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19세기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국내법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닉네임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어스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방송사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303
  •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잘나가던 법조인, 왜 과학자가 됐나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잘나가던 법조인, 왜 과학자가 됐나

    20대에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촉망받던 젊은 법조인이 어느 날 우연히 수학책과 물리학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이제 평생 사람을 위한 법이 아닌 자연에 숨겨진 법칙을 연구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얘기를 듣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돈 잘 벌고 편하게 살 수 있는 법률가직을 버리고 왜 굳이 힘든 길을 가려고 하지?” 또는 “대단하네. 뭘 하든 큰일을 낼 것 같은데.”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선 전자로 생각하는 분들이 조금 더 많으실 것 같습니다.●아보가드로 탄생 240년 이런 ‘코페르니쿠스적’ 진로 변경을 한 사람은 요즘 사람은 아닙니다. 주인공은 이탈리아의 화학자이자 물리학자입니다. 로렌초 로마노 아메데오 카를로 아보가드로 디 콰레크나 에 디 세레토 백작, 240년 전 오늘 태어난 이 사람은 역대 과학자 중 가장 이름이 길죠. 그래서 간단히 아메데오 아보가드로(1776~1856)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화학과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과학 수업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아보가드로 법칙’과 ‘아보가드로 수’를 만든 사람입니다. ●수학·물리학에 반해 전업 아보가드로 가문은 이탈리아의 전통 있는 법률가·성직자 집안으로, 아메데오 역시 어려서부터 철학과 법학 분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스무살이 되던 1796년에 교회법에 대한 논문을 발표해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이탈리아 토리노 지방에서 청년 법조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청년 법조인 아메데오는 20세 중반에 수학과 물리학 책을 접하고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충격을 받았답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세상의 모든 이치는 수학과 물리학에 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다가 결국 전업 과학자로 진로를 바꾸고 스물일곱 살이 되던 1803년에는 전기와 관련한 첫 과학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아보가드로 수와 아보가드로 법칙은 1811년 ‘물리학, 화학, 자연사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비롯됩니다. ●‘분자’ 개념 제시 등 다양한 업적 ‘물체의 기본입자들의 상대적 질량 및 이들의 결합비를 결정하는 하나의 방법에 관한 소고’라는 논문에서 그는 ‘분자’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돌턴의 원자설과 게이뤼삭의 기체반응 법칙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기체의 성질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원자들을 붙여 하나의 구성입자인 분자를 만들면 된다는 겁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아보가드로 법칙을 설명합니다. ‘기체는 2개 또는 그 이상의 기본입자로 구성돼 있고 모든 기체는 종류에 상관없이 같은 온도, 같은 압력, 같은 부피 속에 같은 수의 분자를 포함하고 있다.’ 아보가드로 수는 어떤 물질의 원자나 분자 1몰에는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입자의 개수인 6.023×1023을 말합니다. ●‘늦깎이 과학자’ 또 나왔으면 아보가드로가 살았던 세상은 지금보다는 훨씬 세상이 단순했던 18~19세기이긴 하지만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골수 문과생이 우연히 과학을 접하고 평생 과학만을 생각하겠다며 과학기술에 투신한 것입니다.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바람이 유럽 전역을 휩쓸면서 과학과 기술은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됩니다. 4차 산업혁명이 거론되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메데오 같은 늦깎이 과학자가 나와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마련돼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edmondy@seoul.co.kr
  • 대형개발 무덤 되나, 도시재생 기회 되나…묘지의 경제학

    대형개발 무덤 되나, 도시재생 기회 되나…묘지의 경제학

    ‘도시의 성벽으로부터 10마일에 이르는 지역 내 무덤들은 서울의 특징이다. 죽은 사람들은 남향과 명당을 독점한다.’ 120여년 전 스코틀랜드 출신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조선을 여행한 뒤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서 묘사한 묘지 풍경이다. 지금 풍경과 사뭇 다르다. 어쩌면 역사의 질곡을 겪으며 가장 이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묘지에 관한 우리의 태도일지 모른다. 산 사람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로 많은 무덤이 후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관리된 것이 19세기 말의 풍경이라면, 매장에서 화장으로 문화가 바뀐 지금은 무덤의 절대량은 줄었으되 방치되는 사례가 늘어났다. 전국 공동묘지 규모에 관한 가장 최근의 공식 통계는 1987년으로 30여년 전에서 멈춘다. 당시 국토연구원의 보고서 ‘묘지제도의 과제와 개선방안’에 따르면 전국의 공동묘지 수는 9980곳(분묘 약 355만기), 면적은 121㎢에 달했다. 도로 건설, 아파트 건축, 산업단지 개발, 혁신센터 편입 등으로 인해 사라진 묘지를 감안하면 현재 3000여곳의 공동묘지가 남았을 거라고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공동묘지 외 108개 시·군에 373곳의 공설묘지, 70개 시·군에 159곳의 사설법인묘지가 있고 개인이 관리하는 묘지도 있다. 모두 합치면 전국 묘지 수가 2100만기에 이르고, 이는 주거 면적의 3분의1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묘지 형태는 산 자의 생활 방식을 따라 변화했다. 한국조경학회장인 김성균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는 5일 “1950년대까지 공동묘지가 주를 이뤘다면 1950~1990년대엔 공설묘지에 시신을 매장했고 1990년대에는 장묘시설이 호응을 얻다가 2000년대 이후 공원묘지가 대세가 됐다”고 분류했다. 공동·공설묘지 모두 집단묘지이지만, 공설묘지는 광역 또는 자치단체에서 관리한다는 점이 다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묘지는 풍수가 적용되는 대표적인 공간으로 산줄기에 개별적으로 분포됐지만 일제강점기 때 공동묘지 형태로 도시 주변에 분포하기 시작했다”면서 “집단화 과정을 거친 뒤 최근 묘지는 죽은 자의 아파트처럼 규칙적으로 배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설묘지 시대만 해도 묘지의 터를 바꿀 수 없다는 후손(연고자)의 저항 때문에 도로를 우회하거나 건물 설계를 바꾸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1979~1993년에 건립된 정부과천청사는 총 5개 동인데, 1~4동이 남향인 반면 5동만 서향으로 지었다. 근처 뒷산에 묘를 쓴 연고자가 주변 땅을 파는 조건으로 “묘를 바라보는 건물을 짓지 말라”고 요구해 방향을 틀었다고 전해진다. 1976년 ‘용인자연농원’이란 이름으로 개장했던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와 호암미술관 근처에는 용인 이씨 중시조인 청백리 이백지 선생의 묘가 있다. 역시 연고자들이 이장을 거부한 것인데, 지금은 용인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됐다. 공설묘지에서 장묘시설, 공원묘지로의 묘지 형태 변화는 장례 방식이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뀐 시점과 궤를 같이한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전국의 화장률은 1993년 19.1%에서 2013년 76.9%로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급격한 변화는 풍수나 조상숭배에 깃든 기복성이 약화된 대신 합리적인 사고가 확산된 데 기인한다. 이처럼 묘지를 둘러싼 인식과 생활 방식 모두 바뀌었지만 묘지로 인한 분쟁상은 여전하다. 묘지에 대한 경외가 사라진 자리를 보상금 갈등이 차지하며 협의되지 못한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사례도 최근 빈번하다. 2012년 강원 춘천시 근처에 골프장을 조성하던 사업자가 이전 협상이 안 된 묘지 주변을 절벽처럼 깎아 낸 일도 있었다. 이후 사업이 좌초돼 진입로 없는 묘지로 몇 년째 방치되고 있다. 강원도골프장 문제해결 범대위의 박성율 집행위원장은 “골프장 건립 붐이 일던 몇 년 전까지 골프장 부지 내 묘를 파헤치거나 유골을 꺼내 훼손하는 일이 있었다”면서 “연고자들이 고향이 유지되기를 희망하며 묘지를 둘러싼 임야 강제수용을 완강하게 거부하면 사업자들이 묘지 주변을 둘러 깎아 내거나 반대로 묘지 근처에 20m 넘게 흙을 쌓아 비가 오면 묘지가 침수되게 만든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연고자들이 과도한 보상금을 요구, 공장 설립이나 택지 개발이 지연되는 경우도 많다. 몇 년 전 600여 가구 규모로 경북 포항에서 아파트를 분양한 A건설사는 부지 내 묘지 60여기에 대해 이장 비용 등을 보상했다. 그러나 부지 안에 묘지 4개를 모시던 한 연고자가 높은 보상을 요구, 결국 1억여원을 주고 협상을 끝냈다. 일종의 ‘묘지 알박기’인 셈인데, A건설사는 협상 중 설계를 바꿔 해당 묘지 근처로 도로를 내는 방안까지 고민했다고 한다. 장사법(장사 등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르면 도로, 산업단지와 같은 공익시설용으로 수용될 경우 묘지 1기당 300만원 안팎의 보상금을 지급한 뒤 이전 협상을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협상액과 장사법 규정액이 10배 정도 차이가 난 셈이다. 공익시설용 수용이 아닐 때 묘지 수용에 따른 보상액 산정 기준을 찾기 어렵다는 대목은 법적 미비로 지적된다. 사설법인이 운영하는 공동묘지라면 이전 지체로 인한 개발사업자 부담이 천정부지로 커질 수도 있다. 2007년 말 미니신도시용택지개발 예정지구가 된 파주운정3지구 택지 개발사업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례가 그렇다. 지구 내 1만여기 규모의 일산공원묘지를 이전해야 하는데, 일산공원묘지 측에서 매입한 대체부지에 대해 파주시는 “장례문화가 화장문화로 바뀐 데다 파주에 서울시립묘지까지 있는 상태여서 추가로 매장 묘지용 부지를 조성하기 어렵다”며 묘지 사용 승인을 내주지 않았다. 그래도 공공기관이 하는 택지 개발사업이어서 행정대집행을 발동할 수 있기에 LH는 올해 안에 사업 착수가 시급한 지역에 위치한 600여기에 대해 연고자들과 이전 협의를 우선 마무리할 계획이다. 2014년 3월 부지 조성공사에 착수해 2017년 말 완공한다는 목표가 틀어지면서 이미 지급한 2조원대 토지보상금에 대한 금융비용이 불어나는 국면에서 내린 결정이다. 서울 근교에 위치해 화성, 용인 등과 함께 묘지가 많은 곳으로 꼽히는 파주는 한때 ‘묘지 이전 관리’를 통해 새롭게 부흥한 곳이기도 하다. 파주는 2003년 LG필립스(현 LG디스플레이)의 액정표시장치(LCD) 공장을 유치했는데, 지방산업단지 지정 승인부터 터를 다져 공장 착공까지를 8개월 만에 마무리하는 ‘스피드 행정’이 펼쳐졌다. 이때 관건으로 해당 부지에 위치한 430여기의 묘지를 이전하는 문제가 꼽히자 파주시뿐 아니라 경기도까지 나서 묘지별 담당 공무원을 지정해 연고자를 설득하는 작업을 감행했다. 2000년 760여곳이던 건면적 500㎡ 이상 파주 소재 공장 개수는 최근 3800여곳으로, 파주 인구는 1996년 16만여명에서 최근 43만여명으로 늘었다. ‘묘지 이전 경제학’을 보여 준 셈이다. 묘지 이전 문제가 극한 갈등의 소재로 비화하기도, 도시 개발의 단초로 작용하기도 하는 상황에서 묘지 이전 보상에 대한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개발사업자와 묘지 연고자의 이해가 모두 존중받는 해법, 망자를 격리하는 공간이 아닌 산 자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공간 등을 고민해야 한다는 게 공통적인 지적이다. 묘지이장전문회사인 건국공영의 문일현 대표는 “연고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동시에 개발사업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을 정도의 묘지 이전 보상금에 대한 합리적 판례가 많이 정립돼야 하고 분쟁이 생겼을 때 재판을 신속하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태복 한국토지행정학회장은 “국토 발전의 관점에서 묘지의 실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지금은 관리가 되지 않는 공동묘지를 중심으로 묘지의 경관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동묘지 경관개선 특법조치법 제정을 추진 중인 파주 지역구의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피시설이란 이유로 묘지에 대한 논의를 더이상 피하면 안 된다”며 “무연고 묘, 방치된 묘들에 대해 전국적 차원의 일대 정비를 하는 동시에 지상 도서관과 지하 납골당이 결합된 건물처럼 망자와 산 자가 공존할 수 있는 묘지를 구상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드가의 작품 밑에 숨겨진 여인은 ‘당대 인기 모델’

    드가의 작품 밑에 숨겨진 여인은 ‘당대 인기 모델’

    프랑스 인상파 화가 에드가 드가(1834~1917)의 한 작품 ‘여인의 초상’(Portrait de Femme). 검은 옷을 입은 한 여인을 보여주는 이 그림 밑에 먼저 그려졌던 또 다른 여인의 모습이 최신 기술로 복원됐다. 호주 퀸 빅토리아 박물관·미술관 소속 연구팀은 작품 밑에 숨겨져 있는 여인은 당대 프랑스 화가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한 여성 모델과 매우 닮았다고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 최신호(4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복원된 여인이 19세기 프랑스 화가들이 선호한 여성 모델 엠마 도비니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즉 에드가 드가는 도비니로 추정되고 있는 여인을 그린 캔버스를 거꾸로 해서 그 위에 다시 새로운 그림을 덧그렸다는 것. 연구를 이끈 데이비드 서로우굿 선임연구원은 “이는 매우 흥미진진한 발견”이라고 말했다. 사실, 작품에 숨겨진 여인은 1920년쯤부터 그 존재가 알려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품 위로 얼룩처럼 모호한 사람 얼굴이 서서히 나타났던 것이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여인의 초상’은 새로운 밑칠(베이스코트)을 하지 않고 제작해 얇게 입힌 유성 물감의 ‘은폐력’(hiding power)이 약화돼 도비니의 모습이 비쳤던 것”이라고 말했다. 원본 그림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한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희미한 윤곽이 조금 밝혀지는 정도에 그쳤다. 작품의 이미지에 손상을 주지 않고 ‘밑그림’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은 지금까지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팀은 호주 빅토리아주(州)에 있는 연구시설 ‘호주 싱크로트론’의 입자가속기로 ‘형광 X선 분석법’이라는 기술을 사용해 ‘밑그림’을 조사했다. 이 같은 고해상도 이미지 처리 기술은 여러 연구나 치료, 법의학 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된다. 그리고 밑그림 속 여인의 모습과 기존의 여러 회화 작품을 비교해 당대의 인기 모델 엠마 도비니를 그린 ‘미지의 초상화’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엠마 도비니는 1869년부터 1870년까지 에드가 드가의 작품에 등장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16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원본 그림인 도비니 대신 1876년부터 1880년까지 사이에 덧그려진 새로운 여성의 정체는 지금까지 이름조차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싱크로트론으로 원본 그림의 물감에 포함된 비소, 구리, 아연, 코발트, 수은 등 다양한 금속 원소에 관한 지도 11점을 제작했다. 그러고 나서, 이들 원소 지도를 중첩해 섬세하게 ‘밑 림’을 재구성했고 이를 통해 에드가 드가의 붓 터치 방법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원본 그림 복원에 있어 색채만큼은 알아낼 수 없어 추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복원된 그림을 보면, 도비니의 머리에 흐릿한 부분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드가가 여러 번에 걸쳐 다시 그린 흔적이라고 한다. 연구팀은 “숨겨져 있던 그림은 이후의 작품 활동을 통해 가려진 초기 작품으로, 작품과 화가에 관한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사진=호주 퀸 빅토리아 박물관·미술관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남미는 지금] “전쟁하자는 거냐?” 칠레 vs 볼리비아 설전

    칠레와 볼리비아 양국 외교장관 사이에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먼저 공격을 한 건 볼리비아지만 칠레도 노골적인 표현으로 맞받아 난타전을 방불한다. 에랄도 무뇨스 칠레 외교장관은 1일(현지시간) "볼리비아 외교장관이 매우 신중하지 못한 발언을 했다"며 "최소한 외교장관이라면 말은 가려서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무뇨스 장관이 원색적으로 비판한 건 최근 중남미 언론에 보도된 다비드 초케우안카 볼리비아 외교장관의 발언이다. 초케우안카 장관은 "볼리비아 남자라면 라우카 강을 볼 때 피가 끓어오른다"며 "우리의 것을 되찾기 위해 피를 흘릴 각오를 다지곤 한다"고 말했다. 라우카 강은 칠레에서 시작해 볼리비아로 흘러들어가는 강이다. 하지만 칠레는 1962년 강의 흐름을 바꿨다. 볼리비아로 흘러드는 물줄기를 잘라버린 셈이다.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 볼리비아는 발끈해 칠레와의 단교를 선언했다. 지금은 외교관계가 복원됐지만 양국 간 감정은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강만 보면 피가 끓어오른다는 볼리비아 외교장관의 발언이 나온 배경이다. 무뇨스 칠레 장관은 "외교관 생활을 오래했지만 볼리비아 외교장관의 말같이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비외교적 발언은 처음 들어본다"며 "매우 황당하고 비정상적인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양국 여론도 부글부글 끊어오르고 있다. "피를 흘리자는 건 곧 전쟁을 하자는 것, 한판 붙어볼까?" "이번에는 지지 않는다. 전쟁으로 바다를 되찾자"는 등 양국 네티즌들도 설전에 가세해 극단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볼리비아는 19세기 칠레와의 전쟁에서 지면서 태평양으로 열린 영토를 빼앗겼다. 바다 없는 내륙국가로 전락한 볼리비아는 빼앗은 땅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칠레는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사진=초케우안카 볼리비아 외교장관(왼쪽)과 무뇨스 칠레 외교장관. (디아리오코레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모방에서 예술로… 조선시대 도자 제기의 모든 것

    모방에서 예술로… 조선시대 도자 제기의 모든 것

    도자로 만든 조선시대 제기(祭器)를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테마전 ‘흙으로 빚은 조선의 제기’가 2일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테마전시실에서 개막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도자 제기를 주제로 조선시대 제작된 도자 제기 118점을 한데 모은 전시는 처음”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유교문화 확산과 함께 도자 제기 사용층이 왕실에서 향교, 사대부까지 넓어지면서 도자 제기가 어떤 식으로 변모해 가는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제기는 제례에 사용되는 그릇이다. 예부터 금속, 나무, 도자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됐다. 조선시대 들어 금속 부족으로 도자 제기가 많이 만들어지면서 도자 제기는 조선의 예(禮)의 상징이자 예술품으로 자리잡게 됐다. 전시는 3부로 이뤄졌으며, 조선의 도자 제기를 연대순으로 전기(15∼16세기 중반), 중기(16세기 후반∼17세기), 후기(18∼19세기)로 나눠 보여준다. 처음에는 금속 제기나 목제 제기를 본떠 만들어졌던 도자 제기가 점차 독특한 양식으로 발전해 가는 양상을 조명한다. 1부는 도자 제기가 금속 제기를 대체하는 과정을 소개한다. 제기 제작 교본인 제기도설(祭器圖說)에 나오는 금속 제기를 모방해 만든 상감분청사기 제기와 백자 제기 등이 전시됐다. 특히 15세기 전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황금눈(黃目) 구름무늬 준(尊·술이나 물을 담는 그릇) 모양 제기’와 ‘연꽃무늬 조(俎·고기를 얹는 그릇)’는 일반에 최초로 공개됐다. 2부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향촌 사회에서 제사가 성행하면서 제작된 백자 제기에 초점을 맞춘다. 당시 백자 제기는 장식이 과감하게 생략되고 문양이 점차 단순해졌으며, 삼각형이나 반타원형 무늬를 파낸 굽과 세로 톱니무늬 장식이 특징이다. 3부에선 비례가 아름답고 정결한 백색을 띠는 백자 제기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시기 제기들은 굽이 높은 점이 특색으로, 청화(靑花) 기법으로 ‘제’(祭)자를 새겨 넣기도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선의 도자 제기는 모방에서 출발해 점차 독창적인 면모를 띠다가 새로운 형태의 예술품이 됐다”며 “도자 제기는 연구가 부족한 상황인데, 이번 전시를 계기로 심도 있는 연구가 이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10월 23일까지 이어진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인류 역사엔 늘 ‘여성 우정’ 있었다

    인류 역사엔 늘 ‘여성 우정’ 있었다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메릴린 옐롬·테리사 도너번 브라운 지음/정지인 옮김/책과함께/424쪽/1만 9500원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우정을 인간의 애착 가운데 가장 ‘고귀한 형태’로 보았다. 그런데 이 우정론에서 여성은 예외이다. 당시 시민도, 군인도 아닌 신분 탓에 공적 영역에 참여할 수 없었던 여성들은 우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던 것이다. 우정에 관한 한 여성 폄하와 무시는 그리스 철학자들만의 언사에 머물지 않는다. 16세기 프랑스 작가 몽테뉴(1533~1592)는 “보통 여자들이 지닌 능력은 영적 교감을 나누기에 부적합하며, 여자들의 영혼은 그렇게 견고하고 질긴 관계의 압박을 견딜 만큼 튼튼하지 않은 것 같다”고 썼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S 루이스(1898~1963)는 “남자들의 무리에 여자들이 끼어드는 건 우정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현대의 현상에 일조하는 일”이라고 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미셸 클레이만 젠더연구소의 원로학자가 저명한 미국 저술가와 함께 쓴 이 책은 ‘여성의 우정’이란 테마를 문화사의 측면에서 풀어내 흥미롭다. 성서에서 고대 그리스·로마, 계몽주의와 1960년대 여성운동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정에 대한 태도 변화를 시대순으로 정리한 게 독특하다. 그 천착에서 건져낸 메시지가 또렷하다. ‘여성의 우정이라는 개념은 인류 역사를 결정한 사회적, 문화적 운동들과 언제나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기원전 600년부터 서기 1600년까지 서구 역사의 첫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정에 관한 거의 모든 기록은 오직 남자들만의 이야기였다.” 우선 성경을 보자. 지은이들이 성서에서 훑어낸 여자들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는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추측이나마 할 수 있을 정도로 희미한 흔적만 있을 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시민인 남자들이 아고라에 모여 우정을 쌓는 동안 집에 남아 집안 살림을 도맡아야 했던 여자들에게 우정이 가능했을까. 당시 여자들은 집 밖으로 나가 이웃을 방문하는 시간마저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저자들은 역사 속 ‘여성의 우정’을 이렇게 말한다. “존재했으나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어떤 식으로든 여성들의 우정은 지속되어 왔다는 것이다. 여자들의 우정이 기록으로 남기 시작한 건 여자들 스스로 글을 쓸 수 있게 되고부터이다. 12세기 서부 독일 작은 마을 빙겐의 여수녀원장 힐데가르트 폰 빙엔(1098~1179)은 그 시초로 여겨진다. 힐데가르트는 당시 존경받는 멘토로, 어머니 같은 존재로, 수많은 수녀들을 이끌어주고 열정적인 우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시대의 환경과 인식에 따라 우정의 성격도 다양하게 변화했다. 17세기 영국의 문학 서클과 프랑스의 살롱은 여성의 우정에 있어서 전례 없는 변화를 몰고 온 요인이었다. 식민지 미국의 개척기에는 척박한 환경에서 함께 생활을 꾸려나가야 할 필요성이 여성들의 연대를 부추겼으며 다양한 형태의 모임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특히 19세기 여성참정권 운동의 대표적 인물인 미국 수전 B 앤서니(1820~1906)와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1815~1902)의 일생 변치 않은 깊은 우정은 유명하다. 두 사람은 공통의 대의를 향해 나아가는 데 여성들의 연대, 즉 자매애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자매애의 가치는 그 이후 페미니스트들에게서 모든 여성을 포괄하는 이상이자 동력이 되었다. 미국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영부인 앨리너 루스벨트가 정치적 거물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늘상 곁에서 이끌어주고 희로애락을 함께 한 친구들 덕분이었음을 추적해 도드라진다. 책은 앨리너의 이야기에만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우정은 남성의 전유물’이란 고정관념이 역전되기 시작한 건 19~20세기 무렵이다. 이 시기 들어서야 비로소 ‘여성이 남성보다 더 남을 배려하고, 다정하고, 애정 깊으며, 따라서 우정에도 더 적합한 존재’라는 생각이 자리잡았다고 한다. 실제로 구글 엔그램(Ngram) 사이트에서 ‘여성의 우정’이란 어구를 검색해보면 350년가량 바닥에 깔려 있다가 19세기 후반에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는 그래프가 나타난다. 결국 ‘여성의 우정’이 지나온 궤적은 모두 사회구조 때문임을 밝혀낸 저자들은 ‘과거가 현재의 프롤로그’라고 매듭짓는다. “복작거리고 갈등 많은 행성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사용할 수 있는 관계의 도구란 도구는 전부 활용해야 한다. 여성들이 우정에서 구하고 발견한 힘과 지혜는 존엄하고 희망적인 삶과 평화로운 공존으로 미래 세대를 인도해줄 수 있을 것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바닷물 잠수함vs원자력 잠수함…미·러 경쟁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바닷물 잠수함vs원자력 잠수함…미·러 경쟁

    자동차와 항공기, 선박 등 종류를 막론하고 21세기 인류가 만들어내고 있는 탈 것의 키워드는 ‘친환경’이다. 지상에서는 각국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하이브리드 차량과 전기차를 개발하는데 열중하고 있고, 하늘에서는 더 적은 연료로 더 멀리 날며 더 적은 공해를 발생시키는 엔진과 항공기 개발이 한창이다. 바다에서도 전기모터로 배를 움직이는 하이브리드 방식의 추진체계가 각광을 받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동력방식 개발붐이 일어난 데에는 사람들의 환경오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것도 있지만, 화석연료 고갈에 따른 대체 에너지 확보의 필요성이 점차 대두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유지비, 즉 ‘기름 값’ 측면에서 새로운 동력원이 더 경제적이라는 판단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트렌드는 군함이라고 해서 빗겨갈 수 없다. 최근 건조되고 있는 군함들은 고효율 가스터빈이나 디젤엔진과 더불어 전기모터를 장착, 자동차의 하이브리드 추진방식과 유사한 형태의 추진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하이브리드 차가 전기차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기술인 것처럼 주요 강대국들은 기존의 추진 시스템에서 완전히 벗어난 전혀 새로운 선박 추진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는데, 강대국들마다 그 ‘차세대’의 개념이 조금 다른 모양이다. 파격적인 원자력 함대! 사실은… 최근 러시아 국방부는 향후 20년간 건조되는 4000~8만톤급 크기의 모든 수상함에 원자력 추진체계를 탑재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현재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수상전투함인 어드미럴 우샤코프(Admiral Ushakov)급에 원자력 추진체계를 탑재하고 있지만, 향후 비교적 소형인 4000톤급 호위함에도 원자력 추진체계를 얹겠다는 파격적인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러시아 해군이 계획하고 있는 신형 함정들의 스케일을 보면 원자로를 탑재할만한 대형 함정이 꽤 있다. 차세대 항공모함으로 개발되고 있는 8만~10만톤급 프로젝트 23000E 폭풍(Storm)급 항공모함부터, 차세대 구축함으로 개발되고 1만 8000톤급 프로젝트 23560 리데르(Leader)급, 9000톤급 프로젝트 21956 등이 그것이다. 항공모함은 1~2척, 23560급과 21956급은 각각 12척과 12~15척이 건조될 예정이기 때문에 계획대로만 된다면 러시아는 25~29여 척에 달하는 대형 수상함들로 구성된 ‘원자력 함대’를 갖게 된다. 물론 이러한 대형 함정들이나 잠수함 등의 군함에는 원자력 추진 방식이 꽤 효율적일 수 있다. 거대한 덩치와 다수의 고출력 레이더를 탑재한 항공모함이나 대형 순양함 등 에너지 소모가 많은 대형함정들은 연료비 부담이 큰 재래식 추진기관보다는 원자로를 쓰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일 수 있다. 또한 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장기간 물속에 숨어 작전하는 잠수함은 수중에서 공기 없이도 엔진을 돌릴 수 있는 동력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원자로를 쓰는 편이 작전 능력이나 생존성 측면에서 우수하다. 이 때문에 50여 년 전에도 모든 함대의 전투함이 동력원으로 원자로를 쓰는 ‘원자력 함대’가 등장했다. 세계 최초의 원자력 항공모함인 엔터프라이즈(USS Enterprise)를 중심으로 원자력 순양함 롱비치(USS Long Beach)와 베인브릿지(USS Bainbridge)로 구성된 NTFO(Nuclear Task Force One)이 그것이다. 이 함대는 1964년 7월부터 동년 10월까지 보급을 받지 않고 지구를 한 바퀴 도는데 성공함으로써 원자력 함대의 장기 작전 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건조 비용이나 군함의 덩치가 큰 대형 함정이나 잠수함에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호위함이나 초계함과 같은 작은 함정에 원자로를 탑재한다면 해상에서 장기간 작전할 수 있는 능력은 크게 향상되겠지만, 경제성 측면에서 본다면 소형함에 원자로를 얹는 것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척당 건조 비용이 적게는 1조 원에서 많게는 수 조원에 달하는 대형 구축함이나 순양함, 항공모함에 3000억~8000억 원 수준의 선박용 원자로를 탑재하는 것은 건조 비용을 어느 정도 상승시키는 정도의 부담만 되겠지만, 척당 건조 비용이 수천억 원 이하인 호위함에 원자로를 얹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 가령, 만재배수량이 5500톤급 수준인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의 건조 비용은 척당 4500억 원 수준이다. 여기에 국내 개발한 SMART-P 원자로를 탑재할 경우, 원자로의 가격만 4300억 원 수준이기 때문에 척당 건조 비용은 이지스 구축함 건조 비용과 맞먹는 9000억 원 수준까지 상승한다. 2척의 군함을 구입할 돈으로 단 1척밖에 구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해군 역시 마찬가지다. 러시아 해군의 차세대 주력 수상전투함으로 20여 척이 건조될 예정인 4500톤급 어드미럴 고르시코프(Admiral Gorshikov)급의 획득 비용은 1척에 250억~300억 루블, 우리 돈으로 약 5000억 원 수준이다. 러시아가 선박용 원자로로 개발한 KLT-40 계열의 3500~4000억 원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어드미럴 고르시코프에 원자로를 얹게 되면 배의 건조 가격은 40% 이상 뛰어 8000~9000억 원 수준까지 오르게 된다. 비용 측면에서 대단히 불합리한데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40여 척 이상의 신형 수상함에 원자력 추진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것은 말 못할 속내가 있다. 원자로 아니면 새로 건조되는 군함에 얹을 동력기관을 구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군함은 디젤엔진과 가스터빈 엔진을 탑재하는데, 평시에는 연비가 좋은 디젤엔진을 구동하다가 높은 속도가 필요하거나 급하게 가속이 필요할 때 가스터빈 엔진을 돌려 추가적인 동력을 얻는 방식으로 동력을 운용한다. 러시아는 선박용 대형 디젤엔진 기술과 제품은 충분했지만, 문제는 가스터빈 엔진이었다. 러시아 해군 함정에 탑재되는 가스터빈 엔진이 러시아제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제였기 때문이다. 과거 구소련은 독립국가연합 각 지역에 무기 생산 공장을 분산해 건설했는데, 선박용 가스터빈 엔진 공장은 우크라이나에 있었다. 가스터빈 엔진을 개발 및 생산하는 조랴-마쉬로프엑트(Zorya-Mashproekt)라는 업체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통제 하에 있었고, 크림반도 분쟁 이후 우크라이나는 즉각 러시아에 대한 가스터빈 엔진 공급을 중단했다. 이 때문에 2014년부터 2015년까지 러시아의 신형 호위함 건조 사업은 중단됐다. 엔진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가스터빈 공급 중단 사태에 맞서 가스터빈 엔진의 국산화와 국내 생산을 시도했지만, 상당한 수준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대출력 가스터빈 엔진의 자체 개발 및 생산에 도전하기보다는 충분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원자력 추진기관 채택 함정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앞으로 등장할 러시아 해군의 주요 수상함은 호위함부터 항공모함에 이르기까지 모두 원자력 추진기관을 탑재할 것으로 보인다. 문자 그대로 ‘원자력 함대’의 탄생이 머지않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무리 대형함이라고 하더라도 원자력 추진 기관의 유지 비용은 그렇게 저렴한 편이 아니어서 과연 러시아가 이 원자력 함대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바닷물을 연료로 움직이는 함대 사실 원자력을 군함의 동력원으로 활용했던 최초의 국가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냉전 시기 원자력 함대 구상에 따라 세계 최초의 원자력 항공모함인 엔터프라이즈는 물론 다양한 유형의 원자력 추진 순양함을 개발해 1980년대까지 운용했다. 미 해군은 지금도 초대형 항공모함이나 잠수함의 동력원으로 원자력을 쓰고 있지만, 4만톤이 넘는 강습상륙함이나 1만톤에 육박하는 구축함들은 지금도 여전히 가스터빈과 디젤엔진을 쓰고 있다. 일반적인 수상함에서는 원자력 추진 방식이 경제성 측면이나 안전성 측면에서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 해군은 차세대 동력원으로 원자력을 택한 러시아와 달리 전혀 새로운 방식의 차세대 동력원 개발에 일찌감치 관심을 보였고, 최근 선보인 이 차세대 동력원은 참신하다 못해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차세대 동력원의 연료가 ‘바닷물’이기 때문이다. 바닷물을 연료로 무한정에 가까운 항속거리를 갖는 배의 개념은 19세기 프랑스 작가 쥘 베른(Jules Verne)이 쓴 소설 ‘해저 2만리(Vingt mille lieues sous les mers)’ 속 네모(Nemo) 함장의 잠수함 노틸러스(Nautilus)호를 통해 처음 등장했다. 소설 속 노틸러스호는 바닷물에 있는 염화나트륨을 연료로 전기를 일으켜 무려 43.2노트(80km/h)의 빠른 속력을 낼 수 있으며, 심해 1만m의 수압까지 견딜 수 있는 등 현대의 최첨단 기술로도 실현이 어려운 막강한 성능을 자랑하는 잠수함으로 등장한다. 미 해군의 차세대 에너지원은 바로 이 노틸러스호에서 영감을 얻었다. 미 해군 연구소(Naval Research Laboratory)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차세대 에너지원 연구의 주요 소재는 ‘바닷물’이다. 배는 바다 위를 떠다니기 때문에 연구가 성공한다면 미래의 선박은 주변으로부터 무제한에 가까운 연료 공급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닷물로 움직이는 추진기관의 원리는 이렇다. 우선 바닷물 속에서 높은 순도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한 뒤 여기서 불포화 탄화수소인 올레핀(Olefin)을 합성해 낸다. 이 올레핀을 다시 탄화수소 분자가 포함된 액체, 즉 액화 탄화수소(Liquid Hydrocarbon)으로 만들어 이를 연료로 쓰는 것이다. 이렇게 생산된 연료는 실제로 내연기관에서 사용이 가능하며, 미 해군 연구소는 이 연료를 이용, 모형 항공기를 비행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액화탄화수소 연료 시대의 실현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 연료는 가스터빈 등 기존의 동력 장치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엔진 등을 개발할 필요가 없고, 기존 군함들도 대대적인 개조 공사 없이 해수 변환 장치와 연료탱크만 설치하면 된다는 장점이 있다. 즉, 이 연료가 실용화되면 앞으로 군함은 식량과 탄약, 식수만 제공된다면 연료 보급 없이 사실상 무제한 바다 위에 떠 있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도 있다. 미 해군 연구소가 만들어낸 액화 탄화수소는 실험실에서 소량이 제조된 것이다. 현재까지 제작된 변환장치가 아직까지는 초보적인 단계이기 때문에 반응 효율을 높여 군함의 연료로 쓰일 수 있을 만큼의 많은 양의 액화탄화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장치 개발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미 해군 연구소 측은 이러한 장치 개발과 상용화까지 10~15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 해군 연구소의 연구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30년경에는 해수연료변환장치를 장착하고 바다로부터 연료를 공급받는 군함이 바다를 누비는 시대가 오게 될 것이다. 쥘 베른이 공상과학소설을 통해 선보였던 기술이 160여 년 만에 현실화되는 셈이다.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最古 시조집 ‘청구영언’ 원본 찾았다

    最古 시조집 ‘청구영언’ 원본 찾았다

    소장 개인 미공개로 연구 못하다 한글박물관 구입·전시 뒷북 확인 조선후기 가객 김천택이 1728년 편찬한 우리나라 최고(最古) 시조집인 ‘청구영언’ 원본이 국립한글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국립한글박물관 관계자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글박물관 추진 태스크포스(TF)가 2013년 9월 개인에게서 청구영언을 구입해 2014년 10월 박물관 개관 이후 상설전시실에서 중요 자료로 전시해 왔다”며 “구매 전 외부 심사위원 6명의 세 차례 평가회의에서 원본임을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보통 보물급 책들은 최소 7000만원에서 최대 2억원 사이에 거래되는데, 박물관도 이 사이 금액대에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구영언은 윤선도, 정철 등 개인 문집에 수록돼 있거나 구비 전승되던 시조 580수를 모아 주제별·인물별로 펴낸 책으로, 해동가요, 가곡원류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시조집으로 꼽힌다. 조선 건국 전 정몽주와 이방원이 읊었다는 ‘단심가’와 ‘하여가’가 한글로 처음 기록돼 있는 서적이기도 하다. 김천택이 청구영언을 편찬한 이후 19세기 말까지 170여종의 시조집이 간행됐는데 모두 다 ‘청구영언’을 저본으로 삼았으며, 내용이 전혀 다른데도 같은 제목을 단 책도 있다. 청구영언은 1948년 조선진서간행회(朝鮮珍書刊行會)가 활자본으로 출간한 바 있으며, 학계에선 동명의 다른 책과 구분하기 위해 조선진서간행회의 ‘진’(珍) 자를 따서 ‘청구영언 진본(珍本)’이라고 불렀다. 박준호 한글박물관 자료관리팀 학예연구사는 “박물관 전시 전까지 청구영언이 일반에 공개된 적이 없다. 청구영언 존재는 일제강점기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그동안 소장자가 공개를 하지 않았다. 연구자들도 원본을 보지 못해 제대로 된 연구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물관 측은 전시 2년이 다 되도록 청구영언의 입수 경위 및 가치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과 관련해선 “올 연말에 영인본 발간, 학술대회 등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김욱동 창문을 열며] 민중의 소리는 신의 소리

    [김욱동 창문을 열며] 민중의 소리는 신의 소리

    예로부터 서양에서는 ‘민중의 목소리는 곧 신의 목소리’(vox populi vox dei)라는 격언이 유행했다. 이 격언은 12세기 영국의 역사가 맘스베리의 윌리엄이 처음으로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8세기 영국의 수도승이요 학자인 앨퀸이 샤를마뉴 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 엿볼 수 있다. 앨퀸은 라틴어로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민중의 목소리가 곧 신의 목소리라고 계속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 절대로 귀를 기울여서는 아니 됩니다. 군중의 무질서한 행동은 언제나 광기에 아주 가깝기 때문입니다.” 앨퀸이 이렇게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민중의 목소리가 신의 목소리로 자리잡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렇게 앨퀸과 윌리엄이 사용한 뒤 이 격언은 서양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가령 14세기 초엽 영국의 민중이 에드워드 2세를 권좌에서 몰아내고 그의 아들 에드워드 3세를 왕으로 옹립했을 때 캔터베리 주교인 사이먼 메펌은 ‘민중의 목소리는 곧 신의 목소리’라고 말했다. 또 19세기 초엽 프랑스 귀족원 회의에서는 신문과 잡지 같은 출판물을 검열하는 제도를 제정했고, 이 제도를 계속 연장하려고 했다. 그러자 이 무렵 유명한 외교관이요 정치가였던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가 이 검열 제도의 연장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출판의 자유가 시대적 요청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 뒤 정치가들이 그런 시대적 요청에 불응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볼테르보다도, 보나파르트보다도, 집정관인 누구보다도 재기 있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격언이 서양에서만 유행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좁은 생각이다. 동양에서도 널리 사용돼 왔기 때문이다. 선거철만 되면 귀가 따갑도록 듣게 되는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서양 격언의 ‘목소리’라는 말을 ‘마음’이라는 말로 살짝 바꿔 놓은 것이 다를 뿐 내용에서도 조금도 다르지 않다. 아전인수 격으로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이 격언을 끌어다 사용하기 일쑤다. 맹자는 일찍이 “순천자존 역천자망(順天者存 逆天者亡)”, 즉 하늘에 순종하는 사람은 살고 거역하는 사람은 망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최근 교육과학기술부 정책기획관이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신분제를 정했으면 좋겠다”고 언급해 큰 파문이 일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나서 국회에서 사과하고 본인은 파면됐지만 ‘민중’의 분노는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막말을 한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공무원 정책실명제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신분제 얘기를 꺼낸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들은 발언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여러 차례 해명할 기회를 줬지만 기획관은 처음의 발언을 거두지 않았다고 한다. 고위 공무원단 2~3급에 해당하는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누리과정, 대학 구조개혁 같은 교육부의 굵직한 정책을 기획하고 다른 부처와 정책을 조율하는 아주 중요한 보직이다. 그런 보직에 있는 고위 공무원의 입에서 민중이 개·돼지와 같다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 여간 놀랍지 않다. 비록 술에 취해서 한 말이라고 해도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취중진담이라고 평소에 이런 소신을 갖고 있지 않고서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영화에 나오는 대사에서 인용한 것이라는 변명도 여간 궁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국민을 개나 돼지로 생각하는 공무원에게 국가의 교육 정책을 맡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지금 우리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국경이 허물어진 치열한 글로벌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인 교육 정책이 절실하다. 그런데 그 교육정책관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민중의 목소리는 곧 신의 목소리’라는 격언을 다시 한 번 곰곰이 되씹어 볼 때다.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사회적 갈등 해결하기(쿠르트 레빈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 펴냄) 사회심리학의 창설자로 평가받는 저자가 집단 역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전하는 짧은 에세이들이 담겨 있다.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지배하는 가치 체계는 집단생활 안에서 권력의 다른 측면들과 서로 역동적으로 연결돼 있어 집단 문화에 일어나는 진정한 변화는 그 집단 내 권력 배열의 변화가 관계 있다는 게 레빈의 생각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소수 집단의 심리사회적 문제들부터 대면 집단들 내의 갈등, 산업 현장의 만성적 갈등에 대한 해결책, 인간의 행동과 지식 그리고 새로운 가치를 어떻게 수용하는지 등을 상세히 다룬다. 268쪽. 1만 5000원. 세계 복식의 역사(멀리사 리벤턴 외 지음, 이유정 옮김, 다빈치 펴냄) 시간과 장소, 역사와 문화가 켜켜이 쌓이고 얽혀 만들어진 옷을 통해 문물의 지리적 이동과 권력의 흐름, 사회 구조의 변화 등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의복과 장식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복식서이자 우리 몸에 걸쳐 왔던 모든 것을 매개로 인류가 지금껏 살아온 세계를 여행하는 여행서, 인문서이기도 하다. 특정 시대나 국가에 한정되지 않고 고대에서 19세기까지 전 세계 복식사의 흐름을 한눈에 살필 수 있도록 구성했다. 900여개의 일러스트를 기반으로 고대 왕국의 유적과 중세 성당 조각, 복식 서적과 정기 간행물, 현대의 역사서와 논문 등 방대한 자료에 꼼꼼히 주석을 달아 정리했다. 368쪽. 3만 8000원. 백 사람의 십년(펑지차이 지음, 박현숙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1966년 중국에 불어닥친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을 현장에서 겪은 보통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자본가 집안으로 낙인찍혀 가족과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가 홀로 살아남은 아동병원 의사는 ‘문혁 항거죄’로 감옥살이를 한다. 자살을 통해 문혁에 저항했다는 것이다. 수천만 명에 달한 어린 홍위병들은 가해자였지만 결과적으로는 피해자이기도 하다. 오늘날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끄는 공산당 간부 중에도 홍위병 출신이 많다. 문혁 때 박해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문혁을 파시스트 폭력과 함께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꼽았다. 401쪽. 1만 7000원. 청나라를 일으킨 몽골 여인 효장(멍자오신 지음, 노만수 옮김, 앨피 펴냄) 남편과 아들에 이어 손자까지 황위에 올린 몽골 여인 부무부타이 효장태후의 인생 역정을 그린 평전이다. 276년 청나라 역사의 처음과 끝에는 두 명의 여인이 있다. 서태후가 청을 멸망으로 이끈 ‘망국’ 태후라면 효장은 청나라의 개창과 융성에 기여한 ‘흥국’ 태후로 추앙받는다. 명·청 시대 전문 연구자이자 저술가인 저자는 흥미 위주의 야사가 아닌 청나라 초기 역사에 대한 방대한 1차 사료와 기존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이를 통해 효장태후가 중국사에서 그 어떤 여인보다 훌륭한 여성 정치가이자 성공적인 인생을 산 여인으로 평가한다. 386쪽. 1만 8000원. 살아남은 자들의 용기(베어 그릴스 지음, 하윤나 옮김, 처음북스 펴냄) ‘인간과 자연의 대결’ 진행자로 세계 최고의 생존 전문가인 베어 그릴스가 들려주는 생존을 위한 이야기다. 친구의 살을 먹으며 생존한 파라도, 바위에 낀 자신의 팔을 스스로 절단한 랠스 등 저자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진짜 영웅 이야기 25편을 이 책에 담았다. 저자는 이런 생존의 욕망은 삶에 대한 위대한 용기이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본성이 투영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내면의 불꽃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강조한다. 생존 지식을 얻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저자가 말한 대로 생존을 향한 인간의 위대한 열정을 흥미롭게 엿볼 수 있다. 376쪽. 1만 5000원.
  •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투명 망토·웨어러블 로봇… 군복의 진화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투명 망토·웨어러블 로봇… 군복의 진화

    군복은 인류 역사에서 인종·국가를 막론한 집단 전투·싸움의 역사와 궤를 함께하며 발전해 왔다. 특히 전투복은 단순히 군인의 신분을 드러내는 유니폼 성격이 아닌, 적에게 최대한 적게 노출되는 동시에 전투력을 향상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 도구로 인식된다. 시기와 장소, 지형과 기후에 따라 군복은 다른 모습으로 변화했다. 이 때문에 군복은 인류의 오랜 전쟁과 군대의 역사를 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군복 역시 진화했고, 이제 단순한 ‘군복이 아닌 과학’을 입고 전투에 나서는 시대가 도래했다. 때로는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때로는 평화를 위해 투입되는 세계 각국의 군대가 활동하는 한 ‘영원히’ 진화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군복의 과거와 현재,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알렉산더 보병’은 청동 갑옷… 19세기엔 위장복 군인이라면 전투 시 군복을 입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위에 언급했듯 군복은 지형과 기후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해 왔다. 예컨대 기원전 2500년 수메르의 병사들은 사막 지형을 걸어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거추장스러운 군복은 입을 필요가 없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근접 전투에 필요한 칼과 방패가 전부였으며, 거추장스러운 의복은 벗어던지는 것이 승전율을 높이는 데 훨씬 도움이 됐다. 그런가 하면 기원전 300년 알렉산더 대왕의 보병은 화려한 깃털이 달린 투구를 쓰고 번쩍이는 청동보호구로 가슴을 보호하는 군복을 입었다. 이렇게 화려한 군복은 수많은 장병이 합세한 대규모 전투 속에서 적군과 아군을 명확하게 식별하는 동시에 군대와 군인의 용맹스러움을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됐다. 현재와 같은 위장술이 등장한 것은 1800년대 중반이다. 1400년대부터 화려한 군복을 고집해 오던 영국군은 흰색 군복이 적 저격병의 쉬운 표적이 되자 고육지책으로 흰 군복에 흙먼지를 마구 묻혀 위장했다. 이것이 현재 ‘군복 색깔’로 대변되는 카키색의 시작이다. 카키색은 탁한 황갈색을 뜻하며, 페르시아어로 흙먼지의 뜻인 ‘카크’(khak)에서 파생된 힌디어 ‘카키’(khaki)에서 유래했다. 위장의 시작과 함께 군복은 ‘실용노선’을 걷게 된다. 특히 창과 쇠몽둥이로 근접 전투를 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근대에 들어서는 총이나 화약 등 휴대 무기를 통한 원거리 전투가 가능해지면서 적과 아군을 혼동할 위험이 줄어든 데다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분위기가 짙어지면서 기능성이 강화된 현대의 군복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대의 군복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소재에서도 다양한 변화를 꾀했다. 미국 플로리다의 한 연구소는 미 육군의 의뢰를 받아 무거운 방탄조끼를 걸치지 않아도 신체를 보호할 수 있는 거미줄 소재의 방탄복 개발에 성공했다. 일명 ‘드래건 실크’라 불리는 이것은 인장 강도가 높고 탄성이 매우 좋으며 현재까지 알려진 직물 중 가장 강한 직물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이용하면 군용 속옷과 장갑 및 방탄 기능을 갖춘 군복 생산이 가능하다. 미래 군복의 ‘끝판왕’ 중 하나는 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슈트일 가능성이 높다. 영화 속 주인공인 토니 스타크가 개발한 이것은 인체에 착용해 근력을 강화하는 일종의 웨어러블 로봇이다. 로봇으로 분류되긴 하나 아이언맨 슈트는 총알과 폭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군인의 생명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전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군복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지 않다. ●美, 팔·다리·몸통 입는 로봇으로 하루 7t 운반 미국은 지금까지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군복, 즉 웨어러블 로봇 개발을 위해 2001년부터 5년간 연구비 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 결과 현지의 한 군수업체는 무려 15년 전인 2001년 군인의 팔과 다리, 몸통을 감싸는 외골격 형태의 웨어러블 로봇 개발에 성공했고, 2010년에는 하루 평균 7000㎏에 달하는 군수품을 운반할 수 있는 로봇이 실전 투입 준비를 모두 마쳤다. ●일본 로봇 구라타스는 인간 탑승·원격 조종 가능 실제 아이언맨 슈트와 가장 유사한 웨어러블 로봇은 일본이 개발한 ‘구라타스’다. 세계 최초의 인간 탑승형 거대 로봇인 구라타스는 내부 좌석에 인간 조종사가 앉도록 고안돼 있으며, 스마트 기기로 연결해 사용자가 외부에서 원격으로 조종할 수도 있다. 미래의 군인이 작은 총탄은 거뜬히 막아낼 뿐만 아니라 거대하고 단단하며 똑똑하기까지한 강철 군복을 입는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英은 입으면 안 보이는 군복 5년 뒤 실전 활용 영국 육군은 영화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투명 망토와 유사한 위장재의 야전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이 위장재를 이용한 군복을 입으면 군인이 시야에서 사라지거나 적외선·열추적 장비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도 있다. 오징어나 문어 등 바다생물이 포식자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몸체 색을 바꾸는 모습에서 착안한 이 기술은, 주변 색상을 탐지한 뒤 수천 개의 감광전지 및 감열성 색소를 이용해 물질의 표면을 주변색과 같게 바꾸는 원리다. 올해 초 테스트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은 일명 ‘스텔스 군복’은 향후 5년 동안 추가 연구를 통해 실전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평화 유지와 자국의 안보를 위해 존재하는 군대에서 군인은 그 어떤 무기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강력한 전력(戰力)이다. 또 군인에게 군복, 특히 전투복은 생명과도 직결된 무기의 일종이다. 미래에는 더 많은 군인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군복 개발의 연구와 투자가 강한 군대의 비결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huimin0217@seoul.co.kr
  • “신흥종교는 모두 사이비 취급… 일제 문화정책 탓”

    “신흥종교는 모두 사이비 취급… 일제 문화정책 탓”

    “한국 신종교에는 종교뿐 아니라 한국의 사상, 문화가 담겼습니다. 한국 신종교를 알고 연구하려는 이들이 늘어나야 합니다.” 이 땅에서 생겨나고 뿌리내린 한국 신종교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한국신종교대사전’(모시는 사람들)을 펴낸 김홍철(78) 원광대 명예교수. 김 교수는 지난 20일 서울 중구 음식점에서 1240쪽짜리 방대한 사전을 들고 기자들과 만나 “한국 신종교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많이 녹아 있다”며 신종교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확산을 거듭 강조했다. ‘한국신종교사전’은 원광대 교학과를 졸업한 김 교수가 평생 천착했던 한국 신종교를 집대성한 역저다. 교단, 교주 및 주요 인물·개념·사건·도서 등을 상세히 해설하고 신종교사 연표를 부록으로 붙인 한국 최초의 신종교사전이다. 전체 항목이 2300여개에 이르고 해설 교단 수가 500개, 미집필 교단으로서 교단명과 창립자만 밝힌 교단이 200개, 교단 이름 변경 사용으로 해설 없이 표시한 교단이 200개에 달한다. 인명만도 570명, 사진 280장이 수록됐으며 전체 분량이 200자 원고지 1만 5000매에 이른다. “한국의 신종교는 최대 900개까지 있었던 것으로 파악돼요. 그 많던 신종교 중 지금 남은 건 고작 70~80개 정도에 불과합니다. 신종교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면 한국의 사상과 문화, 사회 변천사를 알 수 있지요.” 종교의 흥망성쇠는 대개 5개 정도의 요인에 좌우된다고 한다. 인물·제도·교육의 정비와 시대 흐름 포착과 적응, 외부 영향이 그것이다. 한국의 신종교 역시 숱한 우여곡절과 파란을 겪어 왔다고 김 교수는 강조한다. “한국 신종교는 1860년 수운 최제우의 동학 창도를 기점으로 150년 역사를 헤아립니다. 수운계, 증산계, 단군계, 불교계, 유교계, 선도계, 기독교계, 무속계 등 13류로 분류되지만 중심 사상은 후천개벽(後天開闢)과 원융회통(圓融會通), 민족주체, 인간중심, 사회개혁으로 압축됩니다.” 구한말 많은 종교가 융성했던 이유는 뭘까. “18~19세기는 전 세계적으로 신종교가 많이 생겨났던 시기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인디언이 퇴박당하면서 수백개의 종교가 생겨났지요. 우리의 경우 외세가 밀려들면서 전통문화가 무너진 데 대한 반성이 일었고 그 흐름을 사상적으로 결집한 게 신종교라고 봅니다.” 한국의 신종교는 근대 개화기를 전후해 150년간 이 땅에서 있었던 민중의 애환과 전통문화의 계승, 외국 문물의 수용 자세를 모두 담고 있는 한국 정신문화의 보고인 셈이다. 그렇게 중요한 신종교사전이 이제 처음 나온 이유는 뭘까. “일제의 영향이 그대로 이어진 탓입니다. 조선총독부는 한국에서 생겨난 모든 종교를 사교, 사이비 취급했지요. 해방 이후 기독교 편향 지도층이 집권하면서 일제시대의 종교관이 그대로 이어지다가 1980년대 중반 들어서야 학자들이 한국 신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요.” 지금 신흥종교에 쏠리는 좋지 않은 인식도 따져 보면 일제의 문화정책 탓이다. 한국 신종교 실태조사보고서는 앞서 4차례에 걸쳐 나온 바 있다. 조선총독부의 ‘조선의 유사종교’(1936년)와 ‘한국신흥 및 유사종교 실태조사보고서’(1970년 장병길 외 공저),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1985년 한국종교학회 윤이흠 외 공저), 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의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1997년)가 그것으로 모두 실태조사일 뿐 사전 출간은 처음이다. 그것도 원광대 실태조사보고서 이후 20년 만의 일이다. 1980년대 초반 10여종의 신종교사전이 출간됐던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의 신종교 연구는 불모지대나 다름없다. 지금 한국에선 도덕재무장이나 힐링·건강에 치우친 신종교가 적지 않게 궐기하고 있다는 김 교수. 원광대 교학대학원장과 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장, 한국종교학회장을 지낸 그는 이 땅의 모든 종교는 한국 신종교의 부침을 돌아볼 때 큰 교훈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종교가 민중들에게 삶의 지혜와 보람을 주지 못하면 도태하기 마련입니다. 지금도 많은 종교가 세상 사람들에게 답을 주지 못한 채 자기 갈등과 이익에 휘둘리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12주년] 다시! 힘내요 파워! 코리아

    ■산업계 “글로벌 1등만이 생존한다”… 미래 성장동력 찾기 총력 “우리는 지금까지의 삶과 일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술 혁명의 직전에 와 있다. 변화의 범위와 복잡성은 과거 인류가 경험했던 것과 전혀 다른 수준이 될 것이다.” 올해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다보스포럼)에서 클라우드 슈밥 포럼 회장은 ‘제4차 산업혁명’을 포럼의 주제로 정했다. ▲증기기관 발명의 여파로 기계가 도입된 18세기의 1차 산업혁명 ▲대량생산과 국제 분업이 가능해진 19세기의 2차 산업혁명 ▲디지털 계산능력 향상으로 정교한 자동화가 가능해진 20세기의 3차 산업혁명에 이어 ▲연결성이 극대화돼 과거 산업구조가 빠르게 재편되고 공유경제와 같은 새로운 산업 모델이 창출되는 4차 산업혁명이 구현되기 시작한 단계에 들어섰다. 다보스포럼에서는 또 ‘미래고용보고서’를 통해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앞으로 5년 동안 선진국과 신흥시장 15개국에서 일자리 710만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간의 일자리가 인공지능(AI)과 같은 기계로 대체된다는 내용과 함께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 같은 변화가 비교적 짧은 향후 5년 안에 이뤄질 것이란 점이다. 결국 일자리 제공자인 기업, 특히 국내 산업의 주류를 이루는 제조기업 역시 당장 빠른 재편의 기로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한국 기업들은 어느 때보다 더 큰 위기의식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선점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기업 총수들의 메시지에서도 이런 노력이 읽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글로벌 1등 사업만 남긴다’는 취지로 그룹의 사업을 재편 중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시무식에서 밝힌 올해 경영 방침은 ‘산업 혁신을 선도할 미래경쟁력 확보’와 ‘질적 성장 추구’로 압축됐다. 최태원 SK 회장은 최근 “지금의 경영 환경에서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서든데스될 수 있다”면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면 미래를 위해 사업·조직·문화 등 기존의 틀을 모두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본무 LG 회장은 “변화의 시기는 기회이기도 하니 사업에 대한 영향을 중장기적으로 보라”고 제시했다. 기업들의 전략도 과거와 달라졌다.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 1위를 정조준했고, 기존에 존재하던 산업 분야를 넘어 미래 신산업 분야에 대한 모험적 도전에 나섰다. 글로벌 기업과의 제휴를 강화하거나 사회 공헌에 적극 나서며 사회와의 공동 성장을 추구하는 노력도 강화됐다. 기업마다 ‘실패하더라도 시도해 보자’는 자신감이 확산되고 있다. 지금 노력의 방향과 정도에 따라 몇 년 뒤 다보스포럼에서 ‘변혁기 한국 기업의 성공 사례’가 발표될 수도 있겠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금융계 “저금리 위기를 넘어라”… 모바일·해외 새시장 연다 저금리와 저성장으로 대표되는 뉴노멀 시대에 살고 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연 1.25%까지 내려오면서 시중은행을 돌며 발품을 팔아 봐야 연간 1%대 후반 정기예금 이자는 찾기조차 힘들다. 낮아진 건 금리만이 아니다. 한은은 지난 4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8%로 낮췄는데 또다시 2.6%로 내릴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문제는 이런 저금리와 저성장의 그늘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생산과 소비, 투자가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수출의 발목을 잡는 중국 성장세 둔화가 쉽사리 변하기 어려워 보여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라는 예상치 못했던 돌발 변수까지 터졌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내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올해보다 더 낮아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낮은 성장률, 높은 실업률, 저출산, 고령화 등 한국 사회를 뒤덮은 악재만 보면 암울하기 그지없다. ‘돈 굴릴 곳이 없다’는 아우성은 일반 가정은 물론 금융권에까지 공통적인 현상이다. 역대 최저점에 머무른 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에 은행의 주 수익원인 순이자마진(NIM)은 연일 뒷걸음질 중이다. 올 1분기 4대 은행의 순이자마진은 전 분기 대비 0.05∼0.09% 포인트 떨어졌다. 금융권은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인력 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모바일을 중심으로 한 신사업 추진 등을 통해 저금리 시대의 생존법을 찾고 있다. 우리은행은 올해 해외 지점을 25개 늘릴 예정이다. 신한은행도 올해 13개 지점 확충을 목표로 5개 지점을 이미 개설했다. 하나금융은 11곳의 해외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농협금융 역시 농업금융의 노하우를 들고 중국 진출을 모색 중이다. 이 밖에도 은행들은 점포 개혁, 인력구조 개선, 수익성 확대, 모바일은행 구축 등을 통한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보험업계는 보장성 보험 판매와 해외 진출 등을 통해 초저금리 충격을 최대한 막아 보겠다는 전략이다. 저축성 상품보다는 보장성 보험 판매를 촉진하는 한편 동남아 등 해외 시장으로 적극 진출해 자산 운용을 다변화하고 있다. 카드업계는 오히려 위기 속에서 길을 찾겠다는 복안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내수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만큼 변한 현실 속에서 이익이 될 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업종 간 경계를 넘어 전략적 동맹을 구축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위기 속 탈출구를 찾는 금융권의 노력을 짚어 봤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일본의 위험한 야망

    일본의 위험한 야망

    전쟁국가의 부활/고모리 요이치외 4인 지음/김경원 옮김/책담/324쪽/1만 6000원 천황 그리고 국민과 신민 사이/박삼헌 지음/알에이치코리아/320쪽/1만 8000원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 개정을 묻겠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 10일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직후 던진 말이다. 집권 자민당 등 이른바 ‘개헌파 4당’은 중의원에 이어 참의원에서도 3분의2 이상의 의석수를 차지한 만큼 개헌 발의 정족수를 확보했다.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전환시켜 ‘전쟁 가능한 나라’를 만들려는 아베 신조와 그 지지 세력의 ‘위험한 야망’이 현실에 한층 더 가까워진 셈이다. 일본 우익 세력이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개헌 몰이의 실상과 그 연원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 나란히 출간돼 눈길을 끈다. 일본의 진보 지식인 5명이 함께 쓴 ‘전쟁국가의 부활’과 건국대 박삼헌 교수가 19세기 중후반 일본을 탐색한 ‘천황 그리고 국민과 신민 사이’가 그것이다. ‘전쟁국가의 부활’이 아베 총리와 지지 세력의 헌법 개정 의도며 배경을 샅샅이 파헤쳤다면 ‘천황…’는 일본 국가 정체성의 뿌리를 추적해 알기 쉽게 전달하는 흐름이 흥미롭다. 지금 일본 개헌 몰이의 핵심은 1945년 태평양전쟁 패전 후 연합국 최고사령부(GHQ)에 의해 구축된 ‘전쟁과 군사 보유를 포기한다’는 일본 헌법 제9조(평화헌법)의 내용을 없애는 것이다. 여기에는 ‘군사 보유야말로 국가 고유의 주권이자 보통국가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조건’이라는 인식이 내재되어 있다. ‘전쟁국가의 부활’은 이 대목을 조목조목 짚어 그 야합의 모순과 폭력성을 생생하게 지적한다. 평화헌법 수호를 위한 이른바 ‘2015 안보 투쟁’에 앞장섰던 고모리 요이치 도쿄대 대학원 교수를 비롯한 대학교수 5명이 압축해 정리한 아베와 지지 세력의 역사인식은 명쾌하게 정리된다. 한마디로 “대일본제국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그 인식에 따라 1954년 창설된 자위대의 해외 파견 형태 변화를 샅샅이 추적했다. 미·일 군사동맹 체제 아래 진행돼 온 평화헌법 조항의 점진적 침식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법적인 테두리에서 보자면 일본은 ‘군대 없는 나라’이다. 하지만 실상은 2000년대 이후 군사비 지출 순위에서 세계 6위권을 수호해 온 ‘군사강국’이다. 우익은 줄곧 “미국 도움 없이 일본 안전을 지킬 수 없다”고 되뇌면서 ‘군사 소국’임을 자평하지만 미국과의 공동작전까지 감안해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키워 왔다. 그 군사대국화 흐름을 주도하는 데 일본 재계가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일본 재계를 대표한다는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총회가 작성한 ‘일본의 기본 문제를 생각한다’를 포함한 문서들은 그 단적인 증거이다. 이 문서들은 헌법의 평화조항(9조2항)을 개정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미국에 대한 지원 활동을 강화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게이단렌의 핵심 위원회 중 하나인 방위생산위원회가 자본의 논리에 따라 군사산업의 발전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추천의 글을 통해 이렇게 경고한다. “일본의 개헌은 전쟁할 수 있는 체제를 완성시킬 것이다. 일본의 전쟁은 미국이 참전했을 때 일본군이 동원되는 형태로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러면 지금 일본의 군사대국을 포함한 우경화의 연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천황…’는 바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근거로 다가온다. 박 교수는 메이지유신으로 막부를 폐지하고 근대적 의미의 국가를 탄생시킨 19세기 중후반 일본을 샅샅이 살폈다. 책은 무엇보다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50년 넘게 이어진 일본제국 체제에서 일본인은 일왕의 신하인 신민(臣民)으로 규정됐음에 주목한다. 실제로 1889년 제정된 메이지 헌법의 시작은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万世一系)의 천황이 통치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일본에서 부라쿠민(部落民)이라 불리며 차별받았던 불가촉천민 에타(穢多)와 히닌(非人)이 1871년 천칭폐지령으로 평민이 된 과정에 주목한다. 이들의 차별 폐지는 천부인권의 존중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국과 교류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방치하는 것을 국가적 모욕이자 왕정의 큰 결함으로 봤다는 것이다. 저자는 러일전쟁 전후 일왕과 신민은 혈연의 연결고리로 더욱 강하게 묶였다고 주장한다. 바로 ‘입헌적 족부통치국’이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그 개념에 따라 일왕은 일본 민족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다. 일본 지도부는 잇따라 일으킨 청일전쟁과 대만 침공을 통해 일본인에게 애국심과 봉사·희생정신을 심어 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지금 일본 우경화의 핵심 세력이 갖고 있는 국가관은 바로 그 정신의 계승이라 봐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자료 없는 국립한국문학관은 껍데기… 희귀본 수집부터 나서야”

    근대 자료 적어… 예산 부족도 걸림돌 서울역사 등 기존 시설 활용 제안도 “국립한국문학관은 지역경제 부흥을 위한 ‘노다지의 장소’가 아니라 ‘문학 매개의 장소’로 귀중한 문학 자료 확보가 가장 중요합니다. 건물만 있고 콘텐츠는 부실한 국립한국문학관이라는 상황에 직면하지 않으려면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제1회 한국문학미래포럼에서 오창은 중앙대 교양학부대 교수가 이렇게 제안했다. 도종환 의원실과 한국문학진흥 및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공동준비위원회(이하 문학진흥공준위)의 공동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는 문학진흥법 운용과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에 대해 문학계가 의견을 나눈 첫 공개 포럼이었다. 문학진흥공준위는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시인협회, 한국작가회의 등 5개 문인 단체가 문학진흥법 운용 및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에 대해 문학계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지난 5월 결성한 단체다. 발제자로 나선 오창은 교수는 “최근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부지 선정을 놓고 24곳의 지방자치단체가 경쟁하고 소란을 벌인 것은 깊이 성찰해야 할 문제”라며 “부지는 부차적인 문제로, 문학관을 채울 근대문학자료 유산을 확보하고 그 콘텐츠를 고려해 건설 계획을 세워야 맞았다”고 지적했다. 이는 근대문학 자료가 희귀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국내 근대문학 자료 소장 실태 조사’에 따르면 근대 문학 자료 가운데 유산 가치가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된 이광수의 ‘무정’(1918)만 해도 국내에 단 한 권만 존재한다. 현재 한국현대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표지가 없는 상태다. 두 번째로 유산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 채만식의 ‘탁류’(1939)도 개인 소장자가 지닌 것이 유일하다. 가격도 걸림돌이다.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으로 정부가 책정한 예산은 450억원이다. 오 교수는 지난해 12월 ‘진달래꽃’ 초판본이 1억 3500만원에 낙찰된 것, 이광수의 ‘무정’ 재판본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6000만원에 구입한 것 등을 감안하면 예산을 모두 투입해도 살 수 있는 문학 자료는 900여종이라고 추산했다. 1894~1960년 나온 5193종 8만 7810권의 자료 가운데 5%만 소장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에 따라 오 교수는 자료 예산 확보를 위한 예산 편성 우선, 근대문학유산 자료수집위원회 구성 등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박덕규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현재 자문 역할에 머물고 있는 문학진흥정책위원회를 상설기구로 격상해 한국문학관 운영 전반에 대한 정책 제시 등 문학진흥정책을 주도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시인인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상무는 문학관 부지와 관련해 기존 시설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곽 상무는 “역사(驛舍)를 개축해 19세기 미술의 중심이 된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처럼 근대 문학의 무대인 옛 서울역사를 문학관으로 바꾸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해외 유출 ‘지장시왕도’ 獨경매서 환수

    해외 유출 ‘지장시왕도’ 獨경매서 환수

    해외로 유출됐던 19세기 중반의 불화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 한 점이 국내로 돌아왔다. 대한불교조계종과 문화재청은 불암산 석천암 지장시왕도를 지난달 독일 경매에서 낙찰받아 환수했다고 14일 밝혔다. 이 불화는 올해 5월 독일 경매 출품 사실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확인해 조계종에 알려왔다. 조계종은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도움을 받아 경매에 참여했다. 이달 6일 인천공항을 통해 들여온 지장시왕도는 불교중앙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지장시왕도는 지옥에 온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地藏菩薩)과 죄업을 심판하는 시왕(十王)을 함께 그린 불화다. 이번에 환수된 지장시왕도는 비단에 그려졌으며 가로 154.8㎝, 세로 148㎝ 크기다. 그림 아래 기록을 보면 봉안처가 ‘양주 천보산 석천암’(揚州天寶山石泉庵)으로 기록됐다. 현재 조계종 봉선사의 말사인 경기 남양주 불암산의 석천암이다. 이 불화가 언제, 어떤 경로로 반출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독일인 소장자가 40년 이상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 점으로 미뤄 1970년대 이전 반출된 것으로 조계종은 보고 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열린세상] 워싱턴 싱크탱크 활용법/강태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주미 특임파견관

    [열린세상] 워싱턴 싱크탱크 활용법/강태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주미 특임파견관

    워싱턴에서 싱크탱크는 ‘제5권력’으로 통한다. 입법·사법·행정·언론에 버금가는 권위다. 브루킹스연구소, 헤리티지재단,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국제전략연구소(CSIS), 외교안보협의회(CFR). 간판급 ‘빅5’ 싱크탱크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올해 설립 100주년이다. 건물 전면에 현수막을 세 장 내걸었다. 수월성(Quality), 독립성(Independence), 영향력(Impact). 비단 브루킹스뿐이겠나. 모든 싱크탱크가 추구하는 비전일 거다. 세 개 비전 가운데 굳이 하나 고르라면 방점은 ‘영향력’에 꽂힌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공염불이다. 영향력이 없다면 말이다. 독립성 외쳐 봐야 공허하다. 당국과 시장이 외면하면 말짱 도루묵인 거다. 고객이 발길을 돌린다. 정책으로 밀어붙이는 힘이 있느냐가 관건이다. 싱크탱크가 학계와 차별화되는 경계선이다. 싱크탱크 존재가 새삼 돋보인 해프닝 한 토막. 브루킹스 보고서가 금융소비자 보호 규제를 비판했다. 그러자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이 문제 삼고 나섰다. 금융업계로부터 로비를 받았다는 거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 러닝메이트 물망에 오르는 거물이다. 영향력이 미미했다면 견제도 없다. 워싱턴은 ‘답’을 찾는 사람들로 붐빈다. 외국 정부 관료, 학자, 업계 관계자, 주요국 싱크탱크 연구원들이다. 미국 정치, 국방, 외교, 무역통상, 금융 관련 숙제 해결에 골머리를 앓는다. 미 당국자와의 직접 소통은 필수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미국 내 여론이 자국 입장과 거꾸로 가면 일이 더 꼬인다. 미 의회 설득은 넘어야 할 또 다른 산이다. 외국 정부 홀로 헤치고 나가기 만만치 않다. 워싱턴 싱크탱크가 각광받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명성·전문성·네트워크는 기본이다. 미 의회, 재무부, 연방준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고위직을 싱크탱크가 모시는 이유다. 브루킹스연구소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도널드 콘 부의장을 영입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올리비에르 블랑샤드 국제통화기금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초빙했다. 미국 판 전관예우다. 싱크탱크 활용법은 뭘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들여다보자.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비공개 세미나가 한 예다. 국제경제금융 분야 세계 최고 싱크탱크다. 모처럼 한국 경제를 다뤘다. 초반부터 분위기가 사뭇 공세적이다.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 근거라며 미 정부 관료가 자료를 들이댄다. 경상수지 흑자국인 한국이 재정지출에 소극적인 이유도 따지고 든다. 다른 참석자들의 반론이 이어진다. 외환시장 변동성이 급등하면 정책 대응은 당연한 것 아니냐. 통일 대비, 고령화 사회 진입에 따른 복지수요 증가 등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재정 확대가 능사는 아니다. 미 정부 관료가 받아 적는다. 공감했다면 절반은 성공이다. 미국 정부 속내를 엿볼 수 있는 창(窓) 역시 싱크탱크다. 미 재무부는 우리나라 환율정책에 부쩍 민감해졌다. 제이컵 루 재무장관이 한은 총재를 찾아갈 정도다. 미 재무장관 방문은 한은 설립 이래 처음이다. 무슨 절박한 사정이 있는 걸까. 싱크탱크에 몸담고 있는 전직 고위 관료가 친정을 위해 총대를 멘다. “우리 재무부를 상대할 때 염두에 둘 게 있다. 의회가 재무부를 매섭게 다그치고 있다. 왜 상대국을 더 강하게 압박하지 않느냐는 거다. 그대로 두면 미국에 불이익인 줄 뻔히 알면서.” 미 대선 주자들과 의회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불만이다. 불편한 심기의 분출구가 재무부인 거다. 고객이 처한 불안한 입지 다져 주기. 싱크탱크 경쟁력의 핵심이다. 이론과 실증적 증거가 단단해야 함은 물론이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국제금융시장은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위기다. 이럴 때 해외 자본의 급격한 들락거림은 경제에 독(毒)이다. 정교하게 관리해야 한다. 문제는 자본이동 통제 반대 목소리가 여전하다는 점이다. 우리 편을 들어주는 이론과 여론이 아쉽다. “침략군에는 맞설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는 막을 길이 없다.” 19세기 대문호 빅토르 위고 말이다. 워싱턴 싱크탱크를 앞세우는 전략이 필요한 때다. 논리와 아이디어로 승부를 내는 곳이다.
  • 벽난로서 꺼낸 120년 전 ‘대한제국 외교’

    벽난로서 꺼낸 120년 전 ‘대한제국 외교’

    전시회·美 대통령 딸 결혼식 초대장 등 한 - 미 외교사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 미국 워싱턴DC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의 복원공사 과정에서 120년 전 공사관의 활동상을 담은 사료가 다수 발견됐다. 특히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에 외교권을 강탈당해 공사관의 공식 활동이 멈춘 시점인 1906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당시 미 대통령의 딸이 공사관에 보낸 결혼식 초청장이 발굴돼 외교사적 의미도 주목된다.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7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복원 중인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 안에서 19세기 말~20세기 초 공사관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다수의 자료가 발굴됐다고 밝혔다. 발견된 자료는 결혼식 및 전시회 초대장과 엽서, 명함, 크리스마스·신년 카드 등 총 15점으로, 건물 2층 집무실 벽난로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오수동 재단 사무총장은 “자료는 벽난로 상판과 벽 사이에 끼어 있었다”며 “찢어서 벽난로에서 소각하려 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1892년 워싱턴DC에서 개최된 화가 조지 로버트 브뤼네의 전시회 초대장(사진 왼쪽)과 미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딸 앨리스의 1906년 2월 결혼식 초대장(오른쪽)이다. 두 자료는 유통 시기와 초청 주체, 수신 및 발신 주소 등이 모두 확인돼, 당시 공사관의 대외 활동상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미국을 무대로 활동한 캐나다 출신 풍경화가 조지 로버트 브뤼네는 1892년 워싱턴에서 전시회를 열고 공사관 측에 초대장을 보냈던 것으로 추정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초대장과 이듬해 촬영된 공사관 1층 객당을 촬영한 사진에 등장하는 서양화 2점의 관계인데, 화풍이 비슷해 브뤼네의 작품을 공사관에서 입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재단 측은 설명했다. 또 당시 대통령의 딸 앨리스 루스벨트가 1906년 2월 백악관에서 치러진 자신의 결혼식 초대장을 공사관에 보냈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당시 앨리스는 워싱턴 사교계의 여왕으로 불리며 1905년 9월 경운궁(현 덕수궁)을 방문해 고종 황제를 알현하고 어진 사진까지 받는 등 활발한 외교활동도 벌였다. 오 사무총장은 “이 시기는 을사늑약으로 공사관의 공식 활동이 정지된 다음해라는 점에서 외교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며 “공사관 복원 과정에서 당시 유물의 실체가 그대로 나온 것은 처음으로, 대한제국 외교관들의 활동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은 내년 상반기 박물관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동심과 휴식, 그 뒤엔 평생 ‘관람용’으로 살다 죽는 동물들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동심과 휴식, 그 뒤엔 평생 ‘관람용’으로 살다 죽는 동물들

    어린 시절이나 어른이 된 지금, 동물원은 여전히 신기하고 재밌는 곳이다. 호랑이·사자 등 맹수부터 해양 동물까지, 책이나 텔레비전 또는 영화에서나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동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 마치 다른 세계에 당도한 듯한 신기한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동물원의 존재가 한없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동물보호단체는 동물들을 좁은 우리에 가두거나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노출시키는 행위 자체가 동물학대에 해당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생생한 교육이 되고 어른에게는 작은 휴식을 가져다주는, 하지만 동물들에게는 본성과 자유를 박탈당한 공간, 동물원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자. ●동물원의 오랜 역사 인류의 농경사회가 시작된 뒤 인간은 더욱 높은 생산성을 위해 동물의 힘을 필요로 했다. 농경사회의 발달로 소유물의 개념이 생겨난 뒤 인간에게 동물 역시 하나의 소유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이는 더 나아가 권력의 상징으로까지 변모했다. 다양한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은 기원전 3500년경 고대 이집트 수도였던 히에라콘폴리스의 동물원이 꼽힌다. 히에라콘폴리스 지역의 한 터에서만 코끼리와 원숭이, 하마 등 112종의 동물 뼈가 발견된 바 있다. 이 지역이 고대 이집트 귀족들의 무덤이 있는 곳인 만큼 동물원은 지배계층의 향락과 매우 밀접한 관계였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기원전 275년 로마에서는 동물끼리 시합을 하거나 전투사와 동물이 싸우는 쇼가 인기를 끌었고, 15세기 들어 유럽에서는 동물의 사육과 전시를 동시에 하는 현대 개념의 동물원이 선을 보였다. 18세기에는 동물을 끌고 지방 곳곳을 순회하며 보여 주는 서커스단이, 19세기 중반에는 상업적인 수익을 위한 동물원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동물원의 진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처참하고 잔혹한 문화를 낳았다. 야생에서 살아가도록 태어난 동물들의 경우 인간에게 포획당한 뒤 비좁은 우리에 갇힌 채 죽음을 맞이하기 일쑤고, 일부 야생동물은 태생과 다르게 아예 동물원 안에서 태어나 평생을 ‘관람용’으로 살다 세상을 떠나야 한다. 인간의 호기심과 소유욕은 더 많은 동물의 감금으로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멸종되거나 멸종위기를 맞이해야 하는 동물들이 빠르게 늘어났다. ●전쟁터에 버려진 동물원부터 옥상 동물원까지 한 사람을 또 다른 사람의 소유물로 인식한 노예제도는 거의 사라졌지만, 하나의 동물이 한 사람의 소유물이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인식은 여전히 팽배하다. 마치 물건처럼 동물을 돈으로 사고팔거나 돈을 받고 이를 공개하는 행위 역시 그러한 인식이 낳은 결과 중 하나다. 국적을 막론하고 동물과 동물원이 상업적 수단으로 인정받으면서 동물원의 수는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는데, 그중에는 인간에게 포획돼 갇힌 것도 모자라 자신들과 전혀 상관없는 싸움에 휘말려 종말을 맞이한 곳도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위치한 동물원이다. 2007년 개장한 칸유니스 동물원은 가자지구 내에 위치한 5곳의 동물원 중 한 곳이다. 170만명의 주민에게 즐거움을 주던 이 동물원은 얼마 전 ‘세계 최악의 동물원’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2008년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폭격과 이에 맞선 무장 조직 하마스의 전쟁으로 수천여명의 주민들이 죽어 나가는 상황에서 동물들이 그대로 방치돼 상당수가 굶어 죽은 것이다. 동물원 곳곳에는 죽은 동물의 사체가 미라처럼 굳은 채 버려져 있는데, 가자지구의 동물원 5곳 중 또 다른 한 곳인 알비산 동물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역시 내전으로 버려진 이 동물원의 동물들은 극심한 배고픔과 트라우마에 몸부림쳤다. 내전과 굶주림에 지친 원숭이 한 마리가 이미 죽어 부패가 진행된 또 다른 원숭이 동족 사체 곁에서 넋을 놓고 있거나 일부가 무너진 우리 안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는 사자의 모습 등은 죄책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비슷한 참상은 국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국내 한 지방 백화점의 옥상 동물원을 담은 동영상 한 편은 인간의 호기심과 욕심이 얼마나 잔혹한 결과를 낳았는지를 보여 주면서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옥상 동물원은 백화점 등 쇼핑센터가 고객 유치를 위해 제공하는 볼거리로서 현재도 유통업계에서 자주 활용되는 마케팅 방식 중 하나다. 당시 공개된 동영상은 좁은 옥상 동물원의 우리 안에서 사슴 한 마리가 머리를 찧거나 흔드는 행동을 반복하고 자신의 분변을 먹는 모습 등을 생생하게 담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이것을 좁고 단조로운 공간에서 동물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일으키는 정신병적 증세라고 단언했다. 동물보호단체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국내에는 관련 법조항이 없어 처벌도 어려운 실정이다. ●동물권 그리고 동물원의 미래상 동물에게도 인권과 유사한 ‘동물권’이 있다. 호주 철학자 피터 싱어가 제시한 개념인 동물권은 동물이 그저 실험용이나 식량, 향락을 위한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되며 하나의 생명체로서 인간과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도덕적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식 습성을 무시한 환경의 동물원에 사는 동물이라면 동물권을 침해받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동물원의 아픈 현실은 여전하지만 동물권의 확대와 함께 유의미한 움직임도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15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동물원은 동물과 역사적 건축물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동물원 폐쇄를 결정했다. 대신 이곳에 친환경 생태공원을 세우겠다고 발표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은 “동물들이 자연이 아닌 건물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면서 동물들을 서식지로 돌려보내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 국내에서도 전주동물원이 동물들의 서식환경을 고려해 생태동물원으로 탈바꿈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동물의 습성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이를 통해 다방면에서 더 나은 인간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 무작정 잘못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역시 생명체인 동물에게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더 나은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배제한 채 호기심으로 소유하려 한다면, 그것은 동물을 향한 ‘갑질’에 불과하다. 동물원이 동물 삶의 종착지가 되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겠다. huimin0217@seoul.co.kr
  • [시론] 국립한국문학관, 정신문화의 전당이 돼야/곽효환 시인·대산문화재단 상무

    [시론] 국립한국문학관, 정신문화의 전당이 돼야/곽효환 시인·대산문화재단 상무

    문학계의 오랜 숙원인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추진이 중단됐다. 지난달 하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자체 간 배수진을 친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불필요한 갈등과 혼란이 심화되는 상황에서는 후보지가 선정되더라도 반발과 불복 등 심각한 후유증이 우려된다”며 무기한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문학계의 반응은 이제 올바른 길을 갈 수 있게 됐다고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번 결정이 문학관 건립 계획 백지화가 아닌 공모절차 중단이기도 하지만 비로소 국립한국문학관이 ‘문학의 논리’로 논의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문학진흥정책위원회 설치, 국립근대문학관 설립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문학진흥법이 지난 2월 제정, 공포된 이래 어찌 된 영문인지 국립문학관 부지 공모만이 서둘러 진행되면서 여러 억측을 낳았고, 급기야 유치에 나선 24개 지자체의 경쟁이 과열돼 수습 곤란의 상황에까지 치달은 것이다. 치적 쌓기용으로 지자체와 지자체장이 유치위원회에 앞장서거나 지원하고 여기에 과도한 주민서명운동, 결의대회 등의 세 과시가 이어졌으며, 급기야 문학과 무관한 지역의 협회, 단체들과 지역 언론까지 가세하는 등 ‘핌피’ 현상이 극에 달했다. 여기에 특정 지역 내정설, 정치논리 개입설까지 대두되면서 결과에 대한 불복 논리까지 축적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뤄진 문체부의 중단 결정은 중앙정부의 공신력을 손상시키고 당초 빌미를 제공한 당사자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더 큰 잘못과 혼란을 막기 위한 불가피하고도 용기 있는 결자해지의 결정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지역 안배, 정치적 배려 등 비본질적인 압력을 이겨 내고, 한 공동체의 삶과 정신문화의 결정체인 ‘문학’의 전당 건립을 문학과 예술문화의 논리에 따르기로 한 것은 좋은 선례가 될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의 역할과 공신력을 역설적으로 더 강화해 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예술문화의 중심축인 문학이 새로운 백년대계를 준비하는 구심점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에 대한 분명한 원칙과 합의가 있어야 하고 그에 따라 체계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국립한국문학관의 부지(위치)는 정신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으로서 상징성, 모든 국민이 향유할 수 있는 접근성,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확장성이라는 세 가지 원칙 아래 정해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꼭 신축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기존 시설 가운데 적임지가 있는가를 포함해 다양한 접근 방법을 검토해 본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다. 역사(驛舍)를 개축해 인상파 회화를 비롯한 19세기 미술의 중심이 돼 루브르박물관, 퐁피두센터의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프랑스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오르세미술관의 예를 생각한다면 한국 근대문학의 출발 무대였던 옛 서울역사와 같은, 상징성이 있는 공간을 국립한국문학관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생산자인 문학인과 소비자인 독자(국민)라는 문학의 두 주체가 중심이 된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준비위원회가 구성되고, 이들의 의견을 수렴한 한국문학의 명예의 전당이자 한국문학 발전의 핵심 공간이 탄생돼야 할 것이다. 특히 지난 5월 한국 문학단체 결성 사상 최초로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시인협회, 한국작가회의가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독자인 국민과 함께 문학진흥법 시행과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선언하고 ‘한국문학 진흥 및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공동준비위원회’를 구성해 한국문학미래포럼을 여는 등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은 환영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을 수상한 데 이어 내년 5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포함한 수십 명의 세계문학 거장들이 한국 작가들과 세계문학의 새로운 담론을 나누는 대교류의 장인 ‘2017서울국제문학포럼’이 열린다고 한다. 모처럼 한국문학에 대한 안팎의 관심과 기대가 고조되는 이때 중지를 모아 한국문학의 미래를 위한 튼튼한 초석이 놓아지기를 기대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