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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 아파트 72만7천416가구 분양

    건설교통부가 최근 올해의 아파트 분양가를 평균 4.3% 인상키로 확정함에 따라 그동안 공급계획을 미루어 오던 주택건설업체들이 일제히 올해의 공급 물량을 확정,발표했다. 대형 주택건설업체(지정업체)들은 올해에 전국에서 모두 34만104세대(1∼3월 소급분 포함)를 공급하기로 했다.중소주택업체(등록업체)들도 올 한해동안 모두 38만7천312세대의 아파트를 건설,공급할 계획이다. 대형업체들은 오는 4월에 서울에서 1만6천148세대,부산에서 6천945세대,대구에서 3천858세대,인천에서 4천425세대,광주에서 1천841세대,대전에서 1천116세대 등 6대 도시에서 모두 3만4천333세대를 분양한다. 또 경기도에서 8천886세대를 분양하는 것을 비롯,▲강원 600세대 ▲충남 2천117세대 ▲전북 2천152세대 ▲경북 1천260세대 ▲경남 2천769세대 ▲제주 124세대 등 전국에서 총 5만2천241세대를 공급할 계획이다.충북과 전남지역은 4월에 공급물량이 없다. 대형업체들은 이밖에 5월에 전국에서 총 2만6천840세대,6월에 3만5천758세대,7월에 1만6천78세대,8월에 2만983세대,9월에 1만8천778세대,10월에 4만6천819세대,11월에 1만7천33세대,12월에 2만7천120세대 등을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 「위험사회­새로운 근대(성)를 위하여」/독 사회학자 울리히 벡

    ◎현대물질물명은 “이율배반의 존재”/위험성과 근대화,양면성의 「저거노트 수레」/“우리사회의 「안전불감증」 되돌아보는 계기”평 「저거노트(Juggernaut)」는 힌두교의 신인 크리슈나의 이름이다.이 신의 신상을 실은 거대한 수레에 치여 죽으면 극락환생한다는 미신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수레에 깔려 죽었다고 한다.「저거노트의 수레」는 행복과 파멸을 동시에 의미하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이다.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 교수(53·루드비히­막스밀리안스대)는 현대 물질문명이야말로 「저거노트」의 빛과 그림자를 그대로 안고있는 이율배반의 존재라고 말한다. 현대 풍요사회의 이같은 문명사적 역설을 날카롭게 지적한 그의 대표적인 저서 「위험사회­새로운 근대(성)를 향하여」(홍성태 옮김,새물결)가 최근 출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하버마스의 「공공영역의 구조변동」에 이어 2차대전이후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사회과학서로 꼽히는 이 책은 상호연관된 두개의 중심명제로 이뤄져 있다.하나는 현대사회의 위험성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찰적 근대화」에 관한 것이다. 영어의 「위험(Risk)」이란 단어는 원래 17세기 스페인의 항해술 용어에서 나온 것으로,「위협을 감수하다」「암초를 뚫고 나가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산업사회 초기만 해도 위험은 부를 얻기 위해서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난관으로 간주됐다.역사의 무대에 새로 등장한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수많은 모험가들이 나타나고,자본주의의 탐욕스런 시장확보 전쟁이 영웅적 모험담으로 그려지곤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그러나 이러한 「낭만의 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근(현)대화과정을 통해 부는 확대재생산되었지만,위험 또한 「우연적인」 것에서 「정상적 개연성」을 지닌 구조적인 것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가까운 예로 핵발전소에 의한 재앙은 84년 체르노빌 참사에서 드러났듯 더이상 묵시론적인 것이 아니라,전형적인 현대사회의 「저거노트」다.지은이는 현대사회에서의 삶을 『문명의 화산위에서 살아가는 것』에 비유한다. 「근대화의 근대화」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성찰적 근대화」론은 『사회가 실제로진화하려면 근대화는 반드시 성찰적이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성찰적 근대화」란 현대 기술과학의 가능성뿐 아니라 그 한계도 함께 인식,과학에 대한 사회적 제어력을 높이는 과정을 지칭하는 것.지은이는 이를 칸트의 명제를 빌어 부연 설명한다.『사회적 합리성 없는 과학적 합리성은 공허하고,과학적 합리성 없는 사회적 합리성은 맹목적이다』 우리는 90년대 들어 발생한 대형사고로 숨진 사람만 1천명이 넘는 「위험사회」속에 살고 있다.이 책은 「안전불감증」에 빠진 우리 사회현실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 봄기운 타고 아파트분양 기지개

    ◎3월중 전국서 6만7천238가구 공급 3월에는 전국에서 모두 6만7천238세대의 아파트가 공급된다. 주택건설업체에 따르면 32개 대형업체(지정업체)들은 이달에 수도권에서 9천971세대와 기타지역에서 2만4천583세대 등 총 3만4천554세대를 분양할 예정이다.이는 지난달의 3만7천7세대보다 2천453세대가 줄어든 물량이다. 시도별로는 ▲서울 770세대 ▲부산 3천674세대 ▲대구 3천781세대 ▲인천 2천844세대 ▲광주 1천358세대 ▲대전 1천948세대 ▲경기 6천357세대 등이 각각 공급될 예정이다. 중소 주택건설업체(등록업체)들은 62개 업체가 참여,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1만1천56세대와 기타지역에서 1만9천687세대 등 3만743세대를 이번달에 공급한다.중소업체들은 지난달에는 1만7천209세대를 공급했으나 3월에는 공급물량을 1만3천534세대나 더 늘렸다. 중소업체들은 6대 도시의 경우 서울에서 1천117세대를 공급하는 것을 비롯,인천에서 384세대,대전에서 276세대,광주에서 1만2천195세대를 각각 분양할 예정이다.또 경기도에서는 9천555세대를 공급한다.대한주택공사도 경기도 오산 운암지구에서 300세대 등 1천941세대를 분양한다.3월 분양분 가운데 오산운암의 23평형 186세대는 공공분양이다.음성금왕의 15평(163세대),19평(328세대)과 전북 진안군상지구의 14평(96세대),17평(168세대)은 공공임대로 각각 공급된다.
  • “현장채취 지문 등록안된 것”/이한영씨 피격/사인은 머리관통상

    이한영씨 피격 사망사건을 수사중인 합동수사본부는 26일 피격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 5개에 대한 1차 감정결과,이 가운데 1개가 국내에 등록된 지문이 아닌 것으로 밝혀내고 정밀조사에 나섰다. 지난 5일 서울의 심부름센터에 돈을 송금한 입금표에서 채취했던 지문도 내국인의 것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었다. 경찰은 문제의 지문이 주민등록이 안돼있는 미성년자의 것인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 이씨가 임시로 살았던 분당 현대아파트 주변의 13세부터 17세까지의 청소년을 포함한 모든 주민들의 지문을 채취,정밀 대조하기로 했다. 경찰은 이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서중석 박사의 집도로 이씨의 사체를 부검,『이씨는 총알이 머리를 관통해 사망했으며,가슴에 난 찰과상은 옷에 박힌 총알이 가슴을 스치면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P호텔에 묵었던 이씨가 피격 당일인 15일 상오 11시쯤 숙박료 지불을 위해 호텔에 다시 왔다가 프론트 전화를 이용,당황한 표정으로 통화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당시이씨가 누구와 통화를 했는지를 수사하고 있다. 한편 이씨의 시신은 26일 상오 분당 차병원에서 영결식을 마친 뒤 경기도 광주 공원묘지에 매장된다.
  • 주공아파트 분양 쉬워진다/선착순분양 1만217세대

    ◎중도금 납부 등 조건 대폭완화/새달 할부·전세주택 전환도 주공아파트를 분양받기가 쉬워진다.대한주택공사는 선착순 분양중인 아파트 1만217세대에 대해 분양조건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내용을 보면 중도금 납부횟수를 조정,중도금을 1회만 내거나 입주할 때 잔금에 포함해 납부하도록 했다. 또 할부 분양 또는 전세주택으로의 전환도 3월중 시행한다.할부로 분양받을 경우에는 할부 대상금에 대해 입주한뒤 5년안에 국민주택기금 이율(연 9.5%)을 적용해 분할 납부토록 하고 할부기간을 1년내로 하면 무이자할부도 가능하다.전세주택은 시중 전세가 이하 수준으로 2년 기간동안 거주한뒤 입주자가 원하면 지금의 분양가격으로 분양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또한 중도금과 잔금을 선납할 경우 선납금액에 대한 이자액만큼 분양가격을 낮추어주는 선납할인제도도 분양계약자에게 유리하게 조정,2월 20일부터 선납할인율을 연 9%에서 11%로 인상하고 선납할인 기준일도 납기 15일전에서 납기일전으로 변경해 적용하고 있다. 주공이 분양조건을 완화하고 있는지구는 다음과 같다. ◇중도금납부 완화지구=청주분평·공주신관·조치원신흥·익산어양·영천망정·경산부적·문경모전·제주화북 ◇할부분양지구=속초조양·강릉입암·보령명천·목포연산·여수둔덕 ◇전세시행지구=아산용화·여수둔덕
  • 백자철화 인형명기 부부상(한국인의 얼굴:94)

    ◎큰 충격에 망연자실한 남정네/아낙은 영문모른채 ‘휘둥그래’ 조선시대 도자공예에는 명기가 있다.여기서 명기는 도자기 인형을 말한다.죽은 이들의 내세를 위해 무덤에 넣어주는 껴묻거리인 것이다.어두운 무덤속으로 들어간 기물이었을지라도,밝은 내세를 기원하는 뜻을 담았다.그 역사는 제법 오래되어 신라에서는 흙인형 토우나 토기를 명기로 썼다.그리고 고려 사람들은 청자그릇을 무덤에 묻어 먼저 간 죽은 이들의 저 세상을 걱정해주었다. 조선시대에 도자로 구워낸 명기는 16∼17세기 무덤에서 주로 나오고 있다.이 시기는 백자철화가 유행했던 때여서 백자철화인형명기가 주류를 이루었다.또 실제 전해오는 인형명기도 철화계통이 많다.철화백자는 산화철 무늬가 들어간 백자다.쉽게 말하면 무쇠의 녹으로 무늬를 그려넣은 백자인 것이다.그래서 무늬의 빛깔은 이른바 고동색이라는 적갈색을 띠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자철화인형명기는 철화를 효과적으로 응용한 도자공예다.이 철화명기는 남녀 두 쌍에 홀로 선 문관상이 한 세트를 이루었다.이들 다섯 인형의 키는 6.6∼8.7㎝에 불과했다.그렇듯 키가 작은 인형들이지만,표정은 살아있다.더구나 가운데 끼인 인형 한 쌍의 얼굴에는 다른 인형들에 비해 감정이 폭넓게 드러났다.표정이 풍부하기로 말하면 만점인 것이다. 한 쌍의 인형은 부부인 듯하다.상투머리를 한 남정네는 두 손을 맞잡고 허리를 약간 굽혀 읍하는 자세로 서 있다.귀와 눈두덩,인중과 턱은 코와 함께 덧붙여 얼굴 윤곽이 질감있게 표현되었다.인중과 턱이 유별나게 긴 남정네는 입을 벌렸다.그냥 헤벌린 입이 아니고,큰 충격을 받아 망연자실한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한 상태다.눈은 동공만을 동그랗게 그렸다.그래서 놀라는 눈이 되었다. 아낙은 아무 영문도 모르면서 그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놀라워하는 남정네 기색에 그만 놀란 것일까.아낙은 남정네 얼굴을 살피고 있다.남정네가 그토록 놀라워하는 까닭을 아낙은 곧 알아차릴 것이다.어떤 죽음이 있었다는 사실을….그리고 북망산한 자락 땅속으로 들어갈 주인과 운명을 같이 했을 것이다.그렇게 명기는 죽은 이와 더불어 무덤으로 갔다. 이들 인형명기의 표정은 철화,또는 철채라는 색깔이 좌우했다.백자 바탕에서 고동색 철화무늬가 꽃피었던 16∼17세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친 시기다.
  • 자작나무간 「스코틀랜드의 여왕」 1,2권

    ◎비운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일생/16세기후반 유럽 궁정사 그린 전기소설/3번 결혼·20년 감금·단두대의 이슬되기까지 아버지 제임스 5세가 죽자 태어난지 6일만에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된 여인,17세에 프랑스 왕비에 올랐으나 불과 1년만에 남편(프랑수아 2세)을 잃은 여인,애인(보스웰)의 사주를 받아 두번째 남편(헨리 단리)의 살해에 가담한 여인,세번째 결혼후 신하들의 반란에 의해 자신의 왕국을 떠나야 했던 여인,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20년 가까이 감금돼 지내다가 결국 45세의 나이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여인….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1542∼1587)의 일생은 문자 그대로 파란만장한 것이었다. 최근 도서출판 자작나무에서 펴낸 메리 스튜어트의 일대기 「스코틀랜드의 여왕」(전2권·슈테판 츠바이크 지음,안인희 옮김)은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과 아울러 16세기 후반의 유럽궁정사를 속속들이 엿보게 하는 전기소설로 주목할 만하다. 메리 스튜어트의 극적인 일생은 수많은 작가들의 예술적 영감을 자극했다.독일의 시인겸 극작가 프리드리히 실러의 희곡「메리 스튜어트」나 영국작가 월터 스코트의 소설 「수도원장」 등은 메리 스튜어트의 비극성에 초점을 맞춘 대표적인 작품이다.셰익스피어의 위대한 비극들도 메리 스튜어트 이야기에서 적잖게 모티브를 빌려왔을 것으로 추정된다.그러나 어떤 작가도 메리 스튜어트와 관련된 가장 끔찍스런 사건,즉 두번째 남편의 살해사건에 대해 만족할만한 답변을 제시하지 못했다.메리 스튜어트는 악독한 살인자인가,추악한 모함의 희생자인가. 츠바이크는 어느날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 메리 스튜어트의 처형에 관한 한 장의 보고서를 읽고 이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다.그는 곧바로 서로 다른 여러 자료들을 비교하기 시작했고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 소설을 써내려갔다.20세기 최고의 전기작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츠바이크는 특유의 현란한 수사와 화려한 문체로 인간 심리의 심층을 날카롭게 묘사한다.그가 이 작품에서 그리는 메리 스튜어트는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라 위대한 비극의 주인공,중세적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죽음을 맞는 「낭만적인」 영웅이다. 유럽 왕가들의 대립과 불화속에 이루어진 가톨릭교와 개신교 사이의 암투도 이 소설의 흥미요소.가톨릭을 대표하는 쪽은 프랑스,스페인,로마 교황청 등으로 이들은 가톨릭인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후원자다.반면 개신교쪽은 스페인으로부터 아직 독립하지 못한 네덜란드 지역과 북유럽 국가들,그리고 헨리8세의 딸 엘리자베스가 통치하는 잉글랜드 등이다.유럽 전체로 보면 가톨릭측의 세력이 우세했지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투쟁에서 엘리자베스가 승리를 거두면서 개신교측이 차츰 힘을 얻게 된다.이어 벌어진 「30년 전쟁」(1618∼1648)을 통해 개신교측은 마침내 북부 유럽을 중심으로 강력한 세력권을 이룬다.이 소설을 통해 이같은 16세기 유럽의 종교적·정치적 지형을 읽어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메리 스튜어트의 생애를 다룬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이야기이기도 하다.엘리자베스는 메리 스튜어트와는 거의 모든 면에서 대립되는 인물이었다.메리 스튜어트가 「복고적 낭만주의자」라면 엘리자베스는 「진보적 현실주의자」라는 사실을 독자들은 이 소설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 우리 작품들을 위한 애가/김춘미(굄돌)

    요즈음 방학을 이용해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개설한 계절학기 강의를 하고 있다.추운 강의실에서 일주일에 12시간 강의를 한다.과목명은 「오페라사」이다. 약 400년전 서양 오페라가 시작됐을때부터 여러 세기를 거치는 동안 그들의 필연적 동기로부터 출발한 많은 서양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로마의 역사를 통해 서양의 현재를 조망하는 작품도 있고,그저 음악적으로 즐기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그러다가 모짜르트의 「티투스의 자비」라는 오페라를 레이저 디스크로 보게 되었다.메타스타시오라는 당대 유명한 작가의 대본을 바탕으로 한 그 작품은 17세기 귀족들에게 아부하는 내용의 오페라 세리아라는 것을 알았다.음악적으로도 별 특성이 없고 내용상으로도 좀 말이 안되는,다시 말해서 당대의 귀족이 도저히 가질수 없는 자비의 덕을 베푸는 티투스가 당대 귀족들의 자의식을 만족시키는 그런 작품이었다.그런데 내용이야 어떻든 간에 그것은 모짜르트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고,그것을 레이저 디스크로 제작한 팀들은 열과 성을 다해 상품을 만들어 놓았다.로마의 어느 도시의 성을 세트의 일부로 사용하면서 화려한 의상과 음향,무대를 구현해냈다.내용 운운할 것도 없이 그저 영상만으로도 눈은 즐거웠다. 그런데 한국의 오페라를 논하려니 레이저 디스크 커녕 음반 하나도 없다.정말 자료가 없어도 너무 없다.해방이후 서양의 19세기 말 오페라를 흉내냈을때의 자료는 물론이거니와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따라가는데만 급급했지 우리 것을 상품화하는데는 의식도 기술도 축적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티투스의 자비」보다도 훨씬 작품성이나 역사성에서 돋보이는 한국 창작음악극의 비디오를 어렵게 구했지만 그냥 컴컴한데다 카메라만 갖다 댄 그 영상은 오히려 작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구실만을 하고 있었다.문화 인프라 조성을 위한 교육과 투자가 이루어져야겠다.참으로 암담한 심정이다.
  • 이대 출판부간 「미국인의 사상과 문화」

    ◎미국의 「정신적 뿌리」는 어디인가/청교도·햄버거 등 피상적 시각들에 반기/“아메리카는 세속적이면서 가장 종교적” 우리는 흔히 미국의 문화라면 햄버거나 코카콜라의 문화,미국의 사상이라면 청교도주의나 실용주의 정도가 고작인 것으로 생각한다.그러나 이러한 역사·문화인식은 독단론에 불과하다.최근 출간된 미국사 개론서 「미국인의 사상과 문화」(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펴냄,조지형 옮김)는 이러한 피상적인 역사이해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미국의 정신적 뿌리를 다양한 갈래에서 살피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미국의 역사학자인 윈턴 솔버그 교수(일리노이대)가 지은 이 책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쓴 것이어서 무엇보다 배경설명이 풍부하고 문체가 명료한 것이 특징.솔버그 교수는 미국의 역사를 지성사적인 관점에서 다섯 시기로 나눠 고찰한다.▲청교도주의를 사상적 중핵으로 하는 17세기의 초기 아메리카 ▲계몽주의가 청교도주의와 조화를 이루면서 미국의 독립혁명에 기여한 18세기의 아메리카 ▲낭만주의 시대로,미국의 정체성이 확립되고 「미국적」인 문화가 싹튼 18세기 말에서 남북전쟁 종전(1865년)까지의 초기 미국 ▲과학적 자연주의가 팽배했던 19세기 후반에서 2차대전까지의 근대미국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갈등에 의해 움직여온 현대미국이 그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시대구분을 염두에 두되 하나의 정치체로서의 미국을 다루지 않는다.때문에 미국역사의 시작을 미국이 영제국으로부터 독립한 1776년이 아니라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해 「신성한 실험」을 시작한 17세기 초로 잡는다. 미국 역사의 여명을 연 사람들은 1607년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 도착했던 일단의 귀족과 젠트리(Gentry),그리고 상인들이었다.하지만 우리에게는 1620년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매서추세츠 플리머스 땅에 도착한 「순례시조」의 이야기가 주로 알려져 있다.미국역사의 출발과 관련해 제임스타운의 사람들보다 메이플라워 호의 사람들을 더 기억하는 것은 미국의 독립혁명을 종교적으로 설명하고 정당화하고자 했던 초기 미국 역사가들이 청교도적 전통과 신앙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솔버그교수는책 머리에서 청교도적 신교주의의 내력,특히 뉴잉글랜드의 청교도주의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은 자신들의 탈출에 대한 이론적 근거가 필요했다.이른바 「광야로의 부르심」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은 하나님의 구속계획에 따른 「섭리이론」과 선민사상,하나님과의 계약론 등 세가지 상호연관된 주제를 전개했다는 게 솔버그교수의 해석이다. 청교도적 신교주의가 미국의 지적 전통의 첫째가는 요소라면,계몽주의는 그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다.1680년대 영국에서 비롯돼 한 세기 이상 서구사상을 지배한 계몽주의는 특히 미국의 종교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이는 1749년대 초 뉴잉글랜드에서 태동한 미국 최초의 종교부흥운동인 「신앙대각성운동」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미국문화의 종교적 차원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미국을 올바르게 평가할 수 없다.영국의 사회비평가인 체스터튼은 미국을 『교회의 영혼을 지닌 국가』라고 특징지어 말함으로써 이 점을 분명히 지적했다.솔버그 교수는 종교사 분야의 권위자답게 현대미국의 종교생활에 대해 통찰력있는 견해를 보인다.미국은 1950년대에 이르러 탈개신교 시대에 접어들었으며,대중매체들은 종교에 관한 언급을 삼가고,종교는 때때로 사적인 문제로 격하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오늘의 미국은 종교적인 국가인가 세속적인 국가인가.솔버그교수는 『미국은 종교적 무관심과 세속적 휴머니즘이 교차하는 세속적인 국가이지만 세계 선진산업국가중 가장 종교적인 나라』라고 결론짓는다.
  • 김한수·박청호씨 신작장편 동시 출간

    ◎「소외」의 공간서 만난 사실주의·실험정신 두작가/하늘에 뜬 집­노동자 청년이 방황끝에 깨닫는 삶의 의미/푸르고 흰 사각형의 둥근­정신적 떠돌이 「나」를 통해 본 꿈과 현실사이 젊은 작가 김한수씨(33)와 박청호씨(31)가 「하늘에 뜬 집」(실천문학사)과 「푸르고 흰 사각형의 둥근」(한뜻)이라는 신작 장편을 나란히 펴냈다. 삼십대 초입이라는 연배를 빼면 둘 사이엔 공통점이 거의 없어 뵌다.노동자였다가 작가로 나선 김씨가 80년대 민중문학의 아들이라면,문예창작학과에서 공부하고 희곡과 시 등단경력도 있는 박씨는 「전통파괴」를 마다않는 문화주의자에 가깝다. 사실주의를 고집하는 한사람과 실험적 첨단을 지향하는 듯한 또 한사람이 다른 방향에서 파고든 소설공간은 소외의 문제에서 만난다.나란히 놓인 두권은 젊은 남성작가들의 작품세계가 뜻밖에 다채롭다는 점,문제의식도 꽤 진지하다는 점 등 흘려버리기 쉬운 적잖은 덕목들을 붙들어 보여주고 있다. 김한수씨의 「하늘에 뜬 집」은 가난속에 자라 노동자가 된 현민이라는 청년이 위악에 가까운 방황을 거쳐 삶의 긍정적 의미를 깨우치기까지를 담고 있다.방에 쥐똥이 수북이 쌓이고 빈대 물어뜯는 기세에 잠을 이룰수 없는 가난도 가난이지만 현민이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자고새면 어머니를 두들겨 패는 폭력아버지와 죽도록 맞으면서도 흐느낌을 악물고 사는 어머니의 무기력이다.물론 여기엔 가족사의 비극이자 현민의 출생비밀이 깔려있다.어린 시절 옆집아저씨에게 강간당한 충격에 가출,건달아버지와 될대로 결혼해버린 엄마가 아이를 바라는 시댁 독촉에 미혼모한테 얻은 아기를 자기가 해산한양 속여 들여온 것이 바로 현민이었던 것이다. 현민 가족외에도 소설은 궁핍과 소외가 낳은 인간살이의 여러 참상들을 조명한다.휠체어에 앉아서도 착하기만 한 장애인 곽씨는 툭하면 집나가는 사나운 아내때문에 괴롭고 공장친구 성수는 핏덩이인 자기를 고아원에 버리고 달아난 생모를 폭행한다.현민은 강간범으로 감옥행까지 이른 태호에게서 가난이 망쳐버린 여린 심성을 엿보고 그토록 존경스럽던 공장장님마저 공돌이로 돌변시키는 사회에 좌절한다. 박청호씨의 「푸르고 흰 사각형의 둥근」은 제목만큼 구조도 다층적인 작품.「나 혹은 그」라는 핵심화자 외에도 그의 연인인 24세의 여자대학원생,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된 그의 동창인 「그녀」 등이 화자로 등장해 다각도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는 희곡작가겸 문필가이자 청소년문화센터 직원이기도 하지만 실은 어디에도 소속이 없는 정신적 떠돌이에 가깝다.운동권 학생들사이에서 고민만 많은 소부르주아로 배척당한 그는 어느날 풀려난 「그녀」를 감시하는 국가정보요원을 충동적으로 살해하지만 감시체계와 사법권을 쥔 국가기관에서도 그를 어떻게 분류해 처리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는다. 살인,갑작스런 교도소 탈출,17세 소녀와의 성교따위 이야기들을 실어나르는 감각적 단문과 변화무쌍한 의식의 전개는 소설에서 자주 현실과 허구사이의 경계를 허문다.현실세계인지 주인공의 꿈인지를 끝까지 회의하며 읽어가면서 독자들은 인간의식의 밑바닥까지 쫓아들어가 은밀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현대적 권력의 보이지 않는 위력을 돌아보게된다.
  • 하벨 체코대통령 재혼/17세 연하 코믹배우와

    【프라하 AFP DPA 연합 특약】 바츨라프 하벨 체코대통령(60)이 4일 가까운 친지들만 참석한 가운데 체코의 유명 코믹 여배우 대그마르 베스크르노바(43)와 결혼식을 올렸다고 CTK통신이 보도했다. 작년 1월 첫 부인 올가여사와 사별한 하벨 대통령은 지난달 폐암수술을 받았을때 베스크르노바의 간호가 회복에 큰 힘이 됐다고 이 통신이 전했다. 체코국영 비네야드스극장에 소속돼 있는 베스크르노바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 딸 하나를 두고 있다.
  • 서양화가 권옥연(이세기의 인물탐구:116)

    ◎허무·고독을 즐기는 화단의 신사/세련된 멋·투박한 정서가 자연스레 공존/구상·추상 오가며 미지의 세계 정신적 탐구 권옥연은 슬픔과 허무가 엇갈리는 낭만적이고 이지적인 성격이다.화려하고 사치한 사교적인 면을 지니면서 「군중속에 둘러싸인 고독」 같은 이미지가 전신에 배여 있다.스스로를 옷 한벌도 없는 「무의자」로 불리기를 원하거나 그림 곳곳에 잔잔한 슬픔의 무늬가 운문율처럼 번지고 문학적 향수와 비감을 감추지 않는 것도 그만의 예술가적 기질일 것이다. 그의 작품도 일본과 프랑스유학에서 연유한 세련된 멋과 우리만의 꾸미지 않은 투박한 정서가 자연스럽게 공존된다.이른바 지난 역사속에 숨겨진 한국인 특유의 비애와 한을 떨쳐버리지 않고 이를 안으로 익삭여서 그림의 특징으로 삼은 것이 특별히 남다르다.그의 화면의 배경은 금방 눈이라도 쏟아질 듯 무겁게 내려앉은 청람의 하늘과 차갑게 빛나는 납빛의 달,상서로운 길조 한마리가 피안을 향한 아득한 미래를 응시하면서 미묘한 조율과 변주로 탐미적 향기를 풍겨낸다. 그의초기작품은 자연주의적 공간의 원근법을 무시하고 수평으로 전개되는 선상에서 간결하고 절제된 대상이 평탄한 색조로 수직구도를 이루고 있었다.이는 한때 고갱의 예술세계에 경도된 흔적이기도 하지만 평론가 유준상에 따르면 「사상을 색채가 아닌 형체에 의해서 파악」하고 「인간을 비극적인 고뇌의 생명」으로 보기 때문에 그의 추상화는 「해학성과 불가사의한 세계를 동경하는 정신적 탐구를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그림곳곳 잔잔한 슬픔… 화면구성의 배치와 균형뿐만 아니라 색채의 의장을 무시한 자기억제적인 색조는 「관념적인 영원성마저 표출시킨다」고 했다.또 내적 경험을 암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상형기호는 보석타래처럼 허공을 부유하면서 「비현실세계에서의 신비적 허무」로 반짝이는 것도 그만이 보여주는 화경의 특징이다. 그는 유치한 것을 싫어하고 쓸데없는 치장을 역겨워한다.예를 들어 당장에 눈에 띄는 그림보다는 어둠이 눈에 익어 천천히 나타나는 그림이야말로 「벨벳속에 싸인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답다」고 주장한다.그래서 낯설고 새로운 수많은 미학적 체험과 깊은 모색의 시기를 거쳐 그의 화면은 「바닷속같이 괴괴한,정일과 정미의 경지」를 끌어낸다.구상에서 추상,다시 최근에는 「구상적이면서도 구성적」인 그림으로 그는 남보다 앞장선 그림을 그리는 대가로 국내외에 알려져 있다. 그의 일상적인 매너는 누구를 만나든 포용력 있게 반기는 제스처에 능하다.한때는 주한프랑스대사로 10여년이상 한국에 머물었던 로제 상바르대사와 절친하여 그가 주관하는 파티의 주역이었고 다른 자리에도 자주 얼굴을 비치는등 사교적인 폭이 두껍고 넓은 편이었지만 실제로는 의외로 비사교적이고 사회성이나 경영에 어둡다. 정이 많고 정의감이 투철하여 같은 예술원회원인 천경자씨가 가짜 미인도사건에 휘말렸을 때는 「작가의 의견을 존중」하여 철저히 감싸주었고 그와는 성격이 정반대인 원로화가 김흥수씨가 「외국작가초대에 대한 이의제기」나 「국전의 의미」를 묻는 시비를 만들 때도 옳은 것의 편에 서서 이들을 두둔해왔다. ○17세에 선전 입선 같은 함흥 출신에다일본과 프랑스유학을 비슷한 시기에 보낸 김흥수씨는 『그는 함흥의 명문가의 자손으로 남보다 풍족한 성장기를 보냈고 올바르게 처신하여 화가로서 탄탄대로를 걸어왔으면서도 언제나 겸허하여 오만이 없다』고 말한다.이른바 예술가로서 신사의 도를 고집스럽게 지켜온 보기드문 순수파라고 할 수 있다. 화가로서의 그의 위치나 면모를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그의 긴 화력과 그가 성취한 새롭고 혁신적인 화풍만으로도 그의 위상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이미 무의미하다. 그는 함남 함흥읍에서 대지주의 5대독자로 태어나 조부모와 부모의 기대와 사랑을 한몸에 듬뿍 받은 천진무구성을 지금도 지니고 있다.어릴 때는 음악과 문학에 심취하여 『지휘자나 작곡가가 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음악에 관한 한 앉은 자리에서 100여곡 이상의 노래가 그의 몸에서 물처럼 흘러나온다.오죽하면 작곡가 김성태씨는 『그의 머리를 한번 해부해보고 싶다』고 했고,김순애씨는 『그가 허밍으로 부르는 즉흥곡을 악보로 써둔다면 틀림없이 주옥 같은 명편』이 됐을 거라고 감탄할 정도다. 함흥에서 서울 제2고보(경복고)로 유학한 후 3학년되던 해 선만 학생전람회에서 준특선,다음해 특선했고 졸업반인 5학년때 선전에서 입선하면서 17세에 벌써 화가로 호칭되었다.그러나 『50년동안 그림을 그려왔지만 내가 그리고 싶어서 그린 그림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화가」라는 타이틀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그리지 않으면 안될 때가 있었다』고 자신을 돌아본다. 부족할 것 없는 환경에서 화가이면 누구나 동경해 마지않는 도쿄와 파리유학,수많은 국제전에 선정,초대되었고 세종문화회관 개관때도 가로 40m,세로 20m의 초대형 「십장생도」커튼을 제작하여 화제가 되는가 하면 일본·덴마크·파리국립·현대·근대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 그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그는 개인적으로 금곡에는 개인박물관을 가지고 있고,무대의상을 미술의 차원으로 이끌었다는 평을 듣는 부인 이병복씨는 국제무대에서 공연하는 극단 자유극장의 대표이며 한때 서울대에 출강하긴 했지만 한평생 그림만을 그려온 전업작가다. ○40m 「십장생도」 제작화제 이처럼 행복만이 점철된 그에게 뼈저린 아픔이 있었다면 두고 온 산하에 대한 그리움과 지난 봄 긴 투병끝에 있던 장남을 잃은 일이다.지상의 모든 슬픔을 온몸으로 얼싸안은 채 『나는 평생 철들지 못한 철부지였으나 아들을 잃자 갑자기 철드는 자신을 느꼈다』고 소년처럼 절규한다. 자녀는 파리화단에서 활동하는 딸(이나씨)과 첼리스트인 차남(유진)이 있다.지난해 도시계획에 밀려 고풍스럽고 오래된 광희동집을 떠나 성북동의 빌라로 이사하게 되자 현대적인 낯선 분위기가 싫어서 집에선 잠만 자고 장충동 화실에서 거의 하루를 보낸다.술을 마다하지 않으며 줄담배를 피운다. 그의 신작분위기는 빈 바위 같은 회색산정과 앙상한 나목에 앉은 흰새 한마리.새는 머언 공간을 향한 긴 응시를 끝내고 지금 마악 비상직전,아니면 탐색직전의 긴장과 정적을 품고 있다.그의 득의의 화면은 보는 이의 마음에 철학의 심연을 만들어주고 있으나 이제 허무주의와 문학주의를 딛고 그는 화가의 가장 찬란한 광채인 청람의 보석 같은 구두점을 그의 화면속에 감추고 싶어하는 시기다. □연보 ▲1923년 함남 함흥 출생 ▲39년 선만학생전람회 특선 ▲40·42년 선전입선,제2고보(경복) 졸업 ▲44년 도쿄제국미술학교 졸업 ▲48년 첫개인전(동화백화점 화랑) ▲49년 국전입선 54·56·60년 국전특선 ▲56∼60년 체불,파리살롱도톤,파리 레알리테누벨전선정초대출품 ▲60년 프랑스 파리아카데미 드페수학,도쿄 일본교갤러리 개인전 ▲61∼72년 국전초대작가 및 국전심사위원 역임 ▲65년 도쿄개인전,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대표 출품 ▲68년 서울개인전(신세계미술관)「한국현대회화전」(도쿄국립근대미술관) ▲70년 엑스포70 세계100인선 작가로 선정,현대화랑개관 기념전 ▲73∼74년 한국미술대상 심사위원,미 국무성 초청 미국문화계 시찰 ▲75년 「한국현대미술가 100인선집」 출간(금성출판사) ▲78∼현재 금곡박물관장 ▲79년 개인전(갤러리 현대),세종문화회관 대강당 및 소강당 커튼(막)제작(가로 40m,세로 18m) ▲83∼현재 예술원회원 ▲86년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 「서울·파리전」(서울갤러리) ▲95년 광복 50주년 기념 특별전 ▲96년 이목화랑 개관 20주년기념전 출품(권옥연·천경자·윤중식·임직순) 〈작품소장〉 미국 체이스맨해턴은행·도쿄국립근대미술관·일본겸창근대미술관·덴마크코펜하겐국립근대미술관·파리국립현대미술관외 〈수상〉 예술원상·보관문화훈장·3·1문화상
  • 크리스티앙 라크루아(패션가 산책)

    크리스티앙 라크르와(Christian Lacroix). 패션의 귀재로 통하는 프랑스의 젊은 기수다.40대로 「젊은」 디자이너로 프랑스의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한번도 받기 힘든 황금골무상을 86년과 88년 받았다.87년에는 뉴욕 패션디자이너 협회로부터 패션오스카상도 받았다.그의 실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특징이다.격정적이며 감각적이고도 강렬한 표현을 시도한 게 짧은 기간에 세계 최고수준의 디자이너로 끌어올린 요인이다.빨간색과 노란색 등 화려한 색과 검정색을 유난히 좋아한다. 크리스티안 라크르와는 51년 남프랑스의 아를르에서 태어났다.어릴적부터 바로크시대의 유머와 전통적인 관습 영향을 복합적으로 받으며 자랐다.그림그리기를 좋아하면서 자신만의 패션세계를 꿈꾸어갔다. 몽펠리에 대학에서 예술사 문학 영화전반의 예술학 학위를 받은 뒤 73년 소르본 대학과 에콜 드 루브르에서 17세기 의상학 논문을 준비하며 박물관 큐레이터의 꿈을 키운다.그 뒤 반려자가 된 프랑소와즈를 만나면서 디자이너로 재능을 뽐내게 된다. 기폴랑의 조수와 도쿄 왕실디자이너도 지냈다.87년 LVMH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지원을 받으며 회사를 세워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선보이게 됐다. 94년에는 캐주얼한 바자(bazar)가 나왔다.처음부터 나온 라크르와 보다 30∼40% 싼 대중적인 작품들이다.그가 그동안 일관되게 추구해온 최고라는 명성외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옷을 입히려는 회사의 경영전략에 따른 것이다. 올해에는 진종류도 선보였다.90년대들어 백·벨트·스카프·넥타이·모자·안경 등도 매년 나오고 있다. 94년부터 국내에도 판매된다.현재 갤러리아백화점·롯데백화점 잠실점·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서 판매된다.재킷은 30만∼1백30만원,스커트와 바지는 각각 20만∼40만원,블라우스는 30만∼70만원,원피스는 30만∼70만원,티셔츠는 20만∼40만원,니트는 30만∼70만원이다.
  • 발레리나 문훈숙(이세기의 인물탐구:114)

    ◎영혼을 춤추는 황색요정/국내외 공연 7백회… 한국발레 대명사/푸에테 36호 회전… 동양인 핸디캡 극복 발레리나 문훈숙,그의 춤추는 모습은 바람에 날려 떠다니는 공기의 정,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비실체적 이미지다.그의 부단한 변용과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깃털 같은 비약은 지상의 것같지 않은 눈부신 백색광을 무대곳곳에 흩뿌린다.실제로 그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올백으로 곱게 올려빗은 머리와 가늘고 희고 수줍은 모습에서 흡사 그가 춤추는 「백조」나 「레실피드」 혹은 「지젤」의 일면을 발견하게 된다. 평론가 김경애에 따르면 「이른바 한국 발레의 대명사로 지칭되는 그는 어느덧 무용계정상에 우뚝 서서 그가 아니고는 한국발레를 말할 수 없다」는 평을 듣게 된 위치다.「단지 춤잘추는 발레댄서일뿐만 아니라 그가 우리 발레에 끼친 공로는 참으로 지대하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지난 89년 러시아 키로프발레단 초청으로 러시아 마린스키극장에서 「지젤」공연을 가졌을때 극장을 가득 메운 발레본고장의 관객들로부터 7차례이상의 열광적인커튼콜을 받았고 「춤추는 동양의 진주」 「황색요정」의 돌풍을 불러일으키면서 그는 일약 국제무대의 주역으로 도약했다.동양인으로서는 넘볼 수 없던 고난도의 푸에테 36회 회전으로 발레 콤플렉스를 일시에 불식시키는 순간이었다. ○발레계 발전 지대한 공헌 그는 또 춤의 직업성을 투철하게 각인시킨 본격적인 직업발레리나이기도 하다.그가 소속한 유니버설발레단은 「정부의 지원이 없는 민간단체로서 국립발레단을 넘어서는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겼다」는 평을 듣는다. 고전발레에서 창작발레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700여회의 공연을 기록했고 볼쇼이의 안드레스 리에파 키로프의 알렉산더 쿠르코스 아메리칸발레 시어터의 케빈 매켄지 같은 기라성같은 세계적 발레댄서들과 파트너를 이루었으며 그중에서도 「심청」은 우리 발레 레퍼토리로서는 세계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어 평론가 김태원은 장면장면을 정확하게 재현해 낸 문훈숙을 향해 「지적인 발레리나」란 명칭을 장식해 주고 있다. 모든 무대예술이 그렇듯이 춤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대스타가 절대 요구되는 예술이다.더구나 발레는 눈으로 감상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문훈숙을 이 시대 「스타」의 한사람으로 손꼽는 데 주저할 사람은 없다. 그가 스타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재능과 자기 노력,그리고 춤예술이 스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을 기민하게 파악한 유니버설 발레단의 탁월한 기획력이 뒷받침한 때문일 것이다.그런 행운의 세례를 받아 오늘에 이르렀고 그는 그런 의미에서의 노력가였으며 또한 자신이 노력한 만큼의 상급을 받은 행운아이기도 하다. ○로잔발레콩쿠르 첫 입상 그는 현재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에다 선화학원 이사장 한국문화재단부 이사장 한국무용협회 최연소 이사지만 직함에 어울리는 권위나 오만이나 섣부른 흐트러짐은 어느 부분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긴 목선과 긴 팔,활처럼 휘는 긴 속눈썹과 함께 그 얼굴은 아직 소녀의 티를 벗지 못한 채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정겹게 따를줄 알고 아직은 「피자」를 좋아하는 신세대 분위기를 품고 있다. 아침 9시 반에 성동구 능동에 있는 발레단사무실에 나와 하오 3시반까지 연습,어릴 때부터 기숙사생활이 몸에 밴 독립심이 강한 기질로 한가지 일에 몰두하면 꾸준히 일을 성취하는 형이다.정교한 생김과는 달리 전혀 까다롭지 않아 단원들이 마시던 커피잔을 거둬 씻거나 어질러진 소품을 정리하기도 한다.그의 성격은 약간의 낯가림과 수줍음이 있지만 그의 후배인 강수진이 「외국생활의 외로움과 숱한 경쟁을 이겨내고 세계가 주목하는 발레리나가 된 것」을 환영하여 지난 6월 강수진초청 「지젤」공연을 마련할 만큼 관대하고 포용력이 큰 편이다. 한국문화재단의 박보희씨와 윤기숙씨 사이의 3남3녀중 넷째.밀밭을 스치는 바람이나 도약하는 새의 비상등 미세한 움직임에 대해 예민한 감응력을 지닌 그는 『춤은 일찍부터 삶의 일부로서 나의 내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고 말한다. 워싱턴에서 태어나 74년부터 리틀엔젤스에서 세계순회공연에 참가했고 미국 체스터브룩 초등학교졸업후 선화중에 오면서 애들리언 델라스등 철저한 외국인 발레교사들로부터 「날카로운 테크닉」을사사받았다.한국인으로서는 처음 스위스 로잔발레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미국 오하이오발레단과 워싱턴 발레단에서 솔리스트로 활약,『발레리나는 즐기기보다 보여주기 위해 최고로 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터득한 후에도 춤추는 것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17세때 한때 가벼운 슬럼프를 겪었다.그러나 철저하고 혹독한 훈련을 극복한 끝에 「발레의 참맛」을 알게 되면서 안나 파블로나 알리시아 마르코바 같은 신화적인 무용수를 꿈꾸게 되었다. 문선명 통일교교주의 차남(흥진씨)과 21살되던 해 미국에서 약혼,결혼을 불과 몇달 앞두고 약혼자가 교통사고로 타계하자 「인생은 영원할진대 지상에서 못다한 백년해로 천국에서 하겠다」며 영혼 결혼을 간청한 것으로 한때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그때부터 그의 이름 박훈숙 대신 부군의 성을 따서 문훈숙을 사용하게 되었고 국제무대에서는 통상 「줄리아 문」으로 불리고 있다.지금은 한남동시댁에서 5년전에 입양한 아들(신철·유치원)을 향한 모성의 행복에 젖어있다. ○문선명 차남과 영혼결혼 스타는 아름답고 그들의 감정은 관객을 변화시킨다. 어느 때는 날개처럼 어느 때는 비누방울처럼 가볍게 비상하고 비약하고 비행하면서 「인간 영혼의 가장 고매한 정서를 표현」하는 그의 테크닉은 장대한 포물선과 살아있는 나선을 커브시키면서 「천상의 꽃밭을 수놓는 신비로운 나비」로 무대를 날고 있다. 『육체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심정의 세계를 표현하는 참예술인이 되리라』 그는 45세까지 춤추는 것이 소망이지만 어쩌면 마사 그레이엄처럼 80이 넘어서도 무대에 서있을때 서있는 자체만으로 이미 춤으로서 관객을 눈부시게 할지도 모른다. 몸이 악기인 춤예술에서 그는 지금 한창 생동감에 넘쳐 물오른 장미와 같은 시기다.무용의 세계에서 오랫동안 생명력을 잃지 않고 불멸의 광채로 남고 싶어하는 그를 향해 「우리시대 자랑스러운 신데렐라」로 표현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연보 ▲1963년 미국 워싱턴 출생 ▲76∼79년 선화예고에서 발레 전공.애들리언 델라스 사사 ▲79∼81년 영국로열발레 및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수학(마리카 베스브라소바 사사),미 오하이오발레단 솔리스트 「비애」 출연 ▲82∼84년 미 워싱턴발레단 솔리스트 「헨델축하」 출연 ▲84년 유니버설발레단(UBC)창단기념공연 「신데렐라」 주역 ▲85년 일본 대만 등 5개도시에서 「세레나데」「흑조 그랑파」주역 ▲86년 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전무용제 박용구대본 「심청」주역 ▲87년 일본 말레이시아 등 6개도시 「심청」 「호두까기 인형」 주역 ▲89년 키로프발레단초청 「지젤」주역(키로프 마린스키극장) ▲90년 러시아 노던팔마이라 페스티벌초청 「레실피드」,레닌그라드 백야제초청 「돈키호테」 주역 ▲91년 뉴욕 이글레프스키발레단초청 「호두까기 인형」,「상트 페테르부르크 르네상스를 위한 갈라텔레톤」행사초청 「지젤 파드두」,모스크바 크렘린궁전극장 아메리칸발레 페스티벌 참가 ▲92∼96년 키로프발레단초청 「돈키호테」,「춤의 해」기념 「백조의 호수」등 국내및 해외 50여개도시순회등 700여회.12월 20∼25일「호두까기 인형」(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현재〉 유니버설발레단단장겸 수석무용수,한국무용협회이사,학교법인 선화학원이사장,한국문화재단 부이사장 〈수상〉 문학의 해 기념 「가장 문학적인 발레리나상」 MBC문화스페셜 선정 「4월의 예술가상」 한국발레협회상(96년)
  • 포르노그라피의 발명/린 헌트(화제의 책)

    ◎16∼19C 외설성·근대성의 상관관계 포르노그라피가 지니는 여러 층위의 의미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 논문집.1500∼1800년 사이의 서유럽을 배경으로 외설성과 서구 근대성의 상관관계를 밝힌다.16,17세기의 포르노그라피는 대체로 기질상 자유사상을 지닌 도시귀족이었던 남성 엘리트 독자들을 위해 쓰여졌다.또 18세기에는 포르노그라피의 주제가 인민주의적 담론에까지 침투함으로써 독자층이 확대됐다.그러나 프랑스 혁명은 유럽 전역에 포르노그라피 단속의 기운을 불어넣었다.그후 비판성 짙은 정치적 포르노그라피는 위축됐으며,성적 도발에 치중하는 것으로 포르노그라피의 성격이 변모됐다. 이 책에서는 또 문학비평과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도출한 개념들을 이용해 포르노그라피의 언어가 지니는 외설성의 문제를 고찰한다.「포르노그라피의 정치학」 「포르노그라피의 물질주의적 세계」 「자유사상의 창녀:마르고에서 쥘리에트까지 프랑스 포르노그라피속의 매춘」 등 10편의 논문이 실렸다.책세상 조한욱 옮김 2만원.
  • 멕시코 멕시코시티(세계 문화유산 순례:14)

    ◎3천년의 역사가 숨쉬는 거대한 「도시 박물관」/「소칼로」 대성당앞 광장에는 화려한 의상의 원주민들이 날마다 향냄새나는 껌질 태우며 멕시카제국의 영광 되찾아 줄 신을 부르는 의식을 올린다 멕시코는 전역에 걸친 유적지가 자그만치 4만여곳에 이르는 것을 보면 나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적지인 셈이다.이 가운데 멕시코시티는 유네스코로부터 도시 전체를 하나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대단위 유적지다.올메카,테오티와칸,마야 등 고대문명의 흔적들은 물론 스페인 정복기(1521∼1810년)문화까지를 포함한 3천여년의 역사가 도시 곳곳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립인류학박물관은 멕시코시티 시내 중심가에 있다.멕시코 문명의 실상을 조감하자면 반드시 들러야 했다.1964년에 개관됐다.멕시코 전역에 흩어진 유물들을 시대별로 구분해놓은 10개 전시실을 갖춘 1층에서 원주민의 생활상을 재현한 2층 민속학박물관으로 연결됐다.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을 맨 먼저 맞는 유물은 「올메카의 머리상」이다.멕시코만 인근 타바스코주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올메카 문명을 일으킨 주인공들의 석상이기도 했다.입술이 두껍고 코가 낮았다.눈까지 작아 영락없는 동양인 모습을 한 이같은 큰 머리 석상은 멕시코에 많이 남아있다.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질감이 풍부하고 투박한 모습에서 모태문명의 원시성이 짙게 우러났다. 올메카 문명은 발생하고 나서 두 갈래로 갈렸다.그 한줄기가 멕시코 중앙고원의 테오티와칸 문명(AD 200년경∼AD 650년경)·톨테카 문명(AD 700∼AD 1100년)·멕시카 문명(14세기∼16세기)이다.이와 더불어 멕시코 남부 및 유카탄 반도와 과테말라·엘살바도르·온두라스에서는 전·후기 마야문명(AD 200년경∼∼AD 1521년)이 발전을 거듭했다. 멕시코에 와서 아주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멕시코 문명에서 흔히 거론되는 아즈테카(Azteca)문명이 그것인데,이를 멕시카(Mexica)라는 용어로 쓴다는 점이었다.멕시코 사람들은 이를 전설과 연관시켰다. 전설은 1150년경까지 아지틀란이라는 곳에 살던 아즈텍족이 새로운 땅을 찾아 유랑생활을 하던중 우이칠로포치틀리라는 신을 만나는데서 시작됐다.이때 신이 하늘을 날고있던 독수리를 가리키며 『너희에게 번영과 안정을 줄테니 저 독수리가 뱀을 물고 선인장 위에 앉는 곳에 나라를 세우라』는 계시를 내렸다.아즈텍족이 독수리를 쫓아 가보니 과연 독수리가 뱀을 물고 선인장 위에 앉는 곳이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현재 멕시코시티의 한 부분인 테노치티틀란이라는 얘기다.그리고 신은 또 『너희는 아지틀란을 떠났으니 이제부터는 아즈텍족이 아니라 멕시카족이라고 부르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멕시코시티에서 유적관람을 위한 동선은 박물관에서 과달루페 성당으로 이어졌다.중심가인 레 포르마 거리 북쪽끝에 위치한 이 성당은 멕시코인들에게는 정신적 지주로 우뚝 서있는 성소다. 1533년 건축된 이래 수세기동안 전세계 성직자와 신도들의 순례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성당은 1531년 12월12일 테페약 언덕을 지나던 한 농부앞에 발현한 성녀 과달루페의 계시에 따라 축성됐다고 한다.발현 당시 과달루페는 한겨울에 장미를 만발시키는 기적을 행했다는 이야기도있다.이 때문에 해마다 성녀발현일이면 예수의 고행을 따르려는 신도들이 성당 입구부터 강단까지 무릎으로 기어 열정적인 신앙심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과달루페 성당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3문화광장」이 있다.고대 문명·식민지 문명·현대 문명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상거래 지역으로 짐작되는 멕시카족의 틀라텔롤코 피라미드와 17세기에 지어진 산티아고 성당,그리고 현 멕시코 외무부 건물이 모여있는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테노치티틀란의 위성도시 성격을 띠었던 틀라텔롤코는 당시 멕시코 계곡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는 것이다. 「3문화광장」에서 다시 20여분가량 시내로 차를 몰아 「소칼로 광장」에 닿았다.「소칼로 광장」은 본래 테노치티틀란이었다.그런데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바꿔 버렸다는 것이다.사방이 각각 240m나 되는 이 광장은 북쪽에 대성당,동쪽에 국립궁전,남쪽에 연방정부 청사가 자리잡고 있는 스페인 식민시대의 전형적인 도심구조를 보여주었다. 「소칼로 광장」의 대성당은 200여년에 걸쳐 완공됐다.대성당 자리는 본래 멕시카인들이 인신공양한 해골들을 모아두던 곳이었다.본 건물은 1548년 완공됐으나 17세기 들어 남쪽부분이 바로크 양식으로,북쪽부분이 네오클래식 양식으로 확장돼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모습이 하모니를 이루었다.이 성당의 검은색 피부를 가진 예수상은 유명한 성물이다.식민정복지에서 원주민을 끌어 안으려 노력한 선교의 한 단면이 들여다 보였다. 성당앞 광장에서는 날마다 흥미로운 의식이 벌어졌다.새의 깃털을 단 화려한 머리장식에 의상을 차려입은 원주민들이 향냄새 나는 코팔나무 껍질을 모닥불처럼 태웠다.그리고 원무(원무)를 추며 흥겹게 돌아갔다.또 하나같이 프라일레라는 나무껍질을 말려 엮은 장식을 발목에 달아 춤을 추며 돌아갈 때마다 「딱,딱」부딪치는 소리를 냈다.그렇게 코팔타는 냄새와 프라일레 소리로 지난날 멕시카제국의 영광을 되찾아줄 신을 날마다 불러댔다. 그런데 이 의식을 유심히 살펴보노라면 원주민 무리속에서 다수의 백인들이 발견됐다.백인 취급을 받지 못하고,그렇다고원주민쪽에도 끼지 못하는 멕시코의 에트랑제들,이들을 「패스포트 퀘스천」(Passport Question)이라고 불렀다.멕시카 후예들에게 동화되고 싶어하는 이들의 몸부림은 역사의 아이러니 바로 그것이었다.
  • 조선철화백자(외언내언)

    지난달 31일 뉴욕 크리스티 미술품경매장에서 17세기 조선철화백자항아리가 7백65만달러(한화 63억4천9백만원)에 팔려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값은 예정가보다 무려 20배나 되며 세계 도자기 경매사상 최고가에 해당된다.그전까지 도자기 경매가 최고 기록은 15세기 조선청화백자 보상당초문접시.94년에 3백8만달러(25억5천만원)에 낙찰됐었다. 백자 바탕에 산화철로 그림이나 무늬를 그려넣는 철화백자는 17세기에 유행했던 수법.흰바탕에 주홍빛 색감이 선연하게 돋보인다.용이 구름을 뚫고 틀임하는 그림을 넣은 이 항아리는 왕실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그림이나 항아리 모양새가 아무리 좋은 진품이라 하더라도 도자기 한점값이 63억여원이라니 서민들에게는 믿어지지 않는다.근래 우리 고미술품에 대한 국제경매시장에서의 평가는 상당히 높아졌다.특히 도자기 경우 최고가 1,2,3위를 우리 백자와 청자가 차지하고 있을 정도. 최고기록을 세우면서 이 항아리를 낙찰한 주인공은 누구일까.전화로 응찰했다는 것만 알려졌을뿐,베일에 싸여있다.한때 국제 미술품경매시장에서 엔화의 위세를 업고 일본인들이 싹쓸이 구매를 했었다.90년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반 고호의 「가쉐박사의 초상」이 그림으로는 사상 최고값인 8천2백50만달러(약 5백78억원)에 팔려나갔다. 르느와르의 걸작 「물렝드 라가레트」가 7천8백10만달러에 낙찰됐는데 놀랍게도 이 두점을 구입한 사람은 일본의 소규모 화랑이었다.진짜 주인은 따로 있었지만.이때문에 미국에서는 미국 미술관들이 대를 이어 소장한 명품들을 일본에 빼앗긴다고 개탄의 소리가 높았다. 우리의 문화재가 세계시장에서 진가를 인정받고 있음은 나쁠 이유가 없다.그러나 최근 해외에서 유출된 문화재를 되사오면서 국내값보다 터무니없이 비싸게 거래하는데는 문제가 있다.우리끼리 경쟁해서 값을 올려놓기 때문이다.세계 최고가 백자항아리의 주인공은 누구인지 자못 궁금하다.
  • 전남 흥국사 독성탱화 나반존자(한국인의 얼굴:83)

    ◎홀로 수행전진… 신인의 풍모 불화는 전집을 장엄하게 꾸몄다.주로 본존부처를 모신 법당 전면에 그려 걸었다.그러니까 불상이 앉은 뒤쪽 벽이 불화가 걸리는 자리다.이를 후불탱화,또는 그냥 탱화라고도 부른다.요샛말로 하면 탱화는 신앙이 깃든 절집 필수의 인테리어용 그림이다.그러나 오늘날 절집에 전해내려 오는 작품 가운데 17세기 이전의 탱화를 쉽게 찾아볼 수 없다. 후불탱화는 고타마 싯다르타,곧 석가모니 부처의 영취산 설법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도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불·보살 탱화,여러 신상을 그린 신중탱화,조상숭배를 위한 영단탱화 등은 영산회상도에서 떨어져 나간 불교회화인 것이다.이는 신앙이 한 군데로만 쏠리지 않고 나누어지는 이른바 신앙분화 현상을 의미했다. 전남 여천시 중흥동 흥국사가 소장한 독성탱화는 비단바탕에 물감으로 그린 견본채색의 그림이다.그림에 대한 기록인 화기에 「동치12년계유8월26일」에 완성했다는 사실을 남겨놓았다.그러니까 1873년에 제작한 탱화다.그리고 탱화속의 주인공을 남무나반존자로 밝히고 시주자의 이름까지 적었다. 독성은 바로 나반존자다.석가모니 부처의 제자로 천태산에서 혼자서 도를 닦아 깨달았다고 한다.스스로 깨달아 연각에 이른 것을 보면 나반존자는 퍽 지혜로웠던 모양이다.혼자서 늘상 살아온 수행의 삶을 대접해주느라 독성각을 따로 지어 독성탱화를 모시는 절도 있다.그러나 흥국사 독성탱화에는 보광전에 봉안하기 위해 탱화를 제작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흥국사 독성탱화의 나반존자는 나이가 들어 연로한 모습이다.그래도 깨끗하게 늙어 맑은 인상이 와닿는다.머리꼭지의 머리칼은 빠진지 오래이나,가장자리로 돌아간 백발마저 시원하게 밀어버렸다.그러지 않아도 숱 많은 흰눈썹이 나이 탓으로 마냥 웃자라 눈두덩을 덮었다.나반존자답게 지혜로워 보이는 눈은 아직도 총명을 잃지 않았다.날이 무디지 않은 코 밑으로 알맞게 자란 콧수염이 붉은 입술과 기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책상다리로 결가부좌한 자세가 부드러워 보이는 나반존자.어딘가에서 선인의 풍모가 우러난다.홀로한 수행이 몸에 배어 그러려니도 해보지만,보면 볼수록 신선을 닮았다.
  • 조선백자 765만달러 낙찰/「철화 용문 항아리」 크리스티경매서

    ◎세계 도자기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 조선 철화백자가 한국 도자기의 세계시장 경매사상 최고가로 낙찰됐다. 지난달 31일 뉴욕 크리스티사에서 열린 한국미술품 경매에서 17세기초 조선백자 철화용문 항아리가 7백65만달러(약 63억원)에 낙찰돼 지난 94년 조선 청화백자 보상당초문 접시(3백8만달러)의 한국도자기 최고경매가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용 한마리가 구름속의 진주를 물고 있는 철화문양이 그려진 이 백자는 크기가 높이 48㎝,지름 38.3㎝로 볼록한 상반부가 하단으로 급경사를 이루며 좁아지는 전형적인 백자모양을 하고 있다. 이날 경매에서 25번째로 경매에 부쳐진 이 도자기는 당초예상가(40만∼60만달러)를 20배 가까이 웃도는 가격으로 팔렸다. 또 백자 112개 품목이 출품된 이날 경매에서는 12세기 중엽 고려시대 청자철재추화삼엽문매병도 2백70만달러(22억4천1백만원)에 팔렸다.
  • 세계 정상 「빈필」수석 플루티스트/볼프강 슐츠 내한 독주회

    ◎5일 예술의 전당서… 주빈 메타와 협연 세계적인 실내악단 「이무지치」의 악장으로,또 솔리스트로 명성이 높은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 살바토레 아카르도(55)의 내한 연주회가 7∼8일 서울 예술의 전당 음악당과 대전 과학문화센터에서 각각 열린다.공연시간 하오7시30분. 아카르도는 15세때 제네바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고 17세때 파가니니콩쿠르에서 대상을 차지하는 등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연주자.초기 바흐에서부터 현대 베르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자랑하는 관록의 연주자다. 특히 파가니니의 6개 협주곡을 초연하고 24개 변주곡을 완주하는 등 파가니니의 곡에 정통하다. 연주곡목은 슈베르트의 「론도 브릴란테(화려한 론도)」,슈만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A장조 105번」,야나체크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파가니니의 「베니스의 사육제 주제에 의한 변주곡」 등. 736­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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