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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에 세워진 6m짜리 초대형 칼…이유는?

    마을에 세워진 6m짜리 초대형 칼…이유는?

    미국 텍사스주(州)에 있는 보위라는 이름의 한 작은 마을이 ‘세계에서 가장 큰 칼’을 만들어 공개했다. 이 칼은 미국 서부 사냥꾼들이 즐겨 사용했던 것으로, 19세기 미국 아칸소의 개척자 제임스 보위 대위가 고안한 것이며 그의 동생과 대장장이 제임스 블랙에 의해 1830년에 전 미국에 퍼졌으며 이름도 보위의 이름을 따서 ‘보위 나이프’로 지어졌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진 이 칼은 지난 7일 보위 카운티에 있는 펠햄 공원에 기념물로 세워졌다. 길이 20피트(약 6m), 중량 3000파운드(약 1360kg)에 달하는 이 초대형 보위 나이프는 실물처럼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졌다. 제작과 건출 비용으로 15만 달러(약 1억7000만원)가 들어갔다. 물론 이 거대한 칼은 안전을 위해 날 부분은 세워 있지 않지만, 실제 보위 나이프의 특징은 양쪽에 날이 있으며 칼등 쪽의 날은 3분의 1로 짧다. 이를 검 전문용어로 의사도(疑似刀)라고 부른다. 이번 기념물 건립을 주관한 보위 상공회의소의 다이애나 톰린슨 이사는 현지 방송에 “우리는 많은 관광객이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우리 마을에 오길 바란다”면서 “물론 그들이 특산품을 사길 바라지만 마을에서 보고 즐길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길 원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마을은 오는 6월 중 기념 행사를 갖고 이때 기네스 세계기록 측으로부터 기록 인증을 받을 계획이다. 사진=페이스북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거북선, 세계 7대 명품 군함에 뽑혔다

    거북선, 세계 7대 명품 군함에 뽑혔다

    “적 침투 차단·기동성·심리전 강해… 임진왜란 해전 승리 결정적 영향” 19세기 미영전쟁 美범선 ‘최고’ 이순신 장군이 고안한 거북선(그림)이 세계 해군 역사상 7대 명품 군함에 뽑혔다. 미국 해군연구소(USNI)가 운영하는 USNI뉴스는 최근 군 관계자와 군사 전문가, 일반 독자 등 2만 6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거북선을 비롯해 미국의 USS 컨스티튜션, 영국의 HMS 드레드노트, 독일의 SMS 엠덴 등이 세계 7대 명품 군함에 선정됐다고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임진왜란(1592~1598) 때 활약한 조선의 거북선이 미국과 영국 등의 근현대 군함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USNI뉴스는 거북선에 대해 “볼록한 덮개로 선체를 덮어 거북 등껍질과 비슷한 모양이었다”며 “(적군의 선내) 침투가 사실상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속도가 빠르고 기동성도 좋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수(船首)에 장착된 용머리 모양의 연기 분출 장치는 강력한 심리적 무기”였다고 덧붙였다. 거북선이 임진왜란 해상 전투에서 “수치상으로 우세했던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군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당시 해전의 군사적 영향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USNI뉴스는 평가했다. 거북선과 함께 거론된 미국 이외 다른 국가의 명품 군함으로는 20세기 초 영국 해군의 거함거포 시대를 열었다고 알려진 HMS 드레드노트와 제1차 세계대전 때 인도양과 태평양에서 연합군을 괴롭혔던 독일 해군의 경순양함 SMS 엠덴이 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사상 최고의 명품 군함으로는 미국이 영국과 1812년 전쟁을 벌일 때 활약한 범선 USS 컨스티튜션이 선정됐다. 미군의 항공모함, 미군의 아이오와급 전함, 최초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인 ‘USS 노틸러스’도 명품 군함에 뽑혔다. 길이 62m인 USS 컨스티튜션은 전투 당시 영국 군함에서 발사한 포탄이 선체에 맞았지만 대부분 튕겨 나간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달걀-감자는 억울해…알고보면 몸에 좋은 식품 5가지

    달걀-감자는 억울해…알고보면 몸에 좋은 식품 5가지

    사람들의 오해를 한몸에 받지만 알고 보면 몸에 좋은 건강식품이 있다. 최근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영양학 전문가인 스콧 하딩 박사는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를 통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거나 오해하고 있는 건강식품 5가지를 소개했다. ◆1. 달걀달걀은 심장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은 식품으로 여겨져 왔다. 크기가 큰 달걀의 경우 식이성 콜레스테롤을 최대 185㎎까지 함유하고 있는데, 이것이 혈액 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인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실제로 지난 20여 년 동안 발표된 연구결과들을 보면, 식이성 콜레스테롤을 일일 섭취 권장량(300㎎) 정도 섭취하는 것은 혈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걀에는 식이성 콜레스테롤 외에도 단백질이나 다양한 군의 비타민 등이 다량 함유돼 있으므로 건강에 유익한 식품이라고 볼 수 있다. ◆2. 유지스프레드유지스프레드는 유지방에 물이나 식품, 첨가물 등을 혼합하고 유화시켜 만든 것으로, 마가린이나 버터가 대표적이다. 특히 식물성 지방으로 만드는 마가린이 19세기에 버터를 대체하는 식품으로 자리잡은 것은, 당시 의사들이 버터 등 포화지방의 흡수가 적을수록 심장질환 발병률이 낮아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 버터 대신 마가린 소비가 늘자 관동맥성심장질환 환자수가 감소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다만 마가린 내에 든 트랜스지방은 여전히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데, 하딩박사를 포함한 영양학 전문가들은 “포화지방 및 트랜스지방이 없는 식품이라면 안전하다”고 권장하고 있다. ◆3. 감자글리세믹지수(GI)가 높은 식품은 건강에 좋지 않은 식품으로 분류돼 왔다. 글릭세믹지수는 음식을 먹었을 때 포도당이 만들어지는 속도를 나타내는데, 글리세믹지수가 낮아야 탄수화물의 흡수가 느려져 다이어트에 유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자는 글리세믹지수가 높아 탄수화물 흡수 및 인슐린 분비에 영향을 미쳐 다이어트에 효과적이지 않다고 여겼다. 그러나 감자 안에는 비타민C와 비타민B, 미네랄 등이 풍부하고, 조리해서 먹을 경우 몸에 좋은 전분의 양이 늘어나 위장 내 박테리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4. 유제품살을 빼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피해야 할 음식 중 하나로 유제품이 꼽힌다. 우유나 버터, 요거트나 치즈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사실 이러한 유제품 중 일부에는 몸이 필요로 하는 단백질과 칼슘의 양이 풍부해 적당량 섭취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5. 가공하지 않은 땅콩 등 견과류땅콩 등 일부 견과루는 지방 함유량이 높아 칼로리도 높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가공하지 않은 생견과류 등은 건강한 지방과 단백질, 식이섬유 등이 풍푸배서 몸무게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심장질환을 예방해 사망률을 낮추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고통 획일화시킨 ‘트라우마’의 역설

    고통 획일화시킨 ‘트라우마’의 역설

    트라우마의 제국/디디에 파생·리샤르 레스만 지음/최보문 옮김/바다출판사/464쪽/2만 5000원 한때 ‘트라우마’를 들먹일 때마다 ‘웃기지 마라’ 식의 핀잔을 들었던 적이 있다. 정신과에서 상담만 받아도 병력 사항에 ‘빨간 줄’이 그어지던 대한민국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배트맨 영화 보고 화장실 가기 무서워하는 어린아이도 트라우마냐’며 비아냥대기 일쑤였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반드시 치료되고 보호받아야 할 병리 현상으로 인정받는다. 한데 언제, 어떤 계기로 트라우마가 이 같은 지위를 얻게 됐을까. 이 책 ‘트라우마의 제국’은 피해자가 어떻게 문화적, 정치적으로 존중받게 됐는지, 또 트라우마가 어떻게 그 자체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도덕적 범주가 되었는지를 짚고 있다. 아울러 트라우마가 안고 있는 사회적 문제점과 앞으로의 개선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트라우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일컫는 말이다. 처음 등장한 건 19세기 말이었으나 미국정신과학회가 채택하고 있는 진단기준서(DSM-III)에 등재된 건 1980년대 말이었다. 당시 미국도 한국에서처럼 용어 자체를 거짓으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2001년 9·11테러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광범위하게 쓰이는 용어가 됐다. 한국에서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계기로 개념이 알려졌고,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를 기점으로 일상용어가 됐다. 트라우마 개념의 역사는 의심과 확신의 역사이기도 하다. 공감의 피로도가 쌓이거나 트라우마의 정치화가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공감은 언제든지 다시 의심으로 바뀔 수 있다. 책 제목은 암시적이다. 제국처럼, 트라우마란 용어는 온갖 고통의 세계를 독점하며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일어난 사건’과 ‘경험한 사건’ 사이를 일련의 증상으로만 연결함으로써 개별적 경험의 다양성을 은폐하고 개인성을 사라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 앞세울 명분에 따라 질서가 만들어지고, 피해자 ‘자격’을 얻기 위해선 그 질서에 따라야 한다.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기전도 숨어 있다. 파키스탄 지진 때보다 태국에 쓰나미가 덮쳤을 때 국제적 지원 활동이 더 활발했다. 왜? 태국에는 서구 여행객이 있었고 파키스탄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트라우마는 피해자와의 거리감, 피해자의 정치색 등에 따라 선과 악을 가르고, 피해자 간 합법성의 순위를 매긴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수천년 갈등이 쌓은… 모두의 성지, 모두의 상처

    수천년 갈등이 쌓은… 모두의 성지, 모두의 상처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성벽의 도시다. 베이지색의 성벽이 둘러싸고 있는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도시 전체 면적의 0.8%에 불과하다. 하지만 구·신시가지를 막론하고 건물과 도로는 모두 성벽의 색을 따르고 있어 어디에 서 있든 성벽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느낌이다. 예루살렘을 수놓은 베이지색 벽돌은 햇빛을 머금으면 화려함을 뽐내고, 비가 도시를 적실 때는 본연의 청초함을 내보인다. 성벽은 변함 없이 그 자리를 지켜 왔지만 성벽의 돌은 매 순간 변화한다. 성벽 너머에는 그 유명한 황금색 돔의 이슬람 사원과 함께 유대교의 메노라(일곱 갈래의 촛대 문양), 기독교의 십자가로 장식된 여러 종교 건물이 풍경을 더욱 다채롭게 한다. ●이슬람·유대·기독교 문화 공존하는 도시 예루살렘은 성벽을 중심으로 안은 구시가지, 밖은 신시가지로 나뉜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인이 활동했던 지역은 모두 구시가지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예루살렘은 성벽 밖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다윗왕이 기원전 10세기경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은 이후 예루살렘의 주인은 수차례 바뀌었고 그 때마다 구시가지와 성벽은 파괴되고 또 건설되기를 반복했다. 오늘날의 구시가지와 성벽은 16세기 오스만튀르크제국의 쉴레이만 1세에 의해 재건돼 이어져 오고 있다. 예루살렘 성벽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전체 길이 4㎞인 성벽 위로 올라가 한 바퀴 돌며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경치를 비교할 수 있다. 구시가지와 바로 마주한 시온산이나 올리브산에 올라 산등성이를 따라 흘러가는 성벽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좀 더 멀리 나가 히브리대 캠퍼스가 있는 스코퍼스산의 전망대에 가면 예루살렘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걷기가 아닌 세그웨이를 택했다. 바퀴가 두 개 달려 있는 킥보드 모양의 스쿠터인 세그웨이는 운전자가 발판 위에 올라선 뒤 원하는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면 저절로 움직인다. 예루살렘의 세그웨이 투어 업체를 이용하면 초심자라도 간단한 훈련 과정을 거쳐 성벽 외곽을 둘러보는 단체 투어에 따라나설 수 있다. 세그웨이 투어는 걷기보다 품을 덜 들이며 예루살렘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약간의 스릴과 속도감도 느낄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軍 경계선이었던 성벽… 빈부 경제 장벽으로 세그웨이 투어 가이드는 우리를 ‘예민 모세의 풍차’ 밑 전망대로 이끌었다. 1860년쯤 근처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영국 출신 유대인 모세 몬테 피오르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풍차 주변에는 이제 부유한 유대인들이 모여들어 부촌을 형성하고 있다. 예루살렘 서쪽 성벽을 마주 보고 있는 이 전망대에 서면 성벽과 힌놈 계곡이 위아래로 평행을 이루며 좌우로 펼쳐진다. 푸른 힌놈 계곡과 옅은 흙빛의 성벽은 대조를 이루며 오른쪽으로 달려 나가다가 어느새 성벽은 끊어지고 계곡은 너른 사막과 만난다. 가이드는 저 사막 너머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관할이라고 알려 줬다. 풍차 밑 전망대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서쪽 성벽은 평화로웠지만 불과 50여년 전만 하더라도 총탄이 빗발치는 국경이었다. 1967년 이전 예루살렘을 동서로 분할 점령하고 있었던 요르단과 이스라엘은 서쪽 성벽을 두고 대치했고 요르단군의 총격으로 성 밖 인근에는 사람이 살기 어려웠다. 하지만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자 좁고 낡은 구시가지 대신 서쪽 성벽 밖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고급 빌라와 명품 브랜드들이 즐비한 쇼핑 거리인 마밀라몰이 들어섰다. 이스라엘과 중동을 정치·군사적으로 단절시켰던 예루살렘 성벽은 이제 부유한 유대인과 상대적으로 가난한 아랍인을 나누는 경제적 장벽이 됐다. 이제 성벽 안으로 들어갈 차례. 예루살렘 성벽에는 총 8개의 문이 있다. 그중 동쪽 성벽에 있는 황금문은 현재 사용되지 않는다. 구시가지는 복잡한 역사를 반영하듯 약 1㎢도 안 되는 면적이 종교에 따라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아르메니아 정교회 등 네 쿼터로 나뉘어 있다. 세그웨이 투어가 끝난 뒤 자파(욥바)문을 통해 구시가지에 입성했다. 구시가지에서 일말의 망설임을 느꼈다면 그것은 평균 높이 12m의 성벽이 주는 물리적 압박감에 더해 테러 가능성에 대한 심리적 불안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동예루살렘 등지에서 이스라엘 정부와 팔레스타인인 사이에 유혈 충돌이 격해지면서 외신들은 1987년, 2000년에 이은 제3차 인티파다(반이스라엘 민중봉기)가 시작됐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구시가지 유대·아랍인 공존… 관광객도 ‘북적’ 하지만 구시가지 길을 걸으며 이런 불안감은 점차 줄어들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았고 그들을 바라보는 유대인과 아랍인의 시선은 부드러웠다. 여행을 도와준 유대인 가이드는 “좁은 구시가지에 사는 유대인과 아랍인 대다수는 작은 소란이 곧바로 파멸로 이어지며 따라서 서로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 뿌리에서 나왔으나 수천 년 동안 불신하고 불화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복잡한 관계에 비해 구시가지에서 쿼터 간 이동은 시시할 정도로 쉬웠다. 성벽과 닮은 베이지색 벽돌의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쿼터를 넘나들며 전혀 다른 문화를 마주하게 된다. 자파문을 지나 기독교 쿼터 거리에서 성모 마리아와 예수가 그려진 기념품들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 순간 푸른색 모자이크로 장식된 아르메니아 스타일의 도자기가 가판에 등장한다. 기독교 쿼터와 이슬람 쿼터의 경계에는 구시가지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인 성분묘교회와 비아 돌로로사가 있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뒤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인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간 ‘고난의 길’ 비아 돌로로사와 예수가 사망하고 부활한 성분묘교회는 기독교도의 성지다. 하지만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슬람 양식의 건물과 아랍인 상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종업원의 호객행위에 못 이겨 상점에 들어가면 갖가지 향신료와 중동 음식을 접할 수 있다. 유대교 쿼터와 유대교도의 성지인 통곡의 벽은 성분묘교회에서 동쪽으로 이슬람 쿼터를 가로질러야 나온다. 여행 당일은 유대교의 안식일인 사바스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유대인들은 매주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 모든 생계 활동을 멈추고 신을 기린다. 모든 상점과 관공서는 금요일 일몰 전에 문을 닫고 유대인들은 일몰 무렵 통곡의 벽 앞에서 유대교 경전인 토라를 읽거나 함께 찬송한다. ●유대교 안식일 軍 경비 강화 긴장감 맴돌아 해가 지기 시작하자 유대교 전통 복장인 검은색 상하의를 입고 납작한 원반 모양의 모자 카파를 쓴 유대인들이 속속 이슬람 쿼터 거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구시가지를 지키던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도 경비를 강화했다.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아랍인 청소년들을 붙잡아 그자리에서 몸수색을 했고, 일부는 본부로 연행했다. 주위에 있던 아랍인들은 애써 모르는 척했으며, 유대인들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누구나 자유롭게 오갔던 거리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길을 따라 통곡의 벽에 이르기 전에 보안검색대가 앞을 가로막는다. 검색요원은 가방을 일일이 열어 보고 수상한 물건의 정체를 물었다. 보안검색대를 지나면 통곡의 벽이다. 이미 수많은 유대인들이 통곡의 벽 앞에 모여 있었다. 그들이 조명 아래서 앞뒤로 몸을 흔들며 토라를 낭송하거나 서로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며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은 장관이다. 통곡의 벽 건너에는 솔로몬왕이 지었다는 성전의 터가 있다. 지금은 이슬람교의 황금사원이 황금색 돔을 뽐내며 위풍당당하게 들어서 있다. 황금색 돔은 유대인들에게 아픈 역사를 상기시킨다. 세계 많은 이들이 예루살렘의 상징으로 주저없이 황금색 돔을 꼽지만 유대교 쿼터에서 파는 예루살렘 기념품에는 황금색 돔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통곡의 벽을 뒤로하고 성벽을 따라 시온산을 오르면 유대인들의 외침은 점점 잦아들고 통곡의 벽과 황금사원이 한눈에 보인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경제수도 텔아비브와 달리 밤에 활동하는 인구가 적기에 도시의 불빛도 여타 대도시에 비해 약하다. 하지만 주변 불빛이 은은할수록 황금색 돔과 통곡의 벽은 더욱 빛나 예루살렘의 야경에 특별함을 더한다. 글 사진 예루살렘(이스라엘)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여행수첩 →한국이 7시간(서머 타임 적용 시 6시간) 빠르다. 기후는 우기(겨울 12~2월)와 건기(여름 4~10월)로 나뉜다. 예루살렘이 텔아비브보다 평균 3도 정도 낮다. 여름에도 일교차가 있으므로 여러 종류의 옷을 준비해야 한다.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의 검문검색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공항 요원이 출입국시 직업, 이스라엘 방문 목적, 동반인, 이스라엘 숙소 등을 철저히 묻는다. 따라서 항공기 출발 3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출입국 시 여권에 스탬프를 찍는 대신 종이로 된 카드를 나눠 준다. 아랍 국가 방문 시 빚어질 수 있는 여러 불편을 줄이기 위해 여권에 이스라엘 방문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는 배려다.
  • “오해가 확실합니다”…알고보면 몸에좋은 식품 5가지

    “오해가 확실합니다”…알고보면 몸에좋은 식품 5가지

    사람들의 오해를 한몸에 받지만 알고 보면 몸에 좋은 건강식품이 있다. 최근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영양학 전문가인 스콧 하딩 박사는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를 통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거나 오해하고 있는 건강식품 5가지를 소개했다. ◆1. 달걀달걀은 심장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은 식품으로 여겨져 왔다. 크기가 큰 달걀의 경우 식이성 콜레스테롤을 최대 185㎎까지 함유하고 있는데, 이것이 혈액 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인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실제로 지난 20여 년 동안 발표된 연구결과들을 보면, 식이성 콜레스테롤을 일일 섭취 권장량(300㎎) 정도 섭취하는 것은 혈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걀에는 식이성 콜레스테롤 외에도 단백질이나 다양한 군의 비타민 등이 다량 함유돼 있으므로 건강에 유익한 식품이라고 볼 수 있다. ◆2. 유지스프레드유지스프레드는 유지방에 물이나 식품, 첨가물 등을 혼합하고 유화시켜 만든 것으로, 마가린이나 버터가 대표적이다. 특히 식물성 지방으로 만드는 마가린이 19세기에 버터를 대체하는 식품으로 자리잡은 것은, 당시 의사들이 버터 등 포화지방의 흡수가 적을수록 심장질환 발병률이 낮아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 버터 대신 마가린 소비가 늘자 관동맥성심장질환 환자수가 감소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다만 마가린 내에 든 트랜스지방은 여전히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데, 하딩박사를 포함한 영양학 전문가들은 “포화지방 및 트랜스지방이 없는 식품이라면 안전하다”고 권장하고 있다. ◆3. 감자글리세믹지수(GI)가 높은 식품은 건강에 좋지 않은 식품으로 분류돼 왔다. 글릭세믹지수는 음식을 먹었을 때 포도당이 만들어지는 속도를 나타내는데, 글리세믹지수가 낮아야 탄수화물의 흡수가 느려져 다이어트에 유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자는 글리세믹지수가 높아 탄수화물 흡수 및 인슐린 분비에 영향을 미쳐 다이어트에 효과적이지 않다고 여겼다. 그러나 감자 안에는 비타민C와 비타민B, 미네랄 등이 풍부하고, 조리해서 먹을 경우 몸에 좋은 전분의 양이 늘어나 위장 내 박테리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4. 유제품살을 빼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피해야 할 음식 중 하나로 유제품이 꼽힌다. 우유나 버터, 요거트나 치즈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사실 이러한 유제품 중 일부에는 몸이 필요로 하는 단백질과 칼슘의 양이 풍부해 적당량 섭취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5. 가공하지 않은 땅콩 등 견과류땅콩 등 일부 견과루는 지방 함유량이 높아 칼로리도 높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가공하지 않은 생견과류 등은 건강한 지방과 단백질, 식이섬유 등이 풍푸배서 몸무게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심장질환을 예방해 사망률을 낮추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티켓 파워’ 조승우·옥주현 드디어 만난다

    ‘티켓 파워’ 조승우·옥주현 드디어 만난다

    조승우(왼쪽)와 옥주현(오른쪽)이 오는 6월 뮤지컬 ‘스위니토드’로 한 무대에 선다. 실력과 티켓파워 면에서 국내 최고의 뮤지컬 배우로 꼽히는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추는 것은 처음이다. 2007년 한국 초연 이후 9년 만에 다시 공연하는 ‘스위니토드’는 미국 뮤지컬계의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의 대표작으로 1979년 초연 당시 토니상 8개 부문을 휩쓸었다. 19세기 산업혁명 초기 런던을 배경으로, 누명을 쓰고 외딴섬으로 추방당했다가 15년 만에 돌아온 이발사 스위니토드가 복수극을 벌이는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이다. 조승우는 주인공 스위니토드 역을, 옥주현은 스위니토드에게 연정을 품고 그의 복수를 돕는 파이 가게 주인 러빗 부인 역을 맡는다. 최근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 역을 소화한 양준모와 다재다능한 여배우 전미도가 각각 스위니토드와 러빗 부인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활동하는 연출가 에릭 셰퍼가 연출을 맡는다. 공연은 오는 6월 21일부터 10월 3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열린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반전 코믹 연극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반전 코믹 연극

    대중에게 익숙한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확 뒤집은 코믹 연극이 대학로 무대에 오른다. 웃음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일본 희극계의 명장 미타니 고키의 작품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다. 선과 악, 인간의 양면성을 다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원작이다. 미타니 고키는 그의 장점인 특유의 웃음과 유머 코드로 원작을 완전히 새롭게 재창작, 원작이 풍기는 어두운 이미지와 분위기를 싹 걷어 냈다. 그는 “웃음이 없는 작품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항상 어떻게 하면 사람을 웃길 수 있을까 고민한다. 웃음은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밝혔다. 극은 19세기 말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다. 신경의학 전문 의사이자 과학자 지킬 박사는 실험실에서 인간의 선과 악, 두 개의 인격을 완벽하게 분리할 수 있는 신약 연구에 몰두한다. 하지만 연구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두고 개발된 신약은 아무런 효험이 없다. 이 사실이 학회에 알려지면 연구 보조금이 끊기게 된다. 지킬 박사는 자신과 체형이 비슷한 무명 배우 빅터를 섭외해 약물을 마신 뒤 자신에게서 분리된 사악한 인격체 하이드를 연기하게 한다. 둘은 모든 사람을 깜빡 속게 할 정도의 완벽한 연기를 위해 리허설에 돌입한다. 2014년 3월 일본 도쿄예술극장에서 초연됐다. 국내엔 지난해 처음 소개됐다. 첫 공연 당시 3개월간 관객 2만 5000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지킬 박사 역은 서현철·남문철·김산호가, 지킬 박사의 약혼녀 이브 댄버스 역과 이브의 또 다른 인격체 하이디 역은 송유현·신의정이 연기한다. 오는 8일부터 7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자유극장, 전석 4만원. 1644-5210.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계급이 빚은 빵, 문명이 차린 아침식사

    계급이 빚은 빵, 문명이 차린 아침식사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윌리엄 시트웰 지음/안지은 옮김/에쎄/608쪽/2만 6000원 아침식사의 문화사/헤더 안트 앤더슨 지음/이상원 옮김/니케북스/496쪽/2만 2000원 뱃속의 기쁨을 채우고자 하는 식욕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다. 프랑스인 미식가 장 앙텔름 브리야사바랭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식은 “삶을 지배하는 주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생활은 삶의 소비로 인해 지친 이들에 대한 위로다. 미식을 탐하지 않는 자는 없다. 신간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에쎄)와 ‘아침식사의 문화사’(니케북스)는 4000년에 이르는 음식 역사와 식습관, 그리고 인류가 맛본 요리들이 무엇인지를 탐구한 책이다.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가 기원전부터 현대까지 시대별 레시피를 발굴해 미시적으로 들여다본 음식의 연대기라면 ‘아침식사의 문화사’는 아침 식사가 인류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됐는지를 종교, 무역, 기술, 편리성 등 4가지 측면에서 흥미롭게 펼쳐낸다. 인류 문명은 빵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빵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레시피가 거의 똑같다. 고대 이집트 룩소르의 세네트 묘실에는 빵을 굽는 장면이 세밀하고 다채로운 색채로 묘사돼 있다. 이 벽화에는 곡물을 밀가루로 만드는 방법뿐 아니라 나무 그릇에 곡물을 빻고 밀가루 반죽을 주무르거나 화덕에 넣어 빵을 굽는 노동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표현돼 있다. 이 벽화에 나오는 빵은 오늘날의 피타 빵과 흡사하다. 이집트인들도 효모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여 지금의 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세시대의 빵은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음식이었다. 귀족들은 하얀 맨치트 빵을, 상인들은 밀로 만든 둥근 빵, 가난한 서민들은 겨로 만든 빵을 먹었다. 귀족들은 흰색 빵을 손님에게 내놓으며 신분을 과시했고 수도원에서도 서열이 높은 성직자일수록 흰색 빵을 먹었다. 흰색 빵은 11세기부터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16세기 후반에야 대중화된다. 1588년 출간된 요리책인 ‘좋은 주부가 주방에서 직접 손으로 만든 음식들’에는 흰색 맨치트 빵의 레시피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고운 밀가루 28㎏과 미온수 3.7ℓ, 하얀 소금 한 줌과 효소 570㎖를 골고루 잘 섞어 반죽한 다음 30분간 내버려 뒀다가 화덕에 넣고 1분 정도 익힌다.’ 지금의 레시피와도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은가. 고대와 중세시대 요리의 레시피는 현대에 와서 재현되기도 한다. 영국의 대표적인 고급 레스토랑인 팻덕의 셰프 헤스턴 블루먼솔은 2011년 ‘고기 과일’이라는 중세 요리를 재현해 미슐랭 별 3개를 받기도 했다고 책은 소개한다. 인류는 이 같은 요리들을 시대별로 즐겼지만 아침 식사의 경우 종교적으로 억압된 암흑기도 있었다. 중세에 접어들면서 아침 식사는 천박하고 상스러운 대상으로 전락한다. 과식, 과음 등 육체에 관한 모든 쾌락이 억압된 중세시대 도덕론자들은 점심과 저녁 두 끼면 하루 식사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또 아침을 챙겨 먹는다는 의미는 힘든 농사일을 하는 빈민층을 상징하는 일종의 표식으로 여겨졌다. 15세기 중반이 돼서야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 같은 옹호론자 덕에 아침 식사가 전 유럽에 유행처럼 번지게 됐다. 책은 17세기의 ‘무역’ 열풍도 아침 식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아침 식탁에 등장하는 홍차, 커피, 카카오가 모두 이 시기에 유럽으로 유입됐다. 18세기 영국인과 미국으로 건너간 유럽인은 아주 푸짐한 아침 식사를 즐겼는데 이는 너무 바빠서 점심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직장인을 위한 배려였다고 책은 말한다. 종교와 무역에 이어 아침 식사에 영향을 미친 것은 ‘기술’이었다. 1760~1840년 일어난 산업혁명으로 물류 수송이 원활해지고 중산층이 부상하면서 아침 식사는 그 이전 시대보다 호사스러워졌다. 19세기 말 이후 아침 식사의 대명사 격인 시리얼은 전 미국의 식탁을 접수하며 표준이 됐다. 하지만 저자가 그리는 아침 식사의 미래는 풍성하다. 지금처럼 허겁지겁 먹는 ‘때우기’ 식이 아니라 10~15년 내에 마치 저녁 식사처럼 느긋하게 코스 요리를 먹는 방식이 될지 모른다고 예견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시론] 라면 담합 사건 대법원 판결의 아쉬움/이상승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시론] 라면 담합 사건 대법원 판결의 아쉬움/이상승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서로 만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심지어 유흥이나 취미생활을 공유하기 위해서도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만났을 때의 대화는 가격을 올리려는 술책을 꾸미는 것과 같이 일반 대중의 이익에 반하는 모의로 끝나게 마련이다. 이런 모임 자체를 법으로 방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한 자유와 정의에도 합치하지 않는다. 비록 동종업계 종사자들이 때때로 회합하는 것을 법으로 막을 수는 없다 해도 그런 모임을 법으로 조장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며 필요하게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자유시장 경제 체제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의 1776년 저서 ‘국부론’에 등장하는 말이다. 당시에는 기업들의 담합을 규제하는 공정거래법이 없었지만, 산업혁명이 본격화돼 거대 기업이 등장하기 시작한 19세기 말 미국은 셔먼법을 제정해 담합을 엄정히 다스려 왔다.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도 1981년 출범 이후 담합 제재에 상당한 성과를 거둬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과거 정부 주도의 개발 연대 시절 스미스의 권고와 반대로 정부가 가격 규제, 진입 규제, 행정 지도 등을 통해 기업들의 담합을 용인, 조장해 온 역사로 인해 담합 관행이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공정위는 4개 라면 업체들이 2001년부터 약 10년간 라면 가격을 공동으로 인상하기로 담합해 왔다고 심결한 바 있다. 그런데 지난 1월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선두 업체 농심이 가격을 올리면 경쟁 사업자들이 이를 추종하는 관행이 2001년 이전부터 있어 왔으므로 라면 업체들이 가격 인상을 위해 별도 합의를 할 경제적 유인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주된 근거다. 대법원은 몇 가지 측면에서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첫째, 라면 유통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간과했다. 1990년대 중반 등장한 대형마트(이마트 등)는 개인 슈퍼, 재래시장 등을 급속히 대체해 2000년대 후반에는 유통 채널의 25% 이상을 차지해 대규모 물량 구매를 바탕으로 상당한 가격 협상력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라면 시장의 전체 점유율이 60~70%에 달하는 농심이라 하더라도 단독으로 가격을 인상할 때와 비교하면 나머지 30~40%를 차지하는 3개사와 공동으로 가격을 인상할 때 대형마트와의 협상에서 유리하게 된다. 특히 라면은 생필품적인 성격이 강해 한 업체만 가격을 올리고 다른 업체들은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가격을 인상한 업체의 판매량이 상당히 감소하는 (경제학 전문용어를 쓰면 교차 가격 탄력성이 큰) 특성이 있다. 예를 들어 2011년 11월 말 단독으로 가격을 올린 농심의 점유율은 한 달 만에 4% 포인트 떨어진 바 있다. 이는 시장점유율이 70%에 가까운 1위 사업자인 농심이라도 하위 3개 사업자와 담합해 가격을 공동으로 인상할 경제적 인센티브가 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증거다. 둘째, 라면 4사는 단순히 가격 인상의 보조를 맞추는 외형상 가격의 일치에 그치지 않았다. 라면 업체들이 대표 제품군에 대한 정확한 가격 인상 정보를 가격 인상 전에 서로 주고받았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을 뿐 아니라 부자재(권장 소비자 가격이 표기돼 있는 포장지 등)의 관련 사항, 가격 인상 제품의 생산계획·생산일자·출고일자, 구가 지원(인상 전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 기간 등 미공개 정보를 수시로 교환하고 이를 가격 인상에 반영했다. 예를 들어 2008년의 경우 농심은 가격 인상일 이틀 전 삼양에 제품별 상세한 가격 인상 내용을 이메일로 전달했다. 삼양은 이를 반영해 가격 인상 내역을 결정하고, 가격 인상일 3~4일 전에 농심, 야쿠르트, 오뚜기에 가격 인상 내역 및 가격인상 제품 생산일을 전달했다. 또한 삼양은 비빔면의 경우 야쿠르트의 가격 인상안을 입수해 이를 반영했다. 담합은 비밀리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합의의 직접적 증거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합의의 직접적 증거가 없는 경우 가격의 외형상 일치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담합 판정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미공개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가격 인상에 반영한 사실이 발견되면 이는 담합 입증의 강력한 추가적 정황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 대법원은 이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큰 아쉬움을 남겼다.
  • 쇠사슬에 묶인 어린 형제…아동학대 범인은 이모

    쇠사슬에 묶인 어린 형제…아동학대 범인은 이모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 잔인한 아동학대사건이 발생했다. 쇠사슬에 묶여 지내던 어린 형제가 이웃들에게 극적으로 구조됐다고 현지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아이들은 쇠사슬에서 풀려난 뒤 어디론가 사라져 여지껏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브라질 바이아주의 마쿠리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구조된 형제는 각각 9살과 7살 흑인으로 쇠사슬에 묶여 집안에 갇혀 있다가 가까스로 문을 열고 길로 나왔다. 27일(현지시간) 벌어진 일이다. 발이 쇠사슬에 묶여 있어 걸음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어린 흑인형제가 길에 나타나자 이웃주민들과 행인들은 깜짝 놀랐다. 영락없이 19세기 노예의 몰골이었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선 1888년 노예제도가 영구 폐지됐다. "21세기에 길에서 쇠사슬에 묶인 노예어린이들을 보다니..." 이런 생각에 이웃주민들과 행인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동안 형제를 바라보기만 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이웃들이 달려들어 아이들을 풀어주려 했지만 쇠사슬을 끊기란 쉽지 않았다. 다행히 한 주민이 와이어절단기를 들고 달려오면서 아이들은 쇠사슬에서 풀려났지만 이웃들은 또 한번 놀랐다. 두 아이를 쇠사슬로 묶어 가둔 건 보호자인 이모였다. 두 형제는 이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이들의 이모는 여행으로 집을 비워야 했다. 이모는 마땅히 조카들을 맡길 곳이 없자 두 아이들을 쇠사슬에 묶어 집에 가두고 여행을 떠났다. 아이들이 쇠사슬에 묶인 모습, 이웃들이 쇠사슬을 풀어주는 모습을 누군가 휴대전화로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면서 사건은 브라질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문제가 커지자 아이들의 이모는 "아이들에게 도벽이 있어 묶어둘 수밖에 없었다"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이모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있지만 알코올중독자라 자식들을 돌보지 못한다"면서 "사실상 고아인 조카들을 돌보고 있는데 속사정도 모르면서 무작정 욕만 한다면 곤란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편 아이들은 쇠사슬에서 풀려난 뒤 행방에 묘연하다. 이웃들이 미처 챙기지 못한 사이 형제가 손을 잡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현지 언론은 "구조된 날 이후 형제의 행적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면서 "아무도 행방을 몰라 경찰이 아이들을 찾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페이스북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장영실이 뿌린 ‘과학의 씨앗’ 꽃피우다

    장영실이 뿌린 ‘과학의 씨앗’ 꽃피우다

    조선 세종 이후에도 의약·지리·자연철학 ‘일취월장’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은 ‘4월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이 피어나는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지만 국내 과학계에서 4월은 대중과 과학이 만나는 축제의 달이다. 더군다나 올해는 ‘대한민국 과학기술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인 만큼 다채로운 과학기술 행사들이 준비되고 있다. ●한국 과학기술 50년… 행사 봇물 다양한 행사 중 눈에 띄는 것은 지난해 12월 문을 연 국립부산과학관이 이달 11일 시작한 ‘장영실 특별기획전’이다. 조선 세종조에 활약한 장영실은 생몰 연대조차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과학자이자 발명가다. 최근 그의 생애를 조명하는 TV 드라마도 방영된 가운데 장영실을 통해 우리 전통 과학기술을 되돌아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전시회다. 많은 사람들이 장영실과 그를 적극 지원했던 세종대왕의 업적 때문에 당시가 우리 역사에서 과학기술이 가장 발달했던 때이며 그 이후 과학기술은 사실상 쇠퇴했다고 알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 석학들의 모임인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 선정한 ‘명예로운 과학기술인’ 31명의 면면을 보더라도 20세기 이전의 인물은 11명에 불과한데 이 중 세종시대 인물이 3분의1인 4명에 이른다. 실제로 세종 때 이순지가 완성한 ‘칠정산’ 내편과 외편은 15세기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역법으로 평가받았지만 이후 개선되지 못하고 후대 역법 연구자들은 천체 운행을 제대로 계산하지도 못했다. 또 장영실이 기존 아날로그 방식의 물시계를 정확한 시보 장치를 갖춘 일종의 디지털 물시계로 만든 ‘자격루’도 그가 파직된 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어서 무용지물이 됐다. 또 이천과 장영실이 세종의 명을 받아 완성한 ‘혼천의’ ‘간의’ ‘일성정시의’ ‘정남일구’ 등의 천문 기기들은 세종 이후 사용되지 않고 방치돼 있다가 임진왜란 당시 대부분 사라지고 남은 기구들도 사용법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은 세종 이후 우리나라 과학기술 전통의 맥이 끊겼다고 하는점을 뒷받침하는 듯하지만 과학사 학계에서는 “그런 생각은 서양 과학과 유사한 형태만 과학으로 보는 시각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대 국사학과 문중양 교수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역사가 짧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이유는 17세기 이후 탄생한 서양 근대과학의 개념과 범주에서 전통 과학을 보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 전통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과학이라는 필터를 제거하고 특정 시대의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 이후에도 의약학과 지리학, 자연철학 분야는 더욱 발전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15세기 대표적인 의학 연구 서적은 ‘향약집성방’ ‘의방유취’인데 이는 금나라와 원나라의 의약학을 수용해 한국적으로 정리한 것에 불과했다. 임진왜란 이후 17세기에는 여기에 명나라의 의약학 기술까지 포함해 조선의 시각으로 정리하고 재해석한 허준의 ‘동의보감’이 등장했다. 당시 동의보감은 중국과 일본에서 의약학 교본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정호 ‘대동여지도’는 지리학의 절정 지리학 분야에서도 후대에 갈수록 행정, 군사, 경제 등 다양한 목적과 기능을 가진 특수 지도가 만들어지고, 각 지방 군현 단위의 세부 축적 지도 등을 제작하면서 기술 발전이 거듭됐다. 이런 전통 지리학 기술의 발전은 19세기 중순에 만들어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서 절정을 이룬다. 형이상학적 자연철학 분야에서도 세종 때 이순지가 편찬한 천문학서 ‘제가역상집’이 후대에 나온 것보다 수준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많은 사람들이 실학자들은 서양 과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서양 과학을 비판적으로 일부만 받아들이며 우리 고유 과학사상의 틀을 마련하려 했다는 것이 과학사학자들의 의견이다. 17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활약했던 실학자 중에서 김석문은 태극과 이(理)의 원리를 바탕으로, 홍대용은 기(氣)의 개념으로 각각 지동설을 주장했고 최한기는 기륜설(氣輪說)이라는 전통적 이론 체계로 당시 중국을 통해 들어온 뉴턴의 만유인력과 우주론을 해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 교수는 “한국 전통 과학과 근대 서양 과학은 과학적 사실과 내용은 비슷할 수 있지만 다른 패러다임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근대 이후 서양 과학은 발전해 왔는데 우리는 퇴보했다는 식으로 인식하는 것은 무리”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JAPAN HOFU-호후防府에서 보낸 며칠

    JAPAN HOFU-호후防府에서 보낸 며칠

    호후? 들어 본 적이 있었던가? 늘 그렇듯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짐부터 꾸렸다. 어디로 발을 떼야 할까 역전에서 두리번대는 것으로 호후에서의 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2박 3일, 그러니까 내 인생의 무려 20만 초를 호후와 함께했다. 모자이크처럼 촘촘했던 시간들이다. 호후 일본 혼슈 남서부 야마구치현의 중앙에 위치한 도시. 현내 최대 도시인 시모노세키와 주고쿠 지방 거점 도시인 히로시마의 중간 즈음. 최남단에 면한 세토나카이해를 향해 일급 수계인 사바강이 흐르고 그 주변으로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사시사철 온화한 바람이 드나드는 작은 도시다. 내 오늘은 기꺼이 달린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던 첫인상과 달리 호후텐만구防府天?宮 주변이 시끌벅적해졌다. 일 년에 한 번, 11월의 마지막 주말이면 평소의 한적한 분위기가 일시에 전복되어 호후텐만구를 중심으로 마을 전체에 활기가 넘쳐난다. 1004년부터 시작된 축제 코신코사이御神幸祭가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올해가 1,012회째. 세상에, 천년이 넘게 지속되어 온 축제라니. 호후텐만구는 904년에 창건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이자 교토의 기타노텐만구北野天?宮, 후쿠오카의 다자이후텐만구太宰府天?宮와 더불어 일본의 3대 텐만구로 손꼽히는 곳이다. 텐만구는 일본의 ‘학문의 신’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를 모시는 신사를 말한다. 9세기 중후반 헤이안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정치가로 워낙에 똑똑한 사람이어서 천황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시기 질투하고 눈엣가시로 여기던 이들이 많았는데 결국 그들에게 모함을 당해 교토에서 후쿠오카로 유배되어 생을 마쳐야 했다. 억울하게 죽은 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축제가 시작됐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사람들은 바알간 매화 문양을 얼굴에 도장 찍고 텐만구 돌계단을 오르내렸다. 매화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몹시 아꼈던 꽃으로 몸에 그 문양을 도장 찍으면 그가 매화를 아꼈던 것처럼 그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고 믿는, 일종의 행운의 상징이다. ‘학문의 신’을 기리는 축제인 만큼 한창 공부할 나이의 아이들이 눈에 띄었지만 사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한껏 들뜬 모습으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축제는 오후 내내 추운 겨울에도 아랑곳 않고 맨몸을 드러낸 남자들이 무리를 지어 가마를 이고 “왓쇼이, 왓쇼이”를 외치며 텐만구의 돌계단을 용맹스럽게 뛰어 오르는 의식에 이어 해가 진 후 텐만구에 모신 ‘학문의 신’을 가마에 싣고 2.5km 떨어진 해안가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행렬로 이어진다. 일 년 내내 텐만구 안에서 사람들의 온갖 기원을 들어주는 신을 위해 이날 하루 바닷가까지 바람을 쐬어 주는 거라고 했다. 사실 좀 뜨끔한 기분이 들었다. 지난 가을 한가위 달밤에 네 살배기 조카 녀석이 어른들의 소원 세례를 보고는 “달님, 힘내세요!”를 외쳤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 어른들 소원을 다 들어주다 달님이 지칠까 봐 그랬는지, 아니면 달님이 힘내서 소원을 다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는지 알 순 없지만 참 기특하단 생각을 했었다. 한편으로 때마다 해님, 달님에게 무턱대고 소원을 들어 달라고 조르기만 하는 내 모습이 조금은 쑥스럽게 느껴지기도 했고 말이다. 꽤 불량스러워 보이는 청년들은 물론이고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이들까지, 축제에 어우러지는 사람들에는 구분이 없었다. 전혀 어울릴 법하지 않은 이들이 함께 뛰고 함께 웃는 모습은 기특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고. 그리고 나도 그들 틈에 끼어 힘껏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후의 귤빛 오후 이튿날 아침, 호후텐만구 돌계단 아래에 위치한 휴게소 우메테라스에서 자전거 한 대를 빌렸다. 한눈에 낯선 얼굴을 알아보는 마을 사람들. 빤히 쳐다보는 눈길이지만 부담스럽지는 않다. 여느 시골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이웃집 손녀를 보는 듯했기에 그 시선을 즐기며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갈랐다. 고목이 드리운 스오코쿠 분지를 지나 옛 영주 모리의 저택에 단장한 모리씨 정원까지 10분 남짓이면 충분하다. 서울에선 한창 눈발이 날린다는데 이곳은 그저 단풍이 곱다.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드물다는 말이 참말인가 보다. 조롱박 모양의 못을 크게 끼고 돌면서 단풍과 어우러진 저택을 감상하는 것도 좋고, 천왕이 머물렀다는 이곳 저택 안에서 정원 너머로 공장 굴뚝 연기가 뽀얗게 피어오르는 도시 전경을 바라보는 것도 색다르다. 저택에서 바로 연결된 박물관에서는 모리 가문에 내려오는 국보와 일본을 대표하는 산수화가 셋슈雪舟의 작품 등 다양한 보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마츠다 농원松田農園에는 키 작은 귤나무 아래 돗자리를 깐 나들이객들이 제법 있다. 종일 농원 내에서만큼은 얼마든 귤을 따 먹을 수 있다니 다 먹지도 못할 것을 괜스레 봉지가 터질 만큼 욕심을 내게 된다. 어른들이 귤 따기에 여념이 없는 사이 귤 하나 제대로 움켜쥐기에도 버거운 고사리 손 아이들은 굴러 떨어진 귤 하나를 그저 소중히 쥐고 있다. 딱 그만큼만, 제 손에 잡을 수 있는 만큼만. 호후의 오후는 그랬다. 귤껍질 깔 때 톡 터져 나오는 상큼하고도 신선한 그 찰나의 기분이랄까. 손톱에 노오란 물이 들도록 연신 귤을 까 먹으면서 귤빛 오후가 흘러간다. 우메테라스 자전거 대여 09:00~20:00 4시간 기준, 전동 자전거 300엔, 일반 자전거 200엔 추천코스 | 호후텐만구→스오코쿠 분지(절)→모리정원→도다이지 별원 아미다지(절) 모리씨 정원 09:00~17:00 성인 400엔, 중학생 이하 200엔 (박물관 관람은 요금 별도. 통합권은 1,000엔) 마츠다 농원 귤 따기 체험 10:00~17:00 성인 500엔, 학생 400엔, 미취학아동 300엔 종종걸음이 주는 여유 자전거를 반납하러 우메테라스에 들렀다가 호후 인근 야마구치에서 기모노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것도 한때 내로라했던 고급 요정 사이코테이菜香亭에서. 1878년경에 문을 열어 지난 1996년까지 영업한 이 요정은 현재 건축, 정원, 미술품, 게이샤 등 일본 전통문화를 가까이 접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새로이 문을 열었다. 버선에서부터 머리 장식에 이르기까지 기모노 차림으로 단장을 한다. 입혀 주는 대로 가만 서 있기만 하는 데도 겹겹이 걸치고, 동여매고, 보통 일이 아니다. 30여 분을 낑낑거리고서 거울 앞에 가려다 넘어질 뻔. 보폭이 엄청나게 좁다. 그래도 그 모습이 궁금해 종종걸음을 걸으니 보는 이들이 재미있다고 깔깔깔. 내친김에 루리코지瑠璃光寺로 나들이를 다녀온다. 사실 야마구치는 교토를 동경하던 고대 일본 씨족의 하나인 오우치 가문이 교토를 모방하여 만든 도시다. 오우치 가문이 꽃피운 야마구치의 문화 가운데 가장 절정에 이른 것이 바로 이곳 루리코지. 나라의 호류지, 교토의 다이고지와 함께 일본 3대 명탑의 하나이자 국보로 지정된 고주노토五重塔를 중심으로 울긋불긋 단풍이 어우러진 모습이 절경이다. 그리고 모리씨 정원에서 만났던 화가 셋슈, 그가 직접 그의 산수화폭을 풀어놓은 셋슈테이 정원과 아주 먼 옛날 흰 여우가 상처를 치료했다는 전설이 깃든 800년 전통의 유다 온천까지 두루두루 종종걸음을 걸었다. 기모노 차림이라 더 색다르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기모노 차림이라 참 좋았다. 그 풍경에 한 폭으로 스며드는 느낌이었달까. 불편하단 생각보단 여유롭다는 기분이 더 강했다. 그냥 휙 지나치지 않고 조금조금 흰 도화지 위에 모자이크를 찍듯 발 도장을 찍어 갔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2박 3일보다 조금 더 길고 촘촘한 20만 초를 보냈다. 사이코테이 기모노 체험 버선부터 머리 장식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방식으로 기모노를 착용하고 유서 깊은 명승지를 산책할 수 있는 체험. 기모노 착용 시간 30여 분 소요. 여름에는 유카타 착용. 09:00~17:45 (매주 화요일 휴관) 2시간 이내 2,500엔, 2시간 이상 3,500엔(착용시간 약 30분은 포함하지 않음) 하루 전 예약 필수 083-934-3312 www.c-able.ne.jp/~saikou 유다온천 FOOT SPA카페 스타일로 단장한 유다온천의 족욕시설. 일본의 온천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공 족욕탕과 확연히 구분된다. 따뜻한 온천수 증기가 온몸을 감싸는 가운데 온천의 마스코트인 귀여운 흰 여우가 하얀 거품 위에서 눈웃음치는 카페 라떼 한잔의 여유. 온천수에 몸을 푹 담그지 않아도 충분하다. 08:00~22:00 어른 200엔, 중학생 이하 100엔 083-921-8818 www.yuda-onsen.jp ▶travel info Airline야마구치현 호후시로 단번에 가는 비행편은 아직 없다. 인천에서 후쿠오카까지 항공편을 이용, 후쿠오카 하카타역에서 신칸센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인천에서 후쿠오카를 이어 주는 국내 항공편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등이 매일 운항하고 있다. FOOD 계란덮밥 | 바삭한 튀김옷을 입은 계란. 그런데 속은 촉촉한 반숙 상태 그대로다. 독특하게 조리한 계란을 생선 튀김, 야채 등과 곁들여 먹는 일종의 덮밥. 19세기 메이지유신 이후 이 지역의 첫 현령인 카토리 모토히코가 즐겨 먹었던 음식을 상품화 했다. 500~1,000엔. 가와라 소바 | 야마구치현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이다. 뜨거운 기왓장 위에 올린 소바 면을 차가운 간장 국물에 적셔 먹는다. 기왓장에 닿은 소바 면은 바삭하게 익어 사뭇 다른 식감이다. 시모노세키 음식이라지만 야마구치현 어디에서나 맛있게 먹을 수 있다. 1인 1,000엔 정도. 복어 | 야마구치현은 일본 제일의 복어 산지. 때문에 싱싱하고도 맛있는, 더하여 저렴한 가격에 복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복어회가 포함된 사시미 코스 요리가 1인 7,000~8,000엔 가량. 간식용, 반찬용, 안주용으로 복어가 들어간 어묵도 좋다. 글·사진 Travie writer 서진영 취재협조 호후시 www.city.hofu.yamaguchi.jp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초대주미공사 박정양 문집 ‘죽천고’ 보존 처리작업 착수

    초대주미공사 박정양 문집 ‘죽천고’ 보존 처리작업 착수

    1888년 초대 주미 공사로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파견된 박정양의 문집 ‘죽천고’(竹泉稿)가 보존 처리된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4일 해외 한국 문화재의 체계적인 보존·복원 처리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첫 번째 사업으로 ‘죽천고’에 대한 보존처리 작업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25권 18책으로 구성된 ‘죽천고’에는 19세기 후반 조선의 사상과 정세, 주변 국가들이 처한 상황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19세기 미국의 지리와 역사, 근대적 제도와 문물을 소개한 ‘미속습유’(美俗拾遺)가 포함돼 있다. 문화재청은 “‘미속습유’는 유길준의 ‘서유견문’(西遊見聞)보다 1년 앞선 1888년 탈고됐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면서 “박정양은 당시 ‘미속습유’ 저술 과정을 통해 미국이 부국강병으로 강대국에 이른 배경과 실상을 살펴 조선의 개화와 자강책을 모색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죽천고’는 그간 박정양의 증손인 박찬수 고려대 교수가 소장해 오다 보존·복원처리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최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맡겨졌다. 2년간 보존처리 뒤 복제 등을 통해 전시·학술자료로 활용되며, 내년 봄 개관할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박물관에서 일반에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新전원일기] 서우석 산머루 농원 대표

    [新전원일기] 서우석 산머루 농원 대표

    산머루는 그를 만나 명품 와인이 되었다 2010년 여름, 한 스쿠버다이버가 발틱해에서 오래전 침몰한 난파선을 발견한 일이 있었다. 난파선 안에는 수천병의 와인이 들어 있었고 난파선의 제작 연대를 확인한 결과 배에 보관되었던 와인은 무려 19세기 초에 만들어졌다는 게 밝혀졌다. 여러 걱정과는 달리 발틱해의 와인은 전문가들로부터 ‘신의 물방울’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게다가 병당 8000만원이라는 고가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수년 전에 읽은 기사의 한 토막을 떠올리며 임진강과 연한 37번 국도 위를 달렸다. 파주 감악산 중턱에 와이너리를 갖춰 놓고 머루와인을 생산한다는 서우석(69) 대표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토종 산머루로 와인을 만들었고 ‘명주 장인’이라는 칭호까지 얻은 그의 곡절이 궁금했다. # 사람도 숙성되는가 머루밭에서 올라온 서 대표는 바랜 청색 점퍼에 앞부리에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구멍이 뚫린 검정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악수를 위해 내민 그의 손은 거칠었다. 늘 흙과 사는 그의 삶이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그를 쫓아 농원 구경에 나섰다. 마침 대만 관광객 20여명이 와이너리 체험을 위해 도착한 상황이었다. 흔한 일이 아니다 싶어 그에게 물었다. “지난해에만 외국 관광객 6만명이 다녀갔지요.” ‘6만명이라니….’ 그는 오래전부터 관광과 연계된 농사의 필요성을 누누이 강조하곤 했다고 한다. 농원을 찾은 6만명이 일일이 머루즙을 만들어 보고 머루와인 시음도 하고, 숙성통에서 와인을 직접 받아 가는 체험도 경험했다고 한다. 그의 안내를 받아 귀농교육을 하는 강당에까지 가게 되었다. “머루에 대해 배우고 싶은 분들에게 무료로 교육을 하는데 고등학생부터 귀농을 결심한 분들까지 교육받고 있어요. 1년 내내 정신없이 바빠요. 그래도 귀농교육에도 소홀히 하지 않고 관광농원화 사업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죠. 곧 캠핑장도 재오픈을 하는데 그럼 더 바빠질 겁니다.” 산머루 농원 전체가 그의 철학이 담긴 현장이었다. 1979년 파주 객현리에 들어와 흑염소를 키우며 건너편 산에서 발견한 산머루가 와인의 시작이었다. 여러 차례 산머루를 생산하는 데 실패를 거듭하다 한 농부로부터 묘목 1500그루를 분양받아 자신의 밭에 심게 되었다. 그마저도 2년 사이에 질소 과다와 동해(凍害) 등으로 모두 죽고 살아남은 묘목은 단 다섯 그루였다. 살아남은 0.3%에 희망을 걸고 밭에 심었다. 산머루 농사를 짓겠다고 각오한 뒤 햇수로 4년 만에 처음으로 묘목에서 산머루가 달렸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농부란 그렇게 시간과 곡절에 순응하며 사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다음 장소로 우리를 데려간 곳은 와이너리였다. 산머루 농원의 와이너리는 70m 길이였다. 프랑스에 포도농가 연수를 다녀온 뒤 본격적으로 조성한 와이너리였다고 한다. 프랑스엔 지선까지 모두 합해 26㎞에 이르는 숙성터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의 숙성터널은 한국에서 최초로 뚫은 와인터널이었다. 프랑스 와이너리와 비교하면 규모에서 좀 뒤떨어지지만 프랑스 론 지방에서 장인 정신으로 와인을 빚어내는 소규모 와인 동굴과 비교해 보면 부족함이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느낀 서늘함 속에서 숙성되는 와인들의 숨소리 같은 걸 들었고 그의 노력에 감탄했다. “이 감악산은 3개 지자체를 품고 있어요. 감악산을 중심으로 각 지자체에서 2㎞씩만 뚫으면 모두 6㎞가 되는데 그럼 프랑스의 숙성터널 못지않은 훌륭한 숙성터널이 만들어질 겁니다. 1979년부터 산머루랑 살았으니 산머루 인생 40년이 다 되어가네요. 이젠 프랑스 숙성터널 못지않은 터널을 뚫어도 될 만큼 우리 와인도 성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랑스 와인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그는 그런 구상까지 하고 있었다. 그는 무모해 보이지만 그렇게 창의적이었다. “물론 오크통으로도 와인을 숙성시키지만 우린 주로 항아리를 이용하죠. 옹기가 숨을 쉬니까요. 2004년 고려대 생명과학연구소에 연구 의뢰를 했는데 오크통보다 우리 옹기에서 생산한 와인이 맛이나 향기에서 더 훌륭하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 신과 비밀 사이 그가 마지막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좀 색다른 곳이었다. 공개하는 와이너리의 규모에 비하면 5분의1 크기의 저장고였다. 그만의 비밀 와이너리였다. 저장고 안쪽 깊은 곳에 묵은 때가 두껍게 앉은 와인이 저장되어 있었다. “이게 20년이 넘었죠. 이 와인 저장고는 정이랑 망치만으로 혼자 수백일 걸려 만들었죠. 지금은 보기 좋지만 내가 여기 들어왔을 땐 그야말로 돌밭이었어요. 농장이 만평쯤 되는데 전부 돌밭이었으니까. 돌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아주 지긋지긋했죠. 돌도 작기나 해요. 땅 좀 파다 보면 바위가 나와요. 집채만 한 바위가 박힌 땅이었던 겁니다. 이 밭을 사들이고 농사를 짓겠다니까 다들 미친놈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도 감히 어쩌지 못하고 돌산인 채 내버려뒀다는 땅을 개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굴착기도 뚫기 힘들다는 돌밭을 상대로 망치와 정 하나 달랑 들고 밭에 달라붙어 개간을 시작했던 것이다. 무수히 나오는 돌을 쌓아 담을 만들고 집채만 한 바위가 나오면 몇날 며칠을 깨 부숴 흙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돌산이 언젠가는 비옥한 옥토가 될 것이라 믿으며 망치질을 했고 실제로 산머루와 나무들이 우거진 옥토가 됐다. 그는 중국 고대 우화의 보고집으로 알려진 ‘열자’(列子)에 나오는 우공(愚公)이었다. 왜 그토록 열정적이었느냐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잠깐 도시 생활도 해 봤지만 천성이 농사꾼이에요. 그리고 어느 일보다 정직하고. 지금 귀농교육도 열심히 하는 건, 농부들도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게 가장 큰 이유죠. 나 혼자가 아니라 농부의 꿈을 가진 모든 분들이요. 그러려면 무엇보다 경쟁력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의 거친 손을 보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삼 미쳐야 미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는 조심스럽게 흰 도자기에 담긴 와인 한 병을 가져왔다. “이 술이 내가 가장 처음 와인답게 만든 농원 최초의 머루 와인입니다. 해가 바뀌었으니 올해로 20년이 되었네요.” 20년 된 와인. 머루로 만든 와인이니 지구상에 머루로 만든 와인 중에는 아마 가장 오래된 와인이지 않을까. 머루즙을 만들다 즙 생산공장을 구상하고 시에 지원을 요청했는데 공무원이 ‘즙’이 아니라 ‘주’로 바꾼 한 글자 때문에 머루와인 생산 공장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20년 전의 일이었다. 운명적 우연과 오랜 기다림과 숙성의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명품 와인이 생산된다는 걸 실감했다. 우공 못지않은 그의 노력에 ‘디오니소스’(그리스 술의 신)도 탄복했을 터. 디오니소스가 건넨 신의 물방울은 신이 그에게 준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의 와인은 고려대 생명연구소에서 실험을 통해 포도 와인보다 안토시아닌 등 암을 억제하는 영양분이 5배쯤 높은 와인이라는 실험 결과도 나왔다고 한다. 세월을 기다릴 줄 알아야 빚어낼 수 있는 와인을 그는 완성했다. 그가 만든 머루 관련 상품들은 미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는 물론 중국에서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그의 제안으로 우리나라의 다른 농산품들과 함께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힌 터라 머잖아 중국 백화점에서도 한국의 머루와인이 진열될 날이 올 것이다. 요즘은 1년에 400t 규모의 머루와인과 머루즙을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매출액도 15억원으로 높은 편이었다. 직원은 15명 정도다. “한번은 대형 매장에 대기업 머루제품이 깔렸다길래 더럭 겁이 나서 달려가 봤죠. 우린 100% 머루 제품인데 대기업 제품은 원액 5%쯤 넣은 거였어요. 그때 정직하게 하면 대기업에도 밀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몸과 마음을 다해 농사를 지은 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그의 농사 철학이나 느려도 곧게 나가야 한다는 삶의 철학이 빚은 ‘옹기의 와인’. 그를 만난 시간은 새로운 술의 세계에 대해 문을 열어준 시간이었다. 또한 옹기에 담은 그의 머루와인이 머잖아 세계적인 제품이 될 거라 장담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글쓴이 소설가 전민식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 주요 작품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불의 기억’ ‘13월’ ‘9일의 묘’ 등 다수
  • 해외여행 | 역사가 흐르는 동방의 파리 하얼빈

    해외여행 | 역사가 흐르는 동방의 파리 하얼빈

    정교한 바로크풍 건물 사이로 웅장한 러시아 음악이 흐른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서양 문화를 받아들여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하얼빈. 겨울이면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화려한 빙등제가 펼쳐진다. 그뿐인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역사의 현장도 이곳에 있다. 그래서인지 하얼빈은 다른 중국 도시에 비해 더 가깝게 느껴진다. 하얼빈에서 가장 번화한 중앙대가. 유럽스타일의 건물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하얼빈합이빈, 哈爾濱은 추울수록 더욱 빛나는 도시다. 일 년의 반 이상이 겨울. 1월 평균기온은 대략 영하 20℃에 이른다.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노점상에는 아이스박스가 필요 없다. 상온에 놓아도 아이스크림이 녹지 않기 때문이다. ‘얼음의 도시’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매년 1월5일이 되면 세계 3대 겨울축제 중 하나로 꼽히는 하얼빈 빙등제가 열린다. 눈과 얼음의 축제인 하얼빈 빙등제에 전시할 거대한 얼음조각을 위해 매년 5,000여 명 이상의 조각가가 동원된다. 축제가 시작되면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얼음 조각가들도 바빠진다. 낮에 녹은 얼음조각을 밤새 보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송화강 북쪽 태양도공원에서는 빙설제도 함께 열린다. 하얼빈은 높은 강설량 덕분에 스키장도 발달해 있다. 일 년 중 스키를 탈 수 있는 날이 네 달이 넘는다. 눈의 질이 좋고 슬로프 경사도 적당해 스키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96년 동계아시안게임을 치른 야부리스키장은 풍부한 자연설로 유명한 헤이룽장성의 대표적인 스키장이다. 하얼빈에서 200km 떨어져 있다. 하얼빈은 중국 동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헤이룽장성흑룡강성, 黑龍江省의 성도다. 도시 자체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얼빈은 만주어로 ‘그물 말리는 곳’이라는 뜻으로 과거에는 한가한 어촌이었다. 여유로웠던 어촌마을이 동북지역 중심도시로 성장하게 된 계기는 19세기 초 러시아의 철도 기지가 건설되면서부터다. 러시아 사람들이 철로를 건설하면서 30여 개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19개국의 영사관이 들어서고 하얼빈은 국제적인 도시로 재탄생했다. 하얼빈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시다. 1946년 4월28일 중국에서 가장 먼저 해방되어, 다른 지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4년에는 국가급 역사문화도시로 지정되기도 했다. 예술면에서도 중국 최초로 서양음악을 받아들였으며, 지난 2010년에는 UN 음악도시로 선정되었다. 중국 10대 도시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규모와 영향력 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얼빈역에 마련된 안중근 의사 기념관안중근 의사의 뜨거운 행적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강교항전기념관의 마점석 장군상항일투쟁 역사가 살아 있는 헤이룽장성 하얼빈 하면 빙등제가 떠오르지만, 하얼빈이 속한 헤이룽장성 곳곳에 우리 역사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김좌진 장군, 이범석 총리가 활약한 항일투쟁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하얼빈은 항일애국운동의 상징적인 장소로 1909년 10월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곳이다. 하얼빈역 플랫폼에는 역사의 현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 2014년 하얼빈 역사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문을 열어,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중국인들도 많이 찾고 있다. 기념관은 하얼빈역 앞에 있던 VIP 대합실 일부를 개조해 만든 것으로, 입구는 하얼빈역의 옛 모습을 축소해 만들었다. 기념관 안에는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록들과 안중근 의사의 흉상, 손가락을 잘라 조국 독립을 결의했던 그의 손을 형상화한 브론즈 조각품 ‘거룩한 손’, 의거 당시 사진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여러 자료들 중 가슴이 뜨거워지게 한 것은 안의사가 하얼빈에서 보낸 11일간의 행적이었다. 얼마나 두려웠을지, 어떻게 마음을 다졌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기념관 한 쪽 벽에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저격하는 장면을 그린 대형 벽화가 걸려 있다. 국가 1급 화가 권오송이 그린 작품으로, 인상적이다. 기념관에서 빠트리면 안 되는 것이 통유리 너머로 의거 현장을 보는 것이다. 안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현장은 하얼빈역 1번 플랫폼으로, ‘안중근 이등박문 격살 사건 발생지’라는 문구가 천장에 붙어 있다. 역 안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기념관 안에서 볼 수 있다. 헤이룽장성 제2의 도시인 치치하얼제제합이, 齊齊哈爾에서도 우리의 항일투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치치하얼 태래에 가면 강교항전기념관이 있는데, 그곳에서 대한민국 초대 총리를 지낸 이범석 전 총리의 활약을 만날 수 있다. 강교항일 투쟁은 일제가 만주를 침략한 지 두 달 만에 중국군이 태래현에서 일본군과 벌인 첫 번째 전투로, 중국의 항일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전투다. 이범석 전 총리는 마점석 장군이 지휘하던 중국항일군에 합류해 일본군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중국 사람들이 731부대가 생체실험에 사용한 도구들을 보고 있다아직 발굴 중인 731부대의 잔해들 731부대 죄증진열관으로 사용되었던 건물. 현재의 731부대 죄증진열관은 이 건물 앞에 2015년 8월15일 3층 규모로 새로 지어진 것이다 731부대에 참여한 조직을 비롯해 고문방법과 과정 등 731부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마루타의 아픔이 느껴지는731부대 죄증진열관 하얼빈에서 꼭 가 봐야 할 곳 중 하나는 731부대 죄증진열관이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만행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중국인들의 역사적인 상처가 아로새겨진 곳이다. 731부대는 일본 관동군의 세균전 부대로 1945년까지 3,850명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했던 부대다. 일본의 비인도적 잔악행위를 보여 주는 곳으로 6개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전시실에서는 731부대를 조직하는 과정들이 소개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생생한 기록들이 숨을 턱 막히게 한다. 손과 발을 묶는 족쇄와 수술용 칼, 생체 실험에 사용된 도구와 문서들은 그때의 시간을 보여 준다.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한 해부실 앞에서는 현기증이 날 정도다. 731부대는 이곳에서 100가지가 넘는 실험을 실시했다. 페스트 벼룩을 연구하기 위해 쥐를 사육해 쥐부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731부대는 전쟁이 끝나고 그들의 죄를 감추기 위해 건물을 폭파했다. 그러나 보일러실과 지하실험실 등 잔해가 지금도 남아 있다. 중국정부는 2015년 8월15일 731부대 죄증진열관을 재개관했다. 기존 벽돌건물 앞 부대 터에 검은색 3층 규모의 새로운 건물을 지었다. 입구에는 한국어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도구가 마련되어 있어, 생생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하얼빈은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러시아풍 건물의 내부 러시아 문화를 테마로 한 볼가장원. 여름철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 러시아풍의 이국적인 거리 중앙대가 하얼빈은 역사적인 도시면서 국제적인 도시다. 특히 러시아 문화가 일찍 들어왔다. 제정 러시아 때는 국제 상업도시로 ‘동양의 파리’로 불리기도 했다. 나중에는 곳곳에 남아 있는 러시아풍의 건물들 때문에 ‘동방의 모스크바’라는 별명도 얻었다. 1913년에는 하얼빈의 인구중 반 이상이 러시아인이었다. 지금도 하얼빈은 러시아와 3,000km가 넘는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하얼빈은 중국의 다른 도시와 달리, 도시 곳곳에서 이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얼빈에서 러시아 문화가 물씬 느껴지는 곳이 중앙대가中央大街. 중앙대가는 바로크풍, 르네상스풍 등 여러 유럽스타일의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거리로 하얼빈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1898년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이름은 중국대가였는데 1925년 중앙대가로 이름을 바꿨다. 송화강 홍수예방승리기념탑까지 이어져 있다. 유럽 중세거리를 생각나게 만드는 돌로 바닥을 장식한 1.4km의 대로에도 눈길을 줘야 한다. 대로의 보도블록은 당시 1개에 1달러를 투자해 만든 것으로, 100년이 흐른 지금도 단단함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와 젊은이들로 활기를 띠는 중앙대가에는 70개 이상의 유럽풍 건축물과 13개의 시급 보호건축물이 자리하고 있다. 건축물을 보면 이곳이 중국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상점에서도 눈이 큰 러시아 인형을 팔고 있고 길거리 곳곳에서 쉽게 러시아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하얼빈의 상징인 소피아 성당. 밤에 보면 더 아름답다하얼빈 맥주는 러시아를 통해 전파된 유럽식 맥주 문화를 담고 있다 비잔틴 양식의 소피아 성당 중앙대가 근처에 있는 소피아 성당은 하얼빈의 대표적인 심벌 중 하나다. 비잔틴 양식의 전형적인 러시아 성당으로, 앞에 서면 러시아의 대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소피아 성당은 하얼빈 근대사의 중요한 유적으로 문화혁명 기간에는 성당의 벽화와 십자가가 훼손되거나 분실되기도 했다. 낮에 보는 것도 좋지만 밤에 찾아가 보자. 은은한 조명 덕에 더 고풍스럽게 다가온다. 지금은 ‘하얼빈 건축 예술관’으로 이용되고 있다.하얼빈 시민들의 여름 휴가지로 인기 있는 볼가장원Volga Manor, 伏爾加莊園도 러시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볼가장원은 러시아 문화를 테마로 한 공원으로 호수를 가운데 두고 러시아 정교회와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으며 숲으로 둘러싸인 풍광이 아름다워 가족 단위로 많이 찾는다. 볼가장원 안에는 러시아 예술작품을 볼 수 있는 갤러리와 러시아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도 있어, 다양하게 러시아 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중국에서도 유명한 하얼빈 맥주도 러시아 영향을 받은 것 중 하나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하얼빈 맥주는 1900년 당시 러시아가 밀려들어오면서 유럽식 맥주문화가 함께 하얼빈에 자리 잡게 됐다. 하얼빈 맥주는 역사만 깊은 것이 아니다. 하얼빈 사람들은 중국에서 1인당 평균 맥주 소비량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맥주를 사랑한다. 매년 여름에는 하얼빈 국제맥주축제도 열린다. 자롱자연보호구에서 단정학이 비상하고 있다치치하얼의 자롱자연보호구는 끝없는 갈대밭으로도 유명하다 두루미의 비상을 볼 수 있는 자룽자연보호구 헤이룽장성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것 중 하나가 단정학丹頂鶴이다. 치치하얼은 학의 도시로, 전 세계 2,000마리 중 400마리의 단정학이 살고 있는 자룽찰용, 擦龍자연보호구가 유명하다. 자룽자연보호구는 국제 람사르습지에 등록된 중요 습지로 2,100km2에 1,000여 종의 야생 동식물이 살고 있다. 자룽자연보호구의 주인공인 단정학은 신선이 타고 다니는 새로 알려져 있으며 천년을 장수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신성시되는 새다. 머리에 붉은 점이 있어 단정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가롭게 물가에서 노니는 단정학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운이 좋으면 단정학이 떼를 이뤄 날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자룽자연보호구의 또 다른 장관은 끝도 없이 펼쳐진 갈대밭. 갈대밭 사이로 나무데크가 가지런히 놓여 있어 산책하기에도 좋다. ▶travel info 하얼빈Airline인천에서 하얼빈까지 아시아나항공과 중국남방항공이 직항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소요시간은 약 2시간. VISA귀국 항공권을 제시하면 72시간 동안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다. Place동북호림원 | 세계 최대의 호랑이 인공 번식장인 동북호림원東北虎林園. 백두산호랑이 800여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넓은 들판에서 어슬렁거리는 호랑이들을 볼 수 있다. FOOD안중근 식단 |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찾아 하얼빈을 찾는 한국 여행자를 위한 ‘안중근 식단’이 있다. 안중근 식단은 안의사가 하얼빈에 11일간 머물면서 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음식들로, 100년 전 하얼빈에서 주로 먹던 음식들이다. 동북지역 탕수육인 꿔바로우鍋包肉를 비롯해, 돼지고기와 조로 만든 궁미완쯔貢米丸子, 아이스크림에 밀가루 옷을 입혀 튀긴 여우자빙군油炸氷棍 등 다양한 서민음식들로 구성되어 있다. 안중근 식단을 개발한 음식점은 125년 전통의 식당인 노주가老廚家. 청 말기인 1890년 문을 열어 4대째 이어가고 있는 식당으로 꿔바로우를 만든 원조집이자 인기 음식점이다. 붉은 소시지 | 하얼빈에서 꼭 맛볼 것 중 하나는 붉은 소시지. 헤이룽장성 고기에 마늘과 후추 등 조미료를 넣어 유럽식으로 만든 소시지다. 씹는 맛이 좋다. 아이스크림 | 중앙대가의 마디얼 아이스크림은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아이스크림으로 진한 바닐라맛이 특징이다.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채지형
  • [데스크 시각] 이 아이들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문소영 사회2부장

    [데스크 시각] 이 아이들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문소영 사회2부장

    그림 형제가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독일의 민담을 모아 19세기 초에 낸 동화책에는 엽기적인 내용이 많은데, 그중 ‘헨젤과 그레텔’은 좀 더 엽기적인 잔혹 동화다. 헨젤과 그레텔은 계모가 친아빠를 꼬여 자신들을 숲 속에 내버리자는 이야기를 듣는다. 남매는 기지를 발휘해 흰 조약돌을 떨어뜨리고 숲 속에 갔다가 달빛에 하얗게 빛나는 조약돌을 따라 집으로 되돌아온다. 부모는 아이들을 다시 내다 버리기로 한다. 아이들을 내다 버리겠다는 부모의 의지가 대단하다. 달콤한 과자의 집 마녀를 물리치고, 헨젤과 그레텔은 자신들을 내다 버린 부모가 사는 집으로 돌아갔던가? 부모와 과연 행복하게 살았던가? 1818년에 펴낸 초판에 ‘헨젤과 그레텔’을 내다 버린 부모의 조합은 계모와 친아빠가 아니라 친엄마·친아빠였다. 19세기 유럽의 독서는 중산층과 그 아이들까지 확산했으니, 아이들이 상처받을 것을 고려해 초판 이후에 친엄마가 계모로 둔갑했다. 헨젤과 그레텔을 소재로 한 이 동화는 15세기 유럽에 만연했던 영아 살해 민담을 모티브로 했다. 먹고살기 힘든 시기에 천륜을 버리는 행위는 새삼스럽지 않다. 특히 유럽에서 전근대 시기에 기아나 전쟁 등이 벌어져 식량이 부족할 때 인구 통제의 수단으로 영아 살해는 새삼스런 일이 아니라는 것이 학자들의 연구 결과다. 이 잔혹 동화의 또 다른 모티브로 1647년 독일에서 일어난 ‘빵 굽는 마녀’ 카타리나 슈라더린 살인 사건도 지목된다. 독일 신교와 구교가 전쟁을 벌인 ‘30년 전쟁’ 기간에 당시 희귀한 후추빵을 굽던 슈라더린이 마녀사냥에 희생됐다는 것이다. 아마추어 고고학자가 독일 슈페스아르트 주변 지역에서 ‘마녀의 숲길’을 발견하고, 동화에서처럼 불에 그슬린 20~30대 여성의 뼈를 발굴했다. 단군 이래 최대로 잘산다는 한국에서 어린이 학대 후 사망 소식이 봇물 터진 듯하다. 최근 8명의 어린이가 학대받아 사망했다. 가장 최근 발각된 사건이 지난 19일 경찰이 발표한 ‘청주 4살 딸 욕실 학대 암매장’ 사건이다. 계모가 길에 버리고 갔다고 해 미아로 찾아나섰던 평택 신원영군은 락스를 뿌리는 등 학대한 뒤 사망하자 암매장된 것으로 지난 12일 드러났다. 이혼 후 친구 집에 얹혀살다가 집주인이 똑바로 교육하라고 지적해 딸을 매질한 뒤 방치해 사망하자 암매장한 사건도 있었다. 지난 2월엔 아버지의 폭행에 시달리던 부천 초등생이 훼손된 시체로 발견됐다. 지난해 12월 부모의 학대로 방치된 11살 소녀가 발견된 뒤로 초등학교와 지방정부가 ‘학생’들을 찾아 뒤늦게 나선 덕분에 이들의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이 뒤늦게 알려졌다. 아직 ‘19명의 학생’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도 영유아 건강검진이나 예방접종 기록이 없는 4~6세 아동 809명에 대해 아동 학대 여부를 조사한다고 한다. 더 어린 아동 학대 피해자가 나타날까 두렵고 긴장된다. 부모의 학대를 피해 가출했는데, 경미한 학대라고 판단해 다시 집으로 돌려보낼까도 걱정된다. 부천 목사 부부는 매질을 피해 가출한 딸이 돌아오자 또 매질로 딸을 죽였다. 아동 학대 가해자는 대체로 친부모가 75%이다. 계모·계부의 학대를 부각시킬 수도 있겠으나, 사실 이들도 모두 아동을 보호해야 할 ‘그냥’ 부모다. 누군가는 요즘 젊은 부부들이 왜 이리 포악해졌느냐고 하지만, 아동 학대는 오래된 관행이 아닐까 한다. 훈육의 이름으로, 내 새끼라는 이름으로. 부모의 학대에 노출된 아이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어린이집·유치원에서 폐쇄회로(CC)TV를 달듯, 어린이가 있는 모든 가정에 CCTV를 달 것인가. symun@seoul.co.kr
  • 서늘한 자락, 아직은 보내지 못했다

    서늘한 자락, 아직은 보내지 못했다

    사람 마음만큼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게 있을까. 겨우내 춥다고 앙앙불락이다가도 막상 겨울이 간다 하니 그게 못내 아쉽다. 그러다 난데없는 눈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운다. 강원 고성 쪽에 큰눈이 내렸다는 것. 어쩌면 올해 마지막 설경과 마주하는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이뿐이랴. 시리도록 파란 바다가 곁에 있고, 거진항 등에서 싱싱하고 맛있는 아침을 맞을 수도 있다. 이것만으로도 고성 찾아갈 이유는 충분하다. 미시령을 넘어 고성으로 간다. 일반적으로는 진부령을 넘지만, 눈 내린 날씨엔 봄철이라 해도 미시령 터널을 지나는 게 안전하다. 화암사에 먼저 들른다. 열에 아홉은 모르고 그냥 지나친다는 절집이다. 속초 쪽 미시령에 매달려 있지만 행정구역으로는 고성에 속한다. 원래 가을철 단풍 명소로 이름 높은 곳. 하지만 흰 눈에 싸인 자태도 그보다 못할 건 없다. 절집은 금강산 1만 2000봉의 남쪽 첫 봉우리라는 신선봉 아래 터를 잡았다. 흰 눈에 덮인 수바위가 웅장하고, 금강산을 병풍 삼은 절집의 자태도 빼어나다. 절집에서 100여m 떨어진 산자락에 미륵대불이 서 있다. 절집 뒤편을 둘러친 산자락들은 물론 멀리 속초 시내까지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특급 전망대다. 바닷가 나들이에 나선다. 첫 목적지는 청간정. 저 유명한 관동팔경의 하나다. 청간정은 청간천이 바다와 만나는 기수역의 해안절벽에 자리를 잡았다. 창간연대는 뚜렷하지 않지만 조선 명종 10년(1555)과 현종 3년(1662)에 각각 중수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 현재의 청간정은 1980년에 중건된 것이다. 예전엔 우암 송시열의 현판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현판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최규하 전 대통령이 쓴 한시 현판도 함께 걸려 있다. 청간정은 들머리에 늘어선 소나무들의 기세가 특히 볼거리다. 바닷바람 맞으면서도 옹골차게 솟은 자태가 멋들어지다. 정자 위에 오르면 너른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초도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성 최북단 대진항에서 화진포로 이어지는 해안선 모퉁이에 소박하게 자리잡은 포구마을이다. 워낙 작은 포구여서 일부러 찾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초도항은 성게로 유명하다. 방파제에 해녀상과 함께 성게 조형물을 세운 것도 그런 이유다. 대진항과 초도항에선 아직도 해녀 5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두 조형물 사이엔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노래비가 있다. 노래비의 버튼을 누르면 1960년대 인기를 끌었다는 이시스터즈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낭랑한 옛 가수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파도처럼 찰랑댄다. 포구 너머는 금구도(龜島)다. 주민들이 광개토왕릉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섬이다. 사람은 살지 않고 화강암으로 축조된 성벽과 보호벽 등의 흔적이 섬 반대편 쪽에 남아 있다. 현지의 한 역사학자가 394년(광개토대왕 3년)에 화진포 거북섬에 광개토대왕의 왕릉 축조를 시작했고 414년(장수왕 2년)에 광개토대왕을 거북섬에 안장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며 ‘금구도 광개토대왕릉설’을 제기했으나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해넘이는 초도항 아래 화진포에서 맞는다. 이승만과 김일성, 이기붕 등 우리 현대사에서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한 세 인물의 별장이 남아 있는 호수다. 저물녘이면 호수 뒤 산자락 너머로 해가 진다. 호수도 노랗게 물드는데, 그 모습이 제법 빼어나다. 화진포는 호수 앞 해변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화진포 바닷가는 이른바 모나즈 성분의 모래 해변이다. 수만 년 동안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졌는데, 모래를 밟으면 ‘서걱서걱’ 소리가 나고 개미가 살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해질녘이면 너른 백사장 너머 하늘이 순차적으로 연분홍, 보랏빛으로 물든다. 바다도 비슷한 색을 띤다. 20분 가까이 이어지는 태양의 붓질이 경이롭다. 일출 명소도 몇 곳 된다. 공현진 해변의 옵바위, 아야진 해변 등이 해돋이 명소로 이름을 얻고 있다. 사실 너른 동해에서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이 달라 본들 얼마나 다르랴. 그저 해 앞에 놓이는 풍경들이 어디가 좀더 낫냐를 견줘 ‘명소’라 부르는 것일 터다. 이번 여정에선 송지호 해변을 해돋이 포인트로 삼았다. 마을 앞 작은 섬 위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소박하고 서정적이다. ‘명소’ 소리 듣지는 못해도 외려 그래서 더 호젓하게 해와 나만의 시간을 만들 수 있다. 송지호 해변을 찾은 것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해변에서 4㎞ 떨어진 곳에 있는 송지호 때문이다. 송지호도 화진포처럼 호수와 해변의 이름이 같다. 석호(潟湖·해안사구가 바닷물을 막아서 생긴 호수)란 점도 같다. 해가 떠오를 무렵이면 바람도 잦아든다. 이때가 호수를 감상하기 최적의 시간이다. 거울처럼 맑은 호수 위로 설악의 산군들이 고스란히 잠긴다. 수많은 철새들이 군무를 펼치는 시간도 바로 이때다. 밤새 호수 가운데서 쉬던 철새들은 이른 아침 일제히 날아오른다. 주변 농경지에서 먹이를 먹기 위해서다. 가창오리 군무에 견줄 수는 없지만, 흰 눈 덮인 설악산 너머로 철새들이 떼지어 나는 모습은 그에 못지않게 장관이다. 송지호 일대에 ‘송지호 산소길’이 조성돼 있다. 송지호 철새관망타워에서 출발해 북방식(함경도식) 전통가옥 보존지구인 왕곡마을까지 약 2.2㎞를 걷는다. 호숫가를 자박자박 걸으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고, 호수 한가운데 송호정에 올라 전망을 굽어볼 수도 있다. 자작나무 숲길도 있다. 송호정 진입로 맞은편에 들머리가 있다. 갯가산 정상까지 20분 정도 걸린다. 산정에 서면 송호정보다 빼어난 전망을 만날 수 있다. 배산임수 형태로 송지호를 끌어안고 있는 왕곡마을(중요민속문화재 제235호)은 양근 함씨와 강릉 최씨 집성촌이다. 14세기부터 형성됐다고 한다. 골짜기에 터를 잡은 왕곡마을은 외부와 차단된 구조인 데다 이른바 풍수지리적 ‘길지’여서 전란과 화마의 피해가 적었다고 한다. 이 덕에 19세기 전후에 건립된 북방식 전통가옥 형태가 비교적 온전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마지막 여정은 미시령 자락이다. 고성 쪽의 토성면 원암리와 속초 노학동 학사평 일대가 목적지다. 최근 박물관, 미술관들이 잇따라 들어서며 새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지역이다. 속초 쪽의 시립박물관, 발해역사관, 국립산악박물관, 테디베어뮤지엄 등과 고성 쪽의 조각미술관 ‘바우지움’ 등 공공과 민간에서 개설한 전시·체험시설들이 운영 중이다. 최근엔 실내형 테마파크 ‘얼라이브 하트’(www.aliveheart.co.kr)와 ‘다이나믹 메이즈’가 문을 열었다. 착시 미술과 미로가 결합된 이색 체험 공간이다. 건물 1층은 착시미술, 이른바 ‘트릭 아트’ 작품들로 구성된 ‘얼라이브 하트’다. ‘트릭 아트’는 극사실주의 미술 작품 위에 특수 도료를 씌워 관람객이 평면을 입체로 착각하게 만드는 기법이다. 관람객이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하면 마치 작품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한 신기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다이나믹 메이즈’는 여럿이 협동해 미션을 수행하면서 미로를 탈출하는 놀이 공간이다. 테마는 ‘해저 미로 대탐험’이다. 모두 16개의 미션을 수행하며 바다 밑 도시를 찾아간다는 게 미로의 전체적인 얼개다. 신비한 ‘거울 미로’와 6만개의 볼 풀장을 건너는 ‘볼 풀 탈출’ 등 재밌는 미션들로 가득하다. 글 사진 고성·속초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맛집:복성식당(631-2944)은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집이다. 생선조림을 잘한다. 열기, 임연수어 등 현지에서 나는 생선들을 말린 뒤 맛깔나게 졸여 낸다. 속초항 인근에 있다. 고성 쪽에선 성진회관(682-1040)을 권할 만하다. 생태찌개 등 제철 생선 음식을 정성껏 끓여 낸다. 계절 진미로 꼽히는 도치알탕은 3월 말까지 먹을 수 있다. →잘 곳:설악동의 켄싱턴 스타 호텔(635-4001)은 영국 왕실을 콘셉트 삼은 테마 호텔이다. 객실 발코니에서 설악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호텔 입구의 빨간색 이층버스는 영국에서 공수해 왔다. 프러포즈 이벤트 등이 열린다. 층마다 국내외 유명 스타, 주한 외국대사, 스포츠 스타 등의 소장품과 사진들로 꾸며진 명예의 전당이 마련돼 있다. 매일 오전 10시 ‘하우스 투어’가 무료로 진행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휴가를 즐겼다던 55평(약 182㎡)짜리 ‘프레지덴셜 스위트’도 관람할 수 있다.
  • 사람과 인공지능의 미래…대결 아닌 공존을 준비할 때

    사람과 인공지능의 미래…대결 아닌 공존을 준비할 때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인 알파고의 바둑 대결에 온 이목이 쏠려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세돌 9단이 이길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으나 2연패 이후 이제는 과연 사람이 인공지능을 상대로 한 번이라도 이길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입니다. 불과 5개월 만에 엄청난 수준으로 성장한 알파고를 보는 시선 역시 호기심에서 이제는 두려움이 섞인 시선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러다가 기계가 인간을 모두 대체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 것이죠. 심지어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인공지능을 수준을 고려하면 인류에 반기를 드는 스카이넷 같은 이야기는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입니다. 반면 큰 문제 없다는 예상은 신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너무 간과한 주장입니다. 현재의 변화는 더 큰 틀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공 지능 이전에도 분업화, 기계화, 자동화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해왔고 이제는 더 복잡한 작업까지 자동화와 기계화가 이뤄지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옳을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걱정해야 하는 것은 앞으로 이 변화에 얼마나 잘 적응하면서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느냐입니다. 러다이트 운동과 네오 러다이트 운동 1811년과 1813년 사이, 영국에서는 러다이트 운동(Luddite)이 발생합니다. 이 운동은 산업혁명 시기 직장을 잃거나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한 수공업자를 중심으로 산업화, 기계화에 저항했던 운동입니다. 대개는 시대착오적인 저항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 그 배경은 더 복잡합니다. 당시 러다이트 운동 (가상의 리더인 러드를 내세웠기 때문에 붙은 명칭)은 1799년 단결금지법으로 인해 새롭게 등장한 노동자 계층이 자신의 요구를 내세우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폴레옹 전쟁 등으로 인해 영국 내 물가가 폭등하고 경제 상태가 어려워지자 발생했던 것입니다. 그때는 정당한 방법으로 불만을 표출하기 어려웠으므로 기계를 파괴하고 벽에 대자보를 붙이는 방식으로 항의했던 것이죠. 그러나 이와 같은 항의에도 불구하고 영국 노동 계층의 삶은 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인구가 급증했지만, 농업 생산력은 더 많이 증가해 적은 노동력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고 남는 잉여 노동력이 도시로 몰리면서 당시 기업가들은 저렴한 노동력을 대거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좁은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주거 환경은 더 열악해지고 노동 환경 역시 매우 열악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이런 산업화의 역설을 본 사람들 가운데는 공산주의 같은 극단적인 해결책을 들고나온 사람도 있었고 점진적인 개선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후자가 맞는 이야기였죠. 세월이 흘러 이제는 새로운 형태의 라다이트 운동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네오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불리는 이 운동은 아직 구체적인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요약하면 인공지능과 로봇, 그리고 다양한 자동화 기술이 사람들에게 직장을 빼앗고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최근 열렸던 세계 경제 포럼에서 발표된 '미래의 일자리'에서는 로봇, 인공지능, 3D 프린터 같은 신기술이 2020년까지 510만 개의 직장을 없앨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미래에는 현재 있는 직장 중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 일부에서는 이와 같은 주장은 기우이며 결국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면서 문제를 저절로 해결할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인간이 단순 노동에서 해방되고 더 창의적인 일을 하게 되리라는 것이죠. 서로 대립적인 주장이지만, 동시에 둘 다 맞으면서 잘못된 의견일 수도 있습니다.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선 인공지능 지금처럼 인공지능이나 로봇, 자율 주행이 화두가 되기 전에도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지는 사례는 무수히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무거운 용접기를 들고 용접을 하던 자동차 생산라인에 지금은 로봇이 대신 투입되어 일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이 힘들고 위험한 작업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결국, 현재의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전 역시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최근 인공지능에 대한 거부감이 큰 것일까요? 그것은 단순한 육체노동만 대체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운전처럼 다소 복잡한 업무까지 인공지능이 넘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과거에는 대체할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던 지식 노동 역시 대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자율 주행을 예로 들면 이는 물류 및 운수 사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인공지능이 반드시 인간보다 우월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안전하게 운전만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인간 운전자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자율주행 트럭이나 택시는 24시간 언제나 달릴 수 있고 인건비 부담이 없으니 최소한 기업으로서는 인간보다 훨씬 매력적인 선택입니다. 과거에는 숙련공만 가능했던 복잡한 노동 역시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들이 대체할 수 있습니다. 리씽크 로보틱스의 소이어와 박스터 로봇은 2만2000 달러에서 2만9000 달러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인간이 할 수 있는 동작을 다양하게 모방할 수 있는 로봇팔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로봇들은 기존의 산업용 로봇과는 다르게 여러 가지 동작이 가능해 한 자리에서 여러 부품을 조립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딥러닝을 통해 더 효율적인 동작을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연구까지 진행 중입니다. 카네기 멜런 대학의 연구자들은 기계학습을 통해 소이어의 작업 속도를 처음보다 40배 빠르게 진행하는 연구 결과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사람들을 더 걱정하게 만드는 부분은 지식 노동까지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미 단순 육체노동의 자동화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사람 대신 프라이빗 뱅킹 서비스를 대신해 줄 수 있는 로보어드바이저 같은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사실 이미 주식 등의 매매를 자동으로 하는 시스템 트레이딩은 금융계에 도입되어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아니지만, 스마트 뱅킹이나 인터넷 뱅킹의 등장은 사람의 필요성을 줄이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로봇 기자가 쓰는 기사를 매일 보고 로봇 주치의의 상담을 매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열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교육 역시 내 수준에 알아서 맞춤으로 강의를 해주는 로봇 선생님이 사교육의 필요성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고도로 창의적인 부분은 기계가 대체하기 어려우므로 이런 부분은 한동안 사람의 영역으로 남겠지만, 문제는 이런 일자리는 매우 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율 주행차 때문에 직장을 잃은 택시 기사가 갑자기 인공지능 관련 프로그래머가 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지금부터 공존을 준비할 때 미래는 항상 예측이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지금처럼 전에 없던 새로운 기술이 대거 개발되는 시기에는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생각하면 지나친 낙관론이나 비관론 모두 경계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응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직업이 더 많이 생겨서 큰 문제 없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친 낙관론에 가깝습니다. 농업에서 산업화로 이행하던 초창기, 아직 공장에서 충분한 노동력을 흡수하기도 전에 많은 사람이 도시로 몰리면서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가 생겼던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도 세계화와 기술의 발전이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지만, 앞으로는 더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고도의 자동화가 이뤄진다면 전통적인 공장 노동자는 물론 서비스 산업 분야에서도 임금 상승이 정체되거나 혹은 실업률이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반면 소수의 고소득 지식 인력이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양극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양극화가 심해지면 사회적 안정이 흔들리고 경제도 침체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 본래는 하지 않던 생각이나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는 열쇠는 역시 교육과 더불어 사회적 준비입니다. 20세기 많은 국가에서 교육을 통해 서비스, 지식 노동 분야에 인력을 공급했습니다. 덕분에 제조업에서 사라지는 일자리를 충분히 극복하고 오히려 더 소득이 높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동시에 복지 제도를 포함한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이전세대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었죠. 아마도 21세기의 해법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시대의 변화에 맞는 창의적, 자기 주도적 학습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로지 명문대 입시에 모든 것이 달린 우리나라의 현 교육 시스템은 미래에 큰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단기간에 시험 성적을 높이기 위한 단순 암기와 문제풀이의 반복이기 때문이죠. 지금 가장 시급하게 바꿔야 하는 부분입니다. 동시에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운 취약 계층을 위한 사회적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일부 선진국에서 시도 중인 기초 소득 같은 제도가 새로운 대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과 인간이 대결하기보다 함께 협력해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미래를 구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의료 부분에서 의사의 진단과 치료를 돕는 인공지능 왓슨의 경우 사실 의사를 대체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의사의 진단이나 치료 과정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면서 실수를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로봇 기자와 인간 기자가 협력하는 미래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속보나 사실을 나열하는 기사는 로봇 기자에게 맡기고 인간 기자는 로봇이 할 수 없는 심층 취재나 분석을 하는 식의 더 효율적인 업무 분담이 이뤄져야 합니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충돌하는 제국(리디아 류 지음, 차태근 옮김, 글항아리 펴냄) 19세기 영국과 중국 두 제국이 어떻게 조우하고 충돌했는지 역사적 흔적을 추적해 나간다.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연구한 저자는 제국이 충돌할 뿐 문명은 충돌하지 않는다며 기존 인식을 뒤엎는 생각을 전개한다. 문명의 충돌이란 제국의 실질적인 욕망을 문명 간의 차이로 투사한 것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정치·경제의 이해관계에 기반을 둔 제국 간의 충돌이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책을 쓴 목적에 대해 “제국의 기록물에 대한 인식론적이고 윤리적인 문제 제기를 통해 근대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484쪽. 2만 5000원. 심리학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김상준 지음, 보아스 펴냄) 그리스 신화를 쉽고 재미있는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전개하며 그 속에 담긴 심리학적 상징들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리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이지만 인간사를 담은 것으로 평가된다. 신들은 결코 지고지상하지 않으며 지극히 감정적이고 인간적이다. 그리스 신화가 우리를 사로잡는 이유는 그것이 상징적인 인간 역사이며 우리의 무의식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 주장이다. 신경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원초적인 심리학의 조각들을 찾아 우리 내면에 감춰진 다채로운 인간 심리를 조망한다. 304쪽. 1만 4000원. 마르크스와 공자의 화해(권기영 지음, 푸른숲 펴냄) 이 책은 1917년 중국의 신문화운동부터 2008년 베이징올림픽까지 중국이 선택해 온 길을 ‘마르크스’(사회주의)와 ‘공자’(전통문화)라는 두 가지 문화 코드로 분석해 21세기 중국을 전망한다. 마오쩌둥부터 후진타오까지 중국 정부가 어떤 사회주의식 문화 전략을 구사해 왔고 국가 발전 측면에서 문화를 어떻게 인식해 왔는지, 중국 현대의 문화사 같은 책이다. 2001년부터 10년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중국사무소장을 지낸 저자가 중국의 변화가 우리에게 위협일지 기회가 될지 문화를 통해 중국을 읽고 조망한다. 312쪽. 2만원. 5년 후 세계 위기는 공평하게 다가온다(김상철 지음, 한스미디어 펴냄) 중국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있고, 유가 하락은 물론 달러와 환율도 변동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유럽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세계 경제의 화약고가 되고 있고, 신흥국의 경제성장률은 답보 상태다. 불확실해지는 세계 경제 기류 속에서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 등 주요국의 경제 현안과 미래 전망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한국의 생존 전략을 소개한 책이다. 코트라 출신의 미래 경제 전문가인 저자는 생동감 있는 필체로 300여컷에 달하는 세세한 경제 지표를 제시하며 이해를 돕는다. 560쪽. 1만 9500원. 친구지옥(도이 다카요시 지음, 신현정 옮김, 새움 펴냄) 과도하게 몰입된 인간관계와 커뮤니케이션에서 느끼는 중압감 등 일본 젊은 세대의 내적 실체를 심도 있게 분석한 책이다. 사회로부터 자신을 격리하는 은둔형 외톨이부터 이지메라는 지뢰를 밟지 않기 위해 눈치 보는 교우 관계, 자살 소녀들의 내면 풍경, 자기 가치의 확인 수단이 된 스마트폰 등 온·오프라인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문제 현상과 원인을 ‘친절한 관계’라는 개념을 키워드로 설명한다. 저자가 말하는 친절한 관계는 대립의 회피를 최우선으로 하는 젊은이들만의 인간관계를 의미한다. 284쪽.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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