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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라 의원·전문가 세종시 난상토론

    한나라 의원·전문가 세종시 난상토론

    “국토 균형발전의 건강한 구조를 선도하는 프로젝트” vs “충청권 표를 의식한 정략적 포퓰리즘의 결과” 정국의 최대 현안인 세종시를 둘러싸고 한나라당 의원들과 전문가들이 난상토론을 벌였다. 24일 한나라당 세종시특위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마련한 전문가 좌담회에서다. 좌담회는 세종시 원안 고수, 원안 수정 등의 입장을 가진 전문가들이 각자 입장을 피력하고 의원들과 의견을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먼저 원안 고수를 주장한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가 “세종시가 자족성이 없고 비효율성이 있다는 지적은 세종시가 추구하는 목적과 내용에 비하면 매우 편향적인 생각”이라며 포문을 열었다. 조 교수는 “자족성은 세종시 30년 계획에서 대개 중·후반부에 집중하게 돼 있다.”면서 “지금으로서는 자족기능이 없는 게 당연하고 밑그림을 그린 뒤 여러 가지 절차를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3일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가 발표한 국가산업단지 등의 청사진을 두고는 “전형적으로 과거식 개발, 1960~70년대식 대량 생산시대의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세종시 수정론을 밝힌 신도철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종시는 충청지역의 표(票)를 의식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고, 한나라당도 어쩔 수 없이 합의해준 포퓰리즘의 산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대도시권과 수도권 집중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대착오적으로 분산정책을 들고 나온 것”이라면서 “국가 균형발전의 논리가 미약하다.”고 꼬집었다. 신 교수는 다만 “정부가 충청지역을 위해 뭐든지 다해 주겠다는 식의 대안을 마련하는 것 역시 또 다른 포퓰리즘”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한 참석 의원들도 저마다 열띤 주장을 펼쳤다. 친박(친박근혜)계인 안홍준 의원은 “여야 합의로 특별법까지 만들어 통과시킨 중요 정책을 뒤엎으면 한나라당은 정당으로서의 존립가치가 없어진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나머지 참석 의원들은 일제히 ‘수정론’을 들고 나왔다. 권경석 의원은 “세종시로의 이전은 또 다른 수도권의 확산일 뿐”이라면서 “오히려 타 지역과의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백성운 의원은 “국가산업단지 지정을 19세기 굴뚝산업으로 치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면서 “유수한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틀을 갖춘 첨단산업 기능을 갖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사철 의원은 “차기 대통령 선거를 생각한다면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국무총리가 세종시 문제를 꺼내지 않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과 정의화 특위 위원장은 “정부 부처 대신 사법기관을 이전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지 않으냐.”고 제안해 관심을 끌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문화마당] 매운맛의 유혹/양세욱 한양대 중문과 교수

    [문화마당] 매운맛의 유혹/양세욱 한양대 중문과 교수

    요즘 외식업의 열쇠말은 ‘가격 싸고(Go), 푸짐하고(Go), 재미 있고(Go)’를 가리키는 이른바 ‘3Go’라고 한다. 경기 침체 속에서 이 ‘3Go’ 마케팅을 적절히 활용해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업종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곳이 짬뽕 전문점들이다. 최근 2, 3개월 사이에 개업해서 빠르게 점포수를 늘려가고 있는 이 전문점들은 음식과 관련한 여러 TV프로그램과 잡지, 신문 등에서도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짬뽕의 인기야 새삼스러울 것이 없을지 모른다. 19세기 말 일본 나가사키의 어느 중국식당에서 탄생한 짬뽕은 일제 때 이미 한반도에 상륙하였고, 자장면과 함께 한국식 중화요리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은 지도 반세기를 넘겼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몇 해 전 처음 한국을 방문했던 미국 슈퍼볼 스타 하인스 워드가 가장 먹고 싶은 한국 음식으로 짬뽕을 꼽았을까. 그러나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짬뽕은 전통적인 짬뽕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특히 한층 강도가 더해진 매운 맛이 두드러진다. 각종 야채와 해산물을 볶은 뒤 돼지뼈와 닭뼈를 곤 맑은 육수를 끼얹어 끓여낸 짬뽕은 원래 매운 음식이 아니었다. 나가사키의 중국식당 시카이로(四海樓)의 원조 짬뽕이 그러하고, 한국 짬뽕도 해방 전까지는 맵지 않았다. 우동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짬뽕은 해방 전후로 고추기름을 넣은 매운 음식으로 진화하면서 비로소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청양 고추와 태국 고추를 듬뿍 넣고 메뉴 옆자리에 매운 정도에 따라 고추를 세 개까지 그려 넣은 전문점들의 짬뽕은 매운맛을 향한 또 한 차례의 변신인 셈이다. 중남미가 원산지인 고추는 유럽을 거쳐 임진왜란을 전후로 한반도에 유입되었다. 처음에 독초로 여겨져 외면 받던 고추는 18세기 이후 선조들의 식탁을 붉은 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하였다. 야채를 소금에 절였다 먹는 백김치 ‘디히’에 고추를 섞어, 비슷한 야채 저장 식품인 중국의 ‘파오차이’(泡菜)나 일본의 ‘즈게모노’(漬物)와는 전혀 다른 음식으로 발전시켰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들은 더욱 매운맛에 열광하였다. 간장에 졸인 음식이던 떡볶이가 한국전쟁 이후 고추장과 뒤범벅인 음식으로 변모한 것을 시작으로 낙지볶음, 곱창, 불고기, 닭볶음도 고추와 결합한 퓨전 음식으로 거듭났다. 라면 시장에서 부동의 1위 자리는 매운맛을 이름으로 내세운 라면의 차지다. 현재 매운맛의 선호는 전세계적이고 초문화적인 외식업의 트렌드이다. 얼마 전까지 ‘불닭’이라는 이름으로 위세를 떨치던 매운 닭볶음의 유행도 멕시코의 칠리페퍼에 새롭게 눈을 뜬 미국의 유행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정착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고추의 캡사이신 성분이 여성들의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라는 풍문도 초문화적인 매운맛 유행의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한국인만큼 매운맛을 즐기는 이들도 없다. 현재 한국인의 1인당 연간 고추 소비량은 약 4㎏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식의 세계화에 대한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인 김치, 비빔밥, 떡볶이, 불고기의 공통점은 맵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왜 이토록 매운맛에 열광하는가. 혀의 통각 세포에서 매운맛을 지각하면 이를 중화시키기 위한 반작용으로 엔돌핀을 분비한다고 한다. 엔돌핀은 스트레스와 우울한 기분을 해소시켜주는 중독성이 강한 호르몬이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 매운 음식을 찾는 것은 반복된 학습 효과인 셈이다. 불황에는 매운 음식이 잘 팔린다는 속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결국 한국인들의 매운맛에 대한 눈뜸은 근대화의 징후였고, 매운맛에 대한 열광은 ‘압축 성장’으로 상징되는 급속한 산업화의 산물일 터이다. 근래 거듭되는 불황의 스트레스를 더 자극적인 매운맛으로 해소하고 싶은 유혹에 우리는 번번이 무너지고 만다. 양세욱 한양대 중문과 교수
  • [글로벌 시대]한식 세계화 제대로 하려면 /남상욱 유엔공업개발기구 서울투자진흥사무소 대표

    [글로벌 시대]한식 세계화 제대로 하려면 /남상욱 유엔공업개발기구 서울투자진흥사무소 대표

    최근 한식의 세계화를 위한 여러 제안과 노력이 진행 중이다. 한식이 세계인의 밥상에 오르게 되면 우리나라의 브랜드가치도 올라갈 것이다. 식문화계와 더불어 정부도 한식의 세계화를 위한 홍보와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청와대와 해외공관이 솔선수범, 우수한 한식을 외빈에게 대접하여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한식의 세계화는 간단치 않다. 200개가 넘는 국가 가운데 자국음식이 세계화된 경우는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일본, 인도, 태국 음식이 뒤를 잇고 있으나 아직 보편적 세계화 음식의 반열에 들었다고 평가하기는 미진하다. 세계화에 가장 성공한 음식이라면 단연코 중국요리다. 중국요리가 다양한 식재료와 맛을 기반으로 한다 하나 세계화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중국요리의 성공비결은 현지화와 포용성에 있다. 자장면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중국요리인 것처럼 중국인은 현지인 구미에 맞는 요리를 개발해 낸다. 또한 중국인은 어느 나라의 요리라도 맛이 있거나 인기가 있다면 중국요리화한다.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중국식당에서 일본의 ‘사시미’나 한국의 LA갈비가 중국요리와 함께 나오고 있다. 한 나라의 문화와 밀접히 결부된 경우라면 프랑스 요리가 그 전형이다. 프랑스 귀족사회의 산물인 프랑스요리는 중세 이래 유럽에서 누린 프랑스의 지도적 문화위상에 힘입어 유럽사회에 널리 전파되었다. 따라서 프랑스요리는 전통 기법과 맛을 고수하며 현지화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탈리아요리는 여러 면에서 프랑스요리와 대조적이다. 이탈리아요리는 평민적 성격이 농후하다. 프랑스요리가 서구 상류사회에서 즐기는 전통 고급 요리라면 이탈리아요리는 19세기 이래 미국, 중남미 등에 이민 간 가난한 이탈리아인들에 의해 저렴한 요리로 소개되었다. 프랑스요리가 달팽이 등 특이한 재료를 사용하고 까다로운 조리법을 고집한다면 이탈리아요리는 스파게티나 피자와 같이 누구라도 만들 수 있을 만큼 평범하다. 결과적으로 현지화를 외면하고 전통에 집착하는 프랑스요리는 오늘날 점차 열기가 식는 반면 이탈리아요리는 날로 인기를 더하고 있다. 일본요리는 메이지유신 전까지만 해도 덜 발달된 일본인만의 음식에 머물렀다. 식재료도 생선과 채소 위주이고 쇠고기 등 네발동물의 육류는 기피하였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는 가운데 식문화도 부단히 개선하여 세계화된 일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일식이 국제사회에서 유행하게 된 데는 웰빙문화의 보급에도 힘입은 바 크다. 불과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 일식당의 주 고객은 해외여행을 하는 일본인들이었다. 최근 국제적으로 웰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육식보다 생선을 찾는 층이 늘면서 일식이 국제적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세계화된 음식이 우리 한식의 세계화에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식의 맛과 전통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세계인의 구미에 맞도록 현지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둘째, 만들기 쉽고 맛도 좋으면서 비싸지 않은 식단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 지나치게 조리법이 까다롭고 고급화된 음식은 세계화에 불리하다. 셋째, 한식만의 특화된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 일식이라면 사시미, 이탈리아요리라면 스파게티가 연상되듯 우리 한식도 웰빙의 비빔밥이나 채식, 맛을 자랑하는 불고기, 갈비 등을 한식의 대표주자로 키워나가야 한다. 넷째, 우리 주위에서 국제적으로 지탄을 받는 혐오음식을 줄여나가야 한다. 아무리 한식이 우수하더라도 혐오음식이 있다면 한식뿐 아니라 한국 전반에 대한 국제인식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섯째, 세계화를 위한 한식과 국내 한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국내 한식문화의 질적 향상을 바탕으로 한식의 세계화를 추진해야 한다. 남상욱 유엔공업개발기구 서울투자진흥사무소 대표
  • 다윈 ‘종의 기원’ 출간 1859년 세계문명 대혁신의 해

    인생을 회고하다 보면 사람들은 환골탈태라고 할 만한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찌 된 일인지 이전과 달리 사물의 이치가 머릿속으로 속속 들어오고, 날밤을 새며 활동해도 육체적으로 끄떡없다. 우연하게도 주변 환경도 대단히 우호적이라 의도하는 바를 다 이룰 수 있는 상황 말이다. 사람에 따라서 그 시기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 또는 직장 초년병 시절 등에도 나타날 수 있다. 그 시기를 통과한 사람들은 이전의 자신과 비교할 수가 없다. 점진적 발전이 아닌 도약과 비약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인생의 한 시점에서도 그렇듯 인류의 역사에는 환골탈태라고 부를 만한 비약적인 발전의 시점들이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의 철학과 과학의 발전과 15세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르네상스, 16세기 초 대항해의 시대, 18세기 프랑스 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 그리고 19세기 중반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출간 등을 손꼽을 수 있겠다. 이러한 발전들은 지구를 점점 공동의 가치와 방법, 개념들로 하나로 묶으면서 동떨어져 있던 세계를 점점 가깝게 하나로 묶어나갔다는 것이다. ●과학기술 발전이 서양정치·사회·경제 등에 미친 영향 ‘다윈은 세상에서 무엇을 보았을까’(피터 매시니스 지음, 석기용 옮김, 부키 펴냄)는 1859년이란 시점을 고정해놓고, 서양 과학기술의 발전 수준과 그러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정치·사회·경제·문화에 끼친 영향을 시시콜콜 다룬 책이다. 동양에서 종의 기원은 생물학적으로 인류가 진화됐다는 과학적 의미로 한정되지만, 서양에서 종의 기원은 기독교 사회의 붕괴를 가져오는 것으로 그 파장은 과학에 한정되지 않았다. 유럽에서 경제학이 급속히 확산되고 발전했던 이유로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믿음의 체계를 잃어버린 서양인들이 이를 대체할 학문과 철학, 윤리의식으로서 경제학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종의 기원이 나오기 전까지 서양에서는 인류의 역사가 6000년에 불과하다고 알고 있었다. 구약성서에 나와 있는 선지자들의 나이를 다 합쳐서 만들어낸, 비교적 과학적(?)인 가공의 역사다. 그러나 종의 기원이 나올 무렵 공룡의 뼈 등 화석을 발굴해내던 지질학자들은 지구의 역사를 46억년 전으로 끌고 올라간다. 지질학은 진화론과 맞물려 지구와 인간, 신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호주 시드니에서 활동하는 과학 저술가인 저자 피터 매시니스는 종의 기원 발간을, 자리표는 있지만 자리 배치도를 마련해 놓지 않은 엉성한 결혼피로연에서 몇몇 하객이 먼저 자리를 차지함에 따라 나머지 하객들이 쉽게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뒤에 피로연장을 찾는 하객들은 미리 자리 잡은 배우자나 동료, 친구들의 손짓을 따라가면 쉽게 자리를 찾고, 자리를 채우는 속도는 점차 빨라진다는 것이다. 즉 종의 기원의 발간은 지금까지 자리를 못 찾고 우왕좌왕하던 각종 과학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고, 통신과 교통, 무역, 지성, 언론 등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발전을 폭포처럼 연쇄적으로 이끌어낸 해라고 말한다. 물론 종의 기원이 그 일을 이끌어내기도 했지만, 그 책의 발간 역시 시대적 산물이자 변화의 증상이라는 지적을 저자는 잊지 않는다. ●교통·통신·무역·언론 등 연쇄발전 그럼 1859년에는 또는 1859년을 전후로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1859년 4월에 수에즈 운하가 착공됐고, 그 해 한해 동안 많은 전신선이 부설됐다. 속도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존 브라운이 노예제 폐지운동을 벌이며 무력행동을 하다가 교수대에서 처형을 당했다. 그해 에이브러햄 링컨은 대통령 캠페인에 들어갔고, 1861년 미국의 대통령이 된 링컨은 노예제 폐지를 두고 전쟁을 벌인다. 루이 파스퇴르는 정밀한 실험을 통해 생명체는 자연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세균설’이 등장할 무대를 만들어줬다. 1854년에는 영국 존 스노가 콜레라 창궐지역을 지도로 찍어내 ‘물속의 무언가’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전염병 확산의 명확한 패턴을 밝혀주었다. 이제 과학은 분화돼 과학자들도 전공이 아니면 모르게 됐다. 도시에는 가스등을 흔히 볼 수 있었고, 최초의 전등이 실험됐다. 미국 에드윈 드레이크는 최초의 유정을 시추하기도 했다. 이산화탄소의 증가에 따른 지구온난화를 예측한 스반테 아레니우스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그해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독일로 시집간 딸이 베를린에서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몇 분 만에 전보로 전해들었고, 1859년에 태어난 그 손자는 빌헬름 2세로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을 통치했다. 빌헬름 2세는 당대의 기술발전을 통해 가공할 만한 군비개량을 이뤄나가기도 했다. 동인도에서 구타페르카라는 고무와 비슷한 형질의 신물질이 1859년에 엄청난 주목을 받으며, 해저케이블의 피복으로, 충치치료제로, 소방호스의 피복 등으로 널리 이용됐다. 알루미늄은 당시 금보다 더 비싼 신물질이었다.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됐다. 또 노동계급들의 열악한 노동여건의 개선과 여가의 확보 등은 인쇄매체 등 읽을거리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면서 면직물 넝마가 아니라 목재 펄프로 종이를 만들기도 한다. 미국과 호주에서는 골드러시가 있고, 영국 런던에서 발행된 신문은 해저케이블 등의 발달로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서도 2주 만에 받아볼 수 있게 됐다. 세계는 좁아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 참! 1857년에서 1859년 사이에 인플루엔자가 크게 유행해 태평양 지역을 강타한 것도 잊지 말자. 1859년은 그저 150년 전의 어느 한 해가 아니었다. 그리고 1859년과 닮은꼴처럼 보이는 2009년도 그저 그렇게 평범한 한 해가 아니었다고 나중에 술회할지도 모르겠다. 1만 6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우리말 여행] 안타깝다

    안타까울 땐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다. 애가 타기도 한다. 모두 몸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안타깝다’의 ‘안’은 ‘안과 밖’의 ‘안’이다. 19세기의 ‘한중록’엔 ‘안탓갑다’가 나온다. ‘안ㅎ’과 ‘닶갑다’가 결합한 형태다. ‘닶갑다’는 ‘속이 답답하다’는 말이었다. ‘안타깝다’는 ‘안’과 ‘답답하다’는 말로 이루어진 말이다. 20세기 초 사전에는 ‘안탁갑다’ 형태가 나타난다.
  • [10일 TV 하이라이트]

    ●러브 인 아시아(KBS1 오후 7시30분) 맞선만 200번. 굿을 벌이고 살풀이를 해봐도 마흔 살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간 큰 아들. 그러던 중 아들 조금학씨 눈앞에 미녀 구세주가 나타났다. 베트남에서 행복을 가져온 며느리, 윈티홍늉. 시어머니와 며느리보다 모녀 같은 두 사람. 이들의 다정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1 대 100(KBS2 오후 8시50분) 퀴즈의 절대지존들이 모였다. 첫 번째 도전자는 프랑스 유학파로 3개 국어에 능통하고 드라마, 영화, 뮤지컬까지 섭렵한 엘리트 배우 문정희. 5000만원을 향한 그녀의 도전이 시작된다. 두 번째 도전자는 도전을 즐기는 기분 좋은 남자 치과의사 개그맨 김영삼. 안다박사 김박사의 퀴즈 정복기가 펼쳐진다. ●지붕뚫고 하이킥(MBC 오후 7시45분) 아버지의 날을 맞이한 학교 행사에 우여곡절 끝에 가게 된 순재와 줄리엔. 국경과 나이를 불문한 두 남자의 불꽃 대결이 펼쳐진다. 준혁에게 여자가 생겼다. 반갑지 않은 여자를 떨치기 위해 준혁은 정음에게 묘한 부탁을 하게 되고, 한껏 오버한 정음은 죽을 위기에 처한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25분) 만천하를 경악하게 하는 천방지축이 떴다. 나타났다 하면 산만, 떴다 하면 민폐. 망나니, 막무가내 짓을 서슴지 않는 4살 성규. 뛰고, 소리 지르고, 고삐 풀린 망아지가 따로 없다. 녀석 때문에 온 가족은 365일 비상사태. 산만한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꼭 봐야 할 ‘황금 지침서’가 밝혀진다. ●세계테마기행(EBS 오후 8시50분) 지표면 곳곳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는 신비한 나라, 아제르바이잔. 19세기에 접어들면서 그 불의 근원인 땅속 원유가 세계 최초로 발견됐고, 20세기 초에는 세계 원유생산의 절반을 차지했다. 수세기 동안 타오르는 이 불은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의 삶과 문화에 스며들어 있다. 불의 땅, 그곳으로 떠나본다. ●멜로다큐 가족(OBS 오후 11시) 온 가족이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교사생활을 하며 누구보다 안정된 생활을 하던 김길수씨. 그는 반복되는 일상에 답답함을 느껴 목수가 된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버스를 개조해 가족과 함께 전국 여행을 시작했고, 여행은 어느덧 1년이 지나고 있다.
  • [보고 듣고 즐기세요] 연극·뮤지컬

    ●피아프 16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장밋빛 인생’‘사랑의 찬가’등 주옥같은 샹송을 남긴 에디트 피아프의 삶을 뮤지컬배우 최정원이 되살려낸다. 팜 젬스 작, 심재찬 연출. 3만~5만원. 1544-1555. ●염쟁이 유씨 내년 1월31일까지 예술극장 나무와 물. 전통적인 장례의식을 연극적으로 풀어낸 1인극. 광대 유순웅이 펼치는 1인15역의 연기가 일품이다. 2006년 초연 이래 최단 기간 1000회 돌파 기록. 1만 5000~3만원. (02)3676-3676. ●살인마 잭 13일~내년 1월31일 유니버설아트센터. 19세기말 영국 런던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을 소재로 한 체코 뮤지컬. 안재욱, 신성록, 김무열 등 출연. 6만~12만원.(02)764-7858.
  • [우리말 여행] 장님

    ‘장’은 지팡이를 뜻하는 한자 ‘장(杖)’이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을 지팡이에 비유했다. 낮춤이다. 높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님’을 붙였으나 조롱이다. ‘장님’은 생길 때부터 비하적인 뜻을 지니고 있었다. 19세기 문헌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소경, 맹인 등은 그 이전부터 사용됐다. 모두 비하적 의미를 지녔다. ‘시각 장애인’이 가치중립적인 말로 쓰인다.
  • 버핏 美 철도회사 260억弗에 인수

    │워싱턴 김균미특파원│‘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3일(현지시간) 131년 역사의 미국 대형 철도회사인 벌링턴 노던 샌타페이를 인수하기로 했다.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는 벌링턴 노던 샌타페이의 지분 77.4%를 260억달러(약 30조원)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투자는 버크셔해서웨이 역사상 가장 큰 인수 건이다 버핏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19세기의 교통수단으로 여겨지는 철도회사에 대한 대규모 투자결정에 의아해하는 견해에 대해 철도야말로 21세기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이라고 주장했다. 철도는 트럭보다 훨씬 효율적이며 친환경적이라는 점에서 미래의 수송수단이라고 투자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앞서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의 미래 번영은 효율적이고 잘 관리된 철도에 달려 있다.”면서 “미국은 성장할 것이고 10년, 20년, 30년 뒤에는 더 많은 사람과 물자가 이동할 것이기 때문에 이번 투자는 기본적으로 미국에 돈을 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철도회사에 대한 투자는 버핏에게는 또 어린 시절 꿈을 이룬다는 개인적인 측면도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버핏은 기자회견에서 “어릴 때 어버지가 기차 장난감을 사 주지 않은 데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버핏이 인수한 벌링턴 노던 철도회사는 시가총액 기준으로 미국 제2의 철도회사로 미 서부에서 석탄과 목재를, 중서부에서 곡물을 주로 수송하고 있으며 멕시코와 캐나다, 캘리포니아주 항구들을 통해 수입되는 물품을 미 전역으로 수송하고 있다. 버크셔해서웨이는 이미 벌링턴 노던의 지분 22%를 갖고 있으며 이번에 주당 100달러에 나머지 77.4%의 지분을 현금과 버크셔 주식 교환 형태로 인수하기로 했다. 인수가는 벌링턴 노던 주식의 전날 종가에 31.5%의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이다. 버크셔는 또 벌링턴 노던의 부채 100억달러도 떠안기로 해 총 인수 규모는 440억달러에 이른다. kmkim@seoul.co.kr
  • 일제강점기 宮의 굴욕

    일제강점기 宮의 굴욕

    #1. 일제 강점기 일본인 거주지역이었던 남산과 그 주변에는 많은 일본계 사찰이 모여 있었다. 이중 박문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찰로 일본인 및 친일파 위령제, 태평양전쟁 필승대회 등이 행해진 곳이다. 1932년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이 이곳으로 옮겨져 정문으로 사용됐다. 박문사는 경복궁의 선원전과 그 부속건물까지 옮겨와 사찰 건물로 삼았고, 원구단 자리에 있던 석고전까지 해체해 종각으로 사용했다. 흥화문은 1973년 신라호텔에 인수돼 정문으로 활용되다 1988년 경희궁 복원 계획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2. 풍경궁은 1902년 고종이 평양에 건설한 대한제국의 이궁(離宮)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식민 의료기관인 자혜의원으로 변모하면서 훼손되거나 철거됐다. 풍경궁의 정문인 황건문은 건축적 아름다움과 우수성으로 이름 높았는데 1925년 경성 조계사의 요청으로 수레 열한 대에 실려 230㎞를 이동해 산문으로 사용됐다. 황건문은 이후 동국대 정문으로 쓰이다 1971년 철거됐다. 남한에 남아 있던 평양 풍경궁의 유일한 건축 유산이 속절없이 사라진 것이다. #3. 경복궁의 도면인 ‘북궐도형’(1907년 제작 추정)에 나타난 경복궁 내 건물 수는 509동이다. 하지만 광복 후 남은 건물 수는 40동에 불과했다. 일제는 조선물산공진회를 준비하던 1914년 근정전 전면에 있는 흥례문과 회랑 등을 제거했다. 이때 방매된 궁궐 전각 중 상다수가 남산동, 필동, 용산에 있는 일본계 사찰과 요정, 일본인 부호의 저택으로 팔려 나갔다. 경성부 서사헌정의 남산장은 건춘문 내의 비현각을, 남산정 화월별장은 수정전 남쪽의 한 전각을 이건한 것이었다. 조선 왕조와 대한 제국기의 주요 궁궐은 지난 100년간 역사의 격랑 속에서 처참히 붕괴되거나 훼손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다.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효형출판)은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등 서울의 주요 궁궐과 평양 풍경궁이 일제 강점기에 어떻게 훼철(毁撤)되었는지를 실증적으로 연구·분석한 결과물이다. 우동선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등 8명의 전문가가 공동 집필했다. 1부 ‘황권 강화를 위한 근대 조선(대한제국)의 움직임’에선 대한제국과 고종황제가 추진한 조선 변혁의 움직임을 궁궐 건축의 변화상을 중심으로 펼쳐 보인다. 일본, 러시아 등 외세의 영향력 속에서 고종황제는 중국에 대한 사대의 예를 폐기하고, 근대국가로의 진입을 꾀했는데 이러한 시대적 움직임은 경복궁 중건 및 경운궁(덕수궁), 원구단 건설, 궁궐 의례의 변화로 이어졌다. 2부 ‘일제에 의한 조선 궁궐 수난사’에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조선의 궁궐이 어떻게 훼손되어갔는지를 본격적으로 살핀다. 경복궁, 경희궁, 풍경궁의 굴욕과 더불어 창경궁이 벚나무가 심어진 종합 위락시설 ‘창경원’으로 전락한 과정을 추적한다. 3부 ‘조선의 궁에 들어선 근대건축물’은 경운궁, 창경궁, 경복궁 등지에 지어진 근대건축물의 건설 배경과 건축양식, 쓰임에 대해 파악한다. 특히 경복궁이 일제 식민지 경영의 선전장인 박람회장으로 쓰이면서 맞이한 변화상을 건축양식 측면에서 분석하면서 일제의 국력 과시 욕망과 조선인에 대한 상징 조작 행태를 들여다본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씨줄날줄] 이단과 사이비/김성호 논설위원

    정통적인 신조와 대비되는 이설(異說), 유파를 말하는 이단. 나와 차별되는 ‘다름’을 통칭하는 덤덤한 뉘앙스와는 달리 종교에서의 이단은 무서운 적대의 개념이다. 교리를 생명처럼 여기고 숭앙하는 종교 특성상, 정통에서 비켜난 주장·파당은 척결 대상으로 찍혀왔다. 원시의 제정일치 사회에서 독자 영역으로 분리된 종교 흐름을 볼 때도 정통·이단 투쟁은 부인할 수 없는 거대한 축으로 통한다. 이단이 교리의 다름에서 비롯된 상대적 개념이라면 사이비는 탈선·일탈의 파벌이다. 종교의 허울을 빌린 이단. 이 이단과 사이비는 종교가 시작된 이후 끊임없이 맞물려 이어져온 역사를 갖는다. 기독교의 이단·사이비는 그중에서도 유난히 험한 갈등의 점철이다. ‘예수 승천’ 이후 시작된 이단·사이비는 초대교회부터 파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예수를 따르던 초대교회 제자들은 이단·사이비로 골치를 앓았으며 사도 바울의 신약성경이나 사도 요한의 요한복음도 이단의 경계에 초점을 맞췄단다. 그런데 따져보면 이단·사이비 갈등은 헤게모니 싸움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단의 원조라는 영지주의만 해도 314년 니케아공회 때 이단 판정을 받아 쇠퇴하지 않았다면 지금 기독교의 양상은 딴판일 것이다. 19세기 신학논쟁과 교회분열 와중에 생겨난 수많은 종파도 우열 다툼 속에 흥망성쇠를 반복해 왔다. 불교도 소승·대승의 갈등이 적지 않았고, 이슬람교 의 험악한 수니·시아파 파열도 칼리프(후계자) 자리를 둘러싼 싸움의 결과다. 세계최대의 단일교회로 평가받는 국내 모 교회만 하더라도 십수년 전엔 이단 사이비 취급을 받지 않았던가. ‘인류가 가진 최상의 도덕률’로 통하는 종교. 많은 나라들이 이 종교의 자유를 천부의 권리로 인정하지만 이단·사이비 논쟁은 여전해 보인다. 프랑스 법정이 톰 크루즈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신봉한다는 신흥종교 사이언톨로지교에 유죄판결을 내렸다. 신도들에게 의약품이며 전기테스트를 강요한 사기혐의란다. 50만명의 신자를 거느린 이 신흥종교의 단죄 명목은 ‘종교의 허울을 빌린 사이비’쯤으로 보인다. 인류가 지속하는 한 이단·사이비 논쟁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보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고종때 영의정 이유원이 淸 실권자 리훙장에 보낸 편지 9통 발견

    고종때 영의정 이유원이 淸 실권자 리훙장에 보낸 편지 9통 발견

    국가의 명운은 들판에 놓인 촛불 신세였다. 1875년 고종은 영의정 이유원(1814~1888년)을 사신으로 청나라에 보낸다. 공식 방문 목적은 명성왕후가 낳은 원자(이후 순종)를 세자로 책봉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하지만 더욱 중요한 목적은 당시 청의 실권자인 직예총독(直隸總督) 리훙장(李鴻章·1823~1901년)을 통해 신식군대 양성, 신무기 도입 등 실질적 도움을 받고자 했던 것. 그 이후 1880년까지 61세의 노()대신은 무려 67매 분량으로 9통의 편지를 보내고, 환심을 사기 위한 선물 공세를 퍼붓는다. 리훙장 역시 8통의 편지로 꼬박꼬박 정성껏 답하지만 조선의 정치 현실에 구체적으로 개입하는 것만큼은 꺼려했다. 리훙장은 1882년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도 이유원에게 “서양 열강과 외교 관계를 맺어서 힘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권유할 뿐, 실질적 도움은 외면했다. 고종이 지푸라기를 잡듯 의지했던 조-청의 비밀외교채널은 사실상 무위에 그치고 만 셈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8일 “이유원의 친필 편지 모음이 최근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국립동양예술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는 국립전주박물관 이재정 학예연구관이 지난달 20일부터 열흘 동안 국립동양예술박물관의 한국실 전시 자문 업무를 수행하던 중 우연히 발견했다. 그동안 중국 유물로 분류돼 왔는데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해외박물관 한국 전시실 지원사업을 진행하며 그 실체가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들 편지는 1통을 제외하고는 이유원의 문집과 리훙장의 문집 등에 수록됐지만, 그 실물이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1875년 12월13일 보낸 두 쪽 짜리의 첫 번째 편지는 ‘조선의 처지에 관심을 보내달라.’는 의례적 인사와 함께 ‘백삼 1근, 청심원 20환, 소합원 100환’ 등 ‘3종 미물’을 보냈음을 확인시켜준다. 1880년 11월11일 보낸 마지막 편지 역시 6장 본문 내용을 통해 조선의 병기 제조와 군사 훈련 등 무비자강(武備自强)을 도와달라는 간절한 뜻을 담고, 함께 보내는 선물 목록을 적었다. 이재정 학예연구관은 “9통의 편지에 고종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조선왕조실록에도 고종이 리훙장의 답장을 확인했다는 기록이 나와 있듯이 형식은 이유원의 사적 편지 형식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고종의 뜻이 담긴 것”이라면서 “19세기말 한중관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편지를 소장한 국립동양예술박물관은 1918년 10월 개관한 구소련 내 유일한 동양미술품 전문 박물관으로 500여 점에 이르는 한국 관련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한국실은 1990년 개설됐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내 책을 말한다] 근대 英사회상으로 24일의 한국 조명

    ‘영국, 제국의 초상’(푸른역사 펴냄)은 빅토리아시대 후기 영국 사회의 다양한 내면 풍경을 그림처럼 섬세하게 되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사회구조나 계급관계 같은 거시적 측면보다는 민주주의, 경제 불황, 빈곤, 인종, 여성 문제, 교육, 신앙, 과학 지식 등 미시적인 주제들을 당대 문필가들의 논설을 중심으로 탐색한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세계를 내 나름의 시각으로 재현해 독자 앞에 펼치고 싶었던 것이다. 19세기 말 영국 사회의 풍경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민주주의가 왜 필요한지 되묻는 사람들, 대불황의 원인을 찾는 문필가와 이스트 엔드 빈민가에서 그 시대의 불행을 고민하는 박애주의자며 유대인 이민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이밖에도 집안의 천사 역할을 과감히 벗어던진 신여성과 당대 교육현실에 실망하고 불평하는 지식인들도 등장한다. 영국의 근대화는 전례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의 조건이 충분히 성숙한 가운데서 전개되지 않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전통의 지배가 여전히 강력한 사회에서 자본주의 및 그와 관련된 여러 경제적 변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비유하면 영국의 근대는 조산에 따른 미숙아의 이미지와 같다. 이 경우 전통은 오히려 근대화의 토양이 되었으며 적대적 관계가 아닌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변모했다. 전통과 혁신, 지속과 변화의 야릇한 공존은 영국 근대사의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빅토리아 시대 후기는 매우 중요하다. 이 시기에 영국 근대사의 이러한 특징이 커다란 파열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농업 불황기 전통적 지배세력의 급속한 몰락은 그 붕괴 과정의 물살 표면에 떠오른 포말이었다. 전통의 급속한 변화 또는 조락은 19세기 말 영국 사회의 두드러진 현상이었고, 궁극적으로 전통에 기반을 두고 발전해온 영국 제국에 동요를 가져왔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나는 19세기 말 영국 사회의 내면풍경에 직접 다가서기보다는 당대의 대표적인 평론지 논설에서 논란이 된 주제들을 통해 그 풍경을 탐색하는, 다소 우회적인 방법을 택했다. 이 책에서 재현한 사회적 풍경들을 감상하다보면, 독자들은 어느덧 그 풍경이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정치적 논란과 불황, 빈곤과 이민자들, 여성 문제에서 시험에 관한 논쟁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도 매우 낯익은 풍경으로 다가온다. 집필과정에서 오늘의 시각을 의도적으로 투영하지는 않았는데도 이 같은 인상을 주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는 아마도 다른 사람의 삶의 세계에서 공감 영역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의 경험을 더 넓혀가고자 하는 인문학 특유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영석 광주대 교수
  • [씨줄날줄] 유물 전쟁/함혜리 논설위원

    고대 이집트의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을 둘러싼 독일과 이집트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네페르티티 흉상은 1920년대 독일 고고학자 루트비히 보르하르트가 발굴한 유물들을 분할소유하면서 독일이 가져간 것으로, 최근 재개관한 베를린 노이에스 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이다. 이집트의 대표적 고고학자인 자히 하와스 이집트 고유물 최고위원회 위원장은 “네페르티티 흉상이 불법적으로 독일에 넘어갔다.”며 이 흉상을 이집트에 당장 돌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와스 위원장은 네페르티티 흉상 외에도 대영박물관에 있는 로제타석,루브르박물관의 덴데라 12궁도 천장, 독일 힐데스하임 미술관에 있는 피라미드 건축가 헤미운누의 흉상, 미국 보스턴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기자의 피라미드 건축가 안카프의 흉상을 반환할 것을 요구해 왔다. 각기 다른 시대와 환경 속에서 해외에 반출된 이들 유물은 이집트 문화유산의 본질적인 부분이며 따라서 이집트 국내에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유럽 국가들은 18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고대문명 발상지의 유물들을 경쟁적으로 탈취하는 것으로 패권을 다투고 제국의 위력을 과시했다. 전리품들을 본국으로 가져가 박물관을 채우고는 고대의 유물들을 파괴하지 않고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과거를 박탈 당했던 국가들이 주권을 회복하고 독자적인 정체성을 모색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200년째 지속되고 있는 그리스 정부의 ‘엘긴 마블’ 반환운동에서 힘을 얻은 약탈문화재 환수운동은 세계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엘긴 마블은 파르테논 신전을 장식했던 대리석 조각상들로 19세기 터키 주재 외교관이던 엘긴 경이 영국으로 반출해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집트에 이어 중국도 빼앗긴 유물 환수전쟁에 합류했다. 중국 정부는 과거 제국주의 시절 약탈된 문화재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팀을 파견할 예정이라고 한다. 인류의 유산을 상징하는 고대유물들의 소유권을 둘러싼 줄다리기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외규장각 도서 등 7만 6000여점의 해외유출 문화재를 가진 우리나라도 좀더 적극적으로 환수운동을 벌여야 하지 않을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전쟁에 관한 불멸의 고전 첫 완역판

    19세기의 유명한 군사사상가였던 골츠는 전쟁론을 남긴 클라우제비츠의 업적을 이렇게 기렸다. “클라우제비츠 이후에 전쟁을 논하려는 군사이론가는 마치 괴테 이후에 파우스트를 쓰거나 셰익스피어 이후에 햄릿을 쓰려는 작가처럼 모험을 무릅써야 한다.” 이렇듯 전쟁에 관한 불멸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Vom Kriege)’(김만수 옮김, 갈무리 펴냄) 3권이 4년여 만에 완역, 출간됐다. 미국의 군사전략가인 브로디가 “단지 가장 위대한 책이 아니라 전쟁에 관한 한 진정으로 위대한 유일한 책”이라고 했던 바로 그 책이다. 갓 12살에 입대해 13살에 첫 전투를 겪었으며, 15세에 소위로 임관해 참모장과 군사학교장을 역임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동양의 손자병법과 쌍벽을 이룬다. 이 저술에 대한 클라우제비츠의 자부심은 대단해 “나는 자명하고, 몇 백번이나 언급되어 일반적이라고 생각되는 평범한 것은 모두 피하려고 했다. 2∼3년 후에 잊혀질 책을 쓰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책은 ▲전쟁의 본질 ▲전쟁이론 ▲전략 일반 ▲전투(1권) ▲전투력 ▲방어(2권) ▲공격 ▲전쟁계획(3권) 등을 담고 있다.1∼3권 각 2만원·2만 5000원·1만 5000원.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전쟁 왜 시작했나” 추가파병 딜레마

    “전쟁 왜 시작했나” 추가파병 딜레마

    ‘추가 파병이냐 현상 유지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프가니스탄 추가 파병 결정이 임박하면서 그가 어떤 카드를 뽑을지 초미의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8년전인 2001년 10월7일 시작된 아프간전은 또 한번의 전환점을 맞는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 의회 지도부 30명과 만나 아프간전의 방향을 논의했다. 이어 또 7일과 9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백악관 안보팀과 회동할 계획이다. 이어 한차례 더 회동을 갖고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미군사령관의 4만명 증파 요청에 대한 입장을 밝힐 전망이다. ●아프간전의 목적은? 6일 회동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간 병력의 감축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미 언론들이 보도했다. 따라서 오바마의 선택은 병력을 늘리거나, 현재 상태로 유지하면서 탈레반과 알 카에다 지도층을 목표로 하는 정밀 타격에 비중을 두는 방안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프간 내 미군 병력은 지난 3월 2만 1000명이 증파돼 총 6만 8000명이다. 미군을 포함, 아프간 주둔 외국군은 10만명이다. 지금까지 외국군 사망자는 1400명 수준이다.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오바마의 결정을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증파 필요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케리(민주당) 위원장은 “아프간에서 무엇이 더 가능한지 확실해지기 전에 군대를 더 보내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선 경쟁자이기도 했던 매케인(공화당) 의원은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며 증파를 강력 요청하고 있다. 오바마는 결정에 앞서 아프간전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할 난관에 봉착해 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인터넷판 기사에서 전쟁의 목표가 알 카에다를 제압하는 것인지, 아프간에 안정과 민주주의를 심는 것인지, 두 가지 모두를 원하는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목적이 정해지면 어떤 전략에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를 쏟아부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부차적일 수 있다. ●베트남전 악몽 재연 우려 미국 내 아프간전에 대한 지지도는 계속 하락, 지난 1일 CNN 조사에서 반대하는 응답자가 57%로 나타났다. 지난 4월 조사보다 11%포인트나 늘어났다. 늘어나는 전사자, 지루한 장기전 등으로 베트남전이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베트남전을 치른 기간은 8년 반, 아프간전이 미국이 치른 역대 최장의 전쟁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됐다. 전쟁 양상도 베트남전을 닮아가고 있다. 지난 3일 미군은 동부 산악지대 누리스탄에서 탈레반과 12시간에 걸친 교전을 치렀다. 탈레반 측 전사자가 100여명에 이를 정도의 대대적인 공격은 베트남전 말기 베트콩에 공격당하는 미군 기지를 연상케 했다. 그날 미군 사망자 8명은 지난 2008년 7월 9명의 사망자 이후 일간 최다 사망자다. 개전 당시 목표였던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은 아직도 건재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개전 두달 뒤인 2001년 12월 미군은 빈 라덴이 동부 산악지대 토라 보라에 은신해 있다는 사실을 포착, 60명으로 특수작전을 펼쳤으나 부상을 입히는 데 그쳤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민은 ‘침략자의 무덤’으로 알려진 아프간에서 미군이 패배한 침략자로 이름을 올릴까 두려워하고 있다. 아프간은 19세기 말 대영제국, 20세기 후반 구 소련의 침공을 물리친 바 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발언대] 집배원 새이름으로 자긍심 높이길/김준성 직업평론가·연세대 교직원

    [발언대] 집배원 새이름으로 자긍심 높이길/김준성 직업평론가·연세대 교직원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이미지로 투영되는 브랜드를 입고 싶은 존재가 인간인지도 모른다. 명분을 중요시하는 한국민족에게는 더욱 브랜드명이 지닌 의미가 크게 다가오기도 하는 모양이다. 브랜드는 이름으로부터 온다. 상품명이든 회사명이든, 자기 직업 이름이든 말이다. 시장에서 브랜드 이름은 위력이 대단하다. 손가방에서는 루이뷔통 브랜드, 자동차에서는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 신약에서는 화이자 회사의 브랜드를 갖고 싶어한다. 어느 해인가. 병원에서 일하던 간호사들은 적극적으로 나선다. 자기 직업의 자긍심과 소명감을 담으면서도 의사라는 전문직명에 못지않은 이미지로 투영되기를 원해 간호원이라는 이름을 간호사로 바꿔 부르게 하기 위해서 맹렬히 노력한다. 마침내 간호원이라는 직업명은 간호사로 변한다. 우리나라에서 근대 우편제도는 조선 말기이던 1884년에 처음 도입된다. 화가 장승업이 화사라는 직업명으로 불리면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직업의 종류가 많지 않던 19세기 말의 조선에서는 젊은이들이 내심 갖고 싶어하던 직업으로 출발한다. 이 직업인이 집배원이라는 공식 직업 명칭을 갖게 된 것은 바로 1905년 일본 세력이 대한제국 조정을 상당히 장악한 이후의 일이다. 그로부터 100년 넘게 이 직업 명칭은 사용된다. 소포, 짐, 소식, 편지들을 담고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이들 집배원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직업이 되었다. 지난달 21일부터 오는 20일까지 공모를 거쳐서 다수의 집배원이 동의하는 새 직업명칭을 갖게 될 모양이다. 잘만 하면 자기 직업에서의 자긍심을 갖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배원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길과 바닷가길을 누비며 오직 땀과 이타(利他)정신으로 일하는 직업이다. 새 이름 공모가 좋은 열매로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새 브랜드명이 집배원들의 소명의식을 더욱 높이는 데 기여한다면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이 아니겠는가. 김준성 직업평론가·연세대 교직원
  • 일제의 민족종교 말살정책 집중조명

    동학-천도교, 원불교, 증산도, 대종교 등 19세기 후반 흥성했던 민족 종교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급격히 세력이 감소했다. 일제의 민족정신 말살정책에 따른 왜곡과 탄압의 결과였다. 그 여파가 남아 일부 민족종교들은 아직 ‘사이비’라는 오해를 받고 있다. 당시 조선총독부에 의해 행해졌던 한국 민족종교 탄압책을 집중 조명한 다큐멘터리가 제작됐다. 증산도 계열의 민족문화채널 STB상생방송이 한국전파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조선총독부특명-조선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라’(연출 이재문)는 6개월 동안 국내와 미국·일본 등을 오가며 일제의 민족정신 말살정책의 실상을 파헤쳤다. 3일 오후 10시 방송. 특히 방송은 일본인 인류학자 무라야마 지준과 그가 작성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일제의 정신문화 식민지화 과정을 추적한다. 총독부의 촉탁 학자인 무라야마 지준은 1920년대 조선 곳곳을 돌며 민간신앙과 종교·풍속 등을 연구했다. 이 연구자료를 활용해 총독부는 일본 신도교를 민간에 침투시키고, 한국신화를 왜곡하는 등 정신문화 탄압을 자행했다. 제작진은 이와 함께 당시 민족종교들이 펼친 독립운동 활약상이 기록된 ‘밀러 보고서’도 공개한다. 또 물산장려운동 등 민족종교의 경제 운동도 소개하고, 신도·불교·기독교 외 종교를 ‘유사종교’로 분류했던 일제의 종교 통제책 및 왜곡된 종교교육도 고발한다. 방송에는 세계적인 종교학자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를 비롯, 윤이흠 서울대 교수 등 종교학 분야 석학이 대거 참여했다. 제작진은 “일제 식민통치가 만들어 민족종교에 씌운 ‘유사종교’라는 틀은 광복 64주년이 된 오늘에도 사라지지 않았다.”면서 “일제시대 민족혼을 지키며 독립운동에 지대한 역할을 했던 민족종교의 본모습을 널리 알려야 할 때”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공주형 미술세계]어제의 응달진 역사 미래의 예술로 포용

    [공주형 미술세계]어제의 응달진 역사 미래의 예술로 포용

    서울에서 인천으로 글쓰기 공간을 옮겼습니다. 새 주소지는 인천시 중구 해안동1가 10의1입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낯설지만 우리나라 최초로 자장면을 만들었다는 공화춘을 비롯한 중국집이 즐비한 차이나타운 바로 옆입니다. 저 역시 자장면을 먹으러 몇 차례 방문했던 곳입니다. 원조 자장면 맛을 보는 데 온통 신경을 빼앗겼던 탓일까요. 여기저기 펄럭이는 차이나타운의 붉은 휘장에 이목을 빼앗겼기 때문일까요. ‘창고 지대’라고 불려서 정말 그런 줄만 알았기 때문일까요. 가슴 아픈 우리 근대의 역사를 간직한 구도심에 관심을 두지 않은 변명 치고는 옹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지난 25일 인천아트플랫폼(관장 최승훈, www.inartplatform.kr)이 개관했습니다. 제가 무심코 지나쳤던 바로 그 주변을 인천시가 매입하고 구조 변경을 해 조성한 복합 문화 예술 매개 공간입니다. 1886년 세워져 인천시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일본우선주식회사’를 비롯해 ‘삼우인쇄소’(1902), ‘해안동 창고’(1933), ‘금마차 다방’(1943), ‘대한통운창고’(1948) 등 우리 근대를 목격한 건물들이 작가 작업실, 공방, 자료실, 게스트 하우스, 공연장 등으로 용도를 변경했습니다. 리모델링에 2년 8개월이 걸렸습니다. 낡았다고 다 허물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프다고 다 잊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1939년 궁궐이었다가 파리 코뮌 때 불탔고 파리 국제 박람회 때 기차역으로 탈바꿈했지만 이제 더 이상 기차가 오가지 않는 철도역사의 용도를 둘러싸고 격렬하게 논의했습니다. 철거를 주장하는 이들과 반대하는 이들 사이의 갑론을박 끝에 프랑스 정부는 이곳을 미술관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합니다. 불운의 천재 화가 반 고흐를 비롯한 19세기 프랑스 미술의 보고 ‘오르세 미술관’의 탄생 배경입니다. 1990년 2월 옛 동베를린 지역의 흉물스러운 건물에 대한 예술가들의 불법 점거가 시작됩니다. 유대인 주거 지역 전체에 대한 독일 정부의 재개발 계획 실행을 두 달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1907년 백화점으로 시작해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프랑스 전쟁 포로 감금 장소로 나치가 사용했다가 연합군의 폭탄 세례로 엉망이 된 채 방치된 곳이었습니다. 불편한 독일의 역사가 머물렀던 공간을 예술가 집단의 창작촌으로 만든 ‘타클레스’의 시작입니다. 오래된 건물, 아픈 기억을 거름 삼아 미래 세대를 위한 문화의 산실과 요람이 탄생한 셈입니다. 1933년 지어진 건물에서 인생의 시즌2를 시작한 제 마음을 앗아간 것은 ‘오래된 새로움’입니다. 그 어떤 새로움보다 강력한 새로움에 이끌려 바쁜 일을 제쳐 두고 일 없이 신여성이라도 된 듯 구도심의 한적한 골목골목을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어제의 기억이 발끝으로 전해집니다. 손끝에 잡힐 듯 생생한 어제가 오늘의 에너지가 됩니다. 내일 할 일을 천천히, 오래 고민해도 차고 넘칠 만큼 충분한 양입니다. 29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옛?국군기무사령부 본관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활용에 대한 타당성 및 방향성 심포지엄’이 열립니다. 모두 헐리고 번듯한 새 건물이 들어서면 미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져서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못난 과거의 상징물을 현대미술의 메카로 재활용하는 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탄약을 만들었던 공장을 미디어아트센터로 전환한 독일의 ZKM처럼 의미있어 더 좋을 것입니다. <미술평론가>
  • [건국 60돌 中國이 다시 뛴다] ① 세계를 놀라게 한 부활

    [건국 60돌 中國이 다시 뛴다] ① 세계를 놀라게 한 부활

    │베이징·사오산(후난성)·선전(광둥성) 박홍환특파원│‘동주공제(同舟共濟·어려움 속에서 일심협력하다)’. 올 들어 중국에 대한 미국의 구애가 다분히 노골적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중국 고사와 격언을 직접 인용하며 중국과의 ‘글로벌 경영’을 다짐하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로 미국의 위상이 급격히 하락한 탓이 크다. 상대적으로 중국의 힘은 부쩍 커졌다. 쑨저(孫哲) 칭화대 중·미관계연구소장은 “미국과 중국이 만들어나가는 외교관계가 지구촌의 21세기를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경이야 어떻든 60년 만에 중국이 미국과 함께 지구촌을 경영하는 G2로 우뚝 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과의 경제적 공생 관계를 설명하는 ‘차이메리카(차이나+아메리카)’라는 신조어는 이미 몇 해 전 등장했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지난 23일 중국 국가주석으로는 처음으로 행한 유엔총회 연설에서 세계 140여개국 지도자들을 상대로 중국 건국 60년의 발전 과정과 성과를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세계가 중국의 저력을 절감한 것은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때였다. 2006년 1월 상하이를 방문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푸둥(浦東)지역을 둘러본 뒤 “천지가 개벽됐다.”고 놀란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인들은 TV로 생중계되는 베이징올림픽의 화려한 개막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편에 찌들어 무기력한 중국인과 ‘죽의 장막’에 가리워진 폐쇄사회를 기억하고 있던 세계인들은 중국이 보여준 문화적 전통과 선진 기술, 베이징의 놀라운 야경에 경악했다. 중국은 ‘100년의 꿈’인 베이징올림픽을 굴기(우뚝 섬)와 부흥의 계기로 삼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모두 쏟아부었다. 세계 금융위기도 중국이 세계를 놀라게 한 계기가 됐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세계 각국이 비틀거리고 있는 사이 중국은 4조위안(약 700조원)의 경기부양책을 발표, 세계 경제의 회복을 이끌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가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지만 중국은 8% 성장을 호언장담한다. 30여년 전 중국에서 첫번째로 개방된 광둥(廣東)성 선전은 지금 세계 명품 기업들의 최대 시장으로 부상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규모인 구치의 선전 뤄후(羅湖) 매장은 지난 23일에도 여전히 발디딜틈 없이 고객들로 붐볐다. 금융위기가 오히려 중국에는 기회로 다가온 셈이다. 실제 중국은 개혁·개방 30년 동안 축적한 막대한 외환을 기반으로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전환할 태세이다. 위안화의 기축통화 추진은 달라진 경제적 위상을 실감케 한다.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인민은행장은 공개적으로 위안화 국제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등 주변국을 시작으로 위안화 무역결제를 추진 중이다. 취훙빈(屈宏斌) 홍콩상하이은행(HSBC) 글로벌수석연구원은 “19세기 대영제국의 발전과 함께 파운드화가 기축통화로 떠올랐고, 2차대전 후 달러화가 기축통화로 발전한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이 이르면 내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면서 위안화도 국제적 통화의 대열에 합류할 여지가 크다.”고 분석했다. 지난 6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2조 1316억달러(약 2520조원). 세계에서 가장 많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 중국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세계시장에 나온 자원과 기업을 싹쓸이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해외 에너지 자원 확보에 609억달러를 쏟아부었다. 정부는 기업들의 ‘저우추취(走出去·해외진출)’를 적극 독려하고 있다. 미국 국채도 8000억달러 이상 사들였다. 정치·경제적으로 G2의 반열에 오른 중국은 요즘 ‘소프트파워(연성 권력)’ 확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소프트파워가 뒷받침돼야 명실상부한 ‘대국굴기’ 및 ‘부흥’의 최종적인 목표가 달성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공자학원은 소프트파워 확충을 노리는 대표적인 전진기지이다. 2010년까지 세계에 500여개의 공자학원을 세운다는 목표로 시작됐다. 이미 324개가 설립돼 세계인들이 중국 문화를 배우고 있다. 후난(湖南)성 사오산(韶山)은 지금 마오의 꿈과 건국 60년의 성과를 되새기려는 중국인들과 중국의 저력을 배우려는 세계인들로 북적대고 있다.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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