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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가짜 같은 진짜, 진짜 같은 가짜의 진실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가짜 같은 진짜, 진짜 같은 가짜의 진실

    세상에는 가짜 아니면 진짜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대종을 이룬다. 사랑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미술품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미술품 진위 문제는 원본도 보지 못한 채 진위를 말하는 자칭 전문가들까지 나타나 사람들을 블랙홀로 빨아들인다. 이런 세태 속에서 그림 감정을 업으로 살아온 버질(제프리 러시)이 정체 모를 여인 클레어(실비아 휙스)를 만나 미스터리한 밀고 당기기 끝에 사랑에 골인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자신이 평생을 모아온 미술관을 능가하는 그림들을 모두 잃고 마는 영화 ‘베스트 오퍼’(2013)는 진짜와 가짜란 모두 자신의 믿음에 달렸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수작이다. 영화 제목인 베스트 오퍼는 경매에서 진정 마음에 드는 물건이나 작품을 만났을 때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지불할 수 있는 최고가를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글쎄 세상 사람 중 몇이나 평생에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버질은 미술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감식안으로 감정 분야의 독보적 존재이자 세기의 경매진행사이다. 결벽증이 있는 버질의 유일한 취미는 아마추어 화가이자 친구인 빌리(도널드 서덜랜드)를 시켜 경매를 통해 여성의 초상화를 낙찰받아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방에 모셔두고 혼자 즐기는 것이다. 그의 컬렉션은 초상화미술관을 능가한다.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의 ‘어린 소녀의 초상’, 프랑스 아카데미즘을 대표하는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의 ‘비너스의 탄생’, 보카치오 보카치노의 ‘집시소녀’, 알브레히트 뒤러의 ‘엘스베트 투허의 초상’을 비롯해 라파엘, 티치아노, 브론치노, 모딜리아니, 르누아르 등이 망라돼 사조별로 각각 여성들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비교가 가능할 정도이다. 이런 세기의 명화들은 영화를 통해 예술품의 진위를 사랑과 대비시키려는 감독의 속셈의 산물이다. 감독은 그림과 오늘날 로봇의 전신이라 할 18세기 자동인형 ‘오토마톤’을 등장시켜 사랑과 예술 그리고 인생에 대한 절묘한 비유를 통해 제아무리 뛰어난 눈을 가졌다 할지라도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보여준다.그림에 등장하는 많은 초상화들도 사실은 ‘눈속임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류의 그림은 인간의 눈의 한계를 최대한 이용한다. 매우 정밀하게 그려져 실제로 사물이 있는 것처럼 현혹시킨다. 관객들은 진짜인 줄 알았다가 속았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요즘 난무하는 트릭아트도 이런 류다. 하지만 장 보드리야르 같은 이는 눈속임 그림을 ‘낯설음’이며, ‘아이러니한 모조물’이라고 보았다. 그저 사물과 똑같이 그려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그 그림이 전에는 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라는 말이다. 과거 재현의 시각으로 본 눈속임이 아니라, 사물이 가지고 있는 관념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눈속임 회화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타인과의 관계를 애써 무시했던 버질에게 클레어는 유산으로 받은 오래된 빌라와 그곳의 가구, 미술품, 조각상 등을 경매에 위탁하겠다며 접근한다. 어릴 때부터 은둔했다는 클레어에게 버질은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 같은 듯 다른 두 외톨이는 교감한다. 두 사람의 사랑이 절정을 향해 달릴 즈음 친구 빌리는 경매에서 놓쳤던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의 ‘어린 소녀의 초상’을 되찾아온다. 북유럽 르네상스 시대 인물화의 대표작으로 미술사학자 조엘 업턴이 “검은 벨벳 쿠션 위에 놓인 유백색의 진주를 닮았다”고 평한 작품이다. 주인공이 관객을 바라보는 특이한 초상이다. 어느 날 클레어는 스스로를 감금했던 자신의 집을 보여주고 버질은 여기서 나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클레어는 마치 풀리지 않는 거미줄에 걸린 것 같다고 답한다. 물론 영화의 결말을 보면 버질이 거미줄에 걸린 셈이지만. 그 후 버질은 경매를 진행해야 하는 일정에도 불구하고 반지를 사들고 클레어의 집을 찾지만 그녀는 집에 없다. 부랴부랴 경매장으로 돌아와 실수를 연발하며 경매를 마친 버질은 사라진 클레어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뛴다. 그 와중에 빌리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이에 빌리는 “인간의 감정은 예술과 같아 위조할 수 있지. 보기엔 진품과 똑같아. 하지만 위조이고, 모두를 속일 수 있지. 기쁨, 고통, 증오, 병, 회복, 심지어 사랑도”라고 귀띔(?)한다. 사라진 클레어 걱정에 여인의 초상화가 걸린 방에서 상념에 잠겨 있던 버질은 클레어가 집안 비밀의 방에 있을지 모른다는 전화를 받는다. 버질은 집으로 뛰어가 클레어를 발견하고 처음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그녀를 찾았다가 괴한들로부터 테러를 당하고 클레어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실려가 살아난다. 이 사건을 계기로 클레어는 세상 밖으로 나오고, 버질은 클레어를 초대해 자신의 결벽증을 고백하면서 그동안 바보처럼 살았다며 평생 모은 여인들의 초상화로 가득한 비밀의 방으로 안내한다. 클레어 빌라의 경매 도록이 만들어지고 경매일을 기다릴 무렵 돌연 클레어가 경매를 취소한다. 은퇴를 결심한 버질의 마지막 경매에서 빌리가 인사를 건네며 그림을 한 점 선물한다.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지만 클레어는 친구들과 외출한 상태. 빌리가 선물한 그림을 가져다 두려고 비밀의 방으로 간 버질은 텅 빈 방을 발견한다. “모든 위조품에는 진품의 미덕이 숨어 있다. 전적으로 동의해요. 당신이 그리울 거예요”라는 기계음만 반복되는 오토마톤만 남아 있다. 급하게 클레어의 집으로 향하지만 아무도 없다. 집 앞 카페의 왜소증환자는 자신의 이름이 클레어라며 저 집은 오랫동안 비어 있던 집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이렇게 끝에 가서야 또 다른 복선을 드러낸다. 클레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빌리가 준 그림에서 그의 사인을 발견하면서 그제야 속았음을 알아챈다. 버질은 신고를 위해 경찰서를 찾지만 곧 돌아서서 클레어와의 행복했던 날들을 회상하며 프라하로 떠난다. 전에 그녀가 말했던 카페에서 그녀를 기다릴 심산으로. 우리는 빌리처럼 가짜라고 알지만 진짜이길 원하는 마음이 워낙 커 알면서도 스스로 속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치 눈속임 그림처럼. 그래서 사기당할 사람은 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는 모양이다. 이번 대선엔 이런 과도한 믿음에서 벗어나 후보를 감정해 보자.
  • [런웨이 조선] ‘속옷만 6벌’ 겹겹이 쌓은 아름다움…서양사람 페티코트도 부럽지 않소

    [런웨이 조선] ‘속옷만 6벌’ 겹겹이 쌓은 아름다움…서양사람 페티코트도 부럽지 않소

    몸매 얽매이지 않고 여성미 최대한 돋보이게 만들어줘 우리 옷 한복은 중국의 치파오나 베트남의 아오자이, 일본의 기모노와는 구성부터 다르다. 이들은 모두 상의와 하의가 연결된 원피스 스타일이다. 기모노는 온전하게 직선으로만 구성된 원피스 스타일로 직선의 미를 살리기 위해 여성의 몸을 직선 안에 감춰 버린다. 반면 치파오나 아오자이는 여성의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젊고 몸매가 좋은 여성이 입었을 때 찬사를 받는다. 그러나 어디 젊고 몸매가 좋은 여성만 옷을 입을까. 그렇다면 치마저고리는 어떤가. 직선으로 마름질한다는 점에서는 기모노와 같아 보인다. 그러나 여성의 몸을 드러내고자 하는 점에서는 오히려 원피스 스타일과 더 닮아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 한복이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는 반드시 젊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몸매가 좋아야만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성성을 가장 잘 드러낸 서유럽의 대표적인 드레스 ‘로브 아 라 프랑세즈’와 닮았다. 영국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 소장된 드레스를 보면 상의는 프랑스어로 ‘목둘레를 파다’라는 뜻을 가진 데콜테 스타일이다. 목, 어깨, 가슴이 노출되도록 상체를 파 가슴을 강조했다. 그 위에 코르셋을 입는다. 가는 허리가 미인의 기준이 되자 코르셋의 앞 중앙이 역삼각형으로 내려와 허리를 더욱 가늘어 보이게 만든다. 하의는 페티코트를 입어 엉덩이를 극대화시킨다.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여성의 욕망은 급기야 허리는 더욱 가늘게, 가슴과 엉덩이는 더욱 크게 확대시키는 X자형 아워글라스 실루엣을 만들어 냈다. 우리나라 저고리 역시 처음부터 짧았던 것은 아니다. 지금의 상의처럼 엉덩이 중간까지 내려오던 저고리는 14세기 말부터 점점 짧아지더니 18세기에 들어서면서 20㎝ 안팎까지 짧아졌다. 이는 유두를 가릴까 말까 할 정도의 길이다. 치마를 입는 위치도 처음에는 허리였다.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면서 허리에 둘러 입던 치마는 점차 가슴 위로 올라갔다. 짧아진 저고리와 함께 허리에서 가슴으로 올라간 치마는 더욱 길어지고 풍성해졌다. 상의는 상의대로, 하의는 하의대로 여성성을 드러낸 치마저고리는 드디어 ‘하후상박’(下厚上薄)의 새로운 스타일로 진화했다. 서양의 드레스와 치마저고리는 실루엣만 놓고 보면 둘 다 여성성을 강조한 아워글라스 실루엣이다. 그러나 여성성을 어떻게 무엇으로 표현했느냐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다. 서유럽에서 여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것은 코르셋과 페티코트다. 이들이 처음 만들어질 때는 단순히 허리가 가늘어 보이도록 앞뒤에서 납작하게 끈을 달아 조이는 정도였다. 그러나 허리를 인위적으로 조이고 엉덩이를 과장하면서 코르셋과 페티코트는 나무나 고래 뼈, 심지어는 철로 만들기까지 했다. 신체의 왜곡도 여성성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치마저고리는 달랐다. 저고리는 작게 만들어 몸에 밀착시켰다. 치마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속옷을 겹겹이 껴입었다. 단순히 껴입는 데 그치지 않고 여성들은 어떻게 하면 더 풍성해 보일 수 있는가를 고민했고 이를 위해 쓰임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의 속옷을 만들어 입었다.맨 먼저 팬티와 같은 다리속곳을 입는다. 그 위에 바지통이 넓은 속속곳을 입고, 여기에 다시 통이 좁은 바지를 입음으로써 안에 입은 넓은 속속곳이 바지의 폭을 지탱하게 한다. 그리고는 다시 통이 넓은 단속곳을 입어 치마를 부풀린다. 대체로 일반적인 여성의 기본 속옷은 여기까지다. 그러나 재력이 있는 집안의 여성이라면 단속곳 위에 또 한지로 단을 만들어 붙인 너른바지를 입는다. 너른바지는 밑단을 퍼지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 그 위에 캉캉치마와 같은 무지기치마까지 겹쳐 입는다. 무지기치마도 3층, 5층, 7층, 9층까지 다양하다. 속옷만 무려 6벌이다. 게다가 공주나 중전마마였다면 모시로 만든 대슘치마를 덧입어 최대한 부풀린다. 서양의 페티코트가 부럽지 않다. 이렇게 부풀려 입은 이유는 단 하나, 예쁘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실제 여성의 저고리를 시험 삼아 입어 보았다. 일단 소매에 팔을 꿰기가 몹시 어려웠고 한번 팔을 구부리면 솔기가 터지기까지 했다. 간신히 입었더라도 잠시 후 팔에 피가 통하지 않아 팔에 부종이 생길 정도였다. 게다가 도저히 벗을 수 없어 결국 소매를 찢고 벗으면서 요망스럽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경험으로 그는 저서 ‘청장관전서’에 “요즘 부녀자들이 입는 저고리는 너무 짧고 좁으며, 치마는 너무 길고 넓어 요사스럽다”고 하면서 “그러니 모든 부인은 이 치마저고리를 고쳐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안 그래도 작은 옷을 남자가 입었으니 좀 과장되었으리라. 그러나 이덕무와 달리 세속의 남자들은 오히려 그 자태에 매혹됐다. 이 패션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던 것도 사대부 남성들의 역할이 컸다. 가위로 찢어야만 가까스로 벗을 수 있는, 작고 딱 달라붙는 저고리와 반대로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한 치마의 아름다운 실루엣, 하후상박. 무엇이 이 아름다움을 이길 수 있을까.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 佛국립도서관에 ‘직지’보다 오래된 고서 있다

    佛국립도서관에 ‘직지’보다 오래된 고서 있다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이 있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한국 고서적과 고지도 유일본, 희귀본이 여러 점 소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는 ‘직지심체요절’보다 7년 앞선 1370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교서적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檀經)과 국내에서 보물로 지정돼 있는 조선 초기 ‘능엄경’(楞嚴經)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직지보다 7년 앞선 육조대사법보단경 한지희·김효경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 이혜은 숙명여대 교수는 지난해 5월 프랑스 국립도서관 필사본장서부에 있는 한국 고문헌을 처음 실물로 전수조사한 결과 134종, 306책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16일 밝혔다. 지금까지 알려진 137종, 316책보다 3종, 10책이 적다. 이는 중국, 일본의 고서를 한국 책으로 잘못 분류해 빚어진 오류로 파악됐다. 이번 조사에서 발견한 가장 이른 시기의 책은 선종의 제6대조인 혜능(慧能)이 설법한 내용을 담은 ‘육조대사법보단경’이다. 가로 15.1㎝, 세로 22.6㎝ 크기로 고려 후기 문신인 이금강이 시주해 경술년에 제작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능엄경, 보존 상태 좋아 학술가치 높아 ‘능엄경’ 10권, 5책은 1401년에 새긴 목판으로 1456년 찍은 책으로, 서적의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도 1401년 판본이 있으나 첫 번째 권의 서문과 권수 부분이 떨어져 나간 상태다. 15세기에 나온 ‘능엄경’은 낱권도 보물로 지정돼 있어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본은 학술 가치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고지도인 ‘관서전도’(關西全圖)와 ‘영연도’(嶺沿圖)도 이번 조사에서 처음 존재가 확인됐다. 이번 연구는 한국서지학회의 학술지 ‘서지학연구’ 제69집에 실렸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유채꽃 품은 무채색 도시

    유채꽃 품은 무채색 도시

    하노이는 고도다. 베트남의 고대 왕조들과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거쳐 통일 베트남의 수도가 된 하노이의 역사는 곧 베트남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 덕에 고풍스러운 건물과 낡은 건물이 어우러져 있다. 보다 정확히는 낡은 건물 주변에 옛 건물들이 묻혀 있는 형국이다. 겉은 무채색이지만 세월과 가난의 때를 벗겨 내면 화려한 속 빛깔을 드러낸다. 그게 하노이다. ‘하노이’는 ‘강 안의 땅’이라는 뜻이다. 홍강(Red River)을 비롯한 크고 작은 강과 지류들이 하노이를 감싸며 흐르고 있다. 하노이를 돌다 보면 탕롱(Thang Long)이란 이름과 곧잘 마주하게 된다. 탕롱은 18세기까지 하노이를 일컫는 명칭이었다. 1010년 리 왕조를 세운 리타이토가 홍강에서 뱃놀이를 즐길 때 금빛의 용이 하늘로 올랐고, 이후 용이 하늘로 오른다는 뜻에서 탕롱(昇龍)이라 이름 짓고 도읍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 옛 도시에서 마주하게 되는 건 추억의 환기다. 현지 가이드는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가 볼 것을 권했다. 관광버스를 타고 지나는 너른 거리와 발품 팔아 돌아보는 골목은 전혀 다른 서정과 풍경을 담고 있다고 했다.롱비엔 시장으로 먼저 간다. 하노이의 본질적인 풍경과 마주하기 위해서다. 롱비엔 시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롱비엔 철교다. 가난과 세월 탓에 붉게 녹슬었지만, 거대한 규모와 우아한 자태만큼은 단연 압권이다. 일부에선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을 만든 귀스타브 에펠이 설계한 철교라고 주장하는데, 사실 정확한 근거는 없다. 다만 1899~1902년 프랑스의 건축가 손에 세워진 만큼 프랑스 식민 시대의 상징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다리 길이는 2.3㎞ 정도. 하노이 중심부를 흐르는 홍강 위에 세워져 있다. 애초 자동차도 통행하던 다리였는데 월남전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부서져 지금은 기차와 보행자, 오토바이 등만 오간다. 철교 아래는 롱비엔 시장이다. 베트남 최대 과일시장이다. 다른 품목도 팔지만 과일이 가장 많다. 시장은 새벽녘에 문을 연다. 출근 시간쯤이면 벌써 파장 분위기다. 악다구니와 거친 몸짓이 오가는 우리 시장과는 분위기가 다소 다르다. 저마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며 바삐 오간다. 논(베트남 전통 모자)을 쓰고 어깨가 휘어지도록 누이 반 항 롱(물지게 비슷한 들것)을 진 이도 있다. 그 이미지가 더없이 강렬하다.롱비엔 시장에서 도로를 건너면 구시가 초입이다. 도로 위엔 육교가 세워져 있다. 육교 아래로 자동차와 오토바이, 자전거 등이 뒤엉켜 아침을 연다. 육교는 베트남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장소다. 이른바 꽃자전거가 지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하노이 사람들은 꽃을 좋아한다. 과장 좀 보태 한 집 건너 꽃집이고, 시장에서 좌판을 편 과일장수와 꽃장수 숫자가 같을 정도다. 꽃장수들은 멀리 서호 옆의 꽝안 꽃시장에서 신선한 꽃을 산 뒤 저마다의 공간으로 가져와 판다. 이들이 꽝안시장에서 산 꽃을 자전거 뒤에 매달고 지나는 길목이 바로 이 육교 일대다. 새벽녘 육교에 서 있으면 꽃을 가득 실은 자전거와 오토바이 등이 지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삶의 무게를 싣고 지나는 이들의 모습이 애잔하면서도 강렬하다. 육교 너머는 꾸어오꽌쭈옹이다. 서울의 동대문처럼 하노이에도 성 안과 밖을 가르는 성문이 있다. 우리와 달리 크기가 작아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그중 하나가 하노이성 동쪽을 지키던 꾸어오꽌쭈옹이다. 오가는 사람들은 바뀌었지만 성문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옛 성문을 지나면 무채색의 비좁고 어두운 길이 이어진다. 낡고 때 묻은 건물들은 음울한 풍경이 담긴 회화를 보는 듯하다. 골목을 나서면 동쑤언 시장이다. 베트남 북부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시장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즐겨 먹는 건어물, 과일 등과 의류 등 온갖 생필품을 판다.동쑤언 시장 옆은 하노이 구시가다. 많은 여행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하노이 구시가는 서울 종로의 육의전처럼 베트남 조정에 바칠 공물을 제작하고 판매하기 위해 조성됐다고 한다. 거리마다 취급하는 품목이 달랐고, 지금도 명칭과 특성이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다. 예컨대 항박 거리는 귀금속 상점, 항가이 거리는 비단 가게, 항찌에우는 돗자리 점포가 몰려 있는 식이다. 이런 상가 거리가 36개가 이어져 있다고 해서 ‘36거리’라고도 불린다. 하노이는 호수의 도시로 불린다. 300여개에 이른다는 크고 작은 호수가 밀집돼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건 구시가를 둘러싼 호안끼엠호(還劒湖)다. 이른바 ‘되돌려 준 칼의 호수’라 불리는 곳. 15세기 레 왕조를 세운 레 로이가 호수의 거북에게 받은 검으로 명나라를 물리친 뒤 다시 되돌려 줬다는 전설에서 이 같은 이름을 얻게 됐다. 호수 위쪽에 놓인 붉은색 나무다리를 건너면 응옥썬 사원이 나온다. 베트남의 전쟁 영웅, 학자, 의술의 신 등을 함께 모신 사당이다. 호수 북쪽으로는 수상 인형극장과 구시가지, 박물관, 대성당 등의 주요 명소가, 남쪽으로는 숙소와 음식점, 기념품 가게가 즐비한 여행자 거리가 이어진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차량 통행이 금지돼 한결 많은 사람이 몰려든다. 밤엔 맥주거리를 찾는다. 최근 국내 한 TV에 소개되면서 한국인 방문객이 부쩍 늘고 있다는 곳이다. 수많은 외국인 여행자와 현지인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구시가 인근에 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하노이 외곽의 흥옌을 찾는 것도 좋겠다. 베트남 전통 어구인 대나무 통발로 이름난 도시다. 작은 골목길을 기웃대다 보면 쭈글쭈글한 손길로 통발을 만드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글·사진 하노이·흥옌(베트남)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조선 불화서 고대 인도 문자 추가 확인

    조선 불화서 고대 인도 문자 추가 확인

    보물 제1269호로 지정된 전북 부안의 18세기 불화 ‘개암사 영산회 괘불탱’에서 고대 인도 문자인 범자 118개가 추가로 확인됐다고 성보문화재연구원이 6일 밝혔다. 기존에는 30여개만 알려졌다. 범자는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를 적는 데 사용한 문자로, 불상에 발원문과 사리, 경전 등을 봉안하는 불복장과 같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길이 14m, 폭 9m의 이 불화는 조선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승려화가인 의겸이 1749년 참여해 그린 작품이다. 성보문화재연구원 제공
  • [서울광장] 사드 보복 한·중 망각과 착각/김성곤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사드 보복 한·중 망각과 착각/김성곤 편집국 부국장

    과거 중국은 통치와 외교 영역을 셋으로 나눴다. 본토와 몽골, 서장 등 직할지, 조선, 베트남, 버마, 태국, 라오스, 류구, 필리핀 등 조공국이 그것이었다. 이런 조공 체제는 수·당 시대에서 본격화되기 시작해 명·청 시대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반도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통일신라시대는 물론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조공 관계를 유지했다. 조공은 조공국이 가져간 물품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오는 흑자 교역이었다. 실제로 명나라 시대에는 이런 흑자가 두드러졌다. 이에 따라 명나라가 조선에 3년에 한 번 조공을 하는 ‘3년일공’을 요구했지만, 조선은 핑계를 대며 1년에 3~4회나 조공을 하고 답례품을 받아 오기도 했다. 하지만 마냥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청나라 때에는 흑자가 아니라 적자가 많았다. 청나라에서 요구하는 것이 많아 가져간 것 대비 받아 온 ‘회사’가 10분의1에도 미치지 못해 교역을 하면 할수록 손해가 났다는 기록도 전한다. 이로 인해 나라 재정에 구김이 갈 정도였다는 것이다. 이런 조공제도는 18세기 들어 서구 열강이 아시아로 몰려오면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청나라는 이들에게 조공 관계를 따를 것을 요구했지만, 영국과 프랑스 등은 세 차례의 전쟁을 통해 난징조약(1842년), 톈진조약(1858년), 베이징조약(1860년) 등을 통해 거꾸로 서구 열강의 ‘조약 시스템’에 편입하고 만다. 북핵에 대비한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두고 중국의 전방위 보복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이런 중국을 두고 ‘조공 국가 접근법’을 채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드 문제를 우리가 잊고 있었던 과거 조공 국가 시스템으로 비판적 접근을 한 그의 분석법이 놀랍기도 하고, 새삼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중국은 지금도 원조와 교역을 주변국에 대한 압력 수단으로 활용하곤 한다. 사드 문제 이전에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로 일본을, 최근엔 티베트 달라이 라마 문제로 몽골을 압박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국내 산업계 전반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이 절반 수준으로 줄고, 4만 안팎의 중국 진출 기업들도 빈사 상태다. IBK경제연구소는 중국의 경제 보복이 본격화되면 우리 경제의 손실 규모가 150억 달러(약 17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중국 의존도가 심해진 결과다. 2004년 현대경제연구원은 1980년 한·중 간 교역 규모가 4000만 달러로 전체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1%였으나, 2003년에는 579억 달러로 15.5%로 늘어나고, 우리나라의 해외 투자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37%로 증가했다며 중국에 대한 과도한 집중을 경계했다. 정부도 이를 완화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했지만, 중국으로부터 발생하는 무역 흑자 등에 도취(?)돼 중장기 대책은 자리를 잡지 못했다. 우려되는 것은 이런 시련을 겪고도 한·중 관계가 호전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과거로 돌아가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대중 특수에 젖어 과거를 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중국인들은 다시 명동과 제주도 등 한국을 찾을 것이다. 한·중 관계도 언제까지나 이렇게 냉랭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 17조원은 아니지만, 수조원의 수업료를 내고, 얻은 교훈이 사장될까 두렵다. 재삼 이번 사드 보복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미국과 쌍벽을 이루는 국가로 성장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역사에 비추어 봤을 때 중국은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의식을 버리지 못한다.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국제적인 관례 등은 무시하고 언제든 표변할 수 있는 나라다. 안타깝지만, G2로 성장한 중국이 한국 등 주변국을 과거 조공 시스템으로 묶어 둘 수 있다는 착각(?)에서 깨어나는 것도 그리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대목이다. sunggone@seoul.co.kr
  • [런웨이 조선] “편두통, 참아야 하느니라” 조선 멋쟁이의 폼생폼사

    [런웨이 조선] “편두통, 참아야 하느니라” 조선 멋쟁이의 폼생폼사

    머리카락이 뽑히고 피가 날 정도로 단단히 둘러매… 보톡스 효과 뺨치는 망건우리가 미처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는 조선시대 복식에 관한 숨은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연재물 ‘런웨이 조선’을 새로 시작합니다. 조선 사회에도 시대를 앞서가는 멋과 유행은 존재했고, 남다른 미적 감각을 지닌 멋쟁이들도 많았습니다. 한국 복식사를 전공한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이 매주 화요일 독자 여러분을 조선시대 런웨이로 안내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유행 속에서, 유행을 좇으며 산다. ‘유행’이라는 것은 참 어렵다. 조금만 앞서면 난해한 패션이라며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기 십상이고 조금만 늦어도 촌스럽다느니, 멋을 모른다느니 하며 무시당한다. 하이힐이 처음 나왔을 때 발의 통증이나 허리의 무리를 감수하고 많은 멋쟁이들의 호응으로 보편적인 유행이 된 것이나 당시의 사회적 시선도 그렇지만 활동이 불편하고 보기에도 난감했던 미니스커트, 스키니진도 이제 당연한 패션이 됐다. 멋쟁이들은 시대를 앞서가며 멋을 위해 어색함과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 불편이 더해져 고통이 되더라도 참아낸다. 오히려 멋쟁이들은 그 고통마저 쾌감으로 받아들이곤 했다. 개항기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외국인들은 조선을 ‘모자의 나라’라고 했다. 그것은 다양한 종류의 모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모자를 쓰기 위해 당시 조선의 멋쟁이들이 얼마나 패션에 신경을 썼는가를 방증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관례를 치른 남성들의 머리스타일이 한결같이 상투머리였다. 그러나 모두가 똑같은 것 같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멋진 머리를 만들기 위한 이들의 노력이 참으로 눈물겹다. 조선시대 남자들이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상투를 트는 것이다. 상투를 틀기 위해서는 먼저 머리를 빗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머리를 빗을 때 사용하는 빗은 얼레빗과 참빗 두 종류가 있다. 얼레빗으로 일단 헝클어진 머리를 빗어 가지런히 하고, 참빗으로 삐죽삐죽 빠져나온 머리를 정리한다. 그다음 본격적으로 상투를 틀어야 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이 상투의 크기이다. 조선의 멋쟁이들이 생각한 상투의 크기는 높이 5~8㎝, 직경 2.5㎝ 정도이다. 이런 정도의 크기를 만들면 ‘알’만 하게 되는데, 이 ‘알’만 한 상투는 당시 패션의 기본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크기의 상투를 만들기 위해서는 머리숱이 관건이 된다. 먼저 머리숱이 많은 사람은 숱부터 없애야 한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은 상투가 맺어지는 곳 아랫부분에 머리카락을 밀고 주변머리를 걷어 올려 묶은 다음, 상투의 크기를 가늠해 그 길이만큼 돌려 감은 후 남은 머리카락 끝으로 상투 밑 부분을 감고 남성용 비녀인 동곳으로 마무리한다.상투를 틀고 나서 헤어밴드처럼 두르는 망건은 그저 흘러내리는 머리가 없도록 깔끔하게 정리하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망건을 어떻게 매느냐에 따라 인상은 180도 달라진다. 흐리멍덩하게 보일 수 있는 인상은 망건 하나로 날렵한 조선시대 사대부로 변신한다. 기록을 보면, 망건을 풀고 난 자리에 피가 흥건할 정도로 상처가 생길 만큼 단단히 맸다고 하니 망건의 원래 목적인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동여매는 용도는 사라진 지 오래다. 왜 이런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망건을 당겨 맸을까? 강이오 초상(보물 제1485호)을 보면 망건을 어찌나 단단히 맸는지 이마의 위아래가 눌리고 눈썹의 꼬리까지 올라간 것을 볼 수 있다. 이마는 팽팽해지고 심지어 볼록하게 튀어나오기까지 했다. 전체적인 인상은 어디 하나 어리석어 보이거나 희미해 보이는 구석 없이 긴장되고 의욕적으로 보이며 젊어 보이기까지 한다. 오늘날 보톡스 시술의 효과가 이렇지 않을까?18세기에 그려진 조씨 삼형제 초상(보물 1478호)에서 제일 막내로 보이는 인물의 옆모습을 보면 망건을 일직선으로 두른 것이 아니라 완만한 산 모양을 하고 있다. 이마 중심은 위로 올라가고 옆은 귀 위에서 눌렀다. 앞은 높고 뒤가 낮아서 마치 범이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이를 호좌건(虎坐巾)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두른 망건은 벗을 때 당줄을 풀지 않고 위에서 잡아 올려 벗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망건을 쉽게 벗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머리카락이 다 뽑혀가며 망건을 잡아 올려 벗은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세속에서는 머리털이 일찍 벗겨지는 것을 출세하는 상으로 여겼다. 그래서 대머리가 되기 위해 이마를 밀기도 하고, 족집게로 뽑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망건을 잔뜩 죄어 매고 벗을 때 뽑듯이 망건을 벗겨내면 손쉽게 머리털이 뽑혀 이마가 훤해지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이렇듯 패션에 여러 가지 역할을 한 망건은 편두통을 불러오기 일쑤였다. 머리카락이 빠질 정도로, 또 피가 날 정도로 단단히 친 망건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사람들은 이를 두액(頭厄)이니 수건(囚巾)이니 하여 옳지 않게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건이 당시 멋쟁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멋을 부리는 것이 고통보다 중요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정도 고통은 참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방법에 골몰했다. 멋쟁이의 품위를 잃지 않고 해결해 줄 수 있는 도구가 있었으니 바로 ‘살쩍밀이’다. 원래 ‘살쩍’은 관자놀이와 귀 사이에 난 머리털이다. 편두통이 오면 살쩍을 망건 속으로 집어넣는 척하며 망건을 들었다 놨다 반복하면서 고통을 완화시켰다. 편두통이 오더라도 살쩍밀이에게 맡기고, 멋쟁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쯤이야 고통도 아니지 않았을까?●이민주 선임연구원은 성균관대 의상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한국 복식사를 전공했다. 복식사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로 조선의 문화를 패션으로 풀어내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치마저고리의 욕망’, ‘조선 사대부가의 살림살이’ 등을 썼고,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는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2014년)로 선정됐다.
  • [우리 식생활 바꾼 음식 이야기] 쫄깃한 도우 위 ‘육·해·공’ 토핑… 세계인의 든든한 식사

    [우리 식생활 바꾼 음식 이야기] 쫄깃한 도우 위 ‘육·해·공’ 토핑… 세계인의 든든한 식사

    피자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길거리 음식이었다. 집안에 요리 시설이 없던 이들이 주머니 사정에 맞춰 먹던 음식이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얼굴로 소비자들을 만나고 있다. 피자는 국내에 1970년대부터 널리 알려졌다. 밀가루로 만들어진 둥글고 하얀 ‘도화지’ 위에 치즈라는 공통의 재료 외에도 불고기, 파니르 등 각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이 올라가면서 세계 각국의 다양성을 보여 주는 요리가 됐다.피자의 바탕은 밀가루로 만든 도우다. 밀가루를 손으로 반죽해 이스트(효모)로 발효시킨다. 쫄깃한 도우를 만들기 위해 반죽을 며칠간 숙성시키기도 한다. 도우는 피자를 구울 때 부풀어 올라야 하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서 만든다. 피자 요리사(피자욜로)들은 도우를 던지고 돌리는 기술을 2005년부터 시작된 피자세계대회에서 겨루기도 한다. 국내 업체인 미스터피자가 단골 우승자를 배출해 왔다. 도우 위에 얹는 재료에는 한계가 없다. 18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채소와 버섯 그리고 가끔 고기나 생선을 얹어 먹었다. 당시 이탈리아를 방문했던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는 ‘마차여행’에서 ‘나폴리 빈민들은 여름에는 수박, 겨울에는 피자로 살아간다’고 적었다. 나폴리 빈민들에게 피자는 세 끼 식사이기도 했다. 가장 기본적인 피자로 알려진 마르게리타피자는 이탈리아 여왕의 이름을 딴 피자다. 토마토와 모차렐라 치즈, 바질을 얹은 피자를 마르게리타 여왕이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마르게리타피자는 빨간색, 흰색, 초록색을 띠어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하기도 한다. 소박한 요리가 여왕의 총애를 받았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신데렐라를 떠올리기도 한다. 피자가 이탈리아의 남부 나폴리에서 시작됐지만 이를 전 세계에 알린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을 피자의 제2의 고향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탈리아 이민들의 미국 이주,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 주둔했던 미군에 이어 이탈리아로 간 많은 여행객들이 피자의 세계화에 기여했다. 미국에서 피자헛(1958년), 도미노피자(1960년) 등이 사업을 시작했고 바비큐 치킨 피자, 하와이안 피자 등이 탄생했다. 햄버거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의 상징이라는 반갑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피자는 그렇지 않다. 세계화와 지역화가 동시에 진행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처럼 인도에서는 파니르 치즈, 폴란드에서는 키엘바사(소시지) 등 그 지역의 음식이 토핑으로 쓰이고 있다. 국내에 피자가 소개된 것은 미군 부대를 통해서였지만 본격적으로 알려진 시기는 미국에서 냉동 피자가 개발돼 한국으로 들어왔던 1970년대다. 1981년 가수 패티킴이 서울 서초동 제일생명빌딩 옆에 이탈리아 음식점 ‘맘마미아’를 열어 피자를 팔았다는 신문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이어 피자헛이 1985년 용산구 이태원에 1호점을 열었다. 당시는 햄버거, 치킨 등의 프랜차이즈가 문을 열던 시기였다. 미스터피자가 1990년 신촌 이대점에 1호점, 도미노피자는 송파구 오금점에 1호점을 각각 열었다. 파파존스는 2003년 강남구 압구정동에 1호점을 열었다.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첫 개점은 한 곳에 몰리는 경향이 있는데 피자업체는 이런 경향에서 다소 벗어나고 있다. 피자헛은 국내에서 개발한 제품을 미국 본사와 다른 나라에 수출하기도 했다. 1996년 도우 끝에 모차렐라 치즈를 넣은 치즈크러스트, 2003년 피자 끝부분인 치즈크러스트의 지붕을 없애고 치즈를 보이게 한 리치골드 등이 대표적이다. 이 피자들은 미국 본사는 물론 동남아 일대로 수출됐다. 하루 50~70판 정도 피자를 굽고 먹는 신제품개발팀의 노력 덕분이다. 피자헛은 직영점 없이 331개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다.‘식품유통연감 2016’에 따르면 국내 피자전문점 중 매출이 가장 많은 곳은 도미노피자다. 파파존스는 매출액 공개를 꺼리고 있다. 도미노피자는 직영점 103개, 가맹점이 333개다. 피자 매장이 가장 많다. 도미노피자는 곡물도우로 유명하다. 보리, 현미, 대두 등 15가지 국내산 곡물과 밀가루를 사용해 고소하고 쫄깃함을 더했다. 배우 송중기와 박보검을 활용해 공격적인 마케팅, 크러스트피자를 한 단계 발전시킨 더블크러스트피자 등이 인기 비결로 꼽힌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6일 발표한 시장점유율 상위 5개 업체에 대한 소비자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파파존스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파파존스는 직영점 40개를 포함해 전국 115개 매장을 갖고 있다. 파파존스는 최소 72시간 4도에서 저온 숙성시킨 도우를 쓴다. 소비자만족도에 높은 점수를 받은 까닭 중 하나로 미스터리 쇼퍼 제도가 꼽힌다. 매장당 연 4회에 걸쳐 손님으로 가장한 평가원이 제품, 배달, 포장 등의 다양한 요소를 10점 만점 기준으로 평가한다. 8점 미만인 매장은 영업 정지 및 재교육이 이뤄진다. 미스터피자는 매장이 총 390개다. 이 중 직영점은 20개다. 미스터피자는 ‘300%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100% 수타, 100% 수제, 100% 석쇠구이다. 100% 수타와 수제가 피자세계대회의 도우 챔피언을 꾸준히 배출하게 만든 셈이다. 100% 석쇠구이라 기름기 없는 담백한 피자를 제공한다고 회사 측은 설명한다. 피자 전문점도 번성했지만 피자를 요리하는 식당도 적지 않다. 지금도 특별한 날 식당에서 피자를 먹기도 한다. 미국 덴버대학 역사학과 조교수인 캐럴 헬스토스키는 ‘피자의 지구사’(2008년)에서 피자 산업은 사업 행태와 관련해 가장 높은 다양성을 보인다고 평가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일반 피자보다 담백하고 영양소 파괴가 적은 화덕 피자가 인기를 끌면서 이탈리아 국립피자학교의 한국분교도 생겼다. 지금까지 1000여명의 피자욜로가 이곳을 거쳐 갔다. 피자는 국내에 들어올 당시 간식이나 술안주로 이해됐다. 지금은 한 끼 식사의 역할도 한다. 피자도 많이 변하고 있다. 고기류를 주로 얹던 피자에서 새우가 토핑의 단골메뉴가 됐다. 미스터피자는 기존 새우 크기보다 큰 대왕홍새우를 이용한 ‘로열홍새우’, ‘홍크러쉬’, 피자헛은 ‘갈릭버터쉬림프’ 등을 내놨다. 1인 가구의 대중화에 맞춰 2~3인이 주로 시키는 2만~3만원대 피자가 아니라 할인을 강화해 1만원대, 그리고 다양한 요리를 담는 세트메뉴, 1인 피자도 등장하고 있다. 패스트푸드 이미지에서 벗어나 건강한 음식과 합리적 가격대를 찾는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패스트캐주얼도 인기다. 토핑을 소비자가 고르게 하는 피자집, 화덕을 갖춘 피자집, 요리하는 공간을 공개한 피자집 등이 대표적이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 [백승종의 역사 산책] 성호 이익의 소박한 밥상

    [백승종의 역사 산책] 성호 이익의 소박한 밥상

    “올해 여름(1756년 영조 32)은 집집이 백성들이 굶주림을 면치 못해 그저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 다행이라고 말들 합니다. 이웃까지 구제할 여력이 어디 있겠습니까. 경전 말씀에 윗사람이 고아를 돌봐주면 백성들도 서로 저버리지 않는다고 하였지요. 지금의 형편을 감안하면 윗사람이 남의 어린아이를 잘 보살펴 주면 백성들도 자애로운 마음을 가질 것이라고나 할지요.”(‘성호전집’ 제26권)실학자 성호 이익이 제자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수신자는 안정복, 그는 ‘동사강목’으로 후세에 유명해진 선비였다. 그런데 아마도 스승은 유교 경전의 틈새로 파고들 뜻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편지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자애로운 마음이 격려를 통해 일어나기란 어렵습니다.” “사람들을 구제하기란 성인에게도 어려운 일이었지요. 가난한 사람들이 어찌 실천에 옮길 수 있겠는지요. 성인의 말씀은 뜻이 깊어 무궁한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은가 거듭 생각해 봅니다.” 이익은 경전에 실린 주장이라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늘 주저했다. 18세기 조선에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다. 가난에 시달리는 선비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조차 ‘봉제사’(奉祭祀·제사모심)와 ‘접빈객’(接賓客·손님대접)을 소홀히 하지 못했다. 특히 주자가 주를 단 ‘가례’의 내용이라면 토씨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실학자 이익은 철저한 고증 작업을 통해 ‘가례’의 신화에 맞섰다. 그는 다름 아닌 주자의 저서를 샅샅이 뒤져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구절을 찾아냈다. 주자 역시 ‘가례’에 나열된 15가지의 제수를 낭비로 여겼다. 주자의 말은 이랬다. “(제수는) 집안의 경제적인 형편에 따라야 한다. 한 그릇의 국과 한 그릇의 밥이라도 정성을 다할 수 있다.”(‘주자어류’) 주자의 본의까지 확인한 마당이라 이익의 생각에 날개가 달린 셈이었다. “상례나 제례같이 큰일(大事)이라도 반드시 규모를 줄이고 절약에 힘써야 합니다.” 이익은 사랑하는 제자 안정복에게 속생각을 자세히 말했다. “‘가례’에 명시된 예법은 벼슬이 없는 사람(庶人)이 반드시 지켜야 할 예법이 아닙니다.” 사실 이익은 사당에다 4대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일도 공자에게는 낯선 풍습임을 확인한 바였다. 또 한식과 추석 등 4명절의 제사며 무덤제사(墓祭)도 훗날에 만들어진 전통임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확신을 제자에게 알렸다. “군자는 인의(仁義)를 소중히 여기고 재화를 천시합니다. 하나 재화가 없어서 망하기도 합니다. 하물며 보통 사람들이야 어떠하겠습니까. ‘가례’를 보완할 때는 이런 뜻을 기억해야겠지요.” 조선의 법전 ‘경국대전’을 살펴보면 사대부의 제례는 간소했다. 국가가 사대부 집안을 위해 토지를 지급한 적도 없었다. 또 벼슬 높은 사대부 가문이라도 재산 규모는 차이가 심했다. 그런 점에서 국가가 제례의 규모를 성대하게 정하지 않은 것은 옳은 일이었다. 이러한 법의 취지를 이익은 십분 이해했다. 제사 지낼 물건도 아끼는 마당에 자신의 밥상을 풍성하게 차릴까. 이익은 절약을 고집했다. “나의 식사는 밥과 국, 고기 한 접시, 채소 한 접시로 국한한다. 형편이 나쁘면 더 줄여야 맞다. 만일 잘살게 된다 해도 더 늘릴 수는 없다. 내 자손들은 대대로 이 법을 따르기 바란다.”(‘성호사설’ 제11권) 오늘따라 마침 풍성하게 차려진 저녁 밥상을 받아 놓고 이익의 뜻을 잠시 헤아려 본다.
  • “진취적 여성 캐릭터 기대 커요” “야수 → 인간 내면 구현 힘썼죠”

    “진취적 여성 캐릭터 기대 커요” “야수 → 인간 내면 구현 힘썼죠”

    디즈니가 26년 만에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를 실사 뮤지컬 영화로 옮겼다. 6일 국내 언론과 화상 인터뷰를 가진 엠마 왓슨, 댄 스티븐스, 루크 에번스, 조시 게드, 빌 콘던 감독을 통해 신판 ‘미녀와 야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는 16일 전 세계 동시 개봉한다.러닝타임 129분으로, 원작에 견줘 러닝타임이 무려 44분이 늘었다. 이야기가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무례하고 이기적인 왕자가 요정이 건 저주에 걸리는 장면이 서두에 새롭게 포함된 정도다. 하지만 18세기 아기자기한 프랑스 마을, 로코코 양식으로 지어진 야수의 성, 스펙터클한 무도회 장면, 가재도구로 변한 시종 등 현대 기술력이 빚어낸 화려한 비주얼은 ‘이미 아는 이야기’의 지루함을 상쇄하고 남는다. 캐릭터도 원작보다 좀더 입체적으로 변모했다. 소설과 달리 디즈니 작품에선 주관이 뚜렷하고 지적이며, 도전 정신이 강한 여주인공 벨의 모습은 실사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유엔 양성 평등 홍보대사를 맡았던 에마 왓슨이 연기해 더욱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원작의 벨과 흡사한 외모로 캐스팅 당시부터 화제였던 그는 첫 노래 연기 도전에서 수준 높은 실력을 보여준다. ‘미녀와 야수’ 때문에 ‘라라랜드’ 여주인공 역할을 포기했다는 후문. “디즈니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가 진취적으로 변하고 있는 점은 무척 긍정적이고 기대가 커요. 이런 영화는 오늘날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죠. 여성이 좀더 동등한 일원이 되는 사회에 대한 상상은 실제 현실로 이어질 거라 믿습니다. 우리와 같은 예술가, 혹은 영화들이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죠.”(왓슨) 야수 역할은 인기 영국 드라마 ‘다운튼 애비’ 시리즈를 통해 얼굴을 알린 댄 스티븐스가 맡았다. 그는 섬세한 표정 연기로 캐릭터에 인간미를 불어 넣으며 작품에 현실감을 주는 데 큰 몫을 해냈다. 중저음의 야수 목소리도 직접 연기했다. “거대한 체구의 야수를 연기하려고 10인치 힐을 신고 퍼포먼스 캡처를 했어요. 이와는 별도로 카메라 20대로 표정 변화를 세밀하게 잡는 페이셜 캡처를 직접 받으며 야수에서 인간으로의 내면 변화를 잘 구현하려고 노력했죠.”(스티븐스)또 다른 재미는 조연 캐릭터들에 있다. 특히 이완 맥그리거, 이언 매켈런, 에마 톰슨이 각각 수다쟁이 황금 촛대로 변한 시종, 꼼꼼하고 까다로운 시계로 변한 시종, 성안의 이들을 자상하게 돌보는 찻주전자 시종을 맡아 웃음과 눈물을 선사한다. 저주가 풀린 뒤에야 비로소 본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밖에 루크 에번스가 악역 개스톤으로 열연한다. 개스톤의 조수 르 푸는 ‘겨울왕국’에서 엉뚱한 눈사람 올라프를 연기했던 조시 게드가 맡았고, 중견 배우 케빈 클라인이 벨의 아버지 모리스로 나온다. 실제 영화 속에서는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 부분인데, 르 푸가 디즈니 최초 동성애자 캐릭터로 설정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미국 일부 주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미녀와 야수’의 주제 자체가 포용이에요. 모든 사람들을 이 영화에 포용하고 싶었습니다.”(콘던) “영화가 정말 자랑스러워요. 책을 표지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그 내면까지 들여다봤으면 좋겠네요.”(게드)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도 관심이다. 디즈니 음악을 도맡아 오스카 트로피를 쓸어 담았던 앨런 멩컨이 다시 함께하며 원작의 주옥 같은 노래들이 2017년 버전으로 태어났다. 셀린 디옹이 불렀던 주제가 ‘뷰티 앤드 더 비스트’는 아리아나 그란데와 존 레전드가 듀엣으로 새로 불렀다. 셀린 디옹도 새 노래 ‘하우 더즈 어 모멘트 라스트 포에버’로 참여했다. 또 야수가 벨을 떠나보내며 부르는 노래 ‘에버모어’와 성안 가재도구들의 합창곡 ‘데이스 인 더 선’이 새롭게 추가됐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4개의 문 통해 들여다 본 미술 쉽고 넓게 이해하기

    4개의 문 통해 들여다 본 미술 쉽고 넓게 이해하기

    게이트웨이 미술사/데브라 J 드위트·랠프 M 라만· M 캐스린 실즈 지음/조주연 외 3명 옮김/이봄/624쪽/5만 5000원미술을 좋아하거나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두꺼운 미술사 책을 집어든 적이 있을 것이다. 보통 미술 입문서는 선사시대 라스코 동굴 벽화에서 시작해 서양의 전반적인 미술사를 다룬다. 의욕을 가지고 독서를 시작하지만 어렵고 방대한 내용에 완독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의 미술사학자 데브라 드위트와 랠프 라만, 캐서린 실즈가 함께 집필한 이 책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된 미술사의 통념에서 벗어나 독자에게 감상의 길을 직접 선택하도록 안내한다. 독자 앞에 놓인 문은 총 4개로 각각 미술의 기초, 매체, 역사, 주제라는 문패를 달고 있다. 책은 완성된 작품 앞에 선 관람자로서 단순히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파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하나의 작품이 시대와 장르에 따라 어떻게 해석되는지 다층적으로 바라볼 것을 권한다. 예를 들면 미술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선의 원리와 기능을 설명하면서 고대 나스카의 지상화와 18세기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안토니오 카날레토의 드로잉부터 일본 만화책 ‘츠바사 크로니클’에서 지면을 어떻게 분할했는지까지 동시에 보여준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열린세상] 제4차 산업혁명, 대안인가 신화인가/전범수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열린세상] 제4차 산업혁명, 대안인가 신화인가/전범수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발표된 제4차 산업혁명의 화두가 국내 업계와 학계, 그리고 공공 영역을 뒤덮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AI)이나 로봇, 사물인터넷(IoT) 등의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들을 통한 새로운 가치 창출 방식을 설명한다. 이는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 간 상호작용이 디지털화와 인터넷 연결을 통해 이루어지면서 기존의 산업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사회 및 경제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희망이 반영된 개념이다. 제4차 산업혁명은 기술 진보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산업혁명과 궤를 같이하는 또 다른 진화 과정이다. 제1차 산업혁명은 18세기 유럽 및 미국의 제조업 중심 기술 발전을 바탕으로 시작된 구조적 변화들이다. 이후 2차부터 3차에 이르는 일련의 산업혁명들도 기술 진보를 통해 기업 효율성을 높여 신규 및 해외 시장을 창출할 수 있게 한 동력이었다. 제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혁신을 바탕으로 하는 초연결성과 초지능성을 핵심 요소로 갖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을 포함해 로봇, 사물인터넷, 무인자동차, 3D 프린팅, 나노 기술 등이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 가는 핵심 기술들이다. 제4차 산업혁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개의 핵심 방향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는 글로벌 시장에 적용될 수 있는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나 서비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아마존 등과 같은 글로벌 디지털 기업들이 검색이나 소셜 네트워크, 물류 및 정보 등의 유통 분야에서 독자적인 서비스 모델과 지적재산권을 확보했다는 점을 잘 살펴봐야 할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차별적이면서 글로벌 디지털 시장에 적용될 수 있는 최적 기술 확보가 필요하다. 둘째, 제4차 산업혁명을 뒷받침하는 핵심 기술들은 대부분 효율성이나 생산성을 높이는 데 활용될 것이다. 신기술이 기획되고 만들어지는 근본 이유는 바로 효율성 기반의 사회와 산업의 구조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날로그 서비스를 포함해 연결성이 취약한 고립된 서비스, 정보 처리 속도가 늦은 저효율 서비스들은 조만간 시장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제4차 산업혁명을 통해 만들어진 서비스들은 기존 인간 노동을 대체할 것이며 인간 중심의 사회 공동체를 약화시킬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다보스포럼에서 제안된 제4차 산업혁명은 산업 생산성을 단기 목표로 설정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신기술을 활용해 글로벌 시민들의 소득 및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기업이나 산업 효율성 및 생산성이 커질수록 일반 시민들은 더 낮은 가격으로 더 많은 효용을 갖게 될 것이라는 기대다. 이는 마치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 미래의 성장과 삶의 질을 높일 것이라는 기술 유토피아적인 시각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또 다른 그림자들이 적지 않다. 새로운 기술 발전을 통해 성숙하게 될 4차 산업혁명의 사회에서 물리적 부의 총량은 늘어나겠지만 한편으로 개인이나 기업들 간에 부의 불평등 폭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개인 또는 기업들 간에 새로운 기술을 소유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의 차이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수의 소프트웨어 기획자들이 운영하는 로봇이나 시스템에 의한 인간 노동 대체가 심화되면서 고용 창출보다는 고용 축소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특정 집단으로의 기술 독점 사회는 필연적으로 공동체 약화와 사회적 긴장감을 높일 수도 있다. 그래서 미래 제4차 산업혁명 논의에는 새로운 기술로 파생될 수 있는 인간 노동의 대체 가속화를 포함해 재능이나 지적재산권 및 정보를 자유롭게 소유, 활용할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 간의 경제적 부의 양극화, 그리고 사회적 공동체 약화 등이 추가로 포함돼야 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제4차 산업혁명이 지향하는 목표는 산업의 생산성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삶의 질과 정신적인 행복감을 높이는 방향이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 기술 발전을 위해 투입되는 시간과 비용의 정당성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 [아하! 우주] 현대천문학 최대 화두 블랙홀…팩트와 픽션

    [아하! 우주] 현대천문학 최대 화두 블랙홀…팩트와 픽션

    우주전문 사이트 스페이스닷컴에 지난 17일자(현지시간)로 호주 스윈번 공과대학의 앨리스터 그레이엄 천문학 교수가 블랙홀에 관한 흥미로운 칼럼을 게재했다. 칼럼 내용을 약간 가공해 소개한다.​ 블랙홀에 대한 지식이 ​커갈수록 우주 마니아들의 블랙홀 사랑도 덩달아 커가고 있다. 블랙홀에 관한 최근 뉴스는 블랙홀 가족 중에도 아주 낯선 존재인 '중간질량 블랙홀'의 발견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블랙홀 중에는 태양 질량의 수십억 배에 이르는 초질량 블랙홀이 있는가 하면, 태양 질량의 몇 배밖에 되지 않는 블랙홀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태양 질량의 2200배 정도 되는 중간 질량의 블랙홀이 발견되어 과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 블랙홀은 큰부리새자리47(47 Tucanae) 구상성단 안에서 발견되었는데, 중간 질량의 불랙홀로서 희귀한 사례에 속한다. 큰부리새자리는 남반구에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구상성단 자체는 겉보기 등급 +4.91로 맨눈으로 흐릿하게 보인다. 지구로부터 약 1만 6700 광년 떨어져 있으며, 성단의 지름은 무려 120 광년에 달한다. 가까이 접근하는 모든 물체를 가리지 않고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는 중력의 감옥, 블랙홀. 모든 연령층, 모든 직업군을 아우르면서 블랙홀에 대해 크나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 '검은 별(Dark stars)' 질량이 너무 커서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중력을 가진 존재에 대한 개념은 1783년까지 거슬러올라간다. 18세기 영국의 과학자 존 미첼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만약 태양과 같은 밀도를 가진 어떤 구체의 반지름이 태양의 500분의 1로 줄어든다면, 무한한 높이에서 그 구체로 낙하하는 물체는 표면에서 빛의 속도보다 빠른 속도를 얻게 될 것이다. 따라서 빛이 다른 물체들과 마찬가지로 관성량에 비례하는 인력을 받게 된다면, 그러한 구체에서 방출되는 모든 빛은 구체의 자체 중력으로 인해 구체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뉴턴 역학의 얼개 안에서 그러한 개념의 천체는 검은 별 또는 암흑성(dark stars)으로 불렸다. 그러나 이 암흑성 개념은 19세기 이전까지 거의 무시되었는데, 질량이 없는 파동인 빛이 중력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1915년 아인슈타인이 우주를 기술하는 뉴턴 역학을 대체하여 시간과 공간이 하나로 얽혀 있음을 보인 일반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직후, 암흑성 개념은 새로운 활력을 얻어 재등장했다. 독일의 카를 슈바르츠실트와 요하네스 드로스터가 각기 독립적으로 점질량에 대한 동일한 방정식의 답을 구했다. 이 풀이는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일부 항이 무한대가 되는 특이점을 가지는 특이행동을 보이는데, 이것을 오늘날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이라고 부른다. 이는 어떤 물체가 블랙홀이 되려면 얼마만한 반지름까지 압축되어야 하는가를 내타내는 반지름 한계점이다. 그러나 이 슈바르츠실트의 방정식은 당시 하나의 수학적인 해석에 지나지 않았고, 그뒤 핵물리학이 발전하여 충분한 질량을 지닌 천체가 자체 중력으로 붕괴한다면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이 같은 예측은 결국 강력한 망원경으로 무장한 천문학자들에 의해 관측으로 입증되었고, 충돌하는 블랙홀이 만들어낸 중력파가 미국의 LIGO에 의해 검출됨으로써 오랜 블랙홀 논쟁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초밀도의 천체들 초밀도의 물체는 사람을 경악시키는 바가 있다. 예컨대 태양이 블랙홀이 되려면 얼마나 밀도가 높아야 할까?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의 풀이 공식으로 구해보면, 태양 질량을 그대로 지닌 채 70만km인 반지름이 3km까지 축소되어야 하며, 지구가 블랙홀이 되려면 반지름이 0.9cm로 작아져야 한다. 그러면 밀도는 자그마치 1cm^3에 200억 톤의 질량이 된다는 뜻이다. 각설탕 하나 크기가 그만한 무게가 나간다는 얘기다. 물질이란 게 이렇게까지 압축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고 하겠다. 만약 당신이 그러한 초질량의 물체가 다가간다면 끔찍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지구에서는 중력의 크기가 당신의 지금 키만큼 유지되게 해주고 있는 정도지만, 블랙홀 안으로 떨어지면 사정은 좀 달라진다. 블랙홀의 강력한 기조력이 당신의 머리와 발끝에 동시에 작용하는데, 그 힘의 차이가 엄청나서 당신의 몸은 스파게티 가락처럼 사정없이 늘어나게 된다. 마치 강력한 크레인 두 대가 각각 당신의 발과 머리를 잡아당기는 형국이다.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될까? 당신의 몸은 최종적으로 원자 단위로 분해된다. 천문학자들은 이를 '스파게티화'라 한다. 1958년에 미국 물리학자 데이비드 핀켈스타인이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 개념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사건 지평선이란 외부에서는 물질이나 빛이 자유롭게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내부에서는 블랙홀의 중력에 대한 탈출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커서 원래의 곳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경계를 말한다. 말하자면 블랙홀의 일방통행 구간의 시작점이다. 블랙홀, 화이트홀 1964년, 두 명의 미국인인 작가 앤 어윙과 이론 물리학자 존 휠러가 최초로 '블랙홀'이라는 단어를 대중에게 선보였다. 이어서 1965년, 러시아의 이론 천체물리학자 이고르 노비코프가 블랙홀의 반대 개념인 '화이트홀'이라는 용어를 들고나왔다. 만약 블랙홀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면 언젠가 우주공간으로 토해낼 수 있는 구멍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이 화이트홀 가설의 근거다. 말하자면, 블랙홀은 입구가 되고 화이트홀은 출구가 된다. 이 아이디어는 부분적으로 아인슈타인-로젠의 다리로 알려진 수학적인 개념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1916년에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루트비히 플램에 의해 수학적으로 발견된 후, 1935년에 아인슈타인과 미국-이스라엘 물리학자 나단 로젠에 의해 재발견되어 아인슈타인-로젠의 다리는 나중에 역시 존 휠러에 의해 '웜홀(wormhole)'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1962년, 존 휠러와 미국 물리학자 로버트 풀러는 그러한 웜홀이 양자 하나도 통과하기 어려울 만큼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정립했다. 블랙홀에 관한 팩트와 픽션 블랙홀의 현관 안으로 들어갔던 물질이 다른 우주의 시공간으로 다시 나타난다는 아이디어는 그다지 놀랄 만한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서 무수한 공상과학 스토리가 탄생했다. '닥터 후(Doctor Who)', '스타게이트(Stargate)', '프린지(Fringe)', '파스케이프(Farscape)' 디즈니의 '블랙홀' 등 끝이 없을 정도다. 이런 얘기들은 하나같이 등장인물들이 우리 우주와 다른 우주 또는 평행우주를 여행한다는 줄거리로 되어 있다. 그러한 우주는 수학적으로 성립되는 인공물일 뿐으로, 그 존재에 대한 증거는 아직까지 하나도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시간여행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만약 우리가 엄청난 속도로 여행하거나, 또는 블랙홀 안으로 떨어진다면 외부 관측자의 눈에는 시간의 흐름이 아주 느리게 보일 것이다. 이것을 중력적 시간 지연이라 한다. 이 효과에 의해 블랙홀로 낙하하는 물체는 사건의 지평선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느려지는 것처럼 보이고, 사건의 지평선에 닿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무한대가 된다. 즉 사건의 지평선에 닿는 것이 외부에서는 관찰될 수 없다. 외부의 고정된 관찰자가 보기에 이 물체의 모든 과정은 느려지는 것처럼 보이기에, 물체에서 방출되는 빛도 점점 파장이 길어지고 어두워져서 결국 보이지 않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빠르게 운동하는 시계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2014년의 영화 '인터스텔라'는 블랙홀 근처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현상을 보여주었다. 우주 비행사 쿠퍼(매튜 맥커너히 분)가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는 '블랙홀'이란 이름은 사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명칭이다. 그것은 시공간의 구멍을 의미하는 것으로, 어떤 물체이든 그 안으로 떨어지면 더이상 물체로서 존재할 수 없이 극도의 고밀도 상태가 된다.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 안에는 실제로 어떤 것이 있을까란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블랙홀 내부를 이해하기 위해 끈이론, 양자 중력이론, 고리 양자중력, 거품 양자 등등 현대 물리학의 거의 모든 이론들이 참여하고 있다. 어쨌든 당분간 블랙홀은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질 때마다 일반의 관심을 고조시키며 물리학의 화두로서 위세를 떨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주연’ 리코더·아코디언의 매력

    ‘주연’ 리코더·아코디언의 매력

    리코더와 아코디언을 클래식 악기로 재발견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다.리코디스트 염은초(25)가 오는 2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클래식 연주회를 갖는다. 연원이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리코더는 18세기 중반부터 가로형 리코더인 플루트에 밀려 클래식의 전면에서 물러났지만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까지만 해도 필수적인 악기였다. 바흐나 헨델, 비발디도 리코더를 위한 곡을 많이 썼다. 한국에선 캐스터네츠, 트라이앵글과 함께 초등학교 음악 수업 삼총사로, 아동용 악기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열 살 때 리코더 공부를 시작한 염은초는 스위스 취리히 국립음대, 세계적인 고(古) 음악 대학인 바젤 스콜라 칸토룸, 영국 런던 길드홀 음악학교를 거치며 실력을 쌓았다. 2012년 독일 니더작센 국제 리코더 콩쿠르에서 만장일치 우승을 차지하며 리코더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최근 MBC 인기 예능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서기도 했다. 이번 무대는 고악기인 하프시코드의 대가 나오키 기타야와 바로크 음악을 들려 준다. 텔레만의 판타지아 3번 b단조와 리코더 소나타 C장조, 헨델의 리코더 소나타 A단조 등을 준비했다. 3만~5만원. (02)737-0708.23일 서울 광화문 금호아트홀에서는 아코디어니스트 전유정(26)이 클래식 연주회를 갖는다. 한국에서는 클래식 악기로서의 아코디언을 만날 기회가 드물다. 멜로디와 화음을 동시에 낼 수 있는 아코디언은 1822년 독일에서 발명됐다. 차이콥스키, 찰스 아이브스, 힌데미트, 쇼스타코비치 등이 아코디언을 활용하는 곡을 만들었을 정도로 클래식 음악가들의 사랑을 받은 악기지만 한국에선 민속 음악(포크)이나 재즈 연주를 위한 손풍금으로 인식돼 왔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아코디언을 처음 접한 전유정은 러시아 유학을 통해 아코디언을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한 지 불과 열 한 달 만에 2008년 이탈리아 란차노 국제 아코디언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하며 재능을 뽐냈다. 이후 여러 국제 콩쿠르를 석권하며 한국 아코디어니스트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이날 무대에서는 구바이둘리나의 ‘죽은 자의 부활을 찾아’, 주비트스키의 ‘아스토르 피아졸라를 위한 오마주’를 들려준다. 또 바흐의 파르티타 2번 중 ‘신포니아’와 하프시코드 협주곡 1번 중 ‘알레그로’ 등을 아코디언으로 편곡해 들려준다. 3만원. (02)6303-1977.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한복진흥센터, 뉴욕패션위크 기간 중 프레스데이 개최

    한복진흥센터, 뉴욕패션위크 기간 중 프레스데이 개최

    샤넬이 한복을 모티브로 한 2015/16 크루즈 컬렉션을 발표하면서 한복의 미적∙산업적∙문화적 가치가 재조명 받고 있는 가운데 뉴욕에서 한복을 주제로 한 프레스데이가 진행돼 눈길을 끌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복진흥센터는 한복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를 진행, 뉴욕 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라와 손을 잡고 한복을 모티브로 한 새로운 드레스를 선보였으며, 그 내용을 지난 15일 뉴욕의 아트앤디자인박물관(Museum of Arts and Design)에서 개최된 ‘한복 콜라보레이션 프레스데이’에서 소개했다고 밝혔다. 이번 뉴욕 프레스데이 행사에는 펀 멜리스(Fern Mallis) 뉴욕패션위크 창시자, 전(前)루이비통 남미 사장이자 Soussand Group 창립자인 필립수잔(Philippe Soussand), 수지 멘키스 (Suzy Menkes)보그 인터내셔널 에디터 등 세계적인 패션유통, 미디어, 에이전시 분야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한복 콜라보레이션 작품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이날 전시된 작품은 세계적 명성의 패션 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라가 한복을 모티브로 제작한 웨딩 드레스, 이브닝 드레스, 기성복 등 총 3점이다. 행사장에서는 한복의 독창성에 헤레라의 우아한 감각이 더해져 새로운 룩을 구현해 냈다는 극찬이 쏟아졌다. 필립 수잔(Philippe Soussand) Soussand Group 창립자는 “뉴욕에서 미국 디자이너가 해석한 한복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의상들을 접할 수 있고, 한복의 정교한 세부 디테일을 직접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다”고 평했다. 또한 패션 유력지인 WWD에서 주목, 대서특필하며 대중에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품격 있고 우아한 드레스 디자인으로 명성이 높은 캐롤리나 헤레라는 뉴욕 명문가 및 상류층에서 가장 선호하는 디자이너 중 한명이다. 최근 미국 ‘보그’지 12월호 커버 모델로 등장한 미셸 오바마 전 영부인이 캐롤리나 헤레라의 드레스를 선택하여 화제가 된 것을 비롯해 전 세계 셀러브리티와 퍼스트레이디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페미닌한 드레스룩으로 36년간 패션계의 거장으로 군림해 온 디자이너가 한복 콜라보레이션 작업에 참여하게 된 것은 그가 일찍이 한복 고유의 색감과 선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데 있다. 헤레라는 18세기를 배경으로 한 한국 영화를 본 뒤 한복의 매력에 빠져 2011 S/S 뉴욕패션위크에서 저고리, 옷고름, 갓을 재해석한 한복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행사를 주관한 한복진흥센터 관계자는 “이번 캐롤리나 헤레라와의 한복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한복의 품격과 가치를 세계인에 소개하고 공감을 끌어내고자 했다”며 “더불어 올해는 결과물을 통해 국내외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는 유통프로모션의 확대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복진흥센터는 오는 22일 오후2시 신사동에 위치한 호림아트센터에서 국내 쇼케이스를 진행한다. 행사에는 이번 컬렉션의 화보 모델로 활약한 모델 강승현과 패션계 셀러브리티, 한복계 명사, 패션산업 관계자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민자와 범죄 무관”… 트럼프, 논문 좀 보길

    “이민자와 범죄 무관”… 트럼프, 논문 좀 보길

    美연구팀 200개 대도시 40년 통계로 이민과 실업·폭력 등 상관관계 분석 “이민자 많을수록 강력범죄 비율 낮아” 미국의 제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지난달 20일 취임해 업무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한 달가량 됐습니다. 이 기간 국제뉴스는 트럼프 몫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가 장악했습니다. 문제는 ‘좌충우돌’로 점철됐다는 점이지만요.현재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취임 일주일 만인 지난달 27일 서명한 ‘반이민 행정명령’입니다. 7개 이슬람권 국가(이라크, 시리아, 이란, 수단, 리비아, 소말리아, 예멘) 국민의 입국을 90일간 금지하고 비자 발급을 중단한다는 내용입니다. 트럼프는 ‘미국을 테러에서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뉴욕, 워싱턴 등 주요 도시에서 이에 대한 반대시위가 거셉니다. 지난 9일에는 미국 연방항소법원에서 재판부 만장일치로 반이민 행정명령을 기각해 트럼프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트럼프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민자가 늘면 범죄와 테러 발생이 증가하고 위험한 사회가 되는 걸까요. 때마침 미국 대도시들의 폭력 및 재산 관련 범죄 발생률, 이민자 수, 실업률 같은 경제적 변수 등을 고려해 이들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뉴욕 버펄로대, 앨라배마대, 케너소주립대, 조지아주립대의 범죄과학·사회학과 공동 연구진이 진행한 이 연구의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이민자 증가와 범죄율 증가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였습니다. 연구진은 비슷한 규모의 200개 대도시를 대상으로 미국 상무부 산하 인구통계국의 1970~2010년 인구 통계, 연방수사국(FBI)의 범죄 관련 각종 데이터를 활용했습니다. 인구 통계에는 도시의 인종, 남녀 성비, 이민자 수, 범죄의 규모, 범죄 가담자 수, 피해 규모 등이 골고루 포함됐다고 합니다. 연구진은 이민자 증가가 기존 주민들의 경제적 기회를 박탈했는지, 범죄 증가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분석했습니다. 이민과 범죄 발생률의 정확한 상관관계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이민자 비율이 높은 대도시일수록 폭력, 강도, 살인, 강간 같은 강력범죄 발생률이 낮아졌다고 합니다. 이민자 증가가 지역사회의 경제적 위축을 가져온다는 명확한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학문적·과학적 분석으로도 테러 방지를 위한 이민 규제는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범죄학 분야 국제학술지인 ‘인종과 범죄과학’ 2월호에 실렸습니다. 이 연구를 이끈 로버트 아델만 뉴욕 버펄로대 사회학과 교수는 “연구 결과는 매우 분명하다”며 “우리 연구뿐만 아니라 유사한 다른 연구들에서도 볼 수 있는 사실(fact)은 이민을 강력범죄와 테러 등에 연관 지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회적 논란이 되는 정책들의 이면을 보면 정책 입안자의 이데올로기와 근거 없는 신념에 기반할 때가 많습니다. 18세기 영국 학자 프랜시스 허치슨은 사회 일반의 선(善)에 대해 ‘최대 다수에게 최대의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사실과 증거를 바탕으로 한 공공정책이야말로 더 많은 이에게 행복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edmondy@seoul.co.kr
  • [백승종의 역사 산책] 절대로 의사 노릇 마라

    [백승종의 역사 산책] 절대로 의사 노릇 마라

    다산 정약용이 누구인가. 조선 후기 최고의 실학자다. 시대의 양심이자 진보와 개혁의 상징이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 그의 언행에도 시대의 조류를 거스르는 점이 있었다. 1810년 봄 정약용이 유배지 강진에서 큰아들 정학연에게 보낸 편지를 나는 떠올리고 있다. 그때 정약용의 나이 49세였다. 유배된 지 어언 10여년, 세월의 풍파 속에 그의 몸은 이미 상했다. “나는 지금 풍병으로 사지를 쓰지 못한다. 오래 살 것 같지가 않구나. 그저 단정히 앉아 섭생에 힘쓴다면, 혹시 수명을 조금 연장시킬 수 있을까.”(다산시문집 제18권) 입을 다물려 해도 절로 침이 흘러내렸고, 왼쪽 다리가 마비돼 걷기 어려웠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아버지가 아들을 심하게 질책하는 대목이 있다. “네가 갑작스레 의원(醫員) 노릇을 한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무슨 잇속이 있어 그러는 것이냐? 알량한 의술을 통해 고관들과 사귀고, 그리하여 너는 이 아비가 풀려나기를 바라기라도 한다는 말이냐? 옳지 못한 일이다.” 큰아들은 의술에 조예가 있었다. 그는 의술을 통해 권력자들에게 줄을 댈 심산이었던가 보다. 그렇게라도 해서 병든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바란 것이었다. 정약용은 아들의 효심을 알았으나 짐짓 모르는 체했다. “겉으로 덕을 베푸는 척한다는 말이 있다. 저들은 그저 입술만 움직여 너를 기쁘게 만든 것이다. 돌아서서 너를 비웃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너는 아직도 모르겠느냐? 그들의 얕은 술수에 속고 말다니, 어찌 그것이 어리석은 노릇이 아닐까?” 아버지가 보기에 상대방은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들이었다. 천하에 다시 없는 보배를 가지고 애원한다 한들 될 일이겠는가. 이처럼 되묻는 정약용의 글에는 권세가를 향한 원망이 묻어 있다. 그러나 그런 분노가 이 편지의 요체는 아니다. 정약용은 큰아들이 의원 노릇을 하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했다. 아들이 의료 행위로 돈을 버는 것이 싫었던 것인데, 에둘러 반대 의사를 표시했을 뿐이다. 아버지의 진심은 곧 드러난다. “너는 지금 소문을 내고,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그리하여 온갖 사람들이 날마다 거리를 메우며 찾아온다. 물고기 떼도 같고 짐승 떼도 같은 한량과 잡배들이건마는 너는 내력도 묻지 않는다. 그들의 근본과 행실도 모르면서 방금 만난 사람들을 마치 오랜 친구처럼 대하다니.” “도대체 이 무슨 변고인가? 내게도 들을 귀는 있느니라. 만약 그 버릇을 당장 고치지 않는다면, 너와 왕래를 끊어 버리겠다. 아마 죽어도 나는 눈을 감지 못하리라. 내 말을 절대 잊지 마라. 다시는 이런 말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구나.” 정학연은 의원의 길을 포기했다. 절규와 애원으로 가득한 아버지의 분부를 어찌 거스르겠는가. 그런데 말이다. 18세기 후반 서울에는 상당수 의원들이 개업해서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 그들 중에는 내세울 만한 전공 분야가 없는 일반의들이 대다수다. 하나 한 분야에 정통한 요즘의 전문의 같은 의원들도 제법 있었다. 또 그때는 초보적인 수준에서나마 의약 분업도 이뤄졌다. 느린 속도로나마 의약업은 전문직으로서 당당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었다. 이런 사회 변화를 정약용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의학에 소질도 있고 개업 의지도 완강했던 큰아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정약용은 아들에게 유교 경전과 역사책에 정통한 선비가 되라고 강요할 뿐이었다. 후세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화신으로 기리는 위인도 세상 물정에 깜깜한 구석이 있었다.
  • [명인·명물을 찾아서] 끈기로 되살린 제주 옹기… 뜨겁게 이어질 제주의 얼

    [명인·명물을 찾아서] 끈기로 되살린 제주 옹기… 뜨겁게 이어질 제주의 얼

    “제주 전통 옹기는 영원히 지켜 나가야 할 문화유산입니다.”맥이 끊어진 제주 전통 옹기를 복원하고 30년 넘게 제주의 문화유산을 답사·연구해 온 제주도예촌 강창언(58) 촌장. 제주 전통 옹기는 우리나라 내륙지방, 중국, 일본의 도자기나 옹기와 달리 유약을 바르지 않은 채 흙가마가 아닌,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돌가마(석요)에서 바로 구워 낸다. 광택을 더하고 물이 스며 나오지 않도록 표면을 코팅하는 역할의 유약을 바르지 않고 오로지 불의 힘만으로 옹기를 구워 내기 때문에 통기성(공기가 통할 수 있는 성질)이 좋아 옹기가 마치 살아 숨쉬듯 자연 상태에 가까워 인체에도 무해하다. 하지만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플라스틱 그릇 등에 밀려 1969년 이후 제주에서 완전히 맥이 끊겨 버렸다. 이를 안타까워하던 강씨는 1970년대부터 나 홀로 제주의 옛 옹기 가마터를 찾아다니며 전통 옹기 복원에 매달렸다. 전통 옹기 돌가마 복원을 위해 옛날 도공장(물레에서 그릇을 만드는 사람과 불대장(굽는 사람), 굴대장(가마 만드는 사람) 등을 찾아다니며 설득해 서귀포시 대정읍 영락리에 제주도예촌을 설립했다. 전통 돌가마를 만들기 위한 첫 돌을 놓는 작업부터 도자기를 빚는 도구인 ‘물레’ 등 모든 재료를 직접 제작하는 등 오랜 노력과 시행착오 끝에 2000년 마침내 완벽한 제주 전통 방식의 돌가마를 재현했다. 이어 항아리, 물허벅, 술을 빚을 때 쓰는 고소리, 붓통 등 50여종의 전통 그릇과 생활용품을 구워 내는 데 성공했다. 강씨는 “굴대장 홍태권과 도공장 송창식·신창현 등이 없었다면 제주 옹기 복원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며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분들이 제주 전통 옹기 복원에 큰 역할을 하셨다”고 말했다. 전통 옹기 복원을 위해 옛 가마터를 찾으러 제주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강씨는 곳곳에 방치돼 있던 문화유적 보전에도 정성을 쏟았다. 가마터 40여곳과 제주 전역에 산재해 있던 도대불(옛 등대), 방사탑(액운을 막기 위한 원통형 돌탑), 환해장성(제주 해안에 축조된 고려 후기 돌로 쌓은 성), 동자석 등을 찾아내 세상에 알렸고, 도시 개발로 영영 사라질 뻔한 제주목(牧) 관아터와 삼양동 선사 유적지도 지켜 냈다. 1980년대 제주시 옛 도심에서 이뤄지던 지하상가 공사 현장을 지켜보다가 중장비로 땅을 팔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유물에 깜짝 놀란 강씨는 당시 공사를 막아섰으나 중단시키지 못하고, 급한 대로 몇몇 대형 유물만이라도 제주대 박물관으로 옮겨 놓기도 했다. 또 인근 옛 제주경찰서 자리에 지하·지상 주차장 공사가 벌어졌을 때 일은 너무나 극적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경찰서 건물과 주변에서 옛 제주 항아리와 표석 등 유물이 방치된 것을 이상하게 여긴 강씨는 제주시 등에 정밀 조사를 제안했으나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강씨가 이를 언론사에 알려 공론화한 뒤에야 발굴 조사가 이뤄졌고, 결국 1993년 3월 31일 국가사적 제380호 제주목관아로 지정·고시됐다. 하마터면 주차장으로 변해 버릴 뻔한 지역이 바로 탐라순력도 등 많은 문헌기록 등을 통해 제주의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로 알려진 제주목관아가 있던 터였다. 강씨는 “유적이 있을지 모를 대형 공사 현장을 막아서면 굴착기가 내 몸 위로 덮칠 듯 위협해 들어온다”며 “문화유산을 지키고 제대로 보전하는 것은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무”라고 말했다. 그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중요한 유적을 그대로 방치해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며 “누군가는 반드시 조사·연구해 세상에 알리고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강씨는 조선시대 제주의 옛 모습을 그린 탐라순력도(보물 제652-6호)의 존재를 발굴했다. 탐라순력도는 1702년(숙종 18년)에 당시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였던 이형상이 제주도의 각 고을을 순회한 장면을 기록한 채색 화첩이다. 18세기 초 제주도의 관아와 성읍, 군사 등의 시설과 지형 및 풍물에 관한 갖가지 시각적 정보를 담고 있어 제주 지방의 역사적 연구에 더할 수 없이 귀중한 자료다. ‘순력도’라는 이름의 기록화로서는 현존하는 유일한 자료일 뿐 아니라 당시 변방 중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제주에서 제작됐다는 점에서 각별한 가치를 지닌다. 국립제주박물관은 탐라순력도실을 별도로 마련, 300여년 전 제주의 모습을 마주칠 수 있도록 했다. 탐라순력도 영인본 발간 사업에 참여해 일반인도 쉽게 접하고 소장할 수 있는 영인본 발간에 힘을 보탰다. 강씨는 최근 석요와 옹기 복원, 환해장성, 동자석, 도대불 등 30년간 발품을 팔아 가며 제주 문화유산을 답사, 연구한 내용을 한데 모은 ‘제주박물지’라는 책을 발간했다. 논문편에는 동자석, 환해장성, 불교유적, 탑, 석요와 옹기복원, 풍습과 공예에 대해 당시 학술지 등에 최초로 발표한 글들을 묶었다. 유적편에서는 도대불, 우석목과 벅수머리(돌하르방), 향교·서원·학당, 불교유적, 석요, 주거지·마애명, 성·관아·군사·항일, 고분 등을 다뤘다. 강씨가 펴낸 제주박물지는 전문가들로부터 제주 역사문화 유적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내다볼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씨는 자신의 연구조사 이후 문화재로 지정된 곳도 여러 곳이지만 훼손되거나 멸실된 곳도 많아 더 늦기 전에 제주 전통문화 연구의 기초자료로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고 밝혔다. 강씨는 “한 번 훼손돼 사라진 문화유산은 영원히 되돌릴 수 없고, 이는 우리의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라며 “제주에 남아 있는 많은 유적지가 고리타분한 공간이 아니라 후대에 아이들이 뛰어놀며 즐기는 재밌는 놀이·학습 공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요즘 제주도예촌에서 묵묵히 자신이 복원해 낸 제주 전통 옹기를 구워 낸다. 이곳에는 요즘 일본 등 전통 옹기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도 즐겨 찾아 온다. 강씨는 “제주 전통 옹기가 관심을 끌면서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전통 옹기 제작 등에 관심을 갖고 있어 흐뭇하다”며 “제주만의 독특한 전통 옹기 명맥이 다시는 끊기지 않게 후대에 전수해 나가는 데 더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발길 머문 곳, 중세의 낭만 흐르다

    발길 머문 곳, 중세의 낭만 흐르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현재를 잘 보여주는 도시다. 공항과 연결된 호텔에서 보면 특히 그렇다. 방금 이륙한 비행기를 포함해 한번에 12개의 운항궤적이 하늘에 그려질 때도 있다. 대체 어느 방향으로 가는 비행기들이 남긴 흔적인지, 서로 부딪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유럽 하늘길의 요충지다운 풍경이다. 사실 프랑크푸르트는 오래전부터 유럽의 진면목에 다가서려는 여행자들에게 관문 같은 도시였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를 한번이라도 방문해본 이들은 독특한 유럽의 색채를 담은 이 도시를 쉬 잊지 못한다.유럽 금융 중심지… 골목 구석구석엔 중세 흔적이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로 꼽힌다. ‘뱅크푸르트’라 불릴 만큼 유럽의 금융, 경제 중심지다. 프랑크푸르트의 스카이라인은 현란하지만 골목 구석구석엔 중세의 흔적이 여전하다. 프랑크푸르트가 내세운 슬로건이 ‘시대보다 늘 조금은 앞서간다. 하지만 시대는 준수한다‘인 것도 이런 이유이지 싶다. 독일 사람들은 프랑크푸르트 뒤에 꼭 ‘암 마인’을 붙여 부른다. ‘마인강변의 프랑크푸르트’라는 뜻이다. 이는 옛 동독 지역의 오데르 강 언저리에 있는 또 다른 프랑크푸르트(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데르)와 구분 짓기 위해서다. 프랑크푸르트의 명소들은 대부분 가까운 거리에 산재해 있다. 다소 벅차긴 해도 걸어서 돌아보는 게 한결 여유 있고 수월하다. 출발지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이다. 역을 나서면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양옆으로 펼쳐진다. 여기가 카이저 거리다. 옛 건물들이 늘어선 골목길 너머에는 어김없이 마천루가 서 있다. 어느 골목이나 양상은 비슷하다. 아마 이런 느낌들이 프랑크푸르트의 정수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최고층 코메르츠방크 아래 화려한 스카이라인 프랑크푸르트가 자랑하는 건 스카이라인이다. 고층 건물들이 병풍처럼 서 있고 그 아래 옛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면 말이다. 이 모습은 걷기 여정의 끝인 아이제르너다리에서 본다. 모름지기 하이라이트는 아껴 뒀다 나중에 봐야 제맛이다. 독일에서 가장 높은 건물(65층)이라는 코메르츠방크 등을 줄줄이 지나고 나면 곧 중앙광장이다. 코메르츠방크는 지난해 삼성그룹이 인수해 관심을 끈 건물이다. 광장 주변은 번화가다. 하우프트바체 역을 중심으로 각종 상업용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갤러리아 백화점 옥상은 전망대 겸 식당이다. 프랑크푸르트 중심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커피와 맥주 등을 마시며 독일의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는 재미가 각별하다. 다만 굽어보는 도심 풍경은 다소 생뚱맞고 부자연스럽다. 마천루들 틈바구니에 성 카탈리나 교회, 카페 하우프트바체 등 옛 건물 몇 채가 옹색하게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 이는 전쟁 탓이다. 프랑크푸르트는 2차대전 때 폭격 피해를 입은 도시 가운데 하나다. 온전히 남은 건물은 하나밖에 없을 정도로 철저히 두들겨 맞았다. 바로 그 탓에 이런 어색한 풍경들과 만나기도 한다. 중앙광장 한편의 성 카탈리나 교회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교회다. 17세기 세워졌으나 1944년 파괴됐다가 1954년 재건됐다. 카페 하우프트바체는 옛 교도소 건물이다. 지금은 커피숍으로 쓰이고 있다. 갤러리아 백화점 아래쪽은 자일 거리다. 유명 브랜드의 상품 매장들이 늘어서 있다. 카탈리나 교회를 지나 마인강 쪽으로 걷다 보면 붉은 벽돌로 지은 성 파울 교회가 나온다. 1848년 최초의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가 열렸던 곳으로, 독일 사람들은 이 교회를 독일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여긴다. 교회 안에 당시를 기억하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입장료는 없다. 이 도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 ‘프랑크푸르트의 위대한 아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다. 괴테 하우스나 그가 자주 찾아 사과와인을 마셨다는 게르버뮐레 레스토랑 등의 흔적을 좇다 보면 18세기 프랑크푸르트가 모습을 드러낸다. 파울 교회 위쪽으로 이어진 베를리너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괴테 생가가 나온다. 우아한 자태의 고딕양식 건물이다. 괴테가 태어나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살던 집으로 그의 문학적 토양이 됐던 곳이다. 괴테가 시를 썼던 방과 책상, 자필 원고 등이 전시돼 있다. 생가 옆은 괴테 박물관이다.올드 시티 중심지, 뢰머광장엔 ‘정의의 여신상’이 프랑크푸르트의 핵심은 뢰머광장이다. 이른바 올드 시티(old city)의 중심지 노릇을 하는 곳이다. 성 파울 교회에서 마인강 쪽으로 한 블록 내려가면 나온다. 마천루 사이에 터를 잡은 광장은 고즈넉한 분위기로 여행자들을 맞고 있다. 먼저 ‘정의의 여신상’이 눈길을 끈다. 정의의 기준을 형상화한 저울과 엄정한 심판을 상징하는 칼을 양손에 쥐고 있다. 여신상을 가운데 두고 2차대전 이후 원형대로 복원된 뢰머(옛 시청사)와 중세 목조건물 등이 늘어서 있다. 광장 뒤편은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이다. 역대 황제들이 대관식을 치렀다는 교회로 ‘카이저돔’이라고도 불린다. 탑에 올라서면 시가지 모습이 한눈에 펼쳐진다고 한다. 영원한 사랑이 깃든 마인강 위 아이제르너다리 광장에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면 마인강이 나온다. 강변 바로 앞에 하우스 베르트하임 건물이 서 있다. 용케 2차대전의 포화를 견딘 유일한 건물이다. 1479년에 세워져 여태 그대로다. 지금은 커피와 음식 등을 파는 레스토랑으로 쓰인다. 마인강변으로 나가면 시원한 풍경이 이방인을 맞는다. 바람을 따라 찰랑대는 강물과 괴테의 이름을 딴 유람선,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강 양쪽에 슈테델 예술박물관, 시립미술관, 응용예술 박물관, 현대예술 박물관 등 다양한 박물관들이 있다. 시간이 있다면 한두 곳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마인강을 가로질러 아이제르너다리가 세워져 있다. 보행자 전용 다리로, 약 500t의 강철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프랑크푸르트가 자랑하는 스카이라인은 아이제르너다리에서 본다. 저물녘 마인강 너머로 지는 해가 토해내는 붉은 기운과 파란 하늘, 그리고 막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마천루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다리 난간 곳곳엔 수많은 자물쇠가 매달려 있다. 연인들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흔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저물녘 풍경과 어우러지니 퍽 로맨틱하다. 다리 너머는 작센하우젠 지역이다. 두 블록 정도 내려가면 맥주 등을 맛볼 수 있는 선술집들이 나온다. 프랑크푸르트(독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손원천 전문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빛이 머문 곳, 동화 속을 거닐다

    [손원천 전문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빛이 머문 곳, 동화 속을 거닐다

    ‘헨젤이 그레텔을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틀림없이 집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오누이는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밤새도록 걷고 이튿날도 아침부터 밤까지 꼬박 걸었지만, 숲을 빠져나갈 수 없었습니다. 오누이는 지친 나머지 나무 아래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셋째 날도 아침부터 걷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자꾸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기만 했습니다….’ 독일의 동화작가 그림 형제가 지은 ‘헨젤과 그레텔’의 한 대목이다. 이들이 영감을 얻은 곳은 독일 남부의 ‘블랙 포레스트’ 지역이다. 숲이 깊어 검게 보인다는 곳이다. 이들이 동화를 발표한 때가 1812년. 이후 205년이 흐른 만큼 숲은 더욱 깊어졌다. 오래전 ‘헨젤과 그레텔’ 오누이와 ‘빨간 모자’ 소녀가 오간 숲길에서 요즘 사람들은 크로스 컨트리 스키와 스노 슈잉, 트레킹 등 겨울 레포츠를 즐긴다. 제자리에서 등을 돌리기만 해도 동화처럼 예쁜 숲이 펼쳐지는 곳, 블랙 포레스트 하이랜드다.먼저 이름 풀이부터. 공식 명칭은 ‘블랙 포레스트 하이랜드’다.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의 수림 지대를 일컫는다. 해발 700~1500m의 고지대 위에 길이 160㎞, 폭 50㎞에 달하는 광활한 숲이 해삼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독일어로는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라 부른다. 슈바르츠가 ‘검다’, 발트가 ‘숲’이란 뜻이니 말 그대로 ‘검은 숲’이다. 숲에 들면 나무가 어찌나 촘촘한지 햇볕 한 줌 들어오지 않는다. 아름드리로 솟구친 가문비나무, 전나무 등이 빛을 막아 깊은 숲 그늘을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아직 덜 알려져 있지만 꽤 많은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다.헨젤과 그레텔·빨간 모자 등 동화의 산실 블랙 포레스트는 독일에서 가장 외진 땅이다. 라인강이 서쪽에서 프랑스와 독일을 가르고, 알프스 고산지대는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과 남쪽 경계를 이룬다. 반나절은 걸어야 끝이 보이는 깊은 숲은 여러 동화와 기담의 산실이 됐다. 헨젤과 그레텔, 빨간 모자 등이 그 예다. 블랙 포레스트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산악자전거, 수영, 카야킹 등을 즐기는 이들로 북새통이다. 겨울엔 하이킹, 설피를 신고 숲길을 걷는 스노 슈잉, 크로스 컨트리 스키 등의 레포츠를 주로 즐긴다. 슈바르츠발트관광청에 따르면 블랙 포레스트 안에 9개의 하이킹 코스가 있다. 총길이는 무려 1000㎞에 달한다고 한다. 일정한 거리마다 안내원이 배치돼 안전하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크로스 컨트리 스키는 레저라기보다 일상에 가깝다. 마을 곳곳에서 컨트리 스키를 즐기는 이들과 만날 수 있다. 스키어들이 다니는 트랙은 정설차가 말끔하게 닦아 놓는다. 눈을 즐기는 독일인들의 자세가 마냥 부러운 대목이다. 이 트랙 위를 스키어가 지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철로를 연상하게 하는 홈이 깊게 파인다. 크로스 컨트리 스키와 스노 슈잉, 하이킹은 대개 같은 코스에서 이뤄진다.하이킹·스노슈잉·스키 등 레포츠 즐길 수 있어 블랙 포레스트로 가는 들머리는 프라이부르크다. 독일의 노인들이 노년에 가장 살고 싶어 한다는 친환경 도시다. 프라이부르크에서 티티제 호수까지는 기차로 40분 정도 걸린다. 티티제 호수는 블랙 포레스트 안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다. 저녁 나절이면 안개 몇 줄기가 눈 덮인 호수 주변을 감싼다. 이른 아침엔 더 아름답다. 밤새 수분이 달라붙은 나무가 호수 주변에 환상적인 상고대를 펼쳐 놓는다. 이 같은 흰빛의 ‘윈터 원더랜드’는 매일 아침 볼 수 있다. 지난 1월 하순부터는 호수 통행도 허용됐다. 얼음이 수십㎝ 두께로 꽝꽝 얼었기 때문이다. 호수 주변의 티티제 마을은 뻐꾸기 시계의 ‘원조’로 유명한 곳이다. 드루바 쇼핑센터에서 뻐꾸기 시계 제작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블랙 포레스트 일대에서 가장 높은 곳은 펠트베르크산(1493m)이다. 같은 이름의 스키장으로 쓰이고 있다. 스키 하우스가 있는 1200m까지 차로 오른 뒤, 슬로프 옆으로 난 길을 따라 300m 정도 오르면 정상이다. 걷거나 스노 슈잉으로 오른다. 스키를 타는 이라면 곤돌라를 타고 보다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서면 장쾌한 풍경이 펼쳐진다. 발 아래로 검디검은 숲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알프스 산맥이 병풍처럼 내달린다. 알프스 산맥 아래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다. 구릉과 숲이 반복되는 프랑스 방향의 풍경도 고즈넉하다.전기자동차로 500번 도로 드라이브도 추천 전기자동차를 빌렸다면 500번 도로를 꼭 기억해 두자. 블랙 포레스트의 명소들을 굴비 꿰듯 매달고 달리는 도로다. 상트블라지엔 성당은 우리의 옛 중앙청과 비슷한 구조의 건물이다. 18세기 후반 세워졌다. 유럽에서 가장 큰 돔 지붕으로 유명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압도적인 규모에 입이 떡 벌어진다. 흰 대리석 기둥이 거대한 흰빛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모양새다. 슐루크제 호수도 명소다. 티티제 호수보다 규모는 크지만 덜 알려져 한결 적요한 겨울 풍경과 만날 수 있다. 슐루크제 호수에서 6㎞ 정도 떨어진 곳에 로트하우스 양조장이 있다. 이 지역 토속 맥주 공장이다.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일반 상점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다. 블랙 포레스트 지역 고유의 민가 형태를 엿볼 수 있는 옛 건물 ‘휘슬리’도 인근에 있다. 바덴뷔르템베르크(독일)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 아시아나항공이 오는 3월부터 ‘하늘을 나는 호텔’ A380 항공기를 인천~프랑크푸르트 노선에 매일 투입한다. 장거리 노선 경쟁력 강화와 유럽 지역 환승 수요 유치가 목적이다. 프랑크푸르트를 이용하면 블랙 포레스트 등 독일 남부와 목가적인 풍경의 프랑스 알자스로렌 지방, 그리고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을 연계해 여행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고속열차(ICE)로 프라이부르크 중앙역(3시간 남짓)까지 간 뒤, 지방 열차로 바꿔 타고 블랙 포레스트의 들머리인 티티제호수역(약 40분)까지 가는 게 일반적인 방법이다. → 티티제 호수 근처에 잡는 게 좋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부티크 호텔 ‘알레마넨 호프’가 있다. 1956년 창업한 드루바 가족기업이 운영하는 유서 깊은 호텔이다. 호텔 예약 사이트 등을 통하면 1박에 15만원 선(2인, 조식 포함)이다. 호수 뒤편의 언덕에 취사시설 등을 갖춘 4층짜리 별채 객실도 있다. 이른바 ‘쿠쿠 네스트’(Cuckoos Nests)로 호텔보다 값도 싸고 가족들이 묵기에 딱 좋다. 드루바 가족기업은 티티제 호수에 레스토랑과 보트 렌털숍, 기념품 판매점과 뻐꾸기 시계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선 셰라톤 호텔을 추천한다. 프랑크푸르트 공항과 통로로 이어져 있어 사실상 같은 건물이나 다름없다. → 슈바르츠발트관광청이 발급하는 ‘더 레드 인클루시브 카드’(레드 카드)를 이용하면 블랙 포레스트 내 유명 관광지가 무료다. 지방선 기차와 로트하우스 맥주 공장 투어, 펠트베르크 스키장 등이 모두 공짜다. 블랙 포레스트 내 370여개 제휴 숙박시설에서 2박 이상 숙박하면 제공된다. BMW의 i3 전기자동차도 매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국제운전면허증을 지참하는 게 좋다. 예약은 홈페이지(www.hochschwarzwald.de/carsharing)에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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