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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흙신 vs 황제

    흙신 vs 황제

    ‘흙신’ 라파엘 나달(32·스페인)과 ‘황제’ 로저 페더러(37·스위스)의 톱랭커 다툼이 점입가경이다.올해만 투어 우승을 세 차례 차지한 나달은 21일(현지시간) 발표된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세계 랭킹에서 8770점을 찍어 ‘영원한 라이벌’ 페더러(8670점)를 2위로 밀어내고 1위 자리를 되찾았다. 잔디 코트 대회인 윔블던(7월 2일~15일)을 기점으로 다시 순위가 요동칠 전망이다. 나달과 페더러는 2004년 3월 마이애미 마스터스 32강에서 처음 만난 뒤 14년간 맞수 관계를 쌓고 있다. 당시 세계 랭킹 34위였던 17세의 나달은 톱랭커 페더러를 2-0으로 눌렀다. 이후 쑥쑥 성장하며 ‘황제’의 아성을 위협했다. 비로 인해 7시간에 걸친 승부 끝에 나달이 우승한 2008년 윔블던 결승은 아직도 명승부로 꼽힌다. 올해도 톱랭커는 둘 차지다. 1월 1일부터 현재까지 나달(7주)-페더러(6주)-나달(6주)-페더러(1주)-나달(진행 중)로 네 번이나 ‘넘버원’ 주인이 바뀌었다. 1등이 가장 많이 갈렸던 1983년(10번)에는 모자라지만 2003년(5번) 이후 가장 잦은 변화다. 둘 다 기량이 최고조여서 계속 1위 다툼을 펼칠 것으로 테니스계 안팎에선 분석한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백승종의 역사 산책] 장현광의 족계

    [백승종의 역사 산책] 장현광의 족계

    족계(族契)라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것은 한낱 구시대의 유물, 가문 이기주의를 낳은 근본적 원인이다.’ 그러나 그렇게 속단해 버리면 족계의 역사적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족계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6세기 초였다. 성리학이 조선사회에 수용되기 시작한 것은 14세기 후반이었지만, 깊이 뿌리내리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선비들이 앞다퉈 족계를 조직하기 시작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조선사회는 위기에 빠졌고, 갓 출범한 족계의 운명도 위태로웠다. 전쟁이 끝나자 선비들은 족계 재건에 나섰다. 족계를 통해 선비들은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친목을 강화했다. 내가 주목한 것은 1601년 영남의 큰선비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이 쓴 ‘인동장씨 족계 서문’이다. 장현광은 대학자였으나, 벼슬을 멀리한 채 향리에 머물렀다. 학문 연구에 잠심했는데, 틈나는 대로 집안 자제들이며 이웃의 젊은 선비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장현광이 이끈 족계는 학습공동체였다. 매달 초하루와 보름마다 젊은이들을 소집해 학력을 평가했다. 장현광이 이끈 족계는 배타적 부계혈연집단이 아니었다. 장씨의 외손들도 대거 참여했다. 또 그들과 인척관계에 놓인 타성들도 족계에 가입할 수 있었다. 인동장씨 족계라고 했지만 여러 성씨가 두루 참여했다. 족계의 구성원들은 농업에 힘쓰기를 다짐했다. 선비들이 농업에 힘쓰기로 약속했다니! 17세기의 사회 현실은 우리의 지레짐작과는 달랐다. 장현광은 족계의 지도자로서 구성원들이 행여 농사와 학업을 소홀히 할까봐 노심초사했다. 다음은 그의 경고문이다. “(계원이) 농부로서 농사일에 게으르거나, 아이인데도 공부를 소홀히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사(간부)가 잘 살펴보았다가 계모임 날에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 당사자를 불러다 벌을 주거나, 그 가장(家長)을 꾸짖을 것이다.” 족계는 국가 안의 국가와도 같았다. 또 족계는 사익만을 추구하는 양반을 강하게 비판했다. 왜란이 끝나기 무섭게 많은 양반들이 토지와 노비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재판을 벌였다. 사회적 혼란을 틈타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말이다. 장현광의 족계는 이러한 풍조를 강력 비판했다. “어찌하여 남과 재산을 다투는 송사를 벌이고 모질게 싸워 이 난리에 살아남은 외로운 이웃과 화목을 잃겠다는 것인가?” 소송을 걸어서라도 더욱 많은 재산을 차지하려고 서로 아귀다툼하던 시절 족계는 도덕심의 등불이었다. 계원들이 그런 일에 마음을 둬서는 절대 안 된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선비의 생명은 도덕심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 족계였다. 족계는 계원들 보호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도와주는 기관이 족계였다. 상례와 장례를 비롯한 각종 길흉사에 부조를 아끼지 않았다. 족계는 구성원들에게 평생 든든한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했다. 여간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족계의 전통을 재건하자는 뜻이 아니다. 다만 족계가 그랬던 것처럼 지역사회의 문화 수준을 고양할 학습공동체가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것이다. 국가의 역할과는 별도로 인정미 넘치는 민간 차원의 사회적 안전망이 재건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제 모두의 지혜를 모을 때다.
  • 산타페 총기난사범 13명 살려둔 이유 “내 얘기 해달라고”

    산타페 총기난사범 13명 살려둔 이유 “내 얘기 해달라고”

    미국 산타페 고교에서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기 난사범이 자신이 목숨을 끊을 경우 “내 얘기를 대신 해줄 학생들을 일부 살려 뒀다”고 법정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17세의 드미트리오스 파구치스는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산타페 마을 고교에서 8명의 학생과 두 명의 교사에게 총기를 난사해 목숨을 빼앗고 학교경찰 한 명에게 중상을 입히는 등 13명을 부상하게 만들었다. 이번 참사는 현대 미국 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참극으로 네 번째 많은 사상자를 낳았는데 지난 2월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의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에서 17명이 숨진 이래 가장 많은 희생을 기록했다. 경찰에 체포된 그는 묵비권을 행사하지 않고 “여러 명에게 총기를 발사했다”고 인정했다. 애당초 총기를 난사한 뒤 자결하려 했지만 15분 동안 경찰과 대치해 총격전을 벌이다 투항했다.갤베스턴 카운티 지방법원이 배포한 심문 조서에 따르면 그는 이날 오전 8시 분 아트랩 2 강의실에서 수업에서 첫 총격 신고 뒤 30분 동안 머물렀으며 나중에 투항했다. 당국은 용의자가 별도의 두 가지 폭발장치를 현장에 가져온 것을 확인했지만 별다른 위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는 또 트렌치코트를 걸친 채였으며 레밍턴 870 샷건과 38구경 피스톨 권총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초기 학생들은 그가 검정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학생 중의 한 명인 브리안나 퀸타닐라는 AP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용의자가 자신이 있는 강의실에 들어와 누군가를 가리키며 “내가 널 죽여버리겠어”라고 말한 뒤 총기를 발사했으며 자신은 피해 달아나다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고 털어놓았다. 특수 살인과 공무 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됐는데 특수 살인만 인정돼도 사형 언도가 가능하다. 그는 체포된 뒤에나 법정에서도 “괴이하게도 감정적이지 않아” 보였다고 변호인들이 19일 전했다. 용의자의 부모들에 의해 기용된 니콜라스 포엘 변호사는 로이터통신에 18일 밤과 다음날 아침까지 용의자와 여러 시간을 함께 보냈다며 “그 스스로 이해하는 단면과 그렇지 못한 단면이 모두 있다”고 전했다.당국은 파구치스가 의도적으로 범행을 계획했는지 겉으로 드러난 흔적은 많지 않다고 했다. 그렉 애보트 텍사스주 지사는 “파크랜드나 서덜랜드 스프링스 사건과 달리 경고하는 신호는 많지 않았다. 보통 붉은 깃발처럼 분류되는 신호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감지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무신론자였음을 드러내거나 “난 정치가 싫어” 류의 글에 ‘좋아요’ 추천을 누르긴 했다. 지난달 30일 “죽이려고 태어났다(Born to Kill)”라고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아직 당국은 희생자 명단을 공표하지 않았지만 일부 학생들의 이름은 특정됐다. 워싱턴 DC 주재 파키스탄 대사관은 교환학생 사비카 셰이크(18)가 목숨을 잃었다고 확인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두 나라의 문화 교류 확대를 명분으로 만들어진 케네디-루가 유스 교환과 해외 학습 프로그램(YES)으로 선발된 학생이었다. 대체 교사 신시아 티스데일도 숨졌다고 가족들이 현지 언론에 공개했다. 18일 밤 추모식이 열렸고 이 학교 출신이며 미국프로풋볼(NFL) 휴스턴 텍산 선수인 JJ 왓트가 장례 비용 일절을 부담하겠다고 나섰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미 텍사스 고등학교에서 또 총기 참사...올해만 22번째

    미 텍사스 고등학교에서 또 총기 참사...올해만 22번째

    미국 텍사스 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17세 학생이 총기를 난사해 최소 10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부상당했다. 올해 들어 미국 내 학교에서 일어난 22번째 총격 사건이다.18일(현지시간) 미 언론에 따르면 텍사스 주 휴스턴 인근 소도시인 산타페에 있는 산타페 고교에서 이날 아침 이 학교 11학년 학생인 디미트리오스 파구어티스(17)가 엽총과 38구경 권총을 난사하고 파이프폭탄을 던져 최소 10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현장에서 체포된 10대 총격범은 복수의 일급살인 등 혐의가 적용돼 보석 불가 조건으로 구금됐다. 경찰은 또 공범으로 알려진 두 번째 용의자도 붙잡아 조사 중이다. 두 번째 용의자가 총격에 가담하지는 않았다고 경찰은 말했다. 부상자 10여 명은 인근 도시인 웹스터·갤버스턴 등지의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학교지원 경관을 포함해 경찰관 두 명도 어깨에 총상을 입었으며 한 명은 중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학생은 현지 KTRK 방송에 “엽총을 든 남성이 걸어들어와서 총을 쐈고 여학생 한 명이 다리에 총탄을 맞은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한 학생은 이 방송에 “아침 7시 45분께였는데 화재 경보가 울렸고 친구들이 대피했다. 길을 가로질러 달아나 숨은 아이도 있었다. 모두 공포에 질려 있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총격범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학교 체육관 쪽으로 대피하거나 길 건너 편으로 몸을 피했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 한 교실에서 유혈이 낭자한 모습과 맞닥뜨렸다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한 교실에서 총에 맞고 숨진 시신 여러 구가 발견됐다.이번 사건은 지난 2월 14일 플로리다 주 파크랜드의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에서 17명이 사망한 총격 사건 이후 3개월여 만에 되풀이된 교내 총기 참사다. 플로리다 고교 총기 참사 이후 미국 사회에서는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지난 3월 24일 워싱턴DC를 비롯해 미 전역에서 펼쳐진 ‘우리 생명을 위한 행진’에는 수백만 명이 참여하면서 베트남전 반전 시위 이후 최대 인파로 기록됐다. 총기 규제론자들은 미국총기협회(NRA)를 집중적으로 성토했고 월마트, 스포팅딕스 등 주요 총기 판매점은 공격용 무기 판매 금지와 함께 총기류 구매 연령 제한선을 18세에서 21세로 높였다. 플로리다 주를 비롯한 몇몇 주에서 총기 구매 제한 연령을 상한하는 법령을 통과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건을 보고받은 뒤 “이것(총기난사)은 우리나라에서 너무 오래도록 지속됐다. 학생과 학교를 지키고 위협이 되는 자들의 손에서 무기를 떼어놓도록 하기 위해 우리 행정부가 우리 권한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트럼프, 총기난사 보고받고 모든 공공건물에 조기게양 지시

    트럼프, 총기난사 보고받고 모든 공공건물에 조기게양 지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텍사스 주(州) 산타페 고교 총기 참사와 관련해 모든 공공건물과 군 시설에 조기게양을 지시했다.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미국은 산타페 고교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과 슬픔을 함께한다”면서 이 같은 내용의 선언서에 서명했다. 조기게양은 오는 22일 일몰까지다. 이날 오전 텍사스 주 휴스턴 인근 소도시인 산타페에 있는 산타페 고교에서 17세 학생이 엽총과 권총을 난사해 최소 10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교내 총기 참사 발생은 지난 2월 14일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의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에서 퇴학생 니콜라스 크루스(19)가 AR-15 반자동 소총을 난사해 학생과 교사 등 17명이 숨진 지 불과 3개월여 만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다른 행사에 참석해 산타페 고교 총격 사건은 “극도로 끔찍한 공격”이라며 교내 총격이 중단되도록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학생을 보호하고 학교를 지키고 다른 사람에게 위협을 가하는 사람의 손에 무기가 닿지 않도록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스타 거미손’ 부폰, 유벤투스와 작별

    ‘스타 거미손’ 부폰, 유벤투스와 작별

    17년간 팀 7연속 우승 등 금자탑 쌓아 “은퇴 아직”… PSG·레알 등 영입 관심세계적인 스타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41·이탈리아)이 17년의 땀이 밴 유벤투스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경기에 나선다. 부폰은 19일(한국시간) 밤 10시 토리노의 알리안츠 스타디움으로 불러들이는 엘라스 베로나와의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뛴 뒤 자신의 아홉 번째 세리에A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유벤투스 팬들과 작별한다. 그는 17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 나와 “토요일이 유벤투스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될 것이다. 두 개의 우승컵과 구단 회장님, 비안코네리(흰색과 검은색이 엇갈린 유니폼)들과 함께 하는 특별한 순간일 것”이라고 말했다. 유벤투스는 이번 시즌 리그 7연패와 코파 이탈리아 4연패를 달성했다. 부폰은 또 “새로운 제안들이 많았다. 중요한 것은 유벤투스를 떠난다는 것”이라며 “은퇴에 관한 생각은 고쳐먹었다. 다음주에 좀더 돌아보고 생각해 2~3일 뒤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2001년 파르마에서 이적해 지금까지 유벤투스 유니폼을 입은 그는 이탈리아 구단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으며 6개월의 유급 휴가가 있는 마이너리그에서도 플레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현재 프랑스 리그앙 파리 생제르맹(PSG),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마드리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이 관심을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폰은 17세 259일이던 1995년 11월 19일 파르마에서 세리에A 데뷔전을 치러 밀란과 0-0으로 비겼다. 1999년 유럽축구연맹(UEFA)컵과 코파 이탈리아를 우승으로 이끈 뒤 2001년 2330만 파운드(약 340억원)의 골키퍼 최고 이적료를 받고 유벤투스로 옮겼다. 유벤투스의 첫 두 시즌과 2005년과 이듬해 두 차례 2연패를 일궜다. 알렉산드로 델 피에로가 떠난 뒤 2012년부터 주장 완장을 차 7연패 금자탑을 이뤘다. 하지만 그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2003년 AC 밀란과의 결승에서 패퇴했고 2014년 바르셀로나, 지난해 레알 마드리드에게 내리 당했다. 올해 8강 1차전을 이기고도 2차전 논란의 페널티킥 판정 때문에 레알에게 물러섰다. 당시 마이클 올리버(잉글랜드) 주심에게 항의했던 일과 경기 뒤 발언 때문에 UEFA가 징계를 논의 중인데 그는 “그 주심을 다시 보게 되면 안아 주고 그가 조금 더 시간을 갖고 판정을 내렸어야 했다고 말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망스럽기도 하고 감정도 격해져 평소의 나답지 않게 행동하고 말았다.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부폰 내일 유벤투스 마지막 경기 “은퇴 NO, 구단 알아보는 중”

    부폰 내일 유벤투스 마지막 경기 “은퇴 NO, 구단 알아보는 중”

    골키퍼의 대명사 잔루이지 부폰(40)이 17년의 땀이 빼인 유벤투스 유니폼을 마지막으로 입고 그라운드에 나선다. 은퇴는 번복했다. 여러 다른 팀들을 알아보고 있는데 이탈리아 클럽은 아니라고 했다. 부폰은 19일 밤 10시(한국시간) 이탈리아 토리노의 알리안츠 스타디움으로 엘라스 베로나를 불러들여 세리에A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 자신의 아홉 번째 세리에A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유벤투스 팬들과 작별한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주장 완장을 찬 2012년부터 리그 7연패에 코파 이탈리아 4연패 업적 역시 그의 역할이 컸다. 그는 17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 나와 “15일 전에 난 이미 전직 선수가 됐다. 지금은 아무 것도 확신할 게 없다. 새로운 제안들이 많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벤투스를 떠난다는 것”이라며 “다만 은퇴에 관한 생각은 고쳐 먹었다. 다음 주에, 성찰과 고요함을 누린 끝에 2~3일 뒤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2001년 파르마에서 이적해 유벤투스 유니폼을 입은 그는 이탈리아 구단에는 가지 않을 것이며 6개월의 유급 휴가가 있는 마이너리그에서도 플레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부폰은 “토요일 경기가 유벤투스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될 것이다. 두 개의 우승컵과 구단 회장님, 비안코네리(흰색과 검정색이 엇갈린 유니폼)들과 함께 하는 아주 특별한 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시즌 유벤투스 골문은 지난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에서 이적한 보이치에흐 슈치에스니가 지킨다.지난해 11월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대표팀을 떠난 그는 A매치 176경기로 이탈리아 선수 최다 출전을 자랑한다. 물론 다음달 4일 네덜란드와의 평가전에도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부폰은 17세 259일이던 1995년 11월 19일 파르마에서 세리에A 데뷔전을 치러 밀란과 0-0으로 비겼다. 1999년 유럽축구연맹(UEFA)컵과 코파 이탈리아를 우승으로 이끈 뒤 2001년 2330만파운드(약 340억원)의 골키퍼 최고 이적료를 받고 유벤투스로 옮겼다. 유벤투스의 첫 두 시즌 리그를 제패했고 2005년과 이듬해 2연패를 다시 이뤘다. 하지만 나중에 승부조작 스캔들 때문에 세리에B로 강등됐다. 알렉산드로 델 피에로가 떠난 뒤 2012년부터 주장 완장을 차 7연패 금자탑을 이뤘다. 2006년 독일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그에게 단 하나의 우승컵이 없는데 챔피언스리그다. 2003년 AC 밀란과의 결승에서 패퇴했고 2014년 바르셀로나, 지난해 레알 마드리드에게 내리 당했다. 올해 8강 1차전을 이기고도 2차전 논란의 페널티킥 판정 때문에 레알에게 물러섰다. 당시 마이클 올리버(잉글랜드) 주심에게 항의했던 일과 경기 뒤 발언 때문에 UEFA가 징계를 논의 중인데 퇴장당했던 부폰은 “주심을 공격한 것은 유감”이라며 “그 주심을 다시 보게 되면 안아주고 그가 조금 더 시간을 갖고 판정을 내렸어야 했다고 말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망스럽기도 하고 감정도 격해 평소의 나답지 않게 행동하고 말았다.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서울포토] 마르지 않는 눈물…묘비 끌어안은 5·18 유족

    [서울포토] 마르지 않는 눈물…묘비 끌어안은 5·18 유족

    제 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5·18행방불명자 임옥환(당시 17세)군의 모친이 오열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서울포토] 5·18 행방불명자 모친의 오열

    [서울포토] 5·18 행방불명자 모친의 오열

    제 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5·18행방불명자 임옥환(당시 17세)군의 모친이 오열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미나♥류필립 결혼식, 7월 7일로 확정...‘이제 진짜 부부’

    미나♥류필립 결혼식, 7월 7일로 확정...‘이제 진짜 부부’

    가수 미나와 류필립이 오는 7월 7일 결혼식을 올린다.17일 한 매체는 가수 미나(47·심민아)와 류필립(30)이 오는 7월 7일 서울 강남의 한 예식장에서 백년가약을 맺는다고 전했다. 앞서 두 사람은 7월 14일 예식을 올릴 예정이었지만, 일주일 앞당겨 치르기로 했다. 미나와 류필립은 지난 2015년 공개 열애를 시작, 17세 연상연하라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이어왔다. 두 사람은 혼인 신고를 마친 상태로, 이미 법적 부부다. 최근 KBS2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를 통해 신혼의 모습을 공개하고 있다. 이날 결혼식 현장 역시 해당 방송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사진=류필립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방송인 전현무 자신의 반려견에 ‘눈물’, 보신탕은 ‘극찬’

    방송인 전현무 자신의 반려견에 ‘눈물’, 보신탕은 ‘극찬’

    방송인 전현무가 MBC ‘나혼자 산다’에서 17세 반려견 또또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많은 이들이 전현무의 눈물에 공감했던 반면, 일각에서는 전현무가 보신탕을 극찬했던 방송을 되새겼다.지난 11일 방송된 ‘나혼자 산다’에서 전현무는 17세 반려견 ‘또또’와 함께 출연했다. 전현무는 이날 또또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매니저에게 “과거 또또와 함께 살 때 또또가 자신의 자동차 소리를 구별하는 능력을 갖고 있어 자신이 오면 미리 현관에 마중을 나와있었다”거나 “대구에서 재직하던 시절 주말마다 부모님과 또또가 내려왔는데, 차를 싫어하는 또또도 그날만큼은 떨지 않고 대구로 내려왔다”고 말했다. 전현무는 다양한 검사를 받는 또또의 곁을 지켰으며, 또또를 위한 휠체어를 맞췄다. 많은 이들이 전현무와 또또의 관계를 통해서 반려견에 대한 끈끈한 우정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지만, 반려견 관련 모임 등에서는 전현무의 발언에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다. 2015년 7월 전현무가 tvN ‘수요미식회’ 복날 편에 출연해 보신탕에 대한 극찬을 했던 과거 방송 내용이 되새겨졌다. 당시 전현무는 “보양식을 먹고 정력이 불끈하는 걸 느꼈던 때가 있었다”며 보신탕 예찬을 폈다. 그는 “재수할 때였는데 한여름에 지치니까 영등포 시장에서 보신탕을 먹었다. 먹고 나서 두 시간 정도 후 소변발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변기가 갈라지는 듯 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유기견 보호 단체에서 활동하는 한 누리꾼은 “불과 3년 전에 보신탕을 극찬했던 방송을 본 뒤 노령견의 반려견의 추억을 얘기하는 걸 보니 그 진정성이 의심스러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7세기 잡학박사, 현대인을 초대하다

    17세기 잡학박사, 현대인을 초대하다

    쾌락의 정원/이어 지음/김의정 옮김/글항아리/792쪽/3만 8000원잡다한 사물에 대한 사용법과 인테리어 활용법, 좋은 식재료 구별법, 각종 취미 생활에 웰빙 비법까지.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온갖 철학이 책 한 권에 담겼다. 만물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조목조목 나열한 이 ‘잡학 백과 대사전’의 저자는 17세기 명말 청초 시대의 작가 겸 연극 연출가다. 그런데도 그 시절 정보들은 현대에도 꽤 참고할 만하다. 한 번 뿐인 인생 잘 먹고 잘 살았던 한 남자가 초대하는 쾌락의 정원은 어떤 모습일까.권력이 바뀐 혼돈의 시기, 명말 청초 이어(李漁·1611~1685)가 쓴 ‘한정우기’를 우리말로 처음 옮겼다. ‘한정’(閑情)은 공적 직무를 벗고 느끼는 여유를, ‘우기’(偶奇)는 즉흥적 감정을 붓 가는 대로 기록했다는 의미다. 그의 잡학적 관심은 문학, 연극, 출판인 등 ‘종합예술인’으로 산 그의 이력이 한몫한 듯싶다. 지금으로 치면 19금 호색소설 ‘육포단’(肉蒲團)도 그의 작품이다. 극단을 운영했던 이어는 수십명의 식솔을 건사하기 위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자금을 융통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눈동냥 귀동냥했으니 넓고 얕은 지식이 풍부해진 건 당연지사. 일생의 경험을 총괄한 이 야심작도 그래서 탄생했다. 전체 8장으로 구성된 ‘한정우기’는 희곡 이론을 제외한 나머지 6장에 미용·패션(성용부), 주거 공간(거실부), 집안 소품(기완부), 음식(음찬부), 식물 재배(종식부), 웰빙(이양부) 등 현대에도 관심 가질 만한 주제들을 할애했다.주목할 만한 부분은 책 앞머리를 차지한 ‘성용부’다. 여성의 외모를 자태, 피부, 눈과 눈썹, 손과 발, 머리 모양, 화장법 등 여러 측면에서 분석했다. 저자가 남성인데도 여성의 미적 가치에 대한 식견이 여성의 입장에서 봐도 놀라울 만큼 세세하다. 이어는 머릿기름 때문에 화장이 안 받으니 머리를 감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지 말고, 여러 가지 옷을 받쳐 입을 수 있는 활용도 높은 검은색 재킷을 하나쯤 갖추라고 조언한다. 지금으로 치면 웬만한 ‘연예인 코디네이터’ 뺨칠 정도다. 신발을 신을 때 땅 색깔과 같은 색깔을 신으면 신발의 멋을 살릴 수 없다는 깨알 잔소리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을 그저 남성이 감상하는 미적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시각은 고루하고 그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그가 풀어놓는 행복한 삶에 대한 인식은 놀라울 만치 지금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닮아 있다. 이어는 삶이 풍요하려면 재물보다는 절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소유한 물건만 잘 활용해도 쾌적하게 살 수 있고, 행복하고 싶다면 스스로 만족하고 살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가 평생의 낙으로 꼽은 건 제철 게를 먹고 수선화를 감상하는 것이었다. 바쁜 일상에 치여 건강관리에 소홀한 현대인들이 참고할 만한 내용도 눈에 띈다. 저자는 잠이 보약이라고 풀었다.그는 “잠은 한 가지 질병을 치료하는 약이 아니라, 백 가지 병을 치료하고 만민을 구제하는, 시험하여 효험이 없는 곳이 없는 신령한 약”이라고 잠의 가치를 기술했다. 잠자는 침상을 조강지처에 빗댈 만큼 중요한 물건으로 꼽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음식을 탐닉하면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는 지적에서부터 육식보다는 채식을 하고 자연에 가까운 음식을 먹으라고 한 건 온갖 가공식품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식습관을 나무라는 듯하다. 시대적 배경이 다른 탓에 책의 모든 내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건축, 가구, 의복, 음식, 장신구, 성생활 등 전 영역에서 자신만의 ‘소확행’을 추구했던 예술가의 시선은 무척 흥미롭다. 번역서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책 말미에 한자 원문도 실려 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1941년생 최고령 BJ 할아버지 “젊은 친구들 고맙습니다”

    1941년생 최고령 BJ 할아버지 “젊은 친구들 고맙습니다”

    “노인을 찾아주어 고맙다”는 할아버지 소소하지만 따뜻한 일상 방송에 입소문“할아버지! 아침은 드셨나요?” “잠은 잘 주무셨나요?” 하루의 안부와 일과를 묻는 소소한 대화들로 가득한 채팅방이 있다. 개인방송 진행자 중 최고령이라는 아프리카 TV 진영수(78)씨가 ‘오작교’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 채널이다. 비속어나 알아듣기 힘든 줄임말, 은어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간혹 눈살이 찌푸려지는 말투를 쓰는 시청자에겐 다른 시청자가 “할아버지께 말투가 그게 뭐냐. 개념 좀 갖춰라”라며 혼을 낸다. 정해진 시간은 없지만 2006년부터 매일 낮이나 새벽 시간대에 방송을 켜는 할아버지는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인터넷을 배웠고, 개인방송을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꼼꼼히 채팅창에 올라온 질문을 읽고 답하고, 댓글로 소통도 한다.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고, 밥을 먹으러 갈 땐 카메라를 켜놓고 자리를 비우기도 한다. 할아버지의 천천한 일상은 지켜본 시청자수는 지금까지 380만명에 달한다. 누적방송시간은 총 5만2598시간. 2014년에는 BJ 페스티벌 특별상까지 수상했다. 할아버지는 오늘도 “17세부터 23세까지 농사일을 배우며 일했고 돈이 없어 해외에는 한번도 나가본 적이 없지만 현재 살고있는 천안의 거리를 걷는 것이 행복하다”며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 어르신들의 삶에서 나한테 연결된 고리가 여러분들에게도 연결되어있다”라며 세월의 지혜가 느껴지는 말을 댓글로 남긴다. 나름의 규칙도 있다. 할아버지는 공지를 통해 “학생은 수업시간에는 방송을 시청할 수 없다. 학생을 애쓰시는 선생님 노고에 감사하며, 학생은 방송창을 닫고 좋은 성적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젊은 친구들’에게 보내는 인사말은 뭉클함을 느끼게 한다. 할아버지는 “의지와 상관없이 세월의 흐름 속에 머물러 있을 곳이 없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노인은 사람이 있는 곳이 그립다. 노인과 마주하기를 머뭇거리는 젊은이들이 많은 가운데 방송 자판 앞에 젊은 친구들이 있어 즐거웁고 다행한 일”이라면서 “노인을 찾아주시는 젊은 친구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거듭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튤립을 향한 ‘거품’ 사랑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튤립을 향한 ‘거품’ 사랑

    해가 뜨거워지며 이른 봄에 꽃을 피우던 나무들은 연둣빛 잎을 모두 틔우고, 여느 들꽃들은 열매를 맺고 있다. 비로소 여름이 머지않은 듯 싶다. 봄꽃을 전시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꽃축제인 고양 국제꽃박람회와 태안 세계튤립축제, 에버랜드 튤립축제도 여름이 오기 전, 막바지 전시를 하고 있다.사실 나는 이들 튤립축제가 막 시작하던 3월, 이미 세계의 꽃축제 중 가장 대규모로 열리는 네덜란드의 쾨켄호프 꽃축제에 다녀온 바 있다. 쾨켄호프 꽃축제가 열리는 즈음 네덜란드에 가면 늘 식물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서부터 쾨켄호프 꽃축제를 홍보하는 포스터가 벽에 주르르 붙어 있고, 암스테르담을 오가는 버스는 관광객을 반기며 무료로 태우고, 온 나라가 쾨켄호프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네덜란드의 튤립 사랑은 ‘튤립 버블’이란 경제학 용어를 만들어낼 만큼 각별하다. 그런데 재밌는 건, 튤립이 네덜란드의 자생 식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튤립은 네덜란드가 아닌 터키와 중앙, 서아시아가 원산지다. 게다가 이들 원종은 우리가 튤립 하면 상상하는 너른 들판에서 자라지 않는다. 모래와 돌이 가득한 히말라야산맥, 다른 식물들조차 살아가기 척박한 환경에서 단아한 튤립 원종들이 한두 송이씩 자생한다.아시아에 살던 튤립은 인류에게 처음 발견되고 오십여년 후에야 프랑스를 통해 네덜란드로 전해진다.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튤립을 재배한 사람은 암스테르담 식물원의 수석 연구원이었던 카를로스 클루시어스라는 식물학자인데, 튤립의 약용 효과를 연구하느라 식물원에 몇 개체를 심은 후 이곳에 온 관람객들이 튤립을 보게 되면서 네덜란드 전역에 알려지게 된다. 기존에 보지 못했던 형태와 색의 식물인 튤립의 상업적 가능성을 본 당시의 대기업들은 카를로스에게 튤립을 상업화하자고 제안하게 되고, 카를로스는 급격한 상업화는 좋지 않다는 판단에 제의를 거절한다. 대기업은 몰래 카를로스의 정원에 들어가 튤립을 훔쳐 대규모로 재배한다. 그렇게 네덜란드의 튤립 재배는 시작되었다.물론 사람들이 어느 한 식물을 좋아한다고 그 식물이 대대적으로 재배될 수는 없다. 식물을 재배한다는 건 자연조건이 따라줘야 하는데, 네덜란드는 바닷가인데다 북쪽이라 튤립이 좋아하는 서늘한 기후대이고, 땅이 모래언덕이라 자생지에서의 척박한 토양 환경과 잘 맞아떨어졌다. 게다가 이들이 네덜란드에서 인기가 많아지게 된 17세기는 마침 네덜란드 황금기였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기였기에 사람들은 갑자기 얻게 된 부를 내세울 도구가 필요했고, 이게 바로 튤립이 되었다. 모두들 튤립 구근을 모으기 시작했다. 희귀하고 새로운 품종을 모으는 ‘튤립 마니아’가 생기고, 튤립의 인기가 많아지다 보니 어느새 돈이 된다며 산업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된다. 우리나라의 부동산처럼 튤립이 투기의 대상이 되어 인기가 많은 품종의 경우 당시 목수 연봉의 20배, 수억원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이때는 튤립뿐만 아니라 튤립 무늬가 있는 옷이나 가구 디자인, 그리고 튤립만 꽂을 수 있는, 튤립에 특화된 화병 디자인들도 생겨날 만큼 부가 산업도 활발했다. 네덜란드 황금시대 디자인에 튤립 무늬는 꼭 포함되어 있다. 튤립의 새로운 품종을 육성하는 데에 투자도 많이 하다 보니 육성 기술도 늘게 되었고, 네덜란드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식물 교배자이면서 튤립 생산자가 된 것도 이 시기 이후부터다. 그러나 영원한 건 없다고, 후에 황금시대가 저물면서 자연스레 ‘튤립 버블’도 조금씩 붕괴되기 시작한다. 들판에는 여전히 튤립 구근들이 있고, 다른 나라 사람들도 튤립을 좋아하고 있어, 튤립 가격이 갑자기 내려가지는 않았다. 이때부터는 외국에 수출을 많이 하게 됐는데, 주변 국가에 네덜란드의 튤립을 홍보하기 위한 카탈로그를 만들기 위해 당시 네덜란드와 독일, 프랑스의 식물세밀화가들을 모아 튤립세밀화를 그리기도 했다. 현재 남아 있는 튤립세밀화 대부분은 이때 기록된 것이다. 그렇게 유럽에서 성황을 이루던 튤립은 18세기, 히아신스가 나오면서 인기가 시들하게 된다. 후에 프랑스 혁명으로 영국식 가든 디자인이 인기가 많아지면서 튤립 거래는 한정적이게 되고, 나중에 안정이 되면서 세계의 사람들이 튤립을 사고, 지금까지 튤립의 인기가 이어져 오고 있다. 우리는 늘 부정적인 의미로 ‘튤립 버블’을 부르지만, 튤립은 그저 우리 인간의 욕망에 이용당했을 뿐, 그들은 늘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존재해 온 연약한 식물이었다. 튤립을 연구하던 식물학자와 그의 정원에서 튤립을 훔친 대기업, 튤립을 사랑해 희귀하고 새로운 품종을 모으던 튤립 마니아와 그게 돈이 된다며 투기하던 사업가들은 늘 공존해 왔다. 식물 문화가 급격히 확산되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지금 이 시점에서, 네덜란드 튤립 버블은 식물에 대한 사랑과 욕망의 경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식물과 공존할 것인지, 또 다른 ‘식물 버블’을 만들 것인지는 온전히 우리에게 달려 있다.
  • 흥 넘치는 시끌벅적 결혼식…‘세라비, 이것이 인생!’ 예고편

    흥 넘치는 시끌벅적 결혼식…‘세라비, 이것이 인생!’ 예고편

    유쾌한 프랑스 코미디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 메인 예고편이 공개됐다. ‘세라비, 이것이 인생!’은 17세기에 지어진 아름다운 고성에서의 결혼식을 준비하는 베테랑 웨딩플래너 ‘맥스’가 까다로운 의뢰인과 다양한 돌발 상황 속에서 특별한 결혼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공개된 예고편은 아름다운 고성으로 진입하는 한 대의 자동차로 시작한다. 17세기 중세 시대에 지어진 고성에서 진행되는 특별한 결혼식인 만큼, 진지하게 주의 사항을 전달하는 베테랑 웨딩플래너 ‘맥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직원들의 엉뚱한 태도가 웃음을 예고한다. 이어 동료들 간의 불화에 이어 고성에 정전이 발생하는 등 다채로운 돌발 상황이 펼쳐진다. 특히 ‘난 꿈을 꾸어요. 이 결혼식이 끝나고 지구가 멸망하기를!’이란 카피는 계속되는 돌발 상황에 당혹스러운 ‘맥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좌충우돌 결혼식을 기대케 한다. 프랑스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1위 석권 및 8주간 박스 오피스 Top 10에 이름을 올린 ‘세라비, 이것이 인생!’은 ‘언터처블: 1%의 우정’의 각본과 연출을 담당했던 올리비에르 나카체, 에릭 토레다노 감독이 맡아 더욱 기대를 모은다.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은 오는 5월 30일 개봉한다. 전체 관람가. 115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문자로 남은 세계 최초의 노래는? 3400년 된 우가리트 권주가?

    문자로 남은 세계 최초의 노래는? 3400년 된 우가리트 권주가?

    문자로 남은 세계 최초의 노래는 무엇이었을까? 1950년대 시리아 고고학자들은 지중해 연안의 고대 도시 우가리트의 작은 도서관에서 3400년 된 29개의 점토를 발견했다. 대부분은 잘게 부서지고 말았지만 ‘H6’로 알려진 것은 상대적으로 큰 상태로 보존됐다. 여기에 가사들이 새겨져 있었고 아래에는 세계 초유의 악보로 과학자들이 믿는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영국 BBC는 인류 음악의 뿌리를 무슬림과 기독교인, 유대인, 아랍인, 아시리아인, 아르메니아인, 쿠르드인들이 여행하거나 거주했던 이곳 시리아에서 찾아보는 여행 기사를 7일 게재해 눈길을 끌고 있다. 시리아는 1946년에야 근대 국가가 출범할 정도로 늦었으나 음악 역사에서만은 세계 어느 지역보다 오래 된 역사를 자랑하는 것이다.과학계는 점토판을 배열하고 바빌로니아 설형문자로 새겨진 가사를 독해하고 이를 악기로 다시 연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연구했다. 이라크 바빌론 대학의 고고음악학자인 리처드 덤브릴 교수는 “가사를 독해할 수는 있지만 이 사인들의 가치도 알지만 무얼 의미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여러 차례에 걸쳐 사진을 촬영하고 이를 퍼즐 맞추듯 이리저리 배열해봤다. 하지만 몇 개의 점토판은 부서지고 말았다. 번역하는 데만 20년이 걸렸다. 카프카스 북동부에 터잡았던 우리안, 지금의 아르메니아에서 이주해온 이들이 시리아의 옥토로 옮겨와 만들어낸 것이 바빌로니아 설형문자였다. 두 지역의 문화가 수천년 뒤섞이면서 문자를 만들어내고 음악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래 두 줄이 악보 역할을 해 멜로디를 만들어낸다는 것도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덤브릴 교수는 고대인들이 종교 행사의 찬미가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감정을 표출해야 하는 의식이나 행사마다 불리는 노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한 노래는 술집 여인이 손님들에게 술을 마시락 권하는 노래도 있고, H6처럼 진지한 가사를 담은 노래도 있었다.시리아를 여행하는 이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만 이 나라에는 찬란한 악기 역사가 있다. 4000년 전부터 악기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레바논의 지중해 연안 도시인 사이다의 데바네 궁전에는 19세기 오스만 투르크 악기들을 다양하게 볼 수 있다. 지난해 시리아 제2의 도시인 알레포를 음악의 도시로 유네스코 창의의 도시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17세기 안달루시아 시에 클래식한 아랍 시, 나중에 시리아와 이집트의 아랍 시가 뒤섞여 무와슈샤란 독특한 음악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제 슬프게도 10년 이상 지속된 시리아 내전 때문에 이 나라의 음악을 보존하려는 작업은 레바논 등 이웃국가로 탈출한 음악인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베이루트가 그 중심이 되고 있다. 아주 오래 전 많은 문화가 뒤섞여 레반트 지역으로 통하는 이곳 문화가 꽃피웠듯이 시리아 내전 때문에 국경을 넘어 여러 문화가 뒤섞여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는 파리나 뉴욕에서도 들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기사는 결론 내리고 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親트럼프 카니예 웨스트 “노예제 선택의 문제였을 수도”

    親트럼프 카니예 웨스트 “노예제 선택의 문제였을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옹호해 입길에 오른 래퍼 카니예 웨스트가 수세기 동안 지속된 노예 제도는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고 말해 또다시 역풍을 맞고 있다. 웨스트는 1일(현지시간) 연예 전문 TMZ의 뉴스룸에 출연해 “400년 동안 노예제도에 대해 들었다, 400년이라고? 선택의 문제로 들린다”고 말했다. 17세기부터 18세기와 19세기에까지 아프리카에서 끌려와 미국에 노예로 팔려온 노예제도를 철저히 부정하는 듯한 발언이다. “지금 당장 우리는 노예가 되느냐를 선택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당장 TMZ의 흑인 멤버인 반 레이턴은 반발했다. 그는 웨스트가 “사고의 결여”를 보인다며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건 자유지만 역사적 팩트이며 실제 세계가 있다. 내뱉은 모든 말 뒤에 따라오는 결과도 실재한다”고 말했다. 이어 “400년 동안 이어지며 우리 흑인들이 선택권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변방의 목소리에 그칠 것이다. 당혹스럽고 실재하지 않는 어떤 걸로 변화시키려고 한 점 때문에 난 믿기지 않을 만큼 형제로부터 상처 받았다”고 털어놓았다.TMZ 동영상에서 웨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을 “우리 아들”로 표현하고 대통령이 “랩계가 좋아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라고 했다. 그의 언급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국민들을 위해 싸운다”고 주장하며 옹호하는 노래 ‘당신네들 vs 우리 국민’를 발표한 지 며칠 안돼 나온 것이다. 그는 자신의 대척점에 서 있는 래퍼 스눕독을 겨냥해 두 악명 높은 LA 갱들 사이의 협약을 빗대 “갱들의 협정처럼 첫째 가는 ‘블러드’가 ‘크립’의 손을 맞잡았네”란 가사를 썼다. 스눕독의 사촌이며 래퍼인 대즈 딜린저는 만약 캘리포니아주에서 다시 마주치면 크립 멤버들에게 “f**k Kanye up”이라고 외쳐주라고 주문하는 동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동영상은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웨스트는 트럼프 대통령뿐만 아니라 흑인 목숨도 소중해(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반대하는 보수주의 평론가 스콧 애덤스와 캔데이스 오웬스 등을 지지하고 있기도 하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인도의 보물 타지 마할이 갈색으로, 최고법원 “전문가 도움 받아라”

    인도의 보물 타지 마할이 갈색으로, 최고법원 “전문가 도움 받아라”

    인도 최고법원이 최고의 관광 자원으로 꼽히는 타지 마할의 색깔이 바뀌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외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타지 마할은 17세기 무굴 제국이 샤 자한 황제가 아그라 시에 흰색 대리석 등을 이용해 지은 궁전으로 세계적인 관광 명소다. 매일 7만명이 찾을 정도다. 그런데 궁전 외관이 노란색으로 바뀌었다가 최근 들어서는 갈색과 녹색으로도 바뀌어 많은 이들의 걱정을 사고 있다. 인구 폭증과 건설 붐, 곤충 배설물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마단 로쿠르, 디팍 굽타 대법관은 1일 1차 청문을 연 뒤 “전문가들이 있어도 활용하지를 않는다. 아니면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힐책하고 “인도 안에서든 밖에서든 전문가들을 찾아보라”고 권고했다.인도 정부는 이미 타지 마할 근처의 수천개 공장을 폐쇄했지만 환경 운동가 등은 대리석이 광택을 잃고 있다고 지적한다. 궁전 바로 옆 야무나 강의 쓰레기들이 곤충을 불러 모아 이들이 궁전 담에 배설물을 끼얹고 있다. 먼지 문제도 새로 제기된 것이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여러 차례 머드팩으로 대리석을 닦아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1월에도 머드 세척이 시작됐다. 머드를 발라 먼지나 기름끼, 동물 사체 등을 제거하고 있다. 하반기에도 이어진다. 최고법원은 오는 9일 2차 청문을 열어 다시 대책을 논의한다고 영국 BBC가 1일 전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식사의 정치/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식사의 정치/황성기 논설위원

    17세기 영국의 군인이자 저술가였던 새뮤얼 피프스는 “즐거운 만찬은 모든 사람을 화해시킨다”는 명언을 남겼다. 함께 먹는 유쾌한 밥 한 끼에 담긴 뜻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밥 한 끼가 외교 무대, 특히 정상끼리의 점심이나 저녁이라면 의미는 더 각별해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빈 초청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에게 베푼 공식 만찬이 화제다. 멜라니아는 트위터에 “몇 개월 전부터 준비했다”고 쓸 만큼 정성을 들였다. 백악관은 만찬 메뉴가 “프랑스 영향을 받은 미국 최고의 요리와 전통”이라고 마크롱 대통령의 기분을 한껏 치켜세웠다. 만찬에는 백악관 정원에서 기른 채소로 만든 샐러드, 양고기 갈비구이, 잠발라야(미 남부의 쌀 요리) 등이 제공됐다.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 공화당 예비선거 때 “대통령에 취임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호화로운 식사가 아닌 맥도널드의 빅맥을 제공하고 곧바로 실무 회담을 하겠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정상회담 햄버거 발언’은 2016년에도 이어져 “김정은과 회담 탁자에서 햄버거를 먹고 대화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트럼프는 그러나 2017년 4월 미·중 정상의 만찬 때 햄버거가 아닌 시저 샐러드, 스테이크, 혀가자미 요리, 쵸콜릿케이크 등을 시 주석 테이블에 올렸다. 5, 6월에 있을 북·미 정상회담 때야말로 초유의 햄버거 식사가 실현될지 관심을 끈다. 2015년 10월 영국을 국빈 방문한 시진핑 주석에게 엘리자베스 여왕이 환영 만찬을 베풀었는데, 이날 제공된 한 병에 300만원짜리 1989년산 프랑스 보르도산 와인이 구설에 올랐다. 일각에서 “톈안먼 사건이 발생한 같은 해의 와인을 내놓음으로써 영국이 중국의 인권 탄압을 빗댔다”고 빈정거린 것이다. ‘향연에 나오는 것에는 모두 의도(의미)가 있다’는 의전의 철칙을 영국 왕실이 몰랐을 리 없겠지만 음식이나 음료 선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 주는 일화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2018 남북 정상회담의 만찬 메뉴 10가지가 공개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 고향인 신안 가거도산 민어해삼 편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에서 난 쌀로 지은 밥이 메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배려해서는 유년 시절을 보낸 스위스의 가정요리인 ‘뢰스티’(감자를 강판에 갈아 둥글게 부친 요리)를 우리 식으로 바꾼 감자전과 함께 평양 옥류관 냉면도 밥상에 올린다. 북한에 ‘큰 쌀독 열어 놓고 손님 대접한다’는 말이 있는데, 남측의 정성 들인 식사에 김 위원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정상회담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길섶에서] 진주 목걸이/최광숙 논설위원

    17세기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요하너스 페르메이르는 몰라도 그의 대표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모르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 그림을 주제로 영화까지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동그란 눈을 가진 소녀의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흐르는 옅은 미소가 묘한 신비감을 준다. 이 그림이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이유다. 빛과 어둠을 잘 포착한 그의 작품에서 인물과 함께 오랫동안 눈길이 머무는 곳은 다름 아닌 왼쪽 귀에 달린 커다란 진주 귀걸이다. 여성들로서는 진주 귀걸이든 목걸이든 하나쯤 걸치면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최근 세상을 떠난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아내이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어머니인 바버라 부시도 진주 목걸이를 좋아했다. 워싱턴포스트가 “부시 여사의 진주 목걸이는 가짜였지만 그는 진짜배기였다”고 그의 삶을 추모할 정도였다. 마음이 풍요롭다면 진주 목걸이가 진품이 아니라 짝퉁이어도 근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참된 나를 버리지 않는, 진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바버라의 진주 목걸이가 주는 교훈 아닐까.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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