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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박물관 ‘독도’ 특별전 개최

    울산박물관은 3일부터 오는 7월 24일까지 ‘독도, 아름다운 그곳’ 특별전을 개최한다고 2일 밝혔다. 특별전은 울산박물관과 독도박물관이 공동 주최하고 해양수산부와 경북도에서 후원한다. 특별전은 ‘한민족의 섬, 독도’, ‘일본은 알고 있다’, ‘독도 침탈’, ‘독도, 광복되다’, ‘울산, 그리고 독도’ 등 5개의 주제로 나눠 열린다. ‘한민족의 섬, 독도’에서는 우리 사료를 통해 독도가 우리 삶의 공간이었음을 보여 주고 ‘일본은 알고 있다’에서는 독도를 조선의 섬으로 인식했던 과거 일본의 자료를 전시한다. ‘독도 침탈’에서는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비해 울릉도와 독도의 행정구역을 정비했던 대한제국의 노력을, ‘독도, 광복되다’에서는 1945년 광복으로 한반도와 독도의 독립을 알려주는 자료 등을 전시한다. 또 ‘울산, 그리고 독도’에서는 17세기 안용복과 함께 일본으로 간 울산 출신 어부 박어둔 등의 자료를 통해 울산과 독도의 친밀한 관계를 알려준다. 이와 함께 울산박물관은 독도의 사계를 담은 사진과 1960년대 울릉도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희귀 동영상 등도 전시한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샤넬·돌체도 사로잡은 ‘히잡’…수백만원 호가하는 명품으로

    샤넬·돌체도 사로잡은 ‘히잡’…수백만원 호가하는 명품으로

    박대통령이 쓴 히잡은 ‘루사리’ 시아파 이란인들이 즐겨 착용 조선시대 장옷 같은 차도르 등 종교 뛰어넘은 패션소품 각광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이란 방문 때 착용해 관심이 집중된 히잡은 대체로 이슬람에서 여성들이 머리에 써서 가슴까지 가리는 천을 가리킨다. 그 종류만 수십 가지가 넘는다. 시아파 국가인 이란에서는 얼굴만 남기고 머리 수건을 쓰는 것을 ‘루사리’라고 한다. 박 대통령이 착용한 것이 이것이다. ‘차도르’는 얼굴, 손발을 제외한 온몸을 가리는데 주로 중동, 동남아 등에서 외출용으로 많이 입는다. 우리로 보면 조선시대에 부녀자들이 외출할 때 머리부터 내려 쓴 장옷과 비슷하다. ‘니캅’은 눈은 보이지만 몸 전체를 가린다. 이란에서는 ‘마크네’라고도 한다. 특히 모로코, 파키스탄 등에서 많이 입는다. ‘부르카’는 눈 부분마저도 망사로 덮어 완전히 신체가 보이지 않도록 한다. 가장 극단적으로 가리는 것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은 당시 여성들에게 부르카 착용을 의무화했다. 이 밖에도 스카프 같은 ‘아미라’와 ‘샤일라’, 상반신만 가리는 망토인 ‘키마르’ 등도 있다. 이슬람 여성들은 왜 히잡을 쓰는 것일까. 이슬람 경전인 코란은 “여성들에게 일러 그녀들의 시선을 낮추고 순결을 지키며 밖으로 나타내는 것 외에는 유혹하는 어떤 것도 보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사실 이 히잡은 비잔틴제국과 페르시아제국의 상류층 여성들이 착용하던 권위의 복장이었다. 17세기까지만 해도 상류층 여성들은 하류층 여성들과의 신분을 구분하기 위한 과시용으로 히잡을 착용했다. 서방의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히잡을 ‘베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방은 오래전부터 히잡을 할례와 더불어 여성 억압의 상징이라며 비판했고, 이슬람 국가들은 여성 보호의 수단이라고 맞섰다. 특히 프랑스는 2004년 초·중·고등학교 내에서의 히잡을, 2011년에는 공공장소에서 부르카 등의 착용을 각각 금지시켰다. 서방과 이슬람의 해묵은 갈등은 프랑스 주간지인 ‘샤를리 에브도’의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만평에 격분한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무차별 총격으로도 이어졌다. 종교의 상징처럼 비쳐지던 히잡도 최근 들어 패션 소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샤넬’, ‘돌체앤가바나’ 등 유명 브랜드는 전 세계적으로 8억명에 달하는 이슬람 여성의 지갑을 열기 위해 다양한 색깔과 디자인의 히잡을 앞다퉈 출시하고 있다. 이른바 ‘명품’ 히잡은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울산박물관, ‘독도’ 특별전 3일~7월 24일 개최

    울산박물관은 3일부터 오는 7월 24일까지 ‘독도, 아름다운 그곳’ 특별전을 개최한다고 2일 밝혔다. 특별전은 울산박물관과 독도박물관이 공동 주최하고, 해양수산부와 경북도에서 후원한다. 특별전은 ‘한민족의 섬, 독도’, ‘일본은 알고 있다’, ‘독도 침탈’, ‘독도, 광복되다’, ‘울산, 그리고 독도’ 등 5개의 주제로 나눠 열린다. ‘한민족의 섬, 독도’에서는 우리 사료를 통해 독도가 우리 삶의 공간이었음을 보여주고, ‘일본은 알고 있다’에서는 독도를 조선의 섬으로 인식했던 과거 일본의 자료를 전시한다. ‘독도 침탈’에서는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비해 울릉도와 독도의 행정구역을 정비했던 대한제국의 노력을, ‘독도, 광복되다’에서는 1945년 광복으로 한반도와 독도의 독립을 알려주는 자료 등을 전시한다. 또 ‘울산, 그리고 독도’에서는 17세기 안용복과 함께 일본으로 간 울산 출신 어부 박어둔 등의 자료를 통해 울산과 독도의 친밀한 관계를 알려준다. 이와 함께 울산박물관은 독도의 사계를 담은 사진과 1960년대 울릉도 생활상을 알 수 있는 희귀 동영상 등도 전시한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한양 가던 배 한 해에 66척 침몰 쌀 썩는 냄새에 운하 만들었지만…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한양 가던 배 한 해에 66척 침몰 쌀 썩는 냄새에 운하 만들었지만…

    충남 태안 마도 해역에서 발견된 고선박 마도 4호선은 조선시대 조운선이었다. ‘광흥창’(廣興倉)이라고 적힌 목간과 ‘내섬’(內贍)이라고 쓰인 분청사기 등 유물과 견고한 선박 구조로 미뤄 조선 초기 조운선으로 보인다는 것이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설명이다. ●태안 앞바다에서 분청사기 등 유물 발견 조운선이라면 삼남지방에서 걷은 세곡을 한양으로 나르던 배다. 60점 남짓한 목간에는 대부분 출발지인 나주와 종착지인 광흥창을 뜻하는 ‘나주광흥창’(州廣興倉)이 적혀 있었다. 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이 배가 1410∼1420년 침몰한 것으로 추정했다. 잔해는 대부분 마도 북동쪽 해역의 수심 9∼15m 지점에 파묻혀 있었다. 태안은 삼국시대 중국을 오가는 수운의 요충지였다. 고려시대 태안에는 개경을 오가는 송나라의 사신이 머물다 가는 객관 안흥정이 자리잡은 국제항로의 일부이기도 했다. 안흥정에 관한 기록은 송나라 사람 서긍(1091~1153)의 ‘고려도경’에도 보인다. 안흥 해역은 조석 간만의 차가 크고 조류가 빨라 침몰 사고가 빈번했다. 통과하기 어렵다고 난행량(難行梁)이라 불릴 정도였다. 서긍도 이곳을 지나며 ‘격렬한 파도는 회오리치고, 들이치는 여울은 세찬 것이 매우 기괴한 모습이어서 무어라고 표현할 수가 없다’고 적었다. 침몰선과 수중 유물은 이 뱃길의 역사적 중요성을 확인시켜 준다. 발굴된 유물의 시대와 국적은 매우 다양하다. 고려자기는 11세기 해무리굽 청자부터 14세기 후반의 상감청자까지 질과 양에서 풍부하다. 조선시대 것도 15세기 분청사기와 17~18세기 백자가 다채롭다. 중국 것은 송·원 시대 청자, 15~16세기 명나라 시대 복건성 남쪽에서 만들어져 동남아시아로 많이 수출됐던 청화백자, 18~19세기 청나라 시대 백자가 망라되고 있다. ●뱃길 낯설고 화물 무거워 3분의1 침몰 난행량은 조운선에 더욱 두려운 뱃길이었다. 상선은 그래도 전문적인 뱃사람들이 익숙한 뱃길로 오가는 만큼 사고 위험이 덜했지만, 각 지역에서 징발된 세곡선의 일꾼들은 뱃길이 익숙지 않았고 화물도 무거웠으니 항해는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 조선시대 서해안에서 침몰한 세곡선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태조 4년(1395)에는 경상도 조운선 16척이 가라앉았다. 태종 3년(1403)에는 5월에 경상도 조운선 34척이, 다시 6월에는 경상도 조운선 30척이 잇따라 피해를 입었다. 태종 14년(1414)에는 전라도 조운선 66척, 세조 원년(1455)에는 전라도 조운선 54척이 침몰했다. 많을 때는 전체 세곡선의 3분의1 가까이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한강 하류의 교하와 강화도 앞 교동에서도 조운선이 침몰한 기록이 있지만, 대부분은 난행량과 안면도 서남쪽의 쌀썩은여였다. 쌀썩은여는 세곡선의 침몰로 쌀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평안하게 번성한다’는 의미의 안흥(安興)이라는 지명이 태어난 것도 조운선의 안전을 빌고자 난행량을 안흥량으로 고친 결과라고 한다. 난행량을 피해 태안반도를 관통하는 운하를 파는 계획은 일찌감치 고려시대부터 추진됐다. 당시에도 세곡선의 잇따른 침몰이 국가재정을 크게 위협할 정도였으니 운하 건설까지 궁리한 것이다. 고려 인종 12년(1134) 군졸 수천 명을 풀어 운하 공사를 벌였고, 의종 8년(1154)에도 운하 개착 시도가 있었다. 공양왕 3년(1391) 공사를 재개했으나 화강암 암반이 나타나는 바람에 중단됐다. 태안반도 남쪽의 천수만과 북쪽의 가로림만을 잇는 굴포운하였다. 태안군 태안읍 인평리와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를 연결하는 12㎞ 구간이다. 갯벌이 8㎞ 정도로 난공사 구간인 육지 부분은 4㎞ 정도다. 운하가 완성되면 천수만으로 진입한 세곡선은 쌀썩은여와 난행량을 모두 피해 북상할 수 있었다. 굴포운하는 조선시대에도 태종과 태조에 이어 세조까지 줄기차게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안면도 인근 운하 만들어 ‘쌀썩은여’ 피해 가 대안은 태안군 소현면 송현리와 의항리를 잇는 의항 운하였다. 안흥에서 가까운 의항운하는 2㎞만 파면 난행량을 피할 수 있었다. 중종 32년(1537) 승려 5000명을 동원해 완성하지만, 토목기술의 한계로 둑이 계속 무너지는 바람에 다시 메워지고 말았다. 태안반도와 남쪽의 반도였던 안면도 사이에 운하를 파는 공사가 마지막 대안이었다. 북상하는 세곡선은 천수만으로 진입한 다음 안면도를 가로질러 다시 큰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 난행량 통과는 불가피했지만 쌀썩은여는 피해갈 수 있었다. 대(大)토목공사였던 안면운하 개착은 인조연간(1623~1649) 본격 추진되어 17세기 후반 마무리됐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목소리 연금술사… 성우 양지운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목소리 연금술사… 성우 양지운

    그의 평소 목소리는 ‘인디아나 존스’의 해리슨 포드와 비슷할까, ‘보디가드’의 케빈 코스트너와 닮았을까. 아니면 ‘체험 삶의 현장’ 같은 TV 프로그램에서의 코믹 내레이션에 더 가까울까.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 카페에서 만난 성우 양지운의 목소리는 그가 연기했던 무수한 인물 중 누구와도 닮아 있지 않았다. 50년 가까운 성우 인생의 대부분을 주인공으로만 살아온 그가 실제 인생의 주연으로서 달려온 68년을 들어봤다. -“이봐, 손님한테 그렇게 따지듯이 말하는 웨이터가 어딨나? 그 짧은 대사 하나 제대로 못해서 어떻게 성우를 해.” 1970년 서울 서소문 TBC 사옥의 라디오 녹음실에 성난 PD의 호통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차갑게 나를 보는 선배들의 시선. 성우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대사 한마디를 얻었던 그날, 나는 얼굴이 벌게져 당장이라도 녹음실을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 돼 있었다. 라디오 드라마 속 내 역할은 레스토랑 웨이터. 대사는 딱 한 줄 “뭘 드시겠습니까?”였다. 주인공에게 정중히 물어야 하는데, 긴장한 탓에 “당신 뭐 먹을 거야. 빨리 말해!”라는 식으로 따지는 것처럼 딱딱한 연기가 되고 말았다. 무수한 NG 끝에 넋이 완전히 나간 상태로 녹음을 마쳤다. ‘기회만 주어지면 신성일이나 찰턴 헤스턴(영화 ‘벤허’의 주연배우) 역할이라고 못 하겠나.’ 평소 가졌던 그 생각은 얼마나 만용이었나. 어쨌든 나의 단독 대사 데뷔전은 그렇게 엉망으로 끝이 났다. 이후로도 녹음실의 ‘고문관’ 노릇은 상당 기간 이어졌는데, 그 와중에 위안거리는 하나 있었다. “신참이 목소리 하나는 괜찮구먼”이라는 선배들의 평가였다. -나는 고등어와 고구마를 아주 싫어한다. 절대로 안 먹는다. 고등어 머리만 모아 끓인 국과 고구마를 먹으며 비린내와 복통에 잠 못 들었던 어릴 적 기억 때문이다. 1948년 내가 태어난 곳은 경남 통영의 두메산골이었다. 바닷가 쪽 어촌이라면 차라리 좀 나았을까. 논도 밭도 제대로 없는 곳에서 할 거라곤 고구마 농사뿐이었다. 어머니는 며칠에 한 번씩 부두에 나가 손질하고 버려지는 고등어 머리들을 받아와 가마솥에 넣고 끓여 주셨다. 방안을 가득 채운 고등어 비린내는 이불에 스며 들고 옷에 배어 나를 어디든 따라다녔다. -고향이 싫었다. 분명히는 가난이 싫었던 것이지만, 나에게 고향은 곧 가난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님 세 분은 일찌감치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떴기 때문에 어릴 적 우리 집은 부모님과 나, 이렇게 세 식구였다. 부모님은 무학(無學)이시기도 했지만, 끼니도 제대로 못 잇는 상황에서 막내아들의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없으셨다. 때가 됐는데도 학교에 보내지 않으셨다. 친구들이 국민학교(초등학교)에 가고 나면 혼자 남은 나는 산으로 바닷가로 마냥 쏘다녔다. 그러기를 2년. 울며불며 아버지를 졸라 열 살에 처음 학교에 들어갔다. -내 학력은 국졸로 끝날 뻔했다. 친구들이 중학교에 등교할 때 나는 농사를 지으러 갔다. 국민학교 때 나보다 공부를 못했던 아이들이 통영중 교복을 입고 다니는 걸 보면 어린 마음에 속이 뒤집어졌다. “사범학교 학생들이 가르치는 고등공민학교라는 곳이 있다던데 거기라도 가 볼래?” 마흔둘에 나은 늦둥이가 실의에 빠져 있는 걸 어머니 스스로 견디질 못하셨다. 그때 어머니의 배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 막내 데리고 같이 올라갈게요.” 어떻게 하면 이 지긋지긋한 집을 탈출할 수 있을까 궁리하던 차에 서울에 살던 둘째 형님이 같이 올라가자고 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에서 내 표정을 보곤 ‘저 놈을 여기에 계속 두면 안 되겠다’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게 또래들은 고1이던 만 16세, 1964년이었다. -손잡고 올라온 건 작은형이었는데, 어쩌다가 자리를 잡게 된 건 경기도 의정부 큰형님 댁이었다. 형과 함께 의정부중학교에 갔다. “저 통영에서 고등공민학교 1학년 다녔으니까, 여기서는 2학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고등공민학교는 정규과정이 아니니 1학년으로 입학하라고 했다. ‘안 그래도 친구들보다 3년이나 늦었는데….’ 내 한숨이 너무도 깊었던지 교무주임 선생님이 그 전해에 봤던 1학년 기말고사 시험문제지를 갖고 오셨다. “여기 문제들 풀어봐. 잘 보면 2학년으로 해주마.” 다음날 나는 2학년 교실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아니 세 살 어린 동생들을 만났다. -큰형님은 아이가 셋이었다. 가뜩이나 작은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사는데 내가 끼니까 여섯이었다.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밥만 형님 댁에서 먹고 잠은 보급소에서 잤다. 공부는 쉬웠다. 경상도 말씨 심한 시골 형이 순식간에 공부에서 자기들을 따라잡자 아이들은 놀라는 눈치였다. 공부 좀 한다는 게 알려져 우연히 큰형님이 셋방 사는 주인집 국민학생 아이를 가르치게 됐다. 나한테 배우고 그 아이가 성적이 확 올랐는데, 그 덕에 과외 학생을 많이 소개받았다. 국민학교 5~6학년 15명을 가르친 적도 있었다. 한 달에 최고 5000원도 벌었는데 대졸 직장인 월급 수준이었다. 절반 정도를 떼어 형님 생활에 보탰다. -당시 내 유일한 취미는 라디오를 듣는 것이었다. 집안에 TV가 거의 없던 당시에 라디오 드라마는 최고의 인기였다. 저녁이면 동네 아낙들이 밥상 치우고 삼삼오오 라디오 있는 집으로 몰려들었다. 구민, 고은정, 이창환 같은 성우들은 톱스타였다. 우리 집에는 라디오가 없었지만, 과외 선생의 지위를 이용해 제자의 집에 가서 듣곤 했다. -중3 때에는 유도를 했다. 전국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그때 함께 운동했던 친구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던 장은경(1996년 별세)이었다. 그런데 운동만 하기엔 학업 성적이 너무 좋았다. 은경이는 유도를 위해 인천 선인고에 갔고 나는 일반고인 의정부고에 진학했다. 의정부고는 학력이 꽤 좋은 편이었는데, 나는 전교 10등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서울대에 대한 꿈 같은 건 없었다. 연기자가 되기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면 의정부에서 서울까지 차를 타고 와서 명동국립극장과 영화관에 살다시피 했다. 배우들의 대사를 따라했고, 라디오 드라마 대사도 받아 적은 뒤 연습을 했다. 영화배우나 TV 탤런트도 생각해 봤지만 내 외모에 목소리만큼의 강점은 없다는 걸 알곤 빠르게 포기했다. -한양대 토목학과에 들어갔는데 얼마 다니지는 못했다. 대학 1학년 때인 1969년 10월 TBC에 입사(성우 공채 5기)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성우로서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경상도 사투리였다. 나는 ‘경제’라고 말하는데 사람들은 ‘갱제’로 알아들었다. ‘쌀’이라고 하는데 사람들 귀에는 ‘살’로 들렸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희화화 유머에도 등장하는 이런 상황은 당시 나에게는 심각한 핸디캡이었다. 그때 방송사에서는 표준어만 써야 한다는 인식이 유난히 강했다. ‘서울말’, 그러니까 표준어를 외국어 배우듯이 익혔다. 퇴근을 하면 매일 서울 사람들만 만났다. 경상도 사람은 의도적으로 피했다. 서울말을 듣고 통으로 외웠다. 그야말로 사투리와의 사투였다. -그러는 중에도 나의 사투리 억양에 대한 지적은 계속됐다. 당시 TBC의 인사 평가 시스템은 매우 가혹했는데, 어느 날 불쑥 해고 통지를 하는 식이었다. “고생 고생해서 성우가 됐는데 결국 사투리 때문에 잘리는 건가.” 불안한 날들이 이어지는데 뜻밖의 기회를 얻게됐다. 당시 ‘광복 20년’이라는 정치 드라마의 ‘이승만 시해미수 사건’ 편에 김시현이라는 분이 나왔다. PD가 경상도 말을 써야 하는 그 역할을 나에게 주었다. 방송이 나간 뒤 반응이 아주 좋았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성우가 누구냐”는 격려 전화가 빗발쳤다. ‘퇴출’ 후보에서 갑자기 ‘TBC의 보물’이 됐다. -그러다 1976년 인생의 전기가 찾아왔다. ‘600만불의 사나이’의 주인공 스티브 오스틴(리 메이저스) 역을 맡게 됐다. 입사한 지 6년을 갓 넘겼을 때였다. 원래 ‘600만불의 사나이’는 길게 방영할 게 아니었다. 단발 편성이었다. 그래서인지 PD가 주인공을 나에게 맡겼다. 공군 조종사 출신 대령이 사고로 양쪽 다리와 한쪽 팔, 한쪽 눈을 잃었지만 최첨단 기술로 다시 태어나 차도 한 손으로 번쩍 들고 시속 100㎞로 달린다는 설정은 당시로선 충격이었다. 방송이 나가자 전국에서 난리가 났다. 드라마 자체도 그렇지만 주인공 목소리 성우가 너무 잘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결국 ‘600만불의 사나이’는 장기 편성으로 바뀌었고 나의 역할도 계속됐다. 선후배 기수 개념이 강한 방송국에서 고참들을 제치고 고작 입사 6년에 주인공이라니. -드라마가 인기를 얻자 광고가 어마어마하게 들어왔다. 점심 먹을 시간도 없어서 별명이 ‘김밥맨’일 정도였다. 아침에 방송국으로 출근하면 밤 10시는 넘어야 퇴근할 수 있었다. 어린이들이 600만불의 사나이 흉내를 내면서 사고도 많이 났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다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방송국으로 찾아와 ‘주인공 흉내를 내다가 크게 다쳤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600만불의 사나이’가 인기를 모으면서 ‘두 얼굴의 사나이’, ‘소머즈’, ‘원더우먼’ 등 비슷한 장르의 미국 드라마가 속속 국내에 들어왔다. -과거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 등 주말 외화들이 방송사를 먹여살리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는 더빙이 시원찮으면 “성우 때문에 영화를 망쳤다”고, 반대로 괜찮으면 “성우가 영화를 살렸다”는 편지와 전화가 방송국에 쇄도했다. 로버트 드니로, 멜 깁슨, 해리슨 포드 등의 목소리가 내 단골이었다. TBC 전속에서 풀린 뒤 방송국마다 나를 붙잡기 위해 경쟁이 벌어졌고 내 인기는 그야말로 상한가였다. “극장에서 볼 때보다 더 낫다”는 것만큼 기분 좋은 말은 내게 없었다. -‘맥가이버’, ‘형사 가제트’를 맡았던 배한성 선배는 외부에서 필생의 라이벌로 꼽지만, 우리 둘 사이는 별로 그렇지는 않다. 배 선배는 나이는 두 살 위, 방송국 기수로는 3기 위(TBC 2기)다. 사실 서로 경쟁할 부분도 없었다. 배 선배는 부드러운 콧소리 음성이지만 난 쇳소리에 가깝다. 서로가 서로를 빛나게 해준다. 형사물인 ‘스타스키와 허치’도 함께 했다. 난 냉정한 독일계 형사인 허치를, 배 선배는 다혈질의 유태계 형사 스타스키를 맡았다. -나에게 목소리 관리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목을 잘 관리하려면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 피곤하면 목소리부터 변한다. 감기도 조심해야 한다. 목소리는 지문처럼 타고나는 것이지만, 과음을 하거나 흡연을 하면 망가지기 마련이다. 목소리 관리를 위해 물병을 갖고 다니며 하루에 2ℓ 이상을 마신다. -언제부턴가 ‘성우’보다는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가’로 더 많이 활동한 것 같다. 큰아들이 스무 살이 되던 2000년 입대영장이 나오자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했다. 군사법원에서는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그 전까지는 내 종교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아들이 그렇게 되니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된 건 1987년부터다. 주변에서 “왜 하필…”이라는 반응도 나왔지만 “난 그저 내 길을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종교를 강요한 적은 없었지만 자연스레 부모를 따라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가족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아 청와대나 법무부 등을 쫓아다녔다. 세상이 날 싸움꾼으로 만든 셈이었다. 그 이후 광고 출연 요청 등도 완전히 끊겼지만 개의치 않는다. 사정은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데 둘째도 2011년부터 감옥살이를 했고 지금 스물네 살인 셋째는 재판을 받고 있다. 요즘 많이들 물어보는 게 ‘걸그룹 며느리’(‘카라’ 출신 김성희) 얘기다. 그 아이는 나에게 막내딸과 같다. 결혼한 지 5년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그렇게 예쁠 수 없다. 김태균 사회부장 windsea@seoul.co.kr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성우 양지운 1970년대 이후 중후하고 담백한 목소리로 늘 최고의 자리를 유지해 온 우리나라의 대표 성우다. ‘600만불의 사나이’의 리 메이저스(왼쪽·스티브 오스틴)를 비롯해 해리슨 포드(인디아나 존스, 도망자, 스타워즈), 로버트 드니로(오른쪽·히트, 대부2, 미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알 파치노(애니 기븐 선데이), 리엄 니슨(테이큰, 쉰들러 리스트), 멜 깁슨(가운데·리썰 웨폰, 브레이브 하트), 케빈 코스트너(보디가드, 워터월드), 러셀 크로(글래디에이터), 숀 코너리·로저 무어(007 시리즈), 크리스토퍼 리브(슈퍼맨) 등이 그의 목소리를 통해 한국 시청자들을 만났다. 2000년대 이후에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 가족협의회 공동대표로 활동해 왔다. ▲1948년 경남 통영 출생 ▲경기 의정부중·고 ▲한양대 토목공학과 중퇴 ▲TBC 성우 5기 입사(1969년) ▲MBC 라디오 연기대상(1984년), KBS 최우수 외화 연기상(1999년), 한국방송대상 성우상(2010년) ▲한국성우협회 부이사장(2004년),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겸임교수(2005년)
  •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단종 애달픈 넋, 문화로 꽃피다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단종 애달픈 넋, 문화로 꽃피다

    올해로 50회를 맞는 단종문화제는 전통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세계 속의 한국 전통문화축제로 자리잡았다. 영월군은 엄격한 고증을 거친 단종국장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고 한다. 해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폭발적으로 는다. ●국내외 관광객 18만여명… 세계 속 전통축제로 조선시대 6대 임금 단종(재위 1452∼1455)은 어린 나이에 숙부 수양대군에 의해 왕위를 빼앗기고 17세에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비운의 왕이다. 8살의 나이에 왕세손에 책봉된 뒤 문종의 뒤를 이어 12살(1452년)에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1455년 단종은 한명회·권람 등의 압박에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다. 2년 뒤인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돼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다. 유배 넉 달 만에 평민으로 강등되어 17살의 어린 나이에 영월부 관아에서 사약을 받고 숨진다. 당시 단종의 시신을 손대면 삼족을 멸할 것이라는 조정의 엄포로 방치되다시피 했는데 영월의 호장이던 엄흥도가 수습했다. 그로부터 270여년 세월이 흐른 뒤 숙종이 단종을 복위했다. 제향의식 위주였다가, 지난 1967년부터 제삿날을 단종문화제로 승화시켰다. 단종문화제는 해마다 해외 관광객 500여명 등 국내외 18만여명의 관광객들이 찾는다. ●궁중의상 패션쇼·기록물전 등 50주년 특별행사 영월군이 주최하고 재단법인 영월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올해 단종문화제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단종, 다시 걷는 발걸음’을 주제로 펼쳐진다. 주무대는 동강둔치와 장릉, 영월부 관아 등 영월 읍내 곳곳이다. 단종국장 재현, 단종제향, 산릉제례어가행렬, 야간 칡줄다리기, 정순왕후 선발대회 등 전통행사와 80여개의 체험행사로 진행된다. 특히 50주년 특별행사로 조선시대 왕실문화의 진수를 보여줄 ‘궁중의상 패션쇼’, 단종과 정순왕후의 만남을 그린 ‘단종과 정순왕후의 만남’, 단종문화제 1회부터 49회까지의 사진과 영상물을 담은 ‘단종문화제 50주년 특별 기록물전’, 행사장 주요 장소에 설치할 ‘50주년 축하 조형물’설치 등 어느 해보다 볼거리 체험거리가 넘친다. 메인 프로그램은 뭐니 뭐니 해도 단종국장 재현이다. 해마다 일요일 행사로 치러졌지만 50주년을 맞은 올해는 29일(금요일)로 옮겼다. 이날 오전 11시 동강둔치 특설무대에서 창절서원을 거쳐 장릉까지 이어진다. 국장은 왕의 시신이 궁궐을 떠나 왕릉에 묻히는 과정을 보여주는 행사로 계빈의, 견전의, 발인의, 발인행렬, 노제의, 천전의, 우주의 등으로 진행된다. 발인행렬에는 1400여명에 달하는 인원과 영조국장도감의궤, 국조상례보편에 의해 고증된 대도구 16종 202식과 소품 49종 275식으로 구성됐다. 행렬 길이만 1.2㎞에 달한다. 국상은 원칙이 67개 절차와 27개월 기간이 소요되지만 영월 단종국장은 중요 행사만 추려 진행한다. 조선 27대 임금 가운데 유일하게 국장을 치르지 못한 단종의 넋을 기르는 뜻도 있다. 1698년(숙종24) 단종 복위 이후 270년 동안 제향의식에만 그치던 것을 2008년부터 단종국장으로 재현했다. 단종국장 세계화 구호에 맞춰 외국인 500여명도 직접 발인행렬에 참여한다. 참여 외국인은 단종국장보존회 명예회원으로 홍보에도 나서게 된다. ●45세 미만 기혼여성 대상 정순왕후 선발대회도 29일 오후 2시부터 4시 30분까지 시행하는 단종비 정순왕후 선발대회는 1998년부터 시작했다. 올해는 ‘정순왕후, 500년의 사랑을 말하다’를 주제로 그간 단종애사에 가려졌던 인간 정순왕후의 삶과 사랑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정순왕후 선발대회 개최를 통해 정순왕후의 덕과 뜻을 널리 알리고 이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시대정신을 지닌 여성을 선발한다. 전국의 45세 미만의 기혼여성이 참가해 정순왕후와 김빈, 권빈을 선발하게 된다. 정순왕후에 선발되면 상금 500만원이 주어지고 김빈과 권빈에게는 각 200만원, 인기상 3명에게는 각각 1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앞서 지난 2~ 3일 이틀 동안 서울 숭인동 숭인근린공원(동망봉)에서는 정순왕후 추모제향 행사가 있었다. 올해로 330회를 맞는 단종제향은 30일(토요일)에 거행된다. 오전에 하던 행사를 50주년인 올해는 더 많은 관광객이 참여할 수 있도록 오후 2시로 옮겨 거행된다. 특히 올해는 정순왕후 여산송씨 문중과 장판옥 268위의 충신 후손들도 참여할 전망이다. 같은 날 오후 6시 개막식과 연계해 시행되는 단종과 정순왕후의 만남 행사는 단종과 정순왕후가 한 많은 이별을 했던 영도교이별 장면과 단종유배 길을 현대적 의미로 재조명하고 정순왕후가 단종을 찾아오는 정순왕후 행렬을 상상에 의해 조명했다. 단종과 정순왕후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려낸다. 30일(토요일) 오후 6시 30분부터 시작하는 야간 칡줄다리기도 장관이다. 240명이 참가한다. 동편은 영월역에서 오후 6시, 서편은 문화예술회관에서 오후 6시 30분에 시작된다. 칡줄다리기 본 행사는 오후 7시 30분부터 메인행사장인 동강둔치에서 열린다. 야간 칡줄다리기는 십이지간을 상징하는 12개의 횃불 화로와 해마다 단종 승하 연수를 상징하는 600여개의 횃불이 동원된다. 칡줄다리기 특징은 칡으로 기줄을 만들고 칡줄이 완성되면 단종의 위패를 모셔 놓고 고사를 올린 뒤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칡줄은 용을 상징하고 액운을 없애는 의미도 있다. 올 행사에는 칡줄다리기 본행사 외에 군민화합 칡줄다리기 경연과 직접 군부대원들이 참가해 경연을 펼치며 민·군·관 화합행사는 물론 지역발전과 군민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게 된다. 30일 오전 12시 30분에 시작하는 산릉제례어가행렬은 왕이 직접 능을 참배했던 어가행렬을 고증에 의해 재현하는 행사다. 왕이 직접 참여하는 공식행사인 만큼 왕의 존재와 권위를 높이고자 대규모 호위병사와 깃발, 무기 등이 동원된다. 군사들의 행진, 의장행렬, 왕과 종친, 문무백관들로 행렬이 이루어진다. 화려한 깃발과 무기, 장신구로 둘러싸인 채 병사들의 호위를 받는 어가행렬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신비로움과 경외감을 보여 주며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대합창 등 영월군민·관광객 화합 한마당 개최 단종문화제 마지막 행사인 5월 1일 오후 1시부터 동강둔치에서 진행되는 군민과 관광객이 하나 되는 화합행사로 연출된다. 지금까지의 단종문화제가 한양에서 영월로 유배돼 17세의 어린 나이로 죽는 단종의 애닮은 사연을 모티브로 하는 문화제였다만, 이날은 자연환경과 역사문화유산을 바탕으로 미래가치를 끌어올리는 축제로 승화시켜 나가는 화합의 장으로 꾸민다. 50주년을 맞는 이번 군민·관광객 화합행사는 어르신 건강 체조 경연, 지역단체공연으로 펼치고 마지막 행사로 인기가수와 함께 2018 동계올림픽 성공개최를 기원하는 대합창이 펼쳐진다. 대합창에는 유명가수와 지역의 주요인사, 지역합창단, 강원도 내 자치단체들이 참가한다. 이와 함께 메인 무대인 동강둔치에서는 관광객의 다양한 체험을 위해 로봇공연, 드론체험, 전통방식으로 시행하는 축제지킴이, 중국사진작가 초청전시 등 80여개의 다채로운 체험행사가 펼쳐진다. 정대권 영월군 문화관광과 주무관은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조화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을 제공하고, 영월을 대내외에 홍보하고 군민과 관광객이 하나 되는 문화축제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영월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17C 비단 드레스

    17C 비단 드레스

    네덜란드 텍셀 소재 카프 스킬 박물관의 지난 19일 의상 전시회에 전시된 17세기 비단 드레스. 네덜란드 근해 해저의 난파선 잔해 속에서 건져낸 것으로 원전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 거대 공연장 된 고향 마을 찰스 왕세자는 ‘햄릿’ 변신 오바마도 셰익스피어 외교

    거대 공연장 된 고향 마을 찰스 왕세자는 ‘햄릿’ 변신 오바마도 셰익스피어 외교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대문호 셰익스피어(1564~1616)가 세상을 떠난 지 400주년을 맞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영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선 다양하고 풍성한 추모 행사가 열렸다. 공연과 불꽃놀이, 음악회, 거리행진 등이 숨 가쁘게 이어져 식지 않은 그의 인기를 방증하는 듯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일간 가디언은 이날 행사의 정점을 그의 고향인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서 열린 ‘셰익스피어 라이브!’로 꼽았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나 평생을 살았던 인구 2만 7000여명의 중부 소도시는 매년 이맘때면 거대한 공연장으로 돌변한다.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직접 이곳을 찾아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공연하는 덕분이다. 이날 저녁 무대는 특별했다. 이곳에 기반을 둔 극단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RSC)가 선보인 공연에는 할리우드 영화로도 유명한 주디 덴치, 헬렌 미렌, 이언 매켈런, 베네딕트 컴버배치, 조지프 파인스 등 영국의 내로라하는 ‘국민 배우’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한여름밤의 꿈’ ‘헨리 5세’ ‘리어왕’ 등의 격정적인 장면들을 갈라쇼 형식으로 선보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왕위 계승을 둘러싼 덴마크 왕가의 암투를 다룬 ‘햄릿’의 한 장면이 무대에 올려졌고 극장 안은 환호로 가득 찼다. 고뇌에 찬 왕자 햄릿으로 나온 이는 다름 아닌 찰스 왕세자였다. 무대 위에 ‘깜짝’ 등장한 그는 어눌하지만 감정을 이입해 “죽느냐 사느냐…” 등 몇 마디 대사를 읊조렸다. 객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매년 특별석에서 공연을 지켜보던 찰스 왕세자가 무대에 오른 건 처음이다. 이 장면은 BBC방송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일주일 전부터 곳곳에서 시작된 셰익스피어 400주기 행사는 이날 절정에 이르렀다.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선 수천명의 시민이 중세 복장을 하고 행진했다. 재즈풍의 행진 음악을 연주한 악단은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날아왔다. 영국을 방문 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이날 하루 ‘셰익스피어 외교’를 이어 갔다. 1997년 런던 템스강변에 복원된 17세기풍의 글로브극장을 찾아 연극 햄릿의 한 장면을 관람했다. 이곳에서 자신을 위해 마련된 특별 공연을 관람한 뒤 무대에 올라 배우들을 격려했다. 바다 건너 헝가리 죄르에선 셰익스피어의 작품 ‘맥베스’를 주제로 한 대규모 오페라 공연이 펼쳐졌다. 매년 셰익스피어 축제를 열어 온 폴란드 그단스크에선 대문호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민들이 실제로 눈물을 흘리며 거리를 행진하는 대규모 가상 장례식이 열렸다. 세계 최대 포털사이트인 구글은 이날 400주기를 기념하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기념 로고를 온라인에서 선보였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권력의 위기마다 문제는 회계였다

    권력의 위기마다 문제는 회계였다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제이콥 솔 지음/정해영 옮김/메멘토/456쪽/2만 2000원 회계라 하면 ‘복잡한 장부상의 까다로운 숫자놀음’쯤으로 인식되지만 고대 이래 늘상 삶에 영향을 미쳐왔다.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지도자들은 정치관리의 주요 수단으로 회계를 활용했다. 고대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개인 회계 기록을 바탕으로 ‘업적록’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로마는 각 가정에서 가계부를 작성해 세리들이 감사하게 할 만큼 회계가 번성했다. 특히 이익, 손실을 빈틈없이 계산하는 복식부기 회계는 재무관리의 근간이다. 그래서 1300년 무렵 이탈리아 북부에서 시작된 복식부기 회계의 도래는 근대정치와 자본주의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독일 경제학자 베르너 좀바르트만 하더라도 “복식부기 없는 자본주의는 상상할 수 없다”고 일갈한 바 있다. 회계가 삶과 사회조직에서 빼놓을 수 없음에도 간과되기 일쑤이다.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역사·회계학 교수가 통념을 비틀어 회계를 역사의 중심에 놓아 흥미롭다. 르네상스기부터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700여년에 걸쳐 회계와 관련된 사건과 인간 군상을 건져 올리는 이야기 풀어내기가 신선하다. ●도시공화정 황금기땐 회계를 교육에 융합 책의 큰 주제는 회계의 가치와 투명성을 중시한 조직과 나라들은 융성, 번창했고 그 반대는 쇠락하거나 몰락했다는 점이다. 그 대비의 사례들이 명쾌하다. 융성했던 경우들을 보자. 피렌체·제노바 같은 이탈리아 도시공화정과 황금기 네덜란드, 18~19세기 영국·미국 등 전성기를 누린 국가들은 모두 회계를 교육과정과 종교·도덕 사상, 예술·철학·정치이론에 통합시켰다. 당대 네덜란드에는 회계 학교가 수두룩했고 조세수입을 복식부기로 기록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17세기 중반 암스테르담은행이 설립되고 네덜란드 공화국은 주식 거래의 본고장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19세기 투명한 회계가 뿌리를 내린 영국은 세계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그래서 18~19세기 영국 철학자들은 회계를 ‘상업적 관리의 도구’일 뿐 아니라 ‘정치적 사유의 도구’로 매김했다. ●프랑스 혁명의 불씨도 부실 회계 탓 그와는 달리 15세기 피렌체 메디치가는 은행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고도 부실한 회계기록 탓에 몰락, 피렌체의 재정 안정성까지 뒤흔들었다. 정확한 회계가 제 입지를 좁힌 것으로 여긴 프랑스 루이 14세가 정직한 회계를 기피한 탓에 왕실 재정이 파탄 났고 프랑스혁명의 불씨를 댕겼다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1929년 대공황, 2008년 금융위기도 부실한 회계가 부른 사회 붕괴의 사례로 꼽힌다. 책에선 회계에 얽힌 부정의 역사도 뿌리 깊고 끈질긴 것으로 드러난다. 로마시대 키케로는 부집정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회계장부를 부실하게 기록하는 방식으로 카이사르에게 훔친 돈을 탕진했다고 주장했다. 상업 공화정이 가장 발달한 시기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거의 모든 상인은 저만 볼 수 있는 ‘비밀 장부’와 정부 감사에 맞춰 가짜의 ‘공식 장부’ 등 두 개를 갖고 있었다. 루이 16세의 재무총감 네케르는 5000만 리브르의 군사및 부채관련 지출을 ‘특별 지출’로 간주하고 누락해 예산 흑자를 이룬 것으로 허위보고했다. 축소 보고의 효시이다. ●복잡해진 회계, 2008년 금융위기 부르기도 회계가 복잡해지면 사기와 부패도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띤다. 세계대전 후 경제 성장으로 ‘회계의 황금기’를 맞은 미국만 해도 회계감사 법인 경쟁이 치열해져 거대 회계 스캔들이 잇따라 불거졌다. 2008년 금융위기도 날이 갈수록 전문화되고 복잡해지는 회계로 인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재무적 책임성을 정착시키기란 그다지 쉽지 않다. 1340년 제노바 공화정은 중앙정부 관청에 대형 등록부를 설치해 도시국가 제노바 재정을 복식부기로 기록할 정도였다. 그런가 하면 피렌체는 1427년 법에 따라 피렌체 토지 소유자나 상인은 복식장부를 기록해 ‘카타스토’(catasto)라는 정부 세금 감사를 받아야 했다. 선거제 정부가 등장한 19세기 영국에서도 부패, 무책임이 만연했고 재무 책임성 메커니즘을 설계한 초기 미국도 도금시대 대규모 분식회계며 재정스캔들, 재정위기에 휩싸였다. ●투명한 회계 어렵지만 부정의 유혹은 강해 “투명한 회계를 이루기는 어려운 반면 회계 부정의 유혹은 강하고 끈길기다.” 저자는 이렇게 경고하면서 정치적 안전성의 토대인 책임이 복식부기 회계 제도에 크게 의존함을 역설한다. 복식부기 회계야말로 이익 계산뿐 아니라 행정부를 심판하고 책임을 묻기 위한 ‘대차 균형’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복식부기 회계가 처음 시작된 이탈리아에서 ‘대차 균형’은 하느님의 심판과 죄의 증거라는 신성한 측면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훌륭한 통치’를 의미했다”는 저자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회계는 부와 정치적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믿기 힘들 만큼 어렵고 취약하며 아주 위험하기까지 하다. 재무적 책임성을 유지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는 투쟁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30세 난민, 17세로 위장해 고등학교 농구선수 활약

    30세 남자가 17세 청소년으로 가장해 고등학교를 다니고 농구선수로도 활약한 황당한 사건이 알려졌다.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 등 북미 언론은 캐나다 국경 관리국이 올해 30세로 추정되는 조나단 니콜라를 이민과 난민 보호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사건의 시작은 지난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내전과 전염병 등이 만연한 남수단을 탈출한 니콜라는 케나다 온타리오주 원저에 도착해 난민 신청을 했다. 당시 신청서에 기입한 그의 출생연도는 1998년 11월 25일생. 이에 캐나다 정부는 심사 끝에 니콜라에게 학생비자를 내주고 가톨릭 센트럴 고등학교 11학년에 입학시켰다. 완벽한(?) 17세 고등학생으로 변신한 니콜라는 조용히 공부만 하지 않았다. 205cm의 큰 키와 92kg의 몸무게를 바탕으로 교내 농구부에 들어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 이에 니콜라는 다른 고교 농구팀에는 적수가 없는 센터로 우뚝섰으며 담당 코치는 미 프로농구(NBA)로 갈 유망주가 나왔다며 흥분했을 정도다. 그러나 니콜라의 사기극은 오래가지 않아 덜미가 잡혔다. 니콜라가 미국 방문 비자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찍은 지문이 문제였다. 미 당국은 니콜라의 지문과 과거 미국에 난민신청을 한 적있는 지문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당시 신청서에서 니콜라는 생년월일을 1986년 11월 1일생으로 기록했다. 캐나다 국경 관리국은 "니콜라의 자세한 신상은 프라이버시 차원에서 밝힐 수 없으며 조만간 이 사건에 대한 심리가 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이광식의 천문학+] 광대한 우주 실감하기, ‘상상의 우주선’ 타고서

    [이광식의 천문학+] 광대한 우주 실감하기, ‘상상의 우주선’ 타고서

    '태초에 하나님 말씀'은 바로 '수소'였다! 17세기의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세상에는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있는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던졌다.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나 5000년 넘게 문명을 일구어왔지만, 그때까지 이에 대한 답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현대를 사는 우리는 과학에 힘입어 그 답을 알아냈다. 지금으로부터 138억 년 전에 '원시의 알'이 대폭발을 일으킨 빅뱅에서 우주가 탄생했고, 그 빅뱅 공간을 가득 채웠던 태초의 물질은 수소였으며, 이 수소로부터 세상 만물은 비롯되었다는 것이 그 답이다. 알다시피 수소는 양성자 하나와 전자 하나로 이루어진 가장 단순한 원자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성서에 나오는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logos)'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성구의 그 '말씀'이 바로 수소였다고 주장한다. 수소가 중력으로 뭉쳐져 별을 만들고 은하를 만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삼라만상은 이 수소란 물질의 소동에 지나지 않으며, 우주의 역사 역시 수소라는 물질의 진화의 역사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인간인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므로 우주를 아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아는 것이고, 우리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가 별과 다른 천체들을 보면서 아련히 그리움과 신비를 느끼는 것은 우리 몸속의 DNA에 그러한 기억이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 천문학자들도 있다. 어쨌든 우리 인류는 지구 밤하늘 아득한 곳에서 빛나는 그런 별과 은하들을 관측하면서 우주의 기원을 생각하고 우주론을 만들면서 여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별과 은하들이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에 있다. 대체 우리에게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일까? 한마디로 어마어마하게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도 실감하기 어려울 정도다. 흔히 천무학은 상상의 과학이라고 한다. 상상력이 없었더라면 지동설이든 빅뱅 이론이든 어떤 천문학적 이론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뉴타인은 상상력은 지식보다 위대하다고 말했다. 우주 거리 실감하기​ '사고실험' 과학에는 '사고실험'이란 게 있다. 현실에서는 하기 힘든 실험을 상상력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사고실험에 가장 능한 과학자가 바로 아인슈타이이었다. 그의 상대성 이론은 모두 그의 사고실험에서 나온 것들이다. 우리도 아인슈타인을 본받아 사고실험으로 우주의 거리를 실감해보도록 하자. 먼저, 가장 가까운 천체인 달까지의 거리는 약 38만km다. 지구의 지름이 약 1만 3000km이니까, 지구를 30개쯤 늘어놓는다면 얼추 달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상상이 되는가? 빛으로는 1초 남짓 걸리지만, 시속 100km의 차를 타고 달린다면 158일, 다섯 달 남짓 걸린다. 그 다음 가까운 천체인 태양까지의 거리는 약 1억 5000만km다. 이건 꽤 멀다. 빛으로는 8분이면 주파하지만, 시속 100km의 차로 달리면 무려 170년이 더 걸린다. 그 먼 거리에서 내뿜는 별빛이 이리도 뜨겁다니 참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이것이 태양 표면온도 6000도의 위력이다. 태양이 만약 10%만 지구 가까이에 위치했다면 지구상에는 어떤 생명체도 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부디 태양이 그 자리를 지켜주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훌쩍 건너뛰어 태양계 끝자락에 있는 명왕성 께로 가보자. 여기에는 맞춤한 자료가 하나 있다. 바로 NASA 탐사선 보이저 1호가 1990년 2월 14일 지구로부터 61억km 떨어진 우주공간에서 찍은 지구 사진이다. 이 아이디어를 낸 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이라고 이름한 사진이다. 사진을 보면 황도대의 희미한 빛줄기 위에 떠 있는 한 점 티끌이 바로 지구다. 아침 햇살 속에 떠도는 창 앞의 먼지 한 점과 다를 게 없이 보인다. 그 티끌 표면적 위에 70억 인류와 수백만 종의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의 거리만 나가도 지구는 거의 존재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지금 40년째 비행을 계속하고 있는 보이저 1호는 2년 전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 공간으로 진입했다. 그야말로 태양과 다른 별 사이의 우주공간을 날고 있다는 얘기다. 인간의 모든 신화와 문명에서 절대적 중심이었던 태양, 그 영향권으로부터 최초로 벗어난 722kg짜리 인간의 피조물이 지금 호수와도 같이 고요한 성간공간을 주행하고 있다. 총알 속도의 17배인 초속 17km의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 보이저 1호는 인간이 만든 물건으로는 가장 우주 멀리 날아가는 기록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거리로는 지구에서 약 210억 km. 이제 고성능 카메라로 지구를 찍어봐도 티끌 한 점 나타나지 않는 거리다. 이 거리는 초속 30만km인 빛이 달리더라도 20시간이 걸리며, 지구-태양 간 거리의 140배(140AU)가 넘는다. 자, 그럼 시속 100km인 차로 달린다면 얼마나 걸릴까? 놀라지 마시라. 무려 2만 4000년이 걸리는 거리다. 하지만 이처럼 광대한 태양계도 은하 규모에 갖다대면, 조그만 물 웅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별까지 가려면 6만 년​ 걸린다 은하까지 가기 이전에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센타우리 프록시마란 별부터 방문해보도록 하자. 거리가 4.2광년이다. 가장 가까운 이웃 별인 이 별까지 빛이 마실갔다 온다면 8년이 넘게 걸린다. 그 빠른 빛도 우주 크기에 비한다면 달팽이 걸음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가장 빠른 로켓을 타고 간다면 얼마나 걸릴까. 현재 인류가 끌어낼 수 있는 최대 속도는 초속 23km다. 이는 2015년 명왕성을 근접비행한 NASA 탐험선 뉴호라이즌스가 목성의 중력보조를 받아 만들어낸 속도로 지구 탈출속도의 2배가 넘는다. 대략 총알보다 23배가 빠르다고 생각하면 된다. 뉴호라이즌스에 올라타 프록시마 별까지 신나게 달려보기로 하자. 얼마나 달려야 할까? 1광년이 약 10조km니까, 4.2광년은 약 42조km다. 이 거리를 뉴호라이즌스가 밤낮없이 달린다 해도 무려 6만 년을 달려야 한다. 왕복이면 12만 년이다. 가장 가까운 별까지 가는 데도 이렇게 걸린다는 얘기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외계행성으로 진출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우리는 이처럼 우주 속에서 엄청난 공간이란 장벽으로 차단되어 있는 것이다. 남은 과제가 하나 더 있다. 뉴호라이즌스를 타고 우리 은하 끝에서 끝까지 한번 가보는 거다. 우리 은하는 지름이 약 10만 광년이다. 자, 얼마나 걸릴까? 프록시마까지 간 자료가 있으니까 비례계산을 하면 답은 금방 나온다. 14억 년! 우주 역사의 약 10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이는 인류에게 거의 영겁이라 할 만하다. 이런 은하가 우주공간에 약 2000억 개가 있고, 은하간 공간의 평균거리는 수백만 광년이다. 그리고 우주의 크기는 약 940억 광년이라는 계산서가 나와 있다. 940억 광년이란 인간의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도 실감하기 어려운 크기다. 빛의 속도로 지금도 팽창하고 있는 우주는 앞으로도 얼마나 더 커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처럼 우주는 광대하다. 터무니없이 광대하다. 광대무변한 우주의 거리, 조금 실감이 됐을까? 여전히 안됐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천문학자는 이런 푸념을 하기도 했다. "신이 만약 인간만을 위해 우주를 창조했다면 엄청난 공간을 낭비한 것이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성폭행 당하는 과정, 스마트폰 앱으로 생방송 ‘충격’

    성폭행 당하는 과정, 스마트폰 앱으로 생방송 ‘충격’

    친구가 성폭행당하는 과정을 생방송한 사건이 발생해 미국 사회가 충격에 휩싸였다.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 오하이오주(州)에 사는 마리나 로니나(18)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 사이인 17세 소녀가 성폭행당하는 현장을 생방송 한 혐의로 재판에 서게 됐다. 이번 사건을 기소한 오하이오 프랭클린 카운티 검찰 측은 레이먼드 게이츠(29)는 17세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 마리나 로니나는 그 모습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페리스코프’로 생방송 한 혐의로 형사 고소됐다고 발표했다. 론 오브라이언 검사는 이번 성명에서 “성폭력 현장을 생방송한 사건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피해 소녀와 로니나는 오하이오 주도 콜럼버스 교외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 함께 다니는 친구 사이로, 시내 한 쇼핑몰에서 쇼핑하던 중 게이츠와 만났다. 이날 게이츠는 미성년자인 두 소녀에게 술을 사주고 다음날 다시 만날 것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 사람은 지난 2월 27일 오후에 다시 만났으며, 이날 게이츠가 17세 소녀를 강제로 억누르고 성폭행한 것이 검찰 조사로 드러났다. 로니나는 평소 ‘페리스코프’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 다양한 피사체를 촬영했는데 이날 친구가 성폭행당하는 모습까지 생방송 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로니나의 한 친구가 생방송을 우연히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드러났다. 오브라이언 검사는 “로니나는 17세 소녀가 성폭행당하는 모습을 생방송 함으로써 게이츠가 그만둘 것으로 생각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당시 방송을 시청한 사용자들은 로니나가 직접 소녀를 감금한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로니나의 변호를 맡은 샘 샤만스키 변호사는 “로니나는 게이츠가 강제로 보드카 한 병을 마시게 했다. 그녀 역시 피해자다”면서 “로니나는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하므로 분명히 성인에게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로니나는 경찰 조사에서 “성폭행 증거를 남기기 위해 촬영했다”고 말했다. 증거로 제출된 성폭행 현장 영상을 관찰한 샤만스키 변호사는 “로니나는 성폭행을 막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게이츠가 성폭행을 자행했다”면서 “로니나는 현장을 떠난 뒤 곧바로 경찰에 이 사건을 신고했는데 이는 친구를 욕보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사건 기록을 위해 영상을 촬영한 것일 뿐”이라고 변호했다. 하지만 10분 분량의 이 영상에서는 로니나 피고가 피해 소녀의 다리를 잡아당기고 소리치며 울면서 게이츠에게 “안 돼”(No), “멈춰”(Stop), “도와줘”(Help me)라고 말하는 장면이 10초 정도 있지만, 영상 대부분에서 로니나는 웃고 있었던 것도 확인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로니나는 친구가 성폭행당하는 도중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점도 지적되고 있다. 현재 로니나와 게이츠는 각각 12만5000달러(약 1억4000만 원)와 30만 달러(약 3억 4000만 원)에 달하는 보석금을 내고 가석방된 상태다. 오브라이언 검사는 “로니나가 다른 날에도 피해 소녀의 알몸 사진을 촬영했던 사실도 있어 여죄도 추궁하고 있다”면서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면 두 피고는 최소 40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사건에 쓰인 애플리케이션 페리스코프는 트위터가 지난해 3월 인수한 것으로, 전 세계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있지만, 일부 사용자가 음주 운전이나 미성년 음주 등 범죄 행위를 과시하는 데 사용해 논란을 빚었다. 사진=오하이오·AP=연합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메시 500호골의 키워드 76~90+, 왼발, 호날두와 합이 1039골

    메시 500호골의 키워드 76~90+, 왼발, 호날두와 합이 1039골

    스페인프로축구 FC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28)가 18일 개인 통산 500호골을 터뜨렸다. 그는 캄프 누로 불러들인 발렌시아와의 프리메라리가 33라운드 후반 18분 조르디 알바의 크로스를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해 그물을 갈랐다. 바르셀로나가 1-2로 지며 충격적인 리그 3연패로 고개 숙이는 바람에 메시 대기록의 의미가 반감됐지만 11년 전인 2005년 5월 17세 소년의 몸으로 알바세테를 상대로 성인 무대 첫 골을 신고한 이후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524경기에 출전, 450골을 터뜨렸고,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107경기에 나서 50골을 넣은 그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영국 BBC는 루이 엔리케 감독이 “다른 은하계에서 온 것 같다”고 말한 메시의 득점 기록들을 찬찬히 되짚었다. 1. 슬로스타터, 막판에 지친 상대를 거꾸러뜨린다 맨먼저, 메시가 500골을 터뜨린 경기 시간대를 분석해보니 확실한 슬로스타터였다. 킥오프 15분 동안 뽑은 골은 50골에 불과했고 16~30분에 79골, 31~45분 사이에 92골을 기록햇다. 전반을 합쳐도 221골밖에 되지 않다. 46~60분 70골을 뽑아낸 메시는 61~75분 79골로 조금 늘린 뒤 76~경기 종료까지 130골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다. 2. 왼발 하나만 잘 쓰면 그만 득점에 동원된 신체 부위를 따져보니 그는 왼발로 406골을 뽑아 무려 81%를 차지했다. 오른발을 쓴 건 71골, 머리를 쓴 건 21골이었으며 나머지 방법으로 2골을 넣었다.(나머지 방법이 뭔지 궁금하긴 한데 BBC는 이렇다 할 설명을 하지 않았다) 3. 세트피스보다 오픈 플레이 그가 골을 뽑아낸 상황을 살펴보니 프리킥으로 25골, 페널티킥으로 64골밖에 안 되고 나머지 411골은 오픈 플레이로 이뤄냈다. 거칠게 얘기하면 그가 왼발 슛을 못 쏘게 만들면 경기 흐름을 잘 풀어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4. 11시즌 중 8시즌이나 40골 이상 뽑았다 2005년 데뷔했는데 2008~09시즌부터 이번 시즌까지 여덟 시즌 연속 40골 이상 뽑았다. 이번 시즌 42골이어서 가장 많았던 2011~12시즌(82골)에 가까이 가려면 갈길이 멀다. 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세비야가 ‘골 사냥터’였다 그에게 많은 득점을 허용한 클럽 1위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세비야가 나란히 25실점을 기록했고 그 뒤를 레알 마드리드가 21골로 이었다. 6. 라리가에서의 득점이 60%를 넘는다 리그와 대회 별로 따지니 라리가에서 309골을 기록했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3골, 코파델레이(국왕컵) 39골, 국제 친선경기 27골, 월드컵 예선 15골, 스패니시 슈퍼컵 11골, 월드컵 본선 5골, 클럽월드컵 5골, 코파아메리카 3골, 유러피언슈퍼컵 3골 등이었다. 7. 경기당 득점에서 호날두 앞질렀다 메시는 632경기에서 500골을 뽑아냈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1 레알 마드리드)는 791경기에 나서 539골을 넣었다. 둘이 합쳐 1039골이다. 경기당 골은 메시가 0.79개로 호날두(0.68개)를 앞질렀다. 8. 알베스가 최고의 도우미 그의 득점에 도움을 준 동료 다섯을 고르니 알베스가 42골, 이니에스타가 33골, 사비가 31골, 페드로가 25골, 수아레스가 16골이었다. 9. 해트트릭 이상 기록한 것도 38경기나 된다. 그가 한 골에 그친 것은 184경기였고 멀티 득점을 한 것은 98경기, 해트트릭을 기록한 건 33경기, 네 골을 터뜨린 건 4경기, 다섯 골을 넣은 것은 2012년 유럽 챔스리그에서 레버쿠젠(독일)을 7-1로 제압하며 대회 사상 첫 다섯 골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다. 10. 아르헨티나 대표팀보다 바르셀로나에서 뛸 때 나았다 그가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었을 때는 경기당 0.47골을 넣었지만 바르셀로나에서 뛸 때는 0.86골로 곱절 가까이 됐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中 유일 위안부 할머니, 병상에 누운 채 고국 품으로

    中 유일 위안부 할머니, 병상에 누운 채 고국 품으로

    중국에 남은 유일한 한국 국적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하상숙(88) 할머니가 10일 인천공항을 통해 꿈에 그리던 고국에 무사히 도착했다. 10여년 만에 다시 고국 땅을 밟은 것이다. 이날 병상에 누워 거동하지 못하는 하 할머니를 이송하기 위해 여성가족부와 인천국제공항공사, 중앙대병원 등은 하 할머니를 태운 여객기가 도착하기 전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인천공항은 일반 승객을 내리는 동안 할머니를 가장 빨리 이송할 수 있도록 리프트가 장착된 트럭을 동원해 계류장으로 이동시켰다. 승객이 내리는 게이트 반대편에서 들것을 트럭에 싣고 높이를 조정해 할머니가 내리는 비행기 문 바로 앞에서 할머니를 맞을 준비를 마쳤다. 여가부 직원들과 함께 나온 할머니는 환자 운송용 병상에 인공호흡기를 쓰고 초록색 담요를 덮어쓴 가운데 누워 있었다. 할머니는 리프트를 통해 지상으로 내려왔고 비행기 착륙 전부터 근처에 대기하던 중앙대병원 앰뷸런스는 할머니를 싣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중국에서 하 할머니를 돌보면서 살아온 막내딸 류완전(63)씨와 손녀는 따로 입국 수속을 밟은 뒤 중앙대병원으로 이동했다. 하 할머니는 지난 2월 15일 낙상 사고를 당해 갈비뼈와 골반 등이 부러져 의식을 잃은 상태로 중국 우한의 퉁지병원에 입원했지만 치료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여가부와 중앙대병원의 지원으로 중앙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하 할머니는 바로 중환자실에 입원해 필요한 검사와 치료를 받게 됐다. 하 할머니는 17세 때인 1944년 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말에 속아 중국으로 끌려간 뒤 위안부 생활을 했으며 광복 이후에도 중국에 살며 한국 국적을 유지해 왔다. 평소 고국을 그리워하며 가족과 지인들에게 고향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혀 와 주변에선 눈시울을 붉혔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해외여행 | [기차를 타면 스위스가 보인다] 글래시어 익스프레스-세상에서 가장 느린 특급열차

    해외여행 | [기차를 타면 스위스가 보인다] 글래시어 익스프레스-세상에서 가장 느린 특급열차

    ●세상에서 가장 느린 특급열차 글래시어 익스프레스Glacier Express 생모리츠에서 출발한 글래시어 익스프레스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지역인 알불라 베르니나 라인을 지나 쿠어로 향한다. 그라우뷘덴주의 주도 쿠어를 지나면, 스위스의 그랜드 캐니언이라 불리는 라인Rhine 계곡으로 쑥 빠져 들어간다. 라인 계곡의 깊이는 무려 400m. 드라마틱한 풍경이 펼쳐진다. 웅장한 절벽과 울창한 숲을 지난 후에는 2,033m에 이르는 오버알프 패스Oberalp Pass에 접어든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들이 온 세상을 덮고 있다. 믿기지 않는 창밖 풍경에 나지막이 감탄사를 내뿜을 따름이다. 열차는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빙하로 알려진 론Rhone 빙하지역을 지나 브리그로 향한다. 도시로 들어온 열차는 숨을 고른 후, 다시 설국으로 진입한다. 글래시어 익스프레스는 91개의 터널을 지나고 291개의 다리를 건너면서, 숨 막히는 설국의 파노라마를 보여 준다. 기차는 빠르다. 그러나 세상에는 빠른 기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부 알프스의 동서를 이어 주는 글래시어 익스프레스는 기차라면 무조건 빨라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 준다. 카멜레온 같은 글래시어 익스프레스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터널인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Gotthard Base Tunnel이 2016년 6월 문을 연다. 스위스 남부 알프스를 관통하는 터널로 길이가 무려 57km에 이른다. 이 터널로 취리히에서 밀라노까지 걸리는 시간이 약 1시간 줄어든다. 기차는 최고 속도 250km로 이 터널을 통과하게 된다. 이처럼 빛나는 속도가 힘이 될 때가 있는가 하면, 달팽이처럼 느린 것이 아름다울 때도 있다. 291km를 평균 시속 37km로 달리는 글래시어 익스프레스는 느림의 미학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겨울 스포츠의 메카 생모리츠St. Moritz에서 마테호른이 숨 쉬는 체르마트Zermatt까지 가는 데 무려 7시간 45분이나 걸린다. 이렇게 느린 속도는 한 번의 기차여행을 인생의 여행으로 만들어 준다. 달콤한 치즈케이크에 커피 향을 즐기며 사방이 눈으로 덮인 알프스의 풍광을 바라보노라면 ‘인생은 아름다워’가 절로 흘러나온다. 세계 부호들의 겨울 휴양지, 생모리츠 글래시어 익스프레스가 출발하는 생모리츠는 겨울의 스위스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해발 1,830m 높이에 겨우 6,000명이 살고 있는 자그마한 마을이지만 매해 이곳에는 20만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아든다. 호텔 중 60%는 4, 5성급. 프랑스 파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중심가에는 명품숍이 즐비하다. 역사도 깊다. 1882년 유럽 최초의 아이스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가 이곳에서 개최됐고, 동계올림픽도 1928년과 1948년 두 번이나 열렸다. FIS 알파인 세계 스키 챔피언십은 1934년을 시작으로 생모리츠에서 이미 네 번 진행되었으며, 2017년 다섯 번째 개최를 앞두고 있다. 봅슬레이의 고향도 생모리츠다. 은빛 설원이 반짝이는 풍광을 자랑하는 생모리츠는 다른 곳에 비해 높은 일조량을 자랑한다. 길거리 곳곳에 태양을 상징하는 조형물들이 걸려 있고 어디에서나 방긋 웃는 태양 마스코트를 찾아볼 수 있다. 화려한 호텔과 거리도 멋지지만 생모리츠는 역시 자연이다. 눈덮힌 생모리츠는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괴테도 반한 평화로운 마을, 실스 자연의 아름다움을 따지자면 실스Sils도 빠질 수 없다. 실스는 줄리엣 비노쉬와 크리스틴 스튜어드가 열연한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배경으로 등장한 마을로, 생모리츠에서 버스로 약 20분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아름다운 실스호수와 실바플라나 호수를 양쪽에 품고 있어,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안겨준 곳으로도 유명하다. 독일의 철학자 괴테도 이곳에서 평화로운 노년을 보냈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곳이야말로 피난처이자 집 같아”라고 썼을 정도다. 괴테의 집은 실스 마을 안에 박물관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괴테가 마음의 위안을 얻었던 실스호수에서 사람들은 컨트리 스키를 타고 사랑하는 이의 손을 꼭 붙잡고 산책도 즐긴다. 더 없이 평화로웠다. 호수 위에 떨어지는 햇살이 마법 같은 빛을 뿜어내며,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동화 속 마을 ‘구아르다’ 생모리츠에서 산을 넘어 한 시간쯤 달리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마을이 나온다. ‘살아있는 박물관’이라는 별명을 가진 구아르다Guarda다. 마을은 17세기 중반의 모습을 품고 있다. 얼핏 보면 영화세트장 같다. 그러나 한 바퀴 둘러보면, 오래된 것이 주는 아늑함과 우아함에 세트가 아니라 진짜임을 알 수 있다. 구아르다는 <쉘렌 우르슬리Schellen ursli> 마을로도 잘 알려져 있다. 쉘렌 우르슬리는 스위스 동화작가 알로아 카리지에의 동화로, <알프스 소녀 하이디> 이상으로 스위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다. 2014년 영화로 만들어져 같은 시기에 개봉했던 007시리즈보다 더 큰 인기를 끌었을 정도다. 우르슬리라는 이름의 꼬마가 축제에 가져갈 방울을 얻기 위해 도전하는 모습과 따뜻한 우르슬리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작가는 구아르다에 있는 집을 보고 영감을 얻어 우르슬리의 집을 그렸다고 한다. 구아르다의 집들은 특별했다. 산 중턱에 자리한 마을이라, 추위를 피하기 위해 벽을 두껍게 만들고 창은 작게 냈다. 작은 유리창에는 하얀 레이스로 앙증맞게 수를 놓았다. 집 하나하나가 골동품이었다. 무심결에 들여다본 집 안에는 순한 양들이 모여 겨울을 나고 있었다. 생모리츠와 실스, 구아르다로 이어진 작은 마을 산책과 글래시어 익스프레스를 타고 돌아본 스위스 겨울 기차여행. 시간이 켜켜이 쌓인 오래 된 마을들을 여유롭고도 느긋하게 돌아본 시간이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Info St. Moritz Navigation | 취리히에서 생모리츠까지는 약 200km. 기차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실스나 폰트레지나 등 생모리츠 주변을 함께 여행할 때는 생모리츠에서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www.engadinbus.ch에서 버스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Place | 니체하우스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하루 3시간만 개방한다. 월요일 휴무. nietzschehaus.ch/en생모리츠 www.stmoritz.ch, 구아르다 www.guarda.ch 그라우뷘덴 관광청 en.graubuenden.ch 글래시어 익스프레스 | 소요시간 생모리츠-체르마트 7시간 45분 요금 스위스트래블패스로 추가 요금 없이 이용할 수 있다. 겨울철에는 예약 필수. 예약비는 CHF13. 메뉴 오늘의 메뉴와 3코스 런치 중 선택. 오늘의 메뉴는 CHF30, 3코스 런치는 CHF43. 와인과 커피, 각종 음료는 열차 안에 파노라마 바가 있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 기념품 글래시어 익스프레스를 본뜬 USB 메모리스틱과 마그네틱, 약간 기울어진 와인잔 등 독특한 기념품들을 열차 안에서 구입할 수 있다. www.glacierexpress.ch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irter 채지형 취재협조 스위스관광청 www.myswitzerland.co.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내쉬거나, 삼키거나’ 비행기에서 귀가 아플 때는 이렇게!

    ‘내쉬거나, 삼키거나’ 비행기에서 귀가 아플 때는 이렇게!

    비행기를 탈 때마다 귀가 아파 고생인 이들이 있다. 이는 비행기가 고도를 바꿀 때 생기는 기압 변화로 중이 안에 압력 차가 발생해 생기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청각학자이자 뉴욕대 랑곤병원 임상학 교수인 윌리엄 샤피로 박사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발살바 법’을 이용한 이관 통기법보다 안전하게 손상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미국 온라인매체 테크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소개했다. 발살바 법은 흔히 이퀄라이징이라고도 한다. 17세기 이탈리아 볼로냐의 의사 겸 해부학자인 안토니오 마리아 발살바(1666~1723)가 고안한 것으로, 입과 코를 막고 날숨을 내보내듯 강하게 호기 운동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유스타키오관이라고 불리는 귀와 코가 연결된 이관이 순간적으로 열리면서 귀 내외부의 기압 차가 같아져 통증이 사라진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유스타키오관이 짧은 어린이 등 사람에 따라서는 통증이나 불편함을 유발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숨을 내쉬는 발살바 법 대신 침을 삼키는 ‘토인비 법’을 권장한다고 샤피로 박사는 설명했다. 토인비 법은 영국인 의사 조셉 토인비(1815~1866)가 개발한 것으로 이 방법은 발살바 법보다 귀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귓속 공기를 고르게 만들 수 있다. 단 이 방법은 귀 내부의 압력을 균등화하기 위해 몇 차례 반복해야 할 필요가 있긴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이관에서 억지로 공기를 빼내려고 하다가 발생할 수 있는 청력의 손상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테크 인사이더 영상 캡처(위), 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고등학생 70% 이상 안경 착용… “시력 교정·관리 중요”

    고등학생 70% 이상 안경 착용… “시력 교정·관리 중요”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70% 이상이 안경을 착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갈수록 스마트폰과 PC 등 전자기기 사용이 늘어나면서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도 시력이 더 나빠질 위험이 커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12~17세 청소년의 안경 착용률은 45.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학교 건강검사 표본조사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70.2%가 안경을 쓴다는 결과가 나왔다. 나이가 들수록 시력이 감퇴하는 경향이 뚜렷하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까지 악화되는 경우도 흔해 시력 관리에 주의가 요구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첨단장비와 의료기술 발전으로 시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슈빈트 사의 ‘아마리스 레드 SPT’ 장비가 있다. 이 장비는 3차원 입체 레이저로 구 모양의 각막을 입체적으로 수술해 통증을 감소시키고 회복 속도를 높여준다. 곽용관 드림성모안과 원장에 따르면 라섹수술을 한 환자 중 20%는 별다른 통증 없이 이물감 또는 시린 증상만 경험한다. 통증에 민감한 경우 수술 후 12시간 정도 통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곽 원장은 “레스페인라섹은 페인컨트롤(Pain Control) 테크닉을 적용해 통증 지속시간과 진통제를 복용해도 가시지 않는 통증을 50% 이상 줄였다”며 “회복 속도가 빨라져 직장인의 경우 금요일 수술 후 월요일 출근도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발전하는 의술 덕분에 시력교정수술로 화색을 짓는 사람들 늘고 있다”며 “그렇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시력이 약화되기 전부터 스스로 잘 관리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아이비리그대학 나이지리아 돌풍…2년 연속 싹쓸이 합격

    아이비리그대학 나이지리아 돌풍…2년 연속 싹쓸이 합격

    나이지리아 이민자 출신 집안의 17세 소녀가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8곳 모두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아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아이비리그 대학 8곳을 싹쓸이 합격했던 이 역시 나이지리아계 이민자 가정의 같은 고등학교 출신 헤롤드 에케(17)여서 2년 연속 '나이지리아계 돌풍'으로 더욱 화제다. 특히 소녀는 아이비리그 외에도 MIT, 존스 홉킨스 대학, 뉴욕대학, 렌슬러 폴리테크닉공대도 합격해 그야말로 행복한 진학 고민에 빠졌다. 최근 미국 AP통신 등 현지언론은 뉴욕 엘몬트 메모리얼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오거스타 우왐만주-엔나(17)가 아이비리그 대학에 모두 합격해 5월 1일까지 최종 결정만 남았다고 보도했다. 아이비리그(Ivy League)는 미국 북동부 지역의 8개 사립대학으로 하버드, 예일, 펜실베이니아, 프린스턴, 컬럼비아, 브라운, 다트머스, 코넬 대학을 말한다. 과학 관련 전공을 선택할 예정인 오거스타는 고등학교를 우등으로 마쳐 졸업생 대표로 선정됐다. 특히 인텔사가 주관하는 미국 과학영재 선발대회에 결승전 출전자에 오를만큼 특출난 과학 신동이기도 하다. 오거스타는 "아이비리그 모두로부터 합격통지를 받았을 때 정말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면서 "나를 잘 키워준 부모님, 헌신적인 선생님 모두에게 감사드린다"며 웃었다.  특별한 점은 오거스타가 미국 태생이기는 하지만 나이지리아 이민자 출신 집안의 딸이라는 사실이다. 오거스타는 "비록 미국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여러 차례 모국을 방문했다"면서 "모국에서 내 사촌들을 만났는데 내가 가진 '기회'를 그들은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영향으로 미국에서 얻은 기회를 소중히 생각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고 털어놨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문 대학들의 합격증을 모두 거머쥔 그녀의 특별한 비결을 무엇일까? 물론 대답은 '교과서'다. 오거스타는 "평소 부모님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면서 "부모님의 도움, 선생님의 교육 그리고 나의 인내가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아이비리그를 모두 합격한 헤롤드 에케는 결국 예일대학에 진학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김성호 기자의 종교만화경 26〕말기 암 老스님의 5억 기부

    [김성호 기자의 종교만화경 26〕말기 암 老스님의 5억 기부

     “비록 생전엔 나누고 살지 못해도 사후에라도 남에게 준다면 아름다운 죽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평생 장기기증 운동을 하면서 살아온 노 목회자로부터 얼마 전 들은 말이다. “지금 사람들은 남의 어려움에 너무 몰인정한 것 같다.”는 목사의 일갈에 고개를 끄떡였었다. 그 공감의 전언에 딱 맞춘 것처럼 나눔의 선덕(善德)을 베푼 80대 노 스님의 미담이 화제다. 췌장암으로 입원 투병 중인 전 부산 정주사 주지 지인 스님이 평생 모은 5억원 전액을 인재 양성에 써달라며 동국대에 기부했다는 그 이야기다.  ‘스님이 뭔 돈이 그리 많아?’ 세간 대중들의 의문이 쏠리는 대목인 것 같다. 그런데 그 사연을 알아보니 절절하다. 17세에 머리를 깎고 출가한 스님은 30년 넘게 교도소며 군 병영에서 봉사활동을 펼쳐 온 납자(衲子·입다가 버린 낡은 헝겊으로 기워 만든 옷을 입은 수행승)다. 차량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전국 곳곳을 다니며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휴지 한 장도 말려 쓸 만큼 청빈한 생활로 유명한 출가승이다. 암 세포가 간까지 전이돼 거동이 힘든 형편인데도 직접 은행을 찾아 예금통장을 해지해 동국대 기부금 계좌로 돈을 모두 이체했다는 후담이 잔잔한 울림을 전한다. 스님에겐 마지막일지도 모를 ‘속 깊은 기부’가 제대로 쓰여지길 바란다.  지인 스님의 덕행에 얹어 불교계에선 자주 회자되는 고사 하나를 떠올려본다. 명대 선승 운서 주굉의 ‘죽창수필’에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다. 군인이 죽어서 좋은 세상으로 가라며 천도재를 지냈는데, 정성이 모자란 탓인 지 음계(陰界)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아내의 꿈에 나타나 모처에 가 염불을 해달라고 부탁하면 정성들여 해줄 것이란 말을 전했다. 적은 돈을 갖고 그곳에 갔더니 돈 상관 없이 정성껏 염불을 해주었고 그날 밤 꿈에 죽은 남편이 나타나 음계를 벗어났다며 고마워했다는 이야기다. 불교 세계에 맞춰진 이야기지만 죽은 사람조차 배려와 나눔이 긴요하다는 교훈 쯤으로 들린다.  ‘요즘처럼 나 먹고 살기도 버거운 시절에 남 도울 여력이 어디 있나’ 거개의 대중들이 갖는 생각일 것이다. 하물며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는다는 경제 논리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무한 경쟁의 세상에서 내 것을 모두 줘 남을 돕는다고? 얼마 전 알파고와 이세돌이 펼쳤던 세기의 바둑 대결 때 자주 등장했던 그 ‘아생연후 살타(我生然後殺他)’가 더 설득력을 갖는 세상 아닌가. 그래서 나보다 남을 배려하고 나누는 덕행은 동서고금을 통해 고귀한 덕목으로 여겨져왔다.  특히 ‘인류가 가진 최고의 도덕률’이라는 종교에서 그 나눔과 배려는 종파와 교리의 구별 없이 우선시되는 공동 선(善)의 으뜸 가치로 꼽힌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복음 10:8)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잠언 3:27)…. 불교에서 생사의 고해를 건너 열반의 피안에 이르기 위해 닦아야 할 여섯가지 실천덕목이라는 ‘육바라밀’속 보시(布施)도 그 성경 경구와 맞닿아 있다. 재(財)보시, 법(法)보시, 무외(無畏)시의 세 보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집착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무조건 베푼다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는 최고의 경지로 존중된다.  나에게 이롭지 않으면 쳐다보지도 않는 각박한 세상이다. 그래도 분분한 설이 있긴 하지만 인간 심성의 바탕엔 분명히 착한 마음이 버티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그 선한 심성은 기부와 기증이라는 배려의 나눔으로 도처에서 뻗치고 있다. 비록 노 스님의 5억원 기부처럼 많진 않더라도, 남을 위해 내 것을 다 내주진 못하더라도 조금 씩의 배려는 세상을 훨씬 더 좋게 만들어 놓지 않을까.김성호 선임기자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나이지리아계 17세 여학생 ‘아이비리그 8곳’ 모두 합격

    나이지리아 이민자 출신 집안의 17세 소녀가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8곳 모두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아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소녀는 아이비리그 외에도 MIT, 존스 홉킨스 대학, 뉴욕대학, 렌슬러 폴리테크닉공대도 합격해 그야말로 행복한 진학 고민에 빠졌다. 최근 미국 AP통신 등 현지언론은 뉴욕 엘몬트 메모리얼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오거스타 우왐만주-엔나(17)가 아이비리그 대학에 모두 합격해 5월 1일까지 최종 결정만 남았다고 보도했다. 아이비리그(Ivy League)는 미국 북동부 지역의 8개 사립대학으로 하버드, 예일, 펜실베이니아, 프린스턴, 컬럼비아, 브라운, 다트머스, 코넬 대학을 말한다. 과학 관련 전공을 선택할 예정인 오거스타는 고등학교를 우등으로 마쳐 졸업생 대표로 선정됐다. 특히 인텔사가 주관하는 미국 과학영재 선발대회에 결승전 출전자에 오를만큼 특출난 과학 신동이기도 하다. 오거스타는 "아이비리그 모두로부터 합격통지를 받았을 때 정말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면서 "나를 잘 키워준 부모님, 헌신적인 선생님 모두에게 감사드린다"며 웃었다.  특별한 점은 오거스타가 미국 태생이기는 하지만 나이지리아 이민자 출신 집안의 딸이라는 사실이다. 오거스타는 "비록 미국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여러 차례 모국을 방문했다"면서 "모국에서 내 사촌들을 만났는데 내가 가진 '기회'를 그들은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영향으로 미국에서 얻은 기회를 소중히 생각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고 털어놨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문 대학들의 합격증을 모두 거머쥔 그녀의 특별한 비결을 무엇일까? 물론 대답은 '교과서'다. 오거스타는 "평소 부모님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면서 "부모님의 도움, 선생님의 교육 그리고 나의 인내가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한편 뉴욕 엘몬트 메모리얼 고등학교는 지난해에도 아이비리그 대학 8곳에 모두 합격한 학생을 배출해 화제가 된 바 있다. 특히 그 주인공 역시 나이지리아 태생의 이민자인 헤롤드 에케(17)로 결국 예일대학에 진학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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