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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몽준 축구협회장 4선 성공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4선에 성공했다. 정 회장은 18일 축구협회 대의원총회에서 실시된 회장 선거에서 만장일치로 차기 회장에 당선됐다. 대의원 유효표 23표를 모두 얻어 경선에 나선 김광림(63)씨를 일축했다. 이로써 정 회장은 지난 93년부터 4선을 기록하며,2008년까지 16년간 한국축구의 수장을 맡게 됐다. 정 회장은 이날 취임기자회견에서 “4년 뒤에는 물러나겠다.”고 밝혔지만 그 기간 동안 풀어야 할 대내외적 과제는 만만치 않다. 우선 정 회장 스스로 강조했듯 ‘축구외교’를 통한 한국축구의 위상 확립이 시급하다.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이면서도 그동안은 한국축구의 발전만을 위해 뛰어온 측면이 많았기 때문에 앞으로는 한·중·일을 포함해 북한 등 동아시아 지역의 축구발전과 유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2002한·일월드컵으로 인해 강화된 아시아지역 발언권을 바탕으로 FIFA나 아시아축구연맹(AFC) 등 각종 회의에서 아시아와 한국축구의 위상 강화에 역량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내부적으로는 국가대표팀과 프로축구의 공존을 위한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정 회장은 2007년 K리그의 ‘업다운제’를 시행하기 위해 현재 13개에 머물고 있는 프로팀의 수를 16개까지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프로구단의 현실에서 신생팀의 창단보다는 경찰청팀 등 기존의 K2리그 팀들의 프로화로 팀 수를 늘리는 게 현실성이 있다는 뜻을 드러냈다. 구단들의 부담을 감안해 당분간은 ‘업’제도만 운영하고,‘다운’제도는 추후 채택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뜻도 내비쳤다. 한·일월드컵 유치 등 이미 굵직굵직한 업적을 남긴 정 회장이 남은 4년간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정몽준 회장 취임 일성 “건설적인 비판이라면 언제든지 수용할 것이며,4년 뒤 임기를 마치면 물러나겠다.” 16일 4선에 성공한 대한축구협회 정몽준 회장은 취임일성으로 이같이 말문을 열었다. 선거과정에서 드러난 축구계 내분을 봉합할 방법은. -대화는 항상 하려고 한다. 많은 분들의 의견을 듣고 있으며, 좋은 방법을 생각해 보겠다. 건설적인 비판이라면 언제든 수용하겠다. 앞으로 4년간 하고 싶은 일은. -초·중·고 축구 등 풀뿌리 축구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 또 2007년 17세 이하 세계 청소년 대회를 유치하고 싶다.57개의 축구장도 2년 안에 새로 지어 축구 인프라를 완성할 계획이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남북단일팀 가능성은. -단정해서 말하기는 어렵다. 북한은 최근 독일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 진출하는 등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북한과 우리나라의 월드컵 동반진출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축구외교를 위한 향후 계획은. -대한축구협회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이기도 하다. 이는 아시아 45개국 회원들이 뽑아준 것이다. 그동안 FIFA 부회장으로서 우리나라를 위해 좀더 힘을 쏟느라 상대적으로 아시아 축구나 세계 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이젠 사람입국이다] 4.지역이 주민을 살린다

    [이젠 사람입국이다] 4.지역이 주민을 살린다

    ■ 獨 ‘학습도시’ 예나 |예나(독일) 장택동특파원|독일의 작은 도시 예나에 있는 평생학습센터(volkshochschulen)의 한 강의실.40∼60대 남녀 8명이 서툰 영어로 교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화 주제는 직업.“주간근무자와 야간근무자가 교대로 일하는 근무형태를 뭐라고 하죠?”라고 교사가 묻자 카스치 클라우스(65)는 한참을 고민하다 “교대근무제(shift working)”라고 대답한다. 다른 ‘학생’들도 자신의 직업과 하고 싶은 일 등에 대해 영어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왜 뒤늦게 영어 공부를 시작했느냐고 묻자 클라우스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을 만나러 여행을 가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40대 여성은 “옛 동독 지역에는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영어를 배워두면 직장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나는 도시 전체가 학습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는 ‘학습도시’(learning city) 가운데 하나다. 지난 200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작성한 ‘새로운 학습경제에서의 도시와 지역’ 보고서에서도 모범 사례로 소개됐다. ●정부-자금, 기업-채용, 대학-교육 맡아 예나의 평생학습체계는 정부-기업-대학 등 3개의 축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시에서는 평생학습센터를 운영하는데 정치, 문화, 건강, 언어, 직업, 학과교육 등 6개 코스가 있다. 일반인에게는 건강과 언어 코스의 인기가 높다. 학과교육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고졸 자격증을 주기 위한 과정이다. 예나시 평생학습센터에는 1000여개의 과목이 개설돼 있고, 예나시가 속해 있는 튀링겐주 전체로 보면 과목수가 1만개를 넘는다. 지난해 예나시 평생학습센터 운영자금은 91만유로. 이 가운데 67%는 주정부와 시에서 지원했고 33%는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로 충당했다. 구드룬 루크 평생학습센터장은 “예나시민 11만명중 한 해에 1만명 이상이 이 곳에서 강의를 듣는다.”고 설명했다. 예나의 대표적 기업인 광학업체 예놉틱(Jenoptik)과 칼자이스(Carl Zeiss Jena)는 자사 직원들은 물론 협력관계에 있는 중소기업 직원들에게 실무 위주의 기술교육을 실시한다. 실업자들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노동사무소나 예놉틱이 설립한 재단에서 취업에 필요한 훈련을 받는다. 두 기업은 이 지역 대졸자들과 직업훈련을 받은 실업자들을 대부분 채용함으로써 학습동기를 강화시키는 역할도 한다. 450년의 전통을 가진 프리드리히 실러 예나대학은 기업의 위탁을 받아 직원들에게 고급기술을 교육한다. 전통적으로 인문학이 강한 대학이지만 최근에는 과학·기술분야를 강화하고 있으며, 기업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기술력 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다. 예나의 평생학습체계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예나대학에서는 17세기부터 평생교육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다. 19세기에 물리학자인 에른스트 아베와 기업가 칼 자이스가 예나의 현대식 평생교육체계의 틀을 짰다. 이들은 재단을 설립, 직원들의 교육을 지원했고 시민교육의 요람 역할을 해온 ‘폴크스하우스’를 세웠다.1919년에는 시에서 평생교육센터를 설립했다. ●GDP 국가평균 39% ‘영세도시’ 탈출 나치 집권기와 동독 정권기간 동안 예나는 경제적인 침체기를 겪었고 평생교육의 발전도 정체됐다.1989년 독일 통일 당시 예나가 소속된 튀링겐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독일 평균의 39%에 불과했다. 통독 이후 칼 자이스에서 1만 6000명의 노동자가 한꺼번에 해고되기도 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예나에는 200여개의 중소기업과 생명공학 기업들이 생겨나면서 6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면서 경제회복을 이끌었다. 마그렛 프란즈 예나시 문화교육국장은 “현재 예나의 실업률은 독일 전체 평균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평생학습이 생활화돼 있는 예나는 교육수준이 높고 기술력을 가진 우수한 인재가 풍부하기 때문에 외부 투자를 많이 유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taecks@seoul.co.kr ■ 英켄트주 지원체계 |켄트(영국) 장택동특파원|영국 남동부의 켄트주(州) 딜(Deal)에 위치한 토마토 재배·판매업체인 WS켄트. 온실에서는 50만 포기의 토마토 줄기가 곧게 자랄 수 있도록 지지대에 감아주는 작업이 한창이고, 공장에서는 직원들이 토마토를 상자에 차곡차곡 넣어서 포장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직원들은 하나 둘 휴게실을 찾는다. 이곳에서는 직업지원센터(JCP)의 위탁을 받은 상담원이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회사는 120여명의 직원 가운데 40여명을 감원하기로 하고 해고예정자지원서비스(RSS)를 신청했다. 상담을 하러 온 직원 제인 히치콕(31·여)은 “나도 해고될 수 있기 때문에 이력서를 잘 쓰는 법 등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데 필요한 방법을 배우러 왔다.”면서 “실제로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완전히 버림받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회사서 농기계 기술 교육비 대줘 네빌 애트우드(31)는 회사를 떠나게 됐다. 그는 3년 동안 인근 대학에서 전기기술을 배워 자격증을 땄고, 회사에서 학비 지원을 받아 농기계 분야 12개의 과목을 이수했다. 그는 “전기 쪽이든, 농기계 쪽이든 일자리를 구하는 데 걱정은 없다.”면서 “나이가 많은 사람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직원들이 늘 미래에 대비해 뭔가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켄트·햄프셔 등 7개 주를 아우르는 영국 남동부는 공업단지가 밀집된 지역으로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16%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땅값과 인건비가 오르면서 많은 회사들이 동유럽이나 인도로 옮겨갔고 대량해고가 뒤따르고 있다. 특히 켄트주는 90% 이상의 기업이 직원 200명 미만의 소규모 제조업이어서 직원들은 해고 위기에 놓여도 별 지원을 받지 못했다.1999년 설립된 남동 잉글랜드 개발청(SEEDA)은 이같은 지역적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먼저 SEEDA는 지난 2003년 10월부터 60만파운드를 투자,JCP와 공동으로 RSS를 운영하고 있다.SEEDA와 JCP는 모두 정부에서 출자한 기관이다.RSS는 해직이 되기 전 전문가가 해고 대상자를 찾아가 1:1 상담을 통해 새 직장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다. 개개인의 필요에 따라 면접 기법, 이력서 작성 요령 등 구직활동에 직접 필요한 부분을 알려주기도 하고 새로운 직장을 찾을 수 있도록 훈련·교육을 주선하기도 한다. 비용은 국가에서 지원한다. 지금까지 166개 기업의 직원 3571명이 RSS의 도움을 받았다. ●170명 해직… 9개월만에 80% 재취업 여객선 운영회사인 스테나라인은 대표적 RSS 성공 사례다. 이 회사는 지난해 3월 170여명이 근무하는 켄트주 애쉬포드의 지역본부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스테나라인은 5월 RSS를 신청했고 모두 9차례에 걸쳐 RSS 상담이 이뤄졌다. 특히 50세 이상 고령자나 혼자 아이를 키우는 직원 등 구직이 어렵고 절실한 사람들을 집중 지원했다. 직원들을 바로 채용할 수 있도록 관심을 보이는 회사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그 결과 80%가 넘는 직원이 재취업에 성공했다. 이 회사는 지역본부 폐쇄를 결정한 뒤에도 직원들의 재취업을 위해 9개월 이상 운영을 계속하고 있다. 믹 앰브로세 고용담당부장은 “오래 근무한 직원일수록 재취업에 대한 준비가 안돼 있었다.”면서 “스스로를 냉철하게 분석하도록 한 뒤 장점을 찾아나갔다.”고 설명했다. SEEDA는 해고 대상자를 상대로 한 RSS 외에도 다양한 교육·훈련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취업에 필요한 기본기술 교육은 물론 메드웨이대학 등 지역 대학에 위탁해 전자·정보통신·생명공학 분야의 고급기술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정보통신 분야 집중교육(CC4G), 인터넷을 이용한 교육 등도 병행한다. 매튜 트레이스 SEEDA 교육훈련국 과장은 “주민들은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고 닥쳐올 위기와 기회에 대처할 수 있게 된다.”면서 “2012년까지 노동생산성과 취업률에서 이 지역을 세계 15위권 안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taecks@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 정감록에 미국이 나온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 정감록에 미국이 나온다?

    1945년 8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왔다. 그러나 미처 봄날을 음미할 새도 없이, 제2차 세계대전의 승자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진출해 38선을 그었다. 그 때 어느 유명한 신종교 지도자가 신도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선포했다.“미소의 두 힘이 서로 상대하여 버티나 태양이 중천에 오르면 밝은 세계가 되리라.” 태양은 누굴까? 중천에 오른다 함은? 전후 맥락 없이 튀어나온 이 선언에 신도들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메시지만은 분명했다. 미국과 소련이 이 땅에서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것은 잠깐이고, 곧 민족의 구세주가 등장하여 외세를 물리치게 된다는 것! 누가 구세주일까? 김구, 여운형, 조만식, 이승만, 박헌영…. 아니면 김일성? 세상 사람들은 거물 정치가들을 놓고 누가 믿을 만한 민족지도자인지를 점쳤다. 극좌파, 중도파, 극우파의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각자 선택의 폭은 넓었으나 민심의 합일점은 없었다. 지난한 시기였다. 그 때 정감록의 신봉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국난을 뚫고 나갈 진인은 어디 있는가. 계룡산에서 도를 닦았다는 진인, 지리산에서 뛰쳐나온 진인, 주역에 능통한 진인, 부처, 예수, 공자의 영이 내린 진인이 속속 등장했다. 그러나 고대해 마지않던 진인은 나오지 않았다. 해방정국은 갈수록 꼬이더니 남북분단은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정감록’에 보이는 6·25전쟁 제2차대전 이후 전세계는 미소를 정점으로 한 냉전질서에 편입되었다. 양측의 긴장이 팽팽해지더니 1950년 마침내 6·25전쟁이 터졌다. 한국이 안고 있던 내부 문제가 곪아 터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미소 양측의 대리전쟁이라는 설도 있다. 원인이야 어떻든 전쟁이 장기화될 때 괴로운 건 민중이다. 그들은 난리가 언제 끝날지, 살아갈 방도는 무언지 필사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정감록 신봉자들은 가족을 이끌고 병화불입지지(兵火不入之地, 난리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땅)를 찾아 숨는 사람도 생겼다. 정감록 예언에 따라 충북 단양군 영춘면 삼풍리로 숨었던 사람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긴데, 전쟁 내내 인민군은 커녕 국군도 본 적이 없었단다. 그들은 정감록의 영험을 믿는 듯했지만 그곳은 어느 편 군대도 진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지독한 오지였다. 꼼꼼히 정감록을 살피던 민중의 눈엔 요거다 싶은 예언 몇 구절이 눈에 띄었다.‘호랑이와 토끼해를 당하여 남북이 서로 솥의 발 같이 대치하리라.’ 우연히도 전쟁이 터진 1950년은 호랑이해인 경인년이었다. ‘금강산 서쪽과 오대산 북쪽은 12년간 도둑의 소굴이 된다.’는 구절도 있어 강원도 북부에 있는 금강산과 오대산을 경계로 남북이 무력 대치한다는 예언으로 볼 수 있었다. 다만 12란 숫자는 논란거리가 되었다. 남북의 대치기간이 글자 그대로 12년인가, 또는 갑자, 을축 이런 식으로 12지를 10간과 조합한 1갑자 60년인가? 총성이 멎은 지 벌써 52년째, 글자 그대로의 12년은 이미 지났고 60년 한 갑자가 되려면 8년이 남았다. 6·25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을 상징한다는 대목도 회자(膾炙)되었다.‘인천과 부평 사이 밤중에 배 1000척이 정박한다.’고 했다. 수도권에 ‘시체 더미’가 쌓인다고도 했다. 맥아더 장군이 수많은 전함을 거느리고 인천에 상륙했고 서울을 탈환했으므로 사람들은 그럴 듯하게 여겼다. 그러나 이 구절은 19세기 후반부터 민중을 떨게 했던 전쟁공포증의 흔적 또는 청일전쟁이 남긴 집단적 기억이 재현된 것이라고 나는 판단한다(연재 제1회 참고). ‘정감록’의 또 다른 구절도 민중의 눈길을 끌었다.‘두 서쪽 땅 곧 황해도와 평안도는 3년간 천 리 안에 사람과 불 때는 연기가 없을 것이요, 또한 동쪽 골짜기, 즉 강원도는 심히 꺼릴 땅이라.’ 사람들은 이 구절을 전쟁이 3년 동안 지속된 까닭으로 봤고, 뺏고 뺏기는 육박전이 벌어진 장소가 강원도였다는 예언으로 해석했다. 중공군의 개입,1·4후퇴도 예언되어 있었다.‘백두산 북쪽에서 오랑캐의 말이 긴 울음소리를 내면 평안도와 황해도 하늘에 원한 맺힌 피가 넘칠 것이다.’ 오랑캐라,1950년 한겨울 급작스레 대거 투입된 중공군으로 해석됐다. 중공군은 물밀듯 남하를 계속, 평안도 황해도를 삽시간에 휩쓸었다. 인해전술이란 말은 정감록에 안 보였지만 그 신봉자들에겐 1·4후퇴를 할 수밖에 없던 사정이 이해될 듯 했다. ●미국대통령을 ‘정도령’으로 착각? 그런데 ‘정감록’ 예언에 대한 기발한 풀이는 따로 있었다. 전쟁 당시 미국의 원수(元首) 트루먼! 트루(true)는 참 진(眞), 먼(man)은 사람 인(人)! ‘정감록’에 예언된 진인(眞人)은 다름 아닌 트루먼이라는 해석이다. 트루먼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의회의 자문도 받지 않고 미군의 파병을 결정했다. 트루먼이 아니었으면 공산군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어났다. 일제 식민지 후반, 특히 1937년 7월 중일전쟁 이후 민중의 살림살이는 참 고단했다.1945년의 해방도 반쪽짜리였고 민중의 형편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전쟁까지 터지자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바로 그런 시점에서 미국은 각종 구호물자를 한반도에 대량으로 투입하였다. 수만의 병력과 현대식 무기를 동원하여 전쟁도 수행했다. 사람들은 새삼 미국의 위력을 실감했다. 어떤 이들은 이처럼 구차히 살 바에야 차라리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기를 바랐다. 국회로 보내주기만 하면 미국에 가 달러를 더 많이 동냥해 오겠다며 표를 구걸하는 정치인들도 있었다. 그런 판국이라 미국 대통령을 진인, 정 도령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심지어 1953년 미국 대통령이 아이젠하워로 바뀌자 그가 진짜 정 도령이란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말을 주고받은 민중도 많았다.“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 그리고 일본은 일어난다!” 미국-믿다, 소련-속다, 일본-일어나다. 다소 장난스러워 보이는 말투지만 미소는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란 인식이 확산된 결과 생긴 민중의 구호였다. 비록 패전국이긴 해도 일본을 조심해야 한다는 다짐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오래 전부터 민중은 일본뿐만 아니라, 서양 강대국들을 경원시했다.1894년 동학농민군이 내건 4대 구호 중에 ‘축멸양왜(逐滅洋倭, 서양놈들과 왜놈을 내쫓는다)’란 구절이 있어 그런 분위기를 잘 설명해준다. 그러다가 일제 말기 조상 전래의 성, 말까지 빼앗기자 민중은 주변국가인 중국과 소련에 다소 기대를 걸었다.‘조지로 목친다.’ 이 말이 민간에 퍼졌다. 조지란 남성의 성기를 뜻하는 남부지방 사투리다. 그것으로 어떻게 목을 자를까? 조(조선), 지(지나, 중국), 로(로서아, 소련)가 힘을 합해 목(목인, 히로히토 일본 천황)을 벤다는 예언이었다. 민중의 소망을 담았지만 꽤나 섬뜩한 내용이다. 누구나 한 번만 들어도 절대 잊을 수 없게, 그러나 아무도 그 뜻을 눈치 챌 수 없게 은어에 담았다. ●‘황해도서 난리 발생’ ‘삼국분기설’ 들먹 ‘정감록’으로 6·25전쟁의 참혹함과 미국의 개입을 읽었다니 얼핏 이해가 잘 안될 수 있다. 예언서에 보이는 오랑캐는 만주족 같은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경고하는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고려 때는 북쪽으로부터 거란족, 여진족, 몽고족의 침입이 잇따르고 홍건적의 난도 있었다. 조선 초에는 여진족의 침입이 만만치 않았다. 인조 때는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족이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일으켰다. 서북지역은 이민족의 침입로가 되다시피 했고, 그 지역 민중은 외침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기도 했다. 외침의 기억은 민중들에게 잊지 못할 일이 되었고, 이것이 ‘정감록’에 ‘백두산 북쪽에서 오랑캐의 말이 긴 울음소리를 내고’ 라는 식으로 정착된 것이다. 오랑캐의 말울음 소리는 현대에 와서 중공군의 남하로 이해되었다. 이런 변화는 ‘정감록’을 처음 전파시킨 조선시대 술사(術士)들로서는 전혀 예측 못할 일이었다. ‘정감록’에는 외침과 무관하게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에서 발생할 난리가 예고되어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서북지방에 대한 차별이 무척 심해서 그 지역 사람들의 불만이 컸다. 순조 연간에는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 여러 고을을 휩쓸었고, 그 와중에 많은 인명이 살상됐다. 사실 서북지방은 18세기 이후 과거시험에서 많은 합격자를 배출했다. 그럼에도 푸대접을 받았다. 내가 조사한 바로는 ‘정감록’이 가장 먼저 등장한 곳도 서북지방이었다. 대다수 서북지방 사람들은 조선왕조의 종말을 마다할 일이 없었고 그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할 때, 북쪽에서 반란이 재발해 남북에 두 나라가 대치한다는 남북분국설이 정감록에 기록된 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된다. 기왕 분국설에 대한 말이 나온 김에 몇 마디 보태보겠다.‘정감록’에는 삼국 분기설도 나온다. 나라가 세 동강 난다는 예언인데, 이런 말은 특히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 유행했다. 우리 역사에 삼국시대도 있었고 후삼국시대도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고려 때도 이의민은 신라를 부흥시킨다는 구실로 경주일대를 소란케 했다. 이런 역사적 기억이 있어서겠지만, 민중은 나라가 혼란에 빠질 때면 3국 분기설을 들먹였다. 그런데 3이란 숫자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다. 미륵이 하생할 장소도 산이나 물이 셋으로 나뉘는 곳이었고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길지(吉地) 중에도 3도봉 같은 곳이 포함된다. 지금까지 알아 본 역사적 배경은 아랑곳없이 현대의 정감록 신봉자들은 ‘정감록’에 보이는 서북지역의 혼란상을 국토분단,6·25전쟁의 참상, 또는 1·4후퇴를 예언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민중의 예언 해석에는 시대적 맥락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할아버지 세대가 그 구절을 뭐라 해석했든, 나는 내 시대의 문제를 푸는 새 해석을 좇겠다는 식이다. 이런 태도에서 예언 문화엔 층위랄까 나이테가 보태졌다. 현대의 민중이 미 대통령 트루먼을 ‘정감록’에 언급된 진인으로 본 것은 어떤가. 진인이란 새 왕조를 열 국왕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정씨 성을 가진 이가 나타나 계룡산 아래 도읍을 정한다고 보는 것이 사실상 정설이다. 우리 역사에서 진인의 도래설이 처음 나타난 것은 17세기였다. 그 때부터 오랫동안 해도진인설(海島眞人說, 섬에서 진인이 나온다는 예언)이 인기를 끌었다. 역모를 꿈꾼 사람들은 늘 진인의 출현을 주장했을 정도다. 어쨌거나 진인은 기존질서에 대항해 싸울 영웅이었다. 그런 진인이 1950년대에는 세계 최강대국을 이끄는 지도자, 기존질서의 사령관인 트루먼으로 둔갑했다. 합리적·체계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한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정감록’ 신봉자들의 해석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논리적으론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시의에 맞기만 하면 민중은 꽤 엉뚱한 해석에도 환호한다. 수백 년 동안 ‘정감록’이 생명을 이어온 까닭은 그것이 시대상황에 맞게 새로 해석될 여지가 많아서다. ●예언서는 민중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 해방 이후 미국의 중요성은 국가 차원에서든 개인의 일상생활에서든 날로 커졌다. 민중은 ‘정감록’에서 미국에 관한 구절을 찾느라 열심이었다. 도대체 미국이란 나라가 이 세상에 있는 줄도 모르던 아득한 시절에 만들어진 ‘정감록’에서 미국에 관한 기록을 찾는다? 여간 우스운 일이 아니지만 필요는 때로 발명이나 발견을 낳는다. ‘정감록’에서 꺼낸 트루먼 진인설과 인천상륙작전설은 억지스러운 발견이었다.1970년대 이후 민중은 미국에 대한 그 이상의 예언을 요구했던지 새 예언서가 등장했다.‘격암유록’,‘율곡비기’,‘송하비결’ 등이 새로 나온 예언서다. 그 중 어떤 것은 특정 종교단체가 배후 조종하여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 계통의 신종교 단체도 예언서를 빌려 지도자에게 절대권위를 부여한 흔적이 있다. 새 예언서에는 한·미관계가 자주 나온다. 어느 책에는 9·11사태(2001년 9월11일 발생한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도 언급되어 있다. 더욱 경악할 내용도 있다. 미국은 2004년 북한을 폭격하기 시작해,2005년까지 공격을 계속한다. 그리고 2004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는 재선에 실패하고 이슬람교도의 저격으로 사망한다는 등등의 예언이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국은 북한을 폭격하지 않고 있으며, 부시는 보란 듯 재선에 성공해서 백악관에 건재하다.2004년의 예언은 완전히 빗나갔다. 내 관심사는 한국 민중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빗나간 예언에도 투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최근 친미와 반미를 둘러싼 논쟁이 한국 사회의 중요 이슈로 등장했는데 민중의 다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지배질서에 반감을 품고 있다. 민중은 부시의 대북 강경노선을 못마땅하게 여겼기에, 부시의 낙선과 암살을 예언한 것이다. 민중은 부시를 미워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부시의 북한 폭격설까지 예언으로 등장한 것이다.50년 전엔 현직 미 대통령을 진인이라 일컫던 것을 생각하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이 있다. 민중이 직접 예언서를 저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민중은 예언의 내용을 결정한다. 노스트라다무스든 ‘정감록’이든 사정은 똑같다. 민중의 심리를 정확히 반영한 예언서는 민중의 사랑을 받고 그 생명도 길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예언서는 곧장 버림을 받는다. 민중은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정감록’을 해석해왔다. 시대가 바뀌면 그 해석은 늘 달라졌다. 한 시대의 해석은 다른 시대가 되면 효력을 상실한다. 그러나 내가 정감록을 바라보는 관점은 통시대적이다. 미셸 푸코가 말한 지식의 계보학에 가까운 입장이다. 푸코의 말처럼 시공간이 바뀌면 지식과 기억은 변화된다. 요컨대 변화된 사물의 의미를 계보로 정리하는 것이 지식 계보학이다. 나의 정감록 산책도 그렇다. 정감록에 담긴 의미의 변천을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것, 이것은 한국 역사와 문화의 나이테를 읽는 새 방법일 것이다. 백승종(푸른역사연구소장)
  • [세상에 이런일이]요요가 사람잡네

    |토론토 연합|캐나다 밴쿠버의 한 초비만 10대가 특별보호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법원에 청원했지만 기각당했다. 일간 내셔널포스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밴쿠버 소년법원 하반 밀런 판사는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이 청년이 집으로 돌아갈 경우 체중조절에 실패해 심장병으로 사망할 위험이 높다며 청년과 어머니의 요청을 거절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그는 11살 때 250파운드(약 113㎏)의 비만아동으로 밴쿠버 주정부 아동부의 관리를 받기 시작했고 17세인 지난해에는 433파운드로 무려 275파운드 과체중 상태에 이르렀다. 그는 98년 3월 아동병원에 입원,10개월간 통제된 생활을 하면서 122파운드를 감량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음식섭취를 통제하지 못해 다시 이전 체중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지난해부터 다시 특별그룹 홈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는 그곳에서의 생활을 통해 다시 100파운드를 감량하는데 성공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데는 실패했다. 쿠버 아동부는 이 청년이 어머니에게 너무 의지하는 성향이 과체중을 유발하고 어머니가 그의 다이어트를 강제적으로 실시하지 않기 때문에 이 청년의 귀가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3)하멜의 여정-­제주서 나가사키까지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3)하멜의 여정-­제주서 나가사키까지

    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 없다지만,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등이 해양을 통한 제국 건설에 몰두하면서 서세동점의 기세로 밀어닥친 그 때 우리가 좀 더 잘 했더라면, 조금만 생각을 고쳐 먹었더라면 하는 일말의 아쉬움은 지금도 남는다. 하멜표류의 교훈도 그 중의 하나이다. 1628년, 일본 나가사키(長岐)로 향하던 네덜란드인 벨테브레 일행 3명이 부산 근처에 표착했으니, 이 중 1명이 훗날 조선인과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고 살던 박연이다. 박연 표착 25년 뒤, 같은 네덜란드인 하멜이 제주도에 표착한다.1653년(효종 3년) 암스테르담을 출발한 스페르웨르호가 바타비아와 타이완을 거쳐 나가사키로 향하던 중 폭풍에 밀려 이 해 8월15일 제주도에서 파선한 것. ●조선에 표류한 하멜일행 탈출 성공 선원 64명 중 28명이 익사하고 36명이 표류한다. 이듬해 이들은 서울로 호송되었다가 2년 뒤인 1654년에 다시 전라도로 분리, 이송된다. 그동안 사망자가 14인이었으며 생존자는 22인이었다.1666년 9월에 전라좌수영 소속의 하멜 이하 8인이 읍성을 탈출하여 작은 배를 타고서 극적으로 ‘조선 탈출’에 성공한다. 나가사키를 경유한 이들은 1688년 7월 네덜란드로 귀국함으로써 13년의 조선생활을 끝낸다. 바로 이들에 의해 하멜표류기가 출간되면서 ‘금단의 땅 조선’이 서구에 널리 알려진다. 이 하멜 표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할까. 이들 집단을 통하여 어떤 구체적인 서양 과학기술을 알려고 했거나 이들의 정보를 역추적하여 세계정세를 탐구하려 했다는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군부대에 배속된 하멜 일행이 약간의 전투술 전수에 참여한 것으로 짐작되나 세계정세 판단을 위한 조선 조정의 관심은 확인되지 않는다. 서양인 대집단을 13년간이나 데리고 있었으나 그들로부터 세계동향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는 증거가 보이지 않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세계인식이 아닐 수 없다. 하멜은 조사 과정에서 조선 조정이 파견한 박연을 만나며, 이후에 여수 좌수영 등으로 분산되기 전까지 계속 박연이 통역을 담당했다. 이로 미뤄 박연을 통해 충분히 서양의 지식정보를 빼낼 수 있었음에도 그러한 시도는 아예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중국 사신이 하멜 일행을 접하는 일은 극도로 경계하였으며, 이들을 훈련도감 소속 군인으로 배치한 것으로 미뤄 북벌에 대비한 군사적 대응으로 활용하려 한 인상은 준다. 박연과 하멜은 암스테르담에서 바타이유를 거쳐서 나가사키로 향하다 표류하였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하멜 일행은 조선 체류 중 끊임없이 일본행을 꿈꾼다. 결국은 배를 구하여 규슈의 히라도(平戶)를 거쳐 나카사키로 들어가는데 일본인들은 그들이 네덜란드인임을 금세 알아차리고 친절하게 안내했다. 이들을 체포해 13년간이나 하릴없이 억류했던 조선과는 대비되는 조치였다. 이들이 나가사키에 당도했을 무렵 만에는 네덜란드배 다섯척이 정박해 있었다. 이들은 곧장 네덜란드 상관(商館)에 당도, 지휘관 빌렘 볼거에게 안내된다. 그리하여 꼭 13년 28일 만에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당시 나가사키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서방을 향해 열려진 창구였다. 하멜의 조선표착 시점보다 훨씬 이른 1543년에 포르투갈 상인이 일본에 도착했으며,1549년에는 선교사 프란시스코 사비엘이 가고시마(鹿兒島)에 발을 내딛는다. 이후 100여년 간 무역과 가톨릭 포교가 이루어지나,17세기 중엽 도쿠가와 바쿠후(德川 幕府)에 의하여 기독교가 탄압받는 쇄국이 단행된다. 주목할 것은 쇄국은 쇄국이되, 바늘 구멍은 열어놓은 쇄국이었으니 서방과의 대화는 어떤 식으로든지 계속 하고 있던 셈. ●日 바쿠후, 포교 금지하고 무역만 허용 오직 장사에만 종사하며 포교활동을 하지 않은 네덜란드인들만 일본 거류가 허용되어, 이른바 난학(蘭學)을 꽃피웠다. 서양 의술을 비롯하여 천문, 지리, 생물, 지리학 등 다양한 근대 학문체계들이 이 즈음 난학으로 정리된다. 젊은이들이 오늘날의 도쿄인 에도(江戶), 심지어는 머나먼 동북지역에서도 몰려들어 ‘난학의 길’이 활짝 열린 것. 하멜이 일본에 거류하는 상관을 찾아 귀국할 수 있었음은 또한 이같은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배경으로 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적어도 하멜을 통하여 서세동점의 긴급한 상황을 재빨리 읽었어야 옳았다. ‘하멜표류기’는 조선 땅에 남긴 서양인 최초의 족적이자, 조선을 세계에 알린 ‘스테디 셀러’였다. 표류인 하멜과 조선의 첫 만남, 첫 거래에서 우리는 철저하게 실패했다. 우리가 그들에게서 얻은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음에 반해, 조선을 탈출한 하멜의 기록은 수백년간 서양인의 인구에 회자되면서 열강들이 입맛을 다시게 하는 근거자료로 보급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수많은 하멜들이 찾아들었던 나가사키는 당시 어떤 여건이었을까. 예쁜 전차가 오가는 나가사키 중심통에 데지마(出島)가 있다. 말이 섬이지 도심에 포위되어 있다. 유심히 보면 바다 수로가 데지마 옆으로 흐르고 있으며 그 수로는 가까운 바다로 연결된다. 데지마는 1636년 그리스도교의 포교 금지를 목적으로 만든 인공섬. 서방을 통하여 무역 등의 이득은 취해야겠고, 문을 열자니 기독교 포교가 두려워 궁여지책으로 만든 출구였다. 나가사키라고 쉽게 말하지만 고작 손바닥 크기만 열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운동장 규모의 땅에 상관 건물을 짓고나서 다리를 놓았다. 바쿠후는 외국배가 들어올 때마다 그들로부터 정보를 얻었다. 네덜란드와 중국 상인에게 풍문보고서(風說書)를 내게 하고, 번역 내용을 바쿠후 중심 인물들이 돌려보았으니 세계 정세의 변화를 개괄적이나마 시시각각 첩보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어두운 동굴 속의 불빛처럼 창구 하나만큼은 분명히 열어놓았던 셈. 어쩌면 일본이 서방을 두려워하면서도 끝내 닫지 않았던 그 ‘바늘구멍’이 일본이 아시아에서 선두 주자로 나서게 하는 결정적 기반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꽃피운 난학, 메이지유신 토대 돼 네덜란드인들의 종교와 무역의 분리는 바쿠후의 정책과 일치하였다. 오로지 무역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바쿠후로부터 독점권을 얻게 된다. 이후 200여년 동안 이곳은 일본 유일의 해외무역 창구가 된다. 나가사키를 둘러보면 주변에 국제도시다운 면모를 지닌 도시들이 즐비함을 알 수 있다. 히라도는 일본이 대륙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견수사(遣隋使)를 파견했을 때부터 중심지였으며,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국제무역거점항이었다. 히라도 남동쪽의 도자기로 유명한 아리타(有田) 북쪽에는 도자기 수출입항으로 명성을 얻었던 이마리가 있다. 이곳 도자기는 19세기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유럽으로 수출되면서 명성을 얻어 유럽 도자기문화 형성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현해탄이 보이는 가라쓰(唐津)도 빼놓을 수 없다. 지명이 말해주듯 중국과의 교역으로 번영한 항구도시다. 나가사키현의 사세보는 일찍이 1886년 해군기지가 들어선 이래 군항도시로 번창했다. 지금도 일본 자위대와 미군기지가 들어서 있으니 이래저래 외국과의 관계를 떼놓을 수 없는 곳.17세기 네덜란드의 모습을 복원해 놓은 100만평 규모의 하우스보텐스로 아시아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일본이 이미 많은 양의 정보를 직수입하여 서양을 이해하고 있었던 시절에도 우리의 서양을 향한 입장은 여전히 폐쇄적이었다. 훗날 메이지유신을 단행하면서 개화문명을 부르짖었음은, 비단 외국의 압력 때문만은 아니었다.‘난학’같이 장기간 축적된 서양문명의 이해에 기초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해상 문물교류로 갈린 두 나라 명암 나가사키에서 외국과의 관계를 확인할수 있는 유적은 무수히 많다. 흡사 서양인 거리로 들어가는 것 같은 그라비엔, 영국 무기상인 토머스 글러버의 자택, 고색창연한 돌길인 오란자자카, 포르투갈인의 기술로 완성된 아름다운 다리인 메가네바시(眼鏡橋), 무역상사의 의사로 일본 여인과 결혼한 독일의사 시볼트기념관, 일본 최초의 무역상사를 세운 료마의 흔적, 일본 최초의 사진가인 우에노 히코마의 묘소, 그리고 수백년 전통을 자랑하는 나가사키 가스테라 등이 그것이다. 중국 무역항답게 중국의 흔적도 숱하게 흩어져 있으니, 나가사키짬뽕이나 푸젠성(福建城) 사람들이 세운 소후쿠지(崇福寺), 중국의 국부 손문의 유허지 등이 그것이다. 일본은 15세기부터 규슈 일대를 드나들던 포르투갈인에게 입수한 조총을 자체적으로 모방, 개발해 엄청난 무기체계로 발전시킨다. 그 조총을 손에 쥐고 자신만만하게 임진왜란을 일으켰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7년전쟁을 통하여 조선에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조총을 미워하기 전에 그 조총이 어떤 바닷길을 통하여 입수, 개발됐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했어야 옳았다. 서방의 급격한 이입을 두려워한 바쿠후의 폐쇄정책은 1868년까지 계속된다. 그러면서도 데지마는 바늘구멍 같은 숨통으로 역사의 소명을 다하였다. 일본은 미국 페리의 강요에 의해 전면 개방되지만, 적어도 데지마 같은 바늘구멍을 오랫동안 열어두었고, 수백년 전통의 난학으로 대비해 왔기 때문에 서방문명에 대한 일정한 저항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흡사 숫처녀가 백주 대낮에 겁간 당하는 식의 급격한 개항을 강요당했던 우리와는 여러 모로 대비된다. 옛 데지마를 복원시켜 놓은 건물 앞에서 지난 수백년을 돌이켜보자니 느껴지는 바가 적지 않다. 일본은 정교한 기념관을 만들어 놓고 ‘왜 선조들이 바다를 통한 문물교류에 집착했던가.’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우리 역사에 흔적을 남긴 숱한 ‘하멜’들이 바로 데지마와 연관을 맺고 있음을 고려할 때, 바다를 통해 세계로 열린 천혜의 출구를 완벽하게 닫아버렸던 지난날 우리의 해양관을 어찌 비판하지 않을 것인가. 취재협조 학술진흥재단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
  • “김좌진 군자금 모금은 강도죄” 판결록 공개

    “김좌진 군자금 모금은 강도죄” 판결록 공개

    일제시대 때 군자금을 마련하려던 김좌진 장군은 무슨 죄로 처벌받았을까. 답은 강도죄다. 법원도서관은 일제 강점기인 1909∼1943년 대한제국 대심원과 통감부·조선총독부 고등법원의 민·형사 사건 판결록 일부를 한글로 번역, 발간했다고 6일 밝혔다.2만쪽 분량의 판결록 30권 가운데 1909∼1912년의 형사사건 51건, 민사사건 125건을 다룬 제 1권을 출간한 것이다. 당시엔 고등법원이 최종심을 맡아 이 판결록은 대법원 판례집에 해당한다. 시대상과 법률관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의병활동에 강도죄나 강도살인죄 적용 형사편엔 백야 김좌진 장군의 판결문이 있다. 김 장군은 1911년 21세 때 북간도에 독립군 사관학교를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군자금을 마련하고자 할아버지뻘인 친척 김종근씨를 찾아갔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대문 감옥에 갇힌 김 장군은 고등법원에서 안승구씨와 공범으로 재판을 받았다. 판결문은 “김좌진은 김종근 집에서 재물을 훔칠 계획을 세웠지만, 집 안에 사람이 많아 실행하지 않은 ‘강도미수범’”이라고 했다. 김 장관은 친척에게 협박, 폭력을 행사해 금품을 빼앗을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고등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2년 6월형을 확정했다. 기오(木尾虎之助), 이와모토(岩本英夫)란 이름의 일본 변호사 2명이 김 장군을 변론했다는 기록이 눈길을 끈다. ●흥분해 원수를 죽인 것은 죄가 아니다 1910년 9월 9일 오후 8시쯤 이모씨는 친구 김모씨 집을 방문했다가 싸움 끝에 맞아 숨졌다. 이 소식을 들은 이씨의 아내 홍모씨와 첩 엄모씨는 김씨 집으로 달려갔다. 김씨를 묶어 놓은 뒤 3시간 동안 남편을 살리려 온갖 수단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흥분한 두 여성은 마침내 김씨를 때려 숨지게 했고, 경찰에 자수했다. ‘부모나 남편, 자손을 죽인 살인자를 흥분한 마음에 그 자리에서 곧바로 살해한 경우 죄를 논하지 않는다.’는 형법대전 493조를 들어 이들은 무죄를 주장했다.1,2심은 “남편이 살해당한 시간과 아내가 살인범을 죽인 시간이 다르다.”며 이 법을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아내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조선에선 조선의 관습을 따른다 1911년 꼬마신랑 송모(11)군과 결혼한 여성 김모(18)양과 성관계를 맺은 일본인 가와하라(川原貞季)가 법정에 섰다. 가와하라측은 “민법이 남자 17세, 여자 15세 이상이 되지 않으면 혼인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어 송군의 결혼은 무효이며 간통죄도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조선인은 연령에 상관없이 혼인하는 풍습을 갖는다.”면서 “김씨는 유부녀로 간음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고등법원은 또 자식을 부양하는 의무는 아버지가 진다는 관습을 지적하며 따로 살며 사생아를 키운 첩에게 아버지는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갑오경장 때 과부의 재혼을 허가한 뒤 사대부들이 재혼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며느리에게 돈을 준 사례도 나타났다.1911년 며느리 신모씨는 재혼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시댁에서 논밭과 가옥, 소 등을 받았다. 그러나 재혼했고, 시댁은 재물 반환 청구소송을 냈다. 신씨는 “재혼을 금지한 계약이 재혼을 허가한 법률을 위반했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계약을 어겼으니 재물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법원도서관은 앞으로 매년 2∼3권씩 판결록 번역작업을 진행, 앞으로 10∼15년내에 전권을 완역할 계획이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조영증의 킥오프] 축구의 해 밝았다

    2005년 희망찬 아침이 밝았다. 힘차게 솟아오른 태양빛 아래 한국축구도 분주한 한 해가 될 전망이다. 국가대표팀은 2006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과 제2회 동아시아축구대회라는 중요한 대회를 치러야 한다. 우선 대표팀은 7일 파주NFC에 소집돼 독일을 향한 첫 행보로 이튿날 미국 전지훈련을 떠난다.6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 셈이다. 20명 전원 국내파 선수로 구성된 이번 전훈은 16일(콜롬비아) 20일(파라과이) 23일(스웨덴) 등 세 차례 평가전을 통해 해외파와의 치열한 경쟁으로 이어져 세대교체의 분수령이 된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 본프레레 감독은 젊은 선수들의 가능성을 발견하면서도 신뢰감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주전 기용을 꺼려했다. 그런 점들을 감안한다면 이번 3주간의 전훈은 선수 모두를 제대로 파악하는 동시에 다음달 9일 쿠웨이트전부터 8월17일 사우디와의 최종전까지 최정예 멤버를 구성하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아울러 한국은 오는 7월31부터 개막하는 동아시아대회의 주최국이면서 2연패를 노리는 강력한 우승후보이기도 하다. 중국과 일본이 시드 배정을 받아 출전이 확실한 가운데 북한이 예선을 통과 할 경우 12년 만에 남북대결의 감동도 맛볼 수 있다. 앞서 6월 네덜란드에서는 20세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지난해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서 일본과 중국을 거푸 꺾고 우승한 한국팀은 차세대 유망주인 박주영 김승용 차기석 신영록 등이 1983년 멕시코에서 선배들이 이루었던 ‘4강 신화’의 재현에 도전한다. 특히 박성화 감독은 전년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세계청소년대회 16강전에서 일본에 패한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당시 실패를 거울삼아 세계 팀들과의 재대결을 위한 나름대로의 대안을 준비 중일 것이다. 현재 박성화호는 남해에서 체력 강화 등 담금질을 거친 뒤 중동, 유럽의 강호들과 실전 리허설을 계획하고 있다. 또 하나 관심이 가는 대회는 U-17세 아시아여자청소년선수권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적자를 감수하고 이번 대회를 유치했다. 그러나 날로 성장하는 한국 여자축구의 위상은 물론 아시아 여자축구 발전에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밖에 프로연맹에서 주관하는 A3(한중일)대회와 수원과 부산이 출전하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등 많은 관심을 끄는 대회들이 열리게 된다. 아무쪼록 을유년에 개최되는 모든 대회에서 한국 축구가 그 위상을 드높일 수 있기를 기원한다. 국제축구연맹(FIFA) 기술위원 youngj-cho@hanmail.net
  • [2005 문화코드] ① 팩션(팩트+픽션)

    [2005 문화코드] ① 팩션(팩트+픽션)

    새해에는 어떤 문화적 현상 혹은 흐름이 주목받을까. 새로운 문화현상을 지금 여기서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볼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가장 의미있는 답을 얻기 위해선 이른바 ‘코드’ 접근법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신문은 5회에 걸쳐 2005년 문화현상을 전망하고 해석한다.‘팩션’‘신(新)한류’‘미래담론’‘생명사상’‘녹색진보’등 다섯 갈래로 나눠 다양한 문화현상의 본질을 짚는다. ■ 출판 상상력의 시대다. 문화장르에 ‘상상’의 메타포가 빠진 적이 한순간이라도 있었을까마는 현실은 사뭇 다르다. 출판·방송·영화할 것없이 부쩍 전에 없던 창작기류가 흐른다. 이른바 2005년에도 현재형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감되는 문화코드 ‘팩션(faction)’이다. ●‘다빈치 코드’로 촉발된 열풍 식지않을듯 지난해 하반기 출판가에서 비롯된 용어 ‘팩션’이란,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결합한 문학형태다. 주로 역사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추리기법으로 가미하는 만큼 역사추리소설 혹은 지식소설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해 6월 국내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로 촉발된 팩션열풍은 좀체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례없는 출판시장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베텔스만)는 출간 6개월여 만에 무려 100만부를 넘게 팔아치웠다. 댄 브라운의 저작으로 ‘다빈치 코드’의 전작에 해당하는 역사추리소설 ‘천사와 악마’도 잇따라 전략적으로 출간돼 쏠쏠한 재미를 봤다. 이후 서점가에는 팩션소설들이 줄을 잇고 있다. 르네상스시대 문헌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죽음과 계시의 사건들을 다룬 ‘4의 규칙’(랜덤하우스중앙),17세기 이탈리아의 한 여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진실을 캐는 과정에 당대 유럽의 역사가 화려하게 펼쳐지는 ‘임프리마투르’(문학동네)도 그 범주에 속한다. ‘다빈치 코드’의 성공으로 그 효과를 덤으로 누린 책도 적지 않았다.‘성배와 잃어버린 장미’(루비박스),‘다빈치 코드의 진실’(예문),‘다빈치 코드 깨기’(규장) 등이 그들이다. ●인문학적 지식 바탕으로 추리력 발휘 이 소설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한 사건을 실마리로 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사건해결에 필요한 수많은 단서들이 제시되고 그들을 통해 역사이해 등 인문학적 지식이 바탕이 된 추리력을 발휘하게 된다. 사실 팩션이란 개념이 처음 도입된 분야는 문학이 아니라 저널리즘쪽이었다.1960∼70년대 텔레비전에 신문의 인기가 밀리자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기사문체를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게 픽션화한 데서 유래했다는 것. 그렇다면 팩션의 불씨가 문화전반으로 옮겨붙은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정답은, 당연히 문화소비자인 ‘대중’의 변화된 욕구다. 문학평론가 김동식씨는 “대중적 흥미에다 폭넓은 인문학적 교양을 쌓을 수 있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소설읽기는 현대인들에게 꾸준히 인기를 누릴 것”이라고 해석했다. 팩션열풍에서 새삼 ‘팩트’(사실)가 강조되는 이유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의미심장하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예전에는 정보의 실체가 보였으나, 인터넷 시대에는 그것들을 구체적으로 볼 수가 없다.”고 전제,“(대중은)정보의 실체로 연결될 수 있는 계기를 찾는 것”이라고 분석했다.‘단테클럽’을 읽은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단테의 ‘신곡’을 찾게 되고,‘다빈치 코드’ 독자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궁금해 한다는 것이다. ●‘팩션’ 1960~70년대 부드러운 신문기사서 유래 획일화된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욕구와, 실체적 정보에 다가서려는 인터넷 시대의 반동적 욕망이 결합해 팩션을 낳고 있는 셈이다. 새해에도 출판가에서는 팩션식 소설의 인기는 계속될 것 같다. 인기작가 이인화가 7년 만에 선보여 화제인 신작 ‘하비비’(해냄)도 팩션형태.‘삼국지’의 영웅 조조가 남긴 비밀지도의 행방을 놓고 암투를 벌이는 이야기 얼개다.‘다빈치 코드’가 표절작품이라는 논란을 제기한 루이스 퍼듀의 ‘다빈치 레거시’(팬아스)도 최근 새로 서점가에 합류했다. 베텔스만도 상반기 중 댄 브라운의 또다른 인기추리소설 ‘디지털 포트리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영화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팩션 영화’를 국내외에서 한 편씩 꼽으라면 누구나 ‘황산벌’(2003)과 ‘포레스트 검프’(1994)를 떠올릴 듯 싶다.‘황산벌’은 김유신, 계백 장군을 사투리 때문에 싸우게 만들었고,‘포레스트 검프’는 IQ 75인 청년으로 하여금 미국 현대사의 중심축을 가로지르게 하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실감나는 상상력’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했던 이같은 팩션 영화는 최근 들어 국내외 할 것 없이 그 수가 늘고 있다. 한국영화의 올해 개봉·제작 리스트에도 여러 편이 올라있다. 하지만 추리 코드를 전제로 하는 문학 분야와 달리, 영화에서는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것이 그 특징이다. 2월 개봉예정인 ‘그때 그사람들’은 10·26을 기초로 캐릭터와 모든 정황을 허구로 구성한 블랙코미디. 크랭크업을 거의 앞둔 ‘혈의 누’는 구한 말 천주교박해를 배경으로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추리 공포 사극이고, 올 여름 개봉예정인 ‘천군’은 남북한 병사가 과거로 휩쓸려가 이순신 장군을 만난다는 내용의 팩션 영화다. 하반기 개봉을 목표로 준비 중인 ‘대한독립만세’는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배경으로 양아치들의 활약을 그린 코믹 액션 영화다. CJ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팀 관계자는 “한국영화에서는 스릴러 장르가 발전하기 못했기 때문에 ‘다빈치 코드’류의 추리물을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픽션을 가미한 실화 소재의 영화는 많이 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할리우드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상영중인 ‘내셔널 트레저’는 미국 건국 초기의 거물들이 속해있던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체를 바탕으로, 이들이 지폐나 건축물에 보물지도를 숨겨놓았다는 상상력을 동원했다.‘다빈치 코드’도 내년 중에 미국 컬럼비아사에서 영화화될 예정이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실제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엄밀히 말하면 모두 팩션”이라면서 “항상 새로운 소재를 고민하는 제작자들에게 팩션 영화는 창작보다 쉬우면서도 지금까지 덜 다뤄졌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분석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드라마 안방극장에도 ‘팩션’바람이 거세다. 현재 방영되고 있거나 곧 전파를 탈 TV드라마들을 보면, 역사적 사건과 과거 성공한 인물 등 과거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한 ‘팩션’작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달말 첫 전파를 타는 MBC 주말드라마 ‘제5공화국’은 10·26 사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12·12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의 혼란의 정치사를 드라마화한 작품.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등 전직 대통령들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정치사가 리얼하게 재연될 예정이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2TV 대하드라마 ‘해신’은 해상왕 장보고의 생애와 당대 사건 등을 ‘팩션’에 입각해 재구성한 작품. 방영 초기부터 ‘원균 재조명’을 둘러싼 뜨거운 논란에 휩싸인 KBS1TV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도 이순신과 원균이라는 역사적 인물과 임진 왜란 등 역사적 사실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했다. 실존 인물인 삼성 고 이병철 회장과 현대 고 정주영 명예 회장을 모델로 한 MBC ‘영웅시대’도 과거 60∼70년대 격동기의 ‘재벌 이야기’와 ‘정경유착’ 등 격동의 정치·경제사를 기초로 모든 정황을 허구로 구성한 ‘팩션 드라마다. ‘팩션’요소를 이야기 전개의 중심축으로 삼은 드라마들은 올 한해에도 속속 기획되거나 제작될 예정이다. 지난 2000년 무기도입을 둘러싼 정치권 불법 로비 의혹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재미교포 로비스트 ‘린다 김’과 군 전력 증강 사업(일명 백두사업)을 소재로 한 TV드라마가 올 하반기 이후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다. 성공 벤처기업을 모델로 한 TV 드라마도 곧 선보인다. KBS 김현준 드라마 1팀장은 “최근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소재로 한 ‘팩션’작품이 속속 등장하는 것은 과거를 현대적 시각에서 재해석하려는 사회내 분위기와 제작진의 창작 욕구가 맞아 떨어져 생겨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팩션’외에도 고전을 리메이크 하는 등 ‘과거 지향’적인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문학이 머문 풍경]정지용시인의 고향 ‘옥천’

    [문학이 머문 풍경]정지용시인의 고향 ‘옥천’

    “남한에 있는 아버님을 만나고 싶어요.” 2001년 이산가족 상봉신청때 북한에 있던 정지용(鄭芝溶·1902∼50) 시인의 셋째아들은 상봉대상자에 아버지를 포함시켜 우리를 놀라게 했다. 한국전쟁 당시 시인이 납북된 뒤 아버지를 찾으러 간 셋째아들은 아버지의 행방을 알지도 못한 채 북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한다. 시인의 가족사 자체에 분단의 비극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셈이다. 정 시인의 사망도 평양감옥에 함께 있다 탈출한 사람이 “감옥에 폭격을 할 때 희생이 됐을 거다.”라고 말해 그럴 것으로 추측케 할 뿐 정확하게 언제, 어떤 과정으로 숨졌는지는 미스터리다. ●박제화된 흔적들 시인의 고향 충북 옥천에는 초가로 지어진 생가가 있다.1988년 정지용이 해금된 뒤 시인을 기리는 사업이 활발해지면서 다른 이가 살고 있던 옥천읍 하계리 옛 생가 부지를 매입, 지난 97년 4월 문을 열었다. 지난 4월 시인의 큰아들 구관씨가 작고하기 전 그의 고증을 거쳐 건립됐다. 단장된 집옆에는 시인의 동상이 서 있고 물레방아도 만들어 놓았다. 대표시 ‘향수’에 나오듯 생가 앞에는 개천이 있다. 마을 주민이나 어린이들은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로 시작하는 이 시구처럼 개천을 모두 ‘실개천’이라 불렀다. 부근에는 시인이 다니던 죽향초등학교가 있다. 운동장 한쪽에 일본식 옛 교사 한동이 서 있다. 지난해 6월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재 57호로 지정한 교사앞 표지석에는 ‘정지용 시인과 육영수 여사 등을 배출했다.’고 썼다.4학년 박주영(10)양은 “정지용 시인이 우리학교를 나왔다는 게 자랑스럽고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1926년 건립돼 정 시인이 공부했던 교실은 아니지만 자기 시를 판금조치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이 같은 학교출신이라는 게 좀 아이러니하다. ●몰락한 충청도 양반 구관씨는 작고하기 전 옥천 삼양초 노한나(31) 교사와의 대화에서 “구한말 몰락한 양반가에서 태어나 운좋게 근대교육을 받았지만 유교윤리에 충실했던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구관씨는 “아이들을 좋아했지만 자식에게는 무척 엄격했다.”고 전했다. 시인의 이화여대 제자인 유수인씨도 “두루마기에 회색 명주목도리만 하고 다닐 정도로 살림이 어려웠지만 전혀 비굴하지 않았고 깨끗했다.”면서 “돈 한푼 없어도 ‘선생님, 선생님’하면서 매달리는 여제자들을 데리고 가 외상 밥을 사주는 허풍기도 좀 있었다.”고 말했다. 시인이 고향에 산 것은 휘문고에 들어가기 전인 17세까지. 휘문고 교사도 했고 이화여대 교수로도 일했다. 구관씨는 “성당과 학교, 시 쓰는 것밖에 모르던 양반으로 항상 머리에 시가 들어서 밥을 먹는지 반찬을 먹는지 자신도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성질이 굉장히 급해 별명이 ‘신경통’으로 불렸다고 한다. 성격이 활달했고 해학이 빼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김영랑, 유치환 등 시인과 친했고 청록파 시인을 추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박목월에 대해서는 ‘북에는 소월, 남에는 목월’이라고 격찬했다. 또 ‘보리피리’의 문둥이 시인 한하운의 이름과 이희승의 ‘일석’이란 호를 지어줄 정도로 이름짓는 일에도 재능을 보였다고 했다. 정 시인이 졸업한 일본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에 동상과 시비가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인석 옥천문화원장은 “최근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조동일 계명대 교수 등과 함께 이 대학을 방문, 내년 가을까지 윤동주 시인의 시비 옆에 정지용 동상과 시비 등을 세우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향 충북 옥천에서는 88년부터 정지용 문학축제’를 열어오고 있다. 문학상도 이듬해부터 열리고 있고, 신인문학상과 청소년문학상도 올해 10회와 6회째를 각각 맞았다. 매년 8∼9월 중국 옌볜에서 지용제 및 음악제가 열리고 있는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부인과 큰아들·딸은 남한에, 둘째·셋째아들은 북한에 갈갈이 찢어져 살았지만 정지용 시인의 향기는 옥천군체육공원 옹벽을 시가 새겨진 돌로 장식할 정도로 고향에 진하게 남아 있다. 옥천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국악인 박범훈씨 종합대 총장에

    한평생을 우리 가락의 현대화, 대중화에 매달려 온 ‘신 국악인 박범훈’이 중앙대 총장 자리에 올랐다. 국내 종합대학에서 국악인 출신 총장이 탄생하기는 처음이다. 중앙대 법인 이사회는 24일 직선제 투표에서 1위 후보로 올라온 박범훈(56) 국악대학원 창작음악학과 교수를 제12대 총장으로 뽑았다. 그는 고향인 경기 양평의 중학교 밴드에서 트럼펫을 불다가 17세 때 동네에 찾아온 남사당패에 매료돼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 가락과 인연을 맺은 그는 국악예고에 들어가려고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오면서 국악을 향한 도전의 길에 들어섰다. 인간문화재 지영희 선생에게서 피리를 배운 그는 예고 졸업 후 중앙대 음악학과(작곡)를 거쳐 일본 무사시노 음대에서 석사, 동국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양한 도전을 즐기는 박 신임총장은 국악의 대중화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한영애, 송창식, 김수철 등 대중가수와 함께 국악 공연을 시도하고, 도올 김용옥의 시에 곡을 붙이기도 했다.86아시안게임,88올림픽,2002한·일월드컵, 대구유니버시아드 등 굵직한 행사의 개막식 음악 작곡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MBC 마당놀이 ‘허생전’,‘홍길동전’ 등도 그의 작품. 그에게는 ‘첫’이라는 말이 늘 따라다닌다.93년 처음으로 아시아민족악단 창단식을 가졌고, 이 자리에서 12현 가야금을 현대적으로 개량한 25현 가야금을 선보였다. 민간으로는 국내 최초인 중앙국악관현악단도 만들었다. 교육행정가로서도 능력을 발휘해 10년 남짓 서울국악예고 이사장직을 맡으면서 한국 최초로 서울국악유치원, 국악중학교, 국악대학, 국악교육대학원을 잇따라 설립했다. 발도 넓어 지난 11월11일 열린 그의 ‘음악인생 40주년 기념공연’에는 정·관계, 문화계 인사 1500명이 참가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런 그가 총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하자 음악계 선후배들이 “작곡이나 지휘는 누가 하느냐.”며 말리기도 했다는 후문. 그는 “4년 동안 부총장직을 맡아 중앙대의 행정이나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고민했다.”면서 “그래도 막상 총장이 돼 발전기금을 모금하러 다닐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선다.”고 껄껄 웃었다. 박 신임총장은 내년 초 40장의 CD로 구성된 ‘박범훈 소리연(緣)’전집을 내고 잠시 창작활동을 쉴 작정이다.“예술이 노래하고 춤추는 딴따라만이 아닌, 행정과 정치가 모두 담겨져 있는 분야”라는 그의 예술철학이 어떻게 대학 운영으로 나타날지 자못 궁금해진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愛들이 줄었어요

    |워싱턴 연합|미국 청소년들은 과거에 비해 성 관계를 덜 갖고 있으며 성 관계를 가질 경우에도 피임을 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미 보건통계센터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5∼17세 여성이 성관계를 가진 비율은 1995년 38%에서 2002년 30%로 줄었다. 같은 연령대 남성의 성관계 비율도 43%에서 31%로 내려갔다. 또 성 관계를 가진다고 답한 10대 가운데 피임을 하는 비율은 80년대 61%에서 1991∼2002년 사이 79%로 증가했고 이에 따라 10대 임신율도 떨어졌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15∼17세 청소년의 성생활이 줄어든 반면 성 관계 경험이 있다고 답한 18∼19세 미혼 여성 비율은 1995년 68%에서 2002년 69%로 늘었다. 같은 연령대 남성은 75%에서 64%로 줄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15∼44세 여성의 피임 방법은 먹는 피임약이 가장 많았고 여성 불임수술, 콘돔, 남성 불임수술, 주사용 피임제 등이 뒤를 이었다.
  • 한국 中2 수학실력 세계2위 교과 흥미·자신감은 하위권

    한국 中2 수학실력 세계2위 교과 흥미·자신감은 하위권

    우리나라 중학교 2학년생의 수학과 과학의 학업성취도는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이들 과목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은 최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는 지난해 46개 회원국의 만 13세 학생(중학교 2학년·8학년)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학·과학성취도 추이변화 국제비교’(팀스·TIMSS 2003) 결과를 14일 자정(한국시간) 세계에 동시 발표했다. ●과학은 싱가포르·타이완 이어 3위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 평균점수는 589점으로 605점을 받은 싱가포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과학 평균점수는 558점으로 3위에 올랐다.1995년과 99년 평가와 비교하면 수학은 3위,2위에 이어 2위 자리를 유지했다. 과학은 4위에서 5위로 떨어졌다가 3위로 올랐다. 성취 수준별로는 수학의 경우 가장 우수한 ‘수월’에 해당하는 학생 비율이 35%로 싱가포르와 대만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우수’에 해당하는 학생 비율도 70%로 싱가포르, 홍콩에 이어 3위에 올랐다. 과학은 ‘수월’이 싱가포르, 대만에 이어 3위,‘우수’가 싱가포르, 대만, 홍콩에 이어 4위였다. 성별 성취도 차이는 수학의 경우 남학생이 592점, 여학생이 586점으로 6점 차이가 났으며, 과학에서도 남학생 564점, 여학생 552점으로 12점의 차이를 보여 수학 1점, 과학 6점에 불과한 세계 평균을 웃돌았다. 그러나 수학과 과학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은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상위권에서 ‘수학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 비율은 30%로 세계 평균 40%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조사 대상 45개국 가운데 38위에 머물렀다. 우리나라보다 뒤처진 곳은 일본(17%), 대만(26%) 등이었다. 반면 미국과 호주, 스웨덴 등은 자신감 조사에서 최상위권에 속했지만 성취도는 15위 안팎으로 동양권 국가들과 대조를 이뤘다. ‘과학에 자신이 있다.’는 학생 비율은 25%로 세계 평균 48%에 비해 크게 떨어졌으며, 일본과 함께 25위에 그쳤다.‘수학 공부가 즐겁다.’고 생각하는 학생도 43%로 ‘즐겁지 않다.’는 학생 57%보다 낮았다.‘과학 공부가 즐겁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38%로 세계 평균 77%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학생 57% “수학 재미없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최석진 교육평가연구본부장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가치인식과 자신감, 즐거움 등은 동양권 학생들에게 공통적으로 낮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면서 “그러나 가치와 자신감 등은 장기적으로 지적 성취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측면에서 이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팀스는 IEA회원 50개국 가운데 46개국이 참여하는 공동연구로 4학년(만 9세)과 8학년(만 13세),12학년(만 17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과학 학업성취도를 평가한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찬란한 ‘서양미술 400년’

    찬란한 ‘서양미술 400년’

    1793년 프랑스혁명의 세 거두 가운데 한 사람인 장 폴 마라는 고질인 피부병 때문에 반신욕을 하며 집무를 보던 중 반대파의 자객에 의해 암살당한다. 마라의 동지이자 나폴레옹 황제의 수석화가였던 자크 루이 다비드는 이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마라의 죽음’이라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3개월 만에 완성한다. 암살자가 들고 온 편지, 피묻은 칼이 당시 상황을 재연하듯 화면에 그대로 놓여 있는 ‘기록화’ 같은 작품이다. 자객의 단검에 살해된 마라의 시신은 실제로는 선혈이 낭자한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다비드는 마라의 죽음을 마치 격무에 시달리다가 잠이 든 ‘시민의 일꾼’ 같은 모습으로 이상화했다. 엄격한 형식미를 추구한 다비드의 신고전주의 양식이 그대로 녹아 있는 이 그림이 10여 개월의 복원과정을 거쳐 새 단장한 모습으로 한국을 찾는다. 21일부터 내년 4월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양미술 400년전-푸생에서 마티스까지’가 바로 화제의 전시다. 소개되는 화가는 다비드, 푸생, 부셰, 앵그르, 들라크루아, 쿠르베, 코로, 모네, 시슬레, 피사로, 르누아르, 고갱, 마티스, 뒤피, 피카소, 들로네 등 88명. 미술애호가라면 한번쯤 그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유명 작가들이다. 프랑스 랭스미술관에서 70여점을 대여받은 것을 비롯,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릴, 말로, 몽펠리에, 피카르디 미술관, 트루아 역사박물관 등에서 모두 119점의 작품을 빌려 왔다. 전시는 시대별로 서양 미술 400년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17세기 절대왕정을 배경으로 한 장중하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과 국립 미술아카데미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고전주의 양식,18세기 귀족사회가 낳은 장식적인 로코코 양식, 산업기술의 발달로 근대화되기 시작한 19세기의 사조들인 낭만주의, 신고전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와 20세기 야수파, 큐비즘 등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초대형 전시인 만큼 전시작 중에는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 적지 않다. 마티스가 친필 글씨를 새겨 랭스미술관에 기증한 ‘재즈’ 판화집, 엽서 한 장 크기인 1호도 채 되지 않는 작품이지만 여인의 코발트빛 옷과 장밋빛 혈색이 생생하게 묘사된 르누아르의 유화 ‘대본낭독’ 등이 공개된다. 특히 ‘대본 낭독’은 워낙 크기가 작아 도난 위험이 커 한번도 해외에서 전시된 적이 없는 작품이지만 특수액자를 제작해 이번에 처음 선보이게 됐다. 고대의 여러 조각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부분만을 조합해 완벽한 아름다움을 구현한 앵그르의 두 작품 ‘샘’과 ‘물 속에서 태어난 비너스’도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원본 작품들이다. 이밖에 근대회화의 시조인 푸생의 ‘두 발을 적시고 있는 여인과 풍경’, 뒤프레누아의 ‘리코메드 왕의 딸들 사이에 숨어 있다가 율리시스에게 들킨 아킬레스’, 사실주의 대가 쿠르베의 ‘협로’, 인상파 화가인 모네의 ‘벨 일의 바위’, 피사로의 ‘루브르’, 고갱의 ‘건초 말리는 사람’, 뒤피의 ‘마리-크리스틴 카지노’, 고갱의 판화 ‘테 아릴 바이네(왕가의 여인)’ 등도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다. 입장료 일반 1만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6000원.(02)2113-3477.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책꽂이]

    ●계용묵 전집(계용묵 지음, 민음사 펴냄) ‘백치 아다다’의 작가 계용묵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그의 소설과 산문을 나눠 묶은 전집. 단·장편으로 일관해 문단의 조명을 받지 못했던 작가의 미발표 작품까지 수록됐다. 소설집 2만 5000원, 산문집 2만원. ●백년여관(임철우 지음, 한겨레신문사 펴냄)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소설가 임철우의 새 장편. ‘봄날’ 이후 5년 만에 쓴 작품으로 일제시대,6·25 보도연맹 사건, 광주항쟁 등 한국사 100년을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재구성했다.9000원. ●그해 여름(전4권)(이영숙 지음, 한글 펴냄) 천재작가 이준수 등 직업이 다른 세 사람의 욕망과 사랑, 인간의 이중성을 그린 장편소설. 미술출판 기자 출신인 작가는 1992년 단편 ‘환상의 나라’ 이후 ‘함박눈이 내린 새벽’‘대바람 소리’ 등 중단편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각권 8000원.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고은 등 71명 지음, 열화당 펴냄) 고은 이윤기 최인호 김지하 한수산 강석경 신경숙 등 한국의 대표 문인 71명이 문학을 향한 순수열정과 글쓰기의 아픈 여정을 고백했다. 붓을 꺾을 수 없는 작가들의 육성이 ‘문학론’으로도 손색없다.1만 2000원. ●책 읽어주는 남자(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이레 펴냄) 15세 소년과 36세 여인의 사랑을 빌려 독일 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반추한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재출간됐다. 작가의 단편집 ‘사랑의 도피’(1995년)도 나란히 선보였다.9500원. ●핑거포스트,1663(전2권)(이언 피어스 지음, 김석희 옮김, 서해문집 펴냄) 내란과 혁명으로 점철된 17세기 영국을 무대로, 과학 의학 신학 인식론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아우르는 미스터리 역사추리소설.1권 1만 3800원,2권 1만 2800원.
  • [8일 TV 하이라이트]

    ●생방송 TV연예(SBS 오후 8시55분) 가수에서 배우로 변신한 영화배우 윤계상이 마침내 군에 입대했다. 윤계상이 입대하던 날 그를 밀착 동행 취재했다. 스타들이 가장 바쁘다는 12월, 화려한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스타들. 연말 술자리에 얽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스타가 공개하는 ‘나만의 건강법’을 들어본다. ●사이언스+(YTN 오전 8시30분) 초록색 괴물을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만든 에니메이션 ‘슈렉’의 제작현장을 살펴본다. 영화는 새로운 상상력과 뛰어난 제작기술로 이전의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드림워크사의 컴퓨터 전문가들에 의해 완성된 첨단 컴퓨터그래픽의 진수를 보여준다. ●문화센터(EBS 오전 11시) 발레리나의 의상, 튀튀의 길이에 따라 극의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지고, 어떤 내용을 포함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튀튀를 통해 발레 작품을 이해하는 요령을 살펴본다. 또한 화려하고 웅장한 발레의 대명사인 ‘군무’장면을 보면서 작품 해석도 해보고, 발레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여검시관 닥터(iTV 오후 9시) 사사건건 부딪치던 조던과 헤일리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조던이 어린 시절 엄마가 돌아가신 일을 헤일리에게 털어놓으면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그러다 조던은 헤일리의 가방에서 피살자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를 발견하고 그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실체를 의심하게 된다. ●12월의 열대야(MBC 오후 9시55분) 지환의 방 앞에 선 영심은 들어가지도 못한 채 문을 응시하고 있다. 이마에 피를 흘리며 서있는 영심을 지환이 발견한다. 치료를 끝내고 병원을 나오던 영심은 아직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정우를 발견하고 멈춰 선다. 영심을 뒤쫓아 나온 지환은 정우를 발견하고 분노가 치민다. ●해신(KBS2 오후 10시) 궁복은 염장과의 검술 대결에서 출중한 실력을 보인다. 궁복은 능창의 눈에 들고 자미부인의 사병이 될 기회를 얻게 된다. 이즈음 최무창의 지시를 받은 비밀부대의 군사가 자미부인의 집무실에 침입하여 비밀 장부를 빼간다. 자미부인은 비밀부대의 실체를 알게 되고 먼저 무주도독을 치려고 한다. ●TV문화지대(KBS1 오후 11시35분) 자기고백적인 정서를 그려낸 심수봉의 노래들은 ‘솔직함’으로 세대와 시대를 넘어 누구에게나 사랑받는다. 한혜주씨의 하프연주와 함께 ‘사랑이 시로 변할 때’와 ‘17세기 어느 수녀의 시’를 낭독한다. 또한 중년으로 접어든 심수봉의 노래 인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 쉬어가기˙˙˙

    프랑스오픈 챔피언이자 러시아의 페더레이션스컵 우승을 이끈 아나스타샤 미스키나(23·세계랭킹 3위)가 ‘17세 테니스 요정’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를 제치고 ‘올해의 러시아 테니스 선수’에 뽑혔다. 러시아테니스연맹은 5일 테니스 취재진과 코치진, 연맹 관계자 투표를 통해 올해의 선수를 선정한 결과 미스키나가 올해의 여자 선수에 뽑혔다고 밝혔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4)거문도의 역사와 삶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4)거문도의 역사와 삶

    ●英 침략행각 고스란히… ‘포트 해밀턴’ “186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해군 함정과 상선이 거문도에 드나들었고,1885년부터 1887년까지는 해군이 기지를 두었다. 그 동안과 그 후 몇 해 동안 해군 사병과 해병대원 10명이 이 섬과 근처 해역에서 사망하여 섬에 묻혔다.1886년에 사망한 2명과 1903년에 사망한 1명의 해군 병사의 기록은 비문에 새겨져 있으나 나머지의 묘지는 이제 알 길이 없다.” 거문도를 ‘포트 해밀턴(Port Hamilton)’으로 병기한 거문도 영국군 묘지에 가면 ‘주한 영국대사관, 한·영협회, 영국부인회는 한·영수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1983년 이 패를 세웠다.’는 동판이 세워져 있다. 묘지의 주인공에만 관심을 갖는 위 기록으로 보면 워낙 표현이 온건하여 영국군이 잠시 나들이라도 나왔다 간 것 같은 인상마저 준다. 그러나 거문도 무단점령은 두 말할 것 없이 제국주의적 침략 행각이었다. 거문도는 남해안과 제주도의 중간에 있는 섬으로 대한해협과 대마해협의 문호에 해당한다. 영국은 일찍이 거문도를 주목,1845년에 사마랑을 보내 탐사를 한 뒤 해밀턴항으로 명명했다. 서구열강은 이곳이 동북아의 군함과 무역선 중간기착지로 적당하다고 판단했다.1866년 미국의 아시아함대 슈펠트 제독도 5일간의 정밀탐사 끝에 ‘해군기지로 손색이 없다.’고 결론내렸다.1878년에 이곳을 다시 찾은 영국 실비아호 선장 존은 아예 ‘영국이 이곳을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동항을 찾던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대한 대응이란 관점에서 무단점령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해석상의 명분일 뿐이다.35세에 외무차관,39세에 인도 총독, 후일 옥스퍼드대학 총장이 된 커즌은 소용돌이에 휘말린 조선에 관해,“블라디보스토크나 나가사키 사이에서 함부로 차는 축구공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거문도 점령은 동아시아에서의 거점확보가 핵심 의도였다.1885년 영국군은 거문도를 해군기지화하면서 22개월간 장기 점령한다. 김윤식 등 조선정부의 요인들은 보고를 받고도 섬의 위치조차 몰라 강화도 앞의 주문도와 착각하기도 했다. 조선정부의 무능이 이 정도였다. ●섬 3개 사이 만 숨어있어 군항에 딱 이 엄청난 국제적 사건을 이해하려면 한번쯤은 이곳에 들러봐야 한다. 거문도엘 가다 보면 뱃길을 따라 초도, 손죽도 등이 펼쳐져 이곳이 다도해임을 누구나 알게 된다. 동·서도가 삼산교라는 교각으로 연결되며, 그 가운데에 고도(현재의 거문리)가 자리해 삼산도(三山島)라 불렸다. 등대로 가다 보면 3개의 섬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늑한 만이 요새처럼 숨어 있어 군항으로는 그만인 곳이다. 초대형 선박의 입·출항은 어렵지만 중간 연락항으로는 그만이다. 영국이 욕심 낸 이유를 알 만하다. 제국주의의 살아 있는 전시장과도 같은 섬 거문도. 영국군 묘역 바로 아래 바닷가에는 중국과 통신하던 해저 케이블이 남아 있다. 당시만 해도 전선(電線)은 ‘제국주의 침탈의 동맥’이었으니, 이는 본국과 교통하며 우리나라를 삼키려 한 야욕의 증거이기도 하다. 집단취락의 흔적인 일본식 여관, 소화13년(1938)에 건립한 거문항 확충비, 삼도(三島)신사터 등 식민의 흔적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야마구치(山口縣)현의 기무라 추다로(木村忠太郞)가 무인도를 개척하여 거문리를 조성한 까닭에 왜인들 사이에서는 더러 ‘목촌(木村)의 거문도’라거나 ‘왜도(倭島)’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왜인 후손들이 일본에서 ‘거문도회’를 조직, 이따금 이곳을 찾아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한다니 그것도 참 우스운 일이다. 삼치와 고등어, 갈치잡이가 주업이다. 일본인도 예전에 이곳에서 주로 어업에 종사했다. 그 고등어가 이곳에 ‘거문도 파시’를 열었다.5월말에 시작,10월까지 파시가 이어졌는데, 이 전통은 일제시대부터 76년 무렵까지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60∼70년대에는 겨울 동안에 삼치파시도 이어 열렸다. 고등어와 삼치가 한창 들던 60∼70년대는 거문도의 전성시대였다. ●60~70년대엔 고등어·삼치 많이 잡혀 이곳에서 어획된 삼치는 모두 일본으로 수출됐다. 한창 삼치가 들 때는 배 한 척이 출어해 보통 2∼3t, 많게는 6t까지 잡아 올리기도 했다. 경남 통영이나 삼천포 등지에서 200여척의 배들이 몰려 장관을 이뤘다.17세부터 어업에 종사해온 정복래(81)씨는 ‘파시평(波市坪)’이란 역사적 용어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이 말뜻을 ‘온갖 장사치들이 모여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객선 터미널이 있는 곳에서 동·서도를 잇는 삼선교까지 이런 배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술집은 말할 것도 없고 옷과 비단, 신발가게에 강진 칠량에서는 옹기배까지 찾아들어 고기와 물물교환을 했다. 거나한 술판에 싸움 잘 날이 없었던 때도 이 무렵이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인 유곽이 들어차 포구에 창녀들이 진을 쳤다. 당시 거문리에는 우물이 12곳이나 있어 수백 척의 배들이 몰려들어도 식수 걱정이 없는 곳이었다. 영국군이나 일본인이 동·서도를 마다하고 굳이 거문리로 몰려든 것도 풍부한 식수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거문도 사람들은 고등어보다 삼치를 더 가깝게 기억한다. 고등어 잡이가 경상도 선망배에 의해 독점되었고, 그 선망배들은 밤에 작업한 뒤 낮에 잠깐 항구에 들러 물만 얻어 싣고 떠나 주민생활과 깊은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고등어는 모두 부산에 모였다. 그렇지만 폭풍이라도 불라치면 이곳에는 인근의 고깃배들이 몰려들어 며칠씩 묵어가는 바람에 골목길이 흡사 장터 같았다. 한 척에 수십명이 타던 시절, 어선 수십 척만 들이밀어도 그들이 푸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1970년대 중반을 지나며 거문도는 몰락의 길을 걷는다. 어족자원이 고갈되면서 더 이상 어로선단이 몰려들지도 않았고, 많은 거문도 사람들이 원해나 원양어선을 타고 외지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로지 갈치잡이만 성해 대부분의 주민들이 말린 갈치나 생갈치 위판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여기서 솟구친 의문 하나. 왜 60∼70년대 초반까지 엄청난 어획고를 올리던 거문도가 한순간에 몰락하게 되었을까. 사실 답은 간단하다. 한·일어업협정이 발효되면서 대일 청구권자금에 의한 노후 선박과 그물이 대거 유입되었다. 이를 계기로 ‘기다리며 잡던 어업’에서 ‘쫓아가 잡는 어업’으로 변신, 단기간에 엄청난 어획량을 올렸으나 그만큼 어자원은 급감했다. 여수에 위치한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 김진영 박사의 말을 듣자.“삼치나 고등어는 떼를 지어 움직이는 외해종(外海種)이다. 서식 공간은 정해져 있고 먹이도 제한돼 있어 이들 어류는 자기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고등어를 우리는 연간 20만∼40만t씩 잡아 올린다. 엄청난 양이다. 치어기의 생존 조건이 좋으면 일시적으로 급증하기도 하지만 어류 번성의 주기는 2∼3년이다. 확실히 우리의 ‘어획 강도’가 너무 높다. 샅샅이 뒤져 씨를 말리는 ‘완전어획’으로 연안을 찾아든 외해종 치어까지 모조리 잡아버려 결국 어자원 고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결국은 ‘느림의 철학’이 여기서도 문제가 되고 있었다. 한 마리라도 더 잡아들이고 싶은 욕망은 끝이 없을 터이니 작은 놈들까지 싹쓸이할 것이 뻔한 이치 아닌가. 자원이 고갈되면서 우리는 고작해야 1년생 고등어를 사먹고 있으니, 이덕무가 ‘청장관전서’에서 말한 바 ‘소년어’를 잡아먹고 사는 격이다. ●또 하나의 명물, 100년된 등대 거문도에서 빠뜨릴 수 없는 곳이 또 있다. 바로 거문도 등대이다. 백도의 아름다운 절경도 소중하지만 이 섬의 역사를 알려면 이 등대를 찾는 게 훨씬 정확하다.1905년에 세워진 등대이니 내년이면 100년. 열강이 각축하던 100년 전에 등대가 세워졌다는 것은 거문도가 전략적 요충지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등대로 가는 바닷가 벼랑길은 지나치기 아까운 절경이다. 동백나무 터널을 수백m나 통과해야 한다. 등대가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이만한 숲이 남아 있을 턱이 없다. 한준봉(56) 소장은 “등탑 자체가 문화유산 감인 데다가 숲조차 뛰어나서 연간 10만명에 가까운 관광객들이 몰려온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해양수산부에서 거액을 들여 새 단장을 하고 있다. 어디에서나 등대지기의 삶은 고달프다. 한 소장도 평생 오동도와 백야도, 소리도, 거문도 등 등대만을 돌아다녔다. 그는 아내의 출산 경험담도 털어놨다. 병원없는 절해고도에서 애를 낳는 바람에 자신이 직접 탯줄을 자르고 뒤처리까지 했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다 앓기라도 할라치면 장장 6∼7시간이나 배를 타고 여수까지 나가야 했다. 이렇듯 등대지기의 애환은 끝이 없다. 이곳에는 한 소장 말고도 김계인(54)·한현성(29)씨 등 2명의 등대원 ‘홀아비’들이 더 있다. 이곳에 초임 발령을 받은 한씨는 총각이다.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묻자 “등대에서 살겠다는 아가씨만 있다면….”이라며 말꼬리를 감춘다. 농촌 총각 문제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남들 모르는 ‘등대총각’은 어쩌랴. 혹시라도 동백꽃 피고 지는 등대섬에서 살 뜻이 있다면 누구든 나서 보시라. 마침 관사도 비어 있어 새 삶에 운이 트이기도 할 것이니. 단, 등대의 삶이 결코 낭만이 아니라는 점은 알아둘 것. 영국군 묘지, 등대 100년, 일본인 어촌은 언뜻 무관한 항목 같다. 그러나 여기에는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거문도 위쪽 손죽도에는 왜구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이대원 장군의 사당이 있으니 이 역시 외세와 관련된 역사의 일부이다. 구한말 거문도의 지식인이었던 귤은(橘隱)은 거문항의 만(灣)을 삼호(三湖)라 명명했다. 호수처럼 잔잔하다는 뜻인데, 실제로 거문도는 역사 속에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 암사동에 역사·생태공원

    서울 강동구 암사동 선사유적지 건너편에 여의도공원 절반 크기의 역사·생태공원이 들어선다. 강동구는 1일 암사동 선사유적지 인근 3만 3000여평을 역사·생태공원으로 조성, 쌍둥이 문화단지로 육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강동구는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고, 녹지상태에서 공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내년 상반기부터 공사에 들어가 2010년 매듭지을 예정이다. 공원 조성사업은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기 위해 2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공원의 규모가 커 일시에 추진하면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110억원을 들여 2007년까지 추진하는 1단계 사업이 완료되면 선사유적지, 풍납·몽촌토성과 연계한 대단위 문화관광 벨트가 형성된다. 우선 구암서원을 복원하고 암사동의 옛 이름인 바위절마을의 호상(好喪)놀이를 널리 알리는 전시관, 전통 놀이 등 우리의 옛 풍습을 재발견하는 전통문화체험마을 등이 만들어진다. 구암서원은 17세기 한양에서 유일한 사액서원(임금이 시설 이름을 하사한 서원)이다. 넓이 1186평에 사당과 강당, 재실, 홍살문 등 옛 시설을 되살린다. 복원 뒤에는 다도(茶道) 혼례 제례 등 전통예절 및 예능 교육과 서예 국악 한국학 등 전통문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된다. 전시실 회의실 공연장 등으로도 사용한다. ‘쌍상여’가 특징인 바위절마을 호상놀이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10호로, 주민 135명으로 이뤄진 보존회가 어렵사리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체험마을에 들어설 농업박물관과 주막 대장간 연날리기터 새끼꼬기마당 등을 묶어 교육·관광 명소로 가꾼다. 2단계 사업에서는 494억원을 들여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가 조성된다. 대상 면적은 2만 3000여평이며 오는 2008년부터 공사에 들어간다. 이 곳에는 1000여명이 한꺼번에 관람할 수 있는 ‘야외 선사예술마당’과 5000여명이 동시에 이벤트를 벌이거나 피크닉을 가질 수 있는 잔디광장이 조성된다. 또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적 사건과 일화 등을 형상화한 조형벽화, 영상물을 보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이야기 정원’도 꾸민다. 나무 그루터기 쉼터, 조개껍데기를 깐 길이 있는 ‘기억의 숲’ 등 주제별 생태 숲 6곳도 만든다. 신동우 구청장은 “선사유적지는 학술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주제가 단순해 어린이들의 교육장 외에 관광자원으로서 역할은 크지 않은 게 사실”이라면서 “공원이 조성되면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등 관광자원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청장은 이어 “공원을 조성하더라도 초기단계부터 시 문화재위원회를 통한 지표조사를 거치는 등 선사 유적지에 걸맞는 공원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한국인 체형 서구형으로

    한국인 체형 서구형으로

    지난 25년 동안 한국인의 체형은 키의 경우 20대에서, 몸무게와 허리둘레는 50대에서 가장 많이 변했다. 전체적으로 얼굴은 작아지고 키는 커져 점차 서구체형으로 바뀌는 추세다.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이 성인 남녀 2만 1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30일 발표한 결과다. 20대 남성의 경우 1979년에 비해 평균키가 6㎝ 커진 173.2㎝, 여성은 4.6㎝ 커진 160.0㎝로 나타났다. 몸무게 변화가 가장 큰 50대의 경우 남성은 12.4㎏이 증가한 69.1㎏, 여성은 7.1㎏이 늘어난 60.2㎏으로 조사됐다. 허리둘레도 50대에서 가장 큰 체형 변화가 나타났다. 남성은 25년 전에 비해 11.6㎝가 늘어난 87.5㎝, 여성은 9.6㎝가 늘어난 83.0㎝였다.1979년의 경우 우리나라 20대 남녀의 평균키는 서양인에 비해 각각 10㎝ 이상 작았으나 이번 조사에서 남성은 미국인보다 5.3㎝, 이탈리아인보다 1.3㎝ 작았다. 여성도 미국인보다 5.5㎝, 이탈리아인보다 1.9㎝ 작아 신장 차이가 크게 좁혀졌다. 키가 커지는 데 반해 얼굴 크기는 작아져 79년 남성의 머리길이는 24.6㎝, 여성은 23.3㎝였으나 올해 조사에서 남성은 23.6㎝, 여성은 22.3㎝였다. 등신지수(키/머리길이)를 79년과 비교하면 남성은 6.8등신에서 7.4등신으로, 여성은 6.7등신에서 7.2등신으로 각각 변해 서구체형에 가까워졌다. 한국복식사 사료를 근거로 추정해본 결과 고구려 시대에 남자 5.9등신, 여자 5.8등신이던 것이 조선시대에 남자 6.4등신, 여자 6.3등신으로 바뀌는 등 우리 민족의 등신비율은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높아졌다. 3차원 발형상 측정을 통해 국민들의 발 크기를 조사한 결과 남성은 17세, 여성은 14세에 성장이 멈춰 이미 어른의 발 크기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20대가 남성 평균 254㎜, 여성 평균 232㎜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컸다. 또 270㎜ 이상의 ‘왕발’은 60대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반면 20대에서는 8.1%에 달했다. 비만도 판정 기준인 체질량지수를 보면 비만 남성 비율은 20대가 24%,30대가 43%,40대가 48%,50대가 51%,60대가 41%로 연령대가 높을수록 비율이 높았다. 특히 30대에 체형이 급격히 변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은 20대 9%,30대 19%,40대 26%,50대 51%,60대 56%로 30대까지는 비만 비율이 남성의 절반 정도이나 50대가 되면 급격히 비만체형으로 바뀌어 비율이 2배 이상으로 높아졌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영화속 수능잡기] 황야의 7인

    [영화속 수능잡기] 황야의 7인

    멕시코 접경의 한 마을. 농부들은 매년 마을을 노략질해 가는 칼베라 일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결국 마을을 지키는 싸움을 시작하기로 하고,7명의 총잡이를 고용한다. 마을에 도착한 7인의 총잡이는 방어벽을 쌓고 총 쏘는 법을 훈련시키면서 칼베라 일당에 맞서기 위한 준비를 해나간다. 이상이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를 할리우드식으로 리메이크했다는 영화 ‘황야의 7인’의 대략적인 스토리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쟁쟁한 스타들 중의 한 명은 베르나르 역을 맡은 찰스 브론슨이다. 그는 직업적인 총잡이다. 우수가 짙게 드리운 냉정한 얼굴과는 달리 그는 어린아이들을 좋아한다. 아이들도 베르나르를 좋아한다.“저도 크면 아저씨처럼 총잡이가 될 거예요.” 아이들은 눈부신 사격솜씨를 가진 베르나르를 부러워한다. 그 부러움의 이면에는 비겁한 아버지들에 대한 분노가 있다. 자신들의 아버지들은 총을 잡고 싸울 줄도 모르고 그저 농사만 짓는다고 아이들은 불평이 대단하다. 이 아이들에게 베르나르는 이렇게 말한다.“겁쟁이가 전쟁터 한 가운데로 스며든단다. 진짜 겁쟁이는 너희들의 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나란다.” 아이들은 왜 아저씨가 겁쟁이냐고 따진다. 그러자 베르나르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너희들의 아버지는 농부들이다. 농부는 씨를 뿌리고 수확을 기다릴 줄 안단다. 씨를 부리고 기다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기다릴 수 없단다. 씨를 뿌리고 기다릴 줄 아는 용기가 없는 내가 바로 겁쟁이란다.” 어느 해에는 불볕 더위에도 비 한 방울 뿌리지 않지만 어떤 해에는 우기가 훨씬 지난 초가을의 폭우로 농사를 망쳐놓기도 한다. 한 마디로 자연은 믿을 수가 없다. 예측불가능한 자연을 믿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일종의 도박이다. 도박에는 당연히 자신의 밑천을 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폭우나 우박으로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뻔히 알면서도 농부들은 씨를 뿌리고 기다린다. 그것은 분명 용기에 속한다. 성철스님은 눕지 않고 자지도 않는 소위 ‘장좌불와’ 수행을 팔 년 동안이나 행했다고 한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수행을 그렇게 오랜기간 했다니 입이 딱 벌어진다.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17세기 조선 시단(詩壇)에서 이름을 날렸던 김득신은 백이전(伯夷傳)을 1억 1만 3000번을 읽었고, 노자전(老子傳)과 분왕(分王) 등은 2만번을 읽었다고 한다. 이런 노력에도 용기는 필요하다. 반드시 총과 칼을 잡거나 주먹을 쓰는 자만이 ‘용기 있는 자’의 칭호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황야의 7인’에서의 총잡이들은 용기 있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베르나르의 말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의 노력을 다한 후 그 결과를 겸허하게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용기의 소유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존 스터지스 감독, 율 브린너·엘리 웰라치·스티브 매퀸·찰스 브론슨 출연,1960년작. 김보일 서울 배문고 교사 uri444@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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