 운동 등 아나키스트들의 무력투쟁이 흥미롭게 기술돼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주목할 만한 내용은 아나키스트들이 ‘국민문화연구소’를 설립해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사회교양운동, 농촌운동, 자유공동체운동에 매진했다는 사실이다. 국민문화연구소는 혁명거사가 실패로 돌아간 상황에서 직접 민주와 자주 협동의 공동체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선 민중의 생산현장에 파고들어 공동생활 훈련을 통한 사회구조개혁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이후 아나키즘운동의 중심이 됐다. 이 회장은 1947년 설립 초기부터 연구소 활동에 참여해 지금까지 60년간 이 일에 매진해왔다.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려는 욕망 실현 한평생 아나키스트로서로 살아온 그에게 아나키즘의 요체는 무엇일까.“아나키즘은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때 중요한 건 남의 욕망을 침해해선 안 된다는 것이지요. 내 자유가 중요한 만큼 상대방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 즉 공동의 자유를 향유하는 공동체가 아나키즘의 본질입니다.” 한때 ‘돈 없는 세상’을 이상향으로 꿈꿨던 80대 노혁명가는 여전히 그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는 산업화와 민주화로 21세기 인류의 삶이 선진화된 듯한 착각에 빠져 있지만 실상은 인간이 주체가 아니라 돈의 노예가 됨으로써 진정한 자유 없이 허덕이며 살고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금융위기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근본적인 모순에서 비롯됐다고 여기는 그는 19세기 프랑스 무정부주의자 프루동이 주창한 무상신용사회가 해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문화연구소 명예회장직과 더불어 박열의사 기념사업회 이사, 자유공동체연구회 상임고문으로 활동 중이며,2006년부터 매년 ‘자유공동체운동과 동아시아의 미래’를 주제로 한·일 공동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한국 고고학 60년 증언

    근대 학문체계로서의 고고학이 국내에 이식된 것은 19세기 말이지만 한국 고고학이 한국인에 의해 주도되기 시작한 것은 광복 직후인 1946년의 경주 호우총 발굴조사부터다. 이를 기점으로 2006년 창립 60주년을 맞은 한국고고학회가 2년간 기획한 한국 고고학 원로 증언집 ‘일곱 원로에게 듣는 한국 고고학 60년’(사회평론)이 출간됐다. 선정된 원로는 남한 구석기 연구의 문을 연 손보기, 국립박물관에서 모범적인 발굴을 수행한 윤무병, 감은사지를 시작으로 천마총·황남대총 등 우리나라 국가발굴을 이끌어온 발굴왕 김정기,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방고고학의 새 지평을 연 윤용진, 삼국시대 유물연구에 전념한 윤세영, 북한 고고학의 성과를 소개하며 남북 고고학을 연계시킨 정한덕, 경주개발계획과 발굴제도 수립을 주도한 정재훈 등이다. 책에는 그간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고고학과 인생에 관한 철학과 후학과 학계에 주는 당부 등이 담겨 있다.“지금도 안압지 발굴에 대해 나는 미안한 점이 많아요. 안압지 발굴은 잘 된 게 아니거든요. 그때는 수십 대의 양수기를 사가지고 그 물을 퍼내도 비가 오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거야(웃음). 지금 발굴하는 것처럼 지붕을 씌웠어야 했는데.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집이 장충체육관이었어요. 그곳에 가보니 기둥을 안 세우고 지붕을 매달았더라고. 건축가 김중업씨한테 기둥 없이 지붕을 어떻게 얹느냐고 자문도 구했지요.”(정재훈)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유물 작업에 매달리다 보니 흙투성이의 작업복을 입은 막노동꾼이나 다름없었지요. 이런 모습을 돌아보며 하루에도 몇번씩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 하고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되풀이하다가 오기 비슷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윤세영)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최태환칼럼] 꿈 그리고 모욕이 넘치는 사회

    [최태환칼럼] 꿈 그리고 모욕이 넘치는 사회

    풍선이 날아간다.2개 동의 아파트 사이로 가물가물 사라진다. 불안하게 화폭을 갈라 놓은 회색빛 아파트의 비상이 창백하다. 날아가는 풍선의 의미는 뭘까. 새로운 꿈이었다. 사회주의 혁명 이후 꿈꿔 온 이상향이었다. 지금껏 인류가 도달하지 못한 신천지의 표상이었다. 러시아 미술가 루치슈킨의 그림 ‘풍선은 날아가고’이다.1926년 작품이다. 러시아 사회주의가 최고점을 향해 치닫던 시절이었다. 민중이 나서 제정(帝政)의 압제를 마감했다. 광활한 러시아 대륙엔 꿈이 넘쳤다. 낭만적 사회주의 건설의 희망이 넘실댔다. 예술가들도 유토피아 건설에 동참했다. 민중과 더불어, 때론 민중의 맨 앞줄에서 새로운 세계 건설을 주창했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예민했다. 이상의 변질 조짐을 감지했다. 현실은 이념을 인간의 가치보다 앞세웠다. 평등사회의 기대는 무력화됐다. 화폭 아래 한 아이가 망연히 풍선을 바라본다. 이상은 더 이상 이상이 아니었다. 멀어져 가는 풍선은 좌절이다. 사라지는 이상향이었다. 그림 속 풍선은 바로 유토피아를 꿈꿨던 예술가들의 자괴감과 갈등의 상징이었다. 지난여름 러시아 여행때였다. 서울은 몸살을 앓고 있었다. 촛불 순수성 논란이 한창이었다. 촛불시위 후유증은 국민 모두를 피곤하게 했다. 모스크바, 페테르부르크 등의 미술관, 박물관들을 들렀다. 그곳에서 접한 러시아 미술은 신선했다. 러시아 미술은 상대적으로 소개될 기회가 적었다. 널리 알려진 음악과 문학, 공연 등에 비해 접근 자체가 어려웠다. 유럽 미술계의 소외지대였다. 하지만 방대하고 깊은 러시아 미술은 감명이었다. 에르미타시, 트레티야코프, 러시아 미술관은 명성대로 대단했다. 이들의 18·19세기 미술에는 ‘러시아적인 격렬한 삶의 흔적’이 각인돼 있다. 유럽미술이 낭만주의·인상주의 등 그림의 형식에 눈을 돌렸을 때였다. 러시아 미술은 그러나 사실주의를 고집했다. 여전히 민중의 삶과 미술의 관계에 대해 고민했다고 했다. 사색과 성찰보다 주장과 행동이 앞서는 우리 현실과 대비되어서일까. 러시아 미술은 귀국 후에도 기억에 또렷하다. 루치슈킨처럼 우리는 지금도 꿈의 풍선을 찾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저마다 붙잡고 싶은 풍선이 너무 다양한 것일까.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가치와 인격을 존중하는 삶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최근 역사교과서 수정 논쟁, 현·구 정권의 색깔논쟁, 최진실 자살파동 등은 이같은 물음에 깊은 회의를 갖게 한다. 사회 곳곳에 자신의 시각과 입장에서 세상을 재단하는 독선과 편견이 번득인다. 순수성의 강변이 판을 친다. 상대를 향한 공격의 칼날이 간단없이 우리 머리 위를 날아다니고 있다. 나의 가치, 우리 편의 논리와 주장만 내세우는 사회에서 인간 존중, 인간 우선의 가치를 찾기 어렵다. 주요 사안을 이념의 대결 구도로 귀결시키는 낡은 사고는 모두를 곤궁하게 할 뿐이다. 얼마전 소설가 김훈은 “우리 사회에 단절의 장벽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고 했다. 지배적 언론이나 담론이 당파성에 매몰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히브리대학 명예교수인 마갈릿은 “품위 있는 사회란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라고 했다. 담론과 제도뿐일까. 나의 독선, 편협함이 타인에게 모욕이, 스스로에게 독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장벽을 쌓아가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우리 모두 자문할 때다. yunjae@seoul.co.kr
  • [책꽂이]

    ●거의 모든 스파이의 역사(제프리 리첼슨 지음, 박중서 옮김, 까치 펴냄) 20세기 동안 세계 각국에서 펼쳐졌던 현대 첩보전의 은밀한 역사를 집약했다. 역사의 이면에서 활약한 스파이들의 면면, 그들을 양성한 첩보기관과 최첨단 기술 등을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생생히 기술했다.2만원. ●사람이 찾아야 할 모든 것 ‘역사’(남경태 지음, 들녘 펴냄) 동유럽사, 예수회와 중국문명의 접촉, 유라시아의 민족대이동 등 동·서 역사교류의 주요 사건들에 대해 상세히 짚었다.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를 아우르는 역사서.3만 8000원. ●가비오따쓰(앨런 와이즈먼 지음, 황대권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가비오따쓰는 콜롬비아 불모의 사막에서 자연의 기적을 일군 생태공동체. 수경재배법, 사바나 자전거, 약초 전문점 등 가비오따쓰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안들을 짚어 냈다.1만 5000원. ●중국 책의 역사(뤄슈바오 지음, 조현주 옮김, 다른생각 펴냄) 최초의 서적 형태인 기원 전 1500년께의 갑골서(甲骨書)부터 서양의 기계식 납활자 인쇄술이 도입된 19세기 이전까지 중국 책 역사의 전 과정을 살폈다.2만 5000원. ●가야금 선율에 흐르는 자유와 창조(황병기·서울대기초교육원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지난해 5월 가야금 명인인 황병기씨의 서울대 강연과 청중과의 대화 내용을 간추렸다.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최고경영자(CEO)의 강연 내용 등도 시리즈로 함께 출간. 각권 8000원. ●시대를 뛰어 넘은 여성과학자들(달렌 스틸 지음, 김형근 옮김, 양문 펴냄) 화석 전문가 메리 애닝,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등 특정분야에서 세상이 주목하는 최초 시도에 성공한 여성 50인의 이야기.1만 4500원.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음반리뷰(박준흠 등 지음, 선 펴냄) 한국 대중음악사에 빛나는 명반 100개에 관한 전문가들의 리뷰.31인의 전문 칼럼니스트들의 글이 묶였다.2만 3000원. ●180억 공무원(김가성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 9급 말단 공무원인 저자가 ‘전북 고창 청보리 축제’를 기획해 180억원의 수익을 올리기까지의 과정과 후일담. 복지부동 공무원 사회에 던지는 반성과 용기의 메시지.1만 2000원. ●미술관에 간 경제학자(최병서 지음, 눈과마음 펴냄) 고흐 그림이 비싸게 팔리는 까닭, 화가들이 자화상을 많이 남긴 이유 등 명화 속 자잘한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경제법칙을 통해 찾았다.1만 2000원. ●미안해(박진영 지음, 헤르메스미디어 펴냄) 미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가수 겸 작곡가 박진영이 음악열정으로 가득한 자신의 삶을 고백한 에세이.1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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