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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천재 박주영-아두 맞장

    축구천재 박주영-아두 맞장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축구천재’들이 수원벌에서 맞붙는다. 한국의 박주영(사진 왼쪽·20·고려대)과 미국의 프레디 아두(오른쪽·16·DC유나이티드)다. 이들은 다음달 22일부터 26일까지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리는 2005수원컵 국제청소년(20세 이하)대회에서 만나 진정한 ‘축구천재’가 누구인지를 가린다. 나이는 아두가 4살 어리지만 경력은 박주영보다 훨씬 화려하다. 그는 15살이던 지난해 4월 미국 프로축구(MLS)에 데뷔한 ‘축구신동’.1887년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에 당시 14세로 데뷔한 프레드 채프먼 이후 미국 스포츠 사상 가장 어린 선수가 됐다. 그의 프로무대 데뷔전은 입장권이 모두 매진됐고, 이례적으로 ABC방송이 미국 전역에 생중계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가나 출신으로 흑인 특유의 현란한 몸놀림과 화려한 드리블이 장기다. 아두는 2003년 8월 핀란드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17세 이하) 조별리그에서 한국과 만나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1-6 참패의 수모를 안긴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이 대회가 끝난 뒤 잉글랜드의 첼시 등 유럽명문 구단의 러브콜을 잇달아 받았고 미국의 ‘뉴스위크’지가 선정한 ‘2003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박주영도 국내에서는 이미 청구고 시절부터 ‘괴물선수’로 알려져 있었지만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그는 지난해 아시아청소년(19세 이하)선수권대회에서 6골을 뽑아 득점왕과 팀 우승을 동시에 이루며 처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올들어서는 지난달 카타르 4개국 초청대회에서 4경기 동안 무려 9골을 뽑아내는 가공할 득점력을 과시했고 ‘박주영 신드롬’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박주영 역시 당장 유럽무대에서도 통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일본 J리그 팀들이 다투어 눈독을 들이는 등 한껏 ‘몸값’이 치솟고 있다. 이 때문에 자존심을 건 박주영과 아두의 대결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가 사뭇 주목된다. 수원컵에는 한국·미국 외에 이미 오는 6월 세계청소년대회 진출이 확정된 아르헨티나와 이집트 등 4개국이 참가, 풀리그로 경기를 벌인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FC 바르셀로나에서 뛰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미드필더 리오넬 메시와 프랑스 프로팀 소쇼에서 활약하는 이집트의 공격수 아메드 페라그 등 정상급 스타플레이어들이 참가하기 때문에 ‘박성화호’로서는 전력을 점검할 좋은 기회가 될 전망이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유 카르멘‘

    |베를린 연합|제55회 베를린영화제의 황금곰상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돌아갔다. 영화제 심사위원장인 롤란트 코흐 독일 영화감독은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남아공의 ‘유 카르멘 에카옐리차(에카옐리차의 카르멘)’을 경쟁부문 출품작 22개 가운데 최우수 영화에 주는 황금곰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마크 드론포드 메이 감독이 만든 이 작품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차용, 남아공 작은 마을에서의 생존투쟁과 남녀의 정열적 사랑을 그렸다. 남아공 영화가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 본선에 진출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남우 주연상은 미국 영화 ‘손가락 빠는 사람(Thumbsucker)’에서 어릴 때의 불안한 심리와 이에 따른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17세 소년 역을 맡아 훌륭한 내면 연기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은 루 테일러 푸치가 선정됐다. 여우 주연상은 히틀러 치하에서 오빠와 함께 저항운동을 하다 처형돼 ‘뮌헨의 백장미’로 불리는 여대생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조피 숄-마지막 날들’에서 열연한 독일 여배우 율리아 옌취가 받았다. 최우수 감독에게 주는 심사위원단 그랑프리는 작은 농촌 마을에서 인습과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극복해 나가는 여인의 고난사를 그린 ‘공작(孔雀)’의 중국 구창웨이 감독이 받았다. 한국 영화의 경우 지난해 김기덕 감독이 ‘사마리아’로 최우수 감독에게 주는 은곰상을 수상했으나 올해엔 경쟁부문에 한 편도 초대받지 못했다. 한국 영화로는 이윤기 감독의 영화 ‘여자, 정혜’가 넷팩상(NETPAC,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을 수상했다. 넷팩상은 NETPAC이 아시아 지역 초청작 가운데 가장 주목하는 작품에 주는 상.‘여자, 정혜’(3월10일 개봉)는 한 여성이 아픔을 딛고 사랑을 만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 영화로 김지수가 여주인공을 맡아 연기했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선 뉴커런츠상을 수상했으며 지난달 열린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도 경쟁부문에서 상영됐다. 19일 열린 시상식에서 심사위원단은 “개인적인 상처를 지닌 젊은 여자의 내면을 섬세하고 정확한 영화적 묘사로 그려냈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 문신, 예술이냐 혐오행위냐

    문신, 예술이냐 혐오행위냐

    ‘개성을 표현하는 예술인가, 불법 의료행위인가.’온라인 상에서 문신(文身)작가 100여명이 버젓이 활동하고, 신체의 한 부위에 문신을 한 사람이 50만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신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의사가 아닌 사람이 문신을 시술하는 것은 불법이다. 문신작가들의 합법화 주장과 문신에 대한 편견, 외국의 사례와 문제점 등을 살펴본다. “조금 아프죠.” “…아니요. 참을 만한데요.” “오른쪽 종아리에 유난히 신경세포가 쏠려 있네요.1시간만 더 하면 끝나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16일 오후 서울 시흥동 문신작가 이모(28·여)씨의 스튜디오.3시간째 ‘윙’ 하는 문신 기계 타투건의 굉음이 경쾌한 랩 음악과 함께 인체해부도와 탱화들 사이로 날아다니고 있다. 대학생 홍모(24)씨가 비스듬히 누워 있는 수술대 옆에는 잉크와 피가 섞인 검붉은 솜이 수북하게 쌓였다. 잠시 뒤,‘넓고 진실되게 살겠다.’는 뜻의 ‘진홍(眞弘)’이라는 글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업을 마친 이씨는 소독약과 바셀린으로 소독을 끝낸 뒤 ‘작품’을 랩으로 쌌다.“내가 몸과 마음의 주인으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에요.” “그럼 제가 대모(代母)가 되는 셈이네요.” 10평 남짓한 스튜디오는 홍씨와 이씨의 웃음으로 가득찼다. 홍씨가 문신을 새기기로 결심한 것은 1년 전.‘편협한 자아를 버리고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삶을 지향하겠다.’는 신조를 평생 간직하기 위해서였다. 이씨를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지난해 봄에 인터넷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문신은 지우기 어렵다. 그래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문신의 형태와 시기를 조율했다. 결국 지난 연말 초안이 탄생했다. 홍씨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젊은 세대는 스스로의 신조와 의지를 드러내는 데 익숙하다.”면서 “문신이 적절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문신 인구 50만명 넘을 듯 문신은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5조와 의료법 제25조에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문신은 이미 일반인들 가까이에 있다. 온라인에서만 100명이 넘는 문신작가가 활동하고 있다. 문신 인구도 꾸준히 늘고 있다.5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싸이월드(cy world.com)에는 100여개의 문신 관련 미니홈피가 개설돼 있을 정도다. 문신은 몸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다. 그만큼 종류도 다양하다.▲명암의 차이를 극대화한 ‘블랙앤그레이’ ▲파란색과 주황색 등 보색의 대비를 극대화한 ‘뉴스쿨’ ▲빨강과 노랑, 파랑 등 원색을 주로 사용하는 ‘올드스쿨’ 등 10가지가 넘는다. 가격은 손바닥만 한 크기가 20만원선. 등에 하는 큰 문신은 수백만원대를 호가한다. 그러나 문신 기법이 세밀할수록 가격은 올라간다. 기간도 문신의 크기와 기법에 따라 짧게는 서너시간에서 길게는 십수년까지 걸린다. 문신작가는 보건범죄특별법으로는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과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의료법으로는 5년 이하의 징역과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정도로 과중한 형벌이 뒤따른다. 그러나 이에 대한 검·경의 단속은 전혀 없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과 관계자는 “지난해 구속된 문신작가는 단 한 명도 없다.”면서 “대부분 구속 사안도 아니어서 단속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불법 의료행위인가 예술인가. 문신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03년 6월 김건원(본명 김유미·30·여)씨가 구속되면서부터다. 이후 연세대 사회학과 조한혜정 교수, 가수 신해철씨 등 많은 이들이 탄원서를 내고 ‘타투법제화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지난해 추진위는 의료법과 보건범죄특별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는 올해 안으로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여 또다시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추진위가 주장하는 것은 ‘의료행위’의 개념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헌재에 낸 의견을 통해 “문신은 국소 마취한 채 색소침윤술로 색소를 피부에 착색하는 의료행위”라고 밝혔다. 추진위는 이에 대해 문신은 마취를 하지 않고, 색소침윤술이 의료행위라면 머리카락의 염색도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반박한다. 범죄와 형벌을 법률에 규정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에도 반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의사만이 문신을 할 수 있다.’는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여전히 단호하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최경일 사무관은 “문신이 의료행위가 아니라는 사회적 통념이 굳어지고, 헌재에서 그런 결정이 나면 모르겠지만 다른 대안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합법화 전망 밝지 않아 문신이 합법화될 전망은 지금으로서는 밝지 않다. 헌재가 ‘소수’의 ‘문화적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보다는 의료계 ‘다수’의 ‘공중 보건’에 손을 들어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문신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일반’의 통념도 걸림돌이다. 이에 대해 많은 문신연구자들은 별다른 단속도 안 하면서 문신을 금지하기만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외국처럼 일정한 위생 기준을 마련하고, 자격이 있는 시술자에게 면허를 부과하는 게 표현의 자유와 공중 위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대안이라는 설명이다. 문신연구가 조현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법으로 묶어둔다고 해서 문신이 안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의사들이 현재 문신 시술을 하는 것도 아니다.”면서 “문신 시술가들에게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추게 해 양성화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 외국선 어떻게 문신(tattoo)은 말 그대로 몸에 글씨나 그림, 무늬 등을 새겨넣는 행위를 말한다. 피부나 피하조직에 상처를 내서 물감을 넣는다는 점에서 단순히 그리기만 하는 보디페인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기능이 아닌 예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성형 문신과도 구별된다. 문신은 종교의 기원과 그 궤를 같이한다. 원래 주술적이면서도 전투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는 청동기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오래된 문신은 1991년 알프스 산에서 냉동된 채 발견된 사냥꾼에서 확인됐다. 기원전 3300여년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이집트에서 번성한 문신은 크레타 섬을 통해 유럽으로, 페르시아를 통해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으로 전파됐다는 게 통설이다. 우리 민족도 예외는 아니다. 삼한시대에 문신의 풍습에 대한 기록이 있을 정도다. 문신이 부정적으로 낙인찍힌 것은 기독교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 기독교는 공식화되자마자 민간 신앙에서 널리 행해지던 문신을 ‘악마의 상징’으로 배척했다. 구약성서 레위기 19장 28절에 “너희 몸에 먹물로 글자를 새기지 말라.”고 기록됐을 정도다. 이후 문신은 폴리네시아와 북미 지역을 제외하고 노예나 중범죄자들에게나 행해지는 치욕의 상징이었다. 문신이 다시 등장한 것은 17세기 이후. 다른 대륙 ‘원주민’들과의 접촉이 계기가 됐다. 이후 직업적 타투이스트들이 등장하고,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가 문신을 받을 정도로 어느 정도 보편화됐다. 일본에서는 17세기 말 이후 범죄자들 사이에서 장식용 문신이 유행하면서 퍼졌다.‘조폭=문신’이라는 등식도 여기서 나왔다. 현재 문신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문신은 유럽뿐 아니라 일본, 중국 등 아시아에서도 예술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미국에서도 사우스 캐롤라이나와 오클라호마 등 2개 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합법화돼 있다. 뉴욕주 등 11개 주는 면허제도와 위생 기준 등으로 규제를 하고 있고, 나머지 주들은 제한을 전혀 두고 있지 않다. 미국공중보건부(DPH)나 미국식품의약청(FDA) 등 위생당국에서도 문신이 위생적으로 이뤄지면 에이즈나 B형·C형 간염 등에 감염될 위험이 “매우 적다.”고 밝히고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클릭 이슈] 스포츠 해외유학 실태

    [클릭 이슈] 스포츠 해외유학 실태

    최근 한국 스포츠계에서는 ‘박주영 축구 신드롬’이 일었다. 환상적인 골 퍼레이드로 국민을 열광시킨 박주영은 본인이 워낙 뛰어난 자질을 갖추기도 했지만, 고교 시절 축구 선진국 브라질로 1년간 유학을 다녀왔다는 사실로 주목받았다. 박주영처럼 일부 해외 유학으로 인한 소득도 있지만 마이너 종목에서는 일부 선수에 집중된 투자로 전체적인 기량 발전으로 이어지기에는 미흡한 것 또한 현실이다. ●축구·골프가 가장 ‘활발’ 현재 해외 유학이 활성화된 종목은 축구와 골프. 축구는 에이전트나 프로구단, 대한축구협회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유학이 이뤄지고 있지만 골프는 순수 개인 차원에서 다녀온다는 차이점이 있다. 에이전트를 통해 개인적으로 유학을 떠나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축구 유학의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기는 사실 힘들다. 최고조에 달했던 2000년에는 200∼300명 정도가 유학을 떠났던 것으로 대한축구협회는 추정한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월드컵을 계기로 국내 축구 환경이 비약적으로 좋아졌기 때문에 현재는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협회 차원에서는 2002년 17세 대표팀의 양동현 등 유망주 5명을 프랑스로 유학을 보냈고 지난해 하반기에도 2억여원의 예산을 투입,3명을 추가로 내보내기도 했다. 앞서 프로축구 포항 스틸러스는 2000년부터 자체적으로 유망주를 발굴, 브라질의 자매 구단에 위탁 교육을 실시했다. 첫 기수가 수원에서 뛰고 있는 김동현 등이고,2기가 바로 박주영이다. 지난해까지 30여명의 축구 새싹들이 포항의 주선으로 ‘삼바 축구’를 경험했다. 개인적으로 유학을 가는 경우가 대다수인 골프도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기 힘들다. 다만 대한골프협회 특소세 면제 대상 제외자를 살펴보면, 초·중·고 선수 가운데 한 해 5∼10명씩 꾸준히 미국 유학을 떠났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리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버디 퀸’ 박지은(나이키골프) 정도를 제외하고는 성공 사례가 극히 드문 편. 박세리(CJ)나 김미현(KTF) 등 국내 성공을 바탕으로 해외에 진출한 케이스가 오히려 더 많다. ●마이너종목은 단기 연수로 1∼2개월 짜리 전지 훈련이나 단기 연수는 재정 사정이 빠듯한 군소 종목에서 선택하고 있는 방법. 전지 훈련을 제외하면 역시 대부분의 비용은 선수 개개인이 책임진다. 피겨스케이팅에서는 15∼20명 정도의 선수들이 매년 여름 방학 등을 이용, 개인적으로 단기 연수를 다녀오곤 한다. 국내에서는 한 코치가 모든 분야를 도맡아 가르치지만 외국에서는 기술 음악 안무 등 전문 분야별로 전담 코치가 있기 때문에 유망주들은 해외 연수를 필수 코스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한 달 평균 1명당 1000만원대 비용이 드는 탓에 살림이 어려운 연맹에서 금전적으로 지원하기는 쉽지 않다. 동계종목 가운데 척박한 환경을 지닌 스키도 주니어 선수를 포함, 대부분이 3∼4개월이나 1∼2개월씩 해외 원정을 떠난다. 최근 한국 여자 피겨의 희망으로 떠오른 김연아는 그나마 나은 편.5년 쯤 전부터 자비로 해마다 캐나다 쪽에서 연수를 받았지만, 지난해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이후 연맹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게 됐다. 한국 육상계에서도 지난해 전무후무한 일이 있었다.26년 만에 100m 한국 기록(10초34)을 깰 기대주로 주목받은 전덕형이 아시아에서 육상 선진국으로 꼽히는 일본으로 ‘전격’ 유학을 떠난 것. 연간 3000만원을 웃도는 유학 비용은 한국육상경기연맹 등에서 지원한다. 유학 개념이 전무했던 농구에서는 삼일중학교를 졸업한 김진수가 미국 LA의 농구명문인 몬트클레어 고교로 유학을 떠나 물꼬를 트기도 했다. 빙상연맹의 한 관계자는 “재정 상태가 열악한 종목의 연맹이나 협회에서는 좋은 재목이 나와도 대부분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면서 “기초 종목 성장을 위해서는 정부나 기업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유학, 오기도 한다. 한국의 강세 종목인 양궁이나 배드민턴 등에서는 지도자를 수출, 한국 스포츠의 위상을 떨치기도 한다. 특히 태권도는 해외에 지도자를 파견하는 것 외에도, 종주국 발차기를 배우기 위해 유학을 오는 선수들은 해마다 10여명에 달한다. 중국과 일본은 물론 미국과 유럽 등에서 한국체대와 경희대, 용인대 등을 찾아 본고장의 기량을 익히고 있다. 올해 한체대 태권도학과를 졸업하고 중국태권도협회에서 대외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성휘도 마찬가지 경우. 지난 2000시드니올림픽 여자태권도 67㎏이하급 동메달리스트인 오카모토 요리코는 한국에서 태권도 유학을 한 대표적인 선수이기도 하다. 이창구 홍지민 임일영기자 window2@seoul.co.kr
  • [이젠 사람입국이다] 12. 캐나다의 평생학습

    [이젠 사람입국이다] 12. 캐나다의 평생학습

    |오타와·에드먼턴(캐나다) 전경하 특파원|캐나다는 10개의 주와 3개의 준(準)주로 이뤄진 연방제 국가다. 교육에 관한 정책결정 권한은 각 주가 갖지만 연방정부가 큰 틀을 정한다. 각 주정부는 교육장관협의회(CMEC·The Council of Ministers of Education,Canada)에 참여, 교육정책을 공유한다. 연방정부에서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인력기술개발부(HRSD)는 토의 주제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의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에만 참여한다. 대신 HRSD는 322개의 지방사무소를 통해 지방과의 협조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평생학습이 잘돼야 세금도 늘어 HRSD는 평생학습이 국가경쟁력 차원에 절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육 수준이 높은 국민일수록 정부 지원금은 적은 반면 이들이 내는 세금은 많다. 또 범죄 발생률도 낮고 빈곤이 세습되는 것도 막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로버트 사우더 HRSD 학습·전략정책 담당국 부국장은 “공부를 해도 직장을 얻지 못한 경우가 있지만 이는 노동력에 대한 투자로 이해하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캐나다 정부의 평생학습 초점은 크게 세가지다.▲현재 인력을 기술변화에 맞춰 생산적으로 만들고 ▲노령화된 노동력을 재교육해 일하도록 하며 ▲이민자들의 언어(영어)사용 능력 향상을 꾀하는 것이다. 캐나다도 저출산율(1.6명) 영향으로 노동력의 고령화가 진행중이다. 이민에 적극적이다 보니 이민자들의 영어능력 향상이 산업안전과 사회통합에 필수 요소가 됐다. 이를 거울삼아 동남아 등으로부터 인력을 받아들이는 한국 정부가 준비해야 할 부분이다. ●중앙은 수단, 지방은 내용 제공 연방정부는 평생학습의 접근 용이성에 중점을 둔다. 지난 96년 온라인학습을 지원하는 지역사회 학습네트워크를 설립, 이를 통해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데 초점을 뒀다. 연방정부가 지역사회 학습네트워크 자금의 50%를 지원하며 나머지는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각 주의 대학이나 산업체와의 협력관계를 구축시키기 위해서다. 또 연방정부는 PLAR(Prior Learning Assessment and Recognition) 프로그램을 운영, 구직자들의 시간을 절약해준다.PLAR란 졸업장이나 학위가 아니라 일하면서 얻은 노동자의 능력을 정부가 나서 인증해주는 제도다. 이를 통해 특정 능력을 갖고 있는 인력 풀(pool)이 조직되는 장점이 있다. 주와 지방정부에서는 평생학습을 제공할 수 있는 기관을 발굴·조직한다. 각 주의 평생학습은 지역별로 조직된 지역성인학습협회가 주도한다. 주로 대학, 특히 2년제 대학(커뮤니티 칼리지)이 평생학습의 중심이 된다. 지역성인학습협회는 이민자들의 언어 지도를 위한 주민들의 자원봉사활동도 조직한다. ●대학의 중심이 되는 평생학습 캐나다에서 평생학습이 가장 잘 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 앨버타주의 경우 지역내 2년제·4년제 대학, 직업훈련기관 등이 갖고 있는 다양한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과목별, 기간별로 분류해 놓은 안내책자를 발간하고 있다. 각 대학에서의 주차·탁아 서비스 가능 여부도 포함돼 있다. 대학들도 평생학습으로 출산율 저하에 따른 학생 부족을 메우고 있다. 지식기반 경제에서 새로운 일자리는 보다 높은 교육수준을 요구하는 분야에서 나오고 있다. 따라서 25세 이상 인구와 이들 가운데 시간제로 대학에 등록하는 비율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대학들은 보고 있다. 90여년이 넘게 평생학습을 위한 단과대학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앨버타대학은 프로그램 다양화로 수요 변화에 대처하고 있다. 프로그램마다 고용주, 학생, 공공부문 지도자 등 다양한 인사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가 있기 때문이다. 응용과학, 교양과목, 경영, 공공분야 등 7개 분야에서 200여개에 육박하는 프로그램이 학기마다 열리고 있다. ●대학, 강의를 팔아라 앨버타대 평생학습단과대학이 수업료와 관련해 벌어들이는 수입은 연간 600만캐나다달러(50억원 정도)나 된다. 이런 수익은 앨버타대의 끊임없는 혁신의 결과이기도 하다. 평생학습단과대학 마케팅담당자인 아누 바르사바는 “대학이 앉아서 학생을 받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면서 “강의를 상업적으로 팔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로 앨버타대학은 특정 수요 계층을 겨냥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한다. 에드먼턴시 경찰국의 고위직 퇴직자가 90년대 후반들어 늘어나자 업무 연계성을 강화할 필요성이 생겼다. 앨버타대는 이에 부응,5개 과목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프로그램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2003년부터 경사 이상으로 승진을 할 경우 의무적으로 들어야하는 프로그램이 됐다. 또 앨버타대는 60년대부터 앨버타 주정부와 계약해 지방공무원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인터넷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교과과정 전체를 온라인(www.govsource.net)으로 배울 수 있게 되자 캐나다 전역과 전 세계의 학생을 받고 있다. 올해에는 멕시코와 아프리카의 공무원들도 참여하고 있다. ■ 모범사례 에드먼턴개발공사 |에드먼턴(캐나다 앨버타주) 전경하 특파원|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시는 지난 1993년 에드먼턴개발공사(EEDC)를 설립, 시의 경제개발과 관광기능을 전담시켰다. 자금은 에드먼턴시가 100% 지원하고 시의회가 운영을 감독한다. 캐나다에서 경제개발과 관광기능을 별도의 공사를 설립해 전담시킨 예는 에드먼턴이 유일하다. 에드먼턴은 캐나다에서 ‘현명한(smart) 도시’라는 별명이 붙은, 주민들의 교육수준이 가장 높은 곳이다. EEDC의 홍보를 맡고 있는 짐 루돌프는 “기업가들이 시청과 직접 상대하다 보면 관료주의적 경향이 강하다고 느끼는데, 이를 없애기 위해 공사를 설립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공사는 관광업무를 전담하게 되면서 그동안 독립적으로 운영됐던 컨벤션센터도 공사 소속으로 뒀다. 에드먼턴에 국제회의를 유치, 참가자들이 이곳에 와서 ‘돈을 쓰게’하는 것이 EEDC의 기능 중 하나다. EEDC안에는 13개 산업집적군 조정위원회가 있다. 산업성격에 따라 위원수가 다르지만 75% 이상을 산업계에서 맡는다. 이 위원회는 당면 과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도록 돕는다. 필요한 자금은 연방·주정부에서 받는데, 규모와 구성비는 산업별, 사업별로 다르다. 최근 역점을 두고 추진중인 사업은 농산물 운송체계 정비다.EEDC가 집합 장소를 결정하고 농민들이 이곳에 상품을 가져오면 목적지까지 일괄배송되도록 처리한다. 루돌프는 “자영업자들의 비용절감은 투자와 고용을 이끌어내는 측면이 있다.”고 효과를 설명했다. 에드먼턴에 투자를 유치하는 것도 EEDC의 몫이다.EEDC는 최근 세계 1위 PC회사인 델컴퓨터의 소비자센터 유치에 성공했다. 오는 7월 센터가 세워지면 500여명의 고용이 창출될 것이라고 EEDC는 밝혔다. 델컴퓨터가 에드먼턴에 투자를 유치한 배경에는 에드먼턴의 교육수준이 큰 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계 회사 게코도 북미지역에서는 가장 큰 재활용 공장을 에드먼턴에 세울 예정이다. 투자자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기업가를 연결시키는 중개기능도 EEDC의 역할이다. 부유한 퇴직자들을 등록, 그룹을 만든 뒤 이들 앞에서 혁신적인 생각이나 기술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이 설명회를 갖도록 한다. 설명회에 앞서 젊은이들의 발표 및 의사소통 기술 향상 교육을 진행한다. ■ 활발한 자영업 육성 |오타와(캐나다) 전경하 특파원|캐나다 연방정부의 고용보험은 기술개발, 자영업 지원, 고용창출을 위한 협력관계 구축 및 임금 보조 등 네가지로 나눠진다. 주정부마다 개별 항목에 대한 지원방법이나 비중은 다르지만 기술개발에 많은 자금이 집행되는 편이다. 투입자금 대비 효율성에서는 자영업 지원이 상대적으로 효과가 크다. 캐나다 연방정부는 성공률이 80%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캐나다 인력기술개발부에서 고용보험을 총괄하는 헤더 자름 인력개발프로그램·서비스국 부국장은 “창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다른 경우보다 동기 부여가 잘 돼 있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자름 부국장은 자영업은 다른 고용보험 혜택에 비해 고용창출 효과가 있어 적극 장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용실 가내수공업 등 지원대상에 대한 특별한 제한은 없다.17세 이상이며 고용보험대상으로 실업자가 됐으나 자신의 사업을 하려는 사실만 증명하면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자금지원은 최대 52주(장애인은 78주)까지다. 또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각종 조정단체로부터 사업영위에 필요한 기술적·경영적 조언을 최대 3년까지 받을 수 있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왜 계룡산인가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왜 계룡산인가

    ●태조 이성계와 계룡산 1392년 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옛 귀족이 건재한 개성이 싫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이 있듯 이 태조는 충신으로 가득한 새 수도에 새 왕조의 터전을 닦고 싶었다. 이때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부상한 곳이 계룡산이었다. 이 태조는 1393년 음력 정월 직접 계룡산에 행차해 산세를 휘둘러 보았다. 그해 3월부터 왕도 건설의 삽질 소리가 계룡산 골짜기에 메아리쳤다. 일설에 따르면 계룡산이란 명칭도 그때 비롯됐다. 이 태조를 수행해 현지로 내려온 무학대사는 신수도 예정지 신도안의 좌우 산세를 살핀 다음 이렇게 평가했다고 전한다. 계룡산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금빛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요,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 용이 날아 하늘로 오르는 형상)이다. 여기서 말한 ‘금계’는 부의 상징,‘비룡’은 현명한 임금을 의미한다. 즉, 이곳에 도읍하면 풍요한 태평세월이 보장된다는 말이다. 무학대사는 금계의 ‘계’와 비룡의 ‘룡’을 차용해 산 이름을 계룡산이라 부르자 했고 그 말대로 됐다 한다. 계룡산 신도안에 한창이던 천도 사업은 1393년 연말 문신 하륜(河崙)의 맹렬한 반대로 파국을 맞는다. 하륜은 세 가지 이유를 들어 계룡산을 반대했다. 첫째, 남쪽에 너무 치우쳐 한반도의 동쪽·서쪽·북쪽과 교통이 불편하다. 둘째, 주변에 큰 강이 없어 세금은 물론 물산을 운반할 큰 배가 드나들지 못한다. 셋째, 계룡산의 풍수는 중국의 풍수가 호순신(胡舜臣·송나라)이 말한 이른바 ‘수파장생쇠패입지(水破長生,衰敗立至)’의 땅이다. 즉, 흘러나가는 물이 땅의 기운을 약화시켜 나라가 곧 쇠망할 곳에 해당한다. 조정 대신들은 공방 끝에 하륜의 주장을 채택해 계룡산 천도 계획은 결국 백지화되고 말았다. 뜻밖의 결정에 남부지방 사람들은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수년 뒤 태종은 마이산(전북 진안군)이란 명산에 친림해 천도 백지화에 대한 산신(山神)의 뜻을 점쳤다 한다. 물론 산신은 그 결정이 옳다는 답을 줬고, 이에 민심도 안정됐다 한다. 한낱 전설에 불과하지만 계룡산 천도에 기대를 걸었던 남도 민심이 여실하다. ●18세기 말부터 계룡산의 인기는 급상승 수도가 한양으로 결정되자 계룡산 천도설은 한동안 잊혀졌다. 계룡산의 풍수에 대한 평가도 신통치 않았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렇게 말했다.“계룡산은 웅장하기가 개성의 오관산에 미치지 못하고, 수려함도 서울의 삼각산만 못하다.” 그러나 17세기 말부터 계룡산 신화는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민심은 조선왕조를 이반하기 시작했고 그로 말미암아 천도설이 다시 고개를 든 것 같다. 홍만종은 1678년에 지은 ‘순오지(旬五志)’에 조선 태조가 계룡산 아래 새 수도 건설을 시작했을 때의 전설을 수록했다. 태조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계룡산은 전읍(尊邑 즉,鄭)이 들어설 곳이라며 당장 계룡산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한다. 이 설화는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도 그대로 실려 있다. 이로 보면 계룡산에 정씨가 도읍한다는 이야기는 양반들 사이에도 널리 퍼졌던 것 같다.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감록’이 널리 인기를 끌었다. ●바위에 새겨진 비밀 19세기 후반 계룡산에서 신비한 각석문자(刻石文字)가 하나 발견되었다.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 있는 연천봉 바위에 “방백마각구역화생(方百馬角口或禾生)”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여러 해 동안 아무도 해석을 못하다가 사람들은 드디어 한 가지 해석에 도달했다. 방(方)은 4방이요, 글자도 4획이라 4를 뜻한다. 마(馬)는 오(午)인데 오라는 글자는 八十을 더한 것이라 80이다. 각(角)은 뿔이다. 모든 짐승이 두 개의 뿔이 있으므로 2가 된다. 이를 모두 더하면 482란 숫자가 된다. 구(口)와 역(或)은 국(國)자가 되고, 화(禾)와 생(生)을 합치면 禾生인데 이것은 이(移)의 옛글자다. 전체를 다시 조합하면 ‘四百八十二 國移’란 구절이 된다. 요컨대 조선은 개국 482년째 되는 1874년에 망한다는 뜻이다. 이런 뜻이라면 그것을 몰래 바위에 새긴 사람이 누굴지는 뻔하다. 그는 조선왕조의 몰락을 염원한 사람이다. 어쩌면 ‘정감록’의 신봉자였을 수도 있다. 아무튼 각석의 풀이는 한동안 민심을 동요시켰다. 그 때는 섬에서 진인이 나온다는 소문이 연달았던 시절이다. 마침 ‘정감록’에는 위기가 절정에 이른 순간 계룡산에서 정진인이 나타나 새 나라를 세운다고 돼 있어, 많은 사람들은 계룡산이 새 수도가 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조정대신들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19세기 말 권좌에 오른 대원군은 계룡산으로 천도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천도를 통해서라도 이미 달아난 민심을 조선왕조에 매어 두고 싶었던 것이다. ●명산 중의 명산 계룡산 계룡산은 최고봉의 높이가 845m로 별로 큰 산은 아니다. 그러나 고대로부터 국중(國中)의 손꼽히는 명산이었다.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엔 나라에서 법으로 정한 명산대천이었다. 해마다 국왕은 제관을 보내 계룡산 산신에게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었을 정도다. 내가 만나본 현지 주민들은 우선 계룡산이란 이름의 뜻이 각별하다고 말했다.‘계’ 즉, 닭은 사람과 가장 가까운 가축인데다 새벽을 알리는 매우 특별한 역할을 하므로 새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고 풀이했다. 그런가 하면 ‘용’은 전설 속의 영물로 기린, 봉황 등과 함께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다고 믿어졌다. 용은 성스러운 지배자를 뜻하기도 한다. 달리 말해 ‘계룡’에는 성스러운 통치자의 출현 또는 새 세상의 시작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명산인 계룡산은 풍수지리설에 힘입어 더욱 독특한 이미지를 갖게 됐고, 오랫동안 풍수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요컨대 계룡산은 유서 깊은 명산인데다 조선 초기 도읍 후보지가 되기도 했고, 그 뒤에도 풍수가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정씨가 도읍한다는 전설도 있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정감록’에서 계룡산이 새 왕조의 도읍지로 예정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풍수로 본 계룡산 ‘정감록’에는 천하의 지맥이 흘러가는 큰 줄기가 언급돼 있고 그 가운데 계룡산이 나온다. 그에 따르면, 천하의 산맥은 곤륜산에서 발원해 백두산을 거쳐 금강산으로 흐른다고 했다. 금강산에 옮겨진 내맥(來脈)의 운은 다시 태백산(太白山)과 소백산(小白山)으로 내려가며 산천의 기운을 받아 지기를 더욱 강화시킨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계룡산(鷄龍山)으로 들어감으로써 장차 정씨(鄭氏)가 도읍하여 800년을 누릴 길한 땅이라 했다. 근세의 풍수가들은 계룡산의 특징을 회룡고조(回龍顧祖),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의 3가지 개념으로 평했다.‘회룡고조’란 계룡산이 그 조산(祖山 조상에 해당하는 산)인 대둔산을 되돌아보는 모습이라 나온 말이다. 풍수지리에서는 보통 조산이 너무 높으면 명당을 내리눌러 명당 기운이 죽는다고 한다. 서울의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조산인 관악산(629m)이 진산인 백악(342m)보다 수백m나 높다. 서울의 풍수가 이런 탓에 서울을 떠나지 않는 한 한국은 외세의 압박에서 좀체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 풍수상의 해석이다. 그러나 계룡산은 전혀 그렇지 않다. 조산인 대둔산(878m)은 높이는 계룡산(845m)과 30m밖에 차이가 없다. 게다가 조산과 진산의 거리도 멀기 때문에 계룡산의 기세가 대둔산에 눌릴 리가 만무하다고 본다. 지맥의 흐름으로 볼 때 계룡산은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큰 줄기가 진안의 마이산까지 내려오다 다시 갈라져서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온 형세다. 마이산에서 반전된 산세가 대둔산과 천호산을 향해 달음박질하다 공주 동쪽에서 C자를 뒤집은 모양으로 꺾였다. 산세의 이런 흐름은 마치 태극과 같아 풍수가들은 ‘산태극’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계룡산의 둘째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계룡산의 물길 또한 산세와 마찬가지로 ‘수태극’을 빚어냈다. 전북 장수읍 신무산(神舞山) 아래 수분리(水分里) 뜸샘(또는 물뿌랭이)에서 시작된 금강의 도도한 흐름은 무주, 영동, 대청호, 부강, 공주, 부여, 강경을 차례로 휘감아 돌다 장항을 거쳐 서해로 들어간다. 이런 금강 물줄기에 합류하는 것이 계룡산 명당수인데 그 모양이 태극과 같다. 계룡산의 명당수는 신도안 용추골에서 시작되어 우청룡을 휘감아 흘러들어가 금강과 만난다. 풍수설만 가지고 보면 계룡산은 도읍터로서 매력적인 곳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미 하륜이 정확히 지적했듯 한나라의 수도를 정하는 데는 교통, 행정 및 경제적인 요건이 풍수설보다 더 중요하다. 정감록은 계룡산 도읍설을 펴고 있지만 그것은 조선왕조 자체를 부인하는 데 초점을 둔 것이지 계룡산이 정말 도읍할 만한 곳인가를 따진 것은 아니다. 정감록에 담긴 메시지는 민중은 새 세상을 원한다는 그 말이다. ●계룡산 바위가 희어질 때 계룡산에 큰 의미를 부여한 때문일 테지만 정진인이 왕으로 등극하기 직전 여러 가지 심상치 않은 조짐이 있다고 한다. 정치 사회적 변화 못지않게 자연계에 큰 변화가 예언돼 있는데 계룡산이 관련된 한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우선 계룡산의 바위가 흰색으로 변한다고 했다. 바위 색깔이 희게 변하는 일이 보통은 불가능하다. 흥미롭게도 우리 풍습엔 예부터 흰색 바위를 미륵불의 상징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중국 당나라에도 똑같은 풍습이 있었다. 흰 바위는 미륵불의 출현, 달리 말해서 복된 새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상서로운 표징이다. 여러 해 전 현지조사 때 직접 주민들로부터 들은 바로는 조선 후기부터 계룡산의 바위가 조금씩 하얗게 변했다고 한다. 내 육안으론 그런 변화를 확인할 수 없었다. 진인왕이 올 때가 되면 계룡산 아래 있는 초포(草浦)에 바닷물이 들어와 배가 들락거린다는 예언도 있다. 초포는 금강과 계룡산 사이에 있는 작은 농촌마을인데 먼 옛날엔 거기까지 작은 배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엔 금강의 토사가 많이 쌓여 배가 통행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랬는데 1990년 금강하구 제방공사가 완공되자 강물이 불어 이제 초포에도 다시 작은 배들이 다닐 만하게 되었다. 어떤 주민은 이를 두고 ‘정감록’ 예언은 반드시 들어맞는다고 주장한다. 이에 맞선 다른 견해도 있다.‘정감록’에 바닷물이 초포까지 들어온다고 한 것은 해수면이 높아지는 해양 생태계의 대변화를 예고한 거라는 현대적 해석이다. 정감록에 또 예언하기를, 말세엔 생선과 소금 값이 아주 떨어진다고 돼 있는데, 이 역시 생태계의 일대변화를 예고한 것이란다. ●말세엔 계룡산으로! 정감록에 예고된 급격한 환경 변화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말세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누런 안개와 검은 구름이 사흘 동안 움직이지 않는다는 예언은 최근 몇 년 동안 여름철이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을 온통 뒤덮는 짙은 연기 같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아니면 구제역 등 전염병을 몰고 오는 황사현상 같기도 하다. 그러나 다가올 재난은 황사 이상이다. 냇물이 마르고, 산이 무너진다는 무시무시한 예언을 두고 어떤 이는 수자원의 고갈, 녹색환경의 파괴를 예언한 것으로 읽었다. 말이 나온 김에 좀더 알아보면 정감록의 일부인 ‘서계이선생가장결’엔 이런 섬뜩한 내용이 있다.‘9년에 걸친 흉년,7년간의 수재(水災), 그리고 3년 동안의 역질(疫疾)이 닥칠 것이다. 열 집 중 한 집만 겨우 살게 될 것이다. 이상하구나, 세상의 재난이여! 전쟁도 아니고 범죄도 아니구나. 가뭄 아님 물난리, 흉년이 아니면 돌림병이로다!’ 정감록은 새 세상이 밝아오기 전 민중이 넘어가야 할 마지막 고난의 문턱이 다름 아닌 자연재해, 전염병, 그리고 경제대란이라고 못박았다.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1821년,1822년,1858년,1886년, 그리고 1895년에도 전국에 콜레라가 유행해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1858년 한 해만도 50만명이 쓰러졌다. 조선 후기엔 독감, 장티푸스 등 전염병이 창궐해 사망자수가 수만을 헤아렸다.5∼6년이 멀다하고 찾아든 홍수와 가뭄으로 흉년이 끊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1807년엔 서해안 일대에 해일이 발생하여 많은 인명을 앗아갔다.1815년과 1817년의 대홍수 역시 처참한 피해를 안겨줬다. 이런 예에서 확인되듯 ‘정감록’이 예언한 말세의 조짐은 그저 막연한 공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역사상 민중이 겪은 집단적 고통의 기록이었다. 이런 식으로 과거의 역사는 미래의 예언과 만나는 것이다. 대환란이 닥쳐오면 어떻게 피할 것인가? ‘정감록’은 특출한 10개의 명당 즉,‘십승지(十勝地)’로 들어가라고 말한다. 여러 지역을 여기서 일일이 거론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계룡산이 최고의 피난처로 손꼽힌다는 점이다. 계룡산 인근의 유구(維鳩)와 마곡(麻谷) 사이도 또한 길지라고 했다. 물론 우연이겠지만 그 지역에 신행정수도가 예정된 것은 흥미롭다. 현지에서 만난 노인들은 ‘정감록’을 직접 인용해 가며 이 지역으로 반드시 새 수도가 돼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계룡산,600년 전엔 조선왕조 건국 세력이 정한 도읍지였다.300년 전엔 조선왕조를 혐오하던 민중의 희망이었다. 지금 또다시 그 계룡산은 신 행정수도 논란의 와중에 서 있다. 우리에게 계룡산은 과연 무엇인가? (푸른역사연구소장)
  • ‘낙화’ 시인 하늘로 지다

    원로시인 이형기씨가 2일 오전 10시20분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73세. 이 시인은 11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치료를 받아왔다. 경남 진주 출신으로 동국대 문리대를 졸업한 고인은 1950년 17세에 등단, 한국현대시의 중추로 역할해 왔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낙화)라는 대표적 시구에서 드러나듯 그는 존재론적 고민을 시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작가였다. 7년전 발표한 시집 ‘절벽’에서도 생명의지와 존재의 소멸에 천착한 글쓰기 면모를 보였다. 비평 소설 수필 등 전방위 문학활동을 펼친 그는 투병 중에도 부인의 대필로 시창작을 했을 만큼 작품활동 의지를 꺾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통신, 서울신문, 대한일보 등의 기자를 거쳐 국제신문 편집국장을 역임하기도 했다.1981년 부산산업대 교수를 시작으로 1987년부터 모교인 동국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1974년 ‘월간문학’ 주간을 지냈고 1994년부터 2년동안 한국시인협회장으로 활동했다. 시집 ‘적막강산’‘심야의 일기예보’‘절벽’, 비평집 ‘감성의 논리’‘한국문학의 반생’ 등을 남겼다. 생전에 한국문학작가상, 대한민국문학상, 대산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예술원상, 은관문화훈장, 서울시 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은숙(68)씨와 딸 여경씨, 사위 김태윤(한국와이어스 대리)씨가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4일 오전 8시. 장례는 이날 오전 9시 서울 도봉구 방학동 성당에서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02)929-4099.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하프타임] 한·일 OB축구 국가대표 자선경기

    1980년대 그라운드를 주름잡던 한·일 축구스타들이 쓰나미 피해 어린이를 돕기 위한 자선경기를 벌인다. 수원월드컵경기장 관리재단은 27일 “오는 4월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 기금 마련 한·일 OB축구 국가대표 자선경기’를 연다.”고 밝혔다. 김호 전 수원 감독이 지휘봉을 잡는 한국팀에는 주장 최순호 전 포항 감독을 비롯해 황보관 J-리그 오이타 감독, 김주성 대한축구협회 국제위원, 박경훈 17세대표팀 감독 등이 예비 엔트리 30명에 이름을 올렸다.
  • [세상에 이런일이]英어린이는 ‘졸라맨’

    |런던 연합|영국 어린이들이 부모들을 졸라 돈을 타내는 재능이 뛰어나 유럽 어린이들 가운데 가장 주머니가 두둑한 것으로 조사됐다. 데이터모니터가 최근 유럽 7개국의 10∼17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2003년 기준 연평균 수입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영국은 775파운드(약 150만원)로 이탈리아(341파운드)에 비해 2배 이상이나 많았다. 스웨덴이 697파운드로 2위에 올랐고 네덜란드 575파운드, 프랑스 442파운드, 독일 438파운드의 순이었다. 특히 영국 어린이들의 주 수입원은 용돈이 아니라 부모나 친지들을 졸라 마련된 것임이 조사결과 밝혀졌다. 영국 어린이들의 이같은 고액 수입은 2008년에는 848파운드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이번 보고서를 작성한 로렌드 굴드는 “부모들은 어린 나이의 과소비 등을 걱정해 용돈을 줄이려고 하지만 졸라대는 아이들의 성화에 점점 더 못 이긴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진인왕, 한국판 전륜성왕?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진인왕, 한국판 전륜성왕?

    요즘은 ‘우담발라’가 꽤 자주 피는 것 같다. 연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지만 최근에도 충북 단양군청과 충남 논산 성불사에 우담발라가 피었다고 해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법화경’에 보면 우담발라는 부처나 전륜성왕(轉輪聖王) 같은 성인이 출현할 때만 핀다고 한다.3000년에 겨우 한 번 필까 말까 한다는데 생물학자들은 그것이 실상 풀잠자리알 또는 곰팡이에 불과하단다. 어쨌든 우담발라가 피어 있는 성불사의 금륜 스님은 상서로운 징조라며 “을유년에는 평화와 번영, 남북통일을 기원하고 싶다.”고 했다. 우담발라. 작디 작은 몇십 송이 꽃인가, 곰팡이에 스님은 참 크고 묵직한 기원을 매달았다. 그런데 나는 우담발라가 피면 등장한다는 전륜성왕과 ‘정감록’의 진인왕 사이에서 비슷한 점을 발견한다. 전륜성왕은 부처의 세속적 모습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불경을 결집한 아소카 왕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불심이 깊고 태평성대를 실현할 왕이 바로 전륜성왕인데 민중은 진인왕에게 바로 그런 역할을 기대했다. 정감록의 진인은 무엇보다 현실의 고난을 헤쳐 간 민중의 꿈을 형상화시킬 의무를 졌다. 진인왕은 조선왕조의 기득권층인 양반을 벌주고 신분구조를 뒤엎으며, 서구열강과 그들의 종교를 물리치고 동아시아 질서를 재편할 민중의 구세주였다. ●진인은 못된 양반을 생지옥으로 1785년 정조 9년 또 한 차례 정감록 사건이 터졌다. 주모자들은 나라가 셋으로 쪼개진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유씨, 장씨, 김씨가 삼국의 왕이 된다고 했다. 그 뒤 나라를 통일할 진인(眞人)은 제주 700개 섬 가운데 어딘가 숨어 때를 기다린다고 했다. 사건의 주모자들은 그 진인이 마음대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고 하면서 이미 서씨와 정씨 두 사람이 진인의 명에 따라 사람들의 허물을 낱낱이 기록한 일종의 ‘선악적(善惡籍)’을 작성중이라고 했다. 18세기말 민중이 진인의 출현에 걸었던 기대가 무엇이었는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우선 주목되는 게 그 ‘선악적’이란 장부다. 딱히 양반의 허물만 기록한다고 명기돼 있지는 않다. 그러나 평민을 못살게 구는 양반들의 악행을 기록하는 데 그 중점이 있다고들 여겼을 것이다. 진인은 민중의 구세주였기 때문이다. 나라가 바뀌어도 무식한 아랫사람들로서야 당장 무슨 벼슬을 기대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저 양반놈들 망하는 꼴 좀 보자.’는 것이 그들의 희망이었다. 현실은 물론 정반대였다. 여러 지방에서 양반들은 동약(洞約)이나 향약을 실시해 장부를 비치해두고 말 안 듣는 하층민들을 기록해 뒀다가 벌을 줬다. 윗사람을 몰라본다, 불효한다, 형제간에 불화한다는 등의 죄명이 양반들의 ‘선악적’에 기록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진인이 민중의 편에서 선악 장부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은 진인의 인기를 더욱 높였을 법하다. 통상적으론 양반 편에서 작성하는 것인데, 양반을 벌줄 수 있는 선악적이라니 얼마나 통쾌하랴. 진인의 상벌은 현세에서 시행된다는 점도 민중으로선 무척 달가운 일이었다. 자기들은 별다른 죄도 없이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데 약자들을 괴롭히며 놀고먹는 양반, 놀부 같은 그들이 밉고 싫었을 것이다. 민중은 자기들 눈앞에서 그런 못된 양반들이 생지옥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민중들은 지옥이란 말을 꺼낼 때마다 자연스레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을 떠올렸을 것이다. 지옥(범어 나라카·Naraka)은 사후세계란 뜻인데 그 참혹한 광경은 ‘목련경’에 자세하다. 석가모니의 큰 제자 목련존자의 지옥방문 이야기는 민간에 널리 알려졌다. 문맹인 사람들도 지옥도란 종교화를 통해서 지옥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불교의 지옥은 종류도 많아서 각기 8대 열지옥(뜨거운 지옥)과 한지옥(추운 지옥)이 있고, 그 아래 또 32개 소지옥이 있다고 한다. 진인은 선악 장부에 기록된 악인을 문자 그대로 생지옥에 보낼 것이 분명했다. ●푸른 옷(靑衣)은 천주교 신부요, 서구열강이다 진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또 있었다. 어찌 보면 좀 뜬금없는 소리 같기도 한데, 진인은 서양 종교인 천주교도 퇴치해야만 했고 서구열강도 물리쳐야 했다. 물론 이런 기대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말까지 서서히 무르익어 갔다. 북경에 파견된 조선의 사신일행이 거기 와 있던 예수회 신부를 알게 된 것은 이미 17세기부터였으나 천주교가 국내에 유입되어 본격적인 신앙운동이 벌어진 것은 18세기 후반이었다. 조정은 잔뜩 긴장하여 천주교를 엄금하였지만 그 세력은 제법 급속하게 늘어났다. 이런 가운데 1801년 신유박해를 비롯,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하층민들의 일부는 천주교의 문을 두드렸지만 천주교를 이단시하는 사람도 많았다. 조정의 ‘계몽’도 한몫했지만 천주교에서 조상의 제사를 금지한다는 게 그들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천주교에 대한 민중의 반발과 두려움은 정감록에도 감지된다.1923년판 정감록의 일부인 ‘무학비결(無學秘訣)’에서 푸른 옷이 남쪽에서 쳐들어오는데 ‘스님 같되 스님은 아니라’고 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여태 한반도엔 없었던 새로운 부류의 성직자 즉, 신부들이 침략자란 것이다.‘푸른 옷’은 본래 좀더 먼저 쓰인 ‘도선비결(道詵秘訣)’에서만 하더라도 미지의 외부인으로 해석될 뿐이었다.‘푸른 옷을 입고 남쪽에서 오니 오랑캐도 아니요, 왜적도 아니다.’라고 했다. 하필 왜 푸른 옷인지를 누구도 설명할 수 없다가 천주교의 국내 활동이 심각성을 띠게 되자 푸른 옷은 어느덧 서양신부로 비화됐다. 19세기 초에는 서양 함대의 파병을 요청하는 천주교 신자 황사영의 편지가 발각되어 여론이 비등했다. 연달아 천주교박해사건이 터졌으며 국내에 잠입한 프랑스 신부도 처형되었다.19세기 중반에는 그 여파로 프랑스 함대가 공격했고 설상가상 통상문제로 미국함대도 쳐들어 왔다. 그러자 이제는 서구열강 자체가 침략의 장본인으로 부상했다. 이런 변화를 기록한 것이 역시 정감록의 일부인 ‘토정가장결(土亭家藏訣)’이다.‘푸른 옷과 흰 옷이 서쪽, 남쪽에서 동시에 침략한다. 이때 정씨가 바다 섬에서 군사를 이끌고 나온다.’ 역사란 아이러니요, 거기서 나는 또 정감록이 갖는 현실 적응력을 본다. 서양선박의 출몰을 계기로 17세기 후반에 해도진인설이 등장했었는데(연재3호 참고),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19세기 말엔 거꾸로 해도진인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 서양함대요, 서양신부였으니 말이다. ●동학의 최제우 새 세상 구현할 진인으로 1859년 최제우는 서학에 반대한다는 뜻에서 ‘동학’이란 이름의 새 종교를 만들었다. 그 뒤 1894년 동학은 서양과 일본을 물리치고 탐관오리를 내쫓아 백성을 구하겠다며 갑오동학농민운동을 벌였다. 한 마디로 동학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내부의 지배층만이 아니라 외세란 점을 분명히 하였다. 그 바탕 위에 동학은 새 세상을 건설하자고 주장했다. 그것이 이른바 ‘후천개벽’이다. 최제우의 제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에게서 진인의 모습을 찾으려고 했다. 그들에게 최제우란 존재는 새 세상을 구현할 초인이었다. 진인은 서양세력의 위협에서 민중을 구해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 새 질서를 가져다줄 구세주였다. 그러나 모든 일을 진인 혼자 하는 것은 아니다. 방씨, 두씨 및 곽씨 성을 가진 3장군의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각각의 성씨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들의 활약상이 ‘토정가장결’에 나와 있다. “곽장군이 요동의 군사를 이끌고 방씨, 두씨 장수와 함께 왜적과 서남 오랑캐를 무찌른다. 청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돕는다. 정씨를 돕고 이씨를 공격한다. 그러면 이씨는 제주로 들어갈 것이나 4∼5년간의 운수에 지나지 않는다.” ●진인은 동아시아 질서를 재편한다 두어 줄밖에 안 되지만 숨가쁜 격변, 그것도 국제적인 변화를 예언한다. 하층민중이 국제정세에 민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그들 나름의 생각이 없지 않았을 것은 물론이다. 특히 주목되는 구절은 일본과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이어서 조선의 이씨왕조를 무너뜨린다고 한 점이다. 먼저 외부에서 제기된 문제를 극복하고 그런 다음 비로소 내부문제에 착수한다고 한 점이 인상적이다. 다 아는 대로 일·청 두 나라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통해 한국을 괴롭힌 장본인으로 수백 년이 지난 뒤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두려워했다. 더욱이 두 나라는 19세기말 한국에 진출, 내정을 간섭하고 경제적으로도 많은 피해를 주었다. 그런 까닭에 대다수 민중은 진인이 나타나 그들 두 나라도 없애버리기를 바랐던 것이다. 특히 일본의 멸망에 대한 기대가 커, 일본 정벌론까지 등장하게 된다. 정감록의 한 파트인 ‘서계이선생가장결(西溪李先生家藏訣)’엔 호랑이해부터 뱀해 사이 진인이 일본을 쳐서 항복을 받는다고 했다. 호랑이는 섬나라 일본에 존재하지 않는 동물의 왕이며 뱀은 용과 더불어 성인, 또는 왕을 상징한다. 구한말 한반도 지도를 그릴 때도 한국 사람들은 이를 호랑이로 인식했다. 일본 사람들은 일본이 포항과 장기 앞바다에 등대를 설치한 것에 원한을 품기도 했다. 그곳은 호랑이의 꼬리에 해당하는데 등대가 세워지면 호랑이 꼬리에 불을 지른 셈이라는 것이다. 호랑이를 죽이려는 계략이라며 등대를 당장 허물라고 했다. 웃고 넘어갈 이야기지만 어쨌거나 막강한 일본을 이기려면 그런 주술에라도 호소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예언서에 언급된 일본정복설은 허망한 소망에 불과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일본은 해가 갈수록 더 많은 한국산 미곡을 수입했고, 값싼 면직물을 한국으로 대량 수출했다. 결과적으로 대다수 민중은 전례 없는 쌀 부족에 시달렸다. 값싸고 품질 좋은 수입산 면직물을 당해낼 길 없어 일반 농가의 면포(綿布) 생산은 위축돼 갔다.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치른 뒤 한국을 집어삼키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예언서에는 그런 역사적 상황을 반전시키고자 했던 민중의 열망이 표현돼 있다. ●진인왕과 보양법, 밀교 그야말로 초인적인 업적을 이룰 진인왕에 관해 정감록의 일부인 ‘동차결’은 이렇게 점치고 있다.‘태조의 성은 정(鄭), 이름은 홍도(紅桃), 자는 정문(正文), 무오생이다. 섬 가운데 평실에서 나와 계룡산에 건국한다.’ 정진인의 이름 ‘홍도’(붉은 복숭아)는 도교적이다. 복숭아는 수명과 성적 능력을 상징한다. 특히 그 빛이 붉다면 복숭아 중에서도 일품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름은 ‘정문’, 문(文)을 바로잡는다고 돼 있다. 통치 질서와 윤리도덕을 바르게 한다는 뜻으로, 말하자면 진인은 유교적 덕성을 겸비한 존재다. 무오생이라 함도 의미가 있다.10간의 5번째인 ‘무(戊)’와 12지의 7번째인 ‘오(午)’는 각기 중간의 홀수, 즉 중양(重陽)이다. 진시황의 생일도 단오 또는 중양이었다. 이런 남성은 불세출의 영웅이라 한다. 진인왕은 도교적 성격이 강한 만큼 도교서적에 나오는 진인이 되는 방법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 도교에선 양기, 성적 능력을 극대화시키면 절로 진인이 된다고 본다. 그것이 양생법이다. 불교의 분파인 밀교에도 거의 똑같은 가르침이 있다. 당나라 때 도사 손사막이 지은 ‘방중보익(房中補益)’을 보면, 정액을 잃지 않고 93명의 여성과 성교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했다. 몸에 내재한 이성성(二性性)을 살리게 돼 진인이 된다는 말이다. 허무맹랑한 얘기 같지만 밀교는 물론 힌두교에서도 다 그렇게 봤다. 정액을 몸 밖으로 쏟아내지 않고 변화시켜 뇌로 보낼 수만 있다면 열반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유사종교의 지도자들은 이를 빙자해 간음 사건으로 물의를 빚기도 한다. 그들로서는 진인 될 수행을 했다고 강변할지도 모르겠다.1937년엔 백백교 사건이 발생했는데 교주 전해룡은 간음과 범법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무려 350명의 남녀신도를 살해했다고 한다. ●진인왕이 다스릴 새 세상 진인왕이 다스릴 새 세상의 특징을 ‘동차결’은 이렇게 적어놓았다.‘여러 대를 두고 내려오던 양반은 상사람이 되며, 상사람은 오히려 양반이 된다. 부처를 섬기는 사람들 가운데서 인재를 뽑아 쓴다.’ 짧은 내용이지만 정감록을 믿던 민중에겐 결정적으로 중요한 대목이다. 진인왕이 평등사회를 실현한다고 볼 순 없지만, 조선사회의 신분질서를 뒤엎고자 한 민중의 의지가 뚜렷이 드러나 있다. 상사람이 양반되고 양반이 상사람 된다고 하였으니 그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진인왕은 유불선 삼교합일의 바탕 위에 존재하지만 그 본질은 불교적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재를 불교에서 구할 리가 없지 않은가. 또한 여기서 나는 조선후기 민중이 성리학적 지배 이념에 반발해 불교에서 대안을 찾고 있었음을 본다. 조선말의 혁명가 김옥균도 불교신자였으며, 이동인과 같은 개화승려도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어떤 사람들은 불교를 융성시킬 진인왕은 전륜성왕이라고 생각한다. 불교 경전에 보이는 전륜성왕은 모두 4명이다. 공교롭게도 예언서에서 진인왕에게 왕업을 도울 세 아들이 있다고 한 것과 맞아떨어진다. 신라의 진평왕도 아들의 이름을 동륜, 금륜 등으로 불렀다. 그 역시 스스로를 전륜성왕으로 봤다는 증거다. 전륜성왕 가운데 첫 왕은 철륜왕인데 진인왕이 그에 해당한다. 그 뒤를 이어 동륜왕·은륜왕·금륜왕이 차례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게 불교의 가르침이다. 불교신자로서 정감록을 믿는 사람들은 진인왕의 협력자인 세 아들에게도 당연히 그런 역할을 기대한다. 전륜성왕이 출현할 때 우담발라가 핀다고 했다. 서두에서 말했듯 이미 우담바라는 피었다. 과연 전륜성왕은 오는 것일까. 전륜성왕이 가진 7개의 보물 중 하나인 거사보(居士寶)는 고아, 노인, 병자 등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을 모두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 더러 전륜성왕으로 간주되기도 하는 예언서 속의 진인왕은 서양열강, 중국, 일본을 평정하고 동아시아에 새 질서를 구축한다고 했다. 정감록은 당대 민중의 현실적인 문제를 극복할 대안이었다. 그 예언이 실질적인 힘을 발휘했느냐는 별개 문제다. 대안이란 점에서 정감록은 예언서로서 생명력을 오래도록 유지했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암 1000만·백혈병 2000만원으로

    앞으로 17세까지의 빈곤층 아동ㆍ청소년이 암에 걸릴 경우 백혈병은 최대 2000만원까지, 나머지 암은 1000만원까지 정부가 지원해 준다. 지원 대상은 4인가족 기준으로 월소득 341만원, 재산 1억 9000만원 미만 가구로 식대와 상급병실료·특진료 등도 포함된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20일 과천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이같은 내용의 저소득층 암환자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방안에 따르면 아동 암환자 지원대상이 15세에서 17세로 확대되고 지원금도 백혈병의 경우 기존 1000만원에서 최대 2000만원으로 늘어난다. 또 지금까지는 아동 암에 대해서는 백혈병만 의료비가 지원됐지만 올해부터는 모든 암에 대해 1000만원까지 지원된다. 아동 암에 대한 의료비 지원대상은 4인가족 기준 월소득 341만원, 재산 1억 9000만원 미만 가구다. 또 저소득층 암 조기발견 및 치료를 위해 검진사업 대상자를 지난해 120만명에서 올해 220만명으로 늘리고 이를 통해 발견된 암환자에는 최대 300만원까지 의료비를 지원키로 했다. 특히 폐암환자의 경우 의료급여수급자나 전체 건강보험가입자 중 저소득층 50%에 대해 전원 치료비 100만원이 주어진다. 한편 소득이 낮을수록 암에 잘 걸리고, 암에 걸린 후에도 일찍 사망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센터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2001년도 암 환자의 소득별 분석’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층이 상위 20%층보다 암 발생률에서 남성은 1.65배, 여성은 1.43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 정도령은 누구인가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 정도령은 누구인가

    ●정도령과 진인 ‘정감록’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계룡산 밑에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된다는 ‘정도령’이다. 달리 ‘진인(眞人)’이라고도 한다. 누구나 빤히 아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만 따져들면 실체가 애매한 것이 바로 그 진인이고 정도령이다. 실체를 잘 모르면서도 사람들은 정도령에게 제법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모양이다. 여러 해 전 일이었다. 대기업 총수 정모씨가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했는데 당시 칠순 노인이던 그를 가리켜 ‘정도령이 나왔다.’며 사람들이 수군댔다. 도령치곤 참 늙은 도령이었다. 맨손으로 일어나 굴지의 대기업을 키운 사람이었던 만큼 그 뚝심이면 못 할 일이 없다고들 봤던 것일까. 하여간 그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고 그 뒤에도 정도령 감은 몇 명 더 있었다. 그런데 막상 정도령이란 칭호는 ‘정감록’에 안 보인다. 고작 ‘정성(鄭姓)’ 또는 ‘진인(眞人)’이 언급되는 정도다. 때론 그 정씨와 진인이 같은 인물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내가 조사해 보니 민중들이 쉬쉬하며 진인의 출현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먼저 조성됐고, 한참 뒤 그 진인이 정씨라는 예언이 등장했다.18세기 후반 들어 ‘왕조실록’에 ‘정성진인’이란 단어가 보인다. 물론 체통 있는 양반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니다.‘정감록’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에 섞인 단어다. 그런데 정진인이 난데없이 웬 도령인가? 알다시피 도령은 양반집 사내아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정도령은 정진인에 대한 일종의 애칭이다. 도령이란 호칭을 달리 풀이할 수도 있다. 진인이 초능력자라 해도 정식으로 민중 앞에 나서기 전엔 아직 검증이 안 된 인물이다. 시쳇말로 딱지를 못 뗀 일종의 미성년이다. 진인으로 검증을 받을 때까진 정도령, 검증이 끝난 한참 뒤에는 성스러운 임금이다. 진인이 정씨라는 수사의 논리는 무엇인가? 정감록에 그 답이 있다. 이 예언서는 이성계의 조상인 이심, 이연 형제와 정몽주의 선조 정감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돼 있으나 3인이 두 집안의 실제 조상은 아니었다. 상상속의 인물들일 뿐이었다. 그런데 민중은 유독 정감을 더 사랑했다. 엄밀한 의미에선 책 제목을 3인의 대담집이라 해야 옳을 테고 실제로 ‘정이문답(鄭李問答)’이라 한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매우 드문 경우고 대개는 ‘정감의 기록’이란 뜻에서 ‘정감록’이라 불렀다. 그 제목엔 역사의 승리자는 조선왕조의 적대자들, 즉 정씨 성을 가진 진인과 그의 추종자들이라는 주장이 담겨있다. 그런데 새 왕은 왜 하필 정씨여야 하는가? 정씨는 ‘정감록’의 맥락에서 볼 때 고도의 상징성을 지닌다. 조선왕조를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정씨로 대표된다는 뜻이다. 이 주장의 배후엔 민중들의 집단적 기억이 배경에 깔려 있다. 민중은 조선태조 이성계의 즉위를 반대하다 죽은 정몽주 이야기를 잊지 못했다. 조선왕조 건설의 주역이었으나 태종에게 제거된 정도전, 선조 때 역적으로 몰려 죽은 정여립, 영조 때 일어난 반란 사건에 연루된 정희량의 이름을 들먹이기도 했다. 정씨는 조선왕조와 상극(相剋)이므로, 새 나라는 반드시 정씨가 왕이 돼야 한다는 민중의 주장이었다. 따지고 보면 김씨, 이씨, 박씨 등 다른 성씨 중에도 역모에 휘말려 죽은 사람은 수두룩했다. 그런 점에서 정씨 자손이 다음 세상의 주인이 돼야 한다는 논법은 너무 순박하다. 진인이 반드시 정씨 집안에서 출생해야 될 이유는 없었다.20세기 전반 어느 종교 운동가는 ‘정(鄭)도령’은 ‘정(正)도령’이라고 했다. 정씨 진인설의 핵심을 찔렀다고 본다. 정도령은 성씨가 무엇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민중이 믿고 따를 만큼 도덕적인 사람인가가 최고 검증요건이었다. ●진인이란? 조선시대엔 성리학이 지배층의 이데올로기였고, 그에 따르면 ‘도덕군자’가 제일이었다. 그 군자를 제쳐 두고 갑자기 왜 진인이란 생소한 존재가 나타나 왕조를 뒤엎는가? 그 이유를 나는 민중의 숨은 뜻에서 찾는다. 새 시대는 군자 되기를 외치는 사람들이 큰소리치게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민중의 노여움이 느껴진다. 성리학을 아주 폐기처분하지는 못할망정, 민중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자.’는 뜻을 그렇게 밝힌 것이다. 진인(眞人)의 사전적 정의는 참된 도(道)를 깨달은 사람, 또는 진리를 체득한 사람이다. 진인이란 표현은 본래 도교 용어다. 영어로 된 도교전문 서적을 뒤적여 봤더니 ‘완벽한 인간 존재(perfect human-being)’라고 한다. 인간적 한계를 초월한, 신선과 비슷한 존재가 도교의 진인이다. 불교 쪽은 어떤가 싶어서 알아보았다. 놀랍게도 현대의 임제선에선 진인을 핵심개념으로 삼고 있다. 몇 해 전 어느 신문 기자가 서옹 스님(전남 장성 백양사 고불총림 방장)에게 진인의 개념을 물었다. 그때 서옹의 답은 이러했다. “거짓말 없는 사람이 ‘참사람’이지. 거짓이 없으면 양심에 부끄러울 게 없고, 양심이 깨끗하면 절대 자유로울 수 있는 거야. 정치인, 경제인, 관리들 정말 거짓말 너무 많이 하더군.” 서옹 덕분에 현대 불교의 진인 개념이 명료해졌다. 진인은 절대자유인이라 불릴 만한 참사람, 수행의 최고단계에 오른 사람이다. 조선후기 민중은 그런 진인이 나와서 세상을 확 뒤집어 놓기를 바랐다. 정감록에 함께 실린 예언서 ‘동차결(東車訣)’에는 진인왕이 건국한 뒤엔 불교신자가 대접받는다고도 되어 있다. 불교적 진인관이 맥맥이 흐르고 있다. 이 글을 쓰다 말고 잠시 나는 호남지방에 퍼져 있는 진묵 대사 설화를 떠올렸다. 진묵은 석가모니의 현신이었다는 전설도 있긴 한데, 그는 발달된 기계기술 문명을 가져다 백성들의 고생을 덜어주려고 잠시 서역으로 날아갔다고 했다. 육신은 절간에 두고 진묵의 영혼만 잠시 떠났던 것인데, 속된 유학자 김봉국이 그 육신을 불태우는 바람에 그만 개화의 꿈이 허망하게 무너졌다고 한다. 사실 진묵은 17세기 인물이었고 문명개화와는 무관하였다. 그럼에도 일부 민중은 유교가 못 이룬 개화의 꿈을 진묵이라면 이룰 수 있었을 거라고 여긴 것이다. 다시 본래 이야기로 돌아가자. 민중이 기다리던 진인은 도덕적으로 특출한 인물이어야 했다. 그런데 도덕성을 통치자의 필수요건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민중의 생각은 양반들의 정치관을 닮았다. 유교의 성현(聖賢)이 진인으로 대체되고 만 느낌이다. 민중은 기존질서에서 벗어나고자 애썼지만, 제도가 아니라 인물을 최우선으로 삼는 유교적 사유의 틀에 갇혀 버렸다. 그런 한계를 인정해도 민중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부정하고 대안을 궁리하였다는 사실은 무척 중요하다. 민중의 의식 속에 자리잡은 진인은 구원자라는 점에서 미륵불 또는 기독교의 재림 예수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예수의 재림에 앞서 벌어질 아마게돈에서의 선악의 일대결전이나 최후의 심판 같은 것은 진인의 출현과 무관하다. 진인이 세상에 나올 때 전쟁과 환난이 예정되어 있긴 해도 그것으로 역사가 완결되지는 않는다. 예수는 죽은 사람의 영혼까지도 불러다 영생을 준다지만 진인은 산 사람들을 좀더 살기 좋은 사회로 이끌 따름이다. 진인은 미륵불처럼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성불시키지도 못한다. 진인의 문제해결은 한시적이고, 부분적이다. 진인은 예수나 미륵불에 비하면 훨씬 현실적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때가 이르면 환상의 섬에서 나올 진인 현대의 우리로서는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조선후기 민중은 섬에서 진인이 나온다고 보았다. 깊은 산골짜기의 신비한 동굴도, 오랜 암자도 아니었다. 바다 한가운데 이상향으로 상정된 섬이 있고, 거기서 때가 되면 진인이 출현할 것으로 생각했다. 이상향을 말하다 보니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이엿사나 이여도사나’로 시작되는 제주의 이어도 타령이 생각난다. 그 노래에는 이어도에 살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이어도는 파랑도라고도 하는데 제주도 남제주군 마라도(馬羅島)에서 서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수중섬(水中島)이다. 엄밀히 말하면 암초(暗礁)다. 해수면 아래 깊이 잠겨 있어 파도가 몹시 심할 때만 모습이 잠깐 보인다. 그런 이유로 이어도는 예부터 이상향으로 자리매김돼 왔다. 서양에서도 미지의 섬을 이상향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있었다. 영국의 토머스 모어(1478∼1535)는 1516년 정치 공상소설 ‘유토피아(아무 데도 없는 나라란 뜻)’를 발표했다. 모어는 히스로디라는 뱃사람에게 어떤 신기한 섬나라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유토피아’인데 실제로는 당시 영국사회를 호되게 비판하고 저자가 동경하던 이상세계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그 섬은 공화국이고, 모든 시민은 하루 6시간만 노동하면 된다고 했다. 거기선 남녀 모두 교육 혜택을 받아 교양이 풍부하다. 전쟁이나 다툼도 전혀 없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평등하다. 누구나 이상향에 가보고 싶겠지만 그곳을 찾아가긴 불가능하다. 토머스 모어는 자기가 속한 세상을 이상향으로 만들자고 했다. 조선시대 민중도 그런 생각을 했을까? 민중이 세상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조선왕조의 정치적·사상적 통제력은 그 시대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 강했다. 그래서였을 테지만 민중은 이상향에서 구원자를 불러오고자 했다. 모어의 유토피아엔 법과 제도가 구원을 보장해 주었다. 그곳엔 구원자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조선 민중의 이상향은 그 반대였다. 사람이 문제를 푸는 열쇠였다. 민중은 진인이란 구원자를 통해 현실 문제를 풀려 했다.17세기 후반부터 역사기록에 나타난 해도진인(海島眞人)이 그것이다. 섬에 희망을 걸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되나? 바다는 신화시대로부터 생명이 숨쉬는 희망의 요람이었다. 하지만 조선시대 민중은 대부분 뭍에 살며 농사에 종사했다. 그런 판국인데 진인이 낯선 섬에서 나온다니 이해하기 어렵다. 이 문제로 씨름한 사람은 아직 없었다. 고민 끝에 나는 이런 짐작을 해봤다. 진인을 하필 섬에서 찾는 이유는 민중을 괴롭혀온 조정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공간이라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권력의 공백 지대는 음모와 꿈이 무르익을 수 있다. 게다가 17세기부터 먼 바다에서는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낯선 서양 선박(황당선, 이양선)이 출몰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의외의 사건소식을 접한 민중은 바다에서는 상상하지 못한 일도 가능하다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것이 해도진인설로 굳어졌다고 본다. 서양 선박에 관해 좀더 이야기해 보자. 그때 네덜란드 상인들은 일본의 나가사키를 오가며 무역업에 종사했다. 그들은 조선 배보다 수백 배나 큰 거함을 타고 대서양·인도양을 가로질러, 대만을 지나 제주 남쪽 해상을 통과하여 일본을 오갔다.18세기 후반이 되면 그 큰 서양 선박들이 가끔 서남해에 나타났다. 그 소식을 듣고 실학자 박제가도 놀라 자빠질 정도였다. 배 안에는 생김새, 언어, 습관이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서양 선박은 조선 해안에 표류하기도 했다. 박연, 하멜 등이 그들인데 훗날 하멜은 도망에 성공, 나가사키를 거쳐 네덜란드로 귀국하였다. 그는 ‘하멜표류기’를 통해 유럽각국에 한국을 알리기도 했다. 조선후기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서양 사람은 외계인이었다. 얼마나 먼지 거리조차 짐작할 수조차 없는 곳에서 큰 대포를 장착한, 초대형 선박을 타고 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서양 선박의 출현은 민중의 공포심과 신비감을 동시에 자극했다. 그러나 19세기 전반까지 아직 서양 함대가 조선을 침략한 일은 없었기 때문에 두려움 못지않게 신비스러움이 컸다. 이양선이 출몰하는 서남해는 경이로운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 바다에 서양 선박이 나타난 것이 전혀 뜻밖이었듯, 언제 또 새로운 존재가 등장할지 호기심 많은 민중으로선 귀추가 주목되었다. 동해나 서해에도 이상향이 있다는 소문이 가끔 떠돌았지만 남해설은 좀더 유력했다. 어느덧 서남해는 진인의 고향으로 자리매김되고 있었다. 물론 서양배의 출현만 가지고 해도진인설을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조선후기엔 무인도가 이주지로 각광을 받게 됐다는 점도 언급돼야 한다. 당시는 육지의 개발이 이미 끝난 상태였다. 가난한 민중은 삶의 터전을 섬에서 일구기 시작했다. 한번 민중의 눈길이 바다 쪽으로 쏠리자 수십의 무인도가 유인도로 바뀌었고, 율도·무석국 등 상상의 섬들이 인식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런 사회적 맥락을 염두에 둘 때 ‘진인(眞人)이 남해에서 계룡(산)으로 나오면 (새 왕조의) 창업을 알 수 있다.’는 예언의 의미가 충분히 살아난다. 서남해에 서양 선박이 출몰하고, 무인도가 개척되는 가운데 민중은 해도진인의 출현을 동경했던 것이다. 육지로 나온 진인은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진인의 정체를 밝히려는 나의 탐구는 다음 호로 이어진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정몽준 축구협회장 4선 성공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4선에 성공했다. 정 회장은 18일 축구협회 대의원총회에서 실시된 회장 선거에서 만장일치로 차기 회장에 당선됐다. 대의원 유효표 23표를 모두 얻어 경선에 나선 김광림(63)씨를 일축했다. 이로써 정 회장은 지난 93년부터 4선을 기록하며,2008년까지 16년간 한국축구의 수장을 맡게 됐다. 정 회장은 이날 취임기자회견에서 “4년 뒤에는 물러나겠다.”고 밝혔지만 그 기간 동안 풀어야 할 대내외적 과제는 만만치 않다. 우선 정 회장 스스로 강조했듯 ‘축구외교’를 통한 한국축구의 위상 확립이 시급하다.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이면서도 그동안은 한국축구의 발전만을 위해 뛰어온 측면이 많았기 때문에 앞으로는 한·중·일을 포함해 북한 등 동아시아 지역의 축구발전과 유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2002한·일월드컵으로 인해 강화된 아시아지역 발언권을 바탕으로 FIFA나 아시아축구연맹(AFC) 등 각종 회의에서 아시아와 한국축구의 위상 강화에 역량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내부적으로는 국가대표팀과 프로축구의 공존을 위한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정 회장은 2007년 K리그의 ‘업다운제’를 시행하기 위해 현재 13개에 머물고 있는 프로팀의 수를 16개까지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프로구단의 현실에서 신생팀의 창단보다는 경찰청팀 등 기존의 K2리그 팀들의 프로화로 팀 수를 늘리는 게 현실성이 있다는 뜻을 드러냈다. 구단들의 부담을 감안해 당분간은 ‘업’제도만 운영하고,‘다운’제도는 추후 채택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뜻도 내비쳤다. 한·일월드컵 유치 등 이미 굵직굵직한 업적을 남긴 정 회장이 남은 4년간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정몽준 회장 취임 일성 “건설적인 비판이라면 언제든지 수용할 것이며,4년 뒤 임기를 마치면 물러나겠다.” 16일 4선에 성공한 대한축구협회 정몽준 회장은 취임일성으로 이같이 말문을 열었다. 선거과정에서 드러난 축구계 내분을 봉합할 방법은. -대화는 항상 하려고 한다. 많은 분들의 의견을 듣고 있으며, 좋은 방법을 생각해 보겠다. 건설적인 비판이라면 언제든 수용하겠다. 앞으로 4년간 하고 싶은 일은. -초·중·고 축구 등 풀뿌리 축구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 또 2007년 17세 이하 세계 청소년 대회를 유치하고 싶다.57개의 축구장도 2년 안에 새로 지어 축구 인프라를 완성할 계획이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남북단일팀 가능성은. -단정해서 말하기는 어렵다. 북한은 최근 독일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 진출하는 등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북한과 우리나라의 월드컵 동반진출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축구외교를 위한 향후 계획은. -대한축구협회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이기도 하다. 이는 아시아 45개국 회원들이 뽑아준 것이다. 그동안 FIFA 부회장으로서 우리나라를 위해 좀더 힘을 쏟느라 상대적으로 아시아 축구나 세계 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요요가 사람잡네

    |토론토 연합|캐나다 밴쿠버의 한 초비만 10대가 특별보호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법원에 청원했지만 기각당했다. 일간 내셔널포스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밴쿠버 소년법원 하반 밀런 판사는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이 청년이 집으로 돌아갈 경우 체중조절에 실패해 심장병으로 사망할 위험이 높다며 청년과 어머니의 요청을 거절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그는 11살 때 250파운드(약 113㎏)의 비만아동으로 밴쿠버 주정부 아동부의 관리를 받기 시작했고 17세인 지난해에는 433파운드로 무려 275파운드 과체중 상태에 이르렀다. 그는 98년 3월 아동병원에 입원,10개월간 통제된 생활을 하면서 122파운드를 감량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음식섭취를 통제하지 못해 다시 이전 체중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지난해부터 다시 특별그룹 홈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는 그곳에서의 생활을 통해 다시 100파운드를 감량하는데 성공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데는 실패했다. 쿠버 아동부는 이 청년이 어머니에게 너무 의지하는 성향이 과체중을 유발하고 어머니가 그의 다이어트를 강제적으로 실시하지 않기 때문에 이 청년의 귀가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 정감록에 미국이 나온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 정감록에 미국이 나온다?

    1945년 8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왔다. 그러나 미처 봄날을 음미할 새도 없이, 제2차 세계대전의 승자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진출해 38선을 그었다. 그 때 어느 유명한 신종교 지도자가 신도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선포했다.“미소의 두 힘이 서로 상대하여 버티나 태양이 중천에 오르면 밝은 세계가 되리라.” 태양은 누굴까? 중천에 오른다 함은? 전후 맥락 없이 튀어나온 이 선언에 신도들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메시지만은 분명했다. 미국과 소련이 이 땅에서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것은 잠깐이고, 곧 민족의 구세주가 등장하여 외세를 물리치게 된다는 것! 누가 구세주일까? 김구, 여운형, 조만식, 이승만, 박헌영…. 아니면 김일성? 세상 사람들은 거물 정치가들을 놓고 누가 믿을 만한 민족지도자인지를 점쳤다. 극좌파, 중도파, 극우파의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각자 선택의 폭은 넓었으나 민심의 합일점은 없었다. 지난한 시기였다. 그 때 정감록의 신봉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국난을 뚫고 나갈 진인은 어디 있는가. 계룡산에서 도를 닦았다는 진인, 지리산에서 뛰쳐나온 진인, 주역에 능통한 진인, 부처, 예수, 공자의 영이 내린 진인이 속속 등장했다. 그러나 고대해 마지않던 진인은 나오지 않았다. 해방정국은 갈수록 꼬이더니 남북분단은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정감록’에 보이는 6·25전쟁 제2차대전 이후 전세계는 미소를 정점으로 한 냉전질서에 편입되었다. 양측의 긴장이 팽팽해지더니 1950년 마침내 6·25전쟁이 터졌다. 한국이 안고 있던 내부 문제가 곪아 터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미소 양측의 대리전쟁이라는 설도 있다. 원인이야 어떻든 전쟁이 장기화될 때 괴로운 건 민중이다. 그들은 난리가 언제 끝날지, 살아갈 방도는 무언지 필사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정감록 신봉자들은 가족을 이끌고 병화불입지지(兵火不入之地, 난리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땅)를 찾아 숨는 사람도 생겼다. 정감록 예언에 따라 충북 단양군 영춘면 삼풍리로 숨었던 사람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긴데, 전쟁 내내 인민군은 커녕 국군도 본 적이 없었단다. 그들은 정감록의 영험을 믿는 듯했지만 그곳은 어느 편 군대도 진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지독한 오지였다. 꼼꼼히 정감록을 살피던 민중의 눈엔 요거다 싶은 예언 몇 구절이 눈에 띄었다.‘호랑이와 토끼해를 당하여 남북이 서로 솥의 발 같이 대치하리라.’ 우연히도 전쟁이 터진 1950년은 호랑이해인 경인년이었다. ‘금강산 서쪽과 오대산 북쪽은 12년간 도둑의 소굴이 된다.’는 구절도 있어 강원도 북부에 있는 금강산과 오대산을 경계로 남북이 무력 대치한다는 예언으로 볼 수 있었다. 다만 12란 숫자는 논란거리가 되었다. 남북의 대치기간이 글자 그대로 12년인가, 또는 갑자, 을축 이런 식으로 12지를 10간과 조합한 1갑자 60년인가? 총성이 멎은 지 벌써 52년째, 글자 그대로의 12년은 이미 지났고 60년 한 갑자가 되려면 8년이 남았다. 6·25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을 상징한다는 대목도 회자(膾炙)되었다.‘인천과 부평 사이 밤중에 배 1000척이 정박한다.’고 했다. 수도권에 ‘시체 더미’가 쌓인다고도 했다. 맥아더 장군이 수많은 전함을 거느리고 인천에 상륙했고 서울을 탈환했으므로 사람들은 그럴 듯하게 여겼다. 그러나 이 구절은 19세기 후반부터 민중을 떨게 했던 전쟁공포증의 흔적 또는 청일전쟁이 남긴 집단적 기억이 재현된 것이라고 나는 판단한다(연재 제1회 참고). ‘정감록’의 또 다른 구절도 민중의 눈길을 끌었다.‘두 서쪽 땅 곧 황해도와 평안도는 3년간 천 리 안에 사람과 불 때는 연기가 없을 것이요, 또한 동쪽 골짜기, 즉 강원도는 심히 꺼릴 땅이라.’ 사람들은 이 구절을 전쟁이 3년 동안 지속된 까닭으로 봤고, 뺏고 뺏기는 육박전이 벌어진 장소가 강원도였다는 예언으로 해석했다. 중공군의 개입,1·4후퇴도 예언되어 있었다.‘백두산 북쪽에서 오랑캐의 말이 긴 울음소리를 내면 평안도와 황해도 하늘에 원한 맺힌 피가 넘칠 것이다.’ 오랑캐라,1950년 한겨울 급작스레 대거 투입된 중공군으로 해석됐다. 중공군은 물밀듯 남하를 계속, 평안도 황해도를 삽시간에 휩쓸었다. 인해전술이란 말은 정감록에 안 보였지만 그 신봉자들에겐 1·4후퇴를 할 수밖에 없던 사정이 이해될 듯 했다. ●미국대통령을 ‘정도령’으로 착각? 그런데 ‘정감록’ 예언에 대한 기발한 풀이는 따로 있었다. 전쟁 당시 미국의 원수(元首) 트루먼! 트루(true)는 참 진(眞), 먼(man)은 사람 인(人)! ‘정감록’에 예언된 진인(眞人)은 다름 아닌 트루먼이라는 해석이다. 트루먼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의회의 자문도 받지 않고 미군의 파병을 결정했다. 트루먼이 아니었으면 공산군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어났다. 일제 식민지 후반, 특히 1937년 7월 중일전쟁 이후 민중의 살림살이는 참 고단했다.1945년의 해방도 반쪽짜리였고 민중의 형편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전쟁까지 터지자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바로 그런 시점에서 미국은 각종 구호물자를 한반도에 대량으로 투입하였다. 수만의 병력과 현대식 무기를 동원하여 전쟁도 수행했다. 사람들은 새삼 미국의 위력을 실감했다. 어떤 이들은 이처럼 구차히 살 바에야 차라리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기를 바랐다. 국회로 보내주기만 하면 미국에 가 달러를 더 많이 동냥해 오겠다며 표를 구걸하는 정치인들도 있었다. 그런 판국이라 미국 대통령을 진인, 정 도령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심지어 1953년 미국 대통령이 아이젠하워로 바뀌자 그가 진짜 정 도령이란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말을 주고받은 민중도 많았다.“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 그리고 일본은 일어난다!” 미국-믿다, 소련-속다, 일본-일어나다. 다소 장난스러워 보이는 말투지만 미소는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란 인식이 확산된 결과 생긴 민중의 구호였다. 비록 패전국이긴 해도 일본을 조심해야 한다는 다짐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오래 전부터 민중은 일본뿐만 아니라, 서양 강대국들을 경원시했다.1894년 동학농민군이 내건 4대 구호 중에 ‘축멸양왜(逐滅洋倭, 서양놈들과 왜놈을 내쫓는다)’란 구절이 있어 그런 분위기를 잘 설명해준다. 그러다가 일제 말기 조상 전래의 성, 말까지 빼앗기자 민중은 주변국가인 중국과 소련에 다소 기대를 걸었다.‘조지로 목친다.’ 이 말이 민간에 퍼졌다. 조지란 남성의 성기를 뜻하는 남부지방 사투리다. 그것으로 어떻게 목을 자를까? 조(조선), 지(지나, 중국), 로(로서아, 소련)가 힘을 합해 목(목인, 히로히토 일본 천황)을 벤다는 예언이었다. 민중의 소망을 담았지만 꽤나 섬뜩한 내용이다. 누구나 한 번만 들어도 절대 잊을 수 없게, 그러나 아무도 그 뜻을 눈치 챌 수 없게 은어에 담았다. ●‘황해도서 난리 발생’ ‘삼국분기설’ 들먹 ‘정감록’으로 6·25전쟁의 참혹함과 미국의 개입을 읽었다니 얼핏 이해가 잘 안될 수 있다. 예언서에 보이는 오랑캐는 만주족 같은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경고하는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고려 때는 북쪽으로부터 거란족, 여진족, 몽고족의 침입이 잇따르고 홍건적의 난도 있었다. 조선 초에는 여진족의 침입이 만만치 않았다. 인조 때는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족이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일으켰다. 서북지역은 이민족의 침입로가 되다시피 했고, 그 지역 민중은 외침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기도 했다. 외침의 기억은 민중들에게 잊지 못할 일이 되었고, 이것이 ‘정감록’에 ‘백두산 북쪽에서 오랑캐의 말이 긴 울음소리를 내고’ 라는 식으로 정착된 것이다. 오랑캐의 말울음 소리는 현대에 와서 중공군의 남하로 이해되었다. 이런 변화는 ‘정감록’을 처음 전파시킨 조선시대 술사(術士)들로서는 전혀 예측 못할 일이었다. ‘정감록’에는 외침과 무관하게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에서 발생할 난리가 예고되어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서북지방에 대한 차별이 무척 심해서 그 지역 사람들의 불만이 컸다. 순조 연간에는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 여러 고을을 휩쓸었고, 그 와중에 많은 인명이 살상됐다. 사실 서북지방은 18세기 이후 과거시험에서 많은 합격자를 배출했다. 그럼에도 푸대접을 받았다. 내가 조사한 바로는 ‘정감록’이 가장 먼저 등장한 곳도 서북지방이었다. 대다수 서북지방 사람들은 조선왕조의 종말을 마다할 일이 없었고 그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할 때, 북쪽에서 반란이 재발해 남북에 두 나라가 대치한다는 남북분국설이 정감록에 기록된 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된다. 기왕 분국설에 대한 말이 나온 김에 몇 마디 보태보겠다.‘정감록’에는 삼국 분기설도 나온다. 나라가 세 동강 난다는 예언인데, 이런 말은 특히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 유행했다. 우리 역사에 삼국시대도 있었고 후삼국시대도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고려 때도 이의민은 신라를 부흥시킨다는 구실로 경주일대를 소란케 했다. 이런 역사적 기억이 있어서겠지만, 민중은 나라가 혼란에 빠질 때면 3국 분기설을 들먹였다. 그런데 3이란 숫자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다. 미륵이 하생할 장소도 산이나 물이 셋으로 나뉘는 곳이었고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길지(吉地) 중에도 3도봉 같은 곳이 포함된다. 지금까지 알아 본 역사적 배경은 아랑곳없이 현대의 정감록 신봉자들은 ‘정감록’에 보이는 서북지역의 혼란상을 국토분단,6·25전쟁의 참상, 또는 1·4후퇴를 예언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민중의 예언 해석에는 시대적 맥락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할아버지 세대가 그 구절을 뭐라 해석했든, 나는 내 시대의 문제를 푸는 새 해석을 좇겠다는 식이다. 이런 태도에서 예언 문화엔 층위랄까 나이테가 보태졌다. 현대의 민중이 미 대통령 트루먼을 ‘정감록’에 언급된 진인으로 본 것은 어떤가. 진인이란 새 왕조를 열 국왕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정씨 성을 가진 이가 나타나 계룡산 아래 도읍을 정한다고 보는 것이 사실상 정설이다. 우리 역사에서 진인의 도래설이 처음 나타난 것은 17세기였다. 그 때부터 오랫동안 해도진인설(海島眞人說, 섬에서 진인이 나온다는 예언)이 인기를 끌었다. 역모를 꿈꾼 사람들은 늘 진인의 출현을 주장했을 정도다. 어쨌거나 진인은 기존질서에 대항해 싸울 영웅이었다. 그런 진인이 1950년대에는 세계 최강대국을 이끄는 지도자, 기존질서의 사령관인 트루먼으로 둔갑했다. 합리적·체계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한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정감록’ 신봉자들의 해석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논리적으론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시의에 맞기만 하면 민중은 꽤 엉뚱한 해석에도 환호한다. 수백 년 동안 ‘정감록’이 생명을 이어온 까닭은 그것이 시대상황에 맞게 새로 해석될 여지가 많아서다. ●예언서는 민중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 해방 이후 미국의 중요성은 국가 차원에서든 개인의 일상생활에서든 날로 커졌다. 민중은 ‘정감록’에서 미국에 관한 구절을 찾느라 열심이었다. 도대체 미국이란 나라가 이 세상에 있는 줄도 모르던 아득한 시절에 만들어진 ‘정감록’에서 미국에 관한 기록을 찾는다? 여간 우스운 일이 아니지만 필요는 때로 발명이나 발견을 낳는다. ‘정감록’에서 꺼낸 트루먼 진인설과 인천상륙작전설은 억지스러운 발견이었다.1970년대 이후 민중은 미국에 대한 그 이상의 예언을 요구했던지 새 예언서가 등장했다.‘격암유록’,‘율곡비기’,‘송하비결’ 등이 새로 나온 예언서다. 그 중 어떤 것은 특정 종교단체가 배후 조종하여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 계통의 신종교 단체도 예언서를 빌려 지도자에게 절대권위를 부여한 흔적이 있다. 새 예언서에는 한·미관계가 자주 나온다. 어느 책에는 9·11사태(2001년 9월11일 발생한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도 언급되어 있다. 더욱 경악할 내용도 있다. 미국은 2004년 북한을 폭격하기 시작해,2005년까지 공격을 계속한다. 그리고 2004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는 재선에 실패하고 이슬람교도의 저격으로 사망한다는 등등의 예언이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국은 북한을 폭격하지 않고 있으며, 부시는 보란 듯 재선에 성공해서 백악관에 건재하다.2004년의 예언은 완전히 빗나갔다. 내 관심사는 한국 민중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빗나간 예언에도 투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최근 친미와 반미를 둘러싼 논쟁이 한국 사회의 중요 이슈로 등장했는데 민중의 다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지배질서에 반감을 품고 있다. 민중은 부시의 대북 강경노선을 못마땅하게 여겼기에, 부시의 낙선과 암살을 예언한 것이다. 민중은 부시를 미워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부시의 북한 폭격설까지 예언으로 등장한 것이다.50년 전엔 현직 미 대통령을 진인이라 일컫던 것을 생각하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이 있다. 민중이 직접 예언서를 저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민중은 예언의 내용을 결정한다. 노스트라다무스든 ‘정감록’이든 사정은 똑같다. 민중의 심리를 정확히 반영한 예언서는 민중의 사랑을 받고 그 생명도 길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예언서는 곧장 버림을 받는다. 민중은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정감록’을 해석해왔다. 시대가 바뀌면 그 해석은 늘 달라졌다. 한 시대의 해석은 다른 시대가 되면 효력을 상실한다. 그러나 내가 정감록을 바라보는 관점은 통시대적이다. 미셸 푸코가 말한 지식의 계보학에 가까운 입장이다. 푸코의 말처럼 시공간이 바뀌면 지식과 기억은 변화된다. 요컨대 변화된 사물의 의미를 계보로 정리하는 것이 지식 계보학이다. 나의 정감록 산책도 그렇다. 정감록에 담긴 의미의 변천을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것, 이것은 한국 역사와 문화의 나이테를 읽는 새 방법일 것이다. 백승종(푸른역사연구소장)
  • [이젠 사람입국이다] 4.지역이 주민을 살린다

    [이젠 사람입국이다] 4.지역이 주민을 살린다

    ■ 獨 ‘학습도시’ 예나 |예나(독일) 장택동특파원|독일의 작은 도시 예나에 있는 평생학습센터(volkshochschulen)의 한 강의실.40∼60대 남녀 8명이 서툰 영어로 교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화 주제는 직업.“주간근무자와 야간근무자가 교대로 일하는 근무형태를 뭐라고 하죠?”라고 교사가 묻자 카스치 클라우스(65)는 한참을 고민하다 “교대근무제(shift working)”라고 대답한다. 다른 ‘학생’들도 자신의 직업과 하고 싶은 일 등에 대해 영어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왜 뒤늦게 영어 공부를 시작했느냐고 묻자 클라우스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을 만나러 여행을 가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40대 여성은 “옛 동독 지역에는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영어를 배워두면 직장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나는 도시 전체가 학습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는 ‘학습도시’(learning city) 가운데 하나다. 지난 200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작성한 ‘새로운 학습경제에서의 도시와 지역’ 보고서에서도 모범 사례로 소개됐다. ●정부-자금, 기업-채용, 대학-교육 맡아 예나의 평생학습체계는 정부-기업-대학 등 3개의 축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시에서는 평생학습센터를 운영하는데 정치, 문화, 건강, 언어, 직업, 학과교육 등 6개 코스가 있다. 일반인에게는 건강과 언어 코스의 인기가 높다. 학과교육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고졸 자격증을 주기 위한 과정이다. 예나시 평생학습센터에는 1000여개의 과목이 개설돼 있고, 예나시가 속해 있는 튀링겐주 전체로 보면 과목수가 1만개를 넘는다. 지난해 예나시 평생학습센터 운영자금은 91만유로. 이 가운데 67%는 주정부와 시에서 지원했고 33%는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로 충당했다. 구드룬 루크 평생학습센터장은 “예나시민 11만명중 한 해에 1만명 이상이 이 곳에서 강의를 듣는다.”고 설명했다. 예나의 대표적 기업인 광학업체 예놉틱(Jenoptik)과 칼자이스(Carl Zeiss Jena)는 자사 직원들은 물론 협력관계에 있는 중소기업 직원들에게 실무 위주의 기술교육을 실시한다. 실업자들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노동사무소나 예놉틱이 설립한 재단에서 취업에 필요한 훈련을 받는다. 두 기업은 이 지역 대졸자들과 직업훈련을 받은 실업자들을 대부분 채용함으로써 학습동기를 강화시키는 역할도 한다. 450년의 전통을 가진 프리드리히 실러 예나대학은 기업의 위탁을 받아 직원들에게 고급기술을 교육한다. 전통적으로 인문학이 강한 대학이지만 최근에는 과학·기술분야를 강화하고 있으며, 기업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기술력 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다. 예나의 평생학습체계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예나대학에서는 17세기부터 평생교육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다. 19세기에 물리학자인 에른스트 아베와 기업가 칼 자이스가 예나의 현대식 평생교육체계의 틀을 짰다. 이들은 재단을 설립, 직원들의 교육을 지원했고 시민교육의 요람 역할을 해온 ‘폴크스하우스’를 세웠다.1919년에는 시에서 평생교육센터를 설립했다. ●GDP 국가평균 39% ‘영세도시’ 탈출 나치 집권기와 동독 정권기간 동안 예나는 경제적인 침체기를 겪었고 평생교육의 발전도 정체됐다.1989년 독일 통일 당시 예나가 소속된 튀링겐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독일 평균의 39%에 불과했다. 통독 이후 칼 자이스에서 1만 6000명의 노동자가 한꺼번에 해고되기도 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예나에는 200여개의 중소기업과 생명공학 기업들이 생겨나면서 6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면서 경제회복을 이끌었다. 마그렛 프란즈 예나시 문화교육국장은 “현재 예나의 실업률은 독일 전체 평균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평생학습이 생활화돼 있는 예나는 교육수준이 높고 기술력을 가진 우수한 인재가 풍부하기 때문에 외부 투자를 많이 유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taecks@seoul.co.kr ■ 英켄트주 지원체계 |켄트(영국) 장택동특파원|영국 남동부의 켄트주(州) 딜(Deal)에 위치한 토마토 재배·판매업체인 WS켄트. 온실에서는 50만 포기의 토마토 줄기가 곧게 자랄 수 있도록 지지대에 감아주는 작업이 한창이고, 공장에서는 직원들이 토마토를 상자에 차곡차곡 넣어서 포장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직원들은 하나 둘 휴게실을 찾는다. 이곳에서는 직업지원센터(JCP)의 위탁을 받은 상담원이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회사는 120여명의 직원 가운데 40여명을 감원하기로 하고 해고예정자지원서비스(RSS)를 신청했다. 상담을 하러 온 직원 제인 히치콕(31·여)은 “나도 해고될 수 있기 때문에 이력서를 잘 쓰는 법 등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데 필요한 방법을 배우러 왔다.”면서 “실제로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완전히 버림받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회사서 농기계 기술 교육비 대줘 네빌 애트우드(31)는 회사를 떠나게 됐다. 그는 3년 동안 인근 대학에서 전기기술을 배워 자격증을 땄고, 회사에서 학비 지원을 받아 농기계 분야 12개의 과목을 이수했다. 그는 “전기 쪽이든, 농기계 쪽이든 일자리를 구하는 데 걱정은 없다.”면서 “나이가 많은 사람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직원들이 늘 미래에 대비해 뭔가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켄트·햄프셔 등 7개 주를 아우르는 영국 남동부는 공업단지가 밀집된 지역으로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16%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땅값과 인건비가 오르면서 많은 회사들이 동유럽이나 인도로 옮겨갔고 대량해고가 뒤따르고 있다. 특히 켄트주는 90% 이상의 기업이 직원 200명 미만의 소규모 제조업이어서 직원들은 해고 위기에 놓여도 별 지원을 받지 못했다.1999년 설립된 남동 잉글랜드 개발청(SEEDA)은 이같은 지역적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먼저 SEEDA는 지난 2003년 10월부터 60만파운드를 투자,JCP와 공동으로 RSS를 운영하고 있다.SEEDA와 JCP는 모두 정부에서 출자한 기관이다.RSS는 해직이 되기 전 전문가가 해고 대상자를 찾아가 1:1 상담을 통해 새 직장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다. 개개인의 필요에 따라 면접 기법, 이력서 작성 요령 등 구직활동에 직접 필요한 부분을 알려주기도 하고 새로운 직장을 찾을 수 있도록 훈련·교육을 주선하기도 한다. 비용은 국가에서 지원한다. 지금까지 166개 기업의 직원 3571명이 RSS의 도움을 받았다. ●170명 해직… 9개월만에 80% 재취업 여객선 운영회사인 스테나라인은 대표적 RSS 성공 사례다. 이 회사는 지난해 3월 170여명이 근무하는 켄트주 애쉬포드의 지역본부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스테나라인은 5월 RSS를 신청했고 모두 9차례에 걸쳐 RSS 상담이 이뤄졌다. 특히 50세 이상 고령자나 혼자 아이를 키우는 직원 등 구직이 어렵고 절실한 사람들을 집중 지원했다. 직원들을 바로 채용할 수 있도록 관심을 보이는 회사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그 결과 80%가 넘는 직원이 재취업에 성공했다. 이 회사는 지역본부 폐쇄를 결정한 뒤에도 직원들의 재취업을 위해 9개월 이상 운영을 계속하고 있다. 믹 앰브로세 고용담당부장은 “오래 근무한 직원일수록 재취업에 대한 준비가 안돼 있었다.”면서 “스스로를 냉철하게 분석하도록 한 뒤 장점을 찾아나갔다.”고 설명했다. SEEDA는 해고 대상자를 상대로 한 RSS 외에도 다양한 교육·훈련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취업에 필요한 기본기술 교육은 물론 메드웨이대학 등 지역 대학에 위탁해 전자·정보통신·생명공학 분야의 고급기술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정보통신 분야 집중교육(CC4G), 인터넷을 이용한 교육 등도 병행한다. 매튜 트레이스 SEEDA 교육훈련국 과장은 “주민들은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고 닥쳐올 위기와 기회에 대처할 수 있게 된다.”면서 “2012년까지 노동생산성과 취업률에서 이 지역을 세계 15위권 안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taecks@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3)하멜의 여정-­제주서 나가사키까지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3)하멜의 여정-­제주서 나가사키까지

    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 없다지만,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등이 해양을 통한 제국 건설에 몰두하면서 서세동점의 기세로 밀어닥친 그 때 우리가 좀 더 잘 했더라면, 조금만 생각을 고쳐 먹었더라면 하는 일말의 아쉬움은 지금도 남는다. 하멜표류의 교훈도 그 중의 하나이다. 1628년, 일본 나가사키(長岐)로 향하던 네덜란드인 벨테브레 일행 3명이 부산 근처에 표착했으니, 이 중 1명이 훗날 조선인과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고 살던 박연이다. 박연 표착 25년 뒤, 같은 네덜란드인 하멜이 제주도에 표착한다.1653년(효종 3년) 암스테르담을 출발한 스페르웨르호가 바타비아와 타이완을 거쳐 나가사키로 향하던 중 폭풍에 밀려 이 해 8월15일 제주도에서 파선한 것. ●조선에 표류한 하멜일행 탈출 성공 선원 64명 중 28명이 익사하고 36명이 표류한다. 이듬해 이들은 서울로 호송되었다가 2년 뒤인 1654년에 다시 전라도로 분리, 이송된다. 그동안 사망자가 14인이었으며 생존자는 22인이었다.1666년 9월에 전라좌수영 소속의 하멜 이하 8인이 읍성을 탈출하여 작은 배를 타고서 극적으로 ‘조선 탈출’에 성공한다. 나가사키를 경유한 이들은 1688년 7월 네덜란드로 귀국함으로써 13년의 조선생활을 끝낸다. 바로 이들에 의해 하멜표류기가 출간되면서 ‘금단의 땅 조선’이 서구에 널리 알려진다. 이 하멜 표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할까. 이들 집단을 통하여 어떤 구체적인 서양 과학기술을 알려고 했거나 이들의 정보를 역추적하여 세계정세를 탐구하려 했다는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군부대에 배속된 하멜 일행이 약간의 전투술 전수에 참여한 것으로 짐작되나 세계정세 판단을 위한 조선 조정의 관심은 확인되지 않는다. 서양인 대집단을 13년간이나 데리고 있었으나 그들로부터 세계동향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는 증거가 보이지 않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세계인식이 아닐 수 없다. 하멜은 조사 과정에서 조선 조정이 파견한 박연을 만나며, 이후에 여수 좌수영 등으로 분산되기 전까지 계속 박연이 통역을 담당했다. 이로 미뤄 박연을 통해 충분히 서양의 지식정보를 빼낼 수 있었음에도 그러한 시도는 아예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중국 사신이 하멜 일행을 접하는 일은 극도로 경계하였으며, 이들을 훈련도감 소속 군인으로 배치한 것으로 미뤄 북벌에 대비한 군사적 대응으로 활용하려 한 인상은 준다. 박연과 하멜은 암스테르담에서 바타이유를 거쳐서 나가사키로 향하다 표류하였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하멜 일행은 조선 체류 중 끊임없이 일본행을 꿈꾼다. 결국은 배를 구하여 규슈의 히라도(平戶)를 거쳐 나카사키로 들어가는데 일본인들은 그들이 네덜란드인임을 금세 알아차리고 친절하게 안내했다. 이들을 체포해 13년간이나 하릴없이 억류했던 조선과는 대비되는 조치였다. 이들이 나가사키에 당도했을 무렵 만에는 네덜란드배 다섯척이 정박해 있었다. 이들은 곧장 네덜란드 상관(商館)에 당도, 지휘관 빌렘 볼거에게 안내된다. 그리하여 꼭 13년 28일 만에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당시 나가사키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서방을 향해 열려진 창구였다. 하멜의 조선표착 시점보다 훨씬 이른 1543년에 포르투갈 상인이 일본에 도착했으며,1549년에는 선교사 프란시스코 사비엘이 가고시마(鹿兒島)에 발을 내딛는다. 이후 100여년 간 무역과 가톨릭 포교가 이루어지나,17세기 중엽 도쿠가와 바쿠후(德川 幕府)에 의하여 기독교가 탄압받는 쇄국이 단행된다. 주목할 것은 쇄국은 쇄국이되, 바늘 구멍은 열어놓은 쇄국이었으니 서방과의 대화는 어떤 식으로든지 계속 하고 있던 셈. ●日 바쿠후, 포교 금지하고 무역만 허용 오직 장사에만 종사하며 포교활동을 하지 않은 네덜란드인들만 일본 거류가 허용되어, 이른바 난학(蘭學)을 꽃피웠다. 서양 의술을 비롯하여 천문, 지리, 생물, 지리학 등 다양한 근대 학문체계들이 이 즈음 난학으로 정리된다. 젊은이들이 오늘날의 도쿄인 에도(江戶), 심지어는 머나먼 동북지역에서도 몰려들어 ‘난학의 길’이 활짝 열린 것. 하멜이 일본에 거류하는 상관을 찾아 귀국할 수 있었음은 또한 이같은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배경으로 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적어도 하멜을 통하여 서세동점의 긴급한 상황을 재빨리 읽었어야 옳았다. ‘하멜표류기’는 조선 땅에 남긴 서양인 최초의 족적이자, 조선을 세계에 알린 ‘스테디 셀러’였다. 표류인 하멜과 조선의 첫 만남, 첫 거래에서 우리는 철저하게 실패했다. 우리가 그들에게서 얻은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음에 반해, 조선을 탈출한 하멜의 기록은 수백년간 서양인의 인구에 회자되면서 열강들이 입맛을 다시게 하는 근거자료로 보급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수많은 하멜들이 찾아들었던 나가사키는 당시 어떤 여건이었을까. 예쁜 전차가 오가는 나가사키 중심통에 데지마(出島)가 있다. 말이 섬이지 도심에 포위되어 있다. 유심히 보면 바다 수로가 데지마 옆으로 흐르고 있으며 그 수로는 가까운 바다로 연결된다. 데지마는 1636년 그리스도교의 포교 금지를 목적으로 만든 인공섬. 서방을 통하여 무역 등의 이득은 취해야겠고, 문을 열자니 기독교 포교가 두려워 궁여지책으로 만든 출구였다. 나가사키라고 쉽게 말하지만 고작 손바닥 크기만 열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운동장 규모의 땅에 상관 건물을 짓고나서 다리를 놓았다. 바쿠후는 외국배가 들어올 때마다 그들로부터 정보를 얻었다. 네덜란드와 중국 상인에게 풍문보고서(風說書)를 내게 하고, 번역 내용을 바쿠후 중심 인물들이 돌려보았으니 세계 정세의 변화를 개괄적이나마 시시각각 첩보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어두운 동굴 속의 불빛처럼 창구 하나만큼은 분명히 열어놓았던 셈. 어쩌면 일본이 서방을 두려워하면서도 끝내 닫지 않았던 그 ‘바늘구멍’이 일본이 아시아에서 선두 주자로 나서게 하는 결정적 기반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꽃피운 난학, 메이지유신 토대 돼 네덜란드인들의 종교와 무역의 분리는 바쿠후의 정책과 일치하였다. 오로지 무역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바쿠후로부터 독점권을 얻게 된다. 이후 200여년 동안 이곳은 일본 유일의 해외무역 창구가 된다. 나가사키를 둘러보면 주변에 국제도시다운 면모를 지닌 도시들이 즐비함을 알 수 있다. 히라도는 일본이 대륙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견수사(遣隋使)를 파견했을 때부터 중심지였으며,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국제무역거점항이었다. 히라도 남동쪽의 도자기로 유명한 아리타(有田) 북쪽에는 도자기 수출입항으로 명성을 얻었던 이마리가 있다. 이곳 도자기는 19세기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유럽으로 수출되면서 명성을 얻어 유럽 도자기문화 형성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현해탄이 보이는 가라쓰(唐津)도 빼놓을 수 없다. 지명이 말해주듯 중국과의 교역으로 번영한 항구도시다. 나가사키현의 사세보는 일찍이 1886년 해군기지가 들어선 이래 군항도시로 번창했다. 지금도 일본 자위대와 미군기지가 들어서 있으니 이래저래 외국과의 관계를 떼놓을 수 없는 곳.17세기 네덜란드의 모습을 복원해 놓은 100만평 규모의 하우스보텐스로 아시아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일본이 이미 많은 양의 정보를 직수입하여 서양을 이해하고 있었던 시절에도 우리의 서양을 향한 입장은 여전히 폐쇄적이었다. 훗날 메이지유신을 단행하면서 개화문명을 부르짖었음은, 비단 외국의 압력 때문만은 아니었다.‘난학’같이 장기간 축적된 서양문명의 이해에 기초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해상 문물교류로 갈린 두 나라 명암 나가사키에서 외국과의 관계를 확인할수 있는 유적은 무수히 많다. 흡사 서양인 거리로 들어가는 것 같은 그라비엔, 영국 무기상인 토머스 글러버의 자택, 고색창연한 돌길인 오란자자카, 포르투갈인의 기술로 완성된 아름다운 다리인 메가네바시(眼鏡橋), 무역상사의 의사로 일본 여인과 결혼한 독일의사 시볼트기념관, 일본 최초의 무역상사를 세운 료마의 흔적, 일본 최초의 사진가인 우에노 히코마의 묘소, 그리고 수백년 전통을 자랑하는 나가사키 가스테라 등이 그것이다. 중국 무역항답게 중국의 흔적도 숱하게 흩어져 있으니, 나가사키짬뽕이나 푸젠성(福建城) 사람들이 세운 소후쿠지(崇福寺), 중국의 국부 손문의 유허지 등이 그것이다. 일본은 15세기부터 규슈 일대를 드나들던 포르투갈인에게 입수한 조총을 자체적으로 모방, 개발해 엄청난 무기체계로 발전시킨다. 그 조총을 손에 쥐고 자신만만하게 임진왜란을 일으켰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7년전쟁을 통하여 조선에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조총을 미워하기 전에 그 조총이 어떤 바닷길을 통하여 입수, 개발됐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했어야 옳았다. 서방의 급격한 이입을 두려워한 바쿠후의 폐쇄정책은 1868년까지 계속된다. 그러면서도 데지마는 바늘구멍 같은 숨통으로 역사의 소명을 다하였다. 일본은 미국 페리의 강요에 의해 전면 개방되지만, 적어도 데지마 같은 바늘구멍을 오랫동안 열어두었고, 수백년 전통의 난학으로 대비해 왔기 때문에 서방문명에 대한 일정한 저항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흡사 숫처녀가 백주 대낮에 겁간 당하는 식의 급격한 개항을 강요당했던 우리와는 여러 모로 대비된다. 옛 데지마를 복원시켜 놓은 건물 앞에서 지난 수백년을 돌이켜보자니 느껴지는 바가 적지 않다. 일본은 정교한 기념관을 만들어 놓고 ‘왜 선조들이 바다를 통한 문물교류에 집착했던가.’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우리 역사에 흔적을 남긴 숱한 ‘하멜’들이 바로 데지마와 연관을 맺고 있음을 고려할 때, 바다를 통해 세계로 열린 천혜의 출구를 완벽하게 닫아버렸던 지난날 우리의 해양관을 어찌 비판하지 않을 것인가. 취재협조 학술진흥재단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
  • “김좌진 군자금 모금은 강도죄” 판결록 공개

    “김좌진 군자금 모금은 강도죄” 판결록 공개

    일제시대 때 군자금을 마련하려던 김좌진 장군은 무슨 죄로 처벌받았을까. 답은 강도죄다. 법원도서관은 일제 강점기인 1909∼1943년 대한제국 대심원과 통감부·조선총독부 고등법원의 민·형사 사건 판결록 일부를 한글로 번역, 발간했다고 6일 밝혔다.2만쪽 분량의 판결록 30권 가운데 1909∼1912년의 형사사건 51건, 민사사건 125건을 다룬 제 1권을 출간한 것이다. 당시엔 고등법원이 최종심을 맡아 이 판결록은 대법원 판례집에 해당한다. 시대상과 법률관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의병활동에 강도죄나 강도살인죄 적용 형사편엔 백야 김좌진 장군의 판결문이 있다. 김 장군은 1911년 21세 때 북간도에 독립군 사관학교를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군자금을 마련하고자 할아버지뻘인 친척 김종근씨를 찾아갔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대문 감옥에 갇힌 김 장군은 고등법원에서 안승구씨와 공범으로 재판을 받았다. 판결문은 “김좌진은 김종근 집에서 재물을 훔칠 계획을 세웠지만, 집 안에 사람이 많아 실행하지 않은 ‘강도미수범’”이라고 했다. 김 장관은 친척에게 협박, 폭력을 행사해 금품을 빼앗을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고등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2년 6월형을 확정했다. 기오(木尾虎之助), 이와모토(岩本英夫)란 이름의 일본 변호사 2명이 김 장군을 변론했다는 기록이 눈길을 끈다. ●흥분해 원수를 죽인 것은 죄가 아니다 1910년 9월 9일 오후 8시쯤 이모씨는 친구 김모씨 집을 방문했다가 싸움 끝에 맞아 숨졌다. 이 소식을 들은 이씨의 아내 홍모씨와 첩 엄모씨는 김씨 집으로 달려갔다. 김씨를 묶어 놓은 뒤 3시간 동안 남편을 살리려 온갖 수단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흥분한 두 여성은 마침내 김씨를 때려 숨지게 했고, 경찰에 자수했다. ‘부모나 남편, 자손을 죽인 살인자를 흥분한 마음에 그 자리에서 곧바로 살해한 경우 죄를 논하지 않는다.’는 형법대전 493조를 들어 이들은 무죄를 주장했다.1,2심은 “남편이 살해당한 시간과 아내가 살인범을 죽인 시간이 다르다.”며 이 법을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아내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조선에선 조선의 관습을 따른다 1911년 꼬마신랑 송모(11)군과 결혼한 여성 김모(18)양과 성관계를 맺은 일본인 가와하라(川原貞季)가 법정에 섰다. 가와하라측은 “민법이 남자 17세, 여자 15세 이상이 되지 않으면 혼인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어 송군의 결혼은 무효이며 간통죄도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조선인은 연령에 상관없이 혼인하는 풍습을 갖는다.”면서 “김씨는 유부녀로 간음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고등법원은 또 자식을 부양하는 의무는 아버지가 진다는 관습을 지적하며 따로 살며 사생아를 키운 첩에게 아버지는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갑오경장 때 과부의 재혼을 허가한 뒤 사대부들이 재혼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며느리에게 돈을 준 사례도 나타났다.1911년 며느리 신모씨는 재혼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시댁에서 논밭과 가옥, 소 등을 받았다. 그러나 재혼했고, 시댁은 재물 반환 청구소송을 냈다. 신씨는 “재혼을 금지한 계약이 재혼을 허가한 법률을 위반했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계약을 어겼으니 재물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법원도서관은 앞으로 매년 2∼3권씩 판결록 번역작업을 진행, 앞으로 10∼15년내에 전권을 완역할 계획이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조영증의 킥오프] 축구의 해 밝았다

    2005년 희망찬 아침이 밝았다. 힘차게 솟아오른 태양빛 아래 한국축구도 분주한 한 해가 될 전망이다. 국가대표팀은 2006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과 제2회 동아시아축구대회라는 중요한 대회를 치러야 한다. 우선 대표팀은 7일 파주NFC에 소집돼 독일을 향한 첫 행보로 이튿날 미국 전지훈련을 떠난다.6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 셈이다. 20명 전원 국내파 선수로 구성된 이번 전훈은 16일(콜롬비아) 20일(파라과이) 23일(스웨덴) 등 세 차례 평가전을 통해 해외파와의 치열한 경쟁으로 이어져 세대교체의 분수령이 된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 본프레레 감독은 젊은 선수들의 가능성을 발견하면서도 신뢰감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주전 기용을 꺼려했다. 그런 점들을 감안한다면 이번 3주간의 전훈은 선수 모두를 제대로 파악하는 동시에 다음달 9일 쿠웨이트전부터 8월17일 사우디와의 최종전까지 최정예 멤버를 구성하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아울러 한국은 오는 7월31부터 개막하는 동아시아대회의 주최국이면서 2연패를 노리는 강력한 우승후보이기도 하다. 중국과 일본이 시드 배정을 받아 출전이 확실한 가운데 북한이 예선을 통과 할 경우 12년 만에 남북대결의 감동도 맛볼 수 있다. 앞서 6월 네덜란드에서는 20세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지난해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서 일본과 중국을 거푸 꺾고 우승한 한국팀은 차세대 유망주인 박주영 김승용 차기석 신영록 등이 1983년 멕시코에서 선배들이 이루었던 ‘4강 신화’의 재현에 도전한다. 특히 박성화 감독은 전년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세계청소년대회 16강전에서 일본에 패한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당시 실패를 거울삼아 세계 팀들과의 재대결을 위한 나름대로의 대안을 준비 중일 것이다. 현재 박성화호는 남해에서 체력 강화 등 담금질을 거친 뒤 중동, 유럽의 강호들과 실전 리허설을 계획하고 있다. 또 하나 관심이 가는 대회는 U-17세 아시아여자청소년선수권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적자를 감수하고 이번 대회를 유치했다. 그러나 날로 성장하는 한국 여자축구의 위상은 물론 아시아 여자축구 발전에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밖에 프로연맹에서 주관하는 A3(한중일)대회와 수원과 부산이 출전하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등 많은 관심을 끄는 대회들이 열리게 된다. 아무쪼록 을유년에 개최되는 모든 대회에서 한국 축구가 그 위상을 드높일 수 있기를 기원한다. 국제축구연맹(FIFA) 기술위원 youngj-cho@hanmail.net
  • [2005 문화코드] ① 팩션(팩트+픽션)

    [2005 문화코드] ① 팩션(팩트+픽션)

    새해에는 어떤 문화적 현상 혹은 흐름이 주목받을까. 새로운 문화현상을 지금 여기서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볼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가장 의미있는 답을 얻기 위해선 이른바 ‘코드’ 접근법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신문은 5회에 걸쳐 2005년 문화현상을 전망하고 해석한다.‘팩션’‘신(新)한류’‘미래담론’‘생명사상’‘녹색진보’등 다섯 갈래로 나눠 다양한 문화현상의 본질을 짚는다. ■ 출판 상상력의 시대다. 문화장르에 ‘상상’의 메타포가 빠진 적이 한순간이라도 있었을까마는 현실은 사뭇 다르다. 출판·방송·영화할 것없이 부쩍 전에 없던 창작기류가 흐른다. 이른바 2005년에도 현재형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감되는 문화코드 ‘팩션(faction)’이다. ●‘다빈치 코드’로 촉발된 열풍 식지않을듯 지난해 하반기 출판가에서 비롯된 용어 ‘팩션’이란,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결합한 문학형태다. 주로 역사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추리기법으로 가미하는 만큼 역사추리소설 혹은 지식소설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해 6월 국내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로 촉발된 팩션열풍은 좀체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례없는 출판시장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베텔스만)는 출간 6개월여 만에 무려 100만부를 넘게 팔아치웠다. 댄 브라운의 저작으로 ‘다빈치 코드’의 전작에 해당하는 역사추리소설 ‘천사와 악마’도 잇따라 전략적으로 출간돼 쏠쏠한 재미를 봤다. 이후 서점가에는 팩션소설들이 줄을 잇고 있다. 르네상스시대 문헌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죽음과 계시의 사건들을 다룬 ‘4의 규칙’(랜덤하우스중앙),17세기 이탈리아의 한 여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진실을 캐는 과정에 당대 유럽의 역사가 화려하게 펼쳐지는 ‘임프리마투르’(문학동네)도 그 범주에 속한다. ‘다빈치 코드’의 성공으로 그 효과를 덤으로 누린 책도 적지 않았다.‘성배와 잃어버린 장미’(루비박스),‘다빈치 코드의 진실’(예문),‘다빈치 코드 깨기’(규장) 등이 그들이다. ●인문학적 지식 바탕으로 추리력 발휘 이 소설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한 사건을 실마리로 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사건해결에 필요한 수많은 단서들이 제시되고 그들을 통해 역사이해 등 인문학적 지식이 바탕이 된 추리력을 발휘하게 된다. 사실 팩션이란 개념이 처음 도입된 분야는 문학이 아니라 저널리즘쪽이었다.1960∼70년대 텔레비전에 신문의 인기가 밀리자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기사문체를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게 픽션화한 데서 유래했다는 것. 그렇다면 팩션의 불씨가 문화전반으로 옮겨붙은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정답은, 당연히 문화소비자인 ‘대중’의 변화된 욕구다. 문학평론가 김동식씨는 “대중적 흥미에다 폭넓은 인문학적 교양을 쌓을 수 있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소설읽기는 현대인들에게 꾸준히 인기를 누릴 것”이라고 해석했다. 팩션열풍에서 새삼 ‘팩트’(사실)가 강조되는 이유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의미심장하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예전에는 정보의 실체가 보였으나, 인터넷 시대에는 그것들을 구체적으로 볼 수가 없다.”고 전제,“(대중은)정보의 실체로 연결될 수 있는 계기를 찾는 것”이라고 분석했다.‘단테클럽’을 읽은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단테의 ‘신곡’을 찾게 되고,‘다빈치 코드’ 독자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궁금해 한다는 것이다. ●‘팩션’ 1960~70년대 부드러운 신문기사서 유래 획일화된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욕구와, 실체적 정보에 다가서려는 인터넷 시대의 반동적 욕망이 결합해 팩션을 낳고 있는 셈이다. 새해에도 출판가에서는 팩션식 소설의 인기는 계속될 것 같다. 인기작가 이인화가 7년 만에 선보여 화제인 신작 ‘하비비’(해냄)도 팩션형태.‘삼국지’의 영웅 조조가 남긴 비밀지도의 행방을 놓고 암투를 벌이는 이야기 얼개다.‘다빈치 코드’가 표절작품이라는 논란을 제기한 루이스 퍼듀의 ‘다빈치 레거시’(팬아스)도 최근 새로 서점가에 합류했다. 베텔스만도 상반기 중 댄 브라운의 또다른 인기추리소설 ‘디지털 포트리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영화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팩션 영화’를 국내외에서 한 편씩 꼽으라면 누구나 ‘황산벌’(2003)과 ‘포레스트 검프’(1994)를 떠올릴 듯 싶다.‘황산벌’은 김유신, 계백 장군을 사투리 때문에 싸우게 만들었고,‘포레스트 검프’는 IQ 75인 청년으로 하여금 미국 현대사의 중심축을 가로지르게 하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실감나는 상상력’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했던 이같은 팩션 영화는 최근 들어 국내외 할 것 없이 그 수가 늘고 있다. 한국영화의 올해 개봉·제작 리스트에도 여러 편이 올라있다. 하지만 추리 코드를 전제로 하는 문학 분야와 달리, 영화에서는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것이 그 특징이다. 2월 개봉예정인 ‘그때 그사람들’은 10·26을 기초로 캐릭터와 모든 정황을 허구로 구성한 블랙코미디. 크랭크업을 거의 앞둔 ‘혈의 누’는 구한 말 천주교박해를 배경으로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추리 공포 사극이고, 올 여름 개봉예정인 ‘천군’은 남북한 병사가 과거로 휩쓸려가 이순신 장군을 만난다는 내용의 팩션 영화다. 하반기 개봉을 목표로 준비 중인 ‘대한독립만세’는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배경으로 양아치들의 활약을 그린 코믹 액션 영화다. CJ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팀 관계자는 “한국영화에서는 스릴러 장르가 발전하기 못했기 때문에 ‘다빈치 코드’류의 추리물을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픽션을 가미한 실화 소재의 영화는 많이 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할리우드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상영중인 ‘내셔널 트레저’는 미국 건국 초기의 거물들이 속해있던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체를 바탕으로, 이들이 지폐나 건축물에 보물지도를 숨겨놓았다는 상상력을 동원했다.‘다빈치 코드’도 내년 중에 미국 컬럼비아사에서 영화화될 예정이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실제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엄밀히 말하면 모두 팩션”이라면서 “항상 새로운 소재를 고민하는 제작자들에게 팩션 영화는 창작보다 쉬우면서도 지금까지 덜 다뤄졌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분석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드라마 안방극장에도 ‘팩션’바람이 거세다. 현재 방영되고 있거나 곧 전파를 탈 TV드라마들을 보면, 역사적 사건과 과거 성공한 인물 등 과거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한 ‘팩션’작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달말 첫 전파를 타는 MBC 주말드라마 ‘제5공화국’은 10·26 사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12·12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의 혼란의 정치사를 드라마화한 작품.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등 전직 대통령들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정치사가 리얼하게 재연될 예정이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2TV 대하드라마 ‘해신’은 해상왕 장보고의 생애와 당대 사건 등을 ‘팩션’에 입각해 재구성한 작품. 방영 초기부터 ‘원균 재조명’을 둘러싼 뜨거운 논란에 휩싸인 KBS1TV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도 이순신과 원균이라는 역사적 인물과 임진 왜란 등 역사적 사실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했다. 실존 인물인 삼성 고 이병철 회장과 현대 고 정주영 명예 회장을 모델로 한 MBC ‘영웅시대’도 과거 60∼70년대 격동기의 ‘재벌 이야기’와 ‘정경유착’ 등 격동의 정치·경제사를 기초로 모든 정황을 허구로 구성한 ‘팩션 드라마다. ‘팩션’요소를 이야기 전개의 중심축으로 삼은 드라마들은 올 한해에도 속속 기획되거나 제작될 예정이다. 지난 2000년 무기도입을 둘러싼 정치권 불법 로비 의혹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재미교포 로비스트 ‘린다 김’과 군 전력 증강 사업(일명 백두사업)을 소재로 한 TV드라마가 올 하반기 이후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다. 성공 벤처기업을 모델로 한 TV 드라마도 곧 선보인다. KBS 김현준 드라마 1팀장은 “최근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소재로 한 ‘팩션’작품이 속속 등장하는 것은 과거를 현대적 시각에서 재해석하려는 사회내 분위기와 제작진의 창작 욕구가 맞아 떨어져 생겨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팩션’외에도 고전을 리메이크 하는 등 ‘과거 지향’적인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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