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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7) 택일적 사고와 이중적 사고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7) 택일적 사고와 이중적 사고

    사회생활을 통하지 않고서는 인간되는 길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사회생활에서 인간은 온갖 괴로움을 경험한다. 그래서 옛날부터 철학사상은 이 사회생활을 큰 화두로서 취급했다. 예컨대 순자 사상은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군서생활을 하듯이 생존을 위한 사회적 규칙준수의 법을 지능적으로 잘 본받으면, 사회생활의 악인 혼란을 방지할 수 있다고 여겼다. 순자는 사회성원에게 생물학적 생존을 가능케 하는 것이 최우선적 정치의 목적이라 여겼다. 그러나 맹자 사상은 이와 전혀 다르다. 사회생활에서 이기심이 모든 악의 진원지이므로 저 이기심을 도덕심으로 바꾸면, 인간은 양질의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순자의 철학은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홉스의 현실주의 사상과 유사하고, 맹자의 철학은 18세기 프랑스의 루소의 이상주의 사상과 이웃하고 있다. 이기심을 다소 인정하는 현실주의든 이기심을 부정하는 이상주의든 다 행복한 사회생활의 창조방식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좋은 사회생활의 창조를 위한 철학사상은 역사 속에서 구체화된다. 로마사에 정통한 20세기 프랑스의 역사가인 폴 벤은 그의 저술 ‘역사를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에서 현실주의적 사회철학의 경향을 ‘백성을 양떼로서’(people as flock) 생각하는 사고와 연계시키고, 이상주의적 사회철학의 경향을 ‘백성을 어린이로서’(people as child) 생각하는 사고와 유관하다고 분류했다.‘백성을 양떼로서’ 생각하는 현실주의적 정치의 유형은 백성을 배불리 먹이며 포식자로부터 양떼를 잘 지켜주는 것을 으뜸의 사명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거기에 반하여 ‘백성을 어린이로서’ 생각하는 이상주의의 정치는 아버지의 심정처럼 자식이 부도덕한 일에 탐닉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건전하게 키우는 것에 일차적 관심을 집중시킨다는 것이다. 로마정치가 원로원 중심일 때에 전자가, 황제 중심일 때에 후자가 각각 유행했다는 것이다. 물론 저 두 정치이념의 성향은 강조점의 상대적 비교우위를 말하는 것이지, 흑백 논리처럼 단순한 유무의 문제가 아니겠다. 나는 로마사에 근거한 저 두 유형의 정치 스타일이 모든 역사에 거의 다 적용될 수 있는 이념형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저 두 유형의 어느 쪽이 실질적 사회생활의 질적 향상에 기여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 위함이 아니다. 이 글은 저 두 유형이 공통적으로 하나의 큰 한계에 직면해 있음을 말하고, 제삼의 길이 무엇인가를 모색하기 위함이다. 그 공통의 한계가 택일적 사고방식을 사회철학의 기본논리로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주의는 늘 이/해(利/害)의 대립에서 전자를, 이상주의는 늘 선/악(善/惡)의 대결에서 역시 전자를 선택하도록 종용하고 있다. 현실주의는 경제주의고, 이상주의는 도덕주의다. 이기적인 경제와 반이기적 도덕은 서로 궁합이 잘 맞지 않아 상충적이지만, 다 지성(지능의 철학적 표현)의 분별력 위에 공통적으로 서 있다. 경제적 이익은 나에게 좋은 것이고, 도덕적 선은 내가 속한 사회에 좋은 것이다. 칸트가 밝힌 사회생활의 본질로서의 ‘비사교적 사교성’(26회 글)에서 비사교성은 경제적 이익과 연관되고, 사교성은 도덕적 선과 직결된다. 인간의 사회생활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경제와 도덕의 양자간 우선택일의 문제의식으로 일관되어 왔었다. 순자의 철학은 경제우선의 사상이고 벤이 본 ‘양떼로서의 백성’을 생각하는 정치이념과 상통하고, 맹자의 철학은 도덕우선의 사상이고 벤이 본 ‘어린이로서의 백성’의 이념을 연상시킨다. 전자는 나에게 좋은 것이고, 후자는 사회에 좋은 것이다. 다 좋은 것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맹자의 사상은 좀 애매한 데가 있다. 그는 이기적 이(利)와 도덕적 선(善)을 각각 다른 것처럼 분리시키기도 하였고, 그 둘을 다 좋은 것(好)으로 수렴시키기도 하였다. 이런 맹자의 모호한 입장은 이유가 있다. 분리의 이유는 이기심과 사회성의 차이를 강조하는 뜻이고, 둘 다 좋은 것으로 수렴되는 것은 이익이든 선이든 다 인간에게 ‘좋은 것’이라는 점에서 상통하기 때문이다.‘좋다’(好=good)라는 말은 경제적 실용이나 도덕적 선에 다 적용된다. 경제적이든 도덕적이든 좋은 것은 분별심의 작용에 기인한다. 나의 지성이 분별하고 판단하여 좋은 것을 선택하고 나쁜 것을 배제하는 택일의 논리를 다 공통으로 지닌다. 지성은 분별과 택일의 논리다. 그런데 인류역사가 그동안 몸바쳐 왔던 이 분별과 택일의 논리가 세상을 다 평안하게 하고 구원해 주는 희망의 사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적 이익의 분별이 사회생활에 갈등을 빚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얼음장수와 우산장수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익세계의 본질이다. 도덕적 선은 이와 달리 사회적 일치의 화음을 낳는 것으로 그동안 인류는 착각해 왔다. 늘 이상주의가 그 공상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현실주의에 비하여 명분적 우위를 뽐내면서 잘난 체해 왔다. 그러나 도덕적 인(仁)의 가치는 보통 좋으나, 전쟁과 같은 비상상황에서는 어리석음으로 바뀌어 작전의 패배를 낳고, 의(義)의 가치는 원칙으로 좋으나, 깡패집단의 의리로 변하고, 직(直)의 가치도 정직하다는 점에서 옳으나, 너무 예리한 칼날처럼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주위를 숨막히게 하며, 용기의 가치는 위험을 무릅쓰고 선을 집행하는 가치나, 그 이면에 늘 거칠고 난폭한 폭력을 안고 있다. 이차대전시 중죄인의 집단으로 구성된 미 육군특공대의 혁혁한 전공의 실화는 용기의 이중성을 잘 그려준다. 사회를 떠나서 인간의 존재방식은 불가능하고, 사회생활 안에서 늘 무수한 이해관계와 도덕가치관의 갈등으로 인간은 괴롭다. 또 인간은 경제가 망가지고 도덕이 타락하면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도 없다. 어떻게 경제와 도덕이 다 건강하면서 인간이 사회적으로 괴로움을 덜 받고 살 수 있겠는가? 나는 여기서 원효가 사유한 길을 다시 음미한다. 그의 사유는 철학적으로 이중부정과 이중긍정의 길을 현시한다. 이것은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택일의 사유가 지니는 분별적 지성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택일적 경제주의는 이기적 아집을 낳고, 택일적 도덕주의는 위선적 법집을 낳는다. 위선적 법집은 순수선이 사회적으로 불가능한데, 도덕주의가 순수선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 위선적이라는 것이다. 그 주장이 사회를 행복하게 하는 절대적 진리라고 우기는 고집이 결국 법집을 낳고, 그 법집은 아집보다 훨씬 더 고약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의와 진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기심과 다른 대의명분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아집과 법집을 탈출하는 길로서 이중긍정의 사유를 원효가 제시한다. 얼음장수와 우산장수의 손익을 아주 다른 별개의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익과 손해는 좋고 흐린 날씨처럼 교대한다는 것이다. 영원히 지속되는 이익과 손해는 없으므로 이중긍정의 차원에서 내가 웃을 때에 늘 우는 사람이 동시에 이웃에 있다는 것을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를 원효는 설파한다. 이익의 이면에 손해가 엎드리고 있고, 손해가 이익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이중긍정의 사고가 세상의 사실임을 자각케 한다. 도덕도 마찬가지다. 노자가 언명한 바와 같이 ‘선은 불선의 스승이고, 불선도 선의 자산’이라는 말을 원효는 동의한다. 선이 불선의 스승이라는 말은 쉽게 알 수 있는데, 불선이 어떻게 선의 자산이 되나? 그것은 불선이 선을 증장(增長)시킨다는 의미겠다. 불선이 선의 바깥에 별개의 독립적 실체로 실존하는 것이 아니고, 선의 이면에 은닉되어 있기에 불선은 선의 배설물과 같은 셈이다. 모든 선이 불선을 머금고 있으므로 선은 오만 방자해지거나 독선의 아만을 띠지 않게 된다. 자기의 선행이 절대적이 아니라 불선의 역기능을 이미 세상에 뿌렸는데, 절대선을 사회에 심어놓은 것처럼 위선자들이 설친다. 그래서 노자는 불선이 선의 자산이라고 언급했겠다. 원효는 노자처럼 선/악으로 명칭을 대립화하는 것이 아니라, 선/불선, 악/불악의 이중성처럼 상관적으로 세상보기를 종용한다. 그 양면성이 곧 상관적 차이(pertinent difference)로서 차연(差延=differance)(26회 글)이다. 차연은 차이(差異)와 연기(延期)의 인조적 합성어인데, 차이가 변증법적 모순의 관계가 아니고 상보적으로 상대방의 것이 자기에게 연기되어서 서로 이중적 잡종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는 현대 해체철학의 용어다. 이런 이중긍정이 사실상 성립되기 위하여 원효는 먼저 이중부정의 사고방식이 선결적으로 요구된다고 말한다. 이중긍정은 세상의 사실을 보는 방식이고, 이중부정은 그 이중긍정이 이원성(duality)으로 빠지지 않고 이중성(duplicity)으로 인식되게 한다. 선/불선, 악/불악의 이중성은 각 변이 자기 동일성을 지니는 고정적 실체가 아니라, 서로 상대방이 있기에 자기도 성립하므로 각각은 다 상대방의 흔적에 불과한 셈이다. 도장의 양각과 음각의 양면성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되리라.(26회 글) 그러므로 양각과 음각은 다 그 자체 자기 것이 없는 공(空)이다. 모든 색(色=물질)의 이중긍정적 구조(善/不善)는 자기 것이 없는 이중부정(非善/非不善)의 공과 같다.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생활이 괴로움의 연속이므로 그 괴로움의 연속에서 탈피하면서 경제와 도덕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길은 세상사를 이중긍정적인 포괄법으로 읽는 길이라고 원효가 갈파했다. 포괄법은 세상사를 호/오와 선/악의 택일법으로 보지 말기를 종용한다. 그래야만 인간이 시건방지게 세상을 보면서 자기 것은 절대적으로 옳고 다른 것은 절대적으로 악마적이라고 여기지 않게 된다. 그런 이중성의 긍정이 가능하기 위하여 원효는 이중부정의 초탈법을 또한 익힐 것을 종용한다. 초탈법은 세상사의 일체가 다 인연법에서 생긴 환영(幻影)이므로 이익과 선 앞에서 좋아 흥분하지 말고, 손해와 불선 앞에서 좌절하지 말 것을 제의한다. 초탈법은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의 사상이 아니다. 사회생활의 기준이 지성이면, 인간은 호/오의 선택에 갇힌다. 철학의 종말은 지성의 종말과 같다. 과학에 지성을 맡기고, 철학은 세상사가 다 환영임을 깨닫게 하면서 영성의 길을 떠나려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6)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6)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내가 대학 철학과 학생시절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모든 것은 마음이 지은 바)라는 구절을 강의시간에 들었다. 일체가 다 마음이 지은 바라면, 내가 지금 교실의 창 너머로 보고 있는 교정의 나무도 내 마음이 만든 것이란 말인가? 하교 후에 내 마음이 나무를 보고 있지 않으면, 그 교정의 나무는 없단 말인가? 이런 의문들이 줄곧 생기면서 나는 불교의 화엄사상이 말하고 있는 ‘일체유심조’의 뜻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나이를 먹은 후에 나는 점차로 불교가 말하는 ‘일체유심조’의 법을 나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화엄학에서 마음의 본질을 알아차림(識)으로 읽고 있고, 우주의 일체가 다 마음이라고 말한다. 우주를 통일적으로 이해하여 한마음(一心)으로 읽는다. 무엇이 마음일까? 마음은 우선 알아차리는 능력(識)을 구비하고 있다. 그래서 불교는 마음론을 유식론(唯識論)이라 부른다. 마음에 바깥 경계가 비치면, 즉각 마음은 그 경계를 알아차린다. 그 알아차림의 능력은 마음이 줄곧 바깥을 향하여 자기 자신을 벗어나는 탈자(脫自)운동을 시행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 알아차림과 탈자운동은 같은 의미를 약간 다르게 언명한 것과 같다. 마음의 알아차림과 탈자운동을 다시 다른 말로 종합적으로 표명하면, 마음은 곧 욕망에 다름 아니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마음은 욕망이다. 욕망은 자기와 다른 것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그것에 대한 부단한 관심에서 타자와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운동을 말한다. 화엄학의 ‘일체유심조’가 유식학에서 만법유식(萬法唯識·모든 것은 다 알아차림으로 이루어져 있음)으로 이행된다. 보통 사람들은 인간만 마음이라고 여기는데, 화엄학과 유식학은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다 마음이라고 한다. 나도 오랫동안 인간만이 마음이라고 착각했다. 모든 것이 다 마음이라면, 굼벵이나 사자도 마음이며, 심지어 난초와 대나무도 마음인가? 동식물의 생명은 다 스스로 살려고 하는 본능의 욕망을 지니고 있기에 그 본능의 욕망만큼 그들도 알아차린다. 굼벵이와 사자도, 난초와 대나무도 다 알아차린다. 알아차리는 방식이 약간 다를 뿐이다. 인간의 마음도 알아차리는 방식의 탈자운동을 시행하고 있다. 이 우주의 일체가 다 마음의 알아차리는 제 각기의 방식을 띠고 있다. 심지어 무생물인 광물도 마음이 있을까? 어떤 이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무생물도 자연계에서 타자와의 인연으로 그 자리에 놓여 있고, 타자와의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무생물도 깨어 있지 않고 잠자는 마음의 상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17세기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의 단자론(單子論·monadology)이 이런 생각을 펼쳤다. 자연계의 동식물과 인간이 다 마음이라면, 모두가 다 같을까? 마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다 같은데, 그러나 다 제각기 마음의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알아차림과 탈자운동의 차원들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불교의 유식학이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가르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불교의 유식학적 마음론은 서양철학이 분류한 유물론과 대립적인 유심론 사상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서양철학의 유심론은 물질에 대한 정신의 우위를 강조하는 사상으로서 정신은 물질보다 더 진리의 차원에서 상위에 속한다는 그런 주장을 담고 있다. 그러나 불교의 유식적 마음론은 물질과 대립적인 의미의 정신이 아니다. 굼벵이의 마음은 이미 굼벵이의 몸을 통하여, 사자의 마음은 사자의 몸을 통하여 이미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초의 마음도 대나무의 곧고 굳센 몸통과 다르게 유연하나 쉽게 꺾이지 않는 그런 몸을 이미 현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도의 고승인 2세기(?)의 아슈바고샤(한자명 馬鳴)는 그의 저서 ‘대승기신론’에서 색심불이(色心不二·물질과 마음은 둘이 아님)의 사상을 개진하였다. 삼라만상의 동식물의 물질적 몸은 이미 그 마음의 질을 현상적으로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불교의 ‘일체유심조’의 사상을 나는 대학생 시절에 서양철학의 유심론의 뜻으로 오해했고, 더구나 그 마음을 나는 인간중심적 사유로 오인했었다. 그래서 내가 보고 있지 않으면, 교정의 나무가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그런 질문을 내가 품었던 것이다. 교정의 나무들과 새들도 다 그들 마음의 욕망의 표현으로 그렇게 자신들의 존재를 현시한다는 것을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주자연을 지독한 인간중심주의적 법집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자연적 마음은 존재론적 욕망을 펼치고 있다. 자연은 상생과 상극의 이중주를 모든 생명간에 주고받는다. 상생은 서로의 삶을 증장(增長)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상극은 서로의 삶을 손감(損減)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손감의 극치가 곧 죽음이다. 자연은 서로서로 죽음을 부르기도 한다. 타자의 생명을 취해야만 살 수 밖에 없는 자연의 생명현상은 곧 살생의 폭력이 자연의 연결고리에 필연적으로 얽혀 있음을 알려준다. 자연계에서 상생과 상극은 형식적으로 보면 이율배반적이나, 실질적으로 그 둘은 자연의 존재방식의 상보적인 이중성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즉 죽음의 상극이 있기에 삶의 욕망이 강렬해진다는 것이다. 천적이 있으므로 생명의 욕망은 그만큼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생과 상극의 이중적 존재방식은 자연계의 신진대사(新陳代謝)의 존재방식을 가능케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 왜냐하면 생명은 무한히 생존하려는 욕망인데, 죽음이 그 무한대의 욕망을 차단시켜 새 생명의 존재를 가능케 해주는 여백을 마련해주는 셈이다. 자연적 마음의 욕망이 서로서로 주고받으면서 의타기적(依他起的·다른 것에 의지해서 존재하는) 존재방식으로서 삼라만상이 상호 왕래의 오감을 형성하고 있으므로, 신진대사의 법은 불교적 의미에서 만물이 돌고 도는 길상의 상징인 만(卍)자와 같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자연적 삼라만상의 마음의 욕망은 존재론적 욕망이다. 존재론적 욕망이란 어떤 중심과 주변도 없고 서로서로 존재하도록 도와주는 상호의존의 돌고 도는 관계만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자연의 삼라만상의 마음과 다른 차원의 특이성을 지닌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언어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동물들도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러나 그 의사소통은 신호의 교환이지 언어활동은 아니다. 인간의 마음의 알아차림(識)은 언어활동을 통하여 나타난다. 인간 마음의 알아차림과 언어활동은 같은 개념이고, 이 언어활동이 탈자운동의 현상화이며,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상태를 떠나 사회상태를 유지하게끔 했다. 자연상태를 떠나 사회상태를 유지하게 한 것과 자연상태의 본능이 인간에게 지능으로 자리이동을 했다는 것은 같은 뜻이다.(1회 글) 본능은 자연상태에서 동식물들의 자기생존의 알아차림인데, 이제 지능은 사회상태에서 인간의 자기생존을 위한 알아차림으로 변한 것을 상징한다. 인간의 사회생태는 인간 마음의 이중성을 잘 반영한다. 그 이중성은 인간의 마음이 사회성을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기심을 꼭 쥐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이며 동시에 이기적이다. 이것을 18세기 독일 철학자 칸트는 그의 논문 ‘세계 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에서 ‘비사교적 사교성’(unsociable sociability)이라는 절묘한 말로서 표현했다. 인간의 사회상태는 비사교적 이기심인데, 그 이기심은 인간에게 사교성이라는 사회성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생겼다는 것이다. 이말은 인간의 지능은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이라는 것을 말한다. 칸트가 잘 밝혔듯이 그동안 인류의 역사는 이 지능의 ‘비사교적 사교성(이기적 사회성)’에 의거해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이 이기적 사회성은 자연상태의 욕망처럼 존재론적 방식이 아니고, 소유론적 방식의 욕망을 뜻한다. 서로 비교해서 열등감과 우월감을 느끼는 모든 인간의 마음은 시샘, 질투, 원망, 투지, 결심 등과 같은 모든 종류의 심리현상을 빚는다. 이 심리현상을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가 그의 저서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부글부글 끓는 발효’(fervent fermentation)라고 표상했다. 소유론적 욕망의 언어활동은 양자택일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왜냐하면 소유론은 배타적이고 배척적인 사고방식을 기본적 문법으로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소유론의 언어활동은 호/오(好/惡), 이/해(利/害), 진/위(眞僞), 선/악(善/惡)에서 늘 전자를 취하면서, 후자를 버리는 태도를 옳은 것으로 여겼다. 그러기 위하여 소유론의 철학은 판단론을 중시했다. 판단을 통하여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의 존재론적 욕망은 인간의 사회적 소유의 욕망과 달라서 의타기적이므로 최소한도 잡종적 이중성의 성격을 띤다. 예컨대 상생과 상극도 배타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신진대사를 가능케 하기 위한 이중적 사실로서 읽혀진다. 상생과 상극이 서로 다르면서 각각 상대방에게 상보성이 성립하도록 자신의 흔적을 던져 준다. 천적이 자기를 죽이면서 동시에 자기의 생기를 북돋아 준다. 마치 도장에서 양각과 음각이 서로 다르지만, 양각은 음각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고 음각도 양각이 없으면 존립하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자연의 삼라만상이 서로 다르지만, 그 다름의 차이(difference)가 적대적 배타성을 띠지 않으므로 현대 해체철학에서 그런 차이를 차연(差延·differance)이라 부른다. 지금까지 동서고금의 철학은 차이를 적대관계로 배척하는 언어활동을 중시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철학사상은 차이를 적대적 모순처럼 여기지 않고, 불교의 연기사상처럼 차이를 차연(차이를 띠면서 서로가 상대방에게 자기의 흔적을 연기시킴)의 뜻으로 읽으려는 사유가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알아차림으로서의 말을 지능의 소유론으로 해석해온 지나간 역사를 해체시켜 인간의 알아차림과 그 말을 다시 자연의 존재론처럼 복원시키려 하는 철학사상의 대전기를 맞고 있음을 반영한다. 세상은 변해 가는데, 한국은 아직도 소유론적 대결의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 소유론과 순수론은 늘 이웃한다. 소유적 이기심을 순수성으로 위장한다. 한국에는 위선자가 많이 설친다. 존재론은 잡종론이다. 잡종은 순종보다 통합을 더 잘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큰 몸집에 날지 못하는 ‘도도’ 멸종 3세기만에 유골 발견

    300년 전 멸종된 ‘도도새’의 유골이 인도양 모리셔스에서 처음 발견됐다고 영국 BBC가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포르투갈어로 ‘바보’라는 의미의 도도새는 1663년 모리셔스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뒤 사라졌다. 전 세계 15개국 연구기관이 참여한 연구팀은 도도새의 부리와 다리, 엉덩이 등 부위별로 완벽하게 보존된 유골을 발견했다. 유골은 20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된다.1755년 영국 옥스퍼드 박물관의 화재로 보관하던 도도새의 유골이 소실된 뒤 유골도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줄리언 흄 박사는 “거의 손상되지 않은 완벽한 상태의 유골이 발견됨으로써 멸종 원인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DNA를 추출, 진화의 기원과 모리셔스에만 고립된 이유 등을 규명할 계획이다. 도도새는 키 75㎝에 몸무게 25㎏ 정도의 대형 조류이지만 날지 못한다. 거의 식용으로 사냥되면서 17세기 들어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도 등장한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미사일·폭죽·로켓 어떻게 하늘 높이 치솟을까

    ‘펑∼펑∼’’쐐∼애액∼’ 며칠 전 독일월드컵 프랑스와의 경기. 박지성이 극적인 동점골을 작렬시키자 현지 경기장은 물론 서울 광화문 등 한반도 곳곳에서 축하 폭죽이 연달아 터지며 하늘을 오색빛으로 수놓았다. 극적인 순간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축하 폭죽과 불꽃놀이용 미니 로켓. 이들은 어떤 원리로 하늘 높이 솟구치는 걸까. 또 요즘 북한과 관련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장거리 미사일 등의 발사 원리와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까. ●땅을 박차 오르는 ‘작용·반작용 원리’ 폭죽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원리는 17세기 영국 과학자 아이작 뉴턴이 발견한 ‘작용·반작용의 원리’로 설명된다. 모든 힘은 서로 짝을 이뤄 작용한다. 물체에 어떤 힘이 가해져 ‘작용’이 생기면 크기는 같으면서 방향이 정반대인 ‘반작용’이 생긴다는 것이다. 예컨대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었다가 놓으면 바람이 입구를 통해 빠져나오는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을 들 수 있다. 불꽃놀이용 폭죽이나 초대형 미사일의 작동 원리는 모두 같다. 내부에 담긴 고체나 액체 등 연료 물질이 연소되면 급격하게 팽창하는 가스가 만들어진다. 이 팽창가스의 압력은 폭죽이나 미사일 내부의 모든 방향으로 똑같이 작용하게 된다. 하지만 아래쪽에 노즐 등 ‘틈’이 있으면, 압력과 균형이 깨져 압력차가 발생한다. 압력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에 내부보다 압력이 낮은 노즐 쪽으로 가스가 뿜어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때 추진력이 발생해 위로 솟구치게 된다. 다시 말해 노즐을 통해 밑으로 뿜어지는 가스는 뉴턴의 운동법칙에서 말하는 ‘작용’이고, 로켓을 미는 추진력이 ‘반작용’인 것이다. 이때 추진력, 즉 ‘분출 운동량’은 가스의 총 질량에 의해 좌우된다. 분출 운동량은 ‘가스의 질량에 가스가 로켓에서 빠져나가는 속도를 곱한 값(추진력=가스 질량×속도)’이 된다. 때문에 로켓의 추진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분출하는 가스의 질량을 높여주면 된다. 아니면 노즐의 구멍을 좁혀서 분출되는 가스의 속도를 빠르게하면 추진력을 높일 수 있다. ●대륙간탄도탄과 순항미사일의 차이 미국이 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실전모드’로 전환한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국제적 관심이 집중된 북한미사일 ‘대포동2호’는 이른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다. 발사된 뒤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는 것은 여느 미사일과 같지만, 말 그대로 대륙을 가로질러 수천㎞를 날아간다. 무엇보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의 가장 큰 특징은 대기권을 뚫고 위로 올라가 한참을 비행한 뒤 다시 내려오는 궤도를 그린다는 것이다. 공기 저항을 없애 속도를 높이고 연료를 줄여 먼 거리를 날아가기 위해서다. 때문에 기존 항공기나 단거리 미사일 등에서 사용하는 엔진 시스템으로는 추진력을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대기권 밖에는 연료를 태울 수 있는 산소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우주선이나 인공위성을 실어나르는 대형 로켓처럼 연료와 함께 산소를 내장하는 시스템을 적용한다. 반면 걸프전이나 이라크 전쟁에서 높은 적중률로 이름을 날린 ‘순항미사일(Cruise missile)’은 이와 다르다. 자동적으로 목표물을 찾아 지형의 굴곡에 맞게 저공비행하는 순항미사일은 발사 초기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과 같이 ‘로켓 추진’을 한다. 하지만 일정 속도에 달하면 터보제트 엔진 등으로 전환해 항공기처럼 양력(揚力)을 이용해 비행한다. 연료만 내장한 채 연소시키는 데 필요한 산소는 비행 중 빨아들이게 된다. 때문에 만일 대기권 밖으로 나가게 된다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책꽂이]

    ●敬一의 삶과 문학세계의 이해(김승호 지음, 역락 펴냄) 조선 효종∼숙종 연간에 활동한 태허당(太虛堂) 경일대사의 문학세계를 그의 ‘동계집(東溪集)’을 중심으로 고찰.17세기 승려 경일은 부처를 이야기하기보다 노·장자를 입에 올리기 좋아하고 우화등선의 신선을 동경한 특이한 존재다. 그러나 저자(동국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경일을 단지 이단적 언행으로 일관한 시승으로 규정하는 것은 짧은 소견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경일을 도교적 환상에 사로잡힌 인물로만 보지 말고 경직된 문단에 문학적 새로움과 낯섦의 미학을 실증해 보인 ‘문제적’ 작가로 보자는 것이다.1만 4000원.●비잔틴 미술(토머스 매튜스 지음, 김이순 옮김, 예경 펴냄) 서양미술사 책들은 흔히 선사시대, 이집트, 그리스·로마, 중세, 르네상스 등으로 시대를 구분한다. 이런 ‘본류’를 중심으로 이집트와 그리스 사이에는 미노스와 미케네 미술, 그리스와 로마 사이에는 에트루리아 미술, 로마와 중세 사이에는 비잔틴 문명이 간간이 끼어드는 식이다. 그러나 비잔틴 미술은 서양 중세미술에 근간을 제공하는 등 서구미술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비잔틴 미술의 원동력이 된 이콘(성상화), 장대한 하기아 소피아 성당, 노르만족 왕실 예배당이었던 시칠리아의 카펠라 팔라티나 등 비잔틴 문명의 예술 전반을 다룬다.1만 9000원.●공자:현대 중국을 가로지르다(전인갑 등 지음, 새물결 펴냄) 반제반봉건을 내건 5·4운동 시기의 ‘타도공가점(打倒孔家店, 공자를 타도하자)’부터 1970년 문화대혁명 시기의 비림비공(批林批孔)운동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중국의 주요 격동기에는 어김없이 공자가 등장하곤 했다.1930년대 국민당 주도로 시작된 신생활운동이나 최근 국가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공자의 민족성인화작업에서도 공자는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책은 공자를 모시는 종교적 사당이었던 문묘가 20세기 들어 동물원까지 갖춘 민중교육관으로 변질되는 과정 등 공자가 정치와 대중을 위해 동원되는 모습을 다각도로 조명한다.1만 9000원.●사기­역사와 삶의 철학이 만나는 살아 있는 기록(사마천 지음, 고은수 풀어씀, 풀빛 펴냄) ‘사기’는 중국 전설상의 오제 시대부터 한나라 무제에 이르기까지 약 3000년간의 역사와 그 시대를 살아간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 책. 청소년들이 알기 쉽게 풀어썼다.1만 2000원.
  • [신용하 교수의 ‘독도와 EEZ’](상)독도영유권-역사가 말한다

    [신용하 교수의 ‘독도와 EEZ’](상)독도영유권-역사가 말한다

    지난 4월 ‘독도 대치’를 계기로 한국 정부는 독도를 기점으로 동해 배타적경제수역(EEZ)경계획정 협상에 임한다. 오는 12·13일 도쿄에서 6년 만에 개최되는 5차 한일 EEZ협상은 독도 영유권을 기저에 깐 한판 외교전쟁이 될 전망이다. 신용하 독도협회회장으로부터 우리땅일 수밖에 없는, 독도를 기점으로 EEZ협상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논거들을 세 차례에 걸쳐 듣는다. 독도는 역사적 권원(權原)에서 누구의 영토인가? 1. 한국의 독도영유권의 역사적 권원 독도영유권 문제에서 맨 먼저 고찰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독도가 누구의 땅인가를 밝히는 일이다. 국제법에서도 마찬가지다. 독도영유권의 역사적 권원(historical title)을 밝혀야 영유권의 최초의 국제법적 근거가 밝혀진다. 한국은 서기 512년(신라 지증왕 13년)에 동해의 해상 소왕국 우산국(于山國)이 신라에 병합될 때부터 문헌상 명료하게 한국의 고유영토가 되었다. 여기서 우산국이 울릉도만으로 구성된 소왕국이 아니라 울릉도와 독도(우산도)를 다 포함한 해상 소왕국이었다는 사실의 확인이 필요한데,‘세종실록지리지’(1432년 편찬),‘동국여지승람’(1481년),‘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만기요람’군정편(1808년),‘증보문헌비고’(1908년) 등에 비교적 명료하게 기록돼 있다. 이때 조선왕조는 독도를 ‘우산도’(于山島)라고 호칭했다. 일본은 18세기에 울릉도를 죽도(다케시마)로, 독도(우산도)를 ‘송도’(마쓰시마)라고 불렀다.‘만기요람’군정편에서는 여지지(輿地志)에 이르길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皆) 옛 우산국 땅이다. 우산도는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松島)이다.”라고 기록했다. 이 고문헌은 울릉도와 우산도(독도)가 ‘모두’ 옛 우산국 땅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우산도(독도)는 일본인들이 말하는 송도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독도의 옛 이름인 ‘우산도’의 명칭 자체도 ‘우산국’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우산도(독도)가 우산국의 일부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2. 일본 고문헌도 “독도는 한국영토” 일본 정부는 일찍이 일본에서 최초로 독도(송도) 명칭을 든 일본고문헌으로 1667년 편찬의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를 한국 정부에 알려왔다. 정작 이 보고서를 보니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는 고려 영토이고, 일본의 서북쪽 국경은 은기도(隱岐島·오키섬)를 한계로 한다는 내용이다. 일본 최초의 독도관련 고문헌도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17세기 이후 1905년 2월까지 일본의 모든 고문헌과 고지도들은 모두가 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기록하고 있고, 독도를 일본 영토로 기록한 것은 단 1건도 없다. 지난 2006년 5월12일 일본 고이즈미 정부 내각회의는 1954년 이후 한국의 독도 영유는 ‘불법점거’이며, 일본은 늦어도 17세기 중반 ‘독도영유권을 확립’했고,1905년 내각회의가 독도영유권을 ‘재확인’의결했다는 결정서를 국회답변 형식으로 의결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근거 없는 억지이고 거짓이다. 시마네현에 사는 어부 2명이 조선 울릉도와 독도에 월경하여 고기잡이할 허가장을 신청하자 도쿠가와 막부는 1618년 “죽도(울릉도)도해면허”와 1656년 “송도(독도)도해면허”를 내준 일이 있다.‘도해면허’(渡海免許)는 외국에 월경하여 건너갈 때 내어주는 허가장으로 요즈음의 ‘여권’과 비슷하다. 일본 영토가 아니라 국경을 넘어가는 다른 나라인 조선영토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3. 일본 도쿠가와 막부도 1696년 독도는 한국영토로 재확인 뿐만 아니라 1696년 1월28일 도쿠가와 막부 정부는 대마도주의 울릉도 독도 논쟁에 대한 조선의 항의를 받고 조사한 끝에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영토임을 재확인하고, 일본 어부의 울릉도 독도 출어를 금지했다. 일본측은 이같은 내용의 외교문서를 조선정부에 보내왔었다.(사진1) 사실상 울릉도 독도 영유권 문제는 이때 종결된 것이다. 4. 일본의 명치유신 정부도 울릉도·독도를 조선영토로 재확인 1868년 1월 수립된 명치유신 정부도 마찬가지다. 명치정부 태정관(총리대신부)과 외무대신은 조선과의 신 외교관계 수립을 위해 1869년 12월 조선 부산에 외무성 고위관리를 파견할 때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가 조선부속(朝鮮附屬)이 되어 있는 시말’을 내탐 조사하도록 훈령했다. 그 조사보고서가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라는 제목으로 ‘일본외교문서’제3책에 수록돼 있다.(사진 2) 이 일본 관찬 공문서는 국가최고기관인 태정관과 외무대신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부속령이었음을 잘 인지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자료이다. 더욱 결정적인 일본정부 공문서 자료가 있다.1876년 일본 내무성은 근대적 전국 지적도 작성을 위해 각 현에 자기현의 지도를 작성해 올리라고 훈령했다. 이 때 시마네현 지사가 동해 가운데 울릉도(죽도)와 그 외의 1도 독도(송도)를 시마네현에 넣어 그릴까 빼고 그릴까, 영토의 넣고 뺌은 중대 안건이어서 현지사가 결정할 수 없으니 내무대신이 결정해 달라고 품의했다. 내무성은 약 5개월간 조사한 후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는 조선영토이고 일본과는 관계없는 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영토문제는 극히 중대 안건이므로 국가최고기관인 태정관에게 최종 결정을 품의했다. 당시 일본 국가최고국가기관인 태정관 우대신(총리대신에 해당) 이와쿠라 도모미(岩倉見視·명치유신의 최고 지도자)는 1877년 3월20일 “울릉도(죽도)와 그 외 1도 독도(송도)는 조선영토로서 일본과는 관계없는 땅이니 그렇게 심득하라.”는 요지의 결정서 훈령을 3월29일 내무성에 보냈다. 태정관의 이 훈령은 4월9일자로 시마네현 지사에게 하달됐다.(사진 3) 이것은 결정적인 자료다. 일본의 근대정부도 국가최고기관인 태정관이 면밀한 조사 검토 끝에 독도·울릉도는 일본영토가 아님을 공문서 훈령으로 명확히 결정해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관청에까지 훈령을 내린 것이다. 이 밖에 일본 육군성과 해군성 지도, 수로지 등에도 증거는 다수 있다. 5. 일본의 1905년 독도침탈의 불법성과 무효 일본은 1904년 2월 러·일전쟁을 일으킨 후, 러시아 군함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한 일본 해군 망루를 독도에 1개, 울릉도에 2개 세우기로 했다. 마침 이 무렵 일본 시마네현 어업가 나카이(中井)란 자가 독도 부근 수역에 풍부한 강치(물개의 일종)잡이 독점이권을 한국정부로부터 얻기 위해 독도 대부신청서를 작성, 일본 중앙정부에 대행을 신청했다. 이는 ‘나카이 사업경영개요’(1910) 등에 잘 기록돼 있다. 이에 일본 해군성과 외무성은 이 기회에 독도를 ‘무주지(無主地)’라고 억지 전제하고 일본에 ‘영토편입’해 침탈하려는 야욕을 갖게 됐다. 내무성은 그 섬이 ‘무주지’가 아니라 ‘우산도’란 이름의 조선영토라는 의견을 냈으나 해군성과 외무성은 러·일전쟁 수행에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1905년 1월28일 내각회의에서 독도를 처음으로 시마네현에 편입시키고 이름도 ‘다케시마’(죽도)로 호칭한다고 결정했다.1903년 나카이가 이 섬에 고기잡이 나간 일이 있으므로 이것을 선점(先占)이라고 간주한 것이다. 당시 국제법은 영토 편입의 전제로 (1) 무주지와 (2)무주지인 경우에도 그 주변 관련국에의 조회와 국제적 고시를 조건으로 하고 있었다. 일본의 독도 영토편입은 완전 불법이었고 무효였다. 왜냐하면 1903년 당시나 1905년 이전에 독도는 주인 없는 ‘무주지’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주인이 있는 ‘유주지’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는 독도의 소위 ‘영토 편입’을 한국 정부에 조회(照會)하지도 못하고 ‘국제고시(告示)’도 하지 못했다. 대한제국은 이미 1900년 칙령 제41호로 지방관제 개정을 하면서 울릉도를 종래 강원도 울진군 소속에서 독립시켜 ‘울도군’을 신설했다. 또 울도군수를 임명해 행정구역을 울릉도와 독도(석도)로 발표하고 중앙 관보를 통해 각국 공사관에 보내 국제고시까지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일본은 거의 1개월간 고심 끝에 꾀를 내어 중앙 관보고시는 못하고 한국과 각국 공사관이 알지 못하도록 시마네현의 현 ‘관내고시’(管內告示)를 하도록 했다. 고시일자가 1905년 2월22일인데, 이것이 현재 일본이 제정한 ‘다케시마의 날’이다. 그러나 이것은 국제고시가 아니기 때문에 무효다. 일제는 러·일 전쟁을 1905년 9월5일 승리로 종결하자마자 같은 해 11월 소위 ‘을사조약’을 강요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했다. 그리고 이듬해 1906년 1월에는 대한제국 외무부를 폐지하고 내정도 지배했다. 일제가 독도침탈 사실을 울도군수 심흥택에게 알게 한 것은 외교권을 완전히 강탈해 간 다음인 1906년 3월28일. 울도군수는 놀라 ‘본군 소속 독도’가 일본에 영토편입됐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즉각 중앙정부에 보고했다. 중앙정부 참정대신과 내부대신은 일본의 독도침탈에 항의하고 부정하는 훈령을 내렸으나 외무부가 없어 일본정부에 외교문서로 전달하지 못하고, 현재 규장각에 고문서로 보존되어 있다. 독도는 1910년 한반도를 침탈한 일제가 러·일전쟁을 도발하면서 5년 먼저 강점한 한국 땅이다. 독도는 한국 독립의 날이 오면 한반도와 함께 반드시 반환받아야 할 한국의 고유 영토였다. 한양대 석좌교수(독도학회 회장)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3) 마음과 의식의 차이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3) 마음과 의식의 차이

    우리는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생각이 마음이고, 의식은 분명하게 주제화하는 자의식이나 도덕적 논리적 자각의 깨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고 여긴다. 그 말이 대체로 옳다. 마음과 의식의 차이를 비교함은 사전적 의미의 개념을 하나 정리해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적 문명에 대한 비전을 숙고해 보는 깊은 뜻을 지녔다고 하겠다. 프랑스의 20세기 무신론적 실존철학자 사르트르는 확실한 의식의 철학자다. 그는 사물의 존재양식과 의식의 존재양식을 철저히 구별하여, 사물의 존재양식은 의식없이 멍청한 상태에서 자기와 자기자신 사이에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자기동일적 존재로서의 즉자(卽自)존재(being in itself)이고, 인간의 의식은 자기와 자기자신 사이에 늘 거리를 두고 반성하고 자기자신을 부정하면서 자기자신의 어제를 극복하려 애쓰고 있는 대자(對自)존재(being for itself)라고 규정하였다. 그는 또 인간은 매일 자기자신을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그런 투명한 의식의 존재로서 자기만족의 게걸스러운 존재방식을 거부하는 무한자유의 존재라고 인간의 의식을 높이 평가했다. 사르트르에게 명증한 자의식의 포기는 인간의 죽음과 같다. 의식의 철학자 사르트르와 달리 자연스런 마음의 뜻을 가장 철학적으로 정교하게 밝힌 사유는 불교의 유식학(唯識學)이라고 보는 데는 별 이의가 없겠다. 불교의 유식학에 의하면 일체가 다 마음이고, 다 마음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집, 산, 구름, 자동차, 사람 등이 다 마음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그렇다. 이것을 유식학의 용어로 만법유식(萬法唯識·모든 것은 마음이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과 같음)이라 부른다. 마음은 바깥으로 지향하는 탈자(脫自·자기를 벗어남)운동이고, 이 탈자운동으로 마음이 자기의 수준과 차원만큼 바깥에 그림을 무의식적으로 그린다. 이 그림이 바깥 경계로서의 집, 산, 구름, 자동차, 사람 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면 집, 산 등의 개념이 다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일까? 아니다. 저것들도 사람 마음의 욕망 수준이나 차원만큼 제각기 다르게 그려진다. 어떤 이는 집을 투기의 대상으로, 또 다른 이는 집을 낭만적 스위트 홈으로 여길 수도 있다. 산도 마찬가지다. 산을 자연의 온상으로 여기는 이가 있는가 하면, 산을 이익을 위한 경제개발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모든 것들은 마음의 욕망의 대상인데, 그 대상은 마음의 욕망이 그린 사이버에 불과하다. 유식학은 마음이 곧 식(識·자기 마음을 알아차리는 마음)이라고 하는데, 그 알아차리는 마음은 마음이 세상을 향하여 무의식적으로 탈자적인 운동을 하고 있는 욕망과 분리되지 않는다. 탈자운동은 내가 결심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탈자적인 운동을 이미 하고 있기에 무의식적이라고 한다. 눈이 색을 보면서 그냥 알아차리고, 귀가 소리를 들으면서 그냥 알아차리는 것은 눈과 귀가 각각 보고 들으려는 욕망의 운동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더구나 눈과 귀는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보고 들으려 하는 무의식적 기호를 지닌다. 보고 들으려는 욕망이 사람마다 다르면, 색과 소리를 알아차리는 마음의 각도가 달라진다. 이런 자연적 마음의 알아차림과 욕망은 의식수준의 결심과 다르다. 도덕의식은 인간이 도덕적 양심을 실천하기 위하여 자각하려는 결의와 함께 가고, 과학적 의식은 인간의 의식이 대상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기 위한 명석하고 판명한 판단능력을 요구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제의식은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한 문제파악 능력을 상정하고 있다. 이처럼 의식은 자의식의 자각을 촉구하면서 도덕적 과학적 대상에 대한 주관의 가치우위를 염두에 둔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cogito·코기토)는 철학이 의식 철학의 정상이다. 이 ‘코기토’의 출현으로 의식이 철학의 역사에 뚜렷이 부상하여 객체에 대한 의식의 주체가 세상에 도덕과 과학을 낳는 진원지로 여기게 했다. 그래서 서양철학이 대체로 의식 철학이 되었다.18~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데카르트의 철학으로 의식과 주체가 철학의 영역에 솟아난 것을 콜럼버스의 신대륙의 발견에 비유했을 정도다. 이 말은 서양 철학사에서 데카르트의 ‘코기토’ 철학이 의식의 철학을 낳았고, 의식의 철학은 주체의 철학을 키웠고, 이 주체의 철학은 인간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삶의 지평을 개척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서양의 근대 400여년은 이 의식의 철학사였고, 의식의 철학사는 의식의 사회도덕적 자각과 과학적 눈으로 세상을 소유론적으로 지배하려는 강렬한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단적으로 의식의 철학은 세상을 자아의 보편적 의식으로 지배하려는 소유론의 철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사회도덕적 의식의 이상주의도 경제기술적 의식의 현실주의에 못지않은 소유론이라는 것을 우리는 앞글(1.2.7.8.9회)에서 여러 번 지적했다. 불교의 유식학에서도 의식이 취급된다. 그러나 그 의식은 신대륙의 발견처럼 자랑스런 성과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마음에 번뇌와 고통을 안겨다 주는 진원지로 여겨진다. 유식학에서 의식을 제육식(第六識)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의식이 오감(五感)의 지각인 안·이·비·설·신식(眼·耳·鼻·舌·身識=前五識)의 데이터를 나의 의식으로 통합하는 통각(統覺)의 기능을 수행하는 여섯 번째 마음의 알아차리기라는 뜻이다. 의식이 자기 홀로 공상처럼 생각하는 일도 하지만, 원칙적으로 의식은 오감이 작용하지 않으면 쉰다. 신체의 오감이 작동하기에 그 오감의 지각을 늘 나의 생각으로 모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의식이다. 그러므로 의식은 늘 ‘나의 의식’이다. 동물도 감각이 있기에 동물도 알아차리는 마음이 있고, 따라서 마음의 욕망인 탈자운동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동물도 각자 마음의 차원만큼 살아가기 위하여 알아차리는 본능적 욕망을 지닌다. 아마도 식물도 생존하기 위하여 알아차리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봐도 되겠다. 왜냐하면 식물도 공격이 오면 그 공격을 알아차리고 자기 방어의 기제를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식물은 마음을 지녔지만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동식물은 ‘나의 의식’이란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왜 인간만이 ‘나의 의식’이란 생각을 할까? 인간은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동물이고, 또 사회생활은 언어생활에 다름 아니고, 그 언어생활을 통하여 인간은 지능에 의한 소유론적 욕망을 성취시켜 나간다. 사회생활이 없으면, 즉 언어생활이 없으면 인간은 인간이 안 된다.17세기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II세는 갓 태어난 아기가 독일어를 전혀 듣지 않으면, 인류의 원초적인 언어인 신의 말인 히브리어를 말할 것이라고 공상했다. 병원에서 그는 간호원들에게 유아들이 독일어를 전혀 듣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 유아들은 신의 말인 히브리어를 말하기는커녕 얼마 후 다 죽었다고 한다. 언어생활은 사회생활의 길이고, 이 길은 인간의 길이다. 그리고 이 길에 지능이 동반된다. 지능은 사회생활을 통하여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경쟁은 소유욕에서 발단한다. 인간의 언어생활은 동물의 생물학적 욕망의 마음을 사회학적 욕망의 마음으로 바꾼 것의 대가다. 생물학적 욕망의 마음은 자기생존을 위하여 타 생명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끝나지만, 인간의 사회학적 욕망의 마음은 타 생명을 먹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타 생명을 사회적으로 지배하기를 욕망한다. 여기서 나와 타자의 사이에 투쟁이 일어난다. 서양의 의식철학에서 아무리 도덕의식이나 과학의식을 강조해도 그 의식은 다 사회적 지배의지의 투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불교의 유식학은 의식이 마음의 평화와 지혜를 어둡게 하는 번뇌와 고통의 원천이라고 본다. 사회생활에서 언어생활은 이미 인간의 무의식적 마음에 깊은 골을 새겨놓은 것과 같으므로, 유식학에서 이 언어생활이 잉태한 자의식은 아상(我相) 아만(我慢) 아애(我愛)를 형성하여 자아중심적 무의식인 제7식 말나식을 형성했다고 말한다. 이 말나식은 이미 의식과 오감의 지각을 다 자기중심적 편견과 색깔로 채색하게 하는 진원지와 같다. 그래서 의식수준의 도덕적 결의가 무의식인 말나식의 이기주의를 전혀 바꿔놓을 수 없다. 모든 이성주의와 이상주의의 헛수고를 우리가 여러 번 앞글(11.12.16.17회)에서 지적했다. 원효 대사는 의식수준의 번뇌를 ‘기(起)번뇌’라고 부르고, 무의식 수준의 번뇌를 ‘주지(住地)번뇌’라고 그의 ‘이장의’에서 기술했다. 그의 비유를 옮기면 기번뇌는 풀과 같고, 주지번뇌는 풀을 자라게 하는 땅과 같아서 풀뿌리를 쉽게 뽑아도 다시 땅에서 풀이 자란다는 것이다. 그러면 주지번뇌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길이 무엇일까? 오감과 의식이 쉬면, 제7식인 말나식도 고요해지고, 말나식이 진정되어 평온해지면 제8식인 아뢰야식도 맑아지면서 여래장인 불성(佛性=神性)이 피어 오른다는 것이다. 아뢰야식이 사실상 마음의 궁극적 본질이다. 죽으면 딴 마음은 다 소멸하는데, 이것만은 불생불멸한다. 여기에 부처님(하느님)의 종자와 번뇌에 찬 중생의 종자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본래 마음의 본질이 부처님(하느님)인데, 번뇌의 때가 사회생활(언어생활)의 와중에 끼어서 인간이 타인과 괴리되고 우주의 모든 동식물들과도 단절된 고립된 생활을 괴롭게 영위한다. 고립된 생활을 벗어나고자 타자를 욕망하지만, 소유론적 욕망만 하니까 서로 싸운다. 의식철학은 소유욕을 더욱 부채질하나, 마음의 철학은 우주의 만물로 향하는 존재론적 욕망의 길을 가르쳐 준다. 우주의 만물도 다 인간처럼 마음이다. 우주는 한마음(一心)이다. 인간의 마음에서 의식의 무게를 제거하면 우주의 동식물과 다 한 마음의 공명이 이루어진다. 심지어 광물까지도 잠자는 마음이라고 느껴야 하리라. 의식철학이 의식과 사물을 나눈다. 그러나 마음의 철학은 의식과 사물이 둘이 아니고, 한마음의 동기(同氣)라고 여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Book Review] 도둑맞은 베르메르…/구치키 유리코 지음

    역사상 가장 유명한 미술품 도난사건을 꼽으라면 단연 1911년 루브르 미술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 사건을 들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작품을 되찾은 이 사건은 애국심이 발로된 하나의 ‘낭만적’ 사건이었다. 명화를 훔치는 것은 정치적 목적이나 자기 나라 작품을 되찾겠다는 애국심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유명 미술품 도난사건에는 으레 거대 범죄조직이 끼어 있다. 그들에게서 범행의 사회의식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도난당한 명화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1985년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에서는 모네의 ‘인상­해돋이’를 도난당했으며,1990년에는 보스턴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에서 렘브란트의 ‘갈릴리 바다의 폭풍우’와 베르메르의 ‘세 사람의 연주회’를 도둑맞았다. 또 1994년에는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동계올림픽 개막식날 뭉크의 ‘절규’를 도난당했고,2003년 영국 드럼랜리그 성(城)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돈나’가 관광객으로 위장한 절도범에 의해 도난당하기도 했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을 때 바그다드 미술관에서 행해진 미술품 약탈 만행은 실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미술품 도난사건은 비단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3년 운보 김기창 화백의 그림이 대량으로 도난당했고,2002년 국립공주박물관에서는 국보 247호 ‘금동보살입상’을 도둑맞았다가 다시 찾은 일도 있다. 최근엔 1980년대 초 선암사에서 도난당한 불화가 경매에 나오는 등 미술품 도난의 역사는 숙명처럼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도둑맞은 베르메르-누가 명화를 훔치는가’(구치키 유리코 지음, 장민주 옮김, 눌와 펴냄)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베르메르의 대표작을 잃어버린 보스턴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의 도난사건을 중심으로 미술품 절도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도난의 대상이 된 명화들을 낱낱이 제시하며 범행 동기와 수법, 도둑맞은 그림의 행방과 되찾은 사연, 미술품 컬렉터들의 열정 등을 살핀다. 수많은 미술품 도난사건 가운데 왜 베르메르를 택했을까. 베르메르의 작품은 왜 끊임없이 도난의 표적이 되는 것일까.‘베르메르’를 훔치는 것은 종종 소설의 모티프가 되기도 한다. 캐서린 웨버의 소설 ‘뮤직 레슨’에는 아일랜드계 여성이 아일랜드해방군(IRA)에 속한 한 남자의 꼬임에 의해 영국 왕실 소장의 베르메르 작품을 훔치는 계획에 동참하는 장면이 나온다. 토머스 해리스의 범죄소설 ‘한니발’에도 ‘베르베르 순례’ 이야기가 등장한다. 베일에 싸인 네덜란드 미술의 거장 베르메르(1632∼1675).17세기, 네덜란드는 그야말로 황금시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세계 해상권 제패와 식민지 개척으로 엄청난 부(富)가 네덜란드로 밀려들었다. 이같은 물질적 풍요를 바탕으로 예술 또한 화려하게 꽃폈다. 그 중심에 바로 베르메르가 있었다. 작품의 희소성과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가려진 삶, 사후 200년이 지나서야 명성을 얻게 된 신비의 화가…. 이런 점들은 분명 베르메르의 명성을 더욱 확고한 것으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베르메르는 그 생애가 감춰져 있었던 데다 작품 제작연도도 모호해 끝없는 위작논란과 도난의 대상이 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베르메르의 작품은 1971년 ‘연애편지’가 도난당한 것을 시작으로 1970년대 이후 다섯 차례나 도둑의 표적이 됐다. 저자가 베르메르에 초점을 맞춰 ‘미술품 도난사’를 전개해가는 것은 그런 점에서 적잖이 상징성이 있다. 책은 중간중간에 미술품 도난보험 이야기도 곁들여 관심을 모은다. 모든 미술관이 도난이나 화재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도난보험에 가입한 상설 컬렉션은 전체 미술관 가운데 70∼80%에 불과하다. 네덜란드처럼 공영미술관이 도난보험에 전혀 가입돼 있지 않은 나라도 있다. 네덜란드는 이런 사실을 공개하고 있지만, 보험 가입 자체가 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만큼 보험 가입 여부를 비밀에 부치는 미술관들이 많다.‘아트 테러리즘’‘아트 테러리스트’‘아트 내핑’. 저자는 정치적 의도를 갖고 행하는 테러리스트들의 미술품 절도를 설명하기 위해 이같은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미술품을 인질로 삼아 요구를 관철시키는 수법은 테러와 같으며, 나아가 인간 유괴사건과 흡사하다는 것. 저자는 ‘지하세계에서는 그림이 일종의 화폐로 통용된다.’는 말을 들려주며 세계적인 미술품에 대한 허술한 보안과 명화를 노리는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1만3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월드컵 개최도시를 가다

    월드컵 개최도시를 가다

    월드컵이 열리는 동안 여행객들의 마음 또한 설레기 마련이다. 혹시 독일이나 유럽 여행 계획이 있다면 우리 축구팀 경기가 열리는 곳을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독일내의 프랑크푸르트, 라이프치히, 하노버 등으로 간다면 재미가 열배에 달할 것이다. 축구도 보고 관광도 하고…. 우리팀 경기가 열리는 도시 주변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많은 박물관과 공원이 있어 여행의 즐거움이 더욱 커질 것이다. 지난 2002년 4강신화를 재현할 역사의 현장으로 함께 떠나 보자.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도움말 엔투어유럽팀장 정명화(www.ntour.co.kr) # 독일의 심장, 프랑크푸르트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보다 세계적으로 더 알려진 도시가 프랑크푸르트. 유럽 금융의 중심지라는 의미로 ‘방크푸르트’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지정학적으로 독일의 심장부에 위치해 있으며, 금융과 산업 등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오는 6월13일 오후 3시부터 아프리카의 강호 ‘토고’와 물러설 수 없는 경기가 열린다. 거리에서, 공원에서 전 세계 축구 팬들과 모여 ‘파이팅 코리아’를 연호하고 시원한 맥주와 함께 프랑크푸르트 매력에 빠져 보자. 대부분의 독일 도시, 아니 유럽 도시들이 그렇듯 프랑크푸르트도 유적지가 구시가에 잘 보존되어 있으며 걸어서 돌아보는 것이 가능하다. 프랑크푸르트 관광의 출발점은 뢰머광장(Romerberg). 동화 속의 중세마을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층진 지붕으로 독특하게 지어진 ‘구 시청’과 과자로 만든 집들 같은 ‘오스트차일레’, 그리고 ‘정의의 분수’가 아름답다. ‘역사박물관’, 성 니콜라스(산타클로스) 조각상과 40개의 종으로 이루어진 카리용(편종)으로 유명한 ‘니콜라이 교회(Nikolaikirche)’,1562년부터 1792년까지 신성 로마제국 황제들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카이저 돔(Kaiserdom, 대성당)’ 등도 둘러 보자.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대문호 ‘괴테’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괴테 집은 뢰머광장 북서쪽에 있으며 옆 건물에는 그가 사용했던 물품들과 작품들이 전시된 소박한 박물관이 붙어 있다. 이 외에도 후기 르네상스 양식의 ‘오페라 하우스’, 프랑크푸르트의 상징인 독수리가 부조된 ‘에셴하이머 탑(Eschenheimer Turm)’,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결합된 ‘성 레온하르트 교회’, 고대에서부터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된 ‘리비크 하우스(Liebig-Haus)’ 등도 놓치면 안 된다. # 종교와 교육, 예술의 중심지인 라이프치히 고도(古都) 라이프치히.1409년에 이미 대학이 설립된 문예의 도시로 오랫동안 독일의 출판 및 도서관 문화의 중심지였다. 또한 동서 분단 시절부터 동부 독일에서 베를린에 이어 두번째로 큰 도시이며 프랑크푸르트, 하노버와 함께 3대 박람회가 열린다. 바로 여기서 6월19일 저녁 9시 아트사커군단인 프랑스와 일전을 치른다. 맛있는 독일 맥주 몇 캔을 사서 전광판이 있는 거리로 가보자. 경기가 저녁이라 라이프치히는 낮에 한번 둘러보기에 충분하다. 발달된 철도문화를 가진 유럽에서도 가장 큰 기차역인 라이프치히의 중앙역(1915년에 지었음). 수백 개의 기차 레일과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에 놀라게 된다. 역 바로 앞의 트램 정거장 건너편 ‘라이프치히 정보센터’ 오른쪽 길을 따라 구시가 산책을 떠나자. 길 왼편으로 우선 만나게 되는 것이 ‘니콜라이 교회’다. 이곳은 16세기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치장된 아름다운 내부로도 유명하지만 구 동독의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린 ‘부드러운 혁명’의 모임 장소로 사용된 역사적인 곳이다. 니콜라이 교회로 들어선 골목으로 조금만 더 걸으면 라이프치히의 중심광장(Marktplatz)이 나온다. 이 광장에는 독일 시청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구 시청사’와 라이프치히 법대생이었던 괴테의 기념비가 서 있다. 중앙광장에서 남서쪽에 있는 토마스 교회(Thomaskirche)는 작고 볼품없지만 바로 이곳이 독일이 낳은 위대한 음악가인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무덤이 있는 곳. 그는 이 교회에서 1723년부터 1750년까지 27년 동안 성 토마스 소년 성가대를 이끌었다. 또한 교회 맞은편에는 ‘바흐 박물관’이 있다. 라이프치히를 이미 보았다면 프라하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는 ‘드레스덴’이나 역사적·철학적으로 의미 깊은 ‘바이마르’를 당일치기로 가보는 것도 좋다. # 동화와 전설이 깃든 하노버 독일 북부의 하노버는 영국느낌이 나는 지역이다. 하노버의 선제후(중세 독일에서 황제 선거의 자격을 가진 제후)의 장남이 1714년 영국의 왕좌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 후 산업이 발달하면서 물류의 거점으로 성장했다. 하노버에서 6월24일 저녁 9시에 조별 예선의 마지막 경기인 스위스와 경기가 열린다. 저녁 9시이므로 하노버 중앙역 앞의 ‘정보 센터’에서 무료 관광지도를 구해 여행을 떠나면 된다. 하노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건축 대가인 ‘라베스’가 설계한 세련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오페라 하우스다. 곧게 뻗은 길을 따라 걸으면 하노버가 자랑하는 ‘니더작센 주립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독일 회화 작품들과 플랑드르 화가들을 비롯하여 낭만파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시대적으로 구분된 ‘슈프렝겔 박물관(Sprengel Museum)’에는 현대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하이라이트는 단연 피카소와 박스 베크만의 작품들이다. 인공호수를 따라 다시 북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면 중앙에 둥근 돔으로 바로크 양식의 궁전처럼 지어진 신 시청사, 라이네 강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17세기에 지어진 ‘라이네 성(Leineschloss)’이 자리잡고 있다. 성 북쪽으로는 하노버의 중심광장이 있으며 이곳에는 붉은 벽돌 고딕 양식과 독창적인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한 ‘광장 교회(Marktkirche)’가 있다. 중앙광장 주변에는 옛 하노버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는 목조가옥들과 ‘발호프(Ballhof)’라는 시민들을 위한 운동장 등 유럽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곳이 관광객을 맞는다.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1) 자유에 대한 명상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1) 자유에 대한 명상

    자유는 철학에서 아주 중요한 의제로 다루어진다. 자유는 공기와 물과 불처럼 이 세상에 사는 인간에게 필요 불가결한 기본적 요소와 같다. 공기와 물과 불이 있어도 자유가 없으면, 인간은 살지 못한다. 인간은 자유롭지 않으면 인간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독립선언문 전문에 씌어 있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천부(天賦)의 권리’라는 말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저 셋은 인간 존재를 가능케 해주는 기본 요소로서 동의어와 같다. 인간은 태어나면 저절로 인간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물질적으로 생명을 유지해야 하고, 정신적으로 자유스러워야 하고, 그래서 그 바탕 위에서 인간은 행복해야 한다. 우리가 교육을 받고 지식과 지혜를 배우는 것도 인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억압이 있기에 자유가 존재하게 된다. 내 몸과 마음이 억압을 느끼지 않으면 자유를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맑은 공기가 희박하면 숨쉬기가 어려워지는 경우와 같다고 하겠다. 자유는 추상적 관념과 이념의 문제가 아니고, 살을 통해 느끼는 구체적 마음의 총체적 부자유와 분리되어 생각되어질 수 없다.‘나는 총체적으로 자유스러운가?’ 이 이상한 질문 앞에서 북한과 같은 절대독재체제 하에서의 생활을 제외하면, 우리는 단박에 OX식의 답변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이것은 자유의 의미가 노예적인 억압의 질곡을 벗어나는 소유론적 해방을 뜻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마음의 걸림을 던져버리는 존재론적 해방도 포함되기 때문이겠다. 소유론적이든 존재론적이든, 자유는 20세기 가톨릭 실존철학자인 프랑스의 가브리엘 마르셀의 말처럼 ‘내가 자유스러워야 한다.’는 제어의 의미를 본질적으로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근대 서양의 자유론은 이 소유론적 의미의 자유를 쟁취하는 과정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겠다. 이 소유론적 자유론이 심리적 자유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화하여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 된 것은 보통 다 알고 있다. 소유론적 자유론은 단적으로 사회전체의 안녕질서를 위협하지 않는다면, 몸과 의식의 자유로운 운동을 억압하는 문명을 천부의 불가양도적 권리의 이름으로 거부하는 사상과 제도를 말한다. 이런 자유주의적 사상의 원류는 17세기 프랑스 데카르트의 의식철학으로부터겠다. 데카르트로부터 의식의 개념이 공식적으로 서양사에 등장하게 되었고, 그 의식은 곧 ‘내가 생각한다.’(cogito)는 자의식과 주체의 개념을 서양 정신문화의 전면에 등장시키는 계기를 이루었다. 자의식의 주체를 능가하는 진리의 성전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근대사상에서 천부의 권리가 되었다. 주체의 의식은 독립적으로 사유하는 데에 있다. 스스로 사유하는 것이 주체적 사유고, 이것은 남의 간섭을 받거나 강요받지 않는 상태에서 명증적으로 사유하는 것에 해당한다. 단적으로 자유는 독립적 의식의 주체적 사유와 간섭과 강요를 받지 않는 명증한 의식의 상태를 말한다. 그런 의식이 바로 개인의식이다. 자유주의의 철학은 결국 개인주의로 진행된다.‘cogito’의 주체의식이 17세기 영국의 로크 철학으로 이행하면서 경험적 관념들의 자유로운 사고이동으로 더 구체화되었다. 로크는 인간의 의식에 데카르트가 말한 선천적 관념이라는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있다면 미개인이나 문명인이 다 같은 자유의 의식을 향유해야 하는데, 미개인은 문명인이 생각하는 자유의식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의식은 백지, 즉 ‘대패로 민 널빤지’(tabula rasa)와 같다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자유주의는 철두철미 의식의 철학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의식의 주체는 개인인데, 대체로 대륙의 합리론은 그 개인을 불변의 실체로 여기고, 영국의 경험론은 어떤 관념들의 심리적 집합을 가능케 하는 경향으로 개인을 생각한다. 근대의 자유민주주의는 이 영국의 경험론자인 로크 철학에서 그 기원을 잡고 있는데,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로 자유는 몸을 가진 의식의 자유스런 생각들(ideas)의 움직임을 보증해 주는 데 있다. 생각의 자유스런 개진이 막힌 사회는 숨통이 막힌 사회가 생명을 앗아가듯이 썩은 사회로 변하면서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공간으로 변한다. 생각들의 활발한 개진이 사회적으로 동적인 사회를 구성케 하여 발전의 원동력을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둘째로 생각의 주체적 표현과 이동의 자유가 보증되는 사회라도 경험적으로 나의 생각이 꼭 절대적으로 옳다는 명증한 결론이 보증되지 않으므로 결국 다원적으로 관용(tolerance)이 용인되는 사회가 최선의 자유사회라는 것이다.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사유재산의 자유, 집회결사와 표현의 자유, 종교신앙의 자유 등등이 이런 자유론의 실천방안들이다. 다시 한번 더 묻는다.“나는 자유스러운가?” 이 질문에 대하여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답변은 ‘나는 더 자유스러워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근대 자유주의의 본질은 단적으로 자유의 소유론적 쟁취와 유관한 뜻으로 읽힌다. 부자유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결핍된 심신의 자유로운 운동을 소유해 나가는 과정이 자유주의의 전개양상일 것이다. 배고픈 상태로부터 자유를 사회적으로 향유한 상태로의 이전이 근대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이다. 자유사회로 가기 위한 길은 배고픔의 상태를 벗어나는 것이다. 배고픔은 자유사회의 적이다. 그 배고픔은 경제적인 궁핍과 자유 실천방안들의 사회적 부재를 말한다.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업적은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배고픔의 부자유를 사회적으로 추방시킨 덕이겠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자유스러운가? 우리는 더 자유스러워야 한다고 느낀다. 우리는 소유에 의한 자유에서부터 다시 더 해방된 자유의 존재이기를 원한다. 경제적 사회적 부자유의 배고픔을 추방시킨 소유의 자유를 넘어 다시 존재론적인 자유의 요구를 실현하고자 원한다. 이 존재론적 자유의 요구는 마르셀이 그의 저서 ‘인간의 존엄성’에서 암시한 것처럼, 자유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점점 더 자기 자신의 포로가 되어 가고, 자기 이익과 자기 감정과 자기 편견의 굴레에 갇혀 살 뿐만 아니라, 또한 세상을 자기중심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려는 습기의 짐을 벗어버리려는 요구와 같이 간다. 존재론적 요구는 단적으로 마음이 자기의식으로 무장되지 않고 자의식으로부터 해방된 자유의 존재이기를 바라는 요구를 말한다. 이 가톨릭 철학자는 불교적 사유와 아주 유사하게 말한다. 소유의식에서 해방된 존재론적 자유의 사상을 보통 사회과학자들이 가까이 하지 않는다. 아마도 너무 사변적인 철학의 영역으로 치부해서 그러는 것 같다. 그런데 자유주의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아직도 가화(假花)와 같은 사회주의에로 기울고 있는 사회과학자들이 없잖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자유주의의 대처방안도 못될 뿐만 아니라,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도 자유주의에 못지 않는 소유의식의 철학인데, 집단적 소유의식의 강령이 사회를 도덕화한다는 허구 아래 개인적 사고의 신선함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집단적 도덕의 캐너피(canopy)로 혁명한다고 사회를 덮어씌운다. 거기서 생명과 자유는 배고픔 속에서 질식한다. 더구나 사회주의는 자유주의보다 자의식이 더 강하다. 자유주의의 자의식은 이기적 자의식이기에 약간의 죄의식을 품고 있으나, 사회주의의 자의식은 도덕적인 정의감으로 무장되어 있어서 자기이념의 감옥 속에 더 갇혀 폐쇄적 확신 속에 산다. 우리는 더 자유로워야 한다. 소유론적 자유에서 존재론적 자유에로 우리는 마음을 회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유주의나 사회주의는 다 의식의 철학이므로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마음의 법을 알지 못한다. 마음은 의식과 다르다. 이것을 다음에 말하겠다. 중국 선불교의 삼대종사인 승찬(僧璨)대사의 ‘신심명’에서 마음이 미워하고 사랑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마음은 통연히 명백해질 것이라고 언명했다. 애증(愛憎)의 감정적 판단을 내려놓으면, 마음은 존재론적 자유 자체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대사는 옳고 그름을 다투는 것은 마음의 병이 된다고 하고, 인연을 쫓지도 말고, 공인(空忍·세상의 고통을 외면하고 필경공의 입장에 안주함)에도 머물지 말라고 설법한다. 참도 구하려 하지 말고, 오직 망령된 견해만 쉬면 된다고 가르친다. 존재론적 자유의 이념에 너무 젖으면, 그것이 다시 집착의 오랏줄이 되어 우리를 부자유스럽게 한다는 역설을 승찬 대사는 말한다. 존재론적 자유는 인간이 세상에서 택일의 가치관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세상만사는 다 양면성이 있기에 선을 택해도 선만 오지 않고 악도 불청객으로 따라 온다는 것을 승찬 대사는 가르친다. 그래서 선악도 다 잊고 무심의 초탈경지에서 세상을 바라보기를 요구한다. 오직 그때에만 인간은 스스로 자기자신의 포로로 갇혀 사는 것을 초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선악과 호오에 의한 감정적 택일을 하는 한에서, 인간은 자의식을 갖게 되고, 그런 한에서 인간은 스스로에게 존재론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원효(元曉)대사는 이런 초탈의 자유를 이중부정으로 표시했다. 즉 비선비악(非善非惡·선도 아니고 악도 아님)의 경지를 말한다. 이런 이중부정의 경지를 아직도 사회과학자들은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경지가 진실로 인간세상을 의식의 편견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차원임을 깨닫는 날이 곧 올 것이다. 좋은 세상은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배고프지 않고, 소유의 탐욕에 집착하지도 않는 마음의 도래에서 가능하다. 승찬 대사가 말한 무심의 초탈적 자유는 마르셀이 그의 저서 ‘거부(拒否)에서 기구(祈求)에로’에서 언급한 ‘우리의 자유는 우리자신이다.’라는 말과 함께 이해되어야 하리라. 이제 자유는 우리가 소유하는 속성이 아니라, 우리자신이 자유가 되어야 하는 자기 제어임을 마르셀이 언명한 것이겠다. 소유론적 자유는 아만(我慢)의 아집(我執)과 참을 찾았다는 법집(法執)을 버리지 못한다. 우리의 존재를 자유롭게 하는 초탈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시론] 日 독도 영유권 주장은 거짓/신용하 한양대 석좌교수·독도학회 회장

    [시론] 日 독도 영유권 주장은 거짓/신용하 한양대 석좌교수·독도학회 회장

    일본 정부가 지난 12일 내각회의에서 1954년 이후 한국의 독도영유는 ‘불법점거’라며,“일본은 늦어도 17세기 중반 독도 영유권을 확립했고,1905년 내각회의가 이 독도영유권을 재확인 의결했다.”는 답변서를 공식 결정했다. 이는 전혀 근거가 없는 새빨간 거짓이다.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는 두 어부가 조선 울릉도와 독도에 월경하여 고기잡이 다녀오겠다고 청원을 내자,1618년 ‘죽도(울릉도)도해면허’와 1656년 ‘송도(독도)도해면허’를 내 준 일이 있다. 이때 도해면허는 외국에 월경하여 나갈 때만 내어주는 오늘날의 여권과 유사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도해면허는 도리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영토이고 일본영토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측 항의를 받은 도쿠가와 막부는 1696년 1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재확인하고 ‘죽도(울릉도)도해면허’와 ‘송도(독도)도해면허’를 취소했으며, 울릉도·독도로 일본어부들의 출어를 엄금하는 명령을 내렸다. 이 사실은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 일본 내무성 ‘공문록(公文錄)’,‘조선통교대기(朝鮮通交大紀)’ 등 일본고문헌에 잘 기술되어 있다. 17세기 중엽 일본의 독도영유 확립은 커녕 도리어 독도는 조선고유영토였고, 일본 도쿠가와 정부도 이를 조선영토로 재확인하여 조선정부에 보내 온 1696∼1699년의 공식 일본외교문서가 보관되어 있다.1905년에 일본정부 내각회의가 일본의 독도영유를 재확인했다는 일본정부의 의결도 거짓이다. 일본정부는 1905년 1월28일 한국정부와 국민 몰래 독도를 처음으로 영토편입을 결정할 때 독도가 ‘주인없는 땅(무주지)’이고, 나카이라는 일본어업가가 1903년 독도 연해에서 고기잡이한 일이 ‘무주지선점(無主地先占)’이 된다고 근거로 내세웠다. 이때에 일본 내무성은 그 섬이 조선 우산도(于山島)여서 한국영토라는 의견을 냈고, 나카이도 이 섬이 한국영토이므로 한국정부에 고기잡이 청원서를 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해군성·외무성이 앞장서서 ‘무주지’라고 억지를 부리며 영토야욕으로 독도를 침탈키로 하였다. 주목할 것은 1905년 일본 내각회의가 독도는 ‘무주지’이기 때문에 처음으로 일본에 영토 편입한다는 결정은 현 일본정부의 17세기 중엽 일본 영유권 확립주장을 부정한다는 사실이다.17세기 중엽에 일본 독도영유권이 확립되어 있었다면 1905년에 새삼스럽게 일본 정부가 독도를 무주지라고 하면서 ‘처음으로 영토편입’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일본정부가 1905년 내각회의에서 일본의 독도영유권을 재확인했다는 주장은 따라서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본은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잘 알면서도 영토탐욕으로 독도 ‘영토편입’결정을 하고 한국정부와 국민 몰래 독도를 침탈한 것이다. 그리고 1910년에는 아예 한반도 전체를 강점 침탈하였다. 국제법상의 기관인 연합국최고사령부는 청·일전쟁의 해인 1894년 1월1일을 기준일로 일본제국주의가 그 이후 침탈·편입한 모든 영토는 원주인에게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연합국은 1946년 1월29일 연합국최고사령부 지령 제677호로 독도를 탐욕에 의해 일본제국주의가 침탈한 토지로 규정해서 일본영토에서 제외하여 한국에 반환하였다. 이제 일본의 극우파 신팽창주의 정권이 구 일본제국주의를 계승하여 궤변을 토하며 또 독도를 침탈하려고 도발해 온다. 한국 국민과 정부는 일본의 신팽창주의적 도전에 당당히 적극 대응하여 주권과 영토를 굳게 지켜야 한다. 신용하 한양대 석좌교수·독도학회 회장
  • 日 “한국, 독도 불법점거” 국회답변서 채택

    |도쿄 이춘규특파원·서울 김수정기자|일본 정부가 12일 각의 결정을 통해 “일본이 늦어도 17세기 중반에 영유권을 확보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1954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독도에 대한 한국의 실효 지배는 ‘불법 점거’라는 국회 답변서를 채택했다. 스즈키 무네오(鈴木宗男) 중의원 의원의 서면질의에 대한 답변 형식을 취한 문서에서 일본 정부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영유권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전제한 뒤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 이름)의 영유권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주장하고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시도하는 한편 유효한 방책을 끊임없이 검토해 가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추규호(秋圭昊) 외교통상부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고유한 영토인 독도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주권행사에 대해 일본 정부가 불법 점거라고 주장하는 것을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11일 열린 부(副)대신회의에서는 초·중·고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내용을 적극 기술해야 한다는 촉구가 잇따랐다고 산케이(産經)신문이 12일 보도했다.taein@seoul.co.kr
  • 검은 대륙은 슬프다

    “그런데 이 땅도 한때는 이 지구의 어두운 구석 중의 하나였겠지.”(조셉 콘래드 ‘암흑의 핵심’)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기억하시는지?영화에선 캄보디아 정글로 묘사됐지만,사실 원작이라 할 수 있는 폴란드 출신의 영국 작가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 무대는 아프리카입니다.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콩고 강이었지요. 아프리카 연수 중 우연히 후배가 권해 이 책을 펼친 순간,제가 느끼고 있던 바를 제대로 짚은 책이란 생각이 들더군요.사실 시에라리온에서 자꾸 이 영화의 몇몇 장면들이 겹쳐 보여 몸서리를 치던 뒤끝이었습니다. 해서 이 책을 줄거리로 이번 연수 중에 느꼈던 여러가지 소회를 나누려 합니다. “정복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포악한 힘뿐인데,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 해서 자랑할 것은 못 되지.왜냐하면 누가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해도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약하다고 하는 사실에서 생기게 된 우연한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이지.그것은 암흑 세계를 다루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적당한 행위이지.이 세계의 정복이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 우리들과는 피부색이 다르고 우리보다 코가 약간 낮은 사람들을 상대로 자행하는 약탈 행위가 아닌가.그러므로 그 행위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것이 못 된다구.이 불미스러운 행위를 대속해주는 것은 이념밖에 없지.그 행위 이면에 숨은 이념이지,감상적인 구실이 아니라 이념이라야 해.그리고 그 이념에 대한 사심 없는 믿음이 있어야지.이 이념이야말로 우리가 설정해놓고 그 앞에서 절을 하며 제물을 바칠 수 있는 무엇이거든.”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저는 속으로 각오를 단단히 했더랬습니다.분명히 가슴 아픈 여행이 될거야 라고 속으로 확인시키곤 했지요.아니나 다를까,가나 수도 아크라에 도착하자마자 확인이 됐습니다.길거리에는 한참 일할 나이의 젊은이들이 나와 사과 봉다리 같은 걸 들고 운전자들에게 사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지금도 엄청난 숫자인데 1년 전만 해도 차량이 운행되지 못할 정도로 수가 많았지만 그나마 줄어든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이걸 이 나라 말로 ‘카이에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인신매매된 아이들의 가족 재결합 행사를 지켜보고 난민 캠프를 둘러보러 오가는 길 창밖으로 비치는 장면들은 하나같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나는 속된 말로 양반이었습니다.시에라리온의 둥기 공항에 내려 헬리콥터를 갈아타는 과정에서 ‘아,내전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지요.포터들이 앞다퉈 여행객들의 가방을 서로 옮겨주겠다고 나서는데 정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습니다.일자리가 부족하고 일이 없어 저렇게까지 사람들이 극단적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헬리콥터를 타고 만을 건너 수도 프리타운에 내려 호텔로 이동할 때가 밤 8시가 가까웠을 때입니다.밤 풍경으로도 이 나라가 심각한 에너지난,경제난에 허덕인다는 사실이 증명됐지요.사람들은 집안의 열기를 못 견뎌 밖에 나가 하릴없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호텔 밖으로 잠깐 나가려다 발길을 돌리고 말았습니다.호텔 앞인데도 위쪽 산동네에서 흘러온 하수가 길거리에 넘치고 있었던 것이지요.거리에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정부 관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일행이 어느 빈민가 근처에서 내린다고 채비하는데도 저는 가만히 차안에 앉아 있었습니다.제 감정선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일행은 5분도 못돼 올라왔습니다.비참한 상황을 목도한 듯 아무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누군가 “어휴,저렇게 어떻게 사나”라고 혼잣말을 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저는 시에라리온에 있을 때 나중에 기사 쓰면서 한가지 표현은 계속 써야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카메라를 들이댈 수가 없다.” 그렇습니다.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는 상황이 연일 이어졌습니다.저희 한국 기자들은 이번 연수 12일 가운데 딱 두번 술을 많이 마신 날이 있었는데,우연의 일치인지 이날은 모두 기억에 남겨두기 싫은 장면들을 보았던 날들인 것 같았습니다.무의식에서나마 기억을 떨쳐버리고 잠이라도 편히 자기 위해 통음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 돌아와 바를 연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가는 길에 저희 일행은 정말 못 사는 동네에 발을 들여놓게 됐습니다.지나는 저희를 보며 “차이니즈” 하면서 시비를 붙이려 하는데 사실 겁 나더군요.비좁은 골목길 누군가 지나던 아주머니를 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운전자를 욕하는데 운전자는 한마디로 벌벌 떨더군요. 이슬람이 주류 종교인 탓도 있고 해서 이곳에서 사진 찍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렌즈를 돌리면 마구 화를 내며 손사래를 치거나 고함을 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누군가 기다렸다가 불씨만 당겨주면 무슨 일인가 터질 것 같은,똑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저만큼 우리 앞에 전개되는 해안은 미소를 짓는가 하면 상을 찌푸리기도 했고 매혹적이고 장려한가 하면 야비하고 무미하구나.일반적이기도 했는데,늘 이리 와서 알아내보라고 속삭이는 듯한 모습만 보이면서 침묵하고 있었다네.” 식민주의자들은 이런 식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해안선이 알아내 보라고 손짓한다고 거기 이끌려왔다고 설명하는 탐험가,목사,선교사들은 밀림으로 들어가 상아는 물론,노예까지 신대륙으로 빼내 데려갔고 해방도 그들의 이름으로 시켰지요.프리타운은 17세기 말 자메이카 등에서 해방시킨 노예들을 풀어놓고 영국이 다시 이들을 환금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으로 키워내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지요. 그 많던 광물이며 천연 자원들은 이제 고갈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 됐지만 오늘 아프리카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장할만한 것은 없어 보입니다. 사실 아프리카로서도 책임을 떠넘길 수만은 없는 일이지요.중국이 지금 저렇게 아프리카를 파고들 수 있는 것도 수십년동안 아프리카 지도자와 엘리트들에게 속은 사실을 깨달은 유럽 각국이 발을 뺏기 때문에 가능해졌다는 설명을 국제이주기구(IOM)의 김철효 씨는 했습니다. 당당하면서도 절박한 엘리트들의 호소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지만 얼마 뒤 그 친인척들이 세운 회사가 고스란히 그 돈만을 떼먹는 사례가 한두가지가 아니었던 것이지요.그런 일을 수십년 겪다보니 이제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인이 하는 얘기를 전혀 믿으려 하지 않는다고 김씨는 덧붙였어요. 거기 비하면 우리 근대화 세력은 그나마 도덕적이며 근대적이었던 것이지요.갑자기 우리나라가 부쩍 커진 것처럼 느껴지더군요.돌아와 딸에게 건넨 첫마디가 “너,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겨라” 였습니다.딸 아이는 언제쯤 이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까요. 어느 정신 나간 보수주의자가 이 두나라에 운동권 출신들을 모두 보내 정신교육 단단히 시켜볼만 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미치더군요. 사실 아프리카인들에겐 이해되지 않는 대목들이 많았습니다.첫째가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도 전혀 꿇리지 않는다는 점이었지요.가나 부두부람 캠프에서 라이베리아 난민들은 제게 “너희들이 급수 문제를 해결재줄 수 있느냐.약속을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나중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사람들의 전술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덕적 의무감을 긁어 약속을 받아내는 데 노련하다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또 그렇게 난민 중에 기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또 놀랐습니다.어느 여성은 저희 일행에게 너네 신문사에서 우리를 기자로 재교육시킨 다음 고용해줄 수 있느냐고 공개적으로 물었습니다.후배 하나가 제게 그러더군요.“형,권력이 좋은 게 그런 때인가 봐요.그런 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약속을 해줄 수 있지 않아요?”라고요.딴은 옳은 지적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뭔가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그건 매력있는 일이겠지요. 둘째는 정말 이 사람들 아무 데서나 잘 잔다는 것이지요.그냥 의자에서 자는 게 습관화된 것 같더라고요.날이 더워 그런지 몰라도 호텔 직원들도 거의 의자에 앉아 자더군요.아크라 호텔 옆 공사장 인부들도 그냥 아무 데서나 자리깔면 바로 잠들어 버리더군요. 셋째,마시는 물에 대해 정말 둔감하더군요.도로 변에 물을 봉지에 담아 파는 아이들이 많은데 이 물 뜨는 장면을 본 우리 일행들이 기겁을 하더군요.그냥 아무 데나 물웅덩이 같은 데서 물을 담아 팔더라는 거지요.근데 그걸 뻔히 알 어른들은 돈 주고 그 물을 사먹고 가나와 시에라리온 두 나라의 출산 때 기대 수명이 각각 40대 후반과 중반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위엄있는 선의(善意)를 가지고서 그 거대한 이국적 세계를 통치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었어.우리는 단순히 의지로 해나가기만 해도 실제로 무한한 이익을 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위엄있는 선의의 모든 것이 로마에 있었습니다.하필 이번 연수를 주관한 한국언론재단은 이번 연수의 마지막 경유지를 로마로 잡아놓고 있었지요.처음에는 아무런 생각없이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브뤼셀을 거쳐 로마로 들어가는 비행기에서 마침 창 쪽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번 여행의 마침표가 로마인 것은 우연이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쭉쭉 뻗은 영지와 동그랗게 모여든 사람들의 마을,포도밭과 유채꽃밭의 어울림 등 이탈리아의 모습은 아프리카의 그것과 너무도 달랐습니다. 6시간 정도의 짧은 트랜짓을 틈타 돌아본 로마 시내의 콜로세움과 성당,로마 광장 등은 식민지 수탈의 땀방울을 고스란히 담아 그 알갱이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있었지요.아프리카인들은 계속된 수탈과 침탈,내부 분열에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고요. 세계화 체제라는 숭고한 이념,대속될 수 있는 이념 아래 이제는 멀리 중국까지 아프리카의 자원을 노려 해안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지요.우리 역시 사해 동포주의가 아니라 자원이 욕심 나 최근 부쩍 아프리카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를 다녀온 저는 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지원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지만,정말 조건없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면 저들을 그냥 내버려두자는 것이었습니다.국제기구들이 얼마나 위선적으로 움직이는지도 어느 정도 파악했습니다.프리타운 산 정상에선 엄청난 규모의 미국 대사관 신축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그들만의 성을 쌓고 있었습니다. 그냥 놔둡시다.조건없이 도와줍시다.자원 같은 것 노려 그들을 지원한다면 식민주의자와 우리가 무어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영화의 마지막에서 커츠 대령은 죽음을 자청하기 전 “모든 야만인을 말살하라.”고 내뱉습니다. 사실 콘래드가 식민주의를 찬양하거나 숭상했다는 결정적 증거는 없으면서도 제국주의자라는 평단의 오해는 존재해왔습니다.그의 갈팡질팡하는 문체가 이런 오해를 증폭시킨 것도 물론이고요.하지만 그의 글은 두세번 읽어보면 아,이 친구가 비아냥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됩니다. 하여튼 제가 기사에도 썼듯이 이 두 나라,특히 시에라리온은 외부 원조 없이는 하루도 견뎌낼 수 없는 나라입니다.도덕적 죄책감을 긁어 원조를 얻어내려는 아프리카인의 의도는 뻔히 알지만,그럼에도 그 물이 흘러 넘치다 보면 저 밑에까지 돌아가지 않겠는가 생각해봅니다. 주위를 돌아보시면 이들 나라의 각종 프로그램,예를 들어 아동 인신매매 퇴치나 난민 돕기 등 도울 수 있는 창구들은 많이 있더군요. 저도 이번에 알았는데 기부금의 사용처를 명확히 요구하고 이를 나중에 모니터할 수 있도록 기부 문화가 진보돼 있더군요.월드비전 같은 곳에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빈곤층 아이들에게 월 2만원씩 기부하고 매달 어린이의 진척 상황을 이메일 등으로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있더군요. 제가 많이 언급한 국제이주기구(IOM)도 이런 프로그램을 갖고 있더군요.우리 연수단 일행도 이런 프로그램에 적극 동참하기로 했어요.도덕적 의무를 충족시키고 너네들 나름대로 인생 즐기려는 거지,그게 무슨 소용있겠어 라고 핀잔을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위선적인 기부금이 그들에겐 도움이 되니까요. 에이 모르겠어요.그렇다고 제가 이 복잡한 세계 체제를 뜯어고칠 혁명가 체 게바라가 나타나길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그렇게 해서 순식간에 바뀔 수 있는 세계 체제도 아니니까요.
  • [희망-절망의 갈림길 아프리카] (하) 아동 매매 고통받는 ‘가나’

    [희망-절망의 갈림길 아프리카] (하) 아동 매매 고통받는 ‘가나’

    |아크라(가나) 임병선특파원|한번 끌어안고 뺨을 비벼볼 따름이다. 참회의 눈물이나 감격의 울음은 끝내 터지지 않았다. 푼돈에 아이를 내맡긴 부모들이 그 아이들과 다시 만나는 현장에는 그저 쑥스러운 미소만이 흐를 뿐이었다. 서부 아프리카에서 가장 먹고 살 만하다는 가나에서도 아동 인신매매가 만연돼 있다. 특히 지난 1964년 아코솜보댐 건설로 만들어진 세계 최대 인공 담수호인 볼타 호수 주변에서 성행하고 있다. 적도의 태양이 사정없이 열기를 대지에 뿜어대던 지난달 26일, 수도 아크라에서 북동쪽으로 1시간30분쯤 달려 볼타호 주변 아베이메 마을에 이르렀다. 커다란 공터의 아카시 나무 그늘 아래 왼편에 39명의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오른편에는 그들을 50∼60달러에 판 부모와 조부모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 집안 3명이 함께 팔려 나가기도 이날 재결합 행사는 국제이주기구(IOM) 아크라 사무소가 두달여에 걸쳐 아이들의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치료하고 영어 읽기와 쓰기 등을 익히게 한 뒤 부모 품에 돌려보내면서 이런 일이 다시 없도록 다짐을 받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율동을 선보이기도 한 아이들이 영어로 또박또박 자신의 이름과 장래 희망을 소개하자 부모들 사이에서 탄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제 앞가림이나 할 수 있을까 싶은 6살부터 키가 제법 껑충한 16살까지 39명의 아이들은 제각기 다른 아름다움으로 빛났다. 말이 인신매매지 푼돈에 아이를 팔았다는 손가락질을 받기 십상인 부모들은 다른 얘기를 한다. 아이가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아이를 맡겼다는 것이다.IOM의 조지프 리스폴리는 “이 점에서 이곳의 아동 매매는 동남아시아에 만연된 인신매매와 많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대부분 대서양 연안 마을에서 태어나 볼타 호수 주변으로 이주해온 부모들은 장례식 때문에 고향에 들렀다가 선주들로부터 아이를 훌륭하게 맡아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맡겼다. 선주들은 약속과 달리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은 물론, 매년 사례금도 보내지 않고 아이들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물에 뛰어들어 고기를 잡게 했다.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노를 휘두르기도 했다. 이날 아이들은 연극을 통해 자신들이 겪은 일을 소개했고 이를 지켜본 부모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남보듯 바라보기만 하던 아이들과 부모가 손을 맞잡을 시간이 돌아왔다. 조금 전 손자 둘의 손을 잡고 들어간 한 할머니가 다시 불려나와 이번에는 다른 아이 2명의 손을 맞잡았다. 사연인 즉 두 딸이 아버지도 모르는 아이 둘씩을 낳고 사라져 버리자 손자 넷을 한꺼번에 맡을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고 했다. 한 어머니는 가장 나이 어린 여섯살 딸과 오빠 둘의 손을 꼭 잡고 어색한 미소만을 흘렸다. ●마을 단위 교육까지 예지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아동 인신매매 근절 운동을 펼치는 IOM에서는 이웃이 아동을 매매할 경우 이를 뜯어말리고 선도할 수 있도록 마을 단위의 교육까지 실시하고 있다. 부족사회 전통을 활용하려는 의도에서다. 또 아이들을 사서 부린 선주들에게는 다른 사업을 해보도록 적극 권유하고 필요하면 기술이나 창업 교육까지 한다고 했다.2002년 8월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에 따라 지금까지 589명의 아이들이 부모품에 돌아갔다. 꾸준한 모니터를 통해 10%의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잘 적응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했다. 가나 정부에 어린이 전담 부서가 생긴 것은 1990년대 후반. 어린이 인신매매를 금지하는 법이 만들어진 것도 지난해였다. 한 경찰 관계자가 “또다시 아이를 팔면 감옥에 갈 줄 알아라.”고 언성을 높이자 부모들이 큰 소리로 항변한다. 가난이 죄라는 것이었다. 너무 높은 출산율 탓이다. 한 집에 아이들이 8∼10명씩이나 되다보니 이런 일이 일상이 된다. 유엔아동보호기금(UNICEF)의 리브 앨덴은 “2000년에 17%이던 출생 신고율이 지난해 67%로 뛰어올라 그나마 위안”이라고 밝혔다.5시간에 걸친 행사가 모두 끝나자 아이들은 IOM 등이 나눠준 가방과 학용품 등을 챙겨 부모 손을 잡은 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남긴 채 집으로 향했다. 검은 대륙에는 슬프고도 지독한 일들이 너무 많다. bsnim@seoul.co.kr ■ 난민 캠프 ‘부두부람’ |부두부람 캠프(가나) 임병선특파원|먼 옛날 이곳에 처음 정착한 사냥꾼 ‘부두’는 우물 하나를 파서 지나가는 이들에게 골고루 나눠줬다. 해서 마을이 생겨났다. 이 부족 말로 우물을 뜻하는 ‘부라’를 붙여 이 마을은 부두부람으로 불리게 됐다. 우물 하나가 이제는 멀리 라이베리아에서 내전을 피해 떠나온 난민 4만 2000여명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터전으로 커졌다. 지난달 27일 아크라를 빠져 나와 서쪽으로 50분쯤 달리자 오른편 야트막한 언덕에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큰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1990년 내전을 피해 부르키나파소와 코트디부아르를 거쳐 걸어서 가나 땅으로 들어온 난민 26명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된 부두부람 캠프. 17만평의 부지에 웬만한 시설은 다 있다. 비록 의사 2명이 4만명을 진료하지만 에이즈 등 기본적인 검사를 할 수 있는 병원도 있다. 학교 45곳, 유치장을 갖춘 파출소, 도서관, 시장도 있다. 주민 대표들로 구성된 복지위원회는 7개 상임위를 두고 이곳의 관리를 맡고 있는 유엔 난민 고등판무관실(UNHCR)에 의견을 전달한다. 주민들은 “2000년부터 가나 정부가 지원을 끊어 1만명만이 식량을 배급받고 있다.”며 “모든 주민에 식량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또 4만여명이 모여 사는데 화장실이 15곳뿐이고 아직도 상수도가 없어 물탱크 공급을 받고 있는 등 16년 동안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UNHCR는 정정 안정이 확인되면 가나 전체의 라이베리아 난민 숫자가 1만명 정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낮에도 캠프 입구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는 귀환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진 난민들을 상대로 상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진정 이들은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16년째 뿌리를 내린 삶의 터전을 떠나기가 쉽지 않고 여기선 자녀들을 학교라도 안심하고 보낼 수 있기 때문인 듯했다. 캠프를 떠날 때 시장에서 파는 생선들을 쳐다보니, 저걸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구호기관들이 자랑하던 자급자족의 현주소는 이런 것이었다. 우리 역시 난민들이 무더기로 유입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커져가고 있다. 최근 미국 국무부가 북한 난민을 대대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밝힌 것이 기폭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해서 이 캠프의 운영 사례는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bsnim@seoul.co.kr ■ 가나는 어떤나라 국내 제과업체가 처음 만들어낸 초콜릿에 붙인 상표는?바로 이 나라 이름이다.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 주산지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또 월드컵 본선 1라운드에서 맞붙을 토고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1년 전인 1956년에 가나는 영국령 토고를 합병시켰다.4세기 말 베르베르인들에 의해 건설된 가나제국과 17세기 말 아칸족이 건설한 아산테 제국의 영화가 뿌리깊은 데다 잦은 쿠데타의 아픔을 씻고 1980년대 중반 이후 민주적인 정권 교체가 계속돼 역내(域內)에서 가장 안정적인 정치, 앞선 경제를 자랑한다. 이런 영향으로 내전에 시달리던 라이베리아와 르완다, 특히 지난해 선거 폭력에 내쫓긴 토고 등에서 난민이 계속 유입돼 현재 6만 2000명의 난민과 망명 신청자가 체류하고 있다. ●이 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6일까지 한국언론재단이 주관한 해외 인권 단기 연수에 참가해 작성했다. 가나의 인신매매 아동 구출 프로젝트나 라이베리아 난민 캠프를 돕고 싶은 독자는 국제이주기구(IOM) 서울사무소(02-6245-7647)나 유엔 난민기구 서울사무소(02-773-7013)로 연락하면 된다.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7) ‘나’의 말과 ‘그것’의 말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7) ‘나’의 말과 ‘그것’의 말

    ‘나’(I)라는 대명사는 자연의 생물학적 본능(It)이 사회화한 사회적 욕망의 무의식인 ‘그것’(It)의 기반에서 자란 어떤 가상(假像)에 불과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나’라는 자의식은 거품과 같은 환상이고, 실상은 ‘그것’이라는 무의식의 말이다. 라캉의 생각에 설득력이 붙는다. 일상생활에서 ‘내’가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나의 말은 사회적 소유욕의 무의식인 ‘그것’이 나의 자존심의 덩어리를 빌려서 말하는 꼴이다. 이 글은 16회의 생각을 좀 더 연장시켜서 우리가 쓰는 말과 연관시켜 보려고 한다. 인간의 의식은 자의식과 같은 개념이다. 자의식은 사회생활에서 남들과 자기를 분별하는 심리와 같다. 사회생활에서 모든 이는 다 자기 우선의 생각으로 살아간다. 이것이 인간의 이기심이다. 이 이기심은 생물학적으로 동물의 살려는 맹목적 생존의지의 본능과 통한다. 동물의 본능은 생물학적 생존의지의 유지로 끝나지만, 인간의 자연적 본능은 생물학적 생존의지에서 사회학적 생존욕으로 이행하면서 지능이 본능을 대신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이기심은 사회적 이기심이고, 이것은 생물학적 본능의 생존의지가 사회생활에서 언어활동을 하는 주체로서의 자의식으로 변용된 것이다. 맹목적으로 살려는 생물학적 본능이 인간에게 사회학적 지능으로 자리바꿈하였다는 것은 사회적인 지배자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소유욕과 같다. 헤겔과 마르크스가 이것을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라고 읽었다. 사회생활은 곧 언어생활이다. 이 언어생활은 사회생활에서 각자가 자기의 지배욕을 남들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소유욕의 표현이다. 인간의 생존욕은 사회적 지배욕과 같은 의미다. 인간은 인정받기 위하여 지식을 쌓고 출세도 하고 부자가 되려고 안간힘을 쓴다. 인간의 지배욕은 언어생활에 인간이 가입할 수밖에 없는 유아기부터 시작된다.(16회 글) 인간은 타인들로부터 말을 배운다. 자기의 지배욕은 타인들로부터 익힌 지배욕의 반영이다. 이것을 정신분석가인 구조주의자 라캉(16회 글)은 ‘거울의 단계’라고 불렀다. 라캉에 의하면 생후 6∼18개월의 아기는 아직도 스스로 자의식도 없고 자존심도 형성되기 이전이다. 아기가 거울을 보면서 거울에 비친 자기영상이 타자의 영상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다가 그 영상이 곧 자기 자신의 반영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이 말은 인간이 사회생활의 와중에서 원초적으로 타자로부터 자기의 욕망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라캉이 말한 ‘거울의 단계’는 사회적 타자의 말이 자기의 말이 되는 무의식의 형성단계를 상징한 것이겠다. 그와 함께 타자의 말속에 잠재된 소유욕이 자기의 소유욕으로 탈바꿈한다. 나의 욕망은 사실상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형성되어 온 사회적 욕망의 언어적 굴레를 벗어날 길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나를 둘러싼 타자들로부터 말을 배웠고, 그 타자들의 소유욕에 무의식적으로 전염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타인들을 닮아 있으면서 그 타인들을 같은 소유의 경쟁자로 간주한다. 고대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아들 오이디푸스가 그의 생부와 싸워 죽인 살부의 행위는 인간의 사회적 무의식의 이중성을 반영한 것이겠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와 너무 닮았고, 동시에 그의 적수다. 인간은 남과 닮지 않기 위해 자기 것을 소유하려 한다. 그래서 패션도 유니크한 것을 찾는다. 그러나 결국 모든 패션은 다 유행으로 같아진다. 인간은 자기 것을 찾으면서 결국 다 타자의 것을 모방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행의 장난이다. 나의 소유욕은 타자가 준 것이라면, 왜 ‘나’라는 자존심에 인간은 그렇게 목숨을 거는가? 그것은 의식이 나와 남을 확실하게 나누기 때문이다. 의식이 말을 하면서 나의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고, 내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은 사회생활의 대결에서 자란 나의 자존심이 굴종과 상처를 입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나의 의식은 무의식적으로 생긴 사회적 지배욕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 한다. 남으로부터 부러움과 선망을 얻기 위함이다. 나만이 이기적이 아니다. 모두가 다 이기적이다. 그러므로 이기심은 사회학적 공동의 욕망이고, 이 욕망은 내가 생기기 이전부터 이미 있어 온 공통 무의식과 다를 바가 없다. 결국 이기심은 모두가 다 소유하고 있는 것이고, 자의식은 각자의 언어활동에서 생긴 ‘나’라는 대명사의 자존심을 남들에게 으스대고 싶은 이기심의 산물이다. 자의식은 사실상 일반적인 무의식적 이기심의 반영에 불과하므로 ‘내가 생각한다.’는 의식의 말은 사실상 ‘사회적 무의식이 다 생각한다.’는 것을 자기화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사회적 무의식의 소유욕이 한 언어권에서 일반적으로 강렬한 것일수록 개인으로서의 나도 그것을 소유하려고 강렬히 바란다. 그런 점에서 소유욕은 객관적 대상을 좇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욕망을 나도 욕망하려는 것과 같다. 이것은 한 시대에 사람들이 자기만의 것을 찾지만, 결국 다 유행의 무의식적 속성에 함께 섞이고 마는 것과 유사하다. 자의식은 소유적 무의식의 한 표피적 현상에 불과하다. 소유적 공통 무의식의 말을 라캉은 ‘그것이 말한다.’(It speaks)로 표현한다. 의식의 말인 ‘나는 말한다.’(I speak)는 기실 무의식의 말인 ‘그것이 말한다.’(It speaks)의 한 표피적 껍데기에 불과한 셈이다.‘그것’은 자아 이전에 이미 사회언어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공동의 업장과 유사하다 하겠다. 20세기 러시아인으로 미국에 귀화한 언어학자 야콥슨은 그의 저서인 ‘일반언어학시론-I’에서 인간이 말을 배움에서 가장 늦게 배우는 것이 1인칭 대명사, 지시사, 전치사들이고, 또 언어상실의 과정에서 가장 먼저 증발되는 것이 역시 늦게 익히는 1인칭 대명사, 지시사, 전치사들이라고 밝힌 바 있다. 즉 저 품사들의 내용이 무의식에 깊이 소유되지 않기 때문이겠다. 그렇다면 ‘나’(I)라는 대명사는 자연의 생물학적 본능(It)이 사회화한 사회적 욕망의 무의식인 ‘그것’(It)의 기반에서 자란 어떤 가상(假像)에 불과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나’라는 자의식은 거품과 같은 환상이고, 실상은 ‘그것’이라는 무의식의 말이다. 라캉의 생각에 설득력이 붙는다. 일상생활에서 ‘내’가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나의 말은 사회적 소유욕의 무의식인 ‘그것’이 나의 자존심의 덩어리를 빌려서 말하는 꼴이다. 내가 나의 개성미를 추구하는 패션을 의식하지만, 결국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시대의 유행인 ‘그것’의 구조 아래서 내가 춤을 추는 것과 같다 하겠다. 이것이 불교의 업감연기설과 유사하다는 것이다.(16회 글) 그런데 또 다른 무의식의 말이 있다. 이것이 본성의 말이다.(1·16회의 글) 이 본성의 말을 하이데거는 ‘그것’(It)의 말이라고 불렀다. 그가 말한 ‘그것’의 말은 라캉이 말한 ‘그것’의 말과 다르다. 왜냐하면 전자는 존재의 말이지만, 후자는 소유의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 다 자의식의 말을 중시하지 않는 데서 서로 비슷하기도 하다.17세기 프랑스의 데카르트가 말한 ‘내가 생각한다.’(cogito)의 철학은 의식의 주체로서 내가 진리를 소유해야 확실하다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다. 진리의 소유주로서 내가 명증하게 말한다. 이것이 합리적 진리의식이고, 소유의식이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의하면 저런 자의식의 철학은 자의식 중심주의가 되어서 절대로 우주와 세상을 존재하는 그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소책자인 ‘휴머니즘에 대한 편지’에서 ‘존재는 그것 자체’(Being is It itself.)라고 표명했다. 이것은 수수께끼 같은 말장난이 아니다. 하이데거는 해체철학의 선구자로서 모든 종류의 중심주의를 싫어한다. 재래의 서양철학은 고중세의 신중심주의에서 근현대의 인간중심주의로 생각의 중심을 옮긴 것이다. 생각의 중심이 이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생각의 질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중심주의는 신이나 인간이 모든 우주의 진리를 소유하는 주체라는 생각에서 전혀 변동이 없다. 말하자면 인격적 중심주의는 소유론의 진리를 반영하는 셈이다. 해체철학은 소유론을 해체시키고 세상을 원초적으로 존재하는 그대로 놓아두는 사상을 말한다. 세상의 필연성인 ‘그것’에 따라 세상을 편안하게 놓아두는 사상이 ‘나중심’과 ‘우리중심’이 될 수 없다. 그 사상은 중심을 모르는 ‘그것’의 사유라 할 수밖에 없다. 세상의 필연성인 ‘그것’은 삼라만상에 다 적용된다. 신과 인간을 비롯한 삼라만상에 다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의 의식이 소유하거나 장악할 수 있는 개별적 존재자들(beings)이 아니고, 자연성으로서의 절대무(絶對無)인 원기(元氣=potency)의 욕망과 같다고 하이데거는 ‘휴머니즘에 관한 편지’에서 설파했다. 그 절대무의 욕망은 타자를 소유하지 않고, 타자가 존재하도록 힘을 증여하는 원력과 같다. 절대무는 인격적 중심이 없기 때문이다. 절대무는 허무가 아니라 오히려 무진장한 기(氣)의 저장고를 뜻한다. 존재는 ‘그것’이 자신의 기를 증여하는 것(It gives)이라고 하이데거가 봤다. 이런 절대무의 사상이 14세기 가톨릭 교회의 수사였던 독일의 에카르트에게 나타났다.“신은 무엇이며 누구인가? 나는 대답한다. 신은 그것(Isness)이다.”“신은 무(nothingness)다. 신은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이런 것이나 저런 것이 아니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a beingless being)다.” 재래의 전통신학에서 말하는 신중심사상이 인간중심의 소유적 진리의지를 무의식적으로 절대화하기 위한 작업이라면, 에카르트는 그런 소유론적 신학사상을 해체시키려는 존재론적 신학사상을 선구적으로 펼쳤다고 볼 수 있다. 절대자인 신이 소유한 진리의지는 반드시 다른 절대자가 생각한 진리의지와 충돌을 일으킨다. 각 절대자의 진리의지는 인간들이 생각한 자의식의 진리의지를 무의식적으로 절대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각각 절대자를 숭배하는 다른 종교들 간의 전쟁이 성전의 이름으로 예나 이제나 역사를 장식한다. 절대자의 신격화를 해체시키는 길은 신을 ‘그것’,‘무’,‘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사유하는 절대무의 신학이겠다. 이것을 에카르트는 신성이라고 읽었다. 인간이 무의 본성을 닮으려는 한에서, 인간은 무의식의 본성인 무의 ‘그것’에서 그리스도를 본다. 바깥에서 전지전능한 절대자로서의 신을 보지 말고, 마음의 본성 안에서 그리스도가 자라게 하는 것이 미래 신학의 길이겠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우리 전통과학 뒤집어보기

    서양의 근대과학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전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과학을 연구하고 생활화했을까. 혹자는 우리 전통과학의 역사에서 과연 ‘과학’이라 할 만한 것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런가 하면 또 한편에선 과학적인 것으로 칭송받는 우리의 몇몇 유물들도 따지고 보면 값싼 국수주의의 산물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우리 과학 유물들의 과학성이 서구의 그것에 비해 현저히 뒤떨어진다는 얘기다. 서울대 국사학과 문중양 교수는 이런 자기비하적인 의구심에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서구식 잣대로 우리 과학을 재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가 펴낸 ‘우리 역사 과학기행’(도서출판 동아시아)은 서양 근대과학과는 사뭇 다른 패러다임의 우리 전통과학 세계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우리 전통과학을 그것이 처한 특정한 시대의 사회 문화적 배경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복원한다. 고대 신라인들의 하늘에 대한 관념은 우리와 어떻게 달랐는지, 조선 건국을 주도한 사대부들이 어떤 의도로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천문도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라는 세계지도를 국책사업으로 만들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저자의 표현대로 “그들의 세계관 속에 푹 빠져 봐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첨성대, 석불사 석굴, 훈민정음, 앙부일구, 금속활자, 거북선, 수표교, 혼천시계, 천하도 등 열여덟 가지 주제를 정해 각 유물에 담긴 의미를 짚어간다. 저자에 따르면 첨성대는 단순한 천문대가 아니다. 첨성대의 기능에 관해 처음으로 언급한 문헌은 15세기말 ‘신증동국여지승람’. 여기에 이후천문(以候天文) 즉 ‘천문을 물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외형상 전혀 천문대일 것 같지 않은 첨성대가 천문대로 알려지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역사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우리 역사 기록은 첨성대가 근대적인 의미에서 ‘천문을 관측’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천문에 대해 묻던’ 구조물임을 분명히 한다. 천문을 묻는 행위는 단지 천문현상을 관측하는 일 뿐만 아니라 풍년을 기원하고 천변재이로부터 무사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활동까지 포함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첨성대는 1500년전 신라인들의 염원을 담은 상징적 조형물 또는 그 염원을 풀기 위한 일종의 제단이었다는 설이 힘을 얻게 된다. 임진왜란의 일등 공신은 거북선이 아니다(?). 우리에게 거북선의 의미는 남다르다. 그러나 ‘거북선 신화’에만 빠져 있을 뿐 정작 그 거북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어떻게 싸웠는가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의 수군은 이미 판옥선이라는 우수한 군함과 막강한 화력의 화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거북선은 그 가공할 위력의 판옥선에 덮개를 씌워 ‘돌격용’ 군함으로 조금 개량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거북선은 뚜껑이 덮인 밀폐된 구조였기 때문에 기동성과 전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돌격선으로서 적의 예봉을 꺾는 임무를 수행했을 뿐 조선 수군의 주력은 어디까지나 판옥선이었다. 임진왜란 동안 거북선이 단지 3∼4척밖에 만들어지지 않은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는 것. 요컨대 이순신 장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거북선이 아니라 조선 수군의 대형 화포와 1555년에 개발한 판옥선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신비스럽고 미신적이기까지 한 원형 천하도(天下圖)를 통해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는가 하면, 서양 천문도와 전통 천문도를 단순히 혼합한 것에 불과한 혼천전도(渾天全圖)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기도 한다.17세기 이후 그려진 조선의 이 ‘황당무계한’ 천하도가 비록 객관적인 지리정보를 전해주진 않지만, 그런 천하도의 등장 자체가 유가의 정통적 세계인식에 균열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다. 이학박사 출신의 사학자라는 독특한 지적 배경을 갖고 있는 저자가 내리는 과학유물에 대한 평가는 일견 낯설고 거북스럽게 비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전통과학의 패러다임이 서구 과학의 그것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전제 아래 우리 과학문화를 평가하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은 적극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것은 결코 우리의 과학문화유산에 대한 어설픈 지적 분장(扮裝)이 아니기 때문이다.1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세계대학 경쟁력 탐사보고서-명문대 교육혁명] (2) 영국 옥스포드·케임브리지대

    [세계대학 경쟁력 탐사보고서-명문대 교육혁명] (2) 영국 옥스포드·케임브리지대

    |옥스퍼드·케임브리지 함혜리특파원|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사람들은 간단하게 ‘옥스브리지’라고 부른다. 옥스브리지는 섬나라 영국 속의 또 다른 섬과 같은 엘리트 집단으로서 영국 지성계의 양대 축이다. 세계적인 명문으로 전통과 명성을 유지하며 수백년 동안 영국의 ‘인재풀’ 역할을 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학생, 교수, 연구원 등 옥스브리지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튜터(Tutor) 시스템이라고 하는 개별지도 방식이 그 해답이었다. 두 대학은 실체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많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중세의 학문적 공동체에서 출발한 두 대학은 모두 보수적인 전통을 중시한다. 수많은 칼리지들이 모여 이뤄진 거대한 대학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학생들이 모두 기숙생활을 하는 학료(學寮)제도를 택하고 있다. 특히 튜터 시스템은 이들 두 대학이 오래 전부터 유지해 온 특별한 교육시스템이다. 중세의 학문적 공동체를 그 원형으로 삼아 16∼17세기에 발전된 이 교육방식은 빛의 속도로 정보가 오가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두 대학의 교육적 토대가 되고 있다.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의 학생들은 대학(전공)과 각 칼리지의 소속이 된다. 대학에서 일반적인 전공 강의 커리큘럼을 짜고, 강의를 진행한다. 시험도 대학이 주관한다. 반면 개인지도 수업은 각 학생이 속한 칼리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지도교수들을 옥스퍼드에서는 튜터라고 부르고, 케임브리지에서는 슈퍼바이저(Supervisor)라고 부르는 차이는 있으나 소그룹으로 진행되는 지도방식은 같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학생들은 재학 중 에세이 위기(essay crisis)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매주 지도교수와 얼굴을 맞대고 수업하는 개별지도 시간을 위해 에세이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에 따른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한 탓이다. 학생들은 담당 지도교수를 포함해 학기당 3∼5명의 개인지도가 있다.1주일에 2∼3차례씩 진행되는 개인 수업에서 교수들은 전공 과목의 진도에 맞춰 학생들에게 관련 서적, 논문을 지정해 주고 다음 시간까지 특정 주제에 대해 4∼5쪽 분량의 에세이를 써오도록 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작성한 에세이에 대해 교수에게 왜 이렇게 썼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기존 학설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는지 등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옥스퍼드대의 엘리자베스 팔레스 교육담당 실무 부총장은 “학생들은 일찍부터 전공 분야의 최고 석학들과 그들의 수준높은 학문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구 그룹의 일원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튜터 시스템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교육시스템의 핵심”이라며 “교수의 숫자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관리비용이 많이 들어가지만 좋은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시키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이 1년에 쓰는 에세이는 평균 50편 정도. 이를 제대로 쓰려면 최소 3권의 책과 2편의 전문 저널을 읽어야 한다. 학부 3년 동안 150편의 에세이를 쓰려면 읽어 치워야 하는 책은 전문저널을 포함해 적어도 750권은 넘는다는 얘기가 된다. 옥스퍼드에서 PPE(철학·정치학·경제학)를 전공하는 김진아(21·세인트 힐다스 칼리지)씨는 “한 문제에 대해 완전하게 이해하고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출 때까지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함께 토론하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면서 “적당히 준비했다가는 교수들로부터 면전(面前)에서 엄청나게 공격받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이 심하다.”고 토로했다.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의 장하준 교수는 “실력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많이 읽고, 쓰는 훈련을 거듭해야 한다.”면서 “학생들은 죽을 맛이지만 이 수업방식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지식을 쌓게 될 뿐 아니라 창의성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터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앨리슨 리처드 케임브리지 부총장은 “개인에게 집중된 교육시스템은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도록 유도하고, 학문적 질문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의 결론을 도출해 내는 능력을 키워준다.”며 “이런 방식은 경쟁력이 뛰어난 전문직업인이나 유능한 연구인력이 되기 위한 훌륭한 준비과정”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영국의 대학 입시제도는 선(先)지원·후(後)시험 방식이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들 두 대학은 우수한 학생들을 다른 대학보다 먼저 선발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학생들은 고교졸업을 1년 앞둔 10월부터 서류 접수에 들어간다. 학생들은 AS레벨 점수, 지도교사의 추천서, 자기 소개서, 수학 계획서 등을 첨부해 대입업무 총괄기구인 UCAS를 통해 응시원서를 낸다. 서류심사에 합격한 학생들은 12월 초 대학에 가서 면접을 치른다. 이를 통과하면 A레벨 테스트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경우 최종 입학할 수 있다는 ‘조건부 입학허가’를 이듬해 1월에 받는다.8월 A레벨 테스트의 성적이 대학이 제시한 조건에 맞으면 최종으로 입학이 허가된다. 워낙 뛰어난 학생들이 지원하기 때문에 최종선발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에 입학하는 데 A레벨 테스트 점수 외에 중요한 것은 교수들과의 면접이다. 케임브리지의 케이트 프리티 실무 부총장은 “완성된 지식은 중요하지 않다. 지적인 잠재력을 지닌 학생들이 각자 자기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갖춰주는 것이 바로 대학과 교수들의 몫”이라고 강조한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옥스포드 총리만 25명 배출 ‘정치 지도자 산실’ 케임브리지 노벨상 수상자 80명 ‘자연과학 메카’ |케임브리지·옥스퍼드 함혜리특파원|케임브리지는 자연과학에서, 옥스퍼드는 인문학에서 각각 전통과 권위를 자랑한다. 중세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고색창연한 케임브리지의 칼리지들을 둘러보다 보면 ‘현대 과학이 케임브리지 없이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까.’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케임브리지는 지금까지 모두 8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케임브리지가 자연과학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은 트리니티 학자들의 공이 크다.31개 칼리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31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자연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또 다른 원동력은 1873년 설립된 카벤디시 연구소다. 세계 최고 수준의 물리학 기초연구소로 정평이 난 카벤디시 연구소는 2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혁신의 전통은 젊은 과학자들에 의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1975년 트리니티 칼리지가 설립한 영국 최초의 사이언스 파크는 컴퓨터 공학과 바이오테크닉 분야에서 영국 최고의 중심지로 꼽힌다. 세인트존스 칼리지도 1987년 기술혁신을 위한 이노베이션 센터를 설립해 대학의 기초적인 연구와 기업의 경제적 효용을 하나로 묶는 산학협력을 주도하고 있다. 수백년의 학문적 전통과 미래기술이 결합된 케임브리지의 창조적 환경에 매료된 세계최고의 갑부 빌 게이츠는 유럽의 다른 도시를 제쳐두고 케임브리지에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를 설립했다. 소니, 올리베티,AT&T 등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케임브리지를 유럽 연구거점으로 삼고 있다. 케임브리지에 대한 세계적 기업들의 재정지원은 매년 8% 이상씩 늘고 있다. 현재 4000여개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39개의 칼리지로 구성된 옥스퍼드는 노벨상 수상자 수에서는 46명으로 케임브리지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인문학의 전통과 함께 토니 블레어 현 총리를 비롯해 역대 영국 총리 25명을 배출한 것으로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영국뿐 아니라 인디라 간디 인도 전 총리, 맬컴 프레이저와 밥 호프 전 호주 총리,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옥스퍼드 출신이다. 옥스퍼드의 학생 토론클럽 ‘옥스퍼드 유니언 소사이어티’는 미래 정치지도자들의 역량을 확인하는 데뷔무대 역할을 한다.1823년 귀족출신의 학생 몇몇이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만든 옥스퍼드 연합토론협회가 모태다. 옥스퍼드 유니언 소사이어티에서 윌리엄 글래드스턴 등 5명의 총리들이 정치가의 삶을 시작했다. lotus@seoul.co.kr ■ “하루 일과 오직 공부… 공부” |케임브리지 함혜리특파원|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는 아이작 뉴튼을 배출한 명문으로 수학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조태준(23)씨는 이곳에서 수학을 전공하는 몇 안되는 한국인 유학생 중 유일한 학부생이다. 다른 케임브리지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칼리지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태준씨의 하루 일과는 매우 단순하다. 졸업반인 태준씨는 오전 시간은 전공강의를 듣는 데 모두 할애한다. 오후와 저녁은 밀린 공부와 ‘슈퍼비전’이라는 개인지도 수업 준비로 보낸다. “학생들은 하루를 대개 오전, 오후, 저녁으로 쪼개서 생활하는데 세 부분 중 적어도 두 부분은 공부에 할애합니다. 계획한 대로 마치지 못한 분량이 있으면 나머지 시간에 채워야 하기 때문에 하루를 거의 공부하는 데 보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3학기로 나뉘어 진행되는 한 학년 동안 순수 및 응용수학, 이론물리학, 확률·통계 과목을 10∼12개 수강해야 하는 빡빡한 강의 일정에 슈퍼비전까지 제대로 따라가려면 하루 24시간도 모자랄 형편이지만 밤새 공부하는 일은 많지 않다. 그는 “케임브리지의 신입생들이 가장 먼저 익히는 것은 시간을 잘 활용하는 법”이라며 자신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스타일이라고 덧붙였다. 태준씨는 중학교 3학년때 혼자 조기유학을 왔다. 케임브리지에 있는 고등학교를 거쳐 2001년 트리니티 칼리지의 공학부에 입학했다.1년을 다닌 뒤 순수학문인 수학에 매료돼 ‘뉴턴의 후예’가 되는 길을 택했다. “자연의 현상을 수학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흥미롭다.”는 태준씨는 “자기 분야에서 확고하게 자리가 잡혔지만 끝없이 연구하는 교수님들과 머리가 비상하면서도 엄청난 노력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큰 자극을 받는다.”고 말했다. lotus@seoul.co.kr ■ 명문대로 살아남기 “기부금이 경쟁력” |옥스퍼드·케임브리지 함혜리특파원|옥스브리지가 전통과 권위를 살리면서 미국의 명문대학들 틈에서 톱클래스 대학으로 살아 남기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대학의 재정 확충문제다. 옥스브리지는 영국에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고의 명문이지만 하버드나 예일·MIT 등 미국의 명문대보다는 재정이 취약해 21세기에 선도적인 역할을 지속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영국대학들의 재정이 취약한 중요한 이유는 기부금 규모가 미국의 라이벌 대학에 비해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현재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의 기부금 규모는 각각 54억달러와 47억달러다. 미국대학 중 기부금 1위인 하버드대(255억달러)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옥스브리지 졸업생들은 미국 명문대 졸업생보다 기부금을 내는 데 소극적이다. 기부금을 내는 졸업생의 비율은 케임브리지의 경우 10%다. 반면 미국 명문사립인 프린스턴대는 60%에 가깝다. 케임브리지는 기부금을 내는 졸업생의 비율을 3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개교 800주년을 맞는 2009년까지 기부금 10억파운드(약 1조 7000억원)를 모금하는 ‘케임브리지 개교 800주년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예일대의 재정담당관을 지낸 앨리슨 리처드 부총장이 캠페인 총책을 맡았다. 리처드 부총장은 “케임브리지가 미국의 대학들을 제치고 과학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명성을 유지하려면 연구시설 등 인프라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며 “기부금은 미래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계획을 진행하는 데 안정적인 재정 기반이 된다.”고 강조했다. 케임브리지는 이공계 학과의 연구단지를 구성하는 웨스트캠퍼스 개발계획과 남쪽의 아덴브룩병원을 중심으로 한 생의학 단지조성 계획 등 6억파운드(약 1조원)의 투자계획을 세웠다. 옥스퍼드도 런던 금융가에 진출한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기부금 모금활동을 펼치고 있다. 옥스퍼드의 빌 맥밀런 기획담당 실무부총장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안정적인 재정과 재정적 독립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옥스브리지는 또 미국대학들보다 낮은 기부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미국 대학들에 일반화된 최고투자책임자(CIO) 영입도 서두르고 있다. 기부금을 유명 투자회사에 맡겨두고 학내 투자위원회를 통해 감사만 하던 기존의 소극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CIO를 앞세워 헤지펀드 사모펀드(PEF) 등 그동안 관심을 갖지 않았던 고수익 부문에 대한 투자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미국 명문대에 맞서기 위해 옥스브리지는 해외 우수인재들을 유치하는 것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최근 경제력이 커지면서 국제적인 위상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인도와 중국의 인재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lotus@seoul.co.kr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6) 마음과 무의식의 중요성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6) 마음과 무의식의 중요성

    이 연재를 통하여 인간을 이해하는 열쇠는 이성이 아니라 욕망이라고 하는 말이 여러 번 강조되어 나왔다(1·12회 글). 이성이라는 개념은 인간이 사회생활에서 지적인 분별력으로 생존을 추구하면서도 도덕적 의지로 좋은 공동체를 이룩할 수 있게 하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일컫는다. 인간이 인간에 거는 최고의 신뢰처가 이성이라는 것이다. 이성은 의식의 판단을 신뢰하고 그것을 최고의 진리로 간주한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지금까지 인간은 이성을 지닌 의식의 존재라고 여겨 이성과 의식의 자각만 강조한 가치론과 당위적 도덕론을 우리는 이제 그만 사용해야겠다. 다 별로 효용도 없는 그럴싸한 명분만 가지고 헛농사를 짓는 셈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무의식이 정신이상자의 영역에 속한다는 무식한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인간들의 실질적 사고방식을 결정하는 요인임을 알지 못하고, 우리는 사회생활의 문제점을 의식의 이성적 판단에 맡겨 해결하려고 애써 왔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고 욕망의 존재다. 의식의 이성은 욕망의 무의식을 지우지 못한다. 의식은 빙산처럼 6분의1정도만 표면에 나와 있고, 나머지 6분의5는 무의식으로 바닷물 속에 은닉되어 있다는 항간의 말이 옳다. 우리는 의식과 마음을 구별해야 한다. 의식은 자의식과 동의어로 쓰이고, 이성적 판단을 가능케 해주는 영역이다. 이성적 판단은 진리와 허위를 나누고, 선과 악을 확연히 분별하고, 경제적 이익과 손실을 계산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이성은 의식의 선명한 명증성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식은 물질적 자연처럼 자기자신을 자각하지 못하는 바보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 자각을 통하여 가치를 새롭게 창출할 수 있는 자유의 진원지라고 여긴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 않다. 마음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17세기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가 세상 만물의 존재방식을 욕망(conatus)이라고 주장하였지만, 불교와 노장사상에서도 삼라만상의 존재방식을 욕망이라고 읽었다. 욕망은 삼라만상이 다 서로 타자와의 상관성을 필연적으로 맺고 있는 관계를 가리킨다. 불교에서 마음을 욕망이라고 부르는데,‘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모든 것은 마음이 지은 것)의 화엄사상은 삼라만상의 일체가 다 마음의 욕망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겠다. 그러므로 마음은 의식과 달리 자연을 대립적으로 보지 않고, 심물상응(心物相應·마음과 물질이 서로 상응함)으로 생각한다. 인간이든 자연이든 다 욕망이고 마음이다. 단지 인간의 마음이 자연의 마음과 다른 점은 인간은 스스로가 욕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불교에서 유식(唯識·오직 알고 있음)이라 한다. 유식으로서의 인간 마음은 물론 의식과 오감(五感)의 지각을 포함하고 있으나, 이것들은 표피적 마음이고 마음의 핵심은 의식보다 훨씬 깊은 심층적 무의식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무의식의 마음에서 자연과 인간은 서로 상응한다. 그런데 자연의 욕망은 두 가지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본능의 소유적 욕망과 자연성(본성=불성=신성)의 존재론적 욕망이 그것이다. 전자는 먹이사슬의 연쇄적 관계를 말하고, 후자는 삼라만상이 다 타자로부터 존재하기에 필요한 것을 받고 자신도 타자에게 존재하기에 필요한 것을 주는 그런 거래관계를 말한다. 자연성은 심지어 죽음마저도 타자에게 주는 증여로 여겨질 만큼 인간에 의한 사고사를 제외하고 자연사한 주검이 자연 속에 여기저기 널려 있지 않게끔 한다. 자연의 마음이 인간에게 전이된 것을 우리는 무의식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무의식은 자연의 욕망을 인간에게 옮겨 놓은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무의식에도 본능적 욕망과 본성적(자연성적=불성적=신성적) 욕망이 깃들어 있다. 인간의 무의식이 곧 자연의 욕망이지만, 하나의 큰 차이점이 있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다. 인간의 언어활동은 곧 인간의 사회생활을 말한다. 이와 동시에 자연의 본능은 인간에게 지능으로 전이되고, 지능에 의하여 인간의 사회생활이 언어활동으로 표현된다. 자연적 본능은 직접적인 먹이사냥으로 생존을 유지하지만, 사회적 지능은 간접적인 우회의 길(지식/권력/돈/명예)을 소유하여 사회적인 인정을 타인들로부터 받으려는 욕망을 추구한다. 인간은 사회생활에서 직접 타인을 먹이로 사냥할 수 없으므로, 간접적으로 타인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타인들이 많이 추구하는 욕망을 쟁취하려고 애쓴다. 지능의 소유욕은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언어생활을 통하여 욕망하는 소유욕의 밀도에 비례하여 일어난다. 지능의 소유욕은 그가 유아기부터 부모와 타인들로부터 배운 언어활동의 막에 의하여 형성된다. 유아기의 인간은 언어활동을 타인들로부터 배우므로 타인들의 욕망이 그 언어활동에 용해되어 있다. 인간의 소유욕은 타인들이 심어준 것인데, 그것이 자기의 것으로 탈바꿈한다. 그래서 유아기의 무의식은 타인들의 언어활동이 형성한 나무나 물결의 결과 같은 셈이다. 이것이 프로이트 계열의 정신분석학자로서 20세기 프랑스 구조주의의 거장인 라캉이 말한 ‘언어활동의 벽’을 형성한다. 따라서 내가 언어활동을 통하여 자아라는 주체를 형성하게 된 이후에 일어난 타인의 말은 나의 무의식에 새겨진 ‘언어활동의 벽’을 거의 뚫지 못한다. 내가 자아라고 부르는 주체는 사실상 타인들이 만들어 놓은 소유욕의 무의식적 함정인데, 나는 언어활동에 가입함으로써 사회생활의 경쟁에서 그 소유욕의 덫에 무의식적으로 걸려든 것과 같다. 그래서 사회생활에서 나는 자존심의 덩어리로 형성되면서,20세기 러시아의 언어학자 트루베츠코이의 말처럼 ‘언어의 체’를 이루고 있는 자존심이 싫어하는 말은 그 체에 걸려 나의 무의식의 욕망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인간의 소유욕적 자존심의 무의식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그런 점에서 20세기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하버마스가 말하는 것과 같은 이상적 대화의 통로는 이성적 의사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는 무의식적 자존심의 벽이나 무의식적 언어의 체를 도외시하는 의식의 이상주의적 명분에 그칠 뿐이다. 한국사회에 만연된 상생적 정치론도 주자학적 명분주의의 잔재이지, 한국문화의 무의식적 소유욕의 업장이 형성한 결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소박한 감상주의의 산물이겠다. 왜 한국에서 자식에게 기업과 권력을 세습하려는(북한) 무의식이 그렇게 강렬한가? 왜 한국인은 대개 어떤 일을 미리 대비하는 지능적 생각이 부족하고, 일에 부딪치면 감정적 흥분으로 들끓는가? 한국인은 왜 상업적 계산전략에서 일본이나 중국에 비하여 일반적으로 뒤떨어지는가? 왜 한국인은 국가를 믿지 못하고 스스로 생존 전략을 강구하기 위하여 일생을 허비하는가? 왜 대개 한국인은 속물주의적 과시욕이 강하며, 일단 성공하면 전문인으로 계속 노력 성취하지 못하고 타이틀만 들고 사회적 저명인사 행세하기에 바쁜가? 사회적 소유의 무의식은 불교에서 말하는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과 유사해 보인다. 각자가 지니고 있는 무의식의 소유욕은 사회적 역사적 공동업의 상자에 한국인의 마음이 갇힌 것이나 다름없는 것 같다. 한국인의 공동업의 테두리는 한국인의 공통적 언어활동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겠다. 한국인의 맵고 자극적 언어활용과 욕설의 난무(한국영화에서 흉칙한 욕설이 너무 심하다), 얄팍한 선악심리와 흑백심리에 의하여 까마귀와 백로로 세상을 이등분하기, 남북한 공히 종교적 정치적 열광심리로 미친 듯이 도취하는 전투심리 등등은 다 한국인의 무의식적 공통 업감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무의식적 업의 속박은 이상적 의식의 도덕이나 이성의 명증성과 의식의 자유를 구가하는 행동철학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자존심과 언어활동의 벽, 대화시 자기 말만 하고 상대방의 말을 안 듣기 등은 본능을 대신한 지능의 사회생활에서 지능이 타인들을 이기기 위한 욕망이 나타낸 결과겠다.20세기 스위스의 심리학자 융이 이런 소유욕의 아상(我相)을 벗어나게 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무의식의 마음에 본능의 욕망 이외에 본성의 욕망이 있음을 밝혔다. 이 본성의 욕망은 우리가 앞에서 본 자연성의 욕망과 같다. 이 길은 불교의 불성 밝히기와 거의 유사하다. 본능(지능)의 소유욕은 사회생활의 언어활동을 통하여 자존심의 덩어리를 지키는 데 신경을 쓰지만, 융이 말한 본성의 무의식적 마음은 완전성(perfection)이 아니고 온전성(integrity)을 유지하려는 욕망을 가리킨다. 완전성은 최고를 향하여 쌓아 나가는 의미를 지니지만, 온전성은 최적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마음의 무의식적 자세를 말한다. 그 자세를 융은 ‘대립자의 무의식적 흐름’(enantiodromy)이라고 불렀다. 이 융의 사유와 유사한 노자의 사상을 우리가 이미 앞에서 읽었다(3·4회의 글).‘대립자의 무의식적 흐름’은 세상만사를 자연에서처럼 ‘선/비선(善/非善)’,‘약/비약(藥/非藥)’‘진리/비진리’처럼 서로 상관적 차이로서 읽는 방법을 말한다. 예컨대 선과 악은 서로 이원론적인 적대의식으로 세상을 보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선은 악을 전멸시키고 완전히 지배하려 한다. 그러나 선과 비선은 그런 적대의식의 관계가 아니고, 비선은 선의 다른 면, 선도 비선의 다른 얼굴로 비친다. 이것은 투쟁적 이원성을 보다 완화된 이중성으로 읽음으로써 극단적 열광의식과 배타적 자의식을 지울 수 있는 길이다. 이미 원효도 이런 사유를 개진하였다.‘유/무’를 더 화쟁적으로 읽기 위하여 그는 ‘유/비유(무)’,‘무/비무(유)’의 이중성으로 보기를 종용했다(14회 글). 무의식의 마음이 이런 이중성으로 짜여져 있다고 여기는 본성의 사유는 자기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하여 박멸해야 할 적을 만드는 지능적 소유욕을 잠재울 수 있다. 본능의 소유욕을 지우기 위하여 의식과 이성을 거창하게 장식하지 말고, 마음의 무의식적 본성을 조용히 살리는 지혜를 익혀야 한다. 우리는 무의식의 공통업장을 도외시하고 너무 공허한 이상론만을 주장한다. 속물주의처럼 이것도 한국병 중의 하나겠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책꽂이]

    ●파라오 이집트의 영광(델리아 펨버턴 지음, 김희상 옮김, 심산 펴냄) 카르나크와 룩소르의 대사원에서부터 투탕카멘의 무덤에 묻혀 있는 엄청난 보물에 이르기까지 고대 이집트인들은 어떤 고대문명도 따라올 수 없는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이집트인들이 가장 중요하고 신성하게 여긴 도시는 테베. 고대 그리스인들은 테베 건축물들의 위용과 화려함에 감동한 나머지 “100개의 문을 가진 도시”라는 찬사를 보냈다. 그들은 보이오티아에 있는 자신들의 도시에 똑같이 테베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고대이집트 문명의 신비를 찾아 나선다.3만 8000원.●천로역정(존 버니언 지음, 김 창 옮김) 천국으로 가는 한 순례자의 고단한 여로를 장엄한 서사시처럼 그려낸 기독교의 고전. 간디는 존 버니언이 베드퍼드 감옥에서 지은 이 책을 “영어로 쓰인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고 칭송했다.“나는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라는 크리스천의 탄식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고뇌와 회심, 전도와 박해 그리고 마침내 최후의 승리로 이어지는 버니언 자신의 고달픈 생애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1만 6900원. ●지식의 증류(브루스 모런 지음, 최애리 옮김, 지호 펴냄) 16∼17세기 갈릴레오, 뉴턴 등에 의한 고전역학의 확립과 함께 자연상·세계상의 변혁을 몰고온 과학혁명. 이 과학혁명 이전, 천문학자는 점성술사였고 화학자는 연금술사였다. 사람들은 마법과 신비주의가 갑자기 과학과 합리주의로 바뀌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유럽지성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이에 반박한다. 연금술도 그 자체의 맥락 내에서 보면 논증적 과학의 테두리 안에 놓일 수 있다는 것. 미신 혹은 마술로 잘못 알려져 있는 연금술은 오히려 근대과학을 태동케 한 변화의 주인공이었다고 주장한다.1만 8000원.●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후쿠자와 유키치 지음, 허호 옮김, 이산 펴냄)‘문명개화’의 선구자인 후쿠자와 유키치의 인간적 면모가 담겼다. 막부 말기와 메이지 시대로 이어지는 근대 일본의 격동기를 헤쳐 나가면서 자신의 뜻한 바를 이뤄나간 과정을 담담하게 회고한다. 후쿠자와는 자신이 글을 비교적 늦게(열서너살 때부터) 배우기 시작했음에도 남들보다 빠르게 한문과 네덜란드어, 영어를 익힌 경험이 있어서인지 기본적인 예의범절과 예능교육 외엔 조기교육에 반대했다. 자신이 낳은 9남매에게도 건강하게 자라기만을 바랐지 공부하란 소리는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일본 만엔 권 지폐에 인쇄된 초상의 주인공이다.1만 9000원. ●미국법, 오해와 이해(이수형 지음, 나남출판 펴냄) 우리 언론에서 언젠가 “음반업체들이 존 도(John Doe)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법정 영어 용어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존 도’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존 도’는 소송의 원고나 피고를 특정할 수 없을 때 편의상 사용하는 무의미한 이름으로 우리로 치면 동사무소 민원양식에서 흔히 보는 ‘홍길동’ 정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성명불상의 피고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제대로 된 번역이다. 국내 언론보도 등에서 잘못 번역되고 있는 미국법 관련 표현을 살폈다.2만원.●한비광, 김전일과 프로도를 만나다(조성면 지음, 일송미디어 펴냄) 장르문학에 대한 본격 평론집. 공포문학의 제왕 스티븐 킹과 현대인의 집단적 노이로제, 동아시아 최초의 베스트셀러인 ‘삼국지’ 등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한다. 제목의 한비광은 무협만화 ‘열혈강호’의 주인공이며, 김전일과 프로도는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과 현대 장르판타지의 효시인 ‘반지의 제왕’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1만원.
  • [데스크시각] 글 읽는 민족의 자존심/김종면 문화부 차장

    일본 유수의 한 신문사 사장은 언젠가 “한국이 일본을 따라오지 못하는 것은 양국의 독서량 차이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의 연간 도서발행 실적이 일본의 3분의1에 불과하고 특히 순수과학과 예술서적은 10분의1에도 못 미친다는 통계청 발표도 있고 보면, 이런 자존심 상하는 지적을 받아도 딱히 할 말이 없다. 글 읽는 선비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온 우리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을까. 우리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을 가진 문화강국이요, 안중근 의사의 말대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유구한 지적 전통을 지닌 민족 아닌가. 마침 한국독서학회가 3월 ‘이달의 독서인’으로 조선 중기의 대표적 시인 김득신을 선정, 피폐해진 우리 독서풍토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여기서 김득신은 물론 조선 후기 김홍도와 함께 활동한 풍속화가 긍재(兢齋) 김득신이 아니라 17세기 시단을 이끈 문인 백곡(柏谷) 김득신이다. 백곡에 관해서는 책읽기와 관련된 일화가 적잖이 전한다. 백곡은 부친이 감사를 지낸 명문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시가(詩家)로서의 싹은커녕 주위로부터 글공부를 포기하라는 권고까지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훌륭한 글들을 골라 읽고 또 읽어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책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란 말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백곡이 가장 즐겨 읽은 글은 사기의 ‘백이전’이다. 그는 이것을 무려 11만 3000번이나 읽었다고 ‘독수기(讀數記)’에 적고 있다. 부인의 상중에 일가 친척들이 ‘애고, 애고’ 곡을 하는 중에도 그는 곡소리에 맞춰 ‘백이전’의 구절을 읽었다는 일화도 있다. 한마디로 독서광이었다. 한국독서학회는 국민 독서운동의 일환으로 올해부터 매달 ‘이달의 독서인’을 선정, 발표해오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청장관 이덕무를,2월에는 퇴계 이황을 뽑았다. 간서치(看書痴, 책만 보는 바보)라는 자호를 쓸 정도로 책을 좋아한 이덕무, 끼니마저 거르면서 책을 읽었던 이황, 둔한 머리를 무릅쓰고 책읽기에 힘써 대시인이 된 김득신. 이들의 독서법은 한결같았다. 이덕무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그 뜻이 심오해 이해할 수 없을 때는 책장을 덮어두고 한참 쉬었다가 다시 읽을 것을 권했다. 일종의 ‘재충전형’ 숙독법이다. 이황 또한 빠르게 읽기보다는 천천히 생각하면서 글의 뜻을 음미하는 숙독과 정독을 바람직한 독서법으로 여겼다. 이황은 책을 다 읽으면 그것을 암송해 완전히 자기 것으로 삼았다. 숙독에 관한 한 김득신은 그 이상의 예를 찾기 힘들다. 책을 한 번 펼쳤다 하면 적어도 1000번을 읽었고, 좋아하는 책은 1만번 이상 읽었다고 하니 눈물겹기까지 하다. 요컨대 이들의 책읽기 코드는 숙독이었다. 우리 주변에는 권장도서 또는 필독도서 목록이 난무한다. 그러나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다. 옛 선인들의 독서법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이달의 독서인’ 3인이 강조하듯, 속독은 ‘독서의 적’이다. 속독을 하면 옛것을 참고해 새것을 알기 어렵고 또 무르익은 생각을 하기 힘들어 마음이 급해지고 늘 쫓기게 된다는 게 이황의 말이다. 이런 옛 선인들의 독서법을 몸에 익힌다 해도 기본적으로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한다는 과제는 남는다. 다행히 최근 몇 년 새 작은도서관 만들기나 북스타트운동 같은 소리없는 독서혁명이 이뤄지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조선시대 독서왕’ 김득신.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으로 꾸준히 책을 읽어 입신한 그는 이 땅의 ‘독서 둔재’들에게 하나의 희망이다. 이같은 독서전통을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 단순히 ‘이달의 독서인’을 선정하는데 그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아쉽게 막을 내린 문화관광부 ‘이달의 문화인’ 선정작업의 대안이 될 만한 구체적인 독서운동사업을 모색해야 할 때다. 김종면 문화부 차장 j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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