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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디컬 인사이드] 싸다고 ‘1+1임플란트’ 덥석…전문의 경력은 확인하셨나요

    [메디컬 인사이드] 싸다고 ‘1+1임플란트’ 덥석…전문의 경력은 확인하셨나요

    노인 환자 346명 추적 관찰 외국산 시술 실패율 최대 5.8% 국산 1.4%…기존 관념 뒤집어 가격보다 전문의 경력 더 중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로 노인 임플란트 시술 부담이 크게 낮아져 치아 건강에 관심을 갖는 분이 많아졌습니다. 2015년 70세, 2016년 65세로 건강보험 보장성이 강화된 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임플란트 시술을 받은 환자는 2014년 5824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39만 2591명으로 67배가 늘었습니다. 다음달부터 65세 이상 노인 임플란트 본인부담률(치아 2개까지 가능)이 기존 50%에서 30%로 더 낮아집니다. 하지만 임플란트를 고를 때 고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외국산 임플란트는 가격이 비싼 대신 내구성이 좋고, 국산 임플란트는 가격이 저렴한 대신 내구성이 낮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아 선택이 쉽지 않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이 문제와 관련해 국내에서 흥미로운 연구가 진행됐습니다. 정의원 연세대 치과대학병원 치주과 교수팀은 1997년부터 2012년까지 임플란트 시술을 받은 65세 이상 노인 346명을 추적 관찰했습니다. 외국산 제품 3종과 국산 제품 1종의 시술 실패율을 분석한 것이었습니다. 결과는 다소 의외였습니다. 국산 제품의 실패율은 1.4%, 외국산 제품은 1.4%, 5.7%, 5.8%로 나왔습니다. 정 교수는 “임플란트 표면 처리기술 발달로 후발업체가 제조한 임플란트 시술 성공률이 더 높았다”며 “국산 제품의 높은 기술력을 입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산 제품 역사 20년 넘어 기술력 향상 치과 전문의들은 대체로 임상 시험을 많이 해 안전성을 입증받은 제품을 권합니다. 이런 제품일수록 가격이 비싼 것도 사실입니다. 한동후 연세대 치과대학병원 보철과 교수는 “임플란트에 쓰이는 티타늄은 제품 생산 단계에서부터 두꺼운 인공 산화막을 씌워 안전성을 높이고 잇몸 속 조직과의 친화성을 높이는 가공 처리를 한다”며 “이런 인공 처리 기술력이 얼마나 좋은지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 잇몸뼈와 잘 결합하도록 ㎛ 단위의 세밀한 ‘표면 거칠기’ 기술을 적용해야 하는 만큼 후발업체가 기술력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습니다.그런데 국산 제품도 1990년대 중반부터 출시해 이미 20년이 넘는 역사를 갖췄습니다. 종류가 다양해졌고 기본 형태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임플란트 전문가들이 모인 대한치과보철학회도 단순히 국산과 외국산을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렇지만 임플란트 시술을 결정할 때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치과보철학회에 따르면 ‘1+1 행사’처럼 무조건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만 강조하는 곳은 피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또 눈에 보이는 의료기관 인테리어나 서비스보다 전문의의 경력이 더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가급적 집에서 가까운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임플란트는 지지대를 심는 것보다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드물게 인공치아 머리 부분과 지지대를 연결하는 나사가 풀리거나 부러지는 경우도 있어 정기적인 관리는 필수입니다. 한 해외 연구에서는 15년 이상 임플란트를 사용하는 비율이 80%를 넘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25~30년을 아무런 문제 없이 사용하는 분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관리가 쉽진 않습니다. 치과보철학회 차기회장인 권긍록 경희대 치과대학병원 보철과 교수는 “임플란트를 시술하고 나서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 분들이 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라며 “치아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충치가 생기거나 잇몸병이 생기는데 임플란트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전체 환자 30% ‘임플란트 주위염’ 경험 임플란트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는 일반 치아와 완전히 다른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자연 치아는 뿌리 주변 조직이 촘촘해 염증이 생겨도 곧바로 뿌리까지 침투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렇지만 임플란트는 주변 조직이 촘촘하지 않아 한번 염증이 생기면 쉽게 뿌리까지 도달합니다.그래서 가장 흔히 경험하는 것이 ‘임플란트 주위염’입니다. 전체 환자의 30%가 이 증상을 경험합니다. 권 교수는 “일단 뿌리 끝까지 도달하면 주변 잇몸뼈를 녹이기 때문에 임플란트가 흔들리게 되고 결국 지지대를 뽑고 다시 시술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시술 후 주기적인 검사 필요 이런 문제를 예방하려면 세균이 번식하기 쉬운 잇몸 틈 사이를 칫솔질로 깨끗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또 치실과 치간칫솔을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더 좋은 방법은 ‘스케일링’입니다. 권 교수는 “치석은 양치질만으로는 깨끗하게 제거할 수 없어 정기적으로 스케일링을 받아야 한다”며 “임플란트 치아용 스케일링 기구는 표면에 흠집을 내지 않도록 고강도의 플라스틱으로 제작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임플란트 치아는 자연 치아와 달리 신경이 없어 주변 뼈가 녹아도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6개월~1년 단위로 엑스레이 촬영을 통해 주변 뼈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임플란트 시술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땅에 나무를 심고 뿌리가 자라기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잇몸뼈와 완벽히 결합하는 데 3~6개월이 걸립니다. 김형섭 경희대 치과대학병원 보철과 교수는 “마치 씨앗을 땅에 심은 후 싹이 돋아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과 같다”며 “주변 흙이 튼튼하게 잡아주는 것처럼 어느 정도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술 발달로 임플란트 시술이 보편화됐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임플란트 시술을 하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한 교수는 “원칙적으로 남자는 만 18세 이상, 여자는 만 16세 이상에서 시술이 가능하지만 개인별로 성장 속도가 달라 의료진의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92세 생일 맞은 퀸 엘리자베스

    92세 생일 맞은 퀸 엘리자베스

    케니 달글리쉬·에마 톰슨 작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92세 생일 축하행사가 9일(현지시간) 화려하게 펼쳐졌다. 생일은 원래 4월 21일이지만 6월 둘째 주 토요일에 공식 기념식을 갖는다.BBC 등에 따르면 여왕은 이날 런던 버킹엄궁 인근에서 열린 근위기병대의 축하퍼레이드인 군기분열식을 사열하기 위해 마차를 타고 도착했다. 지난달 백내장 수술을 받은 여왕은 안경을 쓴 채 연한 파란색 옷을 입고 나타났다. 군기분열식은 영국 왕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18세기부터 250년 이상 이어져 온 행사이다. 여왕이 1952년 왕위에 오른 이후 철도파업이 일어난 1955년을 제외하고 해마다 열렸다. 지난달 해리 왕자와 결혼한 메건 마클 왕자비는 왕실 가족들과 함께 마차 행렬에 동참했지만, 97세 생일을 하루 앞둔 여왕의 남편 필립공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근위기병대 1000여명은 정부 관공서가 밀집해 있는 화이트홀에서 퍼레이드를 펼쳤다. 사상 처음으로 머리에 둘러쓰는 터번을 쓴 기병대원이 퍼레이드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퍼레이드 후에는 왕실 기포병들이 그린파크에서 41발의 축포를 쐈다. 여왕과 왕실가족들은 이후 버킹엄궁 발코니에 나와 영국 공군의 공중분열식을 지켜봤다. 한편 여왕 생일을 맞아 리버풀 축구클럽 ‘레전드’인 케니 달글리쉬, 여배우 에마 톰슨이 각각 여왕이 수여하는 기사(knight)와 데임(dame) 작위를 받았다. 리버풀 축구팬 사이에 ‘왕’으로 불리는 달글리쉬는 1977년 셀틱에서 리버풀로 이적한 뒤 유러피언컵 등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감독도 맡았다. ‘영국 여성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에마 톰슨은 케임브리지대학 출신 페미니스트로 유명하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독박육아·저출산의 대안-공동육아] 문화재였던 ‘종 공장’까지 개방… 공동육아 공간으로 활용

    [독박육아·저출산의 대안-공동육아] 문화재였던 ‘종 공장’까지 개방… 공동육아 공간으로 활용

    독일은 영유아 보육에 있어 독일 정부와 주정부, 지방정부가 각자 역할을 나눠 맡는다. 아동 수당처럼 독일 시민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보편적 보육 정책도 있지만 대부분은 지방정부가 지역 실정에 맞는 정책을 독자적으로 운영한다. 지역 문제를 가장 잘 아는 공동체가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지방정부가 공간이나 자금 등을 지원하는 식이다. 독일의 소도시 자르부르크에서는 공동육아를 실천하려던 주민들이 공간 문제를 겪자 문화재였던 공장 터를 내놓았다. 개헌을 통해 지방분권을 추진하는 우리에게 독일 사례는 정부가 각 지역의 특성을 이해하고 지역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독일 라인란트팔츠주의 자르부르크를 방문하면 우뚝 솟은 굴뚝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과거 뜨거운 쇳물로 종(鐘)을 만들던 공장의 굴뚝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누구에게나 개방된 카페에 공동육아 공간이 있다. ‘사회문화센터’란 이름을 가진 이곳은 종 공장과 공동육아 시설을 결합해 문화와 돌봄 서비스를 함께 제공한다.2004년부터 가족 가치 수호를 목표로 활동해 온 지역공동체 ‘가족을 위한 연합’은 2008년 본격적으로 돌봄과 문화를 결합한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기로 하고 마을에 있던 마빌리온 종 공장(1770~2002)의 터를 떠올렸다. 자르부르크 시는 후계자가 없어 문을 닫은 공장의 가치를 보존하고자 이곳을 문화재로 지정했다. 예술역사학을 전공한 사회문화센터 관리자 아네테 바르트는 여기를 마냥 문화재로만 남겨 두기보다는 지역 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길 바랐다. 결국 시는 공간 운영을 맡는 조건으로 연합에 종 공장 터를 내줬다. 바르트는 “인구가 8000명 남짓한 자르부르크는 대도시에 비해 돌봄 인프라가 부족할 수밖에 없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아이와 노인 돌봄, 세대 간 결속 등을 위해 공동체를 결성하게 됐다”면서 “연합의 활동이 지역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판단한 시의 결정이 더해져 지금의 사회문화센터가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연방 정부는 이 센터를 여러 세대가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인 ‘다세대 하우스’로 인증해 지원금을 주고 있다. 지역공동체와 주정부, 연방 정부의 힘을 모두 모아 새 공간을 만들어 냈다.이처럼 시가 가진 공간에 민간의 돌봄·복지 서비스 기관이 들어선 건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슈투트가르트의 ‘남부가족센터’도 마찬가지다. 30년 전 작은 공간에서 공동육아를 시작한 남부가족센터는 2001년 10월 장애인복지시설과 노인요양시설 등과 함께 ‘게브루더 슈미트센터’에 들어왔다. 게브루더 슈미트센터는 보험업에 종사하던 헤르만, 루돌프 슈미트 형제가 사후에 회사 건물을 시에 기증하면서 탄생한 곳이다. 1층에 장애인을 위한 사회보장센터가 있고, 2·3층엔 요양시설, 4층엔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가 거실을 공유하는 주거시설이 있다. 남부가족센터는 요양시설이 있는 3층 한편에 정원을 끼고 있다. 2017년 연방 정부는 게브루더 슈미트센터 전체를 ‘다세대 하우스’로 등록했다.남부가족센터의 관리자인 아네테 룽에는 “센터는 자발적으로 꾸려졌지만 시와 연방 정부의 지원으로 부모와 아이에게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면서 “지원은 하되 ‘낮은 문턱’과 ‘열린 공간’ 등 우리 공동체의 기본적인 가치에 대해 독립성을 인정해 줬기 때문에 오랜 시간 운영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회문화센터와 남부가족센터 모두 해당 지역의 실정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회문화센터는 인근 룩셈부르크로 출퇴근하는 부모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아이들을 돌봐 준다. 문화나 예술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점을 고려해 영유아는 물론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위한 연극, 음악 교실 등도 운영한다. 남부가족센터는 이민자와 다른 도시에 온 사람들이 많은 슈튜트가르트의 인구 특징을 반영해 돌봄 서비스와 함께 이들을 위한 정착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강한 독일이지만 연방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보편적 보육 정책도 있다. ‘아동 수당’이 대표적이다. 독일 정부는 한 해 44조원(2015년 기준)에 달하는 예산을 아동 수당으로 지급한다. 예전에는 어머니 취업 여부와 가구 소득 등에 따라 차등을 두고 줬지만 1975년부터는 18세 미만 모든 아이들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바꿨다. 올해 기준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는 한 달에 194유로(약 24만원), 셋째 아이는 200유로(약 25만원), 그 이후 출생한 아이들은 모두 225유로(약 28만원)씩 지급받는다. 자녀에게 장애가 있을 땐 수급 연령에 제한이 없으며 실업 상태면 21세까지, 교육을 받는 중이면 25세까지 받는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면서 독일 정부는 돌봄 사각지대인 3세 미만 영아에 대한 사회적 보육도 늘리려고 노력 중이다. 2013년부터 만 1세 이상 모든 아동이 보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고 보육시설 확충을 위해 예산도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미취학 아동에 대한 보육료는 소득에 따라 다를 뿐 아니라 주별로도 지원금 액수에 차이가 있다. 결과적으로 여기서 발생하는 지역 간 격차를 메우는 것은 지역공동체의 몫이다. 자르부르크 사회문화센터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지역 내 5개 초등학교에 ‘방과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인프라 조성에 힘쓰고 있다. 3세 미만 영아 돌봄이 주정부 차원에서 추진되는 일이라면 방과후 보육은 아직까지 전방위로 확대되지 못한 정책이다. 바르트는 “여성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일할 수 있도록 사회문화센터 차원에서 돌봄 교사를 교육하는 과정을 만들고 있다”면서 “후에 시와 협력해 교사 인증 프로그램을 도입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자르부르크·슈투트가르트(독일)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김혜수 “조혼으로 고통 받는 소녀의 손을 잡아주세요”

    김혜수 “조혼으로 고통 받는 소녀의 손을 잡아주세요”

    “어린 아내로 살지 마. 14살 엄마로 살지 마. 꿈을 포기하고 살지 마”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배우 김혜수가 유니세프 TV 캠페인 ‘손을 잡아주세요’에 출연했다고 7일 밝혔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친선대사인 김혜수는 여자 어린이들이 조혼의 악습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뜻에서 캠페인 영상에 출연했다. 그녀는 영상 속 주인공 산티에게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하며 “조혼으로 고통받는 여자 어린이의 삶이 바뀔 수 있도록 여러분이 손을 잡아 달라”고 동참을 호소했다. 유니세프가 2017년 발표한 조혼 통계에 따르면, 매년 18세 미만 여자 어린이 1200만명이 원치 않는 결혼을 한다. 이들 대부분은 학교를 중퇴하며,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위험에 처하거나 가정 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또 조혼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인 말라위에서는 여자 어린이의 절반 이상이 성인이 되기 전에 결혼하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여자 어린이 27%는 18세 전에 출산을 경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유니세프는 “조혼을 근절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2007년 이후 약 10년간 어린이 2500만명의 조혼을 예방했다”며 “조혼이 만연한 지역과 현황을 파악해 현지 단체와 협력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으며, 조혼한 여자 어린이들도 계속 교육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니세프 조혼 어린이 후원 캠페인은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웹사이트(https://goo.gl/qzLJHk)에서 참여할 수 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아내의 맛’ 함소원, 파격 발언에 초토화 “진화 만나기 전 난자 냉동”

    ‘아내의 맛’ 함소원, 파격 발언에 초토화 “진화 만나기 전 난자 냉동”

    ‘아내의 맛’ 함소원이 거침 없는 발언으로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5일 방송된 TV조선 새 예능 프로그램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내의 맛’(이하 아내의 맛)은 첫 방송부터 평균시청률 3.224%(닐슨코리아, 유료 플랫폼 가구 기준)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결혼 5개월차인 함소원, 진화 부부의 신혼 일상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함소원은 18세 연하인 진화와의 첫 만남에 대해 “만나자마자 3시간 만에 프러포즈를 했다”면서 “그날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얘기하더라. 자기가 진짜 사랑했던 여자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 여자를 정말 사랑해서 몸과 마음을 다 주었더더라”고 말했다. 이에 패널들은 “그 발언은 위험하다”라며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함소원 진화의 일상이 공개됐다. 두 사람은 임신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고령 임신에 대해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함소원은 “아기를 갖고 싶었는데 나이를 먹어가니까 난자를 냉동했다”는 발언으로 또한번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함소원은 “진화를 만나기 6개월 전이었다. 한국에서 난자를 15개 정도 냉동했고 외국에서도 하려고 병원을 알아보던 중 진화를 만났다”고 고백했다. 그녀의 파격 발언은 이어졌다. 함소원은 25세인 남편이 기운이 넘쳐 힘을 빼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함소원은 진화에 대해 “힘이 좋으니 잠을 안 잔다. 남편의 힘을 좀 빼놔야 밤에 잘 수 있다. 될 수 있으면 체력을 방전시켜 놓으려 한다”고 털어놨다. 이날 진화는 노산을 걱정하는 함소원을 위해 직접 수산시장에 나가 붕어를 사왔다. 이어 붕어 튀김, 영양 밥, 돼지고기 야채 볶음까지 ‘불타는 3대 보양식’을 내놨다. 함소원은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해준 진화에게 고마워하면서도 “붕어하고 고기는 내가 먹을 테니 당신은 채소를 먹어라”며 정력을 감퇴시킨다는 고사리를 먹여 웃음을 안겼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아내의 맛’ 함소원♥진화, 중국 초호화 신혼집 ‘반찬은 고사리?’

    ‘아내의 맛’ 함소원♥진화, 중국 초호화 신혼집 ‘반찬은 고사리?’

    함소원과 18세 연하 남편 진화의 신혼집이 공개됐다. 지난 5일 방송된 TV조선 ‘아내의 맛’에서는 중국에 마련한 함소원과 남편 진화의 신혼집이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신혼집은 두 사람의 부를 짐작할 수 있는 입이 쩍 벌어질 정도의 초호화 아파트였다. 광저우의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아파트에서 두 사람은 알콩달콩 닭살 애정 행각을 벌였다. 18살 연하 남편 진화는 함소원을 본 지 3시간 만에 프로포즈를 했다고 한다. 함소원 역시 한눈에 운명임을 알아봤다며 미소를 보였다. 이들은 임신 준비와 공부에 한창이었다. 남편 진화의 직업은 SNS 의류 사업이었다.직원 40~50명 규모의 의류 생산 공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진화 부모님은 여의도 3배 규모에 달하는 땅에서 곡류 사업을 하고 있었다. 이날 방송에서 함소원과 진화는 한국에 마련한 보금자리에서 알콩달콩한 식사를 했다. 진화는 함소원을 위해 직접 수산시장에 나가 붕어를 사서 요리를 해주는 다정한 면모를 보였다. 함소원은 기운이 넘치는 18세 연하 남편의 힘을 빼놓아야 한다며 고기 반찬 대신 고사리 등 나물을 먹여 웃음을 자아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여기는 중국] 80세 얼굴을 가진 고등학생…“저 18세 맞아요”

    [여기는 중국] 80세 얼굴을 가진 고등학생…“저 18세 맞아요”

    중국 모바일 뉴스 이디엔즈쉰(一点资讯)에 따르면, 80세처럼 보이는 남학생이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다. 하얼빈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추이(崔)군은 올해 만 18세로 고등학교 3학년이다. 하지만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학교의 학생이 아닌 교장이라고 본다. 사연은 추이 군은 중학교 때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병인 안면 늘어짐증을 앓았는데 얼굴근육이 모두 쳐지는 바람에 마치 노인의 얼굴같이 보이는 증상을 앓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학생 시절, 늘어진 얼굴이 마치 사람들에게는 인자하고 선한 인상을 준다는 이유로 그의 별명 중 하나는 ‘주지스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진짜 별명은 공부왕이다. 그는 학교에서 공부를 정말 좋아하고 잘 하기로 유명하다. 또한 최 군은 다른 우등생들과는 달리 매일 매일 문제 풀기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면에서도 두루두루 지식을 가지고 있고, 교우관계도 좋아 그의 친구들은 심지어 추이 군을 마음 속의 슈퍼맨이라고까지 칭하기도 한다. 선생님 또한 추이 군이 성적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어 베이징대학교나 칭화대학교 등 중국 명문대 진학도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추이 군의 소식을 접한 중국 네티즌들은 “비록 신이 외모를 주시진 않았지만 지혜롭고 총명한 두뇌를 주신 것 같다.”, “외모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학업에 열중했으면 좋겠다.” 등의 응원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홍다은 항저우(중국) 통신원 tourismlover@naver.com  
  • ‘아내의 맛’ 함소원, 18세 연하 남편 진화에 “힘 빼놔야 잘 수 있다”

    ‘아내의 맛’ 함소원, 18세 연하 남편 진화에 “힘 빼놔야 잘 수 있다”

    ‘아내의 맛’ 함소원이 18살 연하 남편과의 일상을 공개했다. 5일 방송된 TV조선 ‘아내의 맛’에서는 함소원 진화 부부의 신혼 일상이 전파를 탔다. 두 사람은 끊임 없이 스킨십을 하며 달달한 모습을 보여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함소원은 이날 제작진에게 진화와의 체력 차이의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미리 힘을 빼야 밤에 편하게 잘 수 있다. 될 수 있으면 체력을 방전시켜 놓으려고 한다”고 고백해 출연진들을 폭소케 했다. 진화는 노산을 걱정하는 함소원을 위해 엽산이 풍부하다는 붕어요리를 내놨다. 그러나 함소원은 진화에게 나물 등의 채소 반찬을 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장영란은 “정말 어느 정도길래?”라며 궁금해했다. 또한 함소원은 냉장고에서 정력 감퇴 효과가 있다는 고사리를 꺼내 진화에게 먹인 뒤 “힘이 좀 빠져?”라고 물었다. 진화는 다소 힘이 빠진 듯한 모습으로 “맛있어요”라고 대답해 웃음을 자아 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서울시중부여성발전센터, ‘ICT 융합 메이커 강사 양성과정’ 교육생 모집

    서울시중부여성발전센터, ‘ICT 융합 메이커 강사 양성과정’ 교육생 모집

    서울시중부여성발전센터가 ICT 융합 메이커 강사 양성과정 교육생을 모집한다. 이번 교육을 통해 2018년도부터 초·중·고등학교 소프트웨어교육 의무화 정책 등 변화하는 교육환경에 따른 코딩 전문인력 강사를 양성할 계획이다. ICT 융합 메이커 강사 양성과정은 서울시 사업비 지원을 받아 진행되는 교육으로 SW에 대한 이해(코딩)와 활용능력을 바탕으로 생활 속에서 발견되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실제적인 능력(메이킹)’을 기를 수 있도록 지도하는 강사로 양성하여 여성에게 더 좋은 일자리 창출의 기회를 주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교육에 참여하는 수강생들은 소프트웨어 및 교육에 관한 전문지식을 갖추고, 이를 교육수요자에게 적합한 형태로 만들어 전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교육 컨텐츠를 운영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알고리즘을 익히고 논리적 사고력과 컴퓨팅 사고력을 증진시켜 코딩교육과 메이커 교육의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전문강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DIY(Do It Yourself)의 영향을 받은 교육 방법인 메이커교육으로 학생들이 주도하여 탐구하고 배워 나갈 수 있는 교육방법을 제시하는 교육을 습득할 수 있다. 이 밖에도 ICT 융합 메이커와 관련된 다양한 교육 컨텐츠 개발 전문 업체와 협약하여 기존 코딩교육을 새롭게 보완한 교육프로그램으로 ICT 융합 메이커 강사를 양성할 것으로 기대한다. 교육은 스크래치, 콘텐츠 제작, 디자인 씽킹, 앱 인벤터, 아두이노(Starter, Creator), IOT융합, 회로와 납땜, 3D펜, 3D 프린터와 모델링, 레이저커터, 현장강의 실습, 모의 수업, 학습 지도안 작성, 선배와의 만남, 발성 및 스피치, ICT 융합 메이커 교육 등의 ICT 융합 메이커 교육으로 이뤄진다. 무엇보다 이번 ICT 융합 메이커 강사 양성교육은 현장에서 실무로 일할 수 있는 현장 맞춤형 일자리 창출 직업교육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교육 대상은 SW코딩전문가로 취·창업을 희망하는 서울시 거주 18세 이상 여성 중 미취업자이다. 교육은 오는 7월 2일부터 9월 7일까지 진행되며 모집기간은 6월 25일까지이다. 수강료는 10만 원으로 수료 시 5만 원, 6개월 이내 취창업시에도 5만 원이 환급된다. 교육을 희망하는 사람은 서울시중부여성발전센터 홈페이지 회원가입 후 수강신청 및 지원서류를 제출하면 된다. 한편 서울시중부여성발전센터는 교육에 앞서 오는 6월 14일 ‘ICT 융합 메이커 강사 양성과정 교육설명회’를 진행한다. 이번 설명회에 참석을 희망하는 자는 오는 12일까지 서울시중부여성발전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8세기 영동지방 원당’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 보물 지정

    ‘18세기 영동지방 원당’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 보물 지정

    18~19세기 영동 지방의 중요한 원당(願堂)인 강원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이 보물이 됐다. 문화재청은 조선시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 세상을 떠난 왕과 왕비의 명복을 빌던 사찰인 신흥사 극락보전을 보물 제1981호로 지정했다고 4일 밝혔다. 외설악 기슭에 자리잡은 속초 신흥사는 652년(신라 진덕여왕 6년) 자장율사가 향성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창건 후 화재로 소실된 사찰을 1644년(조선 인조 22년) 향성사 터에서 약 4㎞ 떨어진 자리에 신흥사로 다시 세웠고 이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다. 신흥사 경내에는 마당을 중심으로 주불전인 극락보전과 출입문인 보제루가 마주하고 있고, 좌우에 승려들이 거처하는 운하당과 수행 장소인 적묵당이 있다.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지붕 하중을 받치기 위해 만든 구조물인 공포가 여러 개인 양식) 팔작지붕 건물이다. 기단에는 모란, 사자 문양이 있고, 계단 난간에는 원을 3개로 나눈 삼태극과 귀면, 용두 문양 조각이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사찰과 불법을 수호하는 의미의 귀면이나 궁궐과 종묘 등에 쓰는 삼태극을 사찰 계단의 장식 문양으로 사용한 예는 드물다. 창호는 가는 살을 대각선으로 교차한 빗살창에 화려한 꽃무늬를 조각한 소슬빗꽃살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내부에는 천장을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마감한 우물천장과 단청 문양이 남아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신흥사 극락보전은 전면의 화려한 공포, 독창적인 기단과 계단의 부조에서 볼 수 있듯이 형태, 구조, 장식 측면에서 역사성과 예술성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새가슴’ 쭈타누깐, 새처럼 날아올랐네

    김효주에 7타 앞서다 연장 허용 ‘근성 약한 선수’ 오명 위기에서 상대 칭찬하며 의연하게 탈출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9승에 세계랭킹 1위에도 올랐던 에리야 쭈타누깐(23·태국)이지만, 그는 결정적인 고비를 넘지 못하고 많이 울었었다. 대표적인 순간이 2013년 자신의 안방이었던 태국 파타야의 시암컨트리클럽에서 열렸던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혼다LPGA 타일랜드 마지막 라운드다. 17번홀까지 기세등등하게 선두를 달리며 태국 첫 LPGA 투어 챔피언 등극을 눈앞에 뒀지만 18번홀 티샷이 페어웨이를 벗어난 뒤 벙커 등을 전전하다 박인비(30)에게 우승컵을 넘겨 줬다. 18세였던 쭈타누깐은 언니 모리야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동생의 우승을 축하해 주기 위해 생수를 퍼부을 준비를 하던 모리야는 동생의 눈물을 닦아 줘야 했다. LPGA 투어 멤버가 된 뒤인 2016년 4월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도 그랬다. 4라운드 15번홀까지 2타 앞선 선두를 달리다 16번홀부터 3개홀 연속 보기로 경기를 마치면서 4위로 떨어졌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데다 심약한 듯한 승부 근성으로, 그는 ‘새가슴’으로 불렸다. 4일 미국 앨라배마주 쇼얼크리크에서 끝난 제73회 US여자오픈에서도 쭈타누깐은 앞선 두 차례의 악몽에 못지않은 대역전패를 당할 뻔했다. 최종라운드 9번홀이 끝날 때까지 2위 김효주(23)에게는 무려 7타나 앞서 있었지만 타수를 죄다 까먹고 연장전에 끌려들어 갔다. 10번홀(파4) 트리플보기로 4타로 김효주와의 격차가 줄어든 뒤 12번홀(파4) 보기에 17, 18번홀 연속 보기로 무너졌다. 연장 첫 홀(14번홀)에서 쭈타누깐은 김효주보다 깃대에 더 가깝게 공을 보내고도 먼저 6m 버디 퍼트를 얻어맞았다. 그럼에도 쭈타누깐은 “나이스 퍼트”라며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하루에만 7타를 까먹은 이가 보이기 힘든 의연한 모습이었다. “연장전을 치르는 선수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었다”는 기자회견장 질문에 쭈타누깐은 “아마 나였다면 넣기 어려운 퍼트였다. 그 퍼트 덕에 나도 기분이 좋았다. (역전패했던) 2013년 혼다타일랜드 대회와 ANA 인스퍼레이션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골프협회(USGA) 규정상 1차 연장은 서든데스가 아닌 2개홀 합산으로 진행한 것이, 쭈타누깐에게는 행운이었다. 이어 두 번째 홀(18번 홀)에서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린 뒤 연장 네 번째 홀에서 승부를 가르며 메이저 2승째를 따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유진모의 테마토크] ‘어벤져스 3’와 ‘탐정: 리턴즈’의 경고

    [유진모의 테마토크] ‘어벤져스 3’와 ‘탐정: 리턴즈’의 경고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그 인기만큼 많은 화제를 낳고 있다. 특히 목적을 위해 사랑하는 수양딸 가모라까지 희생시키는 타노스의 정체성이 큰 논란을 야기했다. 가모라의 행성과 자신의 타이탄 행성의 인구 절반을 죽였지만, 그 배경이 사리사욕이나 단순한 광기가 아닌 종의 보존이란 대의명분을 주장한 때문이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기에 종 전체가 멸절될 위기였다. 종족 보존을 위해 열성의 개체에게 희생을 요구한다면 순순히 따를 리 만무할 것. 그래서 인위적인 조정을 한 것이다. ‘소울스톤’을 얻는 데 희생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는 망설임 없이 가모라를 낭떠러지로 민다. 건틀릿에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장착하려는 것은 전 우주를 재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인구의 절반을 줄여 모든 종을 보존시키기 위해서다.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가 신화가 없고 역사가 짧은 미국 정체성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한 ‘아메리칸 그리스 신화’였다면 ‘어벤져스’는 ‘아메리칸 로마 신화’라고 할 수 있다. 타노스는 타나토스(공격적인 죽음의 본능)와 그리스 신화의 티탄 신족의 왕이자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의 조합이다. 그가 타이탄 행성의 왕인 게 그 증거다. 타노스의 논리는 미국이 독립하고 프랑스가 혁명을 일으킨 격동의 18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멜서스를 연상케 한다. 멜서스는 저서 ‘인구론’에서 인구 증가가 식량 증가를 압도하게 될 것이니 전쟁, 기아, 질병 등의 적극적 억제나 출산율을 낮추는 예방적 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적극적 억제보단 결혼을 늦추거나 출산을 자제하는 등 성욕을 제어하는 예방적 억제를 권장했다. 인구론은 기득권층인 멜서스가 앙시엥 레짐(구체제)이 무너지는 걸 두려워한 데서 나온 이론이라는 해석들이 있다. 그는 국가 재정의 위기를 우려하며 빈민 구제와 사회 복지마저 반대했다. 빈자는 죽게 내버려 두고 부자만 살자는 얘기다. 어쩌면 타노스는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혁명에 충격을 받은 멜서스를 포함한 영국의 기득권층을 비꼬는 미국의 조소일 수도 있다. 타노스는 ‘왓치맨’(2009)에도 있다. 슈퍼 히어로들로 구성된 자경단 왓치맨의 멤버 코미디언이 살해되자 동료들이 진상 조사에 나선다. 멤버 중 갑부인 오지만디아스가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아 60억 명을 살리고자 수십만 명을 죽이겠다는 음모를 꾸민 것. 개봉을 앞둔 ‘탐정: 리턴즈’도 멜서스와 ‘매트릭스’를 닮았다. 재벌과 유명인사, 최고 지성인 등은 카르텔을 형성해 이른바 ‘쓰레기’들을 희생시키는 범죄를 저지르면서 체제 유지를 위해 정당하다는 아전인수식 논리를 펼친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배양한 뒤 ‘연료’로 사용하는 ‘매트릭스’(워쇼스키 자매ㆍ1999)나 부자들이 자신의 DNA로 클론을 만든 뒤 큰 병에 걸렸을 때 치료를 위해 클론의 인권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무차별 희생시키는 ‘아일랜드’(마이클 베이ㆍ2005)도 매우 유사하다. 오지만디아스는 자만심을 앞세운 프로파간다와 포퓰리즘으로 대표되는 고대 이집트 제19왕조의 3대 왕이다. 멜서스, ‘매트릭스’의 AI, ‘아일랜드’의 갑부 링컨과 박사 메릭, ‘왓치맨’의 오지만디아스, ‘어벤져스’의 타노스, ‘탐정: 리턴즈’의 부자와 지성의 카르텔 등은 모두 ‘이음동어’다. 어긋난 선민의식, 특권의식 또는 우월감에서 비롯된 집단이기주의가 세상을 불공평하고 불평등하며 암울하게 만든다는 경고!
  • [핵잼 사이언스] 우리 아이 비만 걱정된다면 하루 우유 500㎖씩 마셔요

    [핵잼 사이언스] 우리 아이 비만 걱정된다면 하루 우유 500㎖씩 마셔요

    고칼로리의 식습관 때문에 아이의 비만이 우려되는 부모라면 눈여겨볼 만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텍사스대 연구진은 하루 우유 500㎖가 성장기 어린이가 비만이 되는 것을 방지해 줄 뿐만 아니라 비만으로 인한 당뇨병 등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연구진이 3~18세 어린이 353명을 대상으로 2008~2010년 조사를 진행한 결과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에 비해 평균적으로 우유를 덜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인종에 따른 섭취량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또 조사에 참여한 아이들의 평균 우유 섭취량을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은 하루 평균 우유 섭취량이 280㎖에 불과했으며 4분의1가량만 적어도 500㎖ 이상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우유 섭취량에 따라 인슐린 수치에도 변화가 있었다. 하루 평균 280㎖ 미만을 섭취하는 아이의 경우 끼니 사이에 빠른 인슐린 수치의 변화를 보였지만 적어도 500㎖ 이상을 마시는 아이에게서는 이러한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인슐린은 우리 몸에서 혈액 속 포도당을 세포로 넣어 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인슐린 저항성이 높을 경우 우리 몸에 지나치게 많은 인슐린이 만들어지고 이로 인해 고혈압이나 고지혈, 당뇨 등의 대사증후군이 유발될 수 있다. 연구진에 따르면 우유에 든 성분이 인슐린 저항성을 낮추는 데 효과적이며, 끼니와 끼니 사이에 인슐린 저항성이 낮아지면 고당도 또는 고지방 음식에 대한 욕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돼 비만을 예방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과체중 또는 비만인 아이들이 하루 일정량의 우유를 마실 경우 당 섭취를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되며, 이것이 비만이나 당뇨 같은 대사증후군을 피하는 데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일부 부모들은 우유에 함유된 지방 등을 염려해 아이들에게 잘 먹이지 않기도 하는데, 아이들이 마음껏 우유를 마시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인슐린 저항성의 위험이 높은 비만 아이들의 경우 더 심각한 비만을 막기 위해 설탕이 들어간 음료 대신 우유를 마시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지난달 23~2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럽비만학술의회’에서 발표됐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겨우 2000명 병사로… 淸태조 사위 사살·대승 거둔 ‘광교산 대첩’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겨우 2000명 병사로… 淸태조 사위 사살·대승 거둔 ‘광교산 대첩’

    병자년인 1636년 청나라가 침입하자 전국 곳곳에서 근왕병(勤王兵)이 일어났지만 누구도 포위를 뚫고 남한산성에 진입하지는 못했다. 그런 탓에 추위에 떨고 굶주림에 시달리던 조정 대신들의 무인(武人)들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기만 하다. 인조실록은 ‘임금이 외로운 성에 두 달이 되도록 포위당하여 군사는 고단하고 양식은 적어 조석을 보전할 수 없었으므로 머리를 들고 발돋움하며 구원병이 이르기만을 날마다 기다렸지만 팔도의 군사를 거느린 신하로 한 사람도 성 밑에서 예봉을 꺾고 죽기를 다투는 이가 없었으니, 군신(君臣)의 분수와 의리가 땅을 쓴 듯 없어졌다’고 적기도 했다.하지만 포위된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 왕의 격문이 닿기도 전에 군사는 남한산성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충청도 군은 성남 분당의 동막천, 강원도 군은 하남시와 광주시 사이의 검단산, 경상도 군은 광주시 쌍령동까지 진출했지만 패퇴했을 뿐이다. 물론 전장(戰場)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관망만 하던 장수도 없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산성에 피신해 갑론을박만 벌이던 대신들이 패전 책임을 일선에서 싸운 지휘관과 병사들에게 돌리는 것은 비겁하다.승리한 전투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전라병사 김준룡은 1월 4일 2000명 남짓한 병력을 이끌고 광교산에 진을 쳤다. 이들은 다음날 청군 5000명을 격퇴한 데 이어 이튿날에도 화포를 동원한 적의 공격을 받았다. 김준룡은 유격부대를 투입했는데 이 전투에서 적장 양고리(揚古利)를 사살했다. 당대의 대학자 미수 허목은 이날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공이 칼을 들고 화살과 돌이 쏟아지는 가운데 필사의 의지를 보이자, 병사들이 모두 죽기로 작정하고 싸웠다.…어떤 오랑캐가 산꼭대기에 큰 깃발을 세운 뒤 갑옷 차림으로 말에 올라 군사를 지휘하자…공이 그 사람을 가리키며 ‘저 자를 죽이지 않으면 적병이 물러가지 않을 것이다’ 하고 외치며 전투를 독려하니 군사를 지휘하는 자와 그 좌우 몇 장수가 일시에 탄환을 맞았다.…죽은 장수는 선한(先汗)의 사위 백양고라(白羊高羅)였다.’ 백양고라가 곧 양고리다. ‘선한’이란 청태조 누르하치를 말한다. 아버지를 살해한 원수의 귀와 코를 씹어먹었다는 인물이다. 이때 나이가 14세였다. 누르하치의 사위가 되었으니, 청태종 홍타이지의 매부다. 누르하치가 ‘전장에서는 몸을 좀 사리라’고 했을 만큼 겁이 없었다는 그는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미수가 적은 대로 김준룡 부대가 ‘오랑캐의 시신이 겹겹이 쌓여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승리를 거두자 남한산성의 임금과 대신들은 처음에는 환호했다. 하지만 김준룡 부대는 군량과 화약이 떨어져 수원 남쪽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전공(戰攻)을 세운 김준룡이지만 이때의 철군을 이유로 훗날 파직된 것은 물론 유배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중국 쪽 기록인 ‘청사고’(淸史稿)의 분위기는 다르다. 이날의 패전은 충격이었다. 양고리의 시신이 광교산에서 진지로 돌아오자 태종 홍타이지가 직접 제사를 지내며 곡을 했고 임금의 의복을 내려 염하게 했다. 심양에서도 양고리의 상여가 조선에서 도착하자 태종이 교외까지 나가 맞이했고, 누르하치의 무덤인 복릉(福陵)에 배장했다. 홍타이지는 이때도 직접 제사를 주관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니 조총 탄환을 양고리에게 명중시킨 박의(朴義)의 이름이 역사에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다. 그는 16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했으니 졸병이 아니다. 그럼에도 벼슬은 평안도 직동의 종9품 권관(權管)에 머물렀다. 승진은커녕 변방으로 좌천된 꼴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은 ‘고려의 김윤후는 몽골의 살례탑을 활로 쏴 죽여 대장군에 제수됐다. 그런데 박의는 직동 만호에 그쳤으니 사람들은 애통해한다’고 자신의 문집인 ‘영재집’에 적었다. 만호는 권관보다 한 단계 높은 벼슬이다. ‘직동 권관’의 착오일 것이다. 청나라에 항복했으니 청황제의 가까운 인척을 사살한 군관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을 수는 있다. 김준룡의 승전을 재평가하는 논의는 정조시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1791년(정조 15) 사직 신기경이 ‘병자년 난리 때 김준룡은 오랑캐를 섬멸하여 공을 세웠으니 마땅히 상을 주어 장려해야 한다’고 상소한 것이다. 화성 축조를 앞두고 수원 지역의 현안을 일일이 점검하는 자리였다. 정조는 이듬해 김준룡에게 충양(忠襄)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의정부의 차관급 벼슬인 찬성(贊成)도 추증했다. 오늘은 병자호란의 역사를 바탕으로 광교산으로 간다. 해발 582m의 광교산은 경기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과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과 고기동, 의왕시 일부에 걸쳐 있다. 호란 당시 김준룡 부대는 서남쪽 수원에서 광교산으로 접근했다. 청군은 남한산성이 있는 동북쪽에서 몰려왔으니 광교산 전체가 싸움터가 될 수밖에 없었다.시루봉 남쪽의 토끼재 아래 해발 400m 지점에는 김준룡 장군의 승전을 알리는 각자(刻字)가 있다. 공식적으로는 ‘김준룡 장군 전승지와 전승비’라고 부르는데 자연암반에 글자를 새긴 것이다. ‘충양공 김준룡 장군 전승지’(忠襄公 金俊龍 將軍 戰勝地)라는 큰 글자 좌우에 ‘병자청란 공제호남병 근왕지차 살청삼대장’(丙子淸亂公提湖南兵勤王至此殺淸三大將)이라 음각했다. ‘김준룡 장군 전승지’가 현대적인 글귀인 데다 ‘병자청란’이라는 표현도 익숙지 않다는 점에서 누군가 당초의 글자를 고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어쨌든 ‘광교산 대첩’을 알리는 유일한 기념물이다. ‘수원군읍지’(水原郡邑誌)에는 ‘화성을 축조하는 데 필요한 석재를 구하러 광교산에 갔던 사람들로부터 김준룡 장군의 전공을 전해들은 좌의정 채제공이 새기게 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번암 채제공은 정조 시대 개혁을 주도한 인물로 당시 성역총리대신(城役總理大臣)을 맡고 있었다. 화성 건설의 총책임자다. 화성 축조를 전후해 김준룡 장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진 것과 맥을 같이한다. 김준룡 전승지는 수원에서 광교유원지를 거치거나 용인에서 신봉도시개발지구를 지나 오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런데 수원 쪽 광교산 들머리에는 창성사 터, 용인의 산자락에는 서봉사 터가 있다. 창성사 터와 서봉사 터에는 모두 고려시대 고승인 진각국사 천희의 탑비와 현오국사탑비가 각각 남아 있다. 지금 천희의 탑비는 화성 내부 방화수류정 옆으로 옮겨져 있다.최근의 발굴조사에서 창성사는 신라 말 창건 이후 중창과 폐사를 반복했다는 사실을 출토 유물을 근거로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17세기 폐사 이후 18세기 후반 중창이 이루어졌다. 17세기 폐사는 병자호란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때 서봉사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발굴조사에서도 병장기가 적지 않게 수습됐다. 그러니 두 절터는 전승비와 함께 ‘광교산 대첩’의 중요한 기념물이다.김준룡 장군의 무덤은 경기 시흥시 군자동에 있다. 그는 호란 이후 전라도병마절도사와 영남절도사를 지내고 1642년 세상을 떠난 뒤 고향인 양천 땅에 묻혔다. 지금의 서울 강서구 화곡동으로 1972년 도시화에 따라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앞서 소개한 허목의 전투 장면 묘사는 무덤 앞에 세워진 신도비 비문의 일부다. 양고리 유적이 경기 하남시에도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남한산성 북문이 가까운 법화사 터다. 양고리는 ‘법화장군’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전사하자 청태종이 그의 고향 법화둔의 이름을 따 법화사라는 원찰을 세웠다는 것이다. 청나라 장수를 사살한 것에 한 가닥 위안을 삼고자 비극의 현장인 남한산성에 이런 설화가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1953년 가을, 부친은 큰아들 유골함을 받고 대성통곡하셨다”

    “1953년 가을, 부친은 큰아들 유골함을 받고 대성통곡하셨다”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김우종 ▲인천중학교 4학년 때 자원입대 ▲해병 6기로 참전·전사 (군번 9210662) 김우종(17세 참전·18세 전사)1933년 4월 10일 : 인천 영종도 중산리 출생1947년 : 인천영종국민학교 졸업(제24회)1950년 12월 18일 : 인천중학교 4학년 재학 중에 인천을 출발하여 마산까지 20일간 걸어서 내려감.1951년 1월 24일 : 마산에서 해병 6기로 자원입대해 참전.1951년 8월 31일 : 강원도 월산령 김일성고지에서 전사.아랫글은 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의 유골을 대전 현충원으로 이장하면서 기록한 것으로 월간 서해문화 2002년 1월호에 ‘불멸의 꽃!’으로 기고한 글이다. 고(故) 김우종은 전사하였기 때문에 아래의 글로 ‘김우종 참전기’를 대신한다. ‘불멸의 꽃!’ (6·25 전사 인천 학생 사연) 인천학생·스승 6·25참전사 편찬위원회(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에서는 1996년 7월 15일 창립 이래로 그동안 제보를 받거나 혹은 기록을 찾아 많은 6·25 전사 인천 학생들을 찾았으나 아직도 미확인 6·25 참전 전사 인천 학생들이 많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확인된 전사자의 묘지를 기록에 담기 위해 본 편찬위원회에서는 그 기록의 정확성을 기하고자 여러 차례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은 바 있으며 전사자 위패 또한 일일이 확인하였다. 인천 각지에 흩어져 잠들고 있는 6·25 참전 전사 학생들에 대하여 월간 서해문화에 ‘불멸의 꽃! 6·25 전사 인천학생’으로 연재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6·25 전사 인천 학생 묘가 여기저기 흩어져서 점차 잊혀가는 현실을 되돌아보고, 우리들이 한 번쯤 함께 그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기억하는 것이 뜻 있는 길이라 기록한다.고향에 돌아온 6·25 전사 인천 학생들 유골 1950년 6·25 사변 발발 후 전쟁이 한창일 때 전사한 전사자들은 그 당시 전투가 워낙 치열했기에 정부에서는 일정한 묘지를 정하지 못하고 유골을 직접 유가족에게 전하였다. 한 줌의 재가 되어 부모님 품에 안기게 된 군대 갔던 아들들의 부모님들께서는 가슴이 베이는 마음으로 대성통곡하시고는 집 근처 아들이 놀던 양지바른 동산에 곱게 묻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5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 부모님들은 거의 모두 돌아가시고 그 전사자의 형제들마저 노년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다. 즉 전사자들의 형제들은 50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6·25 사변 때 전사한 동생이나 형의 무덤을 더 이상 관리하기가 어려워 자신들의 마음이 무겁다면서 국립묘지로 이장하는 길을 본 편찬위원회에 문의해 오는 것이었다. 육군본부 민원실에 알아보았던 바 이장(移葬) 양식(월간 서해문화 1998년 9월호 게재)을 참고하여 대전 현충원까지 모시고 오면 대전 현충원 묘지에 안장할 수 있다는 대답을 받았다. 첫 번째 6·25 전사 인천 학생 유골 이장 국방부 이장 양식에 따라 대전 현충원 문 앞까지 가기까지의 일은 유가족 입장에서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어느 유가족이 국립묘지에 이장할 수 없는가 하는 물음이 있었다. 이에 본 편찬위원회 이규원 치과 원장은 국방부에 타진하여 이장 방법을 서해문화 1998년 9월호에 자세히 게재한 바 있다.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에서는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도에 있는 해병 6기 전사자 김우종의 묘를 2001년 5월 27일에 국립묘지로의 이장하는 첫 번째 이장 계획을 수립하였다.故 김우종의 동생 김문종의 증언 고 김우종의 동생 김문종의 증언에 따르면 1950년 12월 18일 새벽에 김우종이 인천 영종도 집을 떠날 때 김우종 아버지는 “그 무거운 책은 왜 가져가느냐”고 물었다. 그때 김우종은 “아버지 염려 마세요. 우리들은 남하하더라도 공부는 계속할 겁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김우종은 영종 나루터까지 걸어가서, 인천학도의용대 영종지대 대원들과 같이 나룻배를 타고 인천으로 건너가 인천축현국민학교에서 출정식을 마치고 마산까지 20일간 걸어서 내려가서, 해병대 신병 모집에 응하여 해병 6기로 자원입대하였다.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의 묘 이장1953년 가을 아들의 전사통지서와 유골함을 받고 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의 부친은 대성통곡을 하셨다. 그리고 마을 뒷산(인천 영종도 중산리 월촌) 양지바른 곳에 묻으시고 해마다 아들을 기리는 제를 지내주셨다. 1998년 3월 29일부터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에서는 김우종 유가족의 협조하에 국방부와 대전 현충원 등에 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의 유골을 이장하는 것에 대하여 승인을 받는 노력을 하였다. 2001년 5월 27일 인천광역시 영종도에 묻혀 있는 김우종 전사자의 무덤을 열어 유골을 수습한 후 대전 국립 현충원 제1 묘역 제27구역 16129에 안치하였다. 6·25 전사 인천 학생 묘의 이장 사업 계획 인천 학생·스승의 6·25 참전 역사를 발굴하기 위하여 창립된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에서는 김우종 전사자와 같이 아직도 고향 땅에 묻혀 있는 6·25 전사 인천 학생들의 유해를 국립묘지로 옮기는 이장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글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참전기 11회를 마치며 한때 인천에 6년제 중학교에서 공부하던 중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국가의 징병 모집에 대하여 한참이나 어려서 입대할 필요가 없었던 어린 중학생이었습니다. 인천중학교 4학년 김우종은 마산까지 저의 아버지와 같이 내려가서, 해병 6기로 자원입대하여 전사하였습니다. 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이 학창시절을 보낸 옛 6년제 인천중학교(현재 제물포고교)의 넓은 운동장은 아직도 김우종을 기억합니다. 김우종과 같이 부산까지 걸어가서 입대하셨던 저의 아버지께서는 언젠가 김우종이 공부했던 제물포 고교 운동장 한편에 김우종을 기리는 추모비를 건립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이규원 치과 원장(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큰아들인 이규원 치과 원장(6·25 참전사편찬위원장)이 사비 4억원을 들여서 6·25 전사 인천학생스승 추모관을 건립하여 인천 중구청에 기부채납하려는 제안을 인천 중구청은 거절하였다. 추모관 기부채납이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6·25 참전 인천학생 이경종(현 85세)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때 자원입대·참전 인천학생 6·25 참전관 설립자·초대 관장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사직터널 사이로… 서쪽 서울 사람들의 시간을 잇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사직터널 사이로… 서쪽 서울 사람들의 시간을 잇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회 서울사방 서대문 안과 밖 편이 지난 26일 진행됐다. 봄바람과 봄볕을 따라 걷는 5월 마지막 주 해설이 있는 주말 나들이였다. 정원 30명과 대기자 및 진행자까지 40명이 결원 없이 모두 참가해 준비한 오디오 가이드 40개 전량이 동났다. 부부, 친구, 모녀, 동호인 등 다양한 관계와 연령의 조합이 환상적인 팀을 이뤘다.일행은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는 한세화 해설사를 따라 체부동 생활문화지원센터와 체부동 시장골목을 둘러본 뒤 사직터널로 향했다. 광화문풍림스페이스본 아파트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수동과 신문로 골목을 이리저리 헤치고 나아가 옛 경희궁 궁역인 서울역사박물관에 도착했다. 서대문 안이다. 경교장이 있는 강북삼성병원부터 서대문 바깥이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을 조성하면서 서대문을 복원하지 않은 건 두고두고 아쉽다. 일제는 1915년 도시계획을 핑계 삼아 서대문을 철거한 뒤 목재값 205원 50전을 받고 팔아 버렸다. 100년이 지난 뒤에도 ‘서대문이 없는 서대문’은 여전하다. 참가자들은 4·19혁명기념도서관, 충정아파트, 미동아파트, 충정각, 손기정체육공원 등 우리 근현대사가 남긴 서대문 밖 풍경을 2시간 30분 동안 차근차근 돌았다. 독립문에서 광화문을 잇는 찻길인 사직터널로 말미암아 끊어진 서울의 서쪽 사람 길을 회복하는 여정이었다. 일행 중 답사 경험이 풍부한 몇몇은 우리가 서촌이라고 부르는 우대(웃대)에서 서대문으로 나가는 길이 사직터널을 사이에 두고 갈라져 있다는 점을 새삼 확인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문안길을 통해 두 장소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일깨웠다. 서촌이라는 지명의 유전(流轉)이 증명하듯 장소의 역사는 머물지 않고 쉼 없이 흐른다. 서촌의 유래는 한양을 구성하는 5촌(동촌·서촌·남촌·북촌·중촌)에서 비롯됐다. 여기서 서촌은 서소문과 덕수궁 주위를 이른다. 요즘 경복궁 서쪽, 인왕산 아래 동네를 서촌이라고 부르는 건 잘못된 것이다. 그런 식이라면 경복궁 동쪽에 있는 북촌을 동촌이라고 불러야 할 판이다. 동촌은 엄연히 낙산 아래 대학로 주변이다. 북촌은 북악산, 남촌은 남산 아랫동네이며 중촌은 사대문 중앙을 흐르는 청계천 주변을 지칭한다. 조선의 5촌 또는 5부는 현대 서울의 25개 자치구 격이다. 굳이 서촌을 고집하겠다면 ‘인왕산 서촌’이라고 한정했으면 한다. 1929년 9월에 발행된 잡지 ‘별건곤’에 실린 ‘옛날 경성 각급인의 분포 상황’이라는 글을 보면 ‘서소문 내외를 서촌이라고 하고…(중략)…서촌에는 양반이 살되 문반 중 서인이 살며…(중략)…우대에는 육조 이하의 각사에 소속된 이배(吏輩)·고직(庫直)이 산다’고 적었다. 18세기 문인 이가환이 당대 우대에 사는 경아전들이 주축이 돼 결성한 모임 ‘송석원시사’의 시화첩에 붙인 서문 ‘옥계청유첩서’에서 ‘경복궁의 서쪽은 좁은 땅이다. 이 때문에 서리들이 많이 살며 일에 익숙하고 질박함이 적다’고 묘사했다.우대라고 불리는 경복궁 서쪽과 서북쪽 누하동 근처는 궁에 소속된 대전별감, 내시가 각각 살았다는 사실도 적시돼 있다. 우대는 인왕산 아래 옥인동·누상동·사직동·효자동·창성동·통인동·신교동 등을 이른다. 17세기 말 한양의 풍속을 묘사한 정래교의 ‘임준원전’을 기준으로 보면 인왕산~경복궁 사이, 사직로~북악산 사이쯤이다. 이배·고직이란 서울의 중인 계급인 경아전의 통칭이라고 보면 된다. 이를 서리 또는 겸인이라고도 했는데 행정관청에서 실무를 맡은 말단 관리이자 양반가의 비서에 해당하는 청지기를 이른다. 양반촌 서촌과 중인촌 우대는 별개의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촌은 한양도성의 서남쪽 서소문 일대이며 지금도 행정구역상 서소문동을 이룬다. 양화진과 마포 및 서강나루에 도착한 어물과 세곡선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통 요충지였기에 점차 양반촌에서 상인 거주지로 변했다.우대 중인과 서촌 상인들이 사실상 서울의 주인 노릇을 했다. 17세기 한성부의 호적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 사람 열에 일곱은 노비였다. 서울의 특성상 지방보다 노비가 많기도 했지만 조선 전체로 따져도 1200만명 중 30~40%는 노비 계층이었다. 한양 인구 20만명 중 왕족과 양반·관료 및 유생·선비는 10% 안팎이었고, 경아전·별감·서리·겸인·내시 및 역관·의관·화원·율관 등 중인 계층과 시전을 운영하는 부유한 상인 계층 그리고 서울에서 근무하는 하급 장교와 일반 군사 등 중인·평민 계층이 20~30% 정도였다. 임지를 전전하거나 낙향이 잦았던 양반과 달리 중인 및 상인이 서울 사람의 주류를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인왕산 서촌’과 서대문은 별개의 동네이면서도 늘 연결됐다. 인경궁과 경희궁은 광해군 때 지은 두 개의 궁이다. 인왕산 아래 인경궁은 누상동·누하동·누각동이라는 지명을 낳고 곧 사라졌다. 신문로(새문안) 일대의 왕기를 지우려고 세운 경희궁은 서궐의 역할을 했다. 도성 서쪽에는 서대문(敦義門)과 서전문(西箭門)이 있었다. 태종 때 세도가 이숙번이 자기 집 앞 서대문을 닫고, 문을 다른 곳에 짓도록 했기 때문이다. 새문은 ‘성문을 막은 문’(塞門)이라는 뜻과 더불어 ‘새로 지은 문’(新門)이라는 복합 의미를 가진다. 서대문을 대신한 서전문은 지금의 사직터널 앞쯤에 있었다. 사직터널을 뚫고 사직천을 복개해 사직로를 놓기 이전에는 고개로 막혀 있었다. 광화문을 돌아서 가야 하는 먼 길이었다. 조선의 왕들도 사직단에 갈 때는 광화문 육조대로를 지나 지금의 세종대로 네거리까지 나온 뒤 세종문화회관, 정부서울청사, 서울지방경찰청 앞길을 따라 사직단을 오갔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이원석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서울사방 북촌(북촌개발자 정세권의 길)●일시 및 집결 장소 : 6월 2일(토) 오전 10시 안국역 2번 출구 앞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한문고전 2만3000여종 첫 집계… 번역·DB화로 숨은 작품 찾는다

    한문고전 2만3000여종 첫 집계… 번역·DB화로 숨은 작품 찾는다

    우리 조상들이 한문으로 남긴 문헌이 모두 2만 3000여종, 5만 9000여권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문 고전의 전체 규모가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향후 중요 자료의 번역, 해제, 자료화(DB)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어서 관련 연구도 전기를 맞게 됐다.교육부 산하 기관인 한국고전번역원(고전번역원) 신승운 원장은 30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100여곳에 이르는 정부 기관과 도서관, 외국 소장처 등이 보유한 한문 고전의 낱자료 정보 43만여건을 우선 정리한 결과 모두 2만 3000여종으로 집계됐다”면서 “중요 문헌을 올해 말까지 추린 뒤 번역하거나 자료화하는 ‘한국고전총간’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라 말부터 조선까지 현존하는 한문 고전은 전체 문헌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글 창제 이후에도 대부분 한문으로 글을 썼기 때문이다. 한문 고전은 글의 주제에 따라 경부(經部), 사부(史部), 자부(子部), 집부(集部)로 나뉜다. ‘경부’는 유가의 경전을 뜻하는 경학과 관련한 글, ‘사부’는 역사, ‘집부’는 문학 작품을 일컫는다. ‘자부’는 유가 이외의 제자백가 사상 연구나 법학, 기술, 과학 등 나머지를 총칭한다. 번역은 주로 집부에 집중됐다. 앞서 고전번역원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는 1909년 이전 개인이 쓴 문집을 가리키는 ‘별집’ 5000여종을 조사하고, 이 가운데 중요 문집 1259종을 선별해 1986년부터 2012년까지 500권의 단행본으로 편찬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와 같은 국가 기록 문헌을 비롯해 ‘한국경학자료집성’, ‘법제자료총서’, ‘한국과학기술사자료대계’와 같은 자료 정리 사업도 있었다. 고전번역원과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에서도 소장 자료를 일부 정리했다. 그러나 일부 고전만 번역됐을 뿐 그동안 한문 고전이 얼마나 있는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전체 규모는 알 수 없었다. 양이 워낙 많은 데다 각종 정부 기관과 도서관, 외국, 개인 등에게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황의 퇴계집은 18세기 판본과 19세기 판본이 있으며 내용이 다른 데도 소장 기관마다 개별 종으로 치는 등 주먹구구로 관리하기도 했다. 고전번역원은 ‘한국고전총간 편찬사업’에 따라 올해 말까지 한문 고전 전체 목록을 만들고 2000~3000종을 확정해 내년부터 본격적인 번역, 해제 작업 등을 벌인다. 김재훈 고전번역원 원전정리실장은 “소장 기관별로 정리 사업을 하다 보니 작업이 체계적으로 수행되지 못한 사례가 다소 있었다”면서 “차후 상세한 조사를 거치면 2만 3000여종의 규모가 다소 변동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앞서 한국문집총간 작업을 비춰 볼 때 정리 작업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신 원장은 “전체 번역 작업은 적어도 30년 이상이 예상된다”며 “이 과정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고전이 새로이 주목받는 등 연구도 활력을 띨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전소미 근황, 태권도 승단시험 치르는 모습 포착 ‘진지한 눈빛’

    전소미 근황, 태권도 승단시험 치르는 모습 포착 ‘진지한 눈빛’

    그룹 아이오아이 출신 전소미의 근황이 공개돼 화제다.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전소미가 태권도 승단심사를 치르는 모습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사진과 영상을 통해 공개된 전소미는 품새, 겨루기 등 부족함 없는 태권도 실력을 선보였다. 전소미는 아버지 매튜 도우마와 함께 10년 이상 태권도를 수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소미는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틈틈이 태권도를 해 온 것으로 보인다. 2001년 생인 전소미는 이번 승단 심사에 합격할 경우, 18세가 된 이후 별도의 전환교육을 통해 4단이 된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폼페이 유해 발굴, 최후의 날 비극 담겨

    폼페이 유해 발굴, 최후의 날 비극 담겨

    이탈리아 고대도시 폼페이 최후의 날의 비극적인 상황을 고스란히 간직한 유해가 발굴됐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폼페이 당국은 29일 큰 사각형 돌 아래로 삐져 나온 유해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이 유해는 3월부터 새로 시작된 폼페이 ‘V구역’ 발굴 과정에서 발견됐다. 3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이 유해의 주인은 화산재를 피해 달아나다 돌에 맞아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가슴 부위 뼈는 으스러진 상태였고 머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큰 사각형 돌은 화산 구름의 폭발적 힘에 의해 날아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남성은 정강뼈에 감염 병변이 발견된 점에 비춰볼 때 걷는 데 문제가 있었으며, 이런 보행상의 불편 때문에 화산폭발 초기에 현장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연구원들은 분석하고 있다. 폼페이 고고학 지구 사무총장인 마시모 오산나는 이번 유해발굴이 “당시의 문명과 역사를 더 잘 보여주는 데 기여하는 특출한 발견”이라고 전했다. 연구원들은 이번 유해를 통해 당시 주민들의 생활상과 질병 등을 파악하고, 화산폭발 당시 공황상태에 빠진 주민들의 대피 상황을 분석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이탈리아 고대도시 폼페이는 서기 79년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로 잿더미가 됐다.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 당시 폼페이를 비롯해 여러 개 마을이 화산재에 묻혔으며, 18세기부터 고고학적 발굴이 이어지면서 세계 문화유산 유적지로 등재돼 있다. 영상팀 seoultv@seoul.co.kr
  • 하루 우유 500㎖, 성장기 어린이 비만 예방에 효과 (연구)

    하루 우유 500㎖, 성장기 어린이 비만 예방에 효과 (연구)

    고칼로리의 식습관 때문에 아이의 비만이 우려되는 부모라면 눈여겨 볼만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텍사스대학 연구진은 하루 우유 500㎖가 성장기 어린이가 비만이 되는 것을 방지해줄 뿐만 아니라 비만으로 인한 당뇨병 등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3~18세 어린이 353명을 대상으로 2008~2010년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에 비해 평균적으로 우유를 덜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인종에 따른 섭취량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또 조사에 참여한 아이들의 평균 우유 섭취량을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은 하루 평균 우유 섭취량이 280㎖에 불과했으며 4분의 1 가량만 적어도 500㎖이상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우유 섭취량에 따라 인슐린 수치에도 변화가 있었다. 하루 평균 280㎖ 미만을 섭취하는 아이의 경우 끼니 사이에 빠른 인슐린 수치의 변화를 보였지만 적어도 500㎖이상을 마시는 아이에게서는 이러한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인슐린은 우리 몸에서 혈액 속 포도당을 세포로 넣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인슐린 저항성이 높을 경우 우리 몸에 지나치게 많은 인슐린이 만들어지고, 이로 인해 고혈압이나 고지혈, 당뇨 등의 대사증후군이 유발될 수 있다. 연구진에 따르면 우유에 든 성분이 인슐린 저항성을 낮춰주는데 효과적이며, 끼니와 끼니 사이에 인슐린 저항성이 낮아지면 고당도 또는 고지방 음식에 대한 욕망을 줄이는데 도움이 돼 비만을 예방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과체중 또는 비만인 아이들이 하루 일정량의 우유를 마실 경우 당섭취를 조절하는데 용이하며, 이것이 비만이나 당뇨같은 대사증후군을 피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일부 부모들은 우유에 함유된 지방 등을 염려해 아이들에게 잘 먹이지 않기도 하는데, 아이들이 마음껏 우유를 마시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인슐린저항성의 위험이 높은 비만 아이들의 경우 더 심각한 비만을 막기 위해 설탕이 들어간 음료 대신 우유를 마시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지난 23일~2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럽비만학술의회’(European Congress on Obesity)에서 발표됐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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