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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엘리자벳’에 띄우는 관객의 ‘연서’

    뮤지컬 ‘엘리자벳’에 띄우는 관객의 ‘연서’

    공연계가 제아무리 불황이라도 뮤지컬 ‘엘리자벳’만은 예외다. ‘토드’(죽음) 역의 김준수가 출연하는 회차는 예매 5분 만에 전석 매진됐고, 기획사는 시야 제한석까지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또 캐스팅 과정에서 다소 ‘의외’로 여겨졌던 또 다른 토드 역의 박효신도 호연을 펼치면서 김준수 못지않은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지난해 초연 이후 멈출 줄 모르는 흥행 역사를 써가는 ‘엘리자벳’의 매력은 단연 무대와 의상, 음악과 스토리 전반에 깔린 ‘화려함’에 있다. 19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황후의 자리에 올랐지만 끊임없이 자유로운 삶을 갈망했던 엘리자벳의 이야기는 관객 누구나 뮤지컬에서 기대할 만한 드라마틱한 소재다. 여기에 엘리자벳의 화려한 드레스, 리프트와 줄을 타고 아찔하게 등장하는 토드, 오스트리아 왕실을 재현한 듯 오페라홀 무대를 가득 채우는 세트 등은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다. 옥주현의 ‘옥엘리’는 물론, 올해 공연에서 새로 투입된 김소현이 연기하는 엘리자벳은 나무랄 데가 없다. 어린 소녀에서 중년 여성까지 그에 맞는 목소리와 표정 연기로 한 여인의 일대기를 폭넓게 묘사했다. 그러나 화려한 볼거리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의 헐거움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1막은 비교적 박진감 넘치게 전개되지만 2막에 가서는 장면별로 이야기를 뭉텅뭉텅 썰어놓은 느낌이다. 2막 중반 이후부터는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중년 엘리자벳의 심리 변화가 나열식으로 전개된다. 이야기의 조각들을 끊임없이 맞춰 가면서 보지 않으면 이해하고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죽음마저 사랑에 빠지게 한 황후’가 부제이지만 스토리상에서 더 부각되는 건 토드와 엘리자벳의 치명적 사랑이 아닌 고부간의 갈등이라는 점도 아이러니다. 대사가 거의 없이 노래로 내용을 전달하는 뮤지컬인 만큼 가사 전달에도 좀 더 신경을 써야 했다. 박효신은 뮤지컬 무대에 어울리는 중저음 보컬 실력을 뽐냈으나, 명확한 가사 전달이 아쉽다. 고전 무용과 현대적인 스트리트 댄스가 혼합된 앙상블의 춤은 눈이 즐겁지만, 지나친 대목에서는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오는 9월 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1만 5000~14만원. (02)6391-6333.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박근혜 대통령 ‘금도끼’ 든 까닭은…

    박근혜 대통령 ‘금도끼’ 든 까닭은…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열린 잠수함 ‘김좌진함’ 진수식에 참석해 ‘금도끼’로 진수줄을 잘라 화제다. 진수줄을 자르는 행사는 19세기 초 영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배를 처음 물에 띄우는 의식의 하이라이트다. 해군 사상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진수줄을 자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성심여고 3학년에 재학중이던 1969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세계 최대 유조선 ‘유니버스 코리아호’ 진수식에서도 ‘영애’ 자격으로 직접 진수줄을 잘랐다. 당시는 ‘은도끼’가 사용됐다. 이번에 우리 기술로 만든 김좌진함 진수식에서는 은도끼가 아닌 금도끼를 들었다. 박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항일투쟁사의 가장 큰 전과 중 하나인 ‘청산리대첩’을 언급하며 “튼튼한 해상방위 능력이 있어야만 어업도, 수출길도, 국민의 안전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확인했다. 저는 국익과 해양주권을 훼손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 젊은 장병들이 목숨을 바쳐 NLL(북방한계선)을 사수했기에 서해 바다의 평화와 어민의 삶을 지켜낼 수 있었다”면서 “저는 우리의 서해바다를 묵묵히 지켜낸 해군 장병들께 무한한 경의를 보낸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제주도 인구 60만 넘었다

    제주도 인구 60만 넘었다

    제주도가 인구 60만명 시대로 진입했다. 제주도는 총 인구가 외국인을 포함해 60만명을 돌파했다고 12일 밝혔다. 1987년 50만명을 돌파한 후 26년 만에 60만명을 넘어서게 됐다. 제주의 인구는 19세기 말인 대한제국시대 10만명을 넘지 못하던 인구가 1955년에는 28만 8781명, 1965년 33만 4765명, 1975년 41만 1992명, 1987년 50만 5534명으로 50만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1995년부터 2009년까지 매년 1000~3000명가량 감소했다. 2010년 437명이 늘어나며 증가세로 돌아선 뒤 2011년 2342명, 지난해 4873명 증가했다. 올해 들어서도 1월 406명, 2월 1290명, 3월 1102명, 4월 1174명, 5월 963명 등으로 꾸준히 인구가 유입됐다. 이 같은 증가세는 전국 시·도 가운데 세종시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것이다. 도 관계자는 “최근 들어 관광 경기 활성화와 귀농 귀촌과 도시민 제주 이주 바람 등이 불면서 인구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이처럼 인구 유입이 계속되면 2021년에는 70만명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제주도는 ‘인구 60만명 돌파’를 축하하기 위해 13일 오전 9시 제주도청 광장에서 경축행사를 갖는다. 행사에서는 제주 인구 증가의 주역인 세쌍둥이 가족, 다자녀 가족, 다문화가정과 정착주민 등이 자리를 함께할 예정이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뒤틀린 역사·끝없는 영토 싸움… 한·중·일의 과거와 미래

    뒤틀린 역사·끝없는 영토 싸움… 한·중·일의 과거와 미래

    오는 15일 광복절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기로 했지만 우익세력을 중심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올해도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 중국은 침략과 전쟁, 위안부와 강제 징용 등의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분노하는 등 3국 간 역사왜곡 논란과 영토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아리랑 TV는 14일부터 매주 수요일 오전 9시에 다큐멘터리 ‘한·중·일, 미래를 여는 역사’ 3부작을 방영한다. 3국을 둘러싼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과 반성을 조명하며 3국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미래상을 제시한다. 14일 방영되는 1부 ‘위대한 유산, 문화교류’에서는 3국 간 문화교류의 역사를 되짚는다. 이미 3000년에 가까운 교류역사를 가진 3국이지만, 19세기 근대화를 전후해 양상이 달라졌다. 영화는 일본의 촬영 기술이 한국과 중국에 전파됐고, 1930년대에는 한국의 김영과 중국의 롼링위(완영옥)가 국적을 초월해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만주국을 세운 일본은 영화를 전쟁의 선전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한국과 중국의 영화인들은 영화에 항일 메시지를 담아냈다. 오늘날에도 일본에서는 한류스타에 대한 극우세력의 반대 시위가 계속되고, 중국에서는 한국의 뮤지컬 ‘김종욱 찾기’를 무대에 올리면서 극 중 일본인 배역을 태국인으로 바꿔놓기도 했다. 2부 ‘단절의 역사에서 화합의 역사’는 3국의 역사적 갈등과 대립의 배경,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조명한다. 일본 교토에서 진행되는 ‘한·중·일 청소년 역사캠프’는 3국이 13년째 진행하고 있는 청소년 교류 행사다. 캠프에 참가한 청소년들은 교토의 니켈 광산을 직접 찾아 일본의 강제 징용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다. 또 3국의 역사학자들은 청일전쟁의 유적지를 복원하고 이를 연결하는 평화역사벨트를 조성할 것을 제안한다. 이들 학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자국 중심의 선택적 기억을 역사로 인식하는 오류를 극복하고 진정한 역사 인식을 공유하는 길을 모색한다. 3부 ‘미래의 리더, 동북아 공동체’는 3국 간 협력의 성공 사례를 조명한다. 제작진은 일본 오키나와를 찾아 중국과 일본의 센카쿠(댜오위다오) 분쟁이 양국 간 무력충돌과 경제협력 중단으로 이어지는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또 한·중·일 FTA의 과정과 의미, 그 밖의 경제협력 사례를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개최되는 제5회 역사 NGO 세계대회에서 만난 NGO와 석학들에게 3국이 미래의 리더가 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해 들어본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두창·마마·천연두…괴질·고레라·호열랄·콜레라…질병이 변했나? 시대가 변했지!

    두창·마마·천연두…괴질·고레라·호열랄·콜레라…질병이 변했나? 시대가 변했지!

    이광수는 소설 ‘흙’에서 “염병할 자식, 제 집에는 계집도 없고 딸자식도 없담”이라며 불만을 늘어놓았다. 구한말 의병장 유인석은 당시 암울한 상황에 대해 “국병(國病)이 깊도다. 매국의 무리들이 일어나 외국 오랑캐들에게 아첨하여…”라며 울분을 토했다. 전염병을 뜻하는 염병(染病)은 요즘도 자주 쓰일 만큼 검질긴 생명력을 지닌 단어다. 돌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나라가 불안해진다. 그래서 전통사회에서 질병은 정치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병의 개념, 변천사를 통해서도 우리 사회의 변화상을 짚어볼 수 있다. 병의 영향력은 개인은 물론 사회에 전방위적으로 미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문집이나 실록, 신문과 잡지, 사전에 나타난 어휘, 서양의 의학과 위생학 텍스트, 민속학 보고서, 문학 작품 등의 기록물을 섭렵해 병의 개념을 추적했다. 또 병이 전통 한의학에서 서양의학의 범주로 편재되면서 우리나라는 위생, 검역 등 근대적인 개념이 도입됐지만 식민지배가 강화되는 아픔을 맛보기도 했다. 콜레라, 천연두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1821년 처음 발병해 1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콜레라(Cholea)는 한글학회가 해방 후 펴낸 큰사전을 보면 ‘고레라’ ‘코레라’ ‘호역’ ‘호열자’ 등으로 기록돼 있다. 일본이 콜레라를 ‘고레라’로 음역하고 한자어로 ‘호열랄’(虎列剌)로 썼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호역(虎疫)이라고 했다. 호열랄이 ‘호열자’(虎列刺)가 된 것은 랄(剌)을 비슷한 글자인 자(刺)로 읽었기 때문이다. 콜레라는 처음에는 정체가 파악되지 않아 괴질(怪疾)이라고 불렀다. ‘변강쇠가’를 보면 “아 그놈의 신사년(1821년) 괴질, 괴질”이라는 대목이 나와 대역병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엿보게 한다. 천연두는 두창(痘瘡)과 함께 마마라고 했다. 저자는 두신(痘神)이 만주어로 ‘마마’인 것으로 미루어 이 말은 병자호란 이후 생겨난 것 같다고 추측한다. ‘사람을 고치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 아니다’라는 ‘의국’(醫國)과 ‘병든 나라를 고치자’는 ‘국병’(國病)의 개념은 동아시아의 오랜 전통이다. 인체의 병과 나라의 폐단에는 서로 상통하는 구조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국병의국의 사상이 정점에 이른 때는 19세기 말~20세기 초이다. 저자는 다른 연구자들의 자료를 인용해 “독립신문, 황국신문에서도 국병담론이 적잖이 나왔지만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는 남달랐다”고 말한다.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천하의 명의를 모셔 국병의 위급함과 원인을 짚어내자는 ‘진찰국맥’(診察國脈·1908년 2월 14일자), 희망이라는 알약을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줄 테니 절망병을 깨자는 ‘희망보단’(希望保丹·1909년 4월 28일자) 등 1905년부터 1910년까지 74개의 기사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삶을 바꾸는 도구’… 신선한 경제학 통찰

    ‘굴뚝 높은 기계 설비의 도시였다. 절대로 똬리를 풀지 않는 뱀 같은 연기가 굴뚝에서 끝도 없이 뿜어져 나왔다. 운하는 검은색이고 흐르는 강물은 악취를 풍기는 자주색 염료로 물들어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들의 창문은 온종일 덜컹거렸고, 증기기관과 피스톤의 단조로운 상하운동은 우울한 광기에 사로잡힌 코끼리 대가리 같았다.’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찰스 디킨스의 소설 ‘고달픈 시절’에 나오는 도시 코크타운과 공장의 모습이다. 코크타운 주민들은 ‘똑같이 생긴 사람들, 똑같은 일을 하기 위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발자국 소리를 내면서 드나드는 사람들’이었다. 공장 노동자들의 삶은 “똑같은 일을 하면서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다”라는 게 디킨스의 상상이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묘사하는 공장 장면도 디킨스의 것과 비슷하다. 다만 디킨스와 달리 상세한 묘사가 전혀 없다. 마르크스가 공장 내부에 단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는 당연한 것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케임브리지 학파의 창시자인 알프레드 마셜이 묘사한 공장의 장면과 생활은 두 사람에 비해 훨씬 더 구체적이고 섬세하다. 그는 공장을 오랜 시간 관찰하고, 제조기법과 급여수준 및 레이아웃을 기록하며, 사주에서부터 관리자와 현장인력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질문한다. 마셜이 마주친 문제(조립라인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효과)는 디킨스와 마르크스의 것과 같지만 그가 내놓은 결론은 두 사람의 것과는 다르다. 왜 그럴까? 디킨스와 마르크스가 보았을 때 회사란 노동자를 통제 내지 착취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마셜의 눈에 회사는 생존하기 위해 진화하는 존재였다. 기업이 경쟁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노동자와 경영자에게 임금을 지불하고 세금을 내고 난 뒤에도 남는 것이 있을 만큼 수익을 창출해야 했다. 회사는 같은 자원으로 더 많은 것을 성취할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야 했다. 바꾸어 말해 장기적으로 임금을 올려줄 수 있는 생산성 향상은 경쟁의 부산물이었다. ‘뷰티풀 마인드’로 필명을 날린 저자의 책은 마셜같이 안목이 높은 경제학자 10여명에 대한 이야기로, 풍부하고 섬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문학과 경제학 모두에 조예가 깊어 읽는 재미와 깊이가 더해졌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씨줄날줄] 노예무역 소송/문소영 논설위원

    동양과 서양의 힘의 균형은 1840년 아편전쟁에서 깨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서구 지배의 원인으로 최근까지도 유럽의 문화가 동양보다 우월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2500여년 전 고대 그리스의 이성과 창의성, 자유 등에서 원인을 찾기도 했다. 일본이 1853년 서구로부터 강제 개항을 당한 뒤 서양과 똑같아지고자 애쓴 것은 그런 연유에서였다. 그러나 1960~1970년대에 들어 학자들 사이에서 색다른 해석이 나왔다. 이들은 19~20세기 초 유럽 등 서구의 세계 지배 배경으로 16세기 포르투갈·스페인이 남아메리카를 식민지로 개척한 뒤 남미의 풍부한 은을 착취한 것을 비롯, 17~19세기에 영국·프랑스·네덜란드가 주도한 반인륜적인 노예무역과 북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을 손꼽았다. 중국과 비교해 조잡한 유럽의 상품들은 아프리카인과 교환됐고, 그 아프리카인은 ‘노예’라는 새로운 상품이 돼 아메리카로 팔려나간 것이다. 특히 서인도제도인 카리브해로 팔려간 아프리카 노예들은 그곳 원주민들과 함께 대단위 농장인 플랜테이션에서 노동집약적 작물인 사탕수수와 커피, 면화 등을 재배하는 강제노동에 투입됐다. 플랜테이션은 이후 남북 아메리카로 확산됐다. 아프리카 노예는 더 많이 필요해졌고 18세기에 최고조를 이뤘다. 또 아메리카의 면화는 영국에서 면직물로 대량생산돼 남북 아메리카에서 대량으로 소비됐다. 이것이 유럽을 살찌운 ‘대서양 삼각 무역’이자 서양 지배 시대의 비결이었다. 18세기 후반 영국이 면방직 산업을 중심으로 산업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묵묵히 강제노동을 해야 했던 아프리카 노예와 아메리카에서의 면화 재배, 그리고 면직물 소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00여년의 역사를 지닌 노예무역이라는 유럽의 어두운 과거와 아시아·아프리카·아메리카를 총칼로 점령한 부끄러운 역사가 서구 지배의 ‘비결’인 셈이다. 자메이카, 수리남 등 카리브해 14개 섬나라가 수세기에 걸친 노예무역과 원주민 대량학살에 대한 책임을 영국·프랑스·네덜란드 3개국에 묻고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한다고 한다. 17세기 말부터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다 1804년 독립한 세계 첫 흑인공화국 아이티(옛 프랑스령 생도밍그)는 과거 플랜테이션이 가져다준 폐해로 지금도 고질적인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자 문제 등 한·일 간에도 여전히 해결을 기다리는 역사적 과제가 가로놓여 있다. 300년 만에 법대(法臺)에 오른 ‘대서양 노예무역’의 심판 결과가 주목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글로벌 경제] “희토류는 경제 활력소”… 폐광 뒤지는 美

    [글로벌 경제] “희토류는 경제 활력소”… 폐광 뒤지는 美

    미국에 셰일가스에 이어 희토류 개발이라는 ‘골드러시’ 바람이 불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던 미국 경제가 ‘자원 개발’이라는 이슈로 새 활력을 찾고 있는 셈이다. 29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서는 희토류 광물 개발 붐이 일고 있다. 19세기 서부 지역에 불어닥친 ‘골드러시’(금광이 발견된 지역에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처럼 기업과 과학자들이 금이나 은을 캐낸 폐광에서 희토류를 찾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ABC 방송은 “희토류 주광맥이 지하 깊은 곳이 아니라 땅 위에 널려 있다. 바로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시대 이후 문 닫은 옛 광산의 쓰레기 더미에 있다”고 전했다. 그만큼 희토류를 채굴하기가 쉽다는 얘기다. 희토류란 휴대전화나 TV, 무기, 발전소 터빈 등에 꼭 필요한 희소 광물을 말한다. 정보기술(IT) 기기가 점점 작고 가벼워지면서 이 기기 안에 들어가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국이 희토류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2~3년 전부터다. 전 세계 생산의 95%가량을 차지하는 중국이 2009년부터 수출량을 제한하며 ‘자원 무기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하이브리드차에 주로 쓰이는 네오디뮴 가격을 2009년 ㎏당 15달러에서 2011년 500달러로 올렸다. 중국은 2010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때는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해 일본을 굴복시키기도 했다. 중국이 희토류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면서 미국도 자국 경제의 한계를 깨닫게 된 것이다. 앞서 노스다코타·텍사스 등 미 중서부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셰일가스 개발 붐도 미국 경제에 장기적 호재로 평가된다. 셰일가스란 모래와 진흙이 쌓여 형성된 셰일층(지하 1000m 이하)에 함유된 천연가스를 말한다. 현재 전 세계에 200년 이상 쓸 수 있는 양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 100만BTU(1BTU=0.252㎉/h)당 13달러를 웃돌던 미국 내 천연가스 가격은 셰일가스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현재는 4달러선까지 떨어졌다. 미국은 셰일가스 개발에 따른 고용창출효과만 2015년 87만명, 2035년 160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에너지 비용 부담이 줄면서 그간 경쟁력을 잃은 것으로 평가받았던 미국 제조업이 조금씩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럽 제조업체들도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하나 둘 옮기고 있다. 독일 최대 화학 업체 바스프는 루이지애나주에 새로운 포름산 제조공장을 가동할 예정이고, 오스트리아 철강 업체 보에스탈파인도 텍사스에 7억 1500만 달러를 들여 철강 공장을 짓기로 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응답하라, 노르웨이 2013

    응답하라, 노르웨이 2013

    대자연 속 일상을 누리는 시간 응답하라,노르웨이 2013 산이 깊다는 역사학자 유홍준의 표현은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노르웨이의 피오르는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산세가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바닷물과 거의 직각을 이루며 굽이굽이 이어졌다. 그리고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산속 작은 마을에는 사찰 대신 작은 교회가 어김없이 서 있었다. 신의 작품 앞에서 신음만 번지는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자연의 위로를 받아들였다. FIORD 피오르 몸과 마음이 깨어나다 두어 해 연속 어렵게 만든 휴가를 서운하게 마쳤다. 무슨 영문인지 세계적인 도시에서 내도록 하품을 하며 멍하니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 멋진 상징물 앞에서도 시큰둥하고 줄이 긴 전시장에선 기다릴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여행에 관한 한 공항부터 조증에 걸린 양 들뜨는 사람에겐 퍽 당황스러운 증상이었다. 뜬금없이 지난 기억을 떠올리는 건 그에 대한 진단을 이곳 노르웨이 피오르에서 내리게 된 탓이다. 출발 전 과로나 장거리 비행, 빡빡한 현지 스케줄 등 조건은 다를 게 없는데 현장을 대하는 마음과 정신이 놀랍도록 명료하다. 그러니까 여행도 인연 못잖게 적절한 타이밍이 중요한 법이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전후 사정은 생각도 않고 무리해 대도시를 찾은 게 화근이었던 듯하다. 노르웨이는 복지와 행복지수, 국민소득 등의 선두주자로 대단히 익숙한 이름이지만 여행지로 따지자면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심리적 거리감이 느껴지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 국민이 아는 노르웨이어가 있다. 지리 시험 주관식 문제의 정답으로 꼭 한번은 등장했던 바로 그 이름 ‘피오르fjord’가 노르웨이 단어다. 그러니까 노르웨이로 향한다는 건 사전적 정의 그대로 ‘빙하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골짜기에 바닷물이 들어와서 생긴 좁고 기다란 만’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수도 오슬로부터 북단의 트론하임까지 노르웨이에는 수많은 피오르가 존재한다. 그 어디를 택하더라도 후회 없는 여정을 보장하지만 굳이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송네피오르Sognefjord나 하당에르피오르Hardangerfjord를 추천한다. 피오르에 몸을 맡기다 미르달Myrdal역에서 플램Flam행 열차에 탑승했다. 산악 지역 주민들의 이동을 돕기 위해 건설된 이 철로는 무려 20년의 공사 기간이 소요된 것으로 유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르달에서 플램까지 거리는 20km에 불과하지만 해발 차가 860m에 달한다. 과장을 보태면 굽이굽이 산세를 거의 수직으로 내려가는 셈이다. 각종 매체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이라 찬사를 보낸 곳답게 열차 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이 가히 환상적이다. 기차는 숱한 터널을 지나며 지그재그로 회전하느라 천천히 달리는 데 비해 객차 안 다국적 승객들은 왼쪽과 오른쪽 창문을 오가느라 분주하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도 카메라를 내려놓지 못하는 승객들을 위해 중간에 5분간 정차 구간이 있다. 해발 699m 청명한 쿄스포센Kjosfossen폭포 앞에서 잠시 내려 선 여행자들은 감탄사를 내려놓고 깊은 숨을 들이쉬며 찰나의 여운을 만끽한다. 해발 2m 플램역에 도착하면 지나온 풍경이 꿈이었나 싶게 몽환적이다. 기차역에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고풍스런 건물이 프레타임Fretheim호텔로 플램 철도와 더불어 플램의 상징이 되는 곳이다. 인구 500명 남짓의 이 조그만 마을로 유럽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이 찾아오는 까닭은 바로 피오르의 비경을 목도할 수 있는 ‘피오르 사파리’를 경험하기 위해서다. 19세기 말에 지어진 프레타임 호텔은 피오르를 찾아오는 여행자와 함께 성장해 현재는 전통과 모던 객실 중에서 선택해 머물 수 있다. 객실 번호 대신 노르웨이의 대표적 이름이 붙은 전통 객실이든, 비스듬한 삼각 지붕이 매력적인 모던 객실이든 플램 특유의 푸근함만은 다르지 않다. 전통을 중시하는 마을답게 노르웨이 고어古語를 포함한 독특한 책을 소장한 자체 도서관을 운영하며, 또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훈제용 스모킹룸이 남아있는 것도 흥미롭다. 이제 드디어 피오르에 몸을 맡길 차례다. 구명조끼를 겸하는 큼직한 방한복을 입고 배에 오르는 마음이 자못 두근거린다. 놀랍도록 잔잔한 물 위로 미끄러지듯 배가 나아가면 좌우로 우뚝 솟은 절벽의 단면이 펼쳐진다. 배가 속도를 높일수록 절벽과 천연 스키 슬로프, 순도 백프로의 폭포와 알록달록한 마을, 뾰족한 첨탑이 있는 교회 등이 다가왔다가 뒤편으로 멀어진다. 머리 위에는 천사의 머리띠마냥 구름이 살포시 걸려 있고 산봉우리 하나를 지나면 또 다른 봉우리들이 배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플램에서 출발한 배가 닿는 이곳은 풍광이 특히 빼어난 네뢰피오르와 아울란피오르로 노르웨이 최대 피오르인 송네피오르의 지류다. 물 위를 날 듯 달리노라면 서울에서 가져온 문젯거리들은 어느새 툭툭 바다 밑으로 털어 버리게 된다. 피오르 여행의 최고 시즌으로 꼽히는 7월과 8월 사이에는 보다 다양한 피오르 사파리 구간과 하이킹 코스가 열리므로 원하는 루트를 선택해 즐기는 호사도 부릴 수 있다. 육지에 발을 딛고 다시 펼쳐 본 노르웨이의 지도는 배를 타기 전과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이처럼 노르웨이의 주인공은 단연 대자연이다. 하지만 이 자연이 위대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건 평생을 살아온 자신의 조국을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애인 보듯 사랑하며 가꾸는 노르웨이 사람들 덕분일 게다. 보기에 따라선 더없이 척박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동시에 즐기고 또 사랑하는 노르웨이 사람들로 인해 노르웨이는 오늘도 반짝반짝 빛난다. 일상이 풍요로운 노르웨이의 도시들 노르웨이의 대자연에서 가슴 속 고민들을 툭툭 털어냈다면 이제 발길은 사람의 흔적을 찾아 도시로 향할 차례다. 불황에 허덕이는 이웃 유로존과 달리 보편적 복지와 호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노르웨이의 도시들 속으로 들어가 보자. OSLO 오슬로 불황을 잊은 노르웨이의 심장 오슬로는 노르웨이 제1의 도시이자 수도지만 숨 막히는 인파나 위압적인 마천루는 찾아볼 수 없다. 또한 파리의 에펠탑이나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런던의 빅벤 같은 상징물로 연결되는 장소나 건축물도 없다. 그래서 순위 놀이에 익숙한 관광객들은 오슬로의 지도를 펼치고 잠시 머뭇거린다. 그런 서열을 매기기에 오슬로는 지극히 수평적인 도시다. 효과적인 마케팅 기법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현지인의 삶에 관심이 많은 여행자라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300개가 넘는 호수와 200여 개의 공원이 있는 오슬로에서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찾는 것은 무의미한 일 같다. 그래서 오래도록 오슬로는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도시로 유럽 전역에 알려져 왔다. 한데 최근 몇년 사이 오슬로는 이런 자연 위에 예술적 색채를 깊게 덧입고 있다. 오슬로 시정부가 펴낸 2013년 가이드북에서 안내하는 52개의 어트랙션 중 대부분이 ‘뮤지엄’ 등 예술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것만 봐도 이들이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짐작할 만하다. 인구 50만의 작은 도시 규모를 생각해 보면 대단한 비율이다. 게다가 시 전역에 흩어져 있는 이런 예술 공간은 여행자만을 위한 관광 명소가 아니라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공간이다. 매일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일상에 여행자가 슬쩍 발을 들여놓는 셈이라고 할까. 실제로 만만찮은 무게의 예술가들이 이곳 오슬로를 배경으로 삶과 예술을 고민했다. 화가 에드바드 뭉크Edvard Munch와 조각가 구스타프 비겔란드Gustav Vigeland 그리고 극작가 헨리크 입센Henrik Ibsen 등이 대표적이다. 특별히 올해는 뭉크 탄생 150주년으로 오슬로 전역이 떠들썩하다. 이를 기념해 뭉크박물관과 국립박물관은 특별전 준비가 한창이다.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 어머니와 형제들의 죽음을 차례로 지켜봐야 했던 뭉크는 불안과 고독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격렬한 색감과 왜곡된 형태로 표현해냈다. 6월2일부터 시작된 뭉크 특별전은 1903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 작품은 국립박물관에서, 이후 작품은 뭉크 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특별전은 오는 10월13일까지 계속된다. 오슬로의 햇살을 만끽하기 가장 좋은 곳은 도심의 북서쪽에 위치한 비겔란 조각 공원이다. 로댕의 영향을 받았지만 특유의 섬세함으로 인간의 고뇌를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 그의 작품 200여 점이 정문에서 후문까지 길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주제로 작업한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탑 모양의 ‘모노리스Monolith’. 제작 기간이 13년이나 걸린 것으로 전해지는 이 대작은 121명의 남녀노소가 위로 올라가려 애쓰는 모습이다. 태어나 성장하고 늙어 가는 인생을 표현했다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어찌 되었든 조급증에 지친 사람이라면 이 앞에서 잠시 서성이게 될 것이다. 이 공원에서 시선과 마음을 훔치는 것은 비단 비겔란의 작품뿐이 아니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이곳에선 오슬로 시민들의 행복한 일상을 쉽게 엿볼 수 있다. 2008년 개장한 오슬로 오페라하우스는 노르웨이에서 드물게 호들갑스런 화제를 낳았던 곳이다. 설계자 스뇌에타의 유명세나 고가의 대리석과 화강암, 세계 최고 수준의 음향 시설 등 호사스런 부연 설명은 차치하더라도 노르웨이의 상징인 피오르를 형상화한 구조는 이방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비스듬한 경사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지붕 위에 서게 되는 독특한 구조의 오페라하우스는 유리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내부 시설만큼 바다를 향한 전망도 아름답다. 여름 기운이 더 완연해지면 오슬로 시민들은 이곳에서 피크닉을 즐기며 발레와 오페라 등을 만끽할 게다. 오페라하우스 인근인 오슬로 중앙역에서 왕궁에 이르는 칼 요한슨 거리가 오슬로 최대 번화가다. 이 번화가를 중심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식이 열리는 시청사와 수상 만찬이 열리는 그랜드 호텔, 그리고 국회의사당과 오슬로 대성당, 국립극장, 입센 뮤지엄 등이 조밀하게 자리하고 있다. 매년 12월이면 이 조용한 도시는 노벨평화상 수상식으로 소란스러워진다. 헛갈리는 이들을 위해 잠시 짚고 넘어가자면 평화상을 제외한 여타의 노벨상 시상식은 모두 스웨덴에서 거행된다. 오직 노벨 평화상만 이곳 오슬로에서 진행된다. 그 까닭을 두고는 설이 분분한데, 이유야 어찌 되었든 매년 세계 평화에 공헌한 이들을 맞이하는 것은 분명 가슴 벅찬 일일 게다. 그래도 명색이 수도인데 조금은 더 왁자한 자극을 원한다면 도심 북동쪽에 위치한 마탈렌Mathallen을 추천한다. 마탈렌은 건축자재 공장과 타이어 공장을 거친 뒤 방치되었던 낡은 건물을 레노베이션해 음식 백화점으로 살려낸 ‘잇플레이스’다. 3층 구조물인데 1층에 30여 개 상점이 오밀조밀 모여 있고 2·3층은 테두리에만 독특한 성격의 업장을 배치했다. 산업시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나 다채로운 음식의 변주를 보고 있노라면 흡사 뉴욕의 첼시 마켓이 떠오른다. 각각의 가게들은 좋은 품질의 식재료와 음식을 판매한다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또 요리강습과 실습, 푸드 페어 등 음식에 관한 다양한 행사도 진행 중이다. 공원에서, 뮤지엄에서, 레스토랑에서 마주친 오슬로 시민들이 빠뜨리지 않고 언급한 몇 개의 단어가 있다. 가족, 자연, 오늘 그리고 행복. 너무 당연해서 자주 잊고 사는 그것들에 콕콕 방점을 찍는 이 현명한 도시. 우리가 오슬로를 여행할 때 놓지 말아야 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BERGEN 베르겐 과거의 영화는 지금도 계속된다 세상 어디나 있는 라이벌 도시는 이곳 노르웨이에도 있다. 오슬로보다 먼저 수도였던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 도시 면적은 비슷하지만 인구로 보면 오슬로의 절반 규모인데도 베르겐 사람들은 오슬로를 마치 철없이 혈기 넘치는 어린 동생 보듯 한다. 상주인구가 25만에 불과한 이 작은 도시는 그러나 연중 문화 행사가 빼곡해 유럽 전역에서 밀려드는 문화 탐욕가들로 넘쳐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매년 5월 말 열리는 ‘국제 페스티벌’로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노르웨이 최대 문화 축제다. 노르웨이 국왕이 참석해 개막 테이프를 자르는 이 축제를 직접 즐기기 위해서는 적어도 반년 전에 호텔을 예약해야 할 정도란다. 실제로 이곳은 14~16세기 런던, 브뤼헤 등과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한자 동맹의 주요 거점이자 북유럽 최대의 물류 무역항이었다. 특히 대구와 소금 거래로 유명세를 떨쳤는데, 당시 이곳에서 거래되는 물량이 북유럽 최고였다니 베르게너의 자부심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선원과 상인으로 넘쳐나는 왁자한 부둣가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브리겐Bryggen, 삼각형의 뾰족한 지붕이 열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사실 본래의 목조 건축들은 수차례의 화재로 소실과 복원을 반복했다. 특히 1702년 대화제로 일대는 완전히 잿더미가 되었는데, 20세기 들어 사료를 바탕으로 세심하게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브리겐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과거 말린 대구를 보관하던 창고 자리는 현재 다양한 예술가들의 공방과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동화 같은 브리겐의 예쁜 정면 얼굴을 볼 수 있는 곳은 항구 건너편 어시장이다. 시장이라고 부르지만 세련된 건물 안에 자리한 쾌적한 공간이다. 바닷가재와 대구, 캐비아까지 다양한 해산물이 요리하기 좋게 손질되어 있다. 해산물뿐 아니라 질 좋은 노르웨이 치즈와 버터, 수공예품도 판매한다. 또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따뜻하고 고소한 생선스프와 짭조름한 생선튀김도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이 도도한 도시는 어느 계절에 방문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기억을 안고 돌아갈 수 있겠다. 연중 270일이나 비가 내리는 이 도시는 하루에도 먹구름이 끼었다가 햇살이 반짝였다가 우박이 내렸다가 다시 청명하게 개는 변덕스런 일기를 선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잦은 비 덕분에 베르겐은 청정한 노르웨이에서도 유난히 깨끗한 도시로 명성이 높다. 이 깨끗한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려면 플뢰엔FlØyen 산 전망대에 오르면 된다. 산의 경사면을 따라 놓인 레일 위를 날아오르듯 부드럽게 이동하는 푸니쿨라Funicular에 몸을 실으면 약 7분여 만에 320m 높이 정상에 다다른다. 탁 트인 전망대의 시야는 그야말로 ‘파노라마 뷰’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듯하다. 호수와 항구, 피오르와 도심이 한데 어우러진 베르겐의 모습이 그야말로 거칠 것 없이 펼쳐진다. 오슬로에 에드바드 뭉크가 있다면 베르겐에는 에드바드 그리그Edvard Grieg가 있다. 물론 이런 이분법적인 구분은 바람직하지 않다. 뭉크 역시 이곳 베르겐에서 상당 부분 영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며, 그리그가 베르겐을 떠나 있었던 시간도 제법 길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르겐에서 그리그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는 누구보다 노르웨이적 색채가 짙은 음악가로 명성이 높은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페르귄트 모음곡’ 중 ‘솔베이지의 노래’를 들어 보면 당시 식민 상황이던 조국에 대한 그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리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원하는 만큼 음악을 공부하고 작업하면서 오페라 가수였던 아내 니나와 평생을 해로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남모를 아픔이 있었으니 어린 딸을 잃고 그 아이를 평생 그리워하며 살았다. 그리그 부부가 30대 중반부터 여름철에 지냈던 생가가 바로 베르겐 외곽에 있는 트롤하우겐이다. 북유럽에서 요정을 가리키는 ‘트롤하우겐’은 노르웨이 사람으로는 눈에 띄게 단신이었던 그리그의 별명이기도 했는데, 그의 집이 지금도 요정의 정원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그리그 부부가 합장된 묘가 있는 이곳에는 그들이 사용했던 스타인웨이 피아노와 악보, 편지, 초상화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 집에서 바다로 스무 걸음쯤 내려간 곳에 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작은 오두막이 하나 있는데 바로 복원한 그리그의 작곡실이다. 그리그는 바다로 향한 창문을 중심으로 피아노와 책상, 오선지와 펜 등 최소한의 물건을 비치해 두고 곡을 썼다. 그리그 사후 이 작곡실을 복원할 때 전해지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아내 니나에게 최종 점검을 받는 중에 니나가 갑자기 집으로 뛰어가더니 두꺼운 악보집을 가져다 피아노 의자에 놓았다고 한다. 이것 없이 그리그의 작곡실은 완성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153cm의 단신이었던 그리그는 피아노를 칠 때 두꺼운 악보집을 깔고 앉아야 편하게 건반을 두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작곡실과 함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을 갖춘 200석 규모의 콘서트홀이 자리하고 있다. 자연과 예술이 이렇게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곳에서 어떤 음악이 울려 퍼진들 감동적이지 않을까. 글 Travie writer 김정은 사진 Travie writer 김정은, 트래비CB, Travie writer 노중훈 취재협조 노르웨이관광청 www.visitnorway.com ▶travie info 항공 현재 우리나라에서 노르웨이까지 직항 정규 노선은 없다. 핀에어, KLM 등 주요 유럽 항공사가 1회 경유로 오슬로와 베르겐을 당일 연결한다. 언어 공용어는 노르웨이어지만 노르웨이 사람들은 1~2개의 외국어에 익숙하다. 영어가 가능한 여행자라면 노르웨이에서 언어 때문에 불편을 겪을 일은 거의 없다. 전기 220V이며 한국과 플러그 모양도 동일하다. 화폐 노르웨이 크로네Krone를 사용하며 공식적인 표기는 NOK이나 줄여서 kr로 표기한다. 1크로네가 약 200원 정도. 유로존이 아닌 만큼 유로화는 거의 통용되지 않는다. 여행자가 피부로 느끼는 물가는 상당히 비싼 편이라 카페에서 마신 커피 한 잔이 약 1만2,000원, 편의점에서 구입한 생수 한 병이 약 6,000원이었다. 날씨 백야가 시작되는 6월부터 10월 초까지는 날씨가 화창하고 청명해 그야말로 노르웨이 여행의 황금시즌이라 할 만하다. 오슬로의 7월 평균 낮 최고기온은 21.5도. 음식 바이킹의 후예답게 생선을 즐겨 먹는데 식탁에 자주 오르는 메뉴가 대구와 청어, 연어 등이다. 이와 더불어 빵과 감자의 소비량이 높다. 농지 비율이 낮기 때문에 야채나 과일의 생산량이 미미한 대신 목축업이 발달해 버터와 치즈 등 유제품의 품질이 좋다.
  • [책꽂이]

    못난 조선(문소영 지음, 나남 펴냄) 16~18세기 조선시대를 재조명했다. 외세에 떠밀려 강제 개항되기 전 조선 내부에서 일어난 개혁의 싹에 주목한다. ‘왕실’과 ‘백성’, ‘제도’와 ‘현실’의 간극은 없었을까, 융성했던 조선이 왜 19세기에 몰락할 수밖에 없었는가 등의 물음을 던진다. 미술품, 역사책, 지도 등을 샅샅이 뒤져 조선시대의 감춰진 ‘흑역사’를 밝혀낸다. 개정판. 440쪽. 1만 8000원. 정치의 즐거움(박원순·오연호 지음, 오마이북 펴냄)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 후 두번째 내놓은 책.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와 30시간에 걸친 대담을 기록했다. 반값등록금 실현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뉴타운 출구 전략 등을 다뤘다. 정치는 권력을 누가 잡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만드는 데 있음을 강조했다. 312쪽. 1만 5000원. 이주(마이클 새머스 지음, 이영민 외 4인 옮김, 푸른길 펴냄) ‘이주의 시대’를 맞아 국제 이주 현상과 관련 정책에 관한 이론과 실천의 문제들을 심도 있게 다뤘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이주 관련 개론서다. 이주에 대한 개념·이론적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다학문적 차원에서 다양한 이론과 관점, 지정학적 경제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담았다. 484쪽. 2만 5000원. 나는 일하는 엄마다(김영란 외 8인 지음, 르네상스 펴냄) 그저 무늬만 ‘남녀평등’인 사회의 육아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30~50대 엄마들 이야기를 담았다. 육아 지침의 성공담은 결코 아니다. “어린이집 앞에서 붙잡고 매달리는 아이를 억지로 손에서 떼어 놓을 때면 심장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심정이었다”는 고백에 눈물이 핑 돈다. 212쪽. 1만 3000원. 정치의 책(폴 켈리 외 8인 지음, 박유진·이시은 옮김, 지식갤러리 펴냄) 동서고금에 걸쳐 인류 사회의 동태를 규정하고 방향을 모색한 위대한 사상가들의 이론과 주장을 집대성한 정치학 바이블. 세계사의 한 부분이 된 인물들의 정치적 선택과 통찰을 소개한다. 정의, 평등, 박애부터 이데올로기 문제까지 이해를 돕는 입문서다. 352쪽. 3만 8000원.
  • ‘신비로운 새’에 유럽인들은 왜 열광했나

    ‘신비로운 새’에 유럽인들은 왜 열광했나

    상서롭고 고귀한 기품을 지닌 상상의 새, ‘봉황’(鳳凰). 모든 새의 우두머리로 추앙받으며, 조선시대 왕이 신하들의 조례를 받던 궁궐 정전의 천장에 그림으로 남겨졌다. 유럽에도 봉황에 버금가는 새가 있었다. ‘천상 낙원의 새’라는 뜻의 ‘극락조’(極鳥)이다. 탄성을 자아내는 아름다움과 ‘이슬만 먹고 살고, 죽어서 땅에 떨어질 때에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신비로운 이야기는 유럽인들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남태평양 뉴기니의 야생 숲에서 화려한 깃털을 휘날리며 살아가는 실존의 새라는 사실이 봉황과 조금 다를 뿐이다. 하지만 극락조도 근대에 이르기까지는 상상의 새에 가까웠다. 이 새를 직접 본 유럽인은 거의 없었다. 16세기 초 날개와 다리, 머리뼈가 제거된 채 교역상을 통해 들어온 말라비틀어진 극락조 박제는 일부 조류학자나 화가, 황제, 영주들 사이에서만 향유됐다. 황족들은 이 새의 표본을 구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곤 했다. 새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온갖 기발한 이야기가 쏟아지면서 극락조에 대한 신비감만 커져 갔다. 극락조를 둘러싼 ‘폐쇄성’은 역설적으로 유럽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루벤스, 렘브란트, 브뢰겔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은 앞다퉈 자신의 그림에 극락조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몸속이 텅 빈 채 깃털로 덮인 박제를 보고 그리느라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했다. 극락조와 유럽 본토인의 첫 만남은 1522년 스페인의 작은 항구 산루카르 데 바라메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3년 전 마젤란이 5척의 탐험대를 이끌고 떠난 이 항구에 빅토리아호 홀로 돌아오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처음으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탐험대의 배에는 진귀한 포획물이 넘쳐났고, 이 중 원래 새였음을 추정할 수 있는 극락조의 표본도 실려 있었다. 살아 있는 극락조를 처음 본 유럽인은 1824년 뉴기니섬 서쪽 도레이항에 닿은 프랑스 자연사학자 르네 프리메레르 르송. 이어 영국인 학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는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가지마다 자리를 잡고 몸을 부르르 떠는 수컷 극락조들의 ‘무도회’(과시행동)를 처음 목격한다. 찰스 다윈과 공동으로 진화론을 내놓았던 월리스는 왜 수컷만이 그렇게 호화로운 깃털을 지녔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반면 다윈은 적자생존을 위한 ‘자연선택설’에 이어 발표한 ‘성적 선택설’을 통해 이를 해석했다. 알에서 깨어난 수컷들이 7년간 몸치장을 하고, 이후 매년 단 한 차례의 짝짓기를 통해 우성인자를 퍼뜨린다는 것이다. 이 책은 16세기 이후 그려진 유럽의 미술작품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애튼버러와 화가인 풀러 등 저자들은 19세기 이후 탐험가들의 목격담이 대륙에 전해지면서 화가들이 미술품에서 묘사한 극락조의 모습도 실제와 닮아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부류의 그림조차 숲 깊은 곳에 사는 극락조의 모습을 완전하게 묘사하지는 못했다. 책은 지금까지 학계에서 파악한 극락조가 40종이 넘는다며, 수백년에 걸친 포획에도 불구하고 극락조가 멸종되지 않은 것은 고립된 뉴기니의 지형과 무시무시한 원주민들이 울타리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伊→佛→英→獨 정원 산책길 유럽의 삶·역사와 동행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름난 정원을 다니다 보면 나름의 특색을 발견하곤 한다. 자연의 풍광을 멋지게 살려낸 정원이 있는가 하면, 다른 조형물과의 어울림이 일품인 곳도 숱하다. 그곳에 살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취향과 지형의 다름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정원은 건축과 함께 삶의 양식과 문화를 볼 수 있는 거울이라고도 한다. ‘유럽, 정원을 거닐다’는 유럽의 정원을 삶과 역사라는 인문학적 측면에서 다룬 흔치 않은 책이다. 정기호 성균관대 조경학과 교수가 유럽 각국의 정원 전문가들을 찾아 나눈 아기자기한 대담 형식의 담론. ‘유럽을 여행하면서 만나는 정원’이라는 주제대로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의 정원 여행을 통해 만나는 이런저런 이야기와 역사적 사실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흔히 알려진 대로 유럽의 정원은 크게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양대 축으로 삼아 만들어지고 변형돼 왔다. 이탈리아 정원이 상당히 은유적인 형태를 띤다면, 프랑스 정원은 정제의 미를 자랑한다. 그런가 하면 영국의 정원들은 화려하고 잘 꾸며지기보다는 생활에 스민 풍경이 특징이고, 독일의 정원들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녹지와의 자연스러운 조화가 독특한 멋을 뿜는다. 책을 읽다 보면 이렇듯 조금씩 다른 유럽의 정원들이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 이유와 과정을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된다. 지금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정원의 형태는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지역에서 시작된 빌라 정원이 시초다. 로마 추기경들의 빌라 정원에서 꽃피운 르네상스 정원이 알프스 이북 유럽 정원의 바탕 양식이 된 셈이다. 이후 프랑스 절대왕정 시대의 화려한 17세기 바로크 정원에 이어 영국 의회정치 이념과 어우러진 18세기 자연풍경식 정원으로, 그리고 19세기 귀족중심 사회에서 시민사회로 전환되면서 공공을 위한 정원이 시작된 궤적을 책은 꼼꼼히 펼쳐보인다. 각국 수도를 중심으로 도심 가까이에 있거나 외곽 지역에 있는 정원들을 주로 다뤘다. 하지만 대체적인 정원의 발달사와 변형을 읽는 데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정원의 형태와 특징 자체를 감상하는 즐거움은 기본이고, 정원을 바꿔놓은 시대 상황과 권력구조의 양상을 더듬을 수 있는 재미도 ‘덤’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수완지구 산부인과, ‘무통분만’이란?

    수완지구 산부인과, ‘무통분만’이란?

    무통분만은 19세기 영국에서 시행됐다고 알려졌다. 이는 분만 도중 생기는 진통을 줄여주기 위해 시행되는 방법으로 실제로 무통분만이라는 말은 통증이 없다는 말이기 때문에 요즘은 ‘분만 중 통증 완화 요법’으로 불리기도 한다. 산고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이완법, 마사지법, 호흡법 등 많은 시도가 있었으며,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5년 동안 무려 14배가량 무통분만 시술이 증가했다는 통계가 있다. 2005년 이후 무통분만을 국가에서 전액 지원한 뒤로 급격한 증가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무통분만이란 분만 중 진통을 줄여주는 모든 의료행위 및 보조행위를 통틀어 말하는 것으로 흔히 무통분만의 한 방법으로 알려진 ‘경막 외 마취’는 자연분만(정상분만)을 하는 산모의 진통을 감소시켜 아이를 낳는 방법이다. 의식과 운동 능력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통증만 줄어들게 되며 분만 후 발생하는 산후 통증(훗배앓이)을 완화해 준다. 게다가 분만 과정 중 아무 때나 시행할 수 있으며 다른 약물 요법 및 심리요법보다 통증 완화 효과가 있다. 산모의 혈관 내로 직접 약물이 주입되지 않아 산모와 태아에게 약물에 의한 호흡 및 심혈관 억제 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무통분만은 분만 중 산모의 진통을 조절하며 신생아에게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무통분만 시 이용되는 경막외 마취법은 실제 마취통증의학과에서 자주 사용되는 마취 방법의 하나로 숙련된 마취과 전문의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통분만은 경막외 마취용 바늘로 국소마취제 등의 약물을 등의 척추 부위에 간헐적·지속적으로 주입하는 것으로 가끔 뼈에 주사를 놓는다고 알고 있지만 분만 진통과 연관된 신경들이 있는 허리에 시술한다. 진통의 강도를 크게 축소해 대뇌로 전달시켜주는 일종의 부분마취로 극히 소량의 마취제만 들어가므로 태아에게는 전달되지 않는다. 이는 다른 심리 요법, 정맥 내 주사법(혈관내 약물 주입) 등 보다 효과 측면에서 낫다고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무통분만은 경막외강으로의 접근이 쉽지 않고, 경막 천자가 발생하면 시술 부위의 통증, 두통, 저혈압 등이 생길 수 있어 숙련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에게 시술을 받아야 한다. 광주 수완지구 W더블유여성병원 차진욱 원장은 “분만 중 통증은 만성 요통이나 암성 통증보다 심하다고 통증의학에서는 말하고 있다”며 “건강한 신생아를 위해 이런 통증을 당연하게 생각하여 참지 말고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으면 수월한 분만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현재 광주 수완지구 W더블유여성병원은 광산구 이주민센타의 다문화가정 센터를 직접 방문해 산모들 대상으로 건강한 임신, 출산, 양육과 신생아 모유수유에 대한 올바른 정보 제공하는 교육을 시행하고 있으며 산후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을 위한 웰빙 산후조리원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달은 45억 년 전 지구 내부 핵폭발로 생겨”

    현재까지도 학자들 간의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달의 생성’ 비밀이 서서히 그 베일을 벗고 있다.  최근 네덜란드 VU대학 행성과학자 빔 반 웨스트레넨이 45억 년 지구 내부의 거대한 핵폭발이 일어나 달이 생성됐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영국 과학 전문지 ‘뉴 사이언티스트’ 최신호에 발표했다. 그간 달이 어떻게 생성됐는지에 대한 의문은 오랜 기간 과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대상이 되어왔다. 처음 달의 생성에 대한 ‘비밀’을 들춰낸 것은 찰스 다윈의 아들인 천문학자 조지 다윈(1845~1912)이다. 그는 생성 초기의 지구가 서로 크기가 다른 두 부분으로 쪼개져 달이 만들어 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이와 관련된 다양한 학설이 나왔지만 현재까지 가장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주장이 바로 자이언트 임팩트(Gaint Impact)설이다. 이 이론은 45억 년 전 초기 지구가 거대한 우주암석과 크게 충돌한 뒤 탄생한 것이 달이라는 설이지만 아폴로 우주선이 가져온 월석과 지구의 성분이 비슷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반박을 받아왔다. 웨스트레넨 박사의 주장은 19세기 처음 제기된 분열 이론에 기반을 두고있다. 분열 이론은 지구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달이 되었다는 가설이지만 어떻게 달이 떨어져 나갔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웨스트레넨 박사는 “45억 년 전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보다 무려 400억배에 달하는 지구 내부 코어 폭발이 있었다” 면서 “이 폭발의 여파로 달이 갈라져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같은 폭발이 60년이나 이어져 지금의 달이 생성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 주장 역시 일종의 가설일 뿐이라고 선을 그으며 언젠가 학자들의 다양한 이론들을 합치면 달의 진정한 탄생 기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④한강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④한강

    >>청계천:거꾸로 흐르는 역수(逆水)가 서울 풍수의 핵심 서울은 하천의 도시다. 서울 바닥에는 35개의 하천이 흐른다. 큰 하천은 강(江)이요, 작은 하천은 내(川)다. 한강이 모든 하천의 본류이자 유일한 강이며 나머지 청계천, 중랑천, 홍제천, 불광천, 양재천, 안양천, 탄천, 고덕천, 성내천 등이 한강의 지류인 하천이다. 하천의 발원지는 대부분 북한산, 도봉산, 남산, 관악산이다. 2000년 이전에는 한강을 제외한 34개 하천의 31%가 복개돼 생명을 잃었다. 2005년 10월 청계천 복원을 계기로 19개 하천 복원 계획이 세워져 지금까지 15개의 하천이 되살아났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아직도 절반가량의 하천이 청계고가를 뜯어내고 복개도로의 배 속을 갈랐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누워 있다. 빛과 바람이 끊기면서 광합성 활동이 정지된 지하 세계에 남아 있다. 정도전의 북악주산설(北岳主山說)에 의한 한양 풍수의 핵심은 북악을 주산으로 목멱산(남산)이 내명당(內明堂)을 이루는 혈(穴) 자리에 경복궁을 짓는다는 계획이었다. 도읍 중심부에 개천(청계천)이 흐르고 외명당(外明堂)을 이루는 목멱산과 관악산 사이에 한강이 흐르도록 설계했다. 청계천을 내수(內水), 한강을 외수(外水)라고 불렀다. 서울을 관통하는 두 개의 하천, 한강과 청계천은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본류인 한강은 태백에서 발원해 황해로 흘러가지만 지류인 청계천은 역으로 북악에서 발원해 사대문 중심부를 흐르고서 중랑천을 거쳐 한강으로 빠져나간다. 그래서 청계천을 역수(逆水)라고 한다. 풍수에서 ‘세상만사는 순(順)해야 하나 지리(地理)는 역(逆)해야 한다’는 이치 그대로다. 풍수에 따르면 거꾸로 흐르는 청계천의 역기(逆氣)가 사대문 안을 조선 도읍터로 600년 세월을 버티게 한 ‘힘’이라고 풀이한다. >>한강의 섬과 나루:여의도 등 10여개 크고 작은 섬들 물길 따라… 뚝섬, 잠실(잠실도), 여의도, 난지도가 대표적 하중도(河中島)였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300년 전 강원도를 여행하고 나서 “홍수가 나서 산이 무너지면 한강으로 흘러들어 한강의 깊이가 점점 얕아진다”라고 기록했다. 한강을 따라 흘러들어 온 모래와 흙은 자연 제방과 삼각주 섬을 형성했다. 한강변 지명에 섬 도(島)와 나루 진(津) 자가 많이 들어 있는 이유다. 눈에 보이는 밤섬, 노들섬, 선유도를 하중도의 전부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불과 60년 전만 해도 한강에는 뚝섬, 잠실도, 여의도, 난지도 같은 큰 섬을 비롯해 석도, 부리도, 저자도, 선유도 같은 크고 작은 10여개의 섬들이 그림처럼 떠 있었다. 광나루(광진)부터 뚝섬, 이촌, 노량진, 양화진(합정)까지 은빛 백사장으로 이어져 강(江)수욕을 즐기던 자연 휴양지였다. 뽕나무가 숲을 이룬 잠실은 대대적인 매립공사가 이뤄진 1971년 이전에는 강북 쪽에 근접해 있었다. 지금은 내륙의 인공호가 돼 버린 석촌호수는 한강의 물줄기가 이곳으로 흘렀던 유일한 증거로 남았다. 난지도는 이름처럼 꽃섬이었지만 쓰레기매립장으로 둔갑했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동호대교 아래 저자도는 정선의 그림에 등장하는 경승지였으며 얼음을 채빙하는 벌빙꾼이 살았다. ‘신선이 노닌다’는 선유도는 정수장이 되었다가 공원으로 돌아왔다. 1968년 한강제방과 여의도를 짓는 골재 채취로 파괴된 밤섬은 자연의 치유력으로 기적처럼 되살아나 철새도래지가 됐다. 지금은 서강대교를 머리에 이고 있다. 조선시대 한양은 전국의 재물이 모이는 수운(水運)의 중심지였다. 한강 중 한양을 감싸고 흐르는 강을 경강(京江)이라고 불렀는데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걸쳐 경강상인들이 용산과 마포 그리고 서강 나루를 주름잡았다. 두모포(두무개)와 뚝섬은 땔나무의 집산지였다. 송파나루에는 쌀과 지방 특산품 등이 몰렸다. 고려시대 한강은 사평도(沙平渡) 또는 사리진(沙里津)이라고 불릴 정도로 모래 천지였다. 광나루, 뚝섬, 난지도 등이 퇴적 사면이며 백사장이었다. 한강 나루를 이루는 이촌은 사평리(沙坪里)라고도 불렸고 광나루 둔치는 서울의 마지막 강수욕장이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선거 구호가 난무했던 1959년 대통령 선거 유세장에 20만 인파가 구름 떼처럼 몰린 곳이 한강백사장이었다. 한강제방이 축조되기 전 경원선(지금의 용산~성북 간 전철) 철길 바로 옆 지금의 동부이촌동에서 흑석동까지가 바로 그곳이다. 이때 강물은 흑석동~노량진 언덕에 붙어 가늘게 흐르고 있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10만, 15만명의 인파가 강수욕을 즐겼다. 겨울이면 천연 얼음 스케이트장이 제공됐다. 60년 전 한강 풍경이다. >>3차례 한강 개발:개발독재시대의 비극 3차례의 한강 개발 사업은 한강의 쓰임새와 풍광을 바꿨다. 지도를 다시 그려야 했다. 강변은 콘크리트 호안과 도로가 됐으며 강수욕을 즐기던 모래밭은 매립용 모래로 쓰였다. 한강은 ‘강물’이 주가 아니라 ‘강변’이 주가 되는 이상한 강이 됐다. 손이나 발을 담글 수 없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변했다. 일차적인 원인은 홍수와의 전쟁 때문이었다. 한강 상류에 댐이 없고, 제방이 없던 시절 물난리는 최악의 재앙이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용산, 뚝섬, 광진, 여의도, 잠실, 압구정동, 신사동, 반포, 잠원이 잠겼다. 이때 몽촌토성과 암사동 유적지가 발견됐다. 한강은 자원이 아닌 극복의 대상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한강철교 폭파에서 보았듯이 군사정권은 한강을 피란 시간 확보 대책용으로 여겼다. 1967년 김현옥 서울시장이 급조한 ‘한강 개발 3개년 계획’에 따라 강변을 메워 제방을 쌓았고, 제방 위에 강변도로가 건설되고, 여의도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윤중제가 건설되고, 잠실이 내륙이 됐다. 택지 개발과 도로 건설을 목적으로 한강을 파괴한 것이다. 서울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대비용으로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진행된 ‘한강종합개발계획’에 따라 2개의 수중보(잠실보와 신곡보)와 올림픽대로, 한강둔치공원이 들어섰다. 두 번의 공사를 거친 이후 한강은 본모습을 잃었다. 풍광은 사라졌다. 혹자는 ‘빠질까 봐 겁나는 강’ ‘거대한 콘크리트 호수’라고 깎아내린다. 개발독재시대의 즉흥적인 개발이 빚은 비극이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는 2001년 펴낸 ‘한강의 어제와 오늘’에서 1982년 착공한 한강종합개발사업을 “말끔하게 정리된 한강의 모습이 보기에 좋을지 모르나 자연미의 상실과 함께 한강 본래의 생태계는 엄청난 타격을 받고 말았다.…한강종합개발사업은 한강 자연 하천의 모습을 앗아갔으며 생명 서식지 교란으로 한강 생태계를 크게 바꾸어 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서울 도심 속에서 한강 생태계가 갖는 기능과 역할은 경제 가치로는 평가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하다”라고 기록해 놓았다. 2007년 오세훈 시장이 내건 ‘한강 르네상스’도 구호만 요란했을 뿐 저수 제방 탈피, 호안 콘크리트 철거라는 한강 복원의 핵심에는 손이 미치지 않았다. ‘유람선과 요트가 떠다니는 한강’이라는 서구식 만화경에 매달려 본질에 접근하지 못했다. >>한강 복원:도시고속도로 울타리를 걷어내자 동서로 뻗은 두 개의 도시고속도로가 거대한 철책선처럼 한강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고 있다. 강은 도시와 유리된 채 따로 흐른다. 서울은 남과 북으로 인위적으로 절단됐으며 서울 사람은 강북 사람, 강남 사람으로 나뉘었다. 양쪽은 다리로만 통행한다. 자전거길과 산책길이 부분적으로 열렸지만 강북 사람은 강북 쪽으로, 강남 사람은 강남 쪽에서 다닐 뿐이다. ‘한강의 남북 절단’에서 ‘한반도의 분단’이 떠올려진다. 환경학자들은 두 도로를 일반도로로 바꿔서 건널목과 신호등을 놓아 사람들이 자유롭게 건너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버스전용차선을 놓거나 전차를 놓는 방법도 제시됐다. 한강은 사람들을 위해 심장(잠실)과 내장(여의도)을 아파트 택지로 내놓았다. 두 개의 보(洑)가 목젖과 다리를 각각 누르고 있고, 29개의 한강 다리가 포박하고, 고층 아파트 숲이 태양과 바람을 가로막고 있다. 양팔과 두 발은 올림픽대로와 강변도로가 돼 꼼짝달싹 못하지만 묵묵히 흐를 뿐이다. 이제 한강을 풀어줘야 한다. 한강은 대한민국과 서울을 대표하는 이미지다. 지난해 서울 시민 1000명에게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니 37%가 한강을 꼽았다고 한다. 남산타워(35%)와 경복궁(25%)이 뒤를 이었다. 외국인에게도 ‘한강의 기적’은 한국과 한국의 경제성장을 대표한다. 우리는 60년 전 아름다운 섬과 백사장이 있었던 시절의 한강을 잠시 잊고 있다. 다리 위에서, 배 위에서, 자전거 위에서,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강이 아니라 손발을 담글 수 있는 강이 필요하다. 사람이 자유롭게 다가갈 수 있는 진정한 한강 복원이 이뤄져야 서울 소통, 한민족 통합도 가능하다. 서울이 세계 최고의 관광 휴양 도시로 발돋움하는 건 덤이다. 파괴된 밤섬이 20년 만에 기적처럼 스스로 살아난 것이 그 예언이다. joo@seoul.co.kr
  • [지상파 하이라이트]

    ■다큐 공감(KBS1 밤 10시 50분) 19세기 고흐는 화가들만의 예술을 구축하고자 생산조합을 만들고 싶어 했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정신은 고흐의 이런 생각을 닮았다. 획일화되어 가는 인디가 아닌 음악의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이들. 리어카를 끌고 공연을 하면서도 ‘음악의 다양성이 이 판을 살린다’고 믿는 이들의 아름다운 정신이 담긴 ‘자립음악생산조합’을 만나본다. ■TV소설 은희(KBS2 오전 9시) 행자의 설거지 심부름으로 은행 입금 시간을 놓친 은희에게 백수(최준용)는 불같이 화를 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은희가 늦게 된 이유가 밝혀지고, 금순은 변명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은희의 태도가 마음에 든다. 한편 전보를 치려고 거리로 나섰던 정옥은 생각지도 못한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일일연속극 오로라 공주(MBC 밤 7시 15분) 박지영은 극중 오로라(전소민)에게 뺨 때리는 장면을 앞두고 복수를 계획한다. 왕여옥(임예진)은 사임당을 집으로 초대하고, 나타샤는 여옥을 위해 잠시 집 밖으로 나간다. 윤해기는 촬영 중 이해할 수 없는 연기 요구로 로라를 난감하게 만들고, 로라는 참다 못해 은아에게 하소연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SBS 오후 5시 35분) 태어날 때부터 왼쪽 뇌의 3분의1 이상이 없던 아이. 열 살 아리아나는 선천성 뇌 기형인 분열 뇌증을 앓고 있다. 뇌 기형 탓에 온몸에 강직이 온 것은 물론 먹는 것조차 힘겹기만 하다. 그렇게 앉고 걷는 다른 사람의 평범한 일상이 꿈이자 희망인 아리아나. 엄마는 딸에게 그 희망을 찾아주기 위해 지난 10년을 살아 왔다. ■다큐10+(EBS 밤 11시 15분) 뱀과 거미같이 독을 가진 동물은 인간을 위협하는 해로운 동물로 인식되어 왔다. 그중에는 해롭지 않은 독도 있지만 단 몇 분 만에 생명체를 죽이는 위험한 독도 있어 손쓸 겨를도 없이 사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독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을 살리는 데 쓰이기도 한다. 독의 모든 것에 대해 알아본다. ■가족(OBS 밤 11시 5분) 올해 스물둘의 꿈 많은 청년 도빈 도령.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고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그는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 요리사의 꿈을 안고 대학도 조리학과에 진학했지만 갑자기 찾아온 신병으로 꿈을 접어야 하는 위기를 맞는다. 그는 신 내림을 받지 않으면 가족이 불행해질 것이라는 말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무속인의 삶을 선택한다.
  • 과학은 낭만이었다, 18세기엔

    과학은 낭만이었다, 18세기엔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통찰했다는 아이작 뉴턴(1642~1727)의 일화는 영감과 창조력으로 충만한 천재 과학자의 면모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정작 뉴턴은 생전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스물다섯 살의 뉴턴이 흑사병을 피해 고향에 내려가 있을 때 과수원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는 이 이야기는 뉴턴이 사망한 이후인 18세기 중반에야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애타게 앎을 추구하며 홀로 나무 밑을 지키다 한순간 직관의 섬광이 번득이면서 단번에 깨달음을 터득하는 ‘유레카의 순간’은 18세기에 등장한 낭만주의 과학론을 지배하는 개념이었다. 계몽주의 과학의 표상인 뉴턴을 직관과 계시가 중시되는 낭만주의 세대에 어울리게 포장한 셈이다. 영국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도 뉴턴을 낭만주의 과학의 표상으로 바꿔놓는 데 일조했다. 워즈워스는 케임브리지대 재학 시절 트리니티칼리지의 뜰에 서 있는 뉴턴의 대리석상을 바라보면서 “낯선 생각의 바다를 영원히, 홀로 여행하는 정신의 대리석상이 서 있는 그곳이 보였네”라고 노래했다. 낭만주의와 과학.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개념이 행복하게 결합했던 시대가 있었다. 뉴턴, 후크, 로크, 데카르트가 포진했던 17세기 제1차 과학혁명과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과학 사이에 일어난 제2차 과학혁명의 시기다. 외로운 탐험과 무모한 항해의 정서가 지배하는 낭만주의 과학의 특징에 따라 제임스 쿡 선장이 인데버호를 타고 첫 세계일주 여행을 떠난 1768년부터 찰스 다윈을 태운 비글호가 갈라파고스 제도를 향해 출항한 1831년까지를 전성기로 본다. 영국 학술원 회원이자 전기(傳記) 연구학자인 리처드 홈스는 이 시기를 ‘경이의 시대’로 명명했다. 18세기 낭만주의 시대를 이끈 과학자들을 전기 형식으로 조명한 이 책은 무한한 자연의 비밀을 발견하기 위해 무모하리만큼 뜨거운 열정으로 돌진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들려준다.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낭만주의 과학자는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1738~1822)과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1778~1829)다. 이들은 자기 삶을 바쳐서 과학적 발견을 이루는 것을 이상으로 꼽는 낭만주의 과학자의 전형이었다.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수년간 우주를 관찰해 마침내 천왕성을 발견한 허셜은 ‘외로운 천재가 신비로운 계시의 순간을 추구하는 활동이 과학’이라는 이미지를 키웠다. 오빠인 허셜 곁에서 묵묵히 그의 손발이 되어 준 여성천문학자 캐럴라인 허셜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허셜 오누이의 천체 연구는 우주 속에서 상대적으로 미미한 인간의 존재를 새삼 깨닫게 했고, 존 키츠나 바이런 같은 낭만주의 작가의 세계관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화학자 데이비의 과학적 열정도 이에 못지않다. 지적인 야심이 컸던 데이비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여러 종류의 공기를 흡입해 공기와 인간의 폐 속에서 일어나는 호흡 과정을 분석하다가 일명 ‘웃음 가스’로 알려진 아산화질소의 마취 효과를 발견했고, 이는 훗날 마취 기술로 발전했다. 데이비는 또한 탄광에서 사용되는 안전등을 개발하기도 했다. 천문학과 화학 외에도 낭만주의 시대의 과학은 기상학, 전기학, 지질학, 생리학 등 각 분야에서 백화만발했다. 몽골피에 열기구와 샤를 기구의 발명을 계기로 영국과 프랑스 간 열기구 경쟁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기압과 구름, 바람 등을 연구하는 기상학이 발전했다. 낭만주의 과학이 경이감과 희망만을 전파한 것은 아니다. 공포감도 그에 따라 커졌다. 인간 생명의 본성을 둘러싼 생기론(生氣論) 논쟁은 메리 셸리(1797~1851)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혹은 근대의 프로메테우스’의 배경이 됐다. 전기와 유사한 생기를 써서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다는 극단적인 생각이 탄생시킨 괴물은 180년이 넘도록 소설과 영화로 변주되고 있다. 사실 책의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여행가이자 모험가, 식물학자였던 조지프 뱅크스(1743~1820)다. 그는 인데버호 탐험대의 일원으로 타이티를 다녀온 뒤 서른다섯 살에 영국 왕립학회장에 선출됐으며, 이후 40년간 재임하면서 허셜과 데이비를 비롯한 수많은 낭만주의 과학자들을 후원했다. 책은 뱅크스의 인데버호 탐험에서 시작해 그의 사망 이후 등장한 젊은 과학자들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낭만주의 과학자의 노력과 열정, 창조성을 촘촘히 기록한 이 책을 읽고 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경이의 시대’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새삼 돌아보게 된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이제는 농업이다/ 이춘규 정치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이제는 농업이다/ 이춘규 정치부 선임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뒤 농업, 농촌, 농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취임 초기 국무회의에서 “불합리한 농산물 유통구조가 농·수·축산인의 ‘손톱 밑 가시’라고 할 수 있다”면서 “관련 부처들과 긴밀히 협조해 이 고통을 해결해 달라”고 지시하는 등 농업문제에 높은 관심을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도 농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국회에서 농산물 유통비용 절감을 위한 토론회 등이 자주 개최된다. 귀농·귀촌이 중장년 퇴직자들의 일자리 대안으로 주목받으면서 귀농·귀촌 관련 토론회도 열린다. 지난 7일 새누리당 이운룡 의원 주최로 ‘한국 농어촌의 미래, 귀농·귀촌에서 답을 찾다’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 축사 때 최규성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 등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사이먼 쿠즈네츠가 “농업, 농촌의 발전 없이 중진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것은 어렵다”고 한 말을 상기시켰다. 쿠즈네츠는 후진국이 공업화를 이루어 중진국에 도달할 수는 있으나 식량자급 없이는 선진국이 되기 어렵다고 일갈하며 농업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촉구했다. 실제 선진국들은 식량자급률이 칼로리 베이스로 2009년 기준 미국은 130%, 캐나다 223%, 프랑스 121%, 독일 93% 등으로 높다(일본 농림수산성 홈페이지). 같은 해 일본은 자급률이 40%에 그쳐 진정한 선진국이 아니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우리나라도 저조한 식량자급률이 지적되지만 개선은커녕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식량자급률은 기준에 따라 차이가 크긴 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식량자급률은 45.1%, 곡물자급률(사료용 포함)은 22.8%로 각각 전년의 45.3%와 24.3%보다 떨어졌다. 경고등이 켜졌지만 국민·당국 모두 태평하다. 각성해야 한다. 지금까지 국가자원 투입 우선순위는 산업화였지만 이제 농업에도 투입해야 할 때다.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은 비교우위에서 밀리는 식량은 수입이 유익하다는 자유무역론자의 주장에 따라 19세기 말 식량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 때 밀 자급률이 19%까지 떨어진 데다 독일의 해상봉쇄까지 겹쳐 식량난에 시달리자 뒤늦게 농업의 중요성을 절감, 농업투자를 확대했다. 1980년대에야 겨우 곡물 수출국이 됐다. 식량안보 확보는 중요하다. 기후변화와 함께 세계적인 곡물 파동 주기가 짧아졌다. 일찍이 중국 최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1711~1799)는 63년간 통치할 때 인구가 1억명을 넘어서며 식량 수요가 급격히 늘자 국내 식량유통 시장을 양성하고, 나라 밖 식량 수입은 장려했다. 수출은 철저하게 금지해 식량안보체제를 구축할 정도였다. 평시에는 식량공급의 안정성만 확보하면 된다는 비교우위론에 입각해 식량을 수입해 먹으면 경제적일 수 있다. 그런데 식량위기는 상시화되고, 미래전은 식량전쟁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제라도 농업, 농촌, 농민과 식량자급에 관심을 높여야 한다. 빌 게이츠가 말했듯이 농업혁명이 필요한 때다. 이제는 농업이다. taein@seoul.co.kr
  • 희귀 고래, 캐나다 앞바다서 60년만에 목격

    희귀 고래, 캐나다 앞바다서 60년만에 목격

    고래 중에서도 가장 멸종이 우려되는 참고래가 최근 캐나다 서부 앞바다에서 60년 만에 목격됐다고 20일(이하 현지시간) 캐나다 공영 CBC가 보도했다. 캐나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 9일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하이다과이 해안에 나타난 북태평양참고래를 생물학자들이 확인했다. 이 고래를 처음 목격한 제임스 필킹턴은 “처음에 지역에서 흔히 발견되는 혹등고래로 생각했지만, 쌍안경을 통해 다시 본 뒤 참고래임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참고래는 머리 부분에 따개비류가 기생해 혹이 난 것처럼 보이는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몸길이는 최대 18m, 무게는 최대 91톤이나 된다. 또한 참고래는 지방이 풍부해 죽은 뒤에도 해면에 떠오르기 때문에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완벽한 포경의 대상으로 무분별하게 남획됐다. 사진=CBC 캡처(캐나다 해양수산부)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21일 TV 하이라이트]

    ■소비자 리포트(KBS1 밤 7시 30분) 여름철 공공의 적 모기부터 최근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살인 진드기까지. 대한민국은 지금 벌레와의 전쟁 중이다. 이렇듯 각종 벌레가 출몰하고 야외 활동이 증가하는 여름이면 판매량이 급증하는 살충제, 과연 인체에는 안전할까. 반신반의했던 살충제의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진다. ■VJ 특공대(KBS2 밤 10시) 족발이 생각날 때 꼭 찾는 공덕동 족발 골목. 그날그날 족발을 수시로 삶아내 냄새도 적고 따끈한 족발을 맛볼 수 있다. 골뱅이를 먹을지 족발을 먹을지 더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이름마저 독특한 야식 메뉴 족뱅이(족발·골뱅이)부터 파 듬뿍 올린 파족(파·족발)에 여름 별미인 냉채 족발까지 다양한 족발을 소개한다. ■나 혼자 산다(MBC 밤 10시 40분) ‘무지개’ 회원들이 제1회 워크숍을 개최한다. ‘혼자남’들은 오늘 모든 것을 함께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이 돼가는 이들은 특별한 손님 김광민 교수와 숲 속의 작은 음악회를 개최한다. 또 다른 손님인 철학계의 아이돌 강신주 박사에게 돌직구 철학 강의를 듣기도 하며 심신 단련 시간을 갖는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5시 35분) 하루에도 몇 번씩 말없이 바지에 배변하는 건우의 문제를 다룬다. 바지를 입고 있을 때는 ‘응가’라는 말을 못 하는 건우가 하의를 벗겨두면 혼자서 소변기에 볼일을 보고 뒤처리까지 한다. 게다가 돌 때부터 시작된 가슴에 대한 집착이 최근 더욱 심해져 시도 때도 없이 온 가족의 가슴을 만지는 행동을 보인다. ■사일런트 웨딩(EBS 밤 11시 15분)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을 영상에 담아서 방송국에 파는 ‘파라 미디어’ 직원들이 루마니아의 작은 마을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들이 공산주의자들이 공장을 지었던 부지에 들어서는 순간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직원들의 재촉에 마을 노인이 옛 기억을 되짚기 시작한다. ■와호장룡(KBS1 밤 12시) 19세기 혼란기의 중국. 당대 최고의 문파인 무당파의 마지막 무사 이모백(주윤발)은 뛰어난 무공을 소유한유수련(양자경)과의 평생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이모백은 사부가 벽안호에게 목숨을 잃자 강호를 떠날 결심을 하고 선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보검 청명검을 경성의 호족인 철왕야에게 바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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