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19세기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괄호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부사장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실행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안철수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237
  • 한국사 문제 16번 출제 오류 논란

    올 7급 국가직 공채시험 한국사에서 인책형 16번 문제가 출제오류 논란에 휩싸였다. 1918년과 1919년으로 학계 이견이 분분한 대한독립선언서 발표일을 시험 출제 측이 1918년으로 확정하듯 문제를 내 “신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문제는 19세기 말 이후 전개된 해외이주에 대해 틀린 설명을 고르는 문제다. 행정안전부가 밝힌 정답은 ‘북변도관리(北邊島管理)를 통감부에서 설치했다.’고 한 보기 ①이다. 하지만, 간도 지역의 교민 보호와 영토 편입을 위한 ‘북변도관리’는 일제의 통감부가 아니라 대한제국에서 파견·설치했다. 이 때문에 만주로 이주한 한인들이 1918년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고 한 보기 ③은 올바른 진술이 된다. 하지만 그 시기에 대해 학계에서는 음력 1918년 11월설, 음력 1918년 12월설, 양력 1919년 1월 1일설, 양력 1919년 2월 1일설 등 학설이 다양하게 제시된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이에 대해 한국사 관련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는 신승욱씨는 “학계에서 그 발표시기에 대한 일반적인 입장이 정해지지 않은 사안을 행안부가 일부 학자들의 말만 듣고 문제화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보기에 1918년이 음력인지 양력인지 표기하지 않은 점도 논란이다. ‘특별한 표시를 하지 않으면 1895년까지는 음력, 그 이후는 양력’이라고 규정한 현행 고등국정교과서 표기방식에 의하면 ‘1918년’은 양력이다. 이 때문에 설사 대한독립선언서가 음력 11~12월에 발표됐다고 해도 양력으로 계산하면 1919년이 될 수 있다. 대한독립선언서 발표를 기념하고 국가보훈처·광복회 등의 후원을 받는 ‘삼균학회’는 이 발표일을 1919년 2월 1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국가보훈처도 “논란이 있는 문제를 시험에 출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대중음악] ●토마스쿡 소극장 콘서트 ‘노래할 때’ 9월 7~23일 서울 동숭동 학전블루 소극장. 담백한 목소리의 싱어송라이터 토마스쿡이 자신의 솔로 앨범 수록곡 및 소속 그룹인 마이앤트메리의 히트곡을 들려준다. 3만~4만원. (02)763-8233. ●버벌진트 콘서트 9월 2일 서울 올림픽공원 내 88호수 수변무대. 최근 정규 5집 앨범을 발매한 감성 래퍼 버벌진트가 지난 10년 동안의 음악 활동을 팬들과 함께 되돌아보는 무대를 꾸민다. 전석 8만 8000원. (02)563-0595. [연극·뮤지컬] ●연극 ‘기찻길-역무원 이야기’ 8월 9~12일 서울 대학로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19세기 말 개항과 함께 한국에 들어온 ‘기차’를 통해 서민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일본인은 기차라는 괴물을 한국에 들여 왔고, 사람들은 곧 잘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는다. 하지만 기차는 우리를 일제 식민지배 시절과 6·25 전쟁, 개발독재와 민주화 항쟁의 시대로 인도한다. 절망의 시대에서도 희망이 사라지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3만~5만원.(02)929-6417. ●연극 ‘댄스 레슨’ 9월 2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 평범하게 살아온 한 중년 여인의 삶이 방문교습 댄스 강사를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6주 동안 6가지 댄스를 배우면서 춤을 통해 진정한 자아와 희망을 찾아간다. 연기 경력 40년을 맞이한 국민배우 고두심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5만~7만원. 1588-0688 [국악·클래식] ●국악, 푸르미르 8월 9~10일 오후 4시 서울 국립국악원 예악당. 국립국악원이 마련한 청소년 여름축제. 국악그룹 ‘고래야’의 이미지 음악극 ‘수궁가’, 국악원 창작악단이 익숙한 클래식 명곡을 새롭게 편곡한 ‘세계명곡기행’, 타악기와 태평소가 신명나게 어울리는 ‘판놀음’ 등 공연. 5000원. (02)580-3300. [미술·전시] ●‘아이언맨 트랜스포메이션’전 8월 11일까지 서울 논현동 갤러리로얄. 산업사회의 대표적 재료 철강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이는 타이완의 중견 화가 리우포춘의 한국 첫 개인전이다. (02)514-1248. ●가오레이 개인전 8월 19일까지 서울 청담동 아라리오갤러리. 한때 큰 화제를 모았으나 최근 들어 침체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는 중국 현대미술. 다시 한번 활기를 불어넣어 줄 새로운 기대주로 꼽혀 온 가오레이의 최신작들을 선보인다. (02) 541-5701.
  • 안젤라 게오르규 “미미가 순수한 인물? 천만의 말씀”

    안젤라 게오르규 “미미가 순수한 인물? 천만의 말씀”

    “처음 음악가 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좌우명이 ‘내일이 오늘과도 같다면 나는 행복하다. 100% 만족한다’예요. 그리고 자신에게 계속 노력하라고 말하죠. 더 많은 것을 원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계속 앞을 보고 갈 뿐입니다.” 오는 8~9월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리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에서 미미 역을 맡은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47)를 25일 전화로 먼저 만났다. ●“정명훈 감독과 같이 공연하는 것은 처음” 게오르규와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과의 첫 공동작업, 프랑스 오랑주 야외오페라축제 프로덕션의 국내 첫 소개, 루돌포 역에 테너 비토리오 그리골로 캐스팅 등으로 오페라팬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페라의 여신 게오르규는 그동안 3차례 한국 공연을 했지만 오페라는 처음이다. 게오르규는 “한국에서는 콘서트만 했는데 오페라로 찾아뵙게 돼 너무 기쁘다. 게다가 올해는 ‘라보엠’ 데뷔 20주년을 맞는 터라 더 뜻 깊다.”고 말했다. 이어 “정명훈 감독은 데뷔할 때부터 알고 지냈지만, 같이 공연하는 것은 처음이라 많은 분에게 깜짝 뉴스였던 것 같다.”면서 “내가 너무 호텔에만 머무르는 편이라 어쩌면 정 감독께서 서울 시내를 좀 둘러보고 가라고 할지도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푸치니가 나를 위해 작곡해주는 꿈 꿔” ‘라보엠’은 1830년대 파리 뒷골목의 옥탑방을 배경으로 가난한 시인 루돌포와 미미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렸다. 특히, 폐병에 걸려 숨지는 미미를 사람들은 여리고 순수한 캐릭터의 대명사로 떠올린다. 하지만 오래도록 이 역할을 연구한 게오르규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대부분 미미가 순수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미미가 (19세기 사교계에서 부유층 남성의 애인 역할을 하는 코르티잔이자 자유분방한) 무제타와 똑같은 성격이란 걸 이해하지 못했다.”면서 “원작 ‘보헤미안의 삶’을 자세히 읽어본다면 약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여년째 세계 최고의 디바로 군림하는 그에게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는 “현실에선 불가능하지만, 푸치니가 나를 위해 새로운 곡이나 오페라를 작곡해줘 노래하는 꿈을 꾼다. 또 바로크 음악도 시도해 보고 싶다.”며 깔깔깔 웃었다. 한편 ‘라보엠’은 새달 28일과 30일, 9월 1, 2일 열린다. 이 중 28일과 1일은 게오르규와 그리골로가, 30일과 2일은 피오렌자 체돌린스와 마르첼로 조르다니가 각각 미미와 루돌포를 연기한다. 3만~57만원.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기고] 인내천과 사인여천/박겸수 서울 강북구청장

    [기고] 인내천과 사인여천/박겸수 서울 강북구청장

    오늘도 나는 집무실 책상 위에 목민심서를 꺼내 놓고 한 구절 한 구절을 음미하고 나서 업무를 시작한다. 나는 다음 구절을 가장 좋아한다. 현대판 목민관이라고 할 수 있는 구청장의 주인이 누구인지, 구청장이 누구를 가장 먼저 생각하며 일해야 하는지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목민관이 백성을 위해 있는가? 백성이 목민관을 위해 있는가? 백성은 곡식과 옷감을 생산하며 목민관을 섬기고 말과 수레, 마부와 종을 내어 그들을 환영하고 전송하며 자신들의 고혈과 진수를 뽑아내어 그들을 살찌우니, 백성은 목민관을 위해 있는 것인가? 아니다, 그건 아니다. 목민관이 백성을 위해 있다.” 다산 정약용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다산을 제대로 아는 사람 또한 드물다. 그만큼 다산이 방대한 분야에서 빼어난 성과를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일평생 500권이 넘는 저서를 남길 만큼 깊이와 넓이를 재기 어려운 위대한 사상가이자 이론가였다. 대표작만 해도 목민관이 지켜야 할 도리와 행동 지침을 담은 ‘목민심서’, 관제와 토지제도 등 모든 제도의 개혁 원리를 제시한 ‘경세유표’, 형법서인 ‘흠흠신서’, 의학서인 ‘마과회통’, 역사지리서인 ‘아방강역고’, 아동 교육서인 ‘소학주관’ 등 보통 사람이면 평생 한 권도 쓰기 어려운 다양한 주제를 포괄한다. 이처럼 정약용의 사상은 정치, 경제, 행정, 교육, 법률 등 다방면에 걸쳐 있지만, 이 모든 사상의 밑바탕에는 애민(愛民), 즉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백성의 관점에서 조선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탐관오리 척결, 청렴, 제도개혁 등의 사상이 형성된 것이다. 18~19세기를 살았던 다산의 사상이 21세기인 오늘날까지도 빛을 발하고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강북구의 전 직원이 애민 사상을 바탕으로 구민을 주인으로 섬기고 모든 업무를 처리한다면 주민들의 신뢰를 받는 공정하고 깨끗한 행정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업무를 마치고 퇴근을 하기 전에는 ‘인내천’과 ‘사인여천’ 일곱 글자를 항상 되뇌며 잠깐씩이라도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19세기 혼란기 속에서 수운 최제우 선생이 내세웠던 ‘인내천’과 ‘사인여천’의 정신은 다산이 강조했던 목민관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백성을 수탈의 대상이 아닌 섬겨야 할 하늘로 보고 이를 실천하고자 노력한 결과 조선말 백성의 마음속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 ‘사람이 곧 하늘’이고 ‘사람(백성) 섬기기를 하늘처럼 하라’는 가르침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도 우리 가슴에 큰 울림을 남긴다. 강북구의 구정 철학인 ‘사인여천’과 구정목표인 ‘구민이 주인 되는 행정’도 애민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조선말 극도의 혼란과 외세의 핍박 속에 실현되지 못한 다산의 백성사랑 사상과 동학의 민본주의가 21세기 강북구에서 실현돼, 강북구의 새로운 미래를 열고 지방자치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아침마다 목민심서 한 구절을 음미하고 저녁마다 ‘인내천’과 ‘사인여천’ 일곱 자를 되뇌는 까닭이다.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1)조선 천주교 개척 이벽&황사영

    [선택! 역사를 갈랐다] (21)조선 천주교 개척 이벽&황사영

    1779년(정조 3) 겨울. 남인의 젊은 학자들이 천진암에서 강학한다는 소식을 들은 이벽(李蘗)은 눈발이 날리고 호랑이가 출몰하는 100여리의 밤길을 내달려 강학회에 참여했다. 이벽의 등장으로 유학을 강마하던 모임은 대번에 서학과 천주교에 대한 토론장이 되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784년. 이벽의 권유를 받은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하자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천주교(가톨릭)가 싹텄다. 천주교는 지식인을 비롯한 중인, 평민과 천민, 여성 등 각양각색 인물들에게 퍼져갔다. 정조가 승하하고 반 년 정도가 지난 1801년 1월.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되었다. 정약용의 조카사위 황사영(黃嗣永)은 서울을 빠져나와 충청도 제천의 산골짜기 배론(舟論)에 숨어들었다. 배론의 토굴에 숨어지내며 그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편지는 북경 교구장 구베아(Gouvea) 주교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편지 말미에서 황사영은 조선 교회의 재건을 위해 전대미문의 요청을 했다. 편지는 그가 잡히면서 공개되었고 조선 조정은 뒤집어졌다. 이른바 ‘황사영 백서(帛書) 사건’이었다. 한국 천주교는 진리를 찾던 이들이 자발적으로 택했지만 그 선택은 박해가 예고된 고난의 여정이었다.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들은 진정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를 발견했던 것일까. ●18세기 중국 통해 서학·천주교 유입 17세기 초 조선 사람들은 ‘유럽’이란 또 하나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18세기에 접어들자 서양의 천문, 역법, 수리, 의학에 관한 서적과 기물에 더욱 익숙해졌고, 북경에 간 사신들은 으레 선교사가 거주하는 천주당을 방문하였다. 그 결과 저들도 나름의 진리가 있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당시 서양과 그들의 학문에 대해 가장 해박했던 인물은 이익(李瀷)이었다. 그로 인해 서학(西學)이 일세에 풍미하게 되었고, 그의 문하에서 이른바 ‘친서파’(親西派)로 일컬어지는 이가환, 권철신, 정약전·정약용 형제, 이승훈 등이 배출되었다. 이익 문하의 학자들은 여전히 ‘서학 수용’에 머물러 있었다. 서학은 새로운 지식일 따름이지, 유교의 가르침에 상응하는 새 가르침이 아니었다. 그런데 홀연 학문에서 신앙, 신념으로 건너뛴 인물이 나왔다. 이벽이었다. 이벽은 어려서부터 ‘하늘의 도리’에 뜻을 두었다. 20세쯤 서학서에 충격받았고, 25세 전후에 서학 서적을 망라해 읽고는 드디어 마음을 바꾸고 천주교를 신봉하였다. 이 시기 전후에 그는 조선 최초의 호교서로 평가받는 ‘성교요지’(聖敎要旨)를 집필한다. 그것은 천지를 주관하는 천주(天主)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의 선언은 성리학의 근본 원리인 천리(天理)에 대한 도전이었다. 성리학에서 하늘은 천리이다. 천리는 우주 질서의 원리, 사물의 물리, 사회의 윤리이다. 천리는, 우리가 ‘하늘’을 들을 때 떠올리는 ‘하느님’, ‘푸른 하늘’ 같은 인격성과 자연성이 약하고, ‘질서·조화·바름’과 같은 추상성과 윤리성이 강한 개념이다. 천리는 유교 왕국 조선에서는 모든 질서의 원천이자 가치의 근원이었다. 이벽은 ‘천리는 현실에서 공허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천리에 비해 천주는 인격적 존재로 현실감이 있고 내세관마저 채워주는 존재였다. 그는 양 개념이 대립적이라고 여기지 않고 서로 보완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대다수 조선인들은 천주 선언을 유교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으로 보았다. ●관대하던 정조 사후, 1801년 대대적 박해 시작 천주교를 찬성하건 반대하건, 지식인들은 ‘천리’와 ‘천주’의 대결이 가져올 파장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서로 대결한다면 그것은 문명 사이의 가치관 전쟁이자, 그에 동반한 사유와 많은 개념들을 재조정하는 일이 될 터였다. 16세기 천주교를 동양에 전파했던 예수회 선교사들은 이 점을 알고 있었고, 두 문명 사이의 대화와 상호 이해를 도모하였다. 선교사들은 ‘Deus’(God의 라틴어)를 유교 경전에 등장한 상제(上帝)와 유사한 천주로 번역했고, 또 천주를 천지의 대부(大父)·대군(大君)이라고 소개하였다. 천주교 설명에 유교의 텍스트와 개념을 빌린 것이다. 이 같은 설명 방식은 중국에서보다 조선에서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유교적 이상 사회를 가장 진지하게 고민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천주교에서 유학과 일치하거나 때론 유학을 뛰어넘는 가능성을 보았다. 예컨대 한때 천주교 신자였던 정약용은 인격적 상제관에 기초한 새로운 유학 틀을 구상하였다. 정약용에게 영향을 미쳤던 이벽 또한 천주교를 축으로 유학의 미비점을 보완하려 하였다. 그러나 사회, 윤리 측면에서 문제는 매우 복잡하였다. 천주교인들은 천주 공경이 대효(大孝), 대충(大忠)이므로 유교 윤리는 천주교에서 완성되고, 유학자들이 오히려 천지의 군주와 부모를 모른 체한다고 역공했다. 물론 그 논리는 유교 윤리의 소멸로도 해석될 수 있었다. 더 위험한 것은 천주 앞에서 군(君)·신(臣), 부(父)·자(子)의 수직적 위계가 사라지는 일이었다. 천주교인들이 자신들은 충성과 효도를 어긴 적 없다고 아무리 강변해도, 대다수 지배층은 ‘천주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논리 속에 잠재한 현실적 파괴력을 알고 있었다. 백성 하나하나가 박해를 감내하면서 자신이 신앙을 결단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유교적 명분 질서가 사라진 무부, 무군의 미래였다. ●“서양군 통해 유교 압박”… 황사영 백서 큰 파장 1785년(정조 9) 형조의 적발로 최초의 천주교 모임이 발각되었다. 신부도 없이, 지식인들이 서로 성직을 맡아 진행한 모임이었는데, 정조의 관대한 처분으로 그럭저럭 무마되었다. 모임의 주동자였던 이벽은 사건 이후 얼마 안 되어 30대 초반의 나이로 요절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도 전해진다. 본격적 박해를 경험하지 않은 이벽은 차라리 행복했다. 1801년에 터진 대대적 박해는 일부 신자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있었다. 그 와중에 황사영의 백서 사건이 터졌다. 백서의 내용 대부분은 순교자들의 전기이다.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 논란을 부르는 부분은 후반부이다. 황사영은 교회 재건을 위해 몇 가지 방책을 제시했는데, 그중 ‘조선을 청에 내복(內服)시킴, 서양 군함과 병사를 통해 압박함’이 들어 있었다. 그 방책은 반국가, 반민족적 구상이라고 줄곧 비판받았다. 교회 재건이라는 동기와 박해라는 정황을 인정하더라도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였다. 백서의 청원은 너무나 대담하고 몽상적이어서 교인들 사이에도 논란이 있었고, 당시 북경 교회가 그대로 감행하기도 어려웠다. 황사영 역시 실제 그렇게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정부를 압박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그 방책들을 제시하였다. 그가 반정부, 반국가 의지가 강했다면 가장 쉬운 길은 교인들의 무력 봉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반란에는 분명히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 보자. 황사영은 왜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종교의 보편 진리를 꿈꾼 그는 서양의 도리를 신뢰했던 듯하다. 예수회가 전한 서양은 안정된 생활, 인정이 넘치는 풍속, 약한 자에 대한 배려와 형제애가 실현된 ‘이상적 사회’였다. 현실의 고통이 강할수록 이상적인 바깥 세계에 대한 동경과 기대는 증폭되기 마련이다. 기독교적 형제애에 대한 갈망이 커질수록 전통적인 유교 윤리, 혈통 의식, 국제 관계 등은 무력하거나 부정적으로 보였을 법하다. 선교사가 청 황제, 기독교 국가의 군대를 움직일 수 있다고 믿고 싶었던 지나친 기대감은 그의 판단력을 가려버렸다. ●지금도 유교문화 속 기독교 신자 수 동아시아 1위 천주교와 유교의 보완을 꿈꾸었던 이벽의 노력은 정약종, 정하상 등으로 맥을 이어갔다. 일부 교인들은 동서양의 이상적 인간상을 투영하여 그를 되살렸다. 19세기 후반 천주교 공동체의 염원이 담긴 예언서 ‘니벽전’에서 그는 학문에 능통한 선비, 득도한 신선, 승천하는 예언자로 그려졌다. 황사영은 대역부도죄로 체포되어 능지처사되었다. 비극은 그의 개인과 가족, 당대 교인들에게만 끝나지 않았다. 지배층과 일반 백성은 백서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인들을 정말로 무부무군의 무리, 나라를 팔아먹는 무리로 여기게 되었다. 두 사람의 선택은 현재의 우리에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국은 유교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으면서도 기독교(가톨릭과 개신교) 신자 수가 1위인 동아시아의 특이한 국가이다. 전근대의 보편 가치와 근대의 보편 가치를 상징하는 두 종교 사이에 현재의 우리가 놓여 있다. 예수회 이벽의 선택은 ‘내 안의 가치’와 ‘타인 안의 가치’를 동등하게 존중하고 서로 대화하는 자세와 통한다. 그리고 종교, 문명,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조화에 힘쓰는 이들을 통해 계승되고 있다. 그러나 인정과 대화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이다. 서로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겸손에서 대화는 출발하지만, 나·우리 혹은 타자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고정해 버리면 성찰과 다양한 해석이 설 자리는 사라져 버린다. 그 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황사영은, 박해라는 정황을 감안하더라도, 외재(外在)하는 기준을 절대화해 버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원을 긍정하고 독선에 빠지지 않는 자세야말로 언제나 곰곰이 생각해 볼 덕목이었다. 세계화, 다문화, 정보화가 가속하는 지금에서는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이경구 (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
  • [국가직 7급 과목별 마무리 대비법] (2) 국어·영어·한국사

    [국가직 7급 과목별 마무리 대비법] (2) 국어·영어·한국사

    국가직 7급 필기시험이 오는 28일 치러진다. 지난주에 이어 국어·영어·한국사 등 일반 과목 마무리 대비법을 알아본다. 김영준 공무원 단기학교 국어강사는 “7급 국어 문제 유형이 ‘수능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력을 중심으로 평가하겠다는 출제자의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출제된 부분은 현대·고전 문법 3문제, 국어생활 4문제, 한문 5문제, 비문학 6문제, 현대문학 2문제 등이다. 한문이 2010년 2문제에서 5문제로 비중이 훌쩍 커진 것이 특징이다. ●15~19세기 고전문법 시간순서대로 정리를 출제 영역도 다양하다. 지난해에는 한자어를 묻는 문제 뿐 아니라 농와지경(瓦之慶·딸을 낳은 경사), 백아절현(伯牙絶絃·절친한 벗의 죽음을 슬퍼함) 등 한자성어 문제도 출제됐다. ‘이번에 아드님을 얻은 농와지경을 축하드립니다.’라고 잘못 기술한 보기가 답이었다.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라는 시를 보기로 놓고 주제를 고르는 문제도 등장했다. 김병태 국어강사는 ▲주요 한시, 한자어, 한문 문장의 문법요소 등을 꼼꼼히 정리할 것 ▲문학사의 중요 작가들 대표작의 의미 해석 등을 미리 정리할 것 ▲15~19세기 고전문법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할 것 등을 마무리 대비법으로 강조했다. 또 최근 3년간 기출문제를 반복해서 풀고 영역별 정리를 할 땐 교재 앞부분에 기술된 핵심내용 중심으로 범위를 좁혀서 정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문법·영작 비중 25%… 문제풀이로 실전감각 7급 영어가 9급 영어와 다른 눈에 띄는 특징은 높은 어휘 수준이다. 10문제 정도 출제되는 독해 문제에서 고득점하려면 어휘력이 관건이다. ‘드러내 놓고’ ‘대단히 비싼’이라는 뜻의 ostentatious, ‘호전적인’이라는 뜻의 bellicose, ‘급속히’ ‘대폭’이라는 뜻의 by leaps and bounds 등의 어휘가 지난해 출제됐다. 조은정 영어강사는 “남은 기간 평소 보던 어휘기본서·단어집을 반복해서 보고 동의·파생어 등 관련 어휘를 묶어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또 “예문에 있는 어휘의 문맥 속 의미를 추론하는 식의 연습이 좋다.”고 말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7급 영어에서 문법·영작 비중은 25%가 넘는다. 또 문장 길이가 복잡해서 어렵다. 개념서를 무턱대고 읽기보다 문제 풀이를 통해 실전 감각을 극대화하고 부족한 문법 요소를 보충해야 한다. 독해는 감각을 유지하고 시간을 단축하는 훈련이 중요하다. 지문 전반부를 차분하게 읽되 글 전체 흐름을 예측하며 중심생각이 무엇인지, 필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주제문만 제대로 읽어도 답을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제2연평해전 10주년 관련내용 정리 필요 한국사는 고등학교 국사·근현대사 교과서를 바탕으로 출제된다. 수준은 7·9급이 거의 비슷하다. 전한길 한국사 강사는 “문제를 풀다 보면 생소한 표현이 있어 어려워 보이는 보기는 정답과 상관없을 때가 많다.”면서 “두려움을 버리고 핵심내용을 정리하면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삼국·고려·조선시대 왕들의 업적을 묻는 문제는 시대별로 출제되는데, 몇몇 헷갈리는 문제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출제되지 않았던 붕당정치·탕평책 등 조선후기 정치사 부분은 올해 출제 가능성이 크다. 경제사의 수취·토지제도도 필수다. 문화사에서는 불교의 영향을 받은 고대·중세문화 관련 문제가 출제될 수 있다. 주요 승려, 불교 건축 등이 중요하다. 조선 전기 부분에서는 이황과 이이의 사상 비교, 조선 후기 부분에서는 중농학파와 중상학파 실학자들의 업적을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근현대사는 대원군~강화도 조약~임오군란~갑신정변~동학농민운동~갑오개혁~아관파천~독립협회~대한제국~의병과 애국계몽운동~국권피탈 과정~일제 통치방식의 변화~토지조사 사업과 산미증식 계획의 비교~임시정부의 시기별 활동~의열단과 애국단 비교~신간회 활동 등에 대해서 시대 흐름과 함께 활동을 꼼꼼하게 점검해야 한다. 해방 후에는 헌법개정과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그리고 통일을 위한 노력 등이 출제될 수 있다. 시기별 역사책의 특징을 묻는 문제도 종종 출제된다. 특히 조선후기의 동사강목, 해동역사, 연려실기술, 동사, 발해고와 관련한 내용을 정리해야 한다. 일제시대 역사서와 관련해 신채호, 박은식, 백남운 등을 비교하는 문제도 출제될 가능성이 크다. 또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이의봉의 고금석림 등도 점검해야 한다. 시사적인 주제들도 짚어야 한다. 2011년에 반환된 외규장각 자료 약탈과 관련 있는 병인양요, 지난해 새롭게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5·18 광주기록물과 일성록, 그리고 세계문화유산과 기록유산 등을 잘 기억해야 한다. 또한 올해가 제2연평해전 10주년이 되는 해이므로 1999년 제1연평해전과 2002년의 제2연평해전의 연도를 알아두는 것이 좋다. 지난달 말에는 강원 고성 문암리 유적에서 동아시아 최초로 신석기 밭 유적지가 발견됐다. 몇 해 전에 송국리식 토기가 연속 출제됐던 것처럼 새롭게 발견되는 유물과 유적도 잘 정리해 둬야 유리하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도움말 공무원단기학교
  • [공익재단-부자의 상상력을 기부하라] ‘한국의 기부왕’ 탐욕의 시대 바꿀 희망의 빛 되다

    [공익재단-부자의 상상력을 기부하라] ‘한국의 기부왕’ 탐욕의 시대 바꿀 희망의 빛 되다

    역설적이게도 ‘탐욕의 시대’는 공익재단의 황금기를 낳았다. 미국에서 19세기 ‘악덕 자본가 시대’를 거친 뒤 20세기 재단의 전성기가 도래했 듯 국내에서도 최근 분노의 시대를 넘어설 화합의 키워드로 공익재단이 주목받고 있다. 양극화 심화로 사회·경제적 계층 간 반목의 골이 깊어지면서 저명 인사들과 대기업 오너들이 사재를 털어 잇달아 재단을 설립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빈곤한 상상력이다. 수억, 수조원을 쏟아부었지만 세상을 바꿀 비전을 제시한 재단은 찾기 어렵다. 서울신문은 창간기획 ‘공익재단, 부자의 상상력을 기부하라’ 시리즈를 통해 한국 부유층의 기부모델인 공익재단의 현실과 가능성을 점검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8년 전 개인 돈 1000억원을 기부하며 ‘개인 공익재단 시대’를 다졌던 송금조(89) 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이 기부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부산 향토기업인 출신인 송 이사장은 최근 유일하게 갖고 있던 사업체(태양화성)마저 정리해 300억원 상당의 공장 등 부동산을 재단에 추가 출연했다. 송 이사장의 재단 출연금은 1300억원으로 늘어났다. 이 같은 행보는 1901년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자선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사업체를 모두 팔아 재단에 쏟아부은것과 비교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 이사장은 지난 11일 부산의 재단 사무실에서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추가 출연 이유를 묻는 질문에 “세상을 떠나기 전에 추가로 출연하고 나니 마음이 든든하다.”고만 했다. 재단 측은 올해부터 경암학술상 상금을 1억원에서 2억원으로 늘리고, 국내에 국한했던 우수 학자 발굴·지원을 아시아권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다수의 부자들이) 의도 섞인 기부를 한 탓에 시민들이 (재단 설립 등을) 좋은 시선으로만 보지는 않았다.”면서 “카네기와 록펠러의 사심 없는 기부를 보고 후대가 따라하면서 미국의 기부 역사가 만들어졌듯 (송 이사장이) 진정성 있는 기부를 했다면 후대에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송 이사장의 기부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2003년 고향인 경남 양산에 부산대 제2 캠퍼스 부지대금으로 당시로서는 국내 최대인 305억원을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뒤늦게 부산대 측이 기부금 195억원 중 상당 부분을 다른 용도로 쓴 것을 알고는 소송을 제기해 현재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송 이사장은 재판으로 상처를 입었지만 공익재단에 대한 희망의 끈은 놓지 않고 있다. ‘재단 시대’의 도래는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서울신문이 국세청에 공시된 국내 공익재단 현황을 분석한 결과 50대 민간 공익재단(자산액 기준)의 자산총액이 사상 처음 10조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사재보다 기업 돈으로 재단을 세우고 지나치게 수도권으로 쏠린 현실 등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특별취재팀 kukje@seoul.co.kr
  • “가을에 태어난 사람일수록 오래산다” 비결은?

    가을에 태어난 아이일수록 100세까지 장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공개됐다. 미국 시카고대학 연구팀은 9월에서 11월 사이에 태어난 아이일수록 100세 생일을 맞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미국서 1880~1895년 사이 태어나 100세까지 장수한 사람들의 데이터를 조사한 결과, 100세까지 장수한 사람들 상당수가 가을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9월부터 11월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은 경제적 상황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당시 기후 등 환경으로부터 건강한 유전자를 갖거나 장수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연구를 이끈 레오니드 갈리오브 박사와 나탈리 가브리로바 박사는 “가장 중점적인 가설은 어린 시절 계절적인 영향이 인간의 수명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라며 “19세기에는 특히 여름에 전염병 등의 영향으로 죽음을 피하지 못한 사례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이 제시한 또 다른 가능성은 계절에 따른 영양소 부족 및 호르몬 변화이다. 기후나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호르몬과 영양 섭취 등이 장수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 한편 이 같은 연구결과는 샌프란시스코의 인구협회에서 공개됐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조선 침략’ 주창한 두 얼굴의 일본인을 아시나요

    일본인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를 아시나요.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계몽사상가로 19세기 중반 이후 한·일 관계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저널리스트이자 교육자였다. 그는 일본에서 흔히 ‘국민의 교사’, ‘국민국가론의 창시자’, ‘절대주의 사상가’ 등으로 불린다. 특히 죽은 지 100년이 지났지만 오늘날 일본 화폐의 최고액인 1만엔짜리의 얼굴로 부활해 일본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본의 역사가들이 일본 근대화 과정에 공헌한 그의 순기능만을 부각시킨 하나의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탈아론(脫亞論)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을 제국주의의 미로(迷路)로 오도한 과오를 감안하면 그의 업적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그는 두 얼굴의 사나이다. 일본인에게도 그러하고 우리 한국인에게도 그러하다. 일본인들에게는 유럽과 미국을 따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점에서는 선구자일지 모르지만 일본이 아시아를 지배해야 한다는 논리는 결국 일본으로 하여금 제2차 세계대전에서 원자탄의 세례를 받게 했다. 한국인들에게 그는 조선 개화파 인사들을 돕고 부추겨 갑신정변을 일으키는 데 애쓴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변 실패 뒤에는 일본의 조선 지배를 강력히 주장한 장본인이다. 아울러 일제 정부보다 앞장서서 청일전쟁 도발을 충동하고 조선에 있던 일본인 보호를 구실로 조선에 주둔군 파병의 필요성을 소리 높여 외쳤다. 또 ‘정한론’을 뛰어넘는 ‘조선정략론’을 주창하고 조선의 개혁이 곧 일본의 독립을 유지하는 길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조선의 국정 개혁을 추진하고 감시하는 ‘조선국무감독관’제를 제안했다. 이 조선국무감독관은 조선총독으로 이름이 바뀌어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으로 군림하게 된다. 신간 ‘후쿠자와 유키치’(정일성 지음, 지식산업사 펴냄)는 이 같은 사실에 방점을 찍으면서 그의 두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일본의 위대한 사상가로 인식되고 있는 점이 잘못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역사 교과서 왜곡을 주도하고 있는 일본 우익 지배층이 대부분 후쿠자와의 ‘조선·중국 멸시 이론’으로 정신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후쿠자와의 탈아론은 아시아 침략의 논리로 조선과 중국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 왜곡의 근원이 되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 책은 일본 우익 지배층의 비뚤어진 시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 교육자, 언론인, 그리고 대학생들이 한번쯤 읽어 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11년 전 처음 책을 냈고 이번에 개정판을 냈다. 1만 9000원.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영화프리뷰] ‘더 레이븐’

    [영화프리뷰] ‘더 레이븐’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천재 추리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 그가 죽기 전 5일간의 알려지지 않은 행적을 재구성한 영화가 ‘더 레이븐’이다. 그의 소설 6편에 들어 있는 살인사건을 영화 속 모티브로 차용한 이 작품은 기존의 전기 영화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영화의 배경은 기괴한 살인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는 미국 볼티모어의 한 빈민가. 사건 현장을 본 베테랑 수사관 필즈(루크 에번스)는 연쇄살인사건에서 에드거 앨런 포(존 쿠삭)가 쓴 추리소설 ‘모르그가의 살인’에 나오는 살인 장면을 떠올리고 포를 찾아 자문을 구한다. 연쇄 살인사건이 자신의 소설로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믿지 않던 포. 하지만, 자신의 애인 에밀리(앨리스 이브)이 납치되고, 범인이 ‘연인을 살리고 싶거든 내가 주는 단서를 인용한 소설을 내일 아침 신문에 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기자 사건 해결에 직접 뛰어든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이 연쇄 살인범의 살인 도구가 된다는 독특한 설정에서 시작된 영화는 살인범이 소설 속 살인을 그대로 인용한 시체들을 단서로 포를 유인하는 과정을 통해 상상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흥미를 유발한다. 하지만, 빠른 전개과 팽팽한 긴장감, 예상치 못한 반전 등을 내세운 요즘 스릴러 영화와는 거리가 있다. 당시의 분위기를 살렸다고는 하지만 마치 고전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린 호흡과 치밀하지 못한 구성, 다소 구닥다리 같고 답답한 인상은 이 영화의 단점이다. 살인 사건이 등장하면서 수위가 높은 잔인한 장면도 자주 등장한다. 에드거 앨런 포 역을 맡은 존 쿠삭은 연인을 구하고 범인을 추격하려고 필사적인 글쓰기에 매달리는 주인공을 무난하게 소화했다. 하지만, 캐릭터가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편은 아니다. 극의 중심을 잡는 필즈 역의 루크 에번스의 연기는 볼 만하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와 정지훈의 할리우드 데뷔작 ‘닌자 어쌔신’을 연출한 제임스 맥티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7월 5일 개봉.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2012 런던올림픽 D-30] ‘친환경·IT’ 준비됐어요, ‘잠자리·교통’ 준비 안 됐어요

    30일 앞으로 다가온 제30회 하계올림픽 개막을 앞둔 영국 런던은 이미 손님맞이 준비를 대부분 마쳤다. 사상 최초의 환경올림픽이라는 기치 아래 쓰레기산 위에 우뚝 솟은 각종 경기장들은 지구 최대의 잔치가 이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지를 똑똑히 보여 주고 있다. 정보기술(IT)의 개발로 지구 위의 모든 이들이 같은 시간에 올림픽 소식을 접할 수 있는 것도 이번 대회부터다. 그러나 교통과 숙박 등 ‘전통적인’ 골칫거리들은 이번에도 되풀이돼 나타날 전망이다. 주경기장이 위치한 런던 북동부 ‘리 밸리’의 올림픽공원 조성 작업은 거의 마무리됐고 교통 및 경비 대책 등을 완성하기 위한 도상연습이 한창이다. 7월 27일부터 17일 동안 올림픽 개·폐막식과 주요 경기가 펼쳐질 올림픽공원은 대회를 치를 준비가 사실상 완료된 상태다. 런던올림픽의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는 ‘환경올림픽’이다. 올림픽공원 부지는 한국의 월드컵공원으로 탈바꿈한 난지도처럼 예전에 쓰레기 매립장으로 사용됐던 곳이다. 19세기 산업화 과정에서 쓰레기가 매립되면서 기름과 타르, 중금속 등 산업폐기물이 뒤섞여 있었고 하천은 유지 공장 등에서 나오는 악취가 넘쳐났던 곳이다. 그러나 올림픽조달청(ODA)은 2008년부터 ‘부수고 파고 디자인한다’ (Demolish, Dig, Design)는 이른바 ‘3D’ 프로젝트에 따라 남아 있던 수백채의 건물을 철거하고 공원 조성 작업을 시작했다. 올림픽공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과 수로 등 8.5㎞ 구간에는 선수와 관람객이 쉴 수 있는 녹지 공간인 생태공원을 조성했다. 철저하게 친환경 공법과 자재를 활용했다. 해체 또는 폐기된 자재와 오염된 토양의 상당 부분은 친환경 처리를 거쳐 공원 건축에 재사용했다. 또 신축된 경기장이나 시설물은 지붕에서 내려오는 빗물을 모아 화장실 물로 활용하는 등 기존 경기장에 비해 40%가량 물 사용량을 줄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축구장 357개 크기인 2.5㎢ 부지의 올림픽공원에는 8만명을 수용하는 웅장한 외관의 주경기장을 비롯해 부드러운 곡선미를 자랑하는 경륜장, 워터폴로 경기장, 아쿠아틱센터, 핸드볼 및 펜싱 경기장, 농구장, 하키장 등이 위용을 자랑하며 우뚝 섰다. 205개국 선수와 지도자들이 묵을 선수촌은 물론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초대형 쇼핑몰과 다양한 식당가, 의료시설 등이 이미 문을 열고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AP통신은 지난 20일 “런던올림픽조직위원회(LOCOG)가 트위터, 페이스북 등 다양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소셜림픽’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료에 따르면 베이징올림픽 기간 트위터 이용자는 600만명, 페이스북 이용자는 1억명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트위터 사용자가 1억 4000만명, 페이스북은 9억명으로 크게 늘었다. 현재 IOC도 트위터 팔로어 76만명, 페이스북 친구 280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LOCOG 관계자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는 빠른 인터넷이 부족했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는 스마트폰이 없었으며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SNS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다양한 방식으로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시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LOCOG는 소셜림픽을 구현하기 위해 SNS를 통해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관중이 직접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웹에 게재하는 것을 허용했다. LOCOG 측은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되지 않는다면 막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 비자카드 등 올림픽 공식 스폰서들도 SNS를 이용한 마케팅에 이미 뛰어들었다. 거대한 스포츠 이벤트가 벌어지는 곳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잠자리와 교통이다. 런던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 텔레그래프지는 최근 올림픽 기간 교통 통제를 위해 34개 경기장 인근 도로의 이용이 제한되고 노변 주차가 금지돼 40만여만 가구와 사무실의 극심한 주차난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런던교통국은 올림픽 기간 원활한 차량 소통을 위해 주요 경기장 인접 지역의 주차구역을 폐쇄하거나 올림픽 VIP 통행로를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주차난 해소를 위해 주차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 해당 지역 주민과 사무실 근로자, 외부 방문객들에게 주차 허가 및 통행증 100만건을 발급하기로 했다. 경기장을 근처에 둔 런던시민들은 평소 이용하던 주차구역을 포기해야 한다는 소식에 앞으로 어떤 불편이 닥칠지 걱정하고 있다. 런던교통국은 주차종합대책을 지난 4월 말 확정해 공개했지만 런던의 교통난이 워낙 악명 높은 터라 올림픽 선수단과 대회 관계자, 관광객의 원활한 이동을 보장하면서 주민들의 주차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는 못 미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숙박난도 만만치 않다. 개막을 한 달 앞둔 27일 런던 내 호텔들의 숙박 수용 능력을 조사한 통계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AP통신은 올림픽 기간 중 런던을 찾을 관광객은 어림잡아 238만명 선이라고 보도하면서 숙박 전문 인터텟 ‘호텔스닷컴’의 자료를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11만개에 이르는 런던 시내 호텔 객실의 하루 평균 숙박료는 341달러(약 38만 7000원)였다. 이들 객실 중 4만개는 IOC와 각국 선수단, 임원진, 보도진에 배정될 예정이다. 나머지 7만개의 객실이 일반 올림픽 관광객 몫이지만 그리 넉넉한 형편은 못 된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1만년 전 ‘미스터리 돌 건축물’ 시리아서 발견

    1만년 전 ‘미스터리 돌 건축물’ 시리아서 발견

    시리아에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오래된 1만년 전 건축물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캐나다 로열온타리오박물관 소속의 고고학자인 로버트 메이슨 박사는 지난 2009년 시리아를 방문했다가 기이한 형태의 돌 건축물을 발견했다. 이 돌 건축물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북쪽으로 50마일 가량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인근에는 19세기까지 사람들이 왕래하고 벽화 등이 보존돼 있는 마르무사 수도원이 있다. 주거의 흔적은 전혀 없지만 인근에서 거대한 선돌을 둥글게 줄지어 만든 환상열석(Stone circle)과 석기 등이 함께 발견됐으며, 연구팀은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사막 한 가운데에 있다는 특징 때문에 ‘죽음의 풍경’이라 부르기도 한다. 메이슨 박사는 정확한 건축 시기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주변 돌의 형태와 유일한 건축물인 수도원의 형태를 보아 신석기 시대 또는 초기 청동기 시대인 6000~1만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는 피라미드가 만들어진 4500년 전 보다 수 천년 더 이른 시기다. 또 인근에 있는 수도원의 지하에는 선사시대의 거대한 돌무덤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메이슨 박사는 “돌들은 매우 심플하게 배열돼 있으며, 처음 발견 당시 어떤 생명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면서 “이 미지의 돌 건축물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해당 지역에서는 여전히 내전이 활발해 조사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 곳은 ‘시리아의 스톤헨지’나 다름없다.”면서 “1만년 전 만들어진 돌 건축물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사진=미스터리 돌 건축물 인근의 마르무사 수도원 전경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핀타 섬 ‘코끼리 거북’ 멸종됐다

    핀타 섬 ‘코끼리 거북’ 멸종됐다

    남미 동태평양의 섬 갈라파고스의 명물이자 생물 보존의 아이콘인 핀타 섬의 마지막 코끼리거북 ‘외로운 조지’가 24일(현지시간) 숨졌다고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국립공원이 밝혔다. 이로써 조지가 속한 코끼리거북의 아종 ‘켈로노이디스 니그라 아빙도니’는 공식적으로 멸종됐다. 국립공원 측은 조지의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부검을 실시하고, 박제해 영구보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지의 나이는 100살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지가 속한 아종이 최대 200살까지 사는 것에 비하면 일찍 사망한 편에 속한다. 40년간 조지를 돌본 사육사 파우스토 예레나는 “아침에 우리로 가 보니 조지가 수로를 향해 쭉 뻗어 있었다.”며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고 말했다. 조지는 헝가리 출신 과학자에 의해 1972년 핀타 섬에서 발견된 뒤 사육장에서 보호돼 왔으나 자손을 남기지 못했다. 공원 측은 조지의 후손을 얻기 위해 수십년간 노력했으나 무위로 끝났다. 조지는 인근 울프 화산 출신인 근연종 암컷과 15년간 한 울타리 안에서 기거한 끝에 짝짓기에 성공했으나 암컷이 두 차례 낳은 알들은 무정란으로 밝혀졌다. 이어 이보다 더 근연 관계인 에스파뇰라 섬의 암컷도 조지와 함께 살았으나 끝내 짝짓기에는 실패했다. 에콰도르 서쪽에서 975㎞ 떨어진 갈라파고스의 여러 섬에 사는 거북들이 각기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는 사실과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한다는 점은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근거를 제공했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갈라파고스에는 거북이 많았으나 선원과 어민들이 식용으로 마구 사냥한 데다 사람이 풀어 놓은 염소까지 이들의 먹이를 가로채 멸종 지경에 이르게 됐다. 현재 갈라파고스에는 조지와 다른 아종이긴 하지만 코끼리거북 약 2만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조희선기자 hsncho@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7) ‘실학거성’ 정약용 & ‘북학거두’ 김정희

    [선택! 역사를 갈랐다] (17) ‘실학거성’ 정약용 & ‘북학거두’ 김정희

    다산(茶山)과 추사(秋史)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조선 최고의 지식인들이다. 한 사람은 조선 실학(實學)을 집대성한 인물로 추앙받고, 한 사람은 북학(北學)의 종장으로 일컬어진다. 중국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청나라의 학술과 문화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다산, 청나라에 유학하여 중국인을 스승으로 삼고 청나라의 학술과 문화를 배우고 좋아했던 추사, 이런 사실만으로도 이들의 삶이 달랐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당색(黨色)마저 달랐으니 애초부터 가까이 지내기엔 서로가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럼에도, 추사는 다산의 아들 정학연과 가까운 친구였고 선배인 다산을 존경했다. 다산 사후에는 다산의 제자들이 추사의 문하를 수시로 출입하며 교유하였다. 이렇게 두 사람의 삶이 다르면서도 닿아 있는 것은 정치적인 이유로 죄인의 몸이 되어 유배형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배의 설움 글로 푼 정약용 대대로 문한(文翰)을 숭상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다산은 정조 임금의 총애를 온몸으로 받았던 신하이자 제자였다. 그런데 출세가도를 달리던 다산에게 시련이 닥쳤다. 젊은 시절 천주학(天主學)에 관한 책을 읽고 연구했던 게 화근이었다. 다산의 집안에는 형님과 매형을 비롯한 천주교도들이 많았다. 호기심 많던 다산이 천주학에 관심을 뒀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후에 다산은 성균관에 들어가면서 천주학과의 인연을 끊지만, 젊은 시절 그가 한때 마음을 두었던 천주학은 결국 인생의 항로를 바꾸고 만다.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젊은 시절 천주학에 몸담았던 사실은 점점 다산의 목을 겨누는 칼로 변해갔다. ●든든한 후원자 정조 죽자 유배생활 시작 상황이 악화되자 다산은 짐을 챙겨 고향으로 돌아갔다. 1800년 봄의 일이었다. 얼마 후 다산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정조가 승하하자, 다산은 다음해 2월에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 10월에 상경하여 재조사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다시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고 만다. 죄인의 몸이 되어 강진을 찾은 다산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801년 겨울, 강진에 도착한 다산은 동문 밖 술집에 거처를 마련했다. 동천여사(東泉旅舍) 뒷골방인 사의재(四宜齋)였다. 이곳에서 1806년 여름까지 지냈다. 1805년 겨울은 승려인 아암(兒庵)의 배려로 아들 정학연과 함께 보은산방(寶恩山房)에서 지냈다. 1806년 가을에는 제자 이학래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1년 남짓 살았다. 이렇게 떠돌던 다산은 1808년 봄부터 1818년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다산초당(茶山草堂)에 머물렀다. 다산은 유배생활 대부분을 제자를 가르치고 저술하는 일로 보냈다. 누구보다도 승려들과 많은 교유를 하였고 차(茶)를 사랑했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었다. 강진에 도착한 다음해 봄부터 붓과 벼루를 옆에 두고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저술에 매달렸다. 그 때문에 왼쪽 어깨에 마비 증세가 나타나 폐인이 될 지경이 되었고, 시력은 나빠져 늘 안경을 끼고 살았다. 다산이 그렇게 저술에 매달린 것은 폐족(廢族)이 되어버린 자신의 가문과 자신을 구원할 길이 오직 저술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저술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전하고, 이로써 죄인의 오명을 벗어 던지고 싶었던 것이다. ●폐족 벗어나기 위해 두 아들의 학문정진 강조 한편으로는 두 아들에게 수시로 훈계의 글을 써 보내 공부를 강조했다. 청족(淸族)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존경을 받게 되지만, 폐족이 된 마당에 학문에 힘쓰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천시하고 세상에서도 버림을 받게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두 아들이 자포자기하면 자신의 저술이 후대에 전해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도 있었다. 자신의 글이 전해지지 못한다면 후세 사람들은 단지 관청의 문서만 가지고 자신을 평가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은 끝내 죄인의 오명을 벗을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이런 절박함은 다산으로 하여금 500권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남기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유배의 恨 서화로 푼 김정희 김정희의 증조부는 영조 임금의 사위였다. 그런 집안에서 자랐으니 왕실의 한 구성원인 셈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남부러울 게 없는 생활을 하였다. 1810년 부친을 따라 중국 연경(燕京·지금의 베이징)을 다녀온 뒤로 북학의 종장으로 성장하였다. 연경의 지식인들은 김정희와 교유하기를 희망하였고, 김정희의 연구 논문이 나오기를 기다리곤 하였다. 이미 동아시아 최고의 석학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親청’ 추사, 反청 다산 선배로 여기고 후학들끼리 교류도 그러나 김정희가 45세 되던 1830년에는 부친 김노경이 전라도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840년에는 그 자신마저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모두가 정쟁 속에서 빚어진 일들이었다. 평생 고생이란 걸 모르고 살았던 김정희에게 제주도의 유배생활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음식은 거칠어 목에 넘어가지도 않았고, 날씨는 맞지 않아 걸핏하면 앓아누웠다. 제주도에 도착한 다음해, 추사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가장 친한 친구 김유근의 부음이 전해졌던 것이다. 김유근은 추사를 유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가장 큰 희망이었는데, 이제 그 희망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김유근의 사망 소식을 들은 뒤로 추사는 미쳐버린 듯, 정신이 나가버린 듯하였다. 하늘을 향해 혀를 차고 밥상을 대하면 수저를 드는 것조차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돌멩이가 목구멍에 걸린 듯하고 대못이 가슴에 박혀 있는 듯하여 몰골은 날마다 말라가고 정신도 따라서 나가버린 것 같았다. 슬픔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추사는 두 번째 아내인 예안(禮安) 이씨와 사별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반대파들의 박해도 끊이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의 친구들과는 소식도 점차 끊어졌다. 젊은 시절 그렇게도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마저 소식 한 통 전해오지 않았다. 그런 추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책뿐이었다. 역관이었던 추사의 제자 이상적은 그런 추사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중국에 갈 때마다 최신의 서적들을 구해다 추사에게 보내주었다. 모두 쉽게 구할 수 없는 책들이었다. 그 덕분에 몸은 제주에 있었지만, 중국 소식을 손금 보듯 하며 지낼 수 있었다. 유배 가기 전이나 유배 간 뒤나 언제나 똑같이 자신을 대하는 이상적의 행동을 보면서 추사는 문득 ‘논어’의 구절을 떠올렸다. ‘자한’ 편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라는 구절이었다. 공자께서는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꼈듯이, 사람도 어려운 지경을 만나야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추사는 이상적의 행동이야말로 공자가 인정했던 송백(松柏)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추사는 그 고마움을 그림에 담아 이상적에게 선물하였다. 그렇게 ‘세한도’가 탄생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추사체로 불리는 그의 글씨는 바로 9년간의 유배생활 속에서 탄생하였다. 추사 또한 평생 수많은 저술을 하였고, 유배기간에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말년에 자신의 저술을 두 번에 걸쳐 불에 태워버렸다. 그가 남긴 것은 그의 혼이 담긴 서화뿐이었다. ●올해 다산 탄생 250주년… 활발한 학술행사 열려 18년 유배생활을 저술로 보냈던 다산, 9년 유배생활을 예술로 승화시킨 추사, 이들의 삶은 이렇게 같으면서도 달랐다. 한 사람은 가슴 속에 쌓인 것을 밖으로 풀어내 책을 지었고, 또 한 사람은 가슴 속에 쌓인 것을 붓 끝에 모아 서화로 표출했다. 올해는 다산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여러 곳에서 다양한 전시회와 함께 그의 삶과 업적을 조명하는 학술행사가 열린다. 다산의 바람대로 죄인이라는 오명은 오래 전에 씻어졌다. 이제 다산을 죄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500권의 저술을 남긴 위대한 학자로서의 명성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다산의 치열했던 삶이 온전히 살아나기를 기대해 본다. 박철상(고서연구가)
  • [씨줄날줄] 신(新)노인/주병철 논설위원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52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산티아고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고기잡이하는 노인이다. 84일째 고기 한 마리를 잡지 못하다 85일째 1500파운드나 되는 큰 상어를 발견하면서 밤늦게까지 사투를 벌인 뒤 무사히 귀항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40대도 부럽지 않은 힘을 가진 이 노인의 나이는 얼마나 됐을까. 당시 기대 수명이 남자는 50대 초반, 여자는 50대 중반이었으니 50대 안팎쯤일 것이다. 노인 같지 않은 노인이었다. 평균 기대 수명이 50세 미만이던 19세기에 태어나 여든한 살까지 산 미국 시인 헨리 롱펠로(1801~1882)는 백발이 되어서도 정열적인 시를 끊임없이 발표했다. 감탄한 한 청년이 “선생님은 노인이신데 어떻게 그처럼 시를 잘 쓰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저 나무처럼 양분을 잘 섭취하면 저렇게 푸르게 자라 열매를 맺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식생활 개선과 의학의 발전으로 고령층이 늘고, 평균 수명도 연장되면서 노인의 개념을 숫자만으로 정의하긴 어렵게 됐다. 사회 규범에 따른 사회적 연령, 외모 등 기능적 연령, 건강 등 생물학적 연령, 심리적 성숙 등 심리적 연령 등을 고려해야 한다. 19세기 후반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가 노인의 기준으로 정한 65세는 더 이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 만 65세 이상 1만 1542명을 대상으로 ‘2011년 노인 실태조사’를 해 봤더니 응답자의 59.1%가 노인의 연령기준을 70~74세로 꼽았고, 75~79세를 노인으로 본 응답자도 11.3%였다. 70대 이전에는 ‘노인’ 소릴 듣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80대 노인이 친구 아들인 60대가 경로당에 나타나는 걸 보고 다시는 나오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근데 노인의 연령 기준을 70대로 바꾸자고 하면 정작 반대하는 사람은 노인들이라고 한다. 180여만명에 이르는 65~69세 노인들이 각종 복지혜택에서 사각지대로 남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연금법은 만 60세 이상, 노인복지법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65세로 규정돼 있다. 또 노인복지회관은 만 60세 이상, 경로당은 만 65세 이상이다. 물론 유엔 인구통계도 65세 이상을 고령인구로 구분하기 때문에 우리만 노인의 연령 기준을 덜렁 바꿀 수는 없겠다. 하지만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두고 급증하는 복지지출 예산 등을 고려할 때 일관성 있는 노인복지 혜택을 위한 연령 기준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단계적인 접근도 가능할 것 같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박태준 ‘철강 명예의 전당’ 헌정

    박태준 ‘철강 명예의 전당’ 헌정

    고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이 ‘철강 명예의 전당’(Steel Hall of Fame)에 이름을 올렸다. 포스코는 ‘제철보국’(製鐵報國) 이념으로 철강 불모지였던 한국에 첫 일관제철소를 세워 산업 근대화에 공헌한 박 전 명예회장이 미국 철강 전문지인 ‘AMM’이 주관하는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고 20일 밝혔다. 헌정 행사는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27회 ‘철강 성공 전략 콘퍼런스’에서 열렸다. 선정된 철강 원로는 박 전 명예회장을 포함해 모두 8명이다. 19세기 유럽에서 철강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한 ‘베세머 제강법’을 만든 영국의 헨리 베세머, 미국 카네기철강의 창업자 앤드루 카네기, 미 US스틸 창업자 저지 엘버트 개리, 미 누코철강 회장을 역임한 케네스 아이버슨 등이다. 또 신일본제철의 초대사장 요시히로 이나야마, 독일 경제 발전의 주역 코르프 코퍼레이션 창립자 빌리 코르프, 미 베들렘철강의 성장을 주도했던 찰스 슈워브 등이다. 1882년 창간된 AMM은 세계 철강학계와 재계 전문가 등을 포함한 ‘명예의 전당 추천위원단’을 구성, 모두 2차례에 걸친 투표를 통해 8명을 선정했다. 명예의 전당에 등재된 철강 원로들의 활동상과 업적을 기리는 기념 자료들은 오는 8월 미국 오하이오주 영스타운에 있는 ‘철강박물관’의 헌정관에 영구전시될 예정이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미국에 있던 우리나라 미술품 친정나들이

    미국에 있던 우리나라 미술품 친정나들이

    중국 것으로 알려졌다가 고려 불화로 밝혀진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의 ‘아미타불과 지장보살도’를 비롯해 ‘청자 꽃 새 무늬 매병’, ‘청자 앵무 무늬 정병’, ‘달항아리’ 등 미국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전통 미술품들이 친정 나들이를 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에서 열고 있는 ‘미국, 한국미술을 만나다’는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 9개 기관의 86점 전통미술품을 소개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 미술품을 본격적으로 수집한 것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으면서부터다. 미국인들은 고려청자에 관심이 많았다. 1945년 8·15 광복 이후 미군정과 주한 미군 관계자들이 한국 미술품을 폭넓게 수집했다. 특히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수집이 쉬웠다고 한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에선 이름 있는 수집가의 작품이 전시된다. 1892년 보스턴미술관이 일본 미술품 수집가인 에드워드 모스(1838~1925)로부터 구입한 청자 꽃 새 무늬 매병, 선교사 언더우드 가문이 브루클린박물관에 기증한 청자 연꽃무늬 주자(조선왕실이 언더우드 가문에 기증한 것으로 추정), 세브란스 병원 설립을 후원했던 루이스 세브란스(1838~1913)의 아들인 존 세브란스(1863~1936)가 기증한 클리블랜드미술관의 청자 앵무 무늬 정병 등이 전시된다. 필라델피아미술관 소장 백자 복숭아 모양 연적과 하버드미술관 핸더슨 컬렉션의 바퀴 달린 잔은 6·25전쟁을 전후로 한국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의 소장품이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백자 달항아리는 한국 미술 수집의 활성화를 가져온 에이버리 브런디지(1887~1975)의 기증품이다. 2부는 미국 주요 박물관의 한국 미술품을 한국실 설치연도에 따라 박물관별로 전시했다. 미국의 박물관들은 19세기 후반부터 한국 미술품을 소장했으나, 한국 미술품이 독립된 공간에 전시되기 시작한 것은 1927년 호놀룰루미술관이 처음이다. 대표 유물로는 청자 연꽃 넝쿨무늬 주전자, 목조동자상, 석가설법도가 있다. 브루클린박물관의 유물로는 스튜어트 큘린이 1913년 수집한 인궤(印?)를 비롯해 1980년대 소장된 ‘한익모 초상’과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 등이 있다. 이 밖에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이 2000년과 2005년에 각각 구입한 계산목우도(溪山牧牛圖),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소장품 가운데는 통일신라 절정기 양식의 금동불 입상과 청자 주전자가 전시된다. 19세기 말부터 한국 미술품을 수집한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전시품으로는 청자 구름 학 무늬 매병과 소상팔경도의 연사모종(煙寺暮鍾), 동정추월(洞庭秋月)로 알려진 ‘산수도’ 등이 있다. 8월 5일까지.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아랍이나 아시아 민주화 싹을 꼭 서구적 틀에서 찾아야 합니까

    아랍이나 아시아 민주화 싹을 꼭 서구적 틀에서 찾아야 합니까

    ‘비서구 민주주의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그 자체가 모순처럼 보인다. 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에서 시작된 가장 서구적인 제도 중 하나이기 때문에 ‘비서구’와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고 학습된 탓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이니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의 ‘아랍의 봄’ 소식을 들으면, ‘이들 나라에서도 이제야 서구 민주주의가 싹트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민주주의=서양의 것’이란 상식을 뿌리부터 흔들어대는 이가 있으니 김상준(52)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다. 김 교수는 19~20세기 근대화와 함께 유럽의 수출상품이었던 서구 민주주의의 뿌리가 중국과 조선에 있었다는 뚱딴지 같은 주장을 한다. 막무가내는 아니고 그럴 듯한 근거를 댄다. 김 교수는 근대적 민주주의의 시작을 17세기 스피노자에게서 찾고 있다. 그렇다. ‘지구가 내일 멸망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던 그 스피노자다.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는 17세기 유럽 최초로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급진 계몽주의자였다. 그가 살았던 17세기 유럽에는 민주주의가 없고, 혹독한 사상 탄압과 종교의 폭정뿐이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민주주의는 비판을 받았고,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 경험은 부정적으로 평가됐다. 아테네는 민주주의 때문에 망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기독교가 유럽을 석권하고 나서 민주주의를 분명하게 옹호하는 유럽인은 없었다. 이때 스피노자가 인간과 세계의 자연성을 설파한 (교회가 볼때는 불온한) ‘에티카’를 썼고, 교회는 그에게 ‘무신론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17세기 무신론자는 대한민국에서 ‘빨갱이’와 같은 지위를 갖는다. 스피노자는 그 후 1670년 ‘신학-정치 논고’를 출간했고, 이는 19세기 초까지 유럽 사상계를 뒤흔들었다. 김 교수는 스피노자가 친하게 지낸 14살 연상의 아이자 보시우스란 철학자가 있는데, 보시우스가 중국과 조선을 동경했다고 말한다. 17세기 해상권을 확보한 네덜란드가 극동의 일본과 교역했으니 아시아와 관련한 각종 정보가 네덜란드에 유입됐을 것은 당연한 이치. 보시우스는 중국과 조선은 철학자들이 다스리는 나라이고, 이들 철학자가 자신의 의무에 충실하지 못하면 인민들이 평가하는 자유를 가지고 있으며, 왕이 잘못하면 대놓고 이 철학자들이 왕을 비판하는 정치 선진국으로 믿었다는 것이다. 보시우스의 이런 생각은 같은 동네에 살면서 친하게 지내던 후배이자 동료인 스피노자에게 옮겨갔을 것이고, 스피노자의 급진 계몽주의 사상의 이론적·철학적 배경이 됐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설명이 길어졌지만, 스피노자의 급진철학과 유럽 민주주의 탄생의 이론적 배경에 ‘비서구’인 중국과 조선이 있었으니 ‘과연 민주주의를 서구에서 빌려왔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나아가 김 교수는 BC 500년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 원형도 사실은 BC 2000년 시리아-메소포타미아 고대 아시아 국가의 다중 의회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것도 김 교수의 막연한 아시아 우월주의적 주장이 아니고, 덴마크 출신의 미국 고고학자 토르킬드 야콥센(1904~1993)이 주장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민주주의 원형을 찾아보면 서구보다 아시아 쪽이 기원이 빠를 수 있다고 한다. 아무튼 서구의 근대화 따라잡기 식, 흉내내기 식 민주주의를 추구하지 않아도 인도나 한국, 중국, 베트남 등은 자신들의 전통과 역사에서 민주주의 방안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알렉산더 우드사이드 교수는 저서 ‘잃어버린 근대’(2006년)에서 ‘중국의 능력주의에 입각한 과거-관료제도야말로 또 하나의 근대였고, 이것을 유럽은 19세기에 받아들였다.’고 했다. 이어 포스트모던한 사고방식으로 김 교수는 “아랍의 민주화나 아시아의 민주화를 꼭 서구적 테두리에서 찾아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주장은 계간지 ‘실천문학 106호’ 여름 특집물인 ‘정치를 넘어선 정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최동호 새벽을 열며] 숲속의 오솔길 ‘월든’의 지혜

    [최동호 새벽을 열며] 숲속의 오솔길 ‘월든’의 지혜

    지난 5월 16일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미국 보스턴 외곽 콩코드에 있는 소로의 월든 호수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숲속의 집은 멀리 있어야 할 것 같은 선입견과는 달리 찾아가 보니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나를 오솔길로 부르고 있었다. 우리들이 자진해서 숲으로 향하는 길을 낸다면, 그 길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이번 방문으로 깨닫게 되었다. 살던 콩코드 마을을 떠나 숲 속으로 들어가 홀로 자연과 대화하며 명상에 잠기고자 했던 소로의 오두막집을 찾아가는 일은 도심의 거리를 헤매던 필자에게 숨겨진 비밀을 찾는 흥분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도착하고 보니 옛 오두막집은 사라지고 돌무더기와 함께 그 터만 남아 있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인생의 본질적 사실들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었고,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으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는 글이 새겨진 밤색 간판이 옛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소로는 1845년 7월부터 1847년 9월까지 오두막집에서 생존을 위한 극소의 필수품만으로 살며 자연과 대화하고 인생에 대해 명상한 것들을 사실적 기록으로 집필했다. 소로는 생존 당시 극단적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던 까닭에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에머슨의 명성에 가려 그 아류에 불과한 존재로 평가되었다. 후일 유명해진 ‘월든’의 경우에도 10년 가까이 출판할 곳을 찾지 못하다가 1854년에 가서야 2000부를 간행했는데 거의 판매되지 않았다. 명성을 얻지 못한 그는 에머슨의 숲이나 집을 관리하는 정도로 미미한 존재였다. 따라서 그의 오두막집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며 그는 혁신적인 사상가요 예언자적 지성으로 부활했다. 그가 오두막집을 지은 지 100년 후인 1945년 집터가 다시 발굴되었으며, 그는 19세기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게 되었던 것이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이 한 권의 책으로 소로는 우리가 미국에서 가졌던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재평가된 소로는 이후 세계적 명성을 지닌 미국의 문인 중 하나가 되었다. 자연생태문학의 대두와 더불어 그는 생태문학의 원조로 추앙되었다. 그의 예언자적 성찰을 생각하며 오두막집터에서 숲 속의 오솔길을 바라보았다. 주변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어디선가 숲 속을 어슬렁거리다 불쑥 나타날 것 같은 소로의 그림자가 스쳐가는 것 같기도 했다. 숲길을 걸으며 소로의 월든이 지니는 힘이 무엇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이 머나먼 곳으로 사람들을 찾아오게 만드는 것일까. 우선 물신주의를 넘어서는 청교도적인 금욕주의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것으로 멈추는 것은 아니다. 그의 세밀한 자연관찰 또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보여준 명상의 심오함이었을 것이다.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하려고 한’ 그의 자세는 사후 15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에게도 훌륭한 표본이 될 것이다. 쓸데없는 일로 인생의 대부분을 소모하거나 쓸데없는 일들로 사회적 동력을 소모하고 있다는 느낌이 스쳐갈 때 소로의 ‘월든’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바른 길을 가르쳐 줄 것이다. 혼탁한 사회적 격류에 휩싸일수록 우리는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 오늘의 한국은 가치 혼돈의 양극시대이다. 격한 사회변화는 경제적 불균형의 심화로 사회적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국가의 미래를 선도하는 지도자는 부재하고 누구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안 부재의 갈등이 분출되면 분출될수록 멀리 떨어져 있는 숲 속의 길에서 지혜를 찾아야 한다. 숲 속으로 가는 길은 우리의 내면으로 향하는 진정한 길을 알려줄 것이며 찌는 더위를 식혀줄 서늘한 힘도 거기서 생성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 ‘근대 광주의 산증인’ 박선홍씨 ‘무등산’ 등 저작권 기증

    ‘근대 광주의 산증인’ 박선홍씨 ‘무등산’ 등 저작권 기증

    “광주와 무등산의 소중한 기록들을 시민들과 공유했으면 합니다.” ‘광주의 어른’으로 불리는 박선홍(86)씨가 자신의 저서인 ‘광주 일백년’(1994년간, 총3권)과 ‘무등산’(1998년간)에 관한 지적재산권을 광주문화재단에 기증하기로 해 화제다. 그가 현장을 누비며 채록한 기록물들은 개화기 이후 광주의 근대 100년사와 무등산의 역사·문화·지리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1926년 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광주와 무등산 역사를 기록하고 증언해 온 ‘근대 광주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다. 1955년 호남지역 최초 산악회인 ‘전남 산악회’를 만들고, 1989년 무등산 보호단체협의회, 2001년 무등산 공유화재단을 각각 설립하는 등 무등산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광주민학회 회장으로서 향토사를 발굴하고 정립하는 데도 지대한 역할을 했다. 저서 ‘광주 일백년’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에 이르는 광주의 생생한 역사를 집대성한 책이다. 지역에 대한 애정의 눈길과 기억을 통해 광주와 관련된 모든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되살아나도록 엮었다. ‘무등산’은 저자가 직접 발품을 팔아 일일이 조사하고 찾아낸 무등산의 사계절과 식생, 동물, 전설과 풍속, 유물·유적, 정자와 사찰 등 모든 유·무형 자원을 총망라한 무등산의 ‘바이블’로 통한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통찰하며 무등산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내용은 무등산에 관한 저서로는 독보적인 영향력을 가졌다. 광주문화재단은 15일 빛고을 시민문화관에서 기증식을 열고, 의미를 더하기 위해 그의 청년기부터 현재까지의 삶의 여정을 담은 10분 내외의 동영상을 상영할 계획이다. 이날 행사에는 ‘광주 일백년’을 일본어로 번역한 일본인 히로시게(75)가 특별 방문한다. 광주에서 태어난 히로시게에게 5년 전 우연히 광주를 소개할 기회를 가진 박씨는 ‘광주 일백년’과 ‘무등산’을 보여 주었고, 그 인연으로 히로시게가 한국어를 공부해 ‘광주 일백년’을 일본어로 번역했다. 광주문화재단 측은 이를 계기로 ‘무등산 관련 자료 시민기증운동’을 펴기로 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