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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것이 알고싶다] 무공해 ‘천연미인’ 시대

    ‘자연미인’ 전성시대. 갸름한 달걀형 얼굴,쌍꺼풀 진 큰 눈,가늘고 오똑한 코,도톰한 입술 등은 이른바 ‘화면발 잘 받는’ 이목구비의 ‘ABC’.그러나 요즘 안방극장에는 이 공식에 맞춰 턱을 깎고 눈을 찢는 대신 미완성(?)의 자연미로 승부하는 ‘개성파’ 신인들이 파워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각턱이었다니… CF계를 평정하고 MBC ‘사랑한다 말해줘’의 영채 역을 맡아 안방극장에 상륙한 윤소이는 천연미인의 대표주자로 꼽힐 만하다.엇비슷한 외모의 인공미인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눈과 약간 각이 져 보이는 턱 선은 오히려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사랑한다‘의 연출을 맡은 오종록 PD는 “턱선이 맘에 들어 캐스팅했다.”고 밝힐 정도.오 PD는 윤소이의 작은 눈에 대해서도 눈물 연기를 표현해내기 어려운 단점이 있지만 참신함을 주기에 충분하다며 후한 점수를 줬다. 그러나 최근 윤소이는 거울을 다시 보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드라마 초반부터 ‘사각턱’이라는 둥 ‘눈이 작다’는 둥 억울한 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윤소이 본인은 정작 턱선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고.아무쪼록 그녀가 거울을 너무 자세히 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외꺼풀’도 예쁘기만 하네 연예계에 입문하려는 스타 지망생들에게 쌍꺼풀 수술은 기본.동그랗고 커다란 눈을 가지지 않은 연예인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수 비가 그렇듯 한지혜의 ‘외꺼풀’은 그래서 더욱 빛난다.KBS ‘낭랑 18세’의 주인공 정숙을 맡아 인기스타 반열에 올라섰지만 한때 그녀도 쌍꺼풀 수술을 진지하게 고민했단다.그러나 ‘낭랑‘의 담당 PD가 손대지 않은 자연미를 높이 사 캐스팅했다는 말을 듣고는 타고난 그대로 살기로 했다고.쌍꺼풀 진한 한지혜를 상상해보라.아마 지금의 귀여움과 깜찍함은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 ●서구형 미인은 가라 이목구비가 워낙 뚜렷해 끊임없이 성형수술 논란에 시달리는 완벽한 얼굴.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헤로인 한가인에게 부족한 점을 찾을 수 있을까.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막강파워의 네티즌들이 인정한 무공해 미인,한가인 본인이 밝힌 불만은 ‘작은 입,짧은 코’란다.그러나 요즘은 눈 코 입이 큰 서구형 미인보다 심은하,송혜교처럼 앳되 보이는 앙증맞은 얼굴이 더 어필하는 시대.타고난 외모에다 ‘운때’가 찰떡궁합을 이뤄야만 비로소 빅스타로 뜬다는 얘기다. 박상숙기자 alex@˝
  • ‘스쿨’ 스크린 점거하다

    …유하 ‘학교에서 배운 것’ 중에서 스크린에서 ‘학교’가 뜨고 있다. 학교를 공간적 배경이나 주요 소재로 삼은 영화들이 꾸준히 개봉되거나 제작되고 있는 추세다. 하이틴 영화가 없는 시대는 물론 없었다.그러나 최근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학교는 10∼20대들의 고만고만한 고민과 로맨스를 담는 ‘전통적’ 기능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데서 새로운 의미가 짚인다.학교가 억압된 욕망의 상징공간으로 한정됐던 건 이미 옛말이다.코미디,멜로,드라마,액션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제 학교는 스크린을 무차별(?) 점령한다. 학교가 대중문화의 인기코드로 급부상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초 흥행한 코미디 ‘동갑내기 과외하기’.대학 2학년생 과외선생과 터프한 남자 고교생의 코믹한 신경전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짭짤한 재미를 본 뒤 학교영화는 줄줄이 기획·제작되는 중이다. 학교가 실패한 교육장이자 혼돈의 상징처럼 굳어지고 있음에도,극장가에서 ‘먹히고’ 있는 배경은 뭘까. 한 마케팅 담당자는 “지난 2002년 말 고등학교 교실에 카메라를 정조준한 코미디 ‘몽정기’와 ‘품행제로’가 선보일 즈음만 해도 학교영화가 이렇듯 꾸준히 폭발력을 가질 거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면서 “‘동갑내기‘가 흥행하면서 인터넷 소설이 원작인 청춘드라마가 힘을 얻은 결과”라고 짚었다. 인터넷 소설의 주요 독자층은 10∼20대.주요 영화소비층과 정확히 일치하는 만큼 자연스럽게 이들을 겨냥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풀이들이다.여고생과 ‘명품족’ 대학생의 로맨스를 그려 지난 1월 개봉한 ‘내사랑 싸가지’,귀여니의 인터넷 대박소설을 원작으로 새달 개봉할 ‘그 놈은 멋있었다’가 대표적인 사례. 이 즈음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학교가 하이틴 드라마 속에서 단순히 ‘순수’와 ‘꿈’을 대변하는 공간에 머물던 시대는 갔다.욕망의 표현이나 사회적 입지 등이 제한된 ‘학생’들에게 학교는 역설적이게도 일탈의 쾌감을 누릴 수 있는 합법적인 탈출구다.딱딱하게 뭉쳐진 청춘들의 ‘욕망 근육’을 다양한 제스처로 풀어주는 물파스로 기능하는 셈이다. 지난 1월의 흥행작 ‘말죽거리 잔혹사’도 마찬가지.70년대의 어두운 시대상을 깔고 학원문제를 건드린 듯하지만,자세히 보면 영화 속 학교는 폭력의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색다른 무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학교가 자유연애 공간으로서 입체적으로 ‘재활용’되기까지 한다.김래원·문근영 주연의 ‘어린 신부’(새달 2일 개봉)는 16세 꼬마신부와 대학생의 결혼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양가 조부들이 정혼한 바람에 울며 겨자먹기로 ‘여학생 신부’가 된다는 설정은 인기 TV드라마 ‘낭랑 18세’와 판박이다.교복차림의 여학생이 주인공인 영화는 또 있다.은지원·임은경 주연의 ‘여고생 시집가기’가 한창 촬영 중이다. 로맨스,액션,코미디가 두루두루 엮이는 학교영화는 한동안 한국영화의 주류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고교생들의 삼각관계를 그린 ‘늑대의 유혹’,고교 태권도부 이야기인 ‘돌려차기’가 곧 개봉한다.강원도 남자중학교의 관악부를 배경으로 최민식이 주연한 ‘꽃피는 봄이 오면’,천계영의 인기소설 원작에 남녀 고교생들을 주인공으로 세운 ‘더 클럽’ 등이 촬영에 들어갔다. ‘돌려차기’의 제작사인 씨네2000의 이춘연 대표는 “10∼20대를 겨냥한 상업영화의 주제가 다양해지는 건 나무랄 일이 아니다.”면서 “그러나 크든 작든 사회적 메시지는 잊지 않고 담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수정기자 sjh@˝
  • ’서울 탱고-소양강 처녀

    ‘해저문 소∼양강에 황혼이지면/외∼로운 갈대밭에 슬피우는 두견새야/열여덟 딸기같은 어린 내 순정/너마저 몰라주면 나는나는 어쩌나‘ 관광버스 안에서 막춤 출 때나 노래방에서 흥을 돋울 때 ‘소양강 처녀’를 모르면 간첩.40대를 넘긴 대한민국 사람치고 물안개와 호수의 도시 춘천 이미지를 고즈넉이 노랫말에 녹여 만든 ‘소양강 처녀’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노래가 워낙 유명세를 타다 보니 춘천거리에 다니는 여자들만 보면 모두 소양강 처녀로 보인다는 외지인들의 우스갯소리도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그만큼 ‘춘천=소양강 처녀’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 노래는 60년말 여가수 김태희씨가 불렀을 당시 별 반응이 없었다.그러던 것이 10여년 뒤인 70년대말 대학가에서 응원가로 불려지기 시작하며 뒤늦게 뜨기 시작해 지금껏 애창되고 있다. 곡조가 단조롭고 배우기 쉬워 응원가로 적격이었을 것이고,가사도 애절해 유신정권말 억눌렸던 피끓는 젊은이들 사이에 ‘저항가요’쯤으로 여길 만했을 터이니 이만큼 좋은 노래가 또 어디 있었을까. 원조 가수는 경기도 어디쯤에서 조용히 살고 있다는 후문이지만 이후 가수 한서경씨 등이 리바이벌해 부르며 꾸준히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소양강 처녀의 실존인물 여부를 둘러싸고 재밌는 얘기도 많다.작사가인 반야월 선생이 노래를 배우려고 사무실을 찾은 춘천출신 처녀 윤기순(당시 18세)씨를 모델로 했다는 설에서부터,그냥 사무실에서 문득 떠오르는 영감으로 곡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측까지,노랫말을 놓고 확인할 길 없는 얘기가 무성하다. 실존인물이 있다는 얘기는 춘천출신 처녀 윤씨가 반야월 선생 일행을 춘천 소양강가 자신의 집으로 초청,강에서 조각배를 타고 지금의 중도섬으로 들어갔다가 비바람이 몰아친 뒤의 소양강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즉석에서 작사했다는 것이 사실처럼 전해지고 있다.윤씨는 지금도 살아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노랫말 가운데 당시 소양강에는 갈대가 없었고,두견새도 물새가 아닌 산새라는 점 등을 들어 반야월 선생이 현장을 보지 못하고 써내려갔던 것이 아닌가 의문을 남기고 있다. 또 소양강 처녀 노래가 나오기 1년전쯤 ‘춘천댁 사공’이라는 노래가 인기 순위 상위를 오르내렸다는 점에서 실존인물이 있는 춘천댁 사공을 듣고 영감을 얻어 썼을 것이라는 설까지 분분하다.그만큼 소양강 처녀가 수십년동안 국민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춘천댁 사공의 노랫말을 직접 썼던 강원도예총회장 배동욱(70·시인)씨는 “소양강에서 멱감으며 놀던 때가 눈에 선하다.”며 “가사 내용에 다소 흠이 있고 당시 정황과 맞아떨어지지 않더라도 소양강 처녀라는 고유명사가 수십년간 국민들 사이에 인기를 끄는 것은 무척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노랫말에 얽힌 사연쯤이야 아는지 모르는지,지금의 소양강은 노랫말이 나올 당시와 많이 달라진 모습으로 흐르고 있다. 당시에는 의암댐이 만들어진 직후,지금처럼 의암호가 형성되지 못했던터라 중도섬을 가운데 두고 서쪽으로는 화천강을,동쪽으로는 소양강이 분리돼 흘렀던 시절이다.그뒤 소양강댐이 만들어지고 지금처럼 거대한 의암호가 조성돼 당시 분위기가 많이 퇴색했다.더구나 최근 들어 강가에는 거대한 교각이 놓여지고 우뚝한 아파트단지가 경쟁하듯 솟아 그때의 모습은 찾을 길 없다.하지만 서면 산위로 하루해가 넘어가는 황혼녘의 소양강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소양강 처녀를 추억하기 위해 뒤늦게 춘천시가 소양강변에 ‘소양강 처녀’ 노래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노래까지 감상할 수 있도록 음향시설도 설치한다니 격세지감이다.주변에 시민의 숲까지 만들어 시민공원으로 꾸며 놓겠다니 소양강 처녀가 춘천에서 다시 살아날 것만 같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
  • KBS 드라마 ‘백설공주’ 주인공 연정훈

    “제 스스로 제 연기에 점수를 매긴다면 50점도 채 안됩니다.완전 낙제죠.차근차근 노력하면 언젠가는 100점 맞을 날이 오지 않을까요?” 데뷔후 첫 드라마 주연을 거머쥔 ‘일편단심 보이’ 연정훈(26)이 바람둥이 ‘선수’로 변신,안방극장 시청자들을 찾아간다.KBS 미니시리즈 ‘낭랑18세’ 후속으로 15일 첫 방송되는 ‘백설공주’(극본 구선경,이선영 연출 이재상)에서 여자를 밝히는 날라리 아나운서 ‘한진우’역.사랑은 많을 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그는 솔직담백한 ‘투포환 소녀’ 마영희(김정화)로부터 10년간 짝사랑을 받지만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대신 성형미인 장희원(오승현)에게 호기심을 갖고 자신을 향한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지난 99년 SBS 드라마 ‘파도‘로 데뷔한 연정훈은 잘 알려진대로 중견 탤런트 연규진의 아들.“솔직히 말해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 아버지의 유명세가 큰 부담이 돼요.‘아들인 나도 그만큼 잘해야 되는데….’하고 자책할 때가 많죠.”아버지의 명성이 오히려 연기에는 마이너스가 된다며 웃음짓는다. “‘신인이 너무 빨리 커나가는 것 아니냐.’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사실 데뷔 5년차의 ‘중고 신인’이거든요(웃음).연기자가 되기 위해 나름대로 오랜기간 준비했답니다.”그는 지난 연말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일일연속극 ‘노란 손수건’에서의 연기력을 공인 받은 것.평생 잊을 수 없는 작품이란다. “극한 상황에서 우는 연기를 마친 뒤 카타르시스를 느껴봤어요.이제야 연기의 맛을 조금쯤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연기를 평생 직업으로 삼으려하지만,전공(제품디자인)을 살려 자신만의 브랜드로 사업도 해보고 싶단다. “성격상 누구에게 의존하는 걸 싫어해요.연기자의 길도 아버지의 엄청난 반대를 극복하고서야 가능했죠.” 영원히 기억에 남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그.자신의 말마따나 아버지보다 더 유명한 배우로 우뚝 설 수 있을지 새 드라마속 역할이 기대된다. 이영표기자 tomcat@˝
  • 새달 부활절 앞두고 세편의 대작 공연 잇따라

    기독교의 부활절(復活節)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다.부활절은 해마다 조금씩 날짜가 달라지는데 올해는 4월11일이다.올해 부활절에는 어느 해보다 교회 밖의 기념행사가 성대하다.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주제로 한 3편의 공연이 부활절을 앞두고 관람객을 찾는 것.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서양음악의 뿌리를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바흐의 마태수난곡 ‘음악의 아버지’라는 바흐는 교회음악가였다.최대 걸작의 하나로 꼽히는 ‘마태수난곡’도 그가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 칸토르(음악감독)로 재직하던 시절 부활절을 맞아 연주하려고 작곡했다.‘마태수난곡’이란 ‘신약성서’의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수난 이야기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이번에 내한하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 합창단도 서양 클래식 음악의 근원에 해당한다.1212년부터 역사가 시작됐다는 성 토마스 합창단은 1729년 ‘마태수난곡’을 초연했다.8세에서 18세에 이르는 80여명의 소년으로 이루어졌다. 1743년 결성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관현악단이다.작곡가 멘델스존이 잊혀졌던 ‘마태수난곡’을 1829년 100년 만에 ‘부활’시킨 악단이다. 이들이 세종문화회관 재개관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16∼17일 오후 7시30분 대극장에서 ‘마태 수난곡’을 연주한다.지휘는 성 토마스 합창단의 제16대 칸토르인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빌러.복음사가 역의 테너 마르틴 페촐트 등 5명의 솔로이스트도 함께 온다.2부 78곡을 연주하는데 3시간이 걸린다.(02)599-5743. ●탄둔의 신 마태수난곡 탄둔은 중국의 현대음악 작곡가로 2000년에는 영화 ‘와호장룡’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모티브로 한 그의 ‘신(新) 마태수난곡-워터 패션(Water Passion)’은 통영국제음악제 참가작.26일 오후 7시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먼저 공연한 뒤 28일 오후 6시 서울 LG아트센터를 찾는다. 탄둔은 이 곡을 “마태수난곡을 기초로,예수의 삶을 이야기하는 음악 철학이자 드라마”라고 주장한다.임신한 아내의 뱃속에서 유영하는 태아의 모습에서 들은 순간적인 ‘물의 소리’가 바로 예수의 부활을 의미하는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티베트 승려의 염불과 발리 힌두교의 가믈란 등 동양음악적 소재를 최대한 이용한다.여기에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을 문화혁명 당시 중국민중의 고통과 굴욕에 연결지어 또다른 차원의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물방울을 떨어뜨려 소리를 내는 퍼포먼스적 요소를 갖춘 이번 공연에는 베이스 스티븐 브라이언트,소프라노 낸시 알렌 런디,바이올린 제니퍼 고,첼로 크리스티나 쿠퍼,워터 퍼커션 후지이 하루카,국립합창단이 참여한다.지휘는 탄둔.(02)2005-0114. ●무용극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육완순이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현대무용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린 것이 1973년이다.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록 오페라라는,당시로서는 새로운 장르로 발표한 지 불과 3년 뒤의 일이다.이후 32년 동안 크리스마스가 되면 무대에 올려지곤 했지만,이번에는 부활절로 날짜를 잡았다.역시 세종문화회관 재재관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아 19일 오후 7시30분 대극장에서 공연한다.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이전 6일 동안의 이야기를 격렬한 록비트와 이해하기 쉬운 춤사위에 실었다.(02)3705-6000. 서동철기자 dcsuh@˝
  • [9일 TV 하이라이트]

    ●생로병사의 비밀(오후 10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물요법은 사용 목적에 따라 한가지 효과만을 가져온다.그러나 운동은 여러 효과를 동시에 낼 수 있어 약보다도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적절한 운동은 병의 개선뿐만 아니라,체력까지 좋아지게 한다.효과적인 운동에 대한 여러가지 궁금증을 풀어본다. ●낭랑18세(오후 9시50분) 정숙과 혁준이 안동으로 내려오고 종찬까지 따라오자 선아는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권화당 앞에서 종찬은 선아를 달라고 말하고,서울로 올라가려는 종찬을 선아는 주저앉힌다.이제 종가를 지킬 준비를 하라는 숙부의 말에 혁준은 마음이 무거워지고,정숙은 먼저 안동으로 내려오자고 말한다. ●인간시장(오후 9시55분) 사채업자 양 사장은 유기하 회장에게 약속대로 돈을 전달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기하는 냉정한 눈빛으로 양 사장을 쳐다보고,양사장은 다시 돈을 구하기로 한다.양 사장의 부하들은 먼저 총찬을 없애려 하지만 총찬은 위기서 벗어난다.하지만 천생배필로 여기는 오다혜가 위기에 처했음을 안다. ●실제상황(오후 10시50분) 216명의 여자이름과 알 수 없는 암호가 적힌 수첩을 들고 경찰서를 찾은 두 여자.이들은 남편이 216명의 여자와 간통을 했다며 고발하고,형사들은 진실을 밝히려 간통 현장으로 달려간다.216명의 여자와 희대의 카사노바.과연 그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생방송 60분(오전 10시)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난 부부는 고부와 장모 등과의 갈등을 야기한다.서로 다른 가족 환경,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두 개체가 만난 만큼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다.상대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다름을 인정하면서 가족간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정보특종(오후 3시20분)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등으로 농민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여기에 농민이 주인인 농협이 농민의 어려움을 나몰라라 하고 방만한 경영을 하고 있다고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전국으로 확산되는 농협 불신임 현상의 이유와 농협이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한 과제를 살펴본다. ●아주 특별한 아침(오전 8시) 성 매매는 전통적인 윤락가는 물론이거니와,인터넷 등을 통해서도 우리 곁을 은밀하게 파고든다.얼마전 성 매매 피해 여성이 업주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한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우리 사회가 어떻게 여성을 성 상품화하고 있는지 실태를 알아보고 해결책을 진단한다.˝
  • 40년대 문화계 ‘요정’ 김향안 여사 별세

    시인 이상(李箱·1910∼1937)의 아내였고 화가 김환기(金煥基·1913∼1974)의 미망인인 김향안(金鄕岸,본명 변동림)여사가 지난달 29일 뉴욕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88세. 장례식은 지난 3일 아들 김화영 환기미술관 이사장 등 가족과 지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고,유해는 뉴욕 근교 웨스체스터의 공동묘지에 있는 김환기 화백 묘소 옆에 안장됐다. 화가 구본웅의 이복동생으로,경기고녀와 이화여전 영문과를 나온 김 여사는 수필가로도 필명을 날렸으며 재능과 미모로 한때 문화계에서 ‘요정’ 대접을 받은 여성이다.1936년 18세 때 오빠 구본웅의 친구인 이상을 만나 동거하다 그가 27세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날 때 임종을 했다.1944년 5월 김 화백과 재혼했고 60년대 중반 뉴욕에 정착했다.1974년 김 화백이 사망한 후 함께 생활했던 뉴욕의 아파트에서 유작과 유품을 돌보며 살았던 김 여사는 1992년 서울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건립했다. 김종면기자 jmkim@˝
  • 말말말˙˙˙

    한국 근대소설의 뿌리는 18세기 후반 생긴 ‘소품문(小品文)’에 있다.이덕무·박지원 등에 의해 사용된 소품문이 1910년대 현상윤 등의 단편 서사를 탄생시켰으며,1920년대 이광수·김동인·염상섭 등의 근대 소설을 낳았다.-국문학자 우정권씨,한국 근대소설의 뿌리를 설명하면서-˝
  • 뱅헤어로 예뻐지자

    ‘뱅 헤어 전성시대,그녀들처럼 예뻐지자!’ 1950년대 영화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햅번의 머리 스타일을 기억하는가.왕국의 긴 머리 공주에서 이마의 반만 가릴 정도로 앞머리를 짧게 자르고 발랄한 소녀로 변신한 그녀.일명 ‘햅번 스타일’로도 불리던 ‘뱅 헤어’는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되면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숱많은 뱅 헤어 단발머리를 한 귀여운 싱글 장진영 스타일을 만들어낸 이희 원장(이희 헤어&메이크업)은 “뱅 헤어는 어려보이는 데다 세련되고 활용법이 다양해 여성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시원하게 자른 앞머리는 활동적으로 보여 적극적인 여성들에게 사랑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럼 2004년의 뱅 헤어는? 올해는 한마디로 ‘뱅 헤어의 혼돈기’다.지난해 인기였던 풍성하고 무거운 느낌의 뱅 헤어부터 앞머리 길이를 일자형으로 맞춘 원랭스 뱅 헤어,앞부분과 양쪽눈썹을 살짝 덮는 길이의 뱅 헤어,옆으로 빗어넘긴 뱅 헤어 등 변화무쌍하다.그동안 뱅 헤어를 할까 망설이고 있었다면 좋은 기회,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 멋지게 꾸며보자. ●스타스타일 따라하기 황신혜는 MBC드라마 ‘천생연분’에서 짧게 자른 앞머리를 옆으로 빗어넘겨 40대의 그녀를 젊게,아니 아주 어리게 만들었다.오죽하면 그녀의 귀여움에 녹아버린 남성들이 ‘20대 조정린보다 40대 황신혜를 선택하겠다.’고 했을까. 종영을 앞둔 SBS ‘발리에서 생긴 일’의 하지원은 일자로 빗어내린 단정한 뱅 헤어로 당당하고 활동적인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다.‘햇빛 쏟아지다(SBS)’의 송혜교도 같은 스타일의 뱅 헤어로 그동안의 청순한 여인의 모습에서 강인한 모습의 여성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18세 소녀 가수 보아는 한 CF에서 뱅 헤어로 성숙한 여성미를 뿜어내고 있고,KBS2 ‘낭랑18세’의 한지혜는 살짝 층을 낸 앞머리를 자연스럽게 내리고 뒷머리를 높이 묶어 귀여운 스타일을 연출했다. ●나도 한번 해보자 모든 일이 그렇듯 잘하면 세련되고,잘못하면 촌스럽다.뱅 헤어도 내 스타일을 알고 잘 하면 황신혜도 되고 송혜교도 되지만,잘못하면 바가지 머리 ‘옥동자’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할 것. 강렬해 보이게 층진 뱅 헤어로 ‘2004 로레알 컬러트로피’ 대상을 수상한 헤어디자이너 하희정(고정현헤어)씨는 “무조건 앞머리를 싹둑 잘라버리는 것은 얼굴을 길고 통통하게 강조할 수 있다.”며 “자신의 얼굴형에 맞춰 변화를 주는 것이 뱅 헤어 연출의 포인트”라고 조언했다. 긴 얼굴은 앞머리 길이가 눈썹에 걸릴 정도로 길고 풍성하게 하는 게 얼굴이 작아보인다.앞머리를 옆으로 넘기면 긴 얼굴이 더욱 길어 보인다. 턱이 뾰족한 역삼각형 얼굴은 눈썹 위까지만.짧게 층진 앞머리는 부드러운 인상을 주지만 앞머리가 길어지면 드세보인다. 둥글고 통통한 얼굴은 삐죽삐죽 층을 많이 준 앞머리로 귀여움을 강조한다.눈썹을 덮는 반듯한 일자머리는 답답하다.옆머리를 층지게 잘라 살짝살짝 얼굴을 가려주면 얼굴이 갸름해지는 시각 효과도 있다. 네모난 얼굴도 마찬가지다.얼굴선을 따라 옆으로 흐르는 앞머리를 하면 각진 턱선이 어느정도 커버된다.일자형 뱅 헤어는 강한 턱선을 강조할 뿐. 둥글거나 네모난 얼굴에는 긴 생머리보다는 굵은 웨이브가 들어간 머리가 더욱 매력적이다. 최여경기자 kid@˝
  • 무슨 영화 볼까

    ● 태극기 휘날리며 장르/예매율 전쟁액션/56.4%(15세) 감독/배우는강제규/장동건·원빈·이은주·공형진 어떤 줄거리 6·25전쟁을 배경으로 ‘전우’가 돼버린 형제. 이래서 좋아 ‘실미도’를 보며 흐느꼈다면,이번엔 펑펑 울지도…. 이래서 별로 기교없이 단선적인 드라마 전개. 홈피 반응은 “국제경쟁력을 갖춘 전쟁영화” ●빅 피쉬 (5일 개봉) 장르/예매율팬터지 드라마/13.0%(12세) 감독/배우는팀 버튼/이완 맥그리거·알버트 피니·제시카 랭 어떤 줄거리죽음 직전의 아버지와,평생 그를 신뢰하지 않던 아들의 화해기. 이래서 좋아동화책에서 퍼낸 듯 아기자기한 팬터지 화면. 이래서 별로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상상인지 아리송하네∼ 홈피 반응은“…” ●그녀를 믿지마세요 장르/예매율로맨틱 코미디/5.9%(12세) 감독/배우는배형준/김하늘·강동원 어떤 줄거리사기꾼 여자가 약혼자로 둔갑해 벌어지는 사건. 이래서 좋아꼬리를 문 거짓말이 엮는 웃음에다 잔잔한 감동까지. 이래서 별로상황설정이 너무 작위적인데… 홈피 반응은”웃음과 감동이 조화된 깔끔한 영화” ●사마리아 장르/예매율드라마/4.8%(18세) 감독/배우는김기덕/곽지민·서민정·이얼 어떤 줄거리딸의 원조교제 사실을 안 아버지, 화해를 모색. 이래서 좋아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에 걸맞는 밀도높은 연출력 이래서 별로구원의 메시지가 알듯 모를듯…. 홈피 반응은“존재와 구원을 생각하게…” ●목포는 항구다 장르/예매율코믹액션/4.7%(15세) 감독/배우는김지훈/조재현·차인표·송선미 어떤 줄거리형사와 조폭두목이 나누는 진한 형제애. 이래서 좋아‘깔끔남’ 차인표의 호남사투리. 이래서 별로서울형사가 지방조폭이 되는 비현실적인 스토리. 홈피 반응은“차인표씨 연기 예술입니다.” ●실미도 장르/예매율액션드라마/4.7%(15세) 감독/배우는강우석/설경구·안성기·정재영·임원희 어떤 줄거리북파 공작부대원들의 실화를 복원한 영화. 이래서 좋아설경구의 검증된 연기력,정재영의 업그레이드된 연기력. 이래서 별로지나치게 신파적인 느낌. 홈피 반응은“실미도 부대원들의 명복을 빕니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장르/예매율로맨틱 코미디/4.7%(15세) 감독/배우는낸시 마이어스/잭 니콜슨·다이앤 키튼·키애누 리브스 어떤 줄거리플레이보이,새 파트너의 엄마를 사랑하다. 이래서 좋아잭 니콜슨이 구사하는 능청맞은 중년의 로맨스 이래서 별로 사랑을 쉽게 포기해 개연성이 약해지는 드라마. 홈피 반응은 “…” ● 8명의 여인들 장르/예매율코믹스릴러/3.1%(15세) 감독/배우는 프랑수아 오종/카느린 드뇌브·이자벨 위페르·뤼디빈 사니에 어떤 줄거리폭설에 갇힌 별장,여덟명의 여인 중 살인범은? 이래서 좋아프랑스의 대표미인들 죄다 모였네. 이래서 별로별장을 못 벗어나는 따분한 상황극. 홈피 반응은“멋진 반전,막판의 잔잔한 감동” ˝
  • [아하 그렇구나] 폐인VS 정인VS 중독

    ‘발리폐인’‘낭폐’‘사말정인’‘필립중독’…. 요즘 TV드라마 홈페이지나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시청자 ‘폐인’(嬖人·사랑하는 사람·마니아)들의 자존심 대결이 뜨겁다.방송가에서 “TV 인기드라마는 ‘폐인’들이 만든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나올 판이다.그도 그럴 것이 최근 드라마들은 하나같이 ‘폐인’들의 강력한 후원에 힘입어 시청률 경쟁을 벌인다.SBS ‘발리에서 생긴 일’의 ‘발리폐인’,KBS ‘낭랑18세’의 ‘낭폐(낭랑+폐인)’,‘MBC ‘사랑한다 말해줘’의 ‘사·말+정인(情人)’,SBS ‘햇빛 쏟아지다’의 ‘필립(주인공 조현재의 다른 이름)중독’ 등이 그것. 이들의 파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대본의 흐름이나 주인공의 운명을 바꾸거나,연장방영 또는 조기종영을 유도하는 등 ‘네티즌 권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드라마 내용 가운데 귀신같이 ‘옥의 티’를 찾아내 제작진의 공개사과를 이끌어내기도 한다.실제로 과거 ‘올인’과 ‘상두야 학교가자’의 경우 종영을 앞두고 ‘주인공을 살려달라’는 드라마 팬들의 요구로 결말이 180도 바뀌었다.‘폐인’들의 제작참여 행태는 갈수록 다양하고 지능화되는 추세다.최근 주인공 하지원의 극중 이름을 딴 ‘수정일보’를 발간하기도 한 ‘발리폐인’들은 자체적으로 만든 대본을 게시판에 올려 제작진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다른 ‘폐인’들도 마찬가지. “서버 폭주 할 때까지 연장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합시다!지문이 닳아 지도록!딱 6부만이라도 더 늘려 주세요!”(아이디 ‘오누리’-‘낭랑 18세’게시판)“윤소이의 사각턱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많은데,얼굴 신을 찍을 때 정면은 피하고 약간만 돌려서 찍으면 얼굴의 단점이 가려지지 않을까요?”(아이디 ‘김은정’-‘사랑한다 말해줘’게시판) 이쯤되니 드라마 제작진은 폐인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노릇.‘발리‘의 이명우(34)PD는 “드라마의 인기와 시청률을 좌우하는 ‘폐인’들의 의견을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칭찬이건 비판이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제작진들이 더욱 활력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
  • [열린세상] 대학생의 선거권 보호/박상기 연세대 법대학장

    사회는 대학생에게 성년보다 더 지성적인 모습을,그리고 더 모범적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그러면서 정작 그들에게 주는 권리는 가능한 한 제한하려고 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4·15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다시 대학 내 투표소 설치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2002년 대통령 선거 때도 전국의 대학생들이 대학 내 부재자 투표소 설치를 요구하였다.그러나 논란 끝에 결국 지방의 대구대와 연세대,서울대 등 3개 대학에만 설치되어 운영된 적이 있다. 이번 총선에서 대학 내 부재자 투표소 설치에 대하여 중앙선관위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하였고,정치권에서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비롯하여 각 당이 이에 반대하지 않았다.그런데 뒤늦게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대학 내 부재자투표소 설치를 반대하고 나서 문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국민이 갖는 참정권은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그러므로 본질적인 제한 사유가 없는 한 반드시 지켜지고 보호되어야 하는 권리이다.이를 제한할 수 있는 형식적인 이유가 비록 법률에 규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앞설 수는 없다.또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상 규정된 부재자신고 요건도 완화되어야 한다.정치권에서 다른 지역에서 유학중인 대학생의 투표참가를 가로막는 부재자 투표소 설치에 반대하는 것은 정치적 이해타산의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젊은 층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이러한 당론을 정하였다면 어떠한 논리로도 설득력이 없다. 선거란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제도이고 국민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식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선거제도는 사회변화에 맞는 방향으로 개선되지 못한 부분이 많다.대학생의 정치활동이나 선거연령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선진국의 경우 대학 내에 정당의 청년조직이 결성되어 정치적 의사형성을 위한 훈련을 일찍부터 하고 있다.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 학생의 정치활동을 마치 학원을 오염시키는 반교육적 활동으로 매도하는 분위기이다.그러나 학생들의 정치교육은 매우 중요하다.우리 정치권이 너무 오염되어서 혐오의 대상이 되었지만 정치 자체를 혐오스러운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잘못이다.오히려 이러한 정치혐오증이야말로 부패정치인이 생존할 수 있는 토양만을 제공해줄 뿐이다. 기성 정치인을 바꾸는 방법으로 정치권 물갈이가 주장되고 있다.그리고 총선연대에서 공천반대자 명단을 발표하여 논란을 일으키고 있기도 하다.한편으로는 오죽 정치권 정화욕구가 강하면 시민단체가 이러한 행동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간다.그렇지만 진정한 세대교체는 대학시절부터 정치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차세대 정치인을 양성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학생의 정치활동이 활발하여지더라도 요즈음 대학생들이 너도 나도 정치에 뛰어들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개성이 강한 세대이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외면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선거연령도 현행 20세에서 19세 정도로 낮추어야 한다.우리 민법상 법적인 성년은 20세이다.이것은 반세기 전 사회 환경이나 신체발육 상태가 지금보다 현저하게 열악하던 시절에 제정된 규정이다.현재 대학 1학년생의 경우 나이가 만 20세가 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그리고 선진국의 경우 대부분 18세를 성년 연령으로 규정하고 투표권 역시 18세부터 인정하고 있다.우리의 경우 선거 때마다 선거연령 인하문제가 제기되는데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이것 역시 한나라당의 이해득실에 따른 판단의 결과라고 본다. 사회는 대학생에게 성년보다 더 지성적인 모습을,그리고 더 모범적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그러면서 정작 그들에게 주는 권리는 가능한 한 제한하려고 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대학생들에게는 오히려 선거참여를 독려하고,더 정치적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투표를 하도록 함으로써 국민으로서 성숙된 정치의식을 갖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반면에 사소한 법 규정 때문에 중요한 선거에 참가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정치적 무관심을 확산하고,이들의 정치적 성숙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박상기 연세대 법대학장˝
  • [하프타임] 고졸선수 프로농구 진출 가능

    내년부터는 고교 졸업 예정 선수도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다.한국농구연맹(KBL)은 국내 신인선수 자격을 ‘고교 졸업 예정자’로 확대하고,법인 명칭을 ‘KBL’로 통일하는 것을 골자로 한 규약 및 정관 개정안이 문화관광부의 승인을 받았다고 2일 밝혔다. 외국인선수 역시 신인 드래프트 참가자격 제한 연령을 종전 21세에서 18세로,학력을 ‘고교 이상의 학력자’로 완화했다.올해까지 국내 신인 드래프트 신청자격은 4년제 대학 3년 이상 수료자 또는 2년제 대학 수료자,고교 졸업자 중 1년 이상 경과자로 제한돼 있었다.이에 따라 내년부터 국내에서도 미국프로농구(NBA) ‘슈퍼루키’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처럼 고교 졸업 후 막바로 프로에 진출하는 선수를 볼 수 있을 전망이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8)조선족의 뿌리를 찾아서(하)

    문:중국의 노예로 살아야 했던 조선인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徐:당시 청나라는 계속된 전쟁으로 만주족의 인구가 크게 감소되었지요.대부분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살다 보니 농사 지을 일손이 부족하여 토지가 황폐해졌지요.전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무기만큼이나 양식이 필요했는데,그 농사를 짓기 위해 포로가 필요했지요. 그 포로들을 농장 노예로 만들어 중노동을 시켰는데,조선인들은 주로 심양 부근인 동주보(東州保),둔소(屯所),안산(鞍山),흥경,청룡,풍윤(豊閏) 지역에 집중배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조선인 노예들은 뒷날 어떻게 처리되었을까요? 徐:민족동화 과정을 거쳐 만주적(滿洲籍)에 편입되어 귀화인이 되었는데,만주씨족통보(滿洲氏族通譜)에 올라 만주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문:청나라 포로가 된 조선인은 모두 노예가 되었을까요? 徐:소수지만 군인,지도층에 편입된 흔적도 있지만 대개는 농장노예,만주족 귀족의 노비가 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문:조선인 포로를 분산시키거나 나누어 가졌다는 말인데,혹 인신매매도 있었을까요? 徐:‘심관록’에 그런 기록이 남아 있어요.이 문헌은 심양으로 끌려 온 조선의 두 왕자가 청나라 군인들에게 포위된 채 살았던 처소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조선인들이 노예로 매매되었거나 포로 가족이 돈을 가져 와서 주고 데려가는 속환(贖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요. 문:노예라면 상품으로 매매,양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말합니다.고대 오리엔트,고대 그리스·로마,식민지시대 아메리카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지요.노예무역선,노예사냥,미국의 흑인노예라는 말이 그 증거지요.그런데 조선인 전쟁포로가 노예로 매매되었으며,그들이 조선족의 원류이고,오늘날 한국에 노동자로 와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 속에 그런 비극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는 것은 퍽 충격적인 일입니다. 徐:심관록 기록을 그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청나라 사람들은 포로가 된 사람들을 매매하려고 모여들었다.성문 밖에는 포로가 된 남녀 수만 명이 있었다.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상봉하였거나 형제끼리 서로 만나 끌어 안고 통곡하는 데 울음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잡혀간 사람을 돈을 주고 찾아가기 위하여 날마다 성문 밖에 모였다.포로가 되어 있는 자의 부모나 아내 또는 자식들이 와서 얼마면 데려갈 수 있겠느냐고 가격을 흥정하는데,값이 비싼 경우는 백냥 또는 천냥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값이 너무 높아 어이없어 통곡하면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을 데리러 올 친척이 없어 홀로 있는 사람은 세자(世子) 관소(館所)에 찾아와서 속환시켜 달라고 울고 있으니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문:세자라면 누구를 말합니까? 徐:조선 인조대왕의 큰아들 이조(소현세자),둘째아들 이호(봉림대군,효종)입니다.병자호란 때 치욕적인 패배를 한 조선의 두 왕자를 인질로 데려왔거든요.노예로 매매당할 가혹한 운명에 놓여진 조선인들이 왕자들의 처소 울타리 밖에서 살려 달라고 호소했지요.두 왕자는 노예로 팔려가는 조선인들의 절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무 도움도 못주는 자신들의 처지를 아파하면서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오늘날 중국 조선족 역사에는 이같은 노예 역사의 슬픔이 숨겨져 있습니다. 문:그렇다면 조선인의 중국 이민사를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으로 여기는 견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徐:18세기 후반 이전에 중국으로 온 조선인들 대부분이 중국으로 귀화해 버렸기 때문에 조선인으로 부를 수 있는 구체적인 사람이 없었다는 이유일 것입니다. 문:귀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徐:앞에서 잠시 말씀드렸듯이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느라 만주족이 급격하게 감소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인구를 증가시키고,군인이 될 인원을 보충하며,노예 농장을 확대하기 위해서였습니다.그런 나머지 만주인 호적에 편입될 사람을 모집하는 정책을 발표하며,편입자 숫자대로 상을 주는 제도가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초기에는 조선인들에게 강압적으로 귀화를 시켰지요.그런 연후에 조선인들은 비참한 처지를 벗어나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하여 스스로 귀화하고 만주호적자 모집에 순응하는 자연적 귀화과정을 밟았지요. 헤이룽장조선민족이란 문헌에는 청나라 초기에 만주적에 가입한 조선인의 성씨가 42개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이들의 선조는 대부분 천총(天聰) 연간인 1627∼1635년에 청나라로 온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문:그러니까 17세기 초·중엽에 이미 조선인들은 국적을 바꾸어 청나라 사람이 되고 만주 씨족에 올라 만주인이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徐:설혹 그런 식으로 귀화를 하지 않고 버틴다 하더라도 오래 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조선인이 다른 민족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고,이같은 통혼을 기초로 하여 혈연관계와 친척관계를 맺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민족에게 겹겹으로 포위되어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 조선족의 처지임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북성 청룡현 박씨(朴氏) 조선족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이 박씨들의 조상은 명나라 말 청나라 초에 중국으로 왔는데 동성동본 불혼 제도를 대대로 이어받았다 합니다. 문:한족,몽골족,만주족으로 국적을 바꾼 사람들은 그 뒤로 조선족으로의 회복이 영영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徐:아닙니다.심리적으로는 자신들이 조선인이라는 민족의식이 매우 강하게 존속되어 왔습니다.그러다가 1982년부터 조선족으로 고쳐서 조상이 남겨 둔 민족성을 회복한 사람이 많습니다. 조선 말에서 20세기 일제 때 중국으로 와서 조선족으로 분류된 이들에게 조선은 아직도 그리운 고향입니다.참,마음이 아픕니다. 문:일제 때 두만강,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올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들 중에서도 해방 후 고향으로 가지 못한 채 조선족이 된 사람도 있습니까? 徐:아주 많습니다.우리 민족을 갈라 놓은 것은 공산주의자들보다 먼저 일왕(日王)정권이었지요.한반도의 남과 북은 통일이 되면 그날로 하나가 되겠지만 중국 조선족은 다르겠지요.그러니 일제의 식민통치는 중국 조선족에게는 치유될 수 없는 원한의 상처지요. 문: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인 카레이츠들의 삶을 둘러 볼 기회가 여러번 있었습니다.특히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의 지방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하바로프스크 같은 도시의 장마당이라 부르는 난전에서 조선족 장사꾼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그들은 국경의 세관에서 비자를 받고 러시아로 오는데,주로 옷장사를 하더군요.하지만 한달간씩 머물며 장사를 해도 체재비를 빼면 남는 것이 없거나 손해를 보기 십상이라 했습니다.그런 그들이 한결같이 꿈꾸는 것은 한국에 가서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만,요즘 한국에 온 조선족들의 처지가 참 어렵습니다. 러시아의 카레이츠들보다 중국의 조선족 운명이 더 암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둘 다 우리 민족이 안고 사는 슬픔의 뿌리인데…. 徐:한국이 잘 살게 되어야 합니다.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잘 살게 되어야만 이 아픔의 역사가 통한과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의 조선족,러시아의 카레이츠,일본의 조센징은 모두 350만명 정도라고 한다.이들의 삶을 생각하기 위하여 ‘동북아평화연대’등의 모임이 생겨나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조선족,고려인들은 사는 데 어려움이 크다. 그 어려움의 한 원인이 일본의 식민통치가 저지른 잘못이며,식민통치가 옳았다는 발언을 하는 일본의 정치지도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여전히 친일파 지식인들이 숭배되기도 한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8)조선족의 뿌리를 찾아서(하)

    문:중국의 노예로 살아야 했던 조선인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徐:당시 청나라는 계속된 전쟁으로 만주족의 인구가 크게 감소되었지요.대부분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살다 보니 농사 지을 일손이 부족하여 토지가 황폐해졌지요.전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무기만큼이나 양식이 필요했는데,그 농사를 짓기 위해 포로가 필요했지요. 그 포로들을 농장 노예로 만들어 중노동을 시켰는데,조선인들은 주로 심양 부근인 동주보(東州保),둔소(屯所),안산(鞍山),흥경,청룡,풍윤(豊閏) 지역에 집중배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조선인 노예들은 뒷날 어떻게 처리되었을까요? 徐:민족동화 과정을 거쳐 만주적(滿洲籍)에 편입되어 귀화인이 되었는데,만주씨족통보(滿洲氏族通譜)에 올라 만주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문:청나라 포로가 된 조선인은 모두 노예가 되었을까요? 徐:소수지만 군인,지도층에 편입된 흔적도 있지만 대개는 농장노예,만주족 귀족의 노비가 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문:조선인 포로를 분산시키거나 나누어 가졌다는 말인데,혹 인신매매도 있었을까요? 徐:‘심관록’에 그런 기록이 남아 있어요.이 문헌은 심양으로 끌려 온 조선의 두 왕자가 청나라 군인들에게 포위된 채 살았던 처소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조선인들이 노예로 매매되었거나 포로 가족이 돈을 가져 와서 주고 데려가는 속환(贖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요. 문:노예라면 상품으로 매매,양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말합니다.고대 오리엔트,고대 그리스·로마,식민지시대 아메리카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지요.노예무역선,노예사냥,미국의 흑인노예라는 말이 그 증거지요.그런데 조선인 전쟁포로가 노예로 매매되었으며,그들이 조선족의 원류이고,오늘날 한국에 노동자로 와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 속에 그런 비극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는 것은 퍽 충격적인 일입니다. 徐:심관록 기록을 그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청나라 사람들은 포로가 된 사람들을 매매하려고 모여들었다.성문 밖에는 포로가 된 남녀 수만 명이 있었다.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상봉하였거나 형제끼리 서로 만나 끌어 안고 통곡하는 데 울음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잡혀간 사람을 돈을 주고 찾아가기 위하여 날마다 성문 밖에 모였다.포로가 되어 있는 자의 부모나 아내 또는 자식들이 와서 얼마면 데려갈 수 있겠느냐고 가격을 흥정하는데,값이 비싼 경우는 백냥 또는 천냥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값이 너무 높아 어이없어 통곡하면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을 데리러 올 친척이 없어 홀로 있는 사람은 세자(世子) 관소(館所)에 찾아와서 속환시켜 달라고 울고 있으니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문:세자라면 누구를 말합니까? 徐:조선 인조대왕의 큰아들 이조(소현세자),둘째아들 이호(봉림대군,효종)입니다.병자호란 때 치욕적인 패배를 한 조선의 두 왕자를 인질로 데려왔거든요.노예로 매매당할 가혹한 운명에 놓여진 조선인들이 왕자들의 처소 울타리 밖에서 살려 달라고 호소했지요.두 왕자는 노예로 팔려가는 조선인들의 절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무 도움도 못주는 자신들의 처지를 아파하면서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오늘날 중국 조선족 역사에는 이같은 노예 역사의 슬픔이 숨겨져 있습니다. 문:그렇다면 조선인의 중국 이민사를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으로 여기는 견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徐:18세기 후반 이전에 중국으로 온 조선인들 대부분이 중국으로 귀화해 버렸기 때문에 조선인으로 부를 수 있는 구체적인 사람이 없었다는 이유일 것입니다. 문:귀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徐:앞에서 잠시 말씀드렸듯이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느라 만주족이 급격하게 감소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인구를 증가시키고,군인이 될 인원을 보충하며,노예 농장을 확대하기 위해서였습니다.그런 나머지 만주인 호적에 편입될 사람을 모집하는 정책을 발표하며,편입자 숫자대로 상을 주는 제도가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초기에는 조선인들에게 강압적으로 귀화를 시켰지요.그런 연후에 조선인들은 비참한 처지를 벗어나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하여 스스로 귀화하고 만주호적자 모집에 순응하는 자연적 귀화과정을 밟았지요. 헤이룽장조선민족이란 문헌에는 청나라 초기에 만주적에 가입한 조선인의 성씨가 42개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이들의 선조는 대부분 천총(天聰) 연간인 1627∼1635년에 청나라로 온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문:그러니까 17세기 초·중엽에 이미 조선인들은 국적을 바꾸어 청나라 사람이 되고 만주 씨족에 올라 만주인이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徐:설혹 그런 식으로 귀화를 하지 않고 버틴다 하더라도 오래 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조선인이 다른 민족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고,이같은 통혼을 기초로 하여 혈연관계와 친척관계를 맺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민족에게 겹겹으로 포위되어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 조선족의 처지임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북성 청룡현 박씨(朴氏) 조선족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이 박씨들의 조상은 명나라 말 청나라 초에 중국으로 왔는데 동성동본 불혼 제도를 대대로 이어받았다 합니다. 문:한족,몽골족,만주족으로 국적을 바꾼 사람들은 그 뒤로 조선족으로의 회복이 영영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徐:아닙니다.심리적으로는 자신들이 조선인이라는 민족의식이 매우 강하게 존속되어 왔습니다.그러다가 1982년부터 조선족으로 고쳐서 조상이 남겨 둔 민족성을 회복한 사람이 많습니다. 조선 말에서 20세기 일제 때 중국으로 와서 조선족으로 분류된 이들에게 조선은 아직도 그리운 고향입니다.참,마음이 아픕니다. 문:일제 때 두만강,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올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들 중에서도 해방 후 고향으로 가지 못한 채 조선족이 된 사람도 있습니까? 徐:아주 많습니다.우리 민족을 갈라 놓은 것은 공산주의자들보다 먼저 일왕(日王)정권이었지요.한반도의 남과 북은 통일이 되면 그날로 하나가 되겠지만 중국 조선족은 다르겠지요.그러니 일제의 식민통치는 중국 조선족에게는 치유될 수 없는 원한의 상처지요. 문: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인 카레이츠들의 삶을 둘러 볼 기회가 여러번 있었습니다.특히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의 지방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하바로프스크 같은 도시의 장마당이라 부르는 난전에서 조선족 장사꾼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그들은 국경의 세관에서 비자를 받고 러시아로 오는데,주로 옷장사를 하더군요.하지만 한달간씩 머물며 장사를 해도 체재비를 빼면 남는 것이 없거나 손해를 보기 십상이라 했습니다.그런 그들이 한결같이 꿈꾸는 것은 한국에 가서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만,요즘 한국에 온 조선족들의 처지가 참 어렵습니다. 러시아의 카레이츠들보다 중국의 조선족 운명이 더 암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둘 다 우리 민족이 안고 사는 슬픔의 뿌리인데…. 徐:한국이 잘 살게 되어야 합니다.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잘 살게 되어야만 이 아픔의 역사가 통한과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의 조선족,러시아의 카레이츠,일본의 조센징은 모두 350만명 정도라고 한다.이들의 삶을 생각하기 위하여 ‘동북아평화연대’등의 모임이 생겨나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조선족,고려인들은 사는 데 어려움이 크다. 그 어려움의 한 원인이 일본의 식민통치가 저지른 잘못이며,식민통치가 옳았다는 발언을 하는 일본의 정치지도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여전히 친일파 지식인들이 숭배되기도 한다.˝
  • 동양은 어떻게 서양을 계몽했는가/J J 클라크 지음

    우리는 흔히 서양이 동양을 계몽한 것으로 생각한다.하지만 ‘계몽’은 서양의 전유물이 아니다.서양의 지적 전통엔 동양사상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다.우리가 통상 서양 고유의 산물로 여겨온 서양철학과 예술,문화도 엄밀히 따져보면 서양 고유의 사상과 동양사상의 합작품임을 알 수 있다.영국 킹스턴대 교수인 J J 클라크가 쓴 ‘동양은 어떻게 서양을 계몽했는가’(장세룡 옮김,우물이 있는 집 펴냄)는 제목이 암시하듯 동양에 결정적인 빚을 지고 있는 서양의 철학자·예술가·과학자들의 사상세계를 다룬 책이다.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대표적인 중국예찬론자였다.예수회 선교사들로부터 공자를 배운 그는 훗날 ‘중국 고아’등 희곡과 ‘자디그(Zadig)’같은 철학소설을 써 유럽인들의 관습을 비판했다.또한 유교이념을 통해 앙시앙 레짐의 폭정을 고발하고 민중의 미신에 맞서 싸웠을 뿐 아니라 관용을 모르는 가톨릭 교회를 공격했다.볼테르는 유교를 독단적이지 않고 성직자도 없는 자비로운 종교의 꽃으로 보았다. 인도가 서양에 끼친 영향은 중국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칸트는 자신의 초월적 관념론이 인도철학과 맥이 통함을 발견했으며,그리스 문명과 문화의 옹호자를 자처한 괴테는 힌두교 성전 우파니샤드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불교와 힌두교에서 허무주의를 찾아낸 쇼펜하우어는 “우파니샤드는 세상에서 가장 유익하고 고상한 저서”라고 했고,힌두교에 매료된 프리드리히 셸링은 “인도인들의 신성한 텍스트가 성서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찬사를 보냈다.“나는 유럽의 부처가 될 것이다.”라고 한 니체.그는 동양철학을 전통 기독교를 파산시키는 도구로 이용했다. 동양이 서양을 계몽했다는 저자의 논지를 좇다보면 동양과 서양의 지적 정체성 자체에 의문을 갖게 된다.근대에 들어선 적어도 서구가 동양에 끼친 영향이 큰 것 아니냐는 주장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1만 4000원. 김종면기자˝
  • DNA활용 미아찾기 나선다

    경찰이 미아·실종자를 찾는 데 유전자(DNA) 데이터베이스(DB)를 활용하는 사업을 본격 추진키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미아·실종자 가족 등은 DNA 활용을 반기는 반면 시민단체 등에서는 유전자 정보가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찰청은 전국 3831개 경찰관서 경찰력을 집중 투입,향후 1년 안에 보호시설 내 무연고 18세 이하 아동의 유전자 DB를 구축,미아·실종자 찾기에 활용키로 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는 고건 국무총리 주재로 지난 14일 열린 미아·실종자 관계장관회의에서 경찰청이 이 사업을 주관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지난 13일 경찰청에서 열린 ‘미아·실종자 부모 간담회’에서도 DNA 활용 등 과학적 방법을 이용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시간이 흘러 얼굴과 체형이 바뀌고,18세가 돼 보호시설을 퇴소하면 사실상 무연고 아동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유전자정보 활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경찰은 단계적으로 정신지체 장애인과 치매노인까지 유전자 DB를 구축할 계획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유전자정보 활용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이 성급하게 사업을 추진해 자칫 인권침해의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참여연대 한재각 시민권리팀장은 “미아·실종자 문제의 시급성은 인정하지만 유전자 DB구축이 유일한 해결책인지는 의문”이라면서 “유전자정보가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공론화 과정없이 급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택동기자 taecks@˝
  • [23일 TV 하이라이트]

    ●한민족 리포트(밤 12시) 서양문학의 뿌리 속에 동양의 문학을 알린 한국 비교문학자 이상경.‘차이코프스키 음악 계보의 4대 작곡가’로 구소련의 음악가 사전에 올라 있는 한국인 작곡가 정추.핵물리학의 비밀을 한꺼풀 벗겨낸 프랑스 핵물리학자 노만규.2004년 KBS 해외동포상의 인문사회부문 수상자들을 만나본다. ●낭랑 18세(오후 9시50분) 정숙을 바라보던 혁준은 계속 가슴이 뛰자 자신이 정숙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혁준은 와인에다 양초를 준비해 놓고 정숙에게 고백할 결심을 한다.한편 가영과 만난 정숙은 머리채를 붙잡히고,참다 못한 정숙도 폭력을 쓴다.가영을 납치하려던 제갈파는 얼떨결에 정숙을 납치하는데…. ●대장금(오후 9시55분) 중종의 병세를 놓고 장금과 정윤수는 진단과 처방에서 많은 이견을 보이고 급기야 세력다툼의 양상으로 치닫는다.결국 중전은 고심 끝에 내의정 정윤수의 손을 들어준다.그러나 중종이 심한 복통을 호소하고,장금이 우려하던 증상이 나타난다.결국 중종의 안위는 장금의 손에 맡겨지게 된다. ●백만불 미스터리(오후 7시5분) 무속인의 수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 난다. 무속인이 되는 것은 신의 부름때문이라는 것이다. 신병과 신내림,그들의 믿음처럼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올가미일까? 어느날 갑자기 찾아와 사람의 운명까지 바꾼다는 신내림에 대한 미스터리 속으로 들어가본다. ●경찰24시(오후 10시50분) 자정이 다된 시간,아내가 칼에 찔려 숨져 있다고 신고한 남편.밖에서 침입한 흔적이 없고 굽다 만 삼겹살 등이 널려 있었던 것으로 보아 면식범의 소행으로 수사의 초점이 맞춰진다.형사들은 사건 당일 CCTV 녹화내용 중 피해자와 인사를 나누는 두 여자의 신원파악에 나서는데…. ●기획시리즈 ‘서길수의 고구려를 깨운다’(오후 9시) 연해주에 남아 있는 발해의 흔적을 찾아간다.연해주에서는 현재 러시아와 공동으로 유적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그 진행과정과 상황,그리고 과연 실제로 발해의 영토는 어디였으며 당시 국제 질서 속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백지연의 정보특종(오후 3시20분) 지난 17일 발표된 사교육비 경감대책에서 EBS 수능강의를 실제 수능시험과 연계하겠다고 해 논란이 일고 있다.긍정적인 평도 있는 반면 현실성에 대해선 다소 유보적인 지적도 있다.EBS 강의로 과연 사교육비룰 줄일 수 있을지 일반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본다. ˝
  • [스포츠 라운지] 17세이하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로버트 알버츠

    늦겨울 아침에 만난 그는 하얗게 눈덮인 산들 사이로 펼쳐진 초록색 그라운드에 우뚝 서 있었다.천진난만한 몸짓과 발짓으로 강의를 하는 모습은 ‘축구 걸음마’를 시작했던 어린시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다.축구공과 함께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는 ‘피터팬’ 같았다. 로버트 알버츠.지난달 14일 청소년국가대표팀(17세 이하) 감독을 맡았다.‘2010년 세계 10위권 진입’이라는 대한축구협회의 마스터플랜을 감안하면 꿈나무들과 동고동락할 그의 어깨에 한국축구의 미래가 달린 셈이다. ●축구와 함께 울고 웃은 40년 “축구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40여년 동안 축구와 함께 울고 웃은 알버츠,그에게 불쑥 질문을 던졌다.유쾌하게 대화를 나누던 그는 “축구는 내 인생 자체입니다.축구를 한다는 것은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친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라며 순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1954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그는 동네 축구대장이었다.8세 때 클럽팀 코치의 눈에 띄어 정식으로 유소년클럽 활동을 시작했다. 에피소드 하나.나이 제한(12세)으로 공식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자 나이 많은 팀 동료와 이름을 바꿔 출전하기도 했다.이렇듯 축구에 미친 그는 18세에 네덜란드 축구명문 아약스A팀에서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한 시즌에 6∼7골을 뽑는 공격형 플레이메이커였지만 주전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20세를 바라보던 75년 초,감독에게 주전에서 제외됐다는 통보를 받자마자 미련없이 공 하나만 달랑 메고 더 넓은 세상으로 축구여행을 떠났다.프리메라리가(스페인)나 프리미어리그(잉글랜드)와 같은 빅리그행은 아니었다.그렇지만 그는 미국,프랑스 그리고 스웨덴에서 현역시절의 마지막 불꽃을 활활 태웠다.특히 북미프로리그 밴쿠버 시절을 인생의 황금기로 꼽았다. “당시 뉴욕 코스모스팀에서 뛴 펠레(브라질)나 프란츠 베켄바워(독일)와 경기를 했어요.축구영웅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밟다니 정말 감격스러웠죠.” 축구황제와 승부를 겨루던 모습이 떠올랐을까,문득 그의 눈은 산너머를 응시했다.그러나 기쁨도 잠시.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의 전환점이 다가왔다.스웨덴 헬싱보리클럽에서 선수생활을 하다가 허리부상을 당한 것.선수로서는 사형선고를 받은 셈이다. “인생이 끝장난 것 같았습니다.삶의 전부였으니까요.” ●“신명나는 축구라야 창의력 나와” 아시아로 오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스웨덴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 축구인생 ‘제2라운드’의 공을 울린 그는 잠시 짬을 내 세트플레이 연습용 ‘프리킥 월(WALL)’을 개발했다.세일즈를 위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다 지난 92년 말레이시아 클럽팀 감독으로 발탁됐다.그리고 그곳에서 메르데카컵에 출전한 한국축구와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스피드가 인상적이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다시 10년이 흘렀다.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광풍이 지나간 뒤 대한축구협회 전임강사 자격으로 마침내 한국땅을 밟았다. “14세 이하 한국축구는 기술적으로나 전술적으로나 세계 최고수준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처집니다.어렸을 때는 성인 수준의 강도높은 훈련이 즉시 효과를 내지만 선수들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만성적인 부상 등 부작용이 나타나곤 하지요.” 그는 30세가 되면 노장 소리를 듣는 한국축구 풍토를 지적한다.체계적인 유소년 시스템이 발달한 유럽에서는 30세쯤이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원숙기라는 것이다.그는 듣기에만 익숙한 한국의 새싹들에게 자신을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축구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한국 생활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무 간섭을 받지 않고 또래끼리 ‘제멋대로’ 공을 차는 풍경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그는 그것이 “그립다.”고 했다.그리고 즐거움에서 시작한 축구가 무한한 창의력을 안겨주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월드컵대표팀에 대한 얘기도 잊지 않았다.“거스 히딩크 감독도 자신의 색깔과 한국축구를 접목시키기 위해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움베르투 코엘류 감독도 조만간 자신의 스타일과 한국축구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겁니다.” 요즘 그에게는 하루가 짧다.아침 일찍부터 시작한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의 축구지도자 강의는 저녁이 넘어서야 끝나곤 한다.또 이번에 새로 맡게 된 청소년 선수들의 훈련 일정을 짜고 장단점을 파악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녹초가 돼 일산의 집에 들어서지만 그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네살배기 아들과의 축구 한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늦둥이로 얻은 아준은 집안에 있는 모든 것을 축구공마냥 걷어차고 다니는 것이 버릇.“아들이 축구를 하고 싶어하면 적극 밀어줄 계획입니다.왜냐고요? ‘축구’잖아요!” 그는 활짝 웃었다. ■ 약력 ·1954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출생·62년 아약스 유소년·청소년 클럽 ·72∼74년 아약스 클럽A팀 ·75∼79년 밴쿠버(캐나다),클레르몽(프랑스),헬싱보리(스웨덴) 클럽 ·79년 스웨덴축구협회 코칭스쿨 이수 ·86∼87년 스웨덴 히타르프스 감독 ·91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코칭스쿨 이수 ·92년 이후 AFC 인스트럭터 ·92∼95년 말레이시아 케다 클럽 감독 ·96∼2001년 싱가포르 홈유나이티드 감독 ·2002년 8월 대한축구협회 전임 지도자 강사 및 첫 외국인 기술위원 ·2004년 1월 청소년대표팀(17세 이하) 감독 글 홍지민기자 icarus@˝
  • 에도의 여행자들/다카하시 치하야 지음

    ‘크로노폴리스 도쿄(Chronopolis Tokyo) 24시’ 올해 마이니치신문의 한 신년 특집기사엔 이런 제목이 붙었다.크로노폴리스는 초시계란 뜻의 크로노그래프와 도시국가를 일컫는 폴리스의 합성어.2003년 ‘에도(江戶) 400년’을 맞아 그들은 에도 곧 오늘날의 도쿄가 시공을 초월한 역동적인 도시임을 강조하기 위해 크로노폴리스(시간도시)란 말을 만들어냈다.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도쿄엔 최근 한국 젊은이들의 발걸음도 부쩍 늘었다.이른바 ‘밤도깨비 투어’로 주말의 하네다 공항은 야심한 시간에도 발디딜 틈이 없다.우리는 얼마나 에도,나아가 오늘의 도쿄를 알고 있을까. ●다양한 인물군상의 흥미로운 여행담 일본의 역사평론가 다카하시 치하야(61)가 쓴 ‘에도의 여행자들’(김순희 옮김,효형출판 펴냄)은 ‘여행’이란 키워드로 살펴본 에도시대(1603∼1867)의 생활사 혹은 풍속사다.전란의 시대를 거쳐 세워진 에도 바쿠후는 270여년에 걸쳐 평화를 누렸다.‘도쿠카와 평화’라 불리는 이 시기를 거치며 에도는 오늘날의 세계도시 도쿄의 기틀을 갖춰갔다. 에도는 18세기 초에 이미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였다.저자는 당시 에도를 비롯해 일본 각지를 돌아다녔던 학자,문인,승려,공직자,외국인 등 다양한 인물군상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한다. 에도시대 이전까지의 여행은 대부분 업무를 위한 것이었다.그러나 에도시대에 접어들어 도카이도(東海道,도쿄에서 교토에 이르는 국도) 등 다섯 개의 가도가 정비되고 숙박시설이 갖춰지면서 사원참배나 성지순례를 명목으로 한 유람여행이 등장했다.서민들도 비로소 오락으로서의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이와 같은 서민들의 여행은 에도시대 중기부터 성행했다.그것은 ‘고(講)’의 발달과 무관치 않다.고란 사원에 참배하거나 영산을 찾아가기 위해 조직한 단체를 가리키는 말.가장 인기를 누린 것은 이세신궁 참배를 위한 이세고와 후지산 순례를 위한 후지고였다. 에도시대의 진정한 여행가로 하이쿠 시인을 빼놓을 수 없다.대표적인 인물이 ‘하이쿠의 아버지’ 마쓰오 바쇼다.바쇼의 인생은 방랑 그 자체였다.“도카이도의 어느 한 곳도 모르는 사람은 하이카이를 잘 할 수 없다.”고 갈파한 바쇼는 하루에 30∼40㎞를 아무렇지도 않게 걸었다.“방랑에 병들어 꿈은 마른 들판을 헤매며 다닌다.” 바쇼는 이 유명한 하이쿠를 마지막으로 50세에 여행지 오사카에서 죽었다. ●신혼여행 1호 주인공은 사카모토 료마 메이지시대 개막을 앞둔 에도시대 말기엔 신혼여행도 생겨났다.일본엔 원래 신혼여행이란 관습이 없었다.누구나 신혼여행을 가게 된 것은 2차세계대전 이후부터다.에도 바쿠후 말기의 개명파 지사 사카모토 료마는 1866년 신부 오료와 함께 규슈의 가고시마 온천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이것이 일본의 신혼여행 1호다.에도시대 말기엔 ‘효도여행’까지 나타났다. 저자는 에도시대 여인들의 여행이 얼마나 어려웠는가를 선구적인 여성시인 이노우에 쑤조의 ‘동해일기’를 예로 들며 설명한다.여자들의 여행을 그토록 어렵게 만든 것은 검문소와 통행증이다.여자들의 통행은 까다로워 ‘온나 데가타(女手形)’란 엄격한 규정의 여자 통행증이 따로 있었다.특히 에도를 떠나는 여자들에 대한 감시는 더욱 심했다. ‘아라테메바(改め婆)’라 불린 히토미온나(人見女)의 존재가 그런 사정을 잘 말해준다.여자 여행객들의 몸수색을 담당한 히토미온나는 때론 속옷까지 벗게 해 성별을 확인하는 등 모욕을 주기도 했다.이런 일은 웬만큼 지위가 높은 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저자에 의하면 이는 봉록이 1만석 이상인 다이묘(大名)의 처자식들이 에도에서 인질로 살아야 하는 통제정책 때문이었다. ●조선통신사들의 선린 외교여행도 다뤄 책은 에도시대 조선통신사의 선린 외교여행도 다뤄 눈길을 끈다.일본이 에도시대의 쇄국체제 아래서 유일하게 국교를 연 나라가 조선이다.나가사키의 데지마에 네덜란드 상관이 있어 네덜란드와 교역을 하고 있었지만 국교를 맺었던 것은 아니다.청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메이지시대 이후 조선을 얕보고 지배하려는 정책 때문에 에도시대 통신사의 역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지적한다.한반도는 군사력에선 일본에 뒤지기도 했지만,문예나 학술 면에선 고대부터 늘 앞섰던 문화선진국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이 책에선 1719년 통신사로 에도에 갔던 제술관 신유한이 남긴 기행문 ‘해유록(海遊綠)’을 토대로 조선통신사의 일본 여행을 살펴본다. ‘에도시대의 에도’와 ‘21세기의 에도’.수백년전 에도여행과 오늘의 도쿄여행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크다.그 사이에 놓인 간극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것은 역사적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결코 부질없는 일이 아니다.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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