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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전자담배/주병철 논설위원

    유럽인으로 처음 담배를 피운 사람은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탐험 동료인 로드리고 데 헤레스였다. 탐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 공개적인 장소에서 담배를 피웠다는 이유로 에스파냐 종교재판소에 회부돼 3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교황 클레멘스 8세(1592~1605)는 거룩한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모두 파문한다고 위협했다.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도 1604년 담배금지령을 내렸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초대 차르 표도로비치 미하일은 담배를 피우면 입술을 잘랐다.담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낸 사례들이다. 신석기시대의 아시아 원시 민족은 이미 흡연의 풍습이 있었다고 고증하는 학자도 있긴 하지만, 담배를 뜻하는 영어 ‘타바코’(Tabacco)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담뱃잎을 담아 피운 파이프 담배에서 유래했다. 유럽을 비롯, 세계적으로 담배를 유행시킨 사람은 콜럼버스였는데 인디언들이 믿고 있는 담배의 약효성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실제 16~18세기 의사들이 진통, 설사에서부터 피부병, 천식, 벌레 물린 데 쓰이는 해독제 등으로 담배를 사용했다. 19세기 들어 미국에서도 구취 등의 치료법으로 담배가 처방돼 어른은 물론 젊은 여성, 어린이까지도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것은 17세기 초 광해군 때로 추정되며 담배와 관련한 최초의 기록은 인조실록에 나온다. 지봉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담바고는 남령초라 하는데 근년에 일본에서 온 것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한번 습성이 되면 잊을 수 없다는 뜻에서 ‘상사초’(相思草)로 불리기도 했다. 담배는 1912년 흡연이 폐암의 원인일 것이라는 외국 논문과 1950년 영국인 의사를 대상으로 한 역학연구 등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기호품이 아닌 건강위협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 금연효과가 불확실한데도 전자담배를 찾는 사람이 니코틴 액상 유통량 기준으로 1년 새 23배나 급증했다는 자료가 눈길을 끈다. 니코틴이 들어 있지만 궐련담배보다 유해물질이 적어 금연 보조기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흡연율 세계 1위다. 남성 흡연율은 40%대에서 머물고 있지만 여성은 20%에 육박한다. 흡연인구를 줄이기 위해 최근 담뱃값 인상, 금연구역 확대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타의적인 수단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그렇다면 자의적인 판단의 전자담배 소비자들과 금연과의 함수관계는 어떻게 나타날까.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유홍준·정태인 교수가 말하는 ‘신경제사회학’은

    유홍준·정태인 교수가 말하는 ‘신경제사회학’은

    “아이폰 쇼크에 당황하는 삼성을 보며 안타까웠다. 대기업이 관료들보다 더 관료화됐다.” 최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던진 ‘말폭탄’이다. 그런데 이런 지적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외국 유명대학 출신 재벌 2, 3세들에 대해 “파이낸싱(자금조달 기법)만 배워 와서 막상 물어보면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잘 모르더라.”고 평가했다. 대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둔 채 투자를 안 한다는 현 정권의 불만이나, 그렇기에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을 막아야 한다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선언도 비슷한 맥락에서 읽힌다. 이는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1883~1950)의 관점과 유사하다. ‘혁신’(Innovation),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개념을 내놓은 슘페터는 마르크스의 ‘생산’ 노동 개념을 대공장제 생산이 일반화되지 못한 초기 자본주의 단계의 얘기일 뿐이라고 비판하면서 ‘지도’ 노동 개념을 내세웠다. 생산 그 자체보다, 시장의 흐름을 보고 무엇을 생산해서 얼마나 공급할지 결정하는 경영자의 판단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덕분에 경영자는 ‘피도 눈물도 없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냉혈한’에서 ‘창조적 파괴로 혁신을 이끌어내는 모험가(Entrepreneuer)’로 위상이 달라졌다. 그런데 여기까지가 슘페터의 경제학적 논의라면, 잘 알려지지 않은 사회학적 논의가 있다. 이 지도 노동을 수행하는 자가 누구냐 하는 점이다. 슘페터는 전문 기술관료, 즉 테크노크라트를 지목했다. 한국과 같은 재벌가 2, 3세 세습오너들이 아니다. 정부가 아무리 규제 철폐·고환율 정책 등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 행보를 해도 혁신과 창조적 파괴가 터져나오지 않는 것은 이런 사회학적 이유 때문은 아닐까. 유홍준(53)·정태인(51) 성균관대 교수가 내놓은 ‘신경제사회학’(성균관대출판부 펴냄)은 그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경제학 책과 함께 사회학 책을 펴 보자고 제안한다. 두 저자는 사회학의 중요한 개념인 ‘권력’과 ‘계층’ 문제를 기존 경제학이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배제해버린 점을 문제 삼는다.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들어내는 깨끗한 이론을 추구하다 보니 현실에서의 ‘더러운 손’(Dirty Hand)을 외면했다는 비판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주류 경제학이 독립하는 계기가 되는 19세기 유럽의 ‘방법론 대논쟁’을 일부 다룬 점이 눈길을 끈다. 이 논쟁은 경제학이 수학적으로 정교한 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간에 대해 얼마나 비합리적인 가정을 했는지 드러내준다. 예컨대 ‘아노미’ 개념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1858~1917)은 수학적 모델을 만들어나가던 경제학에 대해 “인간을 사회적으로 일탈된, 즉석사진(snapshot) 같은 존재”로 묘사한다고 비판한다. 이는 199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경제학적 인간을 두고 ‘합리적 바보’ 혹은 ‘사회적 저능아’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사회경제학자 칼 폴라니(1886~1964)는 산업혁명이 인간을 상품화했다고 비판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렇듯 인류학적·문화적 관점에서 경제에 접근하는 폴라니 진영은 ‘인센티브’(Incentive)라는 경제학적 개념으로 사회현상 전반을 설명하려 드는 ‘괴짜 경제학’(Freakonomics)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괴짜 경제학’은 몇 년 전 국내에서도 번역돼 큰 인기를 끌었던 스티븐 레빗(44) 미국 시카고대 교수의 저서다. 유홍준·정태인 두 저자는 폴라니의 핵심 개념(배태·Embedness)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괴짜 경제학’ 또한 거리낌 없이 인용한다. ‘통섭’이란 이름으로 사회학이 경제학을, 혹은 경제학이 사회학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둘의 장점을 한데 따서 모아야 ‘경제사회학’이라는 분야가 확립될 수 있다는 저자들의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저자들은 ‘사회학 콘서트’ 같은 대중적인 책을 다음 작품으로 준비 중이라고 했다. ‘경제사회학’의 좀 더 구체적인 모습은 여기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英 윌리엄 왕자-케이트 미들턴 웨딩마치] 호주·캐나다 등 英연방 54개국 축제 분위기

    29일 오전 11시(한국시간 오후 7시) 전 세계 20억 시청자들의 눈과 귀가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꽂혔다.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세기의 결혼식은 영국 공영방송 BBC와 미국 케이블 뉴스채널 CNN 등 주요 방송사에 의해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BBC 방송은 결혼식뿐 아니라 식장에서 버킹엄궁으로 이어지는 축하 행렬까지 실황중계하기 위해 취재인력 550명, 카메라 100대를 동원했다. 영국 왕실이 만든 유튜브 채널은 결혼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조회수가 1200만을 돌파하고 구독자도 6만명을 넘어서는 등 높은 인기를 누렸다. 영국 왕실은 블로그와 트위터 등을 통해서도 약 4시간 동안 결혼식 소식을 실시간 전송했다. 결혼식 취재·보도를 위해 버킹엄궁 근처 녹색공원에는 방송사 차량이 약 140대나 몰렸고, 임시 스튜디오도 48곳이나 들어섰다. 이번 결혼식이 올해 전 세계 미디어에게 최대 이벤트로 떠오르면서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영국 연방국가들과 맹방인 미국은 물론 필리핀, 멕시코, 중국 등지에서 취재진 수천명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신랑·신부의 첫키스 등 ‘좋은 그림’을 포착할 수 있는 장소를 차지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였고, 스튜디오 한곳당 6만 파운드(약 1억 1000만원)에 이르는 대여료 외에 거액의 자릿세까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연방 소속 54개국에서도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다. 호주와 캐나다는 신랑·신부의 모습을 새긴 기념주화를 제작했다. 뉴질랜드에선 이들의 이름을 딴 칵테일이 유행을 타고 있다. 영국 왕정에 반발해 탄생한 국가인 미국에서도 반응이 뜨겁다. 미국 타블로이드 신문과 잡지들은 ‘왕자님 사로잡는 법’, ‘케이트 패션 따라잡기’ 같은 기사를 잇따라 내보내고 10~20대 여성은 케이트 미들턴이 착용한 영국산 제품을 앞다퉈 구매하고 있다. 미국 방송사들도 경쟁적으로 유명 앵커를 런던으로 보내 시청률 경쟁에 불을 붙였다. 19세기 아편전쟁 당시 영국 해군에게 패한 상처를 잊지 못하는 중국에서도 영국 왕실 결혼식에 관심을 갖기는 예외가 아니다. QQ닷컴, 시나닷컴 등 대형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결혼식과 관련한 별도의 코너를 만들어 중국 각 매체의 관련 기사들을 한곳에 모아놓았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새달부터 국내외 투어 나서는 해금 연주가 강은일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새달부터 국내외 투어 나서는 해금 연주가 강은일 교수

    수필가 고(故) 피천득 선생은 5월에 대해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모란의 달이다.’라고 노래했다. 여기에다 아카시아가 짙어지는 계절을 덧붙여 본다. 휘영청한 달밤의 그 향기는 목소리가 곱다던 꾀고리마저 기절시킨다. 천지 사방이 농염하게 유혹하는 계절이다. 그렇다면 5월의 소리를 어떻게 들어볼거나. 딱히 생각이 안 나거들랑 해금을 떠올려 보자. 왼손의 마디에서 심장을 타고 흘러 오른손 마디로 전해진다. 하여 가슴을 후벼 판다. 그래서 ‘어찌 해(奚)의 금(琴)’이다. 최근 들어 새롭게 창작된 퓨전음악과 대중음악 중에서 국악기를 사용하는 곡이 늘어나 해금의 소리가 자주 등장한다. ‘동이’와 ‘추노’ 같은 인기 드라마나 영화, 광고에서도 그렇다. 그 이유 중의 하나로 자유로운 음악적 조율도 있지만, 감정을 자극하는 음색이 단연 압권이다. 애절함이 있는가 하면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처럼 시원함도 갖추고 있다. 한의 눈물도 담겨 있다. 바야흐로 21세기는 해금의 시대다. 고려 시대인 1116년에 해금이 처음 등장한 이래 현대에 이르러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한 여인이 있다. 손마디가 갸냘프다. 하지만 활대질(Bowing)은 천년의 한을 토해 낸다. 열정의 소리가 가슴 가득한 아카시아 향기로 울려 퍼진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송두리째 쥐락펴락한다. ●감정을 자극하는 음색이 압권 국악계에서 가장 개성 넘치는 해금 연주가로 손꼽히는 강은일(44)씨. 요즘 뜨고 있는 신세대 해금 연주가 꽃별의 스승이기도 하다. 현재 서울예술대학 교수이자 해금 솔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그가 푸른 5월을 시작으로 해금을 들고 국내외 투어 공연에 나선다. 5월 20일 경북 울진 공연을 시작으로 26일 경기 고양, 6월 24일 경북 문경, 26일 서울, 8월 27일 경북 울주로 국내 공연이 이어진다. 또 9월 미국, 10월 터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의 해외 공연도 줄줄이 예정돼 있다. 6월에는 4집 앨범 ‘해금 랩소디’까지 나온다. 강씨는 자신이 이끄는 소리 그룹 ‘해금플러스’를 비롯해 미국의 가수 바비 맥퍼린, 일본의 전통 악기 샤미센 연주자인 요시다 형제, 일본 NHK체임버오케스트라, KBS국악관현악단 등 국내외 유명 연주자 및 오케스트라, 국악관현악단 등과 많은 협연을 해 오고 있다. 또한 영화감독 김기덕, 일본의 피아노 연주자 유키 구라모토 등과의 작업을 통해 해금의 대중화와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가느다란 두줄의 활대 움직임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아지경의 소리를 추구하면서 말이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포이동 연습실에서 강씨를 만났다. 우선 5월 공연의 의미를 물었다. “싱그러운 5월입니다. 생동감 있고 재미있는 주제로 관객들과 만날 예정입니다. 솔리스트인 저를 비롯해 ‘해금플러스’ 단원들과 함께 국악과 서양 악기가 합쳐진 동·서양의 크로스오버 음악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무대에 등장하는 악기들은 해금 외에 가야금, 장고, 꽹과리, 건반, 드럼, 기타 등이다. ‘해금플러스’는 창단 12년째다. ●장르를 넘나드는 국악기로 인정 받아 “요즘 들어 해금이 많이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공연할 때마다 찾아 주시는 관객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지요. TV드라마에서도 그렇고 그림이나 사진 등에서도 해금이 자주 등장합니다. 장르를 넘나드는 국악기로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금 연주가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보람을 느끼고 있지요.” 1986년 국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한양대에서 해금을 전공했으니 올해로 해금 인생 25년째를 맞는 셈이다. 대학에서는 4년 동안 장학생으로 다녔고 졸업 후 KBS국악관현악단을 거쳐 프로 솔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88올림픽과 2002월드컵 등의 굵직한 행사에서 기념 공연을 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해금이란 무엇일까. “처음에는 갸냘픈 두줄의 해금이었다가 지금은 ‘해금플러스, 그리고 무엇’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위대한 악기로 존재합니다. 해외에 나가면 나갈수록 더욱 소중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해금은 천변만화(千變萬化), 즉 천번을 변하고 만번을 이룬다고 합니다.” 1990년 ‘타악기의 천재’로 불리던 음악인 김대환(2004년 작고)씨와 함께 한 일본 공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매년 10여 차례 해외 공연을 가져 일본과 유럽에서는 그의 팬클럽까지 생길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중동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한 차례 이상씩 공연을 해 왔다. 강씨는 김씨를 추억하면서 “나의 멘토였다. 흑우(黑雨)라는 음반도 같이 냈다.”고 말했다. 해외 공연 때의 에피소드도 많을 터. 한두 가지만 얘기해 달라고 하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일본에서 바로크시대의 음악을 연주하는 텔레만 앙상블과 협연할 때였지요. 공연 시작 한 시간을 앞두고 연습하다가 줄 부분이 깨져 무척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부랴부랴 수소문해서 재일본 조선인 총연합회 관계자가 운영하는 상점에서 해금을 급히 구해 무대에 올랐지요. 그 사정을 관객들에게 미리 얘기해 주었고, 공연이 끝나자 한 관객이 다가와 혈관을 타고 흐르는 전율이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말하더군요. 사할린 공연 때는 관객들에게 ‘어떤 좋은 자동차라도 돈으로 살 수 있지만, 해금의 소리는 절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프랑스 리옹오페라극장과 벨기에 유럽의회에서의 공연, 미국 디즈니홀 공연과 일본 도쿄돔에서 인기 배우 배용준과 함께한 공연 등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정악과 산조, 창작 음악으로 대별되는 전통 기악에서 그동안 해금의 위상은 보잘 것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5년 들어 해금의 가능성은 확 달라졌습니다. 무용, 문학, 영화, 클래식, 재즈, 세계 민속음악 등과 접목해 세계화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고 있지요.” ●창작곡 위주로 관객과 소통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공연 때마다 주제를 정한다. 예를 들어 ‘오래된 미래’ ‘불광불급’(不狂不及) ‘미래의 기억’ ‘활의 노래’ ‘나비가 되어’ ‘고요한 아름다움 愛’ ‘멘토’ 등이다. 그때그때의 관객층과 계절, 공연 장소에 맞는 음악적 특색으로 차별화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과의 소통이라는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 창작곡 위주의 공연이다. 우리의 전통 음계인 ‘황 태 중 임 남’을 통해 애간장을 녹이는 온갖 오묘한 소리로 신들린 듯 연주하면서 관객들과 무아지경에서 만난다. 원래 그는 연극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가야금을 배우고 싶어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입학 성적에 따라 차등적으로 적용되는 가야금 과목을 선택할 수 없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부르더니 “그러면 해금이나 하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만큼 당시에는 해금을 배우려는 학생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야금보다 더 선호하는 인기 종목이 됐다고 말한다. 18~19세기에 거문고, 20세기에 가야금이었다면 21세기에는 ‘해금이 대세’라며 웃는다. 이는 강씨와 같은 해금 연주가들이 전국을 돌며 대중들과 부지런히 만나 온 결실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그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해금 소리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한다.”며 보람을 찾는다. 2000~2003년에는 모색 단계였다면 2003년부터 크로스오버 등을 통해 본격적인 대중화와 세계화에 나섰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강사준 선생님을, 대학 때에는 김천흥과 심인택, 이기설 선생님 등을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지금 박사 과정에서는 김영재와 이기설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그에게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의 파가니니가 되는 것입니다. 연주도 하고 작곡도 하면서 해금의 예술적 지평을 꾸준히 넓혀야 한다는 그런 소명으로 말입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강은일 교수는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6년 국립국악고등학교를 나와 1990년 한양대 국악과를 졸업했다. 1990~1998년 KBS국악관현악단 단원, 경기도립국악단 해금 수석을 역임했다. 2006~2010년 숙명여대, 경희대 겸임교수로 있었으며 지난해 9월부터 서울예술대학 교수로 있다. 1998년 동아국악콩쿠르 일반부 대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에 국회 대중문화&미디어대상과 KBS국악대상 등을 받았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06년), 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예술상(2005년), 기독교 문화예술원 ‘기독교문화대상’(2009년) 등을 수상했다. 주요 앨범으로는 ‘오래된 기억’ ‘미래의 기억’ ‘선물’ 등이 있으며 그동안 미국, 유럽,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 180여회 순회 및 초청 공연을 가졌다. 올해 들어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초청 공연으로 신년음악회를 열었고 지난달에는 대만국립극장에서 초청 공연을 했다. 다음 달 20일 울진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를 하며 미국, 멕시코, 온두라스, 터키, 에스토니아 등에서도 공연할 예정이다. 아쟁과 사물놀이 연주 실력도 수준급이다.
  • 어린이날 문화공연 가이드…주머니 가볍게, 동심은 꽉 차게

    어린이날 문화공연 가이드…주머니 가볍게, 동심은 꽉 차게

    살아 움직이는 그림? 요즘 대세라는 발레? 검증된 전통 애니메이션? 빨간 날이 몰려 있는 5월. 빈약한 아이디어와 호주머니 사정에 시달리는 가장에게는 부담스러운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큰돈 들이지 않고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공연 한편 보는 건 어떨까. 가족 나들이에 걸맞은 문화 행사를 추려 봤다. ●“동심 유혹엔 애니메이션이 최고!” 애니메이션 개봉일은 어린이날인 5일에 맞춰졌다. ‘토마스와 친구들-극장판 3’은 씩씩하고 용감한 꼬마 기관차 토마스가 제일 열심히 일한 기차로 뽑혀 육지로 ‘포상 휴가’를 떠났다가 겪는 모험을 그렸다. 배우 지진희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썬더 일레븐 극장판: 최강 군단 오우거의 습격’은 지난해 일본에서 약 230억원의 수익을 올린 화제작이다. 축구를 사랑하는 주장 강수호의 열정 덕에 만년 꼴찌였던 천둥중 축구부가 ‘축구 프런티어’ 결승에 올라 수수께끼의 오우거 축구부와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인기 캐릭터 ‘짱구’도 빠질 수 없다. 2009년 극장판으로 한국에 처음 소개된 ‘태풍을 부르는 노래하는 엉덩이 폭탄’은 14만명을 불러모았다. 이번에 개봉하는 ‘짱구는 못 말려: 초시공! 태풍을 부르는 나의 신부’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는 대목이다. 위기에 빠진 미래의 자신과 약혼녀를 구하기 위해 짱구가 시간 여행을 떠난다. ●“클래식, 어려운 것만은 아니란다” ‘김지호와 함께하는 2011 예술의전당 어린이음악회’가 5월 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초등학생 딸을 둔 탤런트 김지호의 해설로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와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등이 연주될 예정이다.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지휘 여자경)가 연주를 맡고 김규희, 손은정(피아노)이 협연한다. 1만~3만원. 국립무용단은 4~8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무대에 ‘프린세스 콩쥐’를 올린다. 국립무용단이 어린이용 작품을 내놓는 것은 처음이다. 콩쥐팥쥐 이야기를 기본으로 삼되 한국적 얘기를 고집하기보다 신데렐라 이야기를 섞어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했다. 5000~7만원. 국립발레단은 8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코펠리아’를 공연한다. 19세기 낭만 발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화려한 작품으로, 어린이들은 물론 발레 초보자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상세한 해설을 곁들였다. 전막 발레이며 공연 시작은 4월 30일이다. 1만~4만원. ●“무대에서 신나게 흔들어 봐요” 4월 28일부터 5월 5일까지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엔 가족 뮤지컬 ‘알라딘’이 오른다. 아역 배우 서신애와 아이돌 그룹 ‘제국의 아이들’의 김동준이 주역이다. 3만~5만원. 독일 그림 형제의 동화를 원작으로 삼은 ‘브레멘 음악대’도 빠질 수 없다. 지난 5년간 유료 객석 점유율 75%에 동원 관객 35만명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5월 29일까지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3만~5만원. 5월 5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충정로 문화일보홀에선 음악극 ‘모차르트 원정대’가 오른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슈베르트, 살리에르라는 이름을 지닌 주인공이 힘을 합쳐 음악회를 연다는 내용으로 그 과정 속에서 관객에게 타악기 연주를 들려준다. 관람료는 전석 2만원이며 3인 가족 패키지는 3만원이다. 서울 역삼동 LIG아트홀은 어린이날 전후인 4~8일 해외 작품 두편을 올린다. 요술 카펫을 타고 호주의 대자연을 누비는 ‘솔트부쉬’와 환경오염 문제를 다루는 ‘앨빈 스푸트니크의 모험-심해탐험가’다. 2만~3만원. 한국국악교육원이 5일 서울 홍은동 서대문문화회관에 올리는 국악동화극 ‘혹부리 영감과 노래주머니’도 있다. 1만 2000원. ●“헉, 그림이 살아 움직여요” 6월 26일까지 서울 구로동 테크노마트 신도림점에서 열리는 ‘2011 트릭아트 서울 특별전’은 착시 효과를 이용해 반 고흐,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명작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눈속임 회화에 관심이 큰 일본 회사의 원작을 그대로 들여왔다. 1만 2000원. 수원 인계동 경기도문화의전당은 4월 30일부터 5월 6일까지 ‘앤서니 브라운 원화전’을 연다. 앤서니 브라운은 ‘미술관에 간 윌리’ ‘마술피리’ 등을 통해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그림책 작가다. 한국의 엄마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그의 작품 250여점을 원화로 만날 수 있다. 1만 2000원. 체험 행사도 있다. 예술인들이 모여 사는 경기 양주 장흥아트파크에서는 7월 10일까지 어린이 체험전 ‘쑥쑥’이 열린다. 5000~7000원. 조태성·임일영·김정은기자 cho1904@seoul.co.kr
  • 김연아, 세계선수권 앞둔 실전연습서 ‘지젤’ 연기 선보여…발레계 “탁월”

    김연아, 세계선수권 앞둔 실전연습서 ‘지젤’ 연기 선보여…발레계 “탁월”

     ‘피겨여왕’ 김연아(21·고려대)가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25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실전훈련으로 선보인 ‘지젤’ 연기에 대한 국내 발레계의 호평이 쏟아졌다.  김연아는 25일 첫 실전 훈련에서 ‘지젤’을 주제곡으로 한 쇼트프로그램을 처음 공개했다. 김연아는 19세기 프랑스 작곡가 아돌프 아당이 작곡한 발레 ‘지젤’ 음악에 맞춰 격정적인 몸짓과 함께 점프,스핀 등의 기술을 적절히 조화시킨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펼쳤다.  이 프로그램에 사용된 음악은 전체 2막으로 구성된 발레 ‘지젤’ 중 2막의 처녀귀신 ‘윌리’들이 등장하는 장면과 1막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 지젤이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배신당해 괴로워하며 미쳐가는 장면의 배경 음악이다.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은 26일 “ ‘지젤’ 음악 속의 감정과 느낌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피겨에 맞게 잘 표현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문 단장은 “러시아가 ‘발레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국민들이 발레를 좋아해 모스크바에 있는 피겨 팬들이 굉장히 좋아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 ‘낭만 발레’로 유명한 ‘지젤’을 연기했다는 점에서 더 점수를 따지 않을까 도생각한다.”고 내다봤다.  김연아는 29일 밤(한국시간) 2011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는 모스크바 메가스포르트 아레나 경기장에서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을 연기한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WHO&WHAT] “B형보다 O형이 더 좋다고? 당신 속았어”

    [WHO&WHAT] “B형보다 O형이 더 좋다고? 당신 속았어”

    4월의 화창한 봄날.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4층 서울신문사 편집국. 두 젊은 남자 기자의 푸념이 이어졌다.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로 나름 ‘킹카’를 자부하는 편집부 김민석 기자와 강신 기자. 두 사람은 솔로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봄이라고 부쩍 늘어난 주변의 결혼 소식은 두 사람의 우울함만 부추길 뿐이다. 작심하고 원인 분석에 들어간 두 사람. 이상형과 최근 자신들이 했던 소개팅을 되짚어 보던 그들은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B형 남자’라는 것. 소개팅을 하자면 꼭 혈액형부터 물어보는 주선자들. B형 남자라고 대답하면 “성급하고 단순하며 자기중심적”이라며 거부당하기 일쑤다. 두 사람은 B형 남자가 ‘최악’이라는 ‘통념’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솔로를 벗어나기 위해선 반드시 깨야 할 잘못된 상식이야.” 머리를 맞댄 두 사람은 가장 기자다운 방법으로 사태를 해결해 보기로 뜻을 모았다. 전문가를 초청해 기자회견을 하자는 것. 하지만 전문가를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혈액형과 성격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 일본 책을 번역한 것이었고, 상당수 이론들이 출처가 불분명했다. “전혀 근거 없는 얘기”라며 무시하는 과학자도 많았다. 결국 두 사람은 이 모든 사태의 출발점인 ‘혈액형’의 아버지 카를 란트슈타이너(1868~1943·오스트리아 병리학자)에게 직접 따져 묻기로 했다. 가상 인터뷰 ‘Who&What’의 이번주 주인공은 란트슈타이너다. ABO식 혈액형, MN식 혈액형, Rh식 혈액형을 구분한 란트슈타이너는 그 공로로 1930년 노벨상을 받았다. 유로화 등장 이전 오스트리아 지폐 도안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의학사에서는 그를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해 낸 인물”로 표현하고 있다. 과연 란트슈타이너는 ‘인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연구의 산물인 혈액형이 100년 후 성격과 연관 지어질 것임을 짐작이나 했을까. →김민석 아주 기초적인 질문부터 시작하자. 혈액형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란트슈타이너 (웃음) 말 그대로 피의 종류, 혈액형(Blood type)이다. 내가 한창 연구활동을 하던 19세기 말에는 수혈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피를 많이 흘려 죽는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이 컸지만, 죄 지은 사람의 피를 바꾸면 악함이 사라진다는 생각도 있었고 심지어 류머티즘이나 결핵이 있는 사람의 피에 특수한 물질이 생긴다는 가설도 있었다. 난 서로 다른 사람의 피를 섞으면 응고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다는 경우가 있다는 데 착안해 피의 종류 자체가 다를 것으로 판단했다. 수많은 실험을 거친 결과 마침내 A 또는 B라는 항원과 이에 대응하는 혈청 속의 항A, 항B라는 응집소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항원의 종류에 따라 A, B, O, AB형 등 네 가지로 나누는 것. 이게 바로 ABO식 혈액형이다. →강신 혈액형이 ABO식만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란트슈타이너 그렇다. 나는 1901년에 ABO식 혈액형을 발견했고, 27년이 지나서 MN식 혈액형을, 1940년에는 Rh형 혈액형도 찾았다. 나의 세 가지 혈액형 구분이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혈액형 감별 방식은 150가지가 넘는다. 이것만 조합해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혈액형은 수백조(兆) 가지가 넘는다. 물론 아직도 혈액형의 모든 것이 밝혀진 것은 아니다. →김민석 당신의 원래 의도와 달리 혈액형 이론이 처음으로 널리 활용된 것은 인종 간 우열을 가르는 ‘우생학’(優生學)이었다. -란트슈타이너 ABO식 혈액형이 등장한 이후 1910년대 독일에서 “유럽에 A형이 많고, 아시아에 B형이 많은 것은 백인이 아시아인보다 우월하다는 증거”라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몰지각한 백인 우월주의가 내 발견과 맞물리면서 잘못된 인식으로 굳어졌다. 유감이다. →김민석 혹시 ABO식 혈액형이 사람의 성격과 관련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란트슈타이너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는 애초에 발생 자체가 위에 언급한 우생학과 맞닿아 있다. 처음으로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를 언급한 사람이 우생학이 유행하던 당시 독일에 있던 일본학자 후루카와 다케지였다. 후루카와는 고작 주변 사람 319명을 조사해 지금 유행하는 것과 거의 흡사한 ‘혈액형에 따른 기질 연구’라는 책을 펴냈다. 물론 당시에는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강신 결국 정확한 과학적 근거나 통계학적인 조사가 뒷받침되지 않은 것인가. -란트슈타이너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려 주겠다.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학술논문을 찾아봐라. 거의 없을 것이다. 그나마 대부분 일본에서 나온 것이다. 일본에서 유행한 것은 1970년대 일본 저널리스트 노오미 마사히코가 후루카와의 연구로 창작에 가까운 책을 써내면서부터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혈액형과 성격에 대해 별자리 이상의 관심을 보이는 건 일본과 한국뿐이다. →김민석 하지만 과학적으로 혈액형과 성격이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는 연구 또한 이뤄진 적이 없지 않은가. -란트슈타이너 주요한 연구 결과는 아니지만 사람의 성격을 구분하는 심리학 검사인 MBTI 결과와 혈액형별 유형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조사는 있다. 몇 가지 과학적 예도 들어 보자. 인구 분포로 보면 한국은 A형 37%, O형 28%, B형 27%이고 일본 역시 A형 37%, O형 31%, B형 22%다. 비교적 고른 분포다. 반면 프랑스는 A형이 44%, O형이 42%이고 미국은 A형 40%, O형 45%다. 그럼 프랑스는 한국에 비해 소심한 사람이 많고, 미국 사람들은 고집이 세다는 얘기다. 동북아시아는 다른 지역보다 B형이 월등히 많은데, 그렇다고 다른 곳보다 자유분방한가. 한국이나 일본에서 혈액형과 성격이 유행하는 건 이렇게 혈액형 분포가 다양해서 설명 가능한 성격의 가짓수가 많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특히 혈액형이 성격에 선천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면 유전적으로 성격을 규정짓는 유전자와 혈액형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동일한 위치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강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혈액형과 성격을 믿을 뿐 아니라 상당히 정확하다고 느끼고 있는 건 사실 아닌가. -란트슈타이너 기자에게 묻겠다. 당신은 좋아하는 일에는 적극적이지만, 하기 싫은 일에는 소극적인가. →강신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란트슈타이너 이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더 이상한 거다. 이런 애매한 질문이나 ‘자유분방’,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생각이 많다’, ‘주변 사람들의 일에 관심이 많다’는 식의 모호한 표현을 모은 후에 이걸 각각 ABO식 혈액형에 맞춰 나눠 보자. 그럼 대부분 자신도 그렇다고 느끼지 않겠나. 그게 아니라고 주장하면 “당신은 전형적인 그 혈액형 타입이 아니군요.”라고 말하면 그뿐이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바넘효과’(Barnum effect)라고 한다. 일반적이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현상을 정작 듣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딱 맞는 얘기라고 생각하는 거다. →김민석 혈액형과 성격의 관계는 허무맹랑한 얘기라고 단언해도 되는가. -란트슈타이너 그런 얘기를 계속 듣다 보면 실제로 성격이 바뀌지 않더라도 무의식 중에 비슷하게 행동하게 될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결국 성격은 결정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에 달린 것이 아닐까. 당신들도 혈액형과 성격 같은 ‘훌륭한 심심풀이’를 절대적이라고 믿지 않는 현명한 여자를 만나길 기대한다. 성공을 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도움말 주신 분들 ●한규섭 서울대 의대 진단검사의학과장 ●권석운 울산대 의대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란트슈타이너가 들려주는 혈액형 이야기 저자)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손영우 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장(심리학과 교수)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WHO&WHAT] 소설 속 영국인 주인공 폴 웨스트 “파리서 1년 살아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의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유전학의 창시자 수도사 멘델의 고백… “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 [시론] 어린이를 위한 선물, 전곡선사박물관/황규호 언론인

    [시론] 어린이를 위한 선물, 전곡선사박물관/황규호 언론인

    어느 해 겨울 이야기다. 정월 초순이었으나, 겨울은 분명했다. 서울을 떠나 파리를 경유하고 나서, 고깔 모양의 아이스크림 껍데기를 거꾸로 박아 놓은 듯한 니스 공항에 내렸다. 겨울은 오간 데가 없고, 따사로운 볕이 마치 봄날 같은 지중해 연안 남프랑스의 겨울이 정겨웠다. 여기서부터 서남프랑스에 이르는 지역의 구석기시대 유적을 거의 훑어본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가 말하는 구석기시대 유적은 인류가 먼 옛날에 남긴 삶의 자리다. 타임머신을 타고 1만년이 넘는 세월을 뒷걸음쳐야 구석기시대 끝자락을 겨우 만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줄잡아도 100만년 전부터 시작한 구석기시대는 선뜻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역사의 뒤안으로 까마득히 멀다. 그해 겨울 여행에서, 마주친 서남프랑스는 구석기시대 문화가 아주 함초롬한 유서 깊은 땅이었다. 비제르 강이 도르도뉴 강으로 흘러드는 넓고도 긴 물길을 가운데 두고, 양안(兩岸)의 석회암 벼랑마다 유적이 촘촘히 들어앉았다. 가히 후기 구석기 문화의 보고였다. 소설 북회귀선의 작가 헨리 무어는 이 물길을 가리켜 “사람의 영혼을 살찌게 한 꿈이 살아 숨 쉬는 도르도뉴”라는 말로 예찬한 적이 있다. 이 물길 상류인 비제르 강가의 레저지 드 다야크 마을에는 유명한 아브리 파토 등 여러 유적이 자리했다. 이른바 ‘마담 파토’로 일컫는 젊디젊은 여인네 인골이 나온 유적이 아브리 파토다. 유적은 19세기 말에 발견되었으나, 본격적인 발굴은 20세기 중반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 할렘 모비우스 손에서 이루어졌다. 서남프랑스 외진 산골로 달려와 꽤 이름을 날렸던 고고학자 모비우스의 체취를 느껴야 했던 감회가 남달랐다. 그는 후기 구석기시대를 거꾸로 껑충 뛰어넘은 전기 구석기시대 유물 주먹도끼 분포 지역을 유럽과 인도 북쪽으로 좁게 들여다보았던 근시안적 인물이다. 유럽의 문화 우월주의를 애써 강조했던 이른바 ‘모비우스 라인’은 뒷날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를 뒤엎은 중심에는 경기도 연천읍 전곡리 유적이 버티고 있다. 지난 1979년 첫 발굴 이후 아슐리안 문화를 대표하는 전기 구석기시대 돌연모 주먹도끼가 쏟아져 나온 데가 바로 전곡리 유적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전곡리는 동아시아 전기구석기 문화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런데 경기도가 최근에 지은 전곡선사박물관(全谷先史博物館)이 오는 25일, 마침내 문을 연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제야 속에 담아 두었던 응어리 하나가 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프랑스를 여행하는 동안 니스 라자레 동굴 유적과 파리 교외 숲 속의 선사박물관 일 드 프랑스에서 만났던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을 잊을 수 없다. 이미테이션 유물을 장난감 삼아 즐겁게 노는 이들 초등학생이 부러웠다. 그리고 자연사박물관을 들렀을 때, 온갖 동물의 미니어처 표본을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바라보던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도 무척 부러웠던 터라, 여태 지우지 못한 프랑스 여행의 응어리로 남았다. 그래서 마무리 치장이 한창인 전곡선사박물관을 엉겁결에 미리 찾았다. 용이 똬리를 튼 것처럼 기묘한 모양새로 지은 박물관 2층 상설전시관 문을 열면서, 깜짝 놀랐다. 이게 웬일인가, 털북숭이 투마이로부터 현생 인류로 접근한 막달레니안에 이르는 14개 그룹의 인류가 어정어정 걸어나왔다. 그리고 진화의 시간표에 따라 인류와 더불어 진화한 매머드 따위의 고생동물이 끼어들어 전시관 풍경은 스펙터클한 감흥으로 다가왔다. 추가령구조곡(楸哥嶺構造谷)을 따라 이루어진 제4기 지질시대의 한탄강가 용암대지(鎔巖臺地)도 한눈에 잡혔다. 헨리 무어가 살아서 전곡리를 보았더라면, 무슨 말로 찬탄했을지 궁금하다. 어떻든 어린이날이 들어간 5월이 곧 다가온다. 전곡선사박물관은 인간의 심성을 보듬는 인문학의 산실일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린이를 위한 세계적 문화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어린이는 꿈을 먹고 산다는 얘기는 무한한 가능성을 말하지 않는가.
  • [열린세상] 일본 대지진은 신의 징벌인가?/김진 울산대 철학 교수

    [열린세상] 일본 대지진은 신의 징벌인가?/김진 울산대 철학 교수

    3·11 대지진으로 일본 열도의 침몰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도호쿠(東北) 지방 부근 해저에서 발생한 진도 9.0의 강진과 대형 쓰나미는 수만명의 인명피해와 후쿠시마 원전폭발이라는 초대형 사고를 불러왔다. 이러한 대재앙에 대해 조용기 목사는 ‘하나님의 경고’로, 그리고 이시하라 도쿄 시장은 ‘천벌’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세인의 빈축을 샀다. 미국의 예언가 에드가 케이시는 최면상태에서 LA, 샌프란시스코, 뉴욕이 초토화되는 것을 보았으며, 일본의 대부분도 물속에 가라앉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소련 공산주의의 몰락과 중국의 민주화를 예언한 바 있다. 16세기 조선 명종 때의 풍수사상가인 남사고 선생이나 19세기 조선 헌종 때의 예언가인 송하노인도 일본 침몰을 거론한 바 있다. 특히 1983년 자신의 임종을 예고했던 탄허 스님은 일본의 3분의2 이상이 바다로 침몰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인들도 이런 사실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히구치 신지 감독이 2006년에 발표한 영화 ‘일본침몰’은 바로 그 같은 일본국민의 잠재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스루가만에서 진도 10 이상의 대지진이 발생한 후 도쿄, 규슈 등 일본 전역에서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 나라 전체가 초토화되어 가라앉는다는 내용이다. 지금 그 영화의 내용은 일본인들에게 현실로 다가왔다. 대형 자연재해는 도덕적 타락에 대한 신의 징벌일까? 이 물음은 1755년에 발생한 리스본 대지진에서도 핫이슈였다. 리스본 대지진은 가톨릭의 모든 성인을 기념하는 대축제인 만성절의 오전 미사 중에 발생했다. 당시 교회에서는 전염병이나 대형 자연재해를 신의 징벌로 인식했으며, 대다수의 교회 지도자들은 죄악에 물든 리스본이 신의 심판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25만명의 리스본 인구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였으므로, 2만~3만명의 사망자를 낸 대지진은 동시에 가톨릭에 대한 심판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칸트와 볼테르를 비롯한 계몽주의자들은 다소 의견의 차이가 있었지만, 신의 징벌이 아닌 단순한 자연 현상으로 보았다. 그럼에도 논란은 계속되었다. 칸트조차도 말년의 저술 ‘만물의 종말’에서 자연재해와 같은 종말적 사건을 불의에 대한 징벌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을 바꿨다. 지난 500년 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침략을 당한 우리 국민들로서는 일본 대지진 ‘징벌론’을 연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지 모르겠다. 그런데 국민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불편한 과거를 초월한 일본 돕기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심지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들까지 동참했다. 우리 국민들의 반응에 미국과 유럽의 언론들조차 의아해할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속셈은 전혀 달랐다. 그들은 대재앙 속에서도 독도를 자국 영토로 수록한 교과서 검정을 단행했다.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서울지부장은 한국이 지진 참사를 당한 일본에 독도를 내어주는 것이 좋겠다는 망언까지 했다. 자국 영토가 침몰하는 그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독도를 탐하는 후안무치야말로 일본을 대표하는 언론 지성인의 모습인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일본론’이라는 글에서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오규 소라이(荻生 일본 정치인들이 3·11 대지진을 자신들의 부당행위에 대한 신의 징벌로 인식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필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 [CEO 칼럼] 세제 이야기/고광현 애경산업 사장

    [CEO 칼럼] 세제 이야기/고광현 애경산업 사장

    서진(西晉)의 진수가 쓴 ‘삼국지’의 ‘위지동이전’은 우리 민족이 집집마다 오줌으로 손을 씻고 세탁을 했다고 쓰고 있다. 조선시대 여인들의 생활 지식을 적어놓은 ‘규합총서’(1869)에도 잿물로 빨래를 했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잿물의 주성분은 탄산칼륨(K2CO3)이고, 소변에는 암모니아(NH3)가 들어 있어 알칼리 성분이 세탁을 도왔다. 그럼에도 알칼리의 세탁효과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세탁을 돕는 비누와 세제가 등장했다. 비누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3000년쯤. 메소포타미아에서 수메르인들이 동물성 유지와 나무를 태워 생긴 재를 섞은 뒤 끓여 세탁에 사용했다. 비누 제조법이 획기적으로 발전해 비누가 세탁에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791년 프랑스의 르블랑이 소금으로 탄산나트륨을 값싸게 만드는 방법을 발명하고 1811년 슈브뢸이 유지의 화학적 구조를 규명한 뒤부터다. 세제가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19세기 이후이며, 이 가운데 합성세제가 널리 보급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언제 처음 비누를 사용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조선 말기 프랑스인 신부 리델이 쓴 ‘서울옥중기’ 1878년 2월 1일자에 “비누로 손을 씻을 때 거품이 생기는 것을 본 옥졸들이 요술을 부린다고 놀라더라.”는 기록이 있다. 아마도 프랑스 신부들이 비누를 처음 가지고 와서 이 땅에 알린 것으로 보인다. 비누가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청나라와 통상조약이 체결된 1882년부터다. 그러나 곧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등 폐허 속에 궁핍한 생활이 계속돼 비누는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영화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빨래터 풍경 어디에도 비누가 등장하지 않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비누를 마음껏 쓸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66년 최초의 합성세제가 등장한 이래 세제가 비누를 빠르게 대체해 이제는 비누보다 합성세제가 세탁에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세제 기술은 제품 본연의 기능인 세탁력 향상을 추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과거에는 가루세제 위주였지만 지금은 액체세제에 이어 젤 형태까지 나왔다.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친환경 세제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저공해성 원료 개발에 이어 지금은 농축형 세제로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오는 25일이면 애경이 생활용품 사업을 시작한 지 57년이 된다. 애경은 한국전쟁이 막 끝났던 1956년 당시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에 국내 최초로 미용비누인 ‘미향’을 선보였다. 1966년에 선보였던 주방세제 ‘트리오’는 지금까지도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애경만 해도 1960년대는 경성세제로 불리는 알킬벤젠솔푼산(ABS)을 주원료로 세제를 만들었지만, 이후 분해가 쉬워 공해가 적은 연성세제(LAS)로 바꾸었다. 1983년에도 국내에서 처음으로 생분해성을 더욱 높인 저공해 세제원료 알파 올레핀솔푼산(AOS)을 개발했다. 1998년에는 사용량을 3분의2로 줄인 농축세제도 처음 선보였다. 올해는 아예 모든 세제를 친환경 제품으로 바꾸고 있다. 찬물에서의 세척력을 획기적으로 높인 세제, 사용량은 절반으로 줄이고 세척력은 두배 강화한 초고농축 세제들이 대표적이다. 탄소 발생을 획기적으로 줄여 세탁 시 발생하는 화학물질 배출량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농축 제품은 부피가 줄어들면서 포장재, 운송에너지, 폐기에너지까지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세제를 과다하게 쓰게 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세제를 많이 써야 성장할 수 있는 제조회사가 ‘세제 정량 쓰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조금 적게’, ‘꼭 필요한 만큼만’ 써도 깨끗하게 빨릴 만큼 우리 세제 성능은 매우 좋다. 애경의 역사가 우리나라 생활용품의 역사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비누와 세제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가 참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이 든다.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소돔 120일’ 사드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소돔 120일’ 사드

    “이 문이 닫히고 나면 실링이라는 뒤르세의 성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다음에 계속되는 설명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저탄소를 지나자마자 그들은 성 베르나르 산만큼 높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 산은 도보로밖에 오를 수 없었기 때문에 접근이 매우 어려웠다. 노새가 꼭대기까지 가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올라가는 길 사방이 낭떠러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노새를 이용하기에는 많은 위험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특별한 장비가 없는 한 새가 아닌 다음에는 산꼭대기까지 올라왔다 하더라도 산을 넘어갈 수가 없었다. 뒤르세는 천길 낭떠러지로 나뉘어져 있는 양쪽을 아주 튼튼한 나무다리로 연결시키고, 마지막 장비가 도착하고 나면 그것을 잘라버리기로 했다. 그 순간부터는 어느 누구도 실링 성으로 들어설 수가 없는 것이다.” 누구도 들어갈 수 없고, 들어가고자 하지 않았던 세계, 이것이 ‘소돔120일’의 세계이자 사드라는 인간의 내면 세계였다. 1. 色의 시대를 자극한 자 도나시앵 알퐁소 프랑수아 드 사드(1740~1814)는 23살부터 감옥을 드나들기 시작해서, 마지막 10년은 감옥과 다름없는 샤량통 정신병원에서 보낸 뒤 생을 마감했다. 반복된 수감과 석방을 거듭하며 그는 총 27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감옥에 있지 않을 때도 주로 거주지 제한이라는 굴레를 안고 살아야 했다. 죽을 때까지 사드를 따라다닌 죄목은 ‘끔찍한 변태성욕’이었다. 명문 귀족집안에서 태어나 결혼까지 한 사람이 입에 담을 수 없는 난삽한 연애를 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18세기 절대왕정 시대의 프랑스는 안정된 경제를 기반으로 사치와 향략의 궁정문화가 크게 유행했다. 도시의 학교나 뒷골목에서는 학생이나 신부들의 동성애, 폭력적 성행위도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었으며, 부유한 귀족과 시민들은 사드의 작품보다 더 ‘외설적인’ 작품들을 탐독했다. 하지만 왕과 귀족들이 증오한 것은 오직 그, 사드였다. 우선, 사드는 남색과 가학성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리고 자신의 침실에서 서슴없이 신을 모독했다. 상대방의 엉덩이를 채찍으로 때리면서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이름을 불경하게 외치는 것은 기본이었고, 성배와 성찬용 빵을 섹스의 도구로 삼는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했다. 서민들은 사드의 난행에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귀족들의 무례함과 폭력성을 있는 그대로 보았으며, 귀족들은 사드가 공격적인 신성모독을 통해 교회 권력을 노골적으로 모욕하고 있다고 느꼈다. 사드는 양쪽 모두의 증오심을 충족시켜주는 괴물이었다. 사드의 과감한 행위가 절대왕정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 사법관들은 이 괴물을 좌시할 수 없었다. 사드는 왜 이런 변태적 행위를 멈추지 않았는가? 절대왕정의 막바지에 루소, 디드로, 달랑베르 등 수많은 계몽 철학가들은 인간 이성의 존엄성과 개인의 자유정신을 주장하면서 신성(神聖)에 기반한 체제를 비판했다. 사드는 이들의 저서를 읽으면서 성장했다. 그러나 사드가 보기에 이들 계몽철학가가 정의하는 ‘인간’은 너무나 추상적이고 도덕적이었다. 인간의 성, 인간의 폭력, 인간의 증오에 대해서 그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의 내부에 도사린 그런 ‘비인간성’을 건드리지 않고 어떻게 인간의 자유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사드는 자신의 육체를 하나의 도구로 삼아,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우아한 드레스와 고상한 신학(神學), 철학서로 치장한 인간이 아니라 오직 육체뿐인 인간을 봐야 한다!’ 이렇게 결심한 사드는 인간의 비인간성을 스스로 실험하기 시작한다. 그전까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섹스를 하면서, 그 순간을 흡사 냉정한 법관이나 수학자와 같은 태도로 지켜보았던 것이다. 사드는 인간성과 동물성이 만나는 지점에 서서 자신을 실험함으로써 인간성의 심연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2. 습속의 굴레가 진짜 감옥이다 사드는 절대왕정 시대의 감옥보다 자기 안에 깊이 체화되어 있는 각종 도덕과 상식을 더 무서운 감옥이라고 생각했다. 사드는 시간을 정해놓고, 점점 더 수위를 높이는 방식으로 감옥 안에서 난행을 거듭했다. 그리고, 자신의 육체가 반복된 매질과 가학적인 수음으로 찢기고 더러워지는 것을 보면서, 인간성을 둘러싼 상식들과 습속이 만든 삶의 윤리들이 갖는 한계가 드러나는 것을 기록했다. 그리고, 난행을 기록하는 와중에 글의 힘을 발견했다. 사드는 인간 육체와 성에 관한 통념이 무너지는 순간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몰랐던 인간의 생사·습속을 둘러싼 각종 한계들이 점점 더 명확해짐을 느꼈다. ‘글이야말로 자신과의 대화라는 형태로 자유를 생각하는 시간을 열어주는구나!’ 사드에게 글은 추상적 인간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한 인간의 자유, 욕망, 한계가 드러나는 무대가 되었다. 마침내, 그가 있던 감옥은 그의 집필실이 되었다. 그는 아내에게 부탁해 수많은 책들을 감옥 안으로 들여왔고, 간수의 감시를 피해 종이를 아껴가며 글을 썼다. 사드는 폭 11㎝ 길이 120㎝나 되는 띠를 구해 날마다 그 앞뒤로 빽빽이 글을 써 나갔다. 바로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소돔120일’이다. 이 작품은 루이 14세 치하의 부패를 설명하면서 시작하며, 폐쇄된 성 안에서 난행을 거듭하는 인물들이 끝없는 엽색행각을 벌인다. 사드는 혁명의 함성이 울려 퍼지기 직전의 적막 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향락과 범죄를 언어화한 극한의 텍스트를 완성한다. 3. 바로 너 자신을 혁명하라 1789년, 사드는 감옥 안에서 혁명대의 함성을 듣게 된다. 자신이 그토록 꿈꾸었던 자유의 시대가 도래할 것인가? 혁명군은 사드가 절대왕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그를 석방했다. 사드는 하루아침에 ‘반귀족 세력’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그는 출감한 후 귀족 칭호도 떼어버리고 적극적으로 정치 팜플렛을 썼다. 동시에 감옥 안에서 집필했던 ‘미덕의 불운’과 ‘쥐스틴’을 출판했다. 그러나 혁명세력들은 사드의 작품에 동의할 만큼 혁명적이지 못했다. 결국 사드는 변태라는 죄목을 달고 다시 감옥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창밖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목이 잘려 나가는 것을 보았다. 절대왕정 시대보다 더한 횡포가 자유, 평등, 박애의 이름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그들은 종교나 왕의 말씀 대신에 이성과 합리로 덧칠한 법을 내세웠을 뿐이구나!’ 사드는 귀족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혁명가들에게도 절망했다. 사드는 혁명에 절망하면서 ‘규방철학’ 안에 정치 팜플렛을 담아서 출판한다. 절대왕정이 신봉했던 신성(神聖)과 혁명가들이 주장하는 법은 똑같이 “개별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보편자를 위해 만들어”(‘규방철학’ 중)졌다. 즉, 혁명군이 이성에 기반한 자유를 주장한다 해도, 그것은 여전히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가 아니라 보편적 인간의 추상적 자유일 뿐이라는 것이 사드의 주장이다. 하지만 도대체, 그런 보편적 인간이 어디에 있는가? 사드는 혁명 이후의 대학살을 지켜보면서 각자가 자기 식으로 자유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는 한 혁명은 절대로 완수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혁명가들에게 이런 사드는 구시대의 망령일 뿐이었다. 결국 사드는 죽기 전 11년을 정신 병원에서 보내게 된다. 혁명 전에 범죄자였던 그가, 이제는 광인이 된 것이다. 4. 사드 이후의 사드 사드는 죽기 직전에는 경멸되었으며, 죽고 나서는 잊혀졌다. 그는 장례 절차 없이 매장시켜 달라고 요구했고, 자신의 육체가 흙과 함께 흔적 없이 사라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의 유언을 무시하고 종교적인 장례를 치렀다. 사드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가, 19세기 말 크라프트 에빙과 프로이트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한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가학적 행위로부터 쾌락을 얻는 자를 지칭하기 위해 사드의 이름을 빌려왔다. 심지어 사디즘에서 죄의식을 발견하고자 했다. 이들은 그토록 철저히 신을 부정했던 사드를 오해하고 말았다. 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면서 자유를 노래하는 자들은 사드를 잊지 않았다. 보들레르는 자연 상태의 인간과 사드의 악을 연결시키면서 ‘악의 꽃’을 썼고,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자신을 ‘사드 유령에게 사로잡힌 지성’이라고 표현했다. 또 초현실주의자 폴 엘뤼아르는 “사드는 문명인에게 원시적 본능의 힘을 되돌려주고, 고착으로부터 사랑의 상상력을 해방시켰다.”고 말했다. 사드는 우리가 믿고 싶어하는 ‘인간성’의 한계이자, 자유의 심연을 본 자다. 오선민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씨줄날줄] 비야디의 공습/주병철 논설위원

    15~16세기 대예술가로 비행기와 헬리콥터의 도면까지 그렸던 만능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많아 스프링의 힘으로 달리는 3륜 자주차(自走車)의 도면을 그렸다. 하지만 다빈치의 꿈은 꿈일 뿐이었다. 상상만 했지 실현되지는 못했다. 1569년 네덜란드인 S 스테핀이 돛에 바람을 받아 주행하는 풍력자동차를 만들었으나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나아가지 못해 실패했다. 기계의 힘, 즉 엔진으로 주행한 것은 1770년 프랑스 N J 퀴뇨가 제작한 증기자동차가 효시였다. 하지만 보일러가 너무 무겁고 성능이 좋지 않아 작지만 강력하고 간편한 엔진 개발·연구가 끊임없이 계속됐다. 1885년 자동차 내연기관연구소의 젊은 기사였던 G 다임러와 K 벤츠가 개가를 올렸다. 가솔린 엔진이었다. 자동차의 아버지로 불리는 두 사람은 1926년 각자 회사를 합쳐 회사를 다임러-벤츠로 이름지었다. 차이름도 메르세데스 벤츠라고 했다. 우리나라에 자동차가 선보인 것은 1903년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에 미국 공관을 통해 캐딜락 승용차 1대를 황실용으로 들여온 게 처음이었다. 이후 국산차 1호는 1955년 서울의 한 정비업자가 미군 지프 엔진과 변속기 차축 등을 이용하고 드럼통을 펴서 만든 지프형 승용차 ‘시발’로 기록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은 1975년 현대자동차가 우리 손으로 만든 ‘포니’(pony)다. 자동차는 모터쇼와 함께 진화해 왔다. 19세기 말부터 자동차를 생산한 독일·프랑스 등에서는 자동차 레이스가 곧잘 열렸다. 여기서 좋은 성적을 올려야 인기 있고 잘 팔리는 차로 인정받았다. 레이스 참가 선수들이 자신의 차를 특색 있게 꾸몄고 관중들은 이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는데 이게 현대 모터쇼의 전신이다. 지금의 프랑크푸르트, 파리, 디트로이트, 제네바, 도쿄모터쇼가 그렇다. 이달 초부터 10일까지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2011서울모터쇼가 열리고 있다. ‘미래형 엔진의 진화’가 화두다.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투자하면서 유명해진 중국 자동차 업체 비야디(比亞迪)가 5인승 전기차 ‘e6’를 모터쇼에 전시했는데 올 10월부터 국내시장에 출시한다고 한다. ‘글로벌 빅5’를 꿈꾸는 현대·기아자동차의 안방을 공습한다고 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현대차도 전기차 ‘블루온’을 연말부터 내놓는다고 한다. 가솔린·하이브리드를 거쳐 전기차시대로 들어선 자동차의 진화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또 종결자는 누가될까.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이진순선생 연극 ‘갈매기’ 다시 난다

    이진순선생 연극 ‘갈매기’ 다시 난다

    이해랑, 이원경 등과 함께 한국 근대극 연출 3대 거목으로 꼽히는 지촌(芝村) 이진순(1916~1984) 선생. 생전 그와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후배 연극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헌정 공연으로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를 선보인다. 지촌은 ‘갈매기’를 1966년 처음 연출한 뒤 1983년까지 모두 4차례나 무대에 올렸다. 그는 체호프의 작품 세계를 한국 관객에게 알리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평가받는 연극인이다. 고인이 연출한 1966년판 ‘갈매기’에 젊은 ‘니나’ 역으로 출연했던 김금지가 45년이 지나 여자 주인공 ‘아르까지나’(‘니나’의 남자 친구 어머니) 역을 맡은 점이 가장 눈에 띈다. 김금지는 “국립극장 부설 연기인 양성소 1기생이었을 당시, 지촌이 담당 교수님이었다.”면서 “가장 존경하는 이진순 선생의 헌정 공연에 출연할 수 있어 뜻 깊고 감회가 깊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인의 유작이 된 1983년판 ‘갈매기’에 출연했던 송승환도 남자 주인공 ‘뜨리고린’ 역을 맡아 오랜만에 관객 앞에 선다. 송승환은 아역 배우로 활동하던 중 이진순 연출의 ‘학마을 사람들’에서 봉남 역으로 처음 연극 무대에 데뷔했다. 서주희, 박지일, 김수현 등의 연기파 배우들도 가세한다. 삼각관계로 얽힌 예술가들의 욕망과 고뇌, 주변인들과의 갈등을 섬세하게 펼쳐낼 예정이다. 연출은 전 서울시극단장이었던 김석만 연출가가 맡았다. 국립극장장을 지낸 신선희가 무대 디자인, 박항치가 의상 디자인, 김의경이 예술감독을 각각 맡아 19세기 말 러시아 분위기를 무대 위에 재현한다. 김석만 연출은 “이진순 선생님은 마음속에 남아 있는 커다란 선배”라면서 “헌정 공연을 맡게 돼 영광이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갈매기’는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다양한 인간관계를 충실히 그린 연극으로, 흘러간 것들, 지나간 것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담고 있다.”면서 “예술가들의 사랑과 꿈, 좌절을 줄거리로 다룬 작품이어서 이진순 선생이 보여줬던 지극한 연극 사랑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 달 14일부터 5월 8일까지 명동예술극장. 2만~5만원.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씨줄날줄] 플라이진/이춘규 논설위원

    일본인들의 조어(造語) 능력은 탁월하다. 근대화를 단행했던 19세기 영어·네덜란드어 등의 용어들을 번역해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society를 사회(社會)라고 번역했다. 철학(哲學) 등 수많은 사회과학 용어도 만들어냈다. 우리도 많이 사용한다. 이후 한자와 영어 혼용이 늘었다. 공(空)자에 오케스트라를 합한 가라오케, 만(滿)자에 탱크(tank)를 합성한 만탕쿠 등은 일본식 조어다. 조어들은 세계로 퍼져 갔고, 한국에서도 통용된다. 최근 영어 사용이 늘어난 추세에 맞춰 영어만을 이용한 조어도 급증하고 있다. 2004년부터 정부 주도로 시작한 ‘쿨 비즈’(Cool Biz) 운동. 지독하게 무더웠던 그해 여름 넥타이를 매지 않고 근무해 에너지 절약과 환경 보호를 실천하자며 개시됐다. 겨울에는 내복을 입어 난방비를 아끼자는 웜 비즈(Warm Biz) 운동이 펼쳐진다. 레스큐다이는 일본식 조어의 결정판이다. 구조대라는 일어가 있지만 영어 rescue에 한자 대(隊)를 붙여 만들었다. 2주가 지난 3·11 대지진도 신조어들을 낳고 있다. 플라이진(Flyjin)은 비행을 뜻하는 영어 플라이에 외국인을 뜻하는 가이진(外人)을 합성한 신조어다. ‘대지진과 방사능 유출 이후 비행기를 이용해 도망갔던 외국인’이란 의미다. 도쿄의 기업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이 일본의 타지방이나 가까운 한국·홍콩 등으로 피신했다가 도쿄 사무실로 돌아가면 일본인 상사나 동료들이 비겁한 플라이진이라며 불쾌감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며 생겼다. 그래서 가족이 먼저, 직장이 다음인 외국인들은 마음이 불편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계속 근무하고 싶은데, 부모님의 성화가 심해 잠시 고국에 다녀오겠습니다.”라며 짧게 휴가를 얻었던 외국인들이 적지 않았다. 플라이진들의 도쿄 사무실 귀환이 본격화하면서 직장 내 화합을 해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를 맞아 플라이진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는 일본인들도 늘고 있다고 일본인들은 주장한다. 지난주 도쿄에서 지진 방사능 취재 중 만났던 일본인들은 “어디서든 맡은 바 업무를 수행하면 된다.”고 말했다. 직장 내 공동체의식을 중시했던 일본 직장인들의 의식이 크게 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플라이진이라는 말도 불만보다는 장난이나 놀림 정도로 사용된다고 한다. 도요타자동차에 근무하는 일본인 지인 등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강조한다. 일본 직장인, 일본인들의 의식이 시나브로 변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16색깔 프라하 이야기

    “프란츠 카프카, 야로슬라프 하셰크와 함께 프라하의 불가사의한 밤거리를 걷는다. 레스토랑에서 카렐 차페크 곁에 앉아 사사로운 이야기를 엿듣고, 거품이 넘치는 맥주집에서 요세프 슈크보레츠키와 함께 재즈를 듣는다. 구스타프 마이링크와 황금소로의 연금술사를 만나고, 헌 지푸라기 때문에 골치를 앓는 얀 네루다를 돕는다.” 체코 프라하는 세계의 관광객들을 자석처럼 끄는 도시 가운데 하나다. 한국인들에게도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이나 프라하 구(舊)시가광장을 무대로 찍은 광고 등을 통해 낯익은 도시다. ‘프라하-작가들이 사랑한 도시’(행복한책읽기 펴냄)는 체코문학의 대표 작가들이 프라하를 무대로 쓴 작품 16편을 담은 책이다. 19세기 후반 체코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작가로 손꼽히는 알로이스 이라세크는 관광명소로 유명한 오를로이 천문시계에 얽힌 전설을 다룬 ‘구시가지 시계의 전설’이란 작품을 썼다. 물론 이 전설은 사실이 아니다. 시간에 맞춰 시계의 문이 열리고 12사도가 등장하면 관광객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이 오를로이 천문시계는 1572년에 얀 타보르시크란 유명한 시계공이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구시가지 시계의 전설’은 프라하의 시계가 지구에 단 하나뿐인 천문시계라는 점에 착안한 문학 작품이다. 소설에서 천문시계를 발명한 장인 하누슈는 하루 아침에 프라하의 스타로 떠오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 권력자들의 가슴에는 천문시계를 독점하고 싶다는 욕망이 싹튼다. 이 욕망은 하누슈가 다른 도시에서 더 나은 천문시계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망상으로 발전한다. 시장과 참모들은 숙의 끝에 깊은 밤 장인의 작업실에 자객을 보낸다. 다음날 조수들은 두 눈이 뽑힌 채 벽난로 앞에서 신음하는 하누슈를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천문시계는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명물시계란 지위를 영원히 지키게 되었다는 것이 ‘구시가지 시계의 전설’에 담긴 이야기다. 프란츠 카프카, 얀 네루다, ‘로봇’이란 단어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카렐 차페크 등의 작품도 프라하의 특별한 매력을 알린다. ‘프라하-작가들이’는 잡지 편집장이자 소설가 출신으로 한국과 체코의 문화 교류에 앞장서는 야로슬라브 올샤 주한 체코대사가 발 벗고 나선 덕분에 출간됐다. 책에 등장하는 체코의 국민작가 얀 네루다에 각별한 애정을 품은 고은 시인은 31일 서울 서교동 체코정보문화원에서 열리는 출판 기념회에서 프라하에 얽힌 인연을 소개할 예정이다. 고은 시인은 다음 달 프라하에서 열리는 ‘프라하 작가 페스티벌’에 참가하며, 5월에는 체코에서 시집을 출간한다. 1만 2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독일서 잠자던 ‘한국 유물’ 깨어나다

    독일서 잠자던 ‘한국 유물’ 깨어나다

    프랑스에서 외규장각 도서가 돌아오고 일본에서 조선왕조의궤가 반환될 움직임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독일에 잠들어 있던 한국의 고미술품들이 한자리에 전시된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21일 ‘한국의 재발견-독일 박물관 소장 한국의 보물’전이 독일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독일 소재 10개 박물관에 소장된 6000여점의 한국 유물 가운데 116점을 엄선해 오는 25일부터 2013년 2월까지 쾰른 동아시아미술관,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속박물관, 프랑크푸르트 응용미술박물관, 슈투트가르트 린덴박물관 4곳을 순회 전시하는 일정이다. 2009년 논의를 시작해 20개월의 준비 작업을 거쳤다. 대부분 민속품이긴 하지만 수준 높은 작품들도 있다. ‘고려수월관음도’는 쾰른 동아시아미술관 창립자인 아돌프 피셔가 1901년 조선을 방문했을 때 사들인 작품이다. 관음도답게 부처가 쓰고 있는 천이 투명하게 묘사된 것이 고려 불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8세기 조선백자 컬렉션은 독일인 무역상들의 손을 통해 독일로 넘어 갔다. 궁중 사람들이 내다 판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5~6세기 신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귀걸이, 1794년 제작된 조선시대 8폭병풍, 19세기 말 동경제국대 교수를 지낸 칼 코트셰가 1884년 조선 여행길에 사들인 대동여지도 사본 등도 함께 전시된다. 민영준 교류재단 베를린사무소장은 “유럽에서 이렇게 성대하게 한국 유물을 전시하는 것이나 독일 10개 박물관이 공동으로 참가하는 것 모두 처음이라 독일에서도 역사적 전시라는 평이 나오고 있다.”면서 “영어와 독일어 도록도 제작돼 유럽인들에게 한국 유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삼성 미술관 리움 ‘코리안 랩소디-역사와 기억의 몽타주’전

    삼성 미술관 리움 ‘코리안 랩소디-역사와 기억의 몽타주’전

    확 눈길을 끄는 작품은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우키요에(浮世繪)였다. 원래 우키요에는 17~19세기 일본 에도시대 부상한 서민문화에서 유행한 목판화다. 독특한 회화성 때문에 서구 인상파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번 전시장에 나온 우키요에 작품들은 조금 달랐다. 조선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일본인의 시선에서 묘사했다. 그래서 정적이라기보다 동적이고, 감상적이라기보다 정치적이다. 예컨대 갑신정변의 주역이었으나 결국 암살당한 김옥균을 위인적 풍모로 묘사했고, 청일전쟁 뒤 재집권에 나선 흥선대원군 옆에 결사옹위하는 일본군 모습을 그려 뒀다. 제국주의 모국이 지닌 ‘인류학적 혹은 박물관적 시선’이 얼마나 조선을 원시적으로 묘사하고 있는지 사진 자료실에서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보기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지만 당대 외부인들이 조선을 어떻게 봤는지, 또 당시 조선의 실제 풍경이 어떠했는지 유추해 볼 수 있는 자리다. 동시에 이제 조금 먹고살 만해졌다고 우리도 남들을 그런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추하게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고 있는 ‘코리안 랩소디-역사와 기억의 몽타주’전 얘기다. 전시 기획을 맡은 이준 부관장은 “우리나라가 급속한 근대화를 통해 과거를 빨리 잊어버리다 보니 지금 사회적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면서 “우리 과거는 어땠는지 전시를 통해 되새겨볼 수 있도록 했다.”고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상설전시장을 제외한 ‘블랙박스’와 ‘그라운드’ 두 전시장을 통째로 털었고 80점 이상의 그림에 사진, 미디어 등을 총출동시켰다. 선 굵은 역사화로 유명한 서용선, 역사적 인물 속에 인물이 다시 놓이는 그림을 선보여 온 김동유, 빛바랜 가족사진을 변형시켜 기억의 의미를 되묻는 안창홍 등의 작품도 대거 내걸었다. 이들 작품 사이에는 ‘순종어진’, ‘유학자의 초상’ 같은 옛 그림들을 배치했다. 몽타주라는 전시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전통 작품과 현대 작품의 충돌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여주려는 의도다. 정연두 작가가 새로 제작한 미디어 작품 ‘구보씨의 일일’도 시선을 붙잡는다. 구보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등장하는 식민시기 경성 시내를 모형으로 재현해 찍었다. 꽤나 정밀하다. 1930년대 서울 풍경이 궁금하다면 찬찬히 살펴볼 만하다. 6월 5일까지. 7000원. (02)2014-69 0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中, 제조업 생산 세계 1위 등극

    지난 110년 넘게 ‘세계 최대 생산국’의 명성을 지켜온 미국이 중국에 자리를 내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4일 중국이 지난해 제조업계 생산량에서 미국을 꺾고 세계 1위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경기예측업체인 IHS 글로벌 인사이트는 2010년 중국 제조업계의 생산량이 전 세계의 19.8%를 차지해 19.4%로 집계된 미국을 근소하게 앞섰다고 발표했다. 니컬러스 크래프츠 영국 워릭대 교수는 “가까운 미래에 역전되지 않을 것으로 보였지만 중국의 생산량이 미국을 앞질렀다.”면서 “(이는) 전 세계 제조업계의 근본적인 이동”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지난 18세기에서 19세기 중반까지 세계 최대 수준의 생산량을 기록했지만, 산업혁명 이후 영국과 미국에 그 자리를 빼앗겼다고 경제사학자들은 전했다. 실제 전 세계 생산량에서 중국의 비중은 1830년 30%까지 올랐으나, 1900년에는 6%로 급속히 추락했고 1990년에는 3%까지 떨어졌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시론] 디자인이 미래 생존 전략이다/정경원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장

    [시론] 디자인이 미래 생존 전략이다/정경원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장

    얼마 전 독일 에센에서 ‘2011 레드 닷 디자인 공모전’의 심사회가 열렸다. 전 세계 60여개 나라에서 4400여점이 출품돼 이틀간 심사가 진행됐다. 출품작은 지난해에 비해 4% 정도 늘어났다. 이는 세계적인 경기 불황에도 제품의 디자인 경쟁이 아주 치열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경제가 어려울수록 구매자들의 선택 기준은 더욱 까다로워진다. 따라서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이라도 사로잡아야 한다. 가정용품과 주방기기를 비롯해 사무용품, 컴퓨터는 물론 승용차와 중장비 등 다양한 제품들을 대상으로 디자인 수준에 따라 최우수상, 입상, 입선을 가려내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임무다. 제품 부문별로 필자를 포함해 각 3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혁신성, 심미성, 기능성 등 여덟 가지 디자인 선정 기준에 따라 심사했다. 국적과 배경이 다른 심사위원들이 함께 디자인의 우월을 가려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숙련된 심사위원들은 뛰어난 디자인을 선별하는 데서 쉽게 공감대를 형성한다. 한눈에 호감이 가는 형태와 색채, 사용성 등을 가려낼 수 있다. 또 사용자 입장에서 세심하게 살펴보면 편의성과 안전성 등의 우열이 판별된다. 심사를 하는 동안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속담이 머릿속에서 내내 맴돌았다. 수많은 제품 중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끄는 것들은 하나같이 형태와 기능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아름다운 형태에 치중하다 보니 기능이 약해졌다.”라거나, “기능에 충실하려다 보니 형태가 무미건조해졌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는 디자인을 잘못했다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19세기 중엽 미국의 조각가 호레이쇼 그레노는 “사물의 형태적 특성은 곧 어떤 기능이 있는지를 나타내 주는 증거이며, 아름다운 형태는 그런 기능이 완벽하게 발휘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약속이다.”라고 주장했다.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새들과 물고기들의 날렵하고 멋진 형태는 공기와 물의 저항을 가장 적게 받도록 유선형으로 진화된 결과라는 것이다. 디자인도 어찌 보면 생존전략의 결과이다. 또 “디자인의 가장 훌륭한 교과서는 자연”이라는 표현은 곧 제품을 디자인하는 과정이 자연물의 진화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존에 꼭 필요한 부분은 강화하고, 불필요한 것은 과감하게 퇴화시키는 진화의 법칙이 바로 디자인의 원리이다. 수많은 출품작 중에서 탁월한 디자인을 가려내는 것은 제품을 만들 때 진화의 과정이 얼마나 충실하게 이루어졌는가를 판별하는 작업이다. 제품이든 건물이든 하나의 인공물이 기능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다는 것은 단지 탁월한 디자인을 위한 출발점일 뿐이다. 특히 한눈에 그 기능이 완벽하다는 것을 약속해줄 형태를 만들어 내려면 부단히 갈고 다듬어야 한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쓸모’와 ‘아름다움’의 융합은 치열한 진화 과정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사실을 직시하고 실천하는 기업들만이 탁월한 디자인의 날개를 달고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한 품목당 200유로(약 30만원)라는 출품료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출품작이 크게 늘어나는 것은 디자인 경쟁이 점점 더 심화됨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우리 기업의 제품들은 기능적으로는 큰 무리가 없지만, 매력적인 특성이 약해서 늘 “2%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중국·터키 등 신흥 공업국들의 디자인 수준이 크게 향상되어 우리의 뒤를 바짝 따라붙고 있어서, 이러다가 정말 기술력에서는 선진국에 밀리고 디자인에서는 후발 개발도상국에 쫓기는 신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적잖다. 디자인은 사치스러운 것이라느니, 겉멋만 내는 것이라는 등 시대착오적인 논쟁이 더 이상 우리 디자인 수준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미래 경쟁력을 담보해줄 수단으로 디자인을 적극 활용하려는 의지와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 [씨줄날줄] 커피/이춘규 논설위원

    “커피의 본능은 유혹. 진한 향기는 와인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키스보다 황홀하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18~19세기 프랑스 성직자이자 정치가, 외교관이었던 탈레랑의 커피 예찬이다. 탈레랑의 도움을 받았던 영웅 나폴레옹은 “내게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은 진한 커피, 아주 진한 커피이다. 커피는 내게 온기를 주고, 특이한 힘과 쾌락과 그리고 쾌락이 동반된 고통을 불러일으킨다.”고 평가했다. 미국 링컨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는 커피예찬론자. 커피는 종류가 무수하다. 중남미, 동남아, 아프리카와 인도, 예멘, 중국 등지의 1000만㏊ 농장에서 150억 그루의 커피나무가 재배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커피에 포함된 카페인은 흥분효과가 있다. 사향고양이가 커피원두를 먹은 뒤 생산되는 사향커피는 최고급. 사향고양이가 자연산인지 사육된 것인지, 먹은 열매가 어떤 것인지 등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국내 유명호텔에서 한잔에 3만원이 넘는다. 인간은 유사 이전부터 야생 커피를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라비카’는 원산지 에티오피아에서 옛날부터 식용으로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현재와 같은 커피는 13세기 아랍세계에서 등장했다. 처음 일부의 성직자만이 마셨다. 15세기에 들어서야 일반주민의 음용이 정식으로 인정받았다. 유럽에는 16세기, 북미에는 1668년에야 전해졌다. 우리나라에는 1830년대 프랑스 신부들이 전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이후 명동과 종로 등지에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커피집이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서 커피전문점이 포화상태라는 말이 수년이나 됐지만 현재도 커피전문점 출점 경쟁은 치열하다. 국내 최초로 500호점 시대를 연 카페베네의 김선권 대표는 출점 경쟁이 뜨겁던 지난해 2월 사석에서 “저는 강남대로를 걸을 땐 가끔 눈을 감고 싶습니다. 많은 커피전문점들을 바라보면 겁이 나서 말이죠.”라고 말했다. 실제 강남대로변은 무수한 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의 기세로 늘었다. 커피 열풍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 수입된 커피는 11만 7000t, 4억 1598만 달러어치로 사상 최대 규모다. 2009년 수입 금액에 비해 33.8% 늘었다. 커피 한잔에 커피가 약 10g 들어간다고 볼 때 지난해 성인 1명이 커피 312잔을 마신 셈. 고급커피 수요가 크게 늘었다. 특히 외국계 커피전문점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미국산 원두 10g(1잔 분량)의 세전 수입 원가는 123원으로 나타나 3000~4000원인 시중가의 적정선 논란이 뜨겁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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