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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SA “인간DNA를 우주로 보내 新문명 만들 수 있다”

    NASA “인간DNA를 우주로 보내 新문명 만들 수 있다”

    19세기에 유행했던 이론 중에 ‘판스페르미아(panspermia)설’이라는 것이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본래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명은 무기물에서 진화된 것이 아닌 머나먼 우주 공간에서 날아온 특정 박테리아 포자에서 발전된 것이라는 이론이다. 해당 이론을 추종하는 일부 전문가는 이 박테리아 포자가 운석이나 혜성에 심어져있다 지구에 충돌되면서 자연스럽게 퍼졌다는 설득력 있는 가설을 펴기도 한다. 지난 2012년 개봉된 영화 프로메테우스에도 비슷한 소재가 나오는데 이렇듯 공상과학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해당 이론은 언뜻 보기에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인류의 기원을 추정해보는 다양한 진화 이론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론을 뒤집어 인간DNA를 우주로 보내면 다른 외계행성에 신인류 문명을 건설할 수도 있지 않을까? 최근 미 항공 우주국(NASA), 하버드 대학 연구에 따르면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지난 5월, 스미소니언 매거진 주최로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The Future is Here Festival’에 참석한 NASA 공학자 아담 셀츠너는 한 가지 흥미로운 의견을 밝혔다. 인간 유전정보가 담긴 DNA 유전체를 우주선에 실어 머나먼 우주 공간에 보내면 또 하나의 인류문명이 외계 행성에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 흔히 우주탐사라 하면 우주복을 입은 우주인들이 작은 우주 캡슐에 몸을 둔 채 무중력 공간을 떠도는 것이라 생각해온 기존 상식과 비교하면 다소 과격한 발언이지만 아주 허황된 것은 아니다. 그에 따르면, 앞으로 우주탐사의 중요성은 계속 높아질 것이고 지구를 포기하고 다른 행성을 개척해야할 필요성이 생길 텐데 현 인류가 직접 적게는 수십 광년, 많게는 수만 광년에 달하는 우주공간을 여행한다는 것은 미래 과학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실현되기 힘들다. 반면, 인류의 씨앗이라 봐도 무리 없는 ‘게놈(한 생물이 가지는 모든 유전 정보)’ 캡슐을 우주선에 실어 떠나보내면 어느 시기 특정 행성에 이 DNA 정보가 뿌리내릴 수 있고 신인류의 새로운 지구 문명이 탄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해당 이론이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본래 이 이론은 하버드 메디컬 스쿨 생물학자 게리 루브쿤, 조지 처치 박사에 의해 제기됐는데 그들은 이 유전체가 외계 행성에 도달하면 해당 토양환경에 따라 유전정보가 재조립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12년 4월, 일본 교토 산업 대학 연구진은 해당 이론을 ‘역 판스페르미아(reverse panspermia)’설이라 지칭하며 관심을 표한 바 있다. 지구 황폐화 혹은 태양의 죽음이 가까워지면 어쩔 수 없이 외계로 나아가야 되는 것이 인류가 처한 현실이다. 어찌 보면 잠재적으로 인류 역시 우주를 방랑하는 외계인이 될 팔자를 타고났다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우주에서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통로, 즉 ‘웜 홀’을 이용해 수백만 광년 떨어진 항성 간 비행을 시도한다는 이론도 있지만 이는 현재 수학적으로만 가능하다. 이에 물리적, 시간적 장벽에 구애받지 않는 인간DNA를 우주로 보내 신문명을 개척한다는 계획은 웜 홀을 통한 항성 간 이동보다는 훨씬 구체적이고 가능성이 높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현재 이를 맹신하는 것은 무리며 더욱 정확하고 구체적인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한번 쯤 고찰해볼만 한 필요는 분명 있다. 유사한 소재로 오는 11월 개봉예정인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의 포스터에는 한 가지 생각해볼만한 문구가 적혀있다. “인류는 지구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반드시 인류가 지구에서 끝을 맞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Mankind was born on earth. It was never meant to die here.)” 사진=NASA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이태동 鐘樓에서] 세월호 사건과 미디어 권력의 빛과 그늘

    [이태동 鐘樓에서] 세월호 사건과 미디어 권력의 빛과 그늘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밝히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담론이다. 이미 19세기의 토머스 칼라일은 언론을 입법, 사법, 행정에 이어 제4권력이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했고, 20세기의 언론학자 마셜 맥루한은 텔레비전의 거대한 위력을 보고 “미디어가 메시지다”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의 권력은 언제나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함께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도덕적 정당성을 잃게 되면 그것은 사회 발전을 위한 동력이 되지 못하고 무서운 폭력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제4의 권력’이라고 말하는 언론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시카고 대학의 유명한 영문학자이자 언론학자인 웨인 부스는 ‘저널리즘에 있어서의 사실과 가치’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언론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담론이지만, 고급한 정론지(혹은 건강한 공정방송)의 길을 걷지 못하고 상업주의를 추구하는 저급한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지게 되면, 그것이 지닌 가치와 사회적인 기능을 상실하게 됨은 물론 오히려 사회에 큰 손상을 입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고는 최근 우리나라의 언론이 세월호 침몰 사건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현실로 드러났다. 뉴스의 가치는 신속·정확함에 있다고 하지만, 거의 모든 방송사들이 너무나 성급하게 끝을 보겠다는 자세로 24시간 계속해서 참사 현장을 여과 없이 카메라로 비쳐 국민들을 지치고 피곤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MBN과 JTBC는 정부를 불신하고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겠다는 것처럼 오만한 자세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보도해서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었고, 자학(自虐)에 빠질 정도로 집단적인 외상(外傷)을 입혔다. 이러한 일부 방송사들이 보인 무절제한 태도에 말 없는 다수의 국민들은 적지 않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세월호의 비극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참사다. 그러나 그것에 우리나라 전체가 완전히 침몰되어 있을 수는 없다. ‘태양은 다시 떠오르기’ 때문에 블레이크의 말처럼 ‘뼈가 묻힌 무덤이라도 달구지는 몰아야’ 한다. 수장(水葬)을 한 304명이나 되는 후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도 살아남은 자들은 쓰러져 있지 않고 일어나야만 아이들을 잃은 유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그들의 슬픔을 위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인문학적인 담론을 얘기한다면, 비록 방송인들은 뉴스는 신속해야 하고 보도의 대상이 되는 사실과 가치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겠지만, 이러한 생각은 시대착오적인 낡은 것이다. 화이트헤드와 폴라니 등과 같은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우주에는 사실과 가치가 분리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방송사들이 세월호 참상에 대해 나라를 뒤흔들어 놓을 정도의 절제력 잃은 충격적인 보도를 함으로써 국민들을 실망시킨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너무나 많이 난립한 방송사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 문제로 인한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질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방송기자들이 시청자들에 대해 언제나 일방적인 통로로 담론을 전개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주장만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착시현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자는 권력이 강해지면 아이러니하게 자칫 그것의 힘에 지배되거나 압도되어 인간성을 잃어버린 불손한 얼굴로 나타날 수 있다. 윌리엄 피트는 “무제한의 권력은 지배자를 타락시킨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대중의 의식 세계를 지배하는 제4의 권력을 행사하는 언론사들이 KBS처럼 겸손의 미학과 인간에 대한 예의는 물론 동료 간의 신뢰마저 버리고 진영 논리로 진흙탕 싸움을 하게 되면, 그 존재 가치를 스스로 상실하게 될 것이다. 뒤늦게나마 최근 언론인 5623명이 세월호 보도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시국선언을 하며 언론의 사명을 되새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 “일제 때 韓학생이 준 책 70여권 한국과 인연 만든 제 보물 됐죠”

    “일제 때 韓학생이 준 책 70여권 한국과 인연 만든 제 보물 됐죠”

    “이곳에 제 보물들이 있습니다.” 30일 일본의 사립 명문 와세다대. 이곳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호테이 도시히로 국제교양학부 교수는 이렇게 말하며 도서관 지하로 향했다. 학생들의 발길이 뜸한 지하 한편에는 와세다대와 한국의 오랜 인연을 실감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후반부터 해방 직후까지 와세다대로 유학을 온 한국 유학생들이 귀국하기 전 기증한 70여권의 서적이 보관돼 있었다. 보관된 책 중에는 월북작가 김남천의 ‘사랑의 수족관’, 박태원의 ‘여인성장’, ‘천변풍경’ 등 당시 인기 있었던 순문학이 눈길을 끌었다.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에 인쇄된 판본들이 대부분이라 당시의 표지 디자인 등 문학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이 외에도 ‘이조시대의 가요 연구’, ‘장막 희곡집 쪽제비·개성문제’ 등 문학 전공자들이 기증한 것으로 보이는 전공 서적들도 다수 있다. 조선 근현대문학 전공인 호테이 교수는 “당시에는 황민화 정책으로 인해 한국에서 한글로 된 책을 읽는 것이 어려웠으며 어차피 갖고 돌아가도 압수당하느니 대학 도서관에 기증하자는 유학생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국인 유학생들의 와세다 사랑은 물론이고 기증본을 소중하게 간직해 온 와세다대학 도서관 측의 노력도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컬렉션”이라고 덧붙였다. 와세다대에는 이 외에도 1만 4000권의 한글 자료가 갖춰져 있다. 와세다대는 19세기 말부터 한국의 각계 인사들이 유학하는 등 한국과 인연이 깊다. 지금도 5만 8000여명의 재학생 중 한국인 유학생이 1014명(2013년 11월 현재)으로,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유학생이 있다. 이러한 가운데 호테이 교수를 비롯한 이종원, 이성시 교수가 일본 내에서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에 대한 깊이 있는 시각과 균형 감각을 갖춘 연구자와 오피니언 리더를 육성하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10월에는 한국학연구소를 개설하기도 했다. 호테이 교수는 “와세다대의 규모나 한국과의 역사를 생각하면 대학 안에 한국학과나 조선학과가 있어야 하지만 아직 없을뿐더러 전임교수 수도 적다. 한국학연구소를 통해 와세다대 학생들에게 한국에 대해 조금 더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글 사진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닫힌 교육현장 돌파구는?… ‘진짜 세상’ 향한 실험

    닫힌 교육현장 돌파구는?… ‘진짜 세상’ 향한 실험

    KBS 1TV의 ‘파노라마’는 30일 밤 9시 40분 ‘21세기 교육혁명, 미래교실을 찾아서-진짜 세상을 향한 교실’)을 방영한다. ‘거꾸로교실의 마법’(3월)과 ‘가르침시대의 종말’(4월)을 잇는 교육 시리즈다. 프로그램은 교육 현장의 관심과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민 상담을 한 듯 후련하다”는 교사들의 시청 소감은 요즘 교실은 교사에게도 꽉 막혀 있는 공간이라는 방증이다. 제작진은 세계의 교육혁신 전문가들을 차례대로 만났다. 이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전 세계 교육현장에서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의 근원은 19세기의 공교육제도. 현재까지 이 같은 시스템이 이어지면서 학교 교육이 ‘진짜 세상’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수가타 미트라 영국 뉴캐슬대 교수는 “지금의 교육시스템은 19세기 사람들에겐 완벽한 것이었지만 우리는 더 이상 그런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고 못 박았다. 미국의 교육혁신 단체 대표인 트래비스 앨런도 “고등학생 때 느꼈던 가장 큰 좌절감은 배우는 것이 재미없고 도전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답답한 교육현실에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제작진은 한 학기 동안 아이들과 진행한 ‘거꾸로교실’ 실험과 심화 인터뷰를 교사들에게 보여주었다. 교사들은 크게 놀랐다. 실험의 영향이 단순히 특정 과목의 수업 태도 변화나 성적 향상에 그치지 않고, 친구들과의 관계, 소통 및 문제해결 능력, 창의력 등 곳곳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학생의 활발한 참여와 상상력의 확장을 보장하는 거꾸로교실 실험은 과연 교육혁명의 열쇠가 될 수 있을까.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정확성↑ 오발위험↓…소총 뺨치는 권총 ‘루거 블랙호크’

    정확성↑ 오발위험↓…소총 뺨치는 권총 ‘루거 블랙호크’

    베레타, 글록과 같은 각진 자동권총이 아닌 둥그런 외형에 드르륵 회전하는 약실이 인상적인 ‘리볼버(Revolver)’는 흔히 영화 황야의 무법자와 과거 미국 서부 총잡이를 연상시키는 유서 깊은 총기류다. ‘회전식 연발 권총’인 리볼버가 첫 등장한 것은 19세기 초반으로, 당시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것은 바로 이름 높은 ‘콜트 리볼버’다. 이후 20세기에 자동권총이 등장하면서 왕좌를 내줬지만 여전히 매력을 품고 있는 총기류인 것은 분명하다. 미국 무기전문매체 건뉴스닷컴의 20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현재 리볼버 종류 중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바로 ‘루거 블랙호크’ 모델이다. UH-60A 헬기의 기종 명이자 미국 인디어 사우크족 추장의 이름이기도 한 ‘블랙 호크’란 명칭처럼, 이 리볼버는 검은 색 금속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쫙 빼입은 위엄 있는 외형으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베럴 길이 7.5인치, 총길이는 13.38인치에 무게 약 1.3㎏인 루거 블랙호크 리볼버는 특이하게도 권총이면서 소총용 탄환인 ‘카빈30탄’을 사용하는 무지막지함을 자랑한다. 긴 총열이 보장하는 정확한 조준성에 장전 상태로 발사하지 않고 수개월이 흘러도 줄지 않는 스프링 압력은 언제 어느 때나 최상 상태의 총알을 발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여기에 보기에도 묵직한 방아쇠 장치는 오발 위험으로 사용자를 위험에 빠트릴 확률을 ‘0’에 가깝게 만들어주며 방아쇠만 당기면 바로 재장전이 돼 자동권총에서 흔히 발견되는 불안정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한 번에 많은 탄환을 보유할 수 없다는 점이 단점이기는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상쇄하는 한 방의 묵직함이 ‘루거 블랙호크’, 나아가 리볼버 권총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원동력일 것이다. 사진=Gunnews.com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엷고 흐릿한 몽환 빛·공기·물에 투영된 현대 중국인의 삶

    엷고 흐릿한 몽환 빛·공기·물에 투영된 현대 중국인의 삶

    “노장사상이 근간을 이루죠. 흐릿하게 버무린 빛과 공기, 물의 몽환적 모습은 선인(仙人)들의 수행과 잇닿아 있어요.” 지난해 말 상하이 모간산루 예술특구(M50)에 갤러리를 내고 중국 미술시장 공략에 나선 우찬규 학고재갤러리 대표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중국 ‘신 수묵화’의 선구자인 톈리밍(58)을 옆에 두고서다. 그는 “(상업갤러리에서 여는 전시이지만) 이번에는 단 한 점도 판매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 현대 수묵화의 경향을 한눈에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마치 빛바랜 오랜 사진처럼 엷고 흐릿한 형상, 안개 너머의 희미한 이상향을 그린 듯한 그림들은 답답함을 가져오기보다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불러온다. 전시 제목도 ‘햇빛, 공기, 물’이다. 생명을 영위하게 하는 이 세 가지 요소는 햇살과 어울려 살아가는 소박한 농촌 사람들의 모습을 맑고 투명하게 전한다. 이 중 작가는 물에 방점을 찍었다. “물은 모든 것을 포용하니 차가운 현대 도시문명조차 중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시골처녀’, ‘도시’, ‘수영’, ‘화조’ 등 6개의 대표 연작 33점을 내놓은 톈리밍의 국내 첫 수묵화전은 다음 달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이어진다.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서 저우스춘 등 대가들로부터 인물화를 배운 톈리밍은 1988년 ‘신 문인화’전에 참여하면서 ‘신 수묵화’의 선구자로 떠올랐다. 작품 ‘물 위의 햇빛’처럼 19세기 인상주의 회화를 떠올리게 하는 빛의 느낌은 그림에 내재된 현대적 요소라 할 수 있다. 톈리밍은 사람과 주변을 나누는 경계를 없애 전통 안료의 잔잔한 색상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인지난 중앙미술학원 인문학원장은 전시 서문에서 “그의 예술은 구상이며 동시에 사의적”이라면서 “빛과 색에 대한 예민함과 세심함이 마치 먹을 사용하듯 색을 사용하는 고대 몰골법(윤곽선 없는 표현)의 심오한 전통을 부활시켰다”고 말했다. 안후이성 허페이시 출신인 작가는 고향의 모습을 그대로 화폭으로 옮겼다. “현대 생활에서 받는 피로를 힐링하도록 그림을 이상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선녀 같은 두 소녀가 맑은 계곡에 비스듬히 누워 발을 담근 ‘산야’나 고요하고 움푹한 땅이 뭇 산들의 나무에 기대어 샘물을 빨아들이는 ‘샘’ 등이다. ‘도시인’, ‘도시의 소리’, ‘자동차 시대’ 등 갑갑한 도시의 모습을 담은 그림마저 서정적이며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는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야말로 가장 큰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중앙미술학원, 국가화원, 예술연구원 등에서 30년 가까이 후학을 가르쳐 온 그는 “서양화나 전통화 모두 기본이 중요한 만큼 내 수업에선 ‘명작’을 베끼는 일부터 시킨다”면서 “어려서부터 (예술과의) 교감이나 시선이 중요한데 한국 유학생들은 이 점에서 재능이 있으며, 열심히 노력도 한다”고 말했다. 톈리밍의 이번 전시는 2000년대 중반 국내 미술시장에서 거품을 일으키다 쇠퇴했던 중국 작가들의 재등장을 뜻하는 신호탄일까. 지난해부터 펑정지에 등 중국 작가들의 국내 전시가 잇따르면서 이런 흐름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갤러리 측은 문화 교류의 성격이 짙다고 설명했다. 국내에 중국 수묵화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는 가운데 시장 창출보다는 소개에 무게중심을 뒀다는 것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씨줄날줄] 설화(舌禍)/정기홍 논설위원

    위·촉·오의 삼국시대 때 위나라의 기틀을 다진 조조는 언제나 암살당할 걱정을 지니고 살았다. 급기야 ‘자신은 꿈을 꾸다가 사람을 죽이는 버릇이 있다’는 꾀를 낸다. 조조가 낮잠을 자던 어느 날, 시종이 이불이 흘러내린 것을 보고 다가섰다가 죽임을 당한다. 조조는 “나의 실수였다”며 통곡을 했지만 조조의 모사(謀士) 양수는 이를 간파한 뒤 발설해 미움을 사게 된다. 재능이 특출한 양수가 ‘입방정’으로 조조의 눈 밖에 난 사례는 말의 중요함을 논할 때 더러 인용된다. 양수의 ‘말 실수’는 이 말고도 더 있다. 조조가 진상품으로 들어온 양의 가공 젖을 한 모금 맛본 뒤 단지 뚜껑에 ‘일합’(一合)이라 써놓고 자리를 떴다. 이를 본 양수는 “일합(一合)은 일인일구(一人一口·한 사람에 한 입)이니 갈라 먹으라는 승상의 뜻”이라며 한 숟가락씩을 나눠 먹었다. 조조는 겉으로 웃어 넘겼지만 속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은 불문가지다. 양수는 결국 ‘계륵’(鷄肋·닭의 갈비) 사건이 빌미가 돼 참수된다. 덕이 부족한 탓에 조조가 자기를 시기하는 줄을 몰랐던 것이다. 삼국지연의에는 ‘총명한 양수여, 입을 열면 사방이 놀랐고, 영웅들의 으뜸이 됐네…. 참수를 당한 것은 재주 때문’이라 적고 있다. 역사가들은 그를 재능만 믿고 말을 떠벌리다가 주군의 손에 죽는 불우한 천재로 묘사한다. 비슷한 설화 사례는 자고이래로 많다. 19세기 초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즉위 날에 시위를 일으킨 주동자 콘드라티 릴레예프는 사형대 밧줄에 목이 매였으나 줄이 끊어지면서 살았다. 그는 “러시아는 밧줄 하나 못 만든다”며 조롱하다가 다시 형장에 선 채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교수형 집행 과정에서 살아난 사람은 ‘하늘의 뜻’이라며 살려주는 게 관례였다. 18대 대선 때 정동영 후보의 ‘노인 비하’사례도 있고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는 철없는 10대 아들의 ‘미개한 국민’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다. 일본 총선 때에는 아소 다로 자민당 후보가 ‘돈 없으면 결혼도 하지 마라’고 말해 50년을 이어온 자민당이 민주당에 정권을 내준 적도 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이 최근 비공식 자리에서 ‘세월호 민간잠수사의 일당’을 언급해 구설에 오르고 있다. 그는 “시신을 빨리 수습하려면 구조활동비를 올려야 한다는 취지의 개인적인 말”이라고 해명했지만 잘못된 말이다. 그의 ‘말실수’는 처음이 아니다.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했다지만 ‘장관의 라면 계란’ 등의 실언이 잇따랐다. 청와대 ‘입’의 감각 문제다. ‘입은 화를 불러들이는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라는 말이 있다. 양수의 잦은 나섬과 말실수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지구촌 책세상] ‘마거릿 풀러:뉴 아메리칸 라이프’

    [지구촌 책세상] ‘마거릿 풀러:뉴 아메리칸 라이프’

    사라 마거릿 풀러(1810~1850).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에 40년만 살다간 불꽃 같은 인생이었지만 미국의 진보적인 여성 교육자이자 언론인, 그리고 초월주의 운동을 바탕으로 한 여성인권 운동가로 강렬한 족적을 남겼다. 특히 그의 대표 저서 ‘19세기 여성’은 미 최초의 의미 있는 페미니즘 작품으로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다. ‘피바디 자매들’ 등을 쓴 저명한 전기 작가이자 에머슨대 교수인 매간 마샬의 작품 ‘마거릿 풀러: 뉴 아메리칸 라이프’를 만난 것은, 책 한 권 제대로 읽을 시간이 없는 워싱턴 특파원으로서 누린 작은 기쁨이자 사치스러운 경험이었다. 어렴풋이 이름만 알고 있었던 그의 전기를 접하게 된 것은 퓰리처상 선정위원회가 지난달 14일 전기 부문 수상작으로 이 책을 선정했기 때문이다. 퓰리처상 덕분에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풀러의 인생은 여성으로서, 언론인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다. ‘뉴 아메리칸 라이프’라는 소제목과, 검은색 긴 치마와 대조되는 빨간 머플러를 한 손에 펄럭이며 어디론가 가고 있는 책 표지에서도 그의 남다른 삶을 엿볼 수 있다.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서 태어난 풀러는 변호사이자 정치인인 아버지 덕분에 지성의 세계에 일찍 눈을 뜨면서 교사가 되고, 특히 여성의 교육 기회와 취업할 권리 등 여성인권 문제 운동가로 나서게 된다. 1840년에는 초월주의 저널인 ‘더다이얼’의 첫 여성 편집장이 되고, 4년 뒤 뉴욕으로 무대를 옮겨 ‘뉴욕트리뷴’에서 활동하게 된다. 1845년 ‘19세기 여성’을 펴낸 뒤 1년 후 첫 여성 유럽 특파원으로 임명돼 이탈리아 로마로 향한다. 1840년대 이탈리아 혁명 등 혼돈의 시기를 겪으면서 풀러는 개인적으로도 격동의 순간을 맞게 된다. 1848년 연하인 이탈리아 경호원 지오바니 오솔리와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들까지 낳게 된 것이다. 이미 ‘피바디 자매들’을 통해 로맨티시즘의 진수를 보여줬던 작가 마샬은 풀러와 오솔리의 운명적인 로맨스를 직감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들 세 가족은 1850년 뉴욕으로 함께 이동하던 중 타고 있던 선박이 뒤집히면서 한꺼번에 목숨을 잃고 만다. 풀러의 운명은 그의 마흔 번째 생일이 막 지난 어느 날 이렇게 끝나 버렸다. 이 책의 퓰리처상 수상 소식에 평론가들은 “풀러의 삶을 가장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쓴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사회 모순에 맞선 한국의 대중 그들은 누구인가

    사회 모순에 맞선 한국의 대중 그들은 누구인가

    대중의 계보학/김성일 지음/이매진/352쪽/2만원 스페인 철학자 오르테가 이가세트는 대중이 장악한 권력을 정치적 진보가 아닌 문명 퇴보로 판단하고, 이들의 움직임을 반란(Revolt)이라고 했다. ‘집단지성’의 저자인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레비는 대중의 양상을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에서 ‘우리는 생각한다’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확실한 것은, 대중의 움직임은 오늘의 현상이라는 점이다. “고지식한 지식인과 부패한 정치인, 그리고 무능력한 공무원과 신자유주의 후광으로 기세등등한 자본가”들이 맺은 동맹과 정면 충돌한 대중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하게 드러난다. 이 같은 물살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시민교육을 강의하는 김성일씨는 신간 ‘대중의 계보학’에서 지난 100여년 동안 한국에서 형성된 대중의 지층을 촘촘히 살핀다. 자신의 박사 논문 가운데 이론적 배경을 살리고 나머지를 재구성했다. 저자는 2002년을 한국에 ‘새로운 대중’이 출현한 시기로 본다. 무질서와 폭력, 마비된 이성으로 규정된 대중이 자율적인 질서와 규범을 만들며 집단행동을 실천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들끓던 2008년은 대중의 결집이 정점에 달한 시점이다. ‘이전 대중’의 시초는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발견한다. 근대식 학교가 들어서고 출판 사업이 발전하면서 지식의 주체가 된 ‘근대적 대중’이 형성됐다. 그 한 축인 모던보이와 모던걸은 절실한 미래보다는 자유분방하고 유행을 좇는 소비의 주체였다. 또 다른 축은 민권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 저항의 주체로서 동학농민전쟁, 만민공동회, 3·1운동, 사회주의운동 등을 이끌었다. 1960년대 들어 경제근대화와 도시화가 추진되면서 대중의 의미는 달라졌다. 국가가 주도한 경제개발과 반공이데올로기 속에 대중은 ‘산업역군’과 ‘반공주의자’로 호명됐다.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바닥에 깐 이 말은, 박정희 정권의 취약한 정당성에 대한 의심과 저항을 무마하기 좋은 수단이 됐다. 1980년대 들어서 비참한 노동 현실을 공론화한 노동자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중 운동이 구축되고 폭발했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권의 폭력성을 체감하고,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중이 국가권력에 맞선 저항 주체로 나섰다. 책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자리 잡은 신자유주의 속에서 자기계발의 주체가 된 대중부터 인터넷이 확산된 뒤 새로운 저항 세력으로 떠오른 디지털 신인류까지 변화상을 차근차근 따지면서 촛불집회에 다다른다. 2002년 벽두에 터진 ‘오노 사건’(김동성의 금메달 박탈 사건)은 사이버 공간을 반미의 공간으로 채우면서 사회적 결속을 다지고, 월드컵 길거리 응원전은 축제처럼 결집을 형성했다. 그해 미선이 효순이 촛불집회는 길거리 응원전의 정치적 승화로 평가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서 계급·계층·세대·성별을 초월한 대중은 하향식 계몽과 지도가 아닌 상향식의 자발적인 참여로 변화했다. 그러나 한편 대중의 진화는 맹목적 애국주의와 왜곡된 포퓰리즘이라는 “모순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다. 저자는 “대규모 대중 결집은 한국 사회의 모순과 억압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연구해야 하는 주제”라면서 “대중 연구는 지금 여기 대중의 삶을 짓누르는 부당한 권력과 자본에 맞서는 정치적 기획”이라는 의미를 강조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지난 100여년간 한국 대중운동의 흐름을 분석한 ‘대중의 계보학’에서 저자는 2002년을 ‘새로운 대중’이 출현한 때로 봤다. 그해 월드컵 길거리 응원전(왼쪽)에서 축제를 열듯 결집한 대중은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오른쪽)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 반대 등 의제를 설정하며 대중운동을 발전시켜 나갔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 청나라 문인이 달아준 비평에… 박제가는 감격했네

    청나라 문인이 달아준 비평에… 박제가는 감격했네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정민 지음/문학동네/720쪽/3만 8000원 지난해 2월 27일 낮 12시 미국 하버드대 옌칭도서관 세미나실에서 한문학자 정민(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조촐한 연구발표회를 가졌다. 그가 방문교수로 와서 지난 6개월간 발굴한 ‘하버드 옌칭도서관의 후지쓰카 컬렉션’에 대해서였다. 제임스 청 옌칭도서관장과 사서 등 도서관 관계자들과 한국학, 일본학, 중국학 연구자 등 세미나실에 모인 사람들 중 후지쓰카가 누군인지 아는 이는 없었다. 후지쓰카 지카시(1879~1948)는 훗날 국보 180호가 된 추사의 세한도(歲寒圖)를 소장하다 태평양전쟁 끝 무렵 서예가 소전 손재형에게 아무 대가 없이 넘겨줬다는 일화의 주인공이다. 청(淸)조의 학술과 문예가 어떻게 조선에 전해졌는지, 두 나라의 학자들이 어떻게 교유했는지를 연구하는 데 푹 빠져 평생 엄청난 양의 서적을 중국과 조선에서 수집한 인물이다. 나고야 대학의 전신인 제8고등학교 교수를 거쳐 베이징 파견 연구학자, 일제 강점기 경성제국대학 교수를 지낸 그는 특히 추사에 매료돼 18~19세기 한·중 지식인의 교류와 관련된 자료는 고서부터 메모, 그림까지 무엇이든 수중에 넣었다. 1940년 정년을 맞은 그는 수집한 사료들을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가 모으거나 베껴 쓴 책들의 일부가 우여곡절을 거쳐 미국 하버드대 옌칭도서관까지 흘러들어 갔다. 60여년간 옌칭도서관 선본실 서가에 잠들어 있던 이 책들은 2012년 8월 방문학자로 옌칭연구소를 찾은 정 교수에 의해 빛을 본 것이다. 이날 발표는 “중국에 대해 연구하다 조선에 빠진 일본인 학자가 소장하고 연구했던 책들이 하버드 옌칭도서관에 오게 된 경위와 그 자료의 가치를 한국인 학자가 미국에서 설명하는 다국적 주제였다”고 정 교수는 요약한다. 신간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은 정 교수가 열정적 자료 탐구와 남다른 지식 생산력으로 시공을 넘나들며 지식의 바다에서 길어 낸 한·중 지식인의 교류사다. 문학동네가 펴내는 ‘우리 시대의 명강의’ 6번째 책으로, 정 교수가 지난해 3~12월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매주 연재한 글 40편을 모았다. ‘문예공화국’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에 유럽 각국 인문학자들이 라틴어를 매개로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넘어 서로 소통하던 지적 공동체를 일컫는다. 물리적 국경을 초월한 상상 속의 문예공화국 안에서 글이 오가며 토론하는 가운데 지식인들 사이에 끈끈한 연대가 싹텄고, 이는 실질적인 계몽주의의 토대가 됐다. 18세기 청나라와 조선의 지식인들은 공통 문어(文語)인 한문을 사용해 필담으로 시와 학문을 나누고 우정을 다지며 또 다른 문예공화국을 형성했다. 동심원을 그리듯 점점 깊어지고 넓어진 지식 네트워크의 시초는 북학(北學)의 기틀을 다진 담헌 홍대용(1731~1783)이다. 그는 숙부 홍억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연행사(燕行使)가 되어 1765년 베이징에 갔다가 향시를 보러 온 절강의 선비인 엄성, 육비, 반정균 등과 우연히 만나 사귀며 천애지기를 맺는다. 정 교수는 옌칭도서관에서 후지쓰카가 자신의 전용원고지에 베껴 쓴 엄성의 ‘철교전집’과 엄성·육비·반정균의 향시 답안지를 따로 모아 묶은 ‘절강향시주권’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조선과 청조 지식인의 교류사를 본격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홍대용이 막을 열고 박제가가 발전시킨 18세기 한·중 문예공화국은 당시 양국 간 정치적 위계와 무관하게 평등한 지식 네트워크의 모습으로 지속적으로 확장했음을 후지쓰카가 수집한 필사본 ‘한객건연집’ 등 사료들은 증명하고 있다. 1776년 11월 연행길에 오른 유금(柳琴,1741~1788)은 연암 그룹의 문우인 이덕무·박제가·유득공·이서구의 시를 모은 ‘건연집’(巾衍集) 을 가지고 ‘월동황화집’이라는 시집을 쓴 청 조정의 관리 이조원을 찾아가 서문과 비평을 부탁했다. 이조원은 우연히도 홍대용이 오래전 우정을 맺은 반정균과 가까운 사이였다. 이조원·반정균 두 사람은 조선문인 네 사람의 시집에 ‘한객건연집’이라는 제목을 달아주고 각 시에 정성껏 비평을 달아주었다. 청색, 적색 글씨로 우아하고 정중하게 쓰인 비평을 받아든 박제가 등은 감격을 금치 못한다. 상대방의 지적 역량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가운데 만남이 만남을, 우정이 우정을 낳는 과정을 그들의 후학인 정 교수는 방대한 지식과 치밀한 자료 탐색,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으로 한 장면씩 되살려낸다. 옌칭도서관을 뒤져 후지쓰카 컬렉션을 하나둘씩 찾아내고,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이라는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해가면서 어떤 때는 “좋아 펄쩍펄쩍 뛰며 연구실을 뱅뱅 돌았다”는 정 교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공자가 논어 첫머리에서 말했던 학문의 즐거움이란 바로 이런 것일 게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어떤 ‘미소’가 면접에서 효과있나?…6가지 유형 분석

    어떤 ‘미소’가 면접에서 효과있나?…6가지 유형 분석

    ‘미소(微笑)’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소리 없이 빙긋 웃음이라고 적혀있다. ‘눈빛’과 함께 ‘마음의 창’이라 불릴 수 있는 미소는 명확하고 또렷한 시선과 함께 푸근한 교감을 상대방에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기에 취업 면접, 프레젠테이션 등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요구되는 자리에서 큰 중요성을 가진다. 최근 영국에서 불특정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 응답자의 50% 이상은 남자를 처음 볼 때 중요시하는 것이 ‘미소’라 답했고 남성 역시 여성을 처음 볼 때 가슴, 다리 같은 몸매보다는 입가의 미소를 유심히 본다고 답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중 여성 67%와 남성 53%는 본인 미소가 정말 매력적인지 고민이라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같은 미소라도 조금 더 상대방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형태가 있지 않을까? 지난 1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보도에 따르면, 그저 평범한 웃음의 한 부분인 줄만 알았던 미소에도 자그마치 6가지의 세부형태가 있다고 한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 심리학자이자 신체언어전문가인 피터 콜렛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미소는 ‘뒤센 미소’, ‘눈썹 간격 넓히기 미소’, ‘눈썹 간격 좁히기 미소’, ‘쓴 미소’, ‘비밀 미소’, ‘함박 미소’의 6가지로 세분화된다. 먼저 ‘뒤센 미소’는 19세기 프랑스 신경학자 기욤 뒤센이 발견해 그의 이름이 붙은 미소로 어떤 가식 없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미소를 말한다. 이는 42개의 얼굴 근육 중 대협골근과 눈 둘레 안와근의 두 개 근육만 사용해주는 것으로 광대뼈 근육을 움직일 시 나오는 인위적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 미소는 다시 ‘눈썹 간격 넓히기 미소’로 연결되는데 눈과 눈썹사이가 넓어지며 자연스럽게 치아가 드러나는 것으로 둘 다 상대방에게 꾸밈없는 솔직함과 복종의 의미를 전달해 취업 면접에서 적합한 미소라 정의할 수 있다. ‘비밀 미소’와 ‘눈썹 간격 좁히기 미소’는 치아가 많이 드러나지 않고 눈에 힘이 들어간 상태에서 살짝 입 꼬리가 올라간 뒤 눈썹과 눈 사이가 좁아지는 형태로 둘 다 가볍게 보이지 않으면서 지적임이 강조된다. 그런데 여기에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 잃지 않아 중요 회의에서 설득력 있는 발표를 요하거나 직장 내 승진을 앞뒀을 때 필요한 미소로 볼 수 있다. ‘쓴 미소’는 치아가 전혀 드러나지 않으면서 눈빛만으로 웃는 것인데 언뜻 보면 비밀 미소와 비슷한 것 같지만 이보다 더 스스로를 감추는 성향이 강하다. 자신의 마음을 들키지 않으면서 다른 누군가와 무언의 암시를 주고받을 때 적합하다. 마지막으로 ‘함박 미소’는 입을 크게 벌린 뒤 매우 동적으로 웃는 것으로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미소를 전염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는 많은 수의 공감을 요하는 자리에서 타인에게 자신의 뜻에 동의를 구하고자 할 때 지어주면 효과가 크다. 자료사진=포토리아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프로퀘스트-KERIS, 대학 도서관에 인문 사회학 PAO 추가 제공

    학술자료 출판 및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제공 업체 ‘프로퀘스트’(www.proquest.com)사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하 KERIS)을 통해 국내 대학도서관에 인문 사회학 아카이브 저널 데이터베이스인 PAO 컬렉션을 추가로 제공한다고 밝혔다. PAO(Periodicals Archive Online)는 인문, 예술, 사회과학 분야의 저널 중 선호도가 높거나 보존가치가 있는 저널의 원문을 각 저널의 초판부터 제공하는 아카이브 저널 데이터베이스다. 국내의 인문학 및 사회과학 분야의 기초연구에 유용할 타이틀을 엄선해 국내 최대의 학술 연구 정보 서비스 RISS(www.riss.kr)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현재 KERIS는 교육부의 학술자원 공동활용체계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PAO 컬렉션을 지속적으로 추가 도입하고 있는 상황이며, 국내 대학에서는 PAO 컬렉션을 무료로 접속할 수 있다. 이번 PAO 컬렉션 2의 추가로 국내 학술연구자들은 30개 주요 주제 영역과 12개 언어를 포함하는 50만 편 이상의 논문이 포함된 100종의 타이틀에 추가로 접속이 가능해졌다. 또 이용자들은 주요 학술지, 문학 및 예술 잡지 등 19세기 이후의 다양한 유형의 출판물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프로퀘스트 한국 지사 담당자는 “KERIS와의 협력으로 KERIS 및 대학 구성원들에게 최상의 조건의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며 “특히 상대적으로 국내 보유량이 적은 인문 사회과학 분야의 자원을 제공함으로써 학문 간 균형 발전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프로퀘스트사는 미국 미시건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학술자료 출판 및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회사다. 1938년 설립돼 다년간 학술 분야에서 다양한 컨텐츠를 제공해 왔으며, 방대한 자료와 고객 서비스에 대한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너새니얼 호손 ‘주홍글씨’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너새니얼 호손 ‘주홍글씨’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이사야 1장 18절) 17세기 미국의 어둡고 준엄한 청교도 사회를 배경으로 죄지은 자의 심리를 탁월하게 그려 낸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는 치밀한 묘사와 인간의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 미국 문학의 걸작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치욕의 상징인 주홍글씨가 알레고리로 등장한다. 성경에서 비롯된 주홍빛은 인류의 죄와 피를 의미한다. 주홍글씨란 어떤 죄나 잘못을 저지르면 평생 동안 죄를 지은 사람에게 따라다니는 불명예를 뜻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주홍글씨를 단순히 죄의 상징으로 낙인찍는 데 그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작품이 죄를 짓는 과정이 아닌 그 후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먼저 작품 속 주인공을 만나 보자. 뉴잉글랜드 보스턴. 젊고 아름다운 헤스터 프린은 2년 전 미국에 건너와 사생아 펄을 낳고 간통을 의미하는 A(Adultery)를 평생 가슴에 달고 다니는 벌을 받게 된다. 때마침 행방불명됐던 헤스터의 남편이 나타나 처형대 위에 서 있는 헤스터를 목격한다. 그는 로저 칠링워스라는 이름의 의사로 정체를 숨긴 채 마을에 정착한다. 헤스터는 청교도주의적인 사회에서 불의의 남녀 관계로 냉혹한 제재를 받지만 사랑하는 상대를 지키기 위해 모든 비난을 인내한다. 그의 딸도 세상과는 유리된 채 밝고 자유분방하게 살아간다. 그녀가 사랑한 상대는 목사 딤스데일이었다. 그는 젊고 온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자였다.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모두 포기하고 죄를 드러낼 의지가 약했던 그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로저 칠링워스는 그런 목사에게 접근해 마음을 할퀴고 상처를 줘 쇠약하게 만든다. 헤스터는 목사가 자책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알고 로저 칠링워스에게 복수를 그치라고 간청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리고 목사를 찾아가 영국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살자고 설득한다. 그러나 목사는 장관 취임식 날 자신의 죄를 만천하에 고백한 뒤 목숨을 끊는다. 이렇게 작가 호손은 죄를 지은 후 벌어지는 죄의식과 벌, 나아가 구원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헤스터가 가슴에 늘 새기고 다니던 낙인은 원래 쇠붙이로 만든 뒤 불에 달궈 찍는 도장으로, 가축이나 목재에서 유래했고 노예가 도망치지 못하게 할 때나 형벌의 수단으로 썼던 것이다. 흔히 ‘낙인을 찍는다’는 말은 씻기 어려운 불명예스러운 판정이나 평판을 비유적으로 말할 때 사용된다. 주목할 점은 낙인의 기준이 시대와 종교, 사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한 번의 실수와 잘못으로 온갖 사람들에게 치욕을 당하고 평생 동안 낙인찍힌 채 손가락질을 감수해야 하는 건 옳은 일일까?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는 죄도 많다. 남의 마음에 심한 고통을 주거나 잘못된 가치관으로 사회를 변형시키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특히 그들이 권력자이거나 승리자였다면 그러한 잘못은 더욱 치장되고 미화돼 버린다. 마녀재판이라고 하는 잘못된 관습도 결국 그 사회의 약자요, 유리된 자들을 사회질서 유지의 희생양으로 사용한 비극적인 사건이다. 헤스터가 살았던 17세기 뉴잉글랜드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난 청교도들이 새롭게 뿌리 내린 곳이었다. 그들은 굶주림과 고통 속에서 미국 사회를 건설했다. 금욕, 절제, 규율을 기본 윤리로 삼은 청교도 사상은 미국 사회를 일군 힘이 되기도 했지만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고 죄의식과 규율 속에 가두는 독선적인 경향도 강했다. 19세기를 살아가던 호손은 작품을 통해 17세기 청교도적 삶의 허구성을 비판했다. 헤스터는 주홍글씨를 단 채 사람들로부터 온갖 저주와 욕설을 들어야 했지만 타고난 위엄과 기품을 잃지 않는다. 그녀의 실수가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 윤리적 규범으로 규정지어진 벌을 받겠다는 자세, 실수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는 자세 그리고 이제부터 제대로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연하고 일관된 의지가 있었다. 그녀는 세상의 규범이 자신의 명예와 사랑을 빼앗아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죄를 지은 뒤 보여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사랑과 병자들에 대한 헌신, 불평 없이 깨끗한 삶을 영위하는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주홍글씨의 A를 Able(유능함)로 인식하게 했다. 나아가 목사가 죽은 뒤에도 평생 주홍글씨를 달고 남을 위해 애쓰며 사려 깊고 헌신적인 자세를 보여준다. 이제 그녀는 Angel(천사)의 상징이 된다. 하늘나라의 기쁨을 전하고 가장 고상하고 순결한 여인으로 표적이 된 것이다. 한편 대조되는 인물이 있다. 목사는 성직자라는 위치에서 드러낼 수 없는 죄를 내면화해 자책하고 스스로에게 가혹한 벌을 내린다. 그리고 또 한 명, 끝까지 복수의 화신이 돼 목사를 괴롭혔던 로저 칠링워스는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양심도 이해심도 가지지 못했고 섬뜩한 복수의 칼날에 자신도 베어 버린 악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복수는 헤스터에 대한 사랑으로 볼 수 있다. 본문에서도 사랑과 증오는 근본이 하나이기 때문에 자비를 구하자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방법이 왜곡됐으며 결국 비극으로 끝나 버린다. 이렇게 호손은 세 사람을 통해 종교적 신념에 근거한 양심의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사회적 낙인을 끊임없는 헌신과 사랑으로 승화시킨 헤스터, 마음속 낙인으로 괴로워하고 영혼의 구원을 외치며 죽은 목사, 죽기 직전 자신의 전 재산을 펄에게 물려주는 것으로 자신의 악행을 뉘우친 로저 칠링워스를 통해 도덕적 진실과 양심의 구원, 나아가 영혼의 자유를 밀도 있게 풀어내고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주홍글씨’라는 크고 작은 치욕을 겪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똑같은 죄를 저지른 헤스터와 딤스데일. 한 명은 사회의 지탄과 멸시, 천대를 받았고 다른 한 명은 죄의 폭로를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자책했다. 올바른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중요한 것은 스스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세다. 양심과 도덕적 판단이 그 어떤 규범보다 중요한 이유다. 이것은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통해 마음속 깊숙이 숨겨 놓았던 인간의 본성과 규범, 죄와 벌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면 좋겠다. ■너새니얼 호손은 너새니얼 호손(1804~1864)은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다. 장편 ‘주홍글씨’와 함께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의 작품으로는 흔히 ‘큰 바위 얼굴’로 축약돼 알려진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과 다른 흰 산 이야기’가 있다. 청교도 집안에서 자란 호손은 작품에서 원죄와 속죄, 법과 양심을 진지하게 탐구했다. 호손은 자신의 조상들이 17세기 퀘이커교도에게 태형을 가하거나 마녀재판에 참여한 일 등에 대해 죄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1825년 보든대학을 졸업한 호손은 24살에 소설 ‘판쇼’를 출판하지만 스스로 회수했다. 이후 보스턴 세관에서 일하다가 1842년 결혼한 뒤 콩코드에 살면서 집필한 단편들을 모아 ‘영 굿맨 브라운’이 담긴 단편집 ‘낡은 저택의 이끼’를 출간했다. 1850년 ‘주홍글씨’를 출간한 뒤 소설가로 명성을 얻었다. 세밀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주홍글씨’는 미국의 상징주의 소설에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팁:‘알레고리’는 어떤 한 주제 A를 말하기 위해 다른 주제 B를 사용해 그 유사성을 적절히 암시하면서 주제를 나타내는 수사법이다. 은유법이 하나의 단어나 문장 같은 작은 단위에서 구사되는 반면 알레고리는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총체적인 은유법으로 관철돼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 취업면접에서 효과 있는 ‘미소’는 따로 있다

    취업면접에서 효과 있는 ‘미소’는 따로 있다

    ‘미소(微笑)’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소리 없이 빙긋 웃음이라고 적혀있다. ‘눈빛’과 함께 ‘마음의 창’이라 불릴 수 있는 미소는 명확하고 또렷한 시선과 함께 푸근한 교감을 상대방에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기에 취업 면접, 프레젠테이션 등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요구되는 자리에서 큰 중요성을 가진다. 최근 영국에서 불특정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 응답자의 50% 이상은 남자를 처음 볼 때 중요시하는 것이 ‘미소’라 답했고 남성 역시 여성을 처음 볼 때 가슴, 다리 같은 몸매보다는 입가의 미소를 유심히 본다고 답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중 여성 67%와 남성 53%는 본인 미소가 정말 매력적인지 고민이라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같은 미소라도 조금 더 상대방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형태가 있지 않을까? 지난 1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보도에 따르면, 그저 평범한 웃음의 한 부분인 줄만 알았던 미소에도 자그마치 6가지의 세부형태가 있다고 한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 심리학자이자 신체언어전문가인 피터 콜렛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미소는 ‘뒤센 미소’, ‘눈썹 간격 넓히기 미소’, ‘눈썹 간격 좁히기 미소’, ‘쓴 미소’, ‘비밀 미소’, ‘함박 미소’의 6가지로 세분화된다. 먼저 ‘뒤센 미소’는 19세기 프랑스 신경학자 기욤 뒤센이 발견해 그의 이름이 붙은 미소로 어떤 가식 없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미소를 말한다. 이는 42개의 얼굴 근육 중 대협골근과 눈 둘레 안와근의 두 개 근육만 사용해주는 것으로 광대뼈 근육을 움직일 시 나오는 인위적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 미소는 다시 ‘눈썹 간격 넓히기 미소’로 연결되는데 눈과 눈썹사이가 넓어지며 자연스럽게 치아가 드러나는 것으로 둘 다 상대방에게 꾸밈없는 솔직함과 복종의 의미를 전달해 취업 면접에서 적합한 미소라 정의할 수 있다. ‘비밀 미소’와 ‘눈썹 간격 좁히기 미소’는 치아가 많이 드러나지 않고 눈에 힘이 들어간 상태에서 살짝 입 꼬리가 올라간 뒤 눈썹과 눈 사이가 좁아지는 형태로 둘 다 가볍게 보이지 않으면서 지적임이 강조된다. 그런데 여기에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 잃지 않아 중요 회의에서 설득력 있는 발표를 요하거나 직장 내 승진을 앞뒀을 때 필요한 미소로 볼 수 있다. ‘쓴 미소’는 치아가 전혀 드러나지 않으면서 눈빛만으로 웃는 것인데 언뜻 보면 비밀 미소와 비슷한 것 같지만 이보다 더 스스로를 감추는 성향이 강하다. 자신의 마음을 들키지 않으면서 다른 누군가와 무언의 암시를 주고받을 때 적합하다. 마지막으로 ‘함박 미소’는 입을 크게 벌린 뒤 매우 동적으로 웃는 것으로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미소를 전염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는 많은 수의 공감을 요하는 자리에서 타인에게 자신의 뜻에 동의를 구하고자 할 때 지어주면 효과가 크다. 자료사진=포토리아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그림 한 점이 무려 ‘120억 원’…英 유명화가 작품 공개

    그림 한 점이 무려 ‘120억 원’…英 유명화가 작품 공개

    경매 낙찰가가 무려 12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그림 한 점이 공개돼 수집가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경매에 나온 작품은 영국의 유명 화가인 로세티(본명 가브리엘 찰스 단테 로세티)의 그림으로, 1871년에 그려진 작품이다. 제목 ‘판도라’(Pandora)의 이 작품은 로세티의 애인이자 ‘뮤즈’로 알려진 제인 모리스라는 여성의 초상화다. 제인 모리스는 로세티의 친구이자 역시 예술가로 활동했던 윌리엄 모리스의 아내이며, 로세티에게는 수많은 작품에 영감을 준 여성이었다. 때문에 제인 모리스는 ‘판도라’뿐만 아니라 로세티가 수 십 년간 작업한 작품 전반에 모습을 드러낸다. 로세티는 일명 ‘라파엘로 전파’의 한 작가로 유명하다. 라파엘로 전파는 라파엘 이전 시기인 14-15세기의 이탈리아 화가들과 비슷한 양식의 그림을 그렸던 19세기의 영국 화가들을 지칭하며, 로세티는 향락적ㆍ관능적인 유미주의의 화가로 평가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판도라’는 60년간 개인 소장품이었다가 최근 영국 소더비 경매에 나왔다. 영국 소더비의 경매 전문가인 시몬 톨은 “라세티의 ‘판도라’는 분명 엄청난 화제가 될 것”이라면서 “라세티 작품 중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이것의 예상 낙찰가는 700만 파운드(약 120억 5000만원) 정도”라고 소개했다. 한편 미술품 경매사상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은 영국의 표현주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1909∼92)의 ‘루치안 프로이트에 대한 세 개의 습작’(1969)이다. 이 작품은 지난 해 11월 미국에서 열린 경매에서 1억4240만 달러, 한화로 약 1460억 원(경매 당시 1528억 원)에 팔려 화제를 모았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지역색(하)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지역색(하)

    ●이중도시 서울, 북촌·남촌에서 강북·강남으로 양분화 조선 내내 사대문 안 북촌과 남촌의 양촌 체제가 공고했다. 그러나 대한제국기 고종이 중국의 천자나 일본 천황과 같은 황제에 오르는 이른바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선언하고서 북촌 체제의 중심인 경복궁을 버리고 서촌에 위치한 경운궁(덕수궁)으로 정궁을 옮겨 가면서 상황이 변했다. 건국 500년 만에 나라의 중심이 백악(북악)을 중심으로 한 북촌에서 종로를 넘고, 청계천을 건너 서울시청 쪽으로 이전한 것이다. 대한제국 시기 이러한 정치권력의 공간이동은 이후 식민지 시기와 한국전쟁,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조선시대에는 없던 태평로를 서울의 경제 중심지로 만들었다. 1926년 조선총독부 신청사가 경복궁 안에 건립돼 정치권력은 북촌으로 회귀했지만, 자본주의의 꽃인 경제권력은 태평로에 남았다. 확장된 경제권력이 1970년대 한강을 넘어 강남과 여의도를 향해 중심이동하기 전까지. 강남으로의 팽창과 더불어 서울은 2000년 전 한성백제의 수도 한강 이남으로 수도를 옮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와대는 강북에 남았지만, 자본주의 권력의 원천인 경제자본과 대의기관인 국회가 강을 건너가 버렸기 때문이다. 조선의 서울이 강북 사대문 안이었다면, 대한민국의 서울은 강남이 됐다. 사대문을 남북 체제로 나누는 경계의 역할을 하던 개천(청계천)이 복개되면서 남·북촌이 하나로 통합되는가 했더니 급기야 한강을 사이에 두고 강남과 강북으로 양분돼 버린 것이다. 서울의 남북 경계선이 청계천에서 한강으로 옮겨 간 셈이다. 도시사학 분야에서 ‘이중 도시’(Dual City)의 개념은 식민지를 경험한 도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박찬승(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식민지 도시는 토착 집단에 대한 외래 집단의 지배 공간이었고 양자의 문화적 이질성은 사회적, 공간적 격리로 나타났다. 대체로 토착민들의 자생적 주거지는 전통적·전근대적 성격을 띠었고, 식민권력에 의해 개발된 새로운 주거지는 근대적·서구적 성격을 띠는 것이 일반적이다. 식민지 권력은 외래 식민집단의 주거지를 토착민들의 열악한 주거공간과 분리시켜 근대적이고 서구적인 주거지로 만들어 식민권력의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고 문명에 의한 지배의 정당성을 선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양분 정치적 기획의 산물인가, 체제경쟁의 산물인가 조선시대 한양도성이 북악 아래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를 잡은 북촌, 낙산 아래 동촌, 인왕산 아래 서촌 그리고 남산 아래 남촌과 청계천변 중촌이 서로 아우르는 모습을 보였다면 식민 시기 경성은 일제의 의도적인 정치적 기획의 산물로서 남·북촌 체제로 양분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동·서·남·북촌을 중심으로 정치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어울린 사색붕당(四色朋黨)이 식민지 사관의 혐의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다. 다른 풀이도 있다. 안창모(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는 “청계천을 품에 안고 내사산으로 둘러싸인 인구 10만명을 수용하는 계획도시로 출발한 한양이 600여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한강을 품에 안고 외사산으로 둘러싸인 인구 1000만명의 대도시로 성장했다. 외견상 인구는 100배 이상 증가했고, 면적도 30배 이상 확대됐다. 600년 시차를 가진 조선의 한양과 한국의 서울은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존재했다”고 말했다. 현재의 서울은 계획됐다기보다는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급증하는 인구를 수용하려는 방편으로 확장됐고 결과를 추인하는 방향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시대적 상황이 도시의 물리적 성장과 변화 배경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남북 분단과 강남 개발은 서로 얽혀 있다. 비록 도시화와 산업화의 결과이지만 1976년 건설된 잠수교로 말미암아 한강은 서해 뱃길이 끊어지면서 자연 울타리가 됐다. 유사시 30만~40만명이 대피할 수 있는 요새화 차원에서 뚫린 3개의 남산터널과 정부청사의 과천이전 등은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이 서울의 도시구조 변화에 남긴 대수술 자국이다. 경부고속도로와 한남대교(제3한강교)의 건설로 강남이 개발돼 현대 서울의 모습이 한강을 중심으로 강북과 강남 두 개의 도시로 나뉜 것도 결국은 남북 체제경쟁의 산물이다. ●일제강점기 서울은 어떻게 분열됐을까 서울은 식민시기 어떤 분열과정을 거쳤을까. 일본인의 서울 진출과 일본인 거류지의 형성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답이 보인다. 일본공사관은 1880년 서대문 밖 천연동 청수관에 처음 자리를 잡았다. 임오군란 때 소실되자 1884년 교동 박영효 저택에 공사관을 지어 사대문 깊숙이 진출했으나 같은 해 갑신정변 와중에 또 타버렸다. 1885년 남산 아래 예장동으로 옮긴 뒤부터 식민지배 권력의 본거지가 됐다. 남산과 일본을 잇는 역사의 끈은 질기고도 질겼다. 일본 사신이 묵었던 왜관(동평관)이 조선 초 자리 잡았고, 임진왜란 때 왜군이 7년 동안 진지를 구축한 왜장대가 있었다. 개항기 조선과 대한제국 조정은 일본공사관을 사대문 안에 들이지 않으려고 애썼고, 사대문 안으로 들어오더라도 개천을 건너지 못하도록 했다. 삼강오륜에서 부부유별(夫婦有別) 따지듯 북남유별(北南有別)을 따졌지만, 결과는 남북 역전으로 나타났다. 남촌은 식민지 조선의 새로운 메인스트리트였다. 조선 신궁(남산식물원)이 일본 정신을 상징했고, 통감부(서울애니메이션센터)와 헌병사령부(남산한옥마을)가 무력통치를 상징했다. 일본인 거주 지역인 충무로, 진고개 일대는 본정통(本町通)이라고 하여 조선의 유일한 동서 간 대로인 종로를 대신했다. 일제는 황토마루(黃土峴)를 광화문통, 구리개(을지로)를 황금정(黃町), 명동을 명치정(明治町), 소공동을 장곡천정(長谷川町), 다방골(茶洞)을 다옥정(茶屋町)으로 멋대로 바꿔 버렸다. 남촌에는 조선은행(한국은행)과 경성우체국(중앙우체국)이 들어서고 미쓰코시백화점(신세계백화점)과 히라타(平田) 등 대형 유통업체가 진출해 상권을 장악했다. 2~4층의 현대식 상점 진열대에는 일제와 서구 외제 상품이 휘황찬란한 전등불 아래 진열됐다. 도로는 포장되고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식재됐다. 광고탑과 마네킹, 네온사인이 불야성을 이뤘다. 본정통은 식민지 서울이 아니라 도쿄를 여행하는 듯했다. 지금의 강남 격이다. 한국인이 상권을 쥐고 있던 종로통은 상대적으로 낙후됐다. 1935년 시인 임화는 ‘다시 네거리에서’라는 시에서 “번화로운 거리여/내 고향 종로여/웬일인가/너는 죽었는가/모르는 사람에게 팔렸는가”라고 외쳤다. 별건곤 1930년 6월호에서 김화산은 “달리는 차, 매연, 여자의 스커트, 자욱한 연애, 주머니 속의 1전짜리 동전, 비애, 주점, 여자에 대한 증오, 정거장, 잡다한 사상을 가진 군중, 쇼윈도, 밤의 샹들리에와 카페의 홍수, 길에 버려진 영화광고지…”라면서 남촌의 화려함을 묘사했다. 당시 경성은 전차 120여대, 자동차 250여대(관용차와 자가용 제외), 승합차 70대, 버스 40대가 뒤섞여 달리는 혼잡한 대도시였다. 식민지 통치권력과 외국 자본에 의해 서울 사람은 서울의 객이 돼 버렸다. 1936년 행정구역 확대에 따라 경기도 고양군과 시흥군, 김포군이 서울로 각각 편입됐다. 고양군 용강면(오늘의 공덕동, 아현동)과 연희면(신촌), 은평면(홍제동), 숭인면(성북동, 청량리), 한지면(이태원, 서빙고)이 서울 땅이 됐다. 시흥군 영등포와 노량진, 상도동이 서울에 포함됐다. 서울의 팽창은 인구 집중과 더불어 지역 분화를 재촉했다. 동소문 일대 주택지대를 문화촌이라고 했고, 광희문 밖 신당동에는 달동네가 형성됐다. 정동 일대에는 서양인촌이, 용산 일대에는 공업촌, 서울역과 봉래동 일대에는 노동촌, 다동·청진동·관철동 일대에는 기생촌 등 특수촌이 형성됐다. 홍제동, 돈암동, 아현동에는 경성부가 운영하는 토막 수용 시설이, 종로와 본정통, 명치정, 장곡천정에는 다방과 카페, 영화관 같은 유흥업소가 밀집했고, 쌍림동에는 유곽이 있었다. ●서울·지방 나누듯 서울도 신분 따라 거주지 나눠져 전우용은 ‘서울은 깊다’에서 “서울(사대문)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오촌(동·서·남·북·중촌)과 양대(윗대·아랫대), 자내(성밖 거주지)와 오강(한강변 거주지) 지역의 문화가 달랐다. 18~19세기 양반문화만 놓고 보아도 동서남북 사촌이 다 달랐고, 그들 사이에는 쉬 해소될 수 없는 차별의식과 적대감이 가로놓여 있었다”고 분석했다. 서울은 조선 500년 내내 유일한 도시였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한양이라는 도시와 나머지 지방으로 나눠졌다. 중엽 이후 서울과 지방의 인적 교류가 막히면서 경인(京人)과 향인(鄕人)의 차이가 벌어졌다. 지방 출신이 벼슬길에 오르는 것조차 어려웠다. 말씨와 문체가 다르다는 이유로 시골 선비는 무시되기 일쑤였다. 영조 대 이후 지방 출신을 과거급제자에 할당할 정도였다. 심지어 고종 때 서울내기 군관이 시골뜨기 예조좌랑(교육부 사무관급)을 멸시하고 구타하는 하극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라가 서울과 지방으로 나눠졌듯 서울도 나눠졌다. 궁궐 주변인 북촌과 동촌, 서촌에는 고관대작과 그들의 시중을 드는 아전, 겸인배(집사)들이 살았다. 남산 아래에는 쇠락한 양반이나 무반이 거주했고, 인사동과 청계천 주변에는 역관이나 의관, 화원 같은 중인들이 중촌을 이뤘다. 상민은 윗대나 아랫대 혹은 사대문 밖 자내, 오강에 터전을 잡았다. 거주 지역에 신분과 지위, 직업 정보가 새겨졌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토마토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토마토

    “우리 가족을 위해 영양이 많고 안전한 음식을 차리는 게 가장 중요하죠. 맛을 어느 정도 희생하더라도요.”취재 중에 만났던 주부의 말이다. 집밥이 돌아왔다. 웰빙이 각광을 받고, 건강하게 먹는 법이 유행이다. 건강한 밥상의 핵심은 좋은 재료다. 어떤 식품을 재료로 써야 당뇨 수치가 높은 가장에게 좋은 음식인지, 공부에 지친 아이의 잠재력을 일깨워 주는지, 엄마의 혈압을 낮추는지 말이다. 식품에 대해서 최고 전문가인 농촌진흥청의 연구원들이 일주일마다 식품에 대해 말한다. 첫 번째 주제는 토마토. 토마토가 빨갛게 익으면 의사 얼굴이 파랗게 질리는 이유에 대해 들어보자. 세종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토마토가 빨갛게 익어 가면, 의사의 얼굴은 파랗게 질린다.’ 유명한 서양 속담이다. 2002년 미국 주간 타임지도 건강에 좋은 10대 식품을 선정하면서 토마토를 가장 먼저 꼽았다. 토마토가 ‘슈퍼푸드’로 불리는 이유는 리코펜 때문이다. 미국국립암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주 10회 이상 토마토 요리를 먹는 사람은 먹지 않는 사람보다 전립선암 발병률이 45% 낮아졌다. 토마토가 중년 남자에게 좋은 채소로 알려진 이유다. 리코펜은 암과 심혈관 질환의 발병률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리코펜은 우리 몸의 피부, 혈액, 간, 콩팥 등에 있는데 특히 전립선에 많다. 리코펜은 주로 음식을 통해 체내에 흡수된다. 토마토를 통해 섭취되는 경우가 85% 이상이다. 또 리코펜은 저밀도 콜레스테롤을 줄여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마토는 익혀 먹을수록 좋은데 리코펜이 가열될수록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리코펜은 기름과 함께 조리했을 때 체내에 잘 흡수된다. 햄버거 등 육류와 토마토의 음식 궁합이 좋은 이유다. 토마토는 시력 강화에도 좋다. 스크린을 많이 보며 자라는 요즘 아이들에게 토마토가 필요한 이유다. 토마토에 들어 있는 루테인은 눈을 구성하는 망막의 구성 성분이다. 시력 감퇴나 실명의 위험을 낮춰준다. 또 루테인은 동물 실험에서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효과를 나타냈다. 실제 토마토는 만성 고혈압 환자의 식이요법에 활용되기도 한다. 토마토 100g의 열량은 16㎈로 밥 100g(148㎈)의 9분의1이다. 과식을 억제하고 변비 해소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좋다. 당근이나 김에는 토마토보다 비타민 A가 더 많다. 비타민 C는 참다래나 딸기가 더 많다. 하지만 토마토는 비타민 A·B·C를 고르게 함유하고 있다. 종합비타민 격으로 하루에 2~3개를 먹으면 비타민 필요량이 충족된다. 토마토는 채소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물으면 과일이라고 답하는 경우도 많은데, 실제 토마토는 소송을 통해 과일이 아닌 채소가 됐다. 19세기 말 미국 뉴욕에서는 과일과 채소의 관세가 달랐는데 채소를 수입하려면 19%나 되는 세금을 물어야 했다. 뉴욕 세관이 토마토에도 19%의 세율을 매기자 수입업자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1893년 연방대법원은 토마토를 채소로 판결했다. 과일처럼 후식으로 먹지 않고, 음식과 함께 조리해서 먹는 식사의 중요한 일부분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토마토의 어원(語源)은 ‘tomatl’이다. 멕시코 말로 ‘불룩한 열매’라는 의미다. 토마토의 원산지는 페루, 에콰도르 일대로, 남미 인디언들은 700년쯤부터 토마토를 재배해 먹었다. 16세기 초 대항해시대에 스페인에 전파되면서 ‘tomate’라고 불렸다. 이후 영국에 건너가면서 현재 이름인 ‘tomato’가 됐다. 유럽에 처음으로 상륙한 토마토는 관상용으로 재배됐고, 18세기 이탈리아에서 식용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토마토를 처음 본 유럽 및 미국인들은 토마토가 독초인 맨드레이크와 닮았다는 이유로 먹기를 꺼렸다. 맨드레이크는 환각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전통적으로 마법의 의식에 사용됐다. ‘사탄의 사과’로 불리기도 했다. 미국 육군의 로버트 존슨 대령이 1820년 뉴저지 주 셀럼 재판소 앞에서 군중을 모아놓고 토마토를 공개 시식하면서 미국에서도 식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토마토는 이후 미국에 의해 필리핀을 거쳐 말레이시아로 전파됐다. 인도와 인도네시아를 거쳐 일본으로도 건너갔고, 우리나라에는 조선 선조나 광해군 시기에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1613)에 토마토를 의미하는 ‘남만시’(南蠻?)가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남만시란 ‘1년을 사는 감’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토마토의 대중화가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방울토마토가 앙증맞은 모습과 새콤달콤한 맛으로 인기를 얻으면서다. 2002년 이후 토마토가 건강식품이라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토마토 재배면적은 연평균 14%씩 증가했다. 토마토 종자는 금보다 비싸기로 유명하다. 품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1g에 12만 6000원~24만원 정도다. 1g당 4만 5000원 정도인 순금 가격의 두 배 이상이다. 사실 비싼 종자 가격은 토마토 농가에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농가의 생산비에서 종자 가격은 10% 이상 차지한다. ‘빨간 토마토’가 가장 많이 알려졌지만, 아주 연한 크림색부터 노란색, 주황색, 녹색, 분홍색, 보라색 등 다양한 색깔의 토마토가 있다. 일반종과 야생종을 교배해 원하는 색깔의 토마토를 개발하고 있어서다. 2001년 이스라엘에서는 아주 짙은 보라색을 띠는 ‘블랙 토마토’를 개발한 바 있다. 흔히 토마토의 크기도 일반과 방울토마토의 두 가지로 구분하지만, 콩알만 한 것부터 사람 얼굴만 한 것까지 다양하다. 대과종(200g 이상)은 스테이크용으로 주로 사용되고, 중과종(60∼200g)은 가공용으로 쓰인다. 야생종 중에는 직경 1㎝에 불과한 토마토도 있다. 과실의 모양도 원형, 타원형, 계란형, 사각형, 표주박형, 납작형 등으로 나뉜다. 최학순 농촌진흥청 채소과 연구원(농학박사) ■문의 kdlrudwn@seoul.co.kr
  • 엽관주의 직위분류제, 공무원 개혁과 어떤 관련?…엽관주의·직위분류제란?

    엽관주의 직위분류제, 공무원 개혁과 어떤 관련?…엽관주의·직위분류제란?

    ‘직위분류제’ ‘엽관주의’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관피아’ 등 관료사회의 병폐들이 사회적 문제로 드러나면서 공무원 개혁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엽관주의와 직위분류제 등의 용어들이 네티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엽관주의란 정당에 대한 공헌이나 인사권자와의 개인적 관계를 기준으로 공무원을 임용하는 인사 행정제도를 말한다. 즉 집권 여당이나 인사권자와 친분 관계가 있거나 논공행상의 하나로 공무원을 임용하는 시스템이다. 19세기 중반 미국 상원의원인 윌리엄 마시 트위드가 “전리품은 승리자의 것(To the victor belongs the spoils)”이라고 발언한 것에서 따온 이름으로 엽관제라고도 한다. 군주제에 맞서 의회주의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정당이 국왕의 관리를 의회 봉사자로 바꾸기 위해 실시된 제도이다. 엽관주의의 장점은 특정한 신분이나 시험, 경력, 실적, 자격조건을 따지지 않고 해당 정당이 내세우는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인선을 임명되기 때문에 관직의 특권화를 배제하여 관료제 안에서 민주화에 기여하는 면이 있다. 공직자의 적극적인 충성심이 확보되는 측면도 있고 해당 정권 안에서 업무에 추진력을 더하는 측면이 있다. 특별히 경력이 부족하더라도 제대로 능력을 갖춘 인재를 적시에 투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정당이 바뀔 때마다 인사가 바뀌기 때문에 정권이 금방 바뀌게 되면 전문성을 갖추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또 정당제의 특성상 정당 자신의 이득이나 부정부패로 인해 무능력한 낙하산 인사가 기용될 가능성이 높다. 직위분류제란 모든 직위를 직무의 종류와 난이도, 책임도 등에 따라 계급과 직급별로 분류하고, 같은 직급에 속하는 직위에 대해서는 같은 자격 요건을 요구하고 같은 보수가 지급되도록 정해놓은 제도를 말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발달하였으며 우리나라의 공무원법도 이를 채택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로제타스톤·람세스2세 석상 등 세계최대 800만점 전시품 보유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로제타스톤·람세스2세 석상 등 세계최대 800만점 전시품 보유

    영국박물관의 소장품들을 제대로 보려면 며칠을 돌아도 모자란다. 내부 전시품은 크게 이집트, 고대 근동, 고대 그리스, 아시아로 나뉘어 있다. 중앙홀에서 왼쪽으로 꺾어져 들어가면 이집트 전시실이 나오고, 입구 중앙에 그 유명한 로제타스톤이 있다. 1799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중에 나일강 삼각주에 위치한 로제타마을에서 병사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기원전 196년경 프톨레마이오스 왕의 칙령을 담고 있으며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람세스 2세의 석상도 필수 관람 코스다. 프랑스 군인들이 옮겨가려고 오른쪽 어깨에 구멍을 뚫었지만 못 가져가고 1816년 대영제국 시대 영국으로 옮겨왔다. 고대근동관에서는 기원전 8세기경 아시리아 왕 사르곤 2세의 궁전 성문 입구를 지키던 수호동물 ‘라마수’ 석상이 중요하다. 인간의 머리에 독수리 날개를 달고 황소의 몸을 가진 라마수는 앞에서 보면 정지된 모습이지만 옆면은 걷고 있다. 1931년 조지프 듀빈 경의 기부금으로 지어져 듀빈갤러리로 명명된 그리스 전시실에는 파르테논 신전에서 가져온 대리석 부조물이 있다. 19세기 초 터키 대사를 지낸 토머스 브루스 백작(엘긴 경)이 파르테논 신전 건물 외벽에 장식된 부조물을 떼어 가져왔기 때문에 흔히 엘긴마블이라고 부르며 그리스 정부와 소유권 문제로 분쟁 중에 있는 인류사적 유물이다. 북측 건물 3층 67호 전시실은 한국관으로 꾸몄다. 국제교류재단이 주관해 전통 한옥과 도자기, 서화 등을 전시하고 있다. 한국관광객들 외에는 찾는 이가 별로 없지만 가끔 사천왕을 그린 탱화를 베껴 그리는 미술 학도들을 만날 수 있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지하 1층에 마련된 삼성디지털체험관의 학습프로그램도 둘러보면 좋다. 연간 5000명의 학생들이 디지털 예술관람 체험을 하는데 삼성전자는 최근 후원 기간을 5년 연장하기로 계약했다. lotus@seoul.co.kr
  • [열린세상] 관찰의 힘과 창의적 제품/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열린세상] 관찰의 힘과 창의적 제품/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고 가르치던 제네비브 벨은 1998년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 등 반도체를 설계하는 기술회사 인텔(intel)에 합류했다. 그가 인텔에서 한 일은 사람들이 집이나 학교에서 디지털 기기를 어떻게 소비하고 사용하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수집된 정보는 신제품 개발을 담당하는 기술자들에게 전달됐으며, 나중에 인텔이 엔터테인먼트용 PC, 교육용 PC를 고안하고 저전력 반도체를 설계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인문학과의 교류를 통해 제품 이용자를 이해하고 분석하려는 회사들은 인텔만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들은 적극적이다. 식품회사 제너럴밀스는 중고등학교 앞에서 방과 후 학생들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 걸어다니면서도 먹기 편한 먹거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고 짜 먹는 요구르트를 만들었다. 세계적 생활용품 업체 프록터앤드갬블(P&G) 역시 멕시코에 있는 저소득층 가정의 생활을 관찰 조사한 덕분에 물과 헹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농축 세제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많은 기업들은 이처럼 소비자들의 마음속 욕구를 파악하고 실현하기 위해 제품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인문학자와 심리학자의 도움을 받고 있다. 특히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고객 분석 기법으로 ‘관찰’이라는 조사방식을 채택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사실, 미리 세팅돼 있는 질문에 답하는 설문조사나 1대1 심층 면접 같은 형태로는 소비자 욕구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질문자와 마주하고 있어서 껄끄러운 질문에는 솔직한 대답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관찰은 발견 혹은 발명과는 다르다. 발견(發見)은 미처 찾아내지 못했거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물이나 현상, 사실 등을 찾아내는 것이고, 발명(發明)은 아직까지 없던 기술이나 물건을 새로 생각해 만들어내는 것이다. 보지 못했던 것을 들춰내고, 세상에 없던 것을 창조해 낸다는 점에서 발견과 발명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무언가를 발명하기까지는 호기심을 갖고 면밀하게 주변을 관찰하는 작업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관찰하고 알아야 대상을 이해할 수 있고, 불편한 점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관찰은 창조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기업과 대학, 연구소의 산업기술 연구개발(R&D)을 지원하는 분야에 몸담고 있다 보니, 좋은 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정작 매출로 연결시키는 사업화에는 실패한 기업들의 이야기를 가끔 접하게 된다. 기업들이 안타까운 좌절을 겪는 이유는 대부분 자금이나 관련 노하우가 부족해서다. 하지만, 어떤 경우는 소비자 관찰이 부족해서라는 생각이 든다. 해당 기술이 소비자에게 어떤 효용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제품화에 뛰어든 결과다. 소비자의 욕망을 잘 파악하고 이를 실현시켜 주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성공 가능성이 높다. 일찍이 19세기 말에 기술창업으로 자동차 산업의 지평을 열었던 헨리 포드는 소비자의 욕망을 파악하고 생산방식을 혁신함으로써 고객을 ‘발견’하고 ‘발명’하여 자동차 왕국을 건설했다. 대당 2600~3000달러나 하는 가격 때문에 자동차 시장 형성이 저조한 것을 본 그는 보통 봉급자 누구나 자동차 구입이 가능하도록 컨베이어 벨트 생산 방식을 통해 T모델을 260달러에 생산해 냈고, 그 결과 미국에는 마이카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지금도 전기자동차, 웨어러블 스마트 기기, 3D 프린팅 등 세계 여러 분야에서 관찰→발견→발명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항상 위대한 발명을 해야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꾸준한 관찰만으로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애플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도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는 모토를 기반으로 정보기술(IT) 생태계의 질서를 새로 만드는 데 성공하지 않았는가. 우리나라에도 관찰을 통해 자연과 인간에 대한 패턴과 습성을 밝히고, 이를 통해 새로운 기술과 제품에 대한 영감을 받는 연구자들이 많아지는 동시에 실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행복감을 주는 신제품이 많이 개발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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