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18세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청년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2 1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4,195
  • 책, 문명과 지식의 진화사/니콜 하워드 지음

    책, 문명과 지식의 진화사/니콜 하워드 지음

    서기 2000년의 ‘뉴욕타임스’ 일요판에 실린 정보는 18세기 영국 사람이 반평생 경험하게 될 모든 문서정보의 양보다 더 많았다. ‘책, 문명과 지식의 진화사(니콜 하워드 지음, 송대범 옮김, 플래닛 미디어 펴냄)’는 책의 역사에 관한 책이다. 어떤 기술의 발명도 책만큼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책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책이 묘사하고 있는 21세기 책의 발달사는 놀랄 만하다. 하지만 나일 강둑에서 지천으로 자라던 파피루스로 책을 만들던 먼 역사 속의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하다. 고대 이집트의 수많은 파피루스 두루마리들은 내구성이 있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그러나 서기 1세기에 들어서면서 양피지의 사용이 늘게 된다. 전쟁으로 인해 이집트로부터 파피루스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 한나라 환관이었던 채륜은 서기 105년에 종이를 발명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보다 빠른 기원전 140∼86년 사이에 종이가 출현했다는 설도 있다. 구텐베르크 이전의 목판본은 매번 책을 찍어낼 때마다 글자도 읽기 힘들고 이미지의 질도 떨어졌다. 서구에서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처음으로 인쇄기를 발명해 인쇄를 하고 현대식 책을 만든 사람으로 꼽힌다. 하지만 구텐베르크는 자신의 활동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 거의 없어 인쇄술의 발전과 관련된 그의 역할에 대해서는 논란이 따른다.1399년 독일 마인츠에서 태어난 구텐베르크는 아버지가 지방 조폐소에서 중요 직책을 맡고 있던 명문가에서 자랐다. 기욤 피셰 소르본대 교수는 구텐베르크를 “고대인들처럼 갈대를 쓰지도 않고 지금 우리처럼 깃대 펜을 사용하지도 않고, 금속활자로 빠르고 깔끔하고 아름답게 책을 만든 사람, 신보다도 더 고마워해야 할 사람”으로 규정했다. 매년 10월 독일에서 열리는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도서전으로 자리잡게 된 역사도 흥미롭다. 처음 도서박람회는 프랑스 리옹에서 열렸지만, 곧 지역 시장이 성장하면서 프랑크푸르트에 도서박람회가 등장했다.2주간의 박람회 기간 동안 활자디자이너, 활자주조공, 목판화가, 석판공, 편집자, 저자들이 참석해 책 시장 확산에 자극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17세기 종교 갈등과 전쟁으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 책은 주로 서양을 중심으로 한 책과 인쇄술의 역사를 다루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한국에 관해서는 중국의 제지술이 6세기에 한국에 전해졌고, 승려가 이를 다시 일본에 전파했다고 짤막하게 적혀 있을 뿐이다. 고려시대의 뛰어난 목판인쇄술을 보여주는 팔만대장경이나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이 언급되지 않은 것 또한 옥에 티다. 전자책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손을 거친 순수예술로서의 책은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결론. 책이란 우리의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적인 기술이라는 것이다.1만 8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절세형 상품 가입 서둘러야

    절세형 상품 가입 서둘러야

    재테크 전문가들은 찬 바람이 불면 연말정산을 준비하라고들 한다.12월말까지 시간은 있지만 절세형 금융상품에 가입, 미리미리 준비해야 세율이 매겨지는 과세표준을 줄일 수 있다. 세율은 과표 구간에 따라 달라지므로 과표구간이 변동할 경우 세금이 더 많이 줄어들 수 있다. ●‘‘장마´’와 연금저축은 필수 장기주택마련저축·펀드(이하 ‘장마´)는 연말 소득공제의 대표적 상품으로 꼽힌다. 만 18세 이상 근로자이면서 무주택자이거나 전용면적 85㎡(25.7평) 이하 1주택을 소유한 가구주여야 가입할 수 있다. ‘장마´는 분기별 300만원까지만 넣을 수 있다. 이달중 가입하면 300만원을 한번에 불입하고 연말까지 최대 600만원을 낼 수 있다. 이 경우 불입액의 40%인 240만원의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최대 소득공제는 300만원까지다. 세금을 매기는 과세표준에서 300만원이 빠지니까 연봉 4000만원인 직장인이라면 최소한 300만원의 8%(24만원)에 해당하는 세금을 절약하게 된다. 연금저축도 분기별 납입한도가 300만원이다. 그러나 납입액 100%, 최대 3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연말에 300만원에서 모자라는 금액을 채워넣어도 된다. 전문가들은 씀씀이가 많고 바쁜 연말에는 목돈을 넣기가 쉽지 않은 만큼 한두달 전에 미리 넣어두는 것이 안전하다고 충고한다. 연금저축(펀드)은 연금을 받을 때 5.5%에 해당하는 소득세를 내야 한다. 그러나 ‘장마´는 7년 이상 투자시 이자소득과 배당소득 전액이 비과세다. 장기투자가 필수라는 점과 최근 주식시장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는 점에서 주식투자비중이 높은 ‘장마´펀드도 선보이고 있다. 단,‘장마´는 5년 이내에 해약하면 그동안 받은 소득공제분을 토해내야 한다. 연금저축,‘장마´ 모두 중도해지시 일반소득으로 간주돼 22%의 세금을 내야 한다. 현금이 급하게 필요하다면 담보대출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 ●신용카드 사용과 현금연수증 발급의 생활화 신용카드 사용액 소득공제 ‘15%·15%’ 규칙이 내년부터 ‘20%·20%’로 바뀐다. 연간 소득의 15%를 넘는 금액의 15% 소득공제에서 20%를 넘는 금액의 20% 소득공제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신용카드 사용비율이 급여의 35%를 넘어서면 공제혜택이 늘어나고 그러지 않은 경우는 줄어든다. 웬만한 소비는 신용카드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봉 4000만원의 직장인이라면 800만원 이상은 신용카드를 써야 소득공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셈인데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따라서 현금영수증이 필수다. 사용금액은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이 합쳐진 금액이다. 현금영수증 발급은 휴대전화번호로도 가능하며 내년부터는 5000원 미만도 발급받을 수 있다. 부양가족이 있다면 이들에게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로 현금영수증을 받도록 해 사용금액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강용각 대한생명 FA(PB)는 “여기에 1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보장성 보험까지 챙기면 직장인의 세테크는 모두 갖춘 셈”이라고 지적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Seoul In] 노원 아티스트 공개 모집

    노원구(구청장 이노근) ‘노원 아티스트(Nowon Artist)’를 공개모집한다. 선발된 아티스트들은 최근 상계동 와우쇼핑몰 후문에 개설한 야외무대에서 공연하게 된다. 만 18세 이상이면 신청 가능하며, 모집 분야는 마임, 매직, 악기연주, 노래, 그림, 인형극, 캐리커처 그리기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 및 퍼포먼스 분야다. 희망자는 전화(950-4396) 접수 후 노원구청 홈페이지(www.nowon.seoul.kr)에서 신청하면 된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서 활동하는 中 ‘반상의 철녀’ 루이내웨이 9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서 활동하는 中 ‘반상의 철녀’ 루이내웨이 9단

    장강삼협(長江三峽), 삼국지의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도도히 흐르는 장강(양자강)에 빼어난 경치의 서능협(72㎞), 무협(44㎞), 구당협(33㎞)을 말한다. 웅장함과 험준함, 오묘함이 극치를 이루는 대자연의 창조물이다. 위·촉·오 세나라가 삼협의 꼭짓점에 있었다는 것만 상상해도 어느 정도인지 그림이 절로 그려진다. 1987년 여름, 장강의 삼협을 유영하는 선상(船上). 내로라하는 중국과 일본의 고수들이 참여한 바둑대항전이 벌어졌다. 대회 폐막을 하루 앞둔 날 오후. 대표선수로 참가한 루이내웨이, 장쉬엔, 요다 노리모토, 이마무라 등이 숙소 근처에 산책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요다가 루이에게 속기바둑을 한번 두자고 불쑥 제안을 했다. 이어 둘은 흑백돌을 가리고 숙소 복도에서 서로 마주 앉았다. 그런데 날이 어두워지자 요다 9단이 밝은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해 속기바둑은 요다의 방에서 계속됐다. 가토 9단과 장주주 9단 등이 구경꾼으로 관전했다.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루이를 찾는 전화였다. 중국 지도부에서 저녁회식이 있으니 참석하라는 것이었다. ●‘싼샤 사건´으로 日유학길 올랐다가 한국행 이튿날 바둑대항전은 모두 끝나고 중국팀이 합계성적에서 일본에 패했다. 그런데 루이는 중국 지도부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다. 일본 기사의 방에 들어가지 말라는 훈령을 어겼다는 것이다. 앞서 중국 지도부에서는 “여류기사는 일본 남자 기사들의 방에 가서는 안 된다.”는 지침을 내렸다.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데다가 루이가 그걸 깜빡 잊고 요다의 방에서 바둑을 둔 것이 화근이었다. 동료 프로기사 장주주 9단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불구하고 루이는 반성문까지 썼고 나중에는 국수전 등 주요 기전의 참가자격을 박탈당했다. 중·일 바둑계에서는 이를 샤(三峽)사건이라고 한다. 결국 견디다 못한 루이는 2년 뒤 장주주와 함께 중국 국가대표팀을 떠났다. 장주주는 미국으로, 루이는 일본 유학길에 올랐던 것이다. 루이는 일본에서 살아 있는 전설 오청원(吳淸源) 9단의 제자가 돼 바둑공부를 더 할 수 있었으나 각종 기전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일본기원측이 루이가 일본 여류기전을 싹쓸이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6년을 그렇게 보내다 장주주와 결혼, 미국을 거쳐 1999년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이듬해 조훈현 9단을 눌러 외국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국수전 우승을 차지, 파란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한국기원의 정식기사가 되면서 제2의 인생길을 걷게 됐다.“바둑 둘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 집이다.”고 말하는 그는 자서전 ‘우리집은 어디인가’(마음산책)를 펴낼 정도로 비록 중국 국적이지만 한국생활에 많이 익숙해지고 있다. 올해 44세의 루이내웨이(芮乃偉).18세에 중국 국가 대표선수가 됐고 35세에 9단으로 승단, 세계 바둑 역사상 여성으로는 최초로 입신(入神)의 경지에 올랐다. 그래서 세계 바둑계에서는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불세출의 여류기사”라는 찬사와 함께 ‘반상의 철녀’라고 부른다. 가을바람이 감미롭게 스치던 지난주, 서울 성동구 홍익동에 위치한 한국기원 프로기사 대국실에서 루이를 만났다. 그는 “한국말을 잘 못하는데….”라며 수줍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인터뷰 도중 간간이 한자를 써가며 이해를 도와주려는 ‘친절한 철녀’였다. 한국생활이 어떠냐고 했더니 “(한국에 온 지)8년이 됐다. 프로기사 생활을 할 수 있는 한국이 좋고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이어 남편과 같은 방향의 바둑인생을 사는 게 즐겁다며 해맑게 웃었다. 자택도 한국기원 바로 옆에 마련했단다. 근황을 물었다. 대국이 없는 날에는 오전 10시쯤 기원 연구실에 나와 공부를 하거나 다른 프로기사들의 대국을 지켜보고, 또 집에 돌아가서는 남편과 함께 복기(復碁)를 꼭 한다. 이창호 9단, 유창혁 9단 등과 기원에서 복기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럴 때 점심식사를 기원 옆 작은 식당에서 하는데 하얀 쌀밥이 바둑돌로 보일 때가 많단다. 집에서는 바둑TV를 시청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기보를 검색한다. 남편과 바둑을 두면 누가 이기느냐고 했다.“남편은 내가 다음 돌을 어디에 둘지 아는 것 같고, 반대로 나는 그걸 잘 모른다. 그런 것으로 봤을 땐 내가 남편보다는 머리가 나쁜 것 같다.”며 웃는다. 알다시피 루이 부부는 세계 최강의 9단 커플이다. 한살 연상인 남편은 산시성(山西省)의 타이위안(太原) 출생으로 1978년 국가대표팀에 발탁됐다.1984년과 1985년에 벌어진 중·일 바둑대항전에서 일본의 고수들을 차례로 물리쳐 중국 국민들에게 ‘항일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세계최강 9단 커플… 한국기원 옆에 ‘둥지´ 루이와는 국가대표 시절 알게 됐고 싼샤사건으로 가까워지면서 결혼에 골인했다. 루이와 서울에 정착할 때까지 10년 넘게 외국을 돌아다녀 ‘바둑집시’라는 말도 듣는다. 루이는 “남편은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한다. 집에 DVD와 음향기기까지 설치해 영화감상을 자주한다.”면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서 함께 영화보는 재미가 그만이라고 말했다. “중국 국가대표를 떠난 10년 동안은 정말 무척 괴로웠지요. 특히 일본에서 바둑을 가르치는 노동으로 연명하며 견뎌야 했던 세월은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인지 요즘 한국에서는, 내몫이 아닌 것 같은 행복과 평화, 그리고 한국의 친구들이 실감나지 않을 때가 많아요. 남편이 있고, 우리 집이 있고, 새로운 삶을 열어준 바둑친구들이 있어 아주 행복해요.” 한국의 바둑기사 중에서는 목진석 9단과 김승준 9단과 친하다. 특히 김성룡 9단, 박승철 5단, 김영삼 7단 등은 중국어 실력이 상당한 수준이어서 기사실에 같이 있을 경우 한국말과 중국어를 섞어가며 열띤 토론도 마다하지 않는다. 여자기사 중에는 중국어를 비교적 잘하는 이지현 3단, 한해원 2단 등과 가깝게 지낸다. 루이 부부는 경희대 국제교육학원에 입학,2년여 동안 한국어를 배웠다. 한·중·일의 바둑수준에 대해서는 “한국과 중국이 엇비슷하고 일본은 좀 어렵다.”면서 한국은 힘이 센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고향의 가족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지난달 중국에서 양가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했다.”면서 바둑은 어릴 적 아마초단인 아버지한테 배웠고 남동생이 아마5단의 실력이라고 귀띔했다. 상하이에서 태어난 루이는 평소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으로 집중과 인내력이 필요한 바둑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아예 바둑선수가 되려고 체육중학에 진학했으며 1년반 만에 상하이 시대표에 발탁되면서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남들은 전투형이라고들 합니다. 제가 어떻게 두는 것인지 잘 몰라 일단 싸움부터 걸다 보니 그런 얘기를 듣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두터운 바둑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에게 인생의 좌우명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하얀 종이 위에 다음과 같이 막힘없이 써내려갔다. 蝸牛角上爭何事(와우각상쟁하사):달팽이 뿔 위에 싸워서 무엇하리. 石火光中寄此身(석화광중기차신):부싯돌 번쩍이듯 찰라에 기대 사는 몸. 隨富隨貧且歡樂(수부수빈차환락):부귀든 가난이든 그대로 즐길 일이니. 不開口笑是癡人(불개구소시치인):크게 웃지 않는 그가 어리석구나.-백거이(白居易)의 시 중에서.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3년 상하이 출생 ▲76년 상하이 체육중흥학교(바둑훈련반) 입학 ▲78년 상하이 시대표 ▲80년 중국 국가대표 ▲88년 여성최초로 9단승단 ▲90년 일본 유학 ▲99년 한국기원 객원기사 ▲2000년 제43기 국수전 우승 ▲01년 한국기원 정식기사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8) 침술의 대가 허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8) 침술의 대가 허임

    의원은 전형적인 중인의 직업이지만, 모두 중인은 아니다. 중인이 형성되기 전인 조선 전기에는 물론 선비들이 의원 활동을 했으며, 중인층이 형성된 조선 중기 이후에도 선비 출신의 의원이 많았다. 이들을 유의(儒醫)라고 하였다.‘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도 서얼이긴 하지만 양반 출신이다. 그랬기에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의원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허준과 함께 선조의 주치의였던 허임은 관노의 아들인데 의원이 되었으며, 그의 아들은 의원으로 대를 잇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의 집안은 중인층으로 정착되지 못했지만, 그의 대표적인 제자 최유태와 오정화의 집안을 통해 그의 의술이 전승되었다. ●관노 허억봉과 여종 사이에 태어난 허임 허임이 선조나 광해군의 신임을 받아 승진할 때에도 끝내 따라다닌 꼬리표가 관노의 아들이라는 점이다.1617년 2월12일에 광해군이 허임을 영평현령에서 양주목사로 승진시키자 사헌부에서 “허임의 아비는 관노이고 어미는 사비(私婢)이니, 비천한 자 가운데 더욱 비천한 자입니다.”라고 출생 신분을 들고나와 반대하였다.18일부터 26일까지 계속 반대하자, 광해군도 결국 지쳐서 3월9일에 부평부사로 내보내는 형식으로 타협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지만, 관노와 여종 사이에 태어난 천민을 서울 인근의 목사(정3품)로 내보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강원도 양양의 관노였던 허억봉은 어린 나이에 장악원 악공으로 뽑혀 서울에 올라왔다. 악생은 양민이지만, 악공은 천민이었다. 장악원 첨정 안상이 ‘금합자보(琴合字譜)’를 만들었는데, 허억봉의 연주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악보는 목판본으로 간행된 악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 보물 제283호로 지정되었는데, 안상은 서문에 이렇게 썼다.“내가 가정 신유년(1561)에 장악원 첨정이 되었는데, 악공을 시험할 때에 쓰는 악보와 책을 보니 문제가 있었다. 예전의 합자보(合字譜)를 버리고 다만 거문고와 상하 괘(卦)의 차례만 있으며, 손가락을 쓰는 법과 술대를 쓰는 법은 없으니, 거문고를 처음 배우는 자들이 쉽게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악사 홍선종을 시켜 당시의 곡조를 모으고 약간의 악보를 보태어, 합자보를 고쳐 내게 하였다. 또 허억봉에게 적보(笛譜)를 만들게 하고, 이무금에게 장구보를 만들게 하여 그 가사와 육보(肉譜)를 함께 기록했다. 홍선종은 기보법(記譜法)에 통달하였고, 허억봉과 이무금은 젓대와 장구로 세상에 이름을 떨친 자들이다.” 이달의 시에는 그가 악사(樂師)로 소개되고, 서성의 시에는 전악(典樂)으로 소개된다. 관노 출신이었지만 장악원 연주자 사이에 솜씨를 인정받아 연주 책임자까지 승진한 것이다. 그의 아우 허롱도 악사였다. 허씨대종회 허장렬 부회장은 “허조(許稠)가 좌의정으로 있던 세종 때까지는 하양 허씨가 떳떳한 양반이었는데, 아들 허후와 손자 허조가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반대하다가 죽고 자손들은 관노가 되어 충청북도 괴산군에 배속되었다.”고 고증했다. 그래서 허임의 선조 묘소가 괴산에 있게 된 것이다. 관노가 된 허임이 좌의정 김귀영의 계집종과 부부가 된 사연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데, 허임기념사업회 손중양 이사는 이렇게 추측하였다. 허임이 태어났다고 추정된 1570년 직전에 김귀영이 예조판서가 되었다.‘금합자보’를 만드는 과정에서 장악원의 대표적인 연주자로 인정받은 허억봉은 당연히 김귀영의 집에 자주 부름받았을 것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계집종 박씨와 눈이 맞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관노인데다 어머니도 여종이었으면 허임은 당연히 종이 되었어야 하는데, 허임을 비난하는 글에도 그가 종이었다는 기록은 없다. 아버지가 전악까지 오르면서 제도에 따라 면천되고, 허임도 천인의 신분을 벗어난 것이다. ●어머니를 고쳐준 의원에게 품을 팔며 침술 배워 어머니 박씨가 병에 걸렸는데, 집이 가난해 의원을 불러다 치료할 수가 없었다. 의원이 진맥해서 처방을 내주어도 약재가 비싸기 때문에, 서민들은 몇 차례 침만 맞고도 고칠 수 있는 침술을 더 좋아했다. 그런데 허임의 집안은 너무 가난해서 침 놓은 수고비조차 갚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침 놓아준 의원의 집에 가서 잡일을 도와주는 것으로 치료비를 대신했다. 그런 과정에서 눈썰미가 있던 허임이 침구법을 배운 것이다. 신통한 침술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75세 때에 자신의 평생 경험을 집대성하여 ‘침구경험방’이란 책을 냈는데, 그 머리말에서 자기가 침술을 배운 과정을 이렇게 기록했다.“명민하지 못한 내가 어려서 부모의 병 때문에 의원의 집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오랫동안 공들여 어렴풋이나마 의술에 눈을 떴다.” ‘의가(醫家)’라고만 표현했는데, 앞뒤 문맥을 보면 침의였던 듯하다. 전의감이나 혜민서에서 의학생도로 정식 공부를 하지 못했지만, 그는 스무살이 갓 넘자마자 현장에 나가 침술을 베풀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해군을 따라 황해도, 충청도 등지를 돌아다니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광해군의 신임을 받기 시작했다.1595년에는 종6품 의학교수가 되었으니, 체계적으로 의술을 배우지 않은 그로서는 상당히 빠르게 승진한 것이다. 의원은 크게 약을 쓰는 약의(藥醫)와 침을 쓰는 침의로 나뉘어지는데, 약의는 의과에 합격해야 했고, 침의는 민간 출신도 많았다. 약의를 침의보다 높게 여기긴 했지만, 병에 따라 약의와 침의의 역할이 달랐으며, 약재가 넉넉지 않은 전쟁 중에는 침의의 할 일이 많았다. 허임을 치종교수(治腫敎授)라고도 표기했으니, 외과적인 치료도 겸했음을 알 수 있다. 선조 말년에 병이 깊어지자 여러 의원들이 자주 입시하여 치료했는데, 실록에는 허준과 허임의 이름이 번갈아 나온다. 특히 1604년 9월23일 한밤중에 편두통을 일으키자 선조가 허준에게 “침을 놓는 것이 어떻겠는가?” 물었다. 허준이 “침의들은 항상 ‘반드시 침을 놓아 열기를 해소시켜야 통증이 줄어든다.’고 말합니다. 소신은 침 놓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만, 그들의 말이 이러하기 때문에 아룁니다. 허임도 평소에 ‘경맥을 이끌어낸 뒤에 아시혈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선조가 병풍을 치게 하고, 허임에게 침을 놓게 했다.50대의 허준이 30대의 허임의 침술을 임금 앞에서 인정했는데, 약으로 며칠 끌다가 침을 맞고 완쾌된 선조는 한 달 뒤에 허임을 6품에서 정3품으로 승진시켰다. 허임이 현역에서 물러나 공주에 살 때에도 광해군은 그를 왕궁으로 불러 침을 맞았으며, 너무 늙어 말을 탈 수 없게 되자 처방이라도 보내 달라고 하였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그는 한평생 치료경험을 집대성해 ‘침구경험방’을 지었는데, 내의원 제조 이경석이 발문을 썼다. “태의 허임은 평소 신의 기술을 가진 자로 일컬어져 평생 구하고 살린 사람이 손으로 다 헤아릴 수 없다. 그간 죽어가던 사람도 일으키는 효험을 많이 거두어 명성을 일세에 날렸으니, 침가(針家)들이 추대하여 으뜸으로 삼았다.” 18세기 초엽에 조선으로 유학을 온 오사카 출신의 일본 의사 야마카와(山川淳庵)가 ‘침구경험방´을 일본에 가지고 가서 1725년 일본에서 간행하였다. ●제자 최유태와 오정화를 통해 침술 전승 허임이 공주에 정착하자 후손들이 서울의 중인들과 연결되지 못했지만, 허임의 침술은 제자들을 통해 대대로 전수되었다.‘급유방(及幼方)’이라는 의서에 숙종시대 명의 두 사람을 소개했는데, 이들이 모두 허임의 제자였다. 그 기사는 이렇다. “숙종시대에 태의(太醫) 최유태와 별제(別提) 오정화는 모두 허임에게서 침술을 전수받아 당대에 이름났다. 나는 이 두 사람에게서 그 침술의 연원을 전해들었으므로 자세히 기록하였다.” 최유태는 9대 의원으로 이름난 청주 한씨 출신이다. 최귀동부터 계손, 덕은, 준삼, 응원, 유태를 거쳐 만선, 익진, 택증과 택규에 이르기까지 9대가 모두 의원으로 활동했다. 응원은 내침의(內針醫)인데,23세 되던 1651년 의과에 합격한 작은아들 유태는 아버지의 침술을 전수받지 않고 허임의 침술을 전수받았다. 응원의 맏아들 유후는 1639년 의과에 합격했는데, 그의 후손들도 만상, 익명, 홍훈까지 의원으로 활동했다. 오정화의 집안은 11세 오인수까지 문과 합격자를 낸 양반이었지만,13세 오구가와 14세 오대종이 무과에 합격해 무반이 되었으며, 오대종의 맏아들인 15세 오인량이 역과에 합격하여 역관 가문이 되었다. 둘째아들인 오제량은 무과에 급제해 무반의 전통을 이어받았는데, 그의 아들 오정화(吳鼎和)가 역관의 딸과 결혼했지만 가업을 잇지 않고 허임의 침술을 전수받으면서 그의 후손 가운데 한 계파는 역관으로 이어지고, 한 계파는 의원으로 이어진다. 의과에 합격해 활인서 별제(종6품)까지 오른 오정화는 침만 잘 놓은 것이 아니라 약까지 처방을 내려 의약동참의로 이름을 올렸는데, 그의 후손들은 17세 지철,18세 덕신,19세 명검,20세 인풍까지 여러 대에 걸쳐 모두 침술 의원으로 대를 이었다. 오정화의 아들 17세 지항부터 24세 경석까지 8대에 걸쳐 역관을 낸 것도 유명한데, 이미 26회부터 29회까지 4회에 걸쳐 역관 오경석과 오세창의 중인 활동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다. 오경석의 사위 이용백은 대표적인 중인 집안의 족보를 집대성한 ‘성원록’ 편찬자로도 널리 알려졌는데, 그는 이 책의 해주 오씨 항목에서 역관으로 이어지는 17세 지항의 계파를 정통으로 놓고, 의원으로 이어지는 17세 지철의 계파를 왼쪽에 배치하였다. 허임의 후손들은 중인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허임의 침술은 제자 최유태와 오정화를 통해 대대로 전수되면서 중인 침의의 전문성을 더욱 확고히 했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열린세상] 지구 살리기 공약이 안 보인다/정문성 울산대 물리학과 교수

    [열린세상] 지구 살리기 공약이 안 보인다/정문성 울산대 물리학과 교수

    올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지구 온난화를 증명하듯이, 최근 들어서는 이상기후까지 부쩍 많아졌다. 빙하기로 접어들 때라는데, 오히려 정반대로 만년설이 녹고 빙하가 사라지는 등 더워지는 징조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기록에 의하더라도 지표면의 온도는 100년 전에 비하여 0.7도 정도 높아지고, 한반도 해수면 온도는 그 이상 상승했다. 그것은 18세기 중엽부터 일어난 산업혁명에서 비롯되었음을 기록이 보여준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이산화탄소의 양이 증가함에 따라 대기의 온실효과가 커져서 지표면의 온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온실효과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복사파는 지표면에 쉽게 도달하는데, 지표면이 복사하는 파는 지구 밖으로 잘 나가지 못함으로써 나타난다. 대기 중의 수증기, 이산화탄소, 메탄 등이 지구의 복사파를 잘 흡수하여 통과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18세기 중엽 이전에는 지구 대기의 0.03%에 채 미치지 못하였는데 현재 0.04% 가까이에 이르고 있다. 미소량인데도 지구 온난화를 유발시키는 것이다. 사실 산업활동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언제라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악순환이 일어나기 이전이라야 가능한 처방이다. 지표면 온도가 어느 정도 높아지면, 바위나 물 속에 있던 이산화탄소 분자들이 대기 중으로 빠져나온다. 그 이산화탄소는 온도를 상승시키고, 다시 많은 이산화탄소가 빠져나오고, 또 온도가 상승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지구에 이웃한 금성과 화성에는 이산화탄소가 대기의 95%이다. 너무 덥거나, 너무 춥기 때문에 원시대기의 조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지구는 두 행성 사이, 아주 적절한 자리에 위치한 특별한 행성이다. 온도가 적당하여 생명이 탄생하고, 그 생명체들이 원시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소모하며 산소를 공급함으로써, 지구는 푸른 행성으로 탈바꿈하였다. 그런데 최고 생명체인 인간이 온난화를 점화시켜 지구를 금성이나 화성처럼 이산화탄소의 행성으로 전락시키려 하고 있다. 적어도 지난 40만년 동안은 기후의 큰 흐름은 지구의 천체운동에 따른 듯하다. 공전과 자전 상태에 따라 태양의 에너지를 많이 받아 여름이 되고, 적게 받아 겨울이 된다. 또 장기간 덜 더운 여름과 덜 추운 겨울이 반복되는 상태에서는 지구는 빙하기를 맞고, 더 무더운 여름과 더 추운 겨울이 반복되는 상태에서는 온화한 간빙기를 맞는다. 그 흐름대로라면, 지금의 간빙기는 거의 끝나고 있다. 지구가 빙하기로 들어서면 삶의 터전이 좁아지므로 생존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그러나 빙하기를 거치면서 생명이 진화한 걸 보면, 천체운동에 의한 기후변동은 푸른 지구를 더 한층 고귀하게 한다. 이에 반하여, 이산화탄소에 의한 온난화는 지구를 회복할 수 없는 죽음의 행성으로 몰고 갈 것이다. 그런데도 중국과 인도에서는 무분별하게 화석연료 공장들이 건설되고 있다. 그리고 세계 인구의 5%이면서 세계 에너지 소모량의 25%를 차지하는 미국이 교토 의정서에 서명하지 않으며 온실가스 규제에 동참하지 않는다. 이산화탄소 배출 순위 1,2위를 다투는 국가들이 온실가스를 더 내뿜으려 하니, 온난화를 저지하려는 노력이 물거품으로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얼마 전 보도에 의하면 고양시는 모든 도로에 자전거 길을 만든다고 한다. 현 시점에서는 그것이 지구를 살리려는 최선의 방법이 아닌가하고 반문해본다. 60세가 넘은 노벨 수상자도 자전거로 통근하듯이, 외국의 여러 나라에서는 가능한 한 자전거를 이용한다. 또 걷는다. 늦기 전에 우리나라 전체가 고양시와 같이 친환경 정책이 현실화되길 기대해보고 싶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지구 온난화를 막는 정책이 이번 대선에 이슈화되었으면 하는 기대도 가져본다. 정문성 울산대 물리학과 교수
  • 카투사 지원자 인터넷 접수

    병무청은 내년에 입영하는 카투사 지원자를 10일부터 18일까지 인터넷으로 접수한다고 밝혔다. 접수는 병무청 홈페이지(www.mma.go.kr)에 하면 된다. 모집 인원은 1840명으로 다음달 15일 컴퓨터 무작위 추첨을 통해 공개 선발된다. 최종 합격자는 내년 1월부터 12월까지 본인이 선택하는 시기에 입영하게 된다. 지원 자격은 접수연도 기준으로 18세 이상 28세 이하(79∼89년생)로 중졸 이상 학력과 신체등위 1∼3급 중 현역병 입영 대상자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美연구팀 “아버지ㆍ학생 손이 가장 비 위생적”

    美연구팀 “아버지ㆍ학생 손이 가장 비 위생적”

    평소 손씻기만 잘해도 감기와 같은 감염성 질병이 예방될 수 있다는 것은 기본 상식. 그러나 개인의 습관과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손을 잘 못씻는 경우가 많다. 최근 미국의 ‘비누·합성세제협회’(SDA)는 “학교의 양호선생님과 보건과목의 담당교수가 가장 위생적인 손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는 설문결과를 발표했다. 이러한 결과는 취학아동이 있는 664명의 부모와 15-18세의 청소년들 그리고 학교선생님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설문결과를 토대로 한 것이다. 연구팀은 설문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손 위생관리를 점수화 했으며 그 결과 학생은 D, 아빠는D+, 양호선생님과 엄마는 B-, 건강 및 보건과목 담당교수는 B+로 나타났다.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건강 및 보건과목 담당교수들 중 60%는 설문에서 “하루에 10번이상 손을 씻는다.”고 대답했고 97%가 “매번 화장실을 다녀온 후에는 꼭 손을 씻는다.”고 밝혔다. 반면 손씻기에 관해 가장 낮은 의식을 가진 사람들로는 학생들이 뽑혔으며 그 중 22%가 “화장실 사용 후 손을 씻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또 식사 전과 재채기를 한 뒤에 손을 씻지 않는 학생들의 비율이 70%를 넘었다. 학생 다음으로 낮은 위생점수를 받은 아버지들은 어머니들보다 손을 훨씬 덜 씻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버지들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한 뒤 혹은 화장실 사용 후 손을 씻는가?’의 질문항목에 대해 어머니들보다 22%나 낮은 응답률을 보였다. SDA의 낸시 복(Nancy Bock)박사는 “감기바이러스가 유행하는 계절이 다가오면서 올바른 손씻기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특히 학교와 직장을 중심으로 위생적인 손씻기가 철저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SDA가 권고한 위생적인 손씻기 방법. 1. 액체나 고체 비누를 만지기 전에 흐르는 따뜻한 물에 손을 적실 것. 2. 비누거품으로 구석구석 문지를 것. 3. 손가락 사이와 손톱 밑을 적어도 15초에서 20초동안 닦을 것. 4. 흐르는 따뜻한 물에 손을 잘 헹구어 낼 것. 5. 건조기나 깨끗한 수건을 이용해 손을 말릴 것.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토요영화] 데드맨

    [토요영화] 데드맨

    ●데드맨(EBS 세계의 명화 오후 11시) 서부극 영화는 뻔하디 뻔하다? 짐 자무시의 서부극 ‘데드맨’(1995)은 이런 편견을 깬다. 데뷔작 ‘천국보다 낯선’(1984)에서 젊은이들의 나른한 절망을 형상화했던 짐 자무시는 이 영화에서 죽음에 대한 몽환적 공포를 변주하며 ‘낯선 서부극’을 선보인다. 미국 동부 클리블랜드 출신의 윌리엄 블레이크(조니 뎁)는 서부 머신 타운에 취직이 됐다는 통지서를 받고 서부로 향한다. 긴 열차 끝에 도착한 그곳은 기대와는 달리 거칠기 그지없는 곳. 설상가상으로 일자리마저 이미 다른 사람이 차지한 상태다. 돌아갈 차비조차 없는 블레이크는 거리를 배회한다. 그러다 우연히 꽃 파는 여자를 만나 그녀 방에서 하룻밤을 지내는데, 갑자기 그녀의 옛 연인 찰리(가브리엘 번)가 침실로 들이닥친다. 당황한 블레이크는 총격전 끝에 그를 사살하고 만다. 얼떨결에 살인범이 된 블레이크. 가슴에 총상을 입은 채로 도망치다 숲속에서 쓰러진다. 인디언 노바디(게리 파머)가 블레이크를 발견해 돌보는데, 그는 블레이크가 이미 세상을 떠난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환생이라고 믿는다. 블레이크는 노바디의 도움으로 힘겹게 도망치기 시작한다. 한편, 블레이크가 마을에서 죽인 찰리는 블레이크가 취직하기로 했던 회사 사장의 아들이었다. 이에 사장 존 디킨슨(로버트 미첨)은 아들의 복수를 위해 3명의 인간 사냥꾼을 고용해 블레이크를 뒤쫓기 시작하는데…. 블레이크를 영적인 세계로 안내하는 인디언 노바디가 읊조리는 대사는 18세기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지은 ‘지옥에서의 잠언’ 시구절이다. 짐 자무시는 이 작품에서 얻은 영감을 토대로 관념적이고도 상징적인 세계를 새롭게 영상화했다. 또 서부극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모래바람은커녕 흑백의 탈색된 이미지로써 자신의 영원한 모티브 ‘소외와 고독’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작업은 영화계에서도 각광을 받아,‘데드맨’은 프랑스의 영화비평지 ‘카이에 뒤 시네마’와 ‘프리미어’에서 1996년 ‘세계 10대 영화’로 꼽히기도 했다.121분.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일요영화] 붉은 수수밭

    [일요영화] 붉은 수수밭

    ●붉은 수수밭(MBC 일요영화특선 오후 12시30분) 중국의 5세대 감독인 장이머우가 1988년 만든 데뷔작 ‘붉은 수수밭’은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까지 기구한 생애를 살아가는 여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광활한 수수밭을 배경으로 중국 특유의 대륙 성향을 가열차게 뿜어내는 화면이 인상적이다. 가난이 죄.18세의 추알(공리)은 나귀 한마리의 몸값으로 나이 쉰이 넘은 양조장 주인 리씨에게 팔려간다. 남편 얼굴도 모르는 채 가마를 타고 신랑집으로 향하면서 추알은 즐겁지가 않다. 그저 가마 가리개 사이로 젊은 가마꾼들의 우람한 상체를 엿보는 재미로 시집가는 시름을 달랜다. 예식을 올린 후, 풍습대로 사흘째 되는 날 아버지와 동행해 다시 친정으로 떠난다. 앞서 가던 그녀는 수수밭에서 누군지 모를 사내에게 끌려가고, 그가 바로 남몰래 훔쳐보던 가마꾼 유이찬아오임을 알게 된다. 추알이 남편에게 되돌아왔을 때, 남편은 살해당해 있다. 과부가 된 추알은 혼자 힘으로 양조장을 꾸려간다. 유이찬아오는 그녀와 동침한 사실을 소문내고 새로 빚은 술독에 오줌을 누면서 말썽을 피운다. 그리고 자신이 주인이라며 추알이 머무는 안채로 들어간다. 유이찬아오가 오줌을 눈 고량주는 맛있는 술로 유명해져 ‘18리 홍고량’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9년 뒤. 추알과 유이찬아오의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일본군은 군용도로를 건설하겠다며 마을사람들에게 수수밭을 훼손할 것을 강요한다. 그러나 항일 게릴라에 가담했던 일꾼 라호안이 가죽이 벗겨지는 형벌로 죽자, 마을 사람들은 분노가 폭발한다. 유이찬아오와 일꾼들은 수수밭에 폭파장치를 설치하고 고량주에 불을 붙이며 일본군에 맞선다. 이 와중에 추알이 일본군의 기관총에 맞아 쓰러지고 만다. 온통 불길에 휩싸이는 수수밭. 화염인지 핏물인지 모르게 수수밭이 점점 붉게 물들어간다. 인고의 세월을 살아간 한 여인의 삶을 그린 ‘붉은 수수밭’은 원색톤의 화면과 절제된 전통음악으로 주제를 잘 형상화한다.1988년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몬트리올 영화제 특별상, 이탈리아 듀브린 영화제 최우수상, 중국 백화상 작품상, 중국 금계상 작품상, 프랑스 낭트 영화제 촬영상 등을 수상했다.90분.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공무원 10급 기능직도 있어요

    공무원 10급 기능직도 있어요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9급 공무원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몇년을 투자하면서 허송세월하는 것보다는 10급 기능직 공무원으로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 시험과목 수가 적어 9급 시험보다 시험 준비기간도 상대적으로 짧다. 합격하면 9급과 거의 비슷한 대우를 받아 9급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라면 한 번 도전해볼 만하다. ●10급 기능직이란? 10급 기능직은 각 기관의 행정, 민원, 회계업무나 전산, 통신, 운전, 기계 업무의 지원을 담당하는 공무원이다. 직렬은 크게 사무, 조무, 운전, 위생, 속기 등 5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기계, 전기, 통신 업무 등을 하는 조무분야와 사무 분야가 모집인원도 많고 지원자들도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다. 10급의 장점은 준비 기간이 짧으면서 9급과 거의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점이다.5년 이상 재직하면 퇴직연금과 근무연수에 따라 퇴직수당이 나오고 중·고생 자녀 학자금 지원도 받을 수 있다. 공무원 임용시행령에 따라 10급에서 1년6개월 이상 근무하면 승진후보대상자가 되고 6년 이상 근무시 9급으로 근속 승진이 가능하다. 고시넷 관계자는 “9급과 비교해 월 6만∼7만원 차이가 나는 것 외에 다를 것이 없다.”면서 “최근에는 공무원의 후생복리제도, 근무여건, 각종 수당 등 여러가지 처우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길어도 1년 안에 합격” 10급은 각 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시·도 교육청에서 수시로 뽑기 때문에 연중 수시채용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매년 채용 규모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지난해는 전국에서 700명 이상을 뽑았다. 경기도 교육청이 상·하반기 각각 200여명씩을 뽑아 가장 많은 인원을 선발했다. 10급 시험과목은 모집기관과 직렬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상식과 국어 혹은 한국사를 치르고 기계직이나 보건, 간호직 등에서 전공 관련 1과목을 추가로 치르기도 한다. 나이 제한도 18세 이상,40세 미만으로 9급보다 폭이 넓다. 직렬에 따라서는 45세까지도 가능하다. 그러나 10급을 준비하기에 앞서 자격증 준비가 필수다.7·9급과 달리 가산점이 아니라 보통 사무직은 워드프로세서나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을, 조무직은 기술 관련 자격증을 필수항목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미리 확인하고 지원해야 한다. 고시넷 관계자는 “자격증이 있으면 두세 달만에 합격하기도 하고 길어도 1년 안에는 대부분 합격하는 추세”라면서 “직장인이나 주부들도 뒤늦게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10급 선택 신중히 결정해야 최근에는 9급 공무원 시험이 살인적인 경쟁률을 기록하면서 9급 시험과 병행하거나 아예 10급으로 옮기는 사례도 종종 있다고 한다. 한 네티즌은 “검찰 청원경찰을 모집하는 데 32살의 육군 대위 출신이 뽑히는 걸 봤다.”면서 “10급이든 9급이든 합격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합격만을 목표로 무턱대고 준비했다가는 오히려 시간낭비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수험생은 “월급은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연간 실수령액에서는 꽤 차이가 난다.”면서 “10급에 만족하지 못해 9급에 다시 도전하는 공무원들도 있다.”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김희달(金喜達)박사의 성문제 상담실]지나친 자위습관 결혼뒤 괜찮을까

    <물음>저는 18세 소녀입니다. 2년 전에 자전거를 배우려는데 어쩐지 기분이 이상하여 배울수 없었읍니다. 그후 잠자리에 들어 손으로 아래를 만지는 습관이 생겼고, 만지면 자전거를 배우려던 때와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어서 자연히 아래에 손을 넣어서 자위를 하게 되었읍니다. 지금은 매일 한번씩은 하는 습관이 되었고, 가끔 손이외의 다른 물건으로 자위를 하는데 이런 경우 하고 나면 결혼 후 이상이 있지 않나를 생각하여 불안과 두통이 생기고 허리가 아픕니다. 그러면서도 자위를 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읍니다. 선생님, 저는 병적일까요? 또 결혼후에 처녀가 아니라고 할까봐 요새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읍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 주셔요. <M子> <해답> 이물쓰는건 잘못 최악감은 없애야 사춘기 소녀들에게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습관성으로 된다든지 자기가 하고 있는 자위에 죄악감을 느끼거나 거기에 부수적으로 다른 이물을 사용하는 경우는 병적인 것으로 볼수 있으니 전문의의 진찰을 받고 하루 속히 올바른 지도를 받길 바랍니다. 단 호기심에 때때로 자위를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는 일이므로 걱정이나 죄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김희달 박사 [선데이서울 71년 1월17일호 제4권 2호 통권 제 119호]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6) 후세에 전해진 중인들의 문학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6) 후세에 전해진 중인들의 문학

    서당 훈장인 최경흠을 중심으로 모였던 직하시사(稷下詩社)는 자신들의 창작활동보다도 중인 선배들의 생애와 업적을 정리한 공로로 더 높이 평가받고 있다. 한 개인의 시집을 출판하려면 적어도 몇백 편 정도의 작품 분량이 있어야 했고, 책을 편집·출판할 비용이 마련되어야 했다. 상업 출판이 없던 시대였기 때문에, 모두 자비 출판이었다. 그런데 가난한 중인들은 개인 시집을 낼 여유가 없었다. 직하시사 동인들은 수백명 선배들의 시를 모아서 시선집을 출판해주고, 그들의 전기도 지어 주었다. 그러한 문화활동 중심에 조희룡이 있었다. ●잡류 6명이 함께 시선집을 출판하다 위항시인 가운데 최초로 문집을 낸 사람은 유희경(劉希慶·1545∼1636)인데, 그는 노예 출신이다.13세에 부친상을 당하자 인부도 구하지 못하고 직접 무덤을 만든 뒤에 흙을 져다가 계단을 만들었는데, 수락산 선영을 왕래하던 양명학자 남언경이 기특하게 여겨 한문을 가르쳤다. 그와 함께 풍월향도(風月香徒)로 불렸던 백대붕(白大鵬)도 전함사의 노예였으니, 임진왜란 전후에는 아직 중인이라는 계층이 확립되지 않았다. 임진왜란 즈음에 태어난 중인들은 주로 삼청동에 모여 한시를 지었다. 이 모임의 주역도 노예 출신의 최기남인데, 그는 집이 가난해서 선조의 부마 신익성의 집에 궁노(宮奴)로 들어갔다. 서리(書吏) 일을 보는 틈틈이 경전을 연구했으며, 서당을 열어 위항 자제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와 함께 시를 지었던 친구나 후배들은 의원 정남수, 의원 남응침, 의원 정예남, 금루관(禁漏官) 김효일, 역관 최대립 등인데, 모두 직업상 한문에 능통했다. 이들은 궁에서 숙직하는 날에 모여 시를 짓기도 했고, 날씨가 좋은 날 악공을 불러 풍류를 즐기며 시를 짓기도 했다. 자신들이 놀던 모습까지 그림으로 그렸지만, 현재 확인된 것은 없다. 김효일과 최대립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이들은 1658년쯤에 자신들의 작품을 모아 책으로 낼 생각을 했다. 각자 개인 시집을 내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여섯 사람의 시를 함께 묶었다. 정남수 52편, 최기남 53편, 남응침 43편, 정예남 21편, 김효일 41편, 최대립 51편 등 모두 261편을 편집한 뒤에, 의원 남응침이 어릴 적 친구였던 영의정 이경석을 찾아가 서문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천대받던 중인들의 시선집이 출판된 적이 없으므로, 영의정의 서문을 받아 문단으로부터 인정받으려 했던 것이다. 시선집의 제목인 ‘육가잡영(六家雜詠)’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육가(六家)는 여섯 사람의 시인이라는 뜻이니 별 문제가 없지만, 잡(雜)이라는 글자는 뒤섞였다는 뜻도 있고, 잡스럽다는 뜻도 있으며, 잡놈이라는 뜻도 있다. 대제학을 지낸 남용익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대표작을 모아 ‘기아(箕雅)’라는 시선집을 간행했는데,451명의 양반 사대부 시인들 뒤에 우사(羽士·도사) 3명, 납자(衲子·승려) 19인, 잡류(雜流) 6명, 규수 7명, 불성씨(不姓氏) 3명의 시를 편집했다. 불가의 스님은 조선시대 팔천(八賤) 가운데 하나로 천대받았지만, 남용익의 분류기준에 의하면 중인들은 도가의 도사나 불가의 스님보다도 낮고 천했다. 그가 뽑은 잡류는 풍월향도의 유희경과 백대붕,‘육가잡영’의 최기남, 김효일, 최대립 등이었다. 잡류 뒤에는 여성이 있고, 그 뒤에는 역적이어서 성을 삭제한 허균·박정길·이계가 있을 뿐이다. 그의 기준에 의하면 중인들은 팔천 가운데 하나인 스님보다는 못하지만, 여성이나 역적보다는 조금 나은 잡놈일 뿐이다. 그의 관점에서 본다면 ‘육가잡영’은 ‘여섯 잡놈이 읊은 시’라는 뜻이 된다. 이 책에 서문을 쓴 이경석은 “절구(絶句)와 고시(古詩), 장단율(長短律)이 뒤섞여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들은 사대부들이 흔히 짓던 5언·7언의 절구나 율시뿐만 아니라,3·5·7언,6언율시,3언절구, 집구(集句), 회문(回文) 등의 다양한 시체(詩體)를 실험적으로 지었다. 그렇다면 ‘육가잡영’은 “여섯 시인이 다양한 형식으로 읊은 시집” 정도의 뜻이 된다. 여섯 시인은 영의정 이경석의 서문을 받아 자랑스럽게 시선집을 출판했지만, 정작 이경석은 이 글을 별 생각없이 써준 듯하다. 그의 문집인 ‘백헌집’ 권30에 그가 지은 서문 26편이 실려 있지만, 이 글은 빠져 버렸다. ●사대부에게 버림받은 주옥 같은 시를 꿰다 ‘육가잡영’이 간행되고 60년 한 갑자쯤 지나자, 역관 시인 홍세태(1653∼1725)가 다시 위항시인들의 대표적인 한시를 뽑아 ‘해동유주’라는 시선집을 편찬했다. 대제학 김창협은 “천기(天機)가 깊은 자만이 진시(眞詩)를 쓸 수 있다.”는 이론을 내세워 중인들을 격려했는데, 신분을 초월해 그와 사귀던 친구 홍세태는 그 이론을 발전시켜 최기남의 아들인 경아전 최승태의 ‘설초시집’에 서문을 썼다.“시는 하나의 소기(小技)이다. 그러나 명예와 이욕에서 벗어나 마음에 얽매인 바가 없지 않고는 잘 지을 수가 없다. 장자(莊子)가 말하길 ‘욕심이 많은 자는 천기(天機)가 얕다.’고 했다. 예로부터 살펴보면 시를 잘하는 사람은 산림(山林) 초택(草澤) 사이에서 많이 나왔다. 부귀하고 세력있는 자라고 해서 반드시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로 미루어보면, 시는 작은 것이 아니다. 그 사람됨까지도 또한 알아볼 수가 있는 것이다.” 시를 통해 그 사람까지도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은 개성을 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개성은 빈부 귀천에 달린 것이 아니라 타고난 천기에 달렸다고 하면서, 시에 있어서는 신분의 차별이 없음을 내세웠다. 오히려 태어날 때부터 권력에 욕심을 가질 수 없었던 중인이나 평민 시인들이 양반 사대부들보다 천기를 더 깊이 지녀, 더 좋은 시를 지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창협이 그에게 위항시인들의 시선집을 편집해 보라고 권했다.“우리나라의 시가 채집되어 세상에 간행된 것이 많지만, 여항인의 시만은 빠져 없어지고 전해지지 않으니 안타깝다. 그대가 채집해보라.” 홍세태는 10년 동안 위항시인 48명의 시 235편을 모아 ‘해동유주(海東遺珠)’라는 시선집을 간행했다. 머리말에서 “시에는 귀하고 천하고가 없이 하나같다.”고 하며 편집 동기를 밝혔는데, 유주(遺珠)란 ‘잃어버린 구슬’, 또는 ‘버림받은 구슬’이란 뜻이다. 사대부들이 버린 우리나라의 주옥 같은 작품들을 그가 주워 모았다고 자부한 셈인데, 교서관 활자로 간행했다. ●육십년마다 중인 선배들의 시선집을 간행하다 ‘육가잡영’의 중심인물인 최기남의 서당 제자인 임준원을 비롯해, 최기남의 아들인 최승태·최승윤 및 손자 최세연, 외손자 김부현 등이 주동하여 낙사(洛社)를 구성했다. 이들은 백악·필운대·옥류동 등지에서 모였는데,‘낙사’는 ‘서울(낙양) 시인들의 모임’이란 뜻이다. 이들은 중인들이 개인 시집을 출판하지 못해 이름도 없이 묻혀버리는 현실을 가슴 아파하며,1737년에 임준원과 역관 고시언이 주동하여 161명의 시 685수를 편집해 ‘소대풍요(昭代風謠)’라는 9권 2책 분량의 시선집을 간행했다.‘소대’는 밝은 시대, 태평성대라는 뜻이고,‘기아(箕雅)’의 ‘아(雅)’가 사대부의 시임에 비해 ‘풍요’는 민중들의 노래라는 뜻이다. 목록에는 간단한 약력을 밝혔는데, 한문을 많이 쓰는 역관과 의원이 가장 많고, 내수사 별좌, 금루관, 사자관(寫字官), 주부(主簿), 녹사(錄事), 봉사(奉事) 등의 기술직 관원이 눈에 띈다. 잡과 이외에 생원 1명, 진사 4명이 있지만, 문과 급제자는 없다. 18세기에는 중인 집단이 커져서, 시인의 숫자도 늘어났다.‘소대풍요’가 나온 지 한 갑자가 지나자, 시선집을 다시 편찬할 필요성이 생겼다.‘소대풍요’는 임진왜란 전부터 1737년까지 150년간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이번에는 60년간의 시인만 대상으로 해도 340명 723수로 늘어났다. 이 책을 편집한 송석원시사의 동인들은 ‘소대풍요’를 잇는다는 뜻에서 책 이름을 ‘풍요속선(風謠續選)’이라 했는데, 잡과 이외의 합격자가 진사 5명, 문과 1명, 무과 8명으로 늘어났다. 그렇지만 이성중같이 향시에 10회나 합격하고도 늙도록 급제하지 못해 임금의 동정을 받은 것이 중인의 한계이기도 하다. 다시 60년이 지난 1857년에는 직하시사의 동인인 유재건과 최경흠이 ‘풍요삼선’을 엮었는데,305명의 시 886수를 7권 3책으로 편집해 300부 간행했다. 이들은 ‘소대풍요’ 초판이 간행된 지 120년이 지나 구할 수 없게 되자,100부를 다시 인쇄했다. 선배 중인들의 문학활동을 후세에 전하겠다는 의지를 그렇게 표현한 것인데, 이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선배 중인들의 전기도 본격적으로 저술했다. 조희룡이 먼저 ‘호산외기’를 저술하자, 이어서 유재건이 ‘이향견문록’을 엮고, 최경흠이 ‘희조질사’를 엮었다. 직하시사 동인들에 의해 조선후기의 중인문화가 19세기 후반에 정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중인 전기집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소개하기로 한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Seoul In] 새달 14일 ‘여성백일장’ 개최

    성북구(구청장 서찬교) 성북구여성연합회가 주관하고 문화재청 정릉관리소와 새마을문고 성북구지부가 후원하는 ‘여성백일장 및 들차회’가 정릉2동 정자각에서 다음달 14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열린다. 여성백일장은 올해로 14회째로 시, 수필 2개 부문이며 글제 및 당선자는 행사 당일 발표한다.18세 이상 여성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참가신청은 9월12일까지 인터넷 홈페이지(www.seong buk.or.kr)로 하거나 각 동사무소에 방문해 할 수 있다. 가정복지과 920-3283.
  • [스포츠 라운지] ‘여자농구 샛별’ 부산 동주여상 강아정

    [스포츠 라운지] ‘여자농구 샛별’ 부산 동주여상 강아정

    톡톡 튀는 낭랑 18세. 요즘 휴대전화가 없는 또래는 찾아보기 힘든데 강아정에게는 없다.“원래 없었기 때문에 불편한 것도 모르겠고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아 곁눈질을 한창 할 나이라 의아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함께 한 박현은 부산 동주여상 코치는 “얘가 아주 독해요.”라고 귀띔했다. 농구에 집중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일부러 구입하지 않는다는 것. 초교 4학년 때 그냥 재미있어 부모 반대에도 고집을 부려 시작한 농구는 이제 강아정에게 모든 것이 됐다. ●‘득점기계´ 김화순 후배 눈길 강아정은 한국 여자농구의 희망이다. 최근 슬로바키아에서 막을 내린 국제농구연맹(FIBA) 19세 이하 세계여자선수권에서 당당히 득점왕에 올랐다.9경기를 뛰며 평균 24.9점을 꽂았다. 출전 선수 중 20점 대는 그가 유일했다. 리투아니아전에선 무려 41점을 뽑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당초 1승이 목표였던 한국은 강아정의 활약으로 16개 나라 중 8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한국 남녀 농구를 통틀어 세계 무대 득점왕에 오른 것은 극히 드문 일.23년 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여자농구가 은메달을 딸 때 김화순이 득점 1위를 차지한 게 떠오른다.1980년대를 주름잡던 김화순도 공교롭게 동주여상 출신. 최근 스타 출현에 갈증을 느낀 여자농구계가 강아정을 단비로 여기는 이유다. 내외곽을 가리지 않고 뿜어져 나오는 슛이 일품이다.3점슛을 던지는가 하면 어느새 골밑을 돌파한다. 밤 늦게까지 하루 500개 이상 던지고 던진다.“슛만큼은 자신있다.”고 했지만 혼자 욕심부리기보다 동료에게 찔러주는 패스 감각이 있어 더욱 도드라진다. 칭찬에 인색한 유영주 해설위원이 “농구를 알고 하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 강아정의 플레이를 지켜본 정인교 신세계 감독도 “슈터로서 체격이 좋다. 가다듬을 부분이 있지만 대성할 재목”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10월 드래프트 후 프로무대 돌풍 예고 세계 무대에서 훨훨 날았던 기억도 잠시. 이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성인 무대가 그 것. 올해부터 여자프로농구가 단일리그로 바뀌며 2개월 정도 이르게 펼쳐진다. 강아정은 10월 중순 드래프트 이후 같은 달 말 곧바로 개막하는 프로무대에 선다. 드래프트와 관련해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1순위 지명을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고교무대와 프로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면서 “열심히 땀을 흘려 선배들과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겠다.”고 자신했다. 스스로 가장 보강해야 할 부분으로 체력을 꼽았다. 당장의 목표는 전국체전 우승.2학년 땐 단출한 7명으로 모교에 5년만의 전국대회 우승을 안겼다. 하지만 올해 두 차례 결승에서 삼천포여고에게 모두 져 아쉬움을 남겼다.3학년 5명이 졸업하면 팀 운영이 힘들 정도다. 명문 동주여상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우승이 절실하다. 노력으로 맺은 열매는 아무 이유 없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는 강아정. 그는 “언젠가 성인 대표로 뽑혀 박정은, 변연하 선배처럼 한국을 빛내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글 사진 부산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출생 1989년 7월25일 부산생 ●체격 180㎝,65㎏ ●취미 음악듣기 ●학교 아미초-대신초(4학년 때 전학)-동주여중-동주여상 3학년 ●가족 아버지 강진석(47), 어머니 조향조(45)씨, 언니 강유정(20) ●경력 소년체전 초등부 우승(2001), 남녀종별대회 여중부 우승(2004), 대통령기 여고부 우승(2006),18세 이하 아시아선수권 3위,19세 이하 세계선수권 8위 및 득점 1위(이상 2007년)
  • [학벌을 깬 사람들] (7) ‘중졸 학력’ 이창우 前 대구기능대학장

    [학벌을 깬 사람들] (7) ‘중졸 학력’ 이창우 前 대구기능대학장

    “다양성이 요구되는 시대인 만큼 학벌보다 실천 가능한 분야에 올인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정규과정을 마친 최종 학력이 중졸인 이창우(61) 전 대구기능대학장은 학벌에 누구보다 목말라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학력위조를 계기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가 됐다.”면서 “부족했던 학력을 채우기보다 나의 장점을 찾고 능력을 키웠으면 좀더 큰 성공을 일궈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지난해 대구기능대학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접고 현재 대구에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G&C부설 노사관계전략연구소장), 대학의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는 노동부 공무원들 사이에 ‘같이 근무하고 싶은 기관장’으로 남아 있다. 역대 선배들 가운데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다. ●만18세로 대졸자 제치고 공무원시험 합격 화제 고향이 경북 예천군인 그는 시골 친구와 같이 다닌 마지막 학교가 용궁중학교였다. 가난 때문이었다.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지만 중학교를 졸업할 당시엔 형님 2명과 자신만 남았다. 영양실조와 병으로 나머지 형제들을 잃었다. 중학교도 학교에서 사환노릇을 하며 겨우 마쳤다. 중졸의 학력으로 3년여 동안 학교, 우체국, 파출소 등의 사환으로 일하면서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만 18세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지역별로 치러진 공무원시험에서 중졸 출신이 대졸자 등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합격해 서울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후 20대 청년기에는 예천군청, 경북교육청, 과학기술부 등을 두루 거치며 착실하게 행정공무원 생활을 했다. ●결혼뒤 학력이 굴레처럼 느껴져 독학시작 하지만 가방 끈이 짧다는 학력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특히 부인을 만나면서 중졸의 학력은 삶을 옥죄는 굴레처럼 느껴져 독학에 뛰어들었다.26세에 고졸검정고시에 합격하고 30세 때에는 당시 초급대학 과정의 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그사이 초등학교 교사였던 부인과 결혼식도 올렸다. 교사인 아내의 체면을 위해서도 중졸학력을 털어내고 싶었던 그였기에 학력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1977년 대구지방노동청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학업을 계속했다.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대학교수가 되고 싶었다.39세에는 통신대학교 학사과정을,41세 때에는 경북대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2003년에는 대구대학교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57세에 학력을 모두 갖추게 됐다. 그의 말대로 학력을 극복하는 데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셈이다. 업무와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동료들보다 공직생활이 갑절로 힘들었다.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질 때도 적지 않았다. 학업 때문에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대구에서 했다. 그러나 업무에 소홀하지는 않았다. 남을 속이지 않는 성실함을 생활신조로 여긴 만큼 매사에 충실했다. ●“성공조건은 학력 아니라 성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허전함을 채울 수 없었다. 젊은시절 내내 학력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뒤돌아보니 별것 아니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 것이다. 학력은 채워도 학벌은 끝내 채우지 못했다는 자괴감도 작용했다. 그토록 부러워했던 K고교 동창,○○대 동문 등은 결코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결국 성공적인 삶은 학력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4년여 동안 대구기능대학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학력에 대한 그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성공한 기업인들로부터 “기술이 모자라면 가르치면 되지만 어긋난 인생은 바로잡기 힘들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교육에 대한 그의 철학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성공의 조건은 학력이나 학벌이 아니라 성실한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글 사진 대구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Seoul In] 4단계 공공근로사업 신청자 모집

    중랑구(구청장 문병권) 다음달 3∼7일 올해 4단계(10월1일∼12월21일) ‘공공근로사업’ 신청자를 모집한다.18세 이상 60세 이하 저소득 실업자나 정기소득이 없는 일용근로자가 대상이다. 동사무소에 비치된 공공근로사업 신청서와 건강보험증, 최근 납부한 건강보험료 영수증을 첨부해 신청하면 된다.18∼35세의 청년대상사업의 경우는 서울시 취업정보센터(job.seoul.go.kr)에 온라인으로 신청한다. 사회복지과 490-3832.
  • [Seoul In] 여성교양대학 새달5일 모집마감

    광진구(구청장 정송학) 건국대학교와 함께 매주 화요일에 진행하는 ‘광진여성교양대학’이 2007년도 제2기 수강생을 모집한다. 수강생은 18세 이상의 여성 80명으로, 다음달 5일까지 구청 홈페이지에서 접수한다. 수강료는 5만원, 종강 때 수료증도 발부한다. 사회복지과 450-1355.
  • 엿본 죄-히치콕 ‘이창’ 리메이크작 ‘디스터비아’ , 얕본 죄-타란티노의 마초 잡는 ‘데쓰 프루프’

    엿본 죄-히치콕 ‘이창’ 리메이크작 ‘디스터비아’ , 얕본 죄-타란티노의 마초 잡는 ‘데쓰 프루프’

    어리다고, 연약하다고 얕봤다간 큰코 다친다.30일 개봉하는 스릴러 ‘디스터비아’는 이웃에 있는 연쇄살인범을 잡아내는 10대 소년이 주인공. 한 주 뒤인 새달 6일 만나는 ‘데쓰 프루프’에서는 자동차를 살인무기로 이용하는 마초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무서운 언니들’의 활약이 펼쳐진다. 전자는 스릴러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의 ‘이창’을 10대판으로 리메이크한 것이며, 후자는 기존 영화 문법을 파괴하는 재미를 선사, 열혈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악동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이다. ●갈수록 숨통을 조인다 ‘디스터비아’의 시작은 말랑말랑한 10대 청춘 멜로물이다. 아버지를 여의고 방황하던 케일(샤이아 라보프)은 교사폭행으로 90일 가택연금에 처해진다. 발목에는 감시장치가 채워지고 집밖으로 나갈 수 없다. 엄마로부터 컴퓨터 게임도 TV 보기도 모두 차단당한 케일은 때마침 이웃집에 이사온 ‘퀸카’ 여학생 애슐리(사라 로머)를 훔쳐보는 데서 재미를 찾는다. 케일 역의 샤이아 라보프의 연기는 앞서 개봉된 ‘트랜스포머’와 연장 선상에 있다. 그는 친구 로니(아론 유)와 함께 애슐리를 지켜보며 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애쓴다. 그녀로 인해 촉발된 관음증은 주변으로 확대되고 영화는 중반을 넘어서면서 스릴러로 옷을 갈아 입는다. ‘창밖 리얼리티 쇼’에 완전 매료된 케일과 로니, 애슐리는 고성능 망원경, 무전기, 비디오 카메라까지 갖춰 놓고 24시간 관찰에 들어간다. 그러던 중 케일은 이웃집 남자의 살인을 목격한다. 케일은 TV에서 연일 떠들어대는 연쇄 살인마가 바로 그라는 것을 직감하고 친구들과 그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옴싹달싹할 수 없는 주인공과 그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렉터 박사’ 이미지의 살인마를 대비시켜 후반부로 갈수록 숨통을 조여온다. 무전기로 전달되는 로니의 급박한 목소리, 그걸 듣고도 꼼짝할 수 없는 케일의 답답함, 캠코더의 흐릿한 녹색 화면을 통해 전달되는 살인범의 집안 풍경은 심장을 더욱 내달리게 만든다.12세 관람가. ●이보다 더 통쾌할 순 없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번에도 영화를 ‘가지고 논다.’영화 문법이 무엇이든 개의치 않고 독특한 작품을 선사했던 그는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데쓰 프루프’는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선보였던 작품. 의도적으로 연출한 70년대 B급 영화 분위기부터 즐거움을 선사한다. 오래된 옛날 영화인양 스크린엔 비가 줄줄 내리고 음향은 지직거린다. 필름은 뚝뚝 끊기거나 도돌이표를 찍기도 하고 갑자기 흑백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은 스턴트맨 출신의 마이크(커트 러셀). 스턴트용으로 완벽 개조해 운전자는 ‘절대 죽지 않는(데쓰 프루프의 뜻)’ 자동차를 위험한 무기로 쓴다. 그는 여성들만을 ‘사냥감’으로 삼는 마초.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뉜다. 그가 상대하는 여자는 모두 7명. 전반부가 그의 승리라면 후반부에는 마찬가지로 스턴트를 하는 ‘무서운 언니들’에게 걸려 된통 당하는 이야기다. ‘재키 브라운’‘킬빌’ 등을 통해 보여준 강인한 여성에 대한 감독의 찬사를 이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총과 쇠파이프로 무장한 여성들과 마이크가 벌이는 자동차 추격 장면에선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느낌이다. 반질반질한 눈빛과 거만한 웃음으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다가 나중에 애처럼 울며 질질 짜는 커트 러셀의 망가지는 연기가 빛난다. 타란티노 감독은 이번에도 바텐더로 카메오 출연했다.‘킬빌’에서 우마 서먼의 대역이었던 스턴트 우먼 조이 벨은 이 영화로 화려하게 데뷔했다.18세 관람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北에 있는 남편 아직도 사랑… 만나게 해주세요”

    “북한에 있는 남편을 아직도 사랑합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이 제 소망을 북측에 전달해 주기를 바랍니다.” 반세기 가까이 북한인 남편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독일인 이산가족 레나테 홍(70) 할머니의 눈에는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23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홍 할머니는 남북한 정상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소개하며 남편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희망했다. ●남·북한 정상에 탄원서 홍 할머니는 18세인 1955년 동독 예나에 유학 온 북한 유학생 홍옥근(73)씨를 만나 5년 간 열애 끝에 1960년 결혼했다. 하지만 이듬해 4월 남편은 북한 당국의 소환 명령을 받고 귀국한 뒤 1년간 서신왕래를 끝으로 46년째 소식이 없는 상태다. 그동안 홍 할머니는 남편의 생사를 알기 위해 당시 동독 외무부와 동독 주재 북한대사관 등에 여러 차례 문의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초 독일과 한국의 언론에 홍 할머니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독일적십자사의 도움으로 남편 홍씨가 함경남도 함흥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금껏 재혼하지 않고 두 아들을 키워 온 홍 할머니는 22일 방문한 대한적십자사에서 남북 이산가족의 화상상봉 장면을 보면서 화상 상봉에도 희망을 걸고 있다. 홍 여사는 이날 남북 정상에게 전하는 탄원서를 통해 “저는 70세 노인이 됐고 남편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열망은 더욱 커가고 있다.”면서 “남편이 성장한 두 아들을 만나 볼 기회를 갖게 해 달라.”고 말했다. 홍 여사는 “현재 독일 내에 15∼20가구 정도가 나와 비슷한 처지”라면서 “최근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으로 희망이 생긴 만큼 앞으로 재회를 위해 그들과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 이상 미래를 얘기할 순 없지만…” 그는 또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얻은 두 아이는 그동안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면서 “이제 남편과 만나면 더 이상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과거에 대해서라도 이야기할 수 있다면 무척 기쁠 것”이라고 밝혀 주위를 숙연하게 하기도 했다. 지난 21일 방한해 대한적십자사를 방문한 홍 할머니는 청와대를 방문해 탄원서를 전달했다.2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난 뒤 31일 돌아갈 예정이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