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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佛 워킹푸어 폭증… 생활환경 19세기 수준”

    유럽 전역에서 빈곤선 미만의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워킹 푸어(일하는 빈곤층)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지역의 워킹 푸어가 현재 수백만명에 이르고 이들 가운데 수십만명은 야영지와 차량, 값싼 숙박업소에서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가 현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3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5명이 끼니 걱정을 하고 미래를 위한 저축은커녕 난방비와 아이 옷값도 구하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최악의 재정난에 시달리는 그리스나 스페인은 물론 독일과 프랑스 등 역내 경제강국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현지 전문가들은 밝혔다. 파리정치대학의 장 폴 휘트시 경제학과 교수는 “프랑스가 부유한 나라이긴 하지만 이 나라의 워킹 푸어들은 19세기 사람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면서 “워킹 푸어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재정난에 혼쭐이 난 유럽 각국 정부가 예산적자를 줄이기 위해 대규모 지출 삭감과 노동 유연성 강화 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특히 유럽 각국의 정치인들이 국가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자료로 활용되는 고(高)실업률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고용촉진을 채근하자, 고용주들이 의료보험이나 고용보장이 필요한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계약을 대량으로 양산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유럽연합(EU) 통계청(유로스타트)은 “2011년 EU의 신규 고용직 가운데 50% 정도가 비정규직으로 추산된다.”고 최근 연구자료에서 밝혔다. 유럽연합 집행기관(EC)의 이자벨 엥스테드는 “임시직을 늘려 실업률을 낮추려는 정치인들의 시도는 유럽이 가진 진짜 문제를 호도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유로존 국가 근로자의 8.2%가 평균 빈곤한계선인 연봉 1만 240유로(약 1540만원) 미만의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북쪽으로 48㎞ 거리에 있는 야영지의 이동주택에 살고 있는 멜리사 도스 산토스(21)와 남자 친구 지미 콜린(22)은 몇 개월 동안 정규직을 찾아 전전하다가 여의치 않자 각각 임시직인 슈퍼마켓 점원과 거리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이곳에는 이른바 ‘주변인’이라고 불리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 수십명이 힘들게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고등교육을 받은 산토스와 콜린은 “저소득자를 위한 얼마간의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지만 택시비를 내고 생활비를 쓰다 보면 미래를 위한 저축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5년이 지나도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보증금을 마련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민중의 삶·풍속으로 풀어낸 ‘격랑의 근대사’

    민중의 삶·풍속으로 풀어낸 ‘격랑의 근대사’

    작가 문순태(71)에게 강은 “본디 모습 그대로 인간이 살아가는 터전이 되고 또 다른 생명과 교섭하면서 힘의 원천이 되는” 존재다. 그중에서도 영산강은 “전라도 사람들의 핏줄이고, 한과 희망, 슬픔과 기쁨, 절망과 희망, 빛과 그림자를 안고 흘렀고, 지금도 그렇게 흐르는” 삶의 터전, 그 자체다. 작가가 영산강을 배경으로 격랑의 한국 근대사를 풀어낸 ‘타오르는 강’(소명출판 펴냄)이 전 9권으로 끝을 맺었다. 37년을 이어온 역작이 마무리됐으니 작가의 홀가분함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작가는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40년 가까이 붙들고 씨름해 온 책을 드디어 완간했으니 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면서 “식민사관에 휘둘려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광주학생독립운동까지 많은 사료를 근간으로 마무리할 수 있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타오르는 강’은 1975년 작가가 전남매일신문에 연재한 ‘전라도 땅’에서 시작됐다. 당시 기자였던 작가는 취재차 만난 전남 나주 양반집 할머니에게 노비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노비를 꽤 많이 둔 양반집이었는데, 노비 세습제가 폐지되면서 노비들에게 문서를 나눠 주었더니 매달리면서 ‘제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했다는 거예요. 단 한번도 주체적으로 살아 본 적이 없는 노비들이 갑작스러운 자유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 삶을 따라가 보니 당시 버려진 땅이 많았던 영산강에 몰려 터를 닦고, 한(恨)의 민중사를 만들어 낸 거죠.” 전남매일 연재는 2년 후 중단했고, 1981년 한 월간지로 옮겨 다시 소설을 이어 갔다. 이후 주간지와 일간지를 옮겨 가며 연재하다 1987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전 7권으로 묶어 냈다. 1886년부터 1911년까지 이야기로, 노비인 장웅보 가족사를 중심으로 19세기 말 노비 세습제 폐지부터 동학농민전쟁, 개항과 부두 노동자의 쟁의 등 민중운동 속에 휘말린 민초들의 삶을 다뤘다. 8권과 9권은 작가가 그토록 쓰고 싶어 한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이 객관적으로 서술된 것이 불과 몇 년 전입니다. 독립운동 중심 인물이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고, 그나마도 식민사관에 기초해 한·일 학생들 사이에 일어난 우발적 단순 사건으로 비춰졌죠.” 참여정부 들어 이들의 역사적 공적이 인정받았고,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면서 집필이 가능해졌다. “7권까지는 역사적 사실 위에 대부분 상상력으로 채웠지만,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사료를 많이 참고했다.”는 작가는 “이 독립운동이 광주청년학원과 광주고보를 비롯한 학생들이 오랫동안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준비해 온 사건임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소설에 당시 노비들의 질박한 생활과 풍속사도 그대로 녹여 냈다. 특히 “작가는 언어의 채굴자이고 특히 죽어 있는 언어의 활용도를 높여 다시 살려 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전라도 토박이말을 원형대로 살렸다. 소설의 별권으로 이 작품의 우리말 사전을 준비 중이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그때 민초들은 목숨 대신 신앙을 택했다

    19세기 중반은 세계사에서 보면 사상과 체제의 분수령으로 꼽힌다. 서구의 문명국가들은 보호령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제3세계 국가들을 식민지화했다. 일본은 외세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군국주의의 기점이 되는 메이지 유신을 단행했고 러시아에서는 차르 체제 아래서 사회주의가 태동했다. 조선에도 개화의 물결이 다가왔다. 북에서는 러시아가 교역을 요구했고 프랑스 군대와는 전쟁을 겪었다. ‘조선이 버린 사람들’(이수광 지음, 지식의 숲 펴냄)은 이 시기 중 1866년(병인년)에 집중한다. 천주교를 중심으로 한 당시 정치·사회 현상을 살피면서 ‘1866, 애절한 죽음의 기록’이라는 부제처럼 처절한 천주교 박해 사건들을 파헤친다. 책은 김아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1839년에 순교한 아가타 김아기와 다른 인물이다). 천주교도인 남편 김진은 이미 닷새 전에 양화진에서 처형됐다. 김아기는 배교(背敎)를 종용받으며 모진 고초를 당하고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천주교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다가 결국 참수에 처해졌다. 이 이야기가 마치 드라마처럼 펼쳐지지만 실제로 이 인물에게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왕조실록에 단 한 줄 나와 있다.”는 저자의 설명처럼 언제 세례를 받았는지 어디 출신인지조차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 김아기를 시작점에 둔 것은 그가 책에서 다루려는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과 민초의 삶을 대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은 경제 대부분을 사대부에게 장악당하고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도적이 되는 궁핍한 시기였다. 백성은 굶지 않고 고통도 없는 세상을 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세의 고통도 내세의 행복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 천주교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이 천주교와 함께 빠르게 확산한 배경도 같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부터 흥선대원군의 과감한 개혁 정치와 남인과 유림의 대립, 러시아의 침략 속에서 대원군이 프랑스 신부들에게 요구했던 역할과 그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시작된 천주교 탄압 등을 입체적으로 그렸다. 저자가 낸 대중 역사서가 그랬듯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장면 장면을 소설처럼 풀어내 재미를 더한다. 저자는 책을 쓰기 위해 직접 천주교 성지를 찾아 역사의 흔적을 살폈다. 출판 전에는 책에 들어갈 사진을 찍기 위해 보름 동안 카메라를 들고 곳곳을 누볐다. 그러면서 저자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신념을 지켜내는 숭고함과 종교의 진정성을 느꼈다.”고 했다. 어쩌면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 “그들은 신앙을 위해 귀한 목숨까지 버렸는데 오늘날의 교회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게 책의 핵심일 수도 있겠다. 1만 28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아프리카·유럽 문화가 만나는 곳 모로코

    아프리카·유럽 문화가 만나는 곳 모로코

    중세 서양인들은 아프리카 북서부 모로코를 세상의 서쪽 끝이라고 믿었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스페인과 10㎞ 남짓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모로코는 아프리카와 유럽 문화가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끊임없는 외침에 시달렸다. 아라비아에서 진출해 온 이슬람 군대가 모로코를 정복한 685년 이후 이 땅의 원주민 베르베르족도 이슬람화됐다. 11세기에는 알모라미드 왕조가 에스파냐(현 스페인)에서 세네갈강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지만 잠시뿐. 15세기 후반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침략을 받았고 오스만튀르크의 압박에 시달렸다. 19세기 프랑스령이 된 이후로는 서유럽 열강의 각축전 양상으로 전개됐다. 1912년 프랑스·에스파냐의 보호령으로 분할되는 등 고초를 겪어야 했다. 1956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고 1958년 에스파냐의 모로코령도 회복해 비로소 오늘날의 모습을 갖췄다. EBS의 ‘다큐10+’는 지난해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통해 방송된 프랑스 다큐멘터리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곳, 모로코’를 29일 밤 11시 10분에 방송한다. 문화 중심지로 가죽 가공제품이 유명한 페스, 대서양과 지중해가 만나는 무역항 탕헤르, 수도 라바트와 그 위성도시인 살레, 최대 고고학 유적지 볼루빌리스, 경제 중심지인 카사블랑카, 조용한 어촌이자 예술가들의 도시인 에사우이라, 최대 휴양지이며 아르간 오일로 유명한 아가디르 등이 제각각 다른 경치와 정취를 뽐낸다.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왕국, 북부 아프리카의 문화 중심지, 경제 발전과 환경 보전 혹은 전통 계승 사이에서 고민하는 개발도상국 등 모로코는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 그 때문에 유럽이 끝나고 아프리카가 시작되는 땅 모로코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만나는 땅이기도 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역대 최고가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습작 경매

    역대 최고가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습작 경매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1839∼1906)의 작품인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의 습작이 옥션에 출품된다.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는 27일(현지시간) “1953년 이래 한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의 습작이 오는 5월 1일 경매에 오른다.”고 발표했다. 19세기 말에 그려진 이 습작은 그간 소재가 알려지지 않았으나 작년 9월 사망한 텍사스의 한 남성이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크리스티 측은 이 습작의 낙찰가격을 2,000만달러(약 227억원)로 예상하고 있다.        세잔은 생전에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연작을 다섯 편 남겼으며 다른 작품들은 프랑스 오르세미술관,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이 소장하고 있다. 특히 이중 한 작품이 지난 2월 2억 5000만달러(약 2800억원)에 팔리며 역대 미술품 판매 최고가를 경신한 바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정명훈과 국립오페라단 ‘세번째 협업’

    정명훈과 국립오페라단 ‘세번째 협업’

    창단 50주년을 맞은 국립오페라단이 올해 첫 작품으로 지아코모 푸치니(1858~1924)의 ‘라보엠’을 새달 3~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 올린다. 오페라 팬들이 관심을 갖는 까닭은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지휘봉을 잡기 때문이다. 국립오페라단과 정 감독의 협업은 2009년 ‘이도메네오’, 지난해 ‘시몬 보카네그라’에 이어 세 번째다. ●伊 마르코 간디니 연출 연출을 맡은 마르코 간디니는 20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정 감독과는 지난해 ‘시몬 보카네그라’를 함께하면서 깊이 있는 악보 해석으로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냈다.”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간디니는 1992년부터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겸 오페라연출가 프랑코 제피렐리와 함께 작업을 한 베테랑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들며 연출을 하고 있다. 19세기 파리 뒷골목의 가난한 시인 로돌포와 미미의 슬픈 사랑 이야기답게 ‘라보엠’은 ‘그대의 찬 손’ ‘아, 사랑하는 아가씨여’ ‘내 이름은 미미’ 등의 아리아로 유명하다. 배신과 복수, 사랑으로 점철된 이탈리아 오페라들과 달리 극적인 이야기 구조는 약하다. 더블캐스팅 중 ‘A팀’의 소프라노 김영미(58)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독일 카셀국립극장의 주역 가수인 테너 김동원(38)은 검증이 필요 없는 조합. 젊은 피를 수혈한 ‘B팀’은 홍주영(31)과 강요셉(34)이다. 지난해 제노바의 카를로펠리체 극장에서 미미 역으로 이탈리아 무대에서 데뷔했던 홍주영은 국내 데뷔 역시 같은 역할로 하게 됐다. 홍주영은 “국립오페라단과 정명훈 선생, 라보엠은 학창시절 꿈만 같던 단어들인데 현실로 다가와서 너무 기쁘다.”면서 “2년 전 극심한 폐렴을 앓았기 때문에 (같은 병으로 숨지는) 미미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피’ 홍주영·강요셉 출연 한국인으로는 처음 독일 베를린 도이체오퍼에서 전속 주역 가수로 활동하는 강요셉은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해를 품은 달’을 보면서 김수현처럼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울부짖는 연기를 이번 작품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A팀’ 선배들을 보면 도전의식도 생긴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오케스트라는 서울시향이, 합창은 국립합창단과 PBC소년소녀합창단이 맡는다. 1만~15만원. (02)586-5282.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글로벌 시대] 선거, 그리고 포퓰리즘/장홍 프랑스 알자스주정부 개발청 자문위원

    [글로벌 시대] 선거, 그리고 포퓰리즘/장홍 프랑스 알자스주정부 개발청 자문위원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다. 선거철답게 각 정당이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포퓰리즘에 대한 공방도 만만찮다. 선동과 동의어인 포퓰리즘은 전 세계적인 정치 현상이 되어 선거전에 돌입한 진보와 보수 모두를 유혹하고 있다. 언론에도 자주 등장하는 익숙한 단어 포퓰리즘, 하지만 그에 대한 정의는 어디에도 없다. 프랑스의 작가 구스타브 플로베르는 “포퓰리즘, 그게 뭔지 모르겠다. 뭔가에 반대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포퓰리즘의 모호한 특성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포퓰리즘이란 단어의 근원을 찾아보면 원래 문학에서 비롯되었다. 1929년 ‘작품: 뢰브르(L‘Oeuvre)’란 문학잡지에 발표된 레옹 르모니에의 글 ‘문학선언:포퓰리스트 소설’에 처음 등장했다. 당연히 문학의 한 경향을 지칭하는 것이었지만 차츰 정치 현상을 논하는 어휘로 전용되며 주로 비판적인, 게다가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포퓰리즘은 이 어휘가 태어나기 전에 역사적으로 존재했었다. 19세기 제정 러시아 시대의 나로드니키(narodniki)와 비슷한 시기 미국의 위 더 피플(We the People) 운동이 대표적이다. 전자는 ‘민중 속으로’란 의미로 사라진 세상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대중운동이었고, 후자는 프티 부르주아 중심의 목가적 포퓰리즘으로 미국 민주주의 설립자들의 이상을 재현하려는 운동이었다. 이 초기의 포퓰리즘은 모두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염원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들의 이 같은 꿈은 재구성된 과거에 대한 향수에 지나지 않았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포퓰리즘은 시작부터 진보의 사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포퓰리즘이란 바이러스는 세월과 더불어 여러 변종으로 발전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포퓰리즘은 분석적 용도와 가치론적 혹은 규범적 용도 사이에서 모호성을 드러낸다. 정치적 분야에 적용될 때, 포퓰리즘의 모호성은 더욱 두드러지는데, 그 이유는 한편으로 포퓰리즘이 정치학의 서술적 영역으로 사용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비하적인 논쟁, 게다가 비난으로 간주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에 대한 어떤 정의도 분쟁의 소지를 지닐 수밖에 없어 보인다. 아르헨티나의 철학자인 에르네스토 라클로는 “오늘날 얼마간의 포퓰리즘 없이 민주주의를 생각할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그에게 포퓰리즘은 경멸적인 어휘가 아니라 중립적 개념일 뿐이며, 정치를 구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리고 포퓰리즘은 엘리트에 맞서는 대중, 부동의 공공 제도에 저항하는 동원된 대중의 대립 구도라는 작동 원리를 지닌다. 대표적 포퓰리스트 정치가로는 역사적으로 무솔리니, 마오쩌둥 그리고 현재로는 우고 차베스 등을 들고 있다. 반면 프린스턴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얀 베르너 뮬러는 대중과 엘리트를 대립시키는 포퓰리즘은 해악적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에 따르면 포퓰리즘이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어느 정도의 혐오, 감세 주장, 생활 수준의 저하에 대한 공포를 이용한 선동, 코스모폴리턴적인 엘리트에 대한 반감 등이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의 반대말은 엘리트주의가 아니라 다원주의(pluralism)라고 주장하며, 진보가 어느 정도 포퓰리즘 카드를 쳐야만 포퓰리즘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패배주의라고 단호히 규정한다. 포퓰리즘은 여전히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존재이며, 가볍게 다룰 주제가 아니라고 한다. 포퓰리즘에 대한 보편적 혹은 학문적 정의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포퓰리즘이란 어휘가 사라지거나 정치적 의미를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 정치에서 포퓰리즘이란 표현은 더욱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최근 한국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복지 포퓰리즘 등이 단적인 예다. 아이러니하게도 포퓰리즘은 진보가 보수 특히 극우의 정책을 비난할 때 주로 사용해왔는데, 최근에는 보수가 진보의 정책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포퓰리즘의 정체는 여전히 모호한 만큼 위험해 보인다.
  • 문명충돌서 얻은 지혜들

    사람과 사람의 만남, 혹은 문화와 문화의 접촉에서는 늘상 충돌이 있기 마련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충돌에서 밀려난 패자의 문화는 감춰지고 축소되기 일쑤다. 하지만 역사를 들춰 보면 주변과 약자의 문화며 이데올로기가 중심축과 지배층을 뒤흔들고 점령한 경우가 적지 않다. ‘문화충돌, 그리고 너그러움의 진화’(서이자 지음, 채륜 펴냄)는 바로 역사에서 거듭된 문화충돌을 통해 인류가 건져낸 지혜와 상호이해의 노력들을 추적한 책. 바로크 궁정문화에서 디즈니까지, 인류 역사 중 가장 커다란 문화충돌로 기억되는 일곱가지 사례를 조목조목 훑어낸 추적이 흥미롭다. 책은 특히, 유명하지만 일반인들이 간과하기 쉬운 주변부의 중심축에 대한 문제제기와 저항의 흐름을 들춰내 눈길을 끈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시기의 문화충돌, 19세기 산업화의 큰 흐름에서 생겨난 파리 노동자 문화, 그리고 포스트모던 시대의 록 음악과 애니메이션이 큰 축. 그 축 아래 궁정귀족과 부르주아의 성 문화 충돌이며, 나폴레옹에 맞선 스페인 화가 고야의 고민과 고발, 파리에서 카페와 신문을 통해 형성된 노동자 문화의 시민세력화, 그리고 록에서 힙합까지를 아우르는 저항음악에 담긴 충돌과 갈등의 속내가 속속들이 풀어진다. 프랑스혁명 당시 단두대에서 처형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 타락한 구체제의 상징이었던 그녀를 주제로 한 포르노그라피 판화가 결국 절대주의 왕가의 신성성과 정통성을 무너뜨렸다는 설은 유명하다. 하지만 저자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된 더 큰 이유를 그녀가 ‘공적 영역’에 존재하는 여성의 상징이었다는 데서 찾는다. 책에서 거듭 강조되는 메시지는 바로 문화충돌의 현명한 흡수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은 그 폭력과 상처에 대한 반성의 시간을 갖고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된다는 것. 저자는 그것을 ‘너그러움의 진화’라 부른다. 1만 38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양반이 된 노비 후손 2세기에 걸친 신분세탁

    양반이 된 노비 후손 2세기에 걸친 신분세탁

    조선시대 양반은 특권유지를 위해 어떤 전략을 썼을까. 하나는 ‘행정실무를 담당한 아전·향리들을 중간신분으로 격하’시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자를 차별’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누를 수 없는 게 특권에 대한 열망이다. 재산을 모은 노비가 양반 신분을 돈으로 사는 것이다. 사학계에서 이를 주로 19세기 멸망사로 연결짓는다. 국가재정의 파탄이 배경에 깔려 있다는 점에서 지도층의 무능을, 엄격한 신분질서가 흔들렸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사회의 혼란상을 나타내는 징표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욕망이 강렬했던 것으로 본다면 어떨까. 역사비평 2012년 봄호에 실린 권내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의 논문 ‘양반을 향한 긴 여정-조선 후기 어느 하천민 가계의 성장’은 이 점을 잘 요약해서 보여준다. 권 교수가 이 글에서 규명하는 것은 ‘수봉’이라는 한 사노비의 후손들이 17세기 말에서 19세기 중엽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을 거쳐 ‘김해 김씨 양반가’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다. 권 교수는 단성현 도산면, 그러니까 지금 경남 산청군의 일부 지역에 살았던 ‘김흥발’에서 시작한다. 1678년 사노비 문건에 수봉이 등장한다. 이때는 성도 본관도 없다. 1717년 족보에는 수봉의 아들로 김흥발이 등장한다. 1678~1717년 사이에 사노비 신분에서 해방된 수봉이 김씨 성을 획득한 것이다. 곡식을 바쳐 면천하는 납속종량(納粟從良)의 방법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수봉은 왜 수많은 본관과 성씨 가운데 김해 김씨를 골랐을까. ‘지리적으로 가깝거나 인구 수가 많아 익숙한 것’을 골랐으리라는 점이다.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터 잡은 대표적인 양반 성씨가 밀양 박씨와 남원 양씨였다는 점이다. 그들 성을 끌어다 쓰다가는 곤란할 것 같으니 ‘가장 흔하면서도 신분적 장벽이 높지 않았던 김해 김씨를 자신의 성관으로 선택’한 셈이다. 실제 이 시기 단성현 호적 조사 결과를 보면, 김해 김씨는 늘어나는 추세가 뚜렷한데 밀양 박씨와 남원 양씨는 증가세가 딱히 드러나지 않는다. 수봉뿐 아니라 다른 면천 노비들도 두 성씨를 의도적으로 피하면서 제일 편한 성씨를 골랐다는 의미다. 그러나 아직은 평민이다. 김수봉의 집안은 이후 양반에 도전한다.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김수봉의 증손자 김광오다. 김광오는 1780년 양반들이 독점했던 ‘유학’이란 호적상 직역에 제일 먼저 진출했다. 그 덕분에 수봉의 부인도 이‘소사’(召史·이름 없는 여염집 아낙네)에서 이‘성’(姓), 다시 이‘씨’(氏)로 자꾸만 높아진다. 김광오는 1783년 다시 중간층의 교생으로 강등되지만 19세기 중엽 이후에는 후손들이 유학 직역에 안착하는데 성공한다. 양반되는 데 ‘2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들인 셈인데 이는 ‘그들의 뿌리가 노비로 연결되기 때문에 급속한 성장을 이루기에는 그만큼 시간적 물리적 조건을 충분하게 갖추지 못했던 데서 기인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평탄했을 리 없다. 대표적인 예가 김성종이다. 그는 1825년 본관을 김해에서 안동으로 바꾸면서 사는 곳도 도산면에서 신등면으로 옮긴다. ‘안동 김씨가 당시 중앙 집권세력이었다는 점’, ‘신등면이 도산면과 달리 대표적인 양반촌’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성종의 이런 행동은 이제 명실상부한 양반가의 반열에 올라서겠다는 야심찬 도전인 셈이다. 그러나 이들은 1831년 도산면으로 되돌아오고 본관도 김해로 환원한다. 쓰디쓴 실패다. 오늘날 양반이라면 엄격한 신분체계로 이해되지만 실제로는 ‘지역 명망가들의 사교클럽’(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교수)에 더 가까웠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호적상 양반임을 내세워 실제 양반 행세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보다 더 눈길을 끄는 대목은 후손들의 족보에서 1831년 양자가 처음 등장한다는 점이다. 양자 입양은 양반 가문에서 부계질서 위주의 가계계승을 위해 썼던 방법이다.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면서 양반층의 문화를 따라하고 베끼는 것을 넘어서 ‘양반층의 문화를 부분적으로 내면화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짐작게 해준다. 이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독일 철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문명화 과정’을 통해 문명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가는 계기로 상층계급에 대한 모방과 내면화 과정을 들었다. 마찬가지로 조선이 망하면서 사라졌다고 여긴 양반에 대한 동경과 욕망은, 여전히 우리 내면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권 교수도 “모방행위는 신분적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로부터 시작됐지만, 누구나 양반이 될 수 있었던 근대사회로 서서히 접어들면서 많은 사람이 그러한 노력을 중단할 수 없게 됐다.”고 결론짓는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Weekend inside] 다양한 체험학습… 저소득층 자녀엔 ‘그림의 떡’

    [Weekend inside] 다양한 체험학습… 저소득층 자녀엔 ‘그림의 떡’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새 학기를 맞아 주 5일 수업제가 전면 실시됐다. 토요일인 3일은 적용되는 첫날이다. ‘노는 토요일’(놀토)이 없어지는 것이다. 근대교육이 도입된 19세기 이후 주 5일 수업의 전면 실시는 처음이다. 학생을 둔 가정은 물론 교육 현장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초·중·고교는 주 5일 수업 준비에 분주했다. 자기주도학습을 위한 교실·도서관 개방, 봉사 활동, 체육 활동 등 토요일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미리 가정통신문을 발송하지 못한 일부 학교는 개학날 허겁지겁 프로그램 참여 여부를 조사하기도 했다. 서울 관악구 A중학교 김모(31) 교사는 “토요일 프로그램을 바삐 마련했는데 잘 운영될지 모르겠다.”면서 “학교마다 얼마나 잘 준비했느냐에 따라 혼란상도 달리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 춘천의 B초등학교 장모(60) 교장은 “2월부터 운영 방안에 대해 교사들과 꾸준히 토론했고, 1년치 토요 당직표도 만들어 놓았다.”면서 “운영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날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걱정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학부모들은 ‘놀토’ 확대로 당장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맞벌이 가정도 주 5일 근무가 정착돼 따로 아이를 돌보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지금까지 격주로 놀토가 실시돼 익숙하기 때문이다. 학부모 한모(44)씨는 “평소대로 학원을 보내거나 집에서 자기 공부를 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 이모(46)씨는 “방과 후 프로그램과 많은 차이가 없어 혼란스럽지는 않다.”고 전했다. 박물관이나 체험학습장 등에는 예약 전화가 크게 늘었다. 국립중앙과학관 측은 “2월부터 방문이나 교육 프로그램 상담 전화가 많아졌다.”면서 “특히 공부 부담이 덜한 초등학교 저학년 학부모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토요일에도 생계에 매달려야 하는 저소득 가정에서는 학교에 토요 프로그램을 문의하는 등 적잖은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학생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이라는 반응이었다. 고2 안모(17)군은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많아져서 좋다.”고 기뻐했다. 하지만 중2 최모(14)양은 “주말에 피아노·바이올린 학원을 다니는데 부모님이 학원을 더 보내려고 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교과부는 주 5일 수업제 시행에 따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토요돌봄교실을 대폭 확대하고 토요 스포츠 강사를 추가 배치하는 등 지원 대책을 마련했다. 우선 저소득층과 맞벌이 부부의 토요 근무에 따른 나 홀로 자녀들을 위해 토요돌봄교실을 1050개에서 5225개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저소득층의 부담을 고려해 초·중학교의 토요 방과후학교 예체능 및 특기적성 프로그램을 전액 무료로 운영한다. 이와 함께 토요일을 스포츠데이로 지정하고, 4134개교에 스포츠 강사 4184명을 배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추가 대책과 관련한 세부 재원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당분간 논란이 없지는 않을 전망이다. 박건형·김진아기자 kitsch@seoul.co.kr
  • [책꽂이]

    ●정의의 한계(마이클 샌델 지음, 이양수 옮김, 멜론 펴냄)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로 돌풍을 일으켰던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1982년 저서다. 존 롤스의 자유주의적 정의론을 비판해 자신의 이름과 ‘공동체주의’를 학계에 각인시킨, 말하자면 샌델의 학문적 출세작이다. 한국 학계는 공동체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개인보다 전체를 내세우는 것이 군사독재 이데올로기나 맹목적 애국주의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선욱 숭실대 교수는 추천사에서 그런 식의 이해와 비판을 두고 전문가들조차 샌델의 진면목을 모르고 있다는 증거라고 비판한다. 그의 정치철학에 진정 관심있다면 ‘정의란’ 같은 대중적 흥행작이 아니라 ‘정의의 한계’ 같은 본격 정치철학 저술부터 읽으라는 것이다. 2만 8000원.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김대웅 옮김, 두레 펴냄) ‘모권(母權)의 세계사적 패배’라는 표현으로 유명한 엥겔스의 저서다. 1877년 출간된 미국 민속학자 루이스 모건의 ‘고대사회’, 그리고 이를 1880~81년에 걸쳐 따로 정리해둔 칼 마르크스의 글을 참고해 두달 만에 완성한 책이다. 원시 난혼 상태에서 모계제, 그리고 가부장제 사회로 변화하면서 사유재산과 국가권력이 출연했다는 분석을 선보인다. 때문에 사적 유물론을 완성했다는 평가도 받지만 이른바 문명이 불거져나오는 ‘축의 시대’에 대한 본격적인 해명이라는 점에서 아직도 유효한 저서로 평가받는다. 입체적 이해를 위해 3개의 해설 논문을 붙여뒀다. 2만원. ●문자를 향한 열정(레슬리·로이 앳킨스 지음, 배철현 옮김, 민음사 펴냄) 19세기 초 이집트에서 가져온 로제타돌에 새겨진 고대 이집트 문자를 해독해낸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의 일대기를 담았다. 이집트 문명 열풍이 몰아치던 당대에, 영국 학자 토머스 영과의 운명적 해독 대결을 벌이면서 문자해독을 어떻게 성공시켰는지 살펴볼 수 있다. 2만 5000원. ●사기영선(사마천 지음, 정조 엮음, 노만수 옮김, 일빛 펴냄) 영선(英選)이란 뛰어난 작품을 가려뽑는 것이다. 정조가 사마천의 ‘사기’, 반고의 ‘한서’ 가운데 뛰어난 글이나 본받을 만한 인물에 대한 내용 35편을 뽑고 정약용과 박제가가 교정을 봐 1795년 내놓은 책이다. 3만 8000원. ●최고의 학교 (남승희 지음, 인카운터 펴냄) 교육부 여성교육정책담당관, 서울시 교육기획관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저자가 말 많고 탈 많은 한국 교육 문제의 실태와 해법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놨다. 보수, 진보의 이념적 대립틀을 넘어 실무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자는 제안을 내놓는다. 1만 6000원.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 - 대화 (장 자크 루소 지음, 진인혜 옮김, 책세상 펴냄)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해 계몽주의자들로부터 비판받고, 기독교의 원죄설을 부정해 세간의 비난을 받은 루소의 말년 대작이다. ‘루소’와 ‘프랑스인’이 이처럼 비난받은 ‘JJ’를 불러다놓고 3자간 대화를 나누는 독특한 형식으로 씌어졌다. 이들간 대화를 통해 루소는 온갖 비난에 대한 자신의 대응논리를 펴나간다. 2만 5000원.
  • 바티칸 ‘비밀서고’ 수세기만에 열렸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재판 기록과 독일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를 파문한 교황의 문서 등 역사적 자료가 사상 처음으로 공개됐다. 로마 교황청은 29일(현지시간) “바티간 비밀 서고에 수백년간 보관돼 있던 귀중한 100여종의 문서 원본을 오는 9월 9일까지 로마 카피톨리노 박물관에서 일반인에게 공개한다.”고 발표했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번에 공개되는 문서 중에는 ▲영국왕 헨리 8세와 첫 부인 아라곤의 캐서린 왕비의 이혼 문서 ▲11세기 교황의 영적 권리와 세속적 권한을 인정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 칙령 ▲교황과 황제 사이의 권력 분할에 관한 10세기 양피지 문서 ▲콜럼부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신대륙을 스페인과 포르투갈 두 나라가 분할 통치하도록 한 15세기 알렉산드로 6세 교황의 칙령 ▲프랑스 군에 포위됐을 때 알렉산드르 6세가 사용했던 암호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밖에 ▲성베드로 성당 건축에 관한 미켈란젤로의 편지 ▲19세기 북아메리카 인디언 오지브와족 추장이 교황 레오 13세에게 보낸 편지 ▲1789년 프랑스 혁명 직후 수감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자신의 심경을 적은 편지도 공개됐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제2의 다빈치코드?…바티칸, ‘비밀의 문서’ 최초 공개

    ‘제2의 다빈치 코드’ 찾을 수 있을까? 지난달 29일 바티칸 교황청이 비밀문서 기록보관소에 수 세기 동안 보관해오던 자료들을 최초로 대중에 공개했다고 AFP등 해외언론이 보도했다. 이번 전시에는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재판 기록과 영국 왕 헨리 8세와 첫 부인 캐서린 왕비의 이혼 문서,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를 파문한 교황의 문서 등 귀중한 자료들이 포함돼 있다. 뿐만 아니라 교황과 황제의 권력분할을 다룬 10세기 양피지 문서, 프랑스 군에 포위됐던 알렉산드르 6세가 사용한 암호, 미켈란젤로가 성베드로 성당건축과 관련한 내용을 쓴 편지와 중국의 황후가 17세기에 비단에 썼던 편지 등도 공개됐다. 이밖에도 19세기 북아메리카 인디언 오지브와족 추장이 교황 레오 13세에게 보낸 편지도 있다.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이 편지에는 추장이 교황에게 ‘예수의 임무를 수행하는 기도자들의 대제사장’이라고 지칭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총 100여 종이며, 8세기~20세기까지의 바티칸 비밀문서 기록보관소에 저장돼 온 ‘시크릿 자료’로 알려졌다. 바티칸의 한 관계자는 “이 문서들은 모두 ‘진짜’이며, 수 백 년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진귀한 자료”라면서 “이 역사적인 문서들이 바티칸 비밀서고를 넘어 세상에 나온 것은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전시는 바티칸과 카톨릭의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의 영화 ‘다빈치 코드’를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네티즌들은 “‘제2의 다빈치코드’라 불릴만한 바티칸의 비밀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기대를 표했다. 한편 로마 카피톨리노 박물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 오는 9월 9일까지 계속된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공연리뷰]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리뷰] 뮤지컬 ‘엘리자벳’

    ‘19세기 다이애나’라 불린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벳 폰 비텔스바흐’(이하 엘리자벳). 100년 전 세상을 등진 인물이지만 아직도 오스트리아 전역에선 그녀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그녀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념품점은 물론이거니와 거리 곳곳에서 그녀의 초상화 등을 통해 19세기 황후 엘리자벳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영원한 황후다. 자유를 갈망했지만 새장 속에 갇힌 것과 다름없었던 그녀의 삶은 영화, 소설, 뮤지컬 등 새 옷을 번갈아 입으며 전 세계인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엘리자벳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무대에 오른 뮤지컬 ‘엘리자벳’이 바로 그것이다. 엘리자벳은 3시간 분량의 공연 내내 화려한 세트와 심금을 울리는 46곡의 노래로 무대를 꽉 채웠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뮤지컬 스타를 대거 캐스팅해 주목받았던 작품인 만큼 캐스트별로 골라 보는 재미도 만만찮다. 개성 있는 배우들의 각기 다른 특색만큼이나 어떤 배우의 공연을 골라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난다는 건 이 공연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말타기를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 씨씨(엘리자벳의 어릴 적 이름)는 어린 시절 외줄타기를 하다 떨어지면서 ‘죽음’과 만난다. 죽음은 평생 엘리자벳의 주변을 맴돌며 그녀를 유혹한다. 씨씨가 행복했던 시간은 비교적 짧다. 언니 헬레네와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맞선에 들러리로 나갔다가 오스트리아의 황후로 낙점된 뒤 그녀의 삶은 점점 어두워진다.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한몸에 받지만 왕궁의 엄격한 질서와 삶을 힘겨워한다. 게다가 왕을 인형 다루듯 조종하는 시어머니 소피와의 끝없는 갈등 끝에 아이의 양육권마저 빼앗긴 엘리자벳은 남편마저 외도하자 세상 속으로 숨어버린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루돌프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자 절망한 그녀는 마침내 무정부주의자 루케니의 칼에 쓰러지며 죽음과 입맞춤한다. 엘리자벳의 10대부터 60대 모습을 볼 수 있는 공연에서 엘리자벳 역을 맡은 배우 옥주현은 팔색조 같은 인상 깊은 모습을 보였다. ‘연기에 물이 올랐다.’는 평가를 받아도 될 만큼 그녀는 안정적인 연기력과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관중을 압도했다. 특히 ‘나는 나만의 것’을 열창할 때 아낌없는 박수가 쏟아졌다. 죽음의 역을 맡은 류정한도 음산한 기운을 뽐내며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보였다. ‘마지막 춤’ 등 몇몇 장면에선 간간이 그의 댄스 실력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외에도 요제프 역을 맡은 민영기는 안정감 있는 연기를 선보였고, 노래도 울림이 컸다. 극의 해설자 역할을 하는 루케니 역은 여러 캐스트 가운데 박은태의 연기가 가히 압도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소피 역의 배우 이태원의 연기는 좋았지만 다른 배우들에 비해 가창력 면에서 다소 아쉬웠다. 앙상블의 노래 가운데 몇 곡은 가사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전달력이 약했다. 또한 공연 내내 무대 전환이 많아 볼거리는 많았지만 그 과정에서 실수가 잦았다. 배우들이 다음 장면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가려야 하는 막이 제때 가리지 않아 그 모습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노출되기도 했다. 엘리자벳은 5월 13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공연된다. 3만~15만원. (02)6391-6333.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중국의 ‘류큐 공정’ 깰 한국 대응책은

    중국이 해양 대국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과거 중국의 지도자들이 주로 중국 대륙의 확장을 통한 영향력 증대에 힘썼던 것과 사뭇 다른 양상이다. 중국의 태평양 진출과 패권을 노린 정치적·군사적 움직임은 여러 방면에서 입체적으로 감지되고 있다. 그런 행보와 가공할 재무장을 보고 있는 동아시아 각국의 입장은 불안하기만 하다. 중국의 움직임에 과연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중국 전문가인 강효백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부원장 겸 중국법무학과 주임교수가 낸 ‘중국의 습격’(Human &Books 펴냄)은 해양을 둘러싼 한·중·일 삼국의 첨예한 대치와 미래상을 전망한 책이다. 태평양 진출에 유리한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된 중국의 거대한 음모를 들춰내면서 류큐, 즉 오키나와 탈환을 위한 중국의 이른바 ‘류큐 공정’에 담긴 속내를 적나라하게 파헤쳐 눈길을 끈다. 류큐는 19세기 후반까지 지금의 오키나와 일대에 존재했던 자주 독립 왕국. 평화를 중시하는 무역 왕국으로 청에 조공을 바치며 조선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국제정세에 어두웠고 군사력을 전혀 갖추지 못해 일본 제국주의에 병탄돼 망국의 길을 걸었다. 전후 미국과 일본의 결탁에 따라 일본 영토로 돼 있는 이 류큐는 미국과 일본이 중국에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땅. 미국으로선 동아시아 전진기지의 핵이고 일본으로선 전통적으로 홀대하고 무시했으면서도 자존심이 걸린 알토란 같은 요충지다. 중국은 중국대로 류큐가 과거 자국 영토였음을 주장하며 탈환정책, 이른바 류큐 공정을 치밀하게 추진해 언제 군사적 충돌을 부를지 알 수 없는 가장 위험한 땅인 셈이다. 2010년 9월 센카쿠열도 인근 해상에서 돌출한 영유권 다툼도 중국의 류큐 공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중국 어선의 일본 해상 경비정 충돌과 억류에 따른 영유권 다툼에서 중국이 전에 없던 희토류 수출 전면 중단 카드를 꺼내 일본이 사실상 백기투항한 사실을 가볍게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류큐 공정을 단순히 일본과 중국 사이의 외교마찰로 넘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류큐 공정의 여파가 곧바로 한국에 미칠 수 있다는 지론이다. 미국과 일본이 지키려는 류큐에 중국이 접근하기 위해 제주-이어도 해역의 관할권에 눈독을 들일 가능성이 크고 류큐가 중국의 수중에 넘어갈 때 한반도 서남해는 중국의 내해로 포섭될 위험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결국 지금이라도 우리 해양 영토의 보존과 직결된 류큐 공정을 면밀히 관찰해 대응할 것을 거듭 주장한다. 그래서 논란이 한창인 제주해군기지 건설 문제도 환경과 관광의 가치를 넘어 영토 방호와 생존의 차원에서 고민할 것을 당부한다.1만 25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바다 위 특급호텔 ‘클럽 하모니’ 3박 4일 부산~규슈 노선 승선기

    바다 위 특급호텔 ‘클럽 하모니’ 3박 4일 부산~규슈 노선 승선기

    1980년대 중반 미국 TV시리즈 ‘러브 보트’(The Love Boat)가 국내에 방송됐다. 우리나라 제목은 ‘사랑의 유람선’. 배에 커다란 수영장이 있고, 그 주변에서 사람들이 일광욕을 하거나 바에 앉아 음료를 마신다. 밤마다 한껏 멋을 내며 파티를 하기도 한다. 기항지 도시 관광에 나서거나 배 안에서 여유로운 휴식도 취한다. 독신 남녀의 야릇한 사랑 이야기는 양념.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환상이 샘솟는 시간이다.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려면 지중해에 가야 하나 생각했다. ‘클럽 하모니’호에서라면 그 시절의 환상이 어느 정도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 Day1> 입 안에서 살살 녹는 캐비아·한우 안심 정찬 부산 영도 국제크루즈터미널에서 출국 수속을 끝내고 나가니 ‘클럽 하모니’호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핀란드에서 건조한 2만 5558t급 쇄빙선을 1989년부터 1년 이상 시간을 들여 크루즈선으로 개조했다. 1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이 배는 이탈리아에서 운항하다 지난해 한국에 들어와 ‘첫 한국 국적 크루즈선’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계단을 올라 들어선 4층 로비는 4성급 호텔 수준이다. 객실 383개는 11.6~19.8㎡ 규모로 3~5·7층에 분산돼 있다. 2~9층에는 병원과 레스토랑, 클럽, 바, 뷔페, 카페, 극장, 사진관, 헬스클럽, 스파, 키즈카페 등 별별 것들이 다 들어와 있다. 가히 ‘바다를 떠다니는 호텔’ 그 자체다. 창밖이 어둑어둑해진 오후 6시 30분. 배가 항구를 천천히 벗어난다. 생수통에 담긴 물이 살짝 찰랑거린다. 바다가 보이는 곳(오션뷰 룸)이라 약간 흔들림이 있다. 예민한 사람이라면 중간에 있는 방(인사이드 룸)이 낫다고 한다. 이 크루즈선이 ‘호텔 수준’임을 실감시키는 건 역시 정찬이다. 저녁 식사는 5층 크리스탈로 레스토랑과 7층 뷔페식당에서 할 수 있다. 선상신문에 나온 메뉴를 확인하고 적어도 한 번은 정찬을 먹어 볼 것을 권한다. 전복 새우 냉채-해산물 꼬치와 메로 소갈비구이 약밥(첫날), 아보카도 캐비아-거위간 라비올리-메로구이 해산물 스프-한우 안심구이(둘째 날) 등 고급스러운 구성이다. 서울 시내 호텔에서 먹었다면 10만~15만원은 훌쩍 넘길 법하다. Day2> 첫 도착지 나가사키 원조 짬뽕 맛보자 조식 역시 뷔페와 한식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이날 아침으로 준비된 한식 메뉴 육개장은 식사 시간 30분 전에 동이 나 버렸다. 그만큼 맛이 빠지지 않는다. 아침 식사를 끝냈다면 슬슬 나가사키 탐방에 나서 보자. 일본 전체로 봤을 때 서쪽 끝인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한반도와 중국은 물론 17세기에는 포르투갈, 네덜란드와 교류한 교통 요충지다. 유럽형 건물이 곳곳에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래도 일단 나가사키는 ‘짬뽕’이다. 원조집인 ‘시카이로’(四海?) 항구 근처에 있다. 113년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당시 중국 유학생들이 양이 적은 일본식 식사가 불만이라고 하자 남은 재료를 몽땅 넣어 풍성하게 만든 것이 시초가 됐다. 우리나라 짬뽕과 많이 다르다. 국물이 멀겋고 칼칼하지도 않다. 시카이로 근처 구라바엔(Glover園)은 19세기 중·후반에 형성된 외국인 마을로, 나가사키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비밀의 정원’이라 불릴 만큼 큰 정원 사이에 아기자기한 서양 건축물이 조화롭게 들어서 있다. 푸치니의 오페라로 유명한 ‘나비부인’의 배경이 된 이유를 알 만하다. 조금 진지한 분위기로 전환한다면 원폭자료관을 꼭 가보길 권한다. 1945년 8월 원자폭탄이 투하되기 전 나가사키의 역사와 모습, 폭발 시간인 오전 11시 2분을 가리키며 멈춘 괘종시계, 찌그러진 소방용 망루, 남쪽 벽만 남은 우라카미 성당, 파편·고열·방사선 등으로 상처 입은 민간인의 사진과 옷가지 등 피해 현장을 그대로 담아냈다. 일본 초중고 의무교육 과정으로 이곳을 방문한 학생들은 한결같이 “아무런 죄 없는 사람들이 왜 당했나.”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 처지에서는 일본 역사 교육의 현재를 절절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Day3> 세련된 후쿠오카서 즐기는 여유로운 쇼핑 일본인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꼽힌다는 후쿠오카는 서울과 비슷한 모양새다. 서북에서 남동으로 가로지르는 나카가와(那珂川)를 중심으로 서쪽(옛 후쿠오카)은 사무라이가 살던 부촌, 동쪽(하카타)은 상인 도시였다. 서쪽 끝에는 후쿠오카 타워(234m)와 호주에서 공수한 모래로 만든 모모치 해변이 있다. 힐튼호텔과 번쩍거리는 후쿠오카 야후 재팬 돔, 젊은이들이 결혼식장으로 선호한다는 마리존 등 부유하고 한적한 분위기를 풍긴다. 동쪽으로 옮겨 갈수록 시내는 번화해진다. 나카가와와 하카타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 캐널시티는 복합 쇼핑몰로, 정통 규슈라멘을 맛볼 수 있는 라멘스타디움(5층)을 비롯해 상점, 극장, 호텔, 식당 등이 즐비하다. 최근 새롭게 부상하는 쇼핑 메카는 하카타역을 중심으로 한큐백화점, 아무 플라자가 있는 하카타 시티다. 후쿠오카 토산품인 명란젓부터 온갖 캐릭터 상품, 명품 브랜드 등이 가득하다. 이 번화가에서 남쪽으로 한참 떨어진 곳에 학문의 신, 스기와라 미치자네를 모셨다는 ‘다자이후텐만구’(太宰府天?宮)가 있다. 매주 주말, 특히 대입시험 기간에 일본 각지에서 수험생과 부모가 찾아와 인산인해를 이룬다. 궁으로 가는 길목에는 스기와라의 시신을 옮겼다는 소 동상이 있다. 신화를 좋아하는 일본은 이 소에도 영험한 힘을 주었다. 소머리를 만진 손을 자신의 머리에 비비면 머리가 좋아진다나. 그래서 소머리가 반들반들해졌다. Day 4> 영화처럼 화려한 드레스 입고 볼룸댄스 운영선사인 하모니크루즈의 신재희 사장은 이 크루즈 여행을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행복한 놀라움과 친숙한 새로움이 키워드입니다. 즐거움과 재충전의 시간을 동시에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역시나 그렇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다 소화하기에 3박 4일은 다소 짧아 보인다. 매일 밤 바에서는 뉴올리언스 재즈를 들려주는 ‘빅 밴드’ 공연이 열린다. 극장에서는 여성 그룹 ‘메리 지’가 아이돌 그룹의 춤과 노래를 선사하고, 클럽에서는 ‘케이걸스’가 신나는 분위기를 이끈다. 남성은 정장, 여성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볼룸댄스를 배우기도 한다. 8층에서는 운동을, 9층에서는 스파를 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면세점에서 담배와 주류만 살 수 있는데 3월 중순에는 모든 제품 입점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제 날이 따뜻해지면 갑판에 있는 수영장과 자쿠지에 몸을 담글 수 있게 될 것이다. 시내 관광을 하지 않는 승객들을 위해 오후 프로그램을 대폭 추가한다니 시간을 더 쪼개야 할 듯하다. 효도 관광도 좋고 가족 여행도 좋다. 친구들끼리 추억을 남기기에도 충분한 크루즈 여행이 눈앞에 확실히 열렸다. 글 사진 후쿠오카·나가사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알고 타면 더 재미있는 크루즈 ▲부산역에서 출항지인 부산 영도 국제크루즈터미널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있다.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3시 사이에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소요 시간은 30분. (051)405-6154. ▲먼저 수하물 검사소에서 짐을 부친 뒤 터미널에서 입국 수속을 한다. 수속은 오후 12시부터. ▲선상카드와 선상신문은 꼭 챙기는 것이 좋다. 선상에선 카드가 결제 수단이다. 하루 일정을 담은 4쪽짜리 선상신문도 매일 확인하자. 오전에 방마다 배달해준다. 4층 로비 데스크에도 비치돼 있다. ▲‘하모니 크루즈’의 강점이라면 시내 관광 일정이 비교적 다양하고 여유롭다는 것이다. 나가사키의 관광의 경우 시내 관광과 온천, 17세기 네덜란드 거리를 재현한 하우스텐보스 등 3개 코스가 준비돼 있다. 관광 요금은 성인 기준으로 10만~15만 6000원이 추가된다. ▲나가사키에서는 짬뽕만큼 유명한 것이 카스텔라다. 달달하며 간혹 설탕 알갱이도 씹힌다. ‘후쿠사야’(福砂屋)는 무려 4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녔다. ‘나가사키도’(長崎堂)와 ‘분메이도’(文明堂)도 상당히 유명하다. ▲후쿠오카 시내 관광은 온천 포함 여부에 따라 두 종류로 나뉘며 비용은 10만~12만원이다. 항구에서 시내까지 다소 거리가 있어 자유여행보다는 옵션투어가 나을 수 있다. ▲하모니크루즈는 첫 출항 완판을 기념해 2월 말까지 진행하던 운항 요금 이벤트를 4월까지 이어가기로 했다. ‘3박 4일’과 ‘4박 5일’ 상품 가격을 인사이드룸의 경우 44만 9000원, 오션뷰는 49만 9000원, 발코니 뷰는 117만 9000원으로 통일했다. 이 요금제는 3월 중순에 추가로 취항하는 인천-제주-규슈(나가사키·후쿠오카)-부산 구간도 동일하다. 1600-1073.
  • 긴테쓰 레일패스-미에三重에서는 코끝이 차갑다, 찡하다

    긴테쓰 레일패스-미에三重에서는 코끝이 차갑다, 찡하다

    TRAIN PASS 긴테쓰 레일패스 미에三重에서는 코끝이 차갑다, 찡하다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제맛이라 생각했지만 영하로 뚝뚝 떨어지는 서울의 겨울이 밉살스러워질 무렵, 미에에 발을 내디뎠다. 겨울에도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는 일은 없다지만 미에의 겨울도 두툼한 옷매무새를 매만지게 할 만큼 차갑긴 하더라. 그것도 잠시. 밤하늘에 꽃핀 나바나노사토의 일루미네이션과 일본인들이 일생에 꼭 한 번 걸음해 태양신의 기운을 받는다는 이세신궁 그리고 수많은 눈의 보살핌으로 별이 되어 뭍으로 돌아온다는 해녀들의 이야기 등 미에의 겨울은 마음을 먼저 스르르, 이내 몸도 사르르 녹아들게 했다. 나는 어깨가 맞닿은 낯선 사람들과 함께 두 손을 모으고 읊조리기 시작했다. ‘나를 기꺼이 보살펴 주세요.’ 마음을 토닥여 주는 미에의 겨울에 안겨 본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진영 취재협조 일본 정부 국토교통성 긴키 운수국 하늘의 별이 부럽지 않은 나바나노사토의 일루미네이션 터널. 반짝이는 불빛 아래서 나지막이 소원을 빌어 본다 #1 반짝반짝, 고운 빛깔 머금은 미에의 품에 안기다 겨울철 일루미네이션만큼 좋은 볼거리가 또 있을까마는 내심 이 인공의 불빛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화려하게 빛을 발할수록 그 사이를 흐르는 전류가 떠올라 머리카락이 더욱 쭈뼛 서고, 낮 동안에 그대로 드러나는 가느다란 전선들 또한 곱게 보이지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입이 딱 벌어졌다. 찬란했다. 낮에는 해를 머금은 미에의 산과 들, 그 안에 소복이 들어앉은 꽃과 나뭇잎이, 밤에는 그 위에서 반짝이는 색색의 전구들이 또 다른 빛깔을 자아냈다. 나가라가와 강변의 아름다운 정원 ‘나바나노사토’의 하루는 그렇게 물들어 있었다. 이른 봄, 매화와 벚꽃을 시작으로 수국, 창포, 코스모스가 피고 지는 마을 나바나노사토는 화려함 그 자체다. 1년 내내 1만2,000포기의 베고니아로 가득한 온실은 짐짓 떠름하게 지었던 표정마저 활짝 피게 했다. 땅은 물론 온실 천장에도 주렁주렁 맺힌 꽃송이가 신기했는지 입을 헤벌린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이 허공을 찌른다. 어째 하늘에 꽃이 피었는지 신기한가 보다. 이 순간을 추억하려는 카메라 셔터 소리도 끊이질 않는다. 뒤로 핀 꽃처럼 함박웃음 띈 자연스러운 모습이면 좋을 텐데, 어쩐지 기념사진을 찍는 모양새들이 약속이나 한 듯 부동자세. 그렇게 한 번 더 웃는다. 나바나노사토는 아름다운 꽃 가까이에서 여유롭게 먹을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공원으로 곳곳에 레스토랑과 카페, 먹을거리 노점이 있어 노니는 즐거움이 배가 된다. 요기를 해볼까 하고 가게 마루에 걸터앉았다. 먹기 좋게 구운 찹쌀떡 한 입 그리고 따끈한 차 한 모금. 채플 뒤쪽에 있는 노천족탕에 발을 담그고 산책의 노곤함을 달래는 것은 또 어떤가. 차가운 공기에 부르르 떨리던 몸이 스르르 풀리고 만다. 그러는 동안 짧은 겨울 해가 조금씩 사그라지고 꽃송이 뒤로 새치름한 불빛이 새어나온다. 낮 동안 해님을 머금고 있다 날이 어두워지자 한꺼번에 터뜨리는 것은 아닐까. 엉뚱한 상상. 나바나노사토의 일루미네이션은 11월 초부터 3월 중순까지 580만개의 불빛으로 연출하는데, 특히 200m 가량의 일루미네이션 터널을 지나 꽃 광장에 펼쳐지는 일루미네이션 쇼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올해는 일본의 사계를 주제로 쇼를 선보였다. 새순이 돋고 꽃잎이 흩날리는 봄과 여름을 지나 단풍이 물들고 낙엽이 지는 가을과 겨울까지 계절의 흐름을 알알이 맺힌 불빛으로 표현한 것. 탄성을 내뱉는 것도 멈추고 그저 한참을 바라다봤다. 하늘의 별빛마저 흐릿하게 만든 미에의 마법에 걸려들고 말았다. 스즈카산맥의 주봉인 1,212m의 고자이쇼다케로 오르는 길도 덜하지 않았다. 유노야마온센역에서 로프웨이로 연결된 이곳은 최고봉까지 케이블카가 오간다. 1,300년 역사의 온천마을 유노야마온센 뒤로 병풍 두른 스즈카산맥, 그 가운데를 지나는 고자이쇼다케의 빨간색 케이블카. 해발 400m에서 출발해 1,200m고지를 향하는데 마치 산의 품안으로 파고드는 것만 같다. 산기슭을 뛰어다니는 야생 동물과 고산 식물의 속살이 이따금씩 드러날 때마다 공중산책의 묘미는 더해 간다. 고자이쇼다케의 수려함에 반한 산악인들은 등산로를 이용해 산의 정기를 담뿍 받기도 한다. 산 정상에는 작은 불상과 사당이 있는데 이는 산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신을 모신 곳이라 했다. 마침내 오른 정상에서 맨 먼저 신에게 인사하는 산사람들. 정상뿐 아니라 산 곳곳에 이처럼 작은 사당이 있다. 모두 고자이쇼다케를 찾는 산사람들의 흔적이다. 멀리 이세만의 바다가, 화창한 날엔 후지산까지 내다보이는 곳.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더 길게 내뱉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 속 깊은 곳에 맺혔던 응어리들이 도르르 굴러 나온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어둑해지자 새치름한 불빛을 내비추는 나바나노사토. 이 순간을 기억하고픈 이들의 카메라 셔터가 더욱 바빠지기 시작한다 2 꽃잎이 흩날리고 낙엽이 지고 눈이 나리는 모습이 알알이 맺힌 불빛으로 연출되는 나바나노사토의 일루미네이션 쇼 3 정원 산책의 노곤함을 풀어줄 노천족탕에 두 발을 담가 본다. 발끝이 따뜻해지니 코끝을 스치는 겨울 바람도 반갑다 4 편안할 안安 길 영永 떡 병餠. 길어서 먹기 좋은 떡이 “안녕”하고 부르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다 5 나바나노사토의 베고니아 온실에서는 시선이 어디를 향하든 베고니아가 반겨준다 6 스즈카산맥의 주봉 고자이쇼다케로 이어지는 로프웨이에 빨간 케이블카가 오간다 7 고자이쇼다케 정상에서 마주한 작은 돌상. 산사람들의 흔적이다 나바나노사토 찾아가기 긴테쓰 나고야역 또는 구와나역에서 미에교통 ‘나가시마온센’행 버스로 환승 이용시간 오전 9시~오후 9시(겨울 밤 10시) 이용요금 1,000~2,000엔(시즌별로 다름) 문의 83-594-41-0787 고자이쇼 로프웨이 찾아가기 긴테쓰 유노야마온센역에서 버스로 산코유노야마온센에서 하차 후 걸어서 10분 거리 이용시간 오전 9시~오후 5시(10~3월은 오후 6시까지) 이용요금 2,100엔 (편도 1,200엔) 문의 83-59-392-2261 #2 일생에 꼭 한 번, 태양신을 만나러 가는 길 헛헛해진 마음을 이세신궁으로 옮긴다. 흔히 이세신궁이라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신궁神宮’. 하나의 신사가 아니라 내궁과 외궁, 별궁으로 구성된 125개의 신사를 모두 아우른다. 일본 신사의 중심이자 절정이다. 예부터 많은 일본사람들이 생애 꼭 한 번은 이곳 신궁에 오길 소망한단다. 신궁에 발걸음 하는 것만으로도 신의 혜택을 받는 것이라 믿는다고. 평일 이른 아침임에도 안내원이 높이 든 깃발 뒤로 순례자들의 줄이 끊이지 않는다. 참배하기 전에는 반드시 오초즈를 행해야 한다. 오초즈는 참배 전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의식으로 우물가에 엎어놓은 물푸개 ‘히샤쿠’에 물을 퍼 왼손 한 번, 오른손 한 번을 깨끗한 물에 씻는다. 그런 다음 왼손에 물을 받아 입을 가시고 입에 댄 왼손을 다시 물로 씻어낸다. 마지막으로 히샤쿠를 세워 남아 있는 물로 손잡이 부분을 씻는다. 요즘은 이렇게 5번으로 나누어 간소한 예를 갖추지만 옛날엔 신궁 곁으로 흐르는 강에 들어가 심신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우물쭈물하는 이방인과 달리 일본사람들의 몸가짐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 일본 인구가 반으로 줄어들었을 정도의 큰 자연재난이 닥쳤다. 일본인들은 이 대재앙을 계기로 자신들을 따뜻하게 보살펴 주는 태양신이자 황실의 조상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를 모셔 왔다. 내궁의 정궁에 모신 이 신은 오직 천황만이 마주할 수 있다. 수상이나 황실 사람들도 문 앞까지만 갈 수 있다고 한다. 이세신궁은 20년을 주기로 원형을 그대로 살려 개축하는 전통이 있다. 현재 정궁 옆에 똑같은 크기의 부지를 두고 새 정궁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개축을 하는 동안에도 참배는 지속되어야 하기에 바로 옆에다 새로 짓는 것이다. 개축이 될 때마다 정궁의 위치가 바뀌는 이유다. 이 전통은 약 1,300년 전부터 이어져 왔는데 신에 대한 정성과 함께 문화유산으로도 가치가 높은 신궁의 건축술을 후대에 전하기 위한 노력이 더해진 성스런 의식이다. 이는 단순한 건축 기술의 전수를 넘어 전통문화가 시공을 초월해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다. 이세신궁 참배 길에 빠지지 않는 곳이 있으니 ‘오하라이마치 오카게요코초’이다. 풀이하면 ‘오하라이 읍내에 있는 오카게 골목’인데 내궁이 위치한 마을 이름이 오하라이, 오카게는 일본어로 ‘신의 보살핌 덕분’이라는 뜻이다. 신궁과 가까운 이스즈가와 강변을 따라 형성된 약 800m의 골목길로 지붕과 담장을 맞대고 나란히 들어선 상점들은 모두 2층집의 구조이나 우리의 한옥과 같이 기와를 사용한 맞배지붕과 합작지붕의 형태이다. 에도시대부터 메이지 시대에 이르기까지 전통가옥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일본 근세문화의 거리. 가옥의 1층은 대부분이 음식점과 기념품가게로 우리의 인사동길이 떠오른다. 이세신궁 순례자들이 오카게요코초에서 꼭 먹고 간다는 아카후쿠는 오늘날의 오카게 골목이 형성된 이유이기도 하다. 아카후쿠는 ‘붉은 행복’을 의미하는 찹쌀떡이다. 먹으면 복이 들어온다는 뜻이 아닐까. 특이한 것은 보통의 찹쌀떡과 달리 팥앙금이 떡의 표면을 감싸고 있는 것인데 원래는 일반 찹쌀떡과 같은 모양새였지만 이세신궁을 찾는 참배객들이 너무 많아 팥앙금을 찹쌀떡 속에 넣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고 한다. 바쁜 탓에 속성으로 떡 표면에 앙금을 발라 준 것. 300년 역사의 아카후쿠 떡집은 날로 번창했고 이 모든 것이 태양신의 보살핌이라 여긴 떡집 주인이 자본을 내 이 오카게 골목이 조성되었다. 이래저래 복덩어리 아카후쿠가 명물이 되자 요즘엔 이스즈가와 아래의 조약돌 모양을 본뜬 것으로 속은 맑게 흐르는 강물이라는 새로운 이야기도 덧입혀졌다. 아카후쿠 한 입을 베어 물었다. 태양신의 온기가 아카후쿠에도 스며든 것일까. 빈속에 달콤함이 퍼진다. 떡집 마루에 앉아 이세신궁과 오카게 골목 사이로 잔잔하게 흐르는 이스즈가와를 내다본다. 이보다 더 평온할 수 없다. 떡 한 입에도 그저 행복해할 줄 아는 마음, 그 속에 신의 보살핌이 있다. 결국 내 안에 있는 믿음을 만나는 것.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맞배지붕과 합작지붕 등 전통가옥의 모습이 남아있는 근세문화의 거리 오카게요코초 2 이세신궁 입구. 이제 이스즈가와가 흐르는 다리를 건너면 태양신을 모신 사당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3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오초즈를 해야 신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4 오카게요코초는 신궁 순례자들이 잠시 쉬어 가던 작은 마을의 작은 골목. 이젠 이곳을 부러 찾는 이들이 생겨날 만큼 명소가 되었다 5 오카게요코초를 거니는 순례자. 기모노를 곱게 차려 입은 모습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했다 6 강과 바다가 가까워서인지 오카게 골목에서는 즉석에서 어류를 조리해 주는 가게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생선구이 달인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7 먹으면 복이 들어와요. 붉은 행복을 뜻하는 찹쌀떡 아카후쿠는 오카게요코초에서 꼭 맛보아야 할 주전부리다 이세신궁 찾아가기 긴테쓰 우지야마다역, 이스즈가와역, 이세시역에서 버스·택시 이용 홈페이지 www.isejingu.or.jp/shosai/korean 오카게요코초 문의 83-596-23-8838 (토산품가게 종합안내소) 홈페이지 www.okageyokocho.co.jp/ #3 그녀, 수많은 눈의 보살핌으로 별이 되어 돌아오다 그녀들을 만난 후 나를 위해 신의 보살핌을 바라는 일이 어쩌면 사치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세의 해녀. 뭍으로 나와 바닷물을 짜내는 그녀들에게 안쓰러움이 배어 나온다. 차가운 물에 살이 에이지만 오늘도 묵묵히 물질하는 여인네들. 이세만에 접한 이세지역에는 지금도 1,300여 명의 해녀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세의 해녀는 생업으로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와 관광객들을 위해 해녀의 작업을 재연하는 관광해녀로 구분되는데 이세에서도 오사쓰는 해녀를 생업으로 삼은 여인들이 많아 ‘해녀의 고장’이라 불리는 마을이다. 오사쓰의 아마고야 ‘오사츠가마도’에 들어서자 하얀 해녀 복식으로 단장한 해녀 두 분이 다소곳이 앉아 숯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마고야는 해녀들이 운영하는 작은 오두막으로 원래 해녀들이 물질하다 추워지면 잠시 뭍으로 나와 쉬던 공간인데 요즘에는 갓 잡은 신선한 해산물을 해녀들이 직접 숯불에 구워 주는 관광명소로 개발되어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색색이 고운 조개와 전복, 소라, 이세새우 등의 해산물이 숯불 위에서 익어 간다. 쫄깃하면서도 특유의 짭조름한 맛이 식욕을 북돋운다. 여기에 미소 된장국과 성게로 요리한 밥까지 한 그릇씩 비우고 오두막 너머 바다를 바라볼 때의 기분이란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프랑스의 한 기자가 고무재질의 검은 잠수복을 입은 제주 해녀를 보고 무장공비로 착각했다는 일화가 있는데, 일본의 해녀는 전통적으로 흰색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물에 들어간다. 상어 등 다소 큰 바다생물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검은색보다 흰색 옷을 입었을 때 몸의 부피가 상대적으로 크게 보이기 때문이라고. 해녀들과 얼굴을 마주하는데 흰색 복식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두건에 수놓인 2개의 표식, 별과 격자무늬. 별은 한 꼭짓점에서 시작해 반드시 그 꼭짓점으로 돌아오는 도형이고 격자무늬의 네모 칸은 ‘눈’을 상징하는데 여기에 깊은 뜻이 담겨 있다. 12개나 되는 많은 눈이 나를 지켜봐 주고 있어 바다에 나갔다가도 다시 안전하게 뭍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오사쓰가마도에서 나와 해안을 따라 마을 깊숙이 걸어 들어가면 오사쓰 해녀의 역사와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해녀문화자료관이 있고 그 옆으로 난 골목을 따라 3분여를 더 걸으면 해녀들을 굽어살피는 신메이신사에 다다른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해녀 일. 해녀들은 신메이신사에 모신 ‘이시가미상(돌신)’에게 안녕을 빌어 왔다. 최근에는 이 이시가미상이 특별히 여성의 소원을, 그것도 딱 한 가지만 들어준다고 해 일본 전역에서 부러 찾아오는 여인들이 많다. 이곳을 찾은 여인들은 하나의 소원을 종이에 적어 신사 앞에 놓인 함에 넣고 정성을 들인다. 세계 최초로 진주 양식에 성공한 미키모토 진주섬에서 재연하는 해녀쇼는 해녀의 일상을 조금 더 직접적으로 느껴 볼 수 있게 한다. 작은 어선의 갑판에 맨발로 디디고 서서 바다를 향해 동그란 나무통을 던지고 이내 자신도 따라 들어간다. 다리를 굴러 바다 속에 들어가기를 몇 차례. 거친 숨을 고르며 물속에서 잡은 무언가를 있는 힘껏 들어 보인다. 그녀의 발끝이 물속으로 사라지고 다시 머리가 보일 때까지 마음속으로 별을 그려 본다. 쇼지만 쇼만은 아닌. 얼마간의 뭉클함이 올라온다. 미에의 겨울은 엄마 품처럼 포근하게 나를 감쌌다. 코끝을 스치는 공기는 차지만 고운 빛깔 뽐내는 미에의 자연, 예를 갖추어 전통을 이어가는 미에의 일상, 스스로를 지켜내는 미에의 사람들은 추위에 언 몸과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자연이든, 신념이든, 사람이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소중히 여기는 미에. 미에의 겨울이 투명하게 빛나는 이유다. 1 이세의 해녀를 만나러 가는 길. 오사쓰 마을 해녀들의 작은 오두막은 오사쓰마을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2 오사쓰 마을의 해녀문화자료관 입구. 바다 속 해녀의 모습을 표현한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3 해녀쇼를 위해 배를 타고 등장하는 미키모토 진주섬의 해녀들 4 디딤판 없이 물속에서 발을 구른다. 이내 사라지는 발끝으로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별을 그려 본다 5 해녀오두막 너머로 보이는 이세만의 바다 6 해녀오두막에서는 해녀들이 직접 싱싱한 해산물을 숯불에 구워 준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오사쓰가마도 찾아가기 긴테쓰 도바역에서 버스로 약 40분. 오사쓰 정류소에 내리면 도보로 오사쓰가마도, 오사쓰 해녀문화자료관까지 각 5분, 신메이신사까지는 10분 거리. 이용시간 오전 9시~ 오후 5시 이용요금 무료. 티타임 | 하루 2회 오전 10시와 오후 3시, 4명 이상 예약 가능. 1인당 2,000엔. 조개, 떡, 차 제공. 브런치 | 낮 12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4명 이상 예약 가능. 1인당 3,500엔부터 문의 81-599-33-7453(2일 전 오후 5시까지 예약 가능) 미키모토 진주섬(해녀쇼) 찾아가기 긴테쓰 도바역에서 걸어서 5분 이용시간 오전 8시30분~오후 5시(12월 두 번째 화요일부터 3일간 휴관) 입장요금 성인 1,500엔, 어린이(7~15세) 750엔 해녀쇼 1시간 간격으로 약 10분간 양식 진주를 캐내는 작업을 실연한다(한국어 해설 제공) 문의 81-599-25-2028 Travel to JAPAN 외국인 여행자들을 위한 특별한 혜택 긴테쓰 레일패스 와이드 KINTETSU RAIL PASS WIDE 간사이지방 여행자들을 위한 철도 패스. 승차개시일로부터 5일간 간사이지방의 철도와 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가격은 5,700엔. 철도와 버스 이용 외에도 관광시설 우대권 등 외국인 개인여행자들을 위한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참고로, 일본 내국인은 구매할 수 없다. 국내 취급처(여행사)에서 구입한 후 긴테쓰 노선의 역에서 실물 패스로 교환하여 사용하면 된다. 일본에서는 간사이국제공항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 혜택 1) 긴테쓰전철, 이가철도 자유 이용(좌석이 배정되는 긴테쓰 특급 교환권 3장 포함) 혜택 2) 미에교통버스, 도바시 가모메(갈매기)버스 자유 이용 혜택 3) 공항에서 긴테쓰전철을 이용할 수 있는 역까지 무료 이용 - 중부국제공항을 이용할 때는 메이테쓰전철 - 간사이국제공항을 이용할 때는 난카이전철 혜택 4) 오사카, 나라, 교토, 미에, 나고야 지역 관광시설 우대권 10매 1 긴테쓰 레일패스 와이드를 이용하면 5일간 간사이지방의 철도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2 중부국제공항 센트레아Centrair의 테라스식 전망대 ‘스카이 덱sky deck’ 3 간사이국제공항의 SST Satellite AIRPORTSTORE. 간사이국제공항을 모티브로 한 다양한 팬시류를 전시, 판매하고 있다 4 5종의 사케를 시음해 볼 수 있는 나라의 하루시카 양조장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일본 - 간사이關西지방 - 미에현三重縣 일본 열도의 중앙부. 오사카부를 중심으로 교토시, 나라현, 미에현 등이 속하며 메이지유신때 도쿄로 천도하기까지 일본의 중심이었던 곳. 일본에서는 이 지역을 간사이關西 또는 긴키近畿지방이라 한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연 위에 유수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수놓은 지역이다. 한국에서는 간사이국제공항과 중부국제공항으로 직항이 운항되고 있으며 오사카-교토-나라-미에-나고야로 이어지는 도시간 이동은 철도를 이용할 경우 소요시간이 1시간 이내며 5일간 다양한 혜택이 주어지는 긴테쓰 레일패스 와이드를 이용하면 더욱 발걸음 가벼운 여행을 즐길 수 있다. + 여행의 시작과 끝을 위한 효과적인 공항 이용법 중부국제공항 센트레아 Centrair 2005년 2월 문을 연 중부국제공항은 공항 입구Access Plaza에서 탑승구까지 계단이나 오르막이 없다. 모든 승객들의 이동 편의를 위해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여 설계한 것. 내부 인테리어에 있어서도 이벤트 플라자를 중심으로 한 쪽은 일본의 전통미를 살린 아케이드, 반대편은 서구적인 디자인의 아케이드로 조성해 보는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이 밖에도 공항 활주로 방향으로 조성한 테라스식 전망대 스카이 덱sky deck과 이벤트 플라자 내에 위치한 공중목욕탕은 여행의 피로를 덜어 주는 중부국제공항만의 명소. 긴테쓰 레일패스 와이드를 제시하면 메이테쓰전철을 이용해 나고야까지 이동할 수 있다. 메이테쓰 나고야역까지 약 30분. 간사이국제공항 KIX 오사카만의 바다를 매립한 인공섬에 만든 해상공항. 오사카 도심은 물론 버스, 철도, 페리 등의 교통편을 이용해 교토, 나라, 고베 등 인근 도시로 이동이 용이하다. 공항의 다양한 편의시설도 눈에 띈다. SST 세틀라이트 에어포트스토어 SSTSatellite AIRPORTSTORE는 간사이국제공항을 모티브로 각종 팬시류를 전시·판매하는 상점으로 간사이국제공항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24시간 이용이 가능한 라운지KIX AIRPORT LOUNGE에서는 일정 비용을 지불하면 인터넷, 음료, 만화책과 잡지, 영화, 마사지 체어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여럿이 함께 쉴 수 있는 리빙룸, 씨어터 룸, 다다미룸과 비즈니스 지원이 가능한 미팅룸은 물론 흡연실과 샤워부스, 파우더룸까지 갖추고 있어 환승 또는 탑승대기 시간이 다소 긴 이용객들에게 더욱 반가운 공간이다. + 패스로 간사이를 한번에! 중부국제공항을 이용한다면 미에현으로 가는 길에 나고야를, 간사이국제공항을 이용한다면 오사카를 기점으로 교토와 나라를 두루 여행할 수 있다. 일본의 철도요금이 비싸다는 선입견은 금물. 긴테쓰 레일패스 와이드를 이용하면 합리적인 비용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 간사이 대표 음식, 대표 명물 나고야 스카이 프롬나드SKY PROMENADE 메이테쓰 나고야역에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나고야의 새로운 랜드마크 ‘스카이 프롬나드Sky Promenade’가 있다. 미들랜드스퀘어Midland Square 1층에서 전망엘리베이터를 이용해 42층 티켓로비에서 발권하면 44~46층에 조성한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360도 전면 유리창에 천장이 없는 옥외 데크deck의 형태로 건물 가장자리를 걸으며 나고야 시내를 감상할 수 있다. 나고야 최고의 야경 포인트. 이용시간 오전 11시~ 밤 10시(오후 9시30분까지 입장) 이용요금 중학생 이상 700엔, 65세 이상 500엔, 어린이 300엔 교토 게이샤의 기모노를 입고 그 옛날 게이샤의 기모노가 새 주인을 찾았다. 교토의 오랜 목조 타운하우스에 위치한 ‘쿠노치쿠 텐쇼칸’은 기모노를 재활용하여 끼메꼬미 인형을 전시·판매하고 있는 공예상점. 오래되었지만 일본의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지닌 기모노를 재활용하고 또 현대적 디자인을 접목한 다양한 액세서리로 개발하고 있다. 한편,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제대로 기모노를 갖추어 입고 고즈넉한 교토의 거리를 거닐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단장을 하고 교토에서 특별한 하루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 기모노 대여 비용은 1일 약 5,000엔. 대여방법 긴테쓰 교토역에서 지하철로 한두 정거장 거리의 고조, 시조역 인근 대여점에서 대여가 가능하다. 오사카 오감이 즐거운 오사카의 밤 오사카의 밤은 유난히 화려하다. 난바 거리에 서서 색색의 불빛을 발하는 거대한 네온사인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기분이 드는데 더욱 강렬한 일본을 원한다면 우에혼마치역에 위치한 유후라를 추천한다. 유후라 6~8층, 2010년 9월 개관한 ‘오사카 신가부키자’에서 가부키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요금은 3,000엔부터 1만5,000엔까지. 가부키는 현대 일본인들도 상당히 어려워해 관람을 망설이기 쉬운데 이곳에서는 외국인들을 위해 특별한 해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하니 과감하게 도전해 보자. 오감이 즐거운 오사카의 밤이 깊어만 간다. 나라 부드러운 사케 한 모금 그리고 나라마치 산책 일본의 고도 나라는 흔히 사케라 불리는 일본 술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봄사슴이란 뜻의 양조장 ‘하루시카’에서는 이곳에서 생산하는 사케를 사슴 무늬를 바닥에 넣은 잔으로 시음할 수 있다. 5종의 사케를 한 잔씩 시음하는데 비용은 400엔. 시음 후 잔은 기념으로 가져갈 수 있다. 사케 시음 후엔 골목길을 따라 ‘나라마치’ 산책을 나서 보자. 나라마치는 행정지명상엔 없지만 19세기 민가가 나란히 들어선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다. 차분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일본 특유의 마을 분위기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찾아가기 긴테쓰 나라역에서 하차 도보로 10여 분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19세기 초 침몰한 ‘스페인 보물선’ 소유는 누가?

    19세기 초 침몰한 스페인 보물선의 소유는 스페인 정부일까 아니면 이 보물선을 바다에서 찾아낸 업체일까?  지난 1804년 무려 5억 달러(약 5600억원) 상당의 보물을 싣고 가다 침몰한 스페인 군함을 놓고 벌인 스페인 정부와 해저수색전문 업체의 소송에서 결국 스페인 정부가 이겼다. 미국 플로리다 연방법원은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오디세이 마린 엑스플러네이션’(이하 오디세이)은 스페인 군함에서 발견된 은화 등 모두 주화를 스페인 정부에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오디세이는 해저수색전문 업체로 지난 2007년 대서양 공해 바닥에서 이 스페인 보물선을 발견, 소위 대박을 건져내는데 성공했다. 당시 이 배에서 무려 59만 4000개의 주화가 발견돼 업체 측은 축포를 터뜨렸으나 스페인 정부가 발목을 잡았다. 스페인 정부는 “함선에서 발견된 보물 대부분이 스페인의 것”이라며 미국 연방지방법원에 소유권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그레그 스템 오디세이 대표는 “찾는 사람이 임자”라며 “공해에서 발견된 보물인 만큼 소유권은 자신들에게 있다.”고 반박한 바 있다. 이후 보물의 소유를 둘러싸고 업체와 스페인 정부와의 길고 긴 법정다툼이 이어졌으며 지난 2009년 법원은 스페인 정부의 손을 들어줘 업체 측은 상소했었다. 이번 판결로 오디세이는 오는 24일까지 모든 주화를 스페인 정부에 인도해야 한다.   한편 미국 플로리다 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오디세이는 지난해에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북대서양에서 격침돼 2400m 아래로 침몰한 영국의 화물선을 발견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화물선에는 현재 시세로 1900만 파운드(한화 약 345억 5860만원)상당의 은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글로벌 시대] 세계화, 진보의 딜레마인가/장홍 프랑스 알자스주정부 개발청 자문위원

    [글로벌 시대] 세계화, 진보의 딜레마인가/장홍 프랑스 알자스주정부 개발청 자문위원

    백낙청 교수는 1970년대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의미 있는, 그러나 해석에 따라 애매한 명제를 던졌다. 신자유주의 논리가 판치는 글로벌시대에 다시 새겨봄 직한 명제가 아닌가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 비준과정 등에서 보여지듯, 보수는 세계화를 특별한 갈등 없이 환영한다. 일반적으로 보수에 속하는 세계적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은 세계화가 시장의 성장과 부의 증가에 기여했고, 세계화 덕분에 수억명의 인구가 가난에서 벗어났으며, 전 세계적으로 부의 재분배와 기술의 전파가 확산되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세계화를 대하는 진보의 입장은 신중하다 못해 다소 혼란스럽기조차 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진보는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19세기 국제적 연대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개방과 세계화를 선택하며 역사 발전의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와는 달리 자국의 시장과 경제를 보호해야 한다는 미명 아래 높은 관세와 보호무역을 옹호했던 보수의 입장은 그야말로 보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세계화에 대해 우호적인 보수의 입장에 비해 진보는 세계화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정체성과 경제, 특히 농업 등 취약한 분야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이런 관점에서 오히려 보수처럼 여겨질 위험에 처해 있다. 세계화가 국가와 민주적 절차를 약화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국제적 분업과 하청으로 노동은 위협받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임금 협상력은 크게 저하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 간 조세 경쟁은 한 국가의 조세 수입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는 자본이 노동에 비해 훨씬 유동성이 크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금융위기 때마다 많은 국가들은 국제금융제도에 보다 엄격한 규율을 설정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관련 국가들이 모두 동의하지 않는 한 실현이 불가능하다. 세계화의 큰 폐해 중 하나는 양극화 심화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일부 소수에 의한 부의 독식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 상위 1%가 국부의 8%를 보유했는데, 현재는 무려 20%에 달하고 있다. 부의 지나친 편중 현상은 당연히 민주주의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그 결과 사회의 불안과 동요를 유발시킬 수밖에 없다. 세계화에 대처하는 진보의 바람직한 입장은 무엇일까? 세계화의 문제점만 지적하며 반대하고 저항하는 걸까? 아니면 세계화를 역사의 한 발전단계로 인식하고, 이의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는 걸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전에 국제경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틀 안에서 진보의 진정한 가치와 사회적 약자의 이해관계가 어디에 있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앤디 로드릭 하버드대 교수는 민주주의와 국가가 부의 지나친 편중을 통제하고, 시장을 민주적 절차 위에 다시 편입하기 위한 능력을 되찾을 수 있을 때까지 세계화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급격한 세계화와 국가 간 상호의존도가 날로 높아가는 상황에서 한 국가가 독단적으로 효율적이며 민주적인 정책을 펼치기란 점점 어렵다. 금융시장이 국회보다 한 국가의 경제정책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는 국가 차원에서 세계화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유혹을 받을 수도 있지만 다음 두 가지 문제와 맞닥뜨린다. 하나는 세계화가 제공하는 엄청난 잠재성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 운동의 역사에 등을 돌린다는 것이다. 현대의 테크놀로지와 통신수단의 발전으로 경제의 세계화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세계화가 보다 큰 부의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면, 문제는 세계화가 아니라 민주적 원칙과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 시장 질서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힘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비록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라도, 진보가 역사 발전의 방관자가 아니라 선도자가 되는 바람직한 선택이 아닐까? 이제 가장 세계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 될 수 있을까를 짚어볼 때가 아닌가 한다.
  • 프랑스 초기 유학파 작가·작품 조명… ‘1958 에콜 드 파리’展

    프랑스 초기 유학파 작가·작품 조명… ‘1958 에콜 드 파리’展

    지금은 많이 약해졌지만 파리는 곧 예술의 중심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19세기 이후 유럽의 문화수도라고까지 불리면서 단 한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조차도 파리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가지게 한다. 실제 파리가 예술도시로 명성을 날리게 되는 것은 1차 세계대전 뒤 파리에 몰려든 일군의 예술가들, 가령 마크 샤갈, 파블로 피카소, 모딜리아니 같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들이 주목을 받으면서다. 나중에 이 시기 파리에서 전위적 작업을 선보인 작가들을 묶어 ‘에콜 드 파리’(Ecole de Paris)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식민지, 분단, 전쟁을 겪은 한국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파리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이후다. 이들 한국 작가들에게도 ‘에콜 드 파리’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3월 19일까지 서울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본점 12층 신세계갤러리에서 열리는 ‘1958 에콜 드 파리’전은 ‘그렇다’고 답한다. 6·25전쟁의 참화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1950년대 중반부터 파리로 건너가기 시작한다. 이들은 파리에 머물면서 그동안 유럽 작가들이 진행한 서정적인 추상운동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빨아들이면서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적인 소재나 주제, 미의식을 놓지않기 위해 애썼다. 동시에 이들은 한국으로 돌아가 전시회를 열면서 그동안 일본을 통해 간접적으로 수입되던 서양화풍을 직접 소개함으로써 후대 한국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시를 통해 이 영향의 뿌리를 확인해보는 셈이다 가령 남관(1911~1990)은 1955년 파리로 건너간다. 원래는 인물과 풍경을 주제로 삼았지만, 파리 생활을 거치면서 앙포르멜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권옥연(1923∼2011)도 마찬가지. 원래 평면적 이미지 작업을 위주로 했는데 유학 기간 동안 추상적 실험 작업으로 전환했다. 1960년 작품 ‘추상’은 두툼한 질감, 절제된 색채, 형태가 없는 그림으로 추상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자신이 걸어갈 길에 대해 더 확신을 얻고 온 경우도 있다. 원래 국내에 있을 때부터 추상적 화풍을 선보였던 김환기(1913∼1974)는 파리에서 감격적인 경험을 했다. 그는 거장들의 작품을 보니 작품들마다 모두 노래가 숨어있었는데, 그 덕분에 이제껏 자기가 부르기 위해 애썼던 노래가 무엇인지 알게 됐노라 고백했다. 한국적 소재를 바탕으로 한 1950년대 작품 ‘항아리’ ‘산월’ ‘새’ 같은 작품들에서는 이 노래의 리듬을 느껴볼 수 있다. 거꾸로 오히려 한국적인 맛에 더 깊이 빠져든 작가도 있다. 이세득(1921~2001)은 파리로 건너간 직후 마티스를 떠올리게 하는 화려한 작품들을 많이 그렸다. 그런데 나중에 가서는 오히려 향토적인 주제에 천착하되 추상적 기법을 합치는 작품들을 남긴다. ‘념’(念)과 ‘허’(虛)를 키워드로 삼은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손동진(91)도 시간이 흐를 수록 탈춤과 달빛, 어릴 적 경험이 녹아 있는 경주의 풍경 같은 토속적인 소재에 집중했다. 독특한 융합도 있다. 이성자(1918~2009)는 동양적인 향취를 절제된 한국적 미감으로 잡아내면서도 서양적 해석을 통해서 동서양 모두의 공감을 얻어냈다는 평을 받는다. 덕분에 재불 1세대 작가 가운데 드물게 프랑스 화단 중심에서 그들과 직접적으로 경쟁했다. 본점 전시 뒤 인천점(3월 21일~4월 23일)과 센텀시티점(4월 25일~5월 21일)에서 순회전시된다. (02)310-1924.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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