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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대통령 연봉25년째 동결/역대 4회만 인상…보수 안오르는 직종

    ◎클린턴 19만불 수령… 닉슨보다 “저임금”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얼마만큼의 연봉을 받았을까. 운동선수들이 수백만달러의 연봉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억만장자들은 공채이자만으로 수십만달러를 버는 미국에서 대통령직은 결코 높은 직위에 걸맞는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보수가 ?으? 가망도 별로 없?? 비인기 직종으로 전락했다. 미국 대통령의 연봉은 1789년부터 지금까지 2백5년동안 단 네차례 인상됐다.대통령 봉급인상은 전적으로 의회소관인데 미국의회는 건국이후 84년만인 1873년에야 첫 봉급인상을 결의했으며 2·3번째 인상도 한참 뜸을 들여 1909년과 1949년도에 이뤄졌다. 지난 69년 마지막 인상이 결정된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 연봉은 동결돼 인플레와 각종 세금을 감안할 경우 현재의 클린턴 대통령은 25년전의 닉슨때보다 봉급이 깎인 실정이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은 2만5천달러의 연봉을 받았는데 세금을 공제한 이 액수는 현 시세로 55만달러에 상당,18세기말 수준으로도 「왕휘」급이었다.이후 80여년의 동결기를 거쳐 첫번째 대통령봉급인상의 수혜자인 18대 율리시스 그란트 대통령은 재선 첫임기를 시작하면서 전보다 2만5천달러가 오른 5만달러(93년기준 78만달러)를 수령했으며 27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은 두번째 봉급인상 결정으로 7만5천달러를 받았다.이는 93년도 기준으로 자그마치 1백50만달러나 되는 후한 금액이었다.그 이후 대통령들의 연봉은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33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세번째 봉급인상으로 10만달러의 연봉과 함께 여행수당(4만달러),생활수당(5만달러)을 추가수령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세금과 인플레를 감안하면 현시가로 따져 45만달러에 해당된다. 69년 취임한 닉슨 대통령은 20만달러(93년기준 실수령액 47만5천달러)를 받았고 그 이후 25년동안 동결돼 클린턴 대통령은 실수령액이 19만달러에 불과, 역대 대통령중 최저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앞으로 계속 한푼도 오르지 않는다면 25년뒤인 2019년에는 대통령의 연봉은 현시가로 고작 7만달러가 된다는 계산이다.하지만 아칸소 주지사 연봉의 두배는 되는 액수여서 클린턴 대통령에게는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 송기원작 「너에게 가마…」/20년만에 첫 장편소설(이작가 이작품)

    ◎밑바닥 인생들의 꿈·좌절 생생히/18세당시 작가체험을 진솔하게 표출/주먹패·장터똘마니의 삶 묘사 돋보여 작가 송기원씨(47)의 첫 장편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 등단 20년만의 때늦은 첫 장편이란 점 말고도 작가의 철저한 자기고백이란 측면에서 이 작품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 소설을 쓰기위해 작가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서슴없이 말할 정도로 송씨는 작품속에 자신이 체험했고 또 밝혀야만 했던 밑바닥 삶을 흥건하게 쏟아붓고 있다. 『전남 보성 새재장터의 사생아로 태어난뒤 주변 장돌뱅이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광주에서 고교를 다니게 됐습니다.그러나 고향 장터와 도심지 광주와의 생활차이를 견디지 못한채 중퇴,본래 삶의 터전인 새재장터로 복귀해야 했습니다』 도심지의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으나 그보다는 『온 몸으로 문학을 하기위해 이 장터에 뛰어들었다』는 작가는 18세 무렵의 당시 상황을 엮은 이 소설에서 자신이 살았던 삶의 궤적을 그대로 좇는 윤호라는 주인공과 주변의 밑바닥 인생들의 부대낌을 그리면서 그들의 삶속에도 꿈과 나름대로 의미가 있음을 진솔하게 묘파해 낸 것이다. 서울생활에 실패한채 옥살이끝에 장터로 돌아와 주먹패의 「똘만이」가 된 춘근,광주에서 학교를 다니다 도중하차하고 장터에서 「똘만이」들과 어울리는 윤호등 주인공격인 두사람의 의식을 대칭적으로 묘사하면서 거칠고 본능적인 삶의 이면에 숨겨진 훈훈한 인간미를 빠뜨리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나름대로 사는 방식을 터득한 술집여인 옥희와 춘근,사회주의자의 딸 연희와 윤호,폐병환자 현숙과 약국 종업원으로 그에게 약을 대주다 들켜 죽음을 택한 선봉등 각기 다르지만 당사자들에겐 소중할 수밖에 없는 사랑을 통해 남을 이해한다는게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할 말이 많은 사람이 문학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라고 밝히듯 체험을 중시하는 송씨는 오랜만에 내놓은 이 작품 후기에서 『아직은 문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온몸으로 문학이라는 것을 배웠던,문학의 원형질 시절』로 당시를 회상하고 이 시기가 작가적 운명의 첫 출발점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송씨는 서라벌 예술대에서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쌓은뒤 지난 74년 중앙일간지 신춘문예에 시·소설 동시당선이라는 화려한 데뷔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창작활동을 펴지 못했다.유신시대에 이어 80년 봄 거듭된 옥고때문이었다.출감 이후에도 일선작가로서의 길을 잇지않고 문학사 주간으로서 민중문학쪽에만 관여해왔다.지난해 단편 「아름다운 얼굴」로 모처럼 창작 일선에 복귀한후 내놓은 이번 장편은 「문학은 외부를 향해 내부를 열어보이는 것」이라는 그의 문학적 실천과 함께 성숙된 작품에의 진입을 알리는 첫 신호임에 틀림없는것 같다.
  • “청각장애인 돕고 자격증 따고”/수화 배우기 열기 뜨겁다

    ◎내년부터 「통역사 자격증제」 도입 추진/6개월 배우면 어느정도 의사소통 가능 최근 방송뉴스 프로그램에 수화통역이 등장하고 사회의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면서 농아복지회 등이 주관하는 수화(수지언어)강좌에 배우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국내의 수화관련단체는 모두 2백19곳으로 적지 않은편.대부분의 청각장애인 단체에는 수화배우기 프로그램이 있으며 대구대 한신대 용인대 3개 대학에서는 전공과목으로 개설했고 서울·경인지역 16개 대학에는 수화 동아리가 있을 정도이다. 이중 국내 수화보급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한국청각장애자복지회에서 실시하는 기초·중급·고급 수화배우기 프로그램에는 매 강좌(3개월정도 과정)마다 70명이상의 인원이 꾸준히 몰리고 있다. 청각장애자복지회의 황준호사회복지사는 『최근 장애인이 불편없이 사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데 인식을 갖고 봉사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으며 특히 현재 수화통역대책위원회가 95년경부터 수화통역사 자격증제도의 실시를 추진하고 있어 어느때보다도 수화를 배우려는 열기가 뜨겁다』고 말한다. 이곳 수화강좌의 상오반에는 주부들이 많고 하오반에는 대학생과 회사원이 많다.여성이 월등히 많은편인데 대부분 청각장애인과 관련한 봉사를 하기 위해서 혹은 호기심으로 수화를 배우는 사람도 있다. 수화를 배운 사람들은 봉사모임을 결성해 청각장애인과 일반인 사이에서 수화통역 등 전문봉사활동 뿐아니라 청각장애인에 대한 급식봉사 일일보모 등 노력봉사도 펼치고 있다. 수화는 청각장애인을 이해하고 그들을 돕는 유용한 도구이지만 일반인들에겐 정숙및 비밀보장을 요하는 곳에서의 의사소통방법으로 소용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수화는 원시시대부터 자연수화가 있어왔지만 18세기 프랑스에서 체계화되었고 우리나라에는 1909년 평양맹아학교를 통해 처음 중국식 수화가 도입됐다.그이후 한때 수화가 청각장애인의 언어습득에 방해가 된다 하여 사용금지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청각장애인의 의사 표현 또는 수용의 중요한 수단으로 인정되어 「청각장애인의 모국어」로까지 일컬어지고 있다. 수화는 손과 몸짓과표정으로 공간에 표현하는 시각문자.의역까지 통하면 일반언어의 전부를 대신할 수 있을 정도이지만 4천∼5천개의 단어밖에 없어 세심한 얼굴 표정이 특히 중요시된다.일반 구어의 어순을 따르지만 문법에 얽매이지 않으며 존대말과 조사는 대부분 생략된다. 전문가들은 수화를 잘 하려면 청각장애인들과 자주 접촉해야 하며 외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겸손한 자세로 수화를 배워야 한다고 조언한다.6개월 정도의 중급과정을 마치면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청각장애자복지회에서는 20명 이상이 수화를 배우겠다고 하면 최소한의 실비만을 받고 강사를 파견해주기도 한다.(02)556­4758.
  • “부모 몰래 본드·부탄가스흡입”은 옛말/대마초사범 42%가 청소년

    ◎코카인 국내반입 2배 늘어/93마약백서/환각사범 15세이하가 8.6% 순간적인 환각추구를 위해 본드나 부탄가스를 마시던 10∼20대 청소년들이 좀더 강한 자극을 찾아 대마초와 히로뽕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 국내에 밀반입된 코카인압수량도 92년 1만3천3백5g에 비해 두배가량 늘어난 2만3천1백69g으로 우리나라가 세계마약커넥션의 새로운 시장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대검이 25일 발표한 「93 마약백서」에 따르면 대마사범의 경우 15세이상 29세까지가 모두 6백48명으로 전체의 42%를 차지했다. 이는 92년도의 5백17명보다 1백30명이나 늘어난 숫자로 검찰은 대마가 다른 마약류에 비해 비교적 값이 싸고 구입이 용이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히로뽕등 향정신성위반사범은 89년부터 강화된 단속으로 인해 품귀현상이 빚어지면서 가격이 폭등,92년에는 청소년층 검거숫자가 1백71명에 불과했으나 지난해는 4백70명으로 대폭 증가해 전체의 24.7%에 달했다. 향정신성위반사범의 경우 20∼30대가 전체의 68%를차지,주소비계층을 이룬 가운데 10대 사용자도 1.3%로 나타나 86년이래 처음으로 1%이상의 수치를 보여 10대들이 히로뽕을 투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종래 17∼18세 중심이던 본드·신나·부탄가스등 환각물질의 평균흡입연령이 92년부터는 16∼17세로 연소화했다.환각물질흡입은 16∼19세의 청소년이 71%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15세이하도 8.6%였다. 대검 문영호마약과장은 『향정신성의약품사범이 30대에서 10∼20대로 차츰 연소화하는 것은 대단히 우려되는 현상』이라면서 『외국산 마약류의 국내 밀반입이 증가되면서 국내 공급조직이 활동을 재개,공급물량증가와 함께 소비계층도 자연스럽게 확산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헤로인과 함께 세계 2대 주종마약류로 분류되고 있는 코카인은 지난 88년 10월 밀반입사실이 처음 알려진뒤 주로 미국을 경유해 반입되거나 남미교포 또는 남미인들이 휴대해 들여 오는 것으로 검찰은 분석하고 있다. 또 91년 2건에 1백40g에 불과하던 코카인압수량이 92년 5건에 1만3천여g으로 급격히 늘어난데 이어 지난해에는 무려 2만3천여g에 달했다.92년의 경우 출처가 확인된 코카인은 3건에 1천9백g에 불과해 대부분이 밀반입,우리나라가 남미를 주근거지로 한 세계 마약커넥션의 새로운 시장이 되고 있음이 입증됐다. 검찰은 특히 우리나라의 마약류범죄계수(인구 10만명당 마약류사범수)가 92년말까지 7을 유지해 왔으나 93년들어 15로 2배이상 크게 늘어나 더욱 적극적인 단속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일 공명당/외국인 입당 허용/한인 등 투표권 쟁취운동 새전기

    【오사카 교도 연합】 일본 집권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공명당의 오사카현 지구당은 일본정당 중에서는 처음으로 재일 한인을 포함한 영구 거주 외국인들에게 당원가입을 허용키로 했다고 지구당 관계자들이 14일 밝혔다. 관계자들은 이달 초 공명당 오사카 지구당이 이같은 결정을 도쿄 소재 한국민단(민단)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관계자들은 또 중앙당이 지구당의 이같은 방침을 승인하고 외국인 당원이 당집회에 참석하고 서명을 받는 등 각종 정치활동을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안된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강조했다. 공명당 당 규약은 당원 가입 조건으로 18세 이상이 될 것과 다른 당원 2인 이상의 소개서를 첨부하고 지구당책들의 승인을 받을 것만을 요구하고 있으며 외국인에 대한 어떠한 금지 규정도 두고 있지 않다고 관계자들은 덧붙였다. 민단의 한 고위관계자는 공명당의 이번 결정에 대해 훌륭한 결정이라고 환영하고 이는 일본내 외국인들의 투표권 쟁취 운동에 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 “모짜르트 사인은 무지한 의술”

    ◎과학전문지 「디스커버」,미 학자 연구결과 보도/폭음으로 머리 자주다쳐 두개골안에 혈종/손발마비 나타나자 정맥 피뽑아 죽음 재촉 「음악의 천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35세로 요절한지 2백3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사인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그의 라이벌인 오스트리아 궁정 악장이었던 살리에리에 의한 독살설,결핵·열병 감염설,류머티스 발병설,프리 메이슨 단원의 피살설등 설만 난무할 뿐 과학적인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과학전문지 「디스커버」지는 모차르트의 두개골을 정밀 분석한 미의학자의 연구 결과를 인용,그의 사인은 뇌혈관질환의 일종인 경막하혈종(경모하혈종)과 18세기 의술의 무지함 때문이었다고 보도했다.미오하이오 주립대 마일즈 드레이크박사는 동위원소 검사를 이용해 모차르트의 두개골 왼쪽 부위에서 사망 전인 1791년 초에 생긴 골절을 발견했다.모차르트는 평소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폭음하는 버릇이 있어 술에 취해 자주 부딪쳤으며 이로 인해 머리 외상을 입고 두개골에 골절이 생겼다는 것이다.뇌는 바깥쪽 부터 경막,지주막,연막의 3층 막으로 싸여 있다.머리에 금이 갈 정도로 두부 외상을 당하면 경막과 지주막사이에 있는 정맥이 손상을 받아 출혈,혈종(핏덩어리)을 만들게 된다.만성 경막하혈종으로 불리는 이 뇌혈관질환은 혈종에 의해 뇌가 압박을 받기 때문에 손발 마비,두통,우울증,치매등의 증세를 보인다.머리 외상을 입은지 1∼2개월 뒤에 증세가 나타나지만 만취한 사람의 경우 뒹굴다가 머리를 다친 사실을 기억 못하는 수가 많다.또 뇌의 왼쪽 부위에 혈종이 생기면 오른쪽 손발이 마비되는등 뇌 손상부위와 마비부위는 정 반대로 나타난다.드레이크박사는 모차르트가 죽기전 혼자 옷 조차 입지 못할 정도로 오른팔이 마비됐음을 지적,『이는 뇌 왼쪽에 생긴 경막하혈종 때문』이라면서 『모차르트가 경막하혈종으로 만성 우울증과 두통에 시달린 흔적이 죽기전에 쓴 여러통의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드레이크박사는 모차르트의 사망원인은 경막하혈종과 함께 18세기 의사들이 질병치유 수단으로 환자의 정맥에서 피를 뽑아내는 이른바 「사혈법」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뇌정맥 출혈로 가뜩이나 피가 부족한 그에게 피를 보충해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사혈법을 씀으로써 죽음을 앞당겼다는 지적이다. 현대의학으로 경막하혈종은 머리에 작은 구멍을 뚫고 혈종을 빨아 들이면 간단히 치료된다.결국 모차르트는 18세기 무지한 의술의 희생물이 된 셈이다.
  • 미 병영내 여성수 급증/워싱턴=이경형(특파원코너)

    ◎육군 17%·해군 12% 여군… 올핸 더 뽑아 냉전종식과 함께 미군의 여성화가 가속화되고있다.또 2차대전후 근 반세기동안 지속되어온 징집대상청년들의 등록제도도 평화시엔 유보될 전망이다. 미국방부가 최근 모병대상이 되는 젊은층을 예비조사한 병력충원동향보고서에 의하면 금년 미육군의 보충병사 5명가운데 1명은 여성으로 충당될 것으로 분석되고있다.육군의 경우 4년전에는 여군병사의 비율이 14.5%였으나 작년 연말현재 16.5%로 늘어났고 금년의 경우 총충원인원 7만명중 20%가 여성으로 메꿔질 것으로 추계되고있다. 이같은 현상은 육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해군도 마찬가지다.작년 해군보충병력 6만3천여명중 12.5%가 여성이었는데 금년엔 보충목표병력 5만6천명 가운데 15%가 여성이 될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미군내 비율은 지난 72년 지원병제가 실시된후 꾸준히 증가돼온 것이 사실이나 최근 이러한 추세가 가속화되고있는 것은 미국청년들이 군지원을 그만큼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군지원저조는 국방비의 계속적인 삭감,병력의 감축,방위산업의 사양화와 전반적으로 궤를 같이하고있다. 한편 미국방부는 지난 3일 의회에 제출한 한 보고서에서 징집적령청년들의 등록의무제도(Selective Service System)가 『국가안보에 대한 결정적인 위해가 발생하는 상황이 도래하지않는 한』 더이상 평상시엔 시행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 제도는 2차대전 발발직후인 1940년에 제정되어 월남전 직후 포드대통령이 한때 시행을 중단한 이외에는 계속 유효한 제도로 유사시 언제든지 징병을 할수있도록 대상자명부를 확보하는 법적장치이다.이 제도에 따라 미국의 18∼25세사이의 청년 약 1천4백만명은 반드시 징병등록을 하게되어있다.매년 추세를 보면 18세가 되는 해에 약 1백50만∼1백75만명의 청년들중 96%가 등록을 하고있다. 이번 보고서의 요지는 어디까지나 평화시 징집대상자의 등록을 유보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로 인한 예산절감효과는 약 2천4백만달러(약2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있다. 클린턴대통령은 이같은 보고서에 대해 징집등록제를 기본적으로는 유지하되 평화시 이를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은 계속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소련붕괴이후 미국의 탈군사화 현상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있음을 여군화추세와 징병등록유보움직에서 쉽게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이같은 전반적인 기류는 향후 국제분쟁에서 미군의 대외개입기준이 더욱 엄격해지고 그 강도도 과거에 비해 훨씬 약화되리라는 것을 짐작하게한다.
  • 3개 정치관계법 회기내처리 낙관적/여야,핵심쟁점 의견접근

    ◎「재정신청제」 도입놓고 줄다리기/통합선거법/국고보조금 인상 등 사실상 타결/정치자금법/의원 보수지급·유급보좌관 합의/지방자치법 이번 임시국회 회기동안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가장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곳은 정치관계법특위이다.통합선거법 정치자금법 지방자치법등 3개 정치관계법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면서 밤낮없이 회의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 6인 대표들의 이같은 열의와 협상속도로 미루어 이번 회기에서 처리가 무난할 것 같다는게 대체적인 전망이다.임시국회 폐회일은 오는 3월4일. 남아 있는 일부 핵심쟁점에 대해서도 상당부분 의견이 접근한 상태이다.다만 여야가 조금이라도 자기당에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 막판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겉으로는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양보할 것과 수용할 것을 이미 정해 놓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여야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통합선거법은 본문 2백70개항,부칙 17개항등에 대해 거의 합의가 됐다.선거사범에 대한 「재정신청제」도입,선거연령 인하,합동연설회 존치여부등이 쟁점으로 남아 있는 정도다. 민자당은 합동연설회를 폐지하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고 민주당은 선거연령을 지금의 20세에서 18세로 낮추자고 맞서고 있다.민주당은 정당에 대한 투표방식을 통해 전국구 의원을 뽑자고도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서로의 주장을 철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다만 재정신청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협상용」으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으로 타결을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도입을 주장하는 재정신청제는 선거법위반 혐의로 고소·고발된 사람을 검찰이 기소하지 않으면 고소·고발인이 법원에 기소여부의 심리를 청구할 수 있는 제도이다.민자당은 이를 도입하면 엄청난 고소·고발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는 논리로 반대하고 있다.그러나 민주당은 검찰의 중립성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양보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정치자금법은 사실상 타결됐다.정당을 정해 정치후원금을 내는 지정기탁금 제도의 폐지에 대해서는 민자당이 받아줄 기색을 보이지 않자 민주당이 거의 포기했다.민주당은 선관위가 발행하는 영수증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정치자금법에서 얻어낼 것은 얻어냈다는 분위기다.국고보조금을 유권자 한사람마다 6백원에서 8백원으로 인상하는 문제만 남았지만 인상으로 결론났다는게 한 협상대표의 설명이다. 지방자치법에서는 지방의원에게 달마다 보수를 지급하고 유급보좌관을 둘 수 있도록 잠정 합의함으로써 최대 쟁점이 해결됐다.다만 지방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이라는 기본정신에 어긋난다는 반발을 의식해 정식발표를 미루고 있다. 민선단체장의 부당행위에 대한 징계권문제도 타결됐다.국가위임사무에 한해 주무 장관이 단체장에게 강제이행명령을 할 수 있고 단체장도 법원에 집행정치처분을 신청할 수 있는 항변권을 부여했다.부단체장의 자격과 관련,지방공무원에 제한하지 않고 모든 국가공무원으로 범위를 넓히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행정구역 개편문제에 대해서는 도·농통합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나머지 구체적인 방안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해 별 문제가 없다.
  • “꿈과 야망을 가집시다”/김 대통령 서울대졸업식 치사 전문

    ◎창조의 선두에 서서 국제경쟁력 선도/두려움없이 개인·나라의 명운 개척을 친애하는 졸업생 여러분!총장과 교수,학생과 교직원 그리고 학부모 여러분! 저는 오늘 새로운 출발을 하는 졸업생 여러분들을 축하하기 위하여 달려왔습니다.이 나라 대통령으로서 실로 20년만에 서울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먼저 여러분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대통령으로서,또 여러분의 선배로서 저는 벅찬 감회를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아시다시피 국립 서울대학교는 분단의 아픔과 이념 대립의 와중에서 탄생했습니다.40여년전,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저는 대학 생활을 했습니다.내 조국을 끌어안고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던 고뇌의 대학생활이었습니다. 전쟁의 포연은 가셨지만,이 땅에는 정치적 밤이 너무도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습니다.길고 암울한 시대를 거쳐오면서,여러분의 선배들은 조국의 정치적 현실에 울분과 좌절을 거듭해야 했습니다.시대의 상황과 인간의 양심이 대학생을 거리로 내몰기도 했습니다.이 교정을 거쳐간 많은 젊은이들이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쳤습니다.그들의 용기있는 행동이 오늘의 문민시대를 열었습니다.아주 오랜 방황 끝에,우리는 마침내 문민시대를 연 것입니다.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학문에 열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대학이 겪어 온 풍상을 생각할 때,이 졸업식전이야말로 국민과 더불어 축하해야 할 자리라고 생각합니다.암울한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는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끼면서 여러분에게 무한한 기대를 가질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분명 분노와 저항의 시대는 갔습니다.투쟁이 영웅시되던 시대는 갔습니다.이제 우리는 빼앗겼던 시간을 되찾아야 합니다.잃어버린 시간을 메워야 합니다.입시 때문에 소진되었던 우리의 능력과 창의를 마음껏 개발해야 합니다.연구실과 도서관에 불을 밝혀야 합니다.개혁과 창조의 선두에 대학이 서야 합니다. 국가경쟁력을 선도하는 것도,뒷받침하는 것도 대학이 되어야 합니다.대학의 경쟁력 없이 국가경쟁력이 있을 수 없습니다.이제까지 대학은 독재 아래서 타율과 규제속에 안주해 왔습니다.대학은 자율과 책임으로 활기 차고 역동적인 지식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새로운 기술,새로운 정보,진취적 발상이 대학에서 나와야 합니다. 최근 우리 대학사회 내부에서 대학의 개혁과 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방안들이 모색되고 있습니다.매우 반갑고 마음 든든한 일입니다. 대학인 여러분!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홍익인간의 정신을 건국 이념으로 삼았습니다.거기에바탕한 민족문화가 5천년을 이어왔습니다.가장 선진적이었던 고대문화를 꽃피운 역사가 있습니다.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활자를 발명한 민족입니다.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모국어를 가지고 있습니다.세종시대에 이미 우리는 세계적인 과학 수준에 도달했습니다.지금 서울대에 와 있는 규장각은 18세기,세계 최대의 도서관이었습니다.이 모든 것이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당당한 문화민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치욕의 역사 속에서,민족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존심을 잃어버렸습니다.세계문명을 선도하겠다는 야망도,자신감도 갖지 못하게 되었습니다.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변방의식에 사로잡혀 왔습니다.패배주의와 피해의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세계의 중심이 아시아 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가 되리라 하던 토인비의 예언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바야흐로 새로운 문명의 먼동이 터오는 개벽의 시대입니다.우리는 더이상 변방이 아닙니다.세계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에게 시련을 안겨 주었던 지정학적 조건은,이제 대륙과 해양으로 뻗어나가는 민족웅비의 조건으로 되고 있습니다.경부고속전철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민족의지의 표현입니다.영종도 국제공항은 아시아 태평양 시대의 중심권으로 부상하는 민족의 기상과 웅도를 함축하고 있습니다.1백년전,우리는 스스로 국제화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억지로 문을 연것이 아니라,우리가 스스로 자신있게 문을 연 것입니다. 우리는 더이상 패배주의와 피해의식에 젖어있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지금 세계는 변화와 개혁의 한 가운데 있습니다.인류문명의 기본틀이 바뀌는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서양근세에서 시작하여 현대까지 지배해온 사상과 사회구조가 커다란 대전환의 분기점에 와 있습니다.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지혜는 지금은 어떤 때인가를 깨닫는 일입니다.지금 막 새로운 문명,새로운 역사가 열리려 하고 있습니다.바로,여러분이 그것을 이끌 때입니다.이 시대의 젊은이들이야말로 축복받은 세대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민족이 변화의 시대,세계사적 문예부흥을 선도할 수 있는 여건과 조짐이 곳곳에서 성숙되고 있습니다.여기 서울대학교가 새로운 문명의 시대,문예 부흥의 요람이 되어야 합니다.여러분이 바로 그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우리는 지금 민족에너지를 소진시키는 남북간의 불신과 대립을 해소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되면,우리 민족은 공존공영의 큰 길로 함께 나아갈 것입니다.민족이 하나되어 세계로 나간다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민족웅비의 때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우리 민족이 세계와 인류 앞에 창조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때가 오고 있습니다.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은 새로운 세기,영광의 민족사를 개척할 선봉들입니다.여러분은 분명,세계로 뻗어나가는 신한국의 주인공입니다.우리 경쟁력의 쇠퇴를 꼬집는 세계인의 지적처럼,안으로 우리의 진취적인 의욕이 멈칫하고 있습니다.근면과 창의,그리고 새로운 민족적 활력을,여러분이 앞장서 불러 일으켜야 합니다.국가경쟁력의 견인차가 되어야 합니다. 밖으로는,여러분이 헤쳐 나가야 할 물결은 좁은 냇물,잔잔한 강물이 아닙니다.여러분이 활동해야 할 무대는 광대무변의 바다입니다.온갖 물결이 섞여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바다입니다.태평양 역시 더이상 고요한 바다가 아닙니다.폭풍이 몰아치는 격랑의 바다입니다.적자생존의 무한 경쟁 속에서,세계일류가 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치열한 각축의 세계입니다. 국경없는 경제전쟁의 시대,지식과 정보의 힘이 개인과 나라의 성패와 사활을 결정할 것입니다.여러분 앞에 열려 있는 무한경쟁의 세계는,거대한 도전과 위협이기도 합니다.그러나 야망을 가진 사람에게는 절호의 기회입니다.야망은 잠자고 있지않는 인간만이 가질수 있는 꿈입니다.꿈을 가진 민족만이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꿈을 가질수 있는 여러분이야말로 축복받은 세대입니다°야망을 가지고,두려움 없는 큰 걸음으로 개인과 나라의 앞길을 거침없이 열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여러분으로하여금 형설의 공을 이룰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신 교수님들,그리고 온갖 뒷바라지를 다 해준 학부모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와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졸업생 여러분의 전도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 김기웅누명사건 진범 장기 15년 구형

    서울지검 강력부 이경재검사는 24일 김기웅순경이 살인누명을 썼던 서울 관악구 청수장여관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구속·기소된 서모피고인(19)에게 강도살인및 특수강도죄를 적용,징역 장기15년·단기7년을 구형했다. 서울형사지법 합의23부(재판장 김황식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논고문을 통해 『피고인이 김순경의 애인 이모양(당시18세)이 혼자 자고 있는 여관방에 몰래 들어가 금품을 훔치려다 잠이 깬 이양을 목졸라 숨지게 한 사실은 중형을 받아 마땅하나 줄곧 양심의 가책을 느껴오다 경찰에서 범행을 자진해서 자백한 점을 감안,극형을 피해 구형한다』고 말했다.
  • 중,홍콩협상 포기 선언/영의 민주화개혁 강행 반발

    ◎외교부/“97년 접수뒤 입법평의회 해산”/“2단계조치도 곧 처리” 패튼 【북경 로이터 AFP 연합】 중국은 24일 영국의 일방적인 홍콩 민주화개혁 강행에 따라 홍콩의 장래에 대한 양국협상 재개가능성이 완전 무산됐다고 발표했다. 중국정부는 이날 외교부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의 이름으로 발표한 공식성명을 통해 영국측이 『일방적으로 17차례에 걸친 중­영회담 내용을 공개하고 자체 선거법안을 홍콩입법평의회에 상정키로 결정함으로써 양국간 회담재개문호를 완전히 닫아버렸다』고 비난했다. 중국정부의 한 대변인은 이와함께 홍콩 입법평의회가 중국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날 독자적인 민주화개혁안을 승인한 것과 관련,오는 97년 홍콩주권이 중국에 정식 이양되면 입법평의회가 반드시 해산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영국측이 홍콩장래에 대한 중­영회담을 파국으로 몰아넣은데 대한 전적인 책임을 져야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에앞서 홍콩 입법평의회는 24일 상오 친중국계 의원들의 저지노력에도 불구하고 크리스 패튼 총독의민주화개혁 1단계안을 압도적 다수로 승인했다. 패튼총독은 이에 따라 민주화개혁 2단계안을 24일중 입법평의회에 상정할 것으로 보인다. 패튼총독의 홍콩 민주화개혁 1단계안은 투표연령을 18세로 하향조정하고 시의회의 임명직의원제를 폐지하며 영국식 소선거구제의 도입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신축설계 국제공모/올 주요 사업계획 확정

    ◎4백39억원 투입/옛 조선총독부건물철거 작업 착수/학술조사·유적발굴·해외교류 확대 국립중앙박물관의 올해 사업계획이 확정됐다.모두 4백39억9천만원을 들여 추진할 주요 사업은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및 국립중앙박물관 신축 ▲문화재 특별 전시 ▲학술조사 연구 및 유적발굴 ▲해외문화교류 ▲사회교육 활동등이다. 먼저 오는 20 00년에 문을 열 새 국립중앙박물관은 설계를 국제공모하는데 이어 지질 및 교통영향평가등 기초자료 조사에 초점을 맞춘다.또 총독부 건물 철거를 위한 실측 및 철거 설계작업과 함께 박물관이 임시로 이전될 현 문화재관리국 건물에 대한 증·개축 공사도 시작한다. 다양한 주제로 중앙과 지방박물관에서 잇따라 펼쳐질 특별전시회는 박물관의 기초적인 기능.중앙박물관은 「국내외 특별전 포스터전」과 「금동용봉봉래산향로 특별전」,「이달의 문화인물 기념전­안견」등을 준비하고 있다.또 재일일교포 두암 김용두선생이 소장하고 있는 토기와 도자기·회화등을 가려 뽑은 「재일교포 소장 한국 미술품전」과 미국 피바디박물관에 소장된 한국 개화기 유물 1백여점을 모은 「유길준과 개화기의 한국전」등도 눈길을 끈다. 이밖에 경주박물관은 「통일신라 금동불전」,광주박물관은 「선사인의 삶과 죽음전」,진주박물관은 「개관 10주년 기념 특별전」,부여박물관은 「선사고대유물전」,청주박물관은 「충북도민 소장 문화재전」,전주박물관은 「고구려 고분벽화전」,공주박물관은 「상감문 유물전」을 각각 연다. 학술조사 및 유적발굴도 중요한 대목.중앙박물관이 경기도 고양시 원흥동 청자요지 발굴을 비롯,창원 다호리 고분군 제8차 조사,아산만 일대 선사유적에 대한 정밀지표조사등을 계획하고 있는등 각 박물관이 다양한 조사연구 활동을 펼친다. 해외교류 사업으로는 「18세기 한국미술전」이 지난해에 이어 미국 워싱턴 스미소니언 새클러 갤러리와 LA 카운티박물관에서 8월까지 열리고 애지현 도자자료관이 7∼8월에 여는 「동양도자명품전」에 우리 도자기 11점을 출품한다.
  • 미소장 우리문화재/전적·화기발달사연구에 귀중자료

    ◎전적/「학림옥로」는 갑진자로 찍은 유일본 확인/화포/포대·받침대 완비… 신미양요때 빼앗아가 미국에 건너간 수많은 우리 문화재가운데 이번에 확인된 전적류 4백51종 2천9백43책과 화기류 2점등은 전적 문화재분야는 물론 화기발달사등을 연구하는데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우리 문화재는 미국의회도서관 한국과에 소장된 고려사등 4백9종 2천8백56책,법률자료과에 소장된 경국대전등 13종 43책,세계각국의 고지도를 보관하고 있는 지도과에 소장된 우리나라 고지도 29종 43책등 모두 4백51종 2천9백43책등이다.또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서는 신미양요(1871년)때 노획해간 강희4년(1665년) 통영에서 제작된 화포(포신길이 98.6,구경 10.2㎝)와 「솔」자를 수놓은 대형깃발(450×450㎝)을 소장하고 있다.이밖에 버지니아주 해병대 박물관에서는 강희2년(1680년)에 만들어진 개량형 화포(포신길이 104,구경 8.66㎝)와 백마그림의 깃발등을 확인했다. 의회도서관 한국과는 당초 중국과 소속으로 있다가 2년전 따로 독립되었다.한국과 소장유물은 대부분 일본에서 수집한 것으로 그 판본은 15세기의 갑진자를 비롯해 정·순조년간의 정이자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활자본들로 되어있다.목판본·필사본등 여러 종류의 완질본이 많이 소장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조선조 중종년간에 인쇄된 학림옥로는 이번 조사과정에서 처음 발견된 유일본. 중국 송나라 나대경이 지은 전적으로 당대의 문장가와 도학자들의 문장과 도학을 사건별로 정리한 고서다. 이책은 또 갑진자로 찍은 유일본이어서 당시의 인쇄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와함께 1613년 무오자로 찍은 시전대전(16책)은 국내에 완질이 없는 희귀본.그리고 영조때의 명필 원교 이광사 친필의 해동락부등도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법률자료과에는 해방후에 구입된 경국대전,대전회통등 주로 조선조의 법전류들이 수장고를 차지하고 있다.지도과에는 18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동안 제작된 우리나라의 고지도들이 수장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화포에는 모두 약실에 음각으로 제작년대,무게,제작참여자등을 새겨놓았다.특히 해군사관학교 소장 화포는 포대와 받침대까지 완비하고 있으며 나무로 약실을 막음질한 해병대박물관 화포와는 달리 전체가 청동으로 주조되었다.신미양요때 로저스제독이 노획한 포로 밝혀졌다. 한편 우리 조사단은 이번 조사과정에서 해군사관학교의 화포가 16 65년 중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영문으로 잘못 표기되어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시정하도록 미국측과 합의했다.전문가들은 이들 화기류·깃발등은 19세기 우리나라 화기발달사뿐만 아니라 당시의 군제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보고있다. 이들 문화재는 대부분 미국측이 구입해간 것이어서 아직 반환청구 대상이 되지않는다는 것이 문화재관리국의 견해.문화재관리국은 지금까지 확인된 일본등 세계 17개국에 산재한 우리 문화재는 이번에 확인한 2천9백45점을 합해 모두 5만7천6백점에 이른다고 밝혔다.
  • 장터:상/조선왕조 천도후 종로에 시전 설치(서울 6백년 만상:7)

    ◎2천간 규모… 관주도 독점상권 형성/어물 등 6개조합… 육의전으로 불려/남대문밖 칠패·동대문 배오개장터 유명 예나 지금이나 장터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의 숨결이 가장 진하게 스며있는 곳이다. 「남이 장에 가니까 씨 오쟁이 떼어지고 따라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장터에는 모두를 설레게 하는 즐거움이 있는 반면 애환도 많고 또 풍성함의 이면에는 가난한 자의 한숨도 흐른다.한편에서는 흥정이 깨져 고성이 오가고 바로 곁에서는 또 만병통치약장수의 사탕발림 달변에 폭소가 터지기도 한다.소박한 시골아낙들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를 후리려는 야바위꾼과 소매치기들도 설쳐대는 천태만상의 곳이 바로 장터다. 오만가지 인간군상들이 서로 얽혀 어깨를 비벼가며 사는 장터는 한마디로 인생의 축소판이라 할수 있으며 그래서 장터의 역사는 곧 사람들의 삶의 역사를 대변한다.서울 장터의 역사는 한양천도 가까이로 거슬러 올라간다.천도를 단행한 조선왕조는 궁궐과 관아를 지어 정도의 기틀이 어느정도 잡히자 곧 상가건설에 착수,정종 원년(1399)부터 태종 14년(1414)까지 4차례에 걸쳐 2천간 안팎의 시전을 세웠다.현재 보신각이 있는 종로네거리를 중심으로 동서로 연건동과 광화문우체국,남북으로 을지로2가와 안국동에 걸쳐 자리잡은 이들 시전의 관허상인들은 관에 임대료인 행랑세를 내는 대가로 독점판매권(금란전권)을 거머쥐었다.이때부터 종로거리는 전국 최대의 상거래지역으로 자리잡게 되고 인조 15년(1638)에 이르러서는 이들 시전상인들이 취급품목별로 입·면포·내외어물·지·저포·청포전등 6개의 조합을 만들어 육의전으로 불리면서 18세기 초까지 조선의 상권을 지배한다. 이들은 성안 사람들의 생필품을 조달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주로 관의 보호를 받아가며 관수품과 중국에 보내는 진공품의 공급기능을 맡았다. 이들 종로의 시전상인들이 관주도의 상거래를 장악해가는 동안 지방에서는 닷새장제도가 생겨나고 서울에서도 성문근처를 비롯한 도성내 곳곳에 자연발생적으로 장터가 생겨났다.그 대표적인 것으로 동대문근처 배오개장(이현·현 광장시장자리),남대문밖 칠배장(현 봉래동일대)이 있다.이 두 장터의 형성시기는 분명치 않지만 일반적으로는 종로에 시전이 자리잡힌 무렵으로 추정되고 있다.이들은 오늘날의 동대문시장과 남대문시장의 모태를 이루면서 동시에 서민장터의 쌍벽이 되어 한국 상거래사의 한장을 이룬다. 서울의 물산시장을 가리켜 「동부채칠배어」라는 말이 있다.이는 동대문근처 배오개장에는 과일·채소가 많고 남대문밖 칠패에는 생선이 많아서 생긴 말이다.또 「왕십리 미나리장수는 목덜미가 검고 마포 생선장수는 얼굴이 새까맣다」는 말도 유행했다.왕십리 미나리장수는 아침햇살을 등지고 동대문으로 향해 목덜미만 검게 타고 마포 생선장수는 반대로 햇볕을 안고 남대문으로 향해 얼굴이 타서 나온 말이다. 처음 배오개와 칠패장의 상거래는 그다지 활발하지 못했다.시전의 금난전권 행사로 상설점포를 갖지 못한데다 그 위세에 눌려 상품마저 마음대로 팔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난장의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당시의 장터에서는 오늘날 서울시내 거리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목격되는 단속반과 노점상들의숨바꼭질이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전반적으로 사회현상의 변화가 더뎠듯이 상업활동의 변화도 느린 속도로 진행됐다.그러나 18세기에 들면서는 저자거리에도 한바탕 돌풍이 일었다.인구의 증가로 시장규모가 커진데다 금속화폐의 유통으로 상거래형태가 보다 복잡해지자 관주도 상업활동은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게 됐다. 시전상인들의 위세에 눌리면서도 꾸준히 부를 축적해온 사상들은 이 때를 맞아 시전상인들의 금난전권에 정면으로 도전,마침내 정조 15년(1571) 신해통공조치로 시전상인들의 모든 특권을 철폐시키기에 이르렀다. 이에따라 18세기 중반부터 서울 상권의 무게중심은 종로로부터 성밖 나루터와 남대문·동대문의 양대장터로 옮겨가게 된다.바야흐로 장터의 남대문·동대문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 노래방 배경 화면/퇴폐물 규제키로

    경찰청은 25일 18세 미만 미성년자의 노래방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풍속영업규제법 시행령을 개정,오는 4월부터 부모나 보호감독자를 동반한 청소년들에게는 노래방 출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경찰은 이에따라 노래방에서 사용하고 있는 선정적인 배경영상을 공연윤리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미성년자 관람가」판정을 받은 영상만 사용하도록 규제하기로 했다. 경찰은 현행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한 노래방 출입금지가 현실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노래방에서 사용하는 레이저디스크에 대해서는 일반 심의 이외에 별도의 심의를 거치지 않아 퇴폐화를 조장할 우려가 있어 이같은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김 순경 누명사건 진범 살인혐의 등 모두 시인/어제 첫 공판

    김기웅순경 살인누명사건의 진범이라고 자백,살인강도혐의로 구속기소된 서모군(20·서울 관악구 봉천8동)에 대한 첫 공판이 20일 서울형사지법 합의23부(재판장 김황식부장판사)심리로 열렸다. 서피고인은 이날 공판에서 『92년 11월29일 상오 6시쯤 서울 관악구 신림6동 청수장여관 203호에 잠을 자러 몰래 들어갔다가 혼자 자고있던 이모양(당시18세)이 깨어 소리치자 당황,기절시켜야 겠다는 생각에 달려들어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며 혐의사실을 모두 시인했다.
  • 미에 이슬람문화 급속 확산/박물관·화랑등서 「문화전」 잇따라 열려

    요즘 미국 문화계의 두드러진 흐름중 하나는 이슬람문화의 급속한 확산현상이다.그 결과 회교권 하면 성전·인질극·테러를 먼저 떠올리던 미국인들의 의식도 자연스럽게 전환돼가는 양상이다. 이슬람 종교지도자들이 작년 1월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그리고 최근 미상원에서 기도회를 개최한 것은 미국에서 이슬람문화가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단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기도회 등 공식행사보다 더 큰 기능을 하는 것은 예술분야다.박물관 화랑 등에서 줄지어 열리는 이슬람 문화전은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이슬람문화에 대한 가장 좋은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문화전의 종류도 다양하다.팔레스타인인과 유태인 작가의 작품을 한곳에 모은 작품전이 있는가 하면 여성 작품전 및 코란 전시회도 있다.이들 문화전이 모두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음은 물론이다.이슬람 문화의 모태는 역시 종교이기 때문이다. 국립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새클러 갤러리는 14∼18세기중 이집트와 이란에서 발행된 코란을 한데모아 전시중이어서 특히 눈길을 끈다.「이슬람의 신성한 말씀」이라 명명된 이 전시회는 이슬람교도들의 혼이 공통적으로 코란에서 나옴을 입증하는 것이다. 워싱턴의 「메리디언 인터내셔널 센터」와 「내셔널」 박물관도 곧 이슬람 문화전을 열 계획으로 있다.「메리디언」박물관은 오는 3월 각각 6명씩의 팔레스타인인과 유태인 작가의 작품들을,「내셔널」박물관은 이달중 아랍 15개국 여성들의 작품 1백60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같은 이슬람문화 붐은 미국의 인구통계로 볼때 이상한 일이 아니다.현재 미국내 이슬람교도수는 4백만에 이른다.게다가 이들은 가장 빠른 숫적 증가를 보이고 있는 소수민족 그룹이다.이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2천년대초에는 이들이 유태인수를 압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슬람교도들은 아랍(12%) 아시아(26%) 아프리칸­아메리칸(42%) 등 다양한 출신성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코란을 매개로 연결돼 있다.아랍어 또한 이들의 동질성을 두드러지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미국에서 태어난 아프리카 노예출신의이슬람교도들이 아랍어 이름을 고집하는 것도 자신들의 잃어버린 역사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성행하는 이슬람교도들의 문화전 행사는 이슬람 민족들이 야만인이고 광신도이며 여성을 차별한다는 미국인들의 부정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목적을 띠고 있다. 이슬람교도들은 이슬람 문화붐을 이용,이슬람 최초의 진정한 성인은 여성이었으며 자신들이 전통문화를 가진 문화민족이라는 점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 한국고대사 2천점 그림으로 엮어/김산호저 「대쥬신제국사」 화제

    ◎“배달민족이 6천여년전 동아시아 지배”/민족사흐름 신·불·말쥬신계로 세갈래 분석/3개어로 번역… 도쿄세계도서전시회 출품 한국고대사를 2천여점의 동양화·유화등으로 그려서 만화처럼 엮어낸 책이 나왔다.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초까지 공상과학만화 「라이파이」로 큰 인기를 끈 김산호씨(54)가 최근 펴낸 「대쥬신제국사(대조선제국사)」는 내용과 형식면에서 아주 독특한 작품이다(동아출판사 간). 우선 이 책에 서술된 우리민족의 고대사는 그동안 배워온 것과는 달리 중국·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지역을 지배한 위대한 역사로 표현됐다. 지은이 김씨는 우리 배달민족이 지금으로부터 6천여년전 중국의 산동반도이북과 만주·한반도를 포함한 넓은 영토를 지배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당시 동이주이라고 불리던 우리민족은 큰활(대궁)을 쓰는 기마민족으로 대단군을 천자로 모셔 종교·정치적으로 통일됐다. 따라서 기동력과 단합된 힘으로 농경민족인 중국인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하다고 풀이한다. 김씨는 우리민족사의 흐름을 세갈래로 본다. 신쥬신(진조선)계는 숙신∼말갈∼대진국(발해)∼여진∼김나라로 이어져내려왔으며 불쥬신(변조선)계는 동호∼거란∼요나라로 계승돼 북중국을 지배했다. 또 말쥬신(마조선)계는 가우리(고구려)∼후금(주신)∼대청제국을 잇따라 건국했으며 그 일부가 한반도에서 백제·신라를,다른 일부는 일본열도로 건너가 일본을 각각 건설했다는 것. 김씨는「쥬신」이란 우리민족을 일컫는 순수한 우리말이며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조선」 「숙신」 「주신」등이라고 보고 있다. 이같은 파격적인 고대사해석 말고도 이 책은 그 형태에 있어서 전례가 없는 방식을 택했다. 만화나 극화처럼 그림으로 줄거리를 이어가되 장면장면을 만화적인 선이 아닌 유화·동양화등 정통회화로 구성했다. 따라서 장면 하나하나가 기록화라고 할 수 있을만큼 웅장하고 화려한 맛을 준다. 「대쥬신제국사」는 모두 3권으로 구성됐으며 책의 특성을 살리느라 가로 30.5㎝,세로 25㎝의 큰 판형에 종이도 아트지를 사용했다. 김씨와 출판사측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출판용어로는 이처럼 새로운 형태의 책을 부를만한 게 없어 고심 끝에 「회화극본」이라는 새이름을 붙였다고 밝혔다. 이 책은 오는 2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제2회 「도쿄세계도서전시회」에 초청받아 출품될 예정이며 현재 영어·일어·중국어등 3개 국어로 번역되고 있다. □저자 김산호씨(인터뷰) ◎“소수민족 설움 맛본뒤 고대사 관심”/작품구상한 후 7년만에 완성 김산호씨는 18세 때인 지난 58년 국내 최초의 공상과학만화인 「라이파이」를 발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만화가다.67년 미국으로 건너가 「샤이언 키드」 「유령이야기」 「여자흡혈귀」시리즈등 3백여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재미 만화가로서 한국고대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미국생활을 하면서 소수민족으로서 많은 설움을 당했다.지난 82년 일시 귀국했다가 김성호씨의 논저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을 우연히 읽어보고는 큰 감동을 받았다. 이후 신채호선생의 「조선상고사」,일본역사책인 「일본서기」등 한국·중국·일본의 역사서 80여권을 공부했다.만주지방도 여러차례 답사했다. ­작품을 내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나. ▲작품을 구상한 뒤 작업을 하는 데만 7년이 걸렸다.다행히 대학에서 동양화·서양화를 모두 배워 장면의 성격에 따라 유화·동양화·일본화등의 기법을 두루 사용할 수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 책이 영어·일어·중국어로 번역돼 각국에 있는 우리 교포들이 이 책을 읽고 우리의 역사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 육사 이원록(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일제하 17차례 옥고치른 저항시인/의열단 가입,조선은행 폭탄투척 등 주동/32세에 첫시 발표… 민족의식 고취 앞장/첫 수감번호 64를 호로… 40세 옥사 「어데다 무릎을 꾸려야 하나.한발 재겨 디딜 곳 조차 없다」(절정에서) 육사 이원록선생은 절정·광야등 저항시를 통해 민족혼을 일깨운 민족시인이자 항일독립운동가이다. 최초 일제에 체포됐을 당시 수감번호 64의 음을 따 아호를 지음으로써 나라 잃은 슬픔을 가슴에 간직한채 민족의식을 일깨우는데 일생을 바쳤다. 육사는 1904년4월4일 5형제중 2남으로 태어나 41세인 1944년1월16일 북경감옥에서 순국할 때까지 무려 17차례에 걸쳐 옥고를 치렀다. 진성 이씨로 퇴계 이황선생의 14대손인 육사는 경북 안동군 도산면 원촌리 881에서 아버지 이가호씨와 어머니 허길씨 사이에서 태어나 어려서는 한학을 배웠다. 그는 1921년 18세때 경북 영천의 안일양씨와 결혼,영천의 백학서원에서 공부하다 신학문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2년뒤 일본으로 건너 갔으며 도쿄 소재 대학에 다니다 중퇴하고 1925년 귀국했다. 선생은 이어 형 원기,동생 원유씨와 함께 항일 무장투쟁 결사인 의열단에 가입했다. 의열단은 1927년10월 조선은행 대구지점장 앞으로 벌꿀을 위장한 폭탄 상자를 보내 일경 5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사건을 일으켰다. 선생은 이 사건 발생 직후 형제와 함께 일경에 주동자로 지목돼 체포돼 쇠꼬챙이로 지지기,대꼬챙이로 손가락 사이 훑기,거꾸로 매달아 코에 고춧가루 붓기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혹독한 고문을 겪은 뒤 대구지방법원에 기소됐으며 수감번호는 64였다. 2년4개월 동안 옥살이를 한 선생은 출옥후 의열단원 윤세주씨가 운영하고 있던 중외일보 기자로 일하며 청년지도에 힘을 쏟았다. 그러던중 1929년11월3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선생은 또 다시 예비검속되는 등 고초를 겪었으며 1931년1월21일 동생과 대구경찰서에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그 당시는 대구에서 반제 배일 격문이 시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었으며 선생은 격문 작성자 또는 비밀결사 혐의를 받은 것이다. 선생은 3개월만에 출소하자 중국 북경으로 탈출,심양에서 김두봉의열단장을 만나 독립운동 방법을 논의하고 귀국했다. 육사는 1932년6월 북경으로 가 중국의 대문호 노신과 교유,나중에 노신의 「고향」을 번역하기도 했다. 선생은 북경에서 본격적으로 무장항일운동에 뛰어 들기로 하고 중국 국민정부 군사위원회에서 운영하는 간부훈련반에 입학했다. 이 훈련반은 김두봉단장이 황포군관학교 재학 당시 장개석총통에게 부탁해 한국청년의 군간부 양성을 목적으로 남경에 설립된 군관학교이다. 선생은 이 학교 정치조에 소속돼 6개월 동안 비밀통신·선전방법·폭동공작·폭파방법등 게릴라훈련을 받고 1933년5월15일 귀국했다. 선생은 차기 교육대상자 모집,국내 민족의식 환기,혁명사상 조성과 국내정세 파악등의 비밀 임무를 띠고 상해·안동·신의주를 거쳐 입국한 것이다. 선생은 이 임무를 비밀리에 수행하던중 1934년5월22일 서울에서 경기경찰에 피체돼 한달만에 기소유예조치로 석방됐으나 이미 건강이 매우 상한 상황이었다. 선생은 그래서 당시 진로를 놓고 크게 인간적 고뇌와 갈등에 휩싸이게 됐다. 과연 의열단밀명을 계속 수행할 것인가 아니면 광복을 위한 투쟁대열에서 벗어나 은둔할 것인가. 선생은 결국 직접적인 무장투쟁은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글과 시를 통해 민족의식을 깨우쳐 주고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을 북돋는다는 새로운 항일의 길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이같이 결정한 선생은 바로 북경으로 가 문인으로서 새 출발을 시작했다. 이후 선생은 정치·사회분야에서 폭넓은 작품활동을 전개,1935년 개벽지에 「위기에 임한 중국 정국의 전망」,「중국 청방비사 소고」등을 발표했다. 다음해인 36년에는 처음으로 「한개의 별을 노래하자」는 시를 발표,시인으로 등장했다. 또 해조사·노정기·질투의 반군성·무희의 봄을 믿아서등 산문을 내기도 했으며 꾸준히 평론과 수필을 발표했다. 이어 1939년에는 절정·남한산성·청포도등 주옥같은 시를 썼으며 영화에 대한 문화적 촉망,시나리오 문학의 특징등의 영화 예술부문의 평론을 문장 냉광등 잡지에 선보였다. 1941년 선생은 건강이 극도로 악화됐으나 파초·독백·자야곡등의 시를 지었으며 연인기·산사기·중국현대시의 일단면등 수필도 짬짬이 썼다. 1942년에는 사실상 유고인 광야를 발표했다. 그러던 선생은 귀국한지 두달만인 1943년7월 갑자기 서울동대문경찰서에 연행돼 북경으로 이송됐다. 그가 무슨 영문으로 체포됐는지 조차 몰랐던 가족들은 돌연 1944년1월6일 「북경감옥에서 사망했으니 유해를 찾아가라」는 통보를 받고 깜짝놀라 북경으로 달려갔다. 북경주재 일제영사관은 선생의 유해를 화장하고 남은 유골을 담은 조그만 상자를 내줄 뿐이었다. 선생은 병마와 싸우며 죽는 순간까지도 많은 작품을 써내 이 민족에게 빛을 던져준 민족시인이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7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83년 문화훈장 금관장을 추서했다.
  • 내 욕심만을 위해 산 날들/지명관(시론)

    ◎이땅서 서로 아끼고 돕는 심성 키울때 요즘 나는 10대나 20대에 읽었던 우리나라 문학작품을 때때로 펼치곤 한다.우리 선인들의 심성이나 사상을 찾아보고 싶어서이다.얼마전에는 이광수의 「유정」을 다시 읽었다. 조금 읽어나가다 주인공인 최석이 하얼빈에서 망명 조선인 R라는 소비에트장교와 만나는 대목에 부딪쳤다.R는 고국이 그립지 않느냐는 최석의 물음에 전혀 뜻밖의 대답을 한다.「그 빈대 끓는 오막살이가 그립단 말인가,나무 한개 없는 산이 그립단 말인가,그 무기력하고 가난한 시기 많고 싸우고 하는 그 백성을 그리워한단 말인가…」하고 R는 흥분까지 했다는 것이다.최석은 이에 대해서 「나는 R를 괘씸하게 생각하기 전에 내가 버린다는 조국을 위해서 가슴이 아팠소」라고 편지에 적고있다.우리는 이러한 글속에서 「유정」을 쓰던 1930년대 초에 이광수가 우리나라 우리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 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일제지배하의 조국에 대해서 그가 그처럼 어둡게 느낀데 우리도 공감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여기서 나는 「유정」을조국탈출기 또는 유민문학의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나라 우리땅에 대한 이처럼 어두운,말하자면 부정적인 이미지란 물론 이광수 개인에게만 한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어떤 의미에서는 일제하의 거의 모든 지식인의 심성에 깃들어 있던 「조선」의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그후 우연히도 조선실학의 한 선구자 이중환(1690∼1752(?))의「택리지」를 읽게 되었다.이 「택리지」는 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뛰어난 인문지리서로서 조선조말까지 양반계층 사이에서 아주 높이 평가되고 널리 애독되었다고 한다.그런데 오늘에 있어서도 매우 흥미있는 것은 이 「택리지」의 결론이다.한번 사대부가 되면 이땅에서는「거의 그 몸을 용납할 곳이 없다」(태무소용기신)는 것이다.몸담고 살아갈만한 고장이 없다는 말이다. 여기에도 이나라 이땅에 대해 대단한 부정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거야 18세기에 이르면 조선조가 크게 피폐해져 몰락했으며 이중환도 유배를 당해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한 까닭이라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이중환이 「사군자가 뜻을 가지고 거처할 땅」을 찾고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말하자면 그는 유교적인 의미에서 이상향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이상향을 찾는 맑고 아름다운 이상주의를 누가 나무랄 수 있겠는가.그런 이상향을 가졌기 때문에 보다 나은 것을 찾아서 전진하고 진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그러나 또한편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 대해서 긍정하고 만족하기 보다는 불만을 품게되는 것이 아닐까.자족할줄 모르는 사회에 안정이란 없다. 그러한 이상이 실현된 땅으로 우리는 흔히 우리보다 앞섰다는 나라들을 주목해온 것같다.그것이 옛날에는 중국이었고 근대에는 지배를 받으면서 저항한 일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전후에는 미국이었다.그러니까 특히 지식인들은 앞서있는 다른나라와 비교해 우리의 현실을 비판해온 것이라고 보인다.이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신라시대의 도당 유학생이래의 전통일는지 모른다.그 나라들은 가치를 지니고 있고 우리에게는 그러한 가치가 결여돼 있다고 여겨온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우리들의 가정을 그려본다.우리는 여기에서도 남의 가정은 이런데 우리집은 왜 이러냐고 떼를 쓸 것인가.남은 큰 집에서 여유있게 사는데 우리는 오막살이에서 된장찌개만 먹는다고 투정을 할 것인가.사실은 모두가 오순도순 주어진 능력과 환경과 기회속에서 서로 아끼고 나름대로 힘을 다하면서 가족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거기를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따뜻한 심성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것이 마을살림이나 나라살림의 이상이 아닐까 하고 나자신도 되돌아다보고 싶어진다. 새날 새아침에 나는 지난해말 어느 소극장 콘서트에서 들은 젊은이들의 노래를 되새기고 있다.『지난날에는 나만 자유스러워지려고 했다.내 욕심으로 살아왔다.그러나 그것은 슬픈 날들이었지 않는가.이제는 그것들은 뒤로 돌리고 앞으로 찾아오는 날들에 있어서는 서로 의지하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리』라고 열창하는 것이었다.어떤 뜨거운 감격같은 것이 조그만 극장에 물결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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