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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 닥종이

    1966년 10월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했을 때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일어났다.제2층 탑신부에 봉안한 사리외함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된 것이다.이 다리니경은 일본의‘백만탑다라니’(770년경 간행)를 누르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인정받았다.당나라의 측천무후 집권 당시(690∼705년) 일시 만들어 쓴 무주제자(武周制字) 네 글자가 사용된데다 석가탑을 세운 해가 751년이어서,제작연도가 그 사이로 추정됐기 때문이다.두루말이 형태의 다라니경은 총 길이 641.9㎝ 가운데 앞부분 250㎝만 습기와 산화작용 탓에 부스러지고 조각났을뿐 뒷부분은 완벽한 상태였다.1,200년의 세월을 겪고도 온전한 그 종이의 질에 세상은 또 한번감탄했다. 다라니경에 사용한 종이가 신라의 닥종이다.종이는 서기전 40∼50년에 중국에서 발명돼 105년경 후한의 채윤이 획기적으로 품질을 개선했다고 한다.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종이를 썼는지 정확한 기록이남아 있지 않지만,일부 학자들은 백제의 아직기와 왕인박사가 일본에전적을 전했다는 284년 무렵으로 본다.610년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일본에 종이제조 기술을 전했다는 기록도 사서에 남아 있으니 늦어도그 이전에 이미 우리 조상들이 종이를 만들어 썼음이 분명하다. 신라 닥종이에 관해선 더욱 확실한 기록이 있다.755년 제작한 ‘대방광불화엄경’(호암미술관 소장)에는 “닥나무에 향수를 뿌려가며길러 껍질을 벗긴 다음 맷돌에 갈아 종이를 만든다”는 구체적인 방법이 적혀 있다.이렇게 만든 종이는 희고 질겨서 ‘백추지’라 불렸고 중국·일본에서도 천하제일로 인정했다.그 전통은 이어져 고려시대에는 원나라에서 한번에 10만장씩 수입해 가기도 했고,17세기 중국의 기술서적 ‘천공개물’에서는 “조선 백추지를 어떻게 만드는지모르겠다”고 표현했다.그만큼 품질이 뛰어났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있다. 조선 이후 한지(韓紙)로 불려온 닥종이의 전통을 기리는 ‘원주 한지문화제 2000’이 9월 1∼6일 원주시내 곳곳에서 열린다.올해로 2회를 맞은 국내 유일의 이 한지축제에서는 ‘한지 패션쇼’ ‘세계 전통종이전’ ‘일본화지(和紙)작가 초대전’ ‘닥종이 인형 등 한지공예품 만들기’ 같은 다양한 행사를 벌인다고 한다.원주는 신라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지생산의 중심지였던 자랑스런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가 세계를 향해 ‘유구한 문화민족’임을 내세우는 근거는 인쇄문화가 어느 곳보다 일찍 발달했고 그에 따라 생산된 많은 서책이 우리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해주었기 때문이다.그 바탕이 되는 우리의종이,한지의 축제에 참여해 전통문화의 뛰어남을 스스로 배우고 자랑해보자. 이용원 논설위원 ywyi@
  • [이용원칼럼] 독도는 외롭다

    나는 독도다.“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00리/외로운 섬하나 새들의 고향”으로 시작하는 노래,‘독도는 우리 땅’의 주인공인 바로 그 독도다.내 이름이 비록 ‘홀로 있는 섬(獨島)’이고 개그맨 정광태도 나를 ‘외로운 섬’이라 노래했지만,불과 몇해 전까지만 해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언제나한마음으로 사랑해 주는 나의 주인,한국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렇지만 요즘 나는 외롭고도 두렵다. 옛날 한때 내 이름은 자산도(子山島)였다.어머니인 울릉도의 아들이란 뜻이다.나는 신라 지증왕 13년(서기512)한민족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어머니 땅에 있던 우산국(于山國)이 이사부 장군에게 정벌당한 뒤 우리 모자는 한국인들과 운명을 같이했다.내 존재는 일찍이 ‘고려사’에도 언급되었고 조선시대에는 더욱 확실하게 인식되었다. 17세기 말 어머니 울릉도의 영유권을 놓고 일본과 처음 분쟁이 일어났다.당시 동래 사람 안용복이 함부로 내 해역에 들어온 일본 어선을 끝까지 쫓아가일본관리에게서 처벌을 약속받은 일은,지금 생각해도 마냥 통쾌하기만하다. 일본인들이 1905년 2월 내 이름을 멋대로 ‘다케시마(竹島)’로 바꿔 저희호적에 올린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이어 내 주인이 나라를 잃고 창씨개명을강요당해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일본인들은 조만간 패망할 것이요,그리 되면 나는 빼앗긴 이름을 되찾고 옛주인을 반갑게 맞으리라’고 자신했기때문이다. 해방이 되고도 일본인들이 나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는 말을 들으면 “참으로 어리석고 욕심 많은 사람들”이라며 혼자 웃었다. 그런 망언이 나올때마다 다같이 분노하고 규탄하는 내 주인들을 보면서 마음이 든든했다. 그러나 상황은 어느 때부터인가 바뀌었다.‘국민가요’로 사랑받던 ‘독도는 우리 땅’이 지난 84년부터 한동안 방송에서 사라지자 “일본의 항의에정부가 굴복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그럴싸하게 돌았다. 96년에는 이 노래가 가을 학기부터 초등학교 4학년 ‘사회과 탐구’ 교과서에 실리기로 했다가 취소됐다.모두의 사랑을 받는 ‘국민가요’가 이처럼 구박 받는 걸 보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제목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정부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더욱 실망을 준다.‘한·일어업 협정’에서 ‘중간수역’에 포함된 것만도 억울한데,국회답변에 나선 당국자는 나를“‘배타적경제수역(EEZ)’을 가지지 않는 암석”쯤으로 여기는 발언마저 했다. 정부 정책은, 현재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니 대외적으로 분쟁지역이라는 인식을 주지 않는 데 역점을 둔다고 한다.그러나 싸움에는 상대방이 있는 법.일본이 저처럼 악착같이 소유권을 주장하는데 이쪽은 피하려고만 하면남들은 점차 저들이 옳다고 여길 것이다.96년 홍콩의 경제주간지가 아시아기업인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을 때 나를 한국땅으로 본 이는 절반 가량이었다고 한다.4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나에게 바깥소식을 전해주는 바람은 “요즘 너와 관련한 괴담이 들끓고 있어”라고 귀띔한다.‘석유 매장설’‘일본의 침략 시나리오’‘정부 약점설’ 등 듣느니 모두 민망한 내용뿐이다.오죽하면 인터넷 사이트 곳곳에 ‘독도가 한국땅이 아닌 13가지 이유’식의 글이올라 국민을 분노케 하겠느냐고바람은 걱정했다. 며칠 뒤면 광복절이다.그날 한나라당 국회의원 21명이 나를 찾아온다고 한다.국회의원이니 장관,그밖에 사회 저명인사들의 얼굴을 보는 게 얼마만인가? 가만 생각해 보면 지난 3년여 내 등에서 진행된 공식행사는 하나도 없었다.나를 사랑하는 보통사람들은 허가를 받지 못해,지도층 인사는 관심이 없어안 찾는 모양이다.나는 아직도 한국땅인가? 요즘 나는 외롭고도 두렵다. 이용원 논설위원ywyi@
  • [끊이지 않는 지구촌 분쟁](8.끝)체첸 사태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위치한 북카프카스 지역이 21세기 지구촌의 화약고로 떠올랐다.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체첸군의 무력항쟁이 계속되고있고,매장량이 엄청난 카스피해 유전과 송유관을 둘러싼 연안국들의 힘겨루기와 크고 작은 민족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체첸과 지난 10년동안 두차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러시아군은병력수 및 화력면에서 월등한 우세에도 불구하고 1차 전쟁에서 패배한데 이어 11개월째에 접어든 2차 전쟁에서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체첸전은 특히 러시아와 체첸간의 독립전쟁 이상의 성격을 띤다.슬라브정교의러시아에 맞서 체첸 지역에 이슬람공화국을 수립하기 위한 성전(聖戰)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분쟁의 뿌리] 이슬람교도인 체첸인들의 대(對)러시아 독립투쟁 역사는 140년 가까이 된다.17세기부터 19세기까지는 페르시아제국과 오토만제국간 영토쟁탈전에,18∼19세기에는 제정러시아의 남진정책에 시달렸지만 지금까지 러시아의 통치를 거부하며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서슬퍼런 스탈린 정권때에도폭동을 일으켰을 만큼 반러 감정은 뿌리깊다. 1991년 옛소련이 해체되면서 이 지역의 그루지야와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이 독립했고 체첸도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하지만 러시아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체첸에는 질좋은 유전과 카스피해 유전과 유럽을 잇는 송유관이 지나고 있다는 경제적 이유와 인근 공화국으로 독립 움직임이 확산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1·2차 전쟁] 러시아군이 94년 전격적으로 체첸을 침공함으로써 1차 전쟁이발발했다. 러시아군은 체첸군의 끈질긴 저항에 밀려 2년1개월만에 철수,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지난해 8월 강경파인 샤밀 바사예프가 이끄는 체첸군이 이슬람공화국을 세우겠다며 인근 다게스탄공화국을 침공,이를 저지하기 위해 러시아군이 체첸을 침략하면서 4년만에 2차전쟁이 시작됐다.러시아군은 정규군과 국경경비대등 15만명의 병력과 막강한 화력을 투입,전면전을 감행했다. 올 2월1일 수도그로즈니를 점령했고 2월6일 ‘전쟁 종료’를 선언했다. 하지만 남부 산악지대로 밀려난 체첸군은 게릴라전으로 버티고 있다. 최근에는 자살폭탄공격을감행,러시아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전망]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 국민들 사이에 체첸전은 제2의 베트남또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비춰지고 있다.군사적으로 승리할 수 없을 바에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점차 힘을 받고 있다. 체첸전을 주도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국민과 군부의 지지를 얻어 집권했지만 지금은 계속되는 전쟁과 군부의 지나친 기대가 오히려 짐이 되고있다.매달 1억달러의 전비가 들고 8개월동안 2,000여명의 러시아 연방군 전사자를 낸 전쟁을 마냥 끌고만 갈수도 없다. 현재 러시아 정부와 체첸 임시정부간에는 종전협상이 진행중이다.하지만 러시아는 체첸이 항복하는 것만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체첸군은 마지막 한명까지 항쟁을 계속한다는 입장이어서협상전망은 밝지 않다. 김균미기자 kmkim@. *용맹하고 난폭한 체첸인들. 세계적 장수촌으로 유명한 카프카스 지역에는 80여개 소수민족이 모여살고있다.이중 러시아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치르고 있는 체첸인들은 용맹하고 난폭하기로 유명하다. 체첸자치공화국은 우리나라 경상북도 정도 크기에 인구는 고작 120만명에불과하다.영토의 대부분이 산악지대로 덮여있어 목축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사내아이들은 10세가 넘으면 아버지가 총과 칼을 주고 생존능력을 키워줄 정도라고 한다. 체첸인들의 반러 감정은 수백년동안 러시아와 터키 등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에 맞서 싸우면서 단련됐다.이들은 40년대와 70년대에도 옛소련 정권을 상대로 항쟁했고 스탈린은 이들을 아예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다.이슬람교도인 체첸인들은 슬라브정교를 믿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지하드(성전)로 생각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들의 저항은 실로 처절하기까지 하다.전쟁전 6.7%이던 출산율이 현재 7.4%로 높아졌다.14∼16세 소녀들의 조혼은 물론 일부다처제를 적극 권장하고있다.다산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자금원 역할을 했던 유전과 정유시설 대부분이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거의파괴됐다.따라서 체첸전을 성전으로 여기고 있는 전세계의 이슬람단체들은체첸에 무기구입과 용병고용을 위한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체첸은 연간 260만t의 원유 생산지이며 주요 정유시설의 소재지이다.체첸지역의 원유는 1932년 한때 러시아 전체 생산량의 10%이상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비중이 떨어졌다. 김균미기자. *체첸분쟁 일지. ●1944 스탈린,체첸인들 친나치세력으로 몰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1957 후루시초프,체첸인들 귀향 허용●1991.10 옛 소련 공군장군 출신 조하르 두다예프 체첸대통령에 당선●1991.11 체첸-잉구시공화국,러시아로부터 독립선언●1993.10 체첸,반정부군과의 내전 발발●1994.11 옐친,체첸 반군에 휴전 촉구●1994.12 러시아군,체첸 공격으로 1차 체첸전쟁 발발●1997.1 반군 지도자 아슬란 마스하도프 대통령에 당선●1997.5 러시아-체첸 평화협정 체결●1999.8 체첸반군,다게스탄 국경 침범해 이슬람공화국 선언●1999.9.30 러시아군,체첸 재침략으로 2차 전쟁 발발●1999.12.25 러시아군,수도 그로즈니전면 공격●2000.2 러시아군,그로즈니 장악.‘전쟁 종료’ 선언●2000.7 체첸반군,자살테러 감행.현재 종전협상 진행중
  • 피서철 동반 ‘美의 마술사들’

    TV 예술프로그램은 무용 오페라 뮤지컬 등 음악적 요소가 강한 장르를 주로 다룬다.미술도 분명 예술이긴 하지만 네모난 TV화면에 네모난 그림을 담는것은 생동감이 없어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이에 따라 작품의 생산자인 화가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었다. 무더위에 시달리는 8월을 맞아 방송사들이 유명 화가들의 생애와 작품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준비했다.색다른 피서법이다. 케이블TV인 예술영화TV(채널 37)는 2일과 5일 피카소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세편 내보낸다.피카소가 아직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까닭은 히틀러의 스페인 침공을 다룬 ‘게르니카’,한국전쟁을 표현한 ‘한국에서의학살’ 등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생명의 존엄성을 끈질기게 추구했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삶과 예술을 분석하는 방법론 중 그의 여인과 작품을 연관짓는 방식이 가장 흥미롭다.피카소의 친구들이 “당신은 술탄이 되어 하렘을 거느려야 할 사람”이라고 놀려댔을 정도다.‘피카소와 여덟 여인들’(2일 밤10시)에서는 피카소가 사랑한 여인들이 그의 작품에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피카소와 댄스’(5일 오후4시)에서는 피카소가 극작가 장 콕도,음악가 에릭 사티,안무가 마신느와 함께 만든 전위적 발레 ‘행진’을 위해 그린 그림들이 자세히 소개된다.괴상한 모자와 짧은 치마를 입은 발레리나들이 무대위에서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행진’은 당시 낭만적 발레에 익숙했던 파리사람들을 기절초풍하게 만들었다.‘피카소와 게르니카’(5일 오후7시)에서는 20세기 최고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게르니카의 상징과 제작배경 등을 알아본다. EBS ‘미의 세계’(금 오후8시)는 4일부터 6부작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화가들’을 방송한다.영국의 미술 프로그램 전문 제작사인 크롬웰사가 만든 시리즈 중 하나로 보쉬 브뤼겔 렘브란트 베르메르 루벤스 반다이크 등 화가 6명을 다룬다.이들이 활약한 15∼17세기는 서양 미술사상 황금기로 불리며 특히 루벤스와 렘브란트는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거장들이다. ‘미의 세계’에서는 화가들의 생애와 시대,작품을 연대순으로 보여준다.각 화가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건이 일어난 곳을 직접 찾아가 당시 사건을 재현하고 작품에 숨겨진 상징들을 찾아낸다. 전경하기자 lark3@
  • ‘수학의 역사’

    올해는 세계 수학의 해로 국내에서 어느 때보다 많은 수학관련 교양서적이출판되었다.그 중에서 20년을 한결같이 수학도서를 출판해온 도서출판 경문사의 2권짜리 수학의 역사는 발군의 역작이다.미국의 수학사학자들인 칼 보이어와 유타 메르츠바흐가 쓴 이 책은 상·하 통틀어 1,081쪽의 방대한 분량.지난 68년도의 초판본에서 저자 보이어 교수는 독자의 수학적 지식을 대학3,4학년으로 전제하면서도 그 이하 수준의 사람들도 이 책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이 말은 결코 빈 말이 아니다.단 수준에 앞서 수학에 대한 인문학적인 관심은 필수조건이다. 수학을 잘하든 못하든,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수학적 사고를 하든 하지 않든 “인류와 관련된 것 가운데 어느 것도 수학만큼 휼륭한 것은 없다.수학에서,오직 그것에서만,우리는 인간 지성의 꼭대기에 도달하게 된다”는 아이작아시모프의 머리말에 많은 사람들은 수긍할 것이다.이 책은 연대별로 수학의 전반적인 발전과정을 서술하는 편년체이면서도 수학의 특정 개념이나 원리의 발전 추이를 살필 수 있게 했다. 이 책은 크게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실용적 수학에서 연역 수학을 꽃피운그리스 시대까지,중세 암흑기와 르네상스를 거쳐 수학적 기호를 발명함으로써 근대 수학의 막을 연 비에트의 16세기까지,그리고 해석 기하와 미적분의발명을 통해 수학의 찬란한 영광을 들어낸 17세기 이후 20세기까지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앞 두 부분이 상권을 차지한다. 독자는 수학이 지극히 인간적인 학문임을 느낄 수 있게 된다.위대한 천재조차 보통 사람들과 같은 숱한 오류를 범해온 것이다.그 실수에서도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김재영기자 kjykjy@
  • [끊이지 않는 지구촌 분쟁] ( 7)북아일랜드 신·구교도 갈등

    21세기를 불과 20일 앞둔 지난해 12월12일 세계는 북아일랜드를 주목했다. 북아일랜드에 신·구교도를 망라하는 자치정부가 들어선 이날 400여년간 지속됐던 신·구교간 갈등이 끝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새천년의 희망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2월 구교도계 아일랜드공화군(IRA)의 폭탄테러와 최근 신교도의 전통적 행사인 ‘드럼크리 행진’으로 신·구교가 충돌,북아일랜드 평화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분쟁 배경 16세기 영국의 헨리 8세가 구교를 믿는 아일랜드를 침략,아일랜드인의 토지를 몰수하고 신교로의 개종을 강요하면서 분쟁이 시작됐다.구교도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영국은 17세기 초 북아일랜드에 신교도를 대거 이주시켜 신교도를 믿는 영국인이 주민의 다수를 차지하게 됐다.게다가 영국은구교도와 신교도 사이의 차별화 정책을 펴 대부분의 구교도들은 소작농으로전락하고 참정권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1801년 영국은 아일랜드를 합병했다. 1905년 구교도를 대변하는 신페인당이 탄생하고 1919년 IRA가 창설되면서구교도들은테러를 동반한 독립운동을 조직화했다. ◆북아일랜드 분리독립 운동 1차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남부 아일랜드는 더블린에서 발생한 무장봉기를 비롯,저항을 계속한 끝에 1922년 영국으로부터독립하게 된다.그러나 얼스터지방 등 북아일랜드 6개주는 여전히 영국의 지배 아래 남아 분쟁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즉 북아일랜드에 거주하는 구교도는 북아일랜드가 독립국인 아일랜드에 편입되기를 원했고,신교도는 영국의지배하에 계속 놓이거나 영국으로 합병되기를 원했던 것.이때부터 신·구교간은 북아일랜드 지위를 놓고 끊임없는 대립을 하게 된다. 69년에 발생한 폭동 등 영국을 상대로 한 구교도의 테러가 계속되자 영국은72년 북아일랜드를 직접통치로 강화했다.그후에도 구교도는 영국과 영국을지지하는 신교도를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최근까지 3,200여명이 사망했다. ◆일시적 평화 97년 7월20일 IRA는 휴전을 선언,북아일랜드에 서광이 비치기시작했다. 그해 10월13일에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게리 애덤스 신페인당 당수가 만나 평화정착의 발판을 마련했다. 98년 4월 신·구교도는 극적으로 ‘굿 프라이데이’ 평화협정을 체결했고협상의 주역이었던 북아일랜드 존 흄 사회민주노동당(SDLP) 당수와 데이비드트림블 얼스터 통일당(UUP) 당수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그리고 지난해 12월12일에 드디어 초당적인 북아일랜드 자치정부가 구성됐다. 그러나 두달도 채 안된 지난 2월6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교외의 한 호텔에서 IRA의 소행으로 보이는 폭발사건이 또 발생했고 영국은 이를 이유로 북아일랜드의 자치권을 박탈했다. ◆향후 전망 북아일랜드 신·구교도는 물론 영국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피의 역사를 종식시키려는 의지가 어느때보다 높다.영국이 지난 2월 북아일랜드 자치권을 박탈했다가 3개월여만인 5월30일 자치권을 이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지난 5일 드럼크리 행진에서의 충돌로 영국 보안군이 2년만에 다시배치되기도 했지만 북아일랜드 자치정부는 신교파의 대표적인 테러리스트 마이클 스톤을 석방하는 등 평화정착에 대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북아일랜드 분쟁일지. ◆1600∼1700년 신교도 북아일랜드에 이주◆1801년 아일랜드,영국의 속국으로 전락◆1905년 신페인당 결성◆1919년 아일랜드공화군(IRA) 창설◆1922년 아일랜드 영국으로부터 독립◆1997년 7월20일 IRA 휴전 선언◆1997년 12월13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게리 애덤스 신페인당 당수 회동◆1998년 4월 ‘굿 프라이데이’ 평화협정 체결◆1999년 12월12일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수립◆2000년 2월6일 벨파스트에서 IRA의 소행으로 보이는 폭탄테러 발생◆〃 5월30일 영국,북아일랜드에 자치권 이양◆〃 7월5일 신교도의 전통행사인 드럼크리 행진으로 신·구교도 충돌 *신페인당 당수 게리 애덤스. 게리 애덤스 신페인당 당수(52)는 아일랜드공화군(IRA)의 전사로 혁명적 노선을 걷던 인물.69년 불법 무장투쟁단체인 IRA에 투신,강경파로 알려진 IRA벨파스트연대의 핵심인물로 활동하면서 투옥과 암살 위협에 굴하지 않고 무력투쟁을 벌여 ‘1급 위험인물’로 지목되면서 수차례 투옥되기도 했다.그가합법적 정치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화파’로 변모한 것은 83년 신 페인당의 당수로 취임하면서부터.평화 이외는 대안이 없다는 그의 주장이 북아일랜드 신·구교도에 받아들여지면서 97년 총선에서 신페인당을 북아일랜드 3위 정당으로 끌어올리며 3선 의원이 됐다. 94년 앨버트 레이놀즈 아일랜드 총리,97년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의 회담을 통해 북아일랜드 분쟁을 테러에서 대화로 바꾸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평화를 위해 IRA의 무장해제도 가능하다는 입장 때문에 구교도 강경파로부터 심한 반발을 샀다.최근 IRA 무기의 사용권을 외부에 둔다는 절충안으로 한발 물러섰지만 북아일랜드의 평화정착에는 필수적 인물로 꼽힌다. [강충식기자] *아일랜드 공화국(IRA). 영국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탄테러로 악명이 높은 구교도계 아일랜드공화군(IRA)은 아일랜드의 완전한 독립을 목적으로 1919년에 탄생했다.‘우리 스스로’란 뜻으로 1905년 조직된 신페인당이 IRA의 정치적 대변자 역할을 맡고있다.1940년대 이후 북아일랜드에서 구교도에 대한 유화정책으로 세력이 크게 위축됐던IRA는 1960년대 말 구교도들의 공민권 운동을 계기로 신·구교도간 갈등이 첨예화되면서 다시 세력을 확장했다.게다가 1970년 영국군이 구교도들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북아일랜드에 진주하자,IRA는 무장 투쟁을본격화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IRA는 리비아로부터 밀수한 수십t의 플라스틱 폭탄을 앞세워 폭탄테러를 자행하고 있다.테러는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는 최선의 수단으로,무장은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무기 구매는 해외거주 아일랜드 출신 주요 인사와 자체 모금을 통해 이뤄진다. 다시 말해 무기는 아일랜드 동포들의 피와 땀인 셈이다.때문에 무기는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는 신성한 재산으로 여겨지고 있다.IRA가 여러차례 무장해제하고 무기사찰을 받겠다고 밝혔지만 이행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신간 맛보기

    ◆빛의 도시(야콥 단코나 지음,오성환·이민아 옮김) 이탈리아에 살던 유대인 학자이자 상인이었던 지은이가 1270∼73년 극동지방을 방문하고 여행과정의 체험을 상세히 기록한 책.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보다 몇년 더 앞서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아드리아해의 도시 안코나를 출발해 시리아,페르시아만,인도양을 거쳐 지은이가 처음 밟은 중국땅은 남부의 ‘빛의 도시’짜이툰(刺桐).서양지식인의 눈에 비친 중세 중국사회와 풍속이 여행수첩속에 상세히 기록됐다.몽골 정복군의 공습이 임박했던 짜이툰의 상황묘사는 충격적일만큼 생생하다.까치 1만9,000원◆감옥에서 나와보니(최선웅 지음,아침 펴냄) 사회민주주의 통일청년연합 대표로 평양을 방문,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20여년의 투옥생활을 하는 등 통일운동에 젊음을 바친 최선웅씨(58)의 자서전.책머리에서 “민초들의 고통과애환에 울고 웃는 문학이 아니라면 값어치가 없다”고 밝힌 지은이답게 개인사적 기록에만 급급해하지는 않았다.전대협 백산기념사업회 등 역사적 주역들과 사건들까지 자연스럽게 상기시킨다.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정책실장,조국의 평화통일을 이루려는 사람들의 모임 대표 등을 지낸 최씨는 ‘바람보다 빨리 눕는 풀’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등의 전작이 있다. 7,000원◆자유의 미학(서병훈 지음,나남 펴냄) 가치 허무주의에 빠져있는 현대 자유주의의 모순을 정면으로 비판한 책.벌린,포퍼,로티,롤즈 등 현대 자유주의자들의 불가지론적 철학은 물신주의와 쾌락주의를 방조하는 위험성이 있다고지적한다. 그 과정에서 플라톤이나 존 스튜어트 밀의 철학이 자연스럽게 대비된다.예컨대 자기방식대로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 최선이라 정의한 밀의 자유론은 ‘자기발전’이란 중심가치를 견지하고 있어 현대 자유주의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 욕망을 자유와 개성의 이름으로 덮어놓고 옹호하려는 현 세태를 꼬집는 책은,어느 시대나 인간이 고민해야 할 가치는 엄존함을 역설한다.1만4,000원◆‘모나리자’는 원래 목욕탕에 걸려 있었다(니콜라스 포웰 지음,강주헌 옮김)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17세기 내내 파리 부근퐁텐블로 프랑수아 1세의 욕실에 걸려 있었다.1919년에 한 무뢰한은 모나리자의 얼굴에콧수염과 턱수염을 그려넣기도 했다. 세계 유명 미술품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는 한 편의 추리소설 같다.이 책에는 ‘모나리자’의 파란만장한 행로를 비롯,‘엘체 부인상’에 얽힌 믿어지지않는 이야기,이적을 행한 라파엘의 작품들이 겪은 부침,중국의 미술품들이타이완으로 옮겨지는 과정의 엑소더스 등 미술품들에 얽힌 기막힌 사연들이담겼다.동아일보사 8,500원.
  • [외언내언] 룸살롱

    프랑스어의 객실이나 응접실을 일컷는 살롱(salon)은 복수로 표시하면 사교계를,대문자로 시작하면 미술전람회나 전시회를 의미한다.이는 17세기초 앙리 4세가 종교전쟁으로 거칠어진 귀족들의 기질을 우아한 여성과의 사교를통해 누구러뜨리기 위해 궁정안에 처음으로 살롱을 마련했던 데서 비롯된다. 그후 귀족부인들은 자기집 객실에 살롱을 열어 문화계 명사들을 식사에 초대,문학이나 도덕에 관해 자유로운 토론을 벌여 중세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당시 살롱에 초대된 사람들은 사랑·정념·명예·도덕·야심등 인간 본성에 관한 문제들을 즐겨 화제로 삼았으며 라퐁텐의 ‘우화시’나 레스의 ‘회상록’등 고전주의 문학발전에 기여했다.그후 신흥 부르주아계층 부인들도 살롱을 열었으며 남성이 개최하는 경우도 생겼다.살롱을 통해 가꾸어진 대화와 사상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프루스트 등의 살롱문학을 낳는 계기가 되었다. 살롱은 문인뿐만아니라 미술가들이 작품을 공개,감상하고 비평하는 역할까지해 여러 작가들이 출품하는 정기 미술전람회를 가리킨다.‘살롱 데젱테팡당’등 프랑스 미술전시회 명칭이 ‘살롱∼’으로 불리는 것은 이같은 연유에서 이다.살롱이 고급스럽고 우아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애초 귀족부인을 중심으로 살롱문화가 발전해 온데다 여기서 예술가들의 작품이 발표되는 고급사교장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리라. 원래 폐쇄된 회원들의 모임인 ‘살롱’이 우리나라에서 방(房)을 의미하는영어 단어와 어울려 전혀 다른 개념인 ‘룸살롱’으로 진화한 것은 돌연변이현상이다.최고급 술집의 대명사로 불리는 룸살롱은 대리석바닥과 카펫등 기죽이는 최고급시설에다 수입양주와 접대부서비스로 두세사람 정도의 술값이서민 한달치 월급보다 많기 일쑤라고 한다.룸살롱이 과소비 장본인으로 지목받는 것도 이때문이다. 최근 룸살롱이 한달 1,000여곳씩 늘고 있다고 한다.올들어 지난 5월말까지5,204개의 룸살롱이 새로 사업자 등록을 마쳐 지난 해보다 4배 이상 늘었고위스키판매량은 220만상자로 69%나 급증,세계 최고수준의 증가율을 기록했다고 한다.국제통화기금(IMF)위기가 완전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급 술집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흥청망청대는 과소비풍조가 되살아 난다는 집계이다. 이같은 경향은 경기가 다소 회복되자 돈있는 사람들이 춤추며 노래하고 접대부와 어울릴 수 있는 룸살롱으로 몰려 유흥업소의 대종을 이루던 단란주점들이 룸살롱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란다.살롱 원조인 프랑스에도 없는 룸살롱이 우리나라에서 전성기를 맞고 있는 것은 이상증세이다.우리사회에 소비목적만의 복수 표시 룸살롱만 존재하는 것은 일부 고소득층의 불건전한 과소비가 부추긴 병폐라고 하겠다. 李基伯 논설위원kbl@
  • 러시아 ‘천년의 예술’ 정수 한눈에

    러시아 역사와 문화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국내 최대 규모의 러시아 유물전이 열린다.화제의 전시는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KBS,롯데와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통신사가 공동주최하는 ‘러시아,천년의 삶과 예술’전. 한·러 수교 1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는 지난해 러시아를 방문한김대중 대통령에게 이타르타스 통신사측이 한국전을 제의해 이뤄졌다.미술작품을 비롯한 문화예술품 550여점이 선보인다.7월8일부터 9월30일까지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울전에 이어 광주(10월16일∼11월29일,국립광주박물관),대구(12월15일∼2001년 1월28일,국립대구박물관),부산(2001년 2월13일∼3월31일,부산시립미술관)에서 순회 전시된다.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은 에르미타쥬 국립박물관·트레차코프 국립미술관 등러시아 26개 미술관 및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것들로, 그중엔 국보급도 적지않다.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러시아 성상화(聖像畵,icon)와 로마노프왕조의유물.비잔틴 미술에 뿌리를 둔 성상화는 러시아가 세계미술사에 남긴 가장큰 업적 가운데 하나다.그러나 성상화는 19세기까지만 해도 동방정교를 신봉하는 나라에서조차 주목받지 못했다.성상화가 미술사적인 연구대상이 되고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다.마티스·칸딘스키·야블렌스키·샤갈·루오 등 많은 미술가들이 성상화로부터 자극받았다.이번 전시에는 ‘카잔의 성모’‘‘성모 우밀례니예’ 등 성상화가 출품된다.“러시아 이콘화야말로 진정으로 참된 민족미술”이라고 찬탄한 화가 마티스의 말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볼 수 있는 기회다. 러시아 역사는 황실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척박했던 민중의 삶과는 달리 황실은 중앙집권체제 속에서 유럽 어느 나라보다도 화려하고 우아한 문화를 일궈냈다.특히 17세기부터 러시아혁명기까지러시아를 통치해온 로마노프왕조(1613∼1917)의 유물은 러시아 황실의 영광을 그대로 보여준다.러시아 제국시대의 훈장인 성 안드레이 성상 훈장,러시아 황제의 옥좌와 보석류,은덮개 복음서 등 200점에 이르는 물품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20세기 러시아 아방가르드 회화도 비중있게 소개된다.아방가르드의 경향은 1912년 샤갈,말레비치,타틀린 등에게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혁명의 예술,예술의 혁명’을 주창한 아방가르드 운동은 10월혁명 이후 “거리는 우리들의 붓,광장은 우리들의 팔레트”라고 부르짖던 시인 마야코프스키에 의해 열기를 더해갔다.포스터는 물론 차체나 선박에 그림을 그려 넣은 선동열차,선동기선 등도 미술의 중요한 무대가 됐다.이번에 선보이는 아방가르드 작가의 작품으로는 말레비치의 ‘추수하는 여자’‘사모바르’‘블랙 스퀘어’,포포바의 ‘회화의 건축술’‘봄’ 등이 있다. 전시에서는 이밖에 19세기 후반 제물포항에 기항했던 러시아 함정 모형과 한·러 근대기 외교문서,베베르 공사의 조선(한국)정세보고서 등도 공개된다. 입장료는 성인 8,000원,중·고생 6,000원,초등생 4,00원.(02)759-7550. 김종면기자
  • [김삼웅 칼럼] 통합민족사 첫걸음될 정상회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오늘 (13일) 김대중대통령이 평양 방문길에오른다. 남북이 갈라진 지 55년만에 꿈같은 일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반세기가 넘는적대와 반목을 씻고 화해와 협력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치와 전략적 가치 때문에 외부세력의 지배권 경쟁이끊이지 않았다. 마치 유럽의 폴란드나 벨기에처럼 주변세력의 판도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되었다. 동북아시아 십자로의 중앙에 위치한 이유로 중·일·러 등 인접세력은 물론 그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미국·영국 등 역외(域外)세력들까지 전략적 요충으로 넘봤다. 외적의 한반도 침략은 오래고 줄기찼다. 기원전 2세기 중국 한나라의 고조선침략을 시발로 기원 7세기 수·당의 백제·고구려 침입,10세기 말과 11세기 거란족의 침입,13∼14세기 몽고족 침입,16세기 말 일본 침입,17세기 만주족 침입,19세기 말 일제 침입으로 이어졌다. 그때마다 끈질긴 민초들이 외적을 물리치면서 국권을 지켜냈다. 그러나 한말 일제침략으로 망국을 가져오고 해방후 미·소의 분할점령으로시작된 분단사가 오늘에 이른다. 주변 강대국들은 침략과 함께 분할책략도 서슴지 않았다. 단독지배가 어려울 때는 분할을 획책했다. 최초의 분단시도는 임진왜란을 도발한 도요토미히데요시다. 일본은 1594년 강화조건으로 명나라에 조선8도 분할론을 제기했다. 경상·전라·충청·경기도를 일본이 차지하고,서울·강원·황해·평안·함경도를조선에 반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후 일본은 한번도 침략과 분할점령의야욕을 접지 않았다. 청·일전쟁 직전 영국정부는 전쟁발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한반도 남부를일본이,북부를 청국이 지배하는 조선양분론을 주장했다. 이 제안은 양국이모두 거부하여 무산됐다. 한반도는 태평양전쟁 말기 하마터면 네쪽이 날 뻔했다. 미국 합참본부는 ‘JWPC 358-1’이란 한반도와 일본문제 기밀보고서에서 미·영·소·중의 한반도 공동점령을 시도했다. 미국은 서울·인천·부산,소련은 청진·나진·원산,영국은 군산·제주,중국은 평양을 각각 점령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전략은미국의 원폭투하로 일본이 예상보다 빨리 투항함으로써 작전계획이 대폭 수정되고 결국 미·소의 한반도 분할점령으로 마무리되었다. 주변 강국들은 한반도를 지배하거나 단독지배가 어려울땐 분할점령,그도 안되면 중립화를 제기했다. 1882년 일·청이 조선에서 패권장악을 경쟁할 때일본이 미·영·불·독 4개국 협정을 통한 한반도 중립화를 제기한 것이나,일본이 청국과 전쟁(청·일전쟁)을 하면서 조선중립화를 제의한 것은 모두전통적인 한·청관계를 끊고 자신들의 지배권을 강화하려는 속셈이었다. 한반도에 대한 주변 강국들의 이해관계가 치열하여 일본은 한반도를 ‘일본의 심장부를 노리는 비수’로,중국은 ‘중국의 머리를 치려는 망치’로,러시아는 ‘자국의 팽창에 분리될 수 없는 행동반경’으로,미국은 ‘극동의 전진기지’로 인식하면서 지배와 분할 또는 영향력 극대화를 노렸다. 이렇게 한민족의 운명은 토착세력보다 외부세력에 의해 형성되고 우리는 그 세력판도에서 ‘운명적’으로 살아왔다.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 확대하고자 주변 4강의 각축이 치열해지고 있다. 4강을 과거식의 침략주의·분할세력으로 도식화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또한 시대와 국제정세도 크게 바뀌었다. 문제는 우리민족의 주체적 역량이다. 1,300년이 넘는 통일민족국가로서 전통과 역사적 공동체의식에서 분단을 극복하려는 주체의식이 절실하다. 해방공간에서 이념싸움과 정파대결로 통일정부 수립의 기회를 놓친 것을 교훈삼아 인내와 예지로서 4강 외교력을 강화하고 내부적으로는 분리주의·냉전의식을 청산하면서 국제환경을 활용하는 지혜가 시급한 과제다. 많은 나라가 외세침입과 분단책동 그리고 분열과 통합과정을 겪었지만 한민족의 경우는 너무 심했다. 그만큼 교훈과 경험도 다양할 것이다. 오늘 출발하는 김대통령의 북행(北行)과 내일부터 열리는 ‘양김회담’을 남북이 잘활용하여 분단사에 종지부를 찍고 통합의 새 역사를 창조하는 계기로 삼아야한다. 정상회담이 그 시발점이 돼야 한다. 김삼웅 주필.
  • ‘時間의 역사’로 재는 인류문명사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자,죽음을 향해 다가간다는 예고다.하지만 누구도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거나 잡을 수는없다.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시간은 경외의 대상이다. ‘시간박물관’(푸른숲)은 시간이란 창을 통해 바라본 인류문명사다.인류가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시간을 어떻게 인식해 왔고,그러한 인식 차이가 달력과 시계,예술 과학 심리 철학 등 인간의 생활과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비교,분석했다.고대 이집트의 달력에서 갖가지 시계와 그림,최근의 우주 사진에 이르기까지 400여점의 유물과 작품 등 갖가지 시간의 흔적도 담겨있다. 영국 국립해양박물관과 왕립그리니치천문대가 뉴 밀레니엄 축하식에맞춰 원서(The story of time)를 펴냈고,움베르토 에코 교수(이탈리아 볼로냐대)를 비롯한 유럽,북미,오세아니아의 석학 24명이 각 분야별 필진으로 참여했다. 이 책은 시간의 창조와 측정,묘사,체험,종말 등 5장으로 구성됐다. 창조신화로 볼 때 기독교의 개념은 현재가 미래에 의존해 있는 반면 마오리족을 비롯한 원주민들에게는 현재가 과거와 나란히 존재했다.또 신을 인간세계와 분리하지 않는 문화권에서는 한 세상의 종말이 다음 세상의 시작이라는식의 고리와 같은 순환적인 인식이 우세하다.반면에 유대 ·기독·이슬람교에서는 시간을 화살처럼 끝이 있는 직선적 개념으로 파악한다.물론 죽은 뒤에도 선택받으면 영생을 누릴 것이라는 기대는 있다.종말이 오면 모든 것이끝난다고 믿은 것은 마야와 아즈텍 문명뿐이다. 인류는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해·물·모래시계와 진자·전자시계를 거쳐 원자시계까지 만들어냈다.현재 연구되고 있는 ‘이온 트랩’은 100억년에 1초의 오차밖에 나지 않는다.그러나 50억년 뒤면 태양의 소멸과 함께 지구도 종말을 맞는다.시계의 오차 1초를 수정할 기회가 안타깝게도 단 한번도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지구촌은 2000년 1월1일을 기해 세 번째 밀레니엄을 요란스럽게 맞이했다.그러나 두 번째 밀레니엄은 당연히 2000년 12월31일에 끝나야 한다.로마 신학자인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예수의 탄생에서 시작되는그레고리력을 생각해낸 6세기 당시에는 서양에 0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서기 1년부터 시작했기때문이다.물론 디오니시우스가 그리스도의 생년을 제대로 계산했다면 1997년에 이미 끝나버렸겠지만.시간 측정이란 수수께끼는 그만큼 사람들을 허둥대게 만든다.다른 달력 상에는 이날이 특별한 의미가 없는 날이기도 하다.시간을 신격화하거나 의인화한 문화는 단 두 개뿐이다.지팡이와 복숭아를 들거나학이나 사슴에 올라탄 중국의 장수의 신 ‘수로’(壽老) 또는 ‘수성’(壽星)과,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로마시대에는 사투르누스).크로노스는 중세 서구 회화에서 ‘시간 영감’으로 발전해 등에 날개가 돋아있고 손에는 낫과 모래시계를 든 저승사자 노인으로 표현됐다.바니타스(덧없음)의 회화적 형상은 15세기에 처음 등장한 이래 16∼17세기에 절정을 이뤘다.해골이 상투적으로 등장했고,‘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주장이 강하게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전문 번역가 김석희씨가 옮겼다.값 4만9,000원. 김주혁기자 jhkm@
  • 특별기고/ 남북정상회담에 바란다

    진리를 탐구하는 데 있어 우리는 모른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인류의교사 소크라테스의 말이다.무한히 겸허해지면서도,한편 내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무지와 타고난 돈키호테식 무모함으로 감히 만용을 부려 보겠다. 평양 정상회담 후 적절한 절차와 환경을 거쳐 김 총비서는 서울을 답방해야한다.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최근의 중국방문 중 김 총비서가 말했듯이 한국(조선)문제는 원칙적으로 한국(조선)사람들이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그의 말은 지극히 당연하고또한 강렬한 민족자주 의지의 표현이며 많은 이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분단의 오늘 상황의 원인 제공이 우리에게 있고 그 해결 책임이 우리 민족에게 있다.주변 우방과의 협조,공조가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게 엄연한 국제사정이지만 당사자인 두 정상만의 흉금을 털어놓은 대화 협의는 필수적이다. 둘째,우리 민족의 남북 분단으로부터 온 그동안의 모든 비극과 고통과 민족사적 오류에 종지부를 찍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서는 평양회담1회만으로는 될 수 없다.셋째,북에 대한 남측의 뿌리깊은 불신이 해소되기 전에는 남북 민족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적인 통일은 있을 수 없다.그 불신과 의문의 중심에 김 총비서가 있다.방송이나 성명으로 그 인식이 바뀌지는 않는다.김 총비서가 서울에 와서 북측의 진의와 통일에 이르는 구상과 북의 고려연방제의 타당성과구체안을 직접 남측의 각계각층에 호소하고 설득해야 한다.그 효과는 엄청클 것이다.남북 양측 민의(民意)의 이해와 지지 없이 어떠한 통일방안도 그실현 가능성이 적다. 넷째,이는 동시에 김 총비서로 하여금 남측의 여러 실정,즉 정치 경제 사회문화 언론 등에 대한 심도 있는 파악과 인식에 크게 기여한다.백문이 불여일견(百問,不如一見).중국의 실리콘밸리 중관촌(中關村)을 보고 덩샤오핑(鄧小平)의 개방 실용주의를 평가한 김 총비서로서 남측의 산업화 과정이 참고될 것이다. 다섯째,북의 국가안전 보장에 있어 한국의 자세와 협력이 결정적이다.만에하나 미국이 북의‘핵위협’제거를 위한 어떤 군사행동을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한국이 절대 반대할 경우이를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다.94년‘핵문제 제기’시의 김영삼 정부때나 페리보고서 작성 과정 등에서 현 국민의 정부의역할이 어느 정도 입증됐다. 끝으로 대일관계에 있어서 사죄·배상의 국교정상화,경제 협력,학술·문화·교통·관광 교류 등의 시급한 사안 추진,그리고 미사일,핵문제를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한 대미관계에 한국의 역할 즉,한국 국민의 이해와 지원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김 총비서의 서울 답방 유무는 금번 평양회담의 성과 여하와 동시에김대중 대통령의 의지와 성의 있는 초청 논리에 달려 있다.대통령의 탁월한경륜으로 그렇게 될 것을 믿는다.외세와의 공조가 아니라 민족 대단결이며공존공영이다. 한편 남측의 대북 불신 못지않게 북의 대남 불신 역시 지대하다. 김정일 총비서는 중국 방문에서 “고난의 행군을 끝났다”고 했다.홍수,가뭄,식량난,경제 파탄에 더하여 국가안전 보장의 위협 등 북이 그동안 겪었던고난은 필설로 표현할 수가 없다.같은 민족으로 그 고통을 함께 하고자 한다. 북의 고통은 곧 남의 고통이다.17세기 영국시인 존 돈(John Donne).‘묻지말라.누가 죽었기에 조종(弔鐘)이 울리느냐고,그것은 너의 몸의 일부가 죽은 것이니’. 민족마다 역사적인 대전환기가 있다.새 천년을 맞는 지금이 그 시기이다.천년 전 민족사에 찬연히 빛나는 고려의 통일에 버금가는 기회다.시대와 인물의 절묘한 배합이다.김대중 대통령은 70년대부터 남북의 공존·번영을 주창해왔다.95년 국가연합,국가연방,완전통일의 3단계 통일론을 제시했다. 북의 고려연방제와 진지하게 비교·논의하여 임기 중 기필코 최소한 국가연합,더 나아가 가능하면 국가연방을 달성하기를 바란다.민족사 흐름의 소명이며 당위이자 필연이며 금자탑이다. 손장래 전 말레이시아 대사.
  • 과거속에서 미래 찾는 ‘해양대국의 힘’

    로테르담은 유서깊은 항구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항만시설을 자랑한다.이미14세기부터 유럽대륙의 주요항구로 자리잡은 뒤 17세기에는 암스테르담에 이은 네덜란드의 두번째 상업도시로 발돋움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내를 걸으면서 이 도시의 역사를 실감하기란 쉽지 않다.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습으로 옛 건물은,시청과 중앙우체국·증권거래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파괴됐기 때문이다. 대신 과감한 도시계획과 파격적인 디자인의 건축물들이 눈길을 끈다.철저하게 파괴된 것을 오히려 현대적인 계획도시로 탈바꿈시키는 기회로 삼은 전형적인 사례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로테르담 해양박물관(Maritiem museum Rotterdam)에서도 이 곳 사람들의 기질이 읽혀진다.과거를 나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미래를 위한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해양박물관은 유라시아 횡단철도의 유럽쪽 종착역인 로테르담 중앙역에서 정면으로 난 큰길을 따라 10분쯤 걸으면 나타난다.3분쯤 더 가면 이 곳 출신대학자의 이름을 따 최근 개통된 에라스무스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그러나 신경을 쓰지 않으면 박물관은 그냥 지나쳐버리기 십상이다.루페항(Louvehaven)의 도크 끝자락을 이용한 박물관은 소박한 외관에 야외 전시품들도일상적인 항구의 풍경처럼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오히려 박물관 앞 ‘1490년 광장’에 서 있는 오시프 샤킨의 조각이 표지판구실을 한다.‘심장을 잃은 사람’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2차대전 당시 도시 전체가 파괴당한 절망적인 심정을 표현했다고 한다. 박물관의 본관은 크고 작은 두개의 삼각형을 이어놓은 모습이다.길쪽에서 보면 평범한 흰색 벽체만 눈에 들어올 뿐이지만,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면 좁은 부지에 공간을 최대한 활용코자 한 설계자의 뜻에 고개가 끄떡여진다. 전시공간은 크게 건물안과 밖으로 나누어진다.그러나 건물안팎 모두 보편적인 항해와 선박의 역사를 담고있다기보다는 철저히 네덜란드적이고 로테르담적이며,미래지향적이다. 건물밖 도크에는 1867년 진수된 네덜란드 군함 ‘부펠호’가 정박해있다.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뮤지엄 십(Museum ship)’으로 꾸몄다.크레인 등 각종 하역장비와 화물을 실어나르는 기관차 및 화차,등대 등의 해양 안전시설들도 흥미를 끈다.화차의 내부는 하역방법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전시공간으로 활용했다. 건물 안에서 맨 먼저 만나는 전시공간은 지난해 12월 문을 열었다는 ‘세계항구 로테르담’이다.거대한 컴퓨터 게임장처럼 보이는 이 곳은 로테르담 항구를 축약하여 여행자의 짧은 일정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로테르담항의 전모를 보여준다.컴퓨터를 이용하면 항만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다.3층의 ‘콜렉션’관은 로테르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대형 선박들의 미니어처가 공간을 채우고 있다.지도와 콤파스·나침반 등 항해도구를 통해 과거 첨단기술의 도움없이도 어떻게 대양을 주름잡았는지를 알게 한다. ‘17∼18세기의 해상생활’관은 당시 선원들이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었으며,어떤 위험에 직면했는지를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선박의 예를 통해 설명한다.‘네덜란드의 조선’관은 17세기에서부터 20세기 후반에 이르는 선박의 진화과정을 보여준다.여기서도 현대 네덜란드의 조선기술에 공간의 상당부분을 할애한 것은 물론이다.‘스플래시 선생’이라고 이름붙인 어린이관은철저한 체험 위주 전시로 항해나 해양공학의 원리를 깨닫도록 만든다.예를들어 아치형 다리를 만드는 코너에서 구조물을 제대로 조립했다면 어린이들은 아치 위로 가상의 바다를 건너갈 수 있다.그러나 아치의 원리를 이해하지못한 채 조립하면 어린이가 건너는 순간 다리는 무너지고 만다.물의 원리를보여주는 각종 실험장치에서는 배가 어떻게 뜨고 가라앉는지를 배우고,호이스트와 크레인을 작동해보면서 적은 힘으로도 무거운 화물을 부릴 수 있는원리를 스스로 깨우친다. ‘스플래시…’와 부펠호의 내부는 어린이들을 위한 생일파티 장소로도 개방된다고 한다.‘박물관은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라는 로테르담 사람들의 인식은 여기서도 뚜렷이 드러나고 있었다. 로테르담(네덜란드) 글 서동철기자 dcsuh@
  • 기호품을 보면 그 시대가 보인다 ‘기호품의 역사’

    후추 계피 생강 커피 초콜릿 담배 브랜디 아편….얼핏 중구난방으로 나열된단어같지만 이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공통된 속성이 있다.국어사전에 ‘향기나 맛,자극을 즐기기 위해 먹거나 마시는 것’이라 정의된,인류의 변함없는‘기호품’이란 점이다. 부침(浮沈)을 거듭해온 이 기호품들은 인류사의 고비고비에서 어떻게,얼마만큼의 입김을 불어넣어 왔을까.반대로 그들이 주 향유계층으로부터 어떤 시대적 역할을 부여받고 있었을까. 독일 출신의 자유저술가 볼프강 쉬벨부쉬가 쓴 ‘기호품의 역사’(한마당)는바로 그 지점에 물음표를 찍고 이야기를 풀어간다.250여쪽의 책이 방점을 찍고 있는 시대는 특히 중세와 근대. 미각과 의식(儀式)이 드물게 일체를 이루던 때라는 데 주목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사실은,기호품의 역할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너무도 다르게 나타났다는 전제다.오늘날 기호품이 인간 삶을 위무하는 사변적 기능을하고 있다면,중세나 근대에서 그것은 시대적 질서와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코드였다. 중세는 온통 향신료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12세기경 유럽에는 후추나 계피가 왕실의 최고 선물로 인정받았을 정도였다(당시 스코틀랜드 왕이 영국왕 리처드 1세를 방문했을 때 후추와 계피를 선물로 받았다는 기록이 실제로 남아있다).그 무렵 향신료는 전설세계에서 온 사절(使節)이기도 했다.오죽했으면 생강과 계피는 파라다이스로부터 나일강을 타고 흘러내려 온 것을 이집트 어부들이 그물로 건져올린 것이라 생각했을까.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향신료는 중세와 근세를 잇는 거멀못으로 작용했다.11세기와 17세기,즉 십자군 원정부터 영국 동인도 회사들의 맹활약 시기까지 오리엔트적 가치를 지닌 기호품들은 유럽인들의 미각을 지배했다.신대륙 발견 등으로 이어진 원정여행이 향신료에 광적으로 집착한 유럽인들의 입맛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쯤은 그닥 새로운 이야기도 못 된다.후추만 해도 그랬다.중독성의 징후를 가져다준 이 향신료는 유럽인들로 하여금 후추의 나라인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게 만들었고,다시 그것은 신대륙 발견이라는 대역사를 일궈냈다.식욕이 채워지지 않는 순간 인간에게는 번번이 ‘역사적 추동력’이 일어났던 셈이다. 기호품이 한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지배하는 정신문화로 기능한 사례에는 커피나 브랜디,초콜릿이 빠질 수 없다.정신을 맑게 하고 성적인 충동을 억제한다고 믿었던 커피는,프로테스탄트적 윤리를 부각시킴과 동시에 17세기 이래합리주의 유럽문화에 걸맞는 부르주아적 근대 음료로 각광받았다.커피는 근대 부르주아지의 상징 그 자체였다. 그런 커피의 역할에 비하면 브랜디는 철저히 프롤레타리아의 음료였다.서서히 취하는 맥주나 포도주와는 달리 단번에 취기가 도는 브랜디의 속성은 효과의 극대화와 급속화를 좇는 산업혁명시대의 적자였던 것.지은이는 “17∼18세기의 부르주아지에게 커피하우스가 그랬듯 19세기 노동자 계급에게 술집은 중요한 장소였다”고 전제한 뒤 커피의 냉철함과 브랜디의 취기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적 대립성을 가름지었다고 주장한다. 거꾸로,변화하는 기호품의 속성에 따라 시대성을 읽어내기도 한다.예컨대 파이프 담배에서 여송연,궐련으로 이어지는 흡연양상에서근대의 ‘속도 지상주의’를 들춰낸다. 끝으로 약물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시각은 책읽는 재미를 더해준다.19세기초까지만 해도 가정 상비약에 불과했던 아편이나 해시시.오늘날 마약이 반사회적으로 전락하고만 배경을 지배계급의 반사적 ‘방어전투’라고 책은 풀이한다.17세기 커피와 담배를 금지시켰던 것이 중세 세계관이 퇴각하면서 벌인 일대 해프닝이었듯 말이다. 지은이는 해시시와 마리화나가 언젠가는 보편적 기호품으로 ‘복권’되리라기대한다.이유는 간단하다.전면금지보다는 합법적 통제가 사회적 불안을 줄일 수 있는 지름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제 결론.완벽한 선(善)으로 사회적 합의를 본 기호품은 없었던 게 분명하다.도취의 문화사는 그래서 영원히 새로 씌어질 작업이 아닐까.값 9,000원. 황수정기자 sjh@
  • [외언내언] 실락원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대홍수의 주인공 노아(Noah)는 하느님으로부터이 세상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는 언질을 받고 모든 생물을 한 쌍씩 방주(方舟)에 실어 물이 빠진 뒤 이 땅에 생물들이 다시 번성할 수 있게 했다.의인의 상징인 그는 이후 이스라엘 하느님 야훼로부터 다시는 자연을 재해로 멸하지 않겠다는 언약을 받았다.17세기 중엽 존 밀턴의 서사시‘실락원’과‘복락원’은 인간 원죄와 구원 가능성이라는 내용을 융합시겨 낙원에 대한 희망을 심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약속과 구원의 가능성은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 파괴라는죄과로 인해 다시 시험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푸른별 지구는 생물체들의 낙원이며 우리가 이 행성에서 산다는 것은 행운이다.그러나 인간은 풍요로운 생활에 탐닉하고 자연 질서를 깨뜨려 재앙을 자초하는 것은 아닌지…. 공업화로 탄산가스 배출이 늘어 기온이 오르면 극지방 빙산이 녹고 해수면이올라 해안이 물에 잠기는 재앙을 자초한다.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 남태평양 지상 낙원 투발루공화국이 바닷물에잠겨 가는 운명을 맞았다.9개 환호초로 구성된 이 나라는 총면적 26㎢에 폴리네시아인 1만여명이 살고 있는데 가장 높은 곳이라야 해발 4m.이달 초 3.2m 높이의 조수가 밀려와 이 나라 최대의 섬이자 수도인 푸나푸티가 물에 잠겼다고 외신이 전한다. 이제 높은 파도가 일 때마다 이 섬나라는 물에 잠기다가 조만간 지상에서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다급해진 투발루 총리가 뉴질랜드를방문해“우리 국민은 영구히 살 땅이 필요하다”며 주민들이 이주할 땅의 제공을 요청했다고 한다.‘사회는 평등하고 민주적이며 인권이 존중되고 범죄가 없는 낙원’이라고 미 국무부가 국별 인권보고서를 통해 평가한 이상향이온난화현상으로 첫 희생양이 되는 운명에 놓인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좋지 않은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국제환경 단체인 월드워치는 인간활동에 의한 기후변화와 재앙을 경고하면서 지난 10년간 북극 빙하 6%와만년설 14%가 감소했으며 전 세계 빙하의 8%를 차지하고 있는 그린란드 빙하가 해마다 1m씩 얇아지고 있다고 발표했다.이와 함께 해수면 상승이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우려다. 지금 동남아프리카 모잠비크는 대홍수로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겨 100만명의 이재민이 고통을 겪고 있으며 몽골에선 한파로 동사한 200만마리의 가축이 초원에 널려 있다.인도네시아 카리만탄에서는 건조한 날씨로 산림이 불길에 휩싸여 주민들이 연무에 시달리고 있다. 지구촌 가족이 낙원에서 다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는 푸른 행성의 리듬을 깨지 않도록 인류가 함께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李基伯 논설위원
  • [외언내언] 현대판 해적

    해적의 역사는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는 ‘그리스 사모아스섬의 왕 포로크라테스는 기원전 6세기경 해적질로막대한 부를 쌓았으나 이집트 함대를 약탈하다 살해됐다’는 서술이 있다. 10세기경 노르만족의 바이킹이 유럽은 물론 아메리카대륙까지 석권했으며 16세기 식민지 경쟁에 나선 영국과 스페인은 국왕의 특허장까지 받아 공공연히해적행위를 일삼았다. 이처럼 예전에나 있을 법한 해적들이 요즘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교역로말라카해협을 거점으로 날뛰고 있어 주변국들의 골머리를 앓게 하고 있다.현대판 해적선은 16∼17세기 창궐한 서양 해적들처럼 해골 깃발은 달지 않았지만 위성통신설비에서 자동소총·로켓포까지 갖춘 현대식 무기로 상선들을 기습,선원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뒤 화물과 선박을 약탈해 악명이 높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반도 사이의 좁은 수로인 말라카 해협 중에서도대표적 해적 소굴인 필립해협은 폭 30㎞로 3,000여개의 섬 사이로 하루 600여척의 유조선과 화물선이 왕래해 해적이노리는 황금길목이다.지난해 전세계적으로 발생한 285건의 해적행위 중 113건이 이곳에서 발생했을 정도다. 지난달 23일 우리선원 등 17명을 태운 글로벌 마스호가 이곳을 지나다 열흘째 통신이 끊겨 해적의 공격을 받고 실종된 것으로 우려된다.이곳에서는 2년전 텐유호가 실종돼 한국인 선장 등 13명의 생사마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당시 해적들은 선원들을 살해하고 배에 실렸던 35억원어치의 알루미늄을 약탈한 뒤 배는 개조해 선박회사에 처분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적들은 고가 화물을 적재한 선박을 용케 표적으로 삼고 있어 국제조직의범행으로 추정된다.해적단은 인근 바탐섬 인력시장을 통해 조직원을 선원으로 위장취업케 해 정보를 입수,범행한 뒤 약탈물도 조직적으로 처분하는 것으로 국제해사기구(IMO)는 파악하고 있다. 공해상에서 이뤄지는 범죄행위로 인접국들이 적극 개입을 꺼리는 데다 국제범죄조직이어서 실종선박을 발견해도 범인들을 찾아내기는 힘들다. 해적의 범죄행위로 인명과 재산피해 등 국가적 손실도 크지만 말라카해협은원유와 수출상품의 해상로인 우리의 생명선이다. 수송로 확보는 우리의 안보와 직결돼 있고 갈수록 중요성이 커질 것으로 보여 어떠한 위협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우선 국제적으로 동남아 국가들과 해양경찰 공조약정을 체결해 범행이 재발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하겠다.필요한 경우 우리 함정이 출동해 국제경찰의역할을 담당하는 대양해군의 체제를 이제부터라도 갖춰야한다. 이기백 논설위원
  • 한·중·일 합작 ‘춘향전’ 무대 오른다

    3국(國)3색(色)의 춘향전. 고전 ‘춘향전’이 한국 중국 일본 등 3국 공동으로 제작돼 서울 무대에 오른다.한국ITI(대표 양혜숙)와 베세토위원회(위원장 김의경)는 오는 10월 19∼22일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3국이 각각 고전극 스타일로 만든 다국적 ‘춘향전’을 공연키로 했다. 전 3막 가운데 1막은 중국의 월극(越劇),2막은 일본의 가부키(歌舞伎),3막은 한국의 창극(唱劇)으로 구성한다.한 작품안에 3명의 춘향과 몽룡이 등장하는 셈.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그릴 1막은 중국을 대표하는 월극단인 절강소백화월극단이 맡는다. 중국에서는 이미 54년과 78년 두차례에 걸쳐 춘향전이 월극으로 소개돼 현지에서는 그다지 낯설지 않은 작품이다.경극이 북경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한 고전극인데 비해 월극은 20세기초 항주·상해 지역에서 탄생한 지방 전통극으로 30년대부터 모든 연기자들을 여성으로 제한한 것이 특징.연출을 맡은 양샤오칭은 배우 출신으로 국가1급 연출가 칭호를 받았다.배우 15명,악사 11명 등 모두 40명이 내한할 예정이다. 2막은 춘향의 옥중 장면으로,105년 역사의 가부키극단 쇼쿠치가 참가한다.가부키는 17세기 중반 형성된 고전극으로 초기에 ‘여자 가부키’‘소년 가부키’등의 과도기를 거쳐 남자만 출연하는 형식으로 굳어졌다.‘월극’과 정반대인 셈. 춘향전은 1945년 일본에 처음 전해진 뒤 현대극과 오페라로 무대에 오른 적이 있으나 가부키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아름다운 여자역을 잘 소화해내는 배우로 유명한 나카무라 시바자쿠가 춘향으로 등장한다. 어사출도와 두 청춘남녀의 재회 등 스펙터클한 장면이 많은 3막은 국립창극단이 공연한다.한국측 연출 겸 총연출을 맡은 손진책은 “3국이 각기 독자성을 살리면서도 일관된 흐름을 갖도록 세심히 신경 쓰겠다”고 말했다.본공연 전후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3국 배우와 악기가 모두 출연하는 화합의 장으로 연출할 계획이다. 김의경위원장은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개최기간에 때맞춰 각 나라 고전극의 특성을 한눈에 비교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중·일의 문화교류 증진을 목적으로 94년 조직된 베세토위원회는그동안 세나라를 번갈아가며 연극제를 열어오다 올해 처음으로 합동공연을 갖게 됐다. 이순녀기자 coral@
  • 풍자극 2편 ‘정치의 계절’ 정치 코믹질타

    4월 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 바람이 거센 가운데 우리 정치 현실을 곱씹어보게 하는 연극이 2편 내달 1일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 극단 아리랑의 ‘기호0번 대한민국 김철식’(최일남 원작,방은미 연출)과 극단 작은신화의 ‘타르튀프?’(몰리에르 원작,반무섭 연출).‘기호0번…’이1940∼70년대 외곬수 정치인 김철식의 입을 빌려 요즘 선량들의 행태를 직접 꼬집는 반면 ‘타르튀프’는 중세시대 사기꾼 타르튀프의 권모술수를 통해위선적인 정치인 면모를 우회적으로 풍자한다. 4월30일까지 대학로 아리랑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기호0번…’은 작가 최일남의 소설 ‘숙부는 늑대’를 각색한 작품.주인공 김철식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4·19혁명까지 격동의 정치상황에서도 끝까지 세상에 타협하지 않고 자기 의지대로 살다간 ‘외로운 늑대’같은 인물이다. ‘애국청년단’을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치고,몽양 여운형의 암살범을 잡겠다고 무작정 상경하는가 하면,오로지 나라를 위해 몸뚱이 하나만 믿고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그의 행동은 얼핏 돈키호테처럼 보이지만 요즘 정치인에게서찾기 힘든 순수한 열정과 살아 있는 양심을 느끼게 한다. 세번 출마해 번번히 낙선한 그의 삶은 세속의 잣대로 보면 실패한 인생이지만 자기가 옳다고 믿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점이라고 극은 주장한다. 연출자 방은미는 “정의감과 사람 사랑이 넘쳐나는 김철식같은 인물이 이 시대에 필요한 참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를 통해 2000년대를 사는우리 모습도 함께 돌아봤으면 한다”고 말했다.‘오봉산 불지르다’에서 열연한 박철민이 김철식 역을 맡아 특유의 걸죽한 입담과 감칠맛나는 연기를선사한다.(02)741-5332. 대학로 혜화동1번지소극장에서 3월12일까지 공연하는 ‘타르튀프’는 종교적 위선자를 묘사한 17세기 프랑스 극작가 몰리에르의 걸작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했다.당대 최고의 사기꾼이자 바람둥이인 타르튀프가 위선과 허풍을이용해 맹신과 불신을 오가는 극단적 성격의 오르공집에 머물게 되면서 얘기는 시작된다. 타르튀프는 오르공의 눈을 피해 아내와 딸까지 유혹하고 마침내 재산까지 빼앗을 음모를 꾸민다.맹신에 눈이 먼 오르공과 그의 어머니는 아내와 딸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모르게 하는 죄는 죄가 아니다’라는 타르튀프의간계에 넘어간다. 극은 거짓 신자인 타르튀프의 위선보다 오히려 그에게 속아넘어간 경솔한 오르공과 그 가족에게 초점을 맞춘다.이는 드러난 위선보다 스스로 위선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벌이는 행위가 더 나쁠 수 있기 때문이다.사이비 정치인을 솎아내지 못하는 유권자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풍자한 셈이다. 작은신화가 ‘고전넘나들기 시리즈’두번째로 마련한 이번 작품은 시대와장소를 뛰어넘는 몰리에르의 ‘웃음의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02)902-2048. 이순녀기자 coral@
  • [쉽게 읽기] 김재희저 ‘깨어나는 여신’

    얼마전 신문에서 이색적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캘리포니아의 헤드워터숲을 지키기 위해 2000년 된 삼나무 위에 천막을 치고 2년 동안 생활해 온미국 처녀가 마침내 땅을 밟았다는 기사였다.목재회사를 상대로 한 이 싸움을 통해 결국 삼나무를 더 이상 베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이 작지만 위대한 싸움을 접하면서 나는 민다나 시마의 ‘살아남기’에 나오는 인도 여인들의 칩코운동을 떠올렸다.칩코란 ‘끌어안는다’는 뜻으로,히말라야 토착 여성들이 온몸으로 나무를 껴안아 숲을 지킨다는 데서 시작된 이 운동은 생태적 여성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이렇게 개발과 착취의 논리에 맞서 보살핌과 나눔을 통한 새로운 생태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에코페미니즘은 70년대 이후 문명의 총체적 위기에 대한 대안의 하나로 자리잡아 왔다.그러나 그에 대한 소개나 이론적인 작업은 그리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형편이었다.그러기에 에코페미니즘의 입문서 역할을 충분히 해낼 ‘깨어나는 여신’의 출간은 매우 반갑게 느껴진다.단순히서구의 에코페미니즘의이론이나 이론가들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우리의 전통 속에서도 생태적 여성성의 토대와 가능성을 찾아보려고 했다는 점 또한 미덕으로 여겨진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이루어져 있다.1부 ‘깨어나는 여신’에서는 가부장적질서 속에서 오랫동안 억압되어 온 여신의 모델들을 신화를 포함한 문화적토양 속에서 발굴함으로써 거룩한 신성의 회복을 모색하고 있다.여신 부활운동의 주축인 스토옥이란 초현대적 무당이나 12세기 영상운동과 관련해 녹색성인 힐데가르트가 소개되는가 하면,우리 문화 속의 삼신할머니니 바리공주가 여성적 상상력을 통해 복권되기도 한다. 2부 ‘가이아의 과학’에서는 지구를 거대한 생명체로서 바라보는 가이아론을 비롯하여 17세기 과학혁명 이래 영성을 잃어버린 자연의 본래적 질서를회복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만날 수 있다.러브록,린 마굴리스,맥클린톡등이 그들이다. 3부 ‘생태문명의 비전’에서는 생태적 여성주의가 단순한 여성해방이나 계층해방만이 아니라 소수민족,원주민,난민,어린이,노인,실업자 등 억압받는모든사람들과 파괴되어가는 동식물과 대지 전체를 포괄하는 운동임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위기가 생태적 위기와 맞물려 있고,전체적인 시스템의 변화 없이는그 위기를 치유할 수 없다는 인식에는 대부분 공감하는 듯하다. 다만,남성과 여성이 지속 가능한 삶의 양태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훌륭한 동맹자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남아있다.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신화를재발견하려는 여성의 노력과,남성주의 신화와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남성의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그 씨줄과 날줄의 만남을 위해 여신들은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나희덕 시인
  • [외언내언] 사이버 도박

    도박은 예기치 못하는 결과가 가져올 위험이 있더라도 승산에 기대를 거는내기이다.동전을 던져 앞면에 내기를 거는 순수하게 우연에만 의존하는 방법은 원시적인 도박 형태로 윷놀이와 주사위·룰렛·블랙잭 등이 이에 속한다. 경마와 포커·화투 등과 같은 내기는 게임방법에 대한 일정한 지식과 규칙을활용하여 게임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노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투전(鬪전)과 마작(麻雀)이 대표적 도박으로 꼽혀왔으나 개화와 더불어 화투와 카드로 바뀌었다.전래의 놀음기구인 투전은 손가락 크기의 폭에 길이가 5치 정도의 두꺼운 종이에 새와 동물,곤충과 고기,문자와 시구 등을 그려 끗수를 표시한 것으로 40장이 한 벌로 사용되었다고한다.농한기 농촌에서는 집문서·땅문서 등을 걸고 투전이 유행해 사회적인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태백지구 탄광촌 개발사업으로 추진되는 카지노는 17세기 등장한 도박장으로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다.카지노는 미국의 경우 네바다·뉴저지주에서만 허용하고 있으며 남미와 유럽의 경우 도시에서는 일절 허용하지 않고 휴양지에서만 운영을 하도록 하고 있다.카지노에서는 룰렛·슬롯머신·카드게임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이중 포커게임은어느 카지노에서나 인기 있는 게임으로 자리를 굳혔다.카지노에서 일확천금의 행운을 차지한 예가 가끔 화제가 되기도 하나 거액을 날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인터넷의 보급과 더불어 카지노와 접목된 사이버 카지노가 국내 사회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어 문제가 되고 있다.경찰이 지난 주말 적발한 불법사이버 카지노업체들은 미국 사이버 카지노업체와 계약을 하고 14개 도박사이트를 개설,국내 네티즌 20여만명이 이를 이용,100만달러가 넘는 외화가 신용카드를 통해 외국으로 유출됐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도박사이트 접속자 중에는 전국의 시·도청,교육청,금융기관,공기업,학교 등 인터넷 전용선이 설치된 관공서와 기업체 직원들이 망라돼있다는 점이다.많은 이용자들이 근무시간에 도박을 벌인 것으로 나타나 사이버도박이 시와 때를 안가리고 사회 전체에 광범위하게 만연돼 있는 것으로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더욱이 국내 개설자를 통하지 않고 직접 외국 사이버 카지노 사이트와 접속해 도박해온 네티즌 수와 유출 외화액은 추정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컴푸터보급과 더불어 시공(時空)을 뛰어넘어 만연하고 있는 사이버 도박을 차단하기 위한 법률 보완과 장치가 시급하다.전국의 안방과 사무실이 도박장으로바뀌기 전에 말이다. 이기백 논설위원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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