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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구 복원업자에 맡겼다 망친 17세기 바로크 회화

    가구 복원업자에 맡겼다 망친 17세기 바로크 회화

    무자격자, 163만원 받고 복원해 참사스페인에서 예술 작품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스페인 바로크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1617~1682)의 작품인 ‘성모잉태’를 무자격 복원업자가 작업하면서 흉측한 ‘추상화’로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22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발렌시아의 한 개인 미술품 수집가는 그림에 묻은 세월의 때를 지워야겠다고 생각하고 가구 복원업자에게 1200유로(약 163만원)를 지불했다. 그러나 두 번에 걸쳐 복원한 성모마리아의 얼굴은 ‘찌그러진 마녀’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현지 언론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80대 여성 세실리아 히메네스의 원작 훼손’과 비견된다고 평가했다. 그는 2012년 스페인 북동부 보르자 교외의 한 교회 벽에 걸린 예수의 그림을 선의로 복원했는데, 가시 면류관을 쓰고 박해받는 예수의 얼굴을 원본과는 전혀 딴판인 원숭이 같은 모습으로 바꿔 놓았다. 당시 스페인 언론은 “역사상 최악의 복원”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사례가 잇따르자 예술 작품의 복원을 위해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스페인 복원전문가협회 회장을 지낸 페르난도 카레라 갈리시아대학 교수는 “이번 사례는 적절한 훈련을 받은 복원가들만이 복원 작업을 수행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 준다”며 “이런 사람들을 복원가로 불러서는 안 된다. 그들은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스페인 법률에 따르면 예술 작품 복원 기술이 부족한 사람도 복원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해 카레라 교수는 “약국에서 약을 팔려면 약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지 않냐”며 개탄했다. 마리아 보르자 스페인 복원전문가협회 부회장도 “이번 사건과 같은 일들이 불행히도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흔하다”며 “이런 사건이 터졌을 때만 무자격 복원전문가들에 대해 알게 되지만 실제로는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작업이 진행되는 상황은 수없이 많다”고 말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성모 마리아 맞아?…스페인서 또 ‘아마추어 복원 참사’

    성모 마리아 맞아?…스페인서 또 ‘아마추어 복원 참사’

    회화와 조각 등의 예술작품은 세월이 지나면 변색 등의 열화 현상이 생겨 복원 작업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런 복원 작업을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에게 맡겼다가 작품이 훼손되는 사례가 상당한 모양이다. 얼마 전 스페인에서는 한 예술품 수집가가 한 유명 화가의 유화작품 복제화를 아마추어 복원가에게 복원 작업을 맡겼다가 후회한 사연이 전해졌다. 2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발렌시아에 사는 한 익명의 예술품 수집가는 자신이 아끼는 한 유명 화가의 유화작품 복제화를 한 아마추어 복원가에게 1200유로(약 165만원)를 주고 복원하도록 했다가 분개하고 말았다.그가 의뢰한 작품은 17세기 스페인 바로크 회화의 대표 화가인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1617~1682)의 유화작품인 ‘베네라블레스의 원죄 없는 잉태’(Immaculate Conception of Los Venerables)의 정교한 복제화로, 원래 성모 마리아가 그려져 있었지만, 복원된 작품에는 전혀 다른 여성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해당 복원가에게 작업을 다시 하도록 했지만, 그 모습은 더욱더 끔찍하게 변했다.이는 8년 전인 2012년 8월, 스페인 ‘셍츄어리 어브 머시’라는 이름의 교회에 있던 100년 전 19세기 지역화가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스가 그린 프레스코 벽화 ‘에케호모’(Ecce Homo·이 사람을 보라) 속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당시 80세 할머니 세실리아 히메네스가 복원했다가 원숭이 얼굴처럼 그려놓은 유명한 복원 참사를 떠올린다. 당시 해당 벽화는 ‘비스트 지져스’(Beast Jesus) 혹은 ‘에케모노’(Ecce Mono·이 원숭이를 보라) 등으로 불리며 유명세를 치렀고, 이를 보기 위해 관광객이 몰리면서 기념품까지 만들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이뿐만 아니라 불과 2년 전인 2018년에는 16세기 때 제작된 성 조지 목각상의 복원을 한 미술교사에게 맡겼다가 도료를 잘못 사용하는 바람에 훼손되는 사례도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이 조각상은 전문 기관을 통해 다시 복원돼 거의 원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처럼 아마추어에 의한 예술작품 복원 참사가 다수 보고된 스페인에서 또다시 비극(?)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갈리치아 문화유산 보호·복원학교의 페르난도 카레라 교수는 “복원 작업은 훈련된 복원가들에 의해서만 수행돼야만 한다”면서 “난 이 사람, 아니 이런 사람들은 복원가로 불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솔직하게 말하면 이들은 예술작품을 엉망으로 망쳐놓는다”고 덧붙였다. 스페인문화재복원협회(ACRE)의 협회장이었던 카레라 교수는 스페인 법에서는 필요한 기술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예술작품 복원 작업에 종사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ACRE 발렌시아지부의 마리아 보르자 부지부장은 “이런 복원 참사 사례는 생각 이상으로 많다. 예술작품 복원 실패는 SNS상에서 확산했을 때만 주목받지만 주위에 확산하지 않은 아마추어 복원가의 복원 실패 사례도 많다”면서 “아마추어 복원가에 의한 복원 작업으로 예술작품이 입은 손상은 전문가도 되돌릴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조선 찻사발 ‘히틀러 거래상’ 손에 어떻게 들어갔나

    조선 찻사발 ‘히틀러 거래상’ 손에 어떻게 들어갔나

    조선시대에 제작된 명품 찻사발이 나치시대 미술상의 컬렉션을 몽땅 상속받은 스위스 베른의 한 미술관에서 확인됐다. 한국 문화재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에게 고용된 미술상의 손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관심이 집중된다. 스위스 베른시립미술관은 2014년 사망한 독일인 코르넬리우스 구를리트가 소장하던 작품 1500여점에 대해 4년간의 출처 조사를 마치고 작품 리스트를 웹사이트에 게재했다. 그에게 작품을 대거 물려준 아버지는 히틀러를 위해 일했던 유명한 예술품 거래상이었다.●임진왜란 전 조선 찻사발 일본 통해 간 듯  21일 베른시립미술관이 웹사이트에 게재한 구를리트의 잘츠부르크 리스트에 따르면 엷은 황토색의 조선시대 다완 2점이 사진과 함께 간략하게 소개돼 있다. ‘072_10_a’와 ‘072_10_d’라는 번호가 붙여진 도자기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이 확실하다는 게 전문가의 견해다. ‘072_10_a’ 찻사발은 깨어진 조각을 붙인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미술관 측은 ‘아시아 도자기’라고만 소개하고 있다.  사진을 본 비영리법인 법기도자 이사장인 신한균 사기장은 “실물을 직접 보지 않았지만 ‘072_10_a’는 임진왜란 이전에 조선에서 만들어진 명품 찻사발이 분명하다”며 “이런 명품 찻사발을 서양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함축하는 바가 많다”고 평가했다. 신 사기장은 ‘072_10_d’에 대해서는 “임진왜란 직후 일본인들이 조선 도공에게 주문해 만들어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찻사발은 17세기 중반까지 조선에서 만들어졌으나 이후 맥이 끊어졌다가 20세기 중후반에 재현됐다. 신 사기장은 조선 전기의 도자기가 어떻게 머나먼 유럽까지 갔는지에 대해 전문가와 학계가 나서 연구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런 계통의 도자기 가운데 최고봉으로는 꼽히는 기자에몬(喜左衛門·일본 도쿄 다이토쿠지 고호안 소장)은 일본 국보로 지정돼 있다. 신 사기장은 “베른의 조선 찻사발은 일본이 유럽에 도자기를 수출할 때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 도자기의 보관 상태, 관련 에피소드 등에 대해 이메일로 물었으나 미술관 측은 답하지 않았다.  베른시립미술관은 어떻게 조선시대 명품을 소장하게 됐을까. 수많은 작품을 가졌던 구를리트가 사망 직전인 2014년 5월 모든 소장품을 베른미술관에 넘긴다는 유언을 남기면서 미술관은 소위 ‘횡재’를 했다. 작품 상당수는 작품성이 높지 않지만 일부는 이름만으로도 놀랄 만한 작가들의 것이다. 이를테면 모네, 르누아르, 고갱, 리베르만, 뭉크, 마네, 로댕 등의 작품이 포함됐고 그리스, 로마시대의 것도 있다. 상속받은 작품 중 출처가 명확한 마네의 1873년 작품인 ‘폭풍 치는 바다’는 베른미술관이 지난해 일본 국립서양미술관에 400만 달러(약 48억원)에 팔았다.  독일 국적이던 그가 다른 나라 미술관에 작품을 몽땅 기증한 것은 독일이 자신과 부친을 홀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독일 당국이 그의 소장품 출처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는 것이다.  그의 소장품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우연이다. 2010년 9월 70대 노인이던 그가 현금 9000유로를 들고 스위스에서 국경을 넘어 독일로 들어왔다. 합법적으로 반입 가능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직업도, 소득 수단도 없는 그가 2~4주마다 현금을 가져오는 것을 수상히 여긴 독일 세관 당국이 그에게 현금 출처를 추궁했다. 그러자 그는 “그림을 판 돈을 은행에서 찾아오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를 미심쩍게 생각한 세관 당국은 2011년 뮌헨에 있는 그의 아파트를 압수수색해 판매 기록과 같은 증거를 찾아 헤집었다. 그곳에서 그림과 조각 등 예술품 1300여점이 무더기로 나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예술품 발견 사건이었다. 그의 또 다른 집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도 250여점이 나왔다. 이렇게 발견된 작품 1500여점을 통상 ‘구를리트 컬렉션’이라고 부른다. ●나치 소장 예술품 20상자 보유한 구를리트家  방대한 분량의 구를리트 컬렉션은 그의 아버지 힐데브란트 구를리트(1895~1965)가 수집한 것이다. 미술사학자로 예술품 거래상을 했던 그는 히틀러를 위해 일했다. ‘총통 미술관’ 설립을 추진했던 히틀러가 개인 미술관을 채우기 위해 고용한 거래상 4명 가운데 한 명으로 활동했다. 이들 거래상은 명작을 수집하기 위해 군대까지 동원해 파리를 비롯한 유럽 곳곳으로 예술품 구매 여행을 다녔다. 나치에게 박해받아 유럽을 떠나려던 유대인 자산가들이 소장한 작품을 헐값에 사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구를리트는 다른 주머니를 차고 자신의 컬렉션을 위해서도 작품을 마구 사들였다. 이런 과정에서 조선의 찻사발도 그의 손에 들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구를리트가 부인과 함께 체포될 때 예술품을 20상자 분량이나 보유하고 있었다. 1945년 2월 미군의 드레스덴 대공습 당시 화재로 자택에 보관 중이던 작품과 미술품 거래 내역 대부분이 불타 버리고 남은 것이 이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연합군의 추궁에서 벗어났고 소장품들을 압류당하지 않았다고 아트뉴스가 전했다.  구를리트는 자신의 몸에 “유대인 피가 4분의1이 흐른다”며 나치 박해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의 할머니가 유대인이다. 그는 곧바로 풀려나면서 다시 거래를 시작했다. 외아들 코르넬리우스 구를리트가 1968년 아버지 컬렉션을 모두 상속받았다. 아들은 직장도, 직업도 구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사실상 은둔했다. 그러다 생활비가 떨어지면 말썽이 되지 않을 작품을 내다 팔고, 그 돈을 스위스 은행에 넣어 뒀다가 조금씩 조금씩 빼내 쓰는 생활을 계속해 왔다. 독일 미술계는 구를리트 컬렉션을 알고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컬렉션의 존재가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던 것이다.  2012년 예술품을 모두 압류당한 아들 구를리트는 아버지의 상속 예술품을 돌려 달라고 주장했지만 정부 당국은 작품 출처들을 조사해야 한다며 반환을 거부했다. 나치시대 강탈된 작품들은 원래의 합법적인 소유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독일 당국의 주장이었다. 결국 양측은 강탈한 작품은 원소유자에게 돌려주고, 나머지는 코르넬리우스에게 반환하는 것에 합의했다. 이 합의에 양측이 서명하고 한 달쯤 뒤인 2014년 5월 그가 81세로 사망했다. 사망 직전 그는 모든 재산을 독일 대신 베른시립미술관에 넘겨준다는 유언을 남겼다. ‘구를리트 컬렉션’의 소유권 문제가 다시 얽히는 순간이었다.●약탈품 속속 반환… 조선 찻사발 유출 경로 추적을  유일한 상속자 베른시립미술관은 다시 독일 정부가 2016년 만든 ‘독일분실예술품재단’과 합의, 강탈된 예술품은 원래 소유자에게 돌려주기 위해 작품 분류에 들어갔다. 이런 분류 작업이 4년의 활동 끝에 지난달 말 끝났다. 1566점에 대한 최종 분류 결과 앙리 마티스와 막스 리베르만 등의 작품 14점만 약탈품으로 공식 확인됐고, 이 가운데 13점이 원래의 소유자 또는 그 후손들에게 반환됐다고 독일 일간 도이체빌레가 보도했다.  이 외 1000여점은 약탈인지, 합법인지 불투명한 상태에 놓여 있다. 나머지 300여점은 나치 이전에 구를리트 가문이 소유한 것으로 판명 났다. 강탈 확인이 극히 미미한 것과 관련해 독일분실예술품재단 사무국장 길베르트 루페는 “회색 영역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상상할 수 있는 가능한 조사는 다 해 봤다”며 “더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나치시대 이후 70여년이 흘러 약탈 피해자나 1차 상속자들이 숨지면서 약탈 입증 문제는 더욱 미궁으로 빠지고 있다. 늦기 전에 조선의 찻사발에 대한 유출 경로 추적에 나서야 한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코로나 확산에 총기살인까지…美, 곳곳서 혼란

    코로나 확산에 총기살인까지…美, 곳곳서 혼란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도심에서 21일(현지시간) 총격 사건이 발생해 남성 1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다쳤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미니애폴리스 경찰은 “사망자와 부상자 모두 성인이다. 부상자들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 이날 오전 4시 현재 총격 사건과 관련돼 체포된 사람은 없다고 덧붙였다. 사건이 발생한 곳은 미니애폴리스 상업지구다. 경찰 조사 결과 총격은 이날 0시 30분쯤 시작됐으며 보행자 몇 명이 총을 쏜 뒤 달아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극장체인 랜드마크가 운영하는 업타운극장과 다른 상점의 유리창이 총에 맞아 깨진 사진이 올라왔다. AP통신은 총격 사건이 발생한 곳이 플로이드 사망 항의시위가 진행된 곳에서 5㎞가량 떨어져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뉴욕주 시라큐스에서도 20일(현지시간) 수백명이 ‘축하행사’를 벌이다가 총격이 발생해 9명이 다쳤다. 부상자 가운데 가장 어린 17세 소년이 머리에 총상을 입어 위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라큐스 경찰에 따르면 축하행사는 시라큐스 시내 인근의 한 주차장에서 열렸다. 정확한 행사 목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켄턴 버크너 시라큐스 경찰서장은 “경찰관들은 애초 도난차량 관련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면서 “오후 9시쯤 현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수백명의 군중을 향한 총격이 있었다’고 알렸다”고 설명했다. 시라큐스 시장은 “이 정도 규모의 행사를 승인한 적 없다”고 밝혔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여기는 베트남] 젊은 연인, 알고 보니 11년 전 유치원 ‘짝사랑’

    [여기는 베트남] 젊은 연인, 알고 보니 11년 전 유치원 ‘짝사랑’

    현재의 연인이 알고 보니 11년 전 유치원 때부터 시작된 연인이라면? 한 남녀의 러브스토리가 ‘사랑은 운명’이라는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듯하다. 베트남 현지언론 뚜오이째(Tuổi Trẻ)는 20일 만 17세 동갑내기 커플 동향(여성)과 비엣콰(남성)의 특별한 러브스토리가 온라인상에서 큰 화제라고 전했다. 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서로를 처음 알게 되면서 사랑에 빠졌다고 여겨왔다. 이들이 유치원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비엣콰는 여자 친구에게 “어릴 적 유치원에서 함께 공연했던 여자아이를 짝사랑했다”고 털어놨다. 이에 동항은 함께 그의 옛날 사진들을 훑어봤다. 동항은 그의 사진들 가운데 놀랍게도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사진을 발견했다. 순간 그녀는 그의 짝사랑 이야기가 어쩐지 낯설지 않다고 여겼다. 알고 보니, 사진 속 주인공이 바로 동항과 비엣콰였고, 그가 짝사랑했던 여자아이가 바로 본인임을 알게 된 것이다. 동항은 “유치원 시절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시 함께 공연했던 남자아이와 단둘이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면서 “하지만 초등학교를 다른 곳으로 가게 되면서 서로 연락이 끊겼었다”고 전했다. 11년이 흐른 뒤 SNS를 통해 비엣콰가 먼저 그녀의 SNS 계정에 호감의 글을 남겼고 그러다가 두 사람은 사귀게 됐다. 그녀는 “그는 언제나 나를 보호해주려고 애쓴다”면서 “내가 아플 때면 집 앞에 나타나 음식과 약을 건네주고 간다. 우리는 더러 다투기도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려고 늘 애쓰고 있다”면서 애정을 과시했다. 서로 각자 간직해왔던 유치원 사진은 이들에겐 운명적 사랑의 상징이 됐다. 이들의 유치원 사진과 현재의 사진은 SNS에서 큰 화제가 되면서 ‘운명적 사랑’이라는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이종실 호치민(베트남)통신원 litta74.lee@gmail.com
  • 두꺼비로 흑사병 치료?…뉴턴의 자필원고, 경매서 1억 낙찰

    두꺼비로 흑사병 치료?…뉴턴의 자필원고, 경매서 1억 낙찰

    영국 출신의 천재 과학자 아이작 뉴턴(1642~1727)이 흑사병을 치료하는 유망한 방법으로 두꺼비 토사물을 추출하는 법을 직접 쓴 자필원고가 처음 공개됐다고 CNN이 17일(현지시간) 전했다. 뉴턴이 1667년 작성했지만 발표하지 않은 두 페이지 분량의 이 원고에는 흑사병 치료법으로 ‘최선의 방법은 두꺼비를 굴뚝 속에 3일간 거꾸로 매달아 놓는 것이다. 그러면 죽은 직후 각종 곤충을 땅에 토해내는 데 그 후 쏟아내는 노란색 밀랍을 접시에 받아낸다'고 씌여있다. 뉴턴은 또 이 원고에 '분말로 만든 두꺼비를 배설물이나 체액과 섞어 약을 만들어 환부에 바르면 전염병(흑사병)을 몰아내고 독을 제거할 수 있다'고 적었다. 뉴턴의 이 원고는 최근 개최된 본햄스 경매에서 8만1325달러(약 9860만원)에 낙찰됐다. 원고에는 사파이어나 호박 등의 보석을 ‘부적’(zenexton 또는 amulet)으로 쓰거나 '흑사병 감염자가 나온 장소를 피한다'는 일반적인 대책도 기록돼 있다. 원고는 뉴턴이 17세기 저명한 벨기에 화학자 얀 밥티스타 판 헬몬트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을 때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판 헬몬트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가스의 존재를 발견하고 가스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인물로도 유명하다. 뉴턴은 판 헬몬트의 화학적 업적을 연구하면서 판 헬몬트가 1605년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환자를 치료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저서 ‘흑사병의 무덤’에도 관심을 가졌다. 뉴턴이 1667년 흑사병에 관심을 가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영국 런던에서는 1665년부터 1666년 사이에 걸쳐 추정 10만 명이 흑사병 때문에 사망했다. 뉴턴 역시 자신이 다니던 케임브리지대가 휴교하면서 가족의 별장에서 2년 동안 격리 생활을 했다. 흑사병에 대한 이번 원고는 그가 케임브리지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퍼블릭 도메인(왼쪽), 본햄스 경매소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英 옥스퍼드대도 남아공 총독 지낸 세실 로즈 동상 “철거 논의”

    英 옥스퍼드대도 남아공 총독 지낸 세실 로즈 동상 “철거 논의”

    영국 옥스퍼드대 오리엘 칼리지 이사회가 19세기 남아프리카공화국 총독을 지냈던 세실 로즈의 동상을 철거하라고 권고했다. 이 대학의 로즈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요구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대학 측은 줄곧 이를 거부해왔는데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제국주의 청산 시위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17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교직원으로 구성된 오리엘 칼리지 이사회는 성명을 내고 “로즈의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밝혔다. 이사회는 나아가 “투표를 통해 로즈 동상에 대해 논의하는 독립 조사위원회를 설립하기로 했다”면서 동상을 철거하길 바란다는 이사회의 의견을 적은 팻말을 그의 동상에 설치해놓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단 로즈 동상은 조사위원회가 논의를 마치는 연말까지 철거되지 않고 그냥 두기로 했다. 이사회는 조사위원회가 학술·교육·법·정치·언론 전문가들로 구성될 것이라며 앞으로 흑인과 소수민족 출신 학생 및 교직원에 대한 접근 개선 방안을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21세기의 다양화 요구에 맞게 과거를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겠다고 덧붙였다. 세실 로즈는 19세기 말 빅토리아 시대에 케이프 식민지(현재 남아공)의 총독을 지내면서 영국의 아프리카 식민지화에 앞장섰다. 당시 금광·다이아몬드광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그는 모교인 오리엘 칼리지에 장학재단을 설립했고, 이 재단을 통해 지난 100년 동안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그 동안 로즈 동상을 치워야 한다는 주장이 늘어나면 일부 동문이 기부금 철회 의사를 표시했지만 대학 측은 동상 철거에 반대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사회가 나서 로즈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제국주의나 식민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의 동상을 철거하거나 훼손하려는 움직임은 세계 곳곳에서 눈에 띄고 있다. 이달 초 영국 브리스틀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는 17세기 노예무역상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을 끌어내려 강물에 내던졌다. 미국 미네소타, 보스턴 등에서도 시위대가 유럽에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알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동상을 끌어 내리거나 훼손했다. 또 지난 14일 호주에서는 오세아니아 대륙 토착 원주민을 학살하고 식민 통치한 영국인 제임스 쿡 선장의 동상이 스프레이 페인트로 훼손된 채 발견되기도 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화가라는 직업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화가라는 직업

    17세기 초 스페인에서 독립한 네덜란드는 시민공화국을 출범했다. 경제적 번영은 시민적 자유와 맞물린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같은 절대왕권 국가에서는 왕실이 중요 산업을 독점했고 그 외의 산업도 왕의 허가를 받은 사업자만 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자본과 아이디어가 있으면 누구나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다. 종교적 제약도 없었다. 인구의 다수가 신교였으나 가톨릭, 유대교를 배척하지 않았다. 박해를 피해 이주한 유대인들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은 예술생산과 유통방식에 변화를 일으켰다. 전근대적 후원제도가 무너진 자리에 근대적 시장제도가 밀고 들어왔다. 특권계급과 교회의 주문이 사라지자 화가들은 자구책으로 누군가 사주기를 기대하며 여관, 술집에 그림을 걸어 놓았다. 전문적인 미술상이 생겨나 고객과 화가를 중개해 주었다. 네덜란드의 부는 미술품 거래를 활발하게 했고, 미술시장을 성립시켰으며 그림을 되팔 수 있는 재화로 만들었다. 다른 나라 예술가들이 여전히 후원자의 비위를 맞추고 그의 명을 받들고 있을 때, 네덜란드 화가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변덕스러운 후원자에게서 벗어나 독립했다. 성공하면 부를 누리고 전문 직업인으로 존경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복병이 있었다. 시장 생산은 주문 생산에서는 없던 수요공급의 불일치를 초래했다. 자유 경제 속에서 너무 많은 미술가가 생겨났고 이는 작품 생산의 과잉으로 이어졌다. 미술가는 알 수 없는 고객을 상대로 무한 경쟁에 휩쓸리게 됐다. 렘브란트는 인생 후반기에 고객의 인기를 잃고 몰락했다. 페르메이르는 미술시장 붕괴로 파산해 부인에게 빚과 열한 명의 아이들을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다. 호베마는 서른 살 때 포도주 검사관 자리를 얻자 그림을 중단했다. 화가보다 포도주 검사관이 나았다는 얘기다. 오십 줄에 어쩌다 그린 그림이 그의 대표작이 됐다. 가로수가 늘어선 신작로 끝에 교회 종탑이 솟은 마을이 보인다. 사냥꾼은 개를 데리고 관객 쪽으로 걸어오고 길옆 밭에서는 농부가 묘목을 돌본다. 광활한 하늘의 뭉게구름을 보고 있으면 호베마가 살던 시대의 네덜란드로 순간이동을 한 것 같다. 미술평론가
  • [월드피플+] “생명의 은인 찾았다”…37년 전 목숨 구해준 소방관 찾은 간호사

    [월드피플+] “생명의 은인 찾았다”…37년 전 목숨 구해준 소방관 찾은 간호사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최전선인 뉴욕 병원으로 자원한 간호사 디어드레 테일러(40)는 얼마 전까지 37년 전 자신을 화재 사고에서 구해준 한 소방관을 찾기 위해 애썼다. 다시 만나면 감사의 인사를 꼭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간호사의 소원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뤄졌다고 뉴욕데일리뉴스 등 현지매체가 전했다.보도에 따르면, 디어드레 테일러는 현재 자신이 지원을 온 뉴욕 브루클린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2개월 넘게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힘쓰고 있다.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서 남편 그리고 두 아이와 행복하게 지내던 그녀가 이번에 뉴욕 지원에 나선 이유는 사실 자신이 4살 때 겪은 일과 관계가 있다. 1983년 12월 당시 뉴욕 맨해튼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살았던 디어드레는 집에서 화재가 일어나 연기 때문에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때 디어드레를 구해줬던 이가 바로 유진 푸글리스 주니어라는 이름의 한 소방관이다. 당시 유진은 화재 목격자에게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직행했고 아파트 6층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목격했다. 그때 그는 근무 외 시간이었기에 헬멧 이외의 방호구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고 소화전 점검을 위한 공구밖에 갖고 있지 않았지만 한 여성이 아파트 안에 아이가 있다고 외치자 그녀를 동료에게 맡기고 안으로 뛰어 들어가 디어드레를 구조했던 것이다. 그는 아이가 의식을 되찾을 때까지 인공호흡을 반복했다. 그의 활약으로 디어드레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 디어드레는 가족과 함께 뉴욕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그는 이 화재 사건으로 명예로운 소방관상을 받았지만 그 후 이들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디어드레는 성장하면서 당시 자신을 구해준 소방관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만나게 되면 반드시 감사의 인사를 전하겠다고 항상 생각했던 것이다.그녀는 온라인으로도 소방관을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 찾지 못해 37년 전 화재 사고가 기록된 신문의 기사를 스크랩해두고 간직하며 생명의 은인을 생각했다. 지난 2001년 9월 11일 뉴욕에 테러가 발생했을 때도 디어드레는 소방관의 안부를 걱정했다. 왜냐하면 무려 343명의 소방관이 희생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렇게 계속 찾는데 찾을 수 없다니… 그는 정말 살아 있을까’라고 생각할 때도 적지 않았다고 그녀는 회상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그의 소식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2주 전 야근 중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뉴욕 소방관들이 병원을 찾았다. 그중 한 명이 유진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신문 스크랩을 방문한 소방관들에게 보여주며 유진의 소식을 묻자 그중 한 명이 잘 안다며 휴대전화 번호도 알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마침내 오랜 세월 찾은 생명의 은인의 소식을 접한 그녀는 그날 교대 근무가 끝나자마자 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24년 전 소방관을 그만두고 현재 75세가 된 유진은 자신이 구한 4세 소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그 후 인터뷰에서 “아이를 만난 적은 없지만 항상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생각했다”면서 “나 역시 당시 신문에서 스크랩한 것을 25년째 벽에 걸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디어드레는 유진이 자신을 계속해서 기억하며 걱정해줬다는 것을 알고 감격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그와 대화를 나누다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녀는 “17세 생일 때 미군에 입대해 헬기 조종사로 국가 경비대에 종사했다. 그 후 결혼해서 간호사가 되는 길을 꿈꿨지만, 유진도 소방관이 되기 전 베트남전쟁에서 싸운 해병대 중사를 지냈다”면서 “그리고 그 역시 양키스의 열성적인 팬임을 알게 돼 언젠가 함께 경기를 보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 유진과 처음 대화를 한 5월 29일 이후 디어드레는 두 차례 더 그와 통화했다고 밝혔다. 지금은 아직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되지 않아 감염 예방을 위해 만날 수 없지만 상황이 안정될 때 두 사람은 반드시 만나기로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녀가 코로나19 감염자를 위해서 최전선에서 일하는 가운데, 37년만에 생명의 은인을 찾을 수 있던 이유는 자신의 생명이 구해진 것처럼 자신 역시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녀는 “그날 난 내 목숨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진이 도와주지 않으면 지금의 난 여기 없었다”면서 “그가 내게 두 번째 삶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더샵 번영센트로, 울산 트램의 수혜 단지로 주목

    더샵 번영센트로, 울산 트램의 수혜 단지로 주목

    울산도시철도(트램·노면전차) 사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신청한 ‘울산 도시철도망 구축계획안’이 현재 국토부 내 국토위원회는 통과했고, 최종 승인을 위한 관련 세부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사실상 국토교통부 승인이 내려진 상태로 보고 울산시는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대비한 연구용역을 진행중이다. 향후 울산시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신청하고 기재부가 올해 하반기에 예타 대상 사업으로 채택하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년까지 예타를 진행하게 된다. 울산시는 1조3316억원을 투입해 4개 노선, 연장 48.25㎞의 트램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노선 1, 2를 1단계로 2024년 우선 착공해 2027년 개통하고 노선 3, 4는 2단계로 2028년 이후 추진할 계획이다. 노선1은 동해남부선 태화강역∼신복로터리 구간의 동서축, 노선2는 동해남부선 송정역∼야음사거리의 남북축이다. 노선3은 효문행정복지센터∼대왕암공원, 노선4는 신복로터리∼복산성당 앞 교차로다. 트램이 도입되면 시내버스가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인 울산 시민들의 교통복지 수준이 한단계 높아짐은 물론 다양한 경제적 효과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되고 있다. 트램사업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면서 트램노선에 위치한 아파트 분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램건설의 직접적인 수혜단지가 될 ‘더샵 번영센트로’가 분양을 앞두고 있는데 이 단지 옆 번영대로변에 2노선이 통과해 정거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 아파트는 지하 3층, 지상 29층 7개동 총 632세대 규모로 울산광역시 남구 야음동에 들어선다. 공급면적별 세대수는 59㎡A 155세대, 59㎡B 48세대, 75㎡A 106세대, 75㎡B 117세대, 84㎡ 206세대로 실속 중소형 구성이다. ‘더샵 번영센트로’는 모든 생활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우수한 입지를 자랑한다. 단지 바로 옆 울산의 교통중심인 번영대로를 비롯 수암로, 삼산로 등 시내외를 잇는 간선 도로망에 트램 2호선이 단지 옆을 지나게 돼 교통환경이 더 편리하게 확충된다. 자연환경도 최고 수준으로 선암호수공원과 신선산이 1km 거리에 위치하고 단지 뒤편의 여천천 등 빼어난 자연과 휴식공간을 누릴 수 있다. 또한 반경 2km 이내에 남구청 등 공공기관과 홈플러스, 이마트, 롯데백화점 등 다양한 유통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교육여건도 탁월하다. 도보거리에 도산초가 위치해 안심통학이 가능하며 대현초, 야음중, 대현고, 신선여고 등 남구의 명문교와 옥동 학원가, 도산도서관, 울산도서관 등 우수한 교육시설이 근거리에 위치한다. ‘더샵 번영센트로’는 기존의 대기자들만으로도 높은 청약률이 예상되지만 올 8월부터 수도권과 지방 광역시 대부분 지역의 민간택지에서 공급되는 주택의 분양권 전매가 입주시까지 금지되면서 7월까지 분양하는 단지에 청약이 대거 몰릴 것으로 보여 청약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더샵 번영센트로’의 견본주택은 남구 달동에 건립되며 6월 중에 개관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친구 아니었으면”...악어에 물려가는 친구를 구한 인도 남성 (영상)

    “친구 아니었으면”...악어에 물려가는 친구를 구한 인도 남성 (영상)

    물놀이를 하러 댐에 갔다가 그만 악어에 물려 목숨을 잃을 뻔한 남성이 친구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아찔한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의 보도에 의하면 이 사고는 지난 9일 (현지시간)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의 주도 보팔에 위치한 칼리아 댐에서 발생했다. 휴대폰 매장에서 일을 하는 아미트 자타브(30)와 친구 가젠드라 야다브는 코로나19로 인한 봉쇄조치로 심심한 시간을 보내던 중에 지역내 댐에 가서 물놀이나 하기로 결정했다. 댐의 가장자리에 도착한 이들은 비교적 얕은 곳에서 옷을 벗고 나무 막대기를 셀카봉처럼 설치해 동영상도 찍으며 물놀이를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자타브가 비명을 지르며 몸이 뭔가에 물린 듯 휘둘려지더니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으로 사라졌다. 강바닥에 있던 악어가 그만 자타브의 오른쪽 다리를 물고 수심이 깊은 쪽으로 사라진 것. 친구 야다브는 순간적으로 셀카봉으로 쓰던 나무 막대기를 집어 들고는 친구가 사라진 방향으로 잠수를 해서 들어갔다. 눈도 뜨지 못한 상태에서 수심 1.8m가 되는 바닥으로 들어간 순간 손에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바로 친구를 물고 바닥으로 사라진 악어의 몸이었다. 친구 야다브는 온몸의 힘을 다해 나무 막대기로 미친듯이 악어를 찌르기 시작했다.그러자 악어는 물고 있던 자다브의 다리를 놓아 주고는 깊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야다브는 허벅지에서 피가 철철 나고 있는 친구를 끌고는 뭍으로 나왔다. 응급 구조대가 도착하고 병원으로 실려간 자다브는 오른쪽 허벅지에 30바늘을 꿰매야 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자다브는 "악어가 다리를 물고 물속으로 끌고 들어 가는 순간 이렇게 죽는 구나라고 생각했다"며 "친구가 아니었으면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다"라고 친구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친구 야타브는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정말 모르겠지만 친구가 사라지는 순간 거의 반사적으로 행동했던 것 같다"며 "나무 막대기로 찌른 곳이 악어의 어는 부위인지도 모르지만 온 힘을 다해 찔렀다"고 회상했다. 한편 이 댐 주변에서 악어가 사람을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1년에는 친구들과 수영을 하던 17세 소년이 악어에 목숨을 잃었고, 지난 2014년에는 낚시를 하던 46세 남성이 악어에 물려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김경태 해외통신원 tvbodaga@gmail.com
  • 윈스턴 처칠 동상 이제 없다?! 시위대 훼손 우려해 파티션 둘러

    윈스턴 처칠 동상 이제 없다?! 시위대 훼손 우려해 파티션 둘러

    영국 런던 팔리아먼트 광장에 서 있는 윈스턴 처칠 동상이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됐다. 13일(이하 현지시간) 하이드파크에서 흑인목숨도소중해(Black Lives Matter) 시위가 예정돼 있고 전날에는 극우 단체들의 집회가 예정돼 있어 충돌이 빚어져 동상이 훼손되는 불상사가 있을까봐 11일 밤과 다음날 새벽 사이에 인부들이 파티션을 세웠다. 바닥에 단단하게 구조물을 세워 고정시키고 철재 판넬을 두른 것이고, 높이도 만만찮아 어지간해선 훼손하기 어려울 것 같아 보인다. BLM 지지자 중에는 처칠 전 총리가 2차 세계대전 승리를 이끈 공로도 있지만 인종적 편견으로 가득 찬 인물이었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는 이들이 많다. 극우 단체들은 지방의 지지자들에게 런던으로 올라와 이들 기념물들을 지켜내자고 독려하고 있어서 양측이 충돌할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처칠 동상 말고도 런던 중심부 화이트홀의 세노타프(Cenotaph, 세계대전 전몰자 위령비),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 등 주요 동상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보호 조치가 취해졌다고 BBC는 전했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더 이상 공중 질서가 문란해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가급적 사람들이 “집에 머물러달라”고 당부했다. 이미 지난 주말 처칠 동상의 얼굴에 페인트칠을 하고 기단에 낙서를 남기는 등 상당한 훼손이 이뤄졌고, 브리스틀에서는 17세기 노예무역상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이 기단에서 끌어내려져 사람들 발에 짓밟히고 애버딘 강에 버려졌다가 얼마 전 인양되는 소동이 빚어졌다. 당시 체노타프 위에도 올라가 포스터를 들어보이거나 유니언잭에 불을 붙이려 시도하는 일부 시위대원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온라인에 돌아다니기도 했다. 지난 9일에는 런던박물관 도크랜즈 앞의 노예주 로버트 밀리건 동상이 여러 사람에 의해 끌어내려졌다. 같은 날 가이스 앤 세인트 토머스 병원은 인종차별 항의 시위에 부응해 노예제와 관련된 두 인물. 토머스 가이와 로버트 클레이턴 경의 동상을 대중의 눈에 띄지 않게 치울 것이라고 밝혔는데 가이 동상 주변에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펜스를 세우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당국은 과격한 시위꾼들을 신속하게 재판해 24시간 안에 수감할 수 있도록 패스트트랙 검거 방안을 공언하고 있다. 문화재나 기념물을 파괴하거나 형사 피해를 초래하는 행위, 경관을 공격하는 행위 등을 저지른 이들은 24시간 행정법원에서 재판할 수 있도록 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김동표 ‘대금산조’ 국가무형문화재 별세

    김동표 ‘대금산조’ 국가무형문화재 별세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인 김동표 명인이 지난 10일 오후 7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79세. 전남 화순에서 태어난 고인은 대금산조 명인인 셋째 형 김동진(작고)의 영향으로 17세에 대금을 시작했다. 1959년 고창의 대금 명인이었던 편재준에게 대금 산조와 풍류를 사사했고, 우리 국악단과 임춘앵 여성국극단 등 단체 활동을 하면서 한주환과 김동진에게 대금 반주법을 익혔다. 고인은 35세에 대금산조 보유자인 강백천의 문하로 들어가 활동하다 1993년 보유자로 인정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말례씨, 아들 영석·영규씨, 딸 영미씨가 있다. 빈소는 부산 광혜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3일 오전 6시. (051)506-1022.
  • 런던의 또다른 노예주 로버트 밀리건 동상도 끌어내려져

    런던의 또다른 노예주 로버트 밀리건 동상도 끌어내려져

    사디크 칸 영국 런던 시장이 노예제와 관련된 런던의 동상, 거리 이름도 “끄집어 내려야 한다”고 역설하자 런던박물관 도크랜즈 바깥에 있던 유명한 노예 주인 로버트 밀리건의 동상도 내려졌다. 노예 무역의 중심 항구였던 브리스틀에서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 8만명의 흑인 성인과 어린이들을 노예로 사고 팔았던 17세기 노예상인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을 끄집어 내려 발로 짓밟은 뒤 에이번 강물에 던져 버린 뒤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이다. 카날 앤드 리버 트러스트는 밀리건의 동상이 제거된 것은 “지역공동체의 바람을 인지한” 결과라고 밝혔다. 크레인을 이용해 동상이 끌어내려진 순간, 환호와 갈채가 쏟아졌다고 BBC가 9일 전했다. 런던박물관 도크랜즈는 자메이카의 사탕수수 농장 두 곳에서 526명의 노예를 부렸던 악명 높은 노예 거래자의 동상이 “오랜 시간” 건물 밖에 “불편하게 서 있었다”며 “우리는 그 기념물이 백인만을 우대(white-washing)하는 역사가 지금도 문제 투성이로 진행되는 과정의 한 부분이며 밀리건이 인류애에 반해 저지른 범죄의 잔재와 여전히 힘겹게 싸우는 이들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밀리건은 런던의 글로벌 무역 허브 항구인 웨스트 인디아 도크의 창업자이기도 하다. 밀리건의 동상이 내려지는 순간, 옥스퍼드 대학 밖에서는 수천명이 모여 제국주의자 세실 로즈의 동상 역시 제거하자고 요구했다. 앞서 칸 시장은 런던 시가 노예와 역사적으로 노예와 연관된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적 실재에서의 다양성 위원회(Commission for Diversity in the Public Realm)가 시의 벽화, 거리예술, 거리 이름, 동상, 다른 기념물 등을 재검토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추천하기 전에 어떤 유산이 찬양될 만한 것인지를 따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런던이 “세상에서 가장 다양성이 존중되는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면서도 최근의 흑인목숨도소중해(Black Lives Matter) 시위가 빅토리아 시대의 영광이 반영된 이 도시의 동상, 광장, 거리 이름까지 부각시키고 있다며 “우리 나라와 시가 부의 많은 부분을 노예무역의 역할에 빚지고 있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우리의 공적 실재에 그것이 반영돼 있는 반면, 많은 이들이 우리의 수도가 돌아가도록 기여한 것은 의도적으로 무시됐다”고 개탄했다. 하지만 칸 시장은 지난 7일 런던 중심가에서의 BLM 시위대가 낙서로 훼손한 윈스턴 처칠 동상은 재평가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못박았다. 그는 이어 처칠 뿐만 아니라 간디, 말콤X 등 위인들도 포함해 “누구도 완벽하지 않았다”며 이런 유명한 인물들에 대해 “있는 그대로(warts and all)” 교육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밀리건과 로즈의 동상 외에 런던 시내 노예제와 관련된 기념물로는 토머스 가이 경이 먼저 손에 꼽히는데 사우스 시 컴퍼니의 많은 주식을 소유하고 부를 키웠기 때문인데 이 회사는 스페인 식민지들에 노예를 판매하는 것이 설립 목적이었다. 또 교육 자선가로도 이름을 남긴 존 카스 경도 아프리카 항구들과 카리브해의 노예 중개인들과 직접 연결돼 초기 노예무역과 대서양 노예 경제에 막중할 역할을 했다. 런던 외에도 에딘버러에 있는 헨리 둔다스 기념물도 이 도시가 노예와 연관 있다는 상징이며, 카디프 시위원회 지도자도 시 소유 건물에서 노예주 토머스 픽턴 경의 동상을 제거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한편 미국 워싱턴DC와 붙어있는 버지니아주의 주도 리치먼드의 모뉴먼트 거리에 1890년 5월 세워져 130년간 리치먼드의 역사를 낱낱이 지켜본 남북전쟁 시절 남부군 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 장군의 기마상 철거는 일단 보류됐다. 민주당 소속인 랠프 노덤 버지니아 주지사가 지난 4일 동상을 철거해 창고에 넣겠다고 밝히자 부지의 소유자임을 주장하는 윌리엄 그레고리가 소송을 제기했는데 리치먼드 법원이 일단 10일간 철거 금지 명령을 내려달라는 그레고리의 요청을 8일 받아들였다. 2017년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이 그 지역 리 장군 동상을 철거하기로 했다가 이에 항의하는 백인우월주의자 등 극우 시위대가 몰려와 폭력시위를 벌인 바 있다. WP는 “버지니아의 많은 백인에게 리 장군은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 (헌법의 아버지) 제임스 매디슨 급”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버지니아의 대학에도, 육군 기지에도, 고속도로에도 리 장군의 이름이 붙어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美 넘어 유럽까지 “인종차별 끝내자”… 역사속 인물들 ‘수난’

    美 넘어 유럽까지 “인종차별 끝내자”… 역사속 인물들 ‘수난’

    강물에 투척… 사후 300년 만에 인민재판 “오래전 없어졌어야” “무질서 대변” 논쟁 벨기에 레오폴드 2세 흉상엔 붉은 페인트 철거 청원 3만명… 콩고 지배 논란 재점화 美 곳곳 남부군 사령관 동상 등 없애기로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세계 전역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확산되는 가운데 과거 흑인인권을 탄압했던 인물들의 상징물이 잇따라 수난을 당하고 있다. 과거에도 이들 상징물에 대한 철거 여론이 있었지만,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서구 열강의 부끄러운 식민역사를 지워버리자는 여론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런던과 맨체스터 등 영국 주요 도시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벌어진 7일(현지시간) 브리스톨에서는 시위대가 17세기 악명 높은 노예무역상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을 끌어내려 인근 에이본 강물 속으로 던져버렸다. 일부 성난 군중은 동상을 던지기 전 바닥에 내팽개친 뒤 짓밟고, 목 부분을 무릎으로 누른 채 올라타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노예무역회사 ‘로열 아프리칸 컴퍼니’를 운영한 콜스턴은 흑인 8만여명을 팔아 번 돈을 자선사업에 썼고, 이런 공로로 브리스톨은 그의 이름을 딴 도로와 학교, 극장 등을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서양을 건너온 흑인시위로 여론이 환기되며 콜스턴은 사후 300년 만에 ‘인민재판’을 받는 신세가 됐다. 동상 철거를 둘러싸고 영국 내에서는 과거사 논란도 촉발되는 모습이다. 역사학자인 데이비드 올루소가는 BBC에 콜스턴 동상 철거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동상 철거에 비유하며 “오래전에 없어져야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프리티 파텔 내무장관은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무질서를 대변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도 최근 시위가 “폭력에 전복됐다”며 강경 대응을 천명했다. 벨기에에서는 1800년대 후반 아프리카 콩고를 침략해 원주민 학살 등의 범죄를 저지른 레오폴드 2세 국왕의 동상이 최근 훼손됐다. 지난 2일 겐트의 레오폴드 2세 흉상에는 붉은 페인트가 칠해졌고, 얼굴에는 플로이드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던 “숨 쉴 수 없다”고 쓴 천이 덮여 있었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상대로 저지른 악행 가운데 가장 악독했던 것으로 꼽히는 레오폴드 2세의 과오에 대해 벨기에 정부는 그동안 과거는 과거일 뿐 배상 등의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번진 인종차별 반대 여론에 참회와 사과를 주장하는 측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실리며 벨기에의 콩고 지배에 대한 비판이 수면으로 올라오고, 레오폴드 2세 관련 역사교과서 내용 수정 등 변화가 감지됐다. 수도 브뤼셀에 있는 레오폴드 2세 동상도 철거해야 한다는 온라인 청원에도 3만명 이상이 서명한 상태다. 인종차별 반대 시위 격화 이후 미국에서는 관련 상징물 철거가 이어지고 있다. 버지니아주는 주도 리치먼드 시내에 우뚝 선 남부연합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의 동상을 없애기로 했다. 대학 학장을 지내기도 한 로버트 리는 위대한 명장이자 교육자로 평가되지만, 남북전쟁 때 노예제 찬성 편에 선 그의 생애는 늘 논란거리였다. 최근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그의 동상 앞에서 집중적으로 열리며 또다시 철거 여론의 표적이 됐다. 이에 민주당 소속 랠프 노섬 버지니아주지사는 직접 동상 철거 계획을 밝히며 성난 민심을 다독이기에 나섰다. 로버트 리의 후예인 작가 로버트 리 4세는 워싱턴포스트에 쓴 기고에서 “조상을 비판하고, 그의 동상 철거를 지지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자문하며 밤잠을 설치곤 했다”면서 “이제 과거를 속죄하고 새로운 아침을 열어야 할 때”라고 썼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서울포토] 英 17세기 노예무역상 ‘분노와 함께 역사 속으로’

    [서울포토] 英 17세기 노예무역상 ‘분노와 함께 역사 속으로’

    7일(현지시간) 영국 브리스틀에서 인종차별에 저항해 벌어진 시위 도중 17세기 노예무역상으로 부를 쌓았던 에드워드 콜스톤(Edward Colston, 1636-1721) 동상이 시위대의 분노와 같이 물속으로 사라졌다. 미국 백인 경찰관의 강압적인 체포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으로 촉발된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 시위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시위대는 1895년에 세워진 에드워드 콜스톤 동상의 목에 밧줄을 묶어 동상을 끌어내렸다. 시위자들은 환호하며 동상이 에이본강 항구로 끌려가 물속으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현지 경찰 집계에 따르면 이날 현장에는 1만여 명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예무역상이자 상인이었던 콜스톤은 노예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고, 학교와 빈민 구호소, 병원, 교회 등 지역사회에 아낌없이 기부를 했던 인물로도 기록돼 있다. 노예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인물에 대한 동상 설립은 이 후 줄곧 논쟁의 대상이 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英 브리스틀 시장 “노예상 동상 우리 市 모욕, 상실감 안 느껴”

    英 브리스틀 시장 “노예상 동상 우리 市 모욕, 상실감 안 느껴”

     미국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영국 남서부 브리스틀 집회 도중 시위대가 17세기 노역무역상 동상을 바닥에 끌어내려 짓밟은 뒤 강물에 던져버렸는데 시장은 문제 삼지 않겠다고 밝혔다. 앞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즉각 트위터에 시위가 “악행으로 전복됐다”고 개탄한 것과 완전 다른 반응이다.  흑인인 마빈 리스 브리스틀 시장은 지난 7일 저녁(이하 현지시간)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던 1만여명의 시위대 일부가 에드워드 콜스턴의 이름을 딴 콜스턴 가(街)로 몰려가 동상에 밧줄을 걸고 콜스턴의 동상을 끌어내린 뒤 에이번 강물에 던져버린 사건에 대해 동상 자체가 모욕이었다며 그것이 사라졌다고 해서 상실감을 느낄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젠가 동상을 강에서 인양할 것이지만 동상이 서 있던 자리가 아니라 시 박물관에 보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리스 시장은 “난 노예무역상의 동상이 내가 태어나 자란 도시에 있는데 나와 나같은 사람에게 모욕적이지 않은 척할 수도, 할 생각도 없다. 이 동상이 도시 한복판에 있지 않길 원하는 브리스틀 사람들이 함께 뭉쳤고, 내 할 일은 단결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동상이 개인적 모욕이라고 느끼는 사람들끼리 진실을 함께 하도록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BBC가 보도한 동영상을 보면, 시민들은 바닥에 내팽개쳐진 동상 위로 올라가 짓밟았고, 일부 시민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진압으로 숨졌을 때처럼 동상의 목 부분을 한쪽 무릎으로 누르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시위대는 이 동상을 끌고 브리스틀 시내를 돌아다니다 항구 쪽으로 가져가 에이본 강물에 던져 버렸다. 브리스틀은 과거 영국 노예무역의 중심지였으며, 콜스턴은 17세기 노예무역상이었다.  1895년 세워진 콜스턴의 동상은 그동안 브리스틀 지역 정가와 시민사회에서 존치 여부를 두고 계속 논란이 됐다. 17세기 브리스틀의 ‘로열 아프리칸 컴퍼니’라는 무역회사의 임원이었던 콜스턴은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흑인 남녀와 아동 등 총 8만여명을 노예로 팔아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콜스턴은 1721년 죽기 전에 자신의 재산을 자선단체들에 기부했고, 브리스틀의 거리와 건물에는 그의 이름이 붙은 곳이 많다. 역사학자인 데이비드 올루소가 교수는 BBC 인터뷰를 통해 브리스틀 시가 진작에 콜스턴의 동상을 치웠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동상이라는 것은 ‘훌륭한 사람이고 위대한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데, 콜스턴은 노예무역상이었고 살인자였다”고 말했다.   프리티 파텔 내무부 장관은 동상을 끌어내린 것은 “완전 수치”라며 “무질서한 행동이며 사람들이 항의하던 대의로부터 주의를 딴 곳으로 흐트러뜨리는 일이다. 경찰이 뒤를 쫓는 것은 올바른 일이며 이렇게 무질서하게 법을 무시하는 행동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정의가 구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처음에는 사건 경위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가 리스 시장이 시위대를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에이번과 서머싯 경찰은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천명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경찰은 17명 정도가 동상을 끌어내리는 과정에 위법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섣불리 행동에 나섰다가 더 큰 반발을 사 시위 규모가 커질까봐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17세 34일’ 비르츠, 분데스 최연소 골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의 미드필더 플로리안 비르츠(17)가 데뷔 네 번째 경기 만에 분데스리가 역대 최연소 득점 기록을 갈아치웠다. 6일(현지시간) 독일 바이아레나에서 열린 바이에른 뮌헨과의 홈 경기에 출전한 비르츠는 팀이 1-4로 끌려가던 후반 44분 만회골을 터뜨렸다.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해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 투입된 비르츠는 페널티 지역 오른쪽에서 파울리뉴가 패스한 공을 왼발로 차 상대의 골망을 흔들었다. 2003년 5월 3일생으로 이날 만 17세 34일째였던 비르츠는 이로써 터키대표팀 미드필더인 누리 사힌(32)이 도르트문트 소속이던 2005년 11월 26일 뉘른베르크전에서 기록한 17세 82일의 종전 최연소 득점 기록을 48일 앞당겼다. 비르츠는 5월 18일 베르더 브레멘전에 출전, 17세 15일의 나이로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여기는 남미] 임신한 17세 소녀 살해해 태아 꺼낸 여성 체포

    [여기는 남미] 임신한 17세 소녀 살해해 태아 꺼낸 여성 체포

    임신한 10대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뒤 뱃속에서 태아를 꺼낸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 등 해외 언론의 5일 보도에 따르면 멕시코 칸타나로오주 관광도시인 플라야델카르멘 경찰은 현지 시간으로 지난달 30일, 살해된 채 비닐봉지에 방치된 한 여성의 시신을 발견했다. 조사 결과 피해자는 올해 17세 소녀로, 당시 임신 7개월 차였던 그녀는 인근 지역에 살던 후아니타라는 이름의 여성에게 초대를 받았다. 아무 의심 없이 그녀의 집으로 향했던 소녀는 뱃속 아이의 목숨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을 미쳐 피하지 못한 소녀는 결국 가해자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가해자는 돌을 이용해 소녀의 머리를 몇 차례 내리쳐 숨지게 한 뒤, 곧바로 미리 준비한 흉기를 이용해 피해 소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냈다. 가해자인 후아니타는 그 길로 태아를 안고 인근 병원으로 달려갔고, 자신이 아기의 어머니라고 거짓말을 하며 치료를 요구했다. 의료진은 당시 치명적인 상태에 있던 조산아를 신속하게 치료했지만, 동시에 아기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후아니타를 수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했다. 결국 후아니타는 경찰에 꼬리를 잡히고 말았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후아니타는 오랫동안 아기를 갖기 위해 노력했지만 불임이 이어지자, 남편 및 가족에게 버림 받을 것을 두려워 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당국은 이 여성을 살인혐의로 기소했으며,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최대 징역 50년 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프라하 올드타운 다시 굽어보는 성모 마리아, 4세기 굴곡진 역사

    프라하 올드타운 다시 굽어보는 성모 마리아, 4세기 굴곡진 역사

    체코 프라하의 올드타운 광장에 100년도 훨씬 전에 성난 군중들에 의해 파괴됐던 성모 마리아 상이 다시 지상으로부터 15m 높이의 기둥 위에 자리잡아 오가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을 굽어보고 있다. 17세기에 세워진 이 마리안 칼럼(기둥)은 30년 전쟁 막바지 포위 끝에 프라하를 해방시킨 기념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가톨릭의 지배를 상징해 미움을 사기도 했고, 프로테스탄트들의 보헤미아 봉기 실패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숱한 논란을 일으키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무너지고 체코슬라바키아 독립국이 선포된 며칠 뒤 군중들이 넘어뜨렸다. 조각 학자이며 복원가이며 마리안 칼럼 복원재단 회원인 얀 브라드나는 4일(현지시간) 영국BBC 인터뷰를 통해 “이 조각을 원했던 것은 프라하 시민들이었다!”며 “합스부르크 제국의 페르디난드 3세에게 기둥을 세우자고 로비를 한 사람도 그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이 도시 사람들은 스웨덴 군대를 불러들여 프라하 봉쇄를 풀어준 것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어 기둥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프라하 봉쇄는 1618년 보헤미아의 수도에서 시작돼 유럽 대부분을 망가뜨리고 유럽 인구 10명 중 한 명을 죽음으로 내몬 끔찍한 30년 전쟁의 막바지를 장식했다. 저유명한 베스트팔렌 조약이 전쟁 종식을 선언했다. 전쟁 와중에 쫓겨났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빠르게 지배력을 복원하고 싶었는데 마리안 칼럼은 이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헤미아와 그 너머로 퍼져나갔다.당연히 합스부르크 왕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1918년 이 칼럼과 마리아 상은 몇세기 이어진 지긋지긋한 가톨릭의 지배와 합스부르크의 통치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민족주의자들의 전복 대상이 됐다. 그 해 11월 3일 조각은 프란타 사우어가 이끄는 군중들에 의해 끌어내려져 파괴됐다. 사우어는 프라하 외곽 지즈코프의 노동계급들로부터 유명한 작가와 보헤미아 예술가로 대접받았던 인물이다. 사우어는 지즈코프의 펍(선술집)에서 조각에 채찍질을 한 뒤 올드타운 광장으로 질질 끌고 행진을 했다. 이번에 조각 복제품을 만든 페트르 바나는 “사우어는 일종의 가짜 뉴스를 퍼뜨린 것이었다. 실제로 사람들은 그 조각을 결코 미워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990년 출범한 마리안 칼럼 복원재단은 숱한 걸림돌과 끝없는 법적 다툼 끝에 이날 조각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았다. 체코 공화국은 북한을 제외하고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무신론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원 반대 목소리는 무신론자와 프로테스탄트 교회 지도자 양쪽으로부터 나왔다. 지지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광장에서 드잡이를 벌이는 일까지 있었다. 결국 프라하 시위원회가 중재해 오랜 논쟁을 불식하고 무사히 복원에 성공했다. 재미있는 것은 사우어 스스로 죽기 직전에 임종 미사를 집전한 가톨릭 신부에게 참회하며 용서를 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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