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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로 배우는 미국 300년史

    미술로 배우는 미국 300년史

    미국 300년사를 그림으로 감상해 볼 수 있는 ‘아트 어크로스 아메리카’(Art Across America)전이 5일 서울 용산구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한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필라델피아미술관, 휴스턴미술관, 테라 미국미술재단 등에서 작품을 대여해 온 대형 전시로 정통 초상화를 보여주는 찰스 윌슨 필의 1772년작 ‘캐드왈라더 가족’에서부터 추상표현주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잭슨 폴록의 1950년작 ‘넘버 22’까지 모두 168점을 선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들이 내년 이들 미술관에서 ‘조선미술대전’이라는 이름으로 순회전시할 예정이다. 한·미 간 교환전시의 일환이라는 얘기다. 4일 언론에 공개된 전시는 ‘아메리카의 사람들’, ‘동부에서 서부로’, ‘삶과 일상의 이미지’, ‘세계로 향한 미국’, ‘ 미국의 근대’, ‘1945년 이후 미국 미술’ 등 모두 6부로 이뤄졌다. 전시장을 걸어나가면서 미국의 역사를 볼 수 있도록 한 구성이다. 처음에 맞닥뜨리는 것은 인물 초상화들이다. 식민지 지배층의 부유한 느낌을 담은 ‘캐드왈라더 가족’을 비롯,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 등을 볼 수 있다. 19세기 들어 서부로 팽창함에 따라 광활한 자연 풍경을 담은 그림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신화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토머스 콜을 비롯한 화가들의 그림이 이 시기를 잘 드러내 준다. 오늘날 미국의 기독교 원리주의적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강력한 보수성도 빼놓을 수 없다. 윈슬로 호머가 그린 ‘건전한 만남’은 눈만 마주치면 풀밭에 뒹굴 것만 같은 피 끓는 젊은 남녀가 경건하게 우유만 나누어 마시는 모습을 담았다. 전반적인 그림의 톤까지 따사로워 지금으로 봐서는 건전가요 듣는 느낌이다. 이후에는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이 선보인 뒤 1945년 이후로 가면서 마침내 세계 패권국으로서 세계 미술의 중심지로 올라선 미국의 모습이 드러난다. 잭슨 폴록을 비롯, 마크 로스코, 앤디 워홀, 재스퍼 존스, 로버트 라우센버그 등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등장한다. 존 싱어 사전트, 조지아 오키프 등 귀에 익숙한 작가의 작품들도 찾아볼 수 있다. 전시는 오는 5월 19일까지. 1만 2000원. 1661-2440.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러시아 판 ‘네스호 괴물’ 흔적 발견”

    “러시아 판 ‘네스호 괴물’ 흔적 발견”

    러시아의 과학자들이 스코틀랜드의 ‘네스호 괴물’ 조상 격의 미스터리 생물체 흔적을 발견했다고 주장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시베리안 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모스크바국립대학 연구팀은 모스크바 동쪽의 라빈키르 호수에서 정체불명 동물의 아래턱뼈와 골격 등을 발견했다. 영하 42℃의 차가운 물속에서 발견한 이것은 길이가 10m 가량이며, 연구팀은 이것이 전설 속 괴물인 ‘더 데블’(the Devil)의 흔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구팀 소속 지질학자는 “수중 스캐너와 음향 측심법(반향을 통해 해저의 깊이를 측정하거나 해저의 물체를 찾는 방법) 등을 이용해 턱 뼈와 몸통 골격 등을 발견했다.”면서 “거대한 강꼬치고기 또는 양서류, 파충류 등 다양한 가설이 있지만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더 데블’은 라빈키르 호수 인근에서 19세기 때부터 목격되어 온 전설 속 동물로, 그 역사는 네시에 비해 한 세기 가량 앞선다. 네시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6세기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목격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은 1930년 초반이기 때문이다. 네스호 괴물과 마찬가지로 ‘더 데블’ 역시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치부돼 왔다. 도드라지는 턱이 가장 큰 특징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러 과학적 자료도 존재한다. 모스크바국립대학교 리우드밀라 이멜리야노바 부교수는 “2006년 음향 측심기와 어군(魚群)탐지기 등으로 으로 호수를 탐사하던 중 몸길이 6.5m 가량의 기이한 물체를 포착한 바 있다.”면서 “분명히 살아있었지만 일반적인 물고기나 어군과는 전혀 다른 형태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학자로서 아직 이 미스터리 물체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이 호수 아래에 있다는 사실 만큼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불 뿜는 아스팔트 비잔틴 제국 최고의 무기였다

    불 뿜는 아스팔트 비잔틴 제국 최고의 무기였다

    다이아몬드라면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위신을 크게 실추시켜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됐다는 1786년 다이아몬드 사기사건이다. 1905년 남아프리카 프리미어 광산에서 채굴된 3106.75캐럿짜리 다이아몬드의 행방도 재밌다. 더 큰 다이아몬드도 있다. “2011년, 거대한 다이아몬드가 대기권 밖에서 발견됐다. 붕괴한 항성의 잔존물로서 뱀자리 성운에서 약 4000광년 떨어진 이 다이아몬드 행성은 그 크기가 무려 지구의 5배에 달한다.” ‘광물, 역사를 바꾸다’(에릭 살린 지음, 서종기 옮김, 예경 펴냄)는 영국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저자가 지구상의 주요 광물 50가지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광물의 기본 성질에 대한 정보에서부터 그에 얽힌 역사적 비화까지, 광물 하나로 과학과 역사를 전해주니 말 그대로 일석이조다. 매쪽 3~4개씩 들어가 있는 도판, 유명인의 어록, 별도 소박스 등이 읽는 눈을 즐겁게 한다. 귀한 손님에게 식사 대접을 하는데 알루미늄 그릇에 담아 내놓으면 욕먹기 딱 좋다. 그런데 19세기에는 그게 최고의 대접이었다. 알루미늄은 지구상에 가장 풍부하지만, 가장 추출하기 까다로운 물질이었다. 추출기술이 채 발달하지 못한 19세기까지만 해도 알루미늄은 금보다 비싼 물질이었다. 오늘날 기독교 세계는 아스팔트 덕분이다. 지금이야 도로에 깔리는 시커멓고 냄새나는 물질 정도지만, 옛날에는 화염방사기였다. 쉽게 불이 붙는 성질을 이용해 비잔틴 제국이 이슬람 세력에 맞서는 무기로 활용한 것이다. 화약 발명 이전에는 ‘그리스의 불’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을 정도로 적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거창한 얘기도 있다. 기원전 483년 아테네는 우연히 동부 해안 라우리온 지방에서 거대한 은광을 발견했다. 19세기까지 은을 캘 수 있었을 정도였다 하니 엄청난 양이었던 듯하다. 은광의 이익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논쟁이 벌어졌다. 다 나눠가지려다 해군제독 테미스토클레스의 웅변으로 군함건조에 투입됐다. 그 덕에 페르시아군을 물리치고 제해권을 장악했고, 이는 민주정에 대한 찬사와 존경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광물이 진짜 역사를 바꾸었냐고? 물론 흥을 돋우기 위한 뻥이다. 광물과 역사를 흥미롭게 버무려뒀지만 저자 역시 자원결정론, 기술결정론을 말하는 건 아니다. 아테네 사례에서 보듯 중요한 건 결국 그 사회의 선택이다. 1만 80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책꽂이]

    중국근현대사 1~4(요시자와 세이이치로 등 지음, 정지호 등 옮김, 삼천리 펴냄) 청나라 말기인 19세기부터 1971년까지를 ‘청조와 근대 세계’ ‘근대 국가의 모색’ ‘혁명과 내셔널리즘’ ‘사회주의를 향한 도전’ 등 4권으로 정리했다. 일본 이와나미서점이 기획해 소장 연구자들이 집필에 참여한 이 책은 모두 6권으로 기획됐고 이번에 4권이 먼저 나왔다. 청나라에서 붉은 중국을 거쳐 자본주의 국가로 전향한 현재의 중국까지 연속적으로 파악하는 관점 아래 쓰인 통사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전체적 흐름을 하나로 총괄하면서 민족국가 건설, 즉 ‘네이션 빌딩’ 과정으로 파악하는 대목이다. 이 개념이 한국에선 독재를 미화하는 우익 역사 진영에서 주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묘하게도 좌파의 비판적 시각으로 연결된다. 역시 중요한 건 번드르르한 개념이 아니라 상식적인 균형 감각이다. 각 권 1만 5000원. 시사에 훤해지는 역사(남경태 지음, 메디치 펴냄) 역사가 흥미로운 까닭은 현재를 보다 더 잘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혹은 그들은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결국 역사에서 연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너무나 성공적이었던 중앙 집권의 역사, 그리고 이 때문에 시민의식이나 혁명의 개념이 들어서기 어려웠다는 역설 등 오늘날 한국 사회를 비춰 볼 수 있는 다양한 얘기들을 들려 준다. 저자의 문투는 요즘 유행어로 치자면 완전 돌직구다. 우리 역사라 해서 두둥실 띄우고 꽃 장식 둘러 주고 하는 짓 따윈 하지 않는다. 1만 4000원. 아웅산 수치 평전(피터 폽햄 지음, 심승우 옮김, 왕의서재 펴냄) 너무도 유명한, 그리고 곧 한국을 찾을 것이라는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를 다룬 책이다. 영국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독재에 신음하는 조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고 스스로 형극의 길을 걸어간 한 여인의 삶을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진 영국 기자인 저자가 생생하게 기록한 글이다. 2만 5000원. 크랙 캐피털리즘(존 홀러웨이 지음, 조정환 옮김, 갈무리 펴냄) 권력을 장악하는 것보다는 자본주의 체제에 균열을 내고 그 균열을 키우고 늘림으로써 급진적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자본에 종속된 노동과 자본에 종속되지 않은 행위를 구분한 뒤 노동 대신 행위에 기대를 걸면서 이를 어떻게 널리 퍼뜨릴 것인가에 대해 논한다. 부록에는 마이클 하트와 벌인 서신 논쟁을 붙여 뒀다. 2만 50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정조의 아버지·어머니·친형, 그들의 제사 어떻게 지냈나

    정조의 아버지·어머니·친형, 그들의 제사 어떻게 지냈나

    프랑스에서 14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에 대한 한글 번역 작업이 본격 시작된다. 또한 민간연구단체에서 진행하던 서유구(1764~1845)가 쓴 ‘19세기 조선의 브리태니커’ 임원경제지의 한글번역에도 올해만 3억원의 세금이 투입된다. 한국고전번역원은 2011년 프랑스로부터 장기임대 형식으로 돌려받은 외규장각 의궤 중 의소세손(1750~1752)의 장례 과정을 담은 ‘의소세손예장의궤’에 대한 번역 작업에 착수한다고 지난 22일 밝혔다. 의소세손은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둘째 아들인 사도세자의 장남이자 제22대 왕 정조의 친형으로 세손에 책봉됐다가 3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한국고전번역원은 올해 정부 예산 8억원을 지원받아 ‘의소세손예장의궤’를 비롯해 의궤, 법제, 과학기술, 경학, 사상, 생활사 등 각 분야 특수고전 7종을 번역한다. 우선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사당인 경모궁에서 제사 지낼 때의 의식을 기록한 ‘경모궁의궤’를 우리말로 번역해 올 상반기에 출간할 계획이다. 19세기 ‘조선의 브리태니커’로 불리는 실용백과사전 ‘임원경제지’와 조선시대 형법으로 이두로 번역한 ‘대명률직해’(1395년), 홍의영(1750∼1815)이 함경도 지방을 돌아보고 쓴 연혁과 정황을 기록한 ‘북관기사’, 북간도와 백두산 일대가 조선의 영토임을 밝힌 ‘북여요선’(1903년), 첩이나 노비가 낳은 자식에게 벼슬 진출을 허용할지 여부를 다룬 19세기 초엽의 ‘통색촬요’도 번역된다. 한국고전번역원은 “7000종, 1만 6000책으로 추산되는 특수 고전 가운데 번역과 정리가 필요한 특수 고전은 3000종, 7000책에 달한다”고 밝혔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22일 TV 하이라이트]

    ■즐거운 책 읽기(KBS1 밤 12시 40분) 19세기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대표작인 소설 ‘레 미제라블’. 주인공 장발장은 사회의 모순과 개인적 양심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까지 ‘레 미제라블’ 신드롬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왜 200여년 전 작품에 열광하고 있는 것일까. ■삼국지(KBS2 밤 1시) 진창 전투에서 대패한 조진의 뒤를 이어 대도독직을 맡게 된 사마의는 군심을 바로잡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난감해진 제갈량은 위연을 보내 무도와 음평을 취하려 한다. 하지만 사마의가 이중 원군 책략으로 주변 성지의 수문장들에게 환심을 사는 데 성공하자 제갈량이 직접 미끼가 돼 무도성으로 가는 유인책을 펼친다. ■아침드라마 사랑했나봐(MBC 오전 7시 50분) 현도(황동주)는 선정(김보경)에게 4년 전 유럽에 갔다는 것도 거짓말인지 확인한다. 자신의 위치를 위협받고 있는 선정은 자신과 같은 마음인 어머니를 간접 협박하기에 이른다. 한편 재헌(안재모)은 윤진(박시은)에게 선정은 아무 관계도 아닌 애를 나한테 주었을까 하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기자가 만나는 세상 현장 21(SBS 밤 8시 50분) 해마다 잡음이 끊이지 않는 국회 안팎에서 벌어지는 쪽지 예산안 처리 실태를 취재한다. 그리고 프로배구와 프로농구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김호철, 문경은의 리더십을 분석해 본다. 또한 전북 완주군 직거래 장터 ‘로컬푸드’의 성공 사례를 통해 착한 경제의 성공 모델도 소개한다. ■딩동댕 유치원(EBS 오전 8시) 비타민과 철분이 많이 들어 있는 초록색 시금치를 먹은 정의의 용사 번개맨이 힘을 내 악당들을 물리친다. 이 소식에 멋진 번개맨처럼 힘이 세지고 싶은 한 그릇 뚝딱 탐험대. 우선 힘이 되는 시금치를 모아 보기로 했다. 과연 한 그릇 뚝딱 탐험대는 초록빛 에너지를 모아 꼬마 번개맨이 될 수 있을까. ■가족(OBS 밤 11시 5분) 백두대간 산줄기의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을 잇는 고개 괘방령에서 인생 2막을 열고 있는 백기성·전영애 부부와 아들 백두산군을 소개한다. 이들은 10년 전 이곳 괘방령으로 터를 옮겼다. 산속에 집을 짓고 좋은 공기 마시며 살고 싶어 시작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은 산장지기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데….
  • [지금&여기] 비참한 사람들(Les Miserables)/최재헌 국제부 기자

    [지금&여기] 비참한 사람들(Les Miserables)/최재헌 국제부 기자

    아버지를 잃고 추위에 떨며 굶주리는 일곱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장발장은 19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어린 딸 코제트의 병원비가 필요했던 미혼모 판틴은 머리를 자르고 생니를 뽑은 것도 모자라 몸까지 팔았다. 19세기 프랑스는 극심한 빈부격차로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거리마다 넘쳤다. 사람들은 왕정에 맞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혁명의 노래를 불렀다. 1862년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 속에서 이들의 영혼은 결국 사랑과 용서로 구원받는다. 21세기 프랑스는 세계 초강대국이 됐지만 나라를 버리는 ‘비참한 사람들’로 여전히 몸살을 앓고 있다. 프랑스 최고부자인 루이비통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지난해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의 부자 증세를 피해 벨기에 국적을 신청했다. 올 초에는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같은 이유로 러시아 시민권을 획득했다. 국민배우로 사랑받던 그의 도피성 국적 포기에 프랑스인들은 안타까움을 넘어 비난을 쏟아냈다. 서로 다른 시대 프랑스의 ‘비참한 사람들’에 대한 상반된 평가는 아이러니하게도 150년 전의 ‘그들’은 너무 못살아서, 지금의 ‘그들’은 너무 부자이기 때문이다. 더욱 흥미롭게도 드파르디외는 프랑스 TV연속극 레미제라블에서 주인공을 맡아 열연했었다. 드라마 속에서 당대의 비극에 분노하는 장발장 역을 맡았던 그가 마침내 현실에서 뜻을 이뤘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지난 연말 뮤지컬 형식의 영화 레미제라블을 관람하면서 지금의 현실과 묘하게 겹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법이 한 사람의 운명을 불행으로 바꾸어 놓는 일이라든지, 아무리 발버둥쳐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서민의 현실 같은 것 말이다. 몇몇 지인들은 대선 직후 허탈감에 빠졌던 심신을 영화로 위안 삼았다고 했다. 물론 영화 속 메시지 가운데 어느 부분에 공감했는지는 관객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2013년 현재도 각 나라의 빈부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으며, 정부에 실망한 99%의 시민들은 또다시 거리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150년 전 위고가 책 머리말에 적은 글귀가 문득 떠오른다. ‘이 지상에 무지와 비참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책들도 쓸모없지는 않을 것이다.’ goseoul@seoul.co.kr
  • 리훙장은 시대를 만든 영웅? 시대가 만든 영웅!

    19세기 중국 근대사의 중요한 장면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리훙장(李鴻章·1823~1901). ‘태평천국의 난’과 ‘염군의 난’을 진압하면서 중앙 정계에 진출한 뒤 무려 40여년간 실권을 장악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서양 문물을 수용해 중국을 근대화하려다 실패한 양무운동을 이끌었고 외국 열강과의 굴욕적 조약을 잇따라 체결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삶 때문인지 당대 중국인들은 물론, 후대는 청일전쟁과 관련해 우리에게도 친숙한 그에게 매몰찬 평가로 일관해왔다. ‘외국 열강에 나라를 판 매국노’, 한간(漢奸), ‘부정부패자’…. 역사와 그 역사를 관통한 인물에 대한 후대의 재평가는 어쩔 수 없는 일. 경제 강국으로 급부상한 중국에서 최근 양무운동에 대한 긍정적인 재고와 함께 리훙장을 다시 보자는 돌풍이 불고있다. 그 평가는 종전과는 판이하다. ‘태평천국의 난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중국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애국자’, ‘민족주의 정치가’, ‘이이제이(以夷制夷)로 열강을 견제하려 했던 외교가’…. 굴곡 많았던 그의 삶만큼이나 사후의 인물 평도 극단의 변형을 보여 얄궂다. ‘리훙장 평전’(량치차오 지음, 박희성·문세나 옮김, 프리스마 펴냄)은 최근 중국의 리훙장 재평가 바람에 편승해 출간된 흥미로운 책이다. 후대의 평가가 아닌, 당대를 같이 살았던 인물이 리훙장 사망연도인 1901년 서양식 전기문체로 그의 일생을 기록, 서술한 점이 신선하다. 리훙장보다 50세 연하인 량치차오(梁啓超·1873~1929)는 당대 숱한 정치 논술을 써 파장을 불러일으킨 사상가이자 혁명가, 문학가로 리훙장과는 많은 견해 차를 보였던 인물이다. “시국에 대한 나의 견해를 숨기지 않음은 이 책이 옛 사람들이 아닌, 후손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쓰는 사람은 반드시 공정한 마음을 가지고 써야 한다’는 저자가 내린 리훙장 평가는 일단 “시대가 만든 영웅일 뿐, 시대를 만든 영웅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리훙장의 친구 보다는 오히려 정적에 가까웠던 그가 기록한 리훙장 흔적들은 연민과 두둔에 가깝다. “리훙장이 뛰어난 영웅이 될 수 없었던 것은 배운 것도 없고 재주도 없어 감히 파격적이지 못했기 때문”“치욕의 자리가 분명한 각종 조약 체결 자리에 주변의 만류를 물리치고 나간 것은 고생을 피하지 않고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 특히 청일전쟁 패배며 외국 열강들과의 굴욕적인 조약 체결 책임을 리훙장 한 사람에게만 돌린다면 권력을 잡고 나라를 망친 다른 중신들의 죄까지 모두 그에게 뒤집어씌우는 꼴이 될 것이라는 지적은 요즘 세태에 얹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1만80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한국 ‘근대화 DNA’ 16세기부터 있었다

    한국 ‘근대화 DNA’ 16세기부터 있었다

    2002년 한국 대학들의 해외 석학 초빙 열기를 전하는 한 일간지 기사는 이렇다. 대학과 학자 이름, 그리고 그 학자를 왜 영입했는지를 설명해주는 학문적 업적이 쭉쭉 나열된다. 그런데 도쿄대에서 성균관대로 자리를 옮기는 미야지마 히로시(65) 교수를 두고는 한마디 토를 달아뒀다. “일본의 한국 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식민지근대화론자라는 점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고. 식민지근대화론자, 그것도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에게 이런 명칭을 붙인다는 것은 거의 ‘종북좌파’ 수준의 낙인이다. 그런데 2010년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병합 무효를 선언했던 한일 양국 진보적 지식인들의 ‘한일 지식인 공동선언’에서도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의 이름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무엇이 진실일까.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너머북스 펴냄)는 일본인으로서 왜 한국사를 공부하게 됐는지, 식민지근대화론자라는 오해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그 오해가 왜 잘못됐는지, 자신의 소농(小農)사회론이 어떻게 생겨났고 궁극적으로 서구 중심의 일직선상에 놓인 근대발전사관을 어떻게 뒤엎을 수 있는지 등을 본인의 입으로 차분하게 설명해둔 책이다. 저자의 기본적인 관점은 이것이다. 19세기 이후 조선은 “정치적으로 체제변혁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는 거대한 변혁이 순조롭게 실시됐을 뿐 아니라 그 이후 경제적, 사회적 변화도 아주 급속하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20세기 들어 근대화를 꿈꾸지 않은 나라는 없다. 그런데 왜 다들 못했을까. 이왕 식민지배 받을 거면 일제처럼 훌륭한 지배자를 만났어야 하는데 하필이면 귀축(鬼蓄) 같은 영미(英米)놈들 치하에 살았기 때문에? 아니면 어차피 군부독재할 거였다면 박정희처럼 경제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위대한 독재자를 만났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서? 아니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축적되어온 한국인들의 장기적 경험이다. 그러니까 서구적 근대가 오기 전에 이미 한국 내부에 근대적인 요소가 무르익어 있었고, 그러기에 식민지에다 분단과 전쟁과 독재까지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근대화라는 과제를 그 어느 누구보다 빨리 흡수해서 성취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일제 덕도, 박정희 덕도 아니라는 얘기다. 주의할 부분은 저자에게 근대는 ‘평가’보다 ‘서술’에 가깝다는 점이다. 역사를 쭉 살펴보니 사실이 그러하다는 것일 뿐, 근대를 빨리 잉태하고 있었으니 뛰어나다거나 장하다거나 훌륭하다는 평가는 아니다. 그래서 식민지근대화론과 내재적발전론 양쪽 다 비판한다. 아니 이 논쟁뿐 아니라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개편, 우익 정권의 역사 미화 논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박정희 정권 평가 문제 같은 국내적 이슈뿐 아니라 오늘날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우경화 문제까지 짚어보려면 빼놓을 수 없는 책이다. 토지귀족의 부재, 관료제와 과거제, 미약한 신분제 등 저자 특유의 소농사회론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어느 정도 알려졌으니, 이번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성리학의 창시자 주희에 대한 재평가다. 주희의 이미지는 오늘날 그럭저럭이다. 대사상가로 후대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니 무시하긴 그런데, 고리타분하고 교조적인 인상이 짙다. 심지어는 불교와 도교에서 빌려온 형이상학적 개념을 쓸데없이 가져다붙이는 바람에 고졸한 맛을 풍기던 고대 유학을 다 망쳐놨다는 험담까지 나온다. 저자는 아직 연구 중이라면서도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주희에 대한 기존 연구가 “주희의 사상 그 자체의 연구라기보다 주자학에 관한 연구, 바꿔 말하면 주희 이후에 형성된 장대한 주자학 사상체계를 통해 주희의 사상을 파악하고 분석”하는데 치우쳤다는 것이다. 이기론 논쟁도 싹 무시한다. “주자학의 일부에 불과한 이기론이 유럽적인 철학의 방법에 친근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후대에 들어 지나치게 크게 부각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주희 사상의 핵심으로 가례와 사창(社倉)을 지목해뒀다. 알려졌다시피 주희가 살았던 남송시대는 나라는 남쪽으로 밀려났지만, 이로 인한 대규모 강남개발로 물질적인 부유함은 넘쳐흘렀던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질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가 주희의 주된 관심사였다. 주희는 가례로 한 사회의 최소단위인 가정을 바로 세우고, 사창으로 사회의 공공성을 확보하려 들었다. 그러니까 “공동체에 의거하지 않으면서 사회를 어떻게 구성할 수 있는가”라는 게 주희가 맞닥뜨린 시대문제였고, 이건 다름 아니라 오늘날 근대 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문제의식과 똑같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주희는 12세기에 살았던 근대인인 셈이다. 그래서 한국사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16세기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19세기 말 개항 이후의 서구적 근대만 중요한 게 아니라 12세기 중국에서 발생한 주자학을 깊숙이 받아들인 16세기 이후 조선식 근대, 그리고 이 조선식 근대가 개항 이후 맞닥뜨린 일제식 근대, 미국식 근대, 소련식 근대와 어떻게 부딪히며 섞여들어갔는지를 규명하는게 오늘날 한국사 이해의 핫 포인트라는 것이다. 장기 16세기라 부를 수 있는 지점이다. 이 책은 올해로 정년을 맞은 저자의 마무리 작업 같은 성격이다. 끝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소농사회론의 관점에서 일본 우경화 문제를 다루는 책을, 족보에 대한 그간의 연구성과를 한데 모은 책을 곧 낼 예정이다. 일본에서도 조선사 통사와 소농사회론에 대한 책을 낼 계획이다. 2만 30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美네티즌 선정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00선’

    미국 네티즌들이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00선’(100 Most Beautiful Songs in the World)이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유명 매체 매셔블이 17일 인기 소셜 뉴스 사이트인 레딧(Reddit) 사용자들이 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들 중 가장 많이 언급된 100곡을 선정해 공개했다. 그 결과, 19세기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C. Debussy)가 만든 ‘달빛’(Claire De Lune)이 미국 네티즌들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꼽혔다. ‘달빛’은 드뷔시가 1890년 작곡, 1905년 출간한 피아노곡집 ‘베르거마스크 모음곡’ 중 제3곡으로, 일찍이 국내에서 널리 알려졌으며, 인기 영화 ‘트와일라잇’의 배경음악으로도 사용돼 젊은 층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2위에는 영국의 애시드재즈 밴드 시네마틱 오케스트라(The Cinematic Orchestra)의 ‘투 빌드 어 홈’(To Build A Home)이 올랐다. 이 곡은 영화 ‘스텝업4’ OST로 사용됐다. 그다음은 쇼팽의 ‘야상곡 내림마장조 작품번호 9의 2’(Nocturne No. 2 in E flat Major, Op. 9,2), 영국 가수 브라이언 이노가 부른 ‘언 엔딩’(An Ending - Ascent), 그리고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아다지오 소스테누토’(Moonlight Sonata : Adagio Sostenuto)가 각각 3위부터 5위까지 올랐다. 이 밖에 국내에서 인기를 끈 영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 수록된 영국가수 애니 레녹스의 ‘인투 더 웨스트’(Into The West·6위)나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에 실린 피아니스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의 디베니레(Divenire·10위)도 눈에 띄었다. 이와 함께 유명 영국밴드 라디오헤드의 명곡들 중 ‘스트리트 스피릿’(24위), ‘페이크 플라스틱 트리’(25위), ‘렛 다운’(63위)도 순위에 보였으며, 전설적인 록밴드 롤링스톤즈의 ‘엔지’(Angie·44위)도 여전히 선호됐다. 한편 이번 선정은 레딧의 한 사용자(아이디 McSlurryHole)가 지난 14일 ‘지금까지 들어본 곡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진행됐다. 해당 글은 며칠 만에 수천 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고, 매셔블은 9,634건의 댓글을 기준으로 집계했다고 밝혔다. 참고로 레딧은 지난 한해 4억 명이 넘는 방문자를 기록, 3000만 건이 넘는 글이 올라와 총 370억 이상의 페이지뷰를 달성했다고 IT전문 씨넷(Cnet)이 보도한 바 있다. 다음은 매셔블에 게재된 리스트 중 1위부터 30위까지 제목과 가수 혹은 작곡가의 이름을 간추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30선’  1. Claire De Lune  Debussy  2. To Build A Home  The Cinematic Orchestra  3. Nocturne No. 2 in E flat Major, Op. 9,2  Frederic Chiopin  4. An Ending (Ascent)  Brian Eno  5. Moonlight Sonata: Adagio Sostenuto  Beethoven  6. Into The West  Annie Lennox  7. Flower duet from Lakme – Remasterise en 1987  Paris Opera-Comique Orchestra, Danielle Millet, Mady Mesple, Alain Lombard  8. The Book Of Love – Live In London/2011  Peter Gabriel  9. Blue Ridge Mountains  Fleet Foxes  10. Divenire  Ludovico Einaudi  11. Comptine d’un autre ete, l’apres-midi  Yann Tiersen  12. The Great Gig In The Sky  Big One  13. Ara batur  Sigur Ros  14. Lux Aurumque  Eric Whitacre, The King‘s Singers  15. Breathe Me  Sia  16. Scarborough Fair  Relaxing Piano Music Consort  17. How To Disappear Completely  Radiohead  18. Holocene  Bon Iver  19. Old Pine  Ben Howard  20. Avril 14th  Aphex Twin  21. Flim  Aphex Twin  22. Comforting Sounds  Mew  23. Shine ON You Crazy Diamond  Big One  24. Street Spirit (Fade Out)  Radiohead  25. Fake Plastic Trees  Radiohead  26. The Humbling River  Puscifer  27. Boy With a Coin  Iron & Wine  28. Song of the Lonely Mountain – From ‘The Hobbit: An nexpected Journey’  Movie Sounds Unlimited  29. Time’s Scar  Battlecake  30. River Man  Nick Drake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한국은 다양성 부족… 싸이처럼 틀 깨는 사람 있어야”

    “한국은 다양성 부족… 싸이처럼 틀 깨는 사람 있어야”

    “사회적으로 유용한 기능을 발휘하는 기술자를 양성한다면 한국식이 최고지요. 정해놓고 닦달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건 과학에는 맞지 않습니다. 정말로 슬픈 건 대입 논술이죠. 입시에 논술을 넣은 건 주입식 사교육 대신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려는 것이었는데 논술 잘쓰는 법을 학원에서 사교육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객관식 시험이 낫습니다.” 오랜 외국생활로 약간 어눌한 말투지만 거침이 없었다. 질문에 잠깐 생각을 가다듬은 후엔 핵심을 찌르는 답변이 이어졌다. 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통찰력이 느껴졌다. 16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고등과학원에서 만난 장하석(46) 케임브리지대 과학철학과 석좌교수는 한국 과학과 교육의 현주소에 대해 “다양성이 너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장 교수는 2007년 라카토슈상을 수상한 과학철학·과학사의 세계적 권위자다. 고등학교 1학년때 유학을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 스탠포드대에서 학위를 받았고 런던대 교수를 거쳐 2010년부터 케임브리지대에 몸담고 있다. 고등과학원의 초학제연구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지난 6일 한국을 찾았다. 장 교수의 집안은 대표적인 한국의 명문가로 꼽힌다. 아버지는 장재식 전 산자부 장관이고 형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다. 장하진 전 여성가족부 장관,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는 사촌간이다. 장 교수는 성공한 가족의 비결로는 “알려지지 않은 가족들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겸손해했다.   →초학제 프로그램은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가 -학문간 장벽없이 다양한 관점에서 새로운 주제를 만들어 보자는 시도다. 올해 주제가 ‘과학과 예술에서의 이미지’인데 홍성욱 서울대 교수가 주도한다. 영미권에서는 이미 여러 시도가 벌어지고 있는 만큼 사례를 많이 알고 있는 내가 참여하게 된 것 같다. →과학과 예술이라는 개념이 잘 와닿지 않는다. -과학은 이성과 사실에 기반해서 모든 지식을 추구하는데, 예술은 감성적이고 객관성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전혀 상반된 개념에 대한 도전적인 주제다. 이 둘을 연결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이미지다. 예술은 시각화가 기본적인 요소고, 과학에서도 최근 들어 이미지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 두가지에서 공통적인 부분을 찾아 새로운 영역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목표다. →학문간 융합 시도는 왜 중요한가. -일상적인 학제, 분과만으로 접근해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기상이변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물리학이나 화학, 기상학만 알아서는 원인과 현상 밖에 모른다. 대책을 마련하려면 경제학과 행정학도 필요하고 일반 사람들에게 이를 알려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이나 심리학도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이 바로 융합의 이유다. 초학제프로그램의 롤모델은 영국 더램대다. 더램대는 매년 주제를 바꿔가면서 다양한 학문 분야 연사들을 모은다. 나도 몇 년전에 ‘물’이라는 주제에 참여해 ‘물에 대한 화학의 역사’를 강연하기도 했다. →한국의 융합 시도는 결과물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초학제는 결과물을 내놓기보다는 단계를 뛰어넘어 문제의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그림을 그릴 기반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 문제다. 학문을 모아서 뭉뚱그려 보자는 시도조차 없었다. 어떤 방향으로 진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1950년대에 초학제를 다루기 위해 세워진 프린스턴 고등과학원은 현재도 세계 최고의 연구기관이다. 결과물이 없다면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겠는가. 모든 학문이 정답과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기초과학도 마찬가지다. 19세기 영국의 페러데이는 전자기학의 아버지다. 모든 현대문명이 그의 혜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영국 정치가들은 “페러데이는 쓸데없는 연구를 한다”고 비난했다. 기초과학에 목표를 묻는 것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어린아이가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촉망받는 물리학자에서 갑자기 과학철학으로 분야를 바꿨다. -지금도 가끔 아쉬운 부분이다. 대학 시절에 내가 궁금해하는 질문은 물리학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빅뱅이론을 배우다가 교수한테 “빅뱅 이전에는 뭐가 있었습니까”라고 질문하면, “뭘 그런걸 물어보냐”고 답변했다. 어떤 교수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빅뱅에서 생긴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물리학과 교수한테 가서 물어봐라. 그럼 시간을 설명하는 모든 종류의 공식과 이론은 있지만, 정답은 말하지 못한다. 이런 답은 과학이 아닌 철학의 영역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철학도 다양한 해법을 주지만 정답을 주진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얻지 못하긴 했다. →인생에서 힘들었던 시기는 없었나. -학문적인 영역에서 보면 물리학에서 철학으로 넘어갈 때가 힘들었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과학자가 되고 싶었고, 꿈을 키웠다. 그런데 내가 사랑했던 물리학이 내가 생각했던 물리학은 아니었다. 놓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도 철학 같은 쓸모없는 학문을 한다고 반대가 심하셨다. 개인적으로는 결혼할 때가 힘들었다. 국제결혼을 했는데 어머니가 반대하셨다. →차기 정부가 미래창조과학부에 기술과 과학을 묶어놓은데 대한 우려가 있다. -사실 둘을 묶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에서 대중에게 과학지원을 정당화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지나치게 편한 발상이고, 안일한 발상이다. 왜 과학을 하느냐고 대중이 물으면 과학에 투자를 해야 원자폭탄을 만들고, 농업도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하는 식이다. 순수과학이 너무 현실감 없이 독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절한 견제는 필요하지만, 과학과 기술을 너무 붙여놓으면 순수과학은 의미를 상실할 수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과학이 기술과 있으면 과학은 다른 학문과의 카테고리가 끊어진다. 과학과 과학자가 사회와 소통할 통로가 사라지는 것이다. 과학은 원래 교류와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학문이었다. 서양에서는 자연철학으로 불렸다. 과학은 철학, 의학, 신학과 끊임없이 소통했다. →미래부가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난 경제학자도 아니고 정치가도 아니다. 하지만 경제에 있어서도 이제 목표를 세워서 달성하는 시기는 지났다고 본다. 미래는 예측이 불가능한 속성이 있다. 정책 입안자 입장에서는 답답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럼 미래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느냐. 유연성을 유지하는 것이 유일한 답이다. 인간 개개인은 유연성에 한계가 있다. 결국 다양성을 길러야 한다. 다양성 있는 사회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군가는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획일적인 교육은 절대 안된다. 형(장하성 교수)이랑도 하는 얘기지만 누가 한국이 이렇게 잘 살게 될 것으로 생각했나. 박정희 대통령도 이 정도로 발전할지는 상상 못했을거다. 이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 전세계 최고의 히트상품은 싸이인데, 이걸 누가 짐작했겠나. 결국 다양성을 키우면 무엇이든 생긴다는 거다. →고등학교 때 유학을 갔다. 한국의 교육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우리는 더 잘살게 됐는데 사람들은 더 불안해하고 여유가 없다. 한국은 쏠림현상이 너무 심하다. 사회에서 선호나는 직종이 몇 개 안된다. 모두가 의대, 법대를 가면 다양성은 없다. 심지어 영국에서 한국 학생들을 상담하면 “법대, 의대를 가야한다”고 말한다. 우수한 학생들인데 한가지만 생각한다. 틀을 깨는 사람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인류학을 소신있게 전공해서 성공하는 사람이 나오면 그 틀을 조금은 깰 수 있다고 본다. 사실 한국의 문제는 전체의 문제다. 틀에 짜인 교육이 싫다고 조기유학을 보내고는 다시 방학때는 귀국해서 학원을 다닌다. 그런 식의 유학은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 자식을 자유롭게 해주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한국에서는 과학철학이나 과학사, 과학커뮤니케이션 등 ‘과학학’이 각광받지 못한다. -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과학학을 쓸모없는 학문으로 본다. 과학을 제대로 못하니까 철학을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은 결국 문화의 일부다. 현재 한국에서 접하고 있는 교과서의 과학은 이미 완료형이자 결과물이다.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이 학생의 의무고, 넣어주는 것이 선생의 역할이다. 그럼 과학이 왜 필요하겠나. 과학자들이 알아서 하면 되지. 우리가 갖고 있는 과학의 이미지는 학교다닐 때 배운다. 우리가 과학을 학교에서 주입식으로 배우면 과학은 주입식이 된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탐구하고, 계속 수정해 가고,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 과학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평소 틀과 측정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현대과학은 모든 것을 정량적으로 측정하려고 한다. 그런데 측정의 결과는 무조건 믿을 수 있는가. 온도계를 보고 온도를 얘기하지만 그 온도계가 정확하냐고 물으면 측정 자체의 신뢰가 깨진다. 과학자 입장에서는 이 온도계가 맞는지 어떻게 알아요라고 물어보는 것보다 골치아픈 일이 없다. 답이 여러 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기준도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행복’ 얘기를 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사회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한가. 정권 이전과 이후에 사람들의 행복도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을까. 여기에도 뭔가 도구가 있어야 한다. 무조건 행복해지자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인데, 얼마나 성과를 거뒀는지 알 수 있는 측정방법이 없다면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가족 얘기를 안할 수 없다. 한국의 명문가로 평가받는데 특이한 교육법이 있었나. -집안 분위기는 보수적이었다. 다만 아버지(장재식 전 장관)는 이유가 명확해야 했다. 왜 원하고 절실한지를 엄청난 노력을 들여서 설득해야 했다. 아무렇게나 그냥 하고 싶기 때문은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그리고 집안에서 나와 형만 주목받지만, 실제로는 그 사이에 초등학교 교사를 했던 누나가 있다.(장 교수의 매형은 PD수첩 광우병 사건을 담당했던 임수빈 전 부장검사) 누나와 어머니가 집안에서의 역할이 없었다면 형과 나의 성공은 없었다. 성공한 사람에게만 관심이 쏠리는건 솔직히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노벨상 콤플레스는 어떻게 보는가. -사실 나도 학부때 물리학 전공하면서 노벨상 받겠다는 꿈도 있었다. 노벨상 수상자를 보면 성과가 나온지 대부분 20~30년 뒤에나 수상한다. 동료 연구자들조차 가치를 곧바로 모를 정도로 창의적이고 뚱딴지 같은 연구라는 얘기다. 기초과학은 경제계획하듯이 목표를 세워서 달성하는데 한계가 있다. 한국 학생들이 올림피아드 수상을 수없이 하지만 시험 잘보는 것으로는 노벨상 못 받는다. 국가가 계획을 세워서 투자하고 노력하면 올림픽 금메달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과학은 다르다. 한국은 노벨상 생각을 아예 하지 말고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오히려 노벨상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6년 만에 돌아온 움베르토 에코, 19세기 유럽의 증오·음모 겨누다

    6년 만에 돌아온 움베르토 에코, 19세기 유럽의 증오·음모 겨누다

    “유대인은 에스파냐 사람처럼 허영심이 강하고, 크로아티아 사람처럼 무지하며, 근동 사람처럼 탐욕스럽고, 몰타 사람처럼 배은망덕하며, 집시처럼 뻔뻔하고, 영국인처럼 더러우며, 칼미크 사람처럼 기름기가 많고, 프로이센 사람처럼 오만하며, 피에몬테 지방의 아스티 사람처럼 험담을 잘할 뿐만 아니라 발정을 억누르지 못해 간통을 쉽게 저지른다.”(1권 17쪽) 6년 만에 접하는 움베르토 에코(81)의 신작 소설 ‘프라하의 묘지’(열린책들 펴냄·2권)는 첫 장부터 분위기가 심상찮다. 19세기 유럽에 팽배했던 인종, 종교, 여자에 대한 편견들이 뒤섞여 역겨움을 한껏 자아내더니 어느새 예리한 칼날이 유대인을 겨누고 있다. 작가는 1830년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에서 태어난 ‘시모네 시모니니’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증오와 음모가 어떻게 발생해 번져 나가는지를 추적한다. 에코의 표현처럼 시모니니는 ‘세계 문학 사상 가장 혐오스러운 주인공’으로, 그의 할아버지는 19세기 유대인의 세계 지배 음모론의 ‘비조’(鼻祖)격에 해당한다. 그런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시모니니는 무신앙과 냉소주의를 몸에 익혔고 사르데냐, 프랑스, 프로이센 등을 오가며 비밀 정보원으로 활동한다. 그가 내놓은 일생 최악의 위작은 바로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이란 허위 문서.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조세프 발사모’의 천둥산 회의 장면은 유대인 랍비들의 프라하 묘지 회의 장면으로 바뀌고, 외젠 쉬의 ‘민중의 신비’에 나오는 예수회 신부의 글은 랍비의 연설문이 된다. 실존했던 이 문서는 1921년 허위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 문서는 ‘유대인들의 세계 지배 음모’를 퍼뜨리는 데 기여하며 20세기 유대인 학살의 단초가 됐다. 하지만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에코는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똑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 이라크에서 벌어진 전쟁은 속임수에 바탕을 둔 전쟁이었고 CIA조차 이를 인정했다. 사담 후세인이 평생에 걸쳐 온갖 악행을 저질렀지만, 이라크 전쟁의 원인이 된 그 짓만은 하지 않았다. 하나의 거짓 때문에 전쟁이 벌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에코는 2010년 이 소설을 고국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간했다. 이탈리아에선 65만부, 스페인에선 초판만 200만부가 팔렸다. 에코는 출간 전 번역자들에게 19세기 문체를 과장되지 않게 재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1910년대 신문에 연재되던 번안 소설의 문체가 활용됐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씨줄날줄] 원조논쟁/함혜리 논설위원

    서울 장충동 족발골목처럼 같은 음식을 파는 식당이 밀집한 곳이면 예외 없이 원조(元祖)집이 있다. 그런데 정해놓은 데 없이 그곳에 갔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원조집 옆에 ‘진짜 원조’가 있다. “아, 여긴가?” 하면서 들어가려 하는데 그 옆 골목으로 ‘옛날 원조’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원래 원조’도 보인다. 모두 손맛 좋을 것 같은 할머니 사진을 내걸고 있는 데다 원조라고 우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서 진짜 원조가 어디인지 찾기가 쉽지 않다. 원조 논쟁이 상표권 분쟁으로 비화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케이크를 놓고 25년간의 긴 법정소송이 진행된 사례도 있다. 19세기 초 오스트리아 외무장관 메테르니히의 전속요리사였던 프란츠 자허는 부드러운 초콜릿 케이크 사이에 살구 잼을 바르고 전체를 투박한 초콜릿으로 코팅한 디저트 케이크를 개발했다. 몇년 뒤 자허는 카페를 열고 자신의 이름을 딴 케이크 ‘자허토르테’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자허토르테가 인기를 얻자 데멜이라는 과자점에서도 자허토르테 케이크를 팔기 시작했다. 이에 격분한 자허 2세가 데멜과자점을 상대로 1940년 오스트리아법원에 상표권 소송을 제기했다. 데멜 측은 자허가 데멜과자점에 근무할 당시 자허토르테를 만들었으며 이를 근거로 판매하는 것이니 권리가 있다고 반격했다. 기나긴 공방 끝에 법원은 1965년 ‘자허토르테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으나 오리지널 자허토르테는 자허카페만이 사용할 수 있다’고 판결함으로써 원조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프렌치프라이의 기원을 놓고 프랑스와 벨기에가 논쟁 중이라고 한다. 브뤼셀에서 열린 프렌치프라이 원조토론회에서 벨기에 측은 “프렌치프라이가 17세기 어부들에 의해 개발돼 다른 유럽국가로 퍼진 것”이라고, 프랑스 측은 “18세기 센 강변의 노점상들이 판매하기 시작했다”며 서로 원조를 자처했다. 지난 2003년 미 하원식당 메뉴판의 프렌치프라이를 프리덤프라이로 바꿨을 때 주미 프랑스대사관에서 대변인 성명을 통해 ‘프렌치프라이는 벨기에 음식’이라고 못 박은 바 있어 논쟁은 프랑스의 판정패로 결론 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피시앤드칩스를 많이 먹는 영국이 원조라는 주장, 감자를 잉카제국에서 유럽에 들여온 스페인이 원조라는 주장, 원래 저먼프라이였는데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적국이라는 이유로 프렌치프라이로 이름을 바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원조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만큼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로 보면 될 듯하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식인 원주민이 ‘식사’에 쓴 잔혹한 도구 보니…

    식인행위를 일삼았던 원주민들이 ‘식사’에 썼던 도구가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 9일자 보도에 따르면, 19세기 피지제도의 한 부족민들은 경쟁관계에 있는 적과 싸운 뒤 이들의 시체를 남김없이 먹어 치우는 잔인한 풍습을 가졌다. 부족원들은 적과의 전투를 마친 뒤 적의 시체를 마을로 옮겨왔고, 부족장 및 구성원 등에게 고루 분배했다. 이때 부족장에게는 사람 고기와 함께 건넨 이 도구는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길이는 6~17인치 가량이다. 끝은 모두 뾰족하게 깎았고 손잡이 부분을 따로 만들어 포크와 비슷한 용도로 사용했다. 20년 전 원주민 예술품과 중세 무기들을 모으던 한 수집가가 단 1600파운드(약 270만원)에 사들인 식인도구 7점은 이번 경매에서 2만 9440파운드(약 5100만원)까지 가치가 치솟았다. 영국의 경매 전문가인 제임스 브릿지스는 “부족의 원로들만 이 도구를 이용해 인육을 먹은 것은 아니다. 아마 모든 부족원들이 함께 먹었을 것”이라면서 “이 도구들은 매우 성스러운 물건으로 간주됐으며 족장의 힘을 상징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손잡이 부분이 녹청색으로 변한 것을 보아 비교적 오래 전 만들어진 물건임을 알 수 있다.”면서 “이 ‘잔인한 도구’들을 내놓은 수집가 이전에 누가 소유하고 있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고 덧붙였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천재 예술가 고흐는 천문학에도 조예 깊었다

    천재 예술가 고흐는 천문학에도 조예 깊었다

    썰렁 농담 하나. 예술가는 모두 할망구다. ‘영감’이 있을 때만 일해서다. 예술혼에 불타오르는 고귀한 천재들 얘기, 지칠 법도 하다. 그래서 ‘필’받은 천재 예술가를 부정하는 ‘실험실의 명화’(이소영 지음, 모요사 펴냄)가 흥미로운지도 모르겠다. 도입부에서 이미 19세기 영국 화가 조지프 터너의 눈과 1995년부터 목성을 관측한 우주선 갈릴레오호의 렌즈를 ‘풍경화가’라는 기준으로 비교하기 시작한다. 이런 식이다. 광기어린 천재의 대표선수 고흐를 두고 측두엽 뇌전증 환자였고 당대 천문학 지식을 충분히 연구했다고 지적한다. 측두엽 뇌전증은 뇌가 오버해서 주변 자극을 더 크고 활발하게 받아들인다.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를 보면 왠지 그럴 것도 같다. 고흐의 천문학 지식도 상당했다. 17세기 플랑드르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를 두고서는 먹지로 대상을 베끼듯 그림을 베껴서 그렸을 것이란 추측을 소개해 뒀다. ‘천지창조’ 등의 그림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시스티나대성당의 천장화는 미켈란젤로의 해부학 강의였단다. 그러니까 그 천장에 뇌와 장기와 등뼈가 가득했다는 얘기다. 영국 풍경화가 존 컨스터블은 거의 기상학자 대접을 받는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는 2004년 캐나다에서 발견된 ‘틸타알릭’ 화석을 떠올리는 식이다. 사실 이런 얘기들은 좀 거북하다. 모처럼 우아와 교양 한번 떨어보려는데 재 뿌리는 것 같아서다. 그럼에도 왜 이런 얘기를 할까. “과학의 출발이 그러한 것처럼 예술의 출발도 관찰”이라 믿기 때문이다. 과학과 예술은 관찰에서 태어난 형제자매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책에서는 갈릴레오와 카할(1906년 노벨생의학상 수상자)처럼 뛰어난 과학자들이 남긴 아름다운 드로잉도 만날 수 있다. 이 얘길 듣다 보면 소설가 김연수가 떠오른다. 김연수는 제일 듣기 싫은 말로 “소설 쓰고 있네”를 꼽았다. 어떤 장면, 심리, 상태를 문장으로 묘사하는 건 집요한 관찰의 결과물인데 제 마음대로 지어내면 된다고 착각한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저자의 주장을 재수없게 여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디서 “예술하고 있네” 비아냥 소리가 들린다면, 충분히 함께 흥분해줄 것 같으니까. 소재가 딱히 새로운 건 아닌데, 주물럭대며 비빈 손맛이 좋다. 1만 68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성냥공장·극장 간판화가…사라져 가는 근현대 직업 조명

    국립민속박물관이 사라지는 근대를 모으고 있다. 2011년부터 ‘근현대 직업인 생애사’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난 연말에 ‘의성 성광성냥공업사와 극장 간판화가 백춘태-사라져 가는 직업’(손대원 글, 최지현 사진)을 펴냈다. 성냥은 19세기 말에 일본에서 도입돼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자 필사적인 노력을 했던 조선 아낙들을 해방한 혁명적인 상품이었다. 의성 성광성냥공업사는 1954년에 탄생했다. 어린 여자 아이들이 직원으로 채용돼 한국전쟁 직후 가난했던 가계의 살림을 보탰다. 그러나 성냥을 일회용 라이터와 가스레인지에 우월적 지위를 넘겨 줬고 이제 명맥만 잇고 있다. 극장 간판 화가는 1960~80년대 한국영화의 발전과 함께 성장했다. 프린트 혁명으로 사진의 대형화가 가능해지면서 사라진 직업이다. 현재는 작업을 하지 않은 마지막 간판화가 백춘태씨의 작업을 화보로 담았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동해의 전통어업기술과 어민’(오창현 글, 김은진·엄성식 사진)도 내놓았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숭례문 단청 용문양 한때 논란

    숭례문 단청 용문양 한때 논란

    5년 전 방화로 불타 버린 국보 1호 숭례문의 복원 공사가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단청(丹靑)의 용 문양을 놓고 온라인상에서 한바탕 해프닝이 벌어졌다. 정부에 대한 막연한 불신과 앞뒤 재지 않는 동조문화가 빚어낸 사건이다. 역사학자 전우용씨가 지난 30일 트위터(@histopian)에 올린 글이 발단이 됐다. 전씨는 “숭례문에 복원된 용 그림이 화제군요. 용을 이렇게 만든 건 십중팔구 ‘단가’일 겁니다. 디즈니 캐릭터 같은 용이 ‘가격’ 중심 문화의 상징인 셈이죠”라고 썼다. 전씨는 기존 단청과 복원 중인 단청 사진을 나란히 첨부했다. 용 문양이 눈에 띄게 다른 데다 색감·크기·세밀도 등에서 확연히 달랐다. 이상호 MBC 기자가 이 글을 리트위트(재전송)하며 “이러다 다보탑은 레고로 만들겠네”라고 비꼬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팔로어가 각각 6만 2963명, 13만 8827명인 이들의 글을 본 네티즌들은 “조악한 복원”이라는 등 당국을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화재로 소실된 용은 1988년 보수한 단청이고 이번에 복원 기준으로 삼은 용은 1963년 단청인 것으로 확인됐다. 숭례문 단청 복원을 총괄하는 홍창원(57) 단청장은 31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숭례문 단청은 19세기 말 이후 여섯 차례 공사가 진행되면서 각기 다른 양식으로 시공됐다”면서 “이번에는 숭례문이 세워진 조선 초기 문양을 되살렸던 1963년 단청을 복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학술 자료를 살폈고 용의 힘찬 모양 등을 고루 살펴서 감리단(문화재청)에서 결정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논란에 대해 “단가 얘기를 했다는데 1988년 용 문양으로 하면 더 싸게 그려지느냐”고 반문하며 “억울하지만 국민 관심이 그만큼 많은 거니까 좋게 받아들이려 한다”고 말했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은 “온라인 콘텐츠의 자정 작용이 강화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CEO 칼럼] 미국 대통령과 농업/김재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CEO 칼럼] 미국 대통령과 농업/김재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필자는 2000년대 중반 워싱턴 DC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농무관으로 근무하면서 미국 대통령이 농업 부문에 기울이는 각별한 관심을 관찰했다. 미국 대통령 후보자의 농업 분야 공약이나 농민단체의 지지 여부가 당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곡물이나 축산단체의 영향력이 매우 커 미국 정부가 쌀이나 소고기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주의 크기에 관계없이 2명씩 상원의원을 뽑게 한 것도 지역 농업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미국 헌법의 첫 문장이 ‘We the people’로 시작하는 바, ‘the people’은 농민을 의미한다고 미국 역사학자 존 실레버크는 주장한다. 농업을 중시하는 미국인의 인식은 ‘농본주의’에 근거, 미국 농촌의 기초가 되는 가족농으로 이어진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민주 정부라고 강조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취임 이듬해인 1862년 농무부를 창설하고 명칭을 ‘국민의 부처’(People‘s Department)라고 불렀다. 농무부는 전 국민을 위한 부처로서 역할을 다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미국 농민의 정신은 미국 정신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취임하면서 축산 분뇨처리기술과 발광다이오드 활용 기술을 향후 미국의 고용과 성장을 이끌어 나갈 핵심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농업은 도전을 겪는 동시에 막대한 경제적 기회 앞에 서 있다.”면서 농업의 향후 발전 가능성을 역설했다. 미셸 오바마 대통령 부인도 백악관에 ‘부엌정원’을 만들고 국민에게 안전한 먹거리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농산물 생산이나 수출, 식품, 종자, 농생명, 화학 등 농업의 전후방 연관분야에서 미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강국이다. ‘생명반도체’인 종자 분야에서도 19세기부터 세계 각국의 유전자원을 수집해 현재 51만점을 보유한 세계 최대 종자 강국이다. 곡물 생산이나 수출에서 미국의 위상은 더 강조할 필요가 없다. 농작업 대행 농기계, 곤충의 행동을 모방한 지능로봇(Robug), 농업용 무인헬기 등 농업기술의 발달과 타 부문과의 융복합은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를 가져온다. 듀폰이나 몬산토사는 농작물을 이용한 신소재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카길사는 콩 단백질을 이용한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으며, 바이오 플라스틱 기술도 개발했다. 이외에도 기능성 식품, 바이오신약, 천연염료 등 다양한 식의약 소재나 고부가가치 상품이 위상을 높이고 있다. 농작물을 이용한 새로운 산업이 발전하자 농업분야 투자도 늘어나고 고급인력도 몰려들고 있다. 빌딩 속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는 이른바 수직형 빌딩 농장도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이 개념을 도입한 미 컬럼비아 대학의 딕슨 데포미어 교수는 30층 규모의 식물공장이 5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도시농업도 농업기술의 응용 현장 사례이다. 미국 농업이 이렇게 성장하고 세계 최고 위상을 가지게 된 원인은 대통령의 관심만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많은 학자와 정책 담당자들은 농업생산성 향상을 위한 핵심은 연구개발이라고 여긴 결과, 지난 40년간 미국 농업생산성의 50%가 연구개발로 이뤄졌다고 한다. 기술개발 측면에서 우리 농업도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보릿고개를 극복한 통일벼 개발로 세계 유례 없는 짧은 기간에 식량자급을 이룩했다. 2009년 6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선진 8개국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식량생산에 관해서는 한국이 성공 모델”이라면서 이제 국제사회에서 역량을 발휘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우리 농업이 ‘먹는 농업’을 탈피해 정보, 지식, 기술, 생명공학, 나노기술이 융복합되어 미래의 고부가가치를 창조하는 ‘신(新)농업’으로 가기 위해서 혁신적 기술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기술농업이 뒷받침돼야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이 가능하고 선진농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지도자의 관심과 정책개발, 조직 및 지원체제를 구축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 [27일 TV 하이라이트]

    ●가족건강 프로젝트(EBS 밤 7시 35분) 서울 가양초등학교 5학년인 쌍둥이 자매 지민이와 다민이는 3살 때부터 통통하고 복스러운 아이들로 사랑받았다. 그런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쌍둥이 자매가 급격히 살이 찌기 시작한 것은 5살 전후. 프로그램에서는 70㎏이 넘는 초고도 비만인 12살 쌍둥이 자매의 소아비만 탈출기가 방송된다. ●오감만족 세상은 맛있다(KBS2 밤 8시 20분) 해발 3000m 산속에 소금 염전이 펼쳐진 살리나스는 안데스 산맥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가 암염지대를 통과해 생긴 소금 계곡이다. 산속에서 만들어진 소금의 맛은 어떨까. 양파, 콩, 당근, 해초, 치즈로 만든 솔테로 샐러드부터 트루차 튀김까지. 오직 소금으로만 간을 한 페루의 가정식을 공개한다. ●불만제로 UP(MBC 밤 8시 50분) 피자에는 피클, 치킨에는 치킨 무, 짜장면에는 단무지. 평소에 흔히 먹는 배달 음식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적임식품들이 무언가 수상하다. 대부분 수입해 들어오는 주원료의 유통과정상의 위생도 의심스러울뿐더러 제조 시 첨가되는 보존료나 색소 등 여러 가지 합성첨가물 또한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밤 8시 50분) 혼자서는 몸도 가누지 못하는 아들을 항상 업고 다녔던 679회 출연자 김숙희씨. 포대기에 50㎏ 넘는 아들을 업고 마을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안타까운 사연이 방송되었다. 그리고 10개월 후 다시 찾은 전남 장흥에서는 그 사이 몰라보게 좋아진 아들 안섭씨를 만날 수 있었는데…. ●세계테마기행(EBS 밤 8시 50분) 알프스에서 흘러내린 도나우 강 물줄기가 가장 먼저 적시는 땅 오스트리아. 그 중심에서 문화와 예술을 꽃피운 도시이자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으로 떠나본다. 19세기 말 개성 있고 화려한 작품을 남겨 오스트리아의 자랑이 된 클림트. 올해는 클림트 탄생 150주년으로 그의 다양한 작품을 직접 감상해 본다. ●올리브(OBS 밤 11시 5분) 탤런트 안선영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는 자리를 마련했다. 건강순위로 베스트와 워스트를 가리는 예상 순위 투표에서 안선영과 MC 표인봉이 1위, 꼴찌에는 패널 김경민이 만장일치로 당첨되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건강검진 결과 놀라운 반전이 있다는데…. 과연 자칭 장기미녀 안선영은 건강상위권에 들 수 있을까.
  • 조선중기 학자 권문해 父子 14년 일기 한글로

    조선시대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집필한 학자 초간(草澗) 권문해(1534~1591)와 그의 아들 권별(1589~1671)의 일기집이 나란히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한국국학진흥원은 24일 권문해가 쓴 ‘초간일기’와 그의 아들 권별의 ‘죽소부군일기’를 처음으로 우리말로 번역해 두 권의 책으로 펴냈다고 밝혔다. 권문해는 율곡 이이와 송강 정철보다는 2살이, 학봉 김성일보다는 4살, 서애 유성룡보다는 8살이 많았으니 사실 같은 시대 인물이다. 그는 1589년(선조 22년) 대구부사(大丘府使)로 있을 때 20권 20책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대동운부군옥’을 지었다. 한국과 중국 문헌을 망라해 단군 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 우리나라의 지리·역사·인물·문학·식물·동물에 관한 정보를 집대성한 일종의 백과사전이었다. 19세기 서유구(1764∼1845)가 한국과 중국의 900종의 책을 참고해서 쓴 ‘임원경제지’(113권 52책)에 앞서는 ‘16세기 조선의 브리태니커’라고 할까. 이번에 한글로 번역된 ‘초간일기’는 권문해가 47세이던 1580년부터 임진왜란 전해인 1591년까지 12년 동안 기록한 일기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실증적, 사실적으로 글을 쓰는 권문해의 태도는 그의 일기에 그대로 나타난다.”면서 “자기 주위의 일뿐 아니라 그것에 대한 자기 생각까지 적었으며 관직생활의 구체적 내용도 일기에 담았다.”고 소개했다. ‘죽소부군일기’는 권문해의 아들인 권별이 인조반정(1623) 후 정묘호란(1627) 전인 1625~1626년에 쓴 일기다. ‘죽소부군일기’에는 조선왕실의 계보를 바로잡기 위해 중국과 벌인 외교 협상이 마무리되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지은 글인 ‘개종계사문’(改宗系赦文)과 영남 고을의 풍토와 민속을 기록한 ‘영남지지’(嶺南地誌),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한국어 음을 소개한 ‘설부-동인방언(東人方言)’이 부록으로 수록돼 있다. 참고로 ‘계종계사문’은 명나라에서 지은 ‘태조실록’과 ‘대명회전’에 이성계가 고려의 권신인 이인임(?~1388)의 아들로 기록돼 있어 이것을 바로잡은 것이다. 이 문제가 15~16세기 명나라와 조선의 핵심 외교문제였다는데, 요즘 한·중·일이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로 싸우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 세 편의 글은 아버지 권문해가 정리한 것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조선시대 일기는 적지 않지만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기록한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고 설명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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