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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론토의회 방문해보니

    토론토의회 방문해보니

    |토론토 김성곤특파원|내각책임제 국가인 캐나다는 우리와 정치체제가 다른 만큼 의정모니터링 시스템도 차이가 난다. 토론토의회의 주민 의견 수렴방식은 서울시의회보다 세분화돼 있었다. 서울시의회는 광역단위로 348명의 모니터요원을 일괄 임명한다. 분야가 한정돼 있지 않고 생활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 등을 의견으로 제출한다. 반면 토론토의회는 각 상임위원회별로 의견 수렴절차를 밟는다. 이 점에서 본다면 토론토의회와 서울시의회의 방식에는 서로 장단점이 있다. 서울시의회의 경우도 필요한 경우 상임위별로 의견수렴 절차를 밟는 기능이 있다. 하지만 캐나다의 경우 전문성은 있지만 우리처럼 일반 시민들의 의견을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담아내지는 못한다. 우선 공적인 임명절차에 따라 우리의 모니터 요원과 유사한 형태의 자문위원을 의회 내 상임위와 개별 사안에 대해 그 의견 수렴 등을 위해 조직하는 일반 위원회에서 맡는다. 실비 수준의 수당을 주는 것과 임기가 시의원과 같은 4년이란 점은 서울시의회와 같았다. 토론토의회의 모니터요원 자격은 우리와는 사뭇 달랐다. 자격제한이 없다는 점은 같지만 사회적 약자들을 다수 포함시킨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일단은 토론토 거주자로 나이는 18세 이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망명자나 부랑자 등도 모니터링 요원에 포함시킨다. 다만, 일부 위원회는 시민권자로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의원과 인척관계인 사람은 대상에서 제외다. 토론토의회의 모니터 요원은 각계각층 주민들의 의견수렴 창구다. 이에 따라 인종이나 민족, 성 등 다양한 이익집단의 대표를 위원에 포함시켰다. 이민자로 토론토의회 6선 의원인 한국계 조성준(70) 의원은 “토론토의회에도 옴브즈맨과 같은 의견수렴 절차 외에 전문적인 의견수렴 절차를 밟고 있다.”면서 “이들이 미치는 영향은 다양하다.”고 말했다. sunggone@seoul.co.kr
  •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영원한 샤롯데’ 서승희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영원한 샤롯데’ 서승희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 표지모델편 ⑬] “나이를 까먹지 않고 제대로 먹었거든요. 엄마는 벌써 신랑감을 찾는 것 같아요” 1979년 3월 선데이서울 표지를 장식했던 기사에서 스물한 살 서승희(본명 서미경)가 처녀티가 완연하다는 말에 얼굴을 붉히며 한 말이다. 조선 정조시대의 세도정치가 홍국영과 상노 사이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 TBC-TV 드라마 <상노>(1978.7.10~1979.3.31)에서 용녀(龍女) 역을 맡아 한창 인기를 끌고 있던 때다. 아역 탤런트로 활동했던 서승희는 안양예고를 다니던 1977년 제1회 미스롯데로 뽑혀 국내 제일의 ‘얼짱’으로 공인 받았다. 롯데그룹은 TBC-TV와 함께 77년부터 80년대까지 탤런트 겸 자사의 CF모델을 뽑는 미스롯데 선발대회를 공동개최했는데, 뽑히기만 하면 곧바로 탤런트가 될 수 있어 경쟁률이 300대1에 이를 만큼 치열했다. 서승희 이후 원미경, 이미숙, 안문숙, 채시라, 이미연 등 80~90년대의 쟁쟁한 영상 스타들이 이 대회를 통해 연예계에 데뷔했다. 미스롯데에 당선되어 광고모델과 탤런트로 활동하며 <방년 18세> <단둘이서> <협객 김두한> 등 10여 편의 영화에도 출연하면서 인기의 절정에 오른 서승희는 80년대 초 돌연 연예계를 떠났다. 76년 로맨틱 코미디 청춘 영화 <단둘이서>에서 함께 주연했던 백윤식은 최근 “서승희는 ‘70년대의 문근영’이라고 할 만큼 아이돌 스타였다.”고 회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학 가서 공부한다.”며 종적을 감췄던 그녀가 사실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숨겨둔 연인이 됐다는 소문이 연예가를 떠돌기 시작했다. 소문으로 맴돌던 그녀의 행적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88년에 이르러서였다. 83년에 낳은 딸을 5년이나 지난 뒤에 신 회장이 자신의 호적에 입적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녀는 ‘롯데 별당마님’이란 별칭을 얻긴 했지만 사실 연예계에도 재벌가 인명록에도 공식적으로 이름이 올라있지 않은 그림자뿐인 삶이었다. 그녀가 지난 20여 년 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있다. 영화계의 몇몇 지인을 제외하고는 외부인과 전혀 접촉하지 않아 재계 일각에서 불렀던 것처럼 신 회장의 ‘영원한 샤롯데’로 지내왔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샤롯데’는 괴테의 서한체 소설 ‘베르테르의 슬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롯데’를 연모하며 금지된 사랑을 하다 결국 자살로 끝을 내리는 베르테르의 이야기를 통해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의 실체와 비극적 귀결을 그린 작품이다. 여주인공 ‘샤롯데’라는 이름에서 롯데를 따와 그룹의 브랜드로 사용할 만큼 젊은 시절의 신 회장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심취했었다고 한다. 재계에서 서승희를 ‘신격호 회장의 영원한 샤롯데’라는 애칭으로 불렀던 것 역시 그녀가 신 회장에게 ‘샤롯데’와 같은 존재라는 의미에서 붙여준 것이라는 설명이다. 재벌가의 여인 서미경으로 변신하여 지난 20여 년 동안 철저하게 베일 속의 삶을 살아 왔던 그녀가 요즘 뜻하지 않게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한때 롯데에서 근무했던 오빠와 함께, 롯데시네마의 매점을 운영하는 유원실업과 유기개발이라는 회사의 경영진으로 등재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신 회장과 특수관계에 있는 자가 경영하는 회사에 롯데시네마 매점의 운영을 맡기는 것은 부당지원행위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했다. 연예계 스타에서 재벌가의 여인으로 그리고 다시 경영인으로 변신한 그녀의 삶에 많은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표지=통권 536호 (1979년 3월 4일) 박희석 전문위원 dr39306@seoul.co.kr
  • [씨줄날줄] 트윈 세대/함혜리 논설위원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은 1924년 독일의 자유무역 도시였던 단치히시를 배경으로 소년 오스카 마체라트의 유년기와 가족사를 다룬다. 그라스는 ‘아이답지 않은 아이’ 오스카를 통해 나치즘과 집단적 광기를 비판했다.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은 1979년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 ‘양철북’을 보면서 내내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어린이다운 순진함이나 귀여움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먼 오스카의 그로테스크한 모습 때문이었던것 같다. 하는 짓이나 체질이 아이답지 않게 노숙한 아이를 ‘애 늙은이’ 같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을 ‘트윈(tween)세대’라고 한다.‘∼사이(between)’에서 따온 말로 유년기와 사춘기 사이에 낀 만 8∼12세의 어린이들을 가리킨다. 영양 상태가 좋아 신체발육이 예전보다 훨씬 빨라진데다 상업주의와 기술발전으로 인해 정서적으로도 조숙해진 이들은 과거 틴에이저(13∼18세)들의 전형적인 행태를 보인다. 미국에서만 2700만명에 이르는 트윈 세대는 대체로 부모가 맞벌이여서 독립심이 강하다. 쇼핑을 포함한 일상생활에서의 의사결정 권한을 윗세대보다 이른 나이에 갖게 되는 특성을 지닌다. 특히 부모들이 용돈이나 선물 등 물질적인 것으로 보상하는 경우가 많아 구매력도 왕성하다. 부모에게서 받은 풍부한 용돈을 친구들과 함께 쇼핑하거나 게임을 즐기는 데 사용한다. 인형이나 장난감 대신 유행에 관심이 많고, 데이트를 즐긴다. 경제호황기에 자란 트윈 세대는 컴퓨터와 인터넷에 능숙하다. 인터넷 등을 통해 얻은 풍부한 상품정보로 부모가 승용차나 가전제품 등을 살 때도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 마케팅 조사기관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트윈 세대는 용돈과 선물만 따져도 매년 510억달러(약 48조원)의 구매력을 지닌다. 트윈 세대를 미국에선 Z세대라고도 하는데 이들을 겨냥한 Z마케팅이 한창이다. 지금 당장의 상품판매도 목적이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이들이 미래의 ‘막강한 소비군단’으로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트윈 세대들을 겨냥한 업계의 마케팅이 본격화될 조짐이다. 지나친 상혼 탓에 부모들의 허리만 더 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앞선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토정은 민중과의 소통에 신화적 존재”

    충남 아산시 영인면 사무소에는 토정 이지함(1517∼1578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는 아산현감 시절 이곳에 일종의 ‘홈리스재활센터’인 걸인청을 세우고 유랑민들에게 자립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 앞서 포천현감 시절엔 ‘땅과 바다는 백 가지 재용의 창고’라면서 상공업을 천시하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국토의 자원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상소문을 올리기도 했다. 토정은 현감 시절을 제외하면 줄곧 전국을 유랑하며 주민들에게 장사하는 법과 생산기술을 가르쳤으며, 자급자족의 능력을 기를 것을 강조했다. ‘사람으로 읽는 한국사’(사람으로 읽는 한국사 기획위원회 지음, 동녘 펴냄)의 첫권인 ‘베스트셀러의 저자들’에서 전한 토정의 진면목이다. 토정은 그동안 예언가이자 점술가로, 구리솥을 머리에 얹고 다니던 야사의 주인공 정도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신병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는 토정이 ‘적극적인 국부 증진책을 제시한 뛰어난 경제학자였으며,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백성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 실천적이고 통 큰 지식인’이라고 규정한다. 토정은 점술과 천문·지리·의학·관상·비결에 두루 능통했다. 하지만 ‘토정비결’이 그의 저작물이라는 데는 논란이 있다고 한다.‘토정비결’이 민간에 유행한 것은 아무리 올려잡아도 18세기 이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토정비결’의 지은이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토정의 민중 지향적인 성향 때문일 것으로 신 학예사는 짐작한다. 토정을 빼닮은 민중 친화성을 가진 누군가가 이미 신화가 되어버린 토정의 이름을 빌리자, 급속히 민간에 퍼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베스트셀러의 저자들’에는 이밖에 ‘도선비기’의 도선,‘동명왕편’의 이규보,‘열하일기’의 박지원,‘서유견문’의 유길준이 소개됐다. 장지연 서울대 강사, 김인호 광운대 교수, 노대환 동양대 교수, 은정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이 각각의 인물을 맡았다. 토정의 사례에서 보듯, 엄밀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되 풍부한 역사적 상상력으로 스토리성을 복원하여 장구한 세월 동안 이들 책이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집필에 참여한 젊은 사학자들은 무엇보다 ‘지은이들이 사람들의 욕구나 시대적인 요구를 적절히 반영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의 한복판에서 당대의 문제를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시대와 소통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동명왕편’은 혼란스러운 국가를 바로잡을 영웅의 탄생을 고대하게 했고,‘도선비기’와 ‘토정비결’은 어지러운 사회에서 삶에 지친 백성들을 위로했다.‘열하일기’는 새로운 주장을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로 담아 지식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서유견문’은 새로운 지식에 목말라하던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들이 지금도 활발하게 읽히고 있다는 것은 당시의 문제들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람으로 읽는 한국사’는 인물을 통한 역사 읽기로 대중적인 역사 서술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보겠다는 취지에서 기획된 것이다. 한국사에 등장하는 60여명의 인물을 선정하여 각각의 인물과 시대 전공자들이 썼다. 1권 ‘베스트셀러의 저자들’과 처용, 쌍기, 인후, 이지란, 박연을 다룬 2권 ‘이미 우리가 된 이방인들’이 발간된 데 이어 모두 11권으로 나올 예정이다. 각권 1만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일요영화] 신용문객잔

    ●신용문객잔(MBC 일요영화특선 밤12시30분)‘신용문객잔(1992)’은 후진취안(호금전)이 만든 홍콩 무협영화의 경전 ‘용문객잔(1967)’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쉬커(서극)가 제작하고 리후이민(이혜민)이 감독한 ‘신용문객잔’은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얘기를 만화같이 다루고 있다. 권력에 눈먼 환관에 맞서 벌이는 무사들의 결투에 특수촬영을 곁들여 보는 재미가 넘쳐난다. 량자후이(양가휘), 린칭샤(임청하), 장만위(장만옥), 전쯔단(견자단) 등 홍콩의 정상급 스타들을 한꺼번에 보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때는 명나라. 환관들이 득세해 나라를 어지럽힌다. 정보기구인 동창의 세력이 가장 강했는데, 동창은 비밀결사대를 조직해 정적들을 살해하고 백성들을 억누른다. 그 우두머리인 조소흠(전쯔단)은 동창에 반대하던 병조판서 양원을 살해하고 그 일가를 몰살하는데, 두 자녀만은 죽이지 않고 변방으로 데려간다. 이들을 미끼로 남은 양원의 무리들을 유인, 제거하려는 술책이었다. 양원의 심복인 주회안(량자후이)은 양원의 아들과 딸을 무사히 구해내지만 동창의 무리는 그가 탈출하는 것을 막는다. 주회안은 폭우로 길을 떠날 수 없게 되자 용문객잔에서 동창의 무리와 맞서기로 한다. 그러자 주회안과 만나기로 한 주회안의 애인 구모언(린칭샤)과 협객들이 당도한다. 한편 용문객잔의 주인 금양옥(장만위)은 인육만두를 만드는 도둑패의 우두머리인데, 주회안에게 반해 유혹하려 한다. 주회안은 비밀통로를 알아내고자 양옥의 정부가 되기로 결심하는데, 양옥의 이간질로 모언은 회안을 오해한다. 모언은 혼자 길을 떠나다 동창의 공격으로 중상을 입는데…. ‘신용문객잔’은 ‘동방불패(1991)’와 ‘황비홍(1991)’으로 시작된 홍콩 무협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쉬커와 리휘민, 무술감독 청샤오둥(정소동)의 재능과 상상력이 절묘하게 어우려져 무협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 되었다. 특히 마지막 15분 동안 사막에서 펼쳐지는 결투신은 놓쳐서는 안 될 명장면이다.85분.18세 관람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첫 청소년올림픽 2010년에

    ‘중·고생 올림픽이 열린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6일 과테말라시티에서 계속된 총회에서 14∼18세 청소년들이 참가하는 유스올림픽(YOG) 창설을 확정했다.IOC가 1924년 겨울 올림픽 이후 처음 만든 국제 규모의 스포츠 축제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청소년들의 육체적인 움직임이 줄고 비만은 늘고 있다. 학교 체육 시간은 적어지고 도시의 넓은 공간은 사라진다. 또 청소년들은 컴퓨터에 중독돼 있다.”며 이들을 운동장으로 불러내기 위해 대회를 창설했다고 설명했다. 여름 첫 대회는 2010년 8월쯤 선수 3200명이, 겨울은 2012년 선수 10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다. 규모는 올림픽의 3분의1 미만으로 올림픽을 개최하기 어려운 도시에도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비용 절감 방안의 하나로 대회 관련 시설 신축도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현재 개최 비용은 여름이 3000만달러(약 276억원), 겨울이 1500만∼2000만달러로 추산된다. 몇몇 위원들이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가운데 로게 위원장은 “IOC가 비용을 부담할 뜻이 있다.”고 반박했다.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의료법 시행] 극빈환자 발만동동

    월 30여만원으로 생활하는 의료급여 1종 수급자도 외래 진료시 본인부담금을 내는 개정 의료급여법이 1일부터 전국적으로 시행에 들어갔다.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극빈층의 진료 접근성을 제한한다.”며 불복종을 선언해 파장이 예상된다. ‘의료급여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은 보건복지부가 유시민 장관 시절 마련한 제도로 올 상반기 국무회의를 통과했다.1종 수급자 본인부담제 도입 외에도 선택병의원제 실시, 의료급여 자격관리 시스템 가동 등이 포함됐지만 지난 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1종 수급권자의 병원 이용을 일률적으로 제한해 건강권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재정 절감 아닌 시스템 효율화가 목적 하지만 복지부측은 “무료 혜택을 받는 1종수급자 가운데 일부가 의료기관·약국을 돌며 의료쇼핑을 하는 허점을 바로잡고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관리하는 등 제도개선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전체 1종 수급자 103만명 가운데 희귀난치성질환자,18세미만 아동, 임산부 등이 제외된 65만명이 본인 부담금 대상이다. 이들은 1일부터 1차 의료기관에서는 1000원,2차 의료기관은 1500원,3차 의료기관 2000원, 약국 500원의 외래 진료비를 본인이 부담한다.CT·MRI 등의 검사비는 5%가 부담할 몫이다. 그러나 본인부담금이 월 2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초과금액의 50%를,5만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초과금액의 전부를 국가가 지원한다. 본인부담금이 월 4만 5000원일 땐 2만원을 초과하는 2만 5000원을 국가가 지원하는 식이다. 여기에 1종수급권자 가운데 외래진료 본인 부담금이 지워지는 65만명에게는 매월 1인당 6000원이 건강생활유지비로 지원된다. 복합질환이나 만성질환 등으로 기본 급여일수(연 365일)를 초과하는 의료급여 환자들은 선택병의원제를 활용, 의원급 의료기관 1곳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병원이나 종합병원도 때에 따라 이용이 가능하다. 특히 건강보험공단이 내놓은 의료급여 자격관리 시스템은 수급권자 자격정보와 건강생활유지비 등을 실시간 네트워크로 관리한다. 통상 3∼4개월 걸리던 진료정보가 실시간으로 공단으로 전해지며 약국투약시 처방전 교부 번호도 주어져 처방전 위·변조도 원천적으로 방지된다. ●의료계 “기존 제도 그대로 사용할 것” 의료계와 시민단체측은 이 제도에 대해 헌법소원이나 불복종도 불사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새 제도가 급여환자의 진료권을 위협하고 진료기관에 수급자 본인부담금 관리를 떠넘기는 것”이라면서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 진료하겠다.”고 밝혔다. 박경철 의협 대변인은 “향후 효력정지 가처분, 위헌소송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의료보건단체는 ‘의료급여개혁공동행동’을 결성했다. 공동행동측은 “건강생활유지비를 고려해도 1종 수급권자는 한 달 1만여원의 초과금이 두려워 월 2∼3회만 의료기관을 이용하게 될 것”이라면서 “선택병의원제도가 강제지정된 병의원 외의 진료는 의뢰서를 받도록 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의료급여제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7조에 따라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질병 등의 진찰·검사, 약제 지급, 수술·입원치료 등을 지원하는 제도다.2006년 말 기준으로 국내 1종수급자는 103만명,2종수급자는 80만명이다.
  • [CEO칼럼] 영상전화의 힘을 아십니까/조영주 KTF 사장

    [CEO칼럼] 영상전화의 힘을 아십니까/조영주 KTF 사장

    정조는 왕에 즉위한 후,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화성에 능을 조성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 치안을 위해 임금이 80리 밖으로 나가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는데, 한양에서 사도세자의 융릉까지 길은 100리(약43㎞)가 넘었다. 융릉을 자주 찾고 싶었던 정조는 멀쩡한 100리 길을 80리 길로 부르게 하여,12년 동안 13번을 찾았다고 한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도 고종이 돌아가시자 아버지의 능에 전화를 설치하고, 아침저녁으로 곡을 했다. 예전 임금들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뭉클하게 느껴지는 일화들이다. 요즘은 참 그리움이 많은 시대다. 예전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이 드물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학교나 직장 때문에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돌아가신 부모님도 그립고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살아 있는 가족들과 헤어져 있는 안타까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명절이 되면 그리운 가족을 만나기 위해 고속도로는 주차장이 되고, 서울역과 고속버스터미널은 귀향객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만약 그리움을 저축하는 은행이 있다면, 그 은행이 아마 우리나라 최대 은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우리나라의 정보통신은 이렇게 커져가는 그리움 때문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유선 전화의 경우도 18세기 말에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지만, 보편화된 서비스는 아니었다. 물론 장비가격이 비싸고, 통신망이 좋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답보를 거듭하던 유선 전화는 1970∼80년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산업화로 고향을 떠나는 사람이 늘어났고, 매번 많은 비용을 들여서 고향을 찾을 수도 없는 사람들에게 전화는 그리움을 메우는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의 역할을 해 왔다. 올해 3월 듣는 전화의 시대를 넘어, 얼굴을 보며 통화하는 영상전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서비스 개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가입자는 이미 100만명을 훌쩍 넘어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다. 그간 듣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던 수 많은 그리움들이 영상전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해소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 본다. 나 또한 예전에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만족했지만, 이젠 영상전화를 통해 얼굴을 뵈며 안부를 여쭐 수 있게 됐다. 영상전화 서비스는 이렇게 사랑과 정을 깊게 할 뿐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도 바꾼다. 이제까지 청각장애우들은 이동통신서비스의 사각지대에 있었지만, 이젠 영상전화를 통해 만나고 싶은 사람, 하고 싶은 말을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게 됐다. 건설현장이나 지방 사무소의 현황을 파악할 때나 매장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도 직접 가서 확인하는 수고로움과 번거로움을 영상전화 서비스를 통해 편리하게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시각은 사람 감각의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래서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옛 속담도 있다. 지금은 영상전화를 이용할 수 있는 고객이 전체 이동통신가입자의 3%에 불과하지만, 이제 영상전화 서비스는 고객의 일상속에서 튼튼하게 자라날 것이다. 앞으로 영상전화가 가족, 연인, 친구들간의 정과 사랑을 더욱 깊게 하는 ‘사랑의 서비스’는 물론 고객의 삶을 보다 편리하게 하는 ‘생활의 필수품’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여 고객의 더 큰 사랑을 받게 되길 기대한다. 조영주 KTF 사장
  • 법원, 포털에 첫 벌금형

    음란 동영상을 배포한 유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벌금형이 선고됐다. 이번 판결은 인터넷 업체가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18세 관람가’ 판정을 받은 동영상을 성인인증을 거친 회원에게만 제공했더라도, 동영상 자체의 음란성이 짙다면 형사 처벌이 가능하다는 첫 판결이다. 서울 중앙지법 형사6단독 이동근 판사는 포털사이트를 통해 음란 동영상 4편을 배포한 혐의(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약식기소됐다가 정식 재판에 회부된 유명 포털사이트 N사와 이 업체 미디어사업본부 담당자에 대해 각각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고 28일 밝혔다.N사는 콘텐츠 제공업체 46곳과 수익금의 30%를 나눠 갖는 조건으로 2002년 12월부터 2005년 3월까지 포털사이트에 성인 동영상 서비스를 운영하다가 음란 동영상 4편을 올린 혐의가 적발돼 벌금형에 약식기소됐다. N사는 “해당 영상물이 포르노그라피에 비해 노출 정도가 낮고 영등위에서 ‘18세 관람가’ 판정을 받았다.”면서 무죄를 주장했고 법원은 “영상물이 음란물인지 성인용 콘텐츠인지 다퉈볼 필요가 있다.”면서 정식 재판에 직권 상정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해당 영상물들은 오직 호색적 흥미를 돋우는 데 치중하고 있어 음란물에 해당한다.”면서 “이런 영상물의 배포는 정보통신망법이 보호하고 있는 ‘건전성과 안전성’을 해친다.”고 말했다.재판부는 또 “영등위는 영상물의 등급만 분류할 뿐 음란성 여부를 최종 판단하는 곳이 아니다.”면서 등급 분류 사실을 들면서 무죄를 주장한 피고인들의 항변을 받아 주지 않았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귀걸이 예쁘지 않나요” 박태환 日 프레올림픽 앞두고 구슬땀

    ‘외모는 역시 신세대, 하지만 훈련은 훈련!’ 오는 8월21일 일본 지바에서 프레올림픽을 겸한 일본국제수영대회를 앞두고 있는 ‘18세 괴물’ 박태환(경기고)이 귀에 고리를 달았다. 지난 3월 멜버른 세계수영선수권 직전에 노랗게 물들인 머리도 아직 그대로다. ●‘신세대 자유´ 최대한 배려 27일 훈련장인 잠실학생수영장에 나타난 박태환을 보고 전담 코치인 박석기 전 경영대표팀 감독은 “신경통이 있어서 귀를 뚫었느냐.”며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박태환은 “그냥 예뻐 보여 귀걸이를 했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잠깐 동안의 선문답 끝에 박 코치는 그의 외모에 더 이상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박태환이 머리를 노랗게 물들였을 때에도 박 감독은 그를 내버려뒀다. 경기력 및 기록 향상에 영향을 미치지만 않는다면 외모를 가꾸는 데 공을 들이는 신세대의 자유를 최대한 인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후 물 안팎에서 이어진 훈련에서 두 사람은 귀걸이 따위는 벌써 잊은 듯했다. ●최상의 컨디션… 새로운 기록 기대 박 코치는 지난 13일 1만m를 자유형으로 쉬지 않고 헤엄치도록 지시했고, 박태환은 거뜬하게 19차례 반환점을 돌았다. 기록도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25일 실시한 2000m에서는 21분30초에 터치패드를 찍었다. 세계선수권 직전 괌 전지훈련에서 끊은 21분36초보다 6초를 앞당긴 기록이고,100m 평균 랩타임은 괌 때보다 0.3초 가까이 줄어들었다. 박 코치는 새달 12일부터 예정된 도쿄 전지훈련을 마치고 나면 박태환이 도하아시안게임때 세운 자신의 1500m 최고 기록(14분55초03)도 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 코치는 “태환이가 신세대다운 모습과는 달리 물 속에서만큼은 훈련에만 절대 집중하는 게 눈에 역력하다.”면서 “세계선수권 1500m 우승자인 마테우츠 쇼리모비츠 등 대형 선수들이 프레올림픽에 대거 참가하는데 현재 훈련 성과를 놓고 보면 우승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대견스러운 듯 말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씨줄날줄] 바지소송/ 이목희 논설위원

    18세기 영국 신문의 삽화. 피고·원고를 젖소로 묘사하고, 양 옆에서 변호사가 젖을 마구 짜는 내용을 그렸다. 소송만능주의를 부추겨 변호사만 배를 불리는 세태를 꼬집는 것이었다. 이런 풍조는 미국으로 건너가 더욱 심각해진다. 미국의 소송 관련 사회 지출은 한해 200조원이 훌쩍 넘는다. 2002년 성폭력 용의자 하비 테일러는 플로리다 경찰을 고소했다. 이유는 “왜 나를 빨리 못 잡았나.”였다. 경찰을 피해 다니다 눈밭에서 동상이 걸려 발가락을 두개나 잘라야 했다고 항변했다. 영미식 소송만능주의의 하이라이트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1760년대 영국 법원의 판결에서 비롯되어 미국에서 애용되고 있다. 민사재판에서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때 손해액보다 훨씬 많은 배상을 명령하는 제도다. 이를 통해 천문학적인 배상을 받아내는 게 대다수 미국 변호사의 꿈이라고 한다. 한인 세탁업자와 ‘바지소송’을 벌인 로이 피어슨 워싱턴 행정심판소 판사 역시 소송만능주의에 찌든 인물이다. 그가 한인 세탁업주로부터 돌려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바지의 가격은 75만원 남짓. 그런데 500억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하다니, 정신이상이 의심될 정도였다. 다행히 미국 법원은 세탁업주 정진남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아무리 소송대국이지만 상식의 힘이 통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우리 사회에서도 소송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지금 대선판에 난무하는 고소·고발이 하나의 방증이다. 조만간 법률시장이 개방되어 영미식 풍토가 자리잡으면 소송천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피어슨 판사는 정진남씨가 ‘고객만족 보장’이란 문구를 내건 점을 문제삼았다. 정씨가 소규모 세탁소를 운영했기에 이겼지, 대기업이었다면 결과가 어찌 됐을까. 과대광고뿐 아니다. 개를 짖게 해 남의 기분을 망치는 소소한 일도 소송감이 될 수 있다. 정씨는 “피어슨 판사를 용서하며, 재임용 탈락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인정이 남아있는, 한국적인 발상이다. 그가 500억원 송사로 2년 동안 당한 고통이야말로 바지 한벌 유고에 비할 바 아니다. 엄청난 역(逆)손해배상 청구권을 포기한 미덕에 피어슨 판사는 감사해야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6) 개화파의 비조(鼻祖) 오경석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6) 개화파의 비조(鼻祖) 오경석

    우리나라 개화파의 비조(鼻祖)로 흔히 오경석·유대치·박규수 세 사람을 꼽는다. 역관 오경석(吳慶錫·1831∼1879)은 북경을 열세 차례나 드나들며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에 시달리는 청나라의 모습을 보고 자주적으로 개화해야 한다고 깨달았던 첫 번째 개화파이다. 역관의 아들 유대치(유홍기)는 의학 공부를 해서 의원이 되었지만, 오경석과 교유하며 개화의 필요성을 공감해 20세 되던 김옥균을 개화파로 끌어들였던 인물이다. 좌의정까지 오른 박규수는 대동강을 거슬러 침입해온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격침시켜 대원군의 신임을 한몸에 받고 중앙 정부로 돌아온 뒤에 북촌의 청년 지식인들에게 개화를 역설했던 정치적 후원자였다. 오경석은 중인이 주도하는 개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에, 북학파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를 통해 북촌의 양반 자제들을 개화파로 끌어들였던 것이다. ●8대 역관 집안에 태어나 5형제가 역과에 합격 오경석은 1831년 1월21일(음력)에 중인들이 많이 살던 청계천가 장교동에서 한어(漢語) 역관 오응현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해주 오씨의 중시조인 오인유를 거쳐 11세 오인수까지는 문과 합격자를 낸 양반이었지만,12세 오동이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참봉(종9품)을 지냈다가,13세 오구가와 14세 오대종이 무과에 합격하여 무반(武班)이 되었으며, 오대종의 맏아들인 15세 오인량이 역과에 합격하여 역관 가문이 되었다. 오제량의 아들인 16세 오정화까지 의과에 합격하여 의관(활인서 별제)이 되면서, 해주 오씨는 중인으로 신분이 굳어졌다.17세 오지항부터 23세 오경석까지 대대로 역과에 합격하여 역관이 되었으며, 혼인도 물론 역관 중심의 중인 집안과 하였다. 22세 오응현(1810∼1877)이 16세 나이로 1825년 역과에 2등으로 합격할 때에 1등은 이상적인데, 오응현은 친구 이상적에게 맏아들 오경석의 교육을 맡겼다. 오경석은 16세에 역과에 합격했으며, 아우들까지 모두 합격해 5형제 역관 집안이 되었다. 사위 이창현도 역관인데, 대표적인 중인 집안들의 족보를 종합하여 ‘성원록(姓源錄)’을 편찬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 무렵에는 중인들이 커다란 세력을 이뤘으며, 그 한가운데에 오경석이 자리했음을 알 수 있다. 오응현의 손자 가운데도 역관이 4명이나 나왔는데, 이들이 마지막 역관 세대였다. 갑오경장 이후에는 과거가 모두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한학습독관(漢學習讀官)으로 역관 생활을 시작한 오경석은 18세에 사역원 당상역관 이시렴의 중매로 그의 조카딸과 혼인했다. 처가인 금산 이씨는, 김양수 교수의 통계에 의하면 교회역관(敎誨譯官)을 가장 많이 배출한 중인 집안이다. 이씨 부인이 26세에 유행병으로 요절하자,3년 뒤에 역시 중인인 김승원의 딸과 혼인하였다. 아들 오세창도 역관이고, 딸도 역관 이석주의 아들인 이용백에게 시집보냈는데, 사위 이용백은 산학(算學)을 전공한 중인이다. ●무역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골동 서화 구입 오응현은 북경을 드나들며 재산을 많이 늘렸다. 신용하 교수가 오경석의 손자인 오일룡씨와 오일륙씨에게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맏아들 오경석에게 2000석 분의 재산과 집 두 채를 상속해 주었다고 한다. 장교동의 천죽재(天竹齋)와 이화동의 낙산재가 바로 그 집이다. 그는 ‘천죽재차록(天竹齋箚錄)’이라는 글에서 골동 서화를 모은 과정을 이렇게 회상하였다. <계축년(1853)부터 갑인년(1854)에 걸쳐 비로소 북경에 노닐게 되어, 박식하고 단아한 동남의 문사들과 사귀면서 견문이 더욱 넓어졌다. 원(元)·명(明) 이래의 서화 백여 점을 차츰 사들이게 되었고, 삼대(三代)·진(秦)·한(漢)의 금석(金石)과 진(晉)·당(唐)의 비판(碑版)도 수백 종을 넘었다.(줄임) 내가 이들을 구입하는 데 수십년의 오랜 시간이 걸렸고, 천만리 밖의 것이라 심신을 크게 쓰지 않고는 쉽게 얻을 수 없었다.> 넓은 중국 천지 곳곳에 흩어진 골동 서화가 북경으로 모여들어, 유리창에 가면 구입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새로 발견되는 금석 탑본들은 역시 학자를 통해야 구입하기 쉬웠다. 오경석이 1861년 2월에 북경을 떠나기 직전에 청나라 학자 하추도(何秋濤)가 편지를 보내왔다.“보내드리는 석각(石刻) 한 장은 복건성 태녕현에 있는 주자(朱子)의 수서각석(手書刻石) 탑본입니다. 지금까지 금석가들이 모두 몰랐던 것이므로, 기실(記室)께 드려서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오경석이 이 편지와 탑본을 받고 얼마를 사례했는지 알 수 없지만, 청나라 학자 정조경(程祖慶)이 책과 인삼에 관해 보낸 편지를 보면 오경석이 인삼을 가지고 가서 팔아 골동 서화를 구입했음이 확인된다. <역매인형대인각하(亦梅仁兄大人閣下) 며칠 전에 나에게 인삼 값을 묻는 친구도 있고, 지화(紙貨)를 묻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귀국의 서적과 비판(碑版)을 서로 교환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혹 그런 일이 있게 되면 너무 번거로우시겠습니까? 전에 보내온 서목(書目)을 돌려드린 뒤에, 또 어떤 친구가 청구하고 싶어합니다. 아직 구입하지 않은 것도 있으니, 서목 한 벌을 다시 부쳐주시면 시기에 따라 모두 구입할 수 있고, 또 포장비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잠연당전서’는 종경이라는 친구가 가져 왔는데, 어제 또 찾아와 “서점에서 파는 값보다 헐하다.”고 하면서 이 서목을 읽어보아야 한다기에 하는 수 없이 빌려 주었습니다. 옛날 비판(碑版)은 장황(표구)되지 않은 것을 사야 값이 헐하리라고 생각됩니다.> 범유경(范維卿) 같은 골동품상과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정보를 교류했는데, 오경석이 북경을 왕래하며 기록한 ‘천죽재차록(天竹齋箚錄)’에 골동 서화 구입에 관련된 기록이 많았지만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아들 오세창이 지은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 일부 인용되어 남았을 뿐이다. 그는 골동서화를 구입해 감상만 한 것이 아니라, 훌륭한 글씨나 그림을 보고 연습하여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아들 오세창이 ‘근역서화징’이라는 불후의 저술을 남기게 된 것도 오경석이 수집한 골동 서화 덕분이었다. ●청나라가 망해가는 모습 보며 개화에 눈떠 오경석은 23세 때인 1853년에 처음 북경에 가서 같은 20대의 청나라 지식인들과 사귀기 시작했다. 스승 이상적의 소개로 빠른 시일에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북경에 갈 때마다 선물을 주고받았으며, 그들로부터 골동 서화만이 아니라 서양 문물을 소개하는 책들도 소개받아 구입해 왔다. 청나라 문사 61명과 주고받은 편지 292통이 현재 7첩으로 장황되어 후손 오천득씨가 소장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공자의 73대손 공헌이(孔憲彛)는 뒷날 내각 중서를 지내고, 만청려(萬靑藜)는 예부상서를 지냈으며, 반조음(潘祖蔭)과 서수명(徐樹銘), 장상하(張祥河) 등은 공부상서를 역임했다. 오대징은 갑신정변 때에 흠차대신(欽差大臣)으로 조선에 왔으며, 장지동(張之洞)은 호광총독(湖廣總督)과 군기대신(軍機大臣)을 역임했다. 조선과 중국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오경석이 이들의 도움으로 풀어나갔다. 오경석이 북경의 청년들 가운데 동방과 남방 출신의 양무파(洋務派) 개혁사상가들을 주로 사귄 것은 박제가의 영향 때문이다. 오경석이 역과 시험에 합격하도록 지도해준 스승은 역관 이상적이지만, 아버지 오응현은 박제가의 학문을 매우 높이 평가하여 후손들에게 박제가의 저술을 읽도록 했다. 오경석 또한 국내 학자 가운데 박제가를 가장 존경하여, 서재에는 그의 글씨와 그림을 한 폭씩 걸어놓고 그의 책을 읽었다. 추사에서 이상적으로 내려오는 중인 문화를 거슬러 올라가면 추사의 스승이 바로 박제가였으니, 이 집안에서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를 교과서로 받드는 것도 일리가 있다. 오경석은 다른 역관들같이 청나라에 드나들며 통역이나 하고 무역으로 재미만 본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청나라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려 애썼다. 신용하 교수는 오경석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1853∼1859년 사이에 개화사상을 형성한 선각자”라고 평가했는데, 오경석은 1840년부터 시작된 아편전쟁과 1851년에 수립된 태평천국 때문에 청나라가 망해가는 모습을 북경 현장에서 보고 자기만 개화사상을 지닐 것이 아니라 국내 지도층이 함께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청나라에서 간행된 ‘해국도지(海國圖志)’‘영환지략(瀛環志略)’‘박물신편(博物新編)’‘양수기제조법(揚水機製造法)’‘중서견문록(中西見聞錄)’ 등의 서적을 구입해 왔다. 아들 오세창의 증언에 의하면, 유대치가 오경석에게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의 개혁을 성취할 수 있을까?” 묻자, 오경석이 “북촌의 양반 자제 가운데 동지를 구하여 혁신의 기운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다. 오경석이 북경에서 구입해 온 세계 각국의 지리와 역사, 과학과 정치 서적들이 유대치와 박규수를 통해 김옥균과 박영효를 비롯한 북촌 청년들에게 전해지며 개화파라는 정치 세력이 생기게 되었다. 다음 호에는 오경석의 외교활동을 소개하기로 한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Metro] 새달부터 어른 650→800원

    다음달 1일부터 경기도 부천시내 마을버스 요금이 평균 20% 인상된다.22일 부천시에 따르면 마을버스 요금은 어른이 650원에서 800원으로, 청소년(만 13∼18세)은 500원에서 600원, 어린이(만 6∼12세)는 300원에서 350원으로 각각 인상된다. 교통카드를 이용하면 어른은 600원에서 700원, 청소년은 450원에서 560원으로 오르며 어린이는 현금을 내는 경우와 동일하다.한편 김포시는 지역적 여건에 따라 달리 적용해온 마을버스 기본요금(700∼1000원)과 추가요금(200∼700원)을 없애고 어른의 경우 시내 800원, 농어촌 900원으로 단일화한다.부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새달 12일 개막

    한여름 더위를 날려줄 열흘간의 환상·공포 여행! 올해로 11회를 맞는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가 새달 12일부터 21일까지 부천 시민회관 대공연장, 복사골 문화센터 등 부천 일대에서 열린다. 10주년을 맞은 지난해 갑작스러운 집행위원장 교체, 영화계 보이콧 등으로 흔들렸던 이 영화제는 한상준 집행위원장이 새롭게 살림을 맡아 전열을 정비했다. ●개막작은 황규덕 감독 ‘별빛 속으로´ 향후 10년을 내다보며 재도약을 준비하는 영화제는 유럽판타스틱영화제와의 제휴를 통해 국제영화제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한편 영화제가 끝난 후에도 경기 북부 지역 순회상영을 계획, 시민과 함께하는 영화제로 자리매김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33개국 215편의 영화가 관객들을 맞는다. 개막작은 한국영화 ‘별빛 속으로(For Eternal Hearts)’가 선정됐다.40대 대학교수인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는 판타지 영화로 70년대를 주요 배경으로 현재와 과거,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첫사랑, 운명, 시대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로 데뷔한 황규덕 감독이 연출하고 정진영, 정경호, 김민선이 출연한다. 권용민 프로그래머는 “외형은 판타지이지만 스릴러적인 분위기와 안정적인 드라마가 있는 영화로 영화제 분위기와 썩 어울린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대장정을 마감하는 폐막작은 인도의 조코 안와르 감독의 ‘비밀(Kala)’이다. 기면증을 앓고 있는 기자가 집단 방화사건 이면에 숨겨진 음모와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로 6억원의 제작비가 무색할 정도로 현란한 비주얼을 자랑한다. ●33개국 215편 7개 섹션으로 상영 …국내 첫 개봉작도 영화제는 경쟁부문인 부천초이스를 비롯해 월드판타스틱시네마, 판타스틱단편걸작선, 금지구역, 패밀리 판타와 애니판타, 특별전, 회고전 등 총 7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부천 초이스 장편 부문은 지난해와 달리 전통적인 판타스틱 장르를 고수하는 9개국 10편의 영화들로 장식돼 마니아들의 관심을 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하드고어적인 독일 영화 ‘그림 러브 스토리’, 인간의 고독과 광기를 다룬 ‘리빙 앤 데드’ 등이 선보인다. 프랑스 SF 영화들로 채워진 특별전도 눈여겨 볼 만하다. 할리우드 SF에 식상한 관객들이라면 신선한 맛을 느끼지 않을까. 루이 말의 ‘검은 달’과 알랭 레네의 ‘사랑해 사랑해’는 국내 처음 개봉되는 작품들이다. 회고전에서는 미국 B급영화의 영웅 몬테 헬만과 가족 코미디 영화의 대가 이봉래 감독의 작품을 감상해 보자. 박찬욱 감독에게 영감을 준 인물로 알려진 몬테 헬만은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준 감독.‘지옥으로 향하는 뒷문’‘슈팅’ 등 그의 대표작 5편이 첫선을 보인다. 가족코미디 영화로 50∼60년대 한국영화 중흥기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이봉래 감독. 그의 대표작인 ‘삼동과장’‘월급쟁이’등 코미디 영화와 누아르 분위기의 멜로 영화로 도시 하층민의 세계를 그린 ‘육체의 문’ 등이 관객을 찾는다. 비위가 강한 18세 이상의 성인이라면 ‘금지구역’을 놓치지 말 것. 치킨 가게 종업원과 인디언 혼령이 깃든 죽은 닭들과의 한판을 그린 ‘폴트리 가이스트’를 비롯해 ‘도살자’‘먹이’ 등 위험하지만 나름의 진정성을 갖춘 5편이 준비돼 있다. ●한·일·홍콩 특수분장 전문가 워크숍도 눈길 올해 새롭게 신설된 애니판타 섹션의 ‘추억을 찾아서:나가이 고와 로봇대전’은 30대들에게 추억을 선물한다. 나가이 고는 ‘마징가Z’‘그랜다이저’ 등 추억의 만화영화 원작자로 어린 시절을 꿈과 환상으로 채워준 인물. 활동 40년을 맞는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이번 코너에서는 그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진 체인지 게타로보 세계 최후의 날’‘큐티 하니’‘마징카이저’‘강철신 지그’ 등 5편이 선보인다. 이밖에 영화제가 자신있게 내세우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는 한·일·홍콩의 특수분장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환상교실:아시아 영화의 특수분장’ 워크숍이다.‘친절한 금자씨’‘타짜’ 등을 작업한 국내회사 ‘셸’, 일본회사 ‘니시무라 공작소’, 청룽(成龍), 저우싱츠(周星馳), 저우룬파(周潤發)의 특수분장을 맡아온 홍콩의 ‘미셸 왕’ 등 전문가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는 기회다. 참가비는 3만원. 교육효과를 높이기 위해 1작품 이상 제작했거나 연출 경험이 있는 학생 및 영화감독 30인으로 참가자격을 제한했다. 영화예매는 27일부터 7월20일까지 부천영화제 홈페이지(ticket.pifan.com)에서 할 수 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그림 메르헨/니콜라스 하이델바흐 그림

    우리 유년의 기억을 풍성하게 해준 ‘백설공주’‘헨젤과 그레텔’‘빨간 모자’‘라푼첼’ 등 수많은 동화들이 우리 곁에 다시 왔다. 이 동화들은 모두 독일의 언어학자이자 문헌학자인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 형제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 구전으로 전해지던 옛이야기들을 묶은 것. 문학과지성사에서 내놓은 ‘그림 메르헨’(니콜라스 하이델바흐 그림, 김서정 옮김)은 그림 형제가 1812년 펴낸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이야기’ 초판부터 1857년에 나온 마지막 7판까지 수록된 200편의 옛이야기 가운데 101편을 골라 우리말로 옮긴 책이다.‘백설공주’ 등 친숙한 이야기 외에 ‘하얀눈이와 빨간눈이’‘춤추다 해진 구두’‘다알아 박사’ 등 조금은 생소한 이야기들도 적잖이 실려 있다. 독일어로 ‘작은 이야기’, 우리말로는 ‘전래동화’쯤으로 번역되는 메르헨은 신화나 전설과는 달리 오로지 재미를 추구한다. 짧고 재미있으니 소박한 민중이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이야기였을 듯하다. 이번 번역집은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받은 독일의 일러스트레이터 하이델바흐가 그림작업을 맡아 이야기 읽는 재미를 한층 더해준다.3만 5000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탈북자 출신 1호 은행원

    “북한은 남한과는 달리 금융시스템이 거의 전무합니다. 북쪽 실정에 맞는 금융상품을 개발해 북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게 제 역할이겠죠.”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 특히 금융 공기업은 거의 모든 취업 준비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올해 기업은행 공채에서 새터민(탈북자) 출신이 입행해 화재다. 새터민 은행원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드림’의 주인공은 조현성(26)씨. 조씨가 탈북을 감행한 것은 지난 1998년.1년 전 국경을 넘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겨우 18세의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두만강을 건넜다.“아버지는 탈출경로를 알아보겠다고 길을 나섰지만 소식이 끊겼어요. 저 역시 아버지를 따라 국경을 넘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체포됐고, 어쩔 수 없이 중국으로 탈출했죠. 다행히 아버지를 만나 이듬해 11월 한국으로 왔습니다. 어머니와 동생까지 온 가족이 남쪽에서 다시 만나기 위해 3년이나 더 필요했습니다.” 피붙이 하나 없는 한국은 ‘따뜻한 남쪽’이 아니었다.“모든 것이 두려웠던” 곳이었다. 탈북 당시 조씨는 고등중학교 2학년(고교 2년). 공부밖에 매달릴 데가 없었다. 다행히 남한과 북한의 서로 다른 교과과정을 뛰어넘을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99년 8월 고교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그해 11월 연세대 경제학과에 외국인 특별전형으로 합격했다.조씨는 “살아왔던 곳과 완전히 다른 직업과 환경을 선택하는 건 두려운 일이지만 도전 정신과 열정이 힘이 된다.”면서 “북한 실정에 맞는 상품을 개발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금융인이 되는 게 목표”라며 밝게 웃었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한인회 허브화 첫걸음은 서로의 칭찬”

    18세 때 미국으로 입양돼 워싱턴주 3선 상원의원에 오른 신호범(미국명 폴 신·73) 의원이 20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2007 세계한인회장대회’에 강연자로 초대돼 전세계 56개국에서 모인 한인회장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신 의원은 이날 ‘우리의 비전, 우리의 희망’이란 주제로 동포사회의 현황과 과제를 특강형식으로 소개했다. 그는 “한인회의 위상이 높아지려면 이중(二重)문화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통해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한인들은 지도자를 세워놓고도 이리저리 흔드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라며 “한인회 허브화의 첫걸음은 구성원들이 가장 확실한 무기인 ‘진실’을 가지고 서로를 ‘칭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 의원은 “한민족은 이같은 과정을 통해 반드시 세계를 지배하는 디아스포라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 의원은 또 “유대인을 추월할 수 있는 한인들의 교육열은 커다란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장해 주는 민족적 디딤돌이 될 것”이라며 “또한 한인들이 거주국에서 진취적인 투지를 가지고 그 나라의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외동포의 역할에 대해 신 의원은 “교포사회에는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이민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한국을 대표하며 조국을 세계에 알리려고 노력한다.”며 “앞으로 더 훌륭한 조국의 홍보대사가 되도록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신 의원은 도미한 뒤 브리검영대를 나와 워싱턴주립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메릴랜드대와 하와이대 교수를 역임했고,‘제1회 자랑스러운 한국인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교포사회의 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일본어판 유튜브에 ‘한국비하 동영상’ 도 넘었다

    일본어판 유튜브에 ‘한국비하 동영상’ 도 넘었다

    세계적인 UCC사이트 ‘유튜브’(YouTube)와 지난 19일 오픈한 일본어판 유튜브에 한국과 한국인을 비하하는 내용의 동영상이 수없이 많아 한국의 실체가 왜곡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일본어판 유튜브에서 키워드 ‘한국’으로 검색된 동영상수만 무려 6만 7천개. 대부분의 동영상에는 한국의 사회문제와 한·일간의 정치적 논란거리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비하하는 네티즌들의 제작물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일본에서 방영되었던 한국에 관한 좋지않은 뉴스등이 일본네티즌들에 의해 끊임없이 올려져 세계인들이 한국을 오해의 시선으로 바라볼 소지를 안고 있다. 일례로 한 일본인 네티즌이 올린 ‘오오타카 미키(大高未貴)가 한국에 고한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에서는 “한국은 자국이 불리한 상황에 처하면 주변국에 도움을 청하다가도 ‘반미’· ’반일’을 외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와 같은 ‘혐한’(嫌韓) 발언만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한 일본인 네티즌은 ‘한국성형트러블’이라는 제목으로 “18세 이상의 한국인 여성은 2명중 1명꼴로 성형을 한다.”는 과장된 자료를 올렸다. 한국에서 유학중인 일본인 나카무라 히토미(中村ひとみ,24)씨는 “왜곡된 동영상으로 한국의 실체를 일본인들이 오해할 수 있다.”며 “한국의 좋은 점도 보여주는 동영상이 많이 게재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사진= 일본판 유튜브 홈페이지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5) 열두차례나 중국 오간 역관 이상적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5) 열두차례나 중국 오간 역관 이상적

    양반 관료들은 고유 업무가 있었으므로 일생에 한번 사신으로 가기 어려웠다. 두 차례 이상 나갔던 문인은 별로 없다. 그러나 역관들은 외국에 나가 통역하는 게 업무였으므로, 능력만 인정되면 몇 번이라도 나갔다. 외국에 많이 나갈수록 회화 솜씨가 느는 것이 당연했다. 가장 많이 나갔던 역관은 이상적(李尙迪·1803∼1865)과 그의 제자 오경석인데, 이상적은 27세 되던 1829년부터 환갑이 지난 1864년까지 열두 차례나 나갔다. 한번 왕복하는데 반년 넘게 걸리고 준비기간까지 필요한 것을 감안하면, 젊은 시절의 절반은 외국에서 머문 셈이다. 박지원이나 박제가 같은 실학자들이 중국 여행을 통해 중국 문인들과 교유한 예가 있지만, 모두 일회성에 그쳤다. 이상적 같이 지속적으로 교유한 예는 없었다. ●9대에 걸친 역관 집안에서 태어나 우봉(牛峰) 이씨는 9대에 걸쳐 30여 명의 역과 합격자를 배출한 세습 역관 집안이다. 증조부 이희인과 조부 이방화가 역관들의 교육기관인 교회청(敎誨廳) 훈상(訓上·정3품)을 지냈으며, 생부(生父) 이정직과 양부(養父) 이명유는 사역원 첨정(僉正·종4품)을 지냈다. 아우 상건, 사촌 상익, 조카 용준도 연행(燕行)의 수역관(首譯官)과 교회청 훈상을 지냈다. 손자 대에 이르러 태정, 태영, 태준이 모두 역관으로 중국에 드나들었다. 생부 이정직(1781∼1816)과 당숙 이정주(1778∼1853)는 송석원시사에 드나든 위항시인인데, 이상적은 이정주의 시집 ‘몽관시고(夢觀詩稿)’를 북경에 가지고 가서 청나라 문인들에게 보여 주었으며,“만당(晩唐)의 여러 시인을 닮았다.”는 칭찬을 들었다. 역관들을 가르쳤던 교회역관(敎誨譯官)은 출세의 지름길이었는데, 김양수 교수는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교회역관 442명의 집안을 분석해본 결과 97씨족 가운데 우봉 김씨가 2위, 우봉(강음) 이씨가 8위라고 하였다. 이상적의 외가인 설성(雪城) 김씨도 역시 역관 집안이어서, 외조부 김상순, 외삼촌 김경수가 모두 중국에 여러 차례 다녀왔다. ●문집을 북경에서 출판하다 이상적은 제8차 연행이었던 1847년, 북경 유리창에서 문집 ‘은송당집’을 간행하였다. 국내외에서 문인들과 주고받은 시문을 12권 목판본으로 간행한 것이다. 표지의 제목과 서문, 찬(贊)을 모두 청나라 문인들이 짓고 써주어, 그의 교유 범위를 짐작케 한다. 이상적은 청나라 문인들에게 받은 편지를 모아 ‘해린척독(海隣尺牘)’이라는 10권 분량의 서한집을 편집했는데, 이 책은 출판되지 않고 호사가들에 의해 여러 형태로 필사되어 전해졌다. 해린(海隣)이라는 두 글자는 당나라 시인 왕발(王勃)의 시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가 있다면/하늘 저 끝도 이웃과 같으리(海內存知己,天涯若比隣)”라는 구절에서 나왔다.“세상 모두가 이웃(海隣)”이라는 생각은 ‘논어’의 “천하가 다 형제(四海之內,皆兄弟也)”라는 구절에서 나왔는데, 이상적은 자신의 서재 이름을 ‘해린서옥’이라고 하여, 조선에서는 중인이라 차별대우를 받지만 하늘 저 끝에서는 이웃으로 인정받았다는 자부심을 나타냈다. 청나라 문인들에게서 받은 이 편지집은 규장각, 장서각, 고려대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과 일본 덴리대학 이마니시류(今西龍)문고, 하버드대학 옌칭도서관에 다른 제목으로 소장되었는데, 필자가 옌칭도서관에서 발견하여 ‘출판저널’에 소개한 ‘화동창수집(華東倡酬集)’의 분량이 가장 많다.56명 148통의 편지가 실렸는데,‘은송당집’의 출판을 주선해준 오정진(吳廷)의 편지가 실려 있다. 이상적이 북경에 머무는 동안 오정진은 원문 교정에서 종이 구입, 인쇄비 계산과 계약금 전달, 인쇄 및 배포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편지를 통해 업무를 추진했다. 서문은 이상적의 친필을 그대로 새겨서 찍자고 권하기도 했다. 목판은 북경 광성화포(廣成貨鋪)에 보관해 두었는데, 오정진도 20부를 추가로 인쇄해 친구들과 나눠 보았으며. 성리학자 주돈이(周敦)의 후손인 주달(周達)도 자기 돈을 들여 200부를 더 찍어 강남 일대에 전파시켰다. 이상적은 1859년에도 북경에서 속집(續集)을 간행하였다. 본집과 속집까지 합하여 24권 체제의 ‘은송당집’은 그 이후에도 조금씩 달라진 체제로 여러 차례 간행되어 국내외에 독자를 늘려갔다. 임금이 자신의 시를 읊어준 은혜에 감격하여 문집 이름을 ‘은송당집(恩誦堂集)’이라 하였다. ●‘태평천국의 난´을 정확히 보고하다 해마다 여러 차례 사신들이 중국에 다녀왔지만, 개인적인 교류는 별로 없었다.18세기 후반이 되면서 청나라 문화에 관심이 깊었던 연암 박지원이라든가 담헌 홍대용 같은 실학자들이 사신의 개인 수행원인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 따라가면서 청나라 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한자에 익숙했지만 중국어 회화는 못했기 때문에 붓으로 글씨를 써서 의사를 통하였다. 이들이 필담(筆談)을 통해 청나라 문인들과 학문을 논하고 신간 서적을 구입해 오자, 조정에서 통제하기 시작했다. 정조 10년(1786) 1월 22일에 대사간 심풍지가 “연경에 가는 사신은 사행(使行)에 관한 일 이외에, 그쪽 인사들을 방문하여 필담을 나누거나 서찰을 주고받는 것을 금지하소서.”라고 아뢰자, 정조가 그대로 따랐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역관 문인들이 능숙한 중국어 회화를 통해 본격적으로 청나라 문인들과 교유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역관이 바로 이상적이다. 한 차례 연경에 다녀오면서 수완이 뛰어난 역관은 이듬해에도 선발되어 다녀왔는데, 이상적은 열두 차례나 선발되었다. 임무가 없었던 자제군관과는 달리, 수역(首譯)에게는 “청나라 정세를 자세히 탐지하라.”는 왕명이 주어졌다. 이상적이 1859년 제10차 연행에서 돌아와 올린 견문사건(見聞事件)을 한 구절만 읽어 보자.“경술년(1850) 선황(先皇)이 붕어하자 광동 서쪽지역에서 도적의 무리가 창궐하고, 바닷물이 평지에 솟구치며, 벌레와 모래가 먼지 속에 묻힐 정도였다고 합니다. 비록 황하 이북으로 감히 쳐들어오지 못했지만 장강 남쪽에서는 아직도 횡행하여 고을의 성곽을 빼앗았다 잃었다 변화가 무쌍하니, 나라와 개인의 축적이 탕진되어 남은 것이 없습니다.(줄임) 도적이 요사한 천주교의 터무니없는 말로 속이니, 나라가 망하기에 충분합니다.” 사신 일행은 북경을 나설 수 없었기 때문에 양자강 남쪽의 사태를 짐작할 수 없었지만, 이상적은 청나라 인사들과 교유를 통해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을 정확하게 보고하였다. 조정의 장수들이 군자금을 빼돌리고, 영국 오랑캐가 이 틈을 타서 약탈을 감행하며 천진(天津)을 개방하라는 압력까지도 상세하게 보고하였다. 조선 정부는 청나라를 천자의 나라라고 의지했지만, 이상적은 청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진단한 것이다. ●오경석과 오세창으로 이어진 역관 제자들 역과 응시자가 많아지고 경쟁이 치열해지자, 재력이 있는 집안에서는 가정교사를 모셔놓고 과거공부를 시켰다. 일단 역과에 합격해야만 대를 이어 역관 활동을 할 수 있었고, 역관이 되더라도 통역 실력이 뛰어나야만 자주 북경에 가서 무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이름난 역관 가문 가운데 하나가 해주(海州) 오씨인데, 이상적과 함께 역과에 응시해 2등으로 합격한 오응현은 동기 가운데 실력이 가장 뛰어난 이상적을 자기 아들 오경석의 스승으로 모셨다. 이상적은 오경석을 비롯한 역관 자제들에게 역과 시험문제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해린서옥(海隣書屋)에 소장한 골동 서화를 보여주며 서화(書畵)에 관한 지식도 가르쳤다. 뒷날 오경석이 귀중한 골동서화를 많이 수집한 것도 이상적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거니와, 북경에 13차례나 다녀오면서 서구세력의 침략과 청나라의 몰락을 목격하고 개화사상의 선구자로 나서게 된 것도 이상적의 국제적인 안목에서 시작된 것이다. 오경석은 자신의 아들 오세창이 8세가 되자 집안에 가숙(家塾)을 설치하고 역관 수업을 시켰으며,16세가 되던 1879년 5월 역과에 합격하자 가숙을 철거하였다. 역관이자 서예가로 활동하던 오세창은 뒷날 삼일독립선언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명으로 나서서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해방 이후 서울신문사 초대 사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추사 김정희는 1840년에 제주도 대정으로 유배되어 9년 동안 외롭게 살았는데, 추사에게 시(詩)·서(書)·화(畵)를 배운 이상적은 중국에 다녀올 때마다 새로운 책과 중국 문인들의 편지를 가지고 스승을 찾아가 전달하였다. 지극한 정성에 감동한 추사가 그려준 그림이 바로 ‘세한도(歲寒圖)’인데, 세한(歲寒)은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잎이 나중에 시드는 것을 안다.”고 한 공자의 말에서 따왔다. 그림에 “우선은 감상하라(藕船是賞)”고 썼는데, 우선은 이상적의 호이다. 제7차 사행을 마친 1845년 1월 13일에 오정진이 북경 우원(寓園)에서 연회를 베풀어 주었다. 이상적은 이 자리에서 청나라 문인들에게 이 그림을 보여 18명으로부터 시와 발문을 받았다. 추사로부터 이상적을 거쳐 오경석과 오세창으로 이어진 중인 문화를 다음 호에 소개하기로 한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검은집’으로 공포영화 데뷔 황·정·민

    ‘검은집’으로 공포영화 데뷔 황·정·민

    ‘검은집’을 통해 공포영화에 첫 발을 디딘 배우 황정민(37)은 “내가 탄 롤러코스터의 옆자리를 관객을 위해 비워뒀다는 생각으로 촬영을 했다.”고 말했다.‘너는 내 운명’에서 순정남으로 나와 관객을 울리고 웃겼던 그가 이번에 맡은 역은 보험금을 노린 7살 아이의 자살에 의심을 품고 죽음의 비밀을 파헤쳐 가는 보험사정인 전준오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초조해 보이는 인상의 전준오는 어린 시절 동생의 자살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인물. 과거의 경험은 그가 사건에 깊숙하게 개입하는 계기가 된다. “제가 표현하는 무서움에 대한 수많은 감정들을 어떻게 하면 관객들도 함께 느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제가 손에 땀을 쥘 때 보는 관객들도 그런 느낌이었으면 해요.” 본격 무더위에 접어 들면서 최근 공포 영화가 부쩍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물건’은 없어 보인다. 소개되는 외화들마다 일본 호러영화 ‘링’‘주온’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한국 또한 ‘장화홍련’ 이후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영화는 없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공포영화를 택한 이유다.“여름철 기획영화로 공포물이 양산돼 왔지만 수준은 열악하죠. 말도 안되는 것으로 소리지르게 만들고, 영화하는 입장에서 싫고 창피하더라고요.” 시나리오를 받아들기 1년 전쯤에 읽은 원작 소설에 대한 호감은 “제대로 된 공포영화를 보여주자.”는 욕심으로 이어졌다.‘검은집’은 1997년 일본공포소설 대상을 받은 기시 유스케의 작품이다. 소설의 유명세 때문에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남다르다. 하지만 그는 별로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눈치다. 작가는 일어로 번역된 시나리오를 읽어 보고 촬영장도 방문했다.“작가가 느낌을 잘 살렸다고 했대요.” 처음 도전하는 장르라 “몰라서 무식하게 달려들었다.”며 매 장면마다 “맞는 거니?”하며 늘 자문했다고 했다. 특히 어려웠던 부분은 전준오가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난 뒤 그와 대면하는 순간.“대본에 ‘소스라치게 놀란다.’라고 써 있는데, 그게 말처럼 되는 것도 아니고. 촬영 장면을 컴퓨터에 넣어서 ‘딩동댕∼ 정답입니다’ 이렇게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어요.(웃음)” 영화는 죄의식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에 관한 이야기다. 최근 버지니아공대 총기사건을 저지른 조승희로 인해 이들의 존재가 화제가 됐었다.“끔찍한 사건을 저지른 사람이 어제 나랑 같이 밥을 먹은 사람이라면 그 느낌이 어떨지 상상해 보세요.” 그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날 법한 또 진짜로 일어나고 있는 소재이기에 그 개연성이 주는 무서움이 관객들에게 어필할 것이라고 말했다.“화들짝 놀라게 하거나 겁을 주는 건 없어요.‘찝찝한 공포’가 우리 영화의 묘미죠.” 그의 차기작은 정윤철 감독의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다. 그에게 영화는 인연이고 운명이다. 소설에 대한 호감이 영화 ‘검은집’으로 이어졌듯, 몇 해전 수해현장에 쏟아지는 도움의 손길을 보며 “나는 뭐하나.” 울컥했던 그에게 “그럼 이거 한번 읽어볼래?”하고 날아든 게 바로 ‘슈퍼맨’이다. 올 연말쯤이면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슈퍼맨으로 변신한 그를 볼 수 있다.21일 개봉,18세 관람가. 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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