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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은 어리석다’ 두 오페라의 공언

    ‘인간은 어리석다’ 두 오페라의 공언

    격동의 18~19세기 유럽. 일상의 무게 중심이 신(神)에서 인간으로 내려오면서 사람들은 종교를 부정하고 혁명을 희구했다.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근대’라고 불렀다. 예술도 변화를 겪었다.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성스러운 도구였던 ‘음악’은 인간의 통속적인 로맨스까지 소재로 삼기 시작했다. 베르디나 푸치니의 오페라도 이런 흐름의 부산물이었다. 하지만 어떤 오페라는 신을 추억하고 혁명을 반박했다. 신이 아닌 인간이 만드는 세계가 절대 진리가 될 수 없다는, 일종의 반성 의미였다. 근대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판했던 두 편의 오페라를 소개한다. ●메피스토펠레 - 어리석은 개인 악마 메피스토펠레. 그는 신에게 인간을 유혹해 보겠다고 내기를 제안한다. 때마침 지식의 무력함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 파우스트에게 접근하는 메피스토펠레. 그는 파우스트에게 젊음을 되돌려주며 쾌락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쾌락이 근본적인 갈증을 해결할 수 없다고 깨닫는다. 그는 신의 세계 속에서 행복의 참의미를 깨닫고 천사와 함께 천국으로 떠난다…. 무신론(無神論)까지 대두됐던 유럽의 근대. 하지만 괴테의 ‘파우스트’를 원작으로 했던 이 오페라는 이런 식의 근대성을 부인한다.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행복은 무의미하며 진정한 행복은 보다 형이상학적인, 종교적 깨달음에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작곡가 아리고 보이토(1842~1918)의 작품인 ‘메피스토펠레’의 메시지다. 국립오페라단이 이 오페라를 오는 20일과 22~2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인다. 100여명의 합창단이 등장하는 등 웅장한 규모 때문에 한국에선 빛을 보지 못하다 이번에 한국 초연이 성사됐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행복이 진정한 것인지,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현대인에게 금욕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연출은 다비데 리베르모레, 지휘는 오타비오 마리노, 연주는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합창은 나라 오페라 합창단과 의정부 시립합창단이 각각 맡았다. 1만~15만원. (02)586-5282. ●안드레아 셰니에 - 어리석은 군중 프랑스 시인 안드레아 셰니에. 그는 혁명을 꿈꿨지만 프랑스 혁명의 과격성을 비판했다. 백작가(家) 하인 출신이었지만 혁명 뒤 실권을 잡은 제라르와 삼각관계까지 얽혀버린다. 결국 그는 반혁명죄로 고발되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이탈리아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1867~1948)는 실존 인물이었던 셰니에의 삶에 영감을 얻고 ‘안드레아 셰니에’를 만들었다. 오페라는 혁명이라는 대의 명분 아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당시 군중의 폭력성을 지적한다. 혁명은 결국 나폴레옹의 독재로 귀결되고 만다. 말 그대로 미완의 혁명인 셈이다. 군중의 어리석음에 대한 회의다. 이런 면에서 안드레아 셰니에는 보수주의의 선구자로 꼽히는 영국의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의 사상과 닮아 있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의 당위를 인정하면서도, 폭력적으로 변질되는 혁명에 회의했다. 서울시오페라단이 오는 14일부터 나흘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이 오페라를 올린다. 예술총감독은 박세원 서울시오페라단장이 맡았다. 지휘는 로렌초 프라티니, 연출은 정갑균이다. 2만~12만원. (02)399-1783∼6.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뉴 시티노믹스 시대-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① 미래를 만드는 도시계획

    [뉴 시티노믹스 시대-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① 미래를 만드는 도시계획

    ‘도시’의 시대다. 인류 문명의 발달사는 곧 도시 진화의 역사다. 오늘날 지구 인류의 절반이 도시에 산다. 우리나라만 해도 10명 중 8명이 도시에 살고 있다. 지난 9월 아시아개발은행(ADB)이 발표한 아시아 인구 현황에 따르면 한국의 도시화 비율은 81.5%로, 48개 아시아·태평양 국가 가운데 6위를 차지했다. 사회학자들은 2030년이 되면 도시인이 50억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3분의2가 도시에 살게 되는 것이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도시에 사는 사람의 비중은 전 인류의 10%에 불과했다. 200년 남짓한 사이에 인류의 고향이 대자연에서 도시로 옮겨진 셈이다. 도시의 발전이 곧 인류의 발전인 지금 도시는 과연 어떤 방향으로, 어떤 방식으로 미래를 개척해야 할 것인가. 서울신문은 12회에 걸쳐 특별기획 ‘뉴시티노믹스의 시대-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연재한다. ‘시티노믹스’는 도시(city)와 경제(economics)의 합성어로, 인류 발전의 토대가 되는 도시의 경쟁력을 확충할 다각도의 방안을 모색하는 도시경제학을 말한다. 특별기획을 통해 도시계획, 재개발, 문화, 기업 등 분야별로 특화된 유럽의 도시들을 해부하고, 서울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주요 도시들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지 모색하고자 한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더 멀리, 더 깊게 봐야 합니다. 우리의 도시가 좀 더 살기 좋고, 좀 더 흥미진진하며, 좀 더 지속될 수 있고, 좀 더 인간적이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2040년의 파리. 그것이 여기에 10개의 세계 최고의 건축집단이 모인 이유입니다.” 지난해 4월3일. 파리 트로카데로에 있는 샤이오궁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연설이 울려퍼졌다. 사르코지의 대통령 선거 공약이었던 파리 대개혁 프로젝트 ‘르 그랑파리’의 구체적인 비전이 첫선을 보이는 자리였다. 사르코지는 이 자리에서 “미래를 위해 더 이상 파리는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선 안 된다.”며 파리 대개혁을 선언했다. 세계에서 가장 잘 계획된 도시이자 세계인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온 파리를 바꾸겠다는 사르코지의 도전은 무모해 보였다.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에어컨 실외기 설치조차 금지될 정도로 개발이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는 파리에서 대규모 도시계획은 나폴레옹 3세의 제2 제정기 때인 1800년대 중반 G E 오스만의 대개조운동이 마지막이었다. 그랑파리 프로젝트를 위해 사르코지는 스스로 비전을 제시하는 대신 전 세계 최고의 건축가 집단 10개 팀을 초청했다. 크리스티앙 드 포잠바크, 장 누벨, 이브 리옹, 롤랑 카스트로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가와 도시계획가는 물론이고 네덜란드의 MVRDV 등 그야말로 드림팀이 총망라됐다. 이들에게는 1년의 시간이 주어졌다. 파리도시계획연구소(IAU)의 이코노미스트 오드리 슈라드는 “경제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 등 여러 학문의 집단을 모아 사전조사를 진행하고 건축물이 아닌 파리라는 도시의 근본적인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것이 주어진 조건이었다.”고 설명했다. 교통시스템, 주거환경, 신도시 개발, 상하수도 문제 등 도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분석 대상에 올랐다. 10개 팀의 의견은 대부분 일치했다. 선을 그어놓고 더 이상 팽창하지 못한 파리는 이미 포화상태였고, 겉으로 보여지는 아름다움과는 달리 모든 면에서 제대로 된 도시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곪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10개 팀이 내놓은 해법은 천차만별이었다. 포잠바크는 단절된 신도시를 연결하기 위한 고가도로와 고속전철 도입을 제안했고, 안톤 그럼바흐는 “파리가 바다와 연결돼야 한다.”면서 4대강 프로젝트와 비슷한 물길 건설을 주장했다. 장 누벨은 파리 시내의 모든 건물을 한 개 층 이상 높이는 것이 주거난과 인구밀집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라고 내놓았고, 카스트로는 파리 시내 전역과 빌딩들을 녹색으로 물들였다. 프랑스 정부는 그랑파리를 전담하는 부처를 만들고, 10개 팀에서 공통점을 찾아 실제로 프로젝트를 발주하고 진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포잠바크를 디렉터로 한 AIGP를 구성해 그랑파리 프로젝트 참여 10개 집단이 매월 1~2회 정부와 함께 주제별로 구체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초안이 발표된 뒤 1년이 지난 지금 최소 6개 이상의 대형 프로젝트가 파리 내외곽에서 진행되고 있다. 슈라드 이코노미스트는 “정부가 단순히 제시하고 이끌어가는 도시계획이 아니라 계획과 합의도출, 시행에 이르기까지 사회 공동의 합의를 만들어 정권 교체나 패러다임 변화에도 탄탄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파리 박건형 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 “英 노동당수, 장하준 점심 대접해라”

    “英 노동당수, 장하준 점심 대접해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신간 ‘그들이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자본주의의 23가지’를 극찬하며 정치인들에게 일독을 권유했다. 신문은 29일(현지시간) ‘장하준을 칭찬하며’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최근 (영국의) 주된 경제 논쟁이 갑갑할 정도로 한정돼 있는 데 비해 그의 책은 19세기 독일, 21세기 중국, 그리고 많은 다른 점을 다루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전당대회 철을 맞아 정치인과 싱크탱크, 언론인들이 재정적자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편협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며 먼저 장 교수의 신간을 읽어 볼 것을 제안했다. 나아가 “국가와 시장 사이의 관계 등을 다루고 있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정치인들이 읽어 볼 만하다.”며 최근 노동당수에 뽑힌 에드 밀리반드에게 장 교수를 점심식사에 초대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장 교수의 책은 패러독스를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여러 신화를 깨트리고 있다. 예컨대 국가의 간섭이 배제된 자유시장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성공적인 경제는 이코노미스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또 “여성들이 적극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기술적인 기반이 된 식기 세척기가 없었다면 양성 평등은 실행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식기 세척기가 인터넷보다 훨씬 더 사회구조를 혁명적으로 바꿔 놓았다.”고 주장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한·중·일 춘화 어떻게 다를까

    한·중·일 춘화 어떻게 다를까

    남들 눈에 띌까 몰래 숨어서 보던 춘화(春畵)가 ‘에로틱 아트’의 타이틀을 걸고 당당히 박물관에 입성했다. 서울 평창동 화정박물관은 특별전 ‘러스트’(LUST)에서 18~19세기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3국과 근대 유럽의 춘화, 도자생활용품 등 다양한 에로틱 아트 작품 114점을 선보이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에 관한 욕망과 호기심을 담은 그림들은 끊임없이 제작·유통돼 왔지만 춘화를 전시와 학술의 대상으로 접근한 건 매우 이례적인 시도이다. 박물관은 나라별 특징이 비교적 잘 드러난 작품들을 골라서 전시함으로써 각국의 춘화가 지닌 차이점을 한눈에 비교해볼 수 있게 했다. 가령 한국실에 전시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사시장춘(四時長春)’은 은유적이고 해학적인 방식으로 성적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댓돌에 흐트러진 두 켤레의 신발, 닫힌 문앞에서 상을 들고 어찌할 바 모르는 어린 여종의 모습은 방안의 상황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게 한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춘화에는 남성이 여성의 발을 만지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여성성을 강조하는 전족의 풍습과 더불어 발에 대한 중국 남성들의 성적 환상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한국과 중국에 비해 일본의 춘화는 좀 더 노골적이다. 화면을 가득 채운 남녀의 대담한 포즈는 보는 이를 압도하는 힘이 있다. 강렬한 색채, 세밀한 배경묘사 등도 특징적이다. 김옥진 화정박물관 책임연구원은 “당시의 성문화뿐만 아니라 생활상 등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19일까지, 만19세이상 관람가. 5000원. (02)2075-0114.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유럽의 지성에 듣는다] (4) 동역학계 거장 장크리스토프 요코즈 콜레주 드 프랑스 석좌 교수

    [유럽의 지성에 듣는다] (4) 동역학계 거장 장크리스토프 요코즈 콜레주 드 프랑스 석좌 교수

    동역학계의 거장인 장크리스토프 요코즈 교수는 해석수학의 1인자로 꼽힌다. 동역학계는 우주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모형화할 때 변화가 생기는 궁극적인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스티븐 호킹이 주도하는 이론물리학과 비슷하며, 이공계와 사회과학에까지 넓게 활용된다. 요코즈 교수는 어린 시절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프랑스 최고의 이공계 대학이자 영재 교육 시스템인 에콜 노르말에 입학했고, 1985년 에콜 폴리테크닉에서 동역학의 창시자인 미셸 에르만 교수의 지도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11대학(오르셰)에서 수학과 교수로 일하면서 수학과 이론물리학계의 주요 난제로 꼽혔던 정형화된 동역학계(호모클리닉 역학계)의 현상을 완벽하게 해석해냈다. 이 공로로 1994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필즈메달을 수상했다. 이후 콜레주 드 프랑스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파스칼과 데카르트의 나라인 프랑스에서도 수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매년 20~30%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수한 학생들이 순수학문을 외면하고 의대, 경영대에 가고 싶어 합니다. 무엇보다 어렸을 때부터 한정된 목표가 정해지면서 수학 등 기초과학을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접해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해석수학자로 꼽히는 장크리스토프 요코즈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는 지난 23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수학을 비롯한 기초과학의 위기는 전 세계적인 현상인 만큼 한국이 유독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또 기초과학을 살리기 위해서는 학교와 선생님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공식이나 숫자 대신 새로운 교재와 접근법을 개발해 진정 알아가는 즐거움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코즈 교수는 19세기 이후 수많은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이 매달려온 동역학계(우주 천체의 정형·비정형적인 움직임을 계산하는 수학)의 난제를 풀어내 37살이던 1994년 필즈메달을 받았다. 그의 이론은 인공위성의 궤도 계산과 핵융합발전소의 플라스마 운영에 적용되고 있다. 필즈메달은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며 뚜렷한 학문적 업적이 있는 40세 이전의 수학자에게만 수여된다. 4년마다 한번씩 시상하며 지금까지 아시아에서는 일본만 수상자를 배출했다. 요코즈 교수는 “시대가 변한 만큼 수학자를 비롯한 기초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힘써야 할 의무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1950년대만 해도 수학자 한 사람이 논문을 혼자 쓰고 발표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하나의 문제를 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연구하는 시대가 됐다.”면서 “좀더 사고의 폭을 넓히면 대중과도 함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맞다’와 ‘틀리다’로 구분하는 학자의 틀에 갇혀 있는 한 수학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요코즈 교수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수학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유럽이나 미국 쪽 대학과 연구소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열정적인 연구분위기를 경험했다.”면서 “정보기술(IT) 등 응용과학에서 한국이 이룬 업적을 생각하면, 균형의 문제일 뿐 기초과학에서도 강국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요코즈 교수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기초기술연구회 자문위원 자격으로 오는 11월 방한해 한국 수학의 발전 방향에 대해 제언할 예정이다. 칠판과 컴퓨터로 가득 찬 그의 연구실 책장 한가운데에는 포스텍에서 선물받은 고려청자가 놓여 있었다. →광범위한 질문일 수 있겠지만 수학은 어떤 학문인가. -수학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활동적이고 흥분되는 일이다. 문제에 접근해 도전하고 그것을 결국 풀어냈을 때마다 ‘아름답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새삼 깨닫는다. 무엇보다 수학은 과학이라는 학문을 표현하는 기본단위다. 예를 들어 컴퓨터 언어를 생각해 보라. 컴퓨터는 수많은 언어와 프로그램, 그래픽을 보여주지만 결국 모든 것의 기본은 수학이 만들어낸 언어들이다. →기초과학의 위기는 수학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프랑스 수학계는 어떤가. -매년 20~30%의 학생이 줄어들고 있다. 의대, 치대, 경영대가 학생들의 입학희망 1순위가 된 지 오래다. 영국, 독일, 브라질 등과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다들 마찬가지다. 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상당수가 금융수학과 응용수학에 매달린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일자리와 미래가 아닐까. 수학의 전망이라는 것은 결국 그것을 해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느냐의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응용과학이나 경제학이나 모두 수학이 기초가 되는 것 아닌가. 기본이 흔들리면 결국 위에 쌓은 것들도 곧 무너질 텐데. -물론이다. 20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금융수학은 대부분 1950년대에 수학에서 기본이 만들어진 것들이다(경매 시스템의 근간을 이루는 영화 뷰티플 마인드의 주인공 존 내시의 게임이론도 이때 발표됐다). 지금 기초수학의 영역에서 새로운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앞으로 50년 뒤에는 새로운 분야가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당신은 왜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됐나. 스승의 역할이 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아버지가 물리학자였기 때문에 수학이나 과학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무엇보다 에콜 노르말(프랑스 최고의 이공계 사립대학) 시절에 만난 미셸 에르만 교수의 역할이 컸다. 난 도형이나 계산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반면 어떤 현상을 해석하는 쪽에 적성이 맞다는 것을 에흐만 교수를 통해 깨닫게 됐다. 에르만 교수는 세계적인 수학자였지만 열린 사람이었다. 학생들에게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한때 내가 체스에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니까 집에 직접 전화를 걸어 “수학을 관두고 체스대회에 나가려고 하니 말려 달라.”고 적극적으로 나선 적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능력 있는 선생님이 인간적이기까지 하니 어떻게 신뢰하고 따르지 않을 수 있었겠나. →37살에 필즈메달을 받았다. -19세기에 우주 행성의 법칙이 어느 정도 완성된 뒤에도 실제로 천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알기가 어려웠다. 우주에는 행성처럼 정형적인 움직임을 하는 부분이 있고, 지구온난화처럼 비정형적인 돌발변수들도 있다. 난 이 정형적인 부분에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기더라도 긴 시간 동안 맞아떨어지는 해석법을 만들어냈다. 현재 인공위성의 궤도를 예측하는 데 실제 쓰이고 있다. 최근에는 핵융합발전소의 플라스마 움직임을 예측하고 조정하는 데에도 적용된다. →노벨상은 나이 제한이 없는데 필즈메달은 왜 40세 이전이라는 단서가 붙나. 필즈메달을 받은 뒤에 주변이나 사회적인 시선은 어떻게 변했나. -음악과 문학을 생각해 보자. 음악은 모차르트나 슈베르트가 그랬던 것처럼 집중적인 에너지와 창의성이 요구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젊은 시절에 업적들이 많다. 반면 문학은 경험이 중요하고 실제로 수많은 대작들이 노년기에 나온다. 수학은 음악과 같은 학문이다. 가끔 오일러나 가우스처럼 나이가 들어서 업적을 세우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수학자들의 성과는 대부분 젊은 나이에 나온다. 필즈메달 이전과 이후라…. 연구비도 많이 늘었고, 초청도 많이 받았고 대우도 달라졌다. 콜레주 드 프랑스 석좌교수가 되는 영광도 얻었다. 대신 연구할 시간은 줄었다. 그래서 2006년 프랑스인 벤더린 베르너가 필즈메달을 받았을 때 너무 좋았다. 이제 그 쪽으로 관심이 몰릴 테니 난 공부할 시간이 늘어났다. 베르너도 다음 수상자가 나올 때까지 좀 피곤할 거다. →긴 시간을 한 가지 문제에 매달리는 것이 수학자들이다. 공들여 풀다가 잘못된 길이라는 점을 알면 절망하게 될 텐데, 어떻게 극복하나. -인생이라는 것이 다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서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여러 가지 문제를 동시에 늘어놓는다. 하나가 막히면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려서 풀어보다가 다시 돌아온다. 잠시 떠나 있으면 무엇이 잘못됐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수학은 완벽하게 자유로운 학문이다. 예를 들어 의학, 생물학자들은 어떤 질병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만 파야 하지 않나. 수학은 자기가 풀고 싶은 문제까지도 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수학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수학자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학교의 역할이 중요하다. 훌륭한 선생님은 학생의 능력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어렸을 때 기초과학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단순히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식이 아니라, 수학·물리학·화학 등 기초과학을 하면 무엇이 될 수 있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학생들이 다양한 답안지를 보지도 못한 채 무조건 끌려가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수학자들도 바뀌어야 한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모든 논문의 저자는 한 사람이었다. 수학자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서도 살아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의 논문은 여러 명의 공동연구로 만들어진다.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대중과 얘기할 때는 ‘맞다’ ‘틀리다’ 두가지로 이분화된 수학자들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 수학자가 갇혀 있고 매일 숫자와 씨름하는 독특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 →아시아에서는 아직까지 일본만 3명의 필즈메달 수상자를 배출했을 뿐이다(1982년 수상자 야우 싱퉁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계 미국인). 한국과 아시아 수학의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2006년 포스텍을 방문해 김강태 석좌교수와 대담도 하고, 강의도 했다. 유럽이나 미국의 수학계에서는 볼 수 없는 학생들의 열의가 인상적이었다. 다만 응용과학쪽에서 한국이 얻은 성과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 수학이 홀대받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약간 의아했다. 기초와 응용이 연결돼 있는 만큼 균형을 잘 잡았으면 지금 한국 수학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발전 속도를 볼 때 최근 한국과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세는 놀라울 정도다. 11월에 한국에 가면 좀 더 많은 것들을 심도있게 보고 조언할 생각이다. 잠재력이 충분한 나라인 만큼 거는 기대도 크다. 글 사진 파리 박건형 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 [영화단신]

    ●서강대 동아연구소는 9~12월 동남아를 소재로 한 영화 4편을 상영하는 ‘안에서 보는 동남아 vs 밖에서 보는 동남아’ 행사를 이 대학 다산관 610호에서 연다. 오는 29일 상영하는 태국 영화 ‘수리요타이’는 16세기 태국을 배경으로 하는 대하사극으로, 7년에 걸쳐 120억원의 제작비가 소요된 초대형 블록버스터답게 웅장하고 수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11월24일 상영되는 베트남 영화 ‘더 레블-영웅의 피’는 프랑스 지배를 받던 1920년대 베트남을 배경으로 하는 화려한 액션 서사극이다. 각각의 작품은 19세기 태국 왕실을 배경으로 한 미국 영화 ‘왕과 나’(11월3일), 1930년대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프랑스 영화 ‘인도차이나’(12월8일)와 비교된다.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의 러시아·유라시아 연구사업단은 새달 6일부터 3일 동안 서울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전쟁, 휴머니즘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러시아 영화제를 연다. 한국·러시아 수교 20주년을 기념한 영화제다.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와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등에서 상을 받았던 알렉산드로 로고주킨 감독의 ‘뻐꾸기’(2002)를 비롯해 ‘살아남은 자’(2006) ‘어떤 전쟁’ ‘레닌그라드’(이상 2009) 등 전쟁을 배경으로 인간 내면의 사랑과 휴머니즘적 시각을 부각시킨 작품 6편을 상영한다. 모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영화다. 무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집행위원장 이혜경)의 문화예술 포럼인 ‘F포라’가 오는 28일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 ECC관에서 이장우브랜딩마케팅의 이장우 대표를 초청해 오픈 포럼을 진행한다. 이 대표는 ‘마케팅 상상력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 印 80년만에 카스트별 인구조사 논란

    인도 정부가 80년 만에 처음으로 인도식 신분제도인 카스트에 따른 인구조사를 내년에 실시하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팔라니아판 치담바람 인도 내무장관은 9일(현지시간) “여러 정당의 의견을 토대로 내년 6월부터 9월까지 가구별 카스트 수를 조사할 예정”이라면서 “그동안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논의된 다양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조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BBC방송과 dpa통신에 따르면 찬성 측이 내세우는 명분은 효율적인 복지정책 수행을 위해 정확한 통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비판 측은 카스트별 인구조사가 카스트 차별만 부추기고 사회적 약자에게 할당된 혜택을 둘러싼 계급 간 긴장을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카스트별 인구조사는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하던 1931년을 마지막으로 인도가 독립한 1947년 이후 헌법에서 카스트 차별을 전면 금지하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인도 정부는 카스트 제도가 사회 곳곳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불가촉천민(달리트) 등 사회적약자에게 대학입학과 공무원채용 과정에서 다양한 소수자우대정책을 실시해 왔지만 이 정책이 오히려 부패의 온상이 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인도 카스트제도는 흔히 3000여년 전부터 이어진 유서깊은 제도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19세기 이후 영국이 인도를 효율적으로 식민통치하기 위해 ‘발견’한 제도이다. 이전까지 유동적이던 다양한 ‘카스트’들을 1871년 첫 인구조사에서 인도인들을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등으로 분류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정불변’의 카스트로 굳어졌다. 그나마 1881년 인구조사에선 브라만, 크샤트리아, 기타 등 3개로만 분류하는 등 기준도 모호했다. 이 때문에 똑같은 직업을 가진 집단이 한 곳에선 집단행동을 통해 브라만이 되고 다른 곳에선 브라만으로 인정을 못 받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카스트가 사회적 위계와 직결되면서 점차 카스트는 상호 결혼조차 금지할 정도로 배타적인 성격을 지닌 ‘구별짓기’의 수단이 되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英범죄드라마 3편 방영

    영국 드라마·시트콤 전문 채널 BBC엔터테인먼트가 범죄 드라마 3편을 방송한다. 스웨덴이 배경인 ‘월랜더 형사’를 12~14일, 살인마가 등장하는 ‘화이트 채플’을 19~21일, 인생 역전을 다룬 ‘크리미널 저스티스’를 26~28일 각각 내보낸다. 시간은 모두 오후 10시. ‘월랜더 형사’는 인기 범죄 소설 작가 헤닝 맨켈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아름다운 스웨덴 마을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살인 사건의 진실을 다룬다. ‘화이트 채플’은 19세기 전설적인 살인마 잭 더 리퍼가 21세기 런던에 등장한다는 설정이다. ‘크리미널 저스티스’는 하룻밤 사이에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21세 청년의 이야기를 다뤘다.
  • [지방시대] 세계속 한국인, 현주소 점검할 때/이병화 조선대 경제학 교수

    [지방시대] 세계속 한국인, 현주소 점검할 때/이병화 조선대 경제학 교수

    한국은 이제 경제 분야에서 세계 최고인 것이 수두룩하다.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 선박 건조량, 초고속 인터넷 사용률 등 세계에서 1위인 부문을 다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문화, 예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과 한국인의 활약상은 눈부시다. 몇 년 전 대장금, 겨울연가 등 우리 드라마가 전 세계인들을 감동시키며 한류 붐을 일으키더니 이제 한국의 샤이니, 빅뱅 등 아이돌 보이 그룹과 소녀시대, 카라 등의 걸 그룹이 뛰어난 가창력과 퍼포먼스로 케이 팝을 유행시키며 전 세계인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우리는 현재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역동적으로 우리의 재능과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 한때 광활한 만주벌판을 누비던 선조들의 기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또 우리민족의 강역이 한반도로 축소된 데 대해 아쉬워했다. 우리의 강역은 축소됐지만 우리의 활동공간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넓어졌다. 그래서 몇 년 전 한 경제포럼에서 미국 국제경제연구소 버거스텐 소장은 한국이 이룩한 놀라운 경제발전을 높게 평가하면서 앞으로 한국경제보다 한국인의 경제로 시야를 넓혀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아일랜드도 좁은 국토의 한계를 넘어 세계로 활동공간을 넓힌 나라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19세기의 대기근 때에 100만명 이상이 미국·캐나다 등으로 이주했으나, 이런 대규모 이주로 인해 아일랜드 문화가 널리 퍼지게 됐다. 이스라엘의 국토면적은 우리나라의 5분의1에 불과하지만 유태인들은 전 세계의 대표적인 금융, 미디어 기업들을 소유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유태인들은 학문의 영역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여 세계인구의 0.2% 미만으로 지금까지 22% 이상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동남아시아에서도 중국의 객가인(客家人)이 유태인과 비슷하게 끈끈한 연대를 유지하며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은 당나라 말기에 황하유역에서 중국 남부로 이주하여 어렵게 공동체를 유지하며 정착했다. 그후 일부는 또다시 동남아 여러 나라로 흘러 들어갔지만 높은 교육열과 근면성으로 그들만의 정체성을 지키며 고난을 이겨냈다. 그 결과 중국의 덩샤오핑, 싱가포르의 리콴유, 타이완의 리덩후이 등의 인물을 배출하고 현재 동남아 화교 경제권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한국은 더 이상 한반도의 반쪽만을 차지하고 있는 작은 나라가 아니다. 개도국에서 선진국 문턱에 도달한 그리고 자생적으로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세계 유일의 국가이다. 우리의 성공 스토리는 과거 고난과 역경을 함께 이겨내며 형성된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강한 연대의식을 밑거름으로 세계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여 이룬 성과이다. 이제는 우리도 세계역사의 주역이 됐다. 11월 초 한국에서 개최될 G20 정상회의에서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 등을 논의할 예정이어서, 세계경제의 새로운 질서가 한국에서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그동안의 규칙준수자(rule taker)로부터 규칙제정자(rule setter)로 변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변화된 세계 속의 한국과 한국인의 위상을 다시 생각하면서 앞으로 우리가 지키고 보완할 것이 무엇인지 점검해 보아야 할 때이다.
  • ‘국보급’ 러시아 발레가 몰려온다

    ‘국보급’ 러시아 발레가 몰려온다

    대부분의 발레 용어가 프랑스어인 것에서 알 수 있듯 발레의 본고장은 프랑스다. 하지만 19세기 유럽에서 발레의 인기가 사그라들면서 발레 무용수들과 지도자들은 발레에 아낌없는 지원을 하는 러시아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러시아는 지금 발레의 메카가 됐다. 9월 러시아 발레를 느낄 수 있는 두 공연을 소개한다. 하나는 ‘국립 러시아 클래식 발레단’의 내한 공연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의 ‘국립 발레단’과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합동 공연이다. ●‘정통의 진수’ 클래식 발레단 첫 내한 러시아가 낳은 국보급 발레리나 마야 프리세츠카야(80). 그가 단장으로 있는 국립 러시아 클래식 발레단이 첫 국내 무대를 갖는다. 25∼26일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다. 한·러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주한러시아 대사관이 후원한다. 국립 러시아 클래식 발레단은 볼쇼이 발레단 출신 무용수들을 중심으로 모스크바 아카데미, 상트 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 졸업생들로 구성돼 있다. 세계적으로도 큰 호응을 얻으며 클래식 발레의 대명사로 거듭났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공주’, ‘호두까기인형’ 등 정통 클래식 발레는 물론 신데렐라와 탱고를 가미한 ‘프렌치 키스’, 재즈의 느낌을 살린 ‘카니발나이트’ 등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내한공연 첫날에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둘째날에는 ‘백조의 호수’를 선보인다. 알렉산데르 페트호프가 지휘봉을 잡았으며 연주는 밀레니엄 오케스트라가 맡는다. 밀레니엄 오케스트라는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로 유명세를 치른 오케스트라다. 4만~15만원. (02)737-6614. ●볼쇼이, 한·러 최초 합동공연 펼쳐 이번엔 러시아와 한국의 ‘발레 배틀’이다. 한국의 국립발레단과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이 함께 무대에 올라 최초로 합동 공연을 펼치는 것. 25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다. 이번에 선보일 작품은 ‘라이몬다’. 러시아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작품으로 13세기 중세 십자군 시대의 헝가리 왕국을 배경으로 한 클래식 발레로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가 돋보이는 대작이다. 중세 유럽풍의 왕국이 무대 위에 그대로 재현된다는 후문. 아랍과 스페인의 민속춤, 헝가리풍의 경쾌한 댄스를 감상할 수 있는 ‘라이몬다’는 주로 갈라 공연이나 해설이 있는 발레에서 주요 부문만 소개됐을 뿐 국내에서 전막이 공연된 적은 없었다. 물론 앞서 소개한 국립 러시아 발레단만큼이나 정통 클래식 발레의 진수도 맛볼 수 있다. 스타 발레 무용수들의 활약도 별미다. 국립발레단과 볼쇼이발레단의 주요 무용수 4쌍이 함께 한다. 라이몬다 역은 김주원, 김지영, 마리아 알라시, 안나 니쿨리나가 번갈아 맡고 장드브리엔 역은 김현웅, 이동훈, 알렉산데르 볼치코프, 아르템 아브차렌코가 열연한다. 5000~12만원. (02)580-1300.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씨줄날줄] 맥주병 해군/박대출 논설위원

    사람은 태생적으로 물과 가깝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수영을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양수 속에서다. 임신 4개월째부터다. 수중 분만하면 엄마 뱃속과 같은 조건이 된다.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올 때 충격을 덜어준다. 고대로부터 전해지던 분만법이다. 크레타 문명의 미노스인들은 신전에서 수중 분만했다. 인디언들은 낮게 고인 바닷물이나 낮은 강물에서 아기를 낳았다. 수중 감염 우려 때문에 퇴색됐다가 1960년대 재개됐다. 러시아 수영 강사인 파프콥스키가 딸을 물속에서 낳았다. 이후 수중 분만 연구가 본격화됐다. 사람은 원래 물에 뜬다. 19세기 이탈리아 목사인 베라루디가 부력 연구로 이 결론을 얻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수영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태아 때처럼 물에 순응해야 가능하다. 어릴 적 강가나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는 건 물에 순응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극복하지 못하면 ‘맥주병’이 된다. 수영의 역사는 오래됐다. BC 2000년 이집트 문헌에는 수영을 가르친 기록이 남아 있다. BC 1000년 무렵 아시리아, 바빌로니아에도 수영하는 모습의 불상이 전해져 온다. 아시리아 군인은 바람주머니를 몸에 걸쳤다. 산양가죽에 공기를 넣어 만들었다. 수영을 단체로 가르친 건 군사목적에서다. 고대 아테네와 스파르타에선 수영을 교과목에 넣었다. 페르시아에선 소년 군사훈련의 과정으로 삼았다. 중세에선 군인의 필수 과목이 됐다. 일본 학습원의 스파르타 교육은 2차 대전 후에도 이어졌다. 일본 국왕의 아들도 일본식 팬티인 훈도시를 차고 수영훈련을 받았다. 해군의 63.5%가 수영을 못한다고 한다. 한나라당 김학송 의원이 해군본부로부터 입수한 자료에서 드러났다. 다소 충격적이다. 속된 말로 ‘당나라 군대’를 보는 기분이다. 혹자는 수영 무용론(無用論)을 펼지도 모른다. 현실적으로 모든 해군이 수영할 필요가 있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해상근무 땐 구명조끼를 착용한다. 수영을 못해도 물에 뜬다. 그러나 만일을 위해 대비하는 게 군이다. 설령 천안함 사태가 재발한다면 어떻게 되나. 비근무조는 수영을 못 하면 구조기회조차 못 얻는다. 자존심 문제도 있다. ‘맥주병 해군’. 강군이라고 자부하기엔 선뜻 내키지 않는다. 연 1회 수영평가만으론 부족하다. 평시 훈련 체제를 갖춰야 한다. 장병들이 적극적이면 더 낫다. 이왕 해군에 몸 담았으면 기를 쓰고 수영을 배울 필요가 있다. 유사시 생명도 지키고, 평상시 건강도 얻는다. 꿩 먹고 알 먹기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200년된 술맛 어떨까

    200년된 술맛 어떨까

    핀란드 서쪽 발트해 올란드 섬 인근에 가라앉은 난파선에서 마실 수 있는 술로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맥주 수십병과 샴페인 70병이 완벽한 상태로 인양됐다고 2일(현지시간) AP·AFP통신이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난파선이 19세기 초 러시아로 향하던 도중 침몰했을 것이고, 술은 18세기 후반이나 19세기 초반에 주조한 것으로 추정했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맥주와 샴페인은 각각 1869년과 1825년산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 발굴된 맥주와 샴페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들인 셈이다. 올란드 자치정부 대변인은 “연중 4도 내외의 차가운 수온, 햇빛이 들지 않는 해저 환경이 완벽한 보존을 가능케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탐사팀 관계자들은 술맛이 탁월했다고 밝혔다. 법적으로 난파선에서 인양한 물품에 대한 소유권은 올란드 자치정부가 갖는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기억의 장소’ 통해 민족의 역사 되살린다

    ‘기억의 장소’ 통해 민족의 역사 되살린다

    최근 수년간 한국 역사학계의 유행 키워드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기억’이다. 옛일을 기억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역사의 영역이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한국 현대사 때문에 제대로 된 문헌기록이 없다 보니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의 육성증언을 듣는 방식의 연구방법이 제기됐다. 일제시대 위안부, 한국전쟁 때 양민학살, 광주민주항쟁의 참상 등이 모두 이런 연구 방식으로 복원됐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대항기억에만 의존한 이분법적 태도가 한계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기억의 정치학에서 기억의 문화학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기억’이란 화두를 던진 학자는 프랑스의 피에르 노라다. 노라의 역작 ‘기억의 장소’(나남 펴냄)가 번역 출간됐다. 1984년부터 1992년까지 역사학자 120여명의 논문을 담아 모두 7권으로 출간된 책이다. ‘역사’ 대신 ‘기억’을 전면에 내세운 이 작업은 역사학계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한국에서는 특히 구술사 연구자들에게서 각광받았다. 이번 번역본은 30편 정도의 논문을 뽑아 모두 5권(공화국, 민족, 프랑스들 1~3)으로 정리했다. ●기억의 장소란 국기·에펠탑 등 포괄하는 이름 기억의 장소란 특정 장소를 지칭한 게 아니라 민족의 얘기가 스며든 국기, 노래, 행사장, 길거리 이름과 각종 기념 동상 같은 것들을 포괄하는 이름이다. 때문에 이 책은 한국에서 ‘기억의 터’로 불렸고, 최근 일본에서는 ‘기억의 장’으로 번역됐다. 노라의 관심사는 이런 기억의 장소를 통해 민족적 기억을 재구성해 내는 것. 번역 작업을 총괄지휘한 김인중 숭실대 사학과 교수의 얘기를 들어봤다. →노라가 내세우는 ‘기억’이란 무슨 뜻입니까. -프랑스적 맥락입니다. 프랑스는 1789년 프랑스혁명과 이후 공화국 수립에 강한 자부심을 가진 나라예요. 그렇다 보니 역사 연구도 1789년 이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을 마치 엊그제 일어난 일처럼 말하는 분위기였어요. 개개인의 기억이 프랑스혁명이라는 역사와 일치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1970년대에 무너집니다. 역사는 단절된 채로 내팽개쳐지고, 그 자리는 개개인이 가진 별개의 기억이 차지합니다. 그래서 노라는 흔히 접할 수 있는 박물관, 미술관, 에펠탑, 국가 등에 대한 개인의 기억을 통해 프랑스의 역사를 복원해내자고 목소리를 내게 됩니다. →1970년대에 역사와 기억의 분리가 일어난 배경이 있습니까. -프랑스는 원래 가톨릭 농업국가예요. 그런데 산업화로 인해 농민인구가 10%대로 떨어집니다. 집단기억을 가진 농민층이 붕괴한 것이지요. 또 마르크스주의와 드골주의 모두 한계를 드러냅니다. 좌우파의 기둥이 사라져 버린 거죠. 한마디로 잘 먹고 잘살게는 됐는데 공유하는 기억들이 파편화돼 버렸다는 겁니다. ●‘민족주의 없는 민족 건설’ 바람직 →개인의 기억을 민족의 기억으로 모으는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도 많습니다. 해외에서도 그렇고, 국내에서도 그렇습니다. 노라는 정치적 우파인가요. -한국적인 맥락에서는 그런 얘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실제 노라가 몇몇 논쟁에서 우파적 주장을 내놓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는 사실상 좌우파 구분이 무의미한 사회입니다. 한국적 좌우파 개념에 매이면 책에 담긴 풍부한 논의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노라가 보기에 탈민족론이 문제 삼은 민족주의는 파시즘으로 상징되는 19세기 유럽 우익 민족주의일 뿐입니다. 다양한 민족주의가 있는데 그것 하나만 딱 집어낸 뒤 모든 민족주의는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노라는 프랑스혁명이 이상으로 삼았던 민주적이고 민중적이고 진보적인 민족주의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걸 ‘민족주의 없는 민족 건설’이라 부릅니다. 파괴적이고 전투적인 민족주의를 빼버리고 문화적 정체성을 잃지 않는 민족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노라의 작업이 마무리된 시점인 1992년을 봐 주세요. 이때 유럽연합(EU)이 구체화됩니다. 그런데 하나의 국가처럼 움직이겠다는데 구성원들은 동질적 감정을 못 느낍니다. 오히려 예전에 국경에 막혀 있던 사람들끼리 부딪치다 보니 민족주의 감정이 더 강화됩니다. 노라의 작업은 프랑스혁명을 강조하는 프랑스 특수주의보다 유럽 문명 일원으로서의 프랑스를 내세웁니다. 다른 민족과의 갈등요소를 줄이는 것이지요. 사실상 최근 상황을 예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5권의 제목이 복수형인 프랑스‘들’인 것은 그런 뜻입니까. -네. 바로 그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기억을 통한 민족주의의 평화적 재구성인 셈인데,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얼까요. -요즘 추세는 극단적 세계화입니다.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시대지요. 국가, 민족, 공동체 같은 거보다 개인의 취향이나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좋은 말로 코스모폴리탄의 등장이지요. 한없이 자유로워진 것은 맞는데 그럴 경우 나의 정체성은 무엇이냐, 너와 내가 이 땅에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이냐는 게 문제가 됩니다. 더구나 한국에서도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프랑스의 경험을 깊이 음미해볼 구석이 있다고 봅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전톡톡 다시읽기] (31)셰익스피어 ‘햄릿’

    [고전톡톡 다시읽기] (31)셰익스피어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작은 1564~1616) 비극의 주인공 햄릿의 괴로운 한 마디, “To be, or not to be. That is a question.”(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숙부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후 왕위에 올랐으니 햄릿은 괴롭다. 복수를 해야 한다. 그런데 고민스럽다. 우선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는 범죄를 어떻게 확인할지가 고민이고, 간통과 별다를 바 없는 결혼을 한 어머니를 어떻게 해야 할지가 고민이고, 나아가 어떻게 복수할지가 고민이다. 상대는 막강한 힘을 가진 왕이 되었는데, 자신은 왕위를 계승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치 않은, 선왕의 왕자일 뿐이다. 그러니 끙끙 앓다시피 괴로운 것은 당연지사. 이 괴로운 햄릿의 모습으로부터 19세기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은 창백한 지식인의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독일의 괴테는 고귀하고 연약한 귀공자를, 러시아의 투르게네프는 ‘햄릿형’과 ‘돈키호테형’이라는 인간 유형을 만들었다. 행동은 하지 않은 채 고민만 주구장창 하는 사람의 유형은 햄릿형,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행동으로 돌진하는 사람은 돈키호테형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햄릿형 인간은 예민한 감수성과 퇴폐적 세련미를 과시하고, 우울함이나 권태에 몸을 맡기는 데카당스 지식인의 모습으로 발전해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져나갔다. 그래서 꾀죄죄한 몰골로-하루만 세수하지 않고, 잠을 설치면 가능하다-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To be, or not to be’라고 읊조리는 모습은 지금도 지식인의 전형적인 이미지처럼 여겨지고 있다. 햄릿 따라하기의 장대한 역사인 셈이다. 하지만 400년 동안 계속되는 이미지라니, 이 이상한 마력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창백한 지식인, 햄릿형 인간 ‘햄릿’에는 근친상간, 사랑과 불륜, 음모와 배신, 광기, 결투, 자살, 살인 등 갖가지 사건들이 등장하지만 그 핵심은 햄릿의 복수다. 하지만 5막으로 이루어진 ‘햄릿’의 구성에서 복수가 시작되는 것은 사실상 마지막 장(5막 2장) 뒷부분에 이르러서다. 그 전까지는 고민만 계속된다. 이를 두고 셰익스피어 연구자들은 ‘복수 지연’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폼나게 말해서 ‘지연’이지, 한 마디로 햄릿에게는 죽으나 사나 계속 고민하는 것이 전부였다. 결국 ‘복수 지연’이란 해석은 ‘햄릿’의 결말로부터 전체를 재구성해서 나온 것일 뿐, ‘햄릿’의 중심축은 지속되는 그의 고민인 셈이다. 이처럼 ‘고민’이 계속되는 이유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우선 유령이라는 불확실한 존재. 밤마다 성루를 헤매는 아버지의 유령은 아들 햄릿을 만나 죽음의 전말을 밝히고, 복수해줄 것을 당부한다. 물론 햄릿도 유령을 만나기 전부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지만 유령은 그 의심이 사실임을 밝혀준다. ‘사실’ 여부를 확인해주는 게 유령이라니, 이보다 더 혼란스러울 수 있을까. 그것이 진짜 아비의 혼령인지, 악마인지, 헛것에 지나지 않는지조차 헷갈리는데 말이다. 이때 유령이라는 모호한 존재는 공포스러운, 기이한 대상이라기보다는 삶의 혼란과 모순이 뒤엉킨 속에서 만들어진 추상적인 이미지의 산물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만들어낸 강박관념, 죄의식, 양심의 가책일 수도 있는 그런 것이다. 혼란스러운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삼촌이자 왕이자 새아버지 자리를 차지한 클로디어스, 배신했지만 여전히 어머니인 거트루드, 자신의 친구인데도 왕의 편이 되어버린 로젠크란츠와 길든스턴, 사랑하는 여자이자 왕과 결탁한 자의 딸인 오필리아처럼 햄릿의 주변은 그 어느 하나 적과 아군으로 확연히 구분되지 않는다. ●고민, 그로부터 이어지는 자기 삶의 투쟁 이 불확실성은 햄릿이 처한 조건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장치다. 햄릿의 세계는, 선과 악이 뚜렷이 구별되는 동화나 정의가 항상 승리하는 영웅의 세계와는 달리 모든 것이 뒤엉킨 인간 세계인 것이다. 모호한 관계가 겹쳐 있어서 분명한 확신을 내리거나 분별하기 힘든 인간의 세계. 그 속에서 햄릿은 “단 한 자루 단검이면 자신을 청산할 수 있을진대. 누가 짐을 지고 지겨운 한 세상을 투덜대며 땀 흘릴까?”라면서 죽는 게 차라리 편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럴지언정 햄릿은 계속해서 고민한다. 이 고민은 그 자체로 인간 세계의 불확실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이에 비해 고민이 해결되는 방식은 다소 밀도가 떨어진다. 우선 복수하기에 햄릿은 허약하다. 그는 스스로도 ‘허약함’과 ‘우울증’이 있음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광기’를 빌려서야, 즉 미친 척하고서야 겨우 속마음을 내비칠 정도다. 그래서 오랜 고민 끝에 행해지는 햄릿의 복수는 어이없게도 ‘우연히’ 이루어진다. 레어티즈(연인인 오필리아의 오빠)와 결투를 하는 와중에 ‘우연히’ 왕(숙부)의 흉계를 알게 된 햄릿이 왕에게 칼을 휘두르고, 햄릿의 어머니는 독이 든 술잔을 ‘우연히’ 마시고 죽는다. 그리고 햄릿마저 죽게 된다. 이는 결국 햄릿의 인간적인 한계를 부각시키는 비극적인 결말 처리방식인 것이다. 그 누구도 확신을 던져주지 않고, 자기 스스로 생산할 힘도 없는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햄릿의 고뇌는 소중하다. 그는 인간이 처한 세계와 그 한계를 드러내고, 그 앞에서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고민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인간이라는 조건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읽어낼 수 있다. 고민하는 햄릿이 400년이란 시간 동안 사람들을 매료시킨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일견 무력해 보이지만, 가늘게 계속 이어지는 햄릿의 고민. 그래서 그의 고민은 자기 삶의 투쟁이기도 하다. 끝나지 않는 둥근 원의 투쟁이다. “투쟁은 둥근 원과 같다.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끝나지 않는다.” (멕시코 사파티스타 마르코스 부사령관이 펴낸 동화집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 중에서) 김연숙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사설] 국치 100년, 이제 한반도 주변 격변 주체 돼야

    어제로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겨 식민지로 전락한 국치(國恥) 100년을 맞았다. 36년의 일제 식민통치 기간 우리 민족은 존재를 깡그리 부정당했다. 비참한 처지였다. 이런 굴욕은 일제의 침략 야욕도 문제였지만 우리 민족 내부의 준비 부족에도 기인했다. 서구 제국주의가 세계 이곳저곳에서 정복 쟁탈전을 벌이던 19세기 후반 무능한 조선의 지배층은 눈과 귀를 닫고 국제정세에 무지했다. 뒤늦게 서구 제국의 힘을 빌려 일본의 야욕을 분쇄하려 했지만 미국과 일본, 영국과 일본 등 제국주의 국가 간 뒷거래에 무참하게 농락당하고 말았다. 일제 패망 뒤엔 남북으로 분단됐다. 오늘 한반도 주변 국제 정세는 격변의 소용돌이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100년을 제외하고 민족사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쳤던 중국이 올 2분기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미국과 G2(양강 체제)를 형성했다. 중국은 한반도 안보에 열쇠를 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정면으로 시비를 걸고 있다. 자연 한·미, 북·중 대결 구도가 고착화되고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올해 두 번째 정상회담은 한·미와 북·중 간 대결구도 심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북한과 중국의 접근에 미국은 이번 주초 추가 대북 금융제재 조치를 발표하는 등 한반도 주변 동아시아에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한반도 주변 격변에서 이번에는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야 한다. 면밀한 정세분석을 통해 빈틈없는 질서 재편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정세를 이끌 외교전략을 펴자. 100년 전 국치의 굴욕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 교훈을 살려내야 한다. 특히 북한이라는 변수는 오늘 대한민국 외교에서는 숙명이다. 정부나 국민 모두가 정신 바짝 차리고 북한과 중국의 접근을 포함한 동아시아 격변에 주체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국가의 치욕, 더 이상은 안 된다.
  • [서울광장]한국, 장기판의 卒은 안 된다/이춘규 논설의원

    [서울광장]한국, 장기판의 卒은 안 된다/이춘규 논설의원

    내일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 조상들은 100년 전 제국주의 국가들의 잔인한 정복 쟁탈전에 휘말렸을 때 무기력했다. 인재도 없었다. 국제정세에 무지했다. 자체 방어를 위한 군사력도 약했다. 재정은 거덜났다. 결국 미국, 일본, 영국의 식민지 나눠먹기 제물이 되었다. 강국들에 무참하게 농락당하다 나라를 잃고 말았다. 한반도는 ‘동아시아 장기판’의 졸(卒) 신세였다. 1907년 주한 영국 총영사였던 헨리 코번은 우리의 처지를 강국 일본, 러시아, 중국 세력의 틈바구니에 끼여 고통받는 장기판의 졸에 비유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당시 미 대통령은 무력한 나라들을 문명국의 합법적인 먹잇감이라고 했다. 미국인들은 조선인을 퇴화한, 몰락중인 인종으로 봤다고 ‘임페리얼 크루즈’(프리뷰)라는 책이 소개했다. 미국과 일본이 각각 필리핀과 대한제국 지배를 용인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굴욕의 결정판이었다. 고종은 미국·일본의 나눠먹기를 전혀 몰랐다. 미국을 형님 같은 나라로만 생각했다. 1905년 을사늑약 두 달 전까지 미국에 애처롭게 매달렸다. 일본과 비밀거래를 계속한 미국은 을사늑약을 묵인, 조장했다. 그리고 일본의 대한제국 통치를 인정한 첫 번째 나라가 된다. 국제외교는 비정했다. 일본은 어땠던가. 17세기 초부터 쇄국정책을 펴면서도 네덜란드에만은 나가사키의 작은 섬에서의 교역을 허용, 세계정세를 계속 파악한다. 외교전을 통해 19세기 말 근대화를 단행, 부국강병책으로 제국주의 열강 일원이 됐다. 비백인, 비기독교 국가로서는 유일한 제국주의 국가였다. 인접국을 집어삼키며 욱일승천했다. 태평양전쟁 패전으로 엄한 대가를 치렀지만 경제외교력으로 부활했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 국가에 외교는 중차대하다. 외교력은 경제력, 국운을 좌우한다. 2008년 경제위기는 외교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유일 초강대국 미국 중심 외교시대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 주요 20개국(G20)이라는 다극화 구조도 시동을 걸었다. 미국에만 외교를 의지해서는 안 될 시대다. 국익에 따른 치열한 합종연횡이 전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합종연횡의 시대, 외교무대에 천사는 없다. 긴장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 변수라는 숙명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싸움 속에서 힘겨운 줄타기 외교를 해야 한다. 리비아, 이란 제재 문제 등 절박한 외교적 선택을 해야 하는 팍팍한 처지다. 오늘도 국제외교 현장에서 속내를 감춘 채 미소짓는 비정한 외교전을 수시로 체험하고 있다. 정복 쟁탈전은 없지만 외교전은 여전히 살벌하다. 우리는 100년 전 처참한 굴욕을 당했다. 그 굴욕을 씻기 위한 노력이 아직도 부족한가. 많은 유학생과 상사원들이 세계로 나가 국제정세 흐름 파악은 빠르다. 하지만 자원확보 경쟁 등 경제외교를 포함한 총체적인 외교력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 경제외교전을 펼 촉수인 기업과 배후지원을 할 외교관의 협조 체제가 미약하다. 외교의 일관성, 정교함, 치밀함을 보강해야 한다. 장기전략에 따른 외교를 해야 한다. 21세기 원대한 외교 전략이 세워져야 한다. 정권이 바뀐다고 외교 정책의 큰 틀이 바뀌는 일은 최소화해야 한다. 냉정하게, 기민하게 국제정세 변화를 파악해야 한다. 일관성 있는 외교정책만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는다. 지역전문가를 키워야 한다. 외교관 선발과 양성에 아낌없이 투자, 외교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 한반도 주변정세의 변화 속도가 빨라졌다. 100년 전처럼 오늘날 외교현장에도 천사 같은 미소가 넘친다. 미소 뒤에는 여전히 날카로운 비수가 숨겨져 있다. 그 시절 미국은 대한제국을 속였다. 등에 비수도 꽂았다. 결국 일본도 속였다. 각국이 속고 속이는 외교전은 여전하다. 지금 외교 현장에서 미소 뒤에 숨겨진 비수는 없는지 살펴야 한다. 한국이 다시 장기판의 졸 신세가 되어서는 안 된다. taein@seoul.co.kr
  • [서울광장] 자유의 여신상과 광화문 해태/김성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자유의 여신상과 광화문 해태/김성호 논설위원

    뉴욕 자유의 여신상이 건립 125주년을 맞는 내년 10월부터 1년간 폐쇄된다고 한다. 화재에 대비한 별도의 비상계단을 설치하려 관광객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막는단다. 보통 하루 최대 3000여명꼴로 관광객이 찾아들고, 정상부분인 왕관까지 오르겠다는 예약자가 11월까지 밀려 있다는데. 뉴욕의 상징이자 미국 대표 아이콘을 보려는 탐방객들에겐 서운한 소식이겠다. 2001년 9·11테러 때 한 차례 폐쇄된 뒤 2004년 재개방했지만, 건립 125주년에 맞춘 폐쇄 조치는 특별한 것으로 보인다. 자유의 여신상이 세계적 명성과 인기를 끄는 건 의미와 역사성 때문이다. 프랑스 국민들이 미국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기증한 선물이 아닌가. 프랑스에서 장장 9년여의 제작기간을 거쳐 1886년 지금의 자리인 리버티 아일랜드에 세워진 ‘세계를 밝히는’ 자유의 여신상. 건립 후 16년간 뉴욕항의 등대로 쓰인 이후 1세기에 걸쳐 ‘아메리칸 드림’의 선봉 역을 했으니 이름 값은 톡톡히 한 셈이다. 미국 최대도시 뉴욕의 상징이 자유의 여신상이라면 한국 수도 서울의 상징은 광화문 해태상이다. 많은 이들에겐 존재감도 없지만 서울시가 2008년 공식 선정한 대표상징이다. 광화문 전면 양쪽에 얼굴을 약간 돌린 채 마주 선, 사자를 닮은 형상. 일반적으로 독특한 동물상쯤으로 인식되지만 조선 정궁 경복궁 창건 때부터 궁내 곳곳에 세웠던 수호상이다. 화기(火氣)를 제압한다 해서 불기운이 강한 관악산을 노려본다는 풍수지리설이 회자된다. 고래로 부정한 사람을 보면 뿔로 들이받는 신수(神獸)로 여겼다니, 서울시가 상징으로 꼽은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 해태상이 서울의 상징이란 사실 말고도 그것에 담긴 의미를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경복궁 정문 광화문 앞에 세운 수호의 신수를 말이다. 일제에 의해 격하, 훼손된 조선 정궁 수난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표 증거인데도 관심에선 철저히 비켜난 소외의 상징이다. 이 땅이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뒤 경복궁 구석으로 이리저리 옮겨지면서 거듭 손상된 천덕꾸러기. 박정희 정권 시절 광화문 앞에 다시 세웠다지만 원 자리에선 멀었고 경복궁 복원공사로 또 옮겨졌다가 지난 15일 복원된 광화문 공개와 맞물려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 광복절 65주년 기념식 식전행사로 성대히 열린 광화문 현판 제막식에서도 그 수호상인 해태상은 관심 밖이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서울의 상징이라는 위상이 무색하다. 125년 만에 방재설비 설치를 이유로 폐쇄되는 뉴욕 상징 자유의 여신상과 145년 만에 제자리에 복원된 서울 상징 광화문 해태상.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만큼의 근황을 알리는 자유의 여신상과 복원사실조차도 감감한 해태상의 대비가 씁쓸하다. 따져보면 독립기념 선물에 불과한 자유의 여신상과 우리 자신의 정신이며 삶의 양식이 밴 문화재 해태상 중 어느 것이 더 값질까. 19세기말 20세기초반 외국인이 촬영해 남긴 서울의 풍경사진에선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는 광화문 해태상이다. 한 세기 전 이미 서울의 상징이었던 우리만의 문화재가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세태가 서럽지 않은가. 문화재의 복원은 외양 복구에 그치지 않는 정신의 부활이다. 화려한 모습의 환원을 만족해하고 반길 게 아니라 어두운 역사의 그늘을 챙기자는 말이다. 서울의 상징 해태상을 들여다보자. 아니, 수도 복판에 어렵사리 다시 선 수난과 오욕의 상징, 해태상만이라도 찬찬히 뜯어보자. 광화문 현판 제막식에서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복원된 한국역사의 아이콘(광화문)이 우리 국민의 자긍심과 역사의식을 고취할 것”이라고 했다. 번듯한 외양에 가려진 소외의 천덕꾸러기가 더 없는지 찾아볼 일이다. 시비 선악을 판단한다는 상상의 동물 해태는 왕의 재판이 공정하게 행해지는 시대에 나타난다고 한다. 인사청문회가 한창이다. 자고나면 불거지는 비리와 불·탈법의 혼탁함 속에서라도 해태상을 한번 쳐다봄이 어떨지…. kimus@seoul.co.kr
  • 후세인·부시·빈 라덴 ‘노예’ 되다

    후세인·부시·빈 라덴 ‘노예’ 되다

    웅덩이에 빠진 육중한 유조차를 10여명의 남자가 힘겹게 끌고 있다. 유조차에는 다국적 석유기업의 로고가 선명하다. 좀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니 맨 앞에서 줄을 끄는 세 남자의 얼굴이 낯익다. 사담 후세인, 조지 H 부시, 오사마 빈 라덴이다. 이들 앞에는 노트북 컴퓨터가 놓여 있고, 화면 가득 유가(油價) 그래프가 펼쳐져 있다. 설치작가 진기종(29)의 디오라마(diorama) 작품 ‘걸프만의 노예’이다. 디오라마는 박물관의 입체모형처럼 배경 위에 모형을 설치해 하나의 장면을 만드는 기법이다. 걸프만의 석유를 둘러싸고 쟁탈전을 벌였던 세 인물을 노예로 묘사한 이 작품은 19세기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의 ‘볼가강의 배끄는 인부들’에서 아이디어를 빌렸다. 작가는 “처음 산 화집이 레핀일 정도로 좋아하는 화가이기도 하지만 그림 속 배를 유조차로 바꾸면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이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각종 환경 재앙을 디오라마로 표현 ‘걸프만의 낭만’은 훨씬 드라마틱하다. 파도가 몰아치는 해안에서 연인으로 보이는 커플이 손을 잡고 거센 물결을 피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름통에서 흘러나온 석유로 바다는 온통 검은 빛이다. 오염 이전의 바다를 상징하는 듯한 남자의 푸른 웃옷과 죽은 바다를 애도하는 듯한 여자의 검은 옷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2008년 첫 개인전 ‘온에어 시리즈’에서 미디어의 허상을 다룬 비디오 설치작업으로 주목 받았던 진 작가의 두번째 개인전 ‘지구 보고서(Earth Report)’가 서울 사간동 갤러리16번지에서 열리고 있다. 제목에서 보여지듯 전시는 지구가 처한 각종 환경 재앙을 주제로 삼고 있다. 사회 현실에 대한 시선이 미디어에서 환경으로 옮겨오면서 작업 방식도 달리했다. 주로 해오던 비디오 작업 대신 전통적 수작업인 디오라마를 택했다. 박물관·과학관의 디오라마가 과거나 미래의 시대상을 재현하는 것처럼 작가는 기름 유출로 인한 바다 오염, 아마존의 정글 파괴, 지구 온난화 등 환경 문제가 야기하는 지구의 현재와 미래를 디오라마로 표현했다. 아마존 숲을 갈아엎는 트랙터, 조각난 작은 빙하에 위태롭게 몸을 지탱하고 있는 북극곰 모자, 해수면 상승으로 섬이 된 미국 할리우드 마운틴 등을 마치 하늘에서 항공사진 촬영한 것처럼 반부조로 작업했다. 방사능 노출로 인한 기형아와 기형 물고기를 흰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각 작품도 눈길을 끈다. ●“나는 환경보호론자가 아닙니다” 환경단체에서 반색할 만한 작품들이지만 정작 작가는 “나는 환경보호론자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환경 재앙의 현장을 재현하고 기록할 뿐 교훈이나 계몽을 목적으로 하진 않는다는 얘기다. “중립적인 위치에서 작업할 때 관객이 해석할 여지가 더 많아진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강원도 춘천이 고향인 작가는 고교 2년 때 반 친구를 따라 만화를 그리면서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 대학에서 환경조각을 전공했지만 사진과 비디오 작업을 더 많이 했다.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모색’전 등에 참여하며 국내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대학 때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호기심이 많은 작가의 성격은 작업방식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매번 새로운 재료와 매체의 실험을 즐긴다. 평소 디제잉(Djing)을 즐긴다는 그는 다음 개인전에선 ‘사운드 퍼포먼스’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새달 19일까지. (02)722-3503.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돌아오는 조선왕실의궤는

    돌아오는 조선왕실의궤는

    조선왕실의궤는 왕실의 혼사, 장례, 잔치 등 주요 의식과 행사 준비과정 등을 상세히 적고 그림으로 만든 문서이다. 조선은 1392년 건국 초기부터 의궤를 만들었지만 임진왜란으로 모두 소실됐고, 현재 전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601년(선조 34년)에 만들어진 의인왕후 장례에 대한 것이다. 주로 19세기에 제작된 것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궁내청이 보관 중인 조선왕실의궤는 1922년에 반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이 처음 알려진 것은 천혜봉 한국해외전적조사연구회장이 2001년 궁내청 도서관 격인 서릉부를 조사한 뒤 발행한 ‘해외 전적 문화재 조사 목록-일본 궁내청 서릉부 한국본 목록’을 통해서다. 국내 시민단체인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는 현재 궁내청에 81종 167책이 보관돼 있다고 주장해 교도통신이 궁내청을 인용해 보도한 책의 숫자(80종 163책)와는 차이가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고전톡톡 다시읽기] 마르크스 ‘자본’

    [고전톡톡 다시읽기] 마르크스 ‘자본’

    시간의 이빨로도 씹을 수 없고 역사의 위장으로도 소화시킬 수 없는 책들이 있다. 출간된 지 150년이 되어가는 칼 마르크스(1818~1883)의 위대한 책 ‘자본’(1867)이 그 중 하나다. 역사학자 홉스봄은 ‘자본의 시대’에서 ‘자본주의’라는 말은 1860년대 등장했으며 무엇보다 ‘자본’의 출간이 중요했다고 지적했다. 마르크스의 ‘자본’이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서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홉스봄의 언급을 참고할 때, ‘자본’은 자신이 논박할 적으로서의 우리 시대, 즉 자본주의를 개념적으로 먼저 정초한 셈이다. 다시 말해 ‘자본’의 비판 덕에 우리는 ‘자본’을 명명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추리소설 같은 전개방식 ‘자본’의 전개방식을 보면 흡사 추리소설의 느낌을 준다. 실제로 ‘자본’을 소설처럼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첫 장면은 상품이 가득 쌓여 있는 시장이다. 상품들은 이마에 제 가치를 붙이고 있다. 저 가치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부(富)는 도대체 어떻게 증식되는 것일까. 마르크스가 자본의 비밀을 파헤치는 장면은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밀실 살인과도 같다. 자본은 “유통 안에서 생겨날 수 없지만 유통 밖에서도 생겨날 수 없다./…/상품은 가치대로 교환되어야 하지만 어떻든 과정이 끝나면 잉여가치가 생겨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시장을 돌아다니던 마르크스는 독특한 상품, 바로 노동력이 거래되는 장면에서 유능한 탐정처럼 어떤 냄새를 맡는다. 노동력의 매매자들을 따라 마르크스가 우리를 안내한 곳은 ‘관계자외 출입금지’라고 쓰인 공장이다. 거기서 그는 정가를 치르고도 잉여를 챙길 수 있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에서만 가능한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가 밝혀낸 바 잉여가치란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력의 사용이 만들어낸 가치의 차이다. 자본가는 이 차이를 극대화하려고 온갖 짓을 다하고, 그의 탐욕 때문에 공장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공포의 집’으로 돌변한다. 노동자들의 필사적인 저항과 표준노동일의 제정, 기계제 생산의 도입. 다시 새로운 실업과 과로의 확산. 마르크스가 방대한 보고서를 인용하며 뛰어난 필치로 그려낸 19세기 지옥도는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더구나 마르크스는 이 끔찍한 지옥이 불운한 한 노동자의 우연한 비극이 아니라 자본의 천국을 떠받치는 필연적인 구조임을 밝혀낸다. 어느 날 시장에서 노동력을 판 뒤 공장에서 과로한 노동자는 다음 날 어김없이 시장에서 자기를 인도할 자본가를 또 기다린다. 오늘 온 노동자는 어제 왔던 노동자이고, 어제 아버지 노동자가 왔다면 내일은 아들 노동자가 올 것이다. 한 노동자가 한 자본가를 만나는 것은 우연일 수 있지만, 집합으로서 노동자는 살기 위해 반드시 자본가를 만나야 한다. 자본의 재생산은 노동력의 재생산을 전제하는데, 이 노동력의 재생산은 노동할 영양과 건강의 재생산일 뿐만 아니라, 노동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의 결핍과 빈곤의 재생산이기도 하다. 오늘의 가난이 내일의 노동력 판매를 요구하며, 아버지의 가난이 아들의 노동력 판매를 요구한다. ‘자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축적이 가능한 것은 그만큼의 가난 또한 축적되기 때문임을 폭로한다. ‘자본’은 이 점에서 19세기 자본주의의 성실한 증언자이자 정의로운 고발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뿐일까. ‘자본’이 ‘시간의 이빨’을 부러뜨리며 독자를 계속해서 낳는 이유, 그것도 교양인의 안락한 서재가 아니라 긴장이 고조된 투쟁 현장에서 제 분신을 계속해서 낳는 이유 말이다. ‘자본’의 가치가 ‘시대적인 것’에 있다면, 아마도 누군가는 19세기 노동가치설의 문제를 지적하는 식으로, 또 누군가는 오늘날 금융 기법이 마르크스가 분석한 ‘은행자본’이나 ‘신용제도’ 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음을 보임으로써 ‘자본’의 한계를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자본’이 어떤 영원성을 갖는다면 그 이유는 결코 ‘시대적인 것’에 있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대를 파악하면서 곧바로 ‘반시대’를 형성했다는 사실에 ‘자본’의 더 큰 위대성이 있는 게 아닐까. 시대에 반대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시대로 포섭되지 않는, 더 나아가 시대의 극복을 의미하는 ‘반시대’ 말이다. 역사가 꼬이는 방식이 풀리는 방식을 말해주듯, 마르크스는 시대를 가능케 하는 형태 속에서 그것의 해체 형태를 발견한다. ‘자본’은 자본주의의 멸망에 대한 공허한 저주가 아니다. ‘자본’이 정작 보여주는 것은 자본주의가 고유한 위기 속에서만 발전한다는 것, 자본주의는 발전을 위해서도 그 위기를 키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가 근거하는 토대 아래 모순과 역설, 위기와 공황의 심연이 있음을 ‘자본’은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최근 유럽에서 ‘자본’의 판매량이 늘고 일본에서 그 해설판이 수십만부 팔린 것은 결국 마르크스가 옳았다는 뒤늦은 자각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근거가 와해되는 어떤 징후일 것이다. 우리가 믿음을 주고 꿈을 맡겼던 우리 시대의 근거들이 근거 없는 것으로 폭로되고, 부의 천국 옆에 감춰둔 빈곤의 지옥이 더 이상 가려질 수 없을 때, 투쟁하는 모든 힘들은 말 그대로 ‘근거 없이’ 회귀한다. 모순과 역설이 드러나고 위기와 공황이 발발하며, 사람들은 거대한 채찍을 맞은 정신처럼 꿈에서 깨어난다. ●“비판, 과학보다 근본적” ‘자본’의 부제 ‘정치경제학 비판’에 들어 있는 ‘비판(Kritik)’의 참된 의미가 여기에 있다. 마르크스는 ‘비판’을 ‘과학’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는 ‘무자비한 비판’이라는 말을 곧잘 썼는데, 그것은 현존하는 모든 것들의 토대를 문제삼되 그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이다. 과학이 근거의 영역이라면, 비판은 근거의 ‘근거 없음’을 지적하며 심연에 이르는 일이다. 그곳은 ‘앎’이 아니라 ‘앎의 의지’가 드러나는 곳이고, ‘과학’이 아니라 ‘과학의 당파성’이 정립되는 곳이다. ‘자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기서는 ‘권리와 권리’, ‘올바름과 올바름’이 투쟁하며 오직 힘만이 문제를 해결한다. 과학 이전에 입장이 있다. ‘자본’은 시대와 독자에게 그것을 묻는다. 우리 모두는 불편하지만 말해야만 한다. 자신의 입장과 계급성을. 그 어느 책이 시대와 독자를 이토록 괴롭힐 수 있을까. ‘자본’, 참으로 위대하고도 고약한 책이다. 고병권 수유+너머R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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