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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의 性’ 밝고 개방적이었다

    ‘조선의 性’ 밝고 개방적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정말 성(性)이 억압당했을까. 성리학적 세계관을 생각하면 답은 “그렇다.”이다. 그러나 위선적인 도덕률 밑에는 언제나 욕망의 탈주가 깔려 있는 법. 반론은 딱 한마디면 된다. “하지 말란다고 진짜 안 했겠나.” 영화감독 김대우는 이 부분을 파고들었다. 전작 ‘음란서생’에서는 밤마다 저잣거리 세책점(오늘날의 도서대여점)에 하녀들을 내돌려 ‘흑곡비사’ 따위의 야한 소설을 구해다 읽는 주인 마님들의 독후감 장면을 담았다. 개봉작 ‘방자전’은 춘향 모독 논란이 있다지만, 정색하고 화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춘향전은 다양한 판본이 전해지는데 후대의 것일수록 춘향의 신분이 기생에서, 기생의 딸로, 다시 주막집 딸로 업그레이드됐다는 연구도 있다. 하룻밤 놀잇감에 불과한 천한 기생 따위가 지체 높은 양반과 진짜 사랑을 한다는 것은 조선에서는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 세월이 흐르면서 질펀한 육욕과 신분적 차이가 희석됐을 것이란 추론이다. 서구에서도 그림 형제가 정리한 동화의 판본별 변화를 추적, 분석한 연구가 많다. 연구들에 따르면 원래 민담 수준에서는 남녀의 성기와 야합을 직접 거론하는 등 더 적나라했으나 정리 과정에서 빠지거나 부드러워졌다는 것이다. 가령 백설공주는 어려서부터 뽀얀 피부로 친아버지를 매혹시킨 근친상간의 팜므 파탈이었고, 개구리 왕자 도입부에 공주가 공(ball)을 가지고 노는 장면은 나른한 궁 생활에 지친 공주의 자유분방한 성생활 탐구를 뜻한다는 등의 분석이다. 오늘날 그림 형제의 동화가 말 그대로 얼마나 동화스러운가를 보면, 금욕을 내건 성리학의 조선에서, 더구나 비인간적인 예학을 강요하다시피 한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얼마나 많은 성에 대한 기록들이 사라져 갔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논의에 관심있다면, 1일 오후 4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소에서 열리는 강연을 챙겨볼 만하다. 소메야 도모유키 일본 이바라키 그리스도교대학 교수가 ‘조선시대의 음담, 밝은 성의 세계-한·일 자연관의 차이에 근거하여’라는 제목으로 강연한다. 소메야 교수는 2008년 후쿠오카의 한 고서점에서 ‘기이재상담(紀伊齋常談)’이란 책을 발굴했다. 상담(常談)은 민가의 얘기라는 뜻이고 ‘기이재’의 뜻은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조선 땅에 떠돌던 음담패설 모음집 같은 것인데, 19세기 말~20세기 초쯤 조선말을 배우려는 일본인들이 교재로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포르노 덕분(?)에 일본어 지식이 늘어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책에는 학질을 치료한다는 핑계로 비역질(동성애)을 즐기거나, 관리가 민가의 아낙네를 당당하게 겁탈하기도 하고 부인이 남편을 두 명씩 두기도 했다는 등의 얘기가 우스갯소리처럼 실려 있다. 책은 최근 ‘조선의 음담패설’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소메야 교수는 강연에 앞서 내놓은 초록에서 “조선 때는 밝고 개방적이고 해학적인 성 문화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예로부터 한국에는 발달한 성 문화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소메야 교수는 “서민을 중심으로 (성 문화가) 문예화되거나 향수(享受)되어 온 게 아닌가 싶다.”면서 “(이런 연구가 축적되면) 유교적 이념적 문화가 중심이 되는 한국의 기본적 이미지에 큰 변혁을 재촉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으리들의 고결한 금욕주의는 책에나 있었다는 얘기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열린세상] 검찰과 경찰,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성낙인 서울대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열린세상] 검찰과 경찰,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성낙인 서울대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전·현직 검사들의 소위 ‘스폰서’ 파문으로 수십명의 검사들이 집단적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는 특별검사법까지 제정하여 검찰은 사상 유례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 검찰은 공익의 대변자로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는 그야말로 형사사법체계상 막강한 권력기관이다. 바로 그 때문에 검찰은 다른 그 어느 공직보다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이 요구된다. 그런데 검찰 수사권의 일부 양수를 통한 수사권독립 논쟁의 주체가 돼야 할 경찰도 비리에 휩싸여 있기는 매한가지다. 서울의 심장부인 강남 유흥업소를 주름잡으며 수년간 천문학적인 세금을 포탈한 사람이 법의 그물망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다. 조직적인 은폐가 없었다고 믿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사건 현장의 초동수사단계에서 인신보호의 현장이라 할 수 있는 경찰서에서 발생한 고문사건은 강압적인 자백 확보라는 전근대적인 수사단계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수년전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조직폭력배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발생한 고문치사사건으로 현직 검사가 구속되는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고문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경찰은 수사권독립뿐 아니라 경찰관직무집행법을 개정하여 불심검문(不審檢問)을 강화하려 한다. 모든 국민들을 잠재적 피의자로 전락하게 하는 불심검문은 오히려 축소해야 한다. 여기에 더하여 국무총리 산하 공직자윤리지원관실은 공직자에 대한 감찰을 넘어서서 민간인에 대하여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는 동영상을 올렸다는 이유로 불법사찰을 자행하여 새삼 국민적 분노를 자아낸다. 지금은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해서 비밀에 가려져 있지만 한때는 소위 청와대 사직동 팀이라는 곳에서는 정상적인 경찰조직과는 완전히 절연된 채 청와대 부속 경찰조직으로 대국민 사찰을 자행한 적도 있다. 권위주의 시절 국민들은 정보기관으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한 아픈 추억을 잊지 못한다. 지금의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는 우는 아이의 울음도 그치게 했다고 할 정도로 국민생활에 깊숙이 개입한 무서운 존재였다. 군사정보의 수집과 분석을 담당해야 할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도 민간인 사찰에 개입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들은 경찰, 검찰뿐 아니라 관공서나 민간기관까지 출입하면서 불법적인 개입을 자행한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민주화 이후에 국정원이나 기무사 같은 특수정보기관이 제자리로 돌아간 공백은 경찰과 검찰의 몫이 됐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특수정보기관의 개입은 경찰과 검찰에 대한 견제기관의 역할을 일정부분 수행한 긍정적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특수정보기관이 떠난 자리를 독차지한 경찰과 검찰이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새삼 제3의 통제기관 창설 논의가 제기된다. 우선 검·경의 내부감찰을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껏 검·경이 보여준 제 식구 감싸기 식의 내부감찰에 국민들은 식상해한다. 그렇지만 내부감찰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검·경의 특성상 외부감찰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도저도 안 되면 결국 제3의 외부통제기관을 신설할 수밖에 없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변호사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의 신설에 찬성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에 독점적 사정기관인 검·경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새로 창설될 조직이 현행 형사사법체계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옥상옥의 우려를 피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객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내부감찰제도의 정립이 필요한 이유다. 이제 검·경에 자체 정화의 마지막 기회가 부여되었다. 스스로 정화하지 못하면 결국 외부의 손길이 미치기 마련이다. 국가의 기본적 책무는 19세기 야경국가가 단적으로 적시하는 바와 같이 공공의 안녕질서의 유지에 있다. 그런데 공안의 사령탑인 검·경이 무너지면 결국 국민들만 불편해진다. 이제 검·경은 자세를 가다듬고 새출발을 하여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안심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 발터 베냐민의 마지막 여정

    발터 베냐민의 마지막 여정

    최근 ‘아케이드 프로젝트(Das Passagen Werk)’가 잇따라 번역 출간되면서 단순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일원을 넘어 일급 문화비평가로 도약하고 있는 발터 베냐민(1892~1940)을 조망해볼 수 있는 전기가 나왔다. ‘벤야민의 마지막 횡단’(제아 파리니 지음, 전혜림 옮김, 솔 펴냄)은 베냐민의 전기이되 소설 형식을 빌렸고, 전 인생을 다루기보다 피레네 산맥을 오르기까지의 마지막 여정에 집중했다. 게르숌 숄렙, 리사 피트코, 아샤 리시스, 해나 아렌트,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 베냐민을 아꼈던 주변 사람들의 증언 위주인 데다 베냐민의 어록이나 연구메모, 편지 등을 배치해 사실성을 높였다. 유태인이었던 베냐민은 2차 대전 때 나치의 핍박을 피해 스페인 국경의 피레네 산맥을 넘다가 음독자살한 비운의 학자. 베냐민이 집중했던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19세기 세계의 수도로 불렸던 프랑스 파리에 조성된 대형 회랑식 쇼핑몰에 대한 연구다. 당시 파리에 조성된 아케이드는 20세기 기준으로 보자면 19세기의 건물로, 이미 낡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베냐민은 아케이드 건축 자체를 일종의 근대적 욕망이 탄생하는 순간으로 보고 아케이드의 빛과 어둠을 파고들었다. 베냐민은 이 프로젝트에 10년간 매달렸으나 자살 때문에 완성하지 못한 채 미완의 메모 더미만 남겼다. 어쩌면, 연구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묵시론적인 문화비평 텍스트로 더 주목받는지 모를 일이다. “모든 문장들이 난해하고 인상적이야. 기억해야 할 문구들이 너무 많아.”라는 아샤 리시스의 남편 베른하르트의 말처럼 베냐민의 어려운 문체도 한몫 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우리는 우유부단하고, 이기적인데다 무심하고, 때론 여자들에게 매혹돼 어쩔 줄 몰라하는 베냐민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베냐민은 아케이드 안에서 욕망과 반역의 경계선이랄 수 있는 문지방(Schwelle)에 주목했을는지 모른다. 제목에 ‘횡단’이 들어간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유럽 민주혁명의 신화는 없다

    영국, 프랑스, 독일 3개국의 민주화 과정을 추적한 ‘유럽 민주화의 이념과 역사’(후마니타스 펴냄)는 일종의 우상파괴다. 투쟁과 승리로 채색된 서구 근대화가 실은 지리멸렬한 타협의 산물이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군부독재의 역사 때문에 마르크스의 투쟁적 관점이 주류를 이뤄온 우리 민주화 진영에 새로운 관점을 제기하는 것이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민주화연구팀의 학술논문을 대중적인 필체로 풀어쓴 책으로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책임편집을 맡았다. 강 교수는 몇 해 전 한 세미나에서 “군부세력이 질서정연하게 퇴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는 이유로 1987년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결과론적으로 노태우정권이 급진적 민주개혁으로 인한 혼란 가능성을 완충해줬다는 얘기다. 이런 관점은 영국과 프랑스의 사례 분석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화용 박사는 19세기 선거법 개정을 영국 민주화의 주요 변곡점으로 삼는다. 17세기 명예혁명이나 20세기 남성 보통선거권 확립보다 1832년, 1867년 두 차례 선거법 개정에 주목하는 이유는 국교회가 누리던 특권이 종교적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비국교도들에게 점차 허용되기 때문이다. 영국 민주화의 키워드는 계급 갈등보다 종교 갈등이라는 얘기인데, 여기서 이 박사는 보수당마저 종교 갈등을 풀기 위해 선거권 확대를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동 대신 대세 순응의 길을 택함으로써 스스로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불만이 노동당을 극좌노선으로 밀어붙이는 현상을 막았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민중의 힘에 떠밀려 이뤄진 어쩔 수 없는 조치, 혹은 이웃나라에서 목도한 군중의 힘이 두려워서 취한 선제적 정책결과라기보다, 중도 개혁성향의 정치 리더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홍태영 박사는 1789년 프랑스혁명을 프랑스 공화주의의 뿌리로 삼되, 그 해석이 다르다. 기존 해석이 민중의 휘황찬란한 승리에 대한 상찬이라면, 홍 박사는 “1789년 혁명을 통해 살해된 ‘부친’에 대한 형제들의 죄의식은 결코 새로운 ‘양부’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고 형제애의 공화국을 고수했다.”고 표현했다. 왕의 목을 친 데 대한 죄의식 때문에 그에 따른 책임을 모두 나눠야 한다는 일종의 공범의식이 있었고, 이는 ‘혁명적 동지애’라는 말로 승화됐다는 것이다. 모든 개인은 인종, 성별 등과 무관하게 기계적으로 동등한 ‘추상적인 개인’으로 태어났다. 그렇기에 사회적 연대에 가장 적극적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부작용도 있다. 서구의 민주화 혁명이 그리 찬란하지만은 않았다는 이런 논의는, 그만큼 우리의 민주화가 다소나마 진전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벨기에 언어·경제격차 통합 시험대에

    벨기에 언어·경제격차 통합 시험대에

    지난 13일(현지시간) 실시된 벨기에 총선에서 북부 플랑드르 지역 분리독립을 목표로 하는 ‘새 플랑드르 연대’(NVA)가 연방하원 150개 의석 중 27개를 차지하며 제1당 자리를 차지했다. 플랑드르 지역에서 29.1%를 득표한 NVA에 이어 더 강경하게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극우 플랑드르이익당(VB)이 12.5%를 득표해 연방하원에서 12석을 차지하는 등 분리독립파가 약진했다. 이로써 다른 언어와 경제력 격차, 남북 지역갈등이 중첩되면서 위협받아 온 벨기에의 국가적 통합이 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AFP통신은 “NVA가 정치적 지각 변동에 불을 댕겼다.”고 표현했다. ●NVA 150석 중 27석 차지 연방하원에서 과반을 확보하려면 두 언어권 지역의 정당 4개 이상이 연합해야 하기 때문에 NVA가 집권당이 되더라도 당장 분리독립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NVA는 일단 지역정부 자치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벨기에의 구심력 약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연정구성이 늦어질 경우 총리도 없는 상태에서 다음달부터 유럽연합 순번 의장국을 맡아야 하는 망신을 당하게 된다. 벨기에에선 북부 플랑드르 지역(인구 650만명) 유권자는 플랑드르 지역 정당에만, 남부 왈롱 지역(인구 400만명) 유권자는 왈롱 정당에만 투표하며 수도 브뤼셀과 인근 지역의 브뤼셀-알레-빌보르데(BHV)에서만 양측에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다. 투표결과에 따라 인구비례로 플랑드르에 79석, 왈롱에 49석, BHV에 22석을 분배해 연방하원의회를 구성한다. BBC방송은 분리주의 정당이 약진한 데는 경제문제와 재정문제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이어 “벨기에의 의정활동 대부분은 언어문제와 공공자원 배분을 둘러싼 쓰디쓴 토론으로 점철된다.”면서 “부유한 플랑드르 지역에서는 연방정부가 상대적으로 빈곤한 왈롱 지역에 보조금을 내려보내는 것을 불만스러워했다.”고 보도했다. BBC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벨기에 정부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99%로 일본(192%), 싱가포르(118%), 이탈리아(115%), 그리스(113%)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 AFP통신은 디디에 레앵데 벨기에 재무장관이 “벨기에는 심각한 헌정위기와 재정위기에 직면해 있다.”면서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플랑드르와 왈롱 두 지역이 함께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4개언어·남북 격차 봉합에 주목 1830년 건국 이래 네덜란드어권의 북부, 프랑스어권의 남부, 두 언어가 함께 쓰이는 수도 브뤼셀, 독일어권인 동부 등 4개 언어권으로 갈라진 벨기에의 언어권 분리 역사는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벨기에 지역에는 왈롱어(프랑스어 계통)를 쓰는 켈트족이 살고 있었지만 3세기 북부지방에서 플라망어(네덜란드어 계통)를 쓰는 프랑크족이 침범, 켈트족은 남쪽으로 밀려났고 이때부터 북쪽은 네덜란드어권, 남쪽은 프랑스어권으로 굳어졌다. 19세기 초 프랑스 나폴레옹의 점령으로 왈롱어가 공식 언어로 지정됐지만, 이미 굳어진 언어 분리의 간격은 좁혀지지 않았고 1921년 북부지방은 플라망어가 공식 언어로 지정됐다. 이 과정에서 수도 브뤼셀은 두 언어 모두를 공용어로 채택했다. 남북 간 언어격차는 경제 격차가 심화됨에 따라 지역 반목을 심화시켰다. 14세기 후반 르네상스 시기부터 북부 지방에는 유럽 각국의 귀족 계층이 자리잡으며 상공업이 발전했고 남부 지방은 농업과 광산업에 의지하며 경제 규모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벨기에 정부는 뿌리 깊은 남과 북의 문화 차이를 수용하기 위해 1970년 이후 네 차례에 걸친 개헌을 통해 지방자치를 확대하는 개혁을 단행했지만 첨예하게 대립한 지역 갈등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강국진 박성국기자 betulo@seoul.co.kr
  • 어? 로비가 미술관이야!

    어? 로비가 미술관이야!

    소비문화 사회의 현대인에게 쇼핑몰 걷기는 산책이자 취미이다. 지상 및 지하 세계에 포진하고 있는 몰(Mall)은 19세기 전반 최고의 사치도시였던 프랑스 파리에서 귀부인들이 안락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건물을 통로로 이은 아케이드에서 유래했다. 요즘 서울의 아케이드를 장식하는 최고 인기작가는 박선기(왼쪽·44)와 이재효(오른쪽·45)다. ●숯과 나무 소재로 만든 친환경작품 낚싯줄에 숯을 매달아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는 박선기의 작품은 아시아 최대 백화점인 부산 해운대 신세계 센텀시티의 중앙 로비에 50m 거대한 규모로 설치되어 쇼핑객을 압도한다. 박선기의 조각은 서울 신라호텔, 웨스틴 조선호텔, 삼성 서초 사옥, 현대카드 본사 등 유명 호텔과 빌딩 로비를 장식하고 있다. 이재효는 나무를 잘라 동그란 공을 만들거나 못을 구부려 조각한다. 그의 작품 역시 서울 여의도 63시티, W서울 워커힐 호텔, 미국 MGM호텔, 스위스 인터컨티넨탈 호텔, 독일 베를린 그랜드 하얏트 호텔 등 세계 유명 빌딩과 호텔 로비에서 만날 수 있다. 2002년 이탈리아 밀라노 국립 미술원을 졸업한 박선기는 12년간 밀라노에서 살았다. 그는 8일 “대학 때부터 낚싯줄에 작품을 매달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팔리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건물의 로비가 높아지면서 작품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숯과 나무라는 친환경적 소재로 조각해 박선기와 이재효의 작품은 더욱 인기가 높다. 박선기는 “흥미롭게도 나라별로 숯의 의미가 다르다.”고 귀띔했다. 우리나라는 아이들이 이부자리에 오줌을 싸면 소금을 얻어오라고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숯을 얻어오라고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장식한 건물 로비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 어디냐는 질문에는 “장소와 작품이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곳이 아직 없다.”고 답했다. 홍익대 조소과를 나온 이재효도 2005년 다섯 번째 개인전을 열기 전에는 작품이 한 점도 팔린 적이 없다고 한다. 역시 조소과를 졸업한 아내와 함께 작은 장식 조형물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던 그는 “시대를 앞지르는 작가라기보다는 장식적 요소가 많고 호텔 실내장식이 유행을 많이 타다 보니 인기가 있는 듯하다.”고 겸손해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시대정신을 선도하지 못하고 있다기보단 시대와 잘 맞아떨어졌다는 것이 더 맞는 해석 같아 보인다. ●美·英·스위스 등 호텔·식당 로비에 이재효의 나무 조각이 전 세계 호텔 로비를 장식하게된 계기는 2004년 개관한 W서울 워커힐 호텔의 실내장식을 맡으면서부터다. 당시 인테리어를 맡은 외국인 디자이너 토니 치는 평소 눈여겨봤던 젊은 신인에게 호텔 로비를 과감히 부탁했고, 이재효는 나무 공을 미로처럼 설치해 W호텔을 꾸몄다. 결과적으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이색적인 나무 조각은 이후 미국, 영국, 스위스, 타이완 등의 호텔과 식당 로비에 들어서게 됐다. 두 조각가의 신작은 24일까지 서울 삼성동 인터알리아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전(02-3479-0114)에서 감상할 수 있다. 박선기는 숯을 매달아 화분을 창조했고, 합성 목재인 MDF로 원근법을 일그러뜨려 ‘시점을 유희’하는 조각 작품도 선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김미령 큐레이터는 “자본의 달콤한 꿈을 실현하려고 다투는 아케이드 풍경을 때로는 자양분으로 삼고 때로 비판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자 전시장을 또 하나의 아케이드로 재현했다.”고 밝혔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연극리뷰] ‘벚꽃동산’

    [연극리뷰] ‘벚꽃동산’

    통상적인 연극 작품에서 사람들이 보는 직사각형 형태의 무대 넓이가 1이라면, 그 무대 뒤에 숨은 공간은 3~4배인 3~4 정도는 돼야 한다고 한다. 그만큼 무대 위 한 장면을 위해 무대 뒤에서 준비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그리고리 지차트콥스키 연출의 ‘벚꽃동산’은 일단 이런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연극은 무대 뒷공간을 다 까발린다. 까발리되, 무대 앞쪽으로 기울어진 경사면 위에다 목조구조물을 대각선으로 크게 가로질러 입체적인 공간감을 극대화했다. 이는 무대 뒤 공간이 30m에 이르는 극장 특성 때문에 가능했다. 지차트콥스키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무대디자이너 에밀 카펠류시도 이런 극장이 흔치 않다는 점을 알고 매우 도전적으로 연출한 공간이라 한다. 여기다 대각선 건너편 무대를 그냥 버리지도 않는다. 무도회 등 몇몇 장면에서는 주요한 배경장면으로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영리함도 선보인다. 대각선으로 갈라진 무대를 두고 조명 등으로 강렬하게 표현한 명암대비, 깊은 공간감으로 인해 요새 유행하는 3차원(3D)처럼 관객들 시각에 확실하게 꽂히는 입체감과 원근감, 탁한 나무재질의 거대한 세트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등장인물을 찍어 누르는 듯한 느낌. 이는 19세기 말 제정 러시아라는 시공간적 상황에 가위눌린 채 발버둥치기 바쁜 개개인을 드러내기 좋은 장치로 보인다. 연극적인 맛 가운데 하나로 무대적 상상력을 꼽는다면, 흔히 접하기 어려운 이런 무대를 한번쯤 감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지차트콥스키는 연출의도를 설명할 때 ‘라넵스카야는 몰락하는 철없는 지주’라는 기존 해석에 반대하면서 40대의 아름답고 발랄한 여성으로 설정했다고 언급했다. 긍정적 인물이라는 것이다. 원작은 멀리서 벚꽃나무가 잘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연극을 마무리짓지만, 이번 작품은 비가 내리는 것으로 끝난다. 러시아에서는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 것을 굉장한 길조(吉兆)로 여긴다고 한다. 긍정적인 해석을 부각시키려 했던 연출자의 의도가 녹아 있는 셈이다. 그러나 무대는 이런 긍정적 해석을 삼켜 버린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백인 대지주의 결기를 드러내는 스칼릿 오하라의 엔딩 클로즈업 장면 같은 느낌을 라넵스카야에게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벚꽃동산’은 예술의전당이 엄선한 정극만 토월극장 무대에 올리는 ‘토월 전통연극’ 시리즈 12번째 작품이다. 13일까지. 3만~6만원. 1599-921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제18회 공초문학상] 공초&공초문학상

    공초(空超) 오상순(1894~1963)은 20세기 초반 한국 문단에서 고은, 김관식 등과 함께 기인(奇人)으로 꼽히는 대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하루 스무 갑씩 줄담배를 피웠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호에서도 자연스레 ‘꽁초’ 이미지가 떠오른다. 시 세계 역시 기행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곤 했다. 1920년대 ‘폐허’ 동인을 결성하며, 서구의 폐허 의식을 국내에 처음 설파한 이로 잘 알려져 있다. 허무와 동양적 운명주의를 담은 시 작품을 남겼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가 일본으로 유학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신지식인이라는 점은 상대적으로 묻혀 있다. 그는 세계 평등사상과 상호이해의 정신을 기조로 한 세계공용어 에스페란토를 가장 먼저 배워 국내에 보급했다. 인류의 평화를 궁극적 목표로 삼아 세계적 보편 종교를 지향했던 바하이교(19세기 바하 알라가 창시한 이슬람 계열의 종교)를 국내 최초로 소개했다는 사실도 지난해 처음 밝혀졌다. 오상순은 루쉰, 저우줘런 등 당대 해외 지식인들과도 지적 교류를 나눈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2년 그의 삶과 문학세계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공초문학상이 18년의 역사를 거치는 동안 신경림(1998), 오세영(1999), 김지하(2004), 성찬경(2006), 신달자(2009) 등 넓은 스펙트럼의 수상자를 배출한 것도 이런 시인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친일파의 조국애?

    친일파의 조국애?

    아무리 돌이켜봐도 안타깝기만한 역사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는 온 세상이 침략으로 해가 뜨고, 혁명으로 날이 지는 세계질서 재편의 시기였다. 그러나 청, 러시아, 일본 등 커다란 열강들의 틈바구니에 있던 작은 나라의 무기력한 왕과 가여운 백성들의 삶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총칼을 앞세운 침략을 받아들이기에는 자존감이 컸고, 맞서 싸우기에는 힘이 부족했고, 혁명을 준비하기에는 바깥의 변화 흐름을 턱없이 몰랐다. 100년이 훌쩍 지났건만 지금도 그 회한은 가시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만고불변의 매국노로 평가받고 있는 이의 가슴에조차 또 다른 조국애와 개혁의 열망이 있었을 것이라는 소설적 욕망이 피어올랐을까. 장편소설 ‘제국익문사(帝國益聞社)’(강동수 지음, 실천문학 펴냄)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명성황후 시해의 주동자 중 하나인 우범선(1857~1903)에 대해 단순히 개인의 영달을 꾀한 반민족적 친일파로서만이 아닌, 개화당 핵심 멤버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킨다. 실제 우범선은 을미사변 때 훈련대 대대장을 지내 일본 낭인들의 시해를 도왔지만,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서 국내 정치적으로는 공화제를 수립하고자 했던 철저한 개화주의자였다. 또한 육종학자인 우장춘(1898~1959) 박사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역사 속 우범선은 1903년 일본에서 조선인 청년 고영근에게 암살되지만, 소설 속에서는 중상을 입고 겨우 목숨을 구한다. 그리고 못다 이룬 공화정 수립의 꿈을 위해 활동한다. 이 과정에서 고종 직속 항일 첩보기관인 ‘제국익문사(帝國益聞社)’의 요원 ‘이인경’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인경의 아버지는 개화당으로 활동하다 참수된 인물로, 이인경은 갈등하면서도 끝내 아버지를 부정하고, 공화정의 흐름을 부인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1902년 설립된 ‘제국익문사’는 겉으로는 관보를 제작하는 통신사를 표방하지만 사실은 국내는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등에서 점조직으로 활동하며 고종에게 비서(秘書)로 보고해온 첩보기관이었다. 실제 이태진 서울대 교수가 제국익문사의 존재를 학계에 논문으로 제출하기도 했다. 규정집 ‘제국익문사 비보장정’과 함께 64명이 활동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렇듯 소설은 사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얽혀있다. 팩션(팩트+픽션)이다. 제국익문사 요원들이 박영효, 우범선 등의 정변 계획을 하나하나 추적해 분쇄해가는 과정을 추리소설 기법으로 그려냈다. 소설적 재미는 재미대로 좇아가는 한편, 소설 속에서 드러난 허구와 진실 사이를 따지며 역사적 사실 관계를 하나씩 챙겨나가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첫 번째 장편소설을 펴낸 강동수(49)는 “최근 TV 드라마, 뮤지컬, 영화 등을 통해 명성황후가 마치 민족 정기의 상징인 듯 비쳐지고 있는 점에 의문이 들었다.”면서 “일본의 범죄 등에 대한 민족적 분노는 당연하지만 개화당과 수구당의 대립과 갈등이 사건의 또 다른 배경이었음을 주목하고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화당과 수구당의 대립, 외세의 한반도 침투 과정, 그리고 정변으로 점철된 정치적 혼란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정리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면서 “개화파와 수구파가 모두 실패한 당시 상황에서 조선을 제대로 살릴 방법은 없었는지 따져보고도 싶었다.”고 말했다. 민족이라는 지상 명제에 파묻혀 환호하는 것도, 민족의 가치를 마냥 외면하는 것도, 그 어떤 것도 정답이 아니었다. 100년 전에도, 지금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잭팟/이순녀 논설위원

    4년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출장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세계 최대 카지노 도시란 건 알았지만 모든 호텔 로비에 수많은 슬롯머신들이 도열해 있는 걸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출국 전 ‘게임 같은 건 안 해야지.’ 다짐했건만 로비가 곧 게임장이다 보니 들며 나며 재미삼아 잠깐씩 슬롯머신 앞에 앉았다. 50센트짜리 동전이 말로만 듣던 잭팟(jackpot)의 행운을 가져다주길 은근히 기원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10달러짜리 지폐 몇 장만 허무하게 날려버렸다.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 카지노의 추억이다. 잭팟은 1900년대 초반만 해도 범죄인들 사이에 ´체포’(arrest) 같은 골치 아픈 문제를 의미하는 속어였다고 한다. 지금처럼 도박이나 복권의 큰 상금, 즉 ‘대박’의 뜻으로 사용된 건 1944년부터다. 19세기 고전 방식의 포커 게임에서 참가자들 중 아무도 숫자 11인 잭(jack)을 두 장 갖고 있지 않거나 그 이상의 패를 쥐지 못했을 때 베팅을 점점 늘려 판돈을 키우는 데서 연유했다. 특히 동전 몇 개로 일확천금을 거머쥘 수 있는 슬롯머신은 초보자들을 잭팟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하는 게임이다. 국내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인 강원랜드에서 사상 최대 7억 6680만원의 잭팟에 당첨된 안승필씨가 전액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기부해 화제다. 2000년 강원랜드가 개장한 이래 당첨금을 기부한 건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1년에 한두 차례씩 이곳에서 소액의 슬롯머신 게임을 즐겼던 안씨는 사업 때문에 빚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움이 짧아 평소 교육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었던 소망”을 위해 거액을 선뜻 내놨다. 돈벼락에 이어 기부까지 더블 잭팟을 터뜨린 셈이다. 안씨의 잭팟 당첨은 놀랍고, 기부는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혹시라도 그의 행운과 선행이 일부 상습 도박꾼과 서민들에게 허황된 과욕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든다. 강원랜드는 올 1·4분기 매출액 3367억원, 영업이익 1545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경기침체로 대박을 노리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카지노 고객 태반은 돈을 잃기 마련이다. 강원랜드가 지난해 가을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 해 300만명이 카지노를 찾지만 이들 가운데 500만원 이상 잭팟에 당첨되는 경우는 3000건이 안 된다. 신기루 같은 잭팟의 꿈보다는 찜질방이나 쪽방촌을 전전하는 카지노 노숙자의 비참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 자원의 저주로 최빈국 전락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북동쪽으로 3500㎞ 떨어진 나우루공화국. 국가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작은 21㎢ 면적에 인구는 고작 1만 3000여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국민 절반이 비만이고, 매일 당뇨병과 합병증으로 2명씩 죽어 나간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한때 세계 최고의 부자였다. 1970년대 1인당 국내총생산은 2만달러에 육박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다. ‘나우루공화국의 비극’(뢰크 폴리에 지음, 안수연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은 한 프랑스 기자가 현장취재로 담아낸 탐사보고서다. 19세기 후반부터 경제적, 생태학적, 그리고 인간적 ‘재앙’이 겹치면서 나우루가 오늘에 이르게 된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인산염 때문이다. 수천년 동안 나우루는 북반구와 남반구를 오가는 철새들에게 점령당한 땅이었다. 철새들의 똥은 오랜 세월 나우루의 땅과 산호에 스며들었고, 그 결과 막대한 양의 인산염 매장층이 형성됐다. 인산염은 비료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성분이다. 1896년 나우루에 정박했던 한 배의 선장 헨리 덴슨은 돌멩이 하나를 호주 시드니로 가져갔다. 그 돌에서 순도 100%에 가까운 인산염이 검출된다. 이 발견으로 나우루의 운명은 달라졌다. 당시는 서구 열강들이 패권 다툼을 벌이던 시기.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나우루의 지배자도 인산염에 눈독을 들인 독일과 영국, 일본, 호주 등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지배자들이 인산염 채굴로 얻은 이익을 나우루 국민들에게 돌려준 것은 극히 적은 액수에 불과했다. 나우루 사람들이 인산염 채굴권을 확보한 것은 1968년 독립 이후부터. 갑작스레 부를 움켜쥔 나우루 사람들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먹고, 즐기고, 끝없이 소비 했다. 여기에 위정자들의 무능력과 부패가 더해졌고 인산염이 고갈되자 절망이 찾아왔다. 책은 2009년 국제저널리즘회의에서 수여하는 조사 및 탐구 부문 최고도서상을 수상했다. 9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사이비·이단 인식 사회·종교 입장 분리 필요”

    “사이비·이단 인식 사회·종교 입장 분리 필요”

    ‘여호와의 증인’은 19세기 말 미국에서 시작된 개신교 종파다. 이들은 모든 세속적 권력을 부정하는데, 그 때문에 병역을 포함한 국가에 대한 의무도 거부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들의 ‘양심적 병역 거부’는 큰 논란이 됐다. 이 문제를 보는 개신교의 반응은 다양하다. 일방적으로 ‘이단 종파의 삿된 짓’이라고 비판할 것 같지만, 2004년 법원이 여호와의 증인 신자에 대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했을 때 반응은 엇갈렸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우려’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환영’했다. 이른바 ‘이단·사이비’로 치부되는 종파의 일을 두고 어떻게 정반대의 논평이 나올 수 있을까. 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에 따르면 이는 이단·사이비 종파에 대한 교회의 인식 속에 ‘사회윤리적 입장’과 ‘교리신학적 입장’이 혼재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서울교회에서 열린 제37차 목회자신학세미나 강사로 나선 탁 교수는 “이단·사이비 종파에 대한 인식은 이 두 입장을 분명히 분리해야 한다.”면서 “안 그러면 장기적으로 교회 공동체 분열과 사회적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탁 교수는 약 석 달간 계속된 이번 세미나의 마지막 순서를 맡아 ‘이단·사이비 종파 문제’에 대해 강의했다. 여기서 그는 500여명의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국내 종파 현황 및 여호와의 증인,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일명 모르몬교)의 역사와 교리를 소개했다. 그는 강의에서 “여호와의 증인 병역 문제는 양심의 자유, 인권 등 사회윤리적 입장에서 옹호할 수 있다 하더라도 교리신학상 정통 개신교와 차이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탁 교수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어느 곳보다 많은 소수 종파들이 활동하고 있다. 본래 여러 교파가 각기 발전을 거듭한 미국 개신교의 전통을 전해 받은 것도 한 이유이지만, 식민지·전쟁 등 사회 혼란을 겪으며 작은 종파들이 수시로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런 작업은 더욱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그는 “사회윤리적 입장에서만 이런 종파를 다루고 인정하게 될 경우 기독교 자체의 신앙적 가치가 흔들리게 된다.”면서 “그렇게 되면 교회와 일반 비기독교 시민단체들과의 차별성이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미나는 ‘다원사회 속에서 타종교와 이단·사이비 종파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주제로 지난 3월부터 이어졌다. 10여명의 강사들이 돌아가며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 원불교 등 다른 종교와 종파에 대해 강의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씨줄날줄]나루터 복원/노주석 논설위원

    우리 조상은 예로부터 치수(治水)를 경국지대도(經國之大道)로 여겼다. 하천을 파내서 제방을 쌓고, 물을 가두고, 수로를 만들었다. 조선후기 한양이 인구 20만명이 넘는 대도시로 발전한 것은 대대적인 수로개척에 힘입은 바 컸다. 팔도의 화물이 황포돛배에 실려 한강의 주요 나루를 통해 들어왔다. 마포나루에만 작게는 하루 100척에서 많게는 200척까지 드나들었다고 한다. 경강(京江)상인 혹은 강상(江商)이라 함은 한강 중에서도 한성부가 다스리던 광나루에서 양화나루 일대, 즉 경강을 주요 상권으로 삼던 객주세력을 이른다. 경쟁자였던 송상(松商)은 개성, 만상(灣商)은 의주를 근거지로 활동했다. 마포나루는 한강 하류로부터 올라오는 어물과 상품의 최대 집산지였고, 송파나루에는 한강 상류 서북지방 및 삼남으로부터 서울로 수송되는 상품이 시도 때도 없이 모여들었다. 뚝섬에는 목재와 땔감이 산을 이뤘다. 19세기 초 ‘비변사등록’에는 “경강에는 각지에서 모여드는 상선이 해마다 1만척을 헤아렸다.”라고 기록돼 있다. 나루는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는 수상교통로. 후에 진지와 초소로서의 기능이 더해졌다. 한자로는 나루 진(津)을 주로 썼고, 강폭이 좁으면 도(渡)를 붙였다. 초소가 설치됐으면 진(鎭)을 썼다. 광나루는 광진(廣津), 삼밭나루는 삼전도(三田渡), 한강나루는 한강진(漢江鎭)이라고 각각 쓴 까닭이다. 광나루, 삼밭나루, 동작나루, 노들나루, 양화나루가 조선 초기 한강의 5대 나루로 꼽혔다. 시간이 흐르면서 송파나루, 뚝섬나루, 한강나루, 마포나루 등에 주도권을 넘겨줬다. 교통 요충지인 이들 주요 나루터에는 어김없이 다리가 들어서 나룻배 대신에 행인을 실어나르고 있다. 광나루에는 광진교와 천호대교가. 삼밭나루에는 잠실대교, 한강나루에는 한남대교, 동작나루에는 동작대교, 노들나루에는 노량대교가 각각 들어섰다. 정부가 어제 4대 강 유역의 유서깊은 나루터 37곳을 복원한다고 밝혔다. 한강 양화나루 등 7곳, 금강 백제나루 등 7곳, 영산강 사포나루 등 12곳, 낙동강 덕남나루 등 11곳 등이다. 선착장으로 조성하거나 역사적 가치가 있으면 복원 후 원형 보전한다. 복원 후에는 황포돛배를 띄울 계획이라고 한다. 1970년대 전후만 해도 전국의 주요 강에는 수천 개의 나루터가 수상교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불과 30년 만에 나룻배와 행인은 간데없다. 사라진 나루터를 생전에 다시 보게 되려나.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지방시대]기술자가 국가 경쟁력의 밑거름이다/양오봉 전북대 화공학 교수

    [지방시대]기술자가 국가 경쟁력의 밑거름이다/양오봉 전북대 화공학 교수

    이명박 대통령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전 세계 지도자들의 화두는 일자리 창출을 통한 각국의 경제 살리기이다. 세계의 주도권이 유일 초강대국 미국에서 중국이 가세한 G2 체제로 개편되고 있다. 중국이 세계를 주도하던 당·청 이후 열강들의 수탈의 역사를 딛고 세계 무대에 주역으로 다시 등장한 것은 경쟁력 있는 제조업을 앞세워 세계의 상품공장으로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였기 때문이다. 사정과 이유야 많겠지만 16세기와 18·19세기에 세계를 제패하였던 스페인과 영국의 쇠퇴는 제조업의 쇠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튼튼한 제조업의 밑받침 없이 무역과 금융만으로 한 국가를 지탱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잘 웅변해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제조업 때문에 지난 1997년 IMF 위기, 2008년 세계 경제위기를 빠르게 극복 할 수 있었다. 제조업의 경쟁력은 최고 수준의 우수한 기술자들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지금의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의 경쟁력은 최고 수준 기술자들의 혼신의 노력과 회사 경영진의 빛나는 경영의 합작품이다. 한 국가는 제조업의 바탕 없이 지탱할 수 없고 제조업의 근간이 기술자라면 기술자가 회사와 국가 경쟁력의 밑거름이라 해도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잘 교육 받은 우수한 기술자들은 회사와 국가의 보배이다. 실제로 회사들은 우수한 기술자만 있다면 언제든지 고용을 하고 싶은데 우수하고 쓸 만한 인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필자가 대학에서 기술자들을 교육하고 있는 입장에서 기업의 임원들에게 이러한 말을 들을 때면 곤혹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래도 이 어려운 난국에도 쓸 만한 기술자들은 눈 높이만 맞춘다면 대부분 취직이 되고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앞으로가 문제이다. 지금의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의 경쟁력 원천은 60년대부터 우수한 인재들이 자신의 적성과 소신에 의하여 이공계 대학에 진학, 최고 기술자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헌신적인 노력을 한 덕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힘도, 권력도, 부도, 명예도 없는 고달픈 샐러리맨으로 대접했다. 우리나라도 쇠퇴기에 접어든 선진국들이 걸어왔던 것처럼 꽤 오래 전부터 우수한 인재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부와 명예를 따라 의대나 법대를 채우고 난 다음 이공계를 선택하는 선진국 병을 앓기 시작했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국가경쟁력 강화 차원에서최고의 인재들이 이공계로 진학하도록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우수한 기술자가 중소기업에서 3년간 뛰어난 실적으로 근무할 경우 군복무를 대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적 우수 근무자에 대하여 대기업, 공기업 등에서 우선 채용하도록 한다면 중소기업의 인력난도 덜 수 있고 신규 일자리도 창출된다. 그러면 우수한 인재가 이공계로 진학하게 되고, 중소기업·대기업의 제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며, 궁극적으로 국가 경쟁력도 향상되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기업의 철저하고 객관적인 실적 관리와 국가의 체계적인 관리가 뒤따른다면 일부의 병역기피 우려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 문화평론가 이택광과 함께 본 연극 ‘광부화가들’

    문화평론가 이택광과 함께 본 연극 ‘광부화가들’

    이달 30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 오르는 연극 ‘광부화가들’. 좁게 보자면 예술 교육엔 그만이다.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인지, 광부들 스스로 찾아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어서다. 크게 보자면 노동계급의 자율성에 대한 작가 리 홀의 깊은 애정이 배어 있다. 이택광(42) 경희대 영미문화과 교수와 공연을 보고 얘기를 나눴다. 이 교수는 영국 셰필드대에서 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따고 돌아온 뒤 대중문화 전반에 관해 거침없는 ‘입담’을 쏟아내는 평론가다.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등의 책을 통해 서양회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도 했다. →연극 마지막에 광부들이 선언하는 ‘사람을 위한 예술(art for people)’은 ‘인민을 위한 예술’이 정확한 번역 아닐까요. -민감한 문제라 부드럽게 한 것 같습니다. 19세기 영국 사상가 존 러스킨(1819~1900)은 이미 예술을 통한 인간의 감화를 주장합니다. 그런 전체적인 흐름을 봤으면 합니다. 우리는 사회주의 하면 곧장 소련을 떠올리지만 영국에서는 흐름이 다양합니다. 기독교 사회주의라는 것도 있지요. 가령 19세기 영국 북부 탄광 지역에서 번성했던 감리교는 지역 노동자를 위한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입니다. 노동운동 하면 좌파 취급이나 하고, 개별 목사나 교회의 영광에 매몰돼 대를 이어 부를 세습하는 우리 교회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모습이지요. 영국에서는 페이비언 사회주의처럼 굳이 마르크스가 아니어도 되는, 그런 사회주의 전통이 있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맥락을 모르면 연극 막바지에 노동자 계급의 승리를 예언하는 대목은 뜬금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영국의 정치적 흐름은 어땠습니까. -애싱턴그룹이 결성되는 1930년대는 노동당이 제도권 정당으로 발돋움했던 시기입니다. 노동당이 완전히 뿌리를 내리는 것은 2차대전 뒤지요. 당시 영국에서는 50만명이 가입한 독서그룹이 조직됩니다. ‘좌파 독서그룹(leftist reading group)’이란 건데, 단순하게 말하자면 의식화 교육인 셈이죠. 이를 발판으로 전후 30여년간에 걸친 노동당 시대가 열립니다. 승리 선언은 이를 상징하는 걸로 보입니다. 이후 1980년대 대처리즘이 몰아쳤고, 1995년에는 노동당마저 신노동당 선언(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 전·현 총리가 영국판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면서 이끈 운동)을 통해 공동생산·공동분배라는 사회주의 원칙을 폐기합니다. 연극 마지막에 이 문제가 자막으로 처리되는 것은 작가 리 홀의 비판적인 관점이 반영된 듯합니다. 한마디로 너희들은 과거 노동당의 전통을 제대로 계승한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혹, 사회주의적 언급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작품성이 가려지지 않을까요. -영국에서 그 정도 표현은 보편적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연극은 지적인 장르이지만, 영국에서는 노동자 서민을 위한 장르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치자면 학예발표회하듯 만드는 연극이 엄청 많습니다. 극중에서 라이언 선생이 처음 강의할 때 르네상스 작품에 대해 “교회 돈을 받아 이교도인 그리스 신들을 그렸다.”고 소개해요. 참 상징적인 말인데, 우리는 되레 그렇게 못하고 있다는 점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광부화가들이 부자의 후원 제안을 물리치고 광부로 남기로 결정하는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맞습니다. 광부들이 예술을 알아가는 것이 연극의 한 축이라면, 예술을 사랑하고 아낀다는 자들의 위선을 대비시키는 것도 연극의 또 다른 축입니다. 넘쳐나는 돈으로 후원을 약속했던 미스 서덜랜드가 나중에는 도자기로 취미가 바뀌었다고 말하지요? 또 가장 좋아했던 올리버의 작품을 나중에는 혹평합니다. 광부들을 가르쳤던 라이언 선생도 애싱턴그룹의 명성 덕에 학계에서 자리잡지만 결국 갈라섭니다. 같이 시작했으나 달리 갈 수밖에 없는, 노동자계급은 스스로의 힘으로 서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합니다. →얘기가 정치적이라 몹시 무겁네요. -전형적인 영국식 코미디입니다. 정치적 색채가 있지만, 심각하게 여기기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장난을 즐겼으면 합니다. →예술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겁니까.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가 19세기 잡지에 투고된 한 노동자의 글을 보고 이런 얘기를 합니다. 이 사람은 스스로 방을 만들었는데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니 아름답다는 걸 느꼈다는 겁니다. 예술이란 특별한 이들이 만들고 특별한 이들이 즐기는 게 아니라 관조적 거리를 확보해 미학적 쾌감을 느낀다면, 일상의 누구라도 가능하다는 거죠. 우리에겐 상징주의 시인으로만 각인된 보들레르 역시 우리의 일상도 고전(classic)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 사람입니다. 그게 그림으로 옮아온 게 인상파입니다. 거창한 영웅이나 신화 속 인물 대신 우리 주변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 보자는 것, 그게 바로 인상파의 작업입니다. 바로 지금 현재를 포착해 내자는 근대 리얼리즘적 사고방식이지요. 덕분에 이 연극은 연극적인 맛뿐 아니라 근사한 미학책 한 권을 읽은 듯한 기쁨을 주네요.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佛, 마오리족 머리 미라 반환

    佛, 마오리족 머리 미라 반환

    프랑스 하원은 4일(현지시간) 표결을 통해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 전사 머리로 만든 미라를 뉴질랜드로 반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주요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이는 프랑스 의회가 박물관이 보존하고 있는 개별 유물이 아니라 특정 범주에 속하는 유물 전체를 되돌려 주도록 규정하는 법을 제정한 첫 번째 사례로,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조선왕실 의궤 반환 문제와 맞물려 눈길을 끈다. BBC방송은 이번 법안 통과가 강제로 빼앗은 유물을 반환하는 문제를 두고 미국과 유럽에서 수십년간 이어져 온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AP통신은 프랑스 정부가 자국에 있는 약탈 문화재와 관련한 협상에 악영향을 미치는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잖이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마오리족 전사 머리 미라는 프랑스 전역의 박물관에 15개가 전시돼 있다. 마오리족은 전투 중에 사망한 전사를 기리기 위해 힘과 용기의 상징인 문신을 얼굴에 새겨 보관하는 풍습이 있었다. 하지만 이 미라가 19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인기 수집품으로 비싼 값에 거래되자 심지어 살아 있는 전사의 얼굴에 문신을 새겨 넣은 뒤 목을 잘라 죽이는 잔혹행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반환문제는 뉴질랜드 테파파통가웨라 국립박물관이 1992년 이후 마오리족 전사 머리 미라를 본국에 반환해 달라고 각국에 끈질기게 요청한 것이 계기가 돼 물꼬가 트였다. 덕분에 뉴질랜드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머리 미라 500여개 가운데 300여개를 돌려받았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2007년 프랑스 북부 루앙시 자연사박물관이 1875년부터 보관해 온 머리 미라를 반환하기로 한 것을 프랑스 문화부가 뒤집으면서 쟁점이 돼 왔다. 피타 샤플리스 뉴질랜드 문화·마오리담당장관은 “마오리족은 조상들의 미라가 고향에 돌아오면 조상들의 존엄성도 높아지고 평화롭게 안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면서 “프랑스 의회가 매우 뜻깊은 결정을 내렸다.”고 환영의사를 밝혔다. 법안을 발의했던 카트린 모랭-데자이유 하원의원도 프랑스가 인권 원칙에 동의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자평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대영박물관 희귀작 울산전시

    대영박물관 희귀작 울산전시

    대영박물관의 희귀 소장품 130여점이 내년 6월 울산에 온다. 울산박물관 추진단은 내년 6월 울산박물관 개관에 맞춰 영국 대영박물관의 소장품 중 신화 속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을 표현한 조각과 회화, 도자기 등 130여점을 특별 전시한다고 3일 밝혔다. 특별전은 ‘환상적인 동물’을 주제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목신 판(PAN, 상체는 사람이고 염소의 다리와 뿔을 가진 신) 등 1∼19세기 신화 속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을 그리거나 조각한 유물을 선보인다. 또 특별전은 ‘선과 악’, ‘사실과 허구’ 등 6개의 소주제로 구성된다. 이 전시는 대영박물관이 처음 기획하는 것으로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유물이 대부분이다. 대영박물관은 울산박물관 전시를 시작으로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순회전에 나설 계획이다. 울산박물관 추진단은 이를 위해 오는 7월 대영박물관을 방문해 전시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日소재 경복궁 관월당 100년만에 돌아온다

    日소재 경복궁 관월당 100년만에 돌아온다

    일본에 있던 19세기 경복궁 부속 건물이 거의 한 세기 만에 우리나라로 돌아온다. 조계종 총무원은 일본 가네가와현 고도쿠인(高德院) 사찰에 있는 관월당(觀月堂) 건물을 한국으로 귀환시키기로 일한불교교류협회(회장 미야바야시 쇼겐)와 합의했다고 3일 밝혔다. 협약식은 오는 25~27일 자승 총무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일본 교토에서 열리는 제31차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 기간에 열린다. 관월당은 문화재적 가치는 높지 않지만 민간 차원의 문화재 환수 작업에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게 불교계와 고미술계의 평가다. 정면 3칸에 맞배지붕을 올린 목조건축물인 관월당은 명성황후의 원당(願堂·기도하는 곳)으로 추정된다. 애초 조선왕실에서 금융담보로 조선척식은행에 제공한 것을, 이후 야마이치 증권의 설립자 스기노 기세이가 소유하고 있다가 1924년 고도쿠인에 기증했다. 고도쿠인에서는 관음보살을 모시는 법당으로 사용해 왔다. 환수 문제는 한·일 불교계 차원에서 꾸준히 논의해온 사안이다. 그러다 일한불교교류협회 이사장 니오카 료코 스님이 3일 자승 스님과 만나 환수를 약속하며 공식화됐다. 조계종 총무원 심주완 문화재팀장은 “한국과 일본 불교계가 지난 30여년간 교류하면서 처음으로 건물을 돌려받는 성과를 거두게 됐다.”며 “2차대전 때 희생된 한국인 유골 반환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한·일 불교계는 1977년부터 해마다 국제학술 세미나 및 세계평화기원대법회를 함께 봉행하며 민간 차원의 문화교류와 한·일 과거사 청산 노력 등을 기울이고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블랙베리 폰’ 탄생 100년 전 예고됐다?

    ‘블랙베리 폰’ 탄생 100년 전 예고됐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사용하는 등 전 세계 130개국 이상에서 널리 이용되는 스마트 폰 ‘블랙베리’의 탄생이 100년 전 이미 예고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 과학기술 전문지 포퓰러 메카닉스는 1909년 발간된 호에서 전기공학자 니콜라 테슬라(1856~1943)가 미래의 과학기술로 블랙베리 폰의 기초적인 아이디어를 언급했다고 4일(현지시간) 밝혔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가장 뛰어난 과학자 중 한명으로 알려진 테슬라는 테슬라변압기와 회전자기장법칙을 이용한 교류유도전동기 등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이론과 발명품을 탄생시켜 제 2의 산업혁명을 불러오는데 일조한 인물이다. 포퓰러 메카닉스의 세스 포지스 기술 편집장은 뉴욕에서 열린 ‘108년의 퓨처리즘’ 프리젠테이션에서 “무려 100년 전 테슬라는 미래의 핵심 전기기술로 무선 에너지를 꼽았으며 이는 블랙베리 폰의 기본 아이디어와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테슬라는 잡지에서 미래 과학을 예측하면서 “손에 들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전자 기기를 이용해 전 세계 사람들이 무선 에너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간단하게 친구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 영역이 탄생할 것”이라고 점친 바 있다. 이 잡지에서 다른 과학자들이 언급한 미래 발명품과 기술이 에어벌룬이 달린 기차, 스프링클러가 장착된 소방관 헬멧, 헤어드라이어로 사용가능한 오븐 등이었던 걸 감안할 때 테슬라의 주장은 당시 기술적 단계에서 매우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한편 블랙베리는 2002년 캐나다의 리서치 인 모션이 개발한 스마트 폰으로, 푸시형 전자 메일, 휴대전화, 텍스트 메시징, 인터넷 팩스, 웹 브라우저 기능을 비롯한 몇가지 무선 정보 서비스가 탑재돼 있고 휴대전화 서비스 업체가 제공하는 무선 네트워크 환경에 접속하면 전자 메일을 주고받는 것이 가능하다. 사진=블랙베리 폰(왼쪽), 니콜라 테슬라(오른쪽)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알프스 소녀 하이디’ 스위스 아닌 독일소녀?

    ‘알프스 소녀 하이디’ 스위스 아닌 독일소녀?

    19세기 스위스의 대표적인 소설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표절의혹에 휩싸였다. 독일 문학 전문가들이 ‘하이디’가 발표되기 50년 전, 줄거리와 등장인물 등이 상당히 유사한 독일 작가 아담 본 캄프의 소설 ‘알프스 소녀 애덜레이드’가 세상에 나왔다고 주장한 것. ‘하이디’는 1880년 대 스위스 여성작가 요하나 슈피리가 펴낸 소설로, 1970년 대 일본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돼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하이디는 알프스의 상징적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독일 문학가 피터 부에트너는 ‘하이디’와 ‘애덜레이드’의 적지 않은 유사점을 예로 들었다. 두 작품 모두 알프스에 사는 소녀가 주인공이며 할아버지가 등장할 뿐 아니라 알프스를 떠나 프랑크푸르트로 옮긴 뒤 고향을 그리워 한다는 설정도 비슷하다는 것.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제목 조차도 의심을 받는다. 캄프의 작품 속 주인공인 ‘아델레이드’는 독일에서 흔히 ‘하이디’라고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부에트너는 “슈피리의 표절을 단언할 순 없다. 단 최소한 작가가 ‘하이디’를 쓸 때 ‘아델레이드’를 이미 알고 있었으며 이 작품이 ‘하이디’ 탄생에 주요한 영감을 줬다고 가정하는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하이디’란 캐릭터를 독일에 가져오자는 게 아니다.”고 해명했으나 스위스의 대표적인 문학 아이콘 ‘하이디’가 표절 의혹에 휩싸였다는 것만으로도 스위스 문학계는 자존심에 금이 갔다. 스위스 현지 언론매체들은 “하이디는 표절이고 신화는 무너졌다.”고 보도하는 등 거센 파문이 일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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